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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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

제 12권 2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2년 1월 27일 발행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

But for you who revere my name, the sun of righteousness will rise with healing in its rays. And you will go out and frolic like well-fed calves. (Malachi 4:2)


목차

2022년 1월 27일

목차 교계소식 새해 기도시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은혜의 샘터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선교사들 이야기 좁은 길을 걸으며 베드로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크리스찬 베이직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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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M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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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1월 4월 27일 22일 2022년

홍해선교회 아랍어 무료 강좌 안내

빛과소금뉴스 인터넷신문

2022년 2월 6일-4월 24일 오후 6-8 (매 주일)

2022년부터 인터넷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홍해선교회 MMITA 전문인 선교사 훈련원에서 아래와 같이 아랍 어 무료 강좌를 실시한다. 초급, 중급, 고급반 12주 동안 진행되는 아랍어 강좌는 무료이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을 참조하면 된다. ●일시: 2022년 2월 6일-4월 24일(매 주일) 오후 6-8시 ●강사: Ayman Armanious ●장소: 믿음장로교회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지원일: 2022년 1월 20일까지 ●수업료: 무료 ●문의: (303) 669-1001, (303) 960-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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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는 그동안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병행해 왔는데, 새해부터는 모든 사역을 디지털 체제로 바꾼다. 그동안 종이 신문 애독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 을 부탁드린다. ●인터넷으로 빛과소금뉴스를 읽는 방법: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빛과소금뉴스' 혹은 ‘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로 검색하면 된다. ●문의: thelightandsa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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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기도시

2022년 1월 27일

새해를 여는 기도

새해를 맞으며 바치는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시작이요 마침이신 예수님,

기적처럼 밝아온 새해 아침에 주님의 이름을 높여 기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말갛게 씻은 듯 곱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우리는 새 삶을 다짐했습니다.

저희가 지은 죄를 모두 용서하시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섬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어

이런 우리의 소망이 물거품처럼 쓰러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새해에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올 일 년 내내 주님의 환한 얼굴을 대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맡은 책임을 다하여

이따금 비틀거려도 이내 중심을 잡고 일어서는 팽이처럼,

가정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어려움 속에서도 기어코 몸을 일으켜 주님의 마음에 잇댄 채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또한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께 바치오니

이 척박한 인간의 대지 위에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하느님의 영광과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가 평화와 입을 맞추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도와주소서.

땀 흘리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절망의 어둠이 우리를 뒤덮지 못하도록 우리의 영원한 빛이 되어주십시오.

(작자 미상)

아멘. (김기석·청파감리교회 목사, 1957-)

새해에는

새해에는 꽃이 벙그는 이유와 꽃이 아름다운 사연을 오래 얘기할 수 있게 하소서.

오래 전에 잊혀진 슬픔을 위해서도 가끔씩은 목젖이 아프도록 울게 하시고 질감 좋은 색조로 새벽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이 땅 위에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들과 모국어의 향기를 같이 누릴 수 있게 하시고 바퀴벌레와 모기, 개미와 같은 하찮은 생명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소서. 눈들어 보이는 것마다 우리들의 첫사랑임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되 길 위에서 서성이는 생각들로 하여 오래 마음 아프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들의 그리움은 올해도 끝이 없을 것이므로 따뜻한 위로의 말을 배우게 하시고 정녕 사랑으로 하여 고통받지 않게 하소서. 밤을 새워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므로

마른 들판을 건너 온 겨울바람에도 향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쓸쓸한 등을 보이며 흐르는 저녁강이 깊은 바다와도 만나게 하소서. 따뜻한 한 그릇의 시와 포옹하며 뒹굴게 하시고 사랑하는 여인이 단단한 꽃으로 그 자리에 오래 피어있게 하소서 이름 모를 늙은 가수의 느끼한 랩송마저도 사랑하게 하시고 함께 청청한 목소리로 노래하게 하소서. 얇은 월급봉투라도 좋으니 그로 하여 기죽지 않게 하시고 작은 베풂으로 인하여 오히려 빛이 나지 않도록 하소서. 무엇보다 마음살에 돋아나는 욕심의 잔을 비우게 하소서. 주님 !

미움, 시기, 욕심, 절망, 분노와 같은 좋지 않은 생각들은 잠시 잊게 하시고 희망, 따뜻함, 파아란 하늘과 같은 마음에 와 닿는 단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양현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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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기도시

2022년 1월 27일

한 해의 기도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 동안 쌓인 추한 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8월에는 내 마음에 쉼을 주시옵소서 건강을 지키고 나와 남을 여유 있게 볼 수 있는 쉼을 갖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9월에는 내 마음이 평화를 느끼게 하소서 마음의 평화는

3월에는 내 마음에 믿음이 찾아오게 하소서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짐으로 삶에 대한 기쁨과 확신이 있게 하소서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4월에는 내 마음이 성실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작은 일 작은 한 시간이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기회임을 알게 하소서

10월에는

5월에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설레게 하소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은 사랑 안에 있음을 알고 사랑으로 가슴이 물들게 하소서

11월에는

내가 성숙할 때 함께 자라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내 마음이 은혜를 알게 하소서 나의 오늘이 있게 한 모든 이들의 은혜가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소서

내 마음이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아직도 남아 있는 욕심과 미움과 갈등을 버리고 빈 마음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게 하소서

6월에는 내 마음이 겸손하게 하소서 남을 귀히 여기고 자랑과 교만에서 내 마음이 멀어지게 하소서 7월에는 내 마음이 인내의 가치를 알게 하소서 어려움을 참고 오랜 기다림이 없는 열매는 좋은 열매가 아님을 알게 하소서

12월에는 내 마음에 감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계획한 일을 이루었던 이루지 못했던 지난 한 해의 모든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이해인·수녀 시인,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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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기도시

2022년 1월 27일

새해 0시 기도 새해에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내 밖의 모든 인연에 대하여 따뜻하고 안온함으로 만나지게 하소서. 아침밥을 떠 넣는 연명이 내 부실을 부채질하지 않도록 모든 기관의 건강을 도모하며 활력이 넘치고 순조롭게 하소서. 어제 보았던 사람의 낯빛이 환하고 다시 만날 수 있어 고마운, 문을 열면 마주치는 사람들과 나보다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이웃으로 머물게 하소서. 현관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다시 꿰고 나설 수 있음에 감사하며 돌아와 안기는 울타리 안의 따뜻한 온기가 영원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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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의 기도 생명과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새해 첫 출발 주의 전에서 주님과 함께 시작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주옵소서. 하루하루의 삶을 간섭하여 주옵소서. 어떤 역경과 위기가 닥쳐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음을 압니다. 고집과 교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무능과 유한함을 알고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소서. 마음, 생각, 생활에서 송구영신이 일어나게 하소서. 지난 날 잘못된 습관과 이기심을 버리게 하소서. 주여, 당신의 강하신 손에 모든 문제를 맡기오니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소서. 주의 은혜로 복이 임하게 하소서. 주의 평화로 다스려 주소서, 주님...! (명위식·목사 시인, 충남 청양 출생)

햇살과 바람, 공기와 물, 이 소중한 것들과 풀뿌리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사랑이 깃들어 살아가는 모두가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출처: joungul.co.kr

새해 내 소망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영광이 내리고 땅으로 스며 환희로 솟구쳐서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올 한해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감사의 날이 되게 하시고 평화롭고 복된 한해가 되게 하소서. (김설하·시인)

덴버할렐루야교회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해”

예배 안내

교회비전

Denver Hallelujah Church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담임목사 김창훈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신앙 칼럼

2022년 1월 27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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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해야 하는 이유 발행인 최성애 권사

“순종”(obedience)이란 단어가 생소해지는 세대이다. 근래에 들어본 적도, 스스로도 별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유치원에서 안전교육을 실시해도, “Teacher, Why do I listen to you?”라고 반문한다.

불순종의 대가는 혹독했다.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에덴동산에서 각종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며 안락한 삶을 누렸을 텐데, 결국은 첫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사건도 겪으며, 인생사 고난의 여정을 걷게 된다.

“순종”이라는 말 자체가, 다분히 거부감을 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자유의지 대신 억압받는 것 같고, 구속받는 것 같아 받아들이기에 유쾌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수용하기보다는 일단은 불쾌한 감정이 앞서는지도 모르겠다.

노아의 시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기에 이르신다.

어른들에게도“순종”은 썩 마음에 드는 단어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오죽하면 매일 수십만 명의 확신자가 쏟아져 나오는 위급한 팬데믹 가운데서도 백신접종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나라의 정책에 어떤 이들은 백신 거부로 완강히 맞서고 있고, 백신 회의론자는 부작용을 염려하여, 또 어떤 이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접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결코 구약시대보다 낫다고 말할 형편이 아니다. 지금은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 곧 불순종의 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목숨이 정치나, 개인의 신념이나 두려움보다 중요하지 않다. 백신접종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나라와 인류를 위하여 선택하여야 하는 개인의 책임과 의무이다. 진정한 자유와 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영적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악한 영과의 싸움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기에는 이르다.

성경의 시작, 하나님의 천지창조 후 곧바로 창세기 3장부터 불순종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의 원죄는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첫 사람, 아담은 결국 이브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금단의 열매를 취한다. 교만에서 비롯된 그들의 불순종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남자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게 되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에게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십자가의 보혈이 있다.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악의 세력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으로 승리하는 독자 여러분이 되길 기원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은혜의 방패가 호위하는 교회”(시 5:12)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2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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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은혜 시리즈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만남 <요한복음 3:1-12> 최요한 목사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지 식인으로 뛰어난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과 궁금한 점들이 많아 자주 불안하였습니 다. 그는 또한 유명한 정치인으로 권세가 있는 국회의원이었지만 만족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에 대 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예배와 기도 생활 에 성실하며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다람쥐 쳇 바뀌기 돌리듯이 반복 되는 종교 생활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든 중에 어느날 그는 자 신과 상대가 안 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소문이 듣습니다. 그 사람은 촌 동네 출 신, 목수의 아들, 반반한 직업도 없고 정 규 교육도 못 받은 무식쟁이, 그런데 그 는 뭔가 달랐습니다. 매우 특별했습니다. 어느날 그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왔 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당장에 그에게 달려가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까지 자신이 쌓아올린 신분과 지위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였습 니다. 체면이 서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하 다가 늦은 밤 시간을 선택합니다. 아무에 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조용히 만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2000여 년 전 유대땅에 살았던 니고 데모입니다. 그리고 네고데모, 그가 만나 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만남입니다.

1. 그들의 만남은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 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 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절) 여기 2절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

생’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표적을 행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하나 님과 관련하여 두 번씩이나 말하고 있 습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렇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 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나사렛 예수, 이 분이 과연 누구시란 말인가?” “우리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 구약의 선지자들이 약속했던 그 리스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이 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고민을 합니다. 니고데모의 고민 또는 그의 질문에 대 하여 저는 미국의 헨리 비이쳐 목사는 다음과 같은 신앙 고백으로 예수님의 정 체성을 소개합니다. “소크라테스는 40년간 가르쳤고, 플 라톤은 50년간 가르쳤으며, 아리스토 텔레스는 40년을 가르쳤다. 그러나 예 수님은 오직 3년간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 3년은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한 인물 들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가 가르친 130년의 영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은 그림을 그 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라파엘, 미켈란 젤로, 그리고 레오나드 다빈치가 예수 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예수님은 시를 쓰지 않으셨다. 그러나 단테, 밀톤 등 세계적으로 위대한 수많은 시인들 이 그분을 통해서 영향을 받았다. 예수 님은 노래를 만들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이든, 헨델, 베토벤, 바하 그리고 멘 델스죤이 그분을 찬양하였다. 세상의 모든 영역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풍 요로워졌다. 그분이다. 오직 그분은 하 나님이시다. 하나님, 오직 그분!” 베드로는 “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 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 16:16) ”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의심이 많아 믿 지 못하였던 도마, 그가 확신 속에 외 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 20:28) 그 예수님이 기독교를 만드신 창시자가 아닙니다. 종교 지도자로 거룩한 사람, 인 간으로 착하고 훌륭한 선생님 정도가 아 닙니다. 그분은 살아 계신 성자 하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2. 그들의 만남은 하늘의 (지혜)와 세상의 지식과의 만남입니다. 2절에서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 나님께로서 오신 랍비’불렀습니다. 10절 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선 생’이라고 불렀습니다. 니고데모와 예수 님, 두 선생님들의 만남입니다. 두 선생님 들 사이의 대화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 람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니 고데모는 땅의 지식을 가르치지만, 예수 님은 하늘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니고 데모는 잠시 있을 땅의 것들에 가르치지 만 예수님은 영원한 것을 말씀하고 있었 습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질문만 던집니다. 4절, “사람이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 었는데 어머니 몸속에 들어가서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 9절,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예수님은 5절에서 두 가지로 대답하 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 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 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1) 물로 거듭남 에베소서 5:26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 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물을 말씀으

섬김의 교회

로 비유합니다. 물에 생명력이 있습니다. 모든 생물이 자라는데 물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을 살리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또 시편 19:7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 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reviving)…”라 고 말씀합니다. ‘소생’이란 단어는 영어의 동사형으 로‘to regenerate energy’, ‘to live again’또는 ‘to regain life’라는 뜻 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고 활동하게 하는 생명의 말씀과 새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죽은 영혼을 다시 살 립니다. 죽은 영혼이 소생을 하며 삶이 회복됩니다. 듣는 자의 인생이 새롭게 됩 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라 그가 하시는 모든 말씀도 살아있고 생명의 역 사가 일어납니다.

2) 성령님으로 거듭남 애완용인 고양이가 아무리 운동을 많 이 하고 훈련을 받아도 호랑이처럼 강해 질 수 없습니다. 개가 아무리 많이 먹어 도 곰처럼 클 수 없습니다. 개는 개고, 고 양이는 고양이 일뿐입니다. 개가 곰이 되 거나 고양이가 호랑이가 될 수 없습니다. 사자가 되려면 사자로, 호랑이는 호랑이 로 태어나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 의 백성이 되는 방법은 이스라엘 사람으 로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 령님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인으로 완벽한 니고 데모도 거듭나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납니 다. 또 하나의 출생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출생입니다. 예수님을 그것을 다 시 태어남, 거듭남 또는 중생(regenera-


강단 설교 tion)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는 한번 태어났습니까? 아 니면 두 번 태어났습니까? 우리의 첫 번 째인 몸의 출생 후에 두 번째의 영의 출 생이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한번 태 어났다고 하면 우리는 두 번의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 태어났다 면 육신의 죽음뿐 즉, 한번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들이 살아계실 때 에 재림의 주님이 오신다면 첫 번째 몸 의 죽음마저도 없는 영생의 삶을 영원히 누리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3. 그들의 만남은 생명과 종교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다시 태어나야만 한 다.”라는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이 말씀을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는 자

녀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게 하셨습니까? 감옥에 있는 강도, 성폭력자, 창녀, 살인자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니고데 모에게 “ 너야! 잘나고 배웠고, 능력이 있 고 종교의 이름으로 거룩한 니고네모, 네 가 다시 태어나고 변해야 한단다.”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은 달라져야 돼. 이웃에 사는 그 사람, 직 장의 co -worker, 나의 아버지, 나의 배 우자, 나의 아들…” 그러나 이렇게 확신 합니다. “나 정도만 해봐, 나 정도로 착하 고, 돈을 잘 벌고, 머리도 좋고. 열심히 살 고…”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자이시며 생명의 주인이 보 실 때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 (요한 6:63) 먼저, “육은 무익하니라.”입니다. 영어로 “the flesh counts for nothing”입니 다. 네, 몸을 가진 우리에게 돈, 지식, 명예 권력들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무시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것들이 나쁜 것 이라면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주셨고 우 리에게 누리고 하셨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산다면 결국은 ‘nothing’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성령님으 로부터 다시 태어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2022년 1월 27일

요즈음 한국에서는 시골에 사시는 할아 버지와 할머니께서 영어를 공부하신다고 합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영어를 배우는 데 무척 어려운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 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두 분이 의논을 하고 집에서도 영어를 사용하자고 약속을 하셨답니다.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집에 계신 할머니 가 물었습니다. “후(why)고?” 경상도 출 신인 할머니의 사투리인 ‘누구고?’가 영 어인 ‘who’와 합쳐져 ‘후고’가 되었습 니다. 할머니의 음성을 듣고 전라도에서 태 어나신 할아버지가 ‘me 랑께.’라고 대답 을 하셨습니다. 누가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는 “me 랑께” 바로 저, 그 리고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3장에서 슬그머니 사 라집니다. 섭섭하게도 예수님과 작별의 인 사도 없이 헤어지고 다시 나타나지 않습 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에 그가 불쑥 등장합니다. 그 자리에서 유대 지도자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의논할 때였 습니다. 니고데모도 지도자 중에 한 사람 으로 그들과 같이 있다가 이렇게 예수님 을 변호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요한 7:50-51) 그리고 니고데모가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9장의 등장을 합니다. “일찍 예수께 밤 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요19:39) 여기 니고데모는 살아있는 예수님이 아 니라 죽으신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 다. 그분의 장례를 위해서입니다. 지난 3장과 전혀 다른 니고데모가 아 닙니까?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다 숨 고 도망을 갔는데 그가 담대히 그 자리 에 나섰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은 물론이 요, 생명도 잃을 수 있는데 coming out 을 한 것이죠. 왜요? 예수님을 만 난후에 그분이 말씀 하신 성령님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 아 닐까요? 성경은 그가 언제 거듭났는지 우 리에게 알려주지 않지만 그가 예수님의 제 자가 되었습니다. 니고데모가 물 즉, 예수 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님으로 다시 태어나

고 새사람이 된 증거가 아닙니까? 영국의 천재 교수이며 세계적으로 유 명한 작가였던 씨 에스 루이스라는 사람 이 이었습니다. 그가 쓴 ‘단순한 기독 교’(Mere Christianity)라는 책이 있는데 그의 책을 통해서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 짓말쟁이, 미치광이 또는 하나님이신가?”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거짓말쟁이, 미치광이 또는 하나님 자 신 중에 한분이라고 가정을 합니다. 1) 만약에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라면? 만약에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라면,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 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셨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고 그분을 죽인 원수들조차 예 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을 찾지 못하였습 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라면 십 자가에서 만큼은 그 분의 말을 바꾸셔야 했습니다. 일단은 죽지 않고 살아야죠. 거 짓을 위해서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을 여전히 ‘아버지’로 부릅니다.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 지 못함이니이다…” (누가 23:34)

만약에 그가 거짓말쟁이 이었다면 십자 가 위에서라도 “미안합니다. 내가 거짓말 을 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 다. 라는 말을 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 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이 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 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이 미치광이었다면? 만약에 그분이 진짜 정신병자라면, 스스 로 하나님이라고 주장 할 수 있습니다. 정 신이 정상적이 아닌 사람이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진짜 정신병자 라면 그의 말이 오락가락 또는 왔다갔다 예수님 자신이 헷갈렸을 거예요. 그러나 그 분이 정말 미치광이였다면 유대 지도자들 이 그를 만나고 더구나 로마총독이 그분 을 상대하고 십자가에 죽였을까요? 예수님 이 미친 사람이라면 원수들이 그를 미워 하거나 십자가에 죽일 가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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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이 어리석은 자였다면? 세 사람이 서로 잘났다고 싸웠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는 세례 요한이다” 라고 우겼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그래, 네가 세례 요한이면, 나는 예 수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 이 그 말을 듣고 말합니다. “나는 너 같 은 아들을 둔 적이 없다.” 자신이 하나님 이라는 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세례 요한, 예수님 또는 하나 님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런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최고의 학자들과 논쟁 을 하면서 그들의 입을 닫게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며 진리 를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12명의 제자 들, 70명의 또 다른 제자들, 때로는 수백 명, 수천 명이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에 그리스도인의 인구는 무려 22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33% 입니다. 이슬 람이나 힌두교 불교도 있지만, 그들은 지 역적이거나 대륙을 벗어나지 않고 오직 우 리 기독교만 가장 크고 넓게 펴져 예수님 과 복음을 믿습니다. 씨 에스 루이스는 예수님은 거짓말쟁이 도 아니고 미친 사람도 아니고 바보는 더 욱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며 이렇게 이렇 게 결론을 짓습니다. “나는 그분이 하나 님이셨고 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받 아 드려야만 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최고 지성인, 기쁨을 모르고 눈물도 없었 던 냉랭한 가슴의 소유자, 친구도 제자도 없었던 고독한 천재, 그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 와 주님으로 그분을 하나님으로 받아드립 니다. 성령님으로 다시 태어나는 씨 에스 루이스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니고데모, 그는 2000년 전에만 살고 있 지 않습니다.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이곳 콜로 라도 덴버에 있습니다. 그가 이 자리에 있 는 나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입니다. 니고 데모를 변화시킨 예수님, 씨에스 루이스에 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게 하 신 주님, 성령님, 나를 채워주소서, 부수소 서. 녹이소서. 나를 변화시켜 새로운 인생 을 살게 하소서.


내면을 향한 여정

2022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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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실제로 걸어가는 길 사도행전 Acts 2:25-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28) ........................................................................................ 예수께서는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보여 주셨을뿐아니라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는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라고 다윗은 시16:8에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은, 생명의 길이란 바라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걸어갈 때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14:6). 예수님의 말씀은 다시 살아남의 삶을 따라 철저하게 생명이신 예수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부활의 예수와 동행을 하면 매일 매 순간 다시 살아남이 체험될 수 있습니다. 씨앗 한 알을 땅에 심으면 심는 대로 다시 살아남의 은총이 주어지듯이 우리의 삶에 심고, 자라고 열매를 맺어 나누게 되면 백배도 넘는 다시 살아남의 은총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생명의 길은 아무리 험준할지라도 기쁘고 즐겁게 노래하며 가는 길입니다. 진정으로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나는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쁨의 노래를 불러 보십시오(찬436장). 예수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은 몸이라면 옛 것은 다 버리고 새 사람으로 영생을 누리며 오늘도 내일도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누리셔야 합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Hebrews 12:12-14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12-13) ........................................................................................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므로 훈계하듯,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신다”(6). 그래서 징계를 받고 채찍질 당하였기에 손에 힘이 없고 무릎에 힘을 잃어 주저 앉은 상태인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렵고 힘겨운 일을 당하게 되면 힘을 잃게 됩니다. 마치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한 판 승부를 걸고 그들을 물리친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에 광야로 도망을 쳐졌던 것처럼(열왕상19:4), 우리는 누구나 이처럼 주저 앉게 되는 법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절망하면 힘을 잃고 주저 앉게 되지만,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있다면 자기 스스로 일으켜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울퉁불퉁한 땅이라 할지라도 평탄한 길을 원한다면 높은 곳은 낮아지게 낮은 곳은 높아지게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 환경과 처지를 바꾸어 주길 기다리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에 어떤 도움도 되지를 않습니다. 펜데믹 사태 속에서 점점 움추러들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불어 화평을 이루며 거룩함을 따르는 일은 나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ooreekmc@hanmail.net>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5)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2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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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자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새사람으로

께서도 바울을 그의 그릇으로 변화와 변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변화가 되고 장성하고 성숙하여야 하나님

형을 시켜서는 죽도록 충성하게 하셨다.

멸망하게 되고 모든 육신은 노쇠하고 죽

의 창조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과 신앙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랑하고

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얻는 것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

구하고 가까이 하고 동업하고 동행하기를

이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

나인 암세포가 발생하고 번식하기도 한다.

령님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권세와 진리가

행운과 영광으로 여겨야 잘하는 것이다.

다 더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구원은 지옥

세포가 많은 동물일수록 세포 분열은 더

영벌을 모면하고 천국영생복락을 얻는 것

많이 발생하기에, 변이세포들도 더 많이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들에게 그의

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한 매일 구사일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보다 세포가

권세를 주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

생하는 기적의 기쁨과 매일 더가짐의 인

수 백 배 더 많은 코끼리는 암이 발생하는

성령님의 감화감동하심과 인도하심이 필

들은 귀신을 내쫓아 내고 병자들을 치료

생을 사는 기적의 행복함에 감사하고 하

비율은 단지 17% 이고, 사람보다 세포가

요하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도하고 대

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였다. 그리

나님과 예수님께 송축하고 영광을 돌리는

삼 천 배가 더 많은 대왕 고래는 암이 발

화를 한 제자들과 예수님의 손과 허리에

고 사단의 권세는 땅에 떨어졌다. 또한 그

것이 합당하다.

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러한

난 상처를 만져 보았던 도마도, 성령님을

들의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

체험하고는 마침내 죽도록 주께 충성을 하

다. 그것은 천하를 소유한 것보다 더 큰 성

였다. 성령님은 믿음, 지혜와 지식과 분별

공과 승리와 행복과 영광인 것이다.

충만하여야 하고 천국영생복락의 기쁨을 매사에 느끼면서 처신하는 것이 필수이다.

과 방언과 통변과 예언과 능력과 치유의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동물들에게는 암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발 인생과 일과 신앙생활과 신앙의 경주와

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도, 즐

영적싸움은 쉽지 않을 뿐더러, 악한 자들

겁고 선하게 처신하여서 세라토닌, 엔돌핀,

의 시험과 충동과 미혹과 훼방과 핍박으

엔도엔자임 등의 좋은 호르몬이 발생할 때

은사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희락

진리는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함을 믿어

로부터 자유할 수가 없다. 사전에서는, 자

에는 세포를 보호하고 면역체를 보강하여

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오래참음과 충

야 한다. 신앙의 경주와 영적싸움이 날로

유는 운행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고 있

서 질병과 고통을 현저하게 줄이고, 몸에

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들을 가지고 있

빈번하게 발생하는 때이니, 진리를 방패와

다. 그런데 성경적으로는, 자유는 심령과

해로운 코올티졸,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

는 보혜사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좇는

무기로 사용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병기나

신앙의 산소이고 영생으로의 에너지인 것

을 줄여서 건강할 수가 있다. 또한 장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

영적인 병기가 부족하거나 없다면, 어떻게

이다.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할 때에, 비로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셨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구하고 동업하고

영적인 싸움을 할 수가 있는가? 연료가 없

소 신앙의 경주자와 주의 군사와 빛의 자

선하고 부지런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은

동행하면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

는 차량과 탱크와 비행기와 군함은 고철뿐

녀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처신하면서 사람

혜롭게 처신하면서 미움과 분노와 언쟁과

을 이루는 것이 새사람다운 것이다.

이고, 탄약이 없는 무기도 그러하며, 군인

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다. 그

비난과 죄악을 금하는 사람들이다.

들은 적군의 쉬운 표적이 될 뿐이다. 그와

리고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나님의 분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손가락으로

같이, 신앙과 구원을 사수하고 세상에 끼

요 주의 그릇과 일꾼과 친구와 군사와 형

아무쪼록,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과 진

온갖 별들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운행하시

치기 위하여서도, 하나님의 병기나 영적인

제자매로서 합당하며 하나님의 찬송과 영

리를 믿는 자로서, 천국시민으로서의 자유

는 분이시다. 그의 손은 연약한 사람들을

무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광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를 합당하게 사용하여서, 천지와 인류에

붙잡아 강건케 하신다. 흙으로 사람을 창

유익하고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이루고

조하시기도 하시고 보배로운 예술품을 만

또한, 천국영생복락을 얻는 것은 부귀

동물의 세포는 약 15분마다 이분열을 하

드시기도 하시는 토기장이이시다. 예수님

영화권세를 얻는 것보다 더 큰 기쁨으로

면서 생존한다. 그러면서 변이종 중의 하

천국영생복락상급의 기쁨과 행복이 날마 다 충만하길 기원한다.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2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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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63)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6-13>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행하실 새

장 먼저 들어왔을까요? 아마도 그의

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일, 즉 사울 왕 이후의 새 시대를 이

용모와 신장이 출중했기 때문일 것입

‘눈에 보이는 것’을 뜻하는 명사입니

끌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윗이 사무엘

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을 100% 믿을

다. 그리고 ‘키’는 그냥 키가 아니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판단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입

수 있나요?

‘큰 키’(height)를 의미합니다. 하나

기준을 말씀하십니다(7절). 사람의 판

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

단 기준이 뭐라고요? “사람은 외모를

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장면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

사무엘 선지자의 눈이 이렇게 빨리

때 사무엘은 즉시 누구를 떠 올렸을

보거니와”입니다. 여기서 ‘외모’라는

하는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다름을

반응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그의

까요? 사울 왕을 떠 올리지 않았겠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눈’(eyes)을 뜻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마음이 반응합니다. “마음에 이르기를

요? 사울 왕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합니다. 육신의 눈을 뜻합니다. 한마디

판단하는 쉽게 길들여진 우리들의 습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

로 사람은 눈에 보여 지는 것으로만

성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따

앞에 있도다” 어쩌면 판단이 이렇게도

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르고 본받아야 할 하나님의 판단 기

빠를 수가 있을까요? 보는 순간 마음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준은 무엇입니까? 두 사람, 즉 사무엘

속에 확신의 도장을 찍어버리는 것입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

선지자와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통해

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자기 판단과

더라”(사무엘상9:2).

살펴보겠습니다.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자신의 판단 기준 을 말씀하십니다. 뭡니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입니 다. 여기서 ‘중심’은 ‘마음의 눈’을

그래 이 아이가 바로 이스라엘의 다

사울의 용모는 말 그대로 ‘hand-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막 화목 제사가 끝나고 그 화

음 왕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자신의

some’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키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외적 용

목 제물로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판단과 확신을 하나님의 판단과 확신

는 모든 백성의 어깨 위만큼이나 컸습

모, 신장, 배경 등을 보지만, 하나님께

공동식사를 하는 자리로 이새와 그의

이라고 합리화 시켜 버립니다. “주님

니다. 이런 사울을 만난 사무엘은 왕

서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내

아들들이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

앞에 있도다!” 사무엘 선지자는 순간

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이 사울을 이

적인 인격, 신앙, 진실성을 감찰하신다

들들 중에 장남인 ‘엘리압’이 사무

자신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을 동일

렇게 소개합니다.

는 것입니다.

엘 선지자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엘리

시 해버리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압을 보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보인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

여기에다가 사무엘엘 선지자는 “아

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

사무엘 선지자의 마음을 흥분시켰

크”라는 감탄사를 사용합니다. 이 단

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사무엘이 모

던 이새의 장남 엘리압은 하나님에 의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어는 ‘확실히’ ‘참으로’ ‘과연’이

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해 거절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아크’, 곧

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비나답, 셋째 삼마, 그리고 일곱째까지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과연’이라는 이 감탄사는 사무엘이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사무엘 선지자 앞에 나왔지만 그들 모

사무엘상16:6).

엘리압을 보는 순간 얼마나 흥분했으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사무엘상

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아니었

며 얼마나 굳은 확신에 차 있었는지

10:23-24).

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

반응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사무엘 선지자의 눈에 들

를 보여줍니다.

어온 엘리압은 선지자를 흥분하게 만 들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얼마나 흥분했는가를 보다 디테일하게 살펴

그러면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무엇 입니까?

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계속해서 사울의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

키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

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자도 백성들 앞에서 눈에 보이는 사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

보면 이렇습니다. 본문이 이렇게 기록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울의 외모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울

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

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

이 이처럼 외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

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

이 엘리압을 보고” 이 구절에서 등장

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

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불순

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

하는 동사 두 개가 있죠? “오다”, “

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종하므로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누

하겠노라”(사무엘상16:11).

보다”입니다. 히브리 원문을 보면 시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구보다도 잘 하는 사람이 바로 누굽

간상으로 이 두 행동이 동시에 일어

사무엘상16:7).

니까? 사무엘 선지자 자신입니다. 그런

“네 아들들이 여기 다 있느냐?” 선

데 지금 그는 또 다시 왕을 선택하면

지자의 이 질문에 대한 이새의 대답이

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들이 오자

먼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

서 사울을 왕으로 선택할 때의 그 판

무엇입니까?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마자 이새의 일곱 아들 중에서 어떻

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말씀하

단 기준을 그대로 가지고 엡리압을 보

그는 양을 치나이다.” ‘막내’(말째)

게 사무엘 선지자의 눈에 엘리압이 가

십니다. 여기 ‘용모’라는 단어는 ‘보

고 있는 것입니다.

는 히브리어로 ‘학카탄’인데, ‘가장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3

2022년 1월 27일

어린 자, 가장 작은 자’라는 뜻입니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의 형들 곧, 엘리압, 아비아달, 삼마와

다. ‘남았는데’는 히브리어로 ‘솨아

아름답더라” 이게 무슨 말일까요? 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세움 받

비교할 때 무엇 하나 갖추지 못한 평

르’인데, 이것은 누구에 의해 의도적

금 저자가 다윗의 외모가 엘리압 못지

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외모를 보고

범한 사람, 아니 평범 이하의 사람이

으로 남겨진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단

않게 출중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비단 사무엘과

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왕으

어입니다. 이 아이를 남게 한 주체가

것일까요? 아닙니다. 어리다는 말입니

이새뿐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우리도

로 세우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다윗같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 ‘앳되다’(Be young)라는 일반적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말 속담에

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인 오늘 우

아버지 이새에게도 다윗은 가정의 중

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새는 다윗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리들의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

대사에서 제외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

제쳐놓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눈에 다

은 모른다.”는 이 말은 사람의 내면을

십니까? 그러므로 이제부터 저와 여러

다. ‘아직’으로 번역된 ‘오드’는 “

윗은 내세우기가 아직 어리다고 본 것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잘 나타내

분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맞춰

단지 ∼ 하기는 한데”라는 뜻으로, 이

입니다. 이것은 사무엘 선지자와는 다

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새가 막내 다윗에게 별다른 기대감을

르게 또 다른 용모와 신장을 평가 기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반영합니

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조차도 용모를 보고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사람을 판단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일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반적인 습성인 것을 시사해 줍니다. 그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

아버지 이새로부터 이렇게 취급 받

래서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았던 이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어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보이기 위해 성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떻게 하십니까? “이가 그니”(he is

형수술도 하고 여러 가지 명품들로 치

베드로전서4:3-4).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the one)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장하기도 합니다. 외모지상주의가 판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이새도 중요하게 여지지 않았던 ‘하

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

카탄’ 즉, 막내아들 다윗이 바로 하

라”(사무엘상16:12).

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이라는 것입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겉모습만

‘마음에 숨은 사람’을 치장하고 가

니다. 어쩌면 다윗의 용모는 하나님의

보고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시는 분

꾸는 일에 힘쓰시므로 중심을 보시는

눈으로 보셨던 ‘중심’ 즉, 내적인 아

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 모두 다 합격하

름다움의 발산일지도 모릅니다.

고 평가하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십니

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다. 그러면 왜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 을 이렇게 무시했을까요? 1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다윗이 드디어 사 무엘 선지자 앞에 불려왔습니다. 저자 는 그의 외모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다윗을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 앞 에 진정 값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다. 외적인 조건으로 볼 때 다윗은 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새성구 9/23/21

(사 66:22)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9)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2년 1월 27일

14

시편 3 지난 두 번에 걸쳐서 시편의 개관과 시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 에 대한 네 가지의 관점에 대하여 강의 를 하였습니다. 시편의 마지막 순서인 [ 시편 3]을 통하여 시편을 해석하는 기준 과 시편을 분류하는 네 가지의 분류 유 형을 강의하려고 합니다.

시편을 해석하는 네 가지의 기본 전제 시편은 매우 긴 역사적인 기간과 다양 한 환경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시편 을 해석하기 위한 기본적인 네 가지 전 제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표제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 보를 줄 때에 그 시편은 그 역사적 사 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특정 한 역사적인 정황에 대한 전제 없이 이 런 종류의 시편을 해석하게 되면 득보 다 실이 클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성에 서 시작된 허구와 상상의 수렁에 빠져들 게 될 것입니다. 둘째, 특정 시편들은 반드시 예배 의 식의 특정한 측면과 관련되어 해석되어 져야 합니다(5:7, 66:13, 69:24-25). 셋째, 많은 시편들은 특정한 구조와 주제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넷째, 많은 시편들은 이스라엘의 메시 야를 예기하고 있고 그 시편들은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지난 [ 시편 1] 칼럼을 통해서 전해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이와 같은 네 가지의 해석의 구분을 따를 줄 알아야 하고 모 든 시편을 영해(allegorize)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시편을 구분하는 네 가지의 유형 시편은 실제로는 다섯 권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기 때문에 각 책은 송영 (doxology)으로 끝납니다. 마지막 시편 은 제 5권의 마무리이면서 시편 전체를 마무리하는 송영입니다. 시편은 구분하 는 몇가지의 유형들이 있습니다. 그 중 네 가지의 유형에 따른 구분을 설명 드 리려고 합니다.

1. 시편의 표제어(전문 용어) 구분 먼저 표제어에 따른 구분입니다. 시편 이 기록된 후 그 중 116편의 시들에 편 집자의 표제나 지침이 추가되었습니다. 표제어는 총 6가지의 종류입니다. 이러 한 표제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정확하 고, 심지어 히브리 원어 성경에서는 이러 한 표제들이 각 시의 첫 구절로 절 번 호가 붙어 있습니다. 그 여섯 가지의 표 제어는 ‘시(mizmor/현악기로 반주되는 노래, 57개의 시편들)’, ‘노래(shir/29개 의 시편들)’, ‘명상의 시(maskil/13개 의 시편들)’, ‘믹담(miktam/경구, 짧 은 풍자시, 비문이나 헌사의 시, 6개의 시편들)’, ‘기도(tepillah/합3, 6개의 시 편들)’, 그리고 ‘찬양(tehilah/145편)’ 입니다.

① 개인의 탄원 시(individual lament psalms): 이 시들은 서문(하나님께 부르 짖음), 탄원(탄식),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 청원(간구), 확신의 선언 또는 찬 양의 맹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직접적 으로 하나님께 토로하거나 어떤 개인을 구하거나 변호해달라고 하나님께 탄원 하는 시입니다. 대부분의 시편이 이 유 형에 해당됩니다(3-7, 12-13, 22, 25-28, 35, 38-40, 42, 43, 1, 54-57, 59, 61, 63-64, 69-71, 86, 88, 102, 109, 120, 130, 140-143편). ② 공동체의 탄원 시(communal lament psalms): 이 유형의 유일한 차이점은 개 인이 아니라 민족(국가)이 탄원을 한다 는 점입니다. (44, 60, 74, 79-80, 83, 85, 90, 123편).

2. 시편의 주제별 분류 시편은 여섯 가지의 주제별로 분류됩 니다. 창조의 시들(8, 19편), 출애굽 구 속의 시들(78편), 참회의 시(6편), 순례 의 시들(120-134편), 메시야 시편들(시편 강의 1 참조), 그리고 알파벳 시(답관체 시, acrostic psalms)입니다. 첫 구절 이나 첫 행이 히브리 알파벳의 첫 글자 로 시작하며 그 다음은 알파벳의 두번 째 글자로 시작하는 식으로 작시된 시 편은 9편입니다(9, 10, 25, 34, 37, 111, 112, 119, 145편).

3. 역대상 16장 4절에 따른 분류 역대상 16장 4절은 또 다른 시편의 분류 방법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하 나님을 칭송(invoke/호소하다, 간원하다 로 옮겨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 으니 아래와 같은 세가지 유형으로 분 류할 수 있습니다. 탄원(또는 탄식, lament), 감사(thanksgiving), 그리고 찬 양(praise)입니다. 역대상 16장 4절에 나 타난 시편의 세가지 분류 방법은 열가지의 유형으로 세분화 할 수 있습니다.

4. 탄원, 감사, 찬양의 세분화된 분류

③ 개인의 감사의 시(individual thanks -giving psalms): 이 시들은 하나님은 찬양하겠다는 선언, 객관적인 설명, 구원 의 보고, 찬양의 맹세를 갱신하는 내용 으로 이어집니다. 이와 같은 유형의 시편 은 자기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나 역사를 공적으로 인정하므로서 하나님 께서 이미 행하신 일과 앞으로 행하실 것에 대한 신뢰를 표현합니다 (18, 30, 32, 34, 40, 41, 66, 106, 116, 138편). ④ 공동체의 감사 시(communal thanks -giving psalms): 이 시편에서는 감사 의 공포는 개인이 아니라 민족(국가)에 의해 이루어 졌습니다(124, 129편). ⑤ 일반적 찬양의 시(general praise psalms): 이 시들은 ‘찬양하라’라는 말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감사의 시들보 다는 좀더 일반적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크심 을 자랑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하 나님을 찬양하라)’라는 기쁨에 찬 선포 는 이러한 몇몇 시들에서 발견됩니다(8, 9, 29, 103, 104, 139, 148, 150편). ⑥ 묘사적 찬양시(descriptive

praise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psalms): 이 시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행위를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33, 36, 105, 111, 113, 117, 135, 136, 146, 147편). ⑦ 등극시 (enthronement psalms): 이 시들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야훼의 절 대 주권적 통치를 묘사합니다. 등극시는 즉위의 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47, 93, 96-99편). 이 중 어떤 시들은 그리스 도의 왕권적 통치를 예기하기도 합니다. ⑧ 순례의 노래(pilgrimage songs): 시온 의 노래들이라고도 알려진 이 시들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라는 세 차례의 연례 종교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 살렘으로 여행하는 순례자들이 불렀습 니다(43, 46, 48, 76, 84, 87, 120-134편). ⑨ 제왕시(royal psalms): 이 유형에 속 하는 대부분의 시들에서는 지상 왕이나 하늘에 계신 왕의 통치가 묘사되어집니 다(2, 18, 20, 21, 45, 72, 89, 101, 110, 132, 144편). ⑩ 지혜시와 교훈시(wisdom and didactic psalms): 이런 시편은 독자가 의의 길 로 행하도록 권면받고 가르침을 받습니 다(1, 37, 119편). 마지막으로, 시편의 이른바 저주의 시 편(저주를 내리라고 비는 것)들이 있는 데, 우리는 다음가 같은 사실을 상기해 야 합니다. 그 시들(7, 35, 40, 55, 58, 59, 69, 79, 109, 137, 139, 144편)은 인 간적인 보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를 요구하거나 하나님의 의의 입증과 죄악 을 정죄하실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에 71회나 사용되고 하박국 에서도 세 번이나 사용된 ‘셀라’라는 용어는 노래를 잠시 쉬거나, 음악 반주 가 잠시 쉬거나, 또는 노래를 점점 강하 고 크게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 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2년 1월 27일

15

“예배 시작 때 종을 치는 관행은?” * 요즈음 우리 교회 성단의 인도대에 큰 종이 놓여 있습니다. 기독교 예배의 역사에 이것은 언제부터 사용된 것인가요? * 옛날에는 아주 적은 것이었는데 언제부터 큰 종이 놓이게 되었나요? * 예배를 시작할 때 반드시 종을 쳐야 하는가요?

세계의 어느 개혁교회를 찾아가 예 배를 드려도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희귀한 현상이 우리 한국교회에서 가 끔 발견됩니다. 그때마다 사연이 어디 에서 온 것이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대답을 찾을 길이 없습 니다. 들을 수 있는 대답은 “그저 지 금껏 계속해 온 것이기에 저도 계속합 니다.”가 전부입니다. 그 희귀한 관습 중의 하나가 예배시 간이 되면 인도대 위에 놓인 종을 치 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소리만 들리는 아주 작은 종을 사용했는데 요즈음에 는 높이와 폭이 한 자는 족히 될 만 한 탁상용 종을 놓고 예배 시작을 알 리는 교회가 여기저기에 많이 보입니 다. 그것도 황금빛 찬란하게 도색을 하 고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워 아주 성스 러운 모습까지 갖춘 종을 만들어 보 급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아무래도 이 것은 어디선가 잘못 전래된 관습이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 도처에 있는 개혁교회 예배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어찌하여 우리에게만 있

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기독교 예배 안에 역사성이나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 는 관습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책임의 식을 느꼈습니다. 예배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 다. 선배 원로 목사님들로부터 얻게 되 는 대답은 “옛날부터 아주 작은 종 을 쳐 왔는데 그 뜻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신학자들과의 만남 에서 여기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지만 모두 애매한 대답뿐이었습니다. 예배신 학의 거장인 저의 스승 알렌(Horace T. Allen Jr.)박사와 이 문제에 대해 진 지하게 대화하는 가운데 얻게 된 종 의 유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가 많지 않 던 시절에 어느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 면 그 교회에서는 종탑을 세우고 주일 낮과 저녁에 예배시간을 알리는 초종 과 재종을 쳤습니다. 이러한 종소리는 한국의 교회에서도 전자 시스템을 이 용하기 전까지는 보편적인 것이었습니 다. 또 하나의 사실은 주일학교가 왕성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Denver Hallelujah Churc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하던 때에 주일학교 예배를 시작할 때 떠드는 어린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학교처럼 탁상용 종을 치고 묵도를 하게 함으로 예배 분위기를 잡았다는 것이 매우 가능한 추론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연들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한국교회 예배에서 종을 사용 하는 것에 대한 결론을 찾게 되었습 니다. 그것은 교육수준이 낮았던 초대 한국교회의 회중들이 예배시간이 임 박했는데도 산만한 상태에 있을 때, 선 교사들이 미국의 주일학교처럼 종을 쳐서 주의를 집중시키었던 것이 그 유 래가 되었다는 추론입니다. 전화도 없 던 시절 초기 교회는 서로가 아무런 소식을 나누지 못하고 한 주간을 지 내다가 주일에 원근 각지에서 한자리 에 모였기 때문에 참으로 반가운 만 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록에 따르 면, 교인들은 예배 시작 전에 서로 가 까운 사람들끼리 자리를 같이하면서 안부를 비롯한 각종 사연을 나누느라 분위기가 몹시 시끄럽고 어수선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 어떤 설 교자는 이 소란한 예배 시작 분위기를 설교의 내용으로 다루기도 하여 이 문 제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때 선교사들이 미국의 주

생각하면 이것은 토착적 행위도 아 닙니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편의상 순 간적으로 도입한 관행입니다. 그러한 것이 어느새 우리 예배 생활의 한복 판에 자리 잡고 있는 의미 없는 관행 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토착적 감각으 로 예배의 시작을 알리려면 우리의 고 유한 징을 쳐서 가슴으로부터 동참 되 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 더 보람이 있 을 것입니다. 아무리 분석하고 연구해도 단상에 종을 올려놓고 사용하는 것이 온당치 못합니다. 우리의 회중이 100년 전 미 국 교회 주일학생과 같은 의식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8556 E. Warren Ave. (303) 717-0279 Denver, CO 80231 www.denverchurch.com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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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터

2022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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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복 있는자! 매년 송구영신이 되면 새해 복 많 이 받으세요! 라는 말을 많이 하고 듣 기도 하는데 특히 정성어린 글과 그림 을 담은 카드를 주고받을 때 더욱 친 근함과 고마움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전통과 풍습 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COVID-19 팬데믹과 델타 바이러스 그리고 오미크론 변이와 여 러 종류의 악성 바이러스가 전 세계 를 위협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두려 움과 고통은 물론 죽음으로 내몰고 있 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소망과 행복 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겉으로 나타 나는 것이나 물질적인 것에 기준을 두 어 돈이 많은 사람이나 가문이나 인 맥을 통해 일류 기업이나 좋은 사업체 를 운영하거나 높은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혹은 명문 학교를 나 와 유명기업에 취직하여 집에 명품으 로 모든 것을 대주고 부족한 것이 없 이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나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맛있는 음식과 이곳저 곳 유명하다는 곳을 방문하고 여행하 면서 인생을 만끽하며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나 아름다운 미모로 여러 사 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가 리켜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다 일시적인 향락이요 다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에 대해 깊이 말씀을 묵상하면 참된 복을 누리는 자들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많은 땅과 건물과 물질 을 소유하고 학식과 육체적 건강과 명 예와 부귀영화를 누리며 아름다운 미 모와 우아한 자태로 여러 사람의 부러

움을 함 몸에 받는 여인을 아내로 삼 고 자녀를 두고 부족함이 없이 산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정 신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우울하게 살 아간다면 과연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 일까? 그러한 좋은 환경에 있는 자들 이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로 인 생을 허무하게 마무리하는 안타까운 자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한 사람은 누구 란 말인가? 비록 물질적으로 많은 것 을 소유하지 못하여 금전적으로 풍요 로움이 없고 불편하게 산다 할지라도 마음에 여유와 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 쁨 그리고 평강의 복이 그의 삶을 주 장한다면 그가 참으로 복된 사람이 아닌가? 과연 진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있 는지 살펴보면서 함께 이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거듭 소 원하는 바이다. 지금까지도 창조주 하나님의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 상이 되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뜨 거운 사랑을 받고 온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다윗 왕은 구약 성경, 시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 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 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1-2). 참된 복은 세상에서 주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 로 묵상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 곧 거 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깊이 생각하고 또 음미하 면서 그 뜻과 맛을 아는 것인데 이것 은 다윗이 시편에 기록한대로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 보다 더 달도다” (시편 19:10). 이와 같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한 생명의 빛 되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인도를 받으며 죄악을 멀리하 고 의롭게 살아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참된 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 을 멀리하고 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하여 죄인들의 일에 동참하지 않고 더 큰 죄악의 짐에 눌려서 자기중심적으 로 창조주 하나님을 멀리하고 대적하 는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겸 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 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의 율법을 오 직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 상하며 살 수 있겠는가? 사람이 살아 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 들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이러한 일 이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 이것은 결 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의 영은 우리의 연약함 을 도우사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따라 갈 수 있는 능 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특별 한 은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 자신의 삶 속에 찾아오는 모 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두렵고 떨리 는 마음으로 경외하며 자신의 죄악들 을 자백하고 결단하면 지극히 자비로 우신 하나님은 죄 용서함과 큰 성령의 감동으로 임하사 그와 교제할 수 있 는 능력을 베푸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할 일

장석현 목사

트리니티교회

들이 있지만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세 상에서 받는 여러 가지 유혹과 탐심을 물리치며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살아가 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곧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쁘 고 감격스런 일인가? 천지 만물을 지 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하신 평 강과 형통한 복을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 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 하리로다” (시편 1:3). 왜냐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녀가 되었으니 그의 삶을 책임지고 어디로 가든지 동행하사 든든한 방패와 산성 이 되어 보호하며 영생의 복을 누리는 자로 보증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가 이미 시작 되었고 어느덧 1월 한 달도 거의 지나 가고 있는 이때에... 빛과 소금 뉴스, 은혜의 샘터에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바라고 원하는 모 든 일들이 주님 안에서 꼭 이루어지기 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오늘도 건강과 기쁨과 평강과 형통한 복을 누리는 행 복한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진리의 샘터

2022년 1월 27일

19

자유를 위하여 박현수 목사 갈보리교회 저에게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어난 사건 때문에도 그렇고, 자신에 대한 불만 때문에도 그렇고, 누군가를 향한 원망 때문에도 그렇고, 처리해야 할 쌓인 일들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자유함을 얻게 하십니다. 환경과 현상의 지배를 받지 않는 참된 자유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합니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입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에 대해 불평과 원망을 할 것인지, 그곳에서 다시 일어설 것인지도 내 마음의 결정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결국 제 마음입니다.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제 마음입니다. 일어난 현상들이 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들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합니다. 즉, 일어난 그 현상들을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저를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를 불편하게 하는 마음, 저는 이것을 저의 자유를 방해하는 사슬로 규정합니다. 한 번 이 사슬에 매이게 되면, 저는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고, 상황은 점점 더 나를 압박해 옵니다. 이 사슬을 끊어낼 힘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슬을 끊어내신 분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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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자유케 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 의지를 주님께로 넘겨드리는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가 일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벌어진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임을 알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겨울을 견뎌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는 그 진리를 마음에 품고, 지금의 어두움 속을 뚫고 지나갔을 때 비로소 다가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엔디가 그의 친구 레드에게 쓴 글이 생각납니다.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소망은 좋은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걸 거예요.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 아요.’ 소망이 가장 좋은 이유는, 소망이 자유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가져오신 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누리게 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자유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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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12:00PM 주일 학교 12: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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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새 예배 공동체 10:30AM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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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20

2022년 1월 27일

처음 사랑 회복하는 발렌타인스 데이 요사이 신세대들 가운데 쓰는 은어 중 에 ‘냄비이혼'이라는 말이 있다. 마치 냄 비에 쌀을 씻어 밥을 하면 끓기도 전에 넘쳐 버리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데, 신혼 여행 가서 이혼하는 사람에서부터 결혼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이혼하는 사람 들을 말한다. 사람이 서로 만나 부부의 정을 쌓고 살려면 상대방을 서로 잘 알 아야 하는데, 부부가 서로 잘 아는데 걸 리는 시간이 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 게 한 5년 살면서 겪다보면 좋은 점 보 다는 싫은 점이 더 많이 보이고, 또 아는 만큼 서로 권태감도 늘어간다. 그러다 보 니 그런 냄비이혼으로 서로 남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독립이혼’이 다. 부부가 서로 이혼을 하려고 마음먹었 어도 자녀들 때문에 못하고 서로 참고 살 다가 자녀들이 결혼하고 분가해서 독립하 고 나면 그때서야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헤어진다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만나 사랑에 빠졌던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 다. 처음 열심, 처음 사랑, 그대로 고수할 수 있다면 가정생활 교회생활에 성숙은 물론 기쁨이 넘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의 사람들이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기 때 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아니 문제가 일어 나면 첫 사랑이 식어버리거나 기억도 나 지 않는다. 오미크론 변형 바이러스(Omi-

cron variant virus)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를 멀리하고 모이기를 두려워하고 있 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모여 대면예배는 물론 각종 모임이나 기도회는 줄어들거나 없어지고 대신 Zoom 이나 영상으로 모인 다. 신앙생활이 편리해진 반면에 나태해진 것이다. 처음 사랑을 점점 잊어가는 것은 에베소 교회에만 지적한 사실은 아니다. 사실 에베소 교회는 모든 교회의 대표로 이 지적함을 받았다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고 처음 믿을 때는 어느 집회나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마음 이 뜨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 고 세월이 지나다 보면 그 처음 믿음은 어디를 갔는가? 그 열심과 사랑은 식어버 리고 형식만 남는다. 36년 전 목사안수를 받았을 때와 지금 은퇴하고 지난 세월을 회고해 보면 처음 사랑이 식어지지는 않았나? 두렵기만 하 다. 어린아이가 나날이 자라듯이 믿음도 사랑도 날마다 자라나야 할 것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 스도라”(엡 4:15)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 게 하려 함이라”(엡 4:14)

자라지 못한다. 성장이 멈추었다는 말은 죽었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사랑도 마 찬가지다. 서로를 알아가고, 가슴이 두근 두근 뛰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 고 가정생활이 되어야 한다.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진 것을 되찾 아 오라는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 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 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권사, 집사, 장로 투표할 무렵에 새벽기 도회에 나오는 사람이 많아진다. 교회적 으로 기쁘고 신나는 일이다. 그리고 투표 에 당선이 되고나면 더 열심히 교회를 섬 기고 모임과 예배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 그 이전의 상태 로 되돌아간다. 옛 품성이 나오고 섬김보 다는 자리다툼과 권리주장을 하게 된다. 직분자들이 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지 못 하는가? 생각하면 목회자 의 부족인가 해서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사랑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어떤 사 람은 이 사랑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하기 도 하고,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한다. 심 지어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다. 그러고

오성관 원로목사 벧엘교회

보면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가진다. 사랑 때 문에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이겨낼 수도 있다. 사랑은 이런 면 에서 마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밥을 먹고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와 서 집 앞에 와 있으니 빨리 나오라는 말 에 달려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밥 다 먹 고 나가겠다고 할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밥 먹던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사랑은 참으로 신비한 것이다. 사람의 행동의 우선순위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것

이 사랑의 힘이다. 사람이 밥을 먹는 것 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만약에 밥을 먹 지 않는다거나 못 먹는다면 죽게 될 것 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부름에 응 하기 위해서는 이 중요한 것도 뒤로 미 룰 수 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기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그 사람을 진 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분이 우리 주님 라면, 그분의 부르심에 지금도 가슴이 뛴 다면......, 처음 사랑처럼 주님과 형제를 사랑하 는 이번 발렌타인스 데이가 되었으면 좋 겠다.

담임목사 박현수

6415 W. 44th Ave. Wheat Ridge, CO 80033 (303) 423-1392 bkpcdenver.org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2년 1월 27일

21

새로운 피조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

하든지”라는 의미이다. 누구든지, 아

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이

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

무런 예외나 차별없이, 그야말로 문자

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

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그대로 누구든지이다.

한 감사와 감격이 우리 마음을 지배

5:17).

하게 해야 한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뀐 것이다. 옛 신분에서 새 신분으로 완전히 옮겨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말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해, 새로운

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달,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

믿고 신뢰함으로 그와 연합한 관계 속

로운 피조물이다. 여기서 새롭다는 말

더 나아가서 여기서 새롭다는 말은

경은 새로운 것에 대한 소망을 강조하

에 있는 자는”이라는 의미이다. 우선

은 우선적으로 중생, 거듭남을 의미한

새로운 창조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의

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

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

다. 새롭게 태어남을 뜻한다. 죽어 있

미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속한 자

해야 한다. 성경은 옛 언약보다는 새

어야 한다. 주님으로 신뢰해야 한다.

던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

가 되었다는 말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언약을, 옛 하늘과 옛 땅보다는 새 하

그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의 주권을 내

어 다시 살아난 것을 의미한다. 좀더

얻은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늘과 새 땅을, 옛 사람보다는 새 사람

려놓아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

깊이 들어가면 영혼의 부활이다. 우

창조의 도래와 시작을 의미한다. 예수

을 강조한다. 옛 생명보다는 새 생명

마다 우리는 나의 주권을 내려놓고 주

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이 다

님의 부활과 더불어 새 질서가 형성되

을, 옛 피조물보다는 새 피조물을 강

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주권이양식을

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고 도래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조한다.

반복해야 한다.

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새로운 존재

믿음으로 그 분과 연합되어 새 질서

가 되었다.

에 속한 자, 새 창조에 속한 자가 되었 다. 그야말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성경이 새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옛

“주여, 오늘도 주님이 내 인생의 주

것이 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

인이심을 고백합니다. 주인의 뜻에 전

또한 여기서 새롭다는 말은 새로운

세상은 죄와 죄의 저주아래 있는 세

적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그렇게 살

신분을 얻었음을 뜻한다. 에수 그리스

요컨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상이고, 옛 언약은 죄의 문제를 근원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소

도를 주와 구주로 믿기 전에 우리는

서 새 생명, 새 신분, 새 정체성을 얻

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언약이며, 옛

서!”

죄인의 신분, 정죄받은 신분, 사형수로

은 자가 되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새

선고받은 신분, 하나님과 원수된 신분

해를 맞이할 때마다, 새 달과, 새 날을

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

맞이할 때마다, 새 것을 예찬하면서 장

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

차 주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새 하

암아 우리는 영단번의 죄사함을 얻었

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이다. 당신

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는 신

은 새로운 피조물인가?

사람은 죄의 노예로서 영원한 정죄가 운데 살아가는 저주의 사람이다. 죄의 지배와 저주로부터 해방된 상태가 바

이 기도가 우리의 매일의 기도, 아니 매순간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로 새 것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누구든

야 한다. 예수님은 나에 대한 총체적

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

인 주권자이실 뿐 아니라, 내 영혼과

물”이라고 선포한다. 여기서 “누구든

육체의 구원자이시다. 나를 죄와 사망

의인의 신분을 얻음으로, 영원한 정

지”라는 말은 1차적으로 “유대인이

과 마귀와 지옥의 권세로부터 구출하

죄로부터 벗어났으며, 영원한 사형수

든지 이방인이든지”라는 의미다. 복음

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

의 신분에서 벗어났으며, 하나님과 원

은 모든 차별을 무너뜨린다. 2차적으

신을 희생시켜 피흘려 죽으셨다. 나를

수된 신분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자,

로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자유인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

하나님의 친구로서의 신분을 얻은 자

이든지 노예든지” “부유하든지 가난

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

가 되었다.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3,14) 제공: 실로암장로교회

분을 얻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 4:3) 제공: 덴버제일감리교회


선교사들의 이야기

2022년 1월 27일

22

파송 1호 선교사 저는 ‘빛과 소금 뉴스’에 ‘에콰도 르 선교일지’라는 칼럼을 4년 2개월 동 안 100회 기고했습니다. 이어서 ‘에콰도 르 이야기’라는 칼럼을 2년 2개월 동안 26회 기고했습니다. 올해(2022년 1월)부터 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라는 칼럼을 기 고하려고 합니다. 저는 ‘덴버지역 교역자회’ 파송1호 선 교사입니다. 그 때가 2015년 6월 25일(목) 저녁이었습니다. 앞으로 파송2호 선교사 가 나올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선교사로 파송 되는 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송 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선교 사님’이라고 누가 부르면 주위를 쳐다보 았습니다. 주위에 선교사님이 계시지 않 는 것을 보고서야 저를 부르는 것을 알았 습니다. 벌써 7년 동안 선교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점점 어색함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에콰도르에서 신학대학을 설립하고 교육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이야기’라는 칼럼을 시작 하려고 하면서 선교사들 중에 어느 분부 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제 가 담임목사로 제일 먼저 선교사로 파송 한 가족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 각을 했습니다. ‘포근한 교회’는 김정민 집사님 가족( 효숙, 예진, 예린)을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 했습니다. 2010년 5월 16일(주) 파송예배 를 드렸습니다. ‘포근한 교회’에서 파송 한 제1호 선교사 가족입니다. 당시 ‘포근한 교회’의 참석 교인은 10 명을 넘지 못한 규모가 작은 교회였습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 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다. 파송교회가 되려면 선교비의 상당부 분을 책임져야 하지만 ‘전문인 선교사’ 는 말 그대로 자비량 선교사이기 때문에 선교(비) 후원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 습니다. 그들은 콜로라도 덴버와 가까운 ‘볼 더’에서 한국 식당을 경영하셨습니다. 그 런데 매출 규모가 E2비자 요건을 만족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중국으 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에 하던 ‘중 국 의학(중의학)’을 계속하기 위해서 였 습니다. ‘포근한 교회’는 ‘윈터파크’에서 2박 3일의 선교사 파송 세미나(?)를 열었습니 다. 세미나라기보다는 석별의 정을 조금이 라도 더 나누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의과대학이 있는 ‘제남’으로, 그 의 가족은 ‘청도’와 인접한 ‘황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효숙 선교사님은 유 치원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월급은 남편 과 두 딸의 교육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했습니다. 그는 기숙사 비를 내기에도 벅찼습니다. 기숙사보다 더 저렴한 집을 얻었습니다. 그는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서 잠을 잤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5년 가까이 잤습니다. 그들은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우리는 ‘전문인 선교사’라는 자 부심으로 견디었다고 합니다. 그는 몇 년 전에 중의학 박사학위를 받 았습니다. 김효숙 선교사님은 유치원 교 사를 하면서 한인교회의 교육부에서 활 동했으며, 얼마 전에 권사님이 되셨습니 다. 그의 가족은 약 2년 전에 한국으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나왔습니다.

임동섭 목사

그는 ‘담양’에 있는 ‘광주 바이블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는 ‘대안학교’도 함께 운영하 고 있습니다. 둘째 딸 ‘예린’이는 중학교 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의 큰 딸 ‘예진’ 이는 그 보다 먼저 미국에 들어와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유명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대만과 일본에 신학대학을 설립하기 위해서 지금 한국에 머물고 있 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김 선교사님 가족이었습니 다. 파송한 지 12년 만에 그들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2시간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대안학교에 갔습니다. 특강 시간이 되자 10명 정도의 학생과 7명 정도의 교사들 이 참석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생부터 교장 선생님까지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 로 하는 특강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강 의 중에서 가장 어려운 강의였다는 생각 이 듭니다. 특강을 마치고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들면서 교장 선생님과 몇 분의 교사들과 교제했습니다. 식후에 담양의 ‘죽녹원’ 과 몇 군데 관광지를 다니면서 김 선교사 님 부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신학대학은 방학을 끝내고 2022 년 1월 24일 개강했습니다. 첫 번째 강의 과목은 ‘전문인 선교’로 정했습니다. 이 번 전문인 선교 과목 강의 중에 실제 중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4) 제공: 김정애 권사

에콰도르 선교사

dslim3927@hotmail.com

국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활동했던 김효숙 선교사님의 선교활동을 직접 듣기로 했습 니다. 다음 시간에는 의료선교사인 김정 민 선교사님의 활동을 들을 예정입니다. 중국인에게 전도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그러나 질문을 받고 대답할 때 복음을 전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유치원은 원 래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중국 인들에게 좋은 소문이 나서 여러 명의 유 치원생들이 입학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를 들 면 식사하기 전에 찬송가를 부르도록 하 여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가르 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교육부에서 중, 고등학생들에 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연주’라는 학생과의 일화를 소개했습니 다. ‘연주’는 학생부 예배의 피아노 반주 를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급성 백혈병’ 이 발병해서 한국에서 치료를 받았습니 다. 많은 성도들이 ‘연주’의 치유를 위 해 기도했습니다. 치료 중에 그녀의 어머 니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완치되었다 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발되었습니다. ‘연 주’는 김효숙 선교사님에게 재발된 이유 가 아버지의 구원 때문이라고 말했습니 다. ‘연주’는 천국에 갔습니다. 아버지 는 치료 중에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여 러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 렸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6)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좁은 길을 걸으며

2022년 1월 27일

23

"네가 어디 있느냐” 있느냐”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라는 말이 있습

고 있으며 교회 모임들도 위축되었습니다.

않고 생기를 넣어 마음과 삶을 나누고자

니다. 그것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 관계

모든 관계가 소원해졌으며 하나님과의 관

하셨던 것입니다

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의미하

계 또한 엷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는 것입니다. 관계는 혼자가 아닌 다른 누

깊고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는 잦은 교

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

큰 심적 고통과 어려움을 주었다는 사실

군가를 마주 보며 마음을 나누고 생각도

류가 기본이며, 마음과 삶을 공유하는 것

있다면 그것은 바로 최초 사람 아담 이었

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느끼셨을 큰 고통

공유하고 삶을 함께 하는 상호작용을 가

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이든

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

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아담

리킵니다. 사람은 온전한 관계속에서 행

만남이 줄고 교류가 적어지면 이전에 누

계를 유지하며 살 때 진정 자존감이 높

네가 어디 있느냐?” 그 떨리는 목소리에

복과 기쁨을 누립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리던 관계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은 삶을 살게 되며 인간다운 삶을 살게

서 느낄 수 있습니다.

관계를 맺고 관계를 이루며 살도록 창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이유 역시 관

되었기 때문입니다.

되었던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과의 관계가 깨

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

그러나 아담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어짐에 대한 안타까운 절규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관계를 위해 지어진 존재이다'

드시고는 그를 동산에 거하게 하시며 그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마치 자신을 떠나가는 탕자를 바라보는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동산을 거니시며 처음 사람 아담과 깊

의 낯을 피하여 몸을 숨기기에 이르렀습

아버지의 심정이었다고 할까요?

진정 온전하면 그 관계 속에서는 열정이

고 친밀한 관계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 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낯을 피

쏟아나고 사랑과 애뜻함이 발산되어지는

그 관계를 기뻐하셨습니다. 사람과 교제

셔서 부르셨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해 몸을 피한체 살아갑니다. 자신이 하나

것입니다. 실제 다른 이들과 관계가 원만

하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사랑과 은혜

아담, 네가 어디에 있느냐?”

님과의 관계를 위해 빚어진 존재라는 사

하면 그것이 얼마나 삶에 큰 활력소가 됩

도 공유하며 삶과 의미를 나누고자 하시

아담은 관계의 깨어짐으로 동산에서의

니까? 관계가 좋은 것 하나만으로도 활력

고자 하신 것이 바로 창조의 뜻이었던 것

삶을 잃었습니다. 누리던 행복과 기쁨은

이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

이 생기고 열정도 넘치게 되고 뭐든지 할

입니다.

떠나갔고 그 대신 고통과 불행이 찾아왔

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깊고 친밀한

실을 완전히 잊은 것입니다.

것 같습니다. 그것이 관계의 중요함입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창조된 피조물 중

습니다. 하나님과 나누던 사랑의 교제는

그 관계를 다시 복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때 가장 행복하

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권태기에 빠

동산에서 누리던 그 아름다운 관계의 행

고 기쁜 삶을 누리게 되느냐 바로 관계를

성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어진 존재인 것

진듯 앙상한 감정만 남았고 열정도 식어

복과 기쁨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깊고 친밀하고 아름답게 유지할 때 라는

입니다. 사람과 하나님 간에는 창조로부

버렸습니다. 이러한 아담의 모습을 가리

유의미한 삶을 살기를 진정 원하는 사

것입니다. 요즘 우리들의 삶의 환경이 스

터의 깊고 밀접한 관계성이 있습니다. 그

켜 어떤 글에서는 존재의 진공상태에 들

람이라면 하나님을 다시 찾아 그 분과

마트화 되고 코로나 상황으로 인하여 다

관계성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어갔다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깊고 아름다운 관

른 이들과의 교류가 줄어들고 가능한 대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아담의 삶은

계를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년 한

면보다 온라인을 선호하게 되면서 점점

하나님께서 가장 행복을 느끼시던 때

단순히 불만족이 아니었습니다. 공허함

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최우선 과제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지는 때

는 바로 아담과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셨

그 자체였고 완전한 파멸과 무의미라 할

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입니다. 실제 코로나로 인해 하나님과의

던 그 때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의 친밀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깨어짐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영적 교류도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

한 관계를 행복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

로 가장 고통 받은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

실입니다. 예배는 온라인으로 많이 대체되

신의 형상을 닮은 마네킹으로 지으시지

아담과의 관계의 훼손은 하나님에게 크나

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베드로후서 강해

2022년 1월 27일

24

“은혜 안에서의 성장”(1) <베드로후서 3:14-18>

저는 요즘 저희 교회 유스그룹 아이 들을 바라보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키가 어찌나 큰지 비교적 큰 키를 가진 제가 올려다보아야 하는 경 우가 많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 아이들은 정말 몰라볼 정도로 많이 성 장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 아이들 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람들의 평균신장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이 1900년대 초 한 국 남자의 평균키는 160cm였습니다. 여 자 147cm였습니다. 사실 이 평균키는 1970년대까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 주 완만한 성장을 이루어왔습니다. 그러 던 것이 198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한 성 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마 한국의 경제 성장이 평균신장도 올려놓은 것 같습니 다. 1990년 드디어 남자의 키는 170을 넘었습니다. 여자는 158이었습니다. 일생 중 가장 성장했을 때인 20대의 평균을 계산한 것입니다. 지난해의 평균신장이 얼마인지 아십니 까? 남자가 175입니다. 여자는 163입니다. 놀라운 것은 지난 10년 동안 매년 0.3cm 씩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난쟁이가 될는지 모릅니다. 1억불 수출이 온 나라의 꿈이던 시절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 십 년도 지나지 않아서 지난 해 6천억달러를 돌 파를 했습니다. 왠만한 중소 기업도 1억 불 수출은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입니 다. 국민소득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남아 의 가난한 나라들처럼 100불도 되지 않 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53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였습니다. 하지만 지 난 해 3만 불을 넘어섰습니다. 경제분야 역시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어왔 습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습니 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구시대 사람 이 될 정도로 지식적인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신적인 성장, 더 나아 가서는 영적인 성장이 같이 일어나고 있 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의부정부패는 10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아무런 차이 가 없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습니 다. 지금도 한국 사회는 보수진영, 진보 진영으로 완전히 양분되어서 싸우고 있 는 중입니다. 어떤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 을 들었습니다. “요즈음 한국 정치는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어!” 사람은 결 코 물질적인 육체만 소유한 존재가 아 닙니다. 반드시 영혼의 공간이 사람에게 는 있습니다. 그 영혼이 채워지고 성장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 할 수가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30년 동안을 방황한 끝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 안에는 하 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절대 채울 수 없는 영혼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야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어거스틴은 영적인 은혜의 성장을 갈망했습니다. 어거스틴이 영적 으로 성장을 거듭하자 그를 통해 가정 이 바뀌었습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 뀌었습니다. 이웃이 기뻐하기 시작했 고 마을에 희망이 감돌기 시작했습니 다. 그가 쓴 책은 시대를 초월해서 많 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게 만들었습니다. 키도 커야 하고 건강도 지켜야 하고 가정도 부유해져야 합니 다. 그러나 동시에 영적인 성장도 이루 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은혜 가운데서 성 장하는데 필요한 두 가지 요소들을 설 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 안에서 성장하기 위 해서는 분명한 신앙 성장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 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 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

라”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연초에 사람들은 많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웁니다. 목 표를 가진 사람은 나중 연말이 되면 평 균적으로 40%는 성취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도 목표를 세우지 않은 사람은 8%밖에는 성취를 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그 리스도인들은 신앙 성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보다는 더 잘 믿 고 싶어합니다. 기도도 더 많이 하고 싶 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더 받고 싶 은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 은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성장의 목표가 있어 야 합니다. 정규 예배시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신앙 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신 앙적 목표를 가질 것을 권면하고 있습 니다.

첫 번째는 주 앞에서의 거룩입니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라 는 것은 구약 시대 제사 용어입니다. 하 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은 아무 동물이 나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지 1년 된 동물이어야 했습니다. 이 의미는 그 동물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상태를 말 하는 것입니다. 동물로써 가장 순수한 시기가 바로 태어난 지 1년 되었을 때입 니다. 또한 외형적으로도 상처가 있거나 흠집이 있으면 제물로써 적합하지 못했 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도 타고 가신 나귀는 아직 아무도 타보 지 않은 나귀새끼였습니다. 아직 어리기 는 하지만 순수한 나귀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룩한 제물입니다. 거룩 이라는 말 자체를 우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 금 점잖을 빼면 거룩한 채 한다고 핀잔 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룩은 하나님 앞에서의 순수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담임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때로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뻔히 드러날 사실을 1원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고 시치미를 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는 것이 거룩입니다. 낮에 교회에 있다보면 다람쥐와 토끼 를 자주 봅니다. 하루에도 10여마리 이 상 보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지나가는 인기척을 느끼는 순간부터 얼마나 경계 를 하는 지 모릅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 고 쳐다봅니다. 저에게는 그들을 해치려는 의도가 전 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조금만 움직이며 재빠르게 도망을 가버 립니다. 손으로 움켜쥐고 먹이를 먹다가 도 그냥 놓고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저 희 집에서 13년을 살았던 강아지 생각 이 납니다. 집에 들어가면 제 곁으로 와 서 앉습니다. 절대 경계하는 법이 없습 니다. 머리를 만져주면 갑자기 벌러덩 누 워버립니다. 배를 하얗게 다 드러내 놓 고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를 만져주는 것을 좋 아했습니다. 일반동물들은 절대 이렇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동물들은 평생 자 기를 방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생존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배를 내놓고 드 러눕는 것은 완전한 자기 포기의 행동 입니다. 한 마디로 나를 잡아 먹으라 는 표시입니다. 생존 본능만 있는 동물 들이 누구 앞에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모두가 적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강아 지는 주인 앞에서 그냥 누워버립니다. 주인을 완전히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 리는 자기를 방어하는 것부터 배우기 시 작합니다. 자기를 누군가에게 내 맡기지 를 못합니다. 믿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장하는 것입니다. 주변을 끊임 없이 경계하며 살아갑니다. 걱정, 근심은 바로 거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변화프로젝트

2022년 1월 27일

32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0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 훈련의 기도 프로젝트 4.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 을 듣는 훈련

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

다음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일곱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내 라고 한 편지다. 이 편지를 통해서 하 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알려 달라고 기도하고 읽어보라.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1~7).

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기도: “예수님, 제 마음의 문을 열어주 시고 지혜를 주시사 주님이 저를 어떻 게 보내시는지를 알게 해주세요.”

1)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 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 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 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 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 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 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 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 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 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 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 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2) 서머나 교회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

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

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

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

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

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

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

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

니하는도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

였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

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

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

하지 말라

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

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

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

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

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

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씀을 들을지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

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

(계 2:12~17).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

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

4) 두아디라 교회

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

3) 버가모 교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

리라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

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

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

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

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

씀을 들을지어다” (계 2:18~29).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 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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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2년 1월 27일

26

선택의 기준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마리아의 친족인 엘리사벳이 임신한 기한이 차서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그

일인지 엘리사벳이 지으려고 했던 이

가나안 족속에 비교하면 메뚜기와 같

름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 렙은 어떻게 보고 했습니까? 가나안

리고 율법에 따라 나은지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웃과 친족

이러한 사실이 알려주는 것이 무엇

민족이 크고 강한 민족인 것은 분명

들이 함께 그날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입니까? 이들은 전통과 관습에 따라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밥으로 주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를 행할때 아이

많은 사람들의 주장에 따라 이름을

셨다고 보고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

의 이름을 지어주는 전통이 있었습니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

성적으로 옳다고 옳은 것이 아닙니다.

다. 사람들은 유대의 관습과 전통에

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 것입니다. 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과

무리 상식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하

같이 “사가랴”라고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의 기

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엘리사벳은 천사의 지시

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

아무리 이성적으로 옳지 않다하더라

에 따라 “요한”으로 지으려고 했습

다. 많은 사람들은 전통, 관습, 경험,

도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하면 맞는

니다. 사람들은 사가랴의 가문에 요한

그리고 지혜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합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

이라는 이름으로 한 이가 없다며 사가

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는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랴에게 물었습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옳다하더라도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기때문에 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아닌 것이 되

성경의 가르침은 이웃을 사랑해라!

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벙어리가

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하나님

섬겨라! 낮아져라! 희생하라! 세상의 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18

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옳은 것이 되

르침과 원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

절의 말씀에 보면 천사가 사가랴에게

어야 합니다.

입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을 주관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기쁜소식을 전 했는데 그 증거를 달라며 확실히 믿지 못했기때문에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고 다스리는 자가 되어라 합니다. 신앙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2정탐꾼을 보십시오!

은 갈등입니다. 세상의 원리와 하나님 의 원리가 충돌할때 우리는 무엇을 선

가 말을 못하니깐 글을 적을 수 있는

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서판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그들의 보고는 어떠했습니까? 두 사

웃을 사랑하는 편으로 선택해야 합니

의 이름을 “요한”이라 섰습니다. 사

람을 제외하고는 가나안 정복은 불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기

람들이 놀랍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된

능한 일이라 보고했습니다. 크고 강한

준이 되어야 합니다.

(303) 337-5385

사가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택 했더니, 그리고 순종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입이 열리고 혀가 풀어 졌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이 되 었습니다.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 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눅 1:64절) 말씀을 따르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입이 열리고 혀가 풀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삶이 변화 됩니다. 의심하고 불신하던 입술이 하 나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바뀝니다. 주 님의 말씀을 따르면 찬송할 일이 생 깁니다. 사람의 의견이나 오랜관습보 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 과 교회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 고 따르는데 온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천 베이직

27

2022년 1월 27일

축복은 무엇인가요? 정다운 목사 볼더아름다운교회 둘째, 오늘의 은혜에 민감해져야 합니

유현준 교수가 쓴 《공간의 미래》란 책

기도보다 다른 것을 권한다고 합니다.

일 대하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을 쏟아

에서 건축가의 시선에서 종교의 공간 개

주식, 부동산, 재테크 등의 유튜브 채널

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고

념은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을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이지요.

기를 달라고 불평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

우리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

의 심판을 당하지요. 이 말씀을 묵상하다

는 것이 아니라, 무감각해지는 것 아닐까

을 믿게 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다.

정의합니다. 한국에 있는 유명한 절들은

축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려면, ‘축복 =

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요? 이스라엘이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던

다 높은 산에 위치합니다. 수많은 계단

물질’이라는 잘못된 생각부터 버려야 하

잘 하다가 하나님을 떠나 과거로 돌아가

그날 아침에도 하나님의 은혜, 만나는 그

을 오르면서부터 신을 향한 경외감을 갖

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는 사람들의 문제가 이것이구나! 하나님

들 앞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날 아침에

게 한 것이지요.

축복은 무엇일까요?

의 축복을 기억하지 못하여 불평과 원망

도 허락된 만나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잊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

이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 잘못된 축복을

고 불평했던 것이지요. 우린 오늘 허락된

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

구하게 되는구나! 하고 말이죠. 사실 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노라”(요한3서 1:2)

나님은 우주에서 가장 손이 큰 분이십니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또한 라테란 성당의 Scala Sancta라고 불리는 28계단으로 된 ‘빌

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

셋째, 미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과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현재도

라도의 계단’을 손과 무릎으로 기어올랐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야 진정한 삶

습니다. 루터는 왜 이런 고행을 했을까

의 가치와 성공,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

요? 빌라도 앞에서 그리스도가 올라섰다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를 봅

고 전해지는 계단을 주기도문을 외우면

시다. 능력치로만 보면 누구에게 절대 뒤

우리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시면 모든

우리가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서 한 계단씩 올라가면 연옥에서의 형벌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이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주님

선하심을 굳건히 믿기 때문입니다. “네

이 감해진다고 중세 교회가 잘못 가르치

기적인 ‘에고(자아)'로 말미암아 전 세계

께 우리가 불평한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

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른 라테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란 성당에서 루터는 수도사로서 신을 경

다. 즉, 우리의 영혼이 잘되지 않으면, 다

구할 수 있을까요?

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외함보다는 가톨릭의 부패에 환멸을 느

른 부분에 풍요함이 있더라도 아무 소용

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루터는 종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끝없이 불

첫째, 과거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개혁을 일으키게 되지요.

평을 쏟아놓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

탈무드를 보면 인간의 생각 속에는 두 개

영화 용어 중, ‘매직 아워'가 있습니다.

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

의 주머니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망각

촬영에 필요한 일광이 충분한 황혼 시간

유현준 교수는 크리스천, 평신도입니다.

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

의 주머니, 다른 하나는 기억의 주머니입

대를 뜻하는데, 이 시간은 하루 중 딱 15

그래서 종종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연한

으므로 ...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

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

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매일의 15분 동

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목사님은 큰 교

었더라”(민수기 11:33-34)

는 망각의 주머니에, 애굽 종으로서의 삶

안 말씀 묵상하며 주님 안에서 반짝반짝

은 기억의 주머니에 넣은 듯합니다. 우

빛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우리이

리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되겠죠?

길 소망합니다.

회를 건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 어본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유 교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인 만나를 매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수기 11:23)

하나님과 동행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고 통 가운데 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신명기 8:6-7a)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이는 자가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행위를 옳게임하였음이니라 하는 자에게 내가 네 위에 하나님의(사 구원을 60:1)보이리라 (시 50:23)

또 무엇을 말에나 하나님이여 내하든지 속에 정한 마음을 일에나 다 주 이름으로 창조하시고 내 예수의 안에 정직한 영을 하고 그를하소서 힘입어 새롭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시 51:10) (골 3:17)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희롱의 마땅치 아니하니 평강에말이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돌이켜이는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가 주를 (엡 5:4) 의뢰함이니이다 (사 26:3)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제공: 김성애 성도 제공: 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그 날에너희가 너희가회개하고 또 말하기를 그러므로 돌이켜 여호와께 이름을 너희 죄감사하라 없이 함을그받으라 부르며 행하심을 이같이 그 하면 새롭게 만국 되는 중에 날이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사 (행 12:4) 3:19)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제공: 김성애 성도


감동이 있는 글 당신의 그 믿음 진짜인가? 인간은 사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다. 인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베풀어 주신것 들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인간은 하나님 위에 올라서려 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업신 여기는 태도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행태들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믿는 사람들도 자신의 교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낮은 자리에 처할 줄 모르며 한없이 높아지려 하고 남들 위에 올라 서려는 욕망 때문에 강단에서부터 모든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회 안에는 성경을 많이 읽어서 가르치기에 능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읽으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성경을 읽기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한다.

28

2022년 1월 27일

예수를 믿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왜 믿어야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서 믿어야 한다. 믿음은 생명을 주는 구원이요 현실적 삶이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자기 마음대로 방탕하며 살 수도 있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경건하게도 믿음으로 살 수도 있다. 사는 것은 마음대로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날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른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자랑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얼마나 많은가? 행한 대로 믿은 대로 생각까지도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수십 번 읽으면 무엇을 하고 수백 번을 읽으면 무엇을 할까? 단 한 구절이라도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이다. 지혜롭게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요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일인데 성경을 읽되 지식만 쌓기 위해 읽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마귀가 삶을 주도하고 내 시간을 관리하며 이끌고 다니게 된다.

그런가 하면 말씀을 듣고 실천하되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이다. 자기 것을 드리고도 저주받은 사람들의 모형이다.

영적 게으름이나 무관심에서 떠나야 한다, 영적 게으름은 무서운 것이다. 깨어 있지 못함이 게으름이요 이는 죄와 관련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 사울이 사무엘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갔으나 모든 것을 진멸하라 하는 말씀에 불순종한 것 같이 적당히 자기의 욕심에 따라 행하는 자도 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식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믿음에서 떠난다는 것은 생명의 주님을 포기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 듣고 적당히 자기 뜻대로 행하는 자 남의 눈 때문에 열심을 내는 자.

우리가 밥은 죽는 날까지 먹으면서 영적 양식에 굶주려가는 것을 모른다면 이는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오병이어의 기적 같은 요행을 바라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주님을 쫓아 다니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들이 나를 비롯한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3년 동안 열심히 주님을 따라 다녔던 가룟 유다가 그랬다. 그러나 진짜는 그의 열매로 알 수가 있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언제든지 신앙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은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의 영혼보다 세상에 더 귀중한 것은 없다. 영혼 없는 육신이 죽은 것처럼 영혼을 관리하지 않으면 그 영혼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살기 위하여 말씀을 먹으며 살기 위하여 믿어야 한다, 예수 믿는 것은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형벌에 처하여 지옥으로 거처를 옮기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코로나 이전에는 그렇게 열심을 내는 것 같고 구름 떼와 같이 몰려들던 사람들이 코로나를 핑계 삼아 적당히 물러서서 교회에 한 발만 내딛고 있는 사람들이 혹 나는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핑계 삼아 예배에 빠지고 기도하지 않으며 전도나 헌신을 게을리하는 자들은 각성을 해야 한다. 마음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할 수가 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예배하며 찬송하고 기도도 했다. 마음이 없고 우리의 믿음이 없는 것이지 코로나 같은 환경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다면 새벽에도 갈수 있고 밤에라도 적당한 장소를 찿아야 옳았을 것이다. 열매 없는 나무는 찍혀서 영원한 불에 던져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있는 것 같으나 거짓 믿음은 그 열매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글: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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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있는 글

29

2022년 1월 27일

모든 지혜는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모든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불신자들이나 진화론자들은 지혜의 근원을 설명 할 수가 없다. 양심의 근원이 어디인지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인생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빼놓고는 설명 할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우주가 어떻게 저렇게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지구는 하늘에 떠서 왜 돌고 있는지 사람은 태어나서 어떻게 해서 앞을 볼 수가 있는 것인지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지 하나님이 아니시면 설명이 안 된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설명 할 수도 없고 앞날에 대한 소망도 없는 존재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성경은 분명하고도 똑바로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이없이 인간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의 길을 가는 것을 포기 하지 않는다. 바벨탑을 쌓고 오직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한 시도는 지금도 끊이지를 않고 있다.

어느 글에 보니 자기를 자랑하지 않을 만큼만 행동하고 자기 이름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기도하며 섬기고 봉사도 하는 것이 겸손이라 하였다. 기도한 것을 자랑하고 성경을 많이 읽은 것을 자랑하고 구제하고 봉사한 것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을 스스로 이 땅에서 다 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외에는 드러내지를 않는다. 모든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주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내 지혜도 나의 육신과 영혼과 부귀와 영화도 모두 주님이 주신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형통한 것을 나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다. 이것이 불순종하는 자가 행하는 악이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이다. 인생의 모든것이 주께로 부터 왔으니 주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성경은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경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 저 건너편에 자신의 미래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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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6일-4월 24일 오후 6-8시 (매주 일요일) 강사: Ayman Armanious

장소: 믿음장로교회(김병수목사)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지원일: 2022년 1월 20일까지

교육학 전공(Ph.D) 전 카이로 대학교수 현 Pastor (Arabic Bible Church Denver)

수업료: 무료 교재비: 본인부담 연락처: (303) 669-1001, (303) 960-5057

1. 중동지역 단기 선교를 계획하고 있는 분 2. 중동지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 3. 아랍인 친구와 교제하기를 원하는 분 4. 4억 2천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아랍어에 관심이 있는 분

홍해선교회 MMITA 전문인 선교사 훈련원 대표: 조완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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