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후 3:17)
제 11권 7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1년 4월 8일 발행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아니하리라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6:3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목차
2021년 4월 8일
목차 교계소식 선교지에서 온 소식 내면을 향한 여정 신앙칼럼 강단설교 목회칼럼 하나님의 구원섭리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커피 한잔의 대화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변화프로젝트 나의 노래, 나의 기도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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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목사 장로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Rev. McDonald)
이재덕 목사
이형만 이흥섭 임동섭 장석현 정병갑 정봉수 정석현 정성욱 천경우 최요셉 최요한 최형락
문서선교에 동참하는 개인, 교회, 단체, 사업체 목사 목사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목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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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원 권사 박영돈 부동산 박정순 원로사모 벧엘교회 볼더아름다운교회 삼성장로교회 서선녀 사모 섬김의교회 성경혜부동산 성시화운동 콜로라도 지부 세계기도일예배 순복음한인교회 신민식 • 신경원·신정원 성도 신동윤 종합보험 실로암장로교회
윤애원 원로사모 윤찬기 CPA 이국형 장로 이계원치과 이성선 커머셜 융자 이승우 CPA 이영범·이은정 성도 전제히 권사 / 정순이 권사 지구촌교우회 참빛교회 추경남 부동산 콜로라도장로회 큰사랑교회 / 트리니티교회 한명옥 권사 한인기독교회/UNI Financial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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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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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모집 안내
COVID19 백신 2차 접종 안내
빛과소금뉴스
4/14 덴버제자교회 ● 4/17 뉴라이프선교교회
빛과소금뉴스는 신문 배달 자원봉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담당 지역은 북쪽 웨스트민스터 한아름마트나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의 한국 마켓을 중심으로 한 달에 한번이나 두번 가능한 시간 이 있을 때, 정기적 혹은 언제든 한번이라도 배달이 가능하면 자원 해 주길 요청한다.
Aurora Asian Pacific Community Partnership에서 후원하 고 덴버제자교회와 뉴라이프교회에서 장소를 제공하며, Colorado Asian Health Equity and Practice (CAHEP)에서 주 정부가 무 료로 제공하는 2차 백신을 접종하는 행사를 아래와 같이 실시한다. * 2차 접종: 1차와 같은 장소에서
●신문배달: 언제든 시간이 허락될 때 2번째, 4번째 주말 자원봉사 원하실 때 1회도 감사 (비정기적도 가능)
● 일시: 4월 14일 수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 ● 장소: 덴버제자교회: 8390 E. Hampden Ave. Denver, CO 80231 ● 문의: (303) 875-9076
●배달지역: 스프링스 지역 웨스트민스터 한아름마트 ●문의: (303) 667-2778 / thelightandsalt@gmail.com
● 일시: 4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 ● 장소: 뉴라이프 교회: 15051 E. Iliff Ave. Aurora, CO 80014 ● 문의: (303) 960-2182
문서선교에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 백신 접종 관련 문의: 이승우 Co-Chair Aurora Asian Pacific Community Partnership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본지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 기도로 ♣ 시간으로
(303) 870-1290
♣ 재능으로 ♣ 물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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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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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교계 소식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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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사진으로 보는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창립
35주년 기념예배와 임직식 기사 및 사진 제공: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집사임직: 김보혜, 김주실, 최영민, 조혜숙, 조광현
지난 4월 4일, 부활 주일 임마누엘 연합감리교회는 창립 35주년 기념 예배와 임직식을 함께 가졌다. 펜데 믹으로 인해 손님들을 초대하지 못 했지만, 임직자들의 가족들이 함께하 여 빈자리를 채워주어 부활의 기쁨 과 임직식을 빛내 주었다.
장로임직: 남익히 장로와 가족
특별히 장로 임직은 25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뜻깊은 임직이었다. 올해 장로로 임 직한 남익희 장로는 “늘 겸손하게 주신 사명 충성하며 감당하겠다”는 고백을 하였다.
권사로는 정용수 권사와 백창기 권 사가 임명되었는데, 이들 또한 교회 를 위해 늘 헌신하며 섬길 것을 모든 성도들 앞에서 화답하였다. 집사로는 김보혜, 김주실, 조혜숙, 조광현 그리 고 최영민 집사가 임명되었다.
권사임직: 정용수, 백창기
담임목사인 전병욱 목사는 교회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펜데믹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 속에도 임직식 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 활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되어 은 혜이고 기쁨이라 고백하였다.
선교지에서 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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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8일
힐링 콰테말라 선교회
"성공적 백내장 캠프, 육신의 눈뿐아니라 영의 눈 떠지길"
백내장 수술중
지붕공사를 위한 기조공사 마무리단계
선발된 20명의 장학생
우리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기다리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여러 당신의 천
설치(약 2만 불), 벽면 미장공사(약 2만
에 이미 집을 떠나버린 후였다. 결혼한
이 시간에, 과테말라에서 기쁜 소식으로
사들을 보내주셨다. 백내장 캠프를 위해
불), 그리고 창문(약 1만5천 불. 외벽만이
아이들은, 특히 도밍가 같은 경우는 겨
시작한다. 3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
서 총 16,025불이 후원되었고, 이 중에
라도…)을 위해서 여러분의 재정 도움이
우 17살인데, 가슴은 답답하지만, 결혼을
된 백내장 캠프가 성령님과 함께 모두가
대략 12,000불 정도가 소요되었다. 남은
필요한다. 이외 나머지 공사들(바닥 타
축하하고 새로운 가정을 위해서 축복기
기뻐 춤을 추는 큰 축제로 은혜 가득
재정은 다음번 백내장 캠프에 사용하도
일, 화장실, 전기, 드라이월, 방문, 천정
도를 해 주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하게 진행이 되었다. 과테말라 현지 안
록 하겠다. 백내장 캠프를 위해서 후원
공사 등등)은 우기가 시작되더라도 내부
것이 없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팬더믹
과 의사 세 명 (닥터 에드가, 닥터 비키,
과 기도로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공사이니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진행할
이 더욱더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
그리고 닥터 마르코)과 우리 의대생 장
감사드린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시면
다. 학업을 포기한 아이들이 사는 집은
서 작정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판자로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이 대부분
학생 등의 자원봉사로 진료한 환자들은
다음 백내장 캠프는 올해 8월 정도에
약 350여 명 정도 되고, 총 114건의 수
계획 중이다. 다음번 백내장 캠프에 함
세 번째로 전해드릴 장학생 소식은 기
술을 진행했고, 이 중 106건의 백내장
께 하길 원하시면 기도 가운데 백내장
쁜 소식과 함께 가슴이 아픈 소식이 있
수술과 8건의 익상편 수술을 했다.
의료용품(개안수술 한 개당 대개 100불
다. 기쁜 소식은 올해 부어주시는 주님
마지막으로 양식 전달은 이번 달에는
이제까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가
정도 소요)들과, 또 보강이 필요한 장비
의 은혜로 새롭게 20명의 장학생이 선발
약 150여 가정을 찾아가서 양식을 전달
백내장 수술을 통해서 다시 볼 수 있는
들(안과 수술용 현미경, 바이오메트릭 스
되었고, 선발된 장학생들은 모두 후원자
할 수 있었다. 현재 과테말라의 코비드
환자들을 경험하는 것은 큰 은혜였다.
캔, 보비 등)의 준비를 위해서 마음을 모
들과 매칭이 되었다. 할렐루야!
상황은 무척이나 나쁜 상황이다. 보건당
어떤 이는 삼 년 동안 맹인으로 살다가
아 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계속 기 도 부탁드린다.
코비드 팬더믹으로 학업 환경이 너무
국은 3차 대유행을 우려하고 있고, 매일
다시 보게 되어서 딸과 부둥켜 안고 울
두 번째 소식으로는 베데스다 지붕 공
나도 열악해졌지만, 특히나 컴퓨터나 인
신규확진자는 1100-200여 명 수준이다.
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떤 이는 다
사는 지금도 열심히 진행되어 가고 있
터넷 등의 인프라가 거의 없는 과테말라
우리 베데스다 식구들 중에서도 직접적
시 눈을 뜬 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손을
다. 건물에 블록으로 벽을 쌓고 지붕을
에서는 더욱 힘들게 공부를 하지만, 그래
으로 관련이 있는 가족들이 벌써 6가
들고 춤을 추며 감사하는 이도 있었다.
올릴 수 있는 시멘트 뼈대 공사가 이번
도 열심인 아이들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정이나 된다. 백신은 이스라엘과 인도의
27살의 사라이는 백내장이 심했던 눈 때
주까지 해서 모두 마무리가 된다. 그리
후원자들은 매칭된 우리 아이들을 가슴
후원으로 겨우 의료업 종사자들에게 시
문에 볼 수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존
고, 이 시멘트벽 구조물 위에 지붕 철
에 품고 매일 기도하시면서 재정 또한
작이 되어가는 상황이다. 베데스다 클리
감도 무척 낮아져서 사람들을 피했었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공사가 다음 주부터
후원해 주실 것이다.
닉 식구들도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
데, 수술로 인해서 시력이 회복된 것뿐
베데스다 건물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매칭이 모두 이루어진 기쁜 소식과 함
다. 과테말라의 가난한 이들의 삶은 여
만이 아니라 이제는 당당하게 다른 이
는 설치할 구조물들을 업자의 철공소에
께 또 한 가지 가슴이 아픈 소식은 올
전히 무척이나 힘든 삶이다. 경제를 셧
들을 볼 수 있는 것을 크게 기뻐했다.
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해서 해 왔다. 계
해만 해서 16명의 아이들이 학업을 포
다운 한 것은 아니지만, 길어지는 팬더
획보다는 조금 늦어졌지만, 조금씩 조금
기했다. 어떤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믹으로 인해 줄어든 수입으로 경기 자체
씩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과테말라 시티로 갔고, 어떤 아이들은
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계속해서 과테 말라를 위해서 기도 당부드린다.
이번 캠프를 통해서 새롭게 눈을 뜨 게 된 모든 이들이, 다만 육신의 눈만 을 떠서 세상을 다시 보는 것뿐만이 아
베데스다 지붕공사의 마무리를 위해서
미국으로 들어온 아이들도 있고, 또 어
니라, 영혼의 눈 역시 떠져서 우리 하나
여러분들의 기도와 재정 후원을 당부드
떤 아이들은 시집을 가고, 또 어떤 아이
To Support the Mission;
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되길
린다. 각각의 공사의 단계마다 주님께서
들은 그저 공부하기가 싫다고 한 아이들
Payable to Healing Guatemala
기도한다. 백내장 캠프에서 모든 진료와
는 충분한 재정을 보내주셔왔는데, 계속
도 있었다. 학업을 그저 포기해 버린 아
P.O. Box 1835
수술은 모두 무료로 진행이 되었다. (현
해서 당신의 준비하신 분들에게 감동을
이들이 안타까워서 한 명이라도 마음을
Duluth, GA 30096
지 안과 클리닉에서는 백내장 수술 한
주시리라 믿는다. 철 구조물 설치공사와
바꾸어 볼까 해서 학생들의 집을 방문
한국: 하나은행
건당 대개 800-1000불 정도이다.) 이 백
그 후에 이어지는 오에스비 판넬 구입과
했다. 16명 중 두 명의 아이들이 마음을
힐링과테말라
내장 캠프를 가능하도록 주님께서는 큰
설치(약 2만 불), 아스팔트 싱글 구입과
바꾸어서 공부하기로 했지만, 많은 경우
287-910017-07605
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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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내가 살아있는 것은
깨어있어야!
시편Psalms 118:15-18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17). ........................................................................................
마가복음 Mark13:28-37 “깨어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
의인들의 삶의 자리에는 기쁨의 노래 소리가 울려 나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 합니다(15-16).
예수를 따르는 삶은 영적 깨어남이 있어야 합니다(롬13:11-14). 잠자는 상태에서 혹은 죽어 있는 상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기쁨은 내가 무엇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잘못된 삶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시는 기쁨인 것입니다.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실 것이다”(엡5:14). 영적인 잠자는 상태는 어둠의 상태입니다. 죽은 상태는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그런 은총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에 주께서 하시는 일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바로 이런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의 내면을 먼저 살피고 그 모습 그대로 주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의롭지 못한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 주께 기도와 간구로 탄원을 하게 됩니다. 구원의 은총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지금 살아 숨 쉬는 것은 주께서 하신 일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고백이 체험 속에서 얼마나 고귀하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피닉스<들꽃피는마을>에서정봉수
십자가로 향하는 길은 영적 소생함이 있어야 합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 명하십니다. 세 번씩이나 그들을 찾아와 깨어있기를 말씀하셨으나 몸이 피곤했던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며 “너희가 잠시도 깨어 있지 못하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신적인 잠이 아니라 영적인 잠에 빠져있었던 것이란 의미입니다. 고난주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잠자는 상태에 있는 우리를 깨우는 일입니다. 영혼이 깨어있지 못하면 십자가를 향한 길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없습니다. 의식이 깨어 기도하지 못하면 제자들처럼 우리도 예수의 곁을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희랍어 "그레고레이테(γρηγορέω)”는 "깨어있다”, "정신차리다”, “주의해라” “살아있다”란 의미입니다. 내 영혼이 깨어 숨 쉬게 하시고 살아있음으로 당신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소서. <ooreekmc@hanmail.net>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4)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신앙 칼럼
2021년 4월 8일
오성관 목사
7
약속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약 속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에게는 무한 신뢰감과 애정이 생긴다. 반면에 자신이 스스로 한 약속조차 기억도 못 하거나, “아~ 그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웃 어넘기며 등한시 여기는 사람, 혹은 필 요에 따라 실행의 의지도 없으면서 약속 을 남발하는 사람은 곤란하다. 하지만 동물과 한 마디 약속도 지 키기 위해 고심하며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을 읽다가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서, 얼마 전 "남 극 이야기”(Antarctic)와 "에이트 빌로 우”(Eight Below)를 시청하였다. 이 두 편의 영화는 1958년 남극 일본 관측대에서 일어난 실화를 다루고 있다. 관측대의 1차 팀과 2차 팀이 교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2차 팀이 곧 관측대에 도착할 것을 알기에, 1차 팀이 먼저 출발하면서 15마리의 썰매견들을 눈밭에 일렬로 목줄을 묶고 얼마간의 식 량을 던져주고 떠난다. 하지만 25년 만 의 눈 폭풍으로 인한 극한 기상악화로, 본부의 명령으로 2차 팀은 관측대에 들 어오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로 인해 생존이 불가능한 남극에 버려진 개들의 생존과 개들에게 마지막 남긴 말, “기다려, 다시 돌아올게. 약속
해” 그리고 목줄을 매두어 개들을 움 직이지 못하게 한 일이 개 조련사인 대 원을 괴롭힌다.
다.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은 차 라리 고지식한 사람, 피곤한 사람쯤으 로 치부되고, 적당히 눈치껏 사는 사람 이 똑똑하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일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원은 개들을 묶어두었던 곳에 도 착하지만 이미 175일이 지난 후였다. 예 상대로 목줄로 인해 눈밭에 배고픔과 추 위로 얼어 죽은 개의 사체를 발견하지만,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목줄을 끊고 악천 후 속에서도 주인이 돌아올 것을 믿고 그 근방에서 생존하는 2마리의 개들과 만나는 실제의 이야기가 이 두 편 영화 의 줄거리이다.
구이언하지 말라”(딤전 3:8)고 하신다. 동
물과의 약속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불 사하는데, 하물며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 게 주신 약속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이 영화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예수님 의 말씀과도 흡사하기 때문일까?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도 길 잃은 양처럼 헤맬 우리를 공중의 권세 잡은 리라고 하시며,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 을 약속하셨다(요 14:15-18). 그리고 우 리를 데리러 다시 오겠다고 분명히 말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역 사”를 이루시기 위함이다. 인류의 역사 는 하나님의 언약 성취 과정이다. 그러 기에 성경 역사를 구속사라 부른다. 죄 인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성자 예 수님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큰 사랑, 다함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 하시길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가 곧 하나님께서 우리와 일방적으로 맺 은 가장 큰 약속이시다.
씀하시고 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 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 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 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일구이언은커녕 조그만 이익을 위해서 라면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상이
곧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계속 용서하시고, 그 약속의 말씀들을 신실과 성실로 이루어내실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은 언약 가운데 가장 큰 언약은 무엇일까?
이루어지고 우리도 성실히 지켜야한다.
악한 영들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 기다 먼저 일본에서 1983년 <남극 이야기> 로 만들어졌고, <에이트 빌로우>가 2006 년 미국에서 흥행(?)을 위해 내용도 약 간 수정하고 부분적으로 CG를 적극 사 용하여 리메이크 한 영화이지만, 감동은 여전하다. 목줄 끊기를 시도하지 않은 개 는 정말 그 주인의 약속대로 그 자리에 서 기다리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음 을 맞았는지는 확인해 볼 수 없지만, 평 소 동물영화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도 “약속”이라는 명제를 위해서 적극 추 천한다. 동시에 남극의 멋진 풍광은 덤 으로 즐길 수 있다.
발행인 최성애 권사
우리와 일방적인 약속을 하시고, 그 약 속을 성실이 이행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약속을 실행하시기 위해 아들조차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변함 없이 신실과 성실로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부름 받은 모습대로 우리도 신실과 성실로 지구에 한쪽 끝에서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생 명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해야겠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 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 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 겠느냐” (롬 8:32).
강단 설교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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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축복” <요 20:11-18>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건 세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창조사건, 부활사건, 재 림사건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가장 중 요한 신앙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찬가지 로, 창조신앙, 부활신앙, 그리고 재림신앙 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항상 떼려 야 뗄 수 없는 찰떡 관계입니다. 하나님 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것을 믿는 자 는, 예수님의 부활을 당연히 믿게 됩니 다. 그리고 또 당연히 예수님의 재림을 믿게 돼요. 그런데 반대로, 이 중 한 가 지라도, 좀 이상한데... 이것만큼은 안 믿 어지는데.... 이러면 어떻게 돼요? 다른 것도 다 안 믿어지는 거예요. 특별히 우리 주님의 부활사건이 그렇 습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 이 어떻게 반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믿 지 않든가 그냥 믿든가, 이 두 가지 선택 밖에 없어요.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오 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부 정하기 위해서 수많은 반론들을 제기해 왔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두 가지 주장이 있다면, 첫 번째,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 쳐다가 몰래 감추었을 것이다. 이 주장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말이 안 되는 것 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 고 나서 어떻게 됐습니까? 모두가 다 부 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됩 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다 가 딴 데로 빼돌려 놓고, 예수님이 부 활하셨다, 이 거짓말을 전하기 위해, 자 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까요?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제자들이? 심리학적으로 진리를 위해서 목숨은 바칠 수 있지만, 거짓을 위해서 는 절대 목숨을 바칠 수 없다고 말합니 다. 그래서 이 첫 번째 주장은 확실히 틀린 것이고,
두 번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 으시고, 죽은 척하시다가, 제 발로 무덤 에서 도망치셨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셨습니다. 피와 물이 쏟아졌다는 것은, 이미 죽어서 몸이 썩 기 시작했다라는 거에요. 그것을 본 로 마 군사들이 예수님의 발을 꺾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다시 한번 확 인 사살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다, 그래서 제 발 로 무덤을 도망치셨다. 이 주장은, 오히 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 옹호하는 주 장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렇게 부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말이 안 되 고, 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사실을 나타내줍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무덤에서 장 사 되신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 나 보여주시고, 함께 식사도 하시고, 그 리고 500여 명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오늘 이 부활의 사건을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믿게 되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님들 가운데 예수님 의 이 부활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예수 님의 무덤 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는 성 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축구가 예로부터 뭐가 답답합니 까? 골문 앞에서 꼭 골을 잘 못 넣어요. “아무개 선수 결정적인 찬스입니다. 슛... 아! 노골이에요...” 축구 해설자들 이 늘 이런 답답한 멘트만 하잖아요. 여러분, 기독교에서 골인이란, 천국 들 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매주 교회 와 서 예배드리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고, 직분자 노릇 부지런히 해도, 결국 천국 못 가면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포커스는 바로 천국 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 갈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 예를 들어, 제가 내일 하와이 로 여행을 갑니다. 그러면 제가 지난 몇 주 동안 뭘 열심히 했겠습니까? 인터넷 으로 하와이에 대해서 찾아보고, 숙식을 예약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천국 갈 사람들입 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천국 가 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돼요. 그 런데 우리는 천국 갈 거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가면 가나 보다. 지옥 안 가니까 좋은 거지. 이렇게 천국 가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 다. 그러다가, 나이 들고 몸이 좀 아프 면, 그때서야 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 게 됩니다. 저희 아버님이 연세가 83인데요, 평생 하나님 잘 믿으시고, 목회도 하신 분인 데, 요즘 들어서 천국 갈 준비를 하신다 고 천국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계십니 다. 며칠 전에 전화로 이런 말씀을 하시 더라고요. ‘천국 갈 준비를 하다 보니,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잘 못 살았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셨다’고 말씀하시더라 고요. 천국이라는 골을 정해놓으니까, 신 앙이 새롭고, 발전되더라는 거에요. 여러 분, 저희 아버님의 이 말씀은 정말 중요 한 말씀인 것 같아요. 천국이라는 목표 가 생기니까, 진짜 신앙생활이 뭔지 보 이더라는 거에요. 사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천국행 티켓 을 얻었습니다. 예수 믿으니까 그냥 받 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천국 갈 준비를 않는다는 거에요. 여러분, 천국 갈 준비 가 뭡니까? 다른 거 없어요. 나를 천국 가게 만들어주신 우리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 로 사는 거예요. 뭐뭐 해라 하시면 그것 을 반드시 해야 되고, 뭐뭐 하지 말아라 하시면 안 하는 거예요. 그리고 열심히
이형만 목사
덴버한인장로교회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는 거예요. 왜? 감 사하기도 하고, 또 영원히 그 하나님과 함께 살 생각을 하니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뭔가는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많은 성도님들이 그냥 평생 이 렇게 생각하고 살아요. 예수 믿었으니까 죽으면 천국 가겠지... 그리고 그냥 하라 는 거는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맨 날 하다가 죽을 때쯤, 하나님 잘못했어 요, 용서해주세요, 제 세마포 좀 깨끗이 빨아주세요. 거룩한 세마포 입고 천국 들어가게 해주세요... 오늘 본문 바로 전에 나오는 얘기가 바 로 이 얘깁니다.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 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돌문이 열려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 속에 없는 거예 요. 깜짝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 한이 달려왔어요. 4절을 보니까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젊어서 그런지 먼저 무덤 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들어가 질 않았어요. 오히려 베드로가 늦게 도 착했지만 먼저 무덤에 들어갑니다. 그리 고 예수님이 입었던 세마포와 얼굴을 둘 렀던 수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 내 요한도 그 뒤를 따라 무덤에 들어가 게 되지요. 바로 이 장면을 성경은 이렇 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8절에,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 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여러분, 신앙생활 20년 30년 40년 넘 게 했어도 여전히 무덤 밖에서 서성거리 고 있다면 여전히 그 사람은 부활의 주 님을 못 만난 사람입니다. 가장 일찍 무 덤에 도착한들 뭐하겠어요? 그 무덤 속 에 들어가서 직접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을 내 눈으로 보고 체험해야지요. 많은 성도님들이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 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믿는데 예수님이
강단 설교
2021년 4월 8일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 사 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 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부활 도 못 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 아가셨다면, 그 예수님은 절대 내 죄를 사해주시지 못하십니다. 내가 백날 그 예수님 믿어봤자 나를 구원해주시지 못 해요. 왜요? 부활을 못 하셨다면, 그 예 수님은 그냥 인간이에요. 여러분,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합니까?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반전이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면, 우리는 이제 전반전이 끝나고, 휴식 시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 정말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메시아 어린양이 예수님일까? 이렇게 숨죽이며 기다리다가, 후반전 에 들어가 보니까, 정말 예수님이 부활 하신 거예요. 우리는 이제야 안심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하나 님의 아들이시고, 정말 그분이 내 죄를 사해주셨다. 내가 받은 구원은 진짜 구 원이다... 오늘 이 확신과 이 구원의 기 쁨을 우리 모두가 다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 님이 부활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 지 부활의 축복을 말씀드릴까 하는데요, 오늘 이 축복 다 믿으시고, 이제부터 남 은 인생, 이 축복과 함께 살아가게 되시 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죽음 이 없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 하셨습니다.
여러분, 죽음이 없는 축복, 얼마나 대단한 축복입니까? 우리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70을 살든 80을 살든, 90, 100살을 살든, 우리는 죽지 않아요. 여러분, 가장 축복 된 인생이 뭔지 아십 니까? 하나님 열심히 섬기다가 너무 피 곤하고 고단해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잤는 데 자다가 눈을 떠보니 내가 천국에 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제가 만든 말 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14:13절을 보시 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 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 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 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그들이 행한 일, 예수 믿고 하나님 위 해서 열심히 살다가 죽은 성도들은, 마 지막 죽을 때 어떻게 죽게 되냐면 수고 를 그치고 쉰다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쉬게 해 주신다는 거예요. 그 러니까 그 죽음에 고통이 있겠습니까? 그 죽음에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그냥 편히 잠든다는 거예요. 우리 보통 내 죽 음을 위해서 미리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나님! 저 죽을 때 고통 없게 해주 세요. 두려움 없게 해주세요. 자식들 다 성장하고 기반 잡으면 그때 데려가 주세 요.” 보통 우리 이런 기도하잖아요. 그 런데 이런 기도보다 더 먼저 해야 할 것 이 하나님 열심히 섬기는 일인 줄로 믿 습니다. 예수님 잘 믿고, 열심히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몸이 피곤하고 고단할 때까지 섬기면요, 하나님은 우리의 죽음 을, 고통 없이 그리고 두려움 없이 그리 고 이 땅에 어떤 미련과 후회와 슬픔 없 이, 가장 좋을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천국으로 옮겨 주시는 줄로 믿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두 번째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축복은 뭔가? 이 땅에서 겪게 되는 모든 슬픔과 절 망을 기쁨과 소망으로 바꿔주십니 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몇 명의 여인들이 나옵니다. 이미 죽은 지 사흘이 된 예수님의 시체에다 가 향유를 붓기 위해서 찾아온 거예요. 오늘 본문 11절을 보니까 그중에 마리아 라는 여인은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을 잃은 절망과 고통의 눈물이었 어요. 그런데 16절에서 예수님은 그 마 리아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무엇으로 닦아 주셨는가? 어떤 말씀이나 위로가 아니었어요. 그냥 마리아 앞에 부활하신 모습으로 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가 그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마 자, 그 슬픔과 절망이 즉시 기쁨과 소망 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보게 돼요. 여러 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이 부활의 메 시지가 이렇게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이 땅에 40일 동 안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 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 들은 하나같이 다 변하게 돼요. 마리아 의 눈물을 닦아주셨던 예수님은, 바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서, 그들의 모든 절망과 슬픔을 소망과 기쁨 으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리고 의심 많았 던 도마에게도 찾아가셔서, 진짜 참믿음 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찾아가 셔서는, 지난날 그의 실패와 허물을 용 서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세요. 여러
분, 이들의 눈물, 절망, 의심, 허물이, 새 로운 기쁨으로, 소망으로, 믿음으로, 사 명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바 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믿었고, 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꽃을 파는 가난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복장은 늘 허름했고, 얼굴에 는 주름이 깊게 패인, 누가 봐도 평범하 고 고생을 많이 한 노인이었습니다. 그러 나 그 노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배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래서 그 노인을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이 노인에게 묻습니 다. “할머니는 항상 무슨 좋은 일이 있 나 봐요” 그러자 그 할머니가 하는 말 이, "이 나이에 어떻게 좋은 일만 생기 겠습니까? 하지만 저에게는 행복의 비결 이 하나 있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 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금요일날 십자 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저도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고 마음속으 로 다짐합니다. “사흘만 기다리자... 그 때부터 제 삶이 행복해졌어요. 마음 먹 은 대로 사흘 후에는 다 좋은 일만 생 기거든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 삶 속에서 누 릴 수 있는 부활의 축복입니다. “사흘 만 기다리자...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 이 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 이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여 러분 믿으시고, 부활이요 생명 되신, 우 리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의지하여, 날 마다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안에서 예수님처럼”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비전
예배 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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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목회 칼럼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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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영혼 이 육신에서 떠나가시어서 예수님의 육신 은 죽으셨다. 그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 고 무덤들이 터지고 그 속에서 잠자던 성 도들이 많이 일어났으며 예수님의 맞은편 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던 백부장은 예 수님에 대하여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을 하였다. 그 백부장에게 있어서 보는 것이 믿음 이어서 인간적 세상적으로도 예수님은 하 나님의 아들임이 분명하지 않는가? 죽어 서 무덤 속에 놓인 성도들은 살아난 후에 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비로소 그들의 모습을 거룩한 성에서 사람들에게 보이었 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어서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본 자들도 있 었을 것이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기 도하면서 성령의 불세례를 받은 자들도 있 었을 것이다. 또한 초대 성도로서 그리고 부활을 이미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하여서 고난과 순교를 담대하게 당한 이들도 있 었을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서 빌 라도에게 갔던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였고, 빌라도는 그것 을 허락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두려 움이나 의심이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여 서 그의 뜻을 이루실 때가 있다. 원하시면 온갖 사람들을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 의 섭리와 작정하심에 순복하는 것이 필
요하다. 만약 아리마대 요셉이라도 예수님 의 시신을 거두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겠는 가? 예수님의 장사를 비롯하여서 많은 차 질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고 무덤의 문이 열 린 것을 발견하였으며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는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 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예수 님의 무덤 속에 들어갔는데 예수님께 대 한 그녀의 사랑과 염려는 남달랐다. 그녀 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람다운 인정을 받았 고 사함과 치유와 회복을 받았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직접 간접적으로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요 예수님 때문에 생 존할 뿐만 아니라 구원을 얻는 신앙을 가 질 때에 천국 영생 복락 하는 구원을 얻 을 수가 있음에, 그녀와 같이 예수님을 가 장 사랑하고 배려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 리고 예수님이 원하시고 필요로 하는 자로 서 살고 죽어야 한다. 천사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그 의 말씀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하여 주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때 그 녀는 그 무덤 속에 계신 예수님이 동산지 기인 줄로 알았으나, 예수님께서, “마리아 야!”라고 부르신 음성을 듣고는 예수님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그의 제자들 에게 찾아가서는 그녀가 만나서 대화하였 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돌아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대 화를 하면서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들은 자신들과 대화를 한 이가 바로 예수 님인 것을 확신하고는 다른 제자들이 숨 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고백에 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문이 잠긴 집 안에 나타나셔서 자신의 손과 허리에 난 상처를 보여 주었으며 자신은 살과 뼈가 있는 사 람이라고 확인시켜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평안하고 성령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도마가 다 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도 나타나셔서는 자신의 손을 보고 옆구리에 그의 손을 넣 어서 믿으라고 명하였다. 그때 비로소 도 마는 예수님께 대하여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 마리아란 이름이 의미하듯이, 마리아 와 막달라 마리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은 쓰라림과 사랑을 체험하곤 한다. 끝까 지 인내하여서,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약 속을 받거나 베드로와 같이 경건함과 형 제 우애와 사랑을 완성하거나, 바울과 야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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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고보와 같이 연단하면서 소망을 이루거나 예수님의 명령과 같이 구원을 얻도록 애 를 써야 한다.
사람들은 위기나 기회 시에는, 도마와 베 드로와 같이 이중적으로 처신할 때가 있 다. 시몬과 같이 진리를 잘 듣고 깨달음과 고백이 있을지라도, 고난이나 위험을 당할 때는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뿌리 가 약하기에 예수님을 배신하거나 배반하 거나 멀리하거나 떠나거나 거역하는 인생 들이 있다. 가룟 유다처럼, 생활고를 당하 거나 유익을 위해서는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신앙을 빼앗기거나 버리는 사 람들도 있다. 매일 구사일생의 연속임을 깨닫고서, 부 활의 신앙과 유비무환과 일체비결의 노력 과 순교정신과 주의 군사 된 정신이 있어 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반석, 질그릇, 정금 혹 은 보배와 같은 신앙으로 발전 장성 성숙 하여질 수가 있다. 또 하나님께서 사랑과 예수님으로 택하신 자로 합당하여서 대환 난의 날이 감하여지고 천지에 유익한 자 가 될 수가 있다. 또한 예수님과 천국에 주일예배: 11:30 속한 자가 되며 예수님과 오전 더불어서 일천 (장소: 2821 S 유스주일예배: 주일 오전 10:30 (장소 년 동안 혹은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수요예배: 오후 7:00 (장소: 5651 S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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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섭리
2021년 4월 8일
11
(제23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16. 7년 대환난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2)
하나님께서는 인류구원을 위하여 이스 라엘민족을 사용하실 것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하셨고(창12:3, 22:18, 롬9:6-8), 이 약속대로 섭리해 오 셨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 족의 대부분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의 믿음을 따르지도 않고 하나님을 절 대 순종하지도 않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참여하지 못했고 구원섭리의 도 구(사역자)로 쓰임 받는 일에도 실패하 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이 사단 마귀의 줄기찬 훼 방에 따라 된 결과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그 목적이 분 명히 정해져 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 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코 주 신 약속의 말씀이요(창12:3, 22:16-18) 따 라서 하나님께서는 변함 없이 이 약속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섭리해 오셨고 이 스라엘 백성들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 건 이 약속을 따라 살아왔다. 이스라엘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 승리하느냐 실패 하느냐의 결과는 그들이 조상 아브라함 과 같이 하나님의 이 절대적 약속을 믿 음으로 순종해왔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에 따라 결정되었음을 그들의 역사(구 약)를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결 과는 그 많은 기적적(초인적) 승리들에 도 불구하고 썩은 무화과열매 광주리와 같이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결과라 하겠 다(렘24:8-10).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폐기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 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최후에 결코 성취 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 데 이 하나님의 약속이 물 건너 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 고 이스라엘 민족 구원에 관한 약속이 어느 때에 성취될 것인지를 생명을 걸 고 기도하며 매달림으로 응답받은 두 사 람이 있다. 그 하나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구 약의 다니엘이요 다른 하나는 이방인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는 신약의 사도 바 울이다. 이 두 사람 다 자기 민족의 구 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이루 어 질 것인지를 하나님께 애달프게 호소 하여 응답을 받았다. 우리는 여기서 이 두 사람이 하나님으 로부터 받은 응답의 내용을 살피면서 아 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의 구원섭리를 헤아려 볼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내용과 하나님의 응답 은 다니엘서의 중심 진리이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해 포로 되어 온 사람들 가운데 바벨론 왕들에게 가 장 존경과 총애를 받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은 오직 메시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 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곧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언 제 성취될 것인가에 있다. 다음의 두 구절들을 참고하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 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 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 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 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 (창 12:2-3)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 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대적의 성 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메시아)로 말 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 22:17-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씩이나 궁극적인 복에 대해 약속하신 때는 순 종하기 힘든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 순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종했을 때이다. 첫 번째는 아비 친척이 살던 고향(갈 데아의 우르 및 하란)을 나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순 종해 갔던 때이고, 두 번 백세에 약속대 로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에서 산채로 제 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주저함이 없이 순 종했을 때이다. 아브라함은 이 두 가지 명령을 온전 히 순종함으로 궁극적인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 하나님은 전 인류 구원섭리를 물론 이 약속을 따라 진행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를 믿 음으로 순종하지 못해서 수없이 멸망하 고 여러 민족들에게 종노릇하고 지금까 지도 이 약속을 기대하면서도 바로 믿 고 순종하지 못해서 약속 밖에서 헤매 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문제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이 언제 어떻게 성취되느냐이다.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4월 8일
12
사무엘상 강해(44)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사무엘상 12:1-5>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올라갔으면 반드시 내려와야 합니 다!” 그래서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마무리가 좋아 야 합니다. 목표를 두고 오르기 위한 치열함도 있어야 하지만 내려가야 할 때를 알고 겸손하게 욕심을 내려놓는 일도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직에서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한 마디로 은퇴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은 당시 세 가지 직을 수행하고 있었 습니다. 사사, 제사장, 선지자가 그것입 니다. 이제 사사직을 내려놓고 제사장 과 선지자직에 전념하고자 하는 것입 니다. 그의 고별사를 통해 그는 끝마 무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 고 좋은 마무리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사무엘 선지자는 순리(rationality)를 따라 사사직을 마무리했습 니다. 사무엘은 사사직을 내려놓아야 할 때를 잘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사직을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고 언급합니다. 이제 왕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사 무엘 선지자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 에서 “너희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해 서 왕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 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 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사무엘상12:1).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을 사사가 대신했습니다. 이 제 백성들의 요구를 따라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셨으므로 자신의 직을 기꺼 이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역사 의 순리를 따를 줄 아는 사람이었습 니다. 사사시대의 역사가 자신으로 끝 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새 시대, 곧 왕정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사무 엘 선지자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역 사의 순리를 거스르면 자신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지고 속한 공동 체도 힘들어집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이 늙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 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 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 니와”(사무엘상12:2). 사무엘은 자신의 몸이 연약해 졌음 을 숨기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인정 합니다.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 다.”는 것입니다. 나이는 속일 수 없 습니다. 아무리 더하고 싶고 더 오르 고 싶어도 몸이 받쳐주지 않으면 멈 출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역사 의 순리, 육신의 순리에 솔직했고 겸 손했습니다. 또한 사무엘 선지자는 그만둘 때가 지 끝까지 충성하다가 사사직을 마무 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려서부 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 와”라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어려서 부터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년 하다 가 싫증 나면 때려치우고 다른 사람 들이 알아주면 열심히 하다가도 알아 주지 않는 것 같거나 시험에 들면 때 려치우는 것이 충성이 아닙니다. 평생 을 하루 같이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시편 71편에 보면 시인 자신의 충 성을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 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 들을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 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 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
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편71:17-18). 시인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충성 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언제까지 충 성하겠다고요? 늙어서 백발이 될 때 까지 충성할 테니 도와달라고 간구하 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충성입니 다. 우리 주님께서도 요한계시록에 보 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의 한 교 회인 서머나 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면 하셨습니다.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더 큰 도 전이 되는 것은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 자의 이러한 깨끗함을 인정해 주고 있 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 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 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 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 계시록2:10). 사무엘 선지자는 이렇게 끝까지 충성하고 사사직을 마무리했 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무엘 선지자는 자신 에 대한 평가가 두렵지 않을 만큼 깨 끗하고 당당하게 살다가 사사직을 마 무리했습니다. 먼저 그는 스스로 자신 을 평가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 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 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 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 에게 갚으리라 하니”(사무엘상12:3).
없나이다 하니라”(사무엘상12:4). 사무엘 선지자는 백성들의 이러한 평가에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하나님 과 사울 왕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라 고 말합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 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 증 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 언하시나이다 하니라”(사무엘상12:5). 그러자 백성들이 이렇게 화답합니 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 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 니까? 사무엘 선지자 스스로의 결백에 대한 자기주장은 자칫 오만과 자화자 찬 그리고 독선에서 나온 것일 수 있
“내가 여기 있나니” 무슨 말입니 까? 사무엘 선지자는 마치 법정에 선 피고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백성들에게 제시합니다. 한 마디로 비판할 것이 있 으면 얼마든지 비판해 보라는 것입니 다. 얼마나 당당한 모습입니까? 모름 지기 성도는 사무엘 선지자처럼 다른 사람의 비판과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 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 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청결하게 살아 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이런 당당 한 모습은 “못 믿을 것이 기독교인” 이라고 비판받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
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은 다른 사 람들도 인정해 줄 만큼 당당한 주장이 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 앞 에서만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바르고 의로운 사람 이었습니다. 종종 성도들 가운데 보면 하나님 앞에서만 인정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디에도 하나님 께만 인정받으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 습니다. 교회 직분자는 “외인에게도 선 한 증거를 얻는 자”(디모데전서3:7)여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한다고 가르칩니다.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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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내려와야 할 때 기꺼이 내려
하고, 내가 당당하면 되는 것 아닙니
앞에 서야 할 때가 옵니다. 그때 사
초대교회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
왔습니다. 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충성
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
무엘처럼 떳떳할 수 있을까요? 당당
송을 받았다”(사도행전2:47)고 했습니
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 앞에 당당함
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사무엘은 자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모를 일입니
다. 그뿐입니까? 누가는 우리 예수님
과 떳떳함을 잃지 않고 마무리했습니
신에 대한 평가 앞에서 당당하고 떳
다. 서 봐야 합니다. 오늘을, 지금을 허
께서 유년시절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모름지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
떳했습니다. 스스로를 평가받는 재판
투루 살면 결코 모를 일입니다. 오늘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복음
변 사람들의 평가 앞에 떳떳해야 합
대 앞에 자신을 기꺼이 내놓습니다.
을 성실하게 욕심 없이 깨끗하게 살
2:5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다.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
“Here I stand” “내가 여기 서 있
아, 그때 “Here I stand” 하며 사
야 합니다. 뭐가 그리 숨길 것이 많고,
다”는 것입니다.
무엘처럼 당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무엘 선지자는 자신의 사역을 어
밝히지 말아야 할 것들이 그리도 많
떻게 마무리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았
아서, 비판만 하면 경기를 하듯이 싫
우리들 모두는 언젠가는 하나님 앞
습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마무리
어합니까? 내가 정당하고, 내가 깨끗
에, 역사 앞에, 공동체 앞에, 사람들
늘 당당하게 “Here I stand” 할 수 있겠는지를 점검하시며 살아야 하 겠습니다.
조급함은 불신앙이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조급증은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의 요소다. 조급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 앞에서 기도했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때는 1밀리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시다. 하나님의 응답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주어진다. 기도하고 조급하여 이것저것에 기웃거리다 보면 그 빈틈을 마귀가 차지한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던 시므온과 안나의 인내를 배워야 한다. 사울은 조급하여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제사를 강행하므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 기독교의 역사는 기다림의 역사다. 비록 어려움이 있고 시련이 닥쳐와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그분의 뜻을 펼치신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음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급하다고 우물가에 가서 숭늉을 찾아서는 안 된다. 교회 일을 하면서 급한 마음에 자신이 일하려다 하나님을 앞서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주셔도 하나님이 주시고 거절하시고 지체하셔도 하나님이 일하시게 해야 한다. 자칫 내가 하나님이 되어 일하려다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을 수가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님 재림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하나님보다 앞서가다가 실수한 일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만 잘 감당 하면 된다. 종말의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노라면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하여 나갈 수가 있다, 문제는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보다 일을 앞서 나가는 데 문제가 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을 바라볼 뿐 느보산이 그의 끝이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솔로몬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시작하신 이가 마치실 것이다.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함이 죄다. 내 인생의 끝이 언제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서 오늘 주어진 사명에 순종의 길로 나가야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가 있다. 절대로 내가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의 일하심에 맡겨야 한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다만 우리는 주어진 일에 죽도록 신실함으로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자가 될 수 있다. 그의 때를 기다려라.그가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실 것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4월 8일
14
민수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지 는 가나안 땅이었지만,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통과해야만 했 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 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방 황했고 쓰디쓴 연단을 받았습니다. 민수 기는 바로 그 이스라엘 사람들의 방황 에 대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방황기를 주신 것처 럼, 그리스도인들도 광야와 같은 방황기 를 때때로 겪게 됩니다. 민수기를 통해서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영적 생명력을 유지하는 기본기를 터득할 수 있기 바랍니다.
“민수기(Numbers)” 개론과 제목 레위기는 한 달 정도의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민수기는 거의 40년 이상의 기 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250만이 넘었을 것이고 그들은 가데스바 네아 근처에서 광야 방황 생활을 시작하 여 제 40년에 모압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22:1, 26:3, 33:50, 신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 시내산 에서 그리고 모압 평지에서 두 번 인구 의 숫자를 계산했습니다. 70인역의 헬라 어 제목과 라틴어 벌게이트 역은 인구의 수를 계산하다는 의미의 “계수(Numbers)”로 붙였습니다. 영어 성경의 제목 은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 기의 히브리 성경 제목은 민수기 1장 1절 의 첫 단어인 “베미드마르(Wayyedabber)”(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셨다/"The Lord spoke to”)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민수기는 ‘여행의 책’, ‘불평의 책’, 그 리고 ‘모세의 네 번째 책’으로도 불립 니다.
민수기의 주제와 목적 민수기의 주제는 두 가지의 결과 즉 이 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순종한 결과 와 불순종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민수기 를 통하여 하나님은 변덕스럽고 신실하 지 못한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인 내, 거룩하심, 공의, 자비, 그리고 그의
주권을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의 방황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축 복을 받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과, 하나 님의 시련과 시험은 특별한 목적이 있다 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민수기의 핵심 구절들과 핵심 장: ‘방황’ 핵심 구절 :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 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 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을 내가 그 조상들 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 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 것을 보지 못하리라 (14:22~23, 20:12)”. 핵심 장 : 민수기의 핵심 단어는 “방 황” 입니다. 민수기의 중대한 전환은 14 장의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를 거부함으로 40 년간의 광야의 방황이 시작되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그 땅을 탐지 한 날 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 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 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 셨습니다(14:34).
민수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구리 뱀’, ‘반석’, ‘만나’, ‘한 홀’ 민수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 형들은 이스라엘이 생명과 죽음의 갈림 길에 서 있을 때 일어난 사건들과 연관 되어 나타났습니다. 첫째, ‘장대에 달린 구리 뱀(21:4~9)’입니다. 예수님께서도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그 내용을 인용하셨 습니다(요3:14). 둘째, 광야 방황 중 이스라엘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준 “반석”입니다. 바울 은 이스라엘에게 생수를 내준 그 반석이 영생의 양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라 고 했습니다(고전10:4 저희를 따르는 신 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니).
셋째, 매일매일 하늘에서 지면에 내려 주신 “만나”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 신을 가리켜 “만나와 같이 하늘로부터 내 려온 생명을 주시는 떡 (요6:31~33)”이라 고 증거하셨습니다. 넷째, 발람의 예언 가운데 나타난 “ 그리스도의 통치” 입니다(24:17 내가 그 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 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 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민수기의 광야 교 회 가운데 임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구 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 6개의 도피 성, 붉은 암송아지의 희생 제사(19)와 관 련이 있습니다. 민수기는 다음 두 성경에서 중요하게 인용되었습니다. 고전10:1~2절에서 민수기 의 기록된 광야의 경험은 방종과 부도덕 의 위험을 경고하며 예방해주고 있습니 다. 또한 히3:7~4:6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이 현재의 성도들에게 “거울이 되 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가 된 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10:11).
민수기의 전체 내용 개관: 불순종하는 오합지졸 노예에서 순종하는 자로 출애굽 한 지 13개월 정도밖에 되 지 못한 노예들, 유아들처럼 본능에 충 실한 이스라엘, 그리고 무책임했던 그들 은 우리처럼 광야에서 고통스러운 성숙 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람들입 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광야의 여정 은 죽음의 위협이 도처에 있었지만, 만 약에 이스라엘이 순종만 했다면 그 어떤 길보다 빠른 지름길이었을 것입니다. 그 러나 노예의 근성, 이기적인 본성, 무책 임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연 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탈바꿈 하게 됩니다. 민수기의 스토리는 ‘구세대’ ‘비극적 전환기’‘신세대’의 흐름으로 볼 수 있 습니다. ‘구세대’(1:1~10:10)의 이야기는 출애굽 후 시내산 기슭에 머물면서 하나 님으로부터 받은 지침이 중심구조를 이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중심으 로 동서남북에 이스라엘의 “진(영)”(the divisions of the camp)의 구성에 대한 지침을 주셨는데 이것은 군대의 조직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혼란이 아니라 질 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군인들이 훈 련소에서 기본 군사 훈련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외적 질서를 세 우고 이어서 영적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민수기의 ‘비극적인 전환기’ (10:11~25:18)는 가나안 땅이 눈에 보이는 지점에서 일어났습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순종하고 목표가 앞 에 보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갈등이 일어나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 ‘구세대’ 의 그 비극적 전환의 시작은 “만나”에 대한 “악한 말로 원망”하는 것으로 시 작되어 12 정탐꾼 복귀 후 가나안 땅 정 복을 포기하는 사건으로 극에 달했습니 다. 가데스바네아의 비극으로 인하여 구 세대 즉 출애굽 세대는 가나안 땅 정복 의 약속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불신앙 의 결국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려는 경 향이 있습니다. ‘비극적인 전환기’는 ‘신세대(26~36)’ 의 등장으로 대치되고 ‘신세대’는 모세 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하여 새로운 교 훈을 받아 가나안 정복의 세대가 됩니다. 두 번째 인구 조사는 ‘신세대’를 중심 으로 계수된 것입니다. 결국 ‘신세대’는 출애굽 후 광야를 통과하면서 ‘정복 세 대’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 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신명기를 함께 공부 하겠습니다. 신명기는 1개월에 걸친 모 세의 고별 설교이면서 신세대를 위한 율 법의 재해석과 적용에 대한 세 번의 설 교입니다. 1:1~4:43, 4:44~26:19, 그리고 27:1~34:12절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1년 4월 8일
15
“성가대 좌석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요?” "성가대석이 강대상 뒤쪽에 위치해 회중을 마주하고 있는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성당에는 성가대석이 보통 2층 뒤쪽에 자리 잡고 있고요. 성가대의 정확한 자리는 어디인가요?” "성가대는 구별된 사람들로서 구약의 레위 지파에서 유래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성가대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은 당시 백성들이 두 편으로 나 뉘어 서로 교창한 것을 묘사하고 있습 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의 이야기일 뿐, 예수 그리스도 이후 초기 기독교에 는 성가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유 대교로부터 분리된 기독교가 그것도 로마의 박해하에서 성가대를 조직한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회중찬송을 만듦 으로써 성가를 회중에게 돌려주었고, 칼뱅은 회중이 운율시편¹을 찬송하도 록 했습니다. 루터와 칼뱅은 회중이 음 악을 통해 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그 리고 더 활발히 예배에 참여하도록 격 려하고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해하는 성가대의 기능은 회중을 대 신하여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의 찬송을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니다. 기독교 안에서 성가대가 최초로 조직된 것은 로마 황제에 의해 기독교 가 공인되고 예배가 공적으로 행해지 기 시작한 4세기 무렵이었습니다. 당 시 교회는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음악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따로 구분해서 음악과 관련된 직무를 담당 하게 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복잡하 고 정교한 음악이 성가대에 의해 연주 되었고, 회중은 단순한 후렴구와 쉬운 멜로디를 노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가대의 기능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종교개혁 자들은 찬송이 기본적으로 회중에 의 해 수행되는 것을 원했습니다. 당시 로 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예배가 주로 성 가대와 집례자에 의해 행해지고 회중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회중은 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입니다. 모 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 서 그분을 찬양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특별히 음악적인 재능 이 있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난 사 람들이 시간과 정성을 더 들여서 연습 하고 훈련하여 예배 중에 따로 구별되 게 찬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분 명한 것은 성가대가 회중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 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예배의 집 례자와 회중 또는 성가대와 회중의 교 창 등에서 회중의 찬양을 리드하고 도 와주는 것이 진정한 성가대의 역할입 니다. 성가대는 결코 회중 앞에서 음악 을 연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 단지 거기에 참여했지만, 루터가 주 도하는 예배에서는 집례자와 회중이 예배를 수행했습니다. 따라서 성가대 의 존재 이유는 회중을 위해서 정교 하고 어려운 음악을 수행하는 것이 아 니라 회중이 찬양하는 것을 도와주는
부터 16세기까지는 성가대가 주로 사 제와 수도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들이 강단 위에서 찬양을 담당했지만,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제공: 맹성자 원로사모(믿음장로교회)
단점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위치와는 달랐습니다. 그러 나 현대 교회가 이 방식을 채택할 경
세 번째 방식은 회중의 한쪽에 배
우 회중의 시선을 분산시킬 뿐만 아니
치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회중석이 강
라 성가대가 회중 앞에서 음악을 ‘연
단을 중심으로 ‘ㄷ’자로 배열될 경우
주’(공연)한다는 유혹에 빠질 염려가
강단의 왼쪽이나 오른쪽에 위치하는
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회중 앞에서
히 이러한 배열은 성가대가 누구에게
찬양을 연주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
찬양하는가 하는 개념과 관련하여 ‘
뿐 아니라 회중과 회중, 회중과 성가대
회중에게’(to the congregation) 찬
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양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계단식
좋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성가대가 회
으로 좌석을 돋우어 회중의 눈에 잘
중석의 앞쪽이나 옆쪽에 앉아 있다가
띄도록 하는 것은 첫 번째 방식과 큰
순서가 될 때 앞으로 나가 회중을 마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
주하고 서서 찬양을 하는 경우가 있
다. 이들 중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성
는데 이 역시 회중에게 찬양을 한다
가대는 회중과 가까이에 위치해야 합
는 개념이나 회중 앞에서 공연을 한다
니다. 이렇게 할 때 회중의 찬양을 도
는 의미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와주고 인도한다는 성가대 본연의 역 할을 잘 수행할 수 있으며, 성가대와
두 번째 방식은 회중석 뒤에 배치하 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회중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의 공 동체라는 개념을 줄 수 있습니다.
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으로서 성가대 는 주로 2층 뒤편에 위치합니다. 이럴
++++++++++++++++++++++++++++++++++
경우 성가가 예배당 천장을 타고 앞으 로 울려 나오기 때문에 천상에서 들
[보충설명]
려오는 것처럼 매우 이름답게 들리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중의 찬송
성가대의 좌석 배치에 관해서는 대략 세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 째 방식은 강단 위에서 회중을 마주하 도록 배치하는 것입니다. 이는 중세시 대에 많이 활용되던 방식입니다. 6세기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¹운율시편(metrical psalm):
을 뒤에서 지지해주는 느낌이 강하게
회중이 부르기 쉽도록 시편을 음절
듭니다. 그러나 교창을 할 때에는 서
(strophic form) 또는 찬송 비슷하게 부르는
로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16세기에 칼뱅이 운율시편을 예
점이 있으며, 성가대와 회중이 하나의
배에 도입하였습니다.
예배 공동체라는 개념을 저해한다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2821 S. Parker Rd. Suite 409 Aurora, CO 80014
커피 한잔의 대화
2021년 4월 8일
18
"기독교 문화” 한국의 어떤 방송사에 내보낸 한국 역
이런 것 또한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쳐서
야 하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사드라마에 중국의 것이 사용돼서 한국
서서히 사람들의 생각을 잠식해 들어가
있지 않는가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기
을 무시했다고 해서 퇴출당했다는 뉴스
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독교 문화이다.
를 보았다. 중국의 문화 영향을 받은 것
천경우 목사
덴버영락교회
을 믿는 자의 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
은 틀림없고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교회 내에서도 문제를 볼 수 있다. 믿
이 세상을 살아가는 믿음의 삶은 분명
또한 끄집어내서 버려야 한다. 믿음 생활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중국의 것을 한
음 생활을 하는 신자들에게서 자기중심
히 과거와 현재의 선이 달라야 하는 것
이 어찌 저절로 될 것인가? 우리는 이미
국 것인 양 사용하는 것은 한국인의 정
적인 세상 사고방식으로 교회를 비난하
처럼 생각의 경계선도 분명히 달라야 한
성령충만하다는 자들이 자신의 욕심을
체성을 무너뜨린 것이라며 용납할 수 없
거나 믿는 자를 비난하는 일을 우리는
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맹세
채우려다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이
다는 한국인의 자존심이 한목소리를 낸
목격할 때가 있다. 말씀을 중심으로 하
하고 결단하여도 변화가 없는 이유는 이
중적인 믿음 생활을 많이 목격했다. 믿음
일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자존심,
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
런 선 긋기 삶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
생활을 말하면서 오히려 사회에 물의를
한국의 문화, 한국의 언어, 한국의 정체
이 자신의 생각과 뜻과 의견이 맞다며
시 말하면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내에
일으키는 교인들의 모습도 보았다. 왜 그
성은 확실히 중국의 것과 다르고 또 그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있다. 이것
서 장사하던 이들을 쫓아내던 예수님처
런가? 뿌리 깊은 기독교 문화가 없기 때
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다
을 우리는 단순히 믿음 없기 때문이 아
럼, 모 방송국이 중국의 것을 사용했다
문일 것이다. 이제는 이런 것들을 정리할
고 할 수 있다. 확고한 정체성을 회복하
닌 아주 기초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고 반대하던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 그런
때가 되었다. 교인들이 믿음의 깊이를 이
려는 모습은 당연한 것이고 또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정체성의 문
것들 쫓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야기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이 되는 이율배
일임이 틀림없다.
제, 문화의 문제로써 기독교 문화가 뿌리
민교회는 한국교회와는 약간 다른 모습
반적인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된 기독교
를 내리지 못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을 보이는 것이 이민을 온 후에 교회를
문화가 교인들과 교회 내에 세워지면 좋
다니게 되면서 교회 내에서도 교회 문화
겠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를 생각해보면 교 회의 정체성과 기독교 문화가 상대적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중히 여기
보다는 세상 문화에 접한 모습이 더 많
로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고 그 말씀에 기초한 삶을 살라는 목사
이 보이는 양상을 띄운다는 것이다. 그
미국을 위시한 유럽에 지금도 기독교
든다.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교회
의 설교가 철저하게 무시되어지는 모습
러니 교회를 세상의 문화센터 정도로 생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본다. 그 문
라는 기관을 통해서 믿음 생활을 한다.
은 기본이 안 된 모습이고 진정어린 믿
각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도 한다. 뿌
화유산으로 많은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
그럼에도 교회의 문화, 기독교 문화가 교
음의 뿌리가 내리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
리 깊은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은 모습
의가 세워지고 존중받는 사회, 남을 높
인들에게 배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
니 여러 시험과 고난이 임하면 그냥 무
이 드러나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의 영향
여주는 사회가 세워진 것을 본다. 그런
기 힘든 상황을 많이 경험할 때가 있다.
너지고 마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을 받는 모습을 드러냄으로 교회와 교
데 한국 기독교는 이제 겨우 100년을 넘
아니겠는가?
인들이 힘들어지는 모습을 쉽사리 보인
겼는데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채 흔들리
다는 것이다.
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슬픔이
우리가 보는 한국 드라마나 예능 방
요 안타까움이다.
송에서 점이나 타로나 무당 등이 중요한
이번 드라마 사건을 보면서 기독교인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한국
들이 그런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
기독교 문화가 일상생활에 뿌리를 내리
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근 한국인의
을 갖는다. 기독교 문화가 무시되는 현시
기 위해서는 매 순간 믿음의 선택을 해
이제 백신의 보급과 함께 교인들이 교
4분의 1이 되는데 크리스찬의 항의나 반
대에 기독교가 비난당하는 현상을 보면
야만 한다. 이런 믿음의 선택이 자리 잡
회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문
대가 극심해서 방송이 그만두게 되었다
서 안타까워 목소리를 높여서 그런 세상
게 되면서 하나의 문화를 이루어내는 것
화가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
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크리스
문화가 세상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인데 기독교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교회
다. 사실 믿음 생활을 잘 하는 것이 온
찬들이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 그런 것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교회에
현상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움이 자리한
전한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를 드러내는
을 찾아가는 일이 발생한다는 말은 들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도록 힘써야 한다.
다. 자신의 과거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덴버 이민교회
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 대
지금 교회와 교인의 마음에 기독교 문화
켜잡고 살아가면서 그 위에 기독교 문화
의 문화를 창출해내야 한다. 세상과 타
세를 이루는 세상 방송은 오히려 기독교
가 온전히 존재하는가? 믿음 생활을 중
를 덧입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때면
협한 혼잡한 문화에 끌려가서는 교회가
를 비하하거나 예수님을 무시하는 모습
심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의 언행
기독교 문화는 버려지고 오히려 과거의
살 길이 없다. 진정한 믿음, 온전한 믿음
을 얼마나 많이 내보내고 있는가? 뉴스
에 주관점을 이루는 것이 성경 말씀이
모습인 사람의 모습, 세상의 모습이 드
이 기초하는 언행을 선택하는 믿는 자
를 보아도 세상의 소수라는 LGBTQ를
되고 있는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제사를
러나는 것이리라.
의 모습이 우리의 생각과 이웃의 경계선
옹호하면서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
드리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을 보고,
교인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노골적
교회를 다니면서도 사람들을 비난하고,
교회는 숙제가 있다. 세상의 문화를 배
화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으로 드러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
교회를 다니면서도 음란과 세상의 것들
척하고 교인들의 사고방식과 교회에 걸
적벽대전을 준비해야 한다. 승리하는 기
에도 조용한 모습을 드러내는 얌전한 크
을 더 귀중히 여기는 모습… 이런 모든
맞은 문화생활을 만들어내야 하는 숙제
독교 문화를 세우고자 말씀에 기초한 삶
리스찬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것이 기독교 문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를 행해야 한다. 우리의 언행에서 예수님
을 살아내야 하겠다.
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것이 기독교 문
진리의 샘터
2021년 4월 8일
19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부활의 주님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 혜가 여러분들과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 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리 신앙의 가장 크고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이 세상의 그 어떠 한 종교나 철학도 흉내 낼 수 없는, 오 직 기독교만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우리 는 이 부활의 사건을 믿고 우리의 삶 가 운데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부활절뿐 만이 아니라 (교회력을 보면 부활 절기 는 하루가 아니라 부활 주일부터 성령 강림절까지 이어집니다) 매 주일마다, 아 니 우리가 하루하루 일어날 때마다, 우 리는 부활을 증거하고 부활이 주는 소 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부활만이 우리를 공포, 불안감, 두 려움 등에서 자유를 줄 수 있고 우리에 게 참된 평화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어둡습니다. 코로 나바이러스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 들은 서로를 위해서 불편을 감수하는 것 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편의를 위해 자신 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인 종차별의 문제는 백인과 흑인만의 문제 가 아니라 남을 증오하고 편견과 배타심 을 가득찬 인간의 본래 모습임을 우리 는 목격했습니다. 남의 문제라고 지켜만
보던 많은 아시안들은 이제 피부로 인 종차별의 문제를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평등이라는 거창한 이념 속에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반대하는 자들을 오히려 더 차별하고 배척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늘어가 고 총기사고로 많은 목숨이 희생당하고 아직도 많은 곳에서 테러와 전쟁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 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피조물이 타락하기 전,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바로 그 모습과 목적대로 살 아가는 것이 샬롬입니다. 인간은 인간대 로, 동물은 동물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창조의 목적의 모습을 따라 조화를 이 루며 나아가는 모습이 바로 샬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샬롬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 가 위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 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오직 부활하신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 는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이 샬롬은 단순히 싸움이나 다툼이 없는 것을 의 미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없는 것을 성경 에서 샬롬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물 론 다툼이나 분쟁이 없는 것도 샬롬, 평 화의 일부분이지만 성경적 샬롬은 그것 을 뛰어넘어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조 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들어내 는 것입니다. 시편 133:1에 “보라 형제 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 고 아름다운고” 라고 한 것처럼 함께 연합하고 함께 조화를 이루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샬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샬롬의 모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범죄와 다툼과 혐오와 차별 등으로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 어 떻게 샬롬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온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S Ceylon St
S Biscay St
S Tower Rd
E Hampden Ave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은 하 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어떠한 은 혜일까요?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부르시 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20장 에 기록된 부활의 사건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 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봐도 마 리아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언제 예수님 을 알아봤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부르 셨을 때에. “마리아야”라고 그의 이름 을 부르셨을 때에.
여러분, 이것이 우리 주님의 은혜입 니다. 우리를 개인적으로 아시고 우리 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마리아” 대신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고 예수님께 서 불러주신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 다. 만왕의 왕께서, 영원무궁하신 하나님 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부르신다. 나에 게 화평을 주시기 위하여, 나에게 새 생 명을 주시기 위하여, 나에게 부활의 소 망을 주시기 위하여 나의 이름을 불러 주신다.! 여러분 이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의 이름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오로지 그분께서만 주실 수 있는 참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소 망합니다. 험한 세상 가운데 우리가 어 떠한 어려움을 겪든지, 예수님께서 우리 를 부르시고 함께 하신다는 이 진리가 우리에게 힘과 능력과 소망이 되길 바 랍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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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2021년 4월 8일
20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California, Los Angeles 한인 타 운에서 101 Freeway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할리우드 제일 장로교회(First Presbyterian Church of Hollywood) 에 오랫동안 시무하신 로이드 오고비(Dr. Lloyd Ogilvie, 현재 원로) 목사님이 계 신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 그가 경험했 던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다. 그가 하루 는 기도하다가 멈출 수 없는 고민이 생겼 다. “도대체 우리가 가진 소망이란 무엇 인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잃지 않고 확 실하게 소유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분 은 휴가를 얻어 스코틀랜드로 갔다. 철학 적으로 학문적으로 결론을 내려 보기 위 해서 에딘브라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 도서관에서 소망에 관한 책 자를 모두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여러 날을 보냈다. 그런데 원하는 것에 대한 소득이 별로 없었다. 그는 아직 소 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처녀가 시 집가고 말단 직원이 프로모션해서 올라가 는 것이 소망인가?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 질 수도 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후에 또 다른 소망이 일어날 것이다. 무엇이 흔들리지 않는 궁극적인 소망인 가?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는 바 닷가에 모래사장을 산책하고 있었다. 부 슬부슬 비가 오고 있었지만 멀리멀리 걸 었다. 바닷가 모래사장 끝까지 갔고 그다 음은 온통 바위로 덥힌 돌밭이었다. 그 는 울퉁불퉁한 바위 위로 계속해서 걷
기 시작했다. 그는 춤추는 바다를 보면서 생각에 서 로 잡혔다. “소망이란 그저 내용 없는 기 다림에 불과한 것인가? 연기처럼 사라지 는 것인가? 고통에 빠진 인간에게 무슨 도움은 될까?” 깊은 사고에 빠져 걷다가 그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바위 위를 건너뛰었는데 그만 미끄러져서 그의 왼발 이 돌 틈에 낀 채로 넘어지고 말았다. 다 리가 부러지고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위에 부딪치고 그는 의식을 잃었다. 한 참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다 리가 부러진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적어 도 여기서부터 2마일 반경 안에는 아무 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진눈깨비가 어두워진 밤이 되어가 고 있었다. 아, 사람이 이렇게 죽는 것이구나! 그에 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완전한 절망의 순간이었다. 그가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있 는 것은 불가능했다. 열은 오르고 의식은 가물거렸다. 그런데 그에게 깨달음이 있 었다. 그리고 그에게 알 수 없는 일이 일 어나고 있었는데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서 무엇인가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내 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 하나님이 나 를 구원하실 것이다. 또한 죽든 살든 나 는 두렵지 않다.”는 믿음이었다. 그는 누 워서 오른쪽 다리와 두 팔로 자기 몸을 밀고 당기며 기어 올라갔다. 언덕은 한없
이 멀었다. 그는 마치 지렁이처럼 움직이 고 있었고 그렇게 모래밭을 지나 개울을 건너고 숲속 길을 지나야 했다. 시간은 마 치 영원 같았고 그는 몇 번이고 중단하 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자신 의 마음속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 때문 이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그는 혼 자가 아님을 느꼈다. 그래서 버티고 기다 리고 신음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거기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 다리가 부러졌어 요!” 그러나 그의 소리는 어둠 속에 허 공을 쳤고 아무 응답이 없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이 상황에서 그분 은 무얼 하고 계신가?” 의심과 고통 속 에 몸은 점점 더 마비되어가고 있었다. 그 는 누워서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해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 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 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그 리고 따라오는 말씀은 “너희가 온 마음 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 를 만나리라”(렘 29:13) 내용이었다. 그때 그가 깨닫게 된 사실은 소망이란 책에서 얻어지는 지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절망의 수렁에서 끝까지 자기가 믿어 온 하나님께 매달리 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솔한 신앙을 이렇 게 고백했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십 시오. 나는 당신보다는 당신이 주시는 도 움을 더 원했습니다. 당신보다 당신이 주 는 것으로 소망을 삼았습니다. 나는 이제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담임
알았습니다. 당신만이 내 소망입니다. 살 든지 죽든지 당신에게 나를 맡깁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도 비가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이 한적 한 곳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이 시야에 들 어왔다. 처음에는 그들이 그의 지치고 죽 어가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음 같은 간절한 소리를 듣고 곧바로 발 걸음을 돌려서 왔다. 한 중년 남자와 그 의 십대 자녀들이었다. 그 사람은 거기에 휴가 온 심장 전문 의사였다. 그가 말했 다. “우리가 이 길로 지나간 것이 정말 로 이상한 일입니다. 누군가의 힘에 압도 적으로 끌려서 왔는데, 당신은 지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충격 속에 있었고 아마 이 밤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출 된 오고비 목사는 시계를 보았다. 밤 9시 였다. 그는 무려 세 시간가량을 기어 올 라왔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구원할 사람을 보냈을까? 더 빨리 구원할 수는 없었을까? 하지만 Ogilvie 목사는 알았다. 이 긴 시간 동안 하나님 은 자기에게 참 소망이 세상의 어떤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 셨고 그 후 그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 게 되었다.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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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중에 맞이하는… 2021년 부활절이 주는 3가지 은혜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의 백 신율이 올라가면서, 코로나와의 전쟁이라 는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하다. 필자 가 사는 미국의 분위기는 한 달 전에 비 하면 사뭇 달라졌다. 미국인들은 코로나 를 마침내 잡았다는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팬데믹 과 싸움 중이다. 매일 확진자 숫자가 줄 어들지 않고 있고, 백신율은 좀처럼 올라 가지 않는다. 팬데믹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 람들은 소망을 잃어버렸다. 절망을 뼈저 리게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 삶의 허무 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 들이 늘어났다. 한 가족 동반자살이 급 증하고 있다는 통계는 우리를 슬프게 한 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리스도인들조차 비신자들과 동일한 경제 적인,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육 신적·정신적으로 기진맥진한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부활절이 다가왔다. 팬데믹 중에 맞이하는 부활절은 우리에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활절을 어떻게 맞아야 우리 영혼의 부흥과 새로운 도약 을 경험할 수 있을까? 우리 영혼의 부흥 을 통해 우리 정신과 육체의 재충전을 경 험하는 길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님의 부활은 영원한 산 소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 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 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 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 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2)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 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 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이 땅 에서의 성공과 번영과 건강과 부귀영화가 결코 아니다. 도리어 주님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 난(골 1:24)”을 우리 육체 가운데 채우기 를 원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영원한 소망이며, 산 소망이다. 하늘에 간직하신 소망이다. 영원하다는 것은 무한히 지속 됨을 의미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의 미이다. 주님은 우리가 영원히 지속되고 결코 불변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을 주셨다. 그리고 이 소망은 결코 오염 될 수 없는, 중간에 사라질 수 없는 소망 이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소망이다. 반드 시 이뤄지고 성취되는 소망이다.
신 것이다. 부활로 악의 세력에 대한 결정 적인 승리를 거두신 주님은 곧 재림하셔 서 끝내 마귀를 영원한 불못에 던져버리 심으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 든 자는 승리자이다. 이 땅에서의 삶 속 에서 어떤 실패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심 지어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실 패한 인생으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더라 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 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승리는 영원 하고 절대적이다. 결코 뒤집히거나 번복 될 수 없는, 완전한 승리다. 우리 그리스 도인들은 “나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자 다”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렇게 할 때 당당하고 자신감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온유한 삶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님의 부활은 영원한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 이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주요한 목적들 중 하나는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 망과 마귀의 권세를 멸하기 위한 것이었 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인을 영원한 속죄 의 제물로 드리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 려 죽으셨다.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 렇게 함으로써 주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 하시고, 당신께 나아와 당신을 주와 구주 로 믿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사 함과 구원의 선물을 주신다. 그리고 그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는 마 귀의 머리를 격파하셨다. 죄와 사망과 마 귀의 권세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완성을 의미함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신학자들은 인간의 역사 전체를 구속사 또는 언약사 또는 계시사로 불 러왔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구속사와 언약사와 계시사는 ‘창조-타 락- 구속-완성’이라는 4단계로 구성되는 거대한 이야기 (Grand Narrative)이다. 부활은 이 네 가지 단계 중 최종의 단계 인 완성의 단계가 ‘이미(the already)’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영원히 완성될 질 서, 즉 새 질서가 이미 이 땅에 도래하였 음을 뜻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보증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옛 하늘과 옛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갱신되고 변모될 것의 보증이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 15:20)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교회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제공: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전 경륜과 계획의 완성을 예기하고, 대망 하게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 하면서, 장차 재림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완성하실 주님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기 대를 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우 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이 곧 이루실 완 성을 향하고 집중하게 한다. 주님의 계획과 목적이 완성될 것을 바라 보고 대망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열 정적인 복음전도와 진리변증의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 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 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 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 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 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고 말씀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고대하는 우리 는 온유와 두려움과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또한 우리 속에 있는 소 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사 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 명과 소망을 발견하도록 돕고, 비진리 가 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팬데믹 중에 맞이하는 부활절이어서, 우리의 마음은 더 들뜬다. 부활절을 맞 는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3가 지 놀라운 은혜와 복이 넘치게 되기를 간 절히 기도한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 1: 22)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쉴만한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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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8일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자 두아디라는 공업이 발달한 소아시아의 도시였다.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이 발 달한 도시이며, 버가모가 문화가 발달한 도시라면, 두아디라는 공업이 발달한 도 시였다. BC 190년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 어 태양신 아폴로와 아데미 등의 신전 이 지어졌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와 서머나의 중간 에 있었다.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을 만 나 세례를 받고 개종하여 빌립보 교회를 세웠던 옷감 장사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 신이었다(행 16:14). 그녀는 두아디라에서 생산된 옷감을 가지고 빌립도에서도 장 사한 것 같다. 이런 도시에 위치한 두아디라 교회가 영적으로 이겨내야 할 덕목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요한계시록 2장에 기 록된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 지 내용을 중심으로 그 덕목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의 사업 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하셨다(계2:19).나중 행위가 처 음 것보다 많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진 보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두 아디라에 아폴로와 아데미 신전들이 있 었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그들이 세상 을 이기는 자의 삶을 상당 부분 살았다 는 것을 함의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책망받은 것은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일이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 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 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계 2:20)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은 자칭 선지 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관용함으로 용 납했다. 그 결과 그 여자는 하나님의 종 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 의 제물을 먹게 했다. 그들은 이기는 자 가 되지 못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사회에서는 관용이라는 말로 때로는 그것이 비윤리적이고 비성경 적인 경우도, 용납해야 한다는 어떤 공감 대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관용이라는 가치가 다른 가치들을 통합하는 초가치 적인 가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동성애를 용납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관용이라는 가치 아래 형성되 는 것이다. 동성애가 전통적인 가치와 기 독교적 가치에 상반되는 가치임에도 불 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이런 삶의 스타일 과 가치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용납해 야 하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보면 거절할 때 생기는 부작용 을 극복하는 것보다, 모든 가치와 도덕을 용납함으로 쉽게 평화가 얻어질 것이라 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기는 자 의 영을 가진 사람들은 윤리적인 가치와 영적인 가치문제가 성경적인 가치에 어긋 나면 단호히 그것을 거절하는 용기를 가 지고 있다. 그렇다면 두아디라 교회가 이겨야 할 영적 덕목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세벨을 용납하지 않는 것과 동격이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 4)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두아디라 교회가 이겨야 할 첫 번째 대 상은 우상숭배와 음란이다. 아합왕의 아 내 이세벨은 남편 아합을 조정하여 바 알 숭배자로 만들었다(왕상 16:30-31; 21:25-26).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바 알 숭배를 하며 음란에 빠지게 했다(왕 상 18:4-13). 바알을 숭배할 때는 사람들이 신전의 창기와 남창과 성관계를 가졌다. 그런 행 위를 하면 토지, 수확, 가축이 더욱 풍요 로워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상숭배라 는 영적 음란은 성적인 음란의 근본 바 탕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우상숭배 하는 자들은 음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두아디라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했고 그 로 인해 행음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 이것은 그들 마음 가운데 있는 풍요라 는 우상과 음란이 바알신과 연합하여 이 루어진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가 이겨야 할 두 번째 대 상은 기만과 조정이다. 이세벨은 남편 아 합을 충동하며 조정하여 바알 숭배자로 만들었다(왕상 21:25-26). 그리고 남편 아 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 했을 때 나봇에게 거짓으로 누명을 씌워 그를 살해하고 그의 과수원을 탈취했다(왕상 21:1-16). 또 자신의 딸 아달랴를 정략적 으로 다윗 왕가와 결혼시킴으로써 바알 숭배의 악한 영향력이 남왕국 유다에까 지 미치도록 했다(대하 21:5-7). 이세벨이 취한 기만술과 조정은 이스라 엘의 역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보다 교 활하며 사악하다. 그녀의 교활함은 남편 과 사위 그리고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며 능수능란하게 행해졌다. 이세벨을 용 납했던 두아디라 교회에도 이런 기만과 조정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가 이겨야 할 대상은 우상숭배와 음란함 뿐 아니라, 기 만과 조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용 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관용 그 자체가 이 겨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받 은 것은 그들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 김과 인내였다. 그만큼 그들의 사업은 풍 성했으며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겼을 것 이다. 그런데 그런 사랑과 섬김이 이세벨 이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는 결 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때로는 우리의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랑과 섬김이 칭 찬받을 만한 장점이지만, 이세벨을 용납 하는 것이 이런 사랑과 섬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그들은 진정한 의미 에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의미 에서 주님이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하셨 을 것이다. 사랑과 섬김은 옳지 않은 것을 거절하 는 것과 모순이 될 수 없다. 사랑함으로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기는 자 의 영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아니하려 함이니 (롬 6: 6) 제공: 이영범·이은정 성도
좁은 길을 걸으며
202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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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날을 고대하십시오 지난 주일에는 부활절을 맞아 감격적
여인은 자신에게 닥칠 수 모르는 위험은
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
인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코로나바이
안 중에도 없습니다. 그 때 무덤 속에서
주실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모든 슬픔
러스로 인해서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시
두 천사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여자여
과 눈물은 인간이 자신의 죄로 인해서
지 못했던 연세 많으신 성도님들도 많이
어찌하여 우느냐?" "사람들이 내 주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 형제들
참석해서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
시신을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해서 웁니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
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
니다. 코로나의 긴 터널 속에 갇혔다가
다." 그런 말을 나누는데 예수님이 막달
신해서 돌아가셔서 우리의 사망과 눈물
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마치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은 느
라 마리아 뒤 편에 나타나십니다. 예수님
을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
로 올라간다 하라" 고 하십니다. 너는 지
낌을 가졌습니다. 모든 분들의 삶 가운
이 또 묻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
하고 믿는 자는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
금 나를 붙들려고 하지 말고, 내 형제들
데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예수님을
게 될 것입니다.
에게 가서 "내가 부활했고, 내가 하나님
를 바랍니다.
알아보지 못하고 말합니다. "선생님 당신
이 때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께 올라간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000년 전 첫 부활 주일 아침의 상황
이 내 주의 시신을 가지고 갔으면 내게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예수님을 붙들려
아마 막달라 마리아는 그 이후 자신의
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한 사
알리소서. 그러면 내가 가져가겠나이다."
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를 붙들지
전 삶과 생애를 다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람은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요한복음 20
라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마리
마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
전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장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아침에 막달라
아야" 라고 하십니다. 마리아는 평소에
였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장차 우리 눈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자기를 부르던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
런 말씀을 두고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
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예
예수님의 무덤에 조의를 표하러 간 것이
랍오니"(선생님) 라고 소리칩니다. 얼마나
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한 막달라 마
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는 우리의 손
지요. 그런데 무덤의 돌이 옮겨져 있고
감동적인 장면인지 모르겠습니다.
리아가 예수님을 붙들려고 하는데 왜 예
에 뭔가를 꼭 붙들고 살아가지 않아도
김병수 목사
믿음장로교회 담임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깜짝
사실 예수님은 첫 부활의 증인으로 무
수님은 그러한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을
됩니다. 사실 우리가 뭔가를 꼭 붙들려
놀라서 제자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베드
게감이 있고, 공신력이 있는 남자가 필
까요? 마리아의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너
고 할 때 우리의 삶에 많은 아픔과 깨어
로와 요한이 달려왔지만 할 수 있는 일
요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여자
무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난 마리
짐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
이 없었습니다. 당혹감과 두려움에 사로
의 증언은 공식적인 법정 증언으로 채택
아는 "예수님 저는 이제 예수님을 더 이
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면 됩니
잡힌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돌아가고
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상 놓치지 않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손을 꼭 붙
말았습니다.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자 이
은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강하게 붙들려고 합니다. 그러
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
들은 두려움과 혼돈감에 사로잡혀 꼭꼭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무덤을 떠나지
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 나는 이제
을 다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숨어 버립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못하고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
하나님께로 간다. 하나님께로 가면 그곳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 이런 삶을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무덤 바깥에
음으로 자신의 부활하신 몸을 보이셨습
에서 나는 모든 믿는 자들의 구원을 완
살아가다가 장차 부활의 영광의 아침을
서 계속해서 울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
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
성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위해서
맞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
아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했는지 알려
냐?" 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부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것이다. 우리 그
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주는 대목입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는 일
하신 자신의 몸을 보이심으로 마리아의
곳에서 함께 만나자. 그 때에는 내가 너
안에 있는 자에게는 모든 눈물과 아픔이
곱 귀신 들린 여자였는데 예수님께서 일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
와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씻겨질 영광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
곱 귀신을 내쫓아 준 여인이었습니다. 이
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예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 그 날을 고대하십시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베드로전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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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8일
“섬기는 지도자
(3)”
<베드로전서 5:1-5>
마지막 세 번째 섬기는 지도자는 오직 본 이 됨으로써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 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돼라” 양무리의 본이 된다는 것은 교회 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 니다. 다른 형제를 잘 시킬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그 일을 하 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앞장서는 것이며 솔선수범하는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진 실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된 지 도력은 결코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 다. 참된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 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아, 나도 그 사람처럼 기도하고 싶다. 그 사람의 헌신 을 본받고 싶다. 그 사람의 열심을 반만 따라가도 좋겠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영향력입니다.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실천입니다. 말하지 않고 행동부터 하는
파르타는 그 어떤 제국 못지않은 위치를
사람이 바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양무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
의 본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을
톤이 그렇게 바라던 국가가 바로 스파르
르타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간 것입니
의미하는 것입니다.
타입니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의 모
다. 전쟁이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
델은 바로 스파르타였습니다.
닙니다. 스파르타의 정신을 후세에 남겨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
우리 주님은 말씀하실 일을 먼저 행하 신 분이십니다.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기
300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스파르타
금도 유럽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주
전에 주님은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주님
가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역
고 있습니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
은 하루를 아주 피곤하게 끝마친 다음
사적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페
감과 긍지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
에도 가까운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새벽
르시아가 세계를 제패하고 그리스를 쳐
다. 이것이 섬기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미명에 제자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들어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전쟁입니다.
전인데도 주님은 아침 이슬을 맞으면서
다 며칠이면 그리스는 함락당할 수밖에
이런 섬기는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하
기도하셨습니다.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파르타
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4절을
의 300명의 용사들이 100만의 페르시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
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타나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주님이 기도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
얻으리라”
르치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주님의 기도하시는 이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그때의 스파르타 왕이 레오니다스입니
하나둘 감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다. 그는 직접 300명을 이끌고 갔습니
이 땅에서 우리가 얻으려고 추구하는
들의 형식적인 기도와는 무엇인가 다르
다. 이 전투를 역사는 테르모필레전투라
것들은 잠시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
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에게
고 합니다. 300명은 물론 다 죽었습니다.
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지 못
나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님, 기도
왕도 같이 죽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 남
합니다. 세상이 주는 월계관은 시들고 썩
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 제
을 때까지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하지만
습니다. 세상이 주는 상급은 잠시 후에
그 사람이 섬기는 지도자인가 아닌가
자들의 질문을 받고 기도에 대한 가르
페르시아 100만의 예봉을 꺾어놓고 말
는 잊혀지고 맙니다. 그러나 섬기는 지도
를 가장 쉽게 가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침을 주신 것이 그 유명한 ‘주기도문’
았습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와 같은 것
자들에게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
그것은 말을 먼저 하는가, 행동을 먼저
입니다.
입니다. 페르시아군은 얼마나 큰 충격을
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받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300명으로
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말을 먼저 하게
디엘 무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되면 항상 남을 비판하기 쉽습니다. 3절
이것이 바로 본을 보이는 데서 오는 영
100만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 도대
앞부분을 보십시오. “맡은 자들에게 주장
향력입니다. 기도를 가르치기 전에 기도
체 저 스파르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그가 얼
하는 자세를 하지말고”라고 말씀합니다.
부터 하셨습니다. 섬김을 가르치기 전에
인가?” 페르시아는 결코 그리스를 정복
마나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았느냐는 중
이 말씀은 형제들 위에 올라서는 것을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겸손하라고 하
하지 못했습니다. 레오니다스는 죽어가면
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 위
시기 전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
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종노릇 했
에 있는 사람은 항상 말을 먼저 하게 되
에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곧 주님의 겸
“지나가는 길손들이여, 스파르타에 가
어 있습니다. 늘 지시를 합니다. 명령을
손입니다. 사랑하라고 하시기 전에 목숨
서 전해주시오. 조국의 명을 받들어 여
합니다. 시킨 일이 됐는가 안되었는가를
까지 내어주면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기, 이렇게 우리가 누워 있노라고”
느냐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인이많은 교회가 되어 서는 안 됩니다. 종이 많은 교회가 되어
가리기 위해서 불러다가 또 말을 합니다. 고대 그리스 국가인 스파르타를 모두
지금도 이 비문은 테르모필레에 세워
야 합니다. 말만 앞서는 교회가 되어서도
교회의 지도자는 결코 이런 세상을 유
아실 것입니다. 지금도 강한 교육을 스
져 있습니다. 레오니다스 왕은 말만 하지
안 됩니다. 말보다는 행동과 실천이 먼저
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하
파르타식 교육이라고 합니다. 스파르타
않았습니다. 왕궁에서 명령만 내린 것이
앞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모
기 전에 행동을 먼저 해야 합니다. 섬김
는 큰 나라가 아닙니다. 가장 강할 때도
아닙니다. 그는 직접 300 용사들을 이끌
두를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갖게 하시기를
을 받는 사람은 말로 합니다. 하지만 섬
인구가 15만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도
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싸우러 나간 것이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기는 사람은 말이 아닙니다. 행동입니다.
시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세계 역사에 스
아닙니다. 이기러 간 것도 아닙니다. 스파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 5) 제공: 김정애 권사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2021년 4월 8일
25
후회와 회개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회개’는 양심의 가책과 후회로 끝나
‘후회’라는 것은 자신이 내린 결정
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
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고 행동으로 책임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가룟유다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은 30
이 아닙니다.
세 번이나… 회개란 잘못된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 다. 죄로 인해 예수님을 떠났다가 예수님
갖다 주었습니다.
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에 판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을 느끼 고 그 돈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도로
부활 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오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방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죄를
탕한 둘째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
예수님께로 돌이키고 예수님과 관계가
고백한 것까지는 정말 좋았지만, 이 일
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
다시 회복되고 베드로의 영혼이 소성함
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습니
개입니다.
을 받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바
다. 스스로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자 했
로 회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떻게 되는지 보
습니다.
기 위해 멀찍이 따라가다가 세 번이나 예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 현상을 보면
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새벽에 닭이 울어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이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는 예수님의
과거에 잘못한 일을 두고 후회하며 그 일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이켜 주님과의 관계가 회 복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을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죗값을 치르고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여 언제든지 죄 “모두 다 주를 버릴지라도 주를 위해
에 빠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에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며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후회로만
무엇을 선택합니까? ‘자살’이라는 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호언장담했는데 예수
머물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로 돌이켜
서운 방법을 선택합니다. 내가 죽는다고
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으니 얼마나 부끄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회개에까지 이
후회한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러웠을까요?
를 것인가?
자 합니다.
힘으로 스스로 죗값을 치를 수 없습니 다. 과거에 잘못한 일에 대해 후회로 그
베드로는 울었습니다. 그냥 운 것이 아
후회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를 기다리시
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에 이르러
니라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여
는 주님 앞에 진정한 회개로 나아갈 수
야 합니다.
기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변화프로젝트
2021년 4월 8일
14회
26
내적치유 가이드
7. 치유의 제시: 폭풍, 교훈, 가르침과 기도 프로젝트 (3)
교훈 폭풍 속에서의 삶은 매우 고통스럽다. 그 러나 폭풍을 겪을 때마다 그것에서 교훈을 배우고, 극복하고, 치유받는 과정에서 우리 의 믿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우리의 문 제를 통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려는 교 훈을 얻을 수 있다면 어려움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 혜와 용기가 생길 것이다. 당신의 삶의 폭 풍을 돌아보며 다음의 질문에 대답해보라. 1) 이 문제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 엇인가? 2)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3) 치유를 위해 내가 고쳐야 하거나 변화해 야 할 점(태도, 관념 혹은 행동)이 있는가? 4)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분노 혹은 화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5) 전에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무엇이 나 를 도왔는가? 6) 이 도전을 통해서 내가 부족했던 점은 무엇인가? 7) 미래에 이와 같은 문제에 부딪치지 않 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8) 이 폭풍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기도로써 하나님 께 여쭈어보라. 9) 성경에서 당신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 게 말하는가? 우리가 현재 닥친 문제에서 교훈을 배 우지 않으면 다시 똑같은 문제 속에 빠져
들 수 있다. 그래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게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할 수
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말씀에 순종
있기 때문이다. 2. 당신의 삶의 폭풍은 무엇인가?
하여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들이 겪는 폭풍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폭풍 에서도 교훈을 배우면 어떤 폭풍은 예방 할 수도 있다.
가르침 물에 빠져가는 이가 다른 물에 빠진 이 를 구할 수 없다. 그래서 폭풍을 극복하 고 치유의 경험을 한 이들만이 다른 이들 에게 어떻게 그들이 치유를 받고 하나님 의 치유를 얻을 수 있는가를 나눌 수 있 다. 자신이 문제 속에서 배운 교훈들을 어 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보라. 1) 나의 어려운 삶의 경험과 치유를 통해 서 문제의 해결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것 이 무엇인가? 2)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어려운 문제 를 겪지 않고 피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 는 방법은 무엇인가? 3) 현재 비슷한 문제에 아픔을 당하고 있 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우리의 어려운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서 치유해 주셨을 때 우리의 간증은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과 혼란에서 배운 교훈 과 치유받은 것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혼란의 폭풍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 고 또 그런 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
다음의 목록을 통해서 지금 당신이 어떤 폭풍들 가운데 있는지 살펴보라. 1) 슬픔: 죽음, 이혼 혹은 별거로부터 사 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으로 슬퍼하고 있다. 2) 건강 문제: 질병을 가진 것으로 진단 받았다. 3) 심리적, 육체적 외상: 육체적, 감정적, 정 신적 혹은 성적 학대에 의해 심리적 외상 을 받았다. 4) 수감: 자유와 자존감의 상실, 가족과의 결별, 사회 시설에 아이를 빼앗김, 수감으 로 인한 이혼. 5) 물질적인 상실: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차나 집 혹은 다른 것을 잃은 것 등이다. 6) 가족의 수감: 당신의 가족이 수감되 어 있다. 7) 다른 사람에 의한 학대: 다른 사람의 파 괴적인 말과 행동에 의해 상처를 입고 있다. 8) 무력감: 삶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지 식이나 지혜, 그리고 생각들이 고갈 되었다 고 생각한다. 9) 멘토의 부재: 필사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할 사람 을 만나지 못했다. 10) 감정적 아픔: 분노, 혼란스러운 공격, 화, 고통 등이다. 11) 용서하지 못함: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람에게 증오심 혹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 음이 있다. 12) 경제적 어려움: 재정적인 문제가 있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13) 실업: 직업을 잃고 직장을 찾을 수 없 다. 14) 우울증: 무력감과 자살 충동을 느낀다. 15) 애정 결핍: 당신의 가족 혹은 중요한 사람이 당신을 무시하고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다. 16) 중독: 술, 마약 혹은 섹스 중독에 빠 졌다. 17) 가족의 중독 문제: 당신 가족이 중독 에 빠져 있고, 당신은 도울 능력이 없다. 18) 삶의 목적과 방향을 상실: 삶의 목적 을 알 수 없다. 19) 직장 요구 조건의 미충족: 학력의 부족 으로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없다. 20) 문화적 가치: 외모, 성 혹은 피부 색으 로 주위 사람들이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21) 자신의 자존감 결핍: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이 삶의 폭풍들이다. 필요한 것은 폭풍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대처하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 이 주시는 지혜로 교훈을 배우고 모든 상 황에서 평안과 기쁨을 찾는 것이다.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1년 4월 8일
27
인생의 지혜 노윤호 장로(덴버제자교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 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 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 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 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아멘 하나님, 그 옛날 그리스의 고대 철 학자들은 지구에 생태계를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근원 됨이 어디에 있나를 고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얻 은 결과의 핵심적인 요소들로서 물, 공기, 땅 그리고 불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다양한 것들을 상호 간에 융화작용으로 연결하는 핵심체가 있 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실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합니다. 하나님, 현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은 그 옛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 문들 중에 많은 것들을 알고 또 알 아갑니다. 그럴지라도 그 고대 철학자 들이 가지고 있던 질문은 발달된 현 대 과학으로도 답을 얻지 못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많은 과학의 지식을 얻으며 알아가고 있습
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 이상의 모르는 것들이 더 있음을 알게 되므 로 그들은 미궁에 빠진 채 수수께끼 같은 이 세상을 그냥 살아갑니다. 많 은 사람들이 인생이 왜 있는지, 무엇 을 위해서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잠깐 있다가는 7, 80세의 삶을 그저 허망한데다 허비하고, 그들의 인생 중 에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찾 아보지도 아니하고 영적 무지 속에서 그냥 그렇게 스러져 가버립니다.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중 한 사람 은 모든 움직임의 시조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 나님이 주신 지혜로 에너지를 발견하 고 모형들을 만들어서 자동으로 움직 이게 하는 제 삼의 동작들을 만들어 내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서 인간을, 동물들을 그 외에도 움직 이고 있는 지구는 태양은 무엇이 움직 이게 했는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 아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최초로 움 직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괘도에 서 그 한계에서 이탈하지 않고 움직이 게 붙잡고 계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성 경이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답이 없는 무수 한 것들, 그 질문들이 하나님으로 인 하여 답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 은 주 안에서 늘 즐겁습니다. 하나님 이 보이시고 알게 하시는 것들도 우리 의 즐거움이요,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도 풀 수도 없는 것들도 우리의 즐거움이 됨은, 그 안에서 지 혜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만 나고 하나님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를 우리가 조금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속에서 배 움의 길을 주셨습니다. 잠깐 있다가 는 이 짧은 인생 속에서 수많은 배움 이 있겠지만, 우리가 꼭 배워가야 하 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을, 우리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 님에 대한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들 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신 실하신 약속을 믿고 가는 인생, 그 하 나님이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을 감사 함으로 받고 가는 인생, 그 인생의 길 이 우리 안에 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고 우리의 일 생을 다해서 묵상하고 열심히 배우며
나갑니다. 성경이 참되신 하나님을 우 리에게 계시해 줍니다. 하나님 우리를 가르치시사 우리의 무지 속에 있지 않고 깨어있어서 하나님을 즐기고 기 뻐하는 참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옵 소서. 우리는 모두 다 이 무지에서 벗 어난 인생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감은 우리의 힘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며, 능력이 며, 평안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 록 우리 안에는 기쁨이 넘쳐나며 또 한 온유함이 생겨남을 경험합니다. 우 리의 실체가 이 땅이 아닌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의 모형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배워가 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천국을 배우 는 목적으로 잠시 사용하다 가는, 이 땅의 썩어 없어질 것들을 위하여 우 리로 목매달고 살지 말게 하시고, 우 리의 실체인 하나님 나라를 더욱 사모 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 리의 실체인 천국에 거할 곳을 예비하 시고 다시오마를 약속하신 신실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4월 8일
성서 계보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28
감동이 있는 글
29
2021년 4월 8일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인생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사람은 무엇인가에 빠져 산다. 사랑에 빠지고 물질에 빠지고 명예와 권세에 빠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서 산다. 빠져 산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이끌리어 산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빠져서 인생을 걸고 삶을 바치며 사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사셨다. 매 순간 고비 고비마다 성령께서 함께하셨다.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에 감동을 받아 살았고 신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하였다. 빠진다는 것은 그것에 이끌리어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다. 한번 빠지면 누구도 말리지 못할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의 고집스러움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다. 자기가 옳다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정치에 미친 사람은 정치에 매몰되어 다른 것은 보이지를 않는다. 도박이나 돈 버는 일에 미쳐서 다른 곳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에 빠지든 미움에 빠지든 그것에 이끌리어 사는 것이 인생이다. 한번 빠지면 눈이 멀어서 그 외의 것은 시시하게 보이게 되어 있다.
믿는 자는 무엇을 하든지 복음에 방해가 되면 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이 인생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이끄심이 없이는 단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빌립은 성령에 이끌리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전도하고 싶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살지를 못한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맡기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마귀가 하는 일은 사리사욕에 빠지고 편 가르기에 빠져서 성령께로 나가지 못하 게 한다. 전도의 문이 닫히고 있다. 불신자들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면 죄다.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도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이끄심에 빠져서 은혜로 사는 존재다. 나는 포기해도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시고 길을 열어 가신다. 다윗은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 가시지 않기를 기도하며 살았다. 나는 성령에 이끄심에 따라 인생길을 가고 있는지 매 순간 나를 돌아보며 살아 야 한다.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삶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삶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우주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안다. 사람은 빠진 그곳에서 기적을 바라며 살고 있으나 기적이 인생을 바꾸거나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의지하고 따라가며 살아야 할까? 내 계획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 11)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 8)
제공: 서선녀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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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3만 동포에게 알립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의 경과보고를 드립니다. 희망찬 신축년 2021년이 밝았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의 어려운 시기에 동포 여러분의 건강과 평안을 항상 기원합니다. 2020년은 6.25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하기 위하여 남침하여 6.25 전쟁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남한이 북침하여 전쟁이 발발했다고 억지 주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 국토를 초토화한 이 전쟁은 대한민국의 국가 존립을 위기로 몰아넣었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눈부신 경제 기적을 이루어 세계에서 경제 10위 권의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이곳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희망찬 미래의 비전을 계획하고, 이웃을 도우며 삶의 발전을 추구하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하여 한 16개국의 유엔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대한민국 국민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동안 참전용사기념비 건립위원회의 헌신적인 투지와 노력의 결과로 오로라 시로부터 콜로라도 대학병원 캠퍼스 내의 아름다운 제너럴스 공원(Generals Park)안에 있는 기념비 부지를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로 세울 수 있도록 기증받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제너럴스 공원은 한국전쟁 휴전 당시, 미국 제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심장질환 치료를 피츠먼스(Fitzsimons) 육군병원에서 받았을 때 만들어져서 요양했던 유서 깊은 공원입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기념비 부지에서 동포사회에서 중요한 행사를 가질 수 있는 유용한 장소가 될 수 있는 뜻을 가지고, 오는 2021년 6월 25일까지 기념비가 착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에는 총 일백오만 불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까지 확보된 액수는 부지를 포함하여 약 60만 불입니다. 나머지는 동포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충당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주요한 목적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 참여국의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높이 받들고,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한강의 기적을 널리 알리며,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최대한의 감사의 뜻을 전달하려 합니다. ⊙둘째, 후세에 참혹했던 이 전쟁을 통하여 얻게 될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려 합니다. ⊙셋째, 지역사회에 현존하는 유엔 16개국 후손들의 커뮤니티와의 우의를 돈독히 하며 유대를 강화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이 기념비의 건립은 동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념비가 성공적으로 세워지도록 귀한 고견을 피력해 주시고, 이사 및 건립위원으로 동참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성금을 기부해 주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동포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바랍니다. 현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사업기금 지원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2021년 새해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어려운 시기를 건강하게 극복하시고 새 마음과 새 각오로 품으신 꿈과 계획을 모두 성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이 늘 함께 하시고 모든 일이 번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에 지금까지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성금을 보내주신 분의 성함을 공표합니다.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건립 공동위원장: 박수지, 이상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