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소금뉴스 2021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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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사 14:24)

제 11권 17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1년 9월 9일 발행


목차

2021년 9월 9일

목차 교계소식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커피 한잔의 대화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복음으로 살아보기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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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빛과 소금 뉴스 2821 S. Parker Rd. #409 Aurora, CO 80014 (303) 667-2778 E-mail: thelightandsalt@gmail.com 발행 겸 편집인: 최성애 디자인: 최수정 Facebook page나 블로그에 들어오시면 매회 발행되는 디지털 카피를 보실수 있습니다. thelightandsaltnews.blogspot.com

9월은 9일, 23일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는 매회 2,000부씩 발행됩니다. 【빛과소금뉴스 PICK-UP 장소】 덴버지역: H-Mart 볼더지역: H-Mart 웨스트민스터점 콜로라도스프링스: 한국마켓, 썬마트

본지는 어떠한 특정 개신교 교단과 연관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본지의 개제되는 모든 설교와 칼럼, 신앙간증 및 수기는 오직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글들로 하나님의 영광과 독자들의 신앙 증진에 초점을 맞춥니다. 단, 보도기사는 본사의 신앙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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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기고 김병수 김창훈 박현수 손재흥 손창달 송병일 안성훈 오성관 오세오 유지훈 이동훈 이영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Rev. McDonald)

이형만 목사

이흥섭 임동섭 장석현 전병욱 정봉수 정석현 정성욱 천경우 최요셉 최요한 최형락

문서선교에 동참하는 개인, 교회, 단체, 사업체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목사 목사

강경자 집사 국제언어서비스 김경숙 보험 김경실 권사·김성애 성도 김영자 집사·김정애 권사 덴버소망교회 덴버영락교회 덴버제일감리교회 덴버지역교역자회 덴버한인교회 덴버할렐루야교회 맹성자 원로사모 믿음장로교회 박노복 장로 박로렌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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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2021년4월 9월22일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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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 창간 10주년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빛과소금뉴스

2021년 9월 9일, 오늘 빛과소금뉴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 리며, 많은 기도와 격려로 동역해 주신 지역교회들과 목회자들, 필 진들, 그리고 아낌없는 후원과 사랑으로 함께해주신 본지의 이사진 과 임원진,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빛과소금뉴스는 신문 배달 자원봉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담당 지역은 북쪽 웨스트민스터 한아름마트나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의 한국 마켓을 중심으로 한 달에 한번이나 두번 가능한 시간 이 있을 때, 정기적 혹은 언제든 한번이라도 배달이 가능하면 자원 해 주길 요청한다.

본지는 이처럼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 월 동안 문서선교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빛과소 금뉴스는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열방을 향해, 끝까지 진리를 사수 하며 복음을 전하는 또 다른 10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 것을 다 짐한다.

●신문배달: 언제든 시간이 허락될 때 2번째, 4번째 주말 자원봉사 원하실 때 1회도 감사 (비정기적도 가능) ●배달지역: 스프링스 지역 웨스트민스터 한아름마트 ●문의: (303) 667-2778 / thelightandsalt@gmail.com

오직 성경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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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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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9일

덴버지역교역자회

8월 월례회, 믿음장로교회에서 개최 "눈물과 기도로 씨를 심는 교역자회!"

사회 유지훈 목사

말씀 김병수 목사

예배 광경

기사: 최성애

친교시간

사모회 월례회 광경

덴버지역 교역자회 8월 월례회가 지

신다. 하나님은 은 17 세겔을 주고 망

누엘연합감리교회)의 회원 호명에 이

는 못하지만, 주 안에서 기도의 동역자

난 8월 30일, 믿음장로교회에서 개최

해버릴 땅을 사라고 하시지만, 예레미

어, 사회 유지훈 목사의 개회 선언으

로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의견을 모았

되었다. 이날 월례회는 많은 목회자들

야는 순종한다. 왜 밭을 사라고 하셨

로 회무처리에 들어갔다. 회의는 회순

다. 사모회는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과 사모들이 참석하여 활발한 의견을

을까? 우상숭배 하며 아무리 선지자

통과, 광고, 각부 보고로 진행되었다.

상황이지만 덴버지역 교역자회와 사모

주고받았다. 월례회는 1부 개회 예배로

를 보내도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

시작되었다. 사회 유지훈 목사(참빛교

성들을 행하여 공의로운 가지를 나게

특히 에콰도르 선교사 임동섭 목사

을 위하여 합심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회), 기도 이두화 목사(휄로쉽교회), 설

하시기 위해, 70년 만에 돌아온 백성

는 선교 보고를 통해 그곳 신학교의

을 의지하고 서로 사랑의 끈으로 연

교 김병수 목사(믿음장로교회), 축도

이 열매를 먹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

소식을 자세히 전달했다. 코로나 사태

결되어 난관을 이겨내고 승리하길 확

이강철 목사가 순서를 맡았다.

님도 자신을 심으셔서 우리를 구원해

로 인하여 장기간 영상으로 수업을 진

신했다.

주셨다. 그 열매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

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이로 인하여

김병수 목사는 예레미야 32:6-15절

성이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졸업식까지 연기되고 있는 어려운 실

이어 믿음장로교회 남녀전도회에서

말씀을 본문으로 “아나돗의 밭을 사

같아도 씨를 심는 일을 하는 것이 우

정을 알리며 기도와 후원으로 동역해

정성껏 준비한 식탁으로 초대되어 사

라”를 전했다.

리의 사명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

주길 간곡히 요청했다. 현재 에콰도르

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식탁에 둘러앉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가

물로 씨를 뿌리는 귀한 사명을 주셨

신학교에는 4개국의 학생이 등록하여

아 미처 나누지 못한 소식들과 앞으

지금 우리 목회자들에게 닥친 상황과

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 길을 여는 사

박사 과정 13명, 학·석사 과정 22명,

로 진행될 여러 가지 사역을 중점으로

오버랩이 되어서 눈물이 나왔다는 김

명을 감당해 나가는 모두가 되길 주님

총 35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격려하며 아름다운 대화가 이어졌다.

병수 목사는 “예레미야의 눈물의 삶

의 이름으로 축원한다”라고 격려하며

을 통해 목회현장을 생각하게 된다.

말씀을 마쳤다.

한편 사모회는 회원들의 근황과 기 도의 제목을 나누었다. 코비드 19로

눈물만 흘리다 인생이 끝난 예레미야 에게 하나님께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

회는 지역교회들과 목회자들, 성도들

2부 월례회는 서기 전병욱 목사(임마

자주 만나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지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신앙 칼럼

2021년 9월 9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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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10주년을 맞으며... 발행인 최성애 권사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겨자

그동안 지치고 굶주리고 병든 공중의

씨 비유를 통해서 일깨워 주셨다. 나무

새들이 날아와 그늘에서 열매를 먹으며

기에는 갈릴리 지방에서 무성하게 자라

가 장성하여 열매를 맺고 새들이 깃들

쉼을 얻고 회복되도록 주님께서 역사하

체들, 빛과소금뉴스 자문위원들과 임원

는 겨자가 제주도의 유채꽃처럼 들판을

만하기 위해서는 인고의 시간과 희생을

셨다. 그리고 겨자 꽃향기와 씨가 바람

진들, 이사진들과 회원들, 그리고 빛과소

노랗게 물들여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 오직 자기를 비우고 겸손

결을 타고 흩어지듯 우리 주 예수 그리

금뉴스를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애독

사로잡으며 싱싱한 봄기운을 선사한다.

한 섬김이 있을 때, 믿음이 성장하고 주

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이 이 지역

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님께서 기뻐하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

을 넘어 지구촌 여기저기 인터넷신문을

할 수 있다.

통하여 선포되고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

늦은 비가 내리는 2~3월, 이스라엘 우

겨자씨는 지름이 1~2mm밖에 안 되 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이스라엘 전

님께 영광 돌리고 있다.

10주년을 맞아 다시금 빛과소금뉴스 는 끝까지 진리를 사수하며, 모든 열방

역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생명력이 강한

사실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뿐 아니라

잡초이다. 하지만 1~2년이 지나면 1~2m

작은 것에 많은 가치를 두셨음을 기억할

이제 빛과소금뉴스는 하나님의 은혜

를 찬송하며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가량 성장하고, 최대 3~4m까지 자라서

수 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

가운데 앞으로 또 다른 10년을 향해 힘

경외할 때까지 복음을 담대히 전하기를

새들이 열매를 따 먹으며 쉴만한 공간

매...”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차게 달려갈 것이다. 전과 같이 세상과

소망하며 결단한다.

을 제공하고 둥지를 틀만큼 성장한다.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어린아이들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를 의뢰하고 적

그리고 현지의 한인들이 이 겨자를 이

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진으로 달리며 우리의 하나님을 의지하

백향목이 되기보다는 작은 겨자씨임

고 성벽을 담대히 뛰어넘을 것이다(삼

을 늘 기억하며 감사로 모든 영광을 하

하 22:30).

나님께 돌린다.

른 봄철, 김치나 나물로 먹기도 한다. 이

이 주께로 돌아오고 모든 민족들이 주

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씨가

딱 오늘로써 빛과소금뉴스가 창간 10

성장하여 새들이 깃드는 나무로 성장하

주년을 맞았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는 겨자는 사실 1~2년생 초본으로, 흔하

가운데 지난 2011년 9월 9일 창간호를

그러나 결코 잊지 않을 것은 빛과소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고 볼품없어 현지의 누구도 귀하게 여

발행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스

뉴스는 한 알의 작은 겨자씨에서 시작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기지 않는다.

스로 쉼 없이 일하시고, 하나님의 사람

되었고, 여전히 하나님의 끝없는 돌보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

들로 하여금 지치지 않고 달려올 수 있

과 은혜가 아니면 곧 말라 죽어 불쏘시

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

도록 격려하시고 붙드셨다. 눈에 보이지

개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초본에

(눅 17:6)

들에게 발에 차이고 밟힐 만큼 흔하고

않는 겨자씨처럼 시작이 미약하고 초라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볼품없는 겨자씨를 통하여 믿음과 하나

하여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았지만, 무

님 나라를 보여주신 점이다. 하나님 나

관심 속에서도 꿋꿋하게 성장하여 어느

이 지면을 통해 문서선교에 동역하

라는 모든 사람이 흠모할만한 크고 강

덧 빛과소금뉴스는 10년생 든든한 겨자

는 모든 지역교회들과 목회자들, 필진

하고 화려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되었다.

들, 후원하는 개인과 단체, 기독교 사업


강단 설교

2021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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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요한계시록 신앙에서 돌아서라 3:14-22>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소아시 아 일곱교회에 주신 마지막 말씀으로, 라오 디게야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라 오디게야 교회는 사데교회처럼 칭찬은 없 고, 책망만 있는 교회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강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표현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말씀 하실 수 있을까 생각할 만큼 강한 책망이 었습니다. “...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 라”(16절) 너를 보면 역겨워서 토할 것 같 다... 아무리 그래도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 들인데, 표현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그 들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 과 격한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강한 책망을 하 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미지근한 신앙 때문 이었습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으로 인해 주님이 아주 강하 게 책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라오디게야 교회 를 향한 주님의 강한 책망에 저와 여러분 은 어떠합니까? ‘나는 아니지요...’하며 주 님의 책망에 벗어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 땅에 신앙이 뜨거운 사람이 많을까요? 미지근한 사람이 많을까요? 교회를 오래 다 녀도 “내가 신앙에 열심이 있는 것은 아니 지...뜨거운 것은 아니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아마도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래도 나 름대로 신앙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된 것인가? 예수님으로 부터 강한 책망을 들을 만큼 잘못된 것인 가? 그래도 교회에 안 나오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직분도 받고 교회도 나름대로 섬 기고 봉사하고 있는데... 허랑방탕한 사람도 많은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요? 그런데 주님은 오늘 라오디게야 교회에 주신 말씀 을 통해 미지근한 신앙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가 깨닫길 원합니다. 신앙의 열심과 뜨 거움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의 열 심과 뜨거움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 지 “미지근한 신앙에서 돌아서라”는 제목 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라오디게야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 라오디게야 도시는 검정색 옷 제조업으로 아주 유명했습니다. 의과기술이 발달하여 의술학교로도 유명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안약이 유명했는데,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서 눈병을 치료하는 안약을 개발했습니다. 섬유산업과 의술과 안약 그리고 금융산업 등 여러 산업들이 발달했기 때문에 상당한 부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AD 60년에 소아 시아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소아 시아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라오 디게아는 소아시아 일곱 도시 중 유일하게 로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체 재정 능력 으로 도시를 재건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야는 지역 위치상 물 사정 이 좋지 않았습니다. 주변 도시였던 골로새 의 찬물과 히에볼리의 뜨거운 온천물이 만 나는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곳의 물은 미지근했습니다. 뜨거운 온천수가 식은 유 황 냄새 때문에 마시기에 매우 역겨웠습니 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라오디게야 교회를 향해 주님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 근한 신앙을 책망했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 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16절) 주님이 미지근하다 했을 때에 라오디게야 성도들은 이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미지근 한 물을 보기도, 냄새 맡기도, 마시기에도 매우 싫고 역겨웠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들의 신앙이 마치 “이 미지근한 물과 같 아서 토할 것 같다” 하시니 이 얼마나 강 한 책망입니까? 미지근하다, 토할 것 같다 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현실감 넘치는 책망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어떤 청년이 목 사님에게 찾아왔습니다. 세례를 받은 바로 다음 주 토요일에, 직장 회식 자리에서 엉 망으로 취해 완전히 낙심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세례받은 것은 가짜요, 예 수 믿는 것도 거짓이라며 주정을 부렸습니 다. 3차까지 가면서 온갖 문란한 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교회 사무실에 불이 켜져 들렸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을 다독 이고 성경을 펴서 에베소서 4:30을 읽게 했 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 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 습니다. 세례받은 게 다 허사이고, 구원받 은 것도 거짓이라면서 왜 괴로워하고 있니? 지금 술에 잔뜩 취했는데, 오늘같이 회식한 다른 직장 동료들도 너처럼 그렇게 괴로워

할까? 뭐가 그렇게 괴로워서 나를 찾아와 울고 있는 거야? 너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근 심하시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니? 하나 님께서 정말 너를 떠나셨고, 세례받은 것도 가짜라면 네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을 리가 없어! 너의 괴로움을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이 말을 듣던 청년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심령 의 고통은 성령의 탄식 때문이었습니다. 성 령의 탄식을 듣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은 아 니지만 그래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다는 확 실한 증거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탄식하 셨습니다. 너의 미지근한 신앙으로 인해 토 해버리겠다. 너를 보면 토할 것 같아! 주님 으로부터 책망을 듣는 것은 좋은 일은 아 니지만 그래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는 확실 한 증거입니다. 너를 사랑하니깐 제발 돌아 오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본문 19절의 말 씀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 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 개하라”(19) 주님께서 입에 담기에 험할 정 도로 강한 책망을 하시는 이유는 라오디게 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발, 내 마음을 알아줘! 내가 사랑한다! 내가 사랑 하기 때문에 책망한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 라! 어서 돌아오라!

라오디게야 교회의 영적 진단 라오디게야 교회가 미지근한 신앙에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늘 자랑처럼 생 각하고 말하던 것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 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7) 그들은 자신들이 부자인 것과 물질적인 부요를 누리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생각 했습니다. 물질적인 부요함으로 인해 생활 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 질적인 부요함 때문에 영적으로도 부요하 다고 착각했습니다. 생활에 부족함을 느끼 지 못한 것 때문에 영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교만함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주님 은 라오디게야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셨습니 까? “그들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 다”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부요 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그들의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했으며 가난하고 눈 이 멀고 벌거벗은 자들이었습니다. 영적으 로 매우 비참한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영 적으로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고백은 시편 23편 을 지은 다윗의 고백과 완전히 대조적입니 다.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 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 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다’며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고백 속에는 세상에서 내가 가진 것 없다 할지라도 하나 님만 계시면 충분하고 만족하다는 고백입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떤 고백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라오 디게아 교회의 고백입니까? 아니면 다윗의 고백입니까? 세상의 부요함보다 하나님의 부요함을 구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회색지대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인 부요함으로 인해 미지근한 신앙에 빠졌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 가난하고, 곤고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실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신 앙생활을 잘하니깐 세상에서 성공했고, 부 자가 되었으며, 물질적으로 복을 받았다는 착각과 교만에 빠졌습니다. 신앙도 좋지만, 세상도 좋다는 것이지요. 신앙을 이용하여 세상에 좋은 것을 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미지근한 신앙에 대해 예수님께서 산상수 훈의 말씀으로 도전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 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 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 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며, 라오디게아 교 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오늘날 이 시 대의 교회들과 가장 많이 닮은 교회가 아 닐까요? 저와 여러분의 신앙과도 많이 닮지 않았습니까? 나도 모르게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쳐놓고 하나님과 물질


강단 설교

2021년 9월 9일

을 겸하여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라보는 것,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일에

서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기도의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

열심을 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회개하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복, 저런 복, 잘되게

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이게 하

라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지 못했음

해달라! 성공하게 해달라! 돈 많이 벌게 해

라”(18) 주님은 라오디게야 교회가 어떤 열

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주님보다 세상으

달라! 자녀들이 잘되게 해달라고 복만 빕니

심을 회복해야 할지 하나하나에 대해 말씀

로 만족하는 우리의 신앙을 회개하라는 것

다.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며 구제하고 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금, 옷, 안

입니다.

도하며 선교하는 것도 이렇게 하면 하나님

약은 라오디게아 도시의 자랑입니다. 그들

예전에 저의 딸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

이 복 주실 거야, give and take로 믿음생

이 이미 가진 것들인데 그것을 ‘사라’ 말

어서 “햄스터 햄스터” 했는데 방학이 끝

활하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이 만큼 했기

씀하십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흰옷

날쯤 햄스터 대신 기니피그 두 마리를 키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 만큼은 주셔야

을 사라! 안약을 사라! 이미 있는데, 그것으

우게 되었습니다. 저의 딸이 잠이 많습니

한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은 아닙

로 부요해졌는데, 도대체 이 말씀이 주는

다. 방학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기를 너무 힘

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들어했는데, 이제는 개학해서 일찍 일어나

섬기는 미지근한 신앙입니다. 오늘 라오디게

금과 옷과 안약을 출처가 어디인가입니다.

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저의 딸이 무척 일

아 교회가 물질적인 부요함으로 인해 자신

주님은 이것들을 어디에서 구하라 하십니

찍 일어납니다. 그렇게 잠을 좋아하던 아이

의 영적인 실상을 보지 못하고, 착각과 교

까? 누구에게서 사라고 하십니까?

가 아침 6시 30분이면 거뜬히 일어나 제일

9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할 것은 주님과의

앙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

바른 관계 회복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공급

다. 어떻게 하면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자 그러면 주님이 어떤 열심을 원하시는

받으려 하는 것을 끊어버리고, 주님으로부

수 있을지,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

지 주님의 권면을 들어보겠습니다. 본문 18

터 공급받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내 안

을지 그 길을 제시합니다. 본문 20절의 말

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 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20) 저는 이 말씀 을 보면 어린시절 교회 벽에 걸려있던 액자 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들기고 계십니 다. 그런데 그 문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말씀이 아 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문 안에 있는 사람이 문 을 열고 주님이 문 안으로 들어오시면 됩니 다. 미지근한 신앙을 끊어버리기 위해 주님 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 들기십니다. 문을 열어다오! 문을 열어다오!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은 내 마음의 문을 여 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 면 미지근한 신앙이 끝나버립니다. 신앙의 열심과 뜨거움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문 두드리는 소 리가 잘 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의 소리를 너무 많이 듣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 소리가 소란하여 주님의 음성 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마음 에 오시면 이것도 저것도 내려놓아라 하실 까봐 두려워서 주님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 는 것입니다. 주님과 사는 것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아 닙니까? 주님과 사귀며 사는 기쁨을 경험 해보십시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큰 것을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길 원하십니다.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들기고 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시지 않겠습니까? 주 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미지근한 신 앙에서 벗어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우리 와 함께 식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더 불어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 원하십니 다. 주님이 우리와 식사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언제나 어디에 있든 지 24시간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하 십니다.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실 때 미지 근한 신앙은 모두 다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신앙에 열심과 뜨거움이 불일 듯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살아

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

에 살아계시고 일하시는 주님을 항상 바

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

계신 주님과 동행하기를 축원합니다.

만에 빠진 것이 바로 미지근한 신앙입니다.

“내게서...” 예수님으로부터 금을 사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니

제가 드리는 말씀을 불편해하시는 분들

예수님으로부터 흰옷을 사라! 예수님으로

피그 똥을 치우고 더러워진 패드를 빨래하

도 계실 것입니다. 복을 구하는 것이 뭐가

부터 안약을 사라 말씀하십니다. 불로 연

고 음식과 물을 채워놓습니다. 정말 귀찮을

잘못된 것인가? 그래도 기도하지 않는 것보

단한 금이라는 것은 고난을 통과한 믿음을

텐데... 음식 먹는 것을 보면서 ‘귀엽다’며

다 낫지 않은가? 뜨겁지 않아도 주일예배에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금과 같

난리입니다. 자기 손에 냄새를 맡은 것, 자

빠지지 않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낫지

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

기 손에 있던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자랑

않습니까? 집에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성경

자가를 통해서만이 더러운 죄를 덮는 흰옷

스러워하고 대단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침잠

도 읽고, 기도도 하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

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이 많던 아이가 잠을 포기하고 어떻게 그

보다 낫지 않습니까? 주님은 그래도 낫지

세상을 분별하는 영적인 눈을 가질 수 있

런 열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네, 사랑하니

않은 신앙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

깐 열정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니깐 잠을 포

신앙, 열심 있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해 열심을 내라는 것! 회개하라는 것은 예

기하고, 더러운 똥도 치우고 빨래하고 음식

수님을 통해서 하라는 것이지요...

도 주며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목사님이 믿음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남자 집사님 집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시 말해서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사랑

분은 대학교수였고, 성품도 훌륭하며, 교양

부터 시작하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을

에 빠졌다면 예배하지 말라고 해도 예배하

도 있으며 다들 그분을 좋아했습니다. 다들

통해서 부요함을 얻고 누렸지만, 이제는 세

러 나올 것입니다. 기도하지 말라 해도 기

그분의 믿음이 좋다며 칭찬했습니다. 목사

상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부요함을 얻는

도할 것입니다. 전도하지 말라 해도 전도할

님은 그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데 열심을 내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8:3절

것입니다. 제발 교회에 나오지 마시고 온라

집사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집

의 말씀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

인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해도 마스크를

사님께 맡기신 일은 무엇입니까?” 갑자기

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

껴서라도 여기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정색하면서 “목사님, 저는 사명 같은 것은

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을 사랑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뜨거움과

없습니다.” 사명은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열정이 막 쏟아 오릅니다. 주님은 라오디아

하는 것이지... 뭐라도 시킬까봐..., 뭔가 일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

교회에 주님 사랑하는 열심을 회복하라 말

을 맡길까봐 정색하며 “사명 같은 것이 없

려 하심이니라”(신8:3)

씀하십니다. 주님보다 세상으로부터 공급받

다”고 했습니다. 겉은 부요했지만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고 만족하는 것을 회개하라 말씀하십니다.

곤고하고 가난한 것이 이 집사님의 실상이

게 만나를 내려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동일하게 우리교회에 말씀하십니

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미지근한 신앙에

하나님의 백성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

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열심

서 돌이키기 위해 “열심을 내라!” 말씀하

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

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과의 바른관계를 회

셨는데 “열심을 내라”는 말씀이 무엇일까

기 위합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필요를

복하라! 주님을 사랑하는데 열심을 내라! 주

요? 신앙에 어떤 열심을 가지라는 말씀일

공급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공

님보다 세상으로부터 공급받고 만족하려는

까요? 예배하는 열심, 말씀 읽는 열심, 기

급받는 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공급이 없

것에 회개하라 말씀하십니다.

도하는 열심, 섬기고 봉사하며 구제하는 열

는 신앙생활은 죽은 것입니다. 미지근한 것

심, 이러한 열심들을 말씀하실까요? 이러한

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신앙을 토해버리겠

열심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없었을까요?

다 하십니다.

열심을 회복하라

주님과의 식사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미지근한 신


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9월 9일

10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쓰임 받는 존재

열매를 기대하며....

마가복음Mark11:1-1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3).

마가복음Mark11:12-19 예수께서 나무에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14).

........................................................................................

......................................................................................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어린 나귀 새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마을에 두 제자를 보내 나귀를 끌고 오라 하십니다.

멀리 서 있는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 그 열매로 아침 먹을 것을 기대하셨던 예수와 제자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무화과 열매가 없었습니다. 무화과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왜 그 나귀를 끌어가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대답하라 하십니다.

그런 데 무화과 때도 아닌데 열매를 찾았고 열매가 없다고 나무를 저주하고 제자들은 어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전했고, 나귀주인은 허락합니다. 주의 일이란 내가 하지만, 내 마음대로가 아닌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요14:34).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보내시고 일하게 하셨음을 다시 다짐해 봅니다. 보내시고 일하게 하신 분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씀하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시는데도 우리는 늘 그분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생각하고 행하려 하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나에겐 다는 것이 필요하구나!” 쓰시겠다 하십니다. 어린 나귀도 예수님께 쓰임 받았다면, 왜 우리가 쓰임 받지 못하겠습니까? 나는 아직도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이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피닉스<들꽃피는마을>에서정봉수

이것은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삶이 풍성해 보이는데, 가까이 접근해 보면 내면은 텅텅 비어있고 성령의 열매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돈벌이 하는 자들이 다 그런 자들입니다. 교회공동체는 잎만 무성한 화려한 곳이 되기보다 내실이 잘 다져져 있어야 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삶의 열매가 익어 가야 할 것은 열매는 씨앗을 품고 그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열매가 땅에 떨어진다 하여도 썩어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의 생명력이 되게 합니다. 생명력 자체가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나를 쓰시기 위해 부르셨다면 많은 열매를 맺어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ooreekmc@hanmail.net>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호 14:2)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1년 9월 9일

11

하나님께 묻기를 잘해야 강풍이나 우박, 폭우나 홍수를 어떻 게 막을 수가 있는가? 죄악을 금하고 정 의와 공의롭게 처신하여야 하나님의 진 노를 사지 않게 되고 천지를 안전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강풍은 속도만큼 힘을 발생하기에, 신 앙의 속도와 힘이 있고 유지되도록 신 앙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은혜나 자비로 인하여 기도 나 간구에 들으시고 피하거나 도움을 얻 게 하여 주신다. 신앙의 열정만은 어디 를 가든지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 님을 죽게 하시면서까지 의와 사랑과 선 하심으로 택하심을 받았거나 알곡 신앙 인들은 더 큰 신앙과 자부심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 의식이 있어 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사울 왕과 그의 군대에게 쫓 기어 다녔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한 신 앙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소망과 앙망 함이 있었다. 그는 40세에 왕이 될 때까 지 그의 신앙은 순수하였고 열정과 용 기와 충성심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 랑과 선호하심과 신실하심을 받을 만 한 자이었다. 어느 날,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해서 타작마당을 빼앗았 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는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할지를 하나 님께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 들을 다윗의 손에 붙이겠으니 그곳으로 가서 그일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다 윗은 그 사실을 목숨을 걸고서 그와 동 고동락을 하고 있는 600명의 군사에게 말하였으나,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쫓겨 서 두려움을 당하고 있는 지경에 블레셋 을 공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 하면서 반대하였다. 만약 우리가 다윗이 었다면 어떻게 처신을 하였겠는가? 하나 님의 명령대로 다윗은 용기를 내어 그의 군사를 데리고 그일라고 갔으며, 블레셋 사람들을 습격함으로써 승리할 수가 있 었다. 그리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의 가축들을 가지고 가서 생존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 도하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울 왕에게, 그일라에 다윗이 있다는 말이 들렸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신의 손에 맡겼다고 좋아하면 서 모든 백성을 군사로 만들어서 그일라 로 내려갔다. 그런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께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붙들 어서 사울에게 넘길 것인지, 그리고 사 울이 정말 군대를 이끌고 그일라로 내 려올 것인지를 물었다. 그일라는 자신들 의 생존과 유익을 위하여서는 생명의 은 인을 넘길 파렴치한 자들이었다. 다윗은 하는 수 없이 원망 없이 그리고 조용히 그일라에서 떠나고 말았다.

다윗은 그 후에도 사울의 끈질긴 추 격을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하셨고, 다윗은 사울을 죽일 절호 의 찬스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그때마 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았다 고 하여서 그를 살려 주었다. 그 후에는 블레셋으로 피신을 하여서는 미친 척을 하였다. 또한 다윗의 군사들은 자신들 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아말렉 족 사람들에게 끌려갔기에, 분노하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을 힘입고서 용기를 내어 가족을 끌고 간 자들을 뒤쫓아 가야 하는지를 물었 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쫓아가면 반 드시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은 들 에서 애굽 사람을 만나서는 그에게 호의 를 베풀면서 그의 인도함을 받아서 아 말렉 사람들을 발견하였고 그들을 쳐서 는 탈취당한 사람들을 모두 되찾았다. 다윗의 소년 시절에는 순수하고 하나 님을 위하여서는 용맹하여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다. 그가 청년일 때에는 그가 강하고 담대하고 하나님을 찬양하 고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신뢰하며 하나 님께 충성을 다하여서 하나님께서는 그 와 함께하셨다. 그가 장년일 때에는 서 서히 게을러졌고 정욕과 교만으로 큰 실 수와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그의 노년 에는 나약하고 유비무환을 하지 못하여 서 아들들 중의 압살롬에게 쫓겨나서는 목숨을 건지었으며, 왕위 계승에 있어서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무능력하게 대처하여서 솔로몬과 아도니 야와의 사이에 큰 분쟁이 발생하였다.

우리의 소년, 청년, 장년 그리고 노년의 상황은 다윗의 상황보다 더 나은가? 질 문이나 기도나 간구를 할 수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의 장점을 본받고 그의 단 점을 교훈으로 삼는 것이 지혜롭다. 교 만할 상황에는 밑바닥까지 열심히 겸손 하여서 다시 흐름을 타고서 예수님의 겸 손을 닮도록 애를 써야 한다. 분노가 발 생할 때에는 밑바닥까지 온유하도록 애 를 써서 다시 흐름을 타고서 예수님의 온유함을 닮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미 움이 발생할 때는 밑바닥까지 사랑하도 록 애를 써서 다시 흐름을 타고서 예수 님의 사랑을 닮도록 애를 써야 예수님 을 닮은 자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힘과 능력과 권세가 있을수록, 정의로워서 사 회나 나라가 안전하도록 유지하고, 공평 하여서 사회나 나라를 평탄하게 유지하 고, 선과 의와 정직하여서 사회나 나라 를 부강하도록 기도하고 타의 모범이 되 어야 한다. 그리고 매사에 믿음과 진리 와 사랑으로 처신하여서 하나님과 하나 주일예배: 오전 가 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또한11:30 꾸준하 (장소: 2821 S 유스주일예배: 주일 오전 10:30 (장소 게 평안과 복음을 끼쳐서 이 땅에서부터 수요예배: 오후할 것이다. 7:00 (장소: 5651 S 천국시민답게 살 수가 있어야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9월 9일

12

사무엘상 강해(53)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그가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사무엘상 14:31-35>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울 왕의 어리

웁니다. 이들이 어느 정도 피곤했을지

여기 백성들이 ‘달려갔다’라는 표

석은 금식령으로 인하여 일어난 첫 번

를 사무엘서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현이 나옵니다. 먹을 것을 향해 달려

째 사건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무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갔습니다. 여기 ‘달려가다’라는 동사

요? 첫째는 잔인함 때문입니다. 둘째

엇입니까? 자신이 내린 저주의 맹세에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

가 히브리어로 ‘야아트’인데, 이것은

는 씨를 번식시키는 창조의 법칙을 훼

자신의 아들이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

육식동물이나 맹금류들이 먹잇감을

손하지 않기 위입니다. 그리고 세 번

사울 왕은 아들을 죄짓게 만드는 아

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사무

향해 탐욕스럽게 돌진하는 행동을 나

째는 한 사람의 생계가 위협받는 일을

버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첫 번

엘상 14:31).

타내는 단어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스

막기 위한 목적입니다.

째 사건입니다.

라엘 백성들에게는 눈에 뵈는 게 없습 여기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라

니다. 체면, 인간다움, 절제, 율법을 지

또한 율법의 큰 계명 중의 하나인 ‘

오늘 본문은 사울 왕의 어리석은 금

는 말이 또 나옵니다. 이 피곤은 24절

킴 등의 단어는 사치에 불과합니다. 뭐

피 째 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습니

식령으로 인하여 일어난 두 번째 사건

의 피곤과는 다른 피곤함입니다. 병사

만 있습니까? 육신적인 배고픔을 해결

다. 왜 피 째 먹으면 안 됩니까? 하나

을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자

들이 얼마나 피곤했는가를 알리기 위

하기 위한 동물적인 본능만 있습니다.

님은 핏속에 ‘생명’이 있다고 보셨습

신이 내린 금식령으로 인해 백성들을

해 사무엘서 저자는 이런 표현들을 씁

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주인은 하

둘째, 백성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습 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를 지었습니까? 동물을 잡아먹을 때 낸 거리가 엄청납니다. “믹마스에서 니까? 동물 도살 법을 어겼습니다. 러므로 사람이 피 째 고기를 먹는 것 죄짓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죄

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을 몰아

피 채 먹지 말라는 율법을 어겼습니

아얄론까지”라고 그랬습니다. 아얄론

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들이 죄짓는

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접경지역입니

3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권위에 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다. 이 거리는 믹마스로부터 약 30km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니다. 이 먼 거리를 먹지 못한 채 블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고

첫째,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된 원인이 레셋과 싸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사무엘상 셋째, 이런 백성들의 모습에 대한 사 무엇입니까? 울 왕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먼저 백성 엘 백성들은 그냥 피곤한 것이 아니라 14:32). 들의 행동을 책망합니다. ‘심히’ 피곤했습니다. 원인 제공자는 사울 왕입니다. 전쟁

이들이 어긴 도살 법은 두 가지입니

하느라고 피곤에 지친 병사들에게 전

이스라엘 병사들의 가중 된 피곤함

다. 먼저 양과 소와 송아지를 끌어다

33절을 보면 뭐라고 책망합니까?

쟁을 끝내는 저녁까지 음식을 먹지 말

을 독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 사무엘

가 그것을 ‘땅에서’ 잡았습니다. 그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하고 한 것입니다.

서 저자는 ‘심히’라는 단어를 사용

러면 어디서 잡아야 합니까? 큰 돌 제

행하였도다”입니다. 아니, 백성들이 하

하고 있습니다. ‘피곤하다’는 동사가

단 위에서 잡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나님께 죄를 짓는 일에 원인을 제공한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

뭐라고 그랬습니까? ‘야아프’입니다.

피를 흘러내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누굽니까? 사울 왕 자신 아닙

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

이 단어는 ‘기절하다’ ‘졸도하다’

그래서 사울 왕이 백성들에게 큰 돌

니까? 그런데 지금 누가 누구를 나무

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

는 의미도 갖는 단어입니다. 여기에 ‘

을 굴려 오라고 한 것입니다.

랍니까? 백성을 책망하기 전에 먼저

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

심히’, 즉 24절에는 나오지 않는 ‘메

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

오드’, 즉 ‘심히’라는 부사를 사용해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

지 않습니까? 그리고 때늦은 해결책을

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서 백성들의 피곤함이 엄청나게 가중

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제시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맛보지 못하고”(사무엘상 14:24).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루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는 것

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백성들이 보인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

입니다. 왜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까?

행동에서 그들의 피곤함이 어느 정도

게로 굴려 오라 하고”(사무엘상 14:33).

백성들이 피곤했습니다. 전쟁을 하느 라고 이미 피곤해 있습니다. 여기에 먹

자신의 어리석은 과오를 회개해야 맞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였는가를 가름해 볼 수 있습니다.

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지므로 더 피

그리고 어미 소와 새끼를 함께 잡아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

곤이 가중되었습니다. 이미 녹초가 될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

먹었습니다. 왜 이것이 문제가 됩니까?

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

지경입니다. 그런데 병사들은 사울 왕

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이 정한 ‘오늘 저녁’까지 이 전쟁을

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사무

말씀하셨습니다. 어미와 새끼를 같은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마무리 짓기 위해 사력을 다하여 싸

엘상14:32).

날 잡지 말라는 하나님의 의도가 뭘까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서 잡으니라”(사무엘상14:34). 백성들로 하여금 피 째 고기를 먹 지 못하게 해서 죄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 보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아쉬운 것은 사울의 이러한 조치는 이미 백 성들이 죄를 짓도 난 다음에 이루어 진 것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의 결론은 무엇입 니까?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 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사무엘상 14:35). 사울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고 말합니다. 안 쌓은 것보다는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백성들 실컷 죄 짓게 만들어 놓고 막판에 제단 쌓고 예배 한 번 드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 고 무마되는 것입니까? 사무엘서 저자 는 사울이 제단 쌓았다고 해 놓고 “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라고, 이 제단 쌓은 일 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는 가를 반문하게 만드는 언급을 덧붙이 고 있습니다. 사울 왕의 이 제단 쌓는 일이 ‘처음이었다.’는 것은 이제까지 안 하던 일을 느닷없이 했다는 것입니

2021년 9월 9일

다. 쭉 해 오던 일이 아닙니다. 저자는 지금 하나님에 대한 사울 왕의 문제점 을 지금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게 뭘까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 님을 주술적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 습니다. 주술적 대상이라는 것은 하나 님의 인격을 놓치고 종교 형식을 동원 하여 신을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 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동원한 종교 형식이 무엇입니까? ‘금식’입니다. 또 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해에서 결 정적인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류가 만든 우상이나 종교들을 보 면, 대부분 그 신에 대한 인격과 신앙 적인 항복은 없고 신이 가진 능력만 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 장하는 신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 신들의 도덕성이나 인격성이 결코 인 간보다 낫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그 신들의 초월적인 힘을 이용해 먹고 신을 조정하는 이야기들이 희랍 신화 입니다. 무속신앙이 그렇습니다. 무속 신앙은 경배해야 할 또는 섬겨야 할 신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다 만 그 신이 가지고 있는 초월적인 힘 을 빌려서 결과를 얻으려는 종교 행 위만 있는 것이 무속신앙입니다. ‘치

성을 드린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말을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습 니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신이 있 다면 감동해서 내가 비는 내용을 들 어 주라는 것이 무속신앙입니다. 사울 왕은 ‘금식’을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사울 왕이 쌓은 이 첫 번째 제단은 입막음용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잘못을 눈감아 달라고 하는 ‘뇌물’ 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 나님이 우리가 바치는 종교행위(헌금, 예배, 봉사)의 뇌물에 눈이 머셔서 하 실 말씀도 못 하시고 큰 인심 쓰듯이 입을 닫으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어리석은 열정과 정 열의 소유자가 되면 안 됩니다. 특히 내 주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뭔가를 이루려는 잘못된 열정의 소유자들이 지도자가 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 들을 죄짓게 만들고 죄의 고통 속에 살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 람의 열정과 정열이 크면 클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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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이런 하 나님이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6:6) 하나님 바로 알고 신앙생활 하십니 다. 하나님 알아가는 일에 열심을 좀 내십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 만나기 위 해 말씀 앞에 서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인 격적으로 반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처럼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이 해하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이스라 엘이 왜 망했습니까?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잠 3:5~6)

(사 40:28~29)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이영범·이은정 성도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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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역대상, 하와 동일한 유대 역사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 성경은 사무엘하, 열왕기상, 그 리고 열왕기하입니다. 그러나 역대기의 관 점은 사무엘 하와 열왕기서와 같지 않습니 다. 전자(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과 유다에 대한 정치적 역사를 제공한다 면, 후자(역대기서)는 유다의 다윗 왕조에 대한 종교적 역사를 제공합니다. 전자가 선 지자적, 도덕적 관점에서 쓰여졌다면 후자 는 제사장적, 영적 관점에서 쓰여졌습니다.

역대상의 배경과 제목 역대기서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의 책이었고, 그 제목은 Dibere Hayyamim( 시대에 관한 사건들)입니다. 역대기서는 70 인역에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고 그 제목 이 Paraleipomenon(생략된 이들에 대하 여)이라고 주어졌는데, 그 의미는 사무엘서 와 열왕기서에 생략된 내용을 지칭하는 것 입니다. ‘역대기’(Chronicles)’라는 말은 제롬의 라틴어 성경에서 유래되었는데, 제 롬은 이 제목을 통해 ‘신성한 전체 역사 에 대한 연대기’라는 의미로 표현했습니다. 역대기서는 에스라서와 유사한 문체를 지 니고 있고 두 책 모두 계보들, 성전 예배, 제사장적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 한 순종과 같은 면들이 제사장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대하의 종결 부분(36:22-23)은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에스라서의 시작 부분에 반복되고 있 습니다(1:1-3). 마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처 럼 역대기와 에스라서는 역사적으로 하나 의 연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역대상의 주제와 목적 역대기는 다윗의 시대부터 기원전 538년 고레스의 칙령 때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영적 조망을 제공하기 위해 기록되 었습니다. 역대기서를 통하여 하나님은 당 신 스스로가 신실한 분이시고, 인류의 창 조의 시점부터 바벨론 포로가 끝나는 시 점까지 이스라엘의 계보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위한 목적을 드러내시는 분인 것을

논설하십니다. 역대기서는 실패로 종결된 이스라엘 백 성의 역사이지만, 그 가운데 메시야의 계보 와 성전 개혁과 영적 개혁의 초점을 귀환 한 남은 자들에게 전해주므로 그들을 격려 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광이 떠났고 완전히 파멸된 성전에 돌아온 남은 자들은 절망적이었지만, 여전히 하나 님께서 그들을 위한 미래의 계획은 유효하 고 메시야를 탄생시킬 남은 혈통이 존재한 다는 소망과 위로를 보여주십니다. 이런 점 들이 역대기서를 통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교훈 이요 위로입니다. 이와 같은 역대기서는 오늘날 이민 교회 와 성도들에게도 큰 위로와 교훈을 줍니다. 교회의 건물의 유무와 교인들의 세력의 정 도와 무관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교회와 그의 피 값으로 구속받은 친 백성들을 위 로하시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역대상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 핵심 구절 : “17:11-14 네 수한이 차서 네가 열조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 게 하리니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 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나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 니 나의 자비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시기 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 이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 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 하리라 하셨다 하라.” “29: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 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 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 의 머리이심이니이다.” ▶ 핵심 장 : 역대상 17장과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된 “다윗 언약”은 역대상의 전환점 일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전환점이 됩니 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약속하셨 습니다(대상17:14). “그”는 궁극적으로 다 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역대상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역대기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은 사무엘 상,하와 동일하게 다윗의 후손에 대한 언약입니다. 다윗의 왕위를 이은 솔로 몬 역시 장차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게 만 드는 언약의 영속성을 보여줍니다. 역대기 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계보 중 유다 지파 는 가장 선두에 위치합니다. 왜냐하면 메시 야가 유다 지파를 통하여 나올 것이기 때 문입니다(창49:10). 또한 역대기의 1-9장의 족보는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의 족보의 서 문과 같습니다.

역대상 전체 내용 개관 역대기 상은 다윗의 생애에 대하여 모든 내용을 다 할애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에 서 귀환한 남은 자들에게 자신들의 과거 에 대한 조망을 제공하기 위하여 다윗으로 부터 포로 귀환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이스 라엘의 전체 역사를 복습시키고 있습니다. 다윗의 왕족에 초점을 맞춘 계보 (Royal Line of David, 1-9장) : 역대기 1-9장은 다 윗과 이스라엘의 전체의 족보를 추적하는 데 있어서 다른 지파와 불균형적으로 유다 와 베냐민 지파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고, 북왕국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남왕국과 다 윗 왕조에만 집중적으로 조망합니다. 역대기는 창조 이후로 바벨론 포로 이후 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한 백성을 보존하는 일을 해오셨다는 것을 보여줍니 다. 역대기의 족보에 대한 개관은 족장시 대(아담~야곱, 1:1-2:2)를 거쳐서 국가 형성 시대(유다, 레위,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 2:3-9:44)까지를 보여줍니다. 역대기는 특별 히 레위 지파에 대한 관심을 통하여 제사 장적인 관점을 중요하게 보여줍니다. 다윗의 통치(Reign of David, 10-29장) :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역대기는 70인역의 역대기서의 제목 Paraleipomenon(생략된 일들에 대하여) 이 의미하듯이 다윗의 삶을 선별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사무엘하에 기록된 다윗 의 사울과의 갈등, 헤브론에서의 7년의 통 치, 다윗의 많은 아내들, 압살롬의 반역, 그 리고 다윗의 삶의 가장 큰 상처였던 밧세 바와 저지른 그 범죄를 생략하였습니다. 그 리고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와 성전에서의 예배 등 사무엘하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 을 추가시켰습니다. 이런 역대기의 관점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강조하는 것이고, 또한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의 통치에 대 하여서는 단 한 장(10장)만 할애했는데, 왜 냐하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 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즉위 한 후 그의 깊은 믿음의 헌신과 용맹함 그 리고 진실성을 보여주는 대목은 그가 하나 님의 언약궤를 다시 모셔온 것과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한 열망과 야훼 하나님의 일 을 위한 깊은 헌신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장 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세우시고(17 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통치 아 래 왕국은 견고히 확장됩니다(18-20장). 그 러나 다윗은 백성을 계수하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율법의 징계를 받은 내용이 기록 되었습니다(18-20장). 역대기 상 22-29장에 서 비록 다윗이 성전 건축을 실행하지 못 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하였지만, 여기 에 나타난 제사장적 관점은 성전과 예배에 관련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한 계획을 세웠고, 재료를 모았 고, 부지를 선정했고, 레위인들, 제사장들, 찬양대들, 짐꾼들, 군병들, 청지기들을 조직 적으로 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마 지막 감사기도를 드린 후 솔로몬이 왕으 로 등극하고 죽게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 94:18~19) 제공: 맹성자 원로사모(믿음장로교회)


예배학 강좌

2021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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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은 무엇이며, 왜 지켜야 하나요 (1)?” "성경에는 교회력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데 교회력이 혹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요?” 아닌가요?” "교회력을 지키면 무슨 유익이 있나요?” 있나요?” "주일예배의 설교 본문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되어야 하나요?” 하나요?”

‘교회력’¹ 하면 ‘누군가가 괜히 ‘ 멋부리기 위해’ 만들어낸 복잡한 고안 물이며, ‘복음적인 교회’에서는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 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교회 력은 교회가 탄생할 때부터 자연발생적 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부활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 는 당시에 예배하는 날이었던 안식일이 아닌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즉 한 주간 의 첫날에 모여서 주님을 기억하며 떡 을 떼었습니다.(행 20:7) 매주 같은 날이 되면 이렇게 같은 방식으로 주님을 기 념하다가 1년 후 그날이 왔을 때 ’작 년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셨다.‘하고 기 념하면서 더 성대하게 잔치를 벌였습니 다. 이렇게 해서 부활절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전 5:7-8)

고린도전서는 최초의 교회가 부활절 을 지켰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 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 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 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

성령강림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신 후에 제자들 은 그들의 선포와 집회에서 성령이 함께 하심을 수시로 경험했고, 그로부터 1년 후 같은 날에 ’작년 오늘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신 날이다.‘라고 기억하면 서 더 크게 집회를 벌였습니다. 그 후로 매년 그 날이 되면 어김없이 이러한 기

이 본문에 따르면, 당시 그리스도인 들은 부활절을 지켰는데, 그 이름을 ’ 그리스도인의 유월절‘이라고 했습니다. 즉 유대인의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과 그 피로 말미암아 (장자의) 죽음을 면하 고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뀌게 된 절기이고, 그리스 도인들의 유월절은 어린 양 예수의 피 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노예로부터 하 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절기라고 인식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의 유월 절이나 기독교의 유월절은 공히 ’파스 카‘(Pascha, passover), 즉 ’넘어감‘을 기념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Church Denver Halleluja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념의 행위가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과거 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은 이를 통해 공 동체가 주님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 때 그 일‘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체 험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부활절도, 성령강림절도 모두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초대교회 문서들을 살펴보면, 교회력 은 4세기경에 지금과 같은 구조로 이미 확립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력의 근본 취지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의 역사 그리고 성령에 의한 교회의 발 전을 좀 더 극대화하고 거기에 맞는 예 배를 드림으로써 보다 깊이 하나님의 구 속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교회력에 대한 오용이 있었습니다. 중세교회가 성모 마 리아의 축일을 비롯하여 1년 365일을 각 종 성자들의 축일로 채워 예배에서 주님 의 말씀과 구속사건을 선포하기보다는 이들 성자들의 생활담이나 전설을 이야 기함으로써 교회력의 근본 취지를 변질 시킨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오용을 근절하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고자 교회력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 행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교회력 자체 를 부정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루터는 예수님과 관계된 교회력을 지키려고 했 으며 이에 따라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등의 절기는 물론 주님 의 수세일이나 수태고지일 등도 존속시 키려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리 역시 가 치 있는 목적과 무관한 모든 행사는 폐 지하려고 했지만, 대림절, 성탄절, 부활 절, 성 주간(Holy Week), 부활절, 성령 강림절, 삼위일체주일 등은 지켰습니다. 다만 개혁가들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취한 츠빙글리는 교회의 성상들 을 파괴하고,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모 든 성자와 순교자들을 향한 숭배를 철 저히 거부했으며, 당시까지 전해오던 교 회력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교회력에 대해 낮은 인식을 갖게 된 원인은 직접적으로는 우리에게 복음 을 전해준 19세기 미국의 교회들과 그들 이 파송한 선교사들에게 있지만, 더 거 슬러 올라가면 이것은 가장 급진적이었 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반주자를 모십니다!"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키보드 반주를 해 주실 분을 모시고자 합니다. 관심이 있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이메일 (hrockchoi@gmail.com)이나 교회 전화(303-717-0279, 텍스트)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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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의 대화

2021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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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지난 8월 27일 하바드 대학교에는 30여 명의 채플린들이 있는데 채플린의 최고 책 임자인 치프 채플린으로 무신론자가 세워 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의해서 볼 것은 한국인 채플린이 3명인데 미국교단과 한 국교회를 대표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기독 교 채플린을 포함하여 더 나아가 불교, 무 슬림, 조로아스터교, 시크교, 인본주의자… 등 다양한 종교의 채플린으로 구성되어 있 다. 그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채플린들이 투표하여 그들을 대표하는 자로 세운 자가 무신론자인 것이다. 하바드의 학교 설립 목 적과 이유를 놓고 보면 퓨리탄들, 즉 청교 도들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기에, 이들 은 그리스도의 진리에 기초한 학문과 세상 의 빛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목회자 양성기 관을 세우고자 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하바 드 대학교의 모토는 Veritas 진리이다. 그 것도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진리이다. 하 버드 규칙을 보면 “모든 학생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하고 힘써 양육해야 하는 것은 삶과 공부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또 영 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한 복음 17:3)”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 런데 그 진리를 무시하는 자가 채플린들 중 최고 책임자로 세워졌다. 그런데 무신론 자가 하바드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코치하 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청교도들이 학교를 세운 목적을 처절하게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과 기독교를 상대주 의적으로 취급하여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자세가 대세임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지난 2020년 12월 7일 캘리포니아 에서는 주의회 채플린으로 무슬림 채플린 을 처음으로 세웠다고 한다. 무슬림 채플 린이 주의회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 해보라. 일찍부터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이 팽배한 캘리포니아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비웃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런데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시 29:1)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대놓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뺨을 때리듯 이 행하는 이 모습을 보라. 우리는 이런 흐름을 정말 주의 깊게 살펴 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현상은 단 순한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이미 일반사 회 저변에 기독교가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 는지, 목사가 얼마나 우습게 여김을 당하 는지,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주는 반기독교적 사고방식의 지배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막장 드 라마를 보면서 무슨 드라마가 이래 라면서 그 막장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고 또 그것 을 좋아하는 모습의 사고방식이 바로 그 런 세상적 사고방식이어서 무엇이 바른지 를 알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지를 알면서 도 사람들은 그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 람들은 이런 사회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자 세와 사고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고민하 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솔직히 이렇게 되어지는 일을 보면서 누군가를 꼭 짚어서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하고 싶지 않은가? 그 런데 이것은 한두 명이 비난받을 일도, 한 두 집단이 책임질 일도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 의 책임이고 동시에 모든 목사의 책임이기 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가슴을 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가슴을 찢으며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 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데 조롱당 하고 비웃음을 당하시고있다. 물론 마지막 때를 경험하는 큰 흐름 속 에 있기에 개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많이 본 수많 은 잘못과 죄의 모습이 우리 믿는 자들, 특 히 목사들에게 드러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우리 스스로가 거룩을 상실한 시대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시 66:4)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할렐루야교회

거룩 거룩 거룩을 외치는 믿음의 사람 들을 보면서 외식하는 자라고 여기면서 비 웃던 그 시각이 진정어린 거룩을 보지 못 하게 만드는 영적 사시를 만들었기 때문인 지 우리는 이 시대에 거룩함을 보지 못하 고 있다. 또한 거룩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거룩함을 찾지 않고 있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처럼 거룩한 모습과 능력을 잃어버렸으니 사회에 긍정 적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교인들이 세상적 사회에서 젖어 있어 세상적 모습을 떨구지 못한 채 교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을 주장하는 모습은 교회가 세 상을 따라가는 불쌍한 모습으로 드러났고 그런 모습을 보인지는 꽤 오래되었음을 우 리 모두 다 알고 있다. 결국 거룩하지 못한 신자가 교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되니 거룩함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어버렸고 그 로 인해 교회가 사회에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믿는 자와 믿는 자들이 모인 교회의 가장 기본 적인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는 사명을 제시 한다. 즉,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만이 교회 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 거듭난 자들의 진 실된 모습만이 믿는 자의 목적과 삶의 자 세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힘을 쓰는 시 대가 되어졌다. 거짓의 영이 사람들을 현혹 시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 러나, 우리는 최종적인 힘, 최종적인 능력, 최종적인 권위와 나라는 하나님께 속함을 믿는다. 그래서 지금이 더 믿는 자다운 모 습을 드러내야 할 때임을 알고 있다. 이 제 우리는 개교회를 넘어서서 모두가 다 한 마음이 되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 느니라”라고 강력하게 외쳐야 할 때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거룩함을 심 령에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때이다. 세상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 요가 없다. 오로지 우리 눈에는 주 하나님

만이 가득해야 한다. 그럴 때에 주님 닮은 모습이 있게 되지 않는가? 진정어린 믿음의 간절한 고백을 하는 찬양곡이 있다. 찬양곡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 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 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 하나님의 꿈이 나 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 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 주의 길을 걸어 가는 동안에 세상의 것 의지할 수 없으니 감 사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기쁨이 되심이라 /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 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 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 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신실하고 진정어린 가사인지. 우 리들은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은 오 로지 주님께만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의 삶 은 주님 앞에 인정받고자 하는 간절함에 기초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 되 신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신실한 순 종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 가? 개교회의 발전과 부흥에만 몰두하다 보니 진정어린 신자의 모습을 배출하지 못 하여 실망과 상처와 고통 속에 시들어버린 영혼만이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교회마 다 학교마다 사회 곳곳 기관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믿음의 일군들이 세워지 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사모한다. 역동적인 믿음, 연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면서도 오히려 거룩함 을 드러내는 신실한 믿음의 일군들이 일어 나야 한다. 그로 인해 믿음의 사람들과 하 나님께서 제대로 인정받고 존귀히 여김 받 는 역사가 속히 있기를 기도하며 간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15)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삼상 16:23)

제공: 김정애 권사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천경우 목사

덴버영락교회


진리의 샘터

2021년 9월 9일

19

여러분의 삶의 주권자는 누구입니까? 최근 델타 변의로 인하여 코로나 확진

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위험을 주는 이

은 죄라고 하니까 술을 마셨을 때 약간 머

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미국에선 백신 접종

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리가 띵하고 속이 메슥거리는 것을 가지고

과 마스크 착용에 대한 논쟁이 다시 일어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

이것이 술에 취한 것이냐 아니냐를 논합니

나고 있습니다. 텍사스나 플로리다 같은 주

이들의 장난도 아니고 생사가 달린 일을

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덴버 인근 지역만 하더라도

자신의 편리와 이기심 때문에 진실을 외면

의 삶의 주권자가 누구인가의 문제입니다.

Douglas County, Jefferson County 등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받아드리기 어

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반대의 운동이

렵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죄는 결국 하나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직 백신 접종

왜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를 믿지 않고

을 나의 삶의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고 내

을 할 수도 없는 초등학교에서도 마스크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려고 고집할까요?

가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

착용 찬반을 가지고 아직도 많은 논란이

이 문제는 결국 자신의 삶의 주권과 권위

는 주권자가 되는 행위입니다. “그 때에 이

있는 것을 보면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

에 대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삶의

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을 것입니다.

주권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사람이 믿는 것

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백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

과 행동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과학이 자신

이 말씀은 비극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람들이 백신을 거부하고 정부가 자신의 몸

의 삶의 주권자가 되면 모든 결정을 과학

질서가 없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

에 균을 넣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의 근거하여 하게 됩니다. “오늘의 운세”

는 카오스의 시대입니다. 왕이 없다는 것은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

가 자신의 삶의 권위가 되면 그 날 하는

주권자가 없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삶의

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

모든 일을 그 운세에 비추어 보게 됩니다.

주권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

스가 사실이 아니고 정부의 음모라고 믿는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자신의 삶의 주

라엘에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람들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주

권자가 되면 아무리 객관적인 것을 보여준

께서 그들의 왕이시고 주권자이셔야만 했

장하던 사람들 가운데 코로나로 인하여 위

다 하더라도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내

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주권자로

독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이 늘

마음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중환자

주권자가 되고 또 코로나가 거짓이라고 외

결국 무질서와 간음과 폭행과 죽음이 가득

실에 입원하는 사람들 중 십중팔구는 백신

치는 정치 평론가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면

한 삶이었습니다.

을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아무리 객관적으로 설명을 해도 진실을 왜

행위는 자기 자신의 목숨만 위협하는 것이

곡하게 되고 맙니다.

잘못된 주권자는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위험하게 만듭

하지만 이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니다. 잘못된 주권자 때문에 코로나를 믿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

지 않고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을 반대

어떻게 이러한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사

리고 그 모습은 바로 “죄”의 모습입니다.

하는 자들이 사회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람들이 많을까 의문이 드실 수 있을 것입

우리는 어떤 것이 죄고 어떤 것이 죄가 아

것처럼 나의 삶의 주권자가 누구이냐가 그

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데

닌가를 두고 너무 세분화하려고 할 때가

렇게 중요합니다.

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자기 자신뿐 아니

많습니다. 술은 마셔도 되지만 취하는 것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까지 도 위험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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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ampden Ave

하지만 우리가 올바른 주권자를 따른다

면 우리는 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영생 은 영원히 산다는 의미도 있지만 풍족하고 온전하고 차고 넘치는 복을 누리는 삶이라 는 의미가 더 큽니다. 이러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선한 목자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 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b). 양은 목자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를 때에 살 수 있습니 다. 우리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을 따라야만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주권자는 과연 누구입니

까? 혹시라도 교회 안에서, 우리의 삶 가운 데 내가 원하는것을 주장하고 내 뜻대로만 되기를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코로 나를 인정하지 않고 이웃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진정으 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의 주권자이 시면 내가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모 든 것이 결정되고 나는 순종해야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참되신 주권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부활 하신 주님을 만난 도마의 고백이 우리의 고 백이 되고 우리의 삶의 권위가 되기를 소 망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 시니이다” (요 20:28b). 아멘! 아멘!

참빛교회 YouTube Channel: https://tinyurl.com/TLCCYouTube

주일1부(한어) 9:30AM 주일2부(영어) 11:00AM (Eng. Translation Available)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YouTube 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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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학교 9:3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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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20

2021년 9월 9일

행복과 불행은 내 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 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 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 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 라.”(전 7:14) 아침에 눈을 뜨면 동녘에 해가 붉은 색으로 떠오른다. 운전하고 밖으로 나 가면 서쪽에는 로키마운틴 산에 걸쳐 넘어오고 있는 뿌연 연기구름을 보게 된다. 캘리포니아 산불이 재가 되어 여 기까지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우리는 탁한 공기 속에 살아가 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세계적으로는 아프가 니스탄의 탈레반 점령으로 학대와 폭 력의 소식을 보고 듣게 되고 국내적 으로는 허리케인 아이다로 피해를 입 은 뉴올리언스와 뉴욕의 재해로 집이 침수되고 전기가 끊기고 많은 사람이 죽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게 된다.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며 사 는 동물이다. 다가오는 상황에 잘 적 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은 그 감응도가 둔해서 잘 적응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 게 다가온 현실과 환경이 좋든지 나 쁘든지 누구나 적응하며 살아가게 되

어 있다.

오성관 목사

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벧엘교회

것이고,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행복하다]는 감정과 [불행하다]는

더 많이 배웠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생

감정은 환경과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

각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전혀 맞지

성령강림을 행복하게 체험했고 복음과

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그 사람의 삶

않는다. 그것은 행복하다는 기준이 아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가룟인

이다. 행복과 불행은 사물이나 주변이

니라 편리하다는 기준으로 풀어야 한

유다는 생명의 주님을 돈 받고 팔아

어떻게 변하느냐? 에 따라 느끼는 감

다. 외적 성공은 편리할 뿐이지 행복

넘겼으며 불행하게 목매어 자살했다.

정이라기보다 그 변함에 어떤 태도로

과 불행의 기준은 아니다.

대처하느냐? 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같은 목자의 지도를 받으며, 같은 설 같은 옹달샘을 마신 암소와 뱀이 다

교를 듣고 양육 받은 성도가 다른 결

대개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의

른 것을 낸다. 암소는 우유를 내고 뱀

과를 나타낼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소유자들은 행복감이 불행감을 우선

은 독을 낸다. 같은 칼을 손에 쥔 의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여 세상의 빛

하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의 소

사는 사람을 수술하여 살리고 강도는

과 소금이 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어

유자들은 행복감보다 불행감이 더 우

사람을 헤치고 죽인다.

떤 사람은 교회 밖의 사람도 상상 못

선한다.

할 비행을 저지르며 불행한 삶을 산 이것은 주변이나 환경의 차이가 아

다. 이것은 분명 외적 영향이라기보다

우리가 한국에서 자랄 때 자주 듣

니라 그 자신의 내적 차이에서 비롯된

던 말 중의 하나가 ‘개천에서 용 났

다. 내부에서 우유를 낼 준비를 하고

다.’는 말이 있다. 환경이나 처지를 뛰

있다면 우유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러면서도 불행한 삶을 살기로 결

어넘어서 훨씬 성공한 이를 지칭할 때

요, 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으면 독을

정한 그들은 말한다. ‘환경 때문에,

쓰는 표현이다. 이런 성공한 사람들의

낼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마음과 말

너 때문에’라고......,

상황 대처 능력은 언제나 적극적이고

에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

긍정적이다.

도 있다는 말이다.

내적 작용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나의 행복과 불행은 내 안에 있다.’ 이 진리를 잊지 않고 산다면 누구나

많은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이 행복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똑같이

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성

주님의 부름을 받았고, 천국의 말씀을

공이라고 말할 때도 외적 기준이 얼

들었고, 맹인이 눈뜨는 기적도 보았고,

마나 남보다 우세한가에 맞춘다. 좋은

오병이어의 떡도 함께 먹었다. 그런데

가문에 금수저로 태어난다든지, 남보

열한 제자는 주님이 약속하신 오순절

행복 만들기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이다.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1년 9월 9일

21

교회 직분의 본질 오늘날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와 이민

셋째, 어떤 사람들은 직분이 복을 받

세가 70명의 장로들을 세워서 이스라엘

교회를 새롭게 갱신하고 개혁하기 위하여

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

백성을 잘 다스리고 치리하도록 하는 내

가장 시급하게 실천되어야 할 전략들 중

는 복은 물질적, 현세적 복이다. 교회에

용이 나온다.

하나는 교회 직분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

서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하면 할수록, 하

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님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으로 갚아

직분의 신약적 사례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기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구약의 왕, 제사장,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직분에 대한 오해

복주의적인 직분관에 빠진 것이다. 기복

선지자 직분은 예수님이 한몸에 지니시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

오늘날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내에는 직

주의적인 직분관에 빠진 사람들은 “심

고 완성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과 연합된

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

분에 대한 오해들이 만연되어 있다. 첫째,

는 대로 거둔다”는 주님의 말씀을 “많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영적 왕, 제사장, 선

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많은 사람들은 직분이 감투나 계급이라

은 시간을 들여 열심히 직분자로 섬기면,

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구약의 12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

고 생각한다. 계급주의적 직분관에 빠진

많은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성공과 번영

족장의 사역을 계승한 것이 신약의 12사

라”(벧전 5:1-4).

것이다. 그래서 직분이 없는 평신도가 가

의 복을 돌려받는다”는 식으로 오해한다.

도였고, 사도들은 각 지역의 교회를 세우

교회의 장로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되어

면서 복수의 장로 혹은 감독들을 세워

야 하고,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

장 낮은 계급이고 이어서 서리 집사, 안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수집사, 권사, 장로, 목사 순으로 계급이

직분의 구약적 사례

목회사역과 치리사역을 감당하게 하였다.

즉 자신의 권세와 세도를 부리거나 강요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유교적 계급의식이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끈 지도

장로/감독과 더불어 집사직을 두어서 교

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오랜 세월 팽배해 있었던 한국의 사회적

자들 가운데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가 있

회의 재정관리나 봉사를 감당하게 하였

은 계급주의적인 직분관에 대한 정면도전

맥락에서 교회의 직분을 계급으로 의식

었다. 세 가지 직분 모두 머리에 기름을

다. 에베소서 4장 12절은 “그가 어떤 사람

이다. 또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해

부어 세운 직분이었다. 이 세 가지 직분

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

면한다.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직분을 계

은 장차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

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

더러운 이득을 위해 하지 말고 기꺼이 하

급으로 오해할 경우 직분을 수행하는 근

의 직분을 예표한 것이었고, 영적인 의미

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

라고 권면한다. 즉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

본정신인 섬김의 정신이 심각하게 퇴락할

에서 신약의 백성 또한 왕, 제사장, 선지

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

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상위계급에 있다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출애굽기 18

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사

당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한 하나님

는 특권의식과 권위의식이 교회의 분위

장 21-23절을 보면 ”너는 또 온 백성 가운

도들이 세상을 떠난 지금 현재 교회 안

의 나라에서 상급이 있다고 약속하신다.

기를 지배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

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

에 남아 있는 직분은 목사, 복음전도자,

회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교사, 장로, 집사 등이다.

직분의 본질을 회복하라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한 것

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

직분 수행의 근본정신

이다. 결코 개인의 이익이나 영달이나 자

둘째, 어떤 사람들은 직분을 구원의 조

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건으로 생각한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일은 모두 네

에베소서 4장 12절이 밝히 말씀하고 있

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직분은 또한 봉

과 구주로 믿고 신뢰하는 것으로 구원

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는 대로 직분 수행의 근본정신은 성도들

사와 섬김을 위한 것이다. 결코 권세와 세

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받아 직분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

을 섬기는데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도를 부리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

을 감당하는 구체적인 종교적 실천을 통

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를 세우는데 있다. 섬김의 태도, 종의 태

분은 또한 자원하는 마음, 희생적인 자세,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네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네게

도가 교회의 직분자들이 가져야 할 근본

본이 되려는 마음, 강제하지 않고 사랑으

이 있다. 율법주의적 직분관에 빠진 것이

허락하시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태도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께

로 권면하는 마음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다. 율법주의적인 직분관에 빠진 사람들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는 말

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메시아직을 실천하

중에는 교회에서 직분자로 섬기지 않으면

씀이 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

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신 태도를 따라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한

구원을 못 받는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들

게 조언한 내용으로서, 소그룹의 리더들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국교회와 이민교회가 이런 성경적인 원리

도 있다. 직분자로 섬기는 것이 교회적으

을 세워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라는 내

고 말씀하신 근본정신을 따라 실천하는

를 따라 바른 직분 생활을 회복할 때, 교

로 또 개인 신앙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용이다.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

것이다. 베드로 사도 역시 교회의 장로들

회가 점진적으로 새로워질 것이며, 세상의

점에는 동의하지만, 직분자로 섬기지 않으

장 등의 직분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백

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너희 중 장

빛과 소금된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면 천국에 못 간다는 식의 주장은 결코

성을 효율적으로 섬길 것을 조언한 것이

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있게 될 것이다.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다. 또한 민수기 11장 24-30절을 보면 모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제공: 이국형 장로(한인기독교회


쉴만한 물가

2021년 9월 9일

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풍요롭고 아름다 울 수 있다. 라오디게아가 그런 도시였다. 그런 도시에 있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교회이어야 할까?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의 골로새 서쪽 16 ㎞ 지점에 위치해 있는 수리아 왕 안티오 쿠스 2세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그는 아내 의 이름 ‘라오디케’를 따라서 이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브루기아 지방의 교통, 무 역, 금융의 중심지며, 면직과 모직 산업이 발달했던 도시다. 라오디게아는 연고로 된 안약 제조 기술이 발달한 도시다. 그래서 안약을 제조하는 학교가 있을 정도다. 교 통,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면직, 모직 사업과 안약 제조업의 발달로 인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다. 이렇게 산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도시 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주님 은 칭찬 한마디 없이 책망만 하시며, 이기 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계 3:19, 21). 그럼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은 무엇을 이겨 야 하며,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을 까? 그 답은 그들이 받은 책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겨야 할 대상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들의 애매하고 모호한 태도이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 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 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 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5-16) 정치외교평론가들은 그들이 정치 혹은 외교를 분석 평가할 때 전략적 모호성이라

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분명한 태도를 취 하게 되므로 말미암아 상대방으로부터 공 격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의 도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말한 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모호한 태도 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그들에게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어두운 세상을 밝 히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 다. 교회가 이런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있 다면 이로 인해 진리의 명증성을 원치 않 는 사람들이 모여들 수는 있어도, 그곳에 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는 없을 것 이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이념 적 갈등과 가치의 혼돈으로 혼란스러운 시 기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하며 비성경적인 가 치와 이념을 묵인한 채 의도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면,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뿐만 아니라 토하여 내침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차 지도 덥지도 않은 애매 모호한 태도는 영 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런 태 도가 교회와 나라를 죽게 만든다. 두 번째 이겨야 할 대상은 영적 분별력을 가로막는 우매함이다. 이런 영적 우매함은 그들이 스스로 부요하고 성공했다고 생각 하는 자만에서 비롯되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 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7) 어떤 방면에서든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

이 영적으로도 부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방식의 생각이 라오디게 아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에도 있었을 것이 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인 부 와 성공이 그들을 자만하게 했고 이런 자 만함이 그들을 영적 파산으로 이끌었다. 그들의 물질적인 부요함이 영적 나태와 자만을 가져오게 했다. 이런 자만심은 자신 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자신 에 대한 과잉확신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래 서 그들은 영적으로는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 멀었으며 벌거벗는 상태에 이 르게 되었다. 다만 영적인 눈이 멀어서 그 것을 볼 수 없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주님은 이기는 사 람들이 될 수 있도록 이렇게 권면하셨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 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 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 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 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8-19)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주님은 세 가지를 사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먼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야 한다. 불과 같은 연단은 영성 형성을 위 한 하나님의 훈련 코스다. 주님이 허락하 신 불같은 연단을 통과하며 믿음을 지킬 때 금과 같은 영성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금을 많이 산 자가 부요한 자다. 욥은 “내 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 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욥 23:10)고 확신했으며, 그 확신대로 불 같은 연단을 통과하고 정금 같은 영성으 로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욥은 이기 는 자가 되었다. 그 다음 사야 할 것이 흰 옷이다. 여기서 흰옷은 사데 교회의 이기는 자가 입은 흰 옷과 같은 옷인데(계 3:5), 이는 성도의 옳 은 행실을 의미한다(계 19:8). 이 부분을 이 해하기 위해 ‘사데 교회의 이기는 자가 받 는 상급’ 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안약이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해 야한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안약을 잘 만 드는 제조기술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 작 필요한 영적인 안약은 없었다. 그 약을 사서 발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영적 분 별력이 생길 수 있다. 이 세 가지 사야 할 것들 중에 우선적인 것이 불로 연단한 금이다. 불로 연단한 금 으로 영적인 부요함을 소유한 자가 그 금 으로 안약과 흰 옷을 살 수 있기(계 3:18) 때문이다. 그리하여야 주님께 책방받은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계 3:17)을 이길 수 있 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전략적 모호성 으로 인해 얻는 부요함과 성공은 모두 허 상이다. 그런 것을 부흥이라 말하면 안된 다. 주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내 입에서 너 를 토하여 내치리라


좁은 길을 걸으며

23

2021년 9월 9일

늦은 비를 고대합니다 우리 이민의 교회들은 이전에 놀랍게 부 흥을 누렸던 그때를 추억합니다. 구름 떼같 이 성도들이 교회를 찾아 뜨거운 구원의 은혜 감격을 함께 누리었던 그 부흥을 잊 지 못합니다. 이민자로서 낯선 미국 땅을 밟았을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으로 인 도함 받아 부흥의 대열에 참여하였습니다. 놀라운 부흥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부흥 과 그 감격을 추억하며 그 은혜를 이른 비 의 은혜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이른 비의 은혜는 이스라엘에게 참 생명 의 시작이었습니다. 메마른 여름이 지나며 농부들이 파종을 준비할 때 굳어졌던 대 지를 촉촉이 적셔주던 가을비가 바로 이른 비였기 때문입니다. 그 비는 메마른 땅을 유연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른 비가 내 리면 온 대지는 촉촉해져 씨앗을 받을 준 비를 합니다. 농부들은 들뜬 마음을 안고 씨앗을 담은 부대를 안고 밭으로 나갔습니 다. 이른 비를 맞은 대지는 밀과 보리 씨앗 을 품기에 넉넉했습니다. 이른 비는 씨앗들 을 움트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이른 비를 품은 밀과 보리는 겨울을 거치며 이삭을 내고 성장해 갔고 농부들의 소망은 봄이 다가올수록 커져만 갔습니다. 이른 비는 그 렇게 척박한 대지를 진정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복지로 바꾸는 은혜였던 것입니다. 우리 이민 신앙의 역사가 100년을 지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이민 초창기 개척자들 은 하나님 내려주시는 이른 비의 은혜를 맞아 머문 자리마다 교회를 세웠고 그 터 전 위에 우리 이민자들이 교회에 모여 이 전에 누려보지 못한 성장과 부흥을 함께 맛보았습니다. 추억하기만 해도 참으로 가 슴 벅찬 부흥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이민

교회와 성도들보다 이른 비의 은혜를 많이 받은 이들이 없습니다. 저마다 머문 곳이 부흥의 현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놀라 운 부흥은 실로 이른 비의 은혜라 할 수 있었습니다

연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너희가 이른 비의 은혜에 만족하는도다” 말씀하실 것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입니다. 지금 이민의 신앙은 이른 비로 얻은 삶

고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 윤택함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러나 그렇게 이른 비의 은혜를 풍성 하게 누렸던 교회에서 부흥의 열기는 언 젠가부터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부 흥의 대열에 섰던 주역들은 그 감격을 잊 고 이전에 받은 은혜, 이른 비의 은혜에 만 족하며 추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때 누 린 것으로 충분하다고 추억하고 또 추억하 고 있습니다.

마음과 정신이 새로운 부흥으로부터 멀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너

졌습니다. 늦은 비의 은혜는 구하지 않아

희는 왜 이른 비의 은혜에 만족하고 마

도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소진된 이전의 은

느냐? 진정 성장과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늦은 비를 기다려야 하지 않느냐? "새로

님이 우리들에게 구하라 하시는 것은 늦

운 부흥을 고대하라 늦은 비처럼 내려주리

은 비의 은혜입니다. 또 한 번의 부흥인 것

라” 말씀하십니다.

입니다. 앞에 맞을 늦은 비를 고대해야 하 저는 여전히 부흥 부흥 외치며 또다시

는 것입니다.

부어주실 새로운 부흥, 늦은 비의 그 부흥 오늘 현실을 보십시오. 다 익기도 전에 고개 숙여버린 보리와 밀처럼 신앙의 결실 을 맺기도 전에 힘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그 뜨거웠던 아멘의 함성은 어디로 갔는 지… 시간이 없어도 교회는 간다던 그 열 정은 어디로 갔는지… 교회들은 힘을 잃어 가고 성도들은 사명을 놓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가 부흥을 외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 니다. 그저 안락해진 오늘의 삶에 만족하 며 하나님의 은혜도 누릴 만큼 누렸다고 자평하는 그 모습에서 이른 비에 만족하고 마는 농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이른 비에 만 족하고만 설익은 보리와 밀처럼 미성숙한 신앙에 머물러 이전에 받은 은혜로도 충분 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이민의 삶이 풍요로워진 만큼 영적 인 갈급함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부흥 은 스쳐 지나간 오래된 구호에 지나지 않 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전의 부흥에 만 족해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늦은 비가 필

을 꿈꾸어 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함

요합니다. 하나님 내려주실 그 비를 고대해

께 부흥을 고대하자고 권합니다. 이 모두

야 하는 것입니다. 왜 늦은 비를 고대해야

한방울 한방울 내려주실 하나님의 그 늦

합니까? 이른 비를 머금었던 땅이 겨울을

은 비, 아름다운 봄비를 통하여 다시 한

거치며 다시 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번 부흥을 맛보고 함께 성장하여 가기 위

또 다른 비가 필요합니다. 바로 늦은 비입

해서입니다.

니다. 마지막 결실을 위해 내리는 또 한 번 의 비입니다. 그 비를 맞아야 마지막 결실 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른 비에 만족하고 마는 농부는 없습 니다. 추수를 기대하는 농부는 소망 중에 늦은 비를 고대합니다. 우리가 늦은 비를

늦은 비는 겨울이 지나 봄에 내리는 봄

기다리는 농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

비입니다. 겨우내 메말라진 대지와 덜 익

민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른 비를 주셨

은 보리와 밀이 기다리지만, 누구보다 농부

듯이 늦은 비도 주실 것입니다. 간절히 고

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비입니다. 그 비가

대하는 가운데 주실 것입니다.

내리면 마지막 결실을 위해 자라오던 밀과 보리도 기쁨으로 맞이하며 농부들은 말로

독자 여러분, 우리 함께 다시 한번 하

할 수 없는 큰 감격으로 그 비를 맞습니다.

나님 주실 부흥을 고대합시다. 늦은 비로

우리가 이른 비의 은혜도 추억해야 하지만

부어주실 은혜를 기대합시다. 마지막 우리

지금은 무엇보다 늦은 비의 은혜를 간절하

신앙의 결실을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

게 기다릴 때 입니다. 마지막 성장과 결실

립시다. 여러분 모두가 늦은 비의 은혜와

을 가져다주는 비, 은혜에 은혜를 더하는

감격을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비, 이른 비에 못지않은 부흥을 주실 비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4-26) 제공: 서선녀 사모


베드로후서 강해

2021년 9월 9일

24

“경건한 자와 경건치 않은 자(1)” <베드로후서 2:1-11>

저는 대학에 다닐 때 시골에 있는 기 도원을 자주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2주, 3주 많게는 한 달 씩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이미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한 후이기 때문에 미래의 사역을 준비도 할 겸, 영성을 키우기 위해서였습 니다. 저는 서울 근교에 있는 기도원보다 는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미치지 않는 시 골의 한적한 기도원을 택했습니다. 그때 종종 가던 기도원이 경북 상주에 있는 기 도원이었습니다. 전북 정읍의 산골에 있는 기도원도 두 번 다녀왔습니다. 시골에 있는 기도원들 은 시설이 거의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잠자리도 식사도 모두가 불편했습니다. 먹 을 것을 싸 가지고 가서 밥을 해 먹기도 했습니다. 시골에 있는 기도원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기도원 식구들이 매달려서 작은 논과 밭을 가꾸었습니다. 저는 기도원에 있으면서 기도원 식구들 의 농사일을 가끔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경북 상주에 있는 기도원은 여 자분들만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 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 기도 원은 농사뿐만 아니라 양도 몇 마리 키 우면서 매일 양젖을 짜기도 했습니다. 또 한 기도원 산밑에는 사과나무들이 꽤 여 러 그루가 있었습니다. 상품이 될 만한 좋은 사과를 어느 정도 따고 난 다음에 는 얼마든지 남은 사과를 따서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사과 중에는 이미 벌레가 많이 먹어서 거의 먹을 수 없게 된 사과 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과는 겉이 아주 멀쩡했습니다. 빛깔도 좋았고 냄새도 향 긋했습니다. 그래서 나무에서 따서 한 입을 크게 베어 물고 먹으려고 하는데 무엇인가 이 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뱉어보 니 겉과는 다르게 속은 아주 썩어있었습 니다. 벌레들이 사과 안에 들어가서 이미

시꺼멓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빛깔이 좋고 향기도 좋아도 속이 썩은 사 과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벌레가 그 안에 들어있는 사과는 던져 버릴 수밖 에 없었습니다. 20세기 중반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을 끼치던 목사님은 영국의 로이드 존스 라고 하는 분입니다. 존스 목사님은 오늘 본문이 베드로후서 2장을 강해하면서 서 두에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의 모든 장 중에서 이 베드로후서 2장이 야말로 가장 무서운 장입니다. 최후의 심 판과 재난과 파멸에 대해서 모든 성경 중 에서 이 장이 가장 잘 나타내고 있기 때 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멸망이라는 말이 4번 등 장합니다. 심판이 3번, 형벌이 2번, 지옥 과 어두운 구덩이라는 말이 한 번씩 등 장합니다. 하나님이 멸망시키고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 것 입니다. 겉은 똑같은 사과이지만 속은 썩 어있어서 버릴 수밖에 없는 사과를 말하 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말씀 을 들으시기에 부담스럽고 힘든 것도 있 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을 건너뛸까도 생 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듣 기에 편하고 좋은 것만 전해서는 안 됩 니다. 수술을 할 것이 있으면 아프더라도 해야 합니다. 고통스럽다고 방치해두면 더 큰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항상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격려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영적으로 곪아있는 부분을 터뜨리 고 칼로 째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 리기 위해서는 말씀의 수술이 필요한 때 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을 사람들을 한마디로 경건치 않은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경건치 않은 자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요?

첫 번째 경건치 않은 자는 예수 그리스 도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구인회’ 선생이랍니다. 뒷장 표지에는 그 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7만 권을 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백성 가 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 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 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 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오늘 이 말씀의 아주 중요한 것은 경건 치 않은 자를 교회 밖에서 찾고 있지 않 다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 하나님을 모 르고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말씀 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 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 중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선지자 이단들 때문입니다. 한국에만 해도 스스 로를 재림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300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믿고 따르 는 사람들이 수십 만 명이 넘습니다. 며 칠 전 한국에서 누군가가 저에게 책 한 권을 우송해 왔습니다. 첫 장을 펼치자 약 40세 정도 되는 남자의 말끔한 사진 이 중앙에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진 밑으로 뭐라고 쓰였는지 아십니까? 큰 글 자로 ‘재림예수’라고 하면서 그 밑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 니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아래에 있는 재림예수 의 소개입니다. 제가 책에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재림예수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서 버린바 되어 1976년 음력 1월 30일 서울 서대문 교도소에서 질고로 운명하셨다” 가로 를 치고 성경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사 야 53:10이랍니다. 그 재림예수 이름이 ‘

쇄해서 한국과 전 세계에 있는 목사들에 게 우송한다고 떳떳하게 밝히고 있습니 다. 이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 닙니다.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입니다. 열 심히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 만 거짓 선생들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미국도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크리스 토퍼 에드워즈는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 한 사람입니다. 그는 석사과정을 위해 버 클리에 등록했습니다. 낯선 서부에 와서 외롭게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 니다. 어떤 학생이 다가와 농장에서 “재 미있는 행사”를 한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버클리에 있는 문선명의 통 일교단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 했습니다. 그는 그 농장으로 갔고 주말의 재미있는 행사는 7개월 동안의 광적인 세 뇌작업으로 변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분 명한 사고를 가진 명석한 청년이었습니 다. 그러나 새로운 메시아에 전적으로 순 종하는 제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의 세뇌작업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 니다.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 그의 리 더에게 의존하고 문선명의 절대적인 통치 아래 세계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죽고자 하며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그런 사람”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문선 명 집단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넘는 치료와 훈련을 통해서 정신적 인 감옥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는 이 경험을 “하나님을 향한 열광”이 라는 책에다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변화프로젝트

2021년 9월 9일

23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 2 부 기도 프로젝트

9장, 걸으면서 하는 여리고 기도 프로젝트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

기도: “예수님, 오늘의 제 삶에 당신을 초

사랑하는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

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

대합니다. 저와 함께 동행해 주시고 저의

쳐 주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하는 것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제게 말씀해 주셔

되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

서 제가 주님을 더욱 알아가는 하루가 되

게 될 것이다.

게 해주세요.”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때, 이땅 에서의 우리의 하나님 사랑하기 수업은 끝나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완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하도록 하셨다.

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고 우

주님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하나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에서 목사로 일

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놀라움을 보도록

님의 축복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한 사

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재소자들에게 어

눈이 열릴 것이다. 또한 우리 마음속 깊

람씩 주님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때마다

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고 주님

기뻐하신다. 하나님 사랑하기 수업을 진

받곤 한다. 재소자들이 기도에 관해 알고

도 우리와 함께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지하게 듣고 그분을 사랑하는 습관을 기

싶어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도와

아직도 어떻게 그분을 사랑하는지 배우고

르도록 배워라. 주님이 기뻐하시며 그분

영성을 기르도록 도와 주는 책들은 많이

있는 중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 영적

의 얼굴에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부족했다. 하루는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방해 때문에 이 과정을 통과하는 게 쉽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보다 더

파크힐연합감리교회에 부임하신 쟌 탐슨

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보이는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을 잘 성

담임목사님을 방문했다. 그분은 나의 사

것을 사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취하게 될 때 우리는 감추어진 보물-주

역에 가장 용기를 주는 분으로서 내가 섬

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님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

기는 구역의 감리사요, 나의 멘토중 한분

주님은 우리가 직면한 장애물들을 아

리에게 확신을 주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이시며 내가 아주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

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배우

사람들을 신뢰하신다. 이 글을 읽고 하나

분과 교제하며 다른 사람에게서는 들어

도록 도전케 하신다. 가끔은 우리가 주님

님 사랑하기를 배우는 우리 모두에게 주

보지 못한 그분의 기도를 배울 수가 있었

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시험하

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다. 내가 새로운 교인을 위한 사역을 어

실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참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더 배우고자 한

떻게 준비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은 이

하나님은 우리가 이 과정을 잘 통과해 나

다면 『하나님 사랑합니다. 100 일 묵상

렇게 대답했다.

가길 바라고 계신다. 아주 어려운 수업이

과 기도』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지만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매일 주님 을 사랑하는 습관을 길러간다면 모든 과 정을 잘 마칠 때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 우실 것이다.

“나는 교인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기 전 에, 교회 주위를 일곱 번씩 돌며 교회와

제9장, 걸으면서 하는 여리고 기도 프로젝트

나의 사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역을 확 장시키기 위해서는 무너뜨려야 할 벽들이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이스라엘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려면 기도를 통

사람들이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며 기도

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

하여 주님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초대하

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 순간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이 대화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무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엇이었을까? 나는 쟌 목사님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 았다. 교회 주위를 걸으며 기도한다는 것 은 놀라운 기도 방법이었다. 나는 걸으며 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쟌 목사님이 하는 그런 기도는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적으로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 로 하여금 재소자들을 위한 주위를 돌면 서 하는 여리고 기도라는 책자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많은 재소자들이 감옥 안에 서 주거지역 주위를 걸으며 이 책자를 사 용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쟌 목사님이 그의 통찰력과 그의 기도 방법을 내게 알려 준 것에 대해 하나님 께 감사드린다. 이 기도 방법은 재소자들 뿐만 아니라 나의 기도생활도 변하게 했 다. 이 기도는 내가 온종일 기도할 수 있 도록 도움을 주었다. 여리고성 기도는 축 복이 되었다. 여리고성 기도를 시작한 이후에는 주님 과 교제를 하는 방식의 기도를 하게 되었 는데 주님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주 님을 초대하여 이야기하는 방식의 기도 를 습관화 하게 되었다. 항상 주님과 대 화를 하며 나의 마음을 주님과 나누면서 주님이 함께 하심을 더욱 깊이 느낄 수 가 있었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1년 9월 9일

26

죽음을 이기는 천국의 희망

20년 전 이맘 미국은 참 받아들 이기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뉴욕의 상징이었던 쌍둥이 건물이 테러로 인 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미국은 9월 11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 어질 만큼 참 많이 변했고, 지금도 그 공포와 충격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마냥 좋게만 보였던 세상이 결코 그렇 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지요. “세상이 참 위험하구나! 그러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여기는 안전한가?”라 는 의문이 들면서 스믈 스믈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죽음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번 태어난 이상 한번 죽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 입니다. 어찌 보면 죽음이라는 문제가 어색하지 않은 정도로 죽음은 우리 삶 에 가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죽음은 우리 가까이 있지만 ‘여전 히 먼 당신처럼’ 우리는 여전히 죽음 을 두려워하며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참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죽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

가고 또 내일을 바라보면 미래를 설계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살고, 또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일까요?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죽음에 대 해서 친근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 해서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알 수 있 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조 차도 우리에게는 어색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죽음에 대해 서 잘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어떤 위인들 중에도 죽음에 대 해서 명확한 답변을 주는 사람들은 없 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입 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 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죽음 너머에 새로운 삶을 약속한 분이십니다. 바로 천국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 습니다. 사실 살다 보면 우리의 육신 의 고향은 바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 해 이곳 콜로라도 덴버에서 생활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을 하신 분들께서는 이제 콜로라도 덴 버가 제2의 고향으로 여겨지시는 분들 도 계실 것입니다. 먼길 여행을 다녀오 다가도 콜로라도 간판이 보이면 반갑 고 또 집에 온 것 같이 편하다고 말 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 영혼의 본 향은 바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 라 천국입니다. 되돌아보면 세상의 변하고, 가치 없 는 것들에 우리의 소망을 두고 살 때 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 망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소망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소 망임을 우리는 매일 기억해야 합니다. 또 천국은 우리들의 영혼이 다시 돌 아갈 곳입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사 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고향이 우리 에게 주는 한 가지 큰 의미는 바로 돌 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지 만 그냥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가길 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금의환향 錦 衣還鄕”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누구나 금의환향을 꿈꿉니다. 성공하 고, 좋은 소식을 들고 고향에 가서 자 랑하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우리가 천국에 금의환향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 으로 삶을 승리한 영적 승리의 소식입 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승리하였다고 하는 기쁨의 소식을 들고 갈 때 우리 의 천국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 울 것입니다. 천국에 돈, 힘, 명예 아무것도 가져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 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이 믿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 또한 기억하 시길 바랍니다.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전병욱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복음으로 살아보기

2021년 9월 9일

27

네 번 이상 잘해 주는 사람 얼마 전 설교를 준비하다가 ‘불쌍 히 여기다’라는 말과 연관된 이미지 들이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창에 ‘불 쌍히 여기다’라는 말을 검색해 보았 다. 여러 이미지들 가운데 한 이미지 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동전을 내 민 한 부유한 사람의 손과 그 동전을 받기 위해 컵을 내민 한 가난한 사람 의 손이 있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이미지 아래에 이런 성경 말씀이 적 혀 있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 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 19:17). 누군가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사 정이나 형편이 좋지 않은 어떤 사람에 대해 가엽고 안쓰러운 마음을 갖는다 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분명히 좋은 마음인데 누가 나를 불 쌍히 여긴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기 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 서 우리는 간혹 “나를 불쌍히 여기 지 마세요”, “동정 따위는 필요 없습 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분명 히 좋은 마음인데, 왜 사람들은 누가

나를 불쌍히 여긴다고 하면 그것에 대 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죄로 타락한 인간의 높아진 마음 곧 인간의 자존 심 때문일 것이다. 자존심이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인데, 누가 나를 불쌍히 여긴다고 하면 나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의 동 정 혹은 사람들의 불쌍히 여김이 너 무 한시적이고 피상적이기 때문일 것 이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대 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이었 는데… 네 번 이상 잘해 준 사람…” 이 말은 무척 불우한 형편에 있던 20 대 여자 주인공이, 자신에게 마음을 써주는 직장 상사에게 한 말이다. 그 여자 주인공은 그동안 자신에게 잘해 준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모두 한 번, 두 번, 혹은 세 번 까지 잘해 주다가 자신의 형편이 나아 지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하며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마가복음 8장 1절부터 9절에는, 예 수님께서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어 마리를 가지고 약 사천 명의 사람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사흘동안 그와 함께 있던 큰 무리 가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보시고, 예 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 씀하셨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 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 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 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 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있 느니라.” 예수님께서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를 가지고 약 사천 명의 사 람들을 배부르게 먹이는 이적을 행하 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 여 기셨기 때문이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불쌍히 여기다’ 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스플랑크 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인데, 이 동사는 내장 혹은 창자를 뜻하는 헬 라어 명사 ‘스플랑크나(σπλάγχνα)’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래서 성서학 자들은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

손재흥 목사 덴버에덴교회 기신 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로 그들을 가엾게 여 기고 동정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혹시 우리 주님과 같이, 창자가 끊 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로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 본 적이 있는 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서 일어날 때,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던 우리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 며 네 번 이상 잘해 주기 위해 다짐 해 보자.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나로서 는 쉽지 않겠지만, 살아 계신 우리 주 님께서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니 도 전해 볼 만한 일이다. 우리 주님은 창 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떡 일 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를 가지 고 사천 명의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 이신 우리의 구주이시다.

“성령안에서 예수님처럼”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비전

예배 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들을 배부르게 먹이신 이적이 기록되 어 있다. 왜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적 을 행하셨을까?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감동이 있는 글

그리스도인들의 착각

28

2021년 9월 9일

내가 부르다 죽을 이름이여! 글: 봉민근

주 앞에 누가 깨끗 하리요 허물없는 자가 어디에 있으며 죄 없는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용서 받은 죄인이다. 죄가 많음에도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다 씻어 깨끗하게 하셨다. 믿는다는 것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쉬임 없이 죄 가운데 살고 있다. 더러운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이웃을 헐뜯기도 하며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을 점령한 것이 인간의 더러운 마음이요 죄악 덩어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참으시는가? 언젠가는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잘못된 삶은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한번 죄가 들어 올 때에 피 흘리기 까지 싸울 각오가 있어야 그리스도인이다. 죄와 싸우지 않는 자는 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싸울 생각조차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죄와 싸우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도 아니며 회개한 자라고 말할 수도 없다. 교회에 다닌다고 안심하지 말아야 한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에 다녀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이다. 착각 속에 믿는다고 방심하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라. 내 영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구원 받지 못한 자다.

하나님 아버지! 존귀하신 그 이름! 부르기에도 황송하지만 그 이름을 부를 때에 나는 가장 행복하다. 그분께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도 나의 미래도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다. 하나님으로 만족한 사람은 결코 의무에 사로잡혀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만 사로잡혀서 살기 때문이다. 그 은혜로 인하여 즐겁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사랑을 받고 살아가니 언제나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성도의 의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의무는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무가 아닌 사랑하기에 내 몸을 불살라 내어 주고 싶어야 진짜 신앙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 멋대로 살라고 해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게 된다. 내 맘대로 사는 것은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언제나 두 갈래의 길에서 선택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선택은 자유지만 그 책임은 무한대로 자신이 져야 한다. 행복은 깨닫고 맛보고 경험한 자만이 그 맛을 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다가 주어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신비한 행복을 맛볼 수가 없다.

예수를 알고도 회개하지 않는 악한 자가 되지 말라. 교회에 앉아 있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교회에 다닌다고 안정감에 빠져서 방심하면 안 된다. 회개하지 않은 영혼임을 두려워해야 한다. 짐승도 자기의 주인을 알건만 믿는 자가 그 주인도 몰라보는 소경 같은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http://cafe.daum.net/cgsbong

나는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주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단언하고 싶다. 세상을 100바퀴 돌아도 세상 속에는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없다. 주를 따라가는 인생은 비록 실수하고 실패할 때에도 낙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심을 믿기 때문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며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시는 말씀 한마디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상황 끝이 된다. 내가 부르다 죽을 이름! 오직 예수요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내 갈 길 인도하시니 언제나 나는 안심이요 평안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감동이 있는 글

29

2021년 9월 9일

신앙인들에게는 반드시 전환점이 필요하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신앙인들에게는 반드시 전환점이 필요하다. 새로워짐의 연속이 있어야 한다.

믿기 전에는 하나님이라 불렀으나 믿고 자녀가 되어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로 불러 주셨다.

하나님은 믿을 때에 몇 가지의 선물을 주셨다. 첫째는 구원이고 둘째는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고 셋째는 은사를 넷째는 사명을 주셨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계속될 것이다. 사명으로 부르시고 천국으로 부르시며 영생으로 불러 주실 것이다. 또한 세상으로 부르셔서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쓰시길 원하신다. 작다고 불평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달란트를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나 예외 없이 달란트를 주셨다. 문제는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거나 너무나 커 보여서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한 달란트짜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큰 것만을 선호하고 작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평신도면 평신도로 만족하고 중직자면 그에 합당한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불러 주실 그날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늘 교회에서는 이런 문제로 시험에 들거나 신앙에서 떠나는 이들이 생기곤 한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나 실망을 하거나 혹은 나는 할 수 없다고 단정을 짓는 것이다. 선한 청지기는 일의 크기나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를 하나님은 귀히 보신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포기 하는 것 또한 신앙이 아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시다. 내가 평가하며 감독 노릇도 하며 주인 노릇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명을 위하여 창세 전에 부름 받은 존재들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들이다. 복음을 듣고 믿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믿음은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직분에는 귀천이 없다. 모든 직분이나 하는 일이 성직이요 하나님의 일이다.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이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불신앙적인 요소를 빼내는 작업을 매 순간 하며 주님께 헌신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사람을 보고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인간의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자만이 하늘에서 그 이름이 해같이 빛 날 것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잠 4:6) 제공: 한명옥 권사(볼더아름다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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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OP 10 미술대학 포트폴리오 준비반! 100% 합격률 및 장학금!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콜로라도 3만 동포에게 알립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의 경과보고를 드립니다. 희망찬 신축년 2021년이 밝았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의 어려운 시기에 동포 여러분의 건강과 평안을 항상 기원합니다. 2020년은 6.25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하기 위하여 남침하여 6.25 전쟁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남한이 북침하여 전쟁이 발발했다고 억지 주장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 국토를 초토화한 이 전쟁은 대한민국의 국가 존립을 위기로 몰아넣었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눈부신 경제 기적을 이루어 세계에서 경제 10위 권의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이곳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희망찬 미래의 비전을 계획하고, 이웃을 도우며 삶의 발전을 추구하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하여 한 16개국의 유엔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대한민국 국민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동안 참전용사기념비 건립위원회의 헌신적인 투지와 노력의 결과로 오로라 시로부터 콜로라도 대학병원 캠퍼스 내의 아름다운 제너럴스 공원(Generals Park)안에 있는 기념비 부지를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로 세울 수 있도록 기증받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제너럴스 공원은 한국전쟁 휴전 당시, 미국 제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심장질환 치료를 피츠먼스(Fitzsimons) 육군병원에서 받았을 때 만들어져서 요양했던 유서 깊은 공원입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기념비 부지에서 동포사회에서 중요한 행사를 가질 수 있는 유용한 장소가 될 수 있는 뜻을 가지고, 오는 2021년 6월 25일까지 기념비가 착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에는 총 일백오만 불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까지 확보된 액수는 부지를 포함하여 약 60만 불입니다. 나머지는 동포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충당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주요한 목적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 참여국의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높이 받들고,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한강의 기적을 널리 알리며,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최대한의 감사의 뜻을 전달하려 합니다. ⊙둘째, 후세에 참혹했던 이 전쟁을 통하여 얻게 될 교훈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려 합니다. ⊙셋째, 지역사회에 현존하는 유엔 16개국 후손들의 커뮤니티와의 우의를 돈독히 하며 유대를 강화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이 기념비의 건립은 동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념비가 성공적으로 세워지도록 귀한 고견을 피력해 주시고, 이사 및 건립위원으로 동참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성금을 기부해 주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동포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바랍니다. 현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사업기금 지원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2021년 새해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어려운 시기를 건강하게 극복하시고 새 마음과 새 각오로 품으신 꿈과 계획을 모두 성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이 늘 함께 하시고 모든 일이 번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사업에 지금까지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성금을 보내주신 분의 성함을 공표합니다. 궁금하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건립 공동위원장: 박수지, 이상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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