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
제 12권 4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2년 2월 24일 발행
목차
2022년 2월 24일
목차 교계소식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은혜의 샘터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선교사들의 이야기 산마루서신 베드로후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크리스천 베이직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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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2월 4월 24일 22일 2022년
2022 세계기도일예배
빛과소금뉴스 인터넷신문
2022년 3월 4일(금) 오후 6시
2022년부터 인터넷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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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교회여성연합회가 주최하는 2022 세계기도일예배가 COVID-10으로 인해 지역에 따라 대면과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 덴버지역은 3월 4일 덴버시간 오후 6시에 You Tube 예배 참석을 부탁드린다. 자세한 사항은 지면 1을 참조하면 된다.
빛과소금뉴스는 그동안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병행해 왔는데, 새해부터는 모든 사역을 디지털 체제로 바꾼다. 그동안 종이 신문 애독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 을 부탁드린다.
●일시: 2022년 3월 4일(금) 오후 6시(덴버시간) ●장소: YouTube https://youtube/YSkhOGIUIFM 시카고 한미장로교회(고훈 목사) ●기도문 작성국: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주최: 미주한인교회여성연합회 ●문의: (303) 523-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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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2022년 2월 24일
"암송하면 좋은 성경구절 (2)" 빛과소금뉴스 독자들이 하나님을 힘써 아는 한해가 되길 기원하며 크리스천의 삶에 적용하여 힘과 능력이 되길 소망하며 중요구절들을 주제별로 모아본다
예수님
부활
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 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 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 가 믿느냐 (요 11:25~26)
2.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9:10)
2.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 6:4)
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 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 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1~5) 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 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5.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 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7.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 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 라 (골 1:20)
3.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 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 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 니라 (롬 8:34) 5.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 시리라 (고전 6:14) 6.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 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7) 7.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 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 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1~22)
8.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 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 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9.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 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 1:18)
10.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 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 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 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 (딤후 1:10) 11.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 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6)
1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4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2022년 2월 24일
지혜
겸손
1.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 이라 하셨느니라 (욥 28:28)
1.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욥 22:29)
2.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시 37:30)
2.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 도다 (시 147:6)
3.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 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 111:10) 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 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5.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 제하느니라 (잠 29:11) 6.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 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 지니라 (미 6:9)
3.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 게 하심이로다 (시 149:4) 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 나니 (잠 3:34) 5.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4) 6.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23)
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 1:17)
7.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 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 김을 얻으리라 (습 2:3)
8.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 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사 33:6)
8.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 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9.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 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눅 21:15)
9.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 리라 (마 20:27)
10.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
10.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3:11)
11.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 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 12:8) 12.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13.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9) 14.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 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2~3) 15.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약 3:17)
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 는 높아지리라 (마 23:12) 12.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13.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 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롬 12:16) 1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15.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 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골 3:12) 1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 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 를 주시느니라 (벧전 5:5)
5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2022년 2월 24일
6
하나님의 약속 1.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 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2.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 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3.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 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8) 4.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 81:10) 5.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 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 3:9-10) 6.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7.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 보다 나으니라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 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2-33) 8.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 26:3) 9.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 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10.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11.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 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 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 리 용서하시리라 (사 55:6-7) 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 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1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14.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 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 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15.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 리라 (마 11:28) 16.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17.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 니라 (마 21:22) 18.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 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2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덴버할렐루야교회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해”
예배 안내
교회비전
Denver Hallelujah Church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담임목사 김창훈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신앙 칼럼
2022년 2월 24일
오성관 목사
7
만족 발행인 최성애 권사 ‘만족'의 사전적 의미는 “욕구가 충족되었다는 상태나 느낌을 뜻하는데,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받아들인 상태를 말하며, 자족이라고도 불린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한 인간에게는
행복보다는 더 부드럽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형태로 본다”로 되어있다(위키백과).
설령 쓰디쓴 잔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한발짝 다가가 보고 싶을 정도로
나무위키는 “마음이 흡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것을 뜻하는 말.
마귀의 유혹은 안타까울 정도로 너무나도 달콤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 만족을 얻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히 만족하지 못 하는가? 그렇다면, 만족감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에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입술로는 “주님 한 분이면 됩니다” 수도 없이 고백하며 목청껏 찬양하지만,
누군가에게는 100평짜리 집도 부족하여 불만이지만,
왜 후회하면서도 하나님께서 한 번 입김만 부셔도 사라질,
어떤 이는 초가삼간이라도 눕고 쉴 수 있는 보금자리로 크게 만족하기도 한다.
세상의 것들을 놓지 못하고 방황하는가?
그러므로 객관적인 면에서 보면 다소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사도바울의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할 때이다.
일단은‘자기만족’이 만족감의 척도나 기준이 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힘이 아닌, 전능자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그 신비한 능력 말이다. 바울은 말하고 있다.
곧 개인적으로 기준치가 낮을수록,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욕심이 적을수록,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만족도는 높아지고 행복감을 쉽게 느낄 것이다. 우리도 어떠한 조건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그런데 이‘자기만족’도 시시때때로 변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만족하며
어제까지는 만족스러웠던 나의 집이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는 전천후 신앙인이 되어야 할 때이다.
오늘 방문한 친구의 더 크고 멋진 집으로 인해 한순간 시들해지고, 폼나던 차도 신형에 밀려 볼품이 사라지는 순간 만족감은 추락하고 만다.
이는 곧 우리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만족의 근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것이 바로 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내적 능력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약점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마귀는,
그렇기 위해서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그 순간을 포착하는데 결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말씀에 바로 서서 부단한 노력으로 만족을 배우기까지
사냥꾼이 올무에 걸린 새를 순식간에 낚아채듯이,
힘써 우리를 만드신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겠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여 단숨에 넘어뜨리는데 명수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은혜의 방패가 호위하는 교회”(시 5:12)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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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은혜 시리즈
영생의 보장 <요한복음 3:16> 최요한 목사 성경의 역사는 역전의 이야기입니다. 대 부분의 믿음의 사람들의 시작은 작고 초 라하였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입니다. 그 는 약점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노인 의 몸이 약점이었습니다. 집을 떠나 타향 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신분이 약점이었 습니다. 고대 중동사회에서 울타리 역할 을 하는 가족이나 아들도 없는 삶도 약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의 약점들을 초월하여 그가 100살이 될 때에 아들, 이삭을 주시면서 축복하셨습 니다. 마침내 그를 통해 오늘날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셨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민 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입니다.
라고 말했는데 평생 고생을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니면서 비난과 조 롱과 멸시는 물론이요, 먹지 못했고 마시 지 못했고 매를 맞았고 돌에 맞았고 몇 번이나 죽을 뻔하였고 감옥에도 여러 번 갇혔습니다. 더구나 그가 세웠던 교회가 그를 배반하였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였 던 성도들이 그의 사도권을 의심하였습 니다. 모두 그를 버렸습니다. 다 떠났습니 다. 그의 마지막 삶은 로마에서 늙고 병 든 몸으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 고 결국은 로마에서 순교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그 의 마지막 삶을 보낼 로마 교회에게 이 렇게 말합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제들에게 시기 와 미움을 받는 것은 불행이었습니다. 그 를 구덩이 속에 빠트리고 죽이려고 한 것 도 불행이었습니다. 그가 이집트에 팔려 가 종이 되고 감옥에 갇히는 불행을 당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요셉이 감당 할 수 없는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은 그의 삶을 뒤집어 감옥에서 끄집 어 내셔서 이집트의 총리로 높이 올려주 셨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역전의 하나님 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 니라”(롬 8:28)
룻기는 절망으로 시작됩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 절 망을 경험합니다. 그 땅에 가뭄이 찾아 와 먹고 살 수가 없는 가난은 또 하나의 절망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젊은 며느리 룻은 절망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불행한 인생에 역전의 드라마를 준비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보아 스를 만나고 룻이 그와 결혼을 하면서 절 망이 끝나고 소망의 삶이 시작됩니다. 역 시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입니다.
고난은 나쁜 것입니다. 약점은 나쁜 것 입니다. 불행은 나쁜 것입니다. 절망은 나 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 리에게 그분은 누구십니까? 이 모든 것 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 다. 지난날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 습니까? 오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왜 내일을 근심하며 두려워하시나요? 우리 의 고난의 삶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이 살 아계십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고난이 시 너지의 하나님 손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 룹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끝없는 고 난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불치의 병은 고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시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위 대한 하나님의 역전이 무엇입니까? 예수 님의 부활입니다.
여기 ‘합력’이란 헬라 원어는 ‘수네 르게오’입니다. ‘수네르게오’에서 영어 의‘시너지’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시 너지란 공동 작용(joint action)같이 힘 을 모우면 더 많은 에너지나 효과가 나 온다는 말입니다.
섬김의 교회
1.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역전인 예 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영생을 보장 님께서 그가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 입니다. 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생명이심을 증명합니다. 유대 땅 갈보리 언덕에 로마 군인이 예 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첫날 금 요일은 예수님에게 고난의 날이었습니다. 둘째 날 토요일은 그분이 무덤에서 갇히 는 절망의 날이었습니다. 이때 사탄은 승 전가를 불렀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어, 내가 이겼다.” 그러나 셋째 날 새벽에 예수님은 “아 니야. 그것이 아니야. 아직 끝나지 않았 어.”라며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주일 전 주간의 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이 그날 죽으셨는데 ‘Good Friday’ 라뇨? 왜요? 그날이 ‘Good Friday’ 인 것은 3일 후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 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으신 그날 마저도 ‘Good Friday’입니다.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이곳에 어두 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빛이 있기 때 문입니다. 어두움은 빛의 부재입니다, 그 러나 빛이 오는 그 순간에 어두움은 사 라집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절망이 아무리 커도 소 망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 니다. 죽음이 아무리 강하여도 생명을 이 기지 못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 생 명입니다.
2) 부활은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에게 천 사가 말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 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 라 …”(마태 28:6).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말씀하신 대 로”(just as he said)입니다. 그가 말씀 하신 대로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며 믿을 수 없는 부활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약속을 하시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 시는 성실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의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모 든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실하신 분으로 그가 약속하신 말씀은 참으로 지키시는 성실하신 분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 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죽음 후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그분 이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우 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십니까?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죽음을 넘어 미래의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곳을 천국(마7:21), 낙원(눅23:43), 내(하나님) 아 버지 집(요14:2)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고후5:1) 등으로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 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합니다.(고전 15:17) 다시 말해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이 없 으면 우리의 믿음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 가에 죽으신 예수님이라도 부활하지 못 하셨다면 그분을 믿을 가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 끝이라면 그 분 자신도 영원히 못사시는데 우리에게 영생을 어떻게 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믿음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은 예수님의 부활하셨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강단 설교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 수님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다시 살 것입니다. 왜요? 그 리스도 안에서 죽음이 죽었기 때문입니 다.(Death is dead in Christ.)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이 죽었다니요? 죽음은 힘이 있습니다. 죽음 이 얼마나 강합니까? 죽음 앞에서 청년 도 부자도 지식인 권력자도 다 항복합니 다. 죽음이 모든 생명을 다스립니다.
2022년 2월 24일
리를 ‘turn around’ 시켜 생명의 길 로 인도하셨고 영생의 승리를 주셨습니 다.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가장 위 대한 역전의 승리입니다.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 그분의 승리가 우리의 승 리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첫 열매로 말 씀합니다. “먼저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에게 속한 자요”(고전15:23)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 을 이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죽음을 이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났습니다. 죽음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 망하고 말았습니다. 죽음이 죽어 송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사과 열매가, 오렌 지 나무를 심으면 오렌지 열매가 열립니 다. 그 나무에게 맺히는 처음 열매로 보 고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열매에 이어 서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 백 번째 … 열매들이 따라서 맺힙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5에서 그것을 말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 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 냐” 사망은 결코 우리를 이기지 못한 다는 바울의 반문입니다. 죽음의 화살이 나 독침이 우리의 생명을 건들지 못한다 는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첫 번째 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그를 믿는 우리 도 부활의 열매로 다시 살 줄 믿습니다. 언제요? 그분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 도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저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그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미국 MLB의 전설인 요기 베라는 “끝 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It is no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야 구 경기의 9회에 two outs 이라고 해 도 역전은 일어나 승리할 수 있다는 말 입니다. 덴버 브랑코스 훗볼팀의 유명한 쿼러 백인 John Elway 라는 선수가 있었습 니다. 그는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브랑코스가 많은 점수로 지고 있었는데 그가 극적인 터치다운 패 스를 하거나 자신이 running back처럼 몸을 던져 터치다운을 하며 경기를 뒤집 는 선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에 그들보다 더 위대한 역전의 명수가 계십니다. 그분 이 하나님입니다. 지난날 우리 모두는 생 명에 경기에 패배의 팀에서 죽음으로 달 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 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에서 보내셨 고 십자가에서 희생 재물로 삼으셨습니 다. 그리고 삼일 후에 그분이 다시 살 아나셨습니다. 그분이 죽음으로 가는 우
2. (성경)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또는 무엇으로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까? 성경입니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 면 예수님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성 경은 예수님의 출생이전부터 그분의 일생 과 가르침,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에 대 하여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 성탄 주일의 설교로 마태 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할 때 였습니다. 그때 제가 예수님은 인류 역사 에 실제로 존재하셨던 인물이라고 말씀 을 드렸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제가 이 렇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 의 말씀 위에 제 손을 얹어놓고 “여기
에 예수님이 진짜 사람으로 오신 것을 그 분의 족보가 증명하잖아요.” 말하며 성경 책을 쳤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삶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사 실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여기 이 성경책 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 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한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But these are written down) 즉 성경이 쓰여진 목적 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 니까? 첫 번째로 예수님을 믿게 하고 그리 고 두 번째로 그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얻 게 하려 함입니다. 구원이나 영생의 확신 은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이 그렇게 느껴지 기 때문이 아닙니다. 꿈이나 환상에서 천 사를 보아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기도하니 직장에서 승진이 되고 병이 낫고 복권에 당첨이 되고 부자가 되었기 때문입 니까? 우리가 영생을 받았다는 확실히 증 거는 성경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영 생을 받았다는 확실한 보증은 바로 하나 님의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
3. 하나님은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보장하십니다. 우리들이 실수나 죄를 지을 때에 스스 로 우리 자신이 압니다. 뭔가 잘못되었다 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 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 나님이 두려워지고 또한 양심에 죄책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름대로 착한 일 과 의로운 삶으로 죗값을 치르려고 하는 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 나 많은 선행이나 도덕적 또는 거룩한 종 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613개의 율법이 있 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아무도 그 모든 법들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었습니다. 우 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행위나 의지로 천국에 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 가능합니다. 우리의 지식, 돈, 공로로 영생 을 받을 정도로 완전해질 수도 없고 결코 완전해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 고 그를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습 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아 들의 생명과 범죄한 우리의 생명과 맞바꾸 셨습니다. 예수님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살 리셨습니다. 오직 이 방법이 밖에 없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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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느니라.”(요한14:6) 이제 요한1서 5장 12절은 말씀합니다.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 시기 위해서 보내신 그 아들, 예수님입니 다. 성경은 이것을 아주 단순하게 그러나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기쁘고 좋은 소식인 복음입니다. 저는 지난날 어느 책에서 읽었던 목사이 며 신학자인 그분의 복음에 대한 개인 간 증이자고백을 읽어 드리면서 설교를 마치 고자 합니다. “나는 20대에 여러 가지 철학과 종교를 공부했다. 그리고 이 철학과 종교에 비교해 복음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30대에 내가 추구라던 철학과 종교 가 나에게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때에 복음은 비로소 나에게 다가왔다. 40대에 나는 인생의 스 트레스와 삶의 문제들과 싸우면서 복음을 의지하였을 때에 복음은 능력으로 다가왔 다. 비로소 복음은 나에게 위대한 것이었 다. 50대에 들어와서 내가 그때까지 쌓아 놓았던 모든 인생의 모든 성취들이 허무 하게 느껴졌을 때에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 냐고 질문했다. 그때에 비로소 복음은 나 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다. 60대가 되 어 나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 세상을 떠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또 나의 손에 붙잡 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빠져 나갔다. 이때에 내가 붙들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복음밖에 없었다. 70대에 복음은 더 이상 복음은 나에게 너무 단순하거나 심오한 것 이 아니었다. 복음은 더 이상 위대한 것도 중요한 것도 아니다. 이제 복음은 나에게 유일한 것이다. 이제 나는 복음 없이 살지 못한다. 복음은 나의 생명이다. 복음은 나 의 인생이다.” 이제 다 같이 요한복음 3:16의 말씀을 다 같이 읽으면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 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 라.” 아멘!
내면을 향한 여정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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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따뜻한 말 한마디
더불어 함께 살려고 하면
잠언 Proverbs 15:1-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4). ......................................................................................
잠언 Proverbs 15:1-4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1). ......................................................................................
새 번역 본으로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이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새번역).
생물학에서‘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 하는데, 이 말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왔기에 지구상에 이처럼 남아 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온순한 혀는(따뜻한 말) 성질이 온화하고 선량함을 말하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남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고 고쳐주는 약이 될 수 있기에 잠언 기자는 이를 “생명나무”란 표현을 쓴 것입니다.
사회적 동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지혜는 자기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일입니다. 자기 감정대로 분노하고 화를 참지 못한다면, 슬기롭지 못한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창조 당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처럼, 그것은 생명력, 즉 영생의 삶, 따뜻한 말 한마디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위로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이 치유가 일어나고 상처받아 죽어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패역한 혀(가시돋힌 말)은,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고 상하게 하고 깨뜨리게 하여 영혼을 파괴시키게 됩니다. 한 마디 패역한 말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언어 습관이 믿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슬기롭다는 것은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 것인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어야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감정을 억제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내면을 향한 여정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애써야 하는데, 성서는 말하기를 “허물을 용서하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를 사하여 주옵시고” 기도한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용서받아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살고자 한다면, 자기절제(self-control)와 용서를 할 줄 알아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인데 늘 그것이 쉽지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ooreekmc@hanmail.net>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 56 :7)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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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맹세 2022년 동계 올림픽이 2월 20일에 끝 났다. 노르웨이는 금 16개를 비롯하여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책
하신 하나님의 복된 맹세로 여길 수 있
임을 져 주신다.
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37개의 메달을 따서 지난 동계 올림픽과
와 보배가 되고 우리는 보배로운 백성으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마찬가지로 1위를 하였다. 노르웨이의 인
신 26:15에서는, “주의 거룩한 처소 하
로 인정을 받을 수가 있다. 또한 하나님
자’라는 의미가 있다. 다니엘은, 포로와
구는 단지 5백 4십만 명에 불과하지만,
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과 찬송과 성민과
노예로 살았을 때와 큰 지역의 국무총리
강추위와 폭설과 빙판에서의 환경은 일
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자녀가 될 것이다.
로서의 권세가 있었을 때와 사자굴에 던
상화가 된 나라이다. 노르웨이 사람들 중
우리에게 주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에는 동계 올림픽의 종목에 익숙한 선수
복을 내리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
예수님의 권세나 성령의 은사를 받은
로 여기고 경외하면서 겸손하고 진실하고
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 뽑힌 국가 대표
나님의 축복이나 약속이나 맹세를 받은
자들도 순교를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
신실하였다. 하나님을 심판자로 온전하게
선수들은 올림픽에서도 상위권내에 들었
후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는
하나님의 쇠사슬에 매여야 한다. 그것은
섬길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고
던 것이다. 인구가 60배가 많은 미국과,
물론 경고를 우리 각자에게 하신 맹세로
사단을 묶고 무저갱이에 던지는 도구이
난과 대적을 선하게 이기게 하는 것이다.
인구가 260배가 많은 중국과 인도보다
여겨야 한다. 그리고 마음과 성품과 온몸
다. 전쟁터에서 쇠사슬에 매인 병사들은
도 동계 올림픽 경기에서는 우수한 성적
을 다하여서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서 싸웠다. 그
사드락 혹은 하나니아의 이름은, ‘하
을 내곤 한다.
수 있어야,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와 같이, 우리도 바울과 같이 주하나님
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의미가 있는데
보배로운 그 무엇이 될 수가 있고 보배
의 쇠사슬에 매여야 가장 안전하고 든든
하나니아는 늘 은혜롭게 처신하였다. 메
로운 그 누군가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할 뿐만 아니라 힘과 능력을 낼 수가 있
삭 혹은 미사엘의 이름은, ‘누가 하나님
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까지 받을 수가
과 같으실까’라는 의미가 있는데, 미사엘
있거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도 음모와 죄악과 위험을 은혜롭게 처신
벼락치기로 혹은 우연히 운동이나 생 존경쟁과 전쟁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
져지었을 때에도 항상 하나님을 심판자
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울과 같이, 거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는 방주를 지으
환경일수록 진실하고 신실한 예수장이가
라고 명하시면서 노아의 영육의 구원자가
되고 신앙의 성공자나 승리자로서 연단
되시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또한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라는 의미가 있
이 되며 유익하고 영광스런 크리스천이
그들을 축복하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그
은혜와 자비로 살고 구원도 얻을 수가
는데, 아사랴도 은혜롭게 처신하였다. 그
되는 기회로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
들을 저주하는 자들은 저주하실 것이라
있음을 늘 기억하여야 한다. 그리고 비
들 모두 용광로 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
고 불가항력적인 면이 많은 사람들의 약
고 말씀하셨다. 모세에게는, 호렙산에서
록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이 능력의 사도
의 은혜로 천사의 보호를 받았다.
속이나 맹세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나 도구는 되지 못하고 사도 요한과 같
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심령 속에 새기고
에 거하게 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
이 사랑의 사도나 도구는 못되더라도 은
하나님의 맹세를 붙잡고 선한 싸움에
서, 주의 군사가 되거나 신앙의 바이킹,
다.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하게 경외하거
혜와 자비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 하나
최선을 다하여야 천국, 영생, 복락, 상급,
의의 바이킹, 인내의 바이킹, 소망의 바
나 사랑하거나 선행을 행할 때에는, 은혜
님의 은혜와 자비에도 능력이 동반하는
면류관, 그리고 권세를 확장할 수가 있
이킹, 은혜의 바이킹 혹은 자비의 바이킹
와 사랑과 신실하심과 보호와 장수와 응
것이다.
다. 아무쪼록, 천국에 들어가서조차 후회
이 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그래야 하나
답과 복을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님의 병기를 능력있게 사용할 수가 있고
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우리 각자를 향
하였다. 아벳느고 혹은 아사랴의 이름은,
나 아쉬움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다니엘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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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65)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사무엘상 16:14-23>
지난번에
이어서 오늘 본문을 한 번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번에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거부한 사 울 왕에게서 나타난 몇 가지 특징들 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특징들이 나 타났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떠났습니 다. 그리고 악령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또한 번뇌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하 나님이 함께 하는 자의 특징이 무엇인 지 다윗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졌습니다. 사울 왕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 자 악령이 그를 번뇌케 했습니다. 왕 이 번뇌하는 것을 신하들이 봤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 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 을 번뇌하게 하온즉”(사무엘상 16:15). 그리고 치료를 위해 왕에게 조언을 합니다.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 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 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 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 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 으시리이다 하는지라”(사무엘상16:16).
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 려오라 하니”(사무엘상16:17). 사울 왕이 신하들의 조언대로 수금 잘 타는 사람을 구해서 자신 앞에 데 려오라고 명을 내립니다. 이 때 사울 왕을 곁에서 섬기던 한 소년이 등장합니다. 이 소년이 뭐라고 말합니까?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 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 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 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사무엘상16:18). “내가 베들레헴에 사 는 이새의 한 아들 중에 수금을 잘 타 는 아들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 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 을 내가 보았습니다.”라고 이 소년이 왕에게 다윗을 추천합니다. 여기서 ‘본즉’이라는 말이 중요합 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아’ 인데, ‘보다’라는 동사입니다. 이 ‘ 라아’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하신 분 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 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신하들이 뭐하고 조언을 합니까?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해다가 왕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 곁에서 수금을 타게 하면 왕이 낮게 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사무엘 면 ‘Music Therapy’를 하라는 것 상16:1). 뭐하고 말씀하십니까? 입니다. 이 조언을 사울 왕이 받아들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입니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다.”라고 하십니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 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 다윗은 누구 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본 자입니다.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라아’ 라는 단어는 사울 왕의 입을 통해서 도 나옵니다.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 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 려오라 하니”(사무엘상16:17). 여기 ‘구하여’라는 단어가 바로 ‘ 라아’입니다. 이 단어는 다시 한 소년 의 입을 통해 ‘내가 본즉’이라는 말 로 메아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았던 다윗을 또 누가 보았습니까? 이름 없는 한 소년이 보 았습니다. 특별히 이 소년이 다윗을 보고 그를 왕에게 추천하면서 강조하 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 다.” 이 소년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하 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첫 번째 특 징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악령이 자신에게 임하는 모 습을 신하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임 해 계심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었 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이 다윗에게서 보았던 또 다른 것들이 무엇입니까?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 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 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사무엘상16:18). 수금을 탈 줄 아는 재능이 있는 것 을 보았습니다. 용감한 전사인 것을 보았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인 것을 보았습니다. 잘 생긴 사람(준수한 사 람)인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한 마 디로 그의 전 인격이 모든 면에서 부 족함이 없는 인물(17장 골리앗과의 싸 움을 염두에 두고)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다윗 이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뛰어 난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었던 것은 하 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무엇으로 증명하고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것은 내 삶을 통해서, 내 인격을 통 해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결국 그리스 도인의 삶과 인격은 하나님에 대한 반 영(反映, reflection)인 것입니다. 나의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 을 반영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의 온유한 인격을 통해 우리 주님의 온 유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의 겸손 을 통해 우리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드 러내는 것입니다.
둘째,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 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들 다윗을 보내라는 사울 왕의 명 을 받은 이새는 왕에게 보낼 선물들을 준비해서 다윗과 함께 보냅니다.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 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3
2022년 2월 24일
내게로 보내라 하매 이새가 떡과 한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은총을 얻었
함께 하는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인정
삶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라는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
다는 것은 다윗의 정치적인 입지가 확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대 되고 그의 위상이 격상 되었다는
자신과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의 성품
누구처럼 성경책 들고 교회 앞에서 사
사울에게 보내니”(사무엘상16:19,20).
것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다
을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냈기 때문입
진 찍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여 지
윗이 사울 왕에게만 사랑을 받는 것
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다윗에
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하나님의 선
사울 왕을 만난 다윗은 왕으로부터
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로부터도
게서 보여 진 이런 선한 영향력은 사
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변에 끼치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먼저 큰 사랑
사랑을 받은 것을 거듭 반복해서 기
울 왕에게 악령으로 인한 번뇌로부터
며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삶
과 인정을 받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
록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아들 요
벗어나게 하는 유익을 끼칩니다.
을 살게 되어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
앞에 선 다윗을 자신의 수행비서(무기
단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18:1). 백
를 드는 자)로 삼습니다.
성들이 다윗을 사랑합니다(18:16). 사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
울 왕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합니
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다(18:20). 이렇게 다윗은 왕으로부터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사무
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사
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사랑을 받습니
엘상16:23).
무엘상16:21).
다. 17장에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드
그리고 왕으로부터 은총을 얻습니 다.
님이 함께 하시는 그런 삶을 사시는
러났던 그의 선한 영향력, 즉 다윗의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그
믿음과 삶과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늘 교제하며
고 확대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영향력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여러분 되기시기를 축원합니다.
God is love.
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유익하고 형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
다윗이 이처럼 사울 왕의 신임을 받
통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
고, 은총을 얻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삶에도 그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
느니라 하니라”(사무엘상16:22).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잘
치며 삽니다.
(1 John 4:8)
나서 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다윗은 왕으로부터 신임을 얻습니다.
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으로 자신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새성구 9/23/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 1:21)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2년 2월 24일
14
전도서 전도서와 솔로몬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은(잠25:1, 전1:1, 12, 16, 왕상4:29-30, 2:1-3, 4-6, 7-10, 12:9) 그의 통치 말기(기원전 935년 경) 전도서를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통치 초기 융성했던 위대한 영화는 솔로몬의 통치 말기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이 두 왕 국으로 분열되는 사건을 가깝게 바라보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만약 유대인의 전승대 로 솔로몬이 아가서를 젊은 날에 기록했고 중년에 잠언을 기록했다면, 그의 말년에 전 도서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 의 육욕과 우상 숭배 때문에 비롯된 자신 의 어리석음과 시간 낭비를 후회하는 표현 을 전도서에서 표현했습니다(왕상11).
전도서의 배경과 제목 전도서의 핵심은 하나님을 떠난 삶 가운데 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시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에 나타난 설교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지혜롭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왕이었던 솔로몬으로 이해되어왔습니다(1:1, 12). 솔로 몬은 “해 아래”(1:1, 12)있는 모든 것을 인 간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헛되다고 선언합 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삶은 의미와 목적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솔 로몬으로 하여금 하루 하루를 “먹고 마시 고 즐거워하고 선을 행하고 기쁘게 살고 하 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삶의 행복이고 그런 삶은 하루 하루가 하나 님께서 주시는 선물과 같은 것이라고 가르 쳐주고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 님의 선을 행하면서 해 아래의 모든 것들을 바르게 누리고 관리해 나간다면 회의주의나 절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코헬렛(Qoheleth)입니다. 이 용어는 오직 전도서에서 만 발견되는 희귀한 용어입니다(1:1-2, 12, 7:278, 12:8-10). 이 단어는 ‘회중을 소집하 다, 모이다’라는 의미에서 ‘회중에게 말하 는 자, 설교자’라는 의미로 발전되었습니다. 70인 역에서는 이 책의 제목의 헬라어 단어 인 ‘회중, 모임, 교회’(Ekklesiastes) 라는 의미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전도서의 주제와 목적 전도서에서 ‘헛됨(vanity)이란 단어는 37회 사용되었습니다. 전도서는 인간이 하
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삶의 목적, 의미, 그 리고 만족을 부지런히 추구한 결과 인간 의 권세, 특권, 쾌락이 허무하고 헛된 것이 라고 통렬하게 간파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에서 29회나 사용된 “해 아래서의”는 인 간의 삶은 불공평하고 불확실하고, 불의로 훼손되어 불만족과 좌절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도서는 인간들을 무신론이나 회의주의로 몰고 가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최고 선 (summum bonum)에 대한 추구는 하나 님 안에서 종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선하고 정의롭고 절대 주권을 갖 고 계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고, 그리고 인간이 그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삶의 공 허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분명한 주제를 제 시하기 때문입니다(12:13-14).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관점을 가지고 인생의 공허함의 해답을 바라보게 만들어 줄 뿐 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을 행하며 그분을 의지하는 태도를 갖게 합니 다. 이런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일상이 하 나님의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많 이 향유할 수 있습니다(2:24-2, 3:12-13, 22, 5:18-20, 8:15, 9:7-10, 11:8-9). 또한 우리는 전도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 람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고,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 령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12:13).
전도서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핵심 구절 :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 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 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일을 선악간 심판하시리라” ▶ 핵심 장 : 전도서의 핵심 단어는 “헛됨” 입니다. 전도서 12장에서 설교자는 인간의 삶을 두 가지의 안경으로 바라봅니다. 한 가지는 단지 ‘해 아래서’ 삶을 바라보는 자연인의 관점에서, “모든 것이 헛되도다” 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인간의 삶과 행위가 순간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지만 종국 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목적도 없고 헛된 것 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설교자가
그의 삶을 ‘해 위에 있는’ 하나님의 시 야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삶은 ‘하나님 의 손에서 나는’(2:24) 귀한 선물로서 의미 를 띠게 됩니다. 12장 13절 말씀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결론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이 책의 광범위한 탐구를 해결합니다. “하나 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 이 사람의 본분이니라”(12:13).
전도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전도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두 가 지의 예를 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영원을 사 모하는 마음(eternity in the hearts of men)”(3:11)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된 인생의 헛됨과 당혹스러움은 예수 그리 스도만 주실 수 있는 죄사함의 의와 영생을 통해서 궁극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또 다른 한가지는 “한 목자(one Shepherd)”(12:11) 에 대한 예언입니다. 인류의 최고의 선은 풍 성한 생명을제공하시는(요10:9-10)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의 전체 내용 개관 전도서는 불의와 명백한 어리석음에 둘려 싸여 있는 인간의 이 땅에서의 삶의 의미와 만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심오 하고 모호한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분석 하기 위한 몇가지의 방법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용되어져 온 몇 가지의 분석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도서의 명 제, 명제의 논증 그리고 결론입니다. 전도서 의 명제는 “모든 것이 헛되다”(1:1-11) 입 니다. 이 명제에 대한 논증이 1:12-6:12절까 지 기록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헛됨을 안 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입 니다(7:1-12:14). ◈ 전도서의 명제:“모든 것이 헛되다”(1:111). 서문에 이어지는 전도자의 설교의 주제 에 의하면 해 아래서의 인간의 삶은 시대 를 초월해서 혼란스럽고 무의미합니다. 설 교자는 자연과 역사에서 관찰된 예증들을 통하여 인간의 끝없는 혼란의 순환을 보 여줍니다. ◈ 전도서의 명제의 논증: 설교자는 자기 의 폭넓은 자원들을 가지고 자신의 다방면 의 탐구의 노력들을 예로 사용하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서의 명제를 귀납법적 방법론으로 논증합니다. 여기에는 솔로몬의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지혜(1:12-18)와 지식에 대한 탐구는 근심을 더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무지가 축 복’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 다. 설교자는 지혜에서 시작하여 웃음, 쾌 락, 술, 일, 여자, 그리고 부(2:4-11) 그의 귀 납법적인 방법론을 인간의 삶의 일곱 가지 의 영역으로 까지 확대시킵니다. 더 나아가 전도자는 철학적인 탐구로 옮겨가지만 결론 은 같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음(3:1-5), 의인 과 악인이 동일하게 죽음(3:16-22), 사회적 인 관계의 헛됨(압제, 경쟁, 욕심, 권세)과 종 교적 관계의 헛됨(형식 주의, 공허한 기도, 서약), 그리고 그 외의 세상이 주는 것들의 허무함을 탐구합니다. 역시 전도자의 결론 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이 헛됨과 허무함 의 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전도서의 조언: 그렇다면 헛됨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제 시합니다(7:1-12:14). 설교자는 실제적인 지 혜에 관한 인간의 일련의 교훈들(7:1-9:12) 은 경솔함과 쾌락 추구가 얄팍하고 어리석 은 것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도 리어 인간의 얄팍한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 으로부터 온 지혜가 인간의 최선의 선택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설교자가 우리에게 제시한 그 지혜는 훈련과 근면을 포함하는 지혜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를 통하여 우리의 일상 생활을 낭비하 지 않고 하루 하루를 하나님의 선을 행하 는데 충만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이 일은 인 생의 이른 시기에 할수록 더 좋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설교자는 12:1-7을 통하여 ‘ 선하고 훌륭한 삶’(good life)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써만 얻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 립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당연히 인 간의 헛된 인생에서 그 답을 찾지 못할 것 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한 목자’(12:11, one Shepherd)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 여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 마땅히 들어갈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 께서 주신 선물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선물 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선과 의를 풍성히 행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2년 2월 24일
15
“다 같이 묵상기도 함으로...” * 우리의 예배 시작은 언제나 묵도로 시작해야 하나요? * 동일한 교단의 외국교회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다 같이 묵상기도 함으로...”가 있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 개혁자들은 예배를 어떤 형태로 시작했는지요?
우리 한국교회는 일찍부터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첫 순서로서 “다 같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예배 선언과 예배의 부름으로 시작을
이미 세계의 장로교 예배의 원조인 웨
성은 때로는 비성서적인 경향을 보이
삼고 있습니다.
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서 밝힌 대로,
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묵도(묵상기도)함으로 예배를 시작
교인들이 예배당에 들어서면 십자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러
이러한 기록들이 뚜렷하게 있는데
를 비롯한 어떠한 성물이 있는 곳에도
이제는 눈을 들어 개혁자들의 예배
한 순서는 한국 기독교 예배에서 너
왜 한국교회는 머리 숙여 묵상기도를
경의를 표하거나 절하는 일이 없이 자
현장도 연구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
무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뿌리 깊은
하게 했는지 그 사연을 찾아볼 필요
리를 잡고 엄숙하고 품위 있는 몸가짐
배 시작과 세계의 개혁교회들이 예배
관행입니다.
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의 설명이
으로 예배를 드려야 함을 가르쳤습니
를 시작한 형태는 너무 차이가 큽니다.
가능합니다.
다. 이러한 예배의 엄숙성을 실현하기
예배 인도자가 오르간의 전주가 끝나
그러나 묵상기도라는 순서는 기독
하나는, 이 땅의 많은 종교의 예배행
위하여 선교사들은 우리의 제의문화(
면 바로 나와서 밝고 상쾌한 인상과
교 예배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순
위들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묵념을 하
祭儀文化)에 자리 잡고 있던 ‘묵상기
음정으로 “이제 우리의 마음과 뚯과
서입니다. 초대교회나 종교개혁자들의
는 것을 일상화했던 것에서 유래했을
도’라는 것을 예배에서 유용하게 활
정성을 모두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
예배 순서 그리고 최근 신·구교의 어
가능성이 있습니다.
용하였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습니다”하는 예배 선언은 매우 인상
느 예배 순서를 찾아보아도 묵도라는 순서는 전혀 흔적이 없습니다.
둘째는, 떠드는 교인들을 조용하게
적입니다. 이 선언이 끝나면 찬양대의
하는 방편으로 묵상기도를 사용했을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교인들의 의식
응답송이 나오고, 이어서 인도자가 하
역사적으로 예배의 시작은 대체적으
가능성입니다. 다음의 1920년대에 있
수준과 예배에 임하는 자세는 세계의
나님의 말씀으로 예배의 부름(말씀)을
로 다음과 같습니다. 속사도 시대는 성
었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봅
어느 교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시
장엄하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기원을
경봉독으로, 3-4세기의 예배부터는 집
니다. “남에게 방해가 되는지 유념도
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하면 우리의 예배는 그 의미나 절차에
례자가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주의도 없이 큰 목소리로 자기네들 일
의 예배도 이제는 더 이상의 의미를
서 훌륭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됩니
하면 회중은 “또한 사제와 함께”라
주일간 지내오던 잡설이던지, 혹 오랫
주지 못하는 순서는 삭제하고 밝고 신
다. “다 같이 묵도함으로..”를 가지고
는 인사와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이러
동안 보지 못한 그리운 친구라도 보면
선하게 시작하는 순서를 사용해야 합
예배를 시작하는 관습을 버리지 못하
한 전통은 동서방교회가 지금까지 사
그를 따라가 앉아서 정담을 하거나..”
니다. 아직도 아무런 의미를 알지 못
는 한 우리의 예배는 밝고 즐거운 경
용해온 바입니다. 또한 개혁자들은 예
했다는 기록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 채 습관적으로 따라 하고 답습하
축의 예배 감각을 갖기가 매우 힘들게
배가 시작되면 맨 먼저 기록된 ‘참회
예배의 엄숙성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
는 예배 인도자가 예배의 변화를 거부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제는 우리의
의 기도’를 한 목소리로 드린 후 ‘용
로 ‘묵상기도’를 시도했다고 봅니다.
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
예배 시작에 깊은 관심을 가질 때가
입니다. 선교사들이 고국의 땅에서 시
되었습니다.
서의 확신’ 순서로 예배를 진행하였 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개혁교회는
예배를 인도했던 초기 선교사들은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Denver Hallelujah Churc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작한 것이 진리인 양 고수하려는 보수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주일예배: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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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터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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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이레 지금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 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 들이 질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자동차, 비행기 및 선박의 기름 값을 비 롯하여 많은 원자재와 생활필수품의 값 이 치솟아 생활하기가 더욱 불편해지면 서 여러 가지 삶의 고통과 경제적, 정신 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자들이 많아진 것을 보고 들으며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인생 여정 길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시험과 역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잘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까?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 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을 비롯하여 누군가 어려움 에 처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자가 옆에서 도와주며 지켜준 다면 인생 살아가는 맛을 만끽하며 여유 롭고 흐뭇한 삶을 누릴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문화와 종 교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노벨상을 가 장 많이 받은 민족이다. 그 민족에게 가 장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 둘이 있는 데 그들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다윗이다. 그중에 오늘은 아브라함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극복 하며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는지 살 펴보기를 원한다. 기원전 약 1400년경에 갈대아 우르에 서 태어난 아브람은 그의 부친 데라와 함께 하란으로 이주하였고 그의 나이 75 세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전능하 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여 호와께서는 아직 자식이 없는 아브람에 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 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창 12:2). 그 후 세월이 흐른 후에 여호와의 말 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 하). 그 증거로 아브람을 이끌고 밖 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보게 하였고 하 늘의 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으리라 하 셨고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늙은 아브람과 그 의 아내 사래 역시 여성의 생리가 끊어 졌기에 친 자식이 없음을 고민하게 되었 다. 그러므로 사래는 자신의 여종 하갈 을 통해서 자녀 얻기를 원하여 아브람에 게 하갈과 동침하기를 구하였고 그의 말 을 들은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여 아 들을 얻게 되지만 아브람의 가정에 불화 가 생겼다. 그 발단은 사래의 여종, 하갈이 자신 에게 임신된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여 주인 사래를 멸시하면서 시작되었다. 결 국 분노로 가득찬 사래는 하갈을 학대 하였고 하갈은 눈물을 흘리며 슬픈 감 정을 가슴에 안고 그의 여주인을 피하여 도망가는 안타까운 신세가 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던 그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 다. 그 후 여호와께서 아브람(높은 아버 지)에게 나타나서 아브라함(여러 민족의 아버지)으로 이름을 바꾸고 또한 사래(나 의 공주)를 사라(여러 민족의 어머니)로 바꿀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 님의 언약을 그와 그의 자손 대대로 이 루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100세가 된 아브 라함에게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다. 그의 아내 사라는 임신하여 독자 이삭을 낳아 인생을 즐기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얼마 나 행복했을까? 그러나 그의 인생에 참
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직면하게 되 는데 그의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 다. 아! 이 어찌된 일인가? 그동안 약 17년 동안 잘 보살피고 사 랑하며 삶의 기쁨을 나누며 키운 약속 의 아들, 이삭을 불에 온전히 태워 하나 님께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은 얼마 나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 만 해도 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하 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원망하며 불평하 면서 이 아들만큼은 안 된다고 부르짖을 만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기가 만난 지극 히 높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지금까 지 인도하고 지켜주고 공급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 신뢰를 하며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번제에 쓸 나무, 불, 칼, 그 아들을 결박할 끈, 등등) 나귀와 사환과 아들을 동원하여 하나님 이 지시하시는 모리아 땅의 한 산을 향 해서 출발하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토록 사 랑하는 독자 이삭, 100세의 고령에 하나 님의 약속으로 받아 앞으로 큰 기업을 이어나갈 생명같이 귀한 아들을 불에 온 전히 태워 제물로 바치라는 여호와 하나 님의 명령에 의심치 않고 순종하고 나아 갈 때에 그의 아들 이삭이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하게 된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 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 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7,8). 그리고 아브라함은 지시한 곳 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번제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
장석현 목사
트리니티교회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 할 때, 여호와의 사 자가 아브라함을 부르며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네가 네 독자, 이삭을 아끼 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안다 고 인정 하셨으며 그때 아브라함은 수풀 에 걸려있는 숫양을 발견하고 아들을 대 신하여 번제로 드렸으니 이 얼마나 경이 로운 일인가?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 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4).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지체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믿음은 하나님을 절대 신 뢰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하나님의 언약대로 그를 통하여 만민이 복을 받는 엄청난 은총을 누리게 된 것 이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 라...” (히 11:19).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빛과 소금의 인터넷 독자들이 여! 특히 은혜의 샘터에서 놀라운 하나 님의 은총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분들께 여호와 이레의 은총이 함께 하리라 확신 하며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임하는 환 경과 상황 속에서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온전한 믿음을 갖고 인내하면서 온 우주 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복을 누리며 주님 다시 오시는 영광스런 그 날까지 승리하며 칭찬과 상급과 면류 관 받기를 축복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같이 되었고 되었고 사람의 사람의모양으로 모양으로 취할 것으로여기지 여기지아니하시고 아니하시고오히려 오히려자기를 자기를비어 비어종의 종의 형체를 형체를 가져 가져 사람들과 사람들과 같이 나타나셨으매 곧 십자가에 십자가에죽으심이라 죽으심이라(빌 (빌2:5-8) 2: 5-8) 나타나셨으매자기를 자기를낮추시고 낮추시고 죽기까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복종하셨으니 곧 제공: 실로암장로교회
진리의 샘터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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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할 가치 박현수 목사 갈보리교회 볼더에 ‘브레이나드 레이크(Brainard Lake Recreation Area)’이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 안에 2마일 정도 되는 트레일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레이크 이사벨(Lake Isabelle)’입니다.
야곱은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그의 삶이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합니다.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이 붙은 시편 90편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수년 전에 아이들과 함께 이곳으로 하이킹을 갔었습니다. 트레일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Lake Isabelle’을 가리키는 팻말 앞에서 사진도 찍고, 산 위의 호수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나무는 울창했고,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어디 야곱과 모세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스캇 펙 박사가 ‘삶은 고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삶은 고난의 바다와 같습니다. 마치 산길을 오르는 고생 같고, 때로는 너무나 가팔라서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은 힘들어했고, 그때마다 잠시 앉아서 쉬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습니다. 2마일이라는 거리가 별 것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꽤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평지가 아니라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었던 데다가, 그것이 첫 하이킹다운 하이킹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호수를 만나기 직전의 오르막길은 굉장히 가팔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만두고 싶을 때에도 삶은 여전히 계속되며,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삶의 걸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인가 삶의 걸음을 멈춰야 할 때가 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삶의 걸음을 멈추기 싫어도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말하게 할 것입니다. ‘그 고생을 하며 걸을 가치가 있었다’라고 말하거나, ‘그 고생을 한 것이 전부 헛것이었다’라고 말하거나.
그런데 그 마지막 가팔랐던 오르막길을 다 올랐을 때, 마치 커튼이 열리듯 시야를 가리고 있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습니다. 웅장한 설산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에 눈 녹은 물로 형성된 강이 너무나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0). 곧 천국은 하나님께서 옳다 하신 것을 순종하느라 고생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완벽하게 바로잡힌 새로운 세상은 ‘하나님께서 옳다 하신 것을 순종하느라 고생한 사람들’에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습니다. 강앞에 있는 큰 바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강 주위를 거닐기도 하며 자연이 허락한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다가 내려왔습니다. 그날 제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정도 힘든 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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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당도한 사람은 기쁨으로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 고생을 하며 걸을 가치가 있는 삶이었구나!’ 언젠가 우리 삶의 걸음이 멈추는 날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힘들었지만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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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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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하루의 힘과 무게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 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 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 라”(마 6:34) 하루의 힘과 무게는 크다. 새벽에 일 어나서 주어진 일들을 다한 다음 저녁 잠을 청하기 전에 하루의 일과를 생각 하면 하루의 힘과 무게가 얼마나 위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 진 24시간, 1,440분, 86,400초는 동일한 시간이다. 그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 내느냐?에 따라서 각자에게 시간의 가치 가 달라지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한 날의 힘과 무게는 중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릴 때 한 날은 매일매일이 새롭게 다 가온다. 청소년기의 한 날은 감성과 기 대의 날들이고, 청년기의 한 날은 힘차 게 단련하고 전진하는 날들이요, 장년기 의 한 날은 꿈과 업적을 이루는 날들이 고, 노년기의 한 날은 아쉬움과 절박함 의 나날일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루의 힘과 무게는 어 떠했을까? 그는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 을 받아 하란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 는 가나안 땅으로 이민 와서 믿음의 새 출발을 시작했고, 100세가 되어 약속의 아들 이삭을 기적으로 낳았으며 175세
의 생애를 살고 죽었다. “아브라함의 향 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 게로 돌아가매”(창 25:7-8) 아브라함에게 하루의 힘과 무게는 믿 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조 상이 되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민족을 구한 에스더 에게 하루의 힘과 무게는 매우 크고 중 한 것이었다. 삼촌 모르드개와 왕비 에 스더의 삼일동안의 금식과 기도는 이런 각오를 낳게 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 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5-16)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에스더의 삶의 모토는 생명을 다하여 사는 하루의 힘 과 무게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하루는 어떠했을 까?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의 7일 동안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는 일을 하셨고 또한 보시기에 좋았던 하루 하루였다. 그리고 그 하루는 히브리어로 이욤( םוֹיyōm,)이라는 단어이다. 그 뜻은
오성관 원로목사
‘하루, 문자적으로 일출(혹 몰)에서 일
벧엘교회
몰까지 날, 시간, 해, 시대’로 번역된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하
으로 힘 있게 발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루는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실 것이다.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
잊지 말라”(벧후 3:8) 하나님은 시간을
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
창조하신 분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없고
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
영원한 현재이시기 때문에 하루는 천년
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
이고 천년이 하루라는 말씀이다. 같은 맥
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
락에서 모세도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뿐임이니이다”(시 90:4)라고 고백한다.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 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5-26)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루 의 일과 무게란 무엇일까? “그러므로 내
사실 우리가 가진 하루의 일과 무게는
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
하나님이 주신 값진 선물이다. 그 한 날
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
을 주셨기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
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다. 살아온 지난 과거의 하루하루를 뒤
누구든지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대로
돌아보는 것도, 미래를 향한 꿈과 기대를
이렇게 살면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
갖는 것도 좋겠지만 오늘 하루를 선물로
로 족하니라(Each day has enough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의 하루의
trouble of its own(NIV)]
일과 무게를 가겼으면 좋겠다.
한 날의 힘과 무게는 하루의 일을 충
목회자로서 이런 삶의 기본 원칙을 바
실히 감당하는 사람에게 가치 있게 주
로 가지고 살지 못하고 또한 가르치지
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못했음이 부끄럽다. 하루하루가 하나님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
이 선물로 주신 한날임을 기억하고 무게
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를 믿음
있는 믿음의 삶을 살기 바란다.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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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종말론의 혼란과 혼돈 바로잡을 네 가지 실천 어느새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 2 년이 다 되었다. 최근에 나타난 오미크론
부의 ‘정치 방역’으로 교회가 폐쇄되고, 예배가 취소되는 신앙적 어려움을 겪었다.
을 거짓 목사라고 정죄하는 세대주의권 목사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말론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거짓 목사
변종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을 강 타했다. 하지만 최근 이 나라들은 방역 의 고삐를 풀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 를 앞당겼다.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의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도 지난 한 달 동안 확진자 수가
특별히 자영업자들은 천문학적인 타격 을 받았다. 그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 렸다. 이 외에도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다 준 부정적인 열매들은 이루 말할 수 없 을 정도다.
엄청나게 늘어났다. 콜로라도 주 전체 인 구가 5백만 명이 좀 넘는다. 그런데 어떤 날은 하루에 3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인구 5천만 명에 대입할 경우, 하루 확진자가 30만 명이 나온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한 가 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은 많은 그 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되 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역사의 종말과 예 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평소에 무관심했던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교회 내의 종말론적 혼란을 틈타
니, 거짓 그리스도인이니 정죄하는 태도
세력을 확장한 이단들은 더욱 더 많은 추
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으며, 결코 주님이
종자들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교회
기뻐하시는 자세가 아니다.
에 대한 거대한 위협 세력이 되고 있다. 넷째, 서로의 관점과 입장을 존중하고 한국교회는 더 이상 이 안타까운 상
관용하면서도, 참된 의미로 거듭난 신학
황을 간과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자, 목회자, 성도들은 이 네가지 학설들
국교회 내의 종말론에 대한 혼란과 혼돈
중에 어느 것이 좀더 성경의 전체적인 가
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더
르침 또 하나님의 전 경륜과 조화되는지
건강하고, 균형잡힌, 성경적 종말론의 확
를 묻고, 신중하게 따져보는 노력을 해야
립을 추구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
할 책임이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리는 아래 몇 가지 사항들을 실천에 옮
어떤 의미에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겨야 한다.
선의의 경쟁, 사랑의 경쟁을 지속해야 한 다는 것이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라는 주 정부의 명 령을 철회하고, 시민들의 자율적 방역의 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방역 정책이 전 환되었다.
전 지구적 팬데믹이 예수님 재림의 징 조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점점 널리 퍼지 게 되었다. 즉 종말론적 대각성 (eschatological awakening)이 일어난 것이다.
필자는 콜로라도 주의 대형교회인 Cherry Hills Community Church를 출석하고 있다. 한번 예배드릴 때 2-3천 명이 한 예배당에 모인다. 그래도 마스크 를 쓰고 있는 사람은 1퍼센트(20-30명)도 채 안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점은, 코 로나 팬데믹이 매개한 종말론적 각성이 건강하고 균형잡힌 종말론의 확립을 도 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종말론적 각 성은 일어났지만, 도리어 건강하지 못하고 균형을 상실한 종말론이 한국교회에서 맹 위를 떨치게 되었다.
‘정치 방역’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최 근 하루 확진자가 3만 명을 넘었다. 앞으 로 하루 확진자 10만 명이 되는 상황도 올 수 있다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정치 방역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과 학적인 데이터와 상식적인 지혜에 기초한 방역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주님께
예를 들어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코 로나 백신을 666 짐승의 표라고 주장하면 서, 백신을 맞으면 지옥에 간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런 주장에 현혹 된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회피하면 서, 개인적으로·공동체적으로 많은 어려 움을 겪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려서 고통당했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현 정
첫째, 종말론의 중요한 영역인 휴거, 대 환난, 천년왕국과 관련해서 전통적으로
이 선의와 사랑의 경쟁은 자신과 다른
네 가지 학설이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무
것은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
찌르고 파괴시키려는 경쟁이 아니다. 이
설, 무천년설, 후천년설이다.
것은 각자의 믿음, 확신, 그리고 신앙양 심을 존중하면서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둘째, 이 네 가지 학설들은 구원과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
는 본질적인 관계가 없는 이차적 진리
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
(secondary truth)임에 대한 확인이다.
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려는(엡
다시 말하면 어떤 참된 그리스도인이 역
4:13)” 거룩한 노력이다.
사적 전천년설자가 될 수도 있고, 세대주 의적 전천년설자가 될 수도 있고, 무천년
그리고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
설자가 될 수도, 후천년설자가 될 수도 있
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
다는 것이다.
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는(엡 4:14)”는 성숙한
이미 별세하여 낙원에 입성한 참된 그
추구이다. 동시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
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레니우스, 찰스 스
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
펄전, 박형룡, 박윤선 같은 역사적 전천년
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설자도, 스코필드, 잘스 라이리 같은 세대
는 말씀에 순종하려는 몸짓이다.
주의자도, 어거스틴이나 칼빈같은 무천년 설자도, 조나단 에드워즈나 존 웨슬리 같
서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셔서 속히 코 로나 팬데믹이 종료되기를 기도한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또한 일부 세대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 들은 임박한 교회의 휴거를 강조하면서, 성도들이 불안과 긴장 속에 살게 하고 있 다. 동시에 환난 전 교회의 휴거를 거부 하고,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하며 그 이후 에 휴거를 경험한다고 가르치는 목사들
은 후천년설자도 있다는 말이다.
필자가 제시한 위의 네 가지 원칙만이라 도 잘 지켜진다면, 한국교회의 종말론적 신학과 신앙은 지금보다 몇 차원 더 성숙
셋째, 따라서 자신의 종말론적 입장과
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기본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 주님의 뜻 안에서
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존중과 관용이
속히 성취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라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나와 다른 종
선교사들의 이야기
2022년 2월 24일
22
우울증을 치료하는 유행가! 2012년을 맞이하면서 은퇴를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가 은퇴하면 선교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선교 사역이 있 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친 구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에 새벽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인도네시아 선교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평신도 선교사로 인 도네시아에 가셨습니다. 미전도 지역에서 선교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자가 없었습니다. 점점 지쳐갔습니 다. 사모님이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약을 써봤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철수하 기로 결정을 했답니다. 선교사님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비 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선창’이 라는 유행가가 생각이 나더랍니다. “울려 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은 백일홍 /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 날도 / 지금은 어 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큰소리로 불렀답니다. 그 런데 듣고 있던 사모님이 웃더랍니다. 그 리고 우울증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선교사님들은 단기 선교 오시는 분들 이 반갑고 고맙지만 안내하랴 통역하랴 몸은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기 선 교 팀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합 니다. 이 간증을 들은 후에 ‘순회 선교( 사)’를 생각했습니다. 외롭게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찾아가서 사역을 떠나서 속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4)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에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역은 선교 훈 련을 받지 않은 우리도 가능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종미 선교사님은 세계선교사대회에서 특별찬양을 하신 후 선교지에 가실 수 있 었고, 한국에서의 사역일정을 고려할 때, 선교일정을 7월 29(주일)부터 8월 8일(수) 까지 10박 11일간으로 정했습니다. 일행 은 이종미 선교사님과 우리 부부였습니다. 싼 비행기를 골랐습니다. 일인당 왕복 비행요금은 1,156불이었습니다. 덴버에서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까지 총 비행거 리 9,000km(5,668마일)이었으며, 총 21시 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총 비행시간 12시 간 44분, 총 기다린 시간은 8시간 36분 이었습니다. 덴버에서 밤 11시 40분에 출발하여 마 이애미에 5시 20분에 도착했습니다. 마이 애미에서 약 7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차를 렌트 해서 마이애미비치로 행했습니 다. 떠오른 태양이 구름 뒤에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해변을 바라보면서 식사와 커 피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파나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고서 첫 번째 느낀 점은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비행기 승무원 도 영어를 몰랐습니다. 저는 비행기 안에 서와 공항에서는 영어가 통할 것이라 생 각했습니다. 갑자기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안내판도 거의가 스페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9)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임동섭 목사
인어였습니다. 밤 11시경에 목적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만 하루 가 소요되었습니다. 아순시온 국제공항은 탑승구가 4개인 규모가 작은 공항이었습 니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고광삼 선 교사님 부부께서 짐 찾는 곳까지 들어오 셨습니다. 프리마켓 성도님들이 기증해 주신 신발 과 옷 그리고 모자들을 4개의 큰 가방에 가득 넣어 갖고 갔습니다. 세관 직원이 가 방을 열어보고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증받은 물품으로 선 교하러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에콰도르 선교사
dslim3927@hotmail.com 흥식 선교사님 부부와 아들이 15시간을 운전하여 아순시온에 오셨는데 마침 자 리를 함께했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11세에 이민 오셨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능통하셨 습니다. 세관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들 으신 김 선교사님께서 피곤한데도 불구하 고 내일 세관에 가셔서 통역해 주시겠다 고 자원하셨습니다. 다음 날 5분이 세관에 거셨습니다. 다 섯 분은 이종미 찬양선교사님(세관 직원 이 짐 주인으로 보고 여권을 복사), 김 선
그들은 기증받은 증명서를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증명서가 없다고 하였 습니다. 그들은 물품들이 새것이므로 장 사하려고 가져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는 것이었습니다. 고 선교사 사모님이 절 대로 뇌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 셨습니다. 결국 내일 다시 나오라는 것이 었습니다.
교사님과 아들, 고 선교사님, 박정수 목
숙소로 오는 차 안에서 고 선교사님께 서 말씀하시길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귀 찮기 때문에 뇌물(미화 약20달러)을 주고 나온다고 합니다. 고 사모님께서는 세관 직원들이 한국인이 뇌물을 잘 주기 때문 에 무조건 트집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러 므로 조금 힘들더라도 뇌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
사님입니다. 세관 직원들이 가방 속의 짐 을 일일이 세어 금액을 산정했는데 미화 2,000불 정도라고 하면서 세금으로 1,000 불을 내라고 하더랍니다. 우리는 어차피 나누어 주려고 가져온 물건이니 당신들 이 나누어 주라고 하면서 미련 없이 나 왔답니다.
으니 세금 산정을 다시 할 터이니 기다 리라고 하더랍니다. 점심시간에 물건을 내 줄 것 같았답니다. 그러나 다 되었다고 하 면서 기다리라고 하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5시 20분경에 세 금으로 미화 70불을 지불하고서 물건을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결국 뇌물(20불)은 주지 않았지만 세금 70불에 하루를 세관
그 밤에 아르헨티나에서 선교하시는 김
에서 보냈습니다.(다음 회에 계속)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제공: 김정애 권사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제공: 덴버제일감리교회
산마루서신
2022년 2월 24일
주의 거룩한 백성들께
23
즉자적 통찰력 글: 이주연 목사
주의 세상 악한 추한
거룩한 백성들은 일로 들뜨지 마십시오. 자들로 인하여 흔들리지 마십시오. 자들로 인하여 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세세무궁토록 의로우시며 구원과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함정에 걸려 들었으나 유유히 벗어납니다.
자신의 정직으로 자신의 다리가 지어질 것이요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자신의 거짓으로 자신의 올무가 될 것입니다.
이래도 걸려 들고 저래도 걸려들 상황입니다. 이때에 예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놓은 다리로 자신의 가족이 건널 것이요 자신이 놓은 올무로 자신의 자손들이 걸려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즉자성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식 너머의 지식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일은 그 악한 일로 대가가 있을 것이요 선한 일은 그 선한 일로 대가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요? 가능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자신의 눈물이 될 것이요 자신이 베푼 일이 자신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자신의 성실과 목표마저 내려놓으며 자신을 비우면서 진정 하나님 경외에 이르면 놀라운 즉자성을 지닌 통찰의 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심판이 있기에 구원하시는 것이며 구원하시고자 하심은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살아계시며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http://www.sanletter.net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베드로후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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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은혜 안에서의 성장”(3) <베드로후서 3:14-18>
아무리 하늘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 져도 컵을 거꾸로 놓으면 비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무리 많아 도 우리가 받으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절 대 우리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 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사야 40:31을 보세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 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 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 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가 새 힘을 얻습니다. 요 즘 삶에 힘이 다 떨어진 분들 계십니까? 조금만 일해도 피곤하고 마음이 지쳐있 는 분들은 없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달려가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은혜 가 넘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신앙 성장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때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지식은 남들보다 많이 아는 것 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 시 바리새인들은 지식적으로 뛰어난 사 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토시 하나 까지도 줄줄 외우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위선을 절대 용납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의 돈 을 빼앗고 못된 짓을 일삼았던 세리를 품에 앉으셨습니다. 세리는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 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았습니다. 자기 잘못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병원은 건강한 사람을 위해서는 필요가 없습니 다. 그러나 병원은 환자들에게는 절대적 으로 필요합니다. 주님은 영적인 의사이 십니다. 주님은 의인을 만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만나러 오셨 습니다. 세리는 자기가 죄인임을 알았습 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지 는 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은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일행보다는 조금 늦게 합류를 해 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독일 남서부 에 있는 보름스라는 도시였습니다. 인구 10여만 명이 사는 아담한 중소도시입니 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 건이 이곳에서 있었습니다. 보름스 의회 혹은 보름스 제국회의라고 알려진 역사 적 사건이 이곳에서 열렸던 것입니다. 루 터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기고 유럽 전 역을 뒤흔들어 놓고 있을 때였습니다. 로 마 교황청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신성로 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루터를 재판 에 회부한 것입니다. 1521년 3월이었습 니다. 당시 보름스는 6천명이 사는 아주 작은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유럽 전역에 서 그곳으로 무려 2만 명이 넘는 사람들 이 몰려들 정도로 세계적인 재판이 벌어 진 것입니다. 카를 5세는 루터에게 물었 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신학사상을 반 대하는 모든 주장들을 철회하겠는가?” 위협적인 질문입니다. 철회하지 않는다면 루터는 그 자리에 서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내 양심은 하나님 앞에 사로 잡혀있습니 다. 내가 주장한 것은 성경 말씀에 순종 한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제공: 덴버삼성장로교회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힘과 어떤 위협으로도 종교개혁은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보름스에 루터 광장이 조성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큰 은혜 를 받았습니다. 루터의 동상 아래에 4명 의 종교개혁이전 종교개혁자들 동상이 루터를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 터가 갑자기 혼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시냇물이 쌓 여서 강이 되었고, 많은 강들이 흘러들 어 바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중 한 사 람인 피터 왈도라고 하는 사람이 제 눈 에 강하게 들어왔습니다. 루터가 종교개 혁을 일으키기 무려 3백년 전 사람입니 다. 카톨릭의 위세가 가장 강한 시기인 12세기 사람입니다. 그는 프랑스 리옹 사 람입니다.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당시 고 리대금업자였습니다. 정치적으로 큰 영 향력을 행사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우 연한 기회에 하나님 말씀을 접하게 되 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마태복음 19:21의 말씀에 완전히 순복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 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 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피터 왈도는 이 말씀을 기대로 실천했습니다. 모든 재 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 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주님을 사 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읽지 못하는 라틴어 성경 을 프랑스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 성경 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다. 그는 말씀을 직접 읽으면서 로마 카 톨릭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따르지 않 는 교황권을 비판했습니다. 연옥설도 면 죄부도 성경적으로 틀린다고 주장했습니 다.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도 잘못된 것 이고 성자를 숭배하는 것도 성경에 위배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지금 개신교의 주 장을 그대로 한 것입니다. 그는 주님처럼 철저하게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동상 에 있는 그의 옷은 더 낡고 헤진 것입니 다. 오직 성경 하나를 들고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를 따르 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 다. 이들을 가리켜서 ‘왈도파’라고 부 르는 것입니다. 결국 카톨릭의 핍박을 받 았습니다. 파문을 당했습니다. 살해의 위 협속에 그는 보헤미아로 건너갑니다. 지 금의 체코를 말합니다. 그의 이런 개혁 정신이 체코에서 얀 후스라는 종교개혁 자를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얀 후스 역시 루터보다 꼭 100년 전 사람입니다. 바로 이들이 루터의 동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피터 왈도가 주 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고리대금업자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사람으로 일생을 보내고 말았 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남으로 그 의 인생은 역사에 길이 남는 존경을 받 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시간을 통해서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실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 만남이 오늘도 우리 의 신앙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제공: 참빛교회
변화프로젝트
2022년 2월 24일
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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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1장, 상심한 마음에서 치유를 위한 기도 프로젝트 계속 이 눈물의 집에서 비탄속에 잠겨
정이 너무 많다보니 어디서부터 시작을
들이다. 그 짧은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서 아픔과 슬픔과 고통 속에서 눈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경우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표는
흘리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으로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 죽은 사람만 붙잡고 또 잃
부터 치유함을 얻고 눈물의 집에서 나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이 지
이 아니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는
은 각자가 모든 방들을 다 방문하고 하
났는데도 슬픔과 비탄에 잠겨 있거나,
것을 배우며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하
나님께 치유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에
죽을 때까지 슬픔 속에 살거나, 슬픔을
며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우리를 만드셨
의해 결정이 된다. 비탄에 잠길수록, 눈
감당하지 못해서 일찍 죽는 사람이 있
다는 것이다.
물의 삶을 살게 될수록 우리는 주님의
을 정도로 상실감을 입은 마음은 상처
사랑과 능력을 통해서 치유를 받고 눈물
와 고통이 크다.
우리의 삶과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과 고통의 집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선물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선 그러나 하나님은 상실감을 입은 마음도
물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은 잠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
소생을 시킬 수 있으시고 우리의 슬픔을
지나가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선물
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
기쁨으로도 바꾸어 주실 수 있으신 분
이므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사랑하는
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
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치유를 받기 위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
해서는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슬픔의 집
있으나 그것도 잠시란 것을 생각해야 한
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
에 있는 모든 방들을 하나씩 하나씩 방
다. 오직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
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
문하고 주님께 의뢰하며 치유를 받아야
나님과 동행하며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
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언 3:5~8).
한다. 그렇게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할 부
을 배우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
분을 네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과 평안을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
에서 자유를 찾기를 원하신다. 이 프로
과 평안 가운데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 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
하는 것을 배우고 모든 방들을 방문하
1)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고 주님의 치유를 체험하길 기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 때문에 하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
나님께 화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 10:10)고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생각을 어
말씀하셨다.
젝트를 통해서 하나하나 마음의 정리를
2. 어느 면에서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상실감에서 얻은 마음의 상처는 치유 의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 왜냐하면 많 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하 나씩 처리를 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감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어버린 사람 때문에 아파서 슬퍼하는 것
서 평안과 기쁨 속에서 사느냐 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들이 눈물과 아픔의 집
영희 맥도날드 목사
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해 하나님께 지혜 를 구해야 한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완전한 삶이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다. 우리의 몸은 죽을지라도 영은
우리의 삶은 정해져 있다.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을 주님께서는 약속하셨다.
이 세상에서 잠시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
잃어버린 사람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
는 마음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는 시간 이 되길 바란다. 주님께 사랑하는 사람 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지속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 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 인가를 더 배울수록 우리는 그분과 평 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때 치유가 빨라 진다. 그래서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자기 자신과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 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을 때 잘못해 준 것으로 인해서 자신을 책망하거나 부정 적인 생각으로 상처가 깊다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자신을 용서하고 자기 자 신의 연약함과 부족함도 인정 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 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잘못하고 죄 지을 수 있다는 것 이미 아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하셨다. 하 나님의 크신 자비로움은 우리가 잘못했 을 때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신다. 용 서함을 받음으로써 얻어지는 평화를 하 나님께 구하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조 금이라도 있다면 주님께 용서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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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2년 2월 24일
진정한 화평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고, 이 땅에 평강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불을 던지기 위해 그리고 분쟁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복음 때문에 화평이 깨어지고 분쟁이 생기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희 가정에서 제일 먼저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할머니를 통해 할머니의 자녀들이 주일학교에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이 들어왔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할머니의 신앙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셨고, 신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저에게까지 이어져왔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때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의 핍박이 말도 못할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주일에 식사를 차려놓고 교회에 다녀오시면 할아버지가 술에 취에 차려놓은 밥상을 엎으시기 일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못마땅하신 것이지요. 어느날 밥상을 엎으시다가 그릇이 깨어져 사기그릇 파편이 할머니의 한쪽 눈에 들어갔습니다.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실명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가정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자녀들의 기도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에 진정한 화평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을 던지기 위해 분쟁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복음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주님이시지만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분쟁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복음에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도록 가만 두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분쟁이 일어납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족들의 반대와 핍박으로 가정에 분쟁이 일어나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분쟁할 것이라” (눅12:5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셔서 구원을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시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인한 분쟁은 곧 화평으로 바뀔 것입니다. 복음으로 인한 분쟁은 진정한 화평으로 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남편과 아내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 자녀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 부모와 형제를 이해하고 용납할때 그 가정에 진정한 화평이 임하게 됩니다. 화평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평의 주인이신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303) 337-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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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베이직
27
2022년 2월 24일
천국, 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 정다운 목사 볼더아름다운교회
뉴질랜드에는 세 종류의 키위가 있다고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의 삶에 대해 뭐
예수님께서 전한 첫 복음의 핵심은 “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잘 아는 키위라
라 말씀하실까요? 마태복음 13장에서 예
회개”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회개는
는 과일입니다. 두 번째는 뉴질랜드의 백
수님은 천국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시는
과거 잘못된 삶과 행동들을 고쳐서 새로
인을 키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세 번째
데, 매우 특이합니다. 좋은 씨가 뿌려진
운 삶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며 실천입
곡식,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는 키위라는 새입니다. 한국의 암탉 사이
밭에 원수가 몰래 와서 나쁜 씨앗을 뿌
니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
삶에서 독보리를 어서 뽑고 싶어 합니다.
즈로, 날지 못하는 이 새는 늘 천적으로
립니다. 농사를 방해하는 것이지요. 그런
씀으로 사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
그래야만 순결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부터 도망 다니면서 그렇게 수천 년 동안
데 더 특이한 점은 밭 주인은 그 사실을
미에서 예수님의 천국 비유 말씀을 보면
거룩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자신의 종을 보존해왔지요. 성질이 순하
알고도 추수할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합니
확 와닿습니다.
는 오히려 이 독보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 사람을 잘 따라서 사람들이 너무나 좋
다. 이 밭의 주인은 그 해 농사를 망치기
아한 나머지, 심지어 뉴질랜드의 국조이기
로 작정한 것일까요?
도 합니다. 그런데 그 키위 새가 멸종 위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더 추수할 때를 기다리게 되고, 더불어 그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동안 더 거룩해지고 순결해진다는 역설적
사람과 같으니”(마태복음 13:24)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기에 있습니다. 여러 개발과 과보호로 인
우리가 천국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해 그의 천적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과
무엇입니까? 먼저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씨 뿌리는 이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입
추수할 때가 되면 밀과 가라지는 일반
보호가 얼마나 심한지, 심지어 반려견이
곳, 그리고 눈물도 고통도 없는 너무나 좋
니다. 그럼 씨는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인도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가라지는
새를 물면 반려견의 주인은 벌금을 내야
은 곳일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땅에 좋
추수할 때가 되어 열매가 맺어도 떨어지
합니다. 그렇게 키위 새는 더 이상 도망
천국을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로만 묘사
은 성도들을 허락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닐 필요가 없게 되자, 과체중으로 뱃속
하지 않고, 천국이 이 땅에 도래하는 나
밤에 몰래 원수가 와서 나쁜 씨를 뿌립
래서 우리는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 더욱
에 알이 커질 대로 커집니다. 몸집은 암탉
라로 묘사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첫
니다. 성경은 이 나쁜 씨를 ‘가라지’라
스스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고자 노
크기만 한데 알의 크기는 달걀의 5-6배나
복음 선포를 보면 확실합니다.
고 표현합니다. 밀과 가라지를 보시면 농
력해야 합니다.
되니 스스로 알을 낳지 못합니다. 결국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부가 아닌 일반인들은 전혀 분별할 수 없
제왕절개로 알을 꺼내어 인공 부화를 시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
습니다. 가라지의 또 다른 이름은 독보리
키고 있습니다. 천적이 사라진 것이 오히
라 하시더라”(마태복음 4:17)
입니다. 먹으면 구토, 설사, 현기증을 일으
삶에서 나를 여전히 고달프게 하는 독
키기 때문이죠. 그만큼 가라지는 위험하기
보리 같은 것들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은 지금 이곳에 조금씩 하나님
에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에게 달려가 묻
더욱 주님을 찾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
우리 생각에는 천적이 없으면 더 살기가
나라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삶을 정결케하
습니다. “이것들 뽑을까요?” 그러자 주
으시길 바랍니다. 독보리는 주님의 때에
편할 듯합니다. 주변에 미운 사람이 없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즉, 천국은 우
인이 대답하는데, 이 비유의 핵심 포인트
주님께서 반드시 치우십니다. 우리는 그
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린 그렇게 삶에
리가 죽어서 가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오
가 나옵니다.
저 매일, 추수할 때를 기다리며 심판이 아
시련이 없기를, 평탄한 인생을 살기를 바
늘 우리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통치권이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
닌 축복을 소망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지
랍니다. 실제로 우린 그렇게 기도하지 않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지요.
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태
막 날에 이르도록,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나요? 그러다가 인생에 고난이 닥쳐오면,
우리의 가정과 일터, 친구, 이웃 등 모든
복음 13:29)
서 매일 승리하는 기쁨을 충만히 누리시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겪는지 하나님 앞에
곳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실현되는 것
하소연하곤 합니다.
입니다.
독보리를 뽑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온 마음으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구하면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나를 옳게찾을 하는것이요 자에게 내가 나를구원을 만나리라 하나님의 보이리라 (렘 50:23) 29:13) (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주의 종은어리석은 다투지 아니하고 누추함과 말이나 모든말이 사람에게 인자하며 희롱의 마땅치 아니하니 가르치기를 돌이켜 감사하는잘하며 말을 하라 악을 참으며 (엡 5:4) (딤후 2:24)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제공: 김성애 성도 제공: 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려 종의 멸종의 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선을또행하되 그 날에 너희가 말하기를 낙심하지 말지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아니하면 부르며포기하지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때가 그 이르매 거두리라 선포하며 이름이 높다 하라 (갈12:4) 6:9) (사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제공: 김성애 성도
감동이 있는 글
28
2022년 2월 24일
사탄의 부추김에 속지 말라
말씀이 이끄는 신앙생활
나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개미는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가?
열심히 주어진 일에 사명을 다 할 뿐이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입도 뻥끗할 수가 없을 것이다.
꿀벌도 환경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삶을 원망하지 않고
나의 삶 속에서 온통 나의 뜻과 나의 계획과 소리만 있고
그저 열심히 맡은 바 일에 충성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받지 못하고 그 말씀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기르는 짐승들도 사람이 시키는대로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고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공중에 나는 새들도 하늘을 날며 자기의 할 일을 하고 흐르는 시냇물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따라 그저 흘러 바다를 채울 뿐이다.
오늘날 교회의 예배시간에 들려지는 메시지마저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윤리 도덕 시간에 들려지는 강의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응 하건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말이 많다.
지도자의 자기 자랑이나 비전만 난무할 뿐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언제나 부족하다 아우성이고 더 채우려는 욕심에 허덕인다.
출애굽 당시에 모세를 통하여 들려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을 움직여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려는 시도는 바벨탑을 쌓고
말씀이 이끌고 가는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신 역사를 보며
마침내 하나님을 향하여 반역의 칼을 들었다.
그들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가나안으로 진군하여 갔다. 인간의 소리가 들릴 때면 언제나 문제가 생기고 하나님의 징벌이 뒤따랐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욕망으로 죄인이 되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지배하는 곳이어야 한다.
하라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인간의 타락한 모습이다.
사람의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본주의적 교회로 변질되어 가고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요 착각의 산물이다.
인간의 목소리가 큰 곳에서는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를 않는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인간의 사악함은 결코 죄의 심판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가 없다.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마르다가 아닌 마리아처럼 주님 곁에 꼭 붙어서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사탄은 계속해서 거짓과 불순종을 부추긴다. 더 욕심내라.
봉사를 열심히 하고 헌금을 많이 내는 것을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네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으로 하고 열심히 교회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
거기에 속은 인간은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라 하는 어리석은 꾀임에
자신들의 이름을 빛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자멸하여 지옥의 영원한 심판 구덩이에 빠진 자들이 수천 년 역사 위에 쉼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므로 금을 모아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지금도 그 자리를 채우는 이들이 있다.
자기들의 잔치를 벌이며 섬겼던 것과 같은 행동일 뿐이다. 인간은 낮아지고 순종함으로 자유를 얻는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교회나 성도는 오직 말씀이 이끄는 삶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개미가 사람의 마음을 모르듯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가 없다.
말씀이 이끌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요
꿀벌이 자신의 일에 충성을 다하듯 사는 것이 행복이요 복임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이끌지 않는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생활이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논리에 순응하며 역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삶만이 믿음 생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역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가슴에 안고 산다면
중세 교회들의 타락의 원인은 말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온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아무리 좋은 말로 설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는 설교는 자신의 강변일 뿐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감동이 있는 글
2022년 2월 24일
29
내 삶이 하나님의 은혜인 이유?
사람은 누구나 마음먹은 대로 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을 하여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행하지 않는 신앙행위는 모두가 거짓이요 위선일 뿐이다.
지금 내가 사는 것은 과거에 마음먹고 행했던 것들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을 믿기로 마음에 결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계획 하신바 그 뜻을 알기 위함이요 한걸음 한걸음 살아가는 인생길에 내 힘으로는 부족하다 인정하는 신앙고백이 그 행위와 기도속에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결혼도 직업도 예수믿는 일도 우리가 마음 먹고 계획한 속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으며 죄를 짓는 일이나 세상 욕심을 따라 살기를 단호히 거부하며 사는 자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살기 때문에 주님만을 의지하며 내 뜻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친다.
내가 마음 먹고 결정한 대로 사는 것 같아도 결과는 역사를 붙들고 주장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 하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 먹은 대로 모든 것이 된다면 더 이상 지존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며 사는 자다.
이는 마치 물속에 빠진 사람이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며 산다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나의 원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대로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지 늘 자신을 점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나의 삶이 주님의 은혜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이 아니다. 나의 삶에 주권을 내가 아닌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믿는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믿음에서 벗어나 탈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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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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