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axas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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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 abraxas vol. 3 : 김한주가 찍은 사진

vol. 3

photograph by kim han joo

김한주가 찍은 사진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 살구잼 트리오/연수희 이륙 take off/박미정 비둘기 여자/정지호 김종소리 김한주가 찍은 사진/김한주 디자인/ 장지혜 아스피린/임우택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문식 이명耳鳴/원보람 표류/최윤선 fall

2009 ₩ 3,000


아브락사스 abraxas vol. 3 : 김한주가 찍은 사진 photograph by kim han joo


아브락사스 abraxas vol. 3 : 김한주가 찍은 사진 photograph by kim han joo


이후의 작품들은 이 사진을 주제로 삼아 작업한 결과물들입니다.


이후의 작품들은 이 사진을 주제로 삼아 작업한 결과물들입니다.


Opening scene

이 책은 2009년 1월 초, 김미선과 김종소리의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이 야기를 통해 기획,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첫 취지는 현재 우리나라 문학계의 실정(등단하지 않는 이상 자신 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힘든 상황)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었 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문학계 Under Ground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문학으로 단정 짓지 말고, 출판의 형태로 나올 수 있는 모든 예술을 다루자는 의견에 동의. 결국 모든 예술을 다루는 출판물을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은 잡지의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형태의 예술작 품을 싣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문학잡지들의 특성을 따라 계간지의 형태로 출판 될 예정입니다. (단, 3·6·9·11월 출간이 아닌 4·7·10·1월 발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 분이나 합작을 하실 분, 혹은 단체가 있으시면 Ending Credit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주십시오. 언 제든 환영합니다.


Opening scene

이 책은 2009년 1월 초, 김미선과 김종소리의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이 야기를 통해 기획,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첫 취지는 현재 우리나라 문학계의 실정(등단하지 않는 이상 자신 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힘든 상황)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었 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문학계 Under Ground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문학으로 단정 짓지 말고, 출판의 형태로 나올 수 있는 모든 예술을 다루자는 의견에 동의. 결국 모든 예술을 다루는 출판물을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은 잡지의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형태의 예술작 품을 싣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문학잡지들의 특성을 따라 계간지의 형태로 출판 될 예정입니다. (단, 3·6·9·11월 출간이 아닌 4·7·10·1월 발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 분이나 합작을 하실 분, 혹은 단체가 있으시면 Ending Credit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주십시오. 언 제든 환영합니다.


Contentsㅅ

5 Opening scene 2 김한주가 찍은 사진

김한주

8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연수희

24 이륙 take off

박미정

46 비둘기여자

그림 정지호 글 김종소리

100 아스피린

임우택

120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문식

138 이명耳鳴

원보람

142 표류

최윤선

153 Ending creidit 155 Thanks seller


Contentsㅅ

5 Opening scene 2 김한주가 찍은 사진

김한주

8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연수희

24 이륙 take off

박미정

46 비둘기여자

그림 정지호 글 김종소리

100 아스피린

임우택

120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문식

138 이명耳鳴

원보람

142 표류

최윤선

153 Ending creidit 155 Thanks seller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연수희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연수희


1

“오갈 데 없는 여자를 이용하는 건 과연 나쁜 걸까?”

11

미소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묻는다. 미소가 파삿– 웃어 버린다.

“응. 물욕 없는 승냥이 얘기를 하려는 거야.” “해 봐.” “어제 돈이 조금 필요해서 전화를 했어. 계좌로 오십만 보내 달라고. 그런데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없으니까 나중에 연락 준다더니 기다려도 연락이 없는 거야. 난 승냥이한테 이천 정도 맡겨 둔 상태인데 말야.” 살짝 침묵하다가 나는 대답 해준다. 기본이 빠른 미소에게 침묵의 효과는 단 2초만 침묵해도 전해진다. “우리의 승냥이는 물욕이 없어. 네 오해일 거야.” “아, 맞아.” 우리는 다시 침대에 누워 담배를 뻐끔뻐끔 피운다. 뻐끔뻐끔 할 때 마다 뻐꾸기가 시계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메롱 질이다. 천장위로 가득 담배연기가 콜록콜록 망가진 기관지의 돌아가는 소리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승냥이 얘길 하려는 거야?”


1

“오갈 데 없는 여자를 이용하는 건 과연 나쁜 걸까?”

11

미소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묻는다. 미소가 파삿– 웃어 버린다.

“응. 물욕 없는 승냥이 얘기를 하려는 거야.” “해 봐.” “어제 돈이 조금 필요해서 전화를 했어. 계좌로 오십만 보내 달라고. 그런데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없으니까 나중에 연락 준다더니 기다려도 연락이 없는 거야. 난 승냥이한테 이천 정도 맡겨 둔 상태인데 말야.” 살짝 침묵하다가 나는 대답 해준다. 기본이 빠른 미소에게 침묵의 효과는 단 2초만 침묵해도 전해진다. “우리의 승냥이는 물욕이 없어. 네 오해일 거야.” “아, 맞아.” 우리는 다시 침대에 누워 담배를 뻐끔뻐끔 피운다. 뻐끔뻐끔 할 때 마다 뻐꾸기가 시계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메롱 질이다. 천장위로 가득 담배연기가 콜록콜록 망가진 기관지의 돌아가는 소리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승냥이 얘길 하려는 거야?”


와 함께 우리를 검게 물들인다.

그것은 승냥이의 인격이다.

어느새 우리의 혈관은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검은 피가

대화할 상태가 아닌 미소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이다.

몸에서 흘러 흘러 침대를 적신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우리는 오랜만에 소풍을 가기로 했다.

‘아아’

우리들의 소풍은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아아아’

중국에서 들여온 질 나쁜 담배 몇 갑과 보드카 한 병,

‘아아아아’

오렌지 주스 세 팩, 커다란 호두 브라우니 세 덩어리,

뒤질 새라 뿜어 대는 신음 소리.

따뜻하게 덮을 수 있는 캐시미어 모포 세 장, 야외용 매트,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이 안정감.

닌텐도 디에스, 아이팟.

그저 그가 원하는 것만 하면 되는 편안한 이 세상이 영원할 것만 같다.

이런 것 들을 백 팩에 챙겨 넣고 우리는 깔깔대며 현관문에

승냥이—우리를 조종하는 단 하나의 실체.

카드 키를 빠른 손놀림으로 꽂았다 빼면서 셋-트 한 후 경비가 시작되었다는 경보음 소리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낡은 그랜저 한대가 우리를 기다린다. 한여름 폭풍우를 동반한 천둥소리–승냥이가 집에 와서 미친 듯이

검정색의 이 자동차는 재작년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살기로 했을 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기념으로 함께 장만한 첫 번째 ‘공유물’ 이었다.

“왔어?”

오늘은 미소가 승냥이의 옆자리에 탄다.

철썩–미소의 보드라운 뺨은 따귀를 맞을 때면 파도치는 소리가 난다.

딱히 정해놓은 지정석 따위는 없었지만 미소는 승냥이의 옆자리에

수분 퍼센테이지가 높고 모공이 거의 없는 피부에서 나는 소리다.

타는 것을 좋아해서 나는 별 다른 일이 없다면 그렇도록 놔두는

“야!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당황한 미소의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은행 앞에서 한 시간 이나 기다리다 왔어! 핸드폰은 왜 꺼져 있는 거야!”

편이다. 하지만 미소에게는 조금 더 의미가 있는 일인 것인지 백미러로 비치는 안전벨트를 채우는 미소의 얼굴은 미소로 흠뻑 젖어 들곤 한다. “소라야, 나 소풍 가기 전에 백화점에 들르고 싶어.”

미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미소는 지금 다른 세상에

“뭐 살 거 있어?”

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승냥이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

“필요 한 게 있어, 양장의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일기장을 살 거야”

13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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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와 함께 우리를 검게 물들인다.

그것은 승냥이의 인격이다.

어느새 우리의 혈관은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오르고 검은 피가

대화할 상태가 아닌 미소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이다.

몸에서 흘러 흘러 침대를 적신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우리는 오랜만에 소풍을 가기로 했다.

‘아아’

우리들의 소풍은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아아아’

중국에서 들여온 질 나쁜 담배 몇 갑과 보드카 한 병,

‘아아아아’

오렌지 주스 세 팩, 커다란 호두 브라우니 세 덩어리,

뒤질 새라 뿜어 대는 신음 소리.

따뜻하게 덮을 수 있는 캐시미어 모포 세 장, 야외용 매트,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이 안정감.

닌텐도 디에스, 아이팟.

그저 그가 원하는 것만 하면 되는 편안한 이 세상이 영원할 것만 같다.

이런 것 들을 백 팩에 챙겨 넣고 우리는 깔깔대며 현관문에

승냥이—우리를 조종하는 단 하나의 실체.

카드 키를 빠른 손놀림으로 꽂았다 빼면서 셋-트 한 후 경비가 시작되었다는 경보음 소리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낡은 그랜저 한대가 우리를 기다린다. 한여름 폭풍우를 동반한 천둥소리–승냥이가 집에 와서 미친 듯이

검정색의 이 자동차는 재작년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살기로 했을 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기념으로 함께 장만한 첫 번째 ‘공유물’ 이었다.

“왔어?”

오늘은 미소가 승냥이의 옆자리에 탄다.

철썩–미소의 보드라운 뺨은 따귀를 맞을 때면 파도치는 소리가 난다.

딱히 정해놓은 지정석 따위는 없었지만 미소는 승냥이의 옆자리에

수분 퍼센테이지가 높고 모공이 거의 없는 피부에서 나는 소리다.

타는 것을 좋아해서 나는 별 다른 일이 없다면 그렇도록 놔두는

“야!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당황한 미소의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은행 앞에서 한 시간 이나 기다리다 왔어! 핸드폰은 왜 꺼져 있는 거야!”

편이다. 하지만 미소에게는 조금 더 의미가 있는 일인 것인지 백미러로 비치는 안전벨트를 채우는 미소의 얼굴은 미소로 흠뻑 젖어 들곤 한다. “소라야, 나 소풍 가기 전에 백화점에 들르고 싶어.”

미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미소는 지금 다른 세상에

“뭐 살 거 있어?”

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승냥이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

“필요 한 게 있어, 양장의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일기장을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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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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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도 스타킹 좀 봐야겠다. 내 베이지색

2

원피스에 어울릴 만한 것으로.” “좋아, 승냥이는 그 사이에 푸드 코트를 둘러보면서 과자를 골라 두라고 하자.” “응, 승냥이도 좋아 할 거야.” 가볍고 단조롭고 살짝 상기 되어 있는 우리들의 말투와 목소리는 별 것 아닌 것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외모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재능이라고 생각했고

소풍은 이렇다 할 것 없이 늘 하던 대로 끝이 난다.

우리의 손님들도 우리들의 대화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담배를 태우고 음악을 틀고 광경 속에서 수많은 의미들을

이렇게 생각 할 때면 나는 내가 너무 좋아서 가슴 부분이

만나고 보내고 바이–바이– 인사를 하고 휘파람을 불다

붕 뜬 기분이 된다.

휘파람의 파장을 파도 타듯 미끄러지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보고 있을 때처럼 귀여운 내 얼굴이 둥실 내

따스하고 찐득한 공기가 내 호흡기의 점막을 빼곡히 메운다.

머리위로 떠오른다.

살구의 계절에는 살구를 복숭아의 계절에는 복숭아를 딸기의 계절에는 딸기를 부드러운 과즙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 끈적끈적 해지면 뾰족하게 혀를 만들고 고양이처럼 서로의 손가락을 핥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영원히 날씬한 종아리와 매끈한 복부를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다. 이런 외향적인 것 없이는 난 조금도 행복해 질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눈이 달려있고 그 눈은 나를 보고 있다. 물론 내 눈이 그런 눈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지만

15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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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도 스타킹 좀 봐야겠다. 내 베이지색

2

원피스에 어울릴 만한 것으로.” “좋아, 승냥이는 그 사이에 푸드 코트를 둘러보면서 과자를 골라 두라고 하자.” “응, 승냥이도 좋아 할 거야.” 가볍고 단조롭고 살짝 상기 되어 있는 우리들의 말투와 목소리는 별 것 아닌 것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외모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재능이라고 생각했고

소풍은 이렇다 할 것 없이 늘 하던 대로 끝이 난다.

우리의 손님들도 우리들의 대화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담배를 태우고 음악을 틀고 광경 속에서 수많은 의미들을

이렇게 생각 할 때면 나는 내가 너무 좋아서 가슴 부분이

만나고 보내고 바이–바이– 인사를 하고 휘파람을 불다

붕 뜬 기분이 된다.

휘파람의 파장을 파도 타듯 미끄러지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보고 있을 때처럼 귀여운 내 얼굴이 둥실 내

따스하고 찐득한 공기가 내 호흡기의 점막을 빼곡히 메운다.

머리위로 떠오른다.

살구의 계절에는 살구를 복숭아의 계절에는 복숭아를 딸기의 계절에는 딸기를 부드러운 과즙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 끈적끈적 해지면 뾰족하게 혀를 만들고 고양이처럼 서로의 손가락을 핥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영원히 날씬한 종아리와 매끈한 복부를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다. 이런 외향적인 것 없이는 난 조금도 행복해 질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눈이 달려있고 그 눈은 나를 보고 있다. 물론 내 눈이 그런 눈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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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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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 모습은 아름다워서

3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거라고 다시 한 번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 본다. 길고, 풍성하고, 윤기 나는 길고 긴 머리카락이 하얀 몸을 온통 덮고 있는 모습은—초록색 잎사귀모양 자수가 반복적으로 수놓아진 예쁜 코튼소재의 튜브톱 원피스와 만나면 지독히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서양인 같은 밤색의 헤어 컬러는 염색으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내기 힘든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있어서

새로운 여자가 집으로 들어왔다.

때론 내 모습에 내가 질식당한다.

새로운 멤버가 들어왔다는 건 또 한 명의 중독자 의 양성을 예고한다.

이 고매한 나르시즘이 오늘도 나를 자살하지 않게 해주는 안정제가

그녀의 이름은 ‘누에’—참 적절한 때에 어울리는 이름을 내미는

된다. 목을 빳빳이 다려본다. 날 선 정수리에 작은 깃발 하나가

그녀가 귀엽다.

나풀거린다. 깃발위로 작은 점 같은 글씨가 쓰여 있다. ‘나를 봐.’

“안녕, 누에.”

너무도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되었다. 으히힛-

“안녕, 아… 이름이 뭐야?”

하고 만화처럼 웃어버린다.

“알게 될 거야.”

속마음은 언제나 이렇게 한참을 들여다봐야 보인다.

“쳇….”

나는 너는 우리는 모두 이렇게 부끄러운 존재다. 낯선 사람을 불편 하게 하는 재주를 가진 나는 오늘도 이 자존심 센 여자아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말해놓고도 참, 독 없이 잘도 찔러댄다 싶다. “미소, 이리로 와 바. 얘는 누에래. ” 나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미소의 얼굴을 보기 위에 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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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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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 모습은 아름다워서

3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거라고 다시 한 번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 본다. 길고, 풍성하고, 윤기 나는 길고 긴 머리카락이 하얀 몸을 온통 덮고 있는 모습은—초록색 잎사귀모양 자수가 반복적으로 수놓아진 예쁜 코튼소재의 튜브톱 원피스와 만나면 지독히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서양인 같은 밤색의 헤어 컬러는 염색으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내기 힘든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있어서

새로운 여자가 집으로 들어왔다.

때론 내 모습에 내가 질식당한다.

새로운 멤버가 들어왔다는 건 또 한 명의 중독자 의 양성을 예고한다.

이 고매한 나르시즘이 오늘도 나를 자살하지 않게 해주는 안정제가

그녀의 이름은 ‘누에’—참 적절한 때에 어울리는 이름을 내미는

된다. 목을 빳빳이 다려본다. 날 선 정수리에 작은 깃발 하나가

그녀가 귀엽다.

나풀거린다. 깃발위로 작은 점 같은 글씨가 쓰여 있다. ‘나를 봐.’

“안녕, 누에.”

너무도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되었다. 으히힛-

“안녕, 아… 이름이 뭐야?”

하고 만화처럼 웃어버린다.

“알게 될 거야.”

속마음은 언제나 이렇게 한참을 들여다봐야 보인다.

“쳇….”

나는 너는 우리는 모두 이렇게 부끄러운 존재다. 낯선 사람을 불편 하게 하는 재주를 가진 나는 오늘도 이 자존심 센 여자아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말해놓고도 참, 독 없이 잘도 찔러댄다 싶다. “미소, 이리로 와 바. 얘는 누에래. ” 나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미소의 얼굴을 보기 위에 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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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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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죽 소파에 앉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4

불안함이 느껴지는 분주함을 숨기려고 더욱 분주히 딴청을 피우던 미소가 귀찮다는 듯 곡선을 만들며 게으르게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온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그 짧은 동선 안에서 서서히 미소의 세상은 얼어붙어간다. 우리들에게 완전히 다가와 있을 때쯤 미소의 얼굴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불쌍한 미소…. 미소의 혼란스러움 미소의 고통 미소의 방황 다시 시작될 태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승냥이의 열정은 볼 때 마다 놀랍다.

한동안 우리는 죽을 만큼 힘들어 지겠지….이번에는 미소는 정말

누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밥을 먹고 누에의 엉덩이를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조물거리며 담배를 핀다.

모든 걸 놓아 버린다면 우린 덜 힘들 수 있는데 미소가 갈 길은 아직

누에는 잘 조련된 앵무새처럼 승냥이와 한 몸이 된 듯

멀다. 멀었다.

딱 달라붙어 잘도 재잘댄다. “나 오늘 정말 멋진 신발을 봤어~ 사줄 거지? 사준다고 약속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아양 부리는 그녀는 미소의 미소를 얼어붙게 할 만큼 싱싱하고 매력적이다. 역시나 승냥이는 허허허허 다정하고 능력 있는 드라마 속 아버지처럼 소리 내 웃으면서 귀여워 못 참겠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누에의 아랫입술을 지긋 깨물고 쪽쪽 빨다가 혀를 쏙 넣는다. 둘은 그렇게 우리가 보는 곳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를 만지고 핥아준다. 보다보다 참지 못한 미소는 온통 일그러진 얼굴과 몸으로 방을 조용히 나간다. 욕실 안으로 들어가면 콰르르 물소리가 난다. 온몸이 빨갛게 열이 올라 울고 있을 미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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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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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죽 소파에 앉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4

불안함이 느껴지는 분주함을 숨기려고 더욱 분주히 딴청을 피우던 미소가 귀찮다는 듯 곡선을 만들며 게으르게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온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그 짧은 동선 안에서 서서히 미소의 세상은 얼어붙어간다. 우리들에게 완전히 다가와 있을 때쯤 미소의 얼굴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불쌍한 미소…. 미소의 혼란스러움 미소의 고통 미소의 방황 다시 시작될 태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승냥이의 열정은 볼 때 마다 놀랍다.

한동안 우리는 죽을 만큼 힘들어 지겠지….이번에는 미소는 정말

누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밥을 먹고 누에의 엉덩이를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조물거리며 담배를 핀다.

모든 걸 놓아 버린다면 우린 덜 힘들 수 있는데 미소가 갈 길은 아직

누에는 잘 조련된 앵무새처럼 승냥이와 한 몸이 된 듯

멀다. 멀었다.

딱 달라붙어 잘도 재잘댄다. “나 오늘 정말 멋진 신발을 봤어~ 사줄 거지? 사준다고 약속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아양 부리는 그녀는 미소의 미소를 얼어붙게 할 만큼 싱싱하고 매력적이다. 역시나 승냥이는 허허허허 다정하고 능력 있는 드라마 속 아버지처럼 소리 내 웃으면서 귀여워 못 참겠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누에의 아랫입술을 지긋 깨물고 쪽쪽 빨다가 혀를 쏙 넣는다. 둘은 그렇게 우리가 보는 곳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를 만지고 핥아준다. 보다보다 참지 못한 미소는 온통 일그러진 얼굴과 몸으로 방을 조용히 나간다. 욕실 안으로 들어가면 콰르르 물소리가 난다. 온몸이 빨갛게 열이 올라 울고 있을 미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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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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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얼마간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보내야 하는 걸까….’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20

“몸 파는 년이 블로그에 말랑 대는 노래나 깔아둔다고 해서 바닐라쉐이크가 되는 건 아니야!”

하늘로 휙휙 동네 꼬마들이 쏘아 올린 연이 날리고 있어서 그것에

“알아 나도! 기껏해야 오레오 쉐이크밖에 안 된다는 거!!!”

집중해보려고 한다.

“넌 것도 아니야! 돼지부속 같은 년!”

알고 있다. 집중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 라는 거….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을 한 미소가 철퍽 하고 빗물이 고인 흙구덩이로

한참 뒤 누에와 승냥이가 사랑을 나눈 담요를 세탁기에 던져 놓고

제 얼굴을 스스로 묻어버린다. 지난 생일날 자기 손으로 손수 만든

잠이 들어 있는 미소 곁에 들어가 눕는다.

케이크에 풍덩 하고 얼굴을 내 던진 것처럼….

그리고 속삭여준다.

자존심을 보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미소는 차라리 자폭 해버려서

“미소야. 다 지나 갈 거야, 우리의 승냥이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 올

모든 것이 원점으로 —이 대화가 있기 전의 원점으로 돌아가

거야.”

버리기라도 원하는 듯 그렇게 자신의 한계에선 최고점 일 듯 한

정말 잠이 들어버린 미소는 듣지 못하고 아기처럼 쌕쌕 귀여운 숨을

자학을 한다.

몰아 내쉴 뿐이다.

그리고는 완전히 파멸한 눈빛으로 샤워를 하고 나와 아무 일도

‘사랑스러운 미소….’

없었다는 듯 온몸에 베이비파우더 향 코롱을 뿌리고 침대로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흙구덩이 에 얼굴을 담근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 손님이 많을 시간인데 미소는 게으름을 피우며

미소의 복숭아 빛 세상, 미소의 복숭아 빛 살결은 이내 승냥이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말 몇 마디에 피 한방울 안내고 살점을 다 도려낸 것처럼 ‘원래부터

화가 난 승냥이는 열심히 블로그를 관리하고 있는 미소의 손에서

없었음’이 되어 버린다.

마우스를 뺏는다.

차라리 짓이겨 즙을 다 내버리면 복숭아넥타라도 될 수 있을 텐데

으르렁대는 미소는 승냥이의 제지에 속이 상한 건 아니다.

말이다.

왜 누에 같은 애를 데려와 자신을 괴롭게 하는지를 따져 묻고 싶은

요 며칠 부쩍 말이 줄어버린 누에는 더 이상 교묘히 눈치를 보려

얼굴이 되어있다.

하지도 뻔뻔하게 웃어넘기지도 않고 가만히 흙물에 흠뻑 젖어버린

하지만 승냥이는 그 속내 따위는 알 바 없고 갑자기 반항하는 미소의

미소의 공단신발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에 정신을 잃어버린 눈치다.

다음날 아침,

이내 미소의 핑크색 노트북을 깨진 유리컵처럼 아작 내고 말았다.

미소가 분주히 움직이며 새로 배운 요리라며 해물이 들어간 그라탕을 만들어 정성스럽게도 꾸며놓은 식탁으로 옮겨놓는다.

21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나는 견딜 수가 없어져서 담배를 꺼내 물고 베란다로 나가버린다.


‘이번엔 얼마간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보내야 하는 걸까….’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20

“몸 파는 년이 블로그에 말랑 대는 노래나 깔아둔다고 해서 바닐라쉐이크가 되는 건 아니야!”

하늘로 휙휙 동네 꼬마들이 쏘아 올린 연이 날리고 있어서 그것에

“알아 나도! 기껏해야 오레오 쉐이크밖에 안 된다는 거!!!”

집중해보려고 한다.

“넌 것도 아니야! 돼지부속 같은 년!”

알고 있다. 집중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 라는 거….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을 한 미소가 철퍽 하고 빗물이 고인 흙구덩이로

한참 뒤 누에와 승냥이가 사랑을 나눈 담요를 세탁기에 던져 놓고

제 얼굴을 스스로 묻어버린다. 지난 생일날 자기 손으로 손수 만든

잠이 들어 있는 미소 곁에 들어가 눕는다.

케이크에 풍덩 하고 얼굴을 내 던진 것처럼….

그리고 속삭여준다.

자존심을 보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미소는 차라리 자폭 해버려서

“미소야. 다 지나 갈 거야, 우리의 승냥이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 올

모든 것이 원점으로 —이 대화가 있기 전의 원점으로 돌아가

거야.”

버리기라도 원하는 듯 그렇게 자신의 한계에선 최고점 일 듯 한

정말 잠이 들어버린 미소는 듣지 못하고 아기처럼 쌕쌕 귀여운 숨을

자학을 한다.

몰아 내쉴 뿐이다.

그리고는 완전히 파멸한 눈빛으로 샤워를 하고 나와 아무 일도

‘사랑스러운 미소….’

없었다는 듯 온몸에 베이비파우더 향 코롱을 뿌리고 침대로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흙구덩이 에 얼굴을 담근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 손님이 많을 시간인데 미소는 게으름을 피우며

미소의 복숭아 빛 세상, 미소의 복숭아 빛 살결은 이내 승냥이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말 몇 마디에 피 한방울 안내고 살점을 다 도려낸 것처럼 ‘원래부터

화가 난 승냥이는 열심히 블로그를 관리하고 있는 미소의 손에서

없었음’이 되어 버린다.

마우스를 뺏는다.

차라리 짓이겨 즙을 다 내버리면 복숭아넥타라도 될 수 있을 텐데

으르렁대는 미소는 승냥이의 제지에 속이 상한 건 아니다.

말이다.

왜 누에 같은 애를 데려와 자신을 괴롭게 하는지를 따져 묻고 싶은

요 며칠 부쩍 말이 줄어버린 누에는 더 이상 교묘히 눈치를 보려

얼굴이 되어있다.

하지도 뻔뻔하게 웃어넘기지도 않고 가만히 흙물에 흠뻑 젖어버린

하지만 승냥이는 그 속내 따위는 알 바 없고 갑자기 반항하는 미소의

미소의 공단신발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에 정신을 잃어버린 눈치다.

다음날 아침,

이내 미소의 핑크색 노트북을 깨진 유리컵처럼 아작 내고 말았다.

미소가 분주히 움직이며 새로 배운 요리라며 해물이 들어간 그라탕을 만들어 정성스럽게도 꾸며놓은 식탁으로 옮겨놓는다.

21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나는 견딜 수가 없어져서 담배를 꺼내 물고 베란다로 나가버린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저절로 신이 난 그 모습을 감추질 못하고

과일 바구니가 동동 떠오른다. 맘껏 포도 알갱이와 귤 알갱이를

아기 같은 목소리로 승냥이를 부른다. 승냥이는 퉁명스럽게 의자를

손가락으로 쥐어짜고 입가를 적시고 목덜미에 문지르면서 세상에서

발로 드륵 걷어내고 앉아 우적거리고 있다.

제일 행복한 기분이 되어간다.

제일먼저 일어나 머리를 말던 누에는 흔적이 없고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승냥이의 존재가 너무나 따뜻하다.

난 이내 그녀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창밖으로 날이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다. 공허한 색감으로 채워진

전하듯 가볍고 경쾌하고 들뜬 목소리로 혹은 조금 감명 받은 듯 한

그 하늘의 냄새 가 우리의 허파를 채운다. 더 이상 나도 얘기 하고 싶지

느낌마저 드는 빛깔로 내게 전한다.

않다.

“누에는 전에 집으로 돌아가 버렸지 뭐야!”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허!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다시 거기로 기어들어 갈 줄이야….”

그래, 당분간은 멍…한 채로 살아가야지. 아무런 의문도 욕심도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는 상태가 되어 조금 만

누에는 전에 함께 있던 얼굴이 하얀 남자를 잊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더 살아봐야지..

섹스를 하고 난 후엔 따뜻한 타월로 몸을 닦아 주었다던

하고 오랜만에 내게 스스로 휴가를 주기로 한다.

그 남자 말이다.

그러면서 승냥이의 허리춤을 살짝 팔로 휘감아 본다.

그런 소소한 것들은 언제나 끝까지 잊지 못하게 되어서 결국 다시

나의 애정을 담은 행동에 승냥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내게 눈짓을 한다.

찾아가게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한 모양이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해.’

내가 추운 날 크리스마스이브라는 거대 행사를 뚫고 내게 건낸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미소는 좋은 꿈을 꾸는지 자꾸 잠꼬대를 한다.

그 남자애의 프링글스 4종 세트 선물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그 잠꼬대는 꼭 새 소리 같아서 나는 미소가 꼭 작은 새 같이 느껴진다.

누에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나를 걱정 해 준다면… 그 누군가 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같이 목욕할까?’

‘난 이대로도 행복하니까. 제발 내 불행을 알려주지 말라….’

다정한 승냥이의 제안에 우리는 사라락 실크 캐미솔과 레이스

라고 말하고 나는 이 향긋한 욕조 안에서 사랑하는 미소와 절대적인

팬티 따위를 벗어 두고 따뜻한 욕조 속으로 들어간다. 더러운 것을

승냥이의 품 안에서 이 순간만 영원하고 싶다.

싫어하는 승냥이를 위해 우리는 몸 구석구석 킁킁 대며 냄새 나는

우리는 이렇게도 행복할 수 있다.

곳이 없는 지를 확인한다.

이제 정말 여기까지—만.

거대한 욕조 속에 몸을 담그면 상냥한 미소가 준비해둔 작은

23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22

묻지도 않았는데 미소가 방긋 웃으며 뉴스에 난 간만의 희소식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저절로 신이 난 그 모습을 감추질 못하고

과일 바구니가 동동 떠오른다. 맘껏 포도 알갱이와 귤 알갱이를

아기 같은 목소리로 승냥이를 부른다. 승냥이는 퉁명스럽게 의자를

손가락으로 쥐어짜고 입가를 적시고 목덜미에 문지르면서 세상에서

발로 드륵 걷어내고 앉아 우적거리고 있다.

제일 행복한 기분이 되어간다.

제일먼저 일어나 머리를 말던 누에는 흔적이 없고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승냥이의 존재가 너무나 따뜻하다.

난 이내 그녀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창밖으로 날이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다. 공허한 색감으로 채워진

전하듯 가볍고 경쾌하고 들뜬 목소리로 혹은 조금 감명 받은 듯 한

그 하늘의 냄새 가 우리의 허파를 채운다. 더 이상 나도 얘기 하고 싶지

느낌마저 드는 빛깔로 내게 전한다.

않다.

“누에는 전에 집으로 돌아가 버렸지 뭐야!”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허!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다시 거기로 기어들어 갈 줄이야….”

그래, 당분간은 멍…한 채로 살아가야지. 아무런 의문도 욕심도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는 상태가 되어 조금 만

누에는 전에 함께 있던 얼굴이 하얀 남자를 잊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더 살아봐야지..

섹스를 하고 난 후엔 따뜻한 타월로 몸을 닦아 주었다던

하고 오랜만에 내게 스스로 휴가를 주기로 한다.

그 남자 말이다.

그러면서 승냥이의 허리춤을 살짝 팔로 휘감아 본다.

그런 소소한 것들은 언제나 끝까지 잊지 못하게 되어서 결국 다시

나의 애정을 담은 행동에 승냥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내게 눈짓을 한다.

찾아가게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한 모양이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해.’

내가 추운 날 크리스마스이브라는 거대 행사를 뚫고 내게 건낸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미소는 좋은 꿈을 꾸는지 자꾸 잠꼬대를 한다.

그 남자애의 프링글스 4종 세트 선물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그 잠꼬대는 꼭 새 소리 같아서 나는 미소가 꼭 작은 새 같이 느껴진다.

누에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나를 걱정 해 준다면… 그 누군가 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같이 목욕할까?’

‘난 이대로도 행복하니까. 제발 내 불행을 알려주지 말라….’

다정한 승냥이의 제안에 우리는 사라락 실크 캐미솔과 레이스

라고 말하고 나는 이 향긋한 욕조 안에서 사랑하는 미소와 절대적인

팬티 따위를 벗어 두고 따뜻한 욕조 속으로 들어간다. 더러운 것을

승냥이의 품 안에서 이 순간만 영원하고 싶다.

싫어하는 승냥이를 위해 우리는 몸 구석구석 킁킁 대며 냄새 나는

우리는 이렇게도 행복할 수 있다.

곳이 없는 지를 확인한다.

이제 정말 여기까지—만.

거대한 욕조 속에 몸을 담그면 상냥한 미소가 준비해둔 작은

23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살구잼 트리오

22

묻지도 않았는데 미소가 방긋 웃으며 뉴스에 난 간만의 희소식을


이륙 take off/ 박미정


이륙 take off/ 박미정


take 1

도움이 필요하면 눌러주세요.

27

너무도 누르고 싶었다. 빨간 꼭지를 꾸욱 누르고 싶었다. 도움이 필요하다. 절실하다. 하지만 역무원에게 뭐라고 할, 무어라 말할 건더 기가 없었다. ‘내용물의 부재’ 매번 반복되는 문제다. 문제가 있는, 데 뭔지를 모르니 문제가 성사되질 않는다. 내게 건네는 그릇을 한 박자 늦게 받아드는 나의 손과 얼굴이 멍하 다는 듯 그가 무슨 문제 있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젓 는다는 것을 위아래로 끄덕여 버렸다. 뭐 문제가 있다고? 그가 되묻는 데 이제야 고개를 좌우로 재재거리며 아니 없다고 대답해버렸다. 맛있 게 드세요 의례적인 말을 하면서 음식을 대접해 주고는 돌아오는 동안 생각해 봤다. 곰곰이. 문제가 있나, 없나. 있나? 없나? 하나씩을 물음표 처리를 하니 더욱 혼란스러워 졌다. 내가는 음식에는 문제가 없었다. 정갈하게 담긴 음식이었다. 그릇이 예쁘기까지 한 흔하다면 흔한 브런 치 한 접시. 직원과 손님이 같은 화장실을 쓴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 이 아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밖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허면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에헤헤 발음 그대

이륙 take off

이육: 다를 이 異 여섯 육六


take 1

도움이 필요하면 눌러주세요.

27

너무도 누르고 싶었다. 빨간 꼭지를 꾸욱 누르고 싶었다. 도움이 필요하다. 절실하다. 하지만 역무원에게 뭐라고 할, 무어라 말할 건더 기가 없었다. ‘내용물의 부재’ 매번 반복되는 문제다. 문제가 있는, 데 뭔지를 모르니 문제가 성사되질 않는다. 내게 건네는 그릇을 한 박자 늦게 받아드는 나의 손과 얼굴이 멍하 다는 듯 그가 무슨 문제 있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젓 는다는 것을 위아래로 끄덕여 버렸다. 뭐 문제가 있다고? 그가 되묻는 데 이제야 고개를 좌우로 재재거리며 아니 없다고 대답해버렸다. 맛있 게 드세요 의례적인 말을 하면서 음식을 대접해 주고는 돌아오는 동안 생각해 봤다. 곰곰이. 문제가 있나, 없나. 있나? 없나? 하나씩을 물음표 처리를 하니 더욱 혼란스러워 졌다. 내가는 음식에는 문제가 없었다. 정갈하게 담긴 음식이었다. 그릇이 예쁘기까지 한 흔하다면 흔한 브런 치 한 접시. 직원과 손님이 같은 화장실을 쓴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 이 아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밖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허면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에헤헤 발음 그대

이륙 take off

이육: 다를 이 異 여섯 육六


로의 소리를 내며 바보웃음을 흘려주기라도 하면 완벽한 친절포스가 완성된다.

마감 조에 츄를 날리며 퇴근길에 나섰다. 꽤 선선해진 저녁 공기 가 오케이 이제 스모킹 타임에 맞추어 걸려있던 큐를 해제한다. 치 뻠 뻠 코호록 후우. 담배가 참 쓰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오른 쪽 길이 조금 더 헤매는 길이다. 그런데도 자동으로 턴 롸잇. 도로 옆길

물론 이름 그대로 그 안에서 풀 메이크업이라도 하면 그건 더 진상. 정

을 따라 걷는다. 고맙게도 평평한 길, 더 고맙게는 자동차 소음. 한 20번

해놓지도 않았는데 대부분 긴 시간동안 장소를 꿰차고 들어앉지는 않

은 가사 보며 따라 불렀어도 항상 같은 대목에선 얼버무리는 노래를

는다. 쪼로록하고 팬티 올리고 바지나 치마 올리고 손 씻고 또는 이건

되는대로 흥얼거린다. 본오옹 오오오옹 오오오 오오오옹 그래 뭐 태

생략하고 나온다. 여자들이 가끔 꽤 긴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찌이익

어나지 않은 아가들을 호프할 입장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고 하면서 노

하고 돌돌 하고 찌이익 하고 안착해야 하는 구찮은 날에 하필 카페에

래가 자동 정지되면서 약 몇 초를 웅얼거리다 허밍으로 전환한다. 뭐

왔기 때문이다. 기차게 빠른 여성들도 간혹 있는데 그 여자 나온 후에

나 들으려고 부르는 건데 상관없지. 출산을 장려하는 켓치 프레이즈

들어가면 코에 딱 잡힌다. 시큼 텁텁 웽웽 피 냄새. 그래 이게 지랄인 거

응모에 낙방했다. 센스 없는 것들.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지, 생리대를 갈면서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게 해야지를 생각하고 있다.

유아 낫 언론. 얼마나 좋아. 유아도 당신도 혼자가 아니다 국가가 도와

뭔가 냄새가 난다. 눈치가 보인다. 지금 배가 아픈데, 그 밴지 이 밴지 모르겄다. 똥냄

주께. 의미도 딱 이구만 아무튼 이상한데서 한글사랑 운운한다니까. 어어 이상하다.

새 퐁퐁 풍기게 하고 화장실을 나서서는 그 냄새 맡았을 손님 얼굴 보

배가 아파온다. 아픈 게 저어기에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 체

면서 어뜨케 방실방실 친절미소 띄울 것인가. 아니다. 참자. 피식 방구

리콜라의 저어기에 있는 체리향이 식도를 타고 혀끝으로 올라오고 콜

만 살짝 퐁퐁 뀌어주고 나가자. 뒤쪽근육은 잡아주고 앞쪽 근육만을

라 본연의 뭐시기가 혀끝에서 목구멍 뒤로 넘어가던 그 식으로 그대로

허용하여 오줌이를 방출시킨다. 째러로록 추 로랑 또롱 똑똑똑똑…….

다가. 배가 긴 이차선 터널처럼 생겨서는 저기선 들어오고 저기선 나

휴지 두어장으로 남은 물방울 잡아주고 팬티를 올리, 려다, 아차 했던

가는 것 마냥 분명하게 두 덩이가 교차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변과 똥

방구한번 튀워 주고 손으로 통통 엉덩이 골 토닥이고 엉거주춤 일어서

이. 한 판 싸줘야겠기에 지하철역까지의 여정에 박차를 가한다. 환승

며 팬티를 마저 올렸다. 후에 접시치마의 장점을 한껏 살려 한 바퀴 돌

역이라서 화장실이 멀다. 75m, 10m 안내판을 따라 슬로는 없이 퀵퀵.

아주며 인간 환풍기 작살나게 가동해주고는 손을 씻는다. 핸드 타올로

뒷사람을 위해 물은 한 덩이당 한 번씩 내려준다. 작든 크든 차별 없이,

물기를 닦아내며 코를 홍홍 해보니 나쁘지 않다. 자, 이제 나가자 저 빛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워터 사운드를 누른다. 데시벨 문제가 아니라 전

의 세계로.

혀 음역대가 다른 소리다. 나 지금 쉬해요 하고 광고하는 효과만 가져

오사키니 시츠레이시마스—.

오는 전력낭비지만 이윽고 두 차례나 더 꼭지를 눌렀다. 집을 나와 어

29

이륙 take off

이륙 take off

28

카페의 화장실이란 사실상 소변실이지 소대변실이 아니다, 대개.


로의 소리를 내며 바보웃음을 흘려주기라도 하면 완벽한 친절포스가 완성된다.

마감 조에 츄를 날리며 퇴근길에 나섰다. 꽤 선선해진 저녁 공기 가 오케이 이제 스모킹 타임에 맞추어 걸려있던 큐를 해제한다. 치 뻠 뻠 코호록 후우. 담배가 참 쓰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오른 쪽 길이 조금 더 헤매는 길이다. 그런데도 자동으로 턴 롸잇. 도로 옆길

물론 이름 그대로 그 안에서 풀 메이크업이라도 하면 그건 더 진상. 정

을 따라 걷는다. 고맙게도 평평한 길, 더 고맙게는 자동차 소음. 한 20번

해놓지도 않았는데 대부분 긴 시간동안 장소를 꿰차고 들어앉지는 않

은 가사 보며 따라 불렀어도 항상 같은 대목에선 얼버무리는 노래를

는다. 쪼로록하고 팬티 올리고 바지나 치마 올리고 손 씻고 또는 이건

되는대로 흥얼거린다. 본오옹 오오오옹 오오오 오오오옹 그래 뭐 태

생략하고 나온다. 여자들이 가끔 꽤 긴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찌이익

어나지 않은 아가들을 호프할 입장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고 하면서 노

하고 돌돌 하고 찌이익 하고 안착해야 하는 구찮은 날에 하필 카페에

래가 자동 정지되면서 약 몇 초를 웅얼거리다 허밍으로 전환한다. 뭐

왔기 때문이다. 기차게 빠른 여성들도 간혹 있는데 그 여자 나온 후에

나 들으려고 부르는 건데 상관없지. 출산을 장려하는 켓치 프레이즈

들어가면 코에 딱 잡힌다. 시큼 텁텁 웽웽 피 냄새. 그래 이게 지랄인 거

응모에 낙방했다. 센스 없는 것들.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지, 생리대를 갈면서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게 해야지를 생각하고 있다.

유아 낫 언론. 얼마나 좋아. 유아도 당신도 혼자가 아니다 국가가 도와

뭔가 냄새가 난다. 눈치가 보인다. 지금 배가 아픈데, 그 밴지 이 밴지 모르겄다. 똥냄

주께. 의미도 딱 이구만 아무튼 이상한데서 한글사랑 운운한다니까. 어어 이상하다.

새 퐁퐁 풍기게 하고 화장실을 나서서는 그 냄새 맡았을 손님 얼굴 보

배가 아파온다. 아픈 게 저어기에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 체

면서 어뜨케 방실방실 친절미소 띄울 것인가. 아니다. 참자. 피식 방구

리콜라의 저어기에 있는 체리향이 식도를 타고 혀끝으로 올라오고 콜

만 살짝 퐁퐁 뀌어주고 나가자. 뒤쪽근육은 잡아주고 앞쪽 근육만을

라 본연의 뭐시기가 혀끝에서 목구멍 뒤로 넘어가던 그 식으로 그대로

허용하여 오줌이를 방출시킨다. 째러로록 추 로랑 또롱 똑똑똑똑…….

다가. 배가 긴 이차선 터널처럼 생겨서는 저기선 들어오고 저기선 나

휴지 두어장으로 남은 물방울 잡아주고 팬티를 올리, 려다, 아차 했던

가는 것 마냥 분명하게 두 덩이가 교차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변과 똥

방구한번 튀워 주고 손으로 통통 엉덩이 골 토닥이고 엉거주춤 일어서

이. 한 판 싸줘야겠기에 지하철역까지의 여정에 박차를 가한다. 환승

며 팬티를 마저 올렸다. 후에 접시치마의 장점을 한껏 살려 한 바퀴 돌

역이라서 화장실이 멀다. 75m, 10m 안내판을 따라 슬로는 없이 퀵퀵.

아주며 인간 환풍기 작살나게 가동해주고는 손을 씻는다. 핸드 타올로

뒷사람을 위해 물은 한 덩이당 한 번씩 내려준다. 작든 크든 차별 없이,

물기를 닦아내며 코를 홍홍 해보니 나쁘지 않다. 자, 이제 나가자 저 빛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워터 사운드를 누른다. 데시벨 문제가 아니라 전

의 세계로.

혀 음역대가 다른 소리다. 나 지금 쉬해요 하고 광고하는 효과만 가져

오사키니 시츠레이시마스—.

오는 전력낭비지만 이윽고 두 차례나 더 꼭지를 눌렀다. 집을 나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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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take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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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화장실이란 사실상 소변실이지 소대변실이 아니다, 대개.


이륙 take off

30

한다. 내가 읽던 곳부터 보기가 싫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었다.

운 나의 집보다는 덜 노골적이지만 다른 의미에선 더 보편 노골의 그

그는 그것들이 모두 자신을 위해서 계획된 것이라 생각했다.

소리에 눈을 감고 20초 명상에 들어간다. 이곳은 한 절간 물은 흐르고,

자주 가는 순대국집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커 같은 순대국이

나 혼자 고시공부 하러 왔네 아이쿠야 이건 아니다. 한 번 더 누르려는

라고. 이년은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지

데 다른 꼭지를 발견했다.

몸을 달궜다. 먹혀질 것을 기대하면서. 나는 그저 그날 그 시간에 그년

빨간꼭지.

에게 돈을 지불하기로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윽고 딴 놈이 들어와서

누르면 역무원 아저씨가 생리대를 가져다주나 휴지를 가져다주

는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 아줌마는 주방으로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나 아니지 몰래 변기에 애를 싸지르다 과다 출혈에 의식이 희미해지

‘순대정식 하나 더’를 외친다. 빌어먹을 하나 더 같은 년. 맛은 있지만 그

려는 찰나 질척이는 생명에 대한(물론 아기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맛을 이 놈 저 놈에게 뵈어서 나를 배신하는 년. 그래도 난 마땅한 돈을

집착으로 인해 눌러질지도 모를 그러니까 정말 모를 그 에머전시에는

지불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온다. 파는 상품이 다를

들것을 가져다 줄 저 빨간 꼭지가, 탐스러웠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환영

뿐이지 꽃에 물 좀 주고가 총각하는 아줌마나 저 아줌마나 다를 것이

한다던 부동산. 주인이 문을 닫고 퇴근한 뒤에도 밤새 켜져 있던 전광

없다. 물론 얌전한 체 하며 커피와 차 브런치 등등을 파는 나도 똑같이.

판에 나왔던 문구. 화녕합니다 무놔부동산. 정말로 가서 월세도 안보 고 전세도 안 봐도 배치된 녹차를 까서 뜨신 물 반, 찬물 반 부어서 종이 컵 씹어가면서 몇 번이고 우려먹다가 그냥 나와도 정말로, 정말로 나 를 환영해줄, 까? 장은 아직 ing인데 문지기가 허락을 하지 않는지 몇 분 더 앉아있어 봤지만 더 이상의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휴지를 후 루룩 돌려서 풍성하게 손에 감아 잔여물을 처리한다. 내 것이지만 내 손에 묻지 않도록 신경써가면서 엉덩이 한쪽을 들어서 그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서는. 장을 보고 집 가까이에서 내가 볼 만화책 언니가 볼 잡 지책 아빠가 볼 무협지를 빌려서 왔다. 엄마가 아빠 식사하시라고 하 라셔서 아빠 밥 먹어 하는데 아빠가 없다. 그럴 때면 거의 아빠는 화장 실에 있는데 다 눈 똥도 안 내리고 똥꾸멍도 안 닦고 무협지에 열중이 다. 똥 다 누고도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으면 안 좋대 라고 말은 했지만 순간 나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책이 생각이 났다. 책을 꺼내 다시 자리

31

이륙 take off

디론가 가거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애인이 들어야하는 즐거


이륙 take off

30

한다. 내가 읽던 곳부터 보기가 싫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었다.

운 나의 집보다는 덜 노골적이지만 다른 의미에선 더 보편 노골의 그

그는 그것들이 모두 자신을 위해서 계획된 것이라 생각했다.

소리에 눈을 감고 20초 명상에 들어간다. 이곳은 한 절간 물은 흐르고,

자주 가는 순대국집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커 같은 순대국이

나 혼자 고시공부 하러 왔네 아이쿠야 이건 아니다. 한 번 더 누르려는

라고. 이년은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지

데 다른 꼭지를 발견했다.

몸을 달궜다. 먹혀질 것을 기대하면서. 나는 그저 그날 그 시간에 그년

빨간꼭지.

에게 돈을 지불하기로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윽고 딴 놈이 들어와서

누르면 역무원 아저씨가 생리대를 가져다주나 휴지를 가져다주

는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 아줌마는 주방으로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나 아니지 몰래 변기에 애를 싸지르다 과다 출혈에 의식이 희미해지

‘순대정식 하나 더’를 외친다. 빌어먹을 하나 더 같은 년. 맛은 있지만 그

려는 찰나 질척이는 생명에 대한(물론 아기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맛을 이 놈 저 놈에게 뵈어서 나를 배신하는 년. 그래도 난 마땅한 돈을

집착으로 인해 눌러질지도 모를 그러니까 정말 모를 그 에머전시에는

지불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온다. 파는 상품이 다를

들것을 가져다 줄 저 빨간 꼭지가, 탐스러웠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환영

뿐이지 꽃에 물 좀 주고가 총각하는 아줌마나 저 아줌마나 다를 것이

한다던 부동산. 주인이 문을 닫고 퇴근한 뒤에도 밤새 켜져 있던 전광

없다. 물론 얌전한 체 하며 커피와 차 브런치 등등을 파는 나도 똑같이.

판에 나왔던 문구. 화녕합니다 무놔부동산. 정말로 가서 월세도 안보 고 전세도 안 봐도 배치된 녹차를 까서 뜨신 물 반, 찬물 반 부어서 종이 컵 씹어가면서 몇 번이고 우려먹다가 그냥 나와도 정말로, 정말로 나 를 환영해줄, 까? 장은 아직 ing인데 문지기가 허락을 하지 않는지 몇 분 더 앉아있어 봤지만 더 이상의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휴지를 후 루룩 돌려서 풍성하게 손에 감아 잔여물을 처리한다. 내 것이지만 내 손에 묻지 않도록 신경써가면서 엉덩이 한쪽을 들어서 그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서는. 장을 보고 집 가까이에서 내가 볼 만화책 언니가 볼 잡 지책 아빠가 볼 무협지를 빌려서 왔다. 엄마가 아빠 식사하시라고 하 라셔서 아빠 밥 먹어 하는데 아빠가 없다. 그럴 때면 거의 아빠는 화장 실에 있는데 다 눈 똥도 안 내리고 똥꾸멍도 안 닦고 무협지에 열중이 다. 똥 다 누고도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으면 안 좋대 라고 말은 했지만 순간 나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책이 생각이 났다. 책을 꺼내 다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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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take off

디론가 가거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애인이 들어야하는 즐거


take 2

는지 간에(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해서든 내 장과 위 안에 서 술을 빼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안주라고 해봤자 콩나물을 몇 개, 집 어서 먹었을 뿐인지라 내용물은 비교적 깨끗했다. 노랗고 쓴 위액까 지 토해내고 나서야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시야 안에 청록의 반스 운 동화가 코끝으로 공원의 보도 블럭을 끌끌 차고 있는 것이 잡혔다. 나 의 고개는 여전히 아래를 향한 채였고 정확히 말하면 시야 안 이라기 보다는 뿌옇게 처리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보이기는 하는 시야권 안 과 밖의 그 모호한 지점에 그 가느다란 다리와 운동화는 위치해 있었

E를 만난 것은 언제였더라. 내가 아는 한은 공원에서였다. 예닐곱

다. 그 고동색의 다리가 말을 먼저 걸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얼굴을 확

(난 정확한 명단을 기억하지 못한다)의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날.

인하지 않고 그 공원의 어디 앉을 데를 찾아서 휘청거리며 이동해서

물론 나는 그런 자리에서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법을 모른다. 술도

는 그 곳에서 수분을 지체한 다음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뭔 일이래 오늘 매우 잘 마시네 흥을 돋아주는 바람에 뭐라도 된 듯 한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 왔으므로(정확히 나를 향하지는 않았을지 모

기분이 들어서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애초에 누가 뭐라 하든 말뜻

르지만) 고개를 들어 하얀색에 그래픽이 프린트되어진 박스 티와 그

을 인지하면서 듣지도 않았지만 애들의 대화소리가 점점 더 삑삑 하

얼굴, E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더럽다 생각했는지 더 가까이 다가오

는 전자음만치로도 들리지 않았다, 의미면에서(이런 자리에서의 말

지는 않고 그 자리에 자리해서는(그 시야권의 언저리에서) 아까와 똑

에서 의미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겠지만). 핑글핑글 혼자 내 표정이 어

같이 바닥을 차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티끌로 나의 토사물을 덮

떠할지 재미있어하면서 나 나름대로 즐기며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었

으려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의 그저의 버릇이라는 것을 안 것도 사실

다. 한 시간은 못되는 시간이 흘렀는데 갑자기 아니면 이제야, 속이 좋

그리 오래 뒤는 아니었지만.

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몸보다는 머리가 먼저 반응했다고 해야 할

아주 노골적인데.

까). 비틀거리는 동작을 약간 더 가미하면서 자리를 빠져 나가는 내 모

라고 그는 말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적나라한데 나. 뭐 그 비슷한

습에 애들이 또 한바탕 웃(어 제끼)고 있었다(또는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이었겠지. 아주 오랜만에 보드를 들고 공원에 나갔다. 아무도 없을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술집에 딸린 더러운 화장실의 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이러쿵저러쿵 안보이던 때에 대한

기에 얼굴을 처박고 토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로 앞쪽에 공

질문들을 늘어놓지 않는 작자들이 주로 있었으므로 잠깐의 눈인사로

원이 보였고 휘청거리며 그곳으로 향했다. 칠이 벗겨진 녹슨 철 기둥

불필요한 인트로는 신속하게 치뤘다. 무릎높이의 턱에 보드를 가져다

하나를 잡고 정신없이 게웠다. 옆에 누가 있는지 그 공원 안에 누가 있

대고는 각도를 좀 살피는데 분명 본 적은 없지만 익숙한 듯한,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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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take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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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2

는지 간에(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해서든 내 장과 위 안에 서 술을 빼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안주라고 해봤자 콩나물을 몇 개, 집 어서 먹었을 뿐인지라 내용물은 비교적 깨끗했다. 노랗고 쓴 위액까 지 토해내고 나서야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시야 안에 청록의 반스 운 동화가 코끝으로 공원의 보도 블럭을 끌끌 차고 있는 것이 잡혔다. 나 의 고개는 여전히 아래를 향한 채였고 정확히 말하면 시야 안 이라기 보다는 뿌옇게 처리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보이기는 하는 시야권 안 과 밖의 그 모호한 지점에 그 가느다란 다리와 운동화는 위치해 있었

E를 만난 것은 언제였더라. 내가 아는 한은 공원에서였다. 예닐곱

다. 그 고동색의 다리가 말을 먼저 걸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얼굴을 확

(난 정확한 명단을 기억하지 못한다)의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날.

인하지 않고 그 공원의 어디 앉을 데를 찾아서 휘청거리며 이동해서

물론 나는 그런 자리에서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법을 모른다. 술도

는 그 곳에서 수분을 지체한 다음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뭔 일이래 오늘 매우 잘 마시네 흥을 돋아주는 바람에 뭐라도 된 듯 한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 왔으므로(정확히 나를 향하지는 않았을지 모

기분이 들어서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애초에 누가 뭐라 하든 말뜻

르지만) 고개를 들어 하얀색에 그래픽이 프린트되어진 박스 티와 그

을 인지하면서 듣지도 않았지만 애들의 대화소리가 점점 더 삑삑 하

얼굴, E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더럽다 생각했는지 더 가까이 다가오

는 전자음만치로도 들리지 않았다, 의미면에서(이런 자리에서의 말

지는 않고 그 자리에 자리해서는(그 시야권의 언저리에서) 아까와 똑

에서 의미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겠지만). 핑글핑글 혼자 내 표정이 어

같이 바닥을 차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티끌로 나의 토사물을 덮

떠할지 재미있어하면서 나 나름대로 즐기며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었

으려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의 그저의 버릇이라는 것을 안 것도 사실

다. 한 시간은 못되는 시간이 흘렀는데 갑자기 아니면 이제야, 속이 좋

그리 오래 뒤는 아니었지만.

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몸보다는 머리가 먼저 반응했다고 해야 할

아주 노골적인데.

까). 비틀거리는 동작을 약간 더 가미하면서 자리를 빠져 나가는 내 모

라고 그는 말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적나라한데 나. 뭐 그 비슷한

습에 애들이 또 한바탕 웃(어 제끼)고 있었다(또는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이었겠지. 아주 오랜만에 보드를 들고 공원에 나갔다. 아무도 없을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술집에 딸린 더러운 화장실의 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이러쿵저러쿵 안보이던 때에 대한

기에 얼굴을 처박고 토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로 앞쪽에 공

질문들을 늘어놓지 않는 작자들이 주로 있었으므로 잠깐의 눈인사로

원이 보였고 휘청거리며 그곳으로 향했다. 칠이 벗겨진 녹슨 철 기둥

불필요한 인트로는 신속하게 치뤘다. 무릎높이의 턱에 보드를 가져다

하나를 잡고 정신없이 게웠다. 옆에 누가 있는지 그 공원 안에 누가 있

대고는 각도를 좀 살피는데 분명 본 적은 없지만 익숙한 듯한,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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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take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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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아래에도

팔이 이전에 본 부위와 너무도 닳아서 이 팔이 누구의 것인지 짐작이

관심이 없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문밖에 E가 서 있었고 나는

가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드는 팔이 정확히 시야권 안으로 그 주인의

E에게 어떤 식으로든 나 사는 곳을 알려준 적이 없었고 당연히 앞으

의도가 분명하게 담기어서는 들어왔다. 쥐어져있던 주먹이 펴지고 꼬

로 걸어 들어가야 할 내 집에 그가 앞을 보고 나는 떠밀려서 뒷걸음치

깃꼬깃한 천 원짜리가 관성의 법칙을 따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E

며 들어가야 했고 귀를 따라 목까지 삽시간에 타액이 발라졌고 어떤

는 내가 천원을 보태면 너는 물론 나까지 떡볶이를 맛볼 수 있다는 주

이유에선지 나의 몸은 E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내 위치에서는 시계

장을 폈고 나는 잘 알고 있던 사람과 하듯 자연스레 무언의 동의를 하

가 보였기 때문에 봤을 뿐이고 매우 짧았던 동안이 그 보다 더 길게 느

며 보드를 챙겨 먼저 걸어갔다. 물론 나는 친구와 떡볶이를 그것도 더

껴지지도 짧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허용한 적이 없지만 허용해줬다고

치를 해가면서까지 사먹은 기억이 없다. 그날 우리가 먹은 것은 순대

느끼는 쪽에게는 다음이 더 쉬울 법도. 그 뒤로도 우리는 그 보다 더 길

였다. 도착과 동시 당연하다는 듯 그가 이모 순대 일인분이요를 외쳤

게 짧게, 숨이 차고 꽤 운동이 되는 그 짓을 했다. 이 주변 인간들이 그

을 때 나는 짐짓 놀랐지만 우리가 먹게 될 것이 밀이든 피든 상관없다

렇듯이 E또한 현실의 벽이 자기에게로 달겨드는 30줄을 1년여 남겨

고 생각했다. 그 뒤에 우리가 같이 보드를 탔는지 또는 술을 마셨는지

둔 늦여름에 해외로 도망치듯 떠났다. 오늘 별 것 아닌 E와의 처음을

(이것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에게 천원

회상해보는 것에 별 이유는 없다. E보다는 조금 별 것인 R로부터 사진

을 건넸는지 내 쪽에서 천원을 받아 계산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E는

(까지나)을 첨부한 이메일이 왔고 몇 장의 사진 안에는 E가 포함되어

그날 밤에 엄청난 사실이라도 얘기해 준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난

있었다. E답지 않게 그을린 피부에 더 수척해진 것인지 살이 조금은

널 알고 있었어 라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반전도 이미 시작부터 짐작

찐 것인지도 몰라볼 만큼 작게, 그리 크지 않게 앞모습이라고는 없는

이 갔기에 웃음이 피식 나오는 반전도 뭣도 아니었으므로 잠자코 있으

옆모습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R이 이 메일을 나에게 보

니 그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먼저 기다릴 새 없

내는 동안 분명 옆에 있었을 E는 감히 나의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을

다는 듯 말해왔다. 예의상 어떻게 라고 물었고 그의 대답에 비로소 약

것이므로 나또한 R에게만 답장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곳의 여자들이

간의 한기가 찾아왔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R이 쟤 그거 엄청 잘 해 라

나보다 더 너를 사정없이 사정하게 만들기를 바란다고 썼다가는 지우

고 나는 전혀 모르게 E에게 나를 소개시켰던 것이다. 그날부터 E는 나 와 자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목표로 설정하고 어떻게 다 가갈지를 계획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전혀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 았을지도. 나는 그가 주도면밀한 계획형 인간인지 될 대로 되라는 식 의 방임형 인간인지 또는 운명을 믿는 순진한(또는 병신 같은) 인간형

고 썼다가는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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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take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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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나는 이 인물의 다른 부위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아대를 찬 가느다란


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아래에도

팔이 이전에 본 부위와 너무도 닳아서 이 팔이 누구의 것인지 짐작이

관심이 없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문밖에 E가 서 있었고 나는

가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드는 팔이 정확히 시야권 안으로 그 주인의

E에게 어떤 식으로든 나 사는 곳을 알려준 적이 없었고 당연히 앞으

의도가 분명하게 담기어서는 들어왔다. 쥐어져있던 주먹이 펴지고 꼬

로 걸어 들어가야 할 내 집에 그가 앞을 보고 나는 떠밀려서 뒷걸음치

깃꼬깃한 천 원짜리가 관성의 법칙을 따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E

며 들어가야 했고 귀를 따라 목까지 삽시간에 타액이 발라졌고 어떤

는 내가 천원을 보태면 너는 물론 나까지 떡볶이를 맛볼 수 있다는 주

이유에선지 나의 몸은 E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내 위치에서는 시계

장을 폈고 나는 잘 알고 있던 사람과 하듯 자연스레 무언의 동의를 하

가 보였기 때문에 봤을 뿐이고 매우 짧았던 동안이 그 보다 더 길게 느

며 보드를 챙겨 먼저 걸어갔다. 물론 나는 친구와 떡볶이를 그것도 더

껴지지도 짧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허용한 적이 없지만 허용해줬다고

치를 해가면서까지 사먹은 기억이 없다. 그날 우리가 먹은 것은 순대

느끼는 쪽에게는 다음이 더 쉬울 법도. 그 뒤로도 우리는 그 보다 더 길

였다. 도착과 동시 당연하다는 듯 그가 이모 순대 일인분이요를 외쳤

게 짧게, 숨이 차고 꽤 운동이 되는 그 짓을 했다. 이 주변 인간들이 그

을 때 나는 짐짓 놀랐지만 우리가 먹게 될 것이 밀이든 피든 상관없다

렇듯이 E또한 현실의 벽이 자기에게로 달겨드는 30줄을 1년여 남겨

고 생각했다. 그 뒤에 우리가 같이 보드를 탔는지 또는 술을 마셨는지

둔 늦여름에 해외로 도망치듯 떠났다. 오늘 별 것 아닌 E와의 처음을

(이것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에게 천원

회상해보는 것에 별 이유는 없다. E보다는 조금 별 것인 R로부터 사진

을 건넸는지 내 쪽에서 천원을 받아 계산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E는

(까지나)을 첨부한 이메일이 왔고 몇 장의 사진 안에는 E가 포함되어

그날 밤에 엄청난 사실이라도 얘기해 준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난

있었다. E답지 않게 그을린 피부에 더 수척해진 것인지 살이 조금은

널 알고 있었어 라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반전도 이미 시작부터 짐작

찐 것인지도 몰라볼 만큼 작게, 그리 크지 않게 앞모습이라고는 없는

이 갔기에 웃음이 피식 나오는 반전도 뭣도 아니었으므로 잠자코 있으

옆모습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R이 이 메일을 나에게 보

니 그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먼저 기다릴 새 없

내는 동안 분명 옆에 있었을 E는 감히 나의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을

다는 듯 말해왔다. 예의상 어떻게 라고 물었고 그의 대답에 비로소 약

것이므로 나또한 R에게만 답장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곳의 여자들이

간의 한기가 찾아왔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R이 쟤 그거 엄청 잘 해 라

나보다 더 너를 사정없이 사정하게 만들기를 바란다고 썼다가는 지우

고 나는 전혀 모르게 E에게 나를 소개시켰던 것이다. 그날부터 E는 나 와 자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목표로 설정하고 어떻게 다 가갈지를 계획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전혀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 았을지도. 나는 그가 주도면밀한 계획형 인간인지 될 대로 되라는 식 의 방임형 인간인지 또는 운명을 믿는 순진한(또는 병신 같은) 인간형

고 썼다가는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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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나는 이 인물의 다른 부위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아대를 찬 가느다란


take 3

큼 나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과 할 때도 그 의 방식을 취해달라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뒤지듯이 해줘 라고 말하니까 힘과 속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자식이 있었다. 멍청한 새끼. 누구나 잃어버린 또는 잃어버렸는지 아닌지를 잊어버린 물건을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 가장 좋은 방법은 구석구석을 천 천히 꼼꼼히 뒤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바로 전까지도 잃어버렸는 지 잊어버렸는지 몰랐던 것들까지를 찾게 된다. 뒤지다의 사전적 의 미는커녕 경험적 의미까지도 쌓아놓지 않은 천치들. 샅샅이 아주 샅

그와 할 때면 항상 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를 뒤지고 있다. 필

샅이 뒤졌는데도 보이지 않으면 그건 포기해야 한다. 어딘가에는 있

시 그는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나 말고도 두서넛의 또

다고 해도 없는 것이 되고 없으면 있는 그대로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는 그 이상의 여자들도 똑같이 당했을 것이다. 그에겐 즐긴다는 표현

성장하는 거다. 가끔씩 나는 천국이 내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

보다는 쫓긴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

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점차 지옥으로 변해가겠지만 일

는 많은 여자들이 그렇듯이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순간은 정말이지 천국일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리고 그가 찾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다.

에 잃어버렸던 가죽으로 만든 여우모양 동전지갑 그것을 다시 볼 수

그가 날 아직도 뒤지는 데는 내가 그 똑똑히를 말로써 똑똑히 표현하

만 있다면 부둥켜 쥐고는 이젠 다시 안 잃어버리겠노라고 말할 것이

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에게 사실을

다. 날 뒤져 주는 이가 있어서 좋다. 나의 결백이 그에게 완전히 인식되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어떤 어리석은 여자 하나가 먼저 그에게 사실

어지기 전까지(이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나는 그에게로부터

을 폭로할 것이다. 멍청한 짓이다. 사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 남자만

절대로 잃어지지 않을 것이다. 잊어지지 않을 것이다.

큼 실제 의도를 숨긴 채 천천히 만족시켜 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실 제로는 쫓기지만 매우 느긋하리만큼 천천히 진행한다. 어쩌면 그래 서 더 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난 뒤져봤자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는다. 그곳에 먼지가 한 톨이라도 있다면 병원에 가야 할 일 이지만. 난 가끔 그가 나를 뒤지게 할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간은 쭈욱. 죄책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내 쪽에선 숨기고 있는 것이 없으 니까. 의심을 하는 쪽은 그이므로 나는 몇 번이고 뒤져지면서 그런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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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3

큼 나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과 할 때도 그 의 방식을 취해달라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뒤지듯이 해줘 라고 말하니까 힘과 속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자식이 있었다. 멍청한 새끼. 누구나 잃어버린 또는 잃어버렸는지 아닌지를 잊어버린 물건을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 가장 좋은 방법은 구석구석을 천 천히 꼼꼼히 뒤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바로 전까지도 잃어버렸는 지 잊어버렸는지 몰랐던 것들까지를 찾게 된다. 뒤지다의 사전적 의 미는커녕 경험적 의미까지도 쌓아놓지 않은 천치들. 샅샅이 아주 샅

그와 할 때면 항상 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를 뒤지고 있다. 필

샅이 뒤졌는데도 보이지 않으면 그건 포기해야 한다. 어딘가에는 있

시 그는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나 말고도 두서넛의 또

다고 해도 없는 것이 되고 없으면 있는 그대로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는 그 이상의 여자들도 똑같이 당했을 것이다. 그에겐 즐긴다는 표현

성장하는 거다. 가끔씩 나는 천국이 내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

보다는 쫓긴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

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점차 지옥으로 변해가겠지만 일

는 많은 여자들이 그렇듯이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순간은 정말이지 천국일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리고 그가 찾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다.

에 잃어버렸던 가죽으로 만든 여우모양 동전지갑 그것을 다시 볼 수

그가 날 아직도 뒤지는 데는 내가 그 똑똑히를 말로써 똑똑히 표현하

만 있다면 부둥켜 쥐고는 이젠 다시 안 잃어버리겠노라고 말할 것이

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에게 사실을

다. 날 뒤져 주는 이가 있어서 좋다. 나의 결백이 그에게 완전히 인식되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어떤 어리석은 여자 하나가 먼저 그에게 사실

어지기 전까지(이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나는 그에게로부터

을 폭로할 것이다. 멍청한 짓이다. 사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 남자만

절대로 잃어지지 않을 것이다. 잊어지지 않을 것이다.

큼 실제 의도를 숨긴 채 천천히 만족시켜 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실 제로는 쫓기지만 매우 느긋하리만큼 천천히 진행한다. 어쩌면 그래 서 더 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난 뒤져봤자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는다. 그곳에 먼지가 한 톨이라도 있다면 병원에 가야 할 일 이지만. 난 가끔 그가 나를 뒤지게 할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간은 쭈욱. 죄책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내 쪽에선 숨기고 있는 것이 없으 니까. 의심을 하는 쪽은 그이므로 나는 몇 번이고 뒤져지면서 그런 만

37

이륙 take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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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take 4

좀 거북스럽지만 이것만한 통화의 갈무리 멘트도 없어서 오히려 이 말이 나오면 반갑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꽤 괜찮은 결론과 함께 앞으 로의 잘 삶을 다짐하고 약속받으면서 통화가 끝나면 오늘도 한 건 했 군 하는 감격이 배에서부터 가슴을 지나 모가지나 머리끝까지 밀려온 다. 얏호 이로써 그 인간의 전화번호부에서 나는 당분간 세이프하게 세이브된다. 기억이 기억나지 않는 때가 가끔 있다. 뭔가 있는데 기억 이 나지 않는다. 부하량이 늘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살이니까. 망각 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끔 비워 지고 비워 지고 하니까 살 수 있는 거지

오공구공 삼육구오 눌러주오 이번호를 오공구공 삼육구오 잊지마오 이번호를

이륙 take off

혹시라도 눌러주면 놀랄거요 화들짜악 콧바람만 불지말고 말을하오 나의그대

그러지 않고 다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 문제일 것 같을세.

39

나야. 그래 너 뭐. 나라고. 그래 너 뭐. 나라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 뭐. 모르겠어? 나라고. 그래 안다고 너 뭐. 시선은 항시 타자를 향한다. 타자를 위한 나의 부속물인 눈. 나를 위한 타자의 부속물인 눈. 나는 그 눈이 항시 무서웠다. 마음의 창이라

전화해서 나야 라고 말하는 작자들의 심리를 알 수 없다. 너 그래,

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어둠(망막)과 그 밖의 투명함(수정체)의 그

니가 누군데. 주마등의 이 배속으로 대갈빡을 굴려 봐도 딱 누구라 말

묘한 결합이 참 나를 소스라치게 하곤 했다. 원형의 감옥 안에는 탑이

할 수 없는 이 모호함이란. 그냥 응응 하면서 말대꾸 좀 하다보면 이런

하나 있다. 죄수들은 항시 빛의 세계에 있고, 감시자는 항시 어둠의 세

저런 추가의 정보들을 내어 놓는다. 적어도 죽지는 않고 잘 살았으니

계에 있다. 파리텍사스에서 여자는 빛 속에 있다. 남자는 어둠 속에 있

이 전화를 받는 것이 것만 잘 있었냐 여러 차례 묻는 것은 도대체가 무

다. 여자는 창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을 뿐이고 남자는 창을 통해 여자

슨 심본지. 나야 잘 있었지 넌? 이라고 아임 파인 땡큐 앤쥬 라도 날려

를 볼 수 있다. 몇은 빛이 권력을 상징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주면 그때부터 쏟아지는 지하고 싶은 얘기들. 놀라운 알집능력을 선

권력을 가진 쪽은 어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감추면서 타자

보이며 부분 부분 압축을 풀어 세세한 내용까지를 안내하는 너는 진

의 얼굴에 전짓불을 가져다대야 하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옆

정 자유로운 영혼. 듣자 듣자 하니 누구겠구나 짐작이 아니 확신이 간

집과 «골목» 내 집 현관과 부엌, 방이 차례로 위치해있다. 해가 중천에

다. 사람을 봐가면서 여전하네 라고 던져주면 꽤나 좋아라한다. 그 사

뜬다는 시간에도 빛은 겨우 부엌까지 밖에 차지 않는다. 내가 주로 지

이 철학자라도 되셨는지 인생사는 게 다 뭐 그렇지 하고 날려주신다.

내는 방은 인공의 빛을 필요로 한다. 나는 낮에도 형광등을 키고 살았

어릴 적 표준(또는 동아) 전과에 나오던 한 줄짜리 주제만 같아서 사실

다. 나는 계속해서 밝은 채로 지내야 한다. 옆집과 내 집 사이 골목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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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4

좀 거북스럽지만 이것만한 통화의 갈무리 멘트도 없어서 오히려 이 말이 나오면 반갑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꽤 괜찮은 결론과 함께 앞으 로의 잘 삶을 다짐하고 약속받으면서 통화가 끝나면 오늘도 한 건 했 군 하는 감격이 배에서부터 가슴을 지나 모가지나 머리끝까지 밀려온 다. 얏호 이로써 그 인간의 전화번호부에서 나는 당분간 세이프하게 세이브된다. 기억이 기억나지 않는 때가 가끔 있다. 뭔가 있는데 기억 이 나지 않는다. 부하량이 늘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살이니까. 망각 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끔 비워 지고 비워 지고 하니까 살 수 있는 거지

오공구공 삼육구오 눌러주오 이번호를 오공구공 삼육구오 잊지마오 이번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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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눌러주면 놀랄거요 화들짜악 콧바람만 불지말고 말을하오 나의그대

그러지 않고 다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 문제일 것 같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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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그래 너 뭐. 나라고. 그래 너 뭐. 나라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 뭐. 모르겠어? 나라고. 그래 안다고 너 뭐. 시선은 항시 타자를 향한다. 타자를 위한 나의 부속물인 눈. 나를 위한 타자의 부속물인 눈. 나는 그 눈이 항시 무서웠다. 마음의 창이라

전화해서 나야 라고 말하는 작자들의 심리를 알 수 없다. 너 그래,

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어둠(망막)과 그 밖의 투명함(수정체)의 그

니가 누군데. 주마등의 이 배속으로 대갈빡을 굴려 봐도 딱 누구라 말

묘한 결합이 참 나를 소스라치게 하곤 했다. 원형의 감옥 안에는 탑이

할 수 없는 이 모호함이란. 그냥 응응 하면서 말대꾸 좀 하다보면 이런

하나 있다. 죄수들은 항시 빛의 세계에 있고, 감시자는 항시 어둠의 세

저런 추가의 정보들을 내어 놓는다. 적어도 죽지는 않고 잘 살았으니

계에 있다. 파리텍사스에서 여자는 빛 속에 있다. 남자는 어둠 속에 있

이 전화를 받는 것이 것만 잘 있었냐 여러 차례 묻는 것은 도대체가 무

다. 여자는 창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을 뿐이고 남자는 창을 통해 여자

슨 심본지. 나야 잘 있었지 넌? 이라고 아임 파인 땡큐 앤쥬 라도 날려

를 볼 수 있다. 몇은 빛이 권력을 상징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주면 그때부터 쏟아지는 지하고 싶은 얘기들. 놀라운 알집능력을 선

권력을 가진 쪽은 어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감추면서 타자

보이며 부분 부분 압축을 풀어 세세한 내용까지를 안내하는 너는 진

의 얼굴에 전짓불을 가져다대야 하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옆

정 자유로운 영혼. 듣자 듣자 하니 누구겠구나 짐작이 아니 확신이 간

집과 «골목» 내 집 현관과 부엌, 방이 차례로 위치해있다. 해가 중천에

다. 사람을 봐가면서 여전하네 라고 던져주면 꽤나 좋아라한다. 그 사

뜬다는 시간에도 빛은 겨우 부엌까지 밖에 차지 않는다. 내가 주로 지

이 철학자라도 되셨는지 인생사는 게 다 뭐 그렇지 하고 날려주신다.

내는 방은 인공의 빛을 필요로 한다. 나는 낮에도 형광등을 키고 살았

어릴 적 표준(또는 동아) 전과에 나오던 한 줄짜리 주제만 같아서 사실

다. 나는 계속해서 밝은 채로 지내야 한다. 옆집과 내 집 사이 골목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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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이 내리면 그 골목을 지나는 모든 이는 내 집의 현관 옆 열린 큰 창을

take 5

통해 나를 감시할 수 있다. 나를 위한 것인지 그들을 위한 것이지 모를 방범용 틀이 한쪽에만 설치되어있다. 이쪽이 감옥일까 저쪽이 감옥일 까. 정답은 하나다. 더 밝은 쪽이 감옥이다. 감옥은 죄수들이 있는 곳이 고 죄수들이 있는 곳은 항시 감시되어야 하므로 밝아야 한다. 골목의 가로등 따위가 내 방 형광등의 룩스를 감히 따라올 수는 없다. 당신이 패배자라고 느껴지면 나의 집, 골목으로 오라. 그리고 나를 감시하라. 물론 환하게 불이 켜진 방안에 나는 없다. 나는 그 시간 어두운 바에서 일하고 있다. 간혹 나는 그 방안에 있다. 내가 불을 켜고 잠들었다면 그

하라며 동시에 하지 말라는 당신.

것은 순전히 당신을 위한 일일 것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 얼마든지 빛

당신이 저 말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super ego가 무엇인지 알아

이륙 take off

안에 있을 준비가 되어있다.

41

야만 한다. 그리고 당신은 라캉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내가 당신에 게 저 말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정말로 그것은 투자였다. 요즘 의 나에게 시간은 정말로 금. 금이다. 당신은 며칠째 계속해서 나의 블 로그 속 저 문구에 대해서 궁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어필해왔고 나 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당신의 궁금함을 풀어 주어야만 한다며 지금 의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어컴플리쉬 해왔다. 나는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을 추천하겠다. 우선 당신은 심리학 관 련 서적 중에 무엇이든 좋지만 대충은 관련 학과의 대학생들을 위한 입문서 정도가 되는 하드 표지의 책을 구입해야한다. 아니, 구입하지 마라. 생각해보니 당신은 그 자리에 서서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독하 라. 당신이 읽어야 할 부분은 프로이트의 성격 구조론에 관해 설명되 어있는 부분이다. ego는 좀 들어 보았는가? ID와 super ego까지가 나오 면 다 된 거다. 당신은 결코 구강기니 항문기니 하는 부분과 억압이니 승화니 하는 방어기제까지를 읽을 필요가 없다. 당신이 더 알아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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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이 내리면 그 골목을 지나는 모든 이는 내 집의 현관 옆 열린 큰 창을

take 5

통해 나를 감시할 수 있다. 나를 위한 것인지 그들을 위한 것이지 모를 방범용 틀이 한쪽에만 설치되어있다. 이쪽이 감옥일까 저쪽이 감옥일 까. 정답은 하나다. 더 밝은 쪽이 감옥이다. 감옥은 죄수들이 있는 곳이 고 죄수들이 있는 곳은 항시 감시되어야 하므로 밝아야 한다. 골목의 가로등 따위가 내 방 형광등의 룩스를 감히 따라올 수는 없다. 당신이 패배자라고 느껴지면 나의 집, 골목으로 오라. 그리고 나를 감시하라. 물론 환하게 불이 켜진 방안에 나는 없다. 나는 그 시간 어두운 바에서 일하고 있다. 간혹 나는 그 방안에 있다. 내가 불을 켜고 잠들었다면 그

하라며 동시에 하지 말라는 당신.

것은 순전히 당신을 위한 일일 것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 얼마든지 빛

당신이 저 말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super ego가 무엇인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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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을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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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한다. 그리고 당신은 라캉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내가 당신에 게 저 말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정말로 그것은 투자였다. 요즘 의 나에게 시간은 정말로 금. 금이다. 당신은 며칠째 계속해서 나의 블 로그 속 저 문구에 대해서 궁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어필해왔고 나 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당신의 궁금함을 풀어 주어야만 한다며 지금 의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어컴플리쉬 해왔다. 나는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을 추천하겠다. 우선 당신은 심리학 관 련 서적 중에 무엇이든 좋지만 대충은 관련 학과의 대학생들을 위한 입문서 정도가 되는 하드 표지의 책을 구입해야한다. 아니, 구입하지 마라. 생각해보니 당신은 그 자리에 서서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독하 라. 당신이 읽어야 할 부분은 프로이트의 성격 구조론에 관해 설명되 어있는 부분이다. ego는 좀 들어 보았는가? ID와 super ego까지가 나오 면 다 된 거다. 당신은 결코 구강기니 항문기니 하는 부분과 억압이니 승화니 하는 방어기제까지를 읽을 필요가 없다. 당신이 더 알아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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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의식, 전의식, 무의식 정도이다. 아니, 이것도 반드시 알아야 할

take 6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음으로 당신은 비데도 나오고 정수기도 나오는 웅X 출판사의 라캉에 대한 입문서를 정도하라. 얇은 책이지만 초식자 에게는 조금 넘기기 어려운 알고 보면 육식의 성격을 지닌 책이기에 (물론 초식은 처음 초에 먹을 식, 아니 알 식인가? 를 의도한 것 이었다 반드시 사서 여유롭게 보기를 권장한다. 여기서 잠깐. 나는 결코 그 웅 X의 관련 인사가 아니다. 당신은 읽으면서 이 무슨 개소리를 외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꾹 참고 읽으라. 당신은 분명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테이크 원의 주인공이기도 한 ‘나’는 아주 교묘하게 숨어 있었다.

당신이 조금은 지겹고 답답하다 못해 울화통이 터지는 전문지

테이크 투의 모티프가 되어준 S는 이 글들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도

식 탐구로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저까짓 문구의 해석쯤은 이제 ‘껌’이

대체 하려는 말이 뭐야?” 테이크 쓰리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더 이상

다. 당신이 이제 결정하라. 초자아는 과연 누구(에고? 이드?)를 위해 봉

떠올려 볼 까닭이 없어져 버렸지만 그것은 계속해서 반복될 지도 모

사할 것인가. 프로이트와 라캉을 몰라도 세상을 사는 데는 아무런 지

를 일이다. 이런 shit 더 퍽. 테이크 포는 가장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한

장이 없다. 하라며 동시에 하지 말라는 당신을 별 미친놈 같은 놈이라

챕터인 것 같다. 모서리(edge)도 뭣도 없지만 내가 좋으면 그만. 테이크

고 생각해 버려도 손해될 것은 없다. 대신 당신은 그 정도의 삶 속에서

파이브는 영원히 붙여지지 않을 완벽한 편지다. 이것도 잘 모르겠다

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겹겹의 의도가 겹치었을 때(그것이

고? 읽으란 말이다, 라캉에 관한 책을.

당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당신은 다시 저 문구를 떠올리라 그리고

몸이 너무 너무 노곤하다. 소설가가 되기엔 글렀나하는 생각을

적어도 스스로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하라. 그리고는 자신안의 모호함

하면서도. 뭐 이정도의 완성도라면(나의 준거와 기준은 남들에 비해

에 대한 가장 모호한 답을 내려라. 당신도 나처럼 ‘있어’ 보일 수 있을

그리 높지 않다—정규분포 그래프에 있어서 중간선 아래쪽이라고나

것이다.

할까) 초기작치고는 나쁘지 않겠군 하는 위로 또는 합리화가 둥컹 낡 은 문을 열어 재낀다. 몸이 며칠째 계속 개운하지가 않다. 어깨에는 조 상님이 올라타 계신지 영 무겁고, 교통사고 이후부터 항시 아픈 허리 와 엉덩이 골 위쪽 뼈는 재간 재간 욱씬 욱씬 쐐에하다. 오른팔은 오십 견이 온 듯 일정 각도 이상으로 돌아가지도 올라가지도 않고, 오른 다 리는 아픈 대로 왼다리는 버텨주는 대로 각각 아프다. 그래도 뭐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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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의식, 전의식, 무의식 정도이다. 아니, 이것도 반드시 알아야 할

take 6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음으로 당신은 비데도 나오고 정수기도 나오는 웅X 출판사의 라캉에 대한 입문서를 정도하라. 얇은 책이지만 초식자 에게는 조금 넘기기 어려운 알고 보면 육식의 성격을 지닌 책이기에 (물론 초식은 처음 초에 먹을 식, 아니 알 식인가? 를 의도한 것 이었다 반드시 사서 여유롭게 보기를 권장한다. 여기서 잠깐. 나는 결코 그 웅 X의 관련 인사가 아니다. 당신은 읽으면서 이 무슨 개소리를 외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꾹 참고 읽으라. 당신은 분명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테이크 원의 주인공이기도 한 ‘나’는 아주 교묘하게 숨어 있었다.

당신이 조금은 지겹고 답답하다 못해 울화통이 터지는 전문지

테이크 투의 모티프가 되어준 S는 이 글들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도

식 탐구로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저까짓 문구의 해석쯤은 이제 ‘껌’이

대체 하려는 말이 뭐야?” 테이크 쓰리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더 이상

다. 당신이 이제 결정하라. 초자아는 과연 누구(에고? 이드?)를 위해 봉

떠올려 볼 까닭이 없어져 버렸지만 그것은 계속해서 반복될 지도 모

사할 것인가. 프로이트와 라캉을 몰라도 세상을 사는 데는 아무런 지

를 일이다. 이런 shit 더 퍽. 테이크 포는 가장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한

장이 없다. 하라며 동시에 하지 말라는 당신을 별 미친놈 같은 놈이라

챕터인 것 같다. 모서리(edge)도 뭣도 없지만 내가 좋으면 그만. 테이크

고 생각해 버려도 손해될 것은 없다. 대신 당신은 그 정도의 삶 속에서

파이브는 영원히 붙여지지 않을 완벽한 편지다. 이것도 잘 모르겠다

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겹겹의 의도가 겹치었을 때(그것이

고? 읽으란 말이다, 라캉에 관한 책을.

당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당신은 다시 저 문구를 떠올리라 그리고

몸이 너무 너무 노곤하다. 소설가가 되기엔 글렀나하는 생각을

적어도 스스로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하라. 그리고는 자신안의 모호함

하면서도. 뭐 이정도의 완성도라면(나의 준거와 기준은 남들에 비해

에 대한 가장 모호한 답을 내려라. 당신도 나처럼 ‘있어’ 보일 수 있을

그리 높지 않다—정규분포 그래프에 있어서 중간선 아래쪽이라고나

것이다.

할까) 초기작치고는 나쁘지 않겠군 하는 위로 또는 합리화가 둥컹 낡 은 문을 열어 재낀다. 몸이 며칠째 계속 개운하지가 않다. 어깨에는 조 상님이 올라타 계신지 영 무겁고, 교통사고 이후부터 항시 아픈 허리 와 엉덩이 골 위쪽 뼈는 재간 재간 욱씬 욱씬 쐐에하다. 오른팔은 오십 견이 온 듯 일정 각도 이상으로 돌아가지도 올라가지도 않고, 오른 다 리는 아픈 대로 왼다리는 버텨주는 대로 각각 아프다. 그래도 뭐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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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큼 아프다는 표현은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이 쪽, 당신이 나를 잘 볼 수 있는 쪽에 누워서 자겠소. 그러니 제발 부 디 나를 잊지는 말아주게나. 그렇지 않으면 나도 자네가 자는 사이 그

우리는 달을 두고 싸우고 있는 것과도 같다. 달은 언제나 그대로

가 온다면 나하고 만의 시간만을 허락한 채로 그를 떠나도록 놔두겠

인 채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어리석은 짓이

소. 그렇게 되는 것을 자네도 원하지 않지? 그러니까 말이오. 이것은

다. 달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 저기 저렇게 떠 있는 것이 달이고

절대로 협박이 아니라는 말이오. 이것은 제안도 아니오. 이것은 신념

또 달이어야한다.

이오. 우리 모두 고도를 만나고야 마리라는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나 온 신념 말이오. 누군가로부터 주입받은 그런 디아스포라가 아니라는 말이오. 자네 그것 아시오? 나는 말이오. 아직은 순수하다오. 이 세상

다. 니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J같이 만들었는지 아느냐고 추궁할

에 혼혈만큼 순수한 작자는 또 없다는 말이오. 나는 순수혈통이오. 반

테다. 그리고 너같이 J같은 새끼를 사랑했던 내가 j같은 년이고 이제

은 식민이고, 반은 식민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지. 다 그런 것이 아

네 J에는 j만치의 관심도 없으니 날래날래 그 J같은 면상과 그 j같지도

니겠소? 다 죽이고 죽고, 심고 심어지는 것 말이오. 자네는 아직도 억

않은 J을 쳐들고 꺼져버리라고 말해줄 테다.

울하다는 말이오? 나는 자네의 그 불순에 참 감동을 하고는 하오. 요즘 세상에 자네처럼 올곧은 사람도 없지. 그건 그렇고 그러니까 말이오.

이 의미 없는 글을 읽고 자기가 그 J같은 새끼라고 느낄 남자가 꽤

내가 먼저 잠드는 것에 대해서 자네는 아무런 불만도 없겠지? 사실 따

있으리라는 생각이 나를 오싹하게 했다. 그중에 내가 염려하는 자는

지고 보면 먼저 잠이 드는 내 쪽이 더 불리할 수도 있다고...까지는 말

딱 한 사람뿐이다. 너는 j같지 않았어. J야. 분노하지 마렴. 우리의 상황

하지 않겠소. 무슨 말인지 알지? 난 부조리 따위는 모르오. 말했지 않

이 j같았을 뿐이야. 상황을 탓할 수 있어서 이 피해의식에 찌든 나는 기

소. 나처럼 순수한 사람도 없다고. 우린 잘 맞을 거야. 그렇지? 자네와

쁘단다. 나는 너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나는 꼭 그럴 거야. 맞지? 안 되겠소. 나는 너무 지쳤소. 아니 아니. 고도 를 기다리는 것에 지쳤다는 말은 절대 아니오. 절대. 그러니 자네는 절

고도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나의 글을 읽을 자격이 되어 있다는 것 을 나는 아오. 그것이 나의 착각이라 하여도 좋소. 나는 차라리 맨 가슴 을 출렁이며 포이라도 돌리겠소. 나는 아직도 기다리겠소. 고도를. 나 는 아직도 기다리겠소. 고도를. 내 잠시 잠을 좀 잘 터이니 반드시 깨워 주게나 그대여. 고도가 온다면 말이지. 자네도 그를 너무도 기다렸기 에 할 말이 많을 터이지만. 절대로 나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네. 나는

대 고도를 만나서도 그런 이야기는 하면 안 되네. 알겠소? 알겠소? 오

오. 그래. 내가 너무 흥분을 했군. 그래. 미안하오. 아니… 그래. 나는 그 러니까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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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j같은 새끼를 만나면 꼭 쿵푸로 다져진 오른손 퀵을 날려줄 테


만큼 아프다는 표현은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이 쪽, 당신이 나를 잘 볼 수 있는 쪽에 누워서 자겠소. 그러니 제발 부 디 나를 잊지는 말아주게나. 그렇지 않으면 나도 자네가 자는 사이 그

우리는 달을 두고 싸우고 있는 것과도 같다. 달은 언제나 그대로

가 온다면 나하고 만의 시간만을 허락한 채로 그를 떠나도록 놔두겠

인 채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어리석은 짓이

소. 그렇게 되는 것을 자네도 원하지 않지? 그러니까 말이오. 이것은

다. 달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 저기 저렇게 떠 있는 것이 달이고

절대로 협박이 아니라는 말이오. 이것은 제안도 아니오. 이것은 신념

또 달이어야한다.

이오. 우리 모두 고도를 만나고야 마리라는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나 온 신념 말이오. 누군가로부터 주입받은 그런 디아스포라가 아니라는 말이오. 자네 그것 아시오? 나는 말이오. 아직은 순수하다오. 이 세상

다. 니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J같이 만들었는지 아느냐고 추궁할

에 혼혈만큼 순수한 작자는 또 없다는 말이오. 나는 순수혈통이오. 반

테다. 그리고 너같이 J같은 새끼를 사랑했던 내가 j같은 년이고 이제

은 식민이고, 반은 식민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지. 다 그런 것이 아

네 J에는 j만치의 관심도 없으니 날래날래 그 J같은 면상과 그 j같지도

니겠소? 다 죽이고 죽고, 심고 심어지는 것 말이오. 자네는 아직도 억

않은 J을 쳐들고 꺼져버리라고 말해줄 테다.

울하다는 말이오? 나는 자네의 그 불순에 참 감동을 하고는 하오. 요즘 세상에 자네처럼 올곧은 사람도 없지. 그건 그렇고 그러니까 말이오.

이 의미 없는 글을 읽고 자기가 그 J같은 새끼라고 느낄 남자가 꽤

내가 먼저 잠드는 것에 대해서 자네는 아무런 불만도 없겠지? 사실 따

있으리라는 생각이 나를 오싹하게 했다. 그중에 내가 염려하는 자는

지고 보면 먼저 잠이 드는 내 쪽이 더 불리할 수도 있다고...까지는 말

딱 한 사람뿐이다. 너는 j같지 않았어. J야. 분노하지 마렴. 우리의 상황

하지 않겠소. 무슨 말인지 알지? 난 부조리 따위는 모르오. 말했지 않

이 j같았을 뿐이야. 상황을 탓할 수 있어서 이 피해의식에 찌든 나는 기

소. 나처럼 순수한 사람도 없다고. 우린 잘 맞을 거야. 그렇지? 자네와

쁘단다. 나는 너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나는 꼭 그럴 거야. 맞지? 안 되겠소. 나는 너무 지쳤소. 아니 아니. 고도 를 기다리는 것에 지쳤다는 말은 절대 아니오. 절대. 그러니 자네는 절

고도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나의 글을 읽을 자격이 되어 있다는 것 을 나는 아오. 그것이 나의 착각이라 하여도 좋소. 나는 차라리 맨 가슴 을 출렁이며 포이라도 돌리겠소. 나는 아직도 기다리겠소. 고도를. 나 는 아직도 기다리겠소. 고도를. 내 잠시 잠을 좀 잘 터이니 반드시 깨워 주게나 그대여. 고도가 온다면 말이지. 자네도 그를 너무도 기다렸기 에 할 말이 많을 터이지만. 절대로 나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네. 나는

대 고도를 만나서도 그런 이야기는 하면 안 되네. 알겠소? 알겠소? 오

오. 그래. 내가 너무 흥분을 했군. 그래. 미안하오. 아니… 그래. 나는 그 러니까 나는 나는…….

45

이륙 take off

이륙 take off

44

그 j같은 새끼를 만나면 꼭 쿵푸로 다져진 오른손 퀵을 날려줄 테


비둘기 여자/ 정지호 그림 김종소리 글


비둘기 여자/ 정지호 그림 김종소리 글


내가 그 여자를 처음으로 본 곳은 동네에 있는 «짱 실내포차»였다. 늘

49

그렇듯 소주나 한 잔 하러가자는 친구들과 함께 «짱 실내포차»에 발을

었다.

비둘기 여자

들여놓았고, 그곳에 그 여자가 두 명의 남자들과 앉아 술을 마시고 있


내가 그 여자를 처음으로 본 곳은 동네에 있는 «짱 실내포차»였다.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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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소주나 한 잔 하러가자는 친구들과 함께 «짱 실내포차»에 발을

었다.

비둘기 여자

들여놓았고, 그곳에 그 여자가 두 명의 남자들과 앉아 술을 마시고 있


50

여자는 이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나는 약간 당

51

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당황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 모 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보다시피 이 여자의 어디가 비둘 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는지 쉽게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 관없이 내 머릿속에는 이런 모습의 여자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습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왠지 비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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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이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나는 약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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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당황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 모 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보다시피 이 여자의 어디가 비둘 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는지 쉽게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 관없이 내 머릿속에는 이런 모습의 여자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습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왠지 비둘


52

어떤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그 즉시, 여

53

자에게 ‘비둘기여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계속 비둘기여자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되었다. 말을 걸어야겠다. 같이 술을 마시고, 친해지고 싶다. 그러다 사귀 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근데 저 여자는 어째서 내게 비둘기를 떠올리 게 만든 거지?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여자. 비둘기여 자? 응. 비둘기여자. 비둘기여자랑 사귀게 되면 난 비둘기남자가 되는 건가? 근데 이거 내가 저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지? 근데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거야? 예쁜 것도 아니고 귀여운 것도 아니고, 뼈만 남았다 싶을 정도로 마르기만 해가지고. 가슴도 없잖아. 저게 뭐야. 근데 말을 걸고 싶다.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뭐지 이건? 이런 생각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마치 때가 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결국엔 가을과 겨울이 오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친 구들에게 술과 안주의 선택권을 내어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 둘기여자의 테이블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저기요. 같이 마실래요?”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그렇게 친구들과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술을 마실 생각은 않고,


52

어떤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그 즉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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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게 ‘비둘기여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계속 비둘기여자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되었다. 말을 걸어야겠다. 같이 술을 마시고, 친해지고 싶다. 그러다 사귀 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근데 저 여자는 어째서 내게 비둘기를 떠올리 게 만든 거지?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여자. 비둘기여 자? 응. 비둘기여자. 비둘기여자랑 사귀게 되면 난 비둘기남자가 되는 건가? 근데 이거 내가 저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지? 근데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거야? 예쁜 것도 아니고 귀여운 것도 아니고, 뼈만 남았다 싶을 정도로 마르기만 해가지고. 가슴도 없잖아. 저게 뭐야. 근데 말을 걸고 싶다.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뭐지 이건? 이런 생각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마치 때가 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결국엔 가을과 겨울이 오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친 구들에게 술과 안주의 선택권을 내어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 둘기여자의 테이블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저기요. 같이 마실래요?”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그렇게 친구들과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술을 마실 생각은 않고,


이런 행동은 평소의 나를 생각했을 때, 결코 나올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무척 소심한 성격의 나는 자신의 주장조차도 잘 하지 못하 는 놈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게 되었다 치자. 그 럼 나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손을 바르르, 아니 온 몸을 바르 르 떨며 새빨개져서 발표의 발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죄송합니다.’ 로 마 무리하는 놈이었다. 아무튼 그런 나의 말에 비둘기여자는 고개를 들 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들은 척도 않고 다시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던 남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다시 한 번, 54

“저기요. 같이 마실 생각 없냐니까요?”

55

라고 물었다. 어렵게 낸 용기가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도 내 얼굴은 새빨개졌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어째서 대꾸조차 해주지 않는단 말인가. 순간, 내 눈에 이런 것이 보였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쳐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조금 짜증이 났다. 아마


이런 행동은 평소의 나를 생각했을 때, 결코 나올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무척 소심한 성격의 나는 자신의 주장조차도 잘 하지 못하 는 놈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게 되었다 치자. 그 럼 나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손을 바르르, 아니 온 몸을 바르 르 떨며 새빨개져서 발표의 발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죄송합니다.’ 로 마 무리하는 놈이었다. 아무튼 그런 나의 말에 비둘기여자는 고개를 들 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들은 척도 않고 다시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던 남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다시 한 번, 54

“저기요. 같이 마실 생각 없냐니까요?”

55

라고 물었다. 어렵게 낸 용기가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도 내 얼굴은 새빨개졌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어째서 대꾸조차 해주지 않는단 말인가. 순간, 내 눈에 이런 것이 보였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쳐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조금 짜증이 났다. 아마


청각장애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상태.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귀는 귀라 부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상태가 청각장애이다. 그렇다면 귀의 역할이란 무엇이냐. 듣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소리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각장애란 소리를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여자 청각장애인이구나. 나는 비둘 기여자의 테이블에서 몸을 돌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비둘기 여자

그리고 생각했다. 청각장애? 수화? 전화기는 있을까? 같이 마시자고 한 것도 못 들 었겠는데? 그렇다고 합석하잔 말을 글로 써서 보일 수는 없잖아. 저 여 자 괜찮은데. 근데 귀가 안 들리잖아. 그럼 좀 그런 거 아냐? 그럼 좀 그 런 게 뭔데. 아 좀. 뭔가 좀 그렇잖아. 그리고 술을 마셨다. 계속 들이부었다. 짜증이 났으니까.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날 난 필름이 끊긴 채,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난 술을 마셨다하면 늘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므로 ‘당연하게도’인 것이다). 아니, 잠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집이었으니까. 아무튼 눈을 뜨고 ‘집에 오긴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묵직한 머리를 들고 컴 퓨터를 켰다. 인터넷 창을 켜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잠시 전날 의 술자리를, 그리고 비둘기여자를 기억해냈다. 그러자 내 손가락은 인터넷 검색 창에 몇 가지 단어들을 치기 시작했다.

감지하지 못하는 것. 그런 상태를 이야기한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통 청각장애인, 혹은 농아라 부른다. 보청기를

57

사용해 회복시킬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농아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로인해 소리로 표현되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농담을 잘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거짓말 탐지 연구 센터 박과장의 보고에 따르면 뻥이라고 분석되어져 있다. 흔히 이들은 수화, 필담 등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필담 글로 써서 하는 대화.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지금 종이에 ‘저는 바보입니다.’ 라고 쓴다. 그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래. 너는 역시 바보였어.’ 라고 쓴다. 이것으로 우리는 의사소통을 이룬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일컫는다. 때론 관념적 설명보단 예를 드는 것이 편리하고 알기 쉬울 때가 있다.

비둘기 여자

56


청각장애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상태.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귀는 귀라 부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상태가 청각장애이다. 그렇다면 귀의 역할이란 무엇이냐. 듣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소리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각장애란 소리를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여자 청각장애인이구나. 나는 비둘 기여자의 테이블에서 몸을 돌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비둘기 여자

그리고 생각했다. 청각장애? 수화? 전화기는 있을까? 같이 마시자고 한 것도 못 들 었겠는데? 그렇다고 합석하잔 말을 글로 써서 보일 수는 없잖아. 저 여 자 괜찮은데. 근데 귀가 안 들리잖아. 그럼 좀 그런 거 아냐? 그럼 좀 그 런 게 뭔데. 아 좀. 뭔가 좀 그렇잖아. 그리고 술을 마셨다. 계속 들이부었다. 짜증이 났으니까.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날 난 필름이 끊긴 채,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난 술을 마셨다하면 늘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므로 ‘당연하게도’인 것이다). 아니, 잠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집이었으니까. 아무튼 눈을 뜨고 ‘집에 오긴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묵직한 머리를 들고 컴 퓨터를 켰다. 인터넷 창을 켜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잠시 전날 의 술자리를, 그리고 비둘기여자를 기억해냈다. 그러자 내 손가락은 인터넷 검색 창에 몇 가지 단어들을 치기 시작했다.

감지하지 못하는 것. 그런 상태를 이야기한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통 청각장애인, 혹은 농아라 부른다. 보청기를

57

사용해 회복시킬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농아 귀가 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로인해 소리로 표현되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농담을 잘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거짓말 탐지 연구 센터 박과장의 보고에 따르면 뻥이라고 분석되어져 있다. 흔히 이들은 수화, 필담 등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필담 글로 써서 하는 대화.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지금 종이에 ‘저는 바보입니다.’ 라고 쓴다. 그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래. 너는 역시 바보였어.’ 라고 쓴다. 이것으로 우리는 의사소통을 이룬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일컫는다. 때론 관념적 설명보단 예를 드는 것이 편리하고 알기 쉬울 때가 있다.

비둘기 여자

56


비둘기 똥은 하얀색. 도시에 더럽게 많이 서식한다. 요즘은 겁을 상실하여 차가 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사람이 다가가도 빠른 걸음을 사용해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아마도 미래에는 닭처럼 날지 못하는 새가 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닭둘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주요 서식지는 한강. 주요 먹이는 주정뱅이들의 토사물. 좋아하는 것은 주정뱅이들의 토사물. 습관성 장염을 앓는 듯 이곳저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똥을 싸는 것 역시 특징이다. 어쨌든 싫다. 심지어 자기 똥도 먹는다. 사람들이 싫어할 만 하다는 게 학계의

비둘기 여자

입장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잠을 더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묵

59

직한 머리를 배게 위에 다시 눕혔다. 그렇게 빠져든 잠은 나를 꿈속으 로 인도했다. 꿈속에서 난, 혼자,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둘기 여자

58


비둘기 똥은 하얀색. 도시에 더럽게 많이 서식한다. 요즘은 겁을 상실하여 차가 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사람이 다가가도 빠른 걸음을 사용해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아마도 미래에는 닭처럼 날지 못하는 새가 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닭둘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주요 서식지는 한강. 주요 먹이는 주정뱅이들의 토사물. 좋아하는 것은 주정뱅이들의 토사물. 습관성 장염을 앓는 듯 이곳저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똥을 싸는 것 역시 특징이다. 어쨌든 싫다. 심지어 자기 똥도 먹는다. 사람들이 싫어할 만 하다는 게 학계의

비둘기 여자

입장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잠을 더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묵

59

직한 머리를 배게 위에 다시 눕혔다. 그렇게 빠져든 잠은 나를 꿈속으 로 인도했다. 꿈속에서 난, 혼자,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둘기 여자

58


60

이런 곳이었다. 난 이 곳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서 있었다. 그러자

61

다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난 앉지도,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까만 무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무리였다. 처음엔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차츰 그 형태가 뚜렷해 졌고, 그것이 비둘기 떼임을 알 수 있었다. 비둘기 떼. 그야말로 비둘기 떼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비둘기여자가 달리고 있었다. 나는 뭔가 반가운 기분이 들어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입도, 손도 떨어지지 않았 다. 비둘기여자는 내 코앞까지 달려와 멈춘 뒤,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구구구.” 구구구. 그렇다. 비둘기여자는 역시 비둘기의 언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당황했다. 비둘기여 자를 뒤따라오던 수많은 비둘기 떼는 나와 비둘기여자를 둘러싸기 시 작했다. 나는 무서웠다. 비둘기여자는 웃고 있었으므로 나를 죽이거 나 헤치려는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비둘기 녀석들의 표정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저 무표정.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도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멀리에서


60

이런 곳이었다. 난 이 곳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서 있었다. 그러자

61

다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난 앉지도,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까만 무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무리였다. 처음엔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차츰 그 형태가 뚜렷해 졌고, 그것이 비둘기 떼임을 알 수 있었다. 비둘기 떼. 그야말로 비둘기 떼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비둘기여자가 달리고 있었다. 나는 뭔가 반가운 기분이 들어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입도, 손도 떨어지지 않았 다. 비둘기여자는 내 코앞까지 달려와 멈춘 뒤,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구구구.” 구구구. 그렇다. 비둘기여자는 역시 비둘기의 언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당황했다. 비둘기여 자를 뒤따라오던 수많은 비둘기 떼는 나와 비둘기여자를 둘러싸기 시 작했다. 나는 무서웠다. 비둘기여자는 웃고 있었으므로 나를 죽이거 나 헤치려는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비둘기 녀석들의 표정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저 무표정.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도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멀리에서


62

그리곤 나를 향해 다들 울부짖기 시작했다.

63

“구구구구구구구! 구구구! 구구구구구구! 구구! 구구구구!” 않았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자 비둘기여자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 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더니 다시 한 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구구구.” 그 순간 잠을 깼다. 난 온통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축축이 젖은 이 부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샤워를 했다. 찬물을 맞은 묵직한 머리는 생각이란 것을 지워냈다. 하지만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자 다시 비 둘기여자의 환영이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싸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내 생각대로 되지


62

그리곤 나를 향해 다들 울부짖기 시작했다.

63

“구구구구구구구! 구구구! 구구구구구구! 구구! 구구구구!” 않았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자 비둘기여자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 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더니 다시 한 번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구구구.” 그 순간 잠을 깼다. 난 온통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축축이 젖은 이 부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샤워를 했다. 찬물을 맞은 묵직한 머리는 생각이란 것을 지워냈다. 하지만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자 다시 비 둘기여자의 환영이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싸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내 생각대로 되지


64

난 어떡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라고는 한

65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아니, 연애는커녕 여자라는 생물과 제대로 된 그때의 여자 아이들은 여자가 아니라 애들이었다. 이후 남중, 남고를 다녔으니 여자를 볼 기회가 없었다. 더욱이 공대에 진학했다. 우리 과 엔 남자가 90퍼센트, 나머지 10퍼센트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생물들 로 구성되어있었다. 여자를 만나보려면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기회 가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기회를 찾아 나설 성격도 아니었다. 그 러니 당연히 연애라고는 남의 일,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여자를 사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고, 단지 억지로 뭔가 만 들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다 보면 나에게도 언 젠가는 내일이 오지 않겠나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 내 머릿속에 온통 비둘기여자가 들어와 앉은 것이었다. 꿈 에까지 나와서 나를 괴롭히니 말 다 했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대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난 박사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대화라는 것을 나눠본 적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야 아무 것도 몰랐고,


64

난 어떡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라고는 한

65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아니, 연애는커녕 여자라는 생물과 제대로 된 그때의 여자 아이들은 여자가 아니라 애들이었다. 이후 남중, 남고를 다녔으니 여자를 볼 기회가 없었다. 더욱이 공대에 진학했다. 우리 과 엔 남자가 90퍼센트, 나머지 10퍼센트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생물들 로 구성되어있었다. 여자를 만나보려면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기회 가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기회를 찾아 나설 성격도 아니었다. 그 러니 당연히 연애라고는 남의 일,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여자를 사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고, 단지 억지로 뭔가 만 들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다 보면 나에게도 언 젠가는 내일이 오지 않겠나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 내 머릿속에 온통 비둘기여자가 들어와 앉은 것이었다. 꿈 에까지 나와서 나를 괴롭히니 말 다 했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대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난 박사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대화라는 것을 나눠본 적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야 아무 것도 몰랐고,


박사. 연애라면 이놈을 따라갈 놈이 없었다. 뭐, 실제로 연애를 많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를 볼 것도 없이 아줌

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물론 몇 번의 연애는 해보았다.) 수많은 만화

마께 소주 한 병과 오뎅 한 그릇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아줌마는

책과 연애소설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굉장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다

소주 한 병과 오뎅 한 그릇을 주셨다. 나는 쓸쓸하게 혼자 소주 한 잔을

들 연애 문제가 생기게 되면 박사에게 물어보았다.

홀짝였다. 우적우적 오뎅 하나를 씹었고, 꿀꺽꿀꺽 국물을 마셨다.

66

박사는 어제 마신 술이 덜 깼는지 목소리가 푹 잠겨있었다.

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니. 나도 여자친구 만들고 싶다. 남들처럼

“어. 난데. 야. 어제 그 여자애 말인데.”

여자친구 데려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를 홀짝 홀짝 두 번

“응? 여자애?”

의 홀짝거림으로 마시고 싶다. 비둘기여자. 그렇다. 비둘기여자가 그

“그래. 내가 어제 가서 말 걸었던 여자애.”

러기엔 적당하다. 아니, 잠깐만. 비둘기여자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렇

“그래. 그 여자애 왜?”

다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자꾸 생각난다. 꿈도 꿨어. 그럼 이거 내가 그 여자애 좋아하는 비둘기 여자

아. 내 인생은 왜 이렇게도 지지리 궁상인가. 혼자 «짱 실내포차»

거지?” “야. 이 병신아.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그건 네가 알지 내가 아냐?” “그래. 아마도 반한 것 같아. 네가 보기에 내가 어떻게 하면 그 여자 애랑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냐?”

여기서 다시 한 번 소주를 따르고 홀짝 마셨다. 소주의 쓴 맛에 침 이 스르르 입 안으로 흘러들었다. 아니다. 필담을 통해서 가능하다. 내가 적고, 비둘기여자가 적고. 내가 읽고, 비둘기여자가 읽고. 우린 그렇게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다. 근데 펜과 종이가 없다면? 그럼 뭘로 이야기를 나누지? 그럼 매번 펜과 종이를 들고 다녀야만 하는 건가? 아, 얼마나 귀찮은 일

“야. 잘 해보고 자시고. 나 지금 자는 중이었거든? 그리고, 번호도

인가. 그렇다고 수화를 배워? 외우는 건 딱 질색이다. 게다가 행동을 포

모르고, 어디 사는 지도 모르고, 뭐 하는 애인지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함해서 외우는 것이라면 더욱이. 학교 다닐 때 외운 국민 체조니 어쩌

한다는 거야. 개소리 집어치우고 끊어. 나 잘 거야.”

니 하는 것들은 정말 구역질나는 짓거리였다. 그런데도 굳이 비둘기

난 조용히 핸드폰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옷을 입고 무작정 «

짱 실내포차»로 향했다. 어떻게든 비둘기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전날 어째서 그렇게 포기하고 말았는지 후회가 되었다. 도착한 «짱 실내포차»에는 당연하게도 비둘기여자가 없었다. 그 래서 집으로 돌아갈까 하여 나가려다, 혹시라도 비둘기여자가 올지

67

여자를 만나야하는 걸까? 생각이 이쯤까지 왔을 때, 오뎅을 우적우적 씹었다. 그렇게 마지 막 오뎅까지 씹어 먹어버렸다. 왠지 신경질이 났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병도 넘게 남은 소주병을 그대로 남겨둔 채, 외 상을 달고 밖으로 나왔다.

비둘기 여자

“여보세요.”


박사. 연애라면 이놈을 따라갈 놈이 없었다. 뭐, 실제로 연애를 많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를 볼 것도 없이 아줌

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물론 몇 번의 연애는 해보았다.) 수많은 만화

마께 소주 한 병과 오뎅 한 그릇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아줌마는

책과 연애소설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굉장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다

소주 한 병과 오뎅 한 그릇을 주셨다. 나는 쓸쓸하게 혼자 소주 한 잔을

들 연애 문제가 생기게 되면 박사에게 물어보았다.

홀짝였다. 우적우적 오뎅 하나를 씹었고, 꿀꺽꿀꺽 국물을 마셨다.

66

박사는 어제 마신 술이 덜 깼는지 목소리가 푹 잠겨있었다.

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니. 나도 여자친구 만들고 싶다. 남들처럼

“어. 난데. 야. 어제 그 여자애 말인데.”

여자친구 데려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를 홀짝 홀짝 두 번

“응? 여자애?”

의 홀짝거림으로 마시고 싶다. 비둘기여자. 그렇다. 비둘기여자가 그

“그래. 내가 어제 가서 말 걸었던 여자애.”

러기엔 적당하다. 아니, 잠깐만. 비둘기여자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렇

“그래. 그 여자애 왜?”

다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자꾸 생각난다. 꿈도 꿨어. 그럼 이거 내가 그 여자애 좋아하는 비둘기 여자

아. 내 인생은 왜 이렇게도 지지리 궁상인가. 혼자 «짱 실내포차»

거지?” “야. 이 병신아.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그건 네가 알지 내가 아냐?” “그래. 아마도 반한 것 같아. 네가 보기에 내가 어떻게 하면 그 여자 애랑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냐?”

여기서 다시 한 번 소주를 따르고 홀짝 마셨다. 소주의 쓴 맛에 침 이 스르르 입 안으로 흘러들었다. 아니다. 필담을 통해서 가능하다. 내가 적고, 비둘기여자가 적고. 내가 읽고, 비둘기여자가 읽고. 우린 그렇게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다. 근데 펜과 종이가 없다면? 그럼 뭘로 이야기를 나누지? 그럼 매번 펜과 종이를 들고 다녀야만 하는 건가? 아, 얼마나 귀찮은 일

“야. 잘 해보고 자시고. 나 지금 자는 중이었거든? 그리고, 번호도

인가. 그렇다고 수화를 배워? 외우는 건 딱 질색이다. 게다가 행동을 포

모르고, 어디 사는 지도 모르고, 뭐 하는 애인지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함해서 외우는 것이라면 더욱이. 학교 다닐 때 외운 국민 체조니 어쩌

한다는 거야. 개소리 집어치우고 끊어. 나 잘 거야.”

니 하는 것들은 정말 구역질나는 짓거리였다. 그런데도 굳이 비둘기

난 조용히 핸드폰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옷을 입고 무작정 «

짱 실내포차»로 향했다. 어떻게든 비둘기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전날 어째서 그렇게 포기하고 말았는지 후회가 되었다. 도착한 «짱 실내포차»에는 당연하게도 비둘기여자가 없었다. 그 래서 집으로 돌아갈까 하여 나가려다, 혹시라도 비둘기여자가 올지

67

여자를 만나야하는 걸까? 생각이 이쯤까지 왔을 때, 오뎅을 우적우적 씹었다. 그렇게 마지 막 오뎅까지 씹어 먹어버렸다. 왠지 신경질이 났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병도 넘게 남은 소주병을 그대로 남겨둔 채, 외 상을 달고 밖으로 나왔다.

비둘기 여자

“여보세요.”


이후 학교를 다니고, 방과 후엔 «짱 실내포차»를 찾았다. 하지만 늘 비둘기여자는 없었고, 그래서 늘 술을 마셨다. 때론 혼자서. 때론 친 구들과.

68

그렇게 한 달 쯤 그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지겨운 학교 수업들

69

을 마치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짱 실내포차»를 향해 걷고 있었다. 로 핸드폰을 꺼내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술 마시러 나와.] 그러다 문득 발에 치이는 것이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핸드폰 을 떨어뜨렸다. 그 옆에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아직 시간이 일러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더웠다. 나는 익숙한 동작으


이후 학교를 다니고, 방과 후엔 «짱 실내포차»를 찾았다. 하지만 늘 비둘기여자는 없었고, 그래서 늘 술을 마셨다. 때론 혼자서. 때론 친 구들과.

68

그렇게 한 달 쯤 그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지겨운 학교 수업들

69

을 마치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짱 실내포차»를 향해 걷고 있었다. 로 핸드폰을 꺼내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술 마시러 나와.] 그러다 문득 발에 치이는 것이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핸드폰 을 떨어뜨렸다. 그 옆에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아직 시간이 일러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더웠다. 나는 익숙한 동작으


이 녀석이 이렇게 쓰러져 있었다. 혹시 내 발길질에 죽어버린 것 은 아닐까? 그렇다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디 피가 나는 것도 아니고, 눈도 시퍼렇게 뜨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날개가 약간 파닥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머리는 만져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좌우로 까딱 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전까지 비둘기를 그렇게 자세히 본 적도 없었 던 것 같았다. 아무튼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 녀석을 다치게 만든 것만 같았다. 하 지만 어디 외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누워만 있었다. 이 녀석 혹시 70

사기꾼 아니야? 보험금 타먹으려고 이러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 이런

71

생각들이 들자 슬며시 짜증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이미지

짜증 : (혀를 한 번 낼름거리더니.) 너 뭐하고 있는 거야? 바보 아 냐? 이런다고 비둘기여자를 만날 수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언 제 나타날 줄 알아? 그 여자 사실 지방에 사는 데 어쩌다 우연히 친척 집에 놀러왔다가 사촌들이랑 놀러온 걸 수도 있잖아. 그럼 넌 할아버

지가 될 때까지, 아니 «짱 실내포차» 아줌마가 늙어 죽을 때까지 다니

더라도 비둘기여잔지 참새여잔지 아무튼 그 귀머거리여자를 볼 일 없 을 거야. 이 병신아. 비둘기여자 : (환하게 웃으며.) 구구구. 짜증 : 이것 봐. 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년이야. 고작 할 줄 아는 말 이라 봐야 ‘구구구’가 전부라고. 게다가 듣지도 못해. 내가 이렇게 지껄 이는데도 뭐라 한마디도 안 하잖아. 게다가 중요한 건 이 년은 단지 네 머릿속에 있을 뿐이란 거지. 비둘기여자 :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로 남아있던 비둘기여자도 슬며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쓰러져 있었다. 혹시 내 발길질에 죽어버린 것 은 아닐까? 그렇다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디 피가 나는 것도 아니고, 눈도 시퍼렇게 뜨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날개가 약간 파닥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머리는 만져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좌우로 까딱 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전까지 비둘기를 그렇게 자세히 본 적도 없었 던 것 같았다. 아무튼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 녀석을 다치게 만든 것만 같았다. 하 지만 어디 외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누워만 있었다. 이 녀석 혹시 70

사기꾼 아니야? 보험금 타먹으려고 이러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 이런

71

생각들이 들자 슬며시 짜증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이미지

짜증 : (혀를 한 번 낼름거리더니.) 너 뭐하고 있는 거야? 바보 아 냐? 이런다고 비둘기여자를 만날 수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언 제 나타날 줄 알아? 그 여자 사실 지방에 사는 데 어쩌다 우연히 친척 집에 놀러왔다가 사촌들이랑 놀러온 걸 수도 있잖아. 그럼 넌 할아버

지가 될 때까지, 아니 «짱 실내포차» 아줌마가 늙어 죽을 때까지 다니

더라도 비둘기여잔지 참새여잔지 아무튼 그 귀머거리여자를 볼 일 없 을 거야. 이 병신아. 비둘기여자 : (환하게 웃으며.) 구구구. 짜증 : 이것 봐. 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년이야. 고작 할 줄 아는 말 이라 봐야 ‘구구구’가 전부라고. 게다가 듣지도 못해. 내가 이렇게 지껄 이는데도 뭐라 한마디도 안 하잖아. 게다가 중요한 건 이 년은 단지 네 머릿속에 있을 뿐이란 거지. 비둘기여자 :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로 남아있던 비둘기여자도 슬며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짜증 : 아. 짜증나. 저렇게 웃기만 하는 것도 짜증나. 저게 뭐야. 미 친년도 아니고.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저딴 년을 만들어 낸 거야? 나는 짜증과 비둘기여자의 고개를 눌러 사라지게 한 뒤, 내 앞에 쓰러져 있는 비둘기를 보았다. 비둘기는 버둥거리며 일어서려는 것 같았다. 나는 비둘기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아무렇 지도 않다는 듯 날아가 버렸다. 난 멍하니 날아가는 비둘기를 쳐다보 72

다 핸드폰을 꺼내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73

[나 이제 짱 안 갈래. 니들끼리 가든지 해라.] 속 «짱 실내포차»에 가서 계속 술을 마시는 것. 그래봐야 비둘기여자 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뒤척이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초여름의 밤공기는 제법 상쾌했다. 내 머 리위로는 이런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한 달간 내가 한 짓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


짜증 : 아. 짜증나. 저렇게 웃기만 하는 것도 짜증나. 저게 뭐야. 미 친년도 아니고.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저딴 년을 만들어 낸 거야? 나는 짜증과 비둘기여자의 고개를 눌러 사라지게 한 뒤, 내 앞에 쓰러져 있는 비둘기를 보았다. 비둘기는 버둥거리며 일어서려는 것 같았다. 나는 비둘기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아무렇 지도 않다는 듯 날아가 버렸다. 난 멍하니 날아가는 비둘기를 쳐다보 72

다 핸드폰을 꺼내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73

[나 이제 짱 안 갈래. 니들끼리 가든지 해라.] 속 «짱 실내포차»에 가서 계속 술을 마시는 것. 그래봐야 비둘기여자 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뒤척이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초여름의 밤공기는 제법 상쾌했다. 내 머 리위로는 이런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한 달간 내가 한 짓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


74

나는 ‘비둘기여자를 보고 비둘기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하

75

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우선, 비둘기는 귀가 없는 것 같다.


74

나는 ‘비둘기여자를 보고 비둘기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하

75

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우선, 비둘기는 귀가 없는 것 같다.


76

이렇게 그저 동그랗고 매끈하기만 할 뿐 귀가 보이질 않는다. 비

77

둘기여자도 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때문인지 어딘가 부족 먹이를 찾아다닌다. 술 취한 사람이 해놓은 토까지 쪼아 먹는다. 더럽 게. 결국은 비둘기여자도 그렇지 않을까. 늘 사람과의 소통을 갈구하 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째서 나의 제안에는 그토록 강하게 거부를 했던 것일까. 단지 못 알아들은 것일까. 제 앞까지 다가와 발길질을 해 도 몰랐던 아까 그 사기꾼 비둘기 녀석처럼.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가 결핍된 느낌. 그래서인지 비둘기들은 늘


76

이렇게 그저 동그랗고 매끈하기만 할 뿐 귀가 보이질 않는다. 비

77

둘기여자도 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때문인지 어딘가 부족 먹이를 찾아다닌다. 술 취한 사람이 해놓은 토까지 쪼아 먹는다. 더럽 게. 결국은 비둘기여자도 그렇지 않을까. 늘 사람과의 소통을 갈구하 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째서 나의 제안에는 그토록 강하게 거부를 했던 것일까. 단지 못 알아들은 것일까. 제 앞까지 다가와 발길질을 해 도 몰랐던 아까 그 사기꾼 비둘기 녀석처럼.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가 결핍된 느낌. 그래서인지 비둘기들은 늘


[야. 그 여자 놓치지마.] 그리고 지하철 좌석에 앉았다. 어쩐지 초조한 마음에 사방을 둘 러보았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나처럼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 하철 구석의 장애인 노약자 석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 그리고 노약자 석. 그렇다면 비둘기여자는 지하철을 탈 때, 저 자리에 앉는 걸까? 그럼 비둘기여자랑 사귀게 되어 지하철을 타 게 된다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 자리에 앉아 야 하는 건가? 아마도 이런 제약들이 상당히 많을 거다. 콘서트를 가지 이렇게 앙상한 다리도 비둘기여자와 닮아 있다. 귀가 좋지 않으면 밥도 잘 먹지 못하는 걸까? 왜 그렇게 마른 걸까?

비둘기 여자

그리고 생각해봐야 뭐하나 하며 마지막으로 담배연기를 내뿜고 들어가 잤다. 이상하게도 잠은 쉬이 왔다.

도 못 할 것이고, 음악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큰일이다.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함께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것은 내 로망인데. 그럼 그것은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만일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하나도 알아듣지 못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리에 대한 것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

그 다음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박사에게서 전화가 왔 다. 난 강의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뭐야. 왜?” “야. 그 여자 봤다. 연애박사인 이 몸은 역시 사랑의 메신저인가?” “그 여자라니? 비둘기여자?” “어. 봤어 지금 내 앞으로 지나갔다.” “어디야!” “나? 지금 한강에서 자전거타고 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강의실에 들어가 짐을 챙겨 나왔다. 교수의 멍 청한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하는 얼 굴이었겠지. 그리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은 한적했다. 나는 박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79

을까? 쉽게 예를 들어 비틀즈의 렛잇비를 알려주고 싶다고 해보자.

비둘기 여자

78


[야. 그 여자 놓치지마.] 그리고 지하철 좌석에 앉았다. 어쩐지 초조한 마음에 사방을 둘 러보았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나처럼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 하철 구석의 장애인 노약자 석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 그리고 노약자 석. 그렇다면 비둘기여자는 지하철을 탈 때, 저 자리에 앉는 걸까? 그럼 비둘기여자랑 사귀게 되어 지하철을 타 게 된다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 자리에 앉아 야 하는 건가? 아마도 이런 제약들이 상당히 많을 거다. 콘서트를 가지 이렇게 앙상한 다리도 비둘기여자와 닮아 있다. 귀가 좋지 않으면 밥도 잘 먹지 못하는 걸까? 왜 그렇게 마른 걸까?

비둘기 여자

그리고 생각해봐야 뭐하나 하며 마지막으로 담배연기를 내뿜고 들어가 잤다. 이상하게도 잠은 쉬이 왔다.

도 못 할 것이고, 음악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큰일이다.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함께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것은 내 로망인데. 그럼 그것은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만일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하나도 알아듣지 못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리에 대한 것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

그 다음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박사에게서 전화가 왔 다. 난 강의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뭐야. 왜?” “야. 그 여자 봤다. 연애박사인 이 몸은 역시 사랑의 메신저인가?” “그 여자라니? 비둘기여자?” “어. 봤어 지금 내 앞으로 지나갔다.” “어디야!” “나? 지금 한강에서 자전거타고 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강의실에 들어가 짐을 챙겨 나왔다. 교수의 멍 청한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하는 얼 굴이었겠지. 그리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은 한적했다. 나는 박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79

을까? 쉽게 예를 들어 비틀즈의 렛잇비를 알려주고 싶다고 해보자.

비둘기 여자

78


80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고 해도 렛잇비를 느낄 수 있을

81

까? 만약 사귀게 된다면 굉장히 답답하고 제약도 많고, 그래 차라리 사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귀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계속 떠오른다.


80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고 해도 렛잇비를 느낄 수 있을

81

까? 만약 사귀게 된다면 굉장히 답답하고 제약도 많고, 그래 차라리 사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귀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계속 떠오른다.


비둘기. 비둘기여자. 아! 비둘기여자.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리고 박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알았어, 병신아. 걱정 마. 지금 그 여자 주위를 돌고 있어.] 나는 목을 타고 꺼이꺼이 올라오는 한숨을 한바탕 크게 내쉬었다.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 한숨을 타고 함께 훅 불어 져 나왔다. 나는 그 생각을 바라보았다. 생각은 투명해서 장애인 노약 자 석을 비치며 둥실 떠 있었다. 이런 나의 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하철은 계속해서 달 82

렸다. 그리고 기어코 내릴 역에 당도하고 말았다. 나는 무거워진 발을

83

걸어서 도착한 한강고수부지는 아름다웠다. 여름의 태양은 눈부 셨고, 그 빛을 받은 한강은 수많은 별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 자전 거를 타는 사람들, 낚시를 하고 있는 아저씨들, 그리고 이리저리 날아 다니고 있는, 걸어 다니며 뭔가를 쪼아대고 있는 비둘기. 나는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린 뒤, 박사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그래. 어디냐?” “뭐야 목소리 왜 그래? 뭔가 시큰둥한데?” “뭐가?”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 아니냐? 뭐야? 설마 긴장한 거냐?”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플랫폼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비둘기. 비둘기여자. 아! 비둘기여자.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리고 박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알았어, 병신아. 걱정 마. 지금 그 여자 주위를 돌고 있어.] 나는 목을 타고 꺼이꺼이 올라오는 한숨을 한바탕 크게 내쉬었다.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 한숨을 타고 함께 훅 불어 져 나왔다. 나는 그 생각을 바라보았다. 생각은 투명해서 장애인 노약 자 석을 비치며 둥실 떠 있었다. 이런 나의 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하철은 계속해서 달 82

렸다. 그리고 기어코 내릴 역에 당도하고 말았다. 나는 무거워진 발을

83

걸어서 도착한 한강고수부지는 아름다웠다. 여름의 태양은 눈부 셨고, 그 빛을 받은 한강은 수많은 별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 자전 거를 타는 사람들, 낚시를 하고 있는 아저씨들, 그리고 이리저리 날아 다니고 있는, 걸어 다니며 뭔가를 쪼아대고 있는 비둘기. 나는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린 뒤, 박사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그래. 어디냐?” “뭐야 목소리 왜 그래? 뭔가 시큰둥한데?” “뭐가?”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 아니냐? 뭐야? 설마 긴장한 거냐?”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플랫폼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니. 긴장은 무슨. 그래 어디야?”

“야.”

“여기 성산대교 근처다. 빨리 와. 자전거 타러 와서 이게 뭐하는 짓

“왜 이리 늦어!”

84

“알았어.”

“아무튼 저기 봐라. 저기 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박사는 손가락으로 다리 밑을 가리켰다. 다리 밑 벤치에 비둘기

내가 비둘기여자와 사귄다고 가정을 해보자. 만약 사귄다하더라

여자가 앉아있었다. 비둘기여자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종족들에게

도 결국은 헤어질 것이 아닌가. 우린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나는 소

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입을 달싹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리가 있는 세상을. 비둘기여자는 소리가 없는 세상을. 그래서 우린 맞

도 구구구 언어로 얘기를 하고 있을 테지 하고 생각했다.

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것이, 즉 서로 다른 점들이 훨씬 많이 존재할 것이

“뭐하고 있는 거지?”

다. 그것들은 결국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어떤 식의 문제일지는 알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있다. 참내. 벤치에 앉아서 비둘기들 과자

수 없지만 말이다. 결국엔 끝이 있을 연애이다. 그렇다면 굳이 시작을 비둘기 여자

“뭘 늦어.”

던져주더라. 그것도 계속.”

할 필요가 있을까? 더욱이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나와는 전혀 어울리

나는 그 쪽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지 않는 행동이다. 내가 나서서 여자를 만나려 하다니. 도대체 무엇이

“야. 어쩌려고?”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내가 비둘기여자를 본 것은 단 한 번뿐이다.

박사는 당황한 듯 내 팔을 잡았지만 난 그것을 뿌리치고 계속 비

비둘기여자의 성격이나 취향, 기타 등등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

둘기여자에게로 걸었다.

다. 단지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라는 것과. 그 외모. 그렇다면 난 그 외모

비둘기여자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결

에 끌린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엔 비둘기여자말고도 나의 관심을 끄

국 그 앞에 섰을 때, 이마를 타고 땀 한 방울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런

는 외모를 가진 여자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뼈만 남은 여자의 외모

나를 비둘기여자는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가 뭐가 좋단 말인가. 박사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냥 보기만 해야겠 다. 그리고 다시 판단을 내리자. 어쨌든 지금으로썬 사귀지 않는 편이, 아예 말을 걸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서서히 성산대교가 가까워져왔다. 내 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저 멀리 자전거를 타고 있는 박사가 보였다. 그리고 비둘기여자인 것 같아 보이는 여자가 보였다. 나는 망설여졌다. 그래도 일단 보기는 해 야겠단 생각에 박사에게로 다가갔다.

85

비둘기 여자

이냐 너 때문에. 너 나한테 술 한 번 쏴야 된다.”


“아니. 긴장은 무슨. 그래 어디야?”

“야.”

“여기 성산대교 근처다. 빨리 와. 자전거 타러 와서 이게 뭐하는 짓

“왜 이리 늦어!”

84

“알았어.”

“아무튼 저기 봐라. 저기 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박사는 손가락으로 다리 밑을 가리켰다. 다리 밑 벤치에 비둘기

내가 비둘기여자와 사귄다고 가정을 해보자. 만약 사귄다하더라

여자가 앉아있었다. 비둘기여자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종족들에게

도 결국은 헤어질 것이 아닌가. 우린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나는 소

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입을 달싹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리가 있는 세상을. 비둘기여자는 소리가 없는 세상을. 그래서 우린 맞

도 구구구 언어로 얘기를 하고 있을 테지 하고 생각했다.

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것이, 즉 서로 다른 점들이 훨씬 많이 존재할 것이

“뭐하고 있는 거지?”

다. 그것들은 결국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어떤 식의 문제일지는 알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있다. 참내. 벤치에 앉아서 비둘기들 과자

수 없지만 말이다. 결국엔 끝이 있을 연애이다. 그렇다면 굳이 시작을 비둘기 여자

“뭘 늦어.”

던져주더라. 그것도 계속.”

할 필요가 있을까? 더욱이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나와는 전혀 어울리

나는 그 쪽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지 않는 행동이다. 내가 나서서 여자를 만나려 하다니. 도대체 무엇이

“야. 어쩌려고?”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내가 비둘기여자를 본 것은 단 한 번뿐이다.

박사는 당황한 듯 내 팔을 잡았지만 난 그것을 뿌리치고 계속 비

비둘기여자의 성격이나 취향, 기타 등등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

둘기여자에게로 걸었다.

다. 단지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라는 것과. 그 외모. 그렇다면 난 그 외모

비둘기여자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결

에 끌린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엔 비둘기여자말고도 나의 관심을 끄

국 그 앞에 섰을 때, 이마를 타고 땀 한 방울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런

는 외모를 가진 여자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뼈만 남은 여자의 외모

나를 비둘기여자는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가 뭐가 좋단 말인가. 박사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냥 보기만 해야겠 다. 그리고 다시 판단을 내리자. 어쨌든 지금으로썬 사귀지 않는 편이, 아예 말을 걸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서서히 성산대교가 가까워져왔다. 내 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저 멀리 자전거를 타고 있는 박사가 보였다. 그리고 비둘기여자인 것 같아 보이는 여자가 보였다. 나는 망설여졌다. 그래도 일단 보기는 해 야겠단 생각에 박사에게로 다가갔다.

85

비둘기 여자

이냐 너 때문에. 너 나한테 술 한 번 쏴야 된다.”


86

이런 모습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펜과

87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종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 위에 ‘저기요.’ 라고 썼다.


86

이런 모습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펜과

87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종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 위에 ‘저기요.’ 라고 썼다.


88

그리고 그 종이를 비둘기여자에게 들이밀었다. 비둘기여자는 종

89

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귀고 싶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여자라고.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이윽고 비둘기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미친 거 아냐? 사귈 거야? 사


88

그리고 그 종이를 비둘기여자에게 들이밀었다. 비둘기여자는 종

89

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귀고 싶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여자라고.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이윽고 비둘기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미친 거 아냐? 사귈 거야? 사


비둘기여자의 입에선 예상 밖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목소리에 놀라 물었다.

“이게, 대체…. 청각장애 아니었어…요…?” 그러자 비둘기여자는 그건 또 무슨 말이냐며 물었다. 나는 여차

저차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비둘기여자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비둘기여자를 처음으로 만난 날, 비둘기여자는 청각장애인 90

이었다.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비둘기여자는 수화동아리에 가입되

91

어 있었고, 그날은 수화동아리 모임으로 청각장애인 체험 중이었던 당연히 비둘기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고, 약 한 달 반에 걸친 내 생각 들은 아무 의미 없는 짓거리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는 멋대로 비둘 기여자의 모습을 만들어갔고, 그녀와 나의 생활들을 설계해보았다. 그리고 그 끝엔 이별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비 둘기여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다가가 펜과 종이를 꺼내었고, 말 을 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 생각을 한다하더라도 현실은 그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 다. 현실은 결코 생각과 100퍼센트 일치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그렇 다 해서 생각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나의 생 각들로 인해 비둘기여자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너 무 억진가? 아무튼 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비둘기여자와 나는 «짱 실내포차»에 갔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것이다. 그러던 중 내가 다가가 비둘기여자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비둘기여자의 입에선 예상 밖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목소리에 놀라 물었다.

“이게, 대체…. 청각장애 아니었어…요…?” 그러자 비둘기여자는 그건 또 무슨 말이냐며 물었다. 나는 여차

저차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비둘기여자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비둘기여자를 처음으로 만난 날, 비둘기여자는 청각장애인 90

이었다.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비둘기여자는 수화동아리에 가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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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있었고, 그날은 수화동아리 모임으로 청각장애인 체험 중이었던 당연히 비둘기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고, 약 한 달 반에 걸친 내 생각 들은 아무 의미 없는 짓거리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는 멋대로 비둘 기여자의 모습을 만들어갔고, 그녀와 나의 생활들을 설계해보았다. 그리고 그 끝엔 이별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비 둘기여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다가가 펜과 종이를 꺼내었고, 말 을 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 생각을 한다하더라도 현실은 그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 다. 현실은 결코 생각과 100퍼센트 일치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그렇 다 해서 생각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나의 생 각들로 인해 비둘기여자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너 무 억진가? 아무튼 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비둘기여자와 나는 «짱 실내포차»에 갔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것이다. 그러던 중 내가 다가가 비둘기여자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박사도 내게 술을 얻어 마셔야만 한다며 굳이 그 자리에 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우린 모두 동갑이었 다. 그래서 반말을 하기로 하자 분위기가 일순 편해졌다. 박사는 내가 비둘기여자를 만나기 위해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 이야기했고, 비둘기 여자는 쑥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웃으며 장난처럼 이런 종이를 비둘

92

93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기여자에게 건넸다.


박사도 내게 술을 얻어 마셔야만 한다며 굳이 그 자리에 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우린 모두 동갑이었 다. 그래서 반말을 하기로 하자 분위기가 일순 편해졌다. 박사는 내가 비둘기여자를 만나기 위해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 이야기했고, 비둘기 여자는 쑥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웃으며 장난처럼 이런 종이를 비둘

92

93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기여자에게 건넸다.


94

비둘기여자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95

“근데, 왜 난 널 보고 비둘기를 떠올린 걸까?” 박사는 그런 우리 둘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 였다. “역시 연애는 좋은 거야.” 얼마 안 있어 나와 비둘기여자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비 둘기남자가 되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글쎄. 내 취미가 비둘기한테 과자 주는 거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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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여자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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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난 널 보고 비둘기를 떠올린 걸까?” 박사는 그런 우리 둘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 였다. “역시 연애는 좋은 거야.” 얼마 안 있어 나와 비둘기여자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비 둘기남자가 되었다.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글쎄. 내 취미가 비둘기한테 과자 주는 거라 그런가?”


96 97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96 97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비둘기 여자

98

그로부터 일년 뒤, 우리는 헤어졌다.


비둘기 여자

98

그로부터 일년 뒤, 우리는 헤어졌다.


아스피린/ 임우택


아스피린/ 임우택


1일 시끄러웠다. 학교 가는 길, 유난히 지하철 소리가 내 귀를 찢는 것 같았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평범한 일상이 계속됐다. 한창 열정적이 고 무언가 시도해 볼 대학생이라는 시기에 난 못나게 살고 있었다. 나 는 아무런 의욕도, 꿈도 없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 나를 그렇게 평가하 고 있다. 하루 종일 멍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일 을 하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에도 일상을 탈피하기에도 내 귀 찮음의 정도는 너무 과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늘 역시 새로운

일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아마 내일도 이렇겠지…. 오늘따라 이

103

일상이 왜 이리 머리를 아프게 하는지 깨질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스피린

아프다 머리가.

2일 문득 하늘을 보다가 헤어진 그녀가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하늘 을 내 품에 넣고 싶었지만 아무리 키가 커도 하늘은 손에 닿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그런 존재였구나….’ 라는 생각과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식 웃으면서도 그녀 생각 을 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옆에 있는 무언가라도 찢어발기고 싶을 정 도로 화가 낫지만.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었다. 얼굴도 생각이 안났다. 얼굴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왔 다. 아프고 싶지 않았다.


1일 시끄러웠다. 학교 가는 길, 유난히 지하철 소리가 내 귀를 찢는 것 같았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평범한 일상이 계속됐다. 한창 열정적이 고 무언가 시도해 볼 대학생이라는 시기에 난 못나게 살고 있었다. 나 는 아무런 의욕도, 꿈도 없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 나를 그렇게 평가하 고 있다. 하루 종일 멍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일 을 하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에도 일상을 탈피하기에도 내 귀 찮음의 정도는 너무 과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늘 역시 새로운

일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아마 내일도 이렇겠지…. 오늘따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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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왜 이리 머리를 아프게 하는지 깨질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스피린

아프다 머리가.

2일 문득 하늘을 보다가 헤어진 그녀가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하늘 을 내 품에 넣고 싶었지만 아무리 키가 커도 하늘은 손에 닿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그런 존재였구나….’ 라는 생각과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식 웃으면서도 그녀 생각 을 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옆에 있는 무언가라도 찢어발기고 싶을 정 도로 화가 낫지만.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었다. 얼굴도 생각이 안났다. 얼굴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왔 다. 아프고 싶지 않았다.


비가 내렸다. 깜깜한 밤에 내 몸은 흠뻑 젖어있다. 땀 때문인지 빗소리 에 깨었는지 난 눈을 뜨고 창을 봤는데 너무 시원하게 내리는 비에 비 몽사몽에 집에서 뛰쳐 내려왔다. 10층에서 엘리베이터조차 기다리기 싫어서 단숨에 뛰어내려와 조금 뛰었다. 질퍽한 감촉에 밑을 보니 또 동네에서 도로 공사한다고 도로를 다 엎어놨나 보다. 그 질퍽한 진흙

에는 이미 사람발자국이 나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 발은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따가울 정도로 104

많이 오는 비를 맞으며 몸 가는대로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한강 까지 와 있었고, 나는 그제야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멈췄다. 비가 한껏

아스피린

오는데도 난간에 비둘기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징그럽고 멍청해 보이는 새의 눈을 보고 싶 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를 옮기려는데 한강에 무언가 떠 있는 것이 보 였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시체였다. 사람이 죽

4일 기억이 안 난다. 난 왜 현관에서 신발도 안 벗고 자고 있는지, 집에 는 어떻게 뛰어 왔는지. 옷을 보니 이건 뭐 동네 거지,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찜찜한 느낌에 씻어야겠다, 생각하고 일어나려는데 “아!!” 하는 생각과 동시에 주머니 속을 뒤쳐 핸드폰의 사진을 검색했다. 제대로 찍힌 게 없었다. 혼자 소리를 내어 웃으며 “풉, 이게 뭐야….” 하고 다시 현관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빗속을 신나게 달려서 인 지 멍청해 보이는 비둘기 눈 때문인지, 아니면 한강에서 정신없이 본 시체 때문인지 내 안에 무언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 었다.

어있었다. 비오는 날이어서 그랬을까. 죽여진 느낌이었다. 기뻐서 인 지, 슬퍼서 인지, 놀라서 인지, 눈물인지, 빗물인지 내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새어 나오고 손발은 오들오들 오들오들 떨렸다. 나는 주머니 속 을 뒤져서 허겁지겁 사진을 찍었다. 비는 그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 봤다. 비오는 밤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비 둘기 두 마리와 ’나‘ 이렇게 세 명 뿐이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내달렸 다. 비둘기는 아직도 나를 똑같은 눈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105

5일 학교를 갔다. 사람들이 내게 이상한 말을 했다.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사람이 좀 달라 보인다.” “기분 좋은 일 있어? 여자친구라도 생겼냐?” “띨빵한 새끼가 가슴 펴고 다니지마. 웃겨. 이따 수업 끝나고 술이 나 한잔하자.” 사람들이 내가 달라 보인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다른 느낌인척 하려는 것도 아닐테고, 패션잡지를 보고 멋 부려 새 옷을 사

아스피린

3일


비가 내렸다. 깜깜한 밤에 내 몸은 흠뻑 젖어있다. 땀 때문인지 빗소리 에 깨었는지 난 눈을 뜨고 창을 봤는데 너무 시원하게 내리는 비에 비 몽사몽에 집에서 뛰쳐 내려왔다. 10층에서 엘리베이터조차 기다리기 싫어서 단숨에 뛰어내려와 조금 뛰었다. 질퍽한 감촉에 밑을 보니 또 동네에서 도로 공사한다고 도로를 다 엎어놨나 보다. 그 질퍽한 진흙

에는 이미 사람발자국이 나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 발은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따가울 정도로 104

많이 오는 비를 맞으며 몸 가는대로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한강 까지 와 있었고, 나는 그제야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멈췄다. 비가 한껏

아스피린

오는데도 난간에 비둘기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징그럽고 멍청해 보이는 새의 눈을 보고 싶 지 않았다. 그래서 자리를 옮기려는데 한강에 무언가 떠 있는 것이 보 였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시체였다. 사람이 죽

4일 기억이 안 난다. 난 왜 현관에서 신발도 안 벗고 자고 있는지, 집에 는 어떻게 뛰어 왔는지. 옷을 보니 이건 뭐 동네 거지,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찜찜한 느낌에 씻어야겠다, 생각하고 일어나려는데 “아!!” 하는 생각과 동시에 주머니 속을 뒤쳐 핸드폰의 사진을 검색했다. 제대로 찍힌 게 없었다. 혼자 소리를 내어 웃으며 “풉, 이게 뭐야….” 하고 다시 현관에 드러누웠다. 그래도 빗속을 신나게 달려서 인 지 멍청해 보이는 비둘기 눈 때문인지, 아니면 한강에서 정신없이 본 시체 때문인지 내 안에 무언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 었다.

어있었다. 비오는 날이어서 그랬을까. 죽여진 느낌이었다. 기뻐서 인 지, 슬퍼서 인지, 놀라서 인지, 눈물인지, 빗물인지 내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새어 나오고 손발은 오들오들 오들오들 떨렸다. 나는 주머니 속 을 뒤져서 허겁지겁 사진을 찍었다. 비는 그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 봤다. 비오는 밤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비 둘기 두 마리와 ’나‘ 이렇게 세 명 뿐이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내달렸 다. 비둘기는 아직도 나를 똑같은 눈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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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학교를 갔다. 사람들이 내게 이상한 말을 했다.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사람이 좀 달라 보인다.” “기분 좋은 일 있어? 여자친구라도 생겼냐?” “띨빵한 새끼가 가슴 펴고 다니지마. 웃겨. 이따 수업 끝나고 술이 나 한잔하자.” 사람들이 내가 달라 보인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다른 느낌인척 하려는 것도 아닐테고, 패션잡지를 보고 멋 부려 새 옷을 사

아스피린

3일


입은 것도, 정말로 내가 잘생겨진 것도 아닐텐데.

분 나쁘게 만들었다. 마치 비둘기 눈 같았다. 며칠 전, 한강에서 본 그

‘정말 내가 바뀌엇나…?’

비둘기 눈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기분이 더러워져서 외면하고

하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최근에 새로운 일이라면 이

서둘러 나가려는데

틀 전의 그 일 밖에 없는데, 그 일은 나에게 아니면 분명히 내 주변에 무

“저기요, 혹시….”

슨 일을 일어나게 해준 것인가 보다. 기분이 새로웠다. 아니 내 안에 새

“네?”

로운 내가 있었을 것이다.

한강에서의 그 비둘기 눈이 생각났는지 과하다 할 정도로 커다란 내 목소리로 흠칫 놀랐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앞쪽 원룸 건물 10층에 사시죠? 저도 그 원룸 건물 살아요, 학교에 서도 본 거 같기도 하고 저 A대 학교 다니거든요.”

6일 아스피린

오늘도 새로운 나로 생활했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콧노래를 부르 며 방에 들어와 가방을 던지고 TV를 켰다. ‘실종된 여대생 B양 XX동 한강에서 이유모를 질식사’ 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본 게 진짜라 니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본지 3일이나 돼서야 찾다니 요새 경찰들 한심하구만 한심 해, 나 같은 인재가 있어야 돼, 인재 하하.” 난 혼자 중얼대며 우쭐했다. 난 다 안다는 듯이, 나도 사실 본 것밖 에 없는데, 아니 분명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가지고는 있지만. 다시 핸드폰으로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봤다. 왠지 뿌듯했다. 뉴스에서 그렇게 나오니 난 더 대단해진 것 같았다. 무섭다거나 겁나진 않았다. 샤워를 하고 편의점으로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편의점에 들어 가서 2500원짜리 싸구려 도시락과 라면 몇 개, 생수통 하나를 집어 들 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다. 계산을 마치고 봉지에 물건들을 넣는 데 여자 점원이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은 나를 정말 기

107

“에, 그러세요? 저도 그 학교 다니는데. 저는 못 본 거 같은데. 나이 도 비슷해 보이고. 인사하면서 지내요.” 나는 병신처럼 혼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했다. “네. 저도 지방에서 학교 다니느라 올라와서 친구가 없었거든요. 잘됐네요, 친구 하면 되겠다.” …

나는 몇 마디 더 나누고 편의점을 나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미지 였다. 그 비둘기 눈을 닮은 눈 때문일까. 계속, ‘어디서 봤더라.’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아파왔다. 편의점을 나와 내가 안보일 때 까지 그녀는 그 비둘기 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편의점이 흐릿해져 잘 안 보이게 될 때까지 갔는데도 그 눈이 나를 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새로운 친구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사람을 더 알았다. 기쁘 지만은 않다. 머리가 아프다.

아스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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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것도, 정말로 내가 잘생겨진 것도 아닐텐데.

분 나쁘게 만들었다. 마치 비둘기 눈 같았다. 며칠 전, 한강에서 본 그

‘정말 내가 바뀌엇나…?’

비둘기 눈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기분이 더러워져서 외면하고

하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최근에 새로운 일이라면 이

서둘러 나가려는데

틀 전의 그 일 밖에 없는데, 그 일은 나에게 아니면 분명히 내 주변에 무

“저기요, 혹시….”

슨 일을 일어나게 해준 것인가 보다. 기분이 새로웠다. 아니 내 안에 새

“네?”

로운 내가 있었을 것이다.

한강에서의 그 비둘기 눈이 생각났는지 과하다 할 정도로 커다란 내 목소리로 흠칫 놀랐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앞쪽 원룸 건물 10층에 사시죠? 저도 그 원룸 건물 살아요, 학교에 서도 본 거 같기도 하고 저 A대 학교 다니거든요.”

6일 아스피린

오늘도 새로운 나로 생활했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콧노래를 부르 며 방에 들어와 가방을 던지고 TV를 켰다. ‘실종된 여대생 B양 XX동 한강에서 이유모를 질식사’ 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본 게 진짜라 니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본지 3일이나 돼서야 찾다니 요새 경찰들 한심하구만 한심 해, 나 같은 인재가 있어야 돼, 인재 하하.” 난 혼자 중얼대며 우쭐했다. 난 다 안다는 듯이, 나도 사실 본 것밖 에 없는데, 아니 분명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가지고는 있지만. 다시 핸드폰으로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봤다. 왠지 뿌듯했다. 뉴스에서 그렇게 나오니 난 더 대단해진 것 같았다. 무섭다거나 겁나진 않았다. 샤워를 하고 편의점으로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편의점에 들어 가서 2500원짜리 싸구려 도시락과 라면 몇 개, 생수통 하나를 집어 들 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다. 계산을 마치고 봉지에 물건들을 넣는 데 여자 점원이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은 나를 정말 기

107

“에, 그러세요? 저도 그 학교 다니는데. 저는 못 본 거 같은데. 나이 도 비슷해 보이고. 인사하면서 지내요.” 나는 병신처럼 혼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했다. “네. 저도 지방에서 학교 다니느라 올라와서 친구가 없었거든요. 잘됐네요, 친구 하면 되겠다.” …

나는 몇 마디 더 나누고 편의점을 나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미지 였다. 그 비둘기 눈을 닮은 눈 때문일까. 계속, ‘어디서 봤더라.’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아파왔다. 편의점을 나와 내가 안보일 때 까지 그녀는 그 비둘기 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편의점이 흐릿해져 잘 안 보이게 될 때까지 갔는데도 그 눈이 나를 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새로운 친구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사람을 더 알았다. 기쁘 지만은 않다. 머리가 아프다.

아스피린

106


7일

15일

아스피린을 먹어야 할까 자꾸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인지 자는

보름전과는 내 생활이 너무 달라졌다. 새로운 여자친구도 내 생

시간도 많아지고 꿈조차 잘 안 꾸게 됐다. 오늘은 편의점 점원한테 연

각도 내 생활도, 심지어 내 몸 얼굴 모든 게 바뀐 것 같았다. 이게 내 핸

락이 왔다. 고등학생처럼 문자 틱틱 보내면서 이름은 B고, 나보다 한

드폰에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이라면 20대에 나에게 준 하늘이 준 가장

살 어리고, 취미는 뭐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혼자 즐거워했다. 두통 따

큰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 새로워져 있었으니까.

오늘도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뭐해?” “나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아스피린 먹고 누워있어..”

108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냐?”

109

“응 아르바이트 끝나서. 오빠네 갈께!”

여자친구는 5분이 채 안 돼서 집에 와 이것저것 청소를 했다. 머리

14일

아파서 누워있는데 옆에서 소란스럽게구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그럼

“오빠?”

에도 짜증이 아니라 웃음이 나는 걸 보니 내가 이상해진 느낌이었다.

“응?” “오빠는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있지? 어땠어?” “있었지. 근데 기억이 안나” “그런 게 어딨어. 어땠는데 어떻게 생기고 몸매는 어떻고 성격은 어땠어? “진짜야 기억 안 나. 기억하고 싶지 않아” “최악이야” “뭐라고?”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여자친구는 청소가 끝났는지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나도 얘기를 하고 눈을 떴다. 여자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얘기 를 하는데 이상하게 눈이며 얼굴이며 이상하게 신경 쓰엿다. 머리가 아파왔다. “너 혹시 친구들이 뭐 닮았다는 소리 안 해?” “뭐? 연예인?” “뭐 아무거나. 연예인이나 동물도 되고 비둘기라든지.” “비둘기? 그게 뭐야 그런 말은 안 들어 봤지. 나 우리 엄마 닮았다 는 소리는 들어봤어” “그거야 당연하지. 됐어. 졸리다 나.” “나 이렇게 왔는데, 잘거야?”

아스피린

아스피린

“괜찮아. 넌 뭐하는데?”


7일

15일

아스피린을 먹어야 할까 자꾸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인지 자는

보름전과는 내 생활이 너무 달라졌다. 새로운 여자친구도 내 생

시간도 많아지고 꿈조차 잘 안 꾸게 됐다. 오늘은 편의점 점원한테 연

각도 내 생활도, 심지어 내 몸 얼굴 모든 게 바뀐 것 같았다. 이게 내 핸

락이 왔다. 고등학생처럼 문자 틱틱 보내면서 이름은 B고, 나보다 한

드폰에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이라면 20대에 나에게 준 하늘이 준 가장

살 어리고, 취미는 뭐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혼자 즐거워했다. 두통 따

큰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 새로워져 있었으니까.

오늘도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뭐해?” “나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아스피린 먹고 누워있어..”

108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냐?”

109

“응 아르바이트 끝나서. 오빠네 갈께!”

여자친구는 5분이 채 안 돼서 집에 와 이것저것 청소를 했다. 머리

14일

아파서 누워있는데 옆에서 소란스럽게구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그럼

“오빠?”

에도 짜증이 아니라 웃음이 나는 걸 보니 내가 이상해진 느낌이었다.

“응?” “오빠는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있지? 어땠어?” “있었지. 근데 기억이 안나” “그런 게 어딨어. 어땠는데 어떻게 생기고 몸매는 어떻고 성격은 어땠어? “진짜야 기억 안 나. 기억하고 싶지 않아” “최악이야” “뭐라고?”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여자친구는 청소가 끝났는지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나도 얘기를 하고 눈을 떴다. 여자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얘기 를 하는데 이상하게 눈이며 얼굴이며 이상하게 신경 쓰엿다. 머리가 아파왔다. “너 혹시 친구들이 뭐 닮았다는 소리 안 해?” “뭐? 연예인?” “뭐 아무거나. 연예인이나 동물도 되고 비둘기라든지.” “비둘기? 그게 뭐야 그런 말은 안 들어 봤지. 나 우리 엄마 닮았다 는 소리는 들어봤어” “그거야 당연하지. 됐어. 졸리다 나.” “나 이렇게 왔는데, 잘거야?”

아스피린

아스피린

“괜찮아. 넌 뭐하는데?”


때문인지 여자가 매달 생리통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두통 때문에

의외로 발끈했다. 빌려 놓은 DVD를 보고 그냥 별다른 얘기 없이

이렇게 고생한다니 스스로 애처로웠다.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한 시

차 마시고 밥 먹고 특별한 일 없이도 즐거웠다. 섹스 따윈 생각도 안 났

간 두 시간 시간은 잘 모르겠다. 마침 내일 학교 수업도 없고 몸 편히

다. 왠지 여자친구를 보면 섹스가 생각이 안 났다. 가끔씩 내가 불능자

쉴 수 있으니 맘 놓고 푹 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무런 꿈도 없이 그

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저런 할 거리를 찾다가 갑자기 생

냥 깜깜한 잠이었다.

각나서

갑자기 숨이 막혀 왔다. 난 버둥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죽진 않은 걸 보니 그냥 악몽이었을까 하고 헐떡대며 난 핸드폰을 봤다. 왠지 그 110

“그래?”

“옛날 사진들 없어?” “어? 왜?”

나의 ‘하늘이 준 선물’을 다시 보고 싶었다. 사진을 보는 나는 눈물이

“음…. 그냥 보고 싶어서 있으면 보여주라.”

났다. 왜 자꾸 눈물이 날까.

“없는데.”

이상하다.

“세 네 장 정도는 있을 것 아냐? 하나도 없어?”

아스피린

“없어.” 난 보여주기 싫은가 보다 하고 체념하고 그냥 물건들을 이것저것 16일 아침이 밝고 난 여자친구네 놀러가기로 했다 같은 건물이라 그녀

111

들쳐 봤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조그만 박스를 봤다. 안을 열었더니 봤던 영화 표, 놀이공원 표, 엽서 몇 장의 편지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한 장, 두 장 넘겨보는데 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난 그 자리에서 마

의 직장을 가는 것 마냥 슬리퍼를 끌고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띵

취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바보 같았다. 남자체

동 하는 소리와 함께 낭낭한 목소리로

면이 말이 아니었다. 기억이 안 난다.

“누구세요?” “나야 나. 문열어줘.” 집을 들어가니 놀러간다고 해서 청소를 해놨는지 눈에 띄게 더러 워 보이는 건 없었다. 큰 침대가 하나 있고, 많은 화장품, 신발 또한 많

17일

았다.

여자친구가 연락이 없다. 난 어떻게 집에 온 거지? 아픈 머리를 치

“평소에 화장도 안하면서 화장품이 왜 이리 많아? 신발도 그렇고?”

켜세우고 흔들대며 학교에 갔다. 어제는 유난히 두통이 심했는지 힘

“나도 가끔은 해! 신발도 그렇고..”

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병원에 가 봐야겠다. 이대로는 도

아스피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잇는데 난 서서히 잠들고 있었다. 약기운


때문인지 여자가 매달 생리통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두통 때문에

의외로 발끈했다. 빌려 놓은 DVD를 보고 그냥 별다른 얘기 없이

이렇게 고생한다니 스스로 애처로웠다.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한 시

차 마시고 밥 먹고 특별한 일 없이도 즐거웠다. 섹스 따윈 생각도 안 났

간 두 시간 시간은 잘 모르겠다. 마침 내일 학교 수업도 없고 몸 편히

다. 왠지 여자친구를 보면 섹스가 생각이 안 났다. 가끔씩 내가 불능자

쉴 수 있으니 맘 놓고 푹 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무런 꿈도 없이 그

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저런 할 거리를 찾다가 갑자기 생

냥 깜깜한 잠이었다.

각나서

갑자기 숨이 막혀 왔다. 난 버둥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죽진 않은 걸 보니 그냥 악몽이었을까 하고 헐떡대며 난 핸드폰을 봤다. 왠지 그 110

“그래?”

“옛날 사진들 없어?” “어? 왜?”

나의 ‘하늘이 준 선물’을 다시 보고 싶었다. 사진을 보는 나는 눈물이

“음…. 그냥 보고 싶어서 있으면 보여주라.”

났다. 왜 자꾸 눈물이 날까.

“없는데.”

이상하다.

“세 네 장 정도는 있을 것 아냐? 하나도 없어?”

아스피린

“없어.” 난 보여주기 싫은가 보다 하고 체념하고 그냥 물건들을 이것저것 16일 아침이 밝고 난 여자친구네 놀러가기로 했다 같은 건물이라 그녀

111

들쳐 봤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조그만 박스를 봤다. 안을 열었더니 봤던 영화 표, 놀이공원 표, 엽서 몇 장의 편지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한 장, 두 장 넘겨보는데 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난 그 자리에서 마

의 직장을 가는 것 마냥 슬리퍼를 끌고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띵

취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바보 같았다. 남자체

동 하는 소리와 함께 낭낭한 목소리로

면이 말이 아니었다. 기억이 안 난다.

“누구세요?” “나야 나. 문열어줘.” 집을 들어가니 놀러간다고 해서 청소를 해놨는지 눈에 띄게 더러 워 보이는 건 없었다. 큰 침대가 하나 있고, 많은 화장품, 신발 또한 많

17일

았다.

여자친구가 연락이 없다. 난 어떻게 집에 온 거지? 아픈 머리를 치

“평소에 화장도 안하면서 화장품이 왜 이리 많아? 신발도 그렇고?”

켜세우고 흔들대며 학교에 갔다. 어제는 유난히 두통이 심했는지 힘

“나도 가끔은 해! 신발도 그렇고..”

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병원에 가 봐야겠다. 이대로는 도

아스피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잇는데 난 서서히 잠들고 있었다. 약기운


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만날 이렇게 아프고 혹시라도 어제처

112

“아 며칠 전부터 안 나오던데요, 그만 뒀나, 잘 모르겠어요.”

럼 또 쓰러지고 그런다면 정말로 처치불능, 길에 버려놓은 쓰레기봉

“…….”

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쳤나? 빚이라도 있어서 야반도주? 로또라도 돼서 해외로 갔

난 학교가 끝나는 대로 병원을 찾아갔다. 어느 과를 찾아 가야되

을지도. 내가 싫어졌다는 생각 말고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나 고민하다가 이비인후과를 갔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는

편의점에서 나와 담배를 하나 피웠다. 터벅터벅 마지막으로 그녀의

데 웬 돌팔이 느낌이 나는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이런저런 상담을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응답이 없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버

해보고 검사를 받아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계속 아프다

튼이 닳 때까지 계속 눌렀다.

니까 일단 약을 지어 주겠다고. 돌팔이가 확실한 것 같다. 이상이 없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데 아프다니까 약을 지어 주겠다니 무슨 약을 지어 주겠다는 건지, 기

113

아스피린

아픈 머리를 세우고 집으로 갔다. 어두컴컴해졌는데 내 핸드폰은 여전히 울리지 않는다.

21일 초인종을 누르다 지쳐 그 앞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나보다. 일어 날 힘도 없다.

20일

“끼이익.” 여자친구였다. 아니 이제 그냥 B양인가 어쨌든 나는

연락이 오늘까지 3일째 오질 않았다.

“야 너….”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면 내가 싫어졌나? 왜? 그때 기절 한 번 해서?’

“왜?”

난 당장 핸드폰을 쥐고 연락을 해봤다. 통화가 되질 않았다. 몇 통,

냉랭한 말투였다. ‘이제 여자친구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이제 50통 가까이 했다. 2시간 가까이 통화음과 안내원 소리만 듣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아 서 당장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화가 나서인지 보고 싶어서 인지 가

“너야 말로 왜.” “다 봤지? 나도 다 봤어. 니 방으로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어떤 사 람인지 알아보고 싶었어, 역시 넌 최악이야”

까운 거리를 땀까지 흘리며 뛰어갔지만, 여자친구는 없었다. 거기 일

“뭘 봐, 뭘 봤다는 건데”

하는 다른 점원에게

그 눈으로 노려봤다.

“혹시 B양 오지 않았어요?”

‘혹시 내 핸드폰 사진을 봤나. 그럴 리가 없는데 꽁꽁 숨겨 놨는데

아스피린

껏해야 머리 아플 때 먹는 아스피린 따위겠지.


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만날 이렇게 아프고 혹시라도 어제처

112

“아 며칠 전부터 안 나오던데요, 그만 뒀나, 잘 모르겠어요.”

럼 또 쓰러지고 그런다면 정말로 처치불능, 길에 버려놓은 쓰레기봉

“…….”

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쳤나? 빚이라도 있어서 야반도주? 로또라도 돼서 해외로 갔

난 학교가 끝나는 대로 병원을 찾아갔다. 어느 과를 찾아 가야되

을지도. 내가 싫어졌다는 생각 말고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나 고민하다가 이비인후과를 갔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는

편의점에서 나와 담배를 하나 피웠다. 터벅터벅 마지막으로 그녀의

데 웬 돌팔이 느낌이 나는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이런저런 상담을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응답이 없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버

해보고 검사를 받아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계속 아프다

튼이 닳 때까지 계속 눌렀다.

니까 일단 약을 지어 주겠다고. 돌팔이가 확실한 것 같다. 이상이 없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데 아프다니까 약을 지어 주겠다니 무슨 약을 지어 주겠다는 건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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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아픈 머리를 세우고 집으로 갔다. 어두컴컴해졌는데 내 핸드폰은 여전히 울리지 않는다.

21일 초인종을 누르다 지쳐 그 앞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나보다. 일어 날 힘도 없다.

20일

“끼이익.” 여자친구였다. 아니 이제 그냥 B양인가 어쨌든 나는

연락이 오늘까지 3일째 오질 않았다.

“야 너….”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면 내가 싫어졌나? 왜? 그때 기절 한 번 해서?’

“왜?”

난 당장 핸드폰을 쥐고 연락을 해봤다. 통화가 되질 않았다. 몇 통,

냉랭한 말투였다. ‘이제 여자친구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이제 50통 가까이 했다. 2시간 가까이 통화음과 안내원 소리만 듣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아 서 당장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화가 나서인지 보고 싶어서 인지 가

“너야 말로 왜.” “다 봤지? 나도 다 봤어. 니 방으로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어떤 사 람인지 알아보고 싶었어, 역시 넌 최악이야”

까운 거리를 땀까지 흘리며 뛰어갔지만, 여자친구는 없었다. 거기 일

“뭘 봐, 뭘 봤다는 건데”

하는 다른 점원에게

그 눈으로 노려봤다.

“혹시 B양 오지 않았어요?”

‘혹시 내 핸드폰 사진을 봤나. 그럴 리가 없는데 꽁꽁 숨겨 놨는데

아스피린

껏해야 머리 아플 때 먹는 아스피린 따위겠지.


혼자 머릿속 온갖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정신없었다. 그런 나를

온갖 정리된 물건들과 쓰레기들이 있었다. 이사를 가려나 하는 생각뿐

계속 ‘그 눈’은 노려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이 안 들었다. 나는 또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어쩐 일인지 한 번에 문이

듯이

열렸다. 문에는 안전체인이 걸린 채로 한 한 뼘 정도의 공간만이, 서로

“병신.” 하고는 ‘쾅’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가 버렸다. 머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스피커폰으로 나를 보고 있었는지 말 소리가 들렸다. 114

환영해줄리 없지만 무슨 말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그녀의 집 앞에는

“내 언니 기억 안나?” “누구?” 나는 다시 기어가다시피 아픈 머리를 싸매고 집으로 들어갔다.

얼굴을 볼 수 있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만 나에게 열어줬다. “미안한데, 나 도저히 생각 안 나. 그렇게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내가 언니에게 뭔가 했으면 뭔지 알려줘. 부탁할게” “모르는 척 하는 거지? 그때 새벽에 한강에서 목 졸라 우리언니 죽 인 거 생각 안 나? 이 병신아. 그걸 내 입으로 듣고 싶니?” 멍했다.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변명할 필요도 없는데 난 반사적으 로 역성을 내고 있었다.

아스피린

“무슨 소리야! 난 몰라! 그런 일 한 적 없어!” “네가 우리집에서 본 이 사진 몰라?” 그녀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은 분명 나였다. 분명 내가 여 22일

자를 껴안은 상태에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못했다. 두통과 싸우고 그 ‘언니’라는 사람을 생각해내

나였다. 하지만 난 기억에 없다. 난 사진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는 일만 계속 했다.

“기억 안 나면 내가 말해줘? 내가 언니랑 같이 새벽에 한강에 있는 데 내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어떤 미친놈이 비에 흠뻑 젖어서 언니 한테 가더라, 둘이 무슨 얘기를 하길래, 아는 사이인줄 알고 나뒀더니

… … 25일 도저히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며칠째 면도도 하지 않고 감 지도 않은 부스스한 머리로 그녀를 찾아갔다. 이런 나를 그녀가 전혀

115

그 미친놈이 갑자기 목을 조르는 거야. 나는 놀라서 뛰어가는데 내 언 니를 강물에 던지는 거지. 난 무섭고 놀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잇는데, 넌 날 한번 보고 다시 돌아가더라. 난 그 자리에서 혼자 울고 있는데 그 미친놈이 좀 이따 다시 물에 떠있는 우리 언니한테 까지 막 뛰어오더 니 혼자 웃으면서 사진을 찍더라. 그게 너야. 이 미친 새끼야.” “…….”

아스피린

찾을 수 없는데, 뭐지?’


혼자 머릿속 온갖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정신없었다. 그런 나를

온갖 정리된 물건들과 쓰레기들이 있었다. 이사를 가려나 하는 생각뿐

계속 ‘그 눈’은 노려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이 안 들었다. 나는 또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어쩐 일인지 한 번에 문이

듯이

열렸다. 문에는 안전체인이 걸린 채로 한 한 뼘 정도의 공간만이, 서로

“병신.” 하고는 ‘쾅’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가 버렸다. 머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스피커폰으로 나를 보고 있었는지 말 소리가 들렸다. 114

환영해줄리 없지만 무슨 말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그녀의 집 앞에는

“내 언니 기억 안나?” “누구?” 나는 다시 기어가다시피 아픈 머리를 싸매고 집으로 들어갔다.

얼굴을 볼 수 있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만 나에게 열어줬다. “미안한데, 나 도저히 생각 안 나. 그렇게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내가 언니에게 뭔가 했으면 뭔지 알려줘. 부탁할게” “모르는 척 하는 거지? 그때 새벽에 한강에서 목 졸라 우리언니 죽 인 거 생각 안 나? 이 병신아. 그걸 내 입으로 듣고 싶니?” 멍했다.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변명할 필요도 없는데 난 반사적으 로 역성을 내고 있었다.

아스피린

“무슨 소리야! 난 몰라! 그런 일 한 적 없어!” “네가 우리집에서 본 이 사진 몰라?” 그녀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은 분명 나였다. 분명 내가 여 22일

자를 껴안은 상태에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못했다. 두통과 싸우고 그 ‘언니’라는 사람을 생각해내

나였다. 하지만 난 기억에 없다. 난 사진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는 일만 계속 했다.

“기억 안 나면 내가 말해줘? 내가 언니랑 같이 새벽에 한강에 있는 데 내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어떤 미친놈이 비에 흠뻑 젖어서 언니 한테 가더라, 둘이 무슨 얘기를 하길래, 아는 사이인줄 알고 나뒀더니

… … 25일 도저히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며칠째 면도도 하지 않고 감 지도 않은 부스스한 머리로 그녀를 찾아갔다. 이런 나를 그녀가 전혀

115

그 미친놈이 갑자기 목을 조르는 거야. 나는 놀라서 뛰어가는데 내 언 니를 강물에 던지는 거지. 난 무섭고 놀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잇는데, 넌 날 한번 보고 다시 돌아가더라. 난 그 자리에서 혼자 울고 있는데 그 미친놈이 좀 이따 다시 물에 떠있는 우리 언니한테 까지 막 뛰어오더 니 혼자 웃으면서 사진을 찍더라. 그게 너야. 이 미친 새끼야.” “…….”

아스피린

찾을 수 없는데, 뭐지?’


그때 집 밖으로 나가기 전의 내 모습을 잘 생각했다. 뭐지. 난 뭐지.

29일

“그래서 내가 널 다시 뒤 쫓았는데 이 건물에 살더라고 널 내 손으

결론은 무서웠다. 사실이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내가 사람

로 죽이려고 여기까지 이사 왔는데, 아쉽다. 넌 너무 최악의 병신이라

을 죽이고 또 다른 내가 그 죽인 것을 만족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

내 손으로 못 죽이겠어. 그냥 이 사진이랑 평생 감옥에서 썩어라. 병신,

꼇다는 게. 온갖 골머리들이 썩기 시작했다.

이제 꺼져.” 쾅 소리와 함께 또 사라졌다. 그래 나일수도 있겠다. 근데 왜 죽였을까.

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건가? 왜? 미친 듯이 미워해서? 사 람을 미워하면 안 되나? 난 어찌 해야 되는 거지? 그냥 감옥에서 평생 살아야 하나?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살아야하나?

116

근데 그녀를 죽이면 난 또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했다. 언제든지 나는 잡혀갈지도 모르겠구나.

28일 생각났다. 아니 내가 만든 상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난 알고 있다. 내 전 여자친구이다. 내가 사랑했고 미칠 듯

머리가 아프다. 약을 먹으면 졸음이 오는데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난 또 약을 먹었다.

30일 뉴스. ‘한달 전에 한강에서 질식사한 B양의 여동생 한강에서 또 발견’.

이 미워서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느낀 그녀인가? 그래서 내가 그 한강을 본 후에 눈물을 흘린 건가? 빗물이 아니었나? 집에 와서 내 안 의 뭔가 변한 건 복수를 해서인가? 비둘기 눈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 비 둘기 같은 눈을 가진 사람도 그녀여서인가? 혹시 나를 죽이고 싶어 하 는 그녀는 그녀의 동생인가? 온갖 상상으로 난 밤을 지셌다.

117

아스피린

27일 아스피린

그럼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사람을 죽였다는 건 내가 자는 사이

31일 ‘나겠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슬펐다. 그리고 곧 경찰들이 그 녀의 방과 짐들을 조사해보면 내가 그 언니를 죽인 것도 알게 되겠지. 내 자신이 미웠다. 자살할 자신감조차 없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 다. 용기 없고 의욕 없고, 내가 그 자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그때 집 밖으로 나가기 전의 내 모습을 잘 생각했다. 뭐지. 난 뭐지.

29일

“그래서 내가 널 다시 뒤 쫓았는데 이 건물에 살더라고 널 내 손으

결론은 무서웠다. 사실이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내가 사람

로 죽이려고 여기까지 이사 왔는데, 아쉽다. 넌 너무 최악의 병신이라

을 죽이고 또 다른 내가 그 죽인 것을 만족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

내 손으로 못 죽이겠어. 그냥 이 사진이랑 평생 감옥에서 썩어라. 병신,

꼇다는 게. 온갖 골머리들이 썩기 시작했다.

이제 꺼져.” 쾅 소리와 함께 또 사라졌다. 그래 나일수도 있겠다. 근데 왜 죽였을까.

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건가? 왜? 미친 듯이 미워해서? 사 람을 미워하면 안 되나? 난 어찌 해야 되는 거지? 그냥 감옥에서 평생 살아야 하나?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살아야하나?

116

근데 그녀를 죽이면 난 또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했다. 언제든지 나는 잡혀갈지도 모르겠구나.

28일 생각났다. 아니 내가 만든 상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난 알고 있다. 내 전 여자친구이다. 내가 사랑했고 미칠 듯

머리가 아프다. 약을 먹으면 졸음이 오는데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난 또 약을 먹었다.

30일 뉴스. ‘한달 전에 한강에서 질식사한 B양의 여동생 한강에서 또 발견’.

이 미워서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느낀 그녀인가? 그래서 내가 그 한강을 본 후에 눈물을 흘린 건가? 빗물이 아니었나? 집에 와서 내 안 의 뭔가 변한 건 복수를 해서인가? 비둘기 눈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 비 둘기 같은 눈을 가진 사람도 그녀여서인가? 혹시 나를 죽이고 싶어 하 는 그녀는 그녀의 동생인가? 온갖 상상으로 난 밤을 지셌다.

117

아스피린

27일 아스피린

그럼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사람을 죽였다는 건 내가 자는 사이

31일 ‘나겠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슬펐다. 그리고 곧 경찰들이 그 녀의 방과 짐들을 조사해보면 내가 그 언니를 죽인 것도 알게 되겠지. 내 자신이 미웠다. 자살할 자신감조차 없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 다. 용기 없고 의욕 없고, 내가 그 자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죽이는 더러운 나 때문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죽고 싶었다. 그 사진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내가 죽기 전 한 달을 즐겁게 살수 잇도록 만 들어준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용기 없는 난 자살을 위한 자신을 미워하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다. 죄를 받는 것조차 무서워 자살하 고 싶어 하는 내가 원래의 나였다. 머리가 아파온다. 마지막 약이 될 것 같다.

118

1일 잠에서 깼다. 난 돌아갈 수 없었다. 하늘이 손에 닿았다. 발이 땅에

아스피린

닿지 않으니 하늘에 닿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서 키가 많이 큰 느낌 에도 닿지 않던 하늘이 이제는 내 품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몇 초 라도 내 어릴 적 꿈을 가질 수 있었다.


죽이는 더러운 나 때문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죽고 싶었다. 그 사진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내가 죽기 전 한 달을 즐겁게 살수 잇도록 만 들어준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용기 없는 난 자살을 위한 자신을 미워하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다. 죄를 받는 것조차 무서워 자살하 고 싶어 하는 내가 원래의 나였다. 머리가 아파온다. 마지막 약이 될 것 같다.

118

1일 잠에서 깼다. 난 돌아갈 수 없었다. 하늘이 손에 닿았다. 발이 땅에

아스피린

닿지 않으니 하늘에 닿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서 키가 많이 큰 느낌 에도 닿지 않던 하늘이 이제는 내 품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몇 초 라도 내 어릴 적 꿈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문식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문식


















이명耳鳴/ 원보람


이명耳鳴/ 원보람


이명耳鳴

망망대해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한척

141

퇴근시간 서울역, 벽에 기대어 천둥 번개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통곡하는 순간 말기암 진단을 받은 어느 가장, 들려오는 새소리 장마가 그친 화창한 날, 이별 시를 쓰지 않는 평론가, 그의 시비평 어버이날 아침, 부고 네가 말하는 순간, 이명 망망대해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한척, 너는 홀로 방향 잃은 키를 잡고 항 해 한다. 불어터진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술렁이는 파도, 몸서 리치는 바다. 나침반이 휘어지고 좌표가 둥둥 떠다닌다. SOS! SOS! 또 다른 이야기가 바다에 잠긴다. 네가 외치던 순간,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이명이었다.

이명耳鳴

부러진 구두 굽을 쥐고 있는 여자


이명耳鳴

망망대해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한척

141

퇴근시간 서울역, 벽에 기대어 천둥 번개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통곡하는 순간 말기암 진단을 받은 어느 가장, 들려오는 새소리 장마가 그친 화창한 날, 이별 시를 쓰지 않는 평론가, 그의 시비평 어버이날 아침, 부고 네가 말하는 순간, 이명 망망대해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한척, 너는 홀로 방향 잃은 키를 잡고 항 해 한다. 불어터진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술렁이는 파도, 몸서 리치는 바다. 나침반이 휘어지고 좌표가 둥둥 떠다닌다. SOS! SOS! 또 다른 이야기가 바다에 잠긴다. 네가 외치던 순간,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이명이었다.

이명耳鳴

부러진 구두 굽을 쥐고 있는 여자


표류/ 최윤선


표류/ 최윤선


표류(漂流)

145

: 물 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감, 어떤 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헤맴 표류

또는 일정한 원칙이나 주관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림

나는 요즘 "절망" 이라는 단어로 하루를 채우고 아침이면 다시 비우는 일을 반복하며 지내는듯하다. 절망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겠지마는 나의 절망은 희망이 없음으로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음으로 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대신 할 단어의 선택이 두렵다. 우습지만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언제고 다시 들어와 지울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써야 하겠다.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될.


표류(漂流)

145

: 물 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감, 어떤 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헤맴 표류

또는 일정한 원칙이나 주관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림

나는 요즘 "절망" 이라는 단어로 하루를 채우고 아침이면 다시 비우는 일을 반복하며 지내는듯하다. 절망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겠지마는 나의 절망은 희망이 없음으로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음으로 오는 것이다. 내 마음을 대신 할 단어의 선택이 두렵다. 우습지만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언제고 다시 들어와 지울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써야 하겠다.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될.


2009/ 7/ 6

아름다웠다. 슬픔을 달고 사는 나를 천천히 사랑하게 만들어 준 그때, 그곳에서

‘그’ 에게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다시 일 년, 그리고 밤

너와 헤어진 시간들이 모일수록 더 큰 연민이, 또 막연한 후회가 몰려와 나를 잠 못 들게 하는구나. 왜 너는 나를 사랑해서 잠들 수 없었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을까.

나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시선 가끔은 상냥한 그 눈에도, 서운한 눈을

현실의 벽과 싸우며 나를 지키느라 온몸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준

보일 때가 있었지.

너의 존재를 모르고 지냈다.

강인한 팔, 다리 비틀거리는 나를 올바로 잡아주었던 너의 손.

사랑스런 너의 생일.

늘 어리광을 부리는 내게 너는 노래하듯 나를 바라봐 주었지.

더 많이 사랑해 줄 것을, 더 많이 안아줄 것을, 나를 갖고 싶다던 네

내가 옆에 있을 때 자주 흥얼 거려주었던 너의 노랫소리, 너는 그랬지.

얘기를 들어줄 것을.

아직도 너의 따뜻함은 잊을 수가 없다.

이 밤 슬픈 눈으로 생각해본다.

우리는 사랑을 했었다.

사랑했던 그대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 동안 내 기억에서 함께 울어줄

그런데, 지금 나에게 남은 건 왜 초라한 연민뿐인 거니.

그대, 그대의 수고를 기억하며 이 글을 마친다. 생일 축하 한다.

찬란한 사랑은 지나가고 나는 지금 네가 없는 길고 긴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내가 시작한 내 슬픔이라 너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구나. 잘 지내지. 나 없는 너는 고아가 되었겠지만, 사랑 할 수 있을 너는 다시

2009/ 8/ 1 Bonne nuit, amour.

인연을 찾을 거란 기대를 해본다. 작은 눈물소리만 울리는 이 밤. 너의 손 한번만 잡아보았으면, 한다.

잃어버린 기분이다.

이제는 안아 줄 수도 없는 너를, 내 마음 깊숙이 안아본다.

너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 나를.

아! 내 방 가득 메운 너의 공기도 이제는 흐트러져 맡을 수 없게 되고, 내 눈 가득 고여 있던 사랑도 너를 볼 수 없음에 흐려지는구나.

맞닿은 입술에 서로의 감정을 싣는 일, 나는 지루해했고 불성실했다.

외로움,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해야 했던 건 엄청났다.

너는 늘 외롭다고 했지 내가 없으면 한시도 견딜 수가 없다고,

타인과 손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게, 스킨십은 말할 것도

그 말을 하며 미소 짓는 너의 눈과 입은 나의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만큼

없거니와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 그의 가족, 그와 관련된 모든 일에

147

표류

표류

146

어디선가 너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황홀한 밤에 잠시 너를 생각해 본다.


2009/ 7/ 6

아름다웠다. 슬픔을 달고 사는 나를 천천히 사랑하게 만들어 준 그때, 그곳에서

‘그’ 에게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다시 일 년, 그리고 밤

너와 헤어진 시간들이 모일수록 더 큰 연민이, 또 막연한 후회가 몰려와 나를 잠 못 들게 하는구나. 왜 너는 나를 사랑해서 잠들 수 없었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을까.

나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시선 가끔은 상냥한 그 눈에도, 서운한 눈을

현실의 벽과 싸우며 나를 지키느라 온몸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준

보일 때가 있었지.

너의 존재를 모르고 지냈다.

강인한 팔, 다리 비틀거리는 나를 올바로 잡아주었던 너의 손.

사랑스런 너의 생일.

늘 어리광을 부리는 내게 너는 노래하듯 나를 바라봐 주었지.

더 많이 사랑해 줄 것을, 더 많이 안아줄 것을, 나를 갖고 싶다던 네

내가 옆에 있을 때 자주 흥얼 거려주었던 너의 노랫소리, 너는 그랬지.

얘기를 들어줄 것을.

아직도 너의 따뜻함은 잊을 수가 없다.

이 밤 슬픈 눈으로 생각해본다.

우리는 사랑을 했었다.

사랑했던 그대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 동안 내 기억에서 함께 울어줄

그런데, 지금 나에게 남은 건 왜 초라한 연민뿐인 거니.

그대, 그대의 수고를 기억하며 이 글을 마친다. 생일 축하 한다.

찬란한 사랑은 지나가고 나는 지금 네가 없는 길고 긴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내가 시작한 내 슬픔이라 너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구나. 잘 지내지. 나 없는 너는 고아가 되었겠지만, 사랑 할 수 있을 너는 다시

2009/ 8/ 1 Bonne nuit, amour.

인연을 찾을 거란 기대를 해본다. 작은 눈물소리만 울리는 이 밤. 너의 손 한번만 잡아보았으면, 한다.

잃어버린 기분이다.

이제는 안아 줄 수도 없는 너를, 내 마음 깊숙이 안아본다.

너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 나를.

아! 내 방 가득 메운 너의 공기도 이제는 흐트러져 맡을 수 없게 되고, 내 눈 가득 고여 있던 사랑도 너를 볼 수 없음에 흐려지는구나.

맞닿은 입술에 서로의 감정을 싣는 일, 나는 지루해했고 불성실했다.

외로움,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해야 했던 건 엄청났다.

너는 늘 외롭다고 했지 내가 없으면 한시도 견딜 수가 없다고,

타인과 손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게, 스킨십은 말할 것도

그 말을 하며 미소 짓는 너의 눈과 입은 나의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만큼

없거니와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 그의 가족, 그와 관련된 모든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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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표류

146

어디선가 너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황홀한 밤에 잠시 너를 생각해 본다.


148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 나는 그것에 지쳐있었다.

들고 울면서 쓰는 이 글. 무엇 때문에 우는지 모르는 이 상황이

글을 쓰는 일도 읽는 일도 내 감정을 타이르는 일도 하지 못했다. 내

방황인 것이다.

눈에 비친 너를 걱정했을 뿐.

요즈음 나는 욕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사랑을 잠시 쉬는 지금(오래 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은 오로지 나를

욕조에서 새로운 나를 개척해 나가는 일은 놀라운 일이다.

보호해야하겠다.

쌓여만 가는 내 욕심을 씻어내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내 죄를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나누는 일이 서툴러,

스스럼없이 드리우고 나는 다시 울 수 있어 좋다.

실수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붙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오늘도 하염없이

나는 지금 필사적이다. 다음번 사랑을 할 땐 조금 더 나를 내던져

절망하며 무너진다.

봐야지. 생각한다.

나,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성격은 좋진 않았지만 밝게 웃을 수

축축한 이 공기,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있었는데.

149

—어김없이 슬픈 밤, 오늘도 나의 하루는 전쟁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잊혀 지게 했던 그들을 꺼내어보니 다시 젖는구나. 언제쯤 이 울음은 그칠 수 있을까. 또 언제쯤 하나님은 내게 기회를 주시고 다시금 위로 받을 수 있을까.

2009/ 8/ 22 지친 물음표

오늘은 어제를 후회하며 지금은 흘러간 몇 분을 후회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헤어진다는 것은 역시 그 사람의 인생에 관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 슬픔. 이것이 제일 견디기 힘든 일이 아닌가.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일은 생각만큼 지루하며 공허하다. 혼자만의 시간에 눈물 젖어보지 않고서야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우선 너무나 감성적인 지금 이 시간이 버겁다.

며칠 전, 새벽에 본 영화 속 여주인공이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방황은 눈물을 만들고 홀연하게 떠나

‘왜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버린다. 말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있으나

좋거나 싫거나 하지 무관심하게 되진 않아.’라고. 너무 분명한

아무에게도 전하고 싶지 싶다.

이야기라 아직도 가슴이 철렁한다.

이렇게 남기는 것도 어쩌면 미래의 나에게 가혹한 일일 지도……. 어두운 방안에 홀로, 요동치는 왼쪽 마음을 부여잡고 또 펜을 집어

헤어지고 줄곧 너를 미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행한 일이지만 그땐 그게 내 슬픔을 이기는

표류

표류

가만히, 나가지 않게 된 교회를 생각해본다.


148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 나는 그것에 지쳐있었다.

들고 울면서 쓰는 이 글. 무엇 때문에 우는지 모르는 이 상황이

글을 쓰는 일도 읽는 일도 내 감정을 타이르는 일도 하지 못했다. 내

방황인 것이다.

눈에 비친 너를 걱정했을 뿐.

요즈음 나는 욕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사랑을 잠시 쉬는 지금(오래 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은 오로지 나를

욕조에서 새로운 나를 개척해 나가는 일은 놀라운 일이다.

보호해야하겠다.

쌓여만 가는 내 욕심을 씻어내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내 죄를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나누는 일이 서툴러,

스스럼없이 드리우고 나는 다시 울 수 있어 좋다.

실수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붙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오늘도 하염없이

나는 지금 필사적이다. 다음번 사랑을 할 땐 조금 더 나를 내던져

절망하며 무너진다.

봐야지. 생각한다.

나,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성격은 좋진 않았지만 밝게 웃을 수

축축한 이 공기,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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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슬픈 밤, 오늘도 나의 하루는 전쟁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잊혀 지게 했던 그들을 꺼내어보니 다시 젖는구나. 언제쯤 이 울음은 그칠 수 있을까. 또 언제쯤 하나님은 내게 기회를 주시고 다시금 위로 받을 수 있을까.

2009/ 8/ 22 지친 물음표

오늘은 어제를 후회하며 지금은 흘러간 몇 분을 후회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헤어진다는 것은 역시 그 사람의 인생에 관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 슬픔. 이것이 제일 견디기 힘든 일이 아닌가.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일은 생각만큼 지루하며 공허하다. 혼자만의 시간에 눈물 젖어보지 않고서야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우선 너무나 감성적인 지금 이 시간이 버겁다.

며칠 전, 새벽에 본 영화 속 여주인공이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방황은 눈물을 만들고 홀연하게 떠나

‘왜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버린다. 말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있으나

좋거나 싫거나 하지 무관심하게 되진 않아.’라고. 너무 분명한

아무에게도 전하고 싶지 싶다.

이야기라 아직도 가슴이 철렁한다.

이렇게 남기는 것도 어쩌면 미래의 나에게 가혹한 일일 지도……. 어두운 방안에 홀로, 요동치는 왼쪽 마음을 부여잡고 또 펜을 집어

헤어지고 줄곧 너를 미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행한 일이지만 그땐 그게 내 슬픔을 이기는

표류

표류

가만히, 나가지 않게 된 교회를 생각해본다.


방법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2009/ 9/ 어느 날의 마침표.

그저 한없이 널 미워하는 것으로. 너를 정리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눈물이 필요하겠지. 절대

나는 오늘도 새벽이라는 시간적인 명사 안에 가두어져 표류한다.

무관심할 수는 없는 거야. 지난 3년이 그런 시간들이었다. 무관심 할

그곳에선 마음껏 울 수도 웃을 수도 있으며

수 없게 만드는 시간들.

누군가를 그리워 할 수도 있다.

지금. 내 기억은 그리움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어서 혹, 그 누가

1시, 2시, 3시, 어둠은 짙어지다가 다시 빛을 내어 본다.

내게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 함께 했었던 아침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바쁘게 나갈 준비를

새벽, 너의 얘길 끄적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그만두고 싶지

하는그들(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의 걱정하는 눈빛과

않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어쭙잖게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시간이고

마주칠 때면 나의 크나큰 약점을 들킨 것 같이 부끄러워진다.

시원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주는 시간.

술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캔 맥주를 사 갖고

어김없이 새벽 기차가 지나가고 익숙해진 차가운 공기 냄새가

들어와 분위기를 낸다. 그저 분위기만, 취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맡아진다.

술을 마시면 나의 절망적인 행동들이 정당방위가 되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이것이 낭만이라 생각되는 날엔 기분마저 좋아져서 나는

2009/ 9/ 18 슬픈 건 아니에요. 단지 생각이 많아졌을 뿐.

낭만주의자다, 혹은 나는 로맨티스트이다 라는 것을 혼자 느끼며 흐뭇해 하지만,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나락으로 풍-덩

그렇지 않은 날엔 이것은 분명한 청승이다. 또는 사랑이 부족해 우는

살려줘요.

외로운 암고양이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어찌 보면, 나의 새벽은 무제이다. 그러나, 지극히 모던한 내 생활

사람들은 늘 이런 이별을 하며 사는 걸까, 이렇게 무거운 마음을 지고

안에서 표류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가는 그리움만을 품으며.

그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무수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랑을 줄 수 있는 생물을 찾아야겠다.

나의새벽은, 설사 내가 외로운 암고양이라도, 어떠한 목적과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고 해도 나를 아름답게 한다.

151

표류

표류

150

시간들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방법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2009/ 9/ 어느 날의 마침표.

그저 한없이 널 미워하는 것으로. 너를 정리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눈물이 필요하겠지. 절대

나는 오늘도 새벽이라는 시간적인 명사 안에 가두어져 표류한다.

무관심할 수는 없는 거야. 지난 3년이 그런 시간들이었다. 무관심 할

그곳에선 마음껏 울 수도 웃을 수도 있으며

수 없게 만드는 시간들.

누군가를 그리워 할 수도 있다.

지금. 내 기억은 그리움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어서 혹, 그 누가

1시, 2시, 3시, 어둠은 짙어지다가 다시 빛을 내어 본다.

내게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 함께 했었던 아침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바쁘게 나갈 준비를

새벽, 너의 얘길 끄적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그만두고 싶지

하는그들(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의 걱정하는 눈빛과

않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어쭙잖게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시간이고

마주칠 때면 나의 크나큰 약점을 들킨 것 같이 부끄러워진다.

시원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주는 시간.

술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캔 맥주를 사 갖고

어김없이 새벽 기차가 지나가고 익숙해진 차가운 공기 냄새가

들어와 분위기를 낸다. 그저 분위기만, 취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맡아진다.

술을 마시면 나의 절망적인 행동들이 정당방위가 되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이것이 낭만이라 생각되는 날엔 기분마저 좋아져서 나는

2009/ 9/ 18 슬픈 건 아니에요. 단지 생각이 많아졌을 뿐.

낭만주의자다, 혹은 나는 로맨티스트이다 라는 것을 혼자 느끼며 흐뭇해 하지만,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나락으로 풍-덩

그렇지 않은 날엔 이것은 분명한 청승이다. 또는 사랑이 부족해 우는

살려줘요.

외로운 암고양이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어찌 보면, 나의 새벽은 무제이다. 그러나, 지극히 모던한 내 생활

사람들은 늘 이런 이별을 하며 사는 걸까, 이렇게 무거운 마음을 지고

안에서 표류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가는 그리움만을 품으며.

그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무수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랑을 줄 수 있는 생물을 찾아야겠다.

나의새벽은, 설사 내가 외로운 암고양이라도, 어떠한 목적과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고 해도 나를 아름답게 한다.

151

표류

표류

150

시간들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Ending credit

기획/편집

김종소리

작품

연수희

pinkdono@hanmail.net

박미정

ozful@naver.com

정지호

blog.naver.com/jjihojjiho

김한주

ares412@naver.com

임우택

hahalwt@naver.com

김종소리

jongsoriz@naver.com

강문식

mkisland@gmail.com

원보람

dnjsqh0720@naver.com

최윤선

lovem2345@naver.com

디자인

장지혜

jihe.jang@gmail.com

발행

김종소리

발행일

2009/10/ 27

문의

jongsoriz@naver.com

이곳에 실린 작품의 저작권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무단으로 따라하시거나 가져다 쓰시면 안 됩니다. copyright©2009 abraxa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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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편집

김종소리

작품

연수희

pinkdono@hanmail.net

박미정

ozful@naver.com

정지호

blog.naver.com/jjihojjiho

김한주

ares412@naver.com

임우택

hahalwt@naver.com

김종소리

jongsoriz@naver.com

강문식

mkisland@gmail.com

원보람

dnjsqh0720@naver.com

최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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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장지혜

jihe.jang@gmail.com

발행

김종소리

발행일

2009/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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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seller

가가린

02-736-9005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갸하하

02-3142-4877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91-3

낙타

02-6405-3189

서울시 마포구 서동 333-18

레게치킨

02-338-3438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91-3

상상마당

02-330-6210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7-5

아트선재센터

02-733-8945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144-2

한집 한 그림

010-2823-0279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57-25

101호 사케집

02-3143-1015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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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 abraxas vol. 3 : 김한주가 찍은 사진

vol. 3

photograph by kim han joo

김한주가 찍은 사진

변질된 것들의 공생관계 : 살구잼 트리오/연수희 이륙 take off/박미정 비둘기 여자/정지호 김종소리 김한주가 찍은 사진/김한주 디자인/ 장지혜 아스피린/임우택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문식 이명耳鳴/원보람 표류/최윤선 fall

2009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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