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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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빛 제 10권 10호

소금

The Light and Salt News

2020년 6월 11일 발행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8-39)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 55:2-3)


목차

2020년 6월 11일

목차 교계소식 특집-Post Corona 강단설교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목회칼럼 예배학 강좌 하나님의 구원섭리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로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나의 노래,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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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빛과 소금 뉴스 2821 S. Parker Rd. #409 Aurora, CO 80014 (303) 667-2778 E-mail: thelightandsalt@gmail.com 발행 겸 편집인: 최성애 디자인: 최수정 Facebook page나 블로그에 들어오시면 매회 발행되는 디지털 카피를 보실수 있습니다. thelightandsaltnews.blogspot.com

6월은 11일, 25일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는 매회 2,000부씩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 PICK-UP 장소】 덴버지역: H-Mart 볼더지역: H-Mart 웨스트민스터점 콜로라도스프링스: 한국마켓, 썬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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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0년 6월 11일

2020 인구조사 지원금 안내

로뎀나무 카렌다

접수 마감 2020년 6월 18일(목)

2021년도 달력 제작을 덴버에서!

단체나 사업체에게 아래와 같이 2020 인구조사 격려금을 지원하는 기회를 알린다. 아직 인구조사를 미필한 종업원이 등록하도록 권유 하여 등록을 하면 다음과 같은 지원금을 신청하게 된다. 많은 홍보와 참여를 요청한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번호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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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선교를 후원하는 로뎀나무 카렌다는 덴버에서 달력을 주문 제작하 며, 수익금의 일부를 문서선교 후원금으로 입금한다. 기독교 및 각종 비지니스 달력을 취급하며, 소량 주문도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7를 참조하면 된다. ● 주문 시기: 2020년 8월 31일까지 공장도 가격의 50% off 9월 30일까지 공장도 가격의 40% off ● 주문 마감: 2020년 9월 30일 ● 문의: (303) 667-2778 rotemtree2018@gmail.com

●접수 마감: 2020년 6월 18일(목) ●온라인등록: www.2020census.gov ●반드시 등록 후에 Confirm 번호를 W-9 form에 기록해서 아래 주소로 신청하시면 된다. ●1-3가족을 등록시키면 $100, 6가정 이상은 $200을 받게 된다. ●등록을 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 되나, 등록을 하면 1년에 $2,300의 연방세금이 지역사회에 돌아오는 가치가 있다. ● 지원금 신청 주소: Dr. Alok Sarwal / CAHEP 5250 Leetsdale Dr Suite # 110 Denver, CO 80246 ● 문의: paul.sung@cahep.org (719) 640-9990 Ruth Sung (719) 640-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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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 (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특집-Post Co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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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1일

포스트 코로라 시대에 교회, 목회자, 성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COVID-19 팬데믹으로 콜로라도 한인교회의 모습도 크게 변화되었다. 자택대피령이 해제되면서 치료제와 백신이 아직 실용화 되지 못한 상태이지만, 일상생활로 점차 복귀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상은 코로라 사태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목회자들은, 그리고 성도들은 이제 어떻게 뉴노멀 시대를 받아드리고 준비해야 할까? 본지는 코로라 사태 이후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하여 오성관 목사, 오세오 목사, 이동훈 목사, 정성욱 교수를 모시고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포스트 코로나 - 덴버지역 교회 소식” 최성애: 코로라 사태로 교회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

어가고 있으며 특별한 은혜 또한 있음을 느낍니다.

습니다. 그동안 강조되던 주일성수 현장예배가 공

오세오 목사 와 교회 활동도 이제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기점에 있으나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지금

공의 안전과 시대의 요청에 따라 온라인예배로 대

교역자회가 이번 바이러스 확산관련 제반 조치는

까지 지켜온 제반 위생 및 방역 수칙들을 준수하

체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적으로 덴버지역 교역자회

성도들의 공공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 목적으로 삼

면 건강하고 안전한 현장 예배를 회복할 시기가 멀

의 모든 연합집회도 잠정적으로 중단 되었습니다.

은 만큼 각 교회들도 이에 적극 동참하고 협력하

지 않았다고 봅니다.

현재, 비대면의 시대에 교회와 교회들은 어떻게 연

여 주셨습니다.

결되고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고 있는지요? 그리고

교역자회에서 계획하던 모든 연합집회행사는 기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요? 그동안의

그 목적을 위해 교회와 교역자들이 참 많은 애를

한을 정하지 못한 채 연기 내지는 취소한 상태이기

소식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덴버교역자회와 덴

쓰고 있으며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뿐 아

때문에 향후 하반기 실시가 가능할 지 추이를 주

버지역 교회들, 목회자들의 소식을 들려주시면 감

니라 이럴 때 일수록 교회와 예배를 지키고자 하는

의 깊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고 교역자회 자체 모임

사하겠습니다.

열심을 내는 상황이라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도 전면 중단되어 있어 교역자회 내부 소식은 이메

이 자리를 빌려 덴버의 모든 성도들에게 드립니다.

일이나 SNS 등을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와 같은 현장감을

어차피 상반기 중에 완전 정상화는 현실적으로

주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

어려운 상황이기에 교역자회 주관의 모든 연합집

를 몇 개월 드리면서 예배 현장에서 간과하며 지나

회는 어느 정도 예배와 교회 활동이 정상화되어지

쳤던 부분들을 각자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면 우리 교회들은 분명 이전보다 더 뜨거운 영성

되었을 것입니다.

으로 복귀하여 함께 예배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때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함께 협력해 나갈 것

예배는 성도의 의무이기 이전에 특권이기에 내가 오세오 목사 (덴버지역 교역자회 회장):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근거리 현장 예배가 어 려워짐으로 덴버 지역의 모든 한인 교회가 온라인

머무는 그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은혜요 축복임을 우리 성도들이 깊이 느끼셨을 것 으로 생각합니다.

예배 형식으로 성도들 각자가 가정에서 예배를 드 리는 것으로 바뀐 지 삼개월이 되었습니다.

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그동안 느슨해진 우리 의 예배를 점검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예배로의 나아감을 위한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 예배도 코로나 이전의

하며 좀 힘들고 지루하시더라도 우리 성도들이 교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자조 섞인 의견들을

회의 온라인 예배나 행사에 열심으로 참석하시어

시작할 때는 참으로 생소하고 낯선 경험이기에 성

내놓지만 이번 일은 교회 예배를 갱신하고 회복하

또 다른 은혜들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를 원하

도들이 온라인 예배에 어떻게 적응할지 염려한 바

는데 분명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것이라 개인적으

며 아무쪼록 모든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이번 어려

가 적지 않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러한

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움 가운데 건강을 잘 지키시고 모든 면에 어려움

온라인 예배 형식에도 익숙해졌고 교회마다 온라인 예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관계로 나름 정착이 되

을 당하지 않고 조속한 회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Stay-at-Home Order 조치가 완화되면서 예배


특집-Post Corona “포스트 코로나 - 신학적 고찰” 최: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Denver Seminary 수업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정성욱 교수(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네, 저희 학교는 3월 말부터 모든 수업을 온라인 으로 바꿔서 Zoom을 이용해서 수업을 하고 있습 니다. 여름학기도 계속 온라인으로 진행 중입니다. 가을학기에는 대면수업을 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모 든 수업을 다 대면수업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 절반 정도는 온라인 수업, 다른 절 반 정도는 대면수업으로 진행할 것 같습니다. 최: 갑작스러운 코로라 사태로 한순간에 모이는 교 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곧 상황 이 좋아지는 대로 예배당에 모여 주일예배를 함께 드릴 텐데, 2달이 조금 넘는 온라인예배에 익숙해 진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신학적으로 이 부 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다양한 예배의 형태가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주일예배의 대안으로 떠오르는데, 신학적으로 예배의 목적, 교회와 복음 의 본질, 주일 현장예배의 중요성과 이에 따른 대 안,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 코로나 사태는 이민교회와 한국교회의 교회론 이 한 차원 더 깊어져야 함을 각성케 해주었습니 다. 그동안 이민교회를 지배해왔던 교회론은 조직 적/외면적 교회론입니다. 조직적/외면적 교회론이란 교회의 본질을 물리적 건물로 보거나, 교회 내의 다양한 직분과 오프라인 상의 모임이나 회의를 포 함한 조직적인 차원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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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1일

회를 지배해온 조직적/외면적 교회론이 모두 비성 경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적/외면적 교회 론이 강조되면서, 교회론의 핵심인 유기적/내면적 교회론은 심각하게 약화되거나 무시되어왔습니다. 이민교회와 한국교회는 그동안 무시되고 약화되 었던 유기적/내면적 교회론을 다시 회복하고 확립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직적/외면적 교회 론의 강점을 살리면서, 그 약점을 극복해 내야 합 니다. 유기적/내면적 교회론은 교회의 본질을 어떤 건물이나 외적 형태로 보지 않습니다. 도리어 교회 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고백하 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봅니다. 그리고 그냥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라 막힘이 없는 소통과 깊은 영적 교 제가 있는 끈끈한 유기적 공동체로 봅니다. 그래서 형제와 자매를 위하여 물질을 희생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생명 공동체로 봅 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룩한 영적 가족으로 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 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 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6-18) 이런 유기적/내면적/생명적 교회론이 회복되고, 교회의 본질이 회복되어져 갈 때 조직적/외면적 교 회론의 강점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본질이 막힘이 없는 소통과 깊은 영적 교 제가 있는 끈끈한 유기적 생명 공동체임을 직시하 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오프라인 모임을 성경 적으로 강조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0 장 24-5절이 말씀하는 대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 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 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며...”

정성욱 교수 그리하자.” 물론 오프라인으로 모일 수 없는 비상사태에서 온라인 모임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온라인 모임이 교회의 본질을 지켜내는 최 선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반드시 오 프라인 모임이 재개되어야 하고, 예배당에서 모든 성도가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예배와 다음 세대를 위한 주일학교, 성도의 양육과 성숙을 위한 제자 훈련, 그리고 다양한 성경공부 모임 같은 공적 사 역을 힘 있게 회복해야 합니다. 유기적/내면적/생명 적 교회론의 이름으로 조직적/외면적 교회론의 정 당한 부분이 무시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컨대 코로나 사태는 그동안 이민교회와 한국 교회가 무시해왔던 유기적/내면적 교회론이 복권 될 수 있는 은혜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이민교회와 한국교회가 그동안 강조해왔던 오프라인의 모임을 어떻게 더 성경적으로 깊은 모 임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제 기할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 나 사태는 역설적으로 한국교회에 복된 계기가 되 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사태이후 이민교회와 한국교 회는 적어도 이 차원에서는 반드시 달라져야 합니 다. 그것은 유기적/내면적 교회론의 복권입니다. 조 직적/외형적 교회론에 매몰되어 교회의 진정한 본 질을 상실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본질이 형제자매를 위하여 물질과 목숨을 희생하 는 아가페 사랑이 지배하며, 막힘이 없는 소통과 깊은 영적 교제가 있는 끈끈한 유기적 생명 공동체 임을 깨닫고 이런 공동체를 세우는데 올인해야 합 니다. 이런 아름다운 일들이 점진적으로 성취되어 갈 때 이민교회와 한국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나라 를 일구는 빛과 소금의 공동체로 드러나게 될 것이 다. 2020년의 남은 기간동안 이 거룩한 일들이 이 뤄져 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동훈 목사

최: 목회는 항상 힘들고 어렵지만, 어떤 점이 가장

시키는 이런 일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덴버에

상하지 못했던 생활방식들, 문화들이 코로나 바이

아쉽거나 도전이 되고 있습니까?

서도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러스로 인해 우리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습

이런 일들이 실제로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이 되었

니다. 그래서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책이 한국에

이: 작년11월 말에 딸(에스더)의 결혼식을 마치고 한

습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

서 발 빠르게 발간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국에서 온 식구들을 보내고 나자 중국 우환에서 코

다. 마스크를 벗는 일이 일 년 후에나 가능할거라

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 때만해도 한

고 감염병 전문 학자들은 예견하고 있습니다. 마스

도시가 통째로 봉쇄당하고 강제적으로 자가 격리를

크가 하나의 패션이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전혀 상

한 지역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자로서 교회 안 에 불어 닥친 코로나 바이러스 한파로 인해 모든


특집-Post Corona

이동훈 목사(삼성장로교회) 교회 기능들이 얼어붙고 한 순간 발전기 동력이 차단되어 버린 것 같은 황망함을 경험하고 있습니 다.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 두 날개(동력), 즉 ‘모이 는 교회’라는 날개와 ‘흩어지는 교회’라는 날개 중에서 ‘모이는 교회’로서의 날개 한쪽이 꺾여버 렸습니다. 현장예배가 중단되고 공동체로 모여서 친 교를 나누는 ‘대면 코이노니아’가 상실 되어 버렸 습니다. 3월 마지막 주일이 저희 교회 창립 20주년 이었는데, 기념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임직식도 계획하고 있었는데 행사를 취소하고 무기한 연기해 야 했습니다. 지금 부분적으로는 현장예배를 복구 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한 ‘모이는 교회’로서의 동력을 어떻게 되살리고 회복해야 할 것인가에 대 한 큰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각 가정 단위로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흩어지는 교회’로서 역할을 어 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자 료들을 제공하고 나누는 일들이 목회적인 큰 분량 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최: 현재 삼성장로교회는 예배를 어떤 형식으로 드 리고 있습니까? 이: 3월 둘째 주일(8일)에 사역 위원회를 통해 코로 나 바이러스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예배를 제외한 모든 소그룹 모임을 중단했습니다. 바로 다음 주일 (15일)부터 온라인 예배와 현장예배를 병행하게 되 었고, 4월 첫 주(5일)부터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현 장예배를 중단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예배와 현 장예배를 다시 병행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매주 예 배 동영상을 만들어서 유투브와 교회 홈페이지에 올리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 고 안전한 현장예배를 위해 1부(오전 10시), 2부(오 전 11:30)로 나누어서 예배자들이 한 예배에 집중 되지 않도록 가정별로 예배 시간을 정해서 예배드 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발열첵크, 손 소독, 마스크 착용, 거리 두고 앉기 등, 예배를 위한 방 역 수칙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교회 가 제공하는 빵이나 떡 등을 받아서 친교 없이 바 로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최: 모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성도 간의 교제를 어떻 게 대체하고 계신지요?

2020년 6월 11일

이: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아쉽습니다. 교회 공동체 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들 중에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부문이 ‘코이노니아’인데 만날 수 없으니 답 답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닥치리라고 예상도 못했 기에 교회가 ‘비대면 친교’를 어떻게 해야 할 것 인지에 대해서도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은 그저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 입니다. 카카오톡으로 교인들 단톡방을 만들어 목 회 서신이나 공지사항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리고 교인들 일상을 서로 나누기 위해 가정에서 일 어나는 일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올리도록 유 도하고 있습니다. 최: 교회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제공하던 많 은 교육프로그램도 중단되고 있는 실정인데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이: 저희 교회도 지금은 거의 중단된 상태입니다. 주일학교는 부분적으로 ‘Zoom Meeting’을 통 해 모이고 있습니다. 현장예배가 다시 복구 되면 주 일학교 자녀들을 둔 가정들이 중심이 된 주일예배 를 신설해서 자녀들 주일학교 교육을 위한 대면 모 임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장년훈련을 위 해 여러 가지를 구상하고 연구하려고 하는데, 30 분 정도의 성경공부 특강 동영상을 만들어서 교인 들에게 제공하고, 특강내용을 중심으로 퀴즈 시험 도 보는 방안들을 시도해 보려고 해요. 또한 중단 된 제자 훈련을 위해 ‘Zoom Meeting’ 시작하 려고 준비하고 있고, 어떻게 훈련생들의 과제물을 점검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들도 모색하려고 합니다. 최: 목회자로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코로라 사태를 겪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 어떤 말씀을 주 시길 원하십니까? 이: 솔직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지, 막막합니다. 격어보지 못한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가 어떻 게 전개 될지 확정 된 것도 없습니다. 확실한 백신 과 치료제가 나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지겠지요. 생 각이 참 많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할지 말입니다. 비관적인 부분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요, 낙관적인 측면에 초점 을 맞추어야 할까요? 두 가지 다를 열어놓고 생각 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습니다. 예 배, 친교, 훈련, 선교, 봉사, 교육, 성도 관리, 목회 행정, 재정 등, 생각하고 연구하고 대비해야 할 것 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치열하고 고민하고 내 다보며 교회와 목회의 정체성들을 재정립하는 계기 로 삼으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펜더믹 상황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과 삶을 일깨우는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

니다. 1) 참으로 겸손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깨달음입니 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 앞에 하늘 을 찌르던 인간들의 콧대가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 습니다. 21세기 첨단의 과학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초일류 국가라고 떵떵거리며 과시했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코로나 바 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힘이 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돈이 있다고 자랑 할 것도 아닙니다. 2) 욕구 충족만을 위해서 사는 정욕적인 삶을 이제 는 멈춰야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는 인간 탐욕이 불러온 재앙 수준의 결과물입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 탐욕의 행동들과 발길이 멈 추자 지구가 살고 생태계가 회복되는 아이러니 한 현상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코 라나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 무한한 욕구를 한정 없이 증식 시키던 이전의 세계 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것이 다.” 먹고 싶은 것 좀 덜 먹고, 가 고 싶은 곳 있 어도 조금 절제하고, 좀 덜 벌고, 좀 덜 쓰고 살아 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 내 고 정착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내가 쓰고 남으 면 기꺼이 내 주변의 이웃들과 하나님의 창조 세계 의 회복을 위해 나눌 수 있는 ‘공적 신앙’(Public Faith)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3)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는 깨달음입니다. 역사적으로 감염병으로 인한 세 계적 펜더믹 상황은 이후 문명의 변화를 가져왔습 니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린 흑 사병, 17세기 대항해 시대를 연 천연두, 1차 세계대 전에 평화를 가져온 독감 유행이 그것입니다. 포스 트 코로나 시대도 이처럼 문명사적 전환의 기점이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인류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에 두려움을 갖 기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목회도 성경적인 본질에서 벗어나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 지도 분간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모든 것들을 성경 신학적으로 조직신학적으로 그리고 선교신학적으로 재정립하고 강화시키는 치열한 작업을 진행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금보다는 더 건강하고 한 단계 레벨 업 된 교회 생활과 목회활동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들 을 위해 성도들과 목회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 며 기도하는 가운데 이 위기들을 믿음으로 돌파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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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Post Co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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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1일

“포스트 코로나 - 빛과소금뉴스의 사명과 역할” 최: 빛과소금뉴스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교회들과 독자들의 소통의 새로운 매체로 접근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제2,3의 팬데믹이 온다고 가정한다면, 빛과 소금뉴스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독자들의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빛이며 빛들 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부터 발생 된 빛을 어두운 구석까지 밝히 비추어 하나님의 선 하신 뜻과 통치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의 ‘태양이 소금보다 더 나을 것 이 없다(Nil utilius sole et sale)’는 시구가 있을 만큼 소금과 빛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소금 은 세 가지 의미와 역할을 사용되었는데 그 첫째 는 반짝이는 흰색과 순수성을 유지하는 순결의 표 상으로 여겨졌고, 두 번째는 고기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의 역할이었으며, 세 번째는 음식의 맛을 내 는 조미료의 역할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믿는 사람 들이 이 세상의 도덕적 순결의 표상과 죄의 부패를 막는 제동 장치 그리고 삶의 맛과 활력소로서의 역 할을 감당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성관 목사(빛과소금뉴스 회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 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 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 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 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빛과 소금의 특징이 있다면 변함이 없는 것처럼 빛과 소금 뉴스도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의 모 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의 풍습, 법, 유 행도 변합니다. COVID-19 Pandemic이 오니까 우리의 삶과 사회구조가 또 달라졌습니다. 특히 신 앙인들의 예배형태와 교회활동이 달라졌습니다. 코 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가운데 Minnesota에서 흑인 George Floyd가 20불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가 신고 받은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과정에서 사망 함으로 그동안 마음에 숨겨진 인종간의 갈등이 민 낯을 드러냄으로 미국의 주요도시와 전국으로 확 산되어 기름에 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불거지고 폭 발하고 말았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성경에서 빛은 하나님 을 아는 참지식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엡 5:8,9)을 의미합니다. 대조적으로 [어두움]이 무 질서, 우울함, 부패, 절망 등의 최악의 상태를 나타 내는 반면 [빛]은 생명, 사랑, 진리 그리고 기쁨의 상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금이 죄의 부패 성에 대한 것이라면 빛은 암흑과 무지로 인한 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빛과 소금으로 비유하신 예 수님의 말씀의 이유를 보시면 [너희 빛이 사람 앞 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 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 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신자들 스스로의 빛이 아니라 ‘주 안에서의 빛’(엡 5:8)을 말하며 세상 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8:12;9:5)의 빛 을 받아 반사하는 우리 신자들의 빛을 의미합니다.

이런 혼란스럽고 급변하는 세상에 우리 그리스 도인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일찍이 우리 주님 예 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사명에 대하여 [너희 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비유 로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의 특징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도인들은 세상의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 의 아름다움을 유지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과 소금 뉴스의 시대적 사명은 세상 이 변하고 시대가 바뀐다고 해도 변함없이 우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두운 세상에 밝히고 부 패하고 오염된 세상에 순수한 맛을 내는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인척 할 필요는 없습니다. 빛이 빛을 비 추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 로 자리를 잡고 있으면 됩니다. 맛없는 세상에, 필 요한 곳에, 있어야 할 곳에, 소금으로 맛을 잃지 않 으면 됩니다. 그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교회요, 가 정이요, 세상입니다. 빛과 소금 뉴스가 교회와 독자들에게 그리고 커 뮤니티에 새로운 매체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복음 을 전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커뮤니티의 신속 한 뉴스와 복음의 기쁨의 소식을 공유하는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COVID-19 펜데믹으로 두 달 동안 교회가 현장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각교회가 온라인을

오성관 목사

통해서 예배를 하게 되는 기독교 역사에 없는 일 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두 달이 될 즈음 에 트럼프 대통령이 ‘예배하는 집이 필수다(the house of worship is essential)' 라고 선언함으 로 각 주마다 모양과 시기가 다르게 적응하고 교 회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5월31일 주일부터 캘리 포니아는 예배당을 30%(100명 이하) 오픈했고, 콜 로라도는 6월1일 주지사 Polis가 사인을 했고 6월 7일부터 교회는 50%(50명 이내)로 오픈하게 되었 습니다. 이와 같은 업데이트된 정보들이 혼동 없 이 공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코로나바 이러스 재난으로 인해 교우들이 궁금해 하는 SBA loan, 교회들에게 도움을 주는 PPP loan, 카운티 에서 주는 CARES Act Emergency Grant 그리 고 코리안 커뮤니티를 위한 인구센서스 등등의 정 보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물론 빛과 소금의 본연의 사명인 설교말씀, 성경강론, 칼럼, 성지여행, 이단과 도시성화를 위한 정보 등등을 로키마운틴에 메아 리치게 하는 것입니다. 펜데믹이 계속되고 현장예배가 위험하고 어려워 진다면 메트로 덴버 안의 한인교회들의 website 와 온라인 예배실황(site)을 교우들과 지역한인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연결해주고, 빛과 소금 신문 도 인터넷 신문으로 교회와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직접 보내주는 것이 앞으로의 방안이기도 합니다. 많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백신 없이 코로나바 이러스가 계속해서 2nd, 3rd wave로 일어날 것 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제2, 제3의 팬데믹이 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 곱째 봉인을 떼는 현상(계8-9장)이 올 것을 경고하 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덴버와 미국은 COVID-19 PANDEMIC과 경기침체 그리고 인종차 별 완화를 위한 시위(protest)와 선거운동으로 혼 란과 불확실에 대한 염려 그리고 두려움에 빠져있 습니다. 서로 인사를 피하고, 접촉은 물론 가까이 가지 못하고, 얼굴을 가리고, 함께 어울리지도, 음 식을 나누는 것도, 예배당에 모여 예배하는 것조 차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인종 간에 분리와 대립으 로 자신을 주장하고 남에 대하여 손가락질을 하 고 있습니다. 성경과 신앙인의 삶에 반대로 살아가 고 있습니다. 이런 시국에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분 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우리 모두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진 심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하나님 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사랑하고 복음을 나 누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합시다.


강단 설교

2020년 6월 11일

사도신경강해-‘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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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사오며’

<히브리서 11:3>

윤우식 목사

예닮장로교회

오늘부터 사도신경 강해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도신경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 러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래가 불 분명한 것을 사도들에 의해서 전승된 것 이라고 생각하고 따르는 것은 문제가 있 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의 유래가 불분명하다 고 해도 분명한 것은 사도신경의 내용 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서 아주 중요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신앙고백’으 로 삼는 것에 문제가 없습니다. 예배 때 에 사도신경을 낭송하는 것도 결코 문 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 나 내용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 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오면서 사람 들에 의해서 세워진 형식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예배에 도입을 하는 것은 내용 이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없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신경 신앙 고백 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도신 경의 내용의 의미를 바로 알고 하는 것 이 중요합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모르 고 줄줄 외우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의 미한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주 동 안 사도신경의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려 고 합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믿음의 고백입 니다. 즉, 믿음이 그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고 백’들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 연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 이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하려 고 한다면 성경 전부를 언급해야 할 정 도로 방대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 중에 오늘 본문의 ‘믿음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에무나(‫;הנומא‬Emunah)’입니다. 하박국 2장4절 말씀을 보면,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 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 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 다’고 할 때 ‘믿음’이 바로 ‘에무나 (‫;הנומא‬Emunah)’입니다. 이 단어의 뜻 은 ‘확고함’, ‘신뢰’, ‘진리’등의 의 미입니다. 우리가 ‘확고함’, ‘신뢰’, ‘ 진리’를 ‘믿음’으로 말하지만 이 단 어를 완전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분 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영 원히 확고하고, 영원한 진리이시기 때 문입니다. 보통 콘크리트 건물은 100년 간답니 다. 그래서 ‘이 건물은 적어도 100년은 끄떡없다’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속이 됩니까? 어떤 건물은 지어진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금이 가고,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전한 ‘확고함’, ‘신뢰’가 되지 못합니다. 이 처럼 우리가 인간의 삶 속에 ‘믿음’이 라는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아 닙니다. 물론 절대로 변하지 않기를 바 라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 할 때에 하나님은 완전한 확고함, 신뢰 이시며, 진리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라는 ‘에무나 (‫;הנומא‬Emunah)’가 사람에게 사용될 때에는 이런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향 한 강한 신뢰를 의미합니다.

‘내가 형통할 것을 믿습니다.’ 는 표현에서 내가 믿는 것이 ‘나을 것’, ‘형통할 것’이 아니라 낫는 것과 형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병이 나을 것을 믿었는데 병이 낫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가 믿었던 대 상인 ‘병나음’이 나에게 약속을 어긴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이 계시니, 안계시니 하는 불평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면, 영원히 신실하시고, 존재하시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전혀 실망할 수가 없습니 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이 사라져도, 물질이 사라져도, 내 삶이 곤고해도 변하지 않 으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겁니다. 또한 교회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거나 교회의 교인들을 믿음의 대상으로 포함 하면 이것 역시도 잘못된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떻게 교회가’, ‘어떻게 집사가, 장로가, 목사가’이런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교회만 떠나면 되는데 믿음을 포기해 버립니다. 믿음이 포기가 되고, 버려지는 것은 그 믿음의 불완전한 피조물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라는 단어 가운데 두 가지가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 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로 시작합니다. ‘나는... 믿습니다’입니다. 즉, 믿는 것 은 ‘나’입니다. 이것은 믿음은 철저한 ‘나’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으시는 남편들이 가

첫 번째는 ‘믿음’은 오직 하나 님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나을 것을 믿습니다.’

두 번째로 ‘믿음’은 ‘내가 고백 하는 것’입니다.

끔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마누라가 믿음이 좋으니까 나 중에 마누라 발 붙잡고 천국 가면 됩 니다.’ 자신은 교회는 다니지만 믿음이 없어 도 아내가 믿음 생활 잘하니까 괜찮다.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잘 아시죠? 우리 교회가 믿음으로 뜨거우니까 그 교회에 속한 나 자신도 믿음이 뜨거울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있 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나의 고 백’입니다. ‘믿음’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분위 기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기도를 뜨 겁게 하는 기도회에 참석해 있다고 해 도 내가 고백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 면 안 되는 것이고, 아무리 냉랭한 교 회에 속한 성도라 해도 내가 하나님 앞 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되는 겁니다. 자꾸 분위기가 곧 ‘나’라는 생각 을 합니다. 때때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부심을 가 집니다. 한국의 기독교 120여 년 동안 새벽기도, 뜨거운 기도 생활등 말입니 다. 그런데 아무리 한국 기독교에 자부 심이 있어도 내가 문제인 겁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고, 내가 뜨겁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새벽기도를 나오지 않는 사람이 한 국 교회의 새벽기도 신앙에 대해서 자 부심을 가진다는 것이 뭔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믿는다’는 고백 속에 서 ‘믿음’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


강단 설교

2020년 6월 11일

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 니니라” 여기에 ‘믿음’은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다’고 말씀합 니다. 즉, 천지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 심을 알게 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다면 천지를 지으 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게 되 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믿음으로’에 해당 되는 단어 ‘피스테이(πιστει;fistei)’ 는 ‘믿음’이라는 ‘피스티스 (πιστιs;fistis)’의 여격 형태입니다. 즉, ‘믿음이라는 도구로’, ‘믿음이라 는 수단으로’라는 뜻입니다. 천지를 지 으신 분, 천지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도구와 수단으로 가능합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를 알아본다는 말씀이냐면 창조주 하나님 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 이 있다면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야고보서 1장6절~8절 말씀을 보면,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 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 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 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 본문에서 ‘두 마음’은 ‘두 번’ 이라는 뜻의 헬라어 ‘디스(διs;dis)’ 에 ‘마음’이라는 단어 ‘프쉬케 (ψυχη;Pshike)’가 합해져서 ‘망설이 다, 의심하다’는 뜻입니다. 즉, ‘두 마 음’은 ‘믿음’의 원 뜻과는 반대가 되 는 뜻입니다. ‘믿음’은 변하지 않고, 일 관성이 있고, 확고한 것인데 반해서 ‘ 두 마음’은 그 반대의 의미입니다. 그러 기 때문에 ‘두 마음’을 품는 것은 ‘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두 마음을 품는 것은 없습 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그것 이 참된 믿음입니다. 한 남편과 아내. 서 로는 오직 서로만을 사랑한다는 신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 른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 ‘믿음’ 이 깨어진 것이고, 그것은 ‘믿음’이 아 닙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다 른 것을 신처럼 떠받들고, 신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이 될 수 없는 겁니다. 믿는 대상이 하나님 외에 또 다른 것 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출발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 입니까? 내가 결단하고 각오한다고 생기 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부터 열심 히 믿어 봐야지, 내가 하나님을 좀 믿 어 봐야겠다. 이렇게 마음먹는다고 믿음 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 에 내재하실 때 성령으로 인해서 생기 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 애 매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믿음이 생기 기 위해서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 나님 편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 인 간의 편에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 니다. ‘나는 믿음이 없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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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음이 뜨겁지 않다’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쓸 때에 우리의 마음에 어떤 생 각이 듭니까? 내게 믿음이 있어야 하는 데,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내 가 좀 뜨거워서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믿 어야 하는데. 이런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된 것에는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깨 닫게 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더 열정 적인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속에 믿음을 주셔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하는 것 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 람은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할 수 없습 니다. 다시 나는 누구를 믿는가? 나의 믿음은 무엇을 향한 믿음인가를 돌아보 고, 오직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만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 5:7)

제공: 신민식 신정원 성도

제공: 최정애 집사(참빛교회)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정에 섰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시 135:1-3)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예닮장로교회 예닮장로교회 예닮장로교회

Y edalm Y edalm Presbyterian Presbyterian Church Church Yedalm Presbyterian Church 교사 교사 교사

금요예배

10:15 10:15 10:15

6:30PM 6 6 6

담임목사: 담임목사: 윤우식 윤우식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담임목사: 윤우식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303) (303) 364-1621 364-1621 11000 E Yale Ave. #35, Aurora, CO 80014 (303) 364-1621


내 주의 은혜 강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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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 <레위기 3:1-17>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주제는 창조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 은 사람을 포함하여 온 세상을 만드신 그 분의 창조의 사역으로 말씀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는 구원을 말씀하 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바로 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허락하심으 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 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또는 예배를 드릴 것을 명하십니다. 즉, 창 세기의 창조, 출애굽기의 구원에 이어서 레위기는 그분을 예배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 보냄을 받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 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신 크 고 작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로 하나님을 예배하면 그분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사용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인생의 대표적인 삶이 예배입니다. 그 예배의 제도나 방식 또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 레위기입니다. 레 위기는 우리에게 5가지 제사를 소개합니 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그리고 속 건제입니다. 그 첫 번째가 번제입니다.

1.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 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 이니라." 선포합니다. `이 백성'은 누구입니 까?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백성들입니 다. 여러분과 저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만 드셨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따라서 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창조된 존재이다.” 사냥개의 종류로 그레이하운드라고 불리 는 개가 있습니다. 시간당 45miles을 달리 는 경주견입니다. 경주장에서 그레이하운 드가 달리는데 그들 앞에서 토끼가 도망 을 가고 그 개들이 쫓아갑니다. 그레이하 운드가 엄청나게 빨리 달리면서 토끼를 잡 으려고 하는데 그 토끼가 진짜 입니까? 가 짜입니까? 가짜입니다. 그들의 앞에서 기 계가 돌리는 가짜 토끼를 쫓아갑니다. 개 들이 달리는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는데 나중에 보면 가짜 목표라는 것입니다. 물 론 개들이 모르죠.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우리 인간에게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달리는 인 생의 방향이 있고 최선을 다해서 달리고 있는데 그 목적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주신 목적과 상관이 없다면 가짜 토끼를 잡기 위해서 달리는 그레이하운드 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을 만드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 의 성공이나 부, 지식, 또는 행복이 아니라, 그분을 예배하고 찬양하라는 목적으로 이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회막(the tent of meeting)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를 여러 가지로 설명 합니다. 장막, 성막, 증거막 등으로 그 이 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본문에 소개되는 회막입니다. 네, 물론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 크고 위대한 분이시라 세상 의 그 어떤 공간도 그분을 모시기에 충분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은 어느 곳 이든 살아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친히 이 땅 의 작은 한 공간에 자신이 거할 장소를 정하고 스스로를 제한하셨습니다. 그곳이 광야시대에서 다윗 왕까지 성막이며, 솔로 몬 시대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 대는 성도의 모임 또는 성령님을 모신 우 리 몸입니다. 출애굽기 25:8은 말씀합니다. "...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 하여 짓되 ..." 여기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소에서 거 한다는 원어는 `타버나클' 이란 의미를 가 진 영어는 `to visit' 이나 `to stay' 가 아 닙니다. NIV 성경은 `to dwell' 로 그리고 메시지 번역은 `to live' 로 말씀합니다. 회 막은 하나님이 방문하시거나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분이 사시는 곳, 거룩하고 영광 스러운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장소입니 다. 회막은 하나님이 사시는 곳으로 그 목 적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구별된 거룩한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간 예 배를 드리는 이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라고 해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첫 출발이 만남입니다. 그것이 회막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입니다. 만남을 통해서는 서로를 알고 이해를 합니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가까 워지고 관계가 깊어집니다. 만남이 없다면 사랑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난 3개월 동 안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예배당에서 드리 지 못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사모 하며 기다리셨습니까? 예배는 감동적인 음 악이 아닙니다. 유창한 설교나 유익한 성 경공부가 아닙니다. 재미있는 친교나 교제 가 예배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습니까?

2. 자원하는 예배자가 하나님을 기쁘 시게 합니다. 가난한 소년으로 부잣집에서 허드레 일 을 하면서 먹고 사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 다. 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오늘 정원을 가 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정원을 돌보 는데, 죽은 나무들을 조각하기 시작하였 습니다. 그가 손을 본 나무들이 아름다 운 예술품으로 변하였습니다. 시간이 지 날수록 아름답게 변하는 정원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너는 정원을 가꾸면 되는데 왜 조각을 하느냐? 그렇다고 네가 돈을 더 버는 것 도 아닌데...” 그 주인의 말에 소년은 대 답합니다. "제가 주인님의 정원에 나무를 조각하며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제가 자원해서 기 쁘게 하는 저의 일입니다.” 훗날 이 아이가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 가 됩니다. 이 짧은 이야기가 주는 교훈 이 무엇입니까? 같은 일을 해도 결과가 차이가 나는데 중요한 것이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자발 성입니다. 성도의 삶 중에 이와 같은 일이 있습 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 오는 번제입니다.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 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

최요한 목사

섬김의 교회 담임

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 시도록 드릴지니라." 영어 성경은 "If the offering is a burnt offering...”로 `If' 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번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강제나 또는 억 지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번제를 드리려면... 이라고 말씀하 면서 이 예배가 자원하는 제사라는 것입 니다. 또 10절입니다.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거든... ", 1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 물이 새의 번제이면..." 즉 번제의 제물이 다른데 한 가지 공통점으로 `만일' 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 임을 말씀합니다. 자원하는 예배자로 완전한 모델링을 보 이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0:18절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 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 으니 ... "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죽인 것이 아닙니 다. 빌라도의 재판의 결과가 아닙니다. 또 는 로마병정의 못질이나 창칼이 아니었 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를 대신하여 자원하신 예수님의 죽음이었 습니다.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가셔서 희 생제물이 되신 주님이셨습니다. 할렐루야! 율법과 은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율 법은 의무입니다. 강제성이 있어서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지키는 법입니다. 직분자이 기에 체면이나 형식으로 감당합니다. 그래 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감사가 사라 집니다. 그럴수록 봉사가 억지로 하는 일 이라 힘들고 부담이 되죠. 십일조가 아니 라 나의 일생 전체를 바쳐도 기쁨이나 감 격이 없습니다. 이것이 율법인 제사의 삶 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반대입니다. 자원하 는 자유를 누립니다. 맡기신 일이 특권입 니다. 섬김이 기쁨의 이유가 됩니다. 율법 적으로 사역을 하면 언제나 최소를 드립


내 주의 은혜 강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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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러나 복음의 은혜를 깨닫고 섬기

WEC 선교 단체의 창시자인 씨 티 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만약에 기독교가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거룩한 산

면 최고를 드려도 감사가 넘칩니다. 오늘

터디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영국 출신

중요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제물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

내가 드리는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나

으로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큰 부

만약에 기독교가 당신의 삶 속에 생명과

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

의 사역에 자원하는 기쁨이 있습니까? 드

자였습니다. 많은 재산의 상속인이었습니

같은 것이 되지 않는다면 전혀 가치가 없

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

림에 감사가 있습니까?

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최고의 크리켓 선

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독교

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

수로 활약을 하였고 영국에서 가장 우수

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복음이 나

적 예배니라."

3. 참된 예배자는 기꺼이 희생을 치 릅니다.

한 선수로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우수

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은혜

한 성적으로 의학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

가 나의 삶에 생명이며 능력입니까?

번제의 순서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런 그가 중국 선교사로 헌신을 합니다. 그

흠이 없는 소, 양, 염소 또는 새를 제사장

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

국가 또는 시에 지불하는 세금은 가능

가 아닙니다. 7일중에 하루가 아닌 대부

에게 가지고 나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

았습니다. 그렇게 잘나고 똑똑한 의사이며

한 조금 그것도 늦게 내려고 최선을 다합

분의 시간이 사용되는 다른 6일 동안 우

로 이 제사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물이기

더구나 부자 아버지의 상속자인데 선교사

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전문 서적이나 인

리의 삶이 어떻습니까? 월요일이 시작되면

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선택이 사람

가 되겠다니…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막

터넷을 찾습니다. 최선을 다해 적게 내려

서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모두가

지 못하였습니다. 중국에서 10년 이상을

고 머리를 쓰고 재투자를 하고 회계사를

오늘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후에 하

비싼 소를 예물로 드릴 것을 명하지 않습

사역을 합니다.

만납니다. 그리고 받을 것은 최선을 다해

나님의 사랑으로 가족을 섬길 수 있습니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까? 월요일 아침에 집 앞에서 만나는 이

니다. 10절에 상대적으로 가치가 적은 양

주일 예배나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 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이나 염소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은 그가 50살이 되었을 때에 아

그 반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웃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먼저 “Good

안 되면 14절에 비둘기를 드리기도 합니

프리카로 부르십니다. 그때 그는 나이도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신앙

morning” 인사를 하십시오. 화요일에

다. 경제적인 여유에 따라 부유한 자는 소

들고 몸도 약하였습니다. 병도 있었습니

은 취미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여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텔레마케팅이 올

를 또는 양을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새를

다. 그가 기도 중에 하나님께 묻습니다.

가활동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용서와

때에 조금 오래 그의 말을 들어 주십시

재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형편

“하나님, 왜 사람들이 아프리카로 안 갑

구원을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진

오. 수요일, 그로서리 가게에서 코로나 바

에 따라 준비한 제물을 제사장 앞에 가지

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심으로 믿는다면 이제 우리의 남은 삶은

이러스 전염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쓰지

고 나옵니다.

가면 되잖아.” "저는 이제 나이도 있고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않거나 사회적 거리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제사장은 그 제물을 목을 따 죽

몸도 약합니다.” “네가 의사잖아.” 가

입니다. 흘려 나오는 피를 받아 제단 앞에

족들을 포함해도 친구들이 그에게 아프리

뿌립니다. 죽은 제물의 각을 뜹니다. 조각

짜증을 내지 말고 눈웃음을 지어 보십시 오. 목요일 오전에 방문한 병원에서 성의

카로 가지 말라고 막는데 또 다시 헌신을

4. 우리의 삶을 영원한 재물로 하나님 께 드리십시오.

입니다. 그 짐승을 조각으로 나눕니다. 살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재산

우리들이 읽은 레위기 1장에서 나오지

오늘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

을 바릅니다. 내장이나 다리는 씻고 난 후

을 학위 그리고 직업을 포기합니다. 그의

않지만 번제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합니

다" 라고 감사의 말을 전하십시오. 금요

에 제사장은 그 모든 것을 불로 태웁니다.

남은 삶 전부를 드립니다. 그가 한 말 중

다. 그 한 예로 레위기 6장입니다.

일 저녁에 오랜 만에 외식을 하는데 서버

불의 제사입니다.

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만일 예

"...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

가 불친절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평상시

9, 13,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번제는

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나

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

보다 더 많은 팁을 남기고 작은 예수가 되

화재라고 부릅니다. 불로 다 태워 버리는

를 위해 죽으신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

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십시오. 토요일에 주일을 기다리면서 기도

제사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습니다. 아무

를 위해 드리는 어떤 희생도 크다고 할

(레 6:8) 번제를 계속해서 드릴 수 있도록

와 말씀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를 준

것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불로 태웁니

수 없다.”

불을 살려 두는 것입니다. 영원한 제사로

비하며 복장이나 예물 준비를 정성껏 하

멈추지 않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를

십시오. 우리의 말이 세상이 듣는 설교입

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께 드

없는 치료를 받았지만 그곳을 나오면서 "

려진 제물은 철저히 희생됩니다. 모든 것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묵상하던 타드 스틸스는 "예배는 믿는 자

니다. 우리의 행동이 불신자가 읽는 성경

을 다 드리는 철저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참으로 나의 구원자이시며 주님

에게 하루 24시간, 주 7일의 삶의 양식이

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이 하나님이 받

이것이 번제입니다.

이십니까?

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으시는 예배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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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24)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여호와의 궤를 큰 돌 위에 두매 <사무엘상 6:17-18> 사무엘서를 기록한 저자는 마지막 사사 요 선지자인 사무엘을 본격적으로 등장 시키지 전에, 그리고 왕을 세워 왕정 시대 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법궤에 얽힌 이야기를 길게(4-6장까지) 기록하고 있습 니다. 오늘 본문은 이 법궤와 관련한 마 지막 에피소드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 서 빼앗긴 하나님의 법궤는 블레셋 지역 을 전전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이 스라엘 땅인 벧세메스로 돌아옵니다. 그 야말로 하나님의 법궤의 귀환입니다. 이 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법궤는 지금 어디 에 있습니까?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 께 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 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 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 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 라” (삼상6:14-15) 하나님의 법궤는 지금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위에 놓여 있습니 다. 오늘 본문 18절에서도 이 사실을 언 급합니다.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 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 들이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 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 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 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 더라”(삼상6:18) 여기서 ‘큰 돌’은 히브리어로 ‘에벤 께돌라’입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 돌 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 까지 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귀 환한 법궤가 안치 되었던 돌을 특별히 언 급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 장면을 기록하는 저자의 의도를 한 번 생 각해 보았습니다. 저자에게 있어서 법궤 의 귀환은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사건입 니다.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사건입니다. 저자가 이 사무엘서를 기록할 때는 이미 하나님의 법궤는 그곳에 없습니다. 법궤 가 놓여 있던 큰 돌 만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돌만이 남아 있습 니다. 그 돌을 지금 저자는 떠 올리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이 돌은 일종의 ‘기념 돌’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기념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법궤 의 귀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 로 살펴 볼 7장에서도 또 하나의 기념 돌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 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 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7:12) ‘에벤 에셀’입니다.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 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처음 으로 블레셋과 싸워 이긴 후에 세운 기 념 돌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법궤가 놓였던 이 큰 돌을 기억하며 무엇을 기념하고자 했을 까요? 첫째, 승리의 귀환을 기념하는 것입니 다. 이 큰 돌 위에는 하나님의 법궤만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이 돌 위 에 법궤와 함께 놓았습니까? 15절을 다 시 보겠습니다.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 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 리니라”(삼상6:15) ‘금 보물 담긴 상자’ 를 수레에서 내려다가 법궤와 함께 튼 돌 위에 두었습니다. 상자에 담긴 이 ‘금 보 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7,18절에 서 이것들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언급하 고 있습니다. 먼저 그 상자에 담긴 ‘금 독종’을 언급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여 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 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삼상6:17) 여기서 이 금 보물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속건제물’ 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블 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돌려보내 면서 속건제물을 함께 드렸습니까? 이 속 건제물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입

니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 다. 거룩한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취급 했다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탈취한 하나님의 법궤 로 인하여 얼마나 의기양양해 했습니까?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긴 승리의 트로피라고 생각했습니 다. 그러나 승리에 취해 있는 것도 잠시, 그 법궤로 인하여 자신들의 땅에 무서운 독종 재앙이 임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들이 하나님을 이겼다고 생각했 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싸워서는 이 겼지만 이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 입니다. 누구와의 전쟁입니까? 그들이 부 르는 ‘이스라엘의 신’인 만군의 여호와 와의 한판 승부입니다. 블레셋 땅 안에서 벌어진 이 하나님과의 전쟁에서 최종적이 승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그래 당신이 이 겼습니다.’라는 자신들의 패배의 표시로 하나님이 내리신 독종의 형상을 금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법궤와 함께 보낸 것입 니다. 그 금 독종은 모두 다섯 개입니다. 블레셋 다섯 족속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블레셋 전체 족속들이 하나님 앞에 항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금 쥐’에 대한 언급 입니다.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 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 이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 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 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 라”(삼상6:18) 이 금 쥐는 블레셋 사람들 이 속한 모든 성읍의 수대로 놓여 있습 니다. 사실 앞에서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은 금 쥐 형상 다섯 개를 만들 어 보내라고 했는데 숫자가 늘어난 이유 는 아마도 독종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고 통당하는 성읍들이 그 재앙으로부터 벗 어나기 위해 서로 서로 앞을 다투어 금 쥐를 만들어 가져왔을 것입니다. 이스라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엘 모든 성읍이 하나님 앞에 항복한 것 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치욕적인 패배 를 승리로 되돌리신 하나님의 승리의 귀 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둘째, 왕의 귀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블레셋에 빼앗긴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 라엘 땅으로 돌아온 것은 이스라엘을 떠 나셨던 하나님이 친히 돌아오신 것입니 다. 법궤를 빼앗기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 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이가봇)고 했습 니다.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하나님은 지 금 한 농부의 밭에 있는 큰 돌 위에 앉 아 계십니다. 자기 백성들이 훼손한 자신 의 영광을 하나님 스스로가 되찾아 오 셔서 영광의 왕으로 귀환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이 사실을 잊어버릴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스라엘의 왕 으로 돌아오셔서 앉아계신 그 ‘큰 돌’ 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가 그 분을 왕으로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상관없이 스스로 왕이십니다. 만왕의 왕 이십니다. 성경이 법궤 이야기를 통해 던 지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사기 기자는 사사기 마지막 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 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이 말 씀대로 정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습니 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세운 ‘사람으로 서의 왕’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 성들의 왕으로서 여전히 계셨습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를 뿐이고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할 따름 입니다. 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며 살기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 더라’라는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왕이 신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를 다스리십니다. 이 말씀의 다스림을 거 부할 때 우리는 내 생각대로 살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사무엘 기자 는 어떤 시대라고 말합니까? “아이 사무 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 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 지 않았더라”(삼상3:1) 말씀이 희귀한 시 대라고 말합니다. 사사시대는 왕이신 하나님을 왕으로 대 접하지 않고 무시하고 사는 시대였습니 다. 하나님이 왕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또 다른 왕을 요구했 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 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 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 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

2020년 6월 11일

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6-7) 하나님께서 다른 왕을 요구하는 자기 백성들을 향한 자신의 섭섭한 마음을 사무엘에게 이렇 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 리는 사울이라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역사 앞에 등장하기 전에, 성경에서 하나 님의 법궤 이야기를 이렇게도 길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해 서 왕을 세워 주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본 래의 마음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내 가 너희들의 왕이다!”라는 것입니다. 여 러분,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사울이 왕이 고 다윗이 왕이어도 그 왕들 위에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셔야 하는 분이 우리 하나 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블레셋 땅 에서 스스로 승리를 쟁취하시고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귀환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마무리하면서 몇 가지 교 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나는 실패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나는 패배해도 하나님은 패 배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은 실패했습 니다.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 스로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 내 힘과 내 지혜를 믿고 나가면 우리는 백전백패 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자이신 하나 님만을 의지하고 나가면 백전백승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이 시간 우 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 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 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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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노라”(요16:33) 세상 이기신 우리 주님 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사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님의 승리가 여러분들의 승리가 되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을 왕으로 대접하 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 가 왕 되려고 하지 하십시오. 내가 왕 되 려고 하면 할수록 내 인생은 사울 왕과 같은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왕 되기 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왕 삼고 그 하나님 의 말씀의 통치를 철저히 받으며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은 다윗과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 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 을 송축하리이다”(시145:1) 이 고백이 바 로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싫어하는 교회가 되는 법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할 때,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의 반응은...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는 교회... 부활하신 주님을 말하지 않으면서... 서로 통용하고 나눠주고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는 능력이 없습니다. 세상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세상이 좋아하고 칭찬해 줄 것입니다.

그들이 싫어했던 것은... 제자들이 성전에 드나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통용하고 나눠주고 모이기에 힘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칭찬에 목말라... 사회참여라든지 봉사라든지 훈련에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이 싫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진짜 싫어했던 것은... 제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할 때 세상은 우리를, 교회를 싫어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두려워하는 교회는 "말하는 교회”입니다. 말하는 교회란 증인으로써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서 말하는 교회입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http://cafe.daum.net/cgsbong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목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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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1일

효과적인 말씀과 기도 사람의 몸속에 있는 핏줄의 길이는 100,000 마일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그 길이는 지구 둘레의 4배가 되는 길이인 데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사람의 세포의 수는 얼마 나 되는지 찾아보았다. 사람의 세포의 수 는 30,000,000,000,000 이나 된다고 한 다. 그래서 세포 한 개에 해당이 되는 핏 줄의 길이는 어떠한지 계산하여 보니, 세 포 한 개당 0.0000053 mm 이었다. 세포 한 개의 길이는 0.000192 mm 이다. 그러 니 세포 한 개에 연결된 핏줄은 단지 그 세포 길이의 3%에 불과하다. 세포 한 개 에 연결된 핏줄이 1배도 되지 않는 것인 데, 너무나 적은 비율이다. 세포 한 개의 길이와 세포 한 개가 사방팔방으로 연결 된 핏줄의 길이가 같다면, 핏줄의 길이는 3,600,000 마일이어야 한다. 아무튼 핏줄 과 신경과 여러 관들의 연결됨과 구조가 복잡한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 시고 그 생물들이 보존하게 하시는 하나 님의 은혜와 자비 또한 무한하지 않는가? 천국의 생물들과 장로들과 천사들과 같 이 그렇게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 경배할 뿐만 아니라 경외하고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고 그의 진리 말씀을 지키고 그의 뜻을 이루기를 애를 써야 할 때이다. 그리하면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만 아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일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혹은 복음을 위

하여 일하는 자요 그리하여서 천국에 복 과 상급과 존귀와 권세와 영광을 쌓게 되 어서 죽는 것이 유익인 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과 신앙의 성공자들도 그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적과 표적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 르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이란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이 주장하셨다” “하나 님과 함께 하여서 승리하였다” “하나님 과 씨름을 하였다” 이다. 그와 같이 하 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그토록 사 랑하시고 그들의 신실하신 주인이었음에 도 불구하고, 그들은 목마름과 배고픔과 더위와 추위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불 평과 원망을 하였고 차라리 애굽으로 돌 아가려고 하여서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과 일하심을 가리었으며 모세를 죽이려고 하 기까지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생수와 만 나와 메추라기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여 주었고 그들의 옷과 신발이 닳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셨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서 싫어하시고 마음으로 미워하셔서 금 한 우상과 간음과 그 외의 죄와 악을 때 때로 행하였다. 그리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하셨다. 그들 중에는 이방 사람들 이 섬기는 바알 브올이란 우상과 신을 섬 기고 모압 여인과 간음이나 행음을 하였 고 결혼을 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데리고

예배 안내

온 자도 있었다. 그러므로 염병이 발생하 여 사람들이 죽었고 모압여인과 그녀와 결혼한 이스라엘 사람이 죽임을 당하자 염병은 멈추었다. 그 때에 2만 4천 명이나 죽었다.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였건만 그 들은 곧 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서 또 다시 바알 브올을 섬기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러한 사 실을 상기시켜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지식과 지혜가 있는 백성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가 까이하여 주시고 그의 신이 임하며 하나 님의 말씀에 대하여 정의와 의로울 때에 큰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고 가르쳐 주 셨다. 개인이나 민족들이나 나라들도 하 나님으로 생존하는 사실과 하나님의 능 력과 심판과 사랑과 신실하심과 선하심 과 자비에 합당하여야 과정과 결과가 잘 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경 외하여서 겸손할 때에, 그의 사랑 신실 함 긍휼 은혜 응답 보호 건짐 도움 구 원 존귀함 등을 얻을 수가 있다. 감사하 면서 순종할 때에, 도움 능력 죄사함 치 유 건짐 구원 사랑과 자비를 받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일과 타인에게 선하게 처 신할 때에, 그의 사랑 신실하심 보호 장 수 응답 함께하심 구원 복 칭찬 존귀 영 광을 받을 수가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서 따를 때에, 보호 장수 응답 함께 하심 구원 복 등을 얻을 수가 있다.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100세 된 남 노인과 121세 된 여 노 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화목하고 선하고 유익을 끼치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 을 보았다. 그들은 늘 선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비난 불평 원망하고 악한 말 들을 매우 싫어하고 사람들에게 그런 말 들을 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마음이 편하 도록 선도를 하며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권한다. 우리도 그리하여야 좋은 가지나 나무가 되며 좋은 과실이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선하고 의롭고 영원한 목적을 가진 사 람들은, 신앙의 경주와 영적싸움을 하기를 다행일 뿐만 아니라 영혼이 살아 있는 증 거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신앙의 경주는 운동 경기에 임한 선수들과 같이 규정을 지키면서 사력을 다하여야 하고, 주의 군사는 전쟁터에서 전투를 하는 군 인과 같이 죽을 때까지 정의롭게 싸워야 한다. 주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서 대화와 동행과 동업을 하고 사람들과 도 그리하는 것이 효과적인 말씀과 기도 를 만들고 행복을 천지에 끼치면서 현재 와 장래 그리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야 예수님과 더불 어 왕노릇을 하게 되고 천국 영생복락상 급 존귀영광권세를 얻기에 합당한 것이다.


예배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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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1일

(제 62회)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등도 모두 공예배인가요?” 질문 “한국교회는 주중에도 몇 번씩 예 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많이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꼭 이렇게 자 주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요?” “수요예배는 한국교회에만 있나 요? 만약 다른 나라에는 없다면, 어 떻게 한국교회만 드리게 되었나요? 한국교회의 수요기도회와 금요기도 회는 참 흥미로운 연구 주제입니다. 초 대교회가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 또 는 기도회를 위해 모였다는 기록은 없 습니다. 다만, 기원후 100년경에 기록 된 『디다케』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 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금식이 위선자들과 같아서 는 안 됩니다. 그들은 둘째 날과 다섯 째 날에 금식하나, 여러분은 넷째 날과 여섯째 날에 금식하십시오. 누가복음 18:12을 보면, 당시의 유 대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는데, 그 날짜가 바로 둘째 날(월요일)과 다 섯째 날(목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 독교 공동체는 유대교와 차별화를 위 해 넷째 날(수요일)과 여섯째 날(금요 일)에 금식을 했습니다. 왜 둘째 날(월 요일)과 다섯째 날(목요일)이 아닌 넷째 날(수요일)과 여섯째 날(금요일)에 금식 을 했을까요? 금요일은 예수님께서 십 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이며, 수요일

은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 를 팔 생각을 집어넣은 날이기 때문입 니다. 그러니까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수난과 관련된 수요일과 금요일 에 금식함으로써 개인적인 경건을 유지 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특별히 수요일과 금요 일에 집회를 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19세기 미국 감리교회 에서 주중에 저녁기도회를 가진 것으 로 보입니다. 당시 감리교회들은 주일 오전에는 좀 더 형식을 갖춘, 그러면서 도 성경을 많이 읽는 예배를 드렸고, 주중의 저녁기도회는 찬송, 간증, 기도 등에 더 많이 치중하는 식으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접한 한국교회가 수요일에 기도회를 하게 된 것은 이러한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교회가 수요기도 회를 시작한 것은 1891년이라는 기록 이 있는데, 이는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 펜젤러가 우리나라에 발을 디딘 지 불 과 7년 만의 일입니다. 당시의 수요기 도모임은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그저 성경을 봉독하고, 기도하고, 함께 찬 양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처음 이 모 임이 ‘수요기도회’로 불리게 된 이유 는 이 모임에서 기도가 강조되었기 때 문입니다. 금요기도회도 예배의 역사에서 찾아 보기 힘든 한국교회의 독창적인 집회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시 99:9)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처음 부터 금요기도회를 한 것은 아니었습 니다. 그런데 1970년대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금요철야기도회를 시작한 뒤로 다른 교회들이 이를 따라 하기 시작했 고, 이것이 한국교회에 하나의 집회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굳이 수요기도회와 금요기도회를 기 독교의 전통으로 연결시켜 보자면, 이 것들 역시 성무일과의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종교개혁자 츠 빙글리는 취리히에서 매일 성무일과를 시작했고, 마르틴 부처도 스트라스부르 에서 교구교회의 성무일과를 발달시켰 습니다. 마르틴 루터 역시 마찬가지였 습니다. 그는 매일 성무일과를 회복할 것을 주문하며 성경봉독, 시편, 성구 송, 찬송, 주기도문, 짧은 기도, 신앙고 백, 그리고 설교로 이어지는 매일기도 회의 형식을 제안했습니다. 19세기 미 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해 줄 당시에는 미국교회들이 매일 성무일 과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 게도 우리 한국교회가 성무일과를 배 울 기회가 없었습니다만, 오늘날 루터 교회나 성공회 등 일부 개신교회들은 여전히 매일 성무일과를 시행하고 있습 니다. 한국교회도 이러한 전통을 회복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예배가 무엇이냐 하는 신학적 관심 보다는 우리가 이 모임에 꼭 참석해야 만 하느냐에 더 관심이 쏠리기 때문입 니다. 따라서 이는 각 교단이 이를 어 떻게 정하느냐의 문제로 귀착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저의 모교단인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헌법 제 24조에 서 주일낮예배, 주일밤(저녁)예배, 그리 고 수요일밤(오후)예배를 공예배로 규 정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들은 매우 열 심히 있어서 세계교회로부터 배우지도 않은 기도회의 전통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며 우리도 신앙의 선배들의 이러한 열심을 본받아 야 하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수요 일이나 금요일의 기도회가 주일예배의 모임과 그 형식과 내용이 서로 비슷하 다는 것입니다. 수요일과 금요일의 기 도회를 ‘약식 주일예배’가 아닌 차별 화된 형식으로 바꾸고, 기도회의 내용 및 초점에 관해서는 두 날 모두 그리스 도의 대속적 죽음과 관련되어 있음을 고려하여, 우리의 소원만을 빌기보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깊이 묵상 하는 시간과 ‘거기에 우리도 동참하게 하소서.’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 수요일과 금요일의 기도 모임이 ‘ 이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공예배’냐 아니냐의 문제는 신학적인 ‘나 중심’의 기도보다 ‘그리스도 중 차원보다는 실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 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시 96:9)

제공: 김정애 권사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시 63:3~4)

제공: 김영옥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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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섭리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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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서론 (3)/1.인류 타락직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이를

깨달은 시편 기자는 “내 눈

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함을 보여 알 게 하소서”(시119:18)라 간구하면서 “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 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나이다”고 고백했 다(시119:123).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 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 은 자로 여길 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 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밝혀 어 두움 속에서 멸망으로 이끌려 가는 모 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할 책임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과 성령님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마지막 사명으로 주어졌음을 성경은 거

영적 눈을 뜨게 하셨고 이 비밀을 밝히

듭 강조하고 있다. (마28:18-20, 막16:15,

알게 하셨다.

행1:8, 딤후4:1-2).

벧전 1:10-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 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 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영 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 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 음을 전하는 것이라”(계10:7 참고).

먹고 숲속에 숨어있었다. 결국 그들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그들을 판단하시고 행하신 일이 2가지가 있다.

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것임을 예고하 신 것이다. (1) 아담과 이브의 타락과 그들의 죄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후손(인류)의 모 를 해결(용서와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하나님의 궁 의 최초의 행하심과 예언적 말씀들(창 극적인 뜻을 예언적인 말씀(창3:15)으로 약속하셨다. 3:15, 21).

지 못했다. 그런고로 마지막 세대에 살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 (2)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 종하고 마귀의 미혹을 따라 행한 잘못( 게 하고 너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과 원 죄) 때문에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 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 해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두려워 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 (생애의 첫 두려움) 숲속에 숨었고 벌거 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예언적인 벗음의 부끄러움(생애의 첫 부끄러움)을 말씀을 하셨다.

고 있는 우리들의 교회의 존재의 목적

감추기 위해 무화과나무 가지(잎)로 몸

이, 그리고 모든 사역의 중심이 못다 이

을 가렸다. 이것이 최초의 인간들이 자

룬 주님의 이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일에

신들의 죄로(하나님을 불순종)인해 생긴

집중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최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노

그런데 20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이 사명을 다 이루

력이었다.

이제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단계적으로 살펴본다.

인간들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불순 종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생긴 것이기

이제 우리는 비밀을 밝혀야 할 책임이 먼저 알아 믿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1. 인류 타락직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최초의 일이 무엇인가?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해

도록 금했고 만일 따먹을 시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했다.

결해 주셨다. 여기서의 가죽옷은 짐승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 29:2)

이 말씀은 물론 여인의 후손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보내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 도를 의미하고 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해서 인류를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계속 방해할 대적, 사단 마 귀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사 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훈하는 말씀이다. 인류를 꾀어 역사 했지만 예수님은 마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막 날에 이 땅에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 짐승의 가죽 옷을 입혀 그 부끄러움을 와 거짓 선지자를 붙잡아 지옥 불에 던 영원히 가려주심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 지고 붉은 용은 무저갱에 가둘 것이다.

에게 주어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 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라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그 과일을 따

시고 에덴의 모든 과일을 따먹되 오직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일은 따먹지 말

하지만 그들은 간교한 뱀의 유혹에 따

결의 길이 전무함을 모든 인생들에게 교

을 잡아 피 흘리고 만든 것인데 이는 (참고: 요일3:8, 계12:3-5, 7-17, 13:1-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 11-17, 17:7-11, 19:19-20:1-3)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 5:7)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시 98: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3)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제공: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시 96:4-5) 제공: 이국형 장로(한인기독교회)


진리의 샘터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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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Black Lives Matter. 미국 사회에 고질병처럼 일어나고 있는

다. 대부분의 한인 이민자들은 1965년

죄 혐의를 벗고 집행유예 5년, 400시간

사건들로 인하여 흑인 형제자매들이 목

“이민 및 국적법”이 통과 되어서 미국

사회봉사와 벌금 $500로 가볍게 혐의를

숨을 잃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의 무릎에

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벗어났기 때문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짓눌려 목숨을 빼앗긴 George Floyd

사실 1964년 민권 운동 없이는 불가능했

사건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하여 민감하

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권리와 해택

4. 인종차별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

렸다. 하나님의 숨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큰 충격으로 다

은 흑인 형제자매들의 투쟁의 결과라고

이고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숨이었다. 하나님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

가왔습니다. 그래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

보시면 됩니다. 지금의 “Black Lives

배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었다. 하나님이 신음하신다.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길거기로 나아

Matter” 운동은 1964 민권 운동의 근

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사람

I can't breathe.

가 흑인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

본적 문제들이 오늘에도 계속 반복되고

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양하게 창조

작했습니다. 물론 비극을 자신들의 욕심

있는 것에 대한 운동입니다. 그러니 결코

하셨습니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

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며 폭동을

이것은 그들만의 투쟁은 아닌 것을 알고

고 편견의 마음이 우리 속에 있다면 그

금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일어나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혼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

합니다. 우리의 편견과 차별이 누군가의

는 행동입니다.

목을 짓누르면서 하나님의 숨을 조이고

란의 현실을 바라보며 몇 가지 제 생각 을 나누고자 합니다.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직

3. 인종차별에 대하여 당연하고 익숙해진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특히 한인 사회

George Floyd 사건에 대하여 시카

접적으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다 하

1. Black Lives Matter vs. All Lives

가 흑인들을 혐오하고, 두려워하고, 꺼리

고 기쁨의 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는 손

더라도 가만히 있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Matter - "보통 흑인의 생명은 소중합니

는 것은 매스컴에만 비춰지는 흑인의 이

태환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의 숨을 조이는 일들을 용납하는 것임을

다”라고 말하면 "모든 생명은 소중합니

미지를 너무 믿고 있는 것과 우리 마음

셨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라고 반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

속에도 자리 잡고 있는 백인우월주의 사

론 맞는 말이지만 지금 적용되는 말이

상 때문일 것입니다 (한인들이 하얗게 되

I can't breathe. 세상이 창조되던 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의 삶 가운데 어떤

려고 사용하는 화장품이 얼마나 많은지

숨이 있었다. 큰 숨이 온 세상에 생명을

먼저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

문제가 있어서 목회자나 카운슬러나 가

보세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무심하

부여했다. 온 세상은 같은 숨으로 숨쉬었

까운 지인에게 가서 "지금 저에게 어떤

다 보니 이미 차별이 우리의 삶 속에 너

고 그분의 숨을 나눠가진 세상은 평화로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도 당연하고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웠다. 사람이 빚어지던 날 숨이 있었다.

을지어다” (요20:19) 입니다. 평강. 하나 님의 샬롬. 모두가 조화를 이루고 다양 성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 이러한 하나 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려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불의로 인하여 고통 받는 자 들을 위하여 애통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며 나아가 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020년 저 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 아닐까요? Black Lives Matter!

작은 코에 불어넣은 숨으로 사람은 생령

그분이 "아,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삶에 는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고 생

특히 LA 폭동 때문에 우리에게 각인

이 되었다. 사람은 같은 숨으로 숨쉬었고

각해 보세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된 흑인 이미지를 생각해 보세요. 하지

그분의 숨을 나눠가신 사람들은 서로 사

지금 여러분 상황에 도움이 되는, 깨달음

만 우리가 또한 알아야 하는 것이 그 폭

랑했다. 사람들이 세상의 숨통을 조이기

을 주는 말인가요? 마찬가지입니다.

동의 이유 중 하나가 한국 교민 두순자

시작했다.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의

씨가 15살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을 살

숨통을 틀어막았다. 힘없이 쓰러진 이의

해하고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살인

목을 무릎으로 짓눌렀다. 숨길을 끊어버

2. 이민자로서 흑인들과 함께 서야합니


목양 칼럼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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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품어도 죄는 짓지 말자! 분노는 인간의 희로애락 중의 하나인 노 (anger)에 연관된 하나님께서 주신 감정이 다. 특히 화는 믿는 사람에게까지도 당연 하게 생각되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는 일반적 감정인 [노]가 [분노 (rage)]로 변화되는데 문제가 있다. 미국은 지금 지난 5월28일 미네소타 주, Minneapolis에서 경찰의 채포과정에서 숨 진 George Floyd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서 전국으로 확산된 민중의 분노는 흑인의 생존문제(black lives matter)라는 슬로건 을 걸고 항의시위로 폭발하고 있다. 경찰 의 잔인성(brutality)에 대한 민중의 분노 이기도 하다. 평화의 시위라고는 하지만 각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이면에는 폭동(riot)들이 있었고 피해를 당한 자들이 여기저기 속출 하기도 했다. 우리 한인들의 가게에도 피해 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폭동들에 의 해 경찰이 구타를 당하는 일도 있었고, 평 화시위대를 향해 트럭으로, 승용차로 달려 맞대응하는 일도 일어났다. 또 다른 형태 의 분노이기도 하다. 이런 분노로 나타나게 되는 요인은 복합 적이다. 각 개인이 분노하는 성향이나 방 법이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우 들이다. ① 왜곡된 지각 때문에 분노가 일어난다. 사람들이 주위 환경을 잘못 판단하여 자 신의 행동을 엉뚱하게 곡해하고 부당한 결 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분노케 되는 가

장 흔한 경우이다. ② 위협이나 손해를 보고 그것이 부당하다 고 생각될 때 분노하게 된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이 상하고 피해의식에 사로 잡힐 때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분 노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때는 내가 약하 여 위협을 받는다고 인식함으로 반격의 수 단으로써 상대를 공격하며 분노하게 된다. ③ 갑작스런 좌절감에 빠질 때 분노하게 된다. 설정한 목표를 향해 가는데 방해하 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좌절하게 된다. 그런 경우 엄청난 분노가 일어난다. 예를 들면 똑같은 비즈니스를 하는데 옆집은 잘 되고 나는 안 된다. 알고 보니 그 이유 가 동양인이라서 이었다. 분통이 터질 이 유이다. ④ 자신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되거나 자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게 될 때 분노하게 된 다. 이때의 분노는 자신감의 결여나 열등감 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은 습관 적으로 쉽게 화를 내며 조절하지 못함으로 써 분노하기도 한다. 분노하는 것이 힘을 가진 것처럼 생각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 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경우이다. ⑤ 분노는 영적인 일과도 밀접하다. 에베소 서 4장 26-27절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 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분노에

대한 영적인 해석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서 영적으로 겸손하게 신앙생 활 하기란 어렵다. 분노한다는 것은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신앙의 성숙과 반비례한다. 그러므로 빨리 분을 풀어야 한다. 그 이유 는 분노하는 사이에 마귀의 공작이 이루 어지기 때문이다. 마귀가 분노하는 사이에 그 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Tennessee에서는 데모시위를 진압하 러 나왔던 경찰관이 시위자와 함께 포옹하 고 기도하는가 하면 지난달 덴버에서는 경 찰청장 Paul Pazen 께서는 시위대와 함 께 팔짱을 끼고 시위행렬에 동참하기도 했 다. 상대방의 권리를 인정하고 서로의 사명 을 다하며 화해의 모드를 조성하는 일이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어렵게 바로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고 광야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사 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광야에 도착했 을 때 불평하기 시작한다. ‘네가 우리를 잘살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이려고 하느냐?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 느냐? 하면서 모세에게 대항하게 된다. 모 세도 꽤나 화를 잘 내던 사람이었던 것 같 다. 민수기 16:15절을 보면 “모세가 심히 노 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나귀 한 마 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적하는 고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담임

라와 자손들에 무지하게 화가 난 상태에서 기도를 드렸다. 문제는 하나님이셨다. 그저 사랑으로 감 싸주시는 하나님께서 모세가 그렇게 화를 내면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하라’라고 말 씀하실 일인데 더 화를 내시며 이렇게 말 씀하시는 것이다.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 시되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 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여기서 모세 의 분노는 정당했으며 건설적인 분노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옆에서 자꾸만 속을 뒤집어 놓는 부인들이 있다. 바쁜데 앞에 서 길을 가로막고 마음에 분노를 자극하는 노인들도 있다. 긴 줄서기를 하고 기다리고 서있는데 뒷줄에 있다가 옆으로 기어 나와 세치기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러면 비록 잘 참고 견디는 나도 마침내 울화가 치밀고 속이 우글거린다. 운전을 하는데 심기를 건 드리고 분을 품으면 아주 위험하다. 안 믿 는 사람들은 주먹이 날아가고, 홍크(honk) 를 하고, 손가락을 올리고, 욕설을 퍼붓는 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천이다. 분을 품어 도 죄는 짓지 말자!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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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한국교회에 들어와 있는 5가지 ‘가짜복음’ 이번에는 한국교회의 위기와 대한민국의 현 시국에 대한 조직신학적 분석을 제시하 는 글을 준비해 보았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디아스포라 이민교회의 위기와도 직간접으 로 연결되어 있기에, 필자가 한국교회에 대 하여 지적하는 내용은 이민교회의 컨텍스 트에 적용해 봐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여러 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첫째, 교회 내적 위기이다. 교회의 내면적 생명력과 성숙도의 위기이 다. 교회의 정체성 상실의 위기이다. 교회 의 본질에 대한 오해가 심각한 상태에 있 다.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교회는 정체성 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성숙의 차원 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미숙의 상태에 머 물러 있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30대 이하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급속하게 떠나가고 있고, 교회 내에 유초등 부와 중고등부 자체가 아예 없는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고등 부가 없는 교회 48%, 중등부가 없는 교회 47%, 초등부가 없는 교회 47%, 유년부가 없는 교회 47%, 유치부가 없는 교회 57%, 유아부가 없는 교회 97.4%, 영아부가 없는 교회가 78.5%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교회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단의 조치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역사 의 무대 밖으로 퇴출될 것이라는 말이다. 나아가 오늘날 제도적 교회에 대하여 실 망한 나머지, 제도적 교회에 출석 자체를 하지 않는 소위 ‘가나안 성도’들이 많아 지고 있으며, 이 ‘가나안 성도’들을 중심 으로 무교회주의적인 흐름이 힘을 얻고 있

다. 이런 위기 상황이 앞으로 5년 정도만 계속 된다 해도, 한국교회는 정말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말씀과 교리와 기도와 실천에 있 어, 진정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묘안이 없다는 것이 다. 그야말로 엄청난 홍수의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 에 처해있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교회의 내적 위기는 또한 여러 가지 다른 복음, 가짜 복음이 한국교회 내에서 활개 를 치고 있다는 사실과 깊이 관련된다. 그 다른 복음들에는 기복/번영주의, 율법주의, 방종주의, 신비주의, 영지주의 등이 포함된 다. 이 다섯 가지 다른 복음들 모두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지 만, 그 중에서도 기복/번영주의는, 흔치 않 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기복/번영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잘 먹고 잘 사 는’ 저차원적·표피적 문제로 환원시킨다 는 데 있다. 주님은 “너희가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와 의 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 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복/번영주의는 신앙생활의 핵심 목적을 보다 잘 먹고, 잘 살고, 더 건강하고, 더 크 게 성공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성 경이 말하는 바 그대로의 복음을 완전히 왜곡하고, 변질시키고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나라와 복 음을 위하여 고난당하는 삶의 놀라운 가치

와 영광에 대해 전혀 무지한 성도들을 길 러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신실한 삶을 살 기 위하여, 우리가 지불하는 희생과 대가가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것인지에 대한 무 지가 팽배하다.

둘째, 교회 외적 위기이다. 교회 외적 위기는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다. 먼저는 점증하는 이단의 세력화이 다. 전통적인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이 최 근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몰몬교도 속 도는 더디지만 증가하고 있다. 신천지가 벌 써 20만이 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안증회)도 급속도로 성장 하고 있고, 구원파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선명 사후 통일교의 영향 력은 많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이 이단들은 정통교회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 면서 성도들을 노략질해 가고 있다. 한국 교회는 무서운 속도로 성도들을 이단들에 게 빼앗기고 있다. 다음은 사회윤리의 붕괴다. 특히 한국 사회의 성적 타락이 매우 심 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가정의 붕괴가 가 속화되고 있고, 이혼율이 점증하고 있으며, 전통적 결혼관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사회의 지배 가치관 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천 박한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을 형성하 고 있다. 동성애 결혼과 낙태를 합법화하 려는 세력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한국 교회가 이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여러모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위기에 직 면하게 될 것이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다음은 정치적 위기이다. 친북 주사파세력, 김일성주의자들이 정치 권력을 잡은 이후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고, 건전한 정치문화 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위 기는 대한민국의 위기와 그 궤를 같이 한 다. 한국교회가 그 정체성과 생명력과 성숙 도를 힘 있게 회복하지 못하면, 대한민국도 한국교회와 함께 멸망해 갈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그 정체성을 회복하고, 생명력 을 되찾고, 성숙을 지향해 간다면 대한민 국도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기를 구 가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염려하고, 대한 민국을 위해 기도하는 진성 그리스도인들 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우리는 각 자의 마음을 찢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주 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나 자신 때문이라는 거룩한 책임의식을 회복 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행동해야 한다. 거룩한 행 동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작은 일부터라도 하나씩 실천하며 나아가야 한다. 작은 실 천들이 모일 때 큰 변화와 변혁이 성취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미 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바로 우리 모두 의 결단에 달려 있다. 사랑의 주님께서 우 리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시 고, 새로운 회복의 날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쉴만한 물가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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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 지난 주 내가 섬기고 있는 기독교 학교 에서는 ‘포스트 코로나’라는 주제로 전 교생이 10분짜리 동영상을 제작하여 발 표회를 가졌다. 그리고 디베이트 팀을 구 성하여 ‘한국은 코로나 19사태 이후에 선진국 G7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라 는 주제로 토론대회를 가졌다. 아직 어린 나이들이었지만 다가올 사회 적 변화를 예측하며 준비하는 가운데 상 상력과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계기 가 되었다. 학생들은 각자 자료를 수집하 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코로나 사태 이후 에 도래할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예측하 며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미래를 대 비하는 자신들만의 소박한 의견을 나누 게 되었다. 기독교는 선지자적이어야 한다. 구약성 경에 보면 역사적인 변환점이 있을 때마 다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현재적 상황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언하며 준비하도록 하 였다. 코로나 19사태는 한 나라의 변화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변화 를 가져올 분기점이 될 것이다. 전염병 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여 사람들이 마 음대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단순한 현상 이 경제, 문화, 정치, 교육, 군사, 여행, 무 역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 어서 누구도 쉽게 코로나 이후의 사회 에 대해 예측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 만 비교적 쉽게 예측이 가능한 것부터 정 리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변화에 어 떻게 대처해 나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 기로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의 활

동이 제한된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기 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온라인 생 활의 확대이다. 회사근무도 많은 부분이 원격으로 대체될 것이다. 다른 형태의 국 제 정치 경제 질서가 생길 것이다. 원격 진료 및 의료 및 보건 분야의 발달이 요 구된다. 신산업과 신기술이 4차산업혁명 을 앞당기게 할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온라인 교육의 요청과 함께 정규대학보다 는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교유기관이 설 립될 것이다. 코로나 19사태가 불러온 사회적 거리 두기 이전에도 온라인 교육, 온라인 쇼핑, 전자결재, 무인 마켓 등이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19사태가 이를 가속화 한 것이다. 이런 급속한 변 화에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많은 부작용 과 무리가 따르게 된다. 예를 들어서 교 육에 있어서 비대면적 온라인 교육이 대 면적 오프라인 교육의 질에 못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점은 대면과 비대면의 혼합 형태 로 극복될 수 있다. 온라인 교육과 오프 라인 교육을 혼합하여 한다면 하나를 선 택하는 것보다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으로 미리 강의 를 듣고 오프라인으로 모여서 토론하며 인격적 교제를 나눈다면 교육적 효과가 배가 더 할 것이다.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는 코로나19사태 이전부터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교육을 혼합하여 병행함으로 써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를 교회교육에 접목한다면 이렇게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도 교회교육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 었다. 한국 교회는 이미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50%를 넘고 있다고 한다. 출생

률 저하와 대학입시 등 세상교육에 우선 성을 빼앗긴 탓에 교회학교는 점점 부실 해 지고 있다. 이에 코로나 사태까지 더 해져 주일학교를 열지 못하는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교회교육 에도 온라인 교육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주중에 아이들이 미리 공부할 수 있도록 하여 주 말에 오프라인으로 교회에 모여서 예배와 성경을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공부 외에도 자녀들에게 필요한 기독교적인 교 육의 콘텐츠를 제작하여 온라인으로 교육 하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만 기독교 교육 을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온라인과 오 프라인의 혼합된 형태로 교육한다면 주일 학교 교육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류의 사 회변화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 정한 정치집단이나 이익집단이 그들의 목 적을 이루기 위해 이런 사회변화를 교묘 히 이용하는 것에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 고 대처해 나아가야 한다. 예를 들면 전 체주의적 리더십의 등장이 그것이다. 코 로나 사태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강력한 지도력이 요청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사탄의 세력이 강력한 독재자를 등장시킨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분별 해 내야 한다. 또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인공지 능과 같은 4차산업의 기술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가속화 시 킬 것이다. 이것이 발달하면 모든 사람 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람들의 몸에 전 자칩을 넣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 주의적 리더십의 등장과 4차산업의 가속 화는 마지막 때 도래할 적그리스도의 등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장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사회적 토양 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사탄의 세력들은 그들의 목 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기만과 선동으로 성도들까지도 미혹할 것이다. 강력한 전체 주의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는 평화를 외치며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며 4차산 업 혁명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며 인간 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트렌 드의 변화에 맹목적으로 적응할 것이 아 니라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영적 메 타인지를 통해 분별해 내야 할 것이다. 이 를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 시는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세상의 변 화에 영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교육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이든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그 지식에 대한 성경적 세계관으로 비추어 성경적 지식으로 통합해야 할 것이다. 이 를 위해 성령의 조명에 따라 자신의 생 각을 생각하는 메타인지적 교육이 절실 히 필요하다. 포스트 코로나는 마지막 때의 도래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때 기독교 교육은 지식의 전달이 아닌 지식에 대한 성경적 해석과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 메 타인지 교육에 치중을 두어야 한다. 마지막 때의 지식의 홍수 속에(단 12:4)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단 12:10), 하나님 이 주시는 지혜로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제공: 최정애 집사(참빛교회)


좁은 길을 걸으며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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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성도의 긍지 입니다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꽤 오랫동안 교

에는 불편함을 느끼다가 이젠 그 가운

이것이 성도가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

회 현장예배를 하지 못하고 각자 가정

데서 새로운 은혜를 발견하고 있음을 보

님을 예배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이

에서 예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 됩니다.

유입니다. 예배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법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분명한

예배나 가정에서의 예배에도 수고로움

예배는 진정 성도된 사람만이 감당할

이 따릅니다. 늘 드리던 현장예배는 조

수 있는 너무도 소중한 특권이요 축복

용히 참석하기만 하면 되었다면 가정에

인 것 입니다. 우리들이 성도임을 드러

많은 이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

그래서 예배는 환경과 상관없이, 형편

서 드리는 예배는 모든 면에서 현장감

내는 가장 기본적인 수고는 바로 하나

해 성도들이 예배로 부터 멀어질 수도

에 무관하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수고

이 떨어져 불편합니다. 그런 중에도 온

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있다는 우려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로움을 기울이며 감당해야 하는 성도의

라인 예배가 익숙하지 않지만 예배드리

예배 받으실만한 분임을 선포하며 고백

반대일 것이라 믿습니다. 홀로 가정에서

영적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에

는 이들이 전보다 더 큰 수고와 노력을

하는 이 예배의 행위야말로 성도만이 감

드린 생소한 예배가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한 정의를 이번 기회에 다시 내려 본

하는 것을 볼 때 예배가 축소되는 것이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배하고 왜 예배하여야 하는지

다면 예배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깨닫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예배의 포맷

가로막힘이 없이 무한한 소통을 하는 산

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줄 것

경험이라 하겠습니다.

아니라 확대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 게 됩니다

이런 찬양이 떠오릅니다.

증거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주중에 헌금을 가지고 교회를 일부러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 곳에서 주를

이고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을 예배하

예배를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긴 믿

찾는 성도들도 계시고 서로의 안부를 물

예배하리라, 아무도 찬양하지 않는 그 곳

리라는 영적 결단도 주어지는 기회가 되

음의 선배들은 코로나 보다 더 극심하

으며 중보기도 하는 모습도 더 많이 보

에서 주를 찬양하리라,

리라 생각합니다.

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예배만큼은 포기

게 됩니다. 어찌 보면 이전의 예배보다

누구도 헌신하지 않는 그 곳에서 주께

온라인 예배는 극소수의 사람이 영상

하지 않았고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믿음

수고스러워졌지만 더 세밀하고 풍성한

헌신하리라, 누구도 증거하지 않는 그 곳

을 준비합니다. 성도는 앞에 없으나 있

의 선진들이 예배했던 자리를 생각해보

은혜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 주를 증거하리라

다고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십시오. 감옥이었고 황무지였으며 목숨

얼마나 어설프고 낯선 광경인지 예배를

을 담보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죽느냐

모든 예배는 수고로움이 수반됩니다. 모두 모여 드리는 현장예배도 많은 수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긍지와 자부

준비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고 예배하

사느냐의 위협 앞에서도 그들은 타협하

고로움이 따릅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성

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존귀하신 하나

는 사람이나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지 않은 예배자로 남아 오늘 우리 교회

도들은 성도들대로 많은 수고를 기울여

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그 예배에서 이전에 모르던 새로운 은

와 성도들의 신앙의 긍지요 자부심이 되

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하나님

알아서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해서 예배하

혜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성도들도 있다

었습니다.

을 예배하는 행위에는 일정한 수고로움

는 것이야말로 성도된 나만이 품을 수

는 사실입니다.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

그러므로 예배는 성도의 영적 분깃

이 뒤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있는 긍지와 자부심인 것입니다. 그 이

그것을 통해 예배의 소중함을 재발견하

을 지켜내는 것이며 성도로서 절대 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가운데 예배의

유는 성도는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자신

게 된 것입니다.

협할 수 없는 최고의 신앙 행위임을 우

형태를 바뀌어 감당함으로 여러 가지 새

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되

로운 점을 깨닫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

기 때문입니다

리 독자 성도들이 기억할 수 있기를 바 홀로 예배한 사람을 생각하면 저는 야

랍니다.

성도는 높으신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곱이 떠오릅니다. 야곱은 혼자 드린 광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안 되고 어떤 환경에서도 양보와 타협

하나님이 성도에게 약속으로 주신 영원

야의 예배를 통해 진정 예배자의 삶을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다

없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

한 상급과 보호를 누리는 축복의 주인

되찾습니다. 그 예배에는 인도자도 없고

른 신들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

닫게 됩니다.

공이 됩니다. 그 때가 언제이든 그 상황

성가대도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을 전심

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혼자 있다고 건너뛸 수 없는 것이며

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하

하나로 예배함으로 야곱은 이전의 영적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

세상이 무너져도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나님만 예배할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

난민과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

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로 예배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

의 영적 분깃과 기업을 얻어 누리게 되

다. 그리고 평생토록 어떤 상황이든 간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

서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성도들이 처음

는 것입니다

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되었

을 지키시나이다" (시편16:3 ~5)

을 예배하는 행위는 상황에 좌우되어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 제공: 박정순 사모(실로암장로교회)


베드로전서 강해

2020년 6월 11일

24

(3회)

“거룩해야 할 이유”(1) <베드로전서 1:13-25>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는 호칭에 대한 것입니다. 공적으로 나 사적으로나 서로를 부를 때 마땅한 호칭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 왜 이렇게 집사라는 직분이 많은지 아십니까? 교 회에서 집사로 임명을 받았든 안 받았 든 가장 편하게 부를 수 있는 것이 집 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교회 나오신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왜 날 집사라 고 부르는가 하고 의아하신 분들도 계 실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형 제님, 자매님 하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것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라도 젊으면 그런대로 부를 수가 있습 니다. 그러나 나이가 50, 60이 되신 분 들에게 형제님, 자매님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 교회는 목장을 중심으 로 사역을 하는 교회입니다. 가정교회라 고 부릅니다. 여기서도 호칭 때문에 어 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목장 을 인도하는 사람을 목자라고 부릅니다. 목장에 있는 식구들은 목원이라고 부릅 니다. 여기까지도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그런데 목자의 부인을 어떻게 부르는지 아시지요? 목녀라고 부릅니다. 우리 교 회는 이제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어색하 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들어오신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아직도 낯설어 합니다. 새가족 공부를 인도하다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 니다. “교회에 처음 들어와서 목장, 목 장 하길래 저는 교회가 교외지역에 있 는 목장에 있는 줄 알았어요” 어떤 분 은 이런 반응도 보였습니다. “여기저기 서 목자님, 목자님 하길래 이 교회는 목 사가 그렇게도 많은가 보구나” 목자가 목사로 들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사회에서 쓰는 호 칭을 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만 약 사회에서 쓰는 호칭을 교회에서 쓴 다면 가장 많은 호칭이 무엇일까요? 모 두가 다 사장님이요 회장님일 것입니다. 한국의 골프장에 가면 사장이 아닌 사 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사

장님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이렇게 빨리 부자가 되었나 봅니다. 이 호칭은 우리 의 전통문화이기 때문에 바꾸기는 아주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이름을 부르 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릴 수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모두가 다 이름을 부릅 니다. 굳이 호칭의 문제 가지고 씨름하 지 않습니다. 직분은 그 직분으로 회의 를 주재하고 일할 때만 사용되어집니다. 보통 때는 다 이름을 부릅니다. 그것도 퍼스트 네임을 부릅니다. 누구를 만나 도 친근감이 있습니다. 편안합니다. 그 러나 우리는 그것이 용납이 되지 않습 니다. 더구나 나이가 젊은 사람이 어른 에게 이름을 부른다면 그 날로 관계는 끝장이 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가장 존귀한 이름이 무엇일까요?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 람들이 이 성도를 교회에서 가장 낮은 직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 사, 장로, 권사, 집사, 그 다음이 성도 라고 부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 나 저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 성도입니 다. 장로이기 이전에 성도요, 집사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도입니 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을 가 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saint라고 합 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 성도라는 호 칭이 가장 존귀하게 사용되어지고 있습 니다. 절대 아무에게나 붙여주는 호칭 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이름으 로 불러질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 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내가 거 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우리는 이미 거룩한 사람이 되었 습니다. 지금 우리 자신의 신앙 상태를 보고 우리 자신을 평가하시면 안 됩니 다. 거룩한 사람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 이미 우리를 거룩한 사람으로 결정 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사람, 성도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거룩해야 할 분명한 이유 세 가

지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거룩해야 할 이유는 우리 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 입니다. 15,16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 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 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자녀는 부모를 닮는 법입니다. 아들 의 목소리는 아빠를 닮아갑니다. 요즈 음에는 집 전화를 잘 쓰지 않습니다. 모 든 식구들이 셀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 입니다. 미국 가정의 60%가 이제는 아 예 집 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 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으로 전화 를 해서 누구누구를 바꾸어 달라고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희 큰 아들이 아 주 기분 좋아하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Hello!”를 안하고 “여보세요!” 하 니까 저라고 생각하던 분들이 있었습니 다. 자기에게 목사님이라고 하면서 존댓 말을 썼다는 거예요. 그게 좋아서 싱글 벙글하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이제 커 가는 여자 애들은 엄마하고 목소리 가 똑같습니다. 저도 분간이 안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실수를 안 하려 고 “여보세요, 여보세요”를 반복하기 도 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등이 좀 굽 으셨습니다. 저도 역시 등이 굽어있습니 다. 등을 펴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하는데도 잘 고쳐지지가 않습니 다. 그런데 저희 아들도 똑같습니다. 심 지어 걸음걸이도 똑같아집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 다. 자녀를 보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니 라고 아무리 부인을 해도 소용이 없습 니다. 자녀는 반드시 부모를 닮도록 되 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부르시지 않 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 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성품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바로 그 거룩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룩을 근엄하게 웃지 도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거 룩은 어떤 외형적인 경건을 말할 때 쓰 는 단어가 아닙니다. 거룩의 본래 의미 는 “분리되어 있다, 떨어져 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분리된 분이십 니다. 세상과 떨어져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세 상과는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 를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하나 님의 거룩을 닮은 모습일까요? 첫 번째 는 소극적인 측면입니다.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순 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 르던 너희 사욕을 본 받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살아가 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 디로 “사욕”이라는 말로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사욕은 개인의 욕심을 말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자기 욕심을 위 해서 사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이 추구하는 생활입니다. 자기를 만족 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요 인생의 의미 인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내가 좋아야 합니다. 내가 싫은 것은 하기 싫 습니다. 내가 편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은 얻지 못하는 것을 나는 얻어야 합니 다. 그것이 성공이고 만족입니다. 인생의 주인은 오직 자기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인생의 가치와 목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왕좌에 내가 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앉아 계십니다. 내 욕심을 위 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베드로전서 강해

2020년 6월 11일

25

오늘 새로 산 옷을 처음 입고 오신

은혜만을 온전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

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생활입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생명을 대치

분이 계십니까? 먼지라도 묻지는 않았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리의

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시는 여러

할 수 있는 것은 생명밖에 없습니다. 동

나 자꾸만 옷을 터실 것입니다. 티끌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족

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의 피는 바로 그 생명을 대치하는 것

하나라도 붙어있으면 자주 떼어내시려

만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10년 후 20년

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물이 아무리 귀중

두 번째, 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 새로 산 옷이 금방 구겨지면 안 되거든 야 합니다. 내 인생이 다하는 날 주님 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새 앞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에 우리의 목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다고 해도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수

고 할 것입니다. 앉는 것도 조심합니다.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새 옷이 세상

후에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인가를 보셔

표를 두셔야 합니다. 몇 년 전 뉴스 중에 잔잔한 감동을 받 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질병예

안 됩니다.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 에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만한 것은 아

의 오염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 니다. 헌 옷을 입은 사람처럼 살아서는

있는 것입니까? 사람을 물면 그 개는 그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 것도 없습니다. 구약의 동물의 피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

그 자체로서 사람을 용서하고 구속하는

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것이 아닙니다. 양 천 마리를 준다고 해

방센타라는 정부의 한 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다가갈 수

도 아들의 목숨과 바꾸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전 세계의 모든 담배들의 발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 피가 끊임없

암물질 함유량을 조사를 했습니다. 어

를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원래 죄는

이 바라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떤 결과를 발표했는지 아십니까? 미국

하나님을 피하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

피를 통해서 결국 발견해야만 하는 사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의 담배가 다른 나라의 담배보다 발암

와는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을 피했습니

실이 있습니다. 예,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물질이 2배 이상 높게 들어있다는 것입

다.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우리가 법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니다. 미국의 어떤 담배회사인지도 구체

규를 지키지 않으면 경찰을 피하는 것

바랄지어다”

적으로 지적을 했습니다. 미국의 담배

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죄

그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는 굉장히 많은 양을 외국으로 수출하

를 지은 인간 사이는 좁혀질 수 없는 간

출애굽 때의 일입니다. 모세가 애굽 왕

지금도 중동 사람들은 통 자로 된 긴

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로 인해 국가적

격이 생겼습니다. 이 간격을 좁히기 위

바로에게 베풀었던 10가지 재앙 중에 마

옷을 입습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도 마

인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

해서 만든 제도가 구약의 제사 제도입

지막 재앙이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

찬가지였습니다. 땅에 질질 끌릴 정도의

다. 미국내의 한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

니다.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합니

니다. 애굽의 모든 가정의 장자는 죽음

긴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긴 옷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진 사실

다. 그런데 그 제물에는 반드시 피가 들

의 천사에 의해 모두 죽었습니다. 바로

은 일을 하는데 거추장스럽습니다. 민

을 그대로 알렸습니다.

어있어야 합니다. 동물을 잡아서 드리는

왕의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온

제사가 그래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라에 곡성이 들렸습니다. 어느 누구

두 번째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거룩 을 닮는 삶이 있습니다.

첩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가만히 걷 는 것이 아니라 달려야 할 때가 있습니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손해를 뛰

다.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까요?

어넘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왜 피가 필요한 것입니까? 피는 생명

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

예,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달리기 위

사람들의 건강입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

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람들에게만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

해서는 옷을 치켜 올리고 허리를 동여

해서는 아무리 많은 희생도 치를 수 있

을 창조하신 후 분명히 명령하신 것이

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린양을 잡

야 합니다.

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

있습니다.

아 그 피를 집의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

도 이것을 중지시키거나 돌이킬 수 없

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뚜렷해야 합

창세기 2:17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니다. 죽음의 천사는 어린양의 피가 발

오늘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

니다. 그 목표가 분명하다면 세상의 욕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

려진 집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

심에 한 눈 팔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은

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은 생명을 보존

을 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라는

손해가 나고 만족이 되지 않아도 믿음

죄는 곧 죽음을 뜻했습니다. 로마서

것입니다. 새로운 일이 무엇입니까? 예

의 길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6:23은 죄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가져오실

이 다시 오실 그 날을 준비하며 살아가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변화프로젝트 (40회)

2020년 6월 11일

26

치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4부 회상

니콜 집에 방문할 때는 손녀딸들과 재미 있게 노느라고 책을 쓸 시간이 없어서 아

가서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이들은 엄마

마음을 정화시키고 주님의 임재를 느낄 때

의 노래를 들으며 무척 기뻐했다.

마다 흘러나왔다.

침 일찍 일어나서 다른 사람이 깨기 전에

딸이 어렸을 때 나도 노래를 불러 주었던

리빙룸에서 이 원고를 쓰면서 눈물을 많이

것이 기억이 났다. 어떤 때는 딸에게 한국

말씀하신 찬송을 부르는데 예수님에 대

흘렸다. 성령님께서 이 책을 통해 상심하고

노래도 불러주고 그 뜻이 무엇인가를 설명

한 나의 사랑이 내 마음에 가득차 올라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도우시리라고 믿고 계

해 준 때도 있었다. 니콜이 엄마역할을 훌

감격의 눈물이 나왔다. 그 사랑은 성령께

속 써내려 나갔다. 그러던 중에 틸라가 깨

륭하게 해내고 있었고 좋은 엄마라는 것이

서 주신 사랑이었다. 이 책을 빨리 끝내서

주님께 내가 쓰는 이 책이 다른 사람들

어나서 내 곁에 다가와 무릎 위에 앉았다.

나에겐 아주 자랑스러웠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는 모든 아픔

을 도울 거라는 확신을 달라고 기도를 했

을 치유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

다. 이미 그런 확신이 나 자신에겐 있었지

라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만 가끔 주님께 그것을 보여 달라고 여쭈

나는 고요한 집에서 살고 있다. 나의 집

어 볼 때가 있다. 2008년에『최고의 성인

은 기도의 집이다. 집에 있을 때 언제나 주

들』책이 만권을 출판할 준비가 되었을 때

님과 조용한 대화를 나누며 내 중심은 오

는 2,000불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하나님께

로지 주님께로 향해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서 모든 자금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주님께서 다 공급해주셨다. 내가 하는 일은

출판사에 원본을 보냈다. 그 다음날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성경 테이프를 듣

이렇게 기도했다.

『예수님과 걷는 길』에 있는 삽화를 보여 115. 동행 (2009. 1. 5)

주며 예수님께서 나를 어떻게 도우셨는지 이야기 해주었다. “틸라, 기도할 줄 아니?” “아니, 몰라요.” 내가 주기도문을 시작하 자 틸라가 대뜸 소리 지르며 말했다. “아, 그 기도는 키스 할아버지 기도에 요!” 키스는 생전에 틸라와 함께 컴퓨터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아마도 그 시간에 손녀딸에게 주기도문을 알려준

“주님, 오늘도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세요. 제가 듣겠습니다.” “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좀 더 집중하 고 너무 분주하게 살지 말아라.” “딸아, 키스와의 결혼에 대한 후회가 없 느냐?” “네, 정말 잘한 결정이었어요. 키스를 누 구보다도 더 사랑했으니까요.”

“주님, 오늘은 어떤 찬송을 부를까요?”

고, 기도하며, 책 쓰는데 열중하며, 열심히 사역을 하는 것이다.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주님께서 모든 자금을 다 채워 주실 것 이란 것에 대한 확신의 증거를 오늘 주십

것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또 한 번은

31년 전에 키스를 송탄 중앙침례교회 김

내가 책을 쓸 때마다 많은 수감자들이 문

제미의 손이 틸라의 머리 위에 놓여있을 때

순명 목사님을 통해서 만났고 우리 두 사

법 교정을 해준다. 이 책을 교정하는 과정

그 날 오후에 한 한국여자 분이 전화를

키스가 나를 부르며 말했다. “제미가 목사

람은 만난 그날 결혼하기로 결정을 한 것

에서 그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하셨다. 그 분은 오래 전에 신문에서 나의

가 될 것 같아. 이것 봐, 틸라에게 세례를

이 생각났다.

말을 듣고는 격려가 됐다.

교도소 사역과 문서 선교를 읽은 적이 있다

주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 모두가 웃은 기 억이 있다. 키스는 손녀딸들에게 믿음을 심

“나의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너와 항상 같 이 있다. 외롭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시오.”

“키스, 당신 덕분에 이 책을 쓸 수 있었

면서, 오늘 갑자기 헌금을 하고 싶어 전화를

어요.” 나의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래도 남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가난한 과부와

어주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남편에 대한 존

언제나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느끼며 외로

편보다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한

같은 헌금을 하셨고, 그 헌금액수로 모든 것

경심이 더욱 생겼다. “주님, 키스의 믿음

울 틈이 없다. 감사뿐이다. 남편의 빈자리로

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

을 충당할 수는 없었지만, 주님께서는 그 분

과 가족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감사해요.”

인한 슬픔이 사라지고 평안과 감사가 가득

시지 않으셨다면 이 책은 물론 다른 책들

을 통해서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

하다. 놀라우신 주님의 능력.

을 쓸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는 하나님이란 확신을 주신 것이다. 그 후

“예수님, 나의 삶을 어려운 고통 속에서

필요한 모든 선교 자금이 들어왔다. 성령님

건져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수감

해요. 제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복을

자들과 노숙자들의 영적인 양식을 마련해

제게 허락하셨어요.”

주시려고 부족한 돈을 다 채워 주신 것이다.

그 날부터 틸라와 제미의 방에서 같이 잠을 자기 전에 그들을 위해서 주기도문으 로 기도를 해주니까 아주 좋아했다. 니콜은

116. 댓가 (2009. 1. 6)

방에 들어와서 틸라에게 “너는 나의 빛이

눈물이 다 마른 줄 알았다. 슬픔의 눈

다”라는 노래를 불러준 후, 또 제미에게도

물은 말랐지만 기쁨과 감격의 눈물은 나의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번제단의 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불을 사 용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의 행동에 비해 형벌이 중하다는 생각을 하 기 쉽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죄는 단순 하고 가벼운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불로만 분향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도 다른 불로 분향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평상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겼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제사법은 하나님이 친히 정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뜻대로 하나님 께 제사드리는 방법을 지어낸다면 그것은 단 순히 의식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에 대한 도전이요 반항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의도적으로 범하는 것 은 하나님께 범하는 큰 죄입니다. 더욱이 그 들은 선택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받 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그 특권에 알맞은 행 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나 답과 아비후에게 내려진 형벌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의의 하나님이 아 니라 공의롭고 선하신 분이십니다. 혹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기분과 감 정과 상황에 따라 세상과 타협하며 자기 합 리화로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함으로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거룩함 과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아론의 아 들들의 죽음으로 인해 아론과 그의 남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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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1일

녀들에게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합 니다. 이스라엘 온 족속은 하나님이 치신 불 로 인해 슬퍼하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죽음 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범 죄하여 징계를 받은 것으로 인한 슬픔입니 다. 죄에 대한 슬픔, 회개에 대한 눈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보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불행으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하 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가볍게 여 긴 죄를 보고 슬퍼하라 말씀합니다. 내 안에 있는 죄와 교회와 우리가 사는 미국과 고국 인 한국 안에 있는 죄를 보고 회개하며 슬 퍼하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 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 니다.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를 심판하셨지 만 하나님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 해 여호와의 관유를 남겨 두셨습니다. 이것 은 이스라엘을 자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 별한 은혜입니다. 관유는 특별한 기름입니다. 제사장 위임식에 사용한 신성한 기름입니다. 제사장의 머리에 부어졌고 그들의 옷에 뿌려 졌습니다. 그 기름이 남아있다는 것 하나님 의 은혜가 남아 있습니다. 아론의 남은 아들 들이 나답과 아비후를 대신했습니다.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관유를 남겨주셨 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삼으 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이루셨 습니다. 여호와의 관유는 예수그리스도로 인 해 살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입 니다. 변함없이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과 사 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레위기 26장은 상과 벌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복이 준비되어 있지만 하나 님의 규례와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 의 징계가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만, 말씀에 순종하 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크신 복을 내려주십니 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어떤 복들이 약속되어 있는가요? 철따라 비를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십 니다. 음식을 배불리 먹고 안전하게 거주하 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 나 풍성한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 가운데서 저의 눈을 사로잡은 것 이 있습니다. 본문 8절의 말씀입니다.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 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8절) 어떻게 다섯 사람이 백을 이기고 백이 만을 이길 수 있을까요? 마치 중국영화에 오랫동 안 단련한 무술의 고수 같습니다. 아니면 히 어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적 은 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이 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인 이야기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전쟁 의 승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전 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손들이 아멜렉과 전투를 벌일 때 여호수아를 군대 장관으로 보내놓고 모세는 무엇을 했습 니까? 아론과 훌과 함께 산에 올라갔습니다. 기도하기 위함이지요. 모세가 손을 높이 들 면 여호수아가 이끈 이스라엘이 이기다가 모 세의 손이 내려가면 이스라엘의 힘이 약해집 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 가지 않도록 붙들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싸 움이 다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전 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셔야 눈 에 보이는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람왕의 군대들이 엘리사가 있던 도단성 을 둘러쌌습니다. 말과 병거들과 군사들을 보고 엘리사의 젊은 종은 두려워 떨었습니 다. 그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들이 그들보다 많다 합니다. 엘리 사는 이 종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그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영의 눈 이 열려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 리사를 둘러싼 것을 보았습니다. 전쟁의 승 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다섯이 백을 이기고 백이 만을 이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백을 물리치고 만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통치자로 모시고 그 명령에 순종 하여 어떠한 대적도 능히 물리치는 삶이 되 기를 축복합니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학생회성경공부 (토) 오후 4:00 청년부예배(주)오후 2:30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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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1일

27회

바이러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을까? COVID-19로 인하여 교회에 모여서 예

지 않거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을 사망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고 분명

배드리지 못한지가 3개월이 되었다. 기독

이르게 하는 고약한 존재가 코로나 바이

하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바이러스는 유

교인이라면 누구나 교회에 모여서 함께

러스인 것이다.

전정보가 들어있는 DNA나 RNA를 가지

찬양하고 합심하여 기도하며 예배드리기 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빨리 코로나가 물러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 을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에 대처하고 있지만, 그동안 세계 최강대국이고 최일류 국가라고 믿고 있었 던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불량한 나라 가 되었고 감염자나 사망자도 전 세계에 서 가장 많이 나온 세계 최하위 국가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체가 무엇인가? 생명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생명체도 아니고 생물도 아니라고 본다. 스스로 생 명현상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 이러스와 비슷한 생명체로 세균(박테리아) 이 있는데, 세균은 생명체가 나타내는 여 러 가지 특징을 모두 나타내고 있어서 생 물로 인정되고 있다. 생물은 세포로 되어있고, 자극에 반응 하며, 증식하므로 자신과 똑같은 후손을 만들어내야 하고, 에너지를 활용하는 대 사기능을 수행하는 등의 생명현상을 나 타낼 때 생물로 인정된다. 바이러스는 세 포가 아니며 스스로 증식하지도 못하고 생명현상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 체가 아니다. 생명체도 아닌 것이 사람의 세포 안으 로 침투해 들어가서 사람 세포 내에 있는 도구를 빌려서 사용하면서 증식하다가 결 국 사람 세포를 파괴하고 밖으로 나온다. 그 과정에서 발열, 기침, 인후통과 같은 증상을 나타나게 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

고 있고 단백질로 된 껍질로 둘러싸여 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에게 들어왔을까?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생물무기로 개발되는 과정에 유출되었다는 설도 있지 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원래 박쥐에 살고 있었던 바이러스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바 이러스가 천산갑이라는 동물을 거쳐 인간 으로 옮겨온 것이데, 박쥐나 천산갑의 몸 속에 있을 때는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 다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오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된 경로에 대하여 몇 가지 가능성이 거론 되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이 중국 우한에 있는 수산물 시장에서 유출 되었다는 설이다. 이 수산물 시장에서는 야생동물도 함 께 팔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으로 옮겨왔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 다. 중국에서는 야생동물을 먹는 식습관 이 있고 약재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감염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역시 아프리카 에서 침팬지를 사냥하고 잡아먹는 과정 에서 침팬지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 게 감염되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HIV도 침팬지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 지 않다가 사람에게 들어와서 사람을 사 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을까?

내가 환난 중에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시 138:7)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는데 이러한 구조는 저절로 생겨날 수 없 는 것이다. 단백질 한 개가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 은 Mega Million이나 Powerball에 매주 1등으로 1년 이상 연속 당첨될 확률보다 적다. 결과적으로 단백질은 우연히 만들

정병갑 (고신대 명예교수) rona Pandemic이 온 것이다. 만약 우 리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생활하고 관리했다면 코로나와 HIV 같은 바이러스 가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 을 것이다. 박쥐, 천산갑, 침팬지 같은 야 생동물을 사람이 먹지 않았다면 이들에 게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올 이 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질 수 없으며 DNA나 RNA 역시 우연 히 만들어질 수는 없고 하나님의 설계와 특별한 목적으로 창조된 것이다. DNA내에 들어있는 유전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명과학자들은 열심히 해독 하는 중인데, 생명체의 특징에 따라 각기 독특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각각의 독 특한 목적에 따라 다르게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왜 코로나 바이러스를 창조하셨을까? 창조과학 특강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왜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것을 창조하셨 을까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데 왜 이러한 바이러스를 창조하셔서 사람을 괴 롭게 하시는 것일까요?” 같은 질문을 종 종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 는데,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 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 로 하여금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며 땅 을 정복하게 하셨다”(창 1:26~28). 우리는 자연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살도록 위임받 은 것이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잘 관리하 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다. 그런데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Co-

Post Corona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계기 로 BC와 AD로 시대가 구분되었다. 코로 나를 기점으로 삶의 양식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바뀔 것으로 예측하는 학자들이 많다. 코로나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코로나 이전과 같이 자연환경을 망가뜨리 면서 욕망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창조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창조 직후 하나님께서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하 셨던 당시의 환경으로 회복시켜야 할 책 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생활습관 이 급격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초 래하게 되었고 이러한 무절제한 삶의 방 식이 Corona Pandemic을 불러오게 되 었다고 본다. 따라서 자연과 환경을 잘 관리하고 성경적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 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지키는 우리가 되 기를 바란다. (creationisfact@gmail.com)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잠 3:25-26) 제공: 서선녀 사모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0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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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기쁨 노윤호 장로(덴버제자교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 전을 향할 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 님께 예배드림에 기쁨과 즐거움, 또한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함께하는 설 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찬 송 드리기를 좋아했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노래로 영광중에 거하시는 하 나님을 높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 성 됨을 또 한 번 확인하는 예배의 시 간들을 가졌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희들도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돌리 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희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오늘 저희들 도 하나님 말씀을 목말라하며, 사모 하는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백성 됨 을 제 확인하는 예배의 시간을 갖고 자 이렇게 모였습니다. 우리를 축복하 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의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십니 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에게 인자를 베푸셔 서 구원을 허락하시고, 또한 계속된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계속해서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 셨습니다.

우리의 원래 모습인 하나님의 형 상을 되찾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 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가 비록 죄악 된 세상 속에서, 더러는 죄 가운데 빠 지기도 하면서 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늘 기회를 주시고, 회개하고 돌아 올 때에 늘 받아 주시는 하나님 이시기에 우리가 회개하는 마음과, 또 한 마음을 담대히 함으로 이렇게 하 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예배 를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렇게 모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 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다시 한 번 새롭게,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 어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 들릴 것은, 교회 안에 화목이 있고, 헌신이 있고, 감사함이 있기 때문입니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수고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 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것은, 이 제 우리교회가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 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 문입니다. 저희들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에 대 하여 더 잘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더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이 계획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기 를 원합니다. 계획하는 모든 진행들을 하나님 받으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단지 인생임을 이 시 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시간 앞에서 는 우리의 인생은 ‘잠간 보이다 사라 지는 안개와 같고, 시위를 떠난 빠른 화살과 같다’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주 는 모든 향락으로 취하지 말게 하옵 소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세상의 향락들로 배부르지 말게 하옵소서. 그 러한 심령으로는 하나님을 찾기 어렵 습니다. 죄인 됨을 알지 못하여 상심 한 심령이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세상 의 물질, 권력, 명예만을 따라가는 사 람들 되지 말게 하시고, 인생의 올바 른 이해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자들 이 다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다 순례자들입니다. 하나님 이 계신 곳을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 에서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사람 들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백성 들입니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 하며 사는 믿음을 우리에게도 주옵소

문서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대상 16:23~26) 제공: 박영돈 부동산

서. 하나님의 사랑에, 하나님의 말씀 에 늘 목말라하는 심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약속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문서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대상 16:10~12) 제공: 빛과소금뉴스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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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OP 10 미술대학 포트폴리오 준비반! 100% 합격률 및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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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269-9192, 443-754-0888

덴버에덴교회 손재흥 목사 주일1부: 오전 7:30 주일2부: 오후 1:00 수요성경공부: 오전 10:30 금요기도회: 오후 7:30 어린이주일학교: 주일오후 1:00 어린이/청소년 성경공부: 주일 오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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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교회 김창훈 목사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어린이부: 오전 11:00 수요기도회: 오후 7:30 성경통독: (금)오후 7:30 새벽기도회: 오전 6:00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 오전 6:00 성경교리대학(주일) : 오후 1:30 주중제자훈련 (화) : 오전 10:00

허성영 목사 주일 1부: 오전 7:30 주일 2부: 오전 11:40 새벽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수요성경공부: 저녁 7:30 5400 S. Yosemite St. Greenwood Village, CO 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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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현 목사 주일예배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 오전 6:00 성경대학(주일) :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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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윤우식 목사

이성한 목사 주일 1부(영어) 10:00 am 주일 2부(한어) 11:45 am 주일학교 11:30 am 수요성경공부 7:00 pm 토요기도회 7: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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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선교교회 수요성경공부(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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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20 년 인구 조사를 완료하기로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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