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l tro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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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적 열대

조혜진 개인전


목차

2

서문

1

한국식 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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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매뉴얼

17

종려나무와 도시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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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한 나무

27


서문

노해나1

1972년 동아일보는 본격적으로 관엽식물을 소개하는 연재를 싣는다. 1981년 경향신문에서는 8회에 걸쳐 아열대 원산 식물들을 소개한다. 이어 80년대에 보도된 기사에는 “花草(화초)로 쾌적한 분위기 살린다”, “蘭盆栽(란분재)-커피 마시며 감상”, “싱그런 잎을 붕어 키우듯”, “화초칸막이가 있는 室內(실내)”와 같 이 열대식물 가꾸는 법, 식물을 활용한 장식법의 가이드를 제시해 주고 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의 기사에 따르면 “대형 화분 賃貸(임대) 성행”, “축하 화분 재활용해드립니다” 등 임대, 재활용과 같이 식물과 연관된 경제적 활동의 활성화를 보여준다. 앞서 기술한 보도 내용은 «한시적 열대»에서 열대식물을 중심으로 수집 된 신문 자료의 일부를 서술한 것이다. 신문기사로 살펴본 열대식물의 연대기는 시대를 거치면서 그 의미가 변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변화된 사회적, 경제적 지형을 살펴보는 일은 현재의 시점에서 열대식물의 위치와 맥락을 재귀하는 거 울로써 작동한다. 전시는 과거를 지나 현재에도 나타나고 있는 열대식물의 한국 식 환경에 의한 변이와 여기에 담긴 집단적인 무의식에 접촉해보고자 한다.

«한시적 열대»는 열대식물이라는 외래종의 유입이 한국적 맥락에서 정착해 가는 상황을 추적하며 이 과정에서 기형적으로 변형된 식물과 그 근저에 깔린 생활방식, 문화적 현상을 드러낸다. 작가에 의하면 열대를 경험하는 방식은 아 파트 생활 내에서 정원을 만들어 식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데, 이러 한 생활 방식 안에서 열대식물은 실내에 맞춰진 작은 형태로 변형되어 소비되 는 과정을 거친다. 작업은 열대식물이 용도 면에서 제 목적을 다하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낯설게 보여 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경조사에서 일시적으로 사 용되었다가 버려지는 화환, 실내 장식용으로 취급되었다가 버려진 열대나무 등 이 그것이다. 경조화환의 잎이자 플라스틱 장식인 도시루는 열대식물인 종려나무의 잎 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경조화환은 기공식, 결혼식, 회갑, 개업식, 장의 등에 이용되며, 이용시간은 30분에서 72시간정도1로 일시적이다. 이렇게 기념

1. 최숙자 외, 「경조화환에 대한 꽃집 경영주 및 소비자의 의식조

일 혹은 행사에 대동되는 화환은 형식상 예를 표하는 문화의 일환이며 정면을

사」, 『생명자원과학연구』 제25집,

향해 돌출해 있는 형태는 한시적으로 활짝 피어 기념행사의 축하를 배가시키곤

p. 46.

한다. <종려나무와 도시루 사이에서>는 화환에서 사용하는 도시루의 형태학적 인 연구를 통해 종려나무에서 발췌한 도시루가 변형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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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형태학적인 연구는 열대나무가 상징적 기호로 작용하는 사회적 식물임을 드러나게 한다. 작가는 한국사회에 침잠된 예문화에 의해 자연 상태의 식물이 아닌 사회적으로 각색되어 활용되는 점에 천착하여 사회적 식물로 명명하고 식 물과 연계된 층위의 단면을 추적해 나간다. <열대식물 지형도>에서는 열대식물이 버려져 화단에 심어지거나 뿌리 채 뽑혀져 분리 수거된 현장을 기록한다. 구글 지도의 통계치로 보여주는 작업 은 실내 장식이었던 식물의 쓸모가 다하여 처치곤란의 상태로 남아있는 모습 을 보여준다. <이용 가능한 나무>는 이렇게 서울 각지에서 버려진 열대나무를 수집하고 건축자재의 단위체인 각목으로 제작한 후, 정원으로 소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열대식물이 오픈행사 혹은 축하의 의미로 전하는 인사 치례의 상징으로 주고 받은 이후 폐기되는 생물주기/문화현상의 패턴을 환유 한다. <우산으로 야자나무를 만드는 간단한 방법>외의 열대 매뉴얼 시리즈는 열대에 대한 실체 없는 열망을 드러낸다. 인터넷상에서 수집한 열대식물 만들 기, 열대과일을 이용한 장식법 등의 자료를 토대로 매뉴얼화한 작업은 열대식 물을 두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상된 이미지, 그리고 집단적 환상이 존재함 을 보여주며, DIY식 상품마냥 사용자에 의해 재해석된 열대에 대한 가이드를 제 공한다. 나아가 열대 매뉴얼을 고스란히 재현한 사물은 열대에 대한 상상적 이 미지를 실현한 결과물로 제시된다. 열대식물의 2차적 해석물은 열대라는 매혹 적인 상징물의 이면에 자리한 무의식의 이미지가 실현된 헤테로토피아의 상황 을 연출한다.

조혜진은 이번 전시에서 한국사회에 당연하게 자리 잡은 문화현상이 배태한 낯 선 풍경, 낯선 사물들을 참조하여 새로운 사물을 제작해 낸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와 더불어 신문자료, 도서, 백과사전, 인터넷 등에서 수집한 아카이브 자료의 재배치를 통해 열대식물의 근저에 깔린 문화현상을 드러내고자 한다. 본 전시 는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근대적 문화현상의 연쇄 고리를 반영하면서도 이에 반하는 가능성의 공간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현실이 환상이라고 고발하는 환상 을 만들어내는 헤테로토피아2처럼 기존의 공간에 대한 일시적인 이의제기인

2. 미셸 푸코, 이상길 역, 『헤테로 토피아』, 이상길 역, 문학과 지성

셈이다. «한시적 열대»는 사회 통념의 안과 바깥의 틈새를 교묘히 유희하는 동시에 그 경계의 접촉지대로써 작동할 것이다.

사, p. 24.


한국식 열대3


신문기사

1930.4.5 동아일보

동아일보의 10주년을 기념해 10년된 생물을 소개하 는 '동갑을 찾아서' 라는 연재물을 기획하고 백학, 하 마와 함께 바나나를 소개했다. 내용은 당시 창경원 온실의 바나나에 대한 설명이며 대나무, 소철과 비교 해 다른 의미로 찬양할 만한 점을 꼽고 있다. 주목할 만한 특징은 바나나의 생물학적 특징을 묘사하는 것 에 그치지 않고 젊은이들이 본받을 만한 사회적 교훈 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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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35.3.21 동아일보

1935년 3월 25일 부터 30일까지 일주일간 춘기여자 상식강좌가 열렸다. 법률, 사회, 신문, 음악, 미술, 위 생관련 강좌와 함께 화초 심는 법에 대한 강의로 구 성되었으며, 이 중 1회 과정으로 마련되었던 원예강 좌가 대성황을 이뤄 다음해 본격적인 원예강좌가 생 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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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10.31 경향신문

관엽식물로 분류되는 열대식물의 월동관리 방법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실려있다. 1950-60년대는 아파트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이며, 주택에서 열대식물을 키우는 데 월동의 문제가 화두로 올라왔 다. 월동 최저 온도가 10도 이상이면 월동 장치가 필 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본문 내용을 통해 당시 겨울의 실내 평균 온도가 10도에 못미치는 주거 환경이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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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3.11 경향신문

1969년 3월 덕수궁에서 남대문까지의 녹지대에는 지금까지 있었던 향나무 등을 뽑고 68년 윌남장병들 이 보내준 종려나무 등의 열대식물을 심었다. 이국적 인 정취를 내기 위해 종려나무를 가로수로 식재했다 고사한 사례는 2011년 포항과 사천에서도 발견된다.


8

1972.8.11, 8.17 동아일보

1970-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관엽식물의 소개가 연재되었다. 1972년 동아일보에서 ‘관엽식물’이라는 이름으로 5회, 1981년 경향신문에서 ‘실내원예백과’ 라는 제목으로 8회에 걸쳐 아열대 원산 식물들을 소 개했다.

① 부겐빌레아 ② 파초일엽 ③ 아스파라거스 ④ 종려죽 ⑤ 자마이카 나팔꽃


9

1990.4.4 경향신문

1980-90년대는 식물을 사용한 인테리어관련 기사 가 급증했다. 본문의 내용을 통해 주거방식의 변화와 더불어 식물의 소비방식도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정원 딸린 집 대신 아파트, 빌라에서 거주하게 되면 서 묘목대신 볕이 잘 들지 않아도 잘 자라는 화초, 관 엽식물의 소비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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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28 경향신문

화초 및 관엽식물은 실내에서 공간을 꾸미고 용도별 공간의 자연스러운 구분을 위해 사용되었다. 칸막이 용 식물로 필로덴드론과 드라세나를 꼽고 있으며, 드 라세나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행운목이다. 현 재 우리가 실내에서 키우는 관엽식물은 이 연장 선에 있으며 실내장식과 공기정화 효과는 열대산 관엽식 물 소비의 핵심 동력원이다.


열대식물의 한국식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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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목

파키라

Dracaena fragrans

Pachira aquatica

우리나라와 기후가 다른 열대에서 자생하기 때문에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물가의 습지에

국내 중부지방 이상에서는 행운목의 꽃을 보기 힘

서 자란다고 해서 ‘물밤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

들다. 이로 인해 행운목이 꽃을 피우면 커다란 행운

난뱅이였던 어느 남자가 길을 가다가 이상한 나무를

이 찾아온다는 속설로 유명하다. 성장속도가 빠르기

발견하게 되고 행운의 징조로 여겨 잘 키운 뒤 나무

는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조건이 맞지 않아 열대

를 되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유래가 있어 돈을 부르는

지방에서 통나무 형태로 수입한다. 톱으로 잘라 식

식물로 알려져 있다. 높이는 30-200cm까지 다양하

재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과는 달리 삭막하게 ‘토막’

며, 두꺼운 줄기와 거기서 뻗은 가느다란 가지가 특

이라고 표현을 하므로 식물단위를 나타내는 표현

징적이다. 줄기는 벽오등처럼 생겼으나 밑 부분은 갈

으로서는 ‘불운’을 내포하기도 한다. 나무의 학명은

색의 곤봉처럼 생겼고, 가지 끝에는 손바닥 모양으로

Dracaena로 암컷 용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drakaina

된 겹입이 달리고 잎은 긴 타원형이다.

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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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트리

녹보수(綠寶樹)

Heteropanax fragrans

Radermachera sinica

중국남부, 인도, 대만, 베트남 등이 원산으로 해발

녹보수는 능소화과(Bignoniaceae)에 속한 교목이고,

1000m의 계곡, 숲 등에서 자생하여 30m까지 자라

중국남부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 유통명은 녹색보

는 나무이며, 두릅나무과 상록관목으로 분류된다. 중

석 나무를 의미하며, 잘 자라주면 집안에 재복과 행

국에서는 부귀수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운을 가져다준다 해서 ‘대박나무’라고도 한다. 작은

부귀수, 황산풍 등으로 불렸으나 대칭으로 나있는 잎

크기의 묘목도 큰 나무의 수형과 닮아 있어 실내 장

의 모양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하

식에 효과적이며, 포름알데히드, 암모니아 제거 효능

여 행복나무라고 부른다. 행복나무의 학명 ‘Hetero’,

이 뛰어나 나사(NASA)에서 선정한 공기정화식물 50

‘Pan’, ‘axo’, ‘fragrance’ 는 순서대로, “서로 다른, 모든

가지 중 21위에 올랐다.

것을, 치유하며, 향기를 뿜는다”는 의미이며, 뿌리와 나무껍질이 치료용, 약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붙은 이 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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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갈고무나무

금전수(金錢樹)

F. benghalensis

Zamioculcas zamiifolia

이름에 있는 ‘벵갈’은 인도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스

멕시코, 탄자니아 원산의 반음지 식물로 집안으로 돈

리랑카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인도, 동남아시아, 말

이 들어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금전수의 원산지는

레이제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열대지역에서 자생

멕시코지만 봉우리가 하나 생길 때마다 재물이 늘어

한다. 뽕나무과의 상록다년초로 분류되며, 공업용 고

난다는 속설이 있어 중국에서 장사를 하는 집에서 필

무를 얻기 위하여 많이 재배되었으나 최근에는 관상

수로 키우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업하거나

용으로 많이 재배된다. 열대에서는 생장속도가 아주

개업하는 곳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금전수인데, 역설

빨라서 5년 정도 키우면 집안의 재산이 될 만큼 거목

적으로 과거에는 금전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점

이 되며 기근을 많이 낸다. 이런 이유로 인도에서는

액질 때문에 곤충, 파리가 꼬여 똥나무라고 불렀다고

장수와 풍요를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기고 있다.

한다.

나무에서 핀 꽃은 ‘영원한 행복’이라는 의미를 담고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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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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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베리아, 고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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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야자


17 열대 매뉴얼


우산으로 야자나무를 만드는 간단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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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사용하지 않는 우산 (가급적 초록색) 가위 사람 키 정도의 지관 파라솔 받침대

Step1 우산 준비

Step2 우산 자르기

1 우산을 폅니다. 초록색 우산이 아닌 경우 이 단계에

우산을 자르기 전에 모양에 주의해야 합니다. 야자나

서 초록색 물감으로 우산의 앞 뒷면을 칠합니다. 찢

무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잎의 형태에 따라 크게

어져서 사용하지 않게 된 경우 찢어진 모양을 고려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려는 야

제작해야하므로 위치를 확인합니다.

자나무는 Queen Palm Type입니다.

2 건강한 야자나무 잎의 끝이 둥그런 모양인 것을 고려 해, 먼저 우산에 잎의 모양을 그립니다. (그림의 점선 부분을 참고)

3 그려놓은 선을 따라 우산 살의 사이를 잘라냅니다. 우산에 남아있는 천이 야자나무의 잎 부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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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3 야자나무 잎 만들기

1

2

남아있는 천을 야자나무 잎의 모양이 나도록 조각 내

잎의 결을 만들기 위해 반을 접어 자국을 내주고 더

어 자릅니다. Queen Type의 야자나무는 깃털형태의

자연스러운 잎의 모양을 위해 끝을 뾰족하게 잘라줍

아름다운 잎이 특징입니다.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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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4 펼치기

Step5 줄기와 고정하기

여기까지가 만들기의 전부이지만 더 나아 보이게 하

준비해둔 지관을 야자나무의 줄기로 사용합니다. 지

기 위해 우산을 3/4만큼만 펼칩니다. 테이프나 와이

관과 우산을 연결하기 위해 먼저 우산의 손잡이 부분

어를 이용해 고정시킵니다.

을 잘라줍니다. 지관의 윗부분에 우산을 꽂고 파라솔 받침대를 이용해 세웁니다. 파라솔 받침대가 없으면 세울만한 다른 것을 이용해도 좋습니다.


21 종려나무와 도시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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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용으로 재배되던 열대식물 종려나무1가 한국에서 경조사 화환의 가장자리 장식으로 쓰이게 된 이유는 표면적이 넓고 제법 단단한 잎을 가졌기 때문이었 다. 경조사 때 주고받는 화환문화와 더불어 남부 지방에서는 종려나무를 심는 농가가 늘었고 꽤 높은 소득을 올리기 시작했다. (심은지 8-9년 후에나 충분한 크기의 잎을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경조사 화환은 검소한 생활을 장려하는 정책에 따라 그 수요가 줄

1. 학명 Trachycarpus excels. 야 자나무과의 상록교목. 중국, 동남 아시아가 원산지이다. 가지가 없 고 높이 3-7m 자라며 흑갈색 섬유 상의 잎 집으로 싸여 있다. 잎은 원 줄기 끝에 달리고 둥글며 지름 5080cm로서 부챗살 모양으로 갈라 지고, 갈래조각은 맥을 중심으로 접힌다.

었다가 90년대 말 가정의례법2이 폐지되면서 다시 빠르게 늘었는데 그에 따라 화환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종려나무 잎을 대신할 넓고 얇은 초록색 플라스틱 도 생산되기 시작했다. ‘도시루(とうしゅろ3 )’라고 불리는 이 넓고 납작한 플라 스틱은 종려 잎에 비해 비쌌지만 물을 주지 않아도 되고 재사용이 가능한 이점 이 있었기 때문에 화훼 상인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도시루는 생산되고 얼마 지 나지 않아 화환 시장을 장악했다. ‘도시루’라는 말은 원래 종려나무의 일본식 표 기이나 상인들 사이에서는 화환 장식에 쓰이는 인조 잎을 일컫는 말로 굳어졌 는데 같은 뜻인 두 낱말이 우리나라의 특정 업계에서 지칭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매우 일상적인 것에서 맞닥뜨린 이러한 사실은 사고에 있어 서 일종의 틈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종려나무 잎’에서 ‘도시루’ 로의 전환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서 당연 한 교체 과정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 과정에 보여지는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일상

2. 가정의례에 있어서 허례허식을 없애고 그 의식절차를 합리화함으 로써, 낭비를 억제하고 건전한 사 회기풍을 진작하기 위한 법.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3. とうしゅろ (唐棕櫚) 당종려 일 본에서 중국산 종려라는 뜻으로 당(唐)종려라고 한다. 당종려는 왜 종려 (倭棕櫚)에 비해 키가 작고

사물을 거쳐 우리들에게 작용하는 여러 외부적인 힘을 반추해볼 수 있을 것이

잎이 딱딱하여 밑으로 처지지 않

다.

는다. 4. 모든 사물이 형상의 재현을 통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물들은 더 이상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지 않으

해서 존재한다면 플라톤은 이 중 에서 좋은 복사물과 나쁜 복사물

며 한 사람의 의지와 결정을 통해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

을 구분한다. 즉 형상에 일정 정도

계와 맞물린 현대사회에서 사물의 형태는 내부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씩 참여하고 있는 사물과 형상을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기업에 의해, 그리고 그 제품이 팔리는 사회 안

다. 이정우 외, 『새천년 인문학의

에서의 연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과 기능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고 기

신패러다임』, 제 1집, 오름, 2002

계들과 리듬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기능과 심미성, 그리고 경제의 요소가 중 간지점에서 합의 본 상태인 ‘ㅡ스러운 것’ 들이 우리의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적 세계관에 따랐을 때 본래적인 사물에서 멀어지고 있는 나쁜 복사물4들에 불과한 이 사물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과 균형 잡힌 관계를 맺 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형태일 것이다.

전적으로 거부하는 사물을 구분한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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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나무 잎의 대체물로 제작되기 시작한 도시루는 종려나무 잎을 모방했지만

5. 네 가지 다른 제조사의 도시루.

닮지는 않았다. 화환을 장식하는 기능에 충실하도록 변형된 형태는 이제 어떤 식물의 대용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실체가 되었다. 그 스스로 실체가 되었 다는 것은 계속해서 복제되고 있는 도시루를 보면 실감하게 되는데, 처음 만들

건영

덕전

중원

한플라워

어진 도시루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먼저 생겨난 하나를 모델로 삼아 계속해 서 다른 것들이 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 종려나무 잎을 닮지 않은 도시루는 이렇게 종려나무 잎과 분리되어 화환 의 일부로 귀속되었고 ‘화환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잎사귀 모양 초록색 플라 스틱’으로 고유의 자리를 점유하게 되었다.

6. “국산 종려잎 대신 중국산 플라 스틱 사용 증가”,『한국 농어민 신 문』, 2007년 4월 9일

몇 해 만에 화환시장을 장악한 도시루로 인해 종려나무 잎을 생산하던 농가의 농사는 헛수고가 되었고 판로가 막힌 농가들은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한국 농 어민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한 농가대표는 어려운 실정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볼만한 이야기를 하였다. 「 … 문제는 각종 행사에 생화를 3단 화환으로 주고받는 대다수의 소비 자들이 화환 잎이 국산 종려 잎이 아니라 중국산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잘 모르 고 있다는 점이다. … “플라스틱 잎으로 화환을 만들려면 꽃도 조화를 택하라”, “꽃만 생화로 하고 이파리는 은근슬쩍 중국산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 한 소비자 기만행위이다.”…」 6 그리고 ‘한국백합생산자연합회’의 지하철 광고7 를 보아도 우리는 화환문화와 그에 수반된 생산물에 여러 의미를 투영하고 있 는 듯 보인다. 백합농가의 말대로라면 경조사에 쓰이는 화환이기 때문에 생화 사용이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고, 종려농가의 말에 따르면 소비자는 조화사용을 통해 기만당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환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 화 또는 조화의 사용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화환은 조의나 축하에 대 한 여러 가지 표현방법 중 편리한 한가지로 작동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잎을 닮지 않은 초록색 플라스틱이 둘러싸고 있고, 가짜 꽃이 섞여 있음에도 화 환의 소비와 생산이 지속되도록 지탱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이해 하고 있는 소비는 생활을 위해 물자와 서비스를 소모하는 것, 이를 위해 화폐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하며 각 개인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향유하기 위해 소비한

7. ‘한국백합생산자협회’의 지하철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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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점에서 마치 소비는 자율적인 주체의 활동처럼 보이지만 어떤 대상을 원 하는 욕구가 소비의 체제가 작동되기 위한 윤활유라는 면에서 자신도 모르는

8. J. 보드리야르,『소비의 사회』 (1970),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2013, pp.112-114 참조.

사이에 가치의 생산 및 교환의 보편화된 체계 속에 포섭되어있는 것이다. 이러 한 관점에서 소비는 향유의 기능이라기보다 생산의 기능을 하는 것이며8, 화환 의 구매자들은 화환을 구성하는 모든 생산물(화환 받침대, 생화, 조화, 도시루 등과 같은) 을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9. 최근 일회성 화환의 대안으로 사용되고 있는 쌀화환. 모습을 살 펴보면 가운데 꽃대신 쌀이 놓여 있고 그 뒤에 하얀 국화꽃이 인쇄 되어있다. 또한, 가장자리를 둘러 싼 도시루와 화환의 정중앙에 달

화환은 보통 지인의 경사스러운 날이나 아픔의 날에 축하나 애도의 의미로 전 달하는 것이다. 마음을 매개하는 상징물이지만 지인이 소식을 보내오면 반자동 적으로 주문해 보내는 화환의 표면에서 (직접 꽃을 골라 배열하는 것이 아니기

려있는 리본을 볼 수 있는데, 종려 잎과 꽃이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리본을 보면 화환을 유지하고 있었던 실 체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특히 조의를 표할 경우 비보를 미리 알고 꽃을 준비할 수 없으므로) 진 심 어린 애도나 축하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환을 주고받는 문 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애도나 축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화환의 정확한 기호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화환은 구매한 이후에 구입한 사람 혹은 받은 사람 둘 중 어느에게도 남지 않는 특이한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것마 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환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화환 에 달려 잠시 동안 행사장 앞을 지키고 서있는(발신자의 이름이 남아있는, 분홍 색 혹은 흰색의) 리본이 화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9 이 리본은 행사장 입구에서 행사주체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궤적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며 가족들의 학력이나 발신자의 권력 등을 전시한다.

소비의 체계에서는 최종적으로는 욕구와 향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 및 차이의 코드에 근거하고 있는데10 화환의 경우에는 알고 있는 지인이 보내온 (소속을 알 수 있는)문구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구별 짓는 것이 주요한 기호로 작동한다. 때문에 앞서 이야기되었던 윤리적 잣대에 의지한 농가의 호소는 공 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구별 짓기 위한 우리의 욕구는 화환문화를 만들고, 그 문 화는 화환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이에 따라 화환을 구성하기 위해 만들어지 는 도시루 또한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도시루는 종려나무라는 원본에서 많이 떨어져있지만 실제보다 더 살아있는 것이며 앞서 살핀 소비의 욕망을 통 해 자라나는 한 그루 나무일 것이다.

10. J. 보드리야르, 위의 책 p.1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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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단행본

이정우 외, 『새천년 인문학의 신패러다임』, 오름, 2002

최효찬, 『하이퍼리얼쇼크-이미지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위즈덤하우스, 2011

리처드 J. 레인, 『장 보드리야르 소비하기』, 곽상순 역, 앨피, 2008

J.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1970),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2013

신문기사

"국산 종려잎 대신 중국산 플라스틱 사용 증가", 『한국 농어민 신문』, 2007년 4월 9일

온라인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ncykorea.aks.ac.kr


26

건영 도시루

덕전 도시루

중원 도시루

한플라워 도시루


27 이용 가능한 나무


열대식물 지형도

goo.gl/gmez7p

28


29

서울 성북구 장위로 28길 2-1


30

서울 서초구 방배로43길 30


31

서울 노원구 석계로 49, 108


이용 가능한 나무

32


33

<이용 가능한 나무> 수집한 열대식물을 각목으로 조각(행운목, 파키라, 녹보수, 고무나무), 가변설치, 2015


34


35


조혜진

Hyejin Jo

hyejin.Joc@gmail.com

2015 동대학원 조소과 졸업

2011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3 <흔들리는 이야기>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2 <유용한 사물> 유중아트센터, 서울

단체전

2015 <살찌는 전시> 공간291, 서울

2014 <캬바레큐리오시티> 복합문화공간 에무, 서울

2014 <텍스트 풍경> 아뜰리에35, 화성

2014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순간에 알 수 있는 것들> 스페이스 닻, 부산

2014 <상실의 기록> 성북예술창작터, 서울

2014 <루프탑 크릿 論/展> 닥터스트레인지러브, 서울

2013 <팩토리 애뉴얼리포트> 갤러리팩토리, 서울

2013 <동방의 요괴들_트라이앵글 아트페스티벌> 스페이스K 광주, 광주

2013 <동방의 요괴들 Best 10인 소개전 : NEW ROMANCE> 스페이스K 과천, 과천

2013 <에콜라주> 수원미술전시관PSII, 수원시 어린이생태미술체험관 풀잎, 수원

2013 <움직이는 풍경> 코발트+팩토리, 서울

2012 <99℃+1>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2 <위대한 유산 : 공동의 천> 수원천, 수원

2012 <3회 공장미술제> 장항읍 미곡창고, 서천

2012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1 <Exodus_다시보세>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서울

2011 <Drapture>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관A동, 서울

2009 <증강기억> 스페이스 하이브, 서울

수상 및 기금

2013 아트인컬쳐, 동방의요괴들 선정

2012 서울문화재단, NArT(유망예술육성 지원사업) 선정

2011 유중아트센터, 우수 신진작가 장학지원 선정


한시적 열대 Temporal Tropic 2015.5.30 - 6.28

기획 : 노해나 코디네이터 : 박지아 디자인 : 물질과 비물질 waterain.kr

발행일: 2015.5

케이크 갤러리 서울시 중구 황학동 59 솔로몬빌딩 6층 cakegalley.kr


Temporal Tropic

Hyejin Jo Solo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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