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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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욜 2:12~13)

제 12권 5호

The Light and Salt News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For he says, “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 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2 Corinthians 6:2)

2022년 3월 10일 발행


목차

2022년 3월 10일

목차 교계소식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은혜의 샘터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야고보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복음으로 살아보기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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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M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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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3월 4월 10일 22일 2022년

2022년 사순절 기간

빛과소금뉴스 인터넷신문

2022년 3월 2일(수)부터 4월 16일(토)까지

2022년부터 인터넷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 사순절은 교회력에 의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하 여 부활절 이전 토요일까지의 40일간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6번의 주일은 세지 않는다. ● 종려주일(Palm Sunday)로 시작되는 마지막 주간은 고난주간(Passion Week)으로 지키며,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족목요일(Maundy Thursday)과 성금요일(Good Friday)을 기념하고, 이후 부활절(Easter)을 맞는다. ● 이 시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경건한 삶이 되도록 근신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예하는 기간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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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는 그동안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병행해 왔는데, 새해부터는 모든 사역을 디지털 체제로 바꾼다. 그동안 종이 신문 애독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 을 부탁드린다. ●인터넷으로 빛과소금뉴스를 읽는 방법: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빛과소금뉴스' 혹은 ‘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로 검색하면 된다. ●문의: thelightandsa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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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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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0일

미주한인교회여성연합회

2022년 세계기도일예배 135주년 세계기도일 예배 덴버지역 비대면으로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노니(렘 29:1)”

2년째 지속되고 있는 COVID-19으로 인하여, 미주한인교회여성연합회가 주최 하는 2022년도 세계기도일 예배를 지역 의 상황에 따라 대면과 비대면으로 드 렸다. 덴버 지역은 비대면으로 미주연 합에서 드리는 비대면 예배에 참여하였 다. 세계기도일 예배는 3월 4일 덴버시 간 오후 6시(중부시간 7시, 동부시간 8 시, 서부 시간 5시)에 시카고 한미장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유튜브 실황 중 계로 미국 전역에서 일시에 개최되었다. 이는 한날, 한시에 같은 기도문을 가지 고 초교파적으로 세계평화와 세계복음 화를 위해 180여 개국이 동참하는 세계 에서 가장 오래된 기도예배로, 덴버지역 에서도 이날 유튜브를 통해 한마음으로 예배에 동참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일즈, 북아일랜드”로, 그곳의 교회 여성 들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노니”(렘 29:1)를 주제로 기도문을 작 성하였다.

올해 기도문 작성국은 “잉글랜드, 웨

잉글랜드에서의 첫 예배는 런던지역에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하 나의 조직으로, 서로 다르지만 그 뿌리 가 같다는 인식을 올해의 예배에 나타 내고자 했다. 영연방인 북쪽의 스코틀 랜드는 독립적인 세계기도일 조직을 갖 고 있다. 1928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국 제선교사대회 때 스코틀랜드인 그레이 스 포갠이 세계기도일에 대해 알게되어 영국에 처음 알렸다. 첫 예배가 1930 년 스코틀랜드에서 개최되었고, 1932년 잉글랜드에서, 1933년 웨일즈에서, 그리 고 1943년 북아일랜드에서 개최되었다.

기사: 최성애

서 열렸고, 기도의 물결이 잉글랜드 남 부와 웨일즈로 퍼져나갔다. 당시 여행이 오늘날처럼 쉽지 않았기에 잉글랜드와 웨일즈 여성들이 스코틀랜드 여성들과 함께 연합하는 것보다 국내에 전국위원 회를 세우는 것이 더 수월했다. 두 위원 회는 여전히 분리되어 있지만, 좋은 관 계를 맺고 있으며, 2차세계대전 동안 여 성들은 기도로 함께 하였다.

내고 있다.

지금은 약 3000개지회가 해마다 4000 회의 예배를 드리며, 2019년에는 예배 순서지를 275,000장을 인쇄하였다. 현 재 세계기도일 전국위원회에는 18개의 기독교 교단이 함께 하며, 40군데 이상 의 국내 및 국제자선단체에 선교비를 보 내고, 알바니아에 있는 기도 동역자들을 지원하고, 알바니아의 세계기도일단체를 방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표단을 보

세계기도일 소개에 이어, 영상을 통하 여 영국 소개가 있었다. ‘개회기도’ 회 중과 함께 기도문 낭독에 이어, ‘대표 기도’는 한혜숙 집사(시카고연합회 회장) 가 드렸다.

예배는, 미주한인교회여성연합회 총회 장 이복임 집사의 “작성한 예배문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와 전심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에 평안 과 희망을 주시리라 믿으며, 예수 그리 스도를 선포하며 일어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자”는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인사와 나눔’은 영국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 오신 모든 이를 환영하며, 다 함 께“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을


교계 소식 찬양했다. 순서에 따라 예레미야 29:14 ‘성경봉 독’과 ‘찬양’“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 네”( 한미장로교회 찬양대) 은혜로운 성 가로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설교는 고훈 목사(한미장로교회)가 “ 예레미야의 사역과 삶은 순탄하지 않았 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당부한 말 씀은 동족 이스라엘의 죄악성을 적나라 하게 지적하고 폭로하며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 도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아야 한다. 우 리의 삶에 메시지가 없고 하나님의 징계 의 메시지가 없으면 평안이 아니고 우리 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함께 모 여 기도하는 이날 예레미야 삶의 한 자 락이라도 밟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마음 을 예레미야는 정확하게 전한다.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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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0일

백성을 ‘남은 자’라고 한다. 성경은 남 은 자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지켜 야 하는 영성은 남은 자의 영성이다. 남 은 자는 신앙의 좁은 길을 가는 자, 하 나님의 언약과 비밀을 맡아 지키는 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 을 함께 이룰 동역자 즉 중보자가 남은 자이다. 예수님이 중보자이다. 예레미야 의 삶이 중보자였다. 우리의 사명은 중보하는 자가 되는 것 이다. 날마다 삶의 자리에서 남은 자의 기도를 드리자. 이것이 호흡하는 이유이 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도하면서 예레미 야는 알았다. 영국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하 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은 우리의 기도를 적극적으로 들으신다. 이 시대의 남은 자의 기도가 우리의 사 명이다”라고 선포했다. ‘고백의 기도’에 이어, 영국에서 들려

오는‘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여성 들의 경험과 당면한 상황 등을 이해하며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다 함께 찬송하 며 기도드렸다. 이어 ‘희망의 이야기’를 나누며, ‘감사의 기도’로 우리를 돌보시 는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 은혜를 감사 했다. ‘성찰 및 응답’ ‘중보기도’ ‘ 주기도문’이 이어졌다. ‘합심기도’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진행 되었다. 1. 영국, 웨일즈, 북아일랜드 땅에 가난 과 두려움과 소외당하는 이들에게 자유, 용서, 정의, 평화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을 성취하소서. 2. 교회여성들이 말씀과 기도로 삶에서 승리하며 마지막 세대의 파숫꾼으로 서 도록 3.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과 미국이 하나 님의 통치하심 아래에 있기를 4. 세계 각처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5. 우크라이나 전쟁 가운데 평화와 정의의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하루 속히 전쟁 상황이 종료되고 평화가 임하기를 위하여 ‘파송과 축복’ 시간에는 하나님의 자 녀임을 확신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날마 다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기를 다짐했다. 이어 김병주 목사(갈보리교회)의 축도로 2022년도 세계기도일 예배의 모든 순서 를 은혜 가운데 마쳤다. 2023 기도문 작성국은 타이완이다. 관 련 세계기도일 예배는 유튜브 ‘2022 세계기도일예배 - 미주연합’을 입력하 면 된다. 덴버지역여성연합회 관련 문의는 (303) 523-2042으로 연락하면 된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내가 교만하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나의 인간됨을 먼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산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입으로만 살았고 행함은 없었으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인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주의자라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사랑없는 냉혈 동물이라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이기적이고 욕심이 그토록 많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형편없는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그저 나는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 하며 살아왔지만

하나님도 알고 마귀도 알고 세상이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죄가 많은 존재인지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토록 회개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왜 나를 가까이하지 않는지 하나님이 왜 나를 징계를 하시는지 나만 모르고 있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2022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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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송하면 좋은 성경구절" 은혜 1.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 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 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 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 니 (롬 3:23-25)

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 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 게 하려 함이라 (갈 3:13-!4)

10.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 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 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4.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 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 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1-2) 5.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 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6-17) 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 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 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사 30:18) 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6) 11.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 원을 받은 것이라) (엡 2:5) 12.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 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롬 6:14) 13.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8) 14.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 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15.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 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 였더라 (왕상 8:66) 16.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7.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 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 심이라 (고후 9:8)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 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17.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9)

덴버할렐루야교회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해”

예배 안내

교회비전

Denver Hallelujah Church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담임목사 김창훈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신앙 칼럼

2022년 3월 10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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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발행인 최성애 권사 우리는 무수한 만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런 저런 만남을 통해서 동역자도 만나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또 때로는 전혀 계획에도 없던 원치 않는 만남으로 곤경에 빠져 당황하게도 된다. 성경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많은 극적인 만남이 등장한다. 짧게는 잠시 스치듯 지나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귀한 만남으로,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감옥에서 만난 술관원으로 인하여

때때로 아카시아 향기처럼 문득 다가와 삶에 활력을 더하고 미소짓게 한다.

애굽의 왕을 만나게 되고, 결국에는 총리의 자리까지 앉게 된다.

반면에 어떤 만남은 구렁텅이에 빠지듯이

그리고 신데렐라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 룻의 이야기도 있다.

걷잡을 수 없는 문제 속으로 끌려가

밭에서 이삭을 줍던 과부 룻이 그 밭의 주인인 보아스와의 만남으로

헤어날 수없는 지경에 이르게도 된다.

마침내 다윗왕과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이럴 경우,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은 물론이요, 마음의 평안을 잃게 되어 영이 피곤하고,

또한 마지막 순간 십자가 상의 한 강도는

상한 마음으로 고통을 겪으며,

예수님을 만남으로

육체적으로도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러므로 어떤 만남이든지

나음을 입고 영생을 선물로 얻었음을 본다.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만남을 통해서

은혜롭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심을 본다.

혹은 하나님께서 감춰두신 섭리를 발견하기 위해,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간구하며,

때로는 문제에 직면하여 인간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이야말로

그런데 교만한 인간에게는 매번 넘어지면서도 이조차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만남이라 본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처럼 무익한 만남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고,

판단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지혜롭기는 뱀과 같이, 순결하기는 비둘기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한다.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은혜의 방패가 호위하는 교회”(시 5:12)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2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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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빚 <마태복음 6:12> 이형만 목사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가 우리에 게 죄 지은 자(debtors)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debts)를 사하여 주 시옵고 영어로 죄 지은 자를 debtors (채무자, 빚진 자)라고 표현하고 있고, 죄를 debts, (빚, 부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성경에서 죄를 빚, 부채라 고 하고, 죄 지은 자를 채무자, 빚진 자라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여러분, 카 드빚이 많아서 매달 그것을 갚아야 할 경우, 또는 빚쟁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 씩 찾아와서, 너 언제 돈 갚을 거야... 이런 일에 시달려보신 분들은, 아마 오 늘 말씀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빚이 있으면 살아도 사는 것 이 아닙니다.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 어도 버는 족족 빚을 갚으면 남는 게 없지요. 거기다가 빚쟁이들한테 쫒기다 보면 밤에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가 없습니다. 죄가 바로 이와 똑같다 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두 다리 뻗고 잠을 못자야 한다는 거 예요. 이것이 첫 번째 죄지은 자를 채 무자로 표현한 이유구요, 두 번째로, 왜 죄지은 자를 채무자 로 표현했는가? 이제 몇 년이 지나서 빚을 다 갚았습니다. 이제 빚이 하나 도 없게 되었어요. 그때 여러분, 마음 이 어떨까요? 정말 날아갈 듯이 기쁘 겠지요. 죄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죄 도 완전히 지워질 날이 온다는 거예 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죄를 빚으로, 죄지은 자를 채무자로, 성경에서 표현 한 이유는, 죄를 지으면 마음이 무거 워야 된다. 그리고 죄가 사해지면 날 아갈 듯이 기뻐해야 된다... 이 채무자 의 마음으로 죄를 생각해 보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두 가

지 빚을 항상 지고 살아갑니다. 하나 는 죄라는 빚을 지고 살아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하루에 몇 번 씩 죄를 짓잖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 는 하나님 앞에 죄라는 빚을 쌓아가 는 거예요. 그런데 이 빚을 청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면 그 빚이 다 없어져 요. 눈처럼 희게 되는 거예요. 그 다음 또 하나님 앞에 무슨 빚이 있느냐? 이번에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 의 빚이 있습니다. 바로 용서라는 빚 이에요.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용서 하셨습니다. 우 리를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와 물을 쏟으시고 죽으셨어 요. 바로 그 용서라는 은혜의 빚을 우 리 모두는 다 지고 사는 거예요. 그러 면 이 용서라는 은혜의 빚을 우리는 무엇으로 갚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 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바로 남 을 용서함으로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 신 그 빚을 갚으라는 거예요. 마태복음 18장에 일만 달란트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일만 달란트, 요즘 돈으로 따지면, 6조원이에요. 계산도 안 되는 그 엄청난 빚을 다 탕감 받 고 풀려 나왔는데, 예전에 백 데나리 온, 약 천만 원 정도 되는 그 돈을 내 가 꿔준 친구를 우연히 만난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멱살을 잡아 요. 그러면서 너 왜 내 돈 안 갚아! 감 방 가고 싶어? 여러분, 이 모습이 말이 되냐구요! 만약에 내가 일만 달란트라 는 빚을 탕감 받지 않았더라면, 당연 히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내 가 일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는데, 그것도 받자마자, 어떻게 백 데나리온 돈을 안 갚았다고 그 사람 한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성 경에서 말하는 용서의 정의입니다. 네

가 하나님의 엄청난 용서를 받았기 때 문에, 너도 그 사람을 엄청나게 용서 해야 된다. 이것이 우리가 용서해야 되 는 이유라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 모두가 다 알면서도, 그래서 용서를 하고 싶 어도, 그런데 문제는,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잘못했을 때에는 그 사람이 나 를 용서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남 이 나한테 잘못했으면 그 사람을 용 서하기가 어려워요. 또 용서를 한다고 해도 완전한 용서를 다 할 수 없습니 다. 부분적인 용서만 가능해요. 부모 는 자식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형제 끼리는 용서 못해요. 그것을 보여주 는 내용이 바로 탕자 이야기잖아요. 또 누가 나한테 잘못을 사과하면 용 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를 안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다고, 그 사람까지 용서해 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 니다. 마태복음 18:22절에서, "예수께 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 지니라” 이 얘기는 무조건 용서하라 는 말씀이에요. 사람 가려서도 안 되 고, 사과를 했든 안했든 조건도 따지 지 말라는 거예요. 사실 이 용서라는 주제의 설교는 참 우리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용서해 야 되는데... 그런데 내 마음이 움직이 지를 않아요. 죽어도 그 사람은 용서 못해.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 데... 이런 마음만 더 들면서, 마음 문 을 닫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마음 문을 활짝 여시고, 오늘 말씀 한 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용서를 해야 되는가?

덴버한인장로교회

첫 번째, 우리가 용서해야 되는 이유는, 용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순종해서 용서할 수 있 는 거예요.

창세기 50장에 보면, 요셉이 형들 을 용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거 에 형들이 요셉에게 어떤 짓을 했습니 까? 애굽 상인에게 요셉을 종으로 팔 았어요. 그 덕분에 요셉은 어린 나이 에 죽을 고생을 다했습니다. 억울한 일 을 당해서 감옥에도 갇히게 되었습니 다. 그런데 요셉은 그 어떤 증오도 원 망도 하지 않고 형들을 용서하고 있어 요.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요셉은 국무총리가 되었고, 형 들은 먹을 쌀을 구하러 이 국무총리 동생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는 거예 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요셉이 여전 히 애굽의 노예 신분이었다면 과연 그 가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또 형들이 요셉보다 더 잘 나갔다면, 과 연 요셉에게 용서를 구했을까요? 하나 님이 바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주신 거예요. 뭐하라고? 용서하라고 그리고 용서받으라고... 그래서 요셉을 먼저 애 굽의 총리로 세워 주셨고, 형들은 흉 년 때문에 요셉에게 머리를 숙이도록 만드셨다는 거예요. 어떤 책에 보니까 남편이 젊어서 처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어요. 아이들 도 어린데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버림받은 그 아내는 혼자서 죽을 고생을 하며 자식을 키 웠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자식들이 다 잘됐어요. 그리고 이 아내도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평안히 잘 지냈 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나간 이 남


강단 설교 편이 돌아와서 용서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 요? 그런데 이 아내 분은 이 남편을 용서합니다. 저는 이 아내가 그 남편을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요셉의 상황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고생은 했지만 자 녀들이 다 잘됐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서 그동안 이 아내에게 믿음을 주셨 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용서는 절대로 우리 힘으로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용서하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에는 용서가 가능해지는 거예요. 용서할 믿음도 주시고, 불쌍한 마음 도 주시고, 또 용서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 여러분, 내가 용서 못 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 자책하지 마 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십니다. 그 래서 그때까지, 오늘 주님이 가르쳐주 신 이 기도를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하 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 도록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 주시 옵소서.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 록 저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용서할 믿 음도 용서할 상황도 용서할 마음도 주 시옵소서...” 두 번째로, 우리가 남을 용서해야 되는 이

2022년 3월 10일

나 용서는 내가 일방적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대로 무 조건 용서하라. 내가 하나님의 일만 달란트의 은혜를 받았으니까, 당연히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용서하 기로 선택을 해야겠지만, 우리가 연약 하니까, 이런 마음으로도 용서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뭐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더 이상 희생 되지 말자... 그 사람 때문에 이미 내 과거가 희생되었을지 몰라도, 지금 내 현재 만큼은 내가 지키자. 이 목적으 로 용서를 택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런 상황에서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하 는가? 내 기억에서 지우는 거예요. 더 이 상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증오심과, 그 사람 때문에 입었던 상처와 결과물들 을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바 로 용서입니다. 브라질 아마존에 가면 <바나와>라 는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이 부족 사 람들은 용서라는 단어를 이렇게 쓴 대요... "누군가의 잘못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것... "

그래서 이 부족과 20년을 함께 살 아온, 강명관 선교사님라는 분은 성경 을 번역할 때, 용서라는 단어를 이렇 게 번역했다는 거예요.

유, 바로 나를 위해서예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프레드 러스 킨 박사가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용서란, 나에게 상처 입힌 그 사람의 행위를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놓아주고 현재를 치유하기 위해서 내가 내린 선 택이다."

저는 특히 이 말이 참 마음에 와 닿 았어요. "내가 내린 선택이다." 여러분, 용서와 화해는 틀립니다. 화 해는 쌍방이 서로 하는 거예요. 그러

“너의 잘못을 잊어 줄게” “너의 잘못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게”

사실 여러분, 성경적인 용서의 정의 도 이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를 용서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히브리서 10:17절,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 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 니”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 하나님 기억 속에서 우리의 모든 죄 를 다 지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끗하게 된 거에요. 마찬가지로, 하나

님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남이 나에 게 잘못한 것 그 죄들을 다 지우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돌아가시면서, 그동안 관계가 불편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카톡으로 편지를 썼다고 합 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상처를 받으 셨다면,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몇 주 전에 그중에 한명이었던 어떤 집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그러는 거 예요. 자기한테도 그 목사님이 용서해 달라는 편지가 왔대요. 그래서 돌아 가시기 일주일전에 전화를 했대요. 그 때 그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집사 님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제가 다 용서 를 받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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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했을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사랑해 주는 사 람이 더 많습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까? 어제 장례예배를 갔다가 제가 보고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장례예배는 고 인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입니다. 미워했던 사람은 오지 않는 자리에요. 천국환송예배는 내가 이 땅 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자 리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천국 가서 내 천국환 송예배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 말씀을 하시고, 일주일 후에 돌 아가셨다고 해요.

용서할 걸... 미워하는 사람 만들지 말걸..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가 죽기 전에 한번쯤은 꼭 생각해 볼 일이, 용서하고 용서받 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 앞에 가기 때문에 그래요. 가면 분명히 하 나님이 물어보실 거예요. 너 다 용서 하고 왔느냐? 왜 이 질문을 반드시 하 실 거냐면,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에 게 은혜의 빚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렇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엄청난 죄가 하나님의 한 번의 용서로 다 지워졌어 요. 누구만 용서해 준 것도 아닙니다. 내 믿음으로 내 회개로 지워진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내 마음에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그 예수 님을 믿음으로, 내 죄를 다 사해주셨 다는 거예요.

여러분, 용서는 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상황을 만들어주셔야지 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용서는 내가 선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내 기억에서 지워야지, 아무리 노력 해 봐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 없으면 기억도 지워지지 않아요. 우리 이 시간 기도합시다. "하나님, 은혜와 상황과 사랑의 마음 을 주셔서. 그 사람을 용서하게 하시고, 절대 내 주변에 원수 만들지 않게 해 주 시옵소서. 정말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 을 살다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그 은혜의 빚 다 갚고, 천국가게 해 주시옵 소서...”

그래서 천국에 가면 반드시 하나님 은 우리에게 이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너 다 용서하고 왔느냐?” 아마, 저와 여러분도 죽기 바로 직전 에 이 용서라는 두 글자가 생각이 날 것입니다. 그때 가서 누군가를 용서해 야지... 그런데, 어쩌면 용서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사 람이 먼저 죽었거나, 그 사람을 만날 수 없거나... 그래서 아마 우리는 후회 할 것입니다. 살아서 했으면 더 좋았 을 텐데...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또 그 놈의 미움, 증오심 때문에... 왜 용서를

God is love. (1 John 4:8)


내면을 향한 여정

2022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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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기대기

마음으로 믿어

시편 Psalms 91:1-2, 6b-13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

로마서 Romans 10:6b-13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찬382장). 아무리 입술로 찬송을 부르고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시라” 말씀을 묵상하고 또 생각해도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꿈틀거리고 있는 내면 속의 불안함이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죽음 후의 세상인 내세에 관한 구원일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힘겹기만 한 삶속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솔직한 심정으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시편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함에서 이 불안함을 없애고 안전과 평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의지한다”는 것은 철저한 기대기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서로 기대기 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경험하는 온갖 위험과 환난과 재난 속에서 평안을 경험하는 비결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켜주심, 사랑하심에 “기대기”할 때 뿐입니다. 사순절기에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십자가의 길은 그분을 기대기 하며 함께 가는 길입니다.

구원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마음과 입에 있다고 하는 것은, 믿음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믿는 바를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마음에 있으면 입으로 하는 고백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마음에 있다면 행위 역시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의와 구원은 같은 의미입니다. 각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 하는 것도 그 삶의 몫이고 그의 입으로 시인함도 그 사람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양심과 의지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예수와의 전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때, 그 사람의 삶도 변화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나의 의지는 다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예수를 전적으로 영접할 때 구원의 은총 속에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ooreekmc@hanmail.net>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눅 6:37)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2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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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책 우리는 비록 미국에서 살지만 특히 천

형통하였던 것이 기정사실임을 우리는 기

는,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

국을 위하여 천국에 들어갈 자들을 위

억하고 삶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전

을 얻을 것이라”고 기록한다. 말 3:16에서

하여만은 순교정신으로 생사하여야 생명

심이나 목숨을 다하지 않으면, 보람이나

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록에 이름이 확실하게 남아있거나 빛나

결과가 좋지 않을 뿐더러 위험이나 실패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

서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신대로 처신하

게 될 것이다. 말이나 생각이나 기도로

나 패배를 당하면 가룟유다나 베드로와

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기

는 것이 더 소중함을 잊지 않아야 한

만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 감사 등

같이 전락하게도 됨을 우리는 주의를 하

록한다. 계 20:15에서는, “누구든지 생명

다. 그리고 천국의 것들을 절대로 뺏기

이 아니라 영육혼을 다하여 사랑과 감사

여야 한다.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

거나 팔아 먹는 일도 없어야, 인내의 말

더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계 21:27에서

씀을 지킨 자요 예수님을 사랑해서 약속

는,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

된 생명의 면류관도 얻을 수가 있는 것

들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다. 마귀와 귀신들은 물론 악인들도 모

를 하고 남들에게 끼쳐야 인생과 영생이 진실하게 복된 것임을 확실하게 믿을 수

그리고 불온전한 세상에서 온전한 행

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맛

복과 생명은 없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볼 수가 있다.

의지를 다하고 하나님께 맹세를 하여도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두 무저갱이에 던져지고 지옥영벌을 받

육신이 약하여 허풍스럽거나 위선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구원에 대

게 되니, 하나님의 구약말씀과 예수님의

생명의 책에 기록되기를 원하거나 기

전락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의

하여 하신 말씀대로 시종 사는 것이 필

말씀대로 하나님만 가장 경외하거나 가

록된 자들은 죄악으로 인하여서 세상이

하나님 앞에 있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

수이다. 구원과 생명책에 대한 말씀은 모

장 사랑하면서 그의 계명과 이름과 면류

어두워질수록 진리와 의의 빛을 발하여

되고 유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 필수이다.

든 사람이 천국, 영생, 복락, 상급, 면류

관을 붙잡고 생사간에 한결 같아야 한

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요,

그리고 생사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관, 존귀, 영광 그리고 권세를 얻는 기회

다. 그래야 신앙으로 세상의 시험과 죄악

천지를 복음과 생명이 있는 빛으로 비출

계시거나 함께 일하여 주시도록 진실하고

라고 여겨야 한다. 오직 성경의 순교자들

을 이겨서 천국의 생명수 샘물을 포함해

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담대하게 주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행하

과 같이 기뻐하고 평안해 하고 하나님께

서 천국의 것들을 얻는 자가 될 수가 있

의 진리와 의는 거짓과 불의보다 강하여

고 이루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보다

감사해야 할 때인 것이다.

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귀신

야 하고 복음과 마음은 뜨겁고 은혜로워

더 우선이요 더 소중하여야 하는 것이다.

약 1:12에서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

들을 내쫓거나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것보다 더 기뻐할 일이라고 예수님이 의

모세는 출 32:32에서, “이제 그들의 죄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미하셨다.

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

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계 3:11에

아무쪼록, 새사람이 되어서는 혹은 하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와 오늘날을 살

려 주옵소서’라고 고백하였다. 시 69:28

서는,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나님의 선하신 약속과 천국을 얻기를 원

펴보면, 전심으로 즉 전쟁을 하듯이 목

에서는,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

하는 사람들은, 바울과 같이 처신하여

숨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찾거나 구하거

께 기록되게 마소서”라고 기록한다. 시

게 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 영광스럽게 부활을 하고 천국의 기

나 부르짖거나 의지하거나 의뢰하거나 하

139:16에서는,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지킬 때에는 모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되거나 유지

든 환경과 처지에서는 안전과 평안 혹은

되었나이다”라고 기록한다. 단 12:1에서

가 되도록, 없어질 세상보다도 예수님께

야 한다. 독약과 병균보다 약한 약은 쓸 모가 없듯이, 어두움보다 약한 빛도 쓸모 가 없는 것이다.

둥이 되고 생명의 면류관과 의의 면류 관과 영광의 면류관을 영원토록 쓰기를 기원한다.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2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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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65)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싸움을 돋우는 자, 골리앗 <사무엘상 17:1-10>

오늘 본문이 기록된 사무엘상 17장 은 아마도 사무엘상의 전개 과정에서 독자 입장으로 보면 가장 드라마틱하 게 읽게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 다.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은 사 무엘상 초반부터 등장합니다. 제일 먼 저 엘리 제상장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 느하스가 주도하는 ‘아벡 전투’(4장) 장면이 기록됩니다. 이 전투에서 이스 라엘은 패배하고 블레셋에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깁니다. 그 다음은 사무엘 선지자가 주도하는 ‘에벤에셀 - 미스 바 전투’(7장) 장면입니다. 이 전투에 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블레셋 진 영에 우레를 발하여 이기게 하심으 로 승리합니다. 세 번째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주도하는 ‘믹마스 전 투’(13,14장)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인데 블레셋 을 추격하는 일을 중간에 중단해 버림 으로 미완의 전쟁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17장)에는 블레셋 과의 또 다른 전투 즉, ‘엘라 골짜 기 전투’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 다. 이 전투는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악신에 시달리는 사울 왕이 이끄는 이 스라엘 군대와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 는 골리앗이라는 장수를 앞세운 블레 셋 군대와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다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극적으로 등장합니다. 먼저 1-3절을 통해서 두 나라 군대 의 대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블레 셋 군대가 유다지역을 쳐들어 왔습니 다. 이들이 쳐들어 와서 어디에 진치 고 있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사무엘상17:1).

유다지역의 ‘에베스담밈’에 진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이름을 직역하면 ‘피의 접경지역’이라는 뜻입니다. 아 마도 이곳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 던 것 같습니다. 이에 맞서서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 대는 어디에 진치고 있습니까? “사울 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 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 하여 전열을 벌였으니”(사무엘상17:2). ‘엘라 골짜기’입니다. 여기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는 ‘평지’로 번역됩니다. ‘쉐팔라’입니다. 이스라 엘의 지형은 대게 3개의 지형으로 구 분됩니다. 서쪽 지중해와 접한 ‘해변 지역’과 여기서 동쪽으로 더 들어오면 ‘쉐팔라 지역’입니다. 그리고 예루살 렘이 위치한 ‘산지’가 있고 더 동쪽 으로 가면 ‘사해 지역’입니다. 블레셋 이 위치한 지역은 ‘해변’입니다. 그리 고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들은 ‘산지’ 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해변에서 산지 로 향하는 완충지대가 바로 ‘평지’( 골짜기)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 는 골짜기가 있었더라”(사무엘상17:3). 일반적으로 이 평지는 다섯 개의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야일 론’, ‘소렉’, ‘엘라’, ‘마레사(벤 구 리온)’, ‘라기스’ 골짜기가 있습니다. 이 골짜기들은 블레셋을 비롯해서 이 방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공략하기 위 한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골짜기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전쟁 역 사를 담고 있는 지역들입니다. 그래서 이 엘라 골짜기를 사수하지 않으면, 이 곳을 내주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뚫 립니다. 최후의 마지노선과 같은 곳 입니다.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더 라’ 이 골짜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

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세 상과의 관계 속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끝가지 사수 해야 할 영적인 ‘ 엘라 골짜기’가 있습니다. 세상이 요 구하는 것들에 대하여 저항해야 하고 싸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엘라 골짜기를 사수하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 골짜기 에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한 사람 이 서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 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 섯 규빗 한 뼘이요”(사무엘상17:4). 골리앗입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그 를 가리켜 ‘싸움을 돋우는 자’라고 합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싸 움을 걸어오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영어성경(NIV)에는 ‘champion’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도대체 골리앗 이 어떤 사람이기에 온 이스라엘 군대 가 겁에 질려 있습니까?

첫째, 이 챔피언은 몸집으로 이스라 엘을 기죽게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 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 섯 규빗 한 뼘이요”(사무엘상17:4). 그는 가드 사람입니다. 가드는 블레 셋의 대표적인 다섯 성읍 중의 하나입 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 앗겼을 때 그 법궤가 옮겨갔던 도시( 아스돗 → 가드 → 에그론 → 벧세메 스)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의 키가 얼마가 컸습니까? ‘여섯 규 빗 한 뼘’입니다. 3m가 조금 안 되 는 거구입니다. 이런 골리앗이라는 거 인이 어떻게 ‘가드’에서 나왔을까요? 여호수아서를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 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 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 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이스라엘 자 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 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 에만 남았더라”(여호수아11:21-22).

둘째, 이 챔피언은 무장한 갑옷으로 이스라엘을 기죽게 합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 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 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 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사무엘상 17:5-7). 골리앗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갑옷과 무기들의 총무게는 약 57-60Kg이 된 다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스라엘 군대에게는 위협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 이 챔피언은 끊임없이 조롱하 고 모욕하는 말로 이스라엘을 기죽게 합니다. 먼저 뭐하고 하며 조롱합니까?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사무엘상17:8). 한 마디로 골리앗은 “나는 블레셋 의 대표이고 너희들은 사울의 노예들 이다”라고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그 리고 싸워서 지면 진 쪽이 종이 되어 이긴 자를 섬기자는 것입니다.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3

2022년 3월 10일

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피언들은 한 번 싸워 이긴 것으로 결

엘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

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또 싸워 챔피

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

섬기는 자가 큰 자이고 Champion

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사무

언 자리에 오르는 이 희열감을 만끽하

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인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무엇보

엘상17:9).

기 위해 끊임없이 싸울 상대를 물색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다 ‘하나님 나라의 챔피언’은 트러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합니다. 세상이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블 메이커(trouble maker)가 아니라

군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부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힘 있는 자가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

끊임없이 피스 메이커(pesce maker)

깁니다.

약한 자를 무시하고 짓밟는 양육강식

라 하시더라”(사무엘상16:7).

를 자처합니다. 골리앗처럼 싸움을 부

상20:25-28).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의 동물적인 본성들이 사람들의 관계

또한 ‘하나님 나라의 챔피언’은 이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

겨서 짓밟고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

여집니다. 이런 무한경쟁 의식과 영육

이겨서 큰 자가 되어서 작은 자를 섬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 한지라”(사무엘상17:10).

강식의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늘 공

기는 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한 마디로 골리

동체 속에서 트러블 메이커 노릇을 합

하셨습니다.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5:9).

앗처럼 ‘챔피언 증후군’(Champion

니다. 엘라 골짜기를 어슬렁거리며 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

Syndrome)에 빠져있는 세상입니다.

피언 증후군에 빠져 살아가는 골리앗

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

세상은 챔피언을 어떻게 결정합니까?

들과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하

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들이라고 인정받는 자가 하나님 나라

외적인 크기로 승부를 결정짓습니다.

여 긴장감을 가지고 저항할 수 있어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의 챔피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골

그래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몸집

야 합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

리앗이 챔피언으로 인정받는 세상을

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거부하고 저항하며 사십시오. 우리들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만은 마음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합한 사람으로 살아서, 크고 잘 낫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만 섬길 줄 알아서, 그리고 매사에 피

그리고 이긴 자가 진자를 짓밟고 그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챔피언’은 어떻게 다릅니까? 하나님 나라의 챔 피언은 외모와 신장(삼상16:7)의 크 기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

스 메이커로 살아서 진정한 ‘하나님

위에 군림합니다. 이 희열감에 빠져서

마음 중심의 됨됨이와 마음의 사이

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

나라의 챔피언’들이 다 되시기를 축

살아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의 챔

즈로 세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

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사무엘

원합니다.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어 삽니다. 나라 들이 그렇고, 기업들이 그렇고, 하물 며 교회들까지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 람들은 뭐든지 커야 직성이 풀립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14)

새성구 9/23/21

추기지 않습니다. 더불어 모든 사람들 과 화평할 줄 알아요.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렘 17:14)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2년 3월 10일

14

아가서 아가서와 솔로몬 아가서는 솔로몬에 의해서 쓰여진(1:1, 5, 3:7, 11, 8:11-12) 사랑의 노래입니다. 솔로 몬이 사량했던 한 목녀(shepherdess)와 의 사랑은 풍유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의 사랑(호2:19-20), 그리고 신랑 예수 그 리스도와 신부 교회의 사랑을 비유합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의 통치 초기에 쓰여 진 것을 추정할 수 있고(기원전 965년경) 아직 왕국이 분열되기 전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아가서에서는 북쪽 지방과 남쪽 지 방의 동식물들의 이름이 다 언급되기 때 문입니다. 또한 북쪽 지방의 주요 도시인 디르사와 남쪽 지방의 주요 도시인 예루 살렘 둘 다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아가서의 배경과 제목 아가서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 술람미 신부, 그리고 합창단(예루살렘의 딸들)은 마치 뮤지컬이나 드라마의 장면처럼 구성 되어있습니다. 아가서는 노래들의 모음집 이 아니고, 전체가 한 단위로 구성되어 있 습니다. 아가서는 시종일관 두 사람의 주 인공들의 대화 혹은 두 주인공들이 합창 단 사이에서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 된 극적인 시(dramatic poem)의 형식입 니다. 술람미 사람(Shulamite)은 단 한 번 기록되었고(6:13) 이 지역은 갈릴리 바 다 남서쪽 잇사갈 지파의 땅에 있었던 수 넴(Shunem) 마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 측됩니다. 아가서의 히브리 제목은 ‘노래 중의 노 래(Shir Hashirim, the song of songs)’ 로서 최상급의 말입니다. 즉 솔로몬이 지 은 가장 멋진 노래입니다. 아가서의 헬라 어의 제목(Asma Asmaton), 라틴어 제 목(Canticum Canticorum), 그리고 영어 제목(The song of songs) 모두 같습니 다. 또한 아가서는 ‘솔로몬의 노래(Song of the Solomon)’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가서의 주제와 목적 아가서의 주된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 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지어낸 이야기(fictional)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 입니다. 아가서는 오직 풍유(allegorical) 를 위해 창작된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 라 아가서는 오로지 솔로몬과 술람미 여

인의 낭만적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책 이 아닙니다. 비록 그러한 내용들이 기록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아가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남편과 아내 사이의 결혼과 순결한 부부 관계를 예시하시는 면도 있 습니다(창1:27, 2:24, 고전6:16-20). 어떤 유 명한 목회자가 이런 면들을 공적 예배 시 간에 설교하기도 했지만, 이런 행위는 결 코 적절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목회자가 아닌 가정을 위한 전문 강사에 의한 프로 그램 중 한 부분으로 진행되는 것이 적절 할 것입니다. 아가서가 포함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결합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지 만, 이러한 주제가 아가서의 대표적인 목 적이고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기록하신 주된 목적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도리 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도 리어 아가서는 하나님과 당신의 언약 백성 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예시(illustration)와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기(anticipate)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가서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핵심 구절 : “7: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 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 구 나”, “7:10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 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 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핵심 장 : 아가서의 핵심 단어는 “사랑” 입니다. 아가서 전체가 사랑을 주제로 구 성되어 있기 때문에 핵심 장은 따로 없고 여덟 장 모두가 결혼한 부부의 아름 다 운 사랑과 그 연합의 비밀을 통하여 그리 스도의 신부인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을 보여줍니다.

아가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아가서가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한 예표는 신부에 대한 주제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야훼의 신부로 간주 됩니다(사54:5-6, 렘2:2, 겔16:8-14, 호2:1620). 구약에 제시된 야훼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은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 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 연결됩니다(고후 11:2, 엡5:23-25, 계19:7-9, 21:9). 이처럼 아 가서는 기독론과 교회론과 함께 연결 짓

는 것이 적절한 것입니다.

아가서의 전체 내용 개관 아가서는 솔로몬의 1005개의 노래(왕상 4:32) 중 최고의 노래입니다. 아가서의 문 학적인 가치는 사랑의 순결함과 아름다움 과 만족을 노래해 나갈 때 나타나는 풍부 한 비유와 동양적 이미지들에서 부각됩니 다. 아가서는 두 연인의 관계에 대한 이미 지들은 결코 아둔하거나 조잡하지 않습니 다. 두 연인의 관계는 사랑의 시작과 사랑 이 커지는 단계로 구분됩니다. 사랑의 시작(The Beginning of Love, 1:15:1): 아가서의 전반부에 나타난 화자들의 등장은 신부 - 신랑 - 합창단의 순서입니 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사람들의 지방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1:6, 8:11-12) 왕 이 그 지역을 방문했을 때 술람미 여인 을 왕궁으로 데려갑니다. 솔로몬은 술람 미 여인이 포도원 농사 때문에 얼굴 피부 가 그을렸지만 그녀는 “여인 중에 어여쁜 자”(1:8)라고 칭찬했습니다. 1-3장은 솔로 몬과 술람이 여인의 구혼기간에 대한 일 련의 회상입니다. 솔로몬은 최상급을 직 유와 은유를 동원하여 정수리부터 발끝 까지 신부를 칭종하고 결혼식을 통한 연 합 후 ‘잠근 동산’(4:12)에서 연회가 베 풀어 집니다. 사랑이 커짐(The Broadening of Love, 5:28:14): 결혼식이 끝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어디 간 사 이에 불안한 꿈을 꿉니다(5:2). 그녀의 꿈 에 솔로몬이 그녀의 방 문에 왔으나 그녀 가 늦게 응답해서 솔로몬이 가버렸습니다. 꿈 속에서 술람미 여자는 늦은 밤 시간 에 왕을 찾아 예루살렘을 헤메다가 돌아 온 솔로몬을 다시 만나고 왕의 위로와 칭 송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확인받게 됩 니다(6:4-7:10). 술람미 여자가 그녀의 고향 에 대한 향수를 느꼈을 때 솔로몬은 그녀 의 고향으로 여행을 시작하면서(7:11-8:14) 더 친밀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아가서는 왕과 술람미 여자가 서로에 대한 사랑의 초청으로 마무리됩니다(8:13-14). 마지막으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가서를 남녀간의 에로스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거나 부부의 성 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하 나님께서 굳이 성경의 지면을 빌려서 인간 들에게 에로스적인 사랑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아니어도 인간 의 지혜로 충분할 만한 그런 지식을 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좋고 나쁨을 구분 짓기 전에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 나님의 구원의 큰 운동의 물줄기에 부각 시키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은 생략하셨 듯이, 아가서를 설교하는 모든 분들은 아 가서의 원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분 명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이 책에 나타난 하나님의 메인 아이디어 보다 부수적인 것들에 치중한다면, 성경은 잘못 해석될 것입니다. 부활 후에도 결혼 이나 부부의 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착각 하였던 사두개인들처럼, 성경의 본질보다 부수적인 것에 더 치중하는 자들은 예수 님으로부터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 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라고 책망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경 66권에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표적이 성경에 다 기록되 지 않고 필요한 것만 기록되게 하신 목적 은 죄인들이 오직 복음 즉 “예수께서 하 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그 이 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요20:30-31). 예수님께 서 인간들이 오해할 만한 표적들은 성경 에 의도적으로 기록되지 못하게 막으셨습 니다. 그러나 요즘 외경, 유사 복음, 그리 고 음모론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고 출처 가 분명하지 않은 가짜 복음들이 넘쳐나 고 그 불량식품 같은 것들을 진짜라고 신 봉하고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너무나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 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겼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그의 표적과 기사를 더 신 봉했던 오류처럼, 아가서를 오해하지 말고 모든 강단에서 바른 선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2년 3월 10일

15

“설교대와 인도대는 그 역할이 다른가요?” * 우리의 교회는 성단에 설교대와 인도대와 기도대 등 세 개가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 우리 교회는 설교대를 중앙에 세워놓고 그곳에서 예배 인도와 설교와 기도를 합니다. * 몇 개쯤 어디에 세우는 것이 적당한지요?

우리의 개신교 예배당을 들어설 때마 다 많은 교인들이 혼돈과 의문을 갖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예배당은 성단에 설교대와 인도대가 하나가 되어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설교대와 인 도대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 어 어떤 예배당은 기도대를 가운데 크 게 만들어 세 개를 세워놓고 예배를 드 리기도 합니다.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황청의 지시에 의하여 일정한 제도 안에서 일치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단이 만든 헌법의 정치와 교회와 예배모범 이외에 는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나가 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비록 총회의 결 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수행의 권한 은 지교회에 주어지는 것이 상례입니다. 특별히 예배당의 형태나 내부 구조에 대한 것은 거의 교단의 규제를 받지 않 고 개교회가 의미를 부여하면서 건축을 하고 성단을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현 실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성단에 성구의 수와 형태들을 다양하게 갖추게 된 이

유들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문제가 성경 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목회자가 임으 로 자신의 해석에 따라서 성단의 구조 와 형태를 정하는 실정입니다. 성단의 변화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는 이렇습니다. 성찬성례전을 중심했던 초 대교회와 중세교회는 성찬상만을 가지 고 거기서 성찬성례전을 집례하면서 오 랜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성찬을 예배의 구심점으로 하고 있는 정교회를 비롯하여 로마 가톨릭교 회나 성공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말씀을 예배 의 중심으로 주장하고 나설 때부터 성 단의 성구들의 구조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루터와 같은 개혁자는 기존 의 성찬대를 그대로 두면서 말씀의 단 을 첨가하는 형태를 취했는가 하면, 깔 뱅은 설교대를 회중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 높이 설치한 바 있습니다. 쯔빙글 리나 재세례파의 경우는 성찬대를 치워 버리고 설교대만을 갖도록 하기도 하였 습니다. 이러한 혼돈은 상당 기간 존속 해 왔습니다. 1885년부터 이러한 성단의 구조에 대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Denver Hallelujah Churc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한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 이 바로 예배복원운동이었습니다. 미국 을 비롯한 서구의 개혁교회들이 주도한 바 있는 예배복원운동에서는 우선적으 로 예배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 였습니다. 그 내용은 예배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백성들이 마음과 뜻과 성 품을 다하여 받은 바 은총에 대한 응 답으로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라 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경배와 감사와 찬 양과 봉헌과 참회를 드리는 데 우선적 인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은총으로 내려 주신 말씀과 성례와 축도를 받아야 한 다는 견해입니다. 여기서부터 예배의 내용을 좀 더 분명 히 하고 의미를 가시적으로 보이기 위 하여 성단에는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던 성찬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예배자들이 드리는 부분과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말 씀의 단을 구분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드리는 부분 은 적게 만들어 인도대라 이름하고, 거 기서는 인도자가 서서 예배를 인도하고 기도나 찬송이나 기타 예배의 모든 부 분을 이곳에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부분은 크게 만 들어 그곳에서는 성경봉독과 설교와 축 도만 하도록 하는 매우 합리적인 성구 들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설교대와 인도대가 성단의 중앙에 위치하여 십자가와 성찬 상을 가로막는 것은 개혁신학에 어긋난 다는 점을 설파하였습니다. 그 위치는 설교단은 회중을 향하여 볼 때 오른편 에 인도단은 왼편에 위치하도록 하고 찬 양대의 자리도 인도단 쪽에 위치하도록 한 바 있습니다. 이토록 합리적인 예배신학자들의 연구 와 개발은 즉시 많은 개신교회들의 적 극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한 국교회에서도 일찍부터 정착된 바 있습 니다. 최근에는 유리로 설교자나 인도자 의 모습이 모두 보이도록 하는 새로운 설교대와 인도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나 인도자의 하체 부분까 지 모두를 노출시키는 것은 말씀의 권 위를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설 교자를 부자연스럽게 하고 설교대의 역 사성이 단절된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8556 E. Warren Ave. (303) 717-0279 Denver, CO 80231 www.denverchurch.com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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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터

2022년 3월 10일

18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자의 것 <눅 18:9-17>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자에게 “누가 의 로운 자인가”를 말씀하기 위해 예수님 은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비유 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어떤 기 도를 드렸을까요?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 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 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 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11절)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감사의 내용을 보 면 너무 이상합니다. 듣기가 참 불편합 니다. 감사는 분명 하나님을 높이고 자 랑하는 찬송인데 바리새인은 자신의 행 위를 자랑하고 높이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선한 일을 행함 을 감사합니다. 다른 죄인들과 같지 않 음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12절 에 보면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고 십 일조를 한다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 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에게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을 위한 금식과 십일조가 아니라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한 종교행 위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 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높이고 자랑 합니다. 바리새인의 행위은 하나님의 은 혜가 동기가 아니라 자신의 의로움에 근 거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 할만큼 그리고 십일조를 할만큼 내가 대 단한 사람이다. 자신을 옳게 보이기 위 한 행위입니다. 사람들이 바리새인을 보며 대단하다고 알아주고 칭찬하며 이미 자기 영광을 다 받았는데 금식을 열번한들, 헌금을 아무 리 많이 한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런데 세리를 한번보십시오!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립니까?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 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 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절) 성전에 들어가 앞으로 하나님이 두려 워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 리고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들지도 못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내 죄 와 더러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의 더러움을 보 고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불 쌍히 여겨주세요! 저는 죄인입니다.” 자 신의 죄를 발견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 하여 용서를 구하는 자야 말로 하나님 께서 의롭게 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중심을 살펴보십니다! 자신의 행위를 옳게 보이 려고 의롭게 행하는 자가 의로운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 고, 하나님으로부터 죄용서함을 받은 자 가 의로운 자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러 한 자의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린아 이가 자신에게 나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 하지 말라 하십니다.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 라 하셨을까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 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 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7) 어린아이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쉽 게 받아들입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런저런 잣대를 대지 않습니다. 나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손해가 무엇인지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믿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메시아로 보내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예수님 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 다고 확신합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 이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자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자의 것이 라”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나 라는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 개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심을 어린아이와 같이 진 실로 믿는 자의 것입니다. 천국은 회개 하고 믿음을 가진자의 것이라는 교훈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하나님의 은혜 가 아니라 내 행위와 의를 드러내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 우며 겸손히 회개하는 자리에 있기를 바 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믿고 순종 하는 순수한 믿음을 회복하는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진리의 샘터

2022년 3월 10일

19

진정한 믿음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개구리와 두꺼비는 둘도 없는 친한 친

and Toad”라는 어린이 책 시리즈에

잘 하려고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구였습니다. 이 둘은 시간만 나면 함께

소개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요?

놀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와의 시간을

이 이야기는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졌습니다. 이 둘은 진정한 우정을 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아무런 조건이나 댓가 없이 하나님을

하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

누고 있었습니다.

우정과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행동하게

사랑해서 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죄인이

지 않을 때에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오

어느 가을 날, 떨어지는 낙옆을 보며

만드는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행동하

고 욕심이 많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

직 우리가 아무런 바램 없이 주님을 섬

개구리가 생각을 했습니다. ‘내 친구

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알

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

기려면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섬겨 주

두꺼비 집에 낙옆이 많이 떨어져 있겠

아주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을 바

려 주시기를 바라는데 이 축복의 내용

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 그걸 다 치우려면 힘들텐데. 내가 가

라는게 아니라 오직 상대방을 위해 행동

은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삶, 성공한 삶을

는 우리에게 아무런 바램이나 조건 없이

서 도와 줘야겠다.’ 개구리는 저녁 늦

하고 그것 자체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오직 우리를

게, 두꺼비 몰래, 두꺼비 집으로 가서 앞

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열심과 열정을 알아봐 주기를 원할

사랑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

때도 많습니다. 누군가 나의 섬김을 보

음으로 섬겨주셨습니다. 그 섬김은 십자

고 감사해 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가 위에서의 희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마당에 쌓여 있던 낙옆을 다 치웠습니 다. 그런데 두꺼비도 똑같은 생각을 했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러한 모습을 지

던 것입니다. 두꺼비도 개구리 집 앞에

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쌓여 있는 낙옆을 다 치우고 집으로 돌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주님을 사랑

교회에서 봉사를 했는데 다른 봉사자

사순절 기간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아갔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희생하고 섬기며 나아가

의 이름은 들어갔는데 내 이름만 주보에

무엇을 다짐하고 희생하는 것도 중요하

는 삶이 진정한 믿음의 삶이 아닐까요?

서 빠졌다면 어떤 기분입니까? 이 기분

지만 그 전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지 않

걸어가신 희생의 길을 기억하며 하나님 께 감사드리는 계절입니다.

둘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바람이 거치 게 불었습니다. 그리고 정리했던 낙옆이 이 바람에 날려 다시 개구리와 두꺼비의

지금은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회개

습니까?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내가 열

집 앞마당을 덮었습니다. 개구리와 두

하고 금식을 하면서 다가올 부활절을 준

심히 봉사하고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나

꺼비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앞마당이

비하고, 또한 겸손히 자기의 신앙을 점

를 축복해 주실 수 밖에 없도록 만드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다시 낙옆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하지

검하고 성찰하는 기간입니다. 많은 사람

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바램이나 댓가

무엇을 바라거나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만 개구리와 두꺼비는 자신의 앞마당을

들은 사순절을 다시 다짐하는 기간으로

없이,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기를 바라며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바라보며 서로가 정리된 마당을 보며 얼

삼습니다. 신년에 계획을 하고 다짐한

그 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참된 의로움, 진정한 믿음의 삶을 살 수

마나 기뻐할지 생각하며, 내일은 내 앞마

것들을 잘 지키지 못해서 다시 한번 하

당을 치워야 겠다고 계획하며 잠이 들

나님 앞에 다짐하고 나아가는 기간으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었다고 합니다.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다짐과 결심은

할까요? ‘그래,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

매우 좋은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섬겨야지’라고 다짐하면 될까

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요? 아닙니다. 그런 다짐은 오래가지 못

6:1)

이 이야기는 Arnold Lobe 의 “Frog

그런데 이렇게 다짐하고 신앙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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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20

2022년 3월 10일

그리스도인의 건강관리 ‘목회는 체력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 게 된다. 목회는 영력이다가 아니고 체 력이라는 말을 들을 때 틀린 말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는 혼란이 생 긴다. 우리 주위에 목회를 잘 하다가 중 간에 건강이 무너져 목회를 마무리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아니 목회를 하다가 그 많은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고 쓰러 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목회자의 건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본다.

간에 그만 두셨다는 이야기가 없다. 인 류역사상 예수님만큼 절실하게 [최상의 건강]이 필요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사셨던 분이다. 자신의 생을 마감 하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자 신 있게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 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 이렇게 보면 예 수님은 생의 목표를 100% 달성한 분이 셨다. 그만큼 그분은 목표가 분명했고 사명 완수에 투철했던 분이셨다.

그토록 많은 사역을 하면서도 쓰러지 지 않았던 예수님의 건강비결을 우리는 철저하게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엄청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 은 무엇일까? 그것은 깊은 기도생활과 철저한 건강관리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 겠다. 그런데 사실 기도생활 역시 건강 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불가능할 수밖 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 수님께서 무슨 건강관리가 필요하였겠는 가?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 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 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 는 없으시니라”(히 4:15) 예수님의 건강 관리 측면에서 보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셨으나 스트 레스를 받아 암으로 투병하셨다 거나 중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예수님이 병을 앓았다는 기록은 없다. 극도로 피곤하셔 서 폭풍이 몰아치고 배가 흔들려도 고 물위에 곤히 주무시고(막 4:38), 배가 고 파서 무화가 열매를 찾으셨다(막 11:12) 는 이야기는 있지만 몸이 아파서 설교를 쉬거나 심방을 거르셨다는 말은 없다.

예수님의 건강비결은 무엇일까? 창조 주로서 자연의 비밀을 잘 아는 예수님이 영양학적 측면에서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셨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동차가 달리려면 개스나 파워가 필요 하듯이 인간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 시 양질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원리는 창조주이신 그분이 잘 아신다. 금식기간을 제외하고 예수님이 굶거나 끼니를 걸렀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다. 오 히려 세리 마태의 집에 초대받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마 9:10), 삭개오의 집에 초대 받아 잔치 밥 을 먹었고(눅 19:5), 베다니의 사랑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서 식사를 했고( 눅 10:40), 제자들과의 마지막 최후의 만 찬에서도 포도주와 빵을 나누어 먹었다 (마 26:26). 이렇게 보면 성경에는 먹는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건강한 사람이 되려면 잘

먹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건강비결은 걷 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보행은 건강학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공생애 3년 동안만 해도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몇 번씩이나 오갔으며, 산에도 오르시고 동서남북 팔 레스타인의 곳곳을 행보하셨다. 걷기는 ‘경제성과 편리성’으로 보아 건강학적 최고의 운동이다.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운동효과도 크다. 하 루에 7천보 이상 걷는 것은 정신적으로 육체적 다이어트건강에 좋다. 그리고 현 대인의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는 걷기가 가장 좋은 운동이다. 고개를 들 고 입을 다물고 가슴을 펴고 하늘과 땅 을 보고 힘차게 걸어보라! 매사에 자신 감이 생기고 피곤이 물러갈 것이다. 활 기차게 걸으면 혈액순환이 왕성해지고 혈압이 조절되며 신경통의 통증이 사라 지고 식욕이 살아나고 소화는 물론 잠 이 잘 온다. 계속해서 걷다보면 사람의 몸 전체의 신진대사가 왕성해지고 생동 감이 넘치게 될 것이다. 하루 30분에서 한 시간이라도 걷는 운동을 통해서 건강을 유지하자! 특히나 요즘처럼 코로나바이러스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교회에도 예배와 성경공부로 모이는 것보다 줌이나 영상으로 대처해 서 사람의 몸의 활동이 줄어들고 있다. 목회자가 심방하는 일도 횟수가 줄어 들고, 심방한다 해도 자동차로 가기 때 문에 좀처럼 걸어서 하는 일이 줄어들 고 있다. 그래서 요즘 목회자들이 비만 과 운동부족 그리고 자기건강관리를 잘 못함으로 성인병을 유발하는 것을 종 종 보게 된다. 교회의 각종 모임, 성경

오성관 원로목사 벧엘교회

공부, 셀(구역) 모임, 새벽기도회, 주일예 배가 교회에서 모이고 활동하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수님의 건강비결은 자기관리 이셨다. 인류역사상 예수님보다 바쁜 일 정을 가지고 산 사람이 있었을까? 새벽 부터 밤중까지 가장 바쁜 사람이었던 예 수님을 보면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한 분 이셨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기도와 휴 식시간은 반드시 확보한다는 원칙을 철 두철미하게 지키신 분이 예수님이다. 인 류사에 예수님처럼 스트레스를 많이 받 은 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의 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 빵문 제 그리고 끝없이 찾아오는 환자들과 귀 신들린 사람들을 대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은 어떻게 자기관리를 하셨을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과의 생생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영적 재충전은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 하셨다. 그리고 한적한 곳을 자주 찾아 대자연 속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생 의 목표를 점검하셨다. 건강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 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건강관리의 지 혜를 새롭게 조명하고 본받을 필요가 있 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 의 건강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명이 요 특권이다. 건강한 청지기로서 자신을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 무슨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 58:6-7)

제공: 신동윤 종합보험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2년 3월 10일

21

성도의 영원한 안전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조직신학 구원론 분야는 구원의 필요

의 자녀가 된 성도는 중간에 결코 구원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성, 구원받는 방법, 그리고 구원의 서정

에서 탈락하거나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등을 다룬다. 구원의 서정은 대체로 예정,

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라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

소명, 회개와 믿음, 중생, 연합, 칭의, 양

이런 관점과 관련해서 중요한 성경구절

말씀하신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

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구절은 성

자, 성화, 견인, 영화 등의 순서를 따라 논

들 중에는 빌립보서 1장 6절이 있다. “

이 또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것

경 전체가 가르치는 큰 원리, 즉 성도가

의된다. 물론 신학자 개인의 입장에 따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이다. 로마서 8장의 맥락을 고려할 때 예

중간에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원리에

중생이 믿음 앞에 오기도 하고, 칭의가

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

수님의 기도 역시 우리의 성화와 견인을

입각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

연합 앞에 오기도 하며, 예정에 대한 관

는 확신하노라.” 여기서 착한 일이란 당

위한 것이다.

기서 타락한 자들은 참되게 믿었다가 타

점이 칼빈주의적이거나 알미니안주의적이

연히 구원의 역사이다. 구원의 역사를 시

기도 하지만, 대체로 구원의 서정에서 다

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 즉 주

결론적으로 우리의 성화와 견인, 즉 끝

는 않았지만 어떤 영적 감동이나 기쁨을

루는 주제들은 위에서 언급된 것들이다.

님의 재림의 날까지 이루실 줄 즉 온전

까지 견디고 인내함을 위해서 성자와 성

느낀 자들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 사람들

히 완성하실 줄을 확신한다는 바울의 고

령이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에 대해서 예수님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

구원론 중에서도 견인론과 관련된 매우

백이다. 이런 구절을 읽고도 성도의 구원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야 한다. 성자가

에서 돌밭에 뿌려진 자들을 뜻한다. “또

중요한 질문이 “성도들의 구원이 취소될

이 중간에 상실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

성부께 기도하시고, 성령이 성부께 같은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는 것은 주님의 권능을 만홀히 여기는 어

제목으로 기도하시는데 그 기도가 응답

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번 회개하고 참되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

리석은 생각이다.

이 안된다고 하면 삼위일체 하나님 간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

에 심각한 내부 모순과 내부균열이 야기

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와 구주로 믿은 성도가 중간에 타락하여

락한 자들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가지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더 중요한 구절은 로마서 8장에 나온

된다는 결론이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도들은 영원히

다. 로마서 8장 26절은 “이와 같이 성

날 수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

요”(막 4:16-17). 즉, 말씀을 기쁨으로 즉

안전한가?”라는 질문이다.

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

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의 관계 속

시 받았으나 참된 믿음의 뿌리가 형성되

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

에서 영원히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계

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 개혁주의/칼빈주의

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신다. 그러므로 성자와 성령의 기도는 반

의 관점은 성도들의 구원은 절대 취소될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한

드시 응답되어야 하며, 그 응답의 결과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

수 없으며,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다. 여기서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

는 성도들의 성화와 견인일 수 밖에 없

주로 참되게 믿는 믿음으로 구원이 확정

는 것이다. 반면 알미니안주의의 관점은

는 내용은 우리의 성화와 견인이다. 성령

는 것이다.

된 성도는 영원히 안전하다. 그는 중간에

참된 믿음으로 성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심각하게 타락하면 구원을 상실할 수 있

성숙하게 되기를 기도하시고, 그 과정 중

일부 성도의 견인을 거부하는 사람들

할 수 없다. 물론 이 진리가 그들의 영적

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은 특별히

에서 우리가 끝까지 견디고 인내하여 믿

은 히브리서 6장 4-6절을 근거 구절로

태만을 정당화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

종교개혁 이후 지난 400여 년동안 신학

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시는 것이다.

내세운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

다. 우리의 구원이 영원히 확정되었다 하

자들 간에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로마서 8장은 성령만이 우리를 위해 기도

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

더라도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님도 우리

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

받은 자답게 살아가야하는 거룩한 책임

개혁주의와 칼빈주의적 전통에 서 있

를 위하여 기도하신다고 말씀한다. 로마

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을 감당해야 한다.

는 필자의 관점은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

서 8장 34절은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겔 18:21)

제공: 실로암장로교회

결코 구원에서 탈락하거나 구원을 상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제공: 덴버삼성장로교회


쉴만한 물가

2022년 3월 10일

22

"생각을 생각하라”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 는 사실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모르 고 있는지 아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 지 그 알고 있는 것이 참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쓴 저서 에 보면 소크라테스는 제자들과 대화하 면서 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 작 모른다는 사실을 깨우쳐줬다. 사람들 은 보통 자신이 무엇을 모른다는 것 조 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무엇 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큰 능 력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 는 사실을 안다고 했다. 이것이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인식 론적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내 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론적 태도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무지를 알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 한 앎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고의 경위를 통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모 른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내 가 내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에서 나온 다.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메 타인지라고 한다.

내가 나를 본다 성경에 보면 메타인지를 잘 한 사람 이 있다. 그는 사도 바울이다. 그는 자

여호와꼐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시 145:18)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 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 다”(롬 7:22, 23). 바울은 자기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법 을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 고 자신의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그 의 마음의 법과 싸우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죄의 법은 육체가운데 기능하는 것 이며 하나님의 법 곧 생명의 성경의 법( 롬 8:2)은 거듭난 영가운데 기능한다. 이 두 법이 싸움을 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서 일어나는 이 싸움을 볼 수 있어야 영 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

기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것을 안 다고 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 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 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롬 7:18, 19). 여기서 바울은 자기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안다고 했는데, 자 기 속은 곧 자기 육신이라고 했다. 그렇 다면 그는 어떻게 자기 육신에 선한 것 이 거하지 않는 것을 알았을까? 선하다 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육신은 몸을 말하는데, 인간의 몸은 추상적인 개념이 거할 수 있는 처소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바울이 육신에 속한, 육신적 인 죄가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을 인지 한 것을 말한다. 거듭난 사람의 영은 양 심이 활성화되어 자신의 육신적 소욕에 서 일어나는 것들을 마음에서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선한 것인데 도리어 자신이 원하지 않 는 악을 행하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 것 이다. 영적인 기능이 활성화된 사람은 자 신의 생각의 깊은 속에서 일어나는 육적인 소 욕을 감지해낸다. 영의 감각이 육의 세포 까지 도달하여 감지해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또 자기가 자기 마음을 본다고 했다. 이는 회화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자 기가 자기 생각을 생각한다는 말과 같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 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결국 법과 법이 싸움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법 곧 성령 의 법과 죄의 법이 충돌한다. 본질상 같 이 양립할 수 없다. 이 두 법이 우리의 마음과 육체가운데 작용하고 있다. 거듭 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거듭난 영으로 그리고 비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양심으로 이 두 법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하여야 한다. 두 법은 내 안에서 싸우지만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나다. 바울은 이 싸움에서 죄의 법이 하나 님의 법을 이기고 자신을 사로잡는 것 을 본다고 했다. 이 말은 이 두 법중에 서 한 법이 이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 의 법을 더 지지했다는 말이다. 이는 마 치 인간이 과욕으로 자연을 훼손하며 자 연의 법을 따르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 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울은 하나님의 법 을 따르지 않고 육신의 법을 따르는 자 기를 보았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보아야 한 다. 적을 보지 못하고 싸워 이길 수 없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생각하 고 통제하지 못하면 죄의 법이 우리를 사로잡을 것이다. 아담 이후 인간은 나면 서부터 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내 가 나를 보지 못하면 죄의 경향에 따라 나는 살게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 세상에 죄악이 난 무하는 것은 이 싸움에서 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그리스도인들도 양심 으로 죄의 법을 이길 수 있지만, 양심만 으로는 이 싸움을 하기에 너무도 역부 족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 조차 이 싸 움에서 진다면 이 세상은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생각을 생각하지 못하면 인간 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하나님 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주셨다. 그 중에 제일 중요한 생각이 자신의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시 102:1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라 (약 5:16)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선택하는 것은 나다

제공: 김정애 권사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바울은 이를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 는도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그가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곧 생각을 보았 다는 것이다. 이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 면 불가능한 자기통찰이다. 여기서부터 영적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영적성숙 과 변화는 자기의 생각을 생각할 수 있 는 메타인지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를 보지 못하면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며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 2:1-2) 제공: 김성걸·김혜경 집사(덴버제자교회)


산마루서신

2022년 3월 10일

23

전도자의 숙명 최근 중미 지역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님에게서 최근의 동향과 사 정이 들려왔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의 료시설이 좋지 않은 현지에 남아 사역지 를 지켰는데 얼마전 코비드에 걸려 심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현지인 중심의 교회도 코비드로 인해 인원 감소 가 있었고 다시 예전으로 되돌이키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며 고 충을 토로하고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워진 부분은 그 동안 있었던 다수의 후원이 중단되었다 는 것이었습니다. 코비드 장기화로 인하 여 후원하는 교회나 단체들도 재정적 어 려움을 겪다 보니 선교지를 챙길 여력이 줄어들어 벌어진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교지에서 해오던 사역들이 위 축되어졌고 애써 이루어놓은 선교의 기 반이 흔들릴까 염려되는 상황에 이른 것 입니다. 코비드 기간 동안 해외 선교사 들이 한국이나 미국으로 귀환하여 다 음을 기약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저마다 때와 여건을 고려하면서 선교지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 에 현지에 남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 며 사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 로도 참 귀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복음 전도의 사역 현장이 어렵습니다.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이 선교지 뿐이겠습니까? 현재 많은 이민교회들도 양적 위축과 맞물려 전도 사역이 축소되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복음 사역이 과거에 비해 크게 위축되었 음은 어디서나 감지 할 수 있는 일반적 인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맡겨진 자리를 떠 나지 않고 주어진 전도의 사역을 감당 하는 데에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전도자로서의 소명의식과 사명감이 있 기에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도자로서 여전히 복음을 알리고 그 사 역을 하는 모든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임하기를 기 도합니다.

씀하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 도 리어 비난과 조롱, 박해와 거부를 당하 는 그것이 전도자의 숙명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그 사회 의 지적 수준이 올라가고 사람들의 삶 이 여유로워진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의 지적 수준이 올라가 고 생활의 수준이 올라간다 해도 바뀌 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도자에게 가해지 는 고충은 더 심화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시대적 흐름을 초대 교 회 시절부터 조명해보면 복음 전도자들 은 늘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알 수 있습 니다. 전도자들은 가는 곳마다 거부당하 고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목숨까 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럼 에도 그러한 저항과 거부가 있다하여 복 음을 전하는 전도의 사역이 위축된 적 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됩니다. 복음 을 알리는 현장에서부터 많은 핍박과 환 난이 있었고 수치와 곤고를 당하였음에 도 불구하고 복음은 더 강력하게 확산 되었던 것입니다. 전도자들은 늘 편치 않은 현실과 마 주해야 했고 모욕과 거부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더불어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난과 궁핍과 비천과 만나는 것은 당연 수순이었습니다. 그 모습들은 전도자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 는 운명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전도자의 숙명이라 이름 지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자들에게 그것을 주지시키셨습니다. 이 동네 저 고 을에 들어가 전도하면 너희는 침뺏음을 당할 것이고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라 말

도리어 전도는 더욱 더 힘들어질 것 이고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될 것 이며 전도자들은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 다. 실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를 보더라도 복음에 대한 수용도는 예 전보다 현저하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 습니다. 그만큼 전도자들이 감당해야 하 는 숙명적 애로는 가중되었음을 의미 합니다.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같다면 여건이 안되면 안하면 그만이라 지만 전도의 일은 결코 그럴 수 있는 사 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전도자입니다. 복 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복음을 알리 는 사람, 복음에 기반을 둔 선교적 삶을 감당하는 바로 전도자인 것입니다. 그러 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전도자의 본 분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 늘 전도의 일을 함에 있어 힘든 것은 어 떻게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그 어려움과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감 당하는 것이 전도자의 숙명이라면 오늘 우리들에게 전도자의 그 숙명을 기꺼이 받아 감당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이민교회를 통해 복음 전 도 사역을 감당해온 크리스천들의 전도 여건도 예전보다 열약해졌다는 객관적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전보 다 전도자로서 끌어안고 감당해야 하는 인내와 수고의 몫이 더 많아졌음도 깨달 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독자들에게 자기 스스로 전도자 의 숙명을 인정하고 받아 능히 감당하 는 은혜와 더불어 지금 각자 전도의 자 리에서 복음 전도의 사역을 열심히 감 당하고 있는 전도자들에게 기도로써 용 기와 소망을 주며 더욱 힘내라고 격려를 보내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복음 전도는 전도자가 자신의 그 전 도자로서의 숙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감당되어지고 나아가 그 열 매를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숙명을 인지하지 못하면 힘들다고 내려놓게 되 고 어렵다고 포기하기가 쉬워지기 때문 입니다. 전도의 일이 여가활동이나 취미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 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말미암아 총독들 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 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 심이라”(마 10:17~1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 5-8) 제공: 박영돈 부동산


야고보서 강해

2022년 3월 10일

1회

24

"믿음의 시련”(1) <야고보서 1:1-4>

오늘부터 주일 예배시간마다 야고보서 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야고 보서 하면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 르십니까? ‘행함을 강조하는 서신’이 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틀린 대답이 아닙니다. 저도 중고등부에서 신 앙생활을 할 때 토론대회가 여러 번 있 었습니다. 그때 단골 주제가 ‘믿음이냐 행함이냐”였습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학생들은 사도바울의 로마서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행함을 주장할 때는 반드시 이 야고보서가 그 중심근거였습니다. 어 린 학생들이 열띠게 토론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많이 납니다. 성경에서 행함을 강조할 때 가장 많 이 거론하는 성경이 야고보서가 맞습니 다. 야고보서 2:26을 보세요. “영혼 없 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 은 죽은 것이니라” 행함의 중요성을 얼 마나 단정적으로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영혼 없는 몸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 다. 우리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그 즉시 로 모든 기능이 멈춰버립니다. 숨도 멈추 고, 피의 순환도 중단됩니다. 몸은 그대 로 굳어버립니다. 그것이 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으면 믿음도 굳어 집니다. 화석화된다 말입니다. 믿음의 모 든 기능이 중단됩니다. 우리 믿음 생활 에 행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야고보서가 행함만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여진 성경은 아닙니다. 야고보 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온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의 온전은 ‘완전, perfect’과는 의미 가 조금 다릅니다. 완전보다는 ‘완성, complete 완성하다, 완결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신앙생활의 진정한 완성의 길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을 얻는 것도 틀림없는 복음입니다. 진 리입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완성은 믿 음의 실천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 에 반드시 행함이 따라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같이 갈때 신앙 의 완성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신앙

의 성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이 얼마나 더 갈지 정확히 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올해 안에 거의 끝날 것입니다. 전국민의 70-80%가 백 신을 맞으면 코로나는 더이상 힘을 쓰 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시기를 가을 정도 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6개월 정도는 더 움추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외부적 인 활동에 여전히 제약이 많습니다. 주 로 실내에서 집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이 기간동안 야고보서를 통해 우리 신앙 을 다시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우리 신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온 전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 다. 오늘 첫번째 본문은 시련에 대한 우 리의 자세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도 온전한 신앙을 만들 기 위한 과정입니다. 시련을 만났을 때 두 가지 자세를 가져야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련을 하나님의 은혜로 바꾸어야 합니다. 2절을 보세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련 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여러 가지’라는 말은 단순히 종류가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채로 운, 다양한 색깔을 가진’이라는 뜻입니 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시련의 종 류가 참 다채롭습니다. 하나도 같은 것 이 없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항상 파도 가 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켈 리포니아 바닷가 근처에서 오랫동안 살 았습니다. 종종 바다로 나갔습니다. 파도 가 없는 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조금 크고 작은 것이 있다는 차이뿐입니 다. 항상 파도가 칩니다. 우리 인생도 마 찬가지입니다. 시련이 없는 인생은 없습 니다. 작은 시련은 누구나 겪고 있기 때 문에 단지 아무말도 안하고 있을 뿐입니 다. 때로는 큰 파도가 인생에 밀려옵니 다. 이번 코로나 기간 중에 큰 시련을 겪 고 있는 가정들도 많을 것입니다. 파도

역시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한 번 도 같은 파도가 치는 적이 없습니다. 볼 때마다 다릅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 역 시 모두가 다릅니다. 한 번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지난 주일을 전후로 서부를 제 외한 중부, 동부 지역에 엄청난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덴버도 화씨로 -8도까 지 떨어졌습니다. 밖에 나가 잠시 서 있 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덴버 는 워낙 추위에 익숙하기 때문에 별문제 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텍사스는 재난 지역으로 선포 될 정도였습니다. 본래 따뜻한 지역입니 다. 영하로 떨어지는 적이 거의 없습니 다. 그런데 이번에 화씨 0까지 떨어졌 습니다. 영하 15도 정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추위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 았습니다. 거기에 전기까지 끊어졌습니 다. 무려 7백만 가구에 2-3일 동안 전 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복구 가 안된 가구가 53만이라고 합니다. 집 에서 태울만한 것은 모두 다 태웠다고 합니다. 자동차 히터를 틀어놓고 그 바 람을 집안까지 연결시키기도 했습니다. 텍사스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300만명 에게 지금 식수 공급이 되지 않고 있습 니다. 마켙에서도 물을 살 수가 없습니 다. 심지어 투석을 하는 환자에게도 물 이 부족해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 습니다. 눈을 녹여서 물을 먹고 있는 가 정들도 많습니다. 오늘 야고보는 “시련을 당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한다는 것은 갑자 기 불어닥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피할 방 법도 없습니다. 코로나의 시련 역시 우 리 모두가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들 마다 시련의 색깔은 모두 다릅니다. 코 로나로 인해 생사의 고비까지 간 분들 도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만 도 3-4개월이 되기도 했습니다. 생명 같 은 어린 딸이 감염이 되어 응급실을 여 러 번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비지니스가 너무 어려워 문을 닫은 가 정도 있습니다. 겨우 겨우 버텨가는 가 정도 많습니다. 이 코로나 기간 중에도 암 판정을 받은 가정도 여럿입니다. 이 제 내일부터는 힘든 항암치료가 시작이 됩니다. 노심초사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 리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시 련을 당하는 것입니다. 시련은 끝이 없 습니다. 죽어야 끝이 옵니다. 우리가 살 아있는 한 시련은 언제나 올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야고보는 우리가 이해하 기 어려운 요구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 라”라고 주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 려움 속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 요?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갑작스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앞길이 막막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릅니다. 그 런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여기 서 중요한 것은 ‘여기라’라는 단어입 니다. 그냥 단순히 “시련을 기뻐해라” 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라’는 깊이 생각하다, 숙고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원문의 뜻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주도하다” “이끌 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 히 쓰는 ‘헤게모니’라는 단어가 있습 니다. 바로 ‘여기라’에서 파생된 단어 입니다. 어느 모임이나 일의 주도권을 쥔 다고 할 때 사용합니다. 아무리 힘든 시 련일지라도 시련에 이끌려 다니지 말라 는 것입니다. 파도치는 대로 휩쓸려가서 는 안 됩니다. 그러면 불평과 원망밖에 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너무 일이 안풀 리면 분노와 화만 내게 됩니다. 시련을 이끌고 가야 합니다. 시련의 방향을 틀 어야 합니다. 시련에 대해 내가 주도권 을 쥐어야 합니다. 그것이 시련을 극복 하는 방법입니다.


변화프로젝트

2022년 3월 10일

35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1장, 상심한 마음에서 치유를 위한 기도 프로젝트 3) 잃어버린 사람과의 관계에서 평안 을 찾았는가?

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

다음의 22 가지 제안을 실천하기 위해

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여러분이 할 수 있을 만큼 노력을 하라. 벌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그 사람이 당신에게 말로나 행동으로 상처 를 주고 아픔을 주었다면 그냥 마음 아 파하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용서한다고 말하여 마음의 평안을 찾아야 한다.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살아있었을 때에 화해를 못했다면 더 슬 픔에 잠길 수도 있으나 이제는 죽은 사람 도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빚진 것 을 다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빚도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용 서를 할 때에 우리는 마음의 아픔을 치 유를 받을 수 있고 평안을 찾을 수 있다.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

써 하고 있는 것들은 그냥 넘어가면 된다.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서 12:18~19). 서 화해하지 못할 경우가 있을지라도

1) 성경을 하루에 30분씩 30일 동안 읽기: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영의 양식이

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만

될 뿐만 아니라 상한 영을 치유하는 약

이 우리가 원망과 미움의 방에서 나

이 된다. 욥기, 시편, 잠언, 요한복음, 아

올 수 있다. 하나님께 용서하는 마음

니면 어느 성경이든지 원하는 대로 읽으

을 달라고 해서 모든 사람과 평화

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치유의

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라.

능력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직접 만나

가 욥에게서 배울 것은 한 번에 모든 재

기도: “예수님, 제가 이 슬픈 마음과

산을 잃고 아들 일곱 명과 딸 셋을 잃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사

고도 비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

랑을 내 마음에 부어주셔서 모든 사람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이다.

들을 용서하고 평안한 마음 가운데 주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4) 사랑하는 사람과의 죽음에 관계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용서했는 가?

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

삶을 살게 인도해 주세요. 저의 사랑하

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는 사람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저의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어떤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갑 자기 사고가 나서 죽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실수로 죽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원망이나 미움으로 고통 에서 허덕이게 될 수가 있는데 용서하 는 마음만이 그 고통에서 치유를 가져 다 준다.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들과 평 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씀하셨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 으로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 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

상처받은 심령, 나의 미래와 모든 걱정,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근심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저를 주님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안에 품어 주시고 저의 상처난 모든 부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

분을 주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세요. 저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

의 슬픈 마음이 주님의 기쁨으로 채워

니라”(욥기 1:20~22).

져서 주님을 섬기면서 살 수 있도록 도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잠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주셨다는

다. 아멘.”

것에 감사하고 어려운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 들였으므로 모든 것을 잃었을 때

3. 이 기도 프로젝트를 위한 30일 동안의 구체적인 실천을 살펴 보자.

에도 슬픔이나 비탄에 잠기지 않고 하나 님을 찬양한 놀라운 믿음을 가졌다. 요

한복음 14:1~6, 시편 23 편, 시편 103 편 과, 요한계시록 21 장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배워라. 하나님께서는 예 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 세상보다 나 은 완전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있 는 길을 마련해 주셨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 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 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 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 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 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 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요한계시록 21:3~4). 마태복음 11:28~30 에서 예수님은 우 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 을 말씀해 주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 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 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 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 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 이라” 하시니라.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 면 평화를 맛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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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2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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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3) - 성령 전병욱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 인해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겨나지만 그 중에 이슈가 되는 것이 바로 난민입니다. 며칠 전까지 집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

성령으로 사는 인생은 오늘 하루를 마지막처럼 사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오

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수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늘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해야할까요? 암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자

버리고 정든 고향과 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난민이 되었습니다.

신이 이제 몇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 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왜 그만둘까요? 먹고 살 돈을 벌 이유가 없으니

난민이 된 사람들에게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보통사람들

까? 편하게 죽고 싶으니까? 아닙니다.

처럼평범하게 마음 편히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 소망 하나로 목숨을 걸 고 자신의 고향과 고국을 떠나는 그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죽음이 가까이 오니 정말로 내가 해야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

요. 그들의 소식을 듣고 우리의 모습을 볼때면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

다. 일한다고 핑계 대며 오늘 내일 내년으로 미루었던 중요한 일들이 보이기 시

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찬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

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사랑을 회복하고,

게 됩니다.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하고, 죽음 앞에서보니 내가 왜 이렇게 별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았나? 내 자존심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몇푼 손해보는 것이

오히려 그렇게 생각될때마다 지금 난민들과 우리들의 모습은 피차 별반 차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남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

이가 없는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지만 우리는 여

고, 이제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내일이 있

전히 영혼의 안식을 찾기 위해, 보금자리를 찾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다는 것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을 진짜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바라보지 못

여전히 영적인 난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영적인 난민인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

내일이 없다는 것은 희망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신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

은혜가 어제 지나가지도 않았고, 내일 오는 것도 아니고 바로 지금 하나님의 십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습

자가의 구원이 나에게 있다는 세상 무엇보다 귀한 구원의 희망의 메세지입니다.

니다. 그 약속의 증거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경은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님과 함께 행복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이

안계신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아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모든 독자분들의 지금을 온전히 살아가심으로 영적 난민에서 고린도전서 12장 3절 후반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 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신 모든 독자분들

벗어나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을 온전히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께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으신 분들이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303) 337-5385


복음으로 살아보기

27

2022년 3월 10일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손재흥 목사 덴버에덴교회 최근에 어느 자기계발 유투브 채널에서 ‘스스로에게 감동받는 삶을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법’이라는 주제의 짧은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를 하신 분은 스스로에게 감동

말미암아 생명을 풍성히 얻지는 못하는 것 같다. 매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감동을 자주 경험해야 한다고 제시했는데,

암아 감동을 받고 행복을 느끼며 생명력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첫째는 아름다움을 통해 얻는 감동이고, 둘째는 깨닫음 혹은 성장을 통해 얻

찾기가 쉽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는 감동이며, 셋째는 이타적 행위로 얻는 감동이다. 그 강의를 들으며, 왜 스 스로에게 감동받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에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양의 문이라”고 계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의미에

게 감동받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스스로 감동을 받으며 살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

때에 우리는 “참 행복하다”는 행복감과 “내가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명력

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나는 양의 문이라”

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누구든지 그 분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 고 또 그 분으로 말미암아 들어가고 나오면 생명의 양식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 곧 성자 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풍

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

성히 얻지 못하는 이유는 양의 문이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출입하지 않기 때

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

문일 것이다. 그럼,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출입한다는 것은

었다. 그리고 그 분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셔서 사람들에게 빛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태도 그리고 말과 행동이 예수 그

을 비추는 생명의 빛이 되셨다.

리스도를 통해 나오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에게 들어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요한복음 10장 7절부터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생명을 얻고 그것을 더 풍성히 얻게 될 것이다.

계시하시며,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 곧 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이시다. 우리는 그에게 속한 양이기 때문에

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그의 양인 우리로 하여금

오직 우리의 양의 문이신 그 분을 통해 들어가고 나와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생명을 얻게 하고 그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출입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해질 때,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하늘의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풍성히 얻고 있는가?” 이 질문은 이렇게 표현할 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의 문이시라는 진리를 믿는가? 그 진리를 믿

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고

는다면 오늘부터 그 분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어보자. 풍성한

행복을 느끼며 생명력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나를 정욕으로 영화롭게 하나니 쓰려고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때문이라 자에게 내가 잘못 구하기 하나님의(약 구원을 4:3)보이리라 (시 50:23) 제공: 제공:전제히 전제히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 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딤전 2:1-2) 제공: 정순이 제공: 정순이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누추함과 어리석은 주께서 경건한 자는 말이나 시험에서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돌이켜 말을지키시며 하라 아래 두어감사하는 심판날까지 (엡 5:4) (벧후 2:9) 제공: 김성애 성도 제공: 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그 날에 너희가 또너희 말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부르며 그 삼킬 행하심을 중에 다니며 자를만국 찾나니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벧전 5:8) (사 12:4) 제공: 신민식·신경원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성도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제공: 김성애 성도


감동이 있는 글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방탕이다

2022년 3월 10일

지금이라는 시간

인생은 한 번뿐 이라고들 말한다. 소중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방탕하는 것과 같다.

지금이다. 지금이 기다리던 바로 그 기회의 때다. 지금이라는 순간처럼 중요한 시간은 세상에 없다.

귀한 것은 귀한 취급을 해야 한다. 교만에 이르면 안 되겠지만 자신을 비하 하는 것 또한 안된다.

지금 잘 믿어야 믿음 좋은 사람이 된다. 과거에 잘 믿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을 귀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우습게 만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라는 날은 보장받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감정이 앞선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무엇을 하려거든 지금 하고 무엇이 생각나거든 지금이란 시간을 놓치지 말라. 누었다가도 벌떡 일어날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인생은 되는 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용서도 지금 하고 미움을 거둘 시간도 베풀 시간도 지금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의 영광과 연관이 되어 있다. 내 인생 내 맘대로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불신자들이나 하는 태도다.

회개도 지금 하고 선을 행하려거든 지금 하라. 지금 하지 않으면 그때 왜 하지 않았을까 후회만 남게 된다.

믿는 자의 삶은 자기의 것이 아니다. 나는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못 박은 존재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 삶을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생각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기를 잠시도 멈춰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결된 몸이요 그의 지체다. 손과 발이 몸을 떠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떠나 함부로 살 수 없는 존재다.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 이유는 지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으로 살고 있음이요 충성되지 못하며 신실하지 못한 자 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멍석을 깔아 주셨을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요 최선을 다할 시간이다. 하늘 문이 닫힌 후에는 열 수도 없고 다시는 기회의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행동을 삼가 조심하며 살아야 주님께 영광이 된다.

거짓을 버리려거든 지금 당장 버려야 하고 후회할 것을 도려내야 할 시간도 지금이니 때를 놓치지 말라.

나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거든 지금 당장 사귀고 하나님 사랑도 지금 이 순간부터 뜨겁게 시작하라.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방탕이다. 세월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 때가 악하다.☆자료/ⓒ창골산 봉서방

행복을 누림도 지금 누려야 내 것이 된다. 장차라는 말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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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도 내 것이 아니요 미래도 내 것이 아니다. 오직 지금만이 내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이란 시간을 붙잡는 자가 세상의 성공자요 지혜자다.☆자료/ⓒ창골산 봉서방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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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0일

왜 나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설교를 통하여 말씀을 듣기도 하고 성경을 읽기도 하며 나름대로 많은 기독교 서적과 방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며 살게 된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고 욕심과 고집이 가득하여 성령께서 끼어들 빈틈 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적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날마다 기도하며 자신의 변화된 삶과 신앙을 위하여 각종 모임에 쉬임 없이 참여하고 교제하며 배우기를 그치지를 않는다.

주를 위하여 살겠다고 하지만 주를 위하여 목숨을 걸만한 믿음도 없을뿐더러 성령의 도우심을 의뢰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라면 평생을 그렇게 산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이러니 하고 이상한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시간을 투자한 만큼 자신의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자신들의 본래의 직업인 고기나 잡으려고 자기들이 하던 일터로 돌아갔다. 그런 제자들을 주님은 친히 찾아가셨고 약속한 성령을 부어 주셨다.

예배에 한번 나가지 못하고 빠지게 되면 죄인이 된 심정을 놓지를 못하고 사는 우리!! 성경을 읽지 못하고 기도를 게을리 하면 언제나 양심의 가책 가운데 사는 우리! 전도하지 못하는 죄스러움! 선을 행하고 믿는자 답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신앙적 양심이 우리를 괴롭힌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 쌓여 있지만 역시 변화되고 거듭난 인생을 살기에는 역부족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너무나도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지 않는다. 모든 것 내가 하려고 하는 나라는 존재 의식으로 살기 때문에 변화되지 못하고 신앙과 삶이 충돌하며 언제나 넘어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믿다고 하면서 늘 죄 가운데 머무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역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물보다 부패한 인간이 선을 행하기에는 부족하며 함량 미달이다.

주님을 믿는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맡기지 못하고 성령의 소리에 귀를 막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듭남이란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모든 것이 변화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따라가던 시선에서 주님을 향한 시선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살지 않으면 세상이 주님보다 더 크게 보이고 위대하여 보인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의 믿음은 조금도 성장할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자료/ⓒ창골산 봉서방

글: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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