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axas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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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꿈 vol. 6

아브락사스

의 신 당 당 신 의 abraxas vol.6 아브락사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입 엇 무 무 엇 입 여섯번째 summer 2010

summer

? 까 니 니 까 ? 2010


Thanks Seller

오프라인

가가린

종로구 창성동

02 736 9005

갸하하

마포구 상수동 91-3

02 3142 4877

마포구 서교동 333-18 2층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더 북 소사이어티 마포구 상수동 331-8 낙타

온라인

02 6405 3189 02 325 5336

레게치킨

마포구 상수동 91-3

02 338 3438

레바또

마포구 서교동 332-20

02 332 2286

상상마당

마포구 서교동 367-5

02 330 4310

세상의 끝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98-3

이리카페

마포구 상수동 337-4

02 323 7861

쿠루미

마포구 노고산동 56-76

02 338 9622

101호 사케집

마포구 서교동 328-15

02 3143 1015

유어마인드

your-mind.com

02 583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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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98-3

이리카페

마포구 상수동 3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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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사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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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초 김미선과 김종소리의 술자리에서

5

주고받은 이야기를 통해 기획,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첫 취지는 현재 우리나라 문학계의 실정—등단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연수희 19

28

다루자는 의견에 동의, 결국 모든 예술을 다루는

45

49

69

출판 될 예정—단, 3 · 6 · 9 · 11월 출간이 아닌 4 · 7 · 10 · 1월 발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입니다. 저희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 분이나 합작을 하실 분, 혹은

날아보자, 슈퍼맨 조우정 글/ 이동언 그림

91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송주희

단체가 있으시면 크레딧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주십시오. 언제든 환영합니다.

프롬 미 투 카프카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형태의 예술작품을 싣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문학잡지들의 특성을 따라 계간지의 형태로

꿈 정지호

출판물을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은 잡지의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박미정 글/ 이제휘 그림

하지만 여러 번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문학으로 단정 짓지 말고 출판의 형태로 나올 수 있는 모든 예술을

꿈을 팝니다 김수경

힘든 상황—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문학계 언더그라운드의 시작’인 것입니다.

꿈을 꾸기 위한 워밍업

105

아닌 꿈 Z

아브락사스 117

my dream 정가희

125

저의 꿈은 박선희


2009년 1월 초 김미선과 김종소리의 술자리에서

5

주고받은 이야기를 통해 기획,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첫 취지는 현재 우리나라 문학계의 실정—등단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연수희 19

28

다루자는 의견에 동의, 결국 모든 예술을 다루는

45

49

69

출판 될 예정—단, 3 · 6 · 9 · 11월 출간이 아닌 4 · 7 · 10 · 1월 발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입니다. 저희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 분이나 합작을 하실 분, 혹은

날아보자, 슈퍼맨 조우정 글/ 이동언 그림

91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송주희

단체가 있으시면 크레딧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주십시오. 언제든 환영합니다.

프롬 미 투 카프카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형태의 예술작품을 싣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문학잡지들의 특성을 따라 계간지의 형태로

꿈 정지호

출판물을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책은 잡지의 형태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박미정 글/ 이제휘 그림

하지만 여러 번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문학으로 단정 짓지 말고 출판의 형태로 나올 수 있는 모든 예술을

꿈을 팝니다 김수경

힘든 상황—에 반기를 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문학계 언더그라운드의 시작’인 것입니다.

꿈을 꾸기 위한 워밍업

105

아닌 꿈 Z

아브락사스 117

my dream 정가희

125

저의 꿈은 박선희


꾸 기 위 한

을 연수희

워 밍 업


꾸 기 위 한

을 연수희

워 밍 업


1 잠 못 이루는 밤들

잠을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졌다. 여름이면 심장은 더욱 두근거리고, 마음이 왠지 혼란해져서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예민해져 결국 서늘해 보이는 새벽 그을림을 보고서야 지친 잠에 빠진다. 한낮이 달궈놓은 열망들이 곪아 터져 땅으로 흡수되는 시점이다. 열네 살이 되면서 불분명한 조급함에 잠자리는 늦어지고, 새벽 맛의 알싸함을 알아가게 되었다. 새벽 맛 이란 것은 야구바—초콜렛으로 선수의 모션이 덧그려진 투명블루의 불량한 아이스 바—색깔에 먼지 두 덩이를 섞어 놓은듯한 탁하면서 공허하며 아름다운 것이었고, 미세한 어지러움과 혼 빠진 몸의 나른함을 동반했다. 음악은 귓가에 달라붙어 왱왱 되어서 자체적으로 5.1채널이 부럽지 않은 광범위 스테레오가 되었고, 그때 즈음, 위장은 냉수 한 컵 시원 하게 못 넘기도록 땡글땡글 부어 있었다. 구체적인 꿈, 혹은 내일에 대한 망상이 무르익기 시작하면서 알아간 새벽의 시간. 잉여의 에너지를 재생산하기 보다는 소모시켜 녹초가 되어버리는 편이 쉬웠던 수많은 아침. 그래, 자신의 방이 생긴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목적지를 스스로 설정하는 네비게이션–이 되어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수많은 연구와 인고의 시간이 따르는 일이다. 실패와 실수들을 짊어지고서 가야 한다. 시작도 끝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내가 맺어야 한다.

꿈을 꾸기 위한 워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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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 못 이루는 밤들

잠을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졌다. 여름이면 심장은 더욱 두근거리고, 마음이 왠지 혼란해져서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예민해져 결국 서늘해 보이는 새벽 그을림을 보고서야 지친 잠에 빠진다. 한낮이 달궈놓은 열망들이 곪아 터져 땅으로 흡수되는 시점이다. 열네 살이 되면서 불분명한 조급함에 잠자리는 늦어지고, 새벽 맛의 알싸함을 알아가게 되었다. 새벽 맛 이란 것은 야구바—초콜렛으로 선수의 모션이 덧그려진 투명블루의 불량한 아이스 바—색깔에 먼지 두 덩이를 섞어 놓은듯한 탁하면서 공허하며 아름다운 것이었고, 미세한 어지러움과 혼 빠진 몸의 나른함을 동반했다. 음악은 귓가에 달라붙어 왱왱 되어서 자체적으로 5.1채널이 부럽지 않은 광범위 스테레오가 되었고, 그때 즈음, 위장은 냉수 한 컵 시원 하게 못 넘기도록 땡글땡글 부어 있었다. 구체적인 꿈, 혹은 내일에 대한 망상이 무르익기 시작하면서 알아간 새벽의 시간. 잉여의 에너지를 재생산하기 보다는 소모시켜 녹초가 되어버리는 편이 쉬웠던 수많은 아침. 그래, 자신의 방이 생긴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목적지를 스스로 설정하는 네비게이션–이 되어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수많은 연구와 인고의 시간이 따르는 일이다. 실패와 실수들을 짊어지고서 가야 한다. 시작도 끝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내가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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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 겹의 보호막

하나하나 배우고, 알아가게 되면서 나는 갇히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점차 멀리로 외출을 나가고,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하나 둘 손을 찔러 넣었다. 점차 비싼 물건들을 갖게 되고 점차 고도의 지식들을 흡수하게 되었다. 좋고 별로인 것은 확실했지만, 의미가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은 생각할 깜냥이 되지 않았다. 내 몸의 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박력 있게 흘러 다녔고 내 육체의 고도성장을 정신이 헉헉대며 뒤따르는 꼴이었다. 그래도 꽤나 리듬 있게 흘러가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유년기 라는 것은 엇박에 변박투성이- 공부라는 것은 애초의 부모의 직간접적 간섭이 소홀해지면 자연스레 소홀해 지는 법. 막 먹고 사는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던 부모님의 레이더에서 조금 벗어나자 공부보다는 다른 자극적인 것에 꽂혀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라는 인간, 기본적인 본성은 세살 미만에 굳혀진 것이 분명한 듯 하고, 형태 위의 색깔과 덧붙여지는 조형물은 내가 빚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셀룰라이트처럼 우둘투둘 돋아나는 나쁜 것들, 자격지심…… 자책…… 열등감 –

목표가 불투명해질수록 다가오는 공포와 쓸데없는 두려움……

아, 이러다가 나만 이 세상에서 혼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만 다른 종류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유행하는 브랜드 옷을 사 입기 시작했다면 살짝 핑계이기는 하다만…… 결국, 겹겹이 쳐온 나의 보호막은 때로는 나의 무기로 –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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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을 꾸기 위한 워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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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 겹의 보호막

하나하나 배우고, 알아가게 되면서 나는 갇히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점차 멀리로 외출을 나가고,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하나 둘 손을 찔러 넣었다. 점차 비싼 물건들을 갖게 되고 점차 고도의 지식들을 흡수하게 되었다. 좋고 별로인 것은 확실했지만, 의미가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은 생각할 깜냥이 되지 않았다. 내 몸의 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박력 있게 흘러 다녔고 내 육체의 고도성장을 정신이 헉헉대며 뒤따르는 꼴이었다. 그래도 꽤나 리듬 있게 흘러가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유년기 라는 것은 엇박에 변박투성이- 공부라는 것은 애초의 부모의 직간접적 간섭이 소홀해지면 자연스레 소홀해 지는 법. 막 먹고 사는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던 부모님의 레이더에서 조금 벗어나자 공부보다는 다른 자극적인 것에 꽂혀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라는 인간, 기본적인 본성은 세살 미만에 굳혀진 것이 분명한 듯 하고, 형태 위의 색깔과 덧붙여지는 조형물은 내가 빚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셀룰라이트처럼 우둘투둘 돋아나는 나쁜 것들, 자격지심…… 자책…… 열등감 –

목표가 불투명해질수록 다가오는 공포와 쓸데없는 두려움……

아, 이러다가 나만 이 세상에서 혼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만 다른 종류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유행하는 브랜드 옷을 사 입기 시작했다면 살짝 핑계이기는 하다만…… 결국, 겹겹이 쳐온 나의 보호막은 때로는 나의 무기로 –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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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대적 약점으로 작용하여 내 안에서 수십 킬로미터 깊이의 ‘가두리 양식 늪’을 만들고 있었다.

3 사랑하면 순간 잊어버리고, 기댈수록 채워지지 않는 마음

색이 뚜렷하고 향기가 뚜렷한 사람이 좋았다. 왠지 나를 이 찝찝한 불안에서 건져 내줄 것만 같아서 그 애가 좋아하는 뭔가를 할 때 옆에서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 나의 욕심이 과해져, 꽉 잡아 비틀고 물고 뜯고 하여 그 애가 너덜너덜해진 채 ‘제발 날 좀 내버려 두고, 떠나줘’ 라고 말하면 더욱더 거세게 물고 흔들어댔다. 그런 측은한 나에게 미안해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사랑을 하면 그것만으로 꽉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또한 백퍼센트 몰입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 어서 많은 시간을 바쳤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고 나면 꽉 채워졌던 공간이상의 구멍이 훵 하니 뚫려 있었기 때문에 다시 또 그 공간을 메우기 위해서는 더 큰 것이 필요해지고는 했다. 이십 대의 중반이 넘어가면서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육체를 따라가려 애쓰던 정신이 다시 몸을 리드하기 시작하면서 넘친다는 기분보다는 지쳐간다라는 기분에 더욱 불안해져 버렸다. 매일매일이 밀린 방학숙제에 대한 걱정과 후회를 하던 그때의 심정이었다. 새 학기 시작 전 원대한 포부와 무리한 계획을 세워놓고 막상 1할도 이루지 못한 상태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책망의 시간이 나의 많은 시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먹고 마시는 것조차 제멋대로가 되어버려서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집에 가서는 하루 종일 치기 어리기만 했던 내 행동과 말이 맘에 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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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대적 약점으로 작용하여 내 안에서 수십 킬로미터 깊이의 ‘가두리 양식 늪’을 만들고 있었다.

3 사랑하면 순간 잊어버리고, 기댈수록 채워지지 않는 마음

색이 뚜렷하고 향기가 뚜렷한 사람이 좋았다. 왠지 나를 이 찝찝한 불안에서 건져 내줄 것만 같아서 그 애가 좋아하는 뭔가를 할 때 옆에서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 나의 욕심이 과해져, 꽉 잡아 비틀고 물고 뜯고 하여 그 애가 너덜너덜해진 채 ‘제발 날 좀 내버려 두고, 떠나줘’ 라고 말하면 더욱더 거세게 물고 흔들어댔다. 그런 측은한 나에게 미안해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사랑을 하면 그것만으로 꽉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또한 백퍼센트 몰입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 어서 많은 시간을 바쳤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고 나면 꽉 채워졌던 공간이상의 구멍이 훵 하니 뚫려 있었기 때문에 다시 또 그 공간을 메우기 위해서는 더 큰 것이 필요해지고는 했다. 이십 대의 중반이 넘어가면서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육체를 따라가려 애쓰던 정신이 다시 몸을 리드하기 시작하면서 넘친다는 기분보다는 지쳐간다라는 기분에 더욱 불안해져 버렸다. 매일매일이 밀린 방학숙제에 대한 걱정과 후회를 하던 그때의 심정이었다. 새 학기 시작 전 원대한 포부와 무리한 계획을 세워놓고 막상 1할도 이루지 못한 상태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책망의 시간이 나의 많은 시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먹고 마시는 것조차 제멋대로가 되어버려서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집에 가서는 하루 종일 치기 어리기만 했던 내 행동과 말이 맘에 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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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의 술이 문제라며 괜한 탓을 다른 곳에 돌리기도 했다. 점점 싫어지는 것이 많아졌다. 모든지 내가 맞는 것 같아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다들 잘못되어 있고 엉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신기루 같은 환경에 둘러싸여 나만 둥실 떠올라 많은 것을 부정하기 바빴다. 아니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부질없어져 버리니까. 내가 쌓아온 개념과 이념과 철학과 논리가 모두 무너져 버려서 난 그 아래 깔려 죽어 버릴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더욱더 비판의 칼날을 거칠게 갈아댔고, 그 칼날은 결국 나를 향해 있다는 것도 잊고, 몸을 던져 더욱더 뾰족해지고 있었다. 아무튼 애써 요약하자면 산소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비닐봉지 안에 갇힌 초파리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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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의 술이 문제라며 괜한 탓을 다른 곳에 돌리기도 했다. 점점 싫어지는 것이 많아졌다. 모든지 내가 맞는 것 같아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다들 잘못되어 있고 엉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신기루 같은 환경에 둘러싸여 나만 둥실 떠올라 많은 것을 부정하기 바빴다. 아니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부질없어져 버리니까. 내가 쌓아온 개념과 이념과 철학과 논리가 모두 무너져 버려서 난 그 아래 깔려 죽어 버릴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더욱더 비판의 칼날을 거칠게 갈아댔고, 그 칼날은 결국 나를 향해 있다는 것도 잊고, 몸을 던져 더욱더 뾰족해지고 있었다. 아무튼 애써 요약하자면 산소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비닐봉지 안에 갇힌 초파리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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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어컨은 2주에 한번 필터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군

5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때를 놓치고 있나

채우기만 하다 보니 꽉 막혀버린 먼지 가득 낀 필터– 아무것도 통과할 수

뭐든 센스 있는 그 녀석은 녀석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녀석 이었다.

없으니 작동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빈틈없이 들어찬 오래된 먼지 때를 수압

심지어는 카카오 톡 메인 이미지마저도 아슬아슬 재미나서 소소한

센 물로 청소를 하고 나니 머쓱한 기분마저 들 정도로 쉽사리 깨끗해져 버렸다.

것만으로도 나를 긴장 시킨다.

그것을 청소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한다는

하지만 유난히 까다롭고 폐쇄적인 취향은 ‘아무거나 하지 않아’ 라는 자신만의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원칙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남들은 수십 년 걸려도 만들기 어려운

마음을 퉁 치듯- 가볍게 비워내고 독소로 찐득해진 몸을 씻어내는 일.

‘자신만의 냄새’를 자주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미친 완벽주의자 일지도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사람에게 진 마음의 빚이든,

모르고 사실은 겁쟁이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마이너스 통장의 빚이든 짐이 되고 있는 것들도 청산해버리고, 미워하는

재주가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것들도 별 볼일 없기는 마찬가지.

사람을 놓아주고, 블랙리스트를 태워 버리는 일, 녹슨 내 인생을 다시 윤이

‘이제 어느 정도 익었으니, 손님상에 좀 내놓지?’ 라고 권유 하면 관심 없다

나게 닦아내는 일.

내빼놓고

자면서 못 지킬 망상적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수년 전 혹은 어제의 나를

‘이 자식아, 결국은 자신이 없는 것 아니냐?’ 라고 채근하면 솔직하게 ‘요만큼’

다독이고 추스리는 일.

웃음으로 시인한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잊지 않는 것.

고놈의 재주가 탐이 나기도 하고, 또 매니저 혹은 큐레이터를 자청하기도 싶은

성장하기 위해 지겹도록 마셨던 이백 미리 리터 흰 우유를 떠올리며 눈을 뜨면

마음에 이런저런

매일 같이 상기해야 되는 약속이다.

기회를 포획하여 들이 내밀어 봐도 맛있는 도너츠 가게의 사장을 생각하는데, 오히려 더 멀리 앞서가 있는 것 같아 놓아 버리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 될 것 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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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어컨은 2주에 한번 필터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군

5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때를 놓치고 있나

채우기만 하다 보니 꽉 막혀버린 먼지 가득 낀 필터– 아무것도 통과할 수

뭐든 센스 있는 그 녀석은 녀석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녀석 이었다.

없으니 작동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빈틈없이 들어찬 오래된 먼지 때를 수압

심지어는 카카오 톡 메인 이미지마저도 아슬아슬 재미나서 소소한

센 물로 청소를 하고 나니 머쓱한 기분마저 들 정도로 쉽사리 깨끗해져 버렸다.

것만으로도 나를 긴장 시킨다.

그것을 청소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한다는

하지만 유난히 까다롭고 폐쇄적인 취향은 ‘아무거나 하지 않아’ 라는 자신만의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원칙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남들은 수십 년 걸려도 만들기 어려운

마음을 퉁 치듯- 가볍게 비워내고 독소로 찐득해진 몸을 씻어내는 일.

‘자신만의 냄새’를 자주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미친 완벽주의자 일지도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사람에게 진 마음의 빚이든,

모르고 사실은 겁쟁이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마이너스 통장의 빚이든 짐이 되고 있는 것들도 청산해버리고, 미워하는

재주가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것들도 별 볼일 없기는 마찬가지.

사람을 놓아주고, 블랙리스트를 태워 버리는 일, 녹슨 내 인생을 다시 윤이

‘이제 어느 정도 익었으니, 손님상에 좀 내놓지?’ 라고 권유 하면 관심 없다

나게 닦아내는 일.

내빼놓고

자면서 못 지킬 망상적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수년 전 혹은 어제의 나를

‘이 자식아, 결국은 자신이 없는 것 아니냐?’ 라고 채근하면 솔직하게 ‘요만큼’

다독이고 추스리는 일.

웃음으로 시인한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잊지 않는 것.

고놈의 재주가 탐이 나기도 하고, 또 매니저 혹은 큐레이터를 자청하기도 싶은

성장하기 위해 지겹도록 마셨던 이백 미리 리터 흰 우유를 떠올리며 눈을 뜨면

마음에 이런저런

매일 같이 상기해야 되는 약속이다.

기회를 포획하여 들이 내밀어 봐도 맛있는 도너츠 가게의 사장을 생각하는데, 오히려 더 멀리 앞서가 있는 것 같아 놓아 버리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 될 것 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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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

그럼 이제 꿈을 하나 가져 볼까나?

어떤 템포로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야 할 것 인지는 내가 정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뭐든 의지대로 풀릴 것 같은 의욕이 많이 깎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분명 사람마다의 흐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맡겨 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지난 일을 후회하는 일도 과도한 내일의 욕심도 많이 누그러졌다. 지금의 마음이 가장 소중하고 지금 내가 당장 젓고 있는 국 냄비가 의미 있다. 미래보다는 매일매일이―어제보다는 순간순간이―더욱더 짜릿하다. 당장의 즐거움은 쌓아온 관계와 쌓아갈 계획들에게 조금 나눠주는 것도 잊지 않기로 한다. 내 꿈을 어디로 쏘아두어야 할지는 이제 좌표 설정 정도는 해두었으니까. 수년간 내 마음을 내가 읽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해 시스템 과부화 상태였던 것을 떠올리자면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었다.

16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을 꾸기 위한 워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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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90/120/140

7 아,

그럼 이제 꿈을 하나 가져 볼까나?

어떤 템포로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야 할 것 인지는 내가 정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뭐든 의지대로 풀릴 것 같은 의욕이 많이 깎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분명 사람마다의 흐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맡겨 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지난 일을 후회하는 일도 과도한 내일의 욕심도 많이 누그러졌다. 지금의 마음이 가장 소중하고 지금 내가 당장 젓고 있는 국 냄비가 의미 있다. 미래보다는 매일매일이―어제보다는 순간순간이―더욱더 짜릿하다. 당장의 즐거움은 쌓아온 관계와 쌓아갈 계획들에게 조금 나눠주는 것도 잊지 않기로 한다. 내 꿈을 어디로 쏘아두어야 할지는 이제 좌표 설정 정도는 해두었으니까. 수년간 내 마음을 내가 읽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해 시스템 과부화 상태였던 것을 떠올리자면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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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을 꾸기 위한 워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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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니 다 김수경


팝 니 다 김수경


꿈을 파는 가게가 생겼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처음엔 너 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서 모두들 웃어 넘겼지만 유달리 호기심이 많았던 몇 몇 네티즌이 그 가게를 찾아내 그게 진짜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그 가게의 이름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며칠간이나 머물렀다. 특히 5년 간 방에 처박혀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던 한 청년이 그 가게에서 꿈을 산 뒤 의대 에 진학했다는 소문부터 대기업 간부가 사직서를 내고 한 초등학교 앞에 떡볶 이 집을 냈다는 소문까지 하루에도 몇 건씩 그 가게에 대한 새로운 소문이 생겨 나고 또 생겨났다. 꿈을 판다고? 사고 싶은 꿈이 있으면 마음만 먹으면 되지, 그걸 돈을 주고 사는 멍청이가 있어? 야, 그게 아니야. 그 가게에서 꿈을 사면 반드시 이루어진대. 마음만 먹는다 고 꿈이 이루어지진 않잖아. 흐음…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얼마나 하지? 공기업 홍보팀에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민아는 인터넷에 나도는 이야기라면 모르는 게 없다. 벌써 주변 사람들이 몇 명 그 가게에 다녀왔다면서 은근한 확 신을 심어줬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가게가 있다면 모두가

꿈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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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파는 가게가 생겼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처음엔 너 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서 모두들 웃어 넘겼지만 유달리 호기심이 많았던 몇 몇 네티즌이 그 가게를 찾아내 그게 진짜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그 가게의 이름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며칠간이나 머물렀다. 특히 5년 간 방에 처박혀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던 한 청년이 그 가게에서 꿈을 산 뒤 의대 에 진학했다는 소문부터 대기업 간부가 사직서를 내고 한 초등학교 앞에 떡볶 이 집을 냈다는 소문까지 하루에도 몇 건씩 그 가게에 대한 새로운 소문이 생겨 나고 또 생겨났다. 꿈을 판다고? 사고 싶은 꿈이 있으면 마음만 먹으면 되지, 그걸 돈을 주고 사는 멍청이가 있어? 야, 그게 아니야. 그 가게에서 꿈을 사면 반드시 이루어진대. 마음만 먹는다 고 꿈이 이루어지진 않잖아. 흐음…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얼마나 하지? 공기업 홍보팀에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민아는 인터넷에 나도는 이야기라면 모르는 게 없다. 벌써 주변 사람들이 몇 명 그 가게에 다녀왔다면서 은근한 확 신을 심어줬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가게가 있다면 모두가

꿈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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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꿈을 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엄밀히 말하면 ‘모두’가 아니라 ‘돈을 가

진 자’들 말이다. 돈 있는 놈들은 꿈도 마음대로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 그럼

그래? 하하하.

얼마나 주면 꿈을 살 수 있을까? 큰 꿈일수록 비싸겠지? 근데 큰 꿈이 뭐지…?

그 웃음은 예전 준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술이 썼다. 술 안주 삼아 나온 이야기가 몇 시간째 이어졌다. ‘길’이라는 이름의

준호를 만났던 날 밤, 인터넷에서 그 가게를 검색했다.

술집 벽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테이블 위의 낡은 백열등이 곧 터져버릴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술이 지독히 썼다.

꿈을 팝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 9동 20-46번지

내가 일하는 낡고 허름한 출판사 사무실 안에는 365일 쾌쾌한 잉크 냄새가 진 동한다. 아무도 찾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죽 늘어져있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20분을 더 가야 나오는 구불구불한 동네.

는 곳. 손바닥만한 볕이 드는 내 자리에 앉아 멍하니 그 가게 홈페이지를 들여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소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본다. 먼지가 허공에서 조용히 춤을 춘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꿈을 판다는 곳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황당 한 코메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사이비 종교 같은 건 아닌가…

막상 가까워지니 덜컥 겁이 났다. 홈페이지에 나온 약도를 프린트 해 오길 잘했다.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네 귀퉁이가 누렇게 녹이 슨 녹색 대문이 뜨거운 여름 햇빛아래 땀을 뻘뻘 흘리

꿈을 판다는 그 가게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준호가 그 가게에서 꿈을 산 뒤

고 있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된 날이었다. 얼마 전 명동의 유 명한 칼국수집을 가게 됐다. 이른 저녁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

계세요?

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연히 준호를 만났다. 2년 전 자살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들어오세요.

정신상태가 피폐했던 준호는 정말이지 완전히 딴 사람이 돼 있었다. 지금은 유 니세프 비슷한 봉사단체에서 일한다고 한다. 가슴팍에 ‘Save the world’라고 큼

굉장히 앳된 목소리의 여자가 문 앞으로 나왔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정

지막하게 적힌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은 건강하다 못해 힘

갈하게 올려 묶었다. 한 눈에 봐도 예쁜 미인형이었고 나이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이 넘쳐 보였다.

듯 보였다.

방안에서 헛된 꿈만 꾸다가 진짜 꿈을 이루게 되니까 신이 나더라구. 후후. 지금

아, 인터넷에서 보고 왔는데요. 꿈을 파는 가게 맞나요?

은 모두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웃기지 않냐?

네, 인터넷으로 예약 하고 오셨나요?

응. 좋아 보인다. 진짜.

22

아니오. 근데 가격은 얼마나 하죠?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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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꿈을 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엄밀히 말하면 ‘모두’가 아니라 ‘돈을 가

진 자’들 말이다. 돈 있는 놈들은 꿈도 마음대로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 그럼

그래? 하하하.

얼마나 주면 꿈을 살 수 있을까? 큰 꿈일수록 비싸겠지? 근데 큰 꿈이 뭐지…?

그 웃음은 예전 준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술이 썼다. 술 안주 삼아 나온 이야기가 몇 시간째 이어졌다. ‘길’이라는 이름의

준호를 만났던 날 밤, 인터넷에서 그 가게를 검색했다.

술집 벽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테이블 위의 낡은 백열등이 곧 터져버릴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술이 지독히 썼다.

꿈을 팝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 9동 20-46번지

내가 일하는 낡고 허름한 출판사 사무실 안에는 365일 쾌쾌한 잉크 냄새가 진 동한다. 아무도 찾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죽 늘어져있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20분을 더 가야 나오는 구불구불한 동네.

는 곳. 손바닥만한 볕이 드는 내 자리에 앉아 멍하니 그 가게 홈페이지를 들여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소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본다. 먼지가 허공에서 조용히 춤을 춘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꿈을 판다는 곳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황당 한 코메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사이비 종교 같은 건 아닌가…

막상 가까워지니 덜컥 겁이 났다. 홈페이지에 나온 약도를 프린트 해 오길 잘했다.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네 귀퉁이가 누렇게 녹이 슨 녹색 대문이 뜨거운 여름 햇빛아래 땀을 뻘뻘 흘리

꿈을 판다는 그 가게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준호가 그 가게에서 꿈을 산 뒤

고 있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된 날이었다. 얼마 전 명동의 유 명한 칼국수집을 가게 됐다. 이른 저녁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

계세요?

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연히 준호를 만났다. 2년 전 자살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들어오세요.

정신상태가 피폐했던 준호는 정말이지 완전히 딴 사람이 돼 있었다. 지금은 유 니세프 비슷한 봉사단체에서 일한다고 한다. 가슴팍에 ‘Save the world’라고 큼

굉장히 앳된 목소리의 여자가 문 앞으로 나왔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정

지막하게 적힌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은 건강하다 못해 힘

갈하게 올려 묶었다. 한 눈에 봐도 예쁜 미인형이었고 나이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이 넘쳐 보였다.

듯 보였다.

방안에서 헛된 꿈만 꾸다가 진짜 꿈을 이루게 되니까 신이 나더라구. 후후. 지금

아, 인터넷에서 보고 왔는데요. 꿈을 파는 가게 맞나요?

은 모두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웃기지 않냐?

네, 인터넷으로 예약 하고 오셨나요?

응. 좋아 보인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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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 근데 가격은 얼마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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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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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후 가격 알려드려요.

김주연씨. 무슨 꿈을 사고 싶으시죠?

이쪽 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후후. 아무 꿈이나 다 되죠. 근데 꿈이 아무거나가 될 수 있나요? 한 번 산 꿈

아, 네…

음… 정말 아무 꿈이나 말해도 되나요?

네…

은 환불이 안됩니다. 평생 가지고 가셔야 하죠. 그래도 괜찮다면 아무거나 말씀 해 보세요.

그 여자는 나를 왼쪽편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사뿐사뿐한 걸음걸이에 나도 조심스레 따라 걸었다. 가게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월차를 내고 평일 오전에 오

조소가 배 있는 웃음이었다. 희고 조막만한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음

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흉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어려 보였지만 눈빛에는 깊이가 있었다. 뭔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조금은 기분 나쁜 그런 눈빛. 어디서 봤더라… 낯익은 저

방문을 열자 옅은 커피 냄새가 났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이상한 그런 방이었 다. 불상이나 병풍 같은 것도 없었다. 소박한 탁자 하나와 작은 꽃무늬 자수가 놓여진 빛바랜 다홍색 방석, 그리고 벽에는 아주 커다란 그림이 하나 걸려 있었

눈빛.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참… 아무 꿈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얼토당

다. 팔을 다 뻗어 봐도 좌우가 닿지 않을 만큼 큰 그림이었다. 연한 미색 바탕에

토않은 소리였다. 그런데, 환불이 안 되는 꿈이라… 덜컥 아무거나 말해서는 안

아무렇게나 찍은 붉은 점 하나가 가운데 있는 그림 같지도 않은 그림이었다. 한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동안 그 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점이 점점 커지는 듯 보였다. 계속 보고 있다 가는 그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사실, 정확히 꿈을 사러 왔다기보다는 확인 해 보고 싶었거든요. 확인이요?

한 5분쯤 지났을까? 나를 방으로 안내했던 그 여자가 들어왔다.

꿈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황당하기도 하고 해서…… 그럼 주연씨는 꿈이 없다는 얘긴가요?

아, 그게… 꿈이 없다기보다는 환불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까 좀 고민이

앉으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되네요. 겁도 나고…

김주연입니다.

겁이 난다구요? 후후. 꿈이 이루어 질까봐 겁이 난다는 손님은 처음이군요. 저 어린여자애가 꿈을 판다고? 괜히 왔나 싶었다. 집시 느낌을 풍기는 묘한 분 위기를 가진 40대 여성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주술이라도 부릴 줄 알았다. 그런

데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예쁘장하고 유약해 보이는 저 여자애라니… 휴… 난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그러고 있자니 어렸을 적 기억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열 살 무렵, 집 근처에 민속무용단이 약을 팔러 왔다. 몇 년 전 폐업한 허름한 극장에서 몇 달 간 쇼도 하고 약도 팔고 하는 패거리였다. 어린애들은 출입금지였지만 운 좋은 날에는 극장에 들어가는 할머니들 틈에 우르르 몰려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날 몇몇 친구

3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수 십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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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들과 극장 앞을 서성이다, 문지기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날렵하게 할머니 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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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후 가격 알려드려요.

김주연씨. 무슨 꿈을 사고 싶으시죠?

이쪽 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후후. 아무 꿈이나 다 되죠. 근데 꿈이 아무거나가 될 수 있나요? 한 번 산 꿈

아, 네…

음… 정말 아무 꿈이나 말해도 되나요?

네…

은 환불이 안됩니다. 평생 가지고 가셔야 하죠. 그래도 괜찮다면 아무거나 말씀 해 보세요.

그 여자는 나를 왼쪽편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사뿐사뿐한 걸음걸이에 나도 조심스레 따라 걸었다. 가게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월차를 내고 평일 오전에 오

조소가 배 있는 웃음이었다. 희고 조막만한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음

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흉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어려 보였지만 눈빛에는 깊이가 있었다. 뭔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조금은 기분 나쁜 그런 눈빛. 어디서 봤더라… 낯익은 저

방문을 열자 옅은 커피 냄새가 났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이상한 그런 방이었 다. 불상이나 병풍 같은 것도 없었다. 소박한 탁자 하나와 작은 꽃무늬 자수가 놓여진 빛바랜 다홍색 방석, 그리고 벽에는 아주 커다란 그림이 하나 걸려 있었

눈빛.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참… 아무 꿈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얼토당

다. 팔을 다 뻗어 봐도 좌우가 닿지 않을 만큼 큰 그림이었다. 연한 미색 바탕에

토않은 소리였다. 그런데, 환불이 안 되는 꿈이라… 덜컥 아무거나 말해서는 안

아무렇게나 찍은 붉은 점 하나가 가운데 있는 그림 같지도 않은 그림이었다. 한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동안 그 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점이 점점 커지는 듯 보였다. 계속 보고 있다 가는 그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사실, 정확히 꿈을 사러 왔다기보다는 확인 해 보고 싶었거든요. 확인이요?

한 5분쯤 지났을까? 나를 방으로 안내했던 그 여자가 들어왔다.

꿈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황당하기도 하고 해서…… 그럼 주연씨는 꿈이 없다는 얘긴가요?

아, 그게… 꿈이 없다기보다는 환불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까 좀 고민이

앉으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되네요. 겁도 나고…

김주연입니다.

겁이 난다구요? 후후. 꿈이 이루어 질까봐 겁이 난다는 손님은 처음이군요. 저 어린여자애가 꿈을 판다고? 괜히 왔나 싶었다. 집시 느낌을 풍기는 묘한 분 위기를 가진 40대 여성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주술이라도 부릴 줄 알았다. 그런

데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예쁘장하고 유약해 보이는 저 여자애라니… 휴… 난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그러고 있자니 어렸을 적 기억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열 살 무렵, 집 근처에 민속무용단이 약을 팔러 왔다. 몇 년 전 폐업한 허름한 극장에서 몇 달 간 쇼도 하고 약도 팔고 하는 패거리였다. 어린애들은 출입금지였지만 운 좋은 날에는 극장에 들어가는 할머니들 틈에 우르르 몰려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날 몇몇 친구

3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수 십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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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극장 앞을 서성이다, 문지기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날렵하게 할머니 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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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극장에 들어갔다. 연극과 판소리가 뒤섞인 조악하기 짝이 없는 허술한 공

그날 밤 나는 아주 긴 꿈을 꿨다.

연이었지만 그것이 내가 본 최초의 무대 공연이었다. 공연에 정신이 팔려 보습 학원도 빼 먹고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학원 갔다가 영두네 집 잠깐 들렀는데, 밥 먹고 놀다 보니까 좀 늦었어.

……

진짜야, 영두가 라면을 끓여줬는데 밥도 말아 먹고 영두 엄마가 과일도 주

셔서…… ……

진짜야, 영두네 집에 전화해 봐. 진짜야.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서툰 변명을 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꼭 그때의 엄마 눈빛 같았다. 내 앞에 어깨를 옹송그리고 앉아 입을 야무 지게 다물고 있는 저 여자의 눈빛은 뭔가를 다 알고 있다는 그때의 엄마 눈빛 같 았다. 꿈이 확실해 지면 다시 오세요.

……아, 네.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 나왔다. 버스 정류장이 보이자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 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진정이 안 됐다. 잠자리에 누워 골똘히 생각해 봤다. 내 꿈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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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극장에 들어갔다. 연극과 판소리가 뒤섞인 조악하기 짝이 없는 허술한 공

그날 밤 나는 아주 긴 꿈을 꿨다.

연이었지만 그것이 내가 본 최초의 무대 공연이었다. 공연에 정신이 팔려 보습 학원도 빼 먹고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학원 갔다가 영두네 집 잠깐 들렀는데, 밥 먹고 놀다 보니까 좀 늦었어.

……

진짜야, 영두가 라면을 끓여줬는데 밥도 말아 먹고 영두 엄마가 과일도 주

셔서…… ……

진짜야, 영두네 집에 전화해 봐. 진짜야.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서툰 변명을 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꼭 그때의 엄마 눈빛 같았다. 내 앞에 어깨를 옹송그리고 앉아 입을 야무 지게 다물고 있는 저 여자의 눈빛은 뭔가를 다 알고 있다는 그때의 엄마 눈빛 같 았다. 꿈이 확실해 지면 다시 오세요.

……아, 네.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 나왔다. 버스 정류장이 보이자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 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진정이 안 됐다. 잠자리에 누워 골똘히 생각해 봤다. 내 꿈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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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구 나 가 슴 속 에 욕

망 몇

박미정

이제휘

개 쯤 은 가 지 고 글

그림

있 는 거 잖 아 요


누 구 나 가 슴 속 에 욕

망 몇

박미정

이제휘

개 쯤 은 가 지 고 글

그림

있 는 거 잖 아 요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이미 나는 오늘을 맞이했다. 00시 00분 이후에도 깨어있었으니까. 하지만, 잠자지 않고 뜬 눈으로 맞이한 다음 날 은 다음 날이라는 기분이 안 난다. 새벽 몇 시에 잠에 들었든, 떠오르는 이 날의 해를 본 뒤에 잠이 들었더라도 완벽한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잠’이 필수 의 요소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오늘을 미루기 위해서 눈을 감은 채로 깨어있었다. 해 가 잘 들지 않아서 불만이던 집이 이런 날에는 달갑다. 눈을 떠도 빛 보다는 어 두움이 더 잘 보이니까. 그래서 눈을 떴다는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버티고 있고 싶었다. 눈을 떠서 오늘을 맞이한대봤자 어제랑 크게 다르 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속 으로 수를 센다. 정확히 39에 일어나는 거다. 사실 40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하 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의 수가 9고 그래서 좋단 마음으로 아주 빨리 선택해 버 린 수는 앞에 3이 붙은 39였다. 하나. 둘, 셋, 넷… 37쯤에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키며 38을 센 다음, 침대에 걸터앉은 자세로 이다음은 39를 셀 거라고 스스로에게 넌지시 알려준 뒤에 정 확히 39를 외치며—마지막을 목소리를 드높이라— 눈을 떴다. 세탁도 하지 않은 채로 바닥에 벗어 놓은 옷이 이룬 구릉들을 밟고 지나 화 장실에 도착했다. 몸은 화장실에 in한 채로 팔을 밖으로 빼어서 보일러의 온수 를 켠다. 너무도 익숙한 동작. 화장실에도 또 한 더미—사실 여러 더미—쌓여 있는 옷가지들 중에 몇을 간택한다. 여러 개의 흡착판이 달린 말랑한 재질의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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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이미 나는 오늘을 맞이했다. 00시 00분 이후에도 깨어있었으니까. 하지만, 잠자지 않고 뜬 눈으로 맞이한 다음 날 은 다음 날이라는 기분이 안 난다. 새벽 몇 시에 잠에 들었든, 떠오르는 이 날의 해를 본 뒤에 잠이 들었더라도 완벽한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잠’이 필수 의 요소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오늘을 미루기 위해서 눈을 감은 채로 깨어있었다. 해 가 잘 들지 않아서 불만이던 집이 이런 날에는 달갑다. 눈을 떠도 빛 보다는 어 두움이 더 잘 보이니까. 그래서 눈을 떴다는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버티고 있고 싶었다. 눈을 떠서 오늘을 맞이한대봤자 어제랑 크게 다르 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속 으로 수를 센다. 정확히 39에 일어나는 거다. 사실 40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하 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의 수가 9고 그래서 좋단 마음으로 아주 빨리 선택해 버 린 수는 앞에 3이 붙은 39였다. 하나. 둘, 셋, 넷… 37쯤에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키며 38을 센 다음, 침대에 걸터앉은 자세로 이다음은 39를 셀 거라고 스스로에게 넌지시 알려준 뒤에 정 확히 39를 외치며—마지막을 목소리를 드높이라— 눈을 떴다. 세탁도 하지 않은 채로 바닥에 벗어 놓은 옷이 이룬 구릉들을 밟고 지나 화 장실에 도착했다. 몸은 화장실에 in한 채로 팔을 밖으로 빼어서 보일러의 온수 를 켠다. 너무도 익숙한 동작. 화장실에도 또 한 더미—사실 여러 더미—쌓여 있는 옷가지들 중에 몇을 간택한다. 여러 개의 흡착판이 달린 말랑한 재질의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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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을 걸이에서 빼내어 바닥에 던진다. 착!하고 바닥에 붙으라는 명령이랄 까. 그리고는 능숙하게 아래 속옷을 벗는다. 뭐랄까 이건 그냥 습관이자 신조 비슷한 것인데, 빨래를 할 때에는 되도록 속옷을 먼저 빤다. 안에 입는 거니까 혜택을 준다고나할까. 심지어는 세탁비누를 속옷용과 속옷이 아닌 용으로 나 누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자금난이 심각하니까. 그냥 All in one 제도를 반강제로 채택중이다. 매우 능숙한 오른손과 왼손의 협응이다, 빨래라는 것은. 어려서 작은 손으 로 조물조물 했을 때 엄마가 그게 뭐냐며 이리 내놓으라 하셨던 때의 내가 아 니다. 자취 경력도 쌓였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행주를 겁나게 빨아댔으니까. 빨래를 하다가 또 매우 자주 생각나는 빨래에 대한 어렸을 때의 일화가 떠오른 다. 자동적이랄까. 우리 가족이 아직 대전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엄마가 다라이—이 것이 표준어인지 일본의 잔재가 베인 말인지 막말인지는 알 수 없다—에 불려 놓은 빨래가 하도 많아 보여서 엄마를 돕자며 언니와 작당을 한 적이 있다. 작 당치고는 매우 ‘효녀스러운 것’이었는데, 아무튼 2개씩이었는지 3개씩이었는 지를 각자 선택해서 빨래를 하기로 한 것이다. 언니는 그 때에도 양심이 없었 는데, 아빠 팬티와 양말 한 쌍을 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빠의 파자마 바지와 엄마 티 정도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빠의 파자마 바지에 구 멍이 난 것을 발견했다. 그 때 언니와 나는 둘이 참 많이도 첨벙첨벙 울었다. 언 니와 나는 어려서부터 우리의 가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가 난이 슬펐을까. 우리에게 아직은 부모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마음이 들어서 문득 눈물이 났던 걸까. 네댓 개의 빨래를 꼭 짜서 수건걸이에 걸쳐 놓는다. 무언가 뿌듯함이 좌르 륵 흐른다. 땀도 좀 흘렸겠다. 개운하게 샤워를 한다. 물을 뚝뚝 떨구며 방으로 넘어온다. 건조대에서 바싹 마른 수건을 잡아내려 머리를 감싼다. 오늘은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영화정보를 검색해보고 싶어서 컴 퓨터를 켠다. 되라되라되라. 내 정보를 남이 볼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자물 쇠가 없는 꽉 찬 막대기를 선택한다. 감사히 쓰고 있습니다. 모군모양 또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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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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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을 걸이에서 빼내어 바닥에 던진다. 착!하고 바닥에 붙으라는 명령이랄 까. 그리고는 능숙하게 아래 속옷을 벗는다. 뭐랄까 이건 그냥 습관이자 신조 비슷한 것인데, 빨래를 할 때에는 되도록 속옷을 먼저 빤다. 안에 입는 거니까 혜택을 준다고나할까. 심지어는 세탁비누를 속옷용과 속옷이 아닌 용으로 나 누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자금난이 심각하니까. 그냥 All in one 제도를 반강제로 채택중이다. 매우 능숙한 오른손과 왼손의 협응이다, 빨래라는 것은. 어려서 작은 손으 로 조물조물 했을 때 엄마가 그게 뭐냐며 이리 내놓으라 하셨던 때의 내가 아 니다. 자취 경력도 쌓였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행주를 겁나게 빨아댔으니까. 빨래를 하다가 또 매우 자주 생각나는 빨래에 대한 어렸을 때의 일화가 떠오른 다. 자동적이랄까. 우리 가족이 아직 대전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엄마가 다라이—이 것이 표준어인지 일본의 잔재가 베인 말인지 막말인지는 알 수 없다—에 불려 놓은 빨래가 하도 많아 보여서 엄마를 돕자며 언니와 작당을 한 적이 있다. 작 당치고는 매우 ‘효녀스러운 것’이었는데, 아무튼 2개씩이었는지 3개씩이었는 지를 각자 선택해서 빨래를 하기로 한 것이다. 언니는 그 때에도 양심이 없었 는데, 아빠 팬티와 양말 한 쌍을 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빠의 파자마 바지와 엄마 티 정도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빠의 파자마 바지에 구 멍이 난 것을 발견했다. 그 때 언니와 나는 둘이 참 많이도 첨벙첨벙 울었다. 언 니와 나는 어려서부터 우리의 가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가 난이 슬펐을까. 우리에게 아직은 부모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마음이 들어서 문득 눈물이 났던 걸까. 네댓 개의 빨래를 꼭 짜서 수건걸이에 걸쳐 놓는다. 무언가 뿌듯함이 좌르 륵 흐른다. 땀도 좀 흘렸겠다. 개운하게 샤워를 한다. 물을 뚝뚝 떨구며 방으로 넘어온다. 건조대에서 바싹 마른 수건을 잡아내려 머리를 감싼다. 오늘은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영화정보를 검색해보고 싶어서 컴 퓨터를 켠다. 되라되라되라. 내 정보를 남이 볼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자물 쇠가 없는 꽉 찬 막대기를 선택한다. 감사히 쓰고 있습니다. 모군모양 또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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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인님. 새벽에 비틀즈를 짱짱하게 틀던 이웃. 당신이 노래 틀 때 연결이 잘되 던데, 당신인가, 자물쇠를 모르는 대인배가! 내가 앤드류(초고속으로 달리는 초능력이 있던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외 화시리즈의 주인공—앞의 소년과 동일인물)라면 볼 수 있을, 20분 뒤에 광화 문 쪽에서 시작하는 영화가 구미에 맞는다. 다음 회라도 볼까? 하지만, 다음 회 는 시간이 좀 많이 늦다. 광장시장가서 옷 구경 좀 하다가 광화문으로 넘어가 서 보면 얼추 시간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둘 다 너무 BIG한 것들이 라서 반나절에 해결하기엔 조금 무리가 되겠는걸 하고 재빠르게 Thing’s to do 목록에서 제외한다. 세상에는 여러 선택이 있다. 좋은 것만 있는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와 싫은 것만 있는 중에 적어도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와 뭣하면 이도저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왜인지 이도저도 아 닌 걸 선택하는 수가 많다. 욕망의 미끄러짐은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서 위로를 주니까. 쳇, 上로 같지 않은 위로.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은 오늘 단골집 순회를 선택했다. 내 돈을 내는데도 몇 시까지 들어오라며 나를 구속하는 것도 모자라 어두운데 쳐 넣는 배은망덕도 없고, 눈에 안 보이는 줄 위에 나를 올리고는 양 쪽에서 바람을 불고 넣어가며 사라사라하는 서커스단장도 없다—나는 줄광 대도 아니고 이런 작자들과 계약한 사실이 없다. 매우 고분고분하고 변화에 빠 른 나의 스케줄이 참 세련되고 스마트하다. 그럼, 외출준비를 해볼까.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을 바른 다. 선크림의 백태현상이 마치 화장을 한 듯 얼굴에 A4함을 선사한다. 내키면 볼터치를 좀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안 하련다. 옷은 한 번에 선택하려 노력한 다. 그 날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난 말리는 걸 싫어한 다. 대부분 자아상에 관한 다면적 해석을 취하는 자들이 옷의 선택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나의 분석. 귀여운 나, 세련된 나, 이성적 매력을 풍기 는 나, 좀 더티한 나. 여러 I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라니 너무 안타 까운 것이다. 오늘 우연히 만나게 될 사람은 귀여운 나보다 쉬크한 나를 더 좋 게 볼 수도 있고, 나를 매우 세련되게 보았던 어떤 이는 오늘따라 이다지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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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인님. 새벽에 비틀즈를 짱짱하게 틀던 이웃. 당신이 노래 틀 때 연결이 잘되 던데, 당신인가, 자물쇠를 모르는 대인배가! 내가 앤드류(초고속으로 달리는 초능력이 있던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외 화시리즈의 주인공—앞의 소년과 동일인물)라면 볼 수 있을, 20분 뒤에 광화 문 쪽에서 시작하는 영화가 구미에 맞는다. 다음 회라도 볼까? 하지만, 다음 회 는 시간이 좀 많이 늦다. 광장시장가서 옷 구경 좀 하다가 광화문으로 넘어가 서 보면 얼추 시간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둘 다 너무 BIG한 것들이 라서 반나절에 해결하기엔 조금 무리가 되겠는걸 하고 재빠르게 Thing’s to do 목록에서 제외한다. 세상에는 여러 선택이 있다. 좋은 것만 있는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와 싫은 것만 있는 중에 적어도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와 뭣하면 이도저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왜인지 이도저도 아 닌 걸 선택하는 수가 많다. 욕망의 미끄러짐은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서 위로를 주니까. 쳇, 上로 같지 않은 위로.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은 오늘 단골집 순회를 선택했다. 내 돈을 내는데도 몇 시까지 들어오라며 나를 구속하는 것도 모자라 어두운데 쳐 넣는 배은망덕도 없고, 눈에 안 보이는 줄 위에 나를 올리고는 양 쪽에서 바람을 불고 넣어가며 사라사라하는 서커스단장도 없다—나는 줄광 대도 아니고 이런 작자들과 계약한 사실이 없다. 매우 고분고분하고 변화에 빠 른 나의 스케줄이 참 세련되고 스마트하다. 그럼, 외출준비를 해볼까.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을 바른 다. 선크림의 백태현상이 마치 화장을 한 듯 얼굴에 A4함을 선사한다. 내키면 볼터치를 좀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안 하련다. 옷은 한 번에 선택하려 노력한 다. 그 날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난 말리는 걸 싫어한 다. 대부분 자아상에 관한 다면적 해석을 취하는 자들이 옷의 선택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나의 분석. 귀여운 나, 세련된 나, 이성적 매력을 풍기 는 나, 좀 더티한 나. 여러 I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라니 너무 안타 까운 것이다. 오늘 우연히 만나게 될 사람은 귀여운 나보다 쉬크한 나를 더 좋 게 볼 수도 있고, 나를 매우 세련되게 보았던 어떤 이는 오늘따라 이다지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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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내 옷에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우연 그것은 옷에 있어서는 다이다. 그것 을 엎기 위해서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우연히 어떤 옷에 특정의 뉘앙스가 붙게 되면, 그 일화를 옷의 직조사이에 끼워 넣고 그 이상의 에피소드를 상상하며 그 옷을 몸에 장착한다. 대부분의 경우 two(차기작)는 one(원작)을 이기지 못한다. 일단 실패하면 그 옷만큼 후질 근해 보이는 것이 없다. 그렇게 오늘도 또 재껴지는 옷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 도, 난 나의 패션위크가 새 시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즐긴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미끄러지는 것은 숙명이고, 또 그것을 즐기게 되면 그만큼의 평화가 찾 아든다. 따라서, 라브 앤도 피스. 하루하루의 내 옷을 사진 찍어 주고 평가해주는 타인이 있다면 참 좋겠다 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사진별로 코멘트를 달아 출판을 하자는 작정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미 이것을 실현한 자가 있더라. 그래서!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 떠오를 때까지 그 프로젝트는 연기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시장에 빨리 내놓던가, 심지어는 더 original로 보이는 대작으로 시간차 공격을 하던가, 대놓 고 같은 얼굴을 들이미는 뻔뻔함을 가지던가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 다. 아니 눈에 띌 수 있다. 회자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는 수준에서 말이 지. 이렇게 잘 아는 내가 왜 눈에 잘 안 띌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하다가, 만다. 가방에 아마도 오늘 하루 가방 안에만 계시게 될 것들을 집어넣는다. 가방 을 맨 오른 어깨가 묵직하다. 그래도 괜찮다. 가방은 비효율이 원칙이니까. 다 만 그 자신의 적정적재량이라는 한계가 있을 뿐이다. 내 머리에도 그 적정적재 량이란 것이 있는데 왜 엄마는 아직도 나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계실까. 열심 히 수강한 인지심리학은 나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끊임없이 질문 을 해주는 절대자. 그것은 책일 지어니. 가방에 책을 한 권 추가한다. 예전에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종로를 하염없이 걸으며 읽은 적이 있었다. 작가가 작정 을 하고 말을 시작하면 차와 오토바이가 달려들고,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 아닐 사람들이 어깨를 치고 지나가도 끄떡없이 눈을 책에 박아 넣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순간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일단은 말하는 놈보단 듣는 놈이 더 중요해 서 이쪽에서부터 먼저 귀를 열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은 눈을 열고 뇌를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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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내 옷에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우연 그것은 옷에 있어서는 다이다. 그것 을 엎기 위해서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우연히 어떤 옷에 특정의 뉘앙스가 붙게 되면, 그 일화를 옷의 직조사이에 끼워 넣고 그 이상의 에피소드를 상상하며 그 옷을 몸에 장착한다. 대부분의 경우 two(차기작)는 one(원작)을 이기지 못한다. 일단 실패하면 그 옷만큼 후질 근해 보이는 것이 없다. 그렇게 오늘도 또 재껴지는 옷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 도, 난 나의 패션위크가 새 시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즐긴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미끄러지는 것은 숙명이고, 또 그것을 즐기게 되면 그만큼의 평화가 찾 아든다. 따라서, 라브 앤도 피스. 하루하루의 내 옷을 사진 찍어 주고 평가해주는 타인이 있다면 참 좋겠다 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사진별로 코멘트를 달아 출판을 하자는 작정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미 이것을 실현한 자가 있더라. 그래서!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 떠오를 때까지 그 프로젝트는 연기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시장에 빨리 내놓던가, 심지어는 더 original로 보이는 대작으로 시간차 공격을 하던가, 대놓 고 같은 얼굴을 들이미는 뻔뻔함을 가지던가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 다. 아니 눈에 띌 수 있다. 회자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는 수준에서 말이 지. 이렇게 잘 아는 내가 왜 눈에 잘 안 띌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하다가, 만다. 가방에 아마도 오늘 하루 가방 안에만 계시게 될 것들을 집어넣는다. 가방 을 맨 오른 어깨가 묵직하다. 그래도 괜찮다. 가방은 비효율이 원칙이니까. 다 만 그 자신의 적정적재량이라는 한계가 있을 뿐이다. 내 머리에도 그 적정적재 량이란 것이 있는데 왜 엄마는 아직도 나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계실까. 열심 히 수강한 인지심리학은 나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끊임없이 질문 을 해주는 절대자. 그것은 책일 지어니. 가방에 책을 한 권 추가한다. 예전에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종로를 하염없이 걸으며 읽은 적이 있었다. 작가가 작정 을 하고 말을 시작하면 차와 오토바이가 달려들고,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 아닐 사람들이 어깨를 치고 지나가도 끄떡없이 눈을 책에 박아 넣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순간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일단은 말하는 놈보단 듣는 놈이 더 중요해 서 이쪽에서부터 먼저 귀를 열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은 눈을 열고 뇌를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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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는 것이지만. 신발을 골라 신고 문을 열고 나와 문을 닫고 열쇠로 잠근다. 여기가 밖이야 안이야. 손잡이를 돌려 잠긴 것을 확인하고는 발을 옮긴다. 엄마는 꼭 두 번씩 당겨봤지만 나와 언니는 그 ‘의심’이 참 싫었다.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나 이렇 게 살아서는 엄마나이에 문고리 두 번씩 당겨서 확인할 Home을 이룰 수 있을 까! 괜히 울적해질 필요 없다. 나는 엄마의 그 의심 덕분에 아직까지 잘 살고 있 다. 많이 걷지 않았는데 벌써 땀이 난다. 물론, 이 불편한 존재인 땀도 엄마에게 서 물려받은 것이다. 쌩큐, 맘. 무엇이 자신에게 부족한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매체들이 가상의 부족을 뇌리에 심어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핸드폰 이라는 것이 크게 필요 하지 않다. 특히나 충전이라는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닳을 대로 닳은 배터리의 오래된 핸드폰은 막상 필요한 순간에는 꺼져있는 일이 많다. 양손으 로 커다란 액정을 문지르는 행동이 참으로 세련되고 현시대적이라는 이미지 는 분명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나도 그 핸드폰이 갖고 싶다. 핸드폰을 꺼내 어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작년 여름 일본여행을 갔을 때 많 이 보았던 치렁치렁 긴 원피스도 안 어울릴 것을 알면서도 괜히 머릿속 카트에 담는다. 지나는 길에 있는 쇼윈도를 보면서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예쁘게 꾸며 놓은 카페를 보면서 커피 한잔 할까하다가는 그냥 지나치면서 습관적 비헤이 비어는 나쁘지—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마신 적은 얼마 나 될까. 오늘 어딘가에 가만히 앉게 된다면,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어 ‘습관적 행동’이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이런 뇌속의 바이러스들을 잡아내야지 하고 생 각한다. 나는 참 뇌를 안 쉬는 사람이다. 그래서 백수라도 피곤한건가? 일했던 카페에 도착했다. 스텝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스드 아메리카 노를 능숙하게 한 잔 만들어 쪽 빨았다. 컵을 내려놓고, 일하던 때처럼 일을 만 들어서 몇 가지하고는 남은 음료를 마저 마신다. 개그본능에 충실히 임한다. 사람들이 웃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도 웃는다. 웃기는 자는 먼저 웃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개그본능도 살아나, 우리는 얼마간을 그렇게 웃고 떠드는지 모른 다. 두 시간쯤은 금방이다. 사람은 떠날 타이밍을 알아야하는 법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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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것이지만. 신발을 골라 신고 문을 열고 나와 문을 닫고 열쇠로 잠근다. 여기가 밖이야 안이야. 손잡이를 돌려 잠긴 것을 확인하고는 발을 옮긴다. 엄마는 꼭 두 번씩 당겨봤지만 나와 언니는 그 ‘의심’이 참 싫었다.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나 이렇 게 살아서는 엄마나이에 문고리 두 번씩 당겨서 확인할 Home을 이룰 수 있을 까! 괜히 울적해질 필요 없다. 나는 엄마의 그 의심 덕분에 아직까지 잘 살고 있 다. 많이 걷지 않았는데 벌써 땀이 난다. 물론, 이 불편한 존재인 땀도 엄마에게 서 물려받은 것이다. 쌩큐, 맘. 무엇이 자신에게 부족한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매체들이 가상의 부족을 뇌리에 심어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핸드폰 이라는 것이 크게 필요 하지 않다. 특히나 충전이라는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닳을 대로 닳은 배터리의 오래된 핸드폰은 막상 필요한 순간에는 꺼져있는 일이 많다. 양손으 로 커다란 액정을 문지르는 행동이 참으로 세련되고 현시대적이라는 이미지 는 분명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나도 그 핸드폰이 갖고 싶다. 핸드폰을 꺼내 어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작년 여름 일본여행을 갔을 때 많 이 보았던 치렁치렁 긴 원피스도 안 어울릴 것을 알면서도 괜히 머릿속 카트에 담는다. 지나는 길에 있는 쇼윈도를 보면서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예쁘게 꾸며 놓은 카페를 보면서 커피 한잔 할까하다가는 그냥 지나치면서 습관적 비헤이 비어는 나쁘지—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마신 적은 얼마 나 될까. 오늘 어딘가에 가만히 앉게 된다면,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어 ‘습관적 행동’이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이런 뇌속의 바이러스들을 잡아내야지 하고 생 각한다. 나는 참 뇌를 안 쉬는 사람이다. 그래서 백수라도 피곤한건가? 일했던 카페에 도착했다. 스텝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스드 아메리카 노를 능숙하게 한 잔 만들어 쪽 빨았다. 컵을 내려놓고, 일하던 때처럼 일을 만 들어서 몇 가지하고는 남은 음료를 마저 마신다. 개그본능에 충실히 임한다. 사람들이 웃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도 웃는다. 웃기는 자는 먼저 웃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개그본능도 살아나, 우리는 얼마간을 그렇게 웃고 떠드는지 모른 다. 두 시간쯤은 금방이다. 사람은 떠날 타이밍을 알아야하는 법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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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지 어떤지 모를 사람들에게서 벗어난다. 인사하는 시간이 길 수록 예의

언니가 새로 꼽은 꽃을 본다.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는다. 이건 좀 로맨틱한 습

바르게 보이는 법이다. 한참을 손을 흔들다가 나의 안전을 위해 뒷걸음질을 멈

관적 행동. 나는 언니의 부지런함과 센스에 이런 식으로 관심을 표한다. 작은

추고 앞을 보며 걷기 시작한다.

언니가 왔다. 뭘 먹을까? 나는 또 공짜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이면 된다니. 항

사실 옷은 많이 사지 않은 아는 옷가게에 들어간다. 마치 자주 오지 못한

상 몇 번이고 가슴이 벅차다. 큰 언니는 세 잔째의 커피를, 나는 두 잔째의 커피

마땅한 일들이 있었던 것처럼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녀도 어머, 잘

를 작은 언니는 한 잔째의 커피를 마신다. 모두에게 커피는 쓰다. 그런데 맛있

지냈냐며 인사한다. 나는 오른손잡이니까 옷걸이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며

다. 나도 세 잔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가는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하고

옷들 하나하나를 살핀다. 자켓은 마음에 들면 걸쳐보지만, 바지나 치마, 단추

생각한다. 작은 언니는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 큰 언니는 다리를 꼬아

가 많은 상의 등은 얼마든지 입어보라는 친절한 권유에도 불구 잘 입어보지 않

위쪽에 놓인(대게 오른쪽) 다리의 복숭아뼈 부근을 가만히 쳐다보거나 지나가

는다. 마지막 행거를 순찰하며 오늘은 옷을 살까 말까를 고민한다. 마음에 드

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한다. 나는 큰 언니랑 같은 방향으로 다리를 꼬고 지

는 옷이 있었는지 또는 있을 것인지 보다는 오늘 주인장과의 느낌이 어떠했는

나가는 사람을 보다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언니에게 말을 건다. 큰 언니는

지를 떠올려 본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면 충분하다. 이제부터 마음에 드

가끔 눈을 찌푸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해가 눈부시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볼에

는 옷을 고르면 된다. 후보 몇을 들고 거울을 보며 대본다. 가장 말 많은 놈을 고

바람을 넣고 우굴우굴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언니들과 있으면서 내가 아이가

른다. 구제 옷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전 주인의 이야기들이 세탁되지 않고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충만해서 언제까지고 다하지 않을 느낌이고, 나는 얼

남아있다. 그런 느낌이 좋다. 구제처럼 보이는 소재와 라인의 새 옷들은 감히

마든지 있어도 된다. 손님이 너무 많아지면 가방을 둘 곳도 마땅치 않아지고,

따라갈 수 없는 폭풍같은 수다가 구제에는 있다. 가끔 운이 안 좋은 때에는 방

무엇보다도 시간의 속도가 달라졌다는 완연한 느낌- 같은 것이 생겨서 나는

부처리제를 뭘 썼는지 알 수 없는 강력한 향이 벤 별난 녀석을 사게 되는 수도

인사를 하고 나온다. 내 나름은 재치 있다고 생각되는, 짐 좀 빼야겠네 멘트를

있다. 그런 면에서 구제는 반드시 친환경적은 아니라는 생각. 누가 환경 친화

하면서.

적이고 천연의 재료를 이용한 방부제를 개발해서 구제시장에 내다 팔면 대박

문을 열었다. 불을 켠다. 구릉을 지나 화장실로 간다. 발을 씻고, 얼굴을 씻

낼 수도 있는 데란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미안해하며 카드를 내민다. 이것이

고, 이를 닦는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가서 걸터앉아 컴퓨터를 켠다. 마감이

또한 예의다. 옷과 영수증을 건네받는다. 썩지도 않는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림

임박한 문서를 연다.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과 또한 썩지 않기 위해 방부 처리된 내 새 옷에서 나는 냄새가 나의 걸음에 흥

뒤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 오! 이 뒤를 어떻게 채워야 하지.

을 돋운다.

글을 쓴 지는 좀 되었다.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키가 말한 쓰

오픈 준비 중인 언니들의 가게에 도착했다. 큰 언니가 커피를 내려준다. 인

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고 글이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생명력을 지

도에 꺼내놓은 의자에 앉아서 커피한잔의 오후를 즐긴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

니게 되었다는(뭐 이 비슷한)말을 느끼게 된 문학 형식의 글(인정해달라!)을

거나 언니가 먼저 말을 꺼내거나 말이 이어지다가 끊긴다. 끊겼다가는 또 이어

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색다른 소재, 뭔가 새로운 흐름, 분명하게 모호한

진다. 옆으로 드러누워 주인이 흔드는 장난감을 잡으려 앞발을 까딱거리는 고

주제, 간혹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작가의 입김도 모두모두 탐난다. 그리고

양이 같은 시간이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히고, 너무 덥다 싶으면 에

가장 탐나는 것은 문체. 문체란 무엇인가하는 글을 읽어 보았지만 사실 그것이

어콘이 나오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다 마신 잔을 탁자에 놓으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알다시피, 의식의 흐름에 따른 전개방식과 조금은

40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41


아쉬운지 어떤지 모를 사람들에게서 벗어난다. 인사하는 시간이 길 수록 예의

언니가 새로 꼽은 꽃을 본다.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는다. 이건 좀 로맨틱한 습

바르게 보이는 법이다. 한참을 손을 흔들다가 나의 안전을 위해 뒷걸음질을 멈

관적 행동. 나는 언니의 부지런함과 센스에 이런 식으로 관심을 표한다. 작은

추고 앞을 보며 걷기 시작한다.

언니가 왔다. 뭘 먹을까? 나는 또 공짜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이면 된다니. 항

사실 옷은 많이 사지 않은 아는 옷가게에 들어간다. 마치 자주 오지 못한

상 몇 번이고 가슴이 벅차다. 큰 언니는 세 잔째의 커피를, 나는 두 잔째의 커피

마땅한 일들이 있었던 것처럼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녀도 어머, 잘

를 작은 언니는 한 잔째의 커피를 마신다. 모두에게 커피는 쓰다. 그런데 맛있

지냈냐며 인사한다. 나는 오른손잡이니까 옷걸이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며

다. 나도 세 잔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가는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하고

옷들 하나하나를 살핀다. 자켓은 마음에 들면 걸쳐보지만, 바지나 치마, 단추

생각한다. 작은 언니는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 큰 언니는 다리를 꼬아

가 많은 상의 등은 얼마든지 입어보라는 친절한 권유에도 불구 잘 입어보지 않

위쪽에 놓인(대게 오른쪽) 다리의 복숭아뼈 부근을 가만히 쳐다보거나 지나가

는다. 마지막 행거를 순찰하며 오늘은 옷을 살까 말까를 고민한다. 마음에 드

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한다. 나는 큰 언니랑 같은 방향으로 다리를 꼬고 지

는 옷이 있었는지 또는 있을 것인지 보다는 오늘 주인장과의 느낌이 어떠했는

나가는 사람을 보다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언니에게 말을 건다. 큰 언니는

지를 떠올려 본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면 충분하다. 이제부터 마음에 드

가끔 눈을 찌푸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해가 눈부시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볼에

는 옷을 고르면 된다. 후보 몇을 들고 거울을 보며 대본다. 가장 말 많은 놈을 고

바람을 넣고 우굴우굴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언니들과 있으면서 내가 아이가

른다. 구제 옷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전 주인의 이야기들이 세탁되지 않고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충만해서 언제까지고 다하지 않을 느낌이고, 나는 얼

남아있다. 그런 느낌이 좋다. 구제처럼 보이는 소재와 라인의 새 옷들은 감히

마든지 있어도 된다. 손님이 너무 많아지면 가방을 둘 곳도 마땅치 않아지고,

따라갈 수 없는 폭풍같은 수다가 구제에는 있다. 가끔 운이 안 좋은 때에는 방

무엇보다도 시간의 속도가 달라졌다는 완연한 느낌- 같은 것이 생겨서 나는

부처리제를 뭘 썼는지 알 수 없는 강력한 향이 벤 별난 녀석을 사게 되는 수도

인사를 하고 나온다. 내 나름은 재치 있다고 생각되는, 짐 좀 빼야겠네 멘트를

있다. 그런 면에서 구제는 반드시 친환경적은 아니라는 생각. 누가 환경 친화

하면서.

적이고 천연의 재료를 이용한 방부제를 개발해서 구제시장에 내다 팔면 대박

문을 열었다. 불을 켠다. 구릉을 지나 화장실로 간다. 발을 씻고, 얼굴을 씻

낼 수도 있는 데란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미안해하며 카드를 내민다. 이것이

고, 이를 닦는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가서 걸터앉아 컴퓨터를 켠다. 마감이

또한 예의다. 옷과 영수증을 건네받는다. 썩지도 않는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림

임박한 문서를 연다.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과 또한 썩지 않기 위해 방부 처리된 내 새 옷에서 나는 냄새가 나의 걸음에 흥

뒤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 오! 이 뒤를 어떻게 채워야 하지.

을 돋운다.

글을 쓴 지는 좀 되었다.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키가 말한 쓰

오픈 준비 중인 언니들의 가게에 도착했다. 큰 언니가 커피를 내려준다. 인

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고 글이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생명력을 지

도에 꺼내놓은 의자에 앉아서 커피한잔의 오후를 즐긴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

니게 되었다는(뭐 이 비슷한)말을 느끼게 된 문학 형식의 글(인정해달라!)을

거나 언니가 먼저 말을 꺼내거나 말이 이어지다가 끊긴다. 끊겼다가는 또 이어

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색다른 소재, 뭔가 새로운 흐름, 분명하게 모호한

진다. 옆으로 드러누워 주인이 흔드는 장난감을 잡으려 앞발을 까딱거리는 고

주제, 간혹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작가의 입김도 모두모두 탐난다. 그리고

양이 같은 시간이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히고, 너무 덥다 싶으면 에

가장 탐나는 것은 문체. 문체란 무엇인가하는 글을 읽어 보았지만 사실 그것이

어콘이 나오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다 마신 잔을 탁자에 놓으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알다시피, 의식의 흐름에 따른 전개방식과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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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가슴속에 욕망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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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구성이 탐난다. 글을 잘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의 페이지 39를 조금 응용하자면. 내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에 어떤 이는 겉만 익힌 참치 회를 얇게 썰고 있고, 다른 이는 머신에서 추출되어 나오는 에스프레소의 크레마를 보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옷의 주름을 스팀다리미로 펴고 있을지도 모른다. 버뜨, 우리가 소설가, 요리사, 바리스타,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습관적 행동’이다. 사실은 더 중요한 무 엇인가가 미끄러지면서 생긴 ‘분열된 주체 ∅’다. 나는 한 때 완벽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완벽은 가능성이란 이름의 성질이지 본질이 아니다. 다만, 그

것을 인정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건 저의 꿈이잖아요- 라고 말했던 김연아는 역시, 뭘 아는 여자다. 남이 꾸는 꿈을 응원하는 것만큼 만족을 얻기 쉬우면서 도 ‘도전적인’ 것이 없다. 하지만, 16강이든 8강이든 그건 내 꿈이 아니잖아요. 불을 끄고 눈을 감는다. 내일을 맞이하려는 행동이다. 어려서 많이 보던 만 화 속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내일’은 아니지만,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있어서 나 는 참 좋다. 최근에 ‹오늘의 네꼬무라씨›라는 만화책을 읽었다. 예전이 ‹내일의 조›의 시대라면 지금은 ‹오늘의 네꼬무라씨›의 시대인 것이다. 라는 건 너무 과 한가? 오늘이 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감이 떨어진다. きょう, 나는야 낫또녀. 된 장녀는 한국기반이라면, 난 일본기반이라는 간지? 내 가슴 속 욕망은 일본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 그리고는 일본에서 사는 것. 깜찍한 것들에 둘러싸여서 말이지. 그리고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싸대기를 착착 갈기며 미끄 러진 욕망에 복수해야지. 킬킬킬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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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다른 구성이 탐난다. 글을 잘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의 페이지 39를 조금 응용하자면. 내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에 어떤 이는 겉만 익힌 참치 회를 얇게 썰고 있고, 다른 이는 머신에서 추출되어 나오는 에스프레소의 크레마를 보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옷의 주름을 스팀다리미로 펴고 있을지도 모른다. 버뜨, 우리가 소설가, 요리사, 바리스타,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습관적 행동’이다. 사실은 더 중요한 무 엇인가가 미끄러지면서 생긴 ‘분열된 주체 ∅’다. 나는 한 때 완벽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완벽은 가능성이란 이름의 성질이지 본질이 아니다. 다만, 그

것을 인정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건 저의 꿈이잖아요- 라고 말했던 김연아는 역시, 뭘 아는 여자다. 남이 꾸는 꿈을 응원하는 것만큼 만족을 얻기 쉬우면서 도 ‘도전적인’ 것이 없다. 하지만, 16강이든 8강이든 그건 내 꿈이 아니잖아요. 불을 끄고 눈을 감는다. 내일을 맞이하려는 행동이다. 어려서 많이 보던 만 화 속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내일’은 아니지만,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있어서 나 는 참 좋다. 최근에 ‹오늘의 네꼬무라씨›라는 만화책을 읽었다. 예전이 ‹내일의 조›의 시대라면 지금은 ‹오늘의 네꼬무라씨›의 시대인 것이다. 라는 건 너무 과 한가? 오늘이 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감이 떨어진다. きょう, 나는야 낫또녀. 된 장녀는 한국기반이라면, 난 일본기반이라는 간지? 내 가슴 속 욕망은 일본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 그리고는 일본에서 사는 것. 깜찍한 것들에 둘러싸여서 말이지. 그리고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싸대기를 착착 갈기며 미끄 러진 욕망에 복수해야지. 킬킬킬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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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 정지호


꿈 정지호




프 롬 투

김종소리

정지호

그림

카 프 카


프 롬 투

김종소리

정지호

그림

카 프 카


그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너의 소설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개떡이야. 전혀 살아있지 않아. 썩어서 냄새가 진동할 지경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하긴 네까짓 놈이 알 턱이 없지. 그따위로 써선 너의 소설 속에 뭔가를 담을 수 없어.” 난 이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이를 바득 바득 갈았다. 언젠 가는 이 노인네가 내 소설을 읽고 눈물을 철철 흘리게 만들어주겠노라 다짐하 면서….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 소설을 읽으면 한적한 동네 놀이터 정자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 고 있는 쭈구렁탱이 할망구가 떠올랐다. 생명력이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확한 지적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이유는 단순했다. 악취가 나는 썩은 시체 같은 내 소설과는 달리 그의 소설은 위대했기 때문에, 그리고 재수 없을 정도로 맞는 말만 골라서 내 게 비아냥거리듯 쏘아댔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에게 내 소설들을 보이며 의견을 물었던 까닭은 하나였다. 그의 소 설을 읽으면 지금 막 바다에서 건져낸 물고기가 땅바닥에 내던져진 채, 제 몸 을 좌우로 힘차게 구부려대며 파닥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말하자면, 그 의 소설은 소설 그 자체로써 하나의 생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소설은 소설 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물이었다. 그는 위대한 소설가였다.

프롬 미 투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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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너의 소설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개떡이야. 전혀 살아있지 않아. 썩어서 냄새가 진동할 지경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하긴 네까짓 놈이 알 턱이 없지. 그따위로 써선 너의 소설 속에 뭔가를 담을 수 없어.” 난 이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이를 바득 바득 갈았다. 언젠 가는 이 노인네가 내 소설을 읽고 눈물을 철철 흘리게 만들어주겠노라 다짐하 면서….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 소설을 읽으면 한적한 동네 놀이터 정자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 고 있는 쭈구렁탱이 할망구가 떠올랐다. 생명력이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확한 지적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이유는 단순했다. 악취가 나는 썩은 시체 같은 내 소설과는 달리 그의 소설은 위대했기 때문에, 그리고 재수 없을 정도로 맞는 말만 골라서 내 게 비아냥거리듯 쏘아댔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에게 내 소설들을 보이며 의견을 물었던 까닭은 하나였다. 그의 소 설을 읽으면 지금 막 바다에서 건져낸 물고기가 땅바닥에 내던져진 채, 제 몸 을 좌우로 힘차게 구부려대며 파닥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말하자면, 그 의 소설은 소설 그 자체로써 하나의 생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소설은 소설 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물이었다. 그는 위대한 소설가였다.

프롬 미 투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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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머릿속에 문장이 떠오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소설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르는 일은 말을 할 때에나 있는 일이었고, 보통은 단어, 혹은 이미지가 떠올랐

우리가 읽는 소설이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

다. 하지만 이젠 이미지나 단어보다는 하나의 완성된 문장이 떠오르는 게 보통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소설을 읽겠는가? 한 편의 소설은 내면의 얼어붙은

이다.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그 문장들을 없애고 싶지 않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아 끊임없이 써야만 하기 때문에.

그의 이 말대로라면 나의 소설은 읽을 필요가 없는 소설. 쓰레기였다. 여기까지로 보자면 내 소설에 문제는 없었다. 문장들은 스스로 생겨났기 내 소설에 대한 그의 일관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해서 소설을 썼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 시작한 소설쓰기라는 일은 나의 머릿속 자 체를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 변화에 의해서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

에 생명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문장들을 엮어내는 기술에 있었다. 내 기술에 어떤 문제점이 있 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문장들은 내 손으로 엮어지고 나면 죽어버렸다. 소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갔다. 난 꽃무늬 패턴이 화려하

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들은 푹푹 썩어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그 모습을

게 들어간, 아주 짧은 반바지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 서 있다. 친구들은 각기 붉

바라보며 글을 쓴다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머리로 생명을 만들

은 비키니를 입은 매끈한 몸매의 여자 아이와 쫙 달라붙는 재질의 검은색 삼각

고 손으로 그 생명을 죽이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을 들

수영 팬티를 입은 남자 아이 두 명이다. 그 둘은 내게 다가와 바다 속으로 헤엄

고 가 그에게 보여주었다. 다시 그들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

쳐 들어가자며 나를 이끈다. 그 순간 나는 순식간에 그 둘의 모습을 훑는다. 그

었다. 하지만 그는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내 소설들이 시체라는 사

리고 묘사를 시작한다.

실만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태양은 우리들을 녹일 듯이 무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해변에 서서 태 양을 온 몸으로 받고 서 있었다. 그 곁으로 주이가 다가왔다. 주이는 눈을 괴롭 힐 정도로 선명한 빨강의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내 왼손으

그가 스스로 생명을 가지게 된 문장들을 어떤 방식으로 엮었기에 소설이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로 누군가의 오른손이 겹쳐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 바다 쪽으로 달려가고

그는 한 문학계간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마감일이 일주일도

있는 주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뒤쪽으로 그녀의 손과 나의 손이 겹쳐져 있

채 남지 않은 어느 한적한 일요일. 그는 언제나 그렇듯 소설을 쓰기 전 동네 공

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바다 속에서 시모어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

이런 식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물론 이러한 생각 패턴이 바다에 놀러간다거나 하는 특별한 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걸어 갈

다 문득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때에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내 머리는 늘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리 고 그렇게 스스로 생겨난 문장들을 글로 써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증발해

“왜 울어? 무슨 일이야?”

버리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그것들을 글로 써서 모으면 어느새 소설이 한 편

여자아이는 그의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콧날을 쳐다보며 말했다.

완성되어있다.

“프래니가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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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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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 쓰기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머릿속에 문장이 떠오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소설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르는 일은 말을 할 때에나 있는 일이었고, 보통은 단어, 혹은 이미지가 떠올랐

우리가 읽는 소설이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

다. 하지만 이젠 이미지나 단어보다는 하나의 완성된 문장이 떠오르는 게 보통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소설을 읽겠는가? 한 편의 소설은 내면의 얼어붙은

이다.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그 문장들을 없애고 싶지 않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아 끊임없이 써야만 하기 때문에.

그의 이 말대로라면 나의 소설은 읽을 필요가 없는 소설. 쓰레기였다. 여기까지로 보자면 내 소설에 문제는 없었다. 문장들은 스스로 생겨났기 내 소설에 대한 그의 일관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해서 소설을 썼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 시작한 소설쓰기라는 일은 나의 머릿속 자 체를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 변화에 의해서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

에 생명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문장들을 엮어내는 기술에 있었다. 내 기술에 어떤 문제점이 있 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문장들은 내 손으로 엮어지고 나면 죽어버렸다. 소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갔다. 난 꽃무늬 패턴이 화려하

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들은 푹푹 썩어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그 모습을

게 들어간, 아주 짧은 반바지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 서 있다. 친구들은 각기 붉

바라보며 글을 쓴다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머리로 생명을 만들

은 비키니를 입은 매끈한 몸매의 여자 아이와 쫙 달라붙는 재질의 검은색 삼각

고 손으로 그 생명을 죽이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을 들

수영 팬티를 입은 남자 아이 두 명이다. 그 둘은 내게 다가와 바다 속으로 헤엄

고 가 그에게 보여주었다. 다시 그들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

쳐 들어가자며 나를 이끈다. 그 순간 나는 순식간에 그 둘의 모습을 훑는다. 그

었다. 하지만 그는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내 소설들이 시체라는 사

리고 묘사를 시작한다.

실만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태양은 우리들을 녹일 듯이 무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해변에 서서 태 양을 온 몸으로 받고 서 있었다. 그 곁으로 주이가 다가왔다. 주이는 눈을 괴롭 힐 정도로 선명한 빨강의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내 왼손으

그가 스스로 생명을 가지게 된 문장들을 어떤 방식으로 엮었기에 소설이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로 누군가의 오른손이 겹쳐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 바다 쪽으로 달려가고

그는 한 문학계간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마감일이 일주일도

있는 주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뒤쪽으로 그녀의 손과 나의 손이 겹쳐져 있

채 남지 않은 어느 한적한 일요일. 그는 언제나 그렇듯 소설을 쓰기 전 동네 공

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바다 속에서 시모어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

이런 식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물론 이러한 생각 패턴이 바다에 놀러간다거나 하는 특별한 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걸어 갈

다 문득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때에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내 머리는 늘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리 고 그렇게 스스로 생겨난 문장들을 글로 써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증발해

“왜 울어? 무슨 일이야?”

버리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그것들을 글로 써서 모으면 어느새 소설이 한 편

여자아이는 그의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콧날을 쳐다보며 말했다.

완성되어있다.

“프래니가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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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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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니? 프래니라니?” “엄마가 데려온 제 동생이에요.” “엄마는 어디 계시니?” 여자아이는 손으로 저 멀리 서있는 한 여자를 가리켰다. 그는 여자아이의 손을 붙잡고 엄마에게 데려갔다. “저, 죄송하지만 댁의 따님이 동생을 잃어버렸다네요.”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제 딸이 선생님께 폐를 끼쳤네요. 얘가 잃어버린 건 동생이 아니라 인형이에요.” “인형이요?” “네. 제가 얼마 전에 사준 바비인형을 얘가 잃어버렸거든요.” 순간 그는 머릿속에서 태어나는 문장들을 쳐다봤다. ‘프래니는 금발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에 겐 먼 고향 땅에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약속된 약혼자가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15살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 는 다른 나라로 입양을 오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은 행복했다. 새로 운 부모는 친절했고 새언니 역시 자신을 사랑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향 땅 에 있을 약혼자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를 보고 싶었다….’ 그는 여자아이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프래니 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편지는 동생을 잃어버린 여자아이에게 보내는 바 비인형 프래니의 사정 설명 편지였다. 그날 이후로 날마다 그는 공원으로 가 프래니의 편지를 여자아이에게 전 달했다. 여자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그 계절 문학계간지에 그의 장편 연재는 휴재였다. 누군가를 위해 문장을 엮어야한다는 것이 그의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의 방법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늘 문장들을 살려야한다는 강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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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니? 프래니라니?” “엄마가 데려온 제 동생이에요.” “엄마는 어디 계시니?” 여자아이는 손으로 저 멀리 서있는 한 여자를 가리켰다. 그는 여자아이의 손을 붙잡고 엄마에게 데려갔다. “저, 죄송하지만 댁의 따님이 동생을 잃어버렸다네요.”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제 딸이 선생님께 폐를 끼쳤네요. 얘가 잃어버린 건 동생이 아니라 인형이에요.” “인형이요?” “네. 제가 얼마 전에 사준 바비인형을 얘가 잃어버렸거든요.” 순간 그는 머릿속에서 태어나는 문장들을 쳐다봤다. ‘프래니는 금발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에 겐 먼 고향 땅에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약속된 약혼자가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15살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 는 다른 나라로 입양을 오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은 행복했다. 새로 운 부모는 친절했고 새언니 역시 자신을 사랑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향 땅 에 있을 약혼자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를 보고 싶었다….’ 그는 여자아이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프래니 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편지는 동생을 잃어버린 여자아이에게 보내는 바 비인형 프래니의 사정 설명 편지였다. 그날 이후로 날마다 그는 공원으로 가 프래니의 편지를 여자아이에게 전 달했다. 여자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그 계절 문학계간지에 그의 장편 연재는 휴재였다. 누군가를 위해 문장을 엮어야한다는 것이 그의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의 방법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늘 문장들을 살려야한다는 강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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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시달리며 문장들을 엮었다.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 문장들은 죽어버렸다. 그는 또 한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누군가 내 몸 속으로 들 어와 글을 쓴 뒤 나가버린다. 난 그것을 문학의 신이라 부른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난 그에게 개소리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는 이미 죽어버린 몸이었다.

☆ 천천히 발을 들여놓는다. 이곳은 음산하다. 텅 빈 집이다. 아무 것도 보이 질 않는다. 옆의 스위치를 눌러보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된지도 벌써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준비해 온 손전등의 스위치를 켠다. 직사각형의 널따란 공간에 어떤 물건도 놓여있지 않다. 벽지엔 곰팡이가 슬어 이곳저곳에 얼룩이 보인다. 천장엔 아예 벽지가 발려있지 않다. 왼편의 방은 침실이었다. 방문은 뜯겨있다. 발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며 침실로 들어선다. 커다란 더블 침대가 중앙에 놓여있다. 잠시 앉 자 매캐한 먼지가 올라온다. 기침이 난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들자 창 이 보인다. 창은 마치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유리도 끼어있지 않은 창. 이것 도 창이라 할 수 있을까? 생명이 없는 소설. 그건 소설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 직 사각형의 공간으로 나온다. 정면에 보이는 방은 그의 서재였다. 그는 아무에게 도 이곳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조차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 한다. 뒷목이 뻣뻣해져온다. 서재 입구에 멈추어 선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가 슴팍을 꽉 움켜쥔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서재는 마지막에 둘러보자. 오른편의 간소한 주방을 쳐다본다. 녹슨 싱크대가 보인다. 찬장의 나무틀들은 썩어서 문짝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가 있다. 안을 찬찬히 살핀다. 먼지만이 가득할 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 난 다시 서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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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시달리며 문장들을 엮었다.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 문장들은 죽어버렸다. 그는 또 한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누군가 내 몸 속으로 들 어와 글을 쓴 뒤 나가버린다. 난 그것을 문학의 신이라 부른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난 그에게 개소리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는 이미 죽어버린 몸이었다.

☆ 천천히 발을 들여놓는다. 이곳은 음산하다. 텅 빈 집이다. 아무 것도 보이 질 않는다. 옆의 스위치를 눌러보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된지도 벌써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준비해 온 손전등의 스위치를 켠다. 직사각형의 널따란 공간에 어떤 물건도 놓여있지 않다. 벽지엔 곰팡이가 슬어 이곳저곳에 얼룩이 보인다. 천장엔 아예 벽지가 발려있지 않다. 왼편의 방은 침실이었다. 방문은 뜯겨있다. 발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며 침실로 들어선다. 커다란 더블 침대가 중앙에 놓여있다. 잠시 앉 자 매캐한 먼지가 올라온다. 기침이 난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들자 창 이 보인다. 창은 마치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유리도 끼어있지 않은 창. 이것 도 창이라 할 수 있을까? 생명이 없는 소설. 그건 소설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 직 사각형의 공간으로 나온다. 정면에 보이는 방은 그의 서재였다. 그는 아무에게 도 이곳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조차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 한다. 뒷목이 뻣뻣해져온다. 서재 입구에 멈추어 선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가 슴팍을 꽉 움켜쥔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서재는 마지막에 둘러보자. 오른편의 간소한 주방을 쳐다본다. 녹슨 싱크대가 보인다. 찬장의 나무틀들은 썩어서 문짝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가 있다. 안을 찬찬히 살핀다. 먼지만이 가득할 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 난 다시 서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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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선다. 필터까지 타버린 담배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빨아들인 뒤 바닥에 버

책상이 하나 보인다. 책상 위에는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다. 결국 그가 내게 방

린다. 발로 비벼 끈다. 정면을 응시한다. 그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던 서재. 그

법이라 알려주려던 것은 이 와인 병들 속에 있는 무엇일 것이다. 난 다시 좀 전

가 그의 위대한 소설들을 만들어낸 공간.

에 들었던 와인 병을 든다. 마개를 뽑으려 손에 힘을 주지만 여전히 마개는 뽑 히지 않는다. 병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그는 그렇게 유명한 소설가는 아니었다. 만 명 중에 한 명이 알까말까 한, 간 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사는 가난한 소설가였다. 사람들은 그의 소설이 위대

그는 내게 부탁했다.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의 소설이 위대하다는 것을.

“너의 소설이 생명을 얻게 되면 나의 모든 작품들을 불사르고 그 외의 잡 다한 글들도 없애줘.”

그는 죽기 전 나에게 말했다. “너에게 늘 미안했다. 너에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건 샘이 났기 때문이

세 번이나 약혼을 했지만 평생을 독신으로 산 그였기에 그런 부탁을 마땅

다. 너의 소설은 개떡인데 사람들은 내 소설보다 너의 소설을 인정해주고 있으

히 할 만한 사람이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곤 하지만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은

니까. 어쩌면 너의 방법이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너의

의외였다. 나는 단지 한참이나 먼 후배 작가였을 뿐이었고, 그를 선생이라 모

소설이 냄새나는 시체인 것만은 거짓이 아니야. 내 서재에 가면 넌 너의 소설

시긴 했지만 그는 결코 나를 제자로 받아들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을 살릴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사람들이 너의 소설을 좋아할 지는 나도 알 수 없 다.”

병을 바닥에 던지자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깨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나는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서재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내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노력했다.

병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허탈하다. 노인네는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갖고 논 것이다.

손전등에 불을 끄고 서재에 들어선다. 창은 없다. 방 안에 빛이 전혀 새어

그 순간. 코끝으로 뭔가가 다가온다.

들지 않아 깜깜하다. 눈을 여러 번 끔뻑이며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하지만 여 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전등의 스위치를 켠다. 눈을 감는다. 심장은

안개가 자욱한 초원. 나무 한 그루 없이 이끼 같은 풀들로 뒤덮인 평원. 그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방법. 그것이 이 안에 있다. 눈

사이사이로 날카롭게 각진 거대한 바위들이 툭툭 튀어나와있다. 저 멀리에는

을 뜨고 왼쪽부터 훑어본다. 왼쪽 벽에는 아무 것도 없다. 곰팡이가 슬어 얼룩

해가 뜨지 않은 채,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이 보인다. 아마도 절벽인 것 같다. 반대

이 진 벽지가 전부다. 바닥엔 장판조차 깔려있지 않다. 정면을 본다. 정면에 거

편으론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오래된 성이 하나

대한 책장이 하나 서있다. 책장은 있으나 책이 한 권도 없다. 대신 와인 병들이

보인다. 오래되어 쾌쾌하고, 안개와 이끼들이 풍기는 눅눅한 냄새가 맡아진다.

잔뜩 진열돼 있다. 책장 앞에 서서 와인 병 하나를 집어 든다.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마개는 꽤 깊숙하게 꽂혀있다. 손전등을 바

그렇다. 그는 병 안에 그가 쓴 소설의 향기를 담아둔 것이다.

닥에 내려놓은 뒤 마개를 뽑으려 애를 쓴다. 생각처럼 잘 뽑히지 않는다. 다시 와인 병을 원래 자리에 놓은 뒤 손전등을 들고 서재의 오른편을 살핀다.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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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나는 허둥대며 다른 병 하나를 바닥에 던져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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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선다. 필터까지 타버린 담배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빨아들인 뒤 바닥에 버

책상이 하나 보인다. 책상 위에는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다. 결국 그가 내게 방

린다. 발로 비벼 끈다. 정면을 응시한다. 그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던 서재. 그

법이라 알려주려던 것은 이 와인 병들 속에 있는 무엇일 것이다. 난 다시 좀 전

가 그의 위대한 소설들을 만들어낸 공간.

에 들었던 와인 병을 든다. 마개를 뽑으려 손에 힘을 주지만 여전히 마개는 뽑 히지 않는다. 병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그는 그렇게 유명한 소설가는 아니었다. 만 명 중에 한 명이 알까말까 한, 간 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사는 가난한 소설가였다. 사람들은 그의 소설이 위대

그는 내게 부탁했다.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의 소설이 위대하다는 것을.

“너의 소설이 생명을 얻게 되면 나의 모든 작품들을 불사르고 그 외의 잡 다한 글들도 없애줘.”

그는 죽기 전 나에게 말했다. “너에게 늘 미안했다. 너에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건 샘이 났기 때문이

세 번이나 약혼을 했지만 평생을 독신으로 산 그였기에 그런 부탁을 마땅

다. 너의 소설은 개떡인데 사람들은 내 소설보다 너의 소설을 인정해주고 있으

히 할 만한 사람이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곤 하지만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은

니까. 어쩌면 너의 방법이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너의

의외였다. 나는 단지 한참이나 먼 후배 작가였을 뿐이었고, 그를 선생이라 모

소설이 냄새나는 시체인 것만은 거짓이 아니야. 내 서재에 가면 넌 너의 소설

시긴 했지만 그는 결코 나를 제자로 받아들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을 살릴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사람들이 너의 소설을 좋아할 지는 나도 알 수 없 다.”

병을 바닥에 던지자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깨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나는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서재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내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노력했다.

병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허탈하다. 노인네는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갖고 논 것이다.

손전등에 불을 끄고 서재에 들어선다. 창은 없다. 방 안에 빛이 전혀 새어

그 순간. 코끝으로 뭔가가 다가온다.

들지 않아 깜깜하다. 눈을 여러 번 끔뻑이며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하지만 여 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전등의 스위치를 켠다. 눈을 감는다. 심장은

안개가 자욱한 초원. 나무 한 그루 없이 이끼 같은 풀들로 뒤덮인 평원. 그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방법. 그것이 이 안에 있다. 눈

사이사이로 날카롭게 각진 거대한 바위들이 툭툭 튀어나와있다. 저 멀리에는

을 뜨고 왼쪽부터 훑어본다. 왼쪽 벽에는 아무 것도 없다. 곰팡이가 슬어 얼룩

해가 뜨지 않은 채,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이 보인다. 아마도 절벽인 것 같다. 반대

이 진 벽지가 전부다. 바닥엔 장판조차 깔려있지 않다. 정면을 본다. 정면에 거

편으론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오래된 성이 하나

대한 책장이 하나 서있다. 책장은 있으나 책이 한 권도 없다. 대신 와인 병들이

보인다. 오래되어 쾌쾌하고, 안개와 이끼들이 풍기는 눅눅한 냄새가 맡아진다.

잔뜩 진열돼 있다. 책장 앞에 서서 와인 병 하나를 집어 든다.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마개는 꽤 깊숙하게 꽂혀있다. 손전등을 바

그렇다. 그는 병 안에 그가 쓴 소설의 향기를 담아둔 것이다.

닥에 내려놓은 뒤 마개를 뽑으려 애를 쓴다. 생각처럼 잘 뽑히지 않는다. 다시 와인 병을 원래 자리에 놓은 뒤 손전등을 들고 서재의 오른편을 살핀다.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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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둥대며 다른 병 하나를 바닥에 던져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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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린 말의 익숙한 냄새와 새 말을 구하러 달려가는 하녀의 비릿한 젖 내. 새로운 말이 달려온다. 아니 말만 달려오는 것이 아니다. 마부와, 다른 말 한 마리가 더. 힘차고 옆구리 탄탄한 놈들이, 두 다리는 몸통에 바싹 오그려 붙인 채, 모양 좋은 대가리들은 낙타처럼 숙이고, 몸통을 비트는 힘만으로, 몸뚱어 리가 여지없이 꽉 차는 문틈으로 비비적거리며 나온다. 말들의 다리가 움직이 자, 땅바닥에서 흙먼지가 인다. 매캐한 냄새와 더불어 피 냄새가 난다. 소설의 향기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는 어떻게 해서 자신 의 소설이 담긴 향기를 손에 넣었는가. 향기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무언가가 가진 향을 그대로 가진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그 무언가가 된다 는 말일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으로 온전히 변하게 되 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것과는 다른, 되고자 하는 것의 향기를 얻을 수 있 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나를 지켜왔다. 내가 써온 소설들은 내 눈을 통해 관찰되어진 것들로만 이루어져있다. 내 관점에서. 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그것 으로 인해 생겨난 문장들을 엮어왔다. 이제야 알겠다.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써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눈을 파내고, 도리어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이 쓰려 는 것 자체가 되어 그 향을 손에 넣었다. 그렇기에 그가 써낸 소설들은 고유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소설을 쓸 때에 그는 그가 아니었다. 그가 쓰려는 소설 자 체가 된 것이다. 이제 나는 나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지금 쓰려는 소설을 쓰기 위해 나를 버 리고 그것이 될 것이다. 대신 난 나의 눈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그에겐 그의 방 식이 있고, 나에겐 나의 방식이 있다. 그가 지닌 생명력이 탐나지만 나를 버릴 순 없다. 난 그것이 되고, 내 눈으로 그것을 지켜본 뒤 태어나는 문장들을 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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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린 말의 익숙한 냄새와 새 말을 구하러 달려가는 하녀의 비릿한 젖 내. 새로운 말이 달려온다. 아니 말만 달려오는 것이 아니다. 마부와, 다른 말 한 마리가 더. 힘차고 옆구리 탄탄한 놈들이, 두 다리는 몸통에 바싹 오그려 붙인 채, 모양 좋은 대가리들은 낙타처럼 숙이고, 몸통을 비트는 힘만으로, 몸뚱어 리가 여지없이 꽉 차는 문틈으로 비비적거리며 나온다. 말들의 다리가 움직이 자, 땅바닥에서 흙먼지가 인다. 매캐한 냄새와 더불어 피 냄새가 난다. 소설의 향기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는 어떻게 해서 자신 의 소설이 담긴 향기를 손에 넣었는가. 향기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무언가가 가진 향을 그대로 가진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그 무언가가 된다 는 말일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으로 온전히 변하게 되 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것과는 다른, 되고자 하는 것의 향기를 얻을 수 있 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나를 지켜왔다. 내가 써온 소설들은 내 눈을 통해 관찰되어진 것들로만 이루어져있다. 내 관점에서. 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그것 으로 인해 생겨난 문장들을 엮어왔다. 이제야 알겠다.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써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눈을 파내고, 도리어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이 쓰려 는 것 자체가 되어 그 향을 손에 넣었다. 그렇기에 그가 써낸 소설들은 고유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소설을 쓸 때에 그는 그가 아니었다. 그가 쓰려는 소설 자 체가 된 것이다. 이제 나는 나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지금 쓰려는 소설을 쓰기 위해 나를 버 리고 그것이 될 것이다. 대신 난 나의 눈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그에겐 그의 방 식이 있고, 나에겐 나의 방식이 있다. 그가 지닌 생명력이 탐나지만 나를 버릴 순 없다. 난 그것이 되고, 내 눈으로 그것을 지켜본 뒤 태어나는 문장들을 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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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 소설은 생명력을 지닌 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다음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이불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누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 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다른 부분 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잠시 냄새를 맡아보았다. 벌레의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스로 생기는 묘사의 문장들을 보았다. 그 문장들을 받아 적었다. 그렇게 내 소설은 그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명을 얻었다. 그렇지만 내 소설 특유의 썩은 시체 냄새는 여전하다. 소설을 완성시키고, 난 그의 작품들을 그의 부탁대로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로써 세상에 위대한 작품은 내 소설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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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 소설은 생명력을 지닌 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다음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이불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누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 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다른 부분 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잠시 냄새를 맡아보았다. 벌레의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스로 생기는 묘사의 문장들을 보았다. 그 문장들을 받아 적었다. 그렇게 내 소설은 그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명을 얻었다. 그렇지만 내 소설 특유의 썩은 시체 냄새는 여전하다. 소설을 완성시키고, 난 그의 작품들을 그의 부탁대로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로써 세상에 위대한 작품은 내 소설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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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아 보 자 퍼

조우정

이동언

그림


날 아 보 자 퍼

조우정

이동언

그림


쳐드셨으면 고이 집에 들어가셔야죠. 제가 그렇게까지 서비스 드리고 존대해드렸으면, 바닥에 침 뱉고 이렇게 매너 없이 구시면 안 되죠. 어디 침을 뱉었다는 거야. 누가? 눈이 있으면 보세요. 여기. 라고 내뱉고 말았다. 손님이 말문이 막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따 진다.

우리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아니, 그래도 이양반이! 좋게 좋게 이야기 하잖아, 내가. 나는 뭐 성깔 없어서 당신네들한테 굽신굽신대면서 서빙하고 있는 줄 알아. 나 눈깔도 있고 성깔도 있어. 회식한다고 기분 좋게 술 처먹었으면 기분 좋게 집에 가. 개같이 굴지 말고. 그렇게 말하곤 돌아서버려 가게 바깥으로 나와 버린다. 또 저질러 버렸다.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같은 상황이 자주 반복되다보면 잘못을 하지 않은 사 람도 잘못을 한 것처럼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나는 결코 참지 못한다. 참지 못한 다, 가 아니다. 참지 않는다, 다.

날아보자,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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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드셨으면 고이 집에 들어가셔야죠. 제가 그렇게까지 서비스 드리고 존대해드렸으면, 바닥에 침 뱉고 이렇게 매너 없이 구시면 안 되죠. 어디 침을 뱉었다는 거야. 누가? 눈이 있으면 보세요. 여기. 라고 내뱉고 말았다. 손님이 말문이 막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따 진다.

우리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아니, 그래도 이양반이! 좋게 좋게 이야기 하잖아, 내가. 나는 뭐 성깔 없어서 당신네들한테 굽신굽신대면서 서빙하고 있는 줄 알아. 나 눈깔도 있고 성깔도 있어. 회식한다고 기분 좋게 술 처먹었으면 기분 좋게 집에 가. 개같이 굴지 말고. 그렇게 말하곤 돌아서버려 가게 바깥으로 나와 버린다. 또 저질러 버렸다.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같은 상황이 자주 반복되다보면 잘못을 하지 않은 사 람도 잘못을 한 것처럼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나는 결코 참지 못한다. 참지 못한 다, 가 아니다. 참지 않는다, 다.

날아보자, 슈퍼맨

71


가게 밖에 서서 담배를 한 대 빼어 무는데,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온다.

어이, 형씨. 아까 그 테이블 손님 중 하나다. 기분 나쁘다. 사과를 받아야 한다. 나를 형 씨라고 부르는 것도.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도.

뭐. 뭐? 너 지금 뭐, 라고 했냐? 근데, 뭐.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돌았나? 돈 건 아니고, 당신이 지금 나한테 지금 그게 할 소리야? 그럼 무슨 말을 해줄까요, 서빙하는 양반. 사과해, 당신. 나한테. 뭘? 나 함부로 부른 거. 내 어깨에 손 올린 거. 당신 일행이 바닥에 침 뱉은 거.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됐어요. 나 참 별일 다 보겠네. 술 마시면서 별에 별일 다 겪어봤지만 당신 같은 사람 처음이요. 근데 말이요. 그렇게 살지 말어. 그렇게 살지마. 내 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다른 사람에겐 이렇게 하지마.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곤 돌아서 자기 일행에게 갔다. 그 사람은 내 행동을 지적하고 돌아섰지만, 아까 전 나도 그 사람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돌아선 것뿐 이다. 그게 그렇게까지 시비를 몰고 올 행동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잘못된 것인가? 72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날아보자,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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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밖에 서서 담배를 한 대 빼어 무는데,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온다.

어이, 형씨. 아까 그 테이블 손님 중 하나다. 기분 나쁘다. 사과를 받아야 한다. 나를 형 씨라고 부르는 것도.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도.

뭐. 뭐? 너 지금 뭐, 라고 했냐? 근데, 뭐.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돌았나? 돈 건 아니고, 당신이 지금 나한테 지금 그게 할 소리야? 그럼 무슨 말을 해줄까요, 서빙하는 양반. 사과해, 당신. 나한테. 뭘? 나 함부로 부른 거. 내 어깨에 손 올린 거. 당신 일행이 바닥에 침 뱉은 거.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됐어요. 나 참 별일 다 보겠네. 술 마시면서 별에 별일 다 겪어봤지만 당신 같은 사람 처음이요. 근데 말이요. 그렇게 살지 말어. 그렇게 살지마. 내 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다른 사람에겐 이렇게 하지마.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곤 돌아서 자기 일행에게 갔다. 그 사람은 내 행동을 지적하고 돌아섰지만, 아까 전 나도 그 사람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돌아선 것뿐 이다. 그게 그렇게까지 시비를 몰고 올 행동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잘못된 것인가? 72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날아보자,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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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벌어진 일로 난 사무실로 불려갔다. 방금 전 행동부터 그동안 해왔던 내 행동에 대해 지적받고 시정하라는 말을 들었다. 다음에 이런 행동을 할 시에 는 그만둘 각오를 하라는 말도. 나 자신이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곤 생각하 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갈 때는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게 당연 한 거다. 그러지 않곤 살 수 없다. 그 정도 자신감 없이 무얼 하겠는가. 무엇을 해 서 최고가 되겠는가. 모든 것을 할 때는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해야 된 다. 그게 진리다. 적어도 내 진리. 그 진리가 한낱 이기주의라고 폄하당한다면 그건 날 보는 사람들의 오해이자 편견일 거라 생각한다. 〈문제〉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건방진 어린 녀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1 넌 아직 세상을 더 살아봐야 돼.

한순간 흥이 다 깨어져버린 기분이다. 자기 마음대로 날 가지려는 사람. 내 이야기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내 여자 친구. 자주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가끔 내가 사는 집 근처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내가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내온다. 내가 당연히 거기에 갈 것처럼. 모든 것을 정해놓고 마지막 비어있는 한자리에 나를 끼워 맞춰 넣는다. 맞지 않 아도 넣는다. 대형서점에서 산 그림퍼즐을 신나게 맞춰보다가 마지막에 이 그 림퍼즐이 불량품인 걸 알았어도, 우겨 넣는다. 이 여자는 그런 여자다. 페페로 들어선다. 여자 친구는 이미 술에 취해 있다. 그녀는 왼팔을 탁자에 걸쳐놓고 머리를 대고 있다. 눈이 게슴츠레하다. 미소를 씩 지으며 왔어, 라고 응, 이라고 대답하고 말테지만 머릿속은 괜스레 복잡해진다. 가게에서 있었던

3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일을 이 여자에게 말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생각을 지운다. 말해봤

4 세상은 무조건 참아야 하는 거야.

자다. 괜히 또 일이야기라는 핀잔만 들고 말 것이다. 이 여자와 난 어떤 패턴에

5 세상을 이기기만 하면서 살 수 없어.

의한 행동들로만 움직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모두가 답은 써내겠지만 정답은 없다. 정답이라고 내민 그 답이야 말로 이 기적이고 자기 멋대로의 답안이다. 나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 지 않았으면서 단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말하는 정답은 정답이 아니다. 참고 안 일 뿐이다. 참고 안을 들고 와서 정답인 척, 힘이 되어주는 척, 충고를 해주는 척. 그런 건 세상의 나이 먹은 사람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진실로, 진심으로 나에 게 충고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저런 가식적인 말을 하지 않을 거라 난 생각한다. 네 멋대로 살아라. 한 번 살아보고, 뼛속깊이 느끼고, 뼛속깊이 후회하며 살아 라. 난 차라리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흥얼되며 거리를 걷는다. 모든 노래가사가 내 이야기 같고, 모든 음이 나의 마음을 설레 게 하는 날이 종종 있다.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고,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기도

아브락사스 vol.6

나 여기 페펜데, 여기로 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이라 대답해야하냐는 생각부터 든다. 당장은

2 사회생활을 더 해봐야 돼.

74

한다. 그렇게 꿍짝꿍짝, 비트를 느끼면서 걷고 있는데 문자가 한통 날아왔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때 스스로 이 여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너무 오 래만난 걸까, 되물어본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러니까 내 주위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보았을 때 1년이 넘지 않은 만남은 아직 미성숙한 관계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모든 행동에 매너리즘 혹 은 패턴을 느낄 단계는 아니다. 그럼, 질려버린 걸까. 오히려 질려버렸다는 쪽이 옳겠다. 나는 이 여자에 대 해 질려버린 것이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만 이해받기 바라고, 상대에 대해서 는 쥐뿔만큼 이해심 없는 이 여자에 대해. 내 여자친구라고 불리는 이 여자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다시 이 여자에게 만나자는 제안을 할 것인가, 라고 한 번 생각해보자. 다시 만

날아보자,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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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벌어진 일로 난 사무실로 불려갔다. 방금 전 행동부터 그동안 해왔던 내 행동에 대해 지적받고 시정하라는 말을 들었다. 다음에 이런 행동을 할 시에 는 그만둘 각오를 하라는 말도. 나 자신이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곤 생각하 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갈 때는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게 당연 한 거다. 그러지 않곤 살 수 없다. 그 정도 자신감 없이 무얼 하겠는가. 무엇을 해 서 최고가 되겠는가. 모든 것을 할 때는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해야 된 다. 그게 진리다. 적어도 내 진리. 그 진리가 한낱 이기주의라고 폄하당한다면 그건 날 보는 사람들의 오해이자 편견일 거라 생각한다. 〈문제〉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건방진 어린 녀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1 넌 아직 세상을 더 살아봐야 돼.

한순간 흥이 다 깨어져버린 기분이다. 자기 마음대로 날 가지려는 사람. 내 이야기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내 여자 친구. 자주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가끔 내가 사는 집 근처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내가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내온다. 내가 당연히 거기에 갈 것처럼. 모든 것을 정해놓고 마지막 비어있는 한자리에 나를 끼워 맞춰 넣는다. 맞지 않 아도 넣는다. 대형서점에서 산 그림퍼즐을 신나게 맞춰보다가 마지막에 이 그 림퍼즐이 불량품인 걸 알았어도, 우겨 넣는다. 이 여자는 그런 여자다. 페페로 들어선다. 여자 친구는 이미 술에 취해 있다. 그녀는 왼팔을 탁자에 걸쳐놓고 머리를 대고 있다. 눈이 게슴츠레하다. 미소를 씩 지으며 왔어, 라고 응, 이라고 대답하고 말테지만 머릿속은 괜스레 복잡해진다. 가게에서 있었던

3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일을 이 여자에게 말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생각을 지운다. 말해봤

4 세상은 무조건 참아야 하는 거야.

자다. 괜히 또 일이야기라는 핀잔만 들고 말 것이다. 이 여자와 난 어떤 패턴에

5 세상을 이기기만 하면서 살 수 없어.

의한 행동들로만 움직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모두가 답은 써내겠지만 정답은 없다. 정답이라고 내민 그 답이야 말로 이 기적이고 자기 멋대로의 답안이다. 나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 지 않았으면서 단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말하는 정답은 정답이 아니다. 참고 안 일 뿐이다. 참고 안을 들고 와서 정답인 척, 힘이 되어주는 척, 충고를 해주는 척. 그런 건 세상의 나이 먹은 사람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진실로, 진심으로 나에 게 충고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저런 가식적인 말을 하지 않을 거라 난 생각한다. 네 멋대로 살아라. 한 번 살아보고, 뼛속깊이 느끼고, 뼛속깊이 후회하며 살아 라. 난 차라리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흥얼되며 거리를 걷는다. 모든 노래가사가 내 이야기 같고, 모든 음이 나의 마음을 설레 게 하는 날이 종종 있다.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고,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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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페펜데, 여기로 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이라 대답해야하냐는 생각부터 든다. 당장은

2 사회생활을 더 해봐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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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렇게 꿍짝꿍짝, 비트를 느끼면서 걷고 있는데 문자가 한통 날아왔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때 스스로 이 여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너무 오 래만난 걸까, 되물어본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러니까 내 주위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보았을 때 1년이 넘지 않은 만남은 아직 미성숙한 관계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모든 행동에 매너리즘 혹 은 패턴을 느낄 단계는 아니다. 그럼, 질려버린 걸까. 오히려 질려버렸다는 쪽이 옳겠다. 나는 이 여자에 대 해 질려버린 것이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만 이해받기 바라고, 상대에 대해서 는 쥐뿔만큼 이해심 없는 이 여자에 대해. 내 여자친구라고 불리는 이 여자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다시 이 여자에게 만나자는 제안을 할 것인가, 라고 한 번 생각해보자. 다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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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거란 결론이 도출된다. 왜냐하면 사귀고 난 이후의 이 여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럼 난 모든 나쁜 여자에게 이렇게 당하고 말 것인가. 탁자에 기대어 있는 여자친구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헤어지자. 우물쭈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바로 내뱉은 말에, 그녀가 놀란다. 이런 깡을 가지고 있었던가? 내 남자친구라 불리는 이 남자가, 정도의 생각을 한 얼 굴로.

싫다면? 이내 그녀가 받아친다. 그녀의 방식대로.

어쩔 수 없어. 난 내뱉었고, 다시 담을 수 없어. 알아서 해. 안녕. 사람은 자신이 행동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고, 그 행동한 것들에 의해 대우받는다. 이게 내 지론이다. 서빙을 몇 년 동안 하면서 더 굳건해졌다. 이기적 이라든가 자기 밖에 모른다, 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토를 달고 싶지 않다. 나는 분명 이기적이니까. 한 때 내 꿈은 이런 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앉은 자리에서 전자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거나, 새로 발표된 소설을 읽고 평론을 써내려가는 그런 사람. 요즘 말로 인텔리. 무언가 연구하고 세상에 발표하는 그런 똑똑한 사 람이 되고 싶었다. 근데 그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이야기였고 살아오면서 그 꿈들은 신기루처럼 허물어져갔다. 무언가 조금씩 쌓아올리면 허물어지고 또 쌓으면 다시 허물어지고. 마치 바닷가에 만들어놓은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삶에 대한 목표의식이 부족해서 였 을까 아니면 진정한 꿈이 아니 여서였을까. 내 주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 데 진정한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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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거란 결론이 도출된다. 왜냐하면 사귀고 난 이후의 이 여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럼 난 모든 나쁜 여자에게 이렇게 당하고 말 것인가. 탁자에 기대어 있는 여자친구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헤어지자. 우물쭈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바로 내뱉은 말에, 그녀가 놀란다. 이런 깡을 가지고 있었던가? 내 남자친구라 불리는 이 남자가, 정도의 생각을 한 얼 굴로.

싫다면? 이내 그녀가 받아친다. 그녀의 방식대로.

어쩔 수 없어. 난 내뱉었고, 다시 담을 수 없어. 알아서 해. 안녕. 사람은 자신이 행동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고, 그 행동한 것들에 의해 대우받는다. 이게 내 지론이다. 서빙을 몇 년 동안 하면서 더 굳건해졌다. 이기적 이라든가 자기 밖에 모른다, 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토를 달고 싶지 않다. 나는 분명 이기적이니까. 한 때 내 꿈은 이런 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앉은 자리에서 전자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거나, 새로 발표된 소설을 읽고 평론을 써내려가는 그런 사람. 요즘 말로 인텔리. 무언가 연구하고 세상에 발표하는 그런 똑똑한 사 람이 되고 싶었다. 근데 그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이야기였고 살아오면서 그 꿈들은 신기루처럼 허물어져갔다. 무언가 조금씩 쌓아올리면 허물어지고 또 쌓으면 다시 허물어지고. 마치 바닷가에 만들어놓은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삶에 대한 목표의식이 부족해서 였 을까 아니면 진정한 꿈이 아니 여서였을까. 내 주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 데 진정한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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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행복할까. 이런 생각들만 머리를 감싸고돈다. 행복하지 않다면 살아 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해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도 않고, 진정한 꿈도 아 니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돈이라는 것이 꿈을 갉아먹는다. 그런 거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합리화시키다보니 난 이렇게 이기 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던 난 먹고 살아야 되니까. 꿈이 없는 자 껍데기다. 고로 난 껍데기다.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그래서 누군가 툭 치면 으스러지는 껍데기.

주문하시겠어요? 네, 뇌는 아이슈타인으로 주시구요. 다리는 우사인 볼트, 팔은 랜디 존슨 그리고 흉근은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로 주세요. 그리고 손가락은 아이폰 4를 쥔 스티븐 잡스 걸로.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각각 부위들이 전시되어 있는 DP룸에서 주문된 부위를 골라 조립하고, 테 이블에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에게로 가져간다.

마음에 드세요? 음, 일단 걸쳐볼게요.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며 하는 서빙은 얼마나 진취적인가. 가까운 미래 엔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는 고객과 점원이 있을 테지.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하 며 막 들어온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다. 오백 두 잔에 훈제 치킨. 머릿속 생각과 현실은 이렇게 불일치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라곤 이게 정말 내가 할 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맥주잔을 잡고 아래위로 움직이며 하얀 거 품을 내고 있다. 손님이 컴플레인 걸면 안 되는데, 그러면 또 피곤해지는데, 대 강 이런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간다. 도대체 내가 꿨던 꿈은 어디로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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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행복할까. 이런 생각들만 머리를 감싸고돈다. 행복하지 않다면 살아 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해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도 않고, 진정한 꿈도 아 니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돈이라는 것이 꿈을 갉아먹는다. 그런 거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합리화시키다보니 난 이렇게 이기 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던 난 먹고 살아야 되니까. 꿈이 없는 자 껍데기다. 고로 난 껍데기다.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그래서 누군가 툭 치면 으스러지는 껍데기.

주문하시겠어요? 네, 뇌는 아이슈타인으로 주시구요. 다리는 우사인 볼트, 팔은 랜디 존슨 그리고 흉근은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로 주세요. 그리고 손가락은 아이폰 4를 쥔 스티븐 잡스 걸로.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각각 부위들이 전시되어 있는 DP룸에서 주문된 부위를 골라 조립하고, 테 이블에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에게로 가져간다.

마음에 드세요? 음, 일단 걸쳐볼게요.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며 하는 서빙은 얼마나 진취적인가. 가까운 미래 엔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는 고객과 점원이 있을 테지.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하 며 막 들어온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다. 오백 두 잔에 훈제 치킨. 머릿속 생각과 현실은 이렇게 불일치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라곤 이게 정말 내가 할 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맥주잔을 잡고 아래위로 움직이며 하얀 거 품을 내고 있다. 손님이 컴플레인 걸면 안 되는데, 그러면 또 피곤해지는데, 대 강 이런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간다. 도대체 내가 꿨던 꿈은 어디로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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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것일까. 따라 놓은 맥주의 거품처럼 스르르 사라진 것인가. 젠장. 결국 남는 건 욕지거리다. 이기적인 그녀가 떠나가고 내게 다시 다가온 B라는 여자는 지난번 그녀와 정반대의 여자다. 날 위해주고, 위선적이지 않고, 우선은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고 그 이야기에 대해 상당히 많은 조언을 해준다. 물론, 내 이상형은 아니지만 그 이상형보다 현실적이고 내게 잘 맞는 여자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다시 꿈꿀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지난번 그녀에게 바랐던 것도 어쩌면 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이 여자에게서 새로운 꿈 을 보는 나는 무언가 벅찬 감정에 휩싸여 있다. 다시 꿈을 꾼다. 환희에 가득차 고 내 몸을 두둥실 뜨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무언가. 언젠가 파란 타이즈 위에 빨간 팬티를 입은 슈퍼맨이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세상을 구하는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빨간 망토가 세차게 휘날린다. 하늘을 한참 날아다니다가 아래를 바라본다. 누군가 위기에 쳐했는 지 슬쩍 살펴본다. 모든 것이 내 발 아래에 있다. 또 다르게 보면 그 무거운 세상 이 나를 짓누르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 날아 오는 총알도 손가락으로 튕겨내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도 세운다. 나는 슈 퍼맨이다. 그렇게 한참을 하늘을 날고 있는데 수많은 승객을 싣고 날아가던 비행기 하나가 휘청거리더니 한쪽 날개에 불이 붙었다. 이때다 싶어 비행기 밑으로 날 아든다. 비행기와 속도를 맞추고 두 손으로 비행기를 가볍게 들어보려는 순간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느끼던 무게와 다른 묵직함이 어깨로 전달된다. 비행기와 함께 지상으로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꿈에서까지 내가 원하는 어떤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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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것일까. 따라 놓은 맥주의 거품처럼 스르르 사라진 것인가. 젠장. 결국 남는 건 욕지거리다. 이기적인 그녀가 떠나가고 내게 다시 다가온 B라는 여자는 지난번 그녀와 정반대의 여자다. 날 위해주고, 위선적이지 않고, 우선은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고 그 이야기에 대해 상당히 많은 조언을 해준다. 물론, 내 이상형은 아니지만 그 이상형보다 현실적이고 내게 잘 맞는 여자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다시 꿈꿀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지난번 그녀에게 바랐던 것도 어쩌면 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이 여자에게서 새로운 꿈 을 보는 나는 무언가 벅찬 감정에 휩싸여 있다. 다시 꿈을 꾼다. 환희에 가득차 고 내 몸을 두둥실 뜨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무언가. 언젠가 파란 타이즈 위에 빨간 팬티를 입은 슈퍼맨이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세상을 구하는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빨간 망토가 세차게 휘날린다. 하늘을 한참 날아다니다가 아래를 바라본다. 누군가 위기에 쳐했는 지 슬쩍 살펴본다. 모든 것이 내 발 아래에 있다. 또 다르게 보면 그 무거운 세상 이 나를 짓누르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 날아 오는 총알도 손가락으로 튕겨내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도 세운다. 나는 슈 퍼맨이다. 그렇게 한참을 하늘을 날고 있는데 수많은 승객을 싣고 날아가던 비행기 하나가 휘청거리더니 한쪽 날개에 불이 붙었다. 이때다 싶어 비행기 밑으로 날 아든다. 비행기와 속도를 맞추고 두 손으로 비행기를 가볍게 들어보려는 순간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느끼던 무게와 다른 묵직함이 어깨로 전달된다. 비행기와 함께 지상으로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꿈에서까지 내가 원하는 어떤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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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보자,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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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시키지 못하다니 이건 문제가 있다. 한참을 헉헉되며 앉아 있다가 이게 도 대체 무슨 일이지, 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꿈이 억눌린 자아의 발현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의 발언으로 따 져보면 그때 당시의 나는 현실에 압박당해있었던 거다. 왼손을 말아 쥐고 빨간 망토를 펄럭거리며 지구를 구하는 정도의 깡과 능력을 가지고 싶었던 거다. 하 지만 꿈에서조차 그런 깡과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현실에서 가지지 못하는 깡 과 능력 그리고 자신감을 꿈에서 느낄 리가 없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 느껴본 감정이라면 꿈에서도 진실 되게 느껴질 테지만,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무 슨 수로 꿈에서 가지겠는가. 상상만으론 안되는 게 있다. 분명히. B가 간밤에 꾼 슈퍼맨 꿈 이야기를 듣더니 이야기했다.

넌,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렴. 애기처럼 굴지 말고. 처언, 천, 히. 네 걸음을 내걷는 거야. 너에게 어울리는 걸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마치 잃어버린 열쇠가 몇 년 만에 자신의 발로 내 주머니로 걸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스스로 되새기면서 그녀의 말을 기억해 놓기로 했다. 그래, 천천히 조금씩 하면 되는 거야. 난 항상 서두르기만 했어. 제자리에서 조금씩 꿈의 재료들을 준비한다면 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맥주를 잔에 따르는 것이 떠오른다. 중지와 약지로 맥주잔을 잡고 코 크주를 당긴다. 나는 맥주를 따르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상상해본다. 풍성한 거 품이 먼저 잔에 담긴 다음 맥주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바로 맥주가 나오는 경우 가 있다. 후자의 경우 잔을 아래위로 움직여 인위적으로 거품을 만들거나 최신 코크주를 이용하여 부드러운 거품을 따로 만들어주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대 82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날아보자, 슈퍼맨

83


실현시키지 못하다니 이건 문제가 있다. 한참을 헉헉되며 앉아 있다가 이게 도 대체 무슨 일이지, 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꿈이 억눌린 자아의 발현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의 발언으로 따 져보면 그때 당시의 나는 현실에 압박당해있었던 거다. 왼손을 말아 쥐고 빨간 망토를 펄럭거리며 지구를 구하는 정도의 깡과 능력을 가지고 싶었던 거다. 하 지만 꿈에서조차 그런 깡과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현실에서 가지지 못하는 깡 과 능력 그리고 자신감을 꿈에서 느낄 리가 없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 느껴본 감정이라면 꿈에서도 진실 되게 느껴질 테지만,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무 슨 수로 꿈에서 가지겠는가. 상상만으론 안되는 게 있다. 분명히. B가 간밤에 꾼 슈퍼맨 꿈 이야기를 듣더니 이야기했다.

넌,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렴. 애기처럼 굴지 말고. 처언, 천, 히. 네 걸음을 내걷는 거야. 너에게 어울리는 걸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마치 잃어버린 열쇠가 몇 년 만에 자신의 발로 내 주머니로 걸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스스로 되새기면서 그녀의 말을 기억해 놓기로 했다. 그래, 천천히 조금씩 하면 되는 거야. 난 항상 서두르기만 했어. 제자리에서 조금씩 꿈의 재료들을 준비한다면 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맥주를 잔에 따르는 것이 떠오른다. 중지와 약지로 맥주잔을 잡고 코 크주를 당긴다. 나는 맥주를 따르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상상해본다. 풍성한 거 품이 먼저 잔에 담긴 다음 맥주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바로 맥주가 나오는 경우 가 있다. 후자의 경우 잔을 아래위로 움직여 인위적으로 거품을 만들거나 최신 코크주를 이용하여 부드러운 거품을 따로 만들어주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대 82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날아보자, 슈퍼맨

83


부분 모르겠지만 일반 맥주 keg를 24시간 적정한 온도에서 숙성을 시키면 아주

쉬이 사라지고, 크리미한 최신의 거품은 쉬이 사라지지 않지만 맥주와 겉돌기

매끄러운 거품이 잔에 먼저 담기는 맥주가 나온다. 그리고 아래위로 흔들어 거

일쑤이다. 하지만 제대로 숙성시킨 맥주의 거품은 쉬이 사라지지도 않고, 맥주

품을 내는 것은 대부분 호프집이나 치킨 집에서 하는 방법이며, 최신 코크주를

와 잘 어울리기까지 한다.

사용하여 부드러운 거품을 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3가지 경우를 제외하

B가 이야기한 것과 어찌 보면 맥락이 같다. 여유롭게 자신의 것을 추구한

고 속도를 제어하여 거품을 내거나 국자나 젓가락을 이용해 거품을 내는 일도

다면 언젠가는 제일 오래가는 찬란한 거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나의 꿈과 연

있지만 질이 떨어짐으로 제외하기로 한다.

관 없는 일상의 어떤 것에서 깨닫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

먼저 코크주가 최신의 것이라서 따로 거품을 낼 수 있는 것은 부잣집 도련

게 된다. B는 원더우먼이 아닐까.

님에 비유하게 되고, 아래위로 흔들어 거품을 내는 것은 일반 사람이라고 생각

앞에 앉은 B의 손을 잡는다. 그리곤 손등에 키스를 한다. 산뜻한 로션 냄새

하게 된다. 그리고 숙성을 통해 제대로 된 양의 거품을 내는 것은 인내를 통해

가 코를 스친다. 어쩌면 굉장히 심각했던 문제가 이런 간단한 대화로 풀릴 리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생각한다.

없겠지만 무언가 실마리를 잡고 숨통이 트임으로 인해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모든 사회가 거품과 같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맥주의 거품에 대해 부정 적인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금방 사라지는 것, 맥주의 양을 많아 보이기 위해 내는 것, 맥주의 맛과 무관한 것. 하지만 모두 잘못된 답이다. 거품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뜻을 말하긴 하지만 맥주에 있 어서 거품이란 오랜 시간 사귀어 온, 아니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고 소리를 내어 깔깔거린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져서랄까 평소에 잘 내지 못하던 웃음소리를 간만에 내어 웃어 본다. B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시 하나를 보여 준다.

모든 맥주에 거품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품의 중요성에 대해 알지 못 한다. 맥주의 산화를 막아주어 맥주의 맛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 은 거품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아예 거품 없는 맥주를 달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

시*

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거품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싶을 뿐

꿈과

이다.

거품을 요즘 취업생들이 이야기 하는 능력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위아 래로 흔들어서 낸 거품은 누구나 없는 살림 힘들게 해서 구한 능력으로 빗댈 수

사이에 현실.

있겠고, 최신 코크주를 이용해 낸 크리미한 거품은 있는 집안에서 살고 있는 능 력자들의 능력으로 빗댈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화룡점정인 것은 24시간

현실과

적정 온도에서 숙성시킨 맥주의 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묵묵히

현실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만들어낸 능력이자 스펙. 그

사이에

것으로 빗댈 수 있다.

꿈.

이들 거품은 사라지는 속도 또한 다르다. 억지로 낸 일반인의 능력은 금방

84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 «시», 장정일, 시집<주목을 받다>, 김영사, 2005 날아보자, 슈퍼맨

85


부분 모르겠지만 일반 맥주 keg를 24시간 적정한 온도에서 숙성을 시키면 아주

쉬이 사라지고, 크리미한 최신의 거품은 쉬이 사라지지 않지만 맥주와 겉돌기

매끄러운 거품이 잔에 먼저 담기는 맥주가 나온다. 그리고 아래위로 흔들어 거

일쑤이다. 하지만 제대로 숙성시킨 맥주의 거품은 쉬이 사라지지도 않고, 맥주

품을 내는 것은 대부분 호프집이나 치킨 집에서 하는 방법이며, 최신 코크주를

와 잘 어울리기까지 한다.

사용하여 부드러운 거품을 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3가지 경우를 제외하

B가 이야기한 것과 어찌 보면 맥락이 같다. 여유롭게 자신의 것을 추구한

고 속도를 제어하여 거품을 내거나 국자나 젓가락을 이용해 거품을 내는 일도

다면 언젠가는 제일 오래가는 찬란한 거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나의 꿈과 연

있지만 질이 떨어짐으로 제외하기로 한다.

관 없는 일상의 어떤 것에서 깨닫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

먼저 코크주가 최신의 것이라서 따로 거품을 낼 수 있는 것은 부잣집 도련

게 된다. B는 원더우먼이 아닐까.

님에 비유하게 되고, 아래위로 흔들어 거품을 내는 것은 일반 사람이라고 생각

앞에 앉은 B의 손을 잡는다. 그리곤 손등에 키스를 한다. 산뜻한 로션 냄새

하게 된다. 그리고 숙성을 통해 제대로 된 양의 거품을 내는 것은 인내를 통해

가 코를 스친다. 어쩌면 굉장히 심각했던 문제가 이런 간단한 대화로 풀릴 리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생각한다.

없겠지만 무언가 실마리를 잡고 숨통이 트임으로 인해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모든 사회가 거품과 같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맥주의 거품에 대해 부정 적인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금방 사라지는 것, 맥주의 양을 많아 보이기 위해 내는 것, 맥주의 맛과 무관한 것. 하지만 모두 잘못된 답이다. 거품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뜻을 말하긴 하지만 맥주에 있 어서 거품이란 오랜 시간 사귀어 온, 아니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고 소리를 내어 깔깔거린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져서랄까 평소에 잘 내지 못하던 웃음소리를 간만에 내어 웃어 본다. B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시 하나를 보여 준다.

모든 맥주에 거품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품의 중요성에 대해 알지 못 한다. 맥주의 산화를 막아주어 맥주의 맛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 은 거품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아예 거품 없는 맥주를 달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

시*

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거품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싶을 뿐

꿈과

이다.

거품을 요즘 취업생들이 이야기 하는 능력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위아 래로 흔들어서 낸 거품은 누구나 없는 살림 힘들게 해서 구한 능력으로 빗댈 수

사이에 현실.

있겠고, 최신 코크주를 이용해 낸 크리미한 거품은 있는 집안에서 살고 있는 능 력자들의 능력으로 빗댈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화룡점정인 것은 24시간

현실과

적정 온도에서 숙성시킨 맥주의 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묵묵히

현실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만들어낸 능력이자 스펙. 그

사이에

것으로 빗댈 수 있다.

꿈.

이들 거품은 사라지는 속도 또한 다르다. 억지로 낸 일반인의 능력은 금방

84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 «시», 장정일, 시집<주목을 받다>, 김영사, 2005 날아보자, 슈퍼맨

85


꿈과 현실 사이에 시.

시를 보고 있자니 이전의 내가 꿈과 꿈 사이 현실에서 살고 있던 것이 아닐 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현재의 나는 현실과 현실 사이에서 꿈을 꿔야하는 것인지, 현실과 꿈 사이에서 흩어지는 시처럼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B가 내게 이야기해주었듯이 내 존재 방법보다 나 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각박함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땐,

아직 꿈은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 맞는 걸음을 찾고 있어요. 뛰기 위해서요. 그리고 슈퍼맨처럼 날기 위해서요. 이렇게 낯간지러운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그 대답이 그 사 람이 원한 답변이 아니라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고 B에게 말해본다. 몇 달 만에 이렇게 변해벼린 내가 조금은 이상하다. 사람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되 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의 나처럼 머물러 있고 싶진 않다. 사실 낯간지러운 대답 말고도 새롭게 스멀스멀대는 꿈이 있다. 내 삶을 대 변하는 작고 작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서 새로운 삶을 적어내는 것. 그것이 소설이든 수필이든 뭐가되든 적고 싶다. 어릴 적 내가 꿈꿨던 조금은 여유로운 그런 삶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선 엘리트 적인 그런 것들을 끼적여보 는 삶. 난 지금 그것을 꿈꾸고 있다. B와 함께 카페를 나선다. 슈퍼맨이 날던 저 86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날아보자, 슈퍼맨

87


꿈과 현실 사이에 시.

시를 보고 있자니 이전의 내가 꿈과 꿈 사이 현실에서 살고 있던 것이 아닐 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현재의 나는 현실과 현실 사이에서 꿈을 꿔야하는 것인지, 현실과 꿈 사이에서 흩어지는 시처럼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B가 내게 이야기해주었듯이 내 존재 방법보다 나 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각박함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땐,

아직 꿈은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 맞는 걸음을 찾고 있어요. 뛰기 위해서요. 그리고 슈퍼맨처럼 날기 위해서요. 이렇게 낯간지러운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그 대답이 그 사 람이 원한 답변이 아니라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고 B에게 말해본다. 몇 달 만에 이렇게 변해벼린 내가 조금은 이상하다. 사람이 이렇게 빠르게 변해도 되 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의 나처럼 머물러 있고 싶진 않다. 사실 낯간지러운 대답 말고도 새롭게 스멀스멀대는 꿈이 있다. 내 삶을 대 변하는 작고 작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서 새로운 삶을 적어내는 것. 그것이 소설이든 수필이든 뭐가되든 적고 싶다. 어릴 적 내가 꿈꿨던 조금은 여유로운 그런 삶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선 엘리트 적인 그런 것들을 끼적여보 는 삶. 난 지금 그것을 꿈꾸고 있다. B와 함께 카페를 나선다. 슈퍼맨이 날던 저 86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날아보자, 슈퍼맨

87


하늘엔 햇살이 짱짱하다. 말장난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비록 슈퍼맨이 아니 지만 또 다른 슈퍼맨이다. 왠지 모르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두둥실 절로 떠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자, 나에게도 슬그머니 햇살이 비친다. 날아보자, 슈퍼맨. 저 짱짱한 햇살 아래서.

88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하늘엔 햇살이 짱짱하다. 말장난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비록 슈퍼맨이 아니 지만 또 다른 슈퍼맨이다. 왠지 모르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두둥실 절로 떠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자, 나에게도 슬그머니 햇살이 비친다. 날아보자, 슈퍼맨. 저 짱짱한 햇살 아래서.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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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 가 우 리 에 게

긴 것

송주희


그 녀 가 우 리 에 게

긴 것

송주희


2045.8.1–9.1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소설가로 활동했던 주희 송 ( Juhee Song)이 2044년 8 월 1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약 20여년간의 활동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았 던 2010년에 일기장의 일부분과 자화상을 공개한다.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93


2045.8.1–9.1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소설가로 활동했던 주희 송 ( Juhee Song)이 2044년 8 월 1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약 20여년간의 활동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았 던 2010년에 일기장의 일부분과 자화상을 공개한다.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93


2월 7일

3월 5일

우리의 사이는 같다—타인의 시선으로서. 분명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을

순순히 옥바라지한 첫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더군. 아무것도 바라지

향해 끝없이 변화하고 변해왔다. 침묵했음에도 잔혹한 거짓은 진실을 통해

않던 내게. 하필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나는 그 후로도 그리고

전해지고 진실은 거짓을 통해 전달되고 만다. 결국 사실에 충실했음에도

지금까지 오랫동안 처형을 당했다오. 멈추지 않고 나는 나를 처형했다오.

불구하고 누군가의 진심을 다한 감정을 배반한다. 나는 사내와 같은 대담함이

그러는 동안 몇명의 남자들이 나를 사랑한다 했소. 피쏠린 혓바닥을 낼름

없었고 수줍음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관계는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거리며 나에게 사랑한다 했소.나는 말하지 ‘그 남자 때문에 그 남자 만큼 당신을 사랑 할 수 없어요.’ 협박을 하고 욕설과 모멸감과 때로는 온몸에 멍이들도록 매를 맞기도해. 서로에 말의 덫에 걸려버린 감정어가 엄청난 형용사로 예쁘게 과장되려고 애를 쓰려고 하지. 상처 때문에 오만해진 자존심과 더 사랑한 사람이 더 보여준 사람의

94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95


2월 7일

3월 5일

우리의 사이는 같다—타인의 시선으로서. 분명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을

순순히 옥바라지한 첫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더군. 아무것도 바라지

향해 끝없이 변화하고 변해왔다. 침묵했음에도 잔혹한 거짓은 진실을 통해

않던 내게. 하필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나는 그 후로도 그리고

전해지고 진실은 거짓을 통해 전달되고 만다. 결국 사실에 충실했음에도

지금까지 오랫동안 처형을 당했다오. 멈추지 않고 나는 나를 처형했다오.

불구하고 누군가의 진심을 다한 감정을 배반한다. 나는 사내와 같은 대담함이

그러는 동안 몇명의 남자들이 나를 사랑한다 했소. 피쏠린 혓바닥을 낼름

없었고 수줍음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관계는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거리며 나에게 사랑한다 했소.나는 말하지 ‘그 남자 때문에 그 남자 만큼 당신을 사랑 할 수 없어요.’ 협박을 하고 욕설과 모멸감과 때로는 온몸에 멍이들도록 매를 맞기도해. 서로에 말의 덫에 걸려버린 감정어가 엄청난 형용사로 예쁘게 과장되려고 애를 쓰려고 하지. 상처 때문에 오만해진 자존심과 더 사랑한 사람이 더 보여준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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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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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97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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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97


4월 6일 신뢰하지 않아 충분한 문제요. 지배력의 한계요. 성실함의 한계요. 견고함의 한계요. 그래도 손 한번 잡아볼래요 ? 전기가 통하나. 4월 10일 누군가를 생각하며 포만감을 느껴본 적 있어 ? 마음을 향해서 펼쳐지는 생생하며 가장 흥미로운 생각들 말이야. 그게 무섭기도해. 내 상태의 진실을 인정하고 고통을 느끼게 되거든. 생각들이 진해질 수록 나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라게 되는 거 있잖아. 그리고 그 사람 느린 건 좋지만 신중한 건 싫더라. 4월 22일 며칠동안 나는 그저 속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충족된다는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 성실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문득 사람에 대한 의심도 내 눈을 속이는 나를 어두운 날씨를 탓하며 하루를 죽음의 과정으로 삼게 되었다.

98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4월 6일 신뢰하지 않아 충분한 문제요. 지배력의 한계요. 성실함의 한계요. 견고함의 한계요. 그래도 손 한번 잡아볼래요 ? 전기가 통하나. 4월 10일 누군가를 생각하며 포만감을 느껴본 적 있어 ? 마음을 향해서 펼쳐지는 생생하며 가장 흥미로운 생각들 말이야. 그게 무섭기도해. 내 상태의 진실을 인정하고 고통을 느끼게 되거든. 생각들이 진해질 수록 나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라게 되는 거 있잖아. 그리고 그 사람 느린 건 좋지만 신중한 건 싫더라. 4월 22일 며칠동안 나는 그저 속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충족된다는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 성실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문득 사람에 대한 의심도 내 눈을 속이는 나를 어두운 날씨를 탓하며 하루를 죽음의 과정으로 삼게 되었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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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5월 나를 허무는 일들—사랑에 대한 기억, 슬픈 추억 모든 것들을 단편적으로 자족했다. 대상도, 목적도 없이 유일한 나르시스적 상태를 맞이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즐겁다. 5월 1일 입속에서 걸어나오는 말들은 매우 천천히 걷고 있는데 나는 전혀 여유롭지 못했다.다만 어딘가 감전되어 흐르고 있는 감각을 짐작하고 있을 뿐. 이건 큰 사고다. 말하자면 너에게서 찾을 수 없는 공간적 시간적 광범위한 눈빛은 나를 궁지에 몰아 넣고 신경은 마비된 상태, 이것이 너와 나 포석할 수 없이 뻗어 나가버린 사고였다.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101


5월 나를 허무는 일들—사랑에 대한 기억, 슬픈 추억 모든 것들을 단편적으로 자족했다. 대상도, 목적도 없이 유일한 나르시스적 상태를 맞이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즐겁다. 5월 1일 입속에서 걸어나오는 말들은 매우 천천히 걷고 있는데 나는 전혀 여유롭지 못했다.다만 어딘가 감전되어 흐르고 있는 감각을 짐작하고 있을 뿐. 이건 큰 사고다. 말하자면 너에게서 찾을 수 없는 공간적 시간적 광범위한 눈빛은 나를 궁지에 몰아 넣고 신경은 마비된 상태, 이것이 너와 나 포석할 수 없이 뻗어 나가버린 사고였다.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101


6월 6일

7월 13일

숨이 차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넘치지 않고 최대한 나다운 것

목끝까지 올라온 무례한 이물질을 배설하려 합니다.

이제는 너의 눈동자를 기억할 수 있겠지.

토끼의 심술 똥이 하나

질서있는 유혹을 차분히 나다운 것으로 만지작거릴 것이다.

토끼의 외로움 똥이 하나

내 마음에 너를 심고 벌레도 키우며 꽃도 피울 것이다.

토끼의 하찮은 똥이 하나 마지막 토끼의 똥은 진한 향이 납니다. 얼만큼 아프고 힘겨웠던지 눈물이 흐르나 봅니다. 하얗던 털은 순수하지 않습니다. 토끼는 울렁이고 구역질 나던 감정을 모두 토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생을 잃어버린듯 허무했습니다. 회고해 보면 생과제 자체가 토끼가 감당하기엔 아직 어린가 봅니다. 어린 토끼가 만든 산물을 보세요. 위태롭게 토끼똥은 뎅구르르르–

8월 19일 너는 나 말고 다른 즐거움을 찾았구나.

102

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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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7월 13일

숨이 차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넘치지 않고 최대한 나다운 것

목끝까지 올라온 무례한 이물질을 배설하려 합니다.

이제는 너의 눈동자를 기억할 수 있겠지.

토끼의 심술 똥이 하나

질서있는 유혹을 차분히 나다운 것으로 만지작거릴 것이다.

토끼의 외로움 똥이 하나

내 마음에 너를 심고 벌레도 키우며 꽃도 피울 것이다.

토끼의 하찮은 똥이 하나 마지막 토끼의 똥은 진한 향이 납니다. 얼만큼 아프고 힘겨웠던지 눈물이 흐르나 봅니다. 하얗던 털은 순수하지 않습니다. 토끼는 울렁이고 구역질 나던 감정을 모두 토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생을 잃어버린듯 허무했습니다. 회고해 보면 생과제 자체가 토끼가 감당하기엔 아직 어린가 봅니다. 어린 토끼가 만든 산물을 보세요. 위태롭게 토끼똥은 뎅구르르르–

8월 19일 너는 나 말고 다른 즐거움을 찾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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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vol.6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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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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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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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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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희








저 의 은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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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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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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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엇 무 무 엇 입 여섯번째 summer 2010

summer

? 까 니 니 까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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