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gram.com/komono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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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aseICON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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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editor HONG SUKWOO
이번 <스펙트럼spectrum> 주제는 ‘삶LIFE ’입니다. 그래서 비정기적이지만 습관처럼 쓴 한 달여의 일기 중 몇 구절을 적어보았습니다. 이번 호를 만드는 동안,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것은 활자로 남긴 기록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말입니다. ‘밤의 거미원숭이무라카미 하루키 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문학사상사 펴냄> 역자 후기를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하여 찍었다. 2010년대 들어서야 즐겁게 보는 잡지 <포파이POPEYE>는 800 권도 넘게 나온 유서 깊은(?) 잡지이고 또 그 안에는 일부 미국 문화에의 동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이비리그Ivy League 복식이 스타일의 기반을 이룬다든지 미국 유명 도시들을 구석구석 다루는 식이다.
어떠한 잡지들이 특정 시대상을 특별히 반영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흥미롭다. 패션을 다루는 잡지는 기본적으로 ‘트렌드’에 좌지우지된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도 대체로 그 당시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거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들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섞일 잡雜’이라는 단어를 쓰는 ‘잡지雜誌’가 훗날 하나의 혹은 어느 시점의 시대상을 온전하게 담았다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에게라도 평가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누구에게는 별일일 것이고 누구에는 별일조차 아닐 것 같기는 하지만, 무언가 활자로, 이미지로 만든 것을 모아 구성하고 편집하여 출판물로 펴낸다는 것은 결국 시대의 주관적인 그릇을 만들어가는 일 아닐까, 싶었다.’ _ 2014/05/07 02:44, ‘잡지雜誌’. ‘요즘 서울에서 좋아하는 거리는 시청 뒷길이다. 청계천과 서울도서관과 아무리 봐도 한 톨의 애정을 지닐 수 없는 새 서울시청을 둘러싼 뒷길은 뭐랄까, 생각할 수 있는 서울의 주류와 지금을 한데 섞어 놓은 모습이다. 양복 입고 좋은 시계 찬 남자들과 하루 벌어 하루 영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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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인들이 한 거리에 있고, 큰 건물에서 더는 담배 피울 수 없게 되어 삼삼오오 밖으로 모인 화이트칼라 직장인들과 한 손에 다소곳이 얇은 서류 봉투를 든 예쁘장한 학생들이 한 길에 있다. 단정한 셔츠를 입은,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은 나이 든 택시 기사님이 자신의 검은 세단 모범택시 보닛에 신문을 올리고 잠시 휴식 취하는 모습도 이 거리에서 처음 보았다. 낮에는 활기를 띠지만 밤에는 또 쥐죽은 듯이 고요해지는 거리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소위 서울의 작고 창조적인 움직임들은 ‘전혀’ 만나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그들 각자의 아지트 같은 동네에 모여 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담백하다고나 할까, 커피숍 바로 옆에서 취향이니 경향이니 하는 것과 별반 상관없이 놓인 작고 오래된 꽃집 화분이 괜스레 감색과 흰색의 작은 물방울무늬로 된 도자기일 때, 이것이 어떠한 경향과 거리를 둠으로써 오는 작은 희열을 느낀다. 훗날 누군가에게, 혹은 내게 화분이 필요할 때 여기서 사야지, 생각하고는 한다.’ _ 2014/06/09 15:52, ‘무제’. 고백하자면 이번 호 주제는 따로 정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봄,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모든 이를 분노하게 한 비극적인 참사 이후 ‘우리 삶의 가치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방향을 틀었습니다. 더불어 독자분들의 예상보다 더 다양하고 깊숙한 타인의 삶 자체를 녹였으면 했습니다. 누군가의 삶과 경험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관찰하고, 대화하고, 생각하고, 그것을 길거나 짧은 호흡으로 정리한 다음, 이미지와 글로 만들어 한 권에 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토록 다양한 삶과 그 안의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실는지요. 올해의 절반이 지나는 지금, 여러분의 삶은 또 어떠신지요. ‘대답’ 비스름한 것이 이번 <스펙트럼>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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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X ISSUE No.14 / SUMMER 2014 Mr. Jean-Michel Basquiat(December 22, 1960 – August 12, 1988) for this issue’s cover art; <Philistines, 1982> by Jean-Michel Basquiat that collaborate with KOMONO. “Komono is proud to bring the raw energy and beauty of Jean-Michel Basquiat to the world of fashion accessories. Each and every watch in the capsule collection boasts a unique printed fabric wristband. No two watches are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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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SPACE
PICTORIAL
fashion Hong Sukwoo design Song Jungwon art Jung Woosung book Think, Talk, Write. street Sung Changwon music Image tech Cho Jinhyuk travel Choi Hyejin
‘The Bridges of Hangang(Han River)’
explore Kim Jinho Ha Sua Yoo Jaep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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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angcheolgyo (Railway Bridge) Banpodaegyo(Way Bridge) Olympic-daegyo(Way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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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LOOKS
Mr. Chon Kilnam Mr. Park Suman
retaW A Few Moments in Life, Time.
SPECTRUM
play Hong Sungbo Kim Surang VCR Lee Youngwon express Yvonne Boag Ha Heonjin Life And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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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ase x HBNAM DSLR Sling Pack Limited edition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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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X ISSUE No.14 / SUMM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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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Lee Ju-seung Iro Kim Bong-hyeon
JEANMICHEL BASQUIAT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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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SULE COLLECTION
GALLERY COOLRAIN MOM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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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ONO
INCASE
190 INCASE 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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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NO. 14 / SUMMER 2014 ‘LIFE’ ISSUE ISSN 2287-5980
PUBLISHER Joon Yang 양준무
EDITOR
CONTENTS MANAGER
Hong Sukwoo 홍석우
Lee Eunyoung 이은영
yourboyhood@gmail.com Sung Changwon 성창원 i@oodllboo.com Ahn Sangyeon 안상연 allieinblue@gmail.com Lee Jihyun 이지현 hyonnie@naver.com Asst.Kim Yulim 김유림 ooblg123@gmail.com DESIGNER CamoMild 카모마일드 camomild.com Lee Yunhee 이윤희 ooo@pr1zm.com
ey.lee@pr1zm.com
Asst. Kwon Dokyung 권도경 dk.kwon@pr1zm.com CONTENTS SUPERVISOR
Rich Lim 리치 림 rich@pr1zm.com CONTRIBUTING WRITER
Song Jungwon 송정원 Jung Woosung 정우성 Think, Talk, Write. 띵크, 토크, 라이트. Image 이미지 Cho Jinhyuk 조진혁 Choi Hyejin 최혜진
PHOTOGRAPHER JDZ Chung 정재환 Studio BONE jdzcity@gmail.com Go Yunsung 고윤성 Studio BONE htmnike@gmail.com Kim Bosung 김보성 Studio BONE boss1028@gmail.com
프리즘디스트리뷰션(주) www.pr1zm.com / 스펙트럼 www.spectrumprojects.com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24 ICT타워 10층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36길 55 ICT타워 10층) 02-3442-1014 ©2014 Spectrum All rights reserved.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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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radio,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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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 LIFE
fashion HONG SUKWOO design SONG JUNGWON art JUNG WOOSUNG book THINK, TALK, WRITE. street SUNG CHANGWON music IMAGE tech CHO JINHYUK travel CHOI HYE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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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L ‘저널JOURNAL’은 매 호 다양한 인물이 <스펙트럼>의 주제를 얘기합니다. 저널의 글은 종종 잡지 기사처럼, 수필 혹은 보고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경계는 없고 주관은 있는 글의 집합이 이 장章의 정체성이 되길 바랍니다. 열네 번째 호의 주제는 ‘삶LIFE’입니다. 우리가 행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삶 일부가 됩니다. 그 안의 감정들을 다분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여덟 가지 분야의 필자들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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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서울시가 지원하는 어느 패션 관련 심사를 봤다. 주로 이제 막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 신진 패션 디자이너들이 응모하는 지원 사업이었다.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서울시로부터 꽤 후한 물질과 금전 지원을 받는다. 유통과 매체 관계자, 패션 디자이너 등이 심사에 참여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차례로 들어와 자신의 컬렉션과 브랜드를 설명하고, 실제 만든 옷을 보여주고, 여러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오후 1시 반에 시작한 심사는 다섯 시를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패션을 처음 알아갈 때 영향 끼친 이들은 김서룡, 홍승완, 정욱준 그리고 서상영
THE new COMERS
같은 남성복 디자이너였다. 이후 몇 년간, 그러니까 2000년대 중반의 서울 패션은 내게 일종의 암흑기였다. 거리 문화 street culture 를 담보한 스트리트 패션은
두각을 드러냈지만, 최고급high end 패션을 지향하는 디자이너들은 정체 상태에
홍석우 <스펙트럼(spectrum)> 매거진 편집장 패션 저널리스트
빠진 것처럼 보였다(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2007년에서 2008년이
twitter@yourboyhood www.yourboyhood.com
되면서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다시 두각을 드러냈다. 이제 © image courtesy of Hong Sukwoo
SPECTRUM
그들 중 일부는 서울패션위크의 주춧돌이 됐다. 몇몇 스타 디자이너들은 패션을 꿈꾸거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심사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제 갓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는 디자이너들은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까. 24
누구나 옷을 입는다. 버려지는 옷만큼
디자이너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새로운 옷들이 나오고 다시 유행이
것이다. 모험을 감수한 디자인보다 쉽게
돌아온다. 하지만 서울 패션씬으로 범위를
입을 수 있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 더
좁히면 여전히 힘겨운 생존을 모색하는
영리할 수도 있다. 이미 변화를 체감한
패션 디자이너가 많다. 데뷔 컬렉션의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가격 경쟁력에
과감한 포부는 컬렉션을 거듭하며 (현실
초점을 맞춘다. 기성 브랜드보다 우위를
적인 이유로) 옅어지기도 한다. 백화점과
점하지 못하면 인지도 낮은 신규 브랜드를
편집매장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살 소비자들이 적다는 냉철한 판단이
서울 디자이너들의 파이가 동일하게 커진
깔렸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것도 아니다. 여성복과 남성복을 나누면
전부일 수는 없다. 이제 막 자신을 꽃
크기는 더욱 작아진다. 심사에 지원한 젊은
피우려는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관점을
디자이너들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놨다.
강요당한다. 세계에 내놔도 동일 선상에서
홍보와 유통 판로 개척의 어려움, 적은
경쟁할 수 있는 ‘미친’ 열정이 시작하기도
수량을 만들 수밖에 없기에 발생하는
전에 깎인다. 누가 옳다고 단정 짓기
제작 단가의 문제가 수십 명의 서류에
어려운 얽히고설킨 문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쓰여 있었다. ‘세계 진출’은 빛 좋은 개살구
“요즘 패션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요?”
같은 단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더 크고
오늘 만난 누군가 물었다. 나는 ‘춘추 전국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눈 돌릴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했다. 2000년대 중후반 쏟아진
환경의 발로發露였다. 지원자 중 일부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다시 기성세대로 불릴
진중한 관점과 콘셉트, 시장성과 대중성을
정도로 세대교체의 조짐은 감지된다.
두루 만족하게 하는 결과물을 가져왔다.
한류와 케이팝K-pop 전성기 이후 세계
체계적인 지원과 배움의 시간을 더하면
각국에서 쏟아진 새로운 창조와 맨몸으로
수년 후 서울의 대표 디자이너가 될 수도
겨뤄야 하는 시대도 온다. 수년 전과는 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사를 진행할수록
다른 환경이지만, 여전히 디자이너들은
평가하는 ‘기성세대’의 관점에 아쉬움이
브랜드 안에 삶을 투영한다. 앞으로 더
생겼다.
똑똑해질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자신을 녹인 무언가를 꾸준히 드러내야
패스트 패션과 고가高價 브랜드 위주로
한다. 참 쉽지 않다. 마치 우리 삶처럼
양분한 시장에서 중간에 자리 잡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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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뒤집개 하나, 집게 하나, 국자 하나, 잘 다듬어진 식칼 하나. 주방에 걸려 있는 것들이다. 주부 10년 차의 장비치고는 간소하다 못해 초라하지만, 그것들로 그동안 참 많은 요리를 했다. 아무런 문제 없이. 아무런 불편 없이. 옷장 사정도 비슷하다.
A LIVING with LESS, without INCONVENIENCE
하의 네 벌, 상의 열 벌. 계절별 외투 두
송정원 덴츠 코리아(Dentsu Korea) 카피라이터
advertising campaigns for MUJI, photographed by Tamotsu Fujii, art directed by Kenya Hara
개씩. 삼십 대 직장여성의 옷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간소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불편도 없는 일상을 보낸다. 나는 “최소한의 것들로 목표를 불편 없이 이뤄내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
© image courtesy of MUJI, Ryohin Keikaku Co., Ltd.
facebook.com/jungwon.song.5
한때는 꼭 필요하지 않아도 사고, 이미 있어도 사는 습관성 소비에 젖어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순간순간의 욕망에 지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소비가 가져오는 ‘죄책감 없는 버림’에 대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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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삶의
준 제품도 많이 봐왔다. 그런 것들은 결국
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꼭
나와 오래가지 못하고 또 다른 소비를
필요한 것들만 갖추고 불편 없을 정도로
만들었다. 무인양품이 대단하다고
사는 간소한 삶’이 내 인생관의 한 축이 된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철학,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기능, 아름다움 그 어느 것도 양보하거나
지지하고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다.
포기하지 않고 완벽한 균형감으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환경을 위해
무인양품MUJI・無印良品. 브랜드에도 인격이
최소한의 요소들로 ‘사용자의
있다면 무인양품과 이야기가 아주 잘 통할
만족이라는 목표를 이뤄내는 것’.
것 같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무인양품의 브랜드 지향점은 내가 목표하는 삶과 많이 닮았다.
불필요한 과정, 불필요한 포장, 불필요한 크기와 면적, 불필요한 색, 불필요한 장식
좋은 디자인의 기준을 물으면 다양한
- 환경을 위해 불필요한 모든 요소를
대답이 나올 것이다. 어떤 이는 세상
제거했지만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혁신적인
당신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디자인은 무엇입니까? 어떤 불편함도 감수하게 하지 않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테고,
영리함, 그리고 최소한의 요소로 최고의
누군가는 공익성을 띤 디자인이라고
아름다움을 끌어낸 하라 켄야Kenya Hara・
말할 것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原研哉; 무인양품 아트 디렉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전에 내가
큐레이터의 통찰력에 늘 감탄하게 됩니다.
어느 광고 문구에도 썼듯이 ‘좋은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줄인 에코 디자인
디자인이란, 나의 인생관과 같은 방향을
eco-design; 전체 사용시간 동안 이것이 미치게 되는 환경적
바라보는 디자인’. 나와 같은 생각을
타격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제품의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법. -
공유하는 브랜드를 만나는 것, 그리고 내
편집자 주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것들을
생활 속으로 하나씩 하나씩 들이는 일은
사용할 때마다 ‘무언가가 줄었다는 것’
영혼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을 인지해야만 했다. 줄여서 발생한
정신적인 충만감을 준다. 당신과 같은
물리적인 불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향을 보고 있는 디자인은 무엇입니까?
또한, 좋은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나
나는 무인양품과 함께 ‘불편 없는 최소’의
아름다움을 지니지 못해 ‘감정의 불편’을
삶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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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나는 지금 혼자라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순간이 늘었다. 절실해서 그랬다. 택시 안에서나 자동차, 스쿠터를 타고 있을 때는 그게 자연스러울 수 있다. 대개 혼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도,
The BEAUTY of being ALONE
잠시라도 혼자가 될 수 있는 모든 하찮은 순간에도 그랬다. 그렇게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다른 순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게 강박이라도 좋았다. 여긴 함께일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들끼리 기꺼이 모여 있는 수밖에 없으면서 ‘함께’ 라는 말의 피부만을 매만지는 곳 같았다.
정우성 <지큐 코리아(GQ Korea)> 피처 에디터
혼자 있으면 불안할 거면서, 느긋하게 밥도
twitter@decalage24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정작 함께여야
못 먹고 비척거릴 거면서, 그래도 떠날 할 때는 뭘 그렇게들 가리려고 드는지, 굳이 선을 긋고 밀어내지 못해 안달인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여기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지쳐가는 시간 또한 늘어갔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졌다. 다분히 역행하면서, 그걸 다행이라고도 여겼다. 전화는 걸려왔다. 그 흔한 SNS에는 24시간 접속해 있었다. 알아야 할 것과 알려지는 것, 듣게 되는 것과 연구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게 되는 사람, 기꺼이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과 억지로 같이 있는 사람 사이에선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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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생각했다. 한순간도 즐길 수 없는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니 깊이 들이쉬고 다시
공공재로서, 아깝다고 생각하니 쫓겼다.
내쉬는 숨, 천천히 걷다가 등과 가슴이 땀이 날 때까지 뛰어보기도 했다. 내 숨, 내 몸, 내
불면과 기꺼이 친구 맺은 이후에는 피로가
시야에 들어오는 아침, 결국 내 시간. 무너진
습관이 되었다. 습관처럼 사진을 찍은
것을 다시 무너뜨리고, 한계치까지 몰아세우고
건 그것이 가장 간편한 기록의 도구였기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것들.
때문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는다. ‘기록이 없으니 근본이 없는 것 같았다’고 썼던 건
이렇게 시작한 날 오후에는 에드워드 호퍼
언제였지? 언제라도, 혼자서 수첩을 펼칠
Edward Hopper의 그 유명한 그림들을 괜히
시간이 생긴다면 이 사진들을 역순으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캔버스엔 이들의 시간이
더듬으면서 누구와 뭘 먹었는지 정도는
고정돼 있고, 아무리 봐도 고독 같지 않았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의 기분이나
다만 혼자 혹은 둘이라서 평화롭다고 여겼다.
햇빛의 방향 같은 것들도. 이런 마법 같은
창문을 열어놓고 물기를 닦으면서, 모든 건
상태를 일종의 낭만이라 생각할 수 있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시기도 올까? 방전, 탈진, 소진 같은 말을
했다. 다 소진된 후에라도, 아침처럼.
다만 혼자 혹은 둘이라서 평화롭다고 여겼다 들었을 때는 새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정확해서 반가웠다. 하지만 아침 앞에선, 이 모든 게 자주 무너져버려서 허무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못 하겠어서 씻지도 못하고 잠든 이튿날, 이상하게 일찍 깬 아침엔 지금까지 내가 어디에 갇혀있었는지를 무기력하게 깨닫기도 했다. 다 거짓말 같았다. 오전 7시 에만 맡을 수 있는 공기, 멀리 보이는 녹색, 새벽녘에 비가 내렸는지 남아있는 물비린내 같은 것들. 그럴 땐 기록해 놓지 않았어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 지나간 아침이 한꺼번에 나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들이 나를 29
Morning Sun, Oil on Canvas, 28 1/8 x 40 1/8 inches by Edward Hopper © image courtesy of Columbus Museum of Art, Ohio SUMMER
BOOK
책에 관한 첫 기억은 유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과 과학, 동물과 공룡, 곤충과 식충식물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는 장정판 학습만화책들이었다. 집 앞 오
The COMPLETE SENTENCES
분 거리 친구 집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웅진출판사에서 펴낸 ‘과학앨범’ 시리즈가 있어서였다. 커다란 글자와 정교한 삽화, 생생하게 포착한 동물과 곤충과 식물 사진에 매료되고는 했다. 특히 좋아한 책은 <거북의 생활>이었다.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엄마
Think, Talk, Write. Creative Agency Based in Seoul
손잡고 산 첫 애완동물이 거북이일 정도였다.
twitter@thinktalkwrite
마주했을 때는 어린 기억이 되살아나는
훗날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서 이 책을 다시 기분이었다. 이렇게 나이 들고서 다시 읽게 된 몇 권의 책과 문장들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좋아하는 것만 파고들었다. 아무리 맞아도 고집부리는 아들을 방임한 부모님 덕에, 싫어하는 과목은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시험 기간에는 그래서 시간이 남았다. 두 살 터울 누나를 따라간 중학교 바로 옆 교회 도서관에서 처음 본 열 권짜리 <아라비안 나이트>는 충격이었다. 성性적으로 말이다. 물론 친구들이 전리품처럼 가져오던 도색 잡지와 컴퓨터 게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문학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는지 빛바랜 갱지 냄새만 그윽했다. 어릴 적 만화영화로나 보던 성인판 천일야화千一 夜話는 막 꽃피던 여드름만큼 고민 가득한
소년의 사춘기를 알렸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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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때문에 읽어야 했던 소설에서 벅찬
불안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김승옥의
감정을 느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문장들에서 1960년대와 70년대 서울의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접한
불안과 공허를 봤다. 여전히 남은 동네와
문학 시간이었다. 아련한 문장에 매혹된
골목을 떠올리며 당시를 상상했다. 소설의
채 대단원을 지나 기어코 결말에 도달했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더는 풋풋한
때, 마지막 문장을 읽던 눈동자가 머리를
고등학생이 아니었고 어느 정도 사회’의
타고 잔잔한 울림이 됐다. 여운이라고 해야
단맛과 쓴맛을 본 어른이었다. 문장들이
맞았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추리소설과
나를 다시 과거로 돌리지는 않았지만,
동년배 또래들이 열광하던 일본 만화책으로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예전과는 다른 감흥을
점철된 십 대 시절의 분명한 변곡점變曲點
냈다. 밀려드는 여운의 크기는 조금 더 컸다.
이었다. 글과 책이 사람을 바꾼다는 교훈으로 마무리 소설과 만화책이 아닌 잡지雜誌와 독립
지을 마음은 없다. 하지만 완벽한 문장과
출판물에의 열정이 시작된 이십 대 때는
그것을 담은 책은 언제나 다른 세상을 여는
여러 일이 있었다. <인디펜던트 나우
열쇠였다. 변치 않을 것이다.
밀려드는 여운의 크기는 조금 더 컸다. Independent Now>라는 이름으로 독립
출판물 전시를 열기도 했고, 지금은 잡지 만들고 글 쓰는 일이 생업 일부가 됐다.
© image courtesy of Think, Talk, Write.
계획하지 않고 마음 간대로 살아온 지난 십 년을 돌아봐도 출발점에는 마음을 뒤흔든 책과 문장들이 있었다. 전부라고 하진 못해도 고향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다시 <무진기행>을 비롯한 김승옥 전집을 산 것은 2008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광야로 나온 시점이었다. 전집의 단편과 장편을 모두 읽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나중에 먹는 기분으로 <무진기행>을 펼쳤다. 십여 년 전 여운이 온전할까 내심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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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나에게 첫 ‘거리 문화street culture’는 힙합이었다. 당시에는 길거리 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길거리 공연은 홍대가 아닌 대학로에 있었다. 당시 음악적인 젊음은 록과 메탈에서 힙합과 펑크punk 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래피티graffiti는 힙합의 4대 요소 중 하나라며 그제야 막 한국에 알려진 상태였고, 스케이트보드보다는 인라인스케이트가 많았다. 그나마 비보잉B-boying이 청소년들
TWENTY YEARS of MADNESS 성창원 <스펙트럼(spectrum)> 매거진 에디터 단편집 <1,095>저자
oodllboo.com
사이에 널리 퍼져,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춤 동아리가 생겨났다. 곡예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멋있는 동작들이 우리 눈을 사로잡았다. 2000년을 향해, 뉴 밀레니엄을 향해, Y2K를 향해 전 세계가 열심히 달려갈 때였다. 2014년, 거리 문화는 15년 전과 비교하면 양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성장했다. 주말이면 당연한 것 같은 홍대 놀이터 길거리 공연, 그래피티와 더불어 스텐실stencil,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스케이트의 성지 동대문 훈련원 공원컬트 파크, 규모가 제법 커진 한국 스트리트 패션, 세계를 제패한 한국 비보이까지. 길거리 문화는 어느새 큰 흐름이 되었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시장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길거리 문화가 한국에 생겨날 때부터, 달걀로 꾸준히 내려쳐 결국 바위를 부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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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 경험하는 재미로, 차츰 자부심과
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90년대 힙합으로
책임감으로, 하지만 언제나 그 기본은
끝을 맺는다. 당시에 접한 길거리 문화는
즐거움으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과 함께 성장해왔고, 그 영향은 작업물에서도
속된 말로 ‘미친 짓도 20년이면 예술’이라고
드러난다. 거리 문화, 거리 문화의 초기부터
한다. 지금은 당연한 문화들이 20년 전에는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들으며
대부분 미친 짓에 가까웠을 것이다. 쉬는
자란 나까지. 모두 같이 성장해왔다.
시간에 교실 뒤에서 책상을 앞으로 밀어두고 옷으로 바닥을 쓸며 팔이 부러지던 아이들,
시간은 토막 나 있지 않기에, 때로는 변화를
허리둘레가 38인치인 바지를 입고 밑단을
느끼기 어렵다. 하물며 강산이 변할 정도의
신발에 압정으로 박아 끌리지 않게 고정하고
시간 동안 서서히 이루어진 변화의 흐름은,
다니던 아이들, 공연장이라고 부르기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에겐 더더욱 느끼기
어려운 열악한 장소에서 힙합과 펑크를
힘들다. 한국 거리 문화의 출발선에 있던
외치며 밥은 굶어도 음악과 패션은 포기하지
사람들도,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 문득
않은 철없던 아이들, 다들 인라인스케이트와
느꼈을 것이다. 거리 문화가 어느새 삶이
오늘은 아무도 이 모든 것을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스키를 탈 때 스케이트보드와 스노보드를
되었고, 그 삶은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 문화
타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오늘의
전반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스트리트 댄스와 스트리트 패션, 극한 스포츠extreme sports 와 홍대 인디씬을 만들었다. 오늘은 아무도 이 모든 것을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힙합을 많이 듣지는 않지만, 힙합은 나에게 여전히 떼려야 뗄 수 없다. 우탱 클랜 Wu-tang Clan 의 거친 첫 앨범인 <Enter the
Wu-Tang36 Chambers>나 어셔Usher의 ‘ 유 리마인드 미’U Remind Me’ 같은 노래는 언제 들어도 신이 난다. 친구들끼리 작은 파티를 할 때에도, 전자 음악electronic music 33
© image courtesy of Sung Changwon SUMMER
MUSIC
‘삶에서 우리는 여러 대상에 매혹당하고, 또 여러 대상을 매혹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각자만의 ‘매혹’들로 구성될지도. 삶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매혹들은 여러 형태의 사랑, 즐거움, 행복, 쾌락, 슬픔, 분노, 증오 등을 수반한다.
THINGS that ATTRACT US
우리를 평온하게 하는, 설레게 하는, 미치게 하는,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불안하게, 슬프게 하는 이 모든 것들. 어떤 빛나는/날카로운 순간들은 그 매혹이 절정에 달할 때다. 그것은 늘 유지되지는 않지만, 새롭게 구성되거나 업데이트될 수는 있다.’
이미지 싱어송라이터, 미디어 아티스트
_ <매혹들(2013)> 음반 작업 노트 중
www.imagemeetssound.com facebook.com/imagensound
Image’s 2nd EP <매혹들 Things That Attract Us>
© image courtesy of 이미지(Image), Mirrorball Music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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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트는 작년 무렵 오랜만에 지하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흘렀다. 지금의
안에서 종이에 펜으로 쓴 글이다. 휴대기기
나는 그때의 나와는 10년여의 세월만큼
배터리가 없기도 했고, 자세한 내용은
멀어졌다.
다르지만 인생의 큰 그림으로 보자면 변화 주기가 비슷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그리고 그때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다른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고 싶다.
길이기도 했다. 생애주기에 걸맞지 않은 사춘기다운 방황으로 힘들어하는 것이
그럼에도 여전한 것은, 언제나 현장을
아닌가 생각도 했다.
기록하고 이를 다른 매체로 번역하는 일들에 매혹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글이든, 음악이든,
십 대, 이십 대.
사진이든, 영상이든.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의 힘에
우리는 그 시절, ‘글’ 쓰는 행위와 ‘이념’
매혹되었고, 그곳에서 매번 수많은 취재원과
들을 좇는 행위에 몰두해있었다. 물론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해내어
나의 유목은 그렇게 무엇인가를 그려내는 매혹들로 다시 태어나곤 했다. 한편으로는 그 바깥 공기에 발을 내디딘
글로써, 이미지로써 알리는 일에 매혹되었기
채로 자유로워지고 싶었기에, 한쪽 발로는
때문이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새벽까지
열심히 음악을 만들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취재원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여러
등 다른 언어들을 향해 뛰기도 했다. 늘
오지로, 지방으로 어떤 흔적이나, 단서를
여러 종류의 조직 속에서 생활했고, 소박한
찾아 용감하게 떠돌던 일들이 스쳐 간다.
관점에서 여러 ‘올바른 것’들을 추구하고자
그런 일들은 나를 멕시코로도, 사막으로도,
현장을 뛰어다녔다.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뉴욕의 뒷골목으로도, 서울의 어딘가로도
사적인 관계를 돌보기보다는 늘 집단으로,
데려다 주었다.
조직으로 움직이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무엇인가를 이뤄내려고 애썼다. 정치와
나의 유목은 그렇게 무엇인가를 그려내는
사회 문제에 목숨 걸 것 같은 날카로움에
매혹들로 다시 태어나곤 했다. 이처럼
늘 싸움이 잦았고, 시끄러웠다. 그럼에도
사람들 속의 매혹들, 이야기 속의 매혹들,
정말 어떤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거란
그리고 매혹들의 범주를 확장하려 시도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2002년 대선이
자신까지, 역시 매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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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TECH
나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쉽게 흩어졌다. 여름의 해운대였다. 나와 그녀는 카메라를 메고, 파도 사진을 몇 장 찍었었다. 그녀의 필름은 녹색 바다를 짙은 파란색으로 만들었고, 나는 인화된 사진을 한참
STAND for YOU
들여다보았다. 구름은 회색이었고, 해는 거의 사라져있었다. 필름의 색감과 풍경이 사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다시 나는 줄어들었고, 흩어졌다. 나는 문득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었다. 계획이 없는
조진혁 <아레나옴므플러스 코리아 (ARENA HOMME+ Korea)> 피처 에디터
삶은 장애물이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왜 늙고 성숙해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하지만
twitter@jinavenue
답은 언제나 그녀였다. 그녀와 내가 여전히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나는 삶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분명히 문장으로 써내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무엇을 보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으며, 우리의 목적은 언제나 과거에 머물 수밖에 없다. 나의 세계는 의미가 없는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흔적을 수집했고, 내가 본 것, 다녀온 것, 만난 것과 생각한 것들을 모아야만 했다. 그것들을 수집하면 나는 나를 © image courtesy of Cho Jinhyuk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자 나는 어디에서나 발견됐다. 나는 앨범, 일기장이나 페이스북 같은 곳이 아니라 거리에 있었고, 월요일 아침의 올림픽대로에 갇혀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카페와 거리가 사라질 때마다 내가 발견됐다. 당시 흩어진 나를 수집하는 게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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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했다. 나는 그런 심정을 상실감이라고
것을 다시 찾을 수는 없다. 나는 모아두었던
불렀다. 나는 나의 감정에 무뎌지기
나를 다시 본다. 왜 삶을 지속하여야만
시작했다. 감각을 뜻하는 단어들에
하는가, 살아있는 것이 죄스럽지 않기 위한
공감하고자 노력했다. 좌절이나 즐거움 같은
삶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근거를 찾는다.
단어들이 뜻하는 감정을 이해하려 했다. 나는 그런 단어들의 관찰자로서만 존재했다.
고등학생이던 나를 생각했다. 당시 나는
그리고 말과 글의 맥락에 맞춰 사용했을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뿐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 관계를
없었다. 그건 마치 줄어들고 흩어져 더 이상
맺거나, 일을 하거나 해야만 하는 일들이
건져 올릴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해주고
닥칠 때마다 피해갈 방법을 고민했다.
싶다. 하지만 사라진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은 공들이지 않고,
알려줄 수 없다. 아이들의 죽음은 나의
하게 됐다. 나는 대체 ‘노력’과 ‘열심히’가
고민을 사치로 보이게 했다. 사랑하는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열심히 한다는
사람의 죽음을 보며 나는 의미를 찾지
게 땀을 흘린다는 건지, 집중하더라도 그건
않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일 뿐인데 그것이 ‘열심히’를 의미하는
나는 내 삶의 의미가 너에게서 나온다는
것인가? 내 손이 낳은 것들은 노력 없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결과들이었다.
않았던 것은 네가 영원히 사라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새로운 일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너는 내 안에서 다른
맞이하면 동선은 짧고, 손은 덜 가며, 덜
의미로, 다른 형태로 변질될 거다. 나는
고민할 방법을 찾아냈다. 내가 쌓은 성벽은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를
속이 비었으나, 겉은 화려했다. 이러한
수집하지 않기로 했다.
행동은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삶은 꽤 편했다.
나를 버리고 나니 주변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 형제와 친구들을
그리고 나는 경고警告와 같은 사고事故를
보기로 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보았다. 최근 뉴스에서 크게 다룬 사고들은
받아들이기로 하자 나와 네가 없는 삶의
편리한 삶의 부분들이었다. 죽은 사람과 산
의미가 생겨난다. 다시, 삶의 의미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잃어버린
곳곳에서 발견되고, 빠르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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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TRAVEL
월급 받는 잡지쟁이로 살며 틈틈이 여행했다. 그 8년간의 기록을 갈무리해 책을 내고 난 뒤, 꽤 여러 번 반복해 들은 반응이 있다. “정말 부러워. 나도 언젠간 떠나야 하는데 말이야.
TAKE a JOURNEY into YOURSELF
먹고사는 일에 발목이 잡혀서….” 처음 몇 번은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대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몇몇 사람의 흐려지는 말끝 뒤에 숨은 의중을 파악해서다. 여행은 낭만적이고, 일상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하다는 전제.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박탈감을 에둘러 표현하는 그 말들 앞에서 난 이렇게
최혜진 프리랜스 에디터,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 저자
www.radioheadian.com 364eve.tumblr.com
주장하곤 했다. “전 여행이 일상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로요!”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그럼 여행 책은 왜 냈느냐’라는 의아한 눈빛이었다.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여행이 환상의 대상이며, 또 자주 현실의 도피처로 기능한다. 징글징글한 구속감과 버거운 생의 문제를 잠시 잊기 위해 입안에 털어 넣는 쓴 소주처럼 말이다. 예전에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페이스북에서 지인의 휴가 사진을 볼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 ‘나 이렇게 즐기고 있어요!’ 라고 외쳐대는 친구의 휴가지 사진을 보면 반대급부로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서일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여행과 휴가를 부지런히 공유 (라 쓰고 과시라 읽는다)한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범람하는 이런 부류의 사진은
© image courtesy of Choi Hyejin SPECTRUM
폭탄 돌리기처럼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38
누군가에게 전달한다. 이 게임에 참여한 모든
넓혀주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그리하여
사람의 마음은 갈수록 촉박해진다. ‘아! 나도
관점을 새록새록 하게 유지해주는 다른 행위
떠나야 하는데!’
-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볼 때, 혹은 흥미로운 인물과 인터뷰를 할 때 - 에서도 여행하는
여행이란 말 안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듯한 기분을 자주 느낀다.
떠남이 뭉뚱그려져 있다. 안내자와 함께하는 단체 관광도, 신혼여행honeymoon도, 학교의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과 삶의
수학여행도 여행이라 부른다. 이 모든 차이를
관계를 영화로 만든다면 벤 스틸러의
대신해서 무조건 여행이 일상보다 우월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것인 양, 고매한 것인 양 드높이고 싶은
of Walter Mitty, 2013>와 비슷할 것 같다.
마음은 전혀 없다. 특히 현실에 대한 실망감
폐간을 앞둔 <라이프LIFE>지에서 사진
혹은 박탈감을 조장하는 여행기를, 나는
편집인으로 일하는 월터는 마지막 호 잡지
반대한다.
표지 사진 필름을 잃어버린다. 그 한 컷을 찾기 위해 생전 처음 떠난 장거리 여행에서
특히 현실에 대한 실망감 혹은 박탈감을 조장하는 여행기를, 나는 반대한다. 여행가의 마음mental보다는 생활인의 심리를
특급 소심쟁이 월터는 ‘본의 아니게’ 고주망태
가진 나는 현실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
조종사가 운전하는 헬기에 뛰어오르고,
터지게 고민하려고 여행하는 편이다. 여행을
상어가 있는 바닷속을 헤엄치며, 화산 폭발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안 해봤던 일들을
현장에서 탈출한다. 여행은 그렇게 월터의
해야 해서 이전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등을 떠민다. 하지만 그 기막힌 여정 끝에
발견하는 일이 빈번하다. 예를 들어, 낯선
일터로 돌아온 월터를 기다리는 건 냉정한
이에게 말을 걸길 주저하는 자신을 보면서
현실이다. 잡지는 폐간되고, 그는 직장을
‘왜 이 작은 시도조차 두려워할까’ 같은 식의
잃는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관객들은
질문이 시작되면, ‘나라는 사람의 개성은
느낀다. 여행의 경험이 월터의 내면을
뭘까. 내 삶의 우선순위는 뭔가’ 등으로
심어놓은 단단한 심지와 자긍심을. 여행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 질문의 끝에는
현실을 포장해주지도 바꿔주지도 못한다.
언제나 삶이 있었고, 그 앞에서 어떤 자세를
다만 현실을 대면하는 자세를 가르칠 뿐이다.
취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발을 굴렀다.
삶 속에서 여행은 이렇게 기능할 수 있고,
나에게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관점을
이렇게 기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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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 Mr. CHON KILNAM Mr. PARK S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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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T ‘포트레이트PORTRAIT ’는 매 호 <스펙트럼>이 만난 동시대 창작자들과의 인터뷰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작업, 삶과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인물을 만났습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길남Chon Kilnam 명예교수, 그리고 얼마 전 음악 스트리밍 앱app ‘비트beat ’를 출시한 비트패킹 컴퍼니The Beatpacking Compapny의 박수만Park Suman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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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THER of the INTERNET IN ASIA, A GLOBAL CONNECTOR for BETTER WORLD. interview &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GO YUNSUNG, HONG SUKWOO edited AHN SANGYEON, SUNG CHANGWON, HONG SUKWOO © all personal photographs courtesy of Chon Kil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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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CHON KILNAM Computer Science Department Professor Emeritus of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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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인터넷internet 도 당연히 누군가 발명한 것이지만, 그 뿌리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할 때 이미 전자메일과 포털 사이트가 있었고, 웹 브라우저와 무선 통신망 그리고 수십 년 전 슈퍼컴퓨터를 가뿐히 넘는 랩톱laptop 과 스마트폰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전길남은 1943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학업을 마쳤다. 그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 ‘아파넷Th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ARPANET; 미국 국방부의 고등 연구 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ARPA) 주도하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로 1969년에 시작되었으며, 현재 인터넷의 원형으로 알려졌다. 발족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UCLA,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UCSB, 스탠퍼드 연구소SRI, 유타 대학의 네 곳이 참여했다. - 편집자 주이
미국에서 탄생한 1969년, 그 발상지 중 한 곳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미국 록웰 인터내셔널 Rockwell International 에서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고, 미항공우주국 NASA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JPL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기술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서른여섯이 되던 1979년 우리나라 땅을 밟은 그는 198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만들었다.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국가적인 인터넷 개발이었다. 컬러 TV와 가정용 컴퓨터 개발이 화두였던 시절이었다. 지난 5월 말, 그는 서울디지털포럼Seoul Digital Forum 2014·SDF 2014 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아직 인터넷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혁신적인 지혜innovate wisdom’를 역설했다. 다수가 지금의 현실만을 걱정하는 시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목소리에는 그간 걸어온 삶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 SPECTRUM: 지금 인터뷰하는 ‘하자센터www.haja.net ’ 신관 203호는 박사님과 강경란 아주대학교 교수님을 편집위원으로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를 연구하는 ‘한국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http://InternetHistory.kr’가 진행 중이다. 그 취지와 진행 과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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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길남Chon Kilnam: 주된 분야는 지난 세기1980~2000 의 아시아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Asia
Internet History Projects, http://InternetHistory.asia 를
기록하는
것이다. 한국 인터넷 역사는 안정배 간사와 강경란 교수가 맡고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를 다룬 책에 서너 권 정도 있는데, 오류가 제법 많다. 책 절반 정도는 새로 써야 하는 수준이라 아예 새로 만들기로 했다. 어떤 식으로 구성할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읽을 젊은이들과 비슷한 시선의 사람이 좋을 듯해서 올해 서른인 사람이 쓰고 있다. 지금 시각에서 1980~90년대로 되돌아가 보자고 했다. 당시 인터넷을 개발한 이십 대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첫 번째 인터넷인 1960년대 아파넷ARPANET의 시작은 미국이 제대로 기록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는 세계 백여 개 국가가 인터넷을 이용하게 됐다. 그런데 하나에서 백 개의 국가로 퍼졌는지에 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미비하다. 하지만 나는 다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다시 이 작업을 시작하면, ‘아시아 인터넷’이라는 말 대신 ‘아시아 관점의 국제적인 인터넷International Internet of Asian Perspective ’라는 말을 쓰고 싶다. 실제 프로젝트는 서른에서 마흔 개
국가의 백 명 정도가 참여한다. 그중 예순 명 정도가 글 쓰고 나머지 마흔 명은 자문advisor으로 동원됐다. 지난 5월 하순 폐막한 서울디지털포럼Seoul 2014 의
Digital Forum 2014, 이하 SDF
기조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넷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사용하는
우리 같은 첫 십억 명The First Billions에게, ‘아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남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The Other Billions’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겠구나 싶었다. 이 생각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미국 유학 후 한국에 오게 된 동기와도 관련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올 때, 미국 인터넷 사용자는 약 만 명 정도The
First
Thousands였다. 처음 작업은 그들 이외의 초기 사용자들The Other Thousands
을 위한 일이었다. 당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기회’에서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가령 미국인들은 인터넷을 쓸 수 있고, 한국인들은 쓸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안 좋은 일 아닌가. 미국이 가능하면 다른 나라도 가능해야 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학과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이하 MIT, 스탠퍼드 대학교 Stanford University,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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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Berkeley
같은 곳의 가장 큰 차이는 ‘공유’였다. 그들은 이미 1970년대
부터 자신의 연구 보고서와 논문을 서버에 올리고 전자메일e-mail을 썼다. 우리 학생들은 ‘네트워크’ 자체가 없었다. 한쪽은 웹을 쓰고 다른 쪽은 쓰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이런 기회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사님의 기조연설에서 칭한 ‘남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위해 세계 곳곳을 방문하신 걸로 안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활동을 듣고 싶다. 사실 한국에서는 (나에 관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개발했다고만 하는데, 이는 내가 사용한 시간의 50%였다. 나머지 50%는 ‘남은 나라는 어떻게 하는가’에 쏟았다. 아시아에만 해도 쉰 개가 넘는 나라가 있는데 웬만한 나라는 한 번씩 다 방문했다. 결국, 한 나라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고, 아시아 국가들을 위해 평균 2 년에 하나씩, 30년간 15개 정도의 ‘기구organization’를 만들었다. 그다음 아프리카에 눈을 돌렸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쉽다. 어떤 역할들을 하는 기구였나? 한 해에 몇 번씩 규칙적으로 만나기 위한 기구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경험이 없으니 일회성에 그치고 실패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다음 네트워크 network 를
만들었다. 각자 나라에서 만든 것을 함께 연결하자고 했다.
미국에서 볼 때도 쉰 개 나라를 각각 연결하기 어려우니 우리를 ‘아시아’로 묶고 교섭했다. 그 뒤에 보안security과 상업 인터넷 문제는 어떻게 할지 별도로 협의했다. 나중에는 미국에서 새로운 것이 나올 것 같다고 할 때 무조건 동시에 설립했다. 그래야 국제 협력이 잘되고, 늦게 만들면 그들을 뒤쫓아가야만 하니까. 심할 때는 동시에 두세 개의 국제기구 책임자를 맡았다. 이번 <스펙트럼>의 주제는 ‘삶LIFE ’이다. 박사님께서는 일본 오사카 출생이고, 오사카 대학교 기초공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박사님은 어땠나?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했다. 학창시절 수영선수였는데, 보통 고등학교 갈 때 고민 많이 하지 않나.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학교와 운동선수로의 성장을 도와줄 학교가 다르니까. 운동을 잘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겠지만, 그 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전자를 택했다.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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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좋아하던 소년이 공학도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기초공학engineer science 의 전공 세 개 - 수학math, 물리학 physics ,
전자공학electrical engineering - 를 동시에 했다. 수학을 가장 좋아
했다. 하지만 수학자가 될 정도의 재능은 없는 것 같아, 수학을 ‘응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나 싶었다. 전공을 세 개나 택한 이유는? 1960년대에는 그런 커리큘럼의 학교가 유행했는데, MIT가 제일 먼저 채택했다. 기초과학을 아는 엔지니어가 오래갈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나 또한 수학과 물리, 화학을 제대로 하고 공학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65년에 일본 오사카 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신 걸로 안다. 당시 대학 생활은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이하 UCLA 유학길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에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의대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 할 텐데, 외국에서 공부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린 것이 ‘의사’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시골만 가도 제대로 된 의사가 없었다. 그런데 소독약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괜찮지만, 매일 맡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수학을 좋아했으니 정보와 자료를 다루는 학과를 택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UCLA를 택한 것은 ‘자연환경’ 때문이었다. 미국에 간 이유는 간단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바로 들어가려 하니, 미국 아니면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먼저 받아야 한다고 모두 말렸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좋은 충고였다. 당시 일본에서 대학만 졸업한 사람을 얼마나 환영했겠나. 하지만 일본식으로 생각하니 이해하지 못한 면도 있었다. (한국) 연구소에 가면 이 정도 배운 걸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만 마치고 한국에 가기로 정했다. 실제로는 미국에 12 년이나 있었지마는.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는지도 궁금하다. 전통적인 한국 출신 부모님이셨다. 1945년경 재일在日 한국인이 200만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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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eynote Address at Seoul Digital For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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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량 됐다. 당시 한반도 남쪽 사람들은 일본에 많이 갔고, 북쪽 사람들은 중국으로 많이 이주했다. 부모님은 경상남도 거창에서 일본으로 가셨다. 신혼이었고,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일해야 했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직업을 갖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결국, 자기 가게를 꾸릴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사업이 잘됐다. 교포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여유롭게 살았다. 미국 유학을 반대하진 않으셨나?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이어나가길 바라셔서, 이공계를 선택했을 때부터 이미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한국으로 간다고 말한 것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으셨다. 워낙 일본과 한국의 경제 격차가 커서 나중에 마음을 바꾸겠거니 정도였다. 가끔 한국에서 친척이 오는 걸 보면 쉽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1960년대 중후반 일본과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까마득한 선진국이었다. 세 나라의 문화와 학업을 모두 경험하셨는데, 실제 충격적으로 다가온 점들이 있었나?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듣는 것과 실제 보는 것은 굉장히 다르지 않나. 하필 시기가 좋지 않았다. 1961년 8월, 5・16 직후였다. 김포공항부터 군인으로 가득했다. 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가는 동안 본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조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경상남도 거창에 가는 길은 더 대단했다. 교통도 엄청나게 불편했고, ‘의사가 되면 이런 곳으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과연 살 수 있을지 조금 걱정했다. 대학 졸업하고 미국 가기 전 한국에서 몇 개월 살면서 조금 더 현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 처음 생긴 원자력 연구소의 선배를 뵙고,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의 교수님과 학생들도 만났다. 그곳에서 내가 생각했던 한국과는 또 다른 부분을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한, 내게는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고등학교 3 학년 때, 3월 말에 왔다. 우리나라 4・19 혁명이 끝나고 2주 정도 후, 일본에서 비슷한 학생운동이 있었다. 참여한 고등학생만 오천 명에서 만 명 정도였다. 우연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학생 수가 제일 많아서, 학생회장이었던 내가 대표연설을 했다. 그때 ‘우리나라 민주주의’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일본’을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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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 Kilnam(The One Second from the Right) and His Teacher at The High School Graduation Ceremony
뜻하는 ‘우리나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4・19가 있었고, 수천 명 앞에서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인간은 극한상황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고민이 없어지고 ‘어떻게’ 한국에 갈지만 생각했다. 미국 생활도 한국에 가는 준비를 한 셈이었다. UCLA 유학 시절, 학교생활 외에는 어떤 일과 취미에 시간을 들였나? 아내와 내가 박사 학위를 모두 마친 뒤, 고민 없이 한국행을 결정해둔 상태여서 캘리포니아를 제대로 즐겼다. 금요일 오후 일찍 출발해서 차로 500km를 달리면 밤늦게 산에 도착한다. 다음 날 아침에는 베이스캠프까지, 여유 있으면 산 정상까지 오르고 일요일 밤 아홉 시쯤 집에 왔다.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보내고, 다른 주말에는 바다에 갔다. 아내분전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교수과 함께 유학 생활하셨다. 처음 만난 이야기도 궁금하다. 아내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미국으로 왔는데, 박사 학위 과정 1~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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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정도 시점이었다. 친한 친구 아내의 동생이어서, 미국에 오자마자 바로 만났다. 그 친구 결혼식 때 내가 베스트맨best man·신랑 들러리이었고, 집사람이 브라이드메이드bridesmaid·신부
들러리였다.
그때 이미 둘이 결혼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박사 학위를 마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서, 논문 심사가 끝나자마자 밤 비행기로 한국에 와서 이틀 뒤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은 굉장히 길게 했다. 아내가 가고 싶어 한 설악산부터 일본, 하와이, 미국 전역 그리고 캐나다까지 갔다. 박사 학위를 마친 직후여서 그런지 더 신 나는 분위기였다. UCLA에서 전산학 석사와 시스템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록웰 인터내셔널에서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Computer
System Engineer로
재직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이하 NASA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JPL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기술연구원으로 근무하셨다.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두근거렸던 때는 언제였나? 미국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을 하나 고르라면 ‘NASA’를 꼽을 것이다. 화성도, 목성도, 달도 보내자는, 실제로 우주선을 발사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은 NASA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동안 계속 성공해오지 않았나. 세계 최고 수준의 시스템 공학 system engineering; 복잡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설계하거나 개발하기 위해 고안된 공학 분야. - 편집자 주
덕분이었다. 그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했고 많이
배웠다. 보통 프로젝트 주기cycle 가 30년이다. 예를 들어 목성에 가는 로켓 발사를 위해 20년 전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때 연구를 시작해서 20년 후 로켓을 발사하고, 그 후에도 우주에 머무는 몇 년 동안 연구를 계속 한다.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나라가 수십 개국, 회사는 수천 개, 인원은 수만에서 수십만이다. 그 전문 지식knowhow 은 정말 굉장했다. 그때의 경험이 귀국 후의 한국 첫 인터넷 개발에도 영향을 끼쳤나? 당시 작업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귀국하면서 많이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건 당시 체득한 지식과 경험이었다. 사실 귀국하자마자 한 것은 컴퓨터 국산화와 인터넷 개발 그리고 등반이었다. 컴퓨터 국산화는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내가 한 것은 컴퓨터 네트워킹뿐이다. 이것은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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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있다는 가정 아래 시작한다.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NASA의 시스템 공학에 비하면 간단하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개발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제트추진연구소의 경험은 최고로 도움이 됐다. 등반은 조금 무리했다. 1979년에 한국에 와서, 1982년 한국 첫 인터넷 개발과 동시에 유럽 3대 북벽 등반에 성공1980년 8월, 전길남, 윤대표, 허욱, 유한규, 임덕용 등 5명이 마터호른 북벽을 등정했다. - 편집자 주
이후 히말라야 미등봉 등반에
성공했다. 인터넷 분야 업적으로 1997년 첫 국가 훈장정보통신부 한국정보문화센터 국민훈장 동백장 을 받으셨는데, 등반으로는 이미 1980년에 훈장국민훈장 기린장 을 받았다.
상 받을 때 참 재미있었다.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 직후라 메달 딴 사람들이 모두 거기 있었는데, 나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이지 않나. 평소 지내는 분위기와 달라서 흥미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등반은 조금 무리한 것 같다. 그렇게까지 세계 최초를 해야 했나 생각이 든다.
Rock Climbing Practice,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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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공학자로서 미국에서 부와 명예를 얻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979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우리나라에 들어오셨다.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시작한 건가? 1979년경 국책사업을 위해 전자기술연구소 부장으로 들어오게 됐다. 원래는 대학교수로 올 예정이었는데, 한국의 대학교에서는 한 번 가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당시 굉장히 친했던 분에게 일단 연구부서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연구소에서는 컴퓨터 국산화 부분을 도와달라고 요청받았다.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NASA에서 배운 시스템 공학을 응용하면 되겠지 싶었다. 인터넷보다 ‘컴퓨터의 국산화’가 더 중요한 목표였나? 국가적으로는 그랬다. 컴퓨터와 반도체의 국산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인력차이도 엄청나게 컸다고 들었다. 컴퓨터 국산화는 50~60명의 엔지니어가 매달리는 프로젝트였다. 인터넷은 엔지니어 한 명과 함께했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학생들과 하면 되니까. 아마도 내가 그만두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다. 만일 돌아간다면 프로젝트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네트워킹’의 개념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박사님께서 주도한 1982년의 세계 두 번째 인터넷 개발1982년, 구미 전자기술 연구소와 서울대학교를 연결하는 네트워킹을 만들었다. - 편집자 주은 어떻게 이뤄지게 되었는가?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서,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상품개발과 연구는 굉장히 다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 1975년 빌 게이츠(Bill Gates)가 폴 앨런(Paul Allen)과 함께 설립한 미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 - 편집자 주는
상품 개발을 굉장히 잘한다. 이 회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거의 없다. 항상 세계에서 두 번째, 세 번째이고 때로는 다섯 번째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잘 알고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는 첫 번째에만 의미가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 것은, 가령 책 한 권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책을 처음 쓰는 것에 비교할 것은 되지 못할 것이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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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가적인 사명’처럼 일종의 소명 의식이 넘치지 않았을까? 함께 연구하던 분들과는 어떤 분위기였는지 궁금하다. 당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야뿐만이 아니라, 정말 모두 열심히 했다. 그때 젊은이들은 도전적인 것을 하고 싶어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다. 본인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랄까. 또한, 대학교에 연구실도 많지 않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가져오면 다들 좋아했다. ‘지금 MIT의 학생도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한다’ 고 말하면 굉장히 즐거워했다. 그런 자리를 제공해주면 그저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기회 자체를 좋아했달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2008년부터 중국 칭화대학清華大學・Tsinghua
University; 중국 수도 베이징에 있는
국립대학으로, 베이징대학과 함께 중국 최고 명문대학 중 하나. - 편집자 주에서
가르칠 때에도
느꼈는데, 그들도 과거 우리 학생들과 비슷하다. 학생들이 한국과학기술원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이하 KAIST
상위 5%
수준이다. 열정이 정말 대단한 젊은이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1982년부터 KAIST 공학부 전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배출해냈다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을 역임한 허진호 박사, 넥슨(Nexon)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든 김정주 NXC 대표, 네오위즈(Neowiz)의 ‘원클릭 서비스’를 만든 나성균 대표, <리니지>를 만든 엑스엘게임즈(XL Games) 송재경 대표 등. - 편집자 주. 교육자로서의 박사님을
자평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자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처음 한국에 온 이유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KAIST에는 나보다 머리 좋은 학생이 많지만, 단지 기회가 적어 내 수준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KAIST에서 정년까지 25년 정도 교수 생활하면서 5년에 한 명, 총 다섯 명 정도만 내 수준 혹은 내 이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해놓고 나니 탈락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리더’를 만들었으니까 괜찮다고 할까. 어떤 학생은 미국에서 창업하여 성공했고, 일본에서도 좋은 회사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부사장을 하는 제자는 비행기에서 자는 시간이 가장 많다고 한다. 결국, 그런 사람을 다섯 명 정도 배출했고 그 시절이어서 가능했다. MIT나 스탠퍼드 대학을 보내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만, 리더를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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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데는 낭비가 아니었다. 사실 인터넷 프로젝트에 필요한 사람들은 그런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박사님의 주 연구 분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물론 인터넷이고, 다른 하나는 시스템 공학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 작용’ 이다. 1960~70년대 공상과학Science Fiction 소설에서 볼 법한 미래를 미리 걸어오신 분이다. 애플의 시리Siri; 애플의 iOS용 개인 단말 응용 소프트웨어. - 편집자 주나 구글 글래스Google Glass; 구글이 프로젝트 글래스(Project Glass)라는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개발 중인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가 장착된 착용 컴퓨터. - 편집자 주 처럼
사람과 대화하며
진화하는 모바일 컴퓨팅 시대가 도래한 지금, 박사님께 미래의 인터넷은 어떤 모습인가? 전 세계 인구가 70억이고, 현재 인터넷 사용 인구는 30억이다. ‘모두가 인터넷을 사용하기까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숙제이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인터넷 사용자는 계속 늘고 있다. 올해 스마트폰 생산량이 12억 대라고 하고, 4~5년 후에는 18~20억 대를 생산할 전망이라고 한다. 모두 인터넷 기능을 탑재하고 있지만, 모두가 사용할까? 아닐 것이다. 특히 개발도상국, 아시아권이나 아프리카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미 아프리카에도 대부분 휴대전화를 쓴다. 그 기기를 교체할 때 스마트폰으로 바꿀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쓰는 인프라를 그대로 받아 사용할 수는 없다. 그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우리나라는 운이 좋았다. 우선 자국의 오피스 프로그램과 네이버Naver 같은 국산 검색엔진이 있고,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도 있다. 모두 한국어를 지원한다. 구글처럼 외국 회사가 만든 것도 있으니, 선택권이 있다. 이런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 정도뿐이다. 이건 유럽도 하지 못한다. 영어와 비슷하니 약간 수정만 해서 사용할 뿐이다. 구글과 페이스북Facebook 을 쓸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에는 오백 개에서 천 개가량의 언어가 있다. 몇십 년 후에는 한두 개 정도만 살아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언어가 모두 사라지는 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일까? 아프리카도 트위터Twitter 나 페이스북을 능숙하게 쓴다. 하지만 그것만이 인류가 원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런 문제까지도 신경 써야만 한다. 그다음 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IoT; 사물에 센서나 데이터 취득이 가능한 구조의 인터넷 연결 기술로, 생활 속 사물을 유・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환경. - 편집자 주이 있다. 우리가 정말 사용할 준비가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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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어느 정도 되어 있을 것이다. 가령 자동차 사고 희생자는 매년 수십만 명이다. 세계 곳곳의 전쟁 희생자 수보다 약 열 배 정도 많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물인터넷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웬만한 교통 시스템, 원자력 에너지 시스템 등이 사물인터넷을 사용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100% 안전할까?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요즘 우리나라는 금융권 보안 문제가 쟁점이다. 인간이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공격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만약 이게 교통 시스템에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준비가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나? 이건 모든 부분에서 조심해야 하는 문제다. 금융 보안 문제로 1조 원 정도 날아가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사물인터넷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상용화되었을 때, 누군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인터넷 기술은 공격하기는 쉽고, 방어하기는 무척 어려운 구조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한다. SDF 2014 기조연설에서 ‘남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위해 아시아가, 우리나라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얘기하셨다. 지금 젊은이들이 인터넷의 미래를 위해 할 일들을 말씀해주신다면? “’We Need Innovate Wisdom’, 어떤 식민주의식 관리라든지,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과 접근은 더는 21세기에 유효하지 않다. 그러므로 혁신적인 지혜, 이 컨퍼런스의 주제를 채택해야만 한다”고 했다. 결국, 규모가 굉장히 커져야 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약 20% 정도가 1~2년 정도 외국에 가야 한다고 본다. 20~25%를 티핑 포인트 tipping point;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주창한 이론이자 동명의 저서 이름으로, 작은 변화들이 모여 어느 순간 호조로 급격히 변하는 시점을 뜻한다. - 편집자 주로 생각한다. 이 수준을
넘으면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아도 안정화 상태에 접어든다. 우리나라는 혼자 살아남기 어려운 나라다. ‘중개자’ 혹은 ‘코디네이터’가 더 잘 맞는다. 지금까지는 선진국에 배우러 나갔지만, 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개발도상국에 가서 그들을 돕는 데 있다. 배우러 가는 것뿐만 아니라, 일하러 가야 할 때다. 정부에서 만드는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KOICA
같은 국제
봉사단도 있다. 십 년가량 지나면 어느 정도 자리 잡힐 테고, 지금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단계부터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한다. 앞으로 10~20년간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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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을 때, 우리나라의 목표 중 하나인 개도국과 선진국 간의 교량 역할을 충분히 담당해나간다면 국제 사회의 매우 중요한 지도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평생 인터넷 분야에 헌신해오신 분으로서 ‘가장 보람찼다’고 느낀 순간이 있을 듯하다. 중고등학생 같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으로 좋은 자료를 얻어 과제를 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인간관계를 세계로 확장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새로운 기회와 뜻밖의 즐거움을 느낄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니까. 지적 확대intellectual augmentation 라고도 할 수 있다. 보통 체험으로 어려운 것들이 인터넷을 통해
확장될 수 있지 않나. 원래 그것이 목적이기도 했고. 본인의 분야를 개척하신 혁신가로서, 2014년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조언 부탁드린다. 조언을 잘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인터넷은 아직도 시작 단계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다. 본격적인 인터넷 개발은 이제 시작될 거다. 그걸 준비하고, 살아남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충 ‘인터넷은 이런 거지’ 생각하면 안 된다. 10년, 20년 전 지금의 인터넷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훨씬 더 발전할 부분이 많다.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언이라기보다, 모두가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거다. 박사님의 삶에서 ‘인터넷’이란 어떤 존재인가?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지금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 가상공간 cyber space이라고
입력했더니, 그런 도시는 없다고 나오더라. (웃음) 제일
가까운 곳은 말레이시아의 사이버자야Cyberjaya가 아닐까. 2008년, 은퇴하자마자 두 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세 도시에 살게 됐다. 칭화대학이 있는 베이징, 게이오대학慶應義塾大學校・Keio
University 이
있는 도쿄 그리고 서울. 그렇게 되니 베이징도, 도쿄도, 서울도 아닌 결국 가상공간에 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계속 가상공간에 사는 느낌이다. 가령, 올해는 물리적으로 서울에 50% 정도 머문다. 15%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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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KAIST가 있는) 대전, 나머지 35%는 미국, 유럽, 아시아…. 인터넷 때문에 가상공간에 살 수 있게 됐다. 내 자료는 모두 ( 웹상의) 데이터 센터에 있다. 어딘가에 100% 산다면 그곳에 자료를 두면 되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서울에 있는 컴퓨터에 접속하는 빈도도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SDF 2014 프레스룸에서 실시간으로 전길남 박사의 기조연설을 봤다.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누리는 인터넷이 ‘미래 세대가 더 책임감을 지니고 개척해야 할 대상이어야 한다’는 연설은 마음을 뒤흔들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깨는 기분이었다. 세 시간에 가깝게 이어진 인터뷰의 처음 한 시간은 지면에 싣지 않았다. 넌지시 흘리면, 미리 <스펙트럼>을 꼼꼼히 읽은 그가 모바일 시대에 <스펙트럼>이 나아갈 방향에 관한 조언이었다. 그는 관심 두는 모든 것에 열린 소년 같은 현학顯學이자 행동가였다. 대화 후의 벅찬 여운이 어느 때보다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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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 FUTURE WHERE PEOPLE DIDN’T FOUND YET. interview & text HONG SUKWOO photography KIM BOSUNG, HONG SUKWOO edited HONG SUKWOO, LEE JIHYUN © all ‘beat’ works courtesy of The Beatpacking Company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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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of the Beatpacking Company
Mr. PARK S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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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 Friends, Radio Channels & Playing Screens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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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이하 앱 app 은
사람들의 삶을
바꿨다. 단문 메시지, 사진 공유, 타임라인 같은 단어도 기존에 없던 것들이 아니었다. 페이스북Facebook 이전에 마이스페이스Myspace 와 싸이월드 Cyworld 가
있었고, 블로그blog 와 포럼forum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하 SNS 에
열광한다. 수억 명이 쓰는
SNS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파고들었다. 최근 그 흐름 안에서 ‘음악’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이튠즈iTunes를 위시한 내려받기downloads 서비스가 정체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streaming; 음악이나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파일을 전송하고 재생하는 방식 중 하나로, 파일을 내려받는 동시에 재생함으로써 기다리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편집자 주’ 서비스가 주목받는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 ‘비트beat ’라는 음악 앱이 생겼다. 이 앱은 오직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모바일 앱에서만 작동하고, 노래는 전부 무료로 제공한다. 기존 서비스처럼 직접 음악을 내려받는 요소를 배제한 대신, 그때그때 바뀌는 선곡의 수십 가지 채널로 듣는 ‘라디오radio’ 방식이다. ‘비트’를 만든 비트패킹 컴퍼니The Beatpacking Company 는 설립 1년을 갓 넘긴 신생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를 만든 박수만은 가입자 천만 명을 넘긴 SNS를 두 번 경험했다. 국내 최초 단문형 SNS ‘미투데이me2day ’를 만들고, 네이버NAVER Corporation에서 폐쇄형 모바일 SNS 서비스 ‘밴드 BAND ’를
기획하면서다. 그는 네이버라는 거대한 우산을 벗어나 다시
벤처기업을 설립했고 그 결과물로 사람들이 무료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음악, 스트리밍, 모바일과 스마트폰. 이 앱이 성공할지, 아직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모바일 키워드가 모두 ‘비트’ 안에 있다는 점이다. — SPECTRUM: 당신의 텀블러www.sumanpark.com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봤다. “어떤 앱을 하나 만들어 성공적으로 출시하기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1) 하고 싶은 아이디어와 스펙을 백과사전 두께만큼 생각하고 머릿속에 계속 담고 있느냐는 것. (2) 그리고 그 두께를 복사지 한 장 두께로 줄였느냐는 것. (1)도 쉬운 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2)야말로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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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만이 할 수 있는 일.”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쓴 짧은 글이었다. 미투데이me2day 를 만들고, 새로 비트패킹 컴퍼니The
Beatpacking
Company 를 만든 박수만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야기 아닌가 싶다.
박수만Park Suman: 어느 일이 안 그렇겠느냐마는 인터넷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 저변에 깔린 -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이 어떻게 지금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을 만들어낼지 느낄 수 있는 - ‘이야기story ’. 또 하나는 그 서비스를 보여줬을 때 누구라도 ‘아, 나도 이런 거 만들고 싶었는데!’ 하는 반응이 나오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결과물을 배달하는 것. 인터넷 서비스 만드는 사람들은 저런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 일 자체를 못한다. 텀블러에 올린 얘기는 둘 다 해당한다.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저런 과정을 거쳐야만 하고,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완성을 향해 가는 ‘모바일 앱mobile app’도 첫 출시까지 저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괴로운 과정이다. 왜 이 일을 시작했나, 몇 번씩 자책한다. 하지만 ‘나도 이런 거 만들고 싶었는데!’라는 반응을 듣는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홈페이지 제작 일화도 흥미롭다. “beatpacking.com - 한 페이지로 뚝딱 만든 우리 회사 공식 웹사이트. 아주 아주 아주 작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규모를 떠나서 기존 회사 스타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업무 스타일로 한 첫 번째 작업이라는 게 재미있다. 페이지 구성 콘셉트를 내가 던지고, 한 명이 반나절 작업하고 올렸다. 기존회사에서는 웹디자이너가 포토샵으로 시안을 만들고 마크업 가이드가 나오기 전에는 그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다. 웹디자이너가 디자인하지 않은 페이지가 공표될 수 없다. 그리고 웹디자이너는 마크업/CSS 코딩을 할 줄 모른다. 작업시간은 족히 스무 배는 더 들어갈 거다. 시간이 많으면 이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내가 만든 회사는 그러면 안 된다.” 여기서 마지막 문장을 좀 더 설명해준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은 아니라는 전제로, 직원 100%가 개발자이면서도 멋진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전문 직군들이 일을 만들어 나가면, 단계와 정치가 생긴다. 2014년 3월 안드로이드Android; 구글 (Google)에서 개발한 운영 체제용 ‘비트beat, 이하 비트’ 앱을 출시하고 6주에서 7주 동안
매일 아침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앱을 쓰는지 여러 경로로 입수한 사용자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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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봤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앱을 쓰는 방법을 보고 놀라면서, 어떤 마일스톤milestone; 일의 단계 완료, 중요 산출물의 완료, 의사결정 시점 등 프로젝트 일정상 중요한 목표. - 편집자 주도, 업무 계획 일정도 없이 하루하루 보완하며
직원 모두 개발자가 됐다. 매일 개선한 내용을 (모두에게) 전달한, 정말 행복했던 기간이었다. 열 명짜리 회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절실히 느꼈다. 지난 몇 주간, 정보기술Information 다루는 서울디지털포럼Seoul
Technology, 이하 IT
Digital Forum 2014 과
업계의 새 화두를
스타트업 회사startup
company; 자체 비즈니스모델이 있는 작은 프로젝트 회사. 현재는 주로 IT 분야 벤처기업과 동의어로 쓰인다. - 편집자 주 관련 연사와 창업가들이 모인 비론치beLAUNCH 2014
행사에
다녀왔다. 그 안에서 만난 여러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와 앱을 들고 나온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러한 서비스들이 온전히 개발자의 시각만을 담고 있는 불완전체로 보였다.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할 수 있는 IT 분야 외의 ‘기획자’들이 업계에 들어온다면 더 매끄러운 서비스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뛰어난 기획으로 시작하는 일과 최소한의 기능으로 수수하지만 돌아가는 서비스로 시작하는 일,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하겠다. 발표한 서비스들을 보지 못해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리 보였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했더라도 계속 고객들을 보고 진화해 나가는 분들이라면 살아남을 것이다. 뛰어난 기획만으로 끝나는 경우도 참 많다. 불완전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선보이는 사람들이 세상을 좋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트패킹 컴퍼니The Beatpacking Company 를 시작하면서, ‘차근 차근 ‘더 좋은 세상’이 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IT 분야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이 생기거나 지속하고 또 사라진다. 미투데이 창업과 매각, ‘네이버’라는 대기업에서의 경험, 다시 비트패킹 컴퍼니에 이르기까지 ‘경영자’로서 회사와 서비스에 관한 철학이 궁금하다. 이번에 팀을 꾸리고 앱을 출시하면서 첫 번째 ‘멘붕’을 겪고, 다시 한 번 그 실패에서 방향 전환하며 새삼스레 느낀 점이 있다. 스타트업 회사만이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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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 Operating Plan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앞으로 서비스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현재 내놓은 결과물은 기성 회사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다. 나와 우리 팀이 대기업에 속해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기획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부터 출시하고 7~8주 동안 주요 목표 지표를 잡고 개선하기 위해 매일 아침 회의하는 과정 등이 그랬다. 열심히 서비스를 만들고, 어느 날 ‘빵’ 터뜨리는 스타트업을 꿈꿔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 느꼈다. 작게 시작하고, 시장 반응에 따라 개선하다 보면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기대를 할 단계 정도까지 온 듯하다. 또 한 번 새로운 일로 이런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2007년 2월 미투데이를 만들었다. 국내 최초 단문형 SNS였다. 총 가입자 수는 1,3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2014년 6월 30일부로 이 서비스는 종료한다. 어떤 마음이 드나. ‘웹 2.0Web 2.0; 단순한 웹사이트 집합체를 웹 1.0으로 보고, 웹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완전한 플랫폼으로의 발전을 웹 2.0이라고 지칭. 사용자들의 참여, 공유, 개방을 유도산출물을 공유하고, 외부에 개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 편집자 주’
바람을 타고 당시 주목받던 몇 가지 서비스 중
하나였다. 이미 블로그가 활발했던 2007년 2월 출시했는데, 파편적으로 흩어진 블로거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미투데이에) 링크하고, 짧은 소식을 나누며 더 밀착해서 대화하도록 한 것이 첫 모습이었다. 각자 정체성identity 은 블로그 별명으로 하고, 내가 대학생일 때 PC 통신 동호회 사람들 만나는 듯한 커뮤니티 느낌을 줬다. 지금의 십・이십 대들도 주변에서 만나기 어려운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로 계속 발전해나갔다. 카카오톡KakaoTalk이 나오면서, 모바일 안에서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웹 2.0은 그 힘을 이기기 어렵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아는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긁어내서 연결하면 되지만, 미투데이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기계적으로 할 수도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이제 카카오톡, 라인LINE; 무료 통화・메시지 앱, 밴드 등이 자리 잡은 시대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바일 환경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덩치 큰 소셜 미디어 social media 가
새로 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어떤 분이 그걸
달성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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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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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ea t’ Sp la sh ,M ix Li st s, St or e Sc re en s
미투데이 이후, 네이버에서 밴드BAND 를 기획한 것으로 안다. 이는 기존 SNS와 조금 다른 개념으로, 네이버 대표 서비스 중 하나인 ‘카페’의 연장선이었다. 원래 ‘밴드’는 미투데이 안의 그룹 서비스 이름이었다. 경쟁이 발전을 만들어낸다고, ‘카카오톡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익명・온라인 네트워크인 미투데이 말고, 실명・오프라인 네트워크 서비스를 내야만 살아남겠다는 생각뿐이던 때가 있었다. 웹 2.0 시대에 미투데이를 내놓고 한 발 더 나갔다면, 밴드를 통해 모바일 시대로 자연스럽게 경력이 이어졌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밴드가 없었다면 또 한 번 창업을 결정하지 못하고 어떻게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았을 거다. 카톡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은 다 모였지만, ‘모임group’ 관련해서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룹 주소록 느낌이 나면서, 아이러브스쿨iloveschool.co.kr; 학연을 기반으로 한 인맥 구축 커뮤니티 웹사이트과
프리챌freechal.com; 커뮤니티 기능에 특화했던 국내
포털 웹사이트에서 벌어졌던 일이 모바일에서 또 일어날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이미 출시된 앱 중 그런 요구를 수용한 앱은 없었다. 네이버 카페도 모바일에서 이용하기는 무척 어려웠고, 기본적으로 카페 구성원들의 정체성은 네이버 블로그, 즉 온라인 기반이라 실명・오프라인 네트워크 느낌이 나지 않았다. ‘카카오톡 그룹 대화방과 뭐가 다르냐?’는 반문 속에 밴드를 출시했다. 아무런 네트워크 없이 전화번호만으로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지만, 밴드를 만들어 한 명 초대하면 그 사람이 나와 연결 닿지 않던 다른 친구를 데리고 들어왔다. 10년 만의 만남. 그걸 경험한 친구들이 또 새로운 밴드를 만드는 바이럴 루프viral loop; 한 명의 소비자가 또 다른 소비자를 불러들여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들고 확장해가는 소셜 네트워킹 트렌드. - 편집자 주가
집단 소통group
communication
생겼다. (전문적인)
도구라기보다는, 쉽게 무리를 만드는
역할이 컸다. 그 점이 카카오톡 그룹 대화방이나 네이버 카페가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미투데이에서 떼어낸 밴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스타트업 회사가 높은 수요를 창출하거나 시장의 흐름을 타면, 시장지배기업의 인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외국 사례를 들 것도 없이, 미투데이 또한 그랬다. 네이버라는 강력한 지원군을 얻고, 수십 배는 많은 개발자와 인력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기업이 갑자기 큰 기업 일부가 되었을 때, 예측하지 못한 문제점은 없었나?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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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회사라도 제한된 자원resource을 어떻게 우리 조직에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 것, 이런 문제는 지금 생각해도 어렵다. 평가와 보상에서 벤처와 대기업이 다를 수밖에 없는 점도 처음에 가장 어려웠다. 똑똑하고 냉철한 직원일수록 자기가 생각하는 보상만큼만 일하려는 경향이 있고, 덜 똑똑하더라도 열정 있는 직원이 그런 것과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려는 경향인 것도 봤다. 그래도 네이버는 반기半期별로 새로이 인사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많이 노력하는 회사여서 배운 점도 많다. 좋은 말도 나쁜 말도 아닌 측면으로, 똑똑한 직원이 많은 똑똑한 회사다.
‘beat’ Visualization of the User Experience Flow, 2013
실무 직원보다 중간관리자와 업무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네이버처럼
‘비트패킹 컴퍼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나? 이 회사를 시작하면서 감사한 일은 사람을 구하러 나서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최고기술책임자Chief
Technology Officer·CTO
도흥석은 대학교,
대학원, 병역특례, 미투데이, 네이버까지 인생의 상당 시간을 함께한 후배다.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와 노는 걸 좋아한, 진정한 개발자다. 다시 태어나도 이런 친구 실력은 근처에도 못 따라간다. ‘창업’이라는 키워드가 요새 참 많이 나오는데, 이런 친구가 주축이면 일단 절반은 한 셈이다. 그리고 미투데이와 네이버에서 함께 일한 친구들과 이십 대 초반 직원들이 있다. 스물두세 살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게 참 좋다. 휴학 중인 대학생 직원은 활기 있고 빠르게 참 잘한다. 네이버 같은 회사에서 이런 친구들과 일할 기회가 없다는 것은 서로 불행한 일 아닌가 생각마저 했다. ‘비트’ 얘기를 해보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점이다. 음원 내려받기 시장을 선점한 멜론MelOn, 네이버 뮤직Naver
Music
등이 이미 ‘라디오’ 기능을 선보였다. 아이폰iPhone 과
아이패드iPad 기본 음악 앱에도 라디오 기능이 들어갔고, 외국으로 눈을 돌리면 스포티파이Spotify; 2006년 스웨덴 스톡홀름 스포티파이 AB(Spotify AB)에서 개발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_ 편집자 주
같은 거대 서비스도 있다. 지금 사람들이 ‘비트’를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학교 1학년 때 소니 워크맨과 이어폰으로 정식 발매한 팝송 카세트테이프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천국이었다. 스마트폰은 그보다 훨씬 좋은 음향기기인데, 모든 사람이 손에 들고 있다. 인류역사상 처음이라 생각했을 때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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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가장 음악을 많이 듣는 기기는 스마트폰이 될 거라는 게 회사를 시작한 계기다. 국내 보급 스마트폰은 3,600만 대다. 정액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는 600여만 명쯤 된다. 현실에서 약 3,000만대는 아직 ‘천국’과 거리가 멀다. 지금 나온 음악 앱이 이런 시대에 걸맞은지 생각했을 때, 기회가 아주 크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에서 사람들이 음악을 듣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을 없애는 게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사용자 가치다. 매달 꼬박 돈을 내는 ‘유료’라는 장애물, 뭘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장애물, 요새 어떤 노래를 들으면 유행에 따라가는지, 처한 상황에 맞는 분위기의 음악부터 친구들과 음악 얘기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요소 등을 해결하고자 했다. 출시 이후 비트를 접한 사람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면, 이 접근과 첫 번째 시도가 잘 맞아떨어졌다. 기존 서비스보다 더 ‘일반 사용자light user’를 노리겠다는 건가? LTE 용량에 쩔쩔매는 십 대, 노래를 스마트폰으로 한 번도 듣지 않았을 법한 오십 대 후반 같은 층에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하면서 만들고 있다. 다른 서비스에 비해 굉장히 단순하고 깔끔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이하 UX을
제공하는 걸 느끼셨을 텐데, 그저 편하게 들어와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수동적 청취 경험passive listening experience이 최우선 순위에 있다. ‘라디오’라는 이름을 최종 선택한 것도, 우선 무료라는 점 그리고 ‘틀고 채널만 고르면 끝’이라는 쉬운 이미지로 다가가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막상 써보면 기존 라디오와는 달리 디제이DJ의 해설을 켰다 껐다 할 수도 있고, 이전・다음 노래를 틀고 싶으면 쓱 넘기기만 하면 되는 편리함부터 어느 정도 능동적으로 듣는 느낌을 받는다. 사용자 평가에서 무료라서 좋다는 말보다 좋아하는 노래 선곡이 잘 되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기존 사업자들은 아무래도 마니아층의 복잡한 요구사항과 이미 익숙해진 UX를 쉽게 바꾸기 어려우니까. ‘비트’ 음악 채널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나? 스물다섯 개 내외 채널을 유지하려고 한다. 수백 개 채널을 만들고 고르도록 하는 것도 앞서 얘기한 우리 초기 대상층에는 버거운 노동이다. 직접 DJ가 노래 설명해주는 채널을 다섯 개 정도로 늘리려고 한다. 이 일을 도와주는 외부 팀들이 있다. 스트리밍으로 노래를 들으면 엄청나게 넘기면서skip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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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듣다 말다 하는데, 희한하게 설명을 들으면 그 노래를 좀 더 오래 듣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용자 청취시간도 늘어난다는 통계 결과로도 나타난다. 반대로 사용자들이 공급자처럼 새로운 채널을 소개하는 시도도 재밌지 않을까? 직원들이 매일, 매주 회의 때마다 건의하는데, 말리는 실정이다. 아직 첫발도 내딛지 않았다. 지금 우리 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경험의 저변을 넓히면서 곧 선보일 수 있는 기능일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재미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비트’의 디자인 콘셉트는 무엇인가? 기존 ‘소셜 뮤직social music ’ 범주category로 먼저 나온 앱들이 많이 있다. 음악 관련 친구들의 활동 중심으로 돌아가는 ‘음악계의 인스타그램’ 형식을 대부분 빌리는데, 우리는 ‘소셜 뮤직’이 되려면 우선 이런 활동이 보이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첫 이미지는 ‘디 얼티밋 뮤직 플레이어 The Ultimate Music Player ’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정말 예쁘고 좋은 음악
재생기였다. 더는 단순해질 수 없이 전시한 스물다섯 개 정도의 라디오 채널을 누르면 화면 전환 없이 재생하고, 내가 찍은 사진으로 표지를 지정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인 ‘믹스Mix’가 나온다.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스마트폰에 저장한 MP3 파일도 비트 안에서 구매한 음원처럼 똑같이 재생하고 이러한 활동을 공유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이 음악을 무척 좋아하고 폭넓게 듣는데, 이 녀석이 ‘비트가 가장 예뻐서 쓴다’는 말을 듣는 게 목표이기도 했다. 텀블러Tumblr와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아직 페이스북과 트위터처럼 광고나 광고 계정이 붙지 않은 것처럼,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SNS들도 여전히 수익 모델을 고민한다. 이러한 부분의 단계별 시나리오가 궁금하다. ‘활성 청취자’ 숫자가 늘면, 맞춤형 (음성) 광고가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잠재시장 규모가 가장 중요하다. 3,000만 명을 잠재 시장으로 보고, 2016년 정도에 월간 활성 이용자 수 1천만 이상이 되는 걸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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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Suman’s Notes, 2013~2014
목표 삼고 있다. 올해는 라디오를 주요 기능으로 앱이 퍼지게 할 계획이지만, ‘비트’에는 이미 음악을 듣기 위한 전반 사이클에 해당하는 기능 단계layer 가 다 들어있다. 이미 스마트폰에 저장한 MP3 파일도 우리 서버의 음악 목록catalog 과 비교하고 연결하면서, 기본 음악 재생 기능도 하고, 종류별로 다양한 믹스를 만들고, 이걸 친구들과 손쉽게 주고받을 수도 있다. 이런 단계의 완벽한 모습을 상상하며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무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광고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지 않나? 광고 내용에 따라 반응이 다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우선 무료로 라디오 듣는 걸 인지하기 때문에 접하는 광고의 심리적 저항감이 상대적으로 낮고 수용성이 높다. 즐겨 듣는 노래나 음악가 특성에 걸맞은 광고가 나가고, 스마트폰에서 듣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까지 고려한다면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치동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 밤 10시에 비트 라디오를 들을 때, 치킨 광고가 나가는 상상도 해본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에 반기를 드는 사용자들도 있다. 그들은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가 창작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수익을 저하한다고 말한다. 규모 얘기를 좀 해보자. (현재 국내 디지털 음원 시장은) 3,600만 명이 아니라 600만 명이 돈 내는 시장이다. 메가 히트를 해도 한국에서는 음원으로 수익이 너무나 적다. 이런 상황 타결이 우선인 듯하다. 우선 스마트폰에서 합법적으로 음악 듣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정말 대중적인 음악조차 대중의 스마트폰에서 재생되지 않거나 규모가 너무 적은 게 현실이다. 비트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면 소비자 금액의 60% 이상을 정산한다. 이게 더 올라가야 하는 것보다, 우선 (시장의) 파이 자체를 더 키워야 한다. 충분히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심지어 북미에서 디지털 음악 매출의 70%를 차지했던 내려받기 매출도 작년 기점으로 줄기 시작했다. 스트리밍은 거스를 수 없는 주류 시장의 음악 청취 방법이 되어 간다. 음악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은 정액제 서비스에 가입해서 음악을 계속 열심히 듣고 알릴 거고, 비트 라디오 같은 서비스는 더 쉽게 음악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비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비트 라디오에서 한 곡 재생될 때마다 약 7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음악을 듣지 않던 스마트폰에서 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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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을 설치하고 비트 라디오에서 음악 듣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청취시간을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 시장에 새로운 자본을 끌어들인다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창작자들도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시장을 실현해내는 데 비트패킹 컴퍼니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 ‘비트’는 어떤 단계에 다다랐다고 자평하나? 대중적인 앱이 되기 위해서 첫 출시 이후 체력을 다져야 한다. 앱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다양한 사람이 우리 앱을 접하면서 겪을 다양한 상황을 깔끔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3월 출시 이후 7주 동안 이런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처음 비트 앱을 접한 사람들이 지속적인 이용 관련 지표 숫자가 매우 좋다. 이런 모델로 국내 주요 음원 유통업체들과 직접 계약하고, 앱을 출시하고, 7주 이상 안정화 단계를 거쳐 이제 정말 대중에게 확 다가갈 준비를 마쳤다. 다가오는 3분기부터는 우리 얘기를 많이 보게 되시리라 기대한다. 이미 많이 유명해져서 만나지 않고, 이런 단계에서 <스펙트럼>과도 얘기 나누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스펙트럼>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소위 한국형 SNS의 전신이라 평가받는 커뮤니티 서비스 - 싸이월드, 프리챌과 다음Daum 과 네이버 카페, 미투데이와 밴드 - 는 ‘한국인’들의 호응과 열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다국적,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SNS 에 밀리거나 변화의 시점을 놓쳤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제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기는 시장이 너무 작고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포부는 ‘스타트업 회사를 차린 개인’에게 너무 막연할 수도 있다. 이에 관한 비트패킹 컴퍼니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제 인터넷 서비스 스타트업 회사가 세계 진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 유수의 음악 서비스들이 몇 년간 무척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일반 인터넷 서비스와는 달리, 음악 서비스는 음원 유통회사와 콘텐츠 제공 계약을 맺어야 서비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약 대부분은 특정 국가에서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지금까지 외국 음악 서비스 회사들이 세계적인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국가별로 계약을 전부 마치고, 준비가 끝난 나라별로 서비스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다른 전략으로 빠르게 시작하려고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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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케이팝K-pop을 비롯한 가요 청취자들이 외국 곳곳에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케이팝이 세계 음악 시장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만드는 주체들이 다 우리 주변 친구들이다. 우선 국내 음원의 외국 서비스 계약을 확장하고, 외국에서도 우리 음악을 합법적으로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숫자가 나오는 국가를 대상으로 국내 카탈로그를 외국 업체들과의 콘텐츠 제공 계약으로 확장・ 추진하고자 한다. 이 일이 이루어지느냐는, 현재 좋은 평가를 받는 ‘비트’가 그대로 외국 사용자에게도 통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 인터뷰를 위해 일주일간 두 번 박수만을 만났다. 한 번은 음악평론가들과의 저녁 모임이었고, 한 번은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비트패킹 컴퍼니 본사에서였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는 새로운 회사를 만든 이후 자신이 일 그 자체가 됐다고 했다. ‘비트’ 라디오를 듣다 보니 예전 음악을 듣는 방식이 고인 물 같다고도 했다. 박수만의 눈 속에는 새로운 회사에서 시작한 일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보였다. 그는 단순하게 정리한 포트폴리오로 사람들의 이견을 조율하고 개선해낸다. 하고 싶은 일은 주저하지 않고 저지른다. 어떠한 플랫폼을 창출하거나, 사업과 계획의 성공 여부와는 좀 다른 성질이다. 얼핏 빤한 얘기처럼 들려도, 직접 실행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일종의 고집 비슷한 자신감이 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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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packing Company, 2014 SUMMER
SPA text LEE JIHYUN edit HONG SUKWOO photography GO YUN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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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 ‘스페이스 SPACE’는 스펙트럼이 고른 서울 안의 공간 세 곳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요즘 가장 뜨는 곳들이 아닌, ‘지금 한 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는’ 공간들을 엄선하여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한강의 다리들’ 세 곳을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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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漢江鐵橋 Hangangcheolgyo(Railway Bridge) 한강에 놓인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는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연결한다. A・B・C・D 총 4개의 교량 중 A선은 1896년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경인철도 부설권과 함께 교량 가설권을 획득하면서 착공했다. 그러나 곧 인력난과 재정난에 시달렸고, 일본의 압력까지 받은 모스는 일본에 부설권을 넘기게 된다. 그리하여 A선은 일본에 의해 완공되었고 B선과 C선 역시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 경인선과 한강철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육로로 12시간, 배로 8시간이 걸리던 서울-인천 구간이 완공 후 한두 시간으로 단축됐다. 하지만 편리함도 잠시, 6・25전쟁 발발과 함께 1950년 6월 28일 A・B・C 3개의 다리가 모두 폭파되었다. 이후 1957년부터 1969년에 이르기까지 C・A・B선 순으로 복구되었고, 마지막 D선이 1995년 완공되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난 2006년 6월 10일,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된 한강철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명암을 오롯이 품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경제 발전과 교통혁명의 상징이면서도 일제 식민지배와 수탈의 현장이었고, 6・25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철교가 처음 개통되었을 때에는 일제에 대한 반감으로 나룻배만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2014년인 지금, 나룻배로 한강을 건널 수는 없다. 하지만 희생된 조상들의 넋을 기리며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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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대교 盤浦大橋 Banpodaegyo(Way Bridge) 반포대교는 용산구 서빙고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한국 최초의 2층 교량이다. 1976년에 잠수교가 먼저 세워졌고 1982년 교통량 분산을 위해 반포대교가 건설됐다. 저녁 일곱 시, 신반포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퇴근길 차량이 가득한 반포대교를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께서 서울로 출퇴근하시던 시절, 등굣길은 물론이고 하굣길에도 시간이 맞으면 종종 함께 집에 갔다. 그런 날에는 남산과 시청 같은 서울의 명소를 구경하고는 했다. 반포대교와 잠수교潛水橋; 물에 잠기도록 설계한 다리도 그중 하나였다. 여름철 홍수의 단골손님(?) 이기도 한 잠수교가 ‘잠수’하도록 지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6・25전쟁의 한강철교 폭파사건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유사시 폭파 위험이 낮도록, 폭파되어도 복구하기 쉽도록 낮게 지은 것이다. 게다가 잠수교를 덮은 반포대교 덕분에 위성과 항공 사진은 물론 구글어스 Google Earth에도 잡히지 않는다(덕분에 ‘안보교’라는 별명도 붙었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무지개 분수로 서울의 밤을 밝혀주는 줄만 알았더니, 교통량 분산과 유사시 안보 기능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은 기특한 다리인 셈이다.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이곳이 언제까지나 안보교로 쓰이지 않기를, 아름다운 다리로만 남아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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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교
五輪大橋 Olympic-daegyo(Way Bridge)
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 말고도 교량사에 많은 기록을 남긴 다리가 올림픽대교이다. 미관 저하와 수질 오염 문제로 가득했던 한강을 지금의 한강으로 변모시킨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이었고, 국내 최초로 콘크리트 공법을 이용하여 만든 방사형 사장교斜張橋; 양쪽에 높이 세운 버팀 기둥에서 비스듬히 드리운 쇠줄로 다리 위의 도리를 지탱하는 다리라는 점, 무엇보다 현상공모로 교량형식이 선정되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다리 한가운데 88 올림픽을 뜻하는 88m 높이의 주탑 4개가 서 있고 이를 중심으로 지름 25m의 케이블 24개가 다리를 떠받치고 있다. 주탑 4개는 우주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4주연・월・일・시와 사계절, 네 방향을, 24개의 케이블은 제24회 서울올림픽을 뜻한다. 주탑의 기둥 네 개가 한 곳으로 모인 것은 전 인류가 우리나라에 모여 화합과 평화를 이룬다는 뜻을 담았다. 다만 안타까운 비극도 있었다. 2001 년 5월 29일, 올림픽대교 중앙탑 상단에 올림픽 성화를 본뜬 조형물높이 13m, 10.8t을 설치하던 항공작전사령부 소속 CH-47 치누크 수송 헬기가 추락하여 헬기 탑승자 3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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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 A Few Moments in Life, Time. photography JDZ CHUNG style & edit HONG SUKWOO assistant LEE JIHYUN, GO YUNSUNG, KANG JI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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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런스 카 리퀴드 앨런* Fragrance Car Liquid ALLEN* SPICED* 2.6fl.Oz/80mL
OKS 스펙트럼이 선보이는 화보, ‘룩스 LOOKS ’. 한 명의 사진가와 에디터가, 상징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한 명의 인물 혹은 브랜드와 ‘이미지’의 경계를 탐험합니다. 그 두 번째는 일본 도쿄 아오야마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 레이블 ‘리타우retaW ’. ‘삶의 몇 가지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만든 2014년 여름의 포트레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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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런스 태블릿 클루니*, 앨런* Fragrance Tablet CLOONEY* & ALLEN*, 5 x 10cm, 8 pieces on 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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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런스 바디크림 제이제이*, 바디샴푸 내추럴 미스틱*, 핸드소프 마크* Fragrance Body Cream J.J.* 2.2fl.Oz/65g, Fragrance Body Shampoo NATURAL MYSTIC* 10.5fl.Oz/300mL, Fragrance Hand Soap MARK* 8.8fl.Oz/25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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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런스 룸태그 에블린* Fragrance Room Tag EVELYN* 9 × 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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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런스 패브릭 컨디셔너 에블린* Fragrance Fabric Conditioner EVELYN* 16fl.Oz/50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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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우 x 헤드포터 그루밍 파우치, 프래그런스 리드 디퓨저 바니* retaW×HEAD POTER Grooming Pouch, Fragrance Reed Diffuser BARNEY* 25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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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aW at Incase Korea Flagship Store, Apgujeong-dong, Seoul. (Tel. 02-542-1017) www.retaw-tok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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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O Fashion, Music, Art, Graphic Design, Subculture and Lifestyle in Seoul.
text SUNG CHANGWON, AHN SANGYEON, LEE JIHYUN, HONG SUKWOO edit HONG SUKWOO photography GO YUNSUNG, KIM BO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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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AL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열 팀의 공간에 스펙트럼이 찾아갔다 그들의 공간, 그들 자신, 그리고 인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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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디자인의 인케이스 제품은 첫 눈에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손쉽게 활용이 가능한 기능으로 모든 직업과 취향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인케이스 제품은 특화된 디바이스 보호, 미니멀한 디자인, 혁신적인 기능으로 당신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도와줍니다. 인케이스의 제품들은 서로 자연스러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완벽한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인케이스와 함께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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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Anywhere.
Incase Korea Campaign Page goincase.kr/anywhere Facebook facebook.com/incasekorea Twitter twitter.com/incasekorea Instagram instagram.com/incasekorea #_Anywhe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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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Anywhere.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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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미니용 포트폴리오는 이동이 많은 라이프스타일에 알맞는 향상된 수납과 기능성을 제공합니다. 포트폴리오 내부에는 메모가 가능한 노트패드가 함께 들어있어 메모가 필요한 순간 바로 메모할 수 있어 최고의 순간을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감성으로 함께 표현할 수 있어 Explore_Anywhere를 더욱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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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inho 김진호/ 레이버데이 디렉터 Laborday director
www.laborday.co.kr facebook.com/labordaykr instagram@jinho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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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 취재할 게 별로 없어서, 허허. 죄송해요.” 40여 분간의 촬영시간 동안 죄송하단 말을 열 번은 한 것 같은 그는 죄송은 커녕 한없이 우쭐한대도 고개가 끄덕여질 사람이었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패션 브랜드를 전개하는 것은 이제 익 숙하다. 남성을 위한 스카프를 만드는 브랜드가 없길래 스카프를 만들기로 했다는 말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수 있다. 그 러나 그가 가져온 스카프들은 놀랄 일이었다. 스카프 수집가로서 확언하건대 레이버데이의 그것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 다. 무엇보다도 솔직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서일까. 돌아오는 2014년도 가을/겨울 시즌에 더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싶어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출장까지 다녀왔다는 말에 꼬리를 물어 캐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매장 한편을 차지할, 조금 두툼해진 스카프와 장신구들을 바로 그 계절에 마주하고 싶었다. 또 한 번 감탄사를 터뜨릴 어느 가을날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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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 Sua 하수아/ 수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0 꼬르소 꼬모 예술가 Sua creative director, 10 Corso Como artist
www.suaprism.com instagram@suaprism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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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어떤 질문을 해도 그녀의 답변은 ‘희망’으로 돌아왔다. 작업의 원천 또한 희망이라고 했다. 하수아는 세계적인 편 집매장 디에치 꼬르소 꼬모(10 Corso Como, 이하 10 꼬르소 꼬모)의 작업을 도맡은 예술가이자 자신의 이름을 건 수아 (Su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인터뷰 섭외를 위한 통화에서 희망을 말하는 그녀에게, 과연 자본으로 무장한 최고급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희망을 전한다는 것일지 의문과 의심을 동시에 품었다. 하 지만 그녀를 만나고 그 질문에 엑스(X) 표를 쳤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서울의 10 꼬르소 꼬모 매장 두 곳 중 - 그녀는 서울 청담점과 명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Avenuel)점 두 곳의 시각 예술과 장식 작업을 맡고 있다 – 애비뉴엘점은 자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특히나 애정이 간다며, 매장은 물론 화장실 바닥 타일까지도 소개하느라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 기며 대화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어떤 희망에 사로잡혔다. 내게 닿은 희망이 그녀가 추구하는 그것일지는 분명하지 않지 만, 두 가지는 확신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로서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란 믿음이다. 마지 막으로 그녀가 꼭 함께 소개되길 바랐던 10 꼬르소 꼬모 예술팀을 소개한다. 10 꼬르소 꼬모의 총괄 아트 디렉터이자, 화 가이며 조각가이기도 한 크리스 루스(Kris Ruhs) 그리고 그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일한 도예가(ceramist) 카트 리나 아마토(Caterina Amato).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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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 Jaepil 유재필/ 그래픽 디자이너 graphic designer
www.yoojaepil.com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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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항상 디자이너이고, 글은 지금의 속도와 방식으로 조금씩 쓰려고 합니다.” 유재필은 2014년 4월 <소심한 사람>이 라는 수필집을 낸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문고판 크기의 수필집은 온전히 그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스물아홉에서 서른 사이 에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으로, 애초에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온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모인 글들을 들춰보니 자신의 일상이 너무 소심했고, 책의 제목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중고등학교 때 남자아이들은 상하관계를 설정하고 그 피라미드 위에 서 려고 노력하잖아요. 약점 잡히기 싫어서 센 척했어요. 하지만 성인이 되어도 ‘소심하다’는 말에는 여전히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슈퍼맨 같은 영웅은 아니잖아요. ‘쿨(cool)’해 보이는 사람도 전혀 상처 받지 않을 수는 없고요. 상처는 누구나 받는 것이고, 단지 정도의 차이가 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어요.”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의 성향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처럼, 또 한 번 인정했으면 좋겠다. 그는 글쓰기 에도 소질이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임이 분명하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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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Anywhere.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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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신나는 놀이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라이트한 색감의 카모패턴 레인지 백팩은 Range Large Backpack 사이클링의 즉흥성에서 영감을 받은 당일 여행에 최적화된 백팩입니다. 책 한권을 챙겨 당일 여행을 계획해 보시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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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Sungbo 홍성보/ 건축・공간 디자인회사 KIT 대표 architect
최근 신사동 가로수길 뒷골목에 입소문이 퍼진 보뚜 아사이(Boto Açaí)라는 가게가 있다. 단출하지만 흥미로운 식감만큼 눈길 끄는 것은 공간 곳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실용성이다. 이곳을 구성한 이는 홍성보라는 남자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 시던 아버지 덕분에 미술학도를 꿈꾸며 자란 그는 나이를 먹고 ‘공부하는 미술’이 하고 싶어 건축을 전공했다. 졸업 후 대기업 건축사무소에서 3년간 일했지만, 재미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독립한 지 1년 반, 보광동의 오래된 미용 실 자리에 사무실을 만들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작업을 하나씩 해나가는 중이다. 사용하는 이에게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 다는 그의 바람을 보여주듯이, 건축・공간 디자인회사 키트(KIT) 사무소의 다른 이름은 ‘ECEG(Easy Come Easy Go)’ 라고 했다. 회사 생활과는 달리 첫 미팅부터 시공과 마무리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둘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보다 즐겁 다고 말한다. “서울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폐가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기존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배웠어요. 물론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손길이 닿은 공간들은 익숙하고 친숙하다. 시각적인 아름다 움만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중요함을 아는 젊은 건축가의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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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com/sungbohong instagram@kitarchit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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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urang 김수랑/ 문구점 오벌 운영자, 아트 디렉터 stationery shop oval owner, ar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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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 오벌(oval)이 지금의 장소로 옮기기 전, 그러니까 햇수로 4년에서 5년은 되었을 무렵 처음 오벌에 방문했다. 평소 문구에 진지한 열정을 지녔기에 그곳에서 이것저것을 샀는데, 지금까지 매일 들고 다니는 것은 겟코소(Gekkoso)의 손 바닥 모양 책갈피이다. 문구는 패션과 옷처럼 남들에게 직접 보이는 취미와는 조금 다르다. 그 어느 분야보다 제 만족이 중 요하다고나 할까. 오벌도 이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진부한 동기로 만든 참신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어릴 적부터 문 구류 사 모으길 좋아했던 김수랑은 언젠가부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제품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본인의 소장품과 일본에서 공수해 온 몇 가지를 모아 문구점을 열었다. 다양한 국적의 제품들이 있고 그 안에서도 여러 제품군으로 나뉘지 만, 그 안에는 ‘김수랑이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팔고 싶은 것과 팔리는 것의 차이에 관한 걱정 어린 질문에 ‘대중적이진 않지만, 마니아층이 있어서 괜찮다’면서 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연필 한 자루도 정성 들 여 깎는 – 실제로 한 자루 깎아주었다 - 그녀가 곧 그림책을 출판한다고 한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김수랑과 오벌의 심상(心象)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www.shop-oval.com twitter@shop_o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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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예술가 집단 artist group
김가와 Kim Gawa 김보성 Gim Boseong 김종환 Kim Jonghwan 여예빈 Yeo Yebin 이지혜 Lee Jihye 전은진 Jeon Eunjin 하시모토 구루미 Hashimoto Kur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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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com/vcrworks vimeo.com/vcrworks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냅스터(Napster)가 등장하기 전의 록 앨범 표지만으로 만든 애니메이션(vimeo. com/86259185)을 봤다. 으레 외국 작품이겠거니 했는데, 서울에 사는 학생들이 만든 작업이라고 했다. 곧바로 <스펙트 럼>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의 이름은 ‘브이시알(VCR)’이라고 했다. ‘현실은 고통스러운 것(Reality Bites)’. 사회 초년생들의 미래에 관한 불안감은 누구나 비슷하다. 젊음의 현실과 꿈, 이상 사이의 괴리감은 크기만 하다. 한국예술종합학 교 애니메이션 전공 출신의 예술가 그룹 VCR도 ‘우리는 커서 뭐가 될까(What will we become when we grow up)?’ 라는 고민에서 시작했다. “영사기와 블루레이 시대 사이에 있던 비디오카세트 레코더(VCR)처럼, 유행을 좇는 그림을 그리 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옛것을 추구하지도 않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고 싶어요.” 누가 봐도 재능있던 동기와 선배들도 졸 업 후엔 한낱 부품이 되고 고유의 색을 잃어가는, 불만 가득한 사회인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너무 많이 봐왔다. 다행 히 이 젊은 예술가들은 남들처럼 쉽게 체념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색다른 대안을 찾았다. 덕분에 우리는 VCR의 다양한 작업을 매주 월요일 그들의 페이스북 온라인 갤러리(facebook.com/vcrworks)에서 만날 수 있다. 여 전히 ‘잘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 청춘에 필요한 것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자양분이 아닐까. 담배 몇 개비, 커피 몇 잔, 그리고 약간의 대화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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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Youngwon 이영원/ 핸드 스튜디오 UXD 실장 Handstudio UXD dept. ar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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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앱(app)을 개발했어요. 2009년 말쯤,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였는데, 그때는 앱을 만들기만 하 면 주목을 받았어요. 그러다 2010년에 핸드 스튜디오가 막 시작되었을 때, 초기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친구가 창업자 중 한 명이기도 했지만, 앱을 만들던 경험이 도움된 것 같아요. 저는 스튜디오에서 사용자 경험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UXD)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삼성에서는 스마트 TV를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고 있었고, 우리에게 앱 개발 요청이 들어왔어요. 건강 관리를 위한 앱이었는데, 경험이 많지 않아 상호작용 디자인(interaction design・IxD) 도 그렇고 여러모로 미흡한 앱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스마트 TV에 앱 자체가 적다 보니 주목받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스마 트 TV 초기부터 함께하다 보니, 동영상 재생 앱 같은 기본 앱까지 제작하게 됐죠. 지금은 기획도 하고, 개발도 하고, 콘텐츠 제작도 해요. 제대하고 뭘 할지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해요. 가장 큰 이유는 스티 브 잡스(전(前) 애플 창립자・최고경영자)인 것 같아요. 그전에는 이런 분야와 업종이 없었거든요. 그분께 정말 감사해요.”
www.handstudio.net facebook.com/lee.youngwon.12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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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Anywhere.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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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 어디서든 창의성을 발휘해 보세요! 오렌지 컬러의 틴트 프로 스냅 케이스는 화사한 컬러감으로 당신의 오감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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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onne Boag
이본느 보그/ 화가 painter
www.yvonneboag.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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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는 곳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최근에는 한국과 호주(오스트레일리아)를 오가며 작업 중이다. 전업 화가인 그녀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고, 청소년기를 호주에서 보냈다. 그녀는 호주 남부의 시골 애들레이드(Adelaide)가 지겨 웠다. 그때부터 거처를 옮기기 시작했다. 멜버른으로, 시드니로, 프랑스 파리로, 다시 스코틀랜드로, 그 후로도 계속. 그녀 는 편안함을 느낄 때 우울해진다고 한다. 변화가 곧 에너지인 그녀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새로운 작업을 선 보인다. 한국 역시 영감을 준 곳 중 하나다. 이본느의 작업실 캔버스 속 서울은 알록달록하게 대비하는 색감과 도시의 상징 들이 노련하게 담겨 있다. 그녀는 한국 사람이 스코틀랜드 사람과 비슷해 좋다고 말한다. 표현을 잘하고, 노래와 춤을 좋아 하고,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다고. 내년은 그녀가 한국에서 작업한 지 20년째가 된다. 그 기념으로 회고전을 기 획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삶이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방증일 것이다. 내년에 열릴 멋진 노(老)숙녀의 전람회는 어 떤 모습일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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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 Heonjin 하헌진/ 음악가 musi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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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헌진은 블루스(blues)를 부른다. 요즘의 수많은 싱어송라이터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어릴 적 집에 처음 인터넷을 설치 하면서 제대로된 음악을 접하기 시작했다고 순수하게 대답했다.가요밖에 몰랐던 소년은 덕분에 림프비즈킷(Limp Bizkit) 과 메탈리카(Metallica)를 듣고, 엠티비(MTV)로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누군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첫 기타를 샀다. 시간이 흐르고 기타 치는 법도 잊었다는 걸 깨달은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록 음악의 뿌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곳 에 블루스가 있었다. “과거 블루스 맨(blues man)들이 걸어온 길 그대로 천천히 그들의 방식을 고수하고 싶어요. 처음부 터 혼자 음악을 해왔고, 첫 앨범도 혼자 아이폰으로 녹음했으니까요.” 여전히 트위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만 음반 을 판매하는 이유도 그런 속사정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시 아나? 전설의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처럼 그도 미 래 블루스 맨들의 우상이 될지.
www.haheonjin.com facebook.com/haheonjin twitter@haheonjin soundcloud.com/haheonjin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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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nd Time 라이프앤타임/ 록 밴드 rock band
진실 기타/보컬 Jin Sil 박선빈 베이스 Park Sunbin 임상욱 드럼 Im Sangwook
라이프 앤 타임(Life And Time)은 1986년생 동갑내기 세 명으로 이루어진 밴드다. 얼마 전 첫 EP <더 그레이트 딥(The Great Deep)>을 발매했다. 첫 음반의 지향점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보다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였다. 구성원 모두 경 력이 있기에 - 박선빈은 칵스(THE KOXX)의 베이시스트를 맡았고, 진실은 로로스(Loro‘s)의 기타리스트였으며, 임상욱 은 그들의 오랜 친구로 재즈 드럼연주자였다 -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지면 표현방법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트랙인 ‘대양’은 주제와 가사에 맞게 편곡과 연주에서도 세부요소보다 큰 흐름을 강조하는 식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것들을 만들고 싶다는 그들의 첫 타이틀곡은 ‘호랑이’다. ‘호랑이’를 중심에 둔 다섯 곡을 연달아 듣는다면, 그 들이 생각하는 고전(classic)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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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com/bandlifeandtime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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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 text HONG SUKWOO, SUNG CHANGWON edit HONG SUKWOO, KIM YURIM photography HONG SUKWOO, GO YUNSUNG (ONLY IN LEE JU-S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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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 ‘토크 TALK’는 스펙트럼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눈 ‘지금now ’의 대화입니다. 두 번째 토크로 만난 세 명은 영화 <셔틀콕Shuttlecock, 2013>과 <방황하는 칼날Broken, 2014>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 이주승Lee Ju-seung, 서점 ‘유어마인드Your-Mind ’의 주인이자 ‘무명의 쓰는 사람’이기도 한 이로Iro 그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를 중심으로 그 생태계를 적어가는 음악평론가 김봉현Kim Bong-hye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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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1. LEE JU-SEUNG ACTOR, LIVES AND WORKS IN SEOUL, THE REPUBLIC OF KOREA. © image courtesy of Go Yunsung
이주승은 소년의 표정과 청년의 눈빛을 함께 지닌 배우다. 2012년 말 전역 3일 후부터 촬영한 <셔틀콕>으로 2013 년 서울독립영화제Seoul Independent Film Festival·SIFF 독립스타상을 탔다. 이후 허진호 감독의 연극 <낮잠> 과 영화 <방황하는 칼날>, TV 드라마 <고교처세왕>이 출연작에 올랐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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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처세왕>에서는 어떤 역을 맡았나? 이주승Lee Ju-seung: 고등학생이 형 대신 직장에 들어가서 대처하는 내용인데, 주인공서인국 분 직장 동료 사원지대한 역으로 출연한다. 따돌림당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은따’ 역할이다. 6월 16일 첫 방송 예정이다. 어젠 뭐했나? 대학로에서 선배님들 만났다. 이영하 선배님과 박수영 선배님. 선배님이라기보다 선생님이다. 박수영 선생님은 영화 <완득이, 2011>에서 완득이 아버지로 등장하셨다, 올해 마흔다섯이신데 아직 여자친구가 없으신…. 나이에 비해 출연작이 많은 편이다. 독립영화만, 주야장천. 아트하우스 모모Arthouse MOMO 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셔틀콕>이 ‘제2의 첫 영화’ 같다고 했다. 군대 전 작품들은 사실 절박하게 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렸으니까. 그냥 ‘열심히 하면 되겠지’하는 마음 정도였다. <셔틀콕>은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전역 후에는 직업에의 책임감과 함께 불안감도 생겼다. 배우라는 직업은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고 또 찾아줘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다 보니 굉장히 절박하게 준비했고, 긴장하며 촬영했다. 어떻게 보면 <셔틀콕>보다는 군대가 더 많은 자극을 준 것 아닌가. 맞다. 2년 동안 전혀 영화를 못 했으니까. 2011년에 입대했는데, 2010년까지 네 편을 거의 쉬지 않고 찍었다. 그러다가 한편도 못하니까 조금 적응이 안 됐다. 군대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어렵고, 명령하는 것을 해야 하지 않나. 군대 안에서 그간 했던 작품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많이 느꼈다. 영화 찍기 전에는 뭐했나. 태권도 선수였다. 중학교 태권도부에 들어가서, 방과 후 태권도만 하다가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하니까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더라. 태권도를 그만두고 바로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을 몇 번 당했다. 배우는 배우로 태어난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내게도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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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를 사람들과 함께 볼 때, 견디기 어렵나? 혼자 볼 때도 옆눈으로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 같이 보면 정말 미칠 것 같다. (웃음) 또, 배우로서 관객 반응을 예상하고 연기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예상한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를 해도 영화가 끝난 뒤 극장에 들어가곤 한다. 시나리오를 보았을 때와 완성본을 볼 때 차이가 있나? 혹은 영화마다 다른가. 항상 다르다. 영화는 절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 시나리오에서 촬영으로 넘어갈 때 한 번 달라지고, 편집할 때 또 한 번 달라진다. 두 번 걸러지면서 상상도 하지 못한 작품이 나올 때도 있다. 시나리오만 보고 절대로 판단할 수 없다. 완성품은 영화지 시나리오가 아니지 않나. 혼자 있을 때 뭐하나. 영화 본다. 아, 집 근처에 산이 있어서 산에 간다. 아차산이라고 낮은 산이다. 농구 코트가 있어서 혼자 농구도 하고. 연기에 확실한 톤이 있다. 참고하거나 존경하는 배우가 있나? 맷 데이먼Matt Damon 과 마스 미켈센Mads Mikkelsen을 좋아한다.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2003>에서의 숀 펜Sean Penn도 좋아하고. 진짜 딸을 잃은 사람 같았다. 영화를 보다 “저거 진짜 아냐?” 하게 되는, 그런 연기 톤을 좋아한다. 목표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후일의 마음가짐과 지금의 마음가짐이 같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처음의 마음가짐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흐트러지지 않고, 정신 못 차리지 않는.
twitter@kakatora1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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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2. IRO BOOKSHOP OWNER & AUTHOR & DESIGNER, LIVES AND WORKS IN SEOUL, THE REPUBLIC OF KOREA. © image courtesy of Hong Sukwoo
이로Iro는 아내 모모미와 서점 ‘유어마인드Your Mind ’를 운영한다. 그전에는 1인 잡지 <수상한 엠suspicious m>도 펴냈다. 소규모 책과 잡지, 음반과 문구 장터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 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얼마 전 <책등에 베이다>라는 책의 저자가 됐다. 그는 내가 본 사람 중 누구보다도 책을 좋아하고, 책과 함께 살고, 책과 출판물 그 자체를 좋아한다. 그의 트위터 계정에는 ‘그래서요?’와 ‘그러게요’의 세계에 삽니다’라는 소개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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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어마인드’에도 사람이 북적인다. 이로 Iro: 한자리에서 4년째 하고 있는데 갈수록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 초기에는 ‘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희한한 책들은 뭐에요?’, ‘교보문고에서 쫓겨난 책들이에요?’ 같은. 당시로써는 어쩔 수 없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알고 오신다. 아무것도 사가지 않는 분들도 재미있고. 오늘은 사갈 게 없다, 하고 가는 거니까. 예전에는 정말 조금씩 오신 분들이 다 사갔다. 요즘은 오는 분들의 성향은 조금씩 다양해지는데, 재정財政 상황은 똑같다는 점이 신기하다. (웃음) 쓱 둘러봐도, 숫자뿐만 아니라 책 종류와 출판사도 다양해졌다. 소규모 출판물의 종류는 엄청나게 늘고, 중간 규모 출판사도 늘고, 개인 출판은 줄고, 정말 작은 출판물의 흐름은 엽서 쪽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예전에는 기존 주류 또는 비주류 출판사가 양분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사이의 출판사들이 나온다. 대형유통도 하지만 비주류 쪽이 더 맞고, 양쪽 채널에서 모두 홍보할 수 있는 곳들이다. 심지어 모든 독자를 만족하게 할만한 콘텐츠를 만든다. 워크룸 프레스workroom press 처럼 말이다. 독립출판이라기에는 규모가 커버린, 그러나 기성 출판사의 규모를 따라갈 생각조차 없이 적당한 규모로 가겠다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혼자나 둘이 만드는 소규모 출판은 줄고 있다. 진zine 처럼 얇은 책이 줄었다. 앞으로도 줄 것이다. 가끔 ‘1인 서적’ 중에는 회사 규모 출판사에서 할 수 없는 굉장한 것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시도도 함께 줄어들 수 있는 점은 아쉽다. 요즘 소규모 제작자들은 ‘엽서’ 쪽으로 이동한다. 엽서는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이번에 낸 <책등에 베이다>는 자체 출판도 하는 유어마인드가 아닌 다른 출판사(이봄) 에서 냈다. 직접 출판할 때와 달리 견해차도 있을 듯한데. 장단점이 있다. 혼자 할 때는 원하는 속도와 방향으로 할 수 있다. 특히 다수의 사람과 일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새벽 네 시에 골방에서 혼자 일하고, 잠들기 전에 어디에 넘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웃음) 자유로운 것. 그게 자본, 시간, 방향, 콘셉트, 디자인 등 여러 부분에 장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작업 방식을 좋아함에도 엄청나게 외로울 수밖에 없다. 책이 나온 후에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사람밖에 만날 수 없으니까. 독자와 긴밀하게 만나는 방법도 잘 모르고. 반면에 다른 출판사와 작업하면, 자유로움은 깎이지만 괜찮은 점도 많다. 막연히 다수에 의해 발생할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었지만, 정작 다수와 일해보니까 도움이 된다. 기존 산업에 있던 분들의 조언도 얻을 수 있다. 되게 힘들고 받아들일 수 없는 요청을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유연했다. 디자인과 편집 부분의 말도 안 되는 요구도 잘 받아줬다. (웃음)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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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디자인도 직접 한 건가? 고른 거다. 본래 잘 받아주는 출판사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부분을 많이 받아주셨다. 혼자 책을 낼 때, 소수의 독자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어디인지도 모르는 전국 서점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감당할 수 있을까?’, ‘혹시 나중에 어마어마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뭐,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될 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걱정보다 심해지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 아닌가. 올여름과 가을에는 무얼 할 생각인가. 얼마 전 마샤 터커Marcia Tucker;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최초의 여성 큐레이터이자 뉴 뮤지엄 (New Museum) 설립자. - 편집자 주의 <뉴욕 큐레이터 분투기A Short Life Of Trouble: Forty Tears In The New York Art World>라는 책을 읽었다. 그분이 말하길, 갤러리에서 열한 달 열심히 일하고 한 달을
놀았다고 했다. 우리도 그런 게 필요한 회사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금전적인 보상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 직원 친구가 한 달의 긴 휴가를 갔다. 돌아오면 내가 쉴까 했는데, 여건상 불가능할 것 같아서 잠시 보류 중이다. 유어마인드에서는 <우주우표책 (가제)>이라는 책이 나온다. 1960~70년대, 소비에트 연방(소련)과 미국이 우주정복(?)을 자랑하려고 만든 우표들의 도감이다. 우표는 손톱만 한데 그 안에 우주선과 화성이 들어가 있다. 사실 우표 크기 안에 식물이나 곤충이라면 그럴 법한데, 어떻게든 자랑하고 싶어서 하늘이라도 뚫을 법한 거대한 것을 - 그려 놓으니까 재밌다. 가을에는 제6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연다. 우리로서는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이 상태에서 지난번과 비슷하게 치르면, 연례 보고행사처럼 의미 없는 행사가 되어버릴 듯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까지와 다른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 10월 중에는 열 것이다. 너무 춥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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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3. KIM BONG-HYEON MUSIC CRITIC & AUTHOR, LIVES AND WORKS IN SEOUL, THE REPUBLIC OF KOREA. © image courtesy of Hong Sukwoo
힙합Hip hop은 음악을 비롯한 삶의 방식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진득하게 파고들어 글과 책이라는 결과물을 내는 이는 우리나라에서 찾기 어렵다. 김봉현은 고등학생 시절까지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모범생’이었지만, 이후 삶에 파고든 힙합 덕분에 지금은 이 문화 안에서 살고 있다. 그는 관찰하고, 대화하고, 사색한 것을 글과 기록으로 남긴다. 무척 성실한 필자여서 지금까지 쓰거나 번역한 책만 여러 권에 이른다.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글항아리 펴냄>는 그 집대성이다. 힙합을 하나의 문화로 읽고, 그 안에 담긴 여러 코드를 인문학과 사회 요소들에 연결해 풀어냈다. 그는 벌써 다음에 낼 책을 구상한다고 했다.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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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첫 북 콘서트 이후 한 달 만이다. 김봉현Kim Bong-hyeon: 그 후로 열심히 살고 있다. 얼마 전 다음 책을 마감했고, 그다음 책도 준비 중이다. 여름에는 북유럽에 방문할 예정이다. 유니버설 뮤직Universal Music Publishing Korea 발행인publisher으로 있던 분이 퇴사하고 핀란드 작곡회사로 갔다. 케이팝 K-pop 아이돌 기획사를 겨냥한 북유럽 작곡가들이 만든 회사인데, 동방신기東方神起와
샤이니SHINee, 비스트BEAST 에 곡을 준 곳이다. 거기서 여는 ‘글쓰기 캠프writing camp’ 에 저널리스트 자격으로 가게 됐다. 북유럽과 한국, 일본, 태국 작곡가들이 모여 며칠간 지내면서 음악을 만든다. 한마디로 작곡 캠프다. 다음 책은 어떤 내용인가? 힙합 음악과 문화, 태도를 청소년과 연결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출판사 얘기로는 ‘힙합은 잘 모르지만, 힙합의 에너지나 면모가 청소년과 긍정적으로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고 하더라. 나 또한 힙합의 셀프메이드self made ,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스웨그 swag 문화가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는 연결점이 있다고 느꼈다. 억지로 연결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설득력이 있었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서 계약했다. 이미 초고를 넘겼고, 이제 피드백을 받을 차례다. 직업이나 작업과 상관없이,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여자. (웃음) 사실 여가 대부분을 정치・시사 팟캐스트Podcast 듣는 데 할애한다. 요즘은 유엠씨UMC가 진행하는 <그것은 알기 싫다>, <김어준의 KFC>를 듣는다. 특히 좋아하는 건 국민 TV의 <민동기-김용민의 미디어 토크>다. 일주일마다 한국 언론에 관해 비평한다. ‘언론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구나’ 깨닫는다. 요즘 KBS, MBC 사태도 그런 예 중 하나고. 이삼 년 전만 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치 얘기를 많이 했다. 이제는 하지 않는다. 정치 성향이나 관심은 오히려 늘었음에도, 얘기해봤자 덧없어진다. ‘찻잔 속에 태풍’이란 말처럼. 지난 대선 전에는 팟캐스트가 큰 화제를 몰고 오지 않았나. <나는 꼼수다>라든지. ‘나꼼수’ 시절에는 몇백만 명이 듣고,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그런 메가톤급의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은 줄었는데, 고만고만한 것들이 많이 늘었다. 종류도 다채로워졌다. 오히려 팟캐스트의 세계가 민주적으로 변했다. 나 같은 사람은 들을 게 많아지니 재미있다. 직접 팟캐스트 방송도 진행하는 걸로 안다. 이름은 <김봉현의 힙합 초대석>이다. 어떻게 보면 요즘은 진지한 것보다는 가벼운 것이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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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시대다. 힙합 음악가가 음반을 낼 때, 진지한 담론이 사라져간다고 생각했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막상 음악가들은 피드백이 없어서 허무하다고 종종 말한다. 그때가 마침 팟캐스트가 대안으로 떠오를 때였다. ‘힙합 씬에서는 왜 팟캐스트를 이용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직접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음반 비평 쓸 것들을 라디오에서 토론해보기로 가닥 잡았다. 이름도 촌스럽게 ‘가요 초대석’을 패러디했다. 혼자는 불안해서 기린KIRIN 을 섭외했다. 흔쾌히 수락했는데, 나중엔 들으니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더라. (웃음) 비슷한 직업이어서 묻는데, 관찰자로서 씬을 지켜보면 직접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나. 2003년 4월부터 힙합에 관해 글을 썼다. 음악전문 웹진 <가슴Gaseum>에 글을 보냈는데, 한 번 써보라고 해서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날 무렵, 턴테이블을 사서 직접 음악을 만들어볼 생각도 했다. 내가 쓴 곡을 ‘마이너스’라는 래퍼가 임시녹음하기도 했는데, 그만뒀다. 제대로 된 장비와 시스템, 또 여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으면 하지 말자고 판단했다. 예술가와 저널리스트는 완전히 다른 영역일 수도 있다. 나는 예술가적인 기질이 별로 없다. 시인의 시詩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시를 보면 ‘구절과 구절이 표현이 논리적인가, 아귀가 맞는가, 최소한 합리적인가’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쓸 수 없다. 노래 가사도 앞뒤가 맞나, 아귀가 맞나 하는 생각이 체계화되어 있으니까 일찌감치 포기했다. 다만, 글쓰기나 언어 분야는 다른 영역에 비해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음악을 결합해보자고 생각한 게 지금까지 왔다. 전에 밴드 허클베리핀 Huckleberry Finn이 내 강연에 와서 ‘김봉현 씨도 힙합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다른
방식으로 힙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플레이어player ’가 되고 싶어 한다. 물론 저널리스트로서도 유명해질 수 있고, 잘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항상 힙합 씬에는 마이크 수가 너무 많다. 즉,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 나 같은 사람도 많아져야 하는데 말이다. 힙합의 플레이어는 누구인가. 한마디로 저널리스트보다는 창작자이고, 창작자 안에서는 디제이보다 래퍼를 뜻한다. 래퍼와 프로듀서는 다르지 않나. 모두 래퍼가 되고 싶어 한다. 오늘은 뭐하나. 마감할 게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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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bhman.com, facebook.com/kbhman, facebook.com/kbhhiphop(김봉현의 힙합 초대석), twitter@kbhman, instagram@kbhman SUMMER
GAL LE RY interview & text SUNG CHANGWON, HONG SUKWOO photography GO YUNSUNG edit HONG SUKWOO © all works courtesy of COOLRAIN, MOM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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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RAIN VS MOMOT
스펙트럼 매거진의 ‘갤러리GALLERY ’는 동시대에 활동하는 재능 넘치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입니다. 그 열네 번째 시간의 주인공은 아트 토이art toy 디자이너 ‘쿨레인COOLRAIN ’과 페이퍼 토이paper toy 브랜드 ‘모모트MOMOT ’입니다. 본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만화 등의 등장인물을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으로 제작한 피겨figure에서 파생한 ‘아트 토이’는 외국에서 주로 ‘디자이너 토이designer toy ’로 불립니다. 우리가 흔히 대형 패션 브랜드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를 구분하는 것처럼, 각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을 의도해서 만들기에 붙는 명칭입니다. 아트 토이는 일종의 하위문화subculture 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TV와 잡지를 비롯한 매체는 물론 각종 전시 개최와 수집가들이 열광하는 동시대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내 1세대 아트 토이 디자이너인 쿨레인의 작업은 하나하나가 장인 정신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아트 토이를 뺀 삶은 생각할 수 없다No Life without Toy ’고 단언할 정도로 후배 아트 토이 디자이너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그만큼 존경받고 있습니다. 모모트의 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흔태와 이준강은 2007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생소하던 ‘페이퍼 토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국내 굴지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를 시작으로 외국 유명 캐릭터와의 협업은 단숨에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선구자로서 여전히 새로운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이 둘의 작품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그들의 ‘작품 안팎 이야기commentary ’를 스펙트럼의 큐레이팅으로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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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CHAN WOO www.coolrainstudio.com, facebook.com/coolrain.lee, instagram@coolrainlee
COOLRAIN 쿨레인COOLRAIN 으로 더 잘 알려진 이찬우는 한국의 아트 토이 디자이너로, 2004년부터 아트 토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쿨레인 스튜디오COOLRAIN
Studio를
설립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
그는, 개인 작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브랜드, 예술가와 협업을 진행 해왔습니다. 개인 작업인 덩키즈DUNKEYS부터 미국 프로 농구NBA , 음악 레이블 아메바 컬쳐Amoeba
Culture ,
나이키Nike 와의 협업까지
그 스펙트럼은 실로 다양합니다. 올해로 아트 토이를 시작한 지 10년 째가 된 그는, 2014년 5월 13일부터 6월 2일까지 아트플래닛 카페풋루스ArtPlanet Cafe Footloose에서 첫 개인전 <브레이크 타임 원 BREAK TIME 1: A memory of 10 years >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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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인전, <브레이크 타임 원> First Solo Exhibition, <BREAK TIME 1: A memory of 10 years>, 2014
아트플래닛 카페풋루스(ArtPlanet Cafe Footloose)는 만도 풋루스(Mando Footloose)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이곳의 전기 자전거를 마크 샌더스(Mark Sanders)가 디자인했다. 영국의 유명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 ‘스트라이다(STRiDA)’ 를 만든 유명 디자이너으로, 예전부터 스트라이다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연락이 와서 전시를 진행하게 됐다.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브레이크 타임 원 (BREAK TIME 1: A memory of 10 years)>도 중요했지만, 공식적으로 마크 샌더스와 작업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부분도 크다. 이번 전시는 의자에 앉은 150cm짜리 조각상(statue)을 제작하여 옆에 앉거나 사진 찍을 수 있는 등 관객의 직접 참여를 유도했다. 여태껏 이런 작업을 해보지 않았는데, 10년간 나를 지지해주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랄까. 그래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벤트로 선물도 보내드렸다. 개인적으로도 재미있었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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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키즈 DUNKEYS(DUNK + MONKEY), ‘Pithecuse BW’ 12 inches, 2008
‘농구 하는 원숭이’ 콘셉트로 2008년부터 만들어온 <덩키즈 (DUNKEYS)>가 있다. 대량생산품은 아직 나오지 않고 계속 수작업(handmade)만 한다. 사실 후원을 받아서 생산품도 나와야 하는데, 외부 작업이 많아지다 보니 조금 소홀했다. 그래도 내년 안에는 만들고 싶다. 몇 년째 기다리는 팬들을 더는 외면할 수 없지 않나. 수작업 작품들이 70~80만 원 정도 하는데, 대량생산하면 1/5 정도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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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불 비씨원 Red Bull BC One, 2013
2013년은 레드불 비씨원(Red Bull BC One; 에너지 드링크 회사 ‘레드불’에서 1년에 한 번 개최하는 세계적인 비보이 (B-boy) 대회. - 편집자 주) 10주년 이었고, 결승전인 ‘레드불 비씨원 월드 파이널’이 서울에서 열렸다. 그때 제작 요청이 들어왔는데 두 달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총 열여덟 점을 만들었다. 이때가 ‘비보이 아트 토이’를 공식 제작한 첫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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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레인 x 윤협 COOLRAIN x YOONHYUP from Littergram, 2008
윤협(YOONHYUP)의 작업을 예전부터 좋아했다. 아트 토이를 갓 시작했던, 아직 미숙하던 시절부터 윤협을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motion graphics designer) 김도희(Kim Dohee, www. doheekim.com)를 먼저 알게 됐다. 당시 김도희는 아트 토이 전문 매장 킨키 로봇(Kinki Robot)에서 일했다. 자주 가다 보니 안면을 익혔고, 그러다가 윤협과도 알게 된 것이다. 2008년 내가 작업한 토이를 선물했고, 윤협은 답례로 자신의 일러스트를 선물해주었다. 윤협의 그림은 2009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블루닷 아시아 2009 - 덩키즈(BlueDot ASIA 2009 - DUNKEYS)> 전(展)에서 함께 선보였고, 선물한 토이는 여전히 윤협이 소장하고 있다. 물론 단 하나뿐이라 내게는 없다.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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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화이트 DUNKEYS x Dave White, ‘Mono’, 2011
2008년 참여했던 나이키 덩크 23주년 전시 때 데이브 화이트(Dave White; 1971년생 영국 현대 미술가로, 대중문화(popular culture)와 상호작용하여 만든 작품들로 이름 높다. - 편집자 주)의 그림 다섯 점이 왔다. 고가의 작품이었는지 나이키 코리아에서 애지중지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전시가 끝난 뒤 내 토이를 사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보통 한국에서 본사 쪽으로 요청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 경우는 반대 아닌가. 그때 처음 데이브 화이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9년 예술의 전당 전시 때, 토이를 줄 테니 그림을 달라고 했다. 하나씩 주고받았는데 작품이 그렇게 비싼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2년 뒤인 2011년, 서울의 갤러리 이마주(Gallery imazoo)에서 <덩키즈 진화하다(DUNKEYS EVOLVE with Dave White)> 라는 이름으로 데이브와 2인전을 열었다. 그때 그는 그림 아홉 점을 그려줬고 나는 토이 일곱 개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두 개 더 보내줬어야 하는데. 그래서 그에게는 내 토이가 많다. 데이브 화이트와의 협업은 외국에 나를 알린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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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토이 제작에 관하여 Behind the Art Toy Making
아트 토이를 만드는 방법은 컴퓨터로 만드는 것과 손으로 만드는 것,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예전에는 3D 애니메이터 경험을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04 년부터 토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2008년까지 전혀 3D 프로그램을 쓰지 않았다. 3D 프린터도 대중화되어 있지 않았고, 사용하더라도 토이보다는 귀금속 분야에 많이 사용했다. 작고 비싼 귀금속보다 토이는 상대적으로 크고 저렴해서 3D 프린터 사용은 경제적이지 않았다. 2009년쯤, 3D 프린터가 저렴해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3D 모형화(modeling)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쓴다. 3D 프로그램을 쓰면 촉박한 프로젝트도 제대로 작업할 수 있다. 물론 3D 프린터를 써도 여전히 ‘사포질’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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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파커 Mark Parker, Chief Executive Officer of Nike, Inc.
나이키 최고경영자(CEO) 마크 파커(Mark Parker)는 굉장한 수집가이다. 그의 방은 아트 토이를 비롯해 각종 영화 소품들이 가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방에 진열하고 싶어 할 토이를 만드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실제로 이루어졌다. 올해 나이키 와우산 107(WOWSAN 107) 매장에서 열린 <에어맥스 데이 전시(NIKE AIR MAX DAY EXHIBITION ‘AIR EVERYWHERE’)> 출품작인 ‘아스트로 326(Astro326 No.1)’을 그가 샀다. 판매 목적의 작품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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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과 열등감 Inspiration and Complex
초기에는 ‘무엇을 만들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넓게 보고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한다. 초창기에는 마이클 라우(Michael Lau; 1970년 홍콩 출신 아티스트이자 아트 토이 디자이너로, 미국 힙합과 스케이트보드 등의 거리 문화를 도입한 피겨로 아트 토이 분야를 개척한 인물. ‘디자이너 토이(designer toy)’의 기원을 그가 1998년 처음 작업한 피겨로 보는 견해가 있다. - 편집자 주)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그걸 피해서 작업하려고 고민하고 노력했다. 그래서 인물을 디자인할 때 면을 나누고 단순화하는 방법을 주로 생각한다. 나는 화학을 전공했고,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애정만으로 토이 디자인을 시작했기 때문에 열등감(complex)이 있었다. 그러다 2012년, 첫 세계적 프로젝트였던 이니에스타(Andrés Iniesta・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스페인의 축구선수이자 FC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 편집자 주) 작업을 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갔다. 내가 디자인한 이니에스타 캐릭터를 아드만 스튜디오 (Aardman Animations, Ltd.; <월레스와 그로밋 Wallace & Gromit>으로 유명한 영국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 편집자 주)에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youtube.com/watch?v=3cGpyASZlVA#t=29) 으로 만들었다. 이런 일들로 정체성과 열등감의 고민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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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에어 풋스케이프 Nike Air Footscape Wooven Leopard, Suede & Leather, etc, 5.5cm(1/6 inches), 2013
사실은 아직도 무얼 하든지 마이클 라우와 많이 비교되는 편이다. 압도적으로 잘 만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같은 품질(quality)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절대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 ‘만도 풋루스’와의 작업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신발은 여태껏 오백 족 정도 만들어 왔는데, 지금은 누구보다도 잘 만들 자신이 있다. 나이키 풋스케이프(Nike Air Footscape)라는 직조 형태 신발이 있다. 하나 만드는 데 사흘씩 걸린다. 처음에는 시제품 제작 기간을 합해 보름가량 걸렸다. 누군가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아무도 하지 않을 거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이런 일은 돈을 좀 벌어놓고 해야 한다. 나처럼 하면 안 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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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미래 The Here and The Hereafter
반스(Vans)와 스타워즈(Star Wars)의 협업 제품이 나오는데, 그에 관한 전시가 2014년 6월 12일 플래툰 쿤스트할레(Platoon Kunsthalle)에서 열린다. 그리고 올해 8~9월쯤 책이 나온다. 일종의 수필집인데, 외국 협업 사례나 창작자 친구들과 만난 이야기, 아트 토이를 만드는 작업 이야기 등이 실릴 예정이다. 물론 작품 사진들도 실린다. 사실, 외국 협업이라고 해도 별거 없다. 그냥 만나서 ‘하자!’ 하면, 보통 한다.
Q. 아트 토이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아트 토이를 제작하고 싶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경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분야도 아닐뿐더러,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훗날 토이 디자인에 도움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 또한 토이를 위해 3D 애니메이터로 일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큰 경쟁력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분야는 제일 오랫동안 한 사람도 15년 안팎이다. 6개월에서 1년만 정말 열심히 배우면 기술적으로는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이다. 생각해보면 마이클 라우는 힙합과 거리 문화에 특화했고, 나는 스포츠 분야가 대부분이다.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뭘까? 유명한 사람들이 다 이뤄놨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분야가 정말 많다. 이미 사람들이 다 한 것 같지만, 다 했을 리 없다. 그런 부분들이 어린 시절과 직장 경험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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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HEUN-TAE & LEE JUN-KANG www.momot.co.kr, facebook.com/momotkorea, instagram@momot_kr
MOMOT 모모트MOMOT는 2009년 9월 서울디자인올림픽Seoul Olympiad에서
처음 선보인 ‘페이퍼
토이paper toy ’
Design
레이블입니다.
호서대학교 졸업전시를 겸한 이 전시에서 호평받은 후, 이흔태와 이준강을 포함한 네 명의 학생은 같은 해 11월, 모모트 브랜드를 시작합니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를 좋아하던 그들은 약속도 없이 홍대 매장에 찾아가 브라운브레스 옷을 입은 모모트 토이를 보여주었고, 즉시 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브라운브레스와의 협업으로 이름을 알린 모모트는 이후 마블 MARVEL , 디즈니DISNEY, 블리자드Blizzard Entertainment 등 세계적인
회사와 협업하며 페이퍼 토이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출발에 있던 거리 문화에 기반을 두면서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페이퍼 토이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지금은 전 세계 예술가들과 함께 만든 페이퍼 아트 토이paper
art toy도
출시하였습니다. 모모트는
2014년 4월 30일부터 5월 20일까지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 에서 두 번째 전시 <모모티스트MOMOTIST >를 열었습니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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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시, <모모티스트> Second Exhibition <MOMOTIST>, 2014
2011년 첫 전시를 열고서 두 번째 전시까지 꽤 오래 걸렸다. 첫 번째 전시는 말 그대로 페이퍼 토이만 나열한 전시였는데, 이번에는 라이선스 제품이나 대형 크기 작품 등 이전에는 경제적・기술적인 문제로 미뤄두었던 것들을 좋은 공간에서 멋지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전시에 마땅한 공간이 없기도 했는데, 마침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가 생겼고, 서로 잘 맞아서 즐겁게 진행했다. 또한, 모모트 자체 브랜드인 ‘엠엠티(MMT)와 ‘엠플러스 (M+)’를 발표하기도 했다. 많은 것이 잘 맞아떨어진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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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엠티 MMT ‘H.T.’, 2014
엠엠티(MMT, 이하 MMT)는 모모트의 오리지널 라인이다. 사실 모모트의 시작은 오리지널 라인이지만, 잘 알려진 것은 오히려 디즈니 (DISNEY), 마블(MARVEL Entertainment) 같은 라이선스 (license) 쪽이다. 생각보다 많은 소비자가 모모트를 디즈니 자회사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걸 좀 깨고 싶었다. 어찌 보면 인제야 우리만의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MMT 브랜딩 작업에 새로 도입한 것은 ‘이야기’이다. 여태까지는 시각적인 부분에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캐릭터에 구체적인 삶을 부여하는 것이다.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역설적으로 모모트의 정체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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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플러스 M+ ‘Novo’, 2014
엠플러스(M+, 이하 M+)는 MMT와 함께 두 번째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새로운 라인으로, ‘모모트에 아티스트를 더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멋진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를 보여주는 분들이 있지만, 수면에 떠오른 창작자가 많지 않아 여러 행사에서 보는 분들을 계속 뵙게 된다. 그런데 조금만 찾아보면 국내・국외를 떠나 정말 좋은 작업하는 분들이 많다. 이번 전시에서 그런 분들께 우리가 먼저 연락을 취했고, 과정과 결과도 좋았다. 모모트의 분류는 페이퍼 토이인데, 사실 우리는 ‘페이퍼 아트 토이’가 되고 싶다. 여태까지는 아트가 빠져있었으니, 이번에 넣어본 거다. 전시를 보니 호응도 굉장히 높아서 제품화도 계획 중이다. 전시에서는 타투이스트이자 화가인 노보(Novo)의 작품이 가장 인기 있었다. 노보에게 받은 이미지를 보고 많이 고민했다. 굉장한 작품이지 않나. 처음에는 조금 난감했지만, 뜯어보니 무척 섬세해서 제품에 이렇게 저렇게 반영하다 보니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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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토이 제작에 관하여 Behind the Paper Toy Making
모모트는 대학교 졸업전시로 시작했는데, 그때 지금 형태의 90% 정도가 완성되었다. 종이 위에 그래픽을 넣기 전에 형태를 먼저 잡았는데, 초기에는 정말 조악했다. 확신이 들 때까지 대단히 많은 수정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얼굴이 조금 올라간다든지, 팔이 조금 길어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또한, 캐릭터의 특징에 따라서도 조금씩 차이를 준다. 예컨대 아이언맨(The Iron Man)은 몸의 아크 원자로가 잘 보이도록 하려고 상대적으로 얼굴 크기를 조금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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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도구 Working Tool
작업은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로 한다. 2D 작업 도구이다. 3D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했다. 사실 지금도 디자인에는 3D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 MOMOT의 뜻도 네모 네모 로보트(NEMO NEMO ROBOT)인데, 네모가 깨지는 순간 모모트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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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Collaboration, MARVEL Hero Series Concept, 2013
첫 협업은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와 진행했다. 다른 곳에서 정말 많이 얘기해서 조금만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웃음) 간단히 말하면,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고 무조건 홍대 매장으로 찾아가 직원을 잡고 이야기했다. 순수한 대학생이었다. 첫 외국 협업은 마블과 진행했고, 그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약속은 잡았다. 이왕 만드는 거, 정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갔는데, 그쪽에서는 대부분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춰서 많이 당황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진행했는데, 제작 규정이 엄격해서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7~8개월이 걸렸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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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Nike, <AIR MAX DAY EXHIBITION ‘AIR EVERYWHERE’>, 2014
나이키(Nike)와의 협업은 언제나 좋다. 다른 브랜드와의 작업도 기본적으로는 협업이라고 부르지만, 모모트에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를 입히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나이키와의 작업은 주제를 던져주는 것이 전부다. 이번 주제가 이러이러하니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 이게 끝이다. 과정이나 결과에 간섭이 적을 때 반응도 훨씬 좋다. 보람도 더 크고. 다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대신, 결과는 직접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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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우스터 Mr. Nick Wooster
외국 예술가나 유명인사 중 스타일이 확실한 인물들이 있지 않나. 아무리 단순화해도 그만의 무언가가 남는. 그런 사람 중에 최근에 눈에 띈 분이 닉 우스터(Nick Wooster; 세계적인 패션 에이전트로, 21세기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로 유명하다. - 편집자 주)였고, 그래서 이번 전시에 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닉 우스터 인스타그램 (instagram@nickwooster)에 본인의 모모트 사진이 올라온 것이다. 아마 <스펙트럼 SPECTRUM> 편집장이 올린 것을 닉 우스터가 퍼간 것 같다. 영광이었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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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엠티 대형 작품 ‘론’ MMT ‘RON’ and ‘FRION’, Formax, 2m, 2014
작은 크기의 제품은 재단한 종이를 접고 풀칠해서 완성한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작품들은 외부 의뢰로 제작한다. 20cm에서 30cm 정도 되는 조금 큰 것들은 폼보드(foam board) 소재에 스티커 용지를 부착했고, 이번에 전시한 2m 크기의 대형 작품들은 포맥스(Formax・압축발포 PVC; 폴리염화 비닐 (PVC)을 원료로 발포・압출한 소재로, 나무와 플라스틱의 장점을 모두 지녀서 절단과 가공이 쉽고 녹슬거나 부식되지 않는다. 광고, 인테리어, 건축 마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한다. - 편집자 주) 소재를 사용했다. 종이로 만들면 하중을 견디지 못해 형태가 무너져서, 커질수록 견고한 속지(합지)를 사용한다. 또한, 작은 제품처럼 풀을 사용할 수 없어서 자석으로 접합 부위를 연결한다. 큰 제품 구매 문의는 많지만, 단가 문제로 아직 판매 보류 중이다. 접착 편리성 개선과 접은 단면의 터짐 현상 같은 여러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요즘 자주 연구・개발(R&D) 부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용지와 접착제 같은 것들 때문이다. 종이를 개발하여 공급하겠다는 연락은 많이 오는데, 지금까지는 모두 포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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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부티크, 모모트 Creative Boutique, MOMOT
스스로 ‘크리에이티브 부티크(creative boutique)’라고 부른다. 스튜디오에서 회사로 체계를 변경하는 중인데, 아직 미흡한 면이 많다. 한 사람이 두세 가지 일하기도 한다. 크리에이티브 팀원이 직접 발주하고, 디자인 팀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에 직접 사진을 올리고, 비주얼상품기획자 (VMD)가 사진 촬영하고…. 모두 ‘과정’ 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큰 회사와의 협업이 많다 보니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더라. 하지만 너무 규모에만 치중하면 재미없지 않나. 그래서 생기는 목마름을 전시나 MMT, M+ 라인으로 풀게 된다.
Q. 모모트에게 협업은 무엇인가. A. 모모트 오리지널 라인도 있지만, 협업의 비중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스펙트럼> 5호(No. 5/ Spring 2012 ‘Collaboration’ issue, www. spectrumprojects.com/projects/?n=5)가 좋은 답이 될 것 같다. 5호의 주제는 ‘협업’이었다. 당시 <스펙트럼>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다. 브랜드(주체)와 브랜드(주체)가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협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우리가 해온 건 형태를 빌려준 정도, 모모트라는 판형(format)에 브랜드라는 옷을 입히는 정도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좀 뜨끔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오리지널 라인들은 그러한 관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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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T KOMONO CAPSULE COLLECTION
about JEAN-MICHEL BASQUIAT 장 미쉘 바스키아는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아티스트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친구들과 함께 거리 곳곳에 그래피티 작업을 통해 사회에 저항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남겼다. 당시 비주류의 정서와 문화의 주요한 표현수단이었던 그래피티는 유년시절 시인을 꿈꿨던 바스키아에게는 도심 전체를 캔버스 삼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였다. 이후 그들의 활동은 하위 문화에 관심이 높아졌던 당시 미국 분위기에 부합하며 큰 관심을 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중심에 있던 바스키아는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열기를 이어, 1980년 첫 전시인 ‘타임 스퀘어쇼’를 통해 그는 재능을 인정받았고, 이후 ‘검은 피카소’라는 찬사를 받으며 8여년간 유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은 예술의 장르를 초월하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레트로 무드와 컨템포러리한 감성이 담긴 벨기에 브랜드 코모노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과 콜라보레이션한 캡슐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코모노는 클래식함과 모던함으로 단순 액세서리 브랜드가 아닌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기 위해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노력합니다. 그 일환으로 선보이는 ‘KOMONO Curated’의 첫번째가 바로 바스키아의 작품과 함께한 시계 컬렉션입니다. 이번에 선보인 여섯 가지의 시계 컬렉션은 그의 시그니처인 왕관 로고가 무브먼트에 담겨있고, 강렬한 바스키아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특별함을 더합니다.
Wizard - Tenor Wizard - Museum Security Winston - Untitled Winston - Pegasus Magnus - Philistines Magnus - Untitled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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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ASE PRODUCT GUIDE
Incase ICON Pack 인케이스 아이콘팩은 인케이스의 Heritage Line으로 인케이스 백팩의 시작격인 디자인을 토대로 현재 트랜드에 맞게 블랙, 그레이, 레드 세가지 색상으로 재탄생한
Icon Pack for Macbook Pro 17”, iPad Icon Slim Pack for Macbook Pro 17”, iPad
백팩라인입니다. 인체공학적으로 제작된 스페셜 폼 등판은 한층 더 편한 착용감을 선사하고 맥북을 위한 별도의 공간은 최상의 수납이 가능합니다. 측면포켓에는 외부로 연결하는 케이블 포트가 있어 작은 기기 엑세스에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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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ase x HBNAM DSLR Sling Pack 인케이스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1주년을 맞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남현범(HBNAM)과 콜라보레이션한 카메라 가방 DSLR Sling Pack을 선보입니다. 이번에 선보인 콜라보레이션 제품은 남현범이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구성된 라벨과 레인커버, 패키지로 구성되어 200개 한정 판매합니다.
Incase x HBNAM DSLRSling Pack for DSLR, Macbook Ai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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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OG John Mayer Tote bag 인케이스의 John Mayer Tote Bag은 ‘또 다른 종류의 환경보호’를 실현하고자 시작된 존 메이어의 ‘Another Kind Of Green(AKOG)’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AKOG JM TOTE for Macbook Pro 15”, i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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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 Sling 내구성이 강한 헤더드 소재와 방수 코팅처리된 캔버스 소재 두 가지로 선보인 퀵 슬링백은 어깨 부분에 버클을 사용하여
Quick Sling for iPad Air
빠르게 착용이 가능하며 한 손으로 조절이 가능한 손잡이가 부착되어 완벽한 핏감을 제공합니다. 별도의 아이패드 에어 수납 공간이 있어 편리할 뿐 아니라, 내부에 다양한 악세서리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사용이 용이합니다. 탁월한 착용감으로 라이딩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가능한 아이템입니다.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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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 Bag View 아이패드 케이스와 백이 결합된 필드 백 뷰는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미니 사용자를 모두 만족시킵니다. 벨크로를 이용한 케이스 형태로 아이패드를 완벽하게 보호할 뿐
Field Bag View for iPad Air Field Bag View for iPad mini, iPad mini Retina
아니라, 장착한 채 촬영 가능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안쪽의 수납공간에는 악세서리 수납이 용이하며 부피감이 크지 않아 세컨 백 혹은 단독으로 활용하는 데일리 백으로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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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Travel Collection EO 트래블 컬렉션은 여행에 대한 접근을 심플함과 연계성으로 정의하는 새로운 세대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습니다. 비지니스, 영감 혹은 재미를 위한 기기 사용에 의존하며 변모하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기내용 컬렉션입니다. 각각의 EO 트래블 백은 똑똑한 수납기능과 믿음직한 보호기능을 결합하여 여행을 좀 더 쉽고 안전하게 효율적으로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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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dshell Roller for Macbook Pro 17”, iPad Roller for Macbook Pro 17”, iPad Rolling Brief for Macbook Pro 15”, iPad Backpack for Macbook Pro 17”, iPad Duffel Macbook Pro 115”, i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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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Collection 인케이스의 카메라 컬렉션은 사진가들의 요구사항을 채워주기 위한 넓은 범위의 가방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혼색 모직으로된 내구성있는 외부는 독특한 세련미를
DSLR Pro Sling Pack / Sling Pack for DSLR, MacBook 15”, iPhone DSLR Pro Pack for DSLR, MacBook 15”, iPhone
자랑하며 내부의 탈부착 가능한 패드형 파티션는 다용도
Point and Shoot Field Bag for Compact Camera, iPad, iPhone
DSLR와 렌즈의 배열 및 정돈을 가능케합니다.
DSLR Case for DSLR, iPhone
또한 아이패드, 맥북과 같은 특별한 디바이스의 수납에 탁월한 컬렉션입니다.
Point and Shoot Pouch for Compact Camera, iPhone Point and Shoot Pouch Case for Compact Camera, iPh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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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5s & 5 인케이스의 정밀한 핏은 향상된 디바이스 보호 기능 뿐만 아니라 인케이스의 미니멀한 디자인 원칙을 지킴과 동시에 사용자의 편리함까지 생각합니다. 새로운 iPhone 5S용 제품은 이 전통을 지키면서 가장 얇고 가장 가벼운 iPhone의 디자인과 상호 보완하여 새로운 기술을 완벽히 보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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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ame Case for iPhone 5S & 5 2. Stripes Snap Case for iPhone 5S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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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able Power 아이폰5s를 기준으로 5,400mAh 용량은 두 대의 아이폰을, 2,500mAh 용량의 포터블 파워는 한 대의 아이폰을 빠르게 완충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폰 크기 정도의 사이즈로 간편하게 휴대가 가능하며 다양한 컬러웨이로 취향에 만족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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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ortable Power 2500 for most usb devices 2. Portable Power 5400 for most usb de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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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ASE STORE goincase.kr 서울 프리스비 명동본점 02-318-7120 서울 중구 명동 2가 33-6 프리스비 홍대점 02-323-1765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12 프리스비 건대점 02-2218-3195 서울 광진구 자양동 227-342 1층 S101호 프리스비 강남스퀘어 02-501-6652 서울 강남구 역삼동 809 금화(월드메르디앙)B/D 1F 프리스비 여의도 IFC몰 02-6137-5685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3 IFC몰 지하2층 218호 에이샵 타임스퀘어점 02-2638-2730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4가 442 타임스퀘어 2F 에이샵 신세계 센트럴시티점 02-3479-6187 서울 서초구 반포동 19-3 신세계 센트럴시티 신관 5F 에이샵 현대백화점 목동점 02-2163-2635 서울 양천구 목1동 916번지 현대백화점 목동점 지하 1F 에이샵 디큐브시티 신도림점 02-2211-1064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시티 신도림점 지하 1F 에이샵 갤러리아 압구정점 02-548-6177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494 갤러리아 명품관 West 5F 에이샵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02-3467-8373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9-7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7F 에이샵 현대백화점 미아점 02-2117-1863 서울 성북구 길음동 20-1 현대백화점 미아점 7F 에이샵 현대백화점 신촌점 02-3145-2943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30-33 현대백화점 신촌점 9F 에이샵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02-3449-5474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지하 1F 에이샵 현대백화점 천호점 02-2225-7094 서울 강동구 천호동 455-85 현대백화점 천호점 11F 에이샵 신세계 영등포점 02-2639-1464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4가 434-5 신세계영등포 B관 6F 윌리스 신사 070-7732-7001 서울 강남구 논현동 5 페이토 빌딩 윌리스 종로 070-7732-7361 서울 종로구 종로2가 9 YMCA빌딩 윌리스 잠실 02-2143-1500 서울 송파구 잠실동 40-1 롯데마트 잠실점 디지털파크 내 1층 윌리스 김포 02-2664-6021 서울 강서구 방화동 886 김포국제공항 앞 롯데 몰 지하 1층 윌리스 롯데백화점 강남점 02-531-2805 서울 강남구 대치동 937 롯데백화점 8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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