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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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빛 제 10권 16호

소금

The Light and Salt News

2020년 9월 10일 발행


목차

2020년 9월 10일

목차 교계소식 이단•사이비 바로알기 내면을 향한 여정 강단설교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목회칼럼 예배학 강좌 하나님의 구원섭리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나의 노래,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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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10일, 24일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는 매회 2,000부씩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 PICK-UP 장소】 덴버지역: H-Mart 볼더지역: H-Mart 웨스트민스터점 콜로라도스프링스: 한국마켓, 썬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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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0년 9월 10일

휄로쉽침례교회 이두화 전도사 목사안수 및 취임예배

덴버한인교회 사랑학 세미나

2020년 9월 13일(주일) 오후 5시

2020년 9월 20일(주일) 오후 1시

휄로쉽침례교회는 다음과 같이 이두화 전도사 목사안수 및 취임예 배를 개최한다. COVID-19로 인해 참석인원이 제한됨에 양해를 구 하며 목사안수 및 취임예배는 Youtube Live로 참여할 수 있다. 추후 예배 영상은 교회 홈페이지 www.kfch.org에 업로드 된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을 참조하면 된다.

덴버한인교회는 아래와 같이 사랑학 세미나를 개최한다. 사랑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내안에 있는 사랑의 언어와 보물들을 찾 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7을 참 조하면 된다. ●일시: 2020년 9월 20일(주일) 오후 1시 ●강사: 조앤 리(한국 한동대 아릴락 소속 사랑학 강사) ●장소: 덴버한인교회 8556 E. Warren Ave. Denver, CO 80231 ●문의: 최형락 목사 (303) 717-0279 / hrockchoi@gmail.com ●COVID-19으로 인해 참석인원이 제한적으로, 참석을 원하는 이는 미리 교회로 연락 요망

●일시: 2020년 9월 13일(주일) 오후 5시 ●장소: 휄로쉽침례교회 29 Del Mar Circle Aurora, CO 80011 ●문의: (720) 625-8558

덴버한인장로교회 창립49주년 감사 장로임직예배 2020년 9월 27일(주일) 오전 11시

문서선교에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본지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덴버한인장로교회는 창립 49주년을 맞이하여 장로 임직예배를 드 린다. 팬데믹으로 인하여 Drive-In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으로 함 께 기도해 주길 부탁드린다.

♥ 기도로 ♥ 시간으로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빛과소금뉴스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으로도 빛과소금뉴스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 블로그에서! : thelightandsaltnews.blogspot.com ● Facebook에서! : www.facebook.com/TheLightandSaltNews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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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 재능으로 ♥ 물질로

(303) 667-2778 / thelightandsalt@gmail.com 2821 S. Parker Rd. Suite 409 Aurora, CO 80014

●일시: 2020년 9월 27일(주일) 오전 11시 ●장로장립: 이문수, 한상섭 ●장소: 덴버한인장로교회 7755 Kipling St. Arvada, CO 80005 ●문의: (303) 422-6950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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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 (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이단계보 2]

2020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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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이순화(1870~1936) [이단계보] 이단·사이비의 뿌리 -가짜 재림주를 중심으로-

기사: 정윤석 기자

[이단·사이비의 뿌리 1편 - 새시대의

고 그 행위가 상습적인 것임이 인정되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하고 사라졌습니

가 10여년간 감옥에 가 있는 동안 그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이순화에서 이어

어 송치되었다”(이장식, 한국교회의 어

다. 그럼에도 이들을 재림주 계보의 첫

가 설립한 기독교복음선교회를 10여년

지는 기사입니다] 이름도 재밌는 사람

제와 오늘, 대한기독교출판사, 1990년

페이지에 넣는 이유는 교회를 다녔고,

간 큰 타격없이 이끌어간 사람도 정조

이 한명 등장합니다. 1920년대에 활동

5판 189~190쪽에서 조승제, ‘목회여

교회를 무대로 활동했음에도 스스로를

은 씨입니다.

한 남방여왕이에요. 남방여왕이라는 익

담’, 향린사, 1965, 96페이지 재인용).

신탁을 받은 사람, 또는 마지막 심판

명의 교주는 약 10년 동안 한반도 각

때의 메신저로 자신을 신격화했기 때문

문: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이 강

지를 순례하며 이단 사상을 퍼뜨렸다

남방여왕의 행적과 관련한 자료는 매

입니다. 이순화 교주와 남방여왕이 기

할 때, 이미 남녀수행원을 데리고 다니

는 전설(?)의 여인입니다. 이순화 교주

우 빈약합니다. 그러나 위의 자료에서

독교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

다가 음행했다는 남방여왕의 행태는 충

에 이어 한국교회 이단계보의 첫 페이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 파악되지 않고 자료 또한 부족해 간

격적입니다.

지는 여성들이 장식하고 있다고 해도

△계시록을 통독했다 △만병통치의 기

단하게 정리하는 걸로 대신합니다. 그

- 신흥종교나 사이비 종교에서는 교주

과언이 아닌 셈이죠.

적을 행한다고 했다 △안수 기도를 하

러나 이후부터 조금 다른 사람들이 등

가 ‘하나님’ 또는 재림주로 불려요.

면 만병이 치유된다 △수행하던 남자와

장합니다. 이들은 상호간 영향을 주고

그들이 메시아로 신봉되다보니 이것이

“한국교회의 부흥회를 통해서 불건

음행했다 등입니다. 100년전의 교주였

받기도 했고 현재 한국교회 언저리에

‘주여 나를 받으시옵소서’, ‘드려요,

전한 성령 운동자들이 나오기 마련이

지만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사이비

성행하는 이단·사이비 교주들에게 적

모두다, 주님께 드려요’라는 고백을 할

었다. 이런 운동자들이 교회를 어지럽

교주들과 유사성이 있지요?

잖은 영향을 끼칩니다. 이 내용은 다음

때 그 대상을 영이신 하나님이 아니

편에 연재하겠습니다.

라 그 하나님이 들어와서 역사하고 있

히고 교인들을 오도한 폐단은 한두가 지가 아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소위

이 익명의 여성의 이름이 남방여인이

‘남방여왕’의 출현이었다. 그는 많은

었던 이유는 마태복음 12장 42절을 근

문: 여성의 위상이 높지 않은 시대였는

요. 그래서 정상적 사고를 가질 때, 도

남녀 수행원을 데리고 여러 지방을 순

거로 합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데 이단 재림주 계보에 여성들이 많이

덕성을 갖고 받아들이지 못할 일도 허

회하면서 교회당을 빌어 집회를 가지며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

등장하네요?

용하게 되는 거예요. 신에 대한 순종과

목사들을 비롯해서 평신도들에게 안수

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

- 네, 남방여왕이 활동하던 때는 일제

불순종의 개념으로 성적 문제, 이상 행

를 하였다. 그는 만병통치의 기적을 행

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

강점기예요. 그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동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한다고 소문이 퍼져 있었다. 매일 아침

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성경

위상은 지금에 비하면 매우 미미했다

요. 교주와 몸을 섞으면 그건 하나님

에 신약의 계시록을 첫장에서부터 끝장

의 원 뜻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그리

고 볼 수 있죠. 그런데도 이게 종교의

에 대한 순종, 나아가 신과 교접한 것

까지 꼭 한번씩 통독한 뒤에 병자에게

스도를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영역으로 오면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으로 생각해 ‘영광’이라고 여기는 집

안수 기도를 하면 만병이 치유된다는

이단·사이비 교주들의 해석이 그렇듯

이단 재림주의 계보에서 여성들이 차지

단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거절하면

것이었다. 1929년 김해읍 교회를 그가

엉뚱하게도 그리스도가 아닌, ‘남방여

하는 비중은 대단히 큽니다. 이건 지금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지탄을 받

찾아와서 집회를 열려고 했을 때 조승

왕’을 심판자로 해석하고는 자신이 곧

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단사

는 거예요. 이단사이비 단체 내에서 부

제 목사가 거절하였다. 그의 선임자 이

심판 때에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는 ‘

이비 단체의 2인자격 여신도, 또는 여

도덕적인 행각이 발생해도 쉽사리 노

기선 목사는 그 여왕에게 여러번 안수

그 사람’임을 강조하는 해석을 한 겁

성들을 주시해야 한다고 볼 수 있습

출되지 않는 건, 이것을 신앙적으로 착

도 받고 교회당을 빌려 주어서 집회를

니다. 세상 끝날에 심판을 담당할 새로

니다. 안상홍 교주의 사후 여자 하나

각해서 생각하는 수많은 피해자 아닌

할 수 있게 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운 브랜드로 남방여왕을 내세운 거죠.

님으로 등극한 사람이 장길자 씨입니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남방여왕

다.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가 2012년 9

의 성행각은 경찰에 발각돼 제재를 받 게 됐으니 다행이네요.

주간이 지나서 그 여왕은 그를 수행하

는 교주와 동일시하는 현상이 생기지

던 한 남자와 마산선 진영역전 여관에

이순화 씨나 익명의 여성 남방여

월 3일 사망한 후 현재 권력을 장악

서 음행하던 현장에서 경찰에 발각되

왕은 기독교계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한 사람도 한학자 씨입니다. 정명석 씨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이단계보 3]

5

2020년 9월 10일

새주님이라며 12제자를 뒀던 김성도(1882~ 1944)

처음 언급한 이순화나 남방여왕 행세 를 했던 익명의 여인은 “기독교계 전 체에 파문을 던지는 정도에까지는 이 르지 못한 채, 종적없이 사라지거나 민 속 신앙의 바다속으로 빠져 들어가거 나 하였다”(최중현, 한국메시아운동사 연구, 생각하는 백성, 1999년, 18쪽, 최 중현은 통일교 선문대 교수이지만 객 관적 사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인용 함). 그러나 이제 언급하는 교주는 다 릅니다. 김성도는 현재 한국에 존재하 는 모든 자칭 재림주들의 효시로 꼽을 수 있습니다. 김성도는 기독교로 입문하는 과정이 정도교의 이순화와 유사합니다. 17살에 27살 연상의 남편에게 시집을 갔던 김 성도는 1906년 아들을 낳고 나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무당을 부르고 병원을 찾고 치료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차도가 생기지 않았 죠. 그때 전도자가 와서 ‘이 병은 예 수님을 믿어야 낫는다’고 일러줬고 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병도 고침 받습니다. 아들도 병세가 있었으 나 그 역시 기도를 받고 나으면서 김성 도는 더 깊이 종교에 귀의합니다(위의 책 21페이지 참고). 1916년 남편이 사 망한 후 김성도는 매일 기도 생활에 깊 이 몰두하면서 입신 등 여러 가지 신비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신비체험을 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 을 수 없지만 김성도가 경험했다는 체 험은 매우 위험한 내용들로 이뤄져 있

었습니다. 입신해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죄의 뿌리가 음란이다’, ‘예수 자신 은 억울하게 죽었다’, ‘재림주님은 육 신을 쓴 인간으로 한반도에 온다’, ‘ 새주님이 나타났으니 회개하라’는 내 용이었다고 해요(위의 책 24, 25쪽). 자 신의 경험을 종이 12장에 기록해서 담 임목회자에게 보고하자 담임은 ‘사탄 의 역사니 조심하라’고 권고합니다. 반 면 교회 신도들은 담임목사와 달랐습 니다. 그녀가 신비체험을 한다는 소문 을 듣고 오히려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 는 그녀가 출교당하는 계기가 됩니다. 김성도는 출교 후 자신을 찾아오는 신 도들과 가정 집회를 열고 새주님이 땅 에 오심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김성 도는 자신의 주변에 12제자를 뒀고 기 도 끝에는 ‘새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했습니다. ‘입벌리고’ 성령 받기도 했 더군요. “새주는 성신을 부어 줄 터인 즉 입들을 벌리고 기도하라고 한다”(위 의 책 28p). 입벌리고 성령받기는 이후 '예수왕권세계선교회'라는 곳에서 합니 다. 다수의 참석자들이 입을 크게 벌 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향해 마 치 공기를 집어넣는 것처럼 연신 손 을 움직이거나 입만 크게 벌리고 있기 도 했습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 가 채우리라’(시 81:10)는 말씀을 근거 로 했다고 하지만, 그 시작은 김성도였 습니다. 여기에 들어온 신도들은 자신 의 재산을 바치고 유무상통하며 살았 다고 해요. 이렇게 해서 김성도파에게 붙여진 이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2:1)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름이 ‘새주파’였습니다. 이들은 1944 년엔 복중교로 불렸으나 이후 세력은 약화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교리는 두고 두고 재활용되고 있습니 다. 김성도는 △죄의 뿌리는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먹은 것에서부터 온 것이 아 니라 남녀 관계가 원인이 되었다, 즉 음 란이 타락의 동기였다 △예수님은 십자 가를 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돌아가 시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했다 △재림 주는 구름을 타고 오는 게 아니라 여인 의 몸을 통해 오신다 △재림주님은 한 국으로 오시며 만인이 한국을 신앙의 종주국으로 알고 찾아오게 된다(위의 책 37쪽)는 교리를 갖고 있었는데 이는 21세기 한국사회에 나타난 자칭 재림 주들의 교리적 토대가 됩니다. 일제 신 사참배에 반대한 김성도는 심한 고문 을 받고 1944년 만 61세의 나이로 사 망합니다. 이후 김성도의 교리는 백남 주·정득은·문선명에게로 이어집니다. 문: 담임목사님이 경고했는데도 김성도는 개의치 않고 자신이 갈 길을 갔잖아요. 그런데도 교인들이 김 교주를 계속 찾아 간 이유는 뭔가요? - 김성도의 신비체험에 대한 호기심이 었어요. 담임목사는 ‘사탄의 역사일 수 있다’며 제지해요. 그런데 교인들 은 그래도 찾아간단 말이에요. 결국 성 경에서 말씀하는 진리보다는 실제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그것이 성경적이 든 아니든 신비한 영적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요. 지금도 기도원을 가면 개인 기도를 하는 곳이 아니라 기 도원 원장과 상담을 하는 곳이 많아요.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담임 목사님 몰 래 이런 곳에서 상담을 받고 예언을 받 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100년 전에도 그건 다르지 않았나 봐요. 결국 김성도 는 자신을 추종하는 교인들을 중심으 로 새주파라는 신흥 이단의 길을 가게 되는 거예요. 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가 아 니고 ‘새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는데, 기도를 교주 이름으로 하는 곳 도 있나요? - 흔치 않지만 교주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있어요. 대표적인 곳이 안상홍 증 인회(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예요. 이곳은 노골적으로 “거룩하신 그리스도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다”라고 해요. 김성도의 새주파가 ‘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했 는데 이와 유사한 이단도 있어요. 기 독교복음선교회(CGM, 일명 JMS)예요.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다’라고 하지 않고 꼭 ‘주님 이름으 로 기도합니다’라고 하지요. JMS 신도 들은 ‘주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정명석을 떠올릴 거예요. ‘새’자만 넣지 않을 뿐이죠. 출처 : 기독교포털뉴스 (http://www.kportalnews.co.kr)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제공: 서선녀 사모



내면을 향한 여정

2020년 9월 10일

7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사랑할 때 뿐입니다 로마서Romans13:8-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0). ...........................................................................

“신앙은 자유다.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신앙이란 이름으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웃에게 해가 되는 간음이나 살인 도둑질이나 남의 것을 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니 말입니다. 사랑은“아카페”(αγάπη)사랑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 없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 또한 이웃에게 나눠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웃”(πλησίον)은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가족과 친지들과 교회공동체 일원만 이웃이 아니라 늘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뿐입니다(요13:14-15).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이웃에게 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았기에 제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듣습니까?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창세기Genesis50:15-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20). ...........................................................................

우리 속담에,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릴 뻗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나 해를 입은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난 후에 요셉의 형들은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자신들이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판 일이 있기에 요셉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요셉은, “형님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용서와 화해를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는 생각이 하시다면, 어떤 사람이나 조건이 나를 해하려 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꿔주실 줄 믿으십시오. 이런 일들을 통하여 생명을 구원하시려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요셉처럼 화해와 용서를 할 줄 아는 생명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Peacemakers”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피닉스<들꽃피는마을>에서정봉수

(ooreekmc@hanmail.net)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시 63:3~4)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강단 설교

2020년 9월 10일

8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 <마태복음 5:38-48>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

진실된 신자, 어떻게 보면 몰라서 바보

도록 이 말씀을 보복의 법, ‘복수의

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가 아닌 알면서도 주 예수님을 따르기

원리’로 가르친 것입니다.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위해서 세상적으로는 바보의 삶을 추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

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천경우 목사

덴버영락교회 담임

데도 경찰에 연락을 못한다는 것이지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복수의 노예

요. 경찰 부재로 인해 일반 사람들이

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위험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생

인류의 역사는 피로 물들인 역사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와 아픔을 갖고

명의 귀함도 있지만 일반 시민의 안전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요 칼로 망하는 비극의 역사로 점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여 큰 사건을 일

도 무척이나 중요한데 사람들이 우왕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사상케 하는

좌왕하면서 문제를 크게 양산하는 모

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이런 피의 보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 죽고 나 죽

습을 보입니다.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

특히 정치권을 보면 더욱 잘 볼 수 있

자 라는 비참한 문구처럼 사람들은 행

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습니다. 복수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

동하고 있습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

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에게 해

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를 당하면 자신이 당한 것보다 더 많

우리들의 마음에는 이런 원수에 대

져나가는 것 말이지요. 이에 못지않게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

이 더 크게 보복하려고 합니다. ‘내

한 적대적 의식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유대 사회는 로마 압제, 지도권의 지

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

가 한 대 맞았으면 너는 두 대 맞아

당연히 우리 크리스찬에게도 그런 마

배세력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

하여 기도하라

야 된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는 것이거든요. 유대나라 독립을 위한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

은 말씀하십니다.

서 있다는 Koram Deo정신이 아닌

극한 활동을 벌리는 열심당 같은 사

너 때문에, 이웃 때문에, 형제와 자매

람들이 있다는 소리는 바로 그런 사

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우리의 속에는 분노의 스위치가 있 는 것 같습니다. 참다가 못 참으면 터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

때문에. 그러면서 자신만을 옹호하고

회 분위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주장하는 모습을 우리 신자들도 보인

예수님께서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고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

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악한

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

적하지 말라

신의 행동에 대해서 답변할 자세를 언

자들이 늘 있습니다. 세상의 악을 묵

제나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불의와 죄악

무조건 내가 저지르는 모든 일은 나

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그저 피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

기만 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때로 우

수님의 해석이 나옵니다.

리는 불의에 대해 항거할 수도 있고,

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 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장 38절은 모세의 율법에 서 나왔습니다. 출 21: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은 손으로, 발은 발로, 레 24:20 상처에

39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

악한 관습들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

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한 자를 대적지 말라 - ‘내가 어떤 피

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악한 자들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

해를 보았다고 해서 결코 개인적으로

에게 보복하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

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그 사람에게 보복이나 복수하려고 하

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말씀 이지만 어떻게 보면 아는 말씀임에도

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일 실천하지 못하는 말씀과 행위의

실상은 복수심에 불타서 더 큰 복수

차이가 많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

를 하지 않도록 반드시 재판관 앞에

약간은 다르겠지만 미네소타 미네

적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힘들

각합니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가

가서 사실 관계를 충분히 확인한 다

아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

지요. 사람은 누구든지 피해를 당하면

사 중에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음, 손해를 받은 만큼 보상받도록 한

인이 생명을 잃게 되어져서 전국적으

복수하고 싶지,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목적과 뜻이 출애굽기와 레위기서에

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습을 보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보면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모르는

서는 설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 미네아폴리스에서 한 경찰의 잘못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예수님의

바보와 같이 생각하며 살지 않았는

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율

이지만 경찰 전체의 문제가 아니겠느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강

가 싶습니다. 반면 오늘의 본문을 생

법의 뜻은 뒤로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냐며 경찰 전체를 없애는 일이 발생하

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통치를

각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

방향으로만 이 법을 해석했다는 것입

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믿으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께

는 믿음의 모습은 진짜 바보의 모습

니다. “하나님께서 ‘눈은 눈으로 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경찰에 대

서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믿

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

는 이로 갚으라’고 했다. 그러니 누구

한 불신이 심해지면서 지금 전체 도시

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론,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뚜

든지 당한만큼 복수할 수 있다” 복

가 총기사건이 더 많아지고 홈리스들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렷한 목적과 방향과 사명을 갖고 가는

수하고 싶을 때 마음껏 보복할 수 있

이 몰려들고 무법한 사회로 바뀌었는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분, 우리 힘으로는 악한 자를 대


강단 설교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다음 과 같이 말합니다. 롬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 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 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 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 라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하며 경멸하 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들에게 오직 사랑으로 반응해야 합니 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불성 실 하더라도 우리는 사랑으로만 반응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고 발가벗 긴 채 십자가에 매달리며 말로 조롱 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그들을 보 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서의 기 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 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믿는 자의 기도 요 행할 자세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 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어지도록 기 도해야 합니다.

2020년 9월 10일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

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서 전적으

우리의 삶에서 원수는커녕 친구 사랑

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우리가 사는 세

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믿음

도 생각같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을, 우리의 삶을 우리 아버지 하나

의 태도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같은 교회의 교우를 사랑하는 것 또

님께서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우

한 쉽지 않습니다. 아니, 매우 어렵습

리가 세상을 이기는 길은 우리가 하나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

니다. 얼마나 많은 갈등을 봅니까? 그

님의 자녀라는 것과 이미 하나님의 나

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

런데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라가 이 땅에 임하였고 하나님의 뜻이

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

가깝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행하는 것입

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원수 사랑의 근거를 45절부터 설명합

니다. 그리고 이 믿음 안에서 더욱 하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

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

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연습함으로 온

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해를 비추고

전해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

비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

로 원수가 되어서 미워하며 싸우며 자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이라고 말합

적으로만 살면 유대인이라고 해서 세

기 속에 갇혀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삽

니다. 최소한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

리나 이방인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

의 사람들과 달리 세상의 가치관이나

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말씀대

마음을 따름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

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과 뭔가 달

로 눈물을 뿌리면서도 순종하고자 오

을 따라 섬기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라도 달라야 한다는 말은 당연합니다.

히려 미움과 아픔의 원수들까지도 품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닫힌 마음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해야 한

고 기도하면서 사랑하고 섬기면서 나

을 예수님의 말씀처럼 열라고 말하는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 하나님의 약속인 은혜와 능력과

것입니다. 지금 사회의 물질 중심, 무

은 참 힘들지만 순종 외에는 없다는

사랑으로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삽니다.

정한 사회, 경쟁적이고 이기주의와 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

인주의가 극심한 사회, 악이 가득하고

랑이 세상에 증거되며, 하나님의 나라

남을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한 칼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

가 확장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

같은 마음을 드러내고 자기 밖에 모르

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

이 어렵지만 그럴 때에 참 믿는 자의

는 현상을 보면서 지난 2천년동안 예

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모습이 드러납니다.

수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우리 크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스찬들의 책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 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요셉은 같은 식구인 사랑하는 형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 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 었으나 여기에 해당하는 구약성경은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 라" 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적 대감을 보였습니다. 최선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을 뿐 입니다. 예수님은 훨씬 적극적으로 ‘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안 다니는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말씀이 바로 ‘네 원수를 사랑

9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 가치보 다 더 뛰어나고 우월한 가치관을 제

한테 어린 시절 노예로 팔려서 애굽에

이 ‘온전하라’는 의미는 영어로

시하셨는데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들

가서 감옥 생활을 합니다. 아무리 요

Perfect 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과

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 세상

셉이 믿음이 좋다고 하더라도 남의 나

연 우리가 퍼펙트한 사람이 될 수 있

의 습관과 가치관을 넘어서지 못한 모

라에 가서 노예 생활을 하고 모함을

을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

습이 있습니다.

받아 감옥 생활을 할 때에 형들에 대

신 이 목표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

한 원한과 악감정이 있지 않았겠습니

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하

까? 나중에 자기를 판 형들을 만났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깁니다. 자신의 경

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힘써야 합

때 요셉이 말합니다. “이 흉년에 우

험과 느낌을 절대화합니다. 자기에게만

니다. 자기중심으로부터 하나님 중심

리 민족을 구하려고 하나님이 나를 먼

관심을 두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으로 변화되어 믿음의 모습을 보일 때

저 애굽에 보내서 이렇게 준비시켰습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또 가족을 넘

에 참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나를 팔았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어서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

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마시지요. 형님들은 분명히 악을 행했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추

의 말씀과 사랑으로 충만하여 순종하

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꿨

구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은

는 삶을 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

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구원 받는 것과 그 이후 축복과 행복

명의 역사가 확실하게 드러나게 될 것

요셉은 하나님의 뜻인 사랑과 용서를

에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입니다. 생명의 은혜를 입는 사람으로

행하며 살았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

되려는 것을 목표하지 않습니다. 온전

서의 가치를 발휘하는 우리 모두가 되

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런 믿음의

하다는 의미는 아무런 흠도 없을 정

기를 바랍니다.

자리에 서야 합니다.

도로 완벽하게 살아야한다는 뜻이 아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시 59:16~17) 제공: 신민식·신정원 성도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0년 9월 10일

10

코로나 사태 중에 인내하는 믿음 <야고보 5:7-11> 최요한 목사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초스피드 시대 입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하려고 합니다. 조금만 늦으면 큰일이 난 것처럼 당황해 합니다. 최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마 음이 급해서 기다리지 못해 답답해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인 터넷은 한자로 참을 인(忍)자의 인터넷이 라고 합니다. 어른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 놓고 늦으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밥이 왜 안 나와?" "씨를 뿌리고 농사 를 지어서 밥을 만드는 거야 뭐냐?” 라 는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가게에서 물건 을 사려고 계산대 앞에서 어느 줄이 더 짧나? 어디에 서야 더 빠를 수 있을까? 그러면서 계산대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왔다 갔다가 하신 적이 있습니까? 오히 려 왔다 갔다 하다가 더 시간이 늦어지 는 경우가 있지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 엘리베이터의 문 이 몇 초라도 늦게 닫치면 어떻게 하세 요?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close button'를 누르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사람을 잃습니다. 좋 은 친구 사이도 불편해지고 관계가 깨어 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 할일이 많아 바쁘고 힘들 수록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숙한 사람일 수록 기다립니다. 반면에 미숙한 사람은 기다림의 미덕을 알지 못합니다. 미숙한 사람은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합니다. 그 러나 성숙한 사람은 기다립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때를 아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있습니다. 중요한 선택이나 결단일수록 그 때를 항 상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들이 읽은 성경 말씀에 농부의 인내, 선지자의 인내 그 리고 욥의 인내가 소개됩니다.

1. 농부의 인내( 7절)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

니” 아침에 씨앗을 뿌리고 저녁에 그 열 매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마술사나 과학 자는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 나 그런 사람은 농부가 아닙니다.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으면서도 농사에게 꼭 거쳐야 하는 것이 기다림 입니다. 농사의 법칙은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농사일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계절과 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 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들이 착한 일을 하다가 왜 낙심 하지 말고 피곤해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 까? 쉽게 낙심하고 자주 포기하기 때문 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 기에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권면을 합니 다. 농부가 험하고 힘든 일을 마치고 추 수를 기다린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자 체가 농사일이라고 말씀합니다. 농사 일 중에 한 부분을 확실히 차지하는 것이 기다림입니다. 한 예로 사과 열매를 예로 들자면 사이즈는 크고 모양이 좋아도 익 기 전에 사과를 따 먹으면 맛이 좋을까 요? 아니죠. 그 맛이 쓰거나 또는 시어 서 먹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을 거 쳐 때가 되어야 최고의 사과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켄 가이어라는 기독교 베스트셀러 작 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술가로 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 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더 크게 자 라는 것일수록 성장하려면 더 오랜 시 간이 걸린다. …… 시간이 걸리지 않고 맺어진 열매가 있다면 인공적인 것이 다. 그것은 맛도 없을 뿐더러 참 열매의 양분도 없고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씨앗 조차 없다.” 그는 농사일만이 아닌 우리 인간의 삶

에 비유합니다. 기다림은 시간 낭비나 손 해가 아닙니다. 과일이 제 맛을 내며 풍 성한 영양분과 재생산을 위한 씨앗을 만 드는 비결이 인내이며 이것이 인생의 법 칙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성경의 진 리로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 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거두리라' 라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약속을 받기 위해서 우리에 게 할 일이 있습니다. 두 가지로 첫 번째 부정적인 접근으로 낙심을 하지 않고 피 곤하여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긍정적으로는 기다리는 인내 입니다. 농사일은 피곤하고 지치듯이 인 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 며 그분을 섬기는 믿음의 삶에도 자주 힘이 빠지고 시험에 들립니다. 그러나 우 리에게는 거두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믿습니까? 그렇다 면 우리가 할 일은 낙심하지 말고 인내 한다면 성실하신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 로 반드시 우리에게 거두는 축복을 주 실 줄 믿습니다.

2. 선지자의 인내(10절) 10절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 은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홍수의 경고를 받고 배를 만드는 노아는 무려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 으로 받은 아들인 이삭을 위해 25년을 인내하였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 인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14년 을 참았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왕이 되기 위하 여 20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전 체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430 년을 참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 치기까지 70년 동안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중에 구름타시고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실 세상의 심판장이며 그 러나 우리에게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기 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섬김의 교회 담임

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내입 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심 을 믿고 그분의 주권을 이루어짐을 확신 하기에 기다립니다. 개인적인 기도나 자 녀들을 위한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기에 기다립니다. 함께 주님을 섬기는 형제를 사랑하기에 참습니다. 사역도 섬김도 다 인내가 요구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 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습니 다(고전 13:4,7). 폴 마이어는 “실패한 사람들의 90% 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만 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공과 실패 의 차이는 능력이나 실력 또는 개인적인 탤런트 차이가 아닙니다. 계속하느냐 포 기하느냐의 한 가지 차이입니다. 성공자 는 조금 더 버틴 것뿐입니다. 실패는 끝 이 아닙니다. 그만 두는 것이 실패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십시오. 더욱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기 다리십시오. 그레이시 앨렌은 이렇게 우 리 모두에게 도전을 합니다. "오늘을 눈 물과 좌절로 살고 있습니까? 상처가 없 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상처 가 있지만 그것을 극복한 사람이 아름 답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 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위대 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인격과 사랑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고난이 언제나 동반됩니다. 위 대한 인생은 고통의 크기만큼 입니다. 그 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몸인 우리 교회도 개인적인 신앙도 아픔 속에서 성장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고 난이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고 사랑하 면서 섬기기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은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끝 까지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간다면 마침내 여러분의 삶은 진주와 같이 빛나 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3. 욥의 인내(11절) 이제 11절입니다.

2020년 9월 10일

생기고 사망자의 숫자가 20만 명을 향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11

배가 되어 그분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여 달려가며 3000만 명 이상이 직장

사태가 지금 9월까지 벌써 6개월이 지나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

이나 사업을 잃어 경제 파탄이 일어나

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은 세계

그러므로 로마서 12장 1절은 말씀합

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

에서 최강의 군대와 최고의 부와 최고의

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

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5

의학과 과학의 힘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영적 예배니라"

월 25일 미네소타 주에서 경찰의 강압적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

욥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었습니

인 진압으로 조오지 플로이드가 죽음을

와 전쟁에서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확

즉 예배당 안의 제사만이 아닌 우리

다. 졸지에 모든 아들과 자식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 후에 덴버를 포함하여

진자와 사망자의 수치를 가지고 있습니

의 몸이 드려지는 삶 즉, 일상적인 생활

당하였고 자신도 병까지 들고 죽지 못해

미국의 대도시 곳곳에서 ‘Black Lives

다. 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언

이 코로나 사태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

살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정죄하

Matter'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건

제 이 팬데믹의 마지막인지 아무도 알지

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살아 있는 제물로

였으며 아내가 저주를 합니다. 그의 종들

전한 데모가 폭동이나 방화로 변하였고

못합니다. 오히려 그 기세는 더 심해지

드리십시오.

도 주인인 그가 죽기를 바랍니다.

좌익이나 무정부주의 세력이 미국을 무

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코

너뜨리고자 합니다.

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온 세상을 바꾸

그러나 그의 결론입니다.

이때에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와 같은

어 놓았습니다.

본문 11절에서 인내라는 헬라어 사용 된 원어는 ‘휘포모네’입니다. ‘휘포모

" …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

때에 믿음이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대

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

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Post Corona'

게 서 있다, 확고부동하다’는 의미를 가

라 …" (욥 42:10)

네’의 뜻은 ‘흔들리지 않는다, 견고하

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지기를 기도

시대가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

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난을 만나면 우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복을 주사 처

하며 인내하면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가 아닌 코로나와 더불어 즉 ‘With

리는 피하거나 도망을 가고 싶습니다. 고

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

의 공의와 평화가 실현될 그 나라를 더

Corona' 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대면 예

난이 고통과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저

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욱 사모하는 것입니다.

배로 사람의 얼굴보다 하나님만을 바라

도 그런 고통이 싫습니다. 우리 중에 누

보는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까?

가 고통을 좋아합니까? 그 때가 오면 우

일천을 두었고" (욥 42:12)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욥 42:13)

인내(忍耐)라는 한자는 ‘참을 인(忍)'

리는 포기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희망이

자와 ‘견딜 내(耐) 자로 이루어졌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보다 저와 여러분이 교

없으니 직장을 내려놓고 사업을 접으려

참을 인 자는 마음 ‘심' 위에 칼 ‘도'

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

고 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책임이나

욥이 인내로 최후 승리를 거둡니다. 그

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즉 마음에 칼

하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어머니의 의무를 버립니다. 하나님을 사

의 기다림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누리

이 꽂히는 듯 한 고통을 참는다는 의미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바울은 외칩

랑하고 그분을 섬긴다고 하지만 신앙이

는 비결이 됩니다.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

가 담겨 있습니다. 문자대로 칼만이 아

니다.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싶을 때가 왜 없

는 믿음이 축복된 인생을 맞이하게 합

닌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마

...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 이라고

겠어요?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도 흔들

니다.

치 우리의 마음이 칼에 찔리거나 마음이

가르칩니다.

리지 않게 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많은

도려내는 듯 고통스럽습니다. 음식을 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십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대로 못 먹고 먹어도 소화도 안 되잖아

고린도전서 6장 20은 “값으로 산 것이

자가의 은혜를 저버려도 나를 견고하게

란, 인생이 불합리하고 억울하여 이해가

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옵니까? 수많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

세우는 것이 인내입니다. 가뭄 중에 농

되지 않는 일들이 거듭 일어나도 절대자

은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잘 수 없을 정

광을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

부처럼 추수의 기쁨을 누리며 고난 받

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확신하는

도입니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온 몸이

값으로 대속한 것은 교회의 건물이나 시

은 선지자들의 승리와 마침내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음이란, 지금과 같이 온 세

떨리고 미움과 분노 그리고 극단적인 생

설 또는 조직이 아닌 우리의 몸입니다.

복을 받았던 욥처럼 인내로 코로나 사태

상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우리

각까지 할 정도이지만 그것을 견디는 것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나 영으

와 함께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가 사는 미국에 600만 명의 확진자들이

이 인내라는 한자의 의미입니다.

로 만이 아닌 몸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

축복드립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9월 10일

12

사무엘상 강해(30)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들이 나를 버려 <사무엘상 8:1-9>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

우리들에게 있습니까? 성경은 왕도 아

급하고 있습니다. 이 나이면 일을 못

어서 대단히 중요한 배경을 다루고 있

니고 백성들도 아닌 ‘하나님’께 있

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만, 아마도

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

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

사무엘은 자신이 은퇴한 이후를 생각

이후 약 350여 년간 유지 되어 왔던

라의 주권자는 처음부터 하나님이셨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제

소위 ‘지파 동맹’ 또는 ‘부족 연합

습니다. 그래서 ‘왕’을 세우지 않았

늙어서 사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

체제’가 ‘중앙 집권 체제’ 즉 ‘왕

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입

못할 것을 대비하여 두 가지를 준비합

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정 체제’로의 대전환을 이루는 과정

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

니다. 먼저는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웁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

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라는 그 통치 체제가 ‘하나님 나라’

니다. 그리고 ‘브엘세바’지역을 다스

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삼상8:4-

을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리게 했습니다.

5)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

늙어가는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의 타

왕이 없어도 다스려질 수 있는 나라

락 (1-3절), ② 이스라엘 장로들의 왕

가 이스라엘 이어야 했습니다. 왜냐하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

정 요구 (4-5절), ③ 사무엘의 기도와

면 이스라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

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

하나님의 답변 (6-9절)

의 모형을 보여 주어야 하는 나라이

사가 되니라”(삼상8:2)

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게 하소서” 한마디로 왕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 다. 왜 왕을 세워 달라하고 합니까?

브엘세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앞에서 사무

으로 약 75Km 떨어진 곳입니다. 사무

엘과 두 아들이 제공한 두 가지 빌

복하고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여 살

나라가 생긴지 350여 년 동안 이

엘이 순회 사역을 했던 반경(벧엑, 길

미 때문입니다. “당신은 늙고 당신의

게 하므로 명실공이 나라다운 면모

스라엘은 ‘왕’없이 ‘사사’들에 의

갈, 미스바)을 벗어난 지역입니다. 사무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

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즉 ‘국민’ ‘

해 나라가 다스려졌습니다. ‘사사가

엘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Km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유

땅’ ‘주권’이라는 국가의 3대 요소

다스렸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떨어진 자신의 고향인 ‘라마’를 중심

는 표면적이 이유입니다. 더 본질 적

를 갖추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

다스렸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으로 순회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

인 이유는 이것입니다. ‘모든 나라

엘이라는 ‘국민’은 출애굽 한 히브리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본문 마지막 부

신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인 브엘

와 같이’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민족입니다. ‘땅’은 그 민족에 의해

분(7:15-17)에도 사무엘이 사는 날 동

세바 지역에 두 아들을 세워 사사의

른 이방 나라와 같이 되기를 원하는

정복된 ‘가나안’입니다. 그런데 가나

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이스라엘

역할을 하게 한 것입니다.

것입니다.

안 정복이후 350여년 가까이 혼돈 가

을 다스렸고,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운데 있는 부분이 ‘주권’이었습니다.

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이것은 안

‘주권’은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가 누

정되게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말씀으

구에게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계셨다는 말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중앙집권적인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주권국가로서의 통치 체제가 달라집니

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안에 통치 체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

이런 요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

다. 다시 말하면 다스림의 주체가 누

제에 대한 다른 요구가 터져 나오기

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삼상8:3)

로들이 ‘모든 나라와 같이’ 되기를

구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고대 국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왕정 체제’에

가들은 다스림의 주체를 왕이나 특정

대한 요구였습니다. 끊임없이 이스라

이들의 타락도 두 가지 측면에서입니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러한 요

인에게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엘 백성들의 저변에 이 ‘왕정 체제’

다. 먼저는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

구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대한 큰 도

대부분 국가들의 주권 개념은 다스림

에 대한 의식 깔려 있었습니다. 이스

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법을 따라 재

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의 주체를 ‘국민’에게 둡니다. 이것

라엘 백성들은 늘 자신들에게 없는 것

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따

열방과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을 ‘국민 주권’이라고 합니다. 우리

들이 좋아 보였습니다.

라 재판을 했습니다. 위의 두 가지가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

‘왕’을 요구하는 빌미가 된 것은 아

님의 말씀의 통치를 받으며 가나안 땅

나라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보면

두 번째 빌미는 이 두 아들이 타락 했다는 것입니다.

장로들은 비조직적인 사사직의 비효 율성에 비해 왕정 체제가 갖고 있는

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① 대한민

이 ‘왕정 체제’의 욕구를 불출시

마도 이스라엘 장로들이 50여 년 전

에서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국은 미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키는 빌미가 제공 되었습니다. 두 가

의 엘리 제사장 때를 떠 올리며 불안

크리스챤은 세상과 같아지려고 편리성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지입니다.

해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

국민에게서 나온다.

첫 번째는 사무엘이 늙어 가고 있었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은 누구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 라엘 사사로 삼으니”(삼상8:1)

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편리하고 합리 이스라엘 장로들이 라마에 있는 사

적인 것 같고 효율적인 것 같아도 그

무엘에게 가서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에 어긋난

까?

다면 단호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게 있습니까? 특정한 왕에게 있습니

이스라엘의 경전인 탈무드는 이 때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까? 아니면 그 나라에 속한 백성들인

사무엘의 나이가 52세 정도였다고 언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

다른 나라와 같은 왕을 세워 다스리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9월 10일

13

게 해달라는 요구에 사무엘의 마음이

하는 진짜 숨겨진 이유를 사무엘에게

니다. 여기서 오늘 본문에 대한 결론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이 ‘나의 왕’

심히 불편했습니다.

폭로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이 요구는

을 맺으면서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

이 되고 계십니까? 이 세상 마지막 때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

한마디로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이

보고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버

에 벌어지는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

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

버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리는 일인 이 왕정 제도를 왜 이스라

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을 끝으로 세

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요구는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거부임

엘에게 허락하셨을까?”하는 것입니다.

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재앙이 끝

삼상8:6)

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여호와께서 이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이 납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짐

스라엘의 왕이시라는 사상은 이스라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그

엘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랬습니다. 이 말은 ‘떨다’라는 의미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승’이라 불리는 악의 세력과 싸우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왕정 제도에 대

는 분이 등장합니다. 그분이 누구이

한 이야기는 모세의 설교(신명기)에도

십니까?

를 가지는 히브리어 ‘야라으’인데 이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

것은 분노나 격정에 휩싸였을 때 몸이

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떨리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슬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

다. 불쾌하다’는 의미도 가지는 단어

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삿

일이라는 말은 이 왕정 제도 자체에

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불쾌하고 슬

8:23)

는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

어느 시대든지 자신이 왕이시지만 자

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17:14)

퍼서 사무엘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이렇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요구는 정치

신을 대신할 사람들, 즉 족장, 제사장,

게도 그의 어머니 한나의 모습과 똑

적인 독립선언과도 같으며, 이런 의미

사사, 왕, 선지자들을 세워 자신의 말

같습니까?

에서 여호와께 대한 배반의 성격을 지

씀으로 다스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십니다. 그런데 이 싸움

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제도를

에서 누가 이깁니까? ‘어린 양’이 이

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이런 요구가 어

탓하고 조직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습

깁니다. 왜 이 어린양이 이긴다고 말합

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

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도

니까?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니다.

그 제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

잘못되면 그 제도는 무용지물입니다.

요’ 그 분이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문제 늘 사람입니다. 왕정 제도가 문

에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기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제가 아닙니다. 왕정 제도를 도입하여

는 자가 등장합니다. 누굽니까? ‘그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

왕을 세워 놓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

함께 있는 자들’입니다. 그 어린 양과

게도 그리하는도다”(삼상8:8)

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워진 왕이 자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신도 말씀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

또 다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

아야할 사람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로다’ 누굽니까? 바로 오늘 저와 여

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시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이렇

러분들입니다.

두 가지를 당부하십니다.

게 고백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1:10) 자신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드는 자 들을 향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사무엘의 영적 지도자다운 면모를 보 여 주는 대목입니다. 그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 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 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 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

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

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

상8:7)

의 제도를 가르치라”(삼상8:9) 먼저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라는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 주라는 것입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망하는 왕

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왕을 요구

정제도의 문제점을 가르치라는 것입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대로 예수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님께서 만왕의 왕이신 것을 인정하고,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

그분이 또한 다윗처럼 나의 왕이시라

다”(시편145:1)

고 고백하며, 그 왕 되신 우리 주님과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므로 항상 승리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고백처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목회 칼럼

2020년 9월 10일

14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는데 역사 적인 사실들을 통하여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떠한 영웅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약 1천 만명의 목숨을 앗아가 고 더 많은 부상과 슬픔을 낳은 제1차 세 계대전 후에도 영웅이 발생하였다. 독일, 이 태리, 일본 등에서는 이기적이고 악하고 불 의하고 포악한 히틀러, 무솔리니, 히데키 등 의 독재자들이 발생하였고 영국 프랑스 미 국 등에서는 이타적이고 선하고 의로운 처 어칠, 드골, 맥카더, 패튼 등의 영웅들이 일 어났다. 사람들의 주장과 표현과 목표는 현 실적이면서도 성서적이어야 바람직한 것이 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을 큰 도움과 능력 과 힘이 되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죄나 악을 위하여 세상 것들을 적 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과거를 개선하고 현실과 장래와 영생을 위하여 적용하고 계 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대신하 신 수고와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 혜와 자비로 생존하는 인류이다. 호흡과 맥 박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와 자비인 데, 영육을 위하여 꾸준하게 일하고 신앙생 활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래야 사람답고 천 국시민다운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는 세 상과 인생이다. 어찌하여야 하는가? 현재 나 장래의 일들로 인하여 신앙의 유무간에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을 느끼는 인생들과 민족과 나라이지만 절대로 범죄나 마귀짓이

나 귀신짓으로 생존이나 유익을 추구하는 일은 추호도 없어야 한다. 모든 육신은 죽 지만 지옥 영벌을 당하는 일들은 없어야 한 다. 무엇이 시급한지를 깨닫고 죽은 후에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 후회와 원 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기뻐하면서 선행을 하여서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썩은 시체의 냄새 가 강하여 사람들이 몹시 불편해 하고 절 망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로야 나오 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명령을 들은 나사로는 걸어 나왔다. 사람으로서 불 가항력적인 일들을 당할 때일수록 예수님의 말씀만은 믿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육신은 죽어도 그 영혼이 떠나지 않은 이상 청력은 살아 있음을 아셨던 것이다. 사람의 육신은 죽어 가도 청력과 감정과 영혼은 남아 있는 것이 사람인 것을 깨닫곤 한다. 의사들이 포기한 식물인간이 그의 가족들의 말에 무감정과 무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감정과 반응을 보 이기도 하는 것을 살펴 본 일들이 있었다. 그들의 가족이 슬퍼하면, 그들은 ‘이제 하 나님께로 돌아가는데……., 나로서 어찌할 수가 있느냐……’ 등의 무반응 무표정이었 다. 그들의 가족이 장례식 때에 받을 위로 금 등을 욕심낼 때에는 그 노인의 얼굴에는 언짢아 하는 표정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천사들과 마귀와 귀신들도 보고 듣고 느끼 고 생각하고 언행을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

아야 한다. 불신이나 죄악으로 인하여 신앙 이나 영혼이 죽은 자들이라도, 성경에 기록 된 하나님의 경고를 듣거나 읽으면 싫어하 거나 미워하거나 분노한다. 영혼은 지옥을 보는 눈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몸과 같이 사람이 만든 것들도 온 전하지 않다. 강풍 홍수 사고 폭발 등으로 콩크리트 건물과 철근 구조물들이 휘어지 고 차들도 부서진 것들을 볼 때가 있다. 망 가지거나 부서진 것이 있으면 그것들을 치 우고 쓸모가 있는 것이나 새 것을 장만하 여야 한다. 전쟁으로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을지라도 재건하는 것이 인류역사이기 도 하다. 사람이 몸이나 경제도 망하면 흥 하도록 다시 애쓰면서 생존하여 온 것이다. 생존이나 발전이나 유익이나 성공이나 승리 를 위하여서도,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인류의 모든 역사적인 부분들도 굴곡을 통 하여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과 역사적인 흐름을 통하여 육신의 죽음과 인 류와 세상의 종말은 확실한 것을 미리 깨닫 고 대비하고 끝이나 종말까지 정직하고 선 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준비하여야 한다. 그 래야 지혜와 명철이 은금보다 낫고, 감정과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도시나 나라를 정복 한 자보다 나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만 아니라 그의 영 광도 매 순간 체험하는 인생들이다. 축복이 란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선호하심 (은총)과 보호하심을 받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고 살고 있다. 빛과 어둠이 있고 앉고 눕 고 걸어다니고 일을 할 수 있는 땅이 있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서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세상 의 흥망성쇠들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신 실하심과 능력과 영광을 발견하고 하나님 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한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과 역사하심과 능 력을 몸소 체험하면서 바울과 같이 하나님 의 찬송과 영광이 되는 발전이 있도록 애 를 써야 인생과 영생에서 영광스러운 자가 되는 것이다.

육신이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하는 성격 과 모습들이 모든 사람들에겐 있다. 모두 가 불완전한 것이 사실이어서 성자 예수님 의 탄생과 희생적인 생과 사에는 지구와 인 류에게 생명력이 되는 것이다. 천국에서 영 생할 자들이라면, 영원한 성품이 되는 믿음 소망 사랑 겸손 정직 온유 그리고 선함만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도록 애를 써야 하고 행 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죽고 썩은 시체의 영혼도 예수님의 명령에 청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진리과 성령의 감동 하심을 통하여서, 죽고 썩은 시체보다도 생 오전 11:30 명의 영원한 주일예배: 공급자이신 주하나님께 더 청 (장소: 2821 S 유스주일예배: 주일권오전 10:30 (장소 종하고 순종하여서 진실로 주의 영광과 수요예배: 오후할 7:00 세를 몸소 체험하는 자가 되어야 때이다. (장소: 5651 S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2821 S. Parker Rd. Aurora, CO 80014


예배학 강좌

2020년 9월 10일

15

(제 68회)

“인터넷 예배나 지성전 예배도 예배라고 할 수 있나요?”(2)

질문 “대형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설교 를 여러 지역에 떨어진 지성전에서 실 시간 중계를 하는 방식으로 예배합니 다. 이것도 온전한 예배라고 할 수 있 나요?”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예배를 드 려도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예배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지성전 예배는 이러한 예배의 정 의를 충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나 위성중계에서는 오로지 정보의 일방적 전달만이 존재할 뿐 인도자와 회중 의 쌍방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스 크린 속에 있는 예배 인도자와 설교자는 지성전의 회중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볼 수도 없고, 그들의 얼굴 표정은 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회중 역시 그저 본당에 설치된 화면 속의 설교자를 보며 그의 목소리를 들을 뿐, 얼굴과 얼굴을 맞 대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할 수 가 없습니 다. 이는 예배의 공동체성을 심각하게 저해 하는 요소입니다. 예배를 위해 모인 회중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모여’ ‘한마음’으 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이며, 함께 말 하고, 함께 행동하며, 함께 느끼는 공동체 여야 합니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떨어진 장 소에서, 그것도 ‘쌍방향 소통’이 아닌 ‘ 일방적 전달’에 의지해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배의 본질을 저해하는 사항입니다. 혹자는 같은 예배 시간에, 같은 찬송과 기도로,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드리는 데 공간을 초월할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은 떨 어져 있지만 ‘영’(靈)은 함께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현재 입고 있는 ‘육신 의 장막’을 초월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몸 은 그렇지 못한데 마음이 함께 있다고 해 서 함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예배’를 드리고는 있지만, 본당의 회중과 지성전의 회중이 서로 모르는 사실

또한 지적되어야 합니다. 본당에서 예배드 리는 사람과 전국의 지성전에서 동시에 예 배하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 이며 함께 교제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지 성전 예배에서 성도간의 온전한 코이노니 아는 기대하기 어렵고, 단순히 ‘내가’ 예 배당에 가서 설교 듣고, 은혜 받고 돌아오 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럴 경우 이 예 배는 ‘공동의 예배’(cooperate worship) 라기 보다는 단순히 ‘사적(私的)인 예배’ 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서 옆 사람이 누 구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나 님과의 관계 속에서 은혜 받고 감동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배학에서는 이것을 예 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적 인 예배 혹은 개인적 예배라는 말은 존재 하지 않으며, 그것은 ‘개인적 경건’¹의 영 역에 속하는 사항입니다. 둘째로, 예배와 ‘유사 예배’는 다릅니 다. 혹자는 “지성전 예배에서 감동도 받 고 은혜도 받는데 무엇이 문제인가?”하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성전 예배에 도 찬송이 있고, 감사와 봉헌이 있으며, 말 씀을 깨닫는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님도 분 명 역사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감동 받 고 은혜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예배 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동은 음악회에나 영화에서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 움을 극복한 신앙인의 간증이나 심지어 훌 륭한 연사의 웅변에서도 눈물을 쏟을 정도 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는 이 런 곳에서 받는 감동이 예배에서 받는 감 동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동과 은혜가 있다고 해서 다 예배는 아 닌 것입니다. 물론 지성전 예배는 이것들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주님의 백성들이 있으며, 예배의 형식이 있 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온전한 예배 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도 직접 지성 전 예배에 참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수도 권에 위치한 한 지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면 서 저도 스크린 속 목사님의 파워 넘치는 설교에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 를 드리면서 “이 ‘느낌’이 가능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중 에 저의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사건이 있 었습니다. 그것은 2002년 전국을 떠들썩하 게 했던 월드컵 경기입니다. 당시 온 국민 은 너나 할 것 없이 광장과 공원마다, 아파 트 지하 주차장마다 (그리고 많은 예배당 에도)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대~한 민국’을 함께 외치며 열광했습니다. 그때 우리 국민은 모두 ‘감동의 도가니’ 안에 있었습니다. 경기장도 아닌 아파트 주차장이나 공원 에서 대형 스크린을 보면서 온 국민이 그 토록 흥분되고 감동을 느낀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의 생각으로는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하 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동일한 콘텐츠’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함 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 은 ‘우리나라 대표팀이 하는 경기’의 중 계방송을 ‘사람들과 함께’ 시청했기 때 문에 그토록 열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부산 역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같은 경기 내용 을 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느 끼고, 함께 소리 지르던 것이 ‘월드컵 감 동’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성전 예배도 이와 매우 흡사합니다. 해 당 교회의 신자들은 지성전에 함께 모여서 같은 내용으로 예배하면서 함께 감동을 받 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 다. 월드컵에서 ‘사건’, 즉 운동 경기는 ‘ 그곳’, 즉 경기장에서 행해졌으며, ‘이곳’, 즉 시청 앞 광장 또는 부산역 광장에는 단 지 그 실황이 화면으로 ‘중계’되었을 뿐 입니다. 지성전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 사건’, 즉 예배는 ‘그곳’, 즉 서울의 본당 에서 발생하며 ‘이곳’, 즉 전국에 흩어진 지성전에는 그것이 화면으로 ‘중계’될 뿐 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전 예배는 예배의 중 계방송이지 결코 예배 그 자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서울 시청 앞 광장이나 부산역 광장에서 중계방송을 시청한 사람 들이 경기에 참가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과 같은 이치입니다. 경기에 대한 진정한 참가는 선수 신분으로든, 감독 신분으로든,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그것도 아니면 관중 신분으로든 바로 그 경기장 안에 있어야 가능하지 경기장 밖에 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 성전 예배에서 실제로 집례자가 집례를 하 고 있는 본당의 회중은 예배에 참여하지만, 지성전의 회중은 예배를 ‘관전’한다고 보 는 것이 정확한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직접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과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동 일하게 느낀 경험과 감동은 같은 것일까 요? 물론 그것은 같은 종류의 경험과 감동 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경기를 동 일한 마음(우리나라 선수들이 이겼으면 하 는)을 가지고 함께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러나 그 느낌의 강도나 경험의 깊이는 사 뭇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선 수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과 화면을 통해서 보는 것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 다. 운동장에 가서 직접 선수들이 경기하 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 차이를 분명히 알 고 있을 것입니다. 이 원리는 예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 다. 서울 본당의 회중과 부신 지성전의 회 중은 비록 같은 내용의 찬송과 기도와 설 교를 가지고 예배에 참여했어도 그들이 느 끼는 감동의 폭이나 경험의 깊이에서는 큰 차이가 날 것입니다. 본당의 회중이 느끼는 것은 집례자와 기도 인도자와 성가대와 설 교자가 있는 예배당에서 온전하게 예배드 리는 느낌이고, 지성전의 회중이 느끼는 것 은 그것을 ‘생방송’으로 함께 보는 데서 오는 ‘간접 경험’과 그 느낌일 뿐입니다. 이런 범주에서 볼 때에 지성전 예배는 개인 적 경건이나 신앙 집회는 될 수 있을지 몰 라도 결코 예배는 될 수 없습니다. ++++++++++++++++++++++++++++++++++ [보충설명] ¹개인적 경건(private devotion): 공예배와 구 별되는 개념으로서 개인이 찬송과 기도와 말 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고 찬양 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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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섭리

2020년 9월 10일

18

(제9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6. 출애급과 이스라엘 민족국가 탄생 (2) 7. 마지막 사사 사무엘의 사역 (1) 오늘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의 의식과 전통, 자 신의 개인적 생각과 체험, 어떤 비 복 음적 신학적 사상, 그리고 시대의 흐름 을 따라서만 신앙생활하면 이것들이 우 리 얼굴을 가리는 수건이 되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을 욕되게 하는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결국 마지막 심판 날에 “주여 주여 우 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 고 항변하다가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 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 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책망을 들으며 쫒겨 날 것이다(마7:20-23).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적그리스도의 법이요 거짓 선지자의 법이요 결국 사단 마귀의 법이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은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고 권고했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의 일꾼들 특 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 는 지도자들에게 주신 권고, 아니 경고 의 말씀이다. 우리를 참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 령은 진리의 영(요15:26)이요, 우리를 진 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요16:13) 그리스

도의 영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거짓 선지자들 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 안에 거짓 선지자들이 너무나 많다. 이단들만 이 아니라 소위 정통 교회 안에 거짓 선 지자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하여 기록된 말 씀이라고 인정하면서 마귀의 영을 따라 인간의 욕심으로 왜곡하여 함부로 주장 하는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릇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너무 많 다. 그 대표가 한편으로는 기복주의 곧 번 영주의적 설교자들이고, 다른 한 편으로 는 사회주의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회복 음주의자들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 도 아닌 다른 그리스도, 복음 아닌 다 른 복음, 성령 아닌 다른 성령을 가르친 다고 일갈했다. 갈1:6-8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을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 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 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 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 을 찌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일을 하면 서 특별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서 자 랑하지 말라고 모든 서신에서(특별히 고 린도 전 후서에서) 그토록 많이 경고한 것이다. 오늘 날 교회들, 특별히 주님의 일꾼 들의 얼굴에 너무도 많은 수건들이 덮여 있다. 너무도 위태롭다. 그런고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마지막 세대 교 회의 성도들)에게 “나에게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계3:18). 성령의 은혜로 영적 눈을 뜨라는 뜻이다. 고전2:9-12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 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 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깨닫지) 못 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성령으로 이것 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 도 하나님 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 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 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 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 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말 씀하셨다. 성령의 은혜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예민 하게 깨닫고 주님을 통해 하나님과 함 께 구원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기를 바란다. 사단 마귀의 어떠한 방해에도 불구하 고 올바른 믿음으로 끝까지 남은 자(롬 9:27)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 성으로의 구원이 완성되도록 충성을 다 해야 할 것이다(마24:13, 고전4:1-2). 남은 자 구원(The Remnant Salvation)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전신, 구 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창7:23, 왕하 19:31, 스9:13-15, 느1:2, 사4:3, 10:19-22, 11:11,16, 사28:5, 46:3, 렘31:7, 암5:15, 미2:12, 4:7, 5:7, 7:18, 습2:7,9, 슥8:6,11, 14:16, 롬9:27, 29, 롬11:5(왕상19:10), 살전 4:15,17, 계11:13).

7. 마지막 사사 사무엘의 사역(1) 참고 성경구절: 삼상1장-10장, 16장, 19장, 역대상9:22, 26:28, 행3:24, 13:20, 히11:32-34.

하나님의 구원섭리 가운데 특별히 쓰 임 받은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 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이었다(창25:23, 시22:10, 시71:6, 사44:2, 사46:3, 사49:1, 렘1:5, 눅1:41). 특별히 사무엘은 그 어머니 한나가 하 나님께 서원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이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학생회성경공부 (토) 오후 4:00 청년부예배(주)오후 2:30


진리의 샘터

2020년 9월 10일

19

왜? 복음 때문에… 혁신적이고 성공하는 사업체와 보통 사업

하고 일회용 용기 사용을 자제하고 하는

람, 혹은 잘못을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업들

이유가 이 세상이 중요하고 보호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방어적인 태도로

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보통 사업체

고 믿으면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

몰고 적으로 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는 무엇을 어떻게 왜 순서로 운영을 한다고

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금을

서 더 근본적인 명분, “왜”가 필요합니다.

합니다. 예를 들면 커피숍을 운영해야지 먼

내야 하니까' 라고 생각을 하면 어떻겠습니

저 생각하고 그 다음 어느 곳에서 어떤 커

까? 결국 벌금이 사라지면 환경 운동은 실

피를 어떻게 팔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최

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고의 커피숍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에게 그 근

수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

본적인 명분은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고,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

의 모든 행동의 근본적인 명분은 “복음”

로 우리를 의롭다 하여 주신 이 복음 때문

니다. 하지만 혁신적인 사업체는 왜를 먼저

흑인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

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쉽게 설명하자

에 우리는 우리의 삶은 주님을 위하여 헌

생각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그리고 마지막

든 사람은 평등하고 흑인의 목숨은 소중

면 복음은 죄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신해야 합니다.

으로 무엇을 팔아야 할지를 생각한다고 합

하다라는 문제에서 이제 어떤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겨 주셔서 당신의

니다. 커피숍 예를 들면 커피가 이 세상 최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권력자들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해야

고의 음료이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있고 그

게서 권력을 빼앗아 자신들이 권력을 행사

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주신 것입니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

다음에 어디서, 어떻게 커피를 팔면 좋을지

하는 운동으로 변질이 되고 있습니다. 자

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왜”를 찾을

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모

를 생각하고 커피숍을 연다고 합니다.

신들이 누리지 못 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

든 사람은 평등하고 흑인의 목숨은 소중합

같은 커피숍을 운영하지만 왜 누구는 성

이제는 무력으로, 폭력으로 빼앗아 오려고

여 주셨나요?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

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

공을 하고 누구는 실패를 할까요? 그 이유

합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몇

도를 희생시키셨나요? 왜 예수께서는 이 세

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형상

는 운영자가 왜 커피숍을 운영하는지에 대

몇 소수의 단체들이 자신의 득을 위해 그

상에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외로운 자를

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한 이유가 분명하고 그 이유를 팔기 때문

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지속된

만나주시고, 굶주린 자를 먹여주시고, 목마

를 희생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마스크를 쓰

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구입 것보다

다면 결국에는 BLM 마저도 실패로 돌아가

른 자에게 생수를 주셨나요? 그 이유는 우

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사회적 책

“왜”를 구입한다고 합니다.

고 말 것입니다.

리를 긍휼히,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입

임을 우리는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

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유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어느 결정이나 어느 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왜”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그렇습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생각해 봅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

우리도 서로를 사랑으로 대해야 하기 때

니다. “왜”가 분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흑인의 목숨은

리의 모든 삶의 “왜”이어야 할 것입니다.

문입니다.

나 “무엇”은 결국 지속되지 못하고 실패

소중하다는 것은 분명 올바르고 공감할 수

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있는 명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게 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교회를 섬기는 일도, 직장이나 사업이나

“왜,” 즉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이 있지 않

면 위험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기득권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

학업의 삶도,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도… 그

으면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과 주류 사회를 적대시 하고 오히려 서로

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어떠한 일에도 “왜”라는 질문이 중요합니

의 힘겨루기 상황을 가지고 올 수 있기 때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다. 그 “왜”는 바로 “복음 때문에, 주님

요즘 모든 이슈가 그렇습니다. 환경 문제

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미국의 상황이

여기에 중요한 단어는 “그러므로”입니

가 그렇습니다. 재활용을 하고 분리수거를

이렇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는 사

다. 로마서 1-11장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S Ceylon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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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 것을 늘 기 억하시길 소망합니다.

참빛교회 온라인 예배 코로나-19로 인하여 Stay at Home Order 가 진행되는 동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한어, 영어 예배 주일 오전 10시 (그 외 특별 집회들 홈페이지 참고) YouTube Channel: True Light Community Church (https://tinyurl.com/TLCCYouTube) 혹은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들어오세요 (https://ko.truelight.church) 문의: 720-509-9112 pastorjohn@truelight.church


목양 칼럼

2020년 9월 10일

20

사람에게 필요한 세 가지 미국의 심리학자 David McClelland는

유가 무엇인가? 또 주위의 있는 모든 사

rity)의 필요입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싫어

불확실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

람에게 내가 사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합니다. 위험을 싫어합니다. 위기에 대한 고

에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인간이 인간답

가? 가장 가까운 내 가정에 내가 얼마나

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평안을 촉

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필요 세 가

소중한 존재인가? 꼭 필요한 존재인가? 존

구합니다. 이것은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다

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심리학자들

재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정신

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흑인 백인 동양인

의 공통적인 의견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

이가 많다는 것이 왜 비참합니까? 아무리

적 안정입니다. 이것을 찾지 못해서 술을

등등을 운운하는 것은 모두가 소속을 말

서는 이것을 [Three Needs Theory 혹

생각해도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

마시고, 도박을 하고, 오락을 하고, 마약을

하는 것입니다.

은 McClelland's Need Theory of Mo-

람에게도, 저 모임에서도 난 귀찮은 존재

하기도 합니다.

tivation]라고 말합니다.

같습니다. 성취감의 상실입니다. 그런데 [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해서 술을 마시지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했느냐? 사탄에게 속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

만, 술을 깰 때 가서는 더 불안하고 비참

했느냐? 입니다. 빛의 자녀들이야? 아니면

① Need of Achievement(성취의 필

이 나에게 의미를 줍니다. 단적으로 말해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힘과 안정은 어디에

어둠의 자식들이냐? 입니다. 우리에게는 누

요)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성취감

서 십자가 안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

있는 것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발견할 때

구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은 누

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의미의 문제요, 존재

견하게 된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

까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발견할

구에게 속해 있느냐? 와 같습니다. 그런

의식의 문제요, 보람의 문제요, 삶의 사명

를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

때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내 존재를 발견

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가 누구에

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확

람이 나를 무시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

할 때까지는 안정이나 평안이 없다는 사실

게, 어디에, 어느 그룹에, 속해 있느냐? 가

실히 물질적으로는 여유 있게 살고 있습니

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

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

다.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셨고 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

우리는 지금 그 옛날만큼 행복하지를 못합

니다. 그의 죽으심 속에 내게 향한 사랑이

니다. 행복지수가 바닥입니다. 주위에 일어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담임

이 세상에서는 크게 두 가지 소속밖에

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 가 더 중요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구원

있고 나의 존재의 의미가 있고 내 삶의 중

③ Need of Affiliation(소속의 필요) 입니다. 내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나는 모든 일이 두렵고 무섭고 불확실합니

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어디에?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느냐? 가 중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베드로전

다. 삶이 불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취

처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

요합니다. 소속의 필요입니다. 주위에 많은

서 2:9), 하나님의 큰 가정에 한 식구가 되

감을 잃어버렸습니다. 뭔가 이룬 것 같은데

고 하는 거기에 내가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이 있지만 고독합니다. 대중 속의 고

었다고 하는 것(에베소서 2:19), 그리스도의

손에 잡힌 것은 없습니다. 오늘같이 과학

위하여 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

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독은 죄입니다.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에베소서

이 최첨단으로 발전하고 의학이 최고의 수

닫는 것입니다(갈2:20). 거기에 나의 존재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고독

1:23),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요한

준에 도달했는데도 Covid-19 Pandemic

의미가 그를 향한 삶의 성취감이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되지만 고독한 사람은 불행한

복음 1:12) 외에 참된 소속은 없습니다. 내

사람입니다. 사람이 고독에 빠지면 헤어날

가 세상에 날 때부터 그분의 은혜 가운데

길이 없습니다. 소속을 잃어버렸기 때문입

살았고, 그분의 은혜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감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돈은 벌었

② Need of Power(힘의 필요)입니 다. 세상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은 힘입니

니다. 내가 누구에게 속한 것입니까? 그래

그리고 이제는 그분의 거룩한 사역에 부름

는데 어디에? 어떻게? 써야 참 의미가 있

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것들을 한 번 손에

서 가정이다, 친구다, 공동체다, 교회나 커

받았습니다. 이 같은 본질적 소속을 분명

는지를 모릅니다. 내가 여기 살고는 있는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힘이 있어야

뮤니티에 소속하는 겁니다. 정치적으로는

히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축복받은 인

데 정말 살아야 하나? 내가 살아야 할 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안정(Safety, Secu-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것이 소속

생임을 알게 됩니다.

이 발생한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대안(Vaccine)이 없습니다. 성취

받아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0년 9월 10일

21

(22회)

광복 75주년, 건국 72주년… 한국교회의 사명을 다시 생각한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일제 의 잔혹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어 광 복을 맞은지 75년이 지났다. 광복으로 우 리 민족의 역사에는 거룩한 빛이 회복되 었지만, 잠시 후 분단이라는 차갑고 어두 운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1948년 8월 15일 남한에는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건국됐다는 사실이다.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주체사 상파 공산주의 일당 독재와 김씨 왕조의 세습체제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건국 이 후 지난 72년간 대한민국의 역사는 말 그 대로 파란만장했다. 전쟁과 평화, 패배와 승리, 퇴보와 성장, 한탄과 환희, 실패와 역전 등이 복합적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그러나 지난 72년의 역사를 한 마디 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 은 ‘기적’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적적 으로 건국됐고, 6.25 남침 전쟁에서 기적 적으로 살아남았다. 휴전 이후 기적적인 국가재건과 경제성장을 이루어, 가장 가 난했던 신생 독립국이 세계 10대 무역국 가로 성장하게 됐다. 정치적으로도 자유 민주주의 제도가 비교적 자리를 잘 잡아 왔다. 2016년 불법 탄핵과 2017년 주사파 정권 출현으로 지금 정치적인 큰 혼란을 겪고 있지만, 조만간 정상을 되찾게 될 것 으로 확신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 성장이라는 기적은 한국교회의 기적 적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136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 진 한국교회는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기적적인 급성장의 역사를 보 여주었다. 물론 그 급성장의 역사는 긍정적인 측 면뿐 아니라 여러 부정적인 측면들을 가 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통 찰에 기초해 앞으로 광복 100주년을 기 념하는 2045년까지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몇가지로 정리해 보고 자 한다. 첫째, 한국교회는 앞으로 양적 성장보 다, 질적 성숙 또는 내실화에 힘을 기울

여야 한다. 성도 개개인의 영적 성숙 그 리고 교회 공동체의 내면적 성숙을 추구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한국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각종 다른 복음들을 몰아내야 한다. 한국교회 안에 들어와 있 는 대표적인 다른 복음들에는 율법주의, 방종주의, 기복신앙, 신비주의, 영지주의 등이 있다. 율법주의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 혜와 그를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 얻음을 거부하고, 인간의 공로, 자격, 업적, 행위 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이단이다. 방종주의는 참된 믿음은 반드시 그 믿 음의 열매요 증거요 결과로서 거룩한 삶 과 선행을 낳는다는 성경적 복음관을 거 부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자기 멋 대로 살아도 된다는 이단적 주장이다. 기복신앙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복이 하나님나라에 속 한 신령한 복임을 잊어버리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는 비성경적 태도이다. 신비주의는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오해 하여 예언, 치유, 입신, 방언, 환상 등 신비 한 현상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이 기독 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믿는 비성경적 태 도이다. 한국교회의 신비주의는 무속신앙 과 결탁되어 근절하기가 매우 어려운 면 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지주의는 성속 이원론에 기초하여 소위 종교적 영역은 성스러운 것으로, 비종교적인 영역은 속되고 더러 운 것으로 치부하는 비성경적 태도이다. 성경은 우리 모든 삶의 영역이 종교적이 고, 성스러우며, 거룩하다고 선포한다. 그 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 개인은 정치, 경 제, 경영, 사회, 문화, 예술, 교육, 과학기술 같은 다양한 일반은총적 영역에도 적극적 으로 참여하여 빛을 발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는데 기여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것은 북한의 완전한 해 방과 자유화 그리고 북한 기독교의 재건 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사실 북한 해

방과 자유화 그리고 북한 기독교의 재건 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취될 때에야 대한 민국의 독립은 완성된다. 대한민국 건국 이 한민족 독립의 이정표를 세웠지만, 우 리의 독립은 미완의 독립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북한 정권은 최악의 인권탄압 정권으로 남아 있으며 신앙의 자유를 허 용하지 않는 불법적 정권이고, 그리스도 인을 무참하게 핍박하고 죽이는 역사상 최악의 정권이다. 우리는 반드시 북한 주 민들을 애굽의 바로와 같은 적그리스도 적 정권으로부터 해방하여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일이 광 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 이전에 꼭 실 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셋째,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에 기여하 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사명이 있 다. 현재 한국교회는 1인당 가장 많은 수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는 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최근 선교사들의 증가 추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코로나19 상황으 로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추방당 해 국내로 돌아왔고, 돌아오고 있다. 선 교지에 남아있는 선교사들의 사역 동력 도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국내 교회들의 선교사 지원이 날로 축소되고 있기도 하 다. 코로나19 사태는 한국교회의 국내적 위기를 부채질할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 역량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도 전이 되고 있다. 그렇다 해서 한국교회는 여기서 쓰러져 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지혜를 받아 더 효과적인 선교의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앞 으로는 오프라인 선교도 중요하지만, 온 라인 선교가 더 중요한 선교 플랫폼이 돼 야 한다. 온라인 선교를 위해 인터넷 선교 전략과 웹 선교 전략이 더 혁신적으로 개 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유튜브와 다양한 SNS를 활용한 선교 전략들이 효과적으 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온라인 신학 교육, 제자훈련, 영성훈련을 위한 플랫폼 들이 창조적으로 개발돼야 한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주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 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 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 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이 모 든 민족에게 증언되고, 온 세상에 전파되 는 날 즉 세계 선교가 완성되는 그날, 주 님은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 놀랍 게도 이 완성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UN에 속한 200여개의 국가들 중 복음 이 들어가지 않은 국가는 없다. 다만 아 직 미전도종족이 있고, 성경이 모든 종족 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기에 좀 더 시간 이 걸리겠지만, 세계 선교 완성의 그날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복음에 빚진 교회로서 교 회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세계 선교 완성 을 위해 전력질주해야 한다. 최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기 위해 한국교회 전 체가 하나 되고 있음은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필자는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시 원해짐을 느꼈다. 한국교회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면서, 이 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필자가 제시한 세 가지 사명을 이루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우리 어머니와 아버 지의 나라로 사랑하지만, 그렇다 해서 대 한민국이 영원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한민 족의 일원으로서 동족을 사랑하지만, 한 민족 역시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한 것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뿐 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분 일초를 아껴서 세계 선교에 전력해야 한 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자원을 극대화해서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 의 완성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그러할 때 한국교회는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칭 찬을 받게 될 것이다.


쉴만한 물가

2020년 9월 10일

22

이기는 자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인사할 때, ‘승리 하세요’라는 말을 한다. 승리한다는 것은 무엇과 싸우거나 경쟁을 해서 이긴다는 것 을 뜻하는데, 그들이 이기고 싶어 하는 것 은 무엇일까? 요한계시록에는 성경의 다른 어떤 곳보다 ‘이기는 자’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나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마다 이기는 자에 대 해 묵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뜻을 명확하 게 알 수가 없어서 읽을 때마다 기도하며 그 뜻을 생각해 보았다. 이때 머릿속에 스치는 질문들은 대개 이 런 것들이었다. 이긴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무엇을 이긴다는 말인가? 왜 유독 요한계시록에 ‘이기는 자’라는 말 이 많이 나올까? 주님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계 2, 3) 모두에게 이기는 자에게 상 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먼저, 이긴다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긴다는 말 자체는 신약성경을 기록 할 당시 체육 경기나 군대에서 전쟁을 할 때 주로 쓰였다. 성경에서도 주로 그런 맥 락에서 이긴다는 말을 사용했다. 그럼 우 리가 무엇을 이긴다는 말인가?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복음서에 보면, 예 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너희 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 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 라" (요 16:33) 여기서 이김의 대상은 세상이다. 그러므 로 이기는 자란 세상을 이기는 자를 의미

한다. 세상이란 하나님 나라와 대비되는 개 념으로 세상 나라를 의미한다. 세상 나라 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만, 마귀가 다스리는 나라다. 성도는 세상 에서 환란을 당하나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세상을 이겨야 한다. 또 이긴다는 의미는 악한 자 곧 마귀를 이겨야 함을 뜻한다. "…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 기었음이라" (요일 2:14) 본문에서 이긴다는 말의 대상은 흉악한 자 곧 마귀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이 하나님 말씀 으로 마귀를 이기신 것 같이(마 4:1-11), 우 리도 마귀를 이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우 리 마음에 있는 육신의 소욕과 생각이다. 로마서 8장에는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 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성도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 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37절에 이김 의 대상이 분명히 명시 되어있지 않지만, 문맥으로 보아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 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될 수 있 을 것이다(롬 8:35). 성도는 이런 어려움들 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런 영적 승리를 위해 통과해 야 할 영적 형성의 과정(롬 6-8장)을 생각

해 보면, 이김의 대상이 육신의 소욕과 생 각(롬 8:4-7)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영적 승리를 위해 우리는 환경과 외부의 적들과 싸우지만,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서 일 어나는 내부의 적들과 싸워야 한다. 이기 는 자는 곧 자신의 육신적 소욕과 생각을 이기는 자이다. 다윗도 자신의 육신의 소욕에 져서 밧 세바를 범하게 되었고(삼하 11), 모세도 이 스라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 타내지 못하여, 바꿔 말하면 자신의 혈기 를 다스리지 못하여, 이로 인해 그는 가나 안 땅을 밟지 못했다(민 20:12). 우리가 이 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 마귀와 환경을 이 겨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의 혼 탁함도 이겨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이기는 자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지막 때 에 영적 전쟁이 그만큼 치열할 것이요, 성 도는 반드시 이런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기는 자들 에게 부여되는 상을 천국에서 준비하고 계 시다. 여기서 이기는 자는 세상과 마귀를 이기며 육신의 소욕과 생각을 이긴 영혼이 정결한 자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기려고 하는 것은 성도들만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도 무언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 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 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 6:2)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이기려고 할까? 적 그리스도는 마지막 때에 세상 나라들을 이 기고 이겨서 사탄의 나라를 건설하는 이것 이다. 또한 성도들을 이기며 하나님 나라를 이기려고 애를 쓸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 렇게 이기고 이겨서 세계 정부를 세워 온 세상을 지배하려 할 것이다. 주님이 요한계시록 2, 3장의 일곱 교회를 향해 이기는 자가 받는 상을 약속하신 이 유가 무엇인가? 여기서 일곱 교회는 소아시 아에 있었던 초대교회들을 지칭할 뿐만 아 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역사상 존 재하는 모든 교회의 유형을 말한다. 주님은 각 교회를 향하여 칭찬과 책망을 하셨다. 그중에는 칭찬만 받은 교회도 있고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다. 하지만 공통된 점은 모 두 이기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주님이 이기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이유 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을 이겨야 세상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수 있다. 성도가 예수를 믿고 세상과 마귀를 이기 며, 육신의 소욕과 생각을 이겨 거룩한 행 실을 가질 때 비로소 이기는 자가 된다. 이 기는 자가 되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요, 구 원의 여정이다.


좁은 길을 걸으며

23

2020년 9월 10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포지션은 어디일까요? 세상으로 부터 부름 받아 구별되어진 존재라는 의미 에서는 ‘성도를 세상과 떨어진 자들이다' 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 몸담고 삶을 영위 하는 자리는 분명 그 세상 가운데 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세상에서 떨어져 분리되 어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 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들이 속한 세상 을 변혁하고 선한 길로 인도할 책임 또한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사명은 세상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일 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세상에 대한 사명을 가진 성도는 자기들끼리 하는 교회생활에 만 머물거나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속한 그 세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 데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에 동화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 거슬러 세상 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신이 담긴 신앙의 풍조와 가치관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을 본 연의 역할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속한 세상으로 돌아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세상에 나가서 내 가 친히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 치고 지켜 행하게 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주님이 명하신 그 큰 사명을 위해 자기 역할을 해야 함을 기억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세상에 그대로 두심은 바로 그 들이 속한 세상을 구원하고 나아가 변화 를 위해 일하라 하신 의미인 것입니다. 그 렇기에 교회와 성도는 세상을 등진 채 존 립해야 한다는 그 어떤 주장도 명분이 없

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 빚진 자의 심정으 로 다가가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자기 역할 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에 아 주 친밀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 다고 그 풍조와 가치관을 쫒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을 거스려서 그 가운 데 신앙적 가치관을 심고 뿌리내리도록 하 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은 결국 성도를 보고 회심하고 구원 을 소망할 것 입니다. 그런데 작금은 성도 가 세상에 회심과 구원을 선물하는 대상 이 아니라 큰 짐만 안기는 부담거리가 되 어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사람들은 교 회를 신앙이란 명분하에 맹목적으로 주장 하는 사회 모순적인 그룹으로 보기 시작했 습니다. 뭔가를 주장하긴 하는데 자기들만 알아듣는 주장을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과연 저들이 세상을 위한다고 하는 저 논 리와 주장의 정체는 무엇인가 규명하고 싶 어 합니다 과연 교회와 성도는 세상을 향 해 우리는 무엇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 을까요? 그리스도의 사랑 아니면 생명의 구원 아니면 누구에게나 은혜주시는 하나 님의 일반 은총일까요?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 "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했습니다. 로마는 힘과 권세로 상징되는 세계의 수도였습니 다. 그 곳에서 힘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하 다고 여겼을 이들을 향해 그 힘을 빼고 그 권세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그리스도 의 사람,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는 영적 예 배자들이 될 것이라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스스로 우리는 이것을 내세 운다 하는 그 정확한 것을 제시하지 못하 고 오로지 선동을 넘어선 옹고집스런 자기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대상 16:10~12)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주장에 사로잡힌 모습만 보여주고 있습니 다. 교회가 힘으로 하려는 세상 방식을 취 하는데 그 누가 그것을 수용하고 따라줄까 싶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에 대하여 그 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논거를 주장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동조를 얻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성도가 칭송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 음만을 얘기해야 합니다. 주제가 그것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이미 세상의 풍조와 방 식을 쫒아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교회와 성도라는 이름을 달고 전혀 그답 지 못한 과격한 방식을 취하는 이들을 보 고 있노라면 같은 신앙을 가진 입장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데 과연 세상이 그 것을 똑바르다 봐줄지 미지수입니다. 교회 가 사명을 감당하는 본질적인 접근법은 하 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감당하신 사 랑과 구원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자기부터 희생하고 힘없는 연약함을 무기 삼아 힘 있는 자들에게 다가가는 것 입니다. 힘과 권세를 통해 자기 뜻을 관철시키 려는 세상에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는 모두 가 돌을 들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그 광 장에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외치신 것입 니다. 세상 방식은 돌로 심판하는 것이었지 만 하나님의 방식은 죄인에게 다가가 품에 안는 용서요 사랑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방식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맞고 그 태도가 교회에 어울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우더라 도 그 방식이 지금처럼 힘자랑의 세상적이 라면 세상으로 부터 배척당할 수밖에 없을 것 입니다. 교회가 더 하구나 하는 소리 듣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기 딱 좋은 것 입니다. 그리고는 등을 돌 리겠지요. 세상이 외면해버린 교회가 어디 가서 사명 감당하겠습니까? 사역의 무대를 스스로 없애버린 꼴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이 힘으로 하고자 할 때 힘을 빼자고 유도하고, 권세를 통해 뜻을 이루고자 할 때 먼저 무기를 내려놓는 그리스도의 방식 을 통해 세상에게 함께 변화하자고 소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장에 모였던 이들이 보여준 것은 세 상의 방식이지 절대로 교회의 방식이 아니 고 그리스도 주님의 방식은 더더욱 아닙니 다. 교회와 성도는 혼란이 있는 곳에 화평 의 질서가 움트도록 힘을 뺀 모습으로 다 가가는 평화의 사도여야 합니다. 힘을 얻기 위해 세상이 취하는 방식이 바로 정치이고 힘으로 자기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게 만능같이 보입니다. 그러 나 교회와 성도는 그 방식을 거부해야 합 니다. 정치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세상 에게 힘이 아닌 사랑과 평화의 방식도 있 다고 말하고, 충돌과 대립이 아닌 화합과 포용의 방식을 함께 취하자고 말해야 하 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은 교회와 성도 를 보며 아직 희망이 있다고 회복의 기대 를 품을 것이며 어수선한 세상 가운데 고 통 받고 상처입어 돌아갈 곳 없을 때 그 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 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 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제공: 김정애 권사


베드로전서 강해

2020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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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훈련”(1) <베드로전서 2:13-25>

“멘탈 에어로빅”이라는 말을 들어보 셨습니까? 이제는 몸의 건강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신적인 건강도 돌보지 않고 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분이 많습 니다. 지난해가 다르고 올해가 다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 지를 기억 못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 니다. 손에 자동차 키를 들고서도 키가 어디에 있느냐고 찾는 분도 있습니다. 그 때부터는 조금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노 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이 이제 암 이 아닙니다. 치매에 걸리는 것을 더 두 려워합니다. 어느 딸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저녁 7시까지 저녁 드시러 오세요.” “그래 알았어.” 엄마 가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 저녁에 몇 시까지 오라고 했지?” 이러 면 건망증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7시가 지났는데도 오시지 않습니다. 딸이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왜 안 와! 아 까 온다고 했잖아!” “나 그런 전화 받 은 적 없는데!” 이러면 치매를 의심해 야 합니다.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엄마들 이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는 일은 매일 아침 거의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 습니다. 어떤 엄마가 아이 둘을 정신없 이 깨워서 밥을 먹이고 차에 태웠습니 다. 학교에 거의 다 와서 아이들을 내 려주려고 하는데 작은아이가 양말을 신 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화 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습니다. “아니 엄 마가 양말 준 것을 어떻게 하고 맨발로 온 거야! 양말도 안 신고 어떻게 학교를 가!” 그랬더니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면 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언제 양 말을 주었어!” 아이의 그 말에 엄마는 거의 이성을 잃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 엄마가 언제 양말을 안 주었어! 밥 먹기 전에 주었잖아! 너 오늘 혼나야 돼. 그 냥 내려!” 그리고서 차를 내리는데 무 엇인가가 히끗 보였습니다. 아이에게 주 려고 했던 양말을 자기가 신고 있는 것 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필요한 것이 멘탈 에 어로빅입니다. 몸만 건강을 유지해야 하 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도 운동 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이름이 이마에 새겨진 것으로 생각을 하십시오. 이름을 기억하는데 수십 배의 효과가 있습니다. 기억력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도로에 서 교통체증 걸리면 짜증만 내지 마십시 오. 앞에 있는 차의 번호판을 외워보세 요. 요즈음 생명의 삶 시간에 성경구절 을 매주 하나씩 외우고 있습니다. 벌써 10구절을 외웠습니다. 이것은 정신 건강 에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양치질을 할 때 평소에 쓰지 않는 왼손 으로 해보세요. 정신 건강에 신선한 자 극이 될 것입니다. 훈련은 반복적인 일입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운동은 결코 훈련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저기 근육통만 생깁니다. 운 동은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정신 건 강을 위한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 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이 훈련되지 않으면 늘 제자리를 맴돌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의 필수적인 요소인 순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순종 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 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척도는 얼 마만큼 순종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가 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루아 침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 다. 순종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베드로 는 오늘 순종의 대상과 방법 그리고 목 적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종의 대상입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 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여기에 ‘인간의 모든 제도’라는 말

이 나옵니다. 인간은 절대 혼자 살아가 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 이 함께 더불어 살아갑니다. 아무리 혼 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 라도 이 사회의 제도를 떠날 수는 없습 니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사회의 제 도에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회 의 모든 제도들은 질서를 위한 것입니 다. 질서가 지켜져야 행복이 있고 기쁨 이 있습니다.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사 회는 불안합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한국에 나가보면 가장 힘든 것이 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때나 끼어들었습니다. 조금만 멈칫 하고 있으면 경적이 사정없이 울렸습니 다. 도무지 불안해서 운전을 못 할 정 도였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릅니다. 차도 웬만해서는 빨리 달리지 않습니다. 끼어들기가 현저 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모두가 도처에 깔 려있는 CCTV 덕분입니다. 도로 위에도 카메라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통 경찰이 후미진 곳에 숨어있다가 속도건 을 쏘는 것은 이제 옛말입니다. 이제는 교통경찰이 도로에 나와 있을 필요가 없 습니다. 카메라가 교통경찰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라의 제도입 니다. 제도는 질서를 세우기 위해 서 있 는 것입니다. 13절에는 왕이 나오고 14절에는 총독 이 나옵니다. 이들은 사회의 질서를 세 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왕 이 선한 왕이냐 독재자냐 그것을 따지 지 마십시오. 공무원들이 정직하냐 부 패하냐를 먼저 생각하지 마십시오. 베드 로는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 다. 베드로가 살던 시대는 로마의 황제 네로가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그가 얼마 나 폭군이었는지 역사가 낱낱이 기록하 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 역사상 처음으 로 살아있을 당시 원로원에 의해 국가의 적으로 지목되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은 후에 로마 역사는 그를 이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네로는 인류 의 파괴자였으며 세상의 독이었다” 친 모를 죽였고 아내마저도 죽인 사람입 니다. 로마 시내가 불타는 광경이 얼마 나 보기에 좋을까를 상상하다가 실제 로 불을 지르고 맙니다. 시민들이 죽 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귀중한 집과 재산들이 다 타버려도 자기 하나 기분 좋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당시 로 마는 100만 명이 살았던 대도시입니다. 14개의 행정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10개의 행정구가 불타버렸습니다. 이미 그 당시 4~5층의 콘도미니엄 같은 가 옥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 국 누가 방화를 했느냐로 온 나라가 시 끄러워졌습니다. 네로는 그것을 기독교 인들에게 덮어씌웠습니다. 그리고는 대 대적인 박해를 단행했습니다. 원형 경기 장에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놓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을 그곳에 넣어서 사자 밥이 되게 했습니다. 이런 왕에게 어떻게 순 종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잘못된 정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다 스리는 정부에 순종해야 하는 두 가지 분명한 성경적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통치의 원천 때문입니다. 로마서 13:1을 보세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 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 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이 땅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독재를 하는 정부라 할지라도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 위에 있는 나라들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주에는 지구보다 수천 배 수만 배가 큰 행성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주 에서 지구는 하나의 티끌에 불과할 정 도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여름에 집


강단 설교 안에 조그만 음식 부스러기 하나 있어

2020년 9월 10일

이라는 말씀입니다.

도 개미가 새까맣게 몰려듭니다. 아이들 이 그 개미들을 바라보다가 밟아서 몇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어느 주

마리를 죽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진공청

에서 아주 충격적인 일이 하나 벌어진

소기를 들이대면 대부분 다 빨려 들어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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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천천히”

내가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

라고 하면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오늘

고 말았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 순종의 은혜를 주

다. 주인은 어느 날 하녀를 부르더니 자

시기를 바랍니다.

기와 결혼해 줄 수 있느냐고 청혼을 했 습니다. 그래서 하녀는 갑자기 그 집에

두 번째로 순종의 방법이 있습니다.

주인마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하

갑니다. 그 수천 마리의 개미 중의 하나

년이 여자친구와 밤늦게 데이트를 하게

가 우주 속에 있는 지구라고 생각하시

되었습니다. 워낙 수영 실력이 뛰어난 그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루 일과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

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우주를 다

청년은 자기가 늘 수영을 하던 학교 수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똑같았

스리시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지구의 운

영장으로 여자친구를 데리고 갔습니다.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도 변함

명은 하루아침에 끝날지 모릅니다. 그러

그때 시간은 자정을 막 넘긴 때였습니

같이 하라”

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고도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습니다. 그

다. 그런데 수영장 입구 현관에 수영 금

이 구절을 잘 보시면 ‘자유’라는 단

면 그 모든 일을 아주 기쁨으로 한다는

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 이

지라고 하는 푯말이 붙어있었습니다. 그

어가 나오고 ‘종’이라는 단어가 나옵

것입니다. 전에는 억지로 했는데 이제는

지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정부에 순종

푯말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리

니다. 이것은 같이 쓰일 수 있는 말이 아

기꺼이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한숨과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

고 수영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자친구

닙니다. 정반대의 말입니다. 종에게는 자

불평으로 일했는데 이제는 흥겨운 노래

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에게 자기의 다이빙 실력을 보여주겠다

유가 없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를 부르면서 합니다.

고 했습니다. 다이빙대에 올라가서는 멋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정반대의 단어

두 번째 정부에 순종하는 이유는 사회

진 폼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것

를 하나로 쓰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

여러분, 이것이 바로 자유 하는 종의

의 질서를 위한 것입니다. 14절에 공무

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수영장에 가득

리스도인들을 가리킬 때 자유 하는 종

모습입니다. 우리는 억지로 순종하는 것

원들을 하나님이 보낸 총독이라고 말씀

차 보이던 물이 불과 2피트밖에는 차 있

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아닙니다. 억지로 말씀을 따르는 것

하고 있습니다. 이 총독은 공무원이기도

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청년은 목이 부

하지만 이 사회의 법을 말하기도 합니다.

러졌습니다. 겨우 생명은 건졌지만, 평생

디엘 헌터라고 하는 분이 자유 하는

눈을 의식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의 법을 잘 지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삶을 살아

종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어

유가 없는 종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늘

켜야 합니다. 훌륭한 크리스챤은 곧 훌

야만 했습니다.

느 귀족이 사는 집에 새로운 하녀가 들

일을 많이 시킨다는 불평만이 있습니다.

이 청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하루하루 생

대우가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른 집

끔 교통위반 티켓을 받을 때가 있습니

표지판이든 절대 무시하지 마십시오.”

활은 고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두컴

의 종들과 자꾸 비교합니다. 그러나 자

다. 물론 기분도 나쁘고 물질적으로 손

여러분 STOP 사인이 있으면 멈추시라

컴한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 넓은

유가 있는 종은 늘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순종

는 것입니다. SLOW라는 사인이 있으면

집을 구석구석 청소를 해야 합니다. 밥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일을 맡겼는지를

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

천천히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

을 하고 빨래도 하고 옷을 다림질해야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나를 써주는 것

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크리스챤

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합니다. 그 많은 식구가 먹은 설거지를

에 대해 감격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

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

이 일하고 안 하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

륭한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

으로 맨 나중에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아닙니다. 직분을 맡았으니까 남의

현재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오른발입니

인생에 가장 중요한 표지판은 바로 하

다. 밤이면 주인 잠든 것을 확인해야 잠

습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만을 생

다.”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서 가장 고치

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멈추라고 하

을 잘 수가 있습니다. 주인이 언제 부를

각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기 힘든 것이 바로 속도를 위반하는 것

시면 멈추십시오. 말씀이 가라고 하면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교회)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변화프로젝트 (45회)

2020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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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4부 회상

가난한 지역이었다. 로라는 30대의 아름

돈이 더 필요할 때에요. 주님께서 그렇게

구인지도 모르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

다운 멕시코 여자였는데 나를 반기며, 무

처음에 말씀하실 때 믿기 어려워서 하루

는지도 모르는 채 절망적인 생각으로 나날

슨 귀빈이 찾아온 것같이 친절하게 맞이하

를 그냥 지냈어요. 못 들은 척 한 것이지

을 보냈고 있었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해

는 것이었다.

요. 500불만 주라고 하시지 왜 1,000불을

서 이런 어려운 일이 생겼나 보다 하고 매

로라는『치유』책이 자기의 삶에 큰 변화

주라고 하시냐고 불평하는 마음까지 들었

일을 자책감과 슬픔과 아픔 속에서 살아가

를 가져왔다면서 그 책을 써주어서 감사하

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것을 헌금

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인데

다고 말했다. 집안에 들어서면서 그녀의 집

해서 한 사람을 더 돕고 구원할 수 있다면

이젠 하나님의 사랑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의 문과 창문에 있는 커튼과 빛을 가리는

얼마나 큰 영적인 투자가 되겠느냐?’고 하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사람

남편이 죽었을 때에 내 여동생이 계속 나

것들은 다 헐고 찢어져 있는 상태여서 놀

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하게 되었지요.”

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그때 나는 그녀에

랐다. 허름한 가구와 살림살이가 찌든 가

그녀를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래도 하나님께

게 화를 내면서 쏘아붙였다.

난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사실 미국 내

드렸다. 하나님께서 로라를 치유해 주셔서,

기도를 계속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

“너는 나와 같은 일을 겪어 보지 않아서

에서 내가 방문해본 집 중에서, 손볼 것이

이제는 슬픔 안에서 살지 않고 웃고 살 수

은 남편이 구원을 얻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를 이해 할 수 없어. 나와 비슷한 일을

가장 많은 집에서 로라는 살고 있었다. 그

있으니,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

2009년 10월에 집에 앉아 밤에 하늘을

겪고도 완전히 치유가 되어서 기쁨과 평안

녀의 밝고 천진하고 명랑한 얼굴은 그 허름

다고 하면서 신앙간증을 써서 보내왔다. 성

바라보면서 별을 쳐다보는데 하나님께서 나

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난 그런 사

한 집에 비하면 마치 잡초가 많은 들판에

령님께서 그녀의 간증을 이 책에 넣으라고

의 마음에 놀라운 평화를 맛보게 해 주셨

람하고 말하고 싶어.”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 한 송이와 같았다.

해서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다. 그때부터 나는 교회에 다시 다니기 시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이 영희를 만나게

작했고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계속했다.

해 주시기 전까지는 세상에 그런 사람은 한

그런데도 무엇인가 내 마음에 항상 비어있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영희는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

예수님께서 과부가 엽전 두 개를 헌금 통 <로라의 간증>

에 넣은 것을 보고 그녀가 다른 사람들 보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두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 더 많이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말씀

2년 반 전에 내 남편이 갑자기 자살을

는 것이 있었다. 무엇인가 있어야 할 것이

해 주신 것이 기억났다. 천불로 자기 집을

하고 죽은 후부터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있는데 없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무엇인

고쳤더라면 훨씬 더 아름답게 꾸미고 살

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가운데 자책감과

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

비탄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두 아이들이

2010년 어머니날에 아들이 선물로『치유』

사람들에게 남편에 대해서 말 할 때 눈물

의 헌신은 나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 하나

있었고, 결혼한 지 16년이 되던 해에 이 일

라는 책을 주었다. 이 책은 내가 불가능하

을 흘리지 않고도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님께서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 일어났다.

다고 생각한 것을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바

전에는 마음에 빈 공간이 있어서 허전했었

나는『치유』책에 대해서 감사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큰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왜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 없이 살아야

꾸어 주었다. 나의 상실한 마음과 슬퍼하

는데 이제는 전에 상상치 못했던 하나님의

나는 로라에게 선교 헌금한 것에 대해 감

하는가? 왜 나는 혼자서 살아야 하는가를

는 마음이 나와 하나님과의 가까운 관계를

기쁨으로 채워졌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과,

사하다고 하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선교비

생각하며 아픔을 달래려고 술을 먹기 시작

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한

를 보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

했다. 이 상태가 계속되니 끝내는 나 자신

무엇인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나

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다. 우리의 깨

했다. “내가 그 많은 돈을 하려고 한 것

이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와 하나님과의 가까운 관계였던 것이다. 나

어진 상처 받은 심령을 치유해 주시는 분

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

남편이 죽기 전까지는 나는 내가 강한 사

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았어야 했는

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으라고 세

셔서 했어요. 사실 나는 지금 직장을 잃은

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고 항상 가족

데, 나의 삶은 계속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후 직장을 못 찾아서 쉬고 있는 중이어서

을 잘 돌보았다. 그런데 이젠 나 자신이 누

남편과 지난 일들을 생각하는 데에 초점을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로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2020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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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야베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수고로 이 낳았다” “고통”이라는 뜻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 를 낳을 때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들 의 이름을 고통이라 지었을까요? 그 리고 고통이라고 이름을 불릴 때마 다 야베스는 얼마나 괴로울까요? 내 가 엄마를 고통스럽게 했지, 난 세상 에 쓸모없는 존재야! 태어나지 않았 으면 좋았을걸…하고 죄책감과 열등 감에 사로잡혀있지 않았을까요? 그의 인생의 어둡고 부정적이며 삶에 소망 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야베스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 라…”(대상4:9) 뭐라고구요…? 잘못 읽은 것이 아 닙니까? 분명‘고통’이라는 이름을 가

진 어두운 인생인데 성경은 모든 형 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야베스는 귀중하고 존귀 한 자였습니다. 이처럼 삶에 고통과 절망뿐인 야베 스가 귀중한 자, 존귀한 자가 된 이유 가 무엇일까요?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 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 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 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 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 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 셨더라”(대상4:10) 야베스는 절망과 고통뿐인 인생이 고통스럽다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 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상황 이 변하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고통과 절망을 변화시킬 수 있으신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 절박한 심정 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변 화시켜 주십니다. 야베스는 간절하게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 님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복을 간구 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지역을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생업과 기업에 복 을 부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두 번째는 주의 손으로 도와주십시 오! 모든 대적과 원수들을 물리치는 능력의 손을 간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 이 없게 해달라 기도했습니다. 부정 적인 생각과 마음과 감정에 사로잡히 “이스라엘하나님께 아뢰어…..” 지 않게 하소서! 어두운 생각이 사라 지도록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해달라 아뢰다는 원어의 뜻은 ‘부르짖다’, 는 기도입니다.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야베 스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의 지경을 넓혀주세요. 내 지경이 여기까지입니다. 내 기업에 넓혀지도 록 복을 부어주세요. 하나님, 나에게 이러한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능치 못함 없으신 능력의 손으로 도와주세 요. 하나님, 걱정과 근심과 염려 때문 에 기도가 잘 안 됩니다. 부정적인 생 각과 감정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이러 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이것 이 바로 야베스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로 구한 복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야베스가 기도 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허락하셨습니 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실패를 경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가 장 귀중하고 존귀하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예닮장로교회 Y edalm 예닮장로교회 Y edalm Presbyterian Presbyterian Church Church 예닮장로교회 Yedalm Presbyterian Church 교사 교사 교사

금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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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2020년 9월 10일

28

33회

식물이 사람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 식물도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사 실일까? 식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자신을 사랑하 고 아껴주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식물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낼까? 미국의 Peter Tompkins와 Christoper Bird는 식물을 사용하여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두 사람은 2~3개 월 동안 식물을 정성 들여 키웠다. 때를 따라 물과 거름을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식물에게 다가가서 “잘 잤니? 어 제 저녁에 춥지 않았어?”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쓰다듬어 주곤 하였다. 저녁 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잘 자~~~ 좋 은 꿈꾸고...”라고 속삭여 주었다. 외출 할 때면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아마 두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라 고 말한 후에 외출하였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서는 가장 먼저 식물에게 다가가서 “잘 있었니?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어. 별일 없었지?”라고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하였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키우게 되면 식물 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 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외출하면 돌아올 때 를 기다리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달 라고 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고 소 리 지르고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는 신호 를 보내게 된다. 물론 이러한 신호는 사 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고 적절한 측정 장치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식물이 나타내는 반응 식물을 2~3개월 동안 식물을 정성 들 여 키운 다음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들 은 오전 8시부터 식물이 나타내는 미세 한 반응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식물 의 잎에 연결한 다음 기록계와 자신의 시계를 정확하게 맞췄다. 9시에 집을 나 선 후 몇 마일 이상 떨어진 거리까지 걸 어서 외출하였다. 오전 10시에 자동차 전용도로에 갑자 기 뛰어들어 길을 건넜다. 달리던 자동 차 운전자들은 이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 동에 급브레이크를 밟게 되고 어떤 운 전자들은 화가 나서 욕을 했을지도 모 를 일이었다. 한동안 커피숍에서 앉아서 휴식을 취 한 다음 11시에는 갑자기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다. 잘못하면 발목을 다칠 우려 가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그 상태로 한 동안 길을 돌아다닌 후 12시에 안락하 고 편안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와서 식물에 연결된 기록 장치를 보았 다. 기록 장치에는 실로 놀라운 반응이 기록되어 있었다. 오전 9시 외출한 직후부터 그래프에 는 식물이 약간 흥분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자동차 전용 도로를 무단 횡단했던 오전 10시에는 식물의 반응이 급격히 증가한 그래프가 나타나 있었다. 11시 직전까지는 평상시보다 약간 높은 반응을 나타내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 던 11시에도 역시 급격한 반응을 나타내

었다. 그리고 12시 이후에는 평상시처럼 조용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식물도 사람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 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식물이 알고 반응 을 나타낸 것이라고 저자들은 결론을 내 렸다. 몇 마일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실을 식물은 어 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실로 놀랍고도 신 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저자들은 식물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연구를 시도하였다. 두 개의 화분에 각각 한 그 루씩 식물을 심고 2~3개월 동안 사랑으 로 정성껏 키웠다. 그리고 방안에 두 식 물을 나란히 놓아두고 다섯 사람을 한 사람씩 방안에 들여보냈다. 각각 식물 앞에 잠깐 서 있다 나오게 하였는데, 네 번째 사람에게는 두 식물 중 한 식물을 꺾어 버리도록 하였다. 남아있는 식물에 반응을 측정하는 장 치를 연결한 다음 한 사람씩 그 식물 앞 에 서게 하였다. 그 결과 첫 번째, 두 번 째, 세 번째, 다섯 번째 사람이 왔을 때 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 의 친구를 꺾어 버린 네 번째 사람이 들 어왔을 때는 급격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실험은 반복하여도 마찬가지 결 과를 나타내었다.

정병갑 (고신대 명예교수) (creationisfact@gmail.com) 이 실험을 통해서 식물도 사람을 알 아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은 식물을 사랑으로 키웠을 때만 보여준다는 것도 알아냈다. 사랑을 베풀어주지 않은 식물을 사용하여 실험 하면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 않게 된다. 식물이 사람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는 뜻이다. 하나님은 식물도 사랑을 깨달을 수 있 도록 창조하셨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어 떠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 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또 우리는 우리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 아가야 한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 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 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 이심이라”(요1 4:7~8)라고 기록하고 있 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 한다면 식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식물도 사람이 베풀어주는 사 랑을 깨닫는다는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 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기회가 되 기 바란다.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0년 9월 10일

29

의무와 능력 노윤호 장로(덴버제자교회)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보다 다르

탈함 없이, 서로 질서정연하게 하나님이

은 사람들이 썼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

며,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만드신 법칙 아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

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야지만 했고, 또

의 길보다 높으니라" 아멘

하는 가는 참으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한 사람이 써야만 했음으로, 성경은 하

리로 이해할 수 있고, 본분을 지키며 의

예정론 역시 성경이 예언한 대로 구구한

나님이 쓰셨고 사람이 썼습니다. 구원도

무를 수행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하여 예

하나님, 사람이 아는 대부분의 것들은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이 그대로 진행되는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십자가에서 이루셨

지적 성향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봅니다.

이 지구뿐이고, 좀 더 넓은 범위에서는

것을 보면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고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 선물을

그래서 성경에는 기계적 생산이 아닌 우

태양계를 연구한다고 하고 우주를 관찰

것이 하나님의 예정으로 인한 주권 아래

간절히 원하고 감격하여 감사히 받고 고

리의 자유의지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비교한다면 사

순종의 모습으로 드러남을 보면서도, 하

이 간직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고

람의 지식 한계는 아주 조금뿐이란 것을

나님께 불순종할 수 있었던 예지적 성향

므로 구원도 하나님이 이루셨고 또한 우

봅니다. ‘항상 성경말씀에 복종하여 두렵

인정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을 지닌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하나

리가 이루었습니다. 기도 응답도 하나님

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권면

창조하셨는데, 이 어마어마한 우주가 바

님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지는 우리의 지

이 주셔야지만 되고 우리는 간구 해야지

대로 사는 사람이 택함을 받은 모습이고

로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 말씀으로 이

혜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 받을 수 있기에, 기도 응답 역시 하나

구원으로 가는 좁은 길에 서 있는 자일

루신 일이란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무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한 인류역사가 세

님이 하셨고 우리가 했습니다. 그러나 이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신 성경대로 살

한하신 지혜와 능력 그 한계의 끝자락은

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

려고 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일 텐데, 하

과연 어디쯤일까 하고 헤아려봅니다. 그

마찰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계속해서 진

이 주권이시고 우리의 믿음과 선행 또한

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

러나 상상으로도 그 종점을 가늠 할 수

행 됨을 보면 성경말씀에 있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랑하고, 또한 그 말씀대로 따라사는 자

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예정하심이 옳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

을 깨달아 늘 겸손과 감사가 넘치는 우

들 되게 인도하시옵소서.

우주가 있기 전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나님께서는 우리 두뇌로 이해할 수 있는

리의 삶 되게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마도 그곳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천국

한 예정적 성향으로는 태초 이전에 미

은 아닐까? 천국을 그려보는 우리의 머

리 구원받을 자들을 택정하셨다고 하십

성경은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

좁은 문이라서, 성경은 그 문으로 ‘들

리는 자주 복잡해지곤 합니다. 그러나 우

니다. 또한 예지적 성향으로서는 누구든

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

리가 가는 천국 그 동경의 나라가 있기

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구

하셨나니’라고 사람의 의무와 하나님의

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에 이 세상의 어떠한 시련들도 우리 삶

원이 있음을 약속한다고 하셨는데, 이렇

능력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도 피 흘리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는

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고 우리가 늘

게 우리에게는 논리적으로 상반되는 예

기까지 죄와 싸우는 의무는 우리에게 있

주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본분과 의무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

정과 예지가 하나님에게는 하나인가 봅

지만, 정작 죄를 없이 하시는 능력은 하

가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고 봅니다. 구

스도의 의로 인하여 이러한 산 소망을

니다. 태초에 택함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

나님께 있으시고,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원받은 자의 모습은 항상 진실하게 주님

우리 안에 심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서 끝까지 지키시사 아무도 낙오되는 자

의무는 우리에게 있지만, 사실상 우리를

과 동행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자

성경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여러

가 없다는 예정도, 또한 구원받을 사람

성경대로 살게끔 하시는 능력은 하나님

일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모양으로 표현했지만, 그중에 예정론과

들은 목숨을 내놓고 순교의 길을 갈망

께 있으십니다. 구원을 사모하며 이루어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믿음을 싸워 지키

하나님의 주권이 가장 대표되는 것 같습

정, 믿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예지도 두

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의무는 우리에

는 자가 태초 이전에 택함을 받은 자이

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만물의 상호 의

개의 다른 논리가 아닌 하나인가 봅니다.

게 있지만, 구원을 베풀며 완성시키시는

고 끝까지 견디기를 애쓰는 자이며 구원

존적 관계를 보고 세상의 자연적 흐름을

하나님, 만일 우리도 택함받은 사람들이

능력 또한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 확신을 얻은 자 일 것입니다. 아담의

보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에 있는 그

라면 하나님이 구원하셨기 때문에 끝까

우리는 늘 하나님을 의존하며 열심히 우

원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불순종만 했던

어느 분자 하나라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

리의 도리와 의무를 수행하며 살아가야

우리를 순종하는 자로 만들기 위하여 십

것이 없고 하나님의 법칙과 붙드심 속에

분일 텐데, 우리에게 이러한 신앙적 투쟁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정하실

자가에 달리신 주님, 그 십자가의 능력으

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됨에 조금

이 있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수 있는 시간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별

로 우리를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

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할 수 있게 해주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 있는 우

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은 이해가 됩니다. 다만 어떻게 그 끝없 이 많은 분자들이 하나라도 제자리를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영감을 받

구원의 길은 좁은 길이고 구원의 문은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1) 제공: 박영돈 부동산



주일예배 오후 12:30 수요연합기도회 수요일오후 7:30

4905 E. Yale Ave. Denver, CO 80222 / www.calvarykoreanchurch.org

newlifeco.org

303-269-9192, 443-754-0888

덴버에덴교회

16051 E. Dartmouth Ave Aurora, CO 80013

정석현 목사

손재흥 목사

주일 8 AM (1부/한국어) 주일 11 AM (2부/한.영) 주일 1:30 PM (3부/유스) 새벽 6 Am (화~토/7am) 1181 Laredo St Aurora CO 80011 / 720-859-6798

주일1부: 오전 7:30 주일2부: 오후 1:00 수요성경공부: 오전 10:30 금요기도회: 오후 7:30 어린이주일학교: 주일오후 1:00 어린이/청소년 성경공부: 주일 오후 3:30

www.ziondenver.com

13601 E. Alameda Ave. Aurora, CO 80012

720-203-6357 / EdenKoreanChurch.com

김창훈 목사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어린이부: 오전 11:00 수요기도회: 오후 7:30 성경통독: (금)오후 7:30 새벽기도회: 오전 6:00

15099 E Hinsdale Dr. Centennial CO 80112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 오전 6:00 성경교리대학(주일) : 오후 1:30 주중제자훈련 (화) : 오전 10:00

303-422-6950 / www.kpcd.org

드림교회 허성영 목사 주일 1부: 오전 7:30 주일 2부: 오전 11:40 새벽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수요성경공부: 저녁 7:30 5400 S. Yosemite St. Greenwood Village, CO 80111

10-12

6415 W. 44th Ave. Wheat Ridge, CO 80033

11000 E. Yale Ave #90 Aurora, CO 80014

720-336-9251

주일예배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 오전 6:00 성경대학(주일) : 오후 1:00

562-315-3674

우리교회 윤우식 목사

이성한 목사 주일 1부(영어) 10:00 am 주일 2부(한어) 11:45 am 주일학교 11:30 am 수요성경공부 7:00 pm 토요기도회 7:00 am

주일예배 12:30 PM Prayer Alliance 수 7:30 PM 주중 지역별 목장모임

금 glorifygod911@gmail.com

11000 E Yale Ave. #222, Aurora, CO 80014

503-927-9520 /

11989 Saint Paul St. Thornton, CO 80233 720-838-3352 / petershlee7@gmail.com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홍해선교교회 수요성경공부(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모임 21755 E. Smoky Hill Rd. Centennial, CO 8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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