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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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약 5:15)

빛 제 10권 12호

소금

The Light and Salt News

2020년 7월 9일 발행

설립 36주년

원로목사 추대 및 담임목사 위임예배 덴버소망교회에서 36년간 헌신적으로 사역하신 우영종 목사님의 원로목사 추대와 제2대 담임목사로 세움받은 안성훈 목사님 위임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모든 성도와 기쁨을 나누는 자리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동안도 덴버소망교회를 사랑해주시고 기도해주신 모든 교민 여러분들에게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일시 년 월 일 주일 오전 장소 덴버소망교회 예배당

학력

학력

Washington University of Virginia 임상목회 상담학 박사과정 (Doctor of Clinical Pastoral Counseling) 중 Denver Seminary 부부 및 가정상담학 박사과정 (Doctor of Marriage & Family Counseling) 이수 Denver Seminary 구약학 석사(M.A) 고려신학대학원(M. 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 고신대학교 선교목회대학원 치유사역학(Th.M) 고려신학대학원(M. Div) 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B.A)

경력

경력

원로목사 추대 우영종 목사

현 덴버소망교회 원로목사 덴버소망교회 담임목사 대신동교회 교육전도사 Commissioner of Human Relation Committee in City of Aurora(1997- 2007년) 제26대(2010-2011) 재미한인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장

담임목사 위임 안성훈 목사

현 덴버소망교회 담임목사 LA 한인소망교회 부목사 LA 밝은빛교회 교육목사 부산 제일영도교회 부목사 부산 금사교회 전도사


목차

2020년 7월 9일

목차 교계소식 이단•사이비 바로알기 선교지에서 온 소식 강단설교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목회칼럼 예배학 강좌 하나님의 구원섭리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 3 4-5 6-7 8-9 10-11 12-13 14 15 18 19 20 21 22 23 24-25 26 27 28 29

발행처: 빛과 소금 뉴스 2821 S. Parker Rd. #409 Aurora, CO 80014 (303) 667-2778 E-mail: thelightandsalt@gmail.com 발행 겸 편집인: 최성애 디자인: 최수정 Facebook page나 블로그에 들어오시면 매회 발행되는 디지털 카피를 보실수 있습니다. thelightandsaltnews.blogspot.com

7월은 9일, 23일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는 매회 2,000부씩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 PICK-UP 장소】 덴버지역: H-Mart 볼더지역: H-Mart 웨스트민스터점 콜로라도스프링스: 한국마켓, 썬마트

본지는 어떠한 특정 개신교 교단과 연관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본지의 개제되는 모든 설교와 칼럼, 신앙간증 및 수기는 오직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글들로 하나님의 영광과 독자들의 신앙 증진에 초점을 맞춥니다. 단, 보도기사는 본사의 신앙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빛과 소금 뉴스는 바로 여러분의 교회, 가정, 개인의 신문입니다.

빛과소금뉴스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기고 김병수 목사 김창훈 목사 노윤호 장로 손창달 목사 송병일 목사 안성훈 목사 오성관 목사 오세오 목사 우영종 목사 유지훈 목사 윤우식 목사 이동훈 목사 이영희 목사 (Rev. McDonald)

이흥섭 임동섭 정병갑 정봉수 정석현 정성욱 천경우 최요셉 최요한 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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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0년 7월 9일

덴버소망교회 원로목사 추대 및 담임목사 위임예배

로뎀나무 카렌다

2020년 7월 26일 (주일) 오전 11시

2021년도 달력 제작을 덴버에서!

창립 36주년을 맞는 덴버소망교회는 우영종 원로목사 추대 및 담임목사 위임예배를 아래와 같이 드린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을 참조 하면 된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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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선교를 후원하는 로뎀나무 카렌다는 덴버에서 달력을 주문 제작하 며, 수익금의 일부를 문서선교 후원금으로 입금한다. 기독교 및 각종 비지니스 달력을 취급하며, 소량 주문도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7를 참조하면 된다. ●주문 시기: 2020년 8월 31일까지 공장도 가격의 50% off 9월 30일까지 공장도 가격의 40% off ●주문 마감: 2020년 9월 30일 ●문의: (303) 667-2778 rotemtree2018@gmail.com

●일시: 2020년 7월 26일(주일) 오전 11시 ●원로목사 추대: 우영종 목사 ●담임목사 위임: 안성훈 목사 ●장소: 덴버소망교회 1345 S. Dayton St. Denver, CO 80231 ●문의: (303) 750-0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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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의 신문 배달 할 자원봉사 자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으로: 언제든 시간이 허락될 때 2번째, 4번째 주말 신문 배달 원하실 때 1회도 감사 콜로라도 스프링스 썬마트, 한국마켓, 신사동식당 ●연락처: (303) 667-2778

♥ 기도로 ♥ 시간으로

♥ 재능으로 ♥ 물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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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 (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2020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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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를 이만희교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 "사이비 천국인 대한민국, 예수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사: 정윤석 기자

2019 부활절 연합새벽예배

종교를 빙자한 사기 단체 신천지의 풀 네임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 지, 이만희 교주)이다. 이 풀네임에서 신 천지는 ‘예수교’를 빼고 ‘이만희교’ 라고 넣어야 맞다. 그런데도 신천지는 예수교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때 로 시위 장소 앞에서 ‘예수 믿는 사람 끼리 강제개종이 웬 말이냐?'라는 피켓 까지 든다. 신천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 의 얘기만 듣고 ‘같은 예수교끼리, 같 은 기독교끼리 싸우는 구나’라는 착각 을 한다. 신천지가 ‘예수교’ 운운하는 건 사람들을 기만하는 공작일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들이 예수교의 참 의 미를 몰라서 하는 행동이다. 만일 그들 이 예수교의 참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 면? 그래서 기독교의 본질, 예수교의 본 질이 뭔지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예 수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고백 위에 세워진다. 마태복음 16장을 보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 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 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 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 내 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 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 내가 천 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 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

도 풀리리라 하시고(19).” 신천지측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는 구절에서 ‘반석’을 사 도 베드로와 천국복음을 받은 목자 등 으로 해석하며 그리스도가 아닌 ‘특정 인’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이만희 교주는 “베드로는 사도들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이 말 씀은 12사도 모두에게 주신 것임을 알 아야 한다. 실제로 12사도 전원이 기독 교회를 세우는 초석이 되었다”(이만희, 예수그리스도의 행전, 136p, 2006, 도서 출판 신천지)고 말한다. 즉, △12사도와 그를 대표하는 베드로 가 기독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한을 사 도들에게 나눠 주셨다 △사도들은 예수 님처럼 신구약의 말씀을 때에 따라 적절 하게 꺼내올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받 았다 △천국열쇠를 받은 사람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 늘에서도 풀린다 △천국복음을 받은 목 자가 이 땅에서 금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도 금하시고, 이 땅에서 허락하시는 것 은 예수님께서 허락하신다고 주장한다.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신천지는 ‘피조물’에 초점을 맞 춘다. 12사도와 베드로가 기독교회의 초 석이 되었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한을 사도들에게 나눠주셨고 천국 열쇠를 받 았다는 것을 설명하다가 갑작스레 ‘천 국복음을 받은 목자’를 끼워 넣어 그

가 이 땅에서 천국의 열쇠를 가진 사람 인 것처럼 불법유턴식 비성경적 왜곡해 석을 한다. 그러나 마 16:18에서 ‘반석’은 베드 로는 물론 베드로의 계승자나, 베드로 와 같은 사도성을 가진 후계자나, 12명 의 사도 나아가, 천국복음을 받은 목자 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 일 교회의 초석이 ‘베드로’나 ‘12사 도’라는 특정 인물을 의미하는 것이라 면 베드로나 사도들이 죽는 순간, 교회 는 끝나야 한다. 초석이 무너졌는데 어 떻게 교회가 설 수 있겠는가? 따라서 초석, 반석은 베드로와 같은 신 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실한 신앙고백 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 위에 세워진다. 참교회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이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베드 로가 이 진실한 고백을 했기 때문에 ‘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신다고 한 것이다. 믿음의 총체요, 본질로서 이 고 백은 그리스도에 의해 승인이 되었다. 그 리고 이 고백은 승인이 되었을 뿐 아니 라 이 고백을 한 사람과 앞으로 똑같은 믿음과 고백으로 살아갈 모든 교회에게 놀라운 특권이 부여되었다. “바요나 시 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이 반 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 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옥 의 권세가 피해 가게 될 것이다. 신천지 를 떠나면 ‘불지옥’이 아니고, 죽음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이 축복이 될 것이

다. 신천지 같은 사이비를 나왔다고 저 주 받을 일은 없다.

둘째, 예수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교회의 초석이며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천 국의 열쇠’를 쥐게 됨을 믿는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 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 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9).” 이 말씀을 근거로 베드로의 적통을 계승하는 자들이 ‘천국의 열쇠’를 소 유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신천지 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베드로에 이어 ‘천국복음을 받은 목자’를 내세울 뿐 이다. “천국의 열쇠를 받은 사람이 이 땅에 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 가? 맨다는 것은 금지한다는 것을, 푼다 는 것은 허락한다는 것을 뜻한다. 천국 복음을 받은 목자가 이 땅에서 금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금하시고 이 땅에서 허락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허락하신 다”(이만희, 위의 책 137). 천국의 열쇠를 받은 사람과 천국복음 을 받은 목자를 동일하게 보며 그 특정 인물에 집중하는 방식의 성경해석이다. 성경은 그러나 교회는 오직 한 반석, 오직 한 기초만이 존재함을 말한다. 성 경에는 교회가 다양한 반석위에 세워진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2020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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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 주 그리스도가

의 두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65p. 서

니이다’라는 진정한 신앙고백을 전제로

을 때,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교회의 유일한 반석이다. 만일 다른 반

울: 부흥과개혁사 2012년).

한다. 천국 열쇠는 이 신앙고백을 하는

그것은 예수교와 다른, 유해한 신앙이다.

석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예수교

“그리스도인은 장차 올 세상에서 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

베드로격의 목자나, 천국복음을 가진 특

가 아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

리기로 태초에 예정된 생명의 운명에 이

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정인물이나, 예수의 영을 받았다는 사이

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라”(시

를텐데···사명을 완전히 이루신 마지막

라고 하신다. 천국 열쇠를 주시는 권한

비, 신천지식으로 말하면 이 시대의 ‘

115:8). 목석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만 우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온전히

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지, 베드로나, 이

약속의 목자’를 초석으로 교회는 세워

상이 아니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의존함으로써 그렇게 한다.”(64).

만희 교주에게 있는 게 아니다.

진 바가 없다.

내려왔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믿고 따르 면 그것도 우상이다. 특정 대상, 인물이

그리스도인의 의는 예수님을 의지함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2천년이 지났다고 마태복음 16:16~19

‘천국의 열쇠’를 소유했다고 해석하면

으로 이뤄진다. 반복하지만 예수님이다!

말씀하실 때 ‘그리 마옵소서’라며 베

말씀을 변조·변이·진화·왜곡해서 특정

우상숭배를 정당화하는 해석이다.

그분의 영을 받았다거나, 새로운 시대의

드로가 말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저없

인을 내세우고 그 사람의 초석위에 교회

새주님이라는 사람이 나와야 얻어지는

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

따라서 이 말씀은 천국 열쇠를 받은

게 아니다. 마태복음 16:19의 천국의 열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는, 가

의 이름을 따서 새종교명을 만들면 된

사람이 이 시대에 누구냐에 초점을 맞

쇠도 그를 의존하고 그분께 매어 있지

룟 유다도 들어보지 못한, 제자들이 들

다. 신천지의 경우 ‘예수교’가 아닌 ‘

춰야 할 게 아니라 천국열쇠를 왜 받게

않은 상태에서는 결코 결과될 수 없는

을 수 있는 가장 심한 꾸중을 하신다(마

이만희교’로 불러야 하는 이유다.

됐는가, 그리고 누가 주었는가에 강조점

축복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천국의 열쇠

16:23).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베드로라

을 둬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진

가 있다면서, 자신을 떠나면 저주를 받

는 존재 위에 교회가 세워질 수도, 세워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는다고 성령훼방을 하는 것이라고, 마치

져서도 안 됨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 도서 존오웬, 기독론, 퍼플, 2019 데이비드 반드루넨, 하나님의 두 나라의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듯이 저주하는 사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의 모든

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

천국의 열쇠 또한 진정한 신앙고백의

국민으로 살아가기, 부흥과개혁사, 2012

죄를 완전히 속죄하셨다. 우리에게는 개

라고 참칭할 뿐 그리스도의 참된 은총

결과일 뿐이다.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

이만희, 예수그리스도의 행전, 도서출판

인적으로 속죄해야 할 죄가 더 이상 남

을 아는 자가 아니다. 그를 따르는 자 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이게 교회의

신천지, 2006

아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한, 참 그리스도가 아닌, 거짓 그리스도

건전성, 진실성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호크마 주석

이 세상에서 온전한 순종을 통해 새창

를 따르는 우상숭배자일 뿐이다.

잣대다. 이 기초적이고 가장 중요한 고

이미지 디자인: 최주호

백 위에 세워야 하고 세워지는 게 예수

조를 이루셨다. 예수님이 아직 성취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신 것은 결코 없다.”(데

정리하자면 천국 열쇠는 ‘주는 그리

교다. 이 신앙고백과 반대되거나 일치하

이비드 반드루넨저, 윤석인 옮김, 하나님

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

지 않거나 변조하거나 변이된 것을 붙잡

출처 기독교포털뉴스 www.kportalnews.co.kr

코로나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징계 하실 때가 가장 좋은 것이다. 기도를 해도 말씀으로도 환상으로도 응답하지 않으시 고 외면하신다면 사울과 같이 버림 받은 것일 수도 있 다. 징계 한다는 것은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크고 깊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되돌아보 며 겸비하는 모습으로 회개운동 이 도처에서 벌어지 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교회 안에 개구리였다. 그것도 청개구리 처럼 살았다. 외부와 단절한 채 하나님께 드릴 것 이 라고 ‘고르반'하면 그 누구도 말을 못했다. 믿는 사람 들끼리만 형제라 불렀다. 그러나 불신자도 모두가 하나 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들이며 우리의 형제자매다. 집을 나간 형제를 비난하는 집안의 탕자가 남이 아닌 오늘날 나를 비롯한 그리스 도인들이다. 저들은 믿지 않으니 지옥 갈 존재로 불쌍 히 여기기보다는 나는 구원 받았다는 안도감으로 만족 하며 산 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 모든 자유를 잃고 그 자유의 문 이 닫힐 날이 올지도 모른다. 교회 예배당의 문도, 예 배도, 찬송도 마음껏 할 수 없는 박해의 때가 언제 이 땅에 도래 할는지 모른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의 교회가 문 닫힌 지 가 벌써 70년이 넘었다. 신앙의 자유가 많다는 미국에 서 코로나로 인한 집회 중지 경고를 무시하고 예배를 강행 하다가 어느 목사님이 체포 되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보았다. 이것이 어찌 남의 일이겠는가?

깨어나야 한다. 순교의 자리에 앉을 각오를 하며 신앙 긍휼함도 진정한 그들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 생활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내가 배교자가 코로나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하심을 보고도 무감각 하 다. 솔직해지자. 불신자들을 진정으로 가슴에 품고 사 될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가룟유다가 되고 이교도 앞 에 무릎꿇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면 그는 불쌍한 사람이다. 목자 없는 양 같은 이스라 랑 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가? 엘 백성들을 보고 애끓는 긍휼하심으로 안타까워 하 그동안 우리는 습관처럼 예배하고 습관처럼 기도하고 세계는 점점 박해의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중국에 교 셨던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마9:36) 습관처럼 사랑을 외쳐 댔으나 내 속에는 그런 사랑이 회들이 파괴되고 불타고 수많은 나라에서 박해 속에 없었다. 나의 신앙은 앙고 없는 찐빵이다. 눈물 흘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번 코 자녀를 징계 하는 부모의 마음은 더 아프다. 로나가 기회다. 주께로 돌아와 신앙을 회복할 절호의 우리 주님의 마음이 아프시다. 코로나로 평소에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이 귀한 시대가 챤스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배의 소중함을 몰랐던 우리에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작은 모임 하나도 마음 코로나는 교회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깨닫고 알게 하 껏 할 수가 없다. 그 수많은 외식을 하면서도 외식 한 코로나를 통해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 셨다. 자유로이 마음껏 예배 할 수 있을 때가 가장 행 번 하는 것의 소중함과 감사함도 없이 무조건 즐기기 달아야 한다. 우리가 살길은 오직 주께 붙어 있는 것뿐 이다. ☆글: 봉민근 자료 http://cafe.daum.net/cgsbong 만 했던 삶을 산 것이 사실이다. 복한 것이다.


선교지에서 온 소식

2020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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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귀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대로 오묘하게 신묘막측하게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셨기에 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보안을 위하여 사역자의 성명과 사역 및 사역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 제는 하나님이 정말 멋지고 좋은 분이라 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는 항상 주위에 크리스챤들이 많 이 있는 곳에서 자라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나 귀한 분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좋은 것도 오래 가면 좋은 줄 모르게 됩니다. 저희가 가끔씩 한국과 미국을 방문할 때면 너무 황홀합 니다. 거의 천당 바로 아래 같이 느껴집 니다. 각 상점들과 가게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줍니다. 맛있는 음식점들은 황홀의 극치를 걷게 합니다. 그런데 안타 까운 것은 이렇게 좋아도 한 이삼 주가 지나면 익숙해져 버립니다. 좋긴 하지만 처음 그때처럼 황홀하지는 않습니다. 그 냥 좋을 뿐입니다. 저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났습니 다. 아버지도 목사님이셨고, 외할아버지 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모부도 목사님이 셨고 외삼촌도 그러셨고. 주위에 크리스 챤 문화로 가득 차 있었고 또 크리스챤 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 들은 무슬림들입니다. 그들은 신이 칠층 천의 제일 위쪽 일곱 번째 천당의 보좌 에 앉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곳에는 유명 한 선지자들도 있고 또 이 땅에서 정말 신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 라고 믿습니다. 그 신은 초자연적인 신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인간 가운데 거할 수 없습니다. 더러워질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냥 일곱 번째 천당의 보좌에 앉아서 말씀만 합니다. 그러면 천사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달합니 다. 사실, 그 신은 인간 세상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세 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그분은 인간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에도 그분은 절대 우리를 그냥 홀로 두 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자 그 분은 정말 미치도록 힘드셨던 것 같습니 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그 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 죄를 위 해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 예 우리와 함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안 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그들의 신은 인격적이지 않습니다. 인 격적이면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의 가진 어떤 면모도 그 신에게는 있으면 안 됩 니다. 우리의 감정, 느낌, 마음의 동함, 이 런 것들이 그 신에게는 존재하지 않고 또 그래서는 절대 안 됩니다.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즐거워하거나, 흥분하거나, 분 노하거나 후회하는 것 등, 이런 면이 없 습니다. 그 신은 완전한 비인격체 이어야 합니다. 인격적인 것은 저급한 것입니다. 그 신은 우월하며 초월한 존재이어야 합 니다. 그 신은 절대 인간들과 말을 섞지 않습니다. 절대 관계하지 않습니다. 당연 히 그 신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경전에 보면 그 신은 자비를 베 푼다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신이 어 떻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지 잘 모르겠 습니다. 엄청 깊은 철학인 것 같이 들리 기도 하고. 제게는 너무 깊은 모순 같아 보일 뿐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 다. 그는 나와 관계하십니다. 나를 좋아 하시고 또 사랑하십니다. 나와 시간을 보 내는 것을 원하십니다. 나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염원하십니다. 나를 향 한 기대가 있습니다. 내가 멋지게 변해 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나의 예배를 원 하십니다. 오랫동안 집을 나간 탕자가 돌 아오도록 애타게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 니다. 내가 우상들을 향해서 마음을 돌 리면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의도 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면 분노도 터뜨 리십니다. 하지만 내가 회개하고 돌아오 면 잃은 양을 다시 찾은 목자처럼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들의 신은 유일신입니다. 하지만 그 신은 홀로 존재합니다. 절대 다른 인격 체가 그 신 가운데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다른 인격체도 그에게서 나오지 않 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혼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은 한 번도 사랑 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랑 받아 본 적도 없고 사랑을 해 본 적도 없습 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 로 사랑의 신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초

월하며 무인격적이며 영원토록 홀로 거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에 게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외로 운 신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할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사랑입니다. 그의 중심도 사랑이고 그의 겉도 사랑 입니다. 100% 순사랑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지만 그에게는 삼위가 존재합 니다. 그 안에 계시는 세 분의 인격체들 은 영원 전부터 함께 사랑의 관계 가운 데 존재해 오셨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 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사랑 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지 극히 당연하게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 셨습니다. 그들의 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 는 신입니다. 심지어는 그가 언급한 것 에서 부터도 자유합니다. 한마디로 이전 에 언급했던 부분도 다시 뒤집을 수 있 습니다. 그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있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그 신을 따르는 종들도 그런 자유를 많이 누리는 것을 봅니다. 진리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내가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태초 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 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들의 신은 구원 최종 결정자입니다.


선교지에서 온 소식

2020년 7월 9일

오성관 목사

7

마치 우리의 믿는 하나님과 비슷하게 들

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신을 알 수

님이십니다. 약속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

리지만 끝까지 들어 보셔야 합니다. 심판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아들이 있

없다면 삶의 목적과 소망은 어디에 있는

약속들은 꼭 지키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대 앞에 섰을 때에 사람들의 천국과 지

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것일까요? 인간의 시작과 끝은 어디이며

한 분이시지만 그 가운데 삼위가 계십니

옥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흠없는 인생

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내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게 되나요?

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영원토록

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도 열심히 종

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

교적인 삶을 삽니다. 하지만 마지막 심

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

나의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우리에

판대 앞에 섰을 때 그들의 행로를 결정

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게 보이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이해할 수

나의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

하는 것은 그들의 선행과 악행도 있지만

”(요일 5:11-13)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를

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태어

돕기 위해 아예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

난 존재가 아닙니다. 특별히 그분의 형

결국은 신의 무드에 따라서 최종결정이

사랑가운데 계십니다.

납니다. 신이 원하면 천국을 가는 것이

그들의 신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

나님을 인간으로서 이해하는 것은 정말

상대로 태어난 귀한 존재입니다. 나의 하

고 신이 원하지 않으면 지옥을 가는 것

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죄 같

쉽기 때문입니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나님은 우리가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입니다. 아무리 종교적으로 열심히 살았

은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없고, 느낄 수 없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그분을 드러내

어도 그들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은 신

대로 창조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다른 동

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구원

물들이나 창조물들과 어떻게 구분이 되

의 확신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아니

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죽고 나서 마저도, 그런 거 없습니다. 참

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 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하더라.” (요 1:14)

가 너 희에게 만나지겠고” (렘 29:13-14)

안타깝고 안 된 인생입니다. 그렇게 열심

나의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형상대

히 평생토록 종교적으로 삶을 살고도 구

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나는 특별한 존

말씀을 정리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인

결론적으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

한마디로 예측불허의 신입니다.

재입니다. 아무리 내가 보기에 못나 보이

격적이십니다. 느끼시며, 의도하시며, 인

다. 그리고 이렇게 좋고 귀한 하나님이

고 실패작 같이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

지하십니다. 우리와 같이. 나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심에 감격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냥 저 멀리 위에

그래서 그분의 거룩한 말씀 책도 이전

었습니다. 나는 오묘하게 신묘막측하게

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약속 (구약)과 새 약속 (신약)으로 불립니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의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절대 거짓이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

그들의 신은 알 수 없는 신입니다. 인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

간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입니

신뢰할 수 있습니다. 무드에 따라서 말씀

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

다. 완전히 초월한 존재이기에 인간에게

하셨던 것을 번복하실까봐 걱정할 필요

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요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그 신

가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

8:38-39). 아멘!

다. 성경 말씀에 얼마나 약속들이 많은 지 모릅니다. 나의 하나님은 그 정도로 모든 약속을 이행할 자신이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 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7-18)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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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0) 제공: 김영옥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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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설교

2020년 7월 9일

8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마태복음 5:10-12>

천경우 목사

덴버영락교회 담임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 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 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 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 세상에서 복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을 휩쓸었던 새 마을 운동이 아프리카에서도 지금 시 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새마을 운 동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잘 살아보 세” 입니다. 복을 맘껏 누려 보자는 것 이지요. 실제로 복을 많이 누리기를 원 하는 사람이 우리입니다. 그런데 예수 님을 따라 다닌 사람들은 복을 누리는 사람들 보다 복 받기를 소원하는 사람 들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복은 매우 현 실적이고 물질적입니다. 병든 자가 치유 를 받고 배고픈 자가 빵을 받고 외면당 하는 자가 위로를 받는 눈에 보이는 복 을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한결같이 고차원적이어서 자신들의 생 각,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완전히 뒤집는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의 본문에서도 역시 같은 유형의 말씀 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 씀을 들으면서 이거 계속해서 듣고 있 어야 돼, 필요한 말이야, 납득이 안 가 는데 하면서 여러 모양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 람들에게도 팔복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 복이 있다 하면 이게 무슨 복이야 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요? 특별히 오늘의 말씀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의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의 의는 불의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무기를 구입할 때에는 전세 계의 수많은 로비스트들이 동원이 됩니 다. 어떻게든 군이나 정치세계에서 힘 쓰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자신 들의 무기를 팔려고 노력합니다. 그러 다보면 나라에 필요한 무기보다 성능 이 떨어지는 무기를 돈을 더 주고 구입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실무를 보는 사람들이 보면 말이 안 되거든요. 나라 의 앞날이 달려 있는데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자 불의를 행하는 모습을 보면 서 문제를 제기하면 돈을 주면서 회유 를 하거나 아니면 상급 자리를 보장하 면서 함께 하자고 하거나 그것도 안 되 면 그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때로는 해 를 입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세상 에서의 의는 이런 불의를 대하는 것이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 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의를 실행할 수 있는 자격이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은 별로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실권을 가진 사람들은 이스라엘 을 식민지로 차지하고 있는 로마 사람 들에 빌붙은 사두개인이나 그들과 타협 을 맺고 있는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들 입니다. 실제로 그 사람들이 불의를 행 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다수 서민들은 불의를 보면서도 불의를 불의라 하지 못하고 쉬쉬하면서 그들에게 불이익을 당할까 노심초사 하는 사람들입니다. 의를 의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라 고 할 때에 그 의가 무엇인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따라오는 11절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11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 나니”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11절 “나로 말미암아” 라고 하면서 의는 바로 예 수님 자신임을 선포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는 다 름 아닌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임을 밝 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나를 믿고 나를 따를 때 에 너희는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것 을 전제로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이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또 그들의 생명을 바치겠다 고 한 것도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예 수님을 믿고 따르면 심히 억압당하고 괴롭힘 당한다고 하셨을까요? 듣는 사 람들에게 많은 당혹감을 주는 말이지 요.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예 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을 널리 선포 하는 것입니다.

눅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 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처형한 로 마 군대의 책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서 죽으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이와 같 이 말했습니다. 아무 이해가 얽히지 않 는 제삼자가 보기에도 예수님은 의롭고 완전하고 흠이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예 수님은 ‘의’ 자체였습니다. 그렇기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 는 예수님처럼 어두움의 권세를 물리치 게 됩니다. 당연히 어두움의 권세를 잡 은 자들, 그 어두움에 빠져있는 자들은 예수님을 예수님 믿는 자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더 나아가 박해하고 방해하고 고난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삶을 잘못 살아서 오는 박해 라면 잘못에 대한 대가이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 는 바른 삶을 살겠다고 할 때에 박해가 온다면 부당한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큰 영광과 명 예는 아닐지라도, 삶의 안전과 안정, 성 공과 평안에 대해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주목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나 ‘나의 가치’가 아 닌,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의’ 를 발견하고 그 의가 내 삶에 들어옴으 로 변화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사람들이 잘못하면 당연히 그 잘못 에 대해서 회개하고 새롭게 변화한 모 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나 교 인들이 일반 기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하여서 부끄러움을 가져오는 일들이 있 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순종하 지 않고 자신의 생각, 세상의 생각을 따 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일들은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그 런 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의 로 인해서 박해를 받는 것과 거리가 멉 니다. 하나님의 마땅한 징계요, 깨우침 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입을 열어 말 을 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무엇이 의 인지, 불의인지를 인식합니다. 그렇기에 기회가 되면 로마 정권에 빌붙어 먹고 사는 세관원 같은 삭개오를 대놓고 무 시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길 뒤에서 앞으로 나오려는 삭개오를 모르는 척 자리를 비껴주지 않고 배척 하고 밀어제끼면서 위안을 받는 소시민 입니다. 그러니, 대놓고 의를 외치는 사 람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말합니 다 의를 위하여 살라, 그것이 복받는 삶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의로운 삶이요, 복받는 삶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예수님 을 믿어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 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을 아주 기뻐 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


강단 설교 으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감사하 는 마음을 봉사합니다. 그리고 행복해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 들이 받는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복입니다. 우리 에게 만족을 주는 복입니다. 영원히 기 쁘고 행복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완 전한 복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위하 여, 의를 위하여 삶을 살게 됩니다. 그 런 자들에게 복이 임하는데 천국의 임 재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 수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 살 아가야 합니다. 세상 끝까지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참된 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주류는 하나님의 의와 반대되는 삶을 삽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은 불의한 세상입니다. 불의하기 때문에 의의 삶은 두드러지 게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으로부 터 핍박이 옵니다. 세상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를 보 면 예수님 당시에 뿐만 아니라 타락한 중세 교회 시대에는 항상 의인이 핍박 을 받았고, 주님의 의를 추구하는 자 는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 는 불신자들, 불의한 자들이 있다는 것 이고 그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역할 을 감당합니다. 또 이 세상이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예수님께서 핍박 을 당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남 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하게 믿고 적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편한 모습이 있기에 구태여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거나 충돌하면서 살고 싶어 하 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의 유익 을 따지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이지 않게 되니 생명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핍박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연합한 자들은 당연히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되어져 있습 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선포하면서 먼 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가시나무의 길임을 알게 하 신 것이고 또 따르는 사람들에게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 소수만이 갈 수 있 는 임을 알게 하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핍박당하

2020년 7월 9일

는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과 연합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 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 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 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여기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스 도의 남은 고난”은 주님의 날에 이르 기까지 우리 믿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것임을 말합니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박해요 괴로 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 움을 복으로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인 간적인 방법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 나님의 나라에서 복받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말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의 상이 큼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는 복 된 모습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들이 받은 축복된 모습임을 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 까요? 믿는 자에게는 핍박이 당연한 것 이라면 믿음 생활을 하면서 조그만 어 려움은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 생활의 가장 어려움은 무엇인 가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 로워요. 답답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이 성령 하나님입니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내 가 먼저 용납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아 요. 사람들은 오고 가는 것, 내가 이렇 게 하면 당신도 이 정도는 해야지 라 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도 내가 먼저 행하는 믿음의 자세는 정 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부 어져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보고 주님은 말씀합니 다. 하나님의 상이 크니 기뻐하고 즐거 워하라, 누구 안에서? -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예수님은 의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은 의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의 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 다. 철저히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를 닮 은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 니다. 그러나 예수 없이 의만 좇다가는 우리도 바리새인처럼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외식하는 자의 자리에 앉게 되고 말 것입니다. 겉은 사람들 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속은 메마르고 완고하 거나 또는 불안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믿음생활의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의 를 앞세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할 때가 있지요. 그럼에도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 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의를 위하여 -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세는 삶의 능력이 드러나게 합니다. 심리학에서 ‘Minority Influence Theory, 소수의 영향력’ 이라는 논 리가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는 대다 수인 majority가 삶의 흐름을 주관합 니다. 그런데 소수인 Minority가 세상 인 majority와 달라도 끈질기고 설득 력 있게 나오면 majority도 영향을 받 아 전체 의견이 변하게 된다는 내용의 학설입니다. 이것은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 이 기독교가 로마시대에 많은 핍박을 받았음에도 끈질기게 주님의 나라를 외치고 다녔을 때에 로마의 주된 세력, 정치권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흩어지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런데 지금의 모습은 기독교인들의 하나 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모습 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 기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 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현 사회 에 참된 의를 구하는 믿음의 자세가 필 요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 라, 천국이 임합니다.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 의 의를 구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세상으로 부터 당하는 교회의 고난 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 입니다. 2천 년 전 초기 교회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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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들은 핍박을 받을 때마다 기 뻐했습니다. 지금 중동 지방에도 이슬 람을 다 믿고 있는 가운데에도 예수님 을 믿는 사람들이 지금 많이 나오고 있 습니다. 그런데 가족 중심이다 보니 가 족들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핍 박 가운데 복음의 역사가 더 크게 일 어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 은 핍박을 통해서 꽃을 피우는데 그리 스도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요, 하나 님이 기뻐하시는 능력의 역사가 드러나 는 것입니다.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 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 때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한 많은 어 려움을 직면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 나, 그것은 당연한 일임을 기억하며 나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생 활을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물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옛날 어린 시절 국민학 교 교과서에 나오는 ‘닭’ 이라는 동 시를 배웠습니다. 아동문학가인 강소천 이 지은 시입니다. “물 한 모금 입에 물 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우리는 자주 하늘을 쳐다보는 훈련 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 님의 뜻과 일치할까? 만일 내가 이 일 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 나님이 밝은 미소를 지을까? 우리는 시 시각각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합니 다. 바로 그때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가 이렇게 결정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 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는 참된 믿음 의 모습일까? 그렇게 신실되이 믿고 나갈 때에 그들 의 심령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있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나라, 주님의 역사가 있는 나라, 주님의 사랑 과 위로가 있는 나라, 주님과 함께 영 원히 기쁨을 누리는 나라를 경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0년 7월 9일

10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와 거절하시는 예배 <사무엘상 13:8-15> 김준영 형제가 가사를 쓰고 임선호 형제가 작곡을 한 '주를 위한 이곳에'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의 시 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를 위한 이곳에 예배하는 자들 중 에 그가 찾는 이 없어 주님께서 슬퍼하 시네. 주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 그 예배자 내가 그 사람 되길 간절히 주께 예배하네... 주 은혜로 이곳에 서있네. 주 임재에 엎드려 절하네. 그 어느 것 도 난 필요없네...” 이 찬양 가사 중에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 해 그들 중에 정작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없어서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곡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예배의 역사입니다. 성경 안에서 수많은 예배자들이 등장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그 분이 슬퍼하시며 거절하신 예배가 있 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벨과 가인 의 예배 중에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4:4-5절입니다. "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 니하신지라" 그들이 바친 제물만이 아닙니다. 아 벨의 경우에는 그가 드린 제물 전에 먼저 아벨입니다. "...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드린 제물 이전에 먼 저 가인의 삶, 그의 인격 또는 그의 마 음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 경은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 니하신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부자 바리새인과 과 부가 드린 헌금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곳에 주님이 계셨는데, 그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 ...이 가 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 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3)

그분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 모 두가 종교적으로 의롭고 기도와 헌신 적인 바리새인이 바친 많은 헌금보다 그 당시 사회적인 신분으로 열등한 여 인, 더구나 남편을 잃고 궁핍하게 사 는 그녀의 적은 헌금을 더 많게 평가 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은행 잔고에 돈 10만 불이 있는 부 자와 지갑에 10불이 전 재산인 빈자 가 드리는 헌금은 다를 수밖에 없습 니다. 안정된 사업을 경영하거나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확 실한 수입이 있는 사람과 오랜 실직으 로 그날 저녁 거리가 없는 사람이 바 치는 헌금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전자 보다 후자가 드리는 헌금은 돈이 아니 라, 그의 생명을 또는 인생 전체를 바 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자 체보다도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있 습니다. 헌금을 드리지만 계산 할 수 있는 동그라미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 의 마음이나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받 으시고 또는 거절하시는 예배의 차이 는 무엇입니까? 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 리려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예배를 받 으시는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예배를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1. 하나님이 예배의 주인이십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앞에 두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수많은 군인들과 무기 로 완벽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 니다. 그것을 본 이스라엘군대는 전쟁 을 시작하기 전부터 두려워 떨고 있 었습니다. 도망을 가며 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이 뭔가를 해야 했는데 하나님께 드릴 제사를 직접 주 관합니다. 제사장인 사무엘이 약속한 7일을 기다리고 그가 와서 제사를 드 려야 했는데 사울이 번제와 화목제로 드릴 소, 양, 염소 등을 바칩니다. 그러나 사울이 드린 제사의 결정적

인 이유는 원수인 블레셋의 공격이나 사무엘 선지자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 이 아닙니다. 15장의 아말렉과의 전쟁 후에 승리한 후에 그의 행동에서 나 타납니다.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 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삼상 15:12) 사울이 선지자의 책망으로 회개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의 진심이 아 니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 내 백성 과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 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게 하소 서..."(삼상 15:30) 사울왕 자신이 제사를 주관을 하며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려고 하였 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핑계로 그분께 불순종을 합니다. 그가 `내가' ‘내 백성'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내가 당신의 하나님' 이라고 말하면서 무려 5번씩이나 `나' 를 강조합니다. 그 러나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드린 제 사를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12장에서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고향과 친 척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서 가 나안을 향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삶이 예배자의 삶으로 이어지는데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개혁 성경은 12 장 7절에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 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창세 기 12:7) 그리고 8절입니다.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 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 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 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라함의 제사가 우리에게 무엇 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드 리는 예배가 어떤 예배가 되어야 합니 까?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려서 `누구 를 위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까? 다 같 이 저를 따라서 하세요. `하나님을 위

최요한 목사

섬김의 교회 담임

하여' 입니다.

2. 하나님은 순종하는 예배자를 기 뻐하십니다. 이사야 1장에서 말씀하십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지고 오지 말 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 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 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 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214) 요즈음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주 일예배, 금요찬양집회, 부흥회, 철야집 회, 금식 기도회 부활주일, 추수감사 절, 내적치유 세미나, 선교집회. 제자화 훈련 등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 입니다. 십일조, 주일 헌금 감사 헌금, 선교 헌금, 건축헌금, 특별 헌금, 별미 헌금, 일천번제헌금 등이 내게는 불 편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 님께서 정말로 예배와 헌금을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 다.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 참된 예배 를 갈망하며 순종하는 예배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사울의 제사에게 발견됩니다. 왕의 이름으로 드린 제사 가 웅장하여 온 백성이 감동을 하였습 니다. 왕의 명령으로 바쳐진 희생재물 들이 차고 넘쳐 환호를 지르며 흥분을 하는데 진작 하나님은 그 제사를 거절 하셨습니다. 왜요? 사울의 불순종 때 문이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 리지만 그가 약속한 마지막 날 7일을 온전히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불순종이 사무엘상 15장에서 도 반복됩니다. 여기서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벌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아말렉 모두를 진멸하라고 말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니다.

2020년 7월 9일

11

그러나 왕이 되면서 교만하였고 결국

이 있지" 라고 우쭐거리지 않으셨습니

사울의 교만은 그의 멘토인 사무엘

하나님의 버림을 받습니다. 사울은 차

다. 지극히 거룩하셨지만 죄인들과 세

을 무시함으로 나타납니다. 앞서 말씀

라리 왕이 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리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

드린 대로 사무엘이 7일 후에 돌아와

하였습니다. 그의 성공이 결국 성공으

시지만 뽐내지 않으셨습니다. 최고의

사울은 이렇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서 제사를 드리기로 하였는데 그의 말

로 끝나지 않고 실패자의 인생으로 마

선생님이며 설교자이셨지만 그 흔한

"하나님, 아무리 원수이지만 아각은

을 듣지 않습니다. 교만의 특징입니다.

감을 합니다. 왕이 되었기에 망한 사

설교집 하나를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아말렉의 왕이잖아요. 그를 인격적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죠. 오히려

람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마음과 목숨 그리

로 대하고 싶습니다. 좋은 양과 소는

자신의 잘못을 핑계나 변명을 합니다.

씀하셨는데 사울이 아말렉 왕, 아각 을 살려 주고 살진 소나 양들은 남 겨 둡니다.

아깝잖아요? 하나님께 더 많고 좋은 제물을 바치면 더 좋지 않나요? 또 나 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면 선한 일 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행위를 보 시고 책망하십니다. 사무엘상 15:22입니다.

"...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 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 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 다 나으니" 사울의 삶의 결론을 역대상에서 다 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 을 지키지 아니하고… "(역대상 10:13) 그리스도인으로 승리와 성공의 열쇠 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 이는 것은 크고 화려한 예배나 아름 다운 찬양이 아닙니다. 예배의 횟수나 헌금 액수,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사역 이나 봉사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순 종의 여부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예 배, 순종하는 사역 그리고 순종하는 삶이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진가 를 발휘합니다.

3. 하나님은 겸손한 예배자를 찾습

12절의 끝부분입니다.

"...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그리고 15장에서 아말렉 왕 아각을 살리고 그들의 양과 소를 남기며 불 순종한 죄를 정당화시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하려 하여 양 들과 소들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남 김이요..." (15:15) 그리고 그의 교만 은 극에 이르며 사무엘에게 요청합니 다. 다시 15:30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 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 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 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 더라."

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셨지 아놀드 제이 토인비는 "성공한 자

만 나무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

는 그 성공한 것으로 망한다”라는 말

으셨습니다. 그분이 당한 심판은 우리

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

가 마땅히 져야 했습니다. 영원한 생

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명을 소유하신 분이지만 자신의 목숨

성공이 교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

을 버리셨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으

생명인 영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로 최고의 덕은 첫째가 겸손이요, 둘째

되었습니다.

도 겸손이며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말 하였습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다른 사람보다 출 세를 하신 분이 있다면 그는 더 조심 하셔야 합니다. 돈이나 지식이 있을 때 에 낮아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공로나 업적을 남겼다면 말을 더욱 자랑 하시지 마세요. 물론 쉽지는 않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이루 어 놓은 성공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 이 아닌 사무엘의 하나님일 뿐입니다. 사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삼자의 하 나님입니다. 그의 교만이 하나님과의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 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12)

관계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이스

그 비밀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 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 져 자기를 낮추시고 ... 죽기까지 복종 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 2:7-8)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배이며 그분의 죽으심이 최 상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겸 손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 에서 다른 사람보다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훌륭 하고 똑똑하고 착해서도 아닙니다. 오 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와 구원을 받은 죄인입니다.

라엘의 영웅이며 자신의 생명의 보호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강조하며

자 그리고 딸 미갈의 남편 즉, 자신

가르치기만 않으셨습니다. 친히 그 겸

의 사위인 다윗과 관계가 깨어집니다.

손의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우리 집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사

다윗이 골리앗과 싸움에서 승리한 후

앞에 잔디를 깍은 후에 아내에게 자

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부터 사울은 다윗을 향해 시기, 질투,

랑을 하고 싶었지만 그분은 온 우주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위하며

미움 그리고 살해하기를 거듭 반복합

를 창조하셨음에 불구하고 교만을 떨

그분께 순종하는 겸손으로 하나님이

니다. 사울은 작은 베냐민 지파의 출

지 않으셨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시

받으시는 예배자의 삶을 사시기를 축

신으로 농부로 그의 삶이 시작됩니다.

라 "달나라가 내 거야. 그곳에 내 별장

복드립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7월 9일

12

사무엘상 강해(26)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 <사무엘상 7:3-4> 사무엘서 기자는 4장부터 6장까지 상당

벗어나고 싶은 간곡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

히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언약궤와 관련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

에피소드를 이어 갔습니다(① 언약궤를 이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인

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용한 아벡전투, ② 언약궤 피탈, ③ 언약궤

상태는 이제 다 익어서 떨어지기 일보직전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2:12-13)

로 인한 블레셋 징계, ④ 언약궤의 귀환, ⑤

의 감나무의 홍시 같은 모습입니다.

척한다고 하나님을 속일 수 있습니까? 결 코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회개

언약궤로 인한 벧세메스 징계, ⑥ 기럇여아

해야 합니다.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셋째, 돌아왔으면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켜야 합니다.

림의 아미나답의 집에 언약궤 안치). 그리

이 때 드디어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그리

고 이 언약궤와 관련한 이야기의 마지막을

고 백성들에게 무엇인가를 촉구합니다. 무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라고

이렇게 매듭 짖고 있습니다. “궤가 기럇여

엇입니까?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

둘째, 우상을 제거하고 돌아와야 합 할 때 ‘향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 니다. 쿤’인데, ‘확립하다’ ‘고정시키다’라는

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

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

진정한 회개는 우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뜻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는 것

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이스라엘 중에 버려야할 우상이 있었습니

입니다. 마치 항구에 정박한 배가 닻을 내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

까? 예,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방 신

려 풍랑에 휩쓸리지 않게 하듯이 마음을

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사무엘상

들과 아스다롯’입니다. 여기서 ‘이방 신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참 변화무쌍하고, 믿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였

7:3)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들’은 4절에 ‘바알들’인 것을 알 수 있습

지 못한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언제 또

다고 합니까?

그냥 슬퍼하고만 있지 말고, 하나님을 찾

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

다시 우상에게로 돌아갈지 모릅니다. 그래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

고 있지만 말고 전심으로 돌아오라는 것입

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사무엘

서 죽음의 위협 속에서 불안하고 힘들고

라!”(all the people of Israel mourned

니다.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

상7:4) 이 우상들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

어려운 자신의 마음을 되잡기 위해 이 ‘

and sought after the LORD). 지난 시

는 말입니다. 돌아오라는 말은 회개를 촉

너희 중에’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쿤’이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시를 지었던

간에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사모했다는 말

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

속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상을 그대로 두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여기 ‘사모하다’라

안 정복 이후 약 350여 년 동안 참 많이

고 슬퍼만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우상을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

는 히브리어 ‘나하’는 문자적으로는 ‘애

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

그대로 두고 하나님만 찾으면 되겠습니까?

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

곡하다’ ‘슬퍼하다’는 뜻입니다. 한글 성

나님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은 20년 동안 이 짓을 하

송하리이다”(시편57:7, 시편 57편은 다윗이

경은 ‘사모하니라’라고 의역해서 번역을

백성들에게 사무엘은 ‘돌아오라.’고 호소

고 있었습니다.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어

사울을 피해 굴속에 숨어 있을 때 지은 시

했지만,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원래의 문

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정쩡하게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상과 하나

입니다.) 여기 ‘확정되다’라는 단어가 히

자적인 히브리어의 뜻을 살려서 ‘슬퍼했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참 많이 나오는 말이

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브리어로 똑같은 ‘쿤’입니다. 다윗은 위

다’(mourned)로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지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사무엘이 오늘 본

금 보고 있는 NIV성경은 여기에 하나님을

문에서 제시하는 ‘여호와께 돌아오는’, 즉

바알은 남신 중에 최고의 신입니다. 그

‘찾았다’ ‘추구했다’(sought after)라

회개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무엘 선지자

리고 아스다롯은 여신 중에 최고의 신입니

는 말을 덧붙여서 번역을 했습니다. 직역을

는 오늘 본문 3절에서 진정한 회개의 방법

다. 대체로 가나안 족속들은 이 바알과 아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20년 동안 슬퍼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스다룻을 함께 섬겼습니다. 바알은 ‘풍요

‘아프로디테’, 로마 사람들은 ‘비너스’)

여기서 ‘섬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여기서 우리는 이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첫째,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 와야 합니다.

‘미의 신’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원

‘아바드’는 종이 주인을 섬기는 행동을

인 상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블레

여기서 ‘전심으로’(all your hearts)는

래 남매지간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주신인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셋의 압제 속에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리

온 마음을 다하여 회개해야 한다는 말입

‘엘’과 ‘아세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

이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 될 때

고 이 블레셋의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갈망

니다. 돌아오는 척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

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하자

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다’는 뜻으로 해석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찾

니다. 우리가 형식적으로 회개할 수 있습

마자 이 두 신에게 푹 빠져 져버렸습니다.

이 됩니다.

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사시대 이스라엘

니다. 몸은 돌아온 것 같은데 마음은 그냥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 속에도 이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

의 영적인 상태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우상

제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구약 요엘서에

두 신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먹

리에 있을 때 그 열매를 맺습니다. 참으로

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

보면 마지못해 회개하는 척 하는 이스라엘

고 잘 사는 것, 아름다워 지는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를 멸시하고 온전히 섬기지 않았습니다.

을 책망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들이 우리들의 사람 속에 하나님의 자

자리에 있습니다. 그 사람의 몸도 역시 예

니라”(사무엘상7:2) 블레셋에게 빼앗긴 법궤 가 기럇여아림으로 돌아 온지 20년이 흘렀 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온 족속이

하며 하나님을 찾았다.’가 됩니다.

기적인 상황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넷째, 그리고 지속적으로 예배의 의 신’입니다. 아스다롯(그리스 사람들은 자리에 돌아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블레셋이라는 이방민족을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

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배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

들어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고 계시는 것입

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

나라가 망할 때까지 이 두 욕망을 포기하

는 자리에 내가 없다는 말은 하나님 말고

니다.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징계로부터

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

지 못했습니다.

또 섬기는 것들이 내게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7월 9일

13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중요하게 여기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주

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돌아오

는 것이 있다면 내 마음과 몸은 예배의 자

시는 약속이 무엇입니까? 다시 3절을 보

들고 어려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서 ‘내

리를 떠나 그것에게 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

겠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철벽

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하나님의 마음

다. 그리므로 회개의 최종적인 자리는 하나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처럼 가로막고 있습니까? 내가 교회도 다니

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

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입니다. 예배의 자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

고, 예배도 드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문제

늘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

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리입니다. 회개는

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

가 뭘까요? 혹시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향

다. 돌아오기만 하면 맞아주실 준비를 하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

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죄의 자리,

고 말입니다. 회개만하면 기꺼이 용서해 주

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속적으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

세상을 떠나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

실 준비를 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로 죄를 지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사무엘상7:3)

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진정한 회개는 먼

러므로 ‘돌아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그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저 마음이 하나님께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을 외면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

그러므로 어쩌면 예배의 자리는 현실적

건져내시리라” 여기서 우리는 왜 이스라

그리고 행동과 실천이 뒤 따릅니다. 진정

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이 떨어지기

으로 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리일

엘이 블레셋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

한 회개는 또 다시 죄의 자리로 되돌아가

가 무섭게 순종했습니다. 4절입니다. “이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지 않도록 내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

줄어들면 들수록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사무엘상7:4) 저와

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전심으

나와 예배드릴 때 진정한 회개의 열매는 맺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순종이 있기를 축원

모습이 아닙니까?

로 내게 돌아오면 블레셋으로부터 건져 주

혀지게 됩니다.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인생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 말이 "당신을 위해 기도 할께요”라고 한다. 고의적인 거짓 말은 아니겠지만 왠지 씁쓸하다. 성도는 정직히 말하고 또한 말한대로 살아야 한다. 정직은 그리스도인의 도덕성이며 핵심 가치다. 생각한대로 말하고 임기 웅변 같은 거짓말은 안된다. 우리의 생각은 얼마든지 틀릴수가 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항상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고치시고 온전케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바르게 살기 위해 회개 하라 말씀 하신다. 예수님의 공생에 첫 일성이 회개 하라 였다.

정신과 의사가 우리의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는 할수는 있으나 회심하라, 회개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 외에는 방법이 없다. 십자가 외에는 대안이 없다. 정직하지 못하며 불의하며 반역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이 먼저 나에게 보이셨고 나의 이름을 지명하여 부르셨다. 보혈 외에는 세상에 어떤 세제로도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할수 없다. 우리는 십자가로 용서 받았다. 십자가는 우리가 좋아 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인생을 가장 잘 사는 사람이다. 나의 방법에는 오류 투성이다. 그러나 성령은 내 인생에 뚫린 구멍을 언제나 막아주시며 글: 봉민근 나의 허물과 죄를 다스려 주시고 제어 하여 주신다. http://cafe.daum.net/cgsbong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목회 칼럼

14

2020년 7월 9일

하나님을 찾는 자의 복 북아메리카 북부에서 영토를 확장하던 프랑스가 청교도들이 대부분인 오늘날 미국 지역까지 확장하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면서 남하를 하였다. 그러자 수십 배나 더 많은 미시민들이 두려움으로 인 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영국에 도움을 요 청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미원주민들을 포 섭하여서 미국과 영국을 대항하여 싸웠 다. 당시 최강의 영국군대가 미국을 도와 서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에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서히 미국을 식민지화 하였다. 세금과 정치와 법이 모두 영국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민은 아메리카 대륙 에 와서도 또다시 영국에게 핍박을 받게 되었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1773년 12 월 16일에는 ‘보스톤 티 파티' 등 데모를 하였고 영국군이 총을 발사하였다. 그러 면서 미국은 무력으로 영국군에 맞서서 싸우고 독립을 하겠다고 소리를 높였다. 1775년에는 변호사 겸 정치인이요 버 지니아 주의 주지사이기도 하였던 패츠 릭 헨리 씨가 “내게 자유 아니면 죽음 을 달라!”고 소리를 치고는 독립의 필요 성과 정당성을 연설하였다. 그는 “미국 은 (영국을 위해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크리스천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서 세워졌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면서 마 침내 1775년 4월 19일부터 미국혁명전쟁 즉 독립을 위한 전쟁이 발생하여서 8년 4 개월 15일 동안 치열한 전투의 연속이었 다. 당시 미국의 백인 인구는 2백만 명이

었는데, 미국민 인구의 5%에 해당이 되 는 십만 명의 백인 남자 청장년이 죽었 다. 영국을 경계한 프랑스와 스페인이 미 국을 도왔고, 미국을 경계한 미원주민이 영국을 도왔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을 경 계한 독일이 영국을 도와서 싸웠다. 그래 서 영국군에 속한 군인들은 약 6만 명이 죽었다. 양쪽에서 부상을 당한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미국 땅에서 미시민들의 인 구의 약 8%에 해당이 되는 남자 청장년 들이 죽은 것은 안타깝게도 역사적으로 최고의 희생률 일 것이다. 244년 전에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 서를 가장 먼저 초안을 하였고, 벤자민 프랭클린이 점검 수정을 하였고, 쟌 애덤 스와 롸저 숴어먼과 로버트 리빙스톤이 추가로 점검을 하고서 최종 작성을 하였 다. 1776년 7월 4일은, 13개 주 미대표들 이 그 ‘독립 선언서’를 최종 인정을 하 고서 대표 56명이 서명을 한 후에 마침 내 통과를 한 후에 공포가 된 날이다. 전 쟁기간 중에 미국은 불안과 고통, 굶주림 과 추위, 죽음과 슬픔, 질병의 연속이었 다. 미독립문서에 서명한 56명 중에서 6 명은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총살형으 로 죽었고, 9명은 독립군으로서 영국군 과 싸우다가 총에 맞아서 즉사 혹은 부 상을 당하여 고통 속에서 죽었다. 2명은 굶주려 죽었다. 수명은 그들의 가족을 모 두 잃었다. 살아난 사람들도 전쟁이 끝나 기까지 그들의 집들과 재산은 모두 영국

예배 안내

군에게 빼앗겼다. 쟌 퀸시 애담스는, “미국 혁명의 가장 높은 영광은 미시민들의 정부는 기독교 의 원칙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 하였다. 쟌 재이는 초대 미대법원장이었 는데 그는 “미국은 하나님의 섭리로 된 기독교 국가이다”고 고백하였다. 조오지 워싱톤은, “정치로부터 종교를 제거하는 자는 미국 애국자가 아니다. 기독교 원칙 을 제외할 수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토 마스 제퍼슨은 비록 기적은 믿지 않았지 만 “정부는 교회를 방해할 수가 없다. 기독교 원칙은 정부에 항상 있어야 한다” 고 고백하였다. 제임스 매디슨은, “하나 님의 십계명에 따라서 우리(정부)는 우리 (시민)를 다스린다”고 말하였다. 쟌 애덤 스는, “우리의 헌법은 도의적이고 종교 적인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고 백하였다. 그리고 그 외의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도, “기독교의 뿌리를 치는 것은 시민의 정부를 해체하는 것이다” “정부 의 구성으로써 기독교 종교는 확립된 종 교이다.” “기도는 공립학교에서 제거될 수가 없다” “정치인으로 뽑힌 사람들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안 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신구약 성경을 인 정하여야 한다” “합법적인 종교는 기독 교이다”라고 말하였다. 확고한 결단과 희생과 연단과 견인을 통 하여 그리고 사력을 다하여 하나님께 부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르짖고 찾고 붙잡은 미국민이었다. 하나 님께서는 미국의 독립을 허락하셨고 미국 은 인구와 경제와 산업면에서 계속 급속 도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미국은 하나님 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사랑하고 하나 님을 경외하고 의뢰하면서 도의와 법적으 로도 하나님의 원리원칙을 지키고 선과 의와 복음을 추구하니 루이지애나, 텍사 스, 캘리포니아, 알라스카, 푸에르토리코, 하와이, 괌 등을 포함하였다. 이기고 정복 하고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 같지만 정반 대의 결과를 인생과 내세에서 체험할 뿐 이다. 그러나 진실과 선행은 잠시 지고 멸 망하고 패배하는 것 같지만 그 정반대의 결과를 인생과 내세에서 체험한다고 성경 을 의미하고 있다.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핍박을 당하고 이 미대륙에서 굶주림과 질병과 전쟁 등 의 생사의 고생을 하면서 질그릇의 신앙 을 소유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 고 사랑하여서 진리말씀을 지키고 순수 하고 옳은 신앙을 지키고 선하며 충성스 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 땅과 천국에서 하나님의 선한 약속들을 체험하고 민족과 나라와 인류를 위하고 사랑하고 보존하는 것임 을 명심하여야 하겠다.


예배학 강좌

15

2020년 7월 9일

(제 64회)

“음악예배도 예배인가요?”

질문 “‘음악예배’라는 이름으로 다양 한 악기와 연주와 성악가들의 찬 양, 그리고 회중 찬양 등으로 이어 진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런데 거기에 설교는 없었습니다. 음 악예배나 드라마 예배 등 특별한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도 예배라고 할 수 있나요?” “요즘에는‘워십’이라는 말이 유 행인 것 같습니다. 찬양을 하는 집 회도 워십이라고 합니다. 워십이란 무엇인가요?”

오늘날

한국교회는 ‘예배’의 개 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습니 다. 주일낮예배, 주일저녁예배, 수요예 배, 금요예배, 헌신예배, 찬양예배, 구 역예배, 출판 감사예배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단어 뒤에 예배라는 말이 붙습니다. 과연 이것들이 모두 ‘예배’일까요? 지난 호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 배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배에는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으며, 말씀의 선포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 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구속사를 요약하는 것 이어야 합니다. 유명한 예배학자 폰 알 멘(J. J. Von Allme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 에서 요약되듯이 예배, 즉 성례전¹ 안 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이 압축 되고 요약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

나님의 구원사의 요약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요약’이란 단순히 어떤 것들을 압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을 지금 이 시점에서 재현하고, 다 시 효력 있게 하며, 다시 경험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 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배에 현존하시는 하나님께서 모 든 구원의 역사를 요약하고 재현하신 다는 뜻입니다. 예배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사의 요약 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최종적인 하 나님 나라의 완성까지 빠짐없이 정확 하고 충실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배가 처음 시 작될 때부터 마치는 때까지 행해지는 모든 찬송과 기도와 말씀 및 성례전을 통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예배에서 회 중이 행하는 모든 자세, 제스처, 움직 임, 행렬 등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이 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의 종합예술과 같습니다.

불리는 예배’(sung service, sung mass)라고 합니다. 이 예배를 시행하 는 대표적인 교회는 미국 루터교회입 니다. 미국 루터교회의 예배는 예배에 서 목사와 회중이 행하는 모든 말이 예배에서 기록되어 있고, 이들 대부분 에 곡조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 로 행할 때와 노래로 할 때에 한 글자 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즉 예배의 내 용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 등 동 방교회에서는 평상시 주일예배도 이러 한 방식으로 행해지며, 로마 가톨릭에 서는 성탄절이나 부활절 등 큰 명절 때의 미사가 이러한 방식으로 행해집 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음악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예배’란 이러한 예배의 내 용을 모두 글로 옮긴 다음 거기에다 가 곡조를 붙여서 노래로 부르는 것 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작할 때 부터 끝날 때까지 예배에서 행해지는 모든 말(설교를 제외하고 찬송과 기도 와 성경봉독 등 거의 모든 부분)에다 가 곡조를 붙여서 노래로 하는 것입니 다. 물론 이때에 목사가 해야 할 부분 은 목사가 하고, 회중이 해야 할 부분 은 회중이 합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성가대가 회중 앞 에서 여러 곡의 찬송을 연속해서 부 르거나 독창, 중창, 합창 등을 적당히 구성해서 연속적으로 찬송하는 것을 음악예배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 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찬송가의 나열일 뿐, 음악예배는 아닙니다. 이것 은 ‘찬양집회’ 또는 ‘찬양축제’라 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찬양만 있고 기도가 없거나, 성경봉독과 말씀이 빠질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때 불리는 각각의 찬송 들의 가사를 조합했을 때 예배의 요건 을 갖추지 못하거나 정교한 구원사의 요약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워십’이라는 이름의 집회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음악예배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가 해오던 방식으로서 ‘노래로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교 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식의 음악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1:17)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 니다. 왜냐하면 주일낮예배 시간이 아 닌 주일 저녁이나 다른 시간에 행해 지는 이 음악예배들은 우리로 하여금 즐겁게 하나님께 찬양드리도록 할 뿐 만 아니라 우리에게 영감과 신앙의 격 려를 불어넣어 주어서 신앙적 정서를 풍부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집회는 많으면 많을수 록 좋고, 많이 참석하면 할수록 우리 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되어 유익 이 많습니다. ++++++++++++++++++++++++++++++++++

[보충설명] ¹ 성례전(Sacrament): 복음의 본질을 나누 어 주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함께 주어지는 특정 행위로서, 하나님의 은총의 ‘가시적 통로’(a visible means of grace)로 인식됩니다. 개신교에서는 성만 찬과 세례를 성례전으로 인정하며, 로마 가톨릭에서는 여기에 견진, 고해, 혼배, 종부, 신품 등을 더해 모두 일곱 가지를 성례전으로 인정합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3~25)

제공: 김정애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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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섭리

2020년 7월 9일

18

(제5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4. 마지막 불 심판을 상징한 노아시대의 홍수심판 참고성경구절들: 창5:32-9:29, 사54:9, 겔14:14, 마24:37-39, 히11:7, 벧전3:20-21, 벧후2:5, 3:6

인류의 조상 아담 때부터 겨우 십대에 이르러 노아 시대에는 하나님이 땅위에 사 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실 정도로 온 세상 에 사람의 죄악이 관영하여 홍수로 심판하 시기로 작정하셨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 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 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 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 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 에서 쓰려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 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니 이는 내 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라.” 그런데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 사건은 그 자체의 이야기만으로는 많은 의문을 일으 킨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위배되는 결 과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 아 홍수 사건뿐만 아니라 사단 마귀의 대 적으로 일어난 모든 인류의 역사적 사건들 도 결국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해 결되고 성취된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목적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인류의 구원이다. 예수님은 이 노아의 홍수 심판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 세상 마지막 심판의 예표로 설명하셨다. 마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 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 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 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 도 이와 같으리라.” 사도 베드로도 노아의 방주를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가운데 교회를 통한 궁극적인 구원의 한 예로 설명했다. 인류심판을 말하 는 이유는 인류구원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벧전3:21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5)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 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 례라... .” 침례 받을 때 물속에 잠기는 것은 옛 사 람이 예수님 십자가와 함께 죽고 물에서 나 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생명으로 거듭 태 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홍수의 물 은 사망을 의미함으로 방주로 인해 살아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비유된다. 이는 예수님의 몸인 교 회 안에서 물과(진리의 말씀) 성령으로 거 듭 태어난 것을 예시하는 것이라고 베드로 는 설명하는 것이다. 침례에 관한 진리는 사 도 바울이 롬6:3-11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또 베드로는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을 마지 막 때에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실 것에 대 한 그림자로 설명하고 있다. 벧후3:3-7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 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 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 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 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 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 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 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카고 발행 한국일보에서 이 글을 읽고 기 절초풍 했으며 (전혀 그렇지 않고 당연하게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수긍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나의 믿음으로 는 너무도 놀랐기에) 한편으로는 벧후 3장 에 구원의 방주인 주님의 몸인 교회를 완 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올 것이 왔구나 여 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나님께서 기며 기도한 경험이 있다. 이는 2천 여 년 성령의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해주심을 믿어 전 베드로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과 그대 야 할 것이다. 로 적중한 성명서였다.

한편 사도 바울의 증거의 말씀을 보자.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그 당시 대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조롱하며 시집가고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장가가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마시게 하셨느니라.” 생의 자랑만 추구하다가 홍수로 멸망한 것

교회(한 몸)는 성령으로 거듭난(침례 받은)

처럼 마지막 때 있을 불 심판으로 멸망치 사람들로 구성되고 성령의 상시적인 역사( 않도록 예비하라고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마시며)로 완성되어진다. 그런고로 이 마지 사건을 통하여 경고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막 때에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구원의 심판이 목 끝까지 차도록 죄악이 관영한 시 방주로서의 우리들의 교회 안에 구원받는 대에 노아는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 자들을 날마다 더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하며 의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 리는 믿음을 지켰다.

이 마지막 때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님의 부 열심히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서 구원의 활생명에 함께 참여하는 은혜가 교회를 통 방주인 교회 안에 구원받을 자들을 날마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노 다 더하는 축복이 우리 교회들에게 넘치기 아의 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가 홍수에서 구 를 바란다. 원받은 것을 교회 안에서 구원이 이루어지

딤후4:1-5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

는 것에 대한 그림자로 설명해 주고 있다. 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불로 심판하실 것을 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 노아의 홍수로 심판하신 것과 연관시켜 설 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 명하고 있다.

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방 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 주를 예비하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 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 나님의 명령을 농담으로 받아드리고 불순 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

1980년대 후반에 미국 연합감리교회 각

종하여 방주 예비하는 일을 거부함으로 구 이 두고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

신학대학 교수인 철학박사(Ph D)들 100여

원받을 기회를 놓치고 멸망했던 것처럼 이 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

명이 콜로라도 덴버에 소재한 Iliff 신학교

마지막 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 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

에서 개최된 수양회(conference)를 마치고

의 구원초청을 가벼이 여겨 거부하고 있다. 무를 다하라.”

한 성명서를 발표 했는데 그 중심 내용

그러나 물로 심판하시기 전에 노아에게 방

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약속을 하

주를 예비케 하여 그 안에 들어가 홍수 심 주와 같이 구원의 방주 사명을 잘 감당하

신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당시 시

판을 피하게 하신 것처럼 마지막 심판 전 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우리들의 교회들이 이 말세에 노아의 방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막 9:48-49)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 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6)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편 1:5)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제공: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진리의 샘터

2020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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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가 “DO” 보다 먼저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 참 이 해하기 어려운 비유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 면 마태복음 11장에 나오는 장터의 아이들 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세대 를 장터의 아이들과 그들의 놀이에 비유하 십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 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 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 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 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 도다” (16-17절) 그러면서 유대인의 지도 자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고 예수님을 비판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 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 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 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 느니라” (18-19절). 그 당시 피리를 부는 놀이는 결혼식과 축제의 놀이였고 슬피 우는 놀이는 장례식 놀이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장 례식 놀이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요 한, 그리고 결혼식 놀이를 먹고 마시는 예 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확 히는 무엇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 지만 (사실 비유는 단 한 가지 의미가 아니 라 여러 가지를 암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 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아이들은 자신들 의 방법대로 다른 아이들이 놀지 않는 것 을 불평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 은 유대인의 지도자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대로 하나 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다 잘못되었다 고 생각하는 유대인 지도자들. 요한도 그 렇고 예수님도 그렇고 자신들의 장단에 맞 게 행동하지 않으니 그들을 정죄하고 비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또한 그렇게 살고 있지 는 않나요?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기준 대로 다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으면 옳은 것이고 그 기준과는 다르면 배제하고 정죄 하는… 그런데 그 기준이 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더 어 렵게 만듭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의 기준은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 플러스 장로들의 전통은 어떻게 보면 하나 님을 더 잘 섬기고 더 잘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전 통을 지키는 것들이 더 우선시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병든 자들을 외면하고 굶주린 자들을 외면하는 일이 결국에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봉사, 십일조 생활, 새벽기도, 성경 일독 등 등… 때로는 이러한 종교적인 요소에 우리 는 중독되어 있지는 않은지 봐야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선한 것입니다. 다 중요한 것입니다. 다 꼭 필요하고, 우리의 삶에 없 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 러한 것들이 하나님 보다 더 우선시 된다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S Ceylon St

S Biscay St

S Tower Rd

E Hampden Ave

면?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척 하는 방법이 된다면? 남을 정죄하는 도구 가 된다면? 그리고 내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거룩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도구가 된다 면? 유대인 지도자들과 우리가 다를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종교적 중 독이 아닐까요?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에 내가 누구인지 (BE) 를 먼저 알아야 합 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종교적 행위를 통해 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종교적 중독의 이유는 이것입니다. 이러 한 행위들을 하는 것에 내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나”라는 존 재의 실체를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종교적 행위 뒤에 숨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고,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아니까, 그것을 인정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한 종교적 행위 뒤 에 숨어 나는 이만큼이나 된다라고 보여주 는 것이 아닌가요?

가운데 세워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렇 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이고 하나님과는 어 떠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내가 하는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자 들입니다. 행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있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기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를 창설하고 12단계 회 복프로그램을 만든 빌 윌슨(Bill Wilson)은 중독자를 일컬어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 해서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두통 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청년 상담가 이시며 코스타 강사로 섬기시는 정신실 님 은 “복음과 상황”에서 이러한 우리의 모 습을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교회 봉사를 하고, 헌 신하고, 하고, 하고, 하는 중독의 모습이라 고 말씀합니다. 하고, 하고, 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그 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는 것 (DO) 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 속에 있는 자들입니 다. 위에 아이들의 비유 후에 나오는 내용 은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다 내 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8b절) 믿음의 행위. 중요합니다. 봉사, 기도, 헌 금 등등. 하는 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 보다 내가 주님 안에서 누구인지가 먼저 입니다. 그 사랑의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 는 감사가 믿음의 결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다 내게로 오 라.” 그 관계를 통하여 우리를 결박하고 있 는 모든 압박으로 부터 자유를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참빛교회 온라인 예배 코로나-19로 인하여 Stay at Home Order 가 진행되는 동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한어, 영어 예배 주일 오전 10시 (그 외 특별 집회들 홈페이지 참고) YouTube Channel: True Light Community Church (https://tinyurl.com/TLCCYouTube) 혹은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들어오세요 (https://ko.truelight.church) 문의: 720-509-9112 pastorjohn@truelight.church


목양 칼럼

2020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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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형을 원하십니까? 사람마다 자기만이 가진 독특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거울 앞에서 자기 얼굴을 보고 나왔을 것 이다. 통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얼 굴을 보면서 자기 얼굴에 대하여 만족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 은 자기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꾸미 고 화장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형수술을 하고도 만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고쳐도 만족하지 못하 는 사람이 있어 계속하다가 성형중독에 걸 리기도 한다. 1970년대에 미국의 유명한 성형외과 의 사이며 Psycho-Cybernetics(정신 인공 두뇌학)의 저자이신 맥스웰 몰쯔(Maxwell Maltz)라는 분이 [새로운 미래를 소유한 새로운 얼굴, A New Way to Get More Living out of Life]라는 책을 썼다. 그것 은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얼굴을 고 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애의 문이 열렸 다는 개개인의 경험담을 기록한 것이다. 얼 굴이 달라지니까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바꾸어졌다는 이야기 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얼굴을 바꾸었 는데도 여전히 자신감을 잃고 자신에 대해 불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맥스웰 몰쯔는 말년에 이런 연구를 발표했다. [마 음속에 있는 얼굴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 은 외모를 아무리 바꾸어도 소용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외형적인 얼굴이고 다 른 하나는 내적인 얼굴인데 내적인 얼굴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자화상이다. 내적인 자아상이 바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 에 바른 자화상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대 부분의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난 외적인 자 기의 얼굴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자동적 으로 내적인 자아상이 망가지고 만다.

는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 기 자신에 대해서는 점점 무지해가고 있습 니다.” 그렇다. 현대인은 세상과 과학과 컴 퓨터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유식하 지만 자신에 대하여 무지한 존재가 되어가 고 있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미드(George H. Mead)는 그의 저서 [Mind, Self, and Society] 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 나 I 라고 하는 주어의 호칭과 Me 라고 하 는 목적어의 호칭을 가지고 있다. I 는 주어 로 충동적이고 개인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순수한 나라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고 Me 는 일반화된 존재로 타인과 공유화하고 외 부적이고 사회적인 밖으로 알려진 나 자신 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I 라고 하는 문제 에 집착한 나머지 고집불통의 인간이 되고, 어떤 사람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Me 의 문제에 전적으로 매달려 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주체의식이 없는 이중인 격이 되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 든 사람은 I 로 시작해서 Me 에 의하여 통 제를 받는다. 그리고 개인의 자아라고 하는 I 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러지는 Me 가 만나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다.] [지금 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현대인을 무엇이라 특징지을 수 있느냐?] 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당대의 존경받는 석 학에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현 대인은 우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 다.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앞으로

오늘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얼굴과 인생관에 대한 열등감에 꽁꽁 묶여서 자기 자신을 무가치 하게 만들고 자신을 멸시하는 속성을 가지 고 살아간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에게 심 어놓은 무서운 악인데 이것을 가리켜 심리 학적으로 낮은 자존감(Low self-esteem) 이라고 말하고 다른 말로는 열등감(complex)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하는 대신 미워하고 낮추는 감정으로 결국은 자신을 무너뜨리고 만다.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해야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신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를 싫어한다. 가장 좋아해야 할 자기 자신 에 대해서 자기가 싫어하기 때문에 여기에 서부터 인생이 꼬이고 모든 문제가 발생하 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의 후예인 우리 인 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받아들 이고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 고 커뮤니티에서 남이 나를 사랑하고 믿어 준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다. 옛날에는 공부는 혼자하고 일은 함께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담임

은 공부도 일도 함께하여야 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Microsoft, Google 등을 통해 궁금한 것을 입력하면 곧바 로 답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kakaotalk, Tweeter, Facebook, Instagram 등등을 통해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시간과 장소 를 초월해서 만나고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 다. 이제는 무엇을 연구해도 혼자만의 시대 는 지나갔다. 여러 사람이 서로 연구하고 알고 있는 정보들을 서로 공유하고 나누 며 돕고 협력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 다. 이제 우리는 밖으로 나타난 얼굴보다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내적인 자화상 을 가져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 두 사람 즉 육신 의 사람과 영의 사람이 내 안에 거한다고 고백한다. 영의 사람은 선을 행하고자 하 나 육신의 사람이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 니하고 악을 행하는 끝없는 싸움의 이야기 가 계속되다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이라’고 탄식한다. 우리는 이 사회적이고, 외적이고, 육신적 인 자아가 다 깨지고 소멸한 후에야 새로 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피조된 자신이다. 그 러므로 우리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 나기 전에는 내안의 새얼굴을 볼 수 없다.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0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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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혼돈과 상실의 시대, 복음을 다시 생각한다 영원한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아들로 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 수님께서 처음으로 행한 설교에 대해, 마 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 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자들이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 음이다. 포한다 (갈 1:5-10). 복음은 시간과 공간과 환경을 초월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

는 절대적인 것이다. 복음은 어떤 시간이 력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는 복음이다. 나 공간이나 환경을 따라 변할 수 없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어떠한 시련과 핍 절대적인 성격을 가진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

지키고, 견디고, 인내하게 하는 복음이

이러한 시대, 우리는 복음을 위해 자

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또한 복음은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 곧 다. 심지어 순교의 자리에까지도 기쁨으 천국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마 로 나아가게 하는 복음이다.

존심과 물질과 명예와 생명까지 희생할

귀의 폭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케 하

의 전사들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

1:14-15)”

준비가 되어 있는 복음의 군사들, 복음

복음만이 영원하며, 복음이 최고의 가

비진리와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감당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거 치라는 것을 참되게 아는 사람은 복음 룩하고 의로운 사랑의 통치가 회복된다 에 올인한다. 복음에 모든 것을 건다. 자

하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하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그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

는 기쁜 소식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 기 자신을 복음 위에 세우고, 자기 자신 들을 다시 살게 하는 생명과 영생의 복 의 인격을 복음 위에 세운다.

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음이다.

차리고 무장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과 관련해 자신이 받 은 사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는 복음이다.

입는 예수의 병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 런 사람들이 되기 위해, 깨어서 정신을

자기 자신의 꿈과 비전을 복음 위에 세 주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 해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복음은 무엇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원수 관계를 허 우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과 소명 물어 버리는 화해와 화목의 복음이다. 을 복음 안에서 발견한다. 자신의 전 존

이 시대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복음 의 군사와 복음의 전사들을 길러내는 일

온갖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 참된 빛을 재가 복음으로 규정되며, 복음이 자신의 삶을 지배한다. 던져주는 참과 진리의 복음이다.

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규모가 큰 교회

결혼을 복음 위에 세우고, 가정을 복

교회든, 상대적으로 부유한 교회든, 가난 한 지역의 교회든 상관없이, 모든 교회

다.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며, 복음의

이 죄인의 행위나 실력이나 공로가 아니 음 위에 세우며, 교회를 복음 위에 세우 라, 오직 하나님의 거저, 값없이, 조건없 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복음 위에 세

소유주가 하나님이다. 복음의 목적도 하

이 주시는 호의로 말미암는다는 오직 은 우려고 노력한다.

동참해야 한다.

나님이며, 복음의 영광과 가치도 삼위일

혜의 복음이다.

보다 하나님의 복음이다. 삼위일체 하나 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확정하신 복음이라는 말이다.

해방과 자유, 생명과 화해와 진리의 복

복음의 시작도 과정도 끝도, 하나님이

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 니고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영 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원한 것이 라는 말이다.

들이 손에 손잡고 함께 이 거룩한 일에

오늘날 한국교회와 전세계 교회 안에

그러할 때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희

그리고 오직 은혜로 주어진 영원한 생 는 복음을 무시하고, 복음을 왜곡하고, 명과 구원이라는 선물을 오로지 믿음으 복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

망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소망

체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은 영원한 복음

든 작은 교회든, 도시 교회든 농촌·어촌

을 주는 거룩한 책임을 완수할 수 있다.

로만 받아 누릴 수 있다는 복된 소식 고 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복음을 희생시 이다.

하지만 이 거룩한 일에 한국교회와 이

율법과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노예된 키고, 복음을 이용하고, 복음을 악용하

민교회가 실패한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죄인들을 구원하여, 죄 사함과 의롭다함 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국교회와 이민교

그야말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

회 내에 이 거룩한 일이 속히 이뤄지기

대적인 복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으로 거듭나고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들 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라는 주

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여, 우리를 불쌍

복음을 변질시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을 영적으로 날마다 성숙하게 하는 복 님의 말씀이 이뤄져 가고 있는 마지막

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러기에 복음은 불변의 복음이며, 절

을 얻게 하는 복음이다. 예수님을 믿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5-16) 제공: 이명자 권사(뉴라이프선교교회)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출 23:25) 제공: 신민식•신정원 성도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9-11)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쉴만한 물가

2020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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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였도다 Well Done 내가 국민학교 지금으로 말할 것 같 으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숙제를 평가 하실 때마다 선생님이 공책에다 도장을 찍어주셨다. 붉은 색 잉크로 찍힌 이 도 장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뿌듯했던 기 억이 새롭다. 참!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라는 문구로 도장 찍어 주는 평가방법은 아마도 미국의 교육문 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미국에도 Well Done이라고 새겨 진 도장이 있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도 대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제출된 리포트를 평가할 때, “Well Done!” 이라고 써주시는 교수님들을 여러 번 보았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있 다. 여기에 보면 주인이 타국에 갈 때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고 떠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 들과 결산할새, 충성되게 임무를 잘 수 행한 종들에게 내린 평가가 이것이다. 잘하였도다! Well done! 마태복음 24장이 마지막 때의 징조와 시기에 관한 말씀이라면, 25장은 마지 막 때를 준비하는 영성과 리더십에 관 한 말씀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마지막 때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어떻게 살아 야 할지 실천론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 때의 징조와 시기를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때를 준비하는 삶 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잘 못 준비 하고, 잘 못 살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잘 하였도다’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 기 때문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 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마 25:21)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 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마 25:15). 한 달란트 혹은 두 달란트 받은 종의 입장에서 보면 좀 불평할 만하다. 왜 주님은 똑 같은 달란트를 나누어주지 않았을까? 이는 산술적 불공정한 나눔 을 통해 주님의 공정함을 이루시기 위 함이다. 한 달란트의 화폐적 가치는 지금의 돈 으로 환산하면 한 달러 정도가 아니다.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에 해당하 는 돈이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 루 임금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한 달란 트를 원화로 계산하면 약 6억 원 내외 가 된다.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므로 종 들은 주인의 나눔의 방법이 불공평한 것으로 여기고 불만을 가질 것이 아니 라 주인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은 달란 트를 주인이 부여한 목적에 따라 효과 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인이 잘 하였도다라고 칭 찬한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가? 다섯 달 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각각 배 가의 이익을 남겼다. 이들에게 주인이 내린 평가는 이렇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 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눅 4:43) 제공: 김영옥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마 25:21) 평가의 기준이 단순히 업적이나 성취 에 우선성이 있지 않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이 먼저다. 우리가 교회나 직장에서도 선하지 않고 충성되지 않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는 없다.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능력보다 사람됨이 먼저다. 착한 종들은 사람됨 이 바를 뿐만 아니라 주인을 믿고 따르 는 충성심도 갖춰져 있다. 이들은 적은 일에도 충성을 다한다. 왜냐하면 주인 이 시킨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품 과 영성은 주인에 대한 충성된 마음과 연계되어 있다. 평가를 마친 후, 주인은 착하고 충 성된 종들에게는 많은 것을 맡기겠다 고 말하며,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할 것 을 허락하였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 면, 주님이 재림하신 후 착하고 충성된 종들에게 많은 것을 맡기실 것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그 시점은 천년왕국 이 후 천국에 이어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달란트의 비유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에 대한 메 시지인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다. 여기서 주인의 즐거움이란 혼인잔 치의 즐거움을 나타내기도 하며 천국 의 삶의 희열을 의미하기도 한다. 천국 의 영원한 즐거움에 동참하는 사람들 은 주님이 그들에게 부여하신 삶의 목 적에 합한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 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 었다. 그는 주인이 돌아오자 그에게 이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렇게 말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 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 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 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 다." (마 25:24, 25) 이에 대해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고 말하고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다. 이 종 은 본질상 악한 종이다. 그리고 그의 악함이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 며 임무를 수행하는데 불성실하게 만 든 것이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마지 막 때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을 교훈하셨다. 먼저 착하고 충성된 마 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맡겨주신 적은 일에도 충성하게 한다. 사역의 크기나 받은 달 란트의 많고 적음에 의해 충성하는 마 음이 좌우된다면 이는 근본이 잘못되 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 에 따라 살 수 있는 동기와 열정을 부 여해준다. 이 땅의 삶은 천국의 삶의 패턴을 결 정하는 시험장이 될 수 있다. 이 땅에 서 적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영원한 천국에서 많은 것을 받아 누리게 된다. 착한 종은 적은 일에 충성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제공: 최정애 집사(참빛교회)


좁은 길을 걸으며

2020년 7월 9일

23

동사로 꾸는 꿈 예전에 어느 목사님의 강의를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이 분의 말씀 가운

을 때 실패자가 된 듯 한 기분에 빠

님을 위해서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집니다.

바울은 비록 서바나로 가지 못하고,

데 “꿈은 동사로 꾸어야 한다”라는

사형장의 이슬이 되고 말았지만 하나

말에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많은 젊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은이들이 이렇게 꿈을 꿉니다. “나는

모두 다 꿈을 동사로 꾼 사람들입니

의사가 되고 싶다.” “OO 대학에 들

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어가고 싶다.” “나는 돈 많은 사람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되고 싶다.” 모두 명사로 꾸는 꿈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 가 일꾼이 되었노라” (엡 3:7).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표 현합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헬라어 로 ‘디아코노스’라는 말인데, 이 단 어에서 영어의 ‘deacon,’ ‘섬기는 사람,’ ‘집사’ 라는 말이 나왔습 니다. 제가 이것을 보면서 교회에서 집 사님이 참 귀한 직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의 꿈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의 인간적인 꿈은 서바나(스페인) 까지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바울의 꿈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함으로 좌절되 고 맙니다. 하지만 바울 자신도 그렇 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바울의 꿈 은 이루어지지 못한 꿈이라고 생각하 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은 동사로 꿈을 꾸었고, 하나

입니다. 명사로 꿈을 꾸는 아이들에 게 “너는 왜 의사가 되고 싶니?” 라 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 들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고 싶어 서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구나. 앞으로 커서 아픈 사람을 많이 치료 해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라 고 말해주면 아이들이 동사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사로 꿈을 꾸면 이 아이가 의사가 되 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을 치료해 주고 낫게 해 주는 사 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 가 명사로 꿈을 꾸면 의사가 되지 못 한 것 때문에 이 아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저 자신도 꿈을 명사로 꿀 때 가 참 많습니다. 왜 그러한 꿈을 꾸 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명사 로 꿈을 꾸고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

김병수 목사

믿음장로교회 담임

좌에 앉히십니다.

님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지구 땅끝 까지 이르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참으로 놀랍습니 다. 바울이 인간적인 명예를 버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를 지시고, 조롱당하시고, 침 뱉음을

일에 헌신했을 때, 비록 자신의 인간

받고, 채찍에 맞을 때 그가 자신의 꿈

적인 꿈은 좌절되었지만, 그가 전한

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

복음은 그가 원했던 스바나를 넘어서

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전 세계로 퍼지게 해주셨습니다. 예수

의 꿈은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

님께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구원을

이 그렇게 원하시는 죄인들의 구원의

위해서 바치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만 살아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의 몸을 헌

를 의지하고 믿는 우리들 또한 살리시

신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

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해

니까?

주셨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우리 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5-6).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 데에서 살리실 때에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을 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님을 일으키실 때에 예수님을 믿는 자 들 또한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예 수님을 하늘의 보좌에 앉히실 때에 예 수님을 믿는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보

자신의 인간적인 꿈을 다 이룬 솔 로몬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

이 헛되도다”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자들은 자신이 꿈꾸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도 하나님께서 이 루어 주십니다. 명사로 세상적인 꿈을 꾸고 후회하기보다, 동사로 하나님의 꿈을 꾸어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 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학생회성경공부 (토) 오후 4:00 청년부예배(주)오후 2:30


베드로전서 강해

2020년 7월 9일

24

(제 3회)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1) <베드로전서 2:1-10>

세상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을 부를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영어의 "Christian”과 같은 호칭입니다. 또한 기독교인이라고도 합니다. 더 줄여 서는 “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믿는 사람들을 좀 비하하는 말로 “예 수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이 사람 들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던 시대 에는 교회 가는 것을 감추려던 사람들 이 많았습니다. 교회에 가려면 성경 찬 송을 들고 가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금방 알잖아요. 그래서 품속에 감추고 몸을 움츠립니다. 그리고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어딘가를 향해 갑니다. 그 사람 은 틀림없이 교회 가는 사람들이었습니 다. 눈치를 챈 친구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그냥 “저기 간다”고 얼버무렸 습니다. 저희 부모님들이 시골 동네에서 처음으로 신앙을 가졌을 때는 사람들이 소금까지 뿌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떳떳 하게 교회 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 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기독교인이 한 반에 두세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도 거의 믿지 않는 분들이었습 니다. 생활기록부의 종교란에는 대부분 의 학생들이 불교라고 적었습니다. 그래 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주 창피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 따라서 교회에 나갔던 아이들은 종교란 에는 불교라고 적고 취미란에다 기독교 라고 적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혹시 크리스챤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 들 계십니까? 이 미국에서는 그러는 분 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에서는 여전히 남모르게 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이름은 부끄 러운 이름이 아닙니다. 너무나 영광스러 운 이름입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인이란 호칭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어 졌습니다. 안디옥은 바나바와 바울이 공 동사역을 하면서 교회를 세웠던 곳입니 다. 이 안디옥 교회는 세계 선교의 센터 가 될 정도로 아름답게 성장을 했습니 다.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칭찬

이 자자했던 교회였습니다. 자기들과 무 엇인가는 달랐던 안디옥 교회 교인들 을 바라보면서 이웃들이 이름을 붙어주 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1:26절을 보 세요.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 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 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 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 른 것이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를 지켜 보던 안 믿는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 니다. ‘비로소’라는 말은 처음으로 그 런 말이 만들어 졌다는 뜻입니다. 그 리스도인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꼭 닮 은 사람들, 그리스도와 똑같이 행동하 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 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 는 "Christian”을 "Christ in one”이 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 기 안에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그리스 도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 은 취미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이 아 닙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옛 생명을 버리고 새 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 다. 허물과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 는 우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오셨습 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은 밖으로 표시가 나도록 되어있습니다. 지 금부터 1900년 전인 2세기에 쓰여진 편 지 하나가 아주 귀중한 사료로 보관되 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디오그네투스 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있 는데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인지 모 릅니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서 믿지 않는 사람이 쓴 것입니다. 믿지 않 는 사람의 눈에 비쳐진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요? 그 내용을 요약 하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

인가? 그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살되 이 세상사람 같지가 않다. 그들은 정해진 사회의 법률에 복종하되 그 법을 뛰어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 은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그들 은 멸시를 받는다. 그러나 그 멸시를 통 해 영광을 얻고 있다. 그들은 조롱을 받 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축복을 선포한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 입니다. 이상합니다. 자기들과 같지 않습 니다. 분명히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 는데 다르더란 말입니다. 주님이 그 안 에 계신 사람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른 삶을 살아 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세 가지로 보 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은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 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 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우리 그리스도 인들이 버려야 할 것은 다섯 가지입니 다.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안 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입니다. 첫 번째는 악독입니다. 악독은 악한 뜻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과 반대되 는 개념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 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 도 내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것입니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습니 다. 내가 곧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내 맘에 들면 좋은 일이요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악한 일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 벨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이 싫었 습니다. 자기가 형으로써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동생이 그 자리를 가로챈 것으 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 자체가 악독입 니다. 그 자리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폭 력을 사용합니다. 동생을 죽입니다. 인 류 최초의 살인은 이렇게 발생한 것입니 다. 모든 일에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는 것은 악독입니다. 모든 악이 거기서 부터 나옵니다. 두 번째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기만입니 다. 기만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교묘 하고 간사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만 말할 때 는 맞는 말이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말 한 것을 보니 틀린 말입니다. 그때 우리 는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신뢰가 떨어집니다. 믿지를 못합 니다. 이 기만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리 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나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 불리하다고 말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는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이 외 식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끊임없이 좋 게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겉만 화려하지 속은 텅 빈 모습 니다. 예수님이 가장 질책을 했던 사람 들이 바로 외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 들은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율법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자기 자랑을 위해 서 했습니다. 기도를 해도 사람이 많은 시장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좋아 했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얼굴을 씻지도 않고 머리에 기름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초췌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서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경건한 사람 으로 보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겉 은 겸손한 것 같지만 속은 끝없는 욕심 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느 대 학에서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여학생


베드로전서 강해

2020년 7월 9일

25

하나가 그 날은 명품옷으로 단장을 하

악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를

묘사를 해 놓았습니다. “갓난 아기들 같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매주 예배

고 수업에 갔습니다. 무려 200명이 수강

갈라놓은 것도 사탄의 시기심 때문입니

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순전

를 드리는 오시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

하는 큰 교실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수업

다. 우리 마음에 이 시기심을 그냥 두

하고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

나는 말씀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도 했습니다. 쉬

면 죽을 때까지 자라는 법입니다. 그리

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갓난아

주일 예배 한번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성

는 시간에는 화장실도 왔다 갔다 하면

스도인의 특징은 바로 이 시기심을 버리

이들이 젖을 사모하듯이 찾으라는 것입

경공부도 참여하셔야 합니다. 집에서 매

서 학생들 눈에 잘 띄게 행동을 했습니

는 것입니다.

니다. 갓난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얼

일 성경도 읽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마나 젖을 찾는지 모릅니다. 누가 가르

으로 건강해 집니다. 신앙의 성장이 이 루어집니다.

다. 나중에 200명의 학생들에게 그 여학 생에 대해 물었습니다. 무려 80%의 학

마지막으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남을

친 것도 아닙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

생들이 그 여학생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비방하는 것입니다. 어떤 연구팀에서 이

닙니다. 젖을 향하는 아기의 행동은 필

못했습니다. 나머지 학생들 중 15%는 기

런 조사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만

사적입니다. 그 젖을 얻기 위해 소리를

말씀만 먹는 것으로 우리 신앙이 완성

억은 하지만 무슨 옷을 입었는지 알지

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분석해 보니까

내서 웁니다. 젖을 얻기 전에 그 울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은 우리의 육

못했습니다. 나머지 5%도 무엇인가 좋은

90%가 남의 말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

을 그치는 아기를 보셨습니까? 목적한

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에너지를 만들

옷을 입었다는 것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런데 그 남의 말을 하는 것의 90%가 좋

것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 울음을 멈추

어줍니다. 그래서 충분한 활동을 할 수

색깔이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사

은 말이 아니라 비방하는 말이더라는 것

지 않습니다. 이것을 사모한다라고 말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

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합니다. 많은 시

입니다. 이 말은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

는 것입니다.

입니다. 말씀을 사모해서 먹으면 영적인

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해볼까요? 사실 우리는 입만 열면 남의

은 나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사실 관심

말입니다. 남의 말을 했다 하면 비방이

시편42:1에 보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

생겨납니다. 그 에너지로 말씀을 지키는

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

라는 것입니다. 이 비방을 버리지 않으면

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식욕 불 억제

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세상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

병”이라는 아주 희귀한 병이 있습니다.

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7을 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지를 못합니다. 오

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슴은 높

한국에서 13살 난 어느 소년의 이야기

세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

늘 성령께서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

은 산을 올라 다니는 동물입니다. 아래

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 소년의 몸

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들의 관심보다

와 비방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

로 내려가는 것보다는 위로 올라가는

무게가 282파운드입니다. 목욕도 혼자

는 마음의 중심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를 간절히 바랍니다.

것을 더 잘하는 것이 사슴입니다. 그러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양말도 신발도

나 여러분 언덕을 오를 때면 숨이 더 가

혼자 힘으로는 신을 수가 없을 정도입

쁩니다. 에너지가 많이 소비가 되서 목

니다. 온몸이 진 무르고 고름이 흐릅니

이 마릅니다. 그래서 다른 동물보다 물

다. 살과 살이 맞닿는 부분이 많아서

이 더 많이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하루 종

이 물을 사모하는 모습니다. 우리도 역

일 먹을 것만 찾아다닙니다. 먹을 것을

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사모해야 한

주지 않으면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을

다는 것입니다.

뒤지기도 합니다. 라면 국물찌꺼기 빵

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넷째로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갖고 싶어 갈망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합니 다. 저 사람이 듣는 칭찬을 나도 들어야 합니다.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습니 다. 그러나 배가 아픈 것은 참지 못하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시기처럼 공 동체에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없 습니다. 월시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 습니다. “내 실패는 견딜 수 있어도 남 의 성공은 참을 수 없다” 이 시기심은

두 번째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사모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 라게 하려 함이라” 버리는 것만으로 그 리스도인의 삶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 다. 버린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지 않으면 버린 것이 다시 들어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빈자리 에 적극적으로 채워 넣어야 할 것이 있 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 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아주 극적으로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신앙의 에너지가

조각들을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먹기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

만 하는 것은 병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까? 먼저는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

하는 것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

을 먹지 않으면 우리 영혼이 살수가 없

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지 몇 년이

습니다. 젖이나 우유를 먹지 않고 살 수

되었는데도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

있는 아이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됩니다. 그 말씀에서 얻은 에너지를 가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지고 활동을 해야 합니다.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변화프로젝트 (42회)

2020년 7월 9일

26

치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4부 회상

122. 사람들 (2009. 1. 21) 킨스벌그에서 단마리 목사님과 아침식사

리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역력히 느

을 교도소에 보내려고 주소를 붙이고 15박

낄 수가 있었다.

스도 넘게 준비를 했다. 그 분은 주소를 타

를 했다. 그녀는 좋은 일들을 많이 추진하

“칼라,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감

고 있었고 내가 치유에 관한 책을 쓰고 있

당해 주었어요. 정말 여러 면에서 나를 도

다고 하자 교회에 와서 이 책에 대해 설교

와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해요.”

이프로 치고, 책 보내는 일을 자기 아들과

영희 맥도날드 목사

오랫동안 도와주신 분이었다.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박스를 포장하는데 테이프가 떨어져서 필

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직도 키스를 잃은

“고양이가 천국에서 키스와 같이 있을

에게 전화하니 그는 즉시 테이프를 가지고

슬픔에 마음 아파하는 교인들이 많으므로

거라고 믿어요. 고양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

와서 우리들을 돕기 시작했다. 필은 우체국

소에서는 봉사자원자로 일할 자격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치유하셨는지 듣

는 것이 정말 힘이 들었어요. 더 아픔을 주

에서 일하는데 그날은 쉬는 날이라서 도와

해서 큰 실망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안에

게 된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그래

고 싶지가 않아서…”

줄 수 있다고 하면서 모든 박스들을 자기

들어가서 도울 수는 없지만 그들을 위해서

서 2주후에 키스가 시무하던 두 교회에서

“얼마 전에 꿈에 고양이 팔 하나가 짤라

트럭에 싣고는 나와 우체국에서 만난 후 부

책을 보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

설교를 하기로 했다. 몇 개월 전 쏟아지는

진 것을 보았어요. 나쁜 소식을 듣게 될까

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필을 알게 된 것도

고 했다. 그는 천주교인인데 자기 신부님에

눈물과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

봐 일부러 묻지 않았어요. 동물들이 죽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변화 프로젝트는 그 당

게 교도소 앞으로 들어가려는 문은 닫혔는

해 교회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내

후에 천국에 간다는 성경구절은 못 보았지

시에 만권씩 책을 주문했는데, 하루는 책이

데 문서 선교 때문에 교도소 뒷문으로 들

가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설교를 할 수

만 동물들이 천국에도 있다는 구절은 있으

온다는 날짜보다 연락도 없이 삼일이나 더

어가서 책 옮겨 주는 것을 도왔다면서 웃

있는 용기가 생겼다.

니 동물들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일찍 도착했다. 교도소 뒷문을 열어주는 사

었다고 한다. 나는 로즈메리와 필이 헌신적

킨스벌그 교회에서 칼라를 만났다. 내가

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으로 돕는 것을 통해서 주님의 일을 할 때

이사한 후 사택을 청소하다가, 니콜의 물건

고 믿어요. 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

“목사님, 아주 많은 박스들이 도착했어

들을 발견했다면서 전해주었다. 그녀는 키

말 해 주어서 감사해요. 우리는 언젠간 다

요.” 나는 빨리 트럭을 가진 사람을 찾게

스의 늙은 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면

죽을 것이고 그것이 인생이잖아요. 많은 사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 교도소에서 자원봉

서 미안하게 됐다고 했다. 이 고양이는 15

람들이 나의 무거운 짐을 지고 도와주었기

사 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뒤척거려

123. 격려 (2009. 1. 22)

살도 넘은 고양이로 변을 가리지 못하고 집

에 키스를 잃은 상처가 더 빨리 치유가 될

보다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필의 이름

“모든 슬픈 자들아 나에게 오라, 나에

안을 더럽혀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수가 있었다고 믿어요.”

이 나오기에 전화를 했다. 그는 수감자들이

는 언제나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 주 신다는 것을 배웠다.

게 오라.”

“정말 그렇게 빨리 상처가 치유 되리라고

쓴 『최고의 성인들』책을 운반할 사람이

아침에 깨어날 때 성령님께서 노래를 주

“그 고양이가 잠깐 동안이라도 같이 있을

는 상상도 못했어요. 참 놀라운 일이에요.”

필요 하다고 하니까, 오 분도 안되서 교도

셨다. 주님은 슬픈 자들을 다 고칠 수 있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정말 잘된 일이

그녀의 눈은 아직도 슬픔에 가득차 있었

소 뒷문에 도착했다. 백 박스도 넘는 그 무

으니 오라고 부르신다. 이 책을 쓰면서 나

었어요. 그 고양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할

으나 그래도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는 것

거운 책들을 트럭으로 몇 번을 날라서 우체

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성령님께서

때 집안으로 들여왔는데, 죽기 전에 키스에

을 볼 수가 있었다. 칼라는 키스의 부조금

국에 가져다 주어 교도소로 부치고, 나머지

주신 기쁨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책이 다른

게 가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전해

이 많이 들어와서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

는 우리 집 차고로 운반해 주었다. 그때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내

달라고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어

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데 많은 도움이

터 필은 책이 도착할 때마다 나를 도왔다.

가 책을 쓸 때 문법을 도와주며 교정을 해

요.” 칼라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목 메인

되었다 하며, 사무실에 나를 데리고 가서

필은 내가 일하는 교도소에서 자원봉사로

주는 안나를 통해서 주셨다. 그녀가 나에게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콧등이 시큰해졌

음식 구경을 시켜주었다.

예배를 인도하고 수감자들을 돕기를 원했는

편지를 쓴 것은 처음이었다. 안나의 편지는

데, 전과자라는 이유로 아담스 카운티 교도

이런 내용이었다.

고양이었다.

다. 그녀는 아직도 키스에 대한 슬픔과 그

집에 도착하니까 로즈메리가 와서 책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27

2020년 7월 9일

내 영혼을 향한 외침 큰 전쟁 중에 자신의 영혼을 향해 선

사사기 5장은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포합니다. 긴장과 두려움 가운데 있지만

가나안 왕 야빈을 물리치고 부른 승리

하나님이 전쟁의 승리를 약속하셨기 때

의 노래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철 병

문에 자신을 향해 선포합니다.

거 900대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심하게 억압하여 20년을 다스리고 있을 때 한 남자의 아내였던 드보라가 사사가 되었

“내 영혼아 힘차게 행진하라!, 내 영혼 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치의가 되시는 예수님

세상의 근심과 염려가 있습니까? 불안

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영

과 두려움이 있습니까? 큰 시련 중에 갈

혼을 향해 이렇게 외쳐라! 앞으로 나아

등과 다툼 가운데 있습니까?

가라! 강해져라! 두려워말라! 담대하라! 소망을 가져라!

우리의 영혼을 향해 믿음으로 외치십

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 와 권능으로 가나안 왕 야빈을 멸망시 켰습니다.

시다! "담대하라! 강하라! 앞으로 나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 영혼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

시편기자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선

가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평안함으로 돌아가라!”

포합니다.

음으로 선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포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부름 받은 자 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지금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도 보면 여성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2012년 미국의 어떤 가수가 “심장에

가까이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는

게 다시 뛰게 하라”는 곡을 발표했습니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크 신 일을 이루

다. 한 심장외과 전문의의 실화에서 영

시는 줄 믿습니다.

감을 얻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 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 로다”(시42:5)

우리의 믿음의 선포가 우리의 삶에 그 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낙심하고 불안한 자신의 영혼을 향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외칩니다. 상황은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삿5:21)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 았도다”

이 의사는 어떤 환자의 심장 이식수술 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식받은 환자의

변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내가 찬송할 것입니다!

가슴에 심장이 다시 뛰도록 부드럽게 마 사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심장은 다 시 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식받은 환

또 시편116:7에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평안함을 선포합니다.

자분에게 말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내 영혼아 힘

로 끝났고 심장도 정상입니다. 이제 심장

차게 행진하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에게 다시 뛰라고 말하세요! 그러자 환자

예닮장로교회 예닮장로교회 예닮장로교회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 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Y edalm Y edalm Presbyterian Presbyterian Church Church Yedalm Presbyterian Church 교사 교사 교사

금요예배

10:15 10:15 10:15

6:30PM 6 6 6

담임목사: 담임목사: 윤우식 윤우식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담임목사: 윤우식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303) (303) 364-1621 364-1621 11000 E Yale Ave. #35, Aurora, CO 80014 (303) 364-1621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2020년 7월 9일

28

29회

아담과 하와는 창조되었을 때 몇 살이었을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아담은 몇 살 쯤 되었을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서 만든 하와는 또 몇 살쯤 되었을까? 아담과 하와 모두 어 엿한 청년의 모습, 완전히 성숙한 모습이 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이 하와를 보자마자 한 첫 마디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라(창 2:23)”라고 한 것을 보면 아담은 이 미 성인의 모습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 작하며 지키게 하셨고(창 2:15) 아담의 배 필로 하와를 만드셨으며(창 2:18), 들짐승과 새에게 이름을 지어주도록 하셨음(창 2:19) 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성숙한 청년의 모 습이었음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닭을 창조하시는 것과 달걀을 창조하시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울까? 하나님께서 달걀을 창조하시는 것이 쉬 울까, 닭을 창조하시는 것이 쉬울까? 학생 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면 많은 학생 들이 달걀을 창조하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독자들께서도 달걀을 창조하 시는 것이 쉽다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그 런데 이러한 질문 자체가 하나님에게는 우 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달걀 을 창조하는 것이나 닭을 창조하는 것이 모두 쉽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마치 개미가 자동차 회사 공 장장에게 와서 “스포츠카를 만드는 것과 트럭을 만드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우 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 자동차 회사 공

장장은 스포츠카도 쉽게 만들고 트럭도 모 두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닭을 창조하시는 것과 달걀을 창조하시는 것 모두 쉽게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식물은 어떠한 모습으로 창조되었을까? 식물은 어떠한 모습으로 창조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창조 셋째 날에 식물을 창 조하셨는데,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 에 좋았더라(창 1:11)”라고 기록하고 있다.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 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식물이 창조되었을 때 ‘씨를 맺을 수 있는 상태 로 창조’되었거나 ‘씨를 가지고 있는 상 태로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일부 는 꽃봉오리가 맺힌 상태였고 일부는 꽃 이 핀 상태였으며 일부는 열매가 맺힌 상 태였을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설명하면 식물은 창조 될 때부터 완전히 성숙한 상태, 완벽한 상 태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벽 하신 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한 상태 로 창조하셨음을 식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식물을 완벽한 상태로 창조하신 하나님 께서 사람을 어찌 완벽한 상태로 창조하지 않으셨겠는가? 사람뿐 아니라 해달별과 행 성 역시 완벽하게 운행하는 모습으로 창 조하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되었을 때 몇 살이었을까?

이 질문은 교회에서 창조과학 특강을 하 면 가끔 나오는 질문 중에 하나다. 아담이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니 아마 30살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초중 학생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글 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담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 이는 한 살이다. 정확하게 하면 0살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우리처럼 어머니 뱃 속에서 10개월 있다가 태어난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서 만드셨기 때 문이다. 실제로 태어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 았지만, 아담은 완전한 청년의 모습, 성숙 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육신의 모 습은 30살 정도 되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 나 실제로는 태어난지 하루도 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아담의 실체인 것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 을까?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것 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이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믿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한 살 먹은 청년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다. 한 살짜리 청년 아담! 이 것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이다. 하나님은 과 학 법칙을 초월하여 창조사역을 진행하셨 다. 이러한 창조사역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창조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진 화론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 살짜리 청년 아담을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갓난아기나 어린이 모습도 아니고 10대 청소년의 모습

문서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1-3) 제공: 박영돈 부동산

정병갑 (고신대 명예교수) (creationisfact@gmail.com) 도 아닌 성숙한 청년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모두 성숙한 상 태로 창조하셨다는 이론을 성년창조설이라 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목적으로 식물, 동물, 사람을 성년의 모습으로 창조 하셨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완전하신 하나님께 서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완전한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 드리기를 원하셨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사 람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기 위하여 아담과 하와를 성인의 모습으로 창조하셨을 것이 다. 부모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아담과 하 와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창조하셔서 자 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님께는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즐거움을 택 하지 않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성인의 모 습으로 창조하신 다른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담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땅을 정복 해야 했고 생물을 다스려야 했으며 동물 에게 이름도 지어주어야 했다. 이러한 일 을 하려면 성인의 모습과 심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창조 직후의 세상을 잘 관리해 야 할 책임이 아담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맡기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 과 하와를 성인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 이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 을 관리하고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다. 하 나님께서 창조하신 뜻대로 살아드리기를 다짐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0년 7월 9일

29

천국과 지옥 노윤호 장로(덴버제자교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

는 천사들에게는 성경을 다 알고 있어

죄 지은 것 어느 하나를 떼어 버리고

으니 말씀으로 순결케 되게 하시옵소서.

니라’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우리가 이

도 구원이 없음을 예기합니다. 이와 마

서라도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말씀하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며, 소

땅에 살면서 천지를 살피고 배워감에

찬가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사탄의 꾀에

셨습니다.

망을 두겠으니,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하

그 말씀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

빠져 사는 인간들에게도 구원은 없다

다.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성경은 말합

하셨습니다. 하나님 알기를 원하지 않는

주님은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을 믿지

무것도 없음을 봅니다. 세상 또한 우리

니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볼 수 없어도,

완악한 영혼, 하나님을 단지 지식으로만

못한 가룟유다를 생각하시면서 차라리

가 의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이제

세상에 있는 선과 악, 보이지는 않지만

알고 이용가치로 악용하는 영혼, 하나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말씀

는 깨닫습니다. 이제는 오직 주 예수의

양심과 흑심의 존재함을 깨달을 때 우

님을 안다고는 말하나 영광 돌리지 않

하셨습니다. 지옥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

십자가와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 피 흘

리가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감지합니다.

는 무지한 영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만들어진 것이 아닌, 바로 주님이 누누

리신 그 사랑만을 의지하기로 결심합니

을 따라 살기 보다는 이기심으로 가득

이 말씀하신 곳입니다. 지옥은 있습니

다. 부활의 소망을 알게 하신 주님만을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신

한 죄악된 생활을 즐기는, 예수가 없는

다! 하나님, 우리가 조심하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살기로 다짐합니

기할 정도로 조금도 틀리지 않는 그 무

영혼에게는 화가 불같으신 하나님의 심

깨어있어서 지옥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에 늘 감사

오성을 관찰하여 알 때, 우리가 천국과

판에 따라 지옥에 갈수 밖에 없음을 성

자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지옥

의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자 되기를

지옥이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리고

경은 말합니다.

을 생각할 때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원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성경은 인간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시옵소서. 우리 안에는 의지 할 것이 아

기도하는 자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

살아갈 계획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또한 말하기를, 지옥은 무지

고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를 사랑하사 그 무서운 지옥으로

보다는 달콤한 듯 가장된 사탄의 악한

무지하게 뜨거운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간직함으로 지옥으로 부터 건져지는 은

부터 구원하사 영광의 천국으로 인도하

꼬임에 빠져서 그만 타락한 것과, 그들

영원히 타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혜가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실 오직 한길,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의 역사가 계속 타락해 져가는 모습을

거기에는 구더기도 타죽지 않고 오직

기록했고, 반면에 하나님은, 멸망할 수

극심한 고통만이 있는 곳이라고 말합니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

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실 길인, 은

다. 지옥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으리라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주님을

혜의 길도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 성

어두운 곳에서 오간장이 끊어지도록 슬

우리 마음속에 영접하고 즐거워하며 힘

경말씀을 우리가 하나도 부인하지 않고

피 울며 이를 부드득 갈며 사는 곳이라

을 다하여 믿겠다 고백합니다. 성령 하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고 말합니다. 지옥은 극심한 목마름과

나님,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영원한 후회를 안고 사는 곳이라 말합

섬기는 두 마음을 품지 않도록 싸우겠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을 속

니다. 지옥은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할

으니, 그리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

이는 사탄과 그를 따르는 영들에게는

수 없는 무서운 곳입니다. 지옥을 만드

지 싸우며 미워하겠으니, 우리를 강하게

화가 불같으신 하나님께서는 지옥을 준

셨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지옥을 잘 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세상에서 얻는

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과 그를 따르

고계신 주님은, 지옥을 우리의 백체중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겠

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문서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대상 16:10~12) 제공: 빛과소금뉴스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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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오후 12:30 수요연합기도회 수요일오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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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269-9192, 443-754-0888

덴버에덴교회

16051 E. Dartmouth Ave Aurora, CO 80013

정석현 목사

손재흥 목사

주일 8 AM (1부/한국어) 주일 11 AM (2부/한.영) 주일 1:30 PM (3부/유스) 새벽 6 Am (화~토/7am) 1181 Laredo St Aurora CO 80011 / 720-859-6798

주일1부: 오전 7:30 주일2부: 오후 1:00 수요성경공부: 오전 10:30 금요기도회: 오후 7:30 어린이주일학교: 주일오후 1:00 어린이/청소년 성경공부: 주일 오후 3:30

www.ziondenver.com

13601 E. Alameda Ave. Aurora, CO 80012

720-203-6357 / EdenKoreanChurch.com

김창훈 목사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어린이부: 오전 11:00 수요기도회: 오후 7:30 성경통독: (금)오후 7:30 새벽기도회: 오전 6:00

15099 E Hinsdale Dr. Centennial CO 80112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 오전 6:00 성경교리대학(주일) : 오후 1:30 주중제자훈련 (화) : 오전 10:00

303-422-6950 / www.kpcd.org

드림교회 허성영 목사 주일 1부: 오전 7:30 주일 2부: 오전 11:40 새벽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수요성경공부: 저녁 7:30 5400 S. Yosemite St. Greenwood Village, CO 80111

10-12

6415 W. 44th Ave. Wheat Ridge, CO 80033

11000 E. Yale Ave #90 Aurora, CO 80014

720-336-9251

주일예배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 오전 6:00 성경대학(주일) : 오후 1:00

562-315-3674

우리교회 윤우식 목사

이성한 목사 주일 1부(영어) 10:00 am 주일 2부(한어) 11:45 am 주일학교 11:30 am 수요성경공부 7:00 pm 토요기도회 7:00 am

주일예배 12:30 PM Prayer Alliance 수 7:30 PM 주중 지역별 목장모임

금 glorifygod911@gmail.com

11000 E Yale Ave. #35, Aurora, CO 80014

503-927-9520 /

11989 Saint Paul St. Thornton, CO 80233 720-838-3352 / petershlee7@gmail.com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홍해선교교회 수요성경공부(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모임 21755 E. Smoky Hill Rd. Centennial, CO 80015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납니다”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 비전 하는 교회 말씀이 흥왕 교회 이 타오르는 길 불 의 도 기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로 전도하는 으 정 열 의 구령 교회 이루어 가는 를 가 명 의 믿음 회 살려내는 교 다음세대를

예배 안내 0

주일1부예배 주일2부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기도 화요기도 매일새벽기도 매일밤기도 다음세대 유초등부

오전 8:3 오전 10:30 오후 7:30 오후 8:00 오전 10:00 오전 10:30 오전 5:20 저녁 7-9 오후 1:30 오전 10:30

석총회) 서부노회(백 주 미 회 로 로 예수 예수교 장 령의 능력으 교회는 대한 성 야 루 서 렐 로 할 회 버 덴 심의 교 하는 나님 말씀 중 는 일에 진력 리 살 을 명 소속으로 하 혼생 증거하여 영 그리스도를 교회입니다. 시는 께서 운영하 령 성 고 시 되 대로 만하여 말씀 께서 주인이 충 도 령 스 성 리 그 로 예수 실 신랑 과 기도 제 곧 다시 오 교회는 말씀 이 야 루 고 렐 하 할 성 버 양 기 덴 리스도인을 한 신부가 되 그 결 는 정 있 는 수 있 살아낼 이할 수 리스도를 맞 그 수 체입니다. 예 는 되시 사랑의 공동 는 있 어 깨 다 위하여 날마

년 표어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 예수 증거하는 해

1654 S. Dayton St. changhoon528@gmail.com Aurora, CO 80247 (720)226-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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