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사62:10)
빛 제 11권 23호
소금
The Light and Salt News
2021년 12월 9일 발행
벧엘교회
원로목사 추대 및 담임목사 위임 감사예배 벧엘교회를 29년 동안 시무하던 오성관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와 제2대 신현수 담임목사 위임감사예배에 초대합니다. 오셔서 축하해 주시고 함께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성관 원로목사 약력 -1981 ,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1982년, 총신대학교 대학원(M.Div. 중퇴, 미국이민) -1982년 -1986년, Reformed Presbyterian Seminary 졸업(M.Div.) -1986년 (M.Div.) 1998년, Denver Seminary 수료(Doctor -1993 - 1998 (Doctor of Ministry) -2020년,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2020 and Seminary 졸업(D.Min.) 2021년, 벧엘교회 담임목사 시무 -1993 - 2021 -2021년, -2021년 벧엘교회 원로목사 -2021년, -2021년 록키마운틴 노회 공로목사
신현수 담임목사 약력 -안양대학교 신학과(B.A) -총신대학교 교회음악과(B.M)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2021년 12월 26일 (주일) 오전 10시45분 장소: 벧엘교회 본당 위임국장: 록키마운틴 노회장 이동훈 목사(삼성장로교회 시무)
6415 W 44th Ave. Wheat Ridge, CO 80033 Church: (303) 423-1392, Pastor: (256) 714-9223 www.bkpcdenver.org
목차
2021년 12월 9일
목차 교계소식 교회절기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커피 한잔의 대화 진리의 샘터 내면을 향한 여정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복음으로 살아보기 감동이 있는 글 산마루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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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4월 22일 2021년 12월 9일
벧엘교회 원로목사 추대 및 담임목사 위임 감사예배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
2021년 12월 26일(주일) 오전 10시 45분
빛과소금뉴스
벧엘교회는 29년 동안 시무하던 오성관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와 제2대 신현수 담임목사 위임감사예배를 다음과 같이 드린다. ●일시: 2021년 12월 26일(주일) 오전 10시45분 ●위임국장: 록키마운틴 노회장 이동훈 목사(삼성장로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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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절기
202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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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이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
출처 및 제공: 지저스타임즈 http://jtntv.kr/18603
대강절
Advent
1. 대강절에 대한 바른 이해 크리스천들에게는 크리스마스보다 먼 저 찾아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대 강절이다. 우리들에게 아직은 생소하게 만 다가오는 대강절은 성탄절 4주 전부 터 시작하여 성탄절까지 계속되는 절기 를 말한다. “도착하다, 오다”라는 뜻을 가진 라 틴어 어드벤트(advent)에서 유래된 것 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이 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의 초림을 기뻐하 고 축하하며 기념하면서 예수님의 재림 을 사모하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자세를 새롭게 하는 시간들이다.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에는 주현절 (Epiphany),사순절(Lent),오순절 (Pentecost), 대강절(Advent) 등이 있 으며,그 중 개신교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고 있는 절기는 대림절 또는 강림절 로도 불리는 대강절이다. 그런데 이 대 강절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그에 따른 바른 이해에 대한 약간의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탄절을 4주간 앞두고 시작해서 지키는 ‘대강절'(待降節)은 문 자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 리는 절기'라는 뜻인데, 그 ‘오심'(降)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 라질 수밖에 없다. 그 논란은 그리스도 의 성탄 즉 첫 번째 오심(성육신)을 기
다리는 절기냐, 아니면 역사의 마지막에 오실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키는 절기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에서는 첫 번째 의미 즉 예수께서 2천 년 전에 이 땅에 나신, 곧 성육신 임마누엘의 역사적 사 실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로만 생각하 고 지키는 것이 현실이다. 예배에 관한 많은 책이 그렇게 쓰고 있고,많은 목회 자들이 그렇게 설교하고 있다. 그리고 기 독교 역사상으로도 약 1천 년 동안은 그 러한 뜻으로만 지켜 왔다. 그러나 그 후 12세기부터는 그것이 더 넓은 뜻으로 해 석 적용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 는 절기로까지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따 라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라틴어 전례용 어(典禮用語)에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성 탄)과 재림 두 사실을 모두 지키는 절기 로 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성탄으로 하나님의 구 원 사역이 시작된 것과,앞으로 세상의 종말에 심판주로 재림하심을 기다리는 절기로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 지의 의미가 부여된 것으로는 그리스도 께서 지상 사역의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보혜사)의 임재를 뜻하는 것이다. 즉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은혜로 임재하는 것을 말한다. 따 라서 이러한 의미로까지 확대하면, 대강
절은 과거의 역사로는 그리스도의 탄생( 성육신)으로 오셨음을, 미래의 사실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오실 것을, 현재의 사실로는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그 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계속적으로 임 재하시는 것을 다 포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 대강절은 성탄절과 그 시기를 같이하는 것이, 마치 부활절을 전후하여 사순절과 오순절이 있는 것처럼, 성탄절 의 의미를 더 깊게 해 주는 절기인 점에 서 유사점을 가진다.
2. 대강절 어원과 시기 ‘대강절'에 대하여 보다 바르게 이해 하기 위해서는 그 어원적인 고찰을 하는 것이 한 가지 참고가 될 수 있다. 대강절 에 해당되는 영어의 ‘Advent'는 라틴 어 ‘ad(to)'와 ‘ventire(come)'의 합성 어로서, 라틴어의 이 ‘ventire(오다)'가 역시 그리스도의 두 오심(ventire) 중에 서 어느 하나를 가리키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으나,다만 현재 로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다 관련된 것으로,또 하 나 더한다면 성령의 임재까지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영어의 표기상의 차이로 보면 ‘the Advent'로 쓰면 그리스도의 초 림을 나타내고, ‘Advent'로 쓰면 그리
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데 라틴어로는 후자에 해당된다. 끝으로 오늘날 우리가 대강절을 지키는 실제를 두고 생각할 때 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일은 그 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인데,이러한 점에서는 재림에 더 무게가 실리고, 오심의 사실을 기념하며 축하하 는 점에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엇을 기 념하고 축하하는 일은 과거에 일어난 사 실에 대한 것으로서 미래의 사실에는 해 당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강절(Advent)은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의 탄생을 미리 기대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성탄절 전 네 주일을 포함한 절기이다. 대강절 의 또 다른 명칭으로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의 대림절(待臨節), 강림절 (降臨節) 등이 있는데 중대한 사건이나 기대되는 즐거운 일을 준비하며 몸가짐 을 바르게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에 대강절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 는 역사 중에서 최대의 사건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서막인 예수님의 탄 생 기념일을 미리 준비하여 자신을 가 다듬는 절기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과연 예수님의 탄 생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이해 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를 기다리는
교회 절기
202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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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태도와 내용이 결정될 것이기 때
리스도 승천 이후 성령 오심을 기념하기
문이다. 한편 예수님의 결정적 고난이었
위한 성령 대강절과는 구별되는 절기이
던 십자가 수난(the Crucifixion) 사건
다. 성탄을 준비하기 위한 대강절은 초
빛의 축제의 기원은 과거 로마인들이
등지에서도 사랑받는 풍습이 되었다. 한
기념일을 미리 준비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 교회시대에 이미 기념되기 시작했으
가졌던 그들의 민속 절기의 한 행사인,
편 구유는 이탈리아에서의 프레세피오
절제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감사와
나 성탄 절기에 대한 이견으로 대강 절
농신제(農神祭)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
(presepio), 독일에서는 크리퍼(krippe),
동참을 표현하는 사순절과 비할 때, 우
기 역시 통일되지 않았다. 성탄절이 동,
축제는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지나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예슬릭키
리를 위해 겸손한 구주로 오신 예수님
서로마 교회의 통일된 절기로 승인된 4
고 낮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세상에 태
(jeslicky) 등으로 불린다.
의 탄생을 감사하며 고대하는 대강절은
세기 후반 이후에야 대강절 역시 성탄
양이 다시 돌아온 것으로 믿고 이를 기
밝은 분위기를 가진다 하겠다. 11월 30일의 가장 가까운 주일부터
절 전 4주간의 고정된 절기로 지켜지 게 되었다. 한편 대강절에 관련된 가장
념하기 위한 것으로 나무에 촛불을 밝 히는 행사를 가졌다. 이것이 히브리인들
4주간 진행되는 대강절은 초림의 주님
오래되고 확실한 자료는 6세기 후반의
의 역사, 즉 과거 수리아 사람들이 성
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기념하면서 다시
‘겔라시우스 예전서'(Gelasian Sacra-
전을 모독하고 부정한 것을 제단에 세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다. ‘Ad-
ment)이다. 이 책은 성탄절 전, 대강 절
운 것을 몰아내고 성전 청결 작업을 함
vent’는‘오다’ ‘도착하다’라는 뜻으로
기에 사용될 여러 기도와 성서 낭독의
으로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다시 찾은
초대교회 당시엔 로마 황제의 방문을 ‘
5주일치 분량을 갖추고 있는데, 이로 보
것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행했
His Advent’라고 했다. 초대교회 교인
아 당시 교회들이 성탄절 5주일 전부터
던 8일간의 빛의 축제, 즉 수전절(修殿
들은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주님이시고
대강절 행사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또
節) 행사와 결합되었고, 이는 다시 성탄
황제라며 이것의 의미를 ‘구세주의 오
한 여기에는 대강절 기간 동안의 수요일
을 즈음한 대강절에 빛의 축제로 변경
심’으로 바꿔버렸다.
과 금요일에 사용될 기도문과 성구 낭
되어 합하여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
독문도 실려 있다. 이러한 수요일과 금
늘날에는 촛불 대신에 다양한 색 전등
대강절의 의미에는 주님께서 이미 우
요일 미사 예문집(propers of Mass)은
으로 어둠을 밝히고 있다. 성탄을 즈음
리에게 오셨다는 확신과 다시 오실 주님
영국에서 1549년 성공회 기도서가 나올
하여 거리거리를 밝히며 어둠을 몰아내
에 대한 소망 사이에 살고 있다는 뜻이
때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는 아름답고 밝은 빛은 성탄을 준비하
로 지양해야 할 것이다. 3. 대강절 풍습 - (1) 빛의 축제:
들어 있다. 교회 절기로서 대강절(待降
한편 524년 레리다 회의에서는 이 기
는 우리의 마음에 큰 기쁨을 주며 빛
節)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
간 중에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금
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스스로
절 전의 4주간을 가리킨다. 대림절(待臨
식을 선포하는 등 그 예식의 내용이 주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 것을 다짐하
節)이라고도 불리는 대강절은 세상에 메
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과 비슷하
는 의미를 갖는다.
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앞 서 그의 오심을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
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강절은 구세주의
기 위한 기간이다. 한편 서로마 교회에
순절처럼 그 예식이 엄격하지는 않았다.
서는 대강절이 시작되는 대강 주일을 성
또한 이때는 절기상 동지(冬至)를 포함하
안드레의 축일(St. Andrew's Day, 11월
며, 곧이어 올 성탄절의 준비 기간으로
27일)에서 가장 가까운 일요일로 정하고
사람들은 등불, 모닥불, 화환 등을 이용
있는데, 이에 따르면 대강 주일이 시작되
해 경건한 가운데 그 기쁨을 표시하였
는 날짜는 11월 30일보다 빠르지 않고
다. 그런데 이러한 대강절이 12세기 들
12월 3일보다 늦지 않다.
어오면서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되기 시
오심을 바라는 기쁨의 기간인 만큼 사
이러한 계산법에 의하면 성탄절전 대
작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강절에는 4번의 주일이 있게 된다. 그러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만 국한 시키는
나 동로마 교회에서는 대강절이 이보다 빠른 11월 중순부터 시작되어 대강절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로서, 즉 앞 으로 이루어질 역사로 보는 관점이 보편
기간 안에 6번의 주일이 포함된다. 이렇
화되어진 것이다.
게 각자의 방식대로 지켜지던 대강절이
즉 이는 그리스도께서 과거에는 베들
동일한 계산 방식에 의해 기념되기 시작
레헴에 탄생하심으로 이 땅에 오셨고,
한 것은 11세기 이후의 일로, 동로마 교
현재는 믿는 자의 마음에 직접 찾아오
회가 서로마 교회의 방식에 따라 대강절
시며, 마지막 심판 날에는 재림주로서 오
기간을 계산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오늘
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
날 교회들도 서로마 교회의 대강절 계산
식의 변화로 대강절에 회개와 새 결단을
법에 따라 대강절 시기를 정하고 있다.
촉구하는 새로운 풍습이 생겨나기도 하 였다. 오늘날 동, 서방의 많은 교회에서
3. 대강절 유래와 대강절을 지키는 자세
는 대강절에 더 이상 금식을 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업주의에 물든 성탄절
성탄에 앞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
의 요란한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 강림절
리는 의미로 지켜지는 대강절은, 예수 그
의 의미마저 잊게 하는 일은 우리가 서
(2) 특별 참회일: 특별 참회는 12세기 이 후에 생겨난 풍습으로 대강절 절기에 과 거의 죄에 대한 참회를 하고 신앙적인 새 결단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16 세기 종교 개혁 이후 사라지기 시작하 여 오늘날에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 풍 습이지만, 바티칸 성당에서는 지금도 12 월 13일 다음의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을 특별 참회일로 정해 지키고 있다. 특 별히 참회일을 정해 놓지 않더라도 이 기간 중에 심판주로서 주님이 다시 올 것을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3) 구유 만들기: 아기 예수가 누웠던 말 구유를 상징하는 구유를 만드는 풍습은 성탄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강절 행 사로 적합하다. 구유 만들기는 특히 아 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아이들 은 대강절 기간 동안 구유 모양의 모형 에 짚을 조금씩 깔아 놓아 성탄절 이브 에 아기 예수가 누울만한 푹신한 자리 가 만들어지게 한다. 이러한 구유를 만 드는 풍습은 이탈리아의 성 프랜시스 (St. Francis)가 1224년 그레치오 마을
에 작은 구유 모양을 세우면서부터 시 작되었는데, 오늘날에는 남유럽과 미국
4. 대강절 장식과 상징물 (1) 대강절 화환: 대강절의 대표적인 풍 습으로 대강절 화환을 만드는 것이 있 다. 이는 유럽 등지에서 유행했던 것이 나 동부 유럽에서 온 루터 교인들에 의 해 미국에도 전파되었다. 대강절 화환의 주재료로는 상록수가 쓰이며 화환은 나 무의 가지를 동그랗게 고정된 틀에 끼 워 만든다. 화환의 동그란 모양은 끝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록수의 푸르름 은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한 다. 대강절 화환이 완성되면 4개의 초 를 꽂는다. 이때 '4'란 숫자는 대강절의 네 주일을 뜻하는 것이며, 촛불은 세상 을 밝히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한다. 대강절 화환은 이 절기가 끝나면 바로 이어지는 성탄절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 을 하였다. 4개의 초는 한 주일에 하나 씩 불이 켜지는데, 이때 그리스도의 오 심에 대한 구약 예언을 낭독하게 된다. 대강절 화환은 식탁이나 천장 등에 매 달아 장식하였다. (2) 촛불: 촛불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 시는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데, 492년에 겔라시우스 교황은 교회내 의 초를 축복하는 날로 성촉일(聖燭日) 을 제정하기도 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 회에서 거대한 초를 밝히는 풍습이 행 해지기도 했는데, 이는 동방 교회에서는 예수의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며, 서방 교 회에서는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경배 한 기념일로 지키는 주현절(主顯節, 1월 6일)전야까지 밝혀지곤 했다. (3) 대강절 달력과 대강절 집: 이외에 대 강절에 사용되는 장식물로 대강절 달력 (Advent calenders)과 대강절 집(Advent house)이 있다. 대강절 집은 마분 지로 만든 조그만 집 모양의 장식으로 그 집의 창문을 열면 대강절과 관련 된 성구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가정이나 교 회 등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대강절 달 력 역시 성구가 적혀 있어, 이 성구들을 통해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2821 S. Parker Rd. Suite 409 Aurora, CO 80014
신앙 칼럼
2021년 12월 9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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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성탄절 발행인 최성애 권사
코비드 19, 2년째 지속되고 있는 팬데
구십을 넘기신 어머니의 기억 속의 성
믹 가운데서도 시간은 쉼 없이 한 치의
탄절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해를 거
오차도 없이 정확히 흘러 어느덧 12월
듭할수록 더욱 또렷한 그리움과 소망으
"아~ 새벽송! 얼어서 제대로 걷기도 힘
유산이다. 특별히 주일 학생이나 중고등
성탄의 달로 접어든 지 벌써 한 주가 지
로 다가온다. 손꼽아 기다리던 성탄절,
들던 울퉁불퉁한 길, 칠흑처럼 캄캄한
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났다. 쏟아지는 폭설과 함께 길고 지루
정작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에게 허락받
밤에 달빛만 의지하고 걸으면서도 기뻐
한두 번 성탄절에 교회를 방문하고 평
한 예년의 콜로라도 겨울은 12월 25일
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완고했지만 외할
서 벌벌 떨면서도 추운 것은 아랑곳하
생 교회를 잊고 살다가 훗날 아련한 주
아기 예수의 성탄일, 크리스마스가 있어
아버지는 맏딸인 어머니에게 마지 못해
지 않았단다. 동틀 녁 교회로 돌아와 누
일 학생 때의 성탄절 추억으로 교회로
서 견디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랬다. 미
성탄절 이브만큼은 밤에 바깥출입을 할
군가가 준 강냉이 한 자루를 온 성가대
돌아올 확률이 그렇지 않은 자보다 크
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수 있도록 결국에는 허락하셨다. 어머니
가 나눠 먹었지... ”
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릴 적 열심 있는
기간은 겨울의 한파쯤은 기분 좋게 눈
는 혹시라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변할까
감아줄 정도로 충분히 들뜨고 설레고
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한걸음
어머니의 성탄절 이야기는 항상 이렇
역자가 되는 기회도 제공하기에 교회의
즐거웠다.
에 달려 교회에 도착해서야 안도하셨다
게 새벽송으로 마감한다. 손꼽아 기다리
문화를 소중히 하고 다음 세대에 힘써
고 한다.
던 10대의 추억 속의 크리스마스의 감격
전수해야 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의 여파인지, 콜로
나, 지금은 가로등이나 집과 건물에서 나오는 빛이 있어 환하기나 하지... ”
신앙이 자양분이 되어 평생 헌신하는 사
은 이제 구순 노년이 되어 임마누엘 천 그래서 더이상 신앙의 선배들의 아득
라도에 40여 년 넘게 살면서 눈을 기다
어머니의 기억 속의 성탄절은 항상 솜
린 것도 올해가 처음이기도 하지만, 성
뭉치가 가득한 트리에서 시작된다. 청
탄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지만, 캐럴을
년들이 산에서 잘라서 메고 온 소나무
우리 세대도 성탄의 행복했던 기억들
절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
들어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아도 성탄
에 솔방울과 흰 솜뭉치가 장식의 전부
로 수두룩하다. 유년 시절 교회를 다닌
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
의 감동이나 연말의 느낌이 예전과 같
였지만, 예배당 안을 그윽한 향내로 가
어린이들이나 크리스마스날 친구 따라
하며,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영
지 않다.
득 채운 세상에서 제일 향기롭고 자태
교회를 한두 번쯤 다녔다면 성탄절에 대
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자
도 빼어나게 예뻤던 크리스마스 트리였
한 따뜻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아기 예
녀들이 되길 기원한다.
물론 코비드로 인한 여러 가지 제약도
다고 지금도 회상하신다. 그리고 제대로
수 탄생 성극, 합창과 무용, 성경 암송
만만치 않지만, 이러다 주일학교 학생들
된 풍금 반주도 없었지만, 예배당 안의
등 준비로 밤늦도록 교회에 모여서 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나 청소년들이, 젊은이들이 성탄의 감
한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껏 소리높
참을 먹으며 연습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
동과 기쁨을 잊어버릴까 염려된다. 아니
여 성탄 찬송을 부르던 그 감격을 잊지
어쩌면 이미 성탄절은 우리의 젊은이들
못하신다.
에게 한낱 공휴일, 실컷 먹고 노는 파티
국을 향한 소망이 되었다.
한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쓸쓸한 성탄
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흔히 혹자는 성탄절의 많은 프로그램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
을 단순히 연례행사로 치부하여 격하하
하는 날, 혹은 선물을 마음껏 받고 즐기
“그때는 왜 그렇게 추웠는지... 지금처
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물
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
는 날 정도로 변질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럼 오리털 외투가 있었나, 털신이 있었
려주어야 할 교회의 전통이요, 믿음의
라" (요 3:16)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1년 12월 9일
8
제자입니까? <요한복음 12:24-26> 12월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 의 달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 신 날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구속사역 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습니 다. 추수감사절이 끝나자마자 집집마다 풍 경이 달라졌습니다. 집안에 성탄트리를 장 식하고, 집 밖으로는 불빛 장식으로 집안과 집 밖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사실, 많은 사 람들이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들뜬 분 위기를 만드느라 트리를 만들고 장식을 하 지만 이 불빛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 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전할 수 있는 복음의 계절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탄의 달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요?
1 팬입니까? 제자입니까? 책장에 있는 책을 보다가 “not a fan” 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국말로 번역된 책 제목은 “팬입니까? 제자입니까?”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의미 하는 것은 예수님의 팬은 많지만, 예수님 을 따르는 제자는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성탄을 열광하며 즐겁게 보내려는 예수님의 팬은 많지만 성 탄을 통해 예수님의 정신을 배우고, 예수님 을 따라 살고자 하는 제자는 얼마나 될까 요?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성탄절을 맞이 하기를 원하실까요?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 의 팬인가요? 제자인가요? 어떻게 하면 예 수님이 기뻐하시는 성탄을 맞이할 수 있을 까 고민하여 오늘 설교 제목을 “제자입니 까?”라고 붙였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이라는 보이그룹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최근에 BTS가 미국의 3 대 음악상인 아메리칸 뮤직어워즈에 올해 의 아티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아시아 가수 로서 최초라는 역사를 섰습니다. 그후 LA 에서 대면콘서트를 열었는데 단독공연 중 최다티켓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소파이 스 타디움이라는 곳에 1회에 5만 명이 참여 할 수 있는데 4회 공연이 모두 다 매진되
었습니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국내 해외 를 막론하고 전국각지에서 BTS 팬들이 몰 려왔습니다. 팬들이 얼마나 많은지 뉴스만 보더라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팬(fan)이라는 사전적인 정의는 “누군가 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팬 은 관람석에 앉아서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 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습 니다. 그 사람의 취미는 무엇인지 좋아하 는 음식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영화나 책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줄줄 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나와서 함께 땀흘리며 공연 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팬으로서 내가 좋 아하는 사람을 너무 잘알고 있지만 그 사 람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도 내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가수라도 슬럼프에 빠지고 활동하지 않으면 점점 기억에서 잊 혀집니다. 좋아하던 마음도 조금씩 식어지 고 다른 가수의 팬으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팬은 언제까지나 팬 일뿐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도 팬이 많습니다. 일주일 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응원하지 만 교회 문밖을 떠나면 삶 속에서 진정으 로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공 과 복을 위해 예수님께 기도하며 몰려들지 만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습 니다. 예수님을 따를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매 주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고, 헌금을 드리 며, 요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제 자가 아닙니다. 기독교 방송만 듣고, 파티 에서 주스만 마신다고 제자가 아닙니다. 좋 은 신앙의 전통과 성경 지식을 많이 가졌 다고 제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있 는가?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가? 예수님처럼 섬기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가? 예수님이 제시하는 기준대로 사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예수님의 팬인지 제 자인지 구분됩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유월절을 지키
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 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손에 는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모습이 마치 왕의 행차를 방불케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만나 기 위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 의 인기가 최고치에 달했습니다. 요즘같이 유튜브가 있었다면 구독자와 좋아요가 엄 청 높았을 것입니다. 신문, 방송, 온라인 매 체도 없던 시대에 먼 곳까지 예수님의 소 문이 퍼졌습니다. 헬라인들도 예수님의 소 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 에 왔습니다. 세상이 온통 예수님 이야기 만 하니깐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반응한 줄 아십니까? “온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19)” 예수님 주위에 팬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2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절) _밀알이 열매 맺는 원리 헬라인 몇몇이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에게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 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 헬라인들이 예 수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관심을 가 지고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볼 때 제자들 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예수님이 드디 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구나! 예수님이 왕이 되면 우리도 한자리 차지하겠지... 모 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것 너무 잘한 일이야! 스스로를 위로하고 칭 찬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놓고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 라”(24절)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통해 열매는 죽 음에서 온다는 영적인 원리를 전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속에 들어가면 자신의 몸 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밀의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눈에서 싹이 나오고 흙을 비집고 나오려면 자신의 몸을 썩혀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과 죽음이 따를 때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실제로 한 알의 밀에서 얼마나 많은 밀 알을 거둘 수 있을까요? 밀 한 포기를 뽑 아서 조사를 해보니 한 줄기에 이삭이 5개 정도가 열린다고 합니다. 한 개의 이삭에 약 40개의 밀알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한 알의 밀이 자라서 약 200개의 새로운 열매 를 맺게 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많 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하셨 습니다. 아울러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영적인 원리를 보여줍니다. 한 알의 밀처럼 자신을 죽이고 희생하여 이 땅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성탄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은 자신 에게 열광하는 팬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를 원하십니다. 한 알 의 밀처럼 흙 속에 뭍여 자신을 죽이고 희 생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예수님께로 인도 하는 열매맺는 삶을 원하십니다. 한국교회는 로버트 토마스(Robert Jermain Tomas) 선교사의 순교 위에 세워졌 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렬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습니다. 당시 외국인의 입국이나 무역통제정책을 쓰던 조선은 나룻배에 불을 붙여 셔먼호에 떠내 려 보냈습니다. 나룻배가 셔먼호에 닿자 불 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내렸고 육지로 올라오자 군관 들이 그들을 처형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 는 자신을 죽이려는 군관 박춘권에게 성경 을 건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마스 선 교사를 처형했습니다. 그후 박춘권의 마음 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도대체 죽어가면서 도 이 책을 주려던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하 며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
강단 설교 게 된 박춘권은 훗날 영주교회의 영수(장로 에 준하는 직분, 목사가 없는 교회에 평신 도 지도자로 교회를 섬겼다.)가 되었습니다. 그날 최치량이라는 11살 소년이 토마스 선교사가 뿌린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이 소 년은 성경책이 금서라는 사실을 알고 겁이 나 영문주사라는 관직에 있었던 박영식에 게 주었습니다. 박영식은 성경책을 뜯어 자 신의 방 도배지로 사용했는데, 벽에 붙어 있는 말씀이 들어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 다. 그 성경으로 도배한 집이 평양에서 최 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습니다. 널다리골교회는 1907년 영적 대각성 운동 이 일어났던 장대현 교회의 전신입니다. 한 알의 밀이 희생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역 사가 나타났습니다. 열매는 희생을 전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매는 죽음에서 온다 는 영적인 원리가 그대로 나타났다.) 밀알이 아무리 충실해도 희생 없이 자루 에 보존되어 있다면 결코 어떤 열매도 맺 을 수 없습니다. 땅에 떨어지는 아픔과 죽 어지는 희생으로 인해 많은 열매를 맺게 되 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죽음에서 온다” 는 영적인 원리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값 진 희생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죄사함 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원히 멸망 받 을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 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알의 밀이 되 신 것처럼 우리도 희생의 밀알이 되어 열매 맺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25절) _밀알의 비유를 통한 삶의 적용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통해 “열매는 죽음에서 온다”는 영적원리를 가르쳐주셨 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영적인 원리를 가지고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해 야 할지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5절의 말 씀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25절)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 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 고,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 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사 랑하는 쪽으로 가려고 하지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쪽으로 가려 하지 않습니다. 자 신의 욕망을 채우고 이루려고 하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려 하지 않습니 다. 하지만 한 알의 밀처럼 자신을 죽이고
2021년 12월 9일
희생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 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 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입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영생에 대한 궁금증을 가 지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이 청년은 어 릴 적부터 계명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그 런데 예수님께서 이 청년에게 한가지 부족 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팔아 가 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재물 때문 에 근심하여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청년은 부자이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일 (재물)에 최고의 가치를 두며 살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셨 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티비, 라디오를 수리 하는 일을 하셨고, 틈틈이 과일장사도 하 며 나름대로 열심히 사셔서 돈을 모으셨습 니다. 저희 아버지가 얼마나 절약하시는 분 이신지 모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뭔가 주워와서 재활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물건을 사도 같은 물건이라 면 가장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하셨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돈을 사용할 때는 정작 자신을 위해 조금도 사용하지 않았습 니다. 건강보조제도 드시지 않으셨고, 옷도 시장표 옷만 입으셨습니다. 저도 결혼하기 전까지 시장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다 제 아내를 만났는데 그때 여성들이 시장표 옷 을 입고 다니는 남성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늘 아끼고 인색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는 매우 후했 습니다. 대접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목회 를 하시면서도 성도들에게 늘 대접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온 사람이 있으면 돈을 못 받을 것을 알면서도 딱한 사정을 듣고 돈을 빌려주셨습니다. 교회 를 개척하는 일에 선교를 하는 일에는 물 질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가 어린시절에는 참 이상했지만,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두신 아버지의 희생과 섬 김을 통해 자녀인 제가 복을 받고 있습니 다. 예수님께 인도함 받아 영생의 복을 누 리고 있습니다.
4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26절 상) _제자의 능력 우리가 정말 한 알의 밀처럼 자기를 희생 하고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삶을 살 수 있
을까요?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두 며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죄의 본능 을 가진 인간이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 생명 을 미워하며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본문 26절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있 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 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26절) 예수님은 밀알처럼 자기를 희생하라! 자 기 생명을 미워하라는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 는 자도 거기에 있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섬기는 자리에 예수님이 그곳에 계십니다. 나를 희생하고 나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리에 예수님이 계 십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는 자 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리를 가자 하면 십 리를 가는 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겉 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는 곳에 예수 님이 계십니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곳이 예수님이 계십니다.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자,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자를 섬기는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자기희생과 섬김과 나눔과 베풂이 내가 하 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계신 주님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을 섬기며 따 르는 삶의 능력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 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5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26절 하) _제자가 받는 복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 생명 을 미워하며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 일까요? 방금 읽었던 26절 하반절이 이렇 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 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26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겨주실 것입 니다. 여기서 귀히 여기신다는 원어의 뜻은 "존경하다, 경의를 표하다. 보상하다, 높이 평가하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일에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해주십니다. 사 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다 아 시고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어떤 중학교 교사가 “월간 샘터”라는 잡지에 “어머니는 맛있는 과자를 드시지 않았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어른들은
9
술이나 담배를 좋아할 뿐 과자는 먹지 않 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맛있는 과 자가 있으면 당신 몫을 남겨두지 않고 5남 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그리곤 당신 은 늘 우리 형제가 맛있게 먹는 것을 바 라보실 뿐 한반도 과자를 드시지 않았다. 그러니 난 어머니가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상하기 직 전의 떡과 눅눅해진 과자를 우리 형제가 더 이상 먹지 않고 남긴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어머니가 우리가 먹다 남긴 과자 를 맛있게 드시는 광경을 태어나서 처음으 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알게 되었다. 어 머니도 맛있는 과자를 먹고 싶었지만 자식 들을 위해 침을 삼키며 꾹 참고 계셨다는 사실을... 그후 형제가 많은 집의 장남으 로 태어난 나는 가족에 대한 무한한 책임 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어머 니 사랑의 표현이 나의 인생에 커다란 획 을 그어 놓았다. 당신을 희생하며 자식들 을 위했던 어머니의 삶은 참으로 큰 사랑 이었다. 오늘따라 그런 어머니가 참으로 그 립다. 그러면서 자신도 국을 뜰 때마다 고 기 건더기를 아이들을 위해 남겨놓게 되었 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 성장한 아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위 해 희생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이 되 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영광보다 고난의 자리를 먼저 택하여야 합니다. 편한 자리 와 불편한 자리 중 불편한 자리에 먼저 앉 아야 합니다.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중 어 려운 일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한 알의 밀 처럼 희생하는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 랍니다. 한 알의 밀처럼 포기하는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봉사자는 일한 후에 자랑하지만 섬기는 자는 더 잘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자신을 보존하 는 일에 힘쓰지 말고 닳아 없어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다툼이 있을 때 이기는 것 보다 양보하고 지는 쪽을 택하시기 바랍니 다. 이런 식으로 죽어지는 것이 바로 영광 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를 하 나님이 귀히 여기시고 높여주십니다. 다가오는 성탄을 준비하며 예수님의 팬 이 아니라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 매는 죽음으로 맺는다는 영적원리를 배우 시기를 바랍니다. 희생과 섬김을 통해 하 나님께 높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12월 9일
10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대강절기를 시작하며
항상 주와 함께 있는 삶
이사야 Isaiah 59:1-8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1). Surely the arm of the LORD is not too short to save, nor his ear too dull to hear. ........................................................................................
데살로니가전서 4:13-18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
대강절(Advent)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기다림은 그리움이 있어야 흔들림이 없이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달력이 있듯이 교회에도 달력이 있습니다. 이를 교회력(Church Calendar)이라고 하는데,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시작으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성령강림절기가 교회력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관계가 멀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라놓았습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입술은 거짓을 말하고 혀는 악독을 쏟아냅니다(3). 공의대로 소송을 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을 하는 자도 없습니다. 사회를 정의롭게 세워야 할 법정까지도 부패했습니다(4).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3:2) 외치시던 예수님의 오심을 우리는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것이 초림이든, 재림이든 기다림의 시작은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 아니고,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절기는 대강절로부터 시작되는데, 바로 지난 11월 28일 주일이 대강절 첫 주일입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대강절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야 할 것은 예수의 부활만이 아니라 우리의 부활도 믿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삶을 믿기에 부활에 대한 소망을 지니고 이 땅 위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의 말로 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라 주님의 권위를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역자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대강절기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늘 살피며 인간의 죄성을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잘못된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 즉,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회개 먼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내세에 대하여 걱정을 하지 말고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성도들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ooreekmc@hanmail.net>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고치면 되고, 제대로 알고 있다면 더 확실하게 다짐하면 되는 것이며 모르고 있는 것이 있으면 배우면 됩니다. 편협하지 않고 열려 있는 마음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면 우리의 삶은 유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 130:5-6)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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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능력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어찌 되
다. 하나님의 선한 약속들을 전적으로
속한 자로서 경건에 대한 하나님의 선
었겠는가? 천국과 이 세상에서 만민에
생각하면서 죄악, 불안, 두려움 등의 상
한 약속과 보응과 말씀의 은사와 치유
게 사랑과 칭송과 존귀와 영광을 받아
황을 아예 잊거나 당연지사요, 신앙에
의 은사와 건강과 장수하는 선물들도
야 하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에
반대가 되는 것들이니 지옥영벌을 받을
모두 체험하도록 애를 쓰는 것이 현명
게 가장 추악한 자로서 비웃음과 비난
수도 있는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리
한 처사이다.
과 미움과 분노의 낙인과 채찍질과 가
고 하나님의 진리말씀대로 처신하고 긍
시와 못에 박혀서 살과 뼈가 찢어지
정적으로 처신하는 것이 상책이요 생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심
야 한다. 또한 주하나님의 성품들은 사
는 고통을 당하시면 돌아가셨다. 평안
명력이 있다. 그래야 인생과 영생에 있
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람이 온전케 되는 비결이고 하나님께서
과 복과 생명과 구원을 구하는 사람들
어서 두려움을 포함해서 믿음 소망 사
의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는지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비결이요 존귀
로서 예수님같이 추악한 곳에 오며 희
랑에 반대되는 것들을 극복하거나 물
그리고 사람들에게 끼치는지 살펴보아
와 영광을 얻는 비결인 것이다.
생양이 되겠는가? 만민은 피가 쏟아지
리치거나 이기고서 유익함이 있게 되
야 한다. 진리의 성경말씀을 제대로 이
는 것과 같은 심령으로 예수님을 구세
는 것이다.
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지, 경건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자녀
한 심신으로 사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가 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의
주로 인정하고 섬기는 자로 변형이 되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광과 덕을 예수님을 통하여서 꾸준하게 받기 위해서는 주하나님의 성품이 있어
어야 할 때이다. 그래야 거듭난 제자들
비록 피곤함, 문제, 복잡함, 어려움, 고
은혜와 사랑으로 성장하는지를 점검하
계명을 지켜야 하고 화평의 도구가 되
과 스데반과 바울과 같이 마음과 뜻과
통, 원망, 미움, 분노, 두려움 등은 천
여야 한다. 그리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어야 하고 성령을 좇아야 하고 그의 뜻
목숨을 다하여서 예수님을 기쁨과 생명
국과 지옥이 있고 하나님과 마귀가 있
모든 것을 받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생
을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하여
과 평화와 영광의 주인과 구원자와 하
고 천사들과 귀신들이 있는 것이 사실
명의 반대가 되는 것은 죽음인데, 죽음
야 한다. 꾸준하게 믿음의 열매가 되는
나님으로 인정하고 흥망성쇠, 희로애락
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를 위함이
의 위기와 위험과 질병과 사고와 범죄
선과 믿음의 결과가 되는 거룩함과 의
그리고 생사 간에 변함없이 찬송할 수
아닌가?”라는 깨달음과 각오를 하면서
를 당한 사람들은 죽음을 모면하는 것
와 흠없음과 순종의 종이 되어서 믿음
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과 명령을 꾸준하
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실한지 알 수 있
의 푯대가 되는 의에 이르고 의의 도구
게 이루기 위하여 진리성경말씀이요, 전
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천국영생복락
와 의의 병기가 되며 예수님이 영원한
크리스천으로서 특히 인생의 끝은 천
지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하신
을 얻을 신앙이 있는지 점검하고 그 신
구원의 근원이 되시도록 이어가야 한
국에서 영생의 시작인 사람들은, 스데
말씀들을 생명과 같이 여기면서 지키
앙을 제대로 유지시키고 신앙의 열매와
다. 그리고 믿음의 결국이 되는 구원과
반과 같이 그리고 바울 등과 같이 신앙
고 실천하여야 한다. 그러할 때에, 하나
목적과 푯대와 결국에 이르도록 발전시
의의 열매인 평강과 의의 결과인 잠잠
생활, 신앙의 경주, 영적싸움 그리고 복
님의 선한 약속들을 체험할 수가 있다.
키는 것이 필수이다.
함과 담대함을 얻게 되고 의의 결국인
음을 전하여도 생사 간에 영생을 이미
영원한 생명과 의의 면류관의 주인공이
지속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 어
세례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의와 진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덕으로 부르심
되도록 애를 씀이 의미와 보람과 기쁨
려움 위기 위험 질병 고통 등에 대하여
리의 거룩함으로 새사람으로 미리 준비
에 있어서 합당한지 그리고 주하나님의
과 행복함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람들
서 근심·걱정, 불안, 두려움에 대한 신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전과 성령의 성
성품을 온전히 닮도록 꾸준하게 인내하
2821 S 유스주일예배: 오전 10:30 (장소 경을 끄고서 영생에 대한 밝은 희망과 전된 자요, 예수님의 신부로서 늘 처신 면서 추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 장 소중히 여기고 추구하면서 주일 그의 기 할 때이다. 오후 7:00 (장소: 5651 S 소망과 기대감이 전적으로 있어야 한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과 경건에 과 덕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그 영 쁨이 되어야수요예배: 토요새벽: 오전 6:00 (장소: 5651 S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주일예배: 오전 11:30가 (장소: 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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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59)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사무엘상 15:17-23>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사무엘 선지자는 시종일관 거짓말과
여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
자기변명과 책임전가로 자신의 잘못을
않았다는 말은 사울 왕이 하나님보
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인정하지 않는 사울 왕의 말을 가로막
다 자신을 스스로를 높였다는 말입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
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 교만은
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사무엘상
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
무엇으로 이어집니까? 왕이라는 자신
15:21).
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
의 지위와 권력, 힘을 이용하여 탐욕
시옵소서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
을 채우기 위해 행동합니다. 또한 ‘
여기 사울 왕이 변명하는 20, 21절
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탈취하기에만 급하여’의 ‘급하다’라
을 요약하면, “나는 진멸하였으나….
이르되 말씀하소서”(사무엘상15:16).
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이트’인데, ‘
백성이 끌어 왔나이다”가 됩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 곧 말씀은 ‘아말렉
맹수처럼 탐욕스럽게 돌진하다.’는 의
것은 아각 왕을 사로잡은 공로는 자
은 다 진멸하라!’입니다. 왕이니까 예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의 입
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KJV은 이 부
신에게 돌리고 짐승들을 남긴 책임은
외가 됩니까? 어쩌면 사울 왕이 아각
을 통해 먼저 사울 왕의 잘못을 추
분을 “전리품에게로 날아갔다.”(flew
백성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
왕을 살려서 끌고 온 것은 자신의 공
궁합니다.
on the spoil)로 번역했습니다. 이 ‘
무엘서 저자는 이 사울 왕의 자기변
적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겁니다. 이것
이트’는 14장에서 굶주린 이스라엘 백
명을 통해 그가 왕의 자격이 없음을
은 사울이 자신의 왕권을 이용하여
성들이 탈취물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해석한 구
먼저 “어찌하여 교만해졌습니까?” 라고 추궁합니다.
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
묘사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였으나”(사무엘상15:20).
체적인 사례이며, 그의 인본주의 적 사울 왕은 왜 다 진멸하지 않았느냐
인 불신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부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는 사무엘 선지자의 추궁에 백성들에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게 그 책임을 전가하면서 이렇게 말합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사무엘상
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 여
또한 하나님은 제사보다 하나님의
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4:32).
호와께 제사하려고”, 사울 왕이 자기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십니
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 변명하는
다. 가장 좋은 것으로 제사 드리려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
분입니다.
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
왜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
말입니다. “좋은 것”, 사울 왕이 좋
끌고 왔다고 변명하는 사울 왕에게 사
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종하지 않았습니까? 탐심을 물리치지
아하는 것을 하나님도 좋아하실까요?
무엘 선지자가 아주 유명한 메시지 하
사무엘상15:17-18).
못해서입니다.
사울 왕은 지금 정말 하나님이 좋아하
나를 던집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 자기를 낮출
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줄 알았던 겸손을 버리고 교만해졌습
사울 왕은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추
어쩌면 “뭐,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니다. 변심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
궁하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다시 똑같
것을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겠어?”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었습니까? ‘권력’ 때문입니다. 왕이
은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어떻게 변명
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라는 지위가 갖는 ‘힘’ 때문입니다.
합니까? 먼저“나는 여호와의 목소리
그렇게 했다고 지금 사무엘 선지자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
사울은 왕 위에 오르자 주어진 권력
를 청종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
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정
의 기름보다 나으니”(사무엘상15:22).
과 힘을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과시
은 거짓말입니다.
말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뭘까요?
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좋아하시는 것이 뭐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
먼저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말씀
라는 것입니까? ‘그의 목소리를 청
그리고 “어찌하여 하나님의 목소리
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종’이
를 청종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이어
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
하나님은 말씀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
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잘 듣고 순
서 추궁합니다.
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
거나 왜곡시키는 것을 정말 싫어하십
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왜곡시키
였으나”(사무엘상15:20).
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
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려
종함에 있어서 어떻게 말씀을 왜곡시
면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듣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 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그리고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 드
켰습니까? 사울 왕은 아말렉 왕 아각
는 일에 실패하는 목사들 성도들이 참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
리려고 양과 소를 끌어왔습니다.”라고
을 살려서 끌어온 것을 당당하게 예
많습니다. 잘 듣고 100% 순종해야 합
였나이까”(사무엘상15:19).
변명합니다. 이것은 책임전가입니다.
기합니다.
니다. 적당히 해 놓고 순종하는 척하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면 안 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 고’ 이 선포는 당시로 보면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생 각에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것, 즉 ‘The best’는 제사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는 지금 ‘순종’ 이 ‘듣는 것’이 ‘The best’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마가복음12:33).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시는 것 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씀 대로 살지 않으면서 예배만 드리면 된 다고 생각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아무 리 세상에서 죄짓고 살아도 주일 날 교회 나와서 헌금 드리면 하나님이 봐 주실 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무엘 선지자가 제사를 부정하 고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목소리 청종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도 ‘순종이 제사보 다 낫다.’는 말씀의 정신을 이렇게 확 증하셨습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 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 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사무엘 상15:2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 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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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9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오직 자신에게 만 경배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의 불순종하는 태도를 두 가 지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먼저는 ‘거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 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메리’인데, 이는 ‘반역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데 이것이 뭐와 같다고 합니까? ‘점 치는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 ‘점술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당시 이 방 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예배 행위였습니다. 결국 하나 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 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와 다
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완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 은 히브리어로 ‘파차르’인데, ‘밀어 제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뭐 와 같다고 합니까?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 의 말씀에 대한 완고함, 즉 말씀을 밀 쳐 내는 죄는 우상을 숭배하는 죄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 림을 받아 왕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 즉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완고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밀쳐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밀쳐 내는 것은 하나님을 밀쳐 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밀쳐 내고 그 자 리에 나를 올려놓고, 탐심을 올려놓고 그것을 최고의 것으로 추구하는 우상 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사울 왕의 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눅 3:4)
새성구 9/23/21
순종은 결국 우상숭배의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하나님이 버리 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 로 살지 않는 삶을 외적인 종교행위 속에 감추지 맙시다. ‘순종이 제사보 다 낫다!’는 이 말씀 속에 오늘 우리 를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심정이 들어 있음을 알고 외식하지 말고, 척하지 말 고,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눅 3:6)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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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욥기의 시대적인 위치는 창세기 11장과 12 장 사이에 해당됩니다. 욥기에는 특정 시기 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어떤 단서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욥은 아마도 아브라함이 등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등장했을 것입니 다. 왜냐하면 욥의 상황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족장 시대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아브 라함은 175세를 살았던 것처럼 욥은 200세 가깝게 살았고(창25:7), 욥의 부가 금이 아니 라 가축의 규모로 측정되었고(1:3, 42:12), 욥 도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처럼 가족들 을 위한 제사장으로서 희생 제사를 드린 점 입니다. 또한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샤다 이’(Shaddai, 전능자)라고 31회나 사용했고( 구약의 다른 책에 17회만 등장함), 야훼 ‘주 하나님’(Yahweh=the Lord)이라는 드문 호 칭도 욥기에 등장하는데, 구약 성경 초기의 하나님에 대한, 이 호칭들은 모두 모세 전에 사용되었습니다.
욥기서의 배경과 제목 욥기서는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 어 제목이 다 같습니다. 욥기서의 의미는 ‘ 핍박받는 자’, ‘돌아오다’, 그리고 ‘회개하 다’는 의미입니다. 욥기서는 ‘핍박받는 욥’ 의 의미와 그리고 ‘회개하는 욥’의 의미를 둘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 어버리고 “왜 나인가?”라는 질문과 씨름하 다가 결국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회개하면서 그의 생애의 반전을 맞이하면 서 하나님의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욥기서의 주제와 목적 욥기서는 고난을 통해서 욥이 배운 진리 즉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 하시고 사랑이신데 왜 의로운 사람이 고통 을 받았을까요?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질 문에 정확한 답변을 주지 못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 중 하나님께서 의인을 깨끗케 하 기 위해 고난을 사용하신다는 엘리후의 주 장이 욥기서의 목표치에 근접한 답변이었습 니다. 비록 욥은 고난이 시작된 시점과 친구 들과의 논쟁이 끝날 때까지도 하나님에 대 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욥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그 분이 어떤 일을 하기를 선택하시든 간에 그 분은 경배를 받으실 분이신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선하시고 인자하 신 분이며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마땅 히 경배받으셔야 한다는 인식은 역사상 유 례없는 펜데믹의 상황 가운데에서도 동일하 게 우리에게도 확장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코비드19’의 어려움의 상황도 하 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절대 신실하 심을 믿지 못한다면 그냥 해답 없는 미스터 리와 같이 받아들여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욥기서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핵심 구절 : “13: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 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 를 변백하리라”, “37:23-24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 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 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 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 핵심 장 : 욥기서 마지막 장(42장)을 통해서 우리는 욥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된 후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것을 보 게 됩니다. 하나님과 세 친구들에게 끊임없 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던 욥이 하나님의 완전한 위 엄과 절대 주권을 온전히 인식하자마자 그 는 회개했고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켜주셨 습니다. 그러므로 42장은 욥기의 핵심 장이 고 그 핵심 내용은 욥의 하나님에 대한 올 바른 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욥기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욥기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믿는 자의 생명, 구속자, 중보자, 그리고 변호자의 역 할로 나타납니다. 욥은 구속자를 인정했고 (19:25-27), 중보자를 갈구하며 부르짖었습니 다(9:33, 25:4, 33:23).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죄가 없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으시 고 고통을 겪으셨습니다(히4:15 우리에게 있 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 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 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유 리그릇처럼 혹은 토기처럼 깨어지기 쉬운 연 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각자의 인생이라는 도가니 속에 불어오는 여러 가지 고난들을 통하여 제시 되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답변을 더 쉽게 찾아 나아가게 됩니다.
욥기서의 전체 내용 개관
욥기서는 시가서의 한 책답게 극적인 시 (dramatic poetry)의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 습니다. 이와 같은 극적인 시의 기법은 신명 기 8장에 나오는 고난의 목적에 대하여 잘 설명해 줍니다. 신명기 8장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고난의 5가지의 목적에 대해서 말 씀합니다. 첫째, 우리를 겸손케 하기 위하여 (욥22:29-신8:2), 둘째, 우리를 시험하기 위하 여(욥2:3-신8:2), 셋째,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 로 잡기 위하여(42:5-6-신8:3), 넷째, 우리를 징계하여 바로 세우기 위하여(욥5:17-신8:5), 다섯째, 우리의 미래의 축복을 위하여 준비 시키기 위하여(욥42:10-신8:7) 입니다. 욥기는 하나님에게 참소하는 사단, 욥과 친 구들의 지상 논쟁, 하나님의 일련의 질문으 로 끝맺습니다. 욥은 그의 부 그리고 가족과 건강을 모두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면서 하나 님에 대한 그의 신뢰는 불평과 자기 의로 바 뀌게 되지만 결국 회개하고 회복됩니다. 욥 기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욥의 곤경(The Dilemma of Job, 1-2장), 욥의 논쟁 (The Debates of Job, 3-37장), 욥의 구원 (The Deliverance of Job, 38-42장). [욥의 곤경 (The Dilemma of Job), 1-2장] 도덕적으로 보면, 욥은 재난을 당할 어 떤 나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1:1, 8). 그가 도덕적으로 정결했고 거룩했기 때문에 그 의 고난과 상실감은 더 컸을 것입니다. 사 단(참소하는 자)은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물질적인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 는 것이라고 욥을 참소했습니다(1:10). 하나 님은 사단의 참소를 반박하기 위해서 그에 게 두 번에 걸쳐 욥을 치도록 허용하셨습니 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태어난 날을 한탄하 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 다(1:21, 2:10). [욥의 논쟁 (The Debates of Job), 3-37장] 지상에 홀로 남겨진 욥에게 세 위로자들 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잠잠한 동정으로 욥을 위로해 주었지만, 욥이 침묵을 깨뜨린 후, 욥의 세 친구들이 잘못된 전제와 결론의 잣대를 들이대며 직설적으로 욥과 논쟁을 펼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공통되게 욥의 죄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가정 했고 그 논쟁은 점점 더 격해졌습니다. 논쟁 은 욥 - 엘리바스 - 빌닷 - 소발의 순서대로 순환되었습니다. 이 순환 논쟁은 세 번 반복 되는데 그 가운데에서 욥은 다음과 같은 세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가지 불평을 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는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신다(13:3, 24, 19:7, 23:3-5, 30:20), 둘째, 하나님께서는 나 를 벌하고 계신다(6:4, 7:20, 9:17), 셋째, 하나 님께서는 악인으로 하여금 번성하도록 허용 하신다(21:7) 입니다. 욥은 친구들과의 세 번 째 논쟁을 거듭한 후 마지막으로 자기의 입 장을 견고히 하기 위하여 5장(27-31)에 걸쳐 고백하지만, 오히려 엘리후가 앞서 발언한 엘 리바스와 소발의 견해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32-37). 엘리후는 욥의 다섯 장 에 걸친 발언보다 더 많은 여섯 장에 걸쳐 서 욥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욥의 삶을 정화시키려고 하시기 때 문에 그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필 요가 있다고 설득합니다. [욥의 구원(The Deliverance of Job), 38-42장] 엘리후의 최종적인 진술이 끝난 후 욥이 변명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회오 리바람 가운데 말씀하시므로 논쟁이 매듭지 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 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물질 세계와 동물의 세계를 창조하셨고 보존하는 분으로서 당신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시므 로 욥의 무지와 미천함을 알게 하시고 조금 도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알 게 하셨습니다(40:3-5). 둘째, 하나님께서 통 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시는 당신의 두 가지의 실례를 드러내시므로(41:1-34), 욥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회개하게 만드셨습 니다(42:1-6).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하나님 께서 욥에게 말씀하시면서 그의 개인적인 고 통과 상실 그리고 그동안 벌어진 친구들과 의 논쟁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으신 점 입니다. 욥이 세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는 했지만 엘리후의 말은 전혀 책망을 받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 의 주권을 인정한 후 그가 상실한 모든 것 이 두 배로 회복되어집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 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 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1, 1:12).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1년 12월 9일
15
“정성 들여 기록한 기도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장로님이 주일 예배시간에 드리는 기도는 너무 장황합니다. 대책이 없을까요? * 기도를 맡으신 분이 정성껏 기록하여 드릴 수는 없는가요? * 청교도들이 예배 시간에 기록한 기도를 읽는 것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앞에 자랑할 수
인데, 무엇보다도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
공적으로 회중 앞에 나와 드리는 기도
들어진 기도문보다 훨씬 영감이 있는
있는 항목 중의 하나는 기도의 열심입
으실 대상이시라는 전제 아래 경배와
에서 너무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
것이라고 생각했던 스코틀랜드 교회와
니다. 뜨거운 기도의 열은 한국교회 신
감사와 죄의 고백과 이웃과 자신을 위
습니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경험이 아
청교도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습
앙의 한 형태로서 정착되었고 세계교회
하여 기원하는 행위다”라고 말합니다.
니라 많은 교인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기도의 역
가 부러워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단
그러면서 진정한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현상입니다. 또한 기도를 맡은 교인 자
사에 어두운 사람들의 말입니다. 기록
순한 기독교의 진리 때문이라기보다는
주신 기도의 모형(마 6장)을 따라야 한
신들도 상당한 부담을 느낍니다. 여기
한 기도에 반대했던 개혁자들과 청교도
우리의 종교문화에서 받은 영향이 많
다는 주를 달고 있습니다.
에 대한 해결 방안이 속히 나올 필요
들의 참뜻은, 기도를 맡은 사람이 정성
가 있다고 봅니다.
껏 준비하여 기록한 기도가 옳지 못하
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말한
열악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이러한 규범을
신을 찾고 그 신 앞에 간절히 기원하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시간과
그 방안은 간단합니다. 우리의 교회
기록한 기도란 중세기를 비롯한 교회의
는 행위가 우리 문화의 중요한 현상이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이와 같은 기도
들이 즉흥적으로 드리는 기도만을 최
많은 성자들이 남겨놓은 기도문을 말
었기 때문입니다.
의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없는 경우가
선의 것으로 생각하고, 기록하여 읽음
한 것이었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면 기
생겨납니다. 한국교회는 ‘열심히 기도
으로써 드리는 기도는 거부감을 갖는
도가 가득히 실려 있는 기도문을 펴고
그러한 까닭에 막상 우리의 기도 내
하라’는 독려는 끊임없이 해왔지만 “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처럼
형식적으로 읽고 있던 태도를 질책한
용을 듣고 있노라면 그 내용이 너무
어떻게 기도하라”는 교육은 등한히 하
주일 낮 예배에 성단에 나와서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준비하여 자신의 언
무질서하고 빈약한 것을 곧 알게 됩니
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한
공적인 기도는 자신이 조용한 시간에
어로 기록한 기도는 언제나 환영하였고
다. 순수한 기독교 기도의 성격이 많이
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기도
마음을 가다듬고 묵상한 끝에 기록하
그 기도에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변질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는 중언부언(重言復言)하고 빈말을 많
여 준비한 기도가 훨씬 더 바람직합니
기도란 내가 생각나는 대로 신중하지
이 한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다. 미리 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생각하
오늘의 기도는 공적인 예배에서 기도
못한 어휘들을 동원하여 잡다한 사연
때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
고 사용할 어휘를 정선(精選)하여 빈말
를 드릴 때 바른 형식과 내용을 갖추어
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란
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
이 없도록 준비하여 기록한 기도는 그
야 한다는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고
정성이나 내용면에서 하나님 앞에 훨씬
습니다. 그리고 공적인 기도를 드리는
신중한 내용들을 요구합니다.
하셨던 우리 주님의 교훈을 되새기게
더 칭찬을 받게 되리라 봅니다.
사람은 마음을 준비하고 자신의 정성 을 모은 언어로 기도를 미리 기록하여
됩니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은, 준비 없
예배신학자들은 기도를 가리켜 “기 도란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통로
특별히 주일 예배 가운데 교인들이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Church Denver Halleluja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드릴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 즉석에서 하는 기도가 세심하게 만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반주자를 모십니다!"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키보드 반주를 해 주실 분을 모시고자 합니다. 관심이 있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이메일 (hrockchoi@gmail.com)이나 교회 전화(303-717-0279, 텍스트)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8556 E. Warren Ave. (303) 717-0279 Denver, CO 80231 www.denverchurch.com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커피 한잔의 대화
2021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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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찬양 유감” 천경우 목사
코로나와 델타와 오미크론 등이 설
미 전곡을 불러봤고 또 악보도 가지고
하누카와 아프리카의 콴자라는 노래
치는 이 와중에 주 예수님의 오심을
있던 차에 합창을 한 지 오래되었지만
만 불러대는 것이었다. 얼마나 실망이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찬양의
함께 노래를 부를 기대감에 부풀어 한
되던지. 그런데 그런지 벌써 20년이 지
축제가 사라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많
달여 시간 동안 악보를 다시 한 번 훑
났으니 얼마나 성탄의 의미를 외면하
은 자들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 구
은 것들이 회복되어지고 있음에도 불
어보면서 내가 부를 합창곡들을 준비
는 일이 얼마나 일반화되었는지는 너
원주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세상
구하고 교회의 예배와 교회의 찬양이
하였다. 시간이 되어져 합창단이 함께
무나 극명하다.
이 침묵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예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참 사람들
부를 때가 되어지면 찬양을 부를 사
의 마음이 묘하다. 콜로라도의 경제만
람들이 청중석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
이런 현실을 보면서 문득 예수님의
우리의 처한 환경과 상황이 삭막하고
하더라도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되었다
나 합창단원이 되어져 지휘자가 청중
탄생 때에 나타나셨던 천군 천사의 찬
외롭고 지친다 하더라도 심령 깊이 예
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오고가는
을 향해서 지휘를 할 때에 자신의 파
양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예
수님의 오심을 찬양해야 한다. 예수님
일이 왕성하다는 것인데 교회의 예배
트에 따라 찬양을 부르는데 얼마나 가
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지 못하는 가
의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자 오신 뜻이
와 모임은 온전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슴이 벅차오르는지…
운데 깨어 자신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
세상에 널리 전파되도록 힘써야 한다.
던 목자들 앞에만 선포되는 예수님의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것을 기
처음 메시아를 부르던 청년 시절의
탄생 소식과 천군 천사의 우렁찬 찬
대하신다. 믿는 자들이야 말로 돌들과
몇 년 전에 어느 미국교회에서 지역
감격이 오고가는 동시에 주님을 찬양
송 말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같이 찬양해야 한다. 갈 길을 알지 못
교회 연합으로 헨델의 메시아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 그리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하고 방황하는 사람들 앞에서 구원의
부르는 싱어롱을 하는데 참석하여 베
고 내가 이렇게 함께 하며 목소리를
자신의 축제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
빛 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함으로 구원
이스 파트를 부르며 다양한 사람들과
높일 수 있다는 것, 잘하고 잘못하고
쾌락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
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한목소리를 내면서 주님을 찬양하는
의 문제가 아니라 소리를 높여 주님
지만 지금도 깨어 있어 주님을 바라보
큰 기쁨을 가진 적이 있다. 예전에 워
을 찬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며 주님의 음성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2021년도의 성탄절이 광야처럼 찬양
는 천군 천사의 찬양이 멈추지 않고
의 제단이 멈추어 있다. 그렇다고 예
울려대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님의 은혜를 그냥 흘려 넘겨야 하는
이해해야 할까?
싱톤디시 케네디 센터에서 크리스마스
덴버영락교회
님을 외면한다 하더라도 광야와 같이
때만 되면 메시아를 함께 부르는 싱어
내 옆에 함께 앉았던 내 처는 우뚝
롱을 하는데 참석하고 싶었지만, 새벽
서서 찬양을 부르는 나를 보면서 저
부터 장사진을 쳐서 티켓을 구입한다
렇게 좋을까 하는 표정을 지었으니 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흘러넘치는 천군 천사의 찬양으로 가
는 이야기를 듣고 새벽기도 때문에 도
명히 다른 사람들과 소리를 맞추면서
타고 입성할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
득한 것처럼 지금 이 땅에도 천군 천
저히 참석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있
주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얼
호산나,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
사의 찬양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기
었었다. 생각해보라. 원근각처에서 오
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에는 영광”이라며 찬양을 하였다. 그
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진
로지 주님을 찬양하는 한 기쁨을 함
작년과 올해 그런 기쁨을 맛보지 못하
때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제자
바 우리가 주님을 높이는 찬양은 우리
께 누리고자 새벽부터 모여 티켓을 구
고 있다. 꼭 메시아를 부를 수 없어서
들을 책망해야 되지 않느냐고 할 때
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믿는 자
입하고 저녁에는 오케스트라와 솔리스
라기 보다 그렇게 찬양하는 축제가 없
에 말씀하셨다.
마다 찬양에 힘쓰자. 심령의 찬양, 주
트 그리고 모든 청중이 함께 악보를
어지는 것이 팬데믹으로 인해 짓눌려
들고 찬양하는 그 모습 말이다.
있는 우리의 심령을 표현하는 것 같아 더욱 슬픈 마음이 가득하다.
가? 예수님의 탄생 때부터 온 광야에
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양을 힘써 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그들의 찬양 비디오를 보면서 내가
러야 한다. 주님의 오심이 이 땅에 참 된 평화와 안식과 사랑과 위로가 됨 을 알도록…
꼭 한 번은 참석해야 할 텐데 라는 꿈
지난 2천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시대의 찬양은 광야의 천군 천
을 꾸고 있던 중에 그린우드 빌리지에
오심을 감사하고 기뻐하는 시간을 우
사의 찬양이요 돌들의 찬양이다. 광야
위치한 교회에서 지역 교회 성가대원
리는 가졌고 또 찬양하며 주님의 이름
와 같이 주님을 향한 찬양이 사라진
들과 이웃들을 청해서 메시야 싱어롱
을 드높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시대이다. 예수님을 향해서는 침묵하
을 한다니 도저히 참석하지 않을 수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
고 있는 이 시대에 돌들이 찬양하는
가 없었다.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찬
러데이’라는 단어가 주름잡기 시작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천군 천
양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찬양하기를
더니 성탄절의 핵심인 예수님이 감추
사처럼 돌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담대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악보를 가지
어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20년 전
함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침묵할 수
고 오거나 그 교회에서 준비한 악보를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초등학교 합창단
없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
가지고 합창곡에서 자신의 음성 파트
연말 음악 발표회가 있어서 참석을 했
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고 영생을 얻
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청년시절에 이
더니 우리들이 아는 성탄절 곡은 없고
었고 구원을 받았다. 그런 은혜를 입
진리의 샘터
2021년 12월 9일
19
대강절 믿음의 삶 이 세상은 연말 행사로 분주하지만, 교
닙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기다림은 그
는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어야 합니다.
회력으로 보면 새해가 밝았습니다. 교회력
날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을 이야기
물론 지금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의 새해는 대강절, 혹은 대림절부터 시작
합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그
자신에 대하여 솔직해지면 우리는 너무도
합니다. 올해는 11월 28일이 대강절 첫째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주일이었습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4주 전
는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다시 오시는 날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더
부터 시작하는데 매주 다른 주제를 가지
그리고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고 있습니다. 교단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데 그냥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
있지만 대부분 소망, 평화, 사랑, 기쁨을
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 위하여 우리가 마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는 모습은 과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씀을 다시 잘
주제로 지킵니다. 이 주제들을 지키고 생
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립니다. 백
연 어떠한 것일까요? 술 담배를 삼가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스스로 거룩함
각하며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간
신 접종도 하고 마스크 착용도 하고 손을
싸우거나 남을 비판하지 말고, 세상의 음
에 흠 잡힐 데가 없는 자가 되라고 말하
이 바로 대강절입니다.
잘 씻으며 위생에 신경을 씁니다. 그러면
악이나 영화 등을 멀리하는 이러한 삶을
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
대강은 오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 코로나가 종식되면 볼 사람들, 갈 장소
이야기할까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음을 굳세게 하셔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고 또다시
들을 준비합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기다림
기도 모임 빠지지 말고, 성경을 매일 읽
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오실 것입니다. 처음으로 오신 날을 기념
의 자세입니다.
고, 십일조 잘하고, 선교와 구제에 적극적
빕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해 주시기를 바
으로 참여하는 모습일까요? 물론 이 모
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두 다 중요하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
우리를 태초 전부터 아시고 택하시고 구
우리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해야 할
들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도 안 지켜도 되
원하여 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려 왔습니다.
일들을 하고 그 날이 속히 오도록 노력하
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신
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다시 세우신다
며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
앙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금하는 것에 초
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져 주시고 반
고 약속하심을 믿고 수많은 전쟁과 포로
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우리가 마땅히 해
점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율
드시 흠 없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생활과 그 이후의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
야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렇게 할
법적인 Do’s and Don’ts 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더 하
서도 메시야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지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믿는 자의 신앙의 초점은 사랑
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하는 성탄절을 준비함과 동시에 다시 오 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이 바로 대강절 의 신앙입니다.
욱 거룩해져 가야 합니다.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느냐입니 다. 과연 우리 스스로 이렇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할 수
내왔습니다. 우리는 이미 오신 메시야를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이 해야
에 있고 그 사랑을 더욱 성장하는데 있습
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다
통해 구원을 받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하는 것은 온전하게, 완벽하게 되어야 합
니다. 20세기 중요한 신학자 H. Richard
시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자의 삶입니다.
나라가 시작됨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그런
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
Niebuhr 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의
이 세상은 연말을 준비하는데 바쁩니다.
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의
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
목적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바쁜데 준비도 철저히 합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오는 바로 그날,
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
성정이다.” 우리가 거룩함에 흠 잡힐 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우리는, 그리고
주님의 날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
가 없는 모습이 되는 길은 더욱 하나님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우
기다리는 것은 그냥 막연히 그때가 올
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사랑하고 더욱 이웃을 사랑하는데있습니
리는 얼마나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할까요?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
해 주시기를 빕니다” (살전 3:13, 새번역). 우리
다. 사랑에 성장이 되면 나머지는 자연스
대강절의 믿음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주일 예배 12:00PM 주일 학교 12:00PM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주일 예배 12:00PM S. Ceylon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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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향한 여정
2021년 12월 9일
20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광야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라! 마가복음 1: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3). ........................................................................................
Mark 1:1-3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 ........................................................................................
마가의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다”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 목적인 셈입니다.
예수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결단을 새롭게 할 수 있었고, 사도 바울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로 나가 맡기신 사명을 준비하게 되며,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종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동족을 훈련시킬 수 있었습니다.
희랍어“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은 “좋은 소식”(Good News)이라는 뜻인데 복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와서 구원자가 되어 주셨다는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에 앞서 보냄을 받은 세례 요한의 역할은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들로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끔 하는 일이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된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광야 같다 할지라도 나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구원자를 선포하는 광야의 소리가 될 수 있습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광야는 분명히 메마른 곳입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리적이나 어떤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이 있는 곳으로 보아야 합니다.
<ooreekmc@hanmail.net>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1년 12월 9일
21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우심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성탄의 계절을 맞아 예수님의 성육신
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신적 영광을 버리시고 자기를 비워 종
자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자기 비우심
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케노시스 학파에 반대하는 정통주의
본성을 취하여 이 땅에 오셨고, 오셔서
(self-emptying)이다. 빌립보서 2장 5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
적 해석은 예수님이 인성을 취하실 때
섬기는 종으로 사시고, 죄인들 중의 하
로 11절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
신성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라, 신
나로 여김을 받아, 고난당하시고 십자가
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나타낼 뿐 아니
성은 그대로 유지하시되 자발적으로 신
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창세 전 영원
라 성부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
적 권능과 특권의 사용을 제한하셨다는
안에서 삼위가 서로 간에 맺으신 영원
을 드러낸다.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신성은 포
한 구속의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예
기되거나 버려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수님의 성육신은 당신의 겸손하심을 드
그렇다면 여기에서 예수님의 자기 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
라마틱하게 보여주셨다. 또한 예수님의
우심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수님의
님이시다. 절대 불변이시다. 그러므로 예
순종은 철저히 자발적인 순종이었다. 성
자기 비우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신학적
수님의 신성은 변할 수 없다. 포기되거
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하고 자발적인 순
해석들이 제기되었지만 크게 보아서 두
나 버려질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예수
종으로 죄인의 대속이라는 구원의 역사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종종
를 완성하신 당신의 아들을 성부는 성
당신의 신적 능력을 드러내셨다. 그것
령의 능력으로 다시 살려내셔서 모든 이
하나는 소위 ‘케노시스 신학’(kenosis
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행동을 통해
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사
theology)이라고 불리는 학파의 해석이
서, 그리고 기적을 통해서 이뤄졌다. 예
람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도록 하셨다.
다. 케노시스 신학파에 의하면 예수님은
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구원받을 당
성육신하여 인성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신의 백성을 대표하는 대표자로 사셨다.
성탄의 계절을 맞아 주님의 사랑과 자
때 당신의 신성을 완전히 버렸다고 주장
그래서 우리들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율
비와 은혜를 기억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한다.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예수님은 하
법적 요구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우리
도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깊이 묵상하고,
나님되심을 중단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
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형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우리 모
예수님은 본래 성부와 성령과 같은 완
하면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사
을 받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인의 대
두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전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
실 동안에는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것이
속이라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완성
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근본적으
다. 오로지 인간으로만 사셨다는 주장
하신 것이다.
로 하나님의 본체이시다라고 말씀하고
이다. 케노시스 학파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 영광과 권세와 능력과 지혜에 있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요약하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어서 성부, 성령 하나님과 완전히 동등
못할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해석이 지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의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 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 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 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 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 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 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 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 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 게 하셨느니라.”
나친 해석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쉴만한 물가
2021년 12월 9일
22
이기는 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대화할 때 이기는 자에 대하여 화두를 던질 때가 있다. 대 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 나 무지하다. 예수 믿고 천국행 티켓을 받았으면 그만 인가? 일단 천국행 열차를 탔다고 생각하 는 사람들은 안도감이라는 감정과 확신이 교차될 수 있다. 이들에게 목적지에 도착 할 때까지 당신은 더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열차 안에서는 술 취하지 말아 야 한다고 승무원이 와서 부탁한다면, 좀 거북한 얘기가 될 것이다. 이런 류의 그리스도인들은 종착역에 도 착하는 것 자체가 기차를 타는 목적의 전 부다. 그러나 그 열차가 도착하면 열차 안 에서 어떻게 있었느냐, 무엇을 했느냐가 그 들이 받을 수 있는 상의 근거가 된다. 그 들 중에는 열차가 너무 느리게 간다고 그 럴싸한 도시가 중간에 발견되면 열차 밖으 로 뛰어내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구원의 여정은 천국행 열차를 타는 것 이 아니다. 열차를 탄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잠만 자고 있어도 목적지에 도달하지만 구 원의 여정은 그렇지 않다. 영적으로 잠자 는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밤에 임한다. 그때에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살전 5:2-6). 구원의 여정은 예수 믿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통과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고 영이 거듭나서 중생을 얻었지만, 이는 시 작에 불과하다. 죄성을 이겨야 하는, 성화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남아있 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의 여정은 이기는
자로 살아가는 과정이다. 뿌리는 땅을 이긴다. 만일 나무의 뿌리 가 땅속에 있는 유기물을 빨아들이려는 힘이 약하거나, 땅속 깊은 곳의 생수를 향 하여 뿌리내리려는 힘이 없다면, 얼마 못 가서 죽거나 바람에 쓰러질 것이다. 이렇 게 뿌리의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흡인력과 딱딱한 땅을 뚫고 생수가 있는 땅속 깊은 곳으로 굴착하는 힘이 바로 뿌리의 힘이 다. 땅을 이기는 뿌리의 힘이다. 영성의 뿌리도 그렇다. 거친 들을 이기 는 영성의 뿌리의 힘이 있어야 이기는 자 의 영성을 가진다. 이기는 자의 영성은 어 떤 환경과 여건에서도 주님을 선택하는 수 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 수고로 영 성의 나무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깊이 뿌 리내린다. 이기는 자의 영성은 거친 들을 이긴다. 거친 들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에 도(시 34:18), 무덤에 누워 죽은 자와 같을 지라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주님을 향 하여 손을 든다(시 28). 그는 적진의 우물 에서도 물을 긷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삼 하 23). 이기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죄성을 가 진 인간은 정욕대로 살며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이를 이 겨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도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 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
셨으니" (롬 1:28)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 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 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24-25)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그렇다, 이기는 자가 받는 상급은 현세 적이지 않다.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이기는 자들이 받는 상급 중 하나님의 낙원에 있 는 생명나무는(계 2:7) 천년왕국의 새 예
아무리 거룩한 성도라 할지라도 죄를 저 절로 이길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 면 의롭다 칭함을 받지만, 칭의가 죄를 이 겼거나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 는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이겨야 하며(고 후 7:1), 죄와 싸우기를 피흘리기까지 해야 한다(히 12:4).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 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 하게 하여야 한다(고후 7:1).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 12:4) 주님은 싸워 이기는 자에게 상급을 주 신다. 그런데 그 상급은 이 땅이 아니라, 천년왕국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받 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땅의 삶에 대한 결 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이기고, 세상과 마귀를 이기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 보상으로 그들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리더십을 함께 나누고 싶으신 것 이다(계 2:26). 왜냐하면 이기는 자의 영성 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의 중요 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루살렘에 있으며(계 22:2), 둘째 사망도 천 년 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심판이 이루어 질 때 일어날 것이다(계 20:14). 만국을 다 스리는 권세(계 2:26) 역시 천년 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적 리더십을 의미 한다(계 21:24).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 님의 새 이름은(계 3:12) 문자 그대로 명 백히 천년 왕국 이후 새 예루살렘에서 주 어지는 상급이며,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 는 상급도(계 3:21) 역시 천년 왕국 이후 에 주어질 상급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 들은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받 는 상급이다. 이기는 자가 받는 상급은 탈현세적이기 때 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세를 사는 삶에 의미와 목표를 부여할 수 있는 기준을 제 시할 수 있다. 현세의 삶 밖에서 주어지는 시상만이 현세의 삶에 대한 엄정한 평가 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세에서 이기는 자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 인에게는 최고의 삶이 된다. 이기는 자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에 있어서 본질적이며,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기독 교인의 삶의 목표 중 하나다.
좁은 길을 걸으며
2021년 12월 9일
23
복음에 민감하십시오 남가주의 기독교 방송인 복음방송의 청취자가 늘지 않고 되레 줄어든다는 기 사를 보았습니다. 평범한 신자들의 후원 과 관심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참 으로 귀한 복음 사역임에도 그런 기사 를 접하니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보 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 많은 이들이 세 상의 소리에는 점점 민감해지는 반면에 복음의 소리에는 둔감해져 가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 다. 그때그때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둔감해지는 반면 다양한 매체 를 통한 흘러나오는 세상 소음이나 시끄 러운 정세 이야기 그리고 속된 가십거리 들에는 더욱 민감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 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독자 여러분들은 복음에 민감하 게 반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복음은 세상의 이야기가 아 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어 지는 구원과 은혜의 아름다운 소식입니 다. 그러므로 소음이 많아지는 때일수록 복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특별히 성도인 우리에게 왜 복음에 열 린 마음과 귀가 필요한지는 아무리 얘기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복 음의 소리는 바로 우리의 영혼을 사망에 서 끌어내 준 생명의 소리일 뿐 아니라 병들고 연약한 우리들의 인생을 회복시 켜주는 능력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과 권세 그리고 참믿음을 알게 하는 그분의 진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믿음 은 들어야 할 소리를 잘 듣는 데서 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 상의 소음이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 리에는 귀를 닫고 그 복음의 소리에만 반응하는 이가 참다운 믿음을 소유하 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귀에 예수 그 리스도 생명의 이름이 들려올 때 이를 흘려듣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믿음이 태동하여 비로소 믿 음 다운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는 열렬한 열망을 품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받 아들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어지는 그 메시지에 열렬한 열망 을 품고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의 주인공들은 그들 모두가 자신에게 들려온 복음의 소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공 통점이 있습니다. 그의 처지가 어떠했든 지 간에 예수 이름 들려올 때 열렬하게 반응하였다는 서실입니다. 소경이었든지 거지이었든지 말로 다 못할 죄인이었든 지 상관없이 오직 귀에 들려온 복음의 소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을 때 그 자리가 구원의 기적을 경험하는 현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거지이면서 소 경이었던 바디매오 입니다. 길가에 앉아 있던 그는 나사렛 예수님이 오고 계시 다 라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귀로 예수님 을 맞았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망은 그 즉시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소리가 들 려온 방향을 향하여 큰 소리를 질렀습 니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주저함 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반응을 통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0)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할렐루야교회
해 그는 구원을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에 소원이던 눈을 뜨게 되었고 예 수 그리스도를 좇는 인생이 되었던 것 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 들이고 반응하는가가 중요한 것 아니겠 습니까? 허투루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에게 복음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가 오거나 말거나… 그런 사람들이 왜 없 습니까? 세상의 소음에 모든 관심을 쏟으며 정 신이 팔려 있으면서도 정작 구원의 소 리에는 무관심한 사람이 하나둘입니까? 그러나 모두가 연약한 심령 아닙니까? 구원의 복음을 거부할 만큼 충분한 사 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복음에는 무관심하고 세상의 가십거리에 정신을 팔면 되겠습니까? 오늘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민감도가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자주 듣고 흔 하게 듣는 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만큼 복음에 민감하게 반응함으로 취하 는 그 영적 기쁨과 은혜는 줄어들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 게 값없이 취할 세상의 소리가 아닙니 다. 치유와 회복, 구원과 영생의 너무도 값있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에게 믿음뿐 아니라 그 값 진 은혜들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 디 우리 독자들이 그 사실에 다시 한번 눈뜨게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어떤 이들에게 찾아옵니까? 바디매오와 같은 인생들에게 찾아옵니 다. 희망을 잃은 인생, 병들고 연약한 인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3) 제공: 김정애 권사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생, 절망 중에 구원의 끈 하나 없는 인 생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 음은 바디매오와 같이 빛을 잃은 자에 게 빛이 되어주고, 생명과 소망과 능력 을 잃은 자에게는 새 생명의 새 소망과 새 능력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예수 그 리스도의 이름이 들려올 때 그것을 병 들고 연약한 나를 부르시는 소리로 듣 는 것입니다. 의지할 바 없는 내 인생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에 적극적 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음에 는 귀를 닫고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참 생명의 소리, 복음에는 귀를 열어야 하 는 것입니다 복음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십시 오. 열렬한 열망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십시오. 복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가 까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흔한 소리 로 받지 않고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비 할 바 없는 값진 구원의 소리로 받아 민 감하게 반응하기 바랍니다. 복음에 민감 하게 반응하면 복음의 능력이 임합니다. 어떤 질병도 능히 치료받고 어떤 불행도 물리치며 위대한 신앙으로 변화 성장해 갈 것입니다. 오늘 연약함에 빠져 있는 인생이 있 다면 복음을 열렬한 열망으로 받아들 여 인생 역전을 이루고 새롭고 복된 인 생으로 회복되는 경험을 누리기를 축복 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베드로후서 강해
2021년 12월 9일
24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1) <베드로후서 3:1-13>
신약성경은 27권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상이 나타납니다. 한국이 만 불이 넘어갈
라 행하며 조롱하며” 여기에 나오는 조롱하
각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빠지지 않고 등
때가 바로 90년대 초였습니다. 그렇게 뜨
는 자들이라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장하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
거웠던 한국교회가 그때부터 안주하기 시
사실을 믿지 않고 조롱한다는 뜻입니다. 말
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대한 것입니
작한 것입니다. 60년대 한국 사회의 희망
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혀를 차는 것을 말
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종말에 대한 이야기
은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70년대 한국교회
하는 것입니다. 재림이라는 말은 그들의 생
“정확하게 1년 후의 주식시세표가 있는
요,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
는 교회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각 속에서 아예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입
신문을 주십시오” 램프에서 연기가 나더니
음은 24, 25장에서 이 문제를 진중하게 다
80년대 한국 교회는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
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
요정은 사라지고 경제 소식이 있는 1년 후
루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13장에 집중적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금요철야마다 울부짖
련입니다. 베드로가 이 글을 쓰던 초대교회
의 신문이 나왔습니다. 그는 뛸 듯이 기뻤
으로 주님의 재림을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는 기도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새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
습니다. 이제 커다란 행운을 움켜쥘 수 있는
은 21장에서, 요한복음은 14장에서 주님의
벽기도마다 뜨거운 부흥의 물결이 거세게
지입니다. 청교도가 세운 신앙국가인 이 미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래
재림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쓴 13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달라졌습
국에서도 재림을 믿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어떤 주식이
의 서신서 가운데 재림에 대해 말하지 않
니다. 교회에서 기도소리가 끊어져 가고 있
들이 40%를 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
지금보다 가장 올랐는가를 살펴보려고 했습
는 성경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요한
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의 재림을 믿지 않는 이유를 성경은 두 가
니다. 첫 장인 1면을 무심코 넘기려고 하는
계시록은 22장 전체가 주님이 다시 오시
있습니다. 이럴 때 이 재림에 대한 말씀을
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데 부고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주 낯이
는 날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베드로후
보셔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들
서 3장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전체 장을
에게 임박한 심판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
할애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전체 장수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익는 이름이 그 부고란에 적혀져 있었습니 다. 그것은 자기의 이름이었습니다. 내가 이
게 합니다. 사실 편안한 생활에서는 내가
첫 번째는 인생의 관심이 온통 세상 욕심에 있 기 때문입니다.
를 합하면 216장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
신앙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구분이 되
3절에 보면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
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내일 일을 전혀
림은 316회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분량으로
지 않습니다.
며”이라면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얻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결코 내 생명
땅에서 무엇을 얻느냐보다 더 먼저 생각해
는 성경 전체의 20분의 1이 재림에 대한
그러나 마지막 종말에 대한 말씀에서는
으려고 하는 욕심이 전부 다 인 사람입니
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생명을 주관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
반드시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되어있습니다.
다. 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하시는 분이 따로 있습니다. 내 인생을 결정
어서 주님의 재림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구원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
많습니다. 그 욕심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지
하시는 분은 바로 재림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않으면 주님의 재림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
오래전 한국의 어느 재벌 회장이 죽기 전
사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삶의 편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
이는 세계가 다 인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세
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
안함을 찾고 있습니다. 힘든 일보다는 쉬운
지 못한 사람은 아쉬워합니다. 이 땅만큼
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해변가
다고 합니다. “나는 아직도 할 일이 너무
일을 택합니다. 현실이 쉽고 편할수록 그곳
좋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닷물에 밀
많어. 이대로 죽기가 너무 아쉽다. 내게 10
에 안주하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
려온 마술 램프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
년만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면 내가 3천억을
오히려 힘들 때는 더 열심히 하나님을 믿
람들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다. 그가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왔습니
주겠다. 그런 사람 없는가?” 그러나 어느
었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최선
먼저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램프에는 오직 한 가지 소원만 남았다
누구도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지는 못했습니
을 다합니다. 그러나 편할수록 신앙이 나태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3절을
고 요정이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잠시 행복
다. 우리 인생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
해집니다. 신앙의 간절함이 사라지고 맙니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
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무엇을 원한다고
때 비로소 주님의 재림을 겸허하게 받아들
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
하지!” 그는 고민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 국민소득이 만 불만 넘어가면 이런 현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변화프로젝트
2021년 12월 9일
29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0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 훈련의 기도 프로젝트 (4)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과 미디어를 보고 듣고 배움으로써 선하고 교육적인 내용의 TV 나 영화를 보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기: 뉴스를 듣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러나 우리가 얼만큼 세상의 뉴스를 들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높은 도덕가치를 추구하는 성경과 같은 좋은 책과 영감을 주는 교육적인 책들을 읽어라. 부도덕한 사고를 유발하는 좋지 않은 책들은 멀리 하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같지 않은 책 은 읽지 말라. 선한 음성의 말씀을 선택하 고 폭력, 섹스, 폭언 등을 포함한 나쁜 내 용들을 보고 읽고 듣는 것을 피하라. (5) 교회 출석하기: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 는 것은 선한 음성을 듣는 것이다. 하나 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가르쳐주는 모임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회 예배와 성경공부, 기도 모임에 참여함으로 선한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라.
7) 묵상하기: 당신을 영적으로 돕고 격려 하는 성경구절들을 적어서 벽에 붙이거나 암송하기 위해 지갑에 넣고 다녀라. 구절 을 암송할수록 더 많은 선한 음성을 듣고 평안함과 격려를 얻을 것이다. 주님께 어 떤 구절을 묵상해야 하는지를 여쭈어라. 성경을 읽기 전에 주님께 성경구절을 주시 기를 청하여라. 기도: “주님, 당신의 격려와 평안한 음성 을 들을 수 있는 성경구절을 찾을 수 있 도록 도와 주세요.”
그 후에 밤낮으로 묵상할 수 있는 성
성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다. 모
경구절을 성경에서 찾아라. 성경을 이해하
두를 용서하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게 되었다고 느끼면 묵상할 다른 성경구
예수님은 우리가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
절을 주님께 여쭙고 받은 성경구절을 외워
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다. 그들을
라. 하나님은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을 통
용서하고 기도하며 축복하라. 그것은 학
해서 말씀하신다. 그 말씀으로 우리를 일
대 당하거나 위험한 폭력적인 상황에 계
으켜 세우시고 우리와 가까운 관계를 맺
속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악
기를 원하신다.
한 상황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 하고 심각한 상황이라면 경찰이나 사회단
8) 고통스런 생각에서의 치유받기: 우리
체에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라. 이
의 마음은 다양한 파일이 들어 있는 방과
런 용서는 과거 경험에 대한 용서이다. 우
같다. 좋은 기억이 들어있는 파일이 있는
리는 어떤 상태에서도 자신과 타인을 정
가 하면 어떤 파일은 고통스럽고 나쁜 기
죄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
억을 보관하고있다. 고통스러운 기억에 집
다. 당신이 용서를 할수록 선한 음성을 듣
중할수록 더욱더 악한 음성을 듣게 될 것 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하나씩
게 될 것이다. 기도: “주님, 저 자신을 포함해 모두를 용
다룰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상처 입힌 자
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들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 용서하지 않는
저를 축복해 주세요. 저의 영적 상태를 알
마음은 혼란으로 고통받는 마음이다. 긍
수 있게 하셔서 저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
정적인 생각을 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
시고 자신과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을 달라고 기도하라. 기도: “주님, 저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
을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회개해야
을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세요. 저에게
하시고 용서하셔서 당신과 저의 관계에 어
마음 아프게 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합니
떤 장애도 없게 해주세요.”
할 죄가 있다면 알려 주세요. 저를 깨끗게
다. 화를 내었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 제 록 또 고칠 수 있도록 지혜와 겸손을 허
10) 성령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순종하 기: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
락해 주세요.”
과 선지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성령님을 우
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용서받을 수 있도
리에게 주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선한 길
9) 당신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이를 용서 하기: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 악한 음
로 인도하신다. 만약 당신과 다른 이들의 믿음을 키우게 하는 권고의 음성을 듣거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나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성령님으로부터 온 말씀일 수가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런 선한 음성을 무시하면 당신이 귀 기울일 때까지 계속해서 들려올 것이다. 순종할 때 당신은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읽으며 기 도하고 타인을 용서하며 선한 일을 하라 고 말씀하신다. 성령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의 영이시며 우리 안에 함께하신다. 성령 님은 선한 음성을 통한 영적 통찰력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만약 당신이 성령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참회록을 쓰거나 죄들 을 하나씩 용서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청 하는 시간을 가져라. 어린아이와 같이 마 음과 삶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라. 기도: “주님, 제가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 다면 저에게 알려 주셔서 회개할 수 있도 록 은총을 내려주세요. 저의 마음을 깨끗 게 하셔서 제가 성령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기준에 따라 선악 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 으리니” (사도행전 2:38). 성령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선한 음성을 듣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1년 12월 9일
26
누구의 이름으로 살까? 전병욱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이름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그냥 쉽게 결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애완동물 이름하나 짓는 것도 며칠이 걸리는데, 사람의 이름 짓는 것은 더 신중하고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살면서 가장 처음 듣는 것이 바로 이름이고,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것도 이름이고, 또 죽어서 유일하게 남기고 가는 것도 바로 이름이기 때문에 이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름은 참 중요합니다. 사람에게는 보통 세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 누구의 아들 혹은 딸, 누구의 아빠 혹은 엄마. 더 많은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매일 하루 그리고 순간순간을 누구의 이름으로 살아가십니까? 몇 년 전 황당한 인터넷 기사가 기억납니다. 뉴욕시티에서 그냥 주운 쓰레기를 닦지도 않고, 그냥 손으로 주운 깡통, 영수증, 과자봉지 등을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에 포장해서 50불에 인터넷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랍고 황당한 것은 그 쓰레기 박스가 해외 30개국에 1400개가 팔렸다고 합니다. 파는 사람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사는 사람은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그 쓰레기를 샀을까요? “뉴욕시티(NEW YORK CITY)”라는 이름 보고 그 포장된 쓰레기를 샀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름에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덴버할렐루야교회 Denver Hallelujah Church
아무리 내 인생 망가지고 버려지고 쓸모없이 보여도 하나님의 크신 이름,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스티커 하나 붙여지면 가치 있는 인생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을 때 그리고 병을 낫게 할 때 가장 먼저 외쳤던 이름은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예수” 그 이름에 힘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나를 살리고, 나를 돕고, 나를 붙들어줍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께서 영의 눈으로 뒤를 돌아 등에 붙여진 스티커 하나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스티커 하나씩 붙이셨습니다. “너 내꺼! - 예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이름 하나만으로 내 삶이 가치 있고 영광 받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크신 분의 이름으로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크시고 위대하신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 바로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늘 하루도 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안에서 예수님처럼”
담임목사 김창훈 교회비전
예배 안내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쓰레기도 “뉴욕시티(NEW YORK CITY)”라는 이름 하나 붙이니까, 가치 있는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뉴욕 쓰레기” 즉, 쓰레기 기념품이 된 것이지요.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복음으로 살아보기
2021년 12월 9일
27
나는 준비했습니다 손재흥 목사 덴버에덴교회
폭풍을 만나 거대한 눈더미와 함께 사 라졌다. 그의 책 ‘8000미터 위와 아래'에는 이 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준비했 습니다. 내 생애는 오직 이곳에 와서 당 신을 뵙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산에 대한 그의 태도, “나는 준비했 습니다. 내 생애는 오직 이곳에 와서 당 신을 뵙기 위한 준비였습니다”라고 고백 한 그의 태도에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헤 르만 불에 대한 칼럼을 읽으며, 그가 그 토록 경외했던 위대한 산들을 창조하신 우리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뵙기 위해 나 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별히 우리는 지금, 주님 의 오심을 기억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대강절) 기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 대림절에 무엇 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누가복음 3장 1절부터 14절에는, 그 리스도 예수의 오심을 준비한 세례 요 한의 사역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 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그에게 임하자, 세례 요한은 요단강 부근 각처 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를 전파하였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 는 그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 사야를 통해 계시하셨던 말씀, “광야에 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 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 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 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 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
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는 말 씀의 성취였다. 세례 요한은 그에게 나아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는 사 람들에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 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 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대답하 였다. 나눠줄 옷과 음식이 있음에도 없 는 자에게 그것을 나누지 않는 불의함 과 탐욕을 회개하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없는 자들에게 나눔으로써 불의와 탐욕 의 길에서 돌이키라는 가르침이었다. 죄로 부패한 우리 마음에도 나에게 있 는 것을 없는 자에게 나누지 않고 움켜 쥐려는 불의함과 탐욕이 있다. 주님의 오 심을 기억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 리는 이 대림절은 그런 우리의 불의함과 탐욕을 씻어내야 하는 절기이다. 사도 베 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에서,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올 것이라고 선포하며, 이렇 게 권면하였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 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 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 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 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11-13)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 기간에 우리 는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거룩하고 경건 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불의함과 탐욕
을 회개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고 한 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회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일 것 이다. 회개는 날마다 죄와 싸우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 이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 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 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1서 1장 8절부터 10절은 그에 대해 이렇게 증거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 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 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 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 시고 우리에게 그 분의 의를 값없이 주 시기 위해 2천년 전 이 세상에 오셨다. 참된 회개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행실 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준비함으로써 다 시 오실 우리 주님께 “나는 준비했습니 다. 내 생애는 오직 당신을 뵙기 위한 준 비였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대림절 이 되기를 바란다.
감사로 자가 보라제사를 처녀가 드리는 잉태하여 나를아들을 영화롭게 하나니 낳을 것이요그의 행위를 옳게 자에게 내가 그의하는 이름을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시 (사50:23) 7:14)
또 무엇을 말에나 그 날에 이새의하든지 뿌리에서 한 싹이 일에나 다 주 기치로 예수의설 이름으로 나서 만민의 것이요 하고 그를 힘입어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골 11:10) 3:17) (사
나 누추함과 여호와가 어리석은 의로 너를말이나 불렀은즉 희롱의 말이잡아 마땅치 아니하니 내가 네 손을 너를 보호하며 돌이켜 말을 하라 너를 세워감사하는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5:4) 빛이(엡 되게 하리니 (사 42:6)
그 날에 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께 그 이름을 나는 세상의감사하라 빛이니 나를 따르는 부르며 그 행하심을 중에 자는 어둠에 다니지만국 아니하고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 (요12:4) 8:12)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제공: 김성애 성도 제공: 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지난주에 신문 기사를 검색하다가 “ 하룻밤 새 40년을 늙어버린 사나이”라 는 흥미로운 제목의 칼럼을 발견하고 그 글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산악소설의 경 전이라고 불리는 ‘8000미터 위와 아 래’라는 책을 쓴 오스트리아의 등반가 헤르만 불(1924~1957)이라는 사람에 관 한 칼럼이었다. 그 칼럼에 의하면, 헤르만 불은 히말라 야에서 산악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봉우리인 높이 8125m 낭가파르바트를 최초로 등정한 사람이다. 그는 1953년 7 월 3일 오후 7시, 홀로 17시간의 사투 끝 에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하였다. 식 량과 장비를 가지고 그를 따르던 일행은 등정을 포기한 채 돌아갔고, 그는 무게 를 줄이기 위해 텐트와 침낭, 산소통까 지 버린 상태였다. 정상에 선 감격도 잠 시 곧 밤이 찾아왔고 그는 8000m 높이 벼랑 사이에 끼어 밤을 지새워야 했다. 꺼질 듯 말 듯 위태로운 생명을 지키며 하룻밤을 견디고 날이 밝자 헤르만 불 은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고, 뇌에 산소 가 모자라면 생기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 리며 정상을 향해 떠난 지 40여 시간 만 에 캠프로 돌아왔다. 이틀 사이에 그의 얼굴은 20대 후반의 청년에서 60대의 노 인이 되어 있었고, 동상으로 손가락 두 개를 절단해야 했다. 헤르만 불은 낭가파르바트 등정 4년 후 그의 나이 서른세 살에 산에서 생 을 마감하였다. 그는 히말라야의 또 다 른 봉우리 브로드피크에 도전했다가 눈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눅 1:76-79) 제공: 맹성자 원로사모(믿음장로교회)
감동이 있는 글 하나님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8
2021년 12월 9일
살아있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글: 봉민근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털털이다. 거지와 같은 자요 ‘나'라는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육신도 영혼도 믿음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이 연결해 주시지 않았다면 부모도 연인도 자식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로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내 속에 창조자이시며 나를 다스리신다. 내가 예수님 믿고 천국 가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100% 예수님의 공로다. 내가 내 힘으로 세상을 사는 같아도 하나님이 삶의 끈을 연결해 주시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다. 세상은 성령에 이끌리어 역사 속에 존재하며 성령의 사람만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바꾸며 살아 갈 수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며 죄의 달콤함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사랑한 만큼 하나님과 멀어지며 지옥으로 가까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죄는 보이지 않지만, 지옥에 가면 죄가 무엇인지를 뼈저리도록 느끼게 될 것이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 지옥이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를 다스리고 승리하여 주께로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죄는 한 번으로 끝내기가 쉽지 않다. 죄가 자신도 모르게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죄와 선을 구별하는 능력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길, 영원한 영생의 길이다. 세상의 쾌락과 부귀영화가 로또가 아니라 천국이 로또다. 예수그리스도가 로또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나는 죽은 자요 아무것도 아니다. 성경의 진리로 세상을 해석해 내야 한다. 말씀으로 영안의 눈을 떠야 만이 천국이 보이고 그것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하나님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이 신앙이다.
믿는 자라면 누구나 식사할 때 기도를 한다. 그것이 형식적이든 진심이 담겨져 있든 기도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식사 기도는 하면서 매사에 무슨 일을 하거나 결정할 때에 기도하지 않고 행할 때가 많다. 기도도 습관이다. 식사 기도를 늘 하듯이 매사에 기도하고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습관은 삶의 길을 만들고 더 나아가 좋은 습관은 좋은 인생을 만든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야 한다. 늘 주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주님 앞에서 행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 무관심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도 자신이 하려 하고 자신이 결정을 내린다. 믿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형식적인 믿음, 지식으로만 아는 지적인 믿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행하는 살아있는 믿음이 있다. 어느 믿음에 비중이 크냐에 따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신앙의 소유자가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으로 인한 설렘과 울렁거림이 가슴에 요동친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결정해놓고 그것이 잘되도록 구하거나 추후에 하나님께 보고하지 않는다.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믿음이다.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 수가 있다. 왜 우리는 식사 기도는 하면서 다른 일에는 기도하지 않는가? 내 신앙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매 순간 일마다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라는 것이다. 말로만 믿음 믿음 하면서 아멘을 소리 높여 외쳐도 삶 속에서 그의 삶이 아멘이 아니면 거짓 믿음일 수도 있다. 하나님과 동행 한다는 것은 삶의 전부를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결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다. 찬송을 천만 곡 불러 드려도 믿음 없이 부르는 찬양은 천국 쓰레기통에 버려질 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내 영혼에 담는 것이다. 결코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매사에 그분께 아뢰고 그분께 눈길을 돌리고 종이 상전을 바라보듯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믿음 생활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http://cafe.daum.net/cgsbong
감동이 있는 글
29
2021년 12월 9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은사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을 비판하는 일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기가 쉽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모르는 것이 있다면 자기 자신일 것이다.
겸손은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교만과 겸손은 서로 상극이다. 겸손이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안 그런 척해도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서 먼저 알고 반응을 한다.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포함해서 가장 모르는 것이 자기 자신이다. 거울이 없다면 자기 얼굴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갑질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은 그것이 갑질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남들에게 대하는 것이 문제다.
내 속에서 암 덩어리가 자라도 그것을 스스로 발견 할 수 없는 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다.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더욱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자신이다. 영적인 교만이 남들에게 향할 때 얼마나 큰 괴력을 발휘하는지 자신들은 모른다. 마음은 유리와 같아서 깨어지기 쉽다. 자신만 상처받으면 괜찮은데 나 때문에 상처 입은 수많은 영혼들은 평생 회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사는 이들도 많다.
주님을 바로 알면 겸손해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만 가지 질문의 해답은 예수님뿐이다. 예수님만이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된다. 예수그리스도는 충만 그 자체시다. 주안에 살면 내 부족이 채워지고 내 잔이 넘친다. 주안에서 살면 성령 충만해지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넘친다.
힘있는 자들 앞에서는 비굴하게 고개 숙이며 아부하는 사람들이 낮고 천한 사람들에게는 깔아뭉개고 갑질이란 무기를 들어 함부로 말하고 멸시하며 사랑과 긍휼을 베풀지 못하는 것은 믿는 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예수님 안에 용서가 있고 희락이 있고 화평이 있다. 나는 세상과 교회 안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셨다.
예수님 가시는 길에는 용서가 있고 치유가 있었고 사랑과 긍휼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닮아야 할 그리스도의 제자들 모습 속에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
내 인생에 예수님은 몇 번째인가? 첫 번째의 자리로 주님을 모시고 싶다면 나를 버리고 섬기는 자가 되고 고난의 자리에 자원하는 자가 되어야 진짜 신앙인이 된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그리스도인들 가슴에 예수님의 사랑과 그 뜨거운 가슴이 없다.
복 주심 만을 바라고 신앙생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실지라도 말씀에 순종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
예수님을 닮지 못해서다. 예수님으로 거듭나지 못한 인생이 마귀의 자녀로 있을 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이다.
오직 예수님 닮기를 꿈에서라도 소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은사는 자신을 돌아보는 은사다. 자신을 제대로 알면 예수님 앞에서 겸손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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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서신
2021년 12월 9일
담대히 증거하며 주께 영광을 드립니다 올해는 목회 40년 산마루 개척 20년입니다. 어느덧 12월이 되어 저물고 있습니다. 제겐 이 해를 맞아 회개의 영이 임하였습니다. 저는 저는 저는 저는
세 가지의 고백을 드립니다. 죄인입니다. 불충한 종입니다. 무능한 자입니다.
저에게 주신 은사가 넘쳤는데 저는 주신 은사를 충분히 사용하지 아니하였고 은사의 사건이 일어나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많은 이들에게 증거하지 않고 감추었습니다. 불충한 종이었습니다. 젊은 날 비신화화의 신학과 기사와 이적을 미신처럼 취급한 신학교 교수들의 영향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이같이 믿음 없는 인본주의 지성주의 종교다원주의에 내 영혼이 포위되어 자유케 되지 못한 때문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죄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한 초기 낙상하여 3개월씩 대소변도 못 가리며 누워 마침내는 곡기를 9일씩 끊고 죽어가시던 분도 심방하여 기도할 때에 이튿날 스스로 일어나 씻으시고 식탁을 함께하시며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어서 의사가 주는 진통제와 수면제로 노숙하며 견디던 이가 치유함을 받았음에도 진정으로 주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담대히 증거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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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목사
저 역시 2014년 4월 8일 암진단을 받았으나 그 때 찾아든 평안 속에 모든 수치가 정상이 되어, 치료하지 않고 3년간 관찰만 하다가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이 병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80중반까지 사실 것입니다.” 그때의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매일 하루씩 살고 하루씩 죽을 뿐입니다!" 지난 달에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 정 집사님에게 암이 두 군데 확인되었습니다. 수술 날짜를 잡던 날 의사에게 3개월의 시간을 달라 하고 제게 왔습니다. 한 달 여 고통의 시간을 보낸 끝에 주일 예배 후, 제가 형편을 물으니 기도하면 나을 것을 믿는다 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간에 병원에 갔습니다. 치유된 결과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정 집사님은 노숙자로 거리에서 죽었어야 할 이가 당시에도 치유함을 얻고 살아나 노숙인 섬김의 팀장이 되고, 집사가 되고 가정도 회복되었던 분으로 다시 은사를 입은 것입니다. 이젠 주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자비하심을 증거합니다. 주께 영광을 드립니다. <회개의 골짜기에서, 以石>
<산마루에서, 以石> http://www.sanlet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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