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속죄 입문

Page 1

┃시리즈 서문 9

┃감사의 글 11

서론 복음의 미련함 13

1. 속죄의 이야기 31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나라까지

2. 속죄의 중심 58

위대한 교환

3. 속죄의 성취 90

다차원적인 사역

4. 속죄의 일관성 132

통합된 성취

5. 속죄의 공동체 160 화해되고 화해함

6. 속죄의 삶 184

제 십자가를 지고

결론 210

┃추천 도서 213

목차

┃시리즈 서문┃

고대 그리스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사상가는 사물의 본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직신학을 구성 하는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는 일련의 신학 연구는 바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런 각 연구에서 신학자는 교리의 본질을 다

룬다. 따라서 이 시리즈는 교회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하나님이 성

경에 계시하신 것을 충실히 이해하고, 사랑하고, 가르치고, 적용할

수 있게 기독교 전통과 현대 신학에 모두 부합하는 짧은 신학 연구

를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존 칼빈이 로마서 주석의 헌정 서신

에서 “명료한 간결함”이라고 불렀던 것을 통해 포괄성을 잃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어떤 교리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2천 년 동안의 고백과 토론

및 논쟁을 거쳐야 하므로 짧게 공부하기보다는 길게 공부해야

한다. 따라서 짧은 시간 안에 더 선별적이면서도 능숙하게 공부해 야 한다. 다행히도 이 시리즈의 기고자들은 간결하면서도 정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핵심 목표는 단순한 것이 단순한 것으 로 변질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테스트는 짧은 학습 주제를 깊이 있 게 공부할 때 약간의 학습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단순

시리즈 서문 9

한 것은 증폭될 수 있다. 단순한 것은 수정해야 한다. 편집자로서 우

리는 이 시리즈 책들이 그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초점은 다양하지만, 각 권은 (1) 교리를 소개하고, (2)

교리를 맥락에 맞게 설정하고, (3) 성경에서 교리를 발전시키고, (4) 다양한 실을 하나로 연결하고, (5)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가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

뻐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이 ‘살아 계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신의 기록된 말씀에 은혜롭게 계시하

신 하나님 자신의 생각을 성령의 강력한 역사 안에서 생각하도록

돕기를 바란다.

그레이엄 콜·오렌 마틴

속죄 입문

10

복음의 미련함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

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예상을 뛰어넘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력이나 군사력을 사용 해 백성에게 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

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종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다른 사

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의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1)

폴슨 풀리코틸

1) Paulson Pulikottil, “Isaiah,” in South Asia Bible Commentary, ed. Brian Wint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906.

서론 ┃ 복음의 미련함 13

서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복판에서 선포되고 있었으나 나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복음을

듣고 있었다. 나는 한 주 동안 설교를 쉬고 있었으므로, 우리 회중

속에 앉아 동료 목사 중 한 명이 전하는 고린도후서 설교를 듣고 있 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설교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 나는 이 본문의 설교를 들

은 적이 있다. 그날 설교를 들을 때 내 시선은 설교자나 주위에 앉

은 젊은 신자들이 아니라 바로 앞에 앉은 남자의 상처투성이 머리

에 고정되었다.

그의 머리에 난 모든 흉터는 여러 철로가 두피의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고통과 상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이 남

자는 우리 교회 성도로 나는 그의 흉터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흉터는 ‘뇌암’이라는 단어로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산산조각 난 직후 여섯 살 때 수술로 생긴 것이다. 다음

흉터는 서른네 살에 암이 재발하면서 생겼다. 몇 달 후 추가 수술을

받으면서 또 다른 흉터가 생겼다. 가장 최근에 생긴 흉터는 뇌에서

교모세포종 종양 두 개를 제거할 때 생겼다. 한 주간의 화학 요법이

끝난 후 그는 교회에 오려고 온 힘을 다했다. 나는 그가 십자가에

대한 설교로 위로를 받았다고 믿지만 그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능

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 는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

교회에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예증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서 흉

터와 허약함과 약함만 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관점에서

속죄 입문

14

그의 흉터를 보게 된다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미 해결

되었으며, 그의 미래 소망은 전적으로 안전하며, 현재 그는 천사들

이 놀랄 정도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영광으로 변화되고 있다. “십

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

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

나는 회중을 둘러보면서 우리도 암에 걸린 우리 친구와 크게 다

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흉터를 지니고 있다. 우리 흉

터가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하고 있다. 우

리는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우리 자신의 죄와 다른 사람

들의 죄에서 오는 고통을 경험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

스도 안에는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회복될 소망이 있다. 한 남자를

위한 능력일 뿐 아니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우리 교회와 온 세상

을 위한 치유와 용서와 화해의 능력은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

수 안에 있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만물을 새롭게 하고 계

신다는 진리를 붙잡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 멀리 떨어져 만물

을 새롭게 하지 않으신다. 성부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자를 보내시

고 성자에게 ‘죄인들을 대속하고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라’는 사명

을 맡기셨다. 하나님은 가장 놀랄 만한 방식으로 이 일을 행하신다.

미련함 15

서론
복음의

십자가의 어리석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은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화해와

창조 세계의 회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 무명이었던 유

대인 목수의 죽음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을까? 로

마가 수만 명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이 사람의 십자가 처형이 다

른 사람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가져다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국가

에 의한 끔찍한 처형이 어떻게 좋은 소식으로 여겨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속죄 교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금은 생소한 십자가 처형이라는 개념으로 숨

이 막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십자가는 숨이 막힐 수밖에 없는 무시

무시한 개념이다. 십자가형은 범죄자에게 서서히 고통을 가하고 공

개적으로 수치심을 주기 위해 고안된 처형 방식이었다. 참수형이

빨리 죽이는 처형 방식이었던 반면, 십자가형은 의도적으로 범죄자

를 장시간 살려 두면서 극심한 고통에 빠뜨렸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들은 못이 손과 발의 주요 동맥을 관통하는 고통을 겪었을 뿐

아니라, 숨을 쉬기 위해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몸을 일으켜 세우

며 십자가의 거친 나무에 상처 난 피부를 긁어 내야 했습니다. 십 자가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처형 방식이었으므로, 십자가 처형의 심

각성에 근거한 ‘극심한’( excruciating ) 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겼다. 이

16 속죄
입문

단어는 문자적으로 “십자가에서부터”라는 뜻이다.2)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 처형은 신체의 고통이 아니라 사

회적 수치를 강조한다. 십자가 처형은 사회의 인간쓰레기( 반역자들,

노예들, 부랑자들 ) 에게 집행되었고 사형수를 대중의 구경거리로 삼아

수치심과 비인간적 굴욕감을 주는 의도였다. 주로 로마의 번화한

도로에서 십자가 처형을 집행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은 가

장 고통스러운 자세, 즉 벌거벗은 채로 팔을 뻗은 채로 홀로 매달려

있었다. 이는 사형수들이 숨을 헐떡일 때마다 조롱과 멸시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의 옷뿐 아니라 존엄성도

벗겨졌다. 예를 들어 예수보다 한 세기 전에 로마에서 일어난 노예

반란으로 6천 명이 로마에서 시작하는 200km의 도로를 따라 십

자가에 못 박혔다.3) 숨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시체들은 이미 독수

리나 해충의 먹잇감이 되었고 로마의 힘을 세계에 알리는 광고판

역할을 했다.4)

2) 키케로는 십자가 처형은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었다고 주장했다. M. Tullius Cicero, The Orations of Marcus Tullius Cicero, trans. C. D. Yonge (London: George Bell and Sons, 1903), 2.5.165. 요세푸스는 십자가 처형을 “가장 비참한 죽음”으로 묘사했다. Flavius Josephus, TheJewishWar, in The Genuine Works of Flavius Josephus,the Jewish Historian, trans. William Whiston (London: W. Boyer, 1737), 7.6.4. 유대인들은 십자가 처형 을 하나님의 저주로 이해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 니라”(신 21:23). 십자가 처형의 배경으로는 다음을 보라. Martin Hengel, Crucifixion in the Ancient World and the Folly of the Message of the Cross (Philadelphia: Fortress, 1977); Tom Holland, Dominion (New York City: Basic Books, 2019), 1–17.

3) Hengel, Crucifixion in the Ancient World, 55.

4) 십자가 처형과 유사한 현대의 처형 방식은 교수형일 것이다. 제임스 콘은 그리스

서론 ┃ 복음의 미련함 17

1세기에 십자가는 죽음과 패배의 끔찍한 상징이었으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구세주를 숭배하는 이유로 조롱

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고전 1:23 ). 유대

인들은 로마를 전복시키고 정치적 주권을 확립할 승리의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귀에는 고난받는 메시아라는 개념이

해괴한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유대 백성은 그들의 원수들에게 처

형당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원수들을 무찌르는 메시아를 원했다. 이

방인들( 특히 헬라인들 ) 은 철학과 지혜를 통한 구원을 추구했다. 왕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믿을 수 있는 어리석은

주장이었다. 십자가에 죽어 가는 범죄자가 아니라 사색하는 철학

자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좋은 삶을 입증하는 그림이었다.

십자가 처형 이후 나타난 주류 견해는 예수는 실패자이고 그의

추종자들은 바보들이고 십자가는 패배였다는 것이었다. 로마인들

이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초기의 낙서에 잘 드러

난다. 다음 그림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한

예배자를 묘사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머리 대신 당나귀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그림 아래에는 “알렉사메노스가 그의 신을 경배

도의 원수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행 10:39) 죽인 사실을 근거로 교수형과 십

자가 처형 사이의 유사점을 거론한다. “십자가와 교수형은 둘 다 공포의 상징이

었고 고문과 처형의 도구였으며, 주로 노예들, 범죄자들, 반란자들, 즉 사회의 최 하위층에게 사용되었다.” James Cone, The Cross and the Lynching Tree (Maryknoll, NY: Orbis, 2013), 31. 교수형과 십자가 처형의 유사점은 예수께서 견디신 십자가와 수치가 얼마나 논란거리였는지 강조한다.

18 속죄 입문

하다”라는 헬라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2세기에 그려진 이 낙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를 전하는 복음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5)

그림 1 알렉사메노스 낙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대한 믿음으로 조롱받았으나, 오

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현대 사회에 잘 어울리게 하려고

십자가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 서점의 달력에 두거 나 팔의 문신에 넣거나 도시의 빌딩 위에 세우는 등 십자가를 장식 의 도구로 바꾸어 버렸다. 그러나 십자가의 공포를 알아야만 우리

5) 이 낙서는 로마의 팔라티노 황궁에 부속된 건물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팔라티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낙서의 이미지로는 다음을 보라. “Scratched Graffito with Blasphemous Crucifix,” Palatine Museum, Parco archeologico del Colosseo, https://parcocolosseo.it/en/opere/scratched-graffito-withblasphemous-crucifix/.

서론 ┃ 복음의 미련함 19

는 십자가의 영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영광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의 사명은 충격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땅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약함과 어리석음의 상징이

었다. 그러나 믿음의 렌즈로 보면 세상의 영광이라는 촛불에 비하

면 십자가로부터 천 개의 태양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빛난다. 그리

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지혜와 권세를

전복시키며,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나라를 시작한다. 십자가는 약함이 아니라 사

랑에 의해 제어되는 능력이다. 예수의 죽음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법이다. 하나님은 이 방법으로 그의 공의를

지키면서 불의한 자들을 구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놀라운

아름다움이다.

여기에 복음의 역설이 있다.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은 죽음의 수

단을 생명의 도구로 바꾸었다. 십자가는 위대한 반전이다. 위대한

반전에 따라 승귀는 수치를 통해 이루어지고 영광은 수치 속에 드

러나고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종의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 레슬

리 뉴비긴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 가운데 나타나고

있으며, 통치의 표시는 황금 보좌가 아니라 나무 십자가다.”6) 십

6) Lesslie Newbigin, Foolishness to the Greeks:The Gospel and Western

속죄 입문

20

자가는 죄인들을 구원하고 세상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

문에 좋은 소식이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서의 속죄 교리

속죄 교리는 경배로 초대하고 제자의 삶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십

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해하려는 교회의 시도다. 신

실한 삶을 살기 위해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신학의 본질이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고전 15:3 ) 죽으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

는가? 2천 년 전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영원의 궤적을 만들었을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어떻게 드러내

는가? 속죄 교리는 우리의 머리뿐 아니라 마음과 삶을 위해 이런 질

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교리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경적 교리를 대중 심리학으로

대체하고 값비싼 제자도를 자기 긍정의 심리학으로 대체했다. 우리

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롬 12:2 ),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따른 “바른 교훈”( 딤전 1:10-11 ) 을 회복해야 한다. “복

음의 핵심”이고7) “기독교 신학의 지성소”가 8) 되는 속죄 교리보다 Culture (Grand Rapids, MI: Eerdmans, 1986), 127.

7) Kevin Vanhoozer, “Atonement,” in Mapping Modern Theology:A Thematic and Historical Introduction, ed. Kelly Kapic and Bruce McCormack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2), 176.

8) Robert Culpepper, Interpreting the Atone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1966), 11.

┃ 복음의 미련함 21

서론

더 좋은 출발점이 어디 있겠는가?

신학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하며 신실하

게 살아가게 돕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신학은 부차적

으로 ( 그리고 파생적으로 ) 이단이나 현대의 도전에 맞서는 역할을 한다.

속죄 교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복음에 따라 살기 위해 복음의 깊이를 더 많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목표는 지적인 훈련이 아니라 전인격적

인 제자도이며, 예배를 통해 십자가 아래로 인도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속죄 교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

해 죄인들과 어떻게 화목하셨는지 다룬다. 그리스도는 찢어진 것을

다시 하나로 묶는 방식으로 죄를 해결하신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의 죽음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하나 됨”( at-one-ment ) 을 가져다

준다. 나는 이 접근을 지지하지만 두 가지 방식으로 확장하려 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범위는 인간을 넘어 피조물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 골로새서 1장 19-20절은 말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

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

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하늘과 땅의 “하나 됨”이라는 더 넓은 이야기 안에서 하나

님과 죄인들과의 “하나 됨”을 가져온다.

둘째, 십자가는 중심이지만 속죄 교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 니다. 십자가의 중심성은 복음서의 수난 서사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고 성경의 나머지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구약 전체에 암시되고

속죄 입문

22

신약에서는 교회의 비전을 제시한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발꿈치

를 상하게 하는 이야기부터 요한계시록 5장 6절의 죽임당한 어린양

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가 하나님의 통치

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 가져오는 이야기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에 못 박힌 그리스도”( 고전 1:23 ) 라는 표현으로 그의 전체 메시지를

요약한다. 이 때문에 아타나시우스는 십자가가 “우리 신앙의 중심”

이라고 정확히 말했다.9) 십자가는 기독교 이야기의 절정이고 기독

교 신학의 중심이다.

십자가를 중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십자가가 속죄의 유일한 순간

이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기독교의

메시지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고전 1:23 ) 라고 요약할 때 ( 고

린도전서의 나머지 본문에 분명히 나타나듯이 ) 그가 성육신이나 부활의 중요

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 전체를 대표하는

중심이다.10) 성육신 — 생애 — 부활 — 재림

그림 2 십자가는 중심이지만 그리스도의 전체 사역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9)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trans. and ed. a Religious of C.S.M.V. (Crestwood, NY: St. Vladimir’s Seminary Press, 2002), 48 (4.19).

10) 이 요소들은 특히 2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독교 신앙 에서 “부활”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강림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 복음의 미련함 23

서론

그리스도가 행하신 사역의 다양한 측면은 그의 하나님 나라 사명

에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해야 한다. 플레밍 러틀리지

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햄과 치즈 샌드위치에 재미있게 비유

한다. “우리는 햄과 치즈 샌드위치를 만들 때 햄과 치즈 중 어느 것

이 더 중요한지 묻지 않는다. 둘 다 없으면 햄과 치즈 샌드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예에서 숭고한 예로 이동해 보면, 우리

는 부활 없이 십자가를 얻을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

지다.”11)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도 같은 이치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삶, 사역,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잃어버리면 복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각 측면의 특정 역할을 이해하고 각

측면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파악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삶, 죽음, 부활, 승천, 재

림은 각각 한 실체의 부분에 해당하며, 궁극적으로는 성부의 보내

심을 받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아들 안에서 모두 연결된다.

요약하면 속죄 교리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모든 사역과 특히 자신

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화해시키고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려고 죄

와 그 결과를 처리하는 방식을 파악하려는 교회의 신앙이다.

11) Fleming Rutledge, The Crucifixion: Understanding the Death of Jesus Christ (Grand Rapids, MI: Eerdmans, 2015), 64.

속죄 입문

24

우리는 오늘날 속죄 신학을 괴롭히는 두 가지 문제를 피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일차원적인 환원주의를 피해야 한다. 일차원적 환원주의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벌을 짊어지셨거나 악을 정복하

셨거나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신 것처럼 속죄의 다른 측면들을 모

두 배제하고 속죄의 한 측면이나 이론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한 측면으로 축소하는 것은 복음을 축소하는 것이고 구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약화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일차원적 환원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인 단절된

다원성도 피해야 한다. 단절된 다원성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여러 차원을 존중하나 통합과 균형의 문제를 야기하고 선호도나 상

황의 영향을 받는 혼잡한 접근으로 귀결된다. 속죄에 있어 상황성

은 필수적이지만 그리스도가 행하신 사역의 차원은 대안적인 선택

들이 아니라 포괄적인 사역의 중첩된 측면들이다.

일차원적 환원주의 단절된 다원성

그림 3 속죄 신학은 일차원적인 환원주의와 단절된 다원성이라는 상반된 오류

를 피해야 한다.

속죄에 대한 내 접근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

스도의 죽음은 에덴동산에서 시작해 하나님 나라에서 정점에 이르 는 이야기 안에 나타나는 다차원적인 사건이다. 십자가의 결과( 용서, 승리, 입양 등 ) 는 다양하나, 십자가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

서론 ┃ 복음의 미련함 25

이 책의 접근 방식

해 죽으신 것이다. 모든 것이 십자가에 근거하고 십자가로 연결

된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 화목하게 하며, 우리의 왕을 따르면서 십자가를 지는

인생이 되게 한다. 다시 말해, 속죄 교리에 대한 하나님 나라 중심의

대속적이고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이고 공동체적이고 삶을 변화시키

는 접근이 필요하다.12)

화해

에덴동산 하나님 나라

치유 계시

그림 4 속죄는 다차원적 성취다.

새 언약

구속 성화

칭의 묵시

모범

12) 나는 “이론들”이 속죄 교리에 대한 도움이 되지 않는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하 며, 속죄의 여러 차원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선호한다. 속죄 교리에서 “이론”

이라는 용어는 계몽주의가 신학적 방법에 영향을 미치고 신학자들이 현대 대학 체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 했던 1850년대까지 사용되지 않았다. 아담 존

슨은 “이론들”이 어떻게 계몽주의의 과학적 구조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

시에 사용하게 되었는지 보여 준다. 존슨은 마치 이레니우스가 반복의 “이론”을 제시하는 것처럼 교리의 역사에 “이론”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시대착오

적이라고 주장한다. 다음을 보라. Adam J. Johnson, “Theories and Theoria of the Atonement: A Proposal,”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23, no. 1 (March 2021): 92-108.

속죄 입문

26
수치 승리 유배 성전 샬롬
영화 참여 화목 용서 불멸 입양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죄 사역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삼위일체적

이다. 속죄 교리는 예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삼위일체적 구속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부여받은

성부의 아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의 형상”( 골 1:15 ) 과 “그 본체의 형상”( 히 1:3 ) 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리되지 않는 사역의 원리를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의 외적 사역은 분리되지 않는다( oper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a[‘오

페라 트리니타티스 아드 엑스트라 순트 인디비사’] ). 니사의 그레고리가 말했

듯이, “하나님에게서 피조물에 이르는 모든 활동은……성부에 기원

을 두며, 아들을 통해 진행되며, 성령 안에서 완료된다.”13)

속죄의 많은 이론은 아버지와 아들을 대립시키고 성령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과 같이 삼위일체적이지 않으므로 잘못 흘러가고 있다.14) 성경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속죄를 중심에 두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연합 사역이다( 요 7:39; 고후 5:19; 갈 1:4; 골 1:19-20; 히 9:14 ). 속죄 교리는 삼위일체 교리 없이 파악되지 않 는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는 말한다. “십자가 사건은 삼위일체

13) Gregory of Nyssa, “On ‘Not Three Gods,’” in Dogmatic Treatises, in vol. 5 of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2, ed.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New York: Cosimo Classics, n.d.), 334.

14) 신의 폭력과 “우주적 아동 학대”와 같은 비판은 삼위일체론을 벗어난 속죄 교 리에 대한 반응이다. 분량의 한계로 본서는 이런 비판을 다루기 어렵지만 이런 비판을 반박하는 속죄 교리를 설명하겠다.

서론
복음의
미련함 27

의 배경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15)

다세대, 다문화 접근 방식

속죄 교리를 배우는 것은 대대로 십자가의 깊이를 이해할 때 성

령의 인도를 받은 성도들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다양한

전통의 영향을 받았지만, 속죄에 대한 이해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

람은 북아프리카 교회의 교부 아타나시우스, 네덜란드의 신학자 헤

르만 바빙크, 영국의 목회자 신학자 존 스토트다.16) 나는 이 책이 이

들의 영향을 반영하기를 바란다. 또한 속죄는 전 지구적 사건이므

로 전 지구적 관점에서 속죄 교리는 가장 잘 이해될 것이다. 이 때

문에 나는 연구와 집필을 통해 다른 나라의 학자들과 교류하려 노

력했으며, 다른 나라의 형제자매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17)

15) Hans Urs von Balthasar, The Action, vol. 4 of Theo-Drama:Theological Dramatic Theory, trans. Graham Harrison (San Francisco: Ignatius, 1994), 319.

16) 다음을 보라.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Herman Bavinck, Sin and Salvation in Christ, vol. 3 of Reformed Dogmatics, ed. John Bolt, trans. John Vriend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3, 부흥과개혁사가 2011년에 네덜란드어 판에서 번역한 『개혁교의학 3』이 있다); John Stott, The Cross of Chris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86).

17) 글로벌 신학에 대한 유익한 개론서로는 다음을 보라. Timothy C. Tennent, TheologyintheContextofWorldChristianity:HowtheGlobalChurch Is Influencing the Way We Think About and Discuss Theology (Grand Rapids, MI: Zondervan Academic, 2007).

속죄 입문

28

속죄를 위한 세상의 갈망

죄로 가득 찬 세상은 속죄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속죄의 욕구를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찰스 테일러가 주장했듯이, 세속주의는 종교적 신앙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의 깊은 갈망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돌리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신앙이다.18) 사람들은 속죄에 대한 갈망을 억누

르려고 노력하지만, 이 갈망은 전통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계

속 표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팬데믹 동안의 분노와 속죄”와

“500년 된 죄를 속죄하려는 스페인의 시도”와 같은 인기 기사 제목

에서 우리는 속죄에 대한 내재적 갈망을 엿볼 수 있다.19) 「뉴욕타임

스」는 2011년 5월 16일의 “오늘의 단어”를 “속죄하다”로 정했는데,

지난 한 해 동안 「뉴욕타임스」의 기사 중 43건이 속죄를 언급

했다.20) 또 다른 예로 뉴에이지 전문가의 조언을 생각해 보라. “과 거를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21)

18) 다음을 보라. Charles Taylor, A Secular Age (Cambridge, MA: Belknap, 2007).

19) Daniel W. Drezner, “Anger and Atonement during a Pandemic,” Washington Post, September 30, 2020, https://www.washingtonpost.com/; Kiku Adatto, “Spain’s Attempt to Atone for a 500-Year-Old Sin,” The Atlantic, September 21, 2019, https://www.theatlantic.com/.

20) “Word of the Day: Atone,” The New York Times, May 16, 2011, https:// archive.nytimes.com/learning.blogs.nytimes.com/2011/05/16/word-ofthe-day-atone.

21) 이 인용문은 흔히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의 표현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출처는 알 수 없다.

서론
복음의 미련함
29

우리 사회는 속죄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어

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을까? 잘못된 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

들의 전제는 우리가 우리 죄를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

교의 메시지는 다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내용

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을 받은 아들을 보내심으로써

우리 죄를 속하고 우리 죄로 왜곡된 것을 바로잡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은 단순히 “대가를 치르는 것”( 오늘날 “속죄”라는 단어로 자주

사용되는 의미 ) 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한

용서, 자유, 치유, 회복은 피해 본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주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30
속죄 입문

속죄의 이야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나라까지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

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15

창조와 마지막 완성 사이에 있는 십자가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정반대로 하나님의 권능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 여 주는 최고의 예다.1)

저스토 곤잘레스

한번은 아내가 손에 가위를 들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목 을 잘라 버릴 거야.” 이 말만 들으면 내 아내가 남편의 목을 베려고

1) Justo L. González, Mañana: Christian Theology from a Hispanic Perspective (Nashville: Abingdon, 1990), 93.

1 ┃ 속죄의 이야기 31
1

하는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내는 친절하고 사랑스럽고 신앙심이 깊다. 그러나 어떤 진

술의 의미는 그 진술이 포함된 더 넓은 이야기에서 도출되므로, 여

러분은 아내의 말만으로는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넓

은 이야기는 이렇다. 스크랩북을 만들고 있던 아내에게는 딸의 사

진이 급히 필요했다. 내가 포함된 사진밖에는 딸의 사진을 찾을 수

없자, 아내는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당신 목을 잘라야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간단하고 속죄 교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진술이나 사건의 의미는 그 진술이나 사건을 포함하는 이야기

나 문맥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

셨다”라는 진술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바른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2)

잘못된 이야기

많은 사람이 잘못된 이야기나 틀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잘못된 속죄 교리를 주장하게 된다. 도움이 되지 않는 몇 가지 일반적인 틀

2) 케빈 밴후저는 “서사를 찢어서 버려야 하는 역사적 내용의 예쁜 포장지로 이해 하는” 유혹을 옳게 경고한다. Kevin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A Canonical-Linguistic Approach to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5, 『교리의 드라마』,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7), 282. 신 학은 서사에 기인한다. 서사는 단순히 신학적 내용을 담은 용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내용을 형성하고 내용 자체의 일부다.

32
속죄 입문

의 예를 살펴보고 나서 성경을 통해 올바른 틀을 찾고자 한다.

죽어서 하늘에 가기

나는 중학교 때 교회 캠프에 갔다가 복음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분은 죄인이고 지옥에 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당신과 하

나님 사이에 큰 틈을 만들었으나 십자가가 그 틈을 메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셨

으므로 여러분은 죽으면 하늘에 갈 수 있습니다.”

죄의 실체를 지적하고 십자가를 하나님의 해결책으로 소개하는

점 등에서 이 설교에는 칭찬할 만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이야기의 개

별 요소들은 사실이지만 요소들을 조합하는 방식( 과 누락시킨 내용 ) 은

대단히 비성경적인 서사가 되고 만다. 이 이야기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가 부족하다. 첫째, 이 설교는 육체가 없는 존재에서 절정에 이

르는 “죄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에서는 창조

와 새 창조가 죄와 구원을 포함한다. 최종 목표는 비물질적인 하늘

이 아니라 새로워진 창조다. 성경 이야기는 하늘을 향해 땅을 떠나

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둘째, 이 이야기

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며 ‘나와 하나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한 백성을 구속하여 새로운 가족을 창조하

신다는 성경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셋째, 이 이야기는 궁극적

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성경은 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오셨는지에 대한 이

야기다. 넷째, 이 이야기는 삼위일체와 관련이 없어 기독교 색채를

33

1 ┃ 속죄의 이야기

뚜렷이 띠지 않는다. 다섯째, 이 이야기에는 이스라엘과 구약이 차

지할 자리도 없고 필요성도 없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는 여러 진

리가 들어 있으나 이야기 자체는 불완전해서 십자가에 대한 자기중

심적이고 지나치게 영적이고 삼위일체적이지 않은 관점으로 귀결

된다. 이와 같은 ‘복음 제시’는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헬라의 영지주

의와 서구의 개인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더 나은 세상 만들기

17세기에 서구 세계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

리는 더 이상 종교적 미신과 동화의 영향을 받는 암흑기에 있지 않

으며, 세상을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 현대 과학, 기술, 인류의 잠재력을 통해 계몽되었다. 인류의 진보에 대한 이런 이야

기는 십자가를 어떻게 조명하는가?

19세기 독일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연

구는 뉴욕의 월터 라우센부쉬와 같은 미국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계몽주의 서사를 수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기독교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라우센부쉬는 (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과 성경의 영감과 함께 ) 대리 속죄를 거부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의미로 복음을

재정의했다.3)

사회 복음 운동에는 일부 진리의 요소들이 있지만( 특히 가난하고 소

3) Walter Rauschenbusch, A Theology for the Social Gospel (New York: Macmillan, 1917). 특히 19장, “사회 복음과 속죄”를 보라.

속죄 입문

34

외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강조하는 점 ), 이는 비성경적 서사에 근

거한 기독교 윤리를 주장하는 ‘경계해야 할’ 이야기다. 사회 복음 운

동의 이야기에서 십자가는 전적으로 무시되기도 하고 기껏해야 상

처받은 자들과 동일시하는 예로 축소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강조점을 둔다.

아메리칸드림

복음을 거부할 뿐 아니라 더 큰 문화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 로 복음을 활용하려는 유혹이 많은 문화권에는 있다. 미국( 과 여러

나라 ) 에서 추구하는 더 큰 목표는 아메리칸드림이다. 이는 두세 명

의 자녀와 잘 손질된 잔디밭이 있는 교외에서 사는 것이나 사회의

억압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자아를 발견하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주된 서사는 개인의 행복과 관련이 있으며, 복음은 총

체적인 자기 계발 프로젝트의 영적인 측면을 보완하는 또 다른 방

식이 되고 있다.

이 접근에는 진리의 요소, 특히 하나님이 주신 가족과 인간의 존

엄성을 존중하는 인권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런 서사는 후기 근대

성( 계몽주의적 거대-서사를 반대하는 반응 ) 을 반영하는데, 후기 근대성은

진리의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고 개인이 번영을 위해 길을 찾게 격

려한다. 이런 세계관에서 십자가는 잠재력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

어 최고의 자아가 되고 꿈을 이루게 도와준다. 자아 성취는 자기 부

인을 대체하고 십자가는 개인 왕국을 건설하는 또 다른 도구가

속죄의
1 ┃
이야기 35

된다.

올바른 이야기를 찾기

우리는 지금까지 십자가의 의미는 십자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

는 서사에 따라 결정됨을 살펴보았다. 잘못된 이야기는 잘못된 속

죄 교리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유일한 참된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라고 믿는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고린

도 교회에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

셨다고 말한다( 고전 15:3-4 ). 이는 메시아의 고난이 구약의 몇몇 예언

을 이런저런 본문에서 성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나타난 전체 이야기의 결정적 성취임을 의미한다. 성경의 장대한

서사가 골고다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틀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를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여

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의 출발을 묘사하는

본문을 말씀에서 시작해 보자.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다.4)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

4) 하나님 나라의 주제는 구약, 특히 시편과 이사야에서 중요하며 신약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가장 많이 언급하신 주제이며, 바울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행 28:23, 31). 하나님 나라의 주제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으로는 다음을 보라. Jeremy Treat, Seek First: How the Kingdom of God Changes Everything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9).

속죄 입문

36

는 어떻게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결정하고 십자가 죽음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간단히

정의하고 하나님 나라가 속죄에 유용한 틀인 몇 가지 이유를 언급

하려 한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따분한 개념이 아니라 넓은, 광대한 개념이다. 나

는 다음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정의하려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장소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의 통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언급할 때 왕이 없는 나라와 같은 정의

를 내릴 때가 자주 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하나

님이 왕이시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사실 “하나님 나라”라는

헬라어 문구는 “하나님의 왕 되심”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는 유토피아적인 꿈이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의 은 혜를 중심으로 재설정된 세상에 대한 기대를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고 자기 백성을 통해 통치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

를 반영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깨

1 ┃ 속죄의
이야기 37

뜨리고 하나님의 창조에 나타난 선을 오염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에 대한 통치를 회복하실 것이며,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왕

이 다스리는 백성의 화해다.

하나님의 장소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

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하나님 나라는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에

덴동산의 나라는 모든 족속과 방언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통치 아래에서 번성하는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영혼을 구원

하는 개념은 옳은 표현이지만 완벽한 개념은 아니다. 하나님은 만

물을 새롭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위대한 왕이시다( 계 21:5 ).

예수와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하

나님의 통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

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장소인 새로워진 피조 세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세

우러 오신 이스라엘의 메시아, 즉 기름 부음 받은 왕이다. 그러나 그

리스도는 세상의 기대를 뒤엎으면서도 인류의 가장 깊은 열망을 충

족시키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셨다. 이 나라에서 보

좌는 십자가이며, 왕은 자비와 은혜로 통치한다.

38
속죄 입문

하나님 나라가 유용한 틀인 이유

하나님 나라는 성경의 거대 서사를 전달하는 주요 방법일 뿐 아

니라 속죄 교리를 위해서도 유용한 틀이 되는데, 네 가지 이유가 있다.

구약에 근거

속죄를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 안에서 분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스라엘의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그가 아

브라함의 후손과 다윗의 아들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는 일반적

인 영웅이 아니라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러 오신

유대인 메시아다. 더욱이 속죄와 관련된 신약의 언어는 구약의 배

경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다. “구속”은 출애굽에 근거하고 “제사”는

레위기의 제도에 근거한다. 구약에 근거하지 않은 속죄 교리는 성 경의 이야기와 상관이 없는 의미가 되고 만다.

공동체와 연결된 개념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다. 따라서 개인주

의적이고 사적인 경건에 따라 속죄 교리를 전개하려는 유혹을 거부 한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언약

백성을 목표로 한다.

1 ┃ 속죄의 이야기 39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