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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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제 11권 3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1년 2월 11일 발행

3월 5일 (금) 6:00 PM 노스필드 장로교회 Chicago


목차

2021년 2월 11일

목차 교계소식 신앙칼럼 강단설교 목회칼럼 하나님의 구원섭리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쉴만한 물가 예배학 강좌 내면을 향한 여정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변화프로젝트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나의 노래,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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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11일, 25일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는 매회 2,000부씩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 PICK-UP 장소】 덴버지역: H-Mart 볼더지역: H-Mart 웨스트민스터점 콜로라도스프링스: 한국마켓, 썬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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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2월 11일

2021 덴버지역 세계기도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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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한인교회 찬양 사역자·반주자 구함

2021년 3월 5일(금) 오후 6시 2021년 세계기도일예배는 COVID-19으로 인해 비대면으로 다음 과 같이 YouTube로 예배를 드리게 되는 점 양해를 부탁드리며, 많은 참석을 부탁한다.

덴버한인교회는 주일예배 때 찬양을 인도할 찬양 사역자와 키보드 반주자를 구하고 있다. 관심이 있거나 질문이 있으면 아래와 같이 문의하면 된다.

●일시: 2021년 3월 5일 (금) 오후 5시 ●유튜브 예배: https://youtu.be/Xidp_Ys2iuY 노스필드장로교회, 시카고를 입력하면, 실시간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문의: 오경옥 권사 (303) 523-2042

●내용: 찬양 사역자·반주자 구함 ●문의: 이메일 hrockchoi@gmail.com 교회전화 (303-717-0279, 텍스트)

인터넷으로도 빛과소금뉴스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 블로그에서! : thelightandsaltnews.blogspot.com www.facebook.com/TheLightandSaltNews ● Facebook에서! : www.facebook.com/TheLightandSaltNews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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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교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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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교회여성연합회

2021 세계기도일예배 비누아투를 위한 기도 소개 기사: 한명옥 권사

견고한 토대 위에 세우라! - 3월 5일 유튜브 예배

비누아투 세계기도일예배 기도문 작성팀

세계기도일은 전 세계 180여 개국 교 회여성들이 매년 3월 첫째 주 금요일 에 함께 모여 세계의 평화와 화해를 위 해 기도해 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 교파 여성기도운동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각기 처한 곳에서 한날한시 에 하나의 주제로 예배하면서 지구에서 는 24시간 여성들의 기도가 이어지게 된 다. 이로 인해 교회의 일치와 다양성, 그 리고 한 몸의 유기체적 연합이 현실에 서 구현된다. 종족, 문화, 전통, 교파를 초월하여 세 계여성들은 돌아가며 예배문을 작성하고 함께 예배의 주체로 서간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여성들은 각 나라 여성들이 다 양한 상황에서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배우고 서로의 관심과 필요, 기도제목을 나눈다. 또한 인종이나 성별, 가진 자와 없는 자, 인간과 자연과의 공정하지 않 은 관계로 인한 불화와 분쟁을 넘어 하 나님의 나라와 평화를 이루는 신앙의 실 천을 결단한다. 세계기도일은 메리 제임스라는 여성이 1887년 당시 미국으로 새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위해 '기도의 날'을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기도모임은 해외로 나가 는 선교사들과 여성 여행자들을 통하여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고 드디어 1927 년 세계기도의 날이 정해지게 되었다.제2 차 세계대전 중 많은 나라들이 이 기도 의 날 지키는 것을 금지했으나 여성들은 비밀리에 이날을 지켜냈다. 많은 시련 속 에서도 굳건히 자라난 이 기도운동은 대 륙에서 대륙으로, 바다에서 바다로 뻗어 나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의 세계기도일 기도운동은 1922년

에 시작되었고 이미 3차례에 걸쳐 기도 문을 작성한바 있다. 1930년 김활란 선 생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1963년 " 이 기는 힘” 1997년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듯이”란 주제로 세계교회로부터 사랑 과 격려를 받은 바 있다. 또한 미주한인 교회여성들은 1984년 미주한인교회여성 연합회를 설립하여 37년 동안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세계여성기도일을 인도해 오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미주 전역 의 한인교회들은 시카고에 위치한 ‘노 스필드장로교회' 에서 YouTube로 진행 하는 세계기도일 영상예배로 함께 예배 드리기로 결정되었다. 우리 콜로라도지 역 교회들은 3월 5일 금요일 저녁 6시에 예배드릴 예정이니 10분 전쯤 YouTube 에 들어오셔서 예배드릴 준비를 하시기 를 부탁한다. (노스필드장로교회)를 치시 면 바로 뜬다. 올해 예배문 작성국가는 태평양에 위 치한 아름다운 작은 섬 나라인 바누 아투이다. 예배주제는 "견고한 토대 위 에 세우라”(마 7:24-27) 이다. 이날 세 계기도일 헌금은 각자 체크로 써서 (to: KCWU,USA 로, 이것은 미주한인교회 여성연합회의 약자이다.) 보내실 주소는 Chong AE Kim, 13826 E Tufts Pl, Aurora, CO 80015이며, 다 함께 모아서 본부로 보낼 예정이다. 바누아투는 면적이 12만2000평방 킬 로미터이고 인구는 21만 천명이다. 언어 는 슬라바마어 프랑스어, 영어 등을 쓰지 만 또한 100개 이상의 지방 언어가 사용 되고 있다. 기후는 열대성기후로 살기 좋 은 화씨 68도-86도 사이이다. 바누아투

는 스페인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 어 프랑스, 영국사람들이 들어와 1906년 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통치하에 식 민지가 되었으며 1980년 독립할 때까지 무국적 상태로 살았다. 바누아투는 80여 개의 섬이 Y자 모 양을 띤 남태평양의 열대군도이고 그중 65개의 섬에 사람이 산다. 아름다운 섬 나라이나 지진, 사이클론(열대성 폭풍우)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에는 취약한 편이 다. 2021년이면 바누아투는 주민이 31만 2000명에 이를 것으로 관측한다. 주식으 로는 얌, 타로토란, 바나나, 코코넛, 사탕 수수, 열대 견과류, 녹색채소,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해산물 등이 있다. 이 나 라는 기술공학을 받아들이면서도 문화 적 정체성과 토속적 가치를 자랑한다. 종 교활동은 83%가 기독교인들이다. 바누 아투 교회들은 바누아투의 전통과 문화 가 풍기는 노래와 춤으로 예배한다. 현 재 장로교, 성공회, 로마 카톨릭, 제7일 안식교, 재림파그리스도교회가 존재한다. 바누아투의 경제는 관광업, 건설, 해 외 금융 서비스에 기초한다. 여성들은 돗 자리와 바구니 등 전통공예품, 의류 등 을 만들어 가족들의 생계를 돕지만, 제 조업은 국민 총생산량의 5-9%에 불과하 다. 어린이들의 교육은 처음 6년 동안 학 비를 보조받도록 정부는 후원한다. 그러 나 그 이상은 무상교육이 아니며 남자 아이들의 교육을 여자아이들보다 선호한 다. 바누아투의 여성들의 위치는 남성보 다 열약하다. 그러나 과거 20년간 남녀 성 차이가 감소한듯하나 이 나라의 성폭 력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아주 심각하 다. 여성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60% 이 상은 성폭력을 체험했고 20% 정도는 영

비누아투 여성들

구적인 육체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 났다. 정부와 각 종교집단들은 여성들에 게 자신의 잠재력을 사용하고 개발하도 록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이런 성적 불 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와 각 종교집단들 은 심각하게 반성하며 그 대안을 연구해 야 할 것이다. 바누아투에서는 1946년 최초로 세계 기도일 예배가 시작되었다. 2021년 예배 문 작성국이 된 바누아투 위원회는 여성 들의 목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를 기도한다. 집필과정에 참여한 많은 여성 에게 이것은 생애 최초의 초교파적 경험 인 셈이다. 이것이 바누아투 여성들의 목 소리에 새로운 확신을 가져다줄 것이라 우리 모두는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우 리들의 기도하는 손을 잡아주시고 우리 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기를 원하신다. 주 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 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 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 루리라.”라고 (요 15:7) YouTube로 예배드리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우리들이 바누아투의 교회 와 교회여성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부르 짖어 기도할 때이다. 빈곤과 차별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바누아투의 교회 여성 들을 위하여, 세계 불우 이웃과 결식아 동, 노약자, 장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자. 바누아투 여 성들이 유린된 인권을 회복하고 기독교 국가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생명과 자 유 또한 평화적 존립을 위하여, 반석 위 에 집을 세울 수 있도록 함께 지속적으 로 기도하자.


교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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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프로젝트

"왜 교도소 문서 선교여야 하나요?" 글: 이영희 목사

이영희 목사

가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우 리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나의 부모님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쌀이 부족한 날 이 많아서 나는 집에 있는 밀가루로 국 수를 만들어서 가족들을 먹여야 했다. 돈이 없어서 먹을 것조차 살 수 없는 상 황, 매달 내야 할 공과금이 없어서 마음 을 졸여야 하는 상황은 너무나 고통스러 웠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 과정이 나에게 준 선물이 있다.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를 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가 있게 된 것이 다. 나에게는 절대로 가난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돈을 움켜쥐고 있으려 했던 시 절이 있었다. 하지만 삶을 통해 나의 경 험에 근거한 신념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더 크고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자기중심적인 계획을 버 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 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야기를 독 자들과 나누고 싶다. 미국에서의 시작 나는 한국에서 미군이었던 키스(Keith) 와 결혼을 한 후, 1979년 그와 함께 미국 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시에 있는 신학 대학에 입학하 여 함께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남편 은 목회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가 진로를 바꾸기를 원했다. 그가 목회자로 헌신한다면 우리 가족은 가난하게 살아 야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 만 남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히려 내 마음을 바꿔 주셨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내게 말씀해 주신 것

이다. 그 후, 돈을 충분히 벌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려는 것이 분 명했다. 나는 그런 그를 더 이상 그 길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1987년, 남편은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아릴맆 신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몬테나 주에 작은 마을에 있는 플레인스 교회와 파라다이스 연합감리교회에 임명 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둘 다 어릴 때 였다. 그가 목사가 된 후 우리 가정은 경 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나는 가 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 목사 되는 것을 반대했던 터라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가 컴 퓨터에 관련된 일자리를 찾아서 빚 없이 살 수가 있게 되었다.

부르심 “모든 사람들이 다 나 같다면, 세상에 목사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라는 말을 나는 목사인 남편의 친구들에게 하 곤 했었다. 그만큼 나는 목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하 나님은 내 마음에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한 사역을 준비하고 계 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역을 하고 싶 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씀이 하 나도 반갑지 않았다. 그러나 묵상집, “ 예수님과 걷는 길”을 쓰면서 나의 마음 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상처받 은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내게 말씀 해 주신 것이다. 나는 많은 눈물을 흘리 며 수없이 갈등한 끝에 사역의 길을 가 기로 결단하였다.

포기하지 않음 나는 남편이 목사였기 때문에 내가 사 역을 하겠다고 하면 남편이 기꺼이 지원 해 주리라는 기대를 했다. 실제로 남편이 신학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나는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며 그의 학업에 필 요한 뒷바라지를 했다. 그때까지 남편도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밀어주 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하겠다는 나의 결정에 대해 남편이 반대를 할 것 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역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아일 맆 신학 대학원에 가서 목회학 석사 과 정을 밟겠다고 하자 그는 내게 미쳤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 근처로 이사할 생각이 없으니 통학을 하라고 했다. 그때 당시, 우리는 몬테나 주에 글래스고에 살고 있 었는데 콜로라도 주 덴버에 있는 아일맆 신학교까지의 거리는 편도로 약 1330 킬 로미터(750마일)였다. 남편은 사역의 길 을 가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으려고 했 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르심에 순종하겠다고 이미 하나님께 말씀을 드린 상태였다. 그의 태도는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키스는 그 해에 와이오밍 주, 버펄로에 있는 두 교회로 전근을 가 게 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그곳에서 덴 버에 위치한 아일맆 신학교를 다니기 시 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편도로 약 700킬 로 미터(430마일)가 되는 거리를 3년간 운전하며 학교를 다녔다. 와이오밍에 겨 울 폭풍이 불던 어느 날, 살얼음판에서 자동차 사고가 나서 나는 거의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친 곳 하나 없 이 무사했다. 하지만 내 차는 폐차 처분 을 해야 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함 신학 대학원을 가기 전부터 주님은 내 게 교도소 사역에 부르심이 있다고 말씀 해 주셨다. 그래서 아일맆에 학생이자 콜 로라도 청소년 교도소 목사인 롤라 웨스 트를 만났다. 나는 그녀에게 교도소 사 역이 나의 부르심 임을 알려 주었다. 롤 라는 그녀가 섬기고 있는 소년원에 재소 자들이 내가 쓴 묵상집, “예수님과 걷 는 길”을 읽고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그 들이 나의 간증을 직접 듣고 싶어 한다 며 나를 그곳에 초청했다. 나는 나의 어 려웠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교도소 선교로 인도하셨는 지를 그곳에 십 대 재소자들에게 간증 을 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셨는데 엄마와 오빠에게 언어폭력과 육체적 폭 력을 가하셨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오빠는 11살의 나이에 집을 뛰쳐나가서 노숙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깡패들과 어 울리다 교도소에 세 번이나 가게 되었 다. 그리고 아버지는 결국 자살을 하셨 다. 오빠가 교도소에 있을 때, 나는 누군 가가 오빠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려 주어 서 그가 구원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 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나 그 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께 서는 누군가가 나의 오빠에게 해주기를 원했던 그 일을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 해서 하라고 하셨다. 나는 주님의 부탁 에 순종하고자 교도소 사역의 길을 가 기로 결단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많은 재소자들이 눈 물을 흘렸다. 예배가 끝난 후 그들은 내 게 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 주었다. 그 후, 나는 많은 교도소를 방문하여 나의


교계 소식 간증을 그들에게 나누었다. 더불어 신학 교 학생들과 교도소 사역을 결성하여 3 년간, 그들과 함께 여덟 곳의 교도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을 도왔다. 교도소 사 역은 나를 새롭게 눈뜨게 했다. 나는 교도소 사역을 하며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 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을 하며 나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 것이다. 나 는 사람들이 치유되고 그들의 삶이 변 화되는 것을 보면 힘이 나고 나 자신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한다. 절망에 빠져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소망 을 발견하며 하나님을 통해 치유되는 것 을 보는 일은 경이롭고 보람되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일 이 나의 부르심이라는 사실에 감격했다. 내가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 남편은 내 게 집에 있으면서 그의 목회를 도우라고 나를 설득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콜로 라도에서 사역을 하려고 계획했다. 그러 자 남편도 더이상 나를 설득할 수 없다 는 것을 깨닫고 내가 신학교를 졸업한 2003년에 콜로라도주로 이사를 했다. 그 리고 그는 덴버에서 40킬로미터(25마일) 쯤 북쪽에 위치한 킨스버그와 헛슨에 있 는 두 군데 교회를 섬겼다.

재소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2002년에 나는 덴버에 있는 세인트 죠 셉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일을 하게 되었 다. 그리고 2003년에 아담스 카운티 교 도소에서 채플린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 다. 나는 재소자들을 상담하며 그들이 신앙 안에서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너 무 기뻤다. 또한 그러한 일을 한다는 것 이 너무나 큰 축복임을 느꼈다. 어느 날, 나는 상사인 프랭크에게 “나는 내가 지 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좋아서 아마 돈을 내고 하라고 해도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곧 현실이 될 거 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교도소 목사로 섬기는 일을 내 생애 최고의 직업으로 여겼지만 한 가 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많은 재소자 들이 자신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소망 했다. 그들은 내게 혹시 도움이 될 만 한 책이 있냐고 물었다. 실제로 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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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는 그들은 책을 읽을 만한 시간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그러한 책 들이 충분하지가 못하다는 것이었다. 외 부에서 기부한 많은 책들이 교도소에 있 기는 하지만 그 책들은 재소자들의 당면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 거나 그들의 마음에 양식이 될 만한 책 들은 아니었다. 나는 아일맆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 “ 예수님과 걷는 길”권과 또 한 권, 그래 서 두 권의 책을 출판하여 재소자들과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나눠 준 적이 있었 다. 그 당시 나는 덴버 여자 교도소에서 인턴 채플린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나 는 “예수님과 걷는 길”이 많은 재소자 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것을 보았다. 하 지만 그 많은 재소자들을 위해 책을 공 급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감이 있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출판 을 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했다.

변화 프로젝트 교도소 문서 선교 (Transformation Project Prison Ministry) 나는 지인들과 함께 교도소 안에는 재 소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책이 부족하 다는 점에 대해 6개월 회의를 했다. 그러 던 2005년, 우리는 변화 프로젝트 교도 소 문서 선교 (TPPM)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여 신앙 서적을 출판하고 교도소 재소자들과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책을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책을 쓰는 일 과 함께 여러 교회를 방문하여 이 사역 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변화 프로젝트 교도소 문서 선교 (TPPM)의 책들에는 재소자들의 간증이 많이 실려있다. 우리는 이점을 고려하여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간증이 책으로 출판되는 것에 동의한다는 재소자의 사 인이 들어간 동의서를 만들었다. 이것은 TPPM과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를 법적 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 다. 더불어 자신의 글을 기부한 재소자 들은 그것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도록 되어 있으며, 법정 판결에 관련해서 그 글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 다. 재소자들의 글은 단지 다른 이들을 돕는 데만 사용된다. 교도소 프로그램

기획자인 풀러 씨는 TPPM 동의서를 아 담스 카운티 교도소 변호사에게 보냈다. 그리고 변호사의 승인을 받았고 TPPM 은 정부에서 비영리 단체로서의 법적인 승인을 받았다. 나는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재소자들 의 신앙 간증을 모아서 “최고의 성인 들(Maximum Saints)라는 재소자 간증 집 시리즈를 출판했다. 그 첫 번째 책인 “최고의 성인들은 숨지 않는다(Maximum Saints Never Hide in the Dark) 에는 재소자들이 교도소 예배 때 나눈 간증들을 실었다. 그 간증들은 많 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는 재소자들을 상담할 때 자신이 어 떻게 치유가 되었는지를 글로 써볼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많은 재소자들이 글을 쓰며 치유를 경험한다.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에 프로그램을 맡은 직원들은 TPPM에 대해 협조적이 었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TPPM 봉 사자들은 오랫동안 컴퓨터를 사용해 타 이프를 치기 어려운 나를 돕기 위해서 많은 간증들을 타이핑 해주는 일을 해 주기도 했다. 교도소 소령인 쉬플리는 TPPM을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자금이 필요함을 알려주 었다. 그는 그의 교회에 알려서 출판을 위한 모금을 했다. 그 밖에도 여러 교회 에서, 그리고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봉 사자들이 헌금하여 출판에 힘을 실어 주 었다. 내가 사역하고 있는 아담스 카운티 교 도소는 당시 1,300여 명의 재소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TPPM에서 가지고 있는 모금 액수와 우리 교도소 재소자 수에 맞게 1,500권 정도의 책을 출판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너의 비 전이 너무나 작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는 다른 교도소 역시 신앙 서적이 부족 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10,000부를 작 정하고 다시 모금을 시작했다. 그리고 책 의 출판을 마쳤다. 그런데 책을 배송할 자금이 충분치가 않았다. 나는 연합감리 교회 웹 사이트에 그것을 알렸다. 그 후, 한 여성 자원봉사자가 트럭을 가져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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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권의 책을 운반할 수가 있었다. 문서 선교에 대한 반응은 획기적이었 다. 많은 재소자들이 “최고의 성인들” 을 읽으며 자신들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잡았다. 사탄 숭배자로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폭력적이던 티모디 갈시아는 간증들을 읽고 하나님께 돌아왔다. 그는 “최고의 성인들”을 읽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티모 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 처를 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을 도우며 그들에게 평안을 끼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의 놀라운 간증 또한 “최고의 성인들” 시리즈 안에 들 어있다. 간증집을 받은 다른 교도소 재 소자들, 그곳 교도소 목사님, 그리고 책 을 읽은 교도소 직원들도 모두 재소자들 의 간증집을 읽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 고 말했다.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에 한 여자 직원은 나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간증집을 읽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 여 다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보험금 처음에 “최고의 성인들” 간증집을 출판할 때는 그 책을 시리즈로 계속 출 판하려는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간증집 을 통해 많은 재소자들이 도움을 받고 변화되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자 나는 더 많은 간증들을 엮어서 출판하게 되었 다. 그러나 책을 출판할 때마다 출판 비 용을 충당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여 교도소 문서 선 교를 소개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들 이 출판을 위해 한 번 정도 기부를 했다. 하지만 재소자들은 지속적인 영적 성장 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신앙 서적을 공급 받아야 했다. 나는 출판을 앞두고 있을 때면 한 책당, 열 군데 정도의 교회를 방 문하려고 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교도소 문 서 선교에 있어서 모금은 늘 난제였다. 멜라니 그레고리와 크리스 라스는 자신 들이 교도소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았을 때, 교도소 문서 선교를 위한 출판 자금 을 기부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번 으로 그쳤다. <다음 호에 계속>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제공: 이국형 장로(한인기독교회)


신앙 칼럼

2021년 2월 11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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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성경의

기도문 가운데 세계적으 로 가장 사랑받고 많은 센세이션 을 불러일으킨 기도가 아마 “야베 스의 기도”일 것이다. 이는 2000년 도에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 목사가 저술한 ‘야베스의 기 도’(The Prayer of Jabez: Breaking Through tothe Blessed Life) 가 출판된지 얼마되지 않아 440만 부 이상이 팔려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 고, 복음성가로도 만들어져 불릴뿐 아 니라, 다른 언어로도 번역된 나라마 다 베스트셀러로 읽힌 사실이 이를 증 명한다. 그리고 그 당시 야베스의 기 도문 성구 액자가 크게 유행하여, 많 은 가정이 이를 소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선풍적인 인기 때문인 지, 그 당시의 기독교문화 때문인지, 불 행히도 야베스의 기도는 번영신학, 혹 은 기복신앙을 조장한다 하여 아직 도 많은 비난과 배척을 받고 있다. 마 치 야베스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 을 무속신앙과 미신처럼 동급으로 취 급하여, 얼마전까지 사석에서 야베스 의 기도는 틀렸으니 하면 안 된다고 주 장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새해 들면서 야베스의 기도 가 계속 떠올랐고, 새롭게 묵상하게 되 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 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 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 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 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 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 더라” (역대상 4:10) 결론부터 말하면 야베스의 기도 는 우리가 왈가불가 할 성질의 기도 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응답 해 주신 참으로 놀라운 능력의 기도 로, 짧은 한 구절이지만 우리가 반드 시 배워야 할 모범적인 기도임을 깨달 았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의 기 도가 잘못되었다면, 허락하셨을까? 아니 다! 결코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 러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들어주 신 기도를 왜 우리가 옳다 그르다 판 단하는가? ‘고통' ‘슬픔' 이란 의미의 이름을 가 진 야베스를 성경은 그 형제보다 ‘존 귀한 자'라고 칭하고 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 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 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 었더라”(역대상 4:10) 하지만 이 존귀한 자의 삶도 여느 인 생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만만치 않았나 보다. 사실 야베스는 하나님 “내게 복 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 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 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 서” 이 두 가지를 간구하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자 중에서 누가 환난 에서 자유로우며, 걱정 근심이 없을까? 야베스의 기도를 묵상할수록 인간 의 한계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환 난을, 오직 우리를 도우시는 전능자 의 손을 의뢰하여 근심이 없게 해달라 고 간구하는 그가 얼마나 신실하고 인 간적인지 차라리 동병상련의 위로를 받 는다. 그러니깐 오해를 불러일으킨 부분 은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 경을 넓히시고”인 듯하다. 야베스의 기 도를 들어주신 것으로 보아 야베스

발행인 최성애 권사

는 인간의 욕망인 더 큰 집과 더 넓 은 땅을, 부귀영화를 구한 것이 아니 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 여 야베스는 삶의 영력과 영향력을 넓 혀 주시길 기대하며 기도드렸고, 하 나님께서 이에 응답하신 것으로 보아 야 할 것이다. 갈렙의 “이 산지를 내 게 주소서!”와 같은 맥락의 비전 기도 라고 생각한다. 결국 야베스가 넓혀지길 원했던 그 의 지경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위 에 있는 신령한 하늘나라임을 알 수 있 다. 이 시점에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 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 복 중의 복은 믿음의 결국인 영혼 구 원이다. 야베스의 기도가 나의 기도 가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얻는 영생을 소 유하는 모든 독자분과 자녀들이 되 길 기원하며 이 글을 쓴다.


강단 설교

202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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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삶 속에 펼쳐지는 벧엘의 비밀 <창세기 28:10-22, 요한복음 1:51>

지난날 미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로 살 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쓴 대 표적인 소설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 노인과 바다’ 등으로 플리 쳐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그 유명 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그러나 어 느 순간부터 그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합 니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 서 실망을 하며 많은 여인들을 만났습 니다. 비행기 사고로 큰 트라우마에 빠 집니다. 술 중독과 마약 등으로 방황을 하다가 안타깝게도 1962년에 그가 애용 하였던 사냥용 삿건으로 극단적인 선택 을 합니다. 헤밍웨이의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 습니다. “나는 건전지약이 다 떨어지고 전기 코드를 꽂으려 해도 전원이 없어 꺼 져 가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쓸쓸히 살 고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던 부와 사랑과 명예 를 누렸던 헤밍웨이 자신은 멀고 험한 광야의 삶을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 나님을 믿고 기도하지만 외롭고 무섭기 까지 한 광야의 삶을 살 때가 있었습니 다. 성경의 인물로 갈대아 지방에서 가 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 목자 40년의 모세 40년, 사울왕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위협으로 피신하는 다윗, 브엘세바를 떠 나 호렙산을 향하는 엘리야… 신약의 세 례요한은 광야 출신이며 회심을 한 바울 의 시작이 사막의 아라비아 3년, 심지어 예수님도 사탄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광야에 머무셨습니다. 야곱의 가족 72명 모두는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그리고 훗날 이스라엘 60만 명 전부가 광야 40 년을 살았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오늘 성경 말씀 속 에 나오는 야곱입니다. 창세기 28:10입 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배고픈 형 에서를 이용하여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눈이 좋지 않은 아버지

를 속여 형 대신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일로 에서의 분노로 죽음의 공포 를 느낍니다. 급히 집을 떠나 삼촌 라반 이 살고 있던 하란으로 피신을 가야 했 습니다. 호세아서는 그때 야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옛적에 야곱이 아람 들로 도망하였으 며 ...”(호 12:12) 야곱이 도망자의 신세로 광야에서 밤 을 맞이하게 됩니다. 피곤하고 지쳤습 니다. 외로웠습니다. 더구나 무서웠습니 다. 그 밤에 돌베개를 베고 억지로 자 며 꿈을 꾸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1. 벧엘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야곱이 거친 광야에서 밤을 자다가 꿈 을 꿉니다. 꿈속에서 천사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하늘과 땅을 연결한 계단을 오 르고 내립니다. 그 사다리 위에 누가 계 셨습니까? 13절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광야에서 도망자로 걱정과 외로움, 두 려움, 절망에 사로잡혀 겨우 눈을 붙이 는 야곱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 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하 나님을 찾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가 만나셨습니다. 프란시스 챈은 “역설적인 것은 하나님 은 우리가 필요하지 않을 때에 여전히 우 리를 원하신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하나 님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때에 그분을 원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프란시스 챈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 인지를 우리에게 정확하게 전합니다. 하 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이 필요합니까? 그 분은 우리들을 결코 필요로 하지 않습 니다. 하나님이 홀로 완전하신 분입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시지요. 그런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전혀 필요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그분은 을 우리를 간절 히 원하십니다. 그 은혜가 광야의 야곱에게 그리고 모 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가 이집트의 왕 궁에서 왕자로 살 때가 아니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도망자로 살 때에 찾아 와 부르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을 피해 광야 에서 로뎀나무 아래서 죽음을 동경할 때 였습니다.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 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기까지 버 렸는데 꾸짖고 회개하라고 하시지는 않 고 음식으로 대접하면서 이렇게 물으실 뿐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십자가의 은혜 입니다. 혹시 지난날 한국에서 또는 미 국에서 이런 광야의 삶을 사신 적이 있 습니까? 지금 자신의 삶이 거칠고 험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오직 당신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 혜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한밤중에 야곱 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지금 사랑하는 당신을 찾아오십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2021년 이때 여러분 을 원하고 찾으며 만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앞으로 참된 예배자로 나아 가 십시오.

2. 벧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학교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누구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적막한 땅이며 아무 소리가 없는 침묵의 장소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야곱의 귀에 울려 퍼집니다. “나는 여호와 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 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3절)

최요한 목사

섬김의 교회 담임

광야는 히브리 단어로 ‘미드바르’입 니다. 또 다른 ‘미드바르’의 의미는 입 (mouth)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말을 하는 ‘입'입니다. 광야가 고난과 시험의 땅입니다. 그러나 그곳을 동시에 하나님 께서 말씀하시는 입입니다. 동사형으로 영어로 ‘to speak’ or ‘to say’라 는 의미가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장소입니다. 원 래 교만한 우리들이라 광야와 같은 고 난을 통과할 때만 들리는 하나님의 소 리가 있습니다. C. S. Lewis 는 그가 쓴 ‘고통의 문 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즐거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 삭이시지만 고통 가운데서 그분은 소리 를 지르신다. 고통은 듣지 못하는 세계를 깨워 일으키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그는 우리들이 형통할 때 그분이 말 씀하셔도 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 나 우리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는 큰 목 소리로 고함을 치시는데 고난 그 자체 가 하나님의 마이크 폰이라는 것입니다. 지난날 오늘의 삶을 험하고 거친 광야 와 끝없는 사막과 같습니까? 우리들이 인생의 광야를 헤맬 때에 말씀하신 그분 의 음성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미드바르 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말 씀을 붙잡으십시오. 그 음성을 듣고 따 라가십시오. 그렇다면 그 광야와 같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길을 만드십 니다. 반석에 물을 내십니다. 우리 인생을 가로막는 홍해가 갈라는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3.벧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처소입니다. 야곱은 홀로 형 에서로부터 오는 죽음 의 공포 속에서 외롭게 혼자서 광야의 밤을 지샌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린 광야


강단 설교 에서 언제 누가 자신을 공격할지 몰라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하 나님은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 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지금 홀로 광야에 있는 야곱과 함께 하시며, 하란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책임 을 지고 보호하시고 그를 다시 이곳으 로 그리고 그의 집으로 인도하겠다고 약 속입니다. “어쩔 수 없어 집을 떠나지 만 삼촌이 어떤 분이며 그곳에서 살기 에 적합할까?” “언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는 위로의 약 속입니다. 그를 떠나지 않는데, 언제까지 요? 하나님의 친히 모든 것을 다 모두 이루시기까지 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 이 예배자인 야곱이 누린 축복입니다. 우리 중에 만약에 어떤 분이 고난의 광야를 지나고 있다면 결코 잊지 않아 야 할 성경의 교훈은 하나님의 임재입니 다. 그분은 결코 멀리 계시거나 숨어있 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난 중 에 찾아와 임재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 나님입니다.

4. 벧엘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집이며 하늘 의 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잠에서 일어 나 제단을 쌓고 그곳을 벧엘, 즉 하나 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그 자리가 하 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 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장소나 건물이 아 닙니다. 음악, 크기나 순서 또는 스타일 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 이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 세는 호렙산의 불에 사라지지 않는 떨 기나무 앞에서 벧엘의 복을 경험합니다. 다윗은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에서

2021년 2월 11일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에스겔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의 나라. 바벨론의 그발 강가가 예배의 처소가 되 었습니다. 신약의 베드로는 게네사렛 호 숫가의 작은 배 안에서 예수님께 무릎 을 꿇고 경배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죄 인으로 신분으로 빌립보 감옥에서 갇혀 있어도 성실한 예배자로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5. 벧엘의 정체는 예수님입니다. 오늘 설교의 결론입니다. 다시 창세기 28:12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있는 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 락 하고” 놀랍게도 이 구절을 예수님께서 신약 의 요한복음 1:51에서 인용하시면서 나 다니엘에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 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그 위에 올 라가며 내려가는 야곱의 환상입니다. 그 리고 야곱이 잠에서 깨에 광야의 한복 판에서 하나님이 임재를 깨닫고 제단을 쌓고 벧엘 곧 하나님의 전이라고 불렀 던 내용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 다른 말로 성전 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진실로’라는 단어를 두 번씩이나 반복하며 강조하십 니다. 그분이 친히 야곱의 본 환상과 그 가 드린 벧엘의 예배의 비밀을 설명하십 니다. “바로 인자인 나의 몸이 하나님 의 집이며 성전이란 말이야.” 그러므로 저자 요한은 2장 21절에서 외칩니다.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 씀하신 것이라.” 왜냐구요? 유대인이 역사적으로 생명 처럼 여겼던 솔로몬의 성전, 스룹바벨 성전 그리고 헤롯이 지은 성전, 그 성전 들이 더이상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이 되

지 못했습니다. 성전 중심의 유대교에게 크고 화려한 성전건물이 절대시 되었고 우상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 안에서 제물로 드릴 소, 양 그리고 비둘기가 매매되었 고 돈을 바꾸는 시장터와 강도의 굴혈 로 전락하였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교만 특히 대제사장 인 안나스와 그의 사위 가야바가 성전에 서 생기는 모든 수입을 관리함으로 엄청 난 돈을 모아 사치와 부정과 부패의 삶 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매년 절기 때마다 전 세계에서 모이는 순례자들에게 성전 세와 성전이 장사터가 되므로 상인이나 환전인들로부터 뒷거래로 부정한 돈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 역시 로마 총독이 나 황제에게 뇌물을 바쳤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예수님은 분노 하시면서 그들은 내쫓고 상을 엎으시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 …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 흘 동안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십니 다.(요 2:19) 46년 동안 지은 예루살렘 성전이 허 물어지고 3일 만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 전 중심의 예배보다 더 중요한 예배가 성전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 중심의 예 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 여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교회의 몸이 되신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가 하 나님이 받으시기에 최고의 예배입니다. 이제 2021년 2월로 거칠고 험한 광야 의 코로나 사태가 거의 1년이 되어갑니 다. 이제 사람들이 직장이나 학교로 돌 아가면서 조금씩 회복이 되는 것 같지 만 아직까지 코로나 사태 전처럼 자유스 럽지 않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당의 사이즈에 따라 주일 예배 참석 의 숫자를 제한받고 주중의 집회나 다 른 모임은 거의 없습니다. 주일예배에 소 수가 모이고 또는 온라인이나 가족이나 혼자서 성경을 읽고 찬송과 기도를 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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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 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 게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참된 예배자 가 아니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앞 으로 코로나 사태가 더 길어져 대면 예 배나 모임이 오랫동안 가능하지 않더라 도 예배를 드리지 않는 일에 익숙해지 거나 우리의 믿음이 약해질 구실도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일 대일로 개인적이고 친밀한 만남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시적인 교회인 예배당 건물을 초월하여 살아계 신 하나님과 생명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공적인 예배나 교회 행사가 제한되었습 니다. 잘 훈련된 찬양팀이나 웅장한 성 가대의 찬양이 사라졌습니다. 형제들과 의 교제나 친교 또는 심지어 목회자와의 만남이 쉽지 않습니다. 바로 야곱이 드 린 벧엘의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전의 모임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 기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배당 중심에 서 율법의 완성자 그리고 성전보다 크 신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광야의 삶과 같은 코로나 펜데믹길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는 미국의 총 확진자는 현재 2700만이 넘었고 사망자는 50만 명 가 까이 되었습니다. 방역에 성공했다는 한 국에도 지난 7일 평균으로 매일 400명 의 확진자가 생긴다고 합니다. 매일 공 포 속에서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제 무감각해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코로 라 팬데믹이라는 고난이 여러분과 저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영적 질병입니까? 그 반대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는 삶으로 강건한 벧 엘의 예배자로 살고 있습니까?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제공: 신민식·신정원 성도


목회 칼럼

202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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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법주의자들은 붙잡힌 사도들을 죽이지 않 고 채찍질하고는 예수를 증거하는 일을 금하라고 경고를 한 후 풀어 주었다. 사도 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당 한 것을 오히려 기뻐하였다. 기독교 교회 안에서의 상황은, 헬라파 유대인 여성도들 이 물심양면으로 교인들을 먹이었다. 그러 한 모습을 바라본 헬라파 유대인 성도들 이 히브리파 여성도들은 그러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였다. 사도들은, 앉아서 섬김을 받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는 말씀과 기 도에 전염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이었다면 어찌하였겠는가? 예수님을 본받아서 손수 봉사를 하고 돈이나 물질이 부족하면 텐 트 메이커가 되어서 일하여 얻은 수입을 자타를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다. 또한 사도들은 남성도들 중에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집사로 안수하여서 교회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기적과 에서 봉사하게 하였다. 표적을 행하면서 혹은 사명감을 가지고서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에서 헌신을 많이 지혜는 교회 안팎의 일상생활과 인간관 하고 타의 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율 계에서 필요한 것이다. 지혜가 없이는, 가 법주의자들은 물론 로마의 핍박은 국가적 정 일터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대립 언쟁 이었던 것이 비극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지 싸움 혹은 분열이 발생할 뿐이다. 바울과 옥영벌을 모면하고 천국 영생 복락을 얻 바나바는 성경적인 지식과 믿음과 성령의 으라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붙잡아 은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쟁과 분열 감금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는데, 비성서적 이 발생하였다. 그러한 일들이 모든 사람 이고 비신앙적인 죄악과 범죄를 정당화하 에게 발생할 수가 있기에 하나님의 이름 였던 것이 그들에게 행복이 아니라 오히 과 은혜와 자비를 가리게 되지 않도록 주 려 비극의 시작이었다. 의를 하면서 지혜를 꾸준히 간구하고 배 무신론자들과 회교도들은 크리스천들보 다 그 숫자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크리 스천들이 세상의 부의 약 55%를 소유하 고 있고, 무신론자들은 약 30%, 회교도들 은 5.8%, 그리고 힌두교들은 3.3%를 소유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은 혜와 자비로써 알게 모르게 도우시고 인 도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흥망성쇠 희로애락 그리고 복음적으로 살 기에 고난이나 순교를 당할지언정 신앙은 거룩하고 의로워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과 신실하심과 오 래 참으심과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하도 록 신앙과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일에 있어 서 상하좌우 앞뒤로 확고하여야 하고 연 단과 연달함이 향상이 되도록 꾸준하게 애를 써야 한다.

우고 터득하고 반영하여야 한다. 로마시민 율법사 가말리엘의 조언으로 인하여, 율 들과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로마에게 세금을 내야 하였는데, 당시 크리스천들도 로마법에 따라서 세무 의 의무를 하였다. 사도들이 범죄를 저지 르지 않고도 핍박을 받은 사실을, 당시 로 마의 법에 의뢰하였다면 보호를 받고 또 다른 핍박을 모면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생산적으로 혹은 꾸준하게 지속하기 위하 여서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의뢰할 뿐만 아니라, 의지적으로

지혜가 있어도 성령이 없으면 개인 중 심적으로 언행 하면서 이기주의나 인본주 의나 자유신앙으로 전락할 수가 있다. 그 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꾸준하게 이 루기 위하여서는 지혜와 성령은 개인적으 로나 단체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천지에 유익함이 발생하게 되고 사람들이 평안하며 행복 이 증가할 것이다. 인생과 영생이 잘되기 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가 간절하게 지 혜와 성령을 구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말 씀과 뜻대로 처신하여야 한다. 집사들 중에서도, 스데반은 사력을 다 하여 기도하였거나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 였던지 믿음과 성령이 특별하게 충만하였 다. 그리고 그에게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 게 임하여서 기적과 표적을 행하면서 복 음을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전하였다. 그 러나 율법주의자들은 돌로 그를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그는 죽을 때에 “주여 이 죄 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고백 하였는데, 예수님을 닮은 순간이었다.

도 진리 말씀을 실천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의와 사랑에 이르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 을 맺고 복음을 전할 때에, 은혜와 권능이 임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 을 돌리는 일들을 발생할 수가 있다. 그리 고 신앙의 경주와 영적 싸움에서도 스데 반과 같이 예수님이나 천국을 바라볼 수 가 있거나 순교적일 수가 있다. 믿음과 성령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나님 중심적으로 지향할 수가 있다. 믿음만 있 다면 베드로와 도마의 실수를 할 수가 있 고, 성령만 있다면 영혼주의자로 전락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믿음과 지식, 지식 과 절제, 절제와 인내, 인내와 경건, 경건과 형제 우애, 형제 우애와 사랑 그리고 사랑 과 정의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영 육혼도 균형을 이루어야, 비로소 내외적으 로 흠 없고 거룩하고 의롭고 온전할 수가 있다. 균형을 이루는 것도, 자타와 천지와

주일예배: 11:30 인생과 영생에서 유익하며 오전 하나님께 찬송 (장소:

2821 S 유스주일예배: 주일 오전 10:30 (장소 과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오후 7:00 (장소: 5651 S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그의 자녀가 수요예배: 되는 비결인 것이다.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2821 S. Parker Rd. Aurora, CO 80014


하나님의 구원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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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1일

(제19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11. 예수님의 몸, 교회 (7)

Zinzendorf는 “크리스찬의 삶은 신앙

챨스 스펄젼, 찰스 피니, 디. 엘. 무디, 죠나

지도 않아 건강에 썩 좋지만은 않았다. 눈

공동체 내에서의 사랑과 화합”임을 강조

단 에드워드 등 부흥운동, 한국의 장대현

병과 귓병을 치료하는 연고 생산으로 유

했다. 그의 교회는 최초로 서인도제도의 노

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의 회개와 부흥 등,

명했다.

예들(1732)과 그린랜드의 노예들에게 선교

영적 운동의 여파로 많은 대학과 교회들이

사를 파송했고(1733) 이후 유럽에서는 서

설립 되어 주님께 헌신했다.

이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것과, 성령의 은혜로 영적인 눈이 열려 구 원의 영광을 보라는 뜻이다. 또 경계하시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노

인도제도의 노예들에게 젊은 선교사들을

이와 같은 교회부흥과 세계선교가 크게

파송하는 일로 인해 젊은이들을 죽음으

일어나 복음전파의 꽃을 피운 시기가 주님

로 몰아대는 일이라는 큰 논란을 불러 일

께로부터 칭찬을 들은 필라델피아교회 시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신 예수님, 따

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

으켰다. 북미 인디안들(1935)과 남미 여러

대이다. 이 마지막 때에 이런 시대 교회로

라서 하나님의 맡기신 인류구원을 위한 사

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흑인 노예들에게, 동인도제도의 니콜라 섬

다시 돌아가야만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다

명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충성하신 주님,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들, 이집트의 곱틱과 서부 아프리카까지 교

할 수 있고 주님을 영화롭게 만날 수 있

인류를 구원키 위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

토하여 버리리라” 하시고 “무릇 사랑하

인 60명마다 선교사 1가정 파송제도를 실

을 것이다.

랑과 은혜로 참아 오시고 기다려주신 하

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

나님 아버지의 구원섭리에 대한 참된 증인

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권고하셨다.

천했다. 가톨릭 국가 군대가 점령한 나라마다

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의 모습으로

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나타나셨다.

(7) 라오디게아교회 (계3:14-22) 의 모습인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마음 밖 에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하셨

Jesuits을 통해 강제로 가톨릭을 믿게 한

라오디게아의 의미는 “백성의 판단, 혹

로마 가톨릭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된 가

은 백성의 다스림”이다. 라오디게아교회의

보통 인간들은 자신의 기준, 곧 눈에 보

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마

운데 200여년 후에 시작된 개신교 선교는

특징은 “뜨뜻미지근한 교회”, 혹은 “자

이는 외모로 판단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

음속에 영접한다는 것으로(요1:12) 따라서

애초에는 흑인노예들이나 인디안들 선교를

만하는 교회”이다.

의 중심을, 곧 영적으로 하나님의 형상

믿는 자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계시는 것

이 얼마나 회복되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

이다(고후13:5).

중심으로 시작 되었지만 필라델피아 교회

라오디게아는 희랍의 알렉산더가 죽은

시기(1750-1925) 후반에 들어 미국, 카나

후 셀레우씨드(Seleucid)왕조의 안티오커

다, 영국, 호주, 유럽 여러 개신교국가들로

스(Antiochus) II가 자신의 아내 라오디체

부터 우후죽순 격으로 전 세계 각 지역에

(Laodice)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이다.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교회의 성도들의 마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교회 신자들

음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고 예수님

이 자신들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자

이 말씀하신 것이다. 라오디게아교회 신자

소아시아의 부르기아(Phryghia) 주의

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고 자부

들은 외모로 주님을 믿고 중심으로는 예

수도로 리커스 강이 흐르는 계곡에 위치

하고 있다고 지적하시고 책망하시기를 “

수님을 모시지 않은 껍데기 신자라는 것이

이 시기에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내지 선

한 도시로 양털로 짠 카펫 등 모직물 산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다. 그냥 종교인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교, 윌리엄 케리의 인도 선교, 아도니램 져

업이 발달했고 도미시안 황제 때는 금융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

것이다. 세속화된 교회, 세속적인 신자는

드슨의 미얀마 선교, 모파트와 데이빗 리빙

로 유명했다.

다” 하셨다.

다 이와 같은 것이다.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지금은 가톨릭과 개 신교의 세력이 거의 비슷하게 되었다.

스톤의 아프리카 선교, Zinzendorf의 모

AD 60년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 로

아울러 권고 하시기를 “내게서 불로

대부분 사람들이 라오디게아교회를 교회

라비안 교우들의 영향을 받은 요한 웨슬레

마 제국의 지원을 거부할 정도로 경제적으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

사적으로 마지막시대, 곧 예수님 재림 직전

와 챨스 웨슬레 형제 중심의 Holy Club

로 자급자족의 도시였다. 미국 풋볼경기장

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

(AD 1925-예수님 재림)의 교회 모습으로

운동과 영국 감리교 탄생, 미국의 학생 자

보다 1.5배나 큰 경주 장이 3개나 있을 정

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

비교한다. 교회 다니면서 세속적으로 출세

원 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도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향락의 도시였다.

라”고 하셨다.

하고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육신적으로 건

영국의 William Booth를 중심한 구세군

북쪽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 내려온 온

이 말씀은 불로 연단된 금보다 더 귀한

강하게 잘 살면 믿음이 좋아 하나님으로부

운동, 한국을 비롯 전 세계에 선교사들의

천물이 있었지만 리커스 강물과 만나 흐르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예수님의 보혈로 모

터 받는 축복으로 착각하는 자기만족, 자

선교사역을 통한 복음전파, 죠지 윗필드,

면서 도시의 모든 물이 뜨겁지도 않고 차

든 죄 회개하여 깨끗하게 씻음 받으라는

기기만의 신앙이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제공: 서선녀 사모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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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40)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너는기회를 따라 행하라! <사무엘상 10:7-16>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 그로부 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 습니다. 하루아침에 왕이 된 것입니다.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게 일어난 이 사실들은 무척 받아들이기가 어려웠 습니다. 용기도 없고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는 하나님이 사울 을 택하셨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세 가지 징조를 그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 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삼상 10:9). 사무엘 선지자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서 이 세 가지 징조가 그 날 다 사울에게 임했습니다. 이 징조들은 하 나님께서 사울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실 것을 보여 주시는 징조입니 다. 이제 사울은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 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 일하시 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울과 헤어 지면서 사무엘 선지자가 그에게 남긴 당 부의 말을 통해, 그리고 이 징조들을 경 험하고 난 후에 보인 사울의 태도를 통 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면면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주신 기회를 붙잡아 행 할 줄 아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이 징조 들이 너에게 임하면 확신을 가지고, 이것 이 하나님이 너에게 허락하신 기회인 줄 알 고 행하라”고 말합니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 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 10:7). 여 기서 ‘기회’라는 단어로 번역된 히브리 어 ‘야데카’는 ‘너의 손’이라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그냥 ‘야데카’가 아니고 앞에 ‘티무차’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 니다. ‘티므차 야데카’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무엇을 하거나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너의 손이 발견하거든’이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사울로 하여금 왕이 될 수 있도록 하신, 그래서 그의

손이 발견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입 니까? ‘하나님의 함께하심’(7절), ‘세 가지 징조들’, ‘새 마음’(9절), ‘성령 의 임함’(10절)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어떤 기회를 허락 하셨다는 증거들입니다. 사울에게는 확 실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제 사울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기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기회를 따라(발견했으면) 행하 는 것입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기회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결단하고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갑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 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 라”(출 4:20) 이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 나라 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다양한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이 기회들을 용 기 있게 붙잡고 행하는(결단하는) 자들 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주저주저 하지 마세요. 미루지 마세요.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습니 까?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 나님이 새 마음도 주시고 성령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신 기회를 통해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기, 자원(시간, 건강, 지 식, 물질)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바 라보면 용기가 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함 께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둘째, 기다릴 줄 아는 자들을 통해 일 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과 헤어지면서 또 한 가지 당부를 합니다.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 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삼상 10:8). 사무엘 선지자의 첫 번째 당부대로 ‘ 기회를 따라 행’해야 하지만, 그러나 지 금 바로가 아닙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7 일 동안 사울이 기다려야 할 것들이 무 엇입니까?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려야 합 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위해

기다려야 합니다. 어떻게 행할지에 대한 가르침(지침)을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합 니다. 사울에게 있어 ‘기다리라!’고 하는 이 명령은 어쩌면 그를 향한 하나님의 테스트일 수 있습니다. 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바 로 당당하게 스스로 백성 앞에 자신이 왕 됨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 동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왜요? 선지자 로부터 왕으로 기름부름을 받았습니다. 징조들도 경험했습니다. 사울로부터 ‘기 회를 따라 행하라!’는 명령도 받았습니 다. 이제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여 러분, 한 번 더 생각해봅시다. 사실 사울 이 기름부음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신 스 스로 왕임을 자처하고 백성들 앞에 나선 다면 과연 백성들이 왕으로 인정해 줄까 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때 가 있습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다시 모세를 보세요. 애굽 궁 중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갖출 것 다 갖췄습니다. 이제 그는 스스로 자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나섰습니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그를 인 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의욕만 넘치다 보 니 오히려 살인범이 되어 광야로 도망치 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서 하나님은 40년을 더 기다리게 한 후 에, 80세가 돼서야 그를 바로에게 보내셨 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죠. 사무엘 선지 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에도 무 려 15년을 기다린 후에야 실제적인 이스 라엘의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움 받아 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기다 릴 줄 아는 사람들과 일하십니다. 그러 므로 조급해해서는 안 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조급하게 생각해 도 하나님의 때가 앞당겨지는 것은 아닙 니다. 인내로 기다릴 줄 알아 하나님의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때에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시는 여러분 들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을 통해 일 하십니다. 사울의 숙부가 집으로 돌아온 사울 만나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어디 갔다 오느냐는 것입니다. “사울의 숙부가 사울 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 니”(삼상 10:14). 사울의 대답이 무엇입니 까? 암나귀를 찾다가 찾지 못해서 사무 엘 선지자에게 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 자 숙부가 또 묻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로부터 들은 말을 이르라는 것입니다.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 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 라”(삼상 10:15). 사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울이 그 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 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 니하니라”(삼상 10:16). 사울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과 지금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이스라엘 의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집안 어른 께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이 일은 사울 자신의 개인의 영광일 뿐 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지 않습 니까? 그런데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습니 다. 어쩌면 사울은 나귀를 찾았다는 말 보다 자신이 왕이 된다는 말을 더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할 줄 알 아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솔로몬 왕이 전도서와 잠언을 통해 우리를 이렇 게 교훈합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 으며”(전 3:7),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 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 혜가 있느니라”(잠 10:19). 하나님은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을 쓰십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이스라 엘의 초대 왕이 되었지만, 왕이 된 이후 사울은 이 세 가지 자질, 즉 하나님이 쓰 시는 사람으로서의 자질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눈 밖에 나고, 하나 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그는 월권을 행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 앞서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제사 집례를 왕이 자신이 행함으로 하나 님의 율법을 어겼습니다. 월권을 행한 것

2021년 2월 11일

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붙잡아 행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붙잡아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기다리는 일에 실패했습니 다. 블레셋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이끌 고 전장에 나가기 위해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제사를 집례할 사무엘 선지자 를 기다렸으나 정한 7일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았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 장의 상황으로 조급해진 사울은 더 이 상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왕인 자신 이 제사를 집례하고 맙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입니다. 기다리던 사무엘 이 언제 왔습니까? 사울이 제사를 집례 하고 난 다음에 왔습니다. 그는 기다리

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아끼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하지 말았 어야 할 맹세를 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 을 힘들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블레셋을 쳐서 다 멸하기까지 음식을 먹지 말라, 먹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맹세 입니다. 전쟁을 하는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일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전쟁이 끝나자 너무 배가 고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들을 잡아 피채 먹으므로 율법을 범했고, 이 맹세를 모른 채 꿀을 찍어 먹으므로 자 신의 맹세를 어긴 아들 요나단을 저주의 맹세대로 죽일 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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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지 말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 습니다. 전쟁 중에 병사가 먹지 못하면 어떻게 힘을 쓰겠습니까? 사울은 꼭 해 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 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아끼지 않은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사 람을 통해 일하십니까? 하나님의 주신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굳게 붙잡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릴 줄 알고, 꼭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 입 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 람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큰일에 기꺼이 쓰임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신앙은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 신앙은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나는 불안전한 자요 주님은 온전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를 버려야 한다.. 내 안에 그리스도로 충만 함이 내게 복이다.

나는 실수투성이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며 나의 의지는 연약하나 하나님은 변함없는 강건함으로 나를 압도하신다.

이기심도 버리고 욕심과 혈기도 버려야 한다. 죄악은 쓰레기와 같은 것 불태워 없애야 할 것들이다.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며 나를 버림으로 얻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죄를 처절하게 깨달아 나를 버리고 내 안에 주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믿음은 나를 온전케 하며 믿음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든다.

믿음이 나를 거룩하게 만든다. 믿음은 하나님께 붙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강력한 접착제요 녹아 하나 되게 하는 신비의 묘약이다.

믿는 자의 증표는 행함으로 열매를 맺으며 낮아지고 겸손함으로 높아진다. 사람들 앞에서 낮추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것이 겸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면 방종이 된다. 구름이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듯 인생은 하나님의 뜻이 흐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것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은혜받은 증거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쉴만한 물가

2021년 2월 11일

14

버가모 교회의 이기는 자 버가모는 문화가 발달한 소아시아 도시였

가 억울하게 죽었을까? 하나님은 왜 신실

나님께서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 일일이 설

다.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이 발달한 도시

한 안디바를 죽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하

명하시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 이기

인 반면 버가모는 문화적으로 소아시아의

나님의 능력이 사탄의 능력보다 약하신가?

는 것이다. 의심이 들어도 하나님을 끝까지

중심적 역할을 한 도시였다. 버가모에는 20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실패할 수

만 권 정도를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고, 그

있으며 병들 수도 있다. 죽임당한 양처럼

버가모 교회의 성도가 이겨야 할 또 하

이고 편의주의적인 신앙 성향을 지닌 무리

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아스클레피우스

순교를 당할 수도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는 발람의 교훈 곧 니골라당의 거짓 교

들에 대한 상징적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라

라는 뱀신을 의술의 신으로 삼은 의학교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때때로,

훈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종교적 혼합주의

이프 성경사전).

있었다. 아스클레피온이라는 병원이 그것이

그들이 신실하기 때문에, 신실한 하나님의

를 가리킨다.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종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이곳에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시거나 광야의 연단

적 혼합주의를 이겨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기 직전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 백성들이

서 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헬라의

을 계획하시기도 한다.

있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

신뢰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신 제우스와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등 사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고난을 당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

고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

탄의 권좌가 있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이런

할 때 혹은 연단 가운에 있을 때 눈부시게

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신들에게 절

도시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이

그들의 믿음이 드러난다. 이와는 반대로 어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

했다(신 25:1-2). 이것이 발람의 계략이며 교

겨내야 할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시험을 만나면

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훈이다. 발람의 계략은 노골적으로 우상숭

계시록 2장에서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보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 버린다. 그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

배를 하도록 하는 것보다 모압여인과 음란

낸 편지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런 고난을 허락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

도다 (계 2:14,15)

에 빠지게 한 후 그 여인들을 통해 우상숭

버가모 교회는 소아시아의 문화 도시 버

다며, 그런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며, 그렇

발람의 교훈은 거짓 선지자 발람이 이스

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발람의 교훈은 통혼

가모에 있었다. 성경은 이 도시에 사탄의 권

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며 떠난

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여인들과 음란

을 통한 문화적 혼합주의, 종교적 혼합주

좌가 있었다고 말한다. 버가모 교회의 충성

다. 하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당

에 빠지게 하며 통혼을 하도록 하여 결국

의다. 이것이 니골라당의 전략이기도 하다.

된 증인 안디바가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할 때 더욱 주님을 찾고 갈망하며 주님께

이방신을 섬기도록 타협케 한 것을 말한다(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이 이겨야 할 것들

고 한다. 그때에도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더 가까이 나아간다. 이것이 진정으로 믿는

민22-25장; 31:8,16). 버가모교회에서도 발람

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통시대적으로 적용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자의 모습이 아닌가.

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주님은 책

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에도 슬며시 들어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성경은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이 안디바

망하셨다. 이는 그들이 우상 숭배에 동참함

온 세상의 문화와 가치가 들어와 세속주의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

가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

으로 종교혼합의 죄를 범하고 있었음을 암

와 혼합주의가 흐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

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

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

시한다(계 2:14).

렵다. 교회가 이것을 이겨야 한다. 그것이 성

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

다고 전한다. 이것이 이기는 자의 신앙이다.

니골라당은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

도들의 영적 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

이기는 자는 고난과 연단 중에 하나님의 사

에 들어온 이단이다. 그들은 한번 하나님

무엇이든 혼합되어 있는 것을 구분하고

다” (계 2:13)

랑과 신실하심에 대해 의심을 가지지 않는

을 믿은 뒤에는 무슨 행동을 해도 죄가 되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적인 혼합은 더

다. 오히려 이때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

지 않는다고 믿었다. 도덕폐기론과 무율법

욱 그리하다. 하지만 이것을 구분하고 분리

하며 주님을 찬양한다.

주의를 주장한다. 혹자는 니골라 당을, 일

하며 성도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이

신실한 그리스도인 안디바가 복음을 증거 하다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서 순교했 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몇 가지 의문을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 하나님을

상생활에서 기독교 신앙과 이교 세계의 세

기는 자의 삶이다. 내 안에 성과 속이 섞여

던질 수 있다. 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

원망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하

속적인 문화를 적절히 혼용한 혼합주의적

있는 것을 구분해 내야 한다.


예배학 강좌

2021년 2월 11일

15

“성만찬을 새벽기도회에서 거행해도 되나요?” “주일낮예배에서 성만찬을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해서 새벽기도회 시간이나 수요일 혹은 주일예배 시간 중에서 적당한 때를 골라 거행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없는지요?” “기도실 같은 곳에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진열해놓고 누구든지 편리한 시간에 와서 자유롭게 기도하고 먹도록 하면 어떨까요?” ” 성만찬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교회

었기 때문에 교인들은 아침에 직장에 갔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주님의 부활을 기 뻐하며 함께 떡을 떼는 감사의 잔치, 천국 의 만찬, 공동체의 식사입니다. 따라서 성

다가 저녁에 퇴근해서 예배 모임을 가졌습 니다. 그런데 부자나 자영업자들은 퇴근시 간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일

만찬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모두 모인 자

찍 올 수 있었지만, 피고용자, 일용직 노동

리에서 거행되어야 합니다. 이에 관한 성 경의 가르침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찾 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교

자, 길거리 좌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은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예배 당에 오는 것도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들 간에 파벌이 생겨서 하나로 화합하 지 못했습니다.(고전 1:10-12) 이러한 파 벌 간의 분쟁이 성만찬에서도 나타났습 니다. 교인들 가운데 일부 사람들이 자

이런 상황에서 먼저 온 사람들이 자신 들이 가져온 질 좋은 빵과 맛 좋은 포도 주를 실컷 먹고 마셔버리자 나중에 온 가

기들끼리 모여서 다른 사람들이 오기도

난한 사람들이 먹고 마실 것이 남아 있

전에 먼저 성만찬을 거행하면서 빵을 배 부르게 먹고 취하도록 포도주를 마신 것 입니다. 고린도전서 11:20 이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 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 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고 전 11:20-21)

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책망했습니다.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 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 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 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 로 칭찬하지 않노라”(고전 11:22)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먼저 와서 배불리 먹고 취하도록 마신 사람들 은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교회 안의 부자 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 갈 때 헌금을 가지고 가듯이, 1세기 무렵에 는 사람들이 교회에 갈 때 빵과 야채, 포 도주 등을 가지고 갔습니다. 가져온 것들 을 지정된 장소에 놓으면, 예배 중에 담당 자가 적정량의 빵과 포도주를 추려내 앞 으로 가져와 바칩니다. 그러면 예배를 인 도하는 사람이 그것을 들어서 감사의 기 도를 드린 다음 모두가 그것을 나누어 먹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진정한 성만찬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뒤에, 다음과 같이 성 만찬 거행의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그러 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 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주의 몸을 분별 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 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런즉 내 형제 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고전 11:27-34) 이 모든 말씀을 통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 이 참여한 자리에서 성만찬이 거행되어

고, 남은 것은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 에게 분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상 상할 수 있듯이, 부자들은 품질이 좋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오는 데 비해, 가

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집안에서 잔치 를 하는데 가족 구성원 중 일부가 없을 때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가족이 함께 화합하고 즐거워지는 잔치가 아니라

난한 사람들은 소량의 값싸고 맛이 덜한 것들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그것마저 가져 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올 수밖에 없었습 니다. 또한, 당시에는 주일이 일하는 날이

가족 구성원을 섭섭하게 만들고, 결국에 는 서로 불화하게 만드는 잔치가 되지 않 겠습니까? 그러므로 잔치는 모든 구성원 이 다 모인 자리에서 행해야 합니다. 성만

찬도 잔치이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모인 자리에서 행해야 합니다. 물론 모두가 올 수 있는 시간에 잔치를 열었는데 개인적 인 사정이 생겨서 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지요. 또 성만찬을 기도실 같은 곳에 진열해 놓고 사람들이 편리한 시간에 와서 기도 하고 먹도록 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스 투키 교수는 재미있는 비유를 했는데, 이 비유는 성탄절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하는 잔치를 앞두고 부모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애들아, 너희들이 알다시피 우리는 여 러 해 동안 성탄절 때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먹을 잔치를 준비해왔다. 그런 데 올해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하려 고 한다. 사실 이번 성탄절인 12월 25 일에 우리는 집에 있지 않을 예정이 다. 그러나 우리 집은 온종일 개방되 어 있을 것이고, 음식 또한 다른 때처 럼 잘 준비해서 상에 차려 놓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언제라도 올 수 있 는 시간에 와서 마음껏 음식을 먹고 몇 시간이고 머물다가 돌아가렴. 다만 한 가지 부탁할 것은, 그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서로 이야기를 하지 말았으 면 한다. 기쁜 성탄을 축하한다. 엄마 가. 잔치가 이 편지와 같이 행해진다면 어떨 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잔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본래 잔치라는 것은 사 람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 기를 나누는 가운데 친교와 공동체적 유 대감을 형성하고 풍성함과 즐거움을 누리 는 것입니다. 침묵 속에 각자 자신의 빵과 잔을 받고 묵상하는 한국교회의 성만찬 은 개인적 경건을 더해주기는 하지만, 하 나님의 면전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공동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체의 감사잔치라는 느낌은 별로 느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성찬을 한 곳에 차려 놓 고 누구든지 편리한 시간에 와서 먹게 한 다면, 그것은 공동의 잔치라기보다는 언제 든지 와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나가는 ‘편의점’ 같은 것이 아닐까요? 성만찬은 모든 성도가 모이는 주일낮예 배에서 행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그토록 강력 하게 촉구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한국교회가 성만찬을 주일낮예배가 아닌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심지 어 새벽기도회에서 행하려고 하는 이유 는 딱 한 가지입니다. 성만찬을 거행하려 면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주일낮예배에서 하기에는 부담스 럽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목사가 사활을 걸고 준비한 설교에 성도들이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과연 이러한 이 유들이 성만찬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해야 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요? 성만찬은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셨고, 주 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인 방법이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표 현하는 가장 훌륭한 행위입니다. 교회는 성만찬과 함께 태어났고, 예수님이 승천하 신 이후 사도들이 매일 모여서 거행할 정 도로 기독교 예배 모임의 핵심이었습니다. 설교 없는 예배가 불가능하듯이, 성만찬 없는 예배도 불가능합니다. 만일 시간이 부족해서 예배 순서 중 일 부를 없애야 한다면 성만찬은 맨 나중의 선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1년에 서너 번 성만찬을 거행하는 데 익숙한 한 국교회와 성도들의 상황과 정서를 감안 한다면, 우선은 주일낮예배가 아닌 새벽 기도회,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에서라도 자 주자주 거행하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하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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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2월 11일

18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사랑과 자유의 절제

아, 나는 사랑하며 살지 못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8:1-13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3:1-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취식문제에 한국기독교 신앙생활에

성령의 은사가 각 사람에게 주어짐은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시는 말씀이 사랑입니다. 방언과 예언과 지식과 능력을 행하는 은사와 구제와 희생적인 일을 행하는 것도 사랑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도 어떤 유익도 없다는 뜻입니다(고전 12장)

8장은 우상 제물의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초기 조상들에 대한 제사 문제 만큼이나 있어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당시 그리스 - 로마의 도시들에는 많은 신전이 있었고, 신전에서 제상에 사용된 엄청난 양의 제물들이 일반시장으로 나와 시민들에게 팔리게 됩니다. 고린도에도 태양의 신 아폴로 신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신전이 있었고 이곳을 통하여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육류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심각한 신앙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A.D. 49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의 식취문제, 음행, 목매어 죽인 동물의 고기나 피를 멀리하라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행 15:20-29).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된 요구는 아닙니다. 단지율 법에 익숙한 유대인들의 양심을 고려하여 이방인들이 지켜 주길 요청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새롭게 접근을 합니다. “사랑과 자유의 절제”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해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내 자유함이 어떤 누구에게는 억눌림이 될 수 있기에 사랑과 절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자유와 권리의 절제가 있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종 은사를 행하기 전에 요청되는 것은,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자랑이나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기뻐해야 한다며,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마무리를 합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란 희랍어 ‘판타스테케이'(παντα στεγει)는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속하다”란 의미이며, 모든 것을 믿으며란 희랍어 ‘판타피스튜에이'(παντα πιστευει)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계속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모든 것의 배경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것을 신뢰하는 것이고, 모든 것을 바라며란 희랍어 ‘판타엘피제이'(παντα ελπιζει)는 미래에 대한 적극적 소망을 말하는 것인데 미래에 대한 소망은 현재의 삶까지 활기 있게 만들어 줍니다. 모든 것을 견딘다는 희랍어 ‘판타휘포메에이'(παντα υπομενει)는 위험하고 곤란한 상황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며 소망 중에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나는 어떤 곤란한 상황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며 소망 중에 기다리고 있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보고 자신을 살펴보아도 아, 나는 사랑하며 살지 못한 사람인가 봅니다.

(ooreekmc@hanmail.net)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진리의 샘터

2021년 2월 11일

19

사랑의 교회 몇 주 전 한인 사회뿐 아니라 미국 이 민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 ‘미 나리’의 특별 온라인 시사회를 참여하 였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2월 12일) 미 주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강력하게 추 천드립니다. ‘미나리’는 한인 이민자들 의 공통적인 이야기입니다. 한류의 인기 가운데 미국에 많이 소개된 영화나 음 악, 예술 등은 어떻게 보면 한국의 이야 기입니다. 하지만 Korean American의 이야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미나리’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가 조금 더 알려 지고 또한 우리 모두가 다 따뜻함과 치 유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미나리’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영 화 가운데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 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나리’의 주인공 Jacob (Steve Yeun) 과 Monica (한예리)는 가족들 과 Arkansas 작은 마을에서 농업으로 성공하리라는 꿈을 가지고 삶을 시작합 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둘은 병아리 감 별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 서 다른 한인 여성을 만나게 되고 대화 를 하다가 왜 그 지역에는 한인 교회가 없는지 묻습니다. 한인 가정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가정 있고 한인 교회

가 있다면 아이들이 함께 서로 어울리 며 좋을 것이 아니냐고 Monica가 묻자 그 여성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도 시에서 떠난 이유가 한인 교회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라고. 저에게는 너무도 씁 쓸한 장면이었습니다. 한인 교회는 한인 이민 사회에서 아 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종교적 인 것을 떠나 한인 교회는 한인 이민자 들의 안식처이었고 아이들이 문화를 배 울 수 있는 문화 센터였으며 사회복지 센터 등의 역할도 감당해 왔습니다. 교 회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숨과 쉼을 얻 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교회 가 왜 사람들이 “벗어나고” 싶은 곳 이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 이유는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잃어버려서 아닌 가 생각해 봅니다. 제가 말하는 선한 영 향력은 이런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 지 친 이 세상의 삶으로부터 숨과 쉼을 얻 을 수 있는 것.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 받고 위로받는 것. 절망 가운데 새 로운 소망을 되찾는 것. 다시 말해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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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일어나고 치유가 있고 온전케 변 화되는 것.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보듬어주기보다 는 비판하고 안아주기보다는 배척하고 치유해 주기보다는 상처를 남겨주는 경 우가 많습니다. 물론 일부러 그러는 것 은 아닙니다. 진리를 이야기하고 올바른 말을 하려고 하다 보니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는 상대를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보다는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죄의 근본적인 모습입니다. 교회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사회에 선 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 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버리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도 볼 줄 아는 모습입니다. 바 로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 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엡4:15, 새번역).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이득 만을 위하여 행동하는 단체는 비단 교 회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 께 부름을 받고 제사장 역할을 부여받 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그 어느 단 체들보다도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나 아가야 합니다. 바로 사랑. 사랑으로 행하는 교회, 교 회가 그 무엇보다 사랑 가운데 거하면 이 세상이 바라보는 교회의 모습은 어 떠할까요? 사랑으로 “벗어나고 싶은” 교회가 아니라 “꼭 참여하고 싶은” 교 회를 세워 나아갑시다. 여러분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랑은 나를 생각하기 전에 상대방을 먼저 생각합니다. 나의 입장보다 더 중 요한 것이 상대방입니다. 같은 진리를 이 야기한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말하는 진 리는 나의 지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세우기 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권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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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202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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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렌타인스가 되게 하자! <요한일서 4:7-11>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사는 사회 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등장하는 단어 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제일 많 이 받고 싶고, 주고 싶은 것도 사랑이고, 받지 못해서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도 사 랑이다. 인간생활의 희비극의 원인제공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사랑 때문에 웃고,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행복하기 도 불행하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인류역 사는 사랑의 전쟁역사이기도 하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사랑을 다음과 같 이 정의하고 있다. ① 남녀가 서로 애틋이 그리는 것, ② 서로 동정하면서 친절히 대 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마음, ③ 육정적이 고 감각적이 아닌 동정과 긍휼과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이라는 정의들을 성경은 무엇이라 말할까? ① 남녀가 서 로 애틋이 그리는 사랑을 성경에서는 ‘ 에로스’라고 한다. 이 에로스라는 사랑 은 구약성경에 두 번 나온다. “오라 우리 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 함으로 희락하자”(잠언 7:18) ② 서로 동 정하면서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푸 는 마음의 사랑을 두고 ‘필리아’라고 한다. 이 사랑은 신약성경에 25번 나오는 데, 주로 친구 간의 사랑으로 써진다. “나 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 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딛 3:15) ③ 육정적이고 감각적이 아닌 동 정과 긍휼과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감

정이라는 사랑을 두고 ‘스토르게’라고 한다. 스토르게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과 같은 본능적인 애정인데,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 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우애가 바로 그것이다. 에로스도 필리아도 스토르게도 아주 중 요한 사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이다. [하나 님은 사랑이시다]고 할 때, 그것은 ‘아가 페’를 말한다. 요한은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 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 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7절)로 시작한 ' 사랑'이란 단어가 11절까지 모두 13번 등 장한다.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이 보지 못하 는 사랑을 볼 줄도 알았고 느낄 줄도 알 았고 고백할 줄도 알았다. 예수님이 사랑 을 베푸시는 모습들을 주목해서 보고 마 음에 새기고 그 사랑의 이야기들을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남 편 다섯을 두었던 죄 많은 사마리아 수 가성 여인과 대화하시고 그에게 사랑을 베푸신 모습을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다 (요 4장). 예수님께서 간음현장에서 붙잡 힌 죄 많은 여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 는 모습도 기록했다(요 8장). 선생이신 예 수님이 자기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시는

그 사랑도 기록했다(요 13장). 요한은 예 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도 자기를 못 박 는 원수들까지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놀라운 사랑을 깊이 체험했 고 배반자 베드로를 사랑으로 용서하시 고 그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새로운 사명을 맡기시는 사랑의 장면을 복음서 마지막 장에 기록했다. 사 랑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고 그 사랑 을 평생토록 기억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 복한 사람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사랑 하시지만 특별히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 던 사람이다. 그래서 자주 어린애처럼 예 수님의 품에 안기곤 했다. 그리고 자기를 묘사할 때는 언제나 수식어 하나를 더 추가해서 사용했는데 ‘예수의 사랑하시 는 제자’라는 수식어였다.(참조, 요 13:23; 19:26; 20:2; 21:7) 사랑을 느끼고 받고 고백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요한은 입을 열 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8,16절)라고 외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았노라 귀로 들었노라 손으로 만졌노 라’고 고백했다. 결국 요한은 12제자들 중에서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이 세상을 산 사람이 되었다. 요한은 가장 행복한 사람 임이 틀림없다. 제일 먼저 제자가 되었고 제일 마지막까지 제자의 일을 했다. 사랑 을 받고 고백하고 주는 사람, 그야말로 사 랑의 사도였기 때문이다.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담임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 은 예수님의 탄생 사건과 예수님의 죽음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보 내는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속죄 제물로 죽게 하는 사랑이었다. 하나 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에 나 타났고,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생명 을 다 부어 주신 십자가의 죽음에서 완성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는 것으로 그리고 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우리가 나타내 보여야 할 사랑의 모습도 분명해진다. 사랑은 되는 것이고 사랑은 거하는 것이고 사랑은 주는 것이 다. 사랑은 느낌도 생각도 생활 스타일도 그 사람과 같이 되는 것(becoming), 그 사람과 함께 있고 그 사람과 함께 거하는 것(dwelling)이며, 그 사람에게 필요한 시 간과 물질과 생명을 주는 것(giving)이다. C. S. 루이스는 말했다. “우리는 에로 스에 의해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 양 육되고 필리아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 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사랑함 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자라 고 성숙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 다. 우리는 세상의 시민인 동시에 천국의 시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사랑 하심같이 나도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해 피발렌타인스데이!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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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현 상황에서 ‘고난의 신학’이 주는 2가지 시사점 어느 누구도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고통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다. 고난 과 고통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고, 경험하 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고, 당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세계에 고난과 고통이 온 것은 죄로 인한 것이었다. 죄가 없었다면 고난 과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타 락함으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땅은 가시 덤불과 엉겅퀴를 내고(창 3:18), 여성들은 임신하는 고통이 크게 더해지고(창 3:16), 남성들은 평생에 땀을 흘려 수고해야 하 는(창 3:17, 19) 등 고통과 고난의 문이 활 짝 열린 것이다. 죄는 사람의 본성을 부패하게 하여 살 인과 폭력과 미움과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죄로 인하여 온갖 질병이 이 세상에 들 어옴으로 사람들은 질병에 의한 고통으 로 힘들어한다. 죄는 인간의 관계에 치명 적인 해악을 미쳐서, 인생은 서로서로 상 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 었다. 마침내 인간은 육신적인 죽음을 경 험하고 이어서 영원한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고통과 고난의 종과 노예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영원한 사망의 정죄 아래 있던 우리들 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를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거듭나고 중생한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다시 살아 났다 해서 고난이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 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경험해야 할 고 난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가 고난 당했던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고 난을 경험한다. 고난을 매개로 우리 그리 스도인은 성숙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의 형상을 본받아 가게 된다. 그렇더라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난에 대 한 우리의 해석이 달라지고, 고난의 의미 를 우리는 더욱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게

된 후 우리에게 나타나는 중대한 변화는 고난과 고통이 반드시 죄의 결과만은 아 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요셉, 욥,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산 사람이라도, 고난과 고통을 당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즉 죄와 무관한 고통, 죄와 관계없는 고 난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주 님의 나라와 교회와 복음을 위해 헌신적 인 삶을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들의 삶이 말할 수 없는 고난으로 점철되는 것을 우 리는 경험한다. 심지어 주님을 위하여 온전히 희생적으 로 섬긴 믿음의 사람들이 순교로 그들의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본다. 언뜻 보면 부 조리하게 보이는 이 현실이 사실상은 하 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서 허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 바울은 “자녀이 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 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말하면서, 주님 의 사람들에게 고난은 어떤 선택안이 아 니라 필수 코스임을 명확하게 확인해 주 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과거 우리가 예수님을 알 지 못할 때 경험했던 고통과 고난은 우리 죄로 인한 것이었지만, 이제 예수님을 주 님과 구주로 받아들인 이후에는 죄와 무 관한 고난의 쓴 잔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는 것이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때 로는 범죄와 실수로 말미암아 고통과 고 난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의 범죄와 실 수에 대해 하나님이 사랑으로 징계하시 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도 영적 으로 성숙하게 된다. 하지만 참된 의미에 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준비된 고난은 주를 위하여 의롭게 살고, 신실하게 섬기 다가 당하는 핍박, 박해, 혐오, 치욕을 뜻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 난을 피하는 자들이 아니라, 고난을 이기 고 극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고난은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 우리의 교만을 꺾고, 우리의 모난 성품을 그리스 도의 성품으로 바꾸며, 자신을 신뢰하던 우리가 주님만을 신뢰하게 하며, 죄를 따 라가던 우리에게 의의 열매가 맺어지게 한다. 또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한다. 그러하기에 고난 자체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고난은 우리의 삶과 인격 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의 놀라운 도구임이 분명하다. 고난의 신학은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 에 대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우리 한국교회는 우리가 그동안 범했던 죄와 허물에 대해 하나님의 징계 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님보다 어떤 특정한 인간이나 재물 을 섬겨왔던 우상숭배의 죄, 번영주의, 율 법주의, 그리고 방종주의 같은 거짓 복음 을 교회 내로 들여온 죄, 교회의 내면적 본질보다는 외면적 성장과 교회당 건축을 중시했던 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 한 나눔을 경시했던 죄 등등에 대해 하나 님은 한국교회를 징계하고 계신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경험하고 있다. ‘개독교’라는 이름을 들 은지 오래되었고, 세상 사람들은 정통 교 회와 신천지 같은 이단의 차이점에 대해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 다. 한동안 신천지 집단이라는 용어를 사 용했던 언론들이 이제는 신천지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단의 잘못을 교 회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동 안의 죄악과 허물에 대하여 통렬하게 회 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상한 심령 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을 잘 감내하 고 연달하여 새로운 차원의 영적 성숙을 경험해야 한다. 둘째,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정부의 핍 박이 도를 넘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방 역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한국교회에 대 하여 취하고 있는 정책은 노골적인 종교 박해, 교회 박해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은 ‘코로나 방역’이 아니라 “기독교 방 역’ 또는 ‘교회 방역’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장을 막겠다는 정책이 아니라, ‘기독교 바이러스, 교회 바이러스, 복음 바이러스’ 의 확장을 막겠다는 반기독교 정책을 펼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의 잘못과 실 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99% 가 넘는 거의 모든 교회들과 선교단체들 은 철저하게 방역지침을 지키고 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교회 좌석 수의 몇 퍼센트만 예배를 허용하겠다는 졸속 정책은 그야말로 특정 종교에 대 한 부당한 박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 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비둘기 같 은 순결함과 뱀 같은 지혜(마 10:16)로 무 장해야 한다. 그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딛 2:12) 행동해야 한다. 경거 망동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빌미를 주 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거 룩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 고, 정부 당국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 울여야 한다. 한국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은 이미지 전 략과 프레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미 여러 차원에서 한국교회는 이미지 전쟁과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가 다 잘하고 있다는 말이 아 니다. 우리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인정 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덧씌워진 부정 적인 이미지와 부당한 프레임만은 반드시 걷어내야 한다. 이 부당한 이미지와 프레 임 때문에 어느덧 한국교회는 혐오의 대 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 결할지에 대한 거룩한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변화프로젝트

2021년 2월 11일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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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가이드 6. 침묵기도 프로젝트

창조주 하나님,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단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심 지어 그것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주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음을 선포합니다. 예수 님, 사랑합니다. 존귀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저의 모든 것 되십니다. 주님을 향 한 사랑이 매일 자라나며 기쁨으로 충만 케 하옵소서. 저의 사랑이 주님을 기쁘시 게 하며 주님께서 제게 베푸신 것처럼 저 또한 주께 모든 것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큰 기쁨인 저의 사역보다도 주님을 더 사 랑하기로 결단합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 들이 사라져도 주님은 늘 저와 함께 하심 을 믿습니다. 주님은 저와 끝까지 함께 계 시기에 저의 모든 것 되십니다. 누구도 주 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없어 지고 저의 생명이 다했을 때, 주님은 저와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저를 위해 준비한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실 테니까요. 주님을 사랑하며 저의 헌신과 예배가 주 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저를 축복하여 주셔서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 니다. 베드로와 바울처럼 주님의 충성되고 열정이 있는 종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위 해 쓰이게 하옵소서. 저의 사역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치유함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웃 는 얼굴을 보기 원합니다. 이 세상의 누구 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사랑합니

다.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 올림-

라고 생각되는 말씀들을 적어라. 기도: “예수님, 저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6. 침묵기도 프로젝트 이 30일간의 기도 프로젝트는 침묵기 도를 하기 위한 분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1. 외부 음성 제한하기: TV, 라디오, 음악 듣기 및 사람들과 대화 등을 가능한 한 자 주 주님께 여쭈어 가며 절제하도록 하라. 외부에서 들리는 것이 많으면 우리의 마 음에 고요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힘들다. 기도: “하나님, 제가 주님이 주시는 지 혜로 주님이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 와 소음을 제한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성령님, 하 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4. 매일 30분 기도하기: 하나님께 15분 동 안 말하고, 나머지 15분은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5.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2. 성경읽기: 마음에 닿는 어떤 복음서를 선택하여 읽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 라. 이것을 연습할 때에는 두 가지 방법 이 있다. 하나는 매일 30분씩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를 읽는 것이다. 다른 하 나는 30일 동안 하나의 복음서를 매일 읽 는 것이다. 기도: “성령님, 저를 당신의 지혜와 지식 으로 채워 주세요. 성경말씀을 이해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시고 그분의 사랑을 깨달아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 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으되 하늘과 땅 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 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 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 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 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 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 1:15~19). 교회 예배에 참석할 뿐만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찬양하

3. 주님과 당신의 대화를 기록하라: 예수 님에 관해 알 수 있는 복음서를 읽은 후, 예수님이 당 신의 마음 안에서 하신 것이

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분의 현존 하심을 인식하고 당신의 사랑을 경배와 찬 양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6. 회개로 용서함과 깨끗함을 받아라: 모 든 이들을 용서하라. 우리가 자신을 사랑 하려면 자신은 물론 모든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 회개의 시간을 갖고 자신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용서받은 자녀로 받아들이라. 아래의 순서에 따라서 회개를 할 수 있다. 1) 다음의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만 약 당신이 어떤 죄를 저질렀다면, 하나씩 그 죄를 회개하라. 주님이 당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육체의 일은 분명 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 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 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 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 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 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 요”(갈 5:19~21). 2) 당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만약 당신이 잘못한 누군가가 있 다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 3) 하나님보다 사람이나 물질을 더 사랑해 서 순종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회개하라. 4) 당신에게 죄를 지은 모든 이를 용서하 라. 그들을 축복하고, 당신이 그들을 생 각할 때마다 그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 하라.


좁은 길을 걸으며

202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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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바꿔보세요 우리나라 전래 동화 가운데 [우산 장 수와 부채 장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 날에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두 아들 때문에 마 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아들은 우산 장수였고, 둘째 아들은 부 채 장수였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더운 날 이면 어머니는 큰아들의 우산이 안 팔릴 것 때문에 걱정을 했고, 비가 오는 날이 면 둘째 아들의 부채가 안 팔릴 것 때문 에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와 서는 하는 말이 “그렇게 걱정만 하지 마시고,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날씨가 더우면 부채 장사가 잘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이 잘 팔려서 좋네 라고 생 각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말에 “아 그렇구나!” 깨 달음을 얻고는 비가 와도 좋고 더워도 좋게 됐습니다. 며칠 뒤에는 이웃집 아 저씨가 두 아들을 찾아와서는 “여보게 내 생각에는 자네 둘이서 따로따로 장사 를 할 것이 아니라, 비가 오는 날에는 같 이 우산 장사를 하고 더운 날에는 같이 부채를 팔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일손도 덜고 장사도 더 잘 될 텐데…”라고 했 습니다. 아들들은 “그거참 좋은 생각이 십니다.”라고 하며 받아들여서 어머니는 더 이상 걱정이 없게 됐다고 합니다. 관 점이 바뀌자 염려가 사라지고 일이 전보 다 더욱 발전적으로 전개됐던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이렇듯 일어난 일이 나 사람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면 삶 의 질이 향상이 되고, 마음에 행복을 얻 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 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낙담할 이유가 없음을 알 아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나셨는데, 이를 보고 제자들이 묻기를 “랍비여, 이 사 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 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 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 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렇듯 어 떤 된 일이나 사람을 볼 때,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더 강 한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대답 은 제자들의 이런 생각을 확 깨워 주십 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 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을 드러나게 하시기 위함이라.” 그러시 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해서 치유 받는 기적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 혹 지금의 코로나19 팬 더믹 상황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어려움 을 겪고 있거나 아니면 그 이상의 힘들 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 때문 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답 을 기억하고, ‘아, 이 일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 구나!’라는 믿음을 갖고 끝까지 믿음의 반석 위에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 다. 그럴 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 상’이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하 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 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것 때 문에 모함을 받아 매를 맞고 옥에 갇혔 던 바울과 실라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한 없이 원망스럽고, 한없이 고통스럽게 생각될 수 있는 그 밤에 도 리어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을 찬미 했습니다. 그러자 옥터가 움직였고, 손발 을 묶고 있던 착고가 풀어졌으며, 옥문 이 열려졌고, 그리고 무엇보다 간수와 그 가족들 모두가 구원받게 됐고, 그리고 관 료가 직접 감옥에 찾아와서 바울과 실라 를 데리고 나가는 최후의 승리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 이 있지요. 변방의 한 노인이 기르는 말 이 오랑캐가 있는 땅으로 도망하자, 사람 들은 노인을 위로했습니다. 그렇지만 노 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 니 정말 얼마 뒤에 도망했던 말이 오랑 캐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사람 들은 좋은 일이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역 시 노인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 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의 아들이 말을

손창달 목사

덴버제일감리교회 담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그리고 그 것 때문에 아들은 전쟁터에 차출이 되 지 않아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나쁜 일이 꼭 나쁜 일 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껏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이지만 그 당 시에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을 만 큼 견디기 힘들었던 일들도 시간이 지 났을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이 있으셨고, 또 도리어 지금에 와서 생 각해 보면 감사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 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도 원망 할 일이 아니라, 사실 모든 일이 다 감 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롬8:28> 말씀 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 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 다.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인 어려움이나, 아니면 다른 어떤 어려움 들도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관점을 바 꿔 긍정의 믿음을 가지심으로 삶 가운데 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시는 여러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베드로전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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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1)” <베드로전서 4:12-19>

지난 독립기념일에 교회 수양관에 가서 하루를 쉬다가 돌아왔습니다. 교회에서 출 발해서 6번 도로까지는 시원하게 잘 뚫렸 습니다. 연휴인데도 차가 막히지 않는가 싶 어 내심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 었습니다. 70번 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막 히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서 있기도 하 고 조금 가다 서기를 반복했습니다. 70번 이 시작하면서 아이다호 스프링까지 20분 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 만 그곳에서만 무려 2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70번 프리웨이 전체가 막힌 것이 아 니었습니다. 차선이 3개이다가 2개로 줄어 들면서 벌어진 체증이었습니다. 우리가 살 아가는 이 세상의 삶도 이렇게 갑자기 막 힐 때가 있습니다. 잠깐이면 도달할 거리 를 몇 년이 걸려도 도달하지 못할 때가 있 습니다. 인생의 빨간 신호등은 왜 이렇게 많습니까? 보통 때는 잘 걸리지 않던 빨간 불이 오히려 급할 때 더 자주 나타납니다. 시원하게 뚫리는 파란불만 인생에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합니 다. 인생에는 파란 불보다 빨간 불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난이 없 기를 바랍니다. 고통이 없는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이 없는 삶이라는 것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힘들고 불편한 것입니다. 왜 내 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 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 시면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난의 모습 이 나옵니다. 15절을 보세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 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 와” 남의 생명을 죽였습니다. 도적질을 했 습니다. 이웃의 재산에 심각한 피해를 입 혔습니다.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당 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감옥에도 들어가 고 오랫동안 형을 살기도 합니다. 사람들 에게 미움을 당하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 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고난이라고 말하 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힘든 아픔이되 이 것은 죗값이요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성 경이 말하는 고난은 커다란 잘못 없이 인

생에 불어닥치는 비바람을 말하는 것입니 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데 가난합니다. 남들은 다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내 생활은 불안합니다. 몸에 질병이 찾아 옵니다. 남들은 쉽게 치료가 되는데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뜻하지 않은 아픔이 찾아옵니다. 나는 평생 남에게 싫 은 소리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는데 왜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가 되 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 심히 일했는데 실직을 당합니다. 나는 정 성을 다해서 따뜻하게 잘해주었는데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합니다. 나는 상대방 을 비난하거나 욕한 적이 없는데 나에 대 한 나쁜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닙니다. 왜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너무도 일찍 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직 작별을 할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현실로 내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들은 단순히 우리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려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아픔 중에 의 미 없고 가치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 다. 현재 힘들어하시는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 난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말 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 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 지 말고” 여기에 나오는 불 시험은 고통 의 심각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러나 고통의 강도보다는 제련성에 그 초점 이 있습니다. 금은 불을 통과하기 전에는 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잡석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금가루가 그 속에 들어있다 해도 그것은 금으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 리 무거워도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 나 불을 통과한 금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됩

니다. 빛깔부터가 다릅니다. 제련된 금에서 는 빛이 납니다. 가치가 높아집니다. 손에 서 조금만 무게를 느껴도 엄청난 값을 받 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이미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제련작업을 시작하신 것 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를 제련하십니까?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 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경말씀 을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 의 계획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 의 주인이시며 내 인생의 주인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 세상 고난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간다 는 것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믿 음이 언제 증명될 수 있는 것입니까?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평안할 때는 우리가 가 진 믿음이 잘 보여지지 않습니다. 밝은 대 낮에는 불을 아무리 켜놓아도 그것은 드 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질수 록 작은 불빛 하나도 뚜렷하게 볼 수 있습 니다. 우리의 믿음은 고난과 아픔에서 드 러나는 것입니다. 고난이 심할수록 믿음 은 더 크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왔 을 때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하실 수 있기 를 바랍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기에 고난 중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놀라지 말라는 뜻 입니다. 고난의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놀라서 가슴이 뜁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왔는지 마음을 잡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압 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제 련하시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믿음 이 성장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라 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난받을 때 부끄러워하지 말 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 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 창 피하고 부끄럽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 당하는 고난은 부끄러운 그것이 아닙니 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취직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 엇입니까? 이력서를 내는 것입니다. 그다음 은 시험을 보거나 인터뷰를 합니다. 이력 서를 낸 사람들 모두를 인터뷰하는 것 보 셨습니까? 일단 서류 심사를 합니다. 그중 에서 몇 명만을 골라 인터뷰 통보합니다. 인터뷰하는 것만 해도 다른 사람보다 나 은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 중에 선택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 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뽑으신 결과입니 다.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인터뷰를 통보 하신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불 시험을 설명하는 수식 어를 잘 보아야 합니다. 먼저는 ‘사랑하 는 자들아’라는 단어입니다. 고난에는 반 드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사랑 이 없이는 징계도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 서 12:8을 보세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 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 니니라” 사실 고난이 없으면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가 몇 개 나기 시작한 어린아이 가 방바닥에서 깔깔 웃으면서 놀고 있었습 니다. 엄마가 주방에서 무엇을 가지고 놀 고 있나 싶어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랬더니 손가락을 자기 이로 물어뜯었던 것 입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그 피로 방 바닥에 낙서하면서 좋아하고 있었던 것입 니다. 우리 몸에는 통증을 느끼는 감각세 포가 있습니다. 결국 통증이 오기 때문에 인체를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증감 각세포가 인체에 없는 병을 선천성 무통각 증이라고 합니다. 무한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피곤이나 허기, 배설 본능은 정상


베드로전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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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 뜨

것은 고통이요 아픔입니다. 그런데 이 고

지 않습니다. 몇 명의 여인들과 요한만이

다. 우리를 위해 당하신 아픔이 얼마나 컸

거움, 차가움을 느끼지 못하는 유전성 질

난이 즐거움, 기쁨, 영광이라는 단어와 같

십자가 곁에 남아 있는 정도였습니다. 주

었는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

환입니다. 눈을 비비는데 고통이 느껴지면

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반대되는 말

님은 결국 이 극한 고통과 외로움 속에 운

다. 그래서 고난 당할 때 즐거워할 수 있는

우리는 즉각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고통

입니다. 고난 중에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명하셨습니다.

것입니다. 고난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내가

을 못 느끼는 사람은 아파도 계속해서 눈

더구나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러

을 비비게 됩니다. 그러다 눈이 빠지기도

나 오늘 고난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인체가 느끼는 고통

알면 이 역설이 가능합니다.

은 축복입니다. 인체 외부와는 다르게 내

고난을 당해보니까 주님이 얼마나 힘드셨 주님은 고난 가운데 태어나서 고난 속에

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시다가 고난 가운데 죽으셨습니다. 고난 을 빼놓고는 그분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국전쟁 때의 일입니다. 인민군이 남하

장에는 고통을 느끼는 감각세포가 상당히

우리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그런데 왜 주님이 이 고난을 겪으신 것입

하여 공산 치하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서

적습니다. 암 같은 질병에 걸려도 초기에

하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

니까? 주님에게 잘못이 있어서입니까? 주

장, 군수할 것 없이 피난 가지 못한 많은

는 증상을 전혀 느끼지도 못합니다. 고통

들로서 고난 많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님이 무슨 실수를 하신 것입니까? 아닙니

사람들이 잡혀 창고에 갇혔습니다. 그들

이 느껴질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얼마나

왕궁의 호사스러운 침대도 그분을 누이기

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세

중에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조사해서 풀어

많은지 모릅니다.

에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구간의 말

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줄 사람은 풀어주고, 인민재판에 회부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큰

구유가 그분이 처음 누우신 침대였습니다.

십니다. 온 우주를 말씀 한마디로 만드신

처형할 사람은 처형하였습니다. 그러나 조

병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믿는

이제 태어난 어린아기가 무슨 욕심이 있다

분이십니다. 바다의 바람을 멈추게 하시고

사할 때 뚜렷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증명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라

고 헤롯은 주님을 죽이려고까지 합니까?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

도 없고, 서류가 통용되는 상황도 아니었

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베

고향을 떠나온 것만 해도 불안하고 고통

한마디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문둥

습니다. 인민군은 오직 하나, 사람들의 손

드로는 이 불 시험이 ‘온다’라고 표현하

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설고 낯

병자를 깨끗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은지

을 조사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손이 곱

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을 다시 보세요.

설은 애굽 땅으로 피신을 갈 수밖에 없었

나흘이 되어 썩어가는 나사로 한마디의 말

고 부드러우면 불로소득자요 반동분자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습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은 아버지를 일

씀으로 살리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며, 그 손에 노동의 흔적이 있으면 근로 인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찍 여의고 살았습니다. 삶의 무거운 무게

온 세상의 영광을 모두 다 받으셔도 부족

민이요 동무라고 결정해 버렸습니다. 이제

여기지 말고” 온다는 그것은 누군가 보내

가 온통 주님에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주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왜 그런 고

목사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인민군의 질문

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생긴 것

님의 공생애는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

난을 받으셔야 했던 것입니까? 우리를 살

에 목사님은 어차피 죽을 목숨 당당히 순

이 아닙니다. 운이 나빠서 고난을 겪는 것

니다. 그에게는 늘 대적이 있었습니다. 남

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죽

교하겠다는 일사 각오로 큰소리로 대답합

이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주장하고

을 한 번도 해한 적도 없습니다. 비난한

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

니다. “이 전에 무얼 했시오?” “예! 목

계시는 것입니다. 분명한 뜻이 있기 때문입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적들은 끊임없이

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의 고난은 우리가

사 일을 했습니다.” “아니, 목수 동무가

니다. 이것이 왜 부끄러운 것입니까? 고난

주님을 비난했습니다. 주님은 머릴 둘 곳

받아야 할 고난이었습니다. 주님의 아픔은

어찌 여길 왔소?” 목사님이 큰 소리로 말

당할 때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

이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사셨습니다. 밤이

우리가 당해야 할 아픔이었습니다. 주님의

하였지만, 인민군은 ‘목사’를 ‘목수’로

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면 이슬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외로운 죽음은 우리가 맛보아야 할 것이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손을 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병사들은 그

었습니다. 그 고난과 아픔을 주님이 대신

져 보니 꺼칠꺼칠하고 못이 박힌 것이 영

두 번째 고난은 우리를 주님의

를 붙잡았습니다. 죄목도 없었는데 사정없

지신 것입니다.

락없이 목수 손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고난에 동참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이 채찍질을 했습니다. 침을 뱉습니다. 조

그때 성전 건축 중이었습니다. 건축비가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너희가

롱합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은 주님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목재와 벽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

극악무도한 살인자나 처형을 당하는 십자

받으신 고난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

돌을 나르고, 못을 박고, 흙을 만졌습니다.

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너희로

가에 주님을 못 박았습니다. 이적과 기사

니다. 주님이 아파했던 그 아픔을 우리는

그러기에 손이 거칠어져 목수의 손처럼 되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를 보면서 그렇게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고난

어 있었던 것입니다. 인민군은 ‘목수’의

이 구절에는 아주 상반되는 단어들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숨까지 내놓

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

손을 다시 한 번 만지면서 말했습니다. “

같이 쓰이는 것이 나타납니다. 고난이라는

겠다던 제자들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보이

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입니

목수 동무, 수고했소. 날래 나가시오.”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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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창세기 다음 순서를 출애굽기가 아닌 욥기로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욥기는 창세 기와 시기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숲을 보기 위해서는 창세기에 가 장 가까운 연대적 성경인 욥기를 읽고 출애굽기로 넘어가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욥기(Job)”의 의미와 연대의 이해 자, 이제 욥기로 함께 빠져 들어가 봅시다. 성경 욥기의 의미는 두 가지의 의미 가 합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욥기는 ‘핍박받는 자’(히브리어) 그리고 ‘돌아 오다’와 ‘회개하다’(아람어, 고대 중동 세계 공용어로 “달리다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와 같은 예)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욥기의 아람어에서 유래한 ‘회 개하는 자’라는 의미를 선택할 것입니다. 사실 욥기의 의미는 ‘핍박받는 자’ 그 리고 ‘회개하는 자’의 두 가지의 의미를 다 갖고 있습니다. 욥기는 연대기적으로 창세기에 가장 가까운 오래된 책입니다. 어떻게 그 증거 를 추정할 수 있을까요? 욥기의 사건들은 그 어디에도 정확한 연대나 역사적인 사건을 말하고 있지 않기 는 하지만, 다음의 몇 가지 사실들은 그 내용을 뒷받침합니다. 첫째, 욥기는 아브 라함의 수명(175세, 창25:7)과 비슷하게 200세까지 살았습니다(42:16). 둘째, 욥의 부의 정도는 아브라함 시대와 같이 가축의 규모로 측정되었고(1:3, 42:12),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가족들을 위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셋째, 욥기에는 이스라엘, 출애굽, 모세의 율법, 그리고 성막 등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넷째, 욥은 하나님을 ‘샤다이(전능자)’로 31회(다른 구약 성경에는 17회밖에 사 용되지 않음)나 사용했는데 이 호칭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족장 시대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증거들을 보아서는 욥은 아브라함이 등장한 후 오래되지 않 은 시점에 등장했고, 창세기의 11장과 12장 사이에 실존했던 인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겔14:14, 20, 약5:11).

욥기의 핵심 구절들 ▶엘리후의 말 : 37:23~24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 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 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욥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욥은 “대속자(구속자, Redeemer)”를 믿었고 그분 안에서 영생과 부활을 소 망했습니다(19:25~27). 욥은 고난 가운데에서 “판결자(중보자, a mediator)를 갈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9:33, 25:4). 욥이 고난을 당하면서 간절히 기다린 구속자 와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소망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대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믿는 자의 생명이고, 구속자이고, 중보자 이고, 그리고 변호자이십니다.

욥기의 내용: “왜”에서 “회개”를 통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의 믿음의 여정 욥기는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토론으로 시작하여, 욥과 세 친구들 사이의 지 상 논쟁의 순환을 거쳐, 하나님의 단독적인 질문으로 끝을 맺습니다. 욥이 곤경 에 빠졌지만 세 친구들과의 논쟁으로 더 깊은 딜레마에 빠져버린 후, 회개를 통 하여 구원받게 됩니다. 그러나 욥이 당한 곤경과 세 친구들과의 논쟁을 통하여 욥이 변화됩니다. 욥기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래의 표를 보면 쉽 게 이해됩니다.

욥의 내용 욥의 곤경(Dilemma, 1~2장) 욥의 논쟁 (Debates, 3~37장) 욥의 구원 (Deliverance, 38~42장)

욥기의 주제와 목적 욥기의 주제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은 왜 의로운 사람이 고통을 받게 하는가?” 입니다. 욥기는 “고난”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욥이 고난으로부터 하나님 의 주권을 배우게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은 모 두 이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욥이 결론적으로 배운 것은 ‘하 나님은 천상천하의 주님이시고, 전능하시고, 그리고 인생의 미스터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진리입니다. 만약에 욥기에 1~2장 그리고 38~42장이 없다면 이 성경책은 ‘미스터리’로 끝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개입을 앞뒤에 붙여 놓고 욥기를 보면, 그 때야 하나님께서 종종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시험(test)하 시거나 고난을 통하여 교훈하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욥기를 읽으실 때 욥이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지를 탐구하시 기 바랍니다.

⊙ 1~2장을 통하여 욥의 곤경(The Dilemma of Job)이 극적인 시(dramatic poetry)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욥은 곤경을 당할 사람이 아니었고, 도덕적으로 정결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이타적인 봉사자였습니다. 사단(참소자)은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으며, 물질적인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참소합니다. 하나님은 사단을 반박하기 위하 여 그로 하여금 두 번에 걸쳐 욥을 치도록 허용하셨고, 욥은 슬픔 가운데 자기의 태어난 날을 한탄하지만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1:21: 2:10). ⊙ 3~37장은 욥의 논쟁(The Debates of Job)이 순환되며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 가는 내용입니다. 욥은 ‘위로자들’과 소위 ‘끝장 토론’을 보여줍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방문하여 며칠 동안은 침묵하며 함께 슬퍼했습니다. 그러다 욥이 침 묵을 깨뜨리고 말을 시작하자 세 명의 친구들은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욥에게 공세를 퍼붓습니다. 세 친구들의 논쟁은 욥 → 엘리바스 → (욥)빌닷 → (욥)소발 의 순서대로 순환합니다.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욥의 세 친구들의 한가지 동일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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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은 “너의 고통은 너의 죄 때문이야”라 고 가정합니다. 욥은 이 과정 중에서 세 가지 불평을 합니다. ①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신다(13:3, 24, 19:7, 23:3~5, 30:20). ②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주고 계신 다(6:4, 7:20, 9:17).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

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2:6).

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 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

⊙ 38~42장은 최종적으로 욥의 구원 (The Deliverance of Job)을 보여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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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아마도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되었

는 이시니라.”

을 것입니다. “자연계의 영역에서 하나

니다. 엘리후가 최종적으로 진술을 마친 후,

님의 일하시는 길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음 칼럼에서는 출애굽기를 함께 공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욥에게 말씀

어떻게 하나님의 영적인 영역의 길들을

부하겠습니다. 출애굽기는 크게 두 가지

하신 후 논쟁이 매듭지어집니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의 주제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 말씀(38~39장)을 통하여 물

하나님은 욥의 그 답변을 듣기 원하

출애굽기 1~18장까지는 ‘애굽으로부

질세계와 동물 세계에 드러난 창조주 하

셨습니다. 욥이 자신의 삶의 미스터리에

터의 구속’, 그리고 19~40장까지는 ‘하

욥은 친구들의 토론을 끝장내기 위해

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시면서, 하

대한 무지한 논쟁을 회개로 끝내고 하나

나님의 계시’라는 큰 주제입니다.

서 27~31장에 걸쳐 “욥의 풍자”(The

나님은 욥의 무지와 무능력을 드러내십

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자, 이전의 그

discourses of Job)를 이어갔습니다.

니다. 욥은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

의 소유의 두 배를 되돌려주셨습니다.

③하나님께서 악인으로 번성하도록 허 용하신다(21:17).

그러나 엘리후는 욥의 변론이 세 친

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입을 가

구들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못한

릴 뿐이로소이다”라고 항변하지 못합니

다면서 그에게 도리어 화를 내며 등장

다(40:3~5).

출애굽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 하는 7가지의 중요한 단어들(모세, 유월 절, 출애굽, 만나와 생수, 성막(회막), 대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들을 책망하셨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다음 공부를 위

지만, 그에 비해 엘리후의 말은 전혀 책

하여 출애굽기를 두 덩어리고 구분하

합니다. 엘리후는 지금까지 엘리바스, 빌

두 번째 말씀을 통하여(40~41장) 하나

망하지 않으셨습니다(42:7~9). 왜냐하면

고, 7가지의 단어들을 요약하면서 통독

닷, 그리고 소발의 견해보다 가장 통찰

님의 절대 주권, 특별히 인간이 통제할

엘리후의 깨달음이 하나님의 뜻에 가장

을 진행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

력 있는 견해를 쏟아냅니다.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시는 당신의 능력

가까웠기 때문일 것입니다(욥기 핵심 구

고하셨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에 대한 두 가지의 실례를 통해, 하나님

절, 37:23~24).

할 것과 시련을 통해서 욥을 정화시켜

은 욥에게 도전하십니다. 욥은 자기 과

약5:11절 말씀을 읽으면서 욥기를 마

나가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순종함

오를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리합니다.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제공: 김정애 권사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잠 10:12)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요일 2:5) 제공: 김영자집사(덴버한인교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제공: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14)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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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 화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43회

화석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35억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의 지질 시대에 살았던 고생물의 유해나 흔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화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생물체가 죽어서 썩기 전에 빨리 퇴적물에 묻혀 보존되어야 하며, 뼈나 껍데기처럼 단단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어떠한 내용이 어떻게 틀렸으며 화 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화석 중에는 작은 물고기를 입 에 물고 있는 물고기 화석처럼 살아있는 상태에서 급격하게 화석화된 것도 발견되는 데, 이러한 화석은 무엇을 말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화석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 틀린 이유와 근거 첫째, 지질 시대에 살았던 생물만 화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화석 도 있는데, 화산폭발과 같은 격변적 상황, 주변 여건이 화석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생물이 묻히게 되면 화석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정병갑 (고신대 명예교수) (creationisfact@gmail.com) 는다. 따라서 화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흙 속에 광물질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생물체를 덮은 흙 속에 광물질이 없으면 생물체는 박테리아에 의해 빨리 분해되기 때문에 화석이 될 수는 없다. 광물질이 생물체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면 화석이 만들 어진다. 따라서 생물이 퇴적물에 묻혔다고 해서 무조건 화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전 적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작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 화석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화석을 연구하다 보면 특이한 화석을 발견하는 수가 있다. 아래 그림처럼 작은 물 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 화석이다. 이것은 큰 물고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작 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서 삼키기도 전에 급격하게 흙(광물질이 들어있는)에 덮였 을 때 만들어진다. 큰 물고기는 살아있을 때 마지막 식사를 다 마치지도 못한 상태에 서 화석이 된 것이다.

둘째, 화석이 만들어지는 시기를 지질 시대로 한정하는 이유는 화석이 생물 진화를 증명한다는 진화론 패러다임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화석은 무조건 오래되었고, 하등 생 물 화석이 오래된 지층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화석이 그렇게 발견되 는 곳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교과서에서만 발견된다. 지질 시대를 강조해야만 진화론을 지지하기 때문이므로 이러한 설명도 잘못된 것이다. 셋째, 생물이 죽어서 썩기 전에 빨리 퇴적물에 묻혀 보존되어야 한다는 설명도 일 부는 잘못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화석은 생물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퇴적물 에 묻혀서 만들어진 것이다. 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생물체를 분해시키기 때문에 생물체의 온전한 모습으로 화석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 거의 모든 화석은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생물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급격하 게 화석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생물이 죽어서 퇴적물에 묻혀야 한 다는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넷째, 화석이 되기 위해서는 ‘생물체에 뼈나 껍데기와 같은 단단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도 잘못된 것이다. 단단한 뼈나 껍질도 없는 해파리와 곤충도 화석으로 수없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화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뼈나 단단한 껍질이 필 요한 것이 아니라 흙 속에 들어있는 광물질이 필요하다. 물렁물렁한 생물도 화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급격하게 묻히고 광물질이 침투하는 화석화 과정 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화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화석은 생물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지층에 묻히고 흙 속에 광물질이 있을 때 만들어 진다. 흙 속에 있던 광물질이 생물체 안으로 침투하면 생물체는 더 이상 분해되지 않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갚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8~19) 제공: 맹성자 원로사모(믿음장로교회

(출처 : https://www.alamy.com, https://www.dreamstime.com) 작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채로 화석이 된 물고기 화석. 이것은 물고기가 살아있는 상 태에서 급격하게 묻혀서 화석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은 상태로 죽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화석이 되었다면 이러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이처럼 작은 먹이를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 화석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얼 마나 급한 상황이었으면 입속에 물고 있는 먹이를 삼킬 시간이 없었을까? 이 물고기는 죽어서 화석이 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에서 화석이 된 것이다. 작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 화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물고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급격하게 흙에 덮였고, 물고기를 덮은 흙 속에 광물질이 충분히 있었으며 이 광물질이 물고기에 침투했기 때문에 화석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격변적 상황은 노아 홍수 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리므로(창 7:11)” 시작된 노아 홍수는 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났고 이때 수많은 화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34)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나의 노래,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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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 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솔로 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 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 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 윗이 정한 곳이라….” “만일 그 예물이 떼 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 으로 드릴지니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브라함이 그( 모리아)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 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 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멘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성경은 수많 은 예언들로 되어있음을 보게 됩니다. 특히나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 언들은 성경의 중심을 이루는 제목들입 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것임을 우리가 성경구절 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주님 오시기 약 2천 년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 여, 약속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 려 했던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가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알 게 하셨습니다. 모리아산 위에 있는 예 루살렘성, 그 성 밖으로 나와서 십자가 를 지고 걸어가셨던 주님의 길은, 예루

살렘성 북편에 위치하고 있는 여호와의 앞, 그 옛날 여호와께서 다윗왕에게 나 타나셨던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 당을 지나서 위치한, 바로 주님이 십자 가에서 돌아가셨던 골고다의 언덕이었 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저 버린 죄인들인데, 단지 죽어 마땅한 인 생이며 흙일뿐인데, 이러한 우리를 사랑 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 하기가 어렵습니다. 죄악은 미워하시지 만, 잘 알지도 못하고 세상 풍조에 밀려 죽음의 미끄럼틀을 달리고 있는 죄인들 은 사랑하신 주님, 구원받을 다른 길이 없어서, 차마 간절히 살려달라고 애원 하는 우리의 눈초리를 뿌리치지 아니하 신 긍휼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죄로 인해서 인간이시었던 주님은 채찍 에 맞으셨고 조롱당하셨고 십자가에서 의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가 감히 하나님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달리시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주 님 스스로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 신 그 사랑이, 주님을 십자가에 달리시 게 했을 뿐입니다. 사탄의 갖은 멸시와 조롱과 수모를,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다 감당하셨음은, 바로 우리의 죄 사함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그 십자가에 달려있게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우리가 주님 안에서 말씀 순종하며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 죽어 야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인 줄로 압니 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나의 영광에 참예 할지어다”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 리가 죽을 때에 가장 듣기를 원하는 말 씀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충성 함은, 우리가 목숨을 다해 죽도록 충성 하는 이유는, 잠시 살다가 가는 이 세상 이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분 명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본 향을 사모하기에 그에 합당한 삶을 살 기를 원하는 소망이 우리 안에 있습니 다. 우리 가운데에 이 선한 싸움을 당 하시던 신앙의 선배들 중 어떤 분들은, 죽을 때에 하늘을 향해 힘없는 두 손 을 번쩍 들어 흔드는 것이, 마치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가시는 분 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죽을 때에 무엇을 보았는지 너무나 아름답다는 말 과 함께 눈물을 흘리다 가시는 분이 있 음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아마 도 주님 주시는 평온함 속에서 잠자듯 이 하는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 하늘나 라로 갔다 합니다. 이들은 아마도 인생 의 종착역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라 생 각되어 집니다. 이 시간 간구하옵는 것

덴버제자교회

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도 눈을 감 는 순간,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시 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는, 주 님이 베푸신 구원으로 인한 우리의 선 한 싸움이,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보 게 할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낙원에서 교제하며 살 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설계하심이 있 기에, 우리의 인생은 괴로움이 있어도 한결 즐겁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비하 신 여호와이레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또한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려 2천 년 전에 가셨습니다. 6일 동안에 창조하신 온 우주가, 죄로 인하여 망가졌어도 이 렇게 아름다운데, 처소가 준비되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그곳이 기대가 됩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그 본향, 주님 계 신 그곳을 우리가 늘 사모합니다. 우리 를 사랑하시사 묵묵히 가셨던 그 십자 가의 길을 우리도 걸어가겠다 결심하고 흉내 냄은, 그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 리시는 주님을 우리가 만나기 때문입니 다. 주님,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우리도 그 길을 갑니다. 후일 그날에 우리도 맞 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안에서 예수님처럼”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비전

예배 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노윤호 장로

신 주님 감사합니다.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콜로라도 3만 동포에게 알립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의 경과보고를 드립니다. 희망찬 신축년 2021년이 밝았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의 어려운 시기에 동포 여러분의 건강과 평안을 항상 기원합니다. 2020년은 6.25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하기 위하여 남침하여 6.25 전쟁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남한이 북침하여 전쟁이 발발했다고 억지 주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 국토를 초토화한 이 전쟁은 대한민국의 국가 존립을 위기로 몰아넣었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눈부신 경제 기적을 이루어 세계에서 경제 10위 권의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이곳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희망찬 미래의 비전을 계획하고, 이웃을 도우며 삶의 발전을 추구하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하여 한 16개국의 유엔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대한민국 국민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동안 참전용사기념비 건립위원회의 헌신적인 투지와 노력의 결과로 오로라 시로부터 콜로라도 대학병원 캠퍼스 내의 아름다운 제너럴스 공원(Generals Park)안에 있는 기념비 부지를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로 세울 수 있도록 기증받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제너럴스 공원은 한국전쟁 휴전 당시, 미국 제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심장질환 치료를 피츠먼스(Fitzsimons) 육군병원에서 받았을 때 만들어져서 요양했던 유서 깊은 공원입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기념비 부지에서 동포사회에서 중요한 행사를 가질 수 있는 유용한 장소가 될 수 있는 뜻을 가지고, 오는 2021년 6월 25일까지 기념비가 착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에는 총 일백오만 불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까지 확보된 액수는 부지를 포함하여 약 60만 불입니다. 나머지는 동포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충당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주요한 목적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 참여국의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높이 받들고,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한강의 기적을 널리 알리며,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최대한의 감사의 뜻을 전달하려 합니다. ⊙둘째, 후세에 참혹했던 이 전쟁을 통하여 얻게 될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려 합니다. ⊙셋째, 지역사회에 현존하는 유엔 16개국 후손들의 커뮤니티와의 우의를 돈독히 하며 유대를 강화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이 기념비의 건립은 동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념비가 성공적으로 세워지도록 귀한 고견을 피력해 주시고, 이사 및 건립위원으로 동참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성금을 기부해 주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동포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바랍니다. 현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사업기금 지원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2021년 새해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어려운 시기를 건강하게 극복하시고 새 마음과 새 각오로 품으신 꿈과 계획을 모두 성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이 늘 함께 하시고 모든 일이 번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에 지금까지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성금을 보내주신 분의 성함을 공표합니다.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건립 공동위원장: 박수지, 이상화 올림


성금을 보내실 수 있는 방법 1) 웹사이트 WWW.HONORKWVETS.ORG 에서 기부하실 수 있습니다. 2) 은행송금(Bank Wire)을 하실 수 있습니다. First Bank Colorado (3811259398) 3) 개인수표(Personal check)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 수취인(Pay to the order) : UN Heritage for Korean War * 주소: 2821 S. Parker Rd. #235 Aurora, CO 80014, USA * 전화(Tel): 303-870-1290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건립재단(UN Heritage for Korean War)은 연방정부에 비영리재단등록{501c (3)}과 콜로라도 주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UN Heritage for Korean War Donor List 2021년 1월 28일 현재 후원자 명단 / Donor List 강숙희 교역자 협회 권태연 김정현 & 의천 김상권 김 캐런 & 밥 김 케샌드라 김광오 김항식 둘로스 장로교회 문정화 박수지, 박노복 & 이정금 브렌트 딕슨 빛과소금뉴스 소망교회 신동윤/American Family 보험 언리치드 사역 (성 철) 에밀리 와그너 예려숙 오숙 Y & 오자숙 오즈 매거진 유니 그리핀 유승진 윤한규 이정W 이승우, 이선영 & 이종엽 이윤희 이응우 & 준 이철범 이희목, 이향님 & 박종영 익명 익명 정진웅 주간포커스 지일성 & 정 S. 콜로라도 북향회 콜로라도 타임즈 콜로라도 해병 동지회 한아름마켙 한인 라이온스 클럽 한인참전용사 더치넬슨지부

입금/Paid 약정/Committed 계: Total(입금+약정금)

Sukie Kang Korean Pastors ASSN Teayon Kwon Paul & Eui Kim Sang G Kim Bob & Karen Kim Kessendrea Kim Pastor Kwangoh Kim Hang Sik Kim Doulos Korean Church Jeong Hwa Moon Suegie & No Bok Park Brent Dickson The Light And Salt News Korean Hope Presb Church Dong Shin/American Family Ins Unreached ministries Int Emily Wagner Yea Sook Ye Suk Y & Ja S Oh OZ Magazine Eunie Griffin Seung Jin Yoo World College TaeKwonDo Chong Yi Peter & Sun Lee Yoon Lee Eung Woo & June Lee Cheol Lee Hui Mok Lee's Daughter in GA Bona Inc Mr. Kim Jin W Jung Weekly Focus Ilsung Chi North Korean Heritage ASSN Colorado Times Korean Marines Corp ASSN H-Mart Colorado Rocky Mountain Korean Lions Dutch Nelson Chapter

$ 1,000.00 $ 500.00 $ 100.00 $ 500.00 $ 500.00 $ 200.00 $ 50.00 $ 500.00 $100.00 $ 1,000.00 $50 $ 19,000.00 $ 100.00

$ 500.00 $ 2,000.00 $$-

$ 50,000.00 $$ 10,000.00 $ 10,000.00

$ 50,500.00 $ 2,000.00 $ 10,000.00 $ 10,000.00

합계

$ 69,300.00

$ 99,500.00

$ 168,800.00

$$$$$$$$$$$ 2,000.00 $-

$ 1,000.00 $ 500.00 $ 100.00 $ 500.00 $ 500.00 $ 200.00 $ 50.00 $ 500.00 $100.00 $ 1,000.00 $ 50.00 $ 21,000.00 $ 100.00 무료광고지원

$ 300.00 $ 2,000.00 $ 100.00 $ 200.00 $$ 50.00

$$$$$ 3,000.00 $-

$ 300.00 $ 2,000.00 $ 100.00 $ 200.00 $ 3,000.00 $ 50.00 무료광고지원

$ 50.00 $ 500.00 $ 500.00 $ 100.00 $ 10,500.00 $ 1,500.00 $ 15,000.00 $ 500.00 $ 5,000.00 $ 2,500.00 $ 100.00 $ 300.00

$$$ 4,500.00 $$ 10,000.00 $$ 10,000.00 $$$$$-

$ 50.00 $ 500.00 $ 5,000.00 $ 100.00 $ 20,500.00 $ 1,500.00 $ 25,000.00 $ 500.00 $ 5,000.00 $ 2,500.00 $ 100.00 $ 300.00 무료광고지원

$ 1,000.00 $ 3,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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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00 $ 3,000.00 무료광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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