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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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11:30)

빛 제 10권 19호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소금

The Light and Salt News

2020년 10월 22일 발행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요12: 24)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2)


목차

2020년 10월 22일

목차 교계소식 선교지에서 보내온 소식 내면을 향한 여정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 주의 은혜 강가로 감동이 있는 글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목회칼럼 예배학 강좌 하나님의 구원섭리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에콰도르 이야기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나의 노래, 나의 기도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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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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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0년 10월 22일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

3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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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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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 130:1-8)

제공: 박영돈 부동산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 (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선교지에서 보내온 소식

2020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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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콰테말라 선교회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힐링 Healing Guatemala "이 땅 위의 모든 이가 우리 주님의 치유를 삶에서 누리길 소원하며"

기사 제공: 이누가 선교사

사진1, 길거리에 흰 깃발을 휘두르며 도움을 호소하는 한 가정 사진2, 아이를 동여매고 흰 깃발을 휘두르는 싱글맘에게 쉘라의 뙤약볕은 뜨겁기만 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가난한 우리 과테말라 형제자매에게 생명줄이었습니다. 큰 기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힐링 과테말라 선교회는 중미지역에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해 주신 모

식량의 자급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도

이 운송은 사실은 지난 토요일에 제가

하나님의 치유를 선포하고자 과테말라

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또한 이 일

시에 사는 가난한 가정은 옥수수를 재

운전을 해서 출발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본부를, 미국과 한국에 지부를

을 일선에서 진행해준 우리 베데스다 스

배하는 땅이 없어서 여전히 힘든 생활

하루 만에 악화가 되어가는 제 건강상

두고 "이 땅 위의 모든 이가 우리 주님

태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이석증이 심해졌습니다)와 차량의 문

의 치유(영육과 경제적)를 삶에서 누리길

제(에어 컨프레서에 문제)가 생겨서 도저

소원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이누가

예측하지 못했던 코비드로 세계에 거

그러나 향후 코비드 상황에 대해서는

히 여정을 이어나갈 상황이 아니어서 다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곳은 마야족들

의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더욱더 주의 깊은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

시금 수와니, 조지아 집으로 돌아왔습니

의 정신적인 수도 ‘케찰테낭고’ 이다.

있지만, 그중에서도 힘든 것은 가난한

점입니다. 과테말라의 현재 코비드 상황

다. 현재 제 건강은 많이 좋아졌고, 트럭

내전으로 인한 빈부격차가 심해 ‘스스

이들, 특히 과테말라의 가난한 이들에겐

이 진정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과테

은 수리가 모두 끝이 난 상황입니다. 저

로를 정부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라 부

너무나도 힘든 광야의 시간을 지나고 있

말라 정부에서는 국가 단위의 적극적인

는 이번 주일에 항공편으로 과테말라로

르는 이들은 하루 1달러이하로 생활하며

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광야에서

방역의 종료를 발표하고 국민 개개인이

들어갑니다. 돈 헤르멘이 운전해서 가는

주변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2주에 70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에

개인위생을 조심하는 것으로 정리를 하

여정 가운데 안전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

달러 정도의 임금을 받는 절대 빈곤의

게 만나를 허락하신 것처럼, 코비드 팬

고 있는 상황입니다. 10월 1일을 기준으

요. 차량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또 텍

삶을 산다.

더믹의 광야에서 여러분들을 손길을 통

로 해서 방역 규제가 거의 대부분 철회

사스에서 멕시코를 통과할 때, 세관에서

이누가 선교사는 코로나바이러스(CO-

해서 과테말라의 연약한 형제들에게 만

되고, 경제, 운송 등 모든 영역이 정상화

아무런 문제들이 없기를 기도해 주세요.

VID19)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

나를 허락케 하셨습니다! 특히나 과테말

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

다음 뉴스레터에서 기쁜 소식을 전할 수

는 과테말라 현지의 사정을 전하며 긴급

라의 힘없고 가난한 마야 원주민들에게

들이 힘들어할 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도움을 지난 봄 요청하였고, 그 진행

는 저희를 통해서 공급된 하나님의 양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베데스다에서 이

모두가 힘든 상황이지만, 이제껏 우리

과정 소식을 전해왔다.

식 자루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들

분들을 어떻게 섬길지를 두고 계속 기도

의 여정 가운데 우리 주님이 얼마나 신

을 잊지 않으셨다는 증거를 보며, 하나

하면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

실하게 함께 하셨는지를 기억하시면서

선하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0

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분들의 기도를 당부드립니다.

기쁨으로 이 과정을 함께 이겨내길 기도

월 9일까지 해서 여섯 번 배치에 걸쳐

다시금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 진행한 양식배급사역을 공식적으로

분들의 아픔과 설움이 기쁨과 희망으로

한 가지 더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과

마감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드립

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역시

테말라를 사랑하는 많은 교회들과 우리

니다. 3월부터 시작되어서 6개월이 넘게

도 힘든 광야 같은 시간을 보내고 계실

사역의 동역자들로부터 기증받은 의료

To Support the Mission;

진행된 양식배급사역을 통해서, 저희는

텐데, 더욱 연약한 이들을 잊지 않고 생

장비, 마스크 등의 의료용품과 학용품,

Payable to Healing Guatemala

9천 가정에게 가정당 15일을 먹을 수 있

명을 나누어 주셔서 다시금 우리 주님

또 사역에 필요한 용품들을 실을 트럭

P.O. Box 1835 Duluth, GA 30096

는 양식 자루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내일 아침에 과테말라로 출발을 합니

한국: 하나은행

총 300,000 파운드의 옥수수와 95,000

합니다. 계속해서 과테말라를 품고 기도

다. 싣고가는 의료장비는 백내장 수술용

당부드립니다.

힐링과테말라 287-910017-07605

파운들의 팥이 전달되었고, 이를 위해서

양식배급사역의 앞으로의 계획은 과

현미경, 초음파, 전신마취기, 치과 용품

미국에서는 230여 명이 총 135,609불 (9

테말라의 향후 코비드 유행을 고려해서

등이며, 의료용품은 천마스크와 외과수

P.O.Box 1835 Duluth, GA 30096

월 15일까지), 한국에서는 10,255,000원

유동적으로 결정이 되겠지만, 지금 시점

술 마스크 등입니다. 사역에 필요한 용

(수취인 Healing Guatemala)로 보내

(5월 26일까지)이 헌금을 해 주셨습니

에서는 규모를 줄여서 도시 빈민들을 위

품들은 추이사카바 아이들에게 나누어

면 된다. 계좌입금은행 Wells Fargo,

다. 이 재정 가운데서 곡식 구입과 운송

주로 매달 2-300여 가정을 섬기려고 계

줄 도시락 등 여러 가지입니다. 운전은

예금주 Healing Guatemala, 계좌번

등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지출한 경비

획을 하고 있습니다. 10월 중순부터는

과테말라에서 온 돈 헤르멘이 하며 아

호 7092709398 Routing Number

가 약 138,038불(9월 30일까지)이었습니

과테말라에 주식으로 사용하는 옥수수

마도 6일에서 7일 정도의 여정이 될 것

053207766 이다. 영수증 발급은 rhy-

다.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큰일 뒤에서

들이 수확이 시작되기에 시골 마을로는

같습니다.

eemt@gmail.com로 연락하면 된다.

미국: 수표는 Healing Guatemala,


내면을 향한 여정

2020년 10월 22일

5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받은 사랑(은혜)을 가슴에 품고!

기도와 응답 시편Psalms 99:6-9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6). ...........................................................................

로마서Romans 5:1-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 .........................................................................

시편 99편 시인은,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이 가슴에 무엇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애굽의 노예 백성들을 자유인으로 이끌어낸 사람이고, 아론은 제사장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 백성들이 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이끌어낸 사람이며, 사무엘은 섬김의 사역자로 왕권을 세웠던 사람입니다.

삶은 누리는 평화를 품고 소망을 품고 기쁨을 품고

목회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적 역할과 섬기는 공동체 일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사장적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음을 기억하며 (삼상3:19),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에 전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은 삼상12:23-24에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높이며, 예배하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것입니다. 평화를 누리고 소망을 누리며 감사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받은 은혜를 가슴에 품고 누리며 살고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라 하는데, 우리말 평화, 평강, 화평, 평안 등과 같은 말인데, 히브리어로 “샬롬”(‫ ) ָׁשלֹום‬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가슴에 품는다는 것은 가슴에 하늘의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주 안에 있기에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받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ooreekmc@hanmail.net)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이단계보 5]

2020년 10월 22일

6

한때 두때 반때의 원조 한에녹(1887년~1973년) [이단계보] 이단·사이비의 뿌리 -가짜 재림주를 중심으로-

기사: 정윤석 기자

한마디는 뭐였을까요? “1948년에 내가

은 미리 예(豫) 자가 아닌 맡길 예(預)자

예언한 이스라엘의 독립이 이뤄졌잖은가,

예언(預言)입니다. 예언(預言)하는 자들의

그대는 제2, 제3의 연대를 반신반의할 이

영은 예언(預言)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

유가 무엇인가?”라고 했을 게 뻔합니다(

나니(고전 14:32 등). 앞일을 알아 맞추는

최중현, 예수의 재림을 '제 1차 재림', '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

2차 재림'으로 언급한 한진교, 2017년 4

는 걸 예언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도 성경

월 23일 브레이크뉴스 칼럼 참고 http://

의 예언은 앞일을 예견하는 prediction

www.breaknews.com/505791).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달 하는 prophecy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제 ‘영원한 복음’과 ‘한때 두때

1948년 이전부터 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반때’를 이론적으로 정립했던 한에녹(본

한때·두때·반때와 예수 삼림의 원조

이를 기준으로 보십시오. ‘그날과 그

한에녹은 서울의 한교회에서 장로로 냈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성경의 말씀을

고 교회 내에서도 그의 행태를 문제 삼

맡아서 전하는 참 예언자라면 재림이나

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전

삼림이니 하며 날짜를 계산하지 않을 겁

명 한진교)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그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매일

해집니다. ‘영원한 복음’을 새로운 진

니다. 자신이 스스로 묵상하며 깨달은

시대구분은 ‘한때, 두때, 반때’로 일컬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

리처럼 주장하던 그는 1973년 별세했고,

대로 재림의 시기를 예측하고 특정 날

었습니다. 1887년 평안남도에서 출생한

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그의 한때·두때·반때 해석은 기독교복

짜를 뽑아낸 한에녹의 시도는 참선지자

한에녹은 1910년 북경으로 망명해 36년

지낼 것이요”(단 12:11)라는 말씀을 688

음선교회의 설립자 정명석 교주의 30개

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간 독립운동을 합니다. 그의 역할은 개

년에 또 대입했습니다. 688+1290=1978

론 고급편, 한때 두때 반때 편에서도 아

설령 그가 한 미리 예견한 날짜가 맞는

성인삼을 떼다가 상해나 홍콩·대만·말

년, 이 때 아마겟돈 전쟁 및 전쟁 종결이

주 상세하게 반복됩니다. 역시 해 아래

다 하더라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

레이시아·인도네시아까지 무역선을 개척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단 12:12(기다려서

새것은 없습니다.

야 합니다.

해서 팔고, 그 돈으로 독립군의 군자금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을 마련해 주는 거였습니다. 애국 독립

복이 있으리라)을 근거로 688년에 1335

문: 예언을 맞췄다는 걸 들으니 정말 두

기준이라고 한다면 그 기준으로 봐도 한

운동을 펼치던 한에녹은 해방된 다음 서

를 더해 2023년을 에덴회복의 때로 예언

려워집니다. 한에녹은 참 선지자가 아니

에녹은 잘못됐습니다. 1948년 독립은 맞

울에 무역회사를 차려 돈을 많이 벌었

했습니다(한에녹, 영원한 복음, 영원한복

었을까요?

았지만 1978년 아마겟돈 전쟁을 주장했

던 것으로 알려집니다(CBS변상욱의 싸

음출판위원회, 1945. 277쪽 참고).

이판, 2018년 8월 12일, https://youtu.

1948년 - 이스라엘 독립

니 한에녹이 정말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

종종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앞날을 궁

be/T9vnivyJWxo 참고).

1978년 - 아마겟돈 전쟁

니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그의 예언

금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2023년 - 에덴회복

정말로 날짜를 맞추는 게 참선지자의

앞 일을 예언하고 그것을 맞췄다고 하

는데 그건 틀렸거든요.

이 정말 맞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내

자녀들에게조차도 베일에 가려 있습니

지식인이자 사업가요 애국 독립지사로

이 세가지 특정 연대를 성경을 묵상하

심 생길 수 있을 겁니다. ‘혹시나’하는

다. 그 이유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며 모

도 명성을 떨쳤지만 한에녹은 ‘한때, 두

며 기도하던 중 깨달았다고 한 게 한에

그 두려움과 기대감이 사실은 이단사이

험으로 사는 인생을 살며 때론 실패하

때 반때’를 체계화하고 직통계시·신비주

녹입니다. 이때 그는 홀연히 비밀의 열쇠

비 세력을 유지해가는 동력일지 모릅니

고 낙담하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

의 행각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이

를 받은 것이라 하며 마치 감추었던 보

다. 지금도 이단 사이비라는 비난을 받

해 더욱 인격적으로 성숙하길 바라시는

말씀하는 한때 두때 반때(단 7:25, 12:7

배를 찾은 것처럼 기뻤다고 합니다. 한에

으면서도 혹시나 이곳이 진리라면이라는

아버지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걸 감사함

계 11:2, 3 등 근거)를 1260년으로 계산

녹의 주장은 1947년 12월 ‘영원한 복

실낱같은 가능성을 붙들고 나오지 못하

으로 알고 기도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살

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1년, 2년, 반년, 즉

음’이란 책에 등장하고, 이후 1948년 5

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기에 우리는 인격적 존재가 되는 겁니다.

3년 6개월(42개월), 1260일(단 12:11)에 1

월 14일 이스라엘이 실제로 독립했으니

합동측에서 2016년 이단으로 규정

베일에 가려진 미래를 자꾸 알아내려고

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연일 계산법’

70년전 이 땅을 살던 한에녹의 위상과

한 홍혜선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하고, 그걸 말하는 사람을 신령하다고

을 적용합니다. 1260일을 1260년으로 해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2014년 12월 한국전쟁을 예언했습니다.

생각하는 문화는 기독교가 아니라 오히

전쟁이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홍 씨를

려 샤머니즘적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석해 이 때 특별한 일이 발생하는 걸로 예언했어요. 시작 기점을 언제로 하느냐

세가지 연대와 더불어 그는 예수님이

가짜라고 많이 말합니다만, 만일 그 때

앞날에 대해 이것저것 말해주고 그리고

가 중요한대요. 이스라엘에 회교사원이

‘삼림’하신다고 주장한 것도 특징입니

예언한대로 한국에 전쟁이 터졌다면 홍

그걸 제일 잘하고 업으로 삼는 사람이

들어선 688년을 ‘가증한 것을 세운 때’

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을 초

씨는 참 선지자인걸까요?

무속인입니다. 그 행위를 가장 싫어하는

라고 기준점을 정합니다. 688년에 1260

림, 천년왕국전에 오시는 것을 재림, 천

크리스천이라면 이에 대해서도 단연코

분은 하나님이라는 걸 성경에선 강조하

을 더하면 1948년입니다. 1948년 하면

년 왕국 후에 심판을 위해 오심을 삼림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언

고 또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뭐가 떠오르시나요? 그렇습니다. 한에녹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천년왕국전

은 통상적으로 앞일을 알아맞히거나 개

자주 잊고 사는 거 같습니다.

장로는 1948년을 이스라엘의 독립의 해

에 오시는 재림의 시기를 2023년으로 삼

인의 신변잡기에 대해 미리 말하는 것으

로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을 이미

았는데요. 의심하는 자들에게 그가 남긴

로 오인돼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

출처 : 기독교포털뉴스 (http://www.kportalnews.co.kr)


신앙 칼럼

2020년 10월 22일

오성관 목사

7

위로의 하나님 왜냐하면 실수가 많고 불완전한 존

“위로”의 한글 사전적 의미는 “

재인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

라도 위로 대신 쉽게 판단하고 지적하

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이다.

고 충고랍시고 때로는 정죄하기도 한다.

그리고 “위로하다”는 헬라어 "파

이는 싸매어 주어야 할 상처에 소금을

라카레오”(παρακαλεω)는 "누군가

뿌리는 격이니 피차에 유익은커녕 원망

가 나를 돕기 위해 부름을 받아 내 곁

과 미움만 유발할 뿐이다. 그래서 때로

에 계신다”는 뜻으로 위로는 함께하

는 말없이 내민 한 송이의 꽃이 더욱 효

는 것, 아픔과 고통의 현장에 함께 있

과적일 때가 있다.

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인간의 힘으로는 위로할 수 없 그러나 욥기에서 보듯이 진정한 위 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

다. 왜냐하면 진정한 위로는 오직 하나 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주고 있다. 욥이 재앙을 당했을 때, 그

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 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 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 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 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 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 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 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 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 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 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 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 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 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후 1:47)

발행인 최성애 권사 해 줄 수 없었지만, 같은 처지라는 감정 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위로의 힘이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야고보 의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6)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 환란과 고난

의 세 친구들이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음에도 불구하고 변론을 시작한다. 마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

침내 욥은 그들의 위로가 거짓되고 헛

시는 섬세한 분임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되니 “제발 잠잠하라”고 요구한다. 욥

수 없다. 우리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시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

해서 우리를 훈련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의 고통의 현장에 있었던 세 친구들조

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슬픔 대신에 화

들을 잃고 망연자실한 어머니의 슬픈

진실하게 하시고 믿음 있게 하시사, 위

차도 이와 같은 형편이었으니, 사람에게

관과 찬송의 옷을 입혀 주시는 사랑과

마음을 누가 무슨 말로 위로해줄 수 있

로자로 삼으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은 우

서 위로를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

은혜의 아버지이시다.

겠는가?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넋 놓

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를 통해

고 울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목 놓아 울

서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그런데 그런 위로의 아버지께서는 우

게 한 사람은 바로 얼마 전에 교통사고

하신다.

사실 위로하는 사람도 쉽지는 않다.

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

로 아들과 남편을 한꺼번에 잃은 어느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무슨 말로 어

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

여인의 등장이었다. 그 여인은 아무 말

우리가 할 일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떻게 그 상한 마음을 위로할 수 있겠는

게 하시며, 위로에도 참여하게 하신다.

없이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꼭 안아주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힘주시는 자안에

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정

서 능히 감당할 수 있다. 우는 자들과 함

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눈

께 울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물을 흘렸다. 한마디의 말조차 필요하

을 품고 위로하는 진정한 위로자가 되어

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 어머니를 위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

운 일이라 생각된다.

가? 이것이 인간의 힘의 한계인가 보다. 어설픈 위로의 말을 시도하기보다는 차 라리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오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 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

31

과 핍박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소중하고 유익한 것이다. 문제들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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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설교

2020년 10월 22일

8

아버지 하나님 (사도신경 (사 도신경 강해 3) <갈라디아서4:6> 윤우식 목사

예닮장로교회

제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 기도 할 때 잘 되지 않던 것이 있었습니 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를 때에 ‘ 아버지’라고 부르는 겁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수련회를 가서 통성기도를 하면 그냥 ‘하나님’이라고 불러지 지 ‘아버지’라든지, ‘하나님 아버 지’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 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하나님 아 버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어 릴 때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 르는 것이 어색했냐면 두 가지입니 다. 저는 ‘아버지’ 그러면 좀 두려 운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친근한 느 낌보다는 엄하고, 무서운 분.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에도 그 감정이 그래도 이입이 되는 겁니 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어려웠고 설교를 들을 때 마다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라고 들을 때마다, ‘하나님은 두렵고 엄 한 분’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겁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 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개념을 제대 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 치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라고 부 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에 앞부분에 이렇게 고백하지 않 습니까? ‘전능하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여기에 ‘하나님 아버지’라고 고백 하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나 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 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 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 시는 이유와 그 의미 등에 대해서 오 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을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때때로 ‘내 아들, 내 장자’ 라고 부르시기도 하십니다. 출애굽기 4장22절 말씀을 보면,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 라”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서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말씀하 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아들’, ‘ 장자’라고 부르시는 분이라면 하나 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의 미입니다. 여기에 ‘아들’이라는 단어는 히 브리어로 ‘뺀(‫;ןב‬Ben)’입니다. ‘아 들’이라는 뜻과 함께 ‘후손’이라 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한 ‘장자’라 는 단어는 ‘뻬코르(‫;רכב‬Bekor)’입 니다. 이것은 ‘장자, 처음 난 것’을 말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 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아들, 후 손, 처음 난 장자’라고 부르고 계십 니다. 어떤 의미가 듭니까? 고대 근동 지방에서나 우리나라에 서나 ‘아들’, ‘장자’라는 것은 아 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유일하

고, 아버지로부터 큰 의미를 부여 받 은 후계자입니다. 뭐 대충 가문을 이 을 자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께 서 이스라엘을 ‘아들’, ‘장자’라고 부르시는 것도 하나님의 언약을 받 은 자, 그리고 그 언약을 이어 나가 며 자손들에게 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단 순하게 가부장제도에서 사용하는 ‘ 아들, 장자’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런 표현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이 아버지냐’, ‘왜 딸은 없느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을 어머니로도 불러야 한다. 하나님 의 아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라 고도 표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런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의미를 사용 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단어 하나, 어휘 하나를 가지고 딴지 를 거는 모습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단 순하게 ‘아버지’, ‘아들’을 강조하 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 님의 자녀들을 아버지처럼 책임지고 돌보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로 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책임을 가진 자라는 의 미로 이렇게 부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9절-11절 말씀을 보 면,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 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 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 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 니다. 그래서 떡을 달라고 했는데 돌 을 주는 분이 아니시라는 비유를 말 씀하십니다. 그러면 딸이 달라고 하 면 돌을 준다는 말씀입니까? 그렇 지 않습니다. 아들이냐, 딸이냐가 중 요한 것이 아니라 자녀라는 것. 그리 고 하나님은 아버지로 자녀에게 좋 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 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좋은 것’, ‘성령’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가 하나 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까?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4장5절,6절 말씀을 보면,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 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 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 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 문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 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 다. ‘그 아들의 영’이 바로 성령이 고 마태복음 7장11절에서 말씀하신 ‘좋은 것’입니다. ‘좋은 것’, ‘성 령’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 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 가 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성령을 받은 자가 된 하나님의 자녀 가 된 것은 5절의 말씀처럼 예수 그 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속량 하셨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 있던


강단 설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 로 구원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 서 우리에 대해서 어떤 분이심을 잘 비유한 말씀이 바로 누가복음에 나 오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탕 자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한 방탕한 버린 자식을 다시 아들로 받아 주신 이유 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 는 것은 뭔가 선한 행동을 했기 때문 이 아니라 전적인 아버지의 사랑 때 문임을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그 사 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사건이 바 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과 죽으 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속박 가운데 있 던 자들, 죄의 노예의 상태였던 자들 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방시 켜 주셨습니다. 그러면 누군가의 노 예가 되거나, 속박을 풀어준 자의 소 유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은 우리를 하나님의 노예, 소유된 물 건 정도로 생각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 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종종 하나님 의 ‘양자’가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2020년 10월 22일

‘양자’ 역시 아들입니다. 아들로 의 자격과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하 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로 삼아 주 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요한복음 1 장12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 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 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 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십니다. 책임지십니다. 고아와 같이 세상 가 운데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천지만 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신 전능의 하 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위대한 일입니까?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 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 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 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 니니라” 사생자는 헬라어로 ‘노도이 (νοθοι)’입니다. 이 단어는 ‘조상 이 물려준 정당한 권리를 받을 수 없는’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입 니다. 즉, ‘사생자’라는 표현을 사 용한 것은 도무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의 권리 를 가질 수 없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 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가 되시기에 우리를 책임지시기에 우 리를 징계하십니다.

바로 ‘아들’에 반대되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사생자’에게는 ‘징 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 들’에게는 ‘징계’가 있습니다. 여기 에 ‘징계’로 번역된 헬라어 ‘파이 데이아(παιδεια)’라는 단어는 ‘ 교육’, ‘훈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 는 단어입니다. 분별력이 없고, 지식 이 없는 아이를 성인이 되기까지 교 육하고 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2장6절-8절 말씀에,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 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사람은 자녀를 교정할 때에 감정 이 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훈련, 양육’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를 가 진 자로 잘 양육하는 과정입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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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 지라고 부를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파이데이아’를 받을 때 기쁨 으로 받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로 살아가겠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십니까?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서 세상 가운데서 당당하게 살아가 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그 길을 벗 어 날 때에 제대로 된 길로 양육하 시고, 훈련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 징계’를 받을 때 그 안에서 하나님 의 뜻을 깨닫는 자녀가 되었으면 좋 겠습니다.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심 을 깨닫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제공: 신민식·신정원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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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edalm Y edalm Presbyterian Presbyterian Church Church Yedalm Presbyterian Church 교사 교사 교사

금요예배

10:15 10:15 10:15

6:30PM 6 6 6

담임목사: 담임목사: 윤우식 윤우식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담임목사: 윤우식 (503)927-9520/ilovejesus4263@gmail.com (303) (303) 364-1621 364-1621 11000 E Yale Ave. #222, Aurora, CO 80014 (303) 364-1621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0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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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을 하시면

우리 자신의 뜻만을 관철하기 위한 기

닙니다. 우리는 이아침에 각자의 소원을

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오실 것을 약속

도입니다. 차라리 보고를 주님께 하거나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 기도를 드립니다.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통보 수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처럼 먼저 하나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 (4절)

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순종의 기도는 물론 예수님의 겟세마

그래서 그들은 감람원에서 예루살렘으 로 모였습니다. (12절) 기도를 시작하면서 성령님을 기다렸습 니다. 그들이 왜 그곳에 모였습니까? 예 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

네 기도입니다.

리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위해 기도해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 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 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 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 22:42)

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

종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인간적이 야망을 이루 는데 쓰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 는 일에 쓰임을 받는 순종의 기도가 하

며 모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 였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

의 기도의 끝은 그분의 뜻을 이루어드

예수님도 그분이 원하시는 제목이 있

나님께 올려지기를 빕니다.

었습니다.

" ...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기도의 목적

마음의 순종만이 아닌 행동하는 순종 이었습니다. 순종의 삶으로 모여 기도하 며 성령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들이 기도를 하지만 순종과는 전 혀 상관이 없는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

완전하신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시기 에 십자가는 그분에게 엄청난 고난이었

어느 청년의 집 앞에 큰 바위 덩어

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개인적인 소원은

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바위가 싫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능

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꿈에 하나

한 그 고통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다. 새벽기도를 하지만 이미 우리 자신 의 뜻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지 않습 니까?

그러나 그분의 기도는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라고 시작됩니 원하나이다.” 입니다.

라!" 그 말씀에 용기를 내어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바위

니, 허락해 주세요. 아니면, 제가 이렇

울하고 분해서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와 그 옆에 앉으며 말했 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피 우 느냐? "하나님 때문입니다. 제가 있는 힘을 다해서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 겨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 이 없단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 이야.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 렴." 그는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은 강한 남자가 되어 있었습 니다.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

다. 마지막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하나님, 제가 이것을 가지고 기도하

최요한 목사

섬김의 교회 담임

게 하고자 하니, 가만히 보고 계세요.”

기도마저도 순종입니다. 개인적인 간구

는 조금도 움직여 지지 않았습니다. 헛

이 정도의 기도입니까? 그렇다면 오직

나 또는 요청이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

고생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억

세상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를 해 결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 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다른 그 누구 도 아닌 기도하는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감동이 있는 글

2020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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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기회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순종의 삶을 살 수 없듯이 기도도 안 하는 사람이 전도를 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는 사람이 신령한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예배에 열심을 내는 사람 없고 봉사의 일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도 없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기초요 시작과 끝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성령 충만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으며 그런 사람이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거듭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진실된 기도는 믿음이 자라게 하는 밑거름과 같은 것이요 깊은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지름길이다. 사람은 기도를 통해 더욱 정직해지고 거룩함을 힘입는 사람이 된다. 자기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기도하지 않는가? 늘 나를 공격하는 마귀를 어떻게 이기려고 기도하지 않는가? 인간의 힘은 늘 한계점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열쇠요, 그 속에는 하늘의 보화가 가득하다.

이 고통을 통해서 무엇을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시려는 지를 알아야 한다. 어려운 역경들을 통하여 가르치고 훈련 시키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점점 힘들어진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알려 하지도 않고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의 유익을 취하는 자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불평불만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고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다 해야 한다. 자신은 순종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는 강도 같은 짓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데 왜 절망하며 좌절에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내 자신이 전능하지 못하고 세상을 감당할 힘이 없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 기도는 충족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요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하는 힘이요 근원이다. 믿는다면서 왜 기도하지 않는가!!!☆자료/ⓒ창골산 봉서방

기도하지 않으면서 주시지 않는 것 때문에 불평불만 하는 악을 버려야 한다. 문제를 안고 불평하기 전에 얼마나 깊은 기도에 몰입 해봤는지 스스로는 알 것이다. 목숨 걸고 인생을 기도로 풀어 가려고 금식기도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으면서 불평이 앞서는 것은 전혀 신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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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33)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사무엘상 9:1-2>

우리는 지금까지 사무엘상 1-8장까지

데 라헬은 막내인 베냐민을 난산 끝에

두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사

를 32번의 강해를 통해 살펴보았습니

낳다가 베들레헴에서 죽어 길가에 장

울은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외적

다. 이제 잠시 숨고르기를 끝내고 9장

사지내집니다.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

으로 키도 크고 잘 생겼는데 거기에다

부터 강해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1-8

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가 겸손하고 선하기까지 합니다. 성격

장까지의 중심인물은 ‘사무엘’이었습

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

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의 됨됨이를 오

는 관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

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마지

이라 불렀더라”(창세기35:18).

늘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

로 그 사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

속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이 ‘중심’

막 사사이면서 동시에 사사시대에서 왕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정시대로 옮겨가는 역사적 시대적 변

그녀는 죽어가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

화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렇게 불렀습니다. ‘베노니’, 즉 ‘슬픔

사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한 마디로

까? 그 못난 이새의 아들 다윗을 사울

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요

참 잘난 사람입니다. 가문, 외모, 성품

다음 왕으로 기름 부으실 때 하십니다.

이제 사무엘상의 중심인물이 사무엘

셉은 ‘베냐민’, 즉 ‘오른손의 아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갖출 것

에서 ‘사울’로 옮겨 갑니다. 그는 이

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서 오른손은

다 갖춘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스라엘이 처음으로 도입한 왕정체제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또한 야곱은 죽기

서 보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

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

초대 왕으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

전에 자신의 12아들을 축복하는 중에

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합

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베냐민을 향해 이렇게 축복합니다. “베

니다. “아니, 이런 사람이 성공 못하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하셨습니

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

면 그 누가 성공하는 삶을 살겠어. 안

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사무

다. 저는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오늘

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

그래?” 그런데 사울 이야기의 결말은

엘상16:7).

본문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로다”(창세기49:27).

무엇입니까? 실패입니다. 실패한 왕입니

아무리 용모와 외모가 잘났어도 하

다. 자,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결론을

나님을 향한 중심이 흐트러지면 사울

생각해 보겠습니다.

처럼 실패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

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다윗을 먼

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님이 언제하십니

저 선택하시지 않고 사울을 선택하셨

여기서 ‘물어뜯는 이리’하는 표현

는가? 하나님의 선택에도 인간적인 조

은 용맹스러움을 나타냅니다. 베냐민

건이 우선시 되는가? 먼저 사울이 어떤

지파들이 후대에 용맹스러운 용사들이

먼저 하나님의 쓰심과 선택에 있어서

사람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사사

인간적인 조건들이 성공과 실패의 절대

에는 그의 가문과 외모를 통해 사울이

기 후반부에 보면 베냐민 지파들은 다

적인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합니다.

른 11지파와 싸워서 이길 정도로 용맹

사울은 모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인

마지막으로, 그러면 용모와 키를 보

스러움을 보여주었던 지파입니다. 그래

정할 만한 조건들을 소유하고 있었음

지 말하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그런

첫째. 그는 유력한 가문의 아들입니

서 베냐민 지파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패한 왕이었습니

조건을 가진 사울을 이스라엘 초대 왕

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런 능력 있고 용맹스러운 자파의 후손

다. 그러나 다윗을 어떻습니까? 사울과

으로 먼저 택하셨을까요? 차라리 처음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들 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신

는 정반대의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사

부터 다윗을 선택하시지... 이 질문에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

약의 사도바울 선생님도 자신을 육신

람입니다. 베들레헴 촌놈입니다. 가족

대한 답이 그의 이름 속에 숨어 있습

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

적으로 인간적으로 자랑할 만한 조건

들 특히 아버지 이새의 관심 밖에 있었

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

람이더라”(사무엘상9:1). 사울의 아버지

중의 하나로 ‘나는 베냐민 지파다’라

던 막내였습니다. 직업도 양치기였습니

인지 아시니까? ‘요구하여 얻은 자’라

의 이름은 ‘기스’입니다. 본문은 그

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다. 어느 것 하나 씀임 받을만한 조건

는 뜻입니다. 누가 누구를 요구하여 얻

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

었다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를 가리켜 ‘유력한 사람’이라고 소개

적인 조건이 별 볼일 없어도 하나님을 향해 중심이 바로 서 있으면 다윗처럼 성공합니다.

합니다. 여기 ‘유력한’의 히브리어 ‘

셋째, 그는 외모가 잘 생긴 사람입니

은 그를 왕으로 선택하셨고 성공한 왕

사울과 같은 인간적인 조건을 갖춘 사

하일’의 뜻은 ‘재산이 많은’, ‘강력

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

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

람을 왕으로 요구했다는 말입니다. 그

한 힘이 있는’입니다. 한마디로 사울의

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하는 인간적인 조건으로 성공과 실패

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그런

가문은 재산이 많고 파워도 있는 집안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를 가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

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이었습니다.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

울처럼 잘난 사람도 쓰시고 다윗처럼

여러분들이 사울을 왕으로 선택한 하

라”(사무엘상9:2)

본문은 사울을 ‘

못난 사람도 쓰십니다. 성격이 좋은 사

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둘째, 그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입니

준수한 사람’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

람도 쓰시고 지랄 같은 사람도 변화시

어떤 오해냐 하면, ‘아, 하나님은 사울

다. 베냐민 지파는 야곱의 12번째 막

해서 강조합니다. 여기 ‘준수한’이라

키셔서 쓰십니다.

이 실패할 것을 아시면서도 일부러 백

내아들 ‘베냐민’의 후손들입니다. 베

는 히브리어는 ‘토브’인데, 기본적으

냐민의 어머니는 ‘라헬’입니다. 라헬

로는 ‘선하다’는 뜻인데, 외적인 ‘아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과

그러면 사울의 실패는 사울 자신의 책

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그런

름다움’과 성품적인 ‘겸손함’을 모

쓰심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

임이아니라 그를 왕으로 선택한 하나님

성들의 요구대로 사울을 선택하셨구나.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10월 22일

에 초점을 맞춘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13

의 책임이네.’라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의 책임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하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면 세

님과의 관계에 대한 책임, 말씀에 순종

상적으로 잘난 사람은 쓰시지 말고 못

해야 하는 책임,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쓰심에

인간적인 조건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난 사람만 쓰셔야 합니까? 아니죠. 앞

흐트러트리지 않는 책임입니다. 사울의

세상적인 잣대를 갖다 대서는 안 됩니

금수저든 흙수저든 상관없습니다. 그런

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쓰심과

실패는 영광스럽게도 왕으로 선택되었

다. 때로는 그런 조건들도 중요하기도

외적 조건을 초월하며 역사하시는 하나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 사람

지만 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면 안 됩니다.

님을 믿으십시오. 끝까지 다윗처럼 중

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 책임을 하나님

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

심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렇게 할

께 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구대로 선택된 왕이 실패한 왕으로 끝

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시야를 가지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쓰심에 결코 부

과 쓰심은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끝까

나버리는 것을 경험한 이유는 그들의

사람들을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

끄러움의 존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사람

왕 요구가 불신앙적이고 인간적인 요구

을 외모로 취하면 안 됩니다. 인간적

무시하고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내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사단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모였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피곤하여 졸면서 기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 밤은 깊은 시간이였을 것이다. 그 깊은 밤에 제사장의 뜰안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누가 불러 모았을까? 자발적으로 모인 것일까?

인 조건을 내세워 그렇지 못한 사람을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문제 앞에 무릎꿇기 보다는 거리에 나가서 진리를 위해 싸운다는 명목으로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그리스도인들을 흥분하게 하고 바쁘게 만든다. 마귀의 수법에 이용 당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본연의 자세는 먼저 무릎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열심히 봉사 하는 것 마귀는 하나도 무서워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강력한 무기는 오직 기도 밖에 없다. 저들을 대적할 핵무기 보다 강한 것이 기도다.

군중들의 심리는 선동에 의해서 바뀌기도 한다. 선동하는 자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의지와 생각이 군중심리에 의해서 다스려진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들을 지켜 주신다. 군중 심리에 속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묵상해 보라.

얼마전만 해도 호산나를 부르며 찬송하던 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군중심리에 휩싸여 함께 외치고 있음은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수가 없다. 공산주의의 시작이 그러했고 그들은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혁명을 일으켜 정권들이 무너지고 나라가 바뀌기고 역사를 소용돌이로 몰고 가기도 했다.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 할 것이지를... 우리가 기도를 포기 하고 거리로 나가면 나갈 수록 마귀는 군중들을 이용하여 더욱 강하게 교회를 공격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다. 누가 나쁘다고 하면 확인도 하지 않고 먼저 정죄부터 하는 것이 세상이다.

십자가를 지시는 막중한 성업을 앞두고 주님은 먼저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으셨다. 마귀는 원인을 알수 없는 군중들을 그 밤에 불러 모아 주님을 마침내 십자가에 달아 죽이셨으나 주님은 그들의 궤계에 이용당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십자가로 승리하셨다.

기독교를 향한 세상의 눈길이 따갑다. 코로나의 확산이 교회의 탓인양 일부 선동 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실 확인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돌을 든다.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이 헌신 하는 그 무엇도 무서워 하지 않는다. 다만 기도만 하지 말라고 한다. 봉사하는 일에 제발 바빠서 기도 할 시간을 갖지 말기를 원하고 있다. 오늘 날 교회가 당하는 수모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도 크지만 이것을 역이용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도가 먼저다. 전능하신 주님은 우리의 무릎 꿇음을 기다리신다. 무릎 꿇는 자가 반드시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평정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기도 하는 자의 편이시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목회 칼럼

2020년 10월 22일

14

승리자 사람들이 원하거나 좋아하는 것과 하나 님께서 그들이 원하거나 좋아하기를 바라 시는 것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결과에 따라서 행복해 하거나 불행해 한 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 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면서 잘 살기를 바 라신다.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장수하기 를 바랄지라도, 질병과 고통과 범죄와 재앙 은 더 많아지는 듯하다. 2020년 10월 중순 에는, 전 세계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감염 된 사람들이 이미 4천 만명이고 죽은 사 람들이 111만 명이 넘었다. 미국에서는 20 명 중의 1명이 확진이 되었다. 폐결핵으로 매년 140만 명이 죽지만, 미리 약을 복용 하면 건강을 회복하고 전염이 되지 않으니 다행이다. 매년, 심장마비로는 160만 명이 죽고, 암으로 100만 명이 죽으며, 중풍으 로 50만 명이 죽고, 자살로 인하여서는 80 만 명이 죽고, 차사고로 135만 명이 죽어 간다. 온갖 질병과 사고와 전쟁과 재앙으로 인하여 1억 명 이상이 죽는 실정이다. 생명 과 사망의 판단으로는, 사망은 실패와 패 배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합당한 생명이 나 사망은 성공이요 승리가 되는 것을 깨 달아야 한다. 부활과 천국 영생 복락 상급 권세 존귀함 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용하시는 사람 들에게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 을 모르고 방황하거나 실수를 하거나 죄를

지을 때가 있음을 주의를 하여야 한다. 매 사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신중하게 처신하 여야 할 때이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승리자는 겸손하고 화평하고 선한 싸움을 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는 자이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하고 부와 존귀와 생명을 얻거나 유 지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매 순간 호 흡과 맥박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식 하고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국생물 들과 장로들과 천사들과 같이 겸손하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심판자이심을 기억하 면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손하여야 한다. 겸손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비결이고 교 만을 이기는 힘이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추 악한 사람들보다 낮아져서 그들의 희생양 이 되시기까지 겸손하신 사실을, 크리스천 들은 기억하면서 본받아야 한다. 화평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덕목이다. 불만과 불공평과 이기심과 비겁함과 욕심 과 미움과 분노하는 환경에서 화평을 하기 위하여서는, 평안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 평 안은, 하나님이 주실 때에 가능하고 성령의 열매인 평화가 있을 때에 가능하고 하나님 이 붙잡아 주셔야 가능하고 하나님의 사 랑과 신실하심이 임하여 가능하고 의의 열 매인 평강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또한 하 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잠잠케 할 때에 화평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하여서는, 혈기와 육체의 힘과 무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 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온유와 인내가 필요하다. 똑똑한 사람은 선한 싸움을 외 면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심판이나 선한 싸 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숙한 사람은 선 한 싸움을 순순히 감당하며 예수님의 희생 을 본받는다. 불의를 이기는 강한 의가 필 요하고, 추함을 물리치는 경건이 필요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이 필요하고, 미움 을 이기는 사랑이 필요하고, 거친 마음과 언행을 극복하는 온유함이 필요하고, 절망 과 포기를 극복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 리고 선한 싸움을 나중까지 혹은 끝까지 할 수가 있어야 주의 군사이며 의의 면류 관을 얻게 된다. 저주하는 자를 축복할 수가 있을 때에 승리자라고 말할 수가 있다. 저주하는 자 를 위선이나 속임이 없이 축복을 하기 위 하여서는 용서하는 마음이 커야 한다. 용 서는, 진실로 큰 자나 강한 자나 영의 사 람이나 하나님의 자녀나 천국시민이 되어 야 할 수가 있다. 용서는, 영육혼의 질병과 괴로움을 건강케 하고 마귀의 간교한 시험 과 올무와 함정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또한 용서를 받는 자는 바울과 같이 회개 하고 죄악을 금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합당 하게 살아야 한다. 용서를 받았다고 죄악 이 잊혀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 님께서 용서하여 주셔야 죄의 삯을 탕감받 게 된다. 예수님과 스데반이 자신을 죽이는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자들을 용서하였고 하나님께 그들은 그들 이 하는 것을 모른다고 하면서 죄를 그들 에게 돌리지 말라고 고백하였으나, 그들은 회개나 변화됨이 없어서 결국에는 엄청난 화와 재앙을 오랜 세월 동안 받고 있는 것 이다. 다시 주어 담지 못할 물이나 죄악을 전부 쏟아 부어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승리자가 되는 과정을 담당하지 않는 자 는 게으르고 악한 자이다. 운동하기에 지 장이나 탈이 없는 운동선수로서 경기에 임 하지 않는다면 가장 어리석은 운동선수이 다. 일을 하기에 지장이나 탈이 없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자는 게으르고 쓸모가 전 혀 없는 자이다. 경찰이나 군인이나 검사나 판사로서, 정의를 행하지 않는 자는 악한 자이다. 의사나 간호사로서 환자를 치료하 지 않거나 돌보지 않는 자는 게으르고 악 한 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비록 완전한 사람은 없을지라도, 유비무 환이 필수이다. 하나님의 병기가 강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지속하고 자신을 지키는 히 든카드나 결정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 나님께 보호나 도움을 받도록 기도하며 애 를 써야 하고,주일예배: 시험에 들거나오전 죄를 11:30 짓지 않 (장소: 2821 S 유스주일예배: 주일 오전 10:30 (장소 고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마음 수요예배: 오후 7:00 (장소: 5651 S 이 항상 있어야 한다.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2821 S. Parker Rd. Aurora, CO 80014


예배학 강좌

2020년 10월 22일

15

“성만찬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인가요?” “우리 교회 목사님은 성만찬 예식이 있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에 관한 설교를 하십니다. 성만찬을 하는 날에는 다른 주제의 설교를 하면 안 되나요?” “성탄절은 주님이 탄생하신 기쁜 날이기 때문에 성만찬을 거행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인가요?” 근대 개신교회들은 성만찬의 의미를 ‘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제한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만 찬이 거행되는 날이면 설교 주제는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 희생’에 초점이 맞춰졌 고, 설교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초대교회의 성 만찬 이해를 보면 이보다 훨씬 더 심오하 고 풍부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 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찬식은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 며 기쁨으로 떼는 떡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46은 신약의 교회가 “날마다 마음을 같 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 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 을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 말하는 ‘떡을 뗌’은 가장 원초적 형 태의 성찬식을 의미합니다. 이 최초의 성찬 식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 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떡을 떼신 사건에서 기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은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 에게 현현하셔서 친히 떡을 떼어 주셨으며 (요 21:13),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기 도 했습니다.(행 10:41-42) 그러므로 성찬식 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먹는 기쁨의 잔 치인 동시에 참여자들이 모두 이 식사를 통해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기쁨과 교제의 식사였습니다. 둘째, 성만찬은 ‘감사의 식사’입니다.

성만찬을 뜻하는 영어 단어 ‘유카리스 트’(eucharist)는

헬라어

‘유카리스테

인’(eucharistein)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는 데,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감사’입니다. 성만찬은 본래 예수님에 의해 제정되었지 만, 예수께서 제정하신 마지막 만찬은 유대 인들의 식사 의식 자리에서 있었던 것이며, 그들의 식사 의식은 곧 창조와 구원의 역 사를 인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떼는 떡이 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 성만찬의 감사 주제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셋째,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¹ 를 지금 여기에서 재현하는 것입니다. 떼제 공동체의 지도자 맥스 투리안(Max Thurian)에 따르면, 성만찬은 성자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희생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 사로써 교회가 예전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며, 성자께서 행하신 중보사역에 교회가 성 령 안에서 참여함으로써 구원이 모든 참여 자에게 허용되는 것이고, 성령 안에서 최상 의 찬양과 완전한 성별의 행위를 통해 교 회가 자신을 성자의 중보와 일치하여 성부 께 드리는 봉헌²의 행위입니다. 물론 그렇 다고 해서 이러한 교회의 행위가 그리스도 께서 바치신 희생을 통한 구원에 무엇을 첨 가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더욱이 성찬 식 안에서 일하시며 주도권을 쥐고 계신 분 은 교회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 생의 은총이 성찬식을 통해 모든 참여자에 게 다시 효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넷째, 성찬식은 장차 주님께서 친히 베풀

어주실 천국잔치의 ‘현재적 미리 맛봄’입 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마지막 만찬에 서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 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22:30) 이 말씀은 적어도 두 가 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성대한 잔치가 베풀어지는 곳이라는 것, 그 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석상 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떡과 포도주는 일체 의 주림과 목마름이 없고 모든 눈물이 씻 겨질 천국에서 먹고 마시게 될 그 떡과 포 도주를 지금 여기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라 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임하는 성도들은 천국을 대망하며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1975년에 개최된 정교회 회의 (Etchmiadzin Consultation)가 내린 정 의와 같이 “진실로 성찬 예배는 교회 생 활의 절정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축하 는 것이고,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피에 함 께 동참하는 것이며, 장차 완성될 하나님 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찬식의 의미는 실로 인간의 이성과 합리 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참 여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비한 영 적 사건입니다. 스웨덴 웁살라의 루터교 대주교였던 브 릴리오스(Yngve Brilioth)는 그가 쓴 유 명한 『성만찬 신앙과 실재』에서 성만찬 의 주제를 다섯 가지로 요약·정리했는데, 그것은 감사(Thanksgiving), 교통과 교제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communion and fellowship), 기념 또는 역사적 의미(commemoration and the historical), 희생제사, 그리고 신비 혹은 임재(mystery and presence)입니다. 최 근에는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성만찬과 종 말론적 사건으로서의 성만찬 개념이 첨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의미 외에도 성만찬의 의미는 실로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한마디 로 성만찬은 하나님의 구원사 전체와 관련 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설교의 주제가 무엇이든 모두 성만찬과 관련된다는 뜻도 됩니다. 성만찬의 의미를 알고 참가하면, 참 가할 때마다 더욱더 깊고 풍부한 성만찬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

[보충설명] ¹ 희생제사(sacrifice): 본래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바친 제사를 의미했으나, 초기 교 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만찬을 희생제사라고 불렀다. 즉 성만찬 예 식을 새로운 희생제사로 본 것이다. / ² 봉헌: 봉헌은 라틴어 ‘오블라치오’(oblatio)에서 온 말 로, 영어는 ‘오블레이션’(oblation), 또는 ‘오퍼 링’(offering)이라 한다. 봉헌은 두 가지 의미를 동 시에 포함하는데, ‘바치는 행위’와 ‘바쳐지는 물건’이다. 예배에는 언제나 봉헌이 수반된다. 봉헌이 없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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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섭리

2020년 10월 22일

18

(제12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9. 선지자의 대표, 엘리야(2) 10.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한 구원섭리(1)

이와 같이 엘리야는 이스라엘 전 민족 이 우상 숭배에 빠져 멸망할 지경에 있 을 때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거짓 선지자들을 죽이고 전 민족을 구하 는 일을 감당한 참 선지자들의 대표였다. 신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 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 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 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 을 그는 지켰다. 십계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우선 제 1계명부터 제 4계명까지를 지켜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가장 욕되게 하는 죄가 우상 숭배의 죄인 것을 우리는 깨 달아야 한다. 온 민족이 이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을 때에 엘리야는 죽음을 무릅 쓰고 이 계명을 지키고 민족을 구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뻤으면 엘리야에 게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는 축복을 주셨겠는가! 그 엘리야가 변화산정에서 모세와 더 불어 영광중에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예 루살렘에서 고난 받으실 일에 대해 이야 기를 나누었다고 성경에 증거되었다(눅 9:28-31). 이를 근거로 계11장에 증거된 두 증인도 모세와 엘리야일 것이라는 주 장이 설득력이 있다. 오늘 우리 교회시대의 성도들에게도 이 영광의 축복이 약속 되었음을 믿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현대판 우상들을 훼 파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순종 함으로 기쁨을 드리는 믿음생활 하기를 바란다.

10.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한 구원섭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약속대 로 성취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리고 일평생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따 라 일하셨다. 하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셨고 결국 “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십 자가를 지셨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 었다”(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하시고 운 명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인 류구원의 토대가 되는 사건이다. 타락한 인류 앞에 계시된 하나님의 2대 성품은 절대공의와 절대사랑이다. 하나님의 절대공의는 인간의 어떠한 죄 도 용납할 수 없다. 반면에 하나님의 절 대사랑은 인간의 어떠한 죄도 용서할 수 밖에 없다. 타락한 인간을 놓고 하나님의 이 절대 적 두 성품의 갈등이 예수님의 십자가상 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인간 과 똑같은 모습으로 육신을 입고 오셔 서 인류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절대공의를 이루시 고, 동시에 인류의 모든 죄가 용서될 길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5:15-16)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이 열림으로 하나님의 절대사랑이 성취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위에서 하나님 의 공의의 심판과, 사랑의 용서가 이루 어짐으로 공의와 사랑 간의 모순의 일치 (paradoxical-unity)가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죄 문제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가 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죄 인이 의인이 되고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 의 자녀가 되고 어두움의 자식이 빛의 자녀가 되고 지옥이 하나님 나라로 바 뀌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 해서 이루신다. 성령님을 통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은혜를 믿어 영접함으로 죄 용서받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 로마서 8:14-18의 말씀을 인용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 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 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 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 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일)의 목적은 우 리 죄인들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 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십자가의 보혈 의 은혜)을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 와 하나님의 의에 참여하도록 인도하시 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죄책에서의 용서와 구 원을 받는 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공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 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는 하나님의 선 물이다(엡2:8) 인간이 구원 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 유는 하나님의 이 구원의 진리를 믿음 으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 의로 거부한 까닭이다. 이것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계시하신 참 진리이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 이요 곧 진리요 곧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 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 시기를 먹을 것, 마실 것을 위해 기도하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1-2) 제공: 서선녀 사모


진리의 샘터

2020년 10월 22일

스캇 펙(M. Scott Peck) 박사의 베스트 셀러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인생은 고 해(苦海)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의 말 대로 우리는 수많은 고난의 바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일도 있고, 이뤄지지 않은 꿈과 좌절된 목 표 때문에 아파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 고난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아픔을 지금 겪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난은 피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 삶의 목표는 그저 고통 없는, 다시 말해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 낍니다. 인간으로서 우리 안에는 단순하게 편안한 삶보다는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또 다른 본능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독교 신앙에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 엡 4:13)’이라고 표현합니다. 곧, 그리스도 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 으로써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심과 같이,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하여 내 생명을 내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까지 자라나는 것, 그것이 곧 우리 삶의 목표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 하나, 혹은 내 가족만 이 땅 에서 고통 당하지 않고 잘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이기심이 가장 큰 특징인 존재로부터 사랑

을 위하여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존재로의 변화, 그것이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우리 삶의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 질수록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 운 곳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그러 한 목표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혹 은 그것을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책임이라 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책임 을 느끼는 것은 동시에 가장 귀한 복이 되 기도 합니다. 세상의 존경을 받는 명문 가문의 자녀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책임입 니다. 그러나, 그 명문 가문에 어울리는 사 람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바 로 그 명문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세상에 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명문 가문에 입양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8:14-15). 그러므로,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가문에 들어오면,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 움들은 그 가문의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 정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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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우 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화의 과정 속에서 인간이란 반드시 죽 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선명하 게 이해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우리 자신 의 죄와 불완전성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요, 이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하여 이해하 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과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 며, 그 아버지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그리하셨듯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의하고 악한 것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맞서 싸우는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겪어야 했고, 겪고 있는 모든 아 픔과 슬픔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아파하고, 누군가의 슬픔을 나의 슬픔처럼 슬퍼할 줄 아는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가 는 과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집안에 입양된 사람에게 고난이란 그렇게 자라나 게 하는 채찍이 되기도 하고, 자양분이 되 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육신의 질병을 비롯하여 여 러 가지 고난을 겪었던 도종환 시인은 이 런 시를 썼습니다.

19

박현수 목사 갈보리교회 [축복]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 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 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중략)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오늘, 우리에게는 여전히 짊 어지고 가야 할 많은 삶의 무게가 있습니 다. 그 속에서 우리가 도종환 시인처럼 노 래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복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라고 하는 한 인격 안에 열 려진 길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해(苦海)의 삶 중에도, 그 모든 삶의 무게가 전부 내게는 축복이었다고 노래할 수 있는 우리가 되는 기적을 꿈꿔 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 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 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참빛교회 온라인 예배 코로나-19로 인하여 Stay at Home Order 가 진행되는 동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한어, 영어 예배 주일 오전 10시 (그 외 특별 집회들 홈페이지 참고) YouTube Channel: True Light Community Church (https://tinyurl.com/TLCCYouTube) 혹은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들어오세요 (https://ko.truelight.church) 문의: 720-509-9112 pastorjohn@truelight.church


목양 칼럼

2020년 10월 22일

20

헤어지자! 구약성경 창세기 13장에 보면 이민 와

면 선교계획을 세운 바울과 바나바가 마

서 삶의 자리를 잡아가던 삼촌과 조카

가 요한의 문제로 심히 다투다가 헤어지

가 헤어져야 하는 슬픈 이야기가 나온다.

는 슬픈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행 15:39).

사회생활이나 신앙생활에서 이 사실을

오성관 목사

이미 경험한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한다.

벧엘교회 담임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자신의 수단으 인생의 헤어짐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

형제들 간에 피 터지게 싸우느니 차라

로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사라에게 자

일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이

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판단한 아브라함

기 아내를 아내라 하지 말고 누이로 하

같이 어울려 사는 곳에서 아브람과 롯의

의 선택은 탁월하기만 하다.

라고 했다’(창 12:13)가 타향에서 망신만

종들이 서로 다투며 싸움을 한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 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 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 였는지라”(7절)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는 현실의 집안싸움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이방인들 앞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신앙 인의 모습이 정말 추하게 보였기 때문이

톡톡히 당했다. 그런데 이런 위기에서도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브람이 헤어

애굽에서 나올 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

지기로 결단한 후 조카에게 기득권조차

내를 찾았고 바로가 건네준 많은 재물과

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소유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이런 아 픈 경험을 한 그로서는 다시 그런 잘못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 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 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 리라”(8-9절)

을 저지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밤새 머

게 된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 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 았더라”(18절) 하나님께 예배드리기에 성공한 사람은 어떤 선택에서도 바르게 한다.

리를 싸매고 자신이 계획하고 선택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게 훨씬

예배와 믿음의 길만을 선택한 사람들

더 낫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아브람

이 성경에 많이 나온다. 그들은 믿음의

의 양보에는 이런 뼈아픈 신앙적 경험이

길을 따라간 아브라함이요, 궁중의 삶

들어 있는 것이다.

을 버리고 과감하게 고난의 길을 택한

다. 세상에서 교회 나가는 그리스도인들

모세요, 바벨론의 화려한 문화에서 안락

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있

이런 선택을 하도록 한 이유가 또 하

한 삶을 포기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고개를 흔들며 ‘정말 못 봐 주겠다!’

기에 양보가 가능했을 것이다. 조카 롯처

나 더 있다. 그는 예배의 사람이었다. 애

요, 보장된 왕도를 포기하고 피난길에 오

말할 것이다.

럼 가축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염려하

굽에 내려갈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른 다윗이며(히11:24-32), 예수님을 따르

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전에 애굽에

애굽에서 나아오자마자 예배를 드린다.

기 위해 세상과 잘 헤어지는 오늘의 모

요즘 교회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

서 자신의 머리로 잔꾀를 부리다가 얼굴

로 모임을 비대면으로 하고 있어서 교

을 들지 못할 정도로 망신을 당했던 기

회 안에 다툼의 문제가 별로 없다. 다툼

억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는 인간적으로

의 문제는 교회가 어려울 때에는 비교적

잔꾀 부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나님만

없지만 문제가 불거질 때를 보면 대부

을 신뢰하는 지혜 있는 모습이다. 현재를

분 교회가 부흥할 때, 새로운 일을 열심

보고 선택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며 모

조카에게 기름지고 물이 풍성한 땅을

히 하려고 할 때, 전도나 선교를 하려고

든 일의 결정을 하나님께 맡겨 놓는 배

양보한 후에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를

할 때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도행전에 보

짱이 생긴 것이다.

듣게 된 아브라함은 예배자의 길을 걷

든 제자들이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 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 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 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 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 하고.....”(히 11:24-25)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1

2020년 10월 22일

종교개혁의 달 10월, 루터가 남긴 10가지 신학 원리 중국 우한 폐렴,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태가 이 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정신없이 코로나와 싸워오 느라 세월을 잊고 살았는데, 정신을 차리 고 캘린더를 응시하니 벌써 10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10월에는 항상 기다려지고, 또 고대하는 날이 있다. 그것은 10월 31일 종교개혁 기 념일이다. 503년 전인 1517년부터 유럽교회 는 종교개혁을 통과하면서 영광스러운 복 음의 회복과 참된 교회의 부흥을 경험했다. 흑사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고통당 하던 당시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을 주님은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는 대사건을 통해 위 로해 주신 것이다. 오늘날 코로나19 팬데믹 으로 고통 중에 있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 인들에게 주님께서 마련하신 위로의 선물 도 한국교회의 놀라운 회복과 부흥이길 간 절히 기도한다.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면죄부를 포함한 교황의 폭정과 가톨릭의 비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토론을 제안하는 반박문을 내건 것이었다. 루터는 그 이후 약 30년간 종교개혁운동을 이끌면서 다양한 신학적 작업을 하게 된댜. 이런 신학적 작업을 통해서 루터는 복 음주의 개신교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의 신 학이 우리에게 남기는 영구적인 유산을 아 래와 같이 10가지로 요약해 본다. 이 유산 들을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잘 회복하고 적용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더 밝아 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만사와 만물 그리고 우주와 역사의 중 심이시며, 하나님 없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과 신앙을 회복할 때 인생의 참된 가치, 의미,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구원 은 인간이 주도하는 행위나 공로가 아니 라 하나님의 행하심에 달려 있다는 의미 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구원은 철저히 하 나님이 주권적인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 는 뜻이다.

1.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2.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3. 전적 타락과 인간 의지 속박 4.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5. 율법은 죽이고, 복음 살린다

넷째는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The Cross Alone is Our Theology)이라는 원리이다.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의 신학을 대비시키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대속하기 위한 죽음을 경험한 십자가의 사건이 하나님이 어떠하 신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계시해 준다 고 주장하였다.

첫째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Let God be God!)는 원리이다. 그것은 하나님

둘째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Sola Scriptura),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는 원리이 다. 루터에게 있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최고의 규 범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의미 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자 구원 의 계시이다. 셋째는 의지의 속박(The Bondage of the Will/ De Servo Arbitrio, 1525)이라 는 신학적 원리이다. 루터가 ‘의지의 속 박’이라는 논문을 쓰게 된 것은 인문주의 자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에 반박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는 이 논문을 통해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 을 명쾌하게 논하면서, 인간의 의지가 죄에 속박된 노예의지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따 라서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외부의 구원자를 기다려야 한다.

다섯째는 율법과 복음(the Law and the Gospel)의 원리이다. 루터에 따르면 율법은 죄를 지적하고, 드러내고, 고발하며, 죄인을 정죄하고, 죽인다. 반면 복음은 죄 를 용서하고, 덮고, 죄인을 살린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의 어느 본문을 읽더라도 이 율법과 복음의 원리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 다고 주장하였다. 6.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선물 7. 복음의 중핵, 이신칭의 원리 8. 선행은, 성도의 필연적 열매 9. 만인제사장론, 만인선교사론 10. 소명론, 모든 직업의 성직화 여섯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On the Freedom of a Christian; De Libertate Christiana; 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라는 원리이다. 루터 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논문을 통 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자유 로운 만물의 주로서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모 든 사람에게 의무를 진 종으로, 모든 것에 종속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인에 게 주신 자유가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일곱번째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through Faith by Grace Alone, Sola Gratia et Sola Fide)의 원리이다. 칭의 는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 와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은 그 죄인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예수님 만큼 의로운 자라고 선언하시는 사건이다. 루터 는 이신칭의가 복음의 중핵이라고 주장하 였고, 칭의 교리가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교리(justificatio est 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라고 주장하였다. 여덟번째는 그리스도인의 선행이 오직 은 혜와 믿음으로 칭의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서 필연적으로 열리게 되는 열매라는 원리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이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 에 대한 감사가 기초이며, 또한 선행은 구 원받음의 목적(엡 2:8-10)이고, 성경은 그 선 행을 사랑과 나눔으로 요약한다고 주장하 였다. 루터는 믿음이 어머니라면, 선행은 그 어머니의 모태에 잉태된 아기라고 했다. 참 된 믿음은 선행을 잉태하고 있으며, 참된 믿음은 반드시 선행을 낳는다. 아홉번째, 만인제사장(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의 원리이다. 이 만인제 사장의 원리는 만인신학자론(The Theologianhood of All Believers)과 만인선 교사론(The Missionaryhood of All Believers)으로 확대될 수 있다. 모든 그리스 도인은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다른 어떤 인 간 매개자나 중재자 없이 오직 참된 중보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담 대히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영적인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하나님을 알고, 사랑 하도록 부름받은 신학자이며, 하나님의 덕 을 선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 을 증거하도록 부름받은 선교사이다. 마지막 열번째는 소명론이다. 루터에 따르 면 소위 풀타임으로 교회를 섬기는 성직자 또는 교역자만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자 가 아니라, 만인 즉 모든 그리스도인이 소 명을 받은 자이며, 그들에게 주신 모든 직 업이 성직이다라는 원리이다. 이상 루터가 강조한 10가지 신학적 원리 는 정통 교회 내에서 영구적으로 수용되고 적용되어야 할 원리이다. 이 10가지 신학적 원리 위에 우리 개인의 신앙과 교회 공동 체를 세워나갈 때 한국교회는 더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를 변화되어 갈 것이다. 주님께 서 수일 내에 이 일을 성취해 주시길 간절 히 소원한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 제공: 김정애 권사


에콰도르 이야기

22

2020년 10월 22일

(12회)

한사람의 영향력! 26 Sigchos의 Bendición y Vida 교회

마르코

목사·이진호 선교사

했습니다.

며칠

전 장효빈 선교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통화 중에 남편(이진호 선교사 님)은 지금 한국에 계신다는 것이었습니 다. 가족과 에콰도르 선교사님들이 ‘ 코비드19’를 염려하면서 다 만류했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님은 저에 관한 일화 를 가족과 선교사님들에게 전했다고 합 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제가 한 말 을 그대로 되풀이 하더랍니다. “하나님 이 어떻게 인도하실 지 한국행이 기대 가 됩니다!” 2019년 10월에 ‘에콰도르 국제 복음 신학대학원’의 첫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10월 3일(목) 오전에 에콰도 르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마이아미 공항 에서 ‘키토’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마트 폰에 우 리가 탈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공항이 데모로 인해 폐쇄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가방 4개에 작은 가방 6개나 되므 로 덴버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 다가 키토 공항이 열리면 가기로 결정했 습니다. 항공사의 잘못이 아니므로 호텔 비나 식비 등 모든 비용은 우리가 부담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호텔에 가자마자 잠을 잤습니다. 다 음 날 항공사에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금) 오후 6시 비행기 편으로 갈 수 있 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공항에 나오셨습니다. 가방들이 도착하 지 않아 3일 동안 내의를 갈아입지 못

다음날(토,10/5) ‘오펠리아 시장 천 막교회’의 예배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월요일(10/7) 아침에 ‘페르 난도’ 목사님을 학교 안에서 만났습니 다. 월요일에 시외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는 뉴스를 듣고 주일 밤에 심야버스를 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요일(10/8) 점심에 학생 9분이 참석하 여 함께 식사하기로 했는데 ‘엑토르’ 목사님과 ‘페르난도’ 목사님만 도착했 습니다. ‘엑토르’ 목사님이 하루 연기 해서 수요일부터 수업을 하고 졸업식도 하루 뒤인 토요일에 하면 좋겠다는 의견 을 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학생 1명과 석사과정 학생 1명이 있고, 박사과정 교 수, 석사과정 교수가 있고 그리고 통역 자도 도착했으니까 계획대로 진행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개강예배 시간(3:30pm) 직전에 ‘마르 코’ 목사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오늘 새 벽 4시경에 ‘식초스’를 출발해서 11시 간 30분 만에 도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로 4시간 30분 거리입니다. 중간에 데 모대 차량을 4번 얻어 타고 나머지는 걸 어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석사학 위 졸업예정(박사과정 입학)자들 6명 모 두 도착했습니다. 석사과정은 4분 중에 오직 한 분만 참석했습니다. 졸업식은 금요일(10/11) 오후 3:30에 계 획대로 시작되었습니다. 데모로 인해서 졸업생의 가족들이 많이 참석하지 못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서 안타까웠지만, 은혜 가운데 잘 마쳤 습니다. 다음 날(토) 대대적인 데모로 인 해 우리 일행 10명은 학교 안에서 지내 게 되었습니다. 학교 바로 옆에 교차로 가 있습니다. 이 길은 동쪽과 북쪽에서 키토로 진입하는 큰길입니다. 그 길에서 타이어를 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교 위에서 지나가는 택시 위로 돌을 던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주일 예배도 기숙사 방에서 드렸습 니다. 이진호 선교사님 가족과 화상으 로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 저녁 에 정부는 데모대의 주장을 그대로 수 용하겠다고 해서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 졌습니다. 나중에 들었습니다만 이 선교사님은 우리 일행이 에콰도르에 오는 것이 반갑 지 않았다고 합니다. 데모로 인해 길이 막히고 강의나 졸업식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된다며 전혀 흔들리지 않더랍니다. 이 선교사님은 아슬아슬하게 강의와 졸업식이 잘 진행이 되는 것을 보고 감 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마르코 목 사님이 강의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11시간 30분 동안 걸어서 온 것을 보고 크게 감동이 되어 ‘키토 사랑의 교회’ 건축 헌금을 마르코 목사님이 건축하고 있던 교회로 돌려 먼저 완공할 수 있도 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진호 선교사님의 Face-book에 아 래와 같은 내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와

임동섭 목사

에콰도르 선교사

dslim3927@hotmail.com (720) 371-1722 있었습니다. “Sigchos의 Bendición y Vida" 교회를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거의 완공 이 되었습니다. 아쉽게 올해 코로나 규제 로 인해 입당감사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내년에 갖기로 했습니다. 10년 동안 작 은 천막에서 말씀을 나누고 함께 예배를 드린 ‘마르코’ 목사님과 교우분들 한 국 ‘고흥’의 ‘정권식’장로님과 ‘황경 숙’ 권사님의 헌금과 에콰도르 여러 교 회 교우들의 도움으로 멋진 교회를 세우 게 되어 너무 기뻐했습니다. 요셉처럼 늘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형통한 자가되고 형통한 교회가 되길 축복하였습니다.” 프랑스의 한 귀족이 영국으로 여행하 던 중 너무나 목이 타서 한 상점에 들어 가서 시원한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그러 나 그 상점에서는 맥주를 팔지 않았습니 다. 다른 상점을 찾았으나 그 가게 역시 맥주를 팔지 않았습니다. 귀족은 길가에 있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마 을에는 맥주를 팔지 않느냐?”고 묻자 농 부는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100년 전 ‘웨슬리’ 목사님이 우리 마을에서 한 주간 부흥회를 한 뒤로 지금까지 우 리 마을에는 술이 사라졌습니다.” 부흥 회를 할 당시 마을의 주점에는 종종 이 런 광고문이 붙었다고 합니다. ‘문 닫 음. 주인이 어젯밤 회심했음!’ 어떤 사회 학자의 말에 의하면, 아주 내성적인 사 람이라도 평생 동안 평균적으로 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친다고 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제공: 이국형 장로(한인기독교회)


좁은 길을 걸으며

2020년 10월 22일

23

진정한 코이노니아 오늘날 우리가 맞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기는 어느 한 무리나 한 지역의 사람

사이에 냉담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는

욱 강조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위기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극심하였을 때일수록 성도 간 의 영적 교류를 더 강조한 것입니다. 그

들에게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모든 곳 곧 현재 이 땅 가운데 살아가

그러나 공동으로 겪고 있는 이 초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위기로 인해

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

의 위기를 통해서 새삼 그러한 점을 깨

고통이 있을 때일수록 믿음의 형제자매

가 홀로 지지 않도록 나의 중보와 격려

습니다. 만약에 어떤 외딴 무인도에서 홀

닫고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부족했는지

들, 나의 신앙의 동류들을 돌아보자 한

를 보태야 할 것입니다.

로 살면서 생전 외부로 나오지 않는 이

를 발견하게 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그가 얼

우리는 지금 혼자가 아닌 운명을 같이

라면 모를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

가져다준 반대 유익이 아닌가 생각해 봅

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를 위

한 공동체로써 이 큰 위기를 함께 맞이

왕래하며 살 수밖에 없기에 이 전염병

니다. 그것은 어려운 때를 함께 지나가다

해 중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자는 교훈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보

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이는 없

보니 내가 어렵기에 자연히 곁에 있는 이

인 것입니다.

여주었던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개교회

는 것입니다.

의 어려움도 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의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부터 과감하 우리 개신교회에 소속된 이들은 그동

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바꿔 말하면 지금 이로 인한 어려움에

특별히 우리 신앙인들은 어려운 상황

안 각자의 교회 사역에 매진하며 애써

형제를 돌아보고 뒤에 있는 자매를 살필

처한 이들의 고통이 남 일 같지 않다는

가운데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감당하

왔으나 한 신앙 아래 한 무리라는 동류

수 있어야 합니다.

것입니다. 동일한 시대에 살면서 모두가

고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돌아볼 수

의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연합이란

공동의 위기를 맞이하였다는 것은 서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동류의식입

말을 무색할 정도로 각자 교회의 코이노

에 대해 너와 내가 따로 따로가 아니라

니다. 동시대를 한 신앙을 품고 살아간

니아에만 신경 써 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라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서 살아

다는 것에는 실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

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기에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성도들 을 향하여 너희가 내 마음에 있도다, 내 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

그러나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개교회에

모하노라 늘 증거하였습니다. 영적 냉담

서 이루어지는 친교나 교제 정도의 수준

함에 빠져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

이번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이

지금 어려운 중에 있는 믿음의 형제

을 훨씬 뛰어넘는 개념임을 생각하게 됩

의 습성에 빠지기 쉬운 신앙인들에게 한

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일일이 언급하지

들과 자매들은 또 다른 나 자신입니다.

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고 얼굴 한번

시대 같은 신앙을 공유한 믿음의 동류

않더라도 이모저모로 어렵고 힘듭니다.

그들이 나이고 내가 그들입니다. 성경의

본 적이 없으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형제

로서 서로를 품고 중보하며 협력하여 힘

그런데 이번 위기를 통해 그동안 우리들

표현을 빌자면 함께 복음의 은혜에 참

자매들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는

들고 어려운 신앙의 대업을 완수할 것을

이 무심하게 여기던 형제자매들에 대하

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 간의

것이 그 정신의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부한 것입니다.

여 관심을 쓰게 되는 계기가 또한 되지

깊은 교제요 코이노니아의 실천이라 하

가 어디 있건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기

않았나 생각합니다.

겠습니다.

에 그를 위해 기도하고 중보하기를 마다 하지 않는 것이 코이노니아 정신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코이노 니아의 정신은 너와 나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라는 의식을 고취하여 고통 중에 있

우리가 경쟁이 심화된 환경 가운데 살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 간

다 보니까 어느새 이 시대를 함께 살아

에 관계성을 확대하기 위해 감당하는 제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의 운명 공

는 형제자매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중

가고 있는 동류들에 대해서 참으로 무

반 교류와 교제를 그리스어로 코이노니

동체로서 이 큰 위기에 맞서고 있는데

보하기를 아끼지 않는 것이고, 아울러 모

심하였으며 오로지 나 위주의 편향된 삶

아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도 간에 돈독

이 위기 또한 함께 극복해나가야 한다

든 이들이 하나되어 함께 이 위기를 극

의 방식을 지켜왔음을 솔직하게 되돌아

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며 나아

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임한 모

복해나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 신앙 아

가 서로를 위해 중보하며 복음을 확장하

든 영적 위기와 환경 재해와 각종 전염

래 믿음의 형제자매로서 동시대를 살며

는데 협력하는 모든 의미와 활동을 포괄

병에 함께 대처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

신앙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사

하는 것입니다.

한 노력과 수고도 함께 감당하는 것입니 다. 예수 믿는 기쁨도 함께 누려야 할 것

람들 간에도 교류가 미흡했고 관심이 부 족했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의 끈이 너무

신앙으로 인해 박해와 핍박이 심했

이고, 고통스러운 수고의 짐도 함께 져

도 느슨하여 그를 통해 우리들도 모르는

던 초대교회에서는 이 코이노니아를 더

야 할 것이며, 다른 누군가의 고통을 그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 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 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4~25)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베드로전서 강해

2020년 10월 22일

24

“우리를 부르신 목적”(1) <베드로전서 3:8-12>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 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의미 없는 반복입니다. 나무로 장작을 만드는 사람이 일꾼을 고 용했습니다.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패는 일을 하루종일 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 다. 일당도 두 배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 러나 그 사람의 도끼는 날이 없었습니다. 장작은 만들지 못해도 날이 없는 도끼로 나무를 내리치기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가 할 일에 대해서 가만히 듣고 난 일꾼은 너무 쉬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 니다. 이렇게 쉬운 일에 일당을 두 배를 받는다는 것은 거저먹는 일이었습니다. 기꺼이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두 세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꾼의 얼굴은 피로감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일꾼들은 휘파람을 불어가면서 흥겹게 일하고 있 는데 이 사람은 일하는 것이 전혀 즐겁 지 않았습니다. 몸은 똑같이 힘이 들어 도 다른 일꾼들은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장작이 쩍쩍 쪼개지는 것을 보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끼에 날이 없는 일 꾼은 아무리 내리쳐도 나무는 항상 그 대로였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일당이 문 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오전만 일하고는 주인에게 더 이상은 못 하겠다 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고문하는 일 중에 가장 고통 스러운 것도 같은 일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30m 거리의 이쪽과 저쪽에 원 을 그려놓고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그곳에 갖다 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반대쪽에 갖다 놓는 것입니다. 큰 양동이도 아니고 들기에 아주 쉬운 작 은 것입니다.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여 기 저기 얻어맞고 잠을 못 자게 하는 것 과 비교하면 이것은 아이들 장난에 불 과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은 한 시간도 걸 리지 않습니다.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 다 보면 힘이 들고 안 들고가 문제가 아 닙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지금까 지 쌓은 지식도 경험도 아무 소용이 없 습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실력을 갖추 고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

습니까? 나의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됩니 다. 내가 사는 이유가 없어집니다. 내가 일을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거의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적의식이 더 분명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쉽 게 무기력해집니다. 짜증이 납니다. 쉽게 피곤해집니다. 나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피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분명한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 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이 루어가야 할 목적은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 하는 일입니다.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며 동 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 손하며”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 스도인의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것입 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 밑에 있는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 형제자매라는 호칭이 널리 퍼 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형제, 자매는 한 가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묶 는 가장 견고한 끈이 무엇입니까? 그것 은 바로 하나됨 입니다. 가족에게는 기 쁨도 하나요 슬픔도 하나입니다. 한 사람 이 아프면 모두가 아파합니다. 한 사람이 기뻐하면 가족 모두가 같이 기뻐합니다. 지금 성경은 ‘동정’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성경에는 ‘체휼’ 이라는 말로 나와 있습니다. 체휼이라는 단어를 지금 쓰지 않기 때문에 동정으 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체휼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 원어상 두 가지 단어가 하나 로 결합이 된 것입니다. “같이”라고 하 는 단어와 “느낀다”라고 하는 단어입 니다. 결국 체휼은 같이 느낀다는 것입니 다. 교회는 이 목적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왕이 가

장 아끼는 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왕 은 군사들을 풀어 온 나라를 샅샅이 뒤 졌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최고의 지혜와 학식을 자랑하는 신하들도 말을 찾지를 못했습니다. 이에 안달이 난 왕은 큰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상금을 타기 위해 나섰지만 말은 어디 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바 보가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말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왕은 그 자리에서 벌 떡 일어났습니다. 너 같은 바보 주제에 아무도 찾지 못한 말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고 역정을 냈습니다. 그러나 왕이 손해를 볼 것은 없다는 생각에 찾아보라 고 했습니다. 바보가 왕궁을 나간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을 끌 고 왕에게로 왔습니다. 왕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시 재무상에게 상금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물었습니다. “온 나라에 똑똑한 사람들 도 말을 찾지 못했는데 자네는 어떻게 말을 찾을 수 있었는가?” 바보의 대답 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폐하, 별거 아 닙니다. 그저 제가 말이라면 어디로 갈 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갔더니 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에서는 이 바보처럼 되어 야 합니다. 내 입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 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결과는 그 순간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사성어 가운 데 우리가 잘 아는 ‘역지사지’(易地思 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내 처지가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를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을 보고 이렇게 말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돼!”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마음이 요동치게 됩니 다. 혈압이 올라갑니다. 얼굴이 나도 모 르게 붉어집니다. 상대방과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입니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다. 그 순간 이렇게 속으로 말해야 합니 다. 저를 따라 해보세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생깁니다. 감정이 차분해 집니다. 이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합 니다. “도대체 왜 저럴까!” 그 순간 그 사람에 대해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상대 방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어집니다. 그때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또 따 라 하세요. “오죽하면 저럴까!” 이 생 각을 하는 순간 우리 몸과 마음에 따뜻 한 기운이 들어옵니다. 절대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았던 상대방이 측은해지기 시작 합니다. 그 사람의 처지가 조금씩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 우리는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해 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하나가 되는데 있 습니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마음이 하나 가 되는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 를 바랍니다.

두 번째 부르심의 목적은 형제를 사 랑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8절 하반절을 보세요. “형제를 사랑하 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 혜를 베푸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이 불쌍히 여기시는 성품 때문입니다. 아 담과 하와가 범죄했습니다. 선악과를 먹 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습니다. 그런 데도 그 심판을 늦추셨습니다. 다시 생 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 엇일까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힘이 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죄 가운데 빠졌 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계속 참고 기 다리셨습니다.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십니 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인데도 때리고 죽였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십니 다. 왜요?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복음 을 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자 없


베드로전서 강해 는 양같이 방황하는 것이 불쌍하기 때문 입니다. 마태복음 9:36을 보세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 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성경에서 이 불쌍히 여긴다라는 말은 긍휼히 여긴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 리는 기도할 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죄 를 지적하고 야단치는 자세가 아닙니다. 끝까지 도우려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과는 경쟁을 합니 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과는 절대 경쟁하 지 않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잘 쓰지 못 하는 사람과 달리기를 해서 이겼다는 것 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불쌍한 사람에게는 절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 지 않습니다. 자세를 숙입니다. 있는 체 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 난 사람이라는 것을 절대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 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만을 생각합니다.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 치는 키스 테일러라는 평범한 교수가 있 습니다. 그는 매일 같은 삶을 반복했습 니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학 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저녁이면 집에 돌 아와서 가족들과 지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뭔가 인생에 변화를 줄 일이 없을까 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 디어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열심히 살다 가 갑자기 재정적인 곤란에 빠진 보통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자신 역시 대학을 다니면서 100불 200불이 없어 서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들이 많았다는 것에 착안을 한 것입니다. 그는 결심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봉급

2020년 10월 22일

의 일부분인 350불을 떼어내 적립을 하 는 것으로 기금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달의 월급으로 겨우 사는 서민들에게 예 기치 않는 지출은 재정의 어려움을 가져 다줍니다. 갑자기 렌트비가 모자라는 일, 식품비가 없어서 제대로 먹을 것을 사지 못하는 사람, 전기료가 밀려서 전기가 끊 겨질 지경에 처한 사람, 자동차가 고장이 나 일하러 갈 수 없는 사람 등이 도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단 몇십 달러에서 몇백 달러면 그 당장의 어려운 순간을 이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 단 1회의 도움을 준 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두 번 세 번 계 속해서 남의 도움만을 기대하는 것은 본 인이 살아가는 데도 별로 도움이 안 되 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웹사이트를 개설을 했습니다. 그 런데 이것이 대 히트였습니다. 도움을 필 요로 하는 사람만 그에게 연락을 한 것 이 아닙니다. 이 일에 동참하겠다는 사 람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런 소문 이 TV, 라디오, 신문에 알려지면서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졌습니다. 혼 자서 그저 어려움을 당한 몇 사람을 도 우려고 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 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일 을 계속하기 위해 아파트도 더 싼 곳으 로 옮겼습니다. 매달 적립금을 500달러 로 늘리기 위해 외식도 줄였습니다. 도 움을 줄 사람을 선정하고 기금을 배정 하는 일로 휴식시간은 아예 없어졌습니 다. 그런데도 그는 신이 난다고 했습니 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불쌍 히 여긴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 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나를 가장 행복 하게 만들어줍니다.” 제가 처음 우리 교회에 부임할 때가

서브프라임 경제 위기가 닥칠 때였습니 다. 교회에서 유틸리티 대납 운동을 펼 쳤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갑작스러 운 어려움으로 전기, 수도세를 연체한 사 람들을 도왔습니다. 연체 고지서를 교회 에 가져오면 교회가 직접 그 대금을 납 부해 주었습니다. 한국분들뿐만 아니라 타 인종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도 했 습니다. 바로 이 키스 테일러 교수를 보 고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 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형제를 불쌍히 여 길 줄 아는 마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부르심의 목적은 겸손한 마 음을 갖는 것입니다. 8절 하반절을 보세요. “형제를 사랑하 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겸손의 반대 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인간의 죄 중 가 장 먼저 나오는 악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가 바로 이 교만에서 나왔기 때문입니 다. 천사가 타락한 것은 하나님보다 높아 지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아담과 하 와가 넘어진 것도 이 교만 때문이었습니 다. 사탄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이 유가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런 말이 들려오 자마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생각이 출렁거렸습 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그들을 지탱하고 있던 말씀이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 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말씀 안에서 살 았습니다. 그런데 교만이 마음이 들어오 자 말씀을 던져버립니다. 더 이상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떠나는 것이 곧 심판이요 멸망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서는 절대 살 수 없는 법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역할 때 동기 목사들 수련회를 옥스나드 해변가에서 한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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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그때 한밤중 해변가에 사람들 이 손에 전등을 들고 새까맣게 모여들었 습니다. 그때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 다. 물고기 중에 해변에 나와서 모랫가 에 잠시 머무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 루니온’(Grunion)이라는 정어리 종류입 니다. 남가주와 북가주 해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일입니다. 딱 정해진 시기에 만 벌어집니다. 아무 시간이나 해변에 올 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밤 10시에서 새벽 1시까지만 올라옵니다. 그런데 이 정어리 가 인간이 얼마나 영악한지를 모르는 것 이 문제입니다. 그 물고기가 어느 비치에 몇 시 몇 분에 나온다는 것까지 신문에 발표가 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 시오. 물고기들 중에서 그들이 아주 특 별한 존재들입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다 물속에만 있는데 자기들은 물을 떠나서 도 살 수 있다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 나 그것이 자랑할 만한 일입니까? 아니 몇 시에 어디로 나온다는 것까지 다 알 고 잡으러 덤비는데 그것을 어떻게 피합 니까? 물에서 나오면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마십 시오. 말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신하 지 마세요. 그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교 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교만 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죄 의 특성이 바로 이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교만한 사 람에서 겸손한 사람으로 바꾸시기 위해 서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지만 겸 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성경은 말씀하 고 있습니다. 겸손케 하시려는 것은 우 리를 존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변화프로젝트

2020년 10월 22일

(제3회)

26

내적치유 가이드

1. 내적치유를 위한 묵상과 기도 고통의 방에서 자유함을 얻고 마음에 치유와 평화를 찾는 기도

네 번째, 주변에 사탄숭배나 마귀에게

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

이 열리면 마귀가 목을 조인다거나, 바늘

사로잡혀 고통 당하며 술과 마약에 빠져

나님께 돌아오도록 그들의 마음을 열어

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 즉 볼 수 없는

서 부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주세요. 제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

상태에서 영적인 누군가가 나를 실제로

있는 환경에 처했을 때, 예를 들어, 그러

심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믿음과 지혜와

육체적 공격을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된다.

한 가정환경에서 살거나 교도소에 감금

은총을 허락해 주세요. 어떤 환경에서도

이 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의 방에 들어

낙심치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

2) 시각적으로 공격하는 문: 마귀들이 우

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려고 해도 깨어나

가게 되고 마귀의 공격을 심하게 당할 수

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

리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연약한 상황에

기 힘들고 누군가 목을 조이는 것처럼 느

가 있다.

요. 그리하여 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사

있을 때 나타나서 우리에게 혼동과 두려

끼고 숨쉬기도 힘들게 된다. 마귀가 실지

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회개하며 평

움을 가져다 주는 문이다. 그림이나 사진

로 육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안을 찾게 해주세요.”

처럼 육안으로 또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교도소에 감금된 사람들은 세상 밖의 일반인들과 달리 많은 제한이 있다. 예 를 들어 재소자들은 누구와 같은 방을

것을 보았다.

고통의 방에는 많은 문들이 있다. 고통의 방에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 각 각 12개의 아픔을 주는 문들이 있다. 고 통의 방의 한 문이 열리면 다른 문들도 열릴 수 있고 계속적으로 더 많은 문들 이 열릴 수 있다. 어떤 문은 조금 열려 있 을 수 있고 어떤 문은 활짝 열려 있을 수 있다. 많이 열려 있을수록 우리에게 아픔 이 그 만큼 크고 고통의 방에서 나오려면 그 문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닫아야 한다. 고통의 방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영적인 공격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문이 열리면 다른 문 이 열릴 수 있는 환경 속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고통의 방에 있는 사람들은 영적 인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다음은 12개의 고통의 문에 대한 구체적 인 설명이다.

기도: “예수님, 저의 죄와 주변의 사람들

1) 마귀가 육체적으로 공격하는 문: 이 문

쓰게 될 것인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렇기 때문에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는 환경이다. 감방을 배정받으면 무조건 같은 방을 쓰 게 된 다른 재소자와 함께 24시간을 생 활해야 한다. 교도소에는 죄 가운데 술과 마약으로 찌들어 살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 이 많기 때문에 밖에서 영적인 공격을 경 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이곳에 들어오 면 영적인 공격에 많이 시달리게 된다. 악몽을 꾸기도 하고 악령이 주는 육체 적, 영적 공격을 당하기도 하는 그런 경 우를 교도소에서는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 질 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그러한 영적 세력을 물리치게 되고 평안을 찾는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면 꿈에서 악령에게 눌리거나 공격을 받

보게 되며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악령들

5) 환각으로 공격하는 문: 과거에 경험했

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문은 부도덕하

던 큰 아픔과 고통의 기억을 매일 다시

고 폭력적이며 무서운 환상 또는 검은 그

생각나게 하여 무력감으로 현실의 삶에서

림자 등을 보게 하고 잘못된 죄의 생각

어려움을 주는 문이다.

이나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방이다. 어떤 경우에는 친절해 보이는 것 같은 또 어

6) 상심과 상실감으로 공격하는 문: 사

떤 미혹의 영에 이끌려 관심을 기울이게

랑하는 사람의 죽음, 가족과 헤어짐, 이

되는데 막상 우리의 관심을 차지하게 된

혼 등에서 오는 슬픔, 외로움, 분노, 자책

그 영은 후에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감, 괴로움을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지 않

다. 이러한 악령들은 우리를 속여서 고통

으면 이 문이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사

을 주려고 한다.

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 그 사랑하는 사 람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품고

3) 음성으로 공격하는 문: 이 문이 열리

살기 때문에 고통의 문이 열린다. 사랑하

면 우리는 악령의 정죄와 참소를 당하며

는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별의 편지

그 영에게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에

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실 거라는 부정적

게 주신 모든 것은 잠시의 선물이고 우

이고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리가 영원히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먼

이 마귀에게 속으면 나와 다른 사람을 용

저 간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다 보면 하

서하기가 어렵고 고통 속에 빠지게 된다.

나님께 초점을 두기보다 사람을 하나님보 다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에 빠질 수 있

4) 악몽으로 공격하는 문: 이 문이 열리

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2020년 10월 22일

27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편 1편)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겁습니

시편기자은 복 있는 사람의 모습

“복 있는 사람은...”

까? 가족들과 늘 함께 있을 때는 몰

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그려 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며

이라고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

랐는데 하룻밤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

여줍니다. 나무가 어디에 뿌리를 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사람입니

들이 생각하기에 복 있는 사람은 어

와 아내와 자녀들을 보는데 너무 반

리고 있는가에 따라서 나무의 모습

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과 교

떤 사람일까요? 사람들에게 인기가

갑고 즐거웠습니다. 하루 동안 무슨

이 각각 다릅니다. 척박한 땅에 심긴

제의 친밀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세

많은 사람,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람,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피

나무는 가늘고 왜소하며 잎이 무성하

상이 주는 복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 건강한 사람

곤한데도 즐거웠습니다. 말씀을 즐거

지 못합니다. 하지만 물이 많은 기름

하나님과의 관계의 복을 충만히 누릴

등등 삶이 형통하고 모든 일에 있어

워한다는 것이 이와 같은 의미가 아

진 땅에 심겨 있는 나무는 가지가 굵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서 남들보다 뛰어나고 부러움이 되는

닐까요?

고 넓게 뻗어 잎사귀가 풍성합니다.

시편 1편은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뽐냅니다. 많은 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

하지만 시편기자의 생각은 다릅니

나님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어떤

다. 세상에서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일보다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 있는

과의 관계에서 성공한 사람을 형통한

사람입니다.

들을 보았습니다. 물 주변에는 울창

다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잃으면

묵상한다는 것은 명상하는 것과 다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하지

릅니다. 명상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

만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다 할지라

을 바깥으로 내 보낸다는 의미이지만

도 하나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진 자가 복 된

채운다는 의미입니다.

한 나무와 풀들이 풍성한 숲을 이루 었습니다. 시편기자가 말하는 시냇가는 하나 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무가 보여

사람입니다.

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난번 70번 도로를 타고 그랜드 정크션으로 가는 길에 강줄기와 호수

사람이라 합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그래서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

매를 맺습니다.

주는 이미지는 이 말씀을 읽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채우니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리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임을 보여

생각하고 말이 나오게 됩니다. 말씀대

주는 이미지입니다.

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절)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복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복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 씀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학생회성경공부 (토) 오후 4:00 청년부예배(주)오후 2:30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2020년 10월 22일

28

36회

노아는 방주를 만들 때 사용한 역청을 어떻게 구했을까?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

어서 방주에 물이 들어오게 되면 하나

든 기록들이 많이 있다. 특히 노아 홍

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자

수는 규모면에서나 진행 상황에서나 사

신과 가족들의 생명도 모두 잃을 수 있

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

기 때문이다.

이 없었다. 그런데 노아는 물이 새지 않

가 물에 잠긴 사건은 노아 홍수 때 한

따라서 노아는 방수처리를 완벽하게

번만 있었고 요즈음 우리가 겪는 홍수

해야만 했다. 성경에서는 방수처리를 위

는 그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하여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노아 홍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알려주셨는데,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작은 규모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 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 6:14)”라 고 기록하고 있다.

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지구 전체가 잠길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릴 수 있을 까?” “그렇게 많은 물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방주는 나무로 만든 배인 데 과연 안전했을까?” “방주는 모든 동물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컸을까?” “방주는 왜 발견되지 않는가?” “노 아는 방주에 물이 새지 않도록 방수처 리를 어떻게 했을까?” 등등 많은 의문 이 드는 것이다.

노아는 방주의 방수처리를 어떻게 했을까?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가장 염려되 었던 것은 방수처리였을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짐승을 멸하실 정도로 엄청난 홍수를 일으키시겠다고 하시면서 가족들과 동물의 생명을 보존 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역청이 무엇인가? 성경에는 역청에 관하여 5번 기록되 어 있는데, 싯딤 골짜기에도 역청구덩이 가 있었고 바벨탑을 쌓을 때도 역청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방주 만들 때 방수 목적으로 사용했던 것과 같은 목적으로 역청을 사용한 경우는 아기 모세를 넣 어 두기 위한 갈대 상자를 만들 때 였 다. 성경에는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 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 2:3)”라고 기 록되어 있다.

도록 방주 안팎에 칠한 역청을 어떻게 구해서 사용했을까?

노아는 역청을 만들어서 사용했을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당시에 역청이 없었다면 노아는 역청을 만들어서 사용 했을 것이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기 위 해 나무를 벌목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송진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송진 을 다루다가 송진을 가열하여 숯가루와 섞으면 역청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 과학의 연구로 밝혀진 것인데, 품질 좋 은 숯을 만들어서 숯가루로 만들고 송 진을 끓이면서 두 가지를 서로 혼합하 면 역청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한 것이다. 따라서 노아는 석탄이나 석유에서 역 청을 얻은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얻은 송진과 숯을 혼합하여 역청을 만들었을

역청은 석유나 석탄을 가열할 때 나

것이고 이렇게 만든 역청을 방주 안팎

오는 아스팔트나 타르처럼 끈적끈적한

에 칠해서 물이 새지 않도록 튼튼하게

검은색 물질이다. 역청은 배를 만들거

방주를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 집을 지을 때 방수처리를 하기 위해 서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그런데 석유 는 노아 홍수 때 수많은 동물이 땅속

만약 노아가 방주를 부실하게 만들

따라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 당시에는 홍수가 시작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역청

은 부분이 많다. 그 이유는 지구 전체

성경 기록을 볼 때 이해되지 않는 부

무가 묻혀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에 묻혀서 만들어진 것이고 석탄은 나

유럽에는 역청 만드는 직업이 있었다 역청을 만드는 것은 숙련된 기술이 필 요한데, 유럽 사람의 성씨를 보면 역청

정병갑 (고신대 명예교수) (creationisfact@gmail.com)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천 년 전 커다란 선박을 건설하는 산업이 번창할 때에는 유럽에 서 역청을 만드는 산업이 부흥한 적이 있었고 그 당시 역청 만드는 직업이 중 요하게 활용되었다. 폴란드어로 역청이나 타르를 뜻하는 단어는 smolar인데, 폴란드에는 역청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Smolen, Smolenski, Smolarz 같은 성이 많이 있다. 독일어로 역청을 뜻하는 단어는 teer인 데 독일 성씨에는 Teer와 Teerman 같은 이름이 있다. 영국에도 Pitcher, Tarrier, Tarmen 등 역청을 뜻하는 성씨가 있다. 이러한 성씨는 모두 역청 만드는 사람과 직접 관련이 있으며 이 러한 성씨가 있는 것을 볼 때 역청 만 드는 직업이 있었을 것이고 그 기원은 노아 홍수 때부터 이어져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청의 히브리어 원어는 kopher인데, 덮개라는 뜻과 나무진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특히 덮개로 사용될 때는 속 죄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 가 속죄의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방주를 덮었던 역 청이 홍수로부터 방주 안의 노아 가족 과 동물들의 생명을 보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19-20)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교회)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0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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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노윤호 장로(덴버제자교회)

하나님, 전 세계로 급속히 퍼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서, 성도들이 한자리에 같이 하지 못하고 이렇게 온라인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할지라도 우리들의 심령을 붙잡아 주시사 복의 통로인 예배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시간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이러한 난국에서라도 퇴보하기보다는 더욱 전진할 수 있는 시기가 되게 하시옵소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나라의 정책을 따라서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시국이라서, 우리가 함께 성전에 모여서 경배와 찬양을 드리던 시간들을 그리워합니다. 우리가 속히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다시금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들으면, 마치 요한계시록의 말세 때를 방불케 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그림자로서 다가올 말세의 재난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럴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욱 뜨겁게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할 것이라 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위험을 알리는 경종으로 알아, 만일 우리의 믿음이 흐지부지한, 마치 잠에 취해 있는 상태라면, 심각성을 깨달아 이 시간 온전한 주일 성수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깨어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지금은 바이러스와 다른 이유로 인해서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접해있습니다. 바이러스와 경제가 맞물려 있기에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사회가 격리된 상태로서는 경제가 마비되어 가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문제의 해결책이 있음을 우리가 알아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이러한 위기 속에서 낙심하는 심령들을 붙들어 주시옵고, 하나님의 돕는 손길만을 간절히 구하는 우리 모두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가 이 역경을 잘 넘길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고, 이 계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인도하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항상 있게 하시옵고, 예배를 더욱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생명 주시고, 사랑하시고, 날마다 지켜주시며, 예배의 중요성을 늘 일깨워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동이 있는 글

2020년 10월 22일

내가 하려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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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깰 때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내 눈속에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나를 모르면 남에게 나는 담벽처럼 느껴진다. 자기 입장에서만 나를 주장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친구가 없다. 나를 허물어 버려야 상대가 들어올 틈이 생긴다.

전 세계가 이처럼 요동하는 때를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믿음이란 자기를 부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로 가득하면 말씀이 내 자리에 들어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나를 버리고 나를 내려놓는 것은 믿음의 첫걸음마라 할 수 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이루고야 말 것이다. 우리의 옛말 처럼 설마 하다가 사람 잡는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임하였다.

걸음마가 제대로 되어야 빨리 갈 수도 있고 뛸 수도 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자기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 단정 짓기가 쉽다.

빛도 못 빠져 나가는 블랙홀처럼 주의 말씀에 세상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찾아서 주께로 되돌려 놓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절대로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 실패하는 사역자들의 대부분이 내 능력으로 하려 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깔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주도 작은 것이다. 작은 세포 하나 속에도 우주를 세우시는 하나님이 무엇인들 못 하시랴!

믿음이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나님께 내어 맡겨 드리는 것이다. 영적전쟁에서 이미 승리가 보장되었다는 의미가 여기서 나온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승리를 보장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시면 그 싸움은 하나 마나 이긴 싸움이다. 아이성이 작다고 내가 하려고 하다가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듯이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을 대신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믿음은 말씀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방황할 때에 하나님이 친히 홍해를 갈라 주셨듯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은 그들에게 요단을 건널 때에는 지도자인 제사장들이 먼저 말씀을 따라 발을 디뎌야 했다. 초신자 때에는 하나님이 해주셨지만 신앙에 훈련을 받은 자들은 말씀을 따라 훈련받은 대로 직접 나가야 한다. 이 땅에서 하늘에 쏘아 올린 인공위성을 제어하듯이 성도는 말씀으로 나의 자세와 방향을 교정하며 제어함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할 수 없는 홍해도 요단강도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하려 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 따라 사는 인생이 되어야 순탄한 나그네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하나님은 사람의 머리로 측량 할 수도 계산할 수 없는 분! 그분의 깊이를 누가 알 수 있으랴!

사람에게 하나님께 하나님이 하나님이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잘 보여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만드신 우주는 0.01초의 오차만 있어도 질서는 파괴되고 무질서가 된다. 우주와 시간을 붙잡고 계시기에 세상이 안전한 것이다.

오늘날 드디어 하나님이 칼을 뽑으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두렵고 두려운 날에 쓰러지게 될 것을 왜 모르는가? 급하고 급하다. 기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 회개 해야 환란의 날을 견딜 수가 있다. 회개만이 살길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는 좌우되면서 어찌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며 등 돌리고 사는가? 이제부터 주 앞에서 죽을 각오로 살아야 한다. 주의 때가 가까이 왔다. 자다가 깰 때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 재앙을 피하지 못하고 망한다. 준비해야 한다. 한 개의 코로나가 그토록 두려운가? 하나님이 2개, 3개의 코로나를 한꺼번에 보내지 않음을 감사하라. 이제 하나님 앞에 마지막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가 왔다. 믿는 자는 승리 할 것이다. 믿음이 이긴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되히 까불지 마라. 마귀는 우리를 무가치하다고 하나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들이다. 믿는자들이여 앓는 소리 하지 말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지켜 주시고 도와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한 일을 빠짐없이 기억하실 것이다. 나 위해 피 흘려 주신 그 은혜로 우리의 신앙을 잃지 말자. ☆자료/ⓒ창골산 봉서방



주일예배 오후 12:30 수요연합기도회 수요일오후 7:30

1990 S. Newport St. Denver, CO 80224

4905 E. Yale Ave. Denver, CO 80222 / www.calvarykoreanchurch.org

newlifeco.org

303-269-9192, 443-754-0888

덴버에덴교회

16051 E. Dartmouth Ave Aurora, CO 80013

정석현 목사

손재흥 목사

주일 8 AM (1부/한국어) 주일 11 AM (2부/한.영) 주일 1:30 PM (3부/유스) 새벽 6 Am (화~토/7am) 1181 Laredo St Aurora CO 80011 / 720-859-6798

주일1부: 오전 7:30 주일2부: 오후 1:00 수요성경공부: 오전 10:30 금요기도회: 오후 7:30 어린이주일학교: 주일오후 1:00 어린이/청소년 성경공부: 주일 오후 3:30

www.ziondenver.com

13601 E. Alameda Ave. Aurora, CO 80012

720-203-6357 / EdenKoreanChurch.com

김창훈 목사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어린이부: 오전 11:00 수요기도회: 오후 7:30 성경통독: (금)오후 7:30 새벽기도회: 오전 6:00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 오전 6:00 성경교리대학(주일) : 오후 1:30 주중제자훈련 (화) : 오전 10:00

15099 E Hinsdale Dr. Centennial CO 80112

303-422-6950 / www.kpcd.org

드림교회 허성영 목사 주일 1부: 오전 7:30 주일 2부: 오전 11:40 새벽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수요성경공부: 저녁 7:30

10-12

5400 S. Yosemite St. Greenwood Village, CO 80111

6415 W. 44th Ave. Wheat Ridge, CO 80033

11000 E. Yale Ave #90 Aurora, CO 80014

720-336-9251

주일예배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 오전 6:00 성경대학(주일) : 오후 1:00

562-315-3674

우리교회 윤우식 목사

이성한 목사 주일예배1부: 오전 9:30 (한어) 주일예배 2부: 오전 11:00 (영어) 아동부: 오전 9:30 수요성경공부: 오후 7시 (온라인) 토요 말씀 묵상: 오전 7시 (온라인)

주일예배 12:30 PM Prayer Alliance 수 7:30 PM 주중 지역별 목장모임

금 glorifygod911@gmail.com

2821 S. Parker Rd Aurora, CO 80014

11000 E Yale Ave. #222, Aurora, CO 80014

503-927-9520 /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11989 Saint Paul St. Thornton, CO 80233 720-838-3352 / petershlee7@gmail.com

홍해선교교회 수요성경공부(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모임 21755 E. Smoky Hill Rd. Centennial, CO 80015

덴버지역 교역자회 Pastors’ Association of Korean Church (PAKC) P.O. Box 372014 Denver, CO 8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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