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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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시 9:1)

제 11권 21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1년 11월 11일 발행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눅 10:2)

He told them,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workers are few.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Luke 10:2)


목차

2021년 11월 11일

목차 교계소식 선교지에서 보내온 소식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커피 한장의 대화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복음으로 살아보기 감동이 있는 글 산마루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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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Rev. McDonald)

이형만 목사

이흥섭 임동섭 장석현 전병욱 정다운 정봉수 정석현 정성욱 천경우 최요셉 최요한 최형락

문서선교에 동참하는 개인, 교회, 단체, 사업체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교수 목사 목사 목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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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11월 4월 22일 2021년 11일

코로나 19 부스터 백신 및 5세 이상 화이자 백신 접종

에콰도르 국제 복음 신학대학원

2021년 11월 13일(토) 오전 9시 - 오후 12시

에콰도르 선교지 답사팀 모집 및 장학금 후원자 모집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코로나 19 부스터 백신과 5세이상 화 이자 백신 접종 행사가 덴버제자교회 비전센터에서 다음과 같이 진행 된다. 백신 접종 예약은 아래의 전화번호를 이용하면 된다. ●일시: 11월 13일 (토) 오전 9시 - 오후 12시 ●주관: 오로라 아시안 태평양 코뮤니티 파트너쉽 ●후원: 한인간호사협회, 필리핀간호사협회 CAHEP Family Medicine Clinic and CDPHE ●대상: 5세 이상 접종을 원하시는 분 선착순 300명 ●장소: 덴버제자교회 비전센터 8390 E. Hampden Ave. Denver, CO 80231 ●무료 백신 종류: 1. 모더나 부스터 백신, 1차 또는 2차 접종 2. 화이자 부스터 백신, 1차 또는 2차 접종 3. 5세 이상 아이 화이자 1차 접종 ●한국어 전화문의: (303) 875-9076 / (303) 960-2182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당일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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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국제 복음 신학대학원(학장 임동섭 목사)에서 아래와 같이 진행될 에콰도르 선교지 답사팀과 장학금 후원자를 모신다. ●기간: ●비용: ●인원: ●일정:

2022년 5월 23일(월) ~ 6월 4일(토) $1,000.00(항공료 제외)(숙식비, 교통비, 팁, 입장료 등) 16명(24인승 버스 전세 예약, 초과시 입금순으로 마감) 5-23(월) 도착 / 5-24(화) 집중강의/ 구시가지, 적도박물관 5-24(화) 집중강의/ 구시가지, 적도박물관 5-27(금) 졸업식 5-28(토) 식초스 교회 방문, 길로토와 호수 5-29(주) 마나비 교회에서 저녁 찬양집회 5-30(월) 과야킬(말레콘2000, 이구아나 공원, 역사공원) 5-31(화) 밀라그로 교회, 나랑히또 교회 방문 6-01(수) 쿠엔카(파나마 모자 박물관, 저녁 찬양집회) 6-02(목) 바뇨스(세상의 끝) 6-03(금) 네이트 선교사 기념관, 짐 엘리엇 교육관 6-04(토) 출국

에콰도르 국제복음 신학대학원 장학금 후원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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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부동산 원조

박영돈 부동산

주택

● 학생: 총 35명(박사과정: 13명, 석사과정: 3명, 학사과정: 19명) ● 학비: 박사과정($600=30학점x$20/학점) 석사과정($300=60학점x $5/학점)(같은 학교 진학시 60학점) 학사과정($360=120학점x$3/학점) ●후원 방법: 1년 동안 매월 $30 후원으로 학사과정 전액 장학금 매월 $25 후원으로 석사과정 전액 장학금 매월 $50 후원으로 박사과정 전액 장학금 - Pay to the Order: Dong S. Lim ● 주소: 13573 Jackson St.Thornton, CO 80241 USA ● 연락 및 문의 : dslim39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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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보내온 소식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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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과테말라 선교회

하나님의 온전한 힐링을 꿈꾸며 “의과 대학 장학생들의 감사편지와 양식전달 사역 보고”

글: 이누가 선교사

1. 보건지소에서 환자진료를 하고 있는 이레네 이레네는 의과대학 육학년으로 보건소에서 6개월의 과정후에는 의사가 됩니다. 2. 소아과 병동에서 모니카 모니카는 5학년 학생이 되었습니다.

2. 모니카

1. 이레네

하늘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시월에 과테말라에서 신나는 소식들을 전합니 다. 가장 먼저는 의과 대학 장학생들의 편지로 시작합니다. 아래 편지는 의과대 학교 6학년 과정을 거의 마쳐가는 이레 네의 감사편지입니다. “후원자님, 여러분 모두와 가족들 모 두가 건강하시길 기도하며, 가슴 가득한 인사를 드립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 분들이 부어주신 영적인 후원과 더불어 물질적인 후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팬더 믹이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 러분들은 힐링과테말라를 통해서 어려 운 이들을 보살피는 일에 결코 쉼 없이 계속해서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힐링 과테말라의 한 식구임에 참으로 자랑스 럽고, 머지않아서 여러분들의 후원을 잊 지 않고 힐링과테말라에 사역에 동역함 으로 말미암아 또 많은 이들에게 여러

분들의 사랑을 되돌릴 수 있기를 고대 하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제게 있었던 일들에 대 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올해 이월과 삼 월 동안에 저는 레탈루레우에 있는 국 립병원에서 산부인과를 마칠 수 있었습 니다. 산부인과를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나 중에 산부인과로 진로를 결정할 것을 신 중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사월과 오월 동안은 쉘라에 병원에서 정형외과와 정 신과를 공부했습니다. 물론 좋은 경험이 었지만, 정형외과는 제 타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유월과 칠월 동안에 레탈룰레 우 국립병원에서 소아과를 공부했습니 다.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어린아이들의 고통을 보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현재 저는 파뀝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3. 요셀린

3. 실습중의 요셀린, 요셀린은 4학년 학생입니다. 내년에는 의대생 2명, 치대생 2명, 치기공과 1명의 장학생을 선발하길 기도합니다.

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마지막 과정인 EPS를 하고 있습니다. EPS과정은 졸업 을 앞두고 6개월 동안 오지에서 진료하 는 프로그램입니다. 파뀝이라는 마을은 저희 집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있어서 집 에서 출퇴근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 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료를 합니다. 조그만 보건 진료소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멋진 일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슬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진료소에는 진료에 필요한 기자재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전기 가 들어오지도 않고, 의료소모품들은 말 할 나위도 없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좋 은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곳에 사는 이들은 약품을 구입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그 자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항상 제 기도 가운데 있습니다. 다시금 여러분이 제게 보내주

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 하나님께 서 여러분의 삶과 또 여러분이 가장 사 랑하시는 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을 담아, 이레네 가 보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지금 의 과대학교 장학생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고 있습니다. 현재는 열 명의 의대생 장 학생이 있고, 6학년인 이레네와 레네, 5 학년인 모니카와 요한나, 4학년으로는 호수에, 마리아, 헥터, 안드레아, 요셀린, 그리고 3학년에는 잉그리드가 있습니다. 비록 코로나 19 팬더믹으로 인해서 학 과 과정이 조금 지체되고, 또 실습 역 시 아쉬운 부분들이 많게 진행되고 있 지만, 우리 학생들은 학업에 열심이며,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환자들을 돌보 고 있습니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선교지에서 보내온 소식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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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을 받은 후에 밝게 웃음을 주시는 추이사카바의 우리 이웃! 아직도 과테말라의 코비드 상황, 또 경제 상황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다음 달에도 500여 가정에 양식을 전달할 계획입니다. 양식전달 사역의 재개는 내년 3월 이후에 과테말라의 코비드 상황을 보면서 기도하며 결정하려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기도 당부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꿈을 나누고 있습

니다. 비록 현재 후원을 약정해주신 가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생을 후원하시는

주님이 함께하시니, 이 평안을 누리리라

니다. 지금 오학년인 모니카가 나눈 편

정이 아직은 없으시지만, 새롭게 의과대

것은 매달 400불씩을 6년 약정해 주시

믿습니다. 양식전달사역은 다음 달 11월

지인데, 여러분과 꼭 나누고 싶습니다.

생 2명, 치과대학생 2명, 그리고 치기공

길 부탁드립니다. 치과기공대학생을 후

까지 500여 가정에게 전달을 하고, 잠정

“제 의학의 여정 가운데 제가 조금씩

과대생 1명을 선발해서 양육을 시작하

원하시는 것은 매달 300불 3년을 당

적으로 마감을 하려고 합니다. 내년 3월

목표를 향해 다가서는 한걸음 한걸음은

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치과대학 장학생

부드립니다. 이 재정으로 학비와 책값,

이나 4월 중으로 과테말라의 코비드 상

모두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인한 것을 고

은 원래 4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아쉽게

boarding room 비용 등이 커버가 될

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면서, 기도하

백합니다. 그 어떤 것도 후원자님의 가

도 모두 중도에서 드랍아웃을 했습니다.

것입니다. 또한 매칭되는 우리 학생들을

면서 다시금 양식전달 사역을 시작할지

슴에서 묻어나오는 지원이 아니었으면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번에 쉘라의 산까

매일 가슴에 품고 기도해 주시길 당부

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후원자님으로

를로스 국립대학교의 치과학교실과 연결

드립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제

인해서 수많은 꿈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

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장학생선발에

게 이메일(rhyeemt@gmail.com)을 주

고, 제가 이루는 수많은 꿈들로 인해서

서 조금 더 알맞은 학생들을 선발할 수

시면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또 수많은 생명들이 건져지고, 또 변화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치기공과대

될 것입니다.”

장학생은 베데스다에 한 집사님의 헌신

두 번째 소식은 양식전달 사역입니다.

의과대학생 장학생들이 무럭무럭 자

으로 치과기공실이 준비가 되었는데, 기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우리 주님의 은

라 신실한 의사들이 되어, 이 프로그램

술을 갖춘 치과기공사를 구할 수가 없

혜로 매달 500여 가정에 양식을 공급

이 시작될 때 기도하며 품었던 베데스다

습니다. 해서 저희가 양육을 해서, 이 학

할 수가 있었습니다. 양식을 받으러 오

가 우리 주님의 온전한 치유의 처소가

생이 또 다른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

시는 분들은 대개는 사는 형편이 어려

되리라 믿습니다. 아멘!

록 (특히나, 급식 사역을 하는 추이사카

운 분들입니다. 팬더믹으로 인해서 수입

바에서 고등학교까지 장학금으로 양육

도 줄고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한 우리 아이들) 우리 주님이 은혜를 주

상황일 텐데도, 이분들의 얼굴에는 평안

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과 웃음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그동안 양식전달 사역을 위해 나누어 주신 여러분의 사랑에 우리 주님의 이름 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으 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을 우리 주님이 받으시고, 들어 쓰셨습니다. 그래서 배고 픈 가족들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전달된 양식들은 우리 주님의 몸이 되 어, 이 땅에 많은 이들에게 당신이 함께 하심을 확신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 증거가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이곳 과 테말라 형제자매들의 활짝 웃는 웃음이 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의과대학생 장학금 프로그램은 내년에 는 조금 더 거룩한 욕심을 내 보고 싶습


2821 S. Parker Rd. Suite 409 Aurora, CO 80014


신앙 칼럼

2021년 11월 11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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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세상에 걱정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가 오면, 와서 걱정! 비가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과연 걱정 근

다. 결국, 이 말의 뜻은 ‘걱정은 불필

심이 없을까?

요하다'라는 것으로 한마디로 정리할 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수 있겠다.

안 오면, 안 와서 걱정!...

발행인 최성애 권사

아니다! 불행히도 어린이들도 나름 한번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로 걱정이 태산이다. 어른들의 관점

어니 J. 젤린스키(Ernie J Zelinski

죠지 뮬러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에서 보면 웃어넘길 지극히 하잖은 일

심리학자, 저술가)는 느리게 사는 즐거

끝이고,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불어나는 것이 걱정이다. 눈뜨고 활

이지만, 그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것

움(Don't Hurry, Be Happy)에서 “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동하는 시간도 모자라, 끝없는 걱정

같은 매우 심각한 일로 때로는 두려움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96%는 쓸데

과 근심으로 결국에는 뜬눈으로 밤을

과 공포심도 유발하며, 누군가 나서서

없는 것”이라 했다. 즉, 절대로 발생하

더욱이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하얗게 지새운다. 급기야 불면증과 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걱정하며 우울

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

말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기력증으로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까

해지기도 한다.

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능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사소한 것에

력과 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

흔히 모든 걱정과 근심, 문제는 시

대한 걱정이 22%, 어떻게도 바꿀 수

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사

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말하는데, 옛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다만 걱

탄이 주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걱정

말 틀린 것 없다고 경험상 맞는 말이

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에서 벗어나,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

라고 생각된다.

일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곧 진짜 걱

리이신 예수님으로 평화를 누리자. 우

정해야 할 일은 4%에 불과하다. 그러

리를 만드신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승

므로 그는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

리하는 삶으로 영광 돌릴 때이다.

지 이르게도 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 지게도 한다. 걱정과 근심이 얼마나 사람을 상하 게 하는지 성경에서는 뼈를 마르게 하 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걱정해도 해결되기는커녕 더 근심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

커진다는, 어느 지인은 걱정이 생기면

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

그냥 잔다고 한다. 한숨 잘 자고 일어

17:22)

나면 걱정이 사라져 마음이 편해지고

그렇다! 우리는 백해무익한 걱정과

다른 일을 집중할 수 있다며 추천하

염려, 근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

기도 했다.

는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다. 걱정과 근심은 사탄이 심어주는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

걱정에 관한 사람의 생각은 다 같은

생각이다.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하

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

지, 티베트에는 “해결될 문제라면 걱

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멀어지

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

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

게 하는 걱정을 단호히 물리쳐야 한

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면 걱정해도 소용없다”라는 격언이 있

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

지키시리라” (빌 4:6-7)

이처럼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걱정 보 따리를 한 짐씩 지고 그 무게에 눌려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나약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러면 하루에 400번을 웃는다는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다”고 결론지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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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1-12>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풍성하며 위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우신 은혜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가장 근접한 어머니 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향 한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해보세요. 2021 년 봄철에 영국에 사는 젊은 어머니, Katherine Osborne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28살로 두 아들의 어머니인데 왼쪽 다리의 뼈에 암이 생겼습니다. 전 에도 암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새로 생 긴 암이었습니다. 문제는 Katherine이 임신 중으로 그녀의 몸에 4개월 된 아기 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의사와 상담 후 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의 하 나를 8일 안에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다 리를 절단하느냐? 또는 태아를 포기하느 냐? 자신의 다리를 위해서라면 키모 치 료를 받아야 했고, 그 치료를 받으면 아 기가 생명을 잃거나 혹시 태어나더라도 장애인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결단을 앞에 두고 Katherine는 무서웠지만,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다리 절단 수술을 받기로 합니다. 혹시 나 마음이 변할까, 하루 만에 결정하였 다고 합니다. 7일째 저녁에 사랑하는 남 편과 부모님 그리고 그녀를 위로하기 위 해 모인 친구들과 이웃들 앞에서 그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울었 습니다. 젊디젊은 엄마 Katherine, 그녀 가 온전한 두 다리를 갖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결국 제왕절개수술로 건강한 딸인 아 이다가 태어납니다. 이것이 자식을 사랑 하는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의 인생입니 다. 물론 어머니들이 살았던 환경과 형 편이 다르겠지만 이와 같은 우리 어머니

의 사랑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 습니까? 우리 자식들이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은 우리를 낳고 기르신 어머니의 사랑 그 이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맥스 루케이는 이렇게 말합니 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의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 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받은 모든 것 이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은 말씀합니다. “ …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온 것이라.” 에베소서 1:3에서 바울은 “…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 리에게 주시되”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 신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습 니다(엡 1:4). 우리에게 베푸신 죄 용서 도 예수님의 피였으며, 구원도 예수님의 구원과 영생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 는 영생입니다(롬 6:23). 우리를 하나님 의 자녀로 삼은 것도 예수님의 이름이 며(요 1:14), 평안도 예수님이 주십니다( 요 14:27). 기쁨도 예수님이 없는 삶은 누릴 수 없습니다(빌 4:4). 복음도 그냥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 니다(막 1:1). 그러므로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은혜로 이 모든 것이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1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 나님이시니라.” 저자 요한은 ‘태초’에 말하면서 시

작합니다. 이 시간은 사람의 시간인 인 류 역사 이전은 물론이요, 심지어 하나 님이 세상을 만드시기 훨씬 이전의 시간 또는 그때입니다. 창세기 1:1절에서 한글로 태초라고 똑 같이 번역하였는데 영어 성경에는 모두 “In the beginning”라고 번역하였습 니다. 구약은 히브리 원어로 ‘베레쉬 트’ 신약은 헬라어로 ‘아르케’으로 번역했는데 같은 의미인 절대성의 태초 (absolute beginning)인 시작 시간입니 다. 그때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 있 었는데 그분을 요한은 ‘말씀’으로 소 개합니다. 영어로 ‘The Word’입니다. 그 앞에 ‘The’라는 정관사인(definite article) 를 사용하고 말씀인 “Word” 에서 대문자 ‘W’로 말씀합니다. 요한은 성경 원어로 ‘로고스’라는 단 어를 사용하였는데, 로고스는 그냥 음성 이나 소리가 아닌 생각이나 이성이 있 는 살아있는 인격체(living person)이 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말씀으 로 번역을 하면서 ‘it’이나 ‘this’ 또는 ‘that’으로 사물이 아닌 영어로 ‘He’ 즉, ‘그 사람’라고 설명을 합 니다. 2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He was with God) 3절입 니다. 태초에 그로 말미암아(Through Him)… 4절도 그 안에 (In Him)입니다. 그러므로 태초부터 계신 그 말씀은 살 아있는 분으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셔 서 하나님과의 동격이신 예수님이 몸을 입고 오신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요 1:14).

1. 예수님은 영원하신 말씀입니다

(1절)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58절에서 말 씀하십니다.

최요한 목사 섬김의 교회

“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 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유대인들은 50 살도 안된 것 같은데 엉뚱한 말을 한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 함보다 먼저 살고 있었다는 예수님의 말 씀에 정신이 나간 자로 여겼습니다. 분명 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 죄를 지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돌로 그분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신 분 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before Abraham was born, I am!’으 로 ‘I was’가 아닌 ‘I am’으로 살아 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I am” 이 되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입니다. 태 초에 하나님과 함께 창조주로 동역을 하 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 쟁을 하고 승리하였을 때에 신비스러운 대제사장 멜기세덱으로 그의 경배를 받 으신 분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 하며 만난 천사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고 할 때에 만난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불 속에 갇 혔을 때 함께 하셨던 그분 … 그분이 BC(Before Christ) 전에 계셨던 예수 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조차도 그 분이 몸으로 오셔서 이스라엘 땅에 33 년 동안 살아계신 분이라고 시간의 제 한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3:8은 “예수 그리스 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 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은 BC 전에도 AD(Anno Domini) 후


강단 설교 에도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계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 은 영원하며 그가 전하신 복음은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2. 예수님은 창조의 말씀입니다 (3절) 3절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 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세상 만물의 시작과 존재인 첫 번째 이유(the first cause)가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없으면 여러분도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어떠한 인생도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릭 워렌 목사님은 이렇게 우 리를 도전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목적 위에 인생을 산다. 그 출발점이 ‘우리가 왜 존재하 느냐? 라는 질문이다.” - 릭 워렌 우리들이 이 세상에 온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기에 삶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6절은 말씀합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네, 물론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 아마 같은 장소이고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 은 업무를 반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다릅니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도 자신의 안전과 돈을 목적으로 목회를 하여도 그것이 세속적인 일입니 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가정주부, 호텔의 청소부, 미용사, 우버 드라이버, 정원사, 편의점 주인, 엔지니어, 혹은 사 업을 경영하는 사장이든 전혀 상관이 없 습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보내신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 일이 우리의 ministry 입니다. 그곳이 예수님을 섬기 는 사역지 그리고 우리의 몸으로 산 제 물을 드리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이와 같은 사명이 있기에 내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 정과 직장과 학교 그리고 이웃으로 나 아가야 합니다.

3.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저는 저의 건강을 위해서 매일 비타민

2021년 11월 11일

이나 영양제를 열심히 먹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타이에론, 너무 많이 먹어서 배 가 부르면 소화제, 잠을 못 자면 수면제 를 찾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을 만나면서 더욱 건강에 조심을 합니다. 손 씻는 일, 마스크 쓰는 것. 사회적 거리 두기, 백신 샷은 물론 얼마 전에 부스터도 맞았습 니다. 그러면서 자주 마태복음 4:4의 말 씀이 떠올랐습니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 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 4:4) 그래서 저와 함께 아내와 하나님의 말 씀을 더 열심히 먹고 마시고자 합니다. 왜요? 사도 요한은 1:4절입니다. “그(말 씀)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라고 말씀하 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력 이 있어 우리를 치료하고 회복하며 살리 는 능력이 있습니다. 라디오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 주파 수를 정확하게 맞추어야 하고 TV 시 청을 위해서는 정확한 채널이 중요합니 다. IT 시대인 지금은 휴대 전화나 컴퓨 터는 Wi-Fi connection이 좋아야 합 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적으로 무슨 connection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접속 signal 은 얼마나 강합니까? 즉 성경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의 건강과 생명의 문제가 좌우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의도하든 하지 않든 세상의 소 리, 사람의 소리 또는 사탄의 소리를 들 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소리들은 예수 님의 생명의 말씀이 아닌 죽음의 말입 니다. 그래서 오늘 한 주간을 시작하는 이 시간 예배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시작하 는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4.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4-9절) 4절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리고 5절에 “빛이 어두움을 비추되… “ 계속해 서 9절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 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말씀을 기록한 저자는 요한복음 8 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직접 우 리에게 전합니다.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 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 8:12) 지난봄에 제가 집 앞마당에 몇 개의 화초를 심었습니다. 비료를 주고 정성껏 물을 주고 키우는데 몇 주간이 지나니 그 꽃들이 이상하게 한쪽으로 비스듬 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여름 이 지나가고 알았는데 꽃들이 햇빛 방향 으로 향하여 기울어 자라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그 꽃들이 ‘full sun’ 화초였습니다. 그런데 심은 장소가 오전에 2시간 정도 만 해가 비추고 그 후에는 그늘이 지니 깐 그들도 살려고 몸부림을 치며 조금이 라도 빛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가을이 오니 그 꽃들이 다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 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식물에 꼭 필요 한 것 중의 하나가 햇빛입니다. 곧 겨울 철이 오면 죽기까지 합니다. 태양과의 거 리가 멀기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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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도 잘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 나 그들을 그냥 지나갑니다. 저의 눈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저의 시선이 꽂히면 서 저도 모르게 얼굴에 큰 미소가 생 깁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진 속에 저의 아들을 찾고 그가 보일 때입 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아들이 다른 애들보다 잘생겨서요? 남들보다 공 부를 잘하고 착하기 때문입니까? 아니 죠. 그애가 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를 사랑하는데 그 이유가 우리들이 예 수님을 잘 믿기 때문입니까? 성실한 예 배자이며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일까요?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새벽기도를 빠 지지 않아서요? 우리들이 선교에 헌신하 고 가난한 이웃이나 노숙자를 섬겨서 그 렇습니까? 하나님 눈에 우리들이 사랑스럽게 보 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우 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 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 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과의 거리가 멀수록 빛이 약하고 춥 듯이 예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깨어지 면 믿음의 열기가 식습니다. 우리의 영 혼이 시들고 병이 듭니다. 삶이 어두워 집니다. 빛이신 주님을 따르십시오. 기 도와 말씀으로 그분과 가까이하십시오.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 게 합니다. 얼굴을 환하게 합니다. 기쁘 고 감사하며 살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 을 비취는 예수님입니다.

1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

5.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맺어진 관계성에서 하나님께 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시며 우 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녀입니다. 2021년 감사의 계절입니다. 이 가을에 감사를 드릴 이유가 많습니다. 그중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은혜를 깨닫고 더욱 감사하는 모든 분들 이 되시길 축복 드립니다.

저의 아들 모세나 바울이가 초등학교 에 다닐 때 매 학년 상급반으로 올라 갈 때마다 학급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 다. 그 사진 안에 20여 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미국 애들이 정말 예쁘죠. 머 리는 금발이고 얼굴은 하얀데 눈은 크 고 찐하잖아요. 영화배우나 모델같이 생 겼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그들에 게 없습니다. 그들 중에는 공부도 잘하 는 아이도 있고, 키가 큰 애들도 많아요.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정체성입 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한 아들과 딸입니다. 이것 이 은혜요, 기쁜 소식이며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초 청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 닌 관계입니다.


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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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주의 일은 주께서 함께하시는 일 마가복음 Mark 16:19-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은 초대 예수공동체의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하늘로 올리셨다는 것은 스스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올리지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므로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대상이 되신 것입니다. “퀴리오스 예수스 κύριος Ι ησους” "주 예수”로 불리게 됩니다 (행1:21). 제자들이 활발하게 복음 전파를 하게 된 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고 승천하시기 전 부탁하신 증언자의 삶을 결단하였고, 그들의 사역에 주께서 함께 역사(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함에 대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선교적 명령에 따라 순종하여 갈릴리로부터 각 지방으로 다니며 예수의 부활을 전파하게 됩니다. 주의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와 함께 일하시는 것이므로 두려워 말고 늘 담대히 맡은 일에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ooreekmc@hanmail.net>

은혜와 평화를 지니고 데살로니가전서 1Thessalonians 1;1-5 우리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행한 일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인내한 것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늘 기억합니다(현대인의 성경 3절). ........................................................................................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성서 중 첫 번째 책입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가 함께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은혜와 평안을 먼저 비는데, 이것은 바울서신의 특징적인 인사법입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베푸신 은총을 말하는 것이며, 평강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오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은혜(카리스χάρις<희랍어>)가 복의 근원이라면, 평강 혹은 평화(에이레네εἰρήνη)는 그 복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평강(평화)은 은혜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결과이며 열매인 것입니다. 예배 모임 때마다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비는 것은 은혜 받은 사람들로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시라는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사를 나누며 사역자들이 성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던 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행한 일과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인내한 것을 칭찬한 일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본입니다. 사도바울의 동역자들은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온몸으로 전하였기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들에게 큰 확신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6-17)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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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세상을 이겨야! 로마의 네로 황제가 통치를 하면서 가

데 평안과 담대함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

의의 열매는 평강이요 의의 결과는 잠

엘리우스(Galerius) 황제가 서기 313년

과 나약함과 근심과 두려움과 비겁함에

잠함과 담대함이라고 성경에서는 기록하

에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금지시키기까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

는데, 잠잠함은 부분적으로나마 지혜와

지 약 263년 동안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에, 날마다 꾸준히 진리와 성령을 실천

선함과 거룩함과 사랑과 든든함과 강건

모두 범죄자나 테러범으로 취급을 당하

함으로써 확장이 되고 연단이 되고 연달

함과 인내와 절제와 실력의 모습이기도

함께 있었고 하나님도 예수님과 늘 함께

고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검을 만들기 위하

하다. 잠잠함은 즉 침묵은 금이라는 말

있었는데, 부족함과 실수와 연약함과 불

참으로 안타깝다.

여서는, 어둡고 붉은 철에서 6개월 동안

은, 성경적으로나 신앙적으로도 의미가

안과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많은 모든

의 험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영

있다. 잠잠하신 하나님이나 예수님은 은

육신들은 더더욱 그리하여야 한다. 주의

예수님께서는 크리스천들에 대한 세상

생복락을 얻기 위하여서는 신앙과 하나

혜와 능력과 권세자이심을 사람들이 깨

권능과 보호와 도우심을 구하기보다 주

의 핍박에 대하여 경고를 하셨다. 그리고

님의 진리와 성령은 평생 연단의 과정이

닫지 못하기에, 육안에 보이는 성경말씀

님과 같이 연달되기를 애를 써야 하나님

산모가 마취 없이 아기를 낳는 것과 같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기쁨과 행복과

도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말

께서 판단하실 때에 스스로 돕는 지혜롭

은 가장 큰 고통, 즉 1번에서 10번이라는

보람을 잃지 않고 빛과 향기를 낼 수가

씀을 거역하면서 살게 됨을 삼가 주의를

고 복된 자가 되는 것이다.

고통의 단계에서 10번이라는 고통을 당

있는 것이다.

하여야 한다. 그리고 육안에 보이는 성경

한다고 경고를 하셨다. 중요한 것은 죽임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에 기록된 진리만 아니라 성경 속의 역

진리와 성령은 권세가 있고 은사가 있

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복음과

또한 하나님께서는 잠잠하시면서도, 우

사도 깨닫지 못하기에, 육안에 보이지 않

고 열매도 있고 죄악과 악한 자들을 물

기독교는 약 300년 동안 로마 제국 전역

주만물을 창조와 생존시키시고 모든 인

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국과 지옥과 천

리치는 힘이 있음을 늘 기억할 수 있어야

으로 서서히 전파가 되었던 것이 하나님

생들과 나라와 인류의 문제를 때로는 바

사와 성령에 있어서는 더더욱 무지하고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판 전까지 시험,

의 은혜요, 능력이 임하였던 사실을 성

다와 같이 때로는 하늘과 같이 받아 주

어리석게 됨을 주의하여야 한다. 깨달음

문제, 사고, 질병, 죽음 등이 끝이 없는

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발견할 수 있

시곤 하신다. 우주를 생존시키시는 하나

과 하나님을 믿음과 경외함도 큰 선물

세상에서 육신과 정신과 마음과 영혼까

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슬픔이 변하여

님을 인정하고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고

임을 기억하면서 잠잠하신 하나님을 깨

지 평안하거나 연단이 될 수가 있는 것

세상이 빼앗을 수가 없는 기쁨이 충만할

감사와 기쁨과 예배를 돌리기를 행복해

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도록 솔선

이다. 특히 연단되면서 온갖 환경과 처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기쁨과 예

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진리와 성령에

수범하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역

에 있어서 잘 적응이 되어서 연달이 되

수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이 충만

대하여 소홀해지고 기도와 예배와 성경

사하시는 시작이 됨을 기억하여야 한다.

고 성숙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할 때에 바울과 같이 담대하고 능력있게

말씀 지키는 것을 부담과 억압이라고 불

하나님의 자녀와 주의 군사로서 충성할

평하는 세대이고 지옥에 던져질 죄악, 불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합하는 자가 될 수가 있음을 삼가 주의

수가 있는 것이다.

의 불법 살인 등 지옥 갈 짓들이 난무하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주의 영이

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천국 영생 복락

는 세상에, 하나님을 경외함이나 하나님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말하

을 소망할 수 있어야 용기와 힘이 생기고

하나님이 예수님과 항상 함께 계셨는

께 순종함이 보배인 것이다. 하나님의 잠

였다. 진리와 성령은 모든 인생에게 필요

자신과의 싸움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와도 함께 계심을 믿고

잠함에 있어서 천국시민들과 같이 엎드

하기에 더더욱 구하고 진리와 성령을 따

않으면, 부러지거나 악한 자가 되거나 혼

2821 S 유스주일예배: 주일 의 오전 10:30 (장소 느낄 뿐만 아니라 평안과 담대함이 정 려 경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처신할 수 르고 맞추고 일심동체가 되어서 처신하 하여야 심신의 고생과 고난과 죽음이 오후 7:00 (장소: 5651 S 여야 잘하는 것이다. 성령도 예수님과 늘 미와 보람이수요예배: 비례하게 확장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가 있어야 천국시민인 것이다. 있게 되는 것이다.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오전 11:30 것이다. 또한주일예배: 천국 영생하는 것만은 성취 (장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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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57)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사무엘상 15:10-11>

오늘은 조금 신학적인 주제들이 부 각되는 설교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여러분들에게 던지면서 시작하 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때 후회 를 하십니까? 하나님도 후회하실 수 있 는 분일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 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말이 되지 않습 니까?” 사울 왕이 약 21만 명의 군대를 이끌 고 아말렉과의 전쟁을 끝낸 후에 하나 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사울 왕 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 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 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 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 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사무엘 상15:10-11). 이 구절에서 우리의 눈길 끄는 것이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 하노니”라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사무엘 선지자에게 사울 왕에 관 하여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는 것이고, 다음은 그런데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 운 것을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스러운 질문을 생각하 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뭘까요? “하나님 도 후회하실 일을 저지르시나?” “자 신이 실수하셨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 정하시는 것인가?” “하나님도 실패하 실 수 있는 분인가?” 하나님에 대한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다 보면 혼란이 옵니다. 어떤 혼란입니까? 하나님의 존 재됨에 대한 혼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완전하신 분이 아닙니까? 실패하실 수 없고 실수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하

나님 아닙니까?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서 기자는 우 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됨을 사 무엘 선지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선언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 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사 무엘상15:29). 여기서 ‘변개함이 없으시다’는 말은 ‘후회함이 없으시다’는 말과 같은 것 입니다. 11절과 35절에서는 하나님이 후 회하셨다고 하고, 여기 29절에서는 ‘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즉, ‘후회 하지 않으신다’ 좀 모순되고 혼란스럽 지 않습니까? 제가 어제 아침에 우리 고사모에게 이 렇게 물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께서 자신이 하신 일에 대하여 후회한 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거는 하나님 께서 실수하고 실패하실 수 있다는 말 씀 아닌가? 당신 생각은 어때? ‘후회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어떤 심정 을 표현한 말씀일까?” 그러자 고사모 대답이 “내 생각에는 후회하셨다 라 기 보다 안타까워하셨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도 자식이 잘못하면 안 타까워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런 마 음 아니실까?” 그래서 제가 “당신 언 제 히브리어 공부했어?”라고 조크를 던 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후회’에 대한 몇 가지 본질적인 의미들을 살펴보겠습니 다.

첫째, 사전적(원어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후회하노니’는 히브리어로 ‘니하므

티’인데, ‘애석해하다, 측은히 여기다, 안타까워하다, 후회하다’라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 런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중에서 ‘ 후회하다’라는 번역을 일방적으로 채 용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 대성 완전성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여 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이 번역은 좀 문제가 있 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후회’는 자 신이 하시는 일에 대한 실수와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시는 말씀이 결코 아닙 니다. 이 후회하심은 사람의 죄악에 대 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고통을 나 타내는 신인동형론적인 표현입니다. 칼 빈은 자신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 이 ‘하나님의 후회’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극악한 죄악이 치명 적인 고뇌로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것 이 상으로 그것들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영어성 경(NIV)도 ‘grieve’라는 단어로 번역 을 했습니다. “I am grieved.” 무슨 뜻입니까? “내가 몹시도 슬퍼했다!” 하나님의 괴롭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표 현한 것입니다.

둘째, 언약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 대하 여 안타까워하시며 후회하신 결과가 무 엇입니까? 왕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을 하나님으 로부터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이 부분 에 대하여 우리는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사 울을 왕으로 세우셨다가 당신에게 불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순종하자 부득이하게 갑자기 폐위하신 것이다”라는 오해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울을 폐위시키신 것이 하나님 스스 로 주체적으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 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 립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모든 것을 자기 마 음대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열 방과 같은 왕’이 아닙니다. 왕이라도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순종할 의무가 있는 ‘하나님의 위임 통치자’인 것입 니다. 사울의 범죄는 이것을 망각한 결 과입니다. 이스라엘의 왕권 유지는 철 저하게 시내산 언약(행위 언약, 쌍방언 약)에 근거합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 실 때에도 하나님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 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 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 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 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사무엘상 12:24-25). 사울 왕이 첫 번째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 해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 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 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 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 셨을 것이거늘”(사무엘상13:13). 하나님이 사울에 대하여 후회하신 것 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 자체를 후 회하셨다고 보기보다 사울에 의해서 하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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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기된 것을 안타

다. 그러므로 인간의 후회는 너무나 당

까워하고 슬퍼하셨다는 표현이라고 할

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

수 있습니다. 일종의 하나님의 심정을

님의 후회는 사람의 후회와는 다릅니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다. 하나님의 후회는 하나님 자신의 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을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문학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언어로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

온전한 순종만이 답입니다. 시늉만 하

설명했을 때의 표현이지, 결코 하나님

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

지 말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가지의 후회스러

이 계산 착오나 판단 부족으로 실수하

시랴”(민수기23:19).

사십시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후회는

운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셔서 그 일을 후회하셨다는 말이 아닙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무

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어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지와 연약함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

일을 행하신 후에 후회하실 정도로 지

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다. 그래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판단착

혜와 지식이 부족한 분이 아니지 않습

후회하시게 했습니다. 불순종은 하나님

오와 시행착오를 격을 수밖에 없습니

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 ‘아

의 후회와 근심을 낳습니다. 순종하는

멘’해야 합니다.

척(시늉)하기는 쉽습니다. 과대 포장이 유행하고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세

무엇일까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정직이 사라지고 남을 밟고 올라가서 상좌에서 군림하려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모략이 판을 치고 불의로 남을 해하려 하는 곳에 억울함을 짓누르며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기도 많이 하고 성경공부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귀한 것이겠지만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분명 신앙인의 길이 아닐 것이다. 내가 옥에 갇혔을 때에 배고팠을 때에 돌아보았느냐 말씀하시던 주님은 지금 나의 사랑 없음을 책망하고 계신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해도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셨다.

살기 위하여 참고 살기 위해 때로는 비굴하게 굴종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산이 가로막혀 한 발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숨죽여 가며 사는 약자들이 많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약한 자를 들어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과연 우리의 가슴에 얼마나 지니고 사는 것일까?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위하여 모으기에만 힘쓰던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렵다 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모든 것이 있으니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이웃도 보이지 않기에 교만되게 살며 나는 언제나 갑[甲]으로 산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약자는 늘 "을”[乙]처럼 고개 숙이고 산다. 가진 자, 배운 자를 인정해 주고 믿음보다는 권세 앞에 무릎 꿇는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서 정말 말세의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믿음과 거리가 멀다. 성도는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웃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다.

언제 나와 교회가 연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배려하며 일을 했었는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의 비겁함에 돌을 던지고 싶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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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Ahasuerus, BC486-464)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헬라어 이름)인데 그는 그리스 군대에 패배를 당한 뒤(BC479) 그의 후궁들에게 위안을 찾았습니다. 에 스더서 1장 3절의 “연회”는 크세르크세 스의 후궁을 찾기 위한 연회였고 거기서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비로 간택됩니다 (2:16-17). 크세르크세스는 감정적 변화가 격심하고 성격이 매우 거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들은 기이하고 모 순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에스더서는 고 국으로 귀환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하 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를 주기 위하여 기 록된 책입니다. 바벨론에 남은 유대인들 은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방 땅에 남은 유대인들 에게도 계속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에스더서의 배경과 제목 에스더서는 스룹바벨에 의해 주도된 첫 번째 귀환과 에스라에 의한 두 번째 귀 환 사이의 기간에 일어난 일을 기록했습 니다. 바벨론 포로 후 팔레스타인으로 돌 아가지 않은 대다수의 유대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 에스더서입니 다. 유대인들에게 닥친 심각한 생명의 위 협은 에스더와 그의 삼촌 모르드개의 용 기 있는 대처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에 스더서의 히브리서 제목은 ‘도금양 혹 은 은매화라는 식물의 이름’(2:7)을 뜻하 는 하다쉬(Hadassah) 이지만 그녀의 페 르시아어 이름 이스터(Ester, 별)에서 비 롯되었습니다. 에스더서의 헬라어 제목은 에스더(Esther)입니다.

에스더서의 주제와 목적 에스라서가 포로 시대 이후 유대 백성 의 회복을 다루고, 느헤미야서는 그들의 물리적 영적 재건을 다룬다면, 에스더서 는 그들의 보존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성경에서 가장 드라마적 성격과 흥미진진 한 전개를 보여주는 책은 아마도 에스더 서일 것입니다. 에스더서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어떠한 형태로도 나오지 않고 도 리어 페르시아 왕의 이름은 187회나 등

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 제사와 희생, 기도와 같은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에스 더서가 기록될 때 페르시아의 검열을 받 았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넣을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기록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 다. 에스라서는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바 벨론의 안락한 삶에 안주한 유대인 자신 들의 미래의 배후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 는 손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묘한 계시적 측면을 보여줍니다.

에스더서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 핵심 구절 : “4:14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 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 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 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 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 냐.” “8:17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날을 경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 더라.” ▶ 핵심 장 : 에스더서 8장은 아하수에로 왕 의 개정된 조서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구 원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 인들은 왕의 조서에 따라 자신들을 방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본토인들 중에서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유대인이 되려고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에스더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에스더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예 표는 에스더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입니다. 에스더는 그녀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았지만 도리어 왕 의 호의를 얻게 됩니다. 에스더는 기회가 왔을 때 유대인들을 위한 중보자로서 역 할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에스더를 통 하여 유대인들의 계보가 유지된 점은 메 시야의 계보를 끊어버리려고 했던 사단의 위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계보를 보존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가와 권력도 메시야의 오심을 막지 못했습니다. 에스더서는 평범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의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초대 교 회의 부흥도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통 하여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부흥도 평범 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그리스도 인들을 통하여 고난을 극복하게 하시고 당신의 섭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에스라서의 전체 내용 개관 에스더서의 구성은 매우 간결합니다. 1-4장은 유대인들에게 닥친 위험을 기 록했고 5-10장은 유대인들의 승리를 보 여줍니다. 1-4장의 이야기는 아하수에로 왕의 겨울 거처였던 수산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 와의 전쟁에서 실패를 맛본 아하수에로 왕은 별궁에서 백성들에게 큰 잔치를 열 고 자신의 영광과 업적을 자랑했습니다. 왕에게 있어서 그 잔치의 백미는 왕비의 미모를 백성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런데 그의 왕비인 와스디가 왕 의 부탁을 거절하고 그 잔치에 나타나지 도 않았습니다. 다른 신하들은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미인 경연대회를 열어서 새 로운 왕비를 뽑기로 결정합니다. 에스더 가 바로 이 미인 경연 대회에서 왕의 눈 에 들게 되어 최종적으로 왕비의 면류 관을 쓰게 됩니다. 에스더는 그녀의 삼 촌 모르드개의 조언대로 자신이 유대인 인 것을 숨기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 더를 통하여 왕의 암살 음모를 왕에게 알 려주고 그 업적이 왕의 일지에 기록됩니 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르드개는 아무 런 포상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 역시 하 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조금 시간 이 흐른 뒤 하만이라는 자가 자기 방백 들의 두령이 되었으나 모르드개는 그에 게 절하기를 거부합니다. 하만은 모르드 개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뿐만 아 니라 유대인 전체를 말살하기 위한 계획 을 일 년 동안 세웁니다. 하만은 유대인 들을 말살하기 위하여 많은 뇌물과 거짓 말을 했습니다. 하만은 결국 11개월 후 지정된 한 날에 유대인을 말살할 조서를 공포합니다. 다급한 곤경에 빠진 모르드 개는 에스더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모 르드개는 에스더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왕에게 알리고 왕을 설득하라고 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비가 된 것도 이런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유대인들 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 는 믿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하나님이라는 단어 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깊이 뿌리를 내 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위기 가 운데에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보다는 침묵하면서 우리의 믿음의 뿌 리를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더 단단 히 묶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5-10장의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승리에 대 한 이야기입니다. 에스더는 금식하고 하 나님께 간구한 뒤 왕을 알현했습니다. 에 스더는 잔치에 하만을 함께 초대했습니 다. 하만은 왕비의 초청을 받아 왕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지만 모르드개를 보 고 화가 났고 그는 모르드개를 매달 큰 교수대를 마련합니다. 왕은 그날 저녁 늦 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궁정 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모의를 막 은 기록을 발견합니다. 왕은 하만을 불 러서 모르드개에게 큰 상을 베풀었습니 다. 왕은 전날 잔치부터 이날까지 에스더 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 으니 소원을 말하라고 세 번이나 물었습 니다. 에스더가 세 번째 왕의 질문에 하 만의 궤계를 폭로하고 자신의 동포인 유 대인을 구원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결국 23미터나 되었던 교수대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게 되고 모르드개는 하만의 높은 지위에 올라가게 되고 왕이 새로운 조서 를 공포하여 유대인들의 자기 방어권을 보장해 줍니다. 그 다음날은 유대인의 살 육의 날에서 유대인의 경축의 날로 변화 되었습니다. 하만이 유대인을 말살할 날 을 결정하기 위해서 제비를 뽑았는데, ‘ 제비’라는 단어의 앗시리아어는 ‘뿌루 (puru)’에서 유래되었고 그날이 부림절 (the Feast of Purim) 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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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때 켜는 성탄 촛불의 사연은...” “어떤 교회는 주일 예배 시간에 촛대에 불을 켜고 예배를 시작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습니다. 어느 편이 좋을까요?” “촛대의 불을 켜는 의식은 우리 기독교의 전통인가요? 그렇다면 언제부터인가요?” “기독교 예배에서 촛대를 켜는 것은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요?”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서 흔 히 듣게 되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주

각종 종교행사에서 의식의 도구로 사용

의 영을 상징하는 데서 그 의미를 더해

된 바 있습니다.

주고 있습니다.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음에 예배드리기 시작하는 형태가 서서 히 보편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 예배 때 성단에 촛불을 켜놓는 것에 대한 의미와 그 타당성에 대한 문제들입

이상과 같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활

역사적으로 11세기까지는 촛대나 등잔

니다. 어떤 목사는 촛불을 켜는 것이 경

용되었던 촛불이나 등불이 우리 기독교

불과 같은 것은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 따

우리의 한국교회가 쉽게 이러한 촛불

건한 분위기를 주기에 자신의 교회는 매

예배에서 사용될 때는 그 의미가 타종교

라 사용 여부가 각각 달랐습니다. 그러나

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촛불을 켠다고

의식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

점차적으로 성찬성례전의 존엄한 의식이

그것은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불교와 같

합니다. 반면에 어떤 목사는 마치 절간의

습니다. 먼저 초대 기독교 안에 있던 유

나 성자 숭배 의식의 경우 활발하게 사

은 재래 종교의 촛불이나, 제사를 지낸

촛불이 연상되어서 전혀 활용하지 않는

대교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저녁 예배의

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7세기에

때 사용한 촛불들이 연상되기 때문입니

다는 말을 합니다. 이 질문 역시 우리 교

촛불이나 등불은 한 날을 하나님의 은총

이르러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단의 촛

다. 우상을 섬기는 도구처럼 촛불이 보

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는 문제임에

아래서 지내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의식으

대가 정식으로 세워지도록 규정하였습니

여지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도구

틀림이 없습니다.

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

다. 동방교회는 예배드리는 사람의 기원

처럼 촛불이 보여지기 때문이라는 주장

에 초점을 두고 주님의 날에 드렸던 예배

을 담은 촛불을 수없이 바치어 마치 불

에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촛

기독교 예배 역사에서 사용되어 온 성

에서 촛불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

상 앞에서 수많은 촛불이 타고 있는 것

불을 사용했던 시발은 불교나 조상 제사

단의 촛불이나 등불의 의미는 무엇인지?

운 죽음의 세계를 물리치고 승리하심을

을 연상할 정도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

와는 전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이룩된

그 사용의 타당성은 어떤 것인지? 이러

찬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니다. 또한 성공회를 비롯하여 루터 교

것입니다. 오히려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

한 물음의 대답을 찾아봅니다. 초대교회

의 많은 교회가 성단에 촛대를 세워놓고

회도 예배시에 촛불을 켜는 것이 보편화

을 주는 현장에서 부활의 능력을 감상하

때부터 촛불이나 등불의 사용은 세 가지

주일 예배나 부활절 같은 특수 절기 때에

되었습니다. 일반 개신교회는 부활절이나

고 부활의 주님을 찬미하면서 예배를 드

의 경우로 요약됩니다. 먼저는, 예배에 필

촛불을 켜는 중요한 이유는 어둠을 물리

특수한 절기의 예배 외에는 아직도 촛

렸습니다.

요한 조명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친 주님의 승리의 정신을 기리는 데 의미

불의 사용이 적극적이지 못한 현입니다.

기록된 사도 바울의 밤 집회(행 20:8)를

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이

비롯하여 로마의 박해시절에 중요한 예

미 4세기에 기록된 「사도 전승」에서 “

그러나 최근에 와서 세계의 많은 개신

기독교의 고유한 것까지 포기할 필요가

배장소였던 동굴에 이르기까지 밝은 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불멸의

교회들이 예배의 의미를 빛내기 위하여

없습니다. 당당히 우리의 의미를 가지고

명이 필요하여 촛불이나 등불을 많이 사

빛을 계시하시면서 우리를 비추셨음을 늘

촛불의 사용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예

우리의 것을 사용하는 결단이 필요합니

용하였습니다. 둘째는, 유대나 헬라 문화

상기하는 의미”가 있었음을 밝히는 데서

배 시작 전에 예배위원들이 찬양대와 함

다. 버려서는 안 될 아름다운 전통과 의

권에서 촛불이나 등불을 장식용이나 공

입증됩니다. 그리고 더욱 정확한 것은 계

께 입장할 때 맨 앞에 어린이나 청소년들

식이 타종교에 대한 의식 때문에 우리의

기의 정화를 위하여 켜 놓는 일이 많았

시록 4장 5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좌를

이 촛불을 켜는 불씨 대를 들고 입장하

개신교회에서 너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습니다. 셋째는, 기독교 예배를 비롯하여

둘러싼 일곱 등불이 어둠을 밝힌 하나님

여 성단에 촛불을 켭니다. 그리고 난 다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Church Denver Halleluja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이제 우리는 타종교를 생각하면서 우리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반주자를 모십니다!"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키보드 반주를 해 주실 분을 모시고자 합니다. 관심이 있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이메일 (hrockchoi@gmail.com)이나 교회 전화(303-717-0279, 텍스트)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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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의 대화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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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미국에 살면서 한가지 특성화된 것은 영어 단어의 의미를 하나하나 생각한다 는 것이다. 군대시절 나와 함께 부대생활 을 하던 한 동료군인이 있었는데 이 친 구는 영어사전을 갖고 다니면서 그 영어 단어를 끈질기게 외우던 친구였다. 대학 에서 공부하다가 군생활을 하게 된 이 친구는 대학 때의 전공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오며 가며 영어사전 을 통째로 앞뒤로 외우던 모습이 기억 이 난다. 우리 이민자의 영어는 어린아이들이 배 우는 문장을 통한 언어공부가 아니라 새 로운 단어를 통해서 배우는 영어가 되 다 보니까 우리는 영어 단어 하나하나 의 의미를 파악해야만 했다. 그래서인가 영어책을 보면 문구의 흐름에 따라 이해 가 되는 단어는 꼭 찾아서 확인을 해야 하는 습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 습성 이 붙어서인지 한국어에도 적용이 돼서 한국어로 쓴 책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전적 의미를 파악하려는 성향이 발견 된다. 책을 보거나 어떤 대화 중에 나오 는 단어가 평상시 이해하는 것 같아 잘 사용하는 것임에도 문득 생소하게 느껴 질 때에는 사전을 사용해서 의미를 파악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런 나 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띄울 때가 있 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거나 또 잘못 사 용하거나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등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영어를 사 용하듯이 한국어를 사용하려니 단어와 용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함을 알 게 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데 사 용되는 단어를 보니 더욱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찬양을 놓고 보 니 우리가 그렇게 즐겨 부르고 감사하고 기쁘게 부르던 찬양이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믿음의 결단의 찬양이 많다는 것이 다. 일례로 우리가 즐겨 부르던 복음성 가 중 하나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

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 돌아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 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 아서지 않겠네” 이 아름다운 결심과 헌신의 찬양을 교 회마다 교인마다 얼마나 열심히 불렀는지 모른다. 많은 분들이 외우고 있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부르는 찬양이다. 매우 쉽게 반복하면서 부르는 찬양이라 더 입에 잘 붙었던 찬양이다. 그런데 찬양 가사를 생 각해보면서 가슴 깊이 느껴지는 것은 우 리가 그렇게도 기쁘게 불렀던 찬양의 가 사가 매우 의미심장하고 최선의 헌신을 드러내는 결단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결 사적이고 강렬한 믿음의 고백을 가득한 찬양 말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떠오르 는 것이 수십 년 동안 불러왔던 그 찬양 가사에 걸맞은 진정어린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는 생각이다. 영어 노래를 부르는 데 노래 가사를 잘 알지 못하면서 노래를 불러 가사 전달이 전혀 되지 않는 노래를 부르듯이 우리가 노래한 것이 아닌가 라 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어이기에 읽 거나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니 그 찬송을 부르면서 진실된 마음, 간절한 마 음,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찬양을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자세히 생각해보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얼마나 멋진 신앙고백이고 주님 나라를 향한 결단의 고백이다. 그런데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 네 라며 찬송을 몇십 년 동안 불렀는데 과연 주님 뜻대로 살기로 한 그 고백에 합당한 믿음의 열매가 우리에게 있느냐 는 것이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라 고 찬양을 부르면서 자신의 의지와 능력 과 노력과 뜻에 더 힘쓰는 우리들의 모 습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믿음의 찬양을 되풀이하면서 믿음의 성장이 이루어졌는 가, 주님 뜻을 앞세우면서 주님의 형상을 이루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느냐는 것이 다. 그런데 정작 긴 시간 주님 뜻대로 살

기로 했다는 입술의 고백과는 달리 괴리 감이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발견하면 서 우리의 찬양은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 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두 번째로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 교회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많은 교 인들의 시험거리가 바로 이 부분이 아닌 가? 사람들이 날 알아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이 높여주고 귀하 게 여겨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직 분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 그 래서인가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나를 몰 라라 하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아픔과 상처를 말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입 술로는 저 찬양을 불렀다. 다시 생각해 보건대 우리는 의미를 모르며 그 노래를 부르고 가슴에 간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 번째로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믿음의 길을 사 모하던 우리들은 이 찬송을 열심히 불렀 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과 세상의 짐 만을 지고 가는 우리 모습을 본다. 기도 시간에 나와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하는 기도의 제목은 사 라져버리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 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 인 모습이 드러난다. 복받기를 원한다는 아주 원천적인 모습을 말한다. 세상 등 진 모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주님 뜻대로,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진 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아 믿음 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입술로는 예수님 을 열심히 따랐건만 삶으로는 스스로를 부정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에 어떻게 모든 일에 완벽할 수 있겠는 가? 사실 귀한 찬양곡으로 우리는 믿음 의 괄목한 성장을 이룬 분들도 있을 것 이고, 날마다 힘을 얻어 주님을 향한 순

천경우 목사

덴버영락교회

례의 길을 정진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 다. 매 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의 결단을 내리며 나가시는 분들도 있을 것 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깊은 의미를 부 여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가 부르는 찬양곡의 가사가 얼마나 진중 한 것인지를 안다면 매 순간 부르는 우 리들의 찬양은 믿음의 결단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인 동시에 믿음의 목표를 굳건 하게 세우는 결사항전의 승전곡일 것이 다. 더 나아가 가사를 묵상하면서 찬양 을 한다면 믿음의 진취적인 열매를 거둘 것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거두 어야 할 것이다. 한 찬양곡으로도 우리 믿음으로 이렇 게 살펴보면서 입술의 고백과 우리 믿음 의 현실을 비교해볼 수 있다. 반대로 우 리가 부르는 찬양곡이 그저 따라 부르는 찬양이 형식적이거나 외식적이나 피상적 이라고 한다면 곡조에 붙여 고백하는 기 도에 합당한 믿음의 열매를 기대하는 것 은 욕심이요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 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창 시절 영어를 공부하듯, 영어 단어 를 하나하나 공부하듯 성경의 단어, 믿 음의 단어, 찬양의 단어를 살펴봐야 하 겠다. 한 단어 한 단어가 품고 있는 깊은 믿음의 고백을 헤아리는 영적인 혜안을 키우면서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사용하 는 단어들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또 한 우리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서 믿음이 드러난다.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양의 아름다운 가사가 마음을 담은 입 술의 고백이요 동시에 믿음의 고백이 된 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또 그로 인해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진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우리를 귀하게 여기실까? 찬양의 단어를 통해서 믿음의 연륜이 깊어지는 동시에 믿음의 형상이 더욱 풍성한 모습 으로 맺혀지는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있 으면 참 좋겠다.


진리의 샘터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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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헌신 금일까요?

익숙해 지면 놓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

과부는 조심스럽게 와서 조용히 두 렙돈을

찻길 옆에 오래 살던 사람들은 하루에도

넣습니다. 렙돈은 그 시대 통용되던 동전

몇 번씩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익숙해서 그

중 가장 가치가 낮은 돈입니다. 그런데 이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편견을 내려놓고

냥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Manner-

과부는 자신의 전부를 넣었으니 가장 많이

배경과 문맥을 봐야 합니다. 문맥은 이렇습

ism에 빠지거나 너무 익숙하면 어떠한 일

넣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니다.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예루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신의 생명과도 같은 것을 드렸습니다.

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왜

이 말씀을 접하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

님께서 입성하시자마자 하신 일은 성전을

제자들에게 하셨을까요? 왜 이 여인을 언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까? 우리는 보통 이 과부의 헌신을 칭송

깨끗이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3장에는

급하셨을까요?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하는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익숙한 말씀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예수님께서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

것은 성경은 예수님을 통해 봐야 합니다.

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 과부를 높이며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지 않고 무너질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이야기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

말씀을 대충 읽거나 이미 읽기도 전에 그

지’라고 다짐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의 헌

오늘 이야기 바로 전에는 예수님께서 성전

하여 하실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면

말씀이 어떤 내용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금보다 이 과부의 헌금이 더 귀하다고 말

안에서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던 서기관들

어떨까요? 이 여인은 타락한 성전을 위해

지 미리 판단하고 읽습니다. ‘내 마음속

합니다.

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자신의

가운데 자세한 detail을 놓치기 쉽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에 이것은 이런 뜻이다'라고 미래 정해놓고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

읽으면 그렇게 읽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새

수님께서는 이 과부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그 시대 배경을 보면 성전에 여인들이

께서는 타락한 우리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로운 의미나 감동, 은혜를 얻기가 어렵습니

바치며 헌신하였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들어갈 수 있는 뜰에는 헌금함이 13개가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편견을 내려놓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이 과부가 다른 사람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 여인이

목숨과 같은 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을

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

들보다 많이 넣었다고만 말씀하십니다. 이

두 렙돈을 넣을 수 있는 곳은 ‘자발적 헌

내어 주셨습니다. 타락한 우리를 위하여!

씀을 문맥과 배경을 염두하며 읽는 훈련

과부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셔서

금’(free-will offering)인데 이 헌금은 성

이 필요합니다.

그를 축복하시고 그를 받아주셨다는 말씀

전 건물을 위하여 사용되거나 번제를 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헌

은 없습니다. 이 두 렙돈을 드린 과부가 앞

해 사용됩니다. 번제에서 제사장들은 고기

신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 여인을 언급하

으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도 기록되지 않

를 받습니다. 그리고 시대적/사회적으로 보

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

고 있습니다.

면 헌금을 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 살 수

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11월, 감사의 달

없는 상황이니 이 여인은 어쩔 수 없이 헌

인데 이보다 더 큰 감사의 조건이 어디 있

금을 하였던 것입니다.

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의 깊게 하

최근 제가 읽던 말씀 가운데 한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나와 두 렙돈을 헌금으로 드리는 말씀을 접했습니다(막 12:41-44). 예 수님께서는 그 과부가 헌금함에 넣는 모든

만일 하나님께 드린 헌신이라면 하나님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많

께서 이 과부의 삶을 책임져 주시지 않았

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하여

을까요? 그렇다면 그 내용이 기록되지 않

즉 이 여인의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익숙해질 수 있는

헌금함에 돈을 많이 넣었습니다. 그냥 넣은

았을까요? 만일 이 과부가 두 렙돈을 드림

신이 아니라 성전에 바칠 수밖에 없는 상

신앙생활 가운데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의

것이 아니라 영어 성경에는 던져 넣었다고

으로 더 이상 삶을 살 수 없었더라면 과

황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린 것입니

은혜 때문에 매일매일 새로운 감동과 은혜

묘사합니다 (threw in). 하지만 이 가난한

연 그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

다. 그것도 타락된 성전, 제도적 종교에 자

가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주일 예배 12:00PM 주일 학교 12:00PM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주일 예배 12:00PM S. Ceylon St.

S. Biscay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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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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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1일

블렌딩 예배

(Blending Worship)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가 장 큰 어려움을 말하라고 한다면 첫 번째가 문화의 충격(Cultural Shock) 이었을 것이다. 누구나가 경험한 것이 겠지만 제일 먼저 벽에 부딪히는 것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열심히 애써서 영 작한 말을 하면 미국 사람은 잘 알아 듣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벙어리 귀머거리 세 월이 지나고 이제는 조금 듣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벌써 은퇴할 나이가 되 었다. 문화의 충격은 언어뿐 아니라 음식과 생활습관에도 찾아온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직장생활을 할 때, 출장을 자주 나갔는데 제일 어려움이 밥 먹는 일이었다. 호텔에서 일어나 아 침을 먹으려 하는데 식당에는 소시지 와 스크램블 에이그, 햄과 치즈, 팬케 익과 와플 그리고 빵과 베이글, 후식 으로는 파인애플, 사과, 허니두 그리 고 그레이푸릇 등등이 풍성하게 차려 져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 다. 배는 고픈데 입에 맞는 음식은 없 다. 나중에는 기름진 음식만 봐도 머 리에 쥐가 나고 심하면 어지러워 멀미 가 날 정도였다. 내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가 80 년대 초반이었는데 그때 미국의 이민

자들에 대한 정책이 Melting Pot이었 다. 멜팅팟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사회에 대한 은유이다. 미국을 흔히 용광로라고 부른다. 모든 타문화의 사람들이 미국에 오면 언어 풍습 생활습관을 미국식으로 녹이고 동화해야 한다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했다. 말과 습관을 미국식 으로 바꾸려고 제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정책을 바꾸었는데 그 것이 바로 Salad Bar(Bowl) 정책이었 다. 샐러드 볼은 부분을 하나의 전체 로 결합하는 것을 강조하는 용광로와 는 대조적으로, 다문화 사회가 별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문화를 통 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은유이다. 모든 타 문화의 사람들은 자기 고유 의 언어와 생활습관을 그대로 소유해 서 자기의 독특한 맛을 그대로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샐러드 볼에 야채 와 치즈, 과일과 고기가 맛이 각각 다 르지만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족함 을 주듯이 각 나라 사람들은 그들 고 유의 언어와 정통을 유지하는 정책이 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 살지만, 언 어와 문화의 통일성을 이루기가 힘들 어졌다. 내가 캘리포니아를 떠날 때가

1990년대이었는데 코리아타운 중심가 인 올림픽 블러바드 거리엔 간판이 거 의 한국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시당국 에서 지시가 떨어졌는데, 한국이름과 영어,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달도록 명령이 있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지금의 이민 자들에 대한 정책이 Blending Culture라고 말한다. ‘혼합문화 혹은 문 화적 혼합’이다. 먼저 미국에 와서 살 고 있는 이민자들이 언어와 풍습, 종교 와 자유의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타문화에 대한 적대감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 화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공유하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여 국가 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같은 편에 서 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살면서 세 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로 훨씬 더 빠르게 소통하고 유대감을 더 강하게 만들어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 들어내는 강점을 갖게 한다. 내가 몇 년 전에 시카고 무디 바이 블 칼리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갔을 때 무디바이블 교회 찬양팀과 지휘자 인 음악목사님을 통해 은혜로운 찬양 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의 찬양팀과 성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가대는 특별한 블렌딩이라고 소개를 했다. 보칼리스트, 기타리스트, 피아노, 키보드, 드럼 등의 악기와 팀원들이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었다. 미국, 멕시칸, 독일, 중국, 인디언, 한국인 등 등의 사람들이었다. 제각기 다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찬양의 목표에 하 나가 된 것이다. 블렌딩 문화는 한 사 람보다는 여러 사람의 정체성을 모아 내는 시너지 파워를 가져온다. 블렌딩 은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문화 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 다른 곳에 서 태어났고 언어와 배움과 소유와 재 능이 각각 다르지만, 교회에 모인 목 적은 단 하나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우리 모두는 인종과 언어와 지방 으로 치장된 겉옷을 벗어버리고 하나 로 블렌딩 되어서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이 참된 예배가 아닐까?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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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4주년과 위드 코로나 시대 10월 마지막 주일인 31일, 한국교회는 종 교개혁 504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그리고 내달 11월 1일부터 한국은 위드 코로나 시 대로 들어간다.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 팬 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 20개월 만이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는 종 교개혁 504주년 기념일과 위드 코로나 시 대의 시작일을 함께 맞이하게 된 것이다. 위드 코로나와 함께 대면예배의 참여 인 원이 수용 인원 50%까지 허용된다고 한다. 그동안 예배에 대해 비상식적인 제한 정책 을 취한 것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필자가 살고 있 는 미국의 대부분의 지역은 현재 수용 인 원 100퍼센트까지 대면예배가 허용되고 있 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현재 접종률은 60퍼센트에 못 미친다. 한국의 70퍼센트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 참석자 들의 백신 접종 여부에 대한 검사 조치도 없다. 본인이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마스크 를 쓰고 예배에 참석하면 된다. 필자가 출석하고 있는 미국 교회의 경우 지난번 예배 때 3,500명 수용 가능한 예배 당에서 거의 3,500명이 마스크를 벗은 채 함께 예배를 드렸다. 1퍼센트 정도의 극소 수 사람들만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렸다. 미국은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기치로 내 걸고 건국되었다. 그런 미국에 비하면 대한 민국의 신앙 자유 지수는 낮을 수밖에 없 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대기독교 정책은 방역을 빙자한 박해와 핍 박의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 시민연대’와 같은 뜻 있는 단체들이 계속 해서 거룩한 저항을 해온 것은 높이 평가되 어야 한다. 문제는 위드 코로나와 함께 수 용 인원의 100퍼센트 대면예배가 허용된다 해도, 한국교회가 코로나 이전의 상황을 회 복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특별히 예배 참석자의 숫자와 관련해서, 코로나 이전 상황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 가?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일선 목회 자들은 25-30퍼센트 정도 예배 참석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목회자가 아닌 성도들은 비대면 사역의

컨텐츠를 더 창의적으로 개발해줄 것을 교 회에 요구하고 있다. 2022년 한국교회의 상 황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특별히 교 회 출석자와 헌금의 액수와 관련해서 전망 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2022년 을 16세기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살리는 질 적 부흥의 시기로 만들어야 한다. 수량적· 외면적 침체를 질적·내면적 성숙의 계기로 만드는 창조적인 사유와 실천이 필요하다. 2022년 한국교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 천 과제를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다시 한 번 재 확인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고 고백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유기적인 연합적 친교 공동체이다. 성경은 이러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 예수 그리스도 의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미지 와 비유를 사용한다. 이 비유들과 이미지들 은 교회가 어떤 조직체이기 전에 생명이 흐 르는 유기체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생명이 흐르는 유기체로서의 교회 는 막힘이 없는 소통, 끈적끈적한 연합, 깊 은 상호연결과 의존, 뜨거운 사랑과 돌봄, 희생적인 나눔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되어 야 한다. 교회의 사명도 자명하다. 교회가 그리스 도의 몸이라는 것은 주님이 처음 입으신 인 성에 속한 몸이 아닌 ‘제2의 몸’이라는 뜻이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 예 수는 교회에게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교회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사역을 그대로 이어받 았다. 그것은 마태복음 9장 35-36절이 말 씀하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 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병들 고 약한 자를 치유하며, 불쌍한 자들을 긍 휼과 자비로 섬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함께 말씀을 가르 치고 배우는 제자/교육 공동체이며, 땅끝까

지 주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이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전 인적 치유 공동체이며, 가난하고 연약한 자 들에게 희망이 되는 긍휼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이러한 본질과 사명을 바르 게 회복할 때, 한국교회는 2022년을 새로 운 질적·내면적 부흥의 원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국교회의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 어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량적으 로 대형이면서도 내적으로 성숙한 교회들 이 중소형 교회들을 함께 견인해가는 모델 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 이 모든 교회들에게 난관과 도전을 안겨주 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중소형인 교회들 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소형 교회 들의 대부분은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그 냥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이미 수천 곳의 소형 교회들이 문을 닫았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 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는 것을 막고, 소형 교회들이 건강하 고 강한 교회로 계속 성숙하도록 돕기 위 해서는 대형 교회들이 더 희생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담대하게 인적 자원을 공유 하고, 물적 자원도 급진적으로 나눠야 한 다. 그렇게 할 때 중소형 교회들이 각자의 은사와 소명을 따라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형 교회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규모 와 사역의 확장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들 옆에 있는 소형 교회들을 사랑과 긍휼로 돌아보고, 그들이 건강하고 성숙한 공동체로 굳게 서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 게 할 때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가 아름답 게 동역하고 공생하는 영적 생태계가 조성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신학적·종말론적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신학적인 교회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한 교회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어떠하 심에 대한 거룩한 지식으로 충만한 교회 를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단순히 명제적·정보적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관계 적·체험적 지식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관계적·체험적 지식이 풍성할 때, 교회는 그 본질과 사명에 충실한 견고 한 공동체로 자라갈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 교회는 끊 임없이 방황하고, 흔들리는 공동체가 될 수 밖에 없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염려와 비방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신학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는 지속적 으로 말씀과 교리와 변증의 영역에서 탁월 성을 유지해야 한다. 종말론적 교회란 주님의 재림이 가까왔 음을 인식하는 교회다.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대망하면서, 자신을 거룩한 신부로 단장하는 교회다. 코로나 팬데믹은 명백하게 주님 재림의 징조들 중 하나이다. 주님 재림의 최종적인 징조는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 는 것(마 24:14)이다. 이미 천국 복음은 UN 에 속한 모든 나라에 증거되었다. 다만 미 전도종족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미전도종 족들에 대한 선교도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 로 예측된다. 그렇다면 주님 재림 직전에 이뤄질 세계 선교 완성이 바로 코앞에 와 있다 해도 과 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깨 어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어둡고 두려운 종말론이 아닌 밝 고 행복한 종말론으로 무장해야 한다. 건 강하고 균형 잡힌 종말론에 기초한 견고한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한다. 종교개혁 504주년과 위드 코로나 시대 를 맞으면서 한국교회가 이 세 가지 영역 에서 진정한 부흥과 도약을 맞이하길 간절 히 기도한다. 주여, 우리 한국교회에게 질 적·내면적 성숙과 부흥을 허락하여 주소서!


쉴만한 물가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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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가 받는 상급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에 게 상급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상급 은그들이 무엇을 이겼는지 그 대상과 관 계가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 들이 무엇을 이겨야 하는 것인지 먼저 살 펴보자.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가 이겨야 할 첫 번째 대상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들의 애매하고 모호한 태도다(계 3:15). 이런 태도는 진리의 명증성을 버리고 의 도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 말미 암아 모종의 이익을 취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두 번째 이겨야 할 대상은 영적 분별력 을 가로막는 우매함이다. 이런 영적 우매 함은 그들이 스스로 부요하고 성공했다 고 생각하는 자만심에서 비롯되었다. 그 들은 스스로 부자라 부요하다고 생각했 지만 영적으로는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 하며 눈 멀고 벌거벗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진리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영적 우매함을 이기고, 이 기는 자가 되었을 때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 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주님은 먼저 이기는 자의 본이 되셨다. 주님은 이기는 자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 이같이 우리도 이 기는 자가 되면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이기는 자들

에게 하신 주님의 약속이다. 예수님이 이 기신 것은 세상이나 마귀나 옛사람의 죄 악된 성품이 아니다. 그분이 이기신 것 은 십자가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 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주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 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 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십자가의 부끄러 움을 참는 것이 그분이 이겨야 할 몫이었 다. 수치심은 죄인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몫이다. 하지만 인 간의 죄성이 없고 오직 신성만 소유하신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수치를 주는 것 자 체가 그분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태어 나신 것이 성육신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죄인으로 죽으시며 수치 를 당하시는 것도 성육신의 또 다른 모 습이다. 이것이 주님이 해내신 이기는 자 가 되는 방식이다. 그분은 이렇게 십자가 를 이기셨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 으셨다. 이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거스리며, 하 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때 비로소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의 상급을 누리게 된다. 그들은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며(마 19:28), 만국을 다 스리는 권세를 갖게 된다(계 2: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 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 파를 심판하리라” (마 19:28) 주님과 함께 열두 보좌에 함께 앉는다 는 것은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과 영원 천 국에서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을 함께 나 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두아디라 교 회의 이기는 자들이받는 상급 곧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계 2:26) 동일한 리더십 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 의 이기는 자들이 갖는 공통된 덕목은 비성경적 가치와 세계관에 타협하지 않 는 태도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는 진리 의 명증성을 흐리게 하며 애매하고 모호 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거부하며, 두아 디라 교회의 이기는 자는 비성경적 가치 와 세계관에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자세 를 가진다. 주님은 왜 이 두 교회의 이기는 자에 게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만국을 다 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까? 그것은 이 두 교회의 이기는 자의 영 적덕목이 특별히 예수님 재림 이후 천년 왕국에서 만국을 다스리는(계 2:26) 리더 십에 필요한 소양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나라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 을 용납하지 않는 영적 리더십이다. 이것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리 더십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구체 적은 설명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자가 받는 상급’편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만일 라오디게아 교회가 어떤 이들의 주 장과 같이 말세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라 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가 가져 야 할 덕목은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 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굳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말세 교회를 대 표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주님이 소아시아 의 일곱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시겠다고 요한 계시록에 기록하게 하신 자체가 마지막 때의 교회에 대한 주님의 경고요 부탁이다. 비성경적인 가치와 이념이 난무하는 이 마지막 때에, 교회가 거짓된 이념과 가치 앞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 이를 취 하며 명목상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 니라 크게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는 먼저 배 도하는 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2:3). 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교회 를 좋아할 것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어둠의 세상과 동행하는 것이 아 니라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교회는 세 상의 빛이다.


좁은 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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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1일

절대 긍정, 무한 긍정 손창달 목사

덴버제일감리교회 담임

무슨 말만 하면 많은 좋은 조건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눈을 씻고 봐도 좋 을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음에도 불 구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자신을 위해 단 하나밖에 없으셨던 독 생하신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미 국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타 주의 아치스 파크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아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과 같이 자기 자신을 ‘ 메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자신과 모든 것들을 비교해서 부정적 이게로 되고,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 과 같이 하나님을 주목하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는 당당한 자아상 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일에 긍정적이 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주 실패를 경험 하고 또 자주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사 람들일수록 부정적이기 쉽고, 내 자신 안에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을 알지 못 하고 자신을 개발하지 않는 사람 역시 도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 밖에 다른 많은 이유들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긍정의 생각은 긍정의 결과를 가져오고 부정의 생각은 부정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긍정의 결 과를 경험하길 원한다고 하면 그 사람 은 반드시 마음에 긍정의 생각을 품어 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장엄한 광경 을 보고는 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 왔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인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말씀을 보면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하 나님께서는 오랜 포로 생활로 지쳐있었 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요. 죄 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 때문에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자유케 하시기 위해 자신의 단 하나밖에 없으 셨던 독생하신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사에 절대 긍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리고 내

저는 제 둘째 아들이 다섯 살 때 맹 장이 터진 것을 모르고, 배가 아프다고 해서 동네 소아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가 의사 선생님이 별 것 아니라고, 약만 먹이면 된다고 해서 그대로 며칠이 지난 것 때문에 복막염이 되어 아이를 죽일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 의 은혜로 마지막 순간에 수술을 받고 살 수 있었는데, 밤 11시에 적막한 수술 실로 들어가는 어린 아들을 보면서 부 모로서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운지, 그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시 118:28)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때의 제 심정은 자식을 위해서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같은 마음이시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 이까!”라고 절규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는 당장에 아들을 십자가에서 내리시려 고 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리고 또 얼마든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우리들 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표 현하면 옳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밖 에 없으셨고, 또 아무런 죄가 없으셨던 독생하신 아들보다도, 대신 허물 많고 죄 많은 우리들을 더 사랑하셨기 때문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롬8:39)에서 말씀하시기를 ‘(앞에 진술된 모든 말 씀을 보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우리 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 님, 그리고 나를 위해 독생하신 아들까 지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의 사랑이 항상 우리의 삶에 있는 것입 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Power is not from a position, but it comes from what you believe in’ ‘힘은 지위에서 나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믿는 것에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 나님과 나 자신을 위해 항상 있는 하나 님의 사랑을 믿을 때, 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긍정, 무한 긍정의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혹 뜻하지 않은 곤란과 고통 가운데 계신 분들이 있으 십니까? 그것 때문에 낙심 가운데 계신 분들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이 아셔야 하는 것은 지금의 고통은 우리가 긍정 의 생각을 갖는 것에 따라 얼마든지 하 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들, 그 것들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실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긍정의 믿음으 로 대처해 나간다고 하면 그 모든 일들 은 도리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 험하게 하는, 하늘은 나는 날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과 그 사랑을 믿으심으로 절대 긍정, 무한 긍 정의 사람이 되셔서, 그러므로 다시 승 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시 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제공: 서선녀 사모


베드로후서 강해

2021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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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불신앙의 경계선(2) <베드로후서 2:12-22>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일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핍박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7을 보 세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까지’라는 것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 나님은 일을 쉬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 키신다고 시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역시 이 땅에 일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30세에 공 생애를 시작하시기까지 주님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셨습니 다. 아버지 요셉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홀어머니와 4명의 동생들을 부양하는 것 은 주님의 책임이었습니다. 주님의 공생 애 3년간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 들을 만나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습니까?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예수의 발자 취’라는 책을 펴낸 것이 있습니다. 성경 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행적을 토대로 예 수님이 3년 동안 걸어가신 총 거리를 계 산했습니다. 무려 15,000마일입니다. 매일 15마일씩을 걸으신 것입니다. 하루도 쉬 지 않았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3차례의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나 라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걸었던 총거리는 1만 마일밖에 되지 않 습니다. 십수 년의 거리를 합친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주님이 얼마나 많은 길을 걸 어가신 것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여행’이라는 책을 쓴 저자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 주님의 일은 가만 히 앉아서 하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 람들은 주님의 손을 필요로 했고 발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는 곳 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서 버 림받고 멸시를 받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 나서는 한없는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 습니다. 주님의 손길만 미쳐도 슬픔이 변 해 기쁨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옷깃만 만

져도 12년간 멈추지 않던 혈루병이 나 았습니다.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시면서 성령을 우 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의 또 다른 이름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돕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믿는 순간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한번 들 어오신 성령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으 십니다. 형제들을 2촌이라고 합니다. 그 런데도 때로는 서로 비난하고 갈라질 때 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을 1촌이라 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도 금이 갈 때가 많습니다. 부부 사이를 무촌이라고 합니다. 무촌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런 데도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갈등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얼마 나 힘드실까요? 성령과 우리가 성격이 같 습니까? 아닙니다. 정말 다릅니다. 우리 의 불같은 성격을 참고 계십니다. 이랬다 저랬다 얼마나 변덕이 많습니까? 조금만 불편해도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힘든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를 한결같이 돕고 계십니다. 우리는 때로 한눈을 파는 일이 있더라도 성령은 한순 간도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지금도 끊 임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들이 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이 것을 저버리고 향락을 좇아 사는 사람들 의 모습이 나옵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 니다.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 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 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연 회라는 것은 술이 있는 파티를 말하는 것입니다. 낮에 술이 있는 파티를 기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낮에는 일하 는 시간입니다. 일하는 시간에 일하지 않 고 향락을 좇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을 해야 할 때 일하지 않으면 단순히 쉬고 재충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14절 을 보세요.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 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 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갖게 됩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오히려 다른 생각 갖지 않습 니다. 그러나 시간이 남고 여유가 있어 보 십시오. 사탄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 다. 범죄하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 다. 욕심으로 마음이 가득 차게 됩니다. 베드로는 구약에 나오는 발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15절을 보세요. “그들 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 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 의 삯을 사랑하다가” 모압이라는 나라 의 왕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 니다. 자기들의 군사로는 이스라엘을 이 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 서 선지자인 발람을 찾아갔습니다. 많은 예물을 가지고 발람에게 가서 이스라엘 을 저주해 달라고 했습니다. 발람은 처음에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에 게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이스 라엘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발 람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모압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많 은 예물과 더 높은 귀족들이 발람을 찾 아왔습니다. 그 예물들을 보자 발람의 마음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말로는 분명히 안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하나님 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왜 물어봅 니까?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하나님 은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시 물어봅니다. 그것은 발람이 이미 물질에 마음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발람은 물질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않습니다. 타고 가던 나귀가 말을 해도 이미 물질에 빼앗긴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물질적인 유혹은 절대 한 번에 끝나 지 않습니다. 모압왕은 또다시 찾아옵니 다. 더 많은 물질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일하러 나가야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합니다. 그 자리에 남아있으면 안 됩니다.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잡기 위해서 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발람은 오히려 가만 히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기자가 이런 기사 를 쓴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연되 는 이런 향락문화는 미국에 있는 한인들 에게도 곧바로 전수된다. 왜냐하면 한국 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그것을 따라가려 는 동반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 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조금 늦 을 뿐이지 한국의 문화가 이곳으로 그대 로 들어온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한인 기자가 이렇게 반박 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곳 이민 사회를 모르고 한 이야기이다. 두 가지 이유 때 문에 한국의 향락문화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첫 번째는 미주에 사는 한인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나간다. 신앙 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쾌락을 좇 아 살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이곳 한인들 은 부부가 대부분은 일을 한다. 일을 하 는 사람들은 향락을 즐길 시간이 없다. 미국의 이런 사회시스템은 아무리 세월 이 흘러도 바뀔 가능성이 없다. 단 하루 를 쉬기도 어려운 것이 미국의 일이다.” 맞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단순 히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 니다.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창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장 과 비지니스에서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 해 일하십시오. 예배를 열심을 다해 참여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십시오.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가정으로 만드십시오. 그러면 세 상의 유혹이 우리를 침범할 틈이 없을 것 입니다. 이 땅의 향락을 좇는 것은 불신 앙의 모습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일하는 기쁨과 사명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변화프로젝트

2021년 11월 11일

27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0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 훈련의 기도 프로젝트 2) 기도하기: 매일 30분씩 30일간을 기도 하는 습관을 길러라. 15분을 하나님께 이 야기하고 15분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 해서 침묵을 연습하라. 기도는 우리로 하 여금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만들어준다. 선 한 음성을 듣기 위해 집중하는능력을 기 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음성의 원천 이시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선하고 악한 음성의 차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커진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가 소통하는 수단이 다. 많은 이들은 기도가 단지 하나님께 말 씀드리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조용 히 그분의 말씀을 기다리고 듣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기도: “주님, 듣고 있사오니 저에게 말씀 해 주세요. 당신을사랑할 수 있도록 당신 의 사랑과 도우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 와주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조용한 가운데 들 어라. 처음에는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음 성을 기다리는 것이 어려우나 연습을 계 속하면 가능해진다. 우리는 하나님께 묻지 않기 때문에 응답을 못 받는다. 또한 응답 을 여쭌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 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응답을 받기 위해 서 인내를 가지고 음성을 들어야만 한다. 기도: “주님,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당 신께서 말씀하시고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마음에 들어오는생각들을 적어 라.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

은 내용과 당신 마음에 떠오르는 내용들

거나 듣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원하

의 이미지를 적어라. 때때로 당신 마음에

시는 일을 오해하거나 공허함, 목표의식 상

떠오르는 것이 성경말씀인 경우도 있는데

실 등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이들이다. 우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

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순종할

일 수도 있다. 추가로 당신이 하나님께 원

때 삶의 목적과 충만함을 찾을 수 있는

한 내용들을 적어라. 당신이 응답 받았다

것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순

고 느낄 때 그것을 기록해라. 또 그 대답

종의 열쇠이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나를 구

이 성경구절이 될 수도 있다. 한달 정도

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올바르게 들었는지

29:13). 추가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

아닌지 그것을 뒤돌아 보라. 기도: “주님, 나에게 임하소서. 제 마음을

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쓴 편지와

엽니다.사탄의 유혹과 악한 음성에 저항하

복음서들을 읽어라. 기도: “주님, 이 성경말씀들을 통하여 저

고 당신을 따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에게 알려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까?

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주세요.

저의 영적 상태를 알게 해주세요. 만약 바

순종하기 원합니다. 전심으로 당신을 사랑

꿔야 할 것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도록 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당신 안에

와주세요.”

서 평안을 구합니다. 다른 이들을 돕기 위

그리고 조용히 응답을 기다려라. 예수님

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이 이끌어 주

의 응답이 즉시 오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말라. 솔로몬은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신 응답을 듣기까지 일천번

3)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 기: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발전시키는 것 은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를 깨닫는데 도움을 준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 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 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 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밝 히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

제를 드렸음을 기억하라(왕상 3:1~15). 하나 님의 응답을 원한다면 꾸준히 기도해야 한 다. “예수님, 당신의 사랑을 이해하고 당 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매일 기도함으로 예수님 께 당신의 사랑을 알려라.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러브레터를 노트에 기록하고 작성해 라. 이런 방법을 통해 선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연습하게 될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 을이해하고 사랑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아직까지 영접하지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않았다면 예수님을 마음에 초대하고 영접 하는 기도를 하고 구원을 받기를 권한다. 기도: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 를 용서해 주세요.저의 삶을 당신께 드립 니다. 저의 마음에 오셔서 저의 삶을 주 관해 주세요.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 니다.아멘.” 4) 긍정적인 생각하기: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많은 악한 음성들이 있다. 자신과 다 른 이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들을 없애라.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 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기림이 있든지 이것들 을 생각하라”(빌 4:8). 당신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 각을 다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 라. 만약 당신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나 쁜 태도를 가졌다면 그런 비판적인 생각 들을 버려라. 우리의 문화는 자신과 타인 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 큰 영향 을 끼치며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 지기가 쉽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1년 11월 11일

26

고난 가운데 빛나는 인생 고생 끝에 기쁨과 쉼이 온다는 말이

행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

상태를 고백하는데, “나의 영혼도 매우

있습니다. 이 말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았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균이 옮아서

떨리나이다…” 이것은 이제 나의 삶에

어려움 가운데 고생하지만 희망을 가

병이 생겼다고 이해할 수 없었고, 정신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된 것 같다는

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

병 같은 경우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고백입니다. 나를 인도하고, 보호하시

을 살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

그저 하나님에게 벌 받았다고 이해했

겠다던 하나님의 모습이 도무지 보이

다. 어느 때는 도무지 고생이 끝날 기

었고, 장애가 있거나 정신이 이상하거

지 않는 비참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크게 오해하는

미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나 가정과 삶에 나쁜 일이 겹쳐서 생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원망 섞인 한탄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기

어려운 일들은 한꺼번에 깡패처럼 몰

기면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 생각

으로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어느때까

쁨 드릴 수 있는 삶은 형통한 삶을 통

려오는지 처음엔 툭툭 건드리나싶더니

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

지니이까” 다윗의 마음으로 풀어보자

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

어느 순간에는 우리 인생을 KO 시켜

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면 이런 말 같습니다. “하나님 도대

다. 그래서 내 삶의 형편이 좋아질 때

버릴 듯한 큰 시험을 가지고 몰려오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체 언제까지 제가 이 어려움을 당해

까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잠

것을 보면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냥 다

었습니다. 누구도 나를 불쌍히 여겨주

야 합니까?!”

시 보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지 않고, 죄인으로 바라봅니다. 그들

전병욱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면 하나님 욕되게 하지도 않으니까...

돌리는 삶은 모든 것이 형통하고 그 로 인해 감사가 충만한 삶을 통해서만

눈에 이미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어

우리도 어려움이 길어지고 지긋지

이처럼 인생이 이제 다 끝난 것 같

디 가서 하소연을 할 수도 없습니다.

긋하게 여겨질 때 다윗처럼 “하나님!

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와 변치

사람 만나기가 두렵고, 대낮엔 마음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어려워야 합니

않고 함께 하겠다던 친구들이 나에게

편히 밖에 나가기도 어렵습니다. 그래

까?!” 따지는 기도가 나올 때가 있습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등을 돌려 하나둘씩 떠나가고, 자녀

서 낮에는 집에서 울고, 사람이 없는

니다. 그리고 포기를 해버립니다. “

고난 가운데 빛이 납니다. 왜냐하면

도 아내도 남편도 다 떠나버리고, 이

새벽과 저녁에 몰래 밖에 나와 하늘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하나님 마음대

고난은 나의 연약함이 명확히 드러나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 같

을 바라보면서 눈물 흘리고 다시 집

로 하세요!!”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

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주장하심과 도

은 외로움 가운데 있으면 사는 것보

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지어 하나님을 떠나려 합니다. 왜 떠

우심 또한 명확하게 드러나는 시간이

나려 할까요?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기 때문입니다. 형통하면 내가 드러나

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보이는 때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 있습니다. 더 비참한 순간은 나를

시편 6편 2절에 다윗은 이런 표현을

않으셨다는 배신감이 들어서? 물론 그

지만, 고난 중에는 하나님의 살아 계

지켜주신다던 하나님조차 나를 버린

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럴 수도 있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이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것 같을 때, 그때 우리가 바라보는 삶

나를 고치소서” 뼈가 떨린다는 표현은

나의 삶이 하나님께 전혀 영광 돌리지

의 인생은 더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은 두려움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을 것

바로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 쓰는 표현

못하는 삶 같아서… 나 때문에 하나

끝날 것 같지 않은 고난 중에 계십니

입니다.

입니다. 도저히 이제는 살 수도 없고,

님 영광 받지 못하시고, 오히려 나 때

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시길 바

살고 싶지도 않은 상황 가운데 터져

문에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

랍니다. 왜냐하면 이젠 하나님이 역사

나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더 비참한

같아서, 내가 오히려 하나님을 모른다

하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오는 불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비전

예배 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성령안에서 예수님처럼”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복음으로 살아보기

2021년 11월 11일

27

허무함에서 충만함으로 손재흥 목사 덴버에덴교회

최근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잘잘

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께 기도하였다. 또한 그는 아침마다 주의

법’(잘 믿고 잘 사는 법)이라는 채널이 있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인자하심 곧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주

다. 얼마 전 그 채널에서 ‘허무함에서 벗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

의 백성을 만족하게 하사 주의 백성으로

어나는 법’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사

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

하여금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시기를

22절에는 예수님과 한 부자 청년의 만남

실 요즘 잘 살아온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

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

기도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허무한 인생을

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 부자

고 허무한 감정도 느껴지곤 합니다… 인생

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무한하신 우리 하나님의 한없는 자비와

청년은 길에 계신 예수님께 달려와서 그

100세 시대에 50대면 인생을 아직 반밖에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7-10)

변함없는 사랑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앞에 꿇어앉아,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

또한, 인생이 허무한 두 번째 이유가 인

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 소멸되며 하나님

간의 죄 때문이기에, 우리는 인생의 허무

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먼저 이

답을 주는 내용이었다. 미국 칼빈신학대학

의 공의로운 분내심에 놀랄 수밖에 없는

함을 벗어나기 위해 죄를 짓는 것을 늘 경

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

의 강연안 교수님께서 전도서를 중심으로

존재이다. 그리고 그렇게 죄 가운데 사는

계하며 살아야 한다. 모세는 시편 90편 11

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

아주 훌륭한 답을 제시해 주셨다. 혹시 요

인간은 그가 칠십 혹은 팔십, 아니 백 세

절과 12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11 누

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우

즘 인생의 허무함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까지 살지라도, 그의 연수의 자랑은 오직

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

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예수님의 이

있다면 꼭 한 번 들어 보시기를 추천한다.

수고와 슬픔일 뿐이고 그 연수가 신속하

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예

게 지나갈 뿐이다.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

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생각

게 하소서”

하셨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셨다는

안 살았는데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기쁘

인간은 죄로 타락하여 죄 가운데 살기

게 살 수 있을까요?”라는 독자의 질문에

필자는 얼마 전 새벽기도회에서 전했던 시편 90편 말씀을 중심으로 인생의 허무 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인생의 허무함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운 마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

먼저, 우리의 인생이 허무한 이유에 대해

벗어날 수 있을까? 인생이 허무한 첫 번째

음으로 인생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

써 늘 하나님과 하나가 되셨고 하나님 자

서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왜

이유가 인생이 유한하기 때문이기에, 우리

외하게 되고 내 인생의 마지막 때가 점점

신이 실제로 그 안에 계시는 존재로 사셨

우리의 인생은 허무한 것일까? 인생이 허

는 인생의 허무함을 벗어나기 위해 무한하

더 가까이 오고 있음을 생각하며 하나님

다. 만일 우리도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하

무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특별

앞에서 겸손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

나님 한 분만을 생각하고 나 자신을 내세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인생이 유한하

히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의

나님을 경외하며 인생의 마지막 때를 겸손

우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하나님과 하

기 때문이다. 인생은 끝이 있고 그 끝을

지하며 살아야 한다. 모세는 시편 90편 13

히 준비하는 사람은 죄를 멀리하며 죄를

나가 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존재

향해 빠르게 지나간다. 시편 90편 6절 말

절부터 15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짓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가 될 것이다.

씀에 있듯이, 인생은 마치 아침에 꽃이 피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

그런 존재가 된다면, 우리는 인생의 허

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는 풀과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

서 무한하신 우리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무함이 아니라 생명의 충만함 가운데 살

같다. 또한, 인생이 허무한 두 번째 이유는

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

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게 될 것이다. 철저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인간의 죄 때문이다. 시편 90편은 ‘하나

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

마음으로 죄를 짓는 것을 경계할 때 우리

생각하셨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셨

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가 붙어

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

는 인생의 허무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

있는 시편인데,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이

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

께 하신다. 그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주

모세는 오랜 시간 동안 억압과 굴욕과

면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우리는 점점

님과 함께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

괴로움을 당한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며,

나 자신보다 나의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보자. 인생의 허무함

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

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0장 17절부터

이 생명의 충만함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17)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5: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사 12:4)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렇게 탄식하며 기도하였다.

제공: 김성애 성도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3) 제공: 맹성자 원로사모(믿음장로교회)


감동이 있는 글 믿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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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1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글: 봉민근

어려서 내가 살던 고향은 제법 큰 마을이었지만 교회가 없었다. 이웃 마을에서 가끔 전도하러 오곤 했었다. 그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쳐준 찬송을 지금은 교회 나가지 않더라도 제법 흥얼거리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소돔과 고모라의 땅과 같은 곳이었다. 어느 전도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개척했지만, 가난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문 닫고 가버리곤 했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망했다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그때의 주일학교 학생들 중 몇 명이 청년이 되어 자기네 집에서 교회 개척이 시작되었다. 그때에 나도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 그 후에 수많은 사람이 자라서 외지에 나가 생활하며 믿음에 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을 훗날에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시다. 그루터기를 남기셔서 그 후에 그곳에 교회가 생기고 여러 명의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교회를 매우 싫어했다. 남자 청년들은 지나가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교회 담벼락에 배출했고 예배시간이면 교회 밖에서 깡통을 두드리며 예배를 방해하곤 하였다. 그와 반대로 나의 아내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왜 이웃 마을에는 교회가 있는데 우리 마을에는 교회가 없느냐고 부역을 해서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고향 마을은 미군기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마을도 없어지고 교회도 없어졌다. 오늘날에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땅이 있다. 하나님을 그토록 싫어하는 땅에 다시는 사람들이 거주 하지 못하게 하는 심판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왜 가나안 7 족속을 멸하라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이 잔인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백성들을 심판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개인이나 민족 중에라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오늘날 북한 땅에 빈핍함을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불신의 죄악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인생의 끝날은 믿음의 여부에 따라서 영생복락도, 지옥의 불못도 반드시 심판으로 결정될 것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 만이 살길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자료/ⓒ창골산 봉서방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영적인 전쟁터에 임하는 일이다. 방심할 수 없는 싸움터에서 늘 말씀으로 무장하고 사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신앙에 대한 경각심도 긴장감도 없다. 기도해야 한다고 알고 있을 뿐 깨어 기도하지 않는다. 전도는 그 옛날 사람들의 전설로 여기거나 일부 특정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도 옛말처럼 다가온다. 복음을 전하면 자신에게 불이익과 공격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전투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다운 면모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세상과 타협하면서 믿는 것도 아니요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가 오직 생명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신앙적인 비겁함이 앞서면 그는 주님 앞에 서는 날 내가 도무지 너를 모른다고 부인함을 당할 것이다. 신앙의 선진들은 잠깐의 비겁함으로 자신의 신앙에 정조를 깨뜨리지 않았다. 비록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가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말 한마디만 바꾸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어도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거나 그들 앞에 무릎 꿇지 않았다. 생명의 길은 좁디좁은 길이요 생명의 문은 좁은 문이라 주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셨어도 나는 그 길을 무사히 통과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안 된다. 신앙인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를 싫어하거나 피하는 자는 결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천국은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은 순결하고 깨끗한 자가 갈 수 있는 곳이다. 주님의 피는 거저 흘리신 피가 아니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얻은 십자가의 고난의 대가였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도 받을 줄 알고 믿어야 한다. 어떤 시련과 고통이 올지라도 감래 하리라 하는 각오를 가지고 믿어야 한다. 십자가가 거저 얻어진 값싼 복음이라 말하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는 값비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맞바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이다. 핍박 좀 받는다고 해서 그 길을 피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일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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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있는 글

2021년 11월 11일

29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할 때 글: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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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신앙의 잠을 잔다고 하는 것이다. 성도는 모든 삶이 하나님과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문제 앞에서 사람을 찾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찾는 사람! 언제나 하나님과 통화하는 사람! 하나님이 사인을 주시기까지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훈련받은 것처럼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기도훈련, 예배 훈련, 전도 훈련 등 혹독한 영적 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도의 핵심은 인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환경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고난의 쓴잔을 마시지 않으면 결코 온전한 신앙인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신앙생활에 채찍을 가하지 않으면 절대로 신앙은 성장하지 못한다. 자신의 십자가 지기를 게을리해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

성도란 주님 때문에 사는 자이며 또한 주님 때문에 기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사단의 종노릇 하며 죄만 지을 뿐이다. 깨어서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쉼 없이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기 위한 투쟁이 신앙생활이다. 성도는 죄를 밟고 일어나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 염려도 밟고 죄의 모양이라도 근접하지 못하도록 언제나 신앙의 경계를 튼튼하게 하려고 깨어 있어야 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07:1)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4: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2)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할렐루야교회

31

제공: 김정애 권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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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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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1일

전도서 2장 글: 이주연 목사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보았으나 그것도 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주님, 향락에 몸을 담가 보아도 그것도 헛되다는 것을 속히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다시는 향락에 빠지지 말고, 자유케 하시옵소서.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주님, 억지로 웃어 보아도 인생의 이별의 슬픔과 질병의 고통과 늘고 죽는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향락으로도 소용 없는 것임을 깨닫고 오직 인생을 지으신 창조주께로 돌아가게 하시옵소서.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주님,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고, 큰 집도 짓고 크게 사업을 이루어 수많은 사람도 거느려 보고, 대단한 건축물도 만들어보고, 노래하는 남녀들과 처첩을 두었고, 지혜도 지니고서,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고 탐닉했으며,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고 실컷 즐겼으며, 금은 보화를 잔뜩 쌓아보고, 수고할 것은 기꺼이 수고하며 모든 것을 얻었으나, 이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임을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이 땅에는 영원한 것도 영원한 도성도 없는 것임을 깨닫고, 영원하신 주와 주의 사랑 안에 머물므로 이 헛된 길에서 벗어나 순간순간을 주의 사랑과 그 말씀으로 영원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주님,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한 것이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는 일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수고하고 마음을 다한 이들에게 돌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주님, 해 아래서 수고하여 얻은 모든 것을 남겨 주게 될 때에도 아깝지 아니하고 헛되다고 하지 아니할 이가 있게 하시고 지혜를 다하여 이룩하여 놓은 것들을 넘겨 주어도 헛되지 아니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주님,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의 탄식으로 끝나지 아니하게 하시옵고 주님 안에서 마음이 안식할 수 있도록 <산마루에서, 以石> http://www.sanletter.net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821 S. Parker Rd. Suite 409 Aurora, CO 8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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