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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7
저자 서문 10
13
4장 그리스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의 소망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골로새서 4:18
때로 땅에서 겪는 어려운 상황은 하늘에 대한 복음의 소망을 더
선명하게 한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과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은 어
려운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는데, 바울은 옥에 갇힌 상태였고 교회
는 거짓 가르침의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빌레몬은 자기 노예인 오
네시모와 소원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서신들에서 우리는 그리
스도에 대한 성경의 가장 심오한 가르침과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과 관계에 가져다주는 실질적인 차이를 발견한다. 그러면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의 소망 찬 가르침으로 이어진 어려운 상황을 고찰함으로
써 “[바울이] 매인 것을 생각해”( 골 4:18 ) 보자.
옥에 갇힌 바울
복음 사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행
9:16 ) 라고 말씀하신 사도 바울에게는 아마도 이것이 가장 사실이었
을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에 교회를 개척한 에바브라의 사역을 묘
사하는 방식( 4:12-13 ) 과 비슷하게 자기 사역을 “수고”와 “애씀”으로
묘사한다( 골 1:29, 2:1 ). 또한 바울은 임무의 성격이 사역의 동역자들
에게 고되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함께 역사하는 자들”( 골
4:11; 몬 1, 24절 ), “함께 병사 된 자”( 몬 2절 ), “함께 종 된 자”( 골 1:7; 참고.
4:12 ), “함께 갇힌 자”( 4:10 ) 등의 호칭을 사용한다. 실제로 바울은 이
두 서신을 옥에 갇힌 상태에서 썼는데, 이것은 아마도 로마에서 2년 간 가택 연금된 기간이었을 것이다( AD 60-62년경, 행 28:16-31을 보라 ). 1)
1) 이것은 전통적인 견해인데, 현대의 많은 학자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예. David W. Pao, Colossians and Philemon, ZEC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2], 23–24). 일부 학자는 로마가 오늘날 튀르키예에 자리한 골로새와 거리가 멀므로, 바울이 로마에서 서신을 쓸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 네시모가 그렇게 멀리까지 여행했을까? 그리고 바울은 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골로새를 방문할 계획이었을까(몬 22절)? 바울은 반대 방향으로 스페인으 로 갈 계획이 아니었을까(롬 15:23-24를 보라)? 이것을 설명하려고 많은 학자는 바울이 골로새에 훨씬 가깝고 자신이 수년간 사역한 에베소에서 어느 이전 시점 에 투옥되었을 것이라는 이론을 세운다(예. N. T. Wright, Colossians and Philemon: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NTC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86], 37–42). 그러나 로마 세계의 스탠포드 지리 공 간 네트워크 모델(https://orbis.standford.edu)의 정보에 따르면, 로마는 골로 새에서 여행하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 이 다른 지점에서 여행 계획을 변경한 사실을 알고 있다(행 16:6-8; 고후 1:15-
골로새서·빌레몬서 신학
바울은 투옥을 사역의 중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역의 일부로 여
겼다. 이 사실은 골로새서 1장 24절-2장 5절에서 바울이 글을 쓰는
목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에
게 자신이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
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24 )
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에
불충분하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바울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현재 바울과 에바브라처럼 “육신으
로” 고난받는 사역자들을 사용해 교회를 온전히 성숙하게 하신다는
뜻으로 말한다( 1:28; 4:12; 참고. 1:22 ).
그래서 사도는 옥에 갇혀 있던 동안에도 계속 일했다. 바울은 오
네시모를 회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몬 10절 ). 그리고 바울
은 그리스도의 교리에 대한 자신의 가장 심오한 신학적 성찰을 담
고 있는 골로새서를 썼다. 일부 학자는 골로새서의 신학적 가르침
이 다른 바울서신에 담긴 내용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어서 바울이
이 서신을 쓸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2) 내가 저자 문제 2:4).
2) 예로 다음을 보라. Eduard Lohse, Colossians and Philemon, Hermeneia, trans. William R. Poehlmann and Robert J. Karri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 177–183. 골로새서의 신학은 19세기와 20세기에 W. 부야르트가 서신의 문체 분석을 통해 이 이론을 지지하기 전까지 학자들이 바울의 저작설을 거부하게 된 주된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다음을 보라. John M. G. Barclay, Colossians and Philemon, T&T Clark Study Guides [New York: T&T Clark International, 1997], 20–23). 더글러스 무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저자 에 대한 논쟁의 양측에 있는 학자들은……이 문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증거가
를 제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골로새서의 신학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골로새서의 가르침이 정말 사도 바울
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내 생각에는 골로새서가 대단히 많은 점에
서 빌레몬서와 겹치므로, 사도 바울이 빌레몬서와 동시에 골로새서
를 작성하고 보냈을 가능성이 역사적으로 높은 것 같다.3) 골로새서
에 담긴 신학적 성찰의 심오함은 다른 바울서신의 신학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골로새 교인을 위협하고 있던 거짓 가르침과
의 대결을 통해 더 선명해진 바울 신학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골로새와 철학 골로새는 현재의 튀르키예인 로마의 아시아 속주에 자리한 외딴
내륙 도시였다. 바울은 아마도 이 두 서신을 쓸 당시 골로새에 가
서신의 신학이라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라고 생각한다. Douglas J. Moo, The Letters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PNTC (Grand Rapids, MI: Eerdmans, 2008, 『PNTC 골로새서·빌레몬서』,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7), 32.
3) 두 서신은 모두 바울이 옥에 갇힌 상태에서 썼다고 주장하고, 디모데를 서신의 공동 발신자로 언급하고, 믿음과 사랑이라는 기독교 덕목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 하는 진술로 시작하고, 노예제도에 초점을 맞추고(골 3:18-4:1의 가정 규례에서
노예제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주목하라), 노예 오네시모를 언급하고, 아킵보를 교회의 사역자로 언급하고, 에바브라,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고든 피가 진술하는 대로, “많은 학자가 골로새서의 바울 저 작설을 거부하면서도 빌레몬서의 신빙성을 긍정한다는 사실은 신약학계의 독특 한 불가사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Gordon D. Fee, Pauline Christology:An Exegetical-TheologicalStudy (Peabody, MA: Hendrickson, 2007), 289n2.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4) 그러나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중에 해안
도시인 에베소에서 오랜 기간 사역을 했다 ( AD 52-55년경, 행 19:120:1을 보라 ). 누가는 이 기간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10 ) 라고 말한다. 골로새 교인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이웃과 함께 에바브라에게서 말
씀을 들었다( 골 1:7; 4:13 ). 따라서 에바브라는 아마도 골로새에서 도
보로 약 일주일 정도 떨어진 에베소에서 바울에 의해 회심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에바브라가 복음을 듣고 집으로 돌아갈 때, 미안데르강을 따라 이어진 동쪽 길을 따라 여행하여 리코스강 계곡
으로 약간 남쪽으로 꺾어 마침내 골로새에 도착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전에 그곳에서 에바브라는 친구와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다( 2:6 ). 5)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골로새 신자는 거짓 가르침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울은 옥에 갇혀 있을 때, 자신과 함께 있던 에바브라를 통
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몬 23절 ).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4)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할 때 에베소로 가는 길에 골로새를 경유했을 가능 성이 있다(다음을 보라. 행 18:23; 19:1). 그러나 슈나벨은 “바울은 골로새와 라
오디게아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으므로(참고. 골 2:1), AD 52년에 리코스 계곡과 미안데르 계곡을 통과해 에베소로 여행하지 않았을 가능 성이 더 높다”라고 결론 내린다. Eckhard J. Schnabel, Early Christian Mission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1200.
5) 골 1:7의 일부 사본에서는 에바브라가 “너희를 위한”(ESV)이 아니라 “우리를 위 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NIV)이라고 표현한다. 이 어구는 바울이 에바브라 를 골로새로 보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울의 서신에 원래 어떤 어구가 있었는지 결정하기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신자에게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고”( 골
2:4 ) 서신을 쓰기로 결심했다. 바울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2:8 ) 라고 경고한다. 더 문자적으로 말
하면, 바울은 이 구절에서 “그 철학[‘테스 필로소피아스’]”에 대해
쓰는데, 구체적인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거짓 교사들은 오늘날 누군가가 자기의 견해를 “과학적”이라고 부
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뢰를 얻기 위해 그들의 가르침을 “철학”
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면 이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이 철학은
골로새서 2장 16-23절의 논쟁적인 부분에서 구원의 충만함에 이르
려면 율법 준수와 천사와 관련된 환상이 필요하다는 내용에 가장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거짓 교사들은 골로새 성도가 일정한 음식 제한을 따르고 일정한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비판”을 불사했다( 2:16; 참고. 2:21 ). 아마도 거
짓 교사들은 신자가 구원받으려면 모세 율법의 음식 요건과 달력
요건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율법
은 부정한 동물을 먹거나 그 사체와 접촉하는 일( 레 11장 ), 부정한 그
릇에 담긴 음료를 마시는 일( 레 11:34 ), 회막의 제사장과 나실인 서약
을 한 사람이 포도주를 마시는 일( 레 10:9; 민 6:3 ) 을 금지하고 있다.
바벨론 추방 이후에 이교 문화 속에서 살던 일부 유대인은 더럽혀
지는 일을 피하려고 모든 고기와 포도주를 삼가기도 했다( 단 1:8-16 ).
요세푸스가 2천 명의 유대인 가족이 바벨론에서 골로새 지역의 옛
지명인 프리기아로 이주했다고 기록한 덕분에 우리는 바벨론 추방
골로새서·빌레몬서 신학
후에도 골로새에 유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6) 절기 요건
과 관련해 율법은 이스라엘의 연간, 월간, 주간 달력을 규정했다( 레 25장 ). 그리고 바울이 삼중으로 묘사하는 “절기”, “초하루”, “안식
일”( 골 2:16 ) 은 율법의 달력 규정과 관련해 구약 성경에 여러 번 나
온다( 예. 대하 2:4 ). 끝으로 바울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
일 뿐”( 히 10:1 ) 이라고 쓴 히브리서 저자와 같은 모형론적 추론을 사
용해 달력 규정과 음식 규정이 “장래 일의 그림자”( 골 2:17 ) 라고 말
한다. 따라서 이 철학은 아마도 신자가 구원받으려면 모세의 달력
법과 음식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을 것이다. 어쩌면 이 철학은
또한 이방인 신자도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을 것이다( 참고. 골 2:11 ).
이런 이유로 몇몇 학자는 골로새 신자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 기독교 교사들이 이방인 기독교인에게 할례를 받고 유대 율
법을 지키도록 강요했던 것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
했다.7) 그러나 대다수 학자는 골로새에서의 문제가 더 복잡하고 다
르다는 점을 올바르게 지적했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 준수를 하늘
의 천사와 관련된 환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금욕적인 관례로 장려 하고 있었다. “아무도 꾸며 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는지라”( 골 2:18; 참고. 2:23 ). 따라서 거짓 교사들은
6) Josephus, Ant. 12.3.4.
7) 특히 다음을 보라. Wright, Colossians, 26–33, 109.
이런 금욕적인 관례와 천사와 관련된 환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구원에서 “정죄하는” 일도 불사했다. 그러면 이 환상은 무엇이었을
까? 해당 철학의 이런 측면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바울이 많
은 설명을 해 주지 않았고 주요 증거 구절인 골로새서 2장 18절은
번역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두 가지 기본 견해가 있다. 일부 학자는 이 철학이 일
종의 유대 신비주의였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골로새서
2장 18절의 “천사 숭배”는 요한계시록 4-5장과 다른 유대 묵시 문
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천사의 숭배를 의미한다.
“그 본 것에 의지하다”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들어가다”가 되는
데, 아마도 누군가가 천사를 보고 천사가 하는 예배에 참여하기 위
해 하늘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8) 다른 학자들은 이 철학이
유대교의 측면과 이교 사상의 측면을 끌어들인 혼합주의적 철학
이라고 생각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골로새서 2장 18절의 “천사 숭
배”는 천사에 대한 인간의 숭배나 공경을 의미한다. 아놀드는 지역
의 민간 종교에서 사람들이 천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얼마나 흔한 일이었는지를 기록했는데 유대인도 마찬가지였다.9) 4세기 라
8) 이 입장을 옹호하는 영향력 있는 고전적 논증은 다음 작품의 두 장을 보라. Fred O. Francis, in ConflictatColossae:AProblemintheInterpretation ofEarlyChristianityIllustratedbySelectedModernStudies, rev. ed., ed. Fred O. Francis and Wayne A. Meeks (Missoula, MT: SBL and Scholars, 1975), 163–207.
9) Clinton E. Arnold, The Colossian Syncretism: The Interface between ChristianityandFolkBeliefatColossae (Grand Rapids, MI: Baker, 1996), 11–89.
골로새서·빌레몬서 신학
오디게아 인근 도시에서 소집된 기독교 공의회에서는 기독교인이
천사를 숭배하는 것을 금지하고 성직자가 마술사나 점성가가 되는 것을 금지해야 했다.10) 이 철학이 혼합주의의 성격을 띠었다면, “들
어가는 것”은 에베소 북쪽의 클라로스에 있는 이교도 사원의 비문
에 언급된 대로 이교도 신비 종교 중 하나의 환상적 체험에 들어가
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11)
이 두 가지 견해 중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나는 혼합주의적
견해( 두 번째 견해 ) 를 선호하는데, 천사와 같은 능력에 대한 이교도의
두려움이 모든 마귀의 권세보다 우월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골로새서의 강조( 1:16; 2:8, 10, 15, 18-19, 20 ) 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골로새 신자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써
무언가를 “놓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골로새 신자는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종교적 체험을 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천사의 도움을 청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현대 독자에게는 이런 상황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서스턴은 “골로새서는 다
른 모든 것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중심 성을 다루고 있다. 이런 그리스도 중심성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문 화적·철학적·종교적 다원주의의 세계에서 주장된 것”이라고 말 한다.12) 복잡하고 다원적인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무언가
10) Arnold, ColossianSyncretism, 86.
11) 다음을 보라. Arnold, ColossianSyncretism, 104–107, 127–131, 155–157.
12) Bonnie Bowman Thurston, All the Fullness of God: The Christ of Colossians (Eugene, OR: Cascade, 2017), viii.
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렇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
르치기 위해 서신을 쓴다.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모든 것, 심지어 빌
레몬과 그의 노예 오네시모 사이의 ‘평범하지만 어려운’ 관계적 갈
등과 관련해서도 충분하다.
빌레몬과 오네시모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에서 현대 독자에게 가장 어렵게 느
껴지는 상황은 오네시모가 노예였다는 사실이다. 바울 학계에서는
로마 세계의 고대 노예제도와 미국의 현대 노예제도를 어떻게 비교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 왔다. 고대 노예제도가 현대 노
예제도만큼 나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끔찍
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진실은 아마도 그 중간 어딘가에 있
을 것이며 사람마다 경험한 바가 다를 것이다.13)
그렇더라도 오늘날 빌레몬서를 읽는 독자는 이 특별한 상황의 주
범이 노예 오네시모였던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 하다( 몬 11, 18절 ). 이런 상황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자
유 민주국가에 사는 사람은 때때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것
보다 더 큰 악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13) 이 단락에 영향을 준 바울과 노예제도에 대한 학문의 개요는 다음을 보라. John Byron, “Paul and the Background of Slavery: The Status Quaestionis in New Testament Scholarship,” CBR 3.1 (2004): 116–149.
골로새서·빌레몬서 신학
서신이 현대의 노예제도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은 사실
이다.14) 그러나 오네시모가 노예가 된 것이 이 서신의 주된 문제는
아니다. 주된 문제는 오네시모와 빌레몬 사이의 소원함과 적대감인
데, 이것은 바울이 쓴 서신의 주요 요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
라”( 17절 ).
무엇이 이런 소원함을 불러왔을까? 역사적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
업은 바울이 말하는 미묘하고 목회적인 방식 때문에 매우 어렵다.
전통적으로 해석자들은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에게서 달아난 도
주 노예였으며 아마도 재산을 훔쳤을 것이라고 가정해 왔다.15) 이것
은 오네시모의 무익함( 11절 ) 과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불의를 행
했다는 바울의 암시적 언급( 18절 ) 뿐 아니라,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난 이유( 15절 ) 도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람페는 오네시모가 그저
우연히 바울을 만난 도주 노예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보다 오
네시모는 빌레몬과 자신 사이의 이전 다툼을 중재하려고 의도적으
로 바울에게 간 것이었다.16) 이것은 특히 바울이 백만 명 이상의 인
구가 사는 로마의 옥에 갇혀 있었다면, 오네시모가 바울을 어떻게
14) 나는 113-116쪽, 132-135쪽에서 노예제도 문제를 다룬다.
15) 미첼은 아타나시우스,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 크리소스토무스, 히에로니무스
등이 도주 노예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Margaret M. Mitchell, “John Chrysostom on Philemon: A Second Look,” HTR 88.1 (1995): 145–147.
16) Peter Lampe, “Keine ‘Sklavenflucht’ des Onesimus,” ZNW 76 (1985): 135–137.
만났는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빌레몬서는 어떤 자유인
이 그와 그가 여전히 위해서 일하던 전 주인의 사이를 중재하기 위
해 소플리니우스를 찾아간 소플리니우스의 편지와 비교될 때가 종
종 있다.17) 이 견해의 문제점은 람페가 호소하는 본문과 주인의 분
노를 반복해 언급하는 소플리니우스의 편지와 달리, 오네시모가 빌
레몬의 분노와 처벌을 경험할 위험에 놓여 있었다는 징후가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 빌레몬서에서 제기된 문제는 오네시모의 “무익한”
행동과 어쩌면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불의를 행했을 수 있을 것
이라는 암시다. 이런 문제는 오네시모가 도망한 것으로 가장 잘 설
명된다.18)
바울의 미묘한 글쓰기 방식을 고려하면, 빌레몬이 소원해진 자기
노예를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오네시
모가 주인에게 돌아가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신
에서 우리는 복음의 소망이 신자의 현재와 미래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주는 강력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15절 ).
17) Pliny the Younger, Ep. 9.21. 구하기 쉬운 번역은 다음을 보라. N. T. Wright,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3), 3.
18) 또 다른 이론은 빌레몬이 바울을 돕기 위해 오네시모를 보냈다는 것인데, 가장 최근에 Stephen E. Young, OurBrotherBeloved:PurposeandCommunity in Paul’s Letter to Philemon (Waco, TX: Baylor University Press, 2021)이 이렇게 주장한다. 본질적으로 억압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읽기에 서 빌레몬서를 구하기 위해 빌레몬서 11, 18절에서 오네시모의 잘못을 경시하 는 스티븐 영의 방식은 내 생각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Our Brother Beloved, 7-38). 나는 전통적인 이론이 미국에서 과거에 억압적으로 적용되 었다는 데 동의하지만, 이런 오용이 이론의 오류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골로새서·빌레몬서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