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SA USA DECEM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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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CASA NEW YORK STORY FOR THE MODERN LIFESTYLE

에스카사

December

COVER STORY 요리사업가 이재훈 셰프 EDUCATION VMN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전 부사장 정승희

ART&CULTURE '공간 드로잉' 작가 곽선경

LIFESTYLE Bonnie Slotnick Cook Book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용가 이송희

뉴욕 헬스 키친 레스토랑의 거리 (Restaurant Row) Making Memories in NYC for 2017 Winter








CONTENTS

December 2017 Vol. 10

10

Cover Story

Education

10

24

소박한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내야 하는 것

18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 (9)

38

주니어 리포터

나태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해 쉼 없는 오늘을 사는‌ 반공 웅변대회와 실패의 추억 요리사업가 이재훈 셰프

한글날 반포 571회 기념‌ 제18회 미 동북부 한국어 글짓기 대회

이달의 사진과 글 16

40

사진과 함께 읽는 이달의 시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류시화

People Focus 18

장미꽃을 전하는 사람의 손에는 장미향이 남는다

AWCA 제미경 사무총장

8

우리 이웃이야기 26 어제보다 나은 오늘,

진화하는 삶의 본질은 변화를 즐기는 삶입니다

VMN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전 부사장 정승희

34

미국 로스쿨 진학,

이상(理想)보다는 현실(現實)

36

대학 탐방

첨단 과학 수사관을 양성한다 범죄학 최고 명성의 자부심

존 제이 대학(John Jay College of Criminal Justice)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글로 표현한‌ 박지현 양 대상 수상 인물탐구

한평생 가난하고 병마에 시달리면서 천하고 무시 당하는 존재에 대한 무궁한 애정을 표현한 작가

‘강아지 똥’ ‘몽실 언니’의 작가 권정생

42

Academy of Music and Arts for Special Education

대가없는 사랑과 행복을 나눕니다


54

100

Art & Culture

Lifestyle

48

72

88

포디엄(Podium) 위의 작은 거인 이선민교수

감시자들

휘게(HYGGE)

The life I dream of.

54

작품이 완성 되는 모든 곳이 저의 작업실입니다.

화폭과 도구의 틀에서 벗어나 3차원의 그림을 그리는 '공간 드로잉' 작가 곽선경

60

A Young Entrepreneur &‌ The Founder of EF Collection

Emily Faith

66

뉴욕에서 춤꾼으로 살게 된 인연(Karma)

무대에서 표현하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용가 이송희

70

서로 다른 개성과 쟝르의 작품이 한편의 모자이크처럼

뉴욕한인미술협회전 '모자이크 3'

영화 심리 이야기

74

생활속 음악이야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50% 싸게 보기

76

갈수록 소중해지는 보석 같은 공간들

뉴욕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최고의 서점

80

사랑방 같은 동네 서점 보니 슬로트닉 쿡 북

Bonnie Slotnick Cook Book

82

30년 홍대 지킴이 뉴욕 구석구석을 뒤지다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 H> 발행인 장성환

86

나는 어떤 타입의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뉴욕 타임즈, 월 스트리트 저널‌ 최고의 베스트셀러 ‘Give and Take’

당신,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

90

ONE BASE, TWO NOODLES

오뎅우동 온메밀국수

94

파리에 버금 가는‌ 일류 레스토랑 거리를 꿈꿨던 야심찬 기획

뉴욕 헬스 키친 레스토랑의 거리‌ (Restaurant Row)

98

색(色)이 말해주다 - 패션과 색

2017년 마무리색 ‘그래나딘’ 레드

100

Making Memories in NYC for‌ 2017 Winter

잊지 못할 최고의 겨울을 보내자!‌ 12월 뉴욕 특별 이벤트

9


Publisher Jennifer Y.Lee (USA) Dr. Charles Changsoo Lee (KOREA)

에스카사 ( )는 S-Story, Casa-집, ‘이야기를 모은 공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Managing Director Sarah Chung Magazine Director Yebin Taylor Lee

Editor in Chief Won Young Park

는 각 분야 최고의 필진이 만드는 뉴욕 스토리 잡지입니다.

Executive Director / Hyobin Lee Executive Editor / Dr. Anderson Sungmin Yoon

는 자신의 삶을 아끼는 20~40대 독자 가 주요 대상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삶에 향기를 더하는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는 Family잡지입니다.

는 빠르게 변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리포터 가 전해주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문 화예술, 패션, 라이프 스타일, 화제인 물 focus, 교육, 육아, 요리, 여행, 건 강정보 등을 아우르는 생생한 이야 기를 가득 담았습니다.

는 뉴욕에서 발행하며 뉴욕, 뉴저지는 물론 워싱턴 D.C, 보스톤, L.A., 시애 틀, 애틀랜타, 사우스캐롤라이나, 달 라스 지역과 캐나다 토론토, 서울, 대 구, 부산지역 독자가 함께 읽는 고품 격 글로컬 (Global + Local) 잡지입 니다. 는 영문으로 추가된 주요기사를 통해 젊은 세대와 영어권 독자에게 우리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자랑스러 운 문화전도의 Hub가 되겠습니다.

는 독자 후원과 의 가치를 인 정해 주는 광고만으로 제작하므로 독자 품격에 맞춘 수준 높은 컨텐츠 가 가능합니다.

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협력사의 격려 에 힘입어 더욱 노력하여 최고의 컨 텐츠로 보답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

10

를 만드는 사람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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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ing Editor / Jenny J. Lee Senior Writer / Juyoung Lee, Young Choi English Translation / Haejin Oh Senior Columnist / Stefano Jang Legal Columnist / Minji Kim Music & Arts Columnist / Sunboon Jeong, Dr. Yejin Han Medical Columnist / Dr. Francis Oh, Dr. Byungchul Kang, Dr. Kyungah Lim Food Columnist / Hwajung Sung Design by design212 Photographer / Kibum Kim, Doyoung Kim Junior Reporter / Katie Lee, Jae Won Min Senior Contributing Editor / Young Hee Baek Contributing Editors Hyunmin Kwon, Bohyun Im, Joohee Han, Youngjoo Song, Jihye Lee, Byeol Yoon, Hyunmee Kang, Sujin Myung, Sunyoung Lee, Jina Seo, Youngmee Shin, Annie Na, Sophia Kim, Minjae Kim, Dongha Kim, Jude Lim, Jooho Choi, YuJin Hong, Minjung Choi, Sungjoo Hong Marketing Director / Joonhee Kim Advertising Director / Michael Choi, Chunsuk Lim HR & Administrative Manager / Katie Eun Lee ‌ ‌ is comprised of Story and Casa (House), thus carrying the meaning of ‘a place where stories are gathered’. ‌ ‌ is a magazine filled with stories inside New York, written by some of our best writers for each field. ‌ ‌ is a family-friendly magazine that welcomes all readers in their 20’s thru 40’s. ‌ ‌ is full of stories that people will relate to, stories that add more scent to our lives, and stories that brings the family together. ‌ ‌ exudes vibrancy in each article, with a focus on culture, art, fashion, lifestyle, education, parenting, cooking, travel, and health information, all centered around New York City. ‌ ‌ is a high-quality global and local magazine published in New York, which targets readers in New York, New Jersey, Washington, DC, Boston, L.A., Seattle, Atlanta, Dallas, South Carolina cities, Toronto, Seoul, Daegu and Busan. ‌ ‌ is the hub for cultural and artistical guidance, by including main stories written in English in order to accommodate our English-speaking, younger readers. ‌ ‌ is solely funded through contributions from our subscribers and exclusive advertisements, thus being able to provide the highest quality for our every issue. ‌ ‌ promises to work hard through the encouragement and support of our readers and subscribers and deliver the best content in our future endeavors. -Creators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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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VER STORY

12


“소박한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얻어내야 하는 것” 나태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해 쉼 없는 오늘을 사는

요리사업가 이재훈 셰프 한여름 땡볕에 개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쉴 새 없이 먹이를 나르고 집을 짓고 있다. 한편, 베짱이는 나뭇잎 위에 앉아 깽깽이를 켜며 한가로이 화창한 여름날을 즐기고 있다. 추운 겨 울이 오자 개미들은 따뜻한 집 안에서 저장해 둔 음식을 먹으며 무사히 겨울을 나지만, 베 짱이는 눈보라 속에서 헤매며 고통받는 것으로 여름날의 나태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 다. 근면의 중요성을 살벌하게 가르치는 이 우화를 두고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 이가 있다. 겨울은 논외로 하고, “알고 보니까 이 베짱이가 이전에 굉장히 열심히 살아서 돈을 많이 모 아 놓고 그래서 여름에도 놀 수 있게 된 거예요.” 당연히 이 베짱이는 겨울에도 보란 듯이 잘 산다. 12월의 표지를 장식해 준 셰프 이재훈은 이런 성공한 베짱이를 꿈꾼다고 한다. 준 수한 외모만큼이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그의 스토리를 들어보자. 글 Juyoung Lee 정리

편집부

13


요리 실력과 더불어 뛰어난 사업가적 감각으로 무려 6개의 이탈리안 레스

‘Excentric’함으로 이루어 낸 자수성가(自手成家)

그램에 고정 출연하면서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전적인 의미의 ‘자수성가’는 “물려받은 재산이 없이 자기 힘으로 벌어 살

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 셰프로 최근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TV 프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일하는 게 재미있어요. 요리하고 식당 운영하는 것 외에도 쿠킹 클래스 라든지 메뉴 개발, 잡지 촬영, 홈쇼핑, 컨설팅 등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 말 많습니다. 월요일날 식당에서 일하는 걸 빼놓고도 미팅만 한 달에 50 개 이상은 하는 것 같아요. 방송을 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다른 일이 많 이 생기기도 했고요. 원래는 올해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저를 좀 돌아보

림을 이루고 재산을 모아 성공한 것”을 일컫는다. 요즘은 워낙 살기가 팍팍 하다 보니, 때로는 스스로 힘들게 성공을 이룬 이미지보다 오히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주어진 경제적 부를 누리며 사는 계 층을 뜻하는 ‘금수저’라는 이미지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이 ‘자수성가’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다.

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순수하게 자기 힘으로 부를 이루거나 성공하기

가 없어서 계획을 좀 미뤘죠. 그래도 차후 몇 년 안에는 꼭 미국에서 공

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죠. 무엇보다 기회 자체가 별로 없어 보이니

부를 더 해 볼 생각이에요. 마침 최근에 뉴욕 쪽에 오픈된 떡 매장이 있

까요. 전 그래도 여전히 자수성가의 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

는데요. 그 떡 사업에 참여하게 되어서 뉴욕에 가게 될 일이 생길 것 같

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똑같이 주어져 있으니까요. 주어진 시간을 최

으니까 겸사겸사 유학 준비 차원에서 둘러보기도 하려고요.

대한 열심히 살면 꿈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믿죠. 영어 단어 중에

하루 24시간을 꼭꼭 채워 살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재훈. 실력파 이탈리안 셰프로서 굳건한 입지를 확보한 그임에도 단순히 ‘셰프’

라고만 칭하기엔 모자란 감이 있다. 야심 차고 대담한 사업가의 면면이 보 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업가적 기질을 알아본 탓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수 많은 사람에게서 함께 일을 도모해 보자는 러브콜이 온다고 한다. 그런 요

청과 제안들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제 이미지가 잘못된 쪽으로 소비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가 지향하 는 자신의 이미지는 ‘자수성가’라고 했다.

14

‘excentric’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제가 그 단어를 아주 좋아해요. 그 단어의 뜻을 보면, 앞에 ex는 ‘바깥으로(out of)’를 뜻하고 centric은 ‘중 앙(center)’을 뜻하죠. 직역하면, ‘중앙에서 벗어나 있다(out of center)’ 는 뜻으로, 별나고 기괴하다는 뜻인데요. 성공한 사람 중에는, 사회적 기 준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인 사고와 정상적인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서울대에 가기 위해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밥을 갈아 먹으며 공부했다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칫 화려한 결과만 보고 그 뒤에 그런 노력이 있었는지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재훈 셰프는 살면서 ‘독하다’는 얘기를 많 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여동생조차도, “오빠

진짜 지독하다. 난 오빠처럼은 못 살 것 같아.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살아?”라고 했다. 유학 전, 한국에서 일할 당시 그는 유학을 결심하면 서, 낮에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 위해 학원 에 다니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했으며,

월급의 90% 가까이를 저축하여 학비를 마련 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2년 동안도 빠듯

한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쓰며 공부와 일을 병

행하는 삶을 계속했다. 그가 그렇게 지독하게

살아온 건 그의 목표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았 던 탓도 있어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룸메이트였 던 친구한테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는 유학비도 겨우 마련해서 유학을 온 상황 이었는데, 쉬는 날 싸구려 독일 맥주를 달걀 후라이랑 먹으면서 했던 말이, “나는 한국 가면 레스토랑을 5-6개는 할 거야. 카페도 할 거고.” 였어요. 그렇게 뭐도 할 거고 뭐도 할 거고 한 달에 얼마를 벌 거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형은 지금 돈도 한 푼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망상적인 꿈을 꿀 수가 있어?” 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전 어떻게 될진 모 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될 거야’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는 자신의 목표를 한 번도 축소하거나 굽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앞으로 어

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하는 데 있어서, 목표로 하는 삶은 정상적인 삶

28살에 이탈리아로 떠나 2년 동안 그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성장해 나갔

삶을 살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

를 택했다.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라는 학교와

에서 어떻게 보면 조금 더 올라가 있는 이상적인 삶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그의 평 범한 말이 남다르게 들리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노력의 크기가 excentric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동생에게서 “오빠,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을 듣 는다는 그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를 좀 더 들여다 보기로 했다.

‘셰프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 이탈리아 유학 생활 그는 20대 초반에 요리를 시작했다. 운 좋게 군대를 취사병으로 다녀온 뒤,

5년 정도 이탈리안 레스토랑 세 곳에서 보조 요리사로 일하며 요리를 배우 고 경력을 쌓았다. 배우는 재미가 커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답 답한 느낌이 있었다.

일이 재미있고 좋기는 했는데, 새로운 걸 해 보기가 어려웠어요. 예전에 는 처음에 메뉴를 정하면 레스토랑 문 닫는 날까지 계속 그 메뉴만 하 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음식을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매 우 컸어요. 또 이탈리아 요리를 하는데, 이탈리아 말 한마디도 못 하고 해산물 파스타, 카르보나라 이런 것만 만들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프 라이드를 과연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유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죠.

다. 로마보다는 이탈리아의 전통 요리를 배울 수 있는 토스카나(Tuscany) 여러 레스토랑에서 배우고 실습하면서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를 차분히 익 혀나갔다.

매일 아침 이탈리아어로 매일 다른 메뉴를 딱 한 번 설명해 주는데, 그 걸 알아듣고 제대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새 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고, 덕분에 많은 요리를 제대 로 배울 수 있어서 보람찼던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 있었으면 가족, 선배, 등등 생각할 부분이 많았겠지만, 유학 생활 동안에는 오직 저 자 신과 요리만 생각했어요. 주말마다 햄버거 하나를 손에 들고 먹으며 낯선 곳들을 여행했고요. 저 자신을 온전히 되돌아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2년의 유학 기간을 마치고 그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함께 일했던 사람

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울면서 언덕을 내려오는데 그의 애마였던 자전

거(그는 이 자전거에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말 이름인 ‘로시난테’를 붙여 주었다)의 체인이 끊어지더란다. 그는 자신과 친구처럼 함께 했던 자전거

였기에, ‘너도 헤어지기 싫은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 끊

어진 체인이 최선을 다해 달리기를 완주한 사람이 결승선을 지나며 끊는 테이프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15


‘1만 시간의 법칙’의 진짜 의미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이탈리안 셰프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 본격적인 활

출에 대한 압박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지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 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동을 시작한다. 강남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Head Chef:

새 매장을 오픈할 때는, 매장 위치, 인접 지역, 고객층 등을 고려해서 제

Del Lupo)’로 옮기게 된다. (당시에는 그의 소유가 아니었다.) 인정받는 셰

장 책임자들에게 두 달에 한 번씩은 새 메뉴를 개발해서 내놓도록 하고

수석 주방장)로 2년 정도 일한 후, 그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카델루포(Ca' 프로 주방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만든 메뉴를 통해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났을 즈음, 그 레스토랑의 소유주가 가게를 처분한다기에 바로 인수하여 ‘이재훈 표 카델루포’를 오픈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에노테카 친

친, 비스트로 친친, 친친 그란데 등 총 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된다. 6 개나 되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함께 일하는 사람 들을 믿는다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본적으로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믿어야죠. 물론 모든 직원을 똑같 이 신뢰한다는 얘긴 아니에요. 각 직원을 잘 지켜보면서 그 사람을 신

가 직접 컨셉을 잡고 메뉴를 정해요. 그리고 영업을 시작한 후에는 매 요.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에요.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서 선보였는데 깨 끗이 빈 접시가 돌아오는 걸 보는 건 셰프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기쁜 일이니까요. 제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행복 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고객분을 만나면 정말 감사하고, 셰프로서 큰 보 람을 느끼게 되죠. 유동 인구도 적고 주차하기도 어려운 까델루포가 유 지되고 있는 건 거의 100퍼센트 단골 손님들 덕분이예요.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그만의 방식이나 비결이 있는지를 물 었다.

뢰하게 되는 분야에 신뢰하는 만큼의 일을 맡기는 거죠. 또 저 혼자 모

옛날에 먹었던 음식의 느낌에 대한 기억, 전에 여자친구랑 다녔던 곳들

든 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매장을 맡아서 잘 이끌 수 있는 리더

에 대한 추억, 봤던 영화나 전시회, 혹은 재밌게 봤던 쇼 프로그램, 만화

를 찾아내는 일도 중요해요. 전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만이 가진 장

등등 저의 모든 경험에서 요리가 나와요. 요리책을 펴 놓고 요리를 만들

점은 분명히 있다고 믿

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거든요. 어떤 리더를 염

일상적인 생활 속 모든

두에 두고 가게를 만들

소소한 일들이 저한테는

때는 그의 장점을 최대

다 하나의 레시피처럼 머

한 많이 살릴 수 있는 가

릿속에 있고 그게 중간중

게를 만들어요. 만약에

간 나오는 거예요. 지금

어떤 직원이 굉장히 사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교적이고 사람들과 얘기

와중에 어떤 레시피가 나

도 잘 하지만 요리는 못

올 수도 있죠.

한다면, 그 친구한테는 바(bar)같은 걸 만들어서 손님들과 소통할 수 있 도록 해주고, 대신 정말 요리 잘하는 셰프를 붙 여주는 식이죠. 저희 직 원들 누구나 다 제가 갖 고 있지 않은 장점을 하 나씩은 갖고 있어요. 각 매장의 리더를 믿고 맡

긴다는 것이 그 자신은 매출 관리만 한다는 얘 기는 결코 아니다. 오너

(owner)로서 그는 끊임없 이 고민한다. A라는 공간

셰프들은 많은 경우, 세월 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고

명성이 쌓이면 그 명성에

걸맞게 나만의 요리, 나만

이 할 수 있는 요리를 만 들어 내고 싶은 욕구가 생

길 것 같다. 그리고 그 요 리의 희귀함 만큼 가격도

높게 설정하여 고급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가

까이 요리를 해 온 인정 받는 이탈리안 셰프 이재 훈도 그런 욕구가 있을까 궁금했다.

에 어떻게 사람이 채워지

제가 그런 요리를 별로

으로 어떤 음식을 제공해

런 요리를 해요? 제가 좋

도록 할 것인가, 어떤 컨셉 야 할까, 업무 분담은 어떻 게 해야 할까, 매장 책임자

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까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만큼 매 16

즐기지 않는데 어떻게 그 아하고 남들이 좋아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전 평범 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대중들이 좋아하는 거라 고 생각해요. 특정 계층 에게 맞는 고가의 요리만


가 김연아가 되어 있을까요? 그럴 순 없겠죠. 하지만 1만 시간 뒤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분명히 긍정적으로 변화 되어 있을 거예요. 체력적으로든 마음 의 자세든, 아니면 대인 관계든 여러 가지가 그런 노력 후엔 긍정적으로 바 뀔 수 있다고 믿어요. 1만 시간 후에 김연아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1만 시간까지 노력하지도 않고 최선 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 으려고 노력합니다. 너무 열심히 사는 그를 보면 당연히 어

마어마한 야망의 소유자일 것 같다. 그

런데 그가 얘기하는 자기 꿈은 의외로 참 평범했다. 아니 어쩌면 너무도 현실 적인 그이기에 꿈조차도 현실적이라고 해야 할까.

평범한 행복, ‘나태할 수 있는 삶’이라 는 꿈의 무게

제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나태한 삶을 즐기는 거예요. 여자친구든 아내든 좋 은 곳으로 함께 여행 가서 날씨가 좋 으면 좀 걷다가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고 들어와서 좀 쉬기도 하고, 커피 마시다가 서로 얼굴 보면서 그냥 웃 고, 저녁에 와인 한잔하다가 같이 잠 들고 … 맛있는 거 먹으러 돌아다니는 데 불편이 없고, 누가 아프거나 하면 병원비 낼 수 있고, 그런 삶이요. 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제 철학과 맞지도 않을뿐더러, 철저하게 사업 성 측면에서도 올바른 선택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어떻게 하면 많은 사 람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얼마나 합리적인 가 격으로 음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해야지 요리 콘테스트를 하는 식당이 되어서는 안 되죠. 사업가 셰프로서 이재훈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서비 스 업이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결과 고객이

참 평범한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참 꿈같은 얘기이기도 하다. 안타깝게

도 저 크지 않아 보이는 꿈이 결코 이루기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가 아는 까닭이다. 그도 이 사실을 알기에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다. 하루하루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나태한 삶에 좀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바람과 믿음에서다. 또한, 그는 기회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기회들로 정신없이 바쁠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고 도 한다.

좋아할 만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동시에, 이윤을 낼 수

워크홀릭(workaholic: 일 중독)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들이 간혹 어디를 보

운영하며 많은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오너로서 당연히 중시해야

을 더 벌고 싶게 되고, 그러다 처음에 자신이 왜 돈을 벌려고 했었는지를 잊

있는 식당, 수익을 낼 수 있는 식당을 만드는 것도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잠을 줄여 가며 쉴 새 없이 뛰어 왔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저는 마음을 먹고 하면 무조건 끝을 봐요. 제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결 과야 성공일 때도 있고 실패일 때도 있었죠.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 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걸 완벽하게 믿는 사람 중에 하나거든요. 우리가 피겨 스케이팅을 좋아해서 오늘부터 1만 시간을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 보자고요. 하루 24시간 중의 15시간을 매 일 2년 동안 연습하면 대략 1만 시간을 채우겠네요. 그러고 나면 우리

고 달려가는지를 잊은 채 무작정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 보면 돈 어버리게 된다. 목적을 잊고 그 수단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이재훈은 수시로 자신의 꿈과 목표를 되새기며 일한다. 셰프로서 그 는 더 열심히 요리하며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일본으로든 미국으로든 유학 을 가서 공부를 더 하겠다는 계획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업가로서는, 떡 사 업과 연계하여 뉴욕 진출을 눈앞에 둔 그가 조만간 설렁탕 전문집 ‘진심’도

곧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강조한다. “여유롭고 편안한 삶은 얻어내 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삶을 그냥 공으로 주겠습니까?” 그가 멋진 이 유는 그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삶의 무게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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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읽는 이달의 시

Photography by Doyoung Kim 김도영 서양화가, 사진작가

School of Visual Arts 졸업 한미 예술인협회 회원

아틀란타, 시카고, 뉴욕 한인신문 사진연재

한인 방송국 사진 강의 / 다수 그림전 & 사진전 18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詩 -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류시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번역가이며 본명은 안재찬이다. 대광고등학교와 경 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 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 물고기의 사랑》 《사랑하라 , 한 번도 상처받지 않 은 것처럼》 《한 , 줄도 너무 길다.》 《나의 ,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등과 다수의 명상집, 수필집, 번역서를 펴냄. 19


People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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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을 전하는 사람의 손에는 장미향이 남는다

AWCA 제미경 사무총장 送人玫瑰手留余香 송인매괴수유여향 ‘장미꽃을 전하는 사람의 손에는 장미향이 남는다’는 중국 격언이 있다. 나지막이 글귀를 소리 내 어 읽어 보니 입속에서 퍼지는 소리가 참으로 곱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면 나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난다’라는 뜻이라 하니 이 문구에서조차도 은은한 장미꽃 향기가 스며 나오는 것 만 같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수많은 non-profit 비영리 단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 고 여기저기 비영리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비슷한 설립 취지를 가지고 비슷한 활동을 같은 지 역에서 펼치는 단체들도 수두룩하다. 또, 시간이 지나고 조직이 커지면서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본연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얼굴 붉히는 내부의 알력 다툼이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단체의 모습 도 간혹 보인다. 비영리 단체들마저도 생존의 무한경쟁 속으로 내몰리는 세상에 장미꽃 꽃말처럼 한결같은 열정과 기쁨, 열렬한 사랑으로 37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활동하는 곳이 있다. Asian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AWCA)이 바로 그곳이다. AWCA의 수장으로 2012년부터 단체 를 이끌어 온 제미경 사무총장을 만나 AWCA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녀의 철학을 들어 보았다. 글 Sarah Chung 정리

편집부 21


A

is for Asian ‌뉴저지 티넥(Teaneck)에 위치한 AWCA 본부에 들어서니 머리가 희

끗희끗하신 노인들이 여기저기서 수 업을 듣고 계신다. 한국분들인가 하

고 옆에 가서 인사를 드리려 하니 한국말을 못하신다. 제미경 사무총장에 따르면 이곳에는 한인뿐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 이민자들도 많이 와서 그 나라 말로 제 공되는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AWCA에서 사회복지 혜

택을 받는 사람들의 30% 이상이 일본인과 중국인 이 민자들이라고 한다. 그렇다. 사회복지활동에 있어 인

종을 가르고 출신국을 따지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뉴저지 버겐 카운티(Bergen County)의 공식 시니어 센터인 AWCA에는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

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데 지역 사회의 일본인 및 중

국인 이민자들과 그 가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까 지 아우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 · 중 · 일 3국의 얽히

고설킨 민감한 정치적, 역사적 이슈를 떠나 모든 이 민자가 화합을 이룬다. YWCA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AWCA는 1999년 YWCA의 약자 중 ‘Young’을 상징하

는 Y 대신 ‘Asian’의 A를 넣어 이름을 AWCA로 바꾸고

2000년에는 501(c)(3)의 비영리 단체로 본격적인 탈 바꿈을 하였다.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봉사에 초 점을 맞추었던 AWCA가 20년의 유년기를 마치고 그 활동 영역을 한 · 중 · 일 이민가정으로 넓히는 성장기 로 도약한 것이다.

W

is for Women’s 선하고 아름다운 일은 언제나 작은 씨앗으로 뿌려져 발 없는 말과 같

이 퍼지고, 진한 장미향이 배인 손

수건처럼 손에서 손으로 건네진다.

AWCA는 1980년 장화인, 위옥환 두 명의 여성이 한인 사회를 위해 보람된 일을 해보고자 뜻을 모아 창고에 서 시작한 ‘백합주부클럽’이 그 시초이다. 세상은 비전

을 가진 소수와 그를 돕는 동역자들로 바뀐다고 했던 가. 많은 여성들이 이 주부클럽에 참가하여 뜻을 같이

하게 되었고, 1987년엔 최초로 뉴저지에 한인 YWCA

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후 바자회등 여러 가지 지 역활동을 펼치면서 활동영역을 넓히다가 2000년에

는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비영리 단체로 탈바꿈을 하 게 된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제미경 사무총장을 비롯 하여 AWCA 이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여성이란 점이

다. 혹자들은 여성 리더십을 측근과만 소통하고 정서 적 의존성에 기대어 이너서클만 챙기는 편협한 리더 십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AWCA의 모든 이사들과

제미경 사무총장은 지난 37년간 민주적이고 상호작용

적, 그리고 관계 지향적인 리더십을 토대로 지역사회 의 신뢰를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자체적인 훈련을 통해 단계적인 성취를 이루며 오늘날 AWCA를 대표적 인 공식적인 비영리 단체로서 자리매김 하였다. 22


C

is for Christian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전문상담, 교육, 사회복지 서비스 및 홈케어 프로그램을 제

공함으로써 아시아 여성과 그들의 가족이 건강한 자원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 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AWCA의 미션은 현재 AWCA에서 제공하는 5개 프로그램 (가정상담 서비스, 시니어 센터, 사회복지 서비스, 홈케어 서비스, 청소년 프로그램)에 철

저히 녹아있다. 제미경 사무총장의 리더십 아래 지난 2015년 창립 35주년을 맞아 AWCA는 전체 이사회와 함께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1년간 조직의 미션을 재정립하고, 조직의 존재 이유와 타당성을 샅샅이

훑었다. 웬만한 대기업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비영리 단체가 해냈다는 것이 놀랍고, 지난 35년간의 업적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재정립된 미션에 부합하는 프로그램만 살리고 나머지는 버리는 뼈를 깎는 선택과 집중의 시간을 자발적으로 가졌다는 것도 놀랍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단체들이 생겨나고 중복된 프로그램이 조직의 정체성을 흐릴 찰나 조직의 강점, 약점, 기회와 위기를 분석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

할 것은 취한다는 것은 웬만한 자신감 없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발적 선택과 집중의 과 정을 통해 살아남은 5개의 프로그램은 진심으로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보듬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디

자인되었고 지금까지 꾸준히 제공되고 있다. “AWCA의 이름 속에 있는 Christian의 C가 액세서리가 되는 것을 저희는 철저히 거부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제미경 사무총장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그녀의 눈 빛이 말해주고 있음이다.

A

is for Association 사전적 의미의 association은 같은 목표를 갖고 모인 사람들의 집합이나 단체를 말한다.

그러나, 사회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는 association은 같은 목표로 모여 특별

한 경험을 함께 하는 정신적 교류까지 포함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AWCA는 사람을 우

선으로 하는 공동체이다. 섬김을 받는 사람, 섬기는 사람으로 가득한 지역 공동체이며,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행복 공동체이다. 극한 상황으로 인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AWCA를 찾아 왔을는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위해 전 직원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으로 무장을 했

고,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시간과 돈, 혹은 재능을 기부하며 기쁨을 찾는다. 도움의 손길을 찾아 AWCA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단순히 지역 단체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만을 받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고 자립하여 다시 지역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

들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구분된 지역에서 벗어나 더욱 큰 행복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올 4월 부터는 ‘AWCA와 행복찾기 (K-Radio AM 1660, 매주 토요일 오전 7시)’라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이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거리상, 또는 시간적인 제약으로 AWCA의 티넥 본부까지

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AWCA의 모든 5개 프로그램을 그대로 전파를 통해 제공한다. 비영리 단체 중 자 체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확장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AWCA가 유일하다.

‘AWCA와 행복찾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성공은 한국과 미국에서 수십 년간 방송으로 다져진 제미경 사무총 장의 노하우와 노련한 진행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AWCA 2017 DINNER &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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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piring Woman 24

Aspiring Woman

2012년부터 AWCA를 이끌어온 제미경 사무총장의 마음은 늘 열정으로 넘쳐난다. AWCA를 찾는 사람들 을 위한 마음, AWCA에 오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마음, AWCA의 스텝들을 위한 마음, 그리고 이곳을 행

복 공동체로 만들고픈 마음. 지난 5년간 AWCA의 수장으로서 그녀는 마음 가득 품은 그 열정을 강단 있게,

그리고 뚝심 있게 풀어내어 왔다. 뜻이 맞는 몇몇 한인 여성들의 주부클럽에서 시작된 모임이었던 AWCA 가 설립 당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면서 어느덧 한 · 중 · 일 이민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데 있

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비영리 단체로 성장한 데에는 분명 단체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정립하고,

추진력을 갖춘 한눈팔지 않는 조타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오랜 세월 일관성을 갖 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오죽했으면 동양에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란 말이 있고, 서양에는 “성

공의 비밀은 목표를 향한 일관성이다 (The secret of success is constancy to purpose)”라는 격언이 다 있을까. AWCA가 성장하여 이제는 지역사회를 넘어선 한 · 중 · 일 여성 이민자들을 대변하는 단체로 우뚝 선 것은 그녀와 같이 시종여일(始終如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역량 있는 리더에 기인한 바가 크다.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아주 짧은 순간에도 각양각색의 마음속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이야기 생떽쥐베리의『어린왕자』중에서

Committed Actions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애(愛)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세상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했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

은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둘러보고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몸 소 실천하는 사람과 단체가 생겨나면서 세상은 함께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

려운 일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했다. AWCA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그리고 보다 나은 프로그램을

위해 제미경 사무총장은 매일매일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다. 특히나 비영리 단체의 특수 성상 후원자들의 재정적 도움은 무엇보다 절실한데 그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는 지난 5년간 지치지 않고 한

결같은 마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녀의 진정어린 호소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끝내는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녀가 뿌린 마음의 씨앗은 바람에 민들레 홀씨가 날리듯 여러 사람의 마음으로 퍼 져 오늘도 자라고 있다. “저에게는 AWCA가 사역지랍니다.”라고 고운 눈웃음을 지으며 건네는 제미경 사무

총장의 말은 단순히 목사 사모로서가 아닌 진심 어린 그녀만의 섬김과 헌신의 표현이다. (참고로 제미경 사 무총장의 부군은 에셀장로교회의 조재원 목사이다.)

세상에 혼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한 사람의 성공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기 마

련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내가 받은 축복을 다시금 돌려주는 행위의 당위성을 띤다. 그

래서 누군가는 나누고 베풀며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보람되고 성공적으로 사는 방법이라

했다. 단순히 버겐 카운티 지역의 이민자들을 살피는 비영리 사회봉사단체를 넘어 AWCA를 이곳을 들고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한 행복 공동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살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제미경 사무

총장의 포부. 그녀의 포부는 AWCA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가는 사람들의 웃음 속에 어느덧 그렇게 이루 어져 가고 있다. “AWCA는 저에게 또 다른 삶입니다. ‘사람을 살리라’는 소명을 다하기 위해 주어질 새로 운 미션을 언제나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기다립니다.” 제미경 사무총장의 리더십 아래 AWCA가 ‘Asian’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AWCA가 아닌 ‘All’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AWCA가 되는 그 날을 그려본다.

送人玫瑰手留余香 송인매괴수유여향

AWCA에서 스치는 모든 사람에게서 장미꽃 향기가 난다.

Committed Actions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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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소정이에게 들려주는 아빠 이야기(9)

반공 웅변대회와 실패의 추억 의례 그 친구가 다가올 웅변 대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결정 이 되는 찰나, 갑자기 무슨 용

기가 생겼는지 내가 손을 들 어 대회에 나가겠다고 지원을

한 거야. 아마 4학년 때 칠판을

잘 지우는 일로 선생님의 총애

를 받아서 기가 많이 살아났던 것 같아. 선생님과 친구들로부 터 인정을 받고 싶었던 심리가 발동하기도 했었지. 이미 경연

자가 정해진 상황이었지만, 담 인 선생님은 내 얼굴을 물끄러 미 쳐다보시더니 허락해 주셨

어. “그럼 이번 해에는 우리 반

에서 두 명이 반공 웅변대회 에 나간다. 둘 다 열심히 준비

하길 바란다.” 시골 선생님의

마음이 너그러우셨던 것 같아. 전혀 검증되지 않는 학생을 학

교 주요 행사이자 학급과 선생 님의 명예가 달린 웅변대회에

내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 을 거야.

더위가 막 시작할 무렵, 매년 6월이 되면

어김없이 학교에서 반공 웅변대회가 열

렸단다. 당시에는 북한에서 보내온 삐라 (전단)를 주워오면 공책과 연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정된 후, 열심히 200자 원고지에 웅변 원고를 써

육을 하던 시기였어. 공산당은 붉은 늑대로 표현되는 적이며, 김일성

북한 괴뢰당 괴수들에 의해 무고한 죽임을 당한 이승복 어린이가 생각

필로 바꿔주고 어린 학생들에게 북한 공산당의 실상을 알리는 사상교 (당시 북한의 주석)은 철천지원수라고 선전하곤 했었지. 지금도 남한 과 북한의 관계가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그때에는 한 민족끼리의 분 쟁과 반목이 더욱 심했었단다.

내려갔단다. “해마다 유월이 되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납니다.” “저 무자비한 북한 공산당, 그 수괴 김일성은 우리의 철천지 원수입니다.” “이 연사 북한 공산당과 김일성을 때려잡자고 강력하고 강력하게 외칩니다!”

전교생이 한 800여 명 남짓 되는 초등학교에서 반공 웅변대회는 근처

이렇게 적은 3~4분 분량의 원고를 부엌에 걸려 있던 낡은 거울을 보면

을 운동회와 함께 가장 중요한 학교 행사 중 하나였단다. 반마다 한 명

연설하는 방법과 학생들의 눈을 마주치며 말하기, 그리고 말할 때마다

바닷가로 떠나던 봄 소풍과 전교생과 온 동네 사람이 함께 모이는 가 씩 선생님의 추천을 받은 대표주자들이 경연을 펼치는 대회여서 학생 들 간의 경합이 매우 치열했어. 각 반의 명예가 걸린 일이기도 해서 선

생님들 간의 경쟁과 눈치작전도 매우 뜨거웠지. 우리 반에는 웅변을 아

서 날마다 열심히 연습했단다. 담임 선생님의 지도로 원고를 보지 않고

왼쪽 팔을 올리고, 오른쪽 팔을 올린 다음, 절정에 다다라서 외칠 때는 양팔을 하늘 위로 힘차게 뻗는 연습을 매일같이 했지.

주 완벽히 잘하는 친구가 있었단다. 매년 학교 반공 웅변대회나 군 대

드디어 반공 웅변대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단다. 학교에 실내 강당이 없

우리 반 담임이신 김기호 선생님의 추천을 받았지. 지난해 학교 웅변대

거운 햇볕이 우리들의 까만 머리를 지글지글 불태우는 것같이 더운 날

항 웅변대회에 나가서 큰 상을 받는 아이였어. 당연히 그 친구가 5학년 회에서 금상을 받은 친구였거든. 26

어서 전교생이 운동장 흙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어. 이른 여름의 뜨

이었단다. 우리 반 주자가 멋지게 웅변을 마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


었어.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한 다음 시멘트 콘 크리트로 만들어진 높은 연단 위로 올라갔지.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백 명이 되는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옆 귀빈석을 보니 동네 면장님과 교장 선생님 이하 각 반 담임 선

생님들이 내가 말을 떼기를 기다리고 계셨지. 그 순간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숨이 잘 쉬어지질 않는 거야.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렸

고, 얼굴은 빨개지고, 앞이 보이지 않았어. 간신히 진정하고 첫마디를 뗀 후에는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횡설

연설하는 데 안정감과 노련미가 생기더라고. 선생님도 지도를 더 열심

히 해주셨단다. 방과 후에 따로 불러서 연설하는 목소리와 동작들을 지

도해주셨어. 드디어 웅변대회를 하는 날이 밝아 왔단다. 대회 당일 비 가 많이 내려 전교생이 기다란 교정의 실내 복도에 모여 앉았어. 맨 앞 에 나무 연단을 몇 층 쌓아서 임시 무대를 설치했지. 연단 바로 밑에서 부터 맨 끝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여서 아이들의 얼굴을 다 볼 수도 없

었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웅변하던 작년에 비하면 연설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환경이었단다.

수설하고 연단을 내려왔단다. 그래서 내가 김일성을 때려잡자고 했는

지난 일 년 간 칼을 갈고 기다려온 대회가 끝나갈 무렵, 드디어 내 순서

라고 말했는지, 하여튼 그날 웅변을 완전히 망쳤단다.

도 정상이고, 얼굴도 아주 말짱했단다. 준비한 원고를 들고 연단에 서

지 아니면 당시 남한 대통령을 때려잡자고 했는지, 이승복을 이승만이 연단을 내려오면서 선생님 얼굴을 쳐다봤는데 좀 난감해하시는 것 같 더라고. 아주 안타깝고 속상하셨을 거야. 자기 반 아이가 웅변대회를

완전히 망쳐놨으니 많이 창피하셨겠지. 자리에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얼굴에 난 땀을 닦았지. 얼굴이 너무 달아올라서 화끈거리는 게 수상자들에게 시상을 다 마친 후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단다.

그날 참가한 연설 주자들 대부분이 받았던 장려상도 못 받고, 창피하고 의기소침한 나머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학교를 나서고 있었단다. 갑

자기 내 뒤에서 여자아이들 몇 명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재

가 되었어. 작년에 참석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음이 덜 떨리고, 호흡 서 몇 초 동안 멋지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어. 첫 느낌이 아주 좋더라고. “이러다 상 받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 찰나, 실내 환기를 위해서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더니만 내 연설 원고를 낚아채서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거야. 순간, 당황이 되더니만 또 극도의 불안증

세가 몰려왔단다. 결과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횡설수설하다 내려와서

또 꼴찌를 하고 말았지. 순박한 시골 학교였기 망정이지 도시 학교였으

면 아마 일 년 내내 왕따를 당하다가 졸업했을 것 같아. 그래도 선생님 이 고생했다고 위로하시던 생각이 난다. 선생님도 무척 창피하셨을 것 같은데 학생의 마음을 보듬을 줄 아는 훌륭한 교육자이셨던 것 같아.

가 꼴찌야!, 제일 못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한 기억이란다. 두 해 연

교 가기도 싫을 정도였지.

고 또 도전했단다. 웅변대회 나가서 완전히 망쳤다고 해서 내가 평생

고 싶다는 게 그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 같더라고. 며칠 풀이 죽어서 학 다음 해, 6학년이 된 나는 또 웅변 잘하는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단 다. 선생님도 5학년 때 담임이셨던 김기호 선생님이 계속 맡게 되었어. 어김없이 6월이 돌아와 똑같은 반공 웅변대회가 열린다는 발표가 있

었단다. 담임선생님은 작년에 금상을 받은 웅변의 달인, 그 친구를 또

반대 표로 뽑으셨지. 그런데 내가 또 웅변대회 나가겠다고 자원을 했

속 전교생 웅변대회에 나가 큰 실패를 경험했지.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

연설을 못할 거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어. 그 후에 계속 시도하고 도 전해서 지금은 남들 앞에 서는 것도 편하고 연설도 주저 없이 할 수 있 게 되었단다. 웅변대회에서 실패한 경험이 큰 성장의 계기가 된 것이란 다. “어차피 창피함을 다 당했는데 이보다 더 난감한 일이 생긴 들 어떤 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진단다.

어. 생각해보면 참 속도 없었지.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나를 또

시시때때로 우리는 어려움과 실패를 겪게 된단다. 실패하게 되면 마음

한 명과 나가면 꼴찌 하는 나, 이렇게 총 두 명이 반공 웅변대회에 출전

르지 않고, 실패는 잠시라고 생각하고 노력하게 되면 어느덧 성공도 이

내보내기로 하셨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늘 나가면 상을 받는 반대표 하게 되었단다. 지난해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이번에는 더욱 열심히 원

고를 쓰고 연습했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결과 작년보다 훨씬

이 아주 아프고 생채기가 남기도 하지. 하지만, 순간의 좌절감에 머무 룰 수가 있게 된단다.

글 윤성민 박사, DSW, LCSW-R, CASAC, RPT-S, ACT

연세대학교 졸업 (B.A.) Silberman School of Social Work at Hunter College (M.S.W.) 사회복지학 석사 University of Pennsylvania School of Social Policy & Practice (D.S.W) 임상사회복지학 박사 인지심리치료협회 (Academy of Cognitive Therapy) 공인 전문가 (Diplomat) 공인 임상사회복지사 및 심리치료 자격 (뉴욕 및 뉴저지주) 공인 알코올 및 마약치료사 공인 국제 놀이치료사 겸 슈퍼바이저

현) ‌ Vice President of Integrated & Value-based Care (부사장), The Child Center of NY 현) 윤성민 심리건강 클리닉 소장 (뉴욕/뉴저지) 현) AWCA 가정상담소 소장 www.mindwellbeing.com 이메일: yoonds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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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 / 우리 이웃 이야기

"어제보다 나은 오늘, 진화하는 삶의 본질은 변화를 즐기는 삶입니다"

VMN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전) 부사장 정승희 사회 곳곳에서 야무지게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기사 한 편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 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최근까지 미국 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그룹인 VMN(Viacom Media Networks)의 콘텐츠배급재무전략팀 부사장(VP: Vice President)이었던 정승희 씨. 그녀는 1999년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뒤 18년 동안 미디어 산업이란 한 우물을 파 왔다. 정승희 씨를 만난 에스카사 편집부는 그녀의 예사롭지 않은 18년 동안의 경험을 듣고 나서 인터뷰로 부족한 부분은 칼럼 연재로 대신해주길 제안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만큼 마디마디가 현재 미국 에서 살아가는 젊은 한국인 인재를 비롯한 차세대 후배에게 ‘피부에 와닿는’ 조언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 경험을 나 누겠다며 흔쾌히 응해주었다. 정승희씨의 칼럼은 2018년 1월호부터 시작된다. 이번 호는 에스카사의 유능한 새 칼럼니스트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정승희의 지난 이야기를 간략하게 담아보았다. 취재 Hyunmin Kwon 글 Juyoung Lee, Hyunmin Kwon 영문 Haejin Oh 사진 김기범 정리 28

편집부


"제 이야기가 절대 미화되거나 과장되게 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무실 구

이 되는 자신의 경험만 전하겠다는, 겸손함이 엿보이는 표현이었다. 거대

다른 정규직 직원들 자리처럼 꾸며 놓았죠. 일도 가리지 않았어요. 전화

터뷰를 시작하기 전 정승희가 건넨 첫마디였다. 이는 누군가의 삶에 도움

미디어 기업의 배급 전략을 짜고 45억 불이 넘는 수익을 관리하는 그녀 이 름 앞에 ‘성공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성

공’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그녀. 그 이유가 결코 겸손의 미 덕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미국 포춘

석 창고 옆에 임시로 마련되어 있던 제 자리도 깨끗이 치우고 정리해서 받기, 복사하기, 서류 정리하기 등 온갖 잡다한 일도 다 했습니다. 아무 리 사소한 일이라도 이 분야의 일을 이해하고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어요.

500대 기업에 속하는 미디어 기업 세 곳(워너 브러더스(Warner Brothers),

그녀는 여러 면에서 인턴 같지 않은 인턴이었다. ‘나는 그냥 인턴일 뿐’이라

을 쌓아 온 그녀가 배운 것은 변화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과 자세의 중요성

를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그녀의 그런 적극적인 태도는 당연히 함께 일하

NBC 유니버설(NBC Universal), VMN)을 거쳐오며 바닥부터 차분히 경험 이었다.

‘남들처럼’에서 벗어나면 보이는 기회

는 생각 대신, 끊임없이 ‘난 여기 그냥 왔다가는 사람이 아니다’ 하는 의지

던 동료나 상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5개월의 인턴십을 마치고 정식 채용이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정승희는 학부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국제 경 영을 공부한 뒤 유학을 왔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살 아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있었기도 했지만, 늘 미

디어 쪽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로욜라 대학(Loyola Marymount University)에 'MBA in Entertainment

& Media'라는 미디어 전문 과정이 새로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는 주저 없이 지원하였다. 당시 많은 유 학생이 각 대학 MBA 과정의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단순히 지명도 높은 대학의 프로그램을 선호했던

것에 비하면, 그녀가 한국인들에게 생소했던 LA의 작은 대학을 전공만 보고 선택한 것은 상당히 파격 적인 결정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디어 산

업과 실무를 전문적으로 배우겠다는 분명한 목적 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지혜로운 선택은 그녀에게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기회와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로욜라 대학원의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MBA 과 정은 졸업 전에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현장 실무자를 멘토로 선정해 1:1로 실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죠. 이 프로그램 덕분에 워너 브 러더스 본사에 인턴으로 입사하게 되었고요. 그 곳에서 국제 영화 배급(International Theatrical Distribution) 담당 사장을 멘토로 만나 영화 배급 쪽 일을 기초부터 제대로 배울 수 있었어요. 정승희는 MBA 과정 이수에 필요한 학점을 받는 학

생 인턴으로 워너 브러더스에 입사했기 때문에, 사

실 일주일에 정해진 시간만 채우면 되는 상황이었 다. 그런데도 그녀는 정규직 직원 못지않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인턴십 기간을 보냈다.

인턴 기간, 수업이 있는 시간을 빼고는 늘 회사 에 가서 일했어요. 일이 재미있고 좋기도 했지만, MBA 과정을 마친 후에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미국 유학생이 학업을 마친 후 현장 실 습이라는 명목하에 최대 1년까지 관련 분야의 기 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며 미국 내에 체류하는 것 을 허용하는 제도)로 머물면서 경력을 좀 더 쌓고 29


지를 수치로 계산하고 계획하는 일이 국제 배급

담당 부서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정확

한 수요 예측을 위해 나라별 경쟁 영화의 개봉 상 황, 시장 트렌드, 국민의 취향까지 수치화해서 분 석해야 하는 종합적인 일이었다. 또한, 전 세계 65

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벌어들인 극장 수익을 최

적의 환율로 환전하기 위해 수시로 나라별 환율

을 확인해 리포트를 만들어야 했다. 날마다 방대 한 자료를 조사, 분석하고, 시차 때문에 밤낮을 불

문하고 현지 담당자들과 전화로 회의를 해야 하는 일도 잦았다.

업무량이 많아서 힘들긴 했지만 일 자체는 정말 재밌고 즐거웠어요. 특히, 영화를 분석하고 다양 한 영화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장르 별 영화 수익 리스트와 배우별 흥행 수익 리스트 를 만들어 각국에서 흥행할 수 있는 영화를 예측 해 보기도 했습니다. 국제 배급 부서가 캐스팅에 직접 관여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자료들을 근 거로 때때로 캐스팅에 관한 조언이나 건의를 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저희 부서에서 추천한 배우 로 캐스팅이 바뀐 적도 있습니다. 워너 브러더스에서 그녀는 일하는 자유를 누렸다.

의지가 있는 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과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제한은 없었다. 배급 관련 변수들을 수치화하는 기본 업무 외에도 영화와 관련된 다양

한 일들을 스스로 찾아서 함으로써 본인의 시야

니켈로디온에서 상영 중인 만화영화 Dora The Explorer

와 지경을 넓혀 나갔다. 새벽 5시에 출근하여 하루

15시간이 넘게 오피스에 앉아 일하고도 힘든 줄을

일하는 자유, ‘내 일’의 경계는 내가 정하는 것

몰랐다고 하니 그녀가 당시 자기일에 얼마나 푹

첫 직장인 워너 브러더스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직장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이곳에서의 소중한 경험이 자신을 새롭게 만들

빠져 있었는지 짐작이 된다.

어 주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기억을 틈틈이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당연

남편이 동부로 회사를 옮기면서 저 역시 동부로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

일하는 방식의 밑거름이 되었다.

일이 많다 보니 차를 운전해 집을 오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회사 근처에

히 워너 브러더스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그녀가 현재 일을 대하는 사고와

부모님은 늘 제 의견과 선택을 존중해 주시며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런 부모님의 영향인지, 저는 규격화 된 틀에 맞춰서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워너 브러더스 같 이 자유로운 사고를 존중하는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건 정 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야에 따라서 어떤 기업은 자유로움 보다 획일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더 중시하기도 하지만, 전 자유로움 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엔터테인먼트 관련 일이 제 적성에 잘 맞 았고 일의 능률도 높았어요. 워너 브러더스에서 그녀가 맡은 일은 주로 영화 배급과 관련된 자료 분석 과 예측이었다. 요즘은 영화가 모두 디지털로 유통되지만, 당시만 해도 고

가의 필름을 프린트해서 상영 국가에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상영 가능한 국가의 극장 스크린 수에 따라 필름을 얼마나 제작하여 보내야 할 30

이었지만, 일을 놓기가 너무 아쉬워서 1년 반을 떨어져 지냈어요. 하는 방을 얻고 온종일 일에 매달려 살았죠. 이런 정승희가 NBC 유니버설로 이직했을 때 워너 브러더스에 그녀의 난

자리가 얼마나 컸을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곳에 머물렀어

도 문제없이 승승장구했을 그녀이지만, 그녀는 두려움 대신 새로운 변화와 기회에 대한 기대로 설레며 뉴욕으로 향했다. ‘내 자리’ 찾기: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뉴욕으로 와서 그녀는 ‘30 Rock(뉴욕 30번지 록펠러 플라자에 위치한

NBC 유니버설 본사를 지칭하는 별명)’으로 불리는 NBC 유니버설의 디지 털 미디어 부서에 재무담당 매니저(Finance Manager)로 입사하게 된다.

미국 최대 지상파 방송사를 운영하는 초국적 미디어 기업으로의 입성, 그 녀가 더 바랄 게 있었을까 싶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는 13개월 만에 그곳을 과감하게 떠난다.


타이와 슈트로 무장된,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 문화는 자유로운 워 너 브라더스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는 충격이었어요. 엔터 테인먼트나 미디어 회사는 2×2는 4가 아닌 10이 될 수도, 100이 될 수 도 있는 창조적 여지를 허용해야 하는데, 그 당시 NBC 유니버설은 제조 업 회사인 GE(General Electric)가 그 뿌리여서 그런지 굉장히 조직적이 고 체계적이라는 장점은 있었지만, 저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반면, 어 린이 채널부터 음악, 코미디 등 다양한 여러 방송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MTV(VMN은 2011년까지 MTV Networks(1984~2011)라는 이름이 었다)는 조직 문화라는 측면에

려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즐거움에 하루 24시간이 모

자랄 정도로 일에 매진한 결과 현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에 만족하고 안주하지 않는다. 그녀는 특유의 진취적인 성격과 대범

함으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기업에 속해 기업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행복을 찾았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사업을 통해 온전히 자신을 위한 변화와 행복을 찾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최근 지인과 함께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한 핸드백 브랜드를 런칭하였다. 이 변화가 그녀 인생에 또 어떤 의미 있는 파문을 가져올 지 사뭇 기대된다.

그녀가 내년 1월부터 쓰게 될 칼

서 NBC 유니버설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기업이죠. 정승희는 자신의 커리어 인생

에서 VMN으로 이직한 2006 년부터 퇴사한 최근 2017년

까지 11년이 여러 면에서 ‘제 2기’라고 말한다. 다방면의 콘

텐츠를 제작하는 VMN은 다양

성을 무엇보다 장려했다. 그녀 가 꿈을 펼치기에 최적의 환경 이었다. NBC 유니버설의 업무

가 재무 관련 일에 국한되어 있 었던 반면, VMN에서는 세일즈

및 배급(Sales & Distribution) 분석가로 일했던 워너 브러더 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 일즈 분석 디렉터(Director of Sales Planning & Analysis)로

일을 시작하여 콘텐츠배급재무

“사실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가장 필요한 건 Social IQ, 즉 사회적인 지능입니다. 직원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직장 생활을 해 나가며 자신의 의견을 상대에게 잘 전달하는 능력은 언어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회사 조직은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자신의 갈 길을 찾아 나가지 않고 조용히 있는 사람에게 그 누구도 대신해서 해답을 찾아 손에 쥐여 주지 않습니다.”

전략을 총괄하는 부사장(Vice

럼의 프롤로그 격으로 젊은 직

장인 독자에게 해 주고 싶은 이 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Speak Up and Speak Out! 제 직원 중 특히 아시안 친구들

은 제가 서포트를 해 준다고 해 도 자신의 의견을 내보이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 국에서 자란 친구들이지만 겸 손을 미덕으로 보는 아시안 문 화가 어느 정도 몸에 배어 있 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사 실 미국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땐 영어가 부족해서 되도록 입을 다물고 제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죠. 상사 말에 토 달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는 편 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실 언 어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가장

President of Finance) 자리까

필요한 건 Social IQ, 즉 사회적

지 올랐다.

인 지능입니다. 직원들과 사회 적인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

이전 직장에서는 평직원으로

에서 직장 생활을 해 나가며 자

서 다양한 실무를 배웠다면

신의 의견을 상대에게 잘 전달

MTV로 이직 후에는 직원들을

하는 능력은 언어만큼이나 중

이끌고 가야 하는 관리자, 책임

요한 부분이거든요. 회사 조직

자의 역할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은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자신의

또 여러 케이블 TV 배급사들과

갈 길을 찾아 나가지 않고 조용

지속해서 가격을 조정하고 협

히 있는 사람에게 그 누구도 대

상을 해야 했던 만큼 전략적 사

신해서 해답을 찾아 손에 쥐여

고와 협상력을 키울 수 있었죠.

주지 않습니다.

VMN 재무팀 부사장으로 임명

정승희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

되고부터는 15명의 직원을 이

다. 자신의 색깔과 목소리를 드

끌게 되었습니다. 관리자의 입 장에서 젊은 직원들과 일을 하 다 보니 사람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생겼어요. 또 제 일만 잘 하면 되었던 이전과 달리, 책임자로서 예고 없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그 때그때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보니 순발력과 담력도 커 진 것 같아요. 유학생으로 시작해 지난 18년 동안 정승희는 앞만 보며 최선을 다해 달

러내며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

을 스스로 찾아 나가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변화들을 기회로 만

들어 가면서 말이다. 그런 삶은 분명 치열하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그녀 의 이야기는 치열한 매일의 기록이다. 자신이 배운 것, 경험한 것, 느낀 것

을 전해주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녀, 사업가로 제2의 도약을 시작한 그녀가 해 줄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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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The Ride! Tomorrow will be better than today if you embrace and enjoy changes. Seunghee Chung, Former VP of Content Distribution Finance at Viacom Media Networks

Nickelodeon's SpongeBob SquarePants

team quite often comes across certain interviewees whose stories are beyond being just a couple of pages. Seunghee Chung, a new columnist joining our team in

, has a very extensive and unique 18 year professional experience in the

“Corporate America� with a specific expertise of working in the entertainment & media industry -- this is her story that began ever since she came to the U.S. in 1999 as a foreign student. Chung is happy to share her journey if she could inspire and motivate younger Koreans who are either first setting foot in America fresh out of college or graduate school just like she did, or just stepping into the professional society. Chung is the former Vice President of Content Distribution Finance at Viacom Media Networks (one of the largest media and entertainment conglomerates in the US) who used to oversee an annual budget of $4.5 billion. She started her career at Warner Bros. Pictures, headquartered in Burbank, California, where she worked on a variety of theatrical distribution matters internationally for some of the mega-hit movies such as Harry Potter series, Matrix, etc. After relocating to the East Coast, Chung had a brief tenure at NBC Universal, where she managed digital distribution and its performance across all portfolios from Digital Media Studio, which was NBC Universal's newly created in-house start-up back then. Before her column starts in Janua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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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red to take a sneak peek of her own story.


for the first time in 2000 – both LMU and Sogang are managed by the Jesuits – I knew it was the perfect opportunity for which I just had to apply for. I got admitted, and that is how I came to Los Angeles, California.” Intensively focusing on the media and

entertainment industry, Chung was happily overwhelmed by the numerous options and

opportunities at the MBA program at LMU – case in point: the one-on-one mentorship that

matches each student with a mentor, who are some of the most influential individuals

within the Hollywood entertainment

industry. The program also came with an attractive internship opportunity at one of the most sought-after media & entertainment

companies. It is through the mentoring program that Chung was introduced to

the President of International Theatrical

Distribution at Warner Bros. Pictures, the

company where she eventually ends up doing

her internship and first setting her foot into this industry.

“Once I got in [to Warner Bros. Pictures], I was determined to do the best I could, although I was just a student intern. Whenever I had no classes, I would head to the office and work all day, just like rest of the regular employees. I did virtually everything I could – that includes all kinds of menial tasks like copying, the little

Before opening the first chapter of her story, Seunghee Chung wants

chores that needs to be done, endless odd jobs that nobody else wanted

Dream and she certainly does not want her story glorified in any

the job, that when I asked for a chance to work there towards the end

to make one thing clear: she is not an example of the American way. Without even a slightest exaggeration added to the anecdote, she wants to be frank with her stories and can never imagine herself being featured as part of a “success story”. The only reason that she

to deal with on regular basis. I put in so much effort and energy into of my internship, the company was quick to decide to let me stay as a regular full-timer.”

wants to candidly share her stories is to guide today’s young working

professionals to gain a broader and richer perspective, and teach them how to navigate through America’s corporate world. Born and raised in Korea, she first came to the U.S. as an international student

for the MBA program – her professional growth perfectly exemplifies

how working hard would lead to a pathway to success, regardless of your first native language or where the initial “starting line” was.

“After earning my bachelor’s degree in business administration, I went to the Graduate School of Business at Sogang University to study international business. English has always been my favorite subject since high school, and I had always secretly dreamed about studying abroad. So when I discovered that a program called MBA in Entertainment & Media was being offered at the Loyola Marymount University (L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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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pan of five years as a fulltime employee at Warner Bros., Chung got herself fully immersed in her job at the movie studio’s International Theatrical Distribution

sector. As an effective contributor to the team, she developed an understanding of the way things

worked at an American workplace, and learned how to collaborate with people from culturally diverse

backgrounds. Warner Bros. has an open, liberal culture that encourages

new ideas and supports diversity, and

what she learned during this period

has been the foundation throughout rest of her career.

“The scope of international theatrical distribution is far greater than one would think. It is a comprehensive process that requires strategical thinking and analytical skills due to the numerous elements that need to be factored in. You need to predict how well-received the story will be in certain markets with actors’ bankability, forecast and analyze daily box office by country, analyze competitive environment in different countries, come up with the right film release window, calculate and predict the total number of screens worldwide and even take the volatile exchange rates into account while doing all this. It extends far beyond marketing.” Over the years, Chung developed a genuine interest in numbers and

for a week, but even then, the pain did not prevent me from feeling sad

a distribution strategy involves meticulous handling of numbers. An

much I loved and missed my work. Often, I rushed to the office at the

fell in love with the power of quantitative analysis. Construction of array of predictable variables is used to analyze every aspect of the

estimated revenue of a film, and the results are accumulated in the form of aggregated data. In a nutshell, numbers work like magic, and

about not being able to work. That is truly the testament to just how weird hours of the morning, like 5am, of my own free will, just because I wanted to get back to work. I have to admit: I was a workaholic!”

she loved it. Chung often worked 15 hours a day, but her love of work

Chung faced an unexpected challenge in her career when she had

have no regrets, as one of her biggest priorities in life back then was

Leaving her first dear job was already hard on her, but she was also

was strong enough to keep her going. Looking back, she seems to

work. “I actually moved closer to work for shorter commute,” she laughs.

“I was so passionate about my work that I would normally spend twothirds of my day sitting at the office. As a result, I once suffered from sciatica, which made me completely unable to move. I was forced to 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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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relocate to the East Coast following her husband’s career change. confused at the way she was being perceived in the Big Apple’s job market. Her confidence in dealing with numbers somehow presented

her as an expert in corporate finance, whereas she actually identified

herself as more of a sales & distribution analyst. Chung eventually landed a finance manager role at a similar media company, NBC Universal, launching the second phase of her career at the Rockefeller


Center (colloquially known as 30 Rock) in New York City. In contrast to her previous professional experiences, her work at

NBC Universal was focused purely on finance. Only after about

a year has passed, Chung was spending day to day asking herself if this was what she really wanted. She had a lucrative

career within the entertainment and media industry, she was able to be with her family, and NBC Universal was one of the

most well-respected companies to work for; however, she could not diagnose the true root cause of why she did not feel

that “spark” again at work. That was, until she got a call from a recruiter.

The headhunter encouraged Chung to interview with MTV Networks

(now known as Viacom Media Networks) as they were looking for someone with experience in sales analysis, revenue management

and deal negotiation. Thinking this may be the kind of work that

fueled her excitement and passion back in Warner Bros., Chung decided to take a chance. After five rounds of intensive interviews,

she was hired as Director of Sales Planning & Analysis at MTV – this pivot in her life opened yet another chapter in her extensive career,

which would go on for another 11 years. In 2010, she was appointed Vice President of Finance and had managed the media company’s

entire content distribution revenue of $4.5 billion, leading a team of

18 years ago, Seunghee Chung was just an ordinary international

student who was merely exploring the media and entertainment

industry. She feels fortunate to have found what she truly loved; through hard work and unrelenting dedication, she worked her way up to become a well-respected professional in her field. It comes as no surprise to see that her forward-looking attitude and fearless

personality served her well during the years she has been with not just one, but three top Fortune 500 media companies. Now looking forward and building on top of what she has learned over her extensive career, Chung is gearing up for another bold move: she is launching a handbag business of her own.

15 professionals.

It is a humble truth that such a successful career cannot be easily

“As far as the American workplace is concerned, I think what matters most

do better each day throughout her entire 18-year-old journey. From

is your social intelligence. The ability to build meaningful social relationships with the people around you, whether they'd be your bosses, peers or colleagues, or people you manage, really plays a key role as you continue to climb the corporate ladder. I once complained to my American-born friend that ‘I would have made it bigger if my English was more fluent like a native speaker.’ My wise friend replied, ‘Not every American is a CEO, but they are all native speakers.’ The words really hit home for me and I came to a sudden realization. Communication goes far beyond the technicality of utilizing simple speech, so you need to focus on improving social and interpersonal skills to help you really expand your social relationships.”

achieved overnight. Chung is where she is now because she strived to the beginning, she refuses to be labeled a success story, and she is right. Her story is not a success story; rather, this is one of the “everyday stories”, with a powerful message of embracing the changes

in our lives and allowing for new opportunities to follow. This is an “every-day story” filled with changes and pivots, that collectively led to a successful outcome.

Starting from the January 2018, Chung will run her own monthly column to share more of her stories and reveal how she found her way through in the media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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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미국 로스쿨 진학,

이상(理想)보다는 현실(現實) 미국 로스쿨 진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 움이 되기를 바라며, 변호사가 되기 위한 핵심 자질과 성향, 학부 전공 선택, 학비와 제반 비용을 고려한 현실적 계획, 그 리고 로스쿨 졸업 후 취업을 위한 이전의 직장 경험 등 로스쿨 진학 시 고려해야 할 점들에 대해 제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글 김민지 변호사

(MINJI KIM Associate Director for Private Sector Counseling and Programs)

2003년 Stanford 법대에서 J.D. 학위를 수료했다. 2008년 샌프란 시스코 베이 지역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대형 로펌에서 Associate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서울의 Boston Consulting Group에서

근무했다. 법대 시절, 팔로 알토에 있는 Wilson Sonsini 로펌에

Summer Associate로 근무했으며 제 2순회 항소 법원에 Chester

Straub 판사 밑에서 judicial extern으로 경력을 쌓았다. 세계 각국 에서 여러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쌓은 미국 변호사로서 현재 버클 리 법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진로 카운셀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변호사의 길이 자신에게 맞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흔히 부모들은 자녀가 말을 유창하게 잘하면 ‘변호사 하면 되겠다’고 합니 다. 혹은 공부를 잘하는 문과 학생이 분명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경우,

학부 졸업 후 진로 결정을 미루는 방편으로 로스쿨 진학을 선택하기도 합 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자칫 차후에 문제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로스

쿨 과정 중에, 혹은 변호사로 취업한 후에 ‘변호사의 길이 과연 나에게 맞

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으로 혼란을 겪게 될 수 있는데, 실제로 많은 변 호사가 진로 결정에 대한 후회와 회의 때문에 상담을 요청합니다. 한 예로, 인권 변호사의 꿈을 품고 변호사가 된 학생이 로스쿨 학자금을 갚아야 하

는 현실 때문에 로펌(law firm)에 입사한 후, 본인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대 형 회사들의 법률문제들을 다루느라 격무에 시달리면서 심한 회의감을 토 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학생들이 로스쿨 과정 중에 생 각이 변하거나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 학교를 마치지 못하기도 하고, 졸업 후 높은 연봉으로 로펌에 취직한 경우에도 다수의 변호사가 3년 이내에 다

른 직종으로 이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통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좋은 로스쿨에 진학하면 취직과 인생의 많은 부분이 해결

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성급한 결정으로 자칫 결실은 보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유

념하여, 로스쿨 진학을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적성과 자질에 대해 심각하 게 고민해 봄은 물론, 학비 및 제반 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구체적 인 재정 계획을 세우기를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핵심 자질과 성향

변호사의 길이 본인에게 맞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성향이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가장 핵심적 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의 자질과 성향, 학비와 제반 비용을 고려한 현실적인 계획

로스쿨 진학 여부를 결정할 때는 졸업 후 취업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

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는 교육에 있어서 맹목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에 그런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

다. 하지만 시대가 급변하면서 교육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2008년 세계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좋은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특히 로스쿨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 변호사로 서 첫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 가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작정

로스쿨 진학을 결정하기보다는 로 스쿨 3년 동안의 학비를 고려하여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등록 금이 평균 6만 불, 생활비와 책값

1. 문 ‌ 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

2. (‌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 글을 논리 정연하고 간결하게 쓰며 문제의 핵심과 해결책을 글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

3. 치 ‌ 밀하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 즉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따지 는 성향. (예를 들면, 몇백 장 분량의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쉼표 하나, 마 침표 하나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입니다.)

4. 격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인내력.

5. ‌ 본인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서도 최

고가 아닌 것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정신적인 건강함과 스트

레스를 건강하게 풀 줄 아는 좋 은 습관.

까지 8만 5천 불 정도로, 3년이면

이 다섯 가지와 더불어 하나를 더

간을 가지고 본인의 자질과 관심

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

25만 불이 넘게 됩니다) 충분한 시 을 고려해 진로를 선택해야 함은 물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 수

단으로써 로스쿨에 진학해야 한다 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36

꼽는다면 그것은 공감 능력입니

를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변호사

로서 고객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 고, 그런 이해가 있어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도 출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위와 같은 자질이 비단 법조계에서만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분야

를 막론하고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보편적인 기본 자질이 자 일을 대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다만,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은 법조계에

서 특히 강조되는 필수적인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싫어한다면 사실상 변호사의 (특히 소송변호사의) 길 과는 맞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스쿨 졸업 후 취업에 유리한 학부 전공과 로스쿨 진학 전 직장 경험의 중 요성

매우 다양한 전공 분야의 학생들이 매년 로스쿨에 입학하기 때문에 로

스쿨 진학(admission)에 특별히 유리한 전공과목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미국 로스쿨(Admissions Offices)의 공식 입장 이며 매일 로스쿨 재학생들을 만나 진로를 상담하는 저의 개인적 경험 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로스쿨 졸업 후 로펌 취업률에는 전공과목의 영

향이 확실히 있습니다. 특히 학부 졸업 후 직장 경험 없이 곧바로 로스 쿨에 진학하는 학생일수록 로펌 취업에 학부 전공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성적이 비슷한 로스쿨 졸업생들의 경우, 이공계 (특히 공과대학) 출신 학생들이 여타의 인문계 학부 졸업생들보다 단연 유리합니다.

IT 시대에 발맞춰 변호사업 분야도 더욱 세분화되면서 테크놀러지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재산권 전문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음에

도 불구하고 공대 출신 변호사는 아직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입니 다. 회계학, 경제학, 수학 또는 통계학을 전공한 학생들도 로펌 취업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제학 전공 학생이 학부 졸업 후 투자 은행 (investment banking)이나 경영 컨설팅 분야의 일을 2~3년 정도 하고

로스쿨에 진학했다면 로펌 취업이 더욱 용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전문

가 조직에서 일해 본 학생은 사무에 대한 기본자세가 되어 있고 본인의

일에 대한 투철한 책임 의식과 공사(公私)를 구분할 줄 아는 판단력이 체화되어 있는 검증된 인재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직장 경험 없

이 학부 졸업 후 곧바로 로스쿨에 입학한 인문계 학생들은 취업 경쟁에 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뉴욕 소재 유명 로펌의 신입 변호사 취업률이

2.2%라고 합니다. 또한, 학교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최 상위 로스쿨 졸업생의 과반수가 로펌에 취직합니다. 이렇게 치열한 취

업 경쟁 속에서는 작은 차이도 큰 변수가 될 수 있으므로, 로스쿨 졸업 후 로펌 취업을 꿈꾼다면 로스쿨 입학 전에 적어도 2-3년 정도의 직장 경험을 가질 것을 권장합니다. 물론 변호사의 길에 로펌 취직만 있는 것 은 아닐뿐더러, 제 개인적으로 모든 법학도가 로펌 취직을 지향하는 것

을 권장하지도 않습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인권 변호사와 같은 공익 변호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제각기 다른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는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현실

적으로 많은 로스쿨 졸업생들이 로펌 취직을 우선적인 목표로 하고 있 고, 또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실질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부분

이기도 하여, 로스쿨 진학 시 고려 사항들을 장래 로펌 취업 가능성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습니다.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로스쿨 진학 후의 취업 준비 과정과 요건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변호사 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는 미국 로스쿨 준비 시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협회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다.

(Pre-Law: Preparing for Law School, https://www.americanbar. org/groups/legal_education/resources/pre_law.html) 그 중 본문 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정보 몇 가지를 아래에 정리하였다. ■

로스쿨 지원 상담사 (Pre-Law Advisor)

미국의 많은 대학에는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 재학생들과 졸업생

들을 도와주는 로스쿨 지원 상담사가 있다. 이 상담사는 로스쿨 지원 과정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로스쿨 진학에 도움이 되는 학부 과목들 을 추천해 주고 법 관련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

로스쿨 진학을 위한 재정 계획

로스쿨 진학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투자가 될 수 있다. 하 지만 그 비용이 절대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그 비용을 어떻게 조달

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 요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금융기관 혹은 정부의 학자금 대출에 의 존하고 있지만, 대출액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 졸업 후 오랫동안 대 출금 상환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로스쿨에도 의

외로 학생 장학금(scholarships), 학비 보조금(grants), 연구 장학금

(fellowship) 등의 학비 보조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므로, 성급히 대출 을 받기 전에 이용 가능한 학비 조달 방법들을 최대한 알아보고 지원 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졸업 후 대출금 상환에 있어서도 공익/공무 관

련직 종사자들을 위한 대출금 면제 프로그램과 같은 다양한 지원 제 도가 존재하므로 꼼꼼히 알아보고 이용해 보기를 권한다. 다음은 미

국 변호사 협회에서 제공하는 학자금 대출 상환 및 면제 프로그램 정

보이다. 해당 웹사이트(Student Loan Repayment and Forgiveness: Student Loan Assistance, https://www.americanbar.org/groups/

legal_education/resources/student_loan_repayment_and_ forgiveness.html)를 방문하면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 미 교육부 학생 지원 제도‌

(U.S. Department of Education Resources)

- 연방정부 학자금 대출 (Federal student loans)

- 소득 기반 대출 상환 계획 (Income-Based Repayment Plan)

- ‌ 공무원 대출 면제 프로그램 (Public Service Loan Forgiveness Program): 공무직에 10년 근속 시 연방정부 대출금을 면제

- 원천징수 상환 계획 (Pay as You Earn Repayment Plan)

• 전국 소비자법 센터 (National Consumer Law Center) - ‌ 학자금 대출자 보조 프로그램‌

(Student Loan Borrower Assistance)

• ‌ 대출 상환 보조 프로그램‌

(LRAPs: Loan Repayment Assistance Programs)

- ‌ 로스쿨 보조금: 공익 관련직 종사자에게 제공되는 대출 상환 보조 프로그램으로 미국 내 100개 이상의 로스쿨에 제공되고 있음

- ‌ 주 대출 상환 보조 프로그램 (Statewide Loan Repayment

Assistance Programs): 주(state)에서 공익 변호사들에게 제공하는 대출 상환 보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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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대학 탐방

첨단 과학 수사관을 양성한다 범죄학 최고 명성의 자부심

존 제이 대학 (John Jay College of Criminal Justice) 인기 장수 드라마인 CSI를 포함해 미국의 많은 범죄 수사물을 보면 첨단 과학과 두뇌를 통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과학 수사관’들의 활약이 흥미진진하 다. 존 제이 대학은 바로 이런 수사관들을 양성하는 범죄 사법 (Criminal Justice) 분야로 유명한 학교다. 일부에서는 “존 제이 대학은 범죄학 빼면 볼 것 없다”고 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말해 이 학교의 범죄학 명성이 전국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학 수사의 첨단 교육을 원하는 전 세계 유학생들 이 관심을 두는 대학, 뉴욕시립대(CUNY) 의 하나인 존 제이를 소개한다. 글 38

편집부


역사

실무적인 강습과 인턴 과정

립대학이며 리버럴 아트 칼리지로 분류된다. 1965년에 미국에서 형

치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즉, 현업에 종사했거나 과

존 제이 대학은 맨해튼 미드타운 웨스트 (57 스트릿)에 위치한 뉴욕 시 사 사법 및 법의학 중심의 유일한 교양 과목 대학으로 설립되었다. 형

사 사법(Criminal Justice), 법의학 과학(Forensic Science), 법의학 심 리학(Forensic psychology) 및 공무 프로그램(Public Affair) 가 정평이 나 있다. 존 제이 대학의 시작은 1950년대 중반, 뉴욕시 행정부와 경찰 업무 사이의 복잡성이 증가하던 시기다. 수사와 범죄에 관해 체계 있는

교육을 통한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1954년 당시 뉴욕 시립대 버 룩 칼리지 내의 행정 및 공공 행정 학교에 설립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건전한 경찰 교육의 기초로서의 교양 과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0년 뒤인 1964년 교육위원회는 버룩대학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학위 수여 경찰 전문학교 설립을 권고, 1965년 9월에 뉴욕 시립대학교 경찰 학교

이 학교는 교수진이 이론이 아닌 실제 케이스를 중심으로 현장감 넘 거 수사 경력이 있는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하나씩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해 나가도록 유도함으로써 수업의 흥미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학생

들은 졸업 후 실제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학교에서 교육받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사이버 포렌식(Cyber Forensic)을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가 보안업체에서 근무한 한 졸업생은 “학생들이 실제 존속 살인 사건에 투입되어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나

중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와 아들이 범인이 된 극적인 반전 케이스가 있

었다”며 흥미로운 인턴 경험을 소개했다. 학생들은 마지막 학기에 뉴 욕 경찰국과 검찰청 등에서 인턴으로 경험을 쌓는다.

(College of Police Science, COPS)가 설립되었다. 그 후 학교는 사법

합리적인 등록금과 학교 지원

개명하였다. 학교의 이름인 존 제이는 미 대법원의 첫 번째 대법원장인

수업료를 받는다. 월스트리트 저널, US 월드 앤 리포트 등 학교 평가에

영역에 광범위한 교육 목표를 반영하기 위해 지금의 존 제이 대학으로 건국 창지자 중 한 명이다. 학사 프로그램과 규모

이 대학을 특수한 전공의 작은 대학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1

만 5천 명 (학부 1만 2천 명/ 대학원 2천 명) 이상이 재학 중인 걸 알면

존 제이 대학은 뉴욕시 시립대답게 특히 뉴욕주 거주 학생에겐 저렴한 공신력 있는 매체로부터 "수업료 대비 가장 취업 효과가 좋은 학교", " 등록금 부채 비율이 가장 낮은 대학" 등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뉴욕주 거주 풀타임 학생의 학부 등록금은 한 학기에 $3265, 타주 학생은 약 두 배 가량이다. 대학원 등록금은 학기당 $5300 수준이다.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학생 단체의 75% 이상이 소수 민족 (히스패닉

* 종합 학생지원 프로그램

들의 국적은 130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성을 자랑한다. 학생들은 1, 2학

Engage)를 운영하고 있다. ACE는 재학생들의 정시 졸업률을 높이기

39%, 백인 28%, 흑인 21%, 아시아계 12%)이며, 대학에 등록된 사람 기 대부분은 기본적인 법 지식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된다.

31개의 전공과목과 40개의 부전공 과목, 13개의 대학원 프로그램 그

리고 2개의 박사 프로그램이 있다. 대학과 대학원 과정 외에 프로페셔

널 스터디, 온라인 강의, 수료 과목 등 일반인들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여기서 일반인이란 정식 학생이 아니란 의미로

학교 주변의 경찰관, 수사관, 변호사 등이 많이 교육을 받고 있다. 설립

후 현재까지 5만 4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그중 절반 이상이 공 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종합 학생지원 프로그램인 ACE(Accelerate, Complete,

위해 전 재학 기간 재정적 지원은 물론 각종 학습 상담 및 진로 상담을 제공하는 학생 지원 프로그램이다. 심사과정을 통해 ACE 학생으로 선

발되면 재학 기간에 메트로카드 월 정액권/ 연 500달러 상당 교재비 / 전문적인 진로 상담/여름 및 겨울 특별강의에 대한 최대 1,650달러의

수강비/ 뉴욕주 정부 장학금인 TAP 수혜자의 경우 등록금과의 차액만 큼 지원받는 혜택 등을 누릴 수 있다. ACE 지원조건은 뉴욕시나 뉴욕

주 거주자여야 하며 매 학기 최소 15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2019년까 지 4년 내 졸업생을 전체 재학생의 50%, 2020년까지 5년 내 졸업생을 6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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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주니어 리포터

한글날 반포 571회 기념 제18회 미 동북부 한국어 글짓기 대회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글로 표현한 박지현 양 대상 수상 한글날 반포 571돌을 맞이하여 재미 한국학교 동북부 협의회가 주최한 제19 회 ‘미 동북부 한국어 글짓기 대회’가 뉴저지 한국학교(교장 황현주 이사장 이 성원) Tenafly Middle School에서 개최했다. 올해로 19회를 맞이하는 이 대회 는 해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10월 초에 열리는데 본 대회 참가자는 ‘매 주말 한국학교에 다니며 한국어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을 키워온 재미 한국학 교 동북부 협의회(회장 황현주) 소속 15개교에서 선발한 77명의 우수한 학생 들’이다. 대회 개최 목적은 재미 한국학교 재학생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격 려하려는데 있다.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그동안 닦아온 한글 솜씨를 뽐내며 최선을 다해 대회에 임했다. 올해는 유난히 우수작이 많아 여느 해보다 열기 가 뜨거웠던 제19회 미 동북부 한국어 글짓기 대회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취재 40

Junior Reporter/ Katie Lee, Jae Won Min 정리

편집부


재미 한국학교 동북부 소속 15개(뉴저지 훈민학당, 성 김대건, 불광문

낭독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낭독하여 한 번 더 큰 박수를 받았다. 대

국문화학교, 사랑, 한소망, 찬양, 한무리, 대철, 뉴저지 한국학교, 프린

발표해 장학금 50~500달러와 상장, 트로피 등을 전달하였으며 참가

화, 갈보리 무궁화, 뿌리깊은 나무, 성바오로 정하상, 세종, 아콜라 한 스톤) 한국학교가 참여한 본 대회는 뉴저지 한국학교 어린이합창단

의 ‘해처럼 밝은 말이 꽃 처럼 피어나라’ 축가로 대회 첫 시작을 알리

회를 마치면서 장원 및 금상 2명, 은상 2명, 동상 2명, 장려상 20명을 자 전원에게는 참가증서 및 상품을 증정했다.

고 참여 학생들은 두 시간 동안 대회장에서 글쓰기를 하였다. 세 분의

미국에 살면서도 모국에 대한 애국심과 한글 사랑을 엿볼 수 있었던

미 한국학교 동북부협의회 전 회장, 뉴욕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에

살펴보자.

심사위원인, 미 동부 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정기 시인, 박종권 재 스카사 이제니퍼 발행인의 엄정한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회에 참가 한 학생들은 종이접기, 한글로 이름 디자인하기, 비즈공예, 그리고 세

종대왕과 사진 찍기 등 다채로운 행사를 즐겼다. 또한, 이날 참석한 학 부모와 각 학교 대표 선생님들을 위한 ‘학부모와 교사의 정체성’(강사: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이란 주제로 학부모 세미나도 마련하 여 한글 날 행사를 가족 모두가 함께 기념했다.

글의 주제로는 ‘가족’, ‘잔소리’, ‘내가 사는 동네’로 올해부터 새로 신설

된 샛별부를 비롯하여 초등부, 중고등부 세 부분으로 나뉘어 한국어 글쓰기 실력을 겨뤘는데 김정기 심사위원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한국어로 말하기도 어려운데 어른도 쓰기 힘든 감동적인 글

을 쓴다는 게 너무나 대단하고 예년보다도 감동을 주는 글이 많이 나 왔다’며 심사 중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는 심사평으로 올해 대회 우수 글이 많았음을 시사했다.

대상을 받은 박지현 학생은 “가족”이라는 주제로 아버지가 가족을 위

해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딸로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큰 감동을 주었다. 6세 때 이민 온 박지현 학생은 특별히 대상 수상작품

제19회 미 동북부 한국어 글짓기 대회 현장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제19회 미동북부 한국어 글짓기 대회 수상자 명단(소속 학교, 학년) ▲ 대상 박지현(뿌리깊은나무, 9)

▲ 금상 중급-임유진(아콜라, 5), 고급-이미영 (성바오로 정하상, 7)

▲ 은상 중급-원다정(한소망, 5), 고급-김한비(성바오로 정하상, 10) ▲ 동상 중급-김지환(한소망, 5), 고급-손유미(성바오로 정하상, 10) ▲ 장려상 ‌ 유빛나(아콜라, 5), 최민준(프린스톤, 4), 최하나(세종, 6), 김은비(뉴저지한국학교, 4), 이우인(찬양, 6),‌

이다인(뉴저지한국학교, 5), 김서하(성김대건, 4),‌ 서인영(성김대건, 6), 김연진(한소망, 5),‌

김혜원(성김대건, 6), 김한나(아콜라, 7), 김민채(불광, 7), 이혜인(한소망, 9), 박예원(찬양, 8), 박지연(사랑, 9) 행사사진 탁재훈(Jaehoon Tak)

현) 뉴저지 한국학교-미술교사, 화가, Creative director at Tgrapix design Pratt Institute, Master in Communication Design & Packaging 2001 41


EDUCATION

인물탐구

한평생 가난하고 병마에 시달리면서 천하고 무시 당하는 존재에 대한 무궁한 애정을 표현한 작가

‘강아지 똥’ ‘몽실 언니’의 작가 권정생

작가 권정생을 아는지 물어보면 선뜻 답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 똥’이 란 이름을 추가하면 적어도 작품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은 늘어날 것이며,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 로도 제작이 된 ‘몽실 언니’를 물어본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 다. 권정생은 동화 작가, 수필가, 시인이었다. 대표작인 두 작품 외에도 140편의 단편동화, 5편의 장편동화, 5편의 소년소설, 100편이 넘는 동시와 동요, 150여 편에 이르는 산문을 남겼다. 그는 평생 가난하였고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렸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높은 인세를 받게 되었 지만, 돈에 무지한 그는 자신의 수입마저 다 남에게 빼앗겨 버리고 평생 소박한 삶을 살았다. 사 상적으로는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 생태주의자이며 일부에서는 기독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 트로도 평가받는 권정생 작가, 타계 10주년을 맞이하여 그를 다시 돌아본다. 글

42

편집부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 났다. 해방 후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다. 가난 때문에 상점의 점원,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등을 하며 객지를 떠돌던 그는 5년 뒤인 1957년

가난한 이웃들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희망을 주고 고난 극복의 정신을 심어주어 아동 문학계의 중요한 흐름을 선도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군에 들어와 주로 그곳에서 창작하고 생활했다. 19세 때

권정생은 삶과 문학이 한 몸을 이룬 작가로 일제 강점기, 해방 그리고

급이 제대로 되질 않아 허탕치는 날이 많았으며, 같이 폐병을 앓던 고

치지 않고, 왜곡된 역사 인식과 시대의식을 작품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폐병에 걸려서 항생제를 보급받기 위해 읍내 보건소를 찾아갔으나 공 향친구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의 병세는 점점 심 해져서 폐결핵과 늑막염을 거쳐 신장결핵과 방광결핵으로 인하여 온

몸이 망가져버려서 사람 구실을 못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평생 오줌 통을 몸에 차고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 부모님마저 차례로 돌아갔고, 집도 없고 기댈 곳도 없어진

그는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일직교회 부속의 토담집

6·25전쟁 등을 두루 체험하면서도 어느 한쪽의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 받고 있다. 또한,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자기희생적 삶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개인사 덕분에 타계 이후에도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 전반이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아울러 동화, 옛이야

기, 동시, 동극, 산문, 평론뿐 아니라 수많은 기고문을 남기는 등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던 전방위 작가로도 뜻깊은 사례를 남겼다.

에서 기거하며 종지기를 하게 되었다. 생활은 여전히 조악해서, 여름이

그는 세상을 뜨기 전,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

면 생쥐들이 들어와 발가락을 깨물거나 옷 속을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

면 소나기에 뚫린 창호지 문 구멍 사이로 개구리가 들어와 울고 겨울이 파고들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엔 깜짝 놀라고 귀찮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고 나중에는 아랫목에 먹을 것을 두고 생쥐들을 기다릴 만큼 정이 들었다고 한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 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73년 조선일 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 문학상을 받았다. 1984년부터 교회 뒤편의 빌뱅이언

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혼자 살며 꾸준히 창작했다. 81년 작 몽실 언

니 등의 베스트셀러를 쓰면서 수억 원에 이르는 인세를 매년 받았으나 정작 산골의 흙집에서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고, 옷도 단벌이어서 이웃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가난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사망 후 수많은 사람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과 그가 남긴 재 산에 대해 알고서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워낙 돈에 무지했던 그를 위

해 돈을 대신 관리했던 지인의 농간이라는 의혹도 있다. 또한, 안타깝 게도 그가 사망한 지 10년이 지나 사망원인이 의료사고였음이 밝혀지 기도 했다.

권정생의 작품은 대체로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것 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강아지 똥>은

닭과 진흙에 무시를 당하고 자신을 하찮게 여기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

의 거름이 되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

을 주어 60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현재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몽실언니>는 전쟁과 가난에 허덕이지만 꿋꿋이 버텨내는 한 절 름발이 소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1984년 첫 출간 이래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1990년에는 MBC 드라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권정생이 아동 문학계에 발을 내디뎌 활동하던 대한민국의 1970년대

는 ‘반공’과 ‘조국 근대화’를 표상으로 하는 체제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사회 전반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기였다. 이 무렵의 아동문

학은 후대 이론가들에 의해, 국가적 교육 목표에 순응하는 교훈 주의 와 순수하고 착한 동심을 지향하는 일명 ‘동심천사주의’에 치우쳐 있었

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그런 시기에 권정생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개발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

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또한, 자신의 집터를 허물어 다시 자연으로 돌려달라고 부탁했 다. 현재 그의 재산은 유언에 따라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에서 관리하 며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에 사용되고 있다.

* 타계 직전에 쓴 유언장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남북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티벳 어린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어머니...어머니, 아아, 어머니..

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적’ 글쓰기를 통해 43


EDUCATION

Academy of Music and Arts for Special Education

대가없는 사랑과 행복을 나눕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자녀를 낳고 돌보는 면에서 인간은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양육되는 시간이 그 어느 동물들보다 길고 훨씬 더 많 은 자원과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태어나 바르고 건강한 사회구 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이모, 손위 동기, 사촌, 이웃사촌까지 나서서 직간접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결국, 아이 하나 바로 키우는 데 는 집안 교육,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온 사회의 관심과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보통 아이도 이렇게 공을 들여야 할진대 하물며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울 때는 온 사회의 정성이 몇 배가 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장애 아동을 가진 부 모의 마음으로 미술과 음악 교육을 통해 이 역할을 잔잔하게 하는 곳이 어메이즈 (AMASE: Academy of Music and Arts for Special Education)이다. AMASE는 캘리 포니아 실리콘 밸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 단체로 샌디에고와 노스웨스턴 대 학에 챕터를 두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서 미술, 음악 전공자인 선생님들과 장 애아동, 그리고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곳, AMASE의 설립자인 Ms. Janelle Korea와 샌디에고 챕터 총디렉터인 정연수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글 Sarah Chung 정리 44

편집부


얼마 전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사진 한 장이 뉴 스에 올라왔다. ‘집값 때문’에 서울 강서구 특수학

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 앞에 장애 아동을 둔 부 모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었다. 정말 무릎

을 꿇어야 했는가를 논하기 전에 무릎을 꿇을 정

도로 그들에겐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박힌 장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치우친 생각에 기인한

AMASE의 시작은 첼리스트인 현재 이화여대 음악대학 배일환 교수가

는 나에게) 폐를 끼친다는 인식과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시 이미 온누리사랑챔버라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장애 학생들과 함께

다는 것이다. 교민 사회도 마찬가지다. 장애 아동은 남에게 (더 솔직히

모든 차별의 시작이다. 장애 아동은 비장애 아동과 어울리기 어렵기 때 문에 분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온다. 그렇다면 장애 아

동은 커서도 이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 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장 애를 훈장으로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장애를 주홍글씨로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AMASE는 장애 아동들에게 미술과 음악을 통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 으로 건강한 커뮤니티를 이루고 사랑과 소망을 나누는 비전을 가진 비

영리 단체이다. 이곳을 찾는 장애 아동의 대다수는 자폐 아이이지만 다

운증후군, 시각 장애, 발달 장애, 지체 장애, 지적 장애, 혹은 미약한 발 작증세가 있는 아동도 많다. 실리콘 밸리의 본부부터 샌디에고와 노스 웨스턴 대학의 챕터까지 AMASE에서 가르치는 모든 선생님은 놀랍게 도 현직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음악가와 미술가들이다. 설 립자인 Ms. Janelle Korea도 비엔나에서 첼로를 공부했고, 샌디에고

챕터 총디렉터인 정연수씨도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도예가

스탠퍼드 대학에 교환교수로 왔던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 한국과 해외에서 연주와 공연을 하고 있던 배 교수의 제안이 작은 씨앗 이 되었다. 캘리포니아 스탠퍼드 대학이 있는 주변 지역의 음악가들이

모여 연주뿐만 아니라 보다 의미 있는 일 – 장애 아동과 함께 음악을 하고 공연을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 후 2006년 ‘Beautiful Mind’라는

음악으로 봉사하는 모임의 결성이 본격적인 AMASE 활동의 시작이 되 었다.

(Janelle Korea, AMASE Founder) “AMASE는 배일환 교수님의 주도 아래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문 화 사절로서 활발한 공연을 하는 ‘Beautiful Mind’와 그 뿌리를 같이 하지만 ‘교육’에 더 중점을 둡니다. AMASE는 이곳을 찾아오는 모 든 장애 아이들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줍니다. 그것 자체가 기쁨이자 AMASE의 목표이기도 하지요. 이 프로그램을 통 해 무언가를 꼭 극복(해야)하는 그런 역경 스토리를 발굴해 내기 위 함이 아니랍니다.”

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AMASE의 설립자인 Ms. Janelle Korea의

장애 학생들이 단지 음악이나 미술을 배우고 싶다면 근처의 학원에 가

국인임을 알릴 수 있는 Korea로 바꾸었다 한다.

이 생긴다.

한국 이름은 백재은. 오래전 남편과 시민권을 따면서 라스트 네임을 한

면 될 텐데 굳이 AMASE로 발걸음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에 대해 의문

45


지요. 행여라도 예술가로서 가질 수 있는 권위의식이 있다면 그 마 음으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답니다. 물론 AMASE에도 커리큘 럼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커리큘럼을 곧이곧대로 모든 아이에게 적 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예를 들면, 자폐 아동은 자폐 아동대로, 다운증후군 아동은 다운증후군 아동대로 장애 정도에 따라 커리큘 럼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역할을 선생님이 합니 다. 그래서 장애 아동 한 명을 위해 특수 교육에 관련된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한 명 한 명이 가진 장애를 파악해서 그 아이에게 맞는 프 로그램을 디자인해주어야 합니다.” AMASE에서는 한 학기, 혹은 일 년 내내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도레미’ 소리를 내기 위해, 혹은 신체장애로 인해 손놀림이 어려우면서도 동그

라미 하나 제대로 그리기 위해 선생님과 아이가 애를 쓰고 그것을 성취 했을 때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이 “장애가 있는데도 하네”가 아니라 서로가 하나가 되어 같 이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관찰과 소

통을 통해 “네가 얼마큼 하는지 일단 보고 시작해보자”가 아니라 “우리 는 이만큼 할 수 있으니 가보자”라고 아이들을 격려한다. 가장 쉽게 빠 지는 ‘장애 아동은 못한다’는 편견을 제일 먼저 거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AMASE를 더욱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9~12학년의 고

등학생과 장애 아동을 맺어주는 ‘High School Buddy System’ 이다. 같은 수업을 들어도 장애

의 종류와 장애의 정도에 따라

수업에 대한 이해도와 적응력이 다르기 때문에 장애 학생과 음악 이나 미술에 소질이 있는 고등학 생이 일대일로 팀이 되어 원활 (정연수 샌디에고 챕터 디렉터) “우리 사회에서 장애 학생들은

이미 ‘해도 안 되는 애들’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의 틀에 갇혀 있 어요. 이 아이들의 능력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시작도 해보 기도 전에 한계가 그어져 버리 고 다른 것을 배울 교육의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특히 음악이나 예술 분야는 더 그렇죠. ‘제 몸 하나도 못 가누는 아이가 무슨 음악을 혹은 그림을’ 하냐고 시작도 해보기 전에 거절당하는 게 현실이에요. 맞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지요. 하지만 이 아이들을 위 한 곳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현직 음악가나 미술가라니 혹시나 예술가들의 자기만족과 자기도취에 기댄 그런 일회성 활동이 잘 포장된 것은 아닐까도 궁금해 졌다.

한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 다. 예를 들어, 음악 수업에서 바

이올린을 배우는데 장애로 인해 활을 잡지 못할 경우 수업시간은 물론 수업 전후에도 고등학생 형 이나 누나가 그 아이를 전담해서 활을 잡는 법을 계속 연습시키고

도와준다. ‘High School Buddy

System’에 들어오기 위한 경쟁

은 제법 치열하다. 왜 이곳에서 자원봉사하고 싶은지 에세이도 써야

하고, 본인이 하는 악기로 한 곡을 연주해야 하고, 적극성을 보기 위해

선생님들 앞에서 노래도 해야 한다. 그리고 학기 전에 이런 고등학교 youth volunteer들을 위한 특수교육 세미나에도 일주일 동안 참가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장애우를 주변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등학생들은 처음에는 기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

록 장애 학생과 함께 하면서 배려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둘은 친구가 되어 있다. 장애 아동도 선생님이나 부모의 말보다 고등학생 형이나 누나의 말을 더 따르기도 한다.

(Janelle Korea, AMASE Founder) “AMASE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모두 자기를 철저히 내려놓으

(정연수 샌디에고 챕터 디렉터) “AMASE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High School Buddy

신 분들이지요. 순수한 자원봉사자로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분들이

System’을 통해 맺어진 고등학생과 장애 학생 간의 유대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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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요.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 youth volunteer 자신도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죠. 바쁜 고등학생들이지만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다른 아이를 위해서 쓰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고, 나보다는 내가 맡은 장애가 있는 동생을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이런 학생들이 다음 세대를 이끄는 차세대 리더가 된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리라는 것은 당 연합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특히 한국 (교 민) 사회에서 장애는 부끄러운 일

이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이다. 그

래서 장애우가 주변에 혹은 이웃에 있으면 우리가 손해 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기

에 함께 하는 자리도 되도록 만들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 주변에, 내 이웃에 장애 학생이 있다면 함께 키우지는 못할지언정 지역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도록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닐까. 사회의 성숙도를 보는 지표 중의 하나가 장애우에 대한 시각이다.

(Janelle Korea, AMASE Founder) “장애는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이곳 AMASE에서 악기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이룬 것으로 단순하게 치부되지 않기를 바래요. AMASE는 함께 하는 교육, 같이 어울릴 기회를 미술과 음악 교육을 통해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 에 초점을 둡니다. 이 아이들만의 축복이 있어요. 어느 전문 뮤지션의 연주보다, 어느 전 문 화가의 그림보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울리고 치유하는 은혜가 이 아이들에게 있습 니다. 그리고 그 속엔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꼭 AMASE일 필요는 없습니다. 비슷한 단체가 많이 만들어져 보다 많은 장애 학생들이 음악과 미술 교육의 기회를 갖고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1항에는 대한민국 국민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미 합중국 헌법 제14조에는 평등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이런 것을 거론하지 않 아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 말에는 기회의 평등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교육 기회의 평

등은 장애를 가진 아동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그 기회를 주고자 화려한 무 대에서의 연주와 멋진 갤러리에서 펼치는 전시회를 뒤로하고 AMASE에서 봉사하는 음악가

와 미술가, 장애를 가진 낯선 아이를 동생 삼아 구슬땀을 흘리며 수업을 도와주는 어린 고등 학교 youth volunteer들, 그동안 쓸모없다며 놀림 받고 숨어 지냈던 아이가 연말 콘서트 무

대에서 일 년 동안 배운 ‘도레미’를 자신있게 치고 내려오며 짓는 그 환한 웃음에 마음이 치 유되는 부모들. 한 사회는 이렇게 함께 더불어 살며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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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SE에 대하여 더 알고 싶으신가요? 음악

가와 미술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AMASE 가 될 수 있습니다.

Ms. Janelle Korea, Founder (408) 568-7338

info@amase.us 정연수, 샌디에고 챕터 총디렉터 (408) 966-0062

info.amasesd@gmail.com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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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The life I dream of 포디엄(Podium) 위의 작은 거인 이선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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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를 이끌던 앨런 길버트(Alan Gilbert)가 지난 여 름 뉴욕필을 떠났다. 참신하고 모던한 음악적 해석도 좋았 지만 일본인 어머니의 영향 탓인지 그의 지휘에 살짝 녹 아있는 동양적 감성을 나는 특별히 좋아했다. 몇 해 전 그 가 뉴욕필을 떠난다는 소식이 있고 이듬해 후임으로 몇몇 유능한 지휘자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 모두가 남성지휘자였다. 이렇듯 포디엄은 예나 지금 이나 남성들의 전유물이다. 여성 지휘자가 바톤(Baton)을 든지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여 성 지휘자들에게 냉랭하다. 그래서일까? ‘단상 위의 작은 거인’ 이라는 닉네임이 썩 잘 어울리는 이선민교수와의 인터뷰가 적잖은 기대를 갖게 해 준다. 리하이대학(Lehigh University) 음악과 Choral Arts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코 랄유니언(Choral Union) 합창단과 대학합창단(University Choir) 그리고 돌체여성합창단(Dolce Women’s Choir) 감 독과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교수를 만나기 위해 그녀 의 연구실을 찾았다. 수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손에서 금 세라도 바톤의 솔향기가 날 것 같았다. 갓 뽑아내린 커피 를 사이에 두고 벨라 바르톡(

)을 논하며 우리

는 서둘러 음악이야기를 시작했다. 글 Young Choi 정리

편집부

51


그녀는 시종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예술가는 모름지기 고독해야

심의 획일화된 교육, 예술가로써 개인의 고유함을 장려하기 보다는

없이 깨졌다.

의가 들어서 잠시 음악과 멀어지기도 했었죠. 그러던 어느날, 중학

하고, 어딘가 잿빛 기색이 있어야 그답다는 전근대적인 선입견이 가차

기존의 모형을 답습하도록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 이런 것에 대한 회 교 때부터 제게 음악적 영감을 주시고 저를 아껴주셨던 음악선생님

“저는 어릴적부터 늘 웃는 아이였어요. 성격도 무척 밝았고요. 또 학

께서 제가 다니던 대학으로 특강을 오셨어요. 졸업 후에도 자주 편

교에서든, 교회에서든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을 참 좋

지로 안부를 나눠왔었는데, 특강에서 다시 뵈었을 때 제가 더 넓은

아했어요. 오페라 가수가 되는게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저의 아버지

세상으로 나가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재차 용기를 주셨어요.

께서는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셔서 제게 음악교육을 따로 시키지

그래서 졸업 무렵 수속을 마치고 그 은사님께서 수학하셨던 헝가리

않으셨어요. 그래도 피아노를 치던 언니와 성악을 공부하던 오빠 덕

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죠. 당시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돌이

택에 다행히 음악적 소양을 조금씩 키워나갈 수 있었죠.”

켜보면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버지의 간곡한 기대에 맞서 끝내 음악을 고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예술가들은 태생적으로 ‘혼자됨’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익숙하

를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평생을 교회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제 삶은 교회 와 인연이 깊었어요. 오랫동안 성가대 반주를 했고 절기행사 때는 중창단, 합창단 지휘도 하고 그 외 교회 내 여러 음악활동에 참여했

다고 해서 고독을 견디는 일이 다른 사람들보다 쉬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헝가리와 미국에서 대학원과 박사과정까지 이어진 이교수의 긴 학업여정은 그녀가 치룬 인고의 시간에 상응할 만한 결실을 되돌려 주었다.

어요. 그러다보니 음악과 신앙, 그리고 제 삶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외로웠죠. 공부도 힘들었고 살아내기도 벅찼어요. 신앙으로 모든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 평생

것을 견뎠다고 말한다면 마치 제 믿음이 대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을 교회음악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품었던 것 같아요. 그래

있겠는데, 흔히 태풍의 정점에는 오히려 무풍지대가 있다고 하잖아

서 장로회 신학대학 교회음악과로 진로를 정하고 거기서 성악을 공

요. 신앙이란 제게 바로 그런 것이었어요. 현실적인 어려움 가운데

부하게 되었죠.”

서도 오히려 담담할 수 있도록 저를 지켜주었죠. 헝가리는 제가 음

프리마돈나의 꿈과 교회음악 사역자로써의 열망을 키우며 열심히 노 래하고 공부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알 수 없는 음악적 갈증이 그녀 를 혼란스럽게 했다. 한국을 떠나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 목마름의 이 유를 끝내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 무렵이었어요. 한국에서 음악 교육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이건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텐데요, 테크닉 중 52

악적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깨우쳐 준 곳이에요. 잘 아시겠지만, 헝 가리는 외부의 침략이 많았던 나라였고 커뮤니즘이 지배했던 곳이 어서 당시 국민들 정서가 무척 암울했거든요. 그래서 국가에서 정책 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음악교육을 실시해서 그들의 우울을 일부 나마 치유하려고 했죠. 그래서 그런지 국민들의 음악수준이 상당했 어요. 탄탄한 음악적 이해를 기반으로 모든 사람들이 음악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는 그런 나라였어요. 때로는 전공자인 제 자신이 부

끄러울 정도였죠. 또 제가 다녔던 졸탄 코다이(Zoltán Kodály)음악


원에는 세계 14개국 이상 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 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 었던 다양한 음악의 이해 와 깊이를 경험할 수 있 었어요. 거기서 음악교육 을 전공했는데 담당 교 수님의 권유로 지휘공부 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 너와 웨스트민스터 음악 대학 (Westminster Choir College)에 입학했어요. 석 사를 마치고 1년 정도 Faculty로 일하다가 이스트만(Eastman School of Music)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요, 다시 웨스트민스터로 돌아 와 교수로 재직하다가 6년 전쯤 리하이대학(Lehigh University) 음악 과 부교수로 자리를 옮겼어요.” 리하이대학은 펜실베니아 주 베들레헴 시에 있는 사립대학이다. 경 영학과와 공학부가 유명한 곳으로 원래는 남자학교였다가 1971년부

터 남녀공학이 된 곳이다. 이교수는 음악대학 부교수로 재직하며 여 성합창단 돌체(Dolce)의 감독 겸 지휘 그리고 코랄유니언(Choral Union)과 대학합창단(University Choir)을 이끌고 있다.

“저희 학교가 미국 내 랭킹 30위 권에 드는 명문 사립대학이다 보 니 학생들의 학구열이 상당히 높아요. 학업에 지친 학생들이 제가 지도하는 합창 수업을 통해 힐링받고 다시 에너지를 얻는 모습을 보면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게 되죠. 지난해에는 리하이대학에 여 성입학이 허용된지 45년이 되는 해였고, 여성합창단 돌체의 창립 10주년이 되던 해라 특별 콘서트가 있었어요. ‘Rise Up’이라는 타 이틀의 이 콘서트에서 제가 commission한 곡은 ‘I Rise: Women in Song’인데요, 미국 여성작곡가가 곡을 쓰고 제가 가사를 골라서 완성한 여성합창단과 메조 솔로 그 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25분 짜리 작품입니다. 5악장 의 가사 모두가 미국의 유명 여성작가들의 글로 구성되 어 있는데 대개 여성의 strength, beauty, resilience, dream, phenomenal women, rising, love등을 표현하고 있어요. 제가 지휘하고 140명의 여성합창단이 연주했는데 무척 감동적인 무대였죠.” 흔히 합창은 인간의 목소리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 움이라고들 한다. 이선민교수는 목소리 본연의 순수함과 정 직함을 합창음악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오케스트라가 서로 다른 악기들의 조합이라고 한다면 합 창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목소리를 갖고 있고 그것이 개인이 가진 하나의 악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더욱이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 사람만의 삶이 녹아있거든요. 말하자면 개인의 삶이 고유한 음색을 만들고 그 색깔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낸 다고 할 수 있죠. 제가 하는 일은 그 작품을 예술의 차원으 53


로 끌어 올리도록 돕는 것이고요, 그 예술행위를 통해 관객과의 소

한 백인 지휘자 처럼 되려고 그를 모방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

통을 이끌어 내는 것이죠. 물론 악기 연주로도 가능하지만, 인간의

지 못했을 거에요. 나의 개성과 색깔은 현재 내가 가진 조건에서 출

목소리에는 세상 어느 악기도 흉내낼 수 없는 순수함과 정직함이 담

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결함이, 혹은 그들

겨있거든요. 저는 그것이 합창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술이

이 결함이라고 보는 부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말할 수

주는 감동의 수혜자가 관객일거라는 생각들 많이 하시죠? 사실은

도 있겠죠.”

지휘를 하는 저와 연주자들이 받는 감동이 훨씬 더 클거에요. 특히 연주를 끝내고 단원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지휘자로써 말 할 수 없는 성취감을 얻거든요. 아마 지휘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이 아닐까 싶어요.” 클래식 음악계의 보수성을 생각할 때 마에스트라(Maestra)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아보인다. 차별의 벽을 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이스트만 박사 과정 중에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룬 그녀는 남편의 이

야기가 실린 로컬신문 하나를 보여주었다. ‘Right Brain, Left Brain,

Math and Music for teacher at the Hun School’이라는 제목의 그 기사는 음악과 수학을 동시에 가르치는 그녀의 남편 Ryan Brown 씨의 교사로써의 활약상을 유쾌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남편은 원래 수학을 전공했는데, 나중에 음악을 공부해서 이스트

“여성이 포디엄에 오르면 많은 사람들이 지휘자 이 전에 한 여성

스턴 소재의 사립고등학교(Hun School)에서 수학과 음악을 동시에

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사회가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 분

가르치고 있고요. 항상 긍정적이고 성실한 그를 보고있으면 내가 얼

야에서 또 여러 종류의 차별들이 여전히 존재하잖아요. 여성이라

마나 복받은 사람인가를 깨닫게되죠. 오랜 유학생활에 지쳐있을 때

차별받고, 동양인이라 차별받고. 사실 그러한 차별의 시선을 견디

그 사람을 만났는데 마치 제게 단비같은 존재였어요. 그러다 결혼을

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문제에 마음이 묶이면 그나

하고 각자의 학업과 일로 서로에게 조금씩 소원해질 무렵 딸을 얻었

만과 인디애나 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어요. 현재는 프린

마 내가 가진 작은 능력조차

어요. 그땐 그 아이가 우리 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

모두에게 단비같은 존재였죠.

더라고요. 그들의 비틀린 시

그래서 아이이름을 단비라고

선이나, 그로 인해 내가 받은

지어주었어요. 이제 초등학교

상처를 정말로 중요한 일 뒤

일학년인데 요즘 피아노 공부

로 물리는 훈련을 자주 했어

에 아주 열심이에요. 단비와

요. 일의 우선 순위를 생각하

함께 있으면 무언가 내 삶이

고 당장 눈앞에 주어진 일에

충일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했어

우리 부부에게 그랬던 것 처

요. 만일 내가 그들의 성차별

럼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

을 의식해서 남성 지휘자를

도 누구에게나 단비같은 존재

흉내냈다면, 혹은 어느 훌륭

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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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과 속에서도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산책과 독서를 잊지 않 는다.

“대부분의 시간은 강의를 하고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연주 준비를

긴 시간 그녀의 삶과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갈무

리를 부탁하자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에스카사에 고마움을 먼저 전했다.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 수집과 공부를 해요. 또 여건이 허락되

“고맙고 감사해요. 특별할 것도 없는 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

는대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리

사하고 뒤돌아 볼 수 있어서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정리해놓

고 제가 출석하는 뉴저지 찬양교회에서 스페셜 뮤직디렉터로 사

고 보니 어린시절 부터 지금까지 음악 하나에 붙들린 삶을 살았어

역하기 때문에 교회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주로 주일 예배와 절기

요. 이렇게 음악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셨

에 맞게 음악을 선곡하고 특별찬양을 기획하고 또 다양한 음악행

어요. 장신대 박창훈교수님을 비롯해서 헝가리 코다이 음악원에서

사들을 디자인하는데요,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더불어 교회음악

의 Peter Erdei, 웨스트민스터의 Joseph Flummerfelt, 그리고 이스트

사역자로 쓰임 받을 수 있어서 기쁘게 일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바

만의 William Weinert교수님까지. 그 분들은 저의 재능을 알아봐주

쁘죠. 그래도 틈틈이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시간을 관리하

시고 늘 격려하고 지지해 주셨어요.이제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스

고 있어요.”

승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더 많은 사

12월은 콘서트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휘자로 무대에 오

람들과 음악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그게 저의 바램이에요.”

르는 그녀 역시 크리스마스 음악회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은 새로 발견된 고분의 문을 따는

“매년 12월이 되면 Christmas Vespers 라는 학교행사가 있어요. 저희

년의 꿈은 어떻게 삶이 되고 그 삶이 또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지 그

학교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인데요, 옌례행사이자 무료콘서 트라 모두들 와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있 고요, 또 교회에서도 성탄음악회가 있어서 특별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종교를 떠나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는 연말이잖아요. 이런 음악회를 통해서라도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고학자의 마음처럼 흥분되는 일이다.’ 진중권씨의 말은 옳았다. 유 녀의 내면에 담긴 이야기를 캐내느라 저녁 해가 다 저물도록 나는 자

리를 떠나지 못했다. 음악과 함께 살아왔고 음악을 통해 누군가를 더 많이 사랑하기를 원하는 이선민교수. 그녀가 마에스트로 포디엄 (Maestro Podium)의 유리천정을 깨고 더 높이 비상하기를 기대하 며 연구실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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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작품이 완성 되는 모든 곳이 저의 작업실입니다.” 스튜디오 탐방 시리즈 세번 째 이야기

화폭과 도구의 틀에서 벗어나 3차원의 그림을 그리는 ‘공간 드로잉’ 작가 곽선경 글 Won Young Park 정리 56

편집부


Walkable Drawing, Runway for designer Lie SANG BONG,, Mercedes Benz Fashion Week, Lincoln Center, NY, 2015

곽선경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 연재의 제목이 ‘스튜디오 탐방’이라고 소개하자 작가는 “그 럼 어디서 만나면 좋을까요?”라고 잠시 망설였다. 스튜디오를 찾아 대화를 나누는 기사니까 당연히 스튜디오가 가장 적당하지만 그녀 의 망설임엔 이유가 있었다. 사실 곽 작가에겐 이스트 할렘에 오래 전부터 작업해 온 공간이 있다. 하 지만 대형 설치 작품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작가의 경우, 작품이 실 제로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공간은 작업실이 아닌 ‘전시 현장’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 에 최근 뉴욕시의 지원으로 시작 되어 현재 완성 단계에 있는 대형 공공 예술 작품 현장도 적당할 터였다. 결국, 최종 디테일 공 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의 사정상 그리고 대화의 편의를 위 해 작가와의 만남은 어퍼이스트의 ‘워터폴(Waterfall)맨션 & 갤러리’에서 이루어졌다. 오랜된 워크업 건물을 리모델링해 럭셔리 타운하우스로 바꿔 화제가 되었던 빌딩이다. 인터뷰 가 진행된 4층의 룸 벽면 하나는 작가의 초기 작품들도 장식 되어 있었다. 뮤지엄 벽면에 천지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듯한 힘찬 대작만 봤던 기자에게 작은 프레임에 ‘얌전히 갇혀 있는’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신선했다.

곽선경 작가는 1993년 뉴욕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래 25년간 뉴욕에 서 활동했다. 4반세기란 시간 자체도 짧지 않지만, 뉴욕과 한국의 주요

Untying Space_The New Children’s Museum at The New Children’s Museum, San Diego, CA, 2009

뮤지엄은 물론 세계 각국을 무대로, 어떤 재외 작가보다 왕성한 전시 활동을 해왔던 그의 주요 이력만 간단하게 정리하더라도 허락된 지면

이 부족할 정도다. 그래서 이번 탐방에서는 최근 완성이 된 퀸즈 코로

나의 공립학교 (PS 298) 가 배경이 된 대형 공공 예술 프로젝트(작품명: Kairos. 9피트 8인치 X157.1 피트) 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Public School’ 이란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 프로그램이 퀸즈 코로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꽤 오래 걸린 작업이라

켰는데 제 작품이 당선이 된 거죠. 그런데 사실 그게 2011년이에요. 무

면서요?

작업 자체가 오래 걸린 건 아니고 시행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뉴욕시 교육국이 지원하는 ‘공립학교를 위한 공공 예술 Public Art for

에 새로운 학교를 지으면서 학교 외관을 장식할 작품을 경쟁 응모를 시 려 7년 전이죠. 곧 시작될 줄 알았던 공사는 건설과 부동산에 얽힌 각 종 문제 때문에 지지부진하다가 3년 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올해 가을 학기 개교를 하면서 완성이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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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Drawing, masking tape_Charles B. Wang Center at Stony Brook University, 2016

그런 외적인 조건 외에 작품 제작에 관한 어려움도 있었나요?

제한과 어려움이 있는 공공 예술 분야에 어쨋든 손을 대기 시작한 계기

야 한다는 학교 측의 요구였어요. 원래 제 아이디어는 엠보싱 재질이었

네. 2007년이었죠. 광주 비엔날레 전시 후에 의뢰가 들어왔어요. 삼성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는데 제가 처음에 제시한 작품의 재료를 변경해 는데 1층 외관에 그런 재료를 이용하면 조그만 낙서나 손상에도 수리 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이유였죠. 사실 그건 관리를 담당하는 학교측의

우려가 합당했어요. 그래서 결국 낙서나 손상 등에도 수리가 편한 타일 로 재료를 변경했어요. 아무 재료나 사용하기는 싫었고 최상의 재료를 얻기 위해 이태리에서 제조된 타일 3,600장을 들여왔습니다.

타일 수천 장이 들어가는데 갤러리나 뮤지엄과 달리 작품 진행에 작가 의 한계가 있을 듯 한대요?

가 한국의 삼성 빌딩 작업이었죠?

그룹이 시내에서 서초동으로 사옥을 이전하고 삼성 타운을 만들던 시 기인데 삼성생명 빌딩 로비를 장식할 작품 의뢰였죠. 로비가 워낙 커서 저만 참여한 건 아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있어요. 작가에게 일정한

금액이 제작비로 지급되었는데 저는 작품의 질을 위해 아낌없이 가장 비싼 재료들을 사용했어요. 나중에 관계자가 보고 이렇게 해서 작가에

게 남는 게 있느냐고 오히려 걱정할 정도였죠. 제가 본래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작품 이름은 생명의 힘 (Life Force)입니다.

맞아요. 타일에 색 작업을 하는 기술자가 따로 있고 타일을 붙이는 인

작가님의 대표 작품들은 역동적이고 파워풀하지만 다소 무거운 느낌

나게 되죠. 내 손끝으로 완벽하게 디테일 처리를 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을 구상하면서 어떤 컨셉을 떠올리셨나요?

부가 따로 있죠. 저는 디자인만 할 뿐 실제 제작 단계에서는 내 손을 떠 프로젝트의 단점이에요. 100% 예술 작품이 아니고 건축과 시공이 섞 인 개념이라서 작가로서 양보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서…. 제가 공공 예술을 자주 하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도 있지 않나요? 초등학생 아이들이 공부하는 공간과 어울리는 작품

사실 저에겐 퍼블릭 공간이 일반 전시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 만 규모의 차이일 뿐이죠. 이번 프로젝트는 학교의 외벽 전면에 걸친

큰 사이즈에요. 즉, 감상의 목적이 되기엔 너무 크다고 할 수 있죠. 또 한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등교와 하교를 하는 동선에 작품이 이어

집니다. 결국 아이들의 동선에 맞춰 함께 하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나의 동반자가 되는 작품, 보는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 하며 움 직이는 작품이 된 겁니다. 물론 전반적인 색채도 이전 보다 훨씬 밝고 가볍습니다. 58


Working on Process Enfolding 280 Hours at Brooklyn Museum of Art, NY

Untying Space_Toranomon Hills Mori Tower, Architect Sou Fujimoto_Toranomon Hills Mori Tower, Tokyo_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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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Force_21.3ft H x 28.8ft W, stainless steel, urethan paint_ permanently installed at Samsung Life Flagship, Gangnam, Seoul, Korea, 2007

기자는 8년 전 곽선경 작가와 인터뷰를 했던 인연이 있다. 작가가 첼시 갤러리에서 작품 ‘ 너버스 시스템(Nervous System)’을 전시하던 시기 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에서도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 게 되었다. 설치 작품을 작업하는 작가들에게는 캔버스에 완성된 작품 을 전시하는 화가보다 전시될 공간에 대한 고려와 느낌이 남다를 수밖 에 없다. 붓과 캔버스 대신에 철사, 마스킹 테이프 등을 소재로 대형 ‘공 간드로잉’ 작품을 발표해 온 곽 작가의 경우 특히나 전시 공간 자체가 늘 작품의 무대가 되어 왔다. “공간에 대한 첫 시각적, 감성적 반응을 드 로잉으로 그 공간 위에 직접 표출”하는 것이 그녀의 작품 스타일이다.

How to discover a drawing, Installed at Transparent Elevator at The James Hotel, NY

만약 작가의 그림을 직접 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인터뷰 기사만으로는 곽선경 작품의 스케일을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그의 작품은 설치 작으 로 규정될 수 있지만, 여타의 대형 설치 작품처럼 3차원을 차지하는 구 조물들이 아닌 '면'을 사용하는 2차원의 작품들이다. 그러면서도 대표작 인 <Untying Space>의 제목처럼 재료와 화면의 제한을 무시하고 공간 을 풀어버리는 구성으로, 마치 작품이 관객들의 주변을 둘러쌓고 흐르 고 있는 듯한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3차 원적인 조각적인 드로잉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퀸즈 뮤지엄 전시 때 는 4개의 벽면과 바닥을 통째로 사용했고, 2006년 한국의 갤러리 스케 이프 기획 초대전에서는 갤러리 건물 자체를 마스킹 테이프로 감는 대 담한 작업을 했다. 갤러리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에게는 한 달 동안의 작 업 기간 차체가 작품에 대한 감상 기간이었을 것이다. 관객이자 행인이 자 주민이었던 그들은, 작가가 단순히 시각적인 이미지만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생명력 있는 공간으로 탈바 꿈시키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다. 작가는 고대와 현대 미술작품이 망라된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2009년 한인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곽선경: 280 시간을 감 싸안기(Sun.K Kwak: Enfolding 280 Hours)> 라는 제목 그대로 작가가 온 힘을 다해 280시간을 쏟아부은, 거의 5킬로미터에 이르며 뮤지엄 5 층 전체를 '휘감은' 대작이다. 그녀의 작품을 대하는 순간 관객들은 그 엄청난 스케일과 넘치는 기운에 탄성을 질렀다. 광주에서 도쿄에서 올 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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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folding 280 Hours, masking tape_Brooklyn Museum, Brooklyn, NY, 2009(view from the outer space)

공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작을 작업하면서 난관에 부딪친 적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2012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서 한 'Phantoms of Asia: Contemporary Awakens the Past'가 대표적이죠. 벽에서 드

로잉이 밖으로 휘어져 튀어나오는, 공간 드로잉의 즉흥성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시간적 제한 때문에 거의

한계에 도전했던 작업이었는데 결국은 기적과 같이 실마리를 풀어 시 각화될 수 있었어요. 미술관의 스테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일처럼 도와줘서 가능했고 모두 기뻐했던 잊지 못할 전시죠. 관객이 보

는 결과물만으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과정상의 이야기가 제 작품의 진 정한 의미입니다. 사실 거의 모든 제 공간드로잉이 그런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최근 몇 년간 스스로 평가하기에 의미가 깊었던 전시를 소개해주세요.

우선 작년에 스토니 브룩 대학 찰스 왕 센터의 장기 설치작품인 'Space

Drawing' 이 기억납니다. 마치 가수가 힘을 빼고 노래 부르듯이 자연 스럽게 작업한 공간 드로잉이었어요. 2015년 타이완 국립예술박물관

에서 한 'Artist making Movement' 도 기억이 남아요. 제가 그때 한

Working on Process Dual Force with masking tape at New Art Gallery, Walsal, UK, 2010

우는 큰 작업 (125 Rolls of Winding, 48 Layers of Piling, 72 Yards of

Black Masking Tape Drawing, masking tape, wooden panels_Brain Factory, Seoul, Korea, 2005

국 갤러리 스케이프 전시도 준비 중이었거든요. 갤러리 3층을 다 메

Looping)을 앞두고 스튜디오에서 밤낮으로 몰두하고 있었어요. 그래 서 처음으로 컴퓨터로만 소통하여 이뤄 낸 대형 작업이에요. 개인전 작 업 보내고, 그날 밤 타이완으로 가 오픈닝 참석, 다음날 아티스트 토크

쇼에 제 차례만 마치고 바로 한국 개인전을 위해 바쁘게 날아갔던 기억 이 새롭네요.

곽선경 작가는 내년 초 캐나다(CUAG: Carleton University Art Gallery) 전시를 준비 중이다. 캐나다 대학 중 가장 많은 콜렉션을 보 유하고 있는 뮤지엄급 갤러리라고 한다. 여전히 전 세계 뮤지엄과 갤러리의 초청이 쇄도 하는 바쁜 스케줄이다. 마지막으로 ‘여가엔 뭘 하느냐?’는 질문을 다소 조심스럽게 했다. 참고로 작가는 마르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스타일이다. 이미 만났던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할 때 조심스러웠다. 기자가 허튼 질문 을 하면 “그게 왜 궁금한데요?”라고 바로 지적을 당할 것 같은. 인터 뷰를 마치며 기자가 작가에 대해 받은 인상을 솔직히 전하자 그녀는 크게 웃었다. “제 인상이 그래요? 아닌데. 저 얼마나 성격 좋고 소탈한데요.” 마치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듯이 웃는 작가에게 기자는 좀 더 친 근함을 느끼게 되었다. 61


Emily Faith

ART&CULTURE

A Young Entrepreneur & The Founder of EF Collection 글 Sarah Chung 정리 Katie Lee 영문감수 Taylor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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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마운트(Paramount) 영화사가 1961년에 제작한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은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과 함께 당대 최고 의 여배우인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대표작이다. 이 영화로 오드 리 헵번이 입었던 까만 벨벳 드레스와 팔꿈치 위로 올라오는 긴 하얀 장갑, 오 버 사이즈의 검은 선글라스는 헵번스타일이라 칭해졌고, 그녀가 부른 ‘문리버 (Moon River)’는 수없이 리메이크되며 로맨틱 송의 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무 엇보다도 이 영화를 상징하는 최고의 명장면은 오드리 헵번이 뉴욕 티파니 보 석상의 창문을 들여다보며 커피를 마시며 빵을 먹는 장면이다. 이 장면 하나로 뉴욕 5번가에 있는 보석상 티파니는 세계적인 상점이 되었다. 티파니가 보석상의 고유명사와 같다면, 보석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는 뭐니 뭐 니 해도 다이아몬드가 아닐까. 승리와 성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다이아몬 드는 그래서 예부터 왕관의 중심 보석으로 사용되었고, 또 부와 행복을 상징한 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결혼 예물로 빠지지 않고 쓰인다. 얼마나 사람들이 다이 아몬드를 좋아하길래 ‘반짝반짝 작은 별’의 영어 동요 가사엔 심지어 별마저 도 다이아몬드 같다(Like a diamond in the sky)고 했을까. 그런데 문제는 언제 나 가격. 다이아몬드로 된 쥬얼리 하나 사고는 깃털처럼 가벼워진 은행잔고에 한숨 쉴 필요가 없는 현대 여성을 위한 그런 쥬얼리는 왜 없을까? 2010년, LA 에 기반을 둔 EF Collection의 에밀리 페이스(Emily Faith)는 스스로 이런 질문 을 던지며 쥬얼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7년 뒤 그녀의 쥬얼리 컬렉션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앞다투어 찾는 브랜드가 되었다. 2017 Coterie가 열린 뉴욕 맨해튼에 있는 Jacob Javits Center에서 에밀리 페이스를 만나 보았다.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의 주연 배우였던 엠마 스톤(Emma Stone), 제시카 알바 (Jessica Alba), 케이티 홈즈(Katie Holmes),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테일러 스위 프트(Taylor Swift),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의 공통점은? 모두 Emily Faith의 EF Collection의 열렬한 팬이다! 쥬얼리는 크게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 고가의 보석을 금과 백금과 함께 만 든 파인 쥬얼리(fine jewelry)와 큐빅 등 저렴한 원석으로 만든 코스튬 쥬얼리(costume jewelry)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쥬얼리 시장은 거의 집 한 채 팔아야 살 수 있는 고가 의 파인 쥬얼리 시장과 디자인과 개성을 강조한 저렴한 코스튬 쥬얼리 시장의 극과 극 으로 양분된다. 이런 양분화된 쥬얼리 시장의 구조에서 에밀리는 ‘내가 직접 살 수 있 는 저렴한 다이아몬드 쥬얼리’라는 비즈니스 컨셉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63


주곤 했어요. 또 끊임없이 학교나 자선단체에서 하는 이벤트를 찾아가

저를 알리기도 하고 제 브랜드 이름을 걸고 하는 이벤트도 부지런히 열 었죠. 비즈니스를 시작한지 4년이 지날 무렵에 쥬얼리 매장을 가지고 있던 친구 한 명이 제 쥬얼리 몇 점을 취급하기 시작했고, 고객의 반응

이 좋았는지 곧 제 작품 전체를 구입해 팔기 시작했죠. 그러자 입소문

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처음엔 은과 저렴한 원석으로 만든 빈티지 스타일의 코스튬 쥬얼리도 같이 만들었는데 사람들을 만나보면 만나

볼수록 파인 쥬얼리가 저한테는 답인듯 느껴졌어요. 비싸지 않고, 누구

나 살 수 있고, 누구나 착용할 수 있는 스타일리쉬한 그런 다이아몬드 로 만든 파인 쥬얼리, 한 번 착용하고는 서랍 속에 박히는 그런 쥬얼리

가 아니라 매일매일 착용할 수 있는 파인 쥬얼리, 누가 사주지 않아도

스스로 ‘나’를 위해서 구입할 수 있는 그런 파인 쥬얼리를 해보고 싶어

졌어요. 프린스 차밍(Prince Charming)이 나타나 다이아몬드를 손가 락에 끼워주고 목에 걸어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잖아요.” 할리우드의 심장 속으로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때는 제 이름을 따서 Emily Faith Collection이 라고 했어요. 그 후 PR 에이전시를 고용했는데 브랜드 네임을 조금 신

비스럽게 만들자고 제의를 해서 EF Collection이 되었죠. PR 에이전시 는 저의 모든 작품을 할리우드 스타일리스트들에게 보여 주었고, 스타 일리스트들은 다시 그들의 고객인 유명 배우들에게 제 작품을 보여 주 었죠. 어떤 장소나 모임에도 어울린다는 점이 어필했는지 많은 유명 배

우들이 EF Collection의 쥬얼리를 협찬받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정말 말할 수 없이 가슴 벅찬 것은 그 배우들이 나중엔 오히려 제 쥬얼리를

직접 돈을 내고 사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특히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는 제 작품을 좋아해 주고 사준 첫 번째 배우여서 정말 잊지 못합니다.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제시카 알바(Jessica Alba), 로렌 콘래드(Lauren Conrad) 등 많은 배우가 제 쥬얼리를 좋아하고 소장하고 있지요.”

뚜렷한 나만의 색깔을 가질거에요

“제가 만드는 쥬얼리는 모든 여성을 위한 겁니다. 용돈을 모아 처음으 로 가져보는 조그만 다이아몬드 귀걸이에 설레는 소녀부터 자신의 커 비즈니스의 시작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던 2005년, 허

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하는 바람에 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전전하다 결국 LA에 있는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로 트랜스퍼

를 하고는 그곳에서 졸업했어요.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한 여성 컨템퍼 러리 의류 브랜드에 들어가서 슬립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같은 회사의

세일즈 부서에서도 일을 하며 짧은 기간 동안 의류 사업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죠. 미술사를 공부했지만 아트 갤러리에

서 일하는 것은 저와 맞지 않았고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다 창의적으로 쥬얼리나 패션 분야에 녹여내고 싶었어요. 특히 쥬얼리요. 그래서 사업

가이셨던 아버지의 조언을 들으며 시장 분석도 하고, 시장에서 나만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며 비즈니스 플 랜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파인 쥬얼리로 눈을 돌리다

“쥬얼리 비지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주말마다 미장원에 서 일을 했는데 그때마다 제 쥬얼리를 가지고 나가서 손님들에게 보여 64

리어를 열심히 쌓아가는 직장 여성들, 그리고 레드 카펫을 걷는 배우들 까지요. 수없이 많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화려하고 비싼 쥬얼리를 만들

기는 쉬워요. 하지만 그런 쥬얼리는 매일 착용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가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많은 사람이 매일 착용하고 가격도 비 싸지 않은 그런 심플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된 클래식한 쥬 얼리. 바로 제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유행을 좇는데 급급하거나 지나치

게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만족하게 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저의 열정이 녹아든 쥬얼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정말이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동과 영감을 줍니다. 그래서 전 이 일을 사랑해요.”

에밀리라는 이름 속에는 열정을 가지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는 의미 가 있다고 한다. 요새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에밀리의 쥬얼리.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디자인에 열정을 녹 여내는 그녀를 보며 과연 에밀리라는 이름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 을까 궁금해진다. 그녀의 눈 속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 드가 반짝이고 있다.


Emily Faith

A Young Entrepreneur & The Founder of EF Collection Breakfast at Tiffany’s starring Audrey Hepburn is a very well-known, classical American romantic comedy film released in 1961 by Paramount Pictures. Hepburn’s role as Holly Golightly is generally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recognized characters of her time – the actress also sang the film’s theme song “Moon River”, which has been sung by many other artists since then. Needless to say, however, her most iconic look was created in this film when she looked through the Tiffany storefront’s windows, while famously wearing an elegant black Givenchy dress, a multi-strand pearly necklace, and oversized sunglasses. This film simply made Tiffany’s even more famous as a luxury jewelry retailer internationally. Every woman with interest in fashion must have always wondered, is purchasing expensive fine jewelry such an impractical and overwhelming idea to us, that we can imagine doing maybe only once in our lifetime? And maybe the closest we can get to fine jewelry is only by mimicking what Hepburn’s character has famously done in the movie, where she was romantically admiring the beautiful necklace only by looking through the window? Is there a way to buy diamond jewelry without breaking the savings account? In 2010, Emily Faith established her own jewelry brand asking these questions herself. She then started to put these questions into ideas and eventually established her own brand. 7 years later her collection has been one of the most sought after brands by celebrities in Hollywood. Emily has shared her at Jacob Javits Center in New York during 2017 Coterie. successful story with 65


Emma Stone, Katie Holmes, Angelina Jolie, Reese Witherspoon, Naomi Watts, Rachel McAdams, and Jennifer Lawrence: what do these A-list actresses have in common? All of them are big fans of Emily Faith’s EF Collection! Generally, the jewelry market is bisected into fine jewelry and costume jewelry (or fashion jewelry) depending on the quality of the metal used and the authenticity of the stones set into the pieces. A quick spot check can be done in a dummy proof way – if the jewelry was constructed of gold, silver, platinum with diamond, ruby, or sapphire, it will be categorized as a fine jewelry. In contrast, if a jewelry is constructed with plated metal with relatively cheap gemstones or a natural stone, it would be considered as a costume jewelry. By default, due to many burdens, a lot of people are conditioned to be satisfied with costume jewelry unless they decide to make a costly investment by taking out loans to own a fine jewelry. In order to find an opportunity to take advantage of this bipolarized jewelry market environment, Emily has found her own niche – creating affordable jewelry made with real diamond! One Step At A Time

Originally, I started studying Art History in New Orleans. But

everything has gone awry when Hurricane Katrina hit the area so badly in 2005, and I was suddenly displaced. About a year after the incident, I transferred to 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in Los Angeles and finished the school with a degree

in B.A. in Art History. Upon graduation, I got an offer to work at a 66

women’s contemporary brand, where I learned the full spectrum

of the women’s clothing business. Even though my major was Art History, I knew that I was always into fashion and accessories, and

that working at an art gallery was not for me. I wanted to pursue a career that allowed me to combine my love for art and utilizing

my creativity. And I’ve finally found a way to meld all of these interests into one, so I decided to start a business and worked

hard to make a smart business plan. My dad was a businessman

who has mentored me throughout the entire process. I tried not to rush; rather, I took one small step at a time, trying to focus on finding my own niche and utilizing my competitive advantage in this market.

Affordable Fine Jewelry

Before launching my own jewelry business, I worked in a hair salon few times a week. For every Thursdays thru Saturdays

that I went to the hair salon, I brought my jewelry with me to present it to the customers at the salon in order to receive feedback and understand how the people perceived my pieces. I also aggressively pushed myself out of the comfort zone

by independently creating various events like charities and school events in big cities, in order to get my name out there. After 4 years of self-promotions, one of my friends who had a

custom jewelry showroom, bought a couple of my pieces at the

wholesale. Even though I knew that my collection wasn't quite the right fit to be placed as a fine jewelry in her showroom, I


happily said, “Sure, no problem.” Then immediately afterwards,

wear pieces with delicateness of diamonds with an approachable

the demand started going up. My jewelry experienced a purely

especially, young ambitious artists who have the potential to shift

she ended up buying my whole entire collection in bulk, and organic growth – people saw it, loved it and talked about it. I

have to say that I've dabbled in silver with glittering rocks called "druzy" among other different stones at the beginning. However,

the more I've interacted with customers, the stronger I felt that the key item missing in this marketplace was an affordable,

a more “approachable” fine jewelry. I've found a way to offer an alternative method that enables people to still enjoy that

chic aesthetic without being limited by financial burdens or compromising quality. It's a fine jewelry that is actually being

worn everyday to accessorize the complete look and not just sitting in the drawer collecting dust. Into The Heart of Hollywood

My company name was originally Emily Faith Collection. When

I hired my PR agency, their first suggestion was to shorten the name in order to exude a bit of obscurity and leave people

feeling intrigued by the mystery. Their next step was carrying the full sample line, where stylists pulled various sets of jewelry

from my collection for their celebrity clients. The celebrities then

chose what they'd specifically like to wear, by coordinating with

their stylists. The one big and fascinating thing for me is that

price point. I know that there are a lot of jewelers out there, paradigms. My main focus has revolved around vigorously trying to differentiate myself and my collection by prioritizing on staying

true to what I really love. I tell myself not to get sidetracked with latest trends and end up diluting my collection by attempting to find a compromise to satisfy every taste. The whole world

around me is an inspiration. Above all, however, women who are motivated and hardworking inspire me most. The newest piece

of my collection is the diamond ruby bullseye necklace, and this piece represents the actual bull’s eye. I particularly designed this

in an effort to dedicate to all women who are focused, centered,

and really determined to keep their eye on the prize. This is the way of how I praise them and recognize their contributions to our society.

Emily is a Latin name for girls, which carries a meaning of “striving” and “eager”. Emily Faith, the hot rising jeweler in Hollywood, is full of love for her work and still continues to be passionate about her designs. Emily truly lives up to her name, who is always striving for perfection and is eager to succeed by staying focused with a twinkle like diamonds in her eyes.

celebrities loved my jewelry so much that they bought it. It [my

work] paid for itself! My pieces are easy to wear for a variety

of events, not being limited to one specific type of occasion. I think this is why stylists and celebrities have gravitated towards my collection. One of my very first supporters was Jennifer Lawrence. She was just on the path to becoming one of the biggest stars in Hollywood, and it was very exciting to see the attention my pieces got when Jennifer Lawrence would wear them. Personally, my biggest thrill comes from not when celebrities wear my pieces, but when they actually decide to purchase and keep those – it is truly rewarding that the artwork that I’ve put much dedication and passion into, are being mutually

adored by these celebrities. From Jennifer Lawrence

to Angelina Jolie, Jessica Alba, Lauren Conrad, and beyond, they all own pieces of my collection. Bull’s Eye – Eyes on the Prize

A lot of factors that come into play when it comes to

making jewelry. My collection is for casual, everyday girl-

next-door look all the way to A-list celebrities walking the

red carpet. It is easy to create these lavish, expensive, beautiful

pieces with lots of diamonds, although the main caveat is that these are too burdensome to be worn as part of an ordinary, everyday look. From the beginning, I have been clear about my vision – creating simple, classic and easy-to-

Diamond Ruby Bullseye Necklace 67


ART&CULTURE

뉴욕에서 춤꾼으로 살게 된 인연(Karma)

무대에서 표현하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용가 이송희 글 Won Young Park 사진 스튜디오 엠, 김도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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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미국 땅에 살고 있지만, 한인 동포가 많은 뉴욕, 뉴저지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은 '우리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분명 행운이다. 각종 퍼레이드나 정기 공연 을 통해 혹은 인근의 다인종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 전통 음악과 무용을 접할 기회는 늘 열려있다. 현지인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어린 2세들에게 자신들의 뿌리를 알려 주는 활동을 하는 이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실제로 뉴욕 지역에서 꾸준히 전 통 예술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이들의 활발한 활동에 새삼 박수를 보내게 된다. 동포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소개되는 단체나 개인의 공연 소식 중 귀에 익숙한 한국 무용가 이송희도 그중 한 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뉴욕에서 지 금의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배경까지 알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다. 에스카사가 이송희씨를 만나 질문한 내용도 그런 소소한 궁금증인 개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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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씨가 사는 퀸즈 서니사이드의 한 커피샵에 먼저 도착해 그녀를

때문에 우리 신분은 공무원 별정직이었고 2년마다 심사를 통해 계속

정도로 '핏'한 체격이었다. 역시 무용을 하는 분이라 다르다고 감탄했

엔 계속 심사를 거쳐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어요. 정확하게 19년을 부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바지 차림의 그녀는 30대로도 보일

는데, 가깝게 마주 앉은 그녀의 피부 역시 실제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공연장에서 무대 의상과 분장을 한 모습만 봤

무용단에서 남아 활동하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단원으로 이후 산 시립 무용단에 있었네요.

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예의 상이 아닌 진심으로 몸매와 피부에

이송희씨는 무용단 수석으로 ‘히로시마 그날 이후’, ‘아비를 기다리며’,

다. “오래전부터 아침엔 사과 정도로 가볍게 먹고 나이 먹을수록 체력

고전 무용과 현대 무용 창작극을 함께 한 경력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대한 덕담을 건네니까 “아이를 안 낳봐서 그런가?”라고 웃으며 대꾸한 관리를 더 하게 돼요. 무대에 계속 오르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죠.”

무조건 무용이 좋아서 부산여대 체육학과 소속으로 현대무용과 고전 무용을 배우다.

‘찔레꽃’등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활동했다. 무용단의 프로그램 중

학교와 직장까지 만 40세가 되도록 부산을 벗어나지 않았던 그녀가 뉴 욕에 오게 된 계기는 새로운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던 시점이었기 때문 이다.

특별한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중2 때 그냥 무용이 좋아서 시작했죠. 교

40대에 뉴욕 연수를 와서 앨빈 앨리(Alvin Alley)에게서 무용을 배우다

못했어요. 그러다가 어머님 친구분이 대학에서 무용을 가르치셨는데

매년 단원들을 해외 연수를 시켜주는 기회가 있었는데 무용단원은 해

직에 있던 어머니가 원래 저에게 피아노를 시켰는데 썩 흥미를 느끼지 그분에게 배우게 되었던 거에요. 해보니까 피아노보다는 훨씬 재밌고 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용 학원을 꾸준히 다녔고 부산여대

에 입학했어요. 당시엔 학교에 무용학과는 없고 체육학과 소속으로 현 대무용과 고전무용을 각각 전공, 부전공으로 마쳤습니다.

부산 시립 무용단에서 심사를 거쳐 수석 무용수로 19년 동안 활동

부산 시립 무용단원으로 시작했어요. 당시엔 서울 국립, 서울 시립 그 리고 부산 시립 3개의 무용 단체밖에는 없었어요. 부산시 소속이었기 70

같은 부산시 소속 예술 단체 중 교향악단, 어린이 합창단, 국악단 등은 당이 되지 않았어요. 고전무용단이 무슨 해외 연수가 필요한가? 인간 문화재에게 배우는 것이 낫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한 단체에서 20년을 몸담았고, 무용수로서는 노년이라 할 수 있는 40대에 들어서면서 나 자신은 물론 무용단에 새로운 기운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거의 3년을

단장님을 졸랐어요. 연수를 보내달라고. 결국, 1997년 유급 1년, 무급

1년의 조건으로 뉴욕에 2년간 연수 허락이 났고 앨빈 앨리(Alvin Alley) 에게서 무용을 배울 기회가 생긴 겁니다.


운명을 바꿔준 허드슨 길드 극장에서의 공연 그리고 뉴욕타임즈 리뷰 기사

앨빈 앨리에게서 열심히 춤을 배우면서 바쁘게 1년이 지나갔어요. 연 수를 온 것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보여줘야 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한 동신 선생님이 작은 무대라도 마련하고 언론사에 연락해서 미디어 노

출을 해서 성과물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며 도와줬죠. 그래서 올

린 무대가 97년 12월 허드슨 길드 극장에서의 공연이었어요. 창작 현 대무용 카르마와 승무, 살풀이춤이었는데 너무나 뜻밖에도 그 공연의

리뷰가 뉴욕타임스 아트 섹션에 실렸어요. 사진도 크게 곁들여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죠.

뉴욕타임즈의 권위있는 무용평론가 잭 앤더슨 (Jack Anderson)의 리 뷰는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의 댄서 이송희의 무대는 현재와 과거의 안무가 공존하며 영적 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녀는 ‘카르마’에서 능숙한 현대적 안무를 보 여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한국 전통 춤사위를 보여준 2개의 솔로 ‘승무’와 ‘한풀이 춤’이었다.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가득 찬 ‘승무’는 금욕주위와 신비주의의 느낌을 전달했고 얼굴과 손을 가린 의상은 세속을 벗어나 명상을 찾는 이의 모습이었다. 세심하게 계 산된 움직임의 속도는 삶의 영속적인 리듬감을 의미했고 긴 소매에 서 빠져나온 손이 역동적으로 북을 두드릴 때 그녀는 기쁨으로 충만 한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나타내는 듯했다. 이송희의 현대 무용 솔로 ‘카르마’는 약간은 과도한 신비함을 보여줬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영적인 고통을 겪는 듯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때때로 불길한 분위기 를 가진 다른 댄서의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마지막의 높은 점 프를 통해 모든 고난이 극복되었음을 표현했다. 1년간의 연수 기간 막바지에 귀국과 체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송희

씨에게 뉴욕타임스 리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뉴욕에 남아 무용

을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 외에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활동

할 수 있는 필요조건인 비자를 해결해 줬기 때문이다. 그녀가 예술인

비자 전문 이민 변호사를 찾아갔을 때 그 변호사는 수북이 준비해 간 다른 모든 서류를 제쳐놓고 “이 기사 하나면 됩니다”라고 뉴욕타임스

카피본 하나만 챙겼을 정도였다. 변호사의 장담대로 그녀는 곧 비자를

받았고 불과 3년 뒤에 영주권까지 얻었다. 9.11 테러 직전이었기 때문 에 가능한 행운이기도 했다.

13년 동안 유지된 청사초롱 무용단

누구나 마찬가지겠죠. 저에게는 주위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박윤

숙, 박수연 선배 등 먼저 뉴욕에 와서 전통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분들이 강습과 무대 기회를 주셨어요. 강습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열심 히 해 나갔고 특히 뉴저지 지역 어머님들의 요청으로 아이들을 가르

치며 시작되었던 청사초롱 무용단은 13년 동안 유지하기도 했죠. 한

편으로는 내 작품을 준비하면서 외부 지원을 신청했어요. 2013년 카

르마 2, 카르마 3으로 퀸즈 예술 위원회에서 그랜트를 받기도 했죠. 즉 외부 공연, 강의 등은 전통 무용을 주로 하면서 현대 창작무용 개 발도 함께 해왔던 셈입니다.

내 삶의 터전인 뉴욕과의 인연을 멈추지 않을 나의 춤으로 표현하다

적어도 앞으로 한 10년은 끄떡없이 춤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제 춤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저의 대표적인 연작 시리즈 카

르마를 계속 무대에 올릴 것이고, 어린 세대에게 전통 무용을 가르치 는 것도 사명감으로 계속해나갈 것이고요. 무엇보다 기회만 있으면, 불러만 주면 어디든 가서 제 무용을 보여드려야죠. 우리는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는 운명이쟎아요. 그리고 뉴욕이라는 곳이 저 와 인연이 닿은 것이죠. 제 춤의 무대가 되었으니까요.

이송희씨는 현재 한국 공연 예술센타(대표 박수연) 단원으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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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서로 다른 개성과 쟝르의 작품이 한편의 모자이크처럼

뉴욕한인미술협회전 ‘모자이크 3’ 24년의 전통을 가진 뉴욕 한인 미술회의 그룹 전 ‘모자이크 3’이 지난 10월 14일부터 21일까 지 뉴욕한인회관 내 MOKAH 갤러리에서 열 렸다. 이번 회원전에는 동양화, 서양화, 민화, 서예, 수채화, 디자인, 공예, 사진 등 다양한 장 르에 걸쳐, 초대 작가와 회원 32명 작가의 작품 들이 선보였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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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사진 제공 뉴욕 한인 미술협회


*참여작가

김선숙. 주옥근. 장수영. 일봉. 하이디 백. 조영

칠. 민경훈. 케이트 오 Trabulsi. 하이야트 김. 이 성민. 조희정. 연동인. 자스민 김. 최혜경. 황화

수. 민현주. 원혜지. 권효빈. 문희숙. 김행자. 이

귀덕. Hamiderza Ghahari. 김영오. 신 종. 조진 환. 윤미경. 미카(미자) 유. 민경태. 백영희. 정인 옥. 세리나 여.

윤미경 회장은 “선배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미술인들로서 자기만의 독특한 영혼이 깃

든 창작 활동을 해 나가면서 상호 간의 화합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 은 “타민족과도 예술을 통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고, 단지 뉴욕 지역뿐 아니고 타주의 작가 들에게도 기회를 부여하고 초대해서 그룹전을 확대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93년 창립된 미술협회는 20대 학생부터 70대 중견까지 50여 명이 가입되어 있다. 협회원

들은 전시 활동 외에도 발달 장애 청소년 미술대회 협찬 행사, 꿈나무 아트 콘테스트 등 2 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룹전 오프닝 리셉션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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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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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심리 이야기

감시자들 Q1: 영화의 줄거리는? 한국 영화계에서 빼놓으면 서러울 만한 대표적인 장르가 범죄 영화입니다. 황 반장 (설경구 분)이 이끄는 경찰 내 특수조직 감 시반에 탁월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소유자 하윤주(한효주 분)가 합류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감시반의 철저한 포위망을 무력하 게 만든 무장강도 사건이 단 3분 만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벌어 집니다. 이 모든 범죄를 계획하고 주도하는 조직의 리더, 제임스 (정우성 분), 그에 맞서 더 이상의 범죄를 막기 위해 놈의 실체를 추적하는 황 반장과 하윤주의 지능적인 게임이 영화 속에 펼쳐 집니다. Q2: 주인공 하윤주의 기억력 감시자들은 범죄자의 동태를 감시하고 쫓는 것이 주 임무입니 다. 주인공 하윤주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 다. 입사 면접 자리에서 황 반장은 하윤주의 능력을 시험해 봅니 다. 황 반장을 따라 다니면서 감시하라는 특명을 부여받은 하윤 주는 그와 주변 사람들, 지나치는 환경의 특성을 정확히 기억해 냅니다. 단지, 황 반장이 지하철에서 떨어뜨린 신문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황 반장이 어떤 여성과 부딪히면서 떨어뜨린 신문을 보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동태를 살피는 데 집중하게 되면서 기억 속에 저장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관찰력 과 기억력을 가진 하윤주일지라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 습니다. Q3: 사람의 기억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우리 기억은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감각기억(Sensory Memory), 단기기억 (Short-term Memory), 장기기억 (Long-Term Memory)입니다. 감각기억은 우리의 오감을 주로 이용하는데 0.2초~0.5초 사이에 인식 속에서 사라집니다. 오늘 아침 직장 동료가 사무실에 들어 올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이 날까요? 의자에 먼저 앉았을까 요? 아니면 창문을 먼저 열었나요? 우리의 인식 속에 분명히 스 치고 지나갔을 장면이지만 기억 속에 저장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람이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감각 기억의 종류 는 열두 가지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의도적인 노력 없이는 금 세 사라져 버립니다. 단기기억은 스케치북 또는 기억의 포스트잇이라고 합니다. 장기 기억으로 옮겨가기 전에 잠시 머릿속에 한 10~15초 간 머무릅니

다. 단기기억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건 망증이 있어서 자신에 살고 있던 1층 아파트에서 내려가다가 넘 어졌는데, 일어나면서 자기가 계단을 올라가다가 넘어졌는지 아 니면 내려가다가 넘어졌는지 기억을 못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분은 통화하던 전화기를 물을 꺼내다가 냉장고에 넣은 적도 있 었다고 합니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깜빡깜빡하는 분들이 단기기 억에 문제가 있습니다. 단기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큰소리고 읽거나, 연관하거나, 반복하거나, 동기를 부여하면 훨 씬 더 의식 속에 오래 머무를 수가 있습니다. 장기기억은 방금 일어난 일들이 몇 분 이상 머리 속에 간직되어 있는 기억을 말합니다. 짧게는 며칠에서부터 몇 년에 이르기까 지 뇌 속에 장기간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새롭게 접하게 되는 정보나 경험들과 합성되어 새로운 형태의 기억으로 진화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행복한 기억보다는 충격적인 기억, 좋지 않은 기억을 더 많이 간직합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이나 아내가 과거에 못 해준 것만 기억하지요. 그리고 충격을 받은 사 건, 억울한 사건은 절대로 잊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동기와도 관 련이 있는 생존기제의 작용입니다. 좋지 않은 사건이나 위험한 일을 기억하고 있어야 위험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자폐증이 있는 Stephen Wiltshire라는 사람은 Staedtler 펜을 이 용해서 맨해튼을 완벽하게 그려냅니다. 그의 기억 속에는 1,017피 트에 달하는 고층빌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습니다. 한 분야에 타고난 재능과 집착적인 동기가 그 원인일 수 있겠지요.

결국, 우리의 뇌 속에 간직된 기억은 선택, 집중, 그리고 노력의 결 과물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진화론적 생존 동기의 발동으로 원하지 않던 기억이 저장되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어떤 기억을 저 장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잠시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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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생활속 음악이야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50% 싸게 보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감상, Broadway Musical 관람은 현지인보다 오히려 어쩌 다 뉴욕을 찾는 관광객이 더 즐긴다는 얘기가 있다. 뉴욕 가까이 살아도 삶을 즐 길 여유조차 없으신가요? 시간 여유가 있더라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시죠? 평소 보고 싶던 뮤지컬 관람을 꼭 보겠다는 결심은 섰지만 비싼 티켓 값이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나요? 2017년이 가기 전 좋아하는 뮤지컬을 싸게 볼 수 있는 티켓 정보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글 정선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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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Fee가 붙지만 그래도 좋은 가격에 원하는 표를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TKTS

타임스퀘어 계단 아래편에 있는 티켓 판매 창구이다. 공연 당일까지 팔리지 않았거나 예약을 취소한 표를

최대 50%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싼 티켓을 살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어떤 티켓이 나와있는지 모 르고 외곽에 사는 분들은 오전부터 맨해튼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지만, 하루 를 맨해튼에서 보내고 싶은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다. www.tdf.org

Broadway Week

TKTS 보다 수수료가 더 붙지만 가장 저렴하게 티켓을 사는 방법이다. 50% 할인된 가격으로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Broadway Week는 비수기인 1월과 9월에 있 다. 이 행사는 인기있는 라이언 킹, 위키드도 참여하고

있어 미리 일정을 맞추어 일찍 예매하면 좋은 좌석을 확보 할 수 있고 티켓당 $20씩 더 지급하면 좌석을 업 그레이드 할 수 있다. www.nycgo.com Group Ticket

마음이 맞는 10명 이상의 분들과 목요일 오전 Group Ticket을 사면 최대 45%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공휴

일 오전 공연은 할인이 되지 않거나 일반 티켓보다도 비싸게 파는 경우가 있으니 가격 비교는 필수이다. 2층 뒷좌석 고정할인

Orchestra 석이 좋은 좌석임에는 분명하지만, 극장에 따라 2층 좌석에 가려진 뒤쪽은 2층의 저렴한 뒷좌석 보다 좋지 않은 곳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비싼 티켓

은 반드시 그 값을 한다는 것, 중간 가격의 좌석보다는 러시 티켓(Rush Tickets)

싼 좌석이 기대 이상의 기쁨을 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 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 즉 선착순 할인 티켓이

스탠딩 티켓(Standing Tickets)

게 준다. 만일 학생 신분이라면 역시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준다. 시

서 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로터리가 끝난 다음에 남은 티켓으로 팔거

다. 극장 매표소가 열자마자 맨 먼저 온 사람부터 선착순으로 표를 사 카고나 레미제라블 같은 인기 공연도 30불대에 볼 수 있다. 로터리 티켓(Lottery Tickets)

공연 시작 두 시간 반 전에 극장 앞에서 이름을 써놓고 기다리면 추첨

을 통해 복권처럼 당첨 사실을 알려준다. Lottery Ticket은 이제 온라인 으로 신청이 가능해졌다. 'Broadway Ticket lottery'라고 인터넷에 검

서서 보는 티켓이다. 작품에 따라 3시간 가까이 되는 공연을 계속 서 나 좌석이 매진 되었을 경우 판매하는데 시카고나 오페라의 유령을 20 불대에 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석 뒤에서 서서 보는 Standing Room

Only 티켓은 전 좌석이 매진되었을 때만 판매한다. 3시간 정도 되는 뮤

지컬을 서서 보려면 대단한 체력이 필요함으로 즐겨야 할 뮤지컬이 고 문의 시간이 될 수도 있어 솔직히 권하고 싶지는 않다.

색하면 각 뮤지컬 사이트를 안내해준다. 단 Lottery Ticket은 2장만 가 능하다.

투데이 틱스 앱(Today Tix)

앱을 이용한 티켓 구매방식이다. 앱을 다운받고 날짜별, 공연 별로 할 인 티켓을 살펴본 뒤에 원하는 작품을 골라서 결제하면 된다. 몇 가지

글 정선분_바이올리니스트

매네스(Mannes) 음대 전문 연주자 과정 졸업 NY Classical Youth Orchestra 디렉터 클로스터 Sun Violin Studio 원장 77


LIF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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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소중해지는 보석 같은 공간들

뉴욕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최고의 서점 뉴욕엔 본래 서점이 많았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에 걸 맞는 반즈 앤 노블이나 보더스 같은 대형 서점 체인 외에 도 문화와 예술의 도시답게 특색 있는 전문 서점이 각 지역 에 즐비했었다. 서점의 전성기였던 60년대 그리니치 빌리 지의 경우엔 좁은 몇 블럭을 따라 10여 곳의 서점이 밀집 되어 있어서 ‘서점 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이제 사정 은 많이 달라졌다. 아마존이 등장하고 스마트 폰이 대중화 되자 골목 작은 서점은 물론 대형 서점마저 없어지는 추세 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하고 있다. 수십 년간 사랑을 받아 오던 유서 깊은 서점이 사라질 때마다 주민들의 아쉬움은 무척이나 깊었다. 그런데도 뉴욕의 위상에 맞게 책과 서점 을 사랑하는 독자가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 한 서점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꼭 책을 사지 않더라도, 문을 열고 들 어가 책 내음과 분위기만 음미해도 힐링이 될 것 같은 뉴욕 시내의 매력 넘치는 서점들을 소개한다. 글

편집부 79


* 리졸리 서점(Rizzoli)

* 스푼빌 슈가타운 북 샵(Spoonbill & Sugartown Bookshop)

서적이 전문이고 패션, 인테리어 디자인, 건축, 아트 등을 다룬다. 리졸

건축, 디자인 서적이 주종을 이루고 희귀본도 다수 갖추었다. 우연

1964년 오픈했다. 각종 주제의 책을 다루지만, 특히 일러스트레이션 리 서점은 책과 함께 서점의 분위기를 찾는 이들에게 “아마도 뉴욕에 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넓은 통유리를 통 해 보이는 외관에서부터 마치 갤러리를 찾는 느낌을 주는 서점이며, 특

히 야간에 환하게 불을 밝혀 놓은 내부를 들여다보면 저절로 안으로 들 어가고 싶은 마음을 주는 곳이다. 50년 가까이 57가 미드타운에 있다 가 최근 힙스터 지역으로 떠오른 노매드(NoMad)로 이전했다. 주소: 1133 Broadway(between 25th and 26th Street) * 쓰리 라이브 앤 컴퍼니(Three Live & Company)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1999년 문을 열었다. 신간 및 중고 예술,

히 윌리엄스버그를 여행하다가 이 서점을 발견한 블로거들은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했다.”, “서점에 들어가는 순간 서점과 사랑에 빠질

줄 몰랐다”라며 기대하지 않았던 서점의 분위기에 환성을 지른다. 서 점의 웹사이트 역시 필연적인 사랑을 그린 로맨틱 영화 ‘세렌디피티

(Serendipity)’를 연상시키는 “여러분의 마음과 눈이 열려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bookshop serendipity’ 현상을 경험할 것!” 이라고 자신 있게 홍보하고 있다. 주소: 218 Bedford Ave, Brooklyn, NY 11249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서점 중 하나. 거기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믿

*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Housing Works Book Store)

서점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직원들은 자신들이 최근에 읽은 것을 말해

평이 난 커피숍으로 더 유명한 서점이다. 여행객들의 서점 기행 블로거

을 수 없을 만큼 책을 잘 알고 있고, 잘 읽고, 영혼이 가득하다. 당신이 주는 데 마치 당신이 결코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을 듣는 것 같을 것이

다. 물론 흥미롭고 멋진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하고 낙담한

기분이 들 때 이곳을 찾는다. 그러면 나는 항상 젊어진 나를 느낀다.”

1999년 픽션 부분 퓰리처 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행의 극찬만으로 설명 이 충분하다. 서점의 마을이었던 그리니치 빌리지 주민들에게 ‘동네의

보석’이라며 사랑을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이클 커닝햄의 찬사 가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 직원들의 전문성과 친절함이 정평이 나 있다. 주소: 154 West 10th Street 80

책보다는 오히려 소호 한복판이라는 공간적 특징 그리고 맛있다고 정 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면서 한국인 여행객들이 소호를 구경하다가 반 드시 들리는 명소로 알려졌다. 2층으로 이루어진 넓은 공간 역시 상쾌

하고 편안하게 서점을 둘러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곳은 다른 서점과 달리 모든 물건을 기부를 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일하는 스텝들

또한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격도 한층 저렴하다. 판매되는 모든 수익은 하우징 웍스라는 공공기관의 예산으로 쓰인다. 주소: 126 Crosby St.


* 블루 스타킹(Bluestockings)

공동 소유, 자원봉사자 위주로 운영되는 특이한 형태의 이스트 빌리지

서점이다. 책 종류는 페미니즘, 동성애 관련 주제가 많은데, 실제로 매 니저로 불리는 직원들은 한눈에 봐도 동성애자 스타일이 많고 트랜스 젠더 직원도 눈에 띈다. 한마디로 이스트 빌리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

다. 6천여 권의 서점 외에 잡지 및 만화 포스터, 엽서 등이 있고 지역 커 뮤니티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안내 및 팜플렛도 갖추고 있다. 이 서점은

커뮤니티 활동에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거의 매일 저녁 워크숍, 세미 나, 영화 상영회 등도 열리기 때문에 미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관심 이 생긴다면 참여해봐도 좋을것이다. 주소: 172 Allen Street, New York.

* 아고시 북 스토어(Argosy Book Store)

1925년 설립,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유서 깊은 서점이다. 예술 부분의 희귀 고서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렉싱턴과 파크 애비뉴 58가 사 이에 있는 5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워낙 수십층이 넘는 주변의

고층 건물들 사이에 있고, 장기간 주변의 공사로 인해 스캐폴더로 가려 져 있어 무심코 지나치는 행인들에겐 발견하기 어려운 서점이었다. 꽤

큰 규모를 자랑한다. 1층과 메자닌 레벨에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

는 서적들이 많지만, 지하엔 더 큰 규모의 서가가 마치 오래된 도서관

을 연상케 한다. 안내원이 직접 운행하는 아주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 3층에 올라가면 희귀한 지도와 고서적들을 더 볼 수 있다. 한편, 손 때가 잔뜩 묻은 옛 서적과 비싼 희귀 서적만 판매하는 곳은 아니고 10

달러 미만의 엽서와 그림, 책 등 기념품으로 사 가도 그만인 아이템들 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주소: 116 E 59 St.

*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

지난 9월 마지막 주 퀸스 롱아일랜드 도시의 뉴욕현대미술관(MOMA) PS 1 에서는 ‘뉴욕 아트 북 페어’가 열렸다. 전 세계 30개국을 포함해

미 전역의 아트 전문 독립 출판업체가 부스를 여는 책의 축제 현장으로

올해 12회를 맞는다.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곳이 비영리단체인 프 린티트 매터이며 사무실을 겸한 직영 서점이 첼시에 있다. 프린티드 매

터의 맥스 슈만 디렉터는 “전국의 작가들과 독립 서점을 연결해 출판 물의 유통과 홍보, 페어 개최 등을 수행하는 역할 하고 있고 이 서점은

우리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쇼룸”이라고 공간을 설명한다. 원래 첼시에 더 작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2012년 허리케인 샌디 피해 로 9000여 권이 책을 소실한 뒤 11 애비뉴에 좀 외진 곳, 하지만 훨씬 넓은 곳으로 이전했다. 주소: 231 11th Ave.

이외에도 들러볼 만한 서점들로 드라마 북 샵(Drama Book Shop. 250 W40 St.) 은 올해로 오픈 10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서점이고 이

름대로 드라마, 극본 등의 전문 서점이 많다. 맥날리 잭슨 (McNally Jackson. 52 Prince St.)은 아이들을 위한 코너와 서점 내 카페가 독특

한 매력이 있다. 퀘스트 서점 (Quest Book shop. 240 E53 St.)은 종교 와 심리학, 점성술, 타로, 요가, 풍수, 헬스, 불교 등을 다루는 서적들과 함께 관련 기프트 상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서점의 구석 공간을 마 련해 요가와 타이치, 명상 수업을 주민들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

이다. 바이오그래피 북샵은 북북(BookBook. 266 Bleeker St ) 으로 이 름을 바꾸어 인근 그리니치 빌리지에 다시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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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사랑방 같은 동네 서점

보니 슬로트닉 쿡 북 동네 사람들과 개들이 놀러 오는 특별한 서점이 있다. 이 서점은 큰 거리에 있 지도 않고 1층도 아니며 당연히 걸려야 할 큰 간판조차 없다. 이스트 빌리지 의 복잡한 보어리(Bowery) 스트릿에서 방향을 틀어 2 스트릿을 따라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 보면 2 애비뉴 조금 못 미친 곳에 4층 타운하우스 건물이 보인 다. 그 건물 지하에 요리와 음식 문화에 관한 전문 서적을 취급하는 ‘보니 슬 로트닉 쿡 북(Bonnie Slotnick Cook Book)’ 서점이 바로 그곳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길을 걷다가 윈도우와 간판에 끌려 들어가는 손님은 거의 없이 일부 러 그곳을 찾아 간 사람과 아는 단골만 들리는 작은 서점이다. 이번 호 특집인 ‘뉴욕서점’ 중 한 곳인 ‘보니 슬로트닉 쿡 북 (Bonnie Slotnick Cook Book)’을 찾아가 서점 주인 보니 블라트닉을 만나보았다. 글, 사진 82

편집부


보니 블라트닉을 만나기로 약속된 시간에 서점 앞에 도착했을 때 마

서 문을 닫은 소식은 뉴욕타임즈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보니 서점의

었다. 웨스트 빌리지에 사는 그녀는 약 1마일 거리의 서점을 주로 자

들 그리고 독립 서점가에서는 또 하나의 큰 손실로 여겨질 정도로 파

침 그녀는 헬멧과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던 길이 전거로 출퇴근한다. 올해 60이 되는 보니는 전형적으로 친절하고 배 려심 많아 보이는 백인 중년 여성이다. 보니를 따라 서점 안으로 들어 갔다. 400 스퀘어피트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다. 상업적인 시설의 느낌 은 전혀 없고 그저 어느 넓은 집 거실과 서재에 들어간 것 같다. 그리

고 언뜻 무심하게 편하게 쌓여 있는 것 같은 책과 장식물 사이를 좀더

유심히 관찰하면 서점 구석구석 빠지지 않고 보니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냅킨 하나에도 접어놓은 ‘각’이 다르다. 그

녀의 전공이 패션 디자인이란 사실을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약 4,000권의 책은 빵, 소스, 아침 메뉴 등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다. 요

폐점 소식은 그만큼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그리니치 빌리지 주민

장이 컸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이유로 도움의 손길이 의외로 빨리 다

가왔다. 지금 입주한 건물의 주인인 가스와 마고 존스톤 (Garth and

Margo Johnston) 남매가 소식을 듣고 기꺼이 자기 건물에 들어오라 고 제안했다.

보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보여줬다. 에덴 로스 립슨 (Eden Ross Lipson) 이 쓴 일러스트 요리책 ‘애플소스 시즌

(Applesauce Season)’이었다.

리책만큼 음식의 역사나 식사 에티켓, 위인전기 등 관련 서적 및 중고, “이 책을 쓴 립슨은 기자이면서 베스트셀러 아동 문학가였어요. 오래 희귀 서적도 다양하다.

전 이스트빌리지에 타운하우스를 샀고 자녀에게 그 건물을 물려줬어

보니 서점은 정확히 20년 전인 1997년 문을 열었다. 그녀가 작은 출판

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고 서점은 직장 근처 오피스 빌딩 지하였다.

주 저렴하게 임대했는데 정말 큰 보너스는 멋진 뒤뜰을 사용할 수 있다 는 거였죠.”

하려는 소박한 출발이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직접 손으로 쓴 짧

보니는 기자를 뒤뜰로 안내했다. 작지만 분위기 있는 공간. 한겨울을

직장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고 늘 꿈꾸었던 서점 사업을 조그맣게 시작

요. 바로 저의 집주인인 가스와 마고 남매입니다. 이 건물 지하실을 아

렌스 파브리칸트( Florence Fabricant) 가 신문에 기사를 실은 것이다.

제외하면 누구라도 모여 앉아 함께 차를 마시거나 저녁에 차가운 맥주 라도 나누면 그만일 장소였다. 그런 이유로 ‘동네 사람’들은 이 서점을

“그 기사가 난 것이 추수감사절 전날이었어요. 그 날은 평소에 전혀 요

들어와서 보니와 대화를 나누고 뜰에서 쉬다가 가곤 한다. 개를 좋아하

은 홍보자료를 배포했는데 뉴욕타임스의 유명 요리 칼럼리스트 플로

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서점에 들러 요리책 코너를 둘러보는 날 이거든요. 전화가 빗발치듯 오고, 서점에 사람이 몰려들고 정말 난리

가 났죠. 결국,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어요. 2000년에 뉴욕 서점의 중심지인 그리니치 빌리지로 자리를 옮겼죠.”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빨리 자리를 잡으며 서점 운영이란 그녀의 꿈 은 이루어졌지만, 시기가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2000년 초반부터 출판과 서점 사업이 급격히 기울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탐 행크 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유브

자주 찾는다. 굳이 책을 살 필요도 없고 사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그냥

는 보니가 늘 간식을 준비하고 있어서 사람뿐만 아니라 산책을 나온 동 네 개들 역시 이 서점을 들렀다 가곤 한다.

보니가 기자에게 보여 준 또 다른 곳은 뜻밖에 욕실이었다. 욕실의 벽 면에 커다란 지도가 붙어 있었다. 뉴욕시 서점을 그림으로 표시한 지도

였다. 아마도 몇십 년 전에 제작된 듯한 지도에는 거리마다 서점이 표 시되어 있었다. 보니는 자신의 서점이 있던 웨스트 10 스트릿의 ‘서점 거리’를 가리키며, 다소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갓 메일’에는 대형 체인 서점

보니는 기자를 문밖까지

는 시점이 배경이지만 당시는

라고 말했다. 특별히 한

이 동네 작은 서점을 몰아내

그 대형 서점들마저 문을 닫 는 시기였다. 뉴욕을 대표하

는 독립 서점들이 차례로 문 을 닫고 보더스 마저 시장에 서 영원히 사라졌다.

보니 서점은 쿡 북 전문이라 는 특수성과 오랜 단골 덕분

으로 그럭저럭 버텨나가다가

결국은 2014년 그리니치 빌 리지에서 떠나게 되었다. 올

라가는 렌트를 겨우 맞춰주 다가 결국 ‘4번째로’ 렌트를

올려달라는 건물주 요구에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보니

서점이 그리니치 빌리지에

배웅하며 언제든 찾아오

국인에게도 많이 알려달

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기자는 꼭 그러 겠다고 대답했다. 서점을

나선 뒤, 보니 서점과 동

네 주위를 다시 한번 둘

러봤다. 비록 내가 이곳 에 살지는 않지만, 이 서

점이 주민들을 위한 공간

으로 아주 오래 남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보니 슬로트닉 쿡 북(Bonnie Slotnick Cook Book): 28 E Second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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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30년 홍대 지킴이 뉴욕 구석구석을 뒤지다

홍대앞 동네 잡지 <스트리트 H> 발행인 장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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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100호째를 발행한 홍대 지역 월간 무가지 ‘스트리트 H’ 의 장성환 대 표는 자타가 인정하는 ‘홍대통’이다. 홍대를 졸업했고 지금도 홍대 근처에서 디자인 과 출판사업을 하며 30년이 넘게 지역의 변화를 직접 지켜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가 홍대라는 지역에 가진 정보의 깊이와 애정은 남다르다. 그런 장 대표가 지구상에서 홍대만큼이나 애정을 가진 곳이 뉴욕이다. 지역 잡지 (더 친근한 뉘앙스 로 동네 잡지)라는 개념이 없던 한국에 '스트리트 H'를 발간하게 된 동기도 아내인 정지연 편집장이 10년 전 뉴욕에 혼자 1년 거주했던 경험과 장 대표가 뉴욕의 대표 적인 무가지 ‘빌리지 보이스’ 및 ‘L 매거진’ 등 작은 지역 매거진을 보며 얻은 아이디 어 때문이다. 그 후 장 대표 부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뉴욕에 와서 새로운 정보와 자 극을 얻어간다. 뉴욕에 관한 책을 준비하기 위해 3년 만에 뉴욕을 찾은 장성환 대표 를 첼시 마켓 내 아담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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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아니고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밋밋한 풍경들이 되는 것”이 아 쉬운 거다.

어쩌면 옛것 개념도 지극히 상대적이다. 장 대표가 흠뻑 빠졌던 예전 뉴욕의 모습

이라는 것도, 그보다 더 오래된 세대에게

는 ‘번잡하고 지저분하지만 정취가 있었 던 예전 모습이 사라진 번듯해진 뉴욕’의

모습일 수도 있다. 매춘과 마약이 판을 치

던 70~80년대 타임스퀘어 풍경에 대한 동경은 왜 없겠는가? 장 대표 역시 수긍 하는 부분이다. 그는 “높아진 렌트비 때 문에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더 싼 곳을 찾

아 떠나갔던 대표적인 도시회춘화현상 (gentrification) 지역이 소호 아니었나”라 면서 “이번에 와서 보니 지난 20여 년간 큰 개발이 없던 소호가 가장 예스러운 모 습을 간직해서 편안한 지역처럼 느껴진 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창간한 ‘스트리트 H’ 는 장 대 표 부부가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홍

대 앞 지도를 만들어본 것”이 발단이었다. 이제 100호를 넘긴 ‘장수 매체’가 된 잡지

“뉴욕은 공사 중이다! 이번 방문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래요.”

는 홍대 앞 카페, 서점, 문화공간, 관광안내소 등 40여 배부처에 매달

대표는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 커피를 주문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먼

의 위치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지도는 잡지의 대표 콘텐츠다. 광

50대 중반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과 힙한 패션을 소화하는 장

저 쉬며 말했다. 맨해튼과 브루클린 곳곳을 바쁘게 다니고 있는 그 가,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한블럭 마다 건물 공사가 벌어지고’ 있

는 걸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장 대표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 었다. 뉴욕에 애정을 품고 있고, 그래서 적지 않은 경비를 감수하면

서 바쁜 시간을 쪼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자꾸만 특색 없는 고층 빌 딩들이 기존의 ‘올드한’ 뉴욕 모습을 바꾸어가는 현상이 무척 안타까

운 노릇일 거다. 게다가 그는 30년 홍대 토박이다. 홍익대를 중심으로 연남동부터 동교동, 서교동, 합정, 상수동이 차례로 도시회춘화현상 (gentrification)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속해서 보면서, 남들에겐 그저

더 활기차고 변화하는 지역으로 바뀌는 것일 뿐인 홍대 발전사의 이면 을 관찰해 온 입장이기 때문이다.

“(홍대에 사는) 저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래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보존하던 도시였어요. 눈만 뜨고 나면 빠르게 바뀌는 그런 홍대 같은 모습이 아니었잖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로어이스트 지역에 가면 LP도 팔고 공연도 하고 그런 장소들이 있었는데 이번

3,000부씩 깔리고 특히 카페, 공연장, 갤러리, 서점, 게스트하우스 등

고는 받지 않고 오직 발행인의 부담으로 만들어지는 잡지다. 홍대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장 대표의 본업은 인포그래픽(인포메이션+그래 픽) 디자이너다. 장 대표는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창설 멤버를 거쳐 동아일보에서 잡지 아트디렉터 일을 했으며 ‘여성동아’ 기자였던 정지

연 씨와 사내 연애를 한뒤 1999년 결혼했다. 2003년 언론사를 그만두 고 홍대 앞에 ‘디자인 스튜디오 203’을 차렸다. 203은 1987년 그가 만

든 첫 반지하 방 작업실 주소에서 따왔다. 그는 그때의 작업실 시절부 터 홍대가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들던 서울의 낙후된 지

역에서 출판사들이 하나둘 옮겨오던 지역으로, 90년대 중반부터 인디 밴드와 클럽 열풍의 진원지로 그리고 이제는 한국의 힙스터 문화를 대 표하는 지역으로 변모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한편 역시 언론사를 그만두고 출판일을 하던 아내는 2007년 재충전과 책 준비를 위해 뉴욕에서 1년 생활하며 뉴욕의 특정화, 지역화된 작은 매거진들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문화 중

심지가 된 홍대 지역에도 특징 있는 정보지 하나쯤은 원하는 사람이 많

올라가고 있더군요…”

을 것 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돈은 되지 않겠지만 흥미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발업자들과 랜드로드들의 이익 활동을 막

다. 내년이면 햇수로 10년이 된다.

에 보니까 다 없어졌어요. 그리고 새로운 아파트와 쇼핑몰 건물들만

을 수는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비즈니스 종류의 변모도 어쩔 수 없

는 현상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 장 대표가 그래도 아쉬운 것은 “그렇게

해서 올라가는 빌딩들, 바뀐 거리의 모습이 뉴욕의 멋을 간직하고 있는 86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분명한” 동네 잡지 창간을 하게 된 것이다. 장 대

표는 창간하면서 “돈이 안 돼도 무조건 10년은 한다”고 결심했다고 한 장 대표와 함께 뉴욕과 홍대 그리고 잡지에 관한 이야기를 격의 없이 나누다 보니 “이번에 뉴욕에 온 목적은 무엇이냐?”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인터뷰 한참 후에나 나오게 되었다. 장 대표 부부는 소규모 출

스트리트 H 탄생 초기에 장 대표가 지도와 디자인을 맡고 아내 정 씨는

는데 이번에 숫자로 본 뉴욕이라는 신간을 계획하고 있다. 어느 정도

이 무보수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원고료 안 받고 칼럼을 쓰겠다는 필자

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2권의 책을 냈고 번역서도 준비하고 있

정리가 된 상태라 이번에 디테일한 취재와 추가 촬영을 위해 부부가 뉴 욕에 왔다. 책의 제목은 ‘숫자로 보는 뉴욕’이다. 1이라는 숫자 그리고 2, 3 이라는 숫자 등을 매개로 뉴욕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뉴욕에 관한 책은 많고 계속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이름만 좀 있는 사람은 두어 달 뉴욕에 머물면서 뚝딱 책 한 권을 쓰기도 한다. ‘이 카페

멋있다, 저 식당 맛있다.’ 그런 식이다. ‘숫자로 보는 뉴욕’이 그런 많은

기사를 썼다. 처음에는 둘이서 발품 팔아 하다가 나중엔 객원 에디터들 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잡지를 받아 본 독자들은 “이렇게 좋은 잡지를 정말 그냥 받아봐도 되는 거냐?”고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장 대표의 이 말을 듣고 기자는 에스카사와 참 많이 닮았구나 하는 마

음이 들 뿐이었다. 그래서 발행인으로서의 희망 사항 말고, 출판 매체

와 관련된 일을 오래 한 전문가로서 정기 간행물이란 종이 매체의 미래 에 대해서 솔직하게 어떻게 전망하는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뉴욕 관련 책과 어떤 면이 다른지 질문했다.

“지금보다 더 많이 없어지고 더 정리되겠죠. 하지만 프린트된 읽을거

“한마디로 고유함이죠. 우리가 홍대 잡지를 만드는 것과 같은 취지

특화된 매체, 꼭 필요한 매체가 남아 여전히 사람들에게 즐거운 읽을

겠지만 이번 책 역시 지역에 관한 고유함에 관한 것이에요. 지적한

거리로서 기능하지 않을까요?”

대로 뉴욕을 주제로 한 책이 무척 많지만, 그중 상당수가 가벼운 인 상비평 수준인 것도 사실이잖아요. 어디 가봤다, 어디 좋더라. 글쎄 요, 물론 가볍게 트렌드를 짚어보는 것도 분명 흥미가 있고 그걸 원 하는 독자가 있겠지만 역사와 맥락을 모르고 현상만 건드리는 것이 책으로서 큰 의미가 있을까요? 도시라는 공간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지층, 그걸 들여다보고 알려주는 것이 결국 그 도시의 개성과 퍼스 낼리티를 알아야 할 수 있죠.” 그래서 장 대표는 역사와 기록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역사와 기록이 없다면 항상 현재만이 있을 뿐인데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어디

리가 전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없을 겁니다. 그 말은 정말

에스카사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1주일을 더 뉴욕에 머문 그는 바쁜 일

정을 쪼개 알차게 다니며 찍은 사진과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조그만 서점, 카페, 출판회사, 공원 그리고 거리 등. 그는 뉴욕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뉴욕 구석구석을 자세히 알고 있었고 정보와 지식, 때로는 날카로운 관찰자의 시선을 보여주었다. 그의 글에서 무엇

보다 없어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안도의 마 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이들 부부가 만드는 책이라면 분명 뉴욕에 관한 좋은 책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로 가는지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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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나는 어떤 타입의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뉴욕 타임즈, 월 스트리트 저널 최고의 베스트셀러 글 88

편집부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베스트셀러 30 개 언어로 번역된 애덤 그랜트(와 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의 저서 ‘Give and Take’는 2013년 최고의 책이었다. 그 는 이 책에서 오늘날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면에는 ‘능력, 성취 동기, 기회.라 는 세 가지 공통점 외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라는 행동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 고 그에 따르는 결과는 놀라울 만큼 다른 차이를 보임을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세 가지 행동방식과 성공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인간관계에 대해 요약해보았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주고받는데, 이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택을 한다. ‘상대에게 얼마나 받아야 할까? 나는 얼마나 줘야 할까?’ 와튼 스쿨에

서 조직 심리학을 가르치는 애덤 그랜트 교

수는 둘 중 어느 쪽이 성공에 더 유리한지

연구했고 인간에게는 세 가지 행동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신이 베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 는 테이커(Taker) 상대에게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매쳐 (Matcher) 상대에게 한없이 많은 것을 주려고 하는 기버(Giver) 이들 중 가장 큰 성공을 한 사람들은 누구

일까? 이 세 가지 유형에 따라 다양한 사람 들의 성과를 측정해 본 결과 상대에게 한없

Give and Take

을 받은 상대는 기버에게 최고의 자산으로

남게 된다. 그 사람들은 기버에게 받은 고마

움과 감동을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 이 지나서 연락해도 감동의 기억이 살아 있

는 한, 기꺼이 도움이 되어준다. 기버는 잠 재력을 가진 자산이 많아서 인맥 쌓기가 쉽 고 테이커나 매처의 제한된 인맥보다 훨씬

넓고 무한하다. 이점이 바로 ‘기버가 성공하 는 핵심 이유’이다.

성공한 기버와 실패한 기버의 차이

가장 큰 차이는 테이커를 대하는 태도이다.

성공한 기버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테이커 를 멀리하고 도와줄 사람을 찾아 기꺼이 돕 는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 에게 한 번은 몰라도 그 이상은 도와주지 않 는다. 반면 실패한 기버는 거절하지 못하고

계속 도와주다가 결국 손해를 봐도 참고 넘 어가는 경우가 많다. 선의로 상대를 도와주

이 많은 것을 주려는 기버(Giver)는 사회 하층 계급을 차지했다고 한다.

면 한 번으로는 감동을 주지만, 반복되면 상대는 그 도움을 당연하다고

면서까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선한 사람이지만 나쁜

족하다는 얘기이다. 또 어쩌다 한 번씩 남을 도와주는 기버는 성과가

이런 유형의 사람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 의미로는 바보라는 의미로 한국에서는 ‘호구’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

나 놀랍게도 성공한 사람 중에서 ‘기버(Giver)’가 가장 많았다. 사회 밑

바닥을 차지한 기버와 최고가 될 가능성을 겸비한 유형이 바로 ‘기버

(Giver)’라는 사실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과연 그 차이는

여기고 도움이 그치게 되면 오히려 역반응이 나온다. 도움은 한 번에 낮았지만 남을 더 자주 돕고 적게 도움을 받는 기버는 지위는 물론, 생 산성이 높게 나타났다. 우리가 현명한 기버로서 성공하고 싶다면 이기 적인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무엇일까?

타인을 위한 5분 투자는 성공으로 가는 초석

기버(Giver)의 무한한 잠재적 인맥

되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타인을 위해 5

기버(Giver)의 강력한 힘은 ‘인간관계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다. 테이커

(Taker)와 매처(Matcher)도 기버와 마찬가지로 상대와의 인간관계에 서 무언가를 베풀지만, 그들은 베푼 만큼 돌려받거나 혹은 그 이상을 기대한다. 예를 들면 인맥을 쌓을 때 자신을 도와줄 만한 사람에게 전 략적으로 집중하는 거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는 큰 위험을 안고 있

다. 즉 이런 관계가 지속하면 결국 호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조종당 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가 일종의 습관적 거래처럼 여겨지 는 순간, 진심 어린 관계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기버는 상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조건 없는 베풂으로 관계를 쌓아간다. 따라서 도움

자기 일을 하면서 남을 돕는 것이 어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버가 분 정도만 투자하는 것이다. 그 투자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필요한 조 언일 수도 있고 인생을 바꿀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선행

을 통해 느끼는 행복은 주위를 변화시킨다. 왜냐하면, 남을 돕는 일은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 즉 도움을 받은 사람도 또 다른 사람에게 선 행을 베풀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서로서로 돕는 또 하나의 인

맥이 형성된다. 언 듯 보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호구’ 같은 기버가

바보로 보일 수 있으나 똑똑한 기버가 되면 개인이 속해 있는 그룹뿐 아니라 사회 조직과 커뮤니티를 변화시키며 당연히 개인의 삶도 성공 적으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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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HYGGE 휘게(HYGGE)

당신,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 글 손시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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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몇 해 전부터 유행처럼 번졌던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어로, “당신의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의미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최우선 순위로 추구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하는 이 말은 차곡차곡 미래를 대비하던 과거 세대와 다 른 환경에 처한 청춘들의 세태를 반영한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이 들에게 욜로는 너무나 멋지고 달콤하게 느껴졌고, 자연스레 일상으로 스며들었 다. 이제 수많은 인스타그램 계정은 누구보다 예쁜 사람들, 맛있는 음식, 멋진 여 행 사진들로 넘쳐난다. 인스타그램 속, 개츠비의 파티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욜로(YOLO), 지속 가능한 행복일까?

삶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단출한 일상으로 꾸려진다. ‘내가 행복하지 못

게 그저 공허하기만 하다. 현실에서는 이 마법의 주문을 쉽게 실감할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인스타그램에 한글로 휘게를 검색

그러나 미국 최고의 부자 래퍼 드레이크가 말하는 욜로는 많은 이들에 수조차 없이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 아무리 청춘이라 한들 패기롭

게 떠나기는 두려웠던 사람들에게 꽃보다 청춘은 어쩌면 TV 속에서만 이룰 수 있는 욜로였을지도 모른다.

한 이유는 일상 속 행복을 느끼지 못해서’라는 인식은 ‘휘게 라이프’에

하면 그에 관련된 게시물은 20,000개에 육박한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 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휘게는 BBC 등에 소개되며 그 열풍이 전 세계 적으로 퍼지고 있다.

21세기, 인생이 두 배로 곱해진 100세 시대에 오늘만 생각하기엔 우리

그렇다면 휘게란 무엇일까? 휘게는 특정 사물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

따라 욜로에 대한 반작용 또한 존재한다.

‘휘게 라이프'는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를 추구하는 덴마크식 라이프스

모두 너무나 젊고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욜라(YOLA)는

Yong Needs Pension 젊으니까 연금에 가입하라.

Ongoing Wealth Management 지속해서 자산관리를 받아라. Long term Investment 장기 투자를 시작하라. Assert Allocation 균형 있게 자산을 분배하라.

는 뜻의 약어로, 욜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 경계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삶의 태도를 뜻하는 신조어다.

차곡차곡 쌓으며 미래를 대비하는 삶, 꼭 필요하지만 구미가 당기지는

않는다. 현재를 즐기거나, 미래를 대비하거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을

까? 미래를 대비하면서 현재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라 편안하고 행복한 분위기와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덴마크 단어다. 타일로,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것들을 추구 하는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뜻한다. 삶에는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게 아

니라는 믿음, 휘게는 여기서 시작한다. 욜로가 지금 현재 이 순간의 쾌 락을 추구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면, 휘게는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 간을 감사히 여기고 행복을 느끼는 것. 당신,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

이러한 휘게 열풍 아래, 인기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속 이효리가 보여주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 다. 하지만 꼭 공기 좋은 제주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휘게는 아니다. 가

족과 함께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 내 방이 주는 안정감, 샤워 후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은 느낌. 생소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들. 추운 겨울,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귤을 까먹는 것 따위. 휘게는 멀리 있지 않다.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 휘게(HYGGE)

누군가는 자신에게 하는 아낌없는 투자와 여행으로 만족감을 얻는다.

교수 등이 발간한 ‘세계 행복 보고서 2016’에 따르면 157개국 가운데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욜로와 휘게, 이것은 단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덴마크는 행복 지수 1위였다. 이에 반해 한국은 1인당 GDP가 세계 29 위인데 행복지수는 58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하지 못할까? 여행을 가면, 비싼 옷

을 사면 행복해질까? 날마다 그렇다면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또 다른 누군가는 거주하는 집을 꾸미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자신의

순히 한 시대를 흘러가는 유행어가 아닌 우리가 맞이할 다음 시대에 대 한 힌트가 아닐까?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든지 궁극적인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행복이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상 속 행복을 찾아 보자. 얼마나 누리며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을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바로 행복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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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버금 가는 일류 레스토랑 거리를 꿈꿨던 야심찬 기획

뉴욕 헬스 키친 레스토랑의 거리 (Restaurant Row)

뉴욕의 길

매일 300,000명 이상의 보행자가 타임스퀘어(Times Square) 중심부를 지 나간다고 한다. 특히 오후 7시부터 1시 사이에는 66,000명 이상의 보행자 가 이곳을 스쳐 간다. 뉴욕을 찾은 대부분 관광객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감상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타임스퀘어를 찾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는 말이 있듯이, 과연 그 많은 숫자의 인파는 어디서 한 끼를 해결할까? 만 일 뮤지컬이라도 관람하게 된다면 대부분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번잡한 타임스퀘어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타 임스퀘어 근처 식당이라고는 TGI 프라이데이, 애플 비 등 프랜차이즈 패 밀리 레스토랑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들뜬 관광객의 마음이야 맥주 한 잔 을 곁들인 저녁이라면 어떤 식당인들 그럭저럭 먹을 만하겠지만 솔직히 프랜차이즈 식당이란 멋과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메뉴와 분위기를 갖고 있 지 않다. 타임스퀘어 바로 인근에 ‘레스토랑의 길(Restaurant Row)’이 있 다는 걸 안다면 뉴욕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 분위기는 한결 달라질 것이다. 글

편집부 사진 George Jung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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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의 길(Restaurant Row)’은 미드타운 웨스트 헬스 키친에

90년대 이후 타임스퀘어의 치안과 환경이 급격히 향상되었지만, 레

별칭이다. 1973년 16개 식당을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거리로

의 중심인 브로드웨이와 7 애비뉴에서 다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올리

30여 개의 식당이 몰려있는, 8 애비뉴와 9 애비뉴 사이 46 스트릿의

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식당 전문가’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당시 뉴욕

시장인 존 린지는 “파리를 제외하고 세계 어디 지역에 한 블럭이라 는 짧은 거리에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 16개를 모을 수가 있겠는가” 라고 대담하게 천명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 각국의 음식점 30여 개

가 성업 중이지만 애초의 담대한 목표를 충실히 이루었는지에 대해

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타임스퀘어 중심의 대형 체인점들과 인근 컬럼버스 서클의 미셸린 스타 고급 레스토랑들의 틈바구니에서 어 정쩡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레스토랑의 길(Restaurant Row)’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공식적으로 1973에 붙여졌지만 실제로 46가는 20세기 초반부터 이미 레스토랑이 들어서기 시작한 거리였다.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터줏대감격인 바베

타(Barbetta)는 1906년 오픈한 씨어터 디스트릭트(Theater District)의 가장 오래된 식당이다. 뉴욕타임스는 46 스트릿이 타운하우스 건물로

이어진 분위기 있는 풍경과 함께 타임스퀘어와 가까운 지리적 잇점, 그

리고 모든 건물의 1층을 상업용으로 허락한 시의 조닝 혜택에 힘입어 최고의 레스토랑 거리 조건을 갖추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인

근이 타임스퀘어라는 건 양날의 검이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타임스퀘어가 매춘과 마약의 대명사로 불리며 치안이 불안한 시절에

손님들은 이 지역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꺼렸다. 뉴욕 경찰의 능력을 불신한 업주들이 가디언 엔젤이라는 사설 경비 단체에 치안을 맡겼던 시절이 있었다.

스토랑으로는 또 다른 경쟁을 하게 되었다. 지역적으로 타임스퀘어 브 가든, 부바 검프 (Bubba Gump Shrimp) 등 중급 패밀리 레스토랑 에게 관광객 손님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최근엔 8애비뉴와 9 애비뉴

에 바이크 레인이 생기면서 통행이 불편해진 것도 영업에는 도움이 되 지 않는 부분이다. 최근 이 지역의 상인연합체인 타임스퀘어 얼라이 언스(Times Square

Alliance) 는 관광객 들에게 더 레스토랑

거리를 잘 알릴 수 있 도록 15만 달러의 예 산으로 각종 사인과

태양광 라이트를 거 리 양쪽에 설치하고

‘세계인이 식사하러 오는 곳(Where the

World Comes to

Dine)’이라는 슬로건 이 적힌 벽면 장식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곳에 퓨전 한

식당 곳간(Goggan) 이 세계 각국의 음식 점들 사이에서 당당

히 높은 평가를 받으 며 영업을 했지만 최

근 문을 닫았다는 사 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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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elle.com 100


색( )이 말해주다 - 패션과 색 2017년 마무리색 ‘그래나딘’ 레드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많은 색을 만난다. 개인마다 취향에 따라 색을 선택하고 평소 좋아하는 색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란 인간 의 무의식적인 사고가 색을 통해 표출된 결과라고 한다. 색은 심리학 에서도 활용될 만큼 무한한 가치를 갖고 있고, 색이 주는 변화를 잘 활용한다면 삶의 질을 높이고 라이프 스타일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객원기자 Ju Y. Lee 정리

편집부

인간 개인의 취향과 각각의 기호는 다르지만, 어

떤 색을 바라보았을 때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현상은 거의 비슷하다.

색은 우리 사회의 이슈와 현상을 반영하며 시각 적으로 표현하는 소통의 도구이다. 글이나 기호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시각적인 표현만으로 메시 지를 전달할 수 있으며, 상업적으로는 그 어떠한

설명보다 짧은 시간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가 된다. 패션을 선도하는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4대 패션 위크에서는 매

년 트랜드 컬러를 제시하고, 각 나라의 큰 행사나

기념비적인 의식에서도 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 며 행사에 색을 통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1,757색 색상표를 사용하여 다양한 산업의 고객을

사진 출처 www.vogue.it

위한 색상을 개발, 표준화 및 예측하는 팬톤(Pantone)은 매년 새해

이런 화려한 컬러 중 단연 런웨이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컬러

은 특히 패션 세계에서 바이블 같은 역할을 하며 매 시즌 열리는 컬

송’, ‘질샌더’, ‘발렌티노’, ‘캘빈클라인’까지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들

를 앞두고, 그 해의 트랜드 색을 발표한다. 매년 팬톤에서 발표한 색 렉션에 큰 영향을 준다. 이번 2017 FW 컬렉션과 뉴욕에서 시작된 컬 렉션에서는 반트럼프의 영향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컬러가 강

세를 보였다. 뉴욕으로부터 퍼져나간 이러한 현상은 많은 디자이너 의 작품 속에서 색을 통해 그 메시지가 묻어 나왔다.

2017 FW 패션위크에서 눈에 띄는 트랜드의 공통점은 80년대 레트

는 레드이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펜디’, ‘막스마라’, ‘꼼데가르 이 레드를 선택한 것이다. 석류즙을 연상케 하는 단어인 '그래나딘'

레드 컬러는 열정이 가득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전체적으로 오렌지 가 많이 배합되어 세련되고 고혹적인 강렬함을 표현한다. 그래서인

지 ‘그래나딘’ 레드컬러로 인해 FW 패션쇼장이 풍성하고 화려하게 물들였음은 당연한 듯 하다.

로룩이다.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4대 컬렉션을 모두 지배한 레트

레드는 용감한 자의 색이다. 2017년 12월, ‘그래나딘’ 레드로 과감한

로 런웨이를 수놓았다. 이렇게 화려한 컬러 팔레트에는 ‘그래나딘’,

래나딘’ 레드로 스타일링하고 옷소재만 다르게 레이어링 해보자.열

로 무드는 80년대 패션을 대표하는 호화로운 소재와 화려한 컬러들 ‘토니포트’, ‘벨벳슬리퍼’, ‘버텀’, 그리고 ‘네이비포니’가 주를 이루었

는데 이 모두가 패션을 선도하는 뉴욕 트랜드를 기준으로 팬톤에서 발표한 컬러들이다.

변신을 시도해보자. 꼭 집어서 추천을 한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정을 가득 담은 '그래나딘 래드'가 삶의 새로운 변화를 주고 밝고 활 력 넘치는 에너지를 솟아나게 하면서 나만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 게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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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ng Memories in NYC for 2017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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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최고의 겨울을 보내자!

12월 뉴욕 특별 이벤트 12월 뉴욕은 특별하다. 누구라도 12월 뉴욕에 오면 특별한 추억을 갖게 된다. 12 월 뉴욕엔 그만큼 뉴욕다운 이벤트가 넘쳐난다. 수많은 이벤트 중에서 놓치면 후회하는 가장 특별한 이벤트 4가지! 복잡한 맨해튼 한복판 Bryant Park Winter Village 스케이트장에서 여유롭게 얼음을 지치고 뉴욕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환 상적인 The Radio City Christmas Spectacular에 흠뻑 빠져보자. 여기에 캐럴과 함 께 뉴욕에서 가장 큰 락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다가 전 세계가 주목하 는 타임스퀘어 새해맞이를 함께 한다면 이보다 더 특별한 겨울은 없지 않겠는가. 글 Taylor Lee 사진 김도영, George Jung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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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t Park Winter Village

The Radio City Christmas Spectacular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Bryant Park는 2017년 10월 28 일부터 2018년

올해 벌써 89주년을 맞이하는 Radio City Christmas Spectacular는

스퀘어피트의 대규모 스케이트장이 있어서 파크 입장객은 무료로 스

된 춤과 환상적인 그래픽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게 해

1월 2일까지 Winter Village 축제를 개최한다. 파크안에는 무려 17,000

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 개인 스케이트를 가져와도 되고 스케이트 대여

($20)도 가능하다. 또 이곳에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 팝업 상점 등 약 125개의 상점이 있다. 2017년 연말을 Winter Village에서 보낸다면 여느 해보다 훨씬 더 멋진 추억을 남기는 겨울을 보낼 수 있다. 2017 년

10월 28일 ~ 내년 1월 2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1시 ~ 오후 8시 개

장이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전 10 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많은 상점이 문을 열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Located in the heart of midtown in Manhattan, Bryant Park is

매년 뉴욕에서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쇼 중의 하나다. 창의적으로 구성

주며, 무대 위에 펼쳐지는 모든 순간이 단 하나라도 놓치기 어려울 만 큼 인상적이다. 관람 도중 촬영도 가능하며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분위

기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추천 코스이다. 뉴욕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

는 이벤트! 더 특별하고 환상적인 쇼! 화려함이 더해진 완벽한 구성의

아름다운 전속 무용단 ‘로켓(Rockettes)’을 보면서 어린 시절 추억보다 더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벅찬 감동을 가슴 가득 안게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The Radio City Christmas Spectacular을 보지 않고서는 뉴욕의 겨울을 얘기할 수 없다.

hosting its annual Winter Village festival, from October 28th, 2017

This year will mark the 89th year since The Radio City Christmas

foot outdoor ice-skating rink located in middle of the park, even

choreographed dances that are worth capturing every second

through January 2nd, 2018. People can enjoy free 17,000 square though the rink requires people to bring their own skates or

rent the skates for $20. There are about 125 vendors registered in the event, which includes restaurants, holiday gift shops, and

pop-up stores. Experience the three different holidays including Halloween, Christmas, and New Year’s Eve throughout the

entire Winter Village season, and soak in the all the fun events happening within this park!

Location: 41 W 40th St between Sixth and Fifth Avenues Hours: Daily 8am–10pm, October 28th 2017 thru January 2nd, 2018 104

Spectacular has opened its doors to the people, with carefully of the show. The show fills each audience member with holiday spirits that can only be experienced in NYC, and everyone will leave the Radio City Hall feeling wonderstruck by the amazing

visuals of the flying Santa, graphics with extremely realistic

illusions, and beautiful Rockettes that kick up their heels in a perfectly synchronized unison form!

Location: 1260 6th Ave, New York, NY 10020 Hours: until early January 2018


The Rockefeller Center Christmas Tree lighting

NYC New Year’s Eve

장담하건대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뉴욕에

평생 잊지 못할 연말을 보내고 싶다면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타임스퀘

나은 것은 없다. 1933년 락펠러센터 빌딩 앞에 최초로 크리스마스트

되는 타임스퀘어이지만 이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2백만 명들의 사

서 가장 큰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것보다 더 리 불을 밝힌 이래로 매년 전 세계 이목을 받는 이 트리는 45,000여 개 의 LED 조명으로 빛을 밝히며 약 78피트 높이로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뉴욕을 찾을 수천 명의 관광객과 뉴요커 에게 환상적 경험을 안겨주는 장소이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사용되는

나무 역시 매년 관심을 끌고 있는데 2016년도에는 뉴욕 Oneonta에서

공수된 노르웨이 가문비나무를 사용했다. 세계적인 상징물이 된 록펠 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는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다.

어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비록 몇 블록도 안 람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안고 돌아가는 곳이라 두고두고 얘기한

다. 송구영신 무대에는 현재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가수가 나와 각종 콘서트를 하며, 호화로운 파티와 환상적인 불꽃놀이가 겨울 하늘을 수

놓는다. 각종 뉴스 채널, 네트워크 쇼 등도 그 시간만큼은 이곳을 중심 으로 생중계를 한다. 이벤트가 유명한 만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

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확보하고 싶으면 미리 가 는 걸 추천한다.

What better way to spend Christmas in NYC than surrounding yourself

If there is anywhere else in the world that one should spend

Rockefeller Center Christmas Tree is located in Midtown Manhattan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crowd around these blocks only

with the biggest Christmas tree around town? This world-wide iconic

in front of the 30 Rockefeller Plaza, and lit up with over 45,000 LED lights while standing at about 78 foot tall. It provides an overwhelming

experience to the thousands of New Yorkers and tourists who visit

this tree every year, and "Rockefeller Tree" has become a landmark! Last year, they have used a Norway spruce tree that originated from Oneonta, NY, and they will be conducting a tree lighting public ceremony this year with the same type of tree. Fun fact: The first official Rockefeller Center Christmas tree went up in 1933.

New Year’s Eve in, no place beats New York City’s Times Square! to experience this once in a lifetime opportunity that they will

talk about for rest of their lives. At every corner, there are concerts

performed by some of the biggest pop stars, open bars, lavish parties, and fireworks being shot into the winter sky -- while every moment is being captured by the biggest news channels and

network shows. As big of an event this is, people usually start gathering around very early, to secure good spots and proximity to the Times Square area.

Location: Rockefeller Center on 49th St between Fifth and Sixth Avenues.

Location: Times Square, NYC

Hours: Open to public from 7AM to 12AM, until first week of January 2018.

Hours: December 31, 2017 to January 1, 2018 105


뉴저지 배부처

배부처

Fort Lee: 정관장, Rash Place, Main Violin, 엄마손만두, KBS헤어

Palisades Park: Koko Loko Coffee, 솔사우나, 김밥클럽, Peppre Media Leonia: Coffee Park Closter: TOUS LES JOURS, Sun violin, 예당

Norwood: Camerata New Jersey, 정미용실 Paramus: Kook Hwa Bakery Cafe, 서울 BBQ Englewood Cliffs: NV Factory Teaneck: AWCA Ridgefield: H-Mart, 아리랑김치 River Vale: 혜윰 공방 Edison: H-Mart

뉴욕 배부처

Manhattan: 고려서적, 뉴욕한국문화원, 소림꽃집 Flushing NORTHERN: ‌ 금강산, 대동연회장, 뉴욕의 아침, M 스튜디오,‌ 굽지(Gupji), 뉴욕가정상담소 Bayside: SEJONG MUSIC STUDIO Long Island: H-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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