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ght and Salt Christia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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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제 12권 9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2년 5월 12일 발행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for this is right.“Honor your father and mother”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 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Ephesians 6:1-3)


목차

2022년 5월 12일

목차 가정의 달, 시 모음 교계소식 주제별 성경 구절 모음 신앙칼럼 강단설교 내면을 향한 여정 목회칼럼 어머니주일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예배학 강좌 은혜의 샘터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정성욱 교수의 신학 쉴만한 물가 좁은 길을 걸으며 야고보서 강해 변화프로젝트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복음으로 살아보기 감동이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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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목사

(Rev. McDonald)

이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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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 시 모음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힘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프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도 돈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돈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 되어보니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든든하고 크게만 보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아플 때가 있다는 것을 돈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장이니까 가족들이 힘들어할 까봐 가족들이 실망할 까봐 힘들어도 아파도 돈 없어도 말을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문조·시인)

2021년 5월 4월 12일 22일 2022년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라는 특권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 사랑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은총에 대해. 그들에게 당신에게서 받은 생명을 나누고 그들을 돌보아서 성장시키고, 옳은 길을 걷도록 교육시키며 그들에 대한 당신 사랑의 소중한 도구가 되는 이 황송한 은총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이 제게 두신 신뢰, 이 세상의 모든 보석보다 더 소중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도록 제가 맡겨놓으신 당신의 신뢰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사랑으로 우리를 지원하는 모든 이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매일, 우리가 받는 헤아릴 수 없는 선물들에 대해 특별히,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을 주심에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소홀했던 시간들에 대해 당신께 용서를 청합니다 저의 약함과 배은 망덕과 죄들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은 결코 저를 눈밖에 두지 않으신다는 것, 당신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부드러우심으로 저의 사랑하는 아이들을 살피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저의 창조주이시기에 제가 바로 저 자신인 모든 것 제가 사랑하는 모두가 당신의 선물입니다. 당신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의 구세주이시며, 저의 친구이십니다 그러기에 당신 사랑이 결코 저를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께 저의 신뢰를 둡니다 당신으로부터 저의 아이들을 받았사오니 당신께 그들과 그들의 미래를 맡겨드립니다. 당신 손의 보호 아래 저희를 지켜 주십시오.

출처 http://www.peomlove.co.kr 더 이상 눈물이 없고, 더 이상 분열도, 악의 그림자도 없는 행복한 본향에 이를 때까지 저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커다란 사랑으로 당신이 마련하신 영원한 집에 이를 때까지. (조만나스 지음/ 류해욱 옮김) http://cafe.daum.net/mc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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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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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2일

덴버할렐루야교회

"절대 감사, 내 잔이 넘치나이다!" “5월 가정의 달, 황성주 박사 초청 집회”

설교 황성주 목사

사회 김창훈 목사

덴버할렐루야교회(담임목사 김창훈)는 지난 어머니 주일인 8일부터 11일까지 3 일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절대 감 사, 내잔이 넘치나이다!”를 주제로, 황성 주 목사 초청 말씀 집회를 개최하였다. 강사 황성주 목사는 의사로 암환자 치료식으로 개발한 ‘황성주 생식’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황 목사는 지난 30년 동안 임상 예방의학과 통합 면역 요법의 장점을 결합한 통합의학 분야를 개척하여 많은 암환자들에게 통합 의학 적 치료를 시행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암 재발은 없

기사: 최성애

다』 『암은 없다』 『생식으로 못 다루 는 병은 없다』 『황성주의 건강하게 사 는 법』 『사랑의 치유일지』 『황성주 박사의 생식과 건강』 『절대감사』 『킹 덤드림』 등이 있다 9일(월) 오후 7:30, 두 번째 집회는 찬 양팀과 함께하는 뜨거운 ‘찬양과 경배’ 로 시작되었다. 손뼉치며 춤추며 기쁨으 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 “성령이 오셨네”는 어느덧 성령님의 임재와 은혜 를 사모하는 기도의 함성으로 바뀌어 예 배당에 울려 퍼졌다. 대표기도는 김명지 선교사가 “하나님

예배 광경

의 우리를 향하신 놀라우신 사랑을 송 축하며, 만가지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하 심을 찬양합니다. 무조건 절대 감사로 주님을 닮아가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열방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가 되 게 하시며, 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 는 이 밤이 되게 하소서”라고 간구했다. 말씀은 황 목사가 살전 5:16-18, 시편 50:23을 본문으로, 제목 “절대 감사” 를 선포했다. 단에 선 황 목사는 “감 사는 과학이다. 성경은 과학적인 진리이 다. 감사할 때 신체적, 영적, 재정적, 감 정적, 지적, 사회적, 경제적 등 모든 영역 이 회복된다”고 말문을 열며, “말씀에

순종하고 감사를 드릴 때 역사하는데, 순종하는 만큼 은혜를 받는다”고 권면 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절대 감사의 유 익을 강조했다. 또한 황 목사는 성경의 “7일 리 듬”(7-Day Cycle), 성경의 안식일에 관 하여 Franz Halberg 교수의 “시간생 물학”(chronobiology, 생물체에 존재 하는 리듬을 밝혀내는 학문), 연구를 기 반으로 성경의 과학성을 입증했다. 즉 사람 몸은 7일이라는 리듬을 가지고 있 어, 일주일에 하루는 확실하게 쉬어야 한다. 6일 동안 일하고 제7일에 안식하 면, 사람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최상의

덴버할렐루야교회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해”

예배 안내

교회비전

Denver Hallelujah Church

주일예배 1부 오전 8:30 2부 오전 10:30 다음세대 1:30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 오전 5:20

금요예배 오후 7:30

매일밤 기도회 저녁 7-9시

담임목사 김창훈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기도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구령의 열정으로 전도하는 교회 -믿음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교회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교회

15150 E. Evans Ave. Aurora, CO 80014 / changhoon528@gmail.com / (720) 226-8113


교계 소식

2022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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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로 되돌아 오지만. 이를 어기고 10

활 습관, 환경을 바꾸어야 치료된다. 면

바울의 말은 인용하며 “선교보다 중요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는

일까지 일을 한다면 그 다음에는 이틀

역층이 두터운 사람은 암의 뿌리가 올

한 것은 순교적 삶을 사는 것이다. 절

2022년 표어 “영혼 구원하여 제자삼는

을 쉬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0으로 떨

라오지 않는다. 암과 치매만 안 걸리면

대 감사를 통하여 거룩을 연습하여 세

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어지지 않고 생체리듬이 깨어진다고 현

오래 산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아야

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사탄이 무너

대의학이 밝혀냈음을 보고했다.

되는데,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뜨릴 수 없는 사람이 되라. 그리고 해석

특히 하루를 새벽기도회로 시작하여

하지 말고 찬양하라. 절대 감사를 통해

매일밤 기도회로 마치는 덴버할렐루야

성경의 가르침을 과학이 지금은 증명

그리고 황 목사는 빅터 프랭클 교수(신

자유인이 되라. 절대 찬양, 찬송할 수 없

교회는 “전 성도 50일 기도회”를 지

한다면서, 성경이 너무 정확하여 자신이

경정신과)의 이론 ‘자극과 반응사이에

는 상황일 때도 찬송하면 하나님의 살

난 4월 17일부터 6월 5일까지 일정으로,

놀란다는 황 목사는 인류 최초 의학 교

있는 스페이스와 그 반응을 선택할 수

아계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어

주 1회 이상 모든 성도가 교회에 나와

과서라면서 다니엘 1:15-17을 주목하며,

있는 자유, 1차 반응: 본성, 신경계의 반

려운 일이 생길 때 감사와 찬송을 선택

서 기도를 드리는데 현재 은혜 가운데

너무 많이 먹지말고 고기는 적당히 먹

응, 2차 반응: 믿음(말씀) 지적 반응’을

하면 회복이 된다. 불과 같은 시험을 통

진행 중이다.

고 1일 1생식을 말했다. 황 목사는 “

설명하며, “자극이 왔을 때 어떻게 반

과한 욥도 절대 감사를 실천했다”고 마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다. 절대 신뢰가

응할 수 있는지 설명하며, 감사로 반응

무리 했다.

중요하다. 말씀을 먹고 자라 선포하여야

할 것”을 촉구했다. 곧 감사하면 불안하

하는데 언제까지 젖만 먹을 것인가?”

던 심장박동, 혈압과 호흡 등이 정상으

반문하며, “말씀을 먹고 자라고 붙잡

로 회복되는데, 오래 쉬는 것보다 잠시

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으 로서 밝은 표정, 그리고 품위있는 말과

집회의 모든 순서는 김평덕 목사의 축

의 통로가 되기 위해 <할렐루야 캠페

도로 마쳤다.

인: 내가 먼저 인사하고, 웃으면서 대화 한편 덴버할렐루야교회는 하나님 말

또한 황 목사는 “암이 되기 전에 치

마지막으로 10가지 감사를 적고 주목

씀 중심의 교회로, 성령의 능력으로 예

료와 예방을 개발했다. 암은 유전자, 생

하라는 황 목사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혼과 생명을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 29:25) 제공: 신동윤 종합보험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비추는 축복

하고, 주님처럼 섬기는 성도가 되자>를 벌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롬 5:1) 제공: 성경혜 부동산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7:3-5) 제공: 빛과소금뉴스 이사진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9: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0:40

학생회 오전 11:00

새벽기도회 (화-목) 오전 6:00

1654 S. Dayton St. Aurora, CO 80247 (303) 960-5057 / www.faithchurchco.net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2022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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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송하면 좋은 성경구절" 가정의 달 1.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2)

12.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 29:15)

2.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 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1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 이 길리라 (출 20:12)

1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 육하라 (엡 6:4)

4.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 (잠 22:6)

15.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7)

5.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잠 6:20)

16.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 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11)

6.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 리로다 (시 127:3-5) 7.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 니라 (골 3:20) 8.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 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 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 :1-4) 9.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 며 (사 54:13) 10.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 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 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7:3-5) 11.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수 24:15)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 44:3) 제공: 신동윤 종합보험

17.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1 3:18) 18.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 5:16) 19.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 님 여호와이니라 (레 19:3) 20.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32) 2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 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 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딤전 5:1-2) 22.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잠 1:8-9) 23.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잠6:20-22)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제공: 성경혜 부동산


신앙 칼럼

2022년 5월 12일

오성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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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더 강한

손바닥에 새긴 사랑 발행인 최성애 권사 문제만 당하면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우리 약한 인간의 참 모습이다.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인간의 얕은 꾀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문제를 내 마음대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고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결국에는 낙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3-16)

큰 능력을 행하던 대선지자 엘리야조차도 기진맥진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기를 구하였던 적도 있음을 기억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수수방관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목적을

어머니가 품 안의 아기를 끊임없이 보살피듯,

어찌 미련한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뜨거운 사랑으로 노심초사하시며 우리의 일수거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돌보신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불신한다고 할지라도

오죽하면 하나님의 손바닥에 우리를 새겨 놓으셨을까?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 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도 없고,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다.

영원히 신실하게 붙드시며

이것이 죽음보다 더 강한 우리에게 향하신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긍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아니, 천사들을 보내사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키게 하시고, 재앙이 우리의 장막 가까이에도 못오게,

사탄의 시험과 간계로 낙망하며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악한 자들이 만지지도 못하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소망 가운데 기다리자.

적극적으로 간섭하시는 분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죽음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사랑이 우리를 위로하시며 회복시켜 주시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낙망할 때,

마침내 우리는 입술의 구원의 승전가로

아니 태산과 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떠올려 보자.

할렐루야!

Great Love Korean Baptist Church

“은혜의 방패가 호위하는 교회”(시 5:12)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강단 설교

2022년 5월 12일

8

위대한 나의 어머니 <히브리서 11:11-12> 이형만 목사

여러분, 십계명을 보시면, 뭐뭐 해라, 뭐뭐 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있는데, 유 독 두 계명만 뭐뭐하면 내가 축복하겠 다... 이렇게 말씀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첫 번째, 2계명이 그렇지요.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거나 절하 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그러 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 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또 두 번째, 5계명이 그렇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 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 이 길리라.”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부 모를 공경하면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 손 대대로 은혜와 장수의 축복을 누리 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은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성경을 보면 2계명하고 5계명이 계속 해서 밀접한 관계로 나오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49:15절 말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머 니의 사랑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내용 이 나와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 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 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러분, 자녀가 어머니의 사랑을 느 끼지 않을 수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우 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 의 의미는, 어머니의 사랑을 못 믿는 자 는, 하나님의 사랑도 못 믿는다라는 뜻 이에요. 이 말은 또 다시 말해서, 하나 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도 공경할 수 있고, 부모 공경을 잘하는 사람은 하 나님도 사랑하고 말씀 잘 순종할 수 있

다는 거예요. 또 에베소서 6:2-3절을 보시면, 사도 바울이 이 십계명의 약속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 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 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서 ‘잘된다’라는 축복은 하는 것마다 형통하다. 또 삶에 기쁨이 충만 케 된다.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 는 잘되고 형통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더 말씀하고 있지요. ‘장수하리라’ 오 래 사는 것, 그런데 여기서 장수하리라... 이 뜻이 오래 사는 것만 뜻하는 게 아 니에요. 바로 2계명에서 말씀했던, 천대 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뜻도 포함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계명, 하나님 사랑, 그리고 5계명, 부모님 공 경, 이 두 약속은 항상 함께 따라다닌 다는 거예요. 제가 오늘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오 늘 어머니 주일인데, 우리 가운데 어머 니가 아직 살아계시는 분도 계시고, 이 미 돌아가신 분도 계십니다. 아직 살아 계신 분은 5계명대로, 어머니께 효도 잘 하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잘되고 장수 하는 축복 다 누리게 되시기를 바라구 요, 또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이제 방 법이 없는 게 아니에요. 바로 2계명, 하 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잘하시면, 동일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식이 잘되고 형통하고 건강하게 오 래 사는 것, 우리 부모들의 가장 큰 바 람입니다. 그래서 살아생전에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효도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 님의 자녀가 잘되고 건강하고 오래 사

는 것, 그뿐 아니라 자손 천대에 이르 기까지 이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 하 나님의 또한 큰 바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 나님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 잘 지켜서 순종하라... 오늘 말씀은 믿음의 여인 사라에 관 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이자 이 삭의 어머니였던 사라도 당당하게 히브 리서 11장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 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어쩌면 이 런 생각을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사라가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될 정도로 믿음이 있었나? 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냐면, 믿음하면 아브라함이지, 성경에 나오는 사라의 모습은 좀 아니거든요.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사라의 이미지가 어때요? 일단 예뻤지요. 창세기 13장에, 애굽 왕 바로가 사라의 미모를 보고 아내로 취하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사라의 나이가 70살이었습니다. 여 러분, 왕이 마음만 먹으면 젊은 미모의 후궁들을 다 아내로 삼을 수 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얼마나 예뻤 기에, 70세 된 할머니를 아내 삼으려고 했겠냐구요.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사 실, 자기 살겠다고 아내를 누이로 거짓 말치고 왕한테 시집가도록 아내를 버린 남편도 형편없지만, 남편 말에 그렇게 하 자라고 함께 동조했던 아내 사라도 문제 가 많은 여인이지요. 또 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자녀를 주 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어떻게 합니까? 사라가 꾀를 부립니다.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도록 남편을 꼬드겼습니다. 바로 이 사건 때 문에 아브라함 가정에 지울 수 없는 큰 재앙이 찾아옵니다. 첫 번째 재앙은, 13 년 동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만나주지 않게 됩니다. 왜 나를 안 믿고 그런 방 법을 썼느냐? 또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

덴버한인장로교회

마엘은, 지금의 아랍 족속의 조상입니다. 얼마나 가정불화가 심했던지, 자손 대대 로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아랍족속은 원 수관계로 살아가고 있어요. 결국 누구 때문입니까? 사라의 조급함, 의심 때문 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창세기 23:1절을 보시 면,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 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사라는 백이십칠 세에 죽었습니다. 이 삭을 90세에 낳았어요. 그러니까 이삭 나이 37세 때 어머니 사라가 죽은 것입 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 하나 드릴께요? 어머니 사라가 죽을 때, 아들 이삭에게 어머니 사라는 어떤 어머니였을까요? 아 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우 리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예쁘기만 하고 철없었던 어머니, 또 조급하고 의심 많 고 연약한 모습으로 늘 남편만 의지하 며 살았던 그런 믿음 없는 어머니였을까 요? 만약에 그랬다면 절대로 오늘 성경 에 사라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겠죠. 결 론적으로 이삭에게 어머니 사라는, 위대 한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떻게 그렇 게 됐을까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라 가 믿음의 여인이 되어서 히브리서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을까요?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살펴보려고 하 는데요... 창세기 18장을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은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 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 셨어요.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 이 있으리라”(창18:10) 그런데 이 얘기는요 이미 24년 전에,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란에서 들었던 말씀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 에 왔는데, 11년을 기다려도 아들이 안 생기니까, 아브라함 나이 86세 때 이스


강단 설교 마엘을 낳게 된 거에요. 그리고 13년 동 안 그 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오시지 않다가, 드디어 99세 때 지금 나 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있으리라...” 이때 사라는 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웃었어요. 왜 웃었을까요? 와! 아들 주신대. 드디 어 아들 낳게 되었구나.. 이렇게 신나서 웃었을까요? 아니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정말 한심해서 웃은 거예요. 왜 웃었는지 지금 사라의 상황을 우리가 알면 이해가 됩니다. 사라는요 원래 임 신을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부터 계속 불임 상태로 살아온 여인이었 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거 기다가 지금은 생리까지 끊어진 상태였 어요. 거기다가 또 남편 아브라함도 12 절을 보니까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요. 부부관계도 못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라가 웃은 거예요. 그런 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창 세기 18:14절 말씀이 사라의 인생을 완 전히 뒤바꿔줘요. 그것이 뭐냐? 하나님 이 사라의 웃음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 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 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이 말씀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 느냐? 그다음 15절을 보니까,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 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모습은, 웃었던 것이 들통 나서 혼 날까봐 거짓말하는 모습이 아니에요. 진 짜 정신이 번쩍 들었던 거예요. 왜 그 랬느냐?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지금까지 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 접 듣지 못했습니다. 오직 남편한테 전 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사 라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여호와께 능하 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 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 들이 있으리라”

2022년 5월 12일

사라에게는 평생 누구한테 말하지 못 할 가슴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내 남편 아브라함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는가? 왜 하필... 내가 애 못 낳는 여자라는 것을 잘 아시면서, 왜 내 남편을 택하셨느냐 는 거예요. 중간에서 내가 당할 괴로움, 미안함은 왜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으셨 냐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라를 만나주셨어 요. 그동안 남편말만 듣다가 이제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어떤 하 나님이신 지 알게 된 거에요. 그 하나님 이 누구시냐?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나는 네 한계를 극복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하나님이야.. 이 말씀이 사라의 마음에 꽂힌 거예요. 또 신실하신 하나님, "기한 이 이르면 반드시 너에게 아들이 있으 리라.” 이 말씀이 사라의 마음에 믿음 으로 찾아온 거예요. 그래서 사라는 그 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잉 태하게 됩니다. 11절에,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 쁘신 줄 알았음이라” 하나님은 사라에게 잉태할 힘을 주셨 습니다. 이 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었어요. 남편 아브라함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자신에게 들려주신 하나 님의 약속이었다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들, 어머니들이 하나님을 만나셔야 됩니다.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인격적인 하나님을 체험 하셔야 돼요. 사실 우리 각자는 다 인생의 한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욕심도 내 보고 열심히 인생을 바꿔보려고 노력해 도, 바꿔지지 않는 인생의 한계들이 있 어요. 특별히 우리 어머니들이 더 이런 한계를 느끼게 될 거에요. 왜냐? 지금까 지 내 인생 내가 맘대로 살지 못했거든 요. 언제나 남편에게 맞췄고, 언제나 자 녀들에게만 헌신했기 때문에... 어찌 보 면 지금 내가 느끼는 모든 인생의 한계 는, 내 책임이 아니라 남편책임, 자녀책 임이라고 해도 맞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들, 정말 중요한 사 실 한 가지를 아셔야 돼요. 오늘 본문 12절을 보세요.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 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 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 느니라” 아무리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고 훌륭 했어도, 아내 사라의 믿음이 없었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 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든 어머니들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직선보다 곡선이 아름답다. 우리 샌프란시스코나 LA를 가보면, 길 이 다 바둑판처럼 직선도로입니다. 그래 서 길도 찾기 쉽고, 차가 없을 때에는 가 슴이 뻥 뚫리는 기분으로 운전을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부에 가보면, 제 가 예전에 살았던 버지니아나 노스캐롤 라이나 같은 길은 구불구불한 도로가 많았어요. 길도 좁고 커브길이 많아서 밤에 가끔 사슴이 나타나면 위험할 때 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구불구불한 길에는 직선도로 가 가지고 있지 않은 다양한 매력이 있 습니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이런 말을 했어요. "직선은 사람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다.”

움 없이는 절대로 나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다는 겸손의 축복이 우리 어머니들 인 생길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어 머니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면, 가정 이 삽니다. 자녀가 살아요. 남편이 변해 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머니들 인생길 을,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걷게 하시는 것이고요...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돼요. 구불구불한 인생길에서 수시로 예 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게 되니까, 더 욱 하나님을 붙들게 되는 거예요. 여러 분, 하나님을 붙드는 자만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둡고 캄캄한 밤에 달빛만 의지해서 운전해 보세요.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섬 세한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돼요. 우리 어머니들 정말 사랑하고 축복합 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위대한 어머니 들이 되셔야지, 가정의 한계가 극복이 되고, 하나님이 여러분 가정에 주시겠 다 약속하신 수많은 축복들이 이루어지 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 늘 여러분의 한계와 문제를 우리 하나 님 앞에 들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믿음 으로 맡기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 을 만나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그 믿 음으로 여러분과 가정과 자녀가 기적적 인 축복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우리 하 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가, 오늘 우리 어 머니들의 삶 가운데,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 위에, 풍성하게 넘치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men!

원래 곡선이었던 자연을 인간이 직선 으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구불구불한 자연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고, 하나님 을 느낄 수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들, 가끔은 내 인생이 직 선도로처럼 뻥 뚫렸으면 좋겠지요.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늘 굴곡이 있고, 경 사가 있고, 울퉁불퉁한 길만 걸어온 것 이 억울할 때가 있지요. 그런데요, 우리 어머니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이 구불구불한 곡선 도로에 반드시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오늘 사라의 모습처럼, 날마다 하나 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 는 축복이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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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Mother's Day!


내면을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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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목사 들꽃 피는 마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예레미야Jeremiah 17:7-8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But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the LORD, whose confidence is in him. ..................................................................................... 복(福)받을 자가 있다면, 복을 받지 못할 자도 있다는 말일 터. 그러나 이 말은 어느 누구나 복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일 것입니다. 그 기준은 사람이 가진 권력과 재물을 신뢰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고, 철저하게 야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만 삶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의 삶은 형통할 것(8절, 시편1:3)이며, 바른 길을 걷게 되고(잠3:5), 늘 기도에 응답을 받아(대상5:20) 마음에 평안을 누리게 되어(사26:3)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이(시16:9) 예레미야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광야의 타는 듯한 열기와 메마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말로도 광야를 설명할 수 없듯이, 인생의 광야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생명을 지탱해 주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위에서 샘물이 터져 나와 마시게 되는 축복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피닉스 <들꽃피는 마을>에서 정봉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골로새서 Colossians 2: 8-10 그리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졌습니다(10a). And you have been given fullness in Christ, ...................................................................................... 세상에 흠이 없고 허물이 없는 완전한 인간이 있을까요? 다만 완전을 향하여 끝없이 달려갈 뿐입니다. 이런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자신이 의롭다, 완전하다 하는 것은 교만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해질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완전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과일나무를 접목시키면 좋은 열매 맺듯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완전을 이룰 수 없지만.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완전함으로 우리 안에 완전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할 궁극적인 목표는 완전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완전한 인간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늘 겸허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와 연합하여 함께 누리는 삶은 더 넓게 더 깊게 더 높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형성되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ooreekmc@hanmail.net>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8-9) 제공: 강경자 집사(오로라침례교회)


목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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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 수로보니게 여인은 오늘날 레바논의 남

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말씀하

라함 링컨은 자신의 어머니가 비록 해 준

부 도시 중의 하나인 두로인 곳에서 살았

셨다. 집으로 돌아간 수로보니게 여인은

것은 없고 일찍 사망하여서 평생 고생하고

던 로마시민권을 가진 헬라인이었다. 그녀

딸이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는 것을

외로웠지만, 그녀는 천사 어머니였다고 고

는 딸 아이가 귀신에 들려서 죽을 고생을

확인하였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여 주시거

백하였다.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도 자신의

지하고 하나님의 전과 성령의 성전으로 유

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을 뿐만 아

나 칭찬하여 주실 만한 믿음을 소유하는

어머니가 주신 성경책을 읽으며 고학을 하

지하여야 한다. 그리하여야 하나님과 성령

니라 자신의 고통과 같이 느꼈는 것이 분

것이 소중하다. 예수님께서 놀라워하거나

였으며 하나님을 가장 경외한 대통령이었

의 은혜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

명하다.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소문을 듣

칭찬하여 준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도록

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 배속에서 생겨나면

다. 하나님의 은혜나 예수님의 희생이나 은

고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예수님을 만났

애를 쓰기를, 물질적 혹은 권세적인 성공보

서부터 보살핌과 양육과 가르침을 받는다.

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훼방하여서 받

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딸

다도 더 만족해 하거나 즐거워 하거나 행

그러면서 어머니의 노력과 인내와 은혜나

을 형벌을 중하게 하거나 확장하는 일은

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님께서

복해 하여야 할 것이다.

자비나 용서하는 마음도 생긴다.

추호도 없어야 할 것이다.

는 신분이 유대인보다 높은 로마시민이면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어머니가 불렀던 찬송이 생각이 나서,

서 자신 앞에 엎드려 애원하는 그녀에게

어린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지

그 찬송을 부른 적군을 죽이지 못하였다

바울과 같이 변하여 마음과 말로만 아니

어찌 대하셨는가?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

극하고 헌신적이며 희생적이다. 마음을 다

고 고백한 군인도 있었다. 그리하여서 생

라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때

게 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녀와 그녀의

하고 정성을 하다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

존한 생키라는 남자는 훗날 디.엘. 무디 목

이다. 가진 것으로 지옥영벌을 받을 마귀

딸을 개에 비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목숨을 다하는 사랑이기도 하다. 그

사와 동행하면서 찬송가로 청중의 마음의

짓이나 귀신짓이나 죄악을 행하는 것이 아

그녀는 개도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

렇기에, 약 75%의 자녀들이 아버지에 대

밭을 갈았고 무디 목사님이 복음의 씨앗

니라, 천사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찬송

는다고 고백하면서 동정을 구하였다. 심지

한 사랑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더

을 뿌렸던 것이다.

과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능력을 돌려야

어 “나를 도와 주소서!”라고 고백하였다.

크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자녀들이 가

자신의 딸을 도와 달라고 말하지 않고, 자

정이나 일터에서 대소 원만하거나 성공적

신을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듯이, 그녀는

인 것이다.

자신의 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천국에서 상급을 받 하나님께서는 영죽어 마땅한 죄인들의

게 된다. 또한 주하나님과 어머니의 사랑

목숨과 영혼을 구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

이나 수고나 희생이나 은혜나 자비에 대하

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예수님

여 보답을 하여야 하고 그들에게 잘못한

겼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 없음과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가

은 그 죄인들을 위하여 온갖 시험과 고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남들에게도 은혜나 자

무능력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고

까이서 마음 아파하면서 함께 있었던 육신

과 죽음을 당하셨다. 그리하여서 인류는

비를 베풀 수 있어야 잘하는 것이다. 착하

통이나 죽음이라고 여기는 심정이 중보기

의 어머니의 사랑을 육신의 아버지의 사랑

생존하고 있으며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구

거나 충성하면서 혹은 희생적으로 보답할

도를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또한

보다 더 느꼈을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어

원에 말씀대로 처신한 사람들은 천국영생

때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성숙하게 되

주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절규하는

머니 리브가의 사랑과 염려를 체험하였다.

복락을 누리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

고 하나님의 응답이나 성령의 도우심을 체

것이 필요한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어머니 요게베의 가슴 아파

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몸의 안팎은 추

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살면 살수

함과 사랑과 기도와 보살핌을 받았다. 성

하고 노쇠하여지고 질병이나 사고로 죽을

록 천지에 유익함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어거스틴은 자신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자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희생으

이루면서 천국 영생복락 상급을 확장할 수

소원대로 되리라” “그 말을 하였으니 귀

신의 마음은 어머니라고 고백하였다. 아브

로 생존하는 몸을 가지고서 거룩하게 유

가 있는 것이다.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유스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for the glory of God!

오전 11:30

주일 오전 10:30

오후 7:30

토 오전 6:00

PO Box 461295 Aurora, CO 80046


어머니 주일

2022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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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주일의 유래와 풍습 및 관련 성경자료" 출처; http://mission.bz

어머니 주일의 유래 어버이 주일의 원래 명칭은 어머니 주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본래 취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며 어머니의 은혜를 되새기기 위한 날이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더불어 부모로 서 아버지의 역할과 은혜도 항상 기억 해야 될 것이므로 이날을 어버이 주일 로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어머니 주일이 어버이 주일로 바꾸 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그 유래를 살 펴보면 어버이 주일은 본래 어머니 주 일이라는 명칭으로 미국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웹 스터 교회에는, 이 교회 주일 학교에 서 26년간이나 꾸준히 봉사해 온 자 비스(Jarvis)라는 부인이 있었다. 훌륭 한 주일학교 교사였던 그녀가 나이들 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가 르침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 선생님인 자비스 부인을 기념하기 위한 추도식 을 갖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멀 리 사는 자비스 부인의 딸을 추도식에 초청했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자비스 부인의 딸 안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대에 응했다. 추도식이 있던 날, 식순의 하나로 안 나에게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에 대하 여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다. 그때 안 나는 그녀의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 말씀을 가르 치면서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에 감사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늘 생각 해 보라고 했던 것에 대하여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카네이션 꽃을 추도식 제단

에 바쳤다. 추도식에 모였던 사람들은 자비스 부인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 천하는 안나의 말과 태도에 크게 감 동을 받았다. 그래서 추도식에 참석했 던 사람들은 이 날을 어머니의 사랑 을 기리는 날로 정할 것을 그 자리에 서 결의 하였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어머니 날 운동 은 특히 부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다 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백화점 왕 으로 불리는 존 와너메이커도 이 운 동의 취지에 적극 동의하여 그 활동 을 도왔다. 그는 1908년 5월 둘째 주 일에 자신이 경영하는 백화점에서 어 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는 모임을 주최 하기도 했다. 미국 역사에 있어서 험난했던 시대 의 어머니들은 지혜와 용기로 가정 생 활을 이끌어 감으로 현재의 미국을 이룩하는데 큰 힘이 되었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어머니 날' 운동은 금 새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다. 이러한 사회 여론이 형성되자 1914 년 미국 국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 머니 주일로 정하여 이 날을 기념일 로 지키기로 결정하였다. 어머니 주일 은 그후에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또한 중요함이 강조되면서 그 명칭이 어버이 주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기 까지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어버이 주 일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 6 월 15일 구세군에 의해 어머니 주일을 지키면서부터 였다. 초대 대통령이었 던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 주일의 정 신을 일반 대중에게도 전한다는 의미 에서 5월 8일 (1955년 당시 어머니 주

일)을 어머니날로 제정, 공포하였다. 그 후 교회에서는 1960년 어머니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개칭하여 어머니뿐 아 니라 아버지의 은혜도 기리는 날로 삼 았으며 그 이후 1974년에 이르러 정부 에서도 어머니 날을 어버이 날로 개칭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 유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 주 일은 일반인들의 기념일로 함께 지켜 지고 있다.

이제 이런 어버이의 날을 정하여 부 모의 은혜를 새삼 기리고 부모께 대하 자녀로서의 자신의 태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절기가 교회에 있는 것은 매 우 선한 전통이라 하겠다. 물론 일년 365일 부모를 기려야 하겠지만 이 날 을 기점으로라도 부모께 대한 자세를 새로이 가다듬어야 하겠다.

풍습

(1) 부모의 의무 자녀를 양육함(골 3:21) 자녀를 교육함(신 6:7; 잠 22:6) 자녀를 훈계함(잠 23:13) 자녀의 잘못을 징계함(잠 13:24) 자녀를 위로함(사 66:13) 자녀를 다스림(딤전 3:4) 자녀를 사랑함(딛 2:4)

어버이 주일의 풍습으로 가장 대표 적인 것은 부모님의 가슴에 빨간 카네 이션을 달아드리는 것이다. 감사의 꽃 인 카네이션은 어버이 주일을 유래케 한 자비스 부인이 좋아하던 꽃으로, 자비스 부인의 딸 안나가 어머니의 추 도식에서 제단에 이 꽃을 바쳤던 것에 서부터 이 풍습이 유래되었다. 원래 카네이션은 부모의 사랑과 은 혜에 감사하는 자녀들이 자신의 가슴 에 달았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사 람은 빨간색 카네이션을, 부모님이 돌 아가신 사람은 흰색 카네이션을 가슴 에 달아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 사드렸다. 그러나 그후에 부모님이 돌 아가신 사람도, 비록 부모님은 돌아가 셨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늘 가슴속에 살아있다는 뜻에서 붉은 카네이션을 달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자녀들의 가슴에 달던 카네이션을 자녀들이 달지 않고, 부모 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정성껏 섬기겠 다는 뜻에서 오늘날과 같이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 드리게 된 것이다. 이때 꽃과 함께 정성이 담긴 선물을 부모님 께 드리기도 했다.

관련 성경 자료

(2) 자녀의 의무 부모님께 순종함(창 28:7) 부모님을 공경함(출 20:12) 부모님을 기쁘게 함(잠 15:20) 부모님을 사랑함(창 46:29) 부모님을 돌봄(창 45:9-11)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함(딤전5:4) (3)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 1. 좋은 영향 바른 행위의 본을 보임(왕상9:4) 신앙의 본을 보임(대하 17:3,4) 정직의 본을 보임(대하 24:4) 2. 악한 영향 악행의 본이 됨(왕상 22:52) 자식을 꾀어 악한 길로 행하게 함(대하 22:2,3) 세상 풍속을 쫓음(엡 2:2) 우상 숭배의 본이 됨


어머니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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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2일

(렘 9:14; 겔 20:18) 불순종의 본이 됨(암 2:4) (4) 자녀 교육의 바른 자세 자녀는 하나님이 준 선물이라는 인식을 가짐(시 127:3)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켜야 함 (출 2:7-9)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해야 함(잠 22:6,15) 부지런히 가르침(신 4:9) 항상 언제든지 가르침(신 11:19) 사랑의 채찍으로 가르침(신11:19)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하지 않음(행 20:32) 자발적으로 주님을 따르도록 가르침(요 6:60-71) 먼저 믿음의 본을 보여줌 (딤후 1:5) (5) 부모의 징계 행할 바를 알게 함(잠 22:6) 자녀의 미련을 쫓아냄(잠 22:15) 자녀의 영혼을 구원케 함 (잠 23:13,14) 자녀의 유익을 위해 필요함

(히 12:8-10)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함(엡 6:4) 악한 마음으로 하면 안됨(잠 19:18) 노엽게 해서는 암됨(골 3:21) 생명의 길로 인도함(잠 10:17) (6) 부모의 징계에 대한 자녀의 자세 훈계를 지켜 행함(잠 13:18) 명철을 얻기에 주의함(잠 4:1) 업신여기지 않음(잠 15:4) 귀 기울여 들음(잠 23:12) (7) 부모의 잘못 편애(창 25:28) 허영(에 5:11) 자녀의 죄를 방치함(삼상 3:13) 자녀를 노엽게 함(엡 6:4) (8) 성경의 가정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 (창 2:22-25) 사회의 기본 단위(수 13:15-31) 생명과 출산과 보호처(창 1:22) 자녀 양육의 터전(신 6:6-9) 신앙 교육의 터전(신 4:9) 기쁨과 안식의 처소(시 128:3)

노년의 의지처(딤전 5:8) (9) 성경에 나타난 부모의 실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창 18:18,19) 자식을 편애한 부모 이삭과 리브가(창 25:28) 경솔히 맹세한 아버지 입다 (삿 11:30-39) 거룩한 어머니 한나 (삼상 1:19-28) 엄하지 못한 아버지 엘리 (삼상 2:22-25;29) 자식을 잃고 비통해하는 아버지 다윗(삼하 18:32,33) 정직히 행한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대하 27:2) 딸에게 살인을 시킨 어머니 헤로디아(마 14:8) 자식을 용서한 탕자의 아버지 (눅 15:17-24) (10) 효를 행한 자녀의 실례 식물을 주어 공궤(供饋)한 요셉 (창 47:12) 환난중에 가족을 피신시킨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새성구 9/23/21

다윗(삼상 22:3,4) 모친을 위해 자리를 베푼 솔로몬(왕상 2:19) 부모에게 먼저 예의를 갖춘 엘리사(왕상 19:20)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 요나답의 아들(렘 35:8) 부모님께 순종하며 받든 예수 (눅 2:51) (11) 노인을 공경해야 할 이유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임(레 19:32) 연약한 자이기 때문(신 28:50) 성숙한 지혜를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임(왕상 12:6-8) 하나님을 경화하는 삶을 산 자이기 때문임(시 34:11-14) 의로운 길을 걸어온 자이기 때문임(잠 16:31) 후손들을 돌본 자이기 때문임 (딤전 5:4) 영적 교훈을 가르쳐 주는 자이기 때문임(딤후 1:5)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이기 때문임(벧후 1:12-1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5-6)

제공: 박정순 원로사모(실로암장로교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제공: 서선녀 사모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10분 성경 한권 읽기 시리즈

2022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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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애가 예레미야 애가의 기록 연대와 배경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의 멸망 직후 포로 기간 초기에 기록되었습니다(렘39, 52).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뒤 (BC 588, 1월부터 586 7월까지) 7월 19일 에 성은 함락되었고, 그리고 성전은 8월 15일에 불탔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의 멸망 직후 그의 동족들에 의해 애굽에 포로로 잡혀가기 이전에 이 다섯개의 애 가를 지었을 것입니다(렘43:1-7).

예레미야 애가의 개론과 제목 예레미야 애가는 한때 웅장했던 예루살 렘 성이 바벨론의 군사들에 의해서 잿더 미로 변해버린 것을 장례식을 통해서 묘 사합니다. 다섯 편의 애가는 답관체 형식 (히브리의 알파벳 첫 글자로 시작하고 각 절들을 그 다음 알파벳 글자로 시작하여 그 순서에 따라 끝 글자까지 기록함)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인생의 모든 희망이 무 산되는 죽음과 파괴의 와중에서 그 비극 을 하나님의 미래의 희망으로 위로를 줍 니다. 본서의 3장 23절에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라고 외치면서 예레미야는 승 리의 소망을 노래합니다. 본서의 히브리 제목은 1, 2, 4장의 첫 단 어인 ‘에카(Ekah) 즉 “오, 어찌하여!” 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헬라어 제목은 ‘ 만가’ 도는 ‘비가’(Threnoi)인데 라틴 어 제목 ‘눈물’ 또는 ‘애가’(Threni) 는 헬라어의 제목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제롬의 벌게이트 역본(5세기 초 성경 66권 을 라틴어로 번역함)의 소제목은 ‘Id est lamentations Jeremiae prophetae’라 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영어 제목인 ‘예레미야의 애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의 주제와 목적 예레미야의 다섯 가지 애가는 세 가지 주제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두 드러지는 주제는 예루살렘의 대학살에 대 한 통곡입니다. 거룩한 성이 잿더미가 되 어 황폐해진 것,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 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에 대하여 슬픔입 니다. 두 번째 주제는 죄의 고백과 하나님 의 공의에 대한 인정, 그리고 유다를 향한

거룩한 심판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주신 미래의 회복에 대한 희 망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 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 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 이 크도소이다”(3:22-23).

예레미야 애가의 핵심 구절과 핵심 장 ▶핵심 구절 : “2:5-6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모든 궁을 삼키 셨고 견고한 성들을 훼파하사 처녀 유다 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성막을 동 산의 초막같이 헐어버리시며 공회 처소 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 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 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 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 이 크도소이다.” ▶핵심 장 : 예레미야 애가 3장은 파괴와 황 폐 그리고 혹독한 절망을 기록한 나머지 장들 중 한 가운데서 불끈 일어서서 하 나님의 약속들과 성품에 대한 확고한 믿 음을 붙들고 있습니다. 특별히 3:22-25절 은 1, 2, 4, 5장의 암울함과 대조되는, 하 나님의 은총에 대한 엄청난 믿음을 표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6세기 후에 같은 성을 보면서 우셨던 선지자, 그리스 도의 모습의 한 예표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 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 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 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 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23:37-38).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처럼 예루살렘의 운명과 죄로 인해 초래된 인간의 고통에 개인적으로 동참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애가는 인간의 슬픔을 잘 아시는 그리스 도의 생애와 사역을 보여주는 요소들을 다수 포함합니다.

그는 아픔을 겪으셨고(1:12, 3:19), 멸시를 받으셨으며 적들로부터 조롱을 받으셨습 니다(2:15-16, 3:14, 30).

예레미야 애가의 전체 내용 개관 히브리 원문에는 예레미야 애가의 첫 네 장들은 알파벳 순서를 따른 답관체 (alphabetic acrostics) 형식으로 기록되 어 있습니다. 1-2장, 4장의 22구절들의 첫 글자들이 히브리 알파벳의 22글자의 순서 를 따르고 있습니다. 3장은 전체 66구절로 되어 있는데, 3 구절씩 히브리 글자의 순서를 따르고 있 기 때문입니다. 5장은 22구절로 되어 있 기는 하지만, 답관체 형식의 시는 아닙니 다. 본서가 답관체 형식으로 정교하게 기 록된 이유는 애가에 묘사된 격정적이고 극적인 슬픔을 강조했을 수도 있고, 또는 암송이나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었 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예레미야는 임박한 심판에 대한 그의 경고 때문에 핍박과 멸시를 받 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 현실이 되었 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몰락 을 그들과 함께 애도하였습니다. 이 애가 들은 사악하고 목이 굳은 백성들에게 통 렬한 메시지를 전하도록 사명을 받은 예 레미야의 예민한 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 다. 슬픔에 사로잡힌 예레미야의 다섯가지 애가들은 다음과 같이 이름 붙여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1장): 1장은 예레미야 의한 애곡(1:1-11)과 의인화 된 예루살렘 에 의한 애곡(1:12-22)으로 구성되어 있습 니다. 예루살렘 성은 그 흉악한 죄로 인해 서 황폐하게 되었고 그 대적들은 “그 황 적함을 보고 비웃었”습니다(1:7). 예레미야 는 하나님께서 비탄스러운 처지를 돌아보 시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2장): 2장에서는 예루살렘 의 황폐로부터 그것의 파괴에 대한 구체적 인 묘사로 그 주제가 바뀝니다. 하나님께 서는 바벨론인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 셔서 모든 종교적인 관행들을 철폐하셨고,

정석현 목사

시온장로교회

제사장들, 선지자들, 왕들을 흩으셨고, 성 전과 궁궐들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긍휼을 구하는 기도 (3장): 3장의 첫 18 구절들에서 예레미야는 그의 백성들의 비 탄과 절망을 묘사하면서 그 아픔을 나누 었습니다. 그러나 19-39절에서는 이스라엘 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히 여 기시는 사랑을 숙고하면서 급작스럽게 분 위기가 바뀝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깊 은 슬픔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서 구원해 주실 것과 예루살렘의 비참한 형편을 돌 아보실 것을 호소합니다. 예루살렘의 포위 (4장): 예레미야는 예루 살렘의 멸망의 원인들을 열거했는데, 특별 히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와 인간적인 수단을 의존한 그들의 우매함을 지적했습 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사건 을 재음미하면서 부한 자나 가난한 자의 고통과 기근을 회상했습니다. 본장은 에 돔에 대한 미래의 심판과 예루살렘을 향 한 소망의 짧은 글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회복을 위한 기도 (5장): 예레미야의 마 지막 애가는 백성들의 통탄스러운 형편을 애처럽게 묘사합니다. 그들에게 대한 형벌 은 끝이 났고,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의 회 복을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예레미야 애 가서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목 회자들이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두 마 음, 즉 당신의 백성과 교회를 향하신 거 룩과 공의 그리고 긍휼과 애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언해 주기를 기대하고 계시리라 생각됩 니다. 이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기 때문에(마12:39, 16:4) 피리를 불어도 춤추 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이기는 합니다(마11:17). 그러나 예수님 께서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 을 가야 하리니…”(눅13:32-32)라고 말씀 하셨듯이 이 하루도 내가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갑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배학 강좌

2022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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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후에는 하단해야 하나요?” * 기도를 맡은 분이 기도를 마친 후에도 예배가 끝날 때까지 성단에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하나요? * 예배 역사에 평신도가 성단에서 기도한 다음 회중을 바라보고 축도가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던 기록이 있나요? *성단에서 자신의 임무가 끝난 사람은 회기중석으로 내려오는 것이 예배 법규에 어긋나는 것인지요?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중세교회는 성직자의 권위와 그 위

할 만한 성도가 없는 교회에서는 동행

행에 대한 안내를 성단 아래서 수행하

에서 마주 바라보고 앉아 있다는 것

상을 철저히 강조하면서 모든 예전의

한 조사나 전도사 또는 장로에게 기도

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천주교의

은 본인이나 회중들에게 매우 곤혹스

집례를 오직 신부들에 의하여서만 가

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눈

현실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의 많

러운 일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요즈음

능하도록 하였습니다. 고해성사와 같

을 감고 원고도 없이 기도를 하는 것

은 개혁교회에 평신도의 참여를 권장

에 이르러 예배 인도자와 설교자가 다

은 의식에서도 평신도들은 반드시 신

은 한국말에 익숙하지 못한 선교사들

하는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

른 경우, 인도자는 자신의 임무가 끝

부를 통하여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하

에게 매우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

습니다. 이제 우리의 한국교회도 예배

났을 때에 단 아래 회중석에 앉아서

나님 앞에 드려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

습니다. 그 후에 교회가 성장하고 집사

가운데 평신도의 기도와 성경봉독 등

말씀을 경청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

습니다. 드디어 종교개혁은 이러한 모

장로들을 임명한 뒤에도 그들에게 으

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발견된 문

습니다. 말씀은 귀로 듣는데 끝나지

순을 지적하면서 누구나 하나님 앞에

레 기도를 맡기게 된바 있습니다.

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아니하고 눈으로 보면서 경청하는 것 이 원칙입니다. 그러기에 설교자의 후

인간을 통하지 않고 직접 기도할 수 이렇게 하여 정착된 공적인 예배에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이 기도의 내

면만을 쳐다보면서 설교를 내내 듣는

서의 평신도의 기도는 벌써 한 세기를

용과 더불어 기도 후 성단에 예배가

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관습임에 틀

넘어 우리의 교회 안에 뿌리를 내렸습

끝나도록 앉아 있는 관행에 대한 문제

림없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개혁교회도 주일의

니다. 사실은 여기에 대해 반대 의사를

입니다. 원래 평신도들에게 기도를 시

공식예배에서 목회기도만은 예배를 집

가지고 있는 신학자들과 목사들을 종

킬 때는 의자가 없던 시절 그대로 마

어느 설교학 교수는 “가톨릭의 미

례하는 목사가 직접 감당하는 부분으

종 만날 수 있고, 어떤 교회는 주일 예

룻바닥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기도

사는 신부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드리

로 고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독 한

배에서 평신도의 기도를 허용하지 않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대형

고, 개신교의 예배는 목사의 눈동자를

국의 개신교만 이러한 개혁교회의 예

기도 합니다. 그러나 1965년, 제 2차

화되고 마이크를 사용해야 하는 것

쳐다보고 드리는 것”에 차이가 있다

배 관습을 벗어나서 평신도들이 예배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한 예전을 위

때문에 앞에 나와서 기도를 하게 하

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매우 깊은 의미

가운데 대표기도라는 이름으로 한 세

한 문헌이 나온 다음에는 평신도의 예

였고, 후에는 아예 예배위원의 한 사

를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의 예배 현

기를 넘도록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평

배 참여가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하였

람으로 단에 오르도록 하는 역사적인

장에서 다시 음미하게 됩니다. 마찬가

신도의 기도가 우리의 예배 순서에 들

습니다. 그동안 미사를 집전하는 성단

변천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로 기도가 끝나면 기도자는 순수한

어와 정착된 이유에 대하여 한국교회

에 얼씬도 할 수 없었던 천주교 평신

초기 역사연구의 태두인 백낙준은 다

도들에게 큰 변화가 주어졌습니다. 이

목사를 비롯하여 예배의 순서를 맡

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초기 선

제는 평신도들이 성단에 올라가서 성

은 분들이 자신의 임무가 끝났는데도

교사들이 예배당을 순회하면서 기도

경봉독과 기도를 하게 되고, 미사의 진

축도가 다 끝날 때까지 회중의 정면

있다는 교리를 선포하고, 수많은 그리 스도인의 호응을 받은 바 있습니다.

덴버한인교회 Denver Korean Church

Denver Hallelujah Church

담임목사 최형락 YouTube 실시간 온라인 예배와 기도회 '덴버한인교회 주일예배' (오전 11시) '덴버한인교회 수요예배' (저녁 7:30) '덴버한인교회 새벽기도회' (화-토 아침 6시)

평신도로 내려와서 설교자를 바라보 면서 말씀을 정면에서 경청하도록 함 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 주일예배: 오전 11:00

예 수요기도회: 저녁 7:30 배 새벽기도회: 아침 6:00 안 EM 예배: (주일) 오전 10:00 내 유아/어린이부 예배: 오전 11:00 8556 E. Warren Ave. (303) 717-0279 Denver, CO 80231 www.denverchurch.com


문서 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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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터

2022년 5월 12일

18

하나님뿐이니라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책망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육 신에 속하여 서로에 대해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주장하고,

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 님뿐이니라”(고전 3:6-7)

자랑하며, 고집을 세우고,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려는 육신에 속한 성품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집중해야 할 분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전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하나님께 집중하지

그들에게 어떤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 나 는 누구파다” 등 사람의 이름을 자랑했습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사역자들을 추

못하고 사람에게 집중하니 시기와 분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연합하여 하나되는 공동체가 됩니다.

앙하고 그들에게 집중했습니다. 특히 교회안에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목사를 집중하기가 쉽습니다. 목사의 “시기와 분쟁”은 고린도교회의 이야기지만 오늘날 지상에 있는 교회들의 이야기

설교와 목양에 따라서 교회를 이곳저곳으로 옳기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유

입니다. 교회안에서 “나는 누구의 편”이라며 특정한 사람을 옹호하고 반대편에

트뷰에서 인기있는 설교자들을 통해 감동적인 설교를 듣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끼

선 사람들과 다투고 분쟁합니다.

친 그 설교자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감동적인 설교를 전한다 할 지라도 설교자를 추앙하면 안됩니다. 그분이 예수님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성도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시기하고 질투하며 열등감을 갖기도 합니다. 교회에 나올때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차를 타고 왔는지, 남편이

사람에게 집중하면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찾아오면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큰 집에 사는지, 자녀가 얼마나 출세했는지 서로 비교

믿음이 흔들려 낙심하고 맙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여 단단한 식물도 잘 소화시키는

하여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사람에 집중하며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쌓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워나가시는 일에 집중하여 하 나되고 연합된 교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

어떤 분들은 목사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또 어떤 분들은 성도들에게 인정받기 위 해 “시기와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집중하여 일어난 고린도교회 의 시기와 분쟁은 오늘날 지상교회의 이야기이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야기일 수 도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나에게 집중하지 말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와 아볼로는 심고 물을 주었을뿐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

니다.


진리의 샘터

2022년 5월 12일

19

아이들은 교회의 현재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크신

다. 이 단어는 ‘젊은이' ‘늙은이'와 마

니다. 다음세대니까 지금 교회에서의 중

은혜가 독자분들의 가정 위에 항상 함

찬가지로 높임말입니다. 어린이를 새 사

심은 아닌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리

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람으로 존중하며 대접하라는 의미가 담

고 미래이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강요당

겨 있습니다.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다른 모습의

지난 5일은 어린이날 100주년이었습니 다.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의 어린이날

억압이요 조종이 될 수 있습니다.

보다는 Mexico의 Cinco de Mayo 가

이러한 어린이날의 의미는 교회에서

더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

도 다시 되새겨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

어린이는 교회의 다음 세대가 아닙니

만 저희 교회에서 어린이날을 기념하며

합니다. 오늘 날 많은 교회들이 어린이

다. 교회의 현재입니다. 나중에, 미래에

지난 1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린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많은 투자를

교회의 멤버가 되고 주축이 되는 것이

이들이 찬양 율동, 성경 봉독, 기도 순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아니라 지금 교회의 한 지체입니다. 그

서들을 맡아서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올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리고 교회의 한 지체로서 마땅히 존중

어린이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께서도 어린 아이들을 받아주시면서 아

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존중하려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들에게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 어린이문화연

다.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

대의 이주영 대표님은 우리가 당장 현

역은 아이들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

실에서 어린이를 존중하려면 어린이 의

주는 것입니다.

견을 정말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말씀하

한국의 어린이날은 세계 최초로 어린 이 해방을 선언한 날입니다. 사실 요즘 에는 이러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보다는

십니다. 한인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이 자

단순히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주고 바쁜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신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거

나날을 보내고 계신 부모님이 하루 시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어린이들에게

의 없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들이 결정한

간을 내서 놀아주는 날정도로 밖에 인

투자를 하면서 어린이들은 교회의 미래

대로 따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개

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의미로 이렇게

그것은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념보다 어린이가 억압에서 벗어나 존중

말하는지는 알겠지만 이 말에는 우리의

안에 어린이들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어

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을 기억하는 날입

무의식적인 생각이 포함이 되어 있을 수

린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

니다. 어린이 또한 한 인격체로서 존중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말을 바꿔야 한다

한지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떻

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옛날

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을 (청소년도 포

게 될까요? 만일 교회 당회가 일년에 한

에는 어린이를 ‘아이놈' ‘아해' 등으로

함) 우리의 미래, 혹은 다음 세대 (next

두번씩 어린이들을 불러서 그들의 생각

불렸는데,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에

generation) 이라고 말하다보면 지금

을 듣는다면 어린이들이 인식하는 교회

‘이'를 붙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습니

현재에서 배제되는 실수가 생길 수 있습

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가 될까요?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S. Ceylon St.

S. Biscay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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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ampden Ave.

유지훈 목사 참빛교회 이러한 모습은 교회 뿐 아니라 가정 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집안 사정을 숨기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족의 한 사람으로 보고, 권리를 인정해 주고 집안 사정을 정직하게 나눈다면 가정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요? 방정환 선생님은 “아이들한테는 항상 보드랍게 자세히 설명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 린이를 항상 대등한 관계에서 독립된 인 격체로 대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사랑하십니 다.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가정이 회복 되는 길 중 하나가 서로 존중하며 나아 가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한 인격체로 존 중할 때 그 가정은 회복 될 것입니다. 어린이가 교회의 단순히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임을 강조하며 나아갈 때 어린 이들은 그 교회를 자신의 교회로 인식 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을 우 리가 어떻게 대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 고 존중하며 아름다운 가정, 또 아름다 운 신앙의 가정을 이루어 나아가기를 소 망합니다.

참빛교회 YouTube Channel: https://tinyurl.com/TLCCYouTube

주일 예배 12:00PM 주일 학교 12:00PM

영어성경공부 Zoom: https://tinyurl.com/TLCCZoom Password: tlcc

영어 새 예배 공동체 10:30AM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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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20

2022년 5월 12일

주님이 거하시는 곳 우리 인간의 생각은 항상 육신적이 고 가시적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생 각하지 못하고, 사실 육신의 범위 밖 의 일을 알 수가 없다. 생각뿐 아니 라 경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고 있 는 경험이란 항상 육신적이고 감각적 이기 때문에 육신이 느끼지 못하는 세 계를 경험하기에는 상당히 제한을 받 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세상 에 살지만 육신이 갈수 없는 곳에도 상상의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으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수도 있다. 그 래서 구름 위를 날아가 보고 바다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보려고 한다. 하 지만 육신을 가진 우리는 항상 제한 된 시간과 공간에서 산다는 것을 잊어 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우리의 생각 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크고 깊으 시다. 우리의 생각은 땅이고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 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 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 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8,9). 우리는 항상 우리의 생각이 깊지 못 하고 잘못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 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의 생 각을 맞추고 따르기 위해서 항상 준비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 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세상 밖에서 이 세상 안으로 오셨고 육신 밖에서 육신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 분

이 육신으로 오시기 위해서 처녀 마리 아의 배를 잠시 빌려서 오셨지만 그분 은 흙에서 오신 분이 아니시고 흙 밖 의 세계에서 흙 안으로 들어오신 분이 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그 분의 생각은 항상 다르다. 예수님은 33년 육신의 생애 전체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사셨다. 어려서 헤롯의 광폭한 살인명령을 피해 잠시 이집트 땅을 밟은 것 외에는 팔레스 타인을 벗어나 본 적이 없으시다. 어 떤 땐 걸어서 때로는 배를 타고 다니 셨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지방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런 발걸음과 자주 만났고 따르고 동행하기도 했다. 그래 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사람들에게 는 행운이고 기적이었다. 예수님이 오늘은 이 동네에 온다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기 다리거나 대기하고 만났다. 예수님을 만나면 하늘의 세계를 볼 수 있고 들 을 수 있으며 먹을 것도 걱정할 필요 가 없고 재수가 좋으면 병도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원했다. 어느 날 한 서기관이 이런 계산을 하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따 르겠노라고 고백을 했다. 내 재산과 직 업을 유지하는데도 별 방해받는 것도 없으니까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날이 밝으면 일찍부터 수많은 무리가 예수 님을 따르는데 나도 한 번 만나봐야 지!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들, 제사장 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척 하지만 항 상 트러블을 유발했지만 나는 다르다 는 것을 그분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 젊은이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 하고 싶었다. 하여간 이 서기관인 청년은 예수가

어디를 가든지 따르겠다고 말 하자 예 수님은 벌써 그의 속셈을 눈치 채고 사람이 알 수 없고 감을 잡을 수 없 는 말을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 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18) 언제 예수님께서 여우나 새들 보 다 더 가난해 지셨나? 몸은커녕 머리 를 베게삼고 누울 자리가 없이 가난 한 선생님이 되었단 말인가? 듣던 소 문 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세계를,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는 줄 알았 는데......, 그래서 사실은 제사장, 서기 관, 바리새인들 까지도 속으로는 좋아 하지 않았던가? 드러내놓고 따라다니 던 사람들은 떡 얻어먹었지, 병 고침 받았지, 죄 사함 받았지, 그리고 이제 예수가 왕만 돼봐라! 세상에 부러울 것 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텐데……, 그런 랍비가 홈레스가 되어 머리 두실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다니? 사람들 사이에 소문은 베다니에 사 는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예수가 오 시기를 항상 목을 늘여 기다리며 대접 을 했고, 삭개오의 집에서도 친구들을 초대해서 대접을 융숭하게 하였고 심 지어 한 바리새인이 저녁식사에 초대 한 적도 있고, 가나 지방에선 물로 포 도주를 만든 기이한 일을 행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성대한 잔치를 했는데 아니, 머리 둘 곳이 없으시다니?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신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뜻은 무엇이 란 말인가? 예수님의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이기에 이런 어려운 말씀을 하시 는가? 예수님이 가시려고 하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예수님은 베다니 에 가시면 발 뻗고 누우실 자리가 있

오성관 원로목사 벧엘교회

었지만 거기가 예수의 목적지는 아니 었다. 예수님은 가다라 지방에도 환영 하는 사람이 있었고 갈릴리 호숫가에 도 그 어디에도 예수를 환영하는 사람 은 많았지만 그곳에 안주하지 않으셨 다.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가야바 대 제사장의 집에도 가셨고 빌라도 법정 에도 가셨고 골고다 십자가에까지 가 셨지만 거기도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 는 아니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무덤에도 내려 가셨으나 무덤도 그를 붙잡아 두지 못 했고 사흘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 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 러면 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 예수의 최종 목적지인가? 그곳도 아니시다. 예 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직도 여전히 최종 목적지가 남아 있 다는 것이다. 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 하기 전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당신의 머리를 둘 곳이 없으신 것이다. 그분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감히 말하건 대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 문을 열면 그분이 들어오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 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 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 라”(계 3:20)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 오 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속에 들 어 오셔서 발을 쭉 뻗으시고 먹고 마 시고 머리를 두시기 원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우리 주님의 임 재와 실제이시다.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2년 5월 12일

21

기도의 본질 오늘날

기도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팽배해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 위기를 부채질한다. 한국교회를 새롭게 갱신하 고 개혁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하게 실 천되어야 할 전략들 중 하나는 참된 기 도 본질이 무엇인지를 회복하고, 그것 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 는 것이다. 기도하라고 명령하시는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 신다(살전 5:17).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 도하라고 명령하신다(엡 6:18, 개역). 구 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명령하신 다(마 7:7).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또는 “기도하기를 권면합니다” 또는 “기도하면 괜찮을 겁니다”라고 말씀 하시지 않으신다. “기도하고 구하라”고 명령형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기도 는 ‘어명'이다. 온 우주의 왕이요 임금 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기도는 어명이기에 우리는 반 드시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어명이기에 우리의 옵션이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 수과목이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다 는 것은 어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나 님의 주권과 왕권에 대한 도전이며 반 역이다.

기도를 방해하는 질문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미래에 될 모든 일을 다 정 해 놓으셨는데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가?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절대 주권적인 섭리로 이 우주와 역사 속에서 되어질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다 작정

해 놓았다면, 과연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일견 일리가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이 미래에 될 모든 일들을 이 미 다 알고 계시다면 우리의 기도가 무 슨 효과가 있는가?” 위의 것과 비슷한 질문이다. 혹 하나님이 만사를 다 작정 하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만사가 어떻게 굴러갈지를 다 알고 계시다면, 기도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역시 일견 일리가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 인지를 이미 다 알고 계시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우리가 기도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기도하지 않 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다 채워주실텐 데…” 역시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다.

기도의 본질에 대한 오해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사실상 기도 의 본질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 다. 정말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 는 것이다. 이분들은 기도를 도깨비 방 망이나 자동판매기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본질을 우리편에서 구하고, 하나님편에서 응답하는 것에만 국한시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 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문하고, 하나 님은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이라고 이 해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주문과 채 움, 청구와 공급, 요청과 응답으로 특징 지워지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일종의 거래관계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를 이렇게 오해하기 때문에 떼를 쓰고, 악을 쓰는 기도가 횡행한다. 하나 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죽기 살기로, 간 절히, 힘을 다해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 다. 그래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금식 기도, 철야기도, 백일기도, 일천번제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하시지 않더라도, 기도하는 것으로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다. 우리의 간구와 소 원과 사정과 탄식과 신음과 찬양을 들 으시고 인격적으로 소통해 주시는 하나 님을 우리는 뵙게 되는 것이다.

기도의 참된 본질 물론 기도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하 나님이 채우시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반 드시 알고 기억해야 한다. 첫째, 기도는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 고 매달리는 행위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공경하는 행위이다. 우 리를 아들로 그리고 딸로 삼으신 아버 지를 우리의 영의 아버지로, 영원한 아 버지로 인정하고 공대하는 일이다. 요구 와 응답이라는 절차가 없어도 된다. 그 저 아버지! 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을 우 리의 아버지로 대하고 예를 다하는 것 이 바로 기도이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바로 예배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기도하 지 않는 성도는 불효자에 가깝다. 부모 에게 안부인사도 드리지 않고, 부모에게 예를 다하지 않는 영적 불효자와 같다. 둘째,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 로 누리고 Enjoy 하는 것이다. 우리를 즐거워하시는 아버지를 즐거워하는 행위 이다. 우리를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기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안식이 온다. 기쁨이 넘친다.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긴 장감이 사라진다. 여유를 얻게 된다. 특 정한 기도 제목에 아버지가 혹시 응답

셋째,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 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기도하면 하나 님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기도하면 하나님 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기도하면 하나 님이 지금 신경을 쓰시며 하고 계신 일 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 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고, 하나님과 함 께 동역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 악의 세력과의 영적전쟁 에 동참하게 된다.

기도의 높은 경지로 기도를 자동판매기나 도깨비 방망이 로 이해하는 낮은 수준에서 이제 벗어 나서, 더 높고 깊은 경지로 들어가자. 아 버지를 공경하고, 누리고, 아버지의 일 에 함께 참여하는 차원으로서의 기도를 배우고, 실행해 가자. 그렇게 될 때 우리 는 왜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는 지,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지, 왜 무시로 기도하라고 하셨는지를 깨닫 게 될 것이다. 기도는 선물보다 선물을 주시는 그 분을 누리며 즐거워하는 것이 다. 기도는 거래가 아니라, 인격적인 교 제와 사귐이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9:8) 제공: 김성걸·김혜경 집사(덴버제자교회)


쉴만한 물가

2022년 5월 12일

22

(메타인지 3)

과잉확신과 영적파산 “내 생각이 항상 옳아”

과잉확신으로 인해 그들이 기다리던 예

월한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탁월

“나는 내가 잘 안다는 것을 확신해”

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다.

한 메타인지 능력이 그를 준비된 사람으

“내 판단은 언제나 확실해”

그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

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다 알아”

님을 눈 앞에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흥섭 목사 써니힐국제학교 교장 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생각하며 자

바리새인과 마태의 메타인지

이런 생각들은 메타인지를 활성화시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적

지 못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지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오히려 유

생각이 항상 옳고 자신의 판단이 언제

대인들에게 죄인으로 멸시받던 세리 마

자신의 생각을 생각했을까?

나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태가 예수님을 만나서 그 분을 따르는

더 이상 자신의 판단의 오류에 대해 생

제자가 되었다.

마태는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백성들 없이 곧 바로 따를 수가 있었다. 의 재산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수탈

예수님은 세관에 마태가 앉아 있는 것

각하지 않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마태는 각각 어떤 식으로

하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

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예수님이 답이 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는 예수님이 그를 부를 때 아무런 주저

바리새인들은 성경도 잘 알고, 기도도

확신은 어떤 판단이나 주장에 대한 굳

을 보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성경

을 것이다.

은 믿음이다. 그 확신이 진실이나 진리에

지식도 많고 신앙생활에도 열심인 바리

근접할수록 그 확신에 대한 타당성이

새인을 부르지 않고 죄인으로 지탄받는

높아진다. 그런데 그 확신이 지나치면

마태를 부르셨다(마 9:9).

동족인 유대인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않는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것들로 낙인을 찍고 그를 대하는 태도에 소외감 인해 자신들은 하나님도 잘 알고 바르 을 느끼며 죄책감에 심히 시달렸을 것이 게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과잉확신을 하

진실과 진리에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왜 냐하면 자신의 모든 확신이 진리과 진 실에 근거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과잉확신은 메타인지의 적이다. 과잉 확신을 하는 한 더 이상 메타인지가 활

많이 하며, 금식도 하고, 구제도 빠지지

다. “돈이 우선이라는 나의 생각은 옳 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은가?”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

그들의 신앙생활은 율법주의적이고 형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죄인 식주의적인 것으로 진정한 신앙에서 나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

인 것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가고 싶었 온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믿음은 거짓

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결 되었으며 이로인해 영적으로는 죽은 사

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자신의

국 그를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만들었 람이 되었다.

인지 능력이나 판단 능력에 과잉확신을

예수님은 왜 바리새인을 부르시지 않

하는 사람들은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고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을까? 마태가

이에 반해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자신 이라고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시며 책망

없다.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장할 수

주저하지 않고 즉시 예수님의 부르심에

들을 의롭게 생각했다. 성경에 대해서도 하셨다(마 1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해박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 를 때닫지 못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생

을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

인간은 진리를 온전히 인식할 만큼 완전

그 이유는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주

이 자신을 과신하게 만들었고 예수 그 각을 생각하는 영적 메타인지의 능력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만한 사

님을 찾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태는

리스도가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나도 그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람은 패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

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이 들이 메타인지를 하지 못하게 만든 방

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

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 해요인은 그들 안에 있었다. 그것이 바

다. 그의 마음은 이미 예수님을 따를 준

한 것 같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로 과잉확신이다.

비가 되었을 것이다.

이 정말 바른 것인가?”라는 생각도 못

바리새인이 아닌 마태 교만한 사람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

만일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깨달아 율

한다.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

했을 것이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법주의와 형식주의를 벗어났다면 그들도

메타인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스스로

서 그를 부르셨을 때 즉시 일어나 그 분

주님이 기뻐하는 것인가를 돌아보지 못 마태와 같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 것

의롭다고 생각하는 한 자신의 죄를 돌

을 따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마태는

했을 것이다.

아보기 어렵고, 죄로 오염된 마음으로

이미 영적으로 이미 예수님을 만날 준비

사람과 사물, 그리고 어떤 현상을 보고

된 사람이었다.

판단할 때 그 판단이 맞을 가능성은 낮 아질 수밖에 없다. 성경에 보면 교만한 마음으로 비롯된

이다. 바리새인들은 영적으로 파산한 사 람들이다. 그 원인은 과잉확신으로 비롯

메타인지 능력에 있어서 마태와 바리 된 메타인지 능력의 저하다.

마태는 단지 돈 많은 죄인 세리가 아니

새인의 차이는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

라 자신의 생각을 생각하며 자신의 삶

았다. 마태는 성경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을 돌아볼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이 탁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았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제공: 김영옥 집사


좁은 길을 걸으며

2022년 5월 12일

23

우리의 삶이 황홀할 수 있는 이유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별 재미없이 삶 을 산다고 생각되십니까? 오래 전에 ‘다하라 요네코’라는 분 이 쓰신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라는 책 은 읽은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요네코는 열 여덟이 됐을 때 어머니의 죽음에 인생의 공허감과 허무, 그리고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고는 산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게 생각됐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리리 빨리 죽어서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다.” 그런 그녀는 어느 날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죽지는 않고 왼 팔과 그리고 오른쪽 손가락 2개, 두 다 리가 절단됐습니다. 다행이도 오랜 시 간 수술을 통해 목숨은 건질 수 있었 습니다. 요네코는 죽지 못하고 살아난 것이 육 체의 고통보다 더 컸습니다. 매일 수면제 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지게 하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병원 선교사 ‘맥클 로이’의 통역사인 ‘다하라 아키도시’ 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아키도시는 매일 병원에 찾아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전 도지를 전해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인가 훌륭한 일 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신 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살리기 위해, 행복을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당신이 이 일을 사실로 믿 고 받아들이면 승리 가운데 살게 될 것 입니다.” 요네코는 마음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아키도시를 보면서 ‘저 사람은 뭐가 그 리 행복해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신(神)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로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고 사람을 변화 시킬 수 도 있는 것일까?’ 요네코는 아 키도시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것을 자 신도 소유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 도 예수 안에서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 이 되었도다” 이 말씀에 마음에 큰 감동을 받습니 다. 그 순간 요네코는 자신의 오른팔에 손가락이 무려 세 개나 붙어 있다고 하 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게 느껴지게 됐 습니다. 그때부터 요네코는 ‘없는 것’에 집착 하지 않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게 됐습니다. 점차 그녀의 내면은 아름다워 졌고 그리고 바로 자신을 전도했던 다 하라와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아 행복 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으셨으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여전히 내 욕심을 따라 죄 가운데 행 하는 것 때문에 고통의 삶을 살았을 것 입니다. 하나님의 단 하나밖에 없으신 아들보다 우리들을 더 사랑하신 하나 님의 은혜로 우리들 모두가 구원을 얻 었습니다. 또 한 가지, 지금껏 하나님께서 함께하 시며 붙잡아 주시고 책임져 주신 은혜 가 없었다고 하면 어떻게 우리들이 여기 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모든 순간들이 다 에베센에셀의 하나 님께서 함께하시며 베푸신 은혜가 있었 기에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입니 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런 은혜를 잊는 순간 우리 인간은 교만 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삶의 기쁨도 잃 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범 하는 것입니다. 요네코의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습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감자 껍질을 벗기려 고 하는데 감자가 마치 손가락 세 개만 있는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꾸만 손 을 벗어나는 겁니다. 필사적으로 해보려 고 했지만 감자의 비웃음이 계속됐습니 다. 절망감이 몰려왔지만,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남편과 자녀를 주신 사랑의 하나님!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를 위해 감자 요리를 하게 도와주 세요.”

손창달 목사

덴버제일감리교회 담임

곧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감자의 반을 잘라 엎어 놓고 조금씩 조금씩 껍 질을 벗겨갔습니다. 그렇게 감자를 썰 때 마다 감사했습니다. 반찬을 만들어 가족 들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것에 다 감사를 했습니다. 감사하다 보 니 사는 것이 황홀할 정도로 행복했습니 다. 지금도 그녀는 자신의 몸을 사람들 에게 보이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힘내세요. 하나님은 나 같은 장애인 도 사랑합니다. 당신이 귀한 것을 잃었지 만 그래도 남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 자 신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 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면 삶은 여 전히 황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 을 보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빛 과 어둠을 좌우합니다. 없는 것보다 있 는 것에 더 감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 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과 그리고 그런 주님 안에서 나 자신을 향한 하나 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라볼 수만 있다 고 하면 우리들은 살아가는 모든 것들 이 다 감사이고, 그러면서 산다는 것이 참 황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잠잠히 주님 바라보 시며 모든 일에 감사하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롬 5:17) 제공: 덴버제일감리교회 여선교회


야고보서 강해

2022년 5월 12일

5회

24

"두 마음을 품지 말라”(2) <야고보서 1:5-8>

우리가 보고 있는 5절은 4절과 연결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모든 일 에 필요한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 다. 야고보는 한 가지 지혜에 초점을 맞 추고 있습니다. 4절을 보세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 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도 부족이라는 말이 나옵니 다. 5절에 나오는 “너희 중에 누구든 지 지혜가 부족하거든”에서 나오는 부 족이라는 단어와 같은 것입니다. 지 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시련 에 이끌려가지 말고 시련을 주도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에 속 하는 것입니다. 시련에 대해 알고 모르 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에 이끌려 가는 것은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바 로 시련에 이끌려가지 말고 주도해 가 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험 한 시련 앞에서 가슴이 철렁 가라앉습 니다. 불안해 합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 지 않습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분명 하늘의 소망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오 늘 인생이 끝나도 기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시련 앞에서 정신을 차리지를 못합니다. 믿음 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야고보가 5 절에서 말한 지혜가 부족한 모습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43:2을 보세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 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 27:1)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 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너 무도 좋은 말씀입니다. 물에 빠져 죽을 수 있습니다. 불에 타서 죽을 수도 있습 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물에 빠 지지 않게 하십니다. 불 가운데로 지나 가도 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은 정확하게 압니다. 외우고 있습니다. 하지 만 정작 물 속에서는 두려워합니다. 불 속에서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알고 있는 말씀이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마음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분명 믿는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믿지 못하 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긴 것 같습니다. “예수님 나의 주님이십니 다. 내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고 고백합 니다. 모든 것에는 지금 당하는 시련도 걱정도 근심도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이 꺼져라 근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 는 두 마음입니다. 알고 있는 말씀은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 늘 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 다. 하나님은 지혜를 달라는 기도를 얼 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5절을 다 시 보세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 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 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 면 주시리라” 지혜를 달라는 기도는 지혜가 부족하 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날 사랑하는 자들이 내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제공: 김영자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내 판단은 부족합니다. 올바른 처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 앞에서 어찌할바를 모릅니다. 올바 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이런 기도를 얼마나 좋아하시 는 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런 기도를 하 는 모든 사람입니다. 후히 주신다는 것 은 넘치도록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 이상을 주십니다. 절대 꾸짖 지 않으십니다. 지혜를 달라는 어떤 기 도도 잘못됐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상3:5을 보세요.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 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 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 하라”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 이 응답하시는 장면입니다. 솔로몬은 지 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 다. 솔로몬의 간구대로 최고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솔로몬 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도 아낌 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꾸짖지 아 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 도가 바로 지혜를 달라는 것입니다. 오 늘 성령께서 말씀을 아는 지식위에 지 혜를 더욱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 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두 마음은 믿음으로 구하 지 않고 의심할 때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두 마음을 품

송병일 목사

한인기독교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 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 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 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 시기로” 호세아서 전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 함없는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는 성경입 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하나 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 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들 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호세아 선지 자의 아내는 고멜입니다. 아들 둘에 딸 하나까지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고멜은 끊임없이 세상으로 떠돌았습니다. 음행 을 저질렀습니다. 다른 남자를 사랑했 습니다. 그럼에도 호세아는 평생 아내 를 찾아다녔습니다. 끝까지 용서했습니 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한 번 자녀로 정하신 우리 를 결코 떠나시는 적이 없습니다. 우리 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오직 한마음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두 마음을 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 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 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믿음과 정반대의 단어가 바로 의심입 니다. 칼빈은 의심의 정의를 이렇게 내 렸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양쪽에 서 저울질하는 것을 나타낸다” 의심이 라는 것은 마음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입 니다. 왜 마음이 흔들릴까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 않으십니다. 호세아3:1을 보세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21) 제공: 김정애 권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잠 9:10)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변화프로젝트

2022년 5월 12일

39회

25

내적치유 가이드 제2부 기도 프로젝트

12장, 악몽으로부터 치유를 위한 기도 프로젝트

4. 상실한 마음에서 치유된 후에는 어 떻게 우리의 마음에 변화가 올까? 치유된 사람들은 더 이상 슬픔과 아 픔을 느끼지 않고 비탄 속에 잠겨 있지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다. 잃은 사람을 아픔으로 기억하지 않고 이전에 아프지 않았을 때처럼 정상 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또 하나님의 놀 라운 사랑과 능력으로써 치유된 것을 알 고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된다. 가진 것 에 만족하며 주님 안에서 치유가 가능하 다는 것을 알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 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또 하나님이 주신 미래에 대한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며 살게 된다. 주님만이 우 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더 욱 느끼면서 살게 된다. “주여 이제 내 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도와 주 시는 분이란 것을 알게 된다. “찬송하 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

영희 맥도날드 목사

서 나올 수 있는 길은 어떻게 주님을 사

로다”(고후 1:3~4).

(303)919-7492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

랑하느냐에 달려있다. 주님만 사랑하고

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바라보고 의지하라. 그렇게 할 때 주님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으로 외

트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찾는 것을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로움이나 고독은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목표로 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3).

나는 이 성경 구절로 끝을 맺으려 한다.

엇 인가를 제시해 준다. 마음의 평안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찾는 것은 예수님을 만날 때 찾을 수 있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

지만 그 평화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우

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

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리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지속될 때에 가

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능하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

음을 받았도다”(사 53:5).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

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

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강령이니라”(마 22:37~40).

9:23). 예수님께서 당신을 악몽에서 해방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 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 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참고: 상심한 마음에서 치유받는 방법에 관해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

더 배우려면 『치유: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

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을 위하여』 책을 읽기 바란다. 바란다

(사 43:2).

5. 아직도 눈물의 집에 갇혀서 비탄과 슬픔에 잠기어 아픔과 고통의 삶을 살 고 계신 분들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마음의 상처 라도 치유해 주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것을 막을 수도 있다. 우리가 치유받기를 원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주님이 우리의 사랑 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잃 어버린 사람을 그리워 하는 마음도 하 나님이 가져가 주시고 눈물의 집에서 나 올 수 있다. 비탄과 슬픔, 아픔과 고통에

제12장, 악몽으로부터 치유를 위한 기도 프로젝트 많은 사람들이 깨어있을 때나 잠잘 때 평안이 없다. 악몽을 꾸는 사람들은 잠자는 것도 무서워 한다. 평상시에 평안 을 느끼는 사람은 꿈도 더 평화롭다. 예 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로운 마음을 주시 는 분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평 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 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 14:27). 이 기도 프로젝

하실 수 있다.

1. 치유를 위한 제시 1) 하나님에 대해 알도록 성경을 읽으라. 예수님의 평안을 찾으려면 성경을 통 해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복 음서를 하루에 30분씩 읽어 주님을 배 우고 기도를 하루에 30분씩 하되 15분 은 예수님께 말하고 15분은 마음을 정돈 하고 침묵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연습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요 한복음 또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어느 면 에서 하나님에게 용서받아야 할 것이 있 는가를 위해서 기도하라. 예수님을 아직 모른다면 영접하는 기도를 하라. 하나님 을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되면 알게 될수 록 믿음이 생기고 마음의 평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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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2년 5월 12일

26

터닝포인트 - 모세 인생 터닝포인트 세번째 주인공은 모 세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살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죽을 뻔한 시간을 잘 넘기면서 놀라움을 경험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눈앞에 펼쳐 진 자연을 보면서 놀라움을 경험하기도 하도, 어떤 이들은 행운을 경험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누구에게나 그 놀라운 경험들은 평 생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또 그 놀라운 경험을 통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그 중에서도 우리 인생 의 놀라운 경험을 말한다면 바로 하나 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인생 은 놀랍게 변화됩니다. 그냥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변화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모세도 바로 하 나님을 만나면서 놀라운 인생의 터닝포 인트를 맞이하게 됩니다. 잘 아시듯 모 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갈대 상자 속에 담겨 나일 강가를 흘러갈 때 마침 강가에 나와있던 바로의 딸에게 발 견되어 목숨을 건지고 또 후에는 이집 트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됩니다. 그래 서 청년시절을 왕자로 어느것 하나 부러 울것 없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삽니다. 그 러던 어느 날 화를 참지 못해 사람을 죽 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미디안 광야 로 도망가게 됩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서 가장 낮은 자리로, 가장 안전한 곳에 서 가장 위험한 광야로 내몰리는 순간 이었습니다. 한 순간에 그의 인생은 완 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이러한 위협적이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한순간의

감사로 제사를 자가 그러므로 우리가드리는 긍휼하심을 나를때를 영화롭게 그의 받고 따라 하나니 돕는 은혜를 행위를 하는 자에게보좌 내가 얻기 옳게 위하여 은혜의 하나님의 보이리라 앞에 담대히구원을 나아갈 것이니라 (시 50:23) (히 4:16) 제공: 제공:전제히 전제히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잘못으로 내 인생이 깊은 나락으로 떨 어질때가 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하고, 혹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로 인 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 는 순간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고,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야만 하는 미래를 보 는 순간.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 구나… 라는 아주 절망적인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끝난 것 같은 인생도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희 망의 빛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을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아갔 습니다. 모세에게 꿈과 희망은 이미 사 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양 치기 일을 하면서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떨기나무 앞 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 다. 그때 모세의 나이 80세였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나이 80이면 양치기 를 하기에도 버거운 나이입니다. 이제는 양치기하는 것도 취미로 해야하지 직 업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힘든 직업입니 다. 한마디로 세상 어느 누가 봐도 모세 의 인생은 끝이었습니다. 이제 죽을 때 만 기다리면 되는 나이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니지요.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적당히 알아서 맞출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의 끝을 임의로 생각해 둘때가 있 습니다. 어떤때는 이때까지만 살면 좋겠 다 라고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 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 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시작을 우리 스스로 정할 수 없었듯이 모든 시작과 끝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 나님께서 “이제 끝!” 하시면 그때가 끝 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면 다시 시작입니 다. 우리는 흔히 병원에 가면 꼭 이렇게 말하지요. “나는 나를 잘 안다. 내 몸 은 내가 제일 잘안다.” 그런데 정말 내 가 나를 잘 알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은 나도 아니고 내 부모도 친구도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아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 님께서는 내가 진짜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 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80세의 모세를 부르 십니다. 왜냐하면 80세의 모세의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던 때였기 때문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은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를 때가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한번에 응 답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핑계를 대었습 니다. 말을 잘 못한다. 자격이 없다. 그 중에 모세에게 가장 큰 고민은 사람들 의 눈이었습니다. “80세나 먹은 말도 어눌한 늙은이의 말을 누가 믿어주겠습 니까?” 모세는 여전히 자신의 관점이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 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께서 여러 표증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 하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누추함과 어리석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말이나 가운데서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마땅히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엡것을 5:4)알리라 대답할 (골 4:6)

제공: 정순이 제공: 정순이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권사(임마누엘연합교회

제공: 제공: 김성애 김성애 성도 성도

전병욱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세상은 나에게 “넌 아직 멀었어, 너 는 안되… 가능성 없다…”라고 말을 하 지만, 세상이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서부터 자유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 터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의 부르심에 귀기울이시길 바랍니다. 그 것이 바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입니다. “내가 너의 발걸음을 인도하겠다. 내 가 너의 할 말을 알려주겠다. 어려움 가 운데 내가 너의 구원이 되겠다. 걱정하 지 말아라. 너는 할 수 있다. 내가 너 와 함께 한다.”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 서 우리를 부르시며 주시는 음성을 들 으시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여호와께 그 이름을 일하는감사하라 자로서 너희를 부르며권하노니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하나님의 선포하며 이름이 높다 하라 은혜를 그 헛되이 받지 말라 (사 12:4) (고후 6:1) 제공: 신민식·신경원 제공: 신민식·신경원 성도 성도


복음으로 살아보기

2022년 5월 12일

27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손재흥 목사 덴버에덴교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런데 오늘

이주하였던 나오미는 거기서 남편과

들레헴으로 왔는데, 오는 길에 “네

날 많은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가정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모압 며느리인

동서를 따라 너의 백성과 너의 신들에

어 단어는 “헤세드”라는 단어인데,

이 흔들리면 그 가정에 속한 개인의

룻과 함께 고향인 유다 베들레헴으로

게로 돌아가라”는 나오미의 강권하는

이 히브리어 낱말은 “긍휼이 여기

삶은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가정은 회

돌아왔다. 나오미가 모압 며느리 룻과

말을 들었다.

는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래

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정은 어떻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온

게 회복될 수 있을까?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 이가 나오미냐”고 하였는데, 그 때 나

룻기 4장 15절에 의하면, 룻은 그의

서 영어 성경 번역본들은, “헤세드” 그 때에 룻이 나오미에게 이렇게 대 답하였다.

오미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를 “steadfast love”나 “mercy” 로 번역하였다. 즉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긍휼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

여기며 변함없이 사랑하였고, 그 사랑

귀한 며느리”였다. 얼마나 귀하였기에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

이 나오미의 가정과 나오미의 삶을 회

무려 일곱 아들보다 더 귀하였을까?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

복시킨 것이다.

룻이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였으며 나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

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오미 가정의 기업 무를 자였던 보아스

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가정의 회복을 위해 일하시는 우

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여인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룻과 같

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나오

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

이 “긍휼히 여기는 변함없는 사랑”

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

을 결단하고 그 사랑을 행하는 자들

부르느냐”(룻기 1:20-21)

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

을 사용하신다. 언제나 나 자신을 앞

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

세우는 우리가 그런 초월적인 사랑을

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

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기 1:16-17)

그러나 우리를 언제나 긍휼히 여기시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 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

그런데 그렇게 허무하고 괴로웠던

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나오미의 인생이 며느리 룻으로 말미

자로다”

암아 완전히 회복되었다. 마라(괴로움)

룻이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였던 이유는, 룻으로 말

고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우리

였던 그녀의 인생이 다시 나오미(희락)

룻은 그 때 나오미에게 약속한 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

가 되었다. 그렇다면 룻은 시어머니 나

로, 늘 나오미와 함께 하였다. 그리고

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

오미를 위해 어떤 일을 하였을까?

룻기 3장 10절은 시어머니 나오미에

음으로 그 사랑을 행할 수 있다. 우리

대한 룻의 그 사랑을 “인애”라고 기

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록하였다.

서 “긍휼이 여기는 변함없는 사랑”

미암아 나오미의 가정과 그녀의 인생 이 회복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오미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해 한 것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남편 그

은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었다. 룻은

리고 두 아들과 함께 모압 지방으로

모압 지방에서 나오미를 따라 유다 베

31

을 결단하고 그 사랑을 행하여 보자. 여기서 “인애”로 번역된 히브리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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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있는 글

예수 헛 믿고 사는 사람들

28

2022년 5월 12일

진정한 신앙은 깊이에 있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王)이요 만주의 주(主)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을 세상의 권세자들이나 왕만큼 전혀 대우해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스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부터 입만 열면 우리의 왕이시여 라고 하지만 입술로만의 왕을 말하고 있을 때가 많다. 세상의 왕을 그렇게 허술하게 대하며 왕의 명령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너무나 함부로 대한다. 우리의 예배의 자세를 보면 안다. 정말 왕 앞에서 왕께 드리는 예배의 모습이 맞는가? 졸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지루하다 느끼며 예배하고 있다면 왕 앞에서 그 얼마나 무례한 모습일까? 사극을 보면 아뢰옵기 황송하오나라는 말이 가끔 등장한다. 과연 주님을 대할 때에 황송한 마음은 들기나 하는 것인지... 세상의 왕에게도 행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주 앞에서 서슴없이 행하는 것은 세상 패륜아나 잡배들이 행하는 모습들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그 동안 수십 년 믿으면서 얼마나 예수님을 나의 진짜 왕으로 모시며 살아왔는지... 예수님이 나의 삶에 진정한 왕이셨는지... 시도 때도 없이 무례하고 그 앞에서 악을 행하며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형제들과 다툼을 일으키고 거짓과 죄와 허물을 드러 내는 것이 감히 그분 앞에서 행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가? 세상의 권세 앞에서도 감히 그러지 못하는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런 모습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무례한 일인지도 모르고 산다면 예수 헛 믿은 것이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헛 믿고 있다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그러고도 많은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 설 때에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다. 그분의 섭리와 통치를 따른다는 말이다. 기왕에 예수 믿는 것인데 주님을 주님 되게 왕을 왕으로 모시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언제나 말로만 믿습니다를 외치며 삶은 거꾸로 가면서 그러고도 진짜 예수쟁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종은 종답게 살 때에 그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아직도 나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며 나의 왕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삶을 산다면 기분이 상할지는 몰라도 이는 100% 가짜가 맞다.☆자료/ⓒ창골산 봉서방

교회에 왔다 갔다 발만 담그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진정한 신앙은 그 깊이에 달려있다. 기도를 해도 기도의 깊은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님과의 은밀한 것을 체험할 수 있고 성경을 읽어도 그 깊은 속으로 들어가서 성령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달아야 변화된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적 그 열심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한 신앙은 그 깊이에 달려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깊이 없는 겉으로 만의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려고 한다면 성령의 깊은 인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께 깊이 집중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외식하며 위선적인 신앙인이 되기 쉽고 신앙의 참 맛을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에 기쁨이 없는 종교적인 행위만 하게 된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녀도 변화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도를 한번 해도 깊이 있게 하고 예배를 드려도 중심을 다하는 깊이 있는 예배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깊은 영적 체험을 할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족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즐거워하며 그분의 임재 속에 깊이 묻혀 살기를 소망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나의 중심을 드리는 것을 원하시며 나의 진짜 마음을 받기 원하신다. 마음도 없이 겉으로만 나타내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매주 교회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진정으로 깊이 있게 만났느냐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려도 주님을 전혀 뵈옵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예배를 왜 드리는 것일까? 주님의 임재속에 거하지 못하는 기도는 왜 하는 것일까? 건성으로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며 죄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은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나의 중심 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정도를 가늠할 수가 있을 것이다.☆자료/ⓒ창골산 봉서방


감동이 있는 글

29

2022년 5월 12일

신앙의 파멸을 경고한다 글: 봉민근

http://cafe.daum.net/cgsbong 허물어져 가는 집은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 않으면 무너져 큰 낭패를 보게 마련이다. 나의 신앙이 무너져 가도 그대로 방치하면 탈선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설마라는 단어는 통하지를 않는다.

난로 속에 잘 타던 석탄도 밖으로 내어 놓으면 곧 꺼지게 되어 있다. 성도는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그 신앙은 곧 식어 버린다. 교회는 신앙의 요람이다. 그곳에서 함께 기도하고 공동체의 만남 속에서 서로 나누고 사랑을 베풀며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의지를 다지는 곳이 교회다.

코로나는 우리 신앙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교회 더하기 신앙의 공식이 무너져 가고 있다. 교회가 아닌 곳에서도 예배를 드릴수 있고 신앙생활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만약에 세상에 교회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혼자서도 잘 믿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면 사탄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주일 성수라는 말에 교회를 빼놓고 말할수 없던 시절을 지나 교회 없이도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점점 신앙의 퇴보를 가져 왔고 열정과 믿음은 날로 식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교회 출석이 제한받고 있지만 자리가 남아도 교회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오히려 그나마의 자리도 못 채우는 교회가 많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기도나 전도 생활은 물론이고 성경을 가까이하며 봉사 생활하는 일에도 등한히 하게 되었다. 금식하며 기도하던 사람들의 발자취가 사라지고 모이는 것을 귀찮아 하는 게으름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과 믿음만 있다면 언제든 갈 수가 있다. 새벽이든 낮이든 교회의 문은 열려 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노력하려는 모습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가나안 신자들이 200만 명을 넘고 있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가오고 있다.

전도 제로의 시대. 봉사 제로의 시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린 지가 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세상은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사라져 버려야 할 집단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점점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전도의 열정이나 모습은 사라져 초신자의 등록은 제로에 가깝다. 복음의 등불이 서서히 꺼져가고 지옥을 향하여 가는 길은 더 넓어져 가고 있지만 복음전도의 동력이 떨어져 가고 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할 일꾼들이 없다.

콜로라도 부동산 원조

박영돈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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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이 문제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는 내 신앙의 집을 다시 짓지 않으면 내 신앙의 기초는 무너지고 퇴락하여 마침내 내 영혼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교회는 모이지 않으면 망한다.☆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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