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카사 뉴욕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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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CASA NEW YORK STORY FOR THE MODERN LIFESTYLE

에스카사

Vol.15

The Baseball Player Jae-Gyun Hwang, and his mother Min-kyung Seol May

COVER STORY 야구선수 황재균, 그리고 그의 어머니 설민경

ART&CULTURE 예술의 연금술사 설치 미술가 신 진

LIFESTYLE 마더스데이에 뭐하지?

PEOPLE FOCUS 천재의 숨은 조력자 폴 게린(Paul Garrin) 고(故) 백남준과 함께 한 15 년을 그리며

피아니스트 박정아, 그 선율의 온도

결혼 전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2018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 ‘Dear Evan Hansen’

2018년 미국 내 가장 살기 좋은 도시 TOP 5 승무원은 알고 나만 모르는 비행기 정보






CONTENTS

May 2018 Vol.15

12

24

Cover Story

Education

12

32

야구선수 황재균, 그리고 그의 어머니 설민경

목장 산의 이웃들

자유롭게 도전하고 경험하는 삶을 응원합니다

Supporting His Lifestyle: Accepting new challenges and learning from experiences

The Baseball Player Jae-Gyun Hwang,‌ and his mother Min-kyung Seol

22

아쉬운 봄! 봄을 먹고 봄을 즐기며 봄에 빠져보자~

5월의 뉴욕 이벤트

People Focus 24

천재를 천재다울수 있도록 만든 숨은 조력자

폴 게린(Paul Garrin) 고(故) 백남준과 함께 한 15년을 그리며 15 Years with Nam June Paik:

Artist-Activist Paul Garrin Discusses His Time with the‌ World-Renowned Video Artist

8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 (14)

35

5월의 인물

소파(小波) 방정환

36

VMN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전) 부사장 정승희

유학생에서 VP가 되기까지 미국직장 생생 체험기(5)

42

Drone 대세 시대

드론만큼 전지(Battery)도 중요하다

45

임의로 수정 불가! 누구나 변경 결과 열람가능!

분산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 블록체인이 바꾸는 세상


뉴욕문화예술스토리 www.story-ca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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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TEL 201.397.2107

멤버쉽 신청서 (미국)

54

연회비 $100

우리 이웃이야기 46

Please make the check payable to

건강한 가족 관계의 열쇠는 이해와 균형

상담을 통해 행복한 가족 만들기를 돕는 이수연 교수

T&B Publishing LLC and send to 2160 North Central Rd. Suite 203C Fort Lee, NJ 07024

51

미국에서 제일 짧은 에스컬레이터

뉴저지 파라무스 Garden State Parkway Mall 안의 작은 구경거리

별도 V 표시 해 주세요.

65세 노신부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잠비아 이야기

이름 (NAME)

52

“받은 선물을 갚는 중입니다”‌ 아프리카 잠비아 ‘피데이 도눔’ 사제 김한기 신부

주소 (ADDRESS /APT)

이달의 작품과 시 54 꿈의 다리

아들 기호에게 / 강익중 CITY/STATE/ZIP

TEL

E-Mail

연회비 $100

(PLEASE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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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예금주 : 이창수) 계좌번호 3333-01-2251051 별도 V 표시 해 주세요.

56

Art & Culture 56

수명이 다한 일상용품을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키는 연금술사

설치 미술가 신 진

62 연회비 100,000원

2018년도까지 이어진 2017년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

토니어워즈 최고의 뮤지컬상 등 6개 부문 수상작 ‘Dear Evan Hansen’

66 이름 (NAME)

(PLEASE PRINT)

그 선율의 온도

피아니스트 박정아

주소 (ADDRESS /APT)

Life Style 70

특집Mother's Day CITY/STATE/ZIP

TEL

E-Mail

마더스데이에 뭐하지?

72

독자칼럼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74

화제의 책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상관없어!

이민진 장편 소설 ‘파친코’


66 76

영화 이야기

Love, Simon

78

이달의 요리

Crispy Mung Bean Pancakes(Bindaetteok or Nokdu Jeon)‌ Soy-Vinegar Dipping Sauce(Cho-ganjang)‌ Savory Steamed Egg Custard(Gyeran Jjim)

82

승무원은 알고 나만 모르는 비행기 정보

84

뉴욕을 세계 최고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뉴요커 삶의 애환이 서린 뉴욕 지하철은 지금 변신 중

88

집값, 교육, 기후, 생활비, 취업 최고의 도시

2018년 미국 내 가장 살기 좋은 도시 TOP 5

92

Deep Work

오래 일하지 말고 집중해서 깊이 일하라!

100

Clinic 94

스트레스를 받아야 사는 생물

랍스타에게 삶의 교훈을 배우다

96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특산물 고사리

삶아서 말려두었다가 물에 불려먹는 이유

98

생활수칙 몇 가지만 바꾸면 코골이도 예방된다

코골이에 도움되는 꿀팁 10

Travel 100

뉴욕 도넛 열전(列傳)

Best Donuts in New York City

11


Publisher Dr. Charles Changsoo Lee

에스카사 ( )는 S-Story, Casa-집, ‘이야기를 모은 공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Editor in Chief Youngjoo Lee ●

Executive Director / Hyobin Lee

는 각 분야 최고의 필진이 만드는 뉴욕 스토리 잡지입니다.

Executive Editor / Dr. Anderson Sungmin Yoon Managing Editor / Jenny J. Lee Senior Writer / Won Young Park, Juyoung Lee, Young Choi

는 자신의 삶을 아끼는 20~40대 독자 가 주요 대상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삶에 향기를 더하는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는 Family잡지입니다.

는 빠르게 변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리포터 가 전해주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문 화예술, 패션, 라이프 스타일, 화제인 물 focus, 교육, 육아, 요리, 여행, 건 강정보 등을 아우르는 생생한 이야 기를 가득 담았습니다.

는 뉴욕에서 발행하며 뉴욕, 뉴저지는 물론 워싱턴 D.C, 보스톤, L.A., 시애 틀, 애틀랜타, 사우스캐롤라이나, 달 라스 지역과 캐나다 토론토, 서울, 대 구, 부산지역 독자가 함께 읽는 고품 격 글로컬 (Global + Local) 잡지입 니다. 는 영문으로 추가된 주요기사를 통해 젊은 세대와 영어권 독자에게 우리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자랑스러 운 문화전도의 Hub입니다.

는 독자 후원과 의 가치를 인 정해 주는 광고만으로 제작하므로 독자 품격에 맞춘 수준 높은 컨텐츠 가 가능합니다.

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협력사의 격려 에 힘입어 더욱 노력하여 최고의 컨 텐츠로 보답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

12

를 만드는 사람들 일동

www.story-casa.com

English Translation / Hyobin Lee, Taeriah Kim, JuWon Park, Katie Lee Senior Columnist / Stefano Jang, Sooyeon Lee-Garland Legal Columnist / Minji Kim Science Columnist / Dr.Joon Kim, Dr.Byung Hee Hong Music & Arts Columnist / Sunboon Jeong, Dr. Yejin Han Medical Columnist / Dr. Francis Oh, Dr. Byungchul Kang, Dr. Kyungah Lim

Managing Director / Sarah Chung ●

Advertising Director / S.H. Chung HR & Administrative Manager / Katie Lee Design by design212 Photographer / Kibum Kim, George Jung Junior Reporter / Katie Lee, Jae Won Min Senior Contributing Editor / Young Hee Baek Contributing Editors Jimyung Lee, Hyunmin Kwon, Bohyun Im, Joohee Han, Hyunmee Kang, Sujin Myung, Sunyoung Lee, Jina Seo, Youngmee Shin, Annie Na, Minjae Kim, Dongha Kim, Jude Lim ‌ ‌ is comprised of Story and Casa (House), thus carrying the meaning of ‘a place where stories are gathered’. ‌ ‌ is a magazine filled with stories inside New York, written by some of our best writers for each field. ‌ ‌ is a family-friendly magazine that welcomes all readers in their 20’s thru 40’s. ‌ ‌ is full of stories that people will relate to, stories that add more scent to our lives, and stories that brings the family together. ‌ ‌ exudes vibrancy in each article, with a focus on culture, art, fashion, lifestyle, education, parenting, cooking, travel, and health information, all centered around New York City. ‌ ‌ is a high-quality global and local magazine published in New York, which targets readers in New York, New Jersey, Washington, DC, Boston, L.A., Seattle, Atlanta, Dallas, South Carolina cities, Toronto, Seoul, Daegu and Busan. ‌ ‌ is the hub for cultural and artistical guidance, by including main stories written in English in order to accommodate our English-speaking, younger readers. ‌ ‌ is solely funded through contributions from our subscribers and exclusive advertisements, thus being able to provide the highest quality for our every issue. ‌ ‌ promises to work hard through the encouragement and support of our readers and subscribers and deliver the best content in our future endeavors. -Creators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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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자유롭게 도전하고 경험하는 삶을 응원합니다

야구선수 황재균, 그리고 그의 어머니 설민경 글 Juyoung Lee 영문 Hyobin Lee 정리

편집부

2012년 KBO 올스타전 MVP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2015년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 WBSC 프리미어 12 우승 2016년 20-20 (야구 한 시즌에 홈런과 도루 모두를 20회 이상 성공) 달성 2017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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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g이 채 안 되는 하얀 가죽으로 만든 작은 공에 인생을 거는 야구선수. 그 하얀 공이 나무로 만든 배트에 맞고 튕겨 나가는 소리에 웃음을 담고, 눈물을 담는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팀인 Kt 위즈에서 활약 중인 황재균. 그는 눈에 보이는 기량 뿐만이 아니라 훈련 태도, 리더쉽과 팀워크까지 모든 것을 수치화해서 깐깐하게 선수를 스카우트해가는 미국 메이저리그(Major League)의 모든 기준을 통과해 서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활동했던 선수이다. 2017년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 초로 빅리그 데뷔전에서 127미터의 대형 홈런포를 날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 츠(San Francisco Giants)에게 승리를 안겨주며 화끈한 신고식을 했다. 콜로라도 로키스(Colorado Rockies)를 5-3으로 누르고 팀에게 승리를 안겨주어 수훈선수 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린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리스트이기 도 하다. 모전자전(母傳子傳)일까. 황재균 선수의 어머니인 설민경 씨도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테니스 금메달리스트임이 알려지면서 한국 역사상 첫 모자 (母子) 금메달 획득의 주인공이 되어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그가 많은 수식어를 가진 스타 선수로 활약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같은 운동선수의 길을 걸었던 어 머니 설민경 씨의 역할도 큰 몫을 하였다. 가정의 달 5월 특집으로

프로야구 선수 황재균과 그의 어머니 설민경 씨를 함께 인터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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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홈런 치는 내야수’ 즉, 장타력과 빠른 발을 동시에 가진 스타 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황재균은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올스 타전 MVP,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메이저리거까지 행보마다 굵직

한 발자국을 남겨온 그에게는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였던 어머니가 있 다. 어머니 설민경 씨는 80년대 실업 테니스 그랑프리 대회에서 2연패

설민경: 애아버지는 운동을 시키고 싶어 했는데, 사실 저는 처음에 야구하는 걸 반대했어요. 공부도 워낙 잘 해서 계속 공부를 했으면 했죠. 또 일반적으로 (운동은) 잘하면 괜찮은데 어중간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까 그게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운동을 하는 게 사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힘들어요. 그렇게 이런 거 저런 거 따져보니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운동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게 더 낫 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었죠. 그런데 본인이 많이 하고 싶어 하고 좋 아하는 데다 애아버지도 시키고 싶어 해서 제가 졌어요. 다른 애들 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하는데 재균이는 4학년 말에 시작했 으니까 상대적으로 좀 늦은 편이었는데요. 워낙 운동 신경이 좋고 머리가 빠르니까 금방 쫓아가더라고요.

를 달성하고,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획득한 스포츠 인재이다. 훌륭한

그렇게 “하고 싶다”라는 말에 자기 뜻을 굽혀 준 어머니 덕에 황재균은

중요하다고 하는 요즘인지라, 그는 같은 운동선수인 어머니의 남다른

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네가 이걸 시작했으니까 이걸로 끝장을 봐라.

선수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선수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부모의 조력이

뒷바라지를 받은 행운아라 여겨졌다. 그래서 설민경-황재균의 “남다른 모자 관계”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야구와의 만남, 그리고 야구선수 되기

다재다능하기로 유명한 황재균 선수가 부러움을 사는 이유 중의 하나

는 그의 타고난 운동 신경이다. 그가 구사하는 유용한 기술들을 뒷받침 하는 튼튼한 몸과 재능은 분명 부모에게서 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 머니가 82년 아시안게임 테니스 금메달리스트인 설민경 씨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 역시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으로 산업은행 테니스팀 감독을 역임한 황정곤 씨이다. 이렇다 보니 어려서

부터 공으로 하는 건 웬만큼 다 잘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모두 테니스

야구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

야구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선수가 돼라.”고 했다. 그 뒤로

그는 야구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필요한 일들을 해 나갔다. 그의 어머니는, “재균이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운동 을 잘 할 수 있다 하면 다 잘 따랐다”고 한다.

황재균: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할 때 필요한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개인 트레이너와 운동을 했고요. 아버지께서 다음 날 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저녁에 일찍 들어오라고 통금 시간을 정해 놓으셨는데 그것 도 어긴 적이 거의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1년 차까지는 친 구들이랑 마음대로 놀러 다닌다거나 그런 걸 전혀 못 했죠.

선수인데 어떻게 야구선수가 되었는지 물었더니, 다니던 초등학교에

그는 자라는 동안 부모님을 보며 ‘운동하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것

동을 시키고자 했던 아버지에 반해, 어머니는 처음에 운동선수가 되는

운동선수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배우고 지켜 온 결

야구부밖에 없어서 야구를 하게 되었다는 간략한 대답이 돌아왔다. 운 걸 반대했다고 한다. 16

을 자신도 모르게 배웠던 것 같다. 본인의 몸 관리나 마음 관리는 물론, 과,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숨은 최대 조력자, 아버지

많은 사람이 황 선수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어머니인 설민

경 씨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반해, 사실 황 선수를 적극적으로 뒷바라지 한 사람은 그의 아버지 황정곤 씨라고 한다.

설민경: 생각해 보면 전 별로 해준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직장 생 활을 하느라, 재균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쫓아다니며 뒷 바라지 한 사람은 애아버지거든요. 그 당시에는 산업은행 테니스 감독을 하고 있었는데요. 자기가 선수 생활하고 감독 생활하면서 한 걸 바탕으로, 재균이가 시기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다 미리 챙겨 줬어요. 이런 시기에는 어떤 훈련이 필요하다 싶으면 알아서 시키 기도 했고요. 황재균: 예를 들면,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지급하는 운동복은 안 늘어나는 소재로 되어있어서 불편했는데, 아버지가 어느새 제 운 동복을 모두 스판덱스로 바꿔 주셨어요. 양말이나 운동화 이런 것 도 없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다 사다 주셨고요. 먹는 것들도 얘기하 기 전에 다 알아서 챙겨 주셨어요. 뭐가 필요할지를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거죠. 설민경 씨는 황정곤 씨가 ‘아들 운동을 이렇게 저렇게 시켜야 하겠다’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항상 ‘아, 나라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

었다고 한다. 그녀는, 황 선수가 운동을 한 부모를 두어서 덕을 보았다 면 그건 모두 그의 아버지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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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배운 도전과 경험의 가치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 긍정과 믿음의 힘

히어로즈를 거쳐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 활동하며 실력과 경력을 쌓은

를 하는 동안 힘든 일이 있었는지 물으니, “딱히 힘들었던 건 잘 모르겠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황재균은 넥센 결과, 201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구애를 받아 메이저 리그로 진출하게 된다. 시범경기에서 신인상인 ‘바니 뉴전트 어워드

(Barney Nugent Award)’를 수상하며 신고식을 치른 뒤,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도 결승타 홈런을 치며 구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

만 안타깝게도 이후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절감하고 한국 복귀를 결 정하게 된다.

황재균: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쉬움도 많았지만, 미국에 간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제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걸 해 봤 고, 또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해 봤다는 자부 심도 있어요. 누구나 얻 는 기회는 아니니까요. 미국행을 결정했을 때

나, 미국 생활 때, 또 한

국행을 결정했을 때 모

두 황 선수의 부모님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하고 싶은 거 해라”라 고만 했다고 한다.

설민경: 재균이 성격이 옆에서 이렇게 해라, 저 렇게 해라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힘든 일이 있어도 묵묵히 알 아서 해결하지 속속들 이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고요. 또 워낙 착하 고 성실해서, 뭘 하고 자 했을 때는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보이기 때 문에 저도 그냥 응원할 수 밖에 없어요. 대부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기보다는 그냥 “잘 될 거다” 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편이에요. 많은 이들이 황재균 선수가 메이저리그 활동 당시 땅볼을 치고도 1루

까지 최선을 다해 전력 질주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아웃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땅볼을 치게 되면 형식적으로 걸어가다 나

13년 차 야구선수인 황재균은 낙천적이고 대담하다. 오랜 세월 야구

다.”라고 하고, 경기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땐 어떤지 물으니, “세상

살이가 마음처럼 다 되면 그게 이상한 거죠.” 한다. 그는 이런 성격 덕 에 올스타전, 아시안게임, 메이저리그 등 큰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에 부담 없이 호타를 날려 득점을 할 수 있었고 슬럼프가 왔을 때도 잘 극복해 내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운동을 하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황재균: 원래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요. 어쩌다 스 트레스가 생기면 산책 이나 취미 생활을 하면 서 줄여나가요. 특히 시 즌 때는 친구들과 어울 리기보다 혼자 있으면 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 는 편인데요. 혼자 좋아 하는 영화 보고 음악 듣 고 산책 다니고 하면 마 음이 편해져요. 간혹, 어 머니, 아버지가 모두 운 동을 잘 하셨던 분들인 데 성적이 안 좋으면 스 트레스를 주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 는데요. 오히려 두 분 모 두 운동을 하셨던 분들 이라 운동이 힘든 걸 아 시기 때문에 그런 부분 에서는 스트레스를 주 지 않으세요. 그냥 저를 믿고 제가 할 수 있는 것 만 도와주시죠.” 설민경: 운동을 항상 잘 할 수는 없는 것이 왔다 갔다 주기가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했다가, 잘 따라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게 더 스 트레스가 될 수 있어요. 성적보다도, 저녁에 집에 와서 피곤해서 쓰 러져 자는 거 보면 너무 안타까워서 힘들면 그만두라고 하고 싶을 정도인데, 그 말도 열심히 하는 애한테 미안해서 못합니다.

온다고 한다.) 그는 늘 그렇게 성실한 자세로 게임에 임했으며, 성적에

황재균은 운동선수였던 부모님의 이해와 배려에 늘 감사한다. 언제나

국에서 많이 배우고 즐겁게 잘 지내다 왔습니다. 제가 다소 자유분방한

도와준 것이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눈치 안 보고 본인의 마음과

연연하지 않고 연습과 훈련에 몰두했다. 그래서 미련이 없다. 그는. “미

성격이다 보니 미국 생활이 성격에 맞는 부분도 있었고, 동료들과도 친 하게 잘 지냈어요.” 하며 미국 생활을 유쾌하게 요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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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믿고 지켜봐 주면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생각에 따라 의지대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부모님 덕분에 운동을 즐기 면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현재 바람이 있다면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 면서 마흔 살까지 잘 하고 은퇴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운동선수와 그 부모에게 전하는 말

황재균 선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직업이 운동선수라는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행복하다고 말한다. 13년 차 베테랑 선수로서 그가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괜히 이것저것 재보다가 못하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나서 미련이 없는 게 더 낫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의 어머니 설민경 씨가 자녀에게 운동을 시켰으면 하는 부모나 지금 시키고 있는 부모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은:

자녀가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면, 대개 부모 눈에는 내 자식이 남보 다 더 잘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서면, 그 아이에게 맞춰서 뒷바라지해 줘야 해요. 남들이 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 서 그 아이에게 맞는 방법으로 보충해 주는 거죠. 남들과 비교해서 무조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 니다. 설민경 씨와 황재균 선수, 이 이상적인 모자 관계의 근간에는 아들의

삶을 존중하고 도전을 응원하는 어머니와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끝을 봐 야 한다는 각오로 열심을 다하는 아들이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 임 당시, 어머니는 아들의 결승전을 보지도 못하고 마음을 졸이다 금메 달을 땄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기쁨에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은 어머니

자신이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기쁘다며 우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뭉클해서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한국으로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만들 어 나가고 있는 황재균 선수가 곧 다가올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을 획득해 이 감동적인 장면을 재연하기를 팬으 로서 열망한다.

19


The Baseball Player Jae-Gyun Hwang, and his mother Min-kyung Seol Supporting His Lifestyle: Accepting new challenges and learning from experiences

20


There is a baseball player who made a short, but bold and effective move on reaching Major League Baseball (MLB) and successfully played for the San Francisco Giants. His name is Jae-Gyun Hwang, who is currently playing for the KT Wiz in South Korea. Last year, he hit a home run on his first game and won the honor of being voted the most valuable player (MVP) as the first Korean major leaguer to play for the Giants. He is also well known as the 2014 Incheon Asian Games Baseball gold medalist. At the time he won the gold medal, the fact that his mother, Min-kyung Seol, had also won the gold medal in tennis at the 1982 New Delhi Asian Games came into the spotlight. People were excited to recognize and praise the first mother-son gold medalists in Korean history. It is needless to say that Hwang’s mother played a big role in his successful baseball career. As May is often known as the "Family Month" in Korea,

is introducing this special

issue after interviewing Jae-Gyun Hwang and Min-kyung Seol, hoping that this story of the ideal relationship between the son and his mother might provide some clues and send a meaningful message to all the readers who are concerned about forming an ideal relationship between children and parents.

21


With his batting power and fast feet, Jae-Gyun Hwang is an unrivaled star baseball player also known as the ‘infielder hitting home runs.’ He possesses numerous big titles such as the Asian

player.” Ever since then, Hwang would not complain and just do his job anything helpful and related to baseball.

Games gold medalist, All-Star Game MVP, and Major League

After graduating from high school, Hwang did not hang out

with his gold medalist mother always ready to support him. He

professional player. While he was growing up, he might have

Baseball (MLB) player. He was successful wherever he went,

considered himself lucky for having a mother who sympathized

with him since she was a professional athlete herself. This

extraordinary mother-son relationship between Min-kyung Seol and Jae-Gyun Hwang is truly intriguing.

with his friends or go for drives until his official first-year as a

learned from his parents that ‘a proper athlete should act a certain way’ and that he should behave well. He learned how to

live as an athlete by taking care of his body and controlling his mind to become successful.

First Encounter with Baseball: A Step Forward to Become a

His Father as the Biggest Hidden Backer

Famous for being an all-around baseball player, Hwang is well-

the years.

Real Baseball Player

respected by other players for his natural talent and strong body taken from his parents. His

mother, Min-kyung Seol,

is well-known as the 1982 Asian Games tennis gold medalist. His father, too,

was also a member of the national tennis team as well as the coach of the

Development Bank tennis

team in South Korea. Despite the fact that both

of his parents were tennis players, Jae-Gyun Hwang

joined baseball simply

because it was the only available sports team in

his elementary school. In contrast to his father

who wanted Hwang to play baseball, his mother

initially opposed such plan.

Seol: I initially did not support Jae-Gyun’s decision to become a baseball player. He was smart and I wanted him to study more and get a job not related to sports. Because I knew how hard it was both physically and mentally to be a professional athlete. However, Jae-Gyun was persistent and he really wanted to do it. Also, my husband was ready to support his dream. In the end, I gave in. His mother yielded to Hwang’s strong determination and he started playing baseball more seriously in middle school. She

said, “It was your decision to start it, and it is fully up to you to end it well. Work hard to earn your living as the best baseball 22

Hwang’s father is the one who actively supported him throughout

Seol: Now that I look back and think about it, I never really did anything special for Jae-Gyun. It was actually his father who had been supporting him ever since he started playing baseball. In those days, his father was working as the coach of the Development Bank tennis team in South Korea. Based on his past experiences as a professional tennis player and coach, he gave some good and timely advice to Jae-Gyun, providing necessary things in advance. If he felt that Jae-Gyun needed a specific training for the games, he would arrange it for JaeGyun. Hwang: Throughout my school years, my father took care of everything from food to clothes even before I told him what I needed. He already knew what I needed. Seol would listen to her husband say, “I have to support Jae-Gyun in many ways.” Then she felt ‘If I had to take care of everything,

could I support my son like my husband could?’ She specifically emphasized that it was her husband’s sacrifice, not her’s, that allowed Jae-Gyun to succeed as a baseball player.


The Value of Challenges and Experiences Learned in MLB

Jae-Gyun Hwang made his major league debut with the San Francisco Giants in January of 2017. After successfully playing

His Motivation: the Power of Strong Belief and Positive Thoughts

the exhibition game, he was awarded the Barney Nugent Award.

As a 13-year veteran baseball player, Jae-Gyun Hwang is always

expectations were rising. Nevertheless, he soon faced the high

survive the big games such as the Asian Games and the MLB

In his MLB debut, he hit home runs in the finals and the team’s walls of MLB and decided to return to Korea.

Hwang: I never regret going to the U.S. despite the fact that some results were not wholly satisfactory and things could have been better. Above all, I have done what I wanted to do and I am proud of myself for playing in Major League Baseball (MLB) games. Not everybody gets to seize such opportunity. Every time he played the game, he was diligent. Instead of

focusing on the results, he was immersed in practice and training. This is exactly why he has no regrets. He delightfully summarized

bold and positive. His personality allowed him to successfully All-Star Game, as well as quickly coming out of his slump. It is amazing how he could be so positive all the time.

Hwang: I don’t usually get stressed out, but when I do, I simply go outside to take a walk or spend time with my hobbies. Especially during full baseball seasons, I try to do things alone rather than hang out with other people, so that I can concentrate on myself and do what I really want to be doing. My parents, who were also once athletes, know how hard it is to keep up as a professional player. They simply trust me and help me around when I ask for help.

his life in the U.S. in the following quote: “I learned a lot in the U.S.

Hwang is always thankful to his understanding and considerate

personality allowed me to fit in well with my colleagues and the

started playing baseball. Because of their full support, he was able

and mostly, I had fun while I was staying there. My freewheeling American culture.”

parents. His parents have been supporting him ever since he first

to enjoy playing baseball without constraints and make his own decisions at the same time.

A Message to Future Professional Players and Their Parents

asked Hwang, as a 13-year veteran player, if he wanted

to give any advice to young players. I believe that you just have to follow your heart. If you want to do something, then go for it. After all, it is better to at least give it a try than not try at all and regret doing so.

Some advice of Seol, the mother of Jae-Gyun Hwang, to the

parents raising children who wish to be future players: If your child tells you that he or she wants to become a professional player, you should be able to support your child. Instead of following whatever other people are doing, you first have to take a close look at your child to see what he or she really needs. Comparing your child to other children might be the worst way to raise a child who wishes to become a successful athlete.

This ideal mother-son relationship between Min-kyung Seol and Jae-Gyun Hwang is based on respect and support from both

sides. The mother truly supports her son’s new challenges and respects his decisions while the son passionately follows his

determination to achieve his goals in life. Coming into his golden days now in South Korea, Hwang is preparing to shine again at the 2018 Asian Games in Jakarta.

23


5월 뉴욕 이벤트

May New York Events 아쉬운 봄! 봄을 먹고 봄을 즐기며 봄에 빠져보자~

5월의 뉴욕 이벤트 글

편집부

Central Park Tour Heart of the Park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가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던 곳. 운이 좋 으면 조깅하는 ‘섹스 앤 더 씨티(Sex and the City)’의 스타 사라 제시

카 파커와 같은 유명 배우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며 만날 수 있는 곳. 하루에 샅샅이 구경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넓은 센트럴 파크를 제

대로 알고 싶다면 센트럴 파크 보존 협회(Central Park Conservancy) 에서 주최하는 공식 투어에 참가해보자. 센트럴 파크의 동쪽에서 서쪽 까지의 다양한 경관, 조각들과 건축물을 비롯한 센트럴 파크의 랜드마

크 격인 모든 것을 속성으로 즐겨볼 기회가 될 것이다. 알고 즐기면 즐 거움도 백배!

일시: May 4 (2 PM to 3:30 PM)

장소: East 72nd Street and 5th Avenue 24


Cendrillon – Cinderella Opera

신데렐라가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라고? 동화책이나 (만화)영화로만 보 는 신데렐라만이 다가 아니다!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오페라를 통해 신 데렐라가 지루한 일상에 지쳐있는 당신 곁으로 찾아간다. 생쥐가 변신 한 근사한 슈트를 차려입은 마부가 이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신데렐라 가 무도회로 가는 장면은 오페라로 보면 정말 장관이다. 오페라도 오페 라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극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메트로폴리탄 오페 라 하우스의 무대장치는 혀를 내두를 만큼 기막히게 영리하다. 일시: May 3 – May 11

장소: Metropolitan Opera House

International Food Festival

오늘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아마도 모든 직장인의 고민일진대, 이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는 행사가 온다! 특히 맨해튼의 미드타운 직 장인들에게 희소식인 International Food Festival이 올해로써 9번째

Free Summer Movies

햄버거부터 파스타, 스시, 타코, 비빔밥 등 15개 블록에 걸쳐 뉴욕에서

원에서 야외극장이 열린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을 이불 삼아 영화를 보

찾아와 뉴요커와 관광객을 부른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Rain or shine!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더

군다나 뉴욕에 관광을 왔다면 미슐랭 별을 단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것 보다는 맨해튼 거리에 대규모 천막을 차리고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는

이곳에 가서 골라 먹는 재미를 흠뻑 즐기며 노천에 앉아 점심 한 끼를 먹어보자. 얼굴을 간지럽히며 지나가는 봄바람에 뉴요커의 자유로운 영혼이 잠시 나를 스쳐 가는 듯한 느낌을 백퍼 보장한다! 일시: May 19 – May 20 (10 AM till 6 PM)

장소: 9th Avenue between 42nd and 57th

5월 28일부터 맨해튼, 퀸즈, 브룩클린, 브롱스 등 뉴욕에 있는 많은 공 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 영화도 많이 상영하니 아이

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 들고 영화를 보러 밤마실을 나가 보자.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좋은 추억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것

이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밤에는 약간 추울 수 있으니 얇은 겉옷이나

피크닉용 블랭킷 하나 들고 가는 센스~ 야외극장 상영 일정은 www. nycgovparks.org에서 제공한다.

일시: From May 28th on

장소: Grand Prospect Hall (263 Prospect Avenue, Brooklyn, NY) 25


People Focus

천재를 천재다울수 있도록 만든 숨은 조력자

폴 게린(Paul Garrin) 고(故) 백남준과 함께 한 15년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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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d by Kibum Kim


assistant Nam June Paik and Garrin editing All Star Video, 1983 (Photo: Yoshihiro Yoshihara)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고(故) 백남준. 2006년 미국 타임誌가 선정한 아 시아의 영웅이며, 1996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이 모두 마비가 된 후에도 왕성 한 활동을 펼쳤던 예술가. 백남준은 명실공히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선 전 세계를 아우르는 시대가 낳은 작가였으며, 예술의 장르를 확장시킨 선구자였다. 이런 백남준이 타계한 지도 벌써 12년이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영향을 받았고 그를 아직도 그리워한다. 그런데 천재 를 향한 그 그리움 속에서 잊혀지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와 함께 작업했던 동료와 제자 들이다. 그중에서도 시대를 앞섰던 백남준의 예술 활동과 업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야(만) 하는 이름 하나가 있는데, 바로 폴 게린(Paul Garrin)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구조적인 설치 및 사운드 측면에서 엔지니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데 백남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핵심 인물이 폴 게린이었다. 는 맨해튼에 있는 그의 자택이자 작업실로 찾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글 Sarah Chung 영문 Juwon Park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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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티에 위치한 시스티나 성당(The Sistine Chapel)의 천장에

기에 꽤나 낯이 익은 얼굴과 찍은 사진들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Michelangelo)의 작품이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Thomas Edison)

준과는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

그려진 유명한 ‘천지창조’는 인류사에 천재로 회자되는 미켈란젤로 도, 전화기를 발명한 벨(Alexander Graham Bell)도 인류사에 빼놓을 수 없는 천재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천재들 뒤에는 언제나 팀이 함께하고 있음을 너무도 쉽게 잊는다. 어찌 보면 미켈란젤로나 에디슨, 벨과 같은 천재들의 이름은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동료와 팀을 대표하

는 고유명사일진대 말이다. 혼자서 그 모든 세계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그렸던 것이 아니라 13명의 보조작가와 함께했던 미켈란젤로, 에디슨

등 14명의 동업자와의 공동 연구 발명품이었던 전구 – 결국 창조와 혁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고(故) 백남준이 아닌가. 벽안의 미국인과 백남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백남준의 어시스턴트로 그의 비디오 아 트 작업을 공동 수행했지요. 뉴저지 캠든이란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1978년에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에 입학하였어요. 쿠퍼 유니언 재학 중에 백남준을 처음 만났 는데 아마도 2학년 혹은 3학년 때였을 거라 기억해요.”

신이 고독한 천재의 전유물이란 것은 신화적인 허구가 아닐까. 저명한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쿠퍼 유니언은 건축, 미술, 공학의 3가

혁신은 팀 스포츠(Creativity is a team sport)’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

유니언의 명예의 전당에 가면 학교를 빛낸 우수한 졸업생들의 이름을

미국의 경영학 교수인 데이비드 버커스(David Burkus) 또한 ‘창조와

면 비디오 아트 예술의 선구자이자 천재였던 백남준도 예외는 아니다. 그에게는 바로 폴 게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남준과의 만남

현재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인

터넷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인 폴 게린. 이제는 은발이 되어버린 긴

머리를 무심한 듯 뒤로 묶고 가느다란 체격에 푹 들어간 커다란 눈으 로 웃으며

팀을 맞아주는 그에게서는 자유로운 영혼에서만

풍기는 냄새가 난다. 범상치 않은 그의 작업실을 둘러보다 보니 여기저 28

지 전공만 개설되어 있는 미국 최고의 교육기관 중의 하나이다. 쿠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곳에서도 폴 게린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쿠퍼 유니언을 다니던 중 1980년에 뉴욕 Anthology Film Archives 박물관에서 오픈 스크리닝 행사가 있다는 광고를 우연히 보았어요. 그래서 제 첫 비디오 영상물을 가지고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시사회 후 박물관 큐레이터 중의 한 분이 저의 조금은 괴짜같은 작품이 맘 에 든다며 Anthology Film Archives에서 인턴을 해보기를 권하셨어 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백남준도 그 박물관 큐레이터 중의 한 사 람이었던 거죠.”


백남준과의 인연

우연히 시작한 Anthology Film Archives 박물관에서의 인턴 생

활은 운명처럼 폴 게린을 백남준과의 만남으로 이끌었다. 어느 날 박물관에 들른 백남준이 폴 게린이 쿠퍼 유니언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말을 듣고는 시간당 $5을 줄 테니 자신의 인턴도 해 보라고 제안을 한 것이다.

“1981년 3월 30일 레이건 대통령 피격 사건이 있던 바로 그 날 이 저의 첫 출근날이었지요. 백남준은 저보고 자신의 로프트로 오라고 했어요. 커다란 주철로 만든 문을 두드리니 한 독일인 이 나와 저를 건물 꼭대기로 안내했는데, 그곳의 모습은 장관 이었어요. 수십 대의 텔레비전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거든요! 그러더니 백남준이 제게 물었어요, 바느질할 줄 아느냐고요.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백남준은 새 신발을 살 때마다 발이 부 어올라도 신을 수 있도록 신발의 부분 부분을 뜯어내고 벨크 로를 붙여 신고 다녔는데 그게 바로 제 첫 임무였지요!” 그렇게 시작된 백남준과의 인연은 깊어만 갔다. 백남준의 작품과 퍼포먼스에서 수많은 텔레비전과 로봇이 등장하고 부서지면 부

서질수록 폴 게린은 바빠졌다. 부서진 로봇을 다시 짜 맞추고 텔

레비전을 다시 세워 작품을 ‘가동’하는 것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

이다. 쿠퍼 유니언에서 수학할 만큼의 예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폴 게린의 기술적 지식과 타고난 엔지니어링 감각

을 알아챈 백남준은 점점 그에게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맡기기 시작했다.

“백남준과 함께한 작업은 저에게 정말 딱 맞는, 제가 가지고 있 는 모든 것을 다 꺼내어 발휘하게 만들어준 직업이었죠. 어릴 때부터 미술뿐만 아니라 물건을 만들고 부수고 하는 것을 무 척 좋아했어요. 새 장난감이 생기면 반드시 분해해서 그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봐야 직성이 풀렸으니까요. 이미 고등학생 때에는 자동차를 고칠 정도였지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었어요. 모든 것이 어떻게 모여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싶다는. 아마도 그래서일 거예요 순수 화가로서의 길이 제 길 이 아니라는 걸 쿠퍼 유니언에 들어가자마자 깨달은 것은요.” 순수 미술보다는 개념 미술(conceptual art), 미니멀리즘

(minimalism),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 더욱 관심이 많았던 폴 게린의 예술적 성향이 그렇게 백남준을 만나 만개한 꽃처럼 절정 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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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 and Garrin at Post Perfect (ca. 1995)

Garrin with Robot k456 outside of Whitney Museum (75th /Madison Ave), 1982

백남준과의 추억

폴 게린과 백남준은 점점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했고 나이 차이를 넘어 서는 우정을 켜켜이 쌓아갔다.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에디팅 장비가 나 오면 백남준은 제일 먼저 사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백남준의 로프트 작

업실에서 다 마치지 못하면 둘은 다시 폴 게린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함께 밤을 지새우며 작업을 끝내고는 했다. 아직도 폴 게린의 작업실에

는 그와 백남준의 손때가 묻은 장비들이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놓여있다.

“백남준과는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던 1996년까지 함께 했어요. 그리고 그가 쓰러지고는 많은 것이 변했지요. 거의 15년을 그의 곁 에서 백남준의 인간적인, 그리고 예술적인 호흡과 함께 살아온 저에 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요.” 미디어와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폴 게린은 백남

없이 바쁜 폴 게린이지만 그래도 지금도 문득문득 백남준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백남준과 함께했던 시간으로 가득 찬 그의 로프트 작업실을 2015 년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돌아가신 뒤에 처음으로 가봤어요. 1996 년 백남준이 쓰러진 후 처음으로 가본 것이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 가는데 울컥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백남준의 작품 활 동기에 최첨단이었던 비디오 신씨사이저(video synthesizer)가 아직 도 그곳에 그대로 놓여있었고, 곳곳에 어떻게 그 기계를 움직이고 조작하는지 1996년에 떠날 때 내가 써서 붙여놓고 왔던 메모들이 그대로 있었거든요. 나중에 들으니 제가 떠난 이후에는 그 기계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해요. 지금도 문득문득 허리 춤에 스웨터를 둘러 묶고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는 백남준의 모습 이 눈에 선합니다.”

준이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본격적으로 그만의 사회 활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백남준의 어시스턴트로 백남준의 비디오 아

기술을 통해 대중을 기만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부조리를 고발하기 시

시도 비디오 아티스트인 폴 게린의 가슴 속에 이렇듯 그리움을 심어 놓

동을 시작했다. 대기업이나 소수의 힘 있는 자가 (사유화한) 미디어와

작했고, 또 미디어와 기술을 통해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 “모든 정보 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리

고 있다. 자신의 인터넷 회사를 운영하며 지금도 하루가 숨 돌릴 틈도 30

트 작업을 공동 수행했으며 다양한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했던 그 역 고 간 백남준. 그의 천재성을 더욱 돋보여주고 오직 작품에 몰두하게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폴 게린. 진정 창조와 혁신이 팀 스포츠라 면 이 둘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팀 메이트였다.


Garrin with June Paik, Hiroe Ishii (producer/SONY), Shuya Abe (Tokyo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84

15 Years with Nam June Paik:

Artist-Activist Paul Garrin Discusses His Time with the World-Renowned Video Artist Widely known as the “father of video art” and named as one of the Asian Heroes by TIME in 2006, Nam June Paik (1932–2006) was a legendary pioneer whose works established video and television as part of the realm of fine art. While the achievements of Paik continue to impact the global contemporary art world and the living artists today, it is often dismissed that the artist frequently collaborated with fellow artists, assistants, and technicians, and that the nature of his works mostly consisting of television sets, monitors, and cables inevitably demanded active participations of those with different skillsets. In fact, lying at the very core of Nam June Paik’s decades-long art making practice was abandoning the idea of authorship since the 1960s. One of the closest collaborators of Paik was Paul Garrin, who took over the editing jobs of the artist’s videos over the course of 15 years from 1982 to 1996. The editorial team at

visited Garrin’s home and studio

in East Village, New York to discuss his unique work and time with Nam June Paik.

31


Too often, we tend to associate historical works of art or scientific innovations with the single minds of individuals. Italian

artist Michelangelo is hailed as one of the greatest geniuses

in the history of mankind. Scientists Thomas Edison and Alexander Graham Bell, by inventing light bulbs and telephones,

respectively, are also celebrated as masterminds of the modern history. What we often forget, however, is that these creative

individuals and their works were almost always products of

“In 1981, during my time as a student at the Cooper Union, I submitted my first work of video tape for an open screening at Anthology Film Archives. Afterwards, one of the curators at Anthology Film Archives came up to me, saying that he liked my wacky video and would like to offer me an internship for $5 an hour. And his co-curator happened to be Shigeko Kubota, artist and the wife of Nam June so he often visited the place!”

a great team work; Michelangelo painted his masterpiece

Collaboration with Nam June Paik

assistants, while both Edison and Bell closely worked ideas

ultimately led him to meeting Nam June Paik, who instantly

frescoes at the Sistine Chapel in the Vatican City with 13 other with their colleagues and assistants. According to David Burkus,

a sough-after keynote speaker and an associate professor of

Garrin’s work-study internship at Anthology Film Archives wanted to hire Garrin as his intern.

leadership and innovation at Oral Roberts University, creativity is

“I still clearly remember my first day was March 30, 1981 because it a team sport. Without doubt, Nam June Paik’s groundbreaking was the day President Reagan was shot. Nam June told me to come installations and performances were also results of collaborative to his loft. I rang the doorbell and knocked on this cast iron door, efforts between the artist and such “hidden figures.” And one of and a German man invited me into his elevator going all the way up to the top of the building. the most important and And when the door opened irreplaceable was a guy on the top floor, and all I named Paul Garrin. The studio of Nam June Paik in SOHO built by Garrin could see were televisions hanging from the ceiling! The First Encounter with Then Nam June came over Nam June Paik to ask if I knew how to sew. When a slim physique He was a diabetic and always with silvery ponytailed hair had his new pair of shoes greeted us at the doorsteps cut and sewn with velcro to of an apartment in East adjust the size whenever his Village, it was instantly clear feet got swollen. So there I that Paul Garrin has a spirit was doing my first job for as kind and innocent as that him—stitching velcro on of Nam June Paik. Looking shoes.” at the stacks of computers and wifi-related equipments,

one could not miss that this

The relationship between

was the studio of a media artist and social entrepreneur. One

Garrin and Paik turned solid as Paik began to have more

white photographs of familiar faces, primarily of Nam June Paik,

robots to work with, Garrin took an essential role in creating,

corner of working desk was neatly decorated with black-andhis wife Shigeko Kubota, and friend Joseph Beuys. We asked about his first encounters with Paik.

“I collaborated with Nam June from 1982 to 1996 as his assistant. As a child, I was raised in a small town in Camden, New Jersey, and had always liked to draw, which ultimately got me ended up at the Cooper Union in 1978. I first met Nam June while in school there, probably during my second or third year.” The Cooper Un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Art, located in the heart of East Village, is a prestigious institute known for its programs exclusively in architecture, fine arts, and

engineering. Having graduated with a fine arts degree, Mr. Garrin has been inaugurated for the school’s Alumni Hall of Fame. 32

exhibitions. With an increasing amount of television sets and actualizing, and reassembling the machineries so that they were ready to be played, or even, to be destroyed by the legendary

performance artist who sometimes wanted to break down

everything. Soon Paik left a significant part of his projects in the hands of Garrin, whose perceptive eyes for aesthetic value and technical abilities were unmatched to those of others.

“The works I had with Nam June was just a perfect fit for me. It was something where I could bring out everything I had. I liked to draw and paint as a kid, but what I never really stopped doing was building and destroying things. If I got a new toy, I would take it apart because I always wanted to see how everything worked and how different parts joined together to make movements. As a teenager, one of the first things I learned to do was to fix a car


whenever mine broke down. I was always technically curious. That simple curiosity was always a big part of me, and I think that’s how I was quickly convinced upon entering Cooper Union that I wasn’t ready to be a painter and I didn’t want to be a painter.” Influenced by his academic training under renowned professors Hans Haacke and Robert Breer at Cooper Union, Garrin’s interests

had already geared towards conceptual art, minimalism, and kinetic art. In retrospect, it was only a matter of time that Garrin

and Paik find each other and develop a longstanding relationship to come.

Lasting Memories and Legacies of Nam June Paik

From 1982 to 1996, Garrin and Paik spent days and nights working together. Garrin gradually became the “go-to man” to

fix Paik’s robots and to consult whenever there was some new

of media access. He has battled against media conglomerates

whose attempts to monopolize the Internet connection seriously undermine the general public’s rights to the access to

information. Recently he has founded WiFI-NY, an to provide independent community-based Internet to the neighborhood. Despite being heavily occupied with his current projects, Garrin certainly reminisces his time with Paik. He vividly remembers going back to the artist’s studio a few years ago:

“After his wife Shigeko passed away in 2015, I went back to that loft after almost 20 years since I had stopped working with Nam June. I must say I teared up entering the space. It turns out that when I left the studio at that time with the video synthesizer set up, with all my notes and cable patterns still left intact as I had left them. Apparently nobody after me had a clue how to operate it.”

equipment or technology. Things unfinished at the artist loft was

Co-creators, collaborators, and friends, Paul Garrin and Nam

are still clearly visible.

conventional artist-assistant practice; rather, the two were

continued at Garrin’s current studio, where the two men’s traces

“I worked with Nam June until 1996, when he had a stroke, and conditions changed. After spending almost 15 years beside him not only as an artistic and technical assistant, but also as a friend, a lot of things also changed for me.” Since then, Garrin has served as an important activist in the East

Village area, exploring the social impact of technology and issues

June Paik had a particular relationship that went beyond the invincible teammates whose non-compromising practice have left a permanent mark in the history of art and media.

English translation JuWon Park

M.A. in History of Art, Institute of Fine Arts, New York University B.A. in History of Art and International Studies, Johns Hopkins University 33


EDUCATION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14)

목장 산의 이웃들 정리

34

편집부


내가 살던 산골 마을에는 집이 네 채밖에 없었단다. 이웃집 근영이네, 아랫집 명숙이네, 동네 작은 산을 벌목해서 만든 목장 집, 그리고 우리 집을 합쳐 네 가구가 살던 마을이

었어. 원래는 총 세 가구가 사는 마을이었지. 그런데 서울에서 내려온 박 사장이라는 분 이 산을 사서 목장으로 만들었단다. 그래서 목장 집이 하나 더 생기게 된 거야. 박 사장

님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분이셨는데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이 돌았단다. 아담한 키에 검은색 가죽 자켓을 입은 곱슬머리의 신사셨어. 앞이마가 살짝 벗어지고 배가 나 오신 분이었지. 그래서 동네 아이들이 배 사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물론, 그분이 없 을 때만 우리끼리 그렇게 부르곤 했었지. 나는 돈이 많은 사장님은 다 대머리이고 배가 나오신 줄 알았어. 태어나서 사장님을 처음 만나본 거라서.

동네 앞 작은 산은 고사리가 많이 났었어. 산나물을 채취해서 말렸다가 장에 내다 팔면 아주 좋은 값을 받곤 했었지. 그래서 동생들을 데리고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다니곤 했

었어. 고사리를 많이 뜯어오면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학교 끝나 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산에 가곤 했었지. 가을이면 나무마다 주

렁주렁 열린 밤을 따러 가곤 했었지. 한참 익어서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밤송이를 작 대기를 이용해서 건드리면 주먹만 한 밤알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곤 했어. 추수가 끝

난 가을 저녁,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하나씩 세곤 했었지.

추수하고 나온 왕겨를 태워 모닥불을 만들고 산에서 따온 밤과 밭에서 거둔 고구마를 불 속에 넣어 구워 먹곤 했단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커다란 굴착기와 트럭들이 눈에 들어왔단다. 벌목 인부

들이 하얀색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앞 산에 있는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있었어. 수많은 추억이 깃든 앞 산이 없어지는 것이 내내 서운했었단다. 동네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물 어보니 벌목을 해서 목장을 만든다고 했어. 왼쪽 산자락 끝에는 벽돌과 슬레이트를 이

용해서 커다란 축사를 만들고, 축사 옆에는 방과 부엌이 딸린 조그만 벽돌집을 짓기 시 작했어. 몇 달이 지난 후 목장이 완성되었어. 벌목된 산에는 젖소가 먹을 수 있는 풀들이

심어졌고, 소먹이용 절인 옥수수 저장창고와 큰 규모의 축사와 작은 양옥집이 멋지게 들어섰지. 우리 마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신식 목장이 생긴 거야.

며칠 후 서울에서 박 사장이라는 분이 까만색 그랜저를 타고 내려오셨단다. 동네 사람

들은 “번쩍번쩍 광이 나는 차를 타고 나타나신 분이 과연 목장에서 살 수 있을까?”라고

수군거렸어. “아마 목장 관리인을 두겠지?” “안 그러면 서울에서만 살던 사람이 어떻게

목장을 운영할 수가 있겠어?” 우리 마을과 아랫마을에 살던 이웃들은 과연 누가 목장 관리인이 될까 궁금했단다.

그동안 벌목 일군들 점심 식사를 도맡았던 어머니는 박 사장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점

심을 대접했단다. 맛난 반찬은 없었지만, 박 사장은 밭에서 따온 호박잎과 된장, 빨간 고

춧가루로 버무린 배추 것절이, 가마솥에 펄펄 끓인 된장찌개, 그리고 장날 사다가 담가 놓은 간장 게장으로 차려진 점심을 아주 맛있게 드셨단다. “어휴, 이거 정말 맛있네요.”

“서울에서는 이런 거 못 먹어요.” 나는 ‘서울 사람들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매일 먹어 서 저렇게 배가 나왔는데, 도대체 시골 음식이 뭐가 그렇게 맛있을까?’라고 의아하게 생

각했단다. 아마도 매일 먹는 채소 밥상이 질려서 서울 사람들의 밥상에 동경심을 갖고 있었을 거야.

식사를 마친 박 사장은 아버지에게 목장 관리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셨단다. “목장을 좀 맡아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내가 서울에 사업체가 있어서 이곳에 늘 머물 수는 없

습니다.” “그래도 주말마다 내려올 테니 내가 없는 동안 목장 관리를 좀 해 주세요.” 아 버지는 얼른 수락하셨지. 그날 밤 어머니는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라며 아주 좋 아하셨어. 목장을 관리하면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월급도 받을 수가 있고 젖소가 새끼를 낳아 팔게 되면 소 판 돈의 일부를 손에 쥘 수가 있었거든. 논 한 마지기 없던 집에 엄청 난 기회가 생긴 거였어.

35


몇 달 후 주말, 박 사장은 예외 없이 목장에 내려왔단다. 그런데 그 날은

거동이 불편한 아저씨는 주로 방에서 음악을 듣곤 하셨어. 아주 복잡하

있었단다. 동네 사람들은 그 여자애가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음악을 듣는 취미를 갖고 계셨단다. 종종 목장 집에 놀러 가면 아

혼자가 아니었어. 그랜저 뒷좌석에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앉아

나왔던 아역 탤런트라고 했어. 박 사장은 서울에 살던 조카를 데리고 목장에 내려왔던 거야. 큰 도시에서만 살아서 심심해 했는데 마침 시골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온 거라고 하더구나.

박 사장은 여자 조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방문했단다. 마루에 잠 깐 걸터앉은 여자아이의 하얀 얼굴에 반짝반짝 광채가 났었어! 이름

게 생긴 턴테이블과 커다란 앰프 두 개가 딸린 전축 레코드판에서 흘러 저씨는 음악을 들려주시곤 했단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비틀스를 비롯

해서 당시 유명한 팝 음악을 즐겨 들었어. 우리 집에서는 8트랙 카트리 지 오디오 테이프로 ‘뽕짝 메들리’라는 음악을 주로 듣곤 했었거든. 팝송 이 뭔지도 몰랐지만 명은이 아저씨를 통해서 신식 문화를 처음으로 경 험할 수가 있었단다.

을 물어보았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또박또박 서울 말투

일여 년을 가족같이 함께 지낸 명은이 아저씨가 군산으로 다시 돌아간

만 하고 지내던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

는데 갑자기 떠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단다. 혼자 지내기가 외로워

로 이름과 사는 곳을 알려주었지. 시골에서 매일 뙤약볕 밑에서 흙장난

랐단다. 함께 점심을 먹는 내내 가슴이 꽁닥꽁닥 뛰는 소리가 들렸단 다. 아주 신기한 하루였지. 마치 내가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

처럼 비현실감이 들고 몸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 온종일 느껴졌어.

점심을 먹은 후 박 사장은 목장을 둘러보고는 조카 여자아이와 함께 서 울로 돌아갔단다. 그 후 여자아이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어. 몇 달 후

박 사장은 목장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고는 더는 시골에 내려 오지 않았단다.

박 사장이 떠난 목장에 새 주인이 들어 왔단다. 군산에서 고기잡이 배 를 많이 가지고 있던 가족이었는데 아들을 위해서 목장을 사준 거였어.

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

서 군산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 디 마실 한 번 못 가보고 방안에서 음악만 듣고 있으니 많이 심심하셨을 거야.

군산에서 오신 어머니와 함께 이삿짐을 정리하던 명은이 아저씨는 그동

안 애지중지 아끼던 전축과 몇백 개가 넘는 팝송 레코드판을 내게 주셨 어. 이별하는 것이 몹시 서운하셨던 것 같아. 아저씨가 떠난 후 텅 빈 목

장 집 방안을 둘러 보았단다. 노란색 장판 위에는 아저씨가 덥고 주무시 던 무명 이불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먹다 남은 과자 봉지와 필기도구들

이 여기저기 방안을 굴러다니고 있었어. 그 후 며칠은 가슴이 텅 빈 듯한 느낌으로 살았단다.

아들 이름이 김명은이었는데, 우리는 명은이 아저씨라고 불렀단다. 어

그 후 목장은 읍내 농업고등학교에서 사들인 후 축산과 학생들을 위한

애인이었어. 걷는 것도 불편하고 말도 많이 어눌했었지. 장애가 있어서

을 하게 되셨지.

머니와 함께 우리 집에 찾아온 명은이 아저씨는 선천적인 뇌성마비 장 늘 집에만 있던 아들을 시골로 요양을 보낸 거였어.

목장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지만, 장애인인 명은이 아저씨를 위해

서 아버지는 목장 관리인 노릇을 계속할 수가 있었단다. 관리인으로서 한 가지 조건이 더 추가되었어. 바로 명은이 아저씨의 삼시 세끼를 챙

겨드리는 거란다. 식사준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명은이 아저씨는 우 리 집에서 식사하곤 했단다. 식사가 준비되면 명은이 아저씨를 부르러

실습장으로 사용되었단다. 아버지도 관리인을 그만두시고 다른 농사일 몇 해 전, 지금은 없어진 고향 마을에 다녀왔단다. 살고 있던 동네 사람 들이 읍내나 서울로 모두 떠나 버렸단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 이 되었지만, 목장 산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단다. 축사와 옥수

수 저장창고, 조그만 벽돌집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어. 추억으로 얽힌 나 무, 오솔길, 작은 연못은 마치 오랜 친구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단다.

가는 것은 늘 내 몫이었단다. 한걸음에 목장 집에 달려가 명은이 아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목장 산에서 내가 만났던

아저씨의 정겨운 대답이 들려오곤 했어. “알았어, 빨리 갈게.” 식사하

기억은 여전히 생생히 가슴속에 남아 있단다.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나

씨를 큰 소리로 부르곤 했었지. “명은이 아저씨, 식사하세요.” 그러면

러 오시는 명은이 아저씨는 빨리 올 수가 없었지. 나도 아저씨를 따라 천천히 풀 길을 따라 걸어오곤 했단다.

사람들은 추억의 뒷전에 머물러 있겠지만, 사람을 만나서 맺은 소중한 는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아 있겠지? 그 추억이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 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글 윤성민 박사, DSW, LCSW-R, CASAC, RPT-S, ACT

연세대학교 졸업 (B.A.) Silberman School of Social Work at Hunter College (M.S.W.) 사회복지학 석사 University of Pennsylvania School of Social Policy & Practice (D.S.W) 임상사회복지학 박사 인지심리치료협회 (Academy of Cognitive Therapy) 공인 전문가 (Diplomat) 공인 임상사회복지사 및 심리치료 자격 (뉴욕 및 뉴저지주) 공인 알코올 및 마약치료사, 공인 국제 놀이치료사 겸 슈퍼바이저

현) ‌ Vice President of Integrated & Value-based Care (부사장), The Child Center of NY 현) 윤성민 심리건강 클리닉 소장 (뉴욕/뉴저지) www.mindwellbeing.com 이메일: yoondsw@gmail.com 36


EDUCATION

5월의 인물

소파(小波) 방정환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방정환 선생은 한국 최초의 순수아동잡지인 월간 《어린이》를 창간하여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쓰고 1923년 색동회와 같 이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어린이’는 사전적 의미로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있다.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동 을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켰다.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방정환 선생님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소파 방정환.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호는 알아도 그 뜻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소파(小波)는 작을 소 小, 물 결파 波 즉, 잔물결을 뜻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부인 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 “부인, 내가 왜 호가 ‘소파’인지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 물결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오, 훗날에 큰 물결 대 파가 되어 출렁일 테니 부인은 오래오래 살아서 그 물결을 꼭 지켜봐 주시오.” 글

편집부

방정환 선생님은 1899년 태어났다. 호는 소파(小波)이며, 언론인, 문학가, 교육자 등 다양 한 활동을 했다. 독립운동가 권병덕의 소개로 1917년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의 사위 가 되어 공부를 계속 하었다. 보성전문학교에서 공부하던 그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 자 ‘독립선언문’을 배포했고 이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후 석방된 방정환은 도요대학 철학과에서 ‘아동예술학’, ‘아동심리학’등을 연구했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 아동을 위한 최초의 잡지 <어린이>를 창간 했다. 1931년 7월 23일 치열하게 살던 방정환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재정적인 문제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지게 되고 1931년 7월 23일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7


EDUCATION

VMN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전) 부사장 정승희

유학생에서 VP가 되기까지

미국 직장 생생 체험기(5) 내가 잘 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직장 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맡은 일을 잘 한다고 해서 꼭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법은 아니니까 말이다.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얼 마나 좋을까.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기운이 넘쳐날 것만 같을 텐데. 어쩌 면 판타지 같기도 한 이런 행복한 커리어를 꿈꾸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담근 지 가 벌써 18년이다. 강산이 두 번쯤 변할 동안 미국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많은 변 화를 겪었고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힘들었다. 20년 전 유학생으로 와서 MBA 프로그램 을 마치고 취업비자를 받아 외국인으로 이곳에서 취업하고, 그 오랜 시간을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좌충우돌하며 버텨낸 것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였을 것이다. 지난날의 나의 경험이 지금 막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매달 작은 에피소드 하나씩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글 Seunghee Chung 영문 Taeriah Kim 정리 38

편집부


코드네임: 유머와 위트

빼놓고 열심히 매일매일 나가 똑같이 일하고 책상도 직원처럼 꾸며놓고

(Airport Test)’라는 것을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공항에 꼼짝없이 갇

갈 땐 돌아가더라도 미국에서 공부가 끝난 후에도 더 머물며 경력을 쌓고

테크 기업과 컨설팅 회사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미국의 꽤 많은 기업이 사

람을 뽑을 때 ‘에어포트 인터뷰(Airport Interview)’ 혹은 ‘에어포트 테스트 히게 되었을 때 지금 인터뷰하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겠는가?” 하는 것 이 면접관에게 주어진 판단 기준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직원을 뽑을 때 오

하다 보니 나를 막둥이 직원이라 볼뿐 이제 다음 달이면 내 인턴십이 끝난 다는 걸 모두들 잊은듯했다. 심지어 디렉터조차도.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 싶은 내 맘도 몰라주고 말이다.

내가 챙기지 않으면 이곳에선 아무도 내 밥그릇을 챙겨주 지 않는다

피스나 회의실 같은 정형화된 인터뷰 장소에서 벗어나 틀에 박힌 인터뷰 예 상 질문에 짜맞춰진 ‘정답 같은’ 대답을 탈피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에어포트 인

“이제 인턴십 후 졸업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터뷰’ 속에 숨은 의도는 사실 인터뷰이의 소

싶어요?”하고 친절히 물어봐 주기라도 하

프트 스킬(Soft Skills)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면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딱 좋으련만 아무

피플 스킬(People Skills)이라고도 하는 소프

도 나에게 관심도 없고 이렇게 속수무책으

트 스킬의 대표적인 몇 가지 예로는 친화력,

로 졸업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

조직문화 적응력, 경청하는 자세, 대화 기술

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레쥬메를 넣어보는

력, 등인데 이 모든 것을 잘 버무릴 수 있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새가 알에서 깨어

비법 양념이 있으니 바로 유머와 위트!

나 가장 먼저 본 것을 어미로 안다’는 이야

미국에서 본격적인 취업 전선으로 뛰 어들다

기처럼 미국에서의 첫 직장이어서 그랬는지

왠지 이곳에서 내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으

세계 미디어의 메카인 L.A. – 버뱅크(Burbank)

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몇 날 며칠을 속만 끙

에는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와 함께

끙 태우다가 우연히 학교 MBA 프로그램 디

디즈니(Disney), NBC 방송국이 있고, 멜로

렉터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 프

즈 애비뉴(Melrose Avenue)에는 파라마운

로그램 시작할 때부터 늘 내게 친절하게 대

트(Paramount), 컬버 시티(Culver City)에는

해주던 사람이었다.

소니(Sony) 영화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할 리우드의 그 유명한 선셋 블러버드(Sunset

“어디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이곳 미

Drive), 산타 모니카(Santa Monica), 스튜디오

나를 챙겨주지 않아요. 내가 손을 들고 먼저

Boulevard),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국에서는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씨티(Studio City) 등지에는 크고 작은 엔터테

요청하지 않으면 아무도 먼저 나한테 내가

인먼트 회사들이 모여 있다.

원하는 걸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졸업 때가 다가오는데 왜 아무 말이 없을

워너 브라더스에서 인턴을 시작한 지도 어느

까?’ 속으로 생각하지만 말고 직접 말을 해

덧 3개월을 넘어서고 있었다. 슬슬 졸업할 때

봐요. 그리고 그곳에 학교에서 짝지어준 멘

가 다가오니 함께 졸업하는 MBA 프로그램

토가 있잖아요. 본인의 네트워크를 잘 이용

동료들도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는지 다들

하세요.”

만나기만 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심각한 얼굴로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낙 세계 곳곳

‘내가 손을 들고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아무

들이어서 졸업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친

않는다!’

에서 이곳 L.A.로 공부하러 온 클래스 메이트

도 먼저 나한테 내가 원하는 걸 가져다주지

구도 있었고, 여기저기 할리우드 영화사나 탤

런트 에이전시에 노크하고 다닌다는 친구도

너무나 당연한 그 말이 내게 큰 울림을 주

없어 보였는지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부지런

어느 조직에서건 손을 들고 내 의견을 말하

었다. 집안에서건, 학교에서건, 회사에서건,

있었다. 졸업 후 무엇을 할지 아무런 대책이

면, 그것도 꽤 자주 그런다면 ‘나선다’라거

히 서둘러 여기저기 레쥬메를 넣으라 조언을

나 심지어 ’나댄다’고 눈칫밥을 먹기 일쑤인

주기도 하였다. 인턴을 시작한 이후로 매일매

일 버뱅크에 있는 워너 브라더스 본사로 출

우리 문화에서는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이

근하며 나에게 건 셀프 최면 덕분이었는지 난 내가 마치 정직원이 된 양 생

튀어나와 정을 맞는 모난 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 의견을 말할

다. 그래도 졸업하면 체류비자 문제도 있고 더 이상 학생 인턴의 자격을 유

력’하는 수준으로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현명한 사회생활의 지혜가 아니

각이 들었고 워너 브라더스 이외의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 지할 수 없었기에 어찌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긴 세워야 했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 가만히 동료들을 관찰하니 아이고 맙소사… 이 사람 들도 내가 학생 인턴임을 완전히 잊고 있는 듯 보였다. 수업이 없는 날만

때도 분위기와 장소를 봐가며 내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조심스레 ‘피

던가. 그런데 가서 직접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해보라는 학교 디렉터의 조언은 아무리 ‘정직이 최선(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라지만 될까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마당에 밑져야 본전인데 안될 게 뭐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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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부딪혀 보는거야!

유머와 위트 – 또 다른 성공의 열쇠

인 캘린더에 제목을 달아달라고 했다. 사실 인턴십을 시작하고는 지난번 월

얼마나 펄쩍펄쩍 뛰었는지 온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았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사장의 비서를 찾아가서 미팅을 잡아달

라 부탁했다. 비서가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인턴십 리뷰’라고 사장의 온라 례회의에서 본 게 다인 사장이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멘토(mentor)와 멘티 (mentee) 사이가 아닌가. 내가 어찌 지내고 있는지 가서 알려주는 것도 나 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미팅 날이 왔다. 위층에 있는 널찍이 잘 꾸며진 오피스에

그리고 며칠 뒤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통보가 왔고 나는 그렇게도 꿈꾸 던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내가 원하던 곳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서 돌이켜봐도 그날 무심코 튀어나온 (대담한 혹은 어리숙한) 나의 농담 한마디

가 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믿는다. 물론 그것이 사장의 의사결정을 좌

우할 정도로 중차대한 영향을 끼치진 않았어도 적어도 나에 대한 호감도는 높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놓여있는 소파에 앉아 두 손을 가 지런히 모으고 초조하게 기다리

고 있으니 웃으며 사장이 나온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깨 고자 날씨 이야기와 지나가는 소

소한 화젯거리로 긴장을 푼 뒤 심 호흡을 하고 머뭇머뭇 준비한 이 야기를 꺼냈다.

“저… 다음 달이면 이제 인턴십 이 끝나고 졸업을 하는데요…”

“벌써 그리되었나요? 축하해요.” “제가 졸업을 하고도 워너 브라

더스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까요?”

“음…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는 들었어요. 그렇지만 졸업을 하

고도 계속 일을 하려면 정직원으

로 채용이 되어야 하는 데 그 부 분은 담당 부서의 수석 부사장과 상의를 해야 해요. 한번 이야기는 해볼게요.”

“네, 혹시 저를 뽑아주시는 것이

만일 부서에 그다지 무거운 부담

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주시

미국 직장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을 좋

직장에서의 유머와 위트는 시트콤에 나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잘 풀어내거나 허허 실실거리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문화를 잘 꿰뚫고 부서 간, 기업 간 힘의 역학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유머와 위트를 말하는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기업 간 협상이나 부서 간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던지는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한 마디의 유머나 위트가 협상이나 대화를 성공으로 이끄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 미국에서는 적절한 비즈니스 상황에 맞는 유머러스함과 위트를 갖추는 게 또한 리더의 중요한 자질이다. 특히 직급이 올라갈수록, 임원이 될수록 유머와 위트가 있는 사람이 더욱 매력적인 리더로 인식된다. 내가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평가해주고 승진이 착착 되리라는 것은 오산이다. 일만 잘하는 사람(“Doer”)이 승진하는 건 아마도 기껏해야 중간 매니저급 정도까지 일 것이다. 그 후에는 친화력을 갖춘 전략가(“Thinker”)가 필요한데 그 속에 숨은 성공의 열쇠가 유머와 위트이다.

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사실 제가

몸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는 편도 아니고 요새는 더군다나 다이어트 중이 라 더 가벼워졌거든요!”

사장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파안대소를 터뜨리더니 멈출 줄을 몰랐 다. 전혀 준비해간 말이 아니었는데… 사실 어디서 그런 말이 갑자기 튀어나

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말이 재미있었던지, 아니면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멋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순진함이 귀여웠던지 대화의 분위

기가 순식간에 나른한 봄날 내리쬐는 따듯한 볕처럼 한결 부드러워졌다. 워

낙 바쁜 사람인지라 15분간의 짧은 미팅이었지만 사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 면서 일어서더니 한마디를 툭 던졌다.

“걱정 말고 돌아가 있어요. 우리도 함께 일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 최고의 칭찬일 때도 많다. 온종일

하루의 2/3 이상을 사무실에 앉아 일 에 들들 볶이는데, 그 일마저 언제나 심각한 표정에 지나칠 만큼 매사에 진 지하고 엄숙한 동료와 매일 붙어 있으 며 해야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중

간중간 재미있는 유머와 위트로 팀의 분위기를 이끌고 지치지 않게 활력소 를 넣어주는 동료는 언제나 어느 팀

에서도 환영이다. 그런데 이런 유머와 위트는 시트콤에 나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잘 풀어내거나 허허 실실거

리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문화를 잘 꿰뚫고 부서 간, 기업

간 힘의 역학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유머와 위트를 말하는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기업 간 협상이나 부서 간의 긴장과 갈등 속에

서 던지는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 은 한 마디의 유머나 위트가 협상이나 대화를 성공으로 이끄는 단초가 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미국에서 거의 20년을 일하고 보니 적절한 비즈니스 상황에 맞는 유머러 스함과 위트를 갖추는 게 또한 리더

의 중요한 자질임을 배웠다. 특히 직

급이 올라갈수록, 임원이 될수록 유

머와 위트가 있는 사람이 더욱 매력적인 리더로 인식된다. 유명한 저널리스

트이자 Time 誌의 치프 에디터(Editor-in-Chief)였던 헤들리 도노반(Hedley

Donovan)은 유머 감각을 ‘지도자의 필수조건’이라 말했고, 5성 장군이었으 며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마

저도 유머감각은 ‘사람들을 잘 아우르면서 일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리더쉽 스킬의 한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평가해주고 승진이 착착 되리라는 것은 오산이다. 일만 잘하는 사

람(“Doer”)이 승진하는 건 아마도 기껏해야 중간 매니저급 정도까지 일 것이 다. 그 후에는 친화력을 갖춘 전략가(“Thinker”)가 필요한데 그 속에 숨은 성 공의 열쇠가 유머와 위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길러질 수 있는 후천적 소프트 스킬 중 의 하나인 유머와 위트. 빡빡하기 짝이 없는 직장 생활도 유쾌•상쾌•통쾌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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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한다. 그래서 “You are so funny!”


My Journey in Corporate America by Seunghee Chung, Former VP at Viacom Media Networks:

Climbing The Corporate Ladder of Success(5) What you are good at doesn’t necessarily mean that it is something that you would die for. Possessing an exceptional skill at something does not always translate to having a real passion in itself: a workplace is no exception. In other words, doesn’t everyone share a mutual desire to find a job that they’re good at, which actually happens to perfectly parallel their actual interests? Exactly 18 years into this fantasy-like career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 I’ve realized that no matter how demanding or tiring the work may be, doing something I love somehow creates more energy to be constantly fueled by. However, I must admit that I’ve also had my fair share of hardships throughout my career, but those were eventually lulled by frequent joyful moments that netted out the negatives. But thanks to having a job that I truly enjoyed, I was able to endure this 20-year journey, where I started out as an international MBA student who stepped into a foreign country with limited English-speaking abilities, which wasn’t even my native language. I hope that my humble narrative of the past will encourage and inspire the minds of young working professionals who are currently in the nascent stage of building their careers within the mainstream society today, and I am happy to openly share my episodic memories on a monthly basis for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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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Name: Humor and Wit

Many American companies use something called “airport interview” or “airport test” in their employee hiring process to determine how the

person would rise to the occasion in a situation out of one’s control, such as being held up in an airport unexpectedly. This approach

allows the exchange to go deeper than the pat and polished answers

most candidates prepare in anticipation of the usual interview tactics.

The “airport interview” subtly reveals a candidate’s soft skills which are different from hard skills. Soft skills are absolutely people skills and

are related to “how” you work with others. Examples of important soft

skills are easy rapport, cultural adaptability, teamwork, active listening,

etc. Do you want to know the hidden key to wrapping all your soft skillsets into an enticing package? It is humor and wit!

Jumping Into the Front Lines of A Professional Career in America The world’s mecca of media is undoubtedly the greater L.A. area, which is home to Warner

No One Will Look Out For You Here If You Don’t Look Out For Yourself If only someone asked me “What do you want to do after your internship is over?” and give me a chance to bring my wishful

thinking out into the open! But, no one at Warner Bros. inquired after my desires. Even then, I still did NOT want to think about

applying anywhere else at all. As the first company I worked for

in the U.S., it was as if I had “imprinted” on Warner Bros. the way newly hatched chicks “imprint” on the first thing they see as their

own species. I couldn’t shake the feeling that I MUST start my career

there. After a few days of struggling to decide what to do, I ran into my school’s MBA program director. The conversation with her was perfectly timely.

“Especially here in America, no one will look after your interests if you don’t look out for yourself first. If you don’t raise your hand and ask,

you can’t expect someone to hand you what you want on a silver

platter. Why don’t you

take the first step to talk

Bros., Disney and NBC

to someone? The school

Universal in Burbank and

already matched you up

Paramount on Melrose

with a mentor at Warner

Ave., not to mention

Bros. Try to make the

SONY Pictures in Culver

most of the personal

City. Furthermore, large

network you have.”

and small entertainment firms line the famed

having a strong presence

If I don’t raise my hand and ask first, no one will hand me what I want on a silver platter!

Studio City.

This obvious truth

It was already May and

in my heart. In Korean

streets of Sunset Blvd.

and Mulholland Dr. in Hollywood, as well as

in Santa Monica and

my student internship

suddenly resonated culture where speaking

at Warner Bros. was approaching the end of three months. All of

your opinion is frowned upon, there is a strong tendency to conform

after graduation, which was inexorably drawing nearer. Many were

considered “wisdom” to carefully modulate how we express ourselves

my MBA classmates were constantly talking about the next steps international students planning to go back to their home countries. Others actively sought opportunities at various Hollywood movie companies and talent agencies. Some of my friends advised that I

should apply for as many jobs as I can. However, I had already begun

to feel like a full-fledged employee at Warner Bros. and could not even imagine myself working elsewhere. Regardless, it was high time to formulate a plan as graduation brought not only the end of the student internship but also a change in my visa status.

Unfortunately, everyone around me at Warner Bros., was oblivious to

the fact that my internship was ending next month – or so it seemed.

Since there wasn’t much to distinguish me externally from actual

employees, everyone seemed to have forgotten that I was a student

intern in the first place. No one seemed to be aware of my desire to build my work experience at Warner Bros. after earning my MBA degree. Hello~ can anyone get a crystal ball to read my mind, please? 42

to the others in an organization and not go against the current. It is to avoid appearing opinionated. In direct contrast, the school director

was advising me to have a straight-forward conversation about my

situation. I was super doubtful and skeptical at the same time whether or not this “Honesty is the best policy” approach was going to work. On the other hand, however, what am I going to lose anyway?!

Here Goes Nothing!

The very first thing the very next day, I requested a meeting with the President on the topic of “internship review”. I had seen her only once at work last time in the monthly meeting, but I felt justified in the

request since she was my assigned mentor through school. In due

time, I found myself sitting in her spacious and tastefully decorated office and attempting to shake off the built-up awkwardness and

tension with small talk. After a few stealthy deep breaths, I slowly came out with the reason for wanting to meet with her.


“Ummm… I will be ending my internship and graduate next month…”

American companies value a sense of humor, to the point where “You are so funny!” is often the highest form of complement. Indeed, how torturous it would be to work all day every day with perpetually

“Is it time already? Congratulations!”

“Well… would I be able to continue to work at Warner Bros. after I graduate?”

“Hmmm… I heard that you’ve been doing a terrific job. But I would have to first discuss with the Senior Vice President of your department

whether they want to hire you even after your internship. Being a fulltime employee is a different subject.”

“I would greatly appreciate the company taking me on as an employee if it’s not too much burden for the department. Look at me. I don’t weigh

serious and somber colleagues. Any team would gladly welcome someone who can bring energy and freshness with timely and

appropriate humor and wit. But simply telling a last-night-sitcom-like joke does not cut it. Corporate America appreciates humor and wit

founded on an astute understanding of corporate culture and power dynamics among individuals, departments, organizations. I have

witnessed countless instances in which a laser-like deployment of humor and wit was the key to successfully concluding an adversarial negotiation or defusing a thorny conflict.

ver y much, and,

as a matter of fact, I’ve gotten even

lighter since I started dieting!”

The President’s eyes suddenly grew wide

and she burst into laughter, guffawing

uncontrollably. Oh

my, that wasn’t what

I was going to say

at all! I have no idea where that came

from. Whether she found what I said

genuinely funny, or whether she found my naive lack of

finesse endearing,

I couldn’t say. But

what I know for sure

is that the tone of

Almost 20 years of

Business humor and wit is not about simply telling a last-nightsitcom-like joke. Corporate America appreciates humor and wit founded on an astute understanding of corporate culture and power dynamics among individuals, departments, organizations. I have witnessed countless instances in which a laser-like deployment of humor and wit was the key to successfully concluding an adversarial negotiation or defusing a thorny conflict. Furthermore, the ability to dispense humor and wit under any circumstance is considered an indispensable quality in a leader. The higher up on the corporate ladder, the greater credit humor accrues towards being recognized as a charismatic leader. Hard work does not result in automatic promotions; at most, a “doer” may reach up to middle management. To reach a higher level of success as a strategist, a “thinker” who builds rapport and bridges, humor and wit must accompany diligence.

our conversation changed in an

instant, softening like the spring sunshine. After another 15 minutes, the President ended the meeting with an encouraging smile saying:

“No worries and go back to work. I am also hoping that we will be able to keep you here.”

Humor And Wit – An Hidden Ingredient To Success

business experience in America has

taught me that

the ability to

dispense humor and wit under any

c i rc u m sta n ce i s an indispensable quality in a leader,

as the renowned journalist and former Editor-in-Chief of

Time Inc. the late

Hedley Donovan once noted. The 34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Dwight

D. Eisenhower has

also said, “A sense of humor is part of the

art of leadership, of

getting along with people, of getting things done.” The

higher up on the

corporate ladder, the greater credit humor accrues towards being

recognized as a charismatic leader. Hard work does not result in automatic promotions; at most, a “doer” may reach up to middle

management. To reach a higher level of success as a strategist, a

“thinker” who builds rapport and bridges, humor and wit must accompany diligence.

I received the formal offer letter a few days later. I jumped up and

Humor and wit do not spring up overnight. But take heart! As

here in America that I’ve been dreaming about, at the company of

and energize your colleagues, you will find yourself refreshed and

down for the joy of having the chance to build my professional career MY choice. Then as now, I believe that the little joke that jumped unbidden out of my mouth in that short meeting went a long way

to help my cause. Though it hardly could have been the primary

deciding factor, it had the effect of making me more likeable in the eyes of the President herself.

you develop and nurture these soft skills, you will not only refresh energized!

English translation Taeriah Kim

B.A., Neuroscience and Behavior Columbia College of Columbia University 43


EDUCATION

44

Drone


Drone 대세 시대

드론만큼 전지(Battery)도 중요하다 글 Joon Kim 정리

편집부

드론이란 무인 항공기, 즉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은 항공 비 행기를 뜻한다. 무인기를 드론이라 부르게 된 계기는 명확 하지 않지만, 그럴듯한 얘기가 있다. 1935년 영국에서 사람 이 타는 훈련용 복엽기인 ‘타이거 모스(Tiger moth)’를 원 격조종 무인 비행기로 개조하면서 여왕벌(Queen Bee)이라 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것에서 숫벌을 뜻하는 드론이란 단 어를 무인기로 지칭하여 사용되었다고 하는 추정설이다. 드 론은 활용분야에 따라 다양한 장비(광학, 적외선, 레이더 센 서 등)를 탑재하여 감시, 정찰, 정밀공격무기의 유도, 통신이 나 정보중계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며 폭약을 장전시켜 정밀무기 자체로도 개발되어 실용화되기도 했다. 군사적인 용도의 활용 뿐만 아니라 2017년 6월 아마존은 드론 이착륙 센터에 대한 특허 출원을 하기도 하는 등 드론은 최근 몇년 간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각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45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수많은 드론(drone)이 자유

화 중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Owlet Baby Care(www.owletcare.

서 많은 사람이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드론은 이제 엄청난 숫자라

산소레벨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달린 Smart Sock을 개발하여 바로

자재로 비행하면서 여러 가지 환상적인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도 미리 계획한 프로그램에 따라 조정자의 의도대로 모든 비행이 가능 하다. 드론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한데 무인 화물 배달, 건설, 농업, 광업,

연구개발, 공중 탐색과 지질조사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드론은 다양한 분야의 블루오션 마켓이 형성 중이며 이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여 2020 년에는 정부, 산업, 그리고 상용 분야에서 $12 billion 이상의 투자가 이 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드론과 고성능 전지는 불가분의 관계

드론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드론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주

com)라는 회사에서 이러한 트렌드를 이용하여 갓난아이의 맥박수와 부모의 스마트 폰에서 신생아의 이상여부를 바로 알 수 있게 되어 이상 이 있을시에 바로 필요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돌발 사망사고를 방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wearable device에도 리튬 이온 전지가 꼭 필

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소형 wearable device의 제한 된 공간에 전지를 효율적으로 장착 하기위해서는 기존 원통형이나 사

각형 전지가 아닌 다양한 모양의 전지를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며 현재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은 전지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그 시장 을 차츰 확대해 가고 있다.

는 전지 역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드론 비행 중에는 전지의 재충 전이 어려우므로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커서 한번 충전으로 오랜 시간 사용이 가능한 고성능 전지가 필수 불가결하다. 스마트폰이나 전기 자

동차 등에 많이 쓰이고 있는 ‘리튬 이온 전지’는 이러한 요구 조건을 어

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드론 마켓이 활성화되면서 리튬 이온 전지의 수요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전기자동차에 이어 페리보트도 전기로

Drone이 광범위하게 이용됨으로써 생활 영역이 넓어지는 순기능도

되어 정보를 교환하는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서비스가

문제도 대두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문제 중에서도 가장 위협이 되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리튬이온 전지의 수요도 계속 증가될 전

있지만, Drone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등 여러 가지

는 것은 가상의 적들에 의한 안보상의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자

재로 비행하는 drone을 이용하여 폭발물을 투하하거나 정찰 비행을

2010년대에 들어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고 사물들 간에 인터넷이 연결

가능해지면서 wearable device는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동반제품으로 망이다.

통하여 spy 활동이 자유로워지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테슬라등 전기 자동차도 차츰 수요가 늘어나면서 리튬이온 전지의 수

드론 공격 방어에 사용되는 라튬 이온 전지

경 오염을 줄이면서도 운영비용이 절감되는 이점이 있다고 증명된 근

최근 FOX 뉴스에 의하면 방산업체인 Raytheon이 개발한 Drone slaying dune buggy가 레이저를 이용하여 아주 값싸게 효율적으로

drone을 녹여 버릴 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었다고 보도 하였다. 다른 방산 업체인 Boeing 역시 트럭에 탑재된 drone-killing laser cannon 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레이저 무기 역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전지 를 동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게 리튬이온 전지는 드론이나 드론을 이용한 공격을 방어하는 무

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자극을 받은 해운 업계에서도 환 거리 ferry boat를 시작으로 디젤 엔진에서 하이브리드나 100% 전지

로 전환하는 시도가 유럽을 중심으로 3~4년 전부터 새로운 마켓을 형 성해가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처음으로 리튬이온 전지의 에너지와 파

워를 이용하는 ferry boat 3척이 발주되어 내년이면 운항이 될 예정이 다. 배의 주 동력원이 이렇게 전지로 바뀌게 되면 한척당 필요한 전지

의 양이 자동차 보다 훨씬 크기에 전기 자동차에 필요한 수요와 필적할 만한 리튬이온 전지 시장 형성이 예측된다.

기 개발에도 모두 필수 동력원이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

이렇게 많은 양의 전지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리튬이온 전지 업계에서

차 등에도 리튬이온 전지가 많이 쓰고 있으며 그 수요가 차츰 증가하고

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고성능 이차 전지 시장

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그리고 하이브리드 카나 전기 자동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따라서 리튬 이온 전지가 기존에 알려

진 용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사용되는 리튬 이온 전지

최근 모바일 기기를 비롯해 정보, 스마트 기술의 전례없는 발달과 확산

은 스마트 기기의 트랜드에 따라 몸에 ‘착용’ 가능한 형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하여 기존 디바이 스로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wearable

device는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취미를 즐기거나 각종 정 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보건산업 분야에서도 이러한 트렌드 가 영향을 미처 모바일 헬스케어(mHealth)라는 새로운 산업시장을 형 성하였고 이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의 흐름속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진 46

는 보다 에너지 밀도가 크고 경제적인 가격의 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치 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무한한 수요 증가와 함께 환경 오염을 획기적으 로 줄일 수 있는 에너지원이며, IoT 등의 차세대 신기술과의 접목이 비 교적 쉽기 때문이다.

Dr. Joon Kim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Illinois에서 전기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35년 이상 관련 전문 업 계에 종사하고 있다. 2005년 밧데리 전문업체인 Kokam America를 설립한 후 기술력을 인정받아 2009년에 Dow Chemical과 합작으로 Dow-Kokam 을 설립하여 당시 미 국 최대의 리튬-이온 전지 셀 생산 공장을 건설하였다. 현 재, 리튬이온 전지 응용 제품 생산 업체인 Spear Power Systems를 창업하여 경영하고 있다.


EDUCATION

임의로 수정 불가! 누구나 변경 결과 열람가능!

분산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 블록체인이 바꾸는 세상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또다시 오르고 있다. 작년 말, 암호화폐 비트코인 광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블록체인이란 용어는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블록체인 이란 데이터 분산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한 모든 사용자가 최초 의 거래부터 최근까지 전체 데이터를 일정한 주기로 분산/ 저장하는 기술을 칭 한다. 해킹할 수 없는 블록체인 구조는 실제로 사이버보안, 보건, 금융서비스, 제조업과 산업, 부동산, 미디어 등 현재 사회 각 분야에 고르게 사용되고 있다. 글

편집부

각 분야에 고르게 활용되는 블록체인

정부 분야에 활용되는 블록체인

과 패스워드를 블록체인에 저장된 SSL 인증서로 대체하는 것을 목

가이다. 2016년에 30개 정부 부서가 보건 기록, 해운, 사업자 등록

르메(REMME)는 사이버 보안분야에 쓰이는 프로그램으로 로그인

표로 하는 분산 인증 시스템이다. 젬(Gem) 스타트업은 미국 질병

통제센터(CDC)와 협력하여 재해구조와 재해대응의 효율성을 높이 기 위해 질병발생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심플리바이탈헬

스(SimplyVital Health) 회사는 보건관련 블록체인 상품 2종을 개 발하고 있으며 커넥팅케어(ConnectingCare)는 퇴원 후 환자의 상

태를 추적하고 헬스넥서스(Health Nexus)는 분산화된 블록체인 환 자기록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블록체인 기법을 활용한 사례는 서로

다른 통화로 저장된 잔액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암호화폐 지갑인 아브라(ABRA)가 있으며 하포알림 은행(Bank Hapoalim)은 이스라

엘 은행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협력하여 은행 보증을 관리하기 위한 블록체인 시스템이다. 제조업과 산업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위조방지에 중점을 두고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자신의 콘텐츠나

상품을 등록하는 서비스를 내놓고 있는 블록베리파이(BlockVerify) 는 자신의 상품을 등록함으로써 유통경로를 투명할 게 볼 수 있고

두바이(Dubai) 정부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는 국 등의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위원회를 조직했다.

에스토니아(Estonia) 정부 역시 에릭슨과 협력하여 공공 기록을 블록체인으로 옮기기 위한 데이터 센터 건립에 착수했다. 한국은

삼성이 국가 공공안전과 운송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솔

루션을 개발 중에 있다. 영국 스타트업인 고브코인(govcoin)은 연 금노동부와 함께 블록체인과 복지 혜택을 결합하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또한, '데모크라시 어스(Democracy Earth)'라는 비영리 스 타트업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민주주의를 위한 디지털 거버넌 스를 제공하기 위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팔로우

마이보트닷컴(Followmyvote.com)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투표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안전하고 투명한 투표

시스템을 만들어 가짜 투표의 기회를 줄이고 민주주의 접근성을 개선하여 투표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판매 상황도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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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 / 우리 이웃 이야기

건강한 가족 관계의 열쇠는 이해와 균형

상담을 통해 행복한 가족 만들기를 돕는 이수연 교수 사람이 살면서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많은 순간이 있다. 나의 가슴 답답한 이야 기를 들어주고 같이 공감해 주는 이가 있을 때도 그런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세 상 사는 게 다들 녹록지 않다 보니, 남의 힘든 얘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를 갖기 가 쉽지 않다. 그런데 남의 얘기 듣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바 깥으로 내놓기 어려운 가정 내의 문제로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해 결책을 함께 찾아보는 일을 하는 사람, 이수연 교수를 만났다. 그녀는 전문 상담 인이자, 상담인들의 임상 훈련을 담당하는 감독관으로서, 또 대학원생을 가르치 는 교수로서, 사람들이 건강한 관계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 며, 궁극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그리고 고맙게 도, 그렇게 다양하고 오랜 경험을 통해 이 교수 자신이 몸소 체험하고 배운 것들 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며 글 Juyoung Lee 정리 48

에 칼럼을 연재해 주기로 하였다. 편집부


가장 가까운 이들이 할 수 없는 일

현대인의 삶을 특징짓는 말 중에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외상[外傷])’이라는 말이 있다. 이 증상 자체가 최근에 발견된 것은 아니나, 고도 경쟁 사회에서 과다한 스트레스로 인 한 정신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쉬쉬하던 정신적, 심리

적 문제를 드러내 놓고 얘기하게 된 가운데 자주 쓰이게 된 단어인 것 으로 보인다. 트라우마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대형사고와 같은 대규모

참사나 타인에 의한 신체적, 정서적 폭력 및 학대를 경험한 사람에게 많이 발생하는데, 놀라운 것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경우보다 어떤

부정적 행위를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한 결과 얻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 구성원들 간의 지속적인 갈등으로 마음

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이 오히려 상처의 원인이 되거나 상처를 키

저는 연세대에서 작곡을 공부했는데요. 저를 지켜보시던 교수님께 서, 저는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 셨어요. 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 음악이 사람, 특히 아이들의 정서 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 음악 치료에 관심이 생겼던 터라, 교수 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음악 치료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왔습니다. 뉴욕대에서 음악치료학을 공부한 후, 바로 뉴욕의 한 정신병원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학교에서 배운 음악 치료와 실제 상황에 다소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약물치료와 상담으로 많이 좋아진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가족 문제로 인해 질환이 재 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족 상담의 중요성과 필요 성을 인식하게 되었죠.

워 병이 되게 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은 늘 가슴 아픈 일이자, 그 해결책

마음에 생기는 상처나 병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아서 몸의 병보다 발견

발생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목한다. 뉴욕주와 코네티컷주

는 사람들의 세심한 관심과 사려 깊은 돌봄이 때때로 병원에서의 약물

이 쉽게 보이지 않아 더 답답한 일이다. 이수연 교수는 가족 관계에서 에서 공인 가족 상담/치료사로 활동하며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는 그녀는 다양한 가족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접하면서 전문적인 가족 상담과 치유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한다. 현재까지 20

년 넘게 전문 상담인으로 일해 온 그녀가 가족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하고 치료하기가 더 어렵고 까다롭다. 그래서 가족을 포함, 가까이 있

치료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가족원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이유

가 여기에 있다. 이 교수는 가장 가까운 이들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보 다 서로를 통해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자 상담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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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험을 통해 타인을 치유하는 일

이수연 교수는 개인마다 처해 있는 상황과 사회적 맥락이 다르므로 가 지고 있는 문제도 모두 제각각이라고 말한다. 자연히 모두에게 적용되

는 해결책도 없다. 따라서 상담사로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상담사로서 제 강점이 있다면, 저 스스로가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일 겁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에 와 공부하면서 새로운 문화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는 어려움을 겪어 봤고요. 미국 남자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살면서,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죠. 그런 경험들이 상담하는 데나 가르 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상담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교수는 피상담자의 관점에서 문

제를 바라보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상담 온 사람의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법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의사의 역할

보다는, 의뢰인(client)의 솔직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주면서, 동 시에 의뢰인이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힐러(healer)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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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일으키는 증상에 집중하기보다 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한데, 어떤 심리적 문제 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를 의뢰인에게 알려주는 데 있어서 제 경 험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경험의 폭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경험을 이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니까요. 데이비드 호킨스(David R. Hawkins) 박사는 그의 저서 ‘의식 혁

명’(원제: Power vs. Force: The Hidden Determinants of Human

Behavior)에서 치료와 치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치료하 려는 사람은 문제를 일관된 관점으로 바라보며 증상을 다루는 데 집 중하는 반면, 치유하려는 사람은 문제의 앞뒤 관계를 파악하여 관점

에 변화를 꾀한다. … 그리하여 환자로 하여금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 를 넓혀 분노하고 억압하는 마음을 없애도록 함으로써 좀 더 근본적

인 차원의 해결책” 곧 ‘치유(healing)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교수가 공감을 통해 치유자가 되고자 하는 것도 이같은 관점에서 비롯된 것 으로 보인다.


가족이 어려운 이유

이 교수는 가족이나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의뢰

인을 대할 때마다, 건강한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가장

가깝기에 가장 편해야 할 것 같은 가족이 때때로 바깥의 그 누구보다도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족 구성원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리고 다른 만큼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불화의 원인이 됩니다. 상대가 가깝고 편하다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마음 내 키는 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또, 타인 에게보다 가족에게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기 때문에 그게 충족이 되 지 않았을 때 받는 상처도 더 클 수 있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해서는 가족간에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데, 알아서 이해해 주지 않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으로 오히려 대화를 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많은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기대를 가족들에게 투영하여 강제

하는 실수를 종종 범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수시로 ‘남편도 아이 들도 나와는 다르지만,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하 려고 노력한다고.

부부 관계도 비슷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마고(imago)’ 즉, ‘내 재화되어 있는 자신의 이미지’가 있어요. 그 이마고에는 부모와 의 관계에서 충족되지 않은 상처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만난 배우자가 도리어 그 상처를 자꾸 드러나게 하 는 경우가 있죠. 결혼 생활이 감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책임 (commitment)을 동반하는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솔직해야 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어떤 말과 행동이라도 무조건 이해해 줄 거라는 감정적 기대에 치우쳐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겁니다. 이 경우, 우선은 상대방이 일부러 나를 아프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앞으로 이러 이러한 부분은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자고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족간, 부부간의 불화를 해결하는 것은 대화를 통한 이해, 그리고 감 정과 사고의 균형이라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가족이 어려운 이유는 서 로에 대한 감정적 기대가 지나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족간에 감정

적 유대를 공유하되 서로를 배려하기 위한 사고 과정도 잊지 말아야 한 다는 것이며, 그 균형점도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인정해 주고 이 해해 주면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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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치유(healing)의 근원: 가족에 대한 감사

이수연 교수는, 상담이란 의뢰인이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할 수

하는 미국이라지만 다문화 가정을 모든 사람이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

것이라고 정의한다. 자기 성찰을 통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도움

이수연 교수는 가족을 통해 많이 배우고 치유를 받는다. 다양성을 존중 보지는 않는 탓에 자신은 물론, 남편과 아이들 모두 어느 정도는 불편

한 상황을 겪어야 했지만, 참 감사하게도 모두가 크게 영향받지 않고 잘 지내왔다.

특히, 아이들이 아주 대견하고 고마워요. 아들과 딸이 좀 다르긴 한 데, 결론적으로는 둘 다 잘 자라주었어요. 아들은 미국 성(姓)과 맞 지 않는 한국적인 외모 때문에 정체성에 혼란을 좀 겪었는데, 결과 적으로는 한국말도 곧잘 듣고 쓰면서 양쪽의 문화를 조화롭게 잘 받아들인 것 같아요. 반면에, 딸은 서구적인 외모라 다른 미국 아이 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잘 지냈어요.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 들에게 에너지를 많이 쏟다 보니 딸은 많이 챙기지 못한 편인데, 그 래서 오히려 독립적이고 생각이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자기가 알 아서 수영팀, 수구팀, 학교 기자, 등 여러 가지를 해 보고…… 자기 가 할 일을 혼자 개척해서 하는 편이에요. 요즘 한국에 관심이 많아 져서,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 가서 한국 문화도 배우고 서툰 한국어 도 늘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교수의 자녀는 한국과 미국 문화의 좋은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동체를 우선으로 하는 한국 문화를 적당히 받아들여, 자기를 무조건 내세우기보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

하며 행동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개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심리적인 경계선이 분명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좋은 건 좋은 것이며, 자기가 해야 할 것,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선이 분명하다.

딸과 아들 모두 엄마랑 말이 잘 통한다고 하고 얘기를 많이 해 줘서 다행이고 고마워요. 그런 만큼 저도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죠. 애들과 대화하면서 ‘공부한 걸 삶에서 잘 쓰고 있구나’ 하 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새롭 게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그녀는 아들, 딸에게뿐만 아

니라 남편에게도 큰 고마움을 느낀다. 남편은 언제나 자신

을 믿어주며 용기를 주고 격 려를 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 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

은, 한국에 다문화 가정의 수 가 점점 늘어나는 데 반해 그

들을 수용하는 데는 정책 면 에서나 인식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지적하며, 앞

으로 그녀가 한국에 가서 할 일이 많을 거라고 한다. 이 교 수는 “한국에 개인 상담소를

열게 되면 남편이 자기가 매

니저가 되어주겠다고 해요.” 하며 든든해 한다. 52

있도록, 다시 말해, 자신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거울을 붙잡아 주는 으로써 치유에 이르게 하는 것이 상담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치유를 받은 사람은, 곧 세상을 치유하는 사람이 된다”는 호킨스와 뜻 을 같이하며, 개인의 치유는 곧 사회의 건강과 통한다고 믿는다. 이 믿

음을 바탕으로 그녀는 열심히 의뢰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상담사를 길러 내기에 힘쓴다. 그녀가 상담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

은, 많은 의뢰인이 심리적 문제를 ‘이 정도는 누구나 다 겪는 거겠지’ 하

며 넘기고 넘기다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다음에야 상담소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응급처치 상황이 되어서 상담소로 오기보다,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와서 문제를 예방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하며, 앞으 로

를 통해 나누게 될 자신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예방책’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미국에서 제일 짧은 에스컬레이터

뉴저지 파라무스 Garden State Parkway Mall 안의 작은 구경거리 글

편집부

구글에서 ‘세계에서 제일 짧은 에스컬레이터’를 검색하면 일본 가와사키에 있는 에스

컬레이터가 나온다. 세로 높이에 83㎝, 계단 5개로, 1991년도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는 일본에 앞서 이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에스컬레이터가

존재했다. 뉴저지 파라무스 타운에 있는 쇼핑몰 ‘웨스트 필드 가든 스테이트 플라자’ 에 입주해 있는 Nordstrom과 Macys 백화점 쪽 1층 입구, JC 페니 백화점 바로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바로 그거! ‘웨스트 필드 가든 스테이트 플라자’는 맨해튼에서

서쪽으로 약 15마일 떨어진 북부 뉴저지 파라무스 타운에 있으며 가든 스테이트 파

크웨이(Garden State Parkway) 근처의 국도 4와 국도 17교차로에 있다. 2,118,718 제곱피트의 넓은 공간에 300개가 넘는 상점이 입주해 있는 이곳은 뉴저지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다. 또한, 뉴욕 대도시에서 세 번째로 큰 쇼핑몰이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쇼핑몰 중 하나로 미국 10대 쇼핑몰 중에서 9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몰안에는 Lord & Taylor, Macy’s, Neiman Marcus 및 Nordstrom 백화점 등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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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 / 우리 이웃 이야기

“65세 노신부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잠비아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받은 선물을 갚는 중입니다”

아프리카 잠비아 ‘피데이 도눔’ 사제 김한기 신부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밤하늘엔 아름다운 별들이 쏟아지고 드넓은 초원의 낭만이 머릿 속에 그려진다. 그러나 먹을 음식과 식수도 부족한 나라,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있는 빈곤과 기아의 나라로 대부분 사람은 그렇게 기억한다. 아프리카 잠비아 의 수도 루사카에서 316㎞ 떨어진 시골 마을, 이곳에 가면 65세의 노(老) 사제(司祭) 인 은돌라교구 성 마티아스 물룸바 성당의 김한기 주임 신부를 만날 수 있다. 은퇴를 5 년 앞두고 있던 작년 9월경, 젊은 신부들이 외면하던 이곳을 그는 ‘받은 선물을 갚아주 자’는 맘으로 찾아왔다. 그는 현지인과 소통하기 위해 65세의 나이에도 그들의 언어를 열심히 배운다. 휴가를 맞아 잠시 뉴욕에 온 김한기 신부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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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가 만나보았다.


“지금이 잠비아 시각으로 저녁 7시 54분이다. 한 30분 전에 정전이 되어 간단히 요기하고 일찍 끝 기도를 바치고 자려다가 소화도 할 겸해서 밖으로 나왔다. 또 정전이구나 하면서, “이것이 잠비아다!” 라고 외치는 가운데 푸념을 했는데 밖에 나와 보니 밝았을 때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하늘의 수

수도 시설도 화장실도 없다. 주임 김한기 신부는 성당에서 10㎞ 떨어 진 곳에서 지내고 있다. 모든 여건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사제 생활 35

년 차의 65세 노신부는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선교사의 꿈을

이루게 돼 기쁘다고 말한다. ‘이미 어려운 환경임을 알고도 이곳을 택 했다’고 말하며 김한기 신부

는 검게 탄 얼굴로 마치 개구

많은 별을 바라볼 수 있었

쟁이 소년처럼 해맑게 미소

다.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짓는다. 그는 현재 청소년 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의

육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감

의 마지막 사목 열정을 불태

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광

우고 있다. 피데이 도눔(Fidei

경을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

Donum) 선교사로 사제생활

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을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김

을 해봤다. 이렇게 글을 쓰

한기 신부는 1998년부터 5년

고 있는 동안 전기가 다시

동안 미국 뉴욕 그레이트 넥

들어와서 낭만이 깨어졌다.”

(Great Neck)에서 사목을 하 기도 했다. 65세라는 적지 않

김한기 신부의 페이스북 글 이다. 이렇듯 김한기 주임신

부가 사목하고 있는 성 마티

아스 물룸바본당은 잠비아

전 북미주 평화신문 장기풍 스테파노 주간과 함께 를 찾은 아프리카 잠비아 성당 김한기 주임신부

바남꾸바 지구에서도 가장

은 나이로 잠비아 선교사로 떠난 그의 이야기는 6월호부

터 “65세 노신부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잠비아 이야기”라

가난한 마을에 있어서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낙후지역이다. 한때는

는 제목으로 다음 호부터 연재가 시작된다.

면서 피폐한 농촌 마을엔 100여 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주민들의 수

• ‌ 피데이 도눔(Fidei Donum) 믿음의 선물이란 뜻으로 사제가 부족한 다른 지역에 교구 사 제를 파견하는 것(편집자 주)

구리 광산이 발견돼 인구가 늘었던 적도 있었지만, 광산이 폐허가 되 입원이 거의 없다 보니 성당 유지도 어렵다. 본당에는 사제관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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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품과 시

강익중 작품명: 꿈의 다리

작품설명: 설치 미술가 강익중의 한글 그림과 어린이 14만5000명이 보내온 ‘꿈의 그림’으로 지어진 다리. 폐 콘테이너 30개로 만들어 졌 으며, 길이가 175m 인, 세계 최초의 다리 위에 설치된 미술관이다. 175m의 길이로 순천만에 세워진 ‘꿈의 다리’는 세계 16개국 14만여 어린이가 보내온, 그들의 꿈을 담은 그림들로 빼곡이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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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기호에게

강익중

무지개가 동그랗고 마당의 돌개바람이 동그랗고 해와 달과 별이 동그랗고 너의 맑은 눈이 동그랗고 봉지에서 꺼낸 라면이 동그랗고 너의 웃는 입이 동그랗고 고향 청주 우암산의 품이 동그랗고 나뭇잎에 내린 이슬이 동그랗고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곳이 동그랗고 나이테가 동그랗고 용서와 화해가 동그랗고 겸손함이 동그랗고 좋은 음악이 동그랗고 시냇물 소리가 동그랗고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동그랗다

강익중

1960년 충청북도 청주 출생.‌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뉴욕 프랫 아트인스티튜트 졸업.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빛내는 예술가로 꼽히고 있는 설치미술가. 1997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메인 홀의 벽화와 뉴욕 지하철역의 환경조형물 등을 제작하였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과 휘트니 미술관 등에 그 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뉴욕에서 활발한 작품 활 동 중이다. 최근에는 한글 작품을 제작해 전 세계 각지에 전시하거나 기증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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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수명이 다한 일상용품을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키는 연금술사

설치 미술가 신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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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지인들의 낡은 스웨터, 오래 신어 너덜너덜해 진 신발, 전쟁터에서 입던 군복, 빈 약병, 음료 수를 마시고 버린 스트로우…. 작가 신 진이 그 동안 발표해 온 작품의 오브제들이다. 일상에 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들을 이용한 작 품을 선보인 작가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신 진 의 경우처럼 꾸준하고 열정적으로 ‘수명이 다 한 하찮은 물건들에 예술적인 생명을 부여한 다’는 주제에 집중해 온 작가는 드물다. 그리고 의미의 창출이라는 차원을 넘어 오브제 자체가 작품의 핵심적인 미적 구성이 되는 작품을 접 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3월 24일부터 7월 15일 까지 필라델피아 존스페인 갤러리에서 일상용 품을 이용한 설치 미술전 <콜렉션 Collection> 을 열고 있는 신 진 작가를 만났다. 브루클린에 사는 작가는 전시 준비를 위해 오프닝 한 달 전 부터 필라델피아에 머물고 있다. 그는 전시가 시작된 후에도 언론 인터뷰, 관객과의 만남 등 현지에서 바쁜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글 Won Young Park 정리

편집부 59


3월 24일부터 7월 15일까지 필라델피아 존스페인 갤러리에서는 선 진 작가의 일상용품을 이용한 설치 미술전 <콜렉션 Collection>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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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필라델피아 전시가 작가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세계적인 규모와 관람객을 자랑하는 중요한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

라 개인적으로 우선 큰 영광입니다. 명망 높은 미국 미술관에서 한 국계 여성 작가의 개인전이 개최하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 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어요. 흔한 기회가 아니거든요.” 전시작들을 보면 준비와 설치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섯 점의 작품들은 모두 노동 집약적인 설치 과정을 요구하는 작

업으로 10명이 넘는 전문 아트 핸들러들이 3주간에 걸쳐 설치를 완 성했습니다. 전시 큐레이터인 우현수 씨를 포함해 이들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업은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전시 공간이 필라델 피아 미술관의 복식 및 섬유 갤러리인 점을 고려하여 특별히 의류, 패션과 관련된 작품을 선정했어요. 시각적 또한 재료적인 면에서 작 품들 간의 강한 유대를 만들어내려고 했습니다. 개인과 사회의 정체 성, 소속감 등을 이야기하는 데에 매우 적절한 선택이 되었다고 자 평합니다.” 이번 전시는 6점의 대형 설치 작업과 1점의 비디오 작업으로 구성되 어 있다. 이 중 신 진의 작

자국처럼 설치되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보이는 바쁜 움직임들을 형

상화하고 있다. 밑창을 분리하고 남은 가죽들은 <하이드Hide (2004)> 라는 작품이 되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큰 의미나 가치가 없는 오브제들을 모아 작품

을 만드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일상용품을 작업에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관람객들에게 친숙

한 물건이자 그들의 일상과 관련이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에요. 사람 들이 내 작품을 볼 때 자신들의 일상과 전혀 상관이 없는 추상적인 개념의 아트가 아닌 친숙함과 현실감을 주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 는거죠. 물론 작가로서 추구하는 것은 그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아 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종류의 오브제를 수집하고, 해체 하고, 설치 미술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물건 본연의 기능과 모습을 잃게 되고, 새로운 관계와 의미로 쓰이게 되거든요.” 그렇다면 신 진은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 sake) 이나 개념 추상

과 무척 거리가 먼 작가라고 평가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다양한 미술사 공부를 했고 모든 종류의 미술을 사랑하기 때

문에 특정한 경향의 예술 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오 품 세계와 작업 과정을 가 진 않았습니다. 나의 작 장 잘 보여주고 있는 중 공공 미술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대하고 품은 일종의 이중성을 갖 심 작품이 <언레이블링 대중들과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 기회는 매우 소중합니다. 고 있어요. 작업에 사용 Unraveling> 라고 할 수 된 의복이나 패션 관련 있다. 뉴욕의 아시안 아트 신 진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재료들 때문에 직접 인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기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체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증받은 스웨터가 그 재료 시각적 즐거움과 그로 인해 일상을 벗어난 그들의 완전한 재구성은 가 되어 2006년부터 시도 작품을 매우 추상적인 것 되었고, 이후 작품이 순회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으로 변화시키거든요. 또 한 여러 도시에서 수집한 무척 뿌듯합니다. 한 나의 작품들은 단순히 스웨터가 더해지며 규모 재료의 조합이 아닌 많은 가 계속 커졌다. 이번 설 아이디어와 개념들을 내 치에는 지난 몇 달 동안 필라델피아의 아시안 아트 커뮤니티 멤버들이 기증한 스웨터들도 포 포하고 있죠. 예술이라는 것은 이러한 복잡다단한 상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도 오브제의 일상성 때문에 추상, 개념 함되었다.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장점이 흥미롭게도 전시의 큐레이터인 우현수 씨는 자신의 스웨터를 2006년 내 작품에 있는 것 같아요.” 첫 뉴욕 전시에 기증한 인연을 갖고 있다. 우현수 큐레이터는 “신 진 작

가는 입던 옷이나 신발 등을 매개로 한 설치 작업을 통하여 개인과 사

신 진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메릴랜드 근교에서 성장했다. 뉴욕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

동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회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사회 관계망을 탐구 되어 예술품으로 새롭게 탄생한 일상의 오브제들은 관람객이 친근한

생활용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게 한다.”라고 덧 붙인다.

2005년 작 <암드Armed> 는 수집한 군복으로 만들어졌다. 브루클린

포트해밀턴의 하버디펜스박물관 (Harbor Defense Museum)의 도움 으로 진신 작가는 전, 현직 육군, 해군, 공군, 해안경비대 등의 구성원 을 직접 방문, 면담하고 유니폼을 기증받았다. <원 솔스Worn Soles

(2001)>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불특정다수가 소유했던 2백 켤레가 넘 는 낡은 신발을 재료로 삼았다. 신발에서 분리된 밑창들은 전시실 바닥

에 한 방향으로 걸어가거나 또 다른 방향으로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발

프렛 대학에서 미술학사와 미술사 및 비평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미술을 원조로 하는 일상용품을 이용한 설치 작업과 그 맥락을 같이 한 다. 이는 20세기 미술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로 작가는 요코 오노, 에바 헤세, 루이스 네벨슨 등의 작가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거론한다. 이들

선배 작가들이 예술적인 영감을 주었다면 그녀의 부모님은 다른 의미 에서 작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누구보다 성

실히 일했던 전형적인 이민 1세대였던 그의 부모는 강도 높은 수작업 을 통하여 평범한 재료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는 그의 독특한 작업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수천 장의 로토를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며 거의 10년간 작업한 스미소니언 뮤지엄 내 설치작 <챈스 시티 Chance

City(2001-2009)>처럼 그의 작품은 영감과 예술혼 이전에 언제나 성실 한 노동이 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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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전에도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 때 마다 부모에게 받은 영향을

말해왔다. 어린 시절 이민 왔던 경험, 그리고 부모님의 모습은 어떤 것 이었나?

“6살에 미국으로 왔는데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배울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학창시절 공부에 관심이 많 았고 특히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 DC에서 자영업을 하셨던 부모님의 삶은 녹록지 않았으며 늘 인종 차별과 폭 력에 노출되어 있었죠. 성장 과정에서 내게 주어진 매우 다른 두 개 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부모님은 은퇴하실 때까 지 매일 긴 시간 쉬지 않고 일하셨으며, 나는 이러한 일상적이며 반 복적이고 집약적인 노동이 더 큰 의미를 가지는 행위로 변하는 과정 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나와 오빠는 각 자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했고, 부모님의 높은 기대에 부응 하는 딸로 자랐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미술대학에 가는 것이 부모 님에 대한 가장 큰 반항이 되었어요.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셨 겠죠. 감사하게도 주변에 나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지한 분들이 있 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개념이 부모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많은 분이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도 작가이자 대학교수인 나를 매우 자랑스러워합니다.” 만약 부모님이 미국을 오지 않고 작가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여전히 예 술을 했을까요? 혹은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작가가 되었을까요?

“세계 어디에 살았더라도 나는 작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자란 문화나 환경이 달랐고, 다른 미술교육을 받았다면 나의 작품도 지금 과는 사뭇 차이가 있었으리라 짐작은 합니다. 이민을 오지 않았더라 면 부모님은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으셨을 것이고, 그분들의 삶이 조 금은 덜 고단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는 부모 님에게 반항하는 또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요?” 신 진 작가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어떤 예술

작품이건 직접 눈으로 가깝게 관찰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건 당연하지 만 단지 사진으로 접했을 때도 혹은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도 형태나 컬 러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로 감상이 가능한 것들이 있다. 신 진의 작 품은 다르다. 그의 작품이 주는 전체적인 아름다움은 아주 근접한 거리 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본 눈을 통해서만 완성된 의미에 도달한다.

예를 들면 메사츄세추 링컨의 드코도바 조각 공원에 설치된 <티 하우스

Tea House 2012> 를 감상해보자. 새의 날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천말 같기도 한 붉은색의 이 설치물은 실제로 수십만 개의 음료수 빨대가 촘

촘히 엮인 구조물이다. 그늘을 제공해주는 이 구조물 안에서 관람객들 은 실제로 차와 음료를 마실 수 있고 사용한 빨대를 꽂아두기도 한다. 스

미스소니언과 올바니 아트 뮤지엄에 전시된 <케미컬 발란스 Chemical

Balance 2005-2009> 는 어떤가? 거울과 형광등으로 인해 화려한 샹들 리에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실제 주재료는 수천 개의 빈 처방 약 통이

다. 근접한 거리에서 그 오브제들을 볼 수 없다면 과소비와 약물에 의존 하는 현대인의 단상을 표현한 작품의 의미가 와 닿기 어렵다. 62


작가의 작품은 직접 보기 전엔 미적인 요소와 의미, 그리고 작가의 손

(LIRR) 브로드웨이 역이다. 특히 노던블러바드 163가에 위치한 브로드

이 미술관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있지 않은가?

치된 그의 작품 <Celadon Remnant> 를 접하지 못한 한인은 별로 없

으로 일일이 작업해 온 수고를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일반인들

“규모로부터 오는 압도감이나 재료에 대한 친밀도 등을 느끼며 작 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전시를 직접 관람하는 것이 가장 좋 은 방법임에는 틀림없어요. 때로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냄새 또한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전시장을 찾 을 수는 없기 때문에 기록나 사진을 통하여 작품 설치의 과정과 전 시장의 분위기를 전달하거나, 이렇게 에스카사 매거진과의 인터뷰 등과 같이 미디어의 도움도 받는 거죠.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완벽 히 재현할 수는 없는 경험이기 때문에 작가에게도 관람객에게도 미 술관이라는 공간은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특별한 경험을 누리고 싶지만, 필라델피아나 워싱턴 스미소니언

을 찾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뉴욕에 있는 작가의 공공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렉싱턴 애비뉴 63 스트릿 F 트레인 역사와 롱아일랜드 열차

웨이 부근은 퀸즈의 대표적인 주거와 상가 밀집 지역이어서 2008년 설 을 것이다. 다만 바쁜 출퇴근길 이용객들이나 주변의 식당만을 찾던 이

들이 그 작품이 한인 작가가 만든 것이며 한국의 전통 도자기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다. 또한, 적당한 거리 에서 관찰하면 이 작품이 청자와 백자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신진

많은 전시 경력 중 뉴욕현대미술관 (MoMA), 필라델피아의 패브릭워크샵뮤지엄 (Fabric Workshop and Museum), 워싱턴 DC스미스 소니언미국미술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의 개인전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브란데스대학교(Brandeis University)의 로즈 미술 관(Rose Art Museum)과 스미소니언미국미술관이 신 진 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63


ART&CULTURE

DEAR EVAN H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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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willbe found .

2018년도까지 이어진 2017년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

토니어워즈 최고의 뮤지컬상 등 6개 부문 수상작 ‘Dear Evan Hansen’ 해가 바뀌어도 매회 전 매진의 인기몰이 중인 화제의 뮤지컬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이 브로드웨이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2017년 여세를 몰아 2018년도 4월 현 재까지 흥행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 라라랜드 OST(‘City of Stars’)로 오스카상 을 받았던 Benj Pasek 와 Paul Duo가 작사와 작곡을 맡았으며, 뮤지컬 <Rent>와 <Next To Normal> 등으로 잘 알려진 Michael Greif 연출했다. 주인공 에반 역에는 벤 플렛(Ben Platt)이 작년 11월까지 열연해서 흥행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이 뮤지컬은 주인공이 바뀌 어도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주인공이 스스로 쓴 편지가 친구의 자살로 엮이며 스 토리가 전개되지만, 간단히 보면 사회 불안 장애를 앓는 청소년 학생의 자아 성장기 과정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 문제인 SNS 장점과 폐해, 자살이나 가족 간의 불 화를 뮤지컬로 녹아냈다는 점이 흥행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었음 직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고 외로웠던 주인공 에반, 그가 자신을 찾 아가는 과정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부분이 많은 공감을 주며 감동적으로 다 가온다. 2017년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제71회 토니 어워즈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최고의 뮤지컬 상’을 포함하여 총 6개 상을 받았다. 글

편집부

누군가 너의 존재를 알아줄 거야

65


글로 만나는 뮤지컬 ‘Dear Evan Hansen’ <1막>

에반 한센은 사회 불안 장애에 시달리는 학생으로,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으며 의사로부터 자기 스스로 편지를 쓰라는 과제를 받아 편지를 쓴 다. 에반의 어머니인 하이디는 낮에는 간호사로, 밤에는 로스쿨에 다니

느라 바빠서 에반을 잘 챙겨주지 못한다. 그녀는 나무에서 떨어져 깁스 한 에반에게 깁스에 낙서를 부탁하면서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조언을 한다. 그러나 등굣길에 만난 알라나, 제라드가 깁스에 낙서해달라는 에 반의 요청을 무시한다. 이어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에반과 마찬가지로

코디의 아버지 래리는 코너가 자신과 가족이 가졌던 특권들을 당연시

을 하며 세게 밀어트린다. 그때 코너의 여동생인 조이가 와서 자신의

대신 조이를 사랑하는 에반의 마음을 마치 코너가 자신에게 말을 한 것

친구가 없고 가족끼리의 소통도 없는 코너가 나타나 에반에게 험한 말 오빠에 관한 일에 대해 사과한다.

에반은 학교에서 자신의 치료를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우연히 코

했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는다. 에반은 조이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처럼 그녀에게 얘기해준다. 에반은 충동적으로 조이에게 키스를 하고 조이는 그를 밀쳐낸다.

너가 도움을 주려 하다가 에반의 편지를 읽게 되어 조이의 이름을 발견

에반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괴로워하지만 코너의 영혼이

자살하고 부모님은 코너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에반을 저

코너의 기억들을 잊히지 않게 하고, 코너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

하고 에반이 자신을 자극하려 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3일 뒤 코너는

녁 식사에 초대한다. 에반은 제라드의 도움을 받아 코너네 부모님을 만 나지만 오히려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코너의 엄마인 신시아가

슬퍼하는 걸 본 에반은 또한 자신과 코너가 이메일을 주고 받는 비밀 이메일 계정이 있었다고 거짓말하고, 가짜 이메일을 만들기 위해 집에 와서 제라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에반은 가짜 이메일을 신시아에게 보

여주고 신시아는 자신의 아들이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하지만, 66

나타나 에반에게 자신의 죽음을 의미있게 만들어달라고 한다. 에반은

한 단체 “The Conor Project”를 알라나와 제라드의 도움을 받아 세운

다. 코너 프로젝트의 첫날, 에반은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외로움과

코너의 우정에 대해 연설을 하게 된다. 에반은 처음에는 떨려 하지만

진심을 담아 연설을 마치게 되고 이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코너 프 로젝트는 큰 호응을 얻게 된다. 조이는 그의 오빠와 에반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에 감명받아 에반에게 키스를 한다.


에반은 그의 거짓을 알고 있는 알라나에게 코너의 유서를 보여준다. 알 라나는 유서에 감명받아 에반의 허락 없이 유서를 인터넷상에 올린다.

그것은 에반의 연설 영상처럼 인터넷상에서 퍼진다. 에반은 코너네 가 족을 찾아가고 유서로 인해 코너의 가족은 코너의 죽음이 그들 때문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악플을 받는다. 코너네 가족은 코너가 자

살한 이유에 대해서 서로에게 책임을 회피하며 싸우고 있었고 에반은 비극과는 논외로 에반을 가족처럼 대해줬던 그들과 진심 어린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희망에 모든 것을 꾸며냈다는 걸 밝힌다. 하이디는 온라인상에 퍼진 코너의 유서를 보고는 에반이 치료의 목적으로 자기 <2막>

에게 썼던 편지였다는걸 바로 알아챘다.

알라나는 코너 프로젝트를 통하여 3주 동안 5만 달러의 돈을 모아 과

1년 뒤, 에반은 같은 집에서 살며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아르

고 새로 찾은 또 하나의 가족인 코너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이에게 연락을 해 과수원에서 만나자고 한다. 에반은 그가 코너의 가족

수원을 다시 열어 코너를 기념하려 한다. 조이와의 새로운 관계, 그리 에반은 점점 그의 어머니인 하이드와 제라드, 그리고 코너 프로젝트를

등한시하게 된다. 하이디는 에반에게 그 사람들이 네 가족인 거로 착각 하지 말라고 한다. 이에 에반은 자신이 꾸몄던 모든 일을 정리하고 진

실을 밝히기로 한다. 그때 코너의 영혼이 다시 나타나서 에반이 코너의 가족에게 줬던 행복과 조이와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라며 에반을 말 리지만, 에반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진실을 밝힌 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조 들에게 줬던 상처에 대해 사과하고 코너가 제일 좋아했던 10권의 책들 을 졸업앨범에서 발견하여 읽으며 코너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와 그의 가족들이 비밀을 지킨 것과 코너에 대해서 거짓으로 꾸며낸 우정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에 감사를 표한다. 조이

는 에반에게 이것이 가족들을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으며 모두가 무언 가를 위해 꼭 필요했던 일이라며 용서한다고 말한다.

67


ART&CULTURE

피아니스트 박정아 그 선율의 온도

요즘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다양한 국제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 는 일이 잦아졌다. 옥석난변(玉石難辨)이라는 말이 딱 제격일 정도로 모두 가 옥의 경지에 이른 예술인들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다채로운 연주 를 맛볼 수 있는 호시절을 만난 셈이지만,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를 각인시 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우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피아니스트 박정아 (Esther Park)씨에게 물었다. 자신의 연주를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필자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대답한다. “화끈한 연주!” ‘화끈하 다’는 말의 물리적인 온도는 얼마쯤 될까? 그녀의 연주, 그 선율의 온도를 가 늠해보고 싶어졌다. 글 Young Choi 정리 68

편집부


박정아와 피아노 그리고 삶의 시작

모든 원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라더니 그녀가 그랬다. 한 분야에 천재 적인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분야에는 조금 어눌하기

마련인데 박정아씨가 바로 그 예외였다. 피아노는 차치하고 작은 체구

복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재고, 가늠하고 그래서 그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다 알았다면, 즉, 무모할 줄 몰랐다 면 확언컨데 현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거다.”

그러나 당당한 걸음걸이, 유연한 매너, 게다가 논리적이고 야무진 언

말 끝에 그녀의 눈가가 설핏 젖어든다. 나는 못본 척 그 눈물을 훔쳐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9시. 이렇게 이른 인터뷰는 나로써도 처음이

도 모르겠다. 어린딸을 보내고 한순간도 염려를 놓지 못했을 어머니

변,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다. 연주 일정에 쫓기던 그녀를 잠시나마 다. 커피 한 잔을 받아 든 그녀가 환하게 웃는다. 일순간 BTS의 Dimple

한 소절이 머리를 툭 치고 달아난다. 양쪽볼에 깊게 패인 보조개, 정말

‘천사가 남긴 실수인걸까?’ 서른을 넘긴 그녀의 얼굴 위로 작고 여린 소 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녀는 부산에서 출생했다. 성악을 전공하고 오페라 단원 으로 활동하셨던 어머니의 예

술적 유전자를 이어받은 태 생적 뮤지션이다. 이후, 어머 니께서 음악학원을 경영하셨

던 까닭에 음악적 무드에 젖 은채로 성장했고 음악이 좋 다싫다 따져볼 틈도 없이 음 악이 이끄는 대로 살아온 운 명적 뮤지션이다.

“피아노와의 조우? 태어나면 서 두통을 앓았던 사람은 세 상 모든 사람이 다 두통을 앓 는다고 믿게 되듯 나 역시 그 랬다.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의 노래를 들었고 태어나서 는 피아노 아래를 기어다녔 고 피아노 위에서 잠을 자며 자랐다. 그런 내게 피아노는 당위였고, 아무 조건이 없는 필연이었고 나의 전부였으 며, 피아노가 없는 세상을 나 는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5살 때 부터 여러 신문사의 각

종 콩쿨을 휩쓸며 신동 소리 들었던 그녀는 부산에서 서울

로 레슨을 다니며 실력을 쌓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이태리 피아니스트 에 의해 외국유학을 권유받는다. 또 그 즈음 만났던 세계적인 피아니스 트 서혜경씨의 조언도 크게 한 몫해10살 어린나이에 혼자 미국으로 건

너왔다. 1년간 부모님의 지인의 집에 머물며 줄리아드 프리스쿨을 다 니고, 2년 후 가족들이 이민을 와 본격적인 미국생활과 함께 음악에 대 한 전문교육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 내 나이가 혼자 머리도 감지 못하던 10살 짜리 어린딸을 멀리 미국까지 보내야 했던 당시 엄마 나이와 비슷하다. 엄마도 나도 뭘 몰랐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인생에는 때로 어떤 무모함이 오히려

봤다. 아마도 무수한 감정들이 응집된, 33년의 삶이 담긴 눈물인지 의 애끊는 마음, 딸을 위해 천일기도를 올렸던 아버지의 간절함이,

또 말도 통하지 않던 이국에서 부모도 없이 혼자 살아내야 했던 ‘어 린 정아’에 대한 스스로의 연민까지도 녹아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

는 자신의 인생에서 피아노의 대체물을 찾지 못했고 남은 인생도 그

럴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 다. 한때는 의사가 되고 싶었

고 여전히 여지가 남아있는 바램이지만 그렇다고 피아노

를 포기할 만큼의 간절함은

아니란다. 그렇게 10살에 줄 리어드 프리스쿨에 들어가 21살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기 까지 그녀는 줄리 아드와 함께 성장했고 마침 내 화끈한 피아니스트가 되 었다.

컴페티션 박(Competition Park)

십대시절 그녀의 별명이다. 좋은 성적을 얻었던 굵직한

콩쿨 몇 개를 소개해달란 말 에 그녀가 잠시 망설인다. 너

무 많아 헤아려보기도 벅찬

모양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컴페티션 박’이었을까! 그녀 의 십대시절은 콩쿨과 컴페티

션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국에는 각 주, 도시 등 지 방마다 콩쿨이 많아서 콩쿨 에 입상하고 받은 상금으로 학비가 채워질 정도였다. 뉴 저지 심포니 영아티스트 콩쿨에서 일등했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뉴올리앤즈, 상하이 국제 피아노 콩쿨, 러시아 카다로브스키 국제 콩쿨, 쇼팽콩쿨, 번 클라이번 콩쿨 등 다 나열하기가 힘들만큼 많 다. 콩쿨에 가면 다른 콩쿨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경우 가 있는데 그 친구들이 나를 컴페티션 박이라고 불렀다. 어느 대학 교수님은 어렸을 때 콩쿨에 참가했던 나를 기억하고 인사를 건네 주신 적도 있다. 콩쿨 참여가 잦으면 한 곡을 집중해서 연습해야 하 기 때문에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늘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 러나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연주자로써 존재를 알리는 기회가 되는 장점도 있다.” 69


미국 음악과 유럽 음악, 그 열정과 냉정 사이

줄리아드 석사과정을 마치고 서양음악의 본토인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

는 독일 하노버 국립대학(Hochschule für Musik, Theater und Medien Hannover) 최고연주자 과정(Soloklasse)을 거치면서 3년간 유럽음악

악적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공부했던 나로써는 유럽의 음악적 무드를 배울 수 있어서 필요한 경험, 또 다행한 기회 였다고 생각한다.”

과 미국음악의 차이를 공부하고 음악적 이해의 폭과 깊이를 연구했다.

천 개의 곡을 위해 천의 얼굴을 갖되 나는 나, 박정아여야 한다

스트 테네시 주립대학(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교수로 4년 째

자는 베토벤을 가장 베토벤답게 표현해야 하며 가장 베토벤 다운 연주

이후, 다시 예일대학(Yale University)으로 건너와 박사학위를 받고 이

재직 중이다. 박정아씨의 삶의 궤적을 이렇게 몇 줄 몇 문장으로 가둬놓

고 보니 그간 그녀가 걸었을 굴곡진 여정들이나 학업을 위한 치열한 분 투를 좀 더 조명하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쉽다. 물론 나로써도 그게 얼마 나 어렵고 고독한 일이었을지 상상조차 어렵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내 눈앞에 정연하게 준비가 되 어있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성격인 반면, 엄마는 좀 다르다. 처음 엄마와 함께 유럽에 갔을 때, 몇 십년 전 한국에서나 해보셨을 법한 수동식 차를 빌려 이태리부터 북유럽까지 운전하고 가셨다. 엄마의 긍정적인 마인드, 뭐든 일단 하고보는 추진력은 나를 여기까지 이끌 어 온 큰 에너지였다. 유럽은 서양음악의 본토이기 때문에 독일에 서의 공부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그간 미국에서 배 운 음악은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적 요 구가 있는 반면, 유럽교육은 음악의 본질과 디테일에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학구적인 무드보다는 실기를 강조하는 분위기 였고 덕분에 3년간 연주에 깊이 집중할 수 있었다. 음악적 차이를 단 적으로 표현하면 유럽음악은 섬세하고 정서적이며 철학을 추구하 는 냉정이 서려있는 반면 미국적 시각에서는 지루하다는 평가를 피 할 수 없고, 미국음악은 파워가 있고 스케일이 커서 열정적인 반면 유럽의 견지에서는 허세나 과장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콘서 트홀을 비교해봐도 알만하다. 카네기 홀은 규모가 대단하다. 그러나 옛날 유럽 음악은 살롱음악이나, 하우스 콘서트 같이 소규모 연주가 주를 이루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그 나라의 민족성이나 문화, 환경 등 다양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듯이 두 대륙간의 음 70

필자가 물었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 연주자는 누구여야 하는지를. 연주

라는 것은 음악이 작곡될 당시의 베토벤의 의도와 생각과 감정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야 하는 것임을 전제한다면, 그 곡을 연주하는 나는 창

작의 그늘 아래에서 결국 베토벤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단순한 테크니 션이 되는 것 아니냐며 다소 도전적으로 물었다.

“길게 설명할 수 없지만, 당대의 곡을 그 시대처럼 잘 재현하는 것 이 중요한가, 그럼에도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나야 옳은가에 대한 논 쟁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오랜 화두다. 음악의 역사를 되 짚어보면 재현의 측면과 창의적 연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중요 성이 부각되기를 반복해왔다. 나는 이 문제에 비교적 단순한 견해를 갖고있다. 베토벤을 가장 베토벤 답게 연주하되 거기 박정아가 있어 야 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사실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은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예술적 공존을 완성해내는 것 이 연주자의 사명이자 숙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문제를 조금 더 확대해보면 단순히 연주자만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되는 측면 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한번쯤 고민해 본 관객이라면 관객으로써의 ‘결단’도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베토벤을 듣고 싶으면 베토벤이 가 장 잘 표현된 레코딩을 들으면 된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름이 걸린 연주회에 간다고 할 때는 베토벤과 더불어 그 연주자의 색채나 개성 까지도 함께 즐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곡마다 서로 다른 해석 이 있다는 것, 그것이 수많은 연주자가 있는 이유이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피아노 학도들이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이 문제는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고민해봐도 좋을 주 제라고 생각한다.”


열정이 폭발하면 인간의 한계는 무의미하다

깊고 입체적인, 그래서 심장에 꽂히는 화끈한 연주

도 선험적 깨우침이나 통찰이 묻어나는 대답들이 인터뷰 중에도 이따

시아 피아니스트 그레고리 소콜로프(Grigory-Sokolov)를 예감하고 있

어떤 질문을 던져도 5초 이상 생각의 말미를 갖지않는 그녀가, 그럼에 금씩 큰 울림을 던져준다. 내가 훌륭한 예술가의 조건을 묻자 그녀는 ‘열정과 의지, 그리고 지속적인 후원’이라고 대답했고, 나는 ‘재능’을 요 건으로 꼽지않는 그녀의 대답이 조금 흥미로웠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를 꼽으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나는 내심 러 었다. 소콜로프의 연주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묘사가 바로 ‘파 워’인데 박정아씨의 피아노도 힘있고 명징한 소리가 단연 매력이기 때 문이다.

“반론의 여지는 있겠지만 나는 열정이 곧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사 람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마음을 쏟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리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열정을 펼칠 권리가 있기에 비록 타고 난 재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해도 그 일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 는 한 그 길을 가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세상에 ‘조성진’ 같은 피아 니스트가 1000명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들 나름의 재능만큼 역할 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뛰어난 재 능은 없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이 누구보다 큰 학생이 있다. 그런 학 생을 가르치고 그 학생이 사회로 돌아가 자신의 역량만큼의 음악적 발현을 이뤄낼 때, 열정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훌륭한 예술 가가 되고 싶은 사람의 열정은 정말 파워풀해서 열정이 재능의 한계 를,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열정 플러스 (Plus)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 그리고 지속적인 스포트(Support), 이 세가지의 발란스가 유지될 때 훌륭한 예술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쇼콜로프의 입체감을 배우고 싶다. 고도의 집중에서 나오는 파워 풀한 소리 그러면서도 쇼팽을 다룰 때의 어루만지듯 속삭이는 그의 극단적인 변신이 좋다. 연주자의 철학이 녹아있는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주, 컬러풀한 표현들, 핵심을 지키면서도 변화를 모색하는 것,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박정아, 아놀드 쉔베르크(Arnold Shenberg)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대의 슈만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작곡한 어린이 정경을 통해

야 하는 이유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이 있고, 그 색채가 특정 쟝 르나 작곡가와 가장 잘 매치가 될 때 사람들은 그를 스페셜리스트라고

예일대학교 연주 일정으로 잠시 커네티컷을 다녀가는 박정아씨는 다

음 주말에는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이번 독주회는 남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녀가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학(East Tennessee

University) 으로 터를 잡은 지 4년을 기념하는 독주회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가 단순히 수리적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처음 학 교에 부임했을 때 갓 입학했던 학생들이 이제 시니어(Senior)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시점이라 그들을 보면서 마치 그녀 자신이 시니어가 된 마음으로 어렸을 때 연주했던 곡들을 모아 퍼포먼스를 하며 졸업생

들을 축하, 격려하는 뜻깊은 연주회다. 그래서 레파토리에 로베르트 슈 만(Robert Schumann)의 어린이 정경(Kinderszenen)을 포함했다. 20 그녀도 자신의 지난날을 순수하고 청초한 슈만으로 표현하고 싶은 모 양이다.

부른다. 특정 작곡가의 전통적 맥락을 가장 잘 살리되 아울러 자신만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는 연주자는 점점 늘고 있지만 길게 빛을 발

운 일이지만 어려운 만큼 영예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박정아씨는 자신

로 우리를 붙드는 음악은 드물다. 아마도 피아니스트 박정아를 주목해

의 독창성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스페셜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어려 이 몰두하고 싶은 작곡자로 아놀드 쉔베르크를 꼽았다. 쉔베르크의 무

조주의나 12음 기법과 같은 파격적인 혁신은 결국 현대음악을 태동시 키는 모체가 되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낯설고 난해한 음악으로 인식되 고 있어서 그녀의 대답이 좀 의외였다. 물론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생각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그녀는 과감히 쉔베르크를 선택했다. 평 범, 그것은 박정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는 연주자는 많지 않다. 연주회는 많은데 연주가 끝난 뒤 긴 여운으 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녀의 연주에는 젊지만 격 조있는 음악적 해석과 그것을 응집된 에너지로 표출해내는 그야말로

‘화끈함’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연주를 하든, 그때 그 곳

에서의 음악을 기억해주는 단 한명의 청중을 생각하며 매순간 열정적 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박정아씨. 그녀의 선율의 온도는 관객의 심 장을 녹이고도 남을 만큼 강하고 뜨겁다.

“쉔베르크를 연구하고 싶은 이유는 지금까지 충분한 연구가 되어있 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고, 또한 현대음 악을 좋아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생각을 바꿔놓고 싶은 도전적 욕심 이 있어서 그렇다. 현대음악에 대해 뭔가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귀가 이미 클래식에 잘 길들여진 탓이 크겠지만, 현대음악 초 연 당시 그 음악이 제대로 잘 전달되지 못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충분히 공부가 되고 검토가 된 다음 제대로 전달이 되었어 야 하는데, 숙성되지 못한 음악이 급하게 전달된 느낌이 있다. 게다 가 검증이 어렵기 때문에 어떤 연주가 훌륭한 연주인지 가리기가 쉽 지않다. 현대음악으로의 대중적 접근을 제대로 유도해보고 싶고 그 중에서도 쉔베르크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초현대음악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아직까 지 쉔베르크 스페셜리스트는 없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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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특집Mother's Day

마더스데이에 뭐하지?

• 마더스데이(Mother's Day) 유래

1908년 필라델피아의 안나는 1908년 5월 9일 어머니를 잃은 후, 어머니를 추 모하기 위해 기일마다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소문이 퍼져 1913년 펜실베니아 주에서 마더스데이(Mother's Day)’로 정하였 고, 이듬해인 1914년 연방의회에서도 5월 둘째 일요일을 마더스데이(Mother's Day)로 정하고 축일로 삼는 규정을 내렸다. 이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되면 어 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를 여읜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집회를 열었다. 카네이션의 꽃말도 색깔별로 다르다. 붉은색 카네

이션의 꽃말은 ‘건강을 비는 사랑’ 분홍색 카네이션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이지

만 흰색 카네이션은 ‘애정이 살아있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국은 1956년 ‘어머

니 날’이 지정되었고, 가족애를 확산하기 위해 1973년에 ‘어버이날’로 공식 변경 되어 지금의 ‘어버이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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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마더스데이! 한국의 어버이날과는 달리, 미국은 마더스데이와 파더스데이를 각각 기념한다. 일 년에 한 번 만 엄마를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날만은 엄마나 아내에게 평소 가진 고마움을 표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덜 수 있는 날 이다. 마더스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뭔가 특별한 일을 생각 하는 분을 위해 몇 가지 이벤트를 소개한다. 글

편집부

브로드웨이 뮤지컬

“뉴욕에서 25년 동안 사셨던 어머니가 뮤지컬을 처음 보시고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셨어요!” 뉴저지 리치필드에 사시는 A씨가 어머니와 함께 뮤지컬을 보고 난 후 들려준 얘기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분이라 면,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마더스데이에 뉴욕에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다. 별천지에 온 듯한 뉴욕의 화려 한 타임스퀘어 밤거리와 아름다운 브로드웨이 극장에서의 추억은 어

뉴저지에서 바라보는 허드슨 강가에서의 애프터눈 티타임

뉴저지 강가엔 허드슨강 너머 뉴욕 다운타운을 바라보며 가벼운 티타 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넘친다. 리버로드를 따라 에지워러, 위와큰, 호

보튼 등 새로 생긴 카페도 즐비한 허드슨 강가엔 난 예쁜 카페에서의 티타임은 이곳의 멋진 분위기에 취해 평소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통해 어머니와의 새로운 추억을 쌓게 해준다. 또 뉴욕 앨리스 티컵에서의 애

프터눈 티타임을 갖을 수 있다는 건 뉴욕에 사는 이들에겐 일종의 행운 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느낌으로 이 공간에서는 비스켓과 스

콘, 샌드위치를 즐기며 다양한 애프터눈 티를 맛볼 수 있다. 사전 예약 은 필수이다.

머니에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선물이다.

마더스 데이를 위한 추가 꿀팁

디너 크루즈

센츄럴 파크 산책도 좋다. 혹시 걷기에 불편한 어머니라면 마차를

뉴욕에서의 디너 크루즈는 꼭 마더스 데이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특별

한 추억을 선사한다. 그만큼 특별하다. 맨해튼 스카이라인 경치를 보면

서 호화로운 저녁 식사와 함께 나누는 대화는 어머니에게 환상적인 추 억을 남겨 줄 수 있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뉴욕 야경

을 한눈에 담아 보고 싶다면 바또 디너 크루즈를 기억하자. 물론 뉴욕

의 다른 디너 크루즈나 런치 크루즈도 나쁘진 않다.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뉴욕 허드슨 강가를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특별한 날이 될 테니까 말이다.

브롱스 보테니컬 가든을 어머니와 함께 천천히 구경하는 것도 좋고 예약해도 좋다. 그리고 뉴욕에는 맛있는 컵케이크를 파는 베이커리 가 많다. 어머니가 케이크를 좋아하신다면, 카를로스 베이커리에서

Buddy’s cupcakes 을 선물한다면 어머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올

것이다. 뉴욕의 피부관리실에서 매니큐어, 마사지 혹은 페이셜 관리 중 하나를 예약하는 것은 어떨까? 이렇듯 어머니에게 가장 크게 와 닿 는 선물은 널려있다. 어머니를 위하는 건 금액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고 세심한 신경을 써주는 자식의 마 음이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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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독자칼럼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글 박평일

지난 토요일 아들 James 가 결혼을 했다. 식장에서 나를 껴안고 ‘아

맞습니까? 하고 의아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왔다. 그래서 “맞습니

스의 모습이 아직도 가슴에 찡하다. 나는 알고 있다 눈물방울들의 진

이 곧 그 사람의 얼굴이다”라는 한국 미신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버지 감사합니다’라고 울먹이며 두 눈에서 눈물방울을 떨구던 제임 실들을. 지난 29년간 아버지와 아들 간에 전개되었던 사랑과 갈등의 치열했던 삶의 역사를…….

다. 제임스 한국 이름이 ‘곰’ 입니다” 하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이름

는 돈을 싸 들고 작명가들이나, 사주팔자 전문가들을 야단법석들을 떨 것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말했었다.

솔직히 제임스의 학교성적이 내

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벌이

이름을 곰이라고 지어준 탓이 아

어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는 오이

기대에 못 미칠 때면 ‘내가 괜히

는 갈등 관계라고. 생각해 보면

닐까?’ 자책할 때가 한두 번이 아

나와 제임스 간의 관계가 그랬다.

니었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지어

나는’ 갑’이고 제임스는 ‘을’로 불

준 이름은 평일(平一) 이었다. 평

공정한 경쟁 관계였었다. 결혼식

생을 하나 같이 평화롭게 살라”

장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제

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난 나의

임스의 한국 이름 ‘웅’을 듣고 가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그런 평화

슴이 뭉클했다. 제임스가 아직 엄

로운 삶을 별로 살아본 적이 없

마 뱃속에 있을 때 내가 지어준

다. 항상 자유를 찾아 헤매는 파

이름이 바로 '熊(곰 웅) 이었다.

란만장한 방랑자의 삶이었었다.

이름의 뜻과 실제 삶이 반대인 경

‘고난에 굴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

우일 것이다.

로 뜻한 바를 이뤄낸 곰, 자신을 부정하고 혁파하여 새로운 생명

체로 탄생하는 곰, 주변에서 질시

하고 포기해도 묵묵히 자기 일을 추진하는 곰.’ 그런 곰을 닮은 삶

결혼식 이틀 전에 케롤과 함께 한

황당무계한 허언이나 실현할 수 없는 약속을 믿지 마라.

을 살아갔으면 하는 아버지로써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불가능한 일을 하지 마라.

사랑하고 존경하고 따랐던 예수,

어리석은 사람들을 멀리하고 어진 사람들을 가까이하라.

바램이고 소망이었다. 내가 평생 붓다, 노자를 비롯한 인생의 스승 들도 그렇게 곰처럼 살다 가신 분

남에게 선행한 후 후회하지 마라.

존경할 사람들을 존경하라.

들이었다고 나는 그 당시 이해하

국식당에서 제임스를 만나 저녁 을 함께했다. 그날도 내가 약속 시각 착각한 것을 제임스 탓으로 돌리고 호통을 치며 갑질 행각을 벌였었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울그락불락 벌겋게 달아오른 제 임스에게 “오늘이 너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치는 일은 마지막이 다. 결혼식 후부터는 너와 에니는

고 있었다.

엄연히 Mr. and Mrs. Park이다. 앞으로는 아버지로서 너에게 잔소리

제임스가 유치원 시절이었다. 한국교회 유치원반 여성 교사가 나에

로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옆에 있던 케롤이” 여보, 제임스에게 결혼

게 전화를 해서 “제임스가 자기의 한국 이름이 ‘곰’ 라고 하는데 그게 74

를 한다던가 갑질하는 일은 더 없을 것이다.” 하고 약속을 했다. 정말 선물로 결혼생활에 대한 좋은 충고나 하나 해주세요” 하고 거들었다.


작년 가을 약혼식 피크식에서

제임스와 에니 에게 “항상 어 리석은 사람들을 멀리하고 어

진 사람들을 가까이하라. 그

리고 존경할 사람들을 존경 하라’라는 붓다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을 충고했던 적이 있 다. 그 말은 붓다의 말이 아니

라기보다는 내가 지난 삶을 통해서 직접 깨달은 삶의 지 혜이기도 했다. 나는 아들에 게 이런 조언(이야기)을 들려 주었다.

옛날에 이스라엘에 한 랍비가

있었다. 안식일 날 교회를 향 하며 ‘오늘 무슨 내용으로 설

낭자하고 팔과 발이 불리고

말았다. 그러자 새가 비꼬는

먼저 가르쳐야 할 것

목소리로 “당신은 내가 바로

앞에 했던 조언 세 가지를 탐

욕에 눈이 멀어 모두 법하고 말았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나무를 껴안고 동물과 대화하는 법을

다는 것은 황담무개한 허언이

먼저 가르치리라.

었다. 둘째 너는 전에 나무를

숫자 계산이나 맞춤법보다는 첫 목련의 기쁨과 나비의 이름들을

자연의 책에서 더 많이 배우게 하리라.

배 후 저녁 식탁에 올리면 되

겠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며 그 새을 덜썩 두 손으로 낚아

챘다. 그러자 새가 “랍비님, 저 를 살려주신다면 오늘 설교할 좋은 내용을 하나 알려드리겠

습니다” 하고 애걸을 했다. ‘새

행을 하고도 후회를 했다.” 그

제임스는 헤어지기 전에 “ 아

나는 내 아이에게

숲속에서 덫에 걸려 날개를 했다. ‘옳거니, 이놈을 잡아 예

셋째 너는 나을 살려주는 선 위를 훨훨 날아가 버렸다.

성경이나 불경보다는

퍼덕이는 새 한 마리를 발견

타본 적이 없는 문외한이다.

말을 남기고 새는 푸른 하늘

먼저 가르치리라.

교를 할까?’ 하는 고민으로 발

길이 무거웠다. 마침 가는 길

‘첫째 새 뱃속에 황금 알이 있

빠, 정말 그동안 고마웠습니

한 마리 자벌레의 설교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하리라.

다. 나는 아버지만큼만 자유

인으로 사는 것이 꿈입니다. 아버지는 나의 영원한 우상 이고 영웅입니다.” 제임스는

나를 껴안으며 눈물을 글썽

지식을 기대기 전에 맨발로 흙을 딛고 서는 법을 알게 하리라.

거렸다. 나처럼 눈물이 많은

아, 나는 인위적인 세상에서 배운 어떤 것도

‘아들아, 제발 이 못난 아버지

녀석….

를 닮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

자신의 길을 찾아가거라. 자

내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으리라.

가 사람 말을 다 하다니!’ 분명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를 내 아이가 아닌

유인 미국 시인 프로스트 ’의

귀가 솔깃했다. 그래서 ‘우선

더 큰 자연의 아이라 생각하리라.

난 두 길 중 하나를 택하는 평

히 도를 튼 새임이 분명하다.’

네 말이나 들어보고 결정하겠 다’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로 황당무계한 허언이

범한 삶이 아니란다.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순간순간 스스

로 길을 창조하고 아무런 흔

-조안 던컨 올리버(뉴에지 저널 편집장)

적도 남기지 않는 미래를 예

나 실현할 수 없는 약속은 절

대로 믿지 마십시오. 둘째 자

가지 않은 길’ 에 나오는 앞에

약할 수 없는 거칠고, 때로는 고독한 여행이란다. 늘 새로

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불가능한 일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셋째

운 도전과 위험과 싸워야 하는 …나는 내 아들이 남들처럼 평범하고

한 설교내용이었다. 그래서 찝찔한 마음을 숨기고 새를 놓아주었다.

가 내가 바라고 있는 그에 대한 소망을 언젠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남에게 선행한 후 절대로 후회를 하지 마십시오” 들고 보니 그럴 듯

안락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지금쯤 일본에 있을 제임스

그러자 새가 날아가 한 큰 나뭇가지 위에 앉더니, “어리석은 랍비님, 사실 내 뱃속에 큰 황금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나를 놓아주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횡재를 얻어 팔자를 고쳤을 겁니다.” 하고 조롱

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정말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 하는 후 회가 막심했다. 그래서 성경책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나무를 오

르기 시작했다. 새가 손에 잡힐까 말까 하는 순간에 새는 더 높은 나

박평일

고치고 말겠다!” 그가 다른 더 높은 가지에 오르는 순간 그 나뭇가지

경복고, 서울대 농업경제학과 졸업

뭇가지로 옮겨 앉았다. “망할 놈의 새! 내가 너를 꼭 잡아서 팔자를 가 부러져 그는 땅바닥으로 거꾸로 떨어지고 말았다. 머리에 피가

부동산 감정사

Clifton, Virgini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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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화제의 책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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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부터 해외 언론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은 책, ‘파친코’(Pachinko) 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한인 작가 이민진(48)의 장편소설이다. 뉴욕 타임스는 물론이거니와 미국의 공영방송 NPR,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 닝포스트도 이 책을 소개할 정도로 전세계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영국의 BBC는 ‘2017년에 꼭 읽어야 할 책 10권’에 이 책을 포함시켰다. 편집부

이민진 장편 소설 ‘파친코’ (Pachinko)

2017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 2017 미국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10’ 2017 미국 USA투데이 ‘올해의 책 10’ 2017 영국 BBC ‘올해의 책 10’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평론가가 꼽은 2017 최고의 책’

줄거리 소설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부산 영도 의 기형아 훈이, 그의 딸 순자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 세, 그 아들까지 4대에 걸친 재일동포 순자가 겪은 처절한 삶의 이야기 이자 우리네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이다. 일본에 살지만,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재일동포 순자의 생애를 다룬 소설은 1933년부터 시작된 다. 부산 영도에 살던 16살 순자가 유부남의 아이를 가진 뒤 버림을 받 고 미혼모가 되어 선교사의 손에 이끌려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다. 남편 역할을 대신했던 선교사가 죽고, 순자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2차대 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순자의 가족 들은 일본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 명문 와세다대를 졸업한 순자의 큰아들과 파친코를 운영하는 작은 아들의 갈등 등. 정체성 혼란을 겪는 재일동포 가족사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이민진 소설가

일곱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후,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2007년 자서전적 소설인 데뷔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res)으로 베스트셀러 작 가 반열에 올랐다. 1995년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17년 두 번째 장편 ‘파친코’를 세상에 내놓고 다시금 언론의 주목을 받는 중이다. 77


LIFESTYLE

영화 이야기

Love, Simon 지난 3월에 개봉한 ‘Love, Simon’은 10대 게이 소년이 커밍아웃하면서 겪게 되는 성장기 를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다. 2018년 3월 미국에서 개봉되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 키며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데 엄마와 아들의 대화에 관객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잔잔한 기승전결의 흐름이 관객으 로 하여금 서서히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면 좋을 영화로 추천한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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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Teen film, Love, Simon, revolutionizes the way all of us think about the rite-of-passage “coming out” experience for an LGBTQ member Just days after Valentine’s Day and right before Prom season,

One particular scene that I recall stunning me was a one-on-

meaningful story to tell from a different, yet worth-listening

come out to her. This touching moment in the film accurately

Love, Simon debuted March 16, 2018 in theaters with a point-of-view.

Love, Simon, a new coming-of-age teenage film, tells a story of how enlightening and empowering “coming out” as a person on the LGBTQ spectrum can be.

Simon Spier, a 17-year-old closeted gay student, lives his

one dialogue between Simon and Simon’s mother after he had expressed how any mother would feel after knowing that their

beloved child hid a secret that they could not reveal for so long.

Jennifer Garner’s performance captured the whole audience’s attention with a heartfelt speech to Simon declaring how she is still accepting of his sexuality, basically assuring him that it’s okay to exhale the weight off of his chest now.

life hiding his big secret from everyone around him, until an

The authenticity and realism of how high school and high

As expected from the audience, Simon is giddy with joy to

perfectly executed by the experienced actors and actresses, like

anonymous peer announces online that he, himself, is gay.

learn that he is not alone in his judgmental and close-minded high school. During the social hardships that Simon faces

throughout the movie, he yearns and searches, in hopes that he can find his undisclosed soulmate.

While being able to reach out to and inspire the LGBTQ, especially gay, community, this unique motion picture also has the ability to bring representation to the gay, especially younger,

school students operate adds onto the brilliancy factor, which is Nick Robinson and Katherine Langford. One would be making an obvious statement by saying that great casting choices and commendable dialogue written by the screenwriters played a

role in the honorable execution of this film. It is clear to see that the production company did thorough research on the broad

topic of young and queer students in their environment, as it heavily paid off.

community, and to help start a conversation and normalize the

The experience that I personally felt throughout the entire hour

production of other captivatingly great movies, like this one.

gay individuals who face the worry of having to come out to

concept of the queer society. More exposure can lead to the While watching the traditionally stereotypical and popular high

school films that hit theaters every so often, one cannot help but notice the over exaggeration of the actors and actresses who portray a character who is either obsessed with their

phones or obsessed with acquiring a boyfriend or girlfriend. However, unlike those degrading and humiliating movies, Love,

and 50 minutes of watching left me with great respect for both

their loved ones in a certain place, at a certain time, and in a certain way and gay individuals who have to deal with the hate from others. I feel honored and fortunate enough to have a friend who is openly gay and proud, whom I will definitely

suggest for him to watch this movie, in hopes of that he will feel well-represented in Hollywood now and further empowered.

Simon reveals the truth that sits in our adolescent brains.

Coming to a conclusion, it’s safe to say that this film is not

Truthfully, coming from a high school student, I can speak for

media attention and break preconceived notion barriers about

most of my peers when I say that we are not these cruel and cold beings that are after ruining our parents’ happiness by

constantly nagging that these directors and screenwriters make us out to be, we are not glued to our phone screens (as we do

speak to one another face-to-face often), and all we thrive for, in our short high school careers, genuine happiness, success,

and honest love. Love, Simon does all of us, young people,

a favor by demonstrating to adults that there is more to us than our technology, and we have the same desire for finding unconditional love that the adults have.

only heart-warming and tear-jerking, but is bound to stir up

how young adults think and act when it comes to expressing, or even hiding, their sexuality. Understandably, some may

respectfully argue against this motion picture’s intentions

and messages. Nonetheless, recommendations of watching to friends would be ideal, since anyone, regardless of sexual

orientation, race, gender, or age, can watch this timeless love tale, because in the end, we must remember that love is love, simply put.

Written by: Katie Lee, 11th Grade at Paramus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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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Reprinted from Everyday Korean.

Copyright © 2017 by Kim Sunée and Seung Hee Lee. Published by Countryman Press. 80


Crispy Mung Bean Pancakes (Bindaetteok or Nokdu Jeon)

These lovely jeon feature the mung bean (a.k.a. moong dal), which grows into the ubiquitous fresh bean sprout, quint- essential to Asian cooking. Dried mung beans are often found in Indian cooking. Here we use dried yellow mung beans that are soaked, then pureed, so no added binder is necessary. Make sure to buy dried yellow mung beans; dried green mung beans need to be peeled. If modifying the recipe, be sure to use equal parts beans to water as they get pureed together. These crisp up beautifully in the skillet and are best served hot, but leftovers can be warmed in a dry skillet. Try topped with avocado slices or a poached egg for a quick protein-packed breakfast or snack. MAKES 4 TO 6 SERVINGS 1½ cups dried yellow mung beans 1½ cups water ½ cup diced bacon or ground pork (optional) 1 cup fresh bean sprouts 2 green onions, thinly sliced 1 jalapeño pepper, thinly sliced 3 to 4 tablespoons neutral oil, such as canola or grapeseed, for frying FOR SERVING Soy-Vinegar Dipping Sauce Place the dried mung beans in a colander and rinse well, then place in a bowl and add 1½ cups of water. Let soak for at least 1 hour and up to overnight (the longer they soak, the softer the texture). Place the beans along with their soaking liquid in a food pro- cessor or blender; pulse into a smooth puree. Transfer the mixture back to its bowl. Add the bacon, if using, and the mung bean sprouts, green onion, and jala- peño; stir to combine. Heat about 1½ tablespoons of the oil in a heavy- bottomed skillet over medium-high heat. Test the skillet by adding a splash of water or a bit of the bat- ter; the oil and batter should dance and crack and siz- zle. When the oil is hot, add the mixture to the pan, using a ladle or a ¾-cup measuring cup, and press down gently, using the back of a spatula, to even out the mixture into a pancake. Cook until golden, about 3 minutes. If the pancake is steaming and not sizzling, increase the heat and add another drop of oil. Gen- tly flip and cook the other side until golden; try not to flip more than once. Repeat with the remaining oil and batter. Place the pancakes on a wire cooling rack; rewarm in the skillet, if needed, to crisp up the edges before cutting into wedges and serving. Serve warm with Soy-Vinegar Dipping Sauce. Reheat any leftovers in a dry skillet. NOTE : ‌ Using mung beans-a low glycemic index food-in place of flour is a satisfying way to enjoy delicious savory pancakes without worrying about gluten or an insulin surge.

Soy-Vinegar Dipping Sauce (Cho-ganjang)

This is a classic dipping sauce to accompany and brighten up a wide range of dishes, such as jeon (pan- cakes) and grilled fish. We always use soy and vine- gar in a 1:1 ratio for this sauce. Anything else, such as sugar, green onion, or gochugaru, is a bonus and can be adjusted to your taste. MAKES ½CUP ¼ cup low-sodium soy sauce ¼ cup rice vinegar or cider vinegar 1 tablespoon granulated sugar 1 tablespoon finely chopped green onion 1 teaspoon gochugaru (optional) 1 teaspoon toasted sesame oil (optional) OPTIONAL GARNISH toasted sesame seeds Place the soy sauce, vinegar, and sugar in a medium- size bowl; stir to combine. Add any optional ingredi- ents, if desired, sprinkling with toasted sesame seeds just before serving. Serve in a bowl with a small spoon for easy serving, or in individual sauce bowls and use as needed. Can be stored, preferably without the ses- ame seeds, in an airtight container in the refrigerator for up to 3 days. VARIATION : Quick and easy version: Combine soy sauce with balsamic vinegar in a 1:1 ratio.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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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ory Steamed Egg Custard (Gyeran Jjim)

Often served family style, bubbling in Korean earthenware dishes at restaurants, we make this light, silky, savory custard in

individual ramekins suitable for small or large dinner parties as a first course. This recipe can be doubled or tripled. If you prefer to serve family style, pour the mixture in a Korean earthenware dish or a big bowl that can hold up to 3 cups of liquid. Any

leftovers can be kept in the refrigerator and enjoyed the next day

as a snack or as a banchan, especially with bibimbap. MAKES 2 SERVINGS

Neutral oil or butter, to grease ramekins 2 large eggs

1 cup water or kelp broth

1 teaspoon salted shrimp or fish sauce, or Âź teaspoon fine sea salt

OPTIONAL GARNISHES green onion, salmon roe, foie gras,

smoked salmon, sauteĚ ed mushrooms, shaved truffles, poached shrimp, fresh herbs, or edible flowers

Lightly grease two 1-cup capacity ramekins or heat- proof cups

and set aside. Crack the eggs into a medium-size bowl. Add the water or broth and salted shrimp; stir to combine. Strain the mixture through a fine-mesh sieve over a measuring cup or

bowl with spout. Divide the strained mixture evenly between the prepared ramekins.

Place a steamer basket over a pot of boiling water and set the ramekins in the basket. Steam the custards over medium heat,

covered, for 10 minutes. Carefully remove the ramekins from the

steamer (their contents will wobble a bit) and place on serving plates. Garnish as desired and serve 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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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승무원은 알고 나만 모르는 비행기 정보 비행기를 타기 전, 언제, 어떤 좌석이 더 좋고, 편하 게 올 수 있는지, 비행기를 타는데 유용한 몇 가지 상식만 알아두어도 조금 즐거운 비행을 할 수 있다. 나만 모르는 비행기 상식, 몇 가지를 알아보았다. 글

편집부

비행기 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날

다. 특유의 흔들림은 멀미를 유발하고 두통이 발생하기 때문. 그렇다면

을 분석한 결과 출발일로부터 7주 전에 구매한 티켓 가격이 가장 저렴

행 중에 기류의 영향을 받아 시소처럼 앞뒤가 흔들리는데 날개 부분은

여행 전문 사이트인 칩에어 닷컴은 500만 건에 달하는 티켓구매 기록

하다는 걸 밝혀냈다. 또 많은 항공사가 주말에 안 팔린 티켓을 화요일 오후 3시경에 가장 낮은 경쟁 가격을 내놓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가격 으로 살 수 있다. 가장 싼 항공권! 7주 전 화요일 오후 3시를 꼭 기억해

흔들림이 적은 좌석을 어디일까? 바로 날개 옆 좌석이다. 비행기는 비 시소의 중심 위치 역할이라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단, 한 가지 단점 은 날개 쪽 소음이 조금 심하다.

두자!

아침 비행기가 좋은 점

비행기 화장실 문은 잠겨도 잠긴 게 아니다

는 비행기는 오후에 뜨는 비행기보다 덜 흔들리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화장실은 철저하게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곳이라고 인식되어있

다. 대부분 화장실은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는 열 수 없다는 게 일반적 설계이다. 하지만 비행기 내에서는 예외다. 즉 아무리 안에서 잠근다고

해도 밖에서 얼마든지 열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승객의 안전을 위함 인데 화장실에서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하여 금연 표시 뒤의 잠금장치

멀미가 심한 분들에겐 무조건 아침 비행기 탑승을 추천한다. 아침에 뜨 기류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이상 기류가 없는 오전 비행기가 평온한

비행을 하는 건 당연한 이치. 오후엔 땅이 태양열에 가열되어 이상 기

류가 자주 발생하고 폭풍도 오후에 더 빈번하게 발생해서 비행에 지장 을 준다.

를 열면 밖에서도 문을 열 수 있게 되어 있다.

물이나 음료수는 병으로 주문한다

흔들림이 없는 좌석은 어디?

갈증도 그 이유. 비행기를 많이 타본 승객이야 승무원이 언제쯤 음료수

비행기 좌석 중 가장 좋은 좌석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일등석이지만, 장

시간 비행을 하게 된다면 사실 흔들림이 없는 좌석이 가장 좋은 좌석이 84

장시간 비행 중에는 몸 안의 수분 부족이 올 수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서비스를 주는지 짐작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목 빠지게 기다 려본 경험이 있을 거다. 물 한 잔으론 어림도 없는데 한 잔 마시고는 또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인제 그만. 승무원에게 처음부터 병으로 된 물 이나 음료수를 정중히 요청하면 된다.

비행기에서 주는 물은 물병에 들어있는 것만 안심!

승무원들 대부분 비행기에서 커피나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

다. 비행기 식음용 물을 보충하는 곳이 물 사용이 많은 화장실 용변을 처리하는 곳과 가깝게 위치할 수밖에 없는데 이곳의 물탱크는 믿거나

날개의 퍼덕거림에 이런 숨은 신호가?

비행기가 테러리스트로부터 납치 위기 상황일 때 승객들에게 보내는

비밀 사인이 있다. 바로 날개가 위아래로 펄럭이는 것인데 조종사는 납

치 상황을 테러리스트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면서 날개를 위아래로 펄 럭이는 훈련을 받는다. 만일 창가 쪽 가까이 앉은 승객이라면 비행기가 위급 상황임을 눈치채기 바란다.

말거나 청소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테스트 결

내가 잘 때 조종사도 잔다

아 수치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물이 병에 담겨있지 않는 한, 가능하면

한다. 깊이 잠이 든 승객을 위해 비행기 조종사 혼자 외로운 비행을 할

과 기내 수돗물에서는 미국 정부의 제한선을 수백 배 뛰어넘는 박테리 마시지 않는 게 좋다.

기내 담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말자

야간 비행기를 타면 조명을 은은하게 비춰주고 승객들의 수면을 유도 거로 생각하면 오산! 비행기에는 자동 운항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조종사도 편히 기대어 잠을 자기도 한다.

기내 담요는 매번 세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장거리 여행을

비행기는 승무원과 조종사만 타는 게 아니다

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내 담요와 베개는 비행을 마친 뒤, 세탁하지 않

내 항공기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바로 인체 장기의 운반이다. 이뿐만이

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용하게 되는 담요와 베게, 모 항공사 직원의 말 은 채로 다시 접어서 제자리에 채워 넣는다고 한다. 물론 모든 항공사 가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찜찜한 기분은 남는다.

국내선 비행기엔 숨은 탑승자가 있다. 다소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국

아니다. 대부분 대형 여행기는 운항 중에 한 구 이상의 시신을 운반한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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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뉴욕을 세계 최고 도시로 만든 일등공신 뉴요커 삶의 애환이 서린

뉴욕 지하철은 지금 변신 중 글 Won Young Park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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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어느 대도시나 대중교통은 그 도시의 핏줄과 같다. 매일 수 많은 뉴욕 시민을 일터와 가정으로 이동시켜주는 뉴욕 지 하철은 1904년 개통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 중 하나이다. 665마일의 긴 노선으로 뉴욕 대중교통 시스템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는 뉴욕 지하철. 뉴욕 시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에게 새로 운 뉴욕문화 체험을 경험하게 해주며 그들의 발 노릇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현재 1일 8477회 운행 횟수에 566만 명 이란 엄청난 이용객이 이용한다. 뉴욕 지하철은 개통 이 후로 수만 명의 이민자가 일터로 이동하는 수단이었고 전 세계 다른 인종이 한 도시에 섞여서 살 수 있는 도시 기반 이 되었다. 엄청난 이용객만 보더라도 20세기 뉴욕을 세계 최고 도시로 만든 공신이라는 칭함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시의 재정 악화로 70~80년대 범죄의 온상이라는 불명예 를 얻기도 했으며 최근 급격한 노화 현상으로 800만 뉴욕 시민들의 일상에 불편함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러나 이를 개선하려는 시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과 주 정부 의 지원으로 점차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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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5천만 명이 넘는 뉴욕시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거치는 뉴욕의

명소가 월 스트릿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 부근이다. 이곳을 찾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역이 풀턴 스트릿역. 8개 노선이 맨해튼 전역은

물론 브루클린과 뉴저지까지 연결이 되는 주요 환승역이다. 9.11 테러 이후 다운타운 뉴욕의 재건하기 위한 야심 찬 프로젝트로 10년에 걸쳐

14억 달러의 예산을 들여 2015년 완공했다. 자연광이 들어 오는 54피

트 높이의 돔 형태의 역사에 들어오면 마치 거대한 첨단 실내 구장에 들어온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광객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상상했던 화 려하고 거대한 도시 뉴욕에 어울리는 지하철역이라고 감탄을 할 것이

다. 하지만 472개 뉴욕시 전철역 중 풀턴역은 가장 예외적으로 선진화 된 역이다.

지난해 50년의 건설 기간을 거쳐 완공된 Q 라인 역을 제외한다면 뉴욕 의 전철역과 전철은 대부분 심각한 노화 현상에 직면해있다. 그래서 뉴

하루에도 수백건씩 발생하는 연착과 고장

각하는 관광객이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게 뉴욕 지하철이다. 파리나

기록했다. 2호선의 경우 제시간에 운행되는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욕을 세계최고의 도시, 문화예술의 도시, 깔끔하고 선진적인 도시로 생 런던에서 나름 오래된 지하철 노선을 이용해본 유럽인 보다는 특히 한

국이나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여행객들의 충격이 더 크 다. 모두 깨끗한 선진 지하철 국가들이기 때문에 낡고 후줄근하며 열악

한 지하철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이다. 물론 뉴욕을 찾은 관광객 대부 분 그 마저도 뉴욕문화의 하나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뉴욕시

전철역의 낡고 비위생적인 환경은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다. 시민들은 그런 외적인 환경에는 이미 무감각해질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중요한 문제는 하루에도 수백 건씩 발생하는 연착과 고장 사태다. 88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뉴욕시 전철 노선의 75%가 고질적인 연착을 못했다. 출근길 시민들은 매일같이 전철역에서 짜증이 폭발한다. 필자

역시 20년간 매일같이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40~50분 시간의 출퇴근

중 지하철이 중간에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한 적 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헬조선이란 말과 같이 헬뉴욕이라는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하는 주범이 지하철이다. 그래서 미국에 호 의적인 사람들조차 고개를 젓게 되는 미국의 후진적인 요소로 느린 속

도의 인터넷, 끊이지 않는 총기 사고, 살인적인 의료비와 함께 지하철 이 꼽힌다.


1904년 개통된 뉴욕지하철

어서 이용객의 불편을 고려해 심야 시간과 주말에만 수리, 공사를 해

다. 너무 오래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고 보수와 신축에 많은 예산이 필

않게 차량의 상태도 개선되어야 한다. 6,400여 개의 차량 중 3,000개가

그렇다면 뉴욕시 지하철은 왜 이렇게 망가진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 요하기 때문이다. 1904년 개통된 뉴욕 지하철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졌는지 실감하는 방법은 그 시절 한국은 순종 시절이라는 것을 떠올 리면 된다. 대부분의 조선인이 기본적인 대중교통은커녕 말이 끄는 수

레 한번 타보지 못한 시절에 뉴요커들은 전기로 작동되고 땅 밑으로 운 행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조금씩 노선을 연장해 나가면서 26개 노

선이 되는 동안 기존의 시설들은 그에 발 맞게 업그레이드가 되지 못했 다. 26개 노선 중 23개 노선의 신호 시스템이 여전히 1930년대 기술 수

준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심지어 고장이 난 부품

중 이미 오래전에 제작이 중단된 것들이 많아서 그때마다 수공으로 만 들어 제작해 써야 하는 웃지 못할 현실이다.

472개에 달하는 지하철역 대부분은 기본적인 냉난방이 없는 것은 물

론 비만 오면 물이 새는 열악한 환경이다. 열차의 도착 시각을 알려주 는 계기판이 있는 곳도 소수에 불과하다. 지하철역 대부분은 인터넷과

전화 통화가 되지 않는다. 더운 여름날 한증막 같은 지하철역에서, 쓰

레기가 널린 철로 위를 돌아다니는 쥐들을 보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전철을 기다려 본 경험이 뉴요커라면 누구나 있다. 엄청난 보수 유지비용이 드는 애물단지

예산이 늘 문제가 된다. 뉴욕 지하철을 담당하는 MTA에는 보수와 수 리 인력만 7000명에 이른다. 이들 수리 인력들이 평균 연봉은 10만 달

러에 가깝다. 그러나 이런 비싼 7,000명의 인력도 총연장 1,300킬로미

터에 이르는 노선을 그때마다 손보기엔 역부족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낡고 고장이 자주 나는 역사와 철길들이다. 24시간 운행되는 시스템이

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컴퓨터화 되지 않은 운행 시스템 못지

80년대 이전에 제작된 노후 차량이다. 이중 절반은 최신 모터와 바퀴, 브레이크 등이 시급히 교체되어야 하는 상태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연

착과 지연운행, 갑작스러운 정지 사고, 예고 없는 노선 변경은 거의 일 상화가 되어 있다. 초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에 한 달에만

8,122건의 지연, 정지 사고가 발생했다. 한편 모든 사람의 목적지가 맨

해튼인 뉴욕시 특유의 경제 환경도 이 모든 불편의 한 이유다. 뉴욕 지 하철은 순환선이 없다. 모두 출발지와 목적지가 한 방향인 노선이다. 870억달러 예산이 투입된 지하철 개선 작업

뉴욕시의 5개 보로 즉 퀸즈, 브루클린, 스태튼 아일랜드, 브롱스 지역 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이면 모두가 맨해튼 방향 전철을 타고, 저녁에는

맨해튼에서 집에 가는 열차를 탄다. 출, 퇴근 시간에 만원 전철에 들어 가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시스템이 문제가 없어도, 차량이 고장 을 일으키지 않아도, 이용객이 너무 많다는 단순한 이유가 고질적인 연 착 이유이다. 시민들의 불편이 임계점에 다다른 것을 실감한 뉴욕은 모 두 1조 원(870억 달러)의 예산이 투여해 점진적이고 대대적인 개선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더 좋은 지하철을 위해서라는 목적도 있지만, 이 상태로 방치했다가는 도시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움직임이 기대된다. 다만 Q 라

인 완공에 50년이 걸렸듯이, 무슨 공사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뉴욕에 서 단기간의 성과를 기대하는 뉴요커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전

철 운행 시간 게시판이 설치된 역들이 늘고 있고, 시범적으로 와이파이

가 운행되는 것만 해도 고마운 현상이다. 나 역시 앞으로 개선될 뉴욕 지하철의 모습을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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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집값, 교육, 기후, 생활비, 취업 최고의 도시

2018년 미국 내 가장 살기 좋은 도시 TOP 5

데이터분석 그룹 니치(Niche)가 범죄율, 공립학교 유무, 생활비, 취업 기회나 지 역 내 편의 시설 등 15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2018년 미국의 살기좋은 도시를 선 정하였다. 온화한 기후 덕분인지 매년 캘리포니아주의 버클리와 얼바인이 순위 에 빠지지 않고 있으며 명문 주립대가 있는 미시간 주의 앤아버 역시 순위를 차지 했다. 비교적 낮은 집값 덕분인지 텍사스의 플레이노, 오버랜드 파크, 리처드슨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살기좋은 도시 랭킹’은 질문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발표의 목적은 각 도시의 활기찬 경제와 높은 삶의 질 등 을 통합하여 주민들에게 살기 좋은 도시를 부각하기 위함에 있다. 니치 그룹이 발 표한 내용을 토대로 미국 내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최고의 도시 5곳을 소개한다. 글 90

편집부


1. 앤아버/ 미시건 주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1위에 랭크된 앤 아버는 미시간 주에

속해 있다. 이 도시는 1837년 미시간 대학교가 들어서면서 대학도시로

크게 발전되었다. 미시간 대학교는 미국 명문 공립대학 중 최고 대학 중 한 곳이다. 공립대학이지만 동부의 아이비리그를 포기하고 이곳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을 정도로 최고의 대학이다. 앤 아버는 좋은 교육

환경과 우수한 교육 시설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늘 꼽힌다. 작은 마을 느낌이지만 활기가 넘치는 도시로 곳곳에는 숨은 명 소와 건축물, 음식 문화의 다양성이 가득한 안전하고 친절한 도시이다.

Best Cities to Live in America 순위 - 데이터분석 그룹 니치(Niche) 발표 1 2 3 4 5 6 7 8 9 10

앤아버 네이퍼빌 버클리 플레이노 알링턴 케임브리지 더 우드랜드 오버랜드 파크 리처드슨 얼바인

미시건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텍사스 버지니아 매사추세츠 텍사스 캔자스 텍사스 캘리포니아 91


2. 네이퍼빌 / 일리노이

3. 버클리 / 캘리포니아

는 공식이 네이퍼빌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 중 하

리는 남쪽으로 오클랜드와 에머리빌, 북쪽으로 알바니, 캔싱턴 등의 도

대부분 좋은 도시가 그렇듯이 대도시 인근의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라

나인 네이퍼빌은 미국 전체에서 상위 3%에 속하는 명문 고교들이 많다. 치안이 잘 된, 안전한 도시이며, 전체 인구가 14만 명으로 가족 친화적인

도시이다. 네이퍼빌은 다운타운과 우수한 공교육제도, 시카고와의 지리 적 인접성을 이유로 매년 지난 2002년 이후 무려 5번째 살기 좋은 도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센터니얼 비치는 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며, 겨울엔 바닷가 주변의 아름다운 불빛이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만 동쪽 연안에 위치한 도시인 버클 시와 접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중 최초로 설립된 캘리포니아 대 학교 버클리 캠퍼스와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가 있는 버클리는 캘

리포니아 주에 속한 모든 도시가 그렇듯이 온화한 기후가 특징이다. 여 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다양한 종류의 문화와 각

나라 음식점이 많다. 샌프란시스코와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이동에 쉽다. 여러 개의 커뮤니티 칼리지와 대학이 있어서 교육환경이 우수하 고 학업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주변환경이 특히 아름다워 휴양지 에 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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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레이노 / 텍사스 주

5. 알링턴 / 버지니아

스 교외에 위치하는 위성도시로 텍사스주에서 9번째로 큰 도시로 댈러

잘 발달하여 있다. 토머스 제퍼슨, 워싱턴 리, 요크타운 고등학교 등 전

남부 텍사스주에 위치한 플레이노는 저렴한 생활비를 자랑한다. 댈러 스 메트로폴리탄(DFA)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도심 한복판의 플라노 공 원과 레크리에이션센터는 마치 뉴욕의 센츄럴 파크처럼 도심의 시민들

에게 더욱 많은 활동과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제2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중 언어 초등학교가 있다. 플라

노는 유난히 자전거 도로와 야외공원이 많아서 도시의 느낌보다는 교

외의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다. 2005년에는 CNN Money 잡지에서 미 남부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역시 ‘포브스’

에서 댈러스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으로 댈러스의 전통적인 부촌인 Highland Park, University Park와 함께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와 가까운 통근 거리를 자랑하며 대중교통도

국 최고의 고등학교 3곳이 있다. 화려한 도시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 만, 나무가 많아서 한적한 전원생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미국의 수

도 워싱턴 D.C.에서 포토맥강(Potomac River)을 건너면 만나는 도시이 다. 미국의 정치적 역사가 깊이 뿌리내려진 도시답게 미국 내 가장 큰 정

부 건물인 국방성 본부 펜타곤(Pentagon)이 있으며, 알링턴 국립묘지

(Arlington National Cemetery)가 있다. 100년도 넘은 건축물 사이에 최고급 패션 센터가 공존하는 도시, 현대적인 마천루 사이로 오랜 역사 를 즐기며 자연 친화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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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Deep Work

Deep Work

Photographed by George Jung

Deep Work 오래 일하지 말고 집중해서 깊이 일하라!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만 하는 멀티태 스킹은 기본이다. 여러 개를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은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한 가지 일씩 순차적으로 처리할 때보다 약 30% 정도 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현재 하는 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싶거나 시간을 통제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오래 일하지 말고 시간을 정해놓은 뒤 집중해서 일하는 딥워크(Deep Work)가 해답이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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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칼 뉴포트는 저서 <딥 워크>를 통해

딥워크를 위한 구체적 방법

으로 몰입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몰입을 방해하는 다른 요소는 다 치우

방문을 닫고 책상을 정리하고 스스로 딥워크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의

몰입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자신의 경험과 심리학적인 연구를 바탕

라고 조언한다. 그는 몰입이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몰입을 돕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딥워크를 방해하는 것들

딥워크는 인지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완전히 집중해서 일하는 것 을 말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는 딥워크를 못하도록 훼방 놓 는 방해꾼이다. 일하려고 컴퓨터를 켰지만, 자신도 모르게 메신저 프

• 딥 워크 준비

준비를 하고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으로 머리를 맑게 한다. • 시간을 분할하라

시간을 분명하게 나눠서 사용하라. 일주일 중 주말을 딥 워크에 할애할

수도 있고,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할애할 수도, 아예 어느 한 해나 한 시 즌을 딥워크에 할애할 수도 있다.

로그램을 실행하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메일만 확인하자고 켰지만 이

• 일과 관련된 생각을 차단하라

릭하고 페이스북 포스팅에 무의식적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포털의 검

전 그날의 과제를 점검하고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운다. 그 후에는 일과

미 손가락은 인터넷 뉴스가 궁금해진다. 낚시성 기사를 나도 모르게 클 색어 순위는 어떤지 살펴본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서 본 작업을 시작

하려고 하면 어디까지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던 뇌는 잔상이 남아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딥워크로 세상을 바꾼 인물들

딥 워크는 계획을 짜서 일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최고의 정신 집 중 상태 유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할 때 최고의

일과가 끝나면 다음 일에 대해 생각을 하지 말라. 물론 일과를 끝내기 관련된 생각을 완전히 차단하라. 그리고 온전히 휴식하라. • 무료함을 받아들여라

조금만 무료해도 견디지 못하면 딥 워크를 할 때도 가장 깊은 수준의 집중에 이를 수 없다. 무료함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면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로 두뇌가 바뀐다. 자극제를 이겨 내도록 두뇌를 훈련해야 한다.

결과물이 나온다. 딥 워크를 하기 위해서는 집중 상태를 유지하는 환경

• 소셜 미디어를 끊어라

앤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를 집필하기 위해 에든버러

장을 초래할 수 있다. 행사, 대화, 공통의 문화적 경험 등 소셜 미디어에서

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경 속에서 습관을 만들고 훈련해야 한다. 조 도심의 호텔 스위트룸을 빌렸다.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차례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끊는다. 그리고 미래를 설계하는 ‘생각 주간’을 가진다.

카를 융은 호숫가의 작은 마을 별장에서 자신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을 만들어놓고 분석심리학의 기틀을 쌓는 논문을 썼다.

SNS는 엄청난 중독성을 지닌다. 그래서 일과를 정해서 집중하는 데 큰 지 오가는 많은 것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버려라. • 책을 읽어라

일에 몰두하는 능력은 생각의 두뇌에서부터 시작된다. 책 속에는 무한 한 두뇌 발전 요소가 숨어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엄청난 두뇌 자산 축

적이다. 인터넷을 쓰는 시간 대신 책을 읽으면 산만함에 굴복하는 시간 을 줄일 수 있다. 그에 따라 주의를 다스리는 정신적 근육이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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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ic

스트레스를 받아야 사는 생물

랍스타에게 삶의 교훈을 배우다 지구상에 오래 사는 생물 몇 가지를 꼽으라면 랍스타 (Lobster)가 빠지지 않는다. 오래 사는 걸 넘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물로 알려진 바다가재. 과연 그 이유는 뭘까? 지구상 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수명은 ‘텔로미어’가 결정한다고 한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가닥의 양쪽 끝에 붙어 있는 꼬리로서 세 포가 분열할 때마다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데 텔로미어가 다 짧아져 사라지면 생명체는 죽게된다. 랍스타는바로 그 ‘텔로 미어’를 ‘복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즉 랍스타의 세포에 있는 ‘텔로머라아제’라는 효소가 ‘텔로미어’를 짧아지지 않게 만들기 때문에 사고만 아니라면 절대 ‘자연사’하지 않는다. 랍 스타의 몸속에서는 텔로머라아제가 항상 작용하고 있어 텔로 미어가 파괴되는 일을 방지한다. 하지만 죽지 않고 평생을 사 는 랍스타에게도 한 가지 치명적인 스트레스가 있다. 글

편집부

랍스타는 바닷속 먹이사슬에서 낮은 쪽에 있다. 따라서 다른 바다 생물

스트레스(Stress)란 인간이 심리적,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위험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많이 당하는 ‘사고사’의 원인

야 하는 현대인의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직장에서의 업무, 인간관

에게 많이 잡아 먹히는 생물이다. 물론 딱딱한 껍질이 보호하기 때문에 은 의외로 ‘껍질’이다. 이유는 뭘까? 랍스터는 노화되지 않고 평생 성장 만 반복한다. 그러나 랍스터와 같은 갑각류 생물들은 껍질을 갈아입는

탈피를 한다. 탈피하면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지며 커지는데 몸도 껍질 에 맞게 함께 커지게 된다. 랍스터의 경우 이 같은 탈피의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친다. 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탈피할 때마 다 랍스터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 부닥쳤을 때 느끼는 불안이나 위협의 감정이다. 초를 다투며 살아가 계, 금전적 스트레스 등등 끝도 없다. 스트레스 초기에는 불안, 초조, 걱 정, 근심 등 나쁜 감정이 발생하고 점차 우울증으로 바뀐다. 물론 스트

레스 원인이 사라지면 대부분 불안이나 우울 증상은 사라지게 되지만,

스트레스 요인이 너무 과도하거나 오래 지속하고 반복될 경우 각종 정 신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 중독성 사고의 저자이며 정신과 의사이자 율법학자인 Abraham

J. Twerski 박사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영상에 나온 그의 육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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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에 대해 여러분께 해줄 말이 있어요 그리고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치과에 앉아있었습니다.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바닷가재는 어떻게 자라나?’에 대한 얘기였죠. 뭐라는 거야 어쨌다는 거야…. 그러나 곧 관심이 생겼죠. 그들이 말하길, 바닷가재는 연하고 흐물흐물한 동물인데, 아주 딱딱한 껍질 안에서 산다고 했죠. 그런데 그 딱딱한 껍질은, 절대 늘어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닷가재는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요? 바닷가재는 자랄수록 껍데기는 그들을 점점 더 조여옵니다. 그들은 압박을 받고, 아주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포식자로부터 안전한 바위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듭니다. 그런데 결국, 이들이 또다시 자라면, 새 껍데기도 불편해지게 되죠. 그러면 다시, 바위 밑으로 들어갑니다. 이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할 겁니다. 바닷가재가 자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바닷가재에게 의사가 있었다면 그들은 절대자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자마자 의사에게 달려가서, 신경 안정제를 처방받아 먹고 다시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요! 절대로 자신의 껍데기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당신에게 스트레스가 일어났을 때 그것은 당신이 성장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역경을 제대로 이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Abraham Joshua Twerski (87세)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랍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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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ic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특산물

고사리

삶아서 말려두었다가 물에 불려먹는 이유 고사리는 양치류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한국과 캐나다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담백한 맛과 마치 부드러운 고기를 씹는 식감이 특징인 고사 리는 주로 어린잎은 삶은 뒤에 말린 걸 물에 물려서 나물로 많이 섭취하며, 전골 이나 육개장 등에 넣어 먹는다. 고사리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비타 민과 무기질 성분 등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다. 글

편집부 참고자료제공 긱섬(GITXM)

조선왕조실록에 임금에게 진상하는 특산물로 기록돼 있다는 고사 리.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먹는 고사리지만, 유럽과 미국 등 에서는 독초로 분류해 식용을 금하기까지 했다. 생고사리에 는 발암물질의 한 종류인 티아민, 즉 비타민B1 분해효 소인 티아미나아제가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새순일 때 가장 많다 는 티아민 분해효소는 물에 잘 녹을 뿐 아니라 열

에도 약하다. 티아민은 알칼리에 약한 화합물이 기 때문에 소금물로 삶으면 독성을 더욱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지혜

로운 우리 옛 조상들은 생고사리를 삶아 말려 뒀다가 물에 불린 뒤 다시 삶아서 요리했다.

말린 고사리는 요리하기 전에 하룻밤 정도

찬물이나 쌀뜨물에 충분히 담가놔야 한다.

끓일 때도 일반 나물처럼 살짝 데치는 것이

아니라 소금물에 최소 10분 이상 충분히 삶아

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고사리독소는 안전

하게 제거된다. 삶은 후에도 약 5시간 정도 불려

준다. 중간에 물을 한 두 번 갈아주면 더 좋다. 이런

과정이 귀찮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고사리는 영양

이나 맛에서 월등하다.

(다음 호에는 고사리의 효능에 대해 알아보자.) 98


캐나다 태평양 연안 산맥 청정지역에서 채취한 고사리를 말리기 위해 작업 중인 원주민들 모습

미국내 구입문의 김진수 TEL : 201-232-5599 E-mail : jinsoo.kim@gitxmushroom.com

서울 연락처 ITK 신문식 TEL : +82 10-3748-1353 www.thechaga.com 99


Clinic

생활수칙 몇 가지만 바꾸면 코골이도 예방된다

코골이에 도움되는 꿀팁 10 코골이는 본인의 수면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코골이 소리 때문에 함께 자는 사람 에게도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병원을 찾아도 수술로 치료가 되는 확률은 30~50% 정 도이며 나머지는 원인과 증상에 따라 다양한 처방이 내려진다. 코골이를 치료하는 병원마다 제시하는 치료법도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맞는 치료법이지만 나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어 서 환자들은 어느 치료법에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코골이 방지 베 개, 코골이 방지 수면 조끼, 코골이 방지 침대 매트리스 등 코골이 치료에 좋다는 특허 제품 이 넘쳐난다. 코골이 치료 하나에 특허가 많다는 건 그만큼 딱 떨어지는 정확한 치료법이 없 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골이는 수술로만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정확한 진단을 통해 본인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찾고 생활습관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습관 몇 가 지만 바꾸면 코골이가 예방되는 간단한 방법과 코골이에 도움이 되는 식품을 알아보자. 글

편집부

* 생활습관 바꾸기

3. 잠잘 때 체위를 바꿔본다.

1. 가능하면 술자리를 피하자.

더 많이 한다. 따라서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 것이 좋다. 수면 자세를 바

과도한 음주는 중추신경계, 횡격막 근육, 턱을 이완해 코를 골 가능성 을 높인다고 한다. 평소 심하게 코를 곤다면 먼저 음주를 줄이는 게 가 장 좋은 방법이다.

천정을 보고 자면 혀가 뒤로 밀리면서 목구멍이 좁아지므로 코골이를 꾸는 것만으로 코골이가 80%까지 줄어든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있듯

이 가장 이상적인 수면 자세는 목 뒤 6cm, 어깨 2cm 이상 올리고 측면 으로 누운 각도를 30도로 유지하는 게 좋다.

2. 체중을 줄이자.

4. 높은 베개와 깨끗한 베개를 사용하자.

부위 지방 때문에 기도가 눌리면서 코골이뿐 아니라 수면무호흡증이

편해져서 코골이를 완화할 수 있다. 또 베개에 묻어있을지도 모를 알레

과체중이나 비만인은 대부분 코골이도 심하다고 한다. 비만이 되면 목 생길 위험이 크다. 체중을 감량하고 건강한 식생활, 운동을 병행해서

과체중이 되지 않도록 하자. 단, 수면 전 운동은 오히려 숙면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잠들기 6시간 전에 운동을 마쳐야 한다. 100

베개가 높으면 비강과 입을 통해 공기가 더 잘 통하게 된다. 숨쉬기가 르기 유발 원인인 집 먼지, 진드기가 코골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베개 커버를 자주 바꿔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자.


5. 알레르기가 있다면 치료하자.

3. 천연 주스

항히스타민제를 사용해 알레르기를 먼저 치료하는 게 좋다. 집안에 가

강한 방법이다. 과다한 수분 저류가 제거되므로 몸이 더 가벼워짐을 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코가 자주 막혀서 코를 곤다. 코막힘 해소제나

구, 카펫, 커튼 등에 먼지가 쌓이면 알레르기가 악화되므로 자주 청소 해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해야 한다.

천연 주스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쉽고 건 낄 것이며, 삶의 활력이 넘치게 된다. 물론 코골이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식사 전에 과일 주스를 마시면 신진대사를 촉진 시키고 신체 장기가 제 대로 기능할 수 있게 한다. 천연 주스는 코골이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아 꾸준히 마시는 게 좋다.

* 코골이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음식 1. 양파를 머리맡에 놓고 잔다.

4. 생강과 민트

히 뿌린 후 접시에 올려놓고 다음 날까지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자면 코

도록 돕기 때문에 코골이 원인 중 하나인 비만 예방에도 좋다. 생강을

양파는 기도를 여는 데 도움이 된다. 양파를 반으로 잘라 소금을 적당 골이가 크게 줄어든다. 또 양파를 큰 조각으로 잘라서 15분간 끓인다. 이 물에 흑설탕 약간 넣어 차로 마신다. 잠자기 2시간 전에 마시는 게 좋다.

생강은 위의 소화 과정을 더 가속해, 더 부드럽게 음식을 소화할 수 있 잘게 잘라서 5분간 끓인 뒤 식으면 꿀을 섞어 잠자기 30분 전에 차로 마신다. 민트차 역시 코의 기도를 여는데 좋은 식품이다. 5. 꿀차

2. 소금물로 코를 씻는다.

소금물은 막힌 비강을 뚫어, 코로 숨 쉬고 코를 골 가능성을 낮춰줄 수 있다. 물 한 컵에 소금 반 티스푼 넣어 섞은 다음, 각각의 콧구멍에 용액

을 약간씩 흘려 넣으면 된다. 생리 식염수를 코에 뿌리고 비강으로 숨

쉬는 것은 코골이를 없애는데 도움 된다. 실온의 물에 소금 1/2t, 베이

따뜻한 꿀차를 잠들기 전에 마시면 목을 완화해 코골이 증상을 줄여주 는 역할을 한다. 꿀은 항균제 구실을 하므로 몸 안의 박테리아를 없애 주고 인후염 후두염을 예방하여 코골이에 도움을 준다. 자기 전 마시면 숙면에도 도움이 되고 코의 염증을 완화 시켜준다.

킹소다 약간 넣으면 생리 식염수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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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뉴욕 도넛 열전(列傳)

Best Donuts in New York City 사랑하는데 멀리해야 하는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 같은 음식 중의 하나인 도넛. 다이어트를 하는 모든 사람의 공공의 적. 그런데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도넛은 과거 미국에 이민 온 네덜란드계 사람들이 즐겨 먹던 음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밀가루, 설탕, 버터, 달걀, 우유를 넣은 반죽을 뜨거운 기름에 3분 정도 튀겨내는 도넛은 개당 열량이 높아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사는 나를 위해 가끔씩은 피곤하고 지친 몸을 달콤한 도넛 한 개쯤으로 위로해 주는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닐까! 뉴요커들 사이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도넛 가게 몇 군데를 소개한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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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Underwest

플레인, 슈가 글레이즈 같은 기본 도넛 종류 말고도 브

라운 버터, 코코아 라즈베리, 라임 코코넛 같은 독특한

맛의 도넛으로 유명하다. Underwest의 도넛은 이 집 계

산대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옛날식 커피나 에스프레소와 먹

으면 더욱 맛있다. 정말로 코딱지만 한 조그만 가게가 재미

있게도 세차장 안에 있어 많은 이들의 눈길을 이중 삼중으로 끄는 곳이다. 638 W. 47th St, New York Dough

들어는 보았는가 얼굴만 한 도넛?! 아, 물론 연예인 얼굴만 하긴 하다. 그래도 도넛계의 큰 바위 얼굴격인 보름달 같은 빅사이즈 도넛이 바로 Dough만의 도넛이다. 뉴욕에서 커피깨나 마신다는 사람들이 좋아하

Dominique Ansel Bakery

이제 뉴욕에서 조금 잘나간다는 디저트 가게에서도 살 수 있지만 직접

지 않고 쿨한(혹은 쿨한 척하는) 뉴요커들을 호들갑 떨게 만든 요물

는 Stumptown coffee도 함께 사갈 수 있는 곳이다. Dough의 도넛은 브룩클린 본점에 가서 맛보는 것이 제맛이다. 448 Lafayette Ave., Brooklyn Peter Pan Donut & Pastry

만일 피터 팬이 이 도넛을 먹었더라면 여자친구인 Wendy도, 짝꿍인 Tinkerbell도 네버랜드로 돌아가는 것도 정말 까맣게 잊었을 맛이다. 살짝 글레이즈를 입힌 이 집만의 도넛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의식주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만 보며 살아서 그런지 좀처럼 흥분하 이 하나 2013년에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이름하여 크로넛(Cronut:

Croissant-Donut)! 페이스트리도 아닌 것이 도넛도 아닌 것이 넌 누

구더냐! 이 크로넛이 처음 태어난 곳이 바로 이곳 Dominique Ansel Bakery이다. 이제는 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크로넛이지만 진짜 ‘원조’ 크로넛을 먹어보고 싶다면 이 곳으로 고고~ 189 Spring Street, New York

커피에 찍어 먹는 맛은 일품이다. ‘도넛을 커피에 찍어 먹다니?’하고 이

Donut Plant

넛을 먹고도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블랙 라즈베리 젤리 몇 개를

쫄깃한 식감의 도넛과 촉촉한 케이크같은 도넛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

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보시라. 유명한 슈거 글레이즈 도

사서 가게 문턱을 나서보길 권한다. 참, 이곳은 새벽 4시 30분에 영업

을 시작하기 때문에 정말 막 튀겨낸 도넛을 먹길 원한다면 당신을 즐 겁게 그리고 기꺼이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727 Manhattan Ave., Brooklyn

한국에도 지점이 있는 Donut Plant에서는 이스트로 빵빵하게 부풀린

다. 도넛 안에 잼이 든 스퀘어 도넛도 유명하지만 Donut Plant에서 꼭 맛보아야 할 것은 크렘불레(Crème Brulee) 도넛! 379 Grand Street, New York 220 West 23rd Street, New York 103


지난 추억과 아름다운 기억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되돌아보면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시련과 역경, 실패와 성공의 긴 여정 속에서 이별, 행복, 감동의 순간을 담아낸, 지나온 인생을 담은 회고록은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오랜 경험의 집필자, 자서전 전문 작가와 실력 있는 최고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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