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락사스
5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연수희
vol. 4
15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박미정
33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서울, 어느 곳
이상협
49 Museum of Modern Art
서울, 어느 곳 Somewhere in Seoul
임우택
59 독두한가禿頭恨歌
winter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79 110번 버스 안 박선희
2010
Image © 2010 Digital Globe
winter 2010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
summer
2009
vol.2
화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summer
abraxas
2009
아브락사스 이 책에 수록한 작품들은 서울 안의 어떤 곳을 임의로 정해 그곳을 주제 삼아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vol.2
vol.2
이현미 김미선 장지혜 이상협
화
화
김종소리 정지호 원보람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
summer
2009
vol.2
화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summer
abraxas
2009
아브락사스 이 책에 수록한 작품들은 서울 안의 어떤 곳을 임의로 정해 그곳을 주제 삼아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vol.2
vol.2
이현미 김미선 장지혜 이상협
화
화
김종소리 정지호 원보람
이 책은 2009년 1월 초 김미선과 김종소리의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통해 기획,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5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첫 취지는 현재 우리나라 문학계의 실정─등단하지 않는 이상
연수희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힘든 상황─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문학계 언더그라운드의 시작’인 것입니다.
15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박미정
하지만 여러 번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으로 단정 짓지 말고, 출판의 형태로 나올 수 있는 모든 예술을 다루자는 의견에 동의,
33
결국 모든 예술을 다루는 출판물을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이상협
이 책은 잡지의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형태의 예술작품을 싣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49 Museum of Modern Art 임우택
현재 존재하는 문학잡지들의 특성을 따라 계간지의 형태─4·7·10·1월 발행─로 출판 될 예정입니다. 저희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 분이나 합작을 하실 분, 혹은 단체가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59 독두한가禿頭恨歌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언제든 환영합니다. 79 110번 버스 안 아브락사스.
박선희
이 책은 2009년 1월 초 김미선과 김종소리의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통해 기획,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5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첫 취지는 현재 우리나라 문학계의 실정─등단하지 않는 이상
연수희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힘든 상황─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문학계 언더그라운드의 시작’인 것입니다.
15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박미정
하지만 여러 번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으로 단정 짓지 말고, 출판의 형태로 나올 수 있는 모든 예술을 다루자는 의견에 동의,
33
결국 모든 예술을 다루는 출판물을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이상협
이 책은 잡지의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형태의 예술작품을 싣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49 Museum of Modern Art 임우택
현재 존재하는 문학잡지들의 특성을 따라 계간지의 형태─4·7·10·1월 발행─로 출판 될 예정입니다. 저희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 분이나 합작을 하실 분, 혹은 단체가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59 독두한가禿頭恨歌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언제든 환영합니다. 79 110번 버스 안 아브락사스.
박선희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마포구 노고산동 연수희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마포구 노고산동 연수희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얇은 선물 포장용 리본 끈에 목매어 스스로 자살 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스스로 그렇게 했던 걸까? 죽은 후에 한참을 그 생 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이 나의 목을 졸랐던 것일까….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얇은 선물 포장용 리본 끈에 목매어 스스로 자살 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스스로 그렇게 했던 걸까? 죽은 후에 한참을 그 생 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이 나의 목을 졸랐던 것일까….
2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온 나는 첫날부터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 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목숨이었다. 그 사실을 안 뒤부터는 집에서 혼자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기분은 바로 가위눌림으로 이어졌고, 이사를 준비하면서 쏟
행여 혼자 있게 되는 날은 차라리 친구의 집에 가서 자거나 그도
은 정신이 피로로 이어져 그럴 것이라는 정의만 혼자서 내리고는 계
여의치 않을 때는 술을 진탕 먹고 쓰러져 잤고, 그것조차 힘겨울 때
속 되던 불면의 시간들과 긴장감에 너무 큰 걱정을 하지 않으려 노력
는 수면제 두 알을 입안에 털어놓고 의식을 다른 것에 맡겨 의지하고
했다. 움츠린 마음에서 오는 불안함은 거대한 장해물이라고 되 뇌이
있었다. 차라리 의식이 없어져 버리면 그 망할 기분과 그 더러운 환영
면서….
이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와 집, 집과 회사 단촐 한 내 인생에는 한가로운 고민이 끼 어들어선 안 되니까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주위 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전부 다 뜯어보면 지옥에 보내야할 인간들 투성이다.
구들을 만나서 잡다한 회사 일들을 얘기하고 좀 어려운 문제에 대해
내 진심은 모르고 흙투성이 입으로 자갈을 내뿜는 인간들, 눈빛
의논하기도 하면서 슬기롭게 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다. 끌어안고 있
에 화살촉을 달고 쏘아 대는 인간들, 자기밖에 몰라서 언제나 내게 상
는 문제들에 대해서 대충은 쉽게 넘기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처 주는 인간들…. 그 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더럽고 더러워 피하고
이 정도면 나는 정상인에 가깝고 부러울 것이 없는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싶은 것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나를 이토록 무너지게 하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좀처럼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은 사라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는 존재들 일뿐이었다. 내가 숨 쉬는
지지 않았다. 어두운 조명이 켜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면 어김
일 분, 일 초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이 기분─그 존재는 도저히
없이 느껴지는 시선… 시선들….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절대감이 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흘렀을 때 잠자리에 나는 내 머리위로 천장
무엇이 나의 목을 노리고 있는 것 일까….
으로부터 떨궈져 내려온 목줄을 보았다. 정확히 내 목을 노리고 있는 그 녀석은 살아 숨 쉬는 듯한 질감의 목줄 이었다.
나는 결국 해답을 얻지 못하고 어느 하얀 밤, 짐을 모조리 싸 들
피가 흐르고 살이 붙어있는 의식이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기겁
고 용달 하나를 불러서 부모님 집으로 무작정 돌아갔다. 첫날밤 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그 놈은 자취를 감추고 내 시야에
울고 또 울었다. 그간 받은 두려움과 공포를 한 번에 털어내고 싶었
서 없어져 버렸지만 나는 깨달았다.
다. 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고 울고 울어서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 지긋지긋한 시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는 것으로 해소하는 방법밖에 몰랐던 나는 무엇인가를 깨부
9
료도 좋아서 어느 정도 만족하고, 어느 정도 감사했다. 휴일이면 친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8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동료들과의 사이도 괜찮은 편이었고 급
2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온 나는 첫날부터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 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목숨이었다. 그 사실을 안 뒤부터는 집에서 혼자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기분은 바로 가위눌림으로 이어졌고, 이사를 준비하면서 쏟
행여 혼자 있게 되는 날은 차라리 친구의 집에 가서 자거나 그도
은 정신이 피로로 이어져 그럴 것이라는 정의만 혼자서 내리고는 계
여의치 않을 때는 술을 진탕 먹고 쓰러져 잤고, 그것조차 힘겨울 때
속 되던 불면의 시간들과 긴장감에 너무 큰 걱정을 하지 않으려 노력
는 수면제 두 알을 입안에 털어놓고 의식을 다른 것에 맡겨 의지하고
했다. 움츠린 마음에서 오는 불안함은 거대한 장해물이라고 되 뇌이
있었다. 차라리 의식이 없어져 버리면 그 망할 기분과 그 더러운 환영
면서….
이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와 집, 집과 회사 단촐 한 내 인생에는 한가로운 고민이 끼 어들어선 안 되니까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주위 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전부 다 뜯어보면 지옥에 보내야할 인간들 투성이다.
구들을 만나서 잡다한 회사 일들을 얘기하고 좀 어려운 문제에 대해
내 진심은 모르고 흙투성이 입으로 자갈을 내뿜는 인간들, 눈빛
의논하기도 하면서 슬기롭게 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다. 끌어안고 있
에 화살촉을 달고 쏘아 대는 인간들, 자기밖에 몰라서 언제나 내게 상
는 문제들에 대해서 대충은 쉽게 넘기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처 주는 인간들…. 그 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더럽고 더러워 피하고
이 정도면 나는 정상인에 가깝고 부러울 것이 없는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싶은 것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나를 이토록 무너지게 하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좀처럼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은 사라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는 존재들 일뿐이었다. 내가 숨 쉬는
지지 않았다. 어두운 조명이 켜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면 어김
일 분, 일 초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이 기분─그 존재는 도저히
없이 느껴지는 시선… 시선들….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절대감이 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흘렀을 때 잠자리에 나는 내 머리위로 천장
무엇이 나의 목을 노리고 있는 것 일까….
으로부터 떨궈져 내려온 목줄을 보았다. 정확히 내 목을 노리고 있는 그 녀석은 살아 숨 쉬는 듯한 질감의 목줄 이었다.
나는 결국 해답을 얻지 못하고 어느 하얀 밤, 짐을 모조리 싸 들
피가 흐르고 살이 붙어있는 의식이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기겁
고 용달 하나를 불러서 부모님 집으로 무작정 돌아갔다. 첫날밤 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그 놈은 자취를 감추고 내 시야에
울고 또 울었다. 그간 받은 두려움과 공포를 한 번에 털어내고 싶었
서 없어져 버렸지만 나는 깨달았다.
다. 할 수 있다면 언제까지고 울고 울어서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 지긋지긋한 시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는 것으로 해소하는 방법밖에 몰랐던 나는 무엇인가를 깨부
9
료도 좋아서 어느 정도 만족하고, 어느 정도 감사했다. 휴일이면 친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8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동료들과의 사이도 괜찮은 편이었고 급
술 줄도, 큰소리로 욕을 할 줄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할 수 없는
몇 알 주워 먹는 알약보다 더 나은 효과가 있다면서 반드시 지켜
나약한 인간 이었다. 그렇게 울고 우는 밤이 얼마간 흐르고 나는 어느
야 할 약속이라고 말하고는 냉혈한 의사 선생답지 않게 자신의 새끼
순간 얼마간의 안정이 내 안에 들어왔음 느꼈다.
손가락을 내밀며 나를 설득했다.
그 안도감은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마주치
나는 왠지 그 작고 가는 선생의 손가락을 믿고 싶어 졌다.
는 것들에 하나하나 경이로운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다시 내 몸에
손가락을 힘없이 걸고는 내 꼭 그러겠다… 약속 했다. 다음날 우
건강한 기운이 흘렀고 음식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라질 재수 없게도 올해 들어 최고 한파였지만 나는 와우 산에 올랐다.
나는 조금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산 중턱 공원에 가서 트랙을 한 두 바퀴 뛰고 나니 청량한 느낌이 코
지금 이라면… 해 볼만 하겠어….
가 입과 귀로 이어졌다. 의사의 말대로 훨씬 더 ‘살아 있다’라는 기분 을 맛볼 수 있었다. 이 기분이 이렇게 맛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
서 보냈다. 물론 나를 언제나 주시하던 그 존재에 대해서는 얘기 할
그렇게 2주 정도 나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며 점차 원기가 회복 되고 살맛 이라는 것도 야금야금 맛보면서 꽤 살 것 같은 기대감을 얻 게 되었다.
수가 없었다. 그 얘기를 하면 난 정말 이 관계를 수습할 수 없게 돼버
그러던 어느 날 밤, 화장실에 가고 싶어 방문을 조심-열고 거실
릴 테니까 말이다. 함께 살던 남자친구는 관계를 돌이키고 싶지 않을
로 나오니 그 녀석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나를 보며 서있었다.
정도로 화가 나고 또 상처 입어 있었지만 나는 정말 이번만큼은 노력
그리고는 얘기 좀 해보자며 거실 소파에 앉아서 내게 손짓했다.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를 진정 시켰다. 회사를 그만두고 종일 그와 함께 했다. 그가 일하는 곳에 가서 함께 있기도 하면서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려 애썼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건만 내가 돌아온 그날부터 바로 다시 그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에게 무릎 꿇고 앉아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이라는 말을 수 백 번도 더 읊조렸다. 제 발….
존재는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앉아, 내 오른쪽 귀에 속삭였다. ‘뜻대로 되지 않을걸… 쉽지 않을 거야’ 라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바람처럼 내 시야를 지나가는 목줄 하나. 딱 내 목 사이즈에 맞춰 단단히 조여진 목줄의 모습을 한 그 녀석…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친절한 나의 정신과 전문의에게서.
아침이 되었다. 운동을 하러 나가야 했지만 난 기진맥진해 있었 다. 그 녀석이 나를 향해 내민 목줄을 차마 눈뜨고는 대할 수 없어 그 저 두 손을 모으고 엎드려서 제발 나를 그냥 두라고 애원하다가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고통이 올라왔다. 그대로 쓰러져 다시 또 그 끔찍하고 기나긴 밤이 될 때까지 정신을 잃고 잠들었다. 그리고
11
한동안 나는 나의 돌연한 행동에 상처 입은 관계들을 수습하면
10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가 지난 뒤였다.
로 처방은 아주 훌륭했다.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다시 내가 그 집에 돌아간 것은 내가 뛰쳐나온 지 삼 개월 정도
술 줄도, 큰소리로 욕을 할 줄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할 수 없는
몇 알 주워 먹는 알약보다 더 나은 효과가 있다면서 반드시 지켜
나약한 인간 이었다. 그렇게 울고 우는 밤이 얼마간 흐르고 나는 어느
야 할 약속이라고 말하고는 냉혈한 의사 선생답지 않게 자신의 새끼
순간 얼마간의 안정이 내 안에 들어왔음 느꼈다.
손가락을 내밀며 나를 설득했다.
그 안도감은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마주치
나는 왠지 그 작고 가는 선생의 손가락을 믿고 싶어 졌다.
는 것들에 하나하나 경이로운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다시 내 몸에
손가락을 힘없이 걸고는 내 꼭 그러겠다… 약속 했다. 다음날 우
건강한 기운이 흘렀고 음식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라질 재수 없게도 올해 들어 최고 한파였지만 나는 와우 산에 올랐다.
나는 조금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산 중턱 공원에 가서 트랙을 한 두 바퀴 뛰고 나니 청량한 느낌이 코
지금 이라면… 해 볼만 하겠어….
가 입과 귀로 이어졌다. 의사의 말대로 훨씬 더 ‘살아 있다’라는 기분 을 맛볼 수 있었다. 이 기분이 이렇게 맛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
서 보냈다. 물론 나를 언제나 주시하던 그 존재에 대해서는 얘기 할
그렇게 2주 정도 나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며 점차 원기가 회복 되고 살맛 이라는 것도 야금야금 맛보면서 꽤 살 것 같은 기대감을 얻 게 되었다.
수가 없었다. 그 얘기를 하면 난 정말 이 관계를 수습할 수 없게 돼버
그러던 어느 날 밤, 화장실에 가고 싶어 방문을 조심-열고 거실
릴 테니까 말이다. 함께 살던 남자친구는 관계를 돌이키고 싶지 않을
로 나오니 그 녀석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나를 보며 서있었다.
정도로 화가 나고 또 상처 입어 있었지만 나는 정말 이번만큼은 노력
그리고는 얘기 좀 해보자며 거실 소파에 앉아서 내게 손짓했다.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를 진정 시켰다. 회사를 그만두고 종일 그와 함께 했다. 그가 일하는 곳에 가서 함께 있기도 하면서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려 애썼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건만 내가 돌아온 그날부터 바로 다시 그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에게 무릎 꿇고 앉아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이라는 말을 수 백 번도 더 읊조렸다. 제 발….
존재는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앉아, 내 오른쪽 귀에 속삭였다. ‘뜻대로 되지 않을걸… 쉽지 않을 거야’ 라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바람처럼 내 시야를 지나가는 목줄 하나. 딱 내 목 사이즈에 맞춰 단단히 조여진 목줄의 모습을 한 그 녀석…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친절한 나의 정신과 전문의에게서.
아침이 되었다. 운동을 하러 나가야 했지만 난 기진맥진해 있었 다. 그 녀석이 나를 향해 내민 목줄을 차마 눈뜨고는 대할 수 없어 그 저 두 손을 모으고 엎드려서 제발 나를 그냥 두라고 애원하다가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고통이 올라왔다. 그대로 쓰러져 다시 또 그 끔찍하고 기나긴 밤이 될 때까지 정신을 잃고 잠들었다. 그리고
11
한동안 나는 나의 돌연한 행동에 상처 입은 관계들을 수습하면
10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가 지난 뒤였다.
로 처방은 아주 훌륭했다.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다시 내가 그 집에 돌아간 것은 내가 뛰쳐나온 지 삼 개월 정도
다시 밤, 그 녀석이 나타났고 가까스로 버티다가 다시 아침이 되어서 야 잠들고… 또 다시 밤… 이런 식으로 몇 달이 흘렀다. 사실 정신과에 가보라는 제안을 듣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 하면서 문을 두드렸건만 그런 것 따위 정말 드라마에서만 실재 하는 것이었고 귀신에 씌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진짜 무엇 인지를…. 그리하여 결국 난 자살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자살 했을까? 답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을 만치 미워했더라면 ‘나’는 ‘너’를 죽였어 12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자신을 자신이 스스로 죽이는 것을 자살이라고 한다.
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은 말이지… 오랫동안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죽이고 싶을 만치 역겨웠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나를 볼 때 마다 깨부수고 싶었고 그런 불안정한 나를 지겹게 바라보는 너의 눈을 파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알고야 말았다. 죄 없는 거울을 깨부숴 봤자, 죄 없는 너의 눈알을 파내 봤자 아 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내가 부수고 싶은 것은 나였고, 내가 파내고 싶었던 것은 내 눈 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설마 자살한 내가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또는 불안 정한 애정관계 때문에… 불확실한 경제 상황 때문에 가엾게도 자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나를 죽도록 괴롭혀온 존재를 죽인 타살자이다. 나는 드디어 살 수 있다.
다시 밤, 그 녀석이 나타났고 가까스로 버티다가 다시 아침이 되어서 야 잠들고… 또 다시 밤… 이런 식으로 몇 달이 흘렀다. 사실 정신과에 가보라는 제안을 듣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 하면서 문을 두드렸건만 그런 것 따위 정말 드라마에서만 실재 하는 것이었고 귀신에 씌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진짜 무엇 인지를…. 그리하여 결국 난 자살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자살 했을까? 답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을 만치 미워했더라면 ‘나’는 ‘너’를 죽였어 12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자신을 자신이 스스로 죽이는 것을 자살이라고 한다.
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은 말이지… 오랫동안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죽이고 싶을 만치 역겨웠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나를 볼 때 마다 깨부수고 싶었고 그런 불안정한 나를 지겹게 바라보는 너의 눈을 파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알고야 말았다. 죄 없는 거울을 깨부숴 봤자, 죄 없는 너의 눈알을 파내 봤자 아 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내가 부수고 싶은 것은 나였고, 내가 파내고 싶었던 것은 내 눈 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설마 자살한 내가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또는 불안 정한 애정관계 때문에… 불확실한 경제 상황 때문에 가엾게도 자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나를 죽도록 괴롭혀온 존재를 죽인 타살자이다. 나는 드디어 살 수 있다.
14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종로구 소격동 59-1 국제갤러리 박미정
14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종로구 소격동 59-1 국제갤러리 박미정
준은 정확히 모르겠다는 것이,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 셋의 공 통된 생각이었고─물론 이런 단순한 일에도 명분을 붙이는 식의 사 고는 나만이 할 테지만─, 나는 다소 투자한 것이 빛을 본다는 느낌 이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있다가 외출을 할 때면 약간씩은 코스튬을 지정해 주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것에 따라 충실하게 치장을 하지는 않았고 그것이 우리의 사이를 나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날, 나는 사실 다소의 부담을 가지고 외출준비를 시작했는데, 결국은 내 가 아끼는 치마와 그에게 빌려준 적이 있었던 캄보디아에서 사온 국 립공원을 홍보하는 티셔츠, 그리고 베트남에서 사온 남보라 색 카디 건을 걸쳤다. 그날 그의 옷, 정확히 어떤 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외투 를 걸쳤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 검정색이었을 것이고, 청바지 였을 것이다. 샴푸를 한 머리가 붕 뜨는 것이 싫다며 머리를 말리고는 그 말렸던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내 옆에 앉았다. 나도 반곱슬이라 서 머리가 자주 뜬다는 말을 하면서 여자의 치장이라고는 너무 간단
17
리는 그 덕분에 무료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우리를 선택한 기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회원 자격만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우
준은 정확히 모르겠다는 것이,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 셋의 공 통된 생각이었고─물론 이런 단순한 일에도 명분을 붙이는 식의 사 고는 나만이 할 테지만─, 나는 다소 투자한 것이 빛을 본다는 느낌 이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있다가 외출을 할 때면 약간씩은 코스튬을 지정해 주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것에 따라 충실하게 치장을 하지는 않았고 그것이 우리의 사이를 나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날, 나는 사실 다소의 부담을 가지고 외출준비를 시작했는데, 결국은 내 가 아끼는 치마와 그에게 빌려준 적이 있었던 캄보디아에서 사온 국 립공원을 홍보하는 티셔츠, 그리고 베트남에서 사온 남보라 색 카디 건을 걸쳤다. 그날 그의 옷, 정확히 어떤 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외투 를 걸쳤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 검정색이었을 것이고, 청바지 였을 것이다. 샴푸를 한 머리가 붕 뜨는 것이 싫다며 머리를 말리고는 그 말렸던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내 옆에 앉았다. 나도 반곱슬이라 서 머리가 자주 뜬다는 말을 하면서 여자의 치장이라고는 너무 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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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그 덕분에 무료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우리를 선택한 기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회원 자격만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우
른 이야기들을 건네면서 내 옆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이런 장면들
끼면서 얼마간은 집중을 하고 있었다. 미술계에 대한 앎의 욕망도 있
이 그와 외출을 하게 되면서 머릿속에 많이 떠올랐다. 아까의 그 사람
었던지라 나는 눈과 귀 코까지도 찡긋찡긋 쫑긋쫑긋 킁킁하면서 집
이 지금의 이 사람과 다르지 않은데, 이렇듯 떠오르는 것은 약간은 쌀
중하였지만 점점 소리는 저 멀리로 써라운화되어 나를 감싸지만 아
쌀해진 날씨에 집안의 따뜻한 공기를 그리는 내 몸의 자동적 반응이
무 의미도 없는 소리가 되어가고, 양 옆의 친구들의 온기가 살포시 따
라고만 생각하면서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버스를 탔더라 지
사롭기까지 해서 곧 잠에 빠졌다. 다행히도 질문의 시간쯤에는 깨었
하철을 탔더라, 아무튼 다른 두 명의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우
는데, 괜스레, 뭔가를 질문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느라고 꽤나 힘들
리는 집을 떠나 국제갤러리 행을 하고 있었다.
었다. 머릿속에는 문장이 부재하지만 그 부재를 인식하는 머리 또한
서로 친구사이인 두 여인이 그렇게 서서 있었다. 아리따운 모습
나의 것이기에 억척스럽게도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으로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둘의 옷에 대해서는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나 표정은 부드럽게 또한 슬로우, 슬로우. 뭐 대충 그들만의 잔
둘의 일본여행에서 사왔다는 에이프런을 하얀 민소매 위에 입고 아
치가 끝이 나고, 안내 종이를 접어서 가방에 넣으면서 우리도 우리의
래에 슬림한 청바지를 입었던 혜와 집 앞의 작은 컨테이너 방에서 구
자리를 마무리했다. 전시는 좋았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이가 말하는
제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샀다는 꽃무늬 원피스를 자신의 몸에 맞게
좋.았.다.와 같지는 않겠지만 순수─무지에서 오는─한 관객의 하나
작게 수선해서 입고 아래는 진한 색 스타킹을 신었던 희. 난 그 둘을
로 나는 충분히 즐겼다. 면도칼 모양으로 잘라놓은 날카로워 보이지
볼 때면 저들이야 말로 진정 ‘여자’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그 둘
는 않던 종이와 쓰레기 더미를 쌓아서 조명을 비추어 생긴 그림자가
의 눈에는 내가 마냥 귀여웠던지 둘은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아닐
마치 쥐의 교배하는 모습처럼 보이던 작품도 좋았다. 정말로 보고 그
까 조바심을 내는 나에게 계속해서 귀엽다, 귀엽다 해주었다.
린 것이라면 관찰자의 시선이 아주 높게 서부터 아주 낮게까지 있던
우리는 이층으로 갔다. 전시를 보는 것에 앞서서 우리에게는 소
여성 혼자 또는 두 남녀의 성性이라기보다는 성기性記를 즐기는 드
수 정원만이 참석이 가능하다는 작가 설명회에 참여할 기회가 부여
로잉도 좋았다. 나의 이런 표현에 힘을 실어줄 해당 작품을 귀찮음과
되었다. 특권을 즐길 줄 아는 나라는 작자는 알고서 간 것이라 해도 기
저작권상의 문제로 실을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전시를 다 보고
분이 살짝 더 들떴다. 그 계단에서 그는 나의 액션 샘플러를 찰칵거렸
밖으로 나와서 갤러리의 대형 간판을 액션샘플러에 담았다. 혜가 핸
다. 희는 언제나처럼 얼굴을 손으로 우아하게 가렸고, 혜는 웃으면서
드폰에 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사진을 찍었다. 그래야만 오늘의
고개를 아래로 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지금의 내가 보기에 너무도
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약간은 의식을 치른
해맑게 웃었다. 이 사진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해서 간택하여 나만의
다는 기분으로. 다음 전시에는 다시 바뀔 간판, 이것을 간판이라고 불
사진첩의 한 장을 장식하도록 해주었다.
러야 할지도 정확히 모르겠는 그 것에는 안에서 보았던 드로잉 중 하
친절한 통역은 없었다. 아니 있었던가? 나는 앞의 약 20분간에 만 깨어 있었다. 내가 아는 단어들이 문장의 중간 중간에 등장할 때면
나가 크게 전사되어있었고, enjoy sex라는 제목이 아래에 아니 오른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작가가 둘이었기에 ‘누구 & 누구’ 식의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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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영어 청취가 능란하게 되는 듯 한 착각을 하면서 그 재미를 느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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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한, 얼굴에 스킨을 바르는 정도를 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째잘째잘 다
른 이야기들을 건네면서 내 옆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이런 장면들
끼면서 얼마간은 집중을 하고 있었다. 미술계에 대한 앎의 욕망도 있
이 그와 외출을 하게 되면서 머릿속에 많이 떠올랐다. 아까의 그 사람
었던지라 나는 눈과 귀 코까지도 찡긋찡긋 쫑긋쫑긋 킁킁하면서 집
이 지금의 이 사람과 다르지 않은데, 이렇듯 떠오르는 것은 약간은 쌀
중하였지만 점점 소리는 저 멀리로 써라운화되어 나를 감싸지만 아
쌀해진 날씨에 집안의 따뜻한 공기를 그리는 내 몸의 자동적 반응이
무 의미도 없는 소리가 되어가고, 양 옆의 친구들의 온기가 살포시 따
라고만 생각하면서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버스를 탔더라 지
사롭기까지 해서 곧 잠에 빠졌다. 다행히도 질문의 시간쯤에는 깨었
하철을 탔더라, 아무튼 다른 두 명의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우
는데, 괜스레, 뭔가를 질문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느라고 꽤나 힘들
리는 집을 떠나 국제갤러리 행을 하고 있었다.
었다. 머릿속에는 문장이 부재하지만 그 부재를 인식하는 머리 또한
서로 친구사이인 두 여인이 그렇게 서서 있었다. 아리따운 모습
나의 것이기에 억척스럽게도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으로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둘의 옷에 대해서는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나 표정은 부드럽게 또한 슬로우, 슬로우. 뭐 대충 그들만의 잔
둘의 일본여행에서 사왔다는 에이프런을 하얀 민소매 위에 입고 아
치가 끝이 나고, 안내 종이를 접어서 가방에 넣으면서 우리도 우리의
래에 슬림한 청바지를 입었던 혜와 집 앞의 작은 컨테이너 방에서 구
자리를 마무리했다. 전시는 좋았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이가 말하는
제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샀다는 꽃무늬 원피스를 자신의 몸에 맞게
좋.았.다.와 같지는 않겠지만 순수─무지에서 오는─한 관객의 하나
작게 수선해서 입고 아래는 진한 색 스타킹을 신었던 희. 난 그 둘을
로 나는 충분히 즐겼다. 면도칼 모양으로 잘라놓은 날카로워 보이지
볼 때면 저들이야 말로 진정 ‘여자’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그 둘
는 않던 종이와 쓰레기 더미를 쌓아서 조명을 비추어 생긴 그림자가
의 눈에는 내가 마냥 귀여웠던지 둘은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아닐
마치 쥐의 교배하는 모습처럼 보이던 작품도 좋았다. 정말로 보고 그
까 조바심을 내는 나에게 계속해서 귀엽다, 귀엽다 해주었다.
린 것이라면 관찰자의 시선이 아주 높게 서부터 아주 낮게까지 있던
우리는 이층으로 갔다. 전시를 보는 것에 앞서서 우리에게는 소
여성 혼자 또는 두 남녀의 성性이라기보다는 성기性記를 즐기는 드
수 정원만이 참석이 가능하다는 작가 설명회에 참여할 기회가 부여
로잉도 좋았다. 나의 이런 표현에 힘을 실어줄 해당 작품을 귀찮음과
되었다. 특권을 즐길 줄 아는 나라는 작자는 알고서 간 것이라 해도 기
저작권상의 문제로 실을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전시를 다 보고
분이 살짝 더 들떴다. 그 계단에서 그는 나의 액션 샘플러를 찰칵거렸
밖으로 나와서 갤러리의 대형 간판을 액션샘플러에 담았다. 혜가 핸
다. 희는 언제나처럼 얼굴을 손으로 우아하게 가렸고, 혜는 웃으면서
드폰에 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사진을 찍었다. 그래야만 오늘의
고개를 아래로 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지금의 내가 보기에 너무도
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약간은 의식을 치른
해맑게 웃었다. 이 사진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해서 간택하여 나만의
다는 기분으로. 다음 전시에는 다시 바뀔 간판, 이것을 간판이라고 불
사진첩의 한 장을 장식하도록 해주었다.
러야 할지도 정확히 모르겠는 그 것에는 안에서 보았던 드로잉 중 하
친절한 통역은 없었다. 아니 있었던가? 나는 앞의 약 20분간에 만 깨어 있었다. 내가 아는 단어들이 문장의 중간 중간에 등장할 때면
나가 크게 전사되어있었고, enjoy sex라는 제목이 아래에 아니 오른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작가가 둘이었기에 ‘누구 & 누구’ 식의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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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영어 청취가 능란하게 되는 듯 한 착각을 하면서 그 재미를 느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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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한, 얼굴에 스킨을 바르는 정도를 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째잘째잘 다
가 그 아래에 또한 적혀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S가 들어간
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그들이라는 존재의 무게인 것을 알게 된 후로
이름이었는데….
그것은 그를 꼽추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그를 납작하게 눌
여자 셋의 첫 국제갤러리 나들이겸, 그의 우리와 함께인 채로는
러 모든 내용물이 빠진 구멍 난 피복으로 만들었다. 그는 프랑스의 공
처음일 국제갤러리 방문은 끝이 났다. 자, 이제부터가 픽션이다. 기억
기를 주입받아 다시 입체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쉽게 떠들
에 의한 재현이 얼마만큼이나 논픽션에 가까울까 만은 그래도 이제
었던 유학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부축하여 다시 서
부터는 정말이지 그는 살아 숨 쉬고 그녀들은 말하고 느끼고 풀어낼
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를 보내기 위해 굿바이 P를 내건 모임을 3
것이다.
번이나 했던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돌아왔다. 그는 긴 말을 간이 흘렀고 그는 분명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쇼로 보았던
다. 그는 밤 말을 즐겨 들었다. 그는 조금씩 먹어서 배불렸고, 너무도
사람들이 나중에 정말로 그가 쇼를 했다며 분개했다. 그는 몇몇의 사
명확한 자신의 존재를 은폐하려 애썼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주의의 사
람들에게 돈과 그 무엇을 빌려서 사라져버렸고, 사람들은 이제 그를
람이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은 “나 여기 없다고 해”였다. 그래서 사
떠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람들은 으레 그와 같이 있을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들이 “P여
그는 지금 뉴욕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외국인 또는 모르는
기 없는데”라고 말하면 그것을 반대로 “P는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
사람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곳을 그는 너무나 즐기고 있다. 그
어”로 듣곤 했다. P도 그것을 알았지만 계속해서 숨었고, 그래서 우리
는 며칠 전부터 요전부터 물색해 놓았던 공동 작업실을 드나들기 시
는 계속해서 그를 숨겨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항상 드러나 있었
작했다. 바늘이 위 아래로 계속해서 움직인다. 모두가 누군가를 롤모
다. 그의 모습은 전혀 혐오스런 쥐의 모습을 닮지는 않았다. 그는 체
델로 꿈을 꾸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에게만 유일하
구도 키도 작았고 눈도 크지 않았지만 분명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
게 롤모델이 없다. 그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던 마틴 마르지엘
었음에도 그를 보면서 쥐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의 단서는 저 스스로
라도 이제는 그에게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컬렉션 잡지를 보면서도
던져주고는 했다.
어느 디자이너에게도 완전히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것이
그는 자신 존재의 의미를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
그 자신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몇 번 프레스
했다. 그래서 항상 사람을 만났고, 또 그들을 욕했다. 물론 언제나 애
를 도왔던 그 디자이너도 마음 속 끝까지는 존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이 깃들어 있었으므로 그것으로 그를 탓하는 사람은 주변에는 없
애정을 쏟아 그를 도왔다. 그가 부탁받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언제
었다. 그는 말하기를 즐겼고, 듣는 것 또한 즐겼다. 모두가 그에게 와
나 비슷했다. 그는 정성을 다 했다기에는 너무도 부족해 보일만큼 애
서 감히 밖으로 내뱉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게워내고
정을 쏟았다는 것으로는 충분해 보일만큼의 수준으로 일을 해냈다.
는 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무게는 그를 짓눌렀다. 그들 자체가 아
기간을 맞추는 일은 드물었다. 그에게 데드라인은 그러니까 그 자신
닌 그들 말의 무게라고 생각했던 때에는 그도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
을 죽이는 날이었다. 그는 훈련받은 성실함에 이끌려 자신이 그 일을
21
그는 자신이 쥐라고 생각했다. 그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했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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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하지는 않았다. 그는 뭔가 보여주어야 겠다고 계속해서 다짐했다. 시
가 그 아래에 또한 적혀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S가 들어간
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그들이라는 존재의 무게인 것을 알게 된 후로
이름이었는데….
그것은 그를 꼽추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그를 납작하게 눌
여자 셋의 첫 국제갤러리 나들이겸, 그의 우리와 함께인 채로는
러 모든 내용물이 빠진 구멍 난 피복으로 만들었다. 그는 프랑스의 공
처음일 국제갤러리 방문은 끝이 났다. 자, 이제부터가 픽션이다. 기억
기를 주입받아 다시 입체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쉽게 떠들
에 의한 재현이 얼마만큼이나 논픽션에 가까울까 만은 그래도 이제
었던 유학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부축하여 다시 서
부터는 정말이지 그는 살아 숨 쉬고 그녀들은 말하고 느끼고 풀어낼
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를 보내기 위해 굿바이 P를 내건 모임을 3
것이다.
번이나 했던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돌아왔다. 그는 긴 말을 간이 흘렀고 그는 분명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쇼로 보았던
다. 그는 밤 말을 즐겨 들었다. 그는 조금씩 먹어서 배불렸고, 너무도
사람들이 나중에 정말로 그가 쇼를 했다며 분개했다. 그는 몇몇의 사
명확한 자신의 존재를 은폐하려 애썼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주의의 사
람들에게 돈과 그 무엇을 빌려서 사라져버렸고, 사람들은 이제 그를
람이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은 “나 여기 없다고 해”였다. 그래서 사
떠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람들은 으레 그와 같이 있을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들이 “P여
그는 지금 뉴욕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외국인 또는 모르는
기 없는데”라고 말하면 그것을 반대로 “P는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
사람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곳을 그는 너무나 즐기고 있다. 그
어”로 듣곤 했다. P도 그것을 알았지만 계속해서 숨었고, 그래서 우리
는 며칠 전부터 요전부터 물색해 놓았던 공동 작업실을 드나들기 시
는 계속해서 그를 숨겨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항상 드러나 있었
작했다. 바늘이 위 아래로 계속해서 움직인다. 모두가 누군가를 롤모
다. 그의 모습은 전혀 혐오스런 쥐의 모습을 닮지는 않았다. 그는 체
델로 꿈을 꾸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에게만 유일하
구도 키도 작았고 눈도 크지 않았지만 분명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
게 롤모델이 없다. 그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던 마틴 마르지엘
었음에도 그를 보면서 쥐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의 단서는 저 스스로
라도 이제는 그에게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컬렉션 잡지를 보면서도
던져주고는 했다.
어느 디자이너에게도 완전히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것이
그는 자신 존재의 의미를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
그 자신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몇 번 프레스
했다. 그래서 항상 사람을 만났고, 또 그들을 욕했다. 물론 언제나 애
를 도왔던 그 디자이너도 마음 속 끝까지는 존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이 깃들어 있었으므로 그것으로 그를 탓하는 사람은 주변에는 없
애정을 쏟아 그를 도왔다. 그가 부탁받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언제
었다. 그는 말하기를 즐겼고, 듣는 것 또한 즐겼다. 모두가 그에게 와
나 비슷했다. 그는 정성을 다 했다기에는 너무도 부족해 보일만큼 애
서 감히 밖으로 내뱉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게워내고
정을 쏟았다는 것으로는 충분해 보일만큼의 수준으로 일을 해냈다.
는 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무게는 그를 짓눌렀다. 그들 자체가 아
기간을 맞추는 일은 드물었다. 그에게 데드라인은 그러니까 그 자신
닌 그들 말의 무게라고 생각했던 때에는 그도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
을 죽이는 날이었다. 그는 훈련받은 성실함에 이끌려 자신이 그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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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쥐라고 생각했다. 그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했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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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는 않았다. 그는 뭔가 보여주어야 겠다고 계속해서 다짐했다. 시
제 날짜에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정말 죽을 수 있을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만 가서 그는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것 같았다.
이제는 스스로 데드라인을 정했다. 내년. 서른다섯이 되는 내년까지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남에게 위탁해 버렸다. 그가
도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면 그때에는 정말이지 죽어도 괜찮겠다
열심히 공부한 이유도 열심히 미술을 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는 남
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친구들을 생각한다. 당장이라도 돈
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내가 그들의 비위를 맞
을 들고 그들을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그가 모든 빚을 갚았을 때에도
추면 필시 그들도 나를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가 그의 기본
그는 여전히 빚 독촉을 받을 것이다. 자신에게 진 빚. 영영 다 갚지 못
전제였다. 자신에게 자신의 존재가 특별했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할 빚. 자신은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 버렸다. 어떠한 식으로든 그는
자신이 자신의 존재를 매우 하찮게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살려고 했다. 그 빚이 자신 존재에 대한 수도 없는 빚이 그에게는 엄청
었다. 하찮지만 존재를 의식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그는 생
나게 거대한 모습으로 항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모두들 자기 얘기가 나올까봐 덜덜 떨고 있는 꼴이라니.”
일까를 더 생각했다. 그는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
“뭐.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 다들 결국은 사람이니까.”
고 싶었다. 자신이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찮아졌고 무의미해졌다.
그는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린다.
모두가 좋아하는 의미 있는 무의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더욱 자
그녀는 속눈썹을 한 번 쓸어 올린다.
신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
그들은 나란히 누웠다. 그녀는 그가 사실은 바이라는 사실에 약
다. 자신이 자신을 매우 좋아했던 때도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
간은 긴장했고, 그는 그녀가 사람이라는 사실에 매우 많이 긴장했다.
고는 그때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이유에서 둘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간다. 어색함을 견디지
그는 너무 많은 것들의 대가로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의 생
못하고 박차고 일어나려는 그녀를 몇 초 앞서 그가 부스스 일어난다.
각의 대부분은 죽음, 그것도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
“우리, 라면 끓여 먹을까?”
문에 그는 죽음과 매우 친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아는 죽음뿐이었
“응.”
다. 그는 죽어간 그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 그것이 평생 그의 피 속을
그녀도 서두르지 않고 일어났다. 부엌에 불이 켜진다. 그녀가 가
흐르면서 절대로 잊지 않게 해 주었다. 자신이 몸에서 피를 모두 빼내
만히 있어도 라면을 끓이는 일은 이미 많이 진행되었다. 냄비받침으
어 죽으면 몸의 생명력을 끝이다. 그러면 그의 의식은 있을 곳을 모르
로 쓸 무엇을 구해다가 상위에 얹어놓는 것으로 그녀도 손을 보탰다.
고 떠돌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빠져나간 피에서도 그 자신을 볼 것
빼어나게 맛있는 것도 아닌 라면을 맛있게도 먹는다. 그들의 머리위
이다. 피가 수챗구멍 속으로 사라져도 그 피 자체는 절대로 사라지지
로 방의 두 모서리를 잇는 와이어에 널린 빨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
않아서 의식은 자꾸만 그것을 의식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육체 없는
다. 팬티도 있고, 티셔츠도 있고 원피스도 있다. 그들의 식탁만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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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는 왜 내가 살아있는 것일까 보다 나는 왜 나일 수밖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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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만큼은 있어서 매우 귀찮게도 자신 주위를 웽웽대며 돌고 있던 것이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각했다. 될 수만 있다면 아예 소멸되어버리고 싶지만 그 무게가 파리
제 날짜에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정말 죽을 수 있을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만 가서 그는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것 같았다.
이제는 스스로 데드라인을 정했다. 내년. 서른다섯이 되는 내년까지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남에게 위탁해 버렸다. 그가
도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면 그때에는 정말이지 죽어도 괜찮겠다
열심히 공부한 이유도 열심히 미술을 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는 남
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친구들을 생각한다. 당장이라도 돈
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내가 그들의 비위를 맞
을 들고 그들을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그가 모든 빚을 갚았을 때에도
추면 필시 그들도 나를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가 그의 기본
그는 여전히 빚 독촉을 받을 것이다. 자신에게 진 빚. 영영 다 갚지 못
전제였다. 자신에게 자신의 존재가 특별했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할 빚. 자신은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 버렸다. 어떠한 식으로든 그는
자신이 자신의 존재를 매우 하찮게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살려고 했다. 그 빚이 자신 존재에 대한 수도 없는 빚이 그에게는 엄청
었다. 하찮지만 존재를 의식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그는 생
나게 거대한 모습으로 항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모두들 자기 얘기가 나올까봐 덜덜 떨고 있는 꼴이라니.”
일까를 더 생각했다. 그는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
“뭐.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 다들 결국은 사람이니까.”
고 싶었다. 자신이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찮아졌고 무의미해졌다.
그는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린다.
모두가 좋아하는 의미 있는 무의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더욱 자
그녀는 속눈썹을 한 번 쓸어 올린다.
신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
그들은 나란히 누웠다. 그녀는 그가 사실은 바이라는 사실에 약
다. 자신이 자신을 매우 좋아했던 때도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
간은 긴장했고, 그는 그녀가 사람이라는 사실에 매우 많이 긴장했다.
고는 그때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이유에서 둘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간다. 어색함을 견디지
그는 너무 많은 것들의 대가로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의 생
못하고 박차고 일어나려는 그녀를 몇 초 앞서 그가 부스스 일어난다.
각의 대부분은 죽음, 그것도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
“우리, 라면 끓여 먹을까?”
문에 그는 죽음과 매우 친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아는 죽음뿐이었
“응.”
다. 그는 죽어간 그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 그것이 평생 그의 피 속을
그녀도 서두르지 않고 일어났다. 부엌에 불이 켜진다. 그녀가 가
흐르면서 절대로 잊지 않게 해 주었다. 자신이 몸에서 피를 모두 빼내
만히 있어도 라면을 끓이는 일은 이미 많이 진행되었다. 냄비받침으
어 죽으면 몸의 생명력을 끝이다. 그러면 그의 의식은 있을 곳을 모르
로 쓸 무엇을 구해다가 상위에 얹어놓는 것으로 그녀도 손을 보탰다.
고 떠돌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빠져나간 피에서도 그 자신을 볼 것
빼어나게 맛있는 것도 아닌 라면을 맛있게도 먹는다. 그들의 머리위
이다. 피가 수챗구멍 속으로 사라져도 그 피 자체는 절대로 사라지지
로 방의 두 모서리를 잇는 와이어에 널린 빨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
않아서 의식은 자꾸만 그것을 의식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육체 없는
다. 팬티도 있고, 티셔츠도 있고 원피스도 있다. 그들의 식탁만큼 간
23
다. 그는 왜 내가 살아있는 것일까 보다 나는 왜 나일 수밖에 없는 것
22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만큼은 있어서 매우 귀찮게도 자신 주위를 웽웽대며 돌고 있던 것이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각했다. 될 수만 있다면 아예 소멸되어버리고 싶지만 그 무게가 파리
각이다. 그녀는 부끄러움 없이 그것을 널었고, 그는 부끄러워하면서
그녀는 요즘 도쿄에 있다. 이번에는 정말로 결혼할 수 있을 것 같
그것을 널었다. 그녀는 비싼 팬티 입는다면서 그의 부끄럼을 위로했
던 그 사람은 결국 마지막엔 제 나라의 말로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가
고, 그는 그녀의 팬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티셔
며 떠들어 대다가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떠나갔다. 따지고 보면 그
츠는 그가 빨아 주었다. 그녀가 깜빡 잊고 떼지 않은 옷핀에 손을 찔
녀는 이번에도 잘못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
려가면서, 투덜대면서도 깨끗하게 빨아주었다. 그녀가 조물조물하
지만 자꾸 그렇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역시도 잘못은
고 있으려니 그가 이내 뺏어서 처리한 것이다. 그런 앙콤한 배려가 귀
없었다. 몇 번이나 경험해본 일이지만 정말이지 이런 일에 잘잘못을
여워서 그녀는 웃음 지었다. 그는 그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그녀를 바
따지는 것은 어떤 심리일지 그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라보았다. 둘은 이상하게 닮은 데가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때때로 병
정말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작정으로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작은 트
신같이 웃는다. 그만이 그녀를 고양이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충
렁크에 짐을 꾸렸다. 자신이 입으면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드
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할 수가
는,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 누군가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예쁜 옷들
없다. 그녀는 사실 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정말로
은 아예 들고 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의식을 치르듯 매우 얌전하고 단
굿바이 P.
순한 옷들만을 짐에 꾸렸다. 그리고 그녀가 아끼는 디즈니의 어린이
혜는 이제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이 매우
용 전동칫솔, 샘플들을 모아놓은 작은 파우치, 속옷 몇 개와 언젠가
예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매력적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
여행을 가서 읽으리라 사두었지만 매번의 여행마다 한 페이지조차
는 쉬지 않고 연애를 했다. 가짜로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그 순간만
넘겨지지 않은 책으로 남은 공간을 채웠다. 그녀의 가족들도 이제는
큼은 항상 너무 많이 사랑했다. 그녀가 더 사랑해서 떠난 사람도 있었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그녀가 높은 곳에 두었던 트렁크를 내리면 그
고, 그녀가 덜 사랑해서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녀가 만난 남자들은
저 한 번 눈길을 힐끗 줄 뿐 다시 자신의 일을 했다. 그것이 무관심이
직업도 다양했다. 나이도 다양했다. 그녀는 지치지 않고 사랑했다. 쉬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도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 그녀는 이번
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서툴렀었다. 지금은 잘 울지 않지
은 꽤 익숙한 곳으로 장소를 정했다. 비행기 티켓과 호텔 예약도 많이
만 그 사람의 한 마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때도 있었다. 그녀의 가슴
재지 않고 정했다. 그녀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때까지도 그녀는 슬
은 이제 덜 축축하다. 아주 건조하지도 않다. 반 건조 된 어물처럼 씹
프지 않았다. 다른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이별에 관한 것
기에 적당한 정도의 수분을 유지하는 법을 그녀는 터득했다. 그녀는
들이 아니었다. 사랑에 관한 것들 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랑하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여행을 했다. 그 여행을 통해서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신이 그동안 왜 사랑을 했었는
다시 사랑을 획득했다. 그렇게 되다보니 어느새 마음을 정리하려던
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다가는 자신이 정말로 사랑을 했는지 의
이전의 여행의 목적이라는 것은 사라졌다. 그녀는 사랑이 끝나면 으
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깊은 잠에 빠졌다. 미안하게도 길은 길
레 여행을 계획했고, 그 곳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에 대한 열망이
지 않았고 그녀는 곧 깨어야 했다. 바쁜 머릿속에 비해서 기분은 몽롱
25
너무도 커서 이전의 사람은 식어버린 번데기처럼 느꼈다.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24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간한 옷들이 말라가고 있다. 그녀의 팬티는 삼각이다. 그의 팬티는 사
각이다. 그녀는 부끄러움 없이 그것을 널었고, 그는 부끄러워하면서
그녀는 요즘 도쿄에 있다. 이번에는 정말로 결혼할 수 있을 것 같
그것을 널었다. 그녀는 비싼 팬티 입는다면서 그의 부끄럼을 위로했
던 그 사람은 결국 마지막엔 제 나라의 말로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가
고, 그는 그녀의 팬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티셔
며 떠들어 대다가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떠나갔다. 따지고 보면 그
츠는 그가 빨아 주었다. 그녀가 깜빡 잊고 떼지 않은 옷핀에 손을 찔
녀는 이번에도 잘못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
려가면서, 투덜대면서도 깨끗하게 빨아주었다. 그녀가 조물조물하
지만 자꾸 그렇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역시도 잘못은
고 있으려니 그가 이내 뺏어서 처리한 것이다. 그런 앙콤한 배려가 귀
없었다. 몇 번이나 경험해본 일이지만 정말이지 이런 일에 잘잘못을
여워서 그녀는 웃음 지었다. 그는 그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그녀를 바
따지는 것은 어떤 심리일지 그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라보았다. 둘은 이상하게 닮은 데가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때때로 병
정말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작정으로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작은 트
신같이 웃는다. 그만이 그녀를 고양이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충
렁크에 짐을 꾸렸다. 자신이 입으면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드
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할 수가
는,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 누군가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예쁜 옷들
없다. 그녀는 사실 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정말로
은 아예 들고 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의식을 치르듯 매우 얌전하고 단
굿바이 P.
순한 옷들만을 짐에 꾸렸다. 그리고 그녀가 아끼는 디즈니의 어린이
혜는 이제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이 매우
용 전동칫솔, 샘플들을 모아놓은 작은 파우치, 속옷 몇 개와 언젠가
예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매력적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
여행을 가서 읽으리라 사두었지만 매번의 여행마다 한 페이지조차
는 쉬지 않고 연애를 했다. 가짜로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그 순간만
넘겨지지 않은 책으로 남은 공간을 채웠다. 그녀의 가족들도 이제는
큼은 항상 너무 많이 사랑했다. 그녀가 더 사랑해서 떠난 사람도 있었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그녀가 높은 곳에 두었던 트렁크를 내리면 그
고, 그녀가 덜 사랑해서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녀가 만난 남자들은
저 한 번 눈길을 힐끗 줄 뿐 다시 자신의 일을 했다. 그것이 무관심이
직업도 다양했다. 나이도 다양했다. 그녀는 지치지 않고 사랑했다. 쉬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도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 그녀는 이번
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서툴렀었다. 지금은 잘 울지 않지
은 꽤 익숙한 곳으로 장소를 정했다. 비행기 티켓과 호텔 예약도 많이
만 그 사람의 한 마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때도 있었다. 그녀의 가슴
재지 않고 정했다. 그녀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때까지도 그녀는 슬
은 이제 덜 축축하다. 아주 건조하지도 않다. 반 건조 된 어물처럼 씹
프지 않았다. 다른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이별에 관한 것
기에 적당한 정도의 수분을 유지하는 법을 그녀는 터득했다. 그녀는
들이 아니었다. 사랑에 관한 것들 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랑하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여행을 했다. 그 여행을 통해서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신이 그동안 왜 사랑을 했었는
다시 사랑을 획득했다. 그렇게 되다보니 어느새 마음을 정리하려던
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다가는 자신이 정말로 사랑을 했는지 의
이전의 여행의 목적이라는 것은 사라졌다. 그녀는 사랑이 끝나면 으
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깊은 잠에 빠졌다. 미안하게도 길은 길
레 여행을 계획했고, 그 곳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에 대한 열망이
지 않았고 그녀는 곧 깨어야 했다. 바쁜 머릿속에 비해서 기분은 몽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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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커서 이전의 사람은 식어버린 번데기처럼 느꼈다.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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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간한 옷들이 말라가고 있다. 그녀의 팬티는 삼각이다. 그의 팬티는 사
초점이 없는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앞에 아주머니가 멈
중적인 취향을 지닌 자신에게 스스로 웃음 지으면서 들어섰는데 그
추어 섰다. 코트의 칼라에 붙은 욘사마 얼굴이 프린트된 뱃지가 그녀
웃음을 남자 직원이 봐버리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웃
라는 한국인에 대한 관심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음에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이지만
“아주머니 욘사마를 사랑하셨죠? 정말로 사랑하셨죠. 그러셨잖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경우의 마지막을 떠올려봤다. 역시 마지
아요. 정말로 사랑하셨잖아요. 혼또니 아이시떼루. 아이시떼루. 혼또
막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 장면에서 금방 사라져 버리는 그의 얼굴을
니. 혼또니.”
다시 한 번 보기위해서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는 이것이 눈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심장에 차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녀
른 수분이 넘쳐 눈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건어물인 채로의
는 이번에도 웃었다. 너란 아인 참. 그녀는 자신을 아이인 채로 하고
삶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일 당장 썩어버리더라도 축축한 채로 살아
는 웃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조차도 자신이
가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로?
켓을 보고 하나를 선택했다. 검정색 바탕에 빨간 비를 맞고 서 있는
희는 살아있다. 포토메일을 확인한 후 답문을 보내고 있다. 토독
여자가 있었다. 흑백의 사진에 빨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를 맞
토독 잘 정리된 손톱이 핸드폰 위에서 또각또각 걷고 있다. 그녀만큼
는 여자의 표정은 웃는지 우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는 심각한 것
마음에 들었다.
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수는 적지만 그것이 그녀가 신중하다거나 무
“에끼와 도꼬데스까?”
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도록 했다. 잘 웃었지만 웃는 얼굴만으
그녀는 에끼에끼하고 여러 번 발음해 보고는 도꼬도꼬하고 또
로 기억되지 않으려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했을 만큼 삶에 고요한 순
한 여러 번 발음해 보았다. 이것이 맞는 문장인지도 생각해 보고 자신
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표현이 맞다. 아니 애쓰지 않으려고
이 정말로 역으로 가는 방향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
애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를 자신에
다. 얇은 구두의 밑창으로 딱딱하고 서린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춥
게도 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을 생각할수록 뇌
다. 춥다. 꽤 춥다고 생각했다.
에 더 많은 것이 기록된다는 사실이 싫어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
“아노… 아노….”
썼다.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잘 몰랐다. 그만큼 그
그녀는 사람도 불러 세우지 않고 중얼거렸다.
녀와 가까워지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요를 일본어로 뭐라고 하면 되는지 물
머릿속에 가두었다. 너무 많은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쉬크라는 것의
어보려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문장의 앞에는 시츠레이시마스를 붙여야하나 말아야하나. 역
발원지가 그녀인 것처럼 코드화 시켜서 그 속에 그녀를 앉혔다. 그녀 는 그래서 사람들에 조금은 디지털 같은 매력이 있었다. 그녀를 보면
27
시부야에서 그녀는 결국 레코드점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대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시나 스미마셍인가.
타인이 되는 이런 뇌구조는 누가 만든 것일까 하고. 그녀는 CD의 자
26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한 채로 공항에서 그녀는 작은 트렁크를 토동토동 끌었다.
초점이 없는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앞에 아주머니가 멈
중적인 취향을 지닌 자신에게 스스로 웃음 지으면서 들어섰는데 그
추어 섰다. 코트의 칼라에 붙은 욘사마 얼굴이 프린트된 뱃지가 그녀
웃음을 남자 직원이 봐버리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웃
라는 한국인에 대한 관심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음에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이지만
“아주머니 욘사마를 사랑하셨죠? 정말로 사랑하셨죠. 그러셨잖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경우의 마지막을 떠올려봤다. 역시 마지
아요. 정말로 사랑하셨잖아요. 혼또니 아이시떼루. 아이시떼루. 혼또
막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 장면에서 금방 사라져 버리는 그의 얼굴을
니. 혼또니.”
다시 한 번 보기위해서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는 이것이 눈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심장에 차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녀
른 수분이 넘쳐 눈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건어물인 채로의
는 이번에도 웃었다. 너란 아인 참. 그녀는 자신을 아이인 채로 하고
삶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일 당장 썩어버리더라도 축축한 채로 살아
는 웃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조차도 자신이
가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로?
켓을 보고 하나를 선택했다. 검정색 바탕에 빨간 비를 맞고 서 있는
희는 살아있다. 포토메일을 확인한 후 답문을 보내고 있다. 토독
여자가 있었다. 흑백의 사진에 빨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를 맞
토독 잘 정리된 손톱이 핸드폰 위에서 또각또각 걷고 있다. 그녀만큼
는 여자의 표정은 웃는지 우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는 심각한 것
마음에 들었다.
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수는 적지만 그것이 그녀가 신중하다거나 무
“에끼와 도꼬데스까?”
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도록 했다. 잘 웃었지만 웃는 얼굴만으
그녀는 에끼에끼하고 여러 번 발음해 보고는 도꼬도꼬하고 또
로 기억되지 않으려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했을 만큼 삶에 고요한 순
한 여러 번 발음해 보았다. 이것이 맞는 문장인지도 생각해 보고 자신
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표현이 맞다. 아니 애쓰지 않으려고
이 정말로 역으로 가는 방향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
애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를 자신에
다. 얇은 구두의 밑창으로 딱딱하고 서린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춥
게도 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을 생각할수록 뇌
다. 춥다. 꽤 춥다고 생각했다.
에 더 많은 것이 기록된다는 사실이 싫어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
“아노… 아노….”
썼다.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잘 몰랐다. 그만큼 그
그녀는 사람도 불러 세우지 않고 중얼거렸다.
녀와 가까워지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요를 일본어로 뭐라고 하면 되는지 물
머릿속에 가두었다. 너무 많은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쉬크라는 것의
어보려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문장의 앞에는 시츠레이시마스를 붙여야하나 말아야하나. 역
발원지가 그녀인 것처럼 코드화 시켜서 그 속에 그녀를 앉혔다. 그녀 는 그래서 사람들에 조금은 디지털 같은 매력이 있었다. 그녀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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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에서 그녀는 결국 레코드점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대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시나 스미마셍인가.
타인이 되는 이런 뇌구조는 누가 만든 것일까 하고. 그녀는 CD의 자
26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한 채로 공항에서 그녀는 작은 트렁크를 토동토동 끌었다.
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무
그녀의 생각이 다이어리에 깨알깨알 적혀지고 있다. 아무에게도 보
릎 위까지 오는 검정색 슬림한 부츠를 신고 그 특유의 무표정함으로
여주지 않을거야 라고 했던 다이어리는 그 자신도 읽을 것이 하나도
삐릿삐릿 로봇처럼 걷는다면 모두가 쾅쾅 웃어버릴 것을 그녀가 알
없었다. 그녀는 하루 뒤 또는 그 보다 더 훗날의 자신을 위해서 오늘
까?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한 번씩은 움직여 주었으면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뇌는 계
하고 바란다. 그런 것에 답해 줄 그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속해서 공회전이라도 반복하고 있다. 그녀는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바
매우 친절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깥의 공기가 차다. 차다. 차다. 그녀는 그 생각도 지웠다. 날씨는 날씨
있는 시간을 그리면 분명 수묵화가 될 것이었다.
일 뿐이며, 계절은 계절일 뿐이다. 오늘 그녀는 반지를 사러 나왔다.
“담배가 정, 생각보다 끊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
자신이 자주 가곤 했던 가게들을 들러서 어떤 반지가 있는지 살필 것
“응, 그렇드라구.”
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취미생활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몇
담배연기가 기왓장 위로 올라가고 있다. 밖이 많이 춥다. 안에는
년간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 희는 반지를 좋아해 라고 물으면 그냥 웃
요즘은 더 대접받는 비흡연자님들이 앉아 계신다. 우리는 담배를 밖
겠지만 그녀는 아주 좋아하고 있다. 알이 크고 손가락을 너무 죄지도
에서 피워야했다. 일하는 남자는 모두가 피우시면 안에서 피우고 그
흘러내릴 만큼 헐렁하지도 않은 크기의 반지를 매우, 아주 좋아한다.
렇지 않을 때는 피우시는 분들이… 라면서 말끝을 흐렸지만 그 대답
그녀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도 몇 개는 있었다. 그녀는 미
은 분명했다. 우리는 벌써 두 번째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
술을 좋아했다.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애가 깊다고도 할 수 있었
다. 유명해 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자 하나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
다. 그런 그녀가 다음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여성
려는 여자 하나가 가을의 밤공기를 태우고 있다.
이라는 점을 생각해봤다. 아무에게도 말해보지 않은 감정에 대해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기억나지 않나요.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생각해봤다. 자신이 봐온 전시들에 대해서 떠올려 봤다. 잘해볼 생각
그녀는 생각을 지운다. 노래에 집중했다. 잠깐은 옛날에 관한 생각이
이었어 라고 그에게 말해줄 것이다. 전시회의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
났다. 웃었던 얼굴들이 지나갔다. 젊었던 자신이 기억났다. 아직도
과 술 한 잔을 해도 좋은 것이다. 그녀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따
젊었다. 청춘은 너무도 길었다. 그녀는 지금보다 몇 살쯤 더 먹어도
릉따릉 열차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여기까지 그녀는 다시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여간은 니코틴과 타르가 약한 담배로 바꾸
생각을 껐다. 헤드폰에서 노래가 계속해서 나온다. 그녀 대신 노래하
어 피웠었지만 오늘은 예전의 담배를 샀다. 예전의 자신이 아니니까
고 있다. 그녀 말고도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다. 그 사람들은 노래도
예전의 맛이 아니다. 습관처럼 피운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우아하다
하고 그림도 그린다. 가끔은 몸을 마구 움직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고 했다. 그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처럼 그녀도 신의 존
이 대신해주기 때문에라도 그녀는 사실 뜻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신이 있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고, 없다고 해
녀도 작가다. 그녀는 조금 더라고 생각했다. 표현을? 생각을? 또는 무
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궁금했다. 신은 있을까? 그날 그 때에도
엇을? 그녀가 걷고 있다. 이렇게 그녀는 일단은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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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신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 작자는?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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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유머
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무
그녀의 생각이 다이어리에 깨알깨알 적혀지고 있다. 아무에게도 보
릎 위까지 오는 검정색 슬림한 부츠를 신고 그 특유의 무표정함으로
여주지 않을거야 라고 했던 다이어리는 그 자신도 읽을 것이 하나도
삐릿삐릿 로봇처럼 걷는다면 모두가 쾅쾅 웃어버릴 것을 그녀가 알
없었다. 그녀는 하루 뒤 또는 그 보다 더 훗날의 자신을 위해서 오늘
까?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한 번씩은 움직여 주었으면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뇌는 계
하고 바란다. 그런 것에 답해 줄 그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속해서 공회전이라도 반복하고 있다. 그녀는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바
매우 친절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깥의 공기가 차다. 차다. 차다. 그녀는 그 생각도 지웠다. 날씨는 날씨
있는 시간을 그리면 분명 수묵화가 될 것이었다.
일 뿐이며, 계절은 계절일 뿐이다. 오늘 그녀는 반지를 사러 나왔다.
“담배가 정, 생각보다 끊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
자신이 자주 가곤 했던 가게들을 들러서 어떤 반지가 있는지 살필 것
“응, 그렇드라구.”
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취미생활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몇
담배연기가 기왓장 위로 올라가고 있다. 밖이 많이 춥다. 안에는
년간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 희는 반지를 좋아해 라고 물으면 그냥 웃
요즘은 더 대접받는 비흡연자님들이 앉아 계신다. 우리는 담배를 밖
겠지만 그녀는 아주 좋아하고 있다. 알이 크고 손가락을 너무 죄지도
에서 피워야했다. 일하는 남자는 모두가 피우시면 안에서 피우고 그
흘러내릴 만큼 헐렁하지도 않은 크기의 반지를 매우, 아주 좋아한다.
렇지 않을 때는 피우시는 분들이… 라면서 말끝을 흐렸지만 그 대답
그녀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도 몇 개는 있었다. 그녀는 미
은 분명했다. 우리는 벌써 두 번째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
술을 좋아했다.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애가 깊다고도 할 수 있었
다. 유명해 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자 하나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
다. 그런 그녀가 다음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여성
려는 여자 하나가 가을의 밤공기를 태우고 있다.
이라는 점을 생각해봤다. 아무에게도 말해보지 않은 감정에 대해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기억나지 않나요.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생각해봤다. 자신이 봐온 전시들에 대해서 떠올려 봤다. 잘해볼 생각
그녀는 생각을 지운다. 노래에 집중했다. 잠깐은 옛날에 관한 생각이
이었어 라고 그에게 말해줄 것이다. 전시회의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
났다. 웃었던 얼굴들이 지나갔다. 젊었던 자신이 기억났다. 아직도
과 술 한 잔을 해도 좋은 것이다. 그녀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따
젊었다. 청춘은 너무도 길었다. 그녀는 지금보다 몇 살쯤 더 먹어도
릉따릉 열차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여기까지 그녀는 다시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여간은 니코틴과 타르가 약한 담배로 바꾸
생각을 껐다. 헤드폰에서 노래가 계속해서 나온다. 그녀 대신 노래하
어 피웠었지만 오늘은 예전의 담배를 샀다. 예전의 자신이 아니니까
고 있다. 그녀 말고도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다. 그 사람들은 노래도
예전의 맛이 아니다. 습관처럼 피운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우아하다
하고 그림도 그린다. 가끔은 몸을 마구 움직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고 했다. 그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처럼 그녀도 신의 존
이 대신해주기 때문에라도 그녀는 사실 뜻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신이 있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고, 없다고 해
녀도 작가다. 그녀는 조금 더라고 생각했다. 표현을? 생각을? 또는 무
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궁금했다. 신은 있을까? 그날 그 때에도
엇을? 그녀가 걷고 있다. 이렇게 그녀는 일단은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29
분명 신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 작자는?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28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모두가 그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유머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요즘은 아니다. 요즘이 말하는 기간이 내 생각보다 긴 것이라면 요즘이라고 붙여도 좋겠다. 글이 잘 써지냐고?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연애는 하지 않고 있다. 동물 중에서는 사 막여우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살고 있는 것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죽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길지만 생각이 없지 않다. 열 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잡히는 돈은 많지 않다. 돈이 필요하지만 없으 니까 곧 꾸어야 하겠다. “언니 나는 세상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국제 미술관에서는 요즘은 어떤 전시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 지만 더 알려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을 보았다. 내가 참 잘 웃고 있다. 30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그러나.”
디카를 꺼내어 지금을 기록한다. 엄마엄마 나는 내 얼굴에서 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아빠아빠 나는 내 얼굴에서 눈 밑 그늘도 영 마 음에 들지 않아요. 꼭 어둠의 자식 같잖아요. 엄마아빠 나는 내 성격 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당신은 나의 무얼 사랑해?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요즘은 아니다. 요즘이 말하는 기간이 내 생각보다 긴 것이라면 요즘이라고 붙여도 좋겠다. 글이 잘 써지냐고?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연애는 하지 않고 있다. 동물 중에서는 사 막여우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살고 있는 것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죽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길지만 생각이 없지 않다. 열 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잡히는 돈은 많지 않다. 돈이 필요하지만 없으 니까 곧 꾸어야 하겠다. “언니 나는 세상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국제 미술관에서는 요즘은 어떤 전시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 지만 더 알려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을 보았다. 내가 참 잘 웃고 있다. 30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그러나.”
디카를 꺼내어 지금을 기록한다. 엄마엄마 나는 내 얼굴에서 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아빠아빠 나는 내 얼굴에서 눈 밑 그늘도 영 마 음에 들지 않아요. 꼭 어둠의 자식 같잖아요. 엄마아빠 나는 내 성격 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당신은 나의 무얼 사랑해?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마포구 창천동 6-129 경남편의점 앞 이상협
Image © 2010 Digital Globe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마포구 창천동 6-129 경남편의점 앞 이상협
Image © 2010 Digital Globe
인연. 그리고 운명에 대해서.
인연. 그리고 운명에 대해서.
일을 끝낸 친구 놈들과 술을 한잔 하러 가는 길이었고 신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시작하고자 삭발을 감행한 내 모습이라든지, 이제 곧 졸업이라는 것이라든지, 어떤 인생이어 왔는지 같은 것 따위는 다 외면했고 더 많은 것을 잊으러 집을 나섰던 새벽 4시에 나는 우산대신 헤드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이놈의 주황색 세상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를 걷다가 파란 간판의 경남편의점이라는 일종의 구멍가게 앞에서 기억하기로 단 한명 맞닥들인 사람이 있었는데, 텅 빈 거리에서 둘만이 걷고 있었더라도 그것은 스치는 인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서로에게 하고 많은 타인인 행인들이 각자 제 갈길
인연
그런데 그녀가 나를 멈춰 세우더군.
2009년 초의 겨울, 드물게 함박눈이 오는 4시경의 새벽.
길을 물어보려는 건가?
경남편의점 앞.
나는 친절하게도 한쪽 귀의 헤드폰을 치웠다.
어떤 노래가 있었는데, 기타의 솔로 부분이 좋아서 그날따라
“네?”
반복해서 들었다.
“저기요, 어디가세요? 바쁘세요?”
내가 자라남과 비례하여 부쩍 유동인구가 많아져 온 고향 길에도 한겨울 이 시간만큼은 아무도 없었던, 인기척이라고는 없고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은 거리.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드물게 차도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나 머리 위에 소리도 없이 쌓여가는 커다란 함박눈들 뿐이었다. 가는 길 가득히 눈이 쌓였다고는 하지만 가로등 불빛 때문에 하얀 세상이라기보다는 주황색 세상에 가까웠던 거리. 나는 항상 그랬듯이,
기억으로는 푸른색 계통의 머플러를 하고 그리 길지 않은 머리에 빛나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작은 여자였어. 언제나 초라한 행색인 대순진리회는 아닌 것 같았고 뭔가 급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현실감각이 모호해지면서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물어봤으니까 사실대로 대답은 했지. “아, 친구들이랑 술 먹으러 가는데요.” “아, 그러세요.”
37
그날은 달랐어.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1 36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가는 거니까 애초에 서로 말을 나눌 일 따윈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일을 끝낸 친구 놈들과 술을 한잔 하러 가는 길이었고 신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시작하고자 삭발을 감행한 내 모습이라든지, 이제 곧 졸업이라는 것이라든지, 어떤 인생이어 왔는지 같은 것 따위는 다 외면했고 더 많은 것을 잊으러 집을 나섰던 새벽 4시에 나는 우산대신 헤드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이놈의 주황색 세상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를 걷다가 파란 간판의 경남편의점이라는 일종의 구멍가게 앞에서 기억하기로 단 한명 맞닥들인 사람이 있었는데, 텅 빈 거리에서 둘만이 걷고 있었더라도 그것은 스치는 인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서로에게 하고 많은 타인인 행인들이 각자 제 갈길
인연
그런데 그녀가 나를 멈춰 세우더군.
2009년 초의 겨울, 드물게 함박눈이 오는 4시경의 새벽.
길을 물어보려는 건가?
경남편의점 앞.
나는 친절하게도 한쪽 귀의 헤드폰을 치웠다.
어떤 노래가 있었는데, 기타의 솔로 부분이 좋아서 그날따라
“네?”
반복해서 들었다.
“저기요, 어디가세요? 바쁘세요?”
내가 자라남과 비례하여 부쩍 유동인구가 많아져 온 고향 길에도 한겨울 이 시간만큼은 아무도 없었던, 인기척이라고는 없고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은 거리.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드물게 차도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나 머리 위에 소리도 없이 쌓여가는 커다란 함박눈들 뿐이었다. 가는 길 가득히 눈이 쌓였다고는 하지만 가로등 불빛 때문에 하얀 세상이라기보다는 주황색 세상에 가까웠던 거리. 나는 항상 그랬듯이,
기억으로는 푸른색 계통의 머플러를 하고 그리 길지 않은 머리에 빛나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작은 여자였어. 언제나 초라한 행색인 대순진리회는 아닌 것 같았고 뭔가 급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현실감각이 모호해지면서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물어봤으니까 사실대로 대답은 했지. “아, 친구들이랑 술 먹으러 가는데요.” “아, 그러세요.”
37
그날은 달랐어.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1 36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가는 거니까 애초에 서로 말을 나눌 일 따윈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저기요.” “저기요 “네?” .” “네?” “눈이 오니까, 우리 인사해요.” “눈이 오니까, 우리 인사해요.”
“저기요.” “저기요 “네?” .” “네?” “눈이 오니까, 우리 인사해요.” “눈이 오니까, 우리 인사해요.”
언제인가 TV에서나 얼핏 보았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장면. 나도 모르게, 원래 정해놓았던 대본인양 웃으며 안녕? 이라면서, 손을 흔들었고, 내 눈앞의 그녀도 나에게 손을 흔들었고 잠시 어색한 기운이 맴돌다가 서로를 떠나갔어. 이 상황에 대해서 분석을 하기위해 녹슨 머릴 굴려보며 가던 길을 가는데, 조금 있다가 문득 이거 뭔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 있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나는 다시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가던 길을 갔지. 좀 더 가던 길을 가다보니까 생각이 드는 건데, 나같이 무섭게 2
손을 잡고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았다는 거야.
다른 이야기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절규했지, 인생에 있어서 주어지는 세 번의 기회 중에 한 번을 놓친 거 같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냈기에 그때의 기억은 계속 아름답게 남을 것 같다는 말을 지금껏 자랑스레 할 수 있었지. 그러니까 내가 말 하고 싶은 건 이날의 이 만남만큼은 평소에 목적이 분명한 사냥을 거는 정글 같은 이 동네에서 흔해빠진 그런 해프닝이 되지 않았고, 눈이 오는 텅 빈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치고 스쳐가고 또 바라보는데, 대부분 지구에 거주 중인 수십억명중의 하나인 타인으로서의 간격을 유지한 채 다시 볼 일없는, 다시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관계를 수없이 맺고 끊지. 특히 사람이 포화상태인 번화가에서 군중 속에 파묻힌 상태로
남녀가 인사를 했다는 우리가 원하는 그런 현실속의 동화 같은
거리를 홀로 걷다 보면 드는 생각이었는데 그 어느 날에는 어느 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는 거라고!
사람 때문에 그런 길을 일부러 걸었고 또 생각했어.
인생이 영화였다면 B급의 하드보일드 같은 장르임에도 획기적인 시도로 순애물 같은 장면을 시도한 경우였다고 주장하고
인연이란 무엇이고, 운명이란 무엇일까?
싶은 거야. 취해서 정신 나간 여자가 나한테 주정부린 그런 거 아니었다고, 개새끼들아.
누구에게나 신기한 인연은 많고, 그 와중에 누군가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하고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또 흔한 인연
41
말을 걸어주는 여자가 있었다는 이 상황이 왠지 뒤돌아 뛰어가서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40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생긴 놈에게 눈이 미친 듯이 오는 늦은 시간에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언제인가 TV에서나 얼핏 보았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장면. 나도 모르게, 원래 정해놓았던 대본인양 웃으며 안녕? 이라면서, 손을 흔들었고, 내 눈앞의 그녀도 나에게 손을 흔들었고 잠시 어색한 기운이 맴돌다가 서로를 떠나갔어. 이 상황에 대해서 분석을 하기위해 녹슨 머릴 굴려보며 가던 길을 가는데, 조금 있다가 문득 이거 뭔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 있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나는 다시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가던 길을 갔지. 좀 더 가던 길을 가다보니까 생각이 드는 건데, 나같이 무섭게 2
손을 잡고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았다는 거야.
다른 이야기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절규했지, 인생에 있어서 주어지는 세 번의 기회 중에 한 번을 놓친 거 같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냈기에 그때의 기억은 계속 아름답게 남을 것 같다는 말을 지금껏 자랑스레 할 수 있었지. 그러니까 내가 말 하고 싶은 건 이날의 이 만남만큼은 평소에 목적이 분명한 사냥을 거는 정글 같은 이 동네에서 흔해빠진 그런 해프닝이 되지 않았고, 눈이 오는 텅 빈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치고 스쳐가고 또 바라보는데, 대부분 지구에 거주 중인 수십억명중의 하나인 타인으로서의 간격을 유지한 채 다시 볼 일없는, 다시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관계를 수없이 맺고 끊지. 특히 사람이 포화상태인 번화가에서 군중 속에 파묻힌 상태로
남녀가 인사를 했다는 우리가 원하는 그런 현실속의 동화 같은
거리를 홀로 걷다 보면 드는 생각이었는데 그 어느 날에는 어느 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는 거라고!
사람 때문에 그런 길을 일부러 걸었고 또 생각했어.
인생이 영화였다면 B급의 하드보일드 같은 장르임에도 획기적인 시도로 순애물 같은 장면을 시도한 경우였다고 주장하고
인연이란 무엇이고, 운명이란 무엇일까?
싶은 거야. 취해서 정신 나간 여자가 나한테 주정부린 그런 거 아니었다고, 개새끼들아.
누구에게나 신기한 인연은 많고, 그 와중에 누군가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하고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또 흔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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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걸어주는 여자가 있었다는 이 상황이 왠지 뒤돌아 뛰어가서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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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생긴 놈에게 눈이 미친 듯이 오는 늦은 시간에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중 하나였겠지. 이것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운명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운명을 위해서─만에 하나 운명이 아닐지라도─내가 여지껏 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 라고 느꼈다면 이것은 애초에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위한 억지일 뿐이지 않을까? 이렇게 고민하던 나에게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애초부터 운명이라든지 사랑 같은 거,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냐고 했어. 그 어느 날, 그 말을 들은 그날에 사람이 포화상태인 번화가에서 군중 속에 파묻힌 상태로 거리를 홀로 걸었고, 우연인지 무의식의
언제나 나란 놈은 서글픈 기분을 참으면서 뒤돌아선 후에야 아무도 모르게 인사하곤 했어.
43
비겁함의 경계에서 체념이라는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그때, 쓴웃음을 지으면서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이기심과
42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의도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남 편의점 앞을 지나게 되었지.
중 하나였겠지. 이것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운명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운명을 위해서─만에 하나 운명이 아닐지라도─내가 여지껏 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 라고 느꼈다면 이것은 애초에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위한 억지일 뿐이지 않을까? 이렇게 고민하던 나에게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애초부터 운명이라든지 사랑 같은 거,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냐고 했어. 그 어느 날, 그 말을 들은 그날에 사람이 포화상태인 번화가에서 군중 속에 파묻힌 상태로 거리를 홀로 걸었고, 우연인지 무의식의
언제나 나란 놈은 서글픈 기분을 참으면서 뒤돌아선 후에야 아무도 모르게 인사하곤 했어.
43
비겁함의 경계에서 체념이라는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그때, 쓴웃음을 지으면서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이기심과
42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의도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남 편의점 앞을 지나게 되었지.
눈이 오니까 인사하자던 그녀는 2009년의 나에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인연과 운명이라는 화두를 주었어. 덕분에 또 고민거리가 늘었던 것도 같지만, 그래도 2009년 이맘때쯤 마주쳤던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그녀에게 2010년의 내가 감사합니다. 나는 항상 외로웠지만 조금은 더 나아졌거든요. 언젠가 다시 인사해요, 안녕.
45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마무리 44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3
눈이 오니까 인사하자던 그녀는 2009년의 나에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인연과 운명이라는 화두를 주었어. 덕분에 또 고민거리가 늘었던 것도 같지만, 그래도 2009년 이맘때쯤 마주쳤던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그녀에게 2010년의 내가 감사합니다. 나는 항상 외로웠지만 조금은 더 나아졌거든요. 언젠가 다시 인사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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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마무리 44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3
Museum of Modern Art 종로구 소격동 165 옛 기무사 터 임우택
조감도
Museum of Modern Art 종로구 소격동 165 옛 기무사 터 임우택
조감도
Site plan
Site anlaysis
Load
Shop
Culture
Education
Diagram
Concept 인사동, 삼청동의 우연적인 길과 낮은 한옥들과의 연계성, 어울림을 중시해 계획했습니다. 작은 한옥들과 대비되는 거대한 건물은 높이를 낮추어 주위를 압도하는 것을 막고 경관을 해치지 않으며, 자연스레 주변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오도록 길의 형성을 유도했습니다.
Site plan
Site anlaysis
Load
Shop
Culture
Education
Diagram
Concept 인사동, 삼청동의 우연적인 길과 낮은 한옥들과의 연계성, 어울림을 중시해 계획했습니다. 작은 한옥들과 대비되는 거대한 건물은 높이를 낮추어 주위를 압도하는 것을 막고 경관을 해치지 않으며, 자연스레 주변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오도록 길의 형성을 유도했습니다.
Plan Conta Level +5000
1 Exhibition 2 Shop 3 Forum 4 Terrace 5 Bath room 6 Kimusa
Conta Level -2000
1 Achive room 2 Muchin room 3 Library 4 Study room 5 Darkroom 6 Office
Conta Level +2000
Elevation & section e-e´
a-a´
b-b´ 1 Enterance 2 Main hall 3 Exhibition 4 Office 5 Shop 6 Forum 7 Education 8 Audience
c-c´
Plan Conta Level +5000
1 Exhibition 2 Shop 3 Forum 4 Terrace 5 Bath room 6 Kimusa
Conta Level -2000
1 Achive room 2 Muchin room 3 Library 4 Study room 5 Darkroom 6 Office
Conta Level +2000
Elevation & section e-e´
a-a´
b-b´ 1 Enterance 2 Main hall 3 Exhibition 4 Office 5 Shop 6 Forum 7 Education 8 Audience
c-c´
Perspective
Communication
Glass
Perspective
Communication
Glass
Take the Light
상상 속 건물이나 꿈 속의 건물, 혹은 제가 설계한 건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메일, 혹은 메신저를 통해 의견을 전해주세요. hahalwt@nate.com
Take the Light
상상 속 건물이나 꿈 속의 건물, 혹은 제가 설계한 건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메일, 혹은 메신저를 통해 의견을 전해주세요. hahalwt@nate.com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59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
독두한가禿頭恨歌
58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독두한가禿頭恨歌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59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
독두한가禿頭恨歌
58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독두한가禿頭恨歌
로 시키는 게 있다면 열심히 했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숙 제란 숙제, 과제란 과제, 리포트란 리포트는 하나도 빼먹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결석, 아니 지각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야. 물론 직장에 서도 늘 시키는 것은 전부 제대로 해내고 있단 말이야. 약속한 것도 단 한 번도 어겨보지 않았어.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약속 시간조차 한 번 도 늦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이거야. 근데, 왜? 대체 내가 대체 뭘 잘못 했다고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그래. 씨발. 어쩐지 이번엔 일이 잘 풀린다 했어. 내가 여자를 만 난다는 거 자체가 희한한 일이지. 안 그래? 응? 대답해봐! 그래. 이렇 게 중얼중얼거리는데 니들이 어떻게 내 말을 듣겠어. 혹 듣는다 해도 못들은 척 하겠지. 하지만 어쨌든 상관없어. 난 계속 지껄일 거야. 그러니까 결국엔 이번 년도 마찬가지였던 거야. 내가 속았어. 여 자라는 족속은 결국 다 똑같아. 이러니 저러니 ‘전 아무것도 몰라요.’
61
잘못한 거 없어. 잘못한 게 있다면 태어난 것 정도일 거야. 난 나름대
독두한가禿頭恨歌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응? 진짜 짜증나려고 해. 난
로 시키는 게 있다면 열심히 했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숙 제란 숙제, 과제란 과제, 리포트란 리포트는 하나도 빼먹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결석, 아니 지각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야. 물론 직장에 서도 늘 시키는 것은 전부 제대로 해내고 있단 말이야. 약속한 것도 단 한 번도 어겨보지 않았어.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약속 시간조차 한 번 도 늦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이거야. 근데, 왜? 대체 내가 대체 뭘 잘못 했다고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그래. 씨발. 어쩐지 이번엔 일이 잘 풀린다 했어. 내가 여자를 만 난다는 거 자체가 희한한 일이지. 안 그래? 응? 대답해봐! 그래. 이렇 게 중얼중얼거리는데 니들이 어떻게 내 말을 듣겠어. 혹 듣는다 해도 못들은 척 하겠지. 하지만 어쨌든 상관없어. 난 계속 지껄일 거야. 그러니까 결국엔 이번 년도 마찬가지였던 거야. 내가 속았어. 여 자라는 족속은 결국 다 똑같아. 이러니 저러니 ‘전 아무것도 몰라요.’
61
잘못한 거 없어. 잘못한 게 있다면 태어난 것 정도일 거야. 난 나름대
독두한가禿頭恨歌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응? 진짜 짜증나려고 해. 난
같은 표정 짓고 순진한 척,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둥 지껄여대도 여
더니 경복궁으로 가래서 왔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아, 짜증나. 좀 춥
자들이 남자를 결정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머리숱이야. 젠장. 빌어먹을.
다고 경복궁으로 데이트 온 게 센스가 없느니 뭐니 같잖은 핑계를 대 면서 결국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더군. 미친년. 그냥 솔직히 말해줬음
이런 식의 삶은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지. 마침 유 치원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가 내 짝이 되었어. 근데 그런 결정이 내
짜증이라도 덜 났을 거야. 이런 비참한 기분이 되진 않았을 거라 이 말이지.
려진 순간, 그 여자애가 막 울기 시작하는 거야. 나랑 짝하기 싫다면
“죄송한데요, 전, 대준씨가 대머리라서 싫어요.”
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지. 얘는 대체 왜 나랑 짝을 하고 싶어 하지
이렇게 말야. 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그럼 지금 여기 지나다니는
않는 걸까? 수도 없이 고민했어. 그래서 다른 애들과 나 사이에 어떤
이 수많은 커플들은 죄다 센스 없는 년 놈들이라는 거야, 뭐야, 대체! 후…. 그래 좀 춥긴 춥네. 그래도 예쁘잖아. 안 그래? 저 기와지
이상하게 입고 다니는 것도, 공부를 못하는 것도 뭐 다른 점은 없었어.
붕들 좀 봐. 웅장하네. 멋있잖아. 뭔가 새까만 느낌이 하늘이랑 대조
나나 다른 애들이나 다 똑같은 어린애들이었지. 단지 이마의 넓이를
되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저 나무들도,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게 위
빼곤 말야. 그제야 난 알게 됐어. 내 이마가 다른 애들에 비해 좀 넓구
태롭고 날카로워서 딱딱하고 직선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 이런 느낌
나. 얜 내 이마 때문에 나랑 짝을 하기 싫은 거구나. 난 걔만 그런 거라
이 싫어? 저 알록달록한 단청들도 예쁘기만 하네. 칠이 좀 벗겨져서
생각했어. 뭐 다른 여자애들은 나랑 짝이 되어도 별 말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뭐? 벗겨져? 이것 봐. 벗겨지는 건 이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
그런데 그게 아니었지.
고. 오래되면 다 벗겨지기 마련이야. 뭐 머리라고 별 수 있는 줄 알아?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내 이마는 조금씩 더 넓어지기 시
니들은 안 벗겨질 것 같지? 니들도 결국 나처럼 머리카락이라고는 머
작했어. 남들에 비해 탈모가 조금 일찍 왔던 거지. 그에 따라 애들의
리에 단 한 개도 남지 않게 될 거야. 이게 정상이야! 알아? 검은 털들이
놀림도 차츰 수위가 올라가더군. 처음엔 내 앞에서 대머리라고 노래
머리에 박힌 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워 보이는지 알아? 얼마나 인위적
를 부르며 놀리더니 중학교 즈음엔 내 이마를 툭툭 치고 다녔어. 빌어
으로 보이는지 아냐고!
먹을!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게 내 잘못이야? 여자애들은 아예 눈길
저기 잔디도 좀 봐. 겨울이라 제대로 자라지도 않는 잔디도 저딴
도 안 마주치려고 노력하고….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못 볼 걸 봤다는
식으로 죄다 깎아버리면서 머리카락은 왜 안 깎고 추잡하게 기르는
듯이 얼굴을 있는 힘껏 찌푸리더군. 그 표정들이 아직도 떠올라.
거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도대체 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거야? 왜 그리 위선적이야? 왜 그리 불공평해? 모든 행동에 어떤 하나의 기준
아 추워. 날씨 더럽게 춥네. 아니, 씨발, 그래도 경복궁이면 좋은
을 세워야 하는 거 아냐? 매번, 매 상황마다 자기 좋을 대로만 하면 세
데이트 코스 아냐? 내가 그래도 이번엔 이 년이랑 좀 잘 되가나 싶어
상이 제대로 돌아가겠어? 그러니까 세상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라
서 엄마한테 물어봤단 말이야. 어디로 데이트 가는 게 좋겠냐고. 그랬
고! 그러면서 만날 윗대가리들 탓이나 하고 있지? 병신들. 니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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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도 다 고만고만했고, 내가 유난히 못생긴 것도, 옷을 유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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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있나 유심히 관찰했지.
같은 표정 짓고 순진한 척,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둥 지껄여대도 여
더니 경복궁으로 가래서 왔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아, 짜증나. 좀 춥
자들이 남자를 결정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머리숱이야. 젠장. 빌어먹을.
다고 경복궁으로 데이트 온 게 센스가 없느니 뭐니 같잖은 핑계를 대 면서 결국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더군. 미친년. 그냥 솔직히 말해줬음
이런 식의 삶은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시작되었지. 마침 유 치원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가 내 짝이 되었어. 근데 그런 결정이 내
짜증이라도 덜 났을 거야. 이런 비참한 기분이 되진 않았을 거라 이 말이지.
려진 순간, 그 여자애가 막 울기 시작하는 거야. 나랑 짝하기 싫다면
“죄송한데요, 전, 대준씨가 대머리라서 싫어요.”
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지. 얘는 대체 왜 나랑 짝을 하고 싶어 하지
이렇게 말야. 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그럼 지금 여기 지나다니는
않는 걸까? 수도 없이 고민했어. 그래서 다른 애들과 나 사이에 어떤
이 수많은 커플들은 죄다 센스 없는 년 놈들이라는 거야, 뭐야, 대체! 후…. 그래 좀 춥긴 춥네. 그래도 예쁘잖아. 안 그래? 저 기와지
이상하게 입고 다니는 것도, 공부를 못하는 것도 뭐 다른 점은 없었어.
붕들 좀 봐. 웅장하네. 멋있잖아. 뭔가 새까만 느낌이 하늘이랑 대조
나나 다른 애들이나 다 똑같은 어린애들이었지. 단지 이마의 넓이를
되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저 나무들도,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게 위
빼곤 말야. 그제야 난 알게 됐어. 내 이마가 다른 애들에 비해 좀 넓구
태롭고 날카로워서 딱딱하고 직선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 이런 느낌
나. 얜 내 이마 때문에 나랑 짝을 하기 싫은 거구나. 난 걔만 그런 거라
이 싫어? 저 알록달록한 단청들도 예쁘기만 하네. 칠이 좀 벗겨져서
생각했어. 뭐 다른 여자애들은 나랑 짝이 되어도 별 말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뭐? 벗겨져? 이것 봐. 벗겨지는 건 이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
그런데 그게 아니었지.
고. 오래되면 다 벗겨지기 마련이야. 뭐 머리라고 별 수 있는 줄 알아?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내 이마는 조금씩 더 넓어지기 시
니들은 안 벗겨질 것 같지? 니들도 결국 나처럼 머리카락이라고는 머
작했어. 남들에 비해 탈모가 조금 일찍 왔던 거지. 그에 따라 애들의
리에 단 한 개도 남지 않게 될 거야. 이게 정상이야! 알아? 검은 털들이
놀림도 차츰 수위가 올라가더군. 처음엔 내 앞에서 대머리라고 노래
머리에 박힌 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워 보이는지 알아? 얼마나 인위적
를 부르며 놀리더니 중학교 즈음엔 내 이마를 툭툭 치고 다녔어. 빌어
으로 보이는지 아냐고!
먹을!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게 내 잘못이야? 여자애들은 아예 눈길
저기 잔디도 좀 봐. 겨울이라 제대로 자라지도 않는 잔디도 저딴
도 안 마주치려고 노력하고….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못 볼 걸 봤다는
식으로 죄다 깎아버리면서 머리카락은 왜 안 깎고 추잡하게 기르는
듯이 얼굴을 있는 힘껏 찌푸리더군. 그 표정들이 아직도 떠올라.
거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도대체 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거야? 왜 그리 위선적이야? 왜 그리 불공평해? 모든 행동에 어떤 하나의 기준
아 추워. 날씨 더럽게 춥네. 아니, 씨발, 그래도 경복궁이면 좋은
을 세워야 하는 거 아냐? 매번, 매 상황마다 자기 좋을 대로만 하면 세
데이트 코스 아냐? 내가 그래도 이번엔 이 년이랑 좀 잘 되가나 싶어
상이 제대로 돌아가겠어? 그러니까 세상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라
서 엄마한테 물어봤단 말이야. 어디로 데이트 가는 게 좋겠냐고. 그랬
고! 그러면서 만날 윗대가리들 탓이나 하고 있지? 병신들. 니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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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도 다 고만고만했고, 내가 유난히 못생긴 것도, 옷을 유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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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있나 유심히 관찰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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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두한가禿頭恨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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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두한가禿頭恨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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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여자아이가 하나 생겼어. 같이 학원을 다니던 여자아이였지. 공부
그래, 아무튼. 난 그딴 식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
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학원에 다니
했어. 남고에 걸려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어. 놀림은 받아도 같이 놀
면서 계속 그 여자아이를 쳐다봤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만
순 있는 거고, 최소한 그 지긋지긋했던 여자들의 태도는 피할 수 있을
날 자리에만 앉아있던 여자아이였지. 꼬질꼬질해가지고, 안경이나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나름의 안도감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했지.
쓰고, 앞머리는 어찌나 내렸던지…. 아마도 이마가 넓어서 그러고 다
근데 안도감을 가진 게 잘못이었어. 친구들과의 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
니는 것 같아 보였어. 그게 무척 매력적이었지. 이마가 넓다는 데에서
었어. 문제는 친구들의 여자 이야기였지. 허구헛날 녀석들은 여자 얘
왠지 모를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낀 것이었을 거야.
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어디 여고 애들이 예쁘다더라. 어디 여고
아무튼 용돈은 차곡차곡 모여 갔고, 엄마는 내게 검정콩 이라든
는 교복이 예쁘지 않냐. 언제 여고 축제를 한다더라. 이번에 여자친구
지, 검은깨와 같은 것들을 내 몸 속에 차곡차곡 넣어주시기 시작하셨
가 어쩌구저쩌구. 그러니까 나도 여자를 만나고 싶어지더라, 이거야.
어. 머리가 다시 자랄 수도 있다면서 한약까지 지어주셨지. 하지만
그래서 한 번은 친구들이 나간다던 미팅을 쫓아 나갔지. 당연히 66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어. 후우.
절대 여자친구를 만들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쯤 해서 좋아하
여자들은이 나를 보더니 놀랬어. 그때 이미 내 머리는 절반 이상이 벗
난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거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도 어쩌겠 어? 엄마가 주시는 데 그냥 군말 없이 먹는 수밖에 없었지.
겨져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해. 아니. 지금은 잘 알지만 그때는 왜 놀
어쨌든 그렇게 해서 가발을 하나 사는 데 성공했어. 그걸 몰래 집
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머리가 벗겨지면
에 가져와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써봤어. 그게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
뭐? 그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몇 살이나 젊어 보이더라 이거야.
미팅이 끝나고, 친구들은 나를 걱정하면서 어쩔 거냐고. 이러다 너 결혼은 하겠냐면서, 결혼은커녕 연애는 한 번 해보겠냐면서, 가발 이라도 쓰지 그러냐고 그러더라.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인가? 광화문 뜯어 고친다고 법석이던 데? 그거 뭐 하러 고치나 모르겠어. 아니, 당장에 무너질 것처럼 위태 로웠던 것도 아니었잖아? 옛날 모습으로 되돌린다는 게 좀 웃긴 일인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봤어.
것 같아. 아무리 고쳐봐야 옛날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거잖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 네?
안 그래? 새로운 재료들을 가져다가 붙일 테고. 주변의 모습들도 옛
엄마는 그런 거 쓰지 않아도 넌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어. 너희
날과는 전혀 다르잖아? 뜯어내고 이제 막 세웠을 당시의 모습을 재현
아빠도 보라고. 대머리여도 얼마나 매력적이냐고. 내 눈에 아빠는 하
한다고 해도, 그게 그때의 광화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지. 참
나도 매력적으로 보이질 않았어. 그냥 대머리로 보였지.
한심한 짓거리야. 그냥 세월이 흘러가는 데로 놔두는 게 맞지 않아?
그래서 난 엄마 몰래 돈을 모았어. 가발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것 역시 역사가 더해지는 거 아니냐고.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정
67
하아…. 너무 흥분했어. 담배나 하나 피우면서 진정 좀 해야겠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절반이나 벗겨져버린 내 머리로는
독두한가禿頭恨歌
잘 해. 그러고 나서 욕을 하든지 말든지 하란 말이야!
는 여자아이가 하나 생겼어. 같이 학원을 다니던 여자아이였지. 공부
그래, 아무튼. 난 그딴 식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
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학원에 다니
했어. 남고에 걸려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어. 놀림은 받아도 같이 놀
면서 계속 그 여자아이를 쳐다봤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만
순 있는 거고, 최소한 그 지긋지긋했던 여자들의 태도는 피할 수 있을
날 자리에만 앉아있던 여자아이였지. 꼬질꼬질해가지고, 안경이나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나름의 안도감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했지.
쓰고, 앞머리는 어찌나 내렸던지…. 아마도 이마가 넓어서 그러고 다
근데 안도감을 가진 게 잘못이었어. 친구들과의 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
니는 것 같아 보였어. 그게 무척 매력적이었지. 이마가 넓다는 데에서
었어. 문제는 친구들의 여자 이야기였지. 허구헛날 녀석들은 여자 얘
왠지 모를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낀 것이었을 거야.
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어디 여고 애들이 예쁘다더라. 어디 여고
아무튼 용돈은 차곡차곡 모여 갔고, 엄마는 내게 검정콩 이라든
는 교복이 예쁘지 않냐. 언제 여고 축제를 한다더라. 이번에 여자친구
지, 검은깨와 같은 것들을 내 몸 속에 차곡차곡 넣어주시기 시작하셨
가 어쩌구저쩌구. 그러니까 나도 여자를 만나고 싶어지더라, 이거야.
어. 머리가 다시 자랄 수도 있다면서 한약까지 지어주셨지. 하지만
그래서 한 번은 친구들이 나간다던 미팅을 쫓아 나갔지. 당연히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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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후우.
절대 여자친구를 만들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쯤 해서 좋아하
여자들은이 나를 보더니 놀랬어. 그때 이미 내 머리는 절반 이상이 벗
난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거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도 어쩌겠 어? 엄마가 주시는 데 그냥 군말 없이 먹는 수밖에 없었지.
겨져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해. 아니. 지금은 잘 알지만 그때는 왜 놀
어쨌든 그렇게 해서 가발을 하나 사는 데 성공했어. 그걸 몰래 집
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머리가 벗겨지면
에 가져와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써봤어. 그게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
뭐? 그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몇 살이나 젊어 보이더라 이거야.
미팅이 끝나고, 친구들은 나를 걱정하면서 어쩔 거냐고. 이러다 너 결혼은 하겠냐면서, 결혼은커녕 연애는 한 번 해보겠냐면서, 가발 이라도 쓰지 그러냐고 그러더라.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인가? 광화문 뜯어 고친다고 법석이던 데? 그거 뭐 하러 고치나 모르겠어. 아니, 당장에 무너질 것처럼 위태 로웠던 것도 아니었잖아? 옛날 모습으로 되돌린다는 게 좀 웃긴 일인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봤어.
것 같아. 아무리 고쳐봐야 옛날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거잖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 네?
안 그래? 새로운 재료들을 가져다가 붙일 테고. 주변의 모습들도 옛
엄마는 그런 거 쓰지 않아도 넌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어. 너희
날과는 전혀 다르잖아? 뜯어내고 이제 막 세웠을 당시의 모습을 재현
아빠도 보라고. 대머리여도 얼마나 매력적이냐고. 내 눈에 아빠는 하
한다고 해도, 그게 그때의 광화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지. 참
나도 매력적으로 보이질 않았어. 그냥 대머리로 보였지.
한심한 짓거리야. 그냥 세월이 흘러가는 데로 놔두는 게 맞지 않아?
그래서 난 엄마 몰래 돈을 모았어. 가발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것 역시 역사가 더해지는 거 아니냐고.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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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너무 흥분했어. 담배나 하나 피우면서 진정 좀 해야겠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절반이나 벗겨져버린 내 머리로는
독두한가禿頭恨歌
잘 해. 그러고 나서 욕을 하든지 말든지 하란 말이야!
찬가지 아닌가 싶어. 그냥 빠지면 빠지는 데로 놔두는 게 자연스러운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그 여자애가 나를 볼 생각만 해도 오줌이
일인 것 같아. 뭘 굳이 두피 클리닉이다 뭐다 많이들 가고, 탈모 어쩌
찔끔 나올 정도였어. 흥분이라면 흥분을 한 셈이고, 뭐 그렇다고 발
구 광고도 많은데, 가면 뭐해? 어차피 막을 순 없는 거야. 세월이란 그
기한 채로 다닌 건 아니고. 어쨌든 뭐 그 정도로 내겐 중요한 짓거리
런 거라고. 어렸을 때야 사춘기고 뭐고 그럴 수 있다고 쳐. 근데 다 늙
였다는 거야. 생각해봐! 당한 게 얼만데…. 머리 때문에…. 이해가 될
어 빠져가지고 어떻게든 빈 머리 채우려고 옆머리 잔뜩 길러서 바코
까 모르겠네. 아마 이해 안 될 거야.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드처럼 척척 윗대머리 가리고. 그런 꼴 보면 우스워 죽겠어. 난 당당
없어. 그리고 학원에 딱 들어서는 데, 친구 놈들이 웃는 거야. 난 어떠
하거든. 아예 머리카락이라곤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난 이
냐고? 괜찮냐고 계속 물어봤어. 그러면서도 눈길은 그 여자애 쪽으로
게 자연스러운 것이란 걸 알고 있어. 멍청한 년들이야 몰라주지만, 언
흘러갔지. 여자애는 고개를 파묻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어. 애들
젠가 알아주는 년도 있을 거라 생각해. 씨발. 또 생각하니까 짜증난
은 웃기긴 한데 그래도 제법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내 팔을 툭툭 쳤어.
다. 씨발, 이걸 알아주는 년은 도대체 어딨는 거야! 그래도 제법 많은
그리고 자기들도 한 번 써보면 안 되겠냐면서 물어왔어. 난 그러라고
여자들을 만났어. 선이다 뭐다 해서 엄마가 보라고 시켰거든. 자기도
가발을 내줬어. 다시 내 대머리는 환한 빛을 내며 세상에 제 모습을
우리 아빠랑 선보고 결혼했으니, 그게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는 거
드러냈지. 그 때, 여자애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봤어. 쳐다보더
겠지. 근데 뭐 선 볼 때마다 여자들은 다들 내 머리만 보느라 정신이
니, 그 년이, 못 생긴데다가 안경잡이이고, 이마는 훌러덩 수준이라서
없어. 이제 갓 서른인데 머리숱이 없으니 신기할 수도 있겠지. 근데
만날 앞머리로 가리고 다니고,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던, 그 년이 인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신기할 것도 없는 거 아냐? 억지로 가발 쓰고,
상을 찌푸렸어. 내 대머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어. 순간, 머리끝까지
억지로 털 옮겨 심고, 억지로 탈모 클리닉 다니면서 비싼 돈 처발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졌어.
가면서 약 먹는 것 보다는 낫지 않냐 이 말이야. 어차피 돈 돈 거리면 서 돈 많은 남자나 어디 한 번 꿰차 볼까 하는 년들인 주제에 제 생각
악! 아악! 아아악! 씨발! 개 같은 년! 악! 악! 악!
은 못 하고, 남 대머리나 신경 쓰고 앉아 있고. 그게 티라도 안 나면 다 행인데, 백이면 백 전부 티가 난단 말이야. 배려가 없는 세상이야. 건
후우–. 하아–. 생각이 나니까 또 화가 치미네. 아 그딴 년이, 나를
물마저 옛날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뜯어 고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보면서 인상을 찌푸린 거야. 그냥, 단지 대머리라는 이유 하나로….
뭐. 하긴, 여기 원래 뭐야? 조선 총독부? 그것도 뜯어버렸지 아마? 그
악! 짜증나. 난 기억이 안 나. 근데 친구들이 그러더라고. 내가 그 년한
리고 근정전이라고 가짜 근정전 만들어놓고, 얼씨구나 유물이구나!
테 가서 책상을 집어 던졌대. 그리고 이렇게 말했대.
하고 있지 아마? 내참, 어이가 없어. 병신들. 야! 이 씨발년아! 내가 대머리라서 너 같은 년도 좋아하면 안 되 그래. 아무튼 간에 그 가발을 쓴 내 모습은 무척 마음에 들었어.
는 거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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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하고 그제야 좀 비슷해진 기분이었지. 그걸 쓰고 학원에 가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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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울 지경인 부분이야 고쳐야겠지만 말이야. 안 그래? 머리도 마
찬가지 아닌가 싶어. 그냥 빠지면 빠지는 데로 놔두는 게 자연스러운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그 여자애가 나를 볼 생각만 해도 오줌이
일인 것 같아. 뭘 굳이 두피 클리닉이다 뭐다 많이들 가고, 탈모 어쩌
찔끔 나올 정도였어. 흥분이라면 흥분을 한 셈이고, 뭐 그렇다고 발
구 광고도 많은데, 가면 뭐해? 어차피 막을 순 없는 거야. 세월이란 그
기한 채로 다닌 건 아니고. 어쨌든 뭐 그 정도로 내겐 중요한 짓거리
런 거라고. 어렸을 때야 사춘기고 뭐고 그럴 수 있다고 쳐. 근데 다 늙
였다는 거야. 생각해봐! 당한 게 얼만데…. 머리 때문에…. 이해가 될
어 빠져가지고 어떻게든 빈 머리 채우려고 옆머리 잔뜩 길러서 바코
까 모르겠네. 아마 이해 안 될 거야.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드처럼 척척 윗대머리 가리고. 그런 꼴 보면 우스워 죽겠어. 난 당당
없어. 그리고 학원에 딱 들어서는 데, 친구 놈들이 웃는 거야. 난 어떠
하거든. 아예 머리카락이라곤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난 이
냐고? 괜찮냐고 계속 물어봤어. 그러면서도 눈길은 그 여자애 쪽으로
게 자연스러운 것이란 걸 알고 있어. 멍청한 년들이야 몰라주지만, 언
흘러갔지. 여자애는 고개를 파묻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어. 애들
젠가 알아주는 년도 있을 거라 생각해. 씨발. 또 생각하니까 짜증난
은 웃기긴 한데 그래도 제법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내 팔을 툭툭 쳤어.
다. 씨발, 이걸 알아주는 년은 도대체 어딨는 거야! 그래도 제법 많은
그리고 자기들도 한 번 써보면 안 되겠냐면서 물어왔어. 난 그러라고
여자들을 만났어. 선이다 뭐다 해서 엄마가 보라고 시켰거든. 자기도
가발을 내줬어. 다시 내 대머리는 환한 빛을 내며 세상에 제 모습을
우리 아빠랑 선보고 결혼했으니, 그게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는 거
드러냈지. 그 때, 여자애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봤어. 쳐다보더
겠지. 근데 뭐 선 볼 때마다 여자들은 다들 내 머리만 보느라 정신이
니, 그 년이, 못 생긴데다가 안경잡이이고, 이마는 훌러덩 수준이라서
없어. 이제 갓 서른인데 머리숱이 없으니 신기할 수도 있겠지. 근데
만날 앞머리로 가리고 다니고,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던, 그 년이 인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신기할 것도 없는 거 아냐? 억지로 가발 쓰고,
상을 찌푸렸어. 내 대머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어. 순간, 머리끝까지
억지로 털 옮겨 심고, 억지로 탈모 클리닉 다니면서 비싼 돈 처발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졌어.
가면서 약 먹는 것 보다는 낫지 않냐 이 말이야. 어차피 돈 돈 거리면 서 돈 많은 남자나 어디 한 번 꿰차 볼까 하는 년들인 주제에 제 생각
악! 아악! 아아악! 씨발! 개 같은 년! 악! 악! 악!
은 못 하고, 남 대머리나 신경 쓰고 앉아 있고. 그게 티라도 안 나면 다 행인데, 백이면 백 전부 티가 난단 말이야. 배려가 없는 세상이야. 건
후우–. 하아–. 생각이 나니까 또 화가 치미네. 아 그딴 년이, 나를
물마저 옛날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뜯어 고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보면서 인상을 찌푸린 거야. 그냥, 단지 대머리라는 이유 하나로….
뭐. 하긴, 여기 원래 뭐야? 조선 총독부? 그것도 뜯어버렸지 아마? 그
악! 짜증나. 난 기억이 안 나. 근데 친구들이 그러더라고. 내가 그 년한
리고 근정전이라고 가짜 근정전 만들어놓고, 얼씨구나 유물이구나!
테 가서 책상을 집어 던졌대. 그리고 이렇게 말했대.
하고 있지 아마? 내참, 어이가 없어. 병신들. 야! 이 씨발년아! 내가 대머리라서 너 같은 년도 좋아하면 안 되 그래. 아무튼 간에 그 가발을 쓴 내 모습은 무척 마음에 들었어.
는 거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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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하고 그제야 좀 비슷해진 기분이었지. 그걸 쓰고 학원에 가는 데,
독두한가禿頭恨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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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위태로울 지경인 부분이야 고쳐야겠지만 말이야. 안 그래? 머리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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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니까. 멀쩡한 그릇들이 수두룩한데도 또 사더라고. 난 이해가 안
했다는 점이야.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우울해졌거든. 아마
되더라. 그런 족속들이니, 내 머리통에 검은 털들이 안 박혀 있는 건,
그 시기 전 후 해서 술 담배를 시작했을 거야. 결국, 난 술 담배도 이,
또 얼마나 허전하시겠어. 안 그래? 여백의 미 모르나? 뭔가 빼곡하게
내 머리 때문에 시작한 셈이지. 아니지. 그딴 개 같은 년 때문에 시작
차 있으면 얼마나 답답해? 빈 공간이 있어야 그 무언가도 눈에 띌 수
한 거야. 나중에 폐암이나 위암이나 간암에 걸려봐, 그 년 찾아가서
있는 거야. 경복궁도 이 널따란 터에 건물이 몇 개야? 세 봐! 몇 개 안
손해배상 할 거니까.
돼. 몇 개 안 세운 이유가 다 있는 거야. 뭐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남아
내가 다니던 학교는 바로 이 경복궁 근처에 있는 학교였지. 그래
돌아서 이렇게 넓은 터에 건물 몇 개 세우고 말았겠어? 아니야. 빈 공
서 학교 다니면서 경복궁 참 자주 왔어. 아니, 굳이 찾아온 게 아니라,
간이 주는 그 여유를, 그리고 듬성듬성 건물을 세움으로써 줄 수 있는
경복궁역에서 내려야했으니까. 거의 매일 볼 수밖에 없었지. 안에서
존재감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그걸 망치고 있는 건, 현대에 와서 유
든 밖에서든 말이야. 그때만 해도 이 근처엔 별 거 없었는데, 요즘 많
적 복구랍시고 새로 세운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어설픈 건물들이지.
이 생겼더라고. 데이트 코스로 좋다나 뭐라나. 삼청동이니 뭐니, 엄마
마치 대머리에 옮겨 심어놓은 겨드랑이 털 같아 보여.
질구질하게 벤치에 앉아서 주절주절 뭐 하는 짓이야 이게. 근데 답답
다시 여자를 만난 건, 성욕이 들끓던 군대 시절이었어. 사실, 난
해 미치겠다. 내가 말을 안 할 수가 없어. 짜증이 나서, 속이 터질 것 같
별 생각 없었어. 단지 주변의 동기, 선임, 후임들이 성욕이 들끓고 있
아서….
어서 나도 같이 끓어올랐던 것뿐이야. 어쨌든 그날은 다 같이 외박을
아무튼 학교. 그래. 학교 참 좋았지. 예뻤어. 경복궁이 근처인 것
나온 날이었지. 선임이 그러더군. 티켓 끊지 않겠냐고. 다방에서 여자
도 좋았지만, 경복궁 자체보다도 경복궁 옆길들이 좋았어. 청와대 올
불러다 모텔에서 그 짓을 하는 거야. 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
라가는 길도 그렇고, 그 반대편도 그렇고, 그 사이 골목길도 참 좋아.
어.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 모텔에 들어갔고, 전화를 걸었어. 티켓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담배 피우겠다고 골목길로 많이 들어갔었거든.
방 스티커가 모텔 화장대에 덕지덕지 붙어있었어. 추잡한 성욕처럼.
골목길에도 꽤 운치가 있어. 고궁의 느낌이 동네에도 전체적으로 퍼
이윽고, 여자가 들어왔어. 그 여잔 내 머리를 보고 안 놀랬어. 뭐
져있다고 할 수 있겠네. 게다가 저기 산 봐. 저 산이 있어서 이 동네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난 어딘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어. 왜
예쁠 수 있는 거야. 저 산이 있어서 경복궁도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거
내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동네 대머리 아저씨들 품에 몇
고. 저게 없었으면 아마 뭔가 허전했을 걸? 내 머리처럼. 젠장. 내 머리
번 안겨봐서 이질적이지 않았겠지. 내 나이 또래 여자애들과는 다른
의 허전함이 싫은 거겠지. 여자들은…. 여자들은 그렇잖아? 뭐 하나
뭔가가 있었어. 물론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라도 빠지는 게 있는 걸 싫어하잖아? 안 그래?
근데 내 성기가 서질 않는 거야. 긴장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될 대로
우리 엄마도 그래. 만날 남들 집에는 있는데 우리 집에는 없다면
되라는 심정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 모양이었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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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었던 건, 그날 이후로 대학 갈 때까진 절대 여자하곤 상종을 안
독두한가禿頭恨歌
서 불평이야. 그리고 하나씩 사 모으더라고. 그릇들만 봐도, 아주 웃
가 얘기해줘서 알았지. 그래서 이리 온 건데. 이렇게 돼버린 거지. 구 72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그리고 거품을 물더니 쓰러져서 발작을 했다더군. 후–. 그나마
긴다니까. 멀쩡한 그릇들이 수두룩한데도 또 사더라고. 난 이해가 안
했다는 점이야.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우울해졌거든. 아마
되더라. 그런 족속들이니, 내 머리통에 검은 털들이 안 박혀 있는 건,
그 시기 전 후 해서 술 담배를 시작했을 거야. 결국, 난 술 담배도 이,
또 얼마나 허전하시겠어. 안 그래? 여백의 미 모르나? 뭔가 빼곡하게
내 머리 때문에 시작한 셈이지. 아니지. 그딴 개 같은 년 때문에 시작
차 있으면 얼마나 답답해? 빈 공간이 있어야 그 무언가도 눈에 띌 수
한 거야. 나중에 폐암이나 위암이나 간암에 걸려봐, 그 년 찾아가서
있는 거야. 경복궁도 이 널따란 터에 건물이 몇 개야? 세 봐! 몇 개 안
손해배상 할 거니까.
돼. 몇 개 안 세운 이유가 다 있는 거야. 뭐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남아
내가 다니던 학교는 바로 이 경복궁 근처에 있는 학교였지. 그래
돌아서 이렇게 넓은 터에 건물 몇 개 세우고 말았겠어? 아니야. 빈 공
서 학교 다니면서 경복궁 참 자주 왔어. 아니, 굳이 찾아온 게 아니라,
간이 주는 그 여유를, 그리고 듬성듬성 건물을 세움으로써 줄 수 있는
경복궁역에서 내려야했으니까. 거의 매일 볼 수밖에 없었지. 안에서
존재감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그걸 망치고 있는 건, 현대에 와서 유
든 밖에서든 말이야. 그때만 해도 이 근처엔 별 거 없었는데, 요즘 많
적 복구랍시고 새로 세운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어설픈 건물들이지.
이 생겼더라고. 데이트 코스로 좋다나 뭐라나. 삼청동이니 뭐니, 엄마
마치 대머리에 옮겨 심어놓은 겨드랑이 털 같아 보여.
질구질하게 벤치에 앉아서 주절주절 뭐 하는 짓이야 이게. 근데 답답
다시 여자를 만난 건, 성욕이 들끓던 군대 시절이었어. 사실, 난
해 미치겠다. 내가 말을 안 할 수가 없어. 짜증이 나서, 속이 터질 것 같
별 생각 없었어. 단지 주변의 동기, 선임, 후임들이 성욕이 들끓고 있
아서….
어서 나도 같이 끓어올랐던 것뿐이야. 어쨌든 그날은 다 같이 외박을
아무튼 학교. 그래. 학교 참 좋았지. 예뻤어. 경복궁이 근처인 것
나온 날이었지. 선임이 그러더군. 티켓 끊지 않겠냐고. 다방에서 여자
도 좋았지만, 경복궁 자체보다도 경복궁 옆길들이 좋았어. 청와대 올
불러다 모텔에서 그 짓을 하는 거야. 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
라가는 길도 그렇고, 그 반대편도 그렇고, 그 사이 골목길도 참 좋아.
어.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 모텔에 들어갔고, 전화를 걸었어. 티켓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담배 피우겠다고 골목길로 많이 들어갔었거든.
방 스티커가 모텔 화장대에 덕지덕지 붙어있었어. 추잡한 성욕처럼.
골목길에도 꽤 운치가 있어. 고궁의 느낌이 동네에도 전체적으로 퍼
이윽고, 여자가 들어왔어. 그 여잔 내 머리를 보고 안 놀랬어. 뭐
져있다고 할 수 있겠네. 게다가 저기 산 봐. 저 산이 있어서 이 동네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난 어딘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어. 왜
예쁠 수 있는 거야. 저 산이 있어서 경복궁도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거
내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동네 대머리 아저씨들 품에 몇
고. 저게 없었으면 아마 뭔가 허전했을 걸? 내 머리처럼. 젠장. 내 머리
번 안겨봐서 이질적이지 않았겠지. 내 나이 또래 여자애들과는 다른
의 허전함이 싫은 거겠지. 여자들은…. 여자들은 그렇잖아? 뭐 하나
뭔가가 있었어. 물론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라도 빠지는 게 있는 걸 싫어하잖아? 안 그래?
근데 내 성기가 서질 않는 거야. 긴장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될 대로
우리 엄마도 그래. 만날 남들 집에는 있는데 우리 집에는 없다면
되라는 심정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 모양이었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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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었던 건, 그날 이후로 대학 갈 때까진 절대 여자하곤 상종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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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불평이야. 그리고 하나씩 사 모으더라고. 그릇들만 봐도, 아주 웃
가 얘기해줘서 알았지. 그래서 이리 온 건데. 이렇게 돼버린 거지. 구 72
아브락사스 abraxas vol.4
그리고 거품을 물더니 쓰러져서 발작을 했다더군. 후–. 그나마
가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열심히 빨았어. 그래도 절대 설 기미가 보이
러워 보이잖아. 어이구, 저기 뭐 처먹는 꼴 좀 봐라. 여자친구 있어서
지 않더라고. 이대로라면 안 된다고 자기 간다는 걸 내가 잡았어. 그
좋겠다, 좋겠어. 여자 생긴 꼬라지하고는…. 끼리끼리 잘 뭉쳤구만. 위이잉. 위이잉. 딸깍. 여보세요. 어디니? 네, 엄마. 아직 경복궁
데 어쨌든 그게 좋았어. 따뜻하고, 날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고…. 여
이에요. 언제 집에 올 거니? 밖에서 저녁 먹고 들어올 거니? 아니요.
자의 가슴이란 게 얼마나 좋은 건지 그날 처음 안 거야. 엄마 가슴 외
이제 집에 갈 거예요. 그러니? 그 여자 분은 가셨어? 네. 차였어요. 그
엔 처음으로 만져보는 여자 가슴이었어. 동그랗고, 말랑거리고, 그 안
래. 그럼 안 먹고 기다릴 테니 얼른 오렴. 맛있는 거 해놓을게. 네, 엄
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았어. 사정은 하지 못했어. 그래도 좋았어.
마. 딸깍.
여자는 금세 옷을 입더니 나를 혼자 남겨둔 채, 휭하니 나가버렸
그래. 집에나 가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뭐가 변하겠어.
어. 그렇게 나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침대 위에 누워 있었어. 왠
어차피 그년도 이미 끝난 거고. 다시 연락해봐야 벌써 집에 들어갔겠
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 손으로 눈을 계속 문질렀어.
네. 아니, 근데 도대체 경복궁 데려온 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엄마는
눈이 퉁퉁 부은 게 느껴졌지. 그래도 그 질긴 눈물이라는 녀석은 계속
분명 좋아할 거라고 그랬는데…. 그래서 그렇게 기대를 했는데, 짜증
해서 흘렀어. 나는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어. 아마 누
나게 이딴 식으로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번엔 그래도 잘 될 것 같았
군가 그 꼴을 봤으면 엄청 추했을 거야. 아무튼 그리고 머리를 부여잡
는데…. 그럼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그런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전
았지. 내 손에 머리카락이라곤 하나도 잡히지 않았어. 그 때 이후로
대머리여도 상관없어요. 대준씨 좋은 사람 같아요. 지랄하네. 말로는
난, 완전히 대머리가 되어버린 거야.
그러더니, 결국엔 이 모양이 났어. 엄마가 여기 좋다고 가보라고 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 내 나이 서른 둘. 아직
고, 옆 동네 삼청동도 엄마가 괜찮다고 하던데 거기도 같이 가보자고,
도 총각딱지를 못 뗀 셈이지. 도대체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
그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그러는 게 어딨어? 같이 좋은 데 보러가자
까? 다른 놈들은 아무리 못난 놈도 심지어는 못 돼 처먹어서 나쁜 짓
고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그딴 식으로 말을 해야 되는 거였어?
만 골라하는 놈들도 이 나이쯤 되면 대부분은 경험이 있어. 근데 난 뭐야. 난 나쁜 짓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야. 결국 내 대머리 탓 인 거지. 근데 대머리라는 게 그렇게 큰 죄인 거야? 하아….
춥다. 후–. 그래, 이제 여자 따위 안 만날 거야. 대머리 여자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래,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해야겠어. 그냥 엄마 돌 아가실 때까지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아, 그리고 경복궁이나 같이
자꾸 한숨이 나온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 벌써 해가 지려고 하네.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왠지 사람들이 지저분해 보 여. 여기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야. 없는 편이 시원해보이고 좋 겠어. 아, 저 매점도 저게 뭐야! 저런 건 뭐 하러 여기다 지어가지고, 더
다녀 오자고도 말해야겠다. 삼청동도 같이 가보자고…. 겨울의 경복 궁은 있을 것들이 사라져서 아름다웠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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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지 뭐. 내가 왜 이런 더러운 얘기까지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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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abraxas vol.4
리고 흐물거리는 성기를 억지로 여자의 성기에 쑤셔 넣었어. 참…. 어
가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열심히 빨았어. 그래도 절대 설 기미가 보이
러워 보이잖아. 어이구, 저기 뭐 처먹는 꼴 좀 봐라. 여자친구 있어서
지 않더라고. 이대로라면 안 된다고 자기 간다는 걸 내가 잡았어. 그
좋겠다, 좋겠어. 여자 생긴 꼬라지하고는…. 끼리끼리 잘 뭉쳤구만. 위이잉. 위이잉. 딸깍. 여보세요. 어디니? 네, 엄마. 아직 경복궁
데 어쨌든 그게 좋았어. 따뜻하고, 날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고…. 여
이에요. 언제 집에 올 거니? 밖에서 저녁 먹고 들어올 거니? 아니요.
자의 가슴이란 게 얼마나 좋은 건지 그날 처음 안 거야. 엄마 가슴 외
이제 집에 갈 거예요. 그러니? 그 여자 분은 가셨어? 네. 차였어요. 그
엔 처음으로 만져보는 여자 가슴이었어. 동그랗고, 말랑거리고, 그 안
래. 그럼 안 먹고 기다릴 테니 얼른 오렴. 맛있는 거 해놓을게. 네, 엄
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았어. 사정은 하지 못했어. 그래도 좋았어.
마. 딸깍.
여자는 금세 옷을 입더니 나를 혼자 남겨둔 채, 휭하니 나가버렸
그래. 집에나 가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뭐가 변하겠어.
어. 그렇게 나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침대 위에 누워 있었어. 왠
어차피 그년도 이미 끝난 거고. 다시 연락해봐야 벌써 집에 들어갔겠
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 손으로 눈을 계속 문질렀어.
네. 아니, 근데 도대체 경복궁 데려온 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엄마는
눈이 퉁퉁 부은 게 느껴졌지. 그래도 그 질긴 눈물이라는 녀석은 계속
분명 좋아할 거라고 그랬는데…. 그래서 그렇게 기대를 했는데, 짜증
해서 흘렀어. 나는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어. 아마 누
나게 이딴 식으로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번엔 그래도 잘 될 것 같았
군가 그 꼴을 봤으면 엄청 추했을 거야. 아무튼 그리고 머리를 부여잡
는데…. 그럼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그런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전
았지. 내 손에 머리카락이라곤 하나도 잡히지 않았어. 그 때 이후로
대머리여도 상관없어요. 대준씨 좋은 사람 같아요. 지랄하네. 말로는
난, 완전히 대머리가 되어버린 거야.
그러더니, 결국엔 이 모양이 났어. 엄마가 여기 좋다고 가보라고 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 내 나이 서른 둘. 아직
고, 옆 동네 삼청동도 엄마가 괜찮다고 하던데 거기도 같이 가보자고,
도 총각딱지를 못 뗀 셈이지. 도대체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
그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그러는 게 어딨어? 같이 좋은 데 보러가자
까? 다른 놈들은 아무리 못난 놈도 심지어는 못 돼 처먹어서 나쁜 짓
고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그딴 식으로 말을 해야 되는 거였어?
만 골라하는 놈들도 이 나이쯤 되면 대부분은 경험이 있어. 근데 난 뭐야. 난 나쁜 짓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야. 결국 내 대머리 탓 인 거지. 근데 대머리라는 게 그렇게 큰 죄인 거야? 하아….
춥다. 후–. 그래, 이제 여자 따위 안 만날 거야. 대머리 여자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래,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해야겠어. 그냥 엄마 돌 아가실 때까지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아, 그리고 경복궁이나 같이
자꾸 한숨이 나온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 벌써 해가 지려고 하네.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왠지 사람들이 지저분해 보 여. 여기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야. 없는 편이 시원해보이고 좋 겠어. 아, 저 매점도 저게 뭐야! 저런 건 뭐 하러 여기다 지어가지고, 더
다녀 오자고도 말해야겠다. 삼청동도 같이 가보자고…. 겨울의 경복 궁은 있을 것들이 사라져서 아름다웠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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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지 뭐. 내가 왜 이런 더러운 얘기까지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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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흐물거리는 성기를 억지로 여자의 성기에 쑤셔 넣었어. 참….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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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번 버스 안 서대문구 홍제동 – 마포구 대흥동 박선희
110번 버스 안 서대문구 홍제동 – 마포구 대흥동 박선희
서울, 어느 곳 Somwhere in Seoul Thanks s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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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편집 김종소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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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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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김종소리
발행일
2010년 1월 20일
온라인
문의
jongsor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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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실린 작품의 저작권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무단으로 따라하시거나 가져다 쓰시면 안 됩니다. copyright©2010 abraxa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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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집에서 나는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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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
15 당신의 변주는 무슨 의미인가요? 박미정
33 눈이 오니까 인사해요, 안녕
서울, 어느 곳
이상협
49 Museum of Modern Art
서울, 어느 곳 Somewhere in Seoul
임우택
59 독두한가禿頭恨歌
winter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79 110번 버스 안 박선희
2010
Image © 2010 Digital Globe
winter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