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 65:17)
제 12권 1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2년 1월 13일 발행
아랍어 무료 강좌 안내 이슬람권 선교의 밝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아랍어와 아랍 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 전직 대학교수인 이집트인 강사를 모시고 다음과 같이 대면으로 아랍어 강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본 아랍어 강좌는 초급(12주) 중급(12주) 고급(12주)으로 진행 할 계획입니다.
2022년 2월 6일-4월 24일 오후 6-8시 강사: Ayman Armanious
(매주 일요일)
장소: 믿음장로교회(김병수목사)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교육학 전공(Ph.D) 전 카이로 대학교수 현 Pastor (Arabic Bible Church Denver)
지원일: 2022년 1월 20일까지 수업료: 무료 교재비: 본인부담 연락처: (303) 669-1001, (303) 960-5057
1. 중동지역 단기 선교를 계획하고 있는 분 2. 중동지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 3. 아랍인 친구와 교제하기를 원하는 분 4. 4억 2천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아랍어에 관심이 있는 분
홍해선교회 MMITA 전문인 선교사 훈련원 대표: 조완길 목사
목차
2022년 1월 13일
목차 교계소식 신년사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은혜의 샘터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복음으로 살아보기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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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빛과 소금 뉴스 2821 S. Parker Rd. #409 Aurora, CO 80014 (303) 667-2778 E-mail: thelightandsalt@gmail.com 발행 겸 편집인: 최성애 디자인: 최수정 Facebook page나 블로그에 들어오시면 매회 발행되는 디지털 카피를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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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1월 4월 13일 22일 2022년
홍해선교회 아랍어 무료 강좌 안내
빛과소금뉴스 인터넷신문
2022년 2월 6일-4월 24일 오후 6-8 (매 주일)
2022년부터 인터넷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홍해선교회 MMITA 전문인 선교사 훈련원에서 아래와 같이 아랍 어 무료 강좌를 실시한다. 초급, 중급, 고급반 12주 동안 진행되는 아랍어 강좌는 무료이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을 참조하면 된다. ●일시: 2022년 2월 6일-4월 24일(매 주일) 오후 6-8시 ●강사: Ayman Armanious ●장소: 믿음장로교회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지원일: 2022년 1월 20일까지 ●수업료: 무료 ●문의: (303) 669-1001, (303) 960-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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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는 그동안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병행해 왔는데, 새해부터는 모든 사역을 디지털 체제로 바꾼다. 그동안 종이 신문 애독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 을 부탁드린다. ●인터넷으로 빛과소금뉴스를 읽는 방법: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빛과소금뉴스' 혹은 ‘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로 검색하면 된다. ●문의: thelightandsa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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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덴버지역 교역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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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3일
2022 덴버지역 교역자회 화상 신년 기도회 개최 "뜨거운 기도로 새벽을 깨우는 덴버지역 교역자회!"
사회 유지훈 목사
설교 윤우식 목사
기도인도 주활 목사
축도 장석현 목사
기사: 최성애
기도회 광경
덴버지역 교역자회(회장 유지훈 목사)
교회)가 마태복음 4:18-22 말씀을 본문
의 어부가 되게 하겠다. 사람들의 어부
복음과 사랑으로 이 땅에 소망의 복음
는 1월 11일 화요일 오전 7시, 2022년도
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를 선포했다.
로 만들겠다' 하셨는데, 주체는 예수님이
의 꽃이 피게 하소서. 이 시대에 하나
신년 기도회를 화상(Zoom)으로 개최했
윤 목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
다. 즉각적으로 제자로 삼지 않으시고,
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나라가 되게 하
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COVID 19로
레를 제자 삼으시려고 그들이 일하고 있
제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두셨다. 우리
소서.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하나님
인하여, 특히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급격
는 삶의 현장에 의도적으로 찾아가셔서
가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
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고 회복되고, 부
히 확산하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
만나셨다. 우리의 사역도 우연히 일어나
은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 사역을 하는
흥의 불길이 일어나게 하소서. 한국 대
스로, 예정되었던 대면 기도회를 취소하
는 것 같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계획하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선을 앞두고 있사오니, 조국의 국민에
고 화상으로 기도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신 필연이다. 이런 필연은 기대하는 사람
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내하며 갈망
게 분별력을 주시고, 나라를 바르게 이
들에게만 필연이 된다. 기대하고 갈망하
하고 기다리는 각자가 되어야겠다. ‘그
끌 수 있는 지도자를 주소서. 남북통일
신년 기도회는 회장 유지훈 목사(참빛
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물을 버렸다'는 것은 완전히 포기했다는
에 한 걸음 진전되는 역사가 있게 하시
교회)의 개회 기도로 시작되었다. 이어
계획하신 필연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누리던 것을 버
며, 교회들이 등대와 같은 역할을 잘 감
다 함께 묵은해를 보내며 찬송가 550장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고 하셨는
리고 그 자리에서 옮기어져 예수님께서
당하게 하소서. 팬데믹을 두려워하지 않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힘찬 찬
데, 이는 자신의 자리를 버리고, 곧 이제
원하시는 것을 결단한 그들처럼, 우리가
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회개하
양으로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께 감사와
까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에게 건
해야 할 것은 버리고 따라서 예수님의
는 역사가 일어나는 시기가 되게 하소
영광을 돌렸다.
너오라고 하신다”고 전하며, 나는 무엇
길을 함께 갈 때 하나님께서 복음의 일
서” 간구했다.
을 포기했을까? 반문했다.
꾼으로 만들어가실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표기도는 허성영 목사(드림교회)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감으로 올 한 해도
박현수 목사(갈보리교회)는 ‘다음 세
직업이 아니라, 사명을 가지고 열심을 다
대의 신앙 계승을 위해, 차세대 자녀들
하자”고 격려하며 설교를 마쳤다.
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하고 다음 세대
“빛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이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
찬양하며, 주님을 향한 예배를 받아주시
리라' 하신 말씀은 직업이 아니라, ‘
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시간이
사명'을 말씀하신다. 사명을 감당하는데,
되게 하소서. 지나온 시간 하나님의 은
개인의 삶 속에 득보다 실이 있을 수 있
이어 주활 목사(그리스도중앙연합감
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
혜이었음을 고백하며, 2022년 주님의 은
다. 목회를 사명으로 받아야 하나, 직업
리교회)의 인도로 합심 기도가 진행되
푸사 신앙이 전수하게 됨을 감사드리며,
혜 가운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게 붙
으로 받아야 하나? 그들은 그물이 찢어
었다. 문태주 목사(생명나무교회)는 ‘미
세상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하나님의
잡아주소서. 덴버지역 교역자회의 모든
질 정도로 물고기를 잡았지만, 복음을
국과 한국을 위하여, 그리고 교회 회복
은혜가 절실한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
지역교회와 교역자들에게 하나님의 은
위하여 사명의 길을 걸었다. 우리 목표
과 부흥을 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
음이 자녀 세대에 전수되길 간구하며,
혜를 허락하셔서 기쁨으로 풍성하게 되
를 통해서 사명을 감당하는 각자가 되
고 두려워하는 미국 정치인들이 되게 하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살게 하소서.
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라고 간구했다.
자”고 강권했다.
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정치를 펼 수 있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 중에 그리스도
게 하소서.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어
의 빛을 비추는 자녀들 되게 하소서. 죄
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의 결박이 끊어지고 하나님 자녀의 정체
말씀은 부회장 윤우식 목사(예닮장로
또한 윤 목사는 “예수님은 ‘사람들
를 살릴 요셉과 다니엘과 같은 인물들
교계 소식
202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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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심어지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위
시금 아버지의 사랑 앞에 세워지고, 예
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한 해
리에서 1월 월례회를 속개였다. 덴버지
한 지도자들이 많이 세워지게 하소서”
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 앞에 세워지게
되게 하소서. 교역자회를 중심으로 교회
역 교역자회는 지역 복음화를 위해 연
라고 기도드렸다.
하셔서 성령의 역사로 복음화를 이루어
가 연합하여 영광 돌리게 하소서”라고
합 사역에 힘쓰며 기도하고 협력하는 아
가는 동역자로 삼아주소서. 교회마다 서
뜨겁게 기도드렸다.
름다운 동역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
김창훈 목사(덴버할렐루야교회)는 ‘덴
로 연합하게 하시되 말씀 운동, 회개 운
버지역의 복음화와 팬데믹 상황에서 교
동, 성령 운동,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
이어 소그룹으로 기도 제목을 나누고
회들이 잘 회복되어 지역에 선한 영향력
나 잠든 지역을 살리는 귀한 사역 잘 감
5분 동안 서로를 위한 기도시간을 가졌
신년 기도회의 영상은 링크 https://
을 줄 수 있도록' “덴버지역의 복음화
당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여러 가지 어
다. 장석현 목사(트리니티교회)의 축도로
youtu.be/XzEvxfJjIEw 로 접속할 수
를 위하여 기도하오니, 이 지역에 죽어
려움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과 피의 복
2022년 신년 기도회의 모든 순서를 은
있다.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시고자 많은 교회
음에는 변함이 없사오니 말씀에 움직여
혜 가운데 마쳤다.
를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교회마다 다
가는 교회들과 주의 종들이 되게 하소
벧엘교회
하고 있다.
기도회 후 덴버지역 교역자회는 그 자
오성관 원로목사 추대 및 신현수 담임목사 위임 감사예배 "행복의 시작"
위임국장 이동훈 목사
신현수 위임목사
위임식 광경
오성관 원로목사 추대
공로목사 추대식, 5부 축하 순서로 나
벧엘교회는
기사 제공: 벧엘교회, 사진 제공: 서선녀 사모
지난 12월 26일 주
누어진행되었다.
일 “오성관 원로목사 추대 및 신현 수 담임목사 위임 감사예배”를 은혜
설교는 이동훈 목사(덴버삼성장로교
중에 잘 마쳤다. 오성관 목사는 29년
회)가 디모데후서 1:3-8절 말씀을 본
간 벧엘교회를 목회하다가 정년이 되
문으로 "복음과 함께고난을 받으라”
어 은퇴하였고, 그 동안의 목회에 대
를 선포하여 은혜를 나누었다.
이날 예배는 1부 예배, 2부 담임목 사 위임식, 3부 원로목사 추대식, 4부
오성관 목사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
함으로 성도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삶
하여 많은 곳에서 화환을 보냈으
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가겠다는 앞
며, 각지의 많은 분들이 와서 그 동
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안의 목회에 대한 감사와 축하의 인 사를 보냈다.
모든 성도들이 오성관 목사의 은퇴 를 축하하고 감사했으며, 앞으로 새롭
벧엘교회 제2대 목사가 된 신현
게 이끌어갈 신현수 목사에 대해 기
수 목사는, “행복의 시작”이라는 슬
대감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축하하
이날 위임식과 공로목사 추대식은
로건을 걸고 모든 성도들이 예배할 때
는 시간이었다.
록키마운틴 노회장 이동훈 목사(덴버
도 행복하게, 봉사할 때도 행복하
삼성장로교회)가 위임국장으로 인도하
게, 교제할 때도 행복하게 할 수 있
였다.
는 교회를 만들어서 신앙생활이 행복
한 공로를 인정 받아 록키마운틴 노회 로부터 공로목사 추대를 받았다.
오성관 목사, 오윤희 사모, 신현수 목사, 이희남 사모
신년사
202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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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지역 교역자회 회장
좋은 한 해가 여러분에게 새겨지길 소망합니다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습니 다. 사람들은 새해에 서로에게 한 해 를 잘 보내라는 의미로 인사를 주고받 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혹 은 ‘Happy New Year!’처럼 통상적 으로 사용되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호 랑이의 해인 금년에는 ‘호랑이처럼 호 기롭게 시작하는 새해’ 혹은 ‘호랑이 기운처럼 힘찬 새해 되세요’ 등의 재치 있는 인사말들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센 스있는 새해 인사를 검색해 보면 2022 년에는 코로나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의 인사말들이 많은 것을 봤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새해에 축복을, 건강을 서로에게 바라며 한 해를 시작합니다. 여러 인사말들 가운데 제 마음속에 확 들어온 인사말이 있습니다. 최근에 여러 곳에서 나눈 인사말입니다. 바로 유대인의 새해 인사입니다. Le Shana Tova Teekataivu. 영어로 하면 May you be inscribed for a good year. 한국어로 하면 ‘여러분에게 좋은 한 해 가 새겨지길/쓰여지길 소망합니다’라는 인사입니다. 단순히 복을 받고 복을 받 고 그것을 즐기며 사는 삶이 아니고, 또 단순히 즐겁고 행복한 (happy) 한 해가 아니라 “좋은 한 해”를 서로에게 바라 는 인사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2022년 교역자회 회장직을 맡은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덴버 지역 한인 교회 와 다른 여러 교회들 위에, 그리고 우리 가 살고 있는 덴버와 콜로라도가 다 하 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좋은 한 해를 보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한 해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에 서‘좋다’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것과는 다릅니다. 훨씬 더 깊은 의 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즐기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좋다고 말합니 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 영화가 재밌 었기에 그 영화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식사를 하고 그 음식이 맛있었으면 그 것을 좋다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보너스를 받았다면 그것을 좋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의‘좋다’라는 단순히 기분과 상황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 니라 옳고 의롭고 덕이 되고 생명을 주 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정리가 안 되고 혼돈한 곳에서 질서가 세워질 때 좋다고 합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서 생명이 나 타날 때 좋다고 합니다. 악이 가득한 곳 에서 홀로 하나님의 의를 따를 때 그것 을 좋다라고 합니다. 하나 예를 들면 창세기 1:2에 “땅
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 에 있고…”라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 다. 아무것도 살 수 없고 아무것도 살 고 있지 않고 어두움만 있는 곳에서 하 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시고 생명을 창조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 겨라'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 기에 좋았다”(창 1:3-4a, 새번역). 이렇게 무 질서에서 질서가, 생명이 없는 곳에서 생 명이, 어두운 곳에서 빛이 생기는 것을 성경은 ‘좋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이 세상의 무질 서와 생명을 앗아가는 것들을 경험했습 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 심해진 빈부 격차,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갈등, 인종 차별, 기후변화 등으로 숨 막히는 2년을 보냈습니다. 정말 창세기 1:2로 돌아간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 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좋은’ 한 해, 즉 질서와 생명과 빛이 가득한 한 해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의 인사말에는 단지 이 좋은 한 해를 바란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좋은 한 해가 여러분에게 새겨지기를 소망한 다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한 해를 새겨주는 것을 의 미합니다. 나 스스로가 좋은 한 해를 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삶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가운데 좋은 한 해를 새겨주는 것입니 다. 그 누군가는 바로 우리를 너무도 끔 찍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 리 하나님은 죽음과 혼돈과 악 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생명과 질서와 의를 주시 려고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를 보내 주시고 그분은 우리가 살았어 야 할 삶을 대신 사시고 죽었어야 할 죽 음을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 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 다. 우리는 이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 비 로소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복음 으로 말미암아 2022년 좋은 한 해가 여러 분 가운데 새겨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새겨진 좋은 한 해가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우리 이 웃에게 전달되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좋은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소 망합니다. Le Shana Tova Teekataivu. 2022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생명의 좋 은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덴버할렐루야교회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해”
예배 안내
교회비전
Denver Hallelujah Church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담임목사 김창훈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신앙 칼럼
2022년 1월 13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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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춤추시게 하는 새해! 나는 몸치이다. 박자 따로, 몸 따로! 형편이 이렇다 보니 남들 다하는 에어로빅 수강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살면서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나 춤을 배워본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렇다고 체력이 좋거나,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하는 운동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춤과는 상관없이 살고 있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다.
발행인 최성애 권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 6:14-15, 21) 위의 장면은 여호와의 궤가 들어오자 다윗이 기쁨을 못 이겨 환호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곧 모든 악기가 동원되어 여호와를 찬양하는 가운데, 다윗은 옷이 벗겨져 몸이 드러나는 것도 모를 정도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여호와 앞에서 뛰논다.
얼마 전 조카 집을 방문했다. 한 살 반 조금 넘은 조카손녀가 혼자 앉아서 소꿉놀이에 몰두하고 있는데 음악을 틀어주었다. 몇 초가 안 되어 아이가 손뼉을 치면서 엉거주춤 일어나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춤은 식구들의 호응에 더욱 멈출 줄 몰랐다. 한 손에는 장난감을 들고, 옆에 자고 있는 개도 한 번씩 쓰다듬으면서도 춤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깔깔대며 온방을 빙빙 도는 아이가 힘들 것 같아 결국에는 안아서 춤을 멈추게 했다.
아내 미갈의 비웃음에도 상관없이 다윗은 여호와를 찬양하기 위해 기꺼이 춤추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사랑하셨고, 마음에 합한 자라 칭하셨다. 세상의 이목이나 체면이 아니라, 다윗의 눈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최고이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다윗, 여호와의 존전에서 기뻐 뛰놀며 춤추는 다윗으로 인하여 함께 기뻐하시며 춤추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도 함께 춤추시길 원하신다.
춤추는 아이를 보면서 춤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춤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실 또한 재확인하게 되었다. 겨우 몇 마디 말밖에 못 하는 아이가 리듬을 기가 막히게 타고, 자연스러운 즉흥적인 몸짓과 얼굴 가득히 피어나는 행복한 미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제 하나님을 기뻐 춤추시게 해드렸던가? 아~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자신 있게 떠오르는 대답이 없다. 아! 한가지 생각났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해에도 ‘주일성수'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배 참석 자체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신데...
성경에서도 여러 군데 춤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지만, 다윗의 춤을 빼놓을 수 없다.
신령과 진정으로 거룩함과 온전함으로 하나님께 상달하는 예배를 매번 드렸다고 고백할 수 없음을 애통해한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올해부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탕자에게도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시는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새해에는 온전한 예배자로 하나님을 춤추시게 하길 소망한다.
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2년 1월 13일
8
성령의 치유함을 받으라 <마가복음 5:25-34> 이형만 목사
오늘 본문에는 12년간 혈루증으로 고 생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혈루증이란 여성의 하혈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출 혈이 일어나는 병입니다. 또 이 당시에 는, 이 혈루증이라는 병을, 단순히 육체 의 질병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징 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quarantine,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격리를 당했 어요. 그래서 26절을 보니까, 이 여인은 용하다 하는 의사를 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효험이 없었어요. 오히려 재산만 다 탕진하고, 몸이 더 아팠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예수라는 분이 병을 잘 고 치더라.” 어디서 이런 소문을 듣게 됩니 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이 지나가 는 길목에 기다리고 서 있었어요. 그리 고 거기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본문 28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 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 어도 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성경 은 ‘내 병이 나을 것이다.' 이것을 뭐 라고 표현하냐면, ‘구원'이라고 표현하 고 있어요. 여러분,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 것을 보게 되 지요. 하나는, redemption이에요. 우리 말로는 구속이라는 뜻인데요,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사해줬다. 죄의 노예에서 나를 해방시켜주셨다. 그래서 redemption, 구속이라는 말은, 죄로부터 속량,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에요. 두 번째로, 구원을 또 salvation이라 고도 합니다. 위험, 재난으로부터 구해 주다. 여기서 위험, 재난이 의미하는 것 은, 죄의 결과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앞으로 당하게 될 결과물이 있 다는 거예요. 그중에 가장 크고 무서운 결과물이 뭐에요? 지옥 가는 것, 죄인은 반드시 지옥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지옥으로부터 구 원해주신 거예요. Salvation from going to hell. 그래서 여러분, 구원은 이 두 가지 의 미를 다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죄로부터 사함을 받고, 그 죄 때문에 생 긴, 또는 앞으로 생길 일까지도 다 건져 주는 것. 이것이 구원이에요. 자, 이렇다고 볼 때, 오늘 본문에 온 혈루증 여인이 받은 구원은 어떤 원일까요? 바로 두 번째, salvation, 의 결과물인 질병, 이 질병으로부터 원을 받은 거에요.
나 구 죄 구
여러분, 우리가 왜 아플까요? 오늘 본 문에 나온 여인은 왜 혈루증이라는 무 서운 병에 걸렸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5가지 이유를 말씀드려 볼 테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 ԡࡰ ןভ߅ Լ ܮŅѩŐ̹ ѳʹ˲ ˽ 욥의 경우가 그렇지요. 병에 걸려도 하 나님을 잘 믿나, 안 믿나 시험해 보는 거예요.
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에 요. 대표적인 경우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이야기가 있지요.
ʌ ԡࡰ Լ̹ Ūɛߎ˲˽ 그런데 성경에서 고난을 뭐라고 얘기하 냐면, 고난은 유익이다. 왜?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예로 들면서, 너무 자만 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만 더욱 의지 하게 하려고... 병도 그런 관점에서 걸릴 수 있다는 거예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으나 고난당한 것이 유익 이라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시편119:71) 그러니까 하나님께 더욱 가 까이 가게 하기 위해서 병이라는 방법도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 ԡࡰ ਆԷଟ ߅ ţހѡ ݏˣ ހѩ Ě ߛ ۷۱ ܌ઌ ʼn Ī࡚ ݸ̩ޱԼ ޱઉɘ ˸ǻЧ՚ু ࡗ߿ ݏˡ ţހĚ ƹЏŐ थ Ě ۵۱ݸ. 위에서 말한 네 가지 경우 외에 대부 분의 병은, 내가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를 지으시고, 자연 속에서 살도록 놔두 셨습니다. 그래서 자연법칙을 만들어주 셨어요. 이 법칙대로 살면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고, 이 법칙대로 살지 않으면, 병에 걸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가장 대표적인 자연법칙이 뭐 에요? 기름진 것 많이 먹고, 운동 안 하 ͓ ԡࡰ ࠩѡ ࡞Ū ť ذĭઉࡖ ۵ޮ 면 병에 걸리는 거예요. 또 몸에 해로운 Ҩ Լ ܮŅѩŐ ͏˲˽ 것 자꾸 하면 병에 걸리는 거예요. 스 그 이유가 뭐냐? 죄의 삯은 사망이기 트레스 많이 받고 기쁘게 안 살면, 이게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빨리 죄를 끊고 만병의 근원이 되는 거예요. 이 자연법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 날에 죄에 대한 칙은 하나님을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보응이 있다는 거예요. 그 보응 중의 하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그런데 한 가 나가 육체의 병입니다. 지 다른 점이 있어요. 오늘 본문에 나오 는 혈루증 여인처럼, 어떤 이유로 병에 ؕ ԡࡰ ઉɘ˸ ݂ƀ ޝઔ؆ ߝǗ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 Լ߅ ɝ ٖĚ ߐ ˽˲ٿ 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이 병을 낫게 이것은 하나님이 치유하셔서 하나님 해 주신다는 거예요. 누구를 통해서, 성
덴버한인장로교회
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런데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살펴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하 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병을 고 쳐주실 때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 다는 거예요. 그게 뭘까요? 바로 우리 의 믿음이에요. 그러면, 성령의 치유의 역사가 임할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 인가? 어떤 믿음의 성도에게 치유의 은 혜가 임하는가? 오늘 혈루증 여인을 통 해 살펴보면,
첫 번째, 겸손한 믿음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 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능력이 그 여 인에게 전해지게 돼요. 이 여인은 감히 예수님의 손이나 몸을 만질 수가 없었습 니다. ‘그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내 병이 나을 것이다.' 이것이 이 여인의 진실한 마음이었어요. 이 마음을 예수님은 34절 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 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이 마음을, 믿음이 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이 여인 의 병을 낫게 만들었어요. 지금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았기 때문에, 체면이고 겸손이고 지금 따질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왜냐? 자신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 래서 사람들 앞에 자기를 드러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몰래 예수 님 뒤에 가까이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 을 만졌던 거에요.
강단 설교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아는 자 가 겸손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할 때, 그다음 하게 되는 것이 뭐예요? 애 통하게 돼요. 왜 나는 이렇게 부족할까? 이 사실을 깨닫고 애통할 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거예요. 이 모습을 우리 주님은 기뻐하세요. 그래서 올 한 해 우리 모든 성도님들 예배를 이렇게 드렸으면 좋겠어요. 바리새인처럼, 저는 금식도 했고, 십일 조도 냈고, 좋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저 를 축복해 주세요. 저는 축복받을 자격 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다 보도록 신령한 척, 거룩한 척, 그렇게 예 배드리지 말고,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 도 못하고, 고개 숙인 채로, 하나님, 이 죄인이 왔습니다. 이 죄인이 감히 주님 이 계신 곳에 왔습니다. 저런 죄인도 하 나님이 사랑하셔서 이 예배 가운데 불 러 주셨사오니, 오늘 우리 주님의 옷자 락이라도 아니 주님의 뒷모습이라도 보 고 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 소서. 오늘 주님만 만나고 가면, 제 병이 나을 줄로 믿습니다. 제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은혜를 베풀어주시 옵소서... 이 겸손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우리 주님 앞에 엎드릴 때, 성령이 여러 분 안에 역사하여 주시는 줄로 믿으시 기 바랍니다.
2022년 1월 13일
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예수님의 능 력을 체험한 사람은 오직 이 혈루증 여 인 한 명이었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이 여인의 유일한 관심은 오직 예수님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예수 님의 몸이고, 성령님이 임재하신 성전입 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해결 받지 못할 문제는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신데, 뭐가 문제겠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교회 와 서 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관심이 잘못된 곳에 늘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인격적이다’ 이 말은 사람과 교통하 실 수 있는 분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사람이 왜 사람입니까? 지, 정, 의가 있으면 사람이에요. 성령님도 똑같 이 지, 정, 의가 있어요.
히브리서 12:2절을 보시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영어로 보시면,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에요. 고정만 시키고 있으면, 그다음 성 령님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만들어
자, 여러분, 어때요? 내가 예수님께 눈 을 고정시키면, 우리는 인격적인 성령님 을 만날 수 있어요. 성령님의 지, 정, 의 로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방법이 뭘까요? 우리의 눈과 마음이 말씀과 기도에 고
첫 번째, 지-성령님은 다 알고 계세요.
하나님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시고, 나 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세요. 그래서 성 령님과 교제를 나누면, 나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두 번째, 정-성령님은 감정이 있으세
여러분, 믿음만 있으면 뭐합니까? 그 믿음이 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해서, 그 래서 병도 치유받고, 문제도 해결 받아 야지요.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 는 방법이 뭐냐?
령의 의지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한 분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를 바라보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 두 번째, 성령이 역사되어지는 믿 음은, 예수님만 바라보는 믿음이에 데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fix 우 요. 리의 관심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라는 거 지금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 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
가신다는 거예요. 어떻게? 인격적으로...
9
요.
사랑의 감정과 근심하는 감정이 함께 있으세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거나, 기도하지 않거나, 신앙생활 제대 로 하지 않을 때, 성령님이 바로 나를 향한 사랑과 근심의 감정 때문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 주 신다는 거예요. 세 번째, 의-성령님은 의지를 갖고 계 십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 가서 선교하 려고 할 때, 성령이 이를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마게도니아로 보내셨습니다. 즉 성령은 성령의 의지로 우리를 강권적으 로 인도해 주신다는 거예요. 내 의지보 다 더 강하시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의 나쁜 습관도 성령의 의지로 끊을 수 있고,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성
정되어 있으면 되는 거예요.
말씀을 읽을 때, 기도할 때, 성령님의 지, 정, 의가 내 지, 정, 의랑 연합해서, 성령을 체험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어디가 아픈지,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그러면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성령님이 다 알아서 역사 해주시는 거예요. 나는 따라만 가면 되 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 안히 가라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내면을 향한 여정
2022년 1월 13일
10
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축복은 이런 것이다
나와 너, 우리가 해야 할 일
전도서 Ecclesiastes 3:9-13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12). ........................................................................................
사도행전 Acts 1:6-8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7). ........................................................................................
일하지 않고 놀고 먹으면 좋을 것 같지만, 일하는 수고는 사람들의 삶의 과정에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애쓰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대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임과 때, 그리고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식물들도 물과 거름이 있는 곳으로 뿌리를 뻗어 나가고, 동물들과 공중을 나는 새들도 먹이를 찾아 온몸으로 움직입니다. 그것이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추구하고 성취해야 할 일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의식이 없으면 사람은 무기력하고 나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에서 우리가 제대로 살려고 하면 그 뜻을 기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맡겨 주신 일을 하며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삶의 두 가지 가치가 있다면,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은 총을 기뻐하며 누리고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은 누리고 손발을 움직여 선을 행하면 그만큼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란 희랍어는 에클레시아(ἐκκλεσία)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불러 모으다”는 뜻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최초의 교회가 얼마나 모이기에 힘썼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 사태로 모이기에 힘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에클레시아란 교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가 언제인가 제자들이 묻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 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같은 말인데, 희랍어로 카이로스(Καιρός)와 크로노스(Κρόνος)라 합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 크로노스는 연대기적 시간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때에 일어나게 될 것이므로 그 때를 준비하며 오늘을 살라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림이나 종말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고 오늘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내가 작은 촛불이 되어 내 주변을 먼저 밝혀야 점점 더 멀리 환한 빛이 비취게 됩니다. 나와 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새해 첫날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ooreekmc@hanmail.net>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3)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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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나라 <신 4:1-8> 오늘날 재산 백만 불이 7천 개에서 약
렇기 때문에, 성경의 복된 말씀대로 꾸준
도 하였다.
2십 만개나 되는 세계 최대 억만장자들에
하게 처신하여서 불행의 요소들을 줄이고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대하여 살펴보니 대부분 신문 배달, 편지
제임스 흐라이스라는 사람은 한평생 사
분류, 패스트푸드 노동자, 집집마다 돌아
람들의 건강과 행복과 장수에 대하여 연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판매원, 혹은 시간
구한 사람이 있었음을 지난달에 발견하였
급의 파트 타임 일을 한 사람들이었다. 밑
다. 그는 사람들이 인간적 세상적 육신적
백 세 이상 자수성가한 사람들에 대하
바닥부터 시작해서, 남의 비웃음이나 비난
으로 건강과 행복과 장수를 위하여 애를
여 살펴보면, 꾸준하게 하나님이나 하늘을
어부들 중에는, 바다는 자신의 인생이라
을 받았어도 절망이나 포기하지 않고 더
쓰고 즐거운 것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
경외하였고 만족과 감사과 선행과 은혜롭
고 고백한 사람도 있고 바다의 잠잠함과
욱더 인내, 배움, 깨달음, 성실, 새 기술 등
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면, 비록 장수
게 생각하고 처신하고 소식을 하며 부지런
거침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고 고백한 사
을 신경 쓰고 추구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는 할 수가 없을지라도 삶의 질을 높이
하게 생활한 사람들이다. 백 세 이상 사시
람이 있다. 바다는 인생들의 찌꺼기를 모
극복하거나 하나님께 맡기었다. 반면에, 노
고 만성질환과 노인병 등을 늦출 수가 있
는 분들은 자그마치 약 42만 명이나 된다.
두 받아주는 넓은 곳이지만, 요동칠 때가
는 것 마시는 것 먹는 것 자랑하는 것 그
다고 발표를 하였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리고 죄짓는 장소나 죄짓는 일 등을 금하
부귀영화 권세를 다 누리고 소유하였어도
또한, 금년은 범띠인데, 그것이 의미하는
면서 자기 관리를 잘한 사람들이었다. 또
허망할 뿐임을 성경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은 독립심이 강하고 모험적이고 의롭고
한 그들은 성공하기보다 실패하지 않도
데, 지옥영벌을 모면하고 천국 영생에 연
용감하고 신념이 있고 정의심이 있고 포
록, 현실에 급급하지 않았고 죄를 금하였
관이 되도록 있는 것을 행하거나 처신하
부가 크고 인정이 많고 인내력이 있고 리
대국 즉 큰 나라란 단어의 성경적인 의
던 것이다.
는 것이 생사 간에 의미와 보람이 있게 되
더의 재능이 있고 성실하고 패기가 있고
미는, 지혜와 명철함이 있는 백성이나 국
는 것이다.
진취심이 있고 분투심이 있고 자기계발을
민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실 정치란 말도
하는 것 등의 장점들이 있다. 우리도 육신
원어로는 폴리티카스라고 국민을 의미하
남들을 위하여 수고나 고난 등을 받을
행복은 확장하고 연장하도록 애를 쓰는
완 보충하는 것이 필요함을 모든 사람이
것이 잘하는 것이다.
깨닫고 실천하여야 할 해인 것이다.
있다. 인생은 천국영생으로의 과정과 결국 이 되도록 담대하게 여기면서 의미와 보람 이 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지언정 남들 때문에 함께 혹은 자신의 생
진리 성경에는 장수에 대한 비결들이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세상은 불
는 것인데, 정치나 권세나 권력으로 오해
존을 위하여 죄를 짓는 일은 없어야 한
있고 장수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이 있
의하고 추악하기에 그런 것들을 소유하여
나 착각이 되어서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
다.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지 못할 때는 마
다. 신앙과 복음 전함과 하나님의 일을 위
야 잘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고 진리를 알
그리고 대국은 언제 어디서나 어딜 가던
귀와 귀신들보다도 지옥영벌을 적어도 일
하여 순교할 장소와 상황이 아니라면, 하
면서도, 범띠의 장점이 없으면, 무능하고
지 모든 환경과 처지에서도 하나님께서 가
천 년 더 일찍 받게 될 뿐임을 주의를 하
나님의 뜻을 좀 더 하기 위고 천국에 상
실패나 패배를 하기 일쑤이다. 그리고 범띠
까이하시는 백성을 의미하니, 하나님께 붙
여야 한다. 억만장자들 중에는 선행과 하
급을 쌓기 위해서도 장수하도록 애를 써
의 단점으로서는, 자기중심적이고 날카롭
어 떠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법
나님의 일 등에 헌신 헌물을 하면서 장수
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과 손길과
고 반항적이고 다투고 소유욕이 있고 명
도와 의의 심판을 의식하고 따르는 백성이
할 뿐만 아니라 천국에 영원한 상급을 쌓
성령을 얻으면서 장수의 비결도 되고 예수
예심 등이 있다. 그런 면들은 금하면서, 이
요 하나님을 주인과 왕으로 삼고 섬기는
은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성경말씀과 같
님의 성품인 겸손과 선함과 선행과 사랑과
타심과 온유함과 겸손과 하나님의 심판에
백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할 때 모든
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온유함과 경외함도 닮을 수가 있어서 인생
맡김과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며 전체
나라가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과 함께하여
하나님께 빌려주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과 영생에 있어서 모두 일거양득이다. 그
적인 결정을 따르고 협력하는 것으로 보
주심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2년 1월 13일
12
사무엘상 강해(62)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무엘상 16:1-5>
2022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여 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 인 펜더믹 상황은 진정될 기미가 없습 니다. 백신 접종만 시작되면 모든 것 이 끝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오미 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해 우리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도 새해는 조용히 시작되었 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울 왕 을 인하여 슬퍼하고 있는 사무엘이 등 장합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 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 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사무엘상 15:35). 사무엘 선지자의 슬픔은 단순히 사 적인 감정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 히려 사울의 폐위 이후 불어 닥칠지 모르는 이스라엘 정국의 혼란을 걱정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슬픔에 잠긴 사무엘에게 오셔서 그의 슬픔을 책망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 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 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 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 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사무엘상 16:1).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고 말씀하 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하 나님은 이미 사울을 버렸다고 말씀하 십니다. 사울은 이제 하나님의 마음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사울 은 과거의 사람입니다.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이 스라엘의 왕권을 스스로 쥐고 있는 사 울이지만, 그래서 사무엘의 마음을 슬 프게도 하는 사울이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께 버려진 과거의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무엘은 지금 이런 사울 왕을 인하여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곧 우리에게서 과거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바 이러스들처럼 우리의 기억과 현실 속 에서 사라질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울 왕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는 슬퍼하고 불안 해하고, 베들레헴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전혀 다른 태도로 이 상 황을 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 다.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첫째,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사무엘은 과거와 현실을 붙자고 슬 퍼하고 있고, 하나님께는 미래를 향해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너는 왜 슬퍼하고 있느냐?” 하시며 사무엘 선 지자에게 시키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 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누구에겐가 기름을 부으러 가라는 말씀입니다. 구 약 시대에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직을 허락하는 직분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입니다. 말씀의 전체 적인 맥락에서 보면 지금 하나님께서 는 사무엘에게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 해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 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이미 보고 계셨습니다. 그 가 누굽니까?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입
니다. 그를 왕으로 새우기 위한 새 일 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 말씀 을 듣자마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빠졌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 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 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 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 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사무 엘상 16:2).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왜 사무엘 선지자가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버젓이 자신이 왕인데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다른 왕을 세우 러 간다면 사울이 가만있겠습니까? 지 금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 로잡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왕을 보시고 그를 통해 메시야 가문 을 일으키시기 위한 새 일을 지금 행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앞을 내다보시고 힘든 칠흑같이 어두 운 현실 속에서도 늘 새 일을 준비하 시고 그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 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 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 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 43:18-19). 사랑하는 여러분! 늘 새 일을 준비 하시고 그 새 일을 친히 행하시는 하 나님을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두려워도 그 현실을 박차고 일 어설 수 있습니다. 그 현실을 뚫고 날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아오를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 새 일을 준비하시고 그 새 일 을 행하시기 위해 오늘도 저와 여러분 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준비한 새 일을 나와 함께 행하지 않겠니? 너 는 가라! 내가 너를 보내리니!”
둘째, 축제를 벌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사울이 두려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주 저하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하나님께 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베들레 헴 사람들에게 “내가 여호와께 제사 를 드리러 왔다”(2절)고 하라고 하십 니다.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고 하 십니다.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 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 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 라”(사무엘상 16:3).“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 고 제사에 청하니라”고 하십니다.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 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 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 사에 청하니라”(사무엘상 16:5), 계속해 서 제사를 언급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 지자를 베들레헴에 보내서 그곳 성읍 사람들과 함께 드리라고 하는 제사는 어떤 제사일까요? 오늘 본문 2절을 다 시 보면 이 제사에 사용할 동물이 나 옵니다. 무엇입니까? ‘암송아지’입니 다. 암송아지가 제물로 사용된다는 것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은 이 제사가 ‘화목제’임을 알 수 있 습니다. 여러분, 화목제사가 무엇입니까? 구 약의 제사 중에 유일하게 제사를 집 례하는 제사장과 제주와 그의 가족들 이 제사를 드린 후에 그 제물을 함께 나눠 먹는 제사가 곧 화목제사입니다. 제사를 드린 후에 일종의 축제(파티) 를 벌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은 베들레헴에 사무엘을 보내서 축제 를 벌이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두 해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로 인해 우리들의 교회 생활에서 잃어 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친교’입니다. 주일 날 예배드린 후에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친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 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기는 일종의 축제입니다. 잔치입니다. 이 주일 잔치 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뺏어 갔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에 잃어버린 이 주일 잔치, 주일 축제 를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셋째, 평강을 가져오시는 하나 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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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3일
드디어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베들레헴으로 갔습 니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 시나이까”(사무엘상 16:4). 사무엘 선지자를 본 베들레헴 장로 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떨며” 그 랬습니다. 왜 떨었을까요? 두 가지 이 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신앙적인 죄 책감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살아서 하 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자신들을 징벌하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 었을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인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사무엘 선지자는 왕위 옹립자이면서 도 왕위 파괴자이기도 했습니다. 베들 레헴 장로들은 왕위 옹립자인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들의 성읍에 뜨자 마을 전체가 사울의 미움을 사게 되는 이유 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 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에게 장로들이 뭐라 고 묻습니까? “평강을 위해 오시나 이까?”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의 대 답이 무엇입니까? “평강을 위함이니 라”(5절) 사무엘 선지자의 대답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 의 계획,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항 상 “평안”입니다. “샬롬”을 가져오 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 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 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 는 것이니라”(예레미야 29:11). 이새의 가문을 통해, 그의 아들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 되신 우 리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오셨습니까? “평강의 왕”(이사야 9:6, 11:1)으로 오 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절대적 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평강, 곧 ‘샬롬의 축복’ 아닙니 까? 2022년 새해에는 코로나 바이러 스로 인해 무너져 내린 우리들의 삶 속에, 두려움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마 음속에 이 평강, 샬롬의 축복을 가져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다주실 우리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 해 보십시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네가 행할 일 을 “나를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 니다.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 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 을 부을지니라”. 그 일이 무엇입니까?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다 음 왕으로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이 일이 다윗을 위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22년 한 해 ‘하나님을 위해’ 살 아가십시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살 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새 일을 행해 주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주 일 잔치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코 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망가져 버린 “ 평강”을 다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새성구 9/23/21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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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지난 [시편 1] 칼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네가지 기능적인 주제를 강의하였 습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주제였습니다. 이어서 [시편 2]에서
시편 전체 내용 개관
는 기존의 양식대로 시편에 대한 개론적인 내용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전체 다섯 권으로 구성된 시편은 역사적으로 긴 연대를 보여주고(대략 기원전 1410년경~대략 기원전 430년 경) 광범위한 주제와 다양한 환경 가운데 있는 청중들 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은 다양한 인간의 환경과 친밀한 접촉점 과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시편의 배경과 제목 시편은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책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편의 부피가
신약 성경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예수님께서도 자주 인용하셨던 구약 성경은 시편 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대중을 가르치실 때, 유대 지도자들의 질문에 답 하실 때, 성전을 정화하실 때, 최후의 만찬 중,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 시편을 모두 인 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인용된 성경 구절들과 시편들을 몇 개만 비교해 봅시다.
시편
마태복음
시91:11-12
마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 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 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 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21:15-16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 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 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 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마22: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마27:46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 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큰 책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편은 매우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인간의 경험의 광범위 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환희와 축제, 전쟁, 평화, 예배, 심판, 메 시야의 예언, 찬미, 그리고 애가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보여줍니다. 시편은 원래는 제목이 없었으나 거의 모든 시편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Sepher Tehillim(찬양의 책)이라고 알려졌습니다. 70인역은 시편의 제목을
시8:2
Psalmoi(악기의 반주에 따라 불려지는 시들)혹은 Psalterium(노래들의 모임)이라 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Psalter(성시집, 시편)라는 말의 어근이 되었습니다. 라틴어 성경에서는 시편의 제목을 Liber Psalmorum(Book of Psalms)으로 붙였습니다.
시편의 주제와 목적 시편의 한가지 공통된 주제는 예배입니다. 시편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들 그리고 인간의 고통스러운 환경에 대한 표현집이 아닙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환
시110:1
경 가운데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은 마땅히 당신의 택한 백성을 통하여 찬양 받으실 가치가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계시 하셨습니다. 시편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과 섭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 름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하는 갈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 핵심 구절 :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45: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 핵심 장 : 시편은 성경에서 유명한 장들이 너무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1, 22, 23, 24, 37, 72, 100, 101, 119, 121, 150). 그 중 시편을 대표하는 한 장을 골라야 한다 면 시편 100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100편은 예배와 찬양이라는 두 가지 중심 주제가 조화롭게 수놓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22:1
초대 교회의 예배 중에서 규칙적인 순서 중 한 가지가 시편을 노래하는 것이었습 니다(고전14:26, 엡5:19, 골3:16). 시편 외에도 구약 성경에는 최소한 열한 편의 다른 시편들이 있습니다. ①바다의 노래(출15:1-18), ②모세의 노래(신32:1-43), ③드보라의 노래(삿5), ④한나의 노래(삼상2:1-10), ⑤다윗의 시(삼하22:2-51), ⑥욥의 비탄의 시(욤 3, 7, 10), ⑦이사야의 송영(사12:4-6), ⑧히스기야의 노래 (사38:9-20), ⑨예레미야의 애도의 시(애3:19-38, 5), ⑩요나의 기도(요2:1-9), ⑪하박국의 기도(합3:2-10). 다음 칼럼(1월 27일 예정)에서는 [시편 3]을 통하여 시편 강의를 마칠 예정입니다. [시편3]에서는 시편을 해석하는 네 가지의 주의해야 할 네 가지의 해석의 관점과 시 편을 분류하는 세가지의 기준에 관련된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시 148:13)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예배학 강좌
2022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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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은 일어서서?” * 한국 교회에서는 어떤 찬송은 일어서서 부르고 어떤 찬송은 앉아서 부릅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 예배 시간에 의자를 사용하는 것은 불과 몇 세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전의 모든 예배는 서 있는 자세에서 진행되지 않았나요? * 한국교회 예배는 첫 부분만 일어설 뿐 내내 앉아서 드리기에 늘 졸립니다.
예배 예전의 행위(Liturgical Action)는 어떤 경우도 인간 위주로 진행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또는 철야기도회 등은 공
아서 드리는 데 으뜸간다는 사실입니
식적인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습니다.
다. 세계의 모든 개혁교회가 주일 예배 에서의 찬송은 철저히 일어서서 부르
될 수 없고 반드시 예배의 대상을 위 주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은 평범한
그러나 주일 낮 예배만은 마음과 뜻
는데 우리의 교회만은 그렇지를 않습
상식입니다. 그러기에 예배자들이 무
과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
니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예배의 첫 순
릎을 꿇는 것이나 앉는 것이나 서는
배하는 자세와 절차를 철저히 강조하
서의 찬송 하나만 서서 부르고 그 다
행위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
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배 안에서 드리
음의 찬송들은 모두 앉아서 부릅니다.
다. 이러한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
는 예전의 모든 행위는 시종일관 엄격
그 이유는 서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으로서 최
하고 존엄하게 개혁교회 안에서 지켜
서 다리가 아프기에 앉아서 드린다는
대의 경의를 표하는 데 주안점을 두
온 전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실로 부
고 있습니다.
관심의 대상은 예배 시간에 앉고 서
끄러운 변명입니다. 몇 분을 서 있는
는 문제입니다. 예배 역사의 전통을 가
것이 육체에 부담이 된다고 편히 앉아
예배는 크게 두 형태로 분류할 수
장 많이 물려받고 있는 정교회는 예배
찬송을 부르려는 심사는 예배자들의
있습니다. 즉, 주일예배와 같은 예전의
전체를 서서 드리고, 그 중간인 가톨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 생각하면 너
절차와 행위를 요구하는 공적인 예배
릭교회는 무릎을 꿇고, 서고, 앉는 예
무 고급스러운 발상입니다. 교회가 예
(Formal Service)와 아무런 예배의
전 행위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개신교
배를 드리면서 오늘처럼 의자를 놓고
절차나 형식을 밟지 않고 드리는 사적
는 주로 앉아서 드리는 형태를 취하고
드리게 된 것은 그 역사가 수 세기에
인 예배(Informal Service)입니다. 자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만은 언제나 다
불과합니다. 우리의 모든 믿음의 선배
유롭게 드리는 기도회와 같은 모임에
름없이 일어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
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서서 예배
서 모든 예배예전의 절차를 갖추려고
르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예배
를 드렸습니다.
한다면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기타의
에서 서 있는 행위는 하나님을 공경하
주변에서 자주 있게 되는 사적인 예배
여 마음을 가다듬는 의미를 가지고 있
행위는 중단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앞에서 노래를 부 를 때도 예의를 갖추어 서서 부르는
각하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 근원을 추적해 보면 이것은 우리 삶의 문화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우리 실내 문화가 원래 방바닥에 앉아 지 내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이 땅 에 와서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은 방바닥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의자가 없던 우리의 초기 교회에서는 가급적이면 앉아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의 습관이 바로 예배로 이어져서 오늘과 같은 기현상을 관습화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교회가 모두 의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 상 불편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세 계의 개혁교회 예배 현장과 달라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문화적인 주 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리의 태만이 스며든 관습입니다. 이제는 우 리도 주일 예배에서 모든 찬송은 일어 서서 경건히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를 회복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것이 상례일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존
러하기에 개신교는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제외하고는 주일 저녁의 찬양
여기서 깊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부르
예배나 수요(금요)기도회를 비롯하여
한국교회가 유난히도 모든 예배를 앉
는 시간에 일어서는 것을 번거롭게 생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Church Denver Halleluja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반주자를 모십니다!" 어린이부 교역자(교육 간사)와 키보드 반주를 해 주실 분을 모시고자 합니다. 관심이 있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이메일 (hrockchoi@gmail.com)이나 교회 전화(303-717-0279, 텍스트)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8556 E. Warren Ave. (303) 717-0279 Denver, CO 80231 www.denverchurch.com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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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터
2022년 1월 13일
18
하나님의 반전 드라마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간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모세의 누이처럼 멀리서 지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그저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지켜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왕으로부터 억압을 받아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간에도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녀는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왕의 딸입니다.
레위의 한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반전 드라마를 만드십니다.
남자 아기를 죽여라는 바로의 명령에도 무려 3개월이나 아기를 숨겼습니다.
바로의 딸이 히브리아기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셨습니다.
갓난아기의 울음을 막으면서 돌본 3개월은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요… 눈을 가리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세상을 역이용하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표징이나 보호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섭니다.
상황 속에서 기다리고 인내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바로의 딸이 아기를 키우겠다고 결심을 굳히기 전,
하지만 믿음으로 인내했습니다.
아기의 누이가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오겠다고 합니다.
인내가 극에 달하자 부모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모세의 누이는 바로 딸의 명령을 받고 어머니를 모셔옵니다.
스스로 아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자기 아기를 키우면서도 바로의 딸에게 삯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갈대 상자에 물이 새지 않게 작업한 후
조금 전까지만 해도 3개월이나 두려움 속에서 아기를 키웠는데
아기를 담아 나일강 가에 두었습니다.
이제는 애굽 궁정의 돈을 받으며 적진의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아기를 키우게 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서 아기를
놀라운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며 강물에 놓아보냈습니다. 이렇게 출애굽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갈대 상자라는 단어는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해 구원의 역사를 쓰고 계십니다.
노아의 방주를 가리키는 단어(테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오늘도 구원의 역사를 쓰십니다.
‘방주’나 ‘갈대 상자’는 사람의 힘이 아닌
더 이상 앞길이 보이지 않아 암담할 때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십시오!
자연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반전드라마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 박현수
6415 W. 44th Ave. Wheat Ridge, CO 80033 (303) 423-1392 bkpcdenver.org
진리의 샘터
2022년 1월 13일
19
하나님을 알자! 저는 사무실보다 근처 커피숍에서 일 하는 것을 더 즐깁니다. 너무 적막한 것 보다는 적당히 시끄럽고 붐비는 것이 오 히려 집중을 도와줍니다. 향긋한 커피 향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나름 커피에 대하여는 진심이어서 여러 지역에서 온 원두들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커피숍 사장들과 친해진 적 도 있습니다. 커피숍의 또 다른 묘미는 여러 사람 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골인 커피숍을 가면 저 말고도 다른 단골들 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어 느 정도 파악하게 됩니다. 누가 몇 시에 와서 어떤 커피를 즐겨 마시는지도 알 게 됩니다. 보통 어떤 옷차림으로 오는 지, 보통 누구와 함께 오는지. 친구와 오 는 사람도 있고 직장 동료와 오는 사람 도 있고 또 아기와 함께 오는 사람도 있 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 사람들에 대 하여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그들을 아 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지 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관 계를 맺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정말 알려면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
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알 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대하여도 많 이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은 기 독교 정신과 문화로 세워진 나라이다 보 니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기독교를, 하 나님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들이 하나님에 대하여는 아는지 몰라도 하나님을 안다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를 아주 오래 출석했어도 하나님을 인 격적으로 만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하나 님에 대하여는 많이 알 수 있지만, 하나 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 려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 하 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함 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 님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아주 깊고 긴 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다. 부부의 관계는 이 세상 그 어떤 관계 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가 아닙니까? 우 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그 어떠한 관계보 다도 더 깊고 가까워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깊은 관계 가 되려면 하나님과 더욱 시간을 보내 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내 가 하는 헌신입니다. 결혼을 한 지 시간이 좀 지난 커플들 이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리로 산다고. 그런데 성 경적으로 보면 그 의리가 바로 사랑입 니다. 서로를 지켜주기 위하여 내가 나 스스로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그 모습이 바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랑이기 때 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 고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길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단어는 아주 은밀한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۱̇߅ ߖLJ ۱ɩ ઉ̓ ݞݞबઉ˲ ۱ɩĚ 2022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ߍڄઉܶ ࣆ G ԡܷ 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아담이 하와를 알아서 임신 하기 위하여 헌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 다. 예배와 봉사, 말씀 통독과 기도 등 하였다’가 됩니다. 으로 하나님께 더 나아가기를 바랍니 즉 안다는 것은 부부의 관계처럼 아 다. 때로는 힘들고 하기 싫을 때도 있 주 가깝고 은밀하고 깊은 관계를 말합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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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그럴 때에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향한 헌신을 요구 하시기 전에 우리를 위하여 먼저 헌신하 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 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는 하늘 보좌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이 땅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 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 우리 가 하나님을 더 알면, 우리와 하나님과 의 관계가 더 깊어지면 우리는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놀라운 축복을 맛보며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평화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칠 것입니다. 하늘나라 를 맛볼 것입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 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처럼 늘 주님과 동행하며 하늘나라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 기로 헌신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 분과 동행하시고자 먼저 헌신하셨습니 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영 광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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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20
2022년 1월 13일
2022년을 향한 행보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을 다 합친다 해도 옛 성인의 말과 같이 ‘초로인 생’이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는 사람의 수명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 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 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사야 40:6 하-8) 고 함석헌 옹은 금년 춘추가 어떻 게 되느냐? 고 물을 때 언제나 몇 만 몇 천 몇 백 몇 십일 이라는 자기의 난 날짜로부터 날을 세어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나이가 많아야 36,500일 이하에 불과할 것이니 계산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걸음걸이, 나의 행보가 나의 이 짧은 나그넷길에 헛되거나 무의미하게 걸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더욱 남에 게 유익은커녕 손해를 끼친다면 안 될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2022년도, 새 해가 밝았다. 호랑이처럼 빠르고 당당 하고 우렁차게 발걸음을 걸어 나가야 하겠다. 좀 바쁘게 걸어서 오미크론 바 이러스 팬데믹보다 더 빠르게 행보해 서 두려움을 몰아냈으면 좋겠다. 그런 데 코비드가 나이 어린 사람이든지 혹 어른이라도 바쁘게 움직이던 삶을 나 태하고 느슨하게 하고 있다. 어릴 적 내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이 걷는 걸 음은 내게나, 남에게 덕이 되어야 한 다.’는 말씀이었다. 나의 이번 걸음은? 보람이 있었다. 이번 나의 걸음이 큰 일을 해냈다. 이렇게 한해를 걸어갔으
면 좋겠다. 이런 마음과 뜻을 정했을 때 나의 하루하루의 걸음은 의미 있는 걸음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걸음 을 출발했다 할지라도 모두가 같은 길 을 걸을 수는 없다. 각자가 원하는 길 을 걷고 또 그 길은 걷는 사람에게 자 신의 길이 주어진다. 걸음마다 값진 걸 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주어진 시간 에 잘못된 길이나 남을 헤치는 길, 아 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걸음을 걸 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값진 시 간을 허비하거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사용해야 한다. 패션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 때 재 단을 한다. 그림을 그리고 인쇄를 할 때도 종이에 재단을 한다. 가장 좋은 디자이너는 자투리가 나지 않게 재단 하는데 그 기술이 크게 필요하다. 필 요 없는 자투리를 내서는 안 된다. 최 소한의 낭비를 줄여야 한다. 그 종이, 그 천을 가능한 한 자투리가 없이 버 리는 것이 없이 다 쓰게 재단하는데 그 재단의 묘미가 있다. 그래야 그 옷 이 만들어질 때 그 제품의 생산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나의 걸음걸이도 이렇게 잘 계획된 출발하 기를 원한다. 한 번밖에 갈 수 없고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새로운 걸음이 쓸데없는 걸음 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한 발자 국이라도 의미 있고 짜임새 있게, 호 랑이처럼 당당하고 위엄 있게, 하나님 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 내는 행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 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 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 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 니라”(로마서 10:14-15) 새해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런 힘 찬 발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동방에서 출발한 박사 세 사람의 그 걸음은 외롭고 위험하고 피곤하게 하 는 먼 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탄생하 신 메시야,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그 들의 걸음은 인류 역사에 가장 고결한 걸음이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선물로 경배하 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부르심을 받아 미디안에서 그가 자라 났던 애굽으로 돌아온 걸음은 사명의 걸음이었다. 그뿐 아니라 애굽에서 이 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가르고 건너는 길은 기적의 걸음이었다. 발람은 발락이 아무리 많은 재물과 좋은 조건의 초청을 했을지라도 그 걸 음을 걷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나님께 서 보내신 나귀에게까지 책망을 받아 서 한 번쯤 멈추고 생각했어야 하는 데 되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야 말 았다. 스승을 돈에 팔아넘긴 가룟 유 다 또한 회개할 수 없는 길을 가고 말 았다. 2022년 새해에는 아브라함처럼 믿음 의 길을 걸어서 복의 문을 여는 한 해 가 되길 바란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 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 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 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 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 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오성관 원로목사 벧엘교회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1-3)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 하여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여신 구원의 길이 되길 바란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 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 르시니”(요한복음 4:3-5) 사도 바울처럼 숱한 고난과 메임과 풍랑이 있어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 기 위해 로마까지 가야만 했던 목적이 있는 걸음이 되길 바란다. 한 사람의 한평생의 걸음걸이가 우 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묻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 이 가신 십자가의 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길을 걷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내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 다 할지도 그 길에 주님이 동행하는 걸음이 되길 바란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 호와시니라”(잠언 16:9)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2년 1월 13일
21
2022년, ‘한국교회 갱신과 성숙’의 원년으로 만들자 코로나 팬데믹, 대면 예배 금지, 다수 교 회 폐쇄 등으로 얼룩졌던 2021년이 저물 고,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희망차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 너무 도 간절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2022 년에 대한 전망 역시 긍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쯤 가라앉 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교회의 대면예배 가 정상화되는 시점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3월에 치러질 대선은 최악의 후보들 간 이전투구가 되어 가고 있다. 기독교와 교회 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차가울 대로 차가 워졌다. 천주교나 불교에 비해, 개신교에 대 한 국민의 신뢰도는 최하점을 찍고 있다. 교회를 다니던 젊은 세대들은 조용히 교 회를 떠나고 있다(silent exodus). 10대부 터 30대에 이르는 미래 세대들은 교회와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심각하게 회의적이 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마디 로 말해서 한국교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을 한국교회 갱신과 성숙의 원년으로 만드는 것은 절대 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혹자는 과연 그 일 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6세기 종교 개혁의 모토를 붙들어야 한다. 그것은 “ 한 번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 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원리이다. 영단번으로 완성되 는 교회 개혁은 없다. 교회는 한번 개혁되 었더라도, 다시 타락의 길로 돌아갈 수 있 다. 그렇기에 항상 개혁되고 갱신되는 교회 로 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 치는 교회 갱신을 위한 복음적 원리들을 지속적으로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 을 담대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필자는 2022년 한국교회가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갱신해야 할 영역을 아래의 세 가지로 정 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답답하고, 미래 는 어둡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을 가져야 한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식할 때, 치료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심
각한 질병에 걸린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피 상적으로 인식한다면, 그는 그 질병에 삼키 어져 멸망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교회의 현 상황은 거 의 말기암에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한국교 회는 머지않아 유럽 교회들처럼 유명무실 한 형식적 종교단체로 남게 될 것이다. 더 심한 경우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마치 소아시아 일곱 교회 들이 이슬람의 발흥으로 사라져버린 것처 럼 말이다. 한국교회의 어두운 현실은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복음에 약한 교회라는 사실과 연계된다. 성경이 말하는 순전한 복음을 바 르게 이해하고, 그대로 살아내는 교회는 상 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해 보인다. 오히려 방 종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 신비주의, 기복 주의 같은 다른 복음, 왜곡된 복음, 거짓된 복음이 다수의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복 음에 약한 교회, 다른 복음에 물든 교회 는 결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없다.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만인제 사장,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특징으로 하 는 참된 복음이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규정해야 한다. 그때에만 교회는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로 자라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우리가 복음에 약한 교회임 을 처절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 인식에 기 초해서 복음에 강한 교회로 갱신되고 변 화되도록 몸부림쳐야 한다. 2022년이 바 로 그 거룩한 몸부림의 원년이 되기를 간 절히 바란다. 둘째, 유기적 교회론(organic ecclesiology) 을 통해 한국교회의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현재 전체 교회의 80퍼센트 정도가 성도 수 100명 이하의 소형 교회로 파악된다. 성 도 100명 이상의 중대형 교회는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생태계는 여전히 대형교회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 다.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대형교회는 선 호의 대상이지만, 소형교회는 기피의 대상 이 되어버렸다. 요즘 대형교회도 힘들다고
하지만, 소형교회는 생존 자체가 너무나 어 려운 시대가 되었다. 목회자들은 소형 교회 의 담임목사가 되기보다, 대형교회의 부목 사로 남기를 선호한다. 성도들도 대형교회 에 속해 대형교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누리려고만 하지, 소형 교회의 멤버가 되어 교회를 위해 희생하거나 섬기려고 하지 않 는다. 소위 외형적으로 큰 것을 선호하고, 작은 것을 기피하는 영적 피상성이 한국교 회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수량적이고 외형적인 의미 에서 큰 교회와 작은 교회를 나누지 않는 다. 도리어 성경은 성숙한 교회가 ‘큰 교 회’이고, 미숙한 교회가 ‘작은 교회’라고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1만 명이 모이는 교 회라도 그 교회의 영적 수준이 유아 수준 에 머물러 있다면, ‘작은 교회’일 수밖에 없다. 단 30명이 모이는 교회라도, 그 교회 가 영적으로 성숙하다면 ‘큰 교회’인 것 이다. 교회의 크고 작음을 수량적/외형적 으로 구별하는 한국교회의 관행은 폐기되 어야 한다. 도리어 수량적으로 작은 교회라 도 영적으로는 ‘큰 교회’, ‘어른 교회’ 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큰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성경이 말하는 ‘큰 교회’ 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 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큰 교회’는 성 도 서로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연합되 며, 막힘이 없는 소통과 깊은 사랑을 누리 는, 거룩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유기적 교회 (organic church)이다. 다시 말하면 건물 이나, 성도의 수 또는 조직이 크다고 ‘큰 교회’인 것이 아니다. 교회의 건물이 없거 나 작고, 성도의 수도 적다고 하더라도, 모 든 성도들이 사랑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교회가 ‘ 큰 교회’이다. 2022년 한국교회의 생태계 가 성경적 의미의 ‘큰 교회론’과 ‘유기 적 교회론’의 확산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 화되길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종말론적 교회 (eschatological church)가 되어야 한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코로나 팬데믹은 역사의 종말과 예수님 의 재림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가져다주었 다. 그것은 팬데믹의 긍정적 산물이다. 하 지만 한국교회는 아직도 종말론 영역에 있 어 엄청난 혼란과 혼돈에 빠져 있다. 예수 님의 재림과 역사의 종말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둡고, 두렵고, 치우친 종말론을 설파하고 있다. 밝고, 행복하고, 균형 잡힌 종말론, 건강하고 성경적인 종말론을 찾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말씀을 맡은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올바른 종말 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하고 균 형 잡힌 종말론을 가르쳐, 성도들이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더 나 아가 종말론적 이단과 사이비의 공격을 방 어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야 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종말론은 밝고 행복한 종말론이다. 복된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는 기대와 대망의 종말론이다(디도서 2:13). 신 랑과 함께 혼인잔치를 벌일 것을 열망하는 신부의 종말론이다(계시록 19장). 초림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 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 때에는 “유다 지파의 사자”로 오셔 서 악과 마귀의 세력에 대하여 최종 승리 를 거두실 것을 고대하는 승리의 종말론이 다. 창세 전부터 세워진 하나님의 모든 계 획과 뜻이 이뤄지기를 갈망하는 완성의 종 말론이다. 그리고 주님 재림의 최종 징조 가 바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 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마 24;14)” 되는 것임을 확인하는 선교적 종말론이다. 2022년은 한국교회 전체가 건강하고, 균 형 잡힌, 밝고, 행복한 종말론으로 새롭게 무장하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한국교회의 갱신과 성숙을 위해 더 많 은 전략들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위에서 필자가 제안한 세 가지 영역에 서 작은 진전이라도 이뤄진다면, 한국교회 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교회 의 머리요, 신랑 되신 우리 주님께서 속히 이 일을 이루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쉴만한 물가
2022년 1월 13일
22
이기는 자 , 신부, 땅의 왕들 이스라엘의 대다수 유대인들은 아직도
는 상은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는 것
이들을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새 하늘과
예수님을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생
이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
새 땅의 왕들이라고 말한다. "만국이 그
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의 새 이름이 이기는 자의 위에 기록된다.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유월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
절의 어린양, 메시야라고 호칭한다. 그럼에
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
예수님의 재림 이후 천년왕국이 도래하
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
면 땅의 왕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에서 출생한 유대인 랍비 예수 정도로만
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이기는 자들이 그리
알고 있는 것은 다양한 역사적 맥락 가
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스도와 함께왕적 리더십을 가지고 새 예
운데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인지할 수
기록하리라" (계 3:12).
루살렘에 들어가는것을 말한다. 이런 의
없기 때문이다.
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계 21:24).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다(계 21:22).
미에서 이기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요한계시록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몇
예수님도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성전이라
왕들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신부이다. 이
가지 단어가 결국 한 대상을 가리키고 있
고 하셨고, 그리스도인의 몸을 성전이라
기는 자가 곧 땅의 왕들이며 그들이 곧
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는 자, 신부 그
고 말씀하셨다(고전 6:19).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이다. 아래의 성
리고 땅의 왕들이 그것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
경구절이 이를 가르쳐주고 있다. "… 내가
이기는 자에 대한 말씀은 요한계시록 2,
은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
3장에, 신부는 21, 22장에 집중적으로 기
기는 자들이 지을 보이지 않는 유기체적
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록되어있다. 그리고 땅의 왕들은 21장 24
성전을 말한다. 그리고 이기는 자는 성전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절에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각각 다른 맥
의 기둥이 되어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 21:9, 10).
락에서 등장하지만 동일한 영성을 소유한
중요한 리더십을주님과 함께 나누게 된다.
신부 곧 주님의 아내를 보이리라고 한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해석해보면 이렇
후에 보여준 것은 새 하늘에서 내려오
이기는 자를 왜 신부, 땅의 왕들과 동
다. 이기는 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
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물론 이것
일시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의
그리고 결코 그곳에서 다시 나가지 아니
은 이 땅에 있는지금의 예루살렘이 아니
미 있는 일이다. 각각의 명칭에 나타난 정
하며 주님과 더불어 새 하늘과 새 땅을
다. 새 하늘에서 새 땅으로 내려오는 새
체성은 다른 정체성을 얻기 위해 필요한
다스리는 리더십의 권세를 받게 된다. 그
예루살렘이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주님
덕목이 된다. 예를 들면 이기는 자가 되어
것은 영속적인 왕적 리더십이다.
의 신부라고 말한다. 새 예루살렘은 외연
사람들이며 호칭만 다를 뿐이다.
야 땅의 왕들 곧 하나님의 나라의 왕적 리더십을 얻기 위한 덕목을 갖추게 된다(
땅의 왕들에 대한 리더십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도 부여된다.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이고 그 성안에 거주할 수 있는 시민권자 들이 신부다.
계 3:12). 그리고 땅의 왕들의 리더십을 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주님은 빌라델비아교회의 이기는 자들
지고 있는 자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
에게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들 위에 기
있는 신부의 자질을 얻게 된다(계 21:24).
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록하리라고 약속하셨다(계 3:12). 이는 곧
먼저 빌라델비아교회의 이기는 자로부터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은 주님의
이기는 자들이 새 예루살렘의 거주자 곧
시작해 본다. 이 교회의 이기는 자가 받
왕의 리더십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계 21:2, 10)에 들어 갈 수 있는 권세를 받은 것이다(계 21:24; 22:14). 그러므로 이기는 자가그리스도의 신부다(계 21:9, 10).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신부 가 된다는 것은 어떤 수식어로도 그 영 광스러움을 표현할 수 없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그 영광을 차지한다. 이기는 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요 16:33)과 마귀(요일 2:14)와 같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우리 혼의 혼탁함에서 오는 육신의 소욕과 생 각(롬 8:4-7)을 이겨야 한다. 주님은 아담 이후 타락한 인간이 죄의 본성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온전한 사람들과( 엡 4:13) 하나님 나라의 왕적 리더십을 나 누고 싶어하신다. 그래서 이기는 자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왕들이 될 수 있다. 이들 이 그리스도의 신부들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린 양의 혼인 잔 치에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는 다. 그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계 19:7, 8). 이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믿음 과 행함으로 인간의 죄의 본성을 이긴 성 도들이다. 이기는 자들은 주님의 신부가 되며,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새 하늘 과 새 땅의 왕들이 된다.
좁은 길을 걸으며
2022년 1월 13일
23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서 계십니까?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습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 로운 한 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새해 를 허락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 이 있는 줄 믿습니다. 새해가 되면 사 람들은 이런저런 새로운 결심을 합니 다. 새해 계획도 세웁니다. 그리고 한 해가 마칠 때쯤에는 그 계획대로 제대 로 살지 못해서 후회를 하곤 합니다. 올 한 해 어떤 각오와 다짐으로 새 해를 여시겠습니까? 다른 각오도 중 요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 에 서 있겠다는 각오를 해보면 어떨 까 합니다. 사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를 지키지 못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자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 라는 믿음의 자리, 순종의 자리, 감사 와 사랑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 주신 자리를 박차고 떠나서 나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기 위해 그 자리 를 떠난 것이 우리 인간의 불행의 씨 앗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의 취지와 다르게 모
임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서 로의 의견을 이야기는 가운데 실망스 러운 모습과 태도가 너무나 많았습니 다. 제 마음 가운데 모든 것을 다 포 기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그러나 억지 로 제 마음을 추스르고 그 자리에 가 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정심 을 유지할 때 모임은 조금씩 정상적 인 모습을 되찾아 갔습니다. 제가 만 일 그 때 그 자리를 떠났더라면 저 와 다른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어버 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함께 꿈꿔왔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 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과 상처를 떠안아야 했을 것이고요. 사실 가만히 저의 삶을 돌아보면 제 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내가 돌보야 할 사람을 잘 돌보지 못했고, 순종해 야 할 순간에 순종하지 못했고, 하나 님을 섬겨야 했을 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삶의 아픔과 고통은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한 데서 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 중의 복음, 희망 중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지키지 못 한 자리를 다 채워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부모가 12살 된 예수님을 찾는 모습이 나옵 니다. 예수님은 일행과 헤어져 성전에 서 선생들과 질문을 주고받고 있습니 다. 부모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 냐?”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 고 대답합니다(눅 2:49). 어릴 때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 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자리에 있어야 할 줄을 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공생 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예수님은 집 바 깥을 겉돌지 않고 육신의 부모를 잘 섬겼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 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 2:51)
김병수 목사
믿음장로교회
을 당하시면서도 예수님은 그 십자가 에서 내려오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해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계셔 주셨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 대신해서 계 셔 주신 예수님께로 달려가면 우리가 우리의 자리를 지키지 못함으로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과 아픔도 예수님께 서 다시 치유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올 한 해 살아가면서 우리의 자리를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치유와 힘을 가지고 예배의 자 리, 사명의 자리, 순종의 자리, 섬김의 자리, 돌봄의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 는지를 정확히 아셨습니다. 우리를 구 원하는 십자가에 달리는 엄청난 고통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베드로후서 강해
2022년 1월 13일
24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3) <베드로후서 3:1-13>
2011년 3월 일본 최악의 쓰나미가 일 본 동북부 해안을 덮쳤습니다. 최고 의 선진국가인 일본에서 이 재앙으 로 무려 3만 명이 죽었습니다. 쓰나 미로 파괴된 집이 48만 채였습니다. 저는 쓰나미가 난 그해 7월에 그 현 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쓰나미 가 난 지 4개월이 지났는데도 복구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해 안가의 10층짜리 호텔 위에 큰 배가 걸 터앉은 모습도 그대로보았습니다. 일본 은 지진, 쓰나미가 자주 일어납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쓰나미 대응방침을 일 본인들에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 당 국에서 쓰나미 경보가 울리면 무슨 일 을 하고 있더라도 무조건집을 나와야 합 니다. 어떤 귀중품이라도 가지고 나오려 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당시 쓰나미 의 속도가 무려 115마일이었습니다. 조 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가는 거대한 파도 에 휩쓸려 가고 맙니다. 파도가 무려 10m 높이였습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 오면 안 됩니다. 일단 집을 나오면 눈 에 보이는 가장 높은 지대로 뛰어가 야 합니다. 산이든 언덕이든 상관없습 니다.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을 목 표로 뛰어야 합니다. 한눈을 팔면 안 됩 니다. 주변에 산이 너무 멀면 눈에 보 이는 가장 높은 건물을 목표로 삼으 라고 합니다. 그 건물의 꼭대기 지붕으 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나 마 생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많은 사 람들이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나오려다 가 참화를 겪고 맙니다. 마지막 심판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 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아무 소 용이 없습니다. 가지고 나오던 안가지 고 나오던 다 불에 녹을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때에도 남 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 과 경건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뜨거 운 심판의 불에도 녹지 않는 것은 거룩 한 행실과 경건입니다. 이 두 용어는 다 른 뜻이 아닙니다. 앞에서 나온 정욕 을 좇아 사는 삶의 반대 개념으로 표
현이된 것입니다. 세상 욕심을 차리 는 것은 재림이 없는 사람들의 삶의 모 습입니다. 그러나 재림을 믿는 사람들 은 그 목표가 거룩과 경건이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을 닮아가 는 삶이요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 입니다. 마지막 날까지 남는 것은 세상 의 부요가 아닙니다. 인간적 성공이 아닙 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닮으려고 했 는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투명한 삶 을 살았는가 그것만이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림을 믿는 사람들은 주 님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입 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 라” 신자들은 주님의 날을 기다려야 합 니다. 우리는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 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 의 신앙생활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하나 님 나라에 대한 기대감이 없기 때문입 니다. 세월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 록 시간은 더 빨리 갑니다. 한 주 한 주 가 눈 깜박할 사이에 흘러가고 맙니 다. 2019년도도 이제 석 달 남짓밖에 남 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생 각해 보세요. 그때는 왜 그렇게 시간 이 안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빨리 나이 도 먹고 학교도 졸업하고 싶은데 한 주 가 그렇게 길었습니다. 한 달은 먼 훗 날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차이는 무 엇 때문에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기대 감의 차이입니다. 젊을 때는 기대가 많 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기다 릴 것이 너무 많아요. 소풍 하나만 기 다리는데도 몇 개월을 참습니다. 축구 공 하나 갖기 위해서 저는 1년을 기다 려왔습니다. 두발 자전거를 갖기 위해 서 3년을 기다렸습니다. 요즘도 아이들 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생일 파티입니 다. 자기 생일이 언제인지 아느냐고 확인 하고 또 확인합니다. 그날 무엇을 선물 로 줄 것인지 가족마다 개별적으로 딜 을 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무엇을 가지 고 올 것인지 아주 궁금해합니다. 이러
니까 시간이 안가는 것입니다. 기다릴 것 이 많으면 시간이 흐르는 것 같지 않습 니다. 주님의 날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기다리십시오. 그런 삶에는 기 대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의욕 이 생깁니다. 우리가 주님의 날을 사모하는 또 한 가 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해놓 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새것 에 대한 기대를 갖습니다. 집도 가능 하면 새로 지은 집을 좋아합니다. 차 도 중고보다는 새 차가 좋습니다. 우리 는 이 땅에서 80년 90년의 생애를 살 아갑니다. 그동안 많은 것이 고장이 납 니다. 몸도 연약해지지 않는 것이 없습 니다.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불편해지 는 것이 우리 몸입니다. 그러나 새 하 늘과 새 땅은 다릅니다. 그곳에는 죽음 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픈 것이 없는것 이 그 나라입니다. 더 이상 곡하는 것 이 없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 나 반드시 현실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 금도 목회 사역 가운데 절대 잊지 못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LA에 지역에 서 목회를 할 때 양로원 부흥회를 한 적 이 있습니다. 다섯 군데의 양로원을 하 루에 하나씩 5일 동안을 방문하면서 말 씀을 전했습니다. 그중 두 군데는 일 반 양로원이었습니다. 스스로 거동하 실 수 있는 분들이 모여 사시는곳입니 다. 나머지 세 군데는 양로병원이었습니 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고는 예배실 도 올 수 없는 분들입니다. 성경이나 찬 송을 볼 수 있는 분들도 아닙니다. 그 런데도 찬송가 가사들을 어떻게 그렇 게 잘 기억하시는지 모릅니다. 소리는 크 게 나오지 않아도 쉬지 않고 입을 움직 이시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양로원 부흥회를 오래전부터 기다 리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예배 중에 아멘소리는 제 가 설교를 할 때 들었던 가장 큰 소리 였습니다. 좋아할 일도, 기뻐할 일도 별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로 없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 는 그분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 습니다. 제가 평생 잊지 못하는 일은 바 로 설교후에 벌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 에도 연세가 많이 들으신 할머니 한 분 이 손을 들더니 특송을 하면 안 되겠 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왜 안 되겠습니 까? 얼른 나오시지요?” 옆에 있던 직원 이 그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단상 앞 으로 나왔습니다. 자기소개부터 하셨습 니다. 자기는 어느 교회 권사인데 지금 나이가 104살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 에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몸 이 움직이지 못하셔도 아주 정정하신 것 입니다. 104살 드신 권사님이 무슨 특송 을 하실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마이크 를 잡으시더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 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 나님의뜻이니라” 데살로니가 5장 말씀 을 또박또박 외우셨습니다. 저는 속으 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성경구 절을 외우시는 것이 권사님의 찬송이구 나!”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쩌렁쩌 렁한 목소리로“ 쨍하고 해뜰 날 돌아 온단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 다.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이 유 행가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노래가 끝나 고 난 다음에 권사님께 물었습니다. “ 왜 그 노래를 부르셨어요?” “응, 이제 주님 만나는 날이 내 인생이 다시 쨍 하고 해뜰 날이지. 나는 그날만 기다리 고 살아” 유행가를 기가 막히게 찬송 가로 바꾸신 분이었습니다. 오직 소망 을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두고 사 시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시 는 날을 소망하십니까? 이 세상 어떤 슬 픔도 아픔도 답답함도 이길 수 있는 힘 은 바로 그 소망에서 나올 것입니다. 오 늘 성령께서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며 살 아가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변화프로젝트
2022년 1월 13일
31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0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 훈련의 기도 프로젝트 둘째, 하나님이 구약시대에만 사람들에
회를 줄 것이다.
게 말씀하셨고 지금은 오직 성령으로만 말씀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자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라고 하는 설교를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 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과 대화 를 하신다. 하나님이 다양한 언어와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 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육성으로만 하나 님이 말씀한다고 생각하여 마음으로 하나 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많은 종 류의 언어를 통해 우리와 대화하신다. 그 래서 『네가지 음성: 악한 음성을 저지하 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 책은 하 나님이 어떻게 여러 가지 언어와 방법으 로 말씀하시는지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이해하는 것을 가르쳐준다. 하나님 의 말씀이 한 방법이고 또 꿈, 환상, 다른 사람들, 환경 등의 방법들이 있다. 마지막 으로 사람들이 분주한 삶 속에서 조용히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 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과 대화하며 음성을 듣는 영적 훈련이 필 요하다. 『네가지 음성: 악한 음성을 저지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 책에 서는 어떻게 하나님이 여러 방식으로 우리 에게 말씀하시는가를 알려준다.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그 즐거 움을 깨닫는 순간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 는 더 가까워지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기
것이라 생각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3.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이 해하려 한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자동응답기처럼 생각할 때: 어떤 기도는 일방적인 대화이다. 나 또한 이런 상태로 오래동안 지내왔다. 그러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하나 님께 감사드린다. *주님께 기대하는 것이 없을 때: 사람들 은 종종 주님께 듣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심에도 불구 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다. *자동판매기라는 착각: 몇몇 사람들은 하나님께 주문을 한다. 그들이 요청한 것 을 얻지 못할 때 그들은 하나님께 화를 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정하 는 사람들도 있다. *작은 일들에는 하나님이 귀 기울이시 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몇몇 사람은 하나 님이 하찮은 것들은 듣지 않는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아무것도 간구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소통을 하지 않는다. 그 들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어떻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지를 이해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을
준다.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
때문이라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
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오사
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
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자는
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야고
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
보서 4:3~4).
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
*관계를 잘못 이해할 때: 사람들은 하
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
나님이 신구약이 쓰여진 시대에만 말씀하
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의 공
셨고, 지금 우리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을
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
로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이라 약속하
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시편 50:1~7).
셨다.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
*우리가 죄악의 삶을 살때: 주님은 우
시며 위안을 주신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
리가 회개하고 삶을 깨끗하게 하기 전까지
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 기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
도하고 간구하며 회개하는 겸손한 자들에
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
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실 것이다. “내 이름
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
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
16:13~14).
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방법
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
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이미 많은
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언어들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사람
역대하 7:14~15).
들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할 수도
*잘못된 것들을 간구할때: 성경말씀은
있다. 하나님의 많은 언어를 이해하기 위
우리가 죄악의 욕구에 따라 기도할 때, 응
해선 『네가지 음성: 악한 음성을 저지하
답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구하여도
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 책을 읽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을 것을 권한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2년 1월 13일
26
하나님의 선물 1 - 함께 전병욱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선물 좋아하십니까? 선물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물은 그저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 함께 계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도 선물 좋아합니다. 예전 어릴적 새로 학원을 등록하니 선물이라고 하면서 가방 하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선물 중 첫 번째 선물은 바로 “함께”입니다.
새로 등록한 학생에게 주는 일종의 웰컴 패키지입니다.
한자로 사람 인(人) 이라는 문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을
가방 안에 내용물을 보니 사탕, 과자, 필통, 공책 등 여러 가지 선물들이 있었습니다.
형상화 한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학원에 등록해서 배울 것도 기뻤지만 그땐 그 선물 받은 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힘들어도 고단해도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더 든든하고 기뻤습니다. 교도소에서도 독방이 가장 큰 벌을 주는 것이고, 멀쩡한 사람도 한순간에 그땐 그냥 좋다고 받아서 먹고, 잘 사용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물을
무너뜨리는 생각도 바로 “내가 홀로 버려져 있다”라는 생각입니다.
준비하신 분들이 새로 등록한 친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없고 나 혼자라는 생각이 우리의 삶에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고민고민하면서 고른 선물은 하나도 버릴 것이
얼마나 위험한 사단의 유혹이고 공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없겠지요. 제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그냥 대충 준비한 선물이 아니라 정성이 들어간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혼자 있을지라도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사는 사람은 다른 인생을 살아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 그냥 부르시지
어떤 어려움 가운데 나 홀로 있어도 내 가족이 있고,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웰컴 패키지 선물상자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 웰컴 패키지는
누군가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받는 선물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물을 그냥 급하게 준비하신 것이 아니라
그런데 내가 함께하시는 분이 일반 사람이 아닌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고민고민을 하셔서 준비해주셨고, 이 웰컴 패키지 만으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인생은 어떠할까요?
이 세상을 승리하고 또 하늘나라의 복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바라보고, 죽음 가운데서도 생명을 바라보는 복의 인생을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는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함께”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바로 이 선물을 받았고 또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세상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선물이고 복이라는 사실을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말씀이 하나님이고 그가 태초에 하나님
기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복음으로 살아보기
27
2022년 1월 13일
무엇을 구하느냐 ? 손재흥 목사 덴버에덴교회 “무엇을 구하느냐?”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한 말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
지난 주간에 새벽기도회를 위해 요
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것 역시
린 양이시다. 우리는 오직 세상 죄를
한복음 1장 말씀을 묵상하다가 주목
그들의 궁극적 관심이 하나님을 향해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
하게 된 예수님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 그들은
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으로
1장 35절부터 38절에 보면, 세례 요
무엇을 구하기 위해 그토록 하나님을
부터의 구원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한은 그의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섰다
찾고 있었을까?
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보라 하
또한 요한복음 1장 32절부터 34절에
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하였고,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예수님의
그의 두 제자는 그 말을 듣고 예수를
이 질문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려 했
따랐다. 그런데 그 때 예수께서는 돌
던 그 두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지금
이켜 그들이 따르는 것을 보시고 이렇
이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우리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
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내가 예수님을
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구하느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
을 할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그리
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
스도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
“무엇을 구하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기 록된 예수님의 말씀 중 첫 번째 말씀 이다.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려 는 그 두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느 냐”고 물으셨을까?
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였다.
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 를 따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 언하였노라 하니라”
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따르는 그리 그 두 사람은 원래 세례 요한을 따 르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다. 그들
스도 예수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세례 요한을 따랐다는 것은, 그들이
세례 요한이 증언한 대로, 예수 그 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시다.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럼,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선생인 세례 요한이,
라고 하였다. 세례 요한이 증언한 대
서,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의
예수님이 거니시는 것을 보고 “보라
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 양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구하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 마음에는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행위를 하는 자에게 내가 그옳게 걸음에 실족함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없으리로다 (시 50:23) 37:31)
또나는 무엇을 말에나 너를하든지 애굽 땅에서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고 그를 힘입어 네 하나님이니 하나님 아버지께 네 입을 넓게감사하라 열라 (골 3:17) 내가 채우리라 (시 81:10)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희롱의 마땅치 아니하니 평강에말이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돌이켜이는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가 주를 (엡 5:4) 의뢰함이니이다 (사 26:3)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제공: 김성애 성도 제공: 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 답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과 자유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 스도 예수를 따르고 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 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 고 자유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 스도 예수는 우리가 따르는 우리의 유 일한 구주이시다. 또한,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 곧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 데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고 있 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이 신 성령을 줄 수 없기에, 그리스도 예 수는 우리가 따르는 우리의 유일한 구 주이시다.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 무 엇을 구하며 살아야 할까?
그 너희가 날에 너희가 또 거하고 말하기를 내 안에 여호와께 이름을 내 말이감사하라 너희 안에그거하면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구하라 중에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사 (요 12:4) 15:7)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제공: 김성애 성도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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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3일
살아있는 신앙은 움직인다 교회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움직이는 교회가 진짜 교회다.
주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시는데
안된다고 어렵다고만 말만 하지 말고 목숨 걸고 기도해 보라.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모든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인간은 본시 흙이다. 흙에는 생명이 없고 지혜도 없으나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비로소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신앙은 움직인다. 활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
인간은 그 키가 자라면서 지혜도 자란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도 그 키가 자라며 지혜가 자랐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죽을 만치 목숨 걸고 순종해 본 적이 있었는가? 과연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다 힘들어 지쳐서 쓰러져 본 적이 있는가?
살아 있는 것은 자라게 되어 있다. 자라지 못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고 문제가 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비록 폭포수 같은 물줄기 일지라도 거슬러 올라가지만 죽은 물고기는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죽은 신앙 역시 세상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주를 위하여 조금 일을 하고 서는 힘들다고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을 모두 받은 것이다. 자신의 생계를 위하여는 그렇게 힘들어도 참으면서 교회에서 조그마한 봉사만 하여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섭섭 마귀를 내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제어하여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영원히 하나님 앞에 쌓여서 결산의 때를 위하여 심판을 기다린다. 진짜 신자는 자신이 한 일을 결코 자랑하지 않으며 오른손이 한 것 왼손도 모르게 하려고 애를 쓴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도 처음 믿을 때 보다 그 믿음이 식어 있다면 이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 믿음은 자라야 한다. 자라서 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늘 거역하고 언제나 하나님이 아닌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사는 인생은 마귀의 종이지 하나님의 종은 아니다.
평생 전도 한번 안 하면서 교회의 직분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반드시 해명해야 할 날이 이를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시는데 왜 나는 주님의 편에서 살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신앙에 성장이 없어서이다. 자라지 않는 어린 신앙의 영적 기형아이기 때문이다.
목사 장로 집사라는 직분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잘 감당하면 상급이 있지만 감당하지 못하면 정녕 그에 따른 책망도 따른다.
주님의 편에서 살지 못하는 자가 마귀에 속한 자요 영적인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는 영적 기형아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말을 들을 것인가? 자신이 하기에 달려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주의 일을 할 것이요 언제나 주님의 편에 서서 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만히 있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조용히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온전한 신앙은 살아서 숨을 쉬며 "죽도록 충성”을 가슴에 달고 온갖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주님은 나의 편이신데 나는 마귀와 동고동락하는 삶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면 그가 곧 가룟유다요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간 데마와 같은 자다. 그러므로 자라지 않는 신앙을 그대로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필경 이런 자들은 망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말로만 신자는 신자가 아니다.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삶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진짜 성도요 그리스도의 제자다.☆자료/ⓒ창골산 봉서방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8)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 22:13)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할렐루야교회
글: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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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사 42:9) 제공: 김정애 권사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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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3일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한 핵심 포인트 글: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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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한 핵심 포인트는 나의 신앙을 날마다 체크하는 것이다. 전깃줄이 끊어지면 전기를 공급받을 수 없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느슨하거나 끊어지면 신앙에 문제가 생긴다.
왜 가만히 앉아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만 하는가? 늘 생각만 하고 묵상만 해서는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다. 죄와 싸워야 한다. 마음은 영적 전쟁터다. 전쟁터에서 가만히 있다는 것은 죽음을 말한다. 말씀을 묵상만 하고 실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 죽은 신앙이다.
나의 삶이 저절로 나의 노력 덕분에 되는 것 같아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에 직면하게 된다.
기도하듯 생각하고 기도하며 행동하고 기도하듯 내 입술과 영혼을 관리해야 한다.
나를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훈련 시키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삶에 개입하신다. 주님이 나를 떠나 방치하게 되면 그때부터 나는 마귀의 종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게 된다.
성령의 임재가 없는 삶을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시는 성령이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도록 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마귀가 개입하게 되면 죄를 짓는 일이 습관이 되어 오히려 그것이 편안해지고 거기서 안정감을 얻지만 이는 거짓 평화요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현재의 고난은 나를 나 되게 만들기 위함이다. 내 앞에 가나안 땅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바로왕 같은 거친 돌이 있다면 이는 하나님이 나를 모세처럼 위대한 자로 쓰시기 위함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신앙에서 떨어진 자에게는 마귀도 내버려 둔다는 말이 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온갖 어려움이 오게 되는데 이는 마귀가 발악하며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긴장하고 깨어 있어서 거룩한 영성 가운데 거해야 한다. 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죄를 짓는 것일까?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내 속에 성령 충만함이 없어지고 내 영혼이 메말라 가는 것을 왜 슬퍼하지 않으며 가슴 아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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