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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진 KANG, JIN GRAPHIC DESIGNER BASED ON SEOUL, KOREA MEMBER OF ORDINARY PEOPLE 1986 CHUNG-JU, SOUTH KOREA JINEOUS.COM ORDINARYPEOPLE.KR JINEOUS@GMAIL.COM FB.COM/JINEOUS TWITTER.COM/JINE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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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된 것, 다른 것, 되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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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는 비정기적으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작품을 모집합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집한 작품은 빠짐없이 모두 엮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입니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의 공존을 인정하는 신입니다. 책, ‘아브락사스’는 기준을 두지 않고 모든 작품을 싣는 지면이 되고자 합니다. abraxas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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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흑백 이미지 아브락사스의 스물한 번째 주제는 ‘흑백 이미지’입니다.
이미지 제작자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 이미지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지가 전하는 메시지는 제작자의 메시지만이 아닙니다.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 때문이죠. 이는 곧, 이미지의 의미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미지를 통해 생겨나는 이야기 또한 무한할 것입니다. 이미지와 그 위에 덧붙여지는 의미와 이야기들. 이들을 한 권의 책을 엮어본다면 어떨까? 그럼 그 책은 여러 사람의 메시지가 담긴 하나의 ‘공동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브락사스 스물한 번째 주제는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합니다.
스물한 번째 아브락사스는 여섯 개의 흑백 이미지를 주제로 삼습니다. 이미지는 차례로 하나씩 공개합니다. 공개 시에는 작가와 작가의 의도를 공개하지 않은 채로 해당 이미지에 대한 해석과 이야기를 모집합니다. 모집한 해석과 이야기, 그리고 그 시작점인 이미지와 작가의 의도를 한 권의 책으로 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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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흑백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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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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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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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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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흑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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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열세 시간이었어 -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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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론 -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 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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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등급 - 하아(河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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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손 - 채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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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동맹의 전쟁 - Eune Jan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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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am, 4pm - 김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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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not a love song - 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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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ixt and between -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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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달, 혼란스러운 도시 - 심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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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기호 - 문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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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rial texture result - noori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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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oneplus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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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별 - 김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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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열세 시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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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ccac.127@gmail.com 이번 아브락사스 주제가 공개된지 고작 열세 시간만에 메일을 보냅니다. 적어도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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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혼났어.” 배터리가 나갔다는 네 이야기를 듣기까진.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긴 했겠지. 내내, 꺼진 핸드폰만 붙들고 있었으니까.”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혹은 포기해야할지. 적당한 묵살이 그나마 널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단 걸, 나 또한 차차 깨닫는 중이었어. 그깟 충전 케이블을 구하지 못했냐는 타박을 참았어. 회사 전화로 걸면 되지 않았냐고,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냐고, 화를 내지도 않았어. 그냥 참았어. 대신 주말 약속 얘기를 했지. 그러고 보면, 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 “야, 그래도 내가 부산까지 내려가는데, 낮에만 만난다는 게 말이 되냐?” 넌 정말 쉽게도 화를 냈지. 우리가 멀기도 멀지만, 시간이 문제는 아니었는데. 나까지 굳이 화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그만둬버리면 차라리 서로에게 좋았을 텐데. “나도 오빠가 자고 가면 좋지, 그게 오빠도 편하고. 하필 동생이 이번 주에 돌아오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너는 조금 이따 통화하자며, 끊는 소리가 반대편까지 들리게끔 핸드폰을 세게 닫았어. 그리고 다시 고작 열세 시간이었어. 너는 연락이 없었고, 나도 기다리기만 했어. 그, 조금 이따, 를.
“회사에서 혼났어.” 넌 참 헤프게도 웃으면서, “그래도 그렇지, 게임 졌다고 정말 이 꼴로 회사에 보내냐.” 너는 끝내 지켜냈다고 보여주듯, 머리를 묶은 고무줄을 풀면서, 아아, 소리를 냈어.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퇴근하면서 다시 묶은 거 아니야? 정말 하루 종일 짬매고 있었어?” 그래도 너는 참 헤프게도 잘 웃었으니까 그냥 믿고 싶었어, 뭐든. “아아 배고프다, 야 뭐야 찌개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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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었냐?” “오빠.” 훌렁 옷을 바닥에 던져도 마냥 예쁘기만 했던 그때의 너를 불렀어. “나 어제 말했던 그 지방 발령 있잖아, 아 표정이 벌써 왜 그래, 근데 뭐 KTX 타면 금방이기도 하고, 딱 일 년만 있으면 금방 다시 돌아오니까. 우리 잘할 수 있을 거야? 그치?”
“아마 회사에서 혼나겠지.” 너는 달뜬 숨을 고르지도 못하고서, “당장 참을 수 없어서, 회사고 뭐고 보고 싶었어.” 그때 우리 잡고 있던 손을, 너는 기억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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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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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 emdtls.com 예비역 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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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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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河我) facebook.com/geomeun.ibsul 현실, 장편소설, 단편소설의 세 가지 세계를 넘나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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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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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준 facebook.com/Chaeheejoon9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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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동맹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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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e Jane Jang 반지의 제왕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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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첫 피조물인 요정(아이누부터 엘프까지)들은 가장 수명이 길고 현명했지만 간혹 사우론과 그의 군주인 모르고스처럼 신의 능력에 대항하려 하는 강력한 세력들이 생겨나곤 했다. 난쟁이들은 요정이나 인간과 다르게 신이 아닌 아울레라는 대지를 다스리는 발라에 의해 만들어졌다. 땅속에서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나 타고난 성격, 기질들은 악의 세력들과 비슷하지만 요정이나 인간보다 훨씬 고집이 세고 의리가 있어 오히려 악의 세력과 가장 먼 종족이 되었다. 인간은 요정과 난쟁이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지녔지만 수명이 짧고 심약했다. 그래서 악의 세력에 쉽게 굴복하기도 했지만 때론 가장 좋은 아군이 되어 전투를 승리로 이끌곤 했다.
사우론이 반지를 잃은 이후 한동안 평화로웠던 중간계가 다시금 사우론의 군대로 인해 어둠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악의 세력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지만 요정들은 벌써 가운데 땅을 떠나 있었고 난쟁이들은 사우론의 군대에 의해 많은 종족을 잃은 후였다. 인간들 중 절반은 악으로 병들어 사우론의 종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간달프는 중간계를 구해내기 위해 반지 원정대를 결성하기로 한다. 호빗들이 반지를 암흑의 탑으로 운반하는 동안 인간과 요정, 난쟁이들은 마지막 동맹을 맺어 악의 세력과 대규모의 전쟁을 하게 되고 결국 반지의 파괴와 함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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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am, 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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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디 poonk3@gmail.com instagram_bandikong 애매모호합니다. 그럴수록 자세히 볼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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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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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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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not a love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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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야 @americanodal 겨울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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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손을 잡고 걷다 보니 숲의 중간쯤에 온 것 같았다. 녀석은 여전히 얼굴에 방독면을 쓰고 다녔다. (처음부터 방독면을 쓰고 다녔다.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어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앞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애는 내 눈이 되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주는 동시에 내 연인이자 친구였다. 그 애는 이곳이 온통 잿빛이라고 말해주었다. 색이 다른 건 우리뿐이라는 것도.
여태껏 큰 위협적인 일과 부딪힌 적은 없다.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빼면 변화가 없다. 그래서 여길 금방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한 건 사실이다.
이곳은 알 수 없는 곳이다. 우리보다 여기에 먼저 왔던 사람들의 흔적을 보면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가끔 숲을 헤매다 보면 우리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아주, 아주 아주 드문 일이다. 여태껏 딱 세 명을 만났다. 그들 모두 이곳을 탈출하려고 했던 사람들이고 그 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 숲에서 보낸 시간이 몇 달은 된 것 같다. 시간관념이 모두 사라져서 사실 한 달인지도 모르고 일주일인지도 모른다. 일 년일 수도 있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수록 모든 게 꿈같다. 가끔은 꿈이라고 믿고 싶다.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뭐지? 뭐였더라. 오히려 비현실적인 곳에 머물다보니 현실이 더 이질적이다. 우리가 돌아가면 과연 잘 적응할까? 이런 고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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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쓸데없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일과는 단순하다. 해가지면 안전해 보이는 곳을 찾아서 잠을 청하고 해가 뜨면 바로 움직인다. 그래 봤자 숲을 헤매는 게 다지만,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서 우린 계속 움직였다. 움직이다 보면 찾지 않을까 하고.
얼마 전까지는 나름대로 숲이 평화로웠는데 최근 며칠 사이에 굉장히 불안정해졌다. 천둥이 마구 치고 비가 내리고 지진도 나고 어디선가는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리고 이제 밤이 되었다. 적막과 어둠뿐인 그런 밤. 어차피 나에게는 늘 어두운 밤. 그런데 잠들기 전에 평소와는 뭔가가 달랐다. 속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K에게 말했다. 우리 여기서 탈출해도 꼭 오랫동안 함께 하자고. K는 대답 대신 방독면을 벗더니 아주 아주 아주 따뜻하고 포근하게 키스를 해왔다. 다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
우린 서로 잘자, 하고 인사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정말 기묘한 꿈이어서 나는 K에게 어서 꿈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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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을 떴을 땐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다른 세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마구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앞이 보였다. 여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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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ixt and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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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www.superemotion.com 질풍노도(疾風怒濤)의시기를 겪고 있으며,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일, 재밌는 일을 하고자 다방면에 손을 뻗어가는 전방위 작업자입니다. BX, UX 기반의 디자인, 그래픽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사진, 아트웍 작업을 주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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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적(動的)인 동시에 정적(靜的)이며 추상적 구상이거나 구상적 추상일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오름인지 내림인지 시작인지 끝인지 그 어느 것 일수도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요소와 면의 구성을 통해 이를 바라보는 각자의 해석이 더해짐에 따라 비로소 해석품으로 작품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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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달, 혼란스러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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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예 @wakeupslo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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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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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운 blog.naver.com/evening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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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새엄마에게 문신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게 되었다. 막연한 동경 정도로 표현했는데 새엄마는 내 말을 듣자마자 내일 당장 문신을 하러 가자고 했다. 일반적으로 자녀가 문신을 하겠다고 하면 (말을 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되겠나) 미쳤니, 내지는 아빠한테 이른다, 는 말, 또는 등짝을 후려치는 매서운 손길이 부록처럼 딸려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새엄마는 열린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새엄마’라서 그런 건지, 보통의 50대 엄마들과는 사뭇 달랐다. “아는 사람 중에 타투아티스트가 있거든. 지금 연락해볼까?” 새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좀 더 생각해보고 이야기해주겠다고 하니, 언제든 말만 하라며 신이 나 말하는 것이 호들갑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 말이 그저 저녁 식사 후 나누는 가벼운 담소에 지나지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새엄마는 문신에 관해 생각해봤느냐고 정확히 세 번을 물었다. 이틀에 한 번꼴이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나는 새엄마가 문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 더 생각해볼게요, 라고 말한 뒤 잘 자던 잠을 몇 시간 설칠 정도로 꽤 고민했다. 나에게 문신이란 막연하다고는 해도 동경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그런 일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더 의욕을 불태우는 새엄마를 보니 기분이 좀 미묘했다. 그리고 그렇게 동경하던 것을 언제든 이룰 수 있는 상황이 되니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나는 이것을 정말 원했던 건가’ 라는 생각까지 들자 하루라도 빨리 결론을 내고 싶었다. 그럼 만약 문신을 하게 된다면 어떤 그림을 새겨야 할까. (글씨는 싫었다. 문구를 생각하게 되면 더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아마 도안이 준비돼 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딱 드는 도안이 있을까. 이왕 하는 거, 최상의 만족을 얻고 싶다. 그러니까 이건 한 사람이 동경이라는 걸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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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욕망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그림을 그렸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새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그림 실력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내게는 멀쩡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생각나는 이미지를 계속 종이에 옮겼다. 그러니까 나는 이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문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몇 개 되지 않는, 형편없는 그림은 덤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신중해지고 싶었다. 동경하는 것을 이루는 동시에, 잃게 된다는 점에서 무엇 하나도 망쳐서는 안 됐다. 새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며 그 타투아티스트에게 연락을 취해달라고 하자, 새엄마는 나이답지 않은 청량한 웃음을 지으며 이미 연락을 해두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문신 이야기를 하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나 어쨌다나. 새엄마가 왜 게임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신 하나 하는데 무슨 사설이 그리 장황하며, 그렇게 긴 시간을 고민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것보다야 나았다. 다음 날, 새엄마와 나는 늦은 점심을 먹고, 새엄마의 흰색 소나타에 몸을 실었다. 지인이라는 타투아티스트의 가게는 반년 전 이전을 하여 나와 새엄마 모두에게 초행길이었다. 새엄마는 시동을 걸기 전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서울시 중구…, 시간이 꽤 걸리길래 내가 입력할게요, 불러보세요, 라고 하자 새엄마는 입을 앙다물고는 혼자서 계속 터치패드를 눌렀다. 이럴 때 보면 다른 50대 엄마들과 다를 것 없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흐물흐물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새엄마 입에서도 비슷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새엄마는 나에게 웃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더 크게 웃었다. 좋은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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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시간여를 달려 가게가 있다는 동네에 도착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런 곳에 타투샵이 왜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무지막지한 경사도를 자랑하는 오르막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개발의 손길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간 산동네였다. 심지어 그곳은 꼭대기도 아니었다. 동네 뒤편으로 더 깎여 있는 오르막길이 있고 약 200m 전방에 작은 집들이 따닥따닥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 별난 사람이란 걸 알지만, 이번에 무슨 심경에 큰 변화가 있었나 보다. 차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장맛비에 잠실 구장이 잠겨도 여기는 안 잠기겠다.” 새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작은 산동네라고 해도 사는 사람은 꽤 있는 모양이었는지 5층 높이의 공용주차타워가 보였다. 가게는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될 것 같다고, 새엄마는 주차장 입구에서 나를 먼저 내려주었다. 나는 새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동네 구석구석을 조금 더 자세하게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건 대부분이 거주지로 쓸만한 작은 주택들, 가게라고 부를 만한 건 작은 슈퍼 하나와 정말 오래돼 보이는 간판을 단 세탁소 하나가 전부였다. 길 위에 있는 사람은 그때까지 나 혼자였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는 관용어가 딱 들어맞는 풍경이었다. “차도 별로 없네. 뭐하러 5층씩이나 만들었다니?” 주차타워 쪽에서 새엄마가 내려오며 한 말이었다. 혹시 동네 사람들 대부분 나들이를 간 참이고, 알뜰살뜰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딱 집어 말하기도 뭐한 편견에 사로잡혀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잠깐 들었다. 새엄마는 휴대전화를 꺼내 타투아티스트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주차타워 맞은 편 계단이 보이는 골목에서 거구의 남자 한 명이 걸어나왔다. 한 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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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볼에 붙은 큰 매미처럼 보였다. 까만 뿔테 안경을 썼고, 크지 않은 눈을 하고 있어서 인상이 순하긴 했지만, 작은 동네 전체가 이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해 볼만할 정도로 몸집이 몹시 컸다. “라라!” 새엄마는 반색을 하고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했는데, 남자는 새엄마와 가볍게 포옹을 하고는 곧바로 나에게 “라라라고 해요. 반가워요!” 라며 손을 내밀었다. 정말 크고 두툼한 손이었다. 손끝도 뭉툭해서 이런 손으로 섬세한 문신 작업 같은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아니, 그보다 어떻게 라라라는 이름을 쓰게 된 걸까. 나이는 30대 말, 40대 초 정도로 보여 새엄마와는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된 건지도 궁금했다. 내가 손을 잡는 둥 마는 둥 하고 아, 예, 하고 모기 만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라라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 인사는 이쯤하고 가게로 가요. 오늘 정말 귀한 손님이 오셨어.” 라라가 그간 새엄마를 몹시 그리워한 듯 반가워해서 나는 잠시 두 사람 사이를 의심했다. 하지만 새엄마의 성격상, 라라가 옛날 애인이었다면 나에게 솔직하게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라고 귀띔을 해주고도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의심은 길게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라라는 새엄마가 좋아할 만한 인상이 아니었다. 새엄마는 아빠처럼 호리호리하면서 차가워 보이는 인상에다 다소 무뚝뚝한 성격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재혼 초반부터 내 귀가 닳도록 강조했다. 아무튼, 새엄마와 나는 라라의 넓고 넓은 등을 따라 드디어 그의 가게에 입성했다. 라라의 가게는 일반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었다. 분명 계단을 올랐는데 가게 문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또 나오는 희한한 구조였다. 다른 세대가 살고 있다는 2층은 바깥에 있는 단층 집들과 높이가 같았고, 가게 안은 계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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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도 넘게 걸어 내려가야 했다. 지하인가 싶었더니, 대문을 지나자 어디선가 햇볕이 들어 하얀 시멘트 벽이 밝게 빛났다. 건물 외벽으로 창문이 서너 개 나 있고, 좁은 복도가 있었다. 복도 옆으로 세 칸으로 나누어진 공간이 있었고, 천장이 끝나는 복도 끝에는 수돗가가 딸린 작은 마당까지 있었다. 천장을 보니 기역 모양 건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천장이 없는 곳은 채광판을 올려 비를 막고, 하늘을 볼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 “구조가 되게 특이하네요.” 나는 채광판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고 감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다 이런 곳에 가게를 냈어. 사람이 오긴 오는 거야?” 옆에서 새엄마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투로 물었다. 라라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니, 모을 수 있는 돈은 다 긁어모은 것 같고…. 오고 싶은 사람이 찾아오는 거지. 누님이나 여기 자제분처럼.” 라라는 새엄마처럼 묻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상대한 듯 보였다. 새엄마와 나는 라라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 (아마도 예전에는 툇마루와 이어진 거실이었던 거 같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라라는 맞은 편에 있는 스툴 위에 앉았다. 작지만 다리가 아주 튼튼해 보이는 스툴이었다. 라라는 응접실에 들어서고부터 계속 우물쭈물 거리더니 끝내 새엄마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누님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오늘 꼭 해드리고 싶은데, 친구 아버지 장례식이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 할 거 같아. 아침에 갔어야 하는데 누님이 온다고 해서….” 라라가 말끝을 흐리자 새엄마는 소파에서 엉덩이를 잽싸게 떼더니 몸을 기울여 라라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으이구,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그럼 작업은 누가 해주는 거야?” 새엄마의 대답을 들은 라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응접실 왼편에 난 문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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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불렀다. “양갱!” 나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을 슬며시 뗐다. 양갱이란 이름은 또 뭘까 싶었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많아도 스물한, 두 살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인사해라.” 라라는 조금 전과는 달리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고, 양갱이이라는 사람은 별말 없이 꾸벅 허리를 굽혔다. “량개우위라고 중국에서 온 친구인데 한국 오자마자 내가 4년 데리고 있었어. 그냥 양갱이라고 부르면 돼.” 새엄마는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고, 내 손에서는 점점 땀이 나고 있었다. “이 친구 내가 가르쳤어. 잘해. 누님은 본 적 없나?” 새엄마는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 아…. 마지막에 가게 들렀을 때 휴가 갔다는 직원이 이 친구 아냐?” 라라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 친구야. 광찬이도 올 거야. 누님 광찬이는 몇 번 본 적 있지? 지금 심부름 가 있어. 아무튼, 양갱은 한국말도 잘하고, 가게 돌아가는 것도 전부 잘 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실력도 내 오른팔 하나 몫은 된다구.” 라라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양갱이라는 사람을 은근히 띄워주며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저기…, 난 이만 가봐야 해서. 누님, 정말 미안.” 라라는 새엄마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눈길은 내 쪽에 조금 더 둔 것 같았다. 새엄마는 라라의 어깨를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는 것이 아니라 주먹으로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쳤다. 라라는 과장된 몸짓을 하고 아프다며 엄살을 떨다가 (정말 아파 보여서 내 어깨가 움찔거렸다.) 응접실 문밖으로 나갔다. 나는 근심 가득한 눈으로 새엄마를 쳐다보았다. “별 수 없잖니. 이제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어. 내가 복수도 해줬잖아.” 새엄마는 주먹을 들어 내 눈앞에 흔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옆에 서 있는 양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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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 부위에 하실 건가요?” 양갱은 나를 향해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국에 겨우 4년 있었다더니 평범한 한국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억양과 발음을 구사해서 놀라웠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뿐, 나는 양갱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 엄마가 잘 는 사람의 가게라서가 아니라, 잘 아는 그 사람에게 시술을 받을 줄 알고 결정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섣불리 끈을 매기 시작하면 꼬이는 건 시간 문제일 거라고, 겁으로 들어찬 내 가슴이 하는 말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입은 그런 의지와 크게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그게… 저… 손목에 하려고 하는데요.” 양갱은 내 말을 듣더니 턱 밑에 손을 괴었다가 그 손을 내 앞에 쑤욱 내밀었다. “손목 좀 볼 수 있을까요.” 양갱의 말에 나는 순순히 손목을 내보였다. “상처 같은 건 없으시네요. 상처 감추는 문신도 있거든요. 으흠. 처음 하시는 거니까 너무 노출되지 않은 곳에 해보시면 어때요?” 곁에서 양갱의 말을 들은 새엄마가 말했다. “그래. 이 분 말대로 하자. 아직 아빠한테 말도 안 했고…. 아빠가 잘 못 볼만한 곳에 하자!” 그럴 거면 하지 말자고 말리던가….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아예 나도 잘 못 볼만한 곳에 새겨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목덜미에 할게요. 어차피 크게 하지도 않을 거고….” 양갱은 내 결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문 쪽에서 비켜섰다. “나는 광찬이 오면 받을란다.” 새엄마는 내 어깨를 부여잡더니 나를 양갱 옆으로 밀어냈다. 나는 새엄마에게 떠밀리면서 재빨리 소리쳤다. “그, 그럼 나도 광찬이란 사람한테 받을래요.” 내가 양갱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자 새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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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에게 실례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나를 나무랐다. 나는 새엄마의 말에 힘이 빠져 축축해진 손을 바지춤에 아무렇게나 닦고 스스로 작업실 문을 열었다. 나로서는 모든 것을 체념한 행위였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양갱은 나를 작은 테이블 쪽으로 안내했다. 테이블 아래엔 아까 라라가 앉은 것과 똑같은 스툴이 있었다. 나는 스툴 위에 힘없이 걸터앉았다. “녹차와 믹스 커피 중에 어떤 것을 드릴까요.” 양갱이 물었다. 마치 외워서 하는 말처럼 별 억양 없이 말하는 바람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는 기침을 하는 척했고, 양갱은 가만히 서서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저, 그냥 물 한 잔 주세요.” 양갱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뒤편에 놓인 정수기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물을 받아 가져다주고는 다시 정수기 옆에 있는 책장 쪽으로 몸을 옮겼다. A4 사이즈의 스크랩북 같은 것을 두 권 정도 꺼내더니 드디어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양갱이 가져온 것은 문신 도안이었다. “이건 라라 형 오리지널이구요, 이건 제 거예요. 단순하고 일반적인 건 이 뒤쪽에 있어요. 폰트도 한 번 보세요.” 양갱은 차분히 도안을 넘기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라라가 그린 그림은 화려하면서 호쾌한 느낌이 들었고, 양갱은 주로 꽃이나 곤충 그림을 즐겨 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은 없었다. 용기를 내어 양갱에게 물었다. “제가 생각해 온 것이 있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양갱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이어 무언가를 급히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아, 혹시 그림이 있나요? 다른 도안이면 디자인 비용이 따로 들어요. 참고하세요.” 비용은 어차피 새엄마의 몫인지라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림은 없는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자신 없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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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자, 양갱은 다시 일어서 책장 옆에서 작은 메모지와 펜을 들고 왔다. “어떤 건지 대충이라도 그려줄 수 있나요?” 들고 온 가방 속에 내가 그렸던 그림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라라와 양갱의 오리지널 도안 앞에서 내 그림을 내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쩐지 이 자리에서 다시 그리면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그렸던 그림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을 메모지 위에 그렸다. 여전히 거칠고 삐뚤빼뚤한 선이었지만 지난밤 그렸던 그 어떤 그림보다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나를 양갱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어려운 그림도 아니었는데 땀을 삐죽삐죽 흘렸다. 몇 분 뒤 그림이 완성되어 양갱의 앞으로 수줍게 메모지를 내밀었다. 양갱은 메모지를 들고 유심히 내 그림을 살폈다. “이게 뭐지요?” 양갱이 메모지에 손가락 끝을 대고 물었다. 당연히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담담히 말해주었다. “그건 알약이에요.” 양갱은 자신의 얼굴 쪽에 조금 더 가까이 메모지를 대었다. “알약이요? 세 개가 모두? 어떤 약이죠? 같은 약은 아닌 거 같은데.” 뜻밖의 질문이었다. 왜 이런 그림을 새기고 싶어하는지에 관해 묻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비밀이니까요.” 분명 ‘어떤’ 약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어떤' 약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심산이었기 때문에 태연히 대답을 거부했다. 아니 그보다 이렇게 물어올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갱은 메모지를 내려놓더니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안해요.” 그는 나에게 갑자기 사과했다. “할 수 없어요. 이 그림으로는 문신을 할 수 없어요.” 양갱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제법 완강한 거절로 보였다. “어째서죠? 디자인 비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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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드릴 거예요. 그래서 메모지도 가져오신 거 아닌가요? 어려운 도안도 아닌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손님.” 양갱은 낮은 목소리로 나를 손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나를 손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작업실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여기에 이제 앳된 사내아이는 없었다. “어렵고, 쉽고,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아니, 할 수 없는 문신 종류가 두 개 있어요.” 양갱은 자신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꼿꼿이 세워 내 눈앞에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중지부터 천천히 접더니 말을 이었다. “손님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새기지 않아요. 변할 가능성이 충분한 것을 새긴 뒤에 발생할 사후 처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이미 새겨진 문신보다 훨씬 더 변질하기 쉽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 거예요.”나는 목을 살짝 뒤로 젖힌 상태에서 고개를 주억였다. 양갱은 남은 검지로 메모지를 가르키며 말했다. “손님의 비밀은 새기지 않아요. 적어도 내가 작업하는 문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내가 모두 알아야 해요. 따로 디자인을 원하시는 분의 경우, 문신을 하는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가 않아요. 진실은 그림에 있어요. 작업을 하는 내가 그림의 의미를 알 수 없다면 그건 문신에 생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죽은 문신이라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양갱은 몸을 살짝 움츠리고 팔짱을 낀 채 어깨를 약간 위로 들어올렸다. 그가 하는 ‘미안’의 행동인 것 같다. “미안해요. 무슨 약인지 끝까지 비밀이라면, 그 비밀을 비밀대로 새길 수 있는 분을 만나는 것이 좋겠어요. 죽은 문신이네, 뭐네, 그런 말을 하지 않는 분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양갱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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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음, 라라 씨나 광찬 씨는 해주실 수 있는 건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양갱은 팔짱은 풀지 않고 어깨만 추욱 쳐지게 내리더니 시선을 위로 하고 말했다. “글쎄요. 그 분들의 생각은 알 수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으니까요.” 나는 양갱이 말한 죽은 문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럼 한 번도 그림의 의미를 모른 채로 문신을 해본 적이 없나요?” 양갱은 내 말에 잠시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해본 적이 있어요. 배우던 시기에는 몇 번. 그때는 그게 죽은 문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아직도 어딘가에 그것들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괴로워요.” 양갱의 얼굴은 침울했다. 앳된 얼굴은 순간 황혼기를 지나는 중인 노인의 얼굴처럼 보였다. 지금이라도 작업실 문을 열고 나가 비밀을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신을 할 수도 있다. 양갱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아니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적당히 둘러댄다고 한들 사실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함으로써 비밀을 말할 때와는 또 다른 불완전한 이미지가 된다는 의미였다. 나는 결국 죽은 문신이라는 표현에 내 동경의 마지막 조각을 빼앗겼다. 강제가 아닌 상태였지만, 내 몸에 죽은 문신 하기 같은 것을 선택하기는 싫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나를 남겨두고 양갱은 도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양갱의 손을 저지했다. 양갱은 놀란 눈을 하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슨 약인지 알면 할 수 있는 거란 거죠?” 이상하리만치 비장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양갱은 내 손 밑에서 자신의 손을 슬쩍 빼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강요는 하지 않아요. 손님에게 그러면 안 되죠.” 어딘지 모르게 생활어와는 거리가 먼 그의 말투가 낯설게 느껴졌다. 완벽한 한국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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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지만, 내게는 제삼세계의 언어로 다가왔다. 손에서 다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럼… 저… 가까이 와 보세요.” 나는 바지춤에 다시 손을 비비고 양갱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양갱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렇게 흘려넣은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내 말을 다 들은 양갱은 손으로 급히 귀를 문질렀다. “무례하시네요. 정말.” 내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대꾸하자 양갱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입김 때문에 귀가…. 미안해요.” 양갱은 늘어놓은 도안들을 테이블 한 켠으로 치우고, 메모지보다 조금 더 큰 종이를 준비했다. 그리고는 선을 좀 더 깔끔하게 딸 수 있도록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동그라미를 좀 더 쉽게, 예쁘게 그릴 수 있는 방법도 설명해주었다. 내가 종이를 앞에 두고 다시 땀을 흘리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양갱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편에 섰다.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데 무슨 힘을 그리 줘요.” 양갱은 내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 살며시 내 손등을 부여잡더니 펜 끝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양갱과 함께 그린 동그라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일부러 어그러지게 그렸던 마지막 알약을 그릴 때까지 양갱의 손이 함께 움직였다. 나는 어쩐지 마음이 편했고, 비죽비죽 흐르던 땀도 멈추었다. 그건 우리가 같은 비밀을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양갱은 내가 귓속말한 내용에 관해 가타부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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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을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양갱이 목덜미에 새겨진 문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보여줬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잔뜩 긴장한 탓에 목이 뻣뻣해서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큰 고통이 따랐다. 문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작아 보였지만, 계속 보다 보니 아주 적당한 크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향해 양갱이 말했다. “생각보다 잘 참아주셔서 수월했어요. 엄살이 심해 보이셨는데….” 얼굴이 빨개졌다. 목덜미가 아파 휙, 뒤돌아보진 못하고 몸을 통째로 돌려 그를 있는 힘껏 흘겨보았다. “무례한 중국인” 중국인을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건 욕이 아니지만, 수식과 억양을 적절히 조합하면 꽤 괜찮은 경멸을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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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내 말에 양갱은 낄낄 웃었다. “그런데 양갱 씨는 몇 살이죠?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으니, 나는 나이를 걸고넘어졌다. 내가 거들먹거리며 얘기하자 양갱은 또 살포시 웃었다. “서른 둘입니다.” 나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이 대륙의 동안남은 과연 진시황제의 후손다웠다. 이 작업실에는 사내아이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셈이었다. 내가 입을 허, 벌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새엄마가 작업실에 들어왔다. 옆에 웬 남자도 함께였는데 아까 이야기했던 광찬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3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방금 양갱의 나이를 듣고 놀란 참이라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기로 했다. 광찬은 눈 밑 기미가 짙은 사내로, 태어날 때부터 피곤했을 거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라라도 그렇지만 광찬 역시 새엄마와 꽤 친해 보였다. “어디 한 번 보자. 잘 됐니?” 새엄마가 내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뒤 머리카락을 살짝 올려 새엄마에게 목덜미를 내밀었다. 나 자신은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어서 새엄마의 반응이 궁금했다. “어머, 뭔가 특이하네. 이게 뭐니? 무슨 종교 문양 같네. 너 요즘 어디 다니니?” 새엄마의 농담에 나는 그냥 허허 웃었다. 양갱은 아무 말도 않고 얌전히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새엄마는 하고자 한 농담을 다 했는지, 내 문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더 질문하지 하지 않았다. “어디에 하셨어요? 보여주세요.” 내가 새엄마의 문신에 관심을 보이자 새엄마는 내 목덜미 만지던 손을 뒤로 빼고는 무언가 굉장히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안 했어. 광찬이랑 그냥 수다 떨었어.” 내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은 한 가지였다. 황망함. 바람 부는 사막에 홀로 남겨진 기분. 사막 위로 말을 타고 도망가는 새엄마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한다고 한 적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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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해주려고 온 거야.” 새엄마가 조금 미웠다. 문신하러 가자고 했을 때부터 같이 하는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건만. 하지만 동경하던 것을 이루어 준 새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사막도 말도 새엄마의 뒷모습도 머릿속에서 흐트러뜨려 지우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나쁘지 않았어요. 짜증은 조금 났지만.” 내가 양갱 쪽을 힐끗 본 것을 새엄마는 눈치채지 못했다. 새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왜 짜증이 났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파서 그랬다고 거짓말을 했다. 네 사람이 응접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중국집 배달 음식을 먹었다. “중국에는 짜장면이 없다며.” 광찬이 음식물을 튀겨가며 말했다. 양갱은 광찬에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있기 한데 한국 거랑은 다르지. 어째서 짜장면 먹을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먹으면 안 돼?” 옆에서 새엄마가 깔깔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새엄마와 양갱이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 응접실 테이블 정리는 나와 광찬의 몫이 되었다. 목덜미가 욱신거려서 부드럽게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보고 광찬은 그냥 앉아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사양 않고 자리에 앉은 채로 소소하게 광찬을 도왔다. “누님이 새로 시집을 가셔서 많이 섭섭했어요.” 광찬은 쓸데 없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내 같았다. “그래도 많이 밝아지셔서 다행이에요. 사장님이 그러시는데, 옛날 별명이 흑마녀였대요.” 내가 쿡쿡 웃자, 광찬은 자신의 농담이 잘 먹혀 기뻐하는 눈치였다. 나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행주질을 하는 광찬에게 물었다. “저…그런데 광찬 씨도 문신하면서 꼭 지키는 룰 같은 게 있나요?” 내 질문에 광찬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아, 있죠. 업계 룰이 있는 거고,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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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이 있는 거고…. 커플들이 와서 서로 이름 새겨달라고 하는 건 안 해요. 그리고 얼굴 부위나, 얼굴이랑 가까운 부위 해달라고 할 때도 꼭 말리구요. 귀라던가? 아무래도 한국은 아직 좀 그렇잖아요.” 광찬은 행주를 든 채 어깨를 으쓱 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기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큰일인 모양이었다. “양갱 씨는 그림의 의미를 자신이 다 알아야 한대요.” 나는 죽은 문신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광찬은 어디서 날아온 고무공에 맞은 듯 멈칫하더니 아아, 그거, 라고 말했다. “그건 저놈 개인의 욕망일 뿐이에요. 지가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괜히 하는 소리일 걸요. 혹시 뭐 말씀하신 거 있으세요?” 나는 광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속으로 양갱이 말한, 어딘가에 남아 있을 죽은 문신들에 대해 생각했다. 새엄마와 나는 광찬과 양갱의 배웅을 받으며 응접실을 나왔다. 채광판 사이로 보이던 좁고 파랗던 하늘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양갱은 문신 후 관리에 대한 사항을 읊어주었고, 나와 새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말미에 양갱이 의연한 얼굴을 하고 나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비밀은 지킵니다.” 새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광찬은 괜히 하늘을 쳐다봤으며, 나는 되받아칠 농담 대신 양갱의 어깨를 주먹으로 치려고 손을 조금 올리다가 멈추었다. 모든 것에는 마무리가 중요한 법. 나의 동경을 가장 직접적으로 이루어 준 양갱에게도 점잖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고마워요.” 나는 양갱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양갱은 내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새엄마는 양갱이 정말 중국인이 맞을까 라는 둥, 취업이어려워서 사장에게 중국인인 척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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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둥, 광찬이는 나이 먹어도 아직 아기같다는 둥 혼자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나는 창밖을 통해 여전히 적막하기만 한, 대뜸 타투샵 같은 것이 들어서서, 적어도 새엄마와 나에게는 특별한 곳이 돼버린 동네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혼자만 말하는 것이 겸연쩍었는지 새엄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나에게 물었다. “만족하니?” 나는 말하지 않고 고개만 까닥거렸다. 창문에서 눈길을 거두고 조수석 시트에 등 전체를 푹 기대었다. 손이 자꾸 목덜미를 향했다. “너무 만지지 말라잖아. 덧날라.” 새엄마가 깜빡이를 켜면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나만의 비밀도, 동경도 아닌 일종의 텅 빈 기호로 남은 문신을 마른 손으로 계속 더듬었다. 그림은 불타는 듯 뜨거웠다. 상처의 화한 기운과 나 자신의 체온 때문이겠지만, 어쩐지 나에게 그것은 생명력을 가진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텅 비었지만, 영원히 뜨거운 기호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죽은 문신 같은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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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rial texture re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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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ri bang bnring@naver.com blog.naver.com/bn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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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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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plus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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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마음의 필터링 항상 집중하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에 의해 움직이고 죽다가 살다가 하니까 요즘은 그게 술이 돼버린 것 같지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요’라는 말을 듣고서 누군가가 말하는 스스로에 대한 단언(굳이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은 잘 믿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의 말처럼 들렸다 (사실 처음 듣는 말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걸러들어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이더라도 내가 본 그 사람은 그런 모양이 아니니까 담는 용기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상태는 액체라던데 우리 모두는 액체인 걸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보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꼬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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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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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소리 waterain.kr 늘 주변을 살핀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을 모은다. 키스하는 커플 옆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아저씨, 부러진 우산 살에 기대 자라고 있는 고추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스스로 이야기를 가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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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가 헤어졌다.
얼마 전에 아는 언니가 일하는 가게에 갔는데. 그 왜 있잖아. 그림 그린다는 언니. 응. 그 언니 술집에서 알바하거든. 그래서 지날 때면 들러서 술 한 잔 마시고 하거든. 아무튼 갔는데, 바에 어떤 남자가 앉아서 언니랑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서 좀 떨어져 앉으려고 하니까, 언니가 친구라면서 옆에 앉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그 옆에 앉았어. 맥주 한 잔 시키고서 그 남자랑 인사를 나누는데 꽤 잘 생겼더라고. 정우성? 조인성? 그쪽 계열은 아니고. 좀 왜소하고 귀여운 느낌이었어. 근데 나이는 좀 있는 것 같고. 언니 친구니까 삼십대 중반은 됐겠지. 응? 에이. 그런 건 아니었어. 나 잘 생긴 남자 별로 안 좋아하잖아. 잘 생긴 남자는 잘 생긴 값을 하게 돼있어. 뭐 그것도 마흔까지지만. 아무튼. 언니가 맥주를 갖다 주고, 그래서 같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어. 정치 얘기, 문학 얘기, 영화 얘기 뭐 그런 얘기들이었는데 듣다 보니까 시인인 것 같더라고. 시인인데 시로는 돈을 못 버니까 번역이나 기타 잡다한 글 쓰면서 먹고 사는. 생긴 것도 번듯하고 목소리도 멋있고 한데 어딘가 좀 찌질한 구석이 있었어. 아, 그런 건 아니야. 언니랑 썸 타거나 그런 것 같진 않았어.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 같더라고. 언니는 그림 그리고, 그 사람은 시인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인연이 닿아서 알고 지내는 거겠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안 물어봤어.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재밌더라고. 그 사람이 좀 웃겼어. 그래서 한 잔이 두 잔 되고, 세 잔 되고, 네 잔 되고, 계속 마셨지. 얼마나 마셨는지는 모르겠어. 비면 또 달라 그러고, 비면 또 달라 그러고 했거든. 거기 가면 언니가 맥주를 막 줘. 그래서 일단 들어가면 나오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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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아. 그러다가 끝나면 언니랑 같이 술 마시러 가고. 그런 식이야. 들어갈 때는 가볍게 한 잔만 하고 가야지, 해도 꼭 그렇게 된다니까. 아무튼 그렇게 계속 마시다 보니 결국 취했어. 언니야 일하는 중이었으니까 안 취했고, 나랑 그 남자만 취했지. 보니까 그 사람은 어디서 이미 소주를 마시고 온 거더라고. 그러니 안 취할 수가 없지. 그런데도 나랑 비슷하게 계속 마셨으니까. 근데 그때부터 진짜 진상이었어. 아니. 나한테 껄떡댈 일이 있겠어? 시인씩이나 하는 사람이 나 같은 애한테 관심이 생길 리가 없지. 엄청 예쁜 것도 아니고. 웃겨? 왜 웃어? 너는 예쁘냐? 됐고. 아무튼 갑자기 헤어진 여자친구 얘기를 시작하더라고. 그때부터 계속 그 여자친구 얘기만 들었어. 헤어졌으니 여자친구 아니고 엑스지. 아무튼 그 엑스 여자.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다고. 다시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그 여자랑 있었던 일들, 그 여자랑 헤어지던 날, 그 여자 생김새, 목소리, 그 여자가 좋아하던 거, 싫어하던 거. 일일이 다 나열할 수도 없다. 전부 다 기억나진 않는데, 사적인 이야기들도 꽤 많았어. 가슴 옆에 점이 있었다느니, 그 점을 정말 사랑했다느니. 엄지발가락이 짧고 뭉툭해서 별로였다느니. 시인 이라 그런지 막 허황되게 수사들 붙여가면서, 막 비유하면서, 거창하게 설명하더라고. 이름 빼고 그 여자에 대한 모든 것을 들은 것 같아. 진짜 상세하게 설명했어. 평소에는 추리닝 바람으로 어디든 다니고, 무슨 전시회 오프닝이나 파티 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치장하고. 내가 말하니까 왜 이렇게 천박한 느낌이지? 그 사람이 말할 때는 이런 느낌은 아니었어. 뭔가 섬세했다고 할까? 뭐라고 해야 될까. 뭔가 딱 떠오르는 비유 같은 게 없네. 음. 그러니까 마치 가을이 오고 쌀쌀해진 날씨에 이제 곧 숨이 멎어가는 나비가 있는 힘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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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갯짓을 하는 느낌이었달까? 아냐. 이런 게 아닌데. 나비가 뭐냐고? 그냥 내 나름대로 그 사람 느낌을 비유해보고 싶은데 쉽지 않네.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 그러니까 날씨가 추워지면 나비가 죽잖아. 근데 그 죽는 순간에도 나비는 그 죽음을 쉽게 맞이하기보다는 조금 더 살고자 날갯짓을 멈추지 않겠지. 근데 점점 죽어가니까 그 날갯짓에 힘이 없겠지. 점점 날갯짓이 느려지고 힘이 빠지고 결국 죽겠지. 이런 느낌? 근데 갑자기 왜 나비가 떠올랐을까? 뭐 한마디로 말해서 헤어지고도 잊지 못하고 찌질하게 구는 그런 남자였던 거지. 어차피 죽을 거 뭐 하러 날갯짓은 하나. 그냥 고상하게 죽음을 맞이하면 될 것을. 그런데 그게 진상이긴 진상이었는데 표현들이 꽤 멋졌어. 지금 말하면서 생각해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는데 우아하고 섬세한 느낌? 역시 시인이라 그런가? 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난 잘생긴 사람 싫다니까. 진짜 그날 진상이었어. 네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돼. 그럼 너도 진짜 질색했을 거야. 듣고 싶지도 않은 얘기를, 그것도 여자 묘사, 찌질한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고 생각해봐. 그래. 당연히 나도 도중에 나가려고 했어. 근데 나도 취했잖아. 내가 취해서 간다니까 그 사람이 내 팔을 붙잡으면서 조금만 더 들어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어떡해. 더군다나 그때 언니 바빠서 우리 자리에 있지도 못했고. 진짜 짜증났었어. 아니, 무슨 처음 보는 사람한테 헤어진 여자친구 얘기를 그렇게 해? 안 그래? 그것도 사적인 얘기들까지 줄줄이 늘어놓고. 무슨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도 아니고. 응. 비엔나 소세지. 그 줄줄이 달리는 거 있잖아. 그래 미안해. 뭔가 나도 좀 그럴싸한 비유를 들고 싶은데 잘 안 되네. 그 사람은 잘만 하던데 나는 왜 잘 안 되지? 어쨌든 그랬다고. 그냥 최근 겪은 일들 중에 좀 재밌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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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짜증도 나고 했어. 뭐라고? 내가 그 사람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 이름도 기억 안 나는데. 가게 끝나고 언니랑 같이 소주 마시러 갔는데 그러고서는 기억이 안 나. 어쨌든 눈 떠보니까 집이더라. 나도 알아. 조심해야지. 걱정 마. 내가 애도 아니고. 그런 찌질한 놈한테 당할 일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타입이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 타임라인에서 그를 못 본 지 좀 된 것 같다. 무슨 일 있나? 팔로우 목록을 펼쳐서 그의 아이디를 찾아 누른다. 마지막 트윗이 한 달 전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아홉 개의 트윗이 똑같다. 세 글자로 된 트윗들. 마시면서 올린 모양이다. 한 병 마시고 트윗, “맥주병.” 또 한 병 마시고 트윗, “맥주병.” 트위터 상의 마지막 흔적은 ‘맥주병.’ 아홉 개다. ‘맥주병.’들을 밀어 올리니 문장이 보인다.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다.” 그는 늘 문장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인치고는 특이했다. 보통 시에는 마침표를 잘 쓰지 않으니까. 아닌가? 어쨌든 맞춤법도 잘 지키는 것 같았다. 그의 트윗에서 오탈자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맞춤법 틀리는 걸 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를 쓴 뒤에 퇴고하듯 트윗도 퇴고를 거쳐 올렸을지도 모른다. 섬세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긴 시인이니 섬세할 수밖에. “술집에 지갑을 남겨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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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언제나 내 곁을 떠나간다.” 이런 트윗들을 보면 덤벙대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트윗으로만 본 사람이니까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가끔 사람들의 모습을 문장으로 쓰곤 했는데 그 트윗들이 좋았다. 찾아보자. “지하철. 죽을 날이 가깝듯 비올 날도 가깝다며 우산과 비옷을 파는 아저씨.” “엘리베이터 안. 정장을 입고 서서,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아, 피곤하다”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아저씨.” “정장 바지 사이로 짙은 회색 양말이 보인다. 올려다보니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의 문자를 훔쳐보고 있다.” “부둥켜안고 있는 연인 옆에서 노상방뇨하는 아저씨.” 다시 읽어도 좋다. 왠지 모르게 은근한 웃음이 난다고 할까? 그가 쓴 시들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느낌이 묻어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그의 시를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그를 팔로우한 뒤로 그가 트위터에 자신의 시를 올린 적은 없었다. 요즘도 시집을 돈 주고 사서 읽는 사람들이 있을까? 내가 돈 주고 시집을 산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 같은 걸 읽을 시간이 어디 있나. 그런데 트윗 읽을 시간은 많다. 지하철만 타면 늘 트위터 타임라인부터 확인한다. 정보들과 잡다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타임라인을 훑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게임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게 재미있다. 내 이야기는 올리지 않는다. 올려서 뭐하나. 그러면서 남의 이야기는 잘도 훔쳐본다. 관음증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왜 트윗을 올린 것일까? 일종의 메모 같은 것이었을까? 그런데 갑자기 왜 그만 둔 거지? 한 달 전, ‘오늘은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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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야겠다’며 병맥주를 마시기 시작하고, 아홉 병째 맥주를 마신 뒤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그가 트윗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무렴 어때.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시간을 보내고 싶다. 다른 생각을 계속 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별통보를 받은 뒤, 혼자 바에 앉아 병맥주를 시켜 마시고, 또 시켜 마시고, 그렇게 트위터 상에 맥주병 아홉 개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꽤나 괴로웠을 것이다. 술을 마시는 내내 여자친구 생각이 났을 것이다.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니, 아니다. 그가 감수성이 예민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시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 미치겠다. 자꾸 생각이 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보고 싶다. 팔로우 목록에서 그녀의 아이디를 찾는다. 누른다. 아니다. 이래서 좋을 게 없다. 다시 타임라인을 누른다. 그만 생각하자. 끝난 거다. 그래도 보고 싶다. 본다고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 핸드폰 전원을 끄자. 잠금 버튼을 오래 누른다. 밀어서 전원 끄기. 술이나 마시자. 술집 어디든 가서 병맥주를 시키자. 잠금 버튼을 오래 누른다. 트위터를 켜고 오랜만에 트윗을 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다.” 트윗 버튼을 누른다. 완료. 그의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어볼까? 그런데 왜 트윗을 안 하는 거지? 진짜 헤어졌나? 실연의 아픔을 시로 풀어내고 있는 건가? 유치한 시가 잔뜩 나오겠네.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와 걷는다. 춥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볼 일은 없다. 사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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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친구도 아니다.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했다. 서점에 들어간다. 그의 이름을 검색한다. 없다. 응? 한 번 더 검색한다. 없다. 그가 저자인 책이 없다. 핸드폰을 꺼내 브라우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한다. 그가 쓴 시집이 없다. 뭐지? 아, 작년에 등단했구나. 아직 시집이 나오지 않은 건가. 왠지 김이 빠진다. 등단은 어디로 했나? 문예지 등단이구나. 그럼 도서관에 가서 읽어볼까? 뭘 그렇게까지. 제목은, 맥주병? 그럼 헤어져서 맥주를 마신 게 아닌가? 시가 잘 안 써져서 그냥 트윗을 한 건가? 요즘은 시를 쓰느라 트윗을 안 하는 건가? 가끔 가는 바에 들어간다. 병맥주 대신 생맥주를 주문한다. 트윗, “맥주잔” 올린다. 하나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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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21: 흑백 이미지 1 2015년 1월 9일 발행 물질과 비물질 waterain.kr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무단 복제와 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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