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카사 뉴욕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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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CASA NEW YORK STORY FOR THE MODERN LIFESTYLE

에스카사

Photo by Christopher Kim Photography

COVER STORY 다이아몬드보다 강하고 불꽃처럼 화려하게 쥬얼리 디자이너 Jules Kim PEOPLE FOCUS 리얼리티의 힘을 믿는다 ‘범죄도시’ 영화감독 강윤성

Vol.16

June

ART&CULTURE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 구구 킴(GuGu Kim)

LIFESTYLE 6월의 뉴욕 이벤트

삶의 사계절 소프라노 박정화 교수

보헤미안의 영원한 천국 그리니치 빌리지

‘정직과 기다림의 미학’ 옻칠 화가 전인수

6월의 결혼식 요리엔 어떤게 좋을까?

진도 씻김굿과 산조, 2018 뉴욕 산조 페스티벌

몸으로 마음을 전하는 바디 랭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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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June 2018 Vol.16

12

24

Cover Story

Education

12

32

쥬얼리 디자이너 & 아티스트 Jules Kim

“왜 그때 같이 좋지는 않을까?”

다이아몬드보다 강하고 불꽃처럼 화려하게

Stronger than diamonds and hotter than the flames of passion

Jewelry Designer & Artist, Jules Kim of Bijules

6월 뉴욕 이벤트 22 6월의 뉴욕 이벤트

People Focus 24

‘리얼리티’의 힘을 믿는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영화감독 강윤성

8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 (15)

이달의 좋은 글 35 바바 하리다스

36

VMN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전) 부사장 정승희

유학생에서 VP가 되기까지 미국직장 생생 체험기(6)

42

전문 상담인들의 수퍼바이저 – Fairfield University 대학원 이수연 교수

지난 제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치료합니다(1)

44

새책 소개

‘정해진 미래 시장의 기회’ 조영태 교수


뉴욕문화예술스토리 www.story-casa.com

<에스카사 멤버 가입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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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TEL 201.397.2107

멤버쉽 신청서 (미국)

48

연회비 $100

이달의 작품과 시 46

Please make the check payable to

500 Drawings by North Korea Refugees about Their Hometown

반성 / 강익중

우리 이웃이야기 48

음악과 함께 누리는 삶의 사계절

소프라노 박정화 교수

Four Seasons of Musical Life

Julie Junghwa Park a Soprano and a Pedagogue

T&B Publishing LLC and send to 2160 North Central Rd. Suite 203C Fort Lee, NJ 07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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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NAME)

주소 (ADDRESS /APT)

56

Art & Culture 56

손 끝에 나의 영혼과 온 마음을 담는다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 구구 킴(GuGu Kim)

My soul and heart at the tip of my fingers 연회비 100,000원

(PLEASE PRINT)

Finger Painting Artist, GuGu Kim

66

진도 씻김굿과 산조, 뉴욕 무대를 장식하다

2018 뉴욕 산조 페스티벌

68

Father’s Day

파더스데이 유래

70

옻칠은 정직과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전통은 고루하다는 인식에 맞서는 옻칠 화가 전인수

74 CITY/STATE/ZIP

TEL

E-Mail

명품발레 골라보기

6월에 꼭 봐야 하는 발레공연


80

100

Life Style

Clinic

76

94

결혼식 요리엔 어떤게 좋을까?

치아 못지 않게 중요한 잇몸 관리

Special dishes you should definitely have at your wedding

80

세 가지 재료로 일분 안에 완성되는 초스피드 건강식

생호박 아보카도 소스 파스타

Need Three Ingredients and Done in One Minute

Raw Zucchini Pasta with Avocado Sauce

82

Friends Apartment Building in New York

프렌즈 아파트

84

말보단 느낌이 빨라요~

소통의 지름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86

독자칼럼

고향에 두고온 추억은 언제나 그 자리에

88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레는 곳

보헤미안의 영원한 천국 ‘그리니치 빌리지’

어떤 칫솔이 좋을까?

95

고사리 효능

96

스마트폰 사용이 많아지면서 늘어나는

거북목 증후군과 그 치료법에 대해서!

Travel 98

일본의 전통 축제 ‘마쓰리’

제대로 알고 맘껏 즐겨보자

100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오기까지

함께함으로 행복한 여행

92

용기 있는 자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세상, 잠비아

아프리카 잠비아 ‘피데이도눔’ 사제 김한기 신부

11


Publisher Dr. Charles Changsoo Lee

에스카사 ( )는 S-Story, Casa-집, ‘이야기를 모은 공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Editor in Chief Youngjoo Lee ●

Executive Director / Hyobin Lee

는 각 분야 최고의 필진이 만드는 뉴욕 스토리 잡지입니다.

Executive Editor / Dr. Anderson Sungmin Yoon Managing Editor / Jenny J. Lee Senior Writer / Won Young Park, Juyoung Lee, Young Choi

는 자신의 삶을 아끼는 20~40대 독자 가 주요 대상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삶에 향기를 더하는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는 Family잡지입니다.

는 빠르게 변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리포터 가 전해주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문 화예술, 패션, 라이프 스타일, 화제인 물 focus, 교육, 육아, 요리, 여행, 건 강정보 등을 아우르는 생생한 이야 기를 가득 담았습니다.

는 뉴욕에서 발행하며 뉴욕, 뉴저지는 물론 워싱턴 D.C, 보스톤, L.A., 시애 틀, 애틀랜타, 사우스캐롤라이나, 달 라스 지역과 캐나다 토론토, 서울, 대 구, 부산지역 독자가 함께 읽는 고품 격 글로컬 (Global + Local) 잡지입 니다. 는 영문으로 추가된 주요기사를 통해 젊은 세대와 영어권 독자에게 우리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자랑스러 운 문화전도의 Hub입니다.

는 독자 후원과 의 가치를 인 정해 주는 광고만으로 제작하므로 독자 품격에 맞춘 수준 높은 컨텐츠 가 가능합니다.

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협력사의 격려 에 힘입어 더욱 노력하여 최고의 컨 텐츠로 보답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

12

를 만드는 사람들 일동

www.story-casa.com

English Translation / Hyobin Lee, Taeriah Kim, JuWon Park, Katie Lee Senior Columnist / Stefano Jang, Sooyeon Lee-Garland Legal Columnist / Minji Kim Science Columnist / Dr.Joon Kim, Dr.Byung Hee Hong Music & Arts Columnist / Sunboon Jeong, Dr. Yejin Han Medical Columnist / Dr. Francis Oh, Dr. Byungchul Kang, Dr. Kyungah Lim

Managing Director / Sarah Chung ●

Advertising Director / S.H. Chung HR & Administrative Manager / Katie Lee Design by design212 Photographer / Kibum Kim, George Jung Junior Reporter / Katie Lee, Jae Won Min Senior Contributing Editor / Young Hee Baek Contributing Editors Jimyung Lee, Hyunmin Kwon, Bohyun Im, Joohee Han, Hyunmee Kang, Sujin Myung, Sunyoung Lee, Jina Seo, Youngmee Shin, Annie Na, Minjae Kim, Dongha Kim, Jude Lim ‌ ‌ is comprised of Story and Casa (House), thus carrying the meaning of ‘a place where stories are gathered’. ‌ ‌ is a magazine filled with stories inside New York, written by some of our best writers for each field. ‌ ‌ is a family-friendly magazine that welcomes all readers in their 20’s thru 40’s. ‌ ‌ is full of stories that people will relate to, stories that add more scent to our lives, and stories that brings the family together. ‌ ‌ exudes vibrancy in each article, with a focus on culture, art, fashion, lifestyle, education, parenting, cooking, travel, and health information, all centered around New York City. ‌ ‌ is a high-quality global and local magazine published in New York, which targets readers in New York, New Jersey, Washington, DC, Boston, L.A., Seattle, Atlanta, Dallas, South Carolina cities, Toronto, Seoul, Daegu and Busan. ‌ ‌ is the hub for cultural and artistical guidance, by including main stories written in English in order to accommodate our English-speaking, younger readers. ‌ ‌ is solely funded through contributions from our subscribers and exclusive advertisements, thus being able to provide the highest quality for our every issue. ‌ ‌ promises to work hard through the encouragement and support of our readers and subscribers and deliver the best content in our future endeavors. -Creators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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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Jules Kim 14

Photography: Christopher Kim


다이아몬드보다 강하고 불꽃처럼 화려하게

쥬얼리 디자이너 & 아티스트 문을 두드리니 보는 이를 압도하는 큰 키에, 양팔에 커다란 쌍검 문양의 문 신을 한 여인이 맞아준다. 양손에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묘한 쥬얼리를 한가 득 걸치고 강렬한 아우라를 뿜으며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 예쁘다기보다 선 이 굵은 잘생긴 서구적인 외모 속에 묘한 동양적 느낌을 풍긴다. 패션모델 카일리 제너(Kylie Jenner)부터 미국의 유명 팝가수인 리하나(Rihanna)와 래 퍼 카디 비(Cardi B), 그리고 전 세계인의 디바인 비욘세(Beyoncé)까지 그들 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는 바로 쥬얼리 브랜드 비쥴스(Bijules)의 오 너이자 디자이너인 쥴스 킴(Jules Kim)이다.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독특 한 얼굴에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묘한 매력을 지닌 그녀를 만나보면 평범 함을 거부하는 그녀의 작품들이 누구를 꼭 빼닮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굵은 진주 알로 꾸민 벽면과 신비스러운 핑크빛 불빛이 뒤엉킨 뉴욕 맨해튼 Bowery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글 Sarah Chung 영문감수 Katie Lee 정리

와 쥴스 킴이 만났다. 편집부

15


손톱에 끼우는 네일링(The Nail Ring), 손가락 관절에 끼우는 너클링 (The Knuckle Ring), 손바닥 전체를 감아 도는 핸드릿(The Handlet).

그녀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똑같은 금, 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재료라 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단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 요즈음 그녀

의 사랑을 듬뿍 받는 진주도 마찬가지이다. 할머니가 휴지에 싸서 장

롱 속에 고이고이 깊숙이 간직하셨을 것 같은 진주도 힙합 래퍼가 당 장이라도 몸에 걸칠 수 있을 만큼 트렌디하고 독특한 쥬얼리로 변신을 한다. 거침없는 말투, 날카로운 눈매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쥴스 킴은 뚜렷한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쥬얼리 디자이너를 넘어선 아티스 트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문화와 예술의 시대이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음악

회나 미술 전시회에 가지 않더라도 문화와 예술은 이미 우리 생활에 깊 숙이 들어와 있다.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잔뜩 성의 없이 쌓여 있는 물건 틈에서 하나 괜찮은 걸 건지는 게 아니

라, 나를 돋보여 주고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나만을 위한 제품 을 고르는 경험을 파는 시대이다.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녀만의 독 특한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쥬얼리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는 쥴스 킴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내 눈에 비친 세상 –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아름답다

좋지 않아 학교에 간 동안 저와 쌍둥이 여동생 샘(Sam)을 돌봐줄 베 이비 시터를 둘 수가 없었죠. 그래서 어머니는 아예 저희 둘을 데리 고 수업을 들으러 다니셨어요. 저랑 제 동생은 어머니의 건축학 강 의실을 놀이터 삼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학원생들의 수업을 함께 들으며 자랐답니다. 교수님들이 쓰는 칠판의 한쪽 구석에다 그림도 그리고 말이지요. 평범한 가정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엎질러진 우유’를 놓고 후회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좋은 환경도, 나쁜 환경도 말이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어요. 주어진 환경이 최상이 아니라면 거기서 나오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약 40년 전 조각을 공부했던 젊은 한국인 청년은 건축공부를 하던 아름

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를 두었다. 쌍둥이 자매 중 30분 먼저 태어난 언니인 쥴스 킴은 내가 남

다. 어머니를 보며 살아가는 동안 무엇이 끊임없이 ‘나를 앞으로 나아

다운 아이리쉬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예쁜 쌍둥이 자매 들과 다르다는 것, 아니 남들이 나를 다르게 본다는 것을 어릴 때는 몰

랐다. 심지어 왜 동네 남자아이가 나를 보고는 찢어진 눈 흉내를 내는지 그 행동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주로 이민을 오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포함해서 4남매를 두셨어요. 1950년대 미국에서 한국인, 아니 아시 아인 이민가정은 정말 보기 드문 경우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죠. 더 군다나 한국인 아버지와 아이리쉬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었던 저는 더욱 남들에게 다르게 보였을 거에요. 내가 왜 남들과 다른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지만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접 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도 그러했고, 큰고모 는 결혼해서 아부다비에 살고 계셨고, 작은고모는 아프리칸 어메리 칸과 결혼하셔서 역시나 혼혈인 사촌들도 있었죠. 그냥 저절로 종이 에 스며드는 물감처럼 다양한 인종과 문화는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 를 뿐임을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이해하며 성장했어요. 아마도 그래서 관습적인 획일성을 거부하고, 세상을 보는 나만의 새롭고 다 양한 시각과 독창적 사고가 제 DNA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믿어요.” 스스로 설 수 있는 나, 이미 끝난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다. 어머니는 당당히 홀로서기

를 했고, 건축학 공부를 마친 후엔 쌍둥이 자매를 데리고 친정이 있던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로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점차 쌍둥이 자매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아이들로 커갔다.

“이혼하신 후에도 공부를 계속하신 어머니는 건축학 석사를 딴 뒤 에 우리를 데리고 아이리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시던 버지니 아로 이사를 하였어요. 어머니가 공부하시는 동안 경제적인 형편이 16

쥴스 킴은 아직도 그녀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어머니를 깊이 사랑한

가게 하는 이유’여야만 하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 자신 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너무 어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의 건축학 강의실 한 귀 퉁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에너지로 가 득 찬 분위기 속에 자랐어요. 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어린 두 딸을 데 리고 혼자 살아나가야 했지만 늘 긍정적이셨고, ‘조금 더 나은 나’를 위해 시간과 열정을 아낌없이 쏟는 분이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보 면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부 끄럽거나 두려운 것이 아닌, 오히려 당당하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어요.” 그래서일까. 범상치 않은 쥬얼리 디자이너인 그녀에게는 범상치 않 은 이력도 있다. 쥬얼리 비즈니스를 하면서 맨해튼에서 디제잉도 하

였던 쥴스 킴은 2004년도 당시 뉴욕 맨해튼에서 잘 나가는 클럽의 밤 문화를 사로잡았던 꽤 유명한 DJ로 활동했다.

“내가 선곡한 곡들을 새롭게 믹스를 해서 틀어주는 음악에 열광하 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엄청난 큰 희열을 내게 가져다주었어요. 클 럽이나 파티에서 만나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했던 거에요. 하지만, 내 안에 가득 담겨 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쏟아내기엔 부족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는 비쥴 스(Bijules)가 태어났죠. 디제잉을 하던 클럽과 파티에 내가 만든 쥬 얼리를 직접 하고 나가서 적극적으로 알리고 인맥을 쌓으면서 피 드백도 열심히 받았어요. 내가 만든 디자인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에 쥬얼리 디자이너를 넘어서서 비즈니스맨이 되고자 한 나름의 노력이었어요.”


Photography: Christopher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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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Kristiina Wilson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 – 나의 쥬얼리

바링(The Bar Ring), 네일링(The Nail Ring), 너클링(The Knuckle

Ring), 핸드릿(The Handlet) – 비쥴스(Bijules)의 대표적인 시그니처 아 이템들이다. 어떤 쥬얼리를 누구를 위해 무슨 이유로 만들든지 쥴스 킴 은 그 속에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던 순간이나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한다.

자신을 위해서 만드는 쥬얼리도, 평범한 고객을 위해 만드는 쥬얼리도, 유명한 스타를 위해 주문 제작하는 쥬얼리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쥬얼 리는 쥴스 킴에게 그녀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매개체이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까지 플루트 연주를 공부했는데, 바링은 그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에요. 2003년 바링을 만들었을 때 플루트 라는 악기에 대한 저의 사랑과 집착이 이 반지에 투영되어 있다 는 것을 깨달았죠. 비욘세(Beyoncé)가 2009년 ‘스윗 드림(Sweet Dreams)’ 뮤직비디오에서 끼고 나온 손톱 모양의 18K 네일링에는 18

저와 제 쌍둥이 여동생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저랑 제 동생 샘은 그 또래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어머니의 화장품을 가지 고 놀았고, 긴 손톱을 예쁘게 칠하고 네일 아트를 한 어른들을 동경 하며 손톱에 붉은 라즈베리를 올려 보곤 했지요. 그래서 네일링 속 에는 어서 빨리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픈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내가 만드는 쥬얼리 속에 나 자신의 일부가,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은 결국 ‘내가 누 구인가’라는 내 정체성에 대한 답의 연장선인 거죠. 그래서 비쥴스 (Bijules)의 쥬얼리를 주문 제작하는 고객이 있으면 그들의 이야기 를 많이 들으려고 해요. 무엇을 쥬얼리에 담고 기억하고 싶은지를 알고 그것을 쥬얼리 속에 녹여서 담아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것 이 약혼이든, 결혼이든, 또 동성 결혼이든 아이의 탄생이든 혹은 사 랑하는 이의 죽음이든 말이죠.”


적보다 실패한 적이 더 많았다고 당 당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는 그야말 로 자신감 그 자체이다.

내 몸 속에 흐르는 아티스트의 피

쥴스 킴은 열 아홉 살에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했다. 프랑스어를 한 자도 모른 채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특유의 뚝심과

담대함, 그리고 열정으로 악착같이 공부해서 지금은 유창하게 프랑스 어를 구사한다. 패션의 중심지인 프랑스에서 쥬얼리 비즈니스의 가능

성을 보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자신의 독립 브랜드인 비쥴스를 만

들었다. 단지 디자인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직접 주물 작업 을 하는 법을 배우며 말이다.

“내가 말했나요 한국인 아버지가 조각가이면서 블랙 스미스 (Blacksmith)이셨다고요? 맞아요, 그것을 기억해낸 순간 소름이 돋 았어요! ‘아, 내 피 속에 잊고 있던 아버지의 피도 흐르는구나…’하 고 말이죠. 어머니와 쌍둥이 동생, 이렇게 셋이 보냈던 나의 유년시 절로 인해 한국 문화와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자라면 서 나의 아티스트적 재능이 우연히 하늘에서 뚝 떨어져 생긴 것이 아니고, 또 어느 한 쪽에서만 받은 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죠.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두 분 모두에게서 온 것이었어요. 대부분의 한국 사 람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그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아버지나 아버지 쪽 친척들을 보면 모두 열정 적이고 감성이 풍부하지요. 그래서인지 흥미롭게도 예전부터 조금 씩 그림을 그려오셨던 아버지뿐만 아니라 삼촌, 고모, 사촌들도 모 두 예술 분야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림이 되 었든, 사진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내 한국인 가족과 친척 들이 자신의 감정을 소통하는 방법인 거죠.” 나는 쥴스 킴 – 나만의 유산을 만들고 싶다

네일링이라는 기존에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았던 쥬얼리 아이템을 시장에 내놓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쥴스 킴. 비쥴스라는 독립 브랜

드를 가지고 데뷔를 한 지도 15년이 흘렸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건 재한 자신과 자신의 브랜드가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그녀. 성공한

“반지가 꼭 손가락에만 끼워 있어 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손톱 끝 에 끼워 보면 어떨까요? 네일 아 트와 쥬얼리가 만난 네일링을 내 놓았을 때 기존 시장에 없던 제품 이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독특한 시각과 관점이 상업 시장에서 비즈니스의 옷을 입고 실루엣을 갖추게 되면 그 시 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아이콘 이 되지요. 그럼 그 제품은 긴 생 명력을 가질 수 있게 되고요. 그러 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그리 Art Credit: Domingo S. Kim 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진정성과 진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15 년간 쥬얼리 비즈니스를 하며 좌 충우돌 하다 보니 노하우도 많이 쌓였어요. 이젠 그걸 막 쥬얼리 시 장에 진입하려는 젊은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요. 바링, 네일링, 너클 링 그리고 핸드릿 등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쥬얼리를 만들었지만, 수많은 복제품이 나온 것도 사실이에요. 순식간에 아티스트의 창작 물이 모방품으로 복제되는 쥬얼리 시장에서 저작권(“Copyright”)의 문제는 심각하죠. 처음에는 저 또한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생각을 조금 달리하고 있어요. 카피라이트(“Copyright”)가 나를 보호해주 지 못한다면, 나는 차라리 카피 레프트(“Copyleft”)로 가겠다고 말이 죠. 즉, 저는 오히려 제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젊고 유능한 독립 디자이너를 도와주는 걸 택했어요. “Glean Machine”이라고 해서 얼마 전부터 씽크 탱크와 같은 모임을 만들 어 2주에 한 번씩 젊은 친구들과 모여 함께 그들의 브랜드 런칭을 고 민하고 조언과 피드백을 주고 있어요. 단지 ‘조금 인기가 있다 혹은 잘 팔린다’로는 성공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다르다는 것, 독특한 시 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려 주고 있어 요. 남과 다른 것은, 그리고 남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두 려움의 대상이 아니에요. 옳든 그르든 자기 자신의 직감을 믿고 그 냥 부딪히는 거예요.” 스스로가 비쥴스의 얼굴인 쥴스 킴.

그녀의 몸을 흐르는 피의 반은 한국인이다.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쥴스 킴의 양팔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쌍검 문양의 문신이 있 다. 한쪽은 방어용으로, 다른 한쪽은 공격용으로 쓰는 쌍검술은 전통적

으로 고난도의 무술로 높은 수준의 멀티 태스킹과 집중력, 그리고 밸 런스를 요한다.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쥬얼리 디자이너로서의

독창성과 진정성, 그리고 쥬얼리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영민함을 놓치

지 않으려는 쥴스 킴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두려움마저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내와 끈기를 무기 삼아 도전과 열정으로 여기 까지 온 쥴스 킴. 지금 이 순간 쥴스 킴은 그녀의 양팔에 새겨진 쌍검을 쥐고 포효하며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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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elry Designer & Artist, Jules Kim of Bijules Stronger than diamonds and hotter than the flames of passion A tall, attractive-looking woman with a strong aura whose arms are covered with tattoos opened the door to welcome

. Her wide smile shined bright like the

gold rings and earrings she was wearing. This wonderful lady is Jules Kim of Bijules – the hot and extraordinary jewelry brand sought after by major celebrities, from Kylie Jenner to Rihanna to Cardi B to BeyoncÊ! Obviously, her unique jewelry pieces reflect her own image.

interviewed Jules Kim in her shop on The Bowery

in Manhattan, where intriguing pink lights made the pearls on the wall glimmer.

20


With Jules Kim’s passionate touch, ordinary materials such as

No Point in Crying over Spilled Milk

form of art. Pearls, which have grasped her attention recently, are

sister, Sam, learned to become independent and adapt quickly to

gold, silver, and diamonds can be transformed into a whole new

not an exception. Even a tiny jewelry piece made of pearl should be special enough to be presented as a trendy item, so that a

hip-hop rapper would want to buy it on the spot. It was such a refreshing experience talking to Kim, who has a strong business philosophy of her own, and clearly knows what she is doing. Being Different is Beautiful

About 40 years ago, a young Korean sculpture student fell in

love with a beautiful Irish woman studying Architecture. Then eventually, the couple had twin girls. One of the twin girls, born 30

minutes earlier than the other, was Jules Kim. The Young Kim had not the foggiest idea as to why people saw her differently, and did not even understand why she was so “exotic” She was too young and naive to be offended when a boy in her neighborhood joked about her “slanted” eyes.

Then one day, her parents decided to split. Jules Kim and her the new life once their parents divorced.

“Even after divorce, my mother continued to pursue her study in Architecture and finished her Master’s before she moved back to Virginia, where my Irish grandparents were. My mother was not able to afford to hire a babysitter, so she took us to her classrooms all the time while trying to acquire her Master’s. Literally, her classrooms were our playground and my sister and I grew up with grad school students! Her professors let us use a small corner of the blackboard, too. There is a saying that “There is no crying over spilt milk.” I learned that phrase very early in life. I knew that it was useless to become attached to certain circumstances. I cannot have control over anyone, but I can definitely control myself. Therefore, my feelings and reactions to any types of circumstances are all controlled by myself, whether the situation is good or bad. Look for opportunities, and just keep moving on.”

“My grandfather came to America in the 1950s and settled down in Wisconsin. Being the first-generation Korean family in Wisconsin or any other place in America at the time was very unusual. Furthermore, I am mixed – my father is Korean and my mother is Irish, so no doubt that I looked different from almost everybody. Even though I did not understand why I was “different” from others back then, I was naturally exposed to diversity. Of course, I should thank my parents for showing me and my twin sister, Sam, two very different cultures. In addition, one of my aunts has lived in Abu Dhabi and the other aunt was married to an African-American man, so I have biracial cousins as well. I eventually realized and accepted that I was different. I learned at a young age that “being different” is just a part of life. Perhaps that is why I have been able to develop a very liberal, unique and creative perspective of my own, constantly fighting against a myopic, standardized and uniformed one.”

Photography: Emmanuelle Trico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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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Christopher Kim

I am Not Afraid to Show Who I am

Jules Kim’s mother continues to be a big inspiration to her. Her mother taught and helped her find what to value in life to keep her moving forward. She was also the reason how Kim came to love herself.

“Of course, I was too young to understand her lectures in Architecture. But, the fun, the joy, and the aesthetic beauty shared and discussed in the classroom had enriched my childhood in both conscious and unconscious ways. Even though she became a single mom, my mother was always with full of positive energy, and was eager to invest time in herself. In spite of her challenging circumstances, the fact that she went back to school to better herself deeply inspired me to better myself as well. I learned from her that the pursuit of my dream and passion is not something to be ashamed or fearful of. It is rather the opposite – it is a beautiful thing to know what I really want and a natural thing to go for it. It is one thing that keeps me moving forward.” Interestingly, but not surprisingly enough, Jules Kim was a popular promoter and DJ at NYC’s top clubs back in 2004, who heated up the nightlife and created her own music community.

“I was pretty good, and I have to admit that it was quite fun to watch people enjoy my music. I was looking for a way to communicate to the outside world, and, to some degree, I was able 22

to achieve it while DJing and promoting. However, I wanted to create something that would last longer than a one-night party, and I have created it with gold, silver, and diamonds through my own independent jewelry brand, Bijules. That is how Bijules was born. I was actively promoting and advertising my jewelry items by wearing them at the club where I was DJing. I was extremely eager to get some helpful feedback from my nightlife community, and I was confident enough to take their feedback to make it work.” My Jewelry: A Communication Channel to the World

The bar ring, the nail ring, the knuckle ring and the handlet – all

of which are iconic pieces created through Bijules . Whatever she

makes and whomever she creates them for, Jules Kim wants to create objects that bring happiness by infusing stories into the jewelry. Whether her client is an average girl next door, an influential

celebrity, or even herself, Kim wants to bring a meaningful story into the long-lasting pieces. In the end, her jewelry serves as the communication tool for the story she is telling.

“The story behind the bar ring is based on my musical experience. I studied flute performance from childhood until university. Once I developed the bar ring in 2003, I realized the horizontal application of this ring was derived from my obsession with the instrument. That was the birthing moment of the bar ring. The iconic 18K nail ring donned by Beyoncé in her music video for “Sweet Dreams” (2009) was deeply inspired by my childhood desire to be more


feminine. My twin sister, Sam, and I always wanted to be womanly and wanted long, elegant nails, so we played with red raspberries on the tips of our little fingers. My inspiration comes from my life and my experience which are melted and molded into my work showing who I really am. Everyone has moments to celebrate or remember in life, such as marriage or divorce, gay marriage, birth or death, etc. As a storyteller, I am helping my clients embrace, capture, and keep it in precious materials.” Art Runs in the Family

Jules Kim traveled by herself first time at age 19 to study in France. She saw the potential of the jewelry business in the world mecca of fashion. Upon coming back to NYC, Kim immediately started her own independent brand, Bijules . Her passionate, creative,

and innovative ideas supported by determination made it work. In order to better understand the holistic process of the jewelry business, she took a class in goldsmithing, as well. Kim did not want to be viewed as just a “designer” who only

sketches not knowing what is doable and

not doable. If not doable, wondered how to make it work.

“Did I tell you that my Korean father was a sculptor and blacksmith? When I started taking the goldsmithing class, I remembered this and I got the chills! I realized that my artistic soul did not just randomly occur. It came from two beautiful, amazingly artistic people. People may think Koreans are not romantic or expressive enough. However, all of my Korean family members are very passionate and emotional, which I find to be very intriguing. One day, I was looking at the beautiful paintings and illustrations that my father drew and he wrote on one of them, “Happy 36th,” to my mother. Yes, a Korean guy was saying it a few decades ago to his wife! How romantic was my father! Interestingly in art, I could see the expression and reaction of my Korean family, including my aunts, uncles, and my father. I think my Korean family has communicated through art and it definitely runs in the family.” Creating a Heritage of My Own, in the Name of Jules Kim

The nail ring never existed in the contemporary fashion

marketplace until Jules Kim released it for the first time. It truly stirred the jewelry market in a sensational way. It has been

15 years since she launched her own brand, Bijules . Kim is

proud to say that by not giving up, she has made at least one

accomplishment. Moreover, she is not afraid to admit the fact that she has failed more than she has succeeded. Rather, she seems extremely confident to talk about her failures:

“Who said that a ring has to be worn on a finger? Why not sit on top of your fingernail? Why not bracelets resting on your hand? In a commercial context, if you maintain yourself focusing on your passion and goal, not losing a unique and matchless point of view and armed with sharp business acumen, you can create something iconic and trendsetting like the bar ring. The best way to do it is through authenticity and integrity. I’ve built up an ample amount of knowledge and experience after 15 years of staying in the business. Now I’d love to share it with young jewelers out there who want to get into the industry. After having created iconic and inimitable pieces such as the bar ring, the nail ring, the knuckle ring and the handlet, many of my designs have been copied by other jewelry and fashion brands. Copyrighting is a must in order to protect your ideas from being stolen. Regardless of these legal efforts, ideas are nearly impossible to protect. It is very frustrating as well. It is very frustrating as well. After 15 years, however, I think it’s important to “copyleft” and share my ideas and offer my help to people who are learning as independent designers and thinkers. More and more, I think it’s critical to not hold onto things that you feel you have ownership over. It is really important to be able to share in order to grow together. In the jewelry industry, just being popular won’t take you anywhere. You have to have your own competitive edge. It is ok to be different. Being different is a beautiful thing to embrace. Trust your instinct no matter if it’s right or wrong and go for it!” Jules Kim is the face of Bijules . The tattoos on her arms

are indicative of Korean twin swords, called “Ssang Gum”.

Traditionally, only highly skilled soldiers could use twin swords since a high degree of balance between multi-tasking and focus

was required. One sword could be used to block an opponent’s

attack, while the other was used to attack with a counter-strike. The tattoos seem to represent Kim’s conscious and unconscious

efforts to balance out keeping her authenticity as a jewelry

designer and harnessing business acumen as an entrepreneur. Embracing fear and joy, Jules Kim is getting back to the field shouting out holding, with the twin swords on her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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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뉴욕 이벤트

June New York Events 6월의 뉴욕 이벤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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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Photographed by George Jung


Solstice in Times Square

Museum Mile Festival 2018 is an Upper East Side open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요가를 한다면? 태양이 가장 길다는 하지날을

2018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

맨해튼 요가의 날

기해 맨해튼 한복판에서 하루종일 펼쳐지는 무료 요가클라스를 가보

자. 간단한 운동 복장과 요가 매트 그리고 마실 물만 있으면 모든 준비

완료다. 매트를 깔고 손을 뻗으면 맨하탄의 하늘과 맞닿는 특별한 경험 을 놓치지 말자. 숨을 들이쉬고 그리고 숨을 내쉬고… 수천명의 요기

들이 모이는 이 날은 요가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제의 날. 나마 스테!

가격: 무료

날짜: 6/21 하루 종일

장소: 타임스퀘어 (Times Squares, NYC)

house street party

매년 6월 둘째 화요일에 열리는 무료 거리행사이다. 5번가의 82번 길 에서 105번 길에 이르는 긴 뮤지엄거리 (Museum Mile)를 따라가다

보면 맨해튼의 유명 뮤지엄을 모두 돌아 볼 수 있다. 참가 뮤지엄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트뮤지엄(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과 구갠하임 뮤지엄(Solomon R. Guggenheim Museum )을 포함하 며, 남미문화 박물관인 El Museo del Barrio, 유태인의 문화유산을 전시한 The Jewish Museum 외 Cooper Hewitt, National Design

Museum, Neue Galerie New York,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등이다.

1560 Broadway Ste 800, New York, NY 10036

가격: 무료

The 36th annual Jimmy Fund Scooper Bowl

장소: 5번가 뮤지엄 마일 ( 5th Ave 82nd~105th)

미국 최대all-you-can-eat 아이스크림 페스티벌

날짜: 6/12 오후 6부터 9시까지 rain or shine

6월 1일 ~ 6월 3일까지 맨해튼 브라이언 파크에서 열린다. 미 전역

Concerts in the Parks (New York Philharmonic)

Creamery*, Baskin-Robbins, Ben & Jerry's, Big Gay Ice Cream,

뉴욕필의 야외 무료 공연 시리즈가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된다. 6/12부

의 아이스크림 업체와 스토어들이 참가하는데 올해는 Adirondack Breyers, Brooklyn Ice Cream Factory*, Häagen-Dazs, My/Mo

Mochi Ice Cream, Sambazon*, Talenti, Van Leeuwen Ice Cream*, Vice Cream and Wafels & Dinges 등이 참여한다. 아이스크림에 25불 이라면 비싼 듯 하지만, 하루종일 수백 가지의 아이스크림을 맘껏 맛볼

수 있다면, 아이스크림 러버들에게는 투자해 볼 만한 금액이 아닐까? 이 행사에서 모금된 돈은 지미펀드 (The Jimmy Fund)로 보내지게 되 는데, 이 것은 소아암과 성인암을 연구하는 보스턴에 있는 재단 Dana-

Farber Cancer Institute, and Spaulding Rehabilitation Hospital에 서 사용된다고 하니 더욱 기쁜 일! 특별하고 환상적인 아이스크림과 소르베를 맛보러 당장 달려가 보자.

가격: $25 (현장 판매 및 온라인 판매)

날짜: 6월 1/2일(금/토) 오후12시~9시, 6/3(일) 오후12시~7시

뉴욕필의 센트럴파크 공연

터 6/17일까지 브롱스, 맨해튼, 퀸즈 그리고 브루클린 지역에서 각각

열리게 되며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의 공연은 6/13이다. 공원으로 들

어가는 가장 좋은 입구는 어퍼웨스트 81번길과 85번길, 어퍼이스트 사 이드 79번길 과 84번길. 5만명이 운집하는 이 곳에서 좋은 자리를 잡

으려면? 공원은 하루종일 열려있으니 부지런한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 는것은 당연지사. 잔디에 펼칠 담요하나와 모기퇴치스프레이 그리고 선크림만 있으면 귀호강할 준비 완료! 가격: 무료

날짜: 6/13 오후 8시

장소: 센트럴파크 그레이트론 (Central Park, NYC) mid-park from 79th to 85th Streets

장소: 브라이언파크 (Bryant Park, NYC)

6th Avenue & 41st Street New York, NY 10018 25


People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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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의 힘을 믿는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영화감독 강윤성 살면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감독 강윤성, 그의 영화 인생이 그렇다. 17년의 우여곡절을 겪어내고 올린 상업영화 데뷔작 <범죄 도시>가 6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쾌거를 이룬 것. 한국 외에도, 뉴욕, 시카고, 로 스앤젤레스, 밴쿠버, 토론토 등 북미 지역 주요 10개 도시에서 인기리에 상영되었고, 영국 런던한국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뿐이 아니다. 강 감독은 이 영화 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 감독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 감독상까지 수상하였다. 흥행과 더불어 평단의 인정까지 받은 것이다. 이 신인 감독상은, 그간 여러 사정으로 제야에 묻혀 있어야 했던 그가 마침내 세상에 던진 출사표를 관객과 영화인 모두 기립 박수로 환영했음을 의미한다. 꿈같다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은 지 금의 감격을 그는 ‘감사하다’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글 Juyoung Lee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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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 ‘거물급’ 감독도 배우도 없는 영화 <범죄도시>가 극장가 는 물론, 영화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150억이 넘는 제작비와 스타

배우들로 무장한 ‘남한산성’을 물리치고 2017년 관객 순위 5위, 역대

한국영화 중 36위(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중 3위)를 기록하면서 제작

비 50억의 3배가 넘는 이익을 거뒀다. 흥행 성적이 결코 전부는 아니지

만, 이 영화에 관한 한 숫자 자랑을 좀 하고 싶다. 이 영화의 성공 신화 뒤에 17년이라는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 있는 까닭이다. 서른에 영화감

독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마흔일곱이 되어서야 첫 작품을 대중 들에게 선보이게 된 강윤성 감독의 사연을 들어보면, 흥행 수치는 그와

그의 영화에 주어진 최소한의 보상이자, 이변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결

과라 여겨진다. “이렇게 오랜 시간 후에 데뷔하게 될 줄 알았다면 영화 를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지만, 그가 영화만 생각하며 버텨 낸 긴 준비 의 시간은 그만큼의 값을 하는 것 같다. 28


리 브라운(Charlie Brown)>(1996)을 만든 후, 영화를 제 대로 배워보고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예술아카데 미대학교(Academy of Art University)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장편 시나리오 작성 및 영화 제작을 체계적으 로 익히고 단편 스릴러 영화 <네거티브 이미지(Negative

Image)>(1998)를 제작, 인디포럼과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에서 상영했다. 그렇게 이론과 실기를 쌓아 장편영화 제

작에 뛰어들면서 길고 긴 ‘희망 고문’이 시작된다. 미국에

서 ‘4Enter Films(‘For Your Entertainment’라는 뜻)’라는 독립영화사를 설립하고, 직접 쓴 시나리오 <푸코의 단편 영화>를 가지고 멕시코까지 가서 촬영을 준비했는데 예

정되었던 투자가 틀어져 접어야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쓴 <뫼비우스>의 제작 또한 준비 도중 투자가 취소되어 중단되었다. 그렇게 때로는 투자 때문에, 때로는 캐스팅 때문에 영화 촬영이 직전, 또는 도중에 좌절되며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라도 희망의 끈이 이어진 것이 다행이다 싶지만, 당시에는 자꾸만 눈앞까지 왔다가 사라져서 영화를 잡지도 놓지도 못하게 하는 기회들이 야 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된 감독이 이루어 낸 당연한 성과

강윤성 감독은 <범죄도시>로 신인 감독상을 두 차례 수상하였다. 하지 만, 사실 ‘신인’이라 하기엔 그가 영화 제작에 몸담은 시간이 너무 길다.

영화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숨은 실력자로, 단지 극장용 영화 한 편을 세상에 내놓는 데 필요한 ‘경제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답답

하고 안타까웠던 세월이 길었을 뿐이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 했던가. 17년, 아니 첫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1996년부터 따지면, 22년 동안 응축된 열정과 내공을 쏟아부어 만들어 낸 영화가 정말 ‘모든 면 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과를 보이니 그간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하다.

강 감독의 성공에 대한 주변의 평은 “준비된 감독이 얻은 예상된 결과”

이다. 그가 ‘준비한 시간’을 조금 들여다보면 그 말이 쉽게 공감된다. 그 가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경희대 물리학과 시절 영화 동아 리에서 활동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대학교 4학년 때, 첫 단편영화 <찰

좌절감과 자괴감에 경제적 압박까지…… 심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도 영화를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로 각종 홍보 영상,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하면서, 틈틈 이 계속 시나리오를 썼어요. 영화 촬영 현장을 경험하고 싶어서 연출 부로 들어가 일하기도 했고요. 그중 몇 작품(2002년 <유아독존> 경 찰 역, 2003년 <영어완전정복> 바 사회자 역)에서는 단역을 맡아 연 기를 해 보기도 했습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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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신의 영화 한 편을 꿈꾸며 15년여를 버텨왔으나 현실적인 벽은

감독의 철학: 리얼리티가 생명이다

영화를 포기하고 아내와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정말 ‘영화’

던질 수 있어서”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파급력을 가지려면 현

결국 그를 두 손 들게 하고 말았다. 2016년 9월, 그는 ‘할 만큼 했다’ 하며 처럼, 그곳에서 <범죄도시>에 투자가 확정됐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흥미진진한 실화와 기발한 영화적 상상력, 그리고 개성파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가 결합하여 탄생한 웰메이드(well-made) 범죄 오락영 화 <범죄도시>, 그 영화를 보면 강윤성 감독이 지난 시간 동안 갈고 닦고 경험한 모든 것이 ‘피가 되고 살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 년 넘게 시나리오 쓰기에 매진한 증거인 탄탄한 시나리오, 미국과 한 국의 영화 제작 현장을 직접 경험한 결과인 노련한 연출력, 다양한 영 상 작업을 통해 터득한 감각과 테크닉의 발현인 현실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영상, 자신이 직접 배우가 되어 보고 얻은 안목으로 발굴한 보 석 같은 배우들까지 강 감독은 ‘준비된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 을 보여주었다.

강윤성 감독은 영화가 좋은 이유를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이야기는 사람의 공감을 얻을 때 힘을 갖게 되는데, 공감을 얻 으려면 우선 그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 다. 영화에 ‘리얼리티’가 있어야 하는 이유죠. 관객이 믿을 수 없는 얘기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관객이 이야기를 믿게끔 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거죠. 액션 영화를 촬영할 때도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얼리티를 강조해요. 시원시원하게 다 날아가고 그런 것보다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액션, 예를 들어, 싸우 는 장면에서는 보는 사람에게 ‘아, 정말 아프겠다.’ 고 느껴지는 액션 을 연출하려고 노력합니다. 31


이렇게 현실을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과 더불어, 그의 영화에 리얼리티

를 부여한 또 한 가지는, 연기라 믿기 어려울 만큼 영화 속 인물과의 완 벽한 일체를 보여 준 배우들이다. 강 감독은 평면적 스토리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라는 믿음 하에 주연뿐 아니라 단역 한 명까지도 캐스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주연배우에 너무 집중해서 영화를 만들면 관객에게도 주연만 보이 는 현실성 없는 영화가 됩니다. 영화의 리얼리티는,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주연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보이게 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데 요. 그 상황의 현실성은 각 인물의 행동과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얼마 나 현실적인가에 달려있죠. 그래서 인물들 각각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고, 단역 하나라도 그 장면에 등장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는 걸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실제 상황처럼 ‘모두가 다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자 강윤성 감독은 오 디션을 통해 연기력과 배역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배우를

꼼꼼하게 골랐고,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과한 설정을 배제하였다. <범

죄도시>의 형사들이 형사답고 범죄자들이 범죄자다워 보이는 것은, 각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범죄 액션 영화의 일반적인 구도를 충실히

따른 까닭에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범죄도시>가 근 700

만 관객몰이에 성공한 까닭은 이 영화의 현실성, 즉 ‘리얼리티’가 관객 의 공감과 몰입을 끌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범죄도시>를 보면,

강윤성 감독이 현실성 있는 스토리와 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해 기획 부터 촬영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 영화는 2004년, 서울 남부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이 하룻밤 새 조선족 조직폭력

배 14명을 검거한 ‘왕건이파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강 감독 은 그 실화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터뷰와 취재 를 했다고 한다.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강력반 형사들의 활약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 어서, 2004년 검거에 참여했던 형사분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습니 다. 촬영 중에도 형사들의 말투나 대화 방식 등에 관해 수시로 형사분 들께 자문을 구했고요. 영화의 배경이 된 가리봉동도 직접 방문해 상 인분들과 중국 동포분들로부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해 들었어요. 32

자의 역할을 100% 이상 해준 배우들과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위한 강 감독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상투적인 이야기는 의외로 작가의 상상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이 상상하는 건 대부분 자신이 이전에 보고 들은 것을 짜 맞춘 것일 수 있으니까요. 반면, 리얼리티는 어떤 사람이 직접 겪은 것이 기 때문에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주는 힘이 있어요. 실제 있었던 일은 어쨌든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까닭에 사람들의 공 감을 끌어내기 쉬우면서도, 동시에 특정인의 개인적 경험인지라 일 반적이기보다는 독특성을 갖게 됩니다. 이게 제가 실화를 모티프 (motif)로 영화를 만드는 이유죠. “리얼리티가 생명”이라고 여기는 그는 ‘발’로 시나리오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심히 뛰어다니며 실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 고 취재를 한다. 발품을 많이 팔수록 좋은 시나리오, 좋은 영화가 나온 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소통하는 감독이 만드는 “우리 모두의 영화”

강윤석 감독은 각본과 연출을 같이 하는, 즉 직접 글을 쓰고 촬영을 하 는 감독이다. 하여 영화 속 재치 만점 대사나 기발한 장면은 모두 그의

절박함과 절실함으로 만든 ‘우리 모두의 영화’는 관객들의 호평과 응원

이 잘 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스태프와 배우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낸

화가 일어났다. 투자하겠다는 이도 많아졌고, 함께 영화를 하자는 이도

머리와 손끝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말은 달랐다. 자신

것이 아닐까 싶다고. 그는 영화 제작 과정 내내 스태프 및 배우들과 좀

더 멋진 장면을 만들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실제로 <범죄도시>는 강 감독이 주연 배우인 마동석과 함께 기획하고 구성한 영화이고, 이 영화 곳곳에는 배우의 아이디어나 스태프의 의견으로 탄 생한 명대사, 명장면들이 있다.

현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 누면서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게 되고, 또 예상치 못한 기발한 아 이디어도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범죄도시’에서 악역인 장첸(윤계상)을 부각시키는 묶은 머리는 윤계상 씨가 직접 제안한 것이고요. 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 장첸과 마석도(마 동석)의 화장실 결전 장면 시작 부분에, 장첸이 “혼자야?” 하고 물으 면 마석도가 “어, 싱글이야.” 하고 대답하는 장면은 두 배우의 아이 디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의 지난 경험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작가, 연출부 스

태프, 배우, 영상 제작 감독 등으로 일해 본 경험은 그가 그들의 입장에

서 생각하고 논의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제작자 부터 배우까지 그의 영화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영화에 대한 ‘절실함’ 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좀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진심 어린 조언과 의견을 강 감독은 고마운 마음으로 수용했다.

‘범죄도시’는 4대 메이저 투자사들은 물론, 중견 투자사들로부터도 외면당한 작품이었어요. 그랬으니 저 뿐만 아니라 제작자도 절박했 죠. 배우들도 주연, 조연, 단역 할 것 없이 모두들 연기에 대한 절실함 이 남달랐습니다. 그렇게 절실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영화를 만들었 으니, 이 영화는 제 영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화’라고 봐야 해요.

에 힘입어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그만큼 그의 주변에도 많은 변 많아졌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늘 그래왔

듯이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을 해 나갈 뿐이란다. 투자자나 제작자가 작품의 내용에 간섭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창의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는 거부감

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돈을 대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버리 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얘기라 생각하고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면

들어야죠.”라고 대답한다. 차기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 직 없지만, 그는 앞으로도 이렇게 마음을 열고 모두의 얘기에 귀를 기 울이며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던져 나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강윤성 감독은 오랜 준비로 다져진 실력과 내공을 쏟아부은 영화 한 편으로 ‘7전8기 성공 신화’에 합류했다. 거하게 신고식을 치루었으

니 그의 앞으로에 거는 세상의 기대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는 들뜨 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성공’한 지금에 취하기보다, 믿음과 희망으

로 영화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지난 시간을 상기하며 묵 묵히 다음 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그는 과거의 자신처럼 긴 터널 속 시

간을 보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무조건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하게 된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버텨올 수 있었던 데에는 분 명 이유가 있고, 자신도 모르게 재능과 내공이 성숙되어 있을 테니, 아

르바이트라도 해서 최소 생계를 해결하며 기다려 보라”는 아주 현실 적인 조언을 전했다. 더불어, 대형 배급사와 스타 위주인 현 제작 시

스템이 바뀌어서 영화 제작 환경이나 새로운 배우들의 영화 진출 여

건이 개선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앞으로도 철저하고 명확하게 즐거움

(entertainment)을 주는 영화를 만들어 나가되, 사이사이에 스티븐 소 더버그(Steven Soderbergh)의 영화처럼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영

화도 만들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힌 그는 마지막으로, 희망을 같이 바라

보며 오랜 시간을 함께 견뎌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말로 인터 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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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15)

“왜 그때 같이 좋지는 않을까?” 정리

편집부

글 윤성민 박사, DSW, LCSW-R, CASAC, RPT-S, ACT

연세대학교 졸업 (B.A.) Silberman School of Social Work at Hunter College (M.S.W.) 사회복지학 석사 University of Pennsylvania School of Social Policy & Practice (D.S.W) 임상사회복지학 박사 인지심리치료협회 (Academy of Cognitive Therapy) 공인 전문가 (Diplomat) 공인 임상사회복지사 및 심리치료 자격 (뉴욕 및 뉴저지주) 공인 알코올 및 마약치료사, 공인 국제 놀이치료사 겸 슈퍼바이저

현) ‌ Vice President of Integrated & Value-based Care (부사장), The Child Center of NY 현) 윤성민 심리건강 클리닉 소장 (뉴욕/뉴저지) www.mindwellbeing.com 이메일: yoondsw@gmail.com 34


설날 며칠 전, 어머니와 나는 서산에 있는 시장에 나갔단다. 골목마다

료였어. 특히, 뒤뜰 항아리에 있는 김장김치 몇 포기를 꺼내와서 돼지

고소한 냄새가 행인들을 하나둘씩 붙잡고 있었고, 뒤편 건어물집에는

수가 있었단다. 돼지비계에 익혀진 김치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명절을 준비하러 나온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였어. 튀김 닭집에서 나는

제사상에 올릴 마른 생선을 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단다.

어머니는 가을에 수확한 찹쌀과 서리태 콩을 머리에 이고는 시장 쌀가

게에 가서 돈으로 바꾸셨단다. 설을 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셨던 거 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늘 현금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

이 필요할 때는 광에 있는 곡물이나 고사리 말린 것을 시장에 내다 팔 곤 했어.

돈을 마련하신 어머니는 닭집에 들러 기름에 튀긴 닭강정과 닭발 몇 봉

비계를 넣고 가마솥에 끓이면 아주 맛있는 김치찜이나 김칫국을 만들 먹을수록 입맛을 돋웠지.

생선 집은 빼놓을 수 없는 가게였어. 어머니는 동태와 간고등어 몇 마 리를 사셨지. 또 서해안에서 채취해 말린 마른 김 몇 톳도 바구니에 담

으셨어. 동태와 무를 넣고 가마솥에 끓이면 며칠을 두고 먹을 수가 있 었단다. 왕소금에 저린 간고등어는 명절이 되거나 일꾼을 사서 논일을

할 때나 먹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어. 마른 김은 참기름을 발 라서 군불을 지핀 아궁이에 살짝 구워 먹거나 날김에다가 깨소금 간장 을 찍어서 밥을 얹어 먹을 수 있는 아주 요긴한 반찬거리였단다.

지를 장바구니에 담으

드디어 설날 음식을 다

는 멀리서 왔다고 닭강

장 옷가게에 들리셨단

셨지. 주인집 아주머니

장만하신 어머니는 시

정 한 개를 먹어보라고

다. 한 골목을 빼곡히

내게 주셨어. 살짝 밀가

채운 조그만 옷가게들

루를 입혀서 기름에 튀

은 서울 남대문 시장

긴 닭강정이었지만, 입

에서 세련된 옷을 도매

에 넣는 순간 중독성 있

로 떼어다가 가게 안팎

는 맛이 혀를 자극했어.

에 가득 걸어놓고 팔았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단다. 가게 규모가 작

음식이 있다니!” 한 개

다 보니 몇 겹으로 바닥

를 먹으니 자꾸 더 먹고

부터 천장까지 옷을 걸

싶어져서 어머니의 시

어 두곤 했었지. 설에는

장바구니에 들어있는

설빔이라고 꼭 새 옷,

까만색 봉지에 계속 눈

새 속옷, 새 양말을 사

이 갔지. 김이 모락모락

주시곤 했거든. 가끔 운

올라오는 닭강정이 신

이 좋으면 운동화도 새

문지에 싸여 있었어. 하

로 받기도 했지. 어머니

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는 아이들 숫자대로 사

동생들 생각에 먹고 싶

계절 내내 입을 수 있는

은 마음을 간신히 추슬

바지 한 벌, 속 옷 한 개,

렀단다.

양말 한 켤레씩 구입하

셨어. 그 날은 일 년에

“집에 가면 닭발 만들

딱 한 번 새 옷을 사 입

어 줄 테니까 좀 참아

라” 어머니는 말씀하셨어. 예전에 선생님께서 학교 수업 중에 좋아하

는 날이었단다.

는 음식을 적으라고 한 적이 있었지. 나는 종이에다가 제일 좋아하는

시장에서 산 맛있는 음식과 설빔으로 장만한 옷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

에서 사 온 닭발을 가마솥에 삶은 다음 고추장과 각종 양념으로 버무린

들이 너무 많아서 완행버스에 앉을 자리를 잡지 못했지. 버스를 탈 때

음식으로 닭발과 돼지비계로 끊인 김칫국이라고 적었단다. 시장 닭집 닭발은 어린 시절 허기진 우리에게 최고의 간식거리였단다. 닭발은 천

원어치만 사도 커다란 봉지에 가득 담아주었기 때문에 식구가 많은 우 리 집 아이들 영양간식으로 아주 제격이었단다.

닭강정과 닭발을 산 후 어머니는 근처 정육점에 들리셨어. 큰 집에 갔

아서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어. 그날따라 설 준비를 하러 나온 사람 마다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곤 했단다. 한 줄로 서는 일 은 없었어. 버스가 터미널 정거장에 들어오게 되면 우르르 몰려가서 얼

른 자리를 차지해야 했지. 자리를 잡는 것은 키가 작고 민첩했던 내 몫 이었단다.

다가 줄 소고기 두 근과 떡국을 끓일 때 필요한 양지고기 몇 근을 더 구

어머니는 버스를 탈 때마다 “얼른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라”라고 말씀

번 구경할 수 있었던 아주 귀한 음식이었어. 값이 비싸서 아무 때나 살

자리를 잡아야 할지 몰라서 어영부영하는 사이 자리를 다 뺏기고 말았

매하셨지. 그리고 돼지비계를 한 봉지 사셨어. 소고기는 명절에나 한두

수가 없었던 거야. 돼지비계는 모든 음식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식재

하셨지. 일단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버스 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떤 단다. 한 자리만 정하고 달려가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여러 자리가 35


있다 보니 순간 망설였던 거야. 자리에 앉지 못했기 때문에 바구니를

아니었어. 중년의 아주머니가 그 차의 운전자였어. 내가 옆 차선에 있

네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돌아왔단다.

적으로 울리더라고. 내 차가 그 운전자의 차량 오른쪽에 가까이 있었거

버스 바닥에 깔고 앉고는 피곤한 다리를 주무르며 함께 시장에 나온 동 어두운 길을 둥근 달에 의지해서 집에 도착할 무렵, 저 멀리서 어린 동

생들이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시장에 함께 가질 못했던 거야. 집에서 온종일 어머니가 시장바구니에 뭐를 사서 올까 궁금해서 멀리 집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참고 참았던 닭강정을 먹을 수가 있었어. 그런데 아이

들이 많다 보니 몇 개씩 먹으면 까만 시장 봉지에 들어있던 닭강정이 순식 간에 사라졌지. 그 때는 별것도 아닌 닭강정이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동생들과 나는 시장바구니에 들어있던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어. 조금

큰 치수를 샀기 때문에 잘 맞는 듯한 느낌은 없었지. 그래도 상관없었

어. 새 옷을 받은 거니까. 옷을 입어보고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이러저

리 살펴보았지. 바지를 한번 접어서 입어야 했지만, 고동색 바지를 입 은 내 모습은 아주 멋져 보였지. 밤에 잘 때 누가 가져갈까 봐 바지를

품 안에 꼭 껴안고는 군불을 때서 뜨거워진 방에서 빨간색 내복을 입고 누었어. 내일 설날 새 바지를 입고 큰 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맛있는

던 아주머니의 차가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는데, 또 내게 경적을 신경질 든. 그래서 얼굴을 힐끔 쳐다봤더니 또 욕을 퍼부어 대는 거야. 대꾸할 가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허탈하게 웃어줬지.

예전에 처음으로 현대에서 만든 포니 용달차를 탄 적이 있어. 늘 신작 로를 달리던 덜컹거리던 완행버스만 타다가 동네 아저씨가 태워준 용 달차를 타 보니 승차감이 너무 좋았어. 아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신

작로를 달려서 목적지까지 금방 도착하는 거야. 집에 와서 자가용 처음 타 봤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단다.

포니 용달차보다 몇십 배나 좋은 차를 타고 가던 두 운전자는 삶 속에

서 어떤 일이 있기에 그렇게 신경질적이고 행복하지 않아 보일까? 물 론 나름대로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 두 사람

도 어린 시절에 아빠가 크리스마스에 비싸지 않은 장난감을 사 왔을 때 거실을 빙빙 돌며 기뻐하지 않았을까? 추수감사절에 어머니가 동네 슈

퍼마켓에서 사 온 터키를 구워주었을 때 흥분된 마음으로 온종일 기다 리며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떡국과 부침 전을 먹는 꿈을 꾸면서 행복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단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이가 들어가면 그때처럼 즐겁지 않은 게 사실이란

엊그제 비가 억수같이 많이 내리던 날 마세라티라는 고급 외제 차를 몰

즐거움도 함께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고 가던 운전자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단다. 비어있던 오른쪽 차선으로

다. 예전보다 훨씬 더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행복이나

다리로 갈라지는 지점까지 가서는 왼쪽 차선으로 새치기하려고 한 차

즐거움은 매우 상대적이란다. 마음의 작용인 거야. 내가 무엇을 얼마나

까 갑자기 왼쪽으로 향하던 차가 갑자기 내 쪽으로 들이대는 거야. 마

만족감에서 즐거움의 차이가 생긴단다. 사람이 자꾸 좋은 것을 갖고 누

선을 막고 서 있었던 거야. 마침 뒤따라 가던 내가 경적을 한 번 울리니

치 고의로 사고를 낼 것처럼 달려들었지. 순간 당황해서 오른쪽으로 자

동차 핸들을 급하게 돌리기는 했었지. 운전자는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

어. 내가 경적을 울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어. 자기가 잘못 을 했는데도 말이야.

간신히 사고를 피하기는 했지만, 운전해서 뉴저지를 가는 내내 놀란 가 슴을 쓸어내려야 했단다. 한편으로는 그 운전자의 화나고 불만 섞인 얼

굴이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저렇게 좋은 차를 운전하는 사

람이라면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화를 쉽게 내

많이 갖고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야. 대신, 물건이나 조건의 상대적인 리게 되면 만족감이 점점 줄어들게 되어 있어. 처음에 좋은 차를 타게 되면 몇 달은 기분이 좋다가도 점점 다른 차와 비교하게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지. 집을 사게 되면 며칠 동안 잠 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설레다가도 금세 “ 방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

다” “수납공간이 부족한걸”라며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맨하튼에 가서

수 백 불짜리 맛난 저녁을 매일 먹어도 사람들이 즐거움을 못 느낄 수 있단다. 닭발이나 김칫국에 저녁을 먹으면서도 한없이 행복했는데 말 이야.

는 것일까?” 나 같으면 그렇게 멋진 차를 운전하고 가면 아주 즐겁기만

우리가 예전처럼 즐겁지 않은 이유는, 내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란다.

안하게 운전할 수 있었을 텐데, 뒤에서 경적 한 번 울릴 것이 고의로 사

만, 너무 많은 것을 갖게 되면 자칫 작은 것에서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배기관이 높은 기종에다가 가죽 의자에 아주 편 고를 낼 정도로 큰일이었을까?”

다음 날 운전을 하고 출근을 하고 있는데, 어떤 고급 사륜구동 차량이 경적을 계속 울리면서 가는 거야. 한두 번 경적을 울리는 게 아니고, 거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야. 적게 갖는 것도 삶에 불편함이 따라오겠지 잃을 수가 있어. 중요한 것은 적게 가지든 많이 가지든, 그 순간에 집중

하고, 그것이 주는 작은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내게 있 는 소중한 것들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는 것이란다.

의 운전하면서 거의 몇십초에 한 번씩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거야. 어떤 차가 왼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려고 했는데, 또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고, 어떤 차가 신호가 바뀌어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경적을

울리고, 모든 게 아주 신경질적이었지. 나는 그 고급 차 안에 아주 우락 부락하고 고약하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가 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

차량이 많이 보니 경적을 연신 울려대며 급하게 운전하던 차가 결국 내 옆 차선에 서게 된 거야. 그래서 운전자의 얼굴을 쳐다봤더니 아저씨가 36

그림 박종진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 홍익대학원 졸업 개인전(NewYork K&P Gallery)외 7회 해외전 및 그룹전 100여회 현재) 한국미술협회/한국수채화협회 이사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진흥원 전문상담요원


이달의 좋은 글

이달의 좋은 글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바바 하리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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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VMN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전) 부사장 정승희

유학생에서 VP가 되기까지

미국 직장 생생 체험기(6) 내가 잘 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직장 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맡은 일을 잘 한다고 해서 꼭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법은 아니니까 말이다.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얼 마나 좋을까.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기운이 넘쳐날 것만 같을 텐데. 어쩌 면 판타지 같기도 한 이런 행복한 커리어를 꿈꾸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담근 지 가 벌써 18년이다. 강산이 두 번쯤 변할 동안 미국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많은 변 화를 겪었고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힘들었다. 20년 전 유학생으로 와서 MBA 프로그램 을 마치고 취업비자를 받아 외국인으로 이곳에서 취업하고, 그 오랜 시간을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좌충우돌하며 버텨낸 것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였을 것이다. 지난날의 나의 경험이 지금 막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매달 작은 에피소드 하나씩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글 Seunghee Chung 영문 Taeriah Kim 정리 38

편집부


도움을 청할 때를 아는 자가 진정한 능 력자!

언제부터인지 세상은 완벽한 사람(만)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주어진 역할에 상관없이 또 남

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완벽함은 세상을 살 아가는 또 하나의 스펙이 되어 가고 있다. 신입사원을 뽑 으려는 면접에서도 “본인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부분

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에 “저는 완벽주의

자라서 무슨 일이든 완벽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밤을 새울 정도로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저를 너무 몰아 세우는그

부분을 고치고 싶습니다.”라며 겸손을 가장하여 본인이

얼마나 완벽한지를 강조하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대

답을 하는 젊은이들을 꽤나 자주 본다. 그저 헛웃음만 나 올 뿐이다. 정말 꼭 완벽해야만 할까? 완벽하지 않으면 세

상을 살 가치가 없는 걸까? 누구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는데,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함을 다른 이들과 더 불어 살며 메꾸어 가는 것이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유학생 – 정직원이 되다

졸업과 동시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던 내가 미국 메이

저 영화사의 국제 배급팀에 정식 직원이 되었다는 사실 은 나를 한껏 고무시켰다. 지난번 사장과의 미팅 후 받은 정식 오퍼 레터를 자랑스러운 훈장 삼아 목에 걸고 다니

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내가 손을 들고 먼저 요 청하지 않으면 아무도 먼저 나한테 내가 원하는 걸 가져

다주지 않는다’며 속으로만 끙끙거리며 앓지 말고 직접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서 상황과 부딪혀 보라며 조언을

주었던 MBA 프로그램 디렉터뿐만 아니라 학교의 모든

친구들과 교수님들이 함께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었다. 정말 내가 뭐라도 된 듯했다.

정식으로 풀타임 직원이 되니 본격적으로 매주 돌아가는 업무에도 투입

이 되고, 매일매일 내가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할 일들도 조금씩 주어졌다. 그중 하나가 매주 금요일 업무 마감 전까지 부서 중역들에게 올려야 하는

‘주말 박스 오피스 예상 수치 집계 리포트’였다. 영화 업계의 특성상 주말 에 극장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기에 주말 극장 흥행 성적과 수입은 차

후 배급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더군다나 주말마다

집계된 흥행 성적은 실시간으로 이곳 할리우드 비즈니스 전문지인 <The Hollywood Reporter>와 <Variety>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매주 수요일부터는 슬슬 60여 개국에 퍼져있는 워너 브라더스의 지사에서 주말

요일별 흥행 수입 예상 수치를 보내오기 시작하는데, 금요일이 가까워질수 록 쏟아지는 국가별 리포트로 프린터 주변은 홍수를 이루었다. 일일이 출 력한 리포트를 모아 엑셀로 국가별, 영화 타이틀별로 집계를 해서 다시 각 나라별로 환율을 적용해 달러 가치 기준으로 총 해외 배급 예상 수치까지 뽑아내려면 꽤 시간 걸리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일도 일이었지

만, 특히 사장과 부사장들이 주말 내내 이 리포트를 품고 다니며 실시간으

도움을 청하면 무능력자?

드디어 처음으로 내가 이 리포트를 시작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책임지고

맡아야 하는 시간이 왔다. 한 주 내내 긴장을 하며 전임자가 가르쳐준 것을 받아 적은 노트를 보고 또 보며 달달 외웠다. 정직원으로서 처음 맡은 책임 이었기에 정말 실수 없이 완벽하게 끝내고 싶었다. 부족한 엑셀 실력을 들 킬까 봐 책도 사다가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요일부터 쏟아지는 리포트도

차곡차곡 출력해서 가지런히 책상에 모아 두었다. 금요일 아침이 되자 긴

장감에 심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 주 내내 모

아놓은 리포트를 토대로 하나하나 국가별, 요일별, 영화 타이틀별 박스 오

피스 예상 수치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엑셀에 집어넣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순조롭게 일은 진행이 되어 갔다.

로 업데이트를 해서 영화 전문 매체와 통화를 하고, 월요일에 각종 신문과

‘그래, 역시 내가 맡아서 하면 뭔가 다르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거야!’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책임이 나한테 온 것이었다! 비서 겸 애널리스트

을 않고 부지런히 리포트를 만들어 가다 보니 어느덧 금요일 5시가 되어

영화 전문 매체에 실릴 회사 실적의 기초 자료로 썼기 때문에 보통 중요한

로 일하던 전임자가 나를 앉혀 놓고 내가 못 미더웠던지 꼼꼼하게 중요한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특히 매주 금요일마다 모두 찾는 리포트가 이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제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몇 번 이나 하며 말이다.

심지어 이런 생각마저 들며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종일 자리에 앉아 꼼짝

가고 있었다. 이제 제일 중요한 총 해외 배급 예상 수치만 계산해서 써머리

페이지를 만들고 중역들 숫자대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두께의 리포트를 복사만 해서 돌리면 끝이었다. 6시까지 충분히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 전, 오후 중간중간에 몇 번씩 들여다보던 전임자가 다시 와서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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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내가 뭐 도와줄 게 있으면 주저 없이 물어

“아니 왜 지금까지 리포트가 준비가 안된 거에요? 지금 사장실에서 난리가

“아, 괜찮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저… 마지막 숫자가 맞지를 않아요…”

보세요.”

“지난번에 말한 대로 시간 내에 꼭 리포트가 준비되어야 하는 거 잊지 마 세요. 금요일이라 사장님이 6시 전에 나가실 수도 있어요. 이 리포트가 제

시간에 준비가 안 되면 정말 큰 일이에요. 도움이 필요하면 꼭 나를 부르세 요, 알았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났어요.”

“맙소사… 그럼 왜 나한테 미리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했어요…”

“혼자서 해보려는 것도 좋지만 언제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더 중 요해요. 그것을 놓치면 지금처럼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가 니까요. 데드라인은 나 혼자만의 데드라인이 아니에요.”

뭘 그렇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다고 필요하면 꼭 부르라고 몇 번을 말하는 지 짜증도 나고 조금은 자존심

전임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족족 다 옮은 소리였기 때문에 무어라 대답 조차 할 수가 없었고, 내가 그 순

도 상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

나…’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무튼, 전임자 때문에 분산되었 던 정신을 다시 집중해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마지막 숫 자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데…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며 등과 손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 전임자가 가르쳐 준 대로 분

명히 계산을 했(다고 생각했)는 데 무언가가 틀렸는지 계속 숫자 가 맞지를 않았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계산이 정확하지가 않았 다. 이제는 빨리 복사를 해서 리

포트를 올려야 할 시간인데 아직 도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 려니 미칠 노릇이었다. 마치 어디 선가 삼장법사가 나타나 내 머리

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불완전함도 인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내가 나를 돕는 한 방법이다. 모든 것을 혼자 다 하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모든 것을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런데 그 도움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완벽할 수는 없다. 어느 위치에 있던지 언제나 나보다 경험이 많고 똑똑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매우 중요하다. 업무의 흐름을 읽으면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에 손오공의 금고아를 씌우고 주

오히려 자신감의 표현이고 실력이다!

문을 외우며 머리를 조여오는 듯 했다. 숨도 잘 안 쉬어 지고, 토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계산 과정의 한 부분을 빼먹었고 그래서 숫자가 맞지를 않았던 것 이었다. 전임자의 도움으로 6시

가 훨씬 지난 후에야 겨우겨우 리

포트를 끝내고 임원 수대로 복사 해서 제출하고 나니 파김치가 되 어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고도로 계산된 치밀한 전략적 기다림 외에 기다림의 미 학이라는 것은 없다. 맞추어야 할

데드라인이 있고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 내게 주어진 책임이 있을 뿐이다. 내게 주어진 책임을 제시 간에 완수하지 못하고, 거기에 대 한 소통마저 미리 제대로 되지 않

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도미노 현상처럼 다른 부서원과 부서에

것만 같았다.

돌아갈 뿐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동

‘아… 결국 나의 첫 번째 임무를 이렇게 망치는 건가…’

모든 것을 혼자 다 하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모든 것을 혼자 다 할 수 있

오금이 저리고 정말 전임자에게 물어봐야 하나 싶었지만, 얼핏 보니 전임 자도 이것저것 남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 보였다. 게다가 잘하고 있다 고 큰소리까지 쳤는데 지금 와서 물어보는 건 정말이지 내 자존심이 용납

하지 않았다. 전임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는데도 또 물어보면 마치 ‘내가 이렇게 무능하오…’하는 고백을 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혼자 끝

내보려고 ‘괜찮아 괜찮아… 정신 차려… 난 할 수 있어…’ 이렇게 스스로 를 다독이며 다시 한번 처음부터 계산을 해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것은 반짝반짝 거리는 커서와 함께 무슨 오류 때문인지 맞 지 않는 오직 원망스러운 숫자일 뿐이었다.

타이밍은 곧 실력!

다매정한 시계가 어느덧 6시를 가리키자 사장실뿐만이 아니라 각 부사장

실의 비서들이 리포트를 찾느라 내 전화통에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는 식은땀 정도가 아니라 등에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강을 이루었다. 결 국은 전임자가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내 책상으로 뛰어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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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나의 불완전함도 인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것처럼 조직 생활에서 답답함을 유발하는 일도 없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내가 나를 돕는 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

도움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 랐다.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 있다. 야구 선수에게도, 사업가에게도, 예술가 에게도, 대통령에게도 타이밍이 있다. 계획에 따라 적시적기(適時適期)에

잘 맞춘 타이밍 하나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되기도 하 고, 어긋난 타이밍 하나로 모든 일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기도 한

다. 개화의 타이밍을 놓쳐 우리 근대사에 가슴 아픈 역사로 기록된 경술국 치(庚戌國恥)가 그러했고, 현대사에서도 그런 불행한 일을 보는 것은 낯설 지 않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완벽할 수

는 없다. 어느 위치에 있던지 언제나 나보다 경험이 많고 똑똑한 사람은 있 게 마련이다.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매 우 중요하다. 업무의 흐름을 읽으면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감의 표현이고 실력이다!


My Journey in Corporate America by Seunghee Chung, Former VP at Viacom Media Networks:

Climbing The Corporate Ladder Of Success(6) What you are good at doesn’t necessarily mean that it is something that you would die for. Possessing an exceptional skill at something does not always translate to having a real passion in itself: a workplace is no exception. In other words, doesn’t everyone share a mutual desire to find a job that they’re good at, which actually happens to perfectly parallel their actual interests? Exactly 18 years into this fantasy-like career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 I’ve realized that no matter how demanding or tiring the work may be, doing something I love somehow creates more energy to be constantly fueled by. However, I must admit that I’ve also had my fair share of hardships throughout my career, but those were eventually lulled by frequent joyful moments that netted out the negatives. But thanks to having a job that I truly enjoyed, I was able to endure this 20-year journey, where I started out as an international MBA student who stepped into a foreign country with limited English-speaking abilities, which wasn’t even my native language. I hope that my humble narrative of the past will encourage and inspire the minds of young working professionals who are currently in the nascent stage of building their careers within the mainstream society today, and I am happy to openly share my episodic memories on a monthly basis for them. 41


One Who Knows When To Seek Help Is The True Master!

Somewhere along the way, the world began to desire only the perfect

ones. Regardless of the setting, age demographic or gender or the tasks at hand, perfection has become the holy grail everyone pursues. It has even come to a point where it has become commonplace for

coy young job-seekers to tell their interviewers very proudly that the area they need to continue to work on is “to stop being a perfectionist” because they need to find a work-life balance since nothing stops them

from spending the night at the office to get the job perfectly done. But

is perfection truly necessary? Do we really have nothing to offer the world if we are not perfect in every way? Rather, isn’t it possible that we

can achieve a healthier society when individuals learn to supplement their weaknesses with the

and calculating the total international box office revenue estimates. It was a heavy responsibility for a new employee, considering this report was the basis for what the President and executives communicated to the industry media and the basis for the analyses of weekend movie

performances put out by the media every Monday. The colleague who

preceded me in this task reviewed the report process with me in great

detail, reminding me over and over again to make sure I complete the report in a timely manner every Friday because everyone depends on it.

Am I incompetent if I ask for help?

The time finally came for me to take over the report process

from end to end. Since it was my first responsibility as a full-time employee, I wanted to do the job PERFECTLY. I memorized the notes from the training sessions

strengths of others?

with my predecessor, pored over books on

The international student becomes a full-time employee in the U.S.

Microsoft Excel to shore

up my shaky spreadsheet

skills and gathered the

branch level reports in a

As an international student

neat pile on my desk.

who came to America in mid

20s, I was greatly encouraged to be offered a full-time job

A s Friday morning

distribution division of a major

in my mouth and I had

in the international theatrical

dawned, my heart was

American motion picture

to take deep breaths to

company. I was showered

relieve the tension. Arriving

with congratulations from

at the office much earlier

the MBA professors, fellow

than usual, I calmed

students and the program

myself down in front of

director who advised me last

the computer screen and

time to speak up for myself

carefully, even prayerfully,

instead of agonizing silently

entered the data into Excel.

about the uncertainty over

Contrary to my fears, the

my post-graduation future.

report process flowed

My elation was such that I

smoothly. I slowly gained

wanted to hang the offer letter

confidence as the day went

I received around my neck as a

on, even imagining myself

medal of honor. I really felt like

receiving much accolades

“somebody”.

One of the first duties given

from my colleagues for a job well done.

to me as a Warner Bros. employee was to compile the “Weekend Box

The hours flew by as I worked on the report without even leaving my

the department before the end of business each Friday. Because the

by calculating the total international box office estimates, the most

Office Projection,” a report I had to submit to all key executives in weekend is peak-time for the movie-goers, the weekend movie theater

revenue is the critical variable that has the most impact on distribution strategy. The leading industry magazines The Hollywood Reporter and

Variety publish this metric for all major movie studios in real time.

Every Wednesday, the estimates started pouring in from Warner

desk. By 5pm, all I had left to do was to create the summary page

important element of the report. I was confident I could complete the report and distribute copies of the inch-thick report to all the

executives by 6pm, with time to spare. My predecessor, who had

stopped by a few times throughout the day to check on my progress, came by once again.

Bros. branch offices around the world; by Friday the printer area was

“How is everything going? Please don’t hesitate to ask me if there’s

the time-consuming task of compiling all the data into Microsoft Excel

“Oh, I’m fine and I don’t have any questions. Everything’s going well.”

flooded with reports from more than 60 countries. I was to take on

by country and movie title, converting the local currencies into dollars 42

anything I can help with.”

“Good. Please don’t forget to complete the report by the deadline.


Since it’s Friday the President may want to leave the office before

“I wanted to resolve the issue myself.”

me if you need help. OK?”

when to ask for help is even more important. You can cause a lot

6pm. It’ll be a disaster if the report is not ready on time. Please call

“It’s good to try to be self-sufficient and independent, but knowing more damage to many others if you miss the timing, as is happening

“Sure, I will.”

Truth be told, my pride was a little wounded that she felt the

need to tell me repeatedly to ask for help if I needed it. But I put

right now. Plus, never forget that here we are relying on each other. Your work affects other people’s work.”

those thoughts behind me and went back to the final stage of the

Everything she said was true; there was nothing for me to do except

came to the horrible realization that the numbers were not adding

of the calculation process I had accidentally skipped over. I finally

calculations. Before long, however, I broke out in a cold sweat as I

up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calculations. It was already time to start making copies, but here I was still trying to figure it out. I felt breathless and nauseous, as if my head was gripped in a vise stronger than the arms of Hercules.

listen in silence. As it turned out, the error was traced to one part completed the report with my predecessor’s help, well past the 6pm

deadline. Once the report was copied and distributed, I became as limp as a wet rag from the stress and the effort.

In the business world where every second counts, waiting

‘Oh my, am I really about to fail at the first thing I’ve been put in charge of…’

All my limbs went

numb. I peeked over at my predecessor, but she also looked busy

wrapping things up for

the week. Besides, the

There is nothing wrong about the pursuit of perfection in and of itself. However, it is important to acknowledge our imperfections and know when to ask for help. It is simply not possible to do everything on our own. Thinking that we can is sheer pride

last thing I wanted to do

and will surely cause frustration and setbacks in an

the big show I put on

organization. There’s optimal timing for everything.

was to ask for help after

about having everything under control. It felt like I would be confessing

to being incompetent if I went to her after she

already handed over the responsibility to me. With a firm determination to

complete the report on my own no matter what,

I started the calculations over from the beginning.

If we catch the right timing, and everything may progress to our benefit; but when we miss the timing, we may suffer irrevocable damage to our plans and dreams. There will always be someone wiser, more intellectual or more experienced than us to rely on. Far from being undesirable, asking for help when we need is a crucial skill. Furthermore, seeking help at the optimal time is indeed an expression of true

But my report continued to be plagued with the

confidence and mastery!

Timing is a competency!

Soon the clock mercilessly pointed to 6 o’clock and my phone started

ringing off the hook. I was sweating bullets, fielding calls from the assistants of the President and the executives looking for the report. In short order, my predecessor ran over to my desk.

“What is going on here? Why is the report not ready yet? The President’s office is in an uproar right now.”

“Ummm… The last set of numbers are not matching up. I keep having a footing error…”

a carefully calculated strategy. In my case, I had realized too late that I am rendered useless

if I miss the timing on seeking help. Although the pursuit of perfection in and of itself is not wrong, we must also

acknowledge our imperfections and know when to ask for help. If we can’t complete our responsibilities on time and

furthermore do not promptly

communicate about the delay,

the harm spreads to other departments and colleagues

like dominos. It is impossible to do everything on our own. Thinking that we can is sheer pride and will surely cause

frustration and setbacks

in an organization. There’s

optimal timing for everything, whether as a baseball player,

entrepreneur, artist or the president of a nation. Catch the

hateful errors that were beyond me to solve.

is not a virtue unless it’s part of

right timing, and everything

may progress to our benefit; but when we miss the timing, we may suffer irrevocable damage to our plans and dreams.

There will always be someone wiser, more intellectual or more

experienced than us to rely on. Far from being undesirable, asking for help when we need is a crucial skill. Furthermore, seeking help at the optimal time is indeed an expression of true confidence and mastery!

English translation Taeriah Kim

B.A., Neuroscience and Behavior Columbia College of Columbia University

“Oh, no… then why didn’t you ask for my help sooner?” 43


EDUCATION

전문 상담인들의 수퍼바이저 – Fairfield University 대학원 이수연 교수

지난 제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치료합니다 이수연 교수는 20년 넘게 일해온 전문 상담인이자 상담인의 임상 훈련을 담당하는 감 독관, 대학원생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상담이란 의뢰인이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하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정의하는 그녀는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오랜 경험과 자신이 몸소 체험하고 배운 지식을

칼럼을 통해 나눠주기로 하였다.

글 Sooyeon Lee-Garland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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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첫 번째 칼럼 : 표현의 힘

감정을 표현하라고? 도레미 파레 미도 솔도… 열심히 연습한 고전 음악가 바흐의 피아노곡을 단 두 소절 연주하였을 뿐 인데 갑자기 미국인 교수가 내게 그만해도 좋다고 한다. 그러더니 생뚱맞 게도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의 깊은 슬픔을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피아 노 연주로 표현해보라고 요구를 했다. 이게 실화인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 할 겨를도 없이 당황한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슬픈듯한 곡조의 음악을 나름 표현하다가 대뜸 교수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어린아이가 슬픔이라 는 감정을 알까요? 정말 이렇게 어린아이도 슬픔이라는 감정이 뭔지 알까 요? 과연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린아이가 슬픔을 느낄까요?” 이런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은 바로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그 당시 생소한 분야였던 ‘음악치료’를 공부하기 위해 NYU 대학원에 지원 한 뒤 두 명의 학과 교수와의 면접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렇게 시작 된 NYU에서의 나의 대학원 생활은 문화적 충격의 연속이었다. 특히 끊임 없이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라고 요구하는 교수와 이를 매우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학생들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울 뿐이었 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는 교과서 내용이나 강의 요점 정리를 하자면 자신 있게 잘 할 수 있었지만, 내 생각을 발표하라고 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괴로웠던 수업은 ‘음악 과정 그룹’이라고 하는 수업이 었다. 일곱 명 정도의 학생과 두 명의 교수가 함께 둘러앉아 그날그날 정해 진 순서 없이 누군가 자유롭게 시작한 즉흥연주에 서로 동참하여, 한 시간 반가량 수업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아무런 주제도 토의도 없이 그저 즉흥 연주로만 이어지는 수업도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는데 거기다 수업 후 매 번 일지까지 기록하여 제출하란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수업에 나는 그 저 누가 무슨 악기를 어떻게 연주했다는 단순한 사건 전개식 보고서만을 적어 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나를 보기가 영 답답했는지 교수가 조용히 부르더니, 내가 쓴 일지는 이 수업에서 지향하는 바가 아니라고 일 러주었다. 다른 학생들과의 즉흥 합주나 연주의 진행 과정을 통해 내가 느 끼는 바를 기록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교수의 피드백은 나를 더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공부가 된다는 것인가? 내 마음을 살피고 내 느낌을 표 현하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딸리는 영어 실력도 문제였지만, 내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언어가 너무나도 부족함을 깨달은 나는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혼돈, 갈등 그리고 이민자의 상실감 학교도, 교수도 수업 분위기도 낯설기만 한 이곳에서 배움의 길을 계속해 가며 동시에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적응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처 음 거의 6개월간은 가족이 그리워서 매일 밤 베개가 젖도록 울다가 잠에서 깨어났던 날도 많았고, 너무나 다른 사고를 가진 듯한 타민족 사람들 사이 에서 가치관의 혼돈과 갈등의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여러 차례 공부를 그만두고 보고 싶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 혹도 많았다. 그런데도 돌아보니 이런 익숙하지 않은 수업을 통해 그리고 수년 동안 이어진 수퍼비전과 개인 상담으로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표현 하는 훈련을 거듭하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적 성장을 다져온 세월 이었다. 이제는 전문직도 가지고 개인적으로는 남편과 두 아이를 가진 가 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늘 가슴 한구석에는 뭔지 모르게 휑하 니 비어있는 자리가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이런 심정은 자신에게 익숙 하던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와 미국인들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이민자들의 심리적 상실감일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악조건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구축해 가는 이민자들의 사례도 많은 것이 사실이나, 다 른 한편 소수인종 이민자들은 언어적 한계나 신분의 문제로 부당한 취급 을 받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정신적 문제를 키워갈 수도 있는 요 소도 다분히 지니고 있다. ‘우리 대 그들 (Us vs. Them)’ 에서 ‘나와 너 (I-Thou)’ 의 관계로 다른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자신이 지켜온 가 치관과 신념만을 고집하며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가족과 이웃 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역동적으로 문화를 재창조해 간다. 그런데도 너 무 생소한 인물이나 황당한 상황을 접할 때면 우선은 거부감 뒤에 숨겨진 깊은 내면의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공감의 기회를 차 단해버린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히 자신과 비슷한 생각과 배경 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연대하게 되고, ‘우리 대 그들 (Us vs. Them)’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기반을 둔 분리 및 대립 관계를 맺으며 알게 모르게 자신 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혹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무조건 적 대시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심리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편견에 근거 한 증오 범죄 (Hate crime) 로 까지 발전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는 현 미국 의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저명한 철학자, 마틴부버는 ‘나와 너 (I-Thou)’라는 책에서 ‘나’라는 인간이 ‘너’라는 다른 인간과 진정한 만남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했다. 즉, 이 관계 형성은 다른 이를 ‘그것 (It)’ 아닌 나와 같이 존중 받아야 하는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법 월요일 아침, 첫 시간 내담자와 얘기를 나눈다. 그녀는 6개월 전에 사랑하 는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애도와 절망감에 빠져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를 찾아왔었다. 언니의 죽음과 함께 그녀 는 자신의 모든 형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상실감에 허덕이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흑인 여성인 그녀와 나. 오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직장도 건강도 잃어버리고 혼자 외롭게 살아왔던 그녀의 삶과 나의 삶에 공통점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고백한다. 지난 3개월 동안 나와 상담하는 동안 술 도 마시지 않았을뿐더러 상담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껏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아, 이 것이 정말 치유의 효과가 아닐까? 이제는 술로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잠재 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스스로 정죄하지 않으 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 얻게 되는 치유의 힘이었다. 이제 나는 정확히 이해한다. 오래전 수업시간에 왜 교수들이 상담을 공부 하는 학생들에게 그토록 다른 사람과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언어든 음악이든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강조하였는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고 알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글 이수연 교수

• ‌ M.A. in Music Therapy at NYC and B.A. at Yonsei University • ‌ A Ph.D. candidate studying Marriage and Family Therapy at Antioch University • ‌ An adjunct faculty at Fairfield University Marriage and Family Therapy Graduate Department. • ‌ A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in NY and CT • ‌ An approved supervisor of AAMFT (American Association of Marriage and Family Therapy) and a certified Imago relational therapist 45


EDUCATION

‘정해진 미래 시장의 기회’ 인구학 강연으로 방송에서도 이미 명성을 얻고 있는 ‘정해진 미래’의 저자 조영태 교수의 신간이 나왔다. 새 저서 ‘정해진 미래 시장의 기회’는 우리 나라 소비시장의 미래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칠 인구변동의 8가지 포인트를 제시한 책으로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읽기 쉽다. 흥미로운 미래 소비시 장 변화를 조망할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책 속의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정리

저자 조영태

편집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석사를, 인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하였다. 2004년부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인구학을 공부 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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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저출산, 고령화’라는 용어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때가 2000년으로 그 때 전체 인구에서 65 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7%를 넘어섰다. 저출산은 2002년부터 언 론을 통해 우리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 때 합계출산율이 1.2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50만 명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 이후 고령화도 저 출산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저출산은 작년에 더욱 악화 되어 35만 여 명 출생에 그쳤다. 올해는 그 보다도 더 상황이 좋지 않을 예정이 다. 고령화도 별반 다를게 없다. 작년에 고령자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를 넘어섰다.

렇게 되면 비록 절대적인 크기는 작아진 것이 확실하지만 새로운 인구집단 즉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이 생긴 것이다. 새롭게 시장을 어떻게 공 략하는가에 따라 40대 인구변동은 10년 뒤 한국사회에 암울한 위기로 다가올 수도, 혹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기회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렇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는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그것도 지금보다 약 10~15년 뒤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서 점에 가면 다행스럽게도(?) 그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 적지 않다. 책들의 배경도 다양해서 국내 저자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그린 것으로부터 우 리나라보다 저출산 고령화를 10~15년 앞서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 한 것, 해외 저명학자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일반적인 사회변화를 그린 것까 지 선택의 폭도 넓다. 그런데 거의 모든 책이 말하는 저출산 고령화의 결과는 천 편일률적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미래는 성장이 멈추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암울함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러할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해볼까 고민 중인 김 부장. 자녀 들 취업하고 독립시킬 때까지 적어도 10년은 이 일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담배 나 간단한 음료만 팔아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간편식 등 이문이 큰 품목을 많이 판매해야 할 텐데, 이런 건 주로 젊은 사람들이 사지 않나? 중장년층이 많 은 동네에서, 인생 2막을 건 김 부장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미래의 사회, 특히 시장이 지금과 비교할 때 물리적으로 더 커질 수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기업도 개인도 미래의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 반드시 존 재하고 그 기회의 크기가 작지 않을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인구변동으 로 인해 다가올 미래를 어둡게만 봐왔던 이유는 간단하다. 인구에 대해서는 바 뀌는 것들을 이야기했지만 인구와 시장 간의 관계에 대한 사고를 바꾸지 않았 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었다. 40대 인구가 앞으로 10년 동안 100만 명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40대를 대상으로 한 시장은 줄 수밖에 없다. 40대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 중이 크니 앞으로 경제는 위기다. 또 앞으로 고령자가 급증한다. 고령자는 은퇴 했고 은퇴하면 생산보다는 소비, 그것도 주로 사회적 비용을 쓰는 소비를 할테 니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이다. 이 40대와 고령자의 사례는 팩트(40대 인구가 줄 것이다, 고령자는 늘 것이다)에 기반을 두고 지금까지의 관행(40대와 고령자는 각각 동질적인 사람들이고 인구의 크기는 시장의 크기이다)으로 시장을 분석한 것이다. 그런데『정해진 미래 시장의 기회』 에서 저자인 인구학자 조영태(서울대학교 보 건대학원 교수)는 시장과 인구의 관계에 대한 이 관점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그 것을 바꾸면 인구변동에서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는 것이 보이니, 이 시장의 특 성을 미리 파악하면 인구변동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하였 다. 눈에 보이는 팩트만 이어 붙여서는 출구 없는 비관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 리가 인구변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앞으로 미래가 얼마나 암울할지’ 궁금해 서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이것이다. ‘인구변동 속에 기회는 없는가?’ ‘인구변동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이것을 알려면 어느 시기에 몇 명이 태어났고 얼마나 오래 사는지 등 겉으로 드 러난 숫자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일견 우울해 보이는 전망에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러면 숫자 뒤에 슬쩍 가려져 있던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의외의 기회가 거기에 있다. 자, 40대 인구의 총수는 분명히 줄어든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모든 40대가 전 형적인 40대의 모습(1~2명의 자식을 둔 기혼자)이 이제는 아니다. 이미 적어도 40대의 20%는 결혼도 안한 싱글이고 자식도 없다. 또 혼자 살 가능성도 크다. 그러면 전형적인 40대의 소비 패턴과 이들의 소비 패턴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인구학자 조영태는 신간『정해진 미래 시장의 기회』 에서 어떻게 격변하는 인구 변동에서 시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인구학적인 관점에서 설파 하였다. 그리고 17개의 실제 시장을 상정하고 어떤 인구학적 위험요소가 존재 하는지, 또 그 속에서 어떠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장년층의 모습은 무엇인가? 중고등학생이 된 자녀 1~2명 을 두고 방이 적어도 3개 이상인 아파트에서 살면서 주말마다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먹거리를 카드에 잔뜩 담아 돌아온다. 당연히 집에는 매우 큰 냉장고 가 하나로 모자라 커다란 김치냉장고가 있어야 한다. 차는 그래도 대형 세단이 나 SUV가 가족수에 적절하다. 부부가 함께 버니 소득이 적지 않지만 아파트와 차를 유지하기 위한 대출이자, 유지비 등도 적지 않다. 거기에 아이들 사교육비 와 대학교 등록금은 본인들을 위해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을 거의 0으로 만들 어 버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전형적인 중장년층 가정의 모습니다. 그런데 아시는가? 이미 40~44세 인구의 거의 20%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비혼족이라는 것을? 그리고 40대와 50대 가구주 5명 중 1명이 혼자 살고 있다 는 것을? 미혼이거나 혼자 사는 중장년층의 일상이 위에서 말한 우리가 이미 알 고 있는 전형적인 중장년층의 일상과 같을 수가 없다. 이들은 1주일치 먹거리를 위해 대형마트에 갈 필요도 없고, 자녀들의 사교육비 지출을 할 필요도 없고, 대 형 세단이 필요하지도 않다. 방이 3개씩이나 되는 집도 필요 없다. 이런 사람들 의 수가 적으면 시장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앞으로 40년 동안 이 연령대에 있 을 사람들은 각 세에 거의 85~90만 명이 있다. 작지 않은 새로운 시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늦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4개들이 캔맥주에 ‘편의점 간편식’을 안 주거리로 집어드는 40대의 라이프스타일은 김 부장에게 분명 새로운 기회가 된다. 그뿐인가. 편의점 음식을 즐겨 먹지 않는 50대도 김 부장의 고객이 될 수 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50대 가구주 5명 중 한 명은 혼자 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밥을 좋아한다 해도, 혼자 사는 이들이 매일 장을 봐서 직접 식사를 준비할까? 귀찮은데 집 앞 편의점에서 간편식으로 한 끼 때울 확률 이 더 높지 않을까? 실제로 최근 1인 가구가 20~30대를 넘어 40~60대에서 급 격히 늘고 있으며,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기성세대’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 것과는 전혀 다르다. 소비 패턴도 당연히 다르다. 저출산 고령화로 대변되는 급격한 인구변동은 우리나라의 미래 사회에 매우 위 협적인 존재임은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지난 15년이 넘도록 천문학 적인 예산을 들여가면서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상황 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럼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어둡게 다가오는 미래를 감내해야 하는가? 이제 정부가 인구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개인과 기업이 적극 적으로 해당 산업의 정해진 미래에 관심을 갖고 생존전략을 세워야 한다. 나아 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전화위복 아니겠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론으로 인구변동에서 새로운 시장이 찾아내보자. 그 시장의 특성을 미리 파악한다면, 인구변동은 더 이상 위 기가 아니라 당신에게 더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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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품과 시

반성 詩 - 강익중

작아지려해도작아질수없는것은 원래나는작아질마음이없기때문이다 낮아지려해도낮아질수없는것은 원래나는낮아질마음이없기때문이다 강익중

1960년 충청북도 청주 출생.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뉴욕 프랫 아트인스티튜트 졸업.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빛내는 예술가로 꼽히고 있는 설치미술가. 1997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메인 홀의 벽화와 뉴욕 지하철역의 환경조형물 등을 제작하였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과 휘트니 미술관 등에 그 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뉴욕에서 활발한 작품 활 동 중이다. 최근에는 한글 작품을 제작해 전 세계 각지에 전시하거나 기증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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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려해도비울수없는것은 원래나는비울마음이없기때문이다 용서하려해도용서할수없는것은 원래나는용서할마음이없기때문이다 잊으려해도잊을수없는것은 원래나는잊을마음이없기때문이다


500 Drawings by North Korea Refugees about Their Hometown, The River Thames, London, UK Photo by Hemy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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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 / 우리 이웃 이야기

2017년~현재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 록헤이븐대학교 성악과 교수 뉴욕 아티스트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 및 뉴저지 Sights and Sounds 페스티벌 심사위원 2016~2017년 뉴욕대학교 음악교육대학원 강사 2016년 미국 럿거스대학교 성악 박사 과정 졸업 2012년 Barry Alexander International Vocal Competition 1위 2012년 미국 맨해튼음악대학 석사 과정 및 ‘전문 연주자(Professional Study)’ 과정 졸업 2011년 Golden Era of Romantic Music International Competition 1위 2008년 이탈리아 파르마 오르페오아카데미‘최고 연주자’ 과정 졸업 2007년 독일 카셀시립음악대학 ‘최고 연주자’ 과정 졸업 2005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음악과 함께 누리는 삶의 사계절

소프라노 박정화 교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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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한여름의 짙푸른 녹음을 준비하듯 자연이 그 푸르름을 더해가는 6월, 이 계절에 딱 맞게 화창하고 싱그러운 사람을 만났다. 감미롭고 깊은 목소리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소프라노 성악가이자, 대학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연주와 수업을 병행하느라 쉴 새 없이 바쁘면서도 특유의 유쾌함을 잃는 법이 없는 박정화가 그이 다. 그녀는 공부로도 연주 활동으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화려한 이력을 자 랑한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에서 다양한 색깔의 성악을 두루 공부하면서 쌓은 실력 을 바탕으로, 음악인으로서 한 번 서기도 어렵다는 카네기 홀 무대에 네 차례나 올라 공연을 한 수재 중의 수재. 그녀는 오페라, 오케스트라 솔로이스트, 독창회, 그리고 뮤지컬까지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서고 싶다며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동시에, 학생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꿈꿔왔던 일을 하며 하 루하루를 신나게 사는 ‘지금’에 늘 감사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에 담았다.

화려한 오페라 무대에서 청중을 향해 열창하는 소프라노 박정화. 그 범접

할 수 없는 아우라(aura)와 아름다움은,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맡은 소프 라노 가수를 왜 ‘프리마 돈나(prima donna)’, 즉 ‘제1의 여인’이라고 부르

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피가로의 결혼(The Marriage of Figaro), 돈 조반니

(Don Giovanni), 마술 피리(Magic Flute), 카르멘(Carmen), 등 10여 편의

걸작 오페라에서 주연으로 활약해 온 그녀는 세계적인 프리마 돈나를 꿈 꾸며 열심을 다 해 성악가의 삶을 즐기고 있다. 음악이 좋은 이유는 “음악 이 사계절처럼 다채로운 우리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박정화의 살아온,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봄, 꿈이 피어오르다

끼가 있었는지, 전 유치원 때부터 부모님이나 친척들 앞에서 수시로 ‘쇼 타임’을 가졌어요. 주로 춤추면서 노래하는 거였죠. 노래를 좋아하고 잘 하시는 아버지를 닮아선지 노래를 곧잘 했거든요. 사람들 앞에 나서서 하는 일도 좋아해서 학교에서도 걸스카우트 대표, 방송부같이 밖으로 드 러나는 활동을 즐겨 했고요. 초등학교 때 한 선생님께서 제가 성악에 재 능이 있는 걸 보시고 “넌 노래를 해야 돼.” 하시면서 동요 대회에 나가보 라고 권하신 적이 있긴 했지만 일찍부터 성악 교육을 받지는 않았어요.

몸을 악기로 사용하는 성악가에게 재능은 필수 요건일 수밖에 없다. 피나

끼와 흥이 많은 아이. 봄 들판을 맘껏 날아다니는 나비가 떠오른다. 그냥

를 내는 ‘벨칸토 (bell canto: 아름다운 노래)’ 창법을 주로 하는 성악에서는

파동이 일기 시작한 것은 성악가 홍혜경 씨의 연주를 보게 되면서였다. 자

는 연습으로 득음(得音)에 이르는 사람이 있다지만, 부드럽게 울리는 소리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성악가들은 ‘마음대로 부르기’보다는 어려서

부터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타고난 재능을 쓰는 법을 배우며 성장한 경우 가 많다. 하지만 박정화의 어린 시절은 조금 달라 보인다.

신나고 즐겁게 노래하며 뛰어다니는 해맑은 아이였던 그녀의 마음에 작은 신이 좋아하던 노래와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이끌려 ‘다른 노래’를 해보고 싶어지게 된 것이다. ‘노래를 잘 하는 아이’에 서 ‘성악가’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 시점, 그게 중학교 3학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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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성악가 홍혜경 씨가 한창 활동을 하고 계셨는데요. 그분을 보

독일의 성악이 고급스럽고 문학적이라면, 이탈리아의 성악은 열정적이

면서 저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생겼고, 성악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할

고 에너지가 넘쳐요. 독일 가곡은 가사 하나하나가 시처럼 심오하고 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음악 실기 위주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적인 만큼 (곡을) 부르는 방식도 굉장히 꼼꼼하게 정해져 있는 편인

예고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거기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데가 아니

데요. 이탈리아에서는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 컬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더라고요. 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탈리아 가곡을 실기 시험에서

때문에 좀 더 자유롭게 제 개성을 표현할 수 있었죠. 오페라도 좋고 음

불러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3 때 처음으로 성악 레슨을 받았어요.

식도 좋고, 즐겁게 공부하고 왔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대하는 자세 만큼은 상당히 성

한국, 독일, 이탈리아를 거쳐 마침내 처음 꿈꿨던 미국, 모든 예술의 총 집

예술 고등학교에 가서 성악을 전공하고 싶다는 딸의 말에 그녀의 부모님

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소프라노 박정화는 독일 카셀 국립

숙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 진지하고 단호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은 적잖이 당황했고,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딸은 그동안

성악 개인지도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는 데다 예고 시험도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붙으면 어떻게 지원을 해야 할지도 큰일이었지만, 떨어 져서 좌절하면 그도 큰일이다

합소라 불리는 뉴욕으로 왔다. 이곳에서는 석, 박사 공부와 함께 성악가로

오페라 극장(Kassel National Music Opera Theater), 뉴욕 리릭 오페라단 (New York Lyric Opera Theatre)을 비롯한 유수 음악 단체와 다수의 고전

및 현대 오페라를 공연했고, 지휘자 로린 마젤(Lorin Maazel)이 이끈 오페 라 페스티벌(Castleton Music

싶었다. 하지만, 떨어지면 일반

Festival)과 서울에서 열린 살

대학 국문과를 갈 테니 시험을

롱 오페라 페스티벌(Salon

한 번만 보게 해 달라는 딸의

Opera Festival) 등 여러 음악

당찬 간청에 결국 허락을 했고,

회에 촉망받는 젊은 예술가

두 달의 레슨 뒤 딸은 당당히

(young artist)로 초대되어 연

예고에 합격하였다. 그 후, 대

주하였다. 그녀는 독창회도 게

학교 졸업 때까지 그녀는 열심

을리하지 않았는데, 두 차례의

히 배웠고 부모님은 최선을 다

국제 성악 콩쿠르 우승을 계기

해 지원했다.

로 서게 된 카네기 홀 무대에 자신이 직접 기획한 공연을 올 리기도 했다.

여름, 뜨거운 열정으로 배우고 노래하다

박정화는 이화여대 성악과 재

저는 다양한 곡들을 섞어서

로 음악교육을 복수 전공하고

요. 악기도 다양하게 쓰고요.

학 당시, 비사범계 교직과정으

독창회를 구성하는 편이에

교생 실습까지 마쳤다. 그래서

2012년에는 카네기 홀에서

졸업 후에는 당연히 학교 선생

‘사랑(Love)’을 주제로 로맨틱

님이 되겠지 했는데, 의외로 유

한 곡들을 모아서 공연했는데

학을 가겠다고 했다. 안정된 생

요. 클래식 가곡, 오페라 아리

활 보다는 더 배우고 싶은 욕심

아, 한국 가곡, 뮤지컬 곡을 플

이 앞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

루트, 클래식 기타, 비올라 등

용이었다. 대학교 4년 내내 교

의 악기와 함께 연주했어요.

회에서 솔리스트(Soloist: 독창

또 2013년에는 디멘나 센터

자)를 하면서 받은 사례비를 모 아 놓긴 했지만, 가고 싶던 미

국으로 유학을 가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학비를 1원도 내지 않는 독일이 첫 번째 유학지가 되었다.

부모님께 “잠깐 독일에 다녀올게요.” 하고 가서 시험을 보고 왔는데 감 사하게도 합격을 해서 유학을 가게 됐어요. 공부하면서 카셀 국립 오페 라 극장(Kassel National Music Opera Theater)에 들어가 학생 단원으로 일했는데요. 그때 만난 선생님은 너무 감사해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요. 독일 지휘자분과 결혼하신 미국 분이셨는데 레슨을 받으러 가면 레 슨비도 안 받으시고 늘 요리를 해주셨어요. 저를 정말 딸처럼 대해 주셨 죠. 나중에 미국으로 유학가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그렇게 독일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친 다음, 그녀는 이탈리아로 갔다. 성악가로서 성악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배워보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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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nna Center)에서 뉴욕 의 다양성을 표현해보자는 취 지로 한국 가곡과 코플란드(Aaron Copland)가 작곡한 미국 가곡을 가 야금, 장구,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피아노 협연에 맞게 편곡해서 연주했는데요. 미국 관객이나 미국에 사시는 한국 분들 모두 많이 좋아 해 주셨어요. 넘치는 패기와 열정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래한 이 시기를 박정화는 뜨

거운 여름에 비유한다. “들뜨고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최대한 많이, 최대 한 잘 부르고 싶었다고 한다. 독창회에서는 본인의 실력을 보여 줄 수 있

는 다양하고 많은 곡을 부르려고 노력했고, 더 크고 다양한 시장에서 공연 하며 경험을 쌓고 싶어서 학업 후 한국에 나가는 것도 뒤로 미뤘다. 그런데

그렇게 실기와 공연에 집중하여 살다 보니 ‘나’(ego)만 너무 강해지는 느낌 이 들면서 생각과 마음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가을이 오는 듯했다.


가을, 노래를 나누는 더없이 좋은 계절

2016년 박사 과정을 마친 박정화는 카네기 홀에서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 (Every Ending Is a New Beginning)’이라는 주제로 또 한 번의 독창회를

래)라는 노래를 불러줬는데요. 치료 때문에 오랫동안 집에 못 간 아이들 이 제 노래를 듣고 희망이 생긴다며 우는 걸 보면서, 노래를 할 때 ‘사람 들이 어떤 노래를 들으면 마음에 위안이 될까?’도 고민하게 됐어요. ‘음

했다. 성악가를 꿈꾸었던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독일, 이탈리아, 미국으로

악을 통한 나눔’의 가치를 깨달은 거죠.

을 이야기처럼 엮어서 사회자의 해설과 함께 전하는 독특한 독창회였다.

그녀는 틈틈이 무료 공연과 무료 강습, 교회 성가대 지휘 등 봉사 활동을

담아내어 한 편의 드라마를 선사하는 듯했다(뉴욕일보. 2016. 2. 10. “해설

을 가르치면서 또 다른 소통과 나눔을 해오고 있다.

이어진 유학 생활, 그리고 공부를 마친 현재와 앞으로를 대변하는 노래들

자신의 목소리와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에 그간의 음악 인생을 세심하게 곁들이고 기타도 등장한 ‘색다른 공연’”).

하며 음악을 통한 나눔을 실천한다. 더불어, 2016년부터는 대학에서 학생

교수라는 호칭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제가 가르친 학생이 잘 해서 상 받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한국 가곡, 예고 입시곡, 독일에서의 첫 연주곡,

는 걸 보면 뿌듯하고 좋더라고요. 제 재능을 알아봐 주셨던 초등학교 선

이탈리아 데뷔곡, 미국에서 부르게 된 뮤지컬곡, 박사 학위곡 등 제 추

생님, 저를 딸처럼 조건 없이 가르쳐주셨던 독일에서의 선생님, 그 외

억이 담긴 곡들을 불렀는데요. 인생의 전환기에서 그동안 공부한 것과

많은 선생님들과 후원자분들의 도움으로 제가 이 자리에 있듯이 저도

연주한 것을 한 번 정리해 보고 싶기도 했고, 또 제 도전 스토리를 관객

이제 꿈을 꾸고 도전하는 학생들을 도울 수 있어서 기뻐요.

들과 나누고 싶기도 했어요. 이전의 연주회가 저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 는 모든 곡을 넣어서 뷔페(buffet)처럼 만든 공연이었다면, 이 공연은 제 가 해 온 음악을 청중과 나누며 소통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어요. ‘자신을 위한 음악’에서 ‘나눔, 공감, 소통을 위한 음악’으로의 전환을 시사

하듯, 2016년 음악회의 수익은 한국 혜능 보육원의 아이들로 구성된 혜능

윈드 오케스트라에 전액 기부되었다. 박정화는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갑 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동안 한 공연 중에서 마음에 참 많이 남는 공연이 있어요. ‘Sing For Hope’라는 미국 봉사단체에서 하는 활동인데, 뉴욕대 병원과 롱아일랜 드 병원에 있는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거예요. 병실마다 들어가서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영화 ‘오즈의 마법사’ 에서 주인공인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떠나며 부르는 노

소프라노 박정화 교수는 지금 자신의 삶을 계절로 표현하자면 초가을쯤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르익어 수확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열정과 의욕만으로 가득 찼던 더운 여름을 지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서 여유도 좀 생기고 뒤도 돌아보게 되고, 그렇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끝은 아닌 중간 어디쯤,” 그래서 더없이 좋은 때라고 한다. 모든 것이 조 화롭게 균형을 이룬 지금을 그녀는 한껏 즐기고 있는 듯하다.

소프라노 박정화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청중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오페라와 뮤지컬 공연을 통해 다양한 타인의 삶을 살아보기

도 한다. 또 학교에서는 많은 성악 꿈나무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그녀는 지금 가을을 산다지만, 실은 매일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녀의 겨울이 언제 어떤 형태로 오게 될지 기대되지만, 가을 다음에 그녀가 또 다른 봄을 시작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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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istant Professor of Music at Lock Haven State University of Pennsylvania, 2017- Current Adjudication; New York Artist International Competition, New Jersey Sights and Sounds Festival Adjunct Faculty at New York University, 2016-2017 Doctor of Musical Arts in Voice at Rutgers University, 2016 1st Place, Barry Alexander International Vocal Competition, 2012 Manhattan School of Music, Professional Study and MM in Voice, 2012 1st Place, Golden era of Romantic Music International Competition, 2011 Parma Orfeo Music Academy at Italy, Diploma, 2008 Musik Akademie der Stadt Kassel at Germany, Diploma, 2007 Ewha Womans University BM in Voice, 2005

Four Seasons of Musical Life

Julie Junghwa Park

a Soprano and a Pedagogue 54


Spring, a Dream Blossoms

For singers, their entire body is their instrument. Because of this, singers begin their training from youth to learn systematically how

to develop keen awareness of various parts of their body. Soprano Junghwa Park’s initial training however, was not such.

As a child, I had an affinity towards putting on a show for people around me. I simply enjoyed the spotlight and loved to sing and dance in As the summer is at the door, our interviewee’s vibrant energy is surely reminiscent of the season. Soprano Junghwa Park is a critically acclaimed singer as well as a much sought-after pedagogue in the

front of people. One of my teachers from elementary school noticed that I had a talent as a singer and suggested that I should pursue a career. But I never had any proper training in singing during my youth.

U.S. A native of South Korea, Park resides in New York City where

Park recalls it was precisely the moment she heard a performance by

pedagogue, she is also serving as an Assistant Professor of Music at

to dream of becoming a classical singer. She was fourteen years old.

she maintains a busy career as a soloist and an opera singer. As a Lock Haven University of Pennsylvania. Throughout her professional

a world-renowned Korean Soprano Hei-kyung Hong that she began

career, Park has graced some of the most coveted venues in the

Listening to Hei-kyung Hong was truly an eye-opening experience

Opera Theater in Germany.

to study classical singing by auditioning for an arts high school. Then I

world including the Carnegie Hall in New York and Kassel National Soprano Junghwa Park’s presence exudes an aura, a beautiful

confidence of a ‘prima donna’ in an opera. Deservedly so, she has

for me. I was overwhelmed by the beauty of classical singing. I decided found out I had to prepare an Italian aria which I knew nothing about. So I began my first voice lesson in 9th grade.

played the main roles in many masterpieces such as “The Marriage

Park’s plan to audition for an arts high school and to pursue

that the reason for her artistic passion is because music constantly

persuade her parents by promising them that if she does not pass

of Figaro,” “Don Giovanni,” “Magic Flute,” and “Carmen.” She states takes her to different seasons and planes of life. Our interview with Soprano Junghwa Park unfolds as we travel through her life as a musician.

classical singing was not well taken by her parents. She was able to

the audition, she will give up right then. After two months of private

lessons, she passed and her parents supported her study until she finished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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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Learning and Singing with Passion After college, Park decided to continue her study abroad. Her first choice was the U.S. but due to the lack of funding, she chose to move to Germany where tuition was free.

During my study in Germany, I won the audition to become an opera member at the Kassel National Opera Theater. My teacher at the time was Aixa Rodriguez-Vosberg, who is an American soprano married to a German conductor. She did not charge me for the lessons and often cooked for me. She was pretty much a mother figure to me. She was one of the main reasons I later decided to study in the U.S.. After Park received her diploma in Germany she moved to Italy, the cradle of classical singing.

If the culture of singing in Germany can be summed up

Autumn, the Season to Share Music

After finishing her doctorate degree in 2016, Park had her second Carnegie Hall solo recital under the title “Every Ending is a New

Beginning.” The concert was unusual in that it featured a narrator who provided comments on each pieces before they were presented. The

diverse genres in the program seemed to tell a story of her own life encompassing her childhood in Korea all the way to her life in New

York City. Park had sought to share not only her music but her life paths

with the audiences. It was through this performance that Park had shifted the focus from singing for

herself to singing for sharing and communicating with others. She later confessed that this change

in perspective was gained through much volunteering

and offering free concerts to the

underprivileged. Park has also been sharing her expertise with

students since she was appointed as an Assistant Professor at Lock

Haven University of Pennsylvania in 2016.

as noble and rich in literature,

Being called as a professor is

the culture of singing in Italy is

still odd and even awkward

passionate and energetic. In Italy,

to me. Nonetheless, it is truly

the character and the color of the

rewarding to see my students

singer’s voice are emphasized and

grow and succeed. I am grateful

respected. Because of this I was

and genuinely happy that now

able to sing more uninhibitedly

I am at a place to nurture and

and naturally. I enjoyed

assist the dreams of others. I owe

tremendously all the opportunities

everything to many wonderful

to attend opera productions as

people in my life: my elementary

well as indulge in their cuisine. It

teacher who saw a talent in me

was a wonderful time.

from the early days, my voice

Park’s journey has taken her

teacher from Germany who took care of me like a mother, and so

from Korea to Germany, Italy, and then finally to the place she

many other teachers and supporters along the way.

place to fulfill her dreams of becoming a great singer. While working

Junghwa Park, a soprano and a pedagogue, says that right now she

with many opera companies performing not only classical works but

filled with passion and energy, she is now beginning to enjoy a cooler

first dreamed of being in, America. She chose New York City as the towards receiving master's and doctorate degrees, Park performed also contemporary pieces. She was recognized as one of the rising young artists of our time. Park has been creative with programming

her recitals by presenting various combinations of instrumentation with her voice.

Junghwa Park considers this time of robust artistic and academic

endeavor in the U.S. as the hot summer season of her life. After years

of dedicating all of her exciting energy into singing and growing as an artist, her goals begin to shift gradu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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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in her Autumn season. After getting through the sizzling summer breeze, a life little more balanced but still moving forward.

Through music, Park shares her life with her audiences and at the same time she lives others’ lives through her roles in operas and musical plays. She also keeps herself busy teaching and nurturing

younger dreamers. Although she claims to be in her Autumn season, her rich and diverse musical career seems to represent multiple

seasons altogether. Park’s winter will come eventually in some shape or form but as every ending is a new beginning, the final season might have something new in store for her audiences.


Lock Haven University is a member of Pennsylvania’s State System, the largest provider of higher education in the state. LHU is located in Clinton County in north central Pennsylvania —

the gateway to the Pennsylvania Wilds, which offers hundreds of thousands of acres of state forests, parks, game lands, and the West Branch Susquehanna River for outdoor recreation.

LHU offers 49 majors and certifications with 47 minors. The most popular majors include

education, sport and recreation management, health sciences, criminal justice, business, psychology, social work, communication media, and biology. Master’s programs are offered in education, counseling, sport studies, actuarial science, and health sciences.

There are 17 NCAA Division I and II athletic programs for students to participate in, as well as more than 150 clubs and organizations, club and intramural sports, ROTC, theater, jazz and marching band, dance, student newspaper, and more.

At The Haven, we know that your time in college is about more than earning a degree, it’s about creating a life, and a story you can take with you when you enter the world prepared to pursue your greatest dreams.The Haven Advantage is a never-ending stream of experiences that will shape who you become.

Come see what it means to live and learn in a place that won’t only change your life, but will help you create your future and will forever feel lik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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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자유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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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에 나의 영혼과 온 마음을 담는다

지두화가(指頭畵家) 구구 킴(GuGu Kim) 유형과 무형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쓸 줄 아는 유일한 동물 이 바로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만들어 쓸 수 있는 도구 중에 가 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인간의 몸,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도 인간의 목소리일 것이고, 가장 정 교한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인간의 몸짓 일 것이다. 단순히 살과 뼈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속 에는 마음이 담기고 영혼이 담겨서이리라. 지두화(指頭畵)라고 도 불리는 핑거 페인팅(Finger Painting) 아티스트인 김종해 작가. 구구 킴(GuGu Kim)이란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그 는 붓이나 연필과 같은 도구가 아닌 자신의 손가락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폭 3m, 높이 2m가 넘는 대작이다 보 니 오랜 작업 시간 동안 지문이 없어질 만큼 손가락을 너무 문질 러서 피가 나기도 하고, 최근에는 고된 작업에 팔꿈치 뼈가 부서 져 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구구 킴이 핑거 페인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마음에서 손끝으로, 다시 손끝에서 캔버스로 전해지는 그 느낌 때문이다. 뉴욕, 엘에이, 댈러스 그리고 중국과 일본, 독일 등 세계 각지에서 모던 클래식이즘(Modern Classicism) 작가로 호평받고 있는 구구 킴을

가 직접 만나 보았다.

글 Sarah Chung 영문 Hyobin Lee 정리

편집부

주요 약력 동경 Mode Gakuen 졸업 2000년 이후 37회의 개인전과 500회 이상의 국내외 기획초대, 단체전 및 아트페어 참가 수상 글로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대한민국창조예술대상 특별상, 대한민국국회 최우수사회공로상, 동경예술대전 금상, 긴자화랑협회공로상, 賞美미술대전 대상 등 작품 소장 미국 - 하버드 미술관 (Boston, MA), MaMa Gallery (Los Angeles, CA) 중국 - 상하이 모리타워, 북경J미술관 일본 - 노무라 증권, 미쯔비시은행, 타이세이건설 한국 - 월전문화재단, 한국CPI협회(KSCPI)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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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I Will Be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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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지트이자 작업실, 그리고 갤러리이기도 한 구구 킴의 H Gallery

Café. 이곳은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이름 그대로 문화예술과 음식이 품격있게 조화되어 클래식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앞서

가지만 지나치게 전위적이지 않은 묘하게 기분 좋은 새로운 경험을 제 공한다. 핑거 페인팅 작가라고 본인을 소개한 구구 킴 자신이 직접 음 식을 요리하고, 손수 만든 수제 초콜릿과 맥주를 대접한다. 그리고는

마주 앉아 풀어 놓는 그의 청산유수와 같은 이야기에 둘러앉은 모든 사 람이 순식간에 빠져든다

핑거 페인팅 – 신개념 아트의 선도자

천장이 높은 그의 갤러리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구 킴의 작품은 모두 대작이지만 보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대신 오히려 감상하는 사 람을 끌어 안아주는 따스함이 있다. 안 그래도 키가 무척이나 큰 작가 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야만 작업이 가능할 정도의 높이의 작품들은 모두 말 그대로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새색시>처럼 멀리서 보면

귀엽고 모던한 포스터와 같은 매끄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고, <동 반자>와 같이 1000호나 되는 어마어마한 캔버스 크기를 가득 메운 얼

굴을 맞댄 친근한 노부부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그런데 어느

작품이든지 가까이서 보면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들이 모여서 이루

어져 있다. 보는 이의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 이 가능할 수 있을까?

“광주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 동 안 종종 손에 묻은 숯검댕이를 종이에 문지르며 놀고는 했죠. 어느 날 그 기억이 나는 거예요. ‘아,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재미있 겠다’ 하고 말이죠. 그런데 손가락이 캔버스에 닿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있는 그대로 손 가락을 타고 내려가 캔버스에 직접 옮겨지는 그 느낌 말이에요.”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갈망이 컸던 구구 킴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현대미술과 패션, 공간 디자인 등을 공부한다. 20 년이 넘게 일본에서 산 덕분에 유창하게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 는 구구 킴은 일본에서 건축디자인 사무소를 운영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로 일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구구

킴의 작품을 본 외국의 미술평론가들은 그만의 작품세계에 감탄을 금

치 못한다. 특히 하버드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인 Robert D. Mowry 박 사는 알아주는 구구 킴의 열렬한 팬으로 그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며 김환기 이후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질 차세대 아티스트로 주저 없이 구 구 킴을 꼽는다.

특정 화풍을 넘어선 작품 세계

“손가락으로 그렸는지 혹은 붓이나 연필로 그렸는지가 제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무슨 화풍을 따라 그렸느나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 에겐 ‘무엇을 그렸느냐’만이 중요한 거지요. 모노톤의 실사와 같은 그림이든, 사랑하는 두 사람을 그린 그림이든, 자전거 타는 아이를 그린 그림이든 그 안에 담긴 순수함을 그려내고 싶어요. 그림의 대 상을 그려내는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제 모든 그림 속에 담긴 일관 된 주제는 순수함입니다.”

보통 화가들을 보면 어느 특정 화풍에 매료되어 평생 그것을 추구하거

그 압도적인 작품의 크기와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을 이용해 그린 그

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구구 킴의 작품 세계는 확연히 다르

엔 호기심 반, 신기함 반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지만 친근한 대상을 그

나, 혹은 화풍의 변화를 겪더라도 눈에 띄게 작품에 반영이 될 때까지

다. 클래식한 모노톤의 실사 작품이 그의 화풍인가 싶으면 바로 다음 작품에는 꽤나 에로틱한 모습을 한 여인이 등장하고, 그런 작품에 익숙 해질까 싶으면 서너 살짜리 아이가 그렸나 싶을 정도의 동심으로 가득 찬 그림을 들고나온다. 구구 킴은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림을 보면 한눈에 구구 킴의 예술적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린 그의 작품 뒤에 숨겨진 순수함이란 삶의 메시지를 눈치채는 것은 어 렵지 않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두고 찬찬히 구구 킴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동시(童詩)의 따스함과 수필의 담백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그림을 그린 작가와 보는 이 사이에 교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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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색시 The Bride>

모노톤(Monotone), 그 비움의 미학

간혹 알록달록 색채감 있는 작품도 하더니 최근 들어 더욱 단색의 모노 톤 작품을 고집하는 구구 킴. 특히 검은색에 대한 그의 사랑은 유난하 다. 그저 블랙 앤 화이트의 세련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걸까?

“아니에요. 순수함을 더욱 극대화해서 표현하고 싶은 거지요. 그림 은 기본적으로 빛과 어둠의 구도로 되어 있어요. 이 빛과 어둠 속에 서 보이는 사물 안에 있는 거추장스럽고 쓸데없는 것을 다 빼고 나 면 본질만 남게 되지요. 그것을 검은색의 모노톤으로 표현을 한 것 이에요. 검은색이라는 색깔 자체도 마찬가지거든요. 모든 색을 하나 하나 빼 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검은색이지요. 얼마만큼 뺄 수 62

있느냐가 중요해요. 빼지 못하면 불안해서 더할 수밖에 없는데 완벽 함은 더 이상 더할 게 없는 게 아니라 뺄 게 없는 상태이거든요.”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했던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 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라고 한 말을 그는 몸

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구구 킴의 모노톤 작품을 보면 빛(여백)과 어 둠(손가락 끝이 찍히는 부분)의 양에 따라 같은 작품도 어느 시점에 보았 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한 작품을 시작하면 그의 마음에 흡족할 때까 지 멀리 세워두고 보면서 손끝과 손바닥으로 캔버스를 문지르기를 반복

한다. 손가락 끝이 한 번 닿고 안 닿고에 따라 작품 속 소녀는 수줍은 미 소를 띨 수도, 눈물 고인 슬픈 미소를 띨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의민족과 검을 현(玄) – 동양화가 아닌 한국화를 알리고 싶다

구구 킴이 모노톤에 더욱 애착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검은색이 우리 민족의 색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색인 검은색을 가

지고 우리나라 모노톤의 작품은 현대적이지 않다는 세계 미술계의 선 입견을 깨뜨려 주고 싶은 욕심도 있다.

“검을 현(玄)이라고 하죠. 사실 완벽하게 검은색은 없다고 봐요. 우 리 민족의 검은색은 진한 쪽빛 색깔이 도는 검은색이지요. 그 검은 색이 여백의 미를 살려주는 하얀 도화지나 하얀 캔버스와 만날 때 음과 양이 합쳐지고 온전한 하나가 됩니다.” 사실 검을 현(玄)이라는 한자 속에는 ‘검다’는 의미 외에도 ‘오묘하고 신묘하다’는 뜻도 있으니 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충분히

국의 빛과 어둠, 하늘과 땅, 기쁨,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서 새로운 한국화를 그릴 겁니다. 한국화도 그렇게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고, 그것을 감상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 미술의 격을 알리고 싶어요.” 10여 년 전부터 세계 각지의 갤러리 및 미술관에서 개인전 및 초대전

을 열고 있는 구구 킴은 아트 마이애미(Art Miami), 아트 뉴욕(Art New York), 유럽아트페어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국 텍사스 와 중국 상하이에서 세계 최초로 거장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함께 하는 ‘미켈란젤로 & 구구 킴 특별 기획전’도 가졌다. 올 2018년 5월엔 일본 영 화사에서 그의 모노톤 작품 세계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갤러리를 방문하 기도 했다.

마음에 와닿는다. 이런 구구 킴의 속내를 알아주고 발현해 주는 재료가

하루에 열다섯 시간이 넘는 고된 극한의 작업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

가루인 석채이다.

그의 품 안에 한 줌 쏙 들어올 만큼 작아진 어머니를 35년 만에 처음 안

바로 핑거 페인팅에 쓰이는 물기 없는 숯이나 목탄, 파스텔, 그리고 돌

“사실 동양화라는 장르는 없어요.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태평양 전 쟁을 일으킨 일본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다 뭉뚱그려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에요. 동양화가 아닌 한국의 혼이 담긴 한국화를 그려서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진정한 우리나라의 한국화는 김홍도 이후로는 민화가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할 겁니다. 단순히 서양 물감과 재료로 한국 풍경을 그렸다고 한국화가 되지는 않지요. 작품을 그린 재료로 한국화냐 서양화냐를 이분법적으로 나 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퓨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한

면서도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작가 구구 킴. 당뇨로 고생하다 이젠 아보며 눈물을 왈칵 쏟아버린 여린 구구 킴의 마음속에 이렇듯 강인한

소신과 철학이 담겨 있기에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잊은 채 매 일매일 캔버스 앞에 선다. 수십만 개의 손가락 자국이 남겨져야 작품이 되는 그의 그림은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고행이고, 사랑이고 예술이며 인생인 퍼포먼스이다.

오직 손끝과 손바닥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핑거 페인팅 아티스트, 지두

화가(指頭畵家) 구구 킴. 그가 올여름 다시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함께 상해로 간다!

<동반자 P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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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Gu Kim

Finger Painting Artist My soul and heart at the tip of my fingers One of the most beautiful tools that human beings can create may be the human body itself. The instruments that make the most beautiful sounds are human voices, and the most sophisticated means of communication will also be the body gestures that express feelings and thoughts using every inch of the whole human body. It is probably because the human body holds one’s heart and soul. Jong-Hai Kim, also known as a finger painting artist, actively works by the name of GuGu Kim. He draws only with his fingers, not with brushes or pencils or any other tools. His works are great masterpieces, usually over 3 meters wide and 2 meters high, requiring long working hours of pain from rubbing his fingers too much. Recently, he broke his elbow bones after such hard work. Even so, the reason why GuGu Kim cannot stop finger painting is all because of the irresistible feeling he gets from his heart to the tips of his fingers, then back again from the tips of his fingers to his heart.

interviewed GuGu Kim, a famous artist dedicated to the

theory and practice of Modern Classicism who has a phenomenal reputation in the art world of New York, Los Angeles, Dallas, China, Japan, and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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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Innocence>

GuGu Kim’s gallery, also his workshop and hideout, H Gallery Café,

awesome feeling of that soft touch of my fingers on the canvas. What

combination of culture, art, and food. Yet, at the same time, the

thing on the canvas at the touch of my fingertips. What a wonderful

is quite classic as its name suggests along with its harmonious

place has a classic but not too old-fashioned, creative and modern but not overly avant-garde aura that provides a strangely pleasant

I have actually thought and felt in my imagination became this actual feeling!”

experience. After introducing himself as a finger painting artist, GuGu

GuGu Kim, who had a passion for both music and art, graduated

handmade chocolate. Then, the magic of his story-telling began.

to study contemporary art, fashion, and space design. Thanks to

Kim personally cooked some food and served handmade beer with Finger painting: Leader in Exploration of ‘New’ Ideas in Art

The works of GuGu Kim, which fills the wall of his gallery with a high ceiling, are all great masterpieces. Instead of intimidating the

viewers, his works exude a genuine warmth and welcoming spirit that embraces the viewers. The paintings, tall enough for the artist

to climb up the ladder to finish the work, were literally created at

the touch of his fingertips. There are works such as <THE BRIDE>

that provide the sleek feeling of cute and modern posters, and <PARTNER>, drawn on a giant canvas, realistically portraying an

from university in South Korea and then went to Tokyo, Japan his fluent Japanese after 20 years of living in Japan, GuGu Kim

debuted and became known as a finger painting artist first in Japan, then gradually the rest of the world. Foreign art critics who

have seen the works of GuGu Kim marveled at his unique world of art works. Robert D. Mowry, a curator at the Harvard Art Museums and a senior consultant in Chinese and Korean Art at Christie's,

especially praised GuGu Kim for his originality. As a passionate fan

of GuGu Kim, Mowry has no hesitation in selecting him as the new rising artist after the late abstract master Whan-Ki Kim.

elderly couple facing each other. What is even more surprising is

A World of Art Beyond A Specific Style of Painting

of fingerprints gathered to form a shape. This is the moment when

pursue it for the rest of their lives or even if they experience a

the fact that every piece of his work shows hundreds of thousands his viewers are lost in complete admiration. How is he able to create such wonderful work?

“I was born and raised in the countryside of Gwangju, a province of Korea. When I was young, I used to play with charcoal a lot and draw anything on paper with it using my hands. One day, I remembered and thought, ‘Ah, it would be more fun to draw with my fingers like then.’ Thus, I really chose to do so and I still can’t forget the very

Normally, painters are attracted to a specific style, and they either change of style, it usually takes quite a long time for them to show such change in their works. However, GuGu Kim’s world of art

is clearly different. Just when a classic monotone work seems to reflect his painting style, another work awaits, portraying a rather erotic woman in his painting. Perhaps one should not get too familiar with any of his works because a painting filled with

innocence of childhood as if drawn by a three-year-old child is also the work of GuGu Kim. What is he really trying to d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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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자전거 Do You Bike?>

“The style of painting does not really matter to me, just as I do not care whether I draw with my fingers or tools like brushes or pencils. What matters most to me is ‘what’ I draw. From realistic monotone paintings to portraits of two lovers or children riding bikes, I just want to portray

unusual. Is he simply trying to express the refined elegance of black and white?

“No. I rather want to maximize innocence when I express it. A painting

the genuine innocence of life. The way I depict my objects may differ

is fundamentally composed of light and darkness. Inside this light and

every time, but the constant theme of my paintings is ‘innocence.’”

darkness, you take out what is unnecessary and the object is left with

It seems almost impossible not to be captivated by GuGu Kim’s

artistic charm after appreciating the overwhelming size and scale

of his work and the paintings made with hundreds of thousands of fingerprints. People first starts out with curiosity, then amazement

nothing but its essence. The essence is expressed in black monotone. The color black itself is similar to this whole process since black is the final thing that remains after taking out all the other colors. What is important is how much you are able to take something out. When you fail to do so, you eventually feel anxious enough to add something on. However, you

when approaching his work, but soon enough will realize that

reach perfection only when you cannot subtract any further.”

‘innocence.’ Especially when taking enough time to appreciate GuGu

Actually, GuGu Kim’s monotone paintings show multiple possible

poetry and the simplicity of essays. Perhaps this may be the ultimate

and the amount of proportion of light (blank space) and darkness

familiar objects of his paintings convey the hidden message of life, Kim’s paintings, people could feel both the warmth of children’s sentiment shared between the artist and the viewer. Monotone, the Aesthetics of Emptiness

Occasionally, GuGu Kim would draw colorful paintings. More recently, however, he has insisted on painting in one color by sticking to monotone paintings. Especially, ‘black.’ His love for black is quite 66

interpretations within the same work depending on the viewpoint

(fingerprints on paper) throughout the process. When GuGu Kim begins his work, he takes an ample amount of time to observe his work from a distance every day. Until fully satisfied, he repeatedly

rubs his fingertips and palms on the canvas. After all, it is one fingerprint that may make the girl in his paintings have a shy smile or end up with a tearful sad smile.


A Shift of Emphasis from Oriental Painting to Korean Painting

works of master Michelangelo in Texas and Shanghai. In May of

monotone paintings is partly because he feels that the color ‘black’

to make GuGu Kim’s monotone world of arts into a movie.

The other reason why GuGu Kim shows a strong attachment to is the color of Korean people. Furthermore, using the color ‘black,’

2018, a Japanese film company visited his gallery in person in order

he wants to prove to the rest of the art world that their prejudices

Even after pushing himself to 15 hours of hard work every day,

modern enough. In fact, Korean paintings in monotone can be

pain that comes from his fingertips and stands in front of the canvas

against Korean ‘monotone’ paintings are not sophisticated or modern.

“The Chinese letter ‘玄 (Hyeon)’ represents blackness. But, I don’t feel that a perfect, complete black color exists. The black color of our people is really black with a drop of dark indigo. This black, when it meets a pure white canvas that brings out the beauty of blank space, finally becomes one at last, as if representing the harmony of ‘Yin’ and ‘Yang.’”

GuGu Kim still finds happiness in those hours. He forgets the aching every day because of such strong belief and philosophy coexisting with his tender and soft heart. GuGu Kim shared a moment that

he burst into tears after hugging his mother for the first time in 35 years, seeing how she became small enough to fit in his arms after suffering from diabetes. Hundreds of thousands of fingerprints must be painted in order to create his work, and the process itself is a performance of penance, love, art, and, after all, life.

The Chinese letter ‘玄 (Hyeon),’ other than the meaning of ‘black,’

GuGu Kim, an amazing finger painting artist who draws with

describes what GuGu Kim actually wants to express in his works. The

summer with Michelangelo’s work again!

also holds the meaning of ‘profound and mysterious.’ This fully

material that understands and expresses the artist’s true desire is dry

nothing but his fingertips and palms, heads to Shanghai this

charcoal, pastel, and stone dust.

“Actually, the genre of Oriental painting

<엄마사랑 Because of Your Love, Mom>

was made by Japan during the Pacific War in order to degrade Asia by putting all Asians into one category with an exception of Japan itself. We should paint Korean paintings holding the soul of Korea to raise national prestige. By simply drawing Korean landscapes with Western paints and materials, one cannot call it a true Korean painting. People should not make the mistake of creating a false dichotomy between Korean paintings and Western paintings because the material used to create a painting cannot define the painting itself. Korea’s light, darkness, sky, land, happiness, and sadness should be reinterpreted with a new perspective to create a new Korean painting. Korean painting CAN be reborn with a modern sense and I want the rest of the world to know and appreciate the elegance of Korean art.” GuGu Kim has held solo and invitational

exhibitions in galleries and art museums from all over the world for more than 10

years, including exhibitions at Art Miami, Art New York, etc. He also held world’s

first 'Michelangelo & GuGu Kim Finger Painting Special Exhibition' with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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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진도 씻김굿과 산조, 뉴욕 무대를 장식하다

2018 뉴욕 산조 페스티벌 *출연진

이태백(아쟁/목원대 교수), 이지영(가야금/서울대 교수), 김성아(해금/한양대 교수), 가민(피리/서울대 박사),

김태영(장고/한국 예술종합학교 강사 및 바라지 앙상블 멤버),

프랑트 런던(트럼펫), 네드 로텐버그(색소폰/클라리넷), 시타 최(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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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후 뉴욕 현지 관객들에게 전통 한국 음악인 산조의 현대적 양식과 연행 문화를 꾸준히 소개해 온 <2018 뉴욕 산조 페스티벌>이 5월 18일과 19일 양일간 아시아소사어티(The Asia Society)에서 열렸 다. 5회째를 맞은 이번 축제에서 첫날은 박미당 당골이 ‘한국의 무속음 악과 산조’ 란 주제로 <진도 씻김굿: 망자의 영혼을 위한 의식> 공연을 펼쳤고 둘째 날에는 그래미상 수상 재즈 뮤지션들과의 앙상블 <산조와 뉴욕재즈의 만남>을 선보인다. 페스티벌에서는 무대 공연 외에도 저명 한 한국음악 학자들의 강의 콘서트가 병행되어 한국 공연예술의 정수 인 무속의식을 체계적이고 깊게 현지인에게 알리는 성과도 거두었다. 글 Won Young Park 정리

편집부

진도 씻김굿이 올해 페스티벌의 첫날을 장식한 것은 산조의 원형, 그

둘째 날 콘서트에서는 아쟁의 이태백 명인을 주축으로 한 시나위 연주

기 말 조선 시대에 축적된 다양한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음악가들이 그

던 합주형태의 즉흥 음악 장르다. 이번 연주에서는 한국에서도 잘 연주

기원을 선보였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전통 기악의 정수인 산조는 19세

들의 예술적 기량과 새로운 음악 기법을 총동원하여 만든 기악 독주 양 식이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진 가락이 여러 세대에 걸쳐 변화, 발전 하면서 양식화된 산조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미감을

담고 있다. 가야금의 명인 김창조(1856~1919) 등에 의해 새로운 전통 으로 뿌리를 내린 산조는 가야금 산조뿐 아니라 거문고, 대금, 해금, 피

가 선보였다. 시나위는 무당이 굿을 연행할 때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었 되지 않는 사라져가는 시나위의 즉흥 전통을 뉴욕에서 선보여 더욱 중

요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다. 각 악기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재즈

앙상블을 연상 케하는 20여 분의 즉흥 연주로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끌어냈다.

리, 아쟁, 단소, 퉁소 등 여러 악기의 산조로 확대되어 21세기 한국을

산조 페스티벌 출범 때부터 기획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올해도 강연자

원류를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무속의식에서였다. 특히 진도를 중심으

은 판소리나 사물놀이 등 다른 장르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대표하는 음악 양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많은 학자가 산조의

로 성행했던 망자를 위한 씻김굿의 음악적 양식과 내용이 산조란 기악

전통을 완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육자배 기 선율의 형태는 물론 각 악장을 나누는 장단(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또한 씻김굿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전승 명인인 고 박병천 명인은 94년 아시아소사이어티의 특 별 공연을 통해 씻김굿을 뉴욕에 처음 소개했다. 당시 뉴욕타임즈 “영 혼을 울리는 천상의 소리”라고 극찬의 리뷰를 내보냈고 한국의 “무형

문화재제도”에 관한 기사도 함께 게재했다. 이번 무대는 박미옥 당골

로 나섰던 하드포트 대학 하주용 교수는 “산조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 이 사실이며 아무래도 대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산조 를 알리기 위해서는 대중에 대한 접촉도 중요하지만, 음악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산조의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

단에 지속해서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문화 교류의 중심인 뉴욕 시장을 교두보로 많은 월드뮤직 관계자들의 관심을 유도

하는 한편 미국 내 저명한 민족 음악학자들에게 산조 연구의 계기를 제 공함으로써 산조의 음악성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논의를 진지하게 시 작해 본다는 설명이다.

이 4반세기 만에 아버지가 섰던 무대에 다시 서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산조 페스티벌 등을 통해 사물놀이, 판소리에 이어 ‘산조’라는 장르를

센터예술감독과 가야금 병창의 오정희, 무용가 이송희, 정혜선 등이 함

론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

공연이었다. 뉴욕의 전통무용계를 이끄는 박수연 뉴욕 한국공연예술 께 무대를 빛냈다.

브랜드 마케팅하여 한국 음악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확대하는 것은 물 제를 잇는 국제적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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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Father’s Day 파더스데이 유래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올해는 6월 17일)은 미국의 ‘파더스 데이(Father’s Day)’, 즉 아버지의 날이다. 파더스 데이(Father’s Day)는 아버지들을 응원하고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날이다. 정리

편집부

파더스데이(Father's Day) 유래

1908년 7월, 웨스트 버지니아주 한 탄광에서 362명의 광부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 다. 사건 발생 후 장례 예배에서 ‘아버지를 위한 날’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되었다. 이 듬해 워싱턴주의 소노라 스마트 도드 라는 여성이 마더스 데이와 같이 아버지를 기리

는 날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소노라 도드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녀는 자신을 포함, 6남매를 키워준 아버지도 어머니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지역 교회와 YMCA,

주 정부 인사들에게 로비를 펼쳤다. 그녀의 주장은 서서히 빛을 발하고 각 지역을 중

심으로 이를 기념하기 시작한다. 이후 1910년 7월 19일, 워싱턴주가 미국에서 처음으 로 Father's day를 공휴일로 제정했다. Father's day는 1972년 리차드 닉슨 대통령이

정식 연방 공휴일로 제정한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Father's day에 자녀들은 아 버지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카드와 작은 선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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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깊은 마음

다섯 명의 자식을 둔 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아들이 유독 병약하고 총명하지도 못하여 형 제들 속에서 늘 주눅 들어 있는 아들이 아버지는 늘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다섯 그루 의 나무를 사 왔다. 그리고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 한

그루씩 나누어주며 1년이라는 기한을 주었다. 가장

잘 키운 나무의 주인에게는 뭐든 원하는 대로 해 주

겠다는 약속과 함께. 약속한 1년이 지났다. 아버지 는 자식들을 데리고 나무가 자라고 있는 숲으로 갔 다. 놀랍게도 유독 한 그루의 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교하여 키도 크고 잎도 무성하게 잘 자라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였던 그 아들

의 나무였다. 약속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고 예상대로 이 아들은 자기가 딱히 무엇

을 요구하여야 할지조차도 말하지도 못하였다고 한 다. 아버지는 이 아들을 향해 큰소리로 칭찬 하기를 이렇게 나무를 잘 키운 것을 보니 분명 훌륭한 식물 학자가 될 것이며 그리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

끼지 않겠다고 모두 앞에서 약속했다. 아버지와 형 제들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한 몸에 받은 이 아들은

성취감이 고조되어 식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

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얗게 밤을 지 낸 새벽 잘 자라준 나무가 고맙고 하도 신통하여 숲 으로 갔다. 어스름한 안개 속에 움직이는 물체가 그

의 나무 주변에서 느껴졌고 곧이어 물뿌리개를 들 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아들의 두 눈에 보였다.

그 후 이 아들은 비록 훌륭한 식물학자는 되지 못하

였으나 미국 국민들의 가장 많은 지지와 신뢰를 받

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프랭클린 루즈벨 트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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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전통은 고루하다는 인식에 맞서는 옻칠 화가 전인수 옻칠은 뛰어낸 내구성과 광택을 자랑하며 동양권에서는 이미 4천여 년 전부터 칠기의 도 료로서 사용되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에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금속, 목기 등 다양한 종 류의 도료로 널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생활 장식이다. 간편하 고 가격이 저렴한 합성수지도료가 대량 생산되면서 옻칠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지 만 오래지 않은 과거의 한국 가정에는 어디나 옻 공예 가구나 각종 장식품이 있었다. 안방 의 한 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자개장은 부의 상징이었고 살림이 넉넉지 못한 가정 이라도 경대나 한 두 점 정도의 조악한 옻 공예 용품은 갖고 있었다. 반면 그렇게 늘 접하 는 생활 일부였기 때문에 옻칠을 예술의 형태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고, 공예가의 영역 을 넘어서 순수 예술가로서 옻이라는 재료에 접근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그런 의미에 서 5월 3일부터 12일까지 첼시의 K & P 갤러리에서 열린 전인수의 개인전 'Infinity(무한)' 는 수천 년 이어진 전통의 도구를 옻칠의 신선함과 가능성을 접할 좋은 기회였다. 글 Won Young Park 정리 72

편집부


“옻칠은 정직과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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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 작품을 둘러보면서 느낀 감정은 예상대로였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장인의 손길이 깃든 고급 자개장의 일부 를 떼어내서 벽에 설치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아, 옻이라는 재료가 이렇게 새로운 회화적인 효과 를 나타내는구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옻(Natural Lacquer) 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한 외국인 관람객들의 관심은 더 눈에 띄었다.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재료의 질감과 색채에 흥미 운 운 반응을 나타냈고 연신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필자 역시 작가 가 전시회장에서 관객들에게 자주 들었을 혹은 인터뷰를 할 때마 다 나왔을 질문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전통을 가졌지만,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옻을 재료로 작품 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아마도 순수하게 작가로만 활동해 온 분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분일텐데,

나는 뮤지엄에서 다년간 일

하면서 작품의 보존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현대 작가들이 다 양한 재료를 실험적으로 쓴

작품이 많다. 그런데 뮤지 엄의 창고에 가면 그런 작

품들이 온전하게 보존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작 품의 보존과 지속성을 위해

옻이라는 재료에 관심을 가

진 것 같다. 그리고 먹을 많 이 다루었던 동양화 전공자 인 내게 옻이 가진 검은색 은 비교할 수 없이 깊은 매

력이 있었다.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옻칠 화가 로 활동하기 시작했나? 그

리고 미술을 전공했지만, 미술가가 아닌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늦 은 나이에 전업 작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던 2011년 가을이다. 홍익대 미대 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네소타에서도 미대 마스터 과정을 마쳤다. 그

사실은 질문의 순서가 바뀐 셈이지만, 동양 화가로 활동하다가 왜 미 국에 와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직장인으로 생활했는가?

한국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깊었다. 나는 예고(서울예고)를 나왔고 홍익대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한국에서 소위 엘리트 코스 를 밟은 후 미술가로 살았다. 그러면서 속되게 표현하면 볼 것 안 볼 것을 많이 봤다. 지치고 벗어나고 싶은 시기였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미술관, 뮤지엄들을 방문했다. 그냥 그 공간에 있는 자체만으로 너무 좋을 지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

어서 예술사, 예술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운이 좋아서 명성 있 는 브루클린 뮤지엄에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옻칠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옻칠 기술부터 배워야 했다. 그동안의 학업과 경력은 전혀 소용되지 않는 새로운 미디엄을 다루는 초보 자로 시작했다. 전통 장인 들에게서 기본부터 배웠 다. 수십년 장인들에 비교 하면 작가는 여전히 숙련 과 경험을 여전히 쌓아가 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창 의성이나 표현의 영역 이 전에 재료를 얻고 다루는 일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 다. 숙련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옻이라는 재 료의 까칠함은 여전히 작 가에게 고단함을 준다. 쉽 게 말해 옻을 잘 타는 체질 이다. 마치 나병 환자처럼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극 심하게 가려운 증상을 초 기에 여러 번 겪으며 심한 고생을 했다. 또한, 재료를 얻는 과정 못지않게 반복 과 반복을 거듭하는 밑 작 업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포질을 하고 바 르고, 또 바르고, 붙이고 또 바르고'의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옻 공예 장인 모두가 나이 많은 남성들이라는 사실이 옻을 이용한 작업의 육체적 강도를 반증하고 있다.

후 다시 뉴욕대로 와서 예술 경영학 과정을 마친 뒤 2004년 브루클

여성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

었다. 남편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일을 하는데 둘째가 태어난 이후

혼자서 다 한다. 공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회화 작업이기 때

린 뮤지엄에서 7년여를 일했다. 뉴욕을 떠난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혼자서 생활할 수 없어서 귀국길을 택했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린 시

절부터 그림을 그려 온 예술혼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유학 시절에 한 교수님이 결국 너는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 속 으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교수님 의 예언이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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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나?

문에 혼자서 가능하다. 실제로 장인들의 가구 제작은 여러 명의 조수

가 필요하다. 가끔 전시장에서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장이나 서랍에 장식하면 멋있을 것 같다며 가구 제작을 의뢰한다. 손사래를 치며 거 절한다. 예술가의 자존심이 아니라 정말로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옻은 칠할수록 무겁다. 물을 뿌린 후 말리는 과정에서 혼 자서 감당이 안 되는 무게 때문에 큰 그림도 그리기 어렵다. 여러 가 지로 어렵고 제약이 많은 재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옻칠 화가로서 느끼는 보람과 성 취감이 있다면?

전통이 진부하다고 여기는 시대에 과연 내 작업이 어

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한다. 옻칠은 무엇보다 기다림 의 미학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옻칠 이 그렇다. 마음이 급해 서두르면 그르치기에 십상이 다. 20번 내외의 칠하고 갈아내는 밑작업 공정이 반

복된다. 그런 작업을 거치면서 그 위에 그려질 그림

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작업을 해 나간다. 그리고 옻칠은 솔직하다. 더도 덜도 없이 내가 한 만큼만 보

여준다. 거짓이 없다. 그래서 힘든 작업이지만 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나 자신도 빠져드는 것 같다. 나 또 한 작업하면서 나의 작업에 대해 매우 솔직해진다.

옻칠은 솔직해요. 더도 덜도 없이 내가 한 만큼만 보여줍니다. 거짓이 없죠.

전시장에는 최근 작품에서 3-4년 전 작품까지 선 보이고 있었다. 7년이란 길지 않은 활동이지만 작 가가 변화와 발전 성숙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보 였다. 나뭇잎과 꽃을 형상화 한 초기 작품들이 옻 작업이 낼 수 있는 화려함과 고유의 미적 효과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한 시도가 있다면 최근작에서 는 거꾸로 기교와 효과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의 도한 모습이 보인다. 그랜드 케년의 협곡과 원시의 밤을 표현한 'Flow' 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지난 해 그랜드 케년을 다녀와서 새로운 작 업에 몰입했다고 한다. 억겁의 세월을 거치며 콜로 라도 강에 침식되어 1500미터나 되는 대협곡을 이 룬 웅장함에 매료되어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협곡 을 촘촘히 메운 얇은 겹들은 실제로는 인간의 수명 이 수천번 다해야 이룰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장 고한 세월의 흔적이다. 그 무수한 겹(레이어)을 표 현하기에 반복되어 덧칠된 옻은 최적의 미디엄이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보면서 필자 는 10여년전 보았던 아리조나의 밤하늘이 자연스 레 떠올랐다. ‘칠흙같다’는 표현을 흔히 접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깊고 검은 어둠을 본 것은 처음이었 다. 그 칠흙같은 어둠을 무한처럼 깊은 명도의 옻 만큼 제대로 표현 할 재료가 또 있을까? 작가 역시 자연을 표현함에 있어서 옻 만큼 올바른 도구는 없 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옻나무에서 어렵게 얻어진 수액인 옻은 자연 그 자 체다. 옻은 그림을 그리는 계절과 날씨, 온도,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경화된다. 때문에 나 자신도 예 전에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자연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미세한 환경변화에 정직하

게 반응하면서 작품과 나는 작업이 시작되어 끝나는 순간까지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한 단계 한 단 계, 차곡차곡 쌓아 나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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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명품발레 골라보기

6월에 꼭 봐야 하는 발레공연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비싼 공연 티켓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모든 분들에게 다 딱들어맞는 명언이지만, 때 로는 티켓 구입 결정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6월에 부담없는 가격으로 문 화 공연을 즐기고 싶다면, 명품 발레 감상을 권하고 싶다. American Ballet Theatre (ABT)와 New York City Ballet (NYCB)의 봄 공연이 겹쳐지는 5, 6월 중에 관객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티켓 할인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두 발레단 의 이번 시즌 공연과 각 발레단에서 기획한 알짜 정보는 무엇인지 알아보고 가족이나 연인 혹은 친구와 함께 발레 공연을 즐기는 기회를 가져보자. 글 정선분 정리 76

편집부


NYCB (New York City Ballet)

NYCB 는 1948년 조지 발라신과 링컨 커스타인에 의해 창단되었다. 안 무가인 조지 발라신의 호두까기 인형을 매년 연말에 공연하는 뉴욕 시

티 발레단은 독창적인 공연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겨울과 봄 시즌은 링컨센타의 데이빗 코크 티어터에서 여름 시즌은 사라토가 예술센터

에서 공연을 갖는다. 2018 년 봄 시즌에는 21세기 안무가의 작품들과 코펠리아가 공연 된다. Hee Seo in Romeo and Juliet. Photo: John Grigaitis. (Provided by ABT)

ABT (American Ballet Theatre)

ABT는 1939년에 창단된 명불허전의 세계적인 고전 발레단이다. 5월

부터 8주간은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을 시즌에는 데이 빗 코크 티어터에서 공연을 한다. 대표적인 무용수로는 한인의 위상을 살려준 ABT 수석 발레리나 서희를 비롯하여 로베르토 볼레, 질리언 머피, 마르셀로 고메즈 등이다.

2018년 봄시즌 공연은 지젤,불새,라 바야데르,로미오와 줄리엣,백조의

호수, 돈키호테,윕드 크림,할리퀸아드, AFTERITE 이다. 한인 최초 수석 무용수 서희의 6월 공연은 지젤, 라 바야데르,로미오와 줄리엣,백조의 호수,돈키호테가 예정되어 있다. Subscription

Full Series : 세 개부터 최대 여섯 개의 공연까지 고정석 관람이 가능

하다. 티켓 역시 고정 티켓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별도의 비용 없

13세부터 30세에게는 단돈 $30로 봄, 가을, 겨울 시즌 공연을 볼수 있 다. 단, 나이를 증명할수 있는 사진이 있는 ID 로 본인이 직접 최대 2장

의 티켓을 공연 당일 박스 오피스에서 구입할수 있다. 제한된 공연만 이 특가 구입이 가능하므로 공연 관람을 계획전 웹사이트를 확인해 보 는 것이 좋다.

Subscription

$30 for 30 : 단 한번의 Handling Fee $25로 3개 이상의 공연 티켓

을 구입하면 15% 할인 혜택과 공연 티켓 변경이 가능하고 자리 지정 우선권과 호두까기 인형 공연 예매 우선권이 주어지며 티켓마다 붙는

Service Fee $7.50 (매 티켓)와 Facility Fee $3.50 (매 티켓) 면제 된다. $30 티켓은 (2017-2018시즌 가격) 할인혜택을 받을수 없다. 단체 구입

10명 이상의 단체 티켓을 구입하면 30% 할인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이 티켓교환도 해준다. 티켓가격은 $66(세 개 공연 티켓 합산 가격)부

티켓 구입전 웹사이트 확인은 필수이지만 웹사이트보다 먼저 좋은 딜

Trios Series : 가족 Subscription로 지정된 공연인 경우 50% 아동 할

품 발레 공연으로 즐겨보자.

터이다.

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Make 3 Sreies : 원하는 공연을 자유롭게 선택할수 있다. 단체 구입

15명 이상의 단체 티켓은 3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을 소설 미디어에 올리는 경우가 있다. 감상하고 싶은 발레단의 팔로우

가 되어 깜짝 딜을 놓치지 않는 기다리는 부지런한 새가 되어 6월을 명

글 정선분_바이올리니스트

매네스(Mannes) 음대 전문 연주자 과정 졸업 NY Classical Youth Orchestra 디렉터 클로스터 Sun Violin Studio 원장 77


LIFESTYLE

Special dishes you should definitely have at your wedding 요리 Madeline's Catering and Special Events 사진 Kihoon Oh 78


결혼식 요리엔 어떤게 좋을까? 예전 시골에서는 마을에 결혼식이 있다면 온 동네 아낙들이 다 모여 하객에게 대접할 음식을 다 함께 만들었다. 결혼식 전날이면 부침개를 부치고 커다란 솥단지를 걸어서 고 기를 삶고 국수 한 그릇에 마음을 담아 축하의 정을 나누곤 했다. 현대에 와서는 식당이 나 캐터링 업체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 결혼식 요리라고 해서 특별히 정해 진 게 없지만, 근사한 요리가 나오면 정작 예식의 화려함보다 더 하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유 명인의 예식에서 선보인 결혼식 요리는 신부의 드레스만큼이나 입소문을 타기도 한다. 최근 결혼식 요리는 점점 더 세련되게 변화되어 새로운 음식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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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대표 음식이었던 ‘잔치 국수’의 의미

“국수 언제 먹을 수 있어?”, “국수먹으러 가야지.”라는 등 흔히들

결혼을 국수에 비유한다. 이유가 뭘까? 국수는 음식 중에서 길이가 긴 음식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국수를 먹으라는 말이 있듯 국수는

건강과 장수를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결혼식에서는 ‘잔치국수’를 먹으며 새로 탄생한 커플들의 행복을 기원해 준다. 꼭 장수의 의미

보다는 두 사람이 오래오래 잘 살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결혼을 국 수에 비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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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을 한층 빛나게 만들어주는 캔들 소품

캔들은 예식 하객들 테이블 위에 놓거나 웨딩 답례품 목으로 사랑받고 있다. 테이블 위에서 은은한 향은 물 론 다양한 컬러로 분위기를 살려주고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디자인으로 예식 분위기를 한층 높여준다. 양

초 겉면에 예비 신랑, 신부의 이니셜과 함께 감사 문구

라벨을 붙인다면 금상첨화! 초는 ‘환하게 비춰준다.’라 는 의미까지 있어 축하 예식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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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Raw Zucchini Pasta with Avocado Sa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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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재료로 일분 안에 완성되는 초스피드 건강식

생호박 아보카도 소스 파스타 요리 Jinhee Seo

재료 호박(zucchini) 1개, 아보카도 1개, 딸기 3~4알 * 만들기

1.스파이럴라이저(spiralizer) 를 이용해서 호박을 국수처럼 뽑아낸다. 2. 아보카도는 믹서기에 간다.

3. 부드럽게 갈린 아보카도를 호박국수와 골고루 섞어준다. 4. 딸기를 깍둑썰기하여 국수위에 흩뿌려준다.

Need Three Ingredients and Done in One Minute

Raw Zucchini Pasta with Avocado Sauce Ingredients: 1 zucchini, 1 avocado, 3-4 strawberries 1. Make a zucchini noodles with a spiralizer. 2. Grind a avocado with a mixer

3. Mix the ground avocado with the zucchini noodles.

4. Cut and cubed strawberries, and sprinkles on the nood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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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Friends Apartment Building in New York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장장 10년간 인기몰이를 했던 미국의 시트콤인 프렌즈 (Friends).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남자 셋, 여자 셋, 이렇게 여섯 명의 베프들이 한 아파트 건물에 살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인데 방영 내내 프 렌즈 골수 분자들을 양성하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극중 캐릭터인 레이첼(Jennifer Aniston扮)의 헤어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맨해튼의 잘나가는 미용실은 레이첼의 머 리와 똑같이 해달라고 찾아오는 여성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4차원인 피비 (Lisa Kudrow扮), 귀여운 모니카(Courteney Cox扮), 바람둥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조이(Matt LeBlanc扮) 그리고 진중한 챈들러(Matthew Perry扮)와 주인공 중의 주인 공 로스(David Schwimmer扮)까지 각각의 캐릭터마다 어록이 생길정도로 모든 등장 인물이 사랑받았다. 이야기의 주 무대인 이들의 아파트와 주변 거리 풍경은 전 세계 젊은 시청자들에게 뉴욕에 살아보고픈 로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프렌즈의 광팬 이라면 꼭 들러봐야 할 성지인 프렌즈의 친구들이 살았던 아파트. 그곳으로 가보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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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사진 George Jung


프렌즈의 여섯 친구들은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았다

90 Bedford Street. Bedford Street과 Grove Street과 만나는 코너에 있는 프렌즈의 친구들이 살았던 아파트. 뉴욕 메트로 지하철 라인 A, B, C, D, E, F, 혹은 M 라인을 타고 West 4th Street 역에 내리면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프렌즈의 배경이 되었던 아파트를 쉽게 찾아갈 수 있

다.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TV 드라마로는 프렌즈 이외에도 사인펠드(Seinfeld), 섹스 앤

더 씨티(Sex and the City), 가십걸(Gossip Girls) 등이 있는데 각각의 촬영지를 들리는 투어 프

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 프렌즈 아파트 빌딩도 예외는 아니어서 들리는 이들의 대부분 이 드라마를 빠지지 않고 보았던 열혈 팬들인데, 이곳에서 실제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간혹 아파트 내부에 들어가면 촬영 세트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왔다가 실망해서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회 이야기 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이 아파트 건물이 갖는 매력과 재미는 쏠쏠하다. 드라마 vs. 현실

‌ 시트콤의 배경은 뉴욕 맨해튼이지만 실제 모든 촬영은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있는 스튜디오 에서 모두 이루어졌다.

‌ 뉴욕의 아파트는 이렇게 넓다?! 절대 아니다! 실제 그리니치 빌리지 혹은 뉴욕 맨해튼에서 아

파트를 구해보면 숨막힐 듯 좁은 공간에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특히 부엌이 이렇게 넓은 아

파트는 없다. 피비를 빼고는 모니카와 레이첼, 조이와 챈들러 그리고 한 때 로스까지 (잠시) 함 께 살았던 2 베드룸 아파트의 내부는 전부 세트장이었기에 가능하다.

‌ 여섯 친구들의 또 다른 아지트였던 아파트 1층에 있던 센트럴 퍼크(Central Perk). 이 센트럴

퍼크마저도 세트장이다. 실제 센트럴 퍼크를 보고 싶다면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있는 워너 브 라더스 스튜디오에 가면 된다. 대신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프렌즈 빌딩에 가면 미식가들에 게 입소문 난 Little Owl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 프렌즈 시트콤을 시작하기 전 주제가인 I’ll Be There for You가 흘러 나오면서 여섯 친구가 센

트럴 파크의 분수를 배경으로 모여있는 오프닝이 나오는데 사실 이 분수도 센트럴 파크에 있

는 분수가 아니다. 아쉽게도 스튜디오 세트장에 있는 분수다. 종종 다른 TV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센트럴 파크의 분수는 베데스다(Bethesda) 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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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말보단 느낌이 빨라요~

소통의 지름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비언어적 메시지가 인간 소통의 60~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란, 상대의 표정, 몸짓, 몸의 움직임, 자세, 신체접촉, 공간, 신체 장식, 목소리, 말투, 억 양 등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 전달 방식이다. ‘EQ 감성 지능’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Daniel Goleman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읽고 해석, 사용할 줄 아는 사 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큰 성공을 누린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상대방의 비 언어적 메시지를 잘 관찰하고 해석한다면 상대가 굳이 말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상대 의 감정 상태나 행동, 의도를 더 빠르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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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인간이 태어나서 먼저 사용하는 소통 방식은 언어가 아닌 비언어이다.

고 두 손도 저절로 거의 모인 상태가 되는데 이 자세는 테스토스테론

보다 미소도 짓는다. 언어가 아닌 비언어로 소통을 위한 의사 표현을

넓게 벌리고 어깨를 펴게 만들기 때문에 자신감을 높여주게 된다.

몸을 바둥거리고 팔을 흔들거나 두 눈으로 엄마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데 걸리는 시

수치의 하락을 불러온다. 대신 신문을 든다면 신문을 펼친 자세가 팔을

간은 0.02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첫인상에 점수를 따려면 그만큼 미리

손을 맞잡고 이름을 불러주면 연결된 느낌이 배가된다.

하는 비언어 몇 가지만 알아보자.

들이 악수를 한 상대는 2배의 높은 확률로 기억했고 긍정적인 기억이

준비를 하고 상대를 만나야 함은 당연하다.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전달 반가운 마음을 전하려면 눈썹으로 인사하라

반가운 사람을 보았을 때 눈이 커지고 눈썹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처음 만났더라도 반가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눈을 약간 크게 뜨고 눈썹을 올려서 인사하라. 여기에 눈도 함께 웃어준다면 금상첨화! 다양한 표정으로 대화

미소는 첫째! 그러나 이 한 가지 표정만으로는 사람들과 공감 할 수 없

미국의 한 소득센터(American Income Centre)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 있다고 한다. 악수를 하면서 이름까지 불러 준다면 상대에게 긍정적인 느낌이 전달되고 상호 연결되는 감정이 커진다고 한다. 팔짱이나 다리를 꼰다면 대화하지 말자는 뜻?

팔로 팔짱을 끼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별 호감을 못 느낀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만일 상대가 팔짱을 하고 다리를 꼬았다면 차를 한 잔 권하거나 명함을 건네서 풀어내자.

다. 상대 이야기의 내용과 흐름, 감정에 맞는 다양한 표정으로 이야기

손동작으로 전달되는 의미

기억에 오래 남게 된다.

한 제스처는 훨씬 더 말하기가 쉬워지고 더 명확한 설명을 할 수 있게

를 나눠보자.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당신의 마음이 쉽게 전달되고 손을 가슴에 얹고 대화하기

가슴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나는 진실을 이야기합니다''라는 비언어적

인 메시지다. 진심을 전달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할 때, 가슴에 손을

손을 움직이면 두뇌의 언어 중추신경을 자극할 수 있다. 손을 쓴 적당 도와준다. 그러나 손의 위치는 허리에서 어깨 사이에 자리 해야 한다. 적절한 손동작은 상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과 느낌을 주 게 된다.

살짝 얹기만 해도 상대방이 받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효과적인 소통을 원한다면 침묵이 최고다

자신감을 보여주려면 스마트폰을 감춰라

는 데 좋은 수단이 된다. 대화 또는 프레젠테이션에서 한순간의 쉼표도

스마트폰을 만질 때 자신감의 수치(테스토스테론)가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유는 전화기를 보려면 고개를 숙이고 어깨는 앞으로 굽

침묵이 주는 의미가 크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내 감정을 전달하 없이 매끄럽게 말할 필요는 절대로 없다. 한 번의 짧은 침묵이 주는 효 과는 백 마디 말보다 더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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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고향에 두고온 추억은 언제나 그 자리에 글 조현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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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연초록색 겉장이 뿌옇게 퇴색되어 케케묵은 고서처럼 보이는 43년이

15년 동안의 내 모습이 갑자기 팽개쳐져 있던 일기장으로부터 마치 사

들여다본다. 미국 바람이 들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서교동에 그림

물, 즉 나 자신이, 아니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내가 나타나서 한동안

나 된 빛바랜 일기장. 이민 보따리 속에 따라온 묵은 일기장을 무심코

같은 양옥집도 지었는데 2년도 채 못 살고 갑자기 떠나온 이유, 당시의 기막힌 이 이 낡은 일기장 안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75년 서슬퍼런 박 정희 정권 때 동아일보를 비롯하여 바른말을 전하는 언론사는 탄압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광고가 다 끊겨서 큰 어려움을 겪

었다. ‘동아일보 광고 사태’만 아니었다면 우리 가정은 미국에 오지 않 았을 거다. 75년 3월 17일, 그 날짜를 나는 왜 아직도 기억하는 걸까.

새벽 5시에 남편이 호출되어 나갔다. 경영주인 회사 측과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있는 기자, 프로듀서들 사이에 남편 등 회사 간부들이 중재 역

진을 현상해 내듯 한 장 한 장 비쳐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속에 있는 인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처럼 내 생활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이민을 왜 가느냐?” 동아일보 사장님을 비롯하여 가까운 친지들의 만

류를 뿌리치고, 사십 대의 혈기를 스스로 거세하고 와서였는지 몰라도 이민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다. 5년 동안 보따리를 수천 번도 더 쌌다. 나

는 내 형제 초청받아서 이민 왔고 형제들 도움받으며 사는 죄로 남편의

부당한 신경질을 다 받아야만 했다. 홧김에 그때 내가 보따리를 진짜 쌌

더라면 우리 가정의 중심은 엉망이 되었을 테고 두 동강이가 나기에 십 상이었을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심장병과 고혈압 병을 선물로 받았다.

할을 해야만 했다. 아니 방파제 역할이라는 게 더 어울릴 거다. 바리케

남편이 5년 동안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내

득하기 위해 쳐들어갔을 때 울분으로 흥분한 나머지 초점 없이 마구 던

입원했다. 그때 남편은 뉴욕에 비즈니스 출장을 가서 15살 난 막내딸이

이드를 산소땜으로 뚫고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농성하는 데모대를 설 진 벽돌이 남편 이마에 맞는 바람에 피바다가 되었다. 결국, 남편의 죄

없이 흘린 피로 인해 하마터면 불붙을 뻔했던 기자들과 회사 측과의 격 전은 잠잠해졌으나 방송과 신문은 여전히 제구실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왼쪽 눈 바로 위 눈썹 넓이만큼 찢어져서 열일곱 바늘을 꿰매고 실명 위기를 넘긴 채 살아났다. 실명되지 않은 것만을 감사하면서 그 고

심장 고동이 일 분에 200번 이상을 뛰어 나는 엠뷰런스에 실려 병원에 나의 보호자 노릇을 했었다. 그 후로 남편은 보따리 싸라는 말을 뚝 그 치고 자기 누님을 초청해 보겠다며 일 년 후에 시민권도 받았다. 나는

그제야 왜 미국 정부가 만 5년이 넘어야만 시민권 받을 자격을 주는 이

유를 알았다. 5년이 되기까지는 보따리 싸고 풀 수 있는 권한을 충분히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통을 이겨날 수 있었다. 성형 수술을 거절하고 퇴원했다. 그때 그 사건

우리는 과거와는 아주 단절된 생활을 시작했다. 꿈에도 그려 보지 못했

이 관심이 있었다. 당시에 야당이었던 몇몇 정당 측에서는 취재하러 병

만 하고 별로 발전이 없었다. 몸은 갑절이나 고달팠으나 마음은 아주 편

은 워싱턴포스트지에 게재되었으며 정부 대 야당 사건이라서 온 국민 실을 찾아오는 등 잊지 못할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었다. 퇴원하고 실의 에 빠진 남편에게, “우리 미국에 가는 게 어때요?” 계획 없이 불쑥 던진

말에 남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펄쩍 뛰지 않는 걸 보아 반대는 아닌

던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출범은 했으나 도시 어설프기

했다. 그러나 서투른 장사나마 꾸준히 해서 아들딸들 공부하는 것을 뒷 받침해 줄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것 같아 미국행을 준비했다.

한국에 두고 온 수없이 많은 귀한 것들, 사랑하는 친구, 아름다운 강산,

마침 미국엔 6남매 중 4남매가 이민 와 있었고 시민권 가진 형제가 둘

는 고추장 된장 마늘 김치의 향기,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이나 있었다.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월남이 패

망한 뒤라 국제정세가 어수선해져서 어떤 끄나풀만 있어도 한국을 빠 져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들끓는 때였다.

어느덧 이민 와서 43년이란 아까운 세월이 글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에 가버렸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나의 삶을 살아 준 것만 같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세월이었다. 때로는 살아가는 방법을 한

번 연습해 본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런데 돌연 한국에서 살았던 결혼생활

정다운 내 고향 사람들의 시끌시끌한 우리말 소리, 코끝을 시큰케 만드 는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많은 고향에 두고 온 보배들이 바로 거 기 우리 땅에서, 이민 와서 향수병에 걸린 많은 영혼을 언제나 반가이 맞아줄 거라는 걸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조현례

강원도 출생. 경기여중,고 졸업. 이화여대, 동 대학원 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여성생활, 소년한국일보 기자. 이화여대, 단국대 성균관대 강사 역임

수필집 ‘보이지 않는 유산’ ‘너와 내가 만나는 곳’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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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wich Village

LIF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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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레는 곳

보헤미안의 영원한 천국 ‘그리니치 빌리지’ 뉴욕 지하철역 A•B•C•D•E•F•M 라인 W 4th Street-Washington Square 역. 그곳은 첫사랑을 만난 듯한 묘한 설렘이 있다. 예쁜 돌계단의 브라 운 스톤 아파트가 늘어서 있고 이리저리 굴곡진 거리를 따라 심어진 커다란 가 로수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곳. 잠시 쉬어가는 나무 그늘과 그냥 스쳐 지날 수 없는 예쁘고 작은 레스토랑, 오밀조밀 볼거리로 유혹하는 오래된 가게, 부티 크가 자리하고 있는 매력적인 동네. 바로 뉴욕 맨해튼 남서쪽, 워싱턴 플레이스 와 NYU(뉴욕대학교) 서쪽에 있는 작은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다. 글

편집부 사진 George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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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지인이 가장 좋아하는 곳

보헤미안의 영원한 천국이

다. 그러나 잠시만 걸어도 그리니치 빌리지만

미국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진 이곳

주거지역인 이곳은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

의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하

게 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동네다. 작고 아담 하지만, 존스 피자(John's Pizzeria), 컵케이

크로 유명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Magnolia Bakery), 뉴욕 인기 브랜드인 마크 제이콥스 (Marc Jacobs) 등이 있어 여행자의 입소문은

점점 퍼져나간다. 거리의 집과 빌딩 역시 그 림처럼 아름답다. 담쟁이가 타고 오르는 붉은 벽돌담에는 철제 계단이 외부로 나와 있고 예

쁜 색을 입은 현관문, 돌로 만들어진 계단은

동화 속 마을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 네 전체가 운치 있는 분위기 탓도 있지만, 맛 집도 많아서 ‘뉴욕에서 현지인이 가장 좋아하 는 곳’으로 손꼽힌다.

지성인의 요람과 문화 공간이 공존하는 곳

그리니치 빌리지는 본래 워싱턴 스퀘어 파크 (Washington Square Park)로 불리었다. 그

리니치 빌리지의 중심에 있는 이 공원은 뉴 욕에서 가장 활기찬 문화 공원이다. NYU(뉴

욕대학교)의 아담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데 NYU는 캠퍼스 울타리가 없이 뉴욕 곳곳

에 건물들만 있다. 그 때문에 NYU 학생들은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캠퍼스처럼 활용하고

이젠 부자들의 주택가로

은 많은 예술가와 배우, 작가, 시인들이 거주 하던 동네였다. 유명한 오 헨리의 소설 ‘마지 막 잎새’ 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브루클 린 의 예술인 거주지 ‘윌리엄스버그’가 그랬듯

이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동네는 이내 입소문이 나게 된다. 그러면 그곳은 빠른 속도

로 발전하고 집값이 오르게 마련이다. 예술가 들은 또다시 임대료가 싼 동네를 찾아 떠난다.

그렇게 가난한 예술가들이 빠져나간 그리니

치 빌리지는 뉴요커 부유층들이 이주를 해와 서 고급 주택가로 변하게 되었다. 물론 성공한 예술가, 작가, 디자이너, 배우들도 이곳에 살고 있다.

뉴욕의 시크릿 가든

뉴욕 맨해튼 안에 있지만, 뉴욕이 아닌 듯한

이곳. 타임스퀘어의 복잡함이나 북적거림과는 거리가 먼 동네, 이곳만의 멋을 아는 관광객만

찾아오는 매우 특별한 관광지. 파크 에비뉴의

고급스러움과는 차원이 다른 전통미를 갖춘 진정한 고급스러움. 옐로 캡의 시끄러운 경적 이 잦아드는 곳, 그리니치 빌리지는 뉴욕의 시 크릿 가든이 아닐까 싶다.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 공원을 NYU의 캠퍼스로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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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65세 노신부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잠비아 이야기(1)

“용기 있는 자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세상, 잠비아”

아프리카 잠비아 ‘피데이도눔’ 사제 김한기 신부

잠비아는 아프리카 46개국 중에 중남부 쪽에 위치한 나라로 우리나라에서 그곳으 로 가는 시간만도 24시간이 더 걸리는 나라이다. 작년 9월 14일 자정에 인천공항을 출발, 그다음 날인 9월 15일 오후 3시경에 잠비아 은돌라공항에 도착하였으니 한 국과의 7시간의 시차를 고려하면 정확하게 32시간 정도가 걸린 셈이다. 지구를 거 의 반 바퀴 돌아서 온 먼 나라 잠비아.

연재를 통해 잠비아 이야기를 시

작하면서 어떻게 이곳에 선교사로 오게 되었는지 지난 과정부터 소개하려고 한다. 글, 사진 김한기 정리 94

편집부


지난 내 삶의 이력서

누가 그 어려운 곳에 가겠어요?

중 셋째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경희대학교 신

견을 요청하는 공문이 왔다. 자원할 사람은 3월 말까지 총대리 신부님

1953년 1월 26일생으로 지금 만 65세인 나는 강원도 삼척에서 4 형제 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기자 생활 2년을 거친 뒤, 사제가 되기 위해

서울 가톨릭대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1980년 호주 시드니 성 콜럼반 신학교로 옮겨 나머지 공부를 마치고 1983년 2월 15일 가톨릭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 서품 후, 돌아가신 지학순 주교님의 비서를 했다. 강

원도 횡성의 풍수원성당, 정선 사북성당, 교구청 사목 국장을 거쳐 미 국 뉴욕 롱아일랜드의 락빌센터교구 소속 그레이트 넥 한인 성당에서

주임신부를 지냈다. 4년 2개월의 미국 교포 사목 경험을 한 다음, 원주

태장동 성당에서 8년 7개월, 제천 청전동 성당에서 5년 정도 사목을 하고서 강원도 평창성당으로 부임했다. 그곳에서 1년 정도 지낸 후, 9

월 12일 주교좌 원동성당에서 조규만 교구장 주교님의 파견 미사 후 선교사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해외 원주민 선교사로 떠나기까지

해외 원주민 선교사로 가게 된 계기는 선교사를 양성하는, ‘성 콜럼반

신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부터 막연한 꿈을 꾸었던것 같다. 또 어렸을 때부터 신부님을 도와 성당에서 복사를 하며 당시 외국 선교사였던 아

일랜드 출신 신부님들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당시 신부님께서 환등

기를 통해 아프리카 선교사들의 활동상을 보여주셨던 기억이 난다. 사 제가 되어서도 이런 생각들이 잠재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실천하

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주 교구청 사목국장을 하면서 성 콜 럼반회에서 자원사제를 요청한다는 말을 듣고 자원하려고 했으나 주

교님은 ‘선교사를 파견하면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데 원주

교구로서는 사정이 열악하므로 어렵다’는 판단을 하셨다. 그래서 그 꿈 을 포기하고 뉴욕의 교포 사목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목은 원 주민이 아닌 한국인을 위한 것이므로 내가 생각하던 일은 아니었다. 교

2017년 2월 아프리카 잠비아의 은돌라 교구에서 원주민 선교사를 파 께 연락하라는 것이었는데 난 해외성지 순례 중에 보게 되었다. 크게 내지지 않았기에 한국에 돌아와, 잠비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평창 생태

마을의 황창연 신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누가 그 어려운 곳에 가겠 어요?“ 라고 남의 일처럼 얘기했을 정도였다. 내 나이로는 무리였기 때 문이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한참 후배인 최

재도 신부, 더 후배인 김정하, 이규준 신부가 남미 선교를 위해 멕시코 에서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러니 감히 내가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용기 있는 자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 잠비아를 위해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그 공문을 보게 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평소 늘 꿈

꾸어 왔던 일이 바로 앞에 놓였는데 나이 때문에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영어

의 속담처럼 ‘용기 있는 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이가 만 64세였는데 은퇴 6년을 앞둔 시점이었

다. 만일 부모님이 살아계셨으면 이런 결정을 못 했을 것이다. 아무 것 도 걸릴 것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였으므로 그 누구하고도 상의하지 않 고 단독으로 결정하였다. 비교적 외국 생활을 오래 하여 외국인과의 삶

에 자신감을 가진 데다가 영어가 공용어인 잠비아라서 용기 있게 도전

장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많은 분이 말리고 걱정하였다. 그 때 생각을 너무 깊게 하고 주위 사람들과 상의했더라면 아프리카 잠비

아에 오지 못했을 거다. 테니스를 치다가 걸린 관절염에 앓고 있었고 지병도 조금 있었지만, 주님께서 도움을 주시리라고 믿고 과감하게 잠 비아를 선택한 것이다.

포 사목을 거쳐서 한국에 돌아와 본당 신부를 하면서 이주사목위원회,

막상 잠비아에 와보니 삶의 고난이 매일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

새터민(탈북자) 사목에 큰 보람을 느꼈다. 제천 청전동을 마친 후 평창

우심과 내 삶의 모토인 “가난과 겸손”을 실천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에

민족화해위원회 일을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결혼여성 이민자, 그리고 에 와서 지내던 중 2017년 1월에 뉴질랜드 교포 사목 및 원주민 사목 을 제안받았지만, 하루 만에 철회하고 말았다.

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선택한 이 길, 후회하지 않고 주님의 도 스카사 독자를 비롯한 여러분의 많은 도움이 있기를 바라며….

• ‌ 피데이 도눔(Fidei Donum) 믿음의 선물이란 뜻으로 사제가 부족한 다른 지역에 교구 사 제를 파견하는 것(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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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ic

어떤 칫솔이 좋을까?

치아 못지 않게 중요한 잇몸 관리 치아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 치지 않다. 그러나 치아 못지 않게 중요한게 잇몸 관리! 특히 충지가 상대적으로 덜 생기 는 30대 이후는 특별히 잇몸 질환에 신경을 써야 한다. 효과적인 잇몸 관리를 위한 올바 른 칫솔 선택을 해야 한다. 비싼 칫솔보다는 자신의 이와 잇몸에 맞는 칫솔을 고르는 게 우선이다. 칫솔을 고를 때 주목해야 할 점과 올바른 치아 관리 몇 가지만 알아보자. 글

편집부 참고 COMFORT DENTAL

칫솔을 고를 때 주의 사항

‌ 성인의 경우 솔의 길이는 1~2.5cm면 적당하다.

‌ 부드러운 모를 사용하면 잇몸 주위를 출혈 없이 부드럽게 닦을 수 있다.

‌ 수동이나 진동 중 어느 게 좋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만일 전동 칫솔을 선택했다 면 진동 기능이 있는 것을 사는 게 좋다. 진동 기능은 플라그 제거에 효과적이다.

올바른 치아 관리

‌ 하루에 최소한 두 번 이상, 올바른 방법으로 이를 닦고 가능하면 식사 후에 꼭 양 치를 한다.

‌ 이를 닦을 때는 솔이 이를 마주 보게, 잇몸은 45도 각도를 유지해서 닦자. 닦는 동안 솔을 위아래로 원을 그리면서 닦는다.

‌ 이를 닦을 때 칫솔로 이를 강하게 누르거나 이와 잇몸을 압박하지 않는다. 이 사 이를 닦을 때는 솔의 끝부분을 쓴다.

‌ 아랫니와 윗니의 안쪽을 신경 써서 닦는다. 치석 대부분은 앞니의 안쪽에 낀다.

‌ 양치질은 한 번에 2~3분을 해야 효과적이다. 끝난 뒤에는 물이나 구강 청결제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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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효능 고사리는 고사리과의 식물로 순이 올라와서 어린애 주먹처 럼 아직 잎이 펴지지 않았을 때 채취, 삶아서 식용으로 쓴 다. 특히 예부터 봄비가 내린 후 새순이 돋을 때 채취한 고 사리는 단백질이 풍부해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할 정도 다. 고사리는 차고 활한 성질이 있어 열이 많고 기운이 위로 잘 뜨는 사람이나 몸이 부으면서 속에 열이 있고 소변이 잘 안 나오거나 대장에 열독이 있는 사람이 먹으면 좋다. 글

편집부

한방에 쓰이는 고사리 효능

<동의보감>, <방약합편 약성가>, <중약대사전>에는 ‘고사리는 성질이 차고 활(滑)하며 맛이 달다.’, ‘열을 내리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 고

적혀 있다. 중국 본초도감에는 맛이 달고 성질은 차며 열을 내리고 장

뼈 강화와 골다공증 예방

고사리에는 칼슘과 석회질 성분이 풍부해 이로 인해 고사리를 섭취하

면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므로 골다공증 예방에 좋을 뿐만 아니라, 성장기 어린이들의 골격발달이나 체력증진에도 효능이 있다. 다이어트 및 변비개선

고사리 칼로리는 100g 기준으로 39kcal이다. 고사리는 열량이 낮고 단 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쉽게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좋은 식품이다. 식이섬유와 각종 무기질이 풍부해 변비 예방에도 좋다. 눈 건강

고사리에 풍부한 비타민A가 시력을 향상하고 눈을 보호해주는 등의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 특히, 고사리를 꾸준히 섭취하면 눈과 관련이 있는 질환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을 윤택하게 하며 담을 삭히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정신을 안정시키

살균효과

독 등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본초강목>본초강목에서는 ‘오장의 부족

다. 고사리의 산성다당류가 체내에 침투한 병원체의 세포막을 파괴하여

는 효능이 있어서 감기로 인해 열이 나거나 이질, 황달, 고혈압, 장풍열 한 것을 보충해 주며 독기를 풀어준다’라고 쓰여 있다.

예로부터 구충제 대용으로 고사리를 이용할 정도로 살균 효과가 뛰어나 살균 작용을 해준다. 염증으로 인한 발열 증상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면역력을 높여주는 고사리

항암효과 및 빈혈, 불면증 개선

게 좋다. 각종 비타민이 들어 있어서 피부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주

항암 작용을 해준다. 또한, 풍부한 철분은 빈혈을 예방해주고, 수면을

고사리는 칼슘과 칼륨 등 무기질 성분이 풍부하여 성장기 어린이들에 고, 세포의 노화를 막아줘 피부의 노화를 늦춰준다.

고사리를 꾸준히 섭취하면 암세포가 체내에 흡착되는 것을 막아주는 유도해주는 고사리 효능으로 불면증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내 구입문의 김진수 TEL : 201-232-5599 E-mail : jinsoo.kim@gitxmushroom.com

서울 연락처 ITK 신문식 TEL : +82 10-3748-1353 www.thechaga.com 97


Clinic

스마트폰 사용이 많아지면서 늘어나는

거북목 증후군과 그 치료법에 대해서! ‘스몸비(smombie)’란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 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러한 신조어가 익숙할 만 큼 이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9명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사용시간 역시 하루 평균 약 4시간 18분 정도로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 반되는 각종 질환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 나고 있다. 안구건조 증과 거북목 증후군은 대표적인 스마트폰 증후군 중 하나로, 스마트폰 사용자 라면 눈이 뻑뻑하고 목덜미가 뻐근한 경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방치하 면 전신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는 거북목 증후군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보자. 글 양진환 원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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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거북목증후군 증상과 치료법

거북목증후군의 근본을 바로잡는 도수치료

러지는 형태를 말한다. 스마트폰과 PC 사용이 잦아지면서 현대인과는 떼

시켜 변형되어 탄력을 잃고 굳어버린 근막을 부드럽게 이완시켜준다. 통증

거북목 증후군은 잘못된 자세로 인해 목이 거북이처럼 앞으로 나오고 구부 려야 뗄 수 없는 질환이 되었다. 주요증상으로는 목의 전만 소실 및 구부정

한 등과 어깨의 자세 이상이 발생하고, 목과 어깨 주변에 묵직한 통증과 상 지의 전이통과 방사통 등이 있다.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하여 피로감이 쉽게 발생하고, 가까운 병원에서 물리치료와 약물치료 등으로 치료를 받으면 어

느 정도 호전된다. 하지만 다시 통증이 재발하는 문제를 자주 겪게 된다. 증 상이 심하지 않고 비교적 가볍다면,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만으로 호전할 수

있지만, 잘못된 자세를 고치지 않고 계속 반복하게 되면 치료가 제대로 이

도수치료는 숙련된 전문 치료사가 근골격계 질환을 오로지 손으로만 회복

을 줄이고 조직 기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도수치료는 출혈이나 감염 의 위험이 적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며 수술을 받기 힘든 환자들도 무리 없

이 선택 가능하다. 일반 물리치료와 달리 해부학, 생리학적 체계에 맞춰 확

실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거북목, 일자목 증후군, 체형교정 이 필요한 환자, 만성 통증에는 도수치료가 통증의 근본을 바로잡을 수 있 는 좋은 치료방법이 될 수 있다.

루어지지 못하고 호전과 악화를 반복해 더욱 피곤한 상태가 되풀이된다.

도수치료 이외에 재활운동을 병행하고, 생활습관 교정을 위한 노력과 집에

보통 고개가 1cm 정도 앞으로 빠지게 되면 목뼈에는 약 2~3kg의 하중이

상태에 맞는 운동법과 스트레칭은 전문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재활의

실린다. 목을 앞으로 빼는 심한 분의 경우 약 15kg가량의 무게를 목으로 지 탱하고 있는 셈이다. 가느다란 목으로 이 무게를 지탱해야만 하니 근육에

서도 운동을 병행하면 치료의 만족감은 올라갈 것이다. 내 체형과 현재 내 학과 의원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는 힘이 과하게 들어가고 이로 인해 긴장하게 되고 이 긴장감이 오래 지속

거북목 증후군을 피하려면 평소 스마트폰 사용 시 목을 자연스럽게 세운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계속되고 심해지면, 퇴행성 변화가 좀 더

피하고 되도록 목을 안으로 당겨 이중 턱이 되는 느낌으로 스트레칭을 자

되면 뒤통수 아래 신경이 머리뼈와 목뼈 사이를 눌러서 심한 두통으로도 빨리 나타나게 되고 이로 인해 디스크, 협착 등과 같은 질환으로 발전하게 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치료로는 진통제, 근이완제와 더불어 물리치료가

병행될 수 있다. 하지만 자주 재발하고 통증이 잘 사라지지 않는 경우라면 도수치료와 자세교정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상태에서 시선은 약간만 내려간 자세가 좋다. 목을 앞으로 쭉 빼는 습관을 주 하자. 무엇보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인다몆 거북목 증상은 조금 더 빠르 게 완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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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일본의 전통 축제 ‘마쓰리’

제대로 알고 맘껏 즐겨보자 여름이 되면 일본 각 지역에서 전통 축제인 마쓰리를 연다. 저녁에 유카 타를 차려입고 나와 노점 음식을 먹으며 축제를 즐기고 불꽃놀이를 보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다가오는 여름, 일본 여행을 떠난다면 ‘마쓰리’에 대해 알아보자. 아는 만큼 더 즐기고 신나는 여행이 될 것이다. 글 이지명 정리 100

편집부


오미코시

마쯔리에 참가하면, 지역민들이 오미코시(가마)를 짊어지고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신은 신사 안에 거주하고 있다고 여기므로

신을 밖으로 모시는 도구인 오미코시의 모양도 신사 건물과 닮아있다.

가마 모양을 한 것은, 옛날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에서 가마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이용하는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지역민이 섬기는 다 양한 신만큼 오미코시도 많이 나온다. 마쯔리는 그만큼 볼거리가 풍성 하다.

야타이

마쓰리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게 바로 야타이(포장마차) 음식이다. 노 점을 지나다 보면 식욕을 자극하는 오코노미야키(부침개) 굽는 냄새와 야키소바(볶음국수)는 대표적인 야타이 음식으로 꼽힌다. 야타이의 단

골 음식인 다코야키(문어 풀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온갖 꼬치 요리와 음식들이 즐비한 야타이를 보고 있으면,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

명」 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배불리 먹고 즐긴 뒤, 마쯔리 하면 떠오르는 링고아메(사과사탕)을 들고 노점을 구경해보자. 노점

마쓰리의 노점을 둘러보면 먹을거리가 아닌 놀거리 노점상들을 발견

할 수 있다. 일본의 전통 놀이인 킨쿄스쿠이(금붕어 건지기), 물풍선을 종이 끈으로 들어 올리는 요요쓰리(물풍선 건지기), 사격 게임 등이 있 는데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즐거운 게임뿐이다. 또 마쯔리에서는 캐릭터

가면을 파는 노점을 꼭 발견할 수 있다. 캐릭터 가면은 아이들만 쓰는 게 아니라 성인들도 쓰고 다닌다. 평소에는 할 수 없던, 주위를 신경 쓰 지 않고 동심으로 돌아가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마쯔리의 매력 포인트! 마쓰리

마쓰리란 본래 '신을 부른다'는 의미로 즉,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

사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의식보다는 축제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마쓰리 축제에서는 사람들이 신이 타고 있는 가마(오미코시)를 끌며 퍼레이드를 하고, 일본 전통 노점을 즐길 수 있다. 마쓰리는 그 유래에 걸맞게 신사나 사찰에서 열리기 때문에 관광도 겸하는 일거양득의 효 과도 노릴 수 있다. 불꽃놀이

마쯔리를 대표하는 풍물시라 하면 역시 하나비(불꽃놀이)일 것이다. 보통 큰 규모로 하는 유명 마쯔리에서는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마 쯔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나비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마츠리에 가

지 않는 현지인도 오로지 하나비를 보려고 올 정도. 마츠리의 꽃인 하 나비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자리싸움도 치열하다. 하지만 서서 봐도 충

분히 즐길 수 있으므로 높고 시야가 트인 곳이면 어디든지 상관없다. 하나비가 끝나면 엄청난 인파가 이동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숙소로 돌 아가는 게 좋다.

글 이지명 (Jimyoung Lee)

도코 거주, 호세이대학(法政大学) 경제학부 재학 중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 전통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공부하는 틈틈히 일본 식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사진출처(http://www.chichibu-matsuri.jp/yomats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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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오기까지

함께함으로 행복한 여행 글 김동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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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17년이었다. 우린 만났고 함께 살았다. 꿈이 있

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에너지도 있었다. 다만 우린 너무 어렸고 그래 서 하루빨리 그 꿈에 도달하기를 원했다. 우리의 시행착오는 어쩌면 그 조급함에서, 혹은 조금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우리는 ‘쇼생크 탈출’ 영화 속 “어떤 새들은 깃털이 너무 아름다워서 철

창에 가둘 수 없어. 그 새들의 비상을 빼앗는 건 잔인한 짓이야.” 대사

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우리를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라고 여겼 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2017년을 뒤늦게 정리하자면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그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을 수 없는 우울을 겪었으며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

을 파괴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내 안에는 두 가지 면이 존재했다. 밝음 과 어둠. 내 안엔 밝음과 어둠이 공존했고, 나는 그 어둠을 부정하기 위 해 힘을 쏟았다. 내가 나를 잃어갈 때,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그 시간

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 ‘예린아. 우리 얘기 하자. 너무 무서워’라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제프 아저씨는 ‘좋지 않은 일은 너무도 빨리 우리에게 오지만, 좋은 일은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고 했다. ‘조금씩 조

금씩 다가오니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악몽 같았던 여름 이 지나고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앞으로 양복 같은 건 입을 일이 없 을 것이다. 가을이 끝날 때쯤, 고민 끝에 우린 독일에 가기로했다. 그것 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지난여름, 웃는 날도 있었고 웃지 않는 날도 있었다. 웃는 날을 행복했 다고 말했고 웃지 않는 날을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둠은 웃지 않

는 날에 번져 점점 더 커졌다. 비가 오던 날, 예린이는 말했다. ‘행복하 지 않아도 돼.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그냥 같이 살아가자’. 나 는 그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행복이란 것은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수많은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은 차례대로 혹은 불공평하게 다가왔다. 그런데도 끈덕지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내 깃털이 아름다울 필요 가 없었다. 옆에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재밌게 살자고 다짐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을 어렸을 때 조금이

라도 더 많이 만들자고 했다. 좋지 않은 일은 분명 또 나타날 것이고 그 때도 역시 이겨내자고 말했다. 굳이 생의 목적을 말하자면 더 많은 좋 은 일을 곁에 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그 렉, 티보와 함께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왔다. 우리가 좋아하

는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 그 사람의 미소를 보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 Pacific Crest Trail(PCT) 글 김동하

220일간 4,017km 유럽 대륙을 두 발로 횡단한 이야기를 담은 책 ‘더는 걸어갈 땅이 없었다’의 저자

태평양 연안의 주 산악지역인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캘리포 니아와 네바다에 걸친 산맥)와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Range, 캘 리포니아 북부에서 캐나다까지 연결되는 산맥)을 쭉 따라 형성되어 있는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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