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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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INES OBJECTIFIED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제 11권 11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1년 6월 10일 발행


목차

2021년 6월 10일

목차 교계소식 신앙칼럼 강단설교 목회칼럼 하나님의 구원섭리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커피 한 잔의 대화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감동이 있는 글 나의 노래, 나의 기도 내면을 향한 여정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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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Rev. McDonald)

이재덕 목사 이형만 목사

이흥섭 임동섭 장석현 정병갑 정봉수 정석현 정성욱 천경우 최요셉 최요한 최형락

문서선교에 동참하는 개인, 교회, 단체, 사업체 목사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목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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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6월 4월 10일 22일

덴버할렐루야교회 설립11주년 감사예배 및 장로임직식

로뎀나무 카렌다

2021년 6월 20일(주일) 오후 2시

2022년도 달력 제작을 덴버에서!

덴버할렐루야교회는 교회 설립 11주년 감사예배 및 장로 임직식을 다음과 같이 드린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1을 참조하면 된다. ●일시: 2021년 6월 20일(주일) 오후 2시 ●장로 임직자: 남상열, 이영웅 ●장소: 덴버할렐루야 교회 본당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문의: (720) 226-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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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선교를 후원하는 로뎀나무 카렌다는 덴버에서 달력을 주문 제작하 며, 수익금의 일부를 문서선교 후원금으로 입금한다. 기독교 및 각종 비지니스 달력을 취급하며, 소량 주문도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32를 참조하면 된다. ●주문 시기: 2021년 8월 31일까지 공장도 가격의 50% off 9월 20일까지 공장도 가격의 40% off ●주문 마감: 2021년 9월 20일 ●문의: (303) 667-2778 rotemtree20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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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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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



교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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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0일

덴버한인장로교회

고 이희봉 원로목사 천국 환송 예배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기사: 최성애

예배 광경

고 이희봉 목사

인사 및 광고 이형만 목사

덴버한인장로교회 이희봉 원로목사가 지난 5월 23일(주일) 오전 6시 40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향년 98세로 소천했다. 이에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KAPC) 총회장으로 6월 3일(목요일) 오후 2시에 유가족과 지역의 목회자 들 및 이웃교회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Crown Hill Chapel(Olinger Cemetery, Wheat Ridge 소재)에서 천국 환송 예배를 드렸다. 예배는 총회 서기 장성철 목사(보스 턴장로교회)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대 표기도는 로키마운틴 노회장 이동훈 목사(덴버삼성장로교회)가 드렸고, 헌 송은 최선미 집사가 순서를 맡았다. 말씀은 총회장 오세훈 목사(세계소망 교회)가 요한계시록 21:1-8 말씀을 본 문으로, “하나님의 천국 백성”을 선 포했다. 오세훈 목사는 고 이희봉 목

기도 이동훈 목사

사를 '복음을 받아드리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복음의 사자였다'라 고 회상하며, 사람이 죽을 때 가장 중 대한 물음은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로 말문을 열었다. 오 목사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 로, ‘예수를 믿는 믿음'을 들며, 죽음 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음을 강조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죽음은 성 도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귀히 보신다.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죽음 대신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한다. 그러므로 성도 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 죽음을 통해 서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고 성도의 죽음의 유익을 전했다. 이어 “두 번째로 주님과 교제, 위 대한 천국 백성과 교제의 유익, 세 번 째 죽음을 통해서 잃는 것이 아니고 충분한 지식을 얻어 깨닫게 된다. 마지 막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죽음으

설교 오세훈 목사

로 그치지 않고, 영광의 삶을 산다” 고 전했다. 또한 오 목사는 “죽음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데, 누구에게나 죽음은 반 드시 찾아온다. 준비해야 한다. 준비 방법으로 예수를 믿는 믿음(요 3:16)” 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유족의 슬픔을 “예수를 의지하고 맡기라. 앞길을 인 도해 주실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늘나라 갈 때까지 참 축복의 사람 이 되길 축원한다”고 설교를 마쳤다.

축도 양수철 목사

전 4:13-18으로, “믿고 서로 위로하 라” 제목의 말씀을 전하여 슬픔을 당 한 유가족들과 친지, 교우들을 위로하 며 천국의 확고한 부활의 소망으로 격 려했다.

이형만 담임목사의 인사 및 광고에 이어 전 총회장 양수철 목사(에버그린 선교교회)의 축도로 소망 가운데 천국 환송 예배의 모든 순서를 마쳤다.

고 이희봉 목사는 1923년 3월 15일 평북 회천에서 출생하여, 1964년 12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신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4년 3월 대한예수교장 로회(합동) 평양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74년 1월 덴버한인장로교 회 3대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 1989 년 5월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13대 총 회장 역임, 1997년 7월 덴버한인장로 교회 원로목사 추대, 2021년 5월 23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곧바로 묘지에서 진행된 하관 예배 는 이형만 목사(덴버한인장로교회 담 임)가 집례하였다. 이 목사는 본문 살

유가족으로는 이명조 원로 사모, 장 남 이성욱, 장녀 이성덕, 차녀 이성은, 삼녀 이성혜, 1남 3녀가 있다.


신앙 칼럼

2021년 6월 10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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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야기 어릴 적 살던 집, 처마 밑에는 제비 집이 두 개씩이나 있었다. 단독 주택이었 지만, 그 당시 서울의 대부분 집처럼 마 당은 흙 대신에 크고 작은 타일과 시멘 트로 덮여 있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겨우 한쪽 끝에 꽃밭이라고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에 화분 두서너 개를 놓아두었던 것이 전부인, 어쩌면 자연과 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삭막한 도심지역 으로 새의 먹이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더구나 드나드는 손님도 많 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개와 고양이도 있 어서 제비가 새끼를 조용하고 안전히 키 우기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모든 조건 을 두루두루 다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해 이른 봄, 제비 한 쌍 이 집 주위를 돌더니, 결국에는 흙과 마 른 지푸라기를 열심히 물어다 집을 턱 하니 지어놓았다. 설마 하면서 완성된 제비집을 구경하러 한동안 이웃들이 드 나들었다. 그리고 여름이 오기 전 알에 서 부화한 새끼가 4마리인 것을 확인했 다. 어미 제비는 정말 분주히 먹이를 어 디에서 잡아 오는지, 입에 물고 와서 배 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새끼들의 입에 차 례로 넣어주었다. 덕분에 새끼들은 무럭 무럭 잘 자랐지만, 아침 일찍부터 온종 일 지지배배 시끄러웠다. 새끼들의 배설 물도 엄청나서 바닥을 하루에도 몇 번씩 물로 청소를 해야 하는 어머니의 고역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 하는 어미의 노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 장하던 새끼의 몸체가 어미의 크기와 비 슷할 때쯤, 어미는 새끼들에게 나는 연 습을 시켰다. 둥지를 벗어나기를 두려워

하는 새끼들에게 나는 연습을 시키는 것 을 보면서 그 노력이 어린 나이에도 참 가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간이 비좁 았는지 혹은 나는 연습을 하다 떨어졌는 지, 새끼 한 마리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 져 죽은 것을 발견했다. 미처 돌보지 못 한 아쉬운 마음으로 바닥에 안전을 위하 여 두툼한 상자와 방석을 깔아주었다. 우 여곡절 끝에 성장한 나머지 새끼들이 어 미와 함께 집을 떠났고, 그해 여름 내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한 어느 날, 열려있는 거실문으로 제비 가족이 날 아 들어왔다. 마지막 인사를 하듯 몇 차 례 거실을 빙빙 돌았는데, 그 모습이 장 관이었다. 손뼉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화답을 하듯 새들은 맑은소리로 지저귀 다 떠났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 나라 로 가기 전에 살던 집에 인사 온 것이 분명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 식구를 반갑게 맞았고, 제비들은 또 그 집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웠다. 그 리고 바로 옆에다 새집을 하나 더 짓고 10년이 넘도록 어느 해는 동시에 새끼 10 마리를 키우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새 가 집을 짓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아는 지 식이 생겼다. 그런데 올봄 벌써 2달 전, 며칠째 새 한 쌍이 집 주위를 빙빙 돌면서 관찰하 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는 새가 그리 반 갑지가 않았다. 일단 새들의 배설물로 집 이 지저분해지는 것과 소음도 소음이지 만, 그 새들을 향해 맹렬히 짖어댈 것이 분명한 강아지를 감당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각과는 상관없이 새들은 현관문 위 의 유리 장식 사이의 1인치 정도 되는 적 은 공간을 목표물로 나뭇가지를 얼기설 기 부지런히 쌓기 시작했다. 모양을 갖추 기 전, 새들이 헛일에 너무 수고하기 전 에 결단해야 했다. 작업 자체가 너무 허 술하고, 유리가 미끄러워 위험하고, 공간 이 적어 새끼가 떨어지면 살 가망이 없 다. 날개라도 부러지면 안 된다 등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종합하여 새들이 애써 시작한 집을 거두었다. 자세히 보니 흙 은 전혀 없고 연한 나뭇가지, 껍데기, 새 털, 다량의 먼지 뭉치 등이었다. 새들의 노고에 미안한 마음으로 상자에 잘 담 아서 차고 앞에 놓았다. 또 재료를 찾기 위해 수고하지 말고 다른 곳에 가서 잘 지으라고... 그것으로 일단락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2주 후에 다시 새들이 나 타나서, 집을 같은 자리에 또 짓기 시작 했다.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미안하지만 가차 없이 제거했다. 그런데 근 한 달 반이 지나, 며칠 전에 그 고집쟁이 새들이 또 찾아와서 세 번 째로 집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지난번보 다 더 크고 높게... 집 앞뒤 마당에도 둥 지를 틀 만한 아름드리 나무가 즐비한데! 이번에는 집을 짓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집을 완성하려면 며칠은 더 걸릴 것이고, 그리고 당장 알을 낳아 도 부화하는데 보름 정도 시간이 필요하 고, 그리고 성장하여 나는 연습을 하는 데도 최소한 한 달 정도, 스스로 생존하 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데 족히 또 한 달은 걸릴 텐데, 이 모든 일을 추위가 오 기 전에 마쳐야 하는데... 처음에 그냥 둘걸. 마음이 급해졌다. 새들을 믿어보기 로 했다. 새끼를 위한 보금자리인데 안전 하게 만들겠지! 아니 안전해야만 돼. 가

발행인 최성애 권사 능하면 현관문을 사용하지 않고, 바닥에 도 두툼한 매트를 깔고, 새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최상의 조건을 만들고... 갑자 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돕지는 못할망정 진작에 그냥 둘걸, 후회막심이다. 새의 둥지가 모양을 갖추어가는 과정 을 바라보면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 가 떠올랐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 석은 인간을 보실 때 주님의 마음은 어 떠실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보다 모 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어찌 보면 여러 가지 작업 면에서 쉽고 빠르며 경제적일 수 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는 반 석 위에 힘들게 집을 짓는 자를 바라보 며 오히려 미련한 자라고 비웃을지도 모 른다. 이처럼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공 로 위에, 세상의 부귀영화 위에 사상누 각 (沙上樓閣)을 짓기 위해 분주하니 얼 마나 미련한가? 우리는 비바람에 무너지는 모래 위 가 아니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 운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반석은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주님 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 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 야 할 때이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2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제공: 맹성자 원로사모(믿음장로교회)


강단 설교

2021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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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바이러스 <빌립보서 4:10-20> UC 샌디에고의 제임스 파울러 교수 연구진은 “행복은 전염된다”는 행복 바이러스를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했습 니다. 이 논문에서 행복은 평균 세 사 람 건너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때 개 인의 행복지수를 6%가량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A라 는 사람이 행복하면 그 옆에 B라는 사람도 행복해지고 B의 친구인 C까 지도 행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가 가까울수록 효과는 더 컸습니 다.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내 행복지 수가 10% 정도가 올라가지만 내 곁에 있는 친구가 행복하면 그 수치는 평균 15%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가 불과 몇 10마일 거리에 산다면 행 복증가 폭은 무려 42%나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행복은 전염성이 있는 바이 러스와 같습니다. 이 연구결과를 보면서 목회자가 행복 해야 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행복해야지 우리 성도님들이 행 복하고, 우리 성도님들이 행복해야 가 정이 행복하고 일터가 행복할 것이 아 닙니까? 저와 여러분이 행복해야 우리 배우자와 자녀들이 행복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속에서 행복 바이러 스에 감염된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바울입니다. 지금은 비록 추운 로마 감옥에서 죄수의 신세로 있 지만, 빌립보교인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면서 주안에서 기뻐하라며 무려 16 번이나 반복하며 기쁨을 전했습니다. 그가 기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 람에게 기뻐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누가 뭐라고 해도 기쁨이 충만 한 사람입니다.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 으로부터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행복하니 이 편지 를 읽는 빌립보교인들도 행복할 것이 고 오늘 이 말씀을 읽고 나누고 있는 우리들도 행복합니다. 바울에게 기쁨 과 만족 그리고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 바이러스”라는 제목 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1절)_(만족) 첫째로, 행복 바이러스는 ‘만족’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 웠노니”(11절) 바울이 행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빌립보교인들로부터 경제적 후 원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형편 에서든지 자족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 입니다. 경제적 후원을 받거나 혹은 받 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이 행복하 다는 것이지요. 빌립보교인들이 이 문 장만 보면 섭섭해 할 수 있을 것 같습 니다. 하지만 바울의 의도는 예수님으 로 인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행복하 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자족하다’는 말의 뜻은 자 기 스스로를 넉넉하게 혹은 충분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넉넉하고 충분하기 에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추운 감옥에서 죄수의 신분으 로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 람에게 무슨 만족이 있겠습니까? 음식 도 부족하고, 옷도 부족하며, 생활하는 모든 것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 떠한 형편에 있든지 넉넉하다, 충분하 며 만족해합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바울의 형편이라 면 자족할 수 있겠습니까? 내 형편이 충분하다며 만족할 수 있습니까? 인간 적으로 볼 때 빈곤하고, 부족함을 느 끼는데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쉽지 않 을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 었던 것은 ‘만족’이라는 마음의 태

도입니다.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 사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사람이 행복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모든 상 황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아는 사 람,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 께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사람 의 행복은 자신의 삶에 ‘만족’이라는 마음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저희 가정이 2019년 6월에 덴버로 왔습니다.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갑 니다. 저희 딸이 이곳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저희가 살던 곳과 다른 학 교 분위기로 인해 굉장히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나 존경심도 없고, 선생님도 아이 들에 대해 큰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전 에 살던 곳의 친구들보다 학습능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걱정했습 니다. 이미 다 배운 것을 또다시 공부 하고 있으니 학습능력도 떨어졌습니다. 저희 가정에 하나님께서 주신 모 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하 나님께서 주언이에게 주신 것이 제일 좋은 것이야... 제일 좋은 학교와 선생 님과 친구들을 주셨다고 말하고 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딸이 친구들 의 가정환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 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의 가정환경 이 불우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보호자가 할머니와 친척들이 많았습니다. 라이드가 되지 않아 학교 에 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이 바쁘게 일을 하다 보 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과 후 에 부모님이 일하는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늦게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희 딸이 자신과 다 른 친구들의 환경을 보면서 인생을 배 웠습니다. 부모님이 한집에서 함께 사 는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학교에 갈 수 있고, 집에서 공부할 수 있으며, 침 대에 누워 쉴 수 있는 곳이 있는 것으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로 만족하고 행복해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같이 만 족하는 마음의 태도가 우리를 행복하 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부족함 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채우고 또 채워도 여전히 목말라하고 허전함 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진 끝이 없는 욕심 때 문입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탐심이 되 어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앞 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 니다.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 있고, 온 도 조절기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온 도계는 날씨가 추우면 내려가고 더우 면 올라갑니다. 날씨에 따라서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사 람은 이와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오 르락내리락합니다. 하지만 온도 조절기 는 온도를 조절합니다. 집안이 더우면 온도를 내려주고 추우면 온도를 올려 줍니다.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환 경을 조절합니다. ‘만족’이라는 행복 바이러스는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 니다. 오히려 환경을 조절합니다. 그러 니 어떠한 형편에도 만족할 수 있습니 다. 어떠한 형편에도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온도 조절계와 같은 사람이 었습니다. 그에게 배부를 때도 있었고, 배고플 때도 있었습니다. 비천할 때도 있었고 풍부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 고 궁핍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는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오히려 환경 을 조절하며 만족해했습니다. 바울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며 살 수 있 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 함께 읽 었던 본문 13절의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


강단 설교 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 누 구십니까? 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능력 주셔서 어떠한 형편에 든지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

2021년 6월 10일

심을 믿고 동행하심을 믿음으로 우리 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에게 있었던 ‘만족’이라는 행복 바이러스를 얻기를 바랍니다. 어 떠한 형편에도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 예수님으로부터 만족을 배웠습니 다. 예수님은 비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습니 다.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신 예수님 으로부터 만족을 배웠습니다. 예수를

2 주고받은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15절)_(나눔) 둘째로, 행복 바이러스는 나눔입니다. 본문 15절의 말씀입니다.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기 때문에 행복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눈 에 보이는 환경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 니다. 여전히 어려움과 위기가 있습니 다. 건강을 잃기도 하고 고난과 슬픔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 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 주고받은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외 에 아무도 없었느니라”(15절)

도 당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어떠한 상 황 속에서도 만족한다는 것은 고난 속 에서 함께 계시는 주님 때문에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고백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다윗이 이런 고백을 드렸다고 해서 그가 평 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 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윗은 사울 의 미움을 받아 사울의 추격을 받았습 니다.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죽이려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두려워하거 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왕 권을 박탈시켰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전도여행으로 마게도냐를 떠날 때 경제적인 후원에 참여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경제적 인 후원에 참여한 교회가 빌립보 교 회 밖에 없었다며 고마워했습니다.주 고받은 일이란 빌립보교인들이 바울에 게 보낸 경제적인 후원만이 아니라 바 울은 그들에게 영적인 필요를 제공했 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 경제적 인 후원을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복 음 전도자로서 교회의 후원을 받는 것 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교회에 짐이 되 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경제적 후원이 아니라 빌립보 교 인들이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한 것이 었습니다.

았습니다. 오히려 내 인생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충분하다고 만족 한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내 삶의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다윗 자신 과 함께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전 능하신 하나님께서 동행하고 계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삶의 자

하지만 ‘주고받는’ 이 일을 통해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자신 의 괴로움에 참여했다며 잘했다 칭찬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14절) 그리고 복음 전도자를 돕는 것은 하나 님이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18절)이라 합니다. 자기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 님께 행한 것(18절)이라 합니다.

리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했지만, 주님 이 항상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만 족해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상황 이 힘들다 해서 비관하거나 낙심할 필 요가 없습니다. 좀 배부르고 풍부하다 고 해서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 떠한 형편에 있든지 나에게 능력 주시 는 분이 계시고, 그분이 나의 목자 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고받는’ 나눔 속에 행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바울을 도왔던 빌립보 교 인들도 행복하고, 도움을 받은 바울 도 큰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바울 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더 힘써 사 랑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나눔’ 은 행복 바이러스입니다. 주고받는 나 눔 속에 서로에게 큰 행복이 전달되

었습니다.제가 한국에서 유학을 올 때 제일영도교회에 ‘늘푸른대학’이라는 노인대학을 섬기는 성도님들로부터 3 년 동안 매달 후원을 받았습니다. 교 회에서 예산을 책정해서 받은 것이 아 니라 매달 자원하는 분들이 만 원씩 모아서 30만 원 정도를 보내주셨습니 다. 수입이 없는 저에게 30만 원이 큰 돈이지만 그 금액보다도 매달, 3년 동 안 저를 위해 30분이 기도해주신다는 것으로 인해 너무 행복했습니다. 유학 생 때라 비록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 든 가운데 있었지만, 그분들을 생각하 면 하루하루 한 시간조차도 허튼 시간 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의 기 도와 섬김이 있었기에 이 시간 이 자 리에서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와 경제적 후원을 받고, 저는 기도편지를 보내며 공부하면서 제 삶에 은혜받은 것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나눔을 통해 위로와 힘을 얻으며 서로에게 큰 행복 이 전달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한 부자의 이 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 니다. 그 밭에 풍년이 들었습니다. 전 에 가지고 있던 창고로는 도저히 그 많은 곡식을 다 저장할 수가 없었습니 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옳지! 전에 있던 창고를 헐어버리고 새로 더 크게 짓자. 그리고는 “모든 곡식과 내 소유 전부를 거기에 쌓아두리라”고 했습니 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속으로 말하기 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 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했습니다. 하나 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 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 냐”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이렇 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 해 동안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한다면 창고에만 물건을 쌓아 두고 하늘의 창고에 아무 것도 쌓아 두지 않는 인생이야말로 얼 마나 불행한 인생인지 보여줍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쌓 아 둔다면 축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것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 야 하고 걱정과 근심 가운데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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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많이 소유해도 나누지 못한다 면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소유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나의 것을 나눌 때마다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사 도행전 20:35절의 말씀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 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 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향해 권면했습니다. 나 눔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 신 곳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시 주고받는(Give and Take)원 리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였습니다. 내 가 주면 돌려받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주고받는 원리는 약한 자들을 돕는데 사용하라는 것입 니다. 내가 줄 때 보답으로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섬기며 도우라 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값없이 받았듯이 보상을 바라지 말고 주라는 가르침입니다. 약한 자들과 함께 나눌 때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누는 삶에 행복이 있습니다. 많이 소유했다고 행 복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소유를 지키 기 위해 에너지와 힘을 낭비합니다. 빼 앗기지 않아야 하는 걱정과 근심으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내 삶이 경 제적인 여유가 없어 나누기 어려운 형 편에 있다 하더라도 나눌 때 진정한 행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선교사님들을 위해 혹은 복음전도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후원 하고 기도하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됩 니다. 빌립보교회의 경제적 후원이 하 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 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주고받은 나눔을 통해 참 행복을 누렸습니다. 주고받으 며 나눌 수 있는 행복한 교회 행복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19절)_(채움)의 행복 셋째로, 행복 바이러스를 가진 자는 채


강단 설교

2021년 6월 10일

님은 궁핍함도 비천함도 없습니다. 하

움의 행복을 얻습니다. 본문 19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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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것을 통해 채움의 행복을 누립

나님의 부요하심이 영광 가운데 나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만족과 나

나 빌립보 성도들의 필요를 넘치도록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

눔이 있는 삶에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채워주십니다. 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

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워주십니다.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분의 하나님이 되시니 이 얼마나 큰

쓸 것을 채우시리라”(19절)

행복입니까?

앞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삶이야말로 참

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행복은 바이러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만족하고, 나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

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스와 같습니다. 바울의 행복이 빌립보

누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부는 양식이라고는 한끼 식사밖에 남

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 주

교인들에게 전달되었고, 빌립보교인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채움의 행복입

지 않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

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행복이 바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

니다. 나누면 나의 것이 줄어들어 없어

만 엘리야 선지자가 떡 한 조각을 요구

자신을 위하지 않고 어느 형편에 있든

고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우리가 행복

지는 것 같지만 영적인 원리는 비어있

했을 때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가루

지 ‘만족’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을 얻습니다.행복 바이러스는 만족입니

는 곳에 하나님이 다시 채워주십니다.

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하나님의 이

‘나누는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이

다. 그리고 나눔입니다. 만족과 나눔을

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했습니다. 가뭄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입니

통해 하나님이 채우시는 행복을 얻게

빌립보 성도들이 부유해서 바울을

이 끝나는 날까지 3년 6개월 동안 가

다.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됩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을 통해 행복

후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빌립보

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낳았습니다. 부

행복을 얻게 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가정으로

성도들을 향해 “너희 모든 쓸 것을

요하신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가 쓸

채우시리라”고 기도한 것은 그들 역시

모든 것을 채웠습니다.

부족한 형편 가운데서 바울의 사역을

돌아가셔서 그리고 일터로 돌아가셔서 이번 주 토요일부터 우리 교회에서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일

청소년 섬머캠프를 시작합니다. 학생들

터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들이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위해 물질로 도와준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벳새다 광야에 한

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

바울은 기도합니다. 빌립보성도들이 경

어린아이가 자신의 한 끼를 주님께 아

께서 주신 재능을 청소년들에게 나누

제적인 후원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워

낌없이 받쳤을 때(요6:9) 오천 명이 배

어 봉사를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한

준 것과 같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

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

신문사에서는 광고료를 50%를 할인해

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간

나 되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관심

구했습니다.

다.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어떤 형편이

을 가지고 문의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든지 만족하며, 궁핍한 가운데서도 나

채우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

누며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쓸 모

학부모들에게 복음의 접촉점이 될 수

로 쓸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바

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쌓을 곳 없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서 필요

울의 기도 속에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

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채움의 행복

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심을 믿

심(부요하심)을 보여줍니다. 우리 하나

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만족하며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 3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할렐루야교회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 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 제공: 김정애 권사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렘10:12)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목회 칼럼

2021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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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셔야!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주사를 맞는 사 돌려야 당연함을 믿어야 선한 양심과 신 람들이 늘어나서, 전염병에 감염이 되거 앙이 살아 있게 된다.

모하여야 한다. 영혼을 잃으면, 더럽히면,

나 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들의 시험을 당하면 육신은 죄악의 포로

미움과 분노와 폭력과 파괴와 총기사건은 확장이 되는 실정이다. 남을 비난하면서 자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양 여기는 사 람들도 있다. 도망침과 전쟁이 없고 부귀 영화평화를 누리는 가운데서도, 죄나 악 을 발생하고 죄나 악을 행하는 세상이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 나님의 씨이기에 죄악을 금하고 온전한 사랑과 선을 실천함으로써 온전한 상을 받으며 하나님을 뵙기를 당부하였다. 그 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 이 네가 잘되고 범사에 강건하기를 원하 노라” “진리를 증거하는데 진리 안에 서 행하니 심히 기뻐하노라” “내 자녀 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 다 즐거움이 없도다” “사랑과 선을 본 받고 이루어야 하나님을 뵙게 된다”고 강 조하였다. 모든 사람은, 짐승의 씨나 마귀의 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씨가 된 것을 행복해하 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 하심과 예수님의 희생으로써 무조건적인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자에 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 도록 애를 써야 한다. 그리고 천국 영생 복락으로 인도하여야 진실한 친구요 하나 님의 분깃이나 예수님의 지체이다. 그리고 좋은 씨나 주의 양식이나 옥토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주의 양식은 하나님의 명령 을 지키고 그의 뜻을 이루는 것인데, 그 래야 예수님과 같이 영혼의 양식을 끼칠 수가 있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 매들을 많이 맺는 옥토가 될 때 하나님 의 이름과 진리와 나라를 존귀하게 하거 나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상급을 확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을 포함해서 거듭난 제자들 과 사도들과 성도들과 같이 믿음만 아니 라 사랑으로도 시험들을 극복하고 하나 님의 뜻을 행할 수가 있다. 그리고 성숙 한 신앙인이요 하나님의 후사요 예수님과 함께한 후사요 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 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란 깊은 의미를 기억하고 사랑이란 사명감에 책임감과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모습이 있 음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택함과 강력한 은혜는 물론 그의 선한 약

상하게 하면 혹은 병들게 하면, 악한 자 나 도구나 그릇이 될 뿐이요 죄악의 삯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과 영벌을 확장할 뿐이다. 죽을 육신이 아

적으로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처신하길

니라 영생하는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 일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예

하고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여

수님과 천국도 심히 기뻐하시거나 즐거워

야 한다. 죽을 육신을 영생하는 영혼보다

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사에 사

더 위하거나 더 소중히 여기면, 예수님께

랑이나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서 온전히

서 경고하신 바와 같이 육신은 언제든지

사랑이나 선도 이루게 되는데, 그 결국은

잃을 뿐이요 영벌까지 받게 됨을 주의하

성경을 이루는 것이 된다. 예수님과 같이

여야 한다.

우리도 성경을 이루어야, 적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천국이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잘 되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

면은 많을지라도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심

님을 비롯해서 성경의 인물들이 세상 사

을 우리가 이해 만족 감사할 수가 있어야

람들이 싫어하거나 창피해하는 사람이 되

한다. 예수님을 닮는 것보다 더 큰 성공과

었어도 하나님과 천국이 잘하고 있다고

승리와 성숙함은 없는 것이다.

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진리대로 처 신하여야 한다. 진리가 해답이요, 정수요,

운동, 취미, 여행 등을 하면서 죽는 사람

사람다운 사람이요, 천국인이 되는 비결

들이 차사고로 죽는 숫자와 비슷하다. 인

인 것이다. 또한 범사에 강건하길 원한다

생에서 성공할 기회는 단지 3번이라고 말

면, 범사에 발생이 되는 의심 두려움 걱정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매일 죽을 위기를

불의 미움 등을 믿음 의 사랑으로 적어

9십만 번이나 당할 수가 있는 인생들이다.

도 극복할 만큼 견고하여야 한다. 그래야

인생과 영생을 복되게 하는 일에 있어서

믿음, 의, 사랑이 살아 있어나 장성하거나

부담이나 원망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

성숙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감사와 찬송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 쪼록 예수님의 마음을 꾸준하게 본받으면

속과 축복과 사랑과 신실함을 받을 수가

비록 연약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지만, 있다. 선, 사랑, 진실, 순종 그리고 충성을 영혼이 성경적으로 진짜 사람인 것을 기 하였어도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억하고서 육신보다 영혼이 잘 되기를 사

2821 S 유스주일예배: 오전 10:30 (장소 행하여야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거나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국이 보람 주일 있어 할 오후 7:00 (장소: 5651 S 즐거워하시는데, 우리의 영적으로나 육신 수가 있도록수요예배: 하여야 할 때이다.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진리 안에서 그리고 진리대로 처신하고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오전 이루어서 11:30 (장소: 서 하나님이주일예배: 원하시는 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하나님의 구원섭리

2021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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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구원을 위한 단계적 사건들 16. 7년 대환난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6)

(e) 살전 1:10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 를 건지시는 예수님”이라 말씀했다. (f) 계 3:10에 필라델피아 교회 성도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지 상명령을 지켜 소명을 다 한 성도들에게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약속 하셨다. (g) 렘 30:7에서 “야곱의 환난의 때”라 말 씀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루에게 망해 천지 사방으 로 흩어졌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 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고 이후 파 사왕국, 헬라왕국, 로마의 지배하에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 급기야는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를 거 부하고 죽인 죄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 로 구원받는 성령시대, 교회시대, 은혜시대, 구원의 날에 구원 받은 이방인의 수가 찰 때까지(롬11:25)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중심에서 제외되었다. 교회가 완성 되어 주님과 연합하는 시점까지 메시아를 기다리며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적그리스 도에게 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환난을 통해 구원 받게 될 마지막 기회로 주실 시험이기 때문에 “야곱의 환난의 때”라 한 것이다. (h) 단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이는 계 12:7-9에 미가엘이 공중권세 잡은 붉은 용을 지상으로 내쫒는 사건을 의미함)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 까지 없던 환난(대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모 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다니엘 12장의 말씀과 요한 계시록 12 장의 말씀은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 민족 의 구원에 관한 같은 예언의 말씀인데 다니엘에게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 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 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셨고, 사도 요 한에게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하시 면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 가 가까우니라”(계22:10) 하셨다. 대환난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 는 특별한 섭리다.

17.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1) 참고 성경구절들: 마24:30-31, 골3:4, 유14, 계19:11-21 이 세상 심판과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예수님은 부활하고 휴거된 성도들과 함께 영광중에 이 지상에 재림하실 것이다(계 19:11-14).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 공중에 휴거 되어 예수님을 만난 성도들은 지상 재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내려오게 된다. 지상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계 19:11-20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류 가운데 최초로 휴거되었던 에녹이 이와 같 이 지상재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예 언 하였는데 유다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유 14 “아담의 7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 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사도 요한은 휴거된 성도들(교회)과 더불어 지상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참으로 황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증거하고 있다(계19장). 예수님은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백 마를 타고 오셔서 공의로 심판하며 싸울 것이라 했다(11절). 그 눈은 불꽃같고(인간 세상만사를 완벽하게 감찰하시는 것을 의 미) 많은 면류관을 쓰고(구원받은 성도들 이 장차 쓸 모든 면류관은 결국 예수님의 것이다-계4:10) 피 뿌린(십자가의 보혈) 옷 을 입었는데(사63:1-6 참고) 그 옷에 ‘하 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는 이름이 쓰여 있 다(12-13절).

이재덕 목사 rheejaiduk@gmail.com 의 말씀을 따라 심판을 받아 죽을 것임을 예언했다(계19:15-21). 그리고 붉은 용은(사탄은 하나님을 빙자 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하나님을 가장하 기 때문에 삼위일체: 붉은 용,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로 활동한다) 천년동안 무저갱에 갇히게 될 것으로 예언되어졌다(계20:1-3). 어떤 학자들은 계6:2에 기록된 백마승 인을 지상 재림하시는 예수님으로 해석하 는데 이는 계19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 습과는 너무 차이가 많고, 또 6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에서 어린양으로서 이 세상을 심판할 내용이 기록된 7인봉

하늘에 있는 군대들(구원 받은 성도들) 이 세마포 옷을 입고 역시 백마들을 타고 그를 따른다(14절). 그의 입에서 나오는 예 리한 검(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다스 리며, 철장으로 심판하실 텐데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 것처럼 할 것이다(사63:1-6 말씀대로). 이런 모습으로 예수님이 지상에 심판주 로 재림하시는데 이때에도 짐승(적그리스 도)과 그를 추종하는 왕들과 군대들이 예 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다가 결국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혀 산 채로 지옥 불에 던져지고 그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

한 책의 인을 떼고 계시는데 어떻게 예수 님이 이 지상에 백마를 타고 오시겠는가? 이것은 붉은 용이 미가엘에게 쫓겨 이 지상에 내려올 때 인간들을 미혹하기 위하 여 그리스도로 가장한 적그리스도의 모습 이다. 적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내려오는 데 그가 가는 곳마다 적마(전쟁)와 흑마(기 근)와 청황색 말(사망과 음부) 탄자가 뒤따 르는 모습이 기록됐다. 어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와 부활 사건으로 죄와 사망권세를 이기 신 예수님께서 전쟁과 기근과 사망을 몰고 오시겠는가?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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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48)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무엘상 13:5-15>

오늘 본문은 사울 왕이 하나님으 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되는 그의 첫 번째 실수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실 수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벌어졌습니 다. 어떻게 해서 전쟁이 벌어졌습니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도발 때문 입니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 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사무엘상13:3). 이제 막 3천 명이 이라는 소규모의 상비군을 조직해서 배치해 놓은 것이 전부인데, 블레셋과의 대규모 전면전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전 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왜 사무엘 선 지자로부터 야단을 맞았습니까? 그것 도 왕을 하나님이 버리실 것이라는 저 주에 가까운 책망을 듣습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제사장이 아닌 왕 이 제사를 집례했다는 것이 책망받은 이유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 도 큰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지금 돌아 가는 상황을 보면 사울 왕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실제로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제 사를 드려 버릴 만큼 상황이 급박하 게 돌아갔습니다. 어느 정도로요? 먼 저 엄청난 규모의 블레셋 군대의 전력 앞에 압도당했습니다.

로잡혀 몸을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 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사무엘상13:6). 급기야는 자기만 살겠다고 요단강 을 건너 동편 땅으로 삼십육계 줄행 랑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과 함께 길갈에 모인 백 성들도 두려움에 떨며 흩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 더라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 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 지는지라”(사무엘상13:7,8). 이 정도의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이 라면 사울 왕이 무슨 잘못을 했다 할 지라도 좀 봐 줄 만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인간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다고 하더라도 사무엘 선지자의 판단 은 단호했습니다. 자, 그러면 사울 왕 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는 이러한 행동은 왜 일어났을까요? 사울 왕에 의하여 불법적인 제사가 드려진 후에 사무엘 선지자가 왔습니 다. 그리고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이 렇게 묻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 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 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 스에 진 치매”(사무엘상13:5).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 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 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사무엘상 13:11).

또한 재난 수준의 압박과 공포에 사

“왕이 행한 것이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겁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사울 이 지금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뭘 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보지 않고 황만 보았습니다. 백성들도 상황만 았습니다.

한 왕 했 상 보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6 절). 왕도 상황만 보았습니다.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 가 보았으므로”(11절). 또한 왕으로서 할 수 없는 월권을 저질렀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 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무엘상13:9). 그리고 자기 목적을 위 해 제사를 이용해 먹었습니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 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 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 라”(사무엘상13:12). 사울이 드린 제사에 몇 가지 문제점 이 있습니다. 이 제사를 통해 사울 왕 의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달라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처음 이스라 엘 왕으로 즉위할 때의 겸손한 마음과 신본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기 스 스로 무엇을 해 보려고 하는 인본주의 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모하게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블레셋을 향한 군사적 행동을 감행했습니다. 또한 무속 신앙인들이 굿을 하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 기 위해 제사를 이용했습니다. 본문 의 ‘간구하지 못했다’는 히브리어로 ‘로 힐리티’인데, 이 ‘힐리티’의 원 형이 ‘할라’입니다. ‘누그러뜨리다’ ‘달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 어입니다.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제 사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순 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내 종교 행위 를 통해서 하나님을 통제할 수 있다 는 교만입니다. 사무엘상 4장 엘리제사장 때도 블레 셋과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이 때 이 스라엘 장로들이 무엇을 이용해서 전 쟁을 이겨보자 했습니까? 법궤입니다. 법궤를 이용해 전쟁을 이겨보고자 한 것입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 법궤 를 블레셋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 습니다. 사울 왕이 드린 이 제사는 순종이 전제되지 않은 제사였습니다. 사울 왕 이 제사를 해치워 버리듯 성급하게 드 려버리고 난 후에 사무엘 선지자가 왔 습니다.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 이다’라고 핑계를 대는 사울 왕에게 사무엘이 거듭 책망하는 부분이 무엇 입니까?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 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 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 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 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 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 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 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사무엘 상13:13,14).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의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이런 제사는 순 전한 제사가 아닙니다. 그냥 종교 행위 에 불과합니다. 순종이 없는 제사가 그 렇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 울 왕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실수한 후에도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 의 기름보다 나으니”(사무엘상15:22)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 보면 우리 말 성경으로는 저자의 기록 의도가 좀더 감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구절이 하 나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들어 있는 10절입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 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사 무엘상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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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0일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 지라’라는 이 구절에도 우리 말 성경 이 번역을 생략한 단어가 하나 있습 니다. ‘웨힌네’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일종의 감탄사입니다. ‘그리고 보라’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생략된 ‘웨힌네’라는 구절을 집어넣 어서 원문에 가깝게 직역을 하면 “ 그가 번제를 드리기를 마쳤을 때, 바 로 그 때, 보라! 사무엘이 왔다.” 얼마 나 이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까?

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 며 기다려야 하는 일을 포기하는 순 간 불법을 저지릅니다. 불법을 저지르 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핑곗거 리를 찾습니다. “포기하는 순간 핑곗 거리를 찾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이 기다 리라고 명령하신 7일이라는 정한 기간 이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 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 는지라”(사무엘상13:8).

우리들에게도 기다리며 인내해야만 하는 영적인 ‘7일이라는 정한 기한’ 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 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환경에 집중 하다가 인간적인 계산이 앞서 끝까지 정한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자기 생각 대로 조급하게 행동해 버리는 사람은 ‘사울’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온전히 이 정한 기간

또한 자기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

야고보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 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1:4).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15)

용해 먹고, 예배를 이용해 먹는 사람 은 하나님께 망령되이 행하는 사람입 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13절)라고 엄중히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냥 경 배의 대상이시지 감히 내가 이용해 먹 을 수 있는 이용의 대상이 결코 되실 수 없습니다. 예배를 단순히 종교 행위로 전락 시키기 마십시오. 언제 그렇게 됩니 까? 순종이 없이 드려질 때 그렇습니 다. 순종하시되 어떤 상황 속에서 끝 까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 시되 어떤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순 전한 예배자로’ 하나님 면전에 서 계 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 37:4-6)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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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여호수아서를 성공의 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사사기는 여호수아서와 대조 적으로 실패의 책이라고 부를 수 있습 니다. 여호수아서는 순종을 통한 가나안 땅 정복을 보여주지만 사사기는 하나님 께 대한 우상숭배와 반역으로 인하여 실 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사사기에서는 실 패의 일곱 주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버린 결과는 내 적인 부패와 외적인 압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사기의 약 400년 간의 기 간 동안 내적 부패와 외적인 압제에서 벗 어날 수 있도록 군인 지도자를 일으키셨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 성들의 영성은 점점 더 차가워져 버렸고 급속하게 타락되므로 ‘죄의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기록하였습니다. 사사기는 당시의 도덕적 인 상황이나 배교의 상황을 예증하기 위 하여 역사적인 사건을 앞 뒤로 순서를 바꾸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17-21장 과 3-16장 비교). 사사기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인 주제 를 다룹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의 우 상 숭배와 부도덕 그리고 이스라엘의 강 포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이나 구원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면서 당신의 백 성들이 회개할 때마다 사랑으로 용서하 십니다. 이스라엘은 배은망덕함과 완고한 반역을 반복하므로 고통으로 빨려 들어 가지만, 언제나 회개하는 백성들은 구원 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사사기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사사기의 제목 사사기의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재 판관들’ 혹은 ‘구원자들’(Shophetim) 입니다. ‘재판관’, 혹은 ‘구원자’는 공 의를 유지하고 논쟁 송사를 해결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해방시키고 구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사들은 먼저 백성을 외부의 압제 에서 구원하고 이후에는 통치하며 공의 를 행사합니다. 70인 역은 히브리어 제 목과 같은 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사용 했고, 라틴 벌게이트 역은 ‘사사들의 책’(Liber Judicum)으로 붙였습니다.

사사기의 주제와 목적 사사기가 여호수아의 죽음으로부터 사 무엘 시대와 통일 왕국의 초기에 이르기 까지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를 이어 나 가는 목적은 이스라엘에서부터 왕정에 대한 변호와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다른 성경의 역사서들처럼 역 사적 사실들을 주제에 따라 선별적으로

핵심 구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 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 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 종치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 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 때에 이스라엘이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2:20~21, 21:25). 핵심 장 : 사사기 2장은 사사기 전체의 축

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 사기 2장은 경건한 세대에서 불경건한 세 대로 전이되는 것과 이후의 반복되는 주 기가 어떤 모습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나안인들을 전멸시키지 않으신 하 나님의 목적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사무엘상에 나온 사사들(엘리, 사무엘, 요엘, 아비야)과 사사기의 13명의 사사들 을 포함한다면 총 17명의 사사들이 등 장하는데, 이 사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묘사합니다. 사사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자, 통치자, 영적/정치적 구출 자, 그리고 왕의 역할을 보여주었습니다. 옷니엘과 기드온은 용사와 통치자의 역 할을 했고, 엘리는 제사장이었고, 사무엘 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사들의 역할은 궁극적인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고유의 세가지 직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전체 내용 개관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즉 각 350년 간의 암흑 시대로 들어갔습 니다. 심지어 여호수아 이후의 세대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께서 이스 라엘에게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2:10, 수24:31). 이제 이스라엘은 타락하 고 압제와 구원의 일곱 주기를 반복합 니다. 타락(Deterioration, 1:1~3:4) : 사사 기 초반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 치 여호수아와 같은 강력한 단일 지도자 가 없어서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 나 이스라엘이 실패한 한 가지 주된 이 유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이 없 었기 때문입니다(2:1~3).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라고 말 씀하셨으나,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순종하기 보다는 타협했습 니다. 이스라엘의 타협은 도리어 자신들에게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 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2:3) 하신 말 씀대로 되었습니다. 2:11~23절 말씀의 “ 타락”은 결국 사사기 3~16장에서 반복 됩니다. 구원 (Deliverances, 3:5~16:31) : 사 사기 3-1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 곱 번의 배교, 일곱 번의 노예 살이, 그 리고 일곱 번의 구원을 묘사합니다. 일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곱 번의 배교는 반역(rebellion), 보응 (retribution), 회개(repentance), 회복 (restoration), 그리고 안식(rest)의 패턴 으로 반복됩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종과 배교를 왔다 갔다 하 기를 반복만 하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 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순종을 통 한 평화를 누리는 기간은 점점 더 짧아 지고 노예살이와 실패로 인한 고통의 기 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에서도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스 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부패 행위 (Depravity, 17:1~21:25) : 사사기 17~1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 교 행위를 보여주고, 19-21장은 그들의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부패 행위를 보여 줍니다. 19-21장은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 장들은 성경에서 가 장 타락한 사건들 중 한 가지에 속한다 고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장 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악의 타락한 모 습을 보여줍니다. 사사기의 끝맺음은 시 대를 해석하는 열쇠와 같습니다. “그때에 사람이 각기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 더라”(21:25)는 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한 것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했을 때 가장 추 악한 죄악들을 행하고 사회적인 부도덕 이 가득 넘치게 됩니다. 사사기의 비참한 끝맺음 속에서 룻기는 사사시대의 암울 상황을 배경으로 했지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룻기는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매우 중대한 예수 그리 스도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예배학 강좌

2021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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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어떤 사람이 받을 수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군대에서는 그렇지 않고 무조건 많은 장병들을 데려다가 세례를 주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렇게 받는 세례도 효력이 있나요?” 있나요?” "성경에는 예수를 믿기 시작한 지 얼마 만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세례 준비 기간을 정해 두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인가요?” 일인가요?” "세례는 반드시 전 교인이 보는 앞에서 받아야 하나요? 목사님과 단둘이 받으면 안 되나요? 어떤 목사님은 자기 아들을 강에 데려다가 개인적으로 세례를 주었다고 하던데요.” 하던데요.” 얼마 전까지 한국 교회에는 ‘학습’ 이라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교회에 나 오기 시작해서 6개월쯤 성실히 다니면 받는 것이지요. 세례는 학습을 받고 난 뒤 6개월쯤 지나서 받았습니다. 그러니 까 교회에 나와서 세례받기까지 약 1년 이 걸린 셈입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 지 학습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 연히 세례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아 졌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복음을 듣 고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의 확신이 생 기면 세례를 주는데, 이 기간이 짧게는 한두 달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또 군대 에서는 ‘진중 세례’를 베푸는데, 이는 초코파이나 시계 등의 선물을 주며 장 병들을 ‘모집’하여 한꺼번에 몇백 혹 은 몇천 명에게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과연 세례는 누가, 언제, 어떻게 받는 것 이 좋을까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기간에 상 관없이 세례를 주는 한국 교회의 관습 은 두 개의 신약성경 본문에 대한 오 해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베 드로가 복음을 전하며 “너희가 회개하 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 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하고 외칠 때에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고( 행 2:37-41), 또 하나는 에티오피아 내 시가 병거를 타고 가다가 빌립을 만나 그에게 복음을 듣던 중 물이 있는 곳 에 이르렀을 때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하 고 즉시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입니다.( 행 8:26-39)

과연 신약의 교회는 우리가 생각하 는 것처럼 그렇게 즉흥적으로 또는 즉 시 세례를 주었을까요? 성경 본문을 자 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의 경우, 우리 는 베드로가 외친 바로 그날 ‘3,000명 이 세례를 받았다.’라고 이해하지만, 사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40을 보면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 르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본문에 따르면 세례를 받기 전에 반드시 거쳐 야 할 두 단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회 개’와 ‘가르침’입니다. 여기에서 40절 에 기록된 ‘가르침’이 얼마 동안 행해 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41절, ”...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에서 ‘이날’이라는 말이 베드로가 외 친 그날과 같은 날인지는 명확하지 않 습니다. 오히려 ‘이날’이라는 말은 종 말론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다만 세 례를 받은 날에 제자의 수가 3,000명이 더해졌다는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분명 한 것은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라는 짧은 말 속에 기독교의 핵 심적인 교리들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 는 사실입니다. 에티오피아 내시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세례받고 싶은 열망에 휩싸여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기도 하려고 예배당에 올라갔고, 성경을 읽 고 있었으며, 그러한 상태에서 빌립에 게 발견되었습니다. 또 성령께서 빌립에 게 임하사 그와 동행하게 하셨고, 그리 스도 중심의 성경적 가르침을 들은 뒤

에(행 8:35), 자신의 신앙을 고백함으로 써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 단계를 밟았 습니다. 여기서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 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 하니“(행 8:35)라는 짧은 문구는 예수 를 구주로 믿는 신자의 삶에 해당되는 의무와 적절한 생활 태도 등의 모든 가 르침을 포괄하는 교리교육이었다고 보 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개의 본문에 비록 간 략한 말로 표시되긴 했지만, 1세기 당시 의 교회는 세례를 주기 전에 복음 선포 는 물론 교리 및 신자의 덕목 등에 관 한 기독교적 가르침을 제공하는 일종의 ‘준비 기간’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준비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아서 정교 하게 체계화되었고 그 기간도 길어졌습 니다. 기원후 215년경에 기록된 『사도 전승』은 당시 로마교회에서의 세례 기 간이 3년이었으며, 후보자의 열심에 따 라 그 기간은 다소 조정되었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례 예비자는 3년 동안 매일 일터에 나가기 전에 교 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 야 했으며, 3년이 경과한 후 심사를 거 쳐서 사순절 초입에 세례 후보자 명부 에 이름을 올린 다음, 사순절 기간 내 내 또다시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 례를 받을 때는 분명하게 사탄에 대한 단절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충성 의 서약을 공개적으로 해야 했습니다. 3세기 당시에는 세례 예비자라는 신분 이 공개되어 세례를 받기도 전에 순교 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러한 사람은 순 교 당할 때 흘린 자신의 피로 세례 받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사도전승』은 이렇게 가르치 고 있습니다. 만일 세례 예비자가 주님의 이름을 인하여 체포된다면 그리스도를 증언하 는 일에 두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하십 시오. 만일 그가(세례를 받기 전에) 고 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면, 죄 를 용서함 받음에 있어서 그는 의롭다 고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는 자신의 피로 세례를 받은 것이기 때 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길고 엄격했습 니다. 이 과정에서 세례 후보자는 예수 님을 마음으로 믿는 것뿐만 아니라 진 실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왔을 때에만 세례를 받을 수 있었 습니다. 물론 이때에 공개적인 신앙의 고백은 필수였습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진중 세례를 베푸는 데에는 그 나름으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 도 교구교회에서는 세례를 베풀 때에는 철저한 신앙의 고백과 그에 따른 삶의 변화,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 그리고 기 독교 교리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 등 이 주어지는 준비 과정이 있어야 하며, 세례는 이것들을 엄격히 시행한 후에 비로소 주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이 투철해지고 세 상이 주는 유혹에 그리스도 신앙을 쉽 게 팔아넘기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4)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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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대화

2021년 6월 10일

18

친구 인생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가득한 일반 사회에서 발생하는 관계

습에 스스로가 놀라게 된다.

문제는 그야말로 심각할 수밖에 없다. 사 회가 자기중심적이어서 남을 이해하거나

고등학교의 한 반에 있던 친구를 우

포용하거나 용서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연히 만났다. 만남을 반가워하는 나에게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우리가 학교생

가정도 해체되는 판에 교회를 오래 다

아?” 참 정직한 말이다. 한 학급에 60명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닌 동료끼리도 헤어지고 나서 나 몰라라

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어떻게 모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회의 한 현

다 대화를 하고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

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교인들이 형

는가? 분명히 한 학급에도 친한 친구가

불의의 사형장에서“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제, 자매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존재한다. 한두 명, 학교가 끝나면 함께

아끼며 귀히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친구가 한두 명 있었다.

데 많은 사람들의 교제 모습 속에 진정

그 친구들에게는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야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한 형제, 자매라는 의식은 없는 것 같다.

기 힘든 일도 공유했던 것이 있다. 그래

그냥 형제자매라고 부르라니 그렇게 부

서 그 친구들은 매우 친한 친구였다. 지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른다는 것이다. 흔히 같은 교회를 다니던

난 40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위의 시는 <함석헌의 그런 사람을 가 졌는가>이다. 이 시를 보면서 참된 친구, 멋진 친구, 바람직한 친구, 인생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를 떠올린다. 그런데 저렇 게 멋진 친구를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될 까? 이상적인 친구를 생각하는 모든 사 람에게는 참 귀한 메시지임이 틀림없는 데 실상은 그것과는 다르기에 사람들은 더욱 이 시를 좋아하지 않는가 싶다. 이민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는 심 각한 가정 해체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미국에서 2020년 발표된 것을 보면 결 혼은 1000명당 6.1명이 결혼했고 이혼은 1000명당 2.7명이 하였다고 한다. 결혼과 이혼의 비율을 보면 결혼을 하는 6.1명 중 2.7명이 이혼을 하였으니 결혼을 한 사람 중 45%가 이혼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부로 살겠다고 결혼 신고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하 고 오랫동안 한 몸 이루어 살자며 약속 한 사람들도 이러한데 서로 모르는 사람

활 때 한 반에 있었지만 친하진 않았잖

교우가 다른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

그런데 친구가 꼭 모든 것을 다 알아

나는 것처럼 행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

야 하고 다 나누어야 하고 다 함께해야

가? 그러다 보니 오늘날 교회에서 진정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학창시절 꿈

한 우정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을 꾸며 자신의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 질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과 동시에 두

교회는 세상과 달라 경쟁보다는 상호협

려움이 가득했던 그 시간을 함께 가졌던

조와 이해와 섬김을 통해 발전하는 기관

것과 또 꽤 긴 시간 동안 인생의 숙제를

이다. 그럼에도 의견이 충돌되거나 생각

열심히 풀어온 그 친구에게서 삶에 열

의 관점이 다를 때에는 서로를 향해 “

심이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니 얼마

형제요, 자매요”라고 하던 것도 소용이

나 귀한 만남인가 말이다. 그 친구와 깊

없고 오히려 피도 눈물도 없는 야수처럼

은 교제를 하지 못했어도 나는 그 친구

서로 상처를 주고 누군가가 떠나야 하는

가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

어려움을 경험한다. 그런 헤어짐과 상처

기에 감사하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

와 외로움을 경험한 교인들이 새로운 교

분히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된다.

회에서 함께 빵을 먹고 커피를 마셔도 실제로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란 여간 힘

미국 신문에 실렸던 한 그림이 떠오른

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교회에서

다. 퇴근 시간에 모든 사람이 러쉬 러쉬

도 교인들은 외롭다. 지금은 함께 하지만

하며 집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집에 가서

돌아서면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는 큰 의자에 앉아서 홀로 TV를 본다.

피상적인 관계에 처해 있는 우리 자신의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무엇인가 바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게 움직이는데 결국 홀로 하는 시간을

그러니 아는 사람은 많아도 친한 사람은

갖기 위해서 힘쓴다는 것이다. 홀로 모든

없는 현실, 함께 하는 모습은 있어도 친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모습에서 외로움

밀감이 넘치는 교제가 결여된 안타까운

이 처절하게 드러난다. 친구 관계가 필요

모습이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우

하다고 하면서도 외로움 속에 쉼을 얻는

리에게서 보인다. 그러니 함께 앉아 웃고

우리의 모습이다.

이야기하고 돌아가는 순간 사랑은 온데 간데없고 외로움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믿음 생활을

천경우 목사

덴버영락교회

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조금은 넓어지기 를 바란다. 만남을 귀하게 여기자. 이민 초기 한국 사람을 보기만 해도 반가워 하던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서로를 보 자. 다른 점은 이미 있는 법이다. 아니 우리는 서로 다르다. 우리는 같은 믿음 의 길을 가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기대 감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게 서로 다르 고 서로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인생의 한 부분을 같이 걸어가고 있는 그 발걸음으 로 인해 감사하고 그 시간을 감사하고 그 교제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 외 로운 존재가 우리이니 곁에 누군가가 같 이 있는 것 그 자체가 복이요 은혜요 사 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셨다. 아담 때 부터 인간은 외로운 존재였다. 창 2:18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 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외로움 을 이기도록 배우자가 있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주신 배 우자나 친구가 딱 마음에 드는가? 구태 여 말한다면 꼭 그렇지 않다. 우리와 함 께 하는 사람이 비록 성격이나 생각이 달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라는 사명을 준 귀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친구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축 복이요 은혜이다. 이제 믿음의 길을 가 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반갑게 서로의 만 남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가득하 기를 바란다. 함께 믿음의 길을 가는 것, 함께 섬김 의 길을 간 것, 함께 저 높은 곳을 향하 여 나가는 것, 함께 하는 시간 자체로 인 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 의 사람들이 서로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 고 감사하며 나간다면 그 만남은 친구의 만남이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님이 주 신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풍성하게 부어 지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진리의 샘터

2021년 6월 10일

19

성숙해져 가는 신앙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덴버도 90도를 넘나드는 날씨로 뜨겁 습니다. 주변에 가지만 무성했던 나무 들은 이제 잎으로 무성합니다. 살아 있었는지 몰랐던 갈대들이 이제 무성 하게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더워서 무 기력해질는지 몰라도 자연을 보면 생 기가 돌고 있습니다. 여름은 성장하고 자라나며 가을의 열매를 준비하는 기 간입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 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 다” (벧후 1:4, 새번역).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력으로 따지면 지금은 통상 교회 력입니다.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 죽음, 그리고 부활하심을 기억하며 또한 주님의 덕을 믿는 자들 의 삶으로 나타내야 함을 절기와 색상 등을 통해 표현하는 교회 달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을 준비하는 대림 절로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 시는 것을 기대하는 왕 되신 그리스도 주일로 한 해가 마무리됩니다. 준비하 는 기간(대림절, 사순절)은 보라색, 삼 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은 흰색, 성령님은 빨간색 등으로 표현하고 있 습니다. 그리고 통상 교회력은 초록색 입니다. 여름의 식물들처럼 우리가 성 장하고 성숙해져 나아가야 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 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 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 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 고, 경건에 신도 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 도 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 시오” (벧후 1:5-7,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단 순히 예수님 믿고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 지만 완전한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그리고 주님 안에 서 충만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성숙해 져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사 도 베드로는 두 번째 서신서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숙해져야 합니 다. 그 방법을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8가지 덕목을 우리는 쌓아가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 로 신앙 성숙의 모습입니다. 이 덕목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믿음입 니다.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 습니다. 올바른 믿음이 성숙한 신앙 의 기초입니다. 믿음이란 그냥 믿는다 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할 것을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받아들이 고, 행동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 주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를 구 원하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주인이시라 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 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살아 야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덕을 쌓아야 합니 다. 예수님은 잘 믿는 것 같은데 덕이 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진

리를 말하더라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고 하신 것처럼 남에게 덕을 쌓지 못 하는 믿음은 갓난아기와 같은 자신밖 에 모르는 이기적인 믿음입니다. 덕 을 더한 후에는 지식을 쌓아야 합니 다. 말씀도 알아야 하고 세상이 어떻 게 돌아가는지도 알아야 하나님의 뜻 을 적용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 은 것을 알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우 리의 본능입니다. 그러니 지식 후에는 절제를 더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 혜가 필요합니다. 지식은 그냥 아는 것 이지만 지혜는 그 지식을 적절한 때에 적용하는 절제의 삶입니다.

천국 가는 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나

우리가 성숙해져 나아가면 가장 싫 어하는 자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라는 이름의 뜻은 대적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사탄은 우리 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그것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경건의 모습이 필요 합니다. 이러한 경건의 모습은 나 자신 만을 돌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밖 에 초점을 두고 남을 위한 삶으로 이 어집니다. 신도 간의 사랑, 그리고 아 가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아무것도 아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조 건 없이 보여주신 사랑을 아가페 사랑 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 와 있는 90% 이상의 아가페는 우리가 다른 자들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묘사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 랑하셨으니 우리도 그와 같은 방법으 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 로 신앙 성숙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성 품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나 자신, 우리 가 족의 축복만을 위한 신앙이라면 그것 은 미숙한 신앙입니다. 예수님 믿고

만 열심히 하고 나만 괜찮으면 된다 는 모습도 영유아 수준의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께서 주신 약속을 다 누리며 살지 못 할 것입니다. 참된 신앙 성숙의 모습은 하나님께 서 나의 삶에 허락하여 주신 자들에 게 아무런 댓가 없이 보여주시는 사 랑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 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어지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 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위대 하심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하 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주셨다는 것 을 알면 나만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주님이 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성숙 해져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모두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 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양 칼럼

2021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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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구약성경에 보면 시가서가 나온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이다. 그리고 시가 서의 첫 책이 욥기서이다. 욥기를 읽다 보 면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그것 은 ‘왜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난을 주시는 가?’이다. 이것은 사실 성경 전체의 의문 이기도 하다. 욥은 어떤 사람인가? 그 시대에 하나님께 서 인정하는 의인이었다. 욥의 성품에 대해 서 시작부터 이렇게 말한다. “우스 땅에 욥 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 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1:1) 요단강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의 동쪽인 우스 땅에 살고 있는 욥은 이방인으로서 그 이름의 뜻이 히브리어로는 ‘미움 받는 자, 핍박받는 자’이고 아람어로는 ‘돌아 온 자, 회개한 자’이다. 욥을 의인이라고 부 르는 것은 그가 ‘온전하고 정직한 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며, 악에서 떠 난 자’(1:1, 8; 2:3)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욥은 부자이며 족장시대 동방의 우 스 땅에서 살고 있던 대 농장의 소유주였 다. 욥은 자녀만 해도 아들이 일곱, 딸이 셋이었고, 소유물에 있어서도 양이 7,000마 리, 낙타가 3,000마리, 소가 500마리, 암나 귀가 500마리로 동방의 제일가는 부자였 다. 종들은 수십 명이고 부자이면서도 당 대의 의인이었다. 성경에 ‘동방 사람 중의 가장 훌륭한 자’(1:3)라고 한 것은 물질적 인 번영에서 뿐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인격과 명예에 있어서도 모두에게 잘 알려 진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많은 재산과 가족 이 모두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한 사환 이 와서 보고하기를 소와 나귀는 스바 사람 들에 의하여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많은 종 들이 칼에 맞아 쓰러져 죽었습니다. 말이 끝 나기가 무섭게 다른 종이 와서 보고하기를 하늘의 불이 양과 목자들을 집어 삼켜버렸 습니다. 그리고 나만 홀로 피하여 살아남았 습니다. 그가 보고하는 사이에 또 다른 종이 헐레벌떡거리며 달려와 보고합니다. 그 많은 낙타가 세 개의 그룹으로 공격해온 갈대아 사람들에게 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낙타를 지키던 자들은 칼에 맞아 죽었습니 다.”(1:13-19) 요즈음 상황으로 추정해보면 산불이 나 고 장대비가 내리더니 진흙더미가 집은 물 론 가진 것이 모두를 쓸어가 버렸다. 무섭 게 전염되는 치명적인 COVID-19 바이러 스가 몰려오더니 온 동네가 차단되고 농부 들과 짐승이 다 죽었다. 그리고 하루아침 에 홈레스가 되어서 몸 하나만 간신히 건 질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런 정도는 견딜 수가 있다.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토네이도가 불더 니 집이 무너져서 한집에서 밥을 먹던 10 남매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몰살을 당했다. 아마 우리가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하면 기 절하든지 미쳐버릴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얼마 후에 욥에게는 자신에게 무서운 고난 이 찾아왔다. 온몸에 종기가 나더니 피부

에 상처가 나고 거기에다 고름과 염증으로 온몸이 가렵고 쑤시기 시작했다. 잿더미 위 에 앉아 탄식하며 질그릇으로 종기를 긁고 있는 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뿐 아 니다. 이런 비극과 고난 속에서 누구라도 함께하며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 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욥의 아내마저 참 지 못해 저주를 퍼붓고 떠나 버렸다. 욥이 고난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있 다. 첫째는 재산을 잃었다. 동방에서 가장 부자였던 욥이 순식간에 가진 재산을 모 두 잃고 알거지가 된 것이다. 둘째는 가족 을 잃었다. 일곱 아들들과 세 딸이 그 맏 형 집에서 잔치하다가 거센 바람이 불어와 집이 무너지면서 그들 모두가 죽었다. 셋째 로 건강을 잃었다. 엄청난 시험을 순전한 신앙으로 극복한 욥에게 사탄은 더욱 끔찍한 방법으로 공격 해 왔다. 사탄은 욥의 몸을 최악의 상태로 이끌어 갔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몸 이 고통스러운 종기(피부병)로 덮였고 그것 을 긁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을 당하게 했 다. 또한 더러운 벌레가 옷처럼 그의 몸을 둘렀으며 고름이 나와 악취가 났고 살색이 검게 변했으며, 뼈가 쑤시는 고통이 더했다. 그리고 넷째로 위로를 잃었다. 욥의 아내는 남편이 당하는 고통이 하나 님의 불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을 욕하고 죽어버리라고 욥에게 폭언을 하 고 곁을 떠나 버렸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담임

다. 사실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히브리인들의 사고에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악인에게 임하는 고난이든지, 의인에게 임 하는 고난이든지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결재와 주관 아래서 일어나는 것이다. 특 별히 의인, 곧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 는 고난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실 욥 기를 통해서 깨닫게 해주는 한 가지 사실 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욥은 재난으로 물질적 손 실과, 가족을 잃어버린 환난의 비보 앞에 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신앙을 가지게 되 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그의 대 답은 이것이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 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 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 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 으실지니이다 하고”(1:21) 왜 하나님은 의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가? 욥은 그의 대답에서 3가지 인간의 실 존을 말한다. 인간의 과거(존재기원)‘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다’와 현재(현주소)‘주신 이가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인간의 미래 (종말)‘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 라’를 알게 된 것이다.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1년 6월 10일

21

교회는 성령의 전 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1-2).

오늘은 교회에 대한 유기적 이미지 대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인 벽돌이 되어

해서 묵상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성삼

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적인 성

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이신 성령과의

전을 이루어 가고 있다. 믿는 이들의 유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 공

관계에서 교회가 성령의 전 (the temple

기적인 공동체 (organic communion)

동체가 성령의 전이기도 하지만, 그리스

of the Holy Spirit)이라는 진리이다.

인 교회 자체를 성령의 성전으로 보는

도인 개개인 역시 성령의 전이라는 사

all)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라고 선언하신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우리는 이 시대에

실이다. 왜냐하면 우리 개개인 모두에

다. 이것은 조직신학 구원론에서 다뤄지

교회가 성령의 전이라는 진리에 대해서

올곧게 회복해야 한다. 영적인 건축물인

게 성령은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고린도

는 확정적 또는 결정적 성화 (definitive

신약성경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대표적인

교회의 모퉁이 돌이 바로 우리 주 예수

전서 3장 16-17절은 우리 믿는 자 개개

sanctification)와 연결된다

구절이 고전 3장 16-17절 말씀이다. "너

그리스도이시다.

인이 성령의 전이고, 믿는 자들의 공동

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체인 교회 또한 성령의 전이라고 가르친

교회가 영단번에 확정적으로 거룩한

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

존재가 되었다 할지라도, 교회는 실재적

억해야 한다.

으로 완전하게 거룩한 공동체는 아직 아

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

22절은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

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

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

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한다. 교회가 성령의 전이라고 할 때 교

교회가 성령의 전이라는 것은 교회가

서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죄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서 믿는 이

회에는 성령만 계신다고 생각한다면 그

거룩의 영이 거하시는 영적 공동체임을

가 상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것은 엄청난 오해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의미한다. 그러하기에 교회는 그 존재와

는 완전한 거룩을 추구하고 그것을 목표

며 동시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 교회 안

성부와 성전과 분리되어 존재하실 수 없

사역의 모든 면에서 거룩과 성결을 추구

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에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교

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라는 영적 공

해야 한다. 교회 안에 세상적인 가치관이

교회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완전히 거룩

회는 성령의 전인 것이다.

동체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라는 탁류가 들어오게 되면, 교회의 존

해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교회가 실

님 또한 함께 거하신다. 그러므로 영적

재의미는 퇴색된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

제적으로 완성된 공동체는 아니지만, 이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22절은 다음

인 건축물로서의 교회 공동체 안에는 아

는 그 정상적인 기능을 감당할 수 없게

미 거룩하게 구별된 공동체로서 완전과

과 같이 말씀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된다. 또한 교회의 순결을 짓밟고 더럽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공동체라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 그러하기에 22절

힌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는 의미이다.

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

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

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

고 말씀하고 있다.

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니다 (but not yet). 여전히 교회는 용

그래서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교회론은

물론 이 땅, 이 역사 속에서 어떠한 교

교회의 속성을 크게 네 가지로 논의해

회도 완전에는 이를 수 없다. 그럼에도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교회는 영

왔다. 그 네 가지는 사도성 (apostolic-

불구하고 우리는 완전한 거룩을 향해 나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단번에 성령의 전이 되었지만 (완료), 여

ity), 거룩성 (holiness), 통일성 (unity),

아가야 한다. 그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

전히 계속해서 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보편성 (universality)이다. 그 네 가지

아야 한다. 교회를 당신의 전과 거처로

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다 (현재 진행). 그것은 교회 공동체가 예

속성들 중의 하나가 교회의 거룩성이며,

삼고 교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교회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거룩성은 교회를 규정하는 매우 근본적

가 거룩이라는 면에서 완전을 향하여 계

까지" (엡 4:13)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인 속성이다.

속 자라도록 인도하시고 이끄신다. 교회

21절은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 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라고

가 날마다 거룩하여질 때, 성령이 마음

그리고 그 최종적인 결과물은 요한계시 록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이 될 것

교회의 거룩성이란 두 가지 차원을 가

껏 일하실 수 있는 사명의 공동체가 될

말씀한다. 교회는 예수 믿는 자들을 영

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

진다. 하나는 교회가 이미 하나님을 위

것이다. 교회가 거룩함을 잃고, 방황할

적인 벽돌 또는 건물로 하여 지어져 가

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

하여 거룩하게 구별된 공동체 (already

때 교회는 사람들의 발에 짓밟힐 수밖에

는 성전이다. 물리적인 벽돌이나 콘크리

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set apart or sanctified)라는 사실이

없다. 교회의 선택은 오직 하나다. 그것

트나 철재로 만들어지는, 어떤 공간을 차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

다. 하나님은 교회가 구성되는 순간에

은 거룩하신 성령을 힘입어, 지속적으로

지하는 실재 건축물이 아니라, 믿는 자

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

교회가 이미 영단번에 (once and for

완전한 거룩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4-26)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쉴만한 물가

2021년 6월 10일

22

사데 교회의 이기는 자 사데는 두아디라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

영적으로 죽어가게 만드는 것은 환란이나

는다. 오히려 육적, 혼적으로 먹을 양식

로 루디아의 수도였다. 도시가 암벽으로 둘

핍박이 아니라 풍요롭고 안락한 삶이다. 도

이 결핍되었을 때 영적인 욕구가 더 드러

러싸여 있어서 적들이 침공하기 어려운 난

전적인 환경이 아니라 안락한 환경이다. 이

나게 된다.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영

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졌다. 상업과 무역이

런 의미에서 사데 교회가 이겨야 할 것은

적인 욕구가 더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

발전하였으며 특별히 염직 공업과 보석공

바로 영적 안일함이다.

유 때문이다.

예 그리고 양털 염색으로 유명한 도시다.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히 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너는 일깨어 그

사데 교회의 성도들은 혼적으로 육적으

요즘 한국에는 주말에 각종 스포츠를 즐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

사데는 최초로 금은 주화를 제조하여 사

로는 살아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사

기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

용하였으며, 상업과 공업의 발달로 인해 부

람들이었다. 그 이유가 그들의 행위에 나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소위

노니”(계 3:2)

요하고 안락한 도시였다. 그리고 소아시아

난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

‘먹방’이라는 먹는 방송 프로그램도 있

죽어가는 영을 살리려면 먼저 영적으로

의 다른 교회들에 비해 거짓 선지자나 이

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다. TV 드라마, 영화, 음악이 넘치도록 발

깨어나 거의 죽게 된 남은 부분을 강하게

단의 공격도 별로 없었다. 이렇게 풍요롭고

죽은자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달하여 문화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하여 다시 살아나게 해야 한다. 이는 혼

안락한 삶이 오히려 사데 교회에 부정적인

명목상으로만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에게 육체적이며 혼

의 양식을 줄이고 이미 혼탁해진 혼을 정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상은 영적으로 죽은 그리스도인이었다.

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다. 하지만 바

화시키며 영의 양식을 계속 공급해줌으로

그렇다면 이런 도시 환경 가운데 있었던

왜냐하면 그들의 삶에서 영적으로 살아 있

로 이때가 조심해야 할 때다. 특별히 그리

써 가능해진다.

사데교회가 영적으로 이겨내야 할 것들은

는 자로서의 행위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

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럴 때 영

무엇일까? 요한계시록 3장을 중심으로 그

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육적으로 혼

적 퇴보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덕목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적으로는 살았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죽어가는

해지고 강해진 음악가나, 혼에 속한 책들

이 될 수밖에 없을까? 그 답은 영, 혼, 육

영을 다시 살려서 영적으로 생동감 넘치는

을 많이 읽어서 혼적으로 과도히 발달한

의 관계를 이해해야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죽어가는 영

그리스도인들을 종종 목격한다. 이들의 영

주님은 사데 교회에도 어김없이 이기는 자에게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나는 종종 고전음악이나 대중음악을 너 무 많이 듣고 연주하여 혼의 기능이 민감

리고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이겨

인간의 영과 혼 그리고 육체는 통합된 인

을 살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

은 혼의 과도한 기능에 눌려서 제 기능을

야 하는지 구체적인 덕목을 가르쳐주시지

격이다. 서로 다른 기능과 욕구를 가지고

다. 이는 망해가는 기업을 살리고, 허물어

발휘하지 못한다. 영의 기능이 죽어가고 있

않았다. 그 덕목은 사데 교회에 대한 주님

있지만, 상호 작용을 통해서 하나의 인격체

져 가고 있는 나라를 살리는 것만큼이나

는 것이다.

의 책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님은 사데

를 구성한다. 예를 들면 몸이 아플 때 정

어렵다. 죽어가는 영을 되살리는 것이 이기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양식을] 어떻게 받

교회를 향해 이렇게 책망하셨다. “내가 네

신도 약해지고 판단력도 흐려질 수 있다.

는 자가 되는 본질적이며 핵심적인 과제다.

았으며 어떻게 [말씀을] 들었는지 생각하고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

반대로 마음이 아프고 병들 때 몸도 병이

죽어가는 영을 살리려면 먼저 혼의 과도

지켜 회개”(계 3:3) 해야 한다. 혼의 기능을

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1)

들기 쉽다. 인간의 영, 혼, 육이 상호작용할

한 기능을 제어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과도하게 하는 양식을 줄이고 영의 양식을

사데 교회의 성도들은 물질적으로, 혼

때 전인적으로 건강해지며 성숙하게 된다.

혼의 양식을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자연스

받아서 영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리

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영적으로

영적인 욕구도 혼적인 욕구와 육체적인

럽게 영의 기능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우

하여야 죽어가는 우리의 영이 회복되어 다

는 죽어있는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그들

욕구와 상호작용을 한다. 영적인 욕구는 육

리는 혼의 양식을 줄이고 죽어가는 영을

시 살아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이기는 자

을 영적으로 죽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체적 혼적 욕구가 과잉 만족되었을 때 저

굳건히 잡아 그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풍요롭고 안락한 삶으로 인

하된다. 육의 양식과 혼의 양식을 과잉 섭

요한계시록 3장에서 성경은 죽은 영을

죽은 영을 다시 살리는 것이 이기는 자

해 생긴 안일함일 것이다. 실제로 성도를

취했을 때 영의 배고픔이 잘 느껴지지 않

살리기 위해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

의 책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부흥이다.


좁은 길을 걸으며

2021년 6월 10일

23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습니다 오늘 주의 일을 하는 이들 특히 사역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영적 겸 손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적 겸손이 란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있나이다 ’라는 마음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스스 로 먼지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라 하겠습니다. 믿음의 일꾼들에게 두 가지 측면의 영 적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존재적 차원의 겸손함입니다. 나는 너무도 작은 존재이기에 먼지보다 더 작다는 관점의 겸손입니다. 그저 주의 일꾼으로 써주시 는 것만도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내가 주 의 일꾼 된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는 것이란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힘과 능력 면에서의 겸손입 니다. 자칫하면 내 능력이 있어 주의 일 을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너무도 부족한 능 력자임을 실토하는 차원의 겸손입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의 겸손은 주의 일 꾼들에게 가장 기본 덕목이라 하겠습니 다. 오늘 너무도 흔하게 주의 일꾼들이 자기를 홍보하고 이름을 띄워 유명세를 얻으려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사 역에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자기 자신만 드러내며 스스로 큰 자가 되고 자 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역자 들이 자신의 이름을 띄우려 복음의 사 역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영적 겸손을 잃어버린 채 교만에 빠져 매사에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하고 자 기 능력으로 일하는 그 결과는 부정적 입니다. 힘과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능력을 과용하고 남 용하며 오용하기 때문입니다. 분수를 망 각하고 오판하기 쉬우며 쓸데없는 데에 무모하기 때문에 정작 힘을 쓸데는 쓰지 않고 힘을 빼야 할 데에 힘을 씁니다. 결 국 사역은 변질되어 오로지 자기 과신, 자기 포장, 자기 자랑에 빠진 속된 모 습을 보이다가 끝내는 대중으로부터 지 탄받는 지경에 이르고 나아가 공동체가

애써 감당한 복음 사역의 수고까지 물 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상을 찾아보 기에 어렵지 않은 현실입니다 물론 사람의 능력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복음의 일은 세상일과 달라 한 가지 공식만이 존재합니다. 일꾼은 주인 뜻대로 순종하여 일할 뿐이고 주인 되 신 주님이 역사하신다는 공식입니다. 사 람이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사역의 성공 요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 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사람의 힘이나 능 력이란 요소는 단 1%도 성공 요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 객관적으로 볼 때도 개개인의 힘 과 능력이란 너무도 부족하고 어찌 보면 쓸모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무용합 니다. 그것을 알고 인정하는 주의 일꾼 이 바로 영적 겸손을 품게 됩니다. 영적 겸손은 자기자신을 지극히 작게 여기는 것입니다. 누가 옆에서 아무리 당신은 " 큰 자입니다”라고 부추긴다 해도 “아 니요. 나는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일을 위해 헌신했던 사도 바 울은 그 영적 겸손을 지녔습니다. 그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 겸손 을 드러냈습니다. "나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입니다, I am less than the least of all the Lord’s people. 나를 큰 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나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입니다. 아울러 저는 그 능력을 논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능력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고백하였던 것입 니다. 그렇게 자기를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 입니까? 자기 자신을 먼지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겸손과 절대 무능한 종이라는 겸 손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고백 속에 는 그동안 복음을 위해 달려올 수 있었 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 님의 은혜를 힘입은 덕분이었습니다’ 라는 깊은 겸손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 고백 속에는 허풍이 없습니다. 실제 자신을 가장 작은 자로 여기는 진 솔함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그에게 이 영적 겸손함이 있었기에 주의 복음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스스로 큰 자로 여겼다면 그 사역을 끝 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작은 자로 여 기는 이에게 은혜를 부으십니다. 스스 로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기는 겸손은 하 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의 풍성하신 능력을 누리게 되는 영적 비결입니다. 영적 겸손을 품은 주의 사 역자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은 극소화시 키고 상대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은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신앙적 자세를 견 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심리는 누 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 큰 자로 여기는 것이 참 물리치기 힘든 유혹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많은 유혹이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 기가 큰 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그 심리 가 가장 큰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그러 나 그는 그 유혹을 이겨내고 30년을 초 지일관 나는 주님의 복음을 감당하기에 도 너무 작은 자입니다. 그 고백 위에서 사역에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는 순간까지 가장 작은 자로 남았습니다. 나는 없고 오직 예수 그리 스도만 있다고 고백하는 끝까지 작은 자 였던 것입니다. 사역하는 일꾼에게 자신을 크게 여기 는 것은 정녕 독배입니다. 그 어떤 탐욕 보다 훨씬 더 위험한 영적 요소인 것입 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을 지극히 작 은 자로 여기면 그것은 주의 일을 은혜 중에 감당하게 되는 핵심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 영적 겸손은 우리들의 사역을 윤기 나게 하는 귀한 자산입니 다. 그 사역에 하나님이 부으시는 은혜 를 입혀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의 일꾼들은 각자 사역의 자리에서 나는 지극히 작은 자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보다도 더 작은 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고, 출발했다면 그렇게 끝맺음해 야 할 것입니다. 오렌지 카운티의 제가 아는 목사님 은 교회 사무실 벽에 이런 글을 써 붙 여 놓으셨습니다. “나는 허수아비 입니 다.” 무슨 뜻일까? 이 종은 허수아비 같은 종이오니 주님이 하시옵소서 그 고 백 아니겠어요? 오늘 많은 주의 일꾼들이 그 영적 겸 손을 잠시 잊고 자기 능력을 믿으며 일 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는 뒤에 가려둔 채 오직 자기 힘, 자기 재주, 자기 소유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 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 활동을 하며 만난 동역자들 가운데 그런 이들이 있어 경 계하였습니다.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종, 상황 앞에 호불호를 따지는 종, 사람의 평가를 위해 일하는 종, 다 중도하차시 켰습니다. 그 대신 작은 자 되기를 자처 하고 주의 능력만을 구하며 순수한 열 정으로 사역에 매진했던 디모데 같은 이 들을 중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은 자기 힘 을 믿고 자기식으로 열심을 내는 종이 아닙니다. 내 것은 먼지 같이 여기고 주 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하여 일하는 종 입니다. 큰 자 되기를 바라는 그 욕망이 우리 사역자들에게 다가올 때 ‘나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습니다’라고 고백했 던 사도의 영적 겸손을 따르는 종들 되 고 그 작은 자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독자들 모두 되시길 축복합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3:8)


베드로전서 강해

2021년 6월 10일

24

“은혜로 부르신 사람들 (2)?” <베드로전서 5:8-14>

두 번째 은혜로 부르신 사람들은 아무리 고난이 와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 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 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사 굳건하게 하시 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 라” 베드로는 말년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세계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복음이 빠 르게 전파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 만 로마의 상황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당 시 황제가 바로 네로였기 때문입니다. 로 마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바로 네로입 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 죽이는 것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할 정도였습 니다. 시내 골목에 숨어 있다가 일을 마 치고 돌아오는 남자들을 칼로 찔러 죽였 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재미로 한 것입니다. 그는 황제가 되어서는 친어머 니도 죽였습니다. 맹수들이 물어뜯어 죽 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를 죽이고도 양 심에 가책하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 습니다. 로마 시내를 절반이나 태우는 불 이 났습니다. 어느 기록에는 네로가 불 을 지르고 로마 시내가 타는 모습을 보 려고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 확한 기록은 아닙니다. 불이 났을 당시 네로는 다른 지방에 시찰을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난 민심이 네로를 방화자로 지목을 했습니다. 그만큼 인심 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네로는 자기에게 쏠리는 비난을 피하고자 기독교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정복하려고 시 내에 불을 질렀다고 한 것입니다. 네로 는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 습니다. 콜로세움에 맹수들을 굶겨서 풀 어 놓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던져 놓았 습니다. 맹수들이 기독교인들을 물어뜯 는 것을 보고 즐겼던 사람이 네로입니 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여럿을 묶어서 인

간 횃불을 만들어서 자신의 파티를 밝히 게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엄청난 고 난이 몰려온 것입니다. 바로 그 시기에 베드로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쓴 성경 이 바로 베드로전서 후서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일생에 좋 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 해에 종종 이런 인사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인사입니다. 서 로에게 축복을 기원하는 말입니다. 이런

베드로전서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하 는 말이 바로 고난에 대한 것입니다. 믿 는 자들이 받는 고난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닥 친 아픔이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 고 난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외경인 베드 로행전에서는 베드로의 순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 니다.

인사도 합니다. “새해 좋은 일만 있으세 요” 물론 우리 모두가 소원하고 바라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혀 현실적이지 않습 니다.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우 리는 일 년 내내 몸이 건강하기를 바라 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장 큰 기도 제목 중 하나입니다. 내가 건강하고 가 족들이 건강한 것처럼 축복이 없습니다. 그 자체만 해도 행복한 것입니다. 재물 이 조금 있고 없고는 나중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몸이 한 번도 아프지 않 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생명체는 나서 자라다가 아프고 죽게 되어있습니다. 우 리 몸은 아프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 다가 생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픈 것 이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저기 고장나는 것으로 원래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것입 니다. 인생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 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 리를 은혜로 부르신 것은 고난을 면제해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도 고난을 받습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이 받습니다. 다른 사람 들과 똑같이 일상적으로 받는 고난이 있 습니다. 거기에다 예수 믿기 때문에 참아 야 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 기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 니다. 예수를 부인하지 않기 위해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인들의 박해를 피해 달 아나라는 교우들의 말에 따라 변장을 하 고 혼자 조용히 로마를 떠나고 있었다. 로마 성문을 벗어나자, 베드로는 아피아 가도에서 마주 오는 예수를 보았다. 베 드로는 ‘Quo vadis, Domine?’, ‘주 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 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려고 로마 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 가 다시 ‘주님,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 겠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는 ‘그렇다. 베드로야,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제서 야 베드로는 정신을 번뜩 차리고 예수를 찬미하면서 다시 로마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교우들에게 돌아가서 자기가 본 환시를 전해주면서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베드로는 로 마 군사들에게 체포되어 십자가에 매달 려 순교했다.” 이때 베드로는 자청해서 머리를 아래 로 두고 거꾸로 매달려 십자가에서 처형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베드로의 시신을 묻 은 장소에는 나중에 성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 대성전 중앙 제단 바로 아래에 지금도 베드로 무덤이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가 결연하게 주장하는 것 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고난은 받지만,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 난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로마를 도망가다가 다시 돌아간 것도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잠깐의 고난 을 참지 못하고 영원한 영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고난은 잠깐이지만 그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고난은 잠깐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이지만 그 고난으로 인해 우리의 믿음은 더 강해지고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영원한 영광을 보는 방법이 있습 니다. 이사야 41:13을 보세요.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 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 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고 난 중에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 면 주님은 우리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 십니다. 토미 테니의 ‘하나님의 관점’이 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자신의 막내딸이 서너 살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어린 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어린 딸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진도 보고 광고 문구도 보면서 흥미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층 한층 엘리베 이터가 서더니 건장한 사람들이 계속 타 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공간이 좁아졌습 니다. 어린 딸은 사람들 속에 푹 갇혀버 린 꼴이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사람 들의 허리띠와 엉덩이만 보였습니다. 딸 에게는 갑자기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답 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당황한 아이가 아빠인 토미 테 니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안아주세요. 답답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저를 안 아주세요.” 아빠가 아이를 안자 다시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답답함이 사라졌 습니다. 아빠가 보는 것만큼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빠, 안아주세요. 아빠 눈높이만큼 보고 싶어요!” 이게 신앙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고난 중에, 아픔 중에 하나님께 요청하 십시오. “하나님, 안아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오른팔을 붙들고 번쩍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 님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영안이 열릴 것입니다. 잠깐 고난 너머에 영원한 영 광이 보일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 리를 안아 주님의 눈높이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 을 드립니다.


변화프로젝트

2021년 6월 10일

18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 2 부 기도 프로젝트 8장, 하나님을 사랑하기

어떤 상황에서든 무엇이 그분을 기쁘

성장하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여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며 읽어라.

게 할지 마음에 항상 생각해야 한다. 우

세 가지 영역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을 연습할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이

리에게는 주님을 사랑할 수도 거절할 수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

있는데 그중 하나는 어떤 복음서(마태,

도 있는 자유 의지가 있다. 하지만 주님

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우리 자신과

마가, 누가, 요한)든지 매일 30분씩 읽는

을 사랑하려면 다른 누구보다도 그리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것이다. 다른 방법은 매일 같은 복음서

무엇보다도 더 사랑하도록 매일매일 결 혹시 지금 주님을 향한 사랑을 못 느

를 30일 동안 읽어 가는 것이다. 기도: “성령님, 제가 하나님의 지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낀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앞으로

와 지식, 계시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

유익이 있을까? 많은 유익이 있지만 우

30 일 동안 이 기도 프로젝트를 하면

록 축복해 주세요. 예수님의 마음과 저

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배워 얻게 되

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하나님

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길 원

는 영적 치유를 말하고 싶다. 많은 사

에 대해 배우면서 하나님에 향한 사랑

합니다.”

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

도 자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매일의 삶

운 적이 없기에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과 말,

2) 주님과 자신의 대화를 기록하라: 복

방황하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

행동이 습관으로 길러지도록 노력하라.

음서를 읽어 예수님에 대해 배우고 예수

가 절망과 실망, 외로움, 낙망의 어려움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

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자

을 극복하고 삶의 목적과 열정을 찾고

하는지 하나님께 보여드려라. 기도: “성령님,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

세히 적어 보아라. 기도: “예수님, 제게 말씀해 주세요.

할 수 있도록 저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

제가 읽은 성경을 통해 저를 가르쳐 주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영적 전쟁이

을 부어주세요. 온 맘과 힘과 정성을 다

세요. 제게 말씀해 주세요. 성령님, 저를

일어난다. 사탄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

해 주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하나님

랑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이며 우

이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저도 제 자신

을 사랑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리의 마음에 절망의 씨를 뿌리려고 한

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다른 이들을 사

다. 반면에 성령님은 사랑과 희망의 씨

랑한 것처럼 저 또한 다른 이들을 사랑

3) 매일 30분 기도하기: 하나님께 15분

를 뿌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

하도록 도와주세요.”

동안 말하고, 나머지 15분은 조용히 하

심하며 나가야 한다.

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배울 수 있도 록 도와주신다. 이 기도 프로젝트는 1) 하나님을 사랑 하기 2) 나 자신을 사랑하기 3) 다른 사

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가

1. 하나님을 사랑하라 앞으로 30 일 동안 항상 예수님과 소 통하며 그분을 감지하는 영적 습관을 발전시켜라.

통제할 수 없지만, 우리의 생각을 조용 히 가라앉히는 연습은 할 수 있다. 4)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우리는 하나

람을 사랑하기의 세 영역에 적용해 봄 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나 외부의 소리를

1) 성경 읽기: 어떤 복음서든지 선택하

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해 지음 받았다. 바울은 “그는 보이지 아 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 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으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 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 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골 1:15~16)라고 말했다. 예배 에 참석하고, 또한 매일 예수님을 찬양 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현존하심을 인식하는 것이며 경배와 찬 양, 감사를 통해 종일토록 그분께 당신 의 사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5) 회개하여 정결하게 되기: 성령의 도 움 없이는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없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확실 히 알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우 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께 도움 을 구하라. 기도: “성령님, 제가 회개할 죄가 있다 면 보여주세요. 주께 용서를 구하고 정 결케 되기를 원합니다.”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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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0일

세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인생에서 처음 살아보는 오늘 하루요 마지막으로 살아보는 오늘 하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주인이 믿는 자들이라 착각하고 교회 문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수많은 사건 사건이 모여 하나님 앞에 쌓인다. 한번 실수를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가서는 반드시 나의 삶을 회계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잘못된 삶의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언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이제 그만 네 인생을 결산해 보자 말씀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말이 많다.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주장들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일을 하면서 말이 많다는 것은 자기의 뜻을 고집하며 산다는 것이며 핑계와 순종하기 싫어하는 교만이 숨겨져 있을 개연성이 있다. 우리에게는 침묵을 통하여서 잠잠히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 해결 내지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욕심과 자아가 하나님 앞에서 절벽처럼 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 나를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도해서 풀리지 않을 때는 먼저 나를 내려놓고 순종의 닻을 올려야 한다. 기도로 못 풀어낸 내 인생은 순종을 통하여 풀어낼 수가 있어야 한다.

나의 주권을 내려놓고 원주인이신 주님을 그 자리에 모셔야 교회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교만을 싫어하고 외식을 싫어하시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주인 행세를 하며 온갖 권리만 누리려 하고 내 욕심 채우기에만 급급할 때에 세상이 먼저 알고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말이 많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내가 하나님 노릇 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말이 많다는 것이 나의 교만과 오만과 욕심을 채우려는 잘못된 것임을 통렬하게 깨달아야 한다. 오직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그 앞에 무릎 꿇는 순종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세상도 주님도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는데 아직도 살아서 나의 뜻을 펼치려 해서는 안 된다. 오직 주님의 뜻과 주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나를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세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인생살이가 필요하다.

글: 봉민근

교회에서도 사람이 주인이 되면 안 된다.

http://cafe.daum.net/cgsbong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비전

예배 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성령안에서 예수님처럼”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1년 6월 10일

한국선교 초기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

뵈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그러나 주님,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순종하겠습니다.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주여!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될 것을 믿습니다.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서 있는 것 같사오나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27


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6월 10일

28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고요한 평화를 얻으려면

말씀을 바로 살피자

마가복음Mark4:35-41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39). ........................................................................................

마가복음Mark4:21-25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24). ........................................................................................

갈릴리바다 위에 배를 띄워 놓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 건너편 동쪽 “거라사”쪽으로 가시면서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광풍이 불어와 배가 난파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깊은 잠을 자고 계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이기에(롬10:17) 들을 귀를 만들기 위해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데 광풍이 불어와 배에 물이 들어오고 흔들림이 심해지자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던 제자들, 우리 신앙생활도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세상 풍파에 흔들립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흔들림과 싸우며 다행인 것은 ‘우리를 돌보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깊이 묵상해 보면, 갈릴리바다에서 고기를 낚던 어부 출신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기에 그곳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터인데...... 대처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가득 차서 깊이 잠들어 계신 예수님을 깨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다 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고요해졌습니다. “잠잠하고 조용하라!”(Quiet! Be still!)는 말은 조용히 묵상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광풍이 부는 듯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마음의 고요함, 평화스러움을 가지고 살려면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필요한 때입니다.

등불 비유를 통해 비유의 궁극적 목적을 밝히는데 등불은 말로 덮어 놓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어 주변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진지한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분석하는 자세에 따라 하나님나라 비밀을 풍성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않으면 깨달았던 것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등불을 밝힌 것처럼 진리는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비유로 선포되는 것은 언젠가는 온 세상에 등불처럼 드러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야 합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는 말씀은 결코 부정적인 말이 아닙니다. “헤아리다”는헬라어 “매트레오(μετρέω)”는 객관적인 측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바르게 듣고 이해한다면, 모두에게 유익 된 삶이 될 것입니다. 공동번역으로 이 부분을 살펴보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달아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24). 피닉스<들꽃피는마을>에서정봉수 <ooreekmc@hanmail.net>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행 2:17~18)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감동이 있는 글 기도는 항상 부족하다 신앙이란 물러 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이다. 기도 없이는 승리 할 수 없다. 물러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영적 싸움터가 믿음의 전쟁터다. 그렇게 기도가 중요하다고 믿으면서 살지만 가장 게을리하는 것이 기도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전도 잘하는 사람 없고, 성경 열심히 읽는 자 없으며, 봉사에 열심을 내는 사람 별로 없다. 이론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지식이 가득한 것은 의미가 없다. 실제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는 항상 부족하다. 기도하지 않으면 타락의 원인이 된다. 기도를 놓으면 믿음을 놓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밥이 되고 영적 분별력이 사라진다. 근심 걱정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생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말씀 앞에 정직하자. 구하는 자가 얻는다. 구하는 자가 찾고 구하는 자에게 열린다.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 걸고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기도는 연약한 믿음을 채워 준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의 빛이 들어오고 어둠은 물러난다. 하나님과 눈을 맞추어야 한다. 기도 중에 성령의 임재가 있다. 마음에 채널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한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은 인생을 굽어보신다.

2021년 6월 10일

살아있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는 자라면 누구나 식사할 때 기도를 한다. 그것이 형식적이든 진심이 담겨져 있든 기도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식사 기도는 하면서 매사에 무슨 일을 하거나 결정 할 때에 기도 하지 않고 행할 때가 많다. 기도도 습관이다. 식사 기도를 늘 하듯이 매사에 기도하고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습관은 삶의 길을 만들고 더 나아가 좋은 습관은 좋은 인생을 만든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야 한다. 늘 주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주님 앞에서 행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 무관심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도 자신이 하려하고 자신이 결정을 내린다. 믿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형식적인 믿음 지식으로만 아는 지적인 믿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행하는 살아 있는 믿음이 있다. 어느 믿음에 비중이 크냐에 따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신앙의 소유자가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 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으로 인한 설렘과 울렁거림이 가슴에 요동친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세상에 것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결정 해놓고 그것이 잘 되도록 구하거나 추후에 하나님께 보고 하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믿음이다.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수가 있다.

과연 나는 기도하는 사람인가? 기도는 기도를 통하여 배우는 것이다. 기도는 이론이 아니요, 실제로 해야 한다.

왜 우리는 식사 기도는 하면서 다른 일에는 기도하지 않는가? 내 신앙에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 기도하는 사람이 회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매 순간 일마다 때마다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라는 것이다.

오직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기도 할 뿐이다.

말로만 믿음 믿음 하면서 아멘을 소리 높여 외쳐도 삶 속에서 그의 삶이 아멘이 아니면 거짓 믿음 일 수도 있다.

기도의 불을 질러야 한다. 지금 바로 기도의 불을 붙여야 한다. 기도가 활활 타오르는 성도가 인생이 승자다. 기도는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다. 기도하라는 말씀에 무릎 꿇고 순종하자. 하나님은 기도 너무 많이 한다고 그만하라 하지 않으신다. 다만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다. 우리는 기도가 너무나 부족하다.☆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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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 한다는 것은 삶에 전부를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결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다. 찬송을 천만곡 불러 드려도 믿음 없이 부르는 찬양은 천국 쓰레기통에 버려질 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내 영혼에 담는 것이다. 결코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매사에 그분께 아뢰고 그분께 눈길을 돌리고 종이 상전의 바라보듯 글: 봉민근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믿음생활이다. http://cafe.daum.net/cgsbong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교육관)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금요찬양예배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 (사 55:6-7)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S Ceylon St

S Biscay St

S Tower Rd

E Hampden Ave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교회

참빛교회 YouTube Channel: https://tinyurl.com/TLCCYouTube

주일1부(한어) 9:30AM 주일2부(영어) 11:00AM (Eng. Translation Available)

(YouTube 한어)

(YouTube)

어린이주일학교 9:30AM

https://ko.truelight.church

영어성경공부 Zoom: https://tinyurl.com/TLCCZoom Password: tlcc

pastorjohn@truelight.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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