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Page 1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5)

제 11권 8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1년 4월 22일 발행

믿음장로교회

새 성전 이전 감사예배 2021년 5월 2일(주일) 2:00PM 저희 믿음장로교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새 예배당으로 이전하게 되어 이전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교회, 예수님 생명의 복음 전하는 교회,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믿음장로교회 성도 일동

장소: 믿음장로교회당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960-5057


목차

2021년 4월 22일

목차 교계소식 바로잡습니다 특별메시지 강단설교 목회칼럼 하나님의 구원섭리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은혜의 샘터 진리의 샘터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에콰도르 이야기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나의 노래, 나의 기도 내면을 향한 여정 감동이 있는 글

2 3 4-5 6-7 8-9 10 11 12-13 14 15 18 19 20 21 22 23 24-25 26 27 28 29

발행처: 빛과 소금 뉴스 2821 S. Parker Rd. #409 Aurora, CO 80014 (303) 667-2778 E-mail: thelightandsalt@gmail.com 발행 겸 편집인: 최성애 디자인: 최수정 Facebook page나 블로그에 들어오시면 매회 발행되는 디지털 카피를 보실수 있습니다. thelightandsaltnews.blogspot.com

5월은 14일, 28일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는 매회 2,000부씩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 PICK-UP 장소】 덴버지역: H-Mart 볼더지역: H-Mart 웨스트민스터점 콜로라도스프링스: 한국마켓, 썬마트

본지는 어떠한 특정 개신교 교단과 연관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본지의 개제되는 모든 설교와 칼럼, 신앙간증 및 수기는 오직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글들로 하나님의 영광과 독자들의 신앙 증진에 초점을 맞춥니다. 단, 보도기사는 본사의 신앙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빛과 소금 뉴스는 바로 여러분의 교회, 가정, 개인의 신문입니다.

빛과소금뉴스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기고 김병수 김창훈 노윤호 박현수 손창달 송병일 안성훈 오성관 오세오 유지훈 이동훈 이영희

목사 목사 장로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Rev. McDonald)

이재덕 목사

이형만 이흥섭 임동섭 장석현 정병갑 정봉수 정석현 정성욱 천경우 최요셉 최요한 최형락

문서선교에 동참하는 개인, 교회, 단체, 사업체 목사 목사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목사 목사

강경자 집사 국제언어서비스 김경숙 보험 김경실 권사·김성애 성도 김영자 집사·김정애 권사 덴버소망교회 덴버영락교회 덴버제일감리교회 덴버지역교역자회 덴버한인교회 덴버할렐루야교회 맹성자 원로사모 믿음장로교회 박노복 장로 박로렌 부동산

박수원 권사 박영돈 부동산 박정순 원로사모 벧엘교회 볼더아름다운교회 삼성장로교회 서선녀 사모 섬김의교회 성경혜부동산 성시화운동 콜로라도 지부 세계기도일예배 순복음한인교회 신민식 • 신경원·신정원 성도 신동윤 종합보험 실로암장로교회

윤애원 원로사모 윤찬기 CPA 이국형 장로 이계원치과 이성선 커머셜 융자 이승우 CPA 이영범·이은정 성도 전제히 권사 / 정순이 권사 지구촌교우회 참빛교회 추경남 부동산 콜로라도장로회 큰사랑교회 / 트리니티교회 한명옥 권사 한인기독교회/UNI Financial Marketing

2


교계 소식

2021년 4월 22일

3

믿음장로교회 이전 감사예배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

2021년 5월 2일(주일) 오후 2시

빛과소금뉴스

믿음장로교회(담임목사 김병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새 예 배당으로 이전하게 되어 이전 감사예배를 다음과 같이 드린다. 아울러 믿음장로교회는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교회, 예수님 생명 의 복음 전하는 교회,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 도를 부탁드린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을 참조하면 된다.

빛과소금뉴스는 신문 배달 자원봉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담당 지역은 북쪽 웨스트민스터 한아름마트나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의 한국 마켓을 중심으로 한 달에 한번이나 두번 가능한 시간 이 있을 때, 정기적 혹은 언제든 한번이라도 배달이 가능하면 자원 해 주길 요청한다.

●일시: 2021년 5월 2일(주일) 오후 2시 ●장소: 믿음장로교회당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신문배달: 언제든 시간이 허락될 때 2번째, 4번째 주말 자원봉사 원하실 때 1회도 감사 (비정기적도 가능) ●배달지역: 스프링스 지역 웨스트민스터 한아름마트 ●문의: (303) 667-2778 / thelightandsalt@gmail.com

● 문의: 303-960-5057

문서선교에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인터넷으로도 빛과소금뉴스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본지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 블로그에서! : thelightandsaltnews.blogspot.com ● Facebook에서! : www.facebook.com/TheLightandSaltNews

♣ 기도로 ♣ 시간으로

♣ 재능으로 ♣ 물질로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빛과소금뉴스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303) 667-2778 / thelightandsalt@gmail.com 2821 S. Parker Rd. #409 Aurora, CO 80014

오직 예수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빛과소금뉴스’혹은 ‘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로 검색해 주세요.

오직 성경


바로잡습니다

4

2021년 4월 22일

죽음의 강, 건너다 (기도문)

구원 문제와 칭의에 관한 신학적 정리 글 : 이동훈 목사 (덴버삼성장로교회)

본지는 "죽음의 강, 건너다" 기도문(저자 노윤호 장로, 출판 로뎀나무) 내용 중 - "59번, 행함" (책 지면 183쪽 위에서 다섯째 줄부터 열다섯째 줄까지 - 신학적 정리가 필요함을 느끼고, 본지의 자문위원들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이에 독자들의 신앙생활에 바른길을 제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이동훈 목사의 체계적인 설명과 함께, 수정된 내용으로 바로잡는다. 아울러 로뎀나무에서는 미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 -편집부-

원문: 사람의 언행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대변합니다. 그가 만일 주 예수를 영접한 영혼이라면, 하나님이 그를 구원에 이르도록 언행을 만들어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상징인 세마포를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말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 다’고 말했고, 종국적으로 백보좌 앞에서의 심판도 우리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말했습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받습니다. 행함은 믿음의 증거이고 믿음과 행함은 함께 함으로, 우리는 행함으로 심판받고 구원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없는 자에게는 죽 은 행함 뿐이지만, 그리스도의 의가 있는 자에게는 그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행함이 분명 나타나기에, 이 선행이 우리 안에 시작되 고 가득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이 언행을 만들어 가실 것 이다”는 말은 맞습니다. 이것을 우 리는 성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도록 언행을 만들어 가실 것이다”라는 말은 맞 지 않습니다. 이 말은 마치 구원이 언행에 달려 있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받습니다” 라는 말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아 닙니다. 그리고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행위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행위구원을 당위 성으로 내세우기 위해 장로님은 세 가지 말씀을 근거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구원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구절들이 아닙니다. 1)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어린양의 혼 인잔치 자리에 그리스도의 신부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입도록 허락 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 ‘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 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한글 개역 개

정에 "옳은 행실”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마타'는 단순히 ‘도덕적 선선한 행동'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 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법정적인 의미의 단어 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다”(이신칭의)라는 말도 역시 법정적 선언입니다. 한마디로 현재의 내 꼬 라지는 전혀 의롭지 않은데 내가 예 수님을 믿은 근거로 의롭다고 여겨주 신다는 법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이 연장 선상에서 "성도들의 옳 은 행실”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는 늘 부족한 자들입니다. 내 행실 을 아무리 옳게 하려고 애쓰며 살아 도 하나님 앞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자들입니다. 그 누가 옳은 행실을 통 해 세마포 옷을 획득하여 입을 수 있습니까? 그 옷은 입도록 허락(계19:8) 될 때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들의 의'(KJV, the righteousness saints)는 허락된 의입니다. 주 어진 의입니다. 여겨주시는 의입니다. 결코 행위(옳은 행실)를 통해 획득된 의가 아닙니다.

2)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 은 죽었다'는 말씀도 행함을 강조하 기는 했지만, 이 강조 때문에 ‘행함 으로 구원받는다.'고 해버려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의 이 말은 "믿음으 로 구원 얻는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를 전제하 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참된 행실이 뒤 따라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 입니다. 실천과 행함이 없이 말로만 구원받았다고 하는 믿음의 허구성 을 비판하기 위해 행함을 강조했다 고 해서 결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는 성경적 선포를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3) 요한계시록 21장의 백보좌 심판 (11-15절)의 근거가 되는 것은 엄밀 히 말하면 보좌 앞에 펴진 두 책입 니다. 하나는 "행위를 따라 기록된 책” (행위책)이고 또 하나는 "생명책”입 니다. 행위를 따라 기록된 책을 근 거로 심판받을 자들은 "죽은 자들”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생명책

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입 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들입니 다. 이들의 심판은 분명히 행위에 근 거합니다. 이 본문의 강조점은 구원에 있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기 에 ‘행위책'에 맞춰져 있습니다. 구 원을 강조했다면 ‘생명책'에 맞춰졌 을 겁니다. 행위가 강조되었다고 해 서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받는 다고 말해 버릴 수 있나요?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 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라 고 했고, 21장 27절에는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 가리라”고 했습니다. 누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됩니 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성도의 행위 는 구원과 관련된 행위가 아니라 상 급과 관련된 행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심판받고 구 원받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 말입 니다. <다음 페이지 계속>


바로잡습니다

5

2021년 4월 22일

《수정된 내용》 "사람의 언행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대변합니다. 성경은 구원의 상징인 세마포를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말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참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행함은 믿음의 증거이고 믿음과 행함은 함께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없는 자에게는 죽은 행함 뿐이지만, 그리스도의 의가 있는 자에게는 그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행함이 분명 나타나기에, 이 선행이 우리 안에 시작되고 가득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내가 믿음이 좋아서 스스로 생기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해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자는 헛되이 살지 않는다. 진리 안에서 살고 진리를 위해 싸워 이기기까지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그분이 우리의 믿음을 관장하시며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자신의 힘으로 예수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신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과 인도하심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 내 원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원대로 사는 것이 믿음이다.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옳은 사람이 아니요 옳은 행동을 해야 옳은 사람이듯 믿음이 좋다고 말한다고 해서 믿음 있는 자가 아니요 믿음으로 살아야 믿음이 있는 자다.

주신 자도 거두어 가시는 이도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나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우상숭배요 불신의 신앙이다.

믿음은 지식이 아니요 아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과 믿음은 다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이 아니다.

오직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시도록 더 큰 믿음을 구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믿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셨다. 누가 자신의 힘으로 믿음의 길을 가며 순교의 길을 가며 좁은 길을 끝까지 완주 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는 악에 저항하며 싸우는 집단이다. 가만히 있는 것은 방종이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서 마침내 그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결코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신앙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어야 한다. 나는 무익한 종이요 무능한 종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오직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분의 인도 하심에 순종하는 믿음뿐이다.☆자료/ⓒ창골산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특별 메시지

2021년 4월 22일

6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서 2:14-18>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믿음과 행함> - 신앙의 성숙은 ‘행함이 없는 믿음’ 에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 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삶과 인 격)에서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 리될 수 없습니다. 먼저 이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은 구원의 도구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행함으로 나타나 게 되어있습니다. 2) ‘행함’은 구원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내 믿음의 실체를 증거 하 는 것이 곧 행함입니다. - 이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바울은 에 베소서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에베소서 2:8-10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 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 라”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 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not by works, so that no one can boast.)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

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 려 하심이니라” (For we are God'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지금도 그렇지만 초대교회 안에는 ‘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사 상을 악용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들은 행위를 무시하는 자들이었습니 다. 소위 ‘무 율법주의’ ‘도덕 무용 론’을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 사도 바울 선생님은 우리가 구원받 은 것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마치 내가 행함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와 비슷한 기 류들이 많이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크리스천답게 살 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대치해 버리려고 하고, 그것에 스스로 안주하며 아무렇게 살아도 되 는 것처럼 착각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 람들이 교회 안에 참 많지 않습니까?

- 그러나 바울 선생님은 분명히 구원 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 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지으시고 구원 하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는 겁니까?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행함을 위해서 우리를 지으 셨고 구원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선한 일은 예수 안에서 행하는 선한 일입니다. 그냥 단순한 도덕적 선을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으 로 구원받은 자로서의 선한 일입니다.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 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셨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은 교리적으로 분리하여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 도의 삶과 인격 안에서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 야고보는 결코 행위를 강조하기 위 해 믿음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What good is it?> -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이 질문을 두 번이나 합니다. 1) 먼저 14절에서 스스로 나는 믿음이 있노라고 말은 뻔질나게 하면서 행함 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문제와 결부시 켜 이 질문을 합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 이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 원하겠느냐” (What good is it, my brothers, if a man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him?) -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라고 물으 면서 ‘그 믿음’ 곧 행함이 없이 말 로만 하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는 질문의 의미는 어쩌

면 ‘네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증 거인 행함이 없는데 어찌 그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느냐?’라는 말 일 것입니다. 2) 그리고 이어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의 한 예를 들면서 이 질문 을 두 번째 합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Suppose a brother or sister is without clothes and daily food.)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 슨 유익이 있으리요” (If one of you says to him, 'Go, I wish you well; keep warm and well fed,' but does nothing about his physical needs, what good is it?) - 여기서 말하는 유익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유익을 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유익 되 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말의 위 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말로 위로할 때 유익이 됩니다. 헐벗은 사람에게는 옷을 입혀주어야 유익이 됩니다. 하루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 을 주어야 유익이 됩니다. - 오늘 본문에 예로든 사람은 뭐가 필 요한 사람입니까? 입을 옷이 필요하고 먹을 음식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 데 그 몸에 쓸 것(physical needs)을 주지 않고 말로만 위로합니다.


특별 메시지 ①‘평안히 가라’- 이것이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헤어질 때 사용했던 통례 적인 인사말입니다. ②‘더웁게 하라’-‘스스로 불을 지펴 서 덥게 하라’ ‘옷을 입어라’ 얼마 나 공허한 말입니까? ③‘배부르게 하라’- 이 말의 본래 의 미는 가축을 방목해 놓고 스스로 풀 을 찾아 먹게 하는 것입니다. ‘네가 알아서 스스로 찾아 먹어라’ 이런 무 책임하고 공허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 행함이 없는 것은 내 자신의 신앙 생활에도 유익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도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해 야 할 행함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 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 아닙니 까? 그 사랑이 무엇입니까? 나 자신 의 유익을 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 고 그 유익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 랑입니다. 이 사랑의 실천 없이 어떻 게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 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Dear children, let us not love with words or tongue but with actions and in truth.) - 행함이 없이 말로만 주장하는 믿음 을 야고보는 뭐라고 정의합니까?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왜 죽 었습니까?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하 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유익이 없다 는 말은 아무 쓸데가 없다는 말 아닙 니까? 아무 쓸데가 없는 믿음, 죽은 믿음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열매는 ‘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행함’은 믿 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 로 ‘행함’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 는 믿음이라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 다는 것입니다. *‘My Kid

* 요한일서 3:17-18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 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 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 하겠느냐” (If anyone has material possessions and sees his brother in need but has no pity on him, how can the love of God be in him?)

7

2021년 4월 22일

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 라” (But someone will say, ‘You have faith; I have deeds.' Show me your faith without deeds, and I will show you my faith by what I do.) -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 으니’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 너는 믿음이 있느냐? 나는 행함이 있 다.’라는 의미로 믿음과 행함이 별개 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나타냅니 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행함’이 있 을 수 있고, ‘행함이 없는 믿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암시 입니다. - 그러면서 야고보는 이러한 의미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렇게 말합니 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 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이 말은 이런 주장 을 하는 사람들을 향한 질책입니다. 어떤 자들을 향한 질책일까요?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자 들을 향한 호된 질책입니다.

-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 이리라!” 야고보의 이 담대한 선포가 성도 여 러분들의 신앙생활의 표어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이 존 경과 영향력의 자리를 상실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의 교 인들은 자신들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곧잘 말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무 슨 유익이 있으리오?”라고 끈질긴 질 문을 던지며 우리의 등 뒤에서 소리치 고 있습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그 고백 안에 안주하며 아무 렇게 살아도 되는 것처럼 자기 합리 화에 빠진, ‘값싼 복음’ ‘싸구려 구원’의 소유자들이 아니라, 행함으 로, 주님의 말씀이 있는 그대로 실천 하므로, 살아있는 여러분들 자신의 믿 음의 실체를 당당하게 증거하며 살아 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 기 바랍니다.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s World’사역-“$35의 기

적!”

<결론> - 구원받은 성도에게 믿음과 행함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 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

네게 보이리라!”

한 마디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 어서 행함과 믿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으로부터 분 리된 믿음’은 생각할 수도 없고 설명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은 믿음 으로부터 온 열매이기 때문에 결코 이 둘은 분리하여 나타날 수 없고, 믿음 이 없이는 결코 행함이라는 결과가 입 증될 수 없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야고보서 강해 설교는 본지 에 2018년 6월 22일 편집되 었던 말씀입니다. 오늘 재편집하는 이유는 구 원과 행함에 관하여 독자들 과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 누고자 함입니다.

감사합니다!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강단 설교

2021년 4월 22일

8

“참 <마태복음 믿음의 회복” 8:5-10> 4월에는 주님의 부활의 기쁨과 함께 “회 복”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 백 신을 접종하고 있지만 여전히 줄어들지 않 는 확진자와 사망 소식, 변이바이러스 확산, 아시안 증오범죄, 총기 난사 등 끊임없이 사 회적인 이슈가 생기고 있습니다. 최근에 평등 법이 하원 통과로 인해 신앙의 심각한 위협 을 받고 있습니다. ‘평등’이라는 듣기 좋은 이름으로 반생명, 반신앙, 반가족을 의무화하 는 법안입니다. 포괄적인 동성애 인권법안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인들 이 신앙을 지키기가 더욱 어려운 시대를 살 아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이 암울한 시기 가운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 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 히 우리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고난과 고 통의 시간은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더 깊고 견고하게 내리는 시간입니다. 모든 길이 닫 혀 실패한 것 같지만 새로운 길로 인도함 받 기 위해 준비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침 묵하시는 것 같지만 침묵 속에서도 우리의 회복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백부장이 예수님께 보여준 믿음을 통 해 어렵고 힘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 도인들에게 회복되어야 할 믿음은 무엇인지 “참 믿음의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5절) _(간구)하는 믿음 첫째로,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참 믿음은 “간구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 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 여”(5절)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에 들 어가셨습니다. 그때 로마의 한 백부장이 예 수님 앞에 나아와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 간구하다’는 “애원하다. 탄원하다. 간청하 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요청을 들어달라고 애처롭게 사정하며 부탁하는 것 입니다.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하여 도와주기 를 간절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한 백 부장은 100명의 병사를 거느리는 군대 장교 로서 제법 권세를 휘두를 수 있는 높은 위 치의 사람입니다. 신분이나 지위나 재산이나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치하에 있으니 오히려 예수님이 로마의 백부장에게 간청해야 할 위 치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예수님 께 나아와 간구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말이 좋아서 하인이 지 엄밀하게 말하면 노예입니다. 그때 당시 노예는 물건 취급을 받았습니다. 매매가 가 능하고, 노예를 부리다가 병들고 힘없고 쓸 모없으면 버리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백부장 은 자신의 노예의 치유를 위해 체면과 만사 를 제쳐놓고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합니다.”중풍병은 뇌혈관이 막혀 서 온몸에 마비 증상을 나타내는 심각한 질 병입니다. 종의 입장에서는 몹시 괴로워 예수 님께서 고쳐주셔야 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노예가 죽을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종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같이 절박함을 가지고 간구 했습니다. 종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 같이 여 기며,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도록 간절히 부탁 드렸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예수님께 간구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삶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웃이 있습니까? 혹시 그들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 와 간구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간구하고 있습니 까? 백부장이 병든 종의 어려움을 마치 자 신의 문제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간구한 믿 음이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참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놓고 기도할 때 그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여기고 예수님께 서 해결해 주셔야만 한다는 믿음의 간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병자 들을 치료하실 때 중요하게 보신 것은 “간 구하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간구 하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간구하는 사람이 병자이든 병자 가 아니든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간 구하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중풍병자를 침상 채로 들고 온 네 친구

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네 친구들의 믿음 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어 떤 가나안 여인은 딸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 내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부스러기와 같 은 은혜라도 달라는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쫓아내어 주셨 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백부장이 하 찮은 종을 위해 자신의 아픔처럼 간구하는 믿음을 보시고 종의 중풍병을 고쳐주셨습 니다. 어려움과 아픔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치유와 회복을 주십니다. 야고보 서 5:15-16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 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 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 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 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 사하는 힘이 큼이라”(약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합니다. 주 께서 그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의인의 간 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라! 기도하는 자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믿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 도할 때 그 사람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 로 여겨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가 갑작스럽 게 사망한 수넴여인의 아들을 위해 기도하 는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사는 침상에 누워 있던 아들 위에 올라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기도 드린 후 아들의 몸이 차차 따뜻해졌습니다. 죽은 사람의 몸에 어떻게 엎드릴 수 있습니 까? 자기 입술을 죽은 사람의 입술에 대고, 눈도 손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아들을 잃은 수넴 여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 통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수넴 여인과 같이 죽은 아들을 진 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회 복되어야 할 참 믿음은 무엇일까요? 다른 사 람을 위해 간구하는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 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여기며 절박 하게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저는 매일 9시에 약 중독에 빠져있는 어떤 집사님의 아들을 위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기도합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니다. 저는 그분의 아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분은 기도할 때 자기 아들을 위해 먼저 기 도하지 않습니다. 저의 목회와 우리 소망교 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형 편에 있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선교 사님과 미국과 열방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리고 나서 자신의 아들과 가정을 위해 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참 믿음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을 위해 기 도할 때 내가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절박함 을 가지고 기도하여 참 믿음을 회복하는 사 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8절) _(말씀)의 능력을 기대하는 믿음 둘째로,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참 믿음은 말씀의 능력을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8절의 말씀입니다. “백부장이 대답하 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 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 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8절) 백 부장이 자신의 종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했을 때, 예수님은 망설임 없이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며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종의 중풍병을 고쳐주시겠다 하시는 데 너무나 잘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백 부장은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예 수님의 방문을 사양했습니다. 그리고 ”다만 말씀만 해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 이 “백부장의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 겠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 이 집에 오시면 대접할 일이 번거로워 사양 한 것일까요? 백부장의 집은 작고 누추해서 그럴까요? 백부장의 집은 분명 하인도 많고 큰 집일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자신 의 집으로 모시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임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오심 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이시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감히 모실만한 자격이 없다는 겸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 단지 말씀만 하옵소서!” 예수님의 말씀이라 면 능치 못함 없는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 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았습니


강단 설교

2021년 4월 22일

9

셨습니다. 요즘 줌(Zoom)으로 시간과 공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본회퍼는 독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님을 알았습니

을 초월해서 모임을 갖는데 “말씀 나눔을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

일에서 고백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인의 양

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시

하라”는 부담감을 주셨습니다. 제 아내로부

라”(10절)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놀라

심을 가지고 정부에 저항운동을 벌였습니다.

며 온 세상을 다스리는 주가 되심을 알고 믿

터 저의 누나와 조카와 큐티 모임을 시작하

워하셨습니다. 그리고의 그의 믿음을 이렇게

미국에 있던 본회퍼의 친구들은 그가 처한

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가능할까? 부정

칭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

위험한 상황에서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데려

자신처럼 백부장만 되어도 부하에게 명령만

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시누이와 시

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

올 방도를 찾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뉴

내리면 복종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누이의 딸, 참 쉽지 않은 관계인데… 시간도

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

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 강의를 맡기는 것

님이 말씀만 하시면 그 어떤 질병도 꼼짝 못

틀리고, 조카는 애기 둘을 돌보아야 하는데

다. 그런데 믿음이 어떻게 눈에 보입니까? 믿

이었습니다. 본회퍼가 신학교 강의를 위해 미

하고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모임이 가능할까? 몇 번 하다가 힘들어 그만

음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예수님은 사람들

국으로 왔습니다. 그때부터 내적 고투가 시

“주여… 단지 말씀만 하옵소서” 백부장의

하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의 믿음을 보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

작되었습니다. 유니온 신학교의 숙소에서 잘

다. 단순히 목수의 아들, 이스라엘의 선지자,

믿음은 말씀의 능력을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말씀 묵상을 하는 첫날부터 기가

음을 보셨고, 백부장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나 어디에 있든지 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회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누나가 “생명의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은 믿는 자

험에 처한 독일과 그곳에 두고 온 그리스도

복되어야 할 믿음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능

삶” 큐티 책을 사러 갔다가 외제 차와 접

의 모습을 통해 나타납니다. 믿음은 말과

인 형제들을 생각했습니다.

력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많

촉사고가 났습니다. 매형한테 꾸중을 들었습

행동으로 나타나고, 믿음은 인격과 성품으

딤후 4:9 말씀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은 말씀을 읽고 들으며 사는지 모릅니다. 그

니다. 말씀으로 살아보려고 하는데 하나님,

로 나타납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보이는 믿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는 말씀과 21절에 “

런데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

왜 저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느냐며, 큐티

음이었습니다. 말만 있고 행함이 없는 믿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디모데에게 한

고 있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외운

하는 첫날부터 속상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

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람 앞에 행동으로 보

번 더 부탁한 말씀을 읽고, 그가 머물고 있

다 하더라도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다. 400만 원짜리 큐티 책이라 했습니다. 저

인 믿음입니다.

던 뉴욕을 떠나 다시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것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지 않

의 누나는 책값이 얼만데 하면서 책값이 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스라

신학교수로서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

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삶의 변화를

까워 하루하루 빠지지 않고 말씀을 읽고 묵

엘 사람들과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것처럼

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버리고 독일행으

위한 말씀으로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

상을 했습니다. 말씀 묵상의 가치가 얼마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의 말

로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글자로 읽

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

큰지 알게 하시려고 그런 일이 생긴 것이 아

을 하는지, 믿음의 행동을 하는지 우리의 믿

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독일로 부르시는 하

리가 말씀을 읽지만 사실, 말씀이 우리의 삶

닌가 싶습니다. 접촉사고가 걱정되어서 누나

음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

나님의 말씀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본

을 읽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읽혀

랑 통화하게 되었는데, 고난주간에 묵상한

고 놀라워하시며 감탄하십니다. 사람들은 예

회퍼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

집니다. 나의 못난 모습, 부족한 모습, 죄로

말씀을 저에게 나누었습니다. 아리마대 요

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을 보며 놀라워하지

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본회퍼는 말로만 어려

얼룩진 모습을 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셉을 보면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예

만 우리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믿음을 보

움에 빠진 형제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회개합니다. 소망이 없던 우리가 말씀을 통

수님께 자신의 새 무덤을 내주었는데, 자신

시고 놀라워하십니다.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의 믿음을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그리고 예수

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으로 담대함과 용

은 늘 대가를 바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믿음은 보이는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18장

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기를 얻습니다. 두렵고 답답한 마음에 사로

리고 예수님은 나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

에 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가 나옵

믿음은 보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잡혀 있을 때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

지 않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자신

니다. 한 과부가 재판장에게 찾아가서 자신

우리 가운데 역사하면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을 줍니다. 슬픈 마음에 기쁨을 얻습니다. 무

은 늘 대가를 바라고, 수고한 대로 보상이

의 원한을 풀어달라 합니다. 재판관은 이 여

행동하는 믿음을 보이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별력을 갖게 합니

돌아오지 않으면 주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인을 무시하다가 너무 자주 번거롭게 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보여주는

다. 그동안 방황하고 잃어버린 삶의 목표와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개했다는 이야기였습

깐 괴로워서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방향을 찾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니다. 누나는 은혜받은 말씀을 나누고 매형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물며 밤낮 부르짖

예수님께 행동으로 나의 믿음을 보이고 있습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고 우리의 믿음이 더

은 들은 말씀을 가지고 새벽예배에 받은 은

는 택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

니까? 혹시, 우리 주변에 내가 예수 믿는 사

욱 성숙해집니다. 히브리서 4:12절의 말씀입

혜를 전해야 하겠다 하면서 매형과 관계가

냐?” 여인과 같이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하

람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에게

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

좋아졌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데 마음

나님을 찾는 믿음을 보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믿는 믿음이

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

에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

누가복음 18:8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

있다고 한다면 믿음의 말과 행동이 자연스

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력이 아니겠습니까?

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

럽게 나타납니다. 예수님 닮은 인격과 성품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하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회복되어야

러나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믿음을 어두운 세상

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살아있고 운

할 믿음은 말씀의 능력을 기대하는 믿음입

눅18:8)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무엇을 보겠

에 숨길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고난 중

동력이 있어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쪼개며

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능치 못

다 하십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을 보겠

에도 넘치는 감사를 통해 믿음을 보입니다.

생각과 뜻을 판단하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

함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스림을 받습니

다 하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끈질기

또 어떤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

니다.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믿음은 바로 말

다! 백부장과 같이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게 그리고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믿음을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궂은일을

씀의 능력을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내 종이 낫겠습니다.”는 말씀의 능력

께 구하며, 문을 두들겨 움직이는 믿음을 보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하는 일을 통해

을 기대하는 믿음을 회복하는 성도님들 되

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보입니다. 자기의 것을 포기하면서도

지난 4월1일부터 제 아내가 저의 누나와 조카와 함께 큐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매형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들과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 다. 그리고 조카는 LA에서 시댁에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

예수님의 의를 드러내는 믿음을 보입니다.

본회퍼”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미

또 어떤 분은 진실하게 예배를 드림으로 믿

3.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0절)_보이는 믿음

국에서 21세의 젊은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

음을 보입니다. 또 어떤 분은 기도에 힘쓰는

고, 24세에 교수자격 논문까지 통과한 장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

셋째로,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믿음은 보이는 믿음입니다.

가 촉망되던 신학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독

의 열정을 통해 믿음을 보입니다. 삶의 어떠

일의 히틀러에게 맞서 저항함으로 교수형으

한 형태로든지, 예수님이 놀라워하시는 믿음

이 한국에서 목회하고 있는데요… 누나가 매 형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교회 성도

독일 개신교 교회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

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아내

본문 1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들으

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비록 39년

을 보이는 우리 성도님들 될 수 있기를 주의

에게 큐티 모임을 시작하라는 부담감을 주

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삶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목회 칼럼

2021년 4월 22일

10

하나님의 영광의 힘 컴퓨터 칩은 실리콘과 석영으로 만들 어지는데, 손가락 끝마디 표면보다 약8배 나 작고 노랗고 빛나는 금속이다. 그것을 현미경을 통하여 찍은 사진을 보니, 가는 철사줄로 천을 짜듯이 겹겹으로 이어서 만든 것이다. 대부분 크레딧 카드 표면에 도 노랗고 빛나는 금속과 같은 것이 있 는데, 그 안에는 크레딧 카드 주인의 정 보가 들어 있다. 2021년도에 500달러 짜 리 랩탑 컴퓨터는 저장 용량이 8GB인 것을 보았다. 그것은 책을 약 27,000권 의 정보를 저장할 수가 있는데, 작은 도 서관이 소유한 책보다 더 많은 양인 것 이 놀랍다. 컴퓨터 프로그램들과 인공위 성이 확장되면서, 움직이는 도서관을 비 롯해서 편지와 대화와 세상의 정보들을 찾고 발견하고 전달할 수가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악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여서 정보를 훔치거나 사이버 무 기는 물론 불의와 불법과 질병과 고통과 파괴와 마귀 짓과 귀신 짓을 하는 데에 사용을 하고 있다. 대환난과 멸망과 사망 과 지옥영벌을 초래하고 확장할 뿐임을 삼가 주의를 하면서 정직하고 공의롭고 선하게 처신하여야 할 때이다. 적은 사람과 소수라고 실족해 하거나 원망할 필요 없이, 개성적이고 특별하고 창의적으로 학문과 예술과 과학과 기술 과 영적인 일들을 연구하고 일하고 개발 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을 이루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기 쁨과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일에 있어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체험적으로 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의와 신실하심을 본받는 일꾼이 될 수가 있다. 영혼이 있는 사람들은 육신이 죽은 후 에는 천국이나 지옥에 거하게 되니, 구원 신앙을 지키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를 지키고 그의 뜻을 행하여 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양식과 물과 에너지가 되는 진리 말씀과 성령을 꾸준하게 섭취하고 주하나님과 교통하여 야 한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존귀케 하 고 기쁘시게 하고 영광이 되는 열매(사 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 성, 온유, 인내, 절제, 의, 정직) 들을 맺 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응답 이나 복을 받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영 광의 힘이나 하나님의 힘의 영광을 체험 하게 된다. 그리고 영광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 수님을 닮음으로써 혹은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는 시험이나 고난을 당하지 않아서 혹은 몰라서 판단과 교만과 자 랑과 자신만만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면 들이 많다. 그리고 죄를 지을 때마다 죄 의 삯인 사망을 당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하는 것을 깨닫고서 사람 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 의 오래 참으심을 발견하고서, 회개하고 올바르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고 천국시민으로 서 합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요 끝이 없는 마 라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방패와 반석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야, 영생이 란 끝 없는 마라톤을 죽음을 고통을 당 하는 지옥이 아니라 행복이 넘치는 천국 에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죽음의 위험과 교만과 정욕의 시험을 당할 때는 지극히 어리석거나 추악하게 전락할 수가 있는 인생들이다. 하나님께 서 잠잠하신다면,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이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면서 하나님 을 심령으로나마 붙들어야 한다. 자신을 경외하거나 피난처로 삼거나 어린아이와 같이 의존하고 부르짖어도, 보호나 도움 이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항상 감 사와 찬송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 님께 충성된 일꾼들과 군사들과 그의 의 와 정의를 사수하는 자들에게는 그의 힘 에 능력을 더하여 주시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대적의 대적이 되시고 그들의 원 수의 원수가 되어 주신다. 면역력이 너무 약하여서, 코로나바이러 스 백신을 맞고서 오히려 안타깝게도 코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로나바이러스에 곧바로 감염되고 병들고 죽을 지경인 사람들이 8천 명 이상인 것 을 발견하였다. 영육혼을 병들게 하고 아 프게 하고 죽게 하는 죄악을 극복하거 나 영육혼을 연단하기 위한 면역력을 잃 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진리 성령 하나 님의 응답 등을 받을 때는 면역력이 강 하여지고 치유력이 있고 타인에게도 유 익함을 끼칠 수가 있다. 성경의 인물들과 신앙의 성공자들은 장 점을 잘 활용하면서 단점과 약점을 줄 이거나 개선하였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 서는 좌절하거나 죄악을 행치 않고 오히 려 의와 정의롭게 처신하고 사력을 다하 여 선한 싸움을 하였다. 그리하여서 하나 님께서는 그들의 보호자나 방패가 되셨 고 때때는 그들의 대적의 대적이 되셨고 그들의 원수의 원수가 되실 때도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나 하나님의 힘의 영광이 임하고 생명의 빛을 발하는 크리 스천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의 자녀들이 세상에 희망이나 신념이나 믿음이나 신앙이나 소망이나 사랑이나 신 주일예배: 11:30 실함이나 진리나 생명력을오전 끼치어서 그들 (장소: 2821 S 주일 오전 10:30 (장소 이 영원토록유스주일예배: 복되고 영광스럽게 예수님과 수요예배: 오후 것이다. 7:00 (장소: 5651 S 함께 하는 후사가 되길 바라실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하나님의 구원섭리

2021년 4월 22일

11

(제24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16. 7년 대환난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3)

다니엘도 이 문제를 놓고 사자 굴에 들 어갈 위험을 개의치 않고 전혀 기도에 힘 쓰다가 그 약속이 먼 훗날에 성취될 것 임을 응답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느부갓네살과 벨사살 왕의 꿈과 환상을 통해서 바벨론 이후 전 세 계역사에 대한 흐름을 개략적으로 보여 주시고 이 세상 종말에 아브람의 씨(메 시아: 하늘에서 뜬 한 조약돌)가 나타나 세상 모든 나라를 무너뜨리고 영원한 나 라를 세워 그 권세가 영원할 것임을(단 2:44-45, 7:13-14) 말씀하셨다. 나중에는 천사(가브리엘)가 다니엘에 게 직접 나타나 초림 예수와 종말에 나 타날 적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예언하 였다(단9:24-27). 이 예언이 다니엘서의 핵심이다. 다니엘에게 주신 종말에 관한 예언의 내용을 간추려 보자. 거룩한 성(예루살렘)을 위하여 70 이 레를 기한으로 정했는데 그 성을 중건 하라는 명령이 날 때(페르샤의 아닥사스 다 왕)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아) 가 끊어질 때까지(초림 예수가 십자가에 서 죽을 때) 69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이후에(세상 종말에) 마지막 70번째 이 레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단9:24-27, 계 6:2, 12:7-9, 13:1-15, 17:8-14) 것이다. 그러나 7년 대환난 이후에 예수 그리 스도의 재림으로 그는 멸망할 것이다(

계19:20). “그들이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 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 로 그들을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 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17:14) 고 기 록되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후 삼년 반)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진다(단12:7)고 했 다.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이 스라엘에게 붉은 용(짐승: 적그리스도)이 참 메시아로 가장하여 나타나 성전을 지 어 주고 성전 제사를 드리도록 할 때 대 부분의 이스라엘은 그를 참 메시아로 믿 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두 증인(모세와 엘 리야)의 증거를 통하여 진실을 밝힘으로 (계11:3-13) 남아 있는 온 이스라엘이 예 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짐승(적그리스도)은 돌변하여 성전 제 사를 금하고 멸망할 가증한 것(자신의 우상)을 세워 섬기도록 할 것이다(단9:27, 11:31, 12:11, 마24:15, 살후2:1-4, 계13:115). 그 기간이 42개월(계11:2, 13:5)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12:7, 11-천이백 구십일), 곧 후 3년 반 기간으로 남은 이 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예수께 돌아와 혹 독한 환난 속에 순교 당함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다(계6:9-11).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도 구원의 복음 (진리)서인 로마서를 기록하던 중에 자 기 동족 유대인의 구원문제를 놓고 생명 을 걸고(롬9:1-5) 간구하여 터득한 진리 를 로마서 9장-11장에서 밝히고 있다. 이 는 다니엘과 같은 심정으로 동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여 응답받은 진리이다. 롬9:1-5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 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 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 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 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구원의 근원)에게서 끊어질지라 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 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 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 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 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 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 아에 대한 약속을 먼저 받았음에도 불 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종치 않은 까닭은 (롬10:16)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 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 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롬10:2-3). 바울은 그들이 약속을 받고 기다리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던 메시아를 거부하고 죽이기까지 했으 며 아직도 그리스도에게 돌아오지 않아 하나님의 구원섭리 밖에 머무르고 있게 된 이유는 “그들(이스라엘)의 마음이 완고 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 건(마음의 얼굴을 가리운)이 벗겨지지 아 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증거 했고(고후3:14) 또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 건이 벗겨지리라”(고후3:15) 했다. 그는 “그리스도(메시아)는 모든 믿는 자 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증거했다. 사도 바울은 결국 이스라엘 중 남은 자들이(the remnant)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올 때를 신비라 하면서 “이방인의 수가 들어 오기까지(이는 이방인들을 중 심으로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인 교회가 완성될 때까지를 의미함) 이스라엘의 더 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11:25) 했다. 그리고 이사야서를 인용함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 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사59:20), “내가 그들의 죄 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 약이 이것이라”(사27:9) 했다(롬11:25-27).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4월 22일

12

사무엘상 강해(45)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상 12:6-18 >

우리 인생은 늘 새로운 내일을 바라보 며 살아갑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을 어 김없이 맞이합니다. 한 주간이 지나가면 또다시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고, 새로 운 새달을 맞이합니다. 한 해가 지나면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어 쩌면 우리의 인생살이는 주어진 시간 앞 에서 새로운 결단과 각오가 필요한 것 같 습니다. 오늘 저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 은 다가오는 시간들을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본문을 통해 생각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왕정시대의 역사를 살아 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촉구하는 사무엘 선지자 의 설교 내용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길갈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 렇게 외칩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 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 게 하자”(삼상11:14). 사무엘의 외침이 무 엇입니까?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것 입니다. “새롭게 하자!” 새롭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째, 어제를 되짚어보아야 합니다. 사 무엘이 백성들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하 는 과거의 역사를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 까지 말합니까? 먼저 출애굽부터 시작해 서 가나안 정복까지를 말합니다. “사무 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 시며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이시니 야곱이 애굽에 들 어간 후 너희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 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곳에 살게 하셨으나”(삼상12:6,8). 한마디로 이 부분을 통해서 사무엘이 강 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애굽 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가나안에 살게 하 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사시대의 역사를 세 가지로 언급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 들이 죄를 범하고 그 죄에 대하여 하나님 이 징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 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 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 니 그들이 저희를 치매”(삼상12:9).이어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 들이 부르짖어 회개했다고 합니다.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 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 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삼상12:10). 백성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 서는 사사들을 보내 구원하셨다는 것입 니다.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 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 게 살게 하셨거늘”(삼상12:11). 한마디로 이 과거의 역사를 들먹이며 사무엘이 하 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과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으면 안 된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잊어버려 야 할 것들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망각하면 안 됩니 다.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실패 를 또다시 답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사 시대의 역사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한 이 유입니다. 스페인 출신의 미국 철학자 산 타야나(G, Santayana)가 이런 말을 했습 니다. “과거를 기억할 줄 모르는 사람들 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의 이 말 처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와 같습니다. 과거의 역사 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실패한 과거를 되돌아보며 현재를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성공 한 과거를 되돌아보며, 오늘 또다시 성공 을 위한 원리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오늘 무엇을 보느냐가 대단히 중 요합니다. 오늘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결코 새로운 출발을 하기 가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무엇을 보았습니까?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 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 다”(삼상12:12). 자신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쳐들어온 암 몬 왕 나하스를 보았습니다. 자신들을 위 협하는 이방나라의 왕을 본 것입니다. 보 고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자신들을 다 스릴 나하스같은 왕을 요구했습니다. 보 고 두려우면 굴복하게 되어있습니다. 보 고 좋으면 따라 하게 되어있습니다. 이스 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오른 눈을 뽑아 버리겠다고 요구하는 나하스의 위협이 두 려우면서도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 는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야! 왕이 있으니까 멋있구 나. 힘이 결집되니 다른 나라도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구나. 우리도 저런 왕 한 번 가져봤으면...”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 고 바로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 습니까? 있었습니다. 누굽니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왕이셨습니다. 지금도 왕이십니다. 사무엘이 과거의 역 사를 들먹이며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입니 까? 한마디로 “하나님이 출애굽 이후 오 늘까지 너희들의 왕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왕 됨을 거절당하시면 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 습니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 셨느니라”(삼상12:13). 그 왕은 이스라엘 이 요구한 왕이요 그들이 택한 왕이었습 니다. 사울이 그런 왕이라는 것입니다. 사 울의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아할 타입의 왕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보고 좋은 사람 이 왕으로 세워지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의 왕 되심을 순간 망각했습니다. 하나님 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향하는 순간도 꼭 이와 같습니다. 세상이 두렵습 니다. 순간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힙니다. 그 리고 그 세상이 가져다주는 것들이 좋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잊 어버립니다. 그 순간 세상은 우리들의 왕 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 가 보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예 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 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 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 워하라”(마10:28).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 시기 바랍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을 두려 워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내일을 위한 각오와 결단이 필요 합니다. 이제 왕정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왕이 세워졌 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 다. 인간 왕 사울은 다른 이방 나라와 같 은 절대 군주가 아닙니다. 여전히 이스라 엘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하나 님의 대리 통치자(지도자)일 뿐입니다. 새 로운 왕정시대의 내일을 위하여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울 왕에게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요청합니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 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 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 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 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12:14-15). “백성들아,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만 섬겨라!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4월 22일

13

라!” 그리고 왕도 역시 하나님을 따르라

시고, 돌보아 주신 것을 잊지 맙시다. 하

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사

는 요구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목소리

나님을 잊는 순간 우리는 세상 앞에 무릎

실을 보게 합니다.

를 듣지 않고 불순종하면 과거처럼 하나

꿇게 되어있습니다. 세상보다 크시고 두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김없이 우리에

님께서 너희들을 치실 것이다”라는 것입

려운 존재인 여전히 나의 왕이신 하나님

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

게 주어질 내일이라는 시간 앞에서 새롭

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왕정시대의 역사

만 바라보며 오늘을 사십니다. 그리고 그

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게 결단하며 살아가십니다. 우리가 믿는

가 성공하는 비결이 이 각오와 결단에 달

분만을 경외하고, 그분만을 예배하고, 그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하나님을 내가 경외하고 섬기고 순종해야

려 있다는 것입니다.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왕이신 그분의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할 왕으로 대접하며 살아가겠다는 결단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살아가겠다고 결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

말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의 백성들에

어떻게 하면 늘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단하며 내일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

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

게 베푸시는 왕이신 우리 하나님의 축복

까요? 과거를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하

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대접

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과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며 살아가

신 일들, 곧 은혜 베풀어주시고, 지켜 주

해야만 하는 크고 두려운 존재입니다. 사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

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니라”(삼상12:16-18).

서로 챙겨 주는 신앙생활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요즈음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파트 생활의 특징은 이웃에 대하여 서로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누가 이사를 왔는지 갔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귐이요 교제다. 하나님과의 교제처럼 성도 간에도 서로 뜨겁게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도 서로 인사하지 않는다. 시골 동네 같으면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애경사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지만 도시 생활은 그렇지를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예배 시간에만 참석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큰 교회일수록 서로 모른다. 교회 안에서 만나도 서로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서로 친교하고 각 기관을 통해서 성도의 교제가 활발했었다.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며 챙겨 주는 것이 참된 예배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보이는 형제간의 교제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무엇으로 어떻게 섬기는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코로나를 계기로 그런 열기는 점점 더 식어 가는 것 같다. 결혼식에도 장례식장에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주를 위해 헌신하는 것도 그들과의 교제요 하나님과 잘 교제 할 수 있도록 인도하며 그들의 형편을 챙겨 주는 것이 선교다.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서로 챙겨 주는 것이다.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도해 주며 기쁨도 함께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찬송을 통하여 함께 교제하며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이 교제요 신앙생활이다. 기도 역시 교제이며 봉사도 교제요 서로 챙겨 주는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늘 우리를 챙겨 주시듯 성도끼리 서로 사랑하며 주안에서 함께하며 신앙을 키워 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인가? 다름 아닌 상대방을 챙겨 주고 섬겨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는 서로 교제하라는 말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4월 22일

14

신명기 하나님의 백성의 리더였던 120세의 모 세가 약 한 달간 신세대에게 고별 메시 지를 강론한 책이 바로 모세 오경의 완 성인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레위기만큼 이나 율법의 세부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 지만 이 고별 강론의 대상이 제사장이나 희생 제사에 있지 않고 신세대 성도들에 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고별 강론의 메시지의 강조점은 신세대 성도들이 자기 부모들의 비극적 인 불순종의 샘플로부터 ‘순종의 중요 성’을 배우라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다 른 그리스도인들의 실패의 샘플들을 보 면서 대책 없이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순종의 중요성’을 각인하는 기회가 되 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개론과 제목” 신명기는 레위기처럼 장소적인 진전이 없이 대략 한 달간 여리고와 요단강 동 쪽 모압 평지(1:1, 29:1, 수1:2)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신1:3, 34:8, 수 5:6~12). 이 시기는 신세대가 광야 40년의 유랑의 마침표를 찍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가기 직전입니다. 신명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1:1절의 “이는 … 말씀이니라” (These are the words.)의 “말씀들”(Haddebharim)에 서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를 ‘율 법의 반복’ 이라 칭했고, 70인역에서는 라틴어 ‘이 두 번째 율법’이라는 뜻으 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두 번 째 율법이 아니고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을 모세가 신세대에게 확대 적용한 것입 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어 신명기의 이름 을 ‘회상의 책’이라는 의미로 붙인 것 은 매우 적절한 것입니다.

신명기의 주제와 목적: “두 가지를 잊지 말라” 모세는 신세대들에게 “두 가지를 잊 지 말라는 경고”했습니다. 한 가지는 가 나안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을 때, 그 번

성함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에 신세대도 그 들의 조상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순 종한 행동을 본받는다면, 반드시 하나님 께서 신세대에게도 징계하실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축 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반드시 순종하라 는 경고입니다.

신명기의 핵심 구절들과 핵심 장: “언약” •핵심 구절 :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 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 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 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 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 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 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30:19~20, 10:12~13). •핵심 장 :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

릴 신세대는 그 언약의 비준을 27장에 서 받게 됩니다. 모세와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과 모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아 잠 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 와의 백성이 되었으니”(27:9) 라는 말씀처 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식적인 비준을 받게 됩니다.

신명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나와 같지 않은 선지자” 신명기에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절은 18:16~19절입니 다. 그중 15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 너의 중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 자 하나를 너희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 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18:15) 라는 구 절은 예수님의 선지자, 제사장, 왕(통치 자)으로 성육신 하실 것의 예표가 되는 구절입니다. 모세가 “광야 교회를 위하 여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주었던 것 처럼”(행7:38),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

자(34:10:12), 제사장(출32:31~35), 통치자 (33:4~5)의 역할을 감당하실 분으로 신명 기에 기록되었습니다 (행7:37). 구약 성경에서 이 세 가지의 역할을 수행한 한 사람은 모세이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모세는 예수님 과 같이 어렸을 때 죽임당할 위험에 처 했었고, 구원자였고, 중보자요 그리고 믿 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처럼 동족들에게 거부당했고, 그는 많은 장점 들을 갖고 있었고, 역사를 통틀어 대단 히 위대한 인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 형입니다. 예수님께서 애용하신 구약 책은 신명 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명기를 이용 한 신약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떡”과 “하나님의 말씀”(마4:4~7), “ 사탄을 물리치고 주 하나님께만 경배 함”(마4:10), “크고 첫째 되는 계명(마 22:37~38), “모세의 부모 공경”(막7:10), “계명 순종”(막10:19), “현세의 복과 내 세의 영생”(막10:29-30).

신명기의 전체 내용 개관 : “시내 산에서 주어진 옛 언약의 갱신” 신명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미 구세 대에게 주신 시내산의 언약을 신세대를 위하여 모압 평지에서 다시 복습시키셨 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으로 부터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서 일하신 역사를 자신의 내면적인 성찰 과 조망을 담아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 를 포함한 조망을 세 번의 설교를 통해 서 완성시킵니다. ◈ 신명기 1:1~4:43절은 모세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각인 시키기 위하여 과거의 “ 순종의 결과”와 “불순종의 결과”를 조 망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왔고, 그들의 순종은 하나님 의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 신명기 4:44~26:19절은 모세의 두 번 째 설교이고 신명기에서 가장 긴 법적인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으로 법적 비준을 받은 이스라엘이 가나 안 땅에서 한 국가로서 살아갈 때 그들 의 미래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 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는 율법의 세 가지의 범주에 대한 의무를 기록했 습니다. ① 계명들(Testimonies/5-11장)입니다. 십계명의 증보 설명인데, 핵심은 하나님 의 은혜로운 구원을 잊지 말라는 권면 입니다. ② 법규들(Statutes/12:1~16:17)입니다. 희생 제사들, 십일조, 종교적 축제 절기 들에 관련된 의식적인 의무입니다. ③ 법령들(Ordinances/16:18-26:19)입니 다. 이스라엘의 시민법(16:18-20:20), 사회 법(21-26장), 사법 체계, 형법, 전쟁시의 법령, 재산법, 개인과 가족의 도덕법, 그 리고 사회적 공의를 위한 의무들입니다. ◈ 신명기 27-34장은 모세의 세 번째 설 교를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가까운 장래와 먼 미래에 열국에 흩어 질 것과 궁극적인 귀환을 예언하였습니 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비준될 언약의 조 항들을 열거하고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 자로 임명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모세는 회중에 게 고별사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가 죽은 후 그의 시신을 아무도 알지 못 하는 장소에 직접 묻으셨는데 이는 이스 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막기 위해서 였습니다. 모세는 변화 산상에서 그리스 도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서 우리는 그가 결국 약속의 땅 즉 하나 님의 나라에 들어간 그것을 확신하게 됩 니다(마17:3). 모세는 무덤도 비석이 없었 지만, 만약에 있었다면 신34:10~12절 말 씀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수고하셨습 니다.


예배학 강좌

2021년 4월 22일

15

“성가대 찬양 순서는 꼭 있어야 하나요?” "성가대 찬양이 성경봉독과 설교 사이에 위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가대 찬양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성가대 찬양의 주제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그날의 설교 주제와 맞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성가대 찬양이라는 예배 순서는 19

의 성가대 찬양이 최악의 경우, 사람들

전에 오는 알렐루야송도 역시 마찬가

세기 미국의 천막집회로부터 유래한

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하나의 ‘여

지입니다. 한국교회에서 하는 성가대

것입니다. 당시 천막집회는 교회에 다

흥’(entertaining)으로 전락할 위험성

의 찬양은 이들 중 어느 것에도 해당

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 있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가대의

신앙이 식은 사람들에게 심령의 부흥

고 지적했습니다.

찬양은 그날 설교의 주제와 다르게 성

을 일으키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전

가대가 독립적으로 부르는 것이기 때

도집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성가대의 본래적 기능은 회중이 찬

문입니다. 19세기 천막집회에서 이 찬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집회를 디자인

송을 잘할 수 있도록 앞서서 이끄는

송을 ‘특별찬송’이라고 부른 것도 이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

것입니다. 찬송 시간에 성가대만 노래

때문입니다.

과 교회에 대해 흥미가 없는 사람들

하고 회중은 듣기만 한다면 그것은 좋

을 불러 모아서 복음을 제시하고 결

은 방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지금은 성가대 찬양의 주제를 예배

단을 이끌어내는 것이 집회의 목적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의 면

의 주제나 설교의 주제와 맞추는 것

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모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급선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설교

따라서 기도도, 찬송도, 감사도, 봉헌

자와 지휘자가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

이러한 상황에서 고안된 것이 ‘성가

도 모두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찬

합니다. 설교자는 적어도 한 달 전에

대 찬양’입니다. 성가대원들에게 통일

송은 분명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자신의 설교 주제를 지휘자에게 알

된 가운을 입혀서 계단식으로 돋우어

기 때문에 성가대, 즉 회중의 일부만

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휘자가 그

진 앞자리에 앉혔다가 설교 직전에 일

찬송하고 나머지는 가만히 있는 것보

에 맞는 찬양곡을 선정하여 대원들에

어나서 찬양을 하도록 한 것은 이러한

다는 다 함께 찬송하는 것이 더 바람

게 연습시킬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목적을 이루는 데 유용하게 작용했습

직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최선의

까 말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설교

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었

방식은 성가대와 회중이 처음부터 끝

자와 지휘자가 모두 교회력⁴을 따르

습니다. 가운을 입혀서 잘 보이는 앞

까지 함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

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일이 설교 주제

자리에 앉힌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우 예배는 한 시간 내내 성가대와 회

를 이야기해주지 않더라도 설교와 성

게 하려는 것이었고, 설교 직전에 찬

중이 노래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진행

가대 찬양이 일치된 주제로 나아갈

송을 하게 한 것은 사람들의 심령을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

수 있습니다.

부드럽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

참으로 아름답고 풍부한 예배가 될 것

서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설

입니다.

또한 성가대 찬양의 순서도 지금처

교를 잘 들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럼 성경봉독과 설교 사이에 위치하는 만일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 성가대가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설교 직전에 오

그러나 이는 예배의 본래적 의미

찬양을 해야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하는

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회중

로 볼 때 부적절한 것입니다. 왜냐하

것이 좋을까요? 예배의 역사를 볼 때

의 마음 문을 여는 역할로 작용하며,

면 이러한 방식의 성가대 찬양이란

자비송¹이나 대영광송², 그리고 삼성

이는 성가대의 오용 내지 남용으로 전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아니

송³ 등은 모두 노래의 가사가 정해져

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더욱이 성가대

라 사람들 들으라고 하는 찬송이기

있고 따라서 예배의 특정한 순서에 자

의 찬양을 듣는 동안 회중은 봉독된

때문입니다. 예배학자 제임스 화이트

리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봉

성경말씀을 잊어버리게 되어 설교의

(James White) 박사는 이러한 방식

독 후에 오는 시편송이나 복음서 봉독

효과가 오히려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8) 제공: 맹성자 원로사모(믿음장로교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성가대의 찬양은 설교가 끝난 직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에 하면 하 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에 대한 응 답의 의미가 있어서 바람직한 위치라 고 여겨집니다. 미국 장로교회나 감리 교회도 복음서 봉독과 설교 사이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있어 이와 맥락 을 같이합니다. ++++++++++++++++++++++++++++++++++ [보충설명] ¹자비송(Kyrie):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 소서.”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는 노래인데, 두 번째에는 ‘주님’이라는 말 대신에 ‘그리 스도님’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세 구절 을 두 번 또는 세 번 반복하기도 하며 보통 노래로 불리기 때문에 자비송이라고 합니다. ² 대영광송(Gloria in Excelsis): 누가복음 2:14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 화로다”라는 구절을 바탕으로 만든 찬송으 로서, 지극한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돌려 보내 드리는 찬송입니다. ³ 삼성송(Sanctus): 이사야 6:3에 기록된 대로, 스랍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된 찬 송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 군의 여호와여...”로 이루어진 가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⁴ 교회력(Church year):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기념하고 경축하기 위해 교회가 사용하는 1년 의 달력을 말함.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로부터 시작해서 주님이 성육신과 하나 님을 나타내 보이심(주현절), 세례 받으심(주님 수세주일), 수난(사순절), 죽음(고난주간), 부활 (부활절), 성령으로 다시 오심(성령강림절) 또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기념하고 선포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은혜의 샘터

2021년 4월 22일

18

물 위로 떠오른 도끼? 장석현 목사

트리니티교회

인생살이에 꼭 필요한 것은 누구나

계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능력이 하나

하던 일을 잘 감당하고 유종의 미를

다 아는 의식주이며 이것을 해결하기

님께 있기 때문에 더욱 큰 소망을 갖

걷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얼마나

위해 각자에게는 나름대로 삶의 수단

게 한다.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근심과 걱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도 해결될 것을

정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의 선한 일

확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을 이루었으니...

서 도끼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상

과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 자는 잘살기 위해서 열심히 그리고 부

과연 쇳덩이로 만든 도끼가 물에 떠

지런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알뜰하게

오를 수 있을까? 도끼가 물에 떠오른

돈을 모아 이왕이면 좋은 집, 크고 아

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역행하는 불

여기서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사에게

고 나의 자아가 원하는 것인지, 하나

름답고 편안한 집에서 멋진 옷과 건강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무거운 도끼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시고 자연

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인지, 겸손한 마

한 음식을 먹으며 일가친척과 이웃 그

가 물에 빠지면 가라앉는 것이 자연의

이 순종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하나

음과 자세로 주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리고 친구들과 화기애애하고 즐겁게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에 빠

님의 종, 엘리사와 함께 거처할 믿음

앞에서 맡겨준 사명을 감당할 때 형통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진 도끼가 물에서 떠올라왔다면 과연

의 처소를 준비하는 생도들에게 외형

한 복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원치 않는 일이

믿을 수 있겠는가? 만약 깊은 물에 빠

적인 처소보다 먼저 내면적인 믿음의

발생하여 힘들고 어려운 삶을 겪어야

진 도끼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면 참으

처소가 지어져야 할 것을 교훈하셨으

믿는 성도들에게는 천지 만물을 지

하는 것도 현실적인 사실이다.

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며 불쌍한 처지에 놓인 자기 백성을

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고 전지전

돌보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심을 보여

능하신 그분께 은혜를 받고 쓰임 받는

징하며 항상 도끼날이 있는지 성찰하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인생들

오래전 이스라엘에 선지자의 생도가

주셨고 어려운 환경에서 건지시는 구

참된 종들이 있기에 그분들의 메시지

에게 여기저기서 참혹한 일들이 벌어

선지자, 엘리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속자가 되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아울

를 읽고 들을 수 있는 은혜의 샘터에

지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 공중권세

하였다.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

러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이 빌려온

나와서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와 생

를 잡은 악한 원수 마귀가 의식주 문

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

물건을 소중히 사용한 후에 돌려줘야

명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면 공중

제를 빌미로 건강한 삶을 파괴하고 근

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

할 것과 개인적인 필요와 부담에도 관

권세를 잡고 이 세상을 파괴하는 악한

심과 걱정과 염려를 통해 점진적으로

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

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은

마귀가 아무리 간악한 궤계를 꾸미고

불안과 초조한 상태 속에서 많은 스

다”고 (왕하 6:1,2).

혜와 긍휼이 풍성한 분임을 잘 드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조금도 염

내고 있다.

려하지 않으며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

트레스를 받게 하여 정상적이고 올바

엘리사는 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

른 삶의 판단과 결정을 막고 극단적인

무를 벨 때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

불의한 일을 하게 함으로써 자신은 물

에 빠지는 일이 발생하였고 빌려온 도

때때로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해보려

을 향해 나아갈 때 담대한 믿음으로

론 선량한 사람들에게까지도 해서는

끼로 인해 곤란한 처지에 놓인 생도는

고 마음먹고 열심을 내는데 그 일을

마귀를 대적하며 승리의 기쁨과 소망

안 될 불의한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외쳤다.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가로막는 세력에 의해서 계획하는 일

그리고 평강이 충만할 것을 확신한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것입니다”고 (왕하 6:5).

들이 힘들게 꼬일 때 사람들은 일의

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천성

목적과 방향을 잃고 깊은 생각과 고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

이러한 비극적인 일들을 막고 아름

선지자는 어디서 빠졌느냐고 물었고

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염려하기보다

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

답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곳을 가리킬 때 엘리사는 나뭇가지

는 심사숙고하면서 먼저 내 자신이 하

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

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

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나님의 일에 대한 확신 속에서 말씀

르게 하고 가로되 너는 취하라 그 사람

각하고 깊이 묵상하면서 얻은 답은 악

하는 기적을 행하여 빌려온 도끼를 다

과 성령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손을 내밀어 취하니라” (왕하 6:6,7).

한 마귀가 인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시 찾는 기쁨을 누리게 하였다.

이루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지 잘 살펴

있는 한 참으로 어렵고 힘들 것이라

보아야 하겠다. 아울러 도끼날을 물에

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결코

근심에 쌓였던 생도는 깊은 안도와

떨어뜨린 선지자의 생도에게 나타난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귀의 궤

큰 기쁨으로 맡겨진 사명. 곧 하려고

기적 같은 일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4)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0)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교회

제공: 김정애 권사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진리의 샘터

2021년 4월 22일

19

"목적이 분명한 예배" 김창훈 목사 덴버할렐루야교회

초대교회는 매 예배 때마다 말씀 선포 와 더불어 성찬 예식이 거행됐는데 이것 은 지금 우리가 알듯이 성만찬만을 의미 하지 않고 애찬이라고 불리는 친교의 식 사가 끝난 후에 성만찬이 진행되는 것을 모두 포함했다.

들은 풍성하게 준비한 반면, 형편이 어려 운 자들은 조금 가져오거나 아예 빈손으 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 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넉넉하게 준비해 온 성도들이 그렇지 않은 성도들과 함께 나누면 되기 때문이다.

애찬이 진행될수록 교회 내 빈부격차 로 인한 문제가 이어지자 카르타고 종교 회의에서 애찬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A.D. 397년). 교회 분열의 문제,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는 문제는 단지 애찬을 금 지한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에만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될 수 있 다(롬 12:5). 오직 그리스도만을 추구하고 받은 바 그 은혜를 함께 나눌 때 우리의 모임은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것 이기 때문이다.

당시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 도에 힘썼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였으며, 집마다 떡을 떼며 기쁨 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 님을 찬양했다. 그들의 이러한 모임은 교 회 밖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고 그 결 과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해 주셔서 교회는 날로 자라갔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내 부자들은 그렇 게 하지 않고 자신들끼리만 먹었다. 심지 어 그들 가운데는 과도한 음주로 인해 취 한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는 분명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하 지만 그 모임이 그리스도를 목적으로 하 지 않고 특정한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 의 모임을 위해 그리스도를 수단으로 삼 는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교회 모임 이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 라” (로마서 12:5)

이러한 성찬 예식은 고린도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거행되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 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그들 사 이에서 행해지는 성찬 예식이 유익보다는 해를 자아낸다고 책망했다. 당시의 식사와 성만찬을 위한 음식은 성도 각자가 준비해 왔는데 자연히 부자

애찬이 끝난 뒤 성만찬이 진행될 때 가 난한 이들은 배가 고플 뿐만 아니라 굴 욕감에 젖어있는 상태이고, 부자들은 배 부르고 취한 상태이니 그 성만찬이 온전 하지 못했을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이 나누는 식사는 사랑을, 성만찬 은 거룩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지만 실 제 그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사랑과 거룩 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성찬 예식이 진행 될수록 교회 내의 분열은 커져만 갔고 그 결과 당파가 생기기까지 했다.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S Ceylon St

S Biscay St

S Tower Rd

E Hampden Ave

그동안 우리 교회 내에서 행해진 각종 예배와 기도회, 성도의 모임 등은 과연 그 목적이 그리스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한 분이신 주님 안에서 동일 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정 작 우리는 분열되어 있지 않은지 살펴봐 야 한다. 지금 우리가 참여하는 예배와 각종 모 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

참빛교회 YouTube Channel: https://tinyurl.com/TLCCYouTube

주일1부(한어) 9:30AM 주일2부(영어) 11:00AM (Eng. Translation Available)

(YouTube 한어)

(YouTube)

어린이주일학교 9:30AM

https://ko.truelight.church

영어성경공부 Zoom: https://tinyurl.com/TLCCZoom Password: tlcc

pastorjohn@truelight.church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1년 4월 22일

20

사랑이 이긴다 박현수 목사 갈보리교회

얼마 전,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을 했습 니다. 저녁 시간, 아이들 저녁 식사로 치 폴레(Chipotle)에서 음식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카운터 기계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제 바로 앞에 있 던 사람부터 계산대 앞에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문제가 해결 되고,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제 앞에 있던 사람이 계산을 하고 나 갔고, 제 차례가 되어 계산하려고 하는 데 금액이 이상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두 개를 주문했는데 하나 값만 내면 된 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건가 했 더니 앞에 사람이 하나는 계산을 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놀라서 그 사람이 왜 그랬냐고 물으 니, 점원은 잘 모르겠다며, 아마도 그 사 람이 ‘좋은 사람(good guy)’이라서 그 런 것 같다고 합니다. 계산을 하고 서둘러 나와 보니, 그 사 람이 차를 타고 이제 막 나가고 있었습 니다. 제가 손을 흔들고 가서 "당신이 내 것 하나를 계산했습니까? 왜 그랬습

니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답하기를 ‘그저 작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사실 저는 꽤 지쳐있었습니 다. 보험회사에서 비용을 어떻게 할 건 지 결정을 내리지 않아 벌써 두 달째 해 결하지 못하고 있는 집의 주방공사, 딸 아이의 질병, 가장으로서 가정의 재정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운전을 하며 음 식을 배달하는 일 등으로 지쳐있던 저 에게 그날 저녁의 경험은 꽤나 큰 기쁨 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날 위 해 쓴 돈도 돈이지만, 그런 마음을 가 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즐거 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는 제가 누구인 지도 모릅니다.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가 나를 위해 계산해 준 것 에 대해 제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모릅 니다. 그는 그저 그의 사랑을 나눌 뿐 이었습니다. 언젠가 제 아들이 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금전적

으로 도와줄 때,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는 그 사람의 책임이고, 우리는 그저 관 대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는 것 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들의 말에 기특해하며 "그래, 맞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어야 하지”라고 말을 해줬는데, 그날 저녁의 그 사람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한 저널리스트가 루 게릭 병으로 죽 어가는 옛 교수를 화요일마다 만나 나 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모리와 함 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이제 죽음 을 얼마 남기지 않은 모리 교수님은 이 렇게 말합니다. "사랑이 이긴다네. 언제나 사랑이 이 긴다네(Love wins. Love always wins).” 기독교 신앙이 믿는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 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사랑을 받은 죄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과 관계 없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

떤 이들은 여전히 그 사랑을 거부하고 비웃고 있지만, 사랑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이 할 일을 합니 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사랑으로 사망 과 흑암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사랑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가 많습니다. 사랑을 줬는데 배신이 돌 아오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 은 대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 제나 이깁니다. 그날 저녁의 일은 아주 작은 에피소 드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에 피소드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은 곳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이 어두움 가득한 이 세상을 이깁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 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 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0, 11)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1

2021년 4월 22일

구원(Salvation)과 선행(Good Works)의 관계 선행은 구원의 목적, 결과, 열매이자 증거

사도시대 이후 교회사 2천 년 동안 구원과 선행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지 속되어 왔다. 사실 이 논쟁은 끝났다기 보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몰몬이나 여호와의 증인 같 은 역사적으로 오랜 이단들은 물론이 고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신천지나 하 나님의교회 같은 이단들은 여전히 인 간이 선행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런 율법주의적, 공 로주의적 가르침은 정통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고,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따르 고 있다. 오늘은 이 짧은 글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분명 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모태로부터 죄 가운데 잉태 되어 죄를 타고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 (the total depravity of human nature)이라고 부른다. 죄는 인간 본성의 모든 영역을 오염시켰다. 영혼과 육체, 지성과 감성과 의지, 그 리고 관계성 등 인간 본성의 모든 영 역은 죄로 물들게 되었다. 인간 본성 의 전적타락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 는 교리가 바로 인간 영혼의 죽음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죄와 허물로 우리 의 영혼이 죽어있다고 말씀한다. 모태 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그 영혼 이 죽은 채로 태어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로 태어난다. 아니 성 경은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 하는 원수로 태어난다고 말씀한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정죄와 심 판 아래 있다.

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신 새로운 길 즉 오직 믿음 (sola fide)의 길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시고, 우리 의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 스도 그분을 믿고 신뢰함으로만 우리 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 며,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 신 주님은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 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 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 도를 우리의 주님과 구주로 믿고 신뢰 할 때에 우리는 영원한 죄 사함을 얻 으며, 우리의 영혼은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죄인의 구원은 결코 행위의 길이 아니라, 믿음의 길이다.

둘째, 전적으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 간은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 한 선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차원, 수평적인 차원에서 소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선행조차 수직적인 차원 즉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 (사 64:6) 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선행 즉 절대적 으로 완전무결한 선행을 결코 행할 수 없다. 인간이 그 행위와 선행으로 하나 님 앞에 용납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 으려면 절대 완전한 선행, 완벽한 선행 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선행 은 위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완전하 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도 단 1초의 예외도 없이 매 순간 그렇게 사랑하는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나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믿고 의지하는 순간 우리는 성령을 통하 있는 사람은 없다. 로마서 3장 12절은 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며 성령은 우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 리 가운데 내주하시기 시작하신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 도다"라고 선포한다. 다 함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 셋째,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선행으로 의 옷을 입혀주시고, 주님의 의를 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 즉 선행으로 하 리에게 전가시킴으로 우리 역시도 예 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는 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의인이라 고 칭해 주신다. 이것이 영단번에 일어 자는 없다. 따라서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나는 칭의의 사건이다. 동시에 그 칭의 없다. 선행이라는 공로와 자격을 통해 의 사건이 일어나는 때에 하나님은 우 서 구원받을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하 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 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구원을 받 신다. 확정적 성화 (definitive sanc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 tification)이다. 영단번의 성화이다. 의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롭지 못한 우리가, 거룩하지 못한 우리 가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의롭고 거룩 하다고 여김을 받게 된다. 결국 연합과 칭의와 확정적 성화의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다섯째, 하나님 앞에서 거듭남, 그리스 도와의 연합, 성령내주, 칭의, 양자됨, 확 정적 성화를 경험한 성도는 구원의 결과 와 열매로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 의 친백성이 되어간다 (딛 2:14). 에베소서 2장 10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 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 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 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믿 음으로 구원받은 목적이 바로 선한 일 을 하기 위함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 고 있다. 결론적으로 선행은 결코 구원의 조건 이 될 수 없다. 도리어 선행은 구원의 목적이며, 결과이며, 열매이며, 증거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행을 행하도록 이 끄시고 힘을 주시는 분은 우리 가운 데 내주하시는 성령이시다. 바로 이런 분명하고 확실한 복음 진리에 우리의 믿음을 세울 때만 우리는 날마다 영 적으로 자라나고 성숙할 수 있게 되 는 것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제공: 서선녀 사모


에콰도르 이야기

22

2021년 4월 22일

(18회)

장미가 사람보다 비싸다고! 26 장미꽃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몇 있습 니다. 그 중 하나가 에콰도르입니다. 에콰 도르는 화훼산업만으로도 상위권에 들어 갑니다. 특히 장미꽃은 주요 수출품입니 다. 에콰도르의 경제 규모는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 기준 중 남미 33개국 중 7위 수준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유럽에서 장미꽃을 가 장 많이 수출하는 네덜란드와 장미꽃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러시아가 무역 분쟁 이 일어 거래가 끊겼을 때 장미꽃을 수입 한 나라가 에콰도르였습니다. 1997년 러시 아에서 열린 국제 꽃 박람회에서 에콰도 르 장미가 금상을 타면서 에콰도르는 세 계 제1위의 장미 수출국으로 자리를 굳혔 습니다. 그런데 에콰도르 장미꽃은 향기롭고 예 쁘지만, 그 생산방식은 지극히 전근대적이 고 혹독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너 무 독하다고 쓰지 않는 제초제를 사용한다 고 합니다. 농장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에 혹사당한다고 합니다. 에콰도르 보건 당국은 국가 주요 산업인 화훼산업 노동자들이 맹독성 제초제로 생 명이 깎여 나가는데도 건강실태조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유엔이 나서서 조사한 걸 보면 어린이가 대거 포 함된 에콰도르 화훼농장 노동자의 60%가 현기증이나 눈이 흐려지는 증세로 고통당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생해도 이들 꽃 농장 노동자들 이 받는 임금은 월 200달러 정도라고 합니

다. 2020년 에콰도르 최저 임금은 400불로 책정되어 있지만, 노동자의 32% 정도만 최 저임금 이상을 받는 정규직이라고 합니다. 국가 기간산업인데 이렇게 방치하는 이 유로 사회적 배경을 들고 있습니다. 에콰도 르의 원래 주인이던 다수 원주민들은 유럽 이주민들에게 떠밀려 하층 빈민이 되었습 니다. 이런저런 차별을 당하던 원주민들이 현실을 뜯어고치겠다고 힘을 모으자 정부 가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무 장투쟁을 벌였습니다. 꽃 농장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도 정부가 모른 척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합니다. 2020년 5월에 에콰도르 정부는 장미에 대해 미국이 일반특혜관세제도(GSP)에 포 함시킬 것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 니다. 에콰도르 장미에 대해 미국은 이전 까지 6.8%의 관세를 부과해 왔었습니다. 2020년 10월 30일, 주 에콰도르 미국대 사관은 백악관의 결정이라며 에콰도르 장 미 수입에 관세를 철폐한다고 밝혔습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에콰도르 장미가 미 국에 무관세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미 국에서 수입하는 장미 중에서 에콰도르 장 미가 4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장미는 식용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에콰도르 중부 고원지대 화훼 농들이 정성 을 들여 재배한 식용장미는 이미 뉴욕, 스 페인의 식당에서 진귀한 요리로 인기를 끌 고 있습니다. 장미의 비타민 C 함유량은 레몬의 17배 라고 합니다. 비타민 A 함유량은 토마토

의 20배라고 합니다. 피로회복, 피부 보습 과 재생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장미 잎 요리는 칼슘도 풍부하다고 합니 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수입허가를 받 았습니다. 70대이지만 활기에 넘기는 ‘로베르토 네 바도’ 씨는 스페인 출신으로 일조량이 많 아 장미재배 최적지로 꼽히는 에콰도르로 이주해 올 정도로 장미 재배에 푹 빠진 분 입니다. 그의 농장에는 300만 그루의 장미 가 자라고 있는 데 이 가운데 10만 주에 는 농약을 치지 않고 식용장미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금 떫으면서 달콤한 장미 잎 요리를 먹으면서 "장미 잎 요리는 상추 와 비슷하다”면서 "에콰도르에서 시작된 식용장미 재배 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확신 한다!”고 말했습니다. 식용장미는 보통 장미와 같은 종류이지 만 유기농 비료를 사용하고 어떠한 화학 제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골치 아픈 벌 레 퇴치를 위해 마늘 용액을 뿌리고 온실 주위에도 마늘을 심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발 2천800m의 고지에 있는 그의 농 장에는 500명의 일손이 있는 데 연 2천만 주의 장미를 수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식용 장미는 전체 장미 생산량으로 볼 때 일부 에 불과합니다. 전체인구 1700만 가운데 10만 명가량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화훼 산업은 연 13%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작년 에는 수출 규모가 8억 달러로 국내총생산 (GDP)의 2%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식

임동섭 목사

에콰도르 선교사

dslim3927@hotmail.com 용장미 수출은 전체 꽃 수출의 1% 정도 로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날 (또는 어버이날)과 아버지날에는 많은 사람 들이 선물로 꽃을 택합니다. 그 중에서도 장미는 인기가 좋은 꽃입니다. 일본은 어머 니날엔 붉은 카네이션을, 아버지날에는 노 란 장미(또는 흰 장미)를 선물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을 한날(어버이 날, Parents' Day)로 기리는 나라는 한국 과 알바니아입니다. 많은 나라들(미국, 중 국, 일본, 인도, 영국, 캐나다, 칠레, 콜롬비 아, 프랑스, 터키, 싱가포르, 멕시코 등)이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기리고 있습 니다. 이 나라들은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기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어머니날( 母の日)은 해마다 5월 둘째 주 일요일입니 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날(父の日)은 6월 셋 째 주 일요일입니다. 일본인의 어머니날 선물 1위는 꽃(31%), 2 위는 건강식품(22%), 3위는 화장품 세트였 다고 합니다. 한국의 부모님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 1위는 현금(30%), 2위는 화장품 (20%), 3위는 건강식품(18%)이었습니다. 반 면에 가장 싫은 선물은 책이었다고 합니다.


좁은 길을 걸으며

2021년 4월 22일

23

인내의 경주를 마치려 함에는 백신 접종이 원활해지면서 일 년이 넘 도록 우리의 모든 지경을 어렵게 하였던 코로나바이러스도 이제 끝을 맞이할 것 이란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참으로 어 렵고 힘든 시간이었고 그 가운데 고통 을 받은 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올해 여름 전에는 집단 면역이 이루어 져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 란 전망을 접하면서 드디어 끝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4차 대유행에 접어들고 있다는 뉴스를 대하면서 금방 끝날 것이라는 기 대가 섣부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끝날 것 같은 어려움이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고 계속 우리 모두의 발목 을 잡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 각자의 믿 음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봅니 다. 많이 달려왔다, 다 된 것 같다 싶어 마음을 놓으려고 하는 그때, 아직 아니 라는 사인과 함께 여전한 도전에 직면 하는 것입니다. 이제 걱정할 거리가 뭐 가 있겠나 싶어 했는데 덜거덕덜거덕 거 리게 만드는 문제에 봉착하는 굴곡 있 는 개인들의 삶과 같이 우리 신자들의 믿음의 삶도 어려운 달리기 경주와 같습 니다. 이 고비만 넘어서면 이제 끝이겠 지 하고 넘어서면 또 한고비가 눈 앞에 펼쳐지니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경주자인 셈입니다. 각자 믿음의 마 지막을 향해 힘든 경주를 감당하고 있 는 레이서(Racer)들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달려가라고 주님께 서 정해주신 각자의 레인 (Lane)이 있다 고 하겠습니다. 경주자들은 각자 정해진

레인을 따라 마지막 경주가 끝나는 마 지막 지점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우 리가 올림픽 경주하는 것을 보아 알듯 이 짧은 것은 100미터 부터 긴 것은 만 미터도 있고 42킬로를 뛰어야 하는 마 라톤 경주도 있습니다. 믿음의 삶의 레 이스도 이와 흡사합니다. 전력 질주해야 하는 구간도 있는가 하면 보폭을 조절 하면서 장거리에 맞는 주법으로 뛰어가 야 하는 구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레 인은 똑바른 직선 라인만 있는 것이 아 니라 곡선 라인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너무 길게 느껴지고 지치 고 심적으로 힘들어 포기해 버리고 싶 을 때도 있지만 믿음의 경주는 하나님 이 내게 달려가라고 정해주신 그 라인 을 인내와 끈기로 경주를 마치는 그때까 지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 기에 레인을 벗어나거나 못 하겠다고 중 간에 주저앉아 버릴 수 없습니다. 중간 에 포기해 버리면 실격처리는 당연한 것 이고 아무것도 이루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 풀 코스 또는 하프 코스를 여러 차례 뛴 경험이 있는데 그 레이스를 할 때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구간이 35킬로에서 40킬로까지의 지점이었습니다. 발바닥에 찢어질 듯한 고통이 오기도 하고 다리 에 경련이 일어나고 심지어 온몸이 경직 되는 고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목적지가 멀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너무 힘들어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포기 하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포 기하면 엠블란스가 와서 편하게 데려가 주겠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뒤로 되돌아 갈 수도 없기에 끈기를 발동시켜 완주하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모든 경주에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100미터 달리기 경주자들은 보기에는 단 몇 초 뛰고 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 0.01초라도 줄이기 위해 얼마나 피 땀 나는 훈련을 얼마나 오랫동안 하는 지 모릅니다. 만 미터 뛰는 이는 그에 맞 는 고통, 42킬로를 뛰어가야 하는 장거 리 레이서는 또 그에 맞는 고통을 감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전의 경주를 위 해 감당해야 하는 예행 훈련은 실제 뛰 는 거리의 몇 배의 러닝을 해야 하는 것 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감당하는 믿음의 레 이스에도 인내와 끈기를 발동시켜야 합 니다. 그래야 마지막 그 지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끝을 보리라, 이 레이 스를 기필코 마치리라는 결연한 심기일 전이 그때 그때 필요한 것입니다. 시작 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마치는 그 끝의 자리에 서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뉴스 가운데 종교 인구가 줄고 있다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갤럽이 조사한 미국 기독교 보고서에 의하면 교회에 소속된 교인이 2000년대 들어 급감하는 추세라 는 것입니다. 20년 사이에 무종교인들은 2배 이상 늘었고 밀레니엄 세대로 분류 되는 젊은 층을 위시하여 교회와 거리를 두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입니 다. 주된 요인으로는 사회의 개인화 현 상의 심화와 함께 많은 이들이 교회 등 록을 하지 않은 채로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믿음의 긴 레이스는 오직 인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내로 감당하여야 그 마지막 끝에 이를 수 있음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 아 닐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과 과제는 뭔지 판단이 되지만 문제는 해결방안을 떠올릴 수 없 다는 것입니다. 참 많이 금년 봄을 기다렸습니다. 왜 냐면 겨울이 너무 길고 추웠기 때문입니 다. 잊혀지지 않는 2월 14일 주일을 맞 는 금요일부터 기온이 내려가 주일 아침 이 화씨로 -1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교 회 안의 수도 물이 다 얼어버렸고 결국 파이프가 터져 급하게 봉합해야 했습니 다. 그래서 언제나 겨울의 끝을 볼까 고 대하였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다 맞이하는 봄기운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드디어 왔구 나, 이제 겨울이 끝났구나, 너무도 기다 린 봄이다 그 설렘을 가졌더니 섣부른 생각이라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지 4월 중순에 눈이 오고 추위가 여전히 기세 를 떨칠 거라는 예보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레이스는 아직 마지막 에 도달하지 않았고 레인 위에 있습니 다. 마지막에 가까울수록 고통의 수위도 올라갑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 는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달려가라 하시며 경주자의 사명을 주셨 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경주 자로서 오늘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인 내심을 발동시켜 이 경주를 마치기 위해 함께 달려갈 것을 권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제공: 이영범·이은정 성도


베드로전서 강해

2021년 4월 22일

24

“누가 섬기는 자인가?(1)” <베드로전서 5:5-7>

15명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바나 바 미션을 다녀왔습니다. 바나바 미션은 매년 미주리주에서 펼쳐지는 장애자들을 위한 캠프입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 는 장애자들 200명이 모였습니다. 부모 들은 자녀들을 캠프에 내려놓고는 모처 럼의 휴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 년 내내 매일 자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 자체가 힘든 것입니다. 당연히 자녀이 기 때문에 매일 한결같이 그들을 돌보 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도 마음 편히 쉴 틈이 없다는 것이 장애자들을 둔 부 모들의 고통입니다. 그런 부모들에게 한 주간의 충분한 휴가를 주고 위로하는 것 이 바나바 캠프의 목적입니다. 동시에 장 애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서로의 처지 를 나누며 힘을 얻는 것도 중요한 목적 입니다. 캠프의 목적은 단지 장애자들이 나 부모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봉사 자로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 고 있습니다. 이번 캠프에는 봉사자들이 장애자들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275명의 봉사자들이 참여한 것입니다. 그중에 우 리 교회 청소년들 15명이 참가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한 봉사자가 한 명의 장애 자만을 돌보았습니다. 사실 육체적으로는 어떤 선교나 캠프 보다도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 나 봉사자들 모두에게 얼마나 큰 감동과 도전이 오는지 모릅니다. 참가한 아이들 몇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얼마나 힘들 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한결 같이 밝은 얼굴로 너무 감동되고 좋았다 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다녀왔 던 모든 선교나 수련회 중에 이처럼 반 응이 은혜스러운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 번 갔던 친구가 또 갑니다. 벌써 여 러 해 참가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중 에 한 친구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 이번 바나바 캠프는 제가 지금까지 경험 했던 것 중에 가장 놀라운 일이었습니 다. 이들을 섬기는 것은 이 땅에서 천국 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느꼈습 니다” 어떻게 젊은 친구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오늘 RCC와 유스그룹예배에서는 이들이 간증하는 시 간을 가질 것입니다. 저는 이들의 빛나는 얼굴과 간증을 들 으면서 지난 한 주간 내내 생각하는 것 이 많았습니다. 왜 주님이 섬김을 받기보 다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을까를 깊 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섬기는 것은 쉬 운 일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피곤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리 자체가 섬 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남의 밑에 있기 보다는 위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 스 스로가 섬김의 본까지 보여주시면서 따 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없는 억지 로의 섬김은 금방 지칩니다. 피곤합니다. 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진정 마음을 다하 는 섬김은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감 동이 넘칩니다. 사실 섬기라고 하신 것 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지 난 주일에는 섬기는 지도자에 대해서 말 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섬기는 교인 들에 대한 것입니다. 지도자는 소수입니 다. 대부분은 일반 성도들입니다. 물론 지도자도 당연히 성도에 포함됩니다. 교 회는 결코 지위가 정해져 있는 곳이 아 니기 때문입니다. 리더나 평신도 우리 모 두가 들어야 할 섬김의 도리가 오늘 본 문에 나와 있습니다. 섬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섬기는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5절 전반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 종하고” 지난주일 섬기는 지도자에 대한 말씀 을 드렸습니다. 어떤 말씀이었는지 기억 이 나십니까? 교회의 지도자는 결코 다 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섬기는 사람입 니다. 부득이함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 으로 즐거운 뜻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사 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주일부터

저희 교회의 모든 음식이 아주 맛이 있 어졌습니다. 봉사하는 분들의 얼굴이 밝 아졌습니다. 감사와 즐거움으로 섬기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섬 기는 지도자는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 다. 직위가 높다고 명령하고 지시하지 않 습니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말하기 전 에 자신이 먼저 합니다. 이런 섬기는 지 도자에게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바로 순 종입니다. 순종은 억지로 말을 듣는 것 이 아닙니다. 아주 기꺼이 순종하는 것 입니다. 순종의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존 경이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일 을 하되 자원하는 마음, 즐거운 마음으 로 본을 먼저 보이면 존경을 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젊은 자들은 모든 교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리더인 장 로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나이 때문이 아닙니다. 직분 때문이 아닙니다. 경륜이 높아서도 아닙니다. 존경하기 때문에 순 종하는 것입니다. 시편 12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 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 이다” 섬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순종하 려는 태도가 몸에서 배어 나옵니다. 반 대로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교만 한 태도가 얼굴에 나타납니다.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의견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자 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남을 섬길 마 음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 말 씀은 섬김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이해 할 수 있는 한 가지 그림을 보여주고 있 습니다. 한 집에 상전이 있고 종이 있습 니다.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는 기색이 보 이면 종은 즉시 주인에게로 달려갑니다. 고개를 숙이고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립 니다. 그런데 종이 뚫어지게 주시하는 것 이 있습니다. 주인의 손입니다. 주인은 웬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만하면 말로 하지 않습니다. 종에게 길 게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손 끝 하나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손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 손이 지시하는 대로 종은 달려나갑 니다. 들을 지시하면 들로 나가 일을 합 니다. 광을 가리키면 광을 청소하고 물 건들을 정리합니다. 산을 지시하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옵니다. 여종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주인의 손만을 바라봅니다. 손 이 부엌을 가리키면 그날은 부엌에서 음 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불을 가리키면 이불을 빨고 풀을 먹이는 일을 합니다. 종은 그날 주인이 어떤 일을 지시하든 그것을 따를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이 런 순종이섬기는 자의 자세여야 합니다. 이런 섬김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해 요소는 누구를 언제 섬겨야 할 지에 대 한 권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 구를 섬겨야 하는 지를 내가 결정하겠다 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아무나 섬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섬길 만해야 섬기겠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판단을 누가 하는 것입니까?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 가 판단해서는 섬길만한 사람이 나타나 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된다고 합니다. 일 좀 맡기려고 하면 거절하는 이유가 얼마 나 많은 지 모릅니다. 섬김은 바로 순종 훈련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섬길 사람 을 찾지 못하면 누구도 섬길 수 없습니 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섬기지 못하면 나중에는 섬길 힘이 나지 않습 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나도 섬기는 삶을 살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섬기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 중에서도 나중에 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섬길 기회가 와도 그때는 의욕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강해 몇 년 전 한 목장에서 있었던 일이 기 억이 납니다. 그 목장은 활기가 넘치고 은혜와 기쁨이 충만할 때였습니다. 한 목 원의 가정에서 목장 모임을 갖게 되었습 니다. 사실 그전에는 목장에 잘 참여하 지 않던 분입니다. 그 집에서 목장을 하 면 그 시간에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목 장이 끝나면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목장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마음을 다해 목 원들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간 것입 니다. 한 번은 그 가정에서 목장을 하는 데 음식도 얼마나 푸짐하게 정성을 다해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더 놀랍고 감사한 것은 여름에 뒤뜰에서 목장을 하기 위 해 오랜 시간 준비해 놓은 것이 있었습 니다. 목원들이 모기에 물릴까 봐 목장 하기 2달 전에 한국에서 모기장을 주문 했습니다. 그 모기장을 뒤뜰 규격에 맞게 자르고 본인이 직접 바느질까지 했습니 다. 천장에는 도르래를 설치했습니다. 평 상시에는 기둥에 모기장을 묶어 두었다 가 목장 할 때는 도르래를 내려서 모기 장 안에서 목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분 의 섬기는 마음에 온 목원들이 감동을 했습니다. 내가 섬길 사람은 절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옆에 있습니다. 내가 섬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 다. 하나님이 이미 내게 섬기라고 주신 분들이 옆에 있습니다. 그분들을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이전에 가까운 사 람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목자에게 순 종하고 장로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훈련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도 순종하 기가 어렵습니다. 섬김을 갖지 못하게 하는 두 번째 방

2021년 4월 22일

해 요소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권리 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 구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합 니다. 첨단 장비가 없던 시절에 선장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항로를 결정했습니 다. 아무리 올바른 방향으로 가더라도 자주 항로를 벗어나곤 했습니다. 그때마 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계획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리 방향을 잘 알고 빈틈없는 계획을 세 우고 있어도 항로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도를 따 라야 합니다. 내가 기준이 아닙니다. 하 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내 기준으로 섬기려는 사람은 결국 섬김의 길에서 벗 어나고 맙니다. 미국 전 국무장관이었던 존 덜레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재 의 문제는 진정한 문제가 아니다. 작년에 발생한 문제를 아직도 가진 경우가 정말 큰 문제이다” 지난 일을 가지고 자꾸 문제를 삼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문제 를 풀기 위해서 마음을 모아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작 년 만이 아닙니다. 10년 전, 20년 전 문 제를 아직도 마음에서 풀지를 못합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 섬기는 자세가 나 오지 않습니다. 주인 앞에 서 있는 종은 절대 어제 문제를 마음에 품고 있지 않 습니다. 오늘 주인의 손이 어디를 지시하 는 지만을 봅니다.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 게 겸손하게 주님의 손만을 바라보는 순 종의 마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섬기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5절 하반절을 보세요.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것은 겸손으 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 는데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는 할 수 없습니다. 관리를 잘해놓은 테니스 코트 에서 운동을 한 적이있습니다. 여러 사 람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는데 관리인이 오더니 테니스화를 신지 않은 사람은 코 트에서 나가 달라는 것입니다. 다음부터 는 제대로 신고 와서 하겠으니 이번에 는 양해해달라고 했더니 안된다는 것입 니다. 만약 룰을 어기고 계속하면 폴리 스를 부르겠다고 아주 강경하게 나왔습 니다. 결국 테니스화를 신지 않은 사람 은 운동할 수 없었습니다. 섬기는 사람 들이 반드시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바로 겸손입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겸손의 옷을 평생 입고 살았던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 가 고백했던 겸손 시편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131:1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 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 쓰지 아니하나이다” 그는 가장 높은 자리인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초심 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평생을 지 켜주었던 보배와 같은 말씀이 이 말씀 입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삶의 원칙이 있 었습니다. 바로 겸손이었습니다. 절대 주 제넘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늘 자 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살펴보았습 니다. 자신을 살펴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 보았습니다. 마음이 교만하지 않도록 늘 점검했습니다. 마음은 우리 속 같은 깊 은 곳에 있습니다. 누구도 그 마음이 어 떤지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추측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마음 가는 대 로 말이 가고 행동이 따라가는 법입니 다. 결국 마음먹은 것이 그 인생을 결정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에 항상 온 도계를 들이댔습니다. 마음의 온도를 민 감하게 측정했습니다. 요나단에게 이스보셋이라는 아들이 하 나 있었습니다. 사울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스보셋은 사울과 요 나단이 죽을 때 유모가 가까스로 목숨 을 살린 사람입니다. 도망가다가 떨어져 서 다리까지 절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 무도 모르는 시골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왕조가 바뀌면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납 니다. 전 왕가의 자녀들은 하나도 살리지 않습니다. 언제 반역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스보셋을 찾아서 왕궁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 고 왕자로 대우를 했습니다. 언제나 왕의 식사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다윗은 마지 막 죽는 순간까지 그 마음을 변치 않았 습니다. 끝까지 이스보셋을 보호해 주었 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온도계입니다. 사 울에 대한 미움이 생길만한 합니다. 그 가 했던 모든 일을 부정하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사울을 모함하는 소리가 반드 시 들릴 것입니다. 안 좋은 소리를 들으 면 다윗도 마음이 변할 수 있습니다. 하 지만 이스보셋을 매일 보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렸던 것입니다. 겸손은 이미 우리 마음에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령안에서 예수님처럼”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비전

예배 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 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25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변화프로젝트

2021년 4월 22일

15회

26

내적치유 가이드

7. 치유의 제시: 폭풍, 교훈, 가르침과 기도 프로젝트 (4)

3. 치유를 위한 변화의 제시 폭풍을 극복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폭풍은 우리의 마음의 혼란과 아픔과 상 처를 이야기한다. 상한 감정에서 치유를 받 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치 유를 받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나님의 교훈이 무엇인가 또 우리 가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서 우리가 치유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지 결정이 된다. 여기에 제시하는 것들은 우리의 삶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하 나님의 지혜와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다. 30 일 동안 주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다음 의 것을 연습하기를 권한다. 1) 성경말씀 읽기: 성경을 읽고 묵상하되 복 음서를 매일 30일을 하루에 30분씩 읽고 예수님 에 대해서 배우라. 당신의 감정의 아픔과 마음의 상처의 폭풍은 하나님의 관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이해하는 것 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나님의 교훈을 이 해하고 순종하는 가에 대해서 치유의 과 정이 빨라질 수도 혹은 늦어질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라. 당신이 하나님의 치유를 체험하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경 험하게 될 것이다. 기도: “성령님, 저에게 성경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주세요. 그래서 나 의 문제에 대한 해답과 지혜를 얻게 은총

을 베풀어 주세요.”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당신에게 감명을 주는 성경 구절을 찾아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매일 묵상하라. 다음의 성구는 내가 곤경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

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성구이다.

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0~34).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 고

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

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

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

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

라”(롬 8:31~39).

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

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

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

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

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

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리라” (요 14:1~3).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6~9).

2) 기도의 훈련: 기도를 하루에 30분을 15 분은 말하고 15분을 조용히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라. 사람들이 치유 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한가지도 하 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연습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침묵의 기도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힘쓰는 사람이 치유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 을 들을 가능성이 많고 치유가 빠르다. 또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 “주님, 당신을 통해서 모든 것이 가 능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저의 상한 마 음을 치유해 주세요. 저에게 상처를 준 모 든 이들을 용서합니다. 부정적인 음성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용서합니 다. 제가 더 이상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로 부터 고통당하지 않도록 저의 기억을 치유 해 주세요. 당신의 사랑과 평안과 기쁨으로 나의 마음을 채워 주세요. 제가 다른 이들 을 도울 수 있도록 저를 치유해 주세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

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

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

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

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

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

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1년 4월 22일

27

생명 노윤호 장로(덴버제자교회)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음을 우리가

각 부서에서 수고하는 부장, 총무들에

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

배워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계절이

게 일할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주시고,

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 안에 있

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있게 하신 하나님, 인생의 희로애락을

영육간의 강건함과 각 가정에 주 예수

음을 알게 됨은 우리가 시기, 질투, 탐

이루게 하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듯, 계

로 인한 평안함이 넘쳐나게 하시기를

욕, 업신여김 등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

이는 넷째 날이니라.” 아멘

절의 다양성이 우리로 하여금 때와 시

기도합니다.

씀대로 살려고 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

절을 알게 하고 또한 인생의 기한을 알

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화사한 날씨를 허

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인생을

하나님이 만드신 4계절 중 우리가 지

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추운 겨

준비하게 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금은 겨울과 봄 사이에 있습니다. 봄은

그 증거는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아

울과 생명을 부르는 봄이 엎치락뒤치

욱 알아 가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생명을 부르는 계절입니다. 땅속에 죽은

가기 때문에 어둠속에서 행하는 음란,

듯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고개를 들고

헛된 명예, 물질사랑, 교만 등을 멀리함

락 하는 계절입니다. 콜로라도의 특이 한 날씨처럼 변덕스럽게도, 어떤 날은

하나님, 이 시간 기도 하옵는 것은,

나오는 계절입니다. 하나님, 우리도 이

에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우시사

더운 바람이 마치 여름 같은 느낌을 주

올해도 우리 교회가 기도로 준비 중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 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이러한 모

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갑작스럽게 눈을

여러 가지의 행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의 마지막이 올 때에는 아마도 천국

든 것들을 우리 마음속으로부터 몰아

날림으로 겨울이 다시 온듯합니다. 그

잘 준비 하고 진행 할 수 있도록 인도

의 봄철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러다 어느새 인가 잘 알지 못하는 가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라 하시는 계절, 그날에 우리 주 예수

운데 봄이 와 있음을 깨닫게 됨은 땅

그리스도로 인한 모든 생명 있는 자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 살게 하시

속에 있던 잔디가 푸르스름하게 나오고

그리고 교회의 핵심 목표는 하나님

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려고 이러한 세상 풍조로부터 건지시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남을 보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구령사역일 텐

능력을 경험할 때, 우리가 그 놀라운 기

모든 죄 가운데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

기 때문입니다.

데, 우리교회가 이 일에 힘쓰며 나아가

적을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려고 십자가에 오르사 보배로운 피를

게 하옵소서. 구원 받았음을 즐거워하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경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계절을

는 성도들로 다 함께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 그날을 위해 우리 모두가 신

말씀으로 만드셨음을 우리가 보았습니

을 즐거이 예배하며 그리스도의 희생적

앙으로 준비하며 생명 있는 믿음의 모

다. 지구가 24시간 동안에 스스로 한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도록 우리의

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바퀴를 자전하면 하루가 되고, 달이 지

심령을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를 더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속에 서 잠들다 그냥 쓰러져 버리는 인생들

구를 한 바퀴를 돌면 한 달이 되고, 지 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1년이 됨과,

이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교역자, 장

되게 하지 마옵시고, 깨어 근신하는 신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와 방향에 따라

로, 권사, 안수집사, 구역장, 위원장들과

앙으로 그날을 보며 더욱 말씀대로 살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기도 드립니다. 아멘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4월 22일

28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함께 한다는 것 시편 Psalms 133편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시기가 기원전 1010년~970년이니, 우리는 그 당시 중동의 가족법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미국의 원주민 사회처럼, 토지와 목초지는 사거나 팔거나 나누지 않은체 아버지에게서 아들들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니 유목민들이었던 히브리민족들은 형제들이 늘 함께 동거할 수밖에 없던 때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열 두형제들이었지만, 배다른 형제들 사이에 동거함이 불편함도 있었던 것은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 넘긴 사건이었습니다(창13-27장참고). 시인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선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단순히 한 가정의 형제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모든 민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고 성전 건축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이스라엘(야곱) 12 지파(형제)들이 정치적 신앙적으로 하나되는 구심점을 만들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통일 왕국이 이루어졌지만, 사울 왕가를 따르고 지지했던 사람들과 심지어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등 갈등과 아픔을 계속하여 겪을 수밖에 없었기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 하나님의 은총인 영생을 노래하게 된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더불어 함께 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보냄 받은 증언자 요한복음 John 20:19-23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 게 평안함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 ........................................................................................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탄생 때도“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눅2:14)라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처음 하신 인사도 “너희(여러분)에게평강(평화)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주님께서 평화를 빌 때, 제자들에게 모든 두려움과 슬픔이 사라졌고 큰 기쁨이 생겨났습니다(20절). 얼마나 두려움이 컸으면 모인 곳의 모든 문을 다 걸어 닫았겠습니까?(19절). 오늘 본문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파송인데, “아버지께서나를 보내신 것 같이(요3:16절) 나도 너희를 보낸다”하신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된 후에는 예수를 통하여 세상에 증언자로 파송된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둘째는 성령전달인데, 숨을 내쉬며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하셨습니다. 우리를 세상으로 내보내시면서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을 감당하도록 성령의 능력을 힘 입혀 주십니다. 성령의 임재와 성령 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나,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23절). 우리(나)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ooreekmc@hanmail.net>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감동이 있는 글 교회밖으로 쫓겨나신 예수

2021년 4월 22일

29

그리스도인이 용기를 잃으면

정신 차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동안 나는 건물 속에 교회만 바라보았다. 교회를 바라보니 목사님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자신감이 꺾이면 모든 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친척 형님 중에 한 분은 젊어서 얼마나 똑똑하고 당당했는지 그 앞에 나서서대 화로 이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이 나의 신앙의 전부요 안방인 줄 알고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만났는데 그 젊은 시절에 기백은 다 어디로 가고 한낱 연약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보니 주님은 온데간데 없으시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아우들의 이야기에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자신의 소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볼 수가 있었다. 속된 표현으로 기가 다 빠진 것 같았다.

주님의 십자가가 보이지를 않는다. 장식품이 되어 퇴락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만든 십자가에는 주님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를 않았다. 예수님을 말하나 거기에 능력도 기적도 보이지를 않는다. 예수님의 보혈로 적셔진 십자가가 아닌 사람들이 만든 모조품 십자가에는 주님의 임재 하심을 볼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요란한 소리만 가득한 교회에서 누가 큰 자인가의 논쟁이 벌어지고 네가 잘났느니 내가 옳으니 한창 입씨름으로 가득하다. 내가 보는 교회 안에는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시려 오신 주님의 뼈아픈 고통의 몸서리 치시는 눈물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죽어 가는데 그 누가 가서 저들에게 피의 복음을 전할꼬? 목숨 걸고 주를 위해 죽으러 가자고 선뜻 나서는 자가 없다. 그동안 교회는 내 배만 채우느라 비만이 되었고 본질을 잃었고 사명도 잃었다. 주님의 피 묻은 절규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내가 믿고 구원받았으니 세상은 어떻게 되든 내가 알 바가 아니라는 표정이다. 저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자가 없다.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자가 없다. 교회 밖 광야로 쫓겨나신 주님의 자리에 현대판 교황과 권세자들이 그의 자리를 가득 채우고 직분 타령하며 왕노릇 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과 행함도 없이 입으로만 부르는 찬송 소리가 가증스럽다. 주님 없는 교회에서 누구를 찬양하며 누구를 예배하고 있는가?

사람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감이 없으면 절대로 전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비신자들의 이론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내 등 뒤에 빽이 되어 주신다는 자신감을 잃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당하게 행동하거나 소견을 표현할 수 없고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 앞에서 기죽어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구두닦이 하시는 부부를 오랜 세월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비록 힘든 삶으로 자랑하거나 내세울 것이 없어도 그들 부부는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 누가 그들 부부 앞에서 하나님을 욕하거나 비하하는 말을 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전능하신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신데 왜 욕을 하십니까 하고 당당하게 말하곤 하였다. 그분들 앞에서 하나님을 욕하다가 사과를 하고 가는 것도 보았다. 그리스도인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님 믿는 것에 대해 당당하지 못할까?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담대해야 한다. 사람이 호랑이를 만나면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 역시 사람을 두려워한다.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당당한 그리스도인 앞에서 비신자들도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회복되어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의 가슴에 보혈의 피가 흐르게 해야 한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많아서 이곳에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주님의 피 묻은 손으로 우리의 가슴이 어루만져져야 한다. 나는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셔서 주님이 왕국을 다스려야 한다.

담대한 자만이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다스리며 이끌고 나갈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군사로서 용맹을 잃지 말아야 한다.

주님을 다시 모셔 드려야 한다. 교회에 모든 사람들은 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다시 죽어야 한다. 천국은 내가 죽어야 갈 수 있다. 내가 썩어져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이미 이긴 싸움이다. 그리스도인이 용기를 잃으면 믿음을 잃은 것이요 그리스도인이 담대함을 잃으면 영적 전투에서 이미 패배한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주 안에서 담대한 성도로 살자. ☆자료/ⓒ창골산 봉서방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가증한 거짓의 옷을 벗자.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물든 교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31

미국 TOP 10 미술대학 포트폴리오 준비반! 100% 합격률 및 장학금!

콜로라도 3만 동포에게 알립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의 경과보고를 드립니다. 희망찬 신축년 2021년이 밝았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의 어려운 시기에 동포 여러분의 건강과 평안을 항상 기원합니다. 2020년은 6.25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하기 위하여 남침하여 6.25 전쟁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남한이 북침하여 전쟁이 발발했다고 억지 주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 국토를 초토화한 이 전쟁은 대한민국의 국가 존립을 위기로 몰아넣었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눈부신 경제 기적을 이루어 세계에서 경제 10위 권의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이곳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희망찬 미래의 비전을 계획하고, 이웃을 도우며 삶의 발전을 추구하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하여 한 16개국의 유엔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대한민국 국민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동안 참전용사기념비 건립위원회의 헌신적인 투지와 노력의 결과로 오로라 시로부터 콜로라도 대학병원 캠퍼스 내의 아름다운 제너럴스 공원(Generals Park)안에 있는 기념비 부지를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로 세울 수 있도록 기증받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제너럴스 공원은 한국전쟁 휴전 당시, 미국 제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심장질환 치료를 피츠먼스(Fitzsimons) 육군병원에서 받았을 때 만들어져서 요양했던 유서 깊은 공원입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기념비 부지에서 동포사회에서 중요한 행사를 가질 수 있는 유용한 장소가 될 수 있는 뜻을 가지고, 오는 2021년 6월 25일까지 기념비가 착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에는 총 일백오만 불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까지 확보된 액수는 부지를 포함하여 약 60만 불입니다. 나머지는 동포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충당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주요한 목적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 참여국의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높이 받들고,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한강의 기적을 널리 알리며,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최대한의 감사의 뜻을 전달하려 합니다. ⊙둘째, 후세에 참혹했던 이 전쟁을 통하여 얻게 될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려 합니다. ⊙셋째, 지역사회에 현존하는 유엔 16개국 후손들의 커뮤니티와의 우의를 돈독히 하며 유대를 강화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이 기념비의 건립은 동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념비가 성공적으로 세워지도록 귀한 고견을 피력해 주시고, 이사 및 건립위원으로 동참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성금을 기부해 주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동포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바랍니다. 현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사업기금 지원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2021년 새해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어려운 시기를 건강하게 극복하시고 새 마음과 새 각오로 품으신 꿈과 계획을 모두 성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이 늘 함께 하시고 모든 일이 번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에 지금까지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성금을 보내주신 분의 성함을 공표합니다.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건립 공동위원장: 박수지, 이상화 올림



2821 S. Parker Rd. Suite 409 Aurora, CO 80014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