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제 12권 6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2년 3월 24일 발행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Isaiah 53:5)
목차
2022년 3월 24일
목차 교계소식 교회절기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은혜의 샘터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선교사들 이야기 좁은 길을 걸으며 야고보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크리스천 베이직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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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2021년 3월 4월 24일 22일 2022년
2022년 사순절 기간
빛과소금뉴스 인터넷신문
2022년 3월 2일(수)부터 4월 16일(토)까지
2022년부터 인터넷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 사순절은 교회력에 의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하 여 부활절 이전 토요일까지의 40일간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6번의 주일은 세지 않는다. ● 종려주일(Palm Sunday)로 시작되는 마지막 주간은 고난주간(Passion Week)으로 지키며,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족목요일(Maundy Thursday)과 성금요일(Good Friday)을 기념하고, 이후 부활절(Easter)을 맞는다. ● 이 시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경건한 삶이 되도록 근신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예하는 기간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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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뉴스는 그동안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병행해 왔는데, 새해부터는 모든 사역을 디지털 체제로 바꾼다. 그동안 종이 신문 애독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 을 부탁드린다. ●인터넷으로 빛과소금뉴스를 읽는 방법: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빛과소금뉴스' 혹은 ‘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로 검색하면 된다. ●문의: thelightandsa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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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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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4일
사순절
사순절에 관한 모든 것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는 기간”
글: 오천의 목사
사순절은 언제인가?
왜 재를 사용하는가?
부활절 전 40일이다. 주일은 작은 부활절과 같기 때문에 사순절에서 주일은 제외된다. 기본적으로 1년에 약 10분의 1정도(십일조와 같은)이다. 기름진 화요 일은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절 하루 전날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역사에서 재는 유한한 삶과 회개의 표시이다. 유한한 삶이란 우리가 죽을 때 우리 몸은 결국 분해되어 먼지/흙/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란 오래전에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후회를 느꼈을 때 재를 머리 에 놓고 “삼베옷”(따가운 옷)을 입어 죄가 많이 불편하며 일종의 정신적 죽 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표시하며 죄를 고 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들의 방법이었다.
사순절이란? 사순절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절제하는 생활, 기도, 금 식에 초점을 두는 교회력의 한 절기이다.
기름진 화요일? 예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말디 그라스는 기름진 화요일에 대한 프랑스 말이다.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 을 말한다.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에 시작되므로 전날은 항상 화요일이다. 훌 륭한 음식 및 파티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날을 “기름진 또는 훌륭한”이 라고 부른다. 초기에 사람들은 사순절을 금식과 회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집 안에 있는 달콤한 과자, 고기 및 다른 음식에 유혹을 받지 않으려 고 음식 보관함을 깨끗이 비웠다. 그들은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달콤한 빵 을 만들 수 있는 모든 설탕과 효모를 다 써 버렸고, 식사에 가능한 모든 고 기로 소비했다. 큰 잔치였다! 최근에 기름진 화요일은 절제와 회개의 절기인 사순절을 준비하는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이 아주 세상적 파티(일부 장소에 서)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그 기원을 알고 있으며, 절기의 참된 의미에 집중한다.
어떤 종류의 재를 사용하는가? 종려 주일에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그에게 환호하는 동안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예수께서 는 죽임 해당하셨다. 기쁨으로 흔들던 종려나무 가지는 슬픔의 재가 되었다. 우리는 종려 주일에 사용한 종려나무 가지를 태워 재를 만들고 약간의 오일 을 섞어서 재의 수요일에 사용한다. 재는 상징적이다.
기독교인들은 재로 무엇을 하는가? 재의 수요일 예배에서 사람들은 재를 받도록 초대된다. 목사는 재로 이마에 작은 십자가를 표시한다. 재는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며 우리의 죄를 상기시키 는 반면, 십자가는 예수님의 부활 (사망 후의 삶)과 용서를 상기시킨다. 그것 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으며, 예수님께 돌아올 때 새로움을 경 험할 수 있다는 강력한 표식이다.
그래서 사순절의 진짜 시작은 재의 수요일인가?
사순절이란 무엇인가?
그렇다. 기름진 화요일 다음 날인 재의 수요일은 대개 우리가 유한한 삶을 깨 닫고 죄를 회개하며 사랑하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예배로 시작된다. 우리는 인 생을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로 깨닫고 우리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려놓 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도록 앞으로 40일 동안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키겠다고 결심하고 다짐한다. 재의 수요일 예배에서 보통 목사나 신부가 교 인들의 이마에 십자가를 재로 표시한다. 왜 재를 사용하는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께 내 려왔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소리가 들렸다. 그 후, 마태복음 4 : 1-11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성령 에 의해 광야로 보내졌다. 거기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했다. 그곳에서 그 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고 시험을 이길 힘과 명확한 이유를 발견한다. 그 후 예수께서는 사역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교회 절기
2022년 3월 24일
(추측) 어쩌면 예수께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를 정리하기 위해 하나 님과 보낼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마 예수께서는 하나님(그리 고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알기 위해 가족, 친구 및 일상생활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 예수께서는 우리처럼 인생의 해답과 방향을 찾기 위해 하나님과 의도적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예수처럼 우리도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진지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왜 사순절을 “지켜야” 하며 어떻게 시작하는가?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찾고 있는가? 인생이란 쳇바퀴를 달리는 데 지쳤으며, 실제로 방향, 목적 또는 열정이 없이 삶을 살고 있는가? 수업, 관계, 가족 및 일에 사로잡히기 쉽다. 우리의 삶 속에는 그리스도부터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 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티비를 보고, 의미 없는 잡담을 하 며, 자극되는 일들을 찾고, 술을 마시며, 너무 많은 활동 또는 엉뚱한 것들로 우리의 공허함을 채우려 노력한다. 우리는 인생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다. 사순절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다시 우리 삶의 초점을 예수께 두고 “회개”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사순절은 생활 방식을 바꾸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 을 바꾸시는 40일의 시범 운행 기간이다. 사순절 기간에 다음 중 하나의 영 적 훈련을 시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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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 는 것들을 끊음으로써 금식 할 수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몸과 생명을 깨 끗게 하는 방법으로 사탕, 티비, 청량음료, 담배 또는 고기를 40일 동안 금식 한다. 하루에 한 끼씩 거르고 그 시간을 대신해 기도할 수도 있다. 또는 오 락프로그램과 같은 일상생활 중 하나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 하나님의 창 조물을 즐길 수도 있다. 하나님께 초점을 두기 위해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 가? 무엇이 여러분의 달력과 인생을 바쁘게 만드는가? 먹고, 입고 혹은 활동 하는 것들에서 어떻게 삶을 간소화할 수 있을까? 금식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거나 계획해보라.
봉사: 일부 기독교인들은 금식 대신에 봉사한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음식을 모으거나,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원 봉사하거나, 지역 사회의 변화와 정의를 위해 일할 수 있다. 사순절 동안 매일, 다른 낯선 사람, 동료 또는 친구를 돕기로 헌신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우리 가 하나님을 섬기는 한 가지 방법이다. 기도: 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을 의도적으로 기도의 시간으로 사용한다. 걷는 동 안 기도하거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서 곡을 쓰거나 예술 작품을 만들거 나,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보내며 기도할 수 있다. 이 모든 방 법이 하나님과 더 조화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락방 생활기도 센터를 방문 하여 기도를 요청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하나 혹은 두 가지 새로운 기도 생활을 시도해보라.
금식: 어떤 사람들은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음식만이
사순절을 위해 할 수 있는 10가지 주요 사항 1. 출퇴근 운전 길에, 등하교하면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2. 지역 노숙자 쉼터, 개인과외 프로그램, 요양원, 교도소 사역 등에 매주 1시간 혹은 그 이상 자원 봉사하라. 세상을 위해 기도하라.
6. 청량음료, 패스트푸드, 차 또는 커피를 포기하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식이나 음료를 포기하고 영감을 주는 줄리아나의 아이스크림 금식을 읽으라. 위기에 처한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저축하며 기부하라. 7. 자격이 없는 사람(혹은 자신도 가능)을 용서하라. 용서 그 열정의 순례와 같이 용서에 관련된 책으로 공부하라.
3. 보는 시편을 방문해서 시각적 명상과 기도로 시간을 보내라. 4. 감사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라. 매주 누군가에게 감사 편지를 쓰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러분을 도왔는지 알아보라. 감사의 실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라. 5.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라. 침묵과 기도로 하루 10분을 보내도록 하라. 사순절의 매일 묵상을 읽으라. 이러한 시간이 사순절 이후의 일상생활에 영성훈련을 더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라.
8. 더 깊이 파고들라. 사순절 영적 훈련의 일환으로 온라인 코스를 수강하라. 9. 규칙적인 기도를 시작하라. 사순절 동안 매일, 다락방 기도의 벽을 방문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10. 전자기기 금식을 시도하라. 티비,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 트윗, 이메일 및 모든 전자기기를 매주 하루씩(또는 사순절 동안 매일) 금식하라. 대신 그 시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보내도록 하라. 금식에 대해 배우라.
출처 및 제공: 연합감리교회자료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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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송하면 좋은 성경구절" 두려움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10.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2.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30-31)
11.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3.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쫒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노라 (요일 4:18)
12.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4.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1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 56:3)
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 12:4)
14.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7:1)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 118:6-7)
15.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사 41:13-14)
7.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1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8.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신 3:22)
17.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 34:4)
9.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신 31:6)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덴버할렐루야교회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해”
예배 안내
교회비전
Denver Hallelujah Church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담임목사 김창훈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신앙 칼럼
2022년 3월 24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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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을 이기기 위한 싸움 전략
-기도와 전신갑주 발행인 최성애 권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에는
영적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다.
먹이사슬에 의한 천적이 존재한다.
십자가 앞으로 나와야 할 때이다.
고양이와 쥐가 대표적이며,
교만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순하디 순한 토끼는 자신보다 강한 대부분의 크고 작은 동물,
가슴을 치며 기도하지 못한 죄를 눈물로 회개하며
여우부터 표범, 그리고 독수리 등 강한 새들의 표적이 된다.
뱀처럼 지혜롭지도 못했음을, 비둘기 같이 순결하지도 못했음을 애통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천적이 나타난다.
순결하지 못한데 어찌 담대할 수 있으며,
양과 이리(늑대)의 관계가 바로 이것이다.
우매한 자가 어찌 승전고를 울릴 수 있을까?
이는 영적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공중의 권세잡은 악한 영,
아버지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 사탄이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바로 우리의 천적이다.
대적을 이길 힘과 능력을,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 사탄을 제거하시고 승리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천적 사탄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사탄은 예수님도 삼키려고 3번이나 시도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기도 전쟁이다. 천적 사탄을 이기기 위한 싸움 전략은 오직 기도뿐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 무장 해야 한다.
천적과는 결코 공생의 관계가 될 수가 없다.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복음의 신으로 나아갈 때
양보나 타협도 불가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영원히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양보나 타협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사탄의 밥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 6:10-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주고 산, 참으로 귀한 존재들이다. 감히 사탄이 넘볼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가?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사탄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여야 한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전략이 있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떠오른다.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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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패가 호위하는 교회”(시 5:12)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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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은혜 시리즈
참된 예배, 참된 예배자 <마태복음 6:12> 최요한 목사 섬김의 교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고 관계입니다. 거룩한 의식, 신학적 교리, 또는 종교 행사가 아니라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그 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소개할 때에 그분을 믿는 우리와 독특한 관계 성이 맺어집니다. 다윗의 시편 23편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 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 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 시는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자이신 하 나님으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는 다윗은 누구입니까? 양 입니다. 하나님은 목자, 다윗은 양이라 는 관계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왕이 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이 주님이시고 우리는 종입니다. 하나 님을 남편으로 사랑하는 우리는 그분 의 신부입니다. 성경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의 이름 은 그 이름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 라, 그 이름에 합당한 관계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래 전에 Broomfield의 King Supoors에서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잠깐 생각하니 제가 가끔 가는 월남 국수집의 주인이셨습니다. 아내와 제가 그 식당을 갈 때마다 친절 히 맞아 주었는데 아무런 대화 없이 짧 은 미소와 함께 헤어졌습니다. 그 이유 가 무엇일까요? 그분과 저 사이에 아무 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식 당에서 10불 정도를 지불하고 월남 국 수를 팔고 사먹는 정도가 전부였습니 다. 서로 이름조차도 모르니 관계가 있 을 수 없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마치 월남 가게 주인을 상대하는 정도로 하 나님을 그렇게 상대하지 않습니까? 예 배당에 들어오면서 하나님께 인사를 드 립니다. “하나님, 안녕하세요?”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주보를 월남 국수 식당의 메뉴처럼 봅니다. “어디 보자, 이거 맛있겠네.” 설교를 듣는데, 마치 음식을 맛보듯 말합니다. "국수가 퍼졌 고 맛은 짜네.” 헌금은 식사 값이나 예 배 입장료 정도입니다. 안내위원의 서비 스가 좋으니 팁을 조금 더 많이 냅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 하나님, See you next Sunday.” 또 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요. “다음에 는 다른 식당에 가봐야겠어.” 물론 이 이야기는 제가 꾸민 내용이지만 주일 예배가 동네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 상거래정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분입니다. 우리 와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십니다. 그분 은 여러분과 일대일의 개인적인 사귐을 기대하십니다. 여러분과 친밀하며 뜨거 운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바라고 계십 니다. 성경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이름 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아버 지’라는 호칭입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 성에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12 말씀합니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 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어도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 시며 동시에 우리가 그분의 아들과 딸 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에게 주시는 가장 개인적으로 사랑스 러운 관계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 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 관계
성을 확인하며 즐기는 비결 중에 하나 가 예배입니다. 요한복음 4:23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1. 예배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관계성으로 초대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를 가르쳐 주시면서 그 관계성을 말씀합니 다. 23절에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 나님을 두 번씩이나 반복하면서 하나 님이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강조하 십니다. 이제 갈라디아서 3:26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 었으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그분은 ‘거 시기’나 ‘아저씨’가 아닙니다. “Excuse me!” “Hello, there”가 아닌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기독교라 는 종교에 가입을 하는 것입니까? 새교 인 등록표에 사인을 해서 교회의 정식 멤버가 되는 정도입니까? 예수님을 믿 는다는 의미는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그분의 가족이 되었다는 놀라 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기독교가 다 른 모든 종교와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본 문에 가르치시며 그 특권을 누리는 방 법 중에 하나가 지금 우리들이 누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감정의 노출 이나 입술의 노래 또는 퍼포먼스가 아 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고백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그 분을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이름은 아버 지입니다. 다 같이 저를 따라서 하세요. “나는 영적 고아가 아니다.” “하나님 은 나의 아빠이시다.”
2.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습니다. 혹시 길거리의 전보대나 기둥에 이런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까? ‘Lost Dog’ 개 사진과 전화번호와 함께 적 혀있어요. 잃어버린 개를 찾는 광고지 입니다. 우체국이나 공공기관에 가면 ‘Wanted by the FBI’라는 사진들 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비즈니스맨은 투자가를, 환자는 의사 선생님을, 부모 님은 집을 나간 아들을 간절히 찾습니 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찾고 기 다리실까요? 23절의 끝부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 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목사를 찾습니까? 선교 사를 부르십니까? 교회 일꾼입니까? 그 분이 찾는 자는 예배자입니다. 사랑하 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들이 하나님께 나왔는데, 사역자나 봉 사자가 되기 전에 하나님이 찾는 예배 자이십니까?
3. 예배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다시 23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그리고 또 24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한국교회에 익숙한 이 구절은 개혁 성경으로 “신령과 진정으로”라고 번
강단 설교 역을 하였는데 온 개혁개정성경은 여 기서 ‘영과 진리’로 말씀합니다. 먼저 원어로 ‘영’이라고 사용된 원어 단어 는 ‘푸뉴마티’입니다. 이 단어가 ‘퓨 뉴마’ 즉, 성령님이라는 단어에서 나 왔습니다. 따라서 ‘신령’이란 번역보 다 ‘영’으로 또는 ‘영적으로’ 예배 를 드린다가 더 좋은 번역입니다. 하나 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24절) 우리의 예배를 예배답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성령님 의 사역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건물과 좋은 시설,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 조 명, 영상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들이 예배의 결정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24절에 말씀하 시는 대로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 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의미가 무엇입 니까? 그분은 살과 피가 즉, 육체가 없 으신 분이시기에 보이는 교회의 건물, 크기. 교인의 숫자, 헌금액수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몸이 없 으신 하나님께 외향적인 것이 아닌 내 면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자인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육적인 물질이 아닌 믿음 을 요구하십니다. 예배자로서의 우리의 기도입니다. 성령님을 사모하는 마음입 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배를 시작하면 서 부르면서 “주님의 성령 지금 이곳 에 임하소서” 또는 “우리 모일 때 주 성령 임하리“라고 찬양을 하며 그분을 환영하며 모셔야 합니다. 찰스 스펠전 목사님은 “나는 설교하 기 위해 강대상에 올라 갈 때마다 성령 님을 믿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 로 기독교 역사에 최고의 설교가중에 한 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 재주 나 언변, 실력, 훈련된 목소리나 자세, 경험. 하다못해 해박한 성경 지식이 아 니라,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설교자나 성경 교사를 포함하여 여 기에 모인 우리 모두입니다. 예배가 참 된 예배가 되기 위해 성령님께서 감동 을 주셔야 우리의 입술의 찬양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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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지만 무엇을 기도할지 모르는데 성령 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도우시기에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 다. 말씀을 전하고 들어도 성령님께서 조명해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 셔야 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한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 리는 집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사업터 로 돌아갑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거룩한 집, 그분이 거하실 성 소가 되기 위하여 성령님의 임재와 인 도하심이 충만하시길 빕니다.
4. 참 예배는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예배입니다. 24절은 “…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 리로 예배할지니라” 누가 진리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진리 를 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내게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 수님 자신이 진리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요한복음 8:32-34절입니다. “…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 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 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 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진리이신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그 자유가 무엇입니까? 몸이나 신분의 자 유, 경제적 자유 또는 병에서 자유입니 까? 그런 자유도 필요합니다. 몸이 묶 여 있고 신분이 제한이 되면 마음대 로 살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 면 삶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병이 있 으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유는 죄에서 자유함입니다. 그 자유가 없다면 요한 복음 8:34의 말씀대로 우리는 영원히
죄의 종, 또는 사탄의 종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가 성경의 다른 표 현으로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종이 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 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버리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피가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고 부활 하심으로 우리를 묶었던 죄의 사슬에 서 풀어 종살이에서 해방, 구원 그리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2년 전 즈음에 저의 어머니께서 이사 를 가셨습니다. 저희들이 이삿짐을 싸 고 옮기는데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인 데. 어! 이거 비싼 그릇이야, 너무 아깝 다.”그러시면서 도네이션도 하고 버리기 도 하였습니다. 결국 이사하실 때에 대 부분 가지고 가지 못하셨습니다. 씨 에스 루이스가 “영원하지 않는 모든 것은 영원히 쓸데가 없다.”라는 말 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조국인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 가 끝나고 문재인 대통령은 곧 물러납 니다. 그렇게 막강한 대통령 권력도 길 어야 5년으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윤석 열 전 검찰총장이 당선인으로 차기 정 부를 이끌 대통령이 되는데 그분도 5년 후에 물러납니다. 이 땅에 모든 것은 영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이 세상의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일생을 거 는 것이 어리석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끝까지 쓸데가 있 는 것, 즉 영원한 가치가 있는 한 가지 를 소개합니다.
넘기지 못합니다. 한철 일뿐입니다. 태어난 아기에게 필요한 것이 많습니 다. 엄마, 아빠, 기저귀, 침대, 옷, 장난 감 등입니다. 그러나 그 아기에게 꼭 필요한 한 가 지는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젖 또는 우 유입니다. 아기에게 다른 모든 것이 차 고 넘쳐도 젖을 먹지 못하면 성장이 문 제가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우유는 아기의 생사를 가르는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의 생명 이 말씀입니다.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 로 성숙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을 먹 어야 합니다. 진리이신 말씀이 우리의 영혼의 젖, 떡, 양식, 꿀, 딱딱한 고기입 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말 씀은 필수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풍성하게 하 고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살게 합니다.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찬송 가 또는 복음성가의 선택이 아닙니다. 또 양복이냐 캐주얼한 옷도 상관이 없 습니다. 설교자가 누구냐에 따라 좌우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을 예배하기 위해 모이십시 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 며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사모하십시오. 영원한 진리인 복음을 믿고 그 말씀으 로 결단의 삶을 산다면 이것이 영과 진 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참 예배입니다. 그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자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40:8입 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Look,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여기에 나오는 풀은 우리의 인생입니 다. 풀이나 잔디는 물이 없으면 말라비 틀어지죠. 풀의 생명은 길어야 1년입니 다. 겨울이 오면 눈과 추위에 죽습니다. 그리고 꽃은 우리의 인생의 영화, 성공, 출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고 향 기로운 꽃은 길어야 불과 3-4주입니다. 봄철에 그렇게 예쁘게 핀 꽃이 여름을
John 1:29
내면을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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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어둠이 있기에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나이다
시편 Psalms 27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1)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 whom shall I fear? The LORD is the stronghold of my life- of whom shall I be afraid? .....................................................................................
시편 Psalms 63:1-8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1). O God, you are my God, earnestly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가 처한 삶의 자리가 비록 어둡다 할지라도 빛이 밝혀지면 어둠이 사라지듯, 빛 되신 주님의 빛이 어둠을 밝히시면 어둠의 문제는 한 순간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나의 구원이라 선포합니다.
광야는 물이 없어 메마르고 황폐한 곳이긴 하지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며 자신의 내면과 깊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에 생명이 귀한 것임을 알게 되고 다시 살아갈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개인이 처한 삶의 자리,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개인의 질병이나 국가간 전쟁으로 평화 없는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오로지 구원의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슬픔이 있을 때 기쁨이 필요한 것이고, 어둠이 있을 때 빛이 자기 몫을 하는 것이며 질병이 있기에 건강을 챙기는 것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너머의 다시 살아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악의 세력이라도 우리를 공포와 두려움으로 몰아넣을 수 없습니다. 그 누가 주님과 연결된 사랑의 줄을 끊어 놓겠습니까? 살아 숨쉬는 동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매 순간 체험하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마음 깊숙이 주님을 갈망하고 그분의 사랑과 위로를 목말라 할 수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깨닫게 될 때라야 내 생명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생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때때로 마음 속에 광야 같은 메마름이 찾아온다면 피하려 하지 말고 맞부딪쳐 광야 너머의 주의 인자하심을 바라보십시오. 나의 도움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시편 시인 다윗처럼 광야 같은 우리 인생 길에서 구원의 깊은 은총에 감동하여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살겠다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로다”(8) 아멘. <ooreekmc@hanmail.net>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6-27)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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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라! 예수님께서 구약과 율법주의자들과 같
을 얻는 자이다.
는 것이다.
최요셉 목사
이 눈은 눈으로 갚거나 이를 이로 갚지
실로암장로교회
말고 손은 손으로 갚지도 말고 강도질
또한 성경말씀대로 처신하면 반석과
고래스란 사람은, 전능한 신을 두려워
을 강도질로 갚지도 말고 핍박이나 원
같은 자요 좋은 씨앗이요 옥토가 되니,
할 줄 아는 자이었다. 고래스는 바벨론
수를 갚지도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
성경말씀대로 항상 만족하게 실천하고
보다 두배이상 더 강성하고 넓은 페르시
그들 대부분 홀로코스트에서 죽을 유대
비로 사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사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심신
아를 대제국으로 만든 왕이었는데, 에스
인들의 목숨을 위해서 숨겨 주거나 먹
은혜와 자비와 친절을 베풀라고 의미하
의 속이 편하게 되고 매사에 하나님께서
라 1장과 이사야 45장에서는 하나님의
여 주거나 피신시켜 준 사람들이다. 그
셨다. 그렇게 처신하여야, 진실한 사랑이
함께 하여 주실 수가 있으며 주하나님과
성전를 재건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
와 같이,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있는 자요 상을 받을 자요 하나님을 본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고 고래스 자신
끼쳐 주어서 그들이 천국영생을 누리게
도 하나님의 큰 은혜로 강성하였다고 고
해 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을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처신하거나 정직
백하였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예루살
라고 생각해 보았다.
눅 6:35 이하에서는, 그래야 너희 상이
함이나 의나 선을 행하다가 악한 자들
렘의 성전을 재건하라고 친히 말씀하셨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에게 미움이나 비난이나 핍박이나 고난
다고 기록한다.
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아버지의 자
을 받게 되면, 그것이 예수님의 몸의 상
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말씀하
처를 받는 자요 구원을 얻는 자요 영광
하나님의 기름을 부었다는 말과 의미
요한계시록에서, 불의한 자와 죄를 짓게
셨다. 또한 비판이나 정죄하지 말고 용
스런 구원을 얻는 자요 혹은 면류관을
는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명령과 뜻
하는 자와 불법을 행한 자와 비겁한 자
서하여 주어야, 정죄를 받지 않게 되고
얻는 자요 혹은 예수님과 함께 면류관
대로 행하는 의인이요 그는 하나님의 백
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와 흉악한 자
용서를 받게 되고 복을 후히 되어 누르
을 얻는 자가 된다는 성경말씀을 영육
성을 구하고 보전시키고 하나님을 섬기
와 살인자와 행음자와 술객과 우상숭배
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고 말씀
혼으로 신뢰하고 작정하고 붙잡고 살아
게 하는 지도자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자와 거짓말장이는 풀무불에 혹은 불과
하시기도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매일 매사에, 가
말의 의미로는 육신과 민족이나 나라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져서 영벌을
로 사는 사람들로서는 쌓은 선에서 선
른유다나 베드로와 같은 자는 되지 않
건지는 메시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예
받는다고 경고를 하셨다.
을 낸다고도 말씀하셨다. 우리는 위기
게 되며 반면에 스데반과 바울을 본받
로부터 이방나라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나 고난을 당할지라도 마음이라도 하나
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부터
명령이나 뜻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
미국에서는 단지 2%만이 성경적인 세
님과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그래야 성
천국시민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
를 받으며 강성하고 의미와 보람이 있
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경에 기록된대로, 이삭이나 요셉이나 다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인정과 신뢰와 칭
는 일을 하고 상급을 받기도 함을 발견
우크라이나에서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
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을 본
찬과 환대와 영생복락상급을 쌓는 삶인
할 수가 있다.
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들의
받을 수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
것을 믿고서 스데반과 바울과 같이 매사
이나 보호하심이나 도우심이나 장수함
에 기뻐하거나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찬
이스라엘에서는 아직까지 의로운 이방
면서 온전하신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본
이나 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송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죄악을
인이란 기록이 남아 있는데, 51개국에서
받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매사에 필요
복되거나 영광스런 영생을 누릴 수가 있
이기는 자요 정복자보다 큰 자요 면류관
27,921명이 있다는 기록을 찾아 보았다.
한 때이다.
받아서 온전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온전한 자라면, 지옥 갈 짓만은 행하 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와
심정과 기도와 진리성경말씀대로 처신하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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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66)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무엘상 17:11-16>
지난주에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엘라 골짜기’ 에 버티고 서서 사울 왕과 그를 따르 는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온갖 조롱과 모욕을 주는 말을 퍼부어대는,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거구, 블레셋 군대의 ‘싸움을 돋우는 자’(champion) 골 리앗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습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 습니다.
오늘은 이 골리앗에 대한 이스라엘 군대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골 리앗을 대면한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 대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이 아들들 중에 전쟁에 나가 싸울만 한 장성한 아들들이 누굽니까?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 니라”(사무엘상 17:11).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 의 말로 인해 놀랐습니다. 그리고 두 려워했습니다. 그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마음이 깨지 고 부서졌다’입니다. 골리앗으로 인해 마음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전의를 상실케 할 만한 깨어짐입니다. 누가 놀 라고 두려워했습니까? ‘사울과 온 이 스라엘’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왕과 적군과 맞서 싸워야 할 군대가 골리앗 으로 인해 놀라고 크게 두려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서 기자는 갑자기 이 야기의 장면을 이 부분에서 바꿉니다. 블레셋과의 대치상태에 있는 엘라 골 짜기에서 베들레헴에서 사는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로 장면이 바뀝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의도적으로 골리앗 앞에서 놀라고 두려워 벌벌 떠는 사 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와 이 새의 막내아들 다윗을 대비시키고 있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 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 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 는 중”(사무엘상 17:12).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 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 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사무 엘상 17:13).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입니다. 그 런데 사무엘서 기자는 이들이 그냥 싸 움에 나갔다고 기록하지 않고 ‘사울 을 따라 싸움에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울을 따라’라 는 말을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사무엘상 17:14). 누가 봐도 이 세 아들들은 전쟁에 나갈 만큼 기골이 장성한 아들들입니 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 일까요? 이들도 골리앗으로 인해 부 들부들 떨고 있는 사울 왕과 이스라 엘 군대 속에 함께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습니까? 그는 ‘막내’(14절)입니다. 그는 형들처럼 전쟁에 나갈 만큼의 나 이도 아니고 장성하지도 못했습니다. ‘막내’라는 단어는 ‘학카탄’인데,
‘작고 유약해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자’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그가 골리앗을 무찌릅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지금 하나님이 누 구를 사용하셔서 골리앗을 무너지게 했는가를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키나 몸집에 관해서 한 가닥 할 수 있는 사울 왕을 통해서도 아니고 장성한 다윗의 형들 을 통해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자 다윗을 통해서, 유약한 자 다 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블레셋을 이기 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 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 럽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집에 서 아버지의 양을 돌보는 ‘양치기’ 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 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에”(사무엘상 17:15). 다윗은 집안에서도 막내라고 형들로 부터 무시를 당했습니다. 당시 양치기 는 천하게 여겨졌던 일 이었습니다. 골 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던 다윗의 형 엘리압이, 골리앗을 향해 분노하는 다윗을 야단치는 장면이 나중에 나옵 니다. 먼저 다윗이 이렇게 분노합니다.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 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 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 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 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 하겠느냐”(사무엘상 17:26). 동생 다윗이 하는 이 말을 들은 형 엘리압이 뭐라고 다윗을 야단칩니까?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 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 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 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 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 경하러 왔도다”(사무엘상 17:28). 이런 대접을 받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깁니다. 이 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겉 모습이 출중한 외적인 조건을 다 갖 춘 자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인 조건 으로는 별 볼일 없어도 하나님이 사 용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골리 앗을 향해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 아 니라 오히려 분노 할 줄 아는 다윗이 승리자였습니다. 골리앗의 무력시위와 이스라엘 군대의 두려움은 얼마나 지 속되었을까요?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 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사 무엘상 17:16). 4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엘 라 골짜기의 대치 상태가 40일 간이 나 지속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골 리앗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몸 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골리앗의 등장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체구에 가진 무 기만으로도 위협적입니다. 단신의 무 력시위입니다. 나중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 하며”(사무엘상 17:24). 진영을 이탈하는 탈영자들까지 생겨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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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4일
났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이런 한
나는 자, 유랑자, 방랑자’입니다. 그
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리앗을 향한 분노와 저항하는 마음과
심한 일들이 벌어질까요? 왜요?
의 이미지와 너무도 잘 맞는 이름이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입니다.
아닙니까?
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었기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
때문입니다. 어쩌면 골리앗에 대한 이
우리는 늘 삶속에서 무수히 많은 골
들의 반응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당
리앗들과 마주치며 살아갑니다. 그 골
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의 눈
리앗들이 우리에게 쉴 새 없이 싸움
아무리 골리앗이라도 만군의 여호와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골리앗만 보면
을 걸어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앞에서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우
이렇게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지도
문제보다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
리가 비교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의 전
모릅니다.
들과 힘과 권력들이 우리를 두렵게 하
력과 상대의 전력을 비교하는 것이 아
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
니라 상대의 전력과 하나님의 전력을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친히 싸워
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골리앗을 이
주시고 지켜 주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
니다. 그 수많은 골리앗들에게 우리가
길 수 있는 객관적인 전력을 확보해야
나님을 신뢰고 의지한다면, 그리고 믿음
전부 죽을 것 같고, 살아남을 수 없을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으로 눈으로 그 하나님을 바라볼 수만
것 같고, 낙오자가 될 것만 같아 두려
있다면 아무리 기가 질리는 골리앗 앞
워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을 싸워보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
에서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
지도 않고 골리앗의 종이 되기를 선택
에 달려 있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그
니다.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는 골리앗이 나타나기 전에는 적어도
니하였느니라”(사무엘상 14:6).
우리의 영적싸움의 진정한 승패는 골 리앗을 볼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볼 것이냐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 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골
하지만 승패는 내 힘으로 결정되는 것
어깨 위나 더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
리앗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사실
이 아닙니다. 요나단의 고백을 기억할
러나 그는 지금 두려워 떨고 있습니
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필요가 있습니다.
다. 화려한 외모는 더 나은 외모 앞에 서 늘 상대적으로 초라해 지는 것입니
‘골리앗’이라는 이름의 뜻은 ‘떠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
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윗처럼 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새성구 9/23/21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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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지서 개론 정석현 목사
구약 성경의 선지서(17권)는 성경 전체 의 1/4을 차지하는데 그 분량뿐만 아니 라 선지서의 신학적인 메시지와 역사적 인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선 지서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즐겨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지 서의 각 권을 논하기 전에 먼저 선지서 의 개론적인 부분을 다루어야 할 필요 가 있습니다.
선지서의 구분 선지서는 일반적으로 대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와 소선지서(나머지 12 권의 선지서들)로 구분됩니다. 구분의 기 준은 책의 분량에 따른 것입니다. 또 다 른 선지서의 구분이 있는데 그 것은 전 기 선지서와 후기 선지서입니다. 여호수 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들은 역 사서에 해당하지만 전기 선지서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들을 기록한 선 지자들은 여호수아로부터 바벨론 포로 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연대기적 으로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후기 선지서 는 이사야서부터 말라기까지의 선지서 를 가리킵니다.
선지자들의 특징 선지자들은 두 가지의 주된 특징을 갖습니다.
은 기록된 형태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 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특별하게 부르 심을 받은 사람의 역할을 강조하는 단 어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는 꿈, 환상, 천사들, 자연계, 기적, 그리고 귀로 들 을 수 있는 음성 등을 포함하여 하나님 께서 선지자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그 의 뜻을 계시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선지자에게는 영적 메시지가 있 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선지자로 서 선지자 집단의 리더는 사무엘이었습 니다(행3:24, 13:20, 히11:32, 삼상19:20).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 고 특별한 능력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들 은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는 그들의 행 동과 일치되었기 때문에 영적인 메시지 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증명되었습니다 (신18:18-20). 목회자는 선지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메시지인 성경 말씀을 사역의 현장과 성 도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해 주어야 할 뿐 만 아니라 목회자 자신도 그 말씀과 행 위의 일치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목회 할 때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이 증명되고 영적인 메시지로서 감화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 첫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 입니다. 선지자는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 선 견자, 파수꾼,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 로 불렸습니다. 선지자에게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는 [Nabi]인데 300회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선견자/Roeh]라는 단 어는 자연적인 시각이나 청각의 영역밖 에 있는 것들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할 때 사용되었고, [선지자/Prophet] 는 “무엇을 위하여 말하다”라는 두개 의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선견자” 와 “선지자”의 의미는 구두나 환상 혹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미래를 예 견(foretelling)하는 사역을 했지만, 실 제적으로 선지자들은 선지자의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영감 받은 설 교와 같은 예언(forthtelling)이었습니 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고 그것을 당대의 특정 상황 가운데 초래 될 결과에 대하여 선포해야 했기 때문에 영적 통찰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당시대에 맞게 교훈하기 위하여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필요했고 예언에 맞 는 현재적인 개혁을 요청할 수밖에 없
었습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가지의 주요 주제들을 제시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 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악한 행위들을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들 의 눈치를 살피거나 사람들의 비위를 맞 춰주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 한 용기가 요구되는 직분이었습니다. 선 지자는 파수꾼처럼 또한 하나님의 메신 저처럼 임박한 심판과 그것을 피할 유일 한 희망은 오직 회개하고 하나님께 소망 을 두는 것이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 나님의 백성들이 율법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을 백성들에게 상기시켜주면서 그의 품으 로 돌아가서 그분 만을 신뢰하고 순종 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셋째, 선지자들은 곧 밀어닥칠 하나님 의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만약 왕들,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들이 계속해서 교만하게 하나님의 도덕적, 영 적 원칙들을 무시한다면 하나님께서 징 계하실 것이라고 계속 외쳐야만 했습니 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에 충실하지 못할 경우 그에 대한 징계 를 받게 될 것이고 그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련된 이방 나라에게까지 미 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 하여 장차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게 하 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속사 적 역사는 직선적이고 그 정점은 2,000 년전 메시야의 초림의 때였습니다. 미래 에는 하나님께서는 재림하실 예수 그리 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호가
시온장로교회
존귀케 되고 모든 민족이 그분의 목소 리를 순종하게 되는 정점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의 300개가 넘는 예언이 메시야의 초림으로 정확이 성취되었고, 400개가 넘는 남은 예언들 이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될 것입니다 (행10:43). 이와 같이 선 지서 전체의 메시지는 인간의 죄로 인 한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 한 구원의 위로로 종합됩니다.
대선지서의 개론적 개관 요약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구약 선지자들은 다양성과 개성의 차 이가 컸고 그들의 성품이나, 배경, 관심 사 그리고 문체 등은 매우 다양했습니 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속한 시기와 포로기의 귀환, 그리스도 의 초림, 그리고 메시야 왕국에 대한 확 신과 헌신을 소유하였습니다. 선지자들 이 공유한 위의 네 가지 연대기적 시점 은 성취된 것도 있고 아직 성취되지 않 은 예언도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메시지에 상징이나 비유적인 표현을 많 이 사용하였지만 그것들은 실제 사건들 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서는 징계와 위로의 두가지의 면을 다 갖고 있고, 그리고 예레미야서 는 부패가 극에 달한 유다에게 임할 하 나님의 확실한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멸망당한 예루살렘 성에 대한 장송시입니다. 에스겔서는 예루살렘 멸망 후 바벨 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의 운명 을 묘사한 묵시적인 비전을 제시합니다. 다니엘서는 ‘말세’와 관련한 세부적 인 예언과 비전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다니엘서는 이방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이방인을 통치할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 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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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향한 예배가 난무합니다” * 우리는 수많은 이름의 예배를 접합니다. 그런데 그 이름들이 석연치 않습니다. * OOO 목사 박사학위 취득 축하예배 * OOO 장로 국회의원 당선 축하예배 * OOO 아기 첫돌 예배 * OOO 장로 회갑예배... * 졸업예배, 입학예배 등등의 이름들이 정당한 것인가요?
하나님의 존재와 그 은총을 깨달은 우 리의 교회는 그 하나님만을 예배하는데 남다른 경외심과 열심을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 이르 러 한국교회에서는 예배라는 이름이 너 무 혼잡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순 한 기도회를 비롯하여 개인의 병석을 심 방하는 경우까지도 예배라는 이름을 사 용합니다. 심지어 돌예배 생일예배 등등 마구 예배라는 이름을 붙여 예배의 진 정한 의미와 형태에 적잖은 손실을 가져 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졸업예배>, <입 학예배>, <출판기념예배>, <000 목사 학 위취득 축하예배>, <OOO회장 취임예배 > 등은 예배학적인 측면에서는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름들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모든 행사의 시작과 끝 에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고 거기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경청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 나 이러한 순간마다 ‘예배’라는 이름 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모든 예배가 감사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 라도 감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배의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를 들어 졸업이나 입학의 경우에 드리는 예배는 그 진정한 뜻이 졸업이나 입학을 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 분에게 영광을 돌려드리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는 <입학감사예배>, <졸업감사예배>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사 용함으로써 성도들에게 그 예배의 성격 과 내용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라는 참으로 어색한 이름의 예배까지 등장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 상들은 우리의 한국교회에서만 경험하 게 되는 부끄러운 현실들입니다. 이상의 예배들은 모두가 “내가 존경하기에” 또는 “그분이 섭섭하게 생각할 것 같아 서”라는 인간의 감정을 풀고 달래기 위 하여 만드는 작품들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에 예배의 이름이 남 발되고 혼돈을 가져온 것은 <출판기념예 배>, <학위취득 축하예배>, <OOO회장 취 임예배>와 같은 개인 중심의 예배들 때 문입니다. 더욱이 <돌예배>, <생일예배>, < 회갑예배>, <개업예배>와 같은 경우는 예 배의 근본 의미마저 흔들리게 하고 말 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OOO기념식>, <OOO 축하식>과 같은 명칭을 쓰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그러나 예배라는 이름을 기 어코 사용해야 한다면 비록 어색한 표현 이기는 하지만 <생일감사예배>, <회갑감 사예배>, <출판감사예배>, <학위취득 감 사예배>, <입당 감사 예배>, <OOO 취임 감사예배> 등으로 표기할 것을 권합니 다. 그리고 그 내용은 순수하게 하나님 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로 일관해야 합니 다. 특별히, 예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 거기에 해당하는 당사자는 성단 밑 에 자리를 잡아 함께 감사의 예배를 드 리는 일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솔직히 그 모임의 주역인 사람이 성단 중앙에 꽃을 차고 회중을 바라보며 회중들의 예배를 받는 자세로 앉아있는 모습은 대단히 어 색합니다. 그럴 때마다 회중들이 그분에
이러한 경우, 아무리 적절한 해석을 하려 해도 그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섬 기는 예배라기보다 그날의 주역들인 인 간을 찬미하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의미들이 너무 나 짙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 기에 이러한 행사들은 예배라는 이름과 거리가 매우 멉니다. 한때는 <OOO의원 OOO당 OOO 지구당 위원장 취임 예배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Denver Hallelujah Churc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이 예배의 대상이 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 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망 령된 행위들을 삼가도록 성경은 규정하 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진노의 손길을 들어 인간의 그릇된 길을 바로 잡아 주셨음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새 롭게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라는 이름이 너무 남발되어 그 고 귀한 의미와 내용이 상실된 교회는 예배 그 자체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결과를 낳 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회> 또는 <예 식>의 이름을 활용함이 대체로 합당합니 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가 예배하는 공 동체로서 하나님께 고결하고 존엄한 드 림을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교회도 예배와 예식과 기 도회의 이름을 구분하여 사용하여야 합 니다. 예배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인 간의 진지한 응답의 행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현장에서는 인간 이 응답을 받는 행위들이 절대로 발생 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8556 E. Warren Ave. (303) 717-0279 Denver, CO 80231 www.denverchurch.com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2821 S. Parker Rd. Suite 409 Aurora, CO 80014
은혜의 샘터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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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 받은 바디매오! 이 세상의 아름다운 창조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요 참다운 삶 의 의미를 더하는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맑고 푸른 저 하늘에 떠 있는 구 름과 그 가운데 날아다니는 새들과 어 두운 새벽과 아침을 깨우고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과 어두음을 비추는 아름다운 달과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의 모습과 높 고 낮은 절경의 산과 밭에서 자라는 여 러 종류의 나무와 꽃들과 많은 열매로 우리의 건강을 돕기 위하여 마련된 땅 과 청청 대해와 호수들 가운데 오고가 는 가지각색의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자 연 세계와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척 들과 이웃과 친구들을 볼 수 없다면 우 리 인생의 여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 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삶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볼 수 있는 눈의 가치는 너 무나 소중하고 귀한 지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후 30년경,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 역하실 때, 여리고에서 있었던 일을 잠 시 소개하고자 한다. 여리고는 요단강 서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오아시스 도 시로 세관이 있었고 ‘달’(moon)이라 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 래된 성읍 중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 들이 모세의 영도아래 애굽의 바로 왕 통치하에서 학대받던 노예 생활에서 탈 출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할 때 제일 먼저 정복한 성읍이다. 이곳 여리고에서 예수와 함께한 제자 들과 그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나가 실 때, 앞을 볼 수 없는 소경, 거지 바디
매오가 그날도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며 안타깝고 막막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 고 있을 때,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좋 은 일을 많이 하신다는 나사렛 예수께 서 그곳을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소리 를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 하니 귀찮게 여긴 무리들이 그를 꾸짖고 잠잠 하라고 하였지만 그가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간절히 애원할 때, 예 수께서 그에게 관심을 갖고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고 말씀하셨고 저희가 그 소 경에게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 다고 하니 바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 지 바디매오가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게 되면서 큰 기적 을 체험하게 된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되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 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라 네 믿음이 너 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바디매오 가 곧 광명한 세상을 보며 예수를 길에 서 따르며 그의 삶이 즐거움과 기쁨 안 에서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 으로 회복되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불안하고 초조한 인생이 바뀌는 참으로 놀라운 은총을 받게 되었다. 아!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닌가? 슬프고 막 막한 안타까운 절규 속에서 어떻게 “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관심과 사 랑을 이끌어낸 것일까? 그 응답의 비밀
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자세히 살펴봐 야 할 것이다.
장석현 목사
트리니티교회
첫째, 소경, 바디매오는 나사렛 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 예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망설임 어나 예수께 나아왔다”고 기록하 이 없이 감격하여 소리를 지르며 고 있다 (막 10:50).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 기소서”라고 애원하였고 많은 무리가 그를 꾸짖고 잠잠하라고 억압하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를 지 르며 자기 속의 한을 풀어달라고 예수 께 애원하며 간청한 것이다. 그는 그동 안 예수께 대한 소문을 듣고 연민을 갖 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 면 예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갖고 기 다렸던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요? 누가 뭐라고 해도 개의치 않고 오 로지 꼭 예수를 만나고 그의 자비로운 음성을 듣고 싶은 심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 심히 소리를 지르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은혜를 구하며 자신 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재차 애원하면서 이 기회를 놓치면 결코 안 된다는 결사 항전의 각오로 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것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관 심과 사랑을 받게 되어 이 놀라운 말을 이끌어 낸 것이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아!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 말 씀은 너의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말 씀이다.
둘째, 바디매오는 “안심하고 일 어나라 너를 부르신다”는 무리의 말을 듣고 예수께 나아갈 때, 성경 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소
거지에게 있어서 겉옷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 은 빨리 주님께 나아가 그를 만나고 그 의 음성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었다. 이러한 심정을 아시 는 주님께서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그의 소원을 물으셨고 “보기를 원 한다”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면서 “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에 소경은 곧 보게 되어 길에서 예수 를 따라갔다 (막 10:52). 아! 참으로 경이 로운 일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 까? 빛과 소금의 은혜의 샘터에서 이 글 을 읽는 여러분에게, 이 어지러운 세상, 죄악이 관영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힘들 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또한 영육 간에 짊어진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는 참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건강 과 평강의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특 히 영안이 밝아져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살피고 저 아름다운 천국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모든 사람이 진 리를 알고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의 음성을 들으며 오늘도 굳센 믿음으 로 사랑의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행복 한 삶이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3-5)
제공: 신동윤 종합보험
진리의 샘터
2022년 3월 24일
19
영원을 준비하는 지혜 박현수 목사 갈보리교회 아내가 일하는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신앙의 현실은 시작된 구원과
아내가 일하는 곳에는 여러 고등학생들이 파트 타임으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 한 학생이 날이 너무 포근해서 반팔만 입고 일 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 중간에서 지혜를 배우고,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것,
그런데 오후 5시쯤 되어서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고
그것이 신앙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며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지혜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알며,
참 예측하기 어려운 콜로라도의 날씨입니다.
오늘 그 나라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영원을 바라보며,
"외투 안 가져 왔어?”
영원을 준비하는 자입니다.
"날이 너무 따뜻해서 안 가져왔어요.”
지금 따뜻해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는 그저 이 세상을 즐길 뿐이겠지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결국 그 학생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추위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 너머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아는 자는, 이 세상을 그저 즐길 뿐만 아니라, 영원을 준비합니다.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꼽는 것은 얼마나 멀리 내다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약 부활주일까지 한 달 정도 남은 사순절 기간을 어리석은 사람은 눈앞의 것만 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멀리까지 내다봅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맘때의 콜로라도 날씨는 지금 당장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늘 외투 하나쯤은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이 아닌, 영원한 즐거움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아,
변덕스러운 콜로라도의 날씨가 언제 날이 급격히 추워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리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나갈 때,
그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맛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 나의 삶은 영원을 준비하고 있는가?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로부터 ‘부활절’까지의 여정입니다.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다면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여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죄의 길에서 돌이키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것으로부터 영원한 부활 생명의 나라까지의 여정입니다.
(마 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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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12:00PM 주일 학교 12: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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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새 예배 공동체 10:30AM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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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20
2022년 3월 24일
그리스도인의 최종목표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 상에서는 성공의 여부를 세 가지로 결 정한다. 그것은 돈과 권력과 명예이다. 비즈니스나 스탁에 투자하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성공했다고 말한다. 공 부를 많이 해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 면 사람들은 이것을 성공이라고 부른다.
준은 무엇일까? 돈일까? 권력일까? 명예 일까? 아니다. 돈 벌기 위해서 교회에 나 오는 사람은 없다. 권력을 잡겠다고 교회 에서 아옹다옹하면 불쌍한 사람이다. 교 회는 헤게모니(hegemony) 싸움을 하 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반대 이다. 돈을 드리고, 명예를 내려놓고, 권 력을 비우는 곳이 교회이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 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 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 하라”(딤전 4:6-7) 여기 6절에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 성공기준)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 꾼]이고, 7절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서는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 하라]이다.
삼주 전에 한국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 다.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근소 한 차이로(24만 표) 밀어내고 당선되었 다. 선거의 열풍이 거세게 몰아칠 때 서 로간의 치열한 흠집 내기를 하다가 국민 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국의 정 치가 이런 것인가? 외국에 사는 우리에 게 실망과 부끄러움을 주기도 했다. 이것 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외국 뉴스에서 는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오징어 게임을 들추면서 한국의 선거를 ‘오징 어 게임 선거(Squid Game election)’ 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권 사나 장로가 되기 위해서 나온다. 성공 의 기준을 직분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 런 사람은 직분을 벼슬이나 명예로 아 는 사람이다. 교회의 직분이 신앙생활의 기준과 목표일까?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 들이 교회 안에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직분 때문에 교회를 옮겨 다니는 사람 들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 씀인 성경을 읽으면 두 가지 변화의 일 이 일어나게 된다.
“연단하라(헬, gumnazo, 벌거벗고 활기차게 운동하다는 뜻)”는 말이 우 리말 성경에는 ‘단련하라’, 표준 새번 역에는 ‘훈련하라’, 개역한글에는 ‘ 연습하라’로 번역했다. 영어성경에서 는 Exercise(NKJV), Training(NIV), Discipline(NASV)으로 각각 번역했다. “경건한 자가 되도록 네 자신을 훈련( 연습, 단련)하라”고 말한다.
결국 승자와 패가가 엇갈리기는 했지 만 무엇 때문일까? 돈과 권력과 명예 때 문이다. 선거에서 승자는 정치와 권력에 성공했고 패자는 실패한 것이다.
첫째는 이루어진 일이고, 두 번째는 이 루어질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이 이루어진다.(완성)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삶의 변화 가 일어나는데 이 일은 계속해서 일어 나는 거룩과 성숙을 향한 평생작업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는 경건 이며 경건의 모델을 예수 그리스도이다. 세상에서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롤 모델(role model)을 정하고 그를 닮아 가고 싶어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롤 모델은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닮는 것]이 목표이어야 한다.
디모데전서는 로마의 감옥에 갇힌 사 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요,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어 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 일을 이루 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느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나가는 운동선수에게 성공 은 금메달이다. 미국의 프로 농구, 야구, 풋볼 선수의 성공기준은 MVP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골프에서는 최고의 선수 에게 우승 트로피와 거액의 상금을 준 다. 돈과 명예가 주어진 것이다. 이것들 을 이루면 사람들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성공의 기
“이(아들)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 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오성관 원로목사 벧엘교회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 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 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 니라”(히 1:3)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실 때 그 분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코에 생기 를 불어 넣으셨다(창 1:27). 그리고 아담 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그 형상(의, 선, 거룩)이 다 파괴되고 말았다. 그런 우 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 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경건 한 자녀가 된 것이다. 경건한 자녀들이 계속해서 경건을 지키기 위해서 훈련(연 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건한 자녀가 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멘토가 되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 도를 날마다 순간마다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 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오늘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 시는 예수를’바라보며 그분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믿음과 정절을 지 키는 경건하고 성숙한 우리 모두가 되 길 바란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17)
제공: 성경혜 부동산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2년 3월 24일
21
윤석열 당선인과 차기 정부, ‘대한민국 정상화’ 이뤄 달라 득표율 1퍼센트의 차이도 나지 않는 신승(辛勝)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공산 주의를 반대하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느낀다. 하나님께 서 우리 조국에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 으로 우리는 나라를 정상화하고, 연약 해진 교회를 회복하며, 회복을 넘어 갱 신과 부흥에 이르도록 기도하며 나아가 야 한다. 윤 당선인과 차기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할 것 인가? 첫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불 법 탄핵 이후 무너진 나라의 법치(the Rule of Law)를 회복해야 한다. 촛불혁 명으로 미화되었지만 친문주사파 세력은 일부 우파 세력과 야합하여 연성 쿠데타 에 성공했다. 이 탄핵 과정에서 윤 당선 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파 지도자 들에 대한 무리한 구속수사를 진행했다. 현 정권 검찰총장이 된 후 윤 당선인이 현 정권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또 그 때문 에 많은 우파 국민들은 윤 당선인을 지 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애시당초 현 정권 의 탄생과 정당성 확립을 위해, 그가 부 역했다는 원죄가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 윤 당선인은 자신의 과오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함을 통해 대한 민국의 법치 재확립의 활로를 열어야 한 다. 이와 관련해서 불법 탄핵에 앞장섰 던 장모, 권모 의원 등이 윤 당선인과 친 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다. 또 바로 그 때문에 불법탄핵을 덮고 가겠다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부디 지혜롭고 정직한 결단 을 내려주기 바란다. 지난 5년 동안 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법치를 심각한 수준 으로 유린해 왔다. 무엇보다 헌법과 그 정신에 위배되는 악법들을 제정해 왔다. 더 나아가 말로는 정의와 공정을 내세웠 지만, 실제로는 정의가 짓밟히고 공정이 무시되는 정책을 펼쳐왔다. 윤 당선인이 이끌 차기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지배하
는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둘째, 차기 정부는 현 정권이 파괴하려 시도했던 자유민주질서를 회복하고 견고 하게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은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 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여”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 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 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 면 대한민국의 국체는 자유민주주의라 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권은 ‘자유민주 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사회 민주주의’ 또는 ‘인민민주주의’적 방 향으로 대한민국의 국체를 바꾸려고 시 도했다. 다행히 국민의 저항으로 이 시 도는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 난 5년간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가 심각 한 위협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윤 당선인이 이끌 차기 정부는 헌법이 규정 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를 더 공고히 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 울여야 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 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모든 폭력 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해야 한 다. 그리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 치주의적 통치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 분립, 의회 제도, 복수정당 제도, 선거제도, 사 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 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현 정권이 짓밟고 유린해온 종교 와 신앙의 자유,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 고 진작하는 차기 정부가 되길 바란다. 현 정권은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그리스 도인들의 신앙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특별히 법과 강제력을 사 용해서 예배당에서의 대면예배를 금지하 고 억압한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
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현저하게 무 력화시킨 것이었다. 당연히 신앙 자유의 보장과 진작은 기독교와 교회에만 국한 되어서는 안 된다. 통상적인 윤리와 상식 을 존중하는 모든 종교인들의 신앙의 자 유가 지켜져야 한다. 물론 윤 당선인과 그 부인 김건희 씨가 무속신앙 또는 샤 머니즘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여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본인부터 무속 신앙과 샤머니즘을 버리고, 건전한 상식 과 통상적인 미덕을 존중하는 시민으로 서의 품격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현 정권의 국민 분열 정책을 과 감히 버리기를 바란다. 현 정권은 5년 내내 편가르기에 몰두했다. 그래서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비판하는 사 람들 간의 이념적 냉전상황을 연출했다. 전체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대깨문’들 만의 대통령이 되기를 추구해 왔다. 내 로남불과 적반하장이 현 정권의 기조가 되었다. 차기 정권은 진정한 의미에서 국 민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 바란다. 우선적으로 정치적 우파 내에서의 통합 을 이뤄야 한다. 정치적 우파 세력은 지 금 친탄파와 반탄파로 극명하게 갈라져 있다.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친탄파, 박근혜계를 중심으로한 반탄파의 화해 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이번 대선에서 우파는 친탄과 반탄의 경계를 넘어 한마음으로 윤 당선인을 지지했다. 바로 이 사실에 기초하여, 윤 당선인은 친탄파와 반탄파 사이의 갈라진 마음을 화해시키고 통합 시키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탄핵 이후 박 전 대통령과 우파 지도자들을 무리 하게 구속시켜 수사하고, 그들이 부당하 게 중형의 희생자가 되게한 점을 윤 당 선인이 먼저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좌파에도 스펙트럼이 있다. 한국의 정치적 좌파는 크게 보아 자유민주질서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 온건 좌파세력과 자유민주질서 안에서 허용될 수 없는 급진 좌파/주사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파 세력으로 나눠진다. 차기 정부는 좌 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온건 좌파세력 에 대해서는 통합적인 자세로 접근하되, 급진 좌파/주사파 세력에 대해서는 엄격 한 법집행을 실행해야한다. 이를 통해 민 주노총, 전교조를 포함한 주사파 세력이 더 이상 우리 사회 내에서 혼란과 무질 서를 야기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다섯째, 미국과 일본과의 외교적·군사 적 동맹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북 한의 군사적 위협 앞에서 굴종하지 않는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게 할 것이다. 동 시에 자유민주질서에 기초한 남북의 평 화적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또 중국에 대하여 지나친 굴종의 모습을 보인 현 정권의 오류를 정리하고, 중국에 대하 여 균형잡힌 실리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산업화의 결과로 초일류 제품을 생산하 는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세계인들의 존 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최근 영 화나 드라마, 그리고 게임 등을 통해 한 국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간 단히 말해 K-기업과 K-문화가 세계적인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 국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세계인들이 기대 하는 품격과 국격을 기르고 유지하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 차기 정부는 이 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정 책들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솔직 히 윤 당선인과 차기 정부에 대한 필자 의 기대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자 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차 기 정부가 ‘대한민국 정상화’라는 대 의를 이룸에 있어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 만이라도 감당한다면, 윤 당선인을 지지 한 국민들의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이다. 부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긍 휼히 여기시길 바라며, 속히 한국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게 되길 간 절히 기도한다.
선교사들의 이야기
202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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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같은 필연! 2012년 8월 1일(수) 아침에 여자교도소 로 향했습니다. 파라과이 역사상 한국인 이 교도소에 선교하러 간 것은 우리가 처 음이라고 합니다. 교도소 사역의 문이 열 리게 된 것은 파라과이 교육공무원인 ‘ 사라’의 힘이 컸습니다. ‘사라’는 ‘남 평 교회’(담임 박정수 목사님)에 스스로 출석하였고, 박 목사님에게 성경을 가르 쳐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여자교도소는 시내에서 멀지 않았는데, 죄수가 1,300여명 수용되어 있다고 하였 습니다. 교도소 중앙에 있는 마당에는 큰 나무들이 몇 구루가 있었고 그 나무 그 늘에 벤치들이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약 100여명이 나와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차를 마시고,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아주 자유스러웠습니다. 철창문을 지나 마당에 방송장비를 설 치했습니다. 고광삼 선교사님이 파라과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곡들을 색소폰으 로 연주하기 시작하자 하나 둘씩 앞으 로 나왔습니다. 아르헨티나 김흥식 선교 사 부부가 찬양 몇 곡을 부르셨습니다. 아내(오형숙 사모)도 한 곡을 불렀습니다. 제가 전도 설교를 했고, 김 선교사님 이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설교하면서 청 중을 보니 서너 명만 관심을 갖는 것 같 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설교 마지막 부 분에 예수 믿고 천국에 가고 싶은 분 은 손을 들으라고 초청했습니다. 놀랍게 도 20여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감 격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박 목사님이 손 들으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고 부추겼다고 합니다. 저는 씁쓸하였지 만 즉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 냐하면 장모님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오 래 전에 처부모님은 CBMC(기독실업인회) 의 ‘초청 만찬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 니다. 강사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기 원하 시는 분은 손을 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장인께서 귀가 어두운 장모님께 손을 들 라고 하시자 장모님은 영문도 모르고 손 을 들으셨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장모님은 조상 덕에 이만큼이라도 먹고 사는데 예 수 믿을 사람 손들라고 하는데 손을 들 라고 하면 되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장모님은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 하셨습니다.
가지고 간 오렌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녀는 그 중에 몇 개를 들고는 만족한 모 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정신이 들었나 봅니다. 다리가 나았기 때문에 달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우리를 향하여 오는데 다 리를 절었습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오기 전에 많은 여인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 에 별도로 기도해 줄 수 없었습니다. 교도 소에서 허락한 시간은 2시간이었는데 이 미 지났습니다. 여인들과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간 옷 중에는 어린이 옷도 꽤 있었는데 여자 교도소의 아이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 어서 좋았습니다.
이종미 찬양선교사님이 찬양을 하셨습 니다. 진지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축 도하였습니다.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 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더니 10여명 이 줄을 섰습니다. 맨 처음 나온 여인은 무릎을 꿇고 울면 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이 안 수기도를 하였습니다. 세 번째 여인은 다 리 수술을 6번 했는데 지금도 무릎이 아 프다고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그녀의 오 른쪽 무릎에 손을 얹고, 저는 좌측 무릎 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자기 무릎을 향하여 손가락으로 찌르는 표시 를 하면서 말을 했는데 알아듣지는 못했 지만 그녀에게 치유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 각했습니다.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 마당 한 가운데로 뛰어 갔습니다. 마당 가운데에 우리가 사
수요일(8월 1일) 저녁예배는 ‘연합교 회’에서 드렸습니다. 설교 전에 이종미 목 사님이 40여분 동안 찬양을 드렸습니다. 저는 찬양을 듣는 중에 속으로는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어느 교회든지 처음 설교 는 전도 설교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 었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예배는 주로 제직들이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다른 설 교를 할 것인가 그냥 전도 설교를 할 것 인가를 두고 망설였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그 사람 때문에 전도 설교를 해야 한다고 방 향을 정했습니다. 설교 중에도 계속 망설 였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믿고 싶으 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라 는 구원 초청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마무리를 지을 것인가? 저는 ‘구원 초 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70여 명 중에 4명이 손을 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고후 1:5)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제공: 김정애 권사
임동섭 목사
에콰도르 선교사
dslim3927@hotmail.com 었습니다. 학생 3명과 젊은이 하나가 손 을 들었습니다. 구원 초청을 한 제가 놀 랐습니다. 앞으로도 손을 들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구원초청을 하 기로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선교 일정이 빠듯하여 관광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아쉽다는 생 각이 들었지만 관광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선교사님이 정한대로 하겠다고 말했습니 다. 고 선교사님이 계획을 세울 때 수도 아순시온에서 약 600km 떨어진 곳에 있 는 인디언 마을로 선교하러 가려고 했답 니다. 그 곳에서 선교하는 ‘하’ 선교사님은 호주 시민권자이며, 호주에서 대학원을 졸 업한 수재이시며, 호주에서 좋은 일자리도 있는데, 모두 포기하고 인디언 마을에서 선교하고 계신답니다. 여자의 몸으로 홀 로 선교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곳이랍니다. 지금도 그 곳은 추장의 권세가 대단하 다고 합니다. 모든 처녀가 첫날밤은 추장 과 함께 자야 하며, 신부도 추장이 정한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합니다. 집은 움 막에 가까우며, 바닥은 흙인데 그 위에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는데, 가족끼리 성관 계로 인해서 누구의 자녀인지 알 수 없 는 동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 회에 계속)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벧전 4:1) 제공: 김성걸·김혜경 집사(덴버제자교회)
좁은 길을 걸으며
2022년 3월 24일
23
하나님께로 돌아 가십시다 저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 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그리고 하나 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래 서 인간은 누구든지 간에 그와 같으신 하나님과 관계할 때에만 행복할 수 있고 그리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 는데, 사람들이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 져 가고 있는 것이 속상합니다. 코로나19로 시작된 팬더믹으로 인해 대면이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하나님까지 도 비대면 하는 것 같아 아쉽고, 하나님 께서는 자신의 하나 밖에 없으셨던 독 생하신 아들까지도 죄인된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속해 주시기 위해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 주셨던 사랑으로 사랑하 고 계시지만, 인간은 그런 하나님의 사 랑에서 떠나 아무리 먹고 마셔도 또 다 시 허기지고 또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 는 세상의 쾌락과 풍요에 눈 멀어 하나 님을 떠나 가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인 간이 이렇게도 어리석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 가운데 수도 없는 선지자들과 사건들로 또한 수도 없 이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나를 떠나 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 참된 행 복과 만족 역시도 없다’라고 말씀해 오 셨음에도 불구하고 앞 전에서는 듣고 고 개를 끄덕였음에도 뒤돌아 서서 모든 것 들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
는 것입니다. 어디 그것만입니까? 아플 때는, 힘들 때는, 어려울 때는 하 나님의 이름을 부르지요. 그렇지만 좀 나았다 싶으면, 그리고 좀 편해졌다 싶 으면, 그리고 좀 해결됐다 싶으면 금세 언제 아팠냐는 듯이, 또 언제 힘들었으 냐는 듯이, 그리고 언제 어려웠느냐는 듯이 모든 것들을 잊어 버리고 또 다시 하나님을 떠나 자기 자신의 자아의 만 족을 위해 세상을 기웃거리고 사는 것 입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오를 때 서민 들은 또 얼마나 힘들게 살아야 할까요?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는 배불리 먹고 도 남는 음식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데 지금 이 시간에도 단 몇 불이 없어 가슴팍에 달라붙은 어미 젖을 부여 잡 고 배고파 우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울 음소리에 저 또한 눈물이 흐릅니다. 패 권이 뭐라고, 국가의 이익이 얼마나 중 요하다고,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 붓는 포탄과 전쟁은 또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편안함에 취 해 있을 때 지금 이 시간에도 지하 벙커 에 숨어 포성에 가슴 조리고 있을 우크 라이나 국민들을 생각하면 그 또한 가 슴 아픕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 다. 사람은 누구나 내일을 염려하지 않
고 살 수 있어야 하고, 또 사람은 누구 나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용할 양식, 평안, 그리고 행복은 어느 일부의 사람들만이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특 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 음 받은 모든 사람들이라고 하면 누구 든지 차별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또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손창달 목사
덴버제일감리교회 담임
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 습니다. 유일한 생존자는 ‘에이탄 비 란’이라고 하는 다섯 살 난 소년입니다. 이 아이만 유일하게 살 수 있었던 까닭 은 추락하는 순간 아이 아버지 ‘아미 트 비란’씨는 아들을 껴안았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는 부상을 입었을 뿐 생명 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아들을 향한 아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 께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체 면, 욕심, 세상을 다 뒤로 하고 하나님 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에만 평화가 이루어지고, 평안을 누리고 더 이상의 것이 필요 없을 만큼 참된 만 족이 있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탕자 는 (사람은 누구나 탕자입니다.) 아버지 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더러움이 벗어 졌고, 배고픔이 해결됐으며, 참된 기쁨이 회복됐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간 에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때 거룩해지고, 참된 만족이 있으며, 참 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작년 2021년 5월 23일, 이탈리아 북 부 피에몬테주에서 케이블카의 줄이 끊 어지는 사고로 탑승객 15명 가운데 14
버지의 사랑이 아이의 생명을 살린 것 입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채찍 맞 으시는 고통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 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대신 다 껴안으 시고 당하신 고통과 죽음입니다. 그 이 유는 우리로 하여금 평안을 누리고 우 리로 하여금 아무 부족함 없는 나음을 누릴 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인간 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께서 십자가 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 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세상의 자리에서 그리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의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상처의 자리에서 일어 나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 가십시다. 그 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것을 얻고 함께 나누는 복된 삶이 되십시다.
야고보서 강해
2022년 3월 24일
2회
24
"믿음의 시련”(2) <야고보서 1:1-4>
시련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런 태도에서 나옵니다. 사도행전 16:2223을 보세요.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 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 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당했던 일 입니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누구 것을 빼앗거나 해치지도 않았습니 다. 복음밖에 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 에도 빌립보 주민들에게 고발을 당했습 니다. 관청에서는 조사도 하지 않았습니 다. 무조건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는 온몸을 매로 치게했습니다. 많이 쳤다 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 서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았 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온 몸이 으스러 질정도로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차디찬 지하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바울과 실라 가 당한 시련입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 갈 정도로 아픕니다. 살아날 희망도 없 습니다. 날이 밝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자포자기 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 걸 고 달려온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매맞고 감옥에 갇히도록 그냥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 습니다. 죄도 없이 고발한 사람들에 대 해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조사도 안하 고 매부터 때린 관원들에 대해 화가 머 리 끝까지 치밀어 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시련에 이끌려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 까? 고통만 더 커지고 상처만 더 깊어 지고 맙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시련에 이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련을 주 도하기 시작합니다. 시련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25을 보 세요.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 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어떻게 이 상황에서 찬양을 할 수 있 을까요? 시련을 주도하지 않으면 일어 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시 련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시련 을 이끌고 가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하 고 찬양을 하자 주님이 보이기 시작합니 다. 주님은 바울의 매맞은 상처를 어루 만지고 계시고 있습니다. 주님의 피묻는 손길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힘 이 납니다. 얼굴이 펴집니다. 웃음이 피 어납니다. 이것이 시련을 주도할 때 오는 기쁨입 니다. 시련 자체가 기쁜 것이 아닙니다. 시련을 통해서 주님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감옥 안에 계셨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죄수들이 바울의 기도와 찬양을 듣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있는 바울과 실라 를 쳐다봅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 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중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바울에게 다 빼앗 기고 말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놀라운 시작은 바로 이 감옥에서 된 것입니다. 간수와 온 가족들이 그날밤 세례를 받 았습니다. 감옥에 있던 죄수들이 빌립보 교회의 기둥들이 됩니다.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시련을 시련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시련이든 시련에게 선포하 십시오. “나는 더 이상 너에게 끌려가 지 않을거야!” 오히려 시련을 주도하 십시오. 파도를 타는 사람은 큰 파도가 밀려 올 때 더 기대가 큰 법입니다. 꽃꽂이를 하는 분들은 가지를 어떻게 자르는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가지를 직선으로 자 르지 않습니다. 길게 대각선으로 자릅니 다. 물을 흡수하는 면적이 넓어지기 때 문입니다. 그래야 꽃이 수명이 오래가는
법입니다. 꽃의 종류에 따라 대각선으 로 잘라도 물을 흡수하는 힘이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칼로 자른 자리를 불로 태우게 됩니다. 그러면 물 을 훨씬 잘 빨아올립니다. 그 자리는 쉽 게 썩지도 않습니다. 대각선으로 더 많 이 자르면 아플 것입니다. 고통스럽습니 다. 불로 지지기까지 한다면 얼마나 힘 들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든 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아픈 곳이 하나 님의 은혜를 빨아들이는 것입니다. 시련 을 고통으로만 남겨두지 마십시오. 시련 을 은혜로 바꾸시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에게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시련으로 믿음의 실력을 키우십시오. 3절을 보세요.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 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오늘 야고보가 같은 말을 어떻게 바 꾸고 있는 지를 잘 보셔야 합니다. 2절 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이라고 했습니 다. 그런데 이 말이 3절에서는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로 바뀌고 있습니다. 여 러가지 시험은 그냥 어려움입니다. 우리 가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오늘도 우 리 삶을 위협하는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 리에게 다가오는 순간 그 용도가 바뀝니 다. 단지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데 쓰이 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단련하는 용 도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 믿음을 키우십니다. 평안한 시기에는 정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모릅니다. 예배 열심히 드 리고 한 두가지 봉사를 하고 있으면 믿 음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 은 시련이 닥쳐봐야 아는 것입니다. 모 든 기능에는 실력차이라는 것이 있습니 다. 운동도 항상 점수가 있습니다. 좀처 럼 자기 점수를 뛰어넘기 어려운 것이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운동입니다. 실력을 높이기가 쉽지 않습 니다. 믿음도 실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바로 인내입니 다. 시련은 바로 이 인내를 만들어 내 는 것입니다. 4절도 보세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 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것은 끝까 지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중도에 포기하 면 안 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딘줄 알아 야 합니다. 바로 이 인내가 조금도 부족 함이 없는 실력을 갖추게 만든다는 것 입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인내를 못합니 다. 배가 고프면 그냥 울어재낍니다. 필 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채워주어야 합니 다.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지 능력 이 조금만 발달해도 참는 것부터 가르 킵니다. 참지 못하면 사람이 되지 못하 기 때문입니다. 두 주전에 보내준 손자의 동영상을 거 의 매일 들여다 보는 것이 하나 있습니 다. 식사 기도훈련을 시키는 모습입니다. 이제 1년 8개월된 아이입니다. 식사 그 릇을 앞에 두고 아빠가 식사 기도를 합 니다. 그 동안에는 아이가 먹지를 못합 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해야 합 니다. 아빠가 한 25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참지를 못합니다. 몸을 비틉니 다. 억지로 감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합니 다. 끙끙거립니다. 빨리 끝내라고 아빠 를 칩니다. 그러다 아빠가 아멘을 하는 순간 자기도 큰 소리로 아멘을 합니다. 얼굴이 얼마나 밝아지는지 모릅니다. 그 리고는 재빠르게 밥을 먹습니다. 인내하 는 훈련입니다. 인내할 줄 알아야 자라 는 것입니다. 참을 줄 알아야 어른이 되 는 것입니다.
변화프로젝트
2022년 3월 24일
36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1장, 상심한 마음에서 치유를 위한 기도 프로젝트 2) 매일 기도를 30분씩 30일 동안 하 기: 15분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15분
말씀해 주세요. 혹시 제가 용서받아야
4) 하나님께 편지 쓰기: 공책을 하나 준
하는 것이나 용서해야 될 것이 있다면
은 마음을 정돈하며 조용한 가운데 하 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이 있으면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연 습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지 만 우리가 그분과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 는 것을 원하신다. 또 우리가 항상 말만 하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할 때 잘 들을 수가 없다. 라디오를 크 게 틀면 다른 사람이 말을 해도 잘 들 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음의 잡음 스 위치를 끄고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을 인내를 가지고 연습하면 주님께서 우 리의 마음에 말씀하실 때 그 음성을 들 을 수 있다. 상심하고 비탄에 잠기고 마음이 아프 면 아플수록 마음의 잡음을 끄고 하나 님의 음성을 들으려 노력하는 것이 치유 에 도움이 된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픔 에서 치유를 얻을 수가 없다. 주님의 지 혜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 님의 말씀을 읽고 또 침묵 가운데 우리 의 고요한 마음에 조용히 말씀하시며 찾아오시는 음성을 듣는 가운데 질문 이 있을 때 응답을 찾을 수가 있다. 그 렇게 할 때 주님의 사랑과 격려의 말씀 을 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마음 의 치유가 된다. 기도: “예수님, 당신의 음성을 듣기 원 합니다. 제게 말씀해 주실 것이 있으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나의 모든 아
비해서 하나님께 의문이 있거나 마음이 아플 때, 외로울 때, 모든 것을 주님께 내 려놓는 글을 쓰면 도움이 된다.
픈 상처를 치유해 주세요. 성령님, 예수 님의 사랑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나에 게 지혜를 주시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 세요. 그래서 저의 처한 환경을 주님의 말씀과 지혜로 이해하고 해결해야 되는
기도: “예수님, 나의 모든 아픔과 두 려움과 미래의 모든 계획들도 내려놓습 니다. 제가 사랑 하는 사람을 붙잡으려 고 하는 그 마음도 다 가져가 주세요.”
여러 문제도 주님의 뜻대로 해결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5)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감사하는 태도 가지기: 있는 것에 감사하는 습관
3)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 라도 있다면 용서를 구하기: 우리의 마
을 기르면 감사와 찬양이 나온다. 다윗 이 쓴 글을 읽고 외워서 매일 생활에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 감 사하는 마음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도 움이 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 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 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 로다”(시편 23:5~6).
음은 영적인 전쟁터이다. 어려운 일이 있 을 때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원망하 는 생각을 넣어 주려고 한다. 만약 조금 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원 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평 안을 얻어야 한다. 마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 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고 거짓 말을 한다. 사람들이 그 잘못된 생각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더 큰 고통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은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 하면 할수록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 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 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 심이라”(요한 3:16).
6)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주 님을 찬양 하기: 어려움 중에도 모든 것 을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의 아픔이 점점 적어지고 치유에 도움이 된다. 바울 사도 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 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 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 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희 맥도날드 목사
(아담스 카운티 교도소 채플린)
(303)919-7492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 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 여 죽으셨도다”(로마서 5:3~ 6). 우리가 잃은 것에 계속 초점을 두면 우리의 상처는 더 크게 자랄 수 밖에 없 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이 우리를 사랑 하신 주님이 되고 그분을 찬양할 때 우 리의 상처는 점점 작아지고 치유가 된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가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영원한 천국의 처소를 마련해 주실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소망을 심어준다.
7) 모든 사람과 자신을 용서하기: 용서 하는 길은 우리의 상처와 아픔에서 해 방이 되는 길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 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 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44).
기도: “주님,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했던 것을 다 용서해 주세요. 나의 모든 잘못 되고 부정적인 생각과 비평의 마음과 용 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주님께 내려놓습 니다. 전에 용서하지 못했던 모든 사람 들과 나 자신까지도 용서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나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 게 잘못한 사람들을 다 용서해 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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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2년 3월 24일
26
하나님의 선물(4) - 부르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
우리가 누구를 부를 때 그냥 심심해서
내가 선 이곳 주의 거룩한 곳되게 하소
아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
부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게 부르면
서/ 주의 향기로 물들이소서
님께서 함께 하심의 선물, 자녀 되는 힘
적어도 “네 얼굴 보고 싶었어”라고 말
과 권능의 선물 그리고 성령의 선물을
할 것입니다.
군가 듣고 니느웨 왕에게 말해서, 니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예배가 아닙 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 가운데 드리는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만 누리며 살아도 우리의 삶은
그래서 목적 없는 부르심은 없습니다.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
가 됩니다. 우리는 삶의 예배자로 부르
조하지만 선물은 받는 것보다 누리는 것
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부
심 받았습니다.
이 중요합니다.
르심의 선물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
그러면 어떻게 누려야 할까요? 숨 쉬 듯 자연스레 누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웨 전체가 하나님께 회개하는 역사가 일 어났습니다. 아무도 예배하지 않고, 아무도 찬양하 지 않고, 아무도 기도하지 않고, 아무도 회개하지 않았던 곳에 요나 한 사람이 하
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
저는 이 찬양을 듣는데 요나의 이야
인 예배가 되게 하시기 위해 부르셨습니
기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
다. 바로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게 “니느웨로 가서 멸망을 선포하고 회
요?가만히 밥을 먹다가도 예수님이 떠
전병욱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나님께 순종함으로 인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개할 것을 선포하라”라고 부르셨습니다.
독자님들 가운데 혹시 이런 니느웨 같
오르고, 마음이 무거울 때에도 자연스
제가 부르심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할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는 배에 타지
은 곳을 바라보면서 “저기에는 하나님
레 예수님의 위로와 사랑의 손길이 느
때에 저에게 들려주셨던 노래가 있습니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니느웨에는 하나
이 없어…”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자연스
다. 바로 ‘예배자’라는 제목의 CCM
님의 구원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
하필이면 왜 이런 곳에 보내셨을까?” “
레 누려지는 선물은 없습니다. 이젠 우
입니다. 찬양 가사의 내용을 나누자면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하나님도 포기
나를 이곳에서 제발 빼내어주세요.” 그
리가 꺼내어 누려야 합니다. 꺼내는 것
이렇습니다.
하신 곳이라 생각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곳이 어떤 분들에게는 사업체 혹은 직장
임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내가 가서 예
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특정 모임이 될
은 늘 마음 가운데 그 선물을 생각하 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누려짐의 은혜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를
언을 해도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
수도 있고 심지어 가정이 될 수도 있습
는 구하는 것이 아닌 매 순간 하나님의
예배하리라/ 아무도 찬양하지 않는 그
지 않아 결국 멸망할 것이라 생각했기
니다.
선물을 생각하고 실행하면서 훈련되어져
곳에서 주를 찬양하리라/ 누구도 헌신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결
야 가능합니다.
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께 헌신하리라/
국 니느웨로 갔고, 거기서 하나님의 부
그렇지만 이 시간 하나님께서 그곳에
누구도 증거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 주
르심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요나의 순종
부르신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
우리는 누구를 부르실 때 아무런 이
를 증거하리라/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함은 어떠했을까요? 자신 있게 “회개하
길 바랍니다. 분명히 그곳에 하나님의
유 없이 그냥 심심해서 부르지 않습니
그곳에서 주를 예배하리라/ 아무도 찬
라!” 라고 외쳤을까요? 아닙니다. 쥐소
구원의 뜻이 있습니다. 그 구원의 뜻을
다. 자녀를 부르실 때 “누구야~” 할
양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를 찬양하리
리 마냥 작은 소리로 시장을 돌아다니
바로 이세상 누구도 아닌 여러분들을 통
때 자녀가 오면 “왜요?” “그냥 불렀
라/ 내가 밟는 모든 땅 주를 예배하게
면서 “회…개… 하…라..”라고 했던 것
해 이루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어” 그러면 자녀들이 뭐라고 할까요?
하소서/ 주의 보혈로 덮어지게 하소서/
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누
발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크리스천 베이직
27
2022년 3월 24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 왜일까요? 정다운 목사 볼더아름다운교회
그런 저에게 위안이 된 것은 다름 아
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내가 목표한 결
지난 연재에서는 ‘하나님 나라’ 복
닌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니 저와 같
과가 나올 때까지 하나님을 컨트롤하려
음에 대해 나눴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은 실패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지
합니다. 그러다 성에 차지 않으면 하나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 감사
매일을 살아내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요. 그중에 대표적인 사건은 출애굽, 이
님을 형편없는 분으로 평가하곤 합니다.
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과입니다.
아닌 실제 매 순간마다 맞닥뜨리는 삶
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을 의미하기에, ‘하나님 나라’ 개념을
40년 생활을 한 일입니다. 이들은 노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사건 등 순종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에서 해방되기만 하면 꽃길을 걸을 줄
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믿음의 선배들
과 하나님의 능력, 감사가 이어지자 이
러니 아직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해
알았지만 실제 마주한 것은 모래바람이
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당당한 삶의 자
가 되지 않은 분은, 다시 한 번 지난 연
이는 광야 길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홍해를 건너기가 무섭게 불평을 늘어놓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모
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마른 홍해 땅을
두에게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주님 되심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
건너며 좋다고 춤추며 찬양했던 그 모
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
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
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의 반응은 어땠나요? 하나님을 신뢰하기
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
보다는 불평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에”(출애굽기 13:18)
이제 함께 나눌 주제는, ‘우리는 하나 님 나라 시민인데 왜 내 인생은 내 마음 대로 되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 작되었습니다. 우린 누구보다 최선을 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들을 굳이
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결과가 좋
출애굽 시키신 후, 고난을 허락하신 걸
지만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열심
까요?
히 봉사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반 응이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 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서 청
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
년 사역할 당시, 아무리 노력해도 청년
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이 450명에서 더 늘지 않는 것입니다.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
어떨 때는 관계 전도를 위해 교회를 카
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
페로 꾸미기도 하고, 예배당에서 콘서트
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연예인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출
을 초대해서 간증 집회도 했지만 끝내
애굽기 10:1-2)
세를 갖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따르는 순종의 여정 가운데,
순종과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 순종은 전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 능합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를 믿기에 부 모의 말에 순종하듯, 우리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비로소 순종이 가 능한 것이지요. 이스라엘에 있어 그 순 종의 결과는 바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해안 길 대신 홍해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이 지요. 어느 누가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 께서 일하실 줄 알았을까요?
500명을 넘지 못했습니다. 제 삶의 최우 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모든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
에 그에 따른 실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
일은 바로 ‘나’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리의 지경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일하시
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쥐
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공: 제공:전제히 전제히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는 것처럼 말이지요. 아직 이들이 애굽 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발걸음은 당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삶을 인도 하셨기 때문이지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바로 이때 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따라가야 할 순 종의 때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 모래바 람이 불고 사막의 지평선이 펼쳐 있는 것처럼 언제까지 이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
선 순위를 청년부의 부흥(?)으로 삼았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행위를 옳게 하는우리 자에게 내가 여호와께서는 모두의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 50:23) 시키셨도다 (사 53:6)
이들은 대열을 갖춥니다. 군대가 행군하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 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사 58:8) 제공: 정순이 제공: 정순이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누추함과 영접하는어리석은 자 곧 그 말이나 이름을 희롱의믿는 말이자들에게는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엡 5:4)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로 감사의 발걸음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 가길 소망합니다.
그 날에 또 말하기를 인자가 온너희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여호와께 그 이름을 함이 아니라감사하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부르며 행하심을 중에 자기 그 목숨을 많은만국 사람의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 12:4) (마20:28)
제공: 김성애 성도 제공: 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제공: 신민식·신경원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성도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제공: 김성애 성도
감동이 있는 글
목숨 걸고의 사랑
28
2022년 3월 24일
반드시 죽을 나를 기억하며 사는가?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하나님은 막연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목숨 걸고의 사랑이시다. 자신이 인간이 되시어 자신의 생명을 주고도 부족하다 하신다. 인간들은 때로는 오해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지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의
인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않으면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이다.
세상 끝날까지 사랑하시며 저 세상으로 우리를 옮기시어 영원토록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다 말로 할 수 있으랴!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이 평가하고 논하며 말한다는 것이 무례하다 할 것이다. 한 생명을 사랑하시되 자신이 만든 천하와도 바꾸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저 하늘에 별이 무수히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태양이 아무리 크고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 할지라도 결코 그것과 바꾸지 않으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인 인간은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시길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다. 선악과를 왜 만들어 죄를 짓게 하였느냐 반문하지 말라. 선악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증표요 인간을 노예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유의지로 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의 표현이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였을 뿐이다. 인간이 죄를 지어 놓고 하나님 탓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억울해 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이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사랑! 사랑!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목숨 걸고의 사랑이시다. 나도 목숨 걸고의 사랑에 도전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하며 산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스데반이 목숨 걸고 사랑으로 순교할 때에 주님은 보좌에 앉아 계실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그 장면을 보시면서 감격하여 눈물로 영광을 받으셨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사람은 누구나 늙고 마침내 죽는다. 시계에 태엽이 풀리면 멈추듯이 자신의 숨을 멈추는 시간이 온다. 병이 드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가르쳐 준다. 교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다. 내가 아는 건강하던 지인들이 수도 없이 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께 불려 갔다. 병은 갑자기 올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서서히 내 속에 임하여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쓰러지게 하기도 한다. 건강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도 병마가 찾아오면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죽음이란 이처럼 소리 소문 없이 인간을 삽시간에 덮치고 인간을 꼼짝 못 하게 하고 간다.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는가? 바울의 말이 맞다. 나의 연약함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비참한 인생길을 살아내고 있지만 곧 꺼져가는 등불과 같다. 십자가로 나의 모든 죄악이 씻기어지고 해결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죄로 인하여 더 이상 비참하게 망가지지 말아야 한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다.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자녀 삼아 주심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망극한 은혜요 죽어도 갚을 길이 없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이다. 배은망덕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겠다고 손을 들고 나오는 것이 믿음이다. 영원한 멸망으로 가느냐 그 죽음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영생토록 사느냐 하는 문제는 오직 자신의 믿음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결코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직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을 뿐이다. 내 힘으로 비가 오게 하고 눈이 오게 하며 태양이 떠오르게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에 그분 앞에 내 주장 내 뜻으로 고집부리고 오만하며 교만을 부려서는 안 된다. 겸손히 무릎 꿇고 그분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로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비결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왜 그것을 생각하며 살지 않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죽은 후에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하신 이를 바라보며 두렵고 떨림으로 인생을 살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창골산 봉서방
감동이 있는 글
29
2022년 3월 24일
적당히 믿어 천국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길은 좁은 길이다. 천국의 문은 좁은 문이라 했다. 좁고 어려운 길이라 그곳으로 가는 자가 적다. 신앙생활 자체가 어렵고 힘든 길이다. 자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며 마귀와 싸워야 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자체가 죽는 날까지 죄에 대한 저항으로 살아 내야 하는 험곡을 가야 하는 길이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마귀가 세차게 흔들어 댄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늘 고난이 따르고 영적인 전쟁이 일어난다. 평안히 세상과 진리를 진리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은 적당히 타협하고 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워 사람들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대용품을 찾는다.
시대가 변했으니 교회도 세상에 발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은 수천년을 두고 일획 일점도 변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도가 부담스러우니 기도 하려 하지 않는다. 전도가 부담스러우니 전도하지 않는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대기를 싫어하며 선을 행하며 살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넓은 길은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세상 길은 육체의 평안을 찾으나 믿음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천국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그 길을 가는 자가 매우 적다. 세상길은 넓고 그리로 가는 자가 많으며 그래서 지옥은 부흥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신앙생활은 평안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곳도 아니다.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하는 진리의 길이다. 때로는 박해를 받고 매 맞으며 목숨도 내놓아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이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구원받은 자는 구원받은 열매가 있다. 거듭난 자는 거듭난 증거가 있다. 좁은 길은 신학을 했다고, 성경에 대하여 안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성경 지식이 많다고 변화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일은 싫어도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이며 이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지를 못한다. 우리는 천국가서 복 놀랄 것이다. 좁은 길을 통과하여 구원에 이르는 자가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나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만이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적당히 믿어 천국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어떤 이가 말했다. 두 시간 기도하는 것은 좁은 길이요 두 시간 T.V. 보는 것은 넓은 길이라 했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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