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ot_August_Tae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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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lution designed by Human & Robot 로봇시대를 앞서 준비하는 로봇정보지

2015

08 Vol.81

,

Focus on수 술 로 봇 오 늘 을 알 면 내 일 이 보 인 다

수술로봇, 오늘을 알면 내일이 보인다

08 2015 vol.81


C   ulture & Ethics

로봇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박태현 종이공예작가

글_신병철 기자(byongchol@roboticus.kr)

박태현 종이공예작가는 색종이와 스카치테이프를 사용해 종이로봇을 만든다. 그의 작업과정에서 잘라낼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빠져있다. 스케치는 오로지 박태현 작가의 머릿속에서만 존 재한다. 즉흥적으로 오려낸 종이를 스카치테이프로 하나하나 붙여나가면, 종이로봇이 뚝딱 완성된 다. 박태현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온전히 의사소통을 나누는 능력이 부족하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그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그가 만들어내는 종이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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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헤미안

언제나 함께 하는 친구, 로봇 “저는 박태현입니다. 23살입니다. 그레이트다간이 제일 좋아 요.” 박태현 작가를 만나 처음 인사를 건네자 그가 똑바로 바라보 며 답했다. 그의 인사에 화답하자 똑같은 말이 다시 그에게서 나왔다. 몇 번이고 같았다. 나이답지 않은 어리숙한 말투와 행동이 조금은 낯설었다. 사실 박태현 작가는 발달장애 1급 이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원활히 나누기는 매우 힘들다. 간간이 단답형 대답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커피를 나누며 그와 단둘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인터뷰 는 그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다. 인터뷰 내내 박태현 작가는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아 가위로 종이를 오리고 스카치테이프를 붙여가며 계속 무언가를 만들 었다. 이따금 중얼거림이 들리기도 했지만, 그는 꽤 오랫동안 한 곳에 진득이 앉아 작품을 만들었다. 자폐성 장애의 특징인 산만함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작품을 만드는 동안에는 오 랜 시간 집중해있었다. 화장실을 가거나 부산스럽게 방안 이 곳저곳을 오갈 때도 언제나 그의 손에는 직접 만든 종이로봇 이 들려있었다. “로봇을 자신의 거의 유일한 친구로 생각해요. 어디를 가든

박태현 작가는 인터뷰 도중에도 종이와 가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

저렇게 꼭 로봇을 들고 다닌답니다. 평소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다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종이로 로봇을 만들

등 통제가 어려울 때 종이와 가위를 주면 조용히 로봇 만들기

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요.”

에 빠져들었어요. 자폐성 장애의 특징 중 하나가 무언가에 집 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태현이도 처음에는 좋아하는 로봇을

작품이 성장할수록

몇 개월이고 반복해서 그렸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걸 종 이인형처럼 가위로 잘라서 가지고 다녔죠.”

박태현 작가와 로봇의 만남은 그 나잇대의 또래들과 비슷했

종이공예에 막 관심을 보이던 시기 박태현 작가의 작품은 평

다. 대여섯 살의 어린아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당시의 박태현

면적이었다. 단순히 색종이를 잘라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로봇

작가도 장난감 로봇과 만화 속 로봇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아

인형을 만드는 게 전부였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차 작품

이였다. 어머니가 블록 장난감을 사주면, 설명서는 무시하고

이 입체감을 띠기 시작했다. 로봇의 부속을 인형 위에 하나둘

좋아하는 로봇을 상상대로 만들었다. 그가 관심을 보였던 또

덧붙이기 시작하더니 나무젓가락을 뼈대로 사용해 주위에 휴

다른 하나는 바로 소근육을 사용한 공작이었다. 그림 그리기

지를 두르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 조금씩 입체감과 형태감이

는 물론 특히 종이공예에 관심과 소질을 보였다. 집중력과 주

생겨났다. 로봇인형의 부속들은 복잡하게 표현됐고, 사람인형

의력이 떨어지는 자폐성 장애였지만, 종이를 오리고 붙이며

은 구겨진 옷깃이나 보이지 않는 속옷 등 세세한 부분도 표현

무언가를 만들 때는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꼼짝하지 않았다.

하기 시작했다. 성장한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다. 작품을 만들

“태현이가 어렸을 때 외출을 하면 항상 색종이와 가위를 들고

고 전시회를 거치며 박태현 작가 개인도 성장을 거듭했다.

다녔어요. 종종 산만하게 돌아다니거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로봇을 만들면서 태현이의 마음도 조금씩 열렸어요. 거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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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ulture & Ethics 가능에 가까웠던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짧게나마 정상적으

요. 테마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작품의 형태에도

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변화가 생겼거든요. 이전까지는 속 안이 빈 평면적인 작품들

구분하고 참아내는 사회성도 생겨났어요. 작품의 표현이 성장

이었지만, 그 시기 무렵부터는 형태를 갖추고 입체감이 있는

하면서 태현이도 함께 성장했어요.”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박태현 작가의 작품 재료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 모든 ‘종이’

재료는 세상의 모든 종이

다. 머릿속에서 구상한 작품의 색을 구현하기 위해 과자봉지, 폐지, 택배상자까지도 모두 재료가 된다. 원하는 색이 있는

작가로서의 첫 출발은 2011년, 박태현 작가가 19살 때였다.

종이가 보이면 그는 어떤 종류의 종이라도 일단 가방에 넣고

에이블아트센터의 1기 입주작가가 되면서 종이공예작가로서

본다. 슬쩍 들여다본 그의 가방 안에는 온갖 색의 정체 모를

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2013년에는 첫 개인전 <박태현과

종이들로 가득했다. 주섬주섬 모아 가방 안에 쟁여놓고 도대

친구들 展>도 열었다. 데뷔 전시회였던 <아뜨거워 아트 展>

체 어디에 쓸까 싶은 종이들이 그가 작품의 색을 표현하는 재

등을 비롯해 꾸준히 단체전을 열다가 2012년 경기도미술관에

료들이다.

서 열렸던 국제교류전 <다른 그리고 특별한 展>에서 종이공예 작가로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이전까지 전시회에서 선보였 던 작품들은 그동안 그가 만들어놨던 작품들이었다. <다른 그

로봇을 통해 하고 싶은 말

리고 특별한 展>에서 처음으로 전시회의 테마를 정하고 그 테 마에 맞는 특별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박태현 작가가 만드는 로봇들은 혼자가 아니다. 그는 항상 로

“<다른 그리고 특별한 展>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전시회였어

봇 곁에 친구들을 함께 만들어 둔다.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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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인물들로 주변을 채우거나 여러 대의 로봇을 함께 만들어 전시한다. 그의 작품 속 로봇들은 언제나 친구가 있다. “태현이는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고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외톨이로 지냈었고 평생 그럴 수도 있었던 자신의 마음 을 로봇들로 표현하는 듯해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말로 하지는 못 하지만, 로봇이 소통의 통로가 되고 있어요. 로봇이 자신의 친구가 되어 줬던 것처럼 로봇들에게도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거죠.” 박태현 작가는 로봇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로봇이 외롭지 않게 친구를 함 께 만들어 줬듯이 그도 로봇으로 소통하며 세상에 나왔다. 박태현 작가는 현재 작품활동과 함께 장애인식개선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찾아가는 미 술관’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지역 내 학교를 찾는다. 국내뿐만 아니라 베트남, 일본 등 해외의 학교도 찾아가고 있다. 이 활동을 통해 박태현 작가는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종이공예 방식을 알려주고 함께 종 이인형을 만든다. 아이들과 어울려 인형극 공연을 하는 등 로봇과 함께라 서 그는 외롭지 않아 보였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박태현 작가에게 직접 물었다. “어떤 로봇이 좋아요?” “그레이트다간 좋아요. 볼트론도 좋아요.” “로봇이 왜 그렇게 좋아요?” “...좋아요. 멋있어요. 좋아요.” 짧았지만,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대답처럼 순수하게 들렸다. 박태현 작가가 로봇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편견도 선입견도 없다. 그에게 로봇 의 의미는 하늘을 날고 악당을 물리치는 멋진 로봇으로 충분했다. 거창한 미사여구도 필요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간직해온 순수한 작품 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박태현 작가에게 로봇은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 로도 영원히 함께할 친구다.

박태현 종이공예작가 주요 전시 및 경력 • 2011 제 21 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공예입선 • 2012 국제교류전 < 다른 그리고 특별한 > • 2012 <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특별전 > • 2013 < 박태현과 친구들 > • 2014 제 24 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 2014 찾아가는 미술관 : 서울 강남지역 , 인천고등학교 , 베트남 , 일본 • 2015 < 봄을 기다리는 봄 > 사진 제공 : ( 사 ) 에이블아트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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