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axas_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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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봉의 파리통신 두 번째

아브락사스

연재 1 뭔가 좀 그렇습니까

vol. 11

당신의 문장

이선영

허이준

악몽

네 음절로 남은 사랑

이향경

김효석

상처

꿈삶

닳아빠진 대신에 닳아빠진

최신행

이사라

이원희

데칼꼴라주

훔쳐보기

밤의 여로

김태인

박미정

연재 2

회귀

forget

문장 모아 소설

박원희가 만든 조각

샤르봉

연작 중 하나

fall

해변으로 가요

박원 희가

2011

조 각

아브락사스 열한 번째

만 든


아브락사스 열한 번째

9


아브락사스 열한 번째

9


〘상처1〙, 철, 30 x 3 x 70 cm

〘상처2〙, 철, 30 x 20 x 60 cm


〘상처1〙, 철, 30 x 3 x 70 cm

〘상처2〙, 철, 30 x 20 x 60 cm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그 관계 속 사람의 감정을

발(행인의)말

연재 1

표현함으로써, 상처라는 직접적인 이야기로 철에 녹을 내고, 자름으로써

샤르봉의 파리통신 두 번째

상처라는 감정을 표현 그리고 선이 그 위에 쌓여가면서 상처를 치유, 회복,

뭔가 좀 그렇습니까

다시 단단히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6

당신의 문장

9

이선영

허이준

악몽

네 음절로 남은 사랑

27

31

39

샤르봉

이향경

김효석

상처

꿈삶

닳아빠진 대신에 닳아빠진

69

105

119

최신행

이사라

이원희

데칼꼴라주

훔쳐보기

밤의 여로

연작 중 하나 143

박원희 경복고등학교 졸업 수원대학교 조소과 재학 @wonhee0219

147

151

김태인

박미정

연재 2

회귀

forget

문장 모아 소설 해변으로 가요

159

163

175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그 관계 속 사람의 감정을

발(행인의)말

연재 1

표현함으로써, 상처라는 직접적인 이야기로 철에 녹을 내고, 자름으로써

샤르봉의 파리통신 두 번째

상처라는 감정을 표현 그리고 선이 그 위에 쌓여가면서 상처를 치유, 회복,

뭔가 좀 그렇습니까

다시 단단히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6

당신의 문장

9

이선영

허이준

악몽

네 음절로 남은 사랑

27

31

39

샤르봉

이향경

김효석

상처

꿈삶

닳아빠진 대신에 닳아빠진

69

105

119

최신행

이사라

이원희

데칼꼴라주

훔쳐보기

밤의 여로

연작 중 하나 143

박원희 경복고등학교 졸업 수원대학교 조소과 재학 @wonhee0219

147

151

김태인

박미정

연재 2

회귀

forget

문장 모아 소설 해변으로 가요

159

163

175


작품의 제목을 알리는 것이 좋을까?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까? 제목을 알린다면 작품 해석에 어떤 한계가 생기지는 않을까? 제목을 알리지 않는다면 해석이 너무 중구난방이 되지는 않을까? 작가가 작품명처럼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올리자. 아무튼 그리하여 많은 분들이 이번에도 참여해주셨습니다. 작품을 선뜻 내어주신 박원희씨와 박원희씨의 작품을 보고 작업을 해주신 아마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합니다. 실은 아브락사스 가을호는 다른

다른 작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 물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도

분들의 작품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09년 가을호는 김한주가 찍은 사진이었고,

〘상처1〙, 〘상처2〙를 보고 커다란 덩어리에 작은 부속물들이

2010년 가을호는 샤르봉이 그린 그림이었고,

붙어있는 느낌. 그것이 꼭 지구 위에 인간이 쌓아놓은 건축물 같다는

2011년 가을호는 박원희가 만든 조각입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에 상처를 내어놓은 것을 재현했다고나 할까요?

2012년 가을호는 누군가가 그린 만화, 혹은 누군가가 쓴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누군가는 이미

서두가 길군요. 서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것인데. 제가 원래 글을

머릿속으로 정해놓은 분들이 있긴 있습니다만…아, 글이 삼천포로

쓰다보면 말이 길어지거든요. 아, 제 글이야 어찌되었든 결론은, 이번 호도

빠지려하는군요. 이건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고요.)

당신께서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전 사실 박원희씨와는 별다른 친분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입니다. 술 한 번 같이 마셨고요, 뭐 그래요…. 아무튼 그러다

손님이 한 테이블 밖에 없는 낙타에서,

우연히 그 친구가 조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일방적으로,

아발 김종소리.

이런저런 책을 만들고 있고 이번에 새로 나올 책의 주제로 조각을 해보고 싶은데 작품 이미지를 하나 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박원희씨는 흔쾌히 자신의 작품을, 그것도 두 점이나 넘겨주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받은 작품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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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을 알리는 것이 좋을까?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까? 제목을 알린다면 작품 해석에 어떤 한계가 생기지는 않을까? 제목을 알리지 않는다면 해석이 너무 중구난방이 되지는 않을까? 작가가 작품명처럼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올리자. 아무튼 그리하여 많은 분들이 이번에도 참여해주셨습니다. 작품을 선뜻 내어주신 박원희씨와 박원희씨의 작품을 보고 작업을 해주신 아마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합니다. 실은 아브락사스 가을호는 다른

다른 작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 물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도

분들의 작품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09년 가을호는 김한주가 찍은 사진이었고,

〘상처1〙, 〘상처2〙를 보고 커다란 덩어리에 작은 부속물들이

2010년 가을호는 샤르봉이 그린 그림이었고,

붙어있는 느낌. 그것이 꼭 지구 위에 인간이 쌓아놓은 건축물 같다는

2011년 가을호는 박원희가 만든 조각입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에 상처를 내어놓은 것을 재현했다고나 할까요?

2012년 가을호는 누군가가 그린 만화, 혹은 누군가가 쓴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누군가는 이미

서두가 길군요. 서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것인데. 제가 원래 글을

머릿속으로 정해놓은 분들이 있긴 있습니다만…아, 글이 삼천포로

쓰다보면 말이 길어지거든요. 아, 제 글이야 어찌되었든 결론은, 이번 호도

빠지려하는군요. 이건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고요.)

당신께서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전 사실 박원희씨와는 별다른 친분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입니다. 술 한 번 같이 마셨고요, 뭐 그래요…. 아무튼 그러다

손님이 한 테이블 밖에 없는 낙타에서,

우연히 그 친구가 조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일방적으로,

아발 김종소리.

이런저런 책을 만들고 있고 이번에 새로 나올 책의 주제로 조각을 해보고 싶은데 작품 이미지를 하나 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박원희씨는 흔쾌히 자신의 작품을, 그것도 두 점이나 넘겨주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받은 작품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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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좀 그 렇습니까 연재 1

샤르봉의 파리통신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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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좀 그 렇습니까 연재 1

샤르봉의 파리통신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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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의 문장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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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의 문장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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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이 없습니다. {김종소리} 나한테 왜 그랬어요? 그러지 말지. 아픈데. 찌발. {배인환} 사랑과 우정 지저분하다. {쵱과 방패} excerpts from @bonobono_bot 그는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상처투성이였다. 상처를 보면 상처를 본 사람이 놀란다. 상처입은 사람은 벌써 상처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잊을 순 없을 거야. 잊을 순 없을 거야. {박선희}

위태롭게 서있는, 나를 닯은 상처. 혹은 나는 상처. {별둘레} 없어지지 않아. 잊혀지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덤덤해 지는데 잊혀질까봐, 두려운 너는 낡아버린 너는 약속 없이 어느 날 툭, 찌르고 다시 사라져. {이사라}

다음호 vol.12의 주제는 «Earth Lovers 혹은 지구를 위한 아브락사스»입니다.

따끔따끔 혹은 따꼼따꼼 손목에 몽글몽글 맺히는 핏방울.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들. {김의협} 28

p.211와 아브락사스 홈페이지abraxaszine.com에 게재된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고 떠오르는 문장을 홈페이지의 SUBJECT & YOUR SENTENSE 코너에 2012년 1월 10일까지 올려주시면 아브락사스 vol.12 당신의 문장 코너에 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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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이 없습니다. {김종소리} 나한테 왜 그랬어요? 그러지 말지. 아픈데. 찌발. {배인환} 사랑과 우정 지저분하다. {쵱과 방패} excerpts from @bonobono_bot 그는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상처투성이였다. 상처를 보면 상처를 본 사람이 놀란다. 상처입은 사람은 벌써 상처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잊을 순 없을 거야. 잊을 순 없을 거야. {박선희}

위태롭게 서있는, 나를 닯은 상처. 혹은 나는 상처. {별둘레} 없어지지 않아. 잊혀지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덤덤해 지는데 잊혀질까봐, 두려운 너는 낡아버린 너는 약속 없이 어느 날 툭, 찌르고 다시 사라져. {이사라}

다음호 vol.12의 주제는 «Earth Lovers 혹은 지구를 위한 아브락사스»입니다.

따끔따끔 혹은 따꼼따꼼 손목에 몽글몽글 맺히는 핏방울.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들. {김의협} 28

p.211와 아브락사스 홈페이지abraxaszine.com에 게재된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고 떠오르는 문장을 홈페이지의 SUBJECT & YOUR SENTENSE 코너에 2012년 1월 10일까지 올려주시면 아브락사스 vol.12 당신의 문장 코너에 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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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악몽

31


이선영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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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상처.

꿈을 꾼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똑같은 악몽이다.

벌어진 상처의 틈에서 꿈이 자랐다.

자주 계단을 올라간다.

그 꿈은 영원한 악몽일 것이다.

난간이 없다. 심지어 계단도 없다. 공사장 인부들이 사용하는 평편한 널빤지. 꼭대기 층에 우리 집이 있다. 까마득하다. 가족은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다.

눈이 쌓였다. 난 계단을 아버지와 함께 올라간다. 평소에는 잘 몰랐다. "여긴 위험하단다. 눈에 발이 미끄러지니 조심해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눈이 내린다. 그 순간 나와 아버진 미끄러진다. 정경이 흑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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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처.

꿈을 꾼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똑같은 악몽이다.

벌어진 상처의 틈에서 꿈이 자랐다.

자주 계단을 올라간다.

그 꿈은 영원한 악몽일 것이다.

난간이 없다. 심지어 계단도 없다. 공사장 인부들이 사용하는 평편한 널빤지. 꼭대기 층에 우리 집이 있다. 까마득하다. 가족은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다.

눈이 쌓였다. 난 계단을 아버지와 함께 올라간다. 평소에는 잘 몰랐다. "여긴 위험하단다. 눈에 발이 미끄러지니 조심해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눈이 내린다. 그 순간 나와 아버진 미끄러진다. 정경이 흑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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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벼랑으로 미끄러지는 나를 두터운 손으로 잡아주신다.

시계의 분침이 삼십 분을 지난다.

아래는 미묘하게 기분 나쁜 벼랑이다.

다들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나는 게걸음으로 미끄러지면 네 발로 기어서 꼭대기 집에 도착했다.

가난이 보풀처럼 남루하게 어깨에 얹혀있다.

보잘 것 없는 단칸방이지만, 아늑했다.

나는 동생에게 하나 밖에 없는 가죽점퍼를 빌려달란다.

동생과 어머니가 반긴다.

아우는 초라한 거죽대기를 걸치며 날 물끄러미 쳐다보곤 가죽점퍼를

나는 어머니 얼굴을 보자, 어머니가 계단을 오르시는 일상이 걱정이다.

떨어뜨렸다.

올라 온 계단이 아닌 계단 이야기를 했다. 가족 모두 걱정이다.

툭.

가난에 걱정을 더했다. 계단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심장도 툭하고 떨어졌다.

새벽 세 시경.

툭!

그러고 보니 저녁부터 친구 둘이 근처 역 주변에서 기다렸다.

새벽에 난 느긋하게 이런 기이한 상황을 내 편으로 만든다.

전화를 했다.

이게 나란 동물의 이기심이다.

내 번호를 몰라 무작정 기다렸노라 한다. 친구 한 명은 돌아갔다 한다.

꿈속에서 구토를 느꼈다.

내가 친하다고 여긴 친구가 집에 갔다.

타인에게 베푼 진솔한 마음은 때때로 어긋나 당사자를 화나게 한다. 그런 면에서 가족은 기적이다.

"집에 간 자식은 내 번호를 모르더냐?"

기적이여서 이기적인 나에겐 항상 뼈들어진 눈물이다.

십 원짜리 친구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밖으로 나설라치면 세상의 날카로운 시선을 핑계 삼아 가족들의 옷을

"왜 나에게 화를 내냐? 추우니 어서 와라."

벗겼다.

십 원짜리는 낄낄거렸다.

나의 연약함을 핑계 삼아 어마어마한 허세를 부렸다!

단칸방은 춥지만, 전기장판이 깔려있다.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항상 나의 생은 아슬아슬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가족들은 친구가 온다하자 자리를 비켜 준다.

나는 위험을 모르는 머저리에 가족의 손길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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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벼랑으로 미끄러지는 나를 두터운 손으로 잡아주신다.

시계의 분침이 삼십 분을 지난다.

아래는 미묘하게 기분 나쁜 벼랑이다.

다들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나는 게걸음으로 미끄러지면 네 발로 기어서 꼭대기 집에 도착했다.

가난이 보풀처럼 남루하게 어깨에 얹혀있다.

보잘 것 없는 단칸방이지만, 아늑했다.

나는 동생에게 하나 밖에 없는 가죽점퍼를 빌려달란다.

동생과 어머니가 반긴다.

아우는 초라한 거죽대기를 걸치며 날 물끄러미 쳐다보곤 가죽점퍼를

나는 어머니 얼굴을 보자, 어머니가 계단을 오르시는 일상이 걱정이다.

떨어뜨렸다.

올라 온 계단이 아닌 계단 이야기를 했다. 가족 모두 걱정이다.

툭.

가난에 걱정을 더했다. 계단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심장도 툭하고 떨어졌다.

새벽 세 시경.

툭!

그러고 보니 저녁부터 친구 둘이 근처 역 주변에서 기다렸다.

새벽에 난 느긋하게 이런 기이한 상황을 내 편으로 만든다.

전화를 했다.

이게 나란 동물의 이기심이다.

내 번호를 몰라 무작정 기다렸노라 한다. 친구 한 명은 돌아갔다 한다.

꿈속에서 구토를 느꼈다.

내가 친하다고 여긴 친구가 집에 갔다.

타인에게 베푼 진솔한 마음은 때때로 어긋나 당사자를 화나게 한다. 그런 면에서 가족은 기적이다.

"집에 간 자식은 내 번호를 모르더냐?"

기적이여서 이기적인 나에겐 항상 뼈들어진 눈물이다.

십 원짜리 친구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밖으로 나설라치면 세상의 날카로운 시선을 핑계 삼아 가족들의 옷을

"왜 나에게 화를 내냐? 추우니 어서 와라."

벗겼다.

십 원짜리는 낄낄거렸다.

나의 연약함을 핑계 삼아 어마어마한 허세를 부렸다!

단칸방은 춥지만, 전기장판이 깔려있다.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항상 나의 생은 아슬아슬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가족들은 친구가 온다하자 자리를 비켜 준다.

나는 위험을 모르는 머저리에 가족의 손길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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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짐승이다. 아버진 항상 이런 아들에게 손을 내미신다. 상처. 나를 괴롭히는 악몽이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상처다.

벌어진 상처의 틈에서 꿈이 자란다. 그 꿈은 영원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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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짐승이다. 아버진 항상 이런 아들에게 손을 내미신다. 상처. 나를 괴롭히는 악몽이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상처다.

벌어진 상처의 틈에서 꿈이 자란다. 그 꿈은 영원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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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눈이 오는 겨울에 황순원 작가의 어떤 단편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엮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계단을 끊임없이 내려갑니다. —동시에 저는 올라갑니다. 눈이 옵니다. 떠오른 이미지의 편린을 모았습니다.— 생각이란 일정하게 흐르고 고이지만, 표현은 콜라주입니다. 그건 마치 인상파 화가의 붓질 마냥 세상의 특정 부분을 잘라다 글로 붙입니다. 제 글에는 내용이 아니라 인상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선영

네 음절로 남은 사랑 허이준

프랑스어를 전공했고요. 고양이 개그를 할 줄 알아요. 비행기 표 살 돈이 없어서, 지도만 바라 바라봅니다. 단순한 물고기를 좋아합니다. 아, 사람들은 저를 에디터라고 부릅니다 @BBillyBrown 39


어느 눈이 오는 겨울에 황순원 작가의 어떤 단편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엮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계단을 끊임없이 내려갑니다. —동시에 저는 올라갑니다. 눈이 옵니다. 떠오른 이미지의 편린을 모았습니다.— 생각이란 일정하게 흐르고 고이지만, 표현은 콜라주입니다. 그건 마치 인상파 화가의 붓질 마냥 세상의 특정 부분을 잘라다 글로 붙입니다. 제 글에는 내용이 아니라 인상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선영

네 음절로 남은 사랑 허이준

프랑스어를 전공했고요. 고양이 개그를 할 줄 알아요. 비행기 표 살 돈이 없어서, 지도만 바라 바라봅니다. 단순한 물고기를 좋아합니다. 아, 사람들은 저를 에디터라고 부릅니다 @BBillyBrown 39


크남방은 흰 바탕의 그레이의 선이 들어간 것이었고, 중간 중간에 노오 란 사각형의 무늬가 새겨진 것이었다. 그때는 우리는 무작정 떠난 여행 의 길이었고, 중간에 내린 역에서 머물 숙소를 찾느라 들른 진흙탕 길 을 밝고 가다가 맞은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시골 시멘트 기와집이었다. 기왕이면 제대로 된 여행을 하자고, 여행지를 알아보고, 좀 더 계획적 인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먼저 말한 건 나였고, 평상시에 학 교 학자금 대출의 빚을 갚느라, 애들을 가르치느라, 몸이 피곤했던 나 는 여행은 사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귀찮았다. 더 바쁘 “넌 여전히 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아니, 넌 조금이라

게 사는 수연이였지만 무작정 떠난 여행을 동의해 준 것은 수연의 아

도 이해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 넌 결국엔 내 모든 걸 부

량 덕분이었다.

정한 거야. 네가 나를 조금 이해해 보려 했다면 내 이야기에 조금 더 경청하려 했다면 그런 당황하듯, 성급히 셔터를 내리듯, 나에

누군가, 누군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지인들과의 생활에서 혼란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표현하지는 못했을 거야. 나는 그런 너를

기를 겪었던 나로서는, 기억을 더듬어도 아련히 사랄 것 같은 심경이

경멸해.”

었지만 그 익명의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다. 너는 평생 수연과 같은 여

수연의 마지막 말을 오롯이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녀의 마지막 문

자를 만날 수 없다고, 수연과 같이 그릇이 큰 여자에게서 너는 동동 배

자 메시지가 “전화 좀 해.” 이 네 음절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마 그

에 불과하다고, 올곧고 온전하고 평화로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너

네 음절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섬광처럼 깨달

의 얕고, 작은 그릇 때문에 사람에게 상처주지 말라고, 덜 사랑 받아서

을 수밖에 없었다.

불행한 수연보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는 네가 더 불쌍하 다고 했었다. 오랜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잊었고 그

언젠가 빗소리를 들으면서 너는 이런 말을 했었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그건 정말 그래. 네가 초연히 손바닥으로 비를 담으며, 오

친구의 이름은 누군가가 되었다. 우리 사이를 잘 아는 친구였기에 나는 뼛속까지 움찔했었다.

소소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고여서 작은 웅덩 이를 이룰 때. 너의 눈동자는 선연하였다. 나는 체크남방이 길거리에 서 어느 곳에서 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 여자가 그렇게 좋

바다 같은 여자, 수연. 어려운 일을 겪어내고도 힘든 티 한 번 마음 껏 내지 못했던 처연한 여자. 바다 같은 여자가 물같이 사라졌다.

을 수 가 없었다. 자신의 몸의 비율보타 훨씬 큰 치수로 만들어진 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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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남방은 흰 바탕의 그레이의 선이 들어간 것이었고, 중간 중간에 노오 란 사각형의 무늬가 새겨진 것이었다. 그때는 우리는 무작정 떠난 여행 의 길이었고, 중간에 내린 역에서 머물 숙소를 찾느라 들른 진흙탕 길 을 밝고 가다가 맞은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시골 시멘트 기와집이었다. 기왕이면 제대로 된 여행을 하자고, 여행지를 알아보고, 좀 더 계획적 인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먼저 말한 건 나였고, 평상시에 학 교 학자금 대출의 빚을 갚느라, 애들을 가르치느라, 몸이 피곤했던 나 는 여행은 사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귀찮았다. 더 바쁘 “넌 여전히 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아니, 넌 조금이라

게 사는 수연이였지만 무작정 떠난 여행을 동의해 준 것은 수연의 아

도 이해해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 넌 결국엔 내 모든 걸 부

량 덕분이었다.

정한 거야. 네가 나를 조금 이해해 보려 했다면 내 이야기에 조금 더 경청하려 했다면 그런 당황하듯, 성급히 셔터를 내리듯, 나에

누군가, 누군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지인들과의 생활에서 혼란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표현하지는 못했을 거야. 나는 그런 너를

기를 겪었던 나로서는, 기억을 더듬어도 아련히 사랄 것 같은 심경이

경멸해.”

었지만 그 익명의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다. 너는 평생 수연과 같은 여

수연의 마지막 말을 오롯이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녀의 마지막 문

자를 만날 수 없다고, 수연과 같이 그릇이 큰 여자에게서 너는 동동 배

자 메시지가 “전화 좀 해.” 이 네 음절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마 그

에 불과하다고, 올곧고 온전하고 평화로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너

네 음절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섬광처럼 깨달

의 얕고, 작은 그릇 때문에 사람에게 상처주지 말라고, 덜 사랑 받아서

을 수밖에 없었다.

불행한 수연보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는 네가 더 불쌍하 다고 했었다. 오랜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잊었고 그

언젠가 빗소리를 들으면서 너는 이런 말을 했었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그건 정말 그래. 네가 초연히 손바닥으로 비를 담으며, 오

친구의 이름은 누군가가 되었다. 우리 사이를 잘 아는 친구였기에 나는 뼛속까지 움찔했었다.

소소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고여서 작은 웅덩 이를 이룰 때. 너의 눈동자는 선연하였다. 나는 체크남방이 길거리에 서 어느 곳에서 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 여자가 그렇게 좋

바다 같은 여자, 수연. 어려운 일을 겪어내고도 힘든 티 한 번 마음 껏 내지 못했던 처연한 여자. 바다 같은 여자가 물같이 사라졌다.

을 수 가 없었다. 자신의 몸의 비율보타 훨씬 큰 치수로 만들어진 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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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마지막 문자를 남기고 자살했다.

기를 옮기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아니, 매일 아침 도시락 시킬 거야. 나

나는 그 이후로 휴대폰을 바꾸지 못했고, 수신 메세지 보관함에

도 일할 거라서 서로 귀찮잖아. 라고 말했었다. 나는 엄마가 해준 밥 아

저장해둔 그 메시지를 지울 수 가 없었다.

니면 못 먹는데. 그런 자기 엄마가 해준 밥 먹으면 되잖아. 어머니랑 같 이 살까? 이러한 말을 했을 때, 우린 동시에 배시시 웃었다. 나는 우리

그걸 지우면, 우리의 지상에서의 연이 모두 끊겨버릴 거라고 생각 했다. 그건 어떤, 사소하고도 얄팍하고도 비겁한 끈이었다.

가 과연 결혼 할까? 하는 의심쩍기도 하고 민망한 웃음이었고, 수연은 농담에서 터져 나온 웃음 같았다. 그걸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수연의 둔한 구석이었고, 어쩌면 나는 더 그런 방면에서 센스가 뛰어난 사람

그때 우리는 여행을 포기하고 지방의 모텔에 묵었었다. 대실은 만 원이었고, 하루 자는데 삼만 원이었다. 서울보다 싸다고 좋아하고 있었

일지도 몰랐다. 잘났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게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었 기에 나는 아무런 자존감을 갖지 못했다.

고, 우리는 개처럼 섹스를 했다. 내 게걸스런 혀 놀림을 이해해준 것도

사람은 결국은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수연

수연이 뿐이었다.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혀를 숨이 막힌다고 한 것도 수

은 나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했다고는 말할 수 가 없겠다. 수연은 독자적

연이었고, 간지러운 걸 참아가면서 나의 애무를 받아준 것도 수연이었

으로 자기 일을 하는 프리랜서였고 오피스텔에서 머물렀다. 그녀가 살

다. 나는 섹스를 할 때만큼은 변태였고, 그것을 인정한 것은 수연이 죽

고 있는 광화문의 오피스텔이었는데 오피스텔 이름이 티원이었다. 평

고 나서였다. 아프다고 해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강간에 가까운 정사.

일이고 주말이고 밤이 되면 북적이지 않고 사람이 빠져나간 탓에 우린

그걸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 너는 평상시에는 서글서글하고 조용해서

고요한 밤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늘 그런 것만도 아니었는데, 촛불

좋은데 섹스할 때만은 딴 사람 같다고 사정 후 누운 자리에서 말을 했

집회나 월드컵 때는 사람이 많았다. 방음이 잘된 통유리로 휘감아 꺾인

었다. 나직이 읊조리듯 혼자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귀두 부분에 뭍은 정

구조여서 벽 대신, 벽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큰 채광이 그곳

액과 수연의 체액을 닦아내기 위해 샤워실로 직행했고, 발기 되었던 페

을 담당했다. 밤이면 어두운 색의 벽지가, 한 없이 검은 검정 바탕에 주

니스가 단숨에 찬물에서 쪼그라들었다.

홍빛이 서울의 명멸을 같이 했다.

수연은 이미 옷을 입고 있었다. 외출복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입는

편파적인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우리가 같이 있던 어느 곳이든,

편안한 잠옷을 입고, 바다생물의 가운데 갑각류의 그것을 닮은 집게를

롯데월드의 러시아 곡예단의 춤을 보든, 강남역의 씨지브이 영화관에

머리카락에 꼽고 있었다. 여자들이 쓰는 그러한 플라스틱의 집게, 머리

서 영화를 보든, 나는 그녀의 곁을 벗어날 수 없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

를 휘감아 올린 수연의 모습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 결혼하

았던 죄일까. 아니면, 족쇄일까. 그녀를 사랑이나 했을까. 그녀가 진정

면, 나 매일 아침 밥 해줄 수 있어? 라고 나는 말했고, 수연의 주방의 식

한 사랑의 칼 같은 송곳으로 나를 찔렀다. 무자비하게 매일 밤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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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마지막 문자를 남기고 자살했다.

기를 옮기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아니, 매일 아침 도시락 시킬 거야. 나

나는 그 이후로 휴대폰을 바꾸지 못했고, 수신 메세지 보관함에

도 일할 거라서 서로 귀찮잖아. 라고 말했었다. 나는 엄마가 해준 밥 아

저장해둔 그 메시지를 지울 수 가 없었다.

니면 못 먹는데. 그런 자기 엄마가 해준 밥 먹으면 되잖아. 어머니랑 같 이 살까? 이러한 말을 했을 때, 우린 동시에 배시시 웃었다. 나는 우리

그걸 지우면, 우리의 지상에서의 연이 모두 끊겨버릴 거라고 생각 했다. 그건 어떤, 사소하고도 얄팍하고도 비겁한 끈이었다.

가 과연 결혼 할까? 하는 의심쩍기도 하고 민망한 웃음이었고, 수연은 농담에서 터져 나온 웃음 같았다. 그걸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수연의 둔한 구석이었고, 어쩌면 나는 더 그런 방면에서 센스가 뛰어난 사람

그때 우리는 여행을 포기하고 지방의 모텔에 묵었었다. 대실은 만 원이었고, 하루 자는데 삼만 원이었다. 서울보다 싸다고 좋아하고 있었

일지도 몰랐다. 잘났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게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었 기에 나는 아무런 자존감을 갖지 못했다.

고, 우리는 개처럼 섹스를 했다. 내 게걸스런 혀 놀림을 이해해준 것도

사람은 결국은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수연

수연이 뿐이었다.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혀를 숨이 막힌다고 한 것도 수

은 나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했다고는 말할 수 가 없겠다. 수연은 독자적

연이었고, 간지러운 걸 참아가면서 나의 애무를 받아준 것도 수연이었

으로 자기 일을 하는 프리랜서였고 오피스텔에서 머물렀다. 그녀가 살

다. 나는 섹스를 할 때만큼은 변태였고, 그것을 인정한 것은 수연이 죽

고 있는 광화문의 오피스텔이었는데 오피스텔 이름이 티원이었다. 평

고 나서였다. 아프다고 해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강간에 가까운 정사.

일이고 주말이고 밤이 되면 북적이지 않고 사람이 빠져나간 탓에 우린

그걸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 너는 평상시에는 서글서글하고 조용해서

고요한 밤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늘 그런 것만도 아니었는데, 촛불

좋은데 섹스할 때만은 딴 사람 같다고 사정 후 누운 자리에서 말을 했

집회나 월드컵 때는 사람이 많았다. 방음이 잘된 통유리로 휘감아 꺾인

었다. 나직이 읊조리듯 혼자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귀두 부분에 뭍은 정

구조여서 벽 대신, 벽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큰 채광이 그곳

액과 수연의 체액을 닦아내기 위해 샤워실로 직행했고, 발기 되었던 페

을 담당했다. 밤이면 어두운 색의 벽지가, 한 없이 검은 검정 바탕에 주

니스가 단숨에 찬물에서 쪼그라들었다.

홍빛이 서울의 명멸을 같이 했다.

수연은 이미 옷을 입고 있었다. 외출복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입는

편파적인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우리가 같이 있던 어느 곳이든,

편안한 잠옷을 입고, 바다생물의 가운데 갑각류의 그것을 닮은 집게를

롯데월드의 러시아 곡예단의 춤을 보든, 강남역의 씨지브이 영화관에

머리카락에 꼽고 있었다. 여자들이 쓰는 그러한 플라스틱의 집게, 머리

서 영화를 보든, 나는 그녀의 곁을 벗어날 수 없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

를 휘감아 올린 수연의 모습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 결혼하

았던 죄일까. 아니면, 족쇄일까. 그녀를 사랑이나 했을까. 그녀가 진정

면, 나 매일 아침 밥 해줄 수 있어? 라고 나는 말했고, 수연의 주방의 식

한 사랑의 칼 같은 송곳으로 나를 찔렀다. 무자비하게 매일 밤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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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다.

두가 나지 않았다. 내 눈은 밖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뜨고 있어도 내

그녀가 나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친구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녀의 장례식엔 부음을 듣고 곧장 찾아가지는 못했다. 두려움

내면을 향할 때였다. 그러한 시기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수연을 그렇게 보내고도 나는 새로운 여자를 내 안에 채워 넣었다.

때문인 것은 인정하는 바이고, 비겁했다고 말하는 지인들의 이야기엔 묵묵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수연

수연은 얼룩, 문신, 그런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는 어떠

의 사진을 볼 수 가 없었다. 자살이어서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올

한 숙명에 가까운 문제로 남았다. 죄의식보다 죄책감보다 나를 억누르

사람은 다 왔을 만큼 그 어느 장례식보다 숙연하고, 조용한 분위기였

는 것은 수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의 소통의 부재라는 명제였다.

다. 수연의 어머니는 안의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이미 드러누워 계셨

나는 늘 연애시기에 연락에 수동적인 인간이었고, 만남에 있어서

고, 수연의 오빠가 상주였다. 나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거렸지

는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남자를 나쁜 남자라고 일

만 두 다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수연은 해

컬었지만, 나는 나쁜 남자에 걸맞은 외모는 아니었다. 핸썸하지도 않

맑게 웃고 있었다. 결혼은 내년 가을에 하자고, 자신은 봄에 태어났지

았고, 댄디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만 내가 가을을 더 좋아하니 가을에 하자던 수연이었다. 생에 한 번하

생각했다. 하지만 수연은 나에게 맞은 그 어떠한 것을 코드가 맞는다

는 여자에게 꼭 하루뿐인 특별한 결혼식에 하녀처럼 살았어도 그날만

고 했다. 이 세상에는 제짝이 있기는 한가보다. 수연을 떠나보낸 지 한

큼은 순백의 면사포 아래서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공주처럼 아리따워

달 만에 새로운 여자와 잠을 잤을 때, 새로운 여자와 대화를 할 때, 벽

야할 주인공이 되고 싶기도 하겠지만 혼인신고만 하면 된다고 부담 주

과 같은 거리감을 느낄 때, 나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비교하

기 싫다고 말하던 멋도 욕심이라고 생각하던 여자였다. 날 위해 모든

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은 연애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고, 비교하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여자.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여자. ‘내가 뭐라고 너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인정

의 인생 전부를 걸어.’ 나는 그러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너만큼 사랑할

하기 싫어하는 것일까. 더 좋았던 것에 대한 기준치를 세워놓고 그 이

수 없겠다. 누군가를. 나는 살아있지만 너에게 졌다. 모든 것을 항복할

하면 실망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망과, 기쁨의 농락에 의거하여 살아

만큼.

가는 숱한 사람들. 좌절을 맞봐야할 시기라면 그 시간을 묵묵히 버틸 줄 아는 통찰이 없는 한낱 가벼운 사람들이 싫었다. 그랬기에 나는 수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니 회사 동료이자 동기인 진상이가 나와 있

연을 떠나보내고 나서도 비교적 빨리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살

었다. 나를 생각해주어서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아

을 조장하거나, 미화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수연이 떠난 것이 슬프지

무 말 없이 차를 태우고 한강을 지나왔었다. 고속터미널이 근방이어서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산사람은 살아야한다는 본능적인 삶에 대한 욕구

한강이 가까웠다. 나는 한강을 바라보지 않았다. 저 멀리를 바라볼 엄

가 나를 더 식욕을 곧게 하고, 더 열심히 살게 만든다. 그런 것을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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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다.

두가 나지 않았다. 내 눈은 밖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뜨고 있어도 내

그녀가 나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친구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녀의 장례식엔 부음을 듣고 곧장 찾아가지는 못했다. 두려움

내면을 향할 때였다. 그러한 시기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수연을 그렇게 보내고도 나는 새로운 여자를 내 안에 채워 넣었다.

때문인 것은 인정하는 바이고, 비겁했다고 말하는 지인들의 이야기엔 묵묵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수연

수연은 얼룩, 문신, 그런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는 어떠

의 사진을 볼 수 가 없었다. 자살이어서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올

한 숙명에 가까운 문제로 남았다. 죄의식보다 죄책감보다 나를 억누르

사람은 다 왔을 만큼 그 어느 장례식보다 숙연하고, 조용한 분위기였

는 것은 수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의 소통의 부재라는 명제였다.

다. 수연의 어머니는 안의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이미 드러누워 계셨

나는 늘 연애시기에 연락에 수동적인 인간이었고, 만남에 있어서

고, 수연의 오빠가 상주였다. 나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거렸지

는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남자를 나쁜 남자라고 일

만 두 다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수연은 해

컬었지만, 나는 나쁜 남자에 걸맞은 외모는 아니었다. 핸썸하지도 않

맑게 웃고 있었다. 결혼은 내년 가을에 하자고, 자신은 봄에 태어났지

았고, 댄디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만 내가 가을을 더 좋아하니 가을에 하자던 수연이었다. 생에 한 번하

생각했다. 하지만 수연은 나에게 맞은 그 어떠한 것을 코드가 맞는다

는 여자에게 꼭 하루뿐인 특별한 결혼식에 하녀처럼 살았어도 그날만

고 했다. 이 세상에는 제짝이 있기는 한가보다. 수연을 떠나보낸 지 한

큼은 순백의 면사포 아래서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공주처럼 아리따워

달 만에 새로운 여자와 잠을 잤을 때, 새로운 여자와 대화를 할 때, 벽

야할 주인공이 되고 싶기도 하겠지만 혼인신고만 하면 된다고 부담 주

과 같은 거리감을 느낄 때, 나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비교하

기 싫다고 말하던 멋도 욕심이라고 생각하던 여자였다. 날 위해 모든

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은 연애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고, 비교하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여자.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여자. ‘내가 뭐라고 너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인정

의 인생 전부를 걸어.’ 나는 그러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너만큼 사랑할

하기 싫어하는 것일까. 더 좋았던 것에 대한 기준치를 세워놓고 그 이

수 없겠다. 누군가를. 나는 살아있지만 너에게 졌다. 모든 것을 항복할

하면 실망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실망과, 기쁨의 농락에 의거하여 살아

만큼.

가는 숱한 사람들. 좌절을 맞봐야할 시기라면 그 시간을 묵묵히 버틸 줄 아는 통찰이 없는 한낱 가벼운 사람들이 싫었다. 그랬기에 나는 수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니 회사 동료이자 동기인 진상이가 나와 있

연을 떠나보내고 나서도 비교적 빨리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살

었다. 나를 생각해주어서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아

을 조장하거나, 미화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수연이 떠난 것이 슬프지

무 말 없이 차를 태우고 한강을 지나왔었다. 고속터미널이 근방이어서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산사람은 살아야한다는 본능적인 삶에 대한 욕구

한강이 가까웠다. 나는 한강을 바라보지 않았다. 저 멀리를 바라볼 엄

가 나를 더 식욕을 곧게 하고, 더 열심히 살게 만든다. 그런 것을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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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독하다고 폄하했다. 착하디착한 수연이가 누굴 만나 그렇게 됐는

해를 바라봤다. 새로운 여자도 유럽이 처음이라고 했고, 나는 아무 말

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세상에 누구 때문은 없다. 누가 누구의

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새로운 여자가 말이 없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와 연을 맺고 사랑하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

어서 더 멋있다고 했고, 나는 역시나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여자의 어깨

는 친구가 되고, 스승이 되고, 친척이 되는 그러한 모든 것을 공장에서

를 감싸 안았다.

나온 신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노인네들이 말하는 것처럼 팔자 소관이고 운명인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허비한

“자기는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어? 모범생? 아니면 공부 못하

다. 나는 수연이 죽어서 이 세상에 없어도, 극락이든 천당이든 떠났어

는 모범생? 아니면 왕따였거나 날라리였어?”

도, 이 현세를 꾸역꾸역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건강해지기 위해 등산

“나 그냥 공부는 적당히 하고, 운동 좋아하고 그런 학생이었지?”

을 다녔고, 채식위주로 식단을 짰고, 17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그럼 담배는 언제부터 피운 거야?” “아버지가 담뱃가게를 해서 어릴 때부터.”

수연이를 보낸 후 한 달 만에 만난 “새로운 여자” 와 그 이듬해 가

“아버지 알게? 모르게?”

을에 수연과 결혼하기로 했던 그 가을에 남산에서 야외결혼식을 올렸

“당연히 모르게 피웠지. 아버지는 내가 군대 가서 담배 배운 줄 아

고, 펄이 들어간 핑크와 화이트 색의 헬륨가스가 담긴 풍선은 가을 하늘

셔. 아직도 똥 기저귀 끌고 다니는 애기인줄 아신다니까.”

로 가볍게 날아갔다. 새로운 여자의 뱃속에는 이미 3개월 된 태아가 있

“당신 몸에서 나는 냄새가 옷에 배어들어서 좋아. 당신 미소도 좋

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천륜을 어길 수 없어 결혼 승낙을 받았다. 상대

고, 당신 집안 식구들도 다 좋아. 나 예뻐해 주시니까 너무 고맙고

방 집안 운이 좋았던지 재벌 기업의 이사급이었고 나는 행복하고도 익

감사해. 나 정말 시집 잘 간 거 같아. 내 친구들 우리 집이랑 비슷

살스러운 미소로 결혼사진을 찍었다. 피로연은 귀찮게 느껴졌지만 다

비슷하게 가려고 판검사 다 만나보고, 변리사, 계리사 온갖 좋은

음에 있을 신혼여행이 기대됐다. 처음 가보는 유럽이었고, 그리스였다.

사짜 들어가는 직업가진 남자들은 다 만나고 결혼하고 꿰찼는데 행복하다는 애들 아무도 없어.”

첫날밤 아닌 첫날밤에는 우린 갖가지 체위로 섹스를 했고, 새로운 여자는 후배 위를 할 때 “얼굴 좀 보고해.” 라고 가냘픈 신음소리를 냈

새로운 여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어보지 않은 고등학교 때 미

다. 우리는 여행보다 섹스에 빠져있었고, 책에서만 보던 신전은 역시나

팅 얘기며, 수능 보기 전날 안 먹던 미역국은 먹어서 체해 시험을 망쳐

웅장하고 흙먼지를 풍겼지만 우리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어

서 재수 했던 이야기, 재수할 때 좋아했던 삼수하던 오빠에게 고백했

쩌면 사람들이나 시장, 활기차기도 했던 복작거리는 도심이 더 매력적

던 이야기에서, 혼수로 산 가전 제품이야기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

이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에서는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지중

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에게 먼저 질문을 하는 듯싶지만, 나를 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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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독하다고 폄하했다. 착하디착한 수연이가 누굴 만나 그렇게 됐는

해를 바라봤다. 새로운 여자도 유럽이 처음이라고 했고, 나는 아무 말

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세상에 누구 때문은 없다. 누가 누구의

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새로운 여자가 말이 없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와 연을 맺고 사랑하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

어서 더 멋있다고 했고, 나는 역시나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여자의 어깨

는 친구가 되고, 스승이 되고, 친척이 되는 그러한 모든 것을 공장에서

를 감싸 안았다.

나온 신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노인네들이 말하는 것처럼 팔자 소관이고 운명인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허비한

“자기는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어? 모범생? 아니면 공부 못하

다. 나는 수연이 죽어서 이 세상에 없어도, 극락이든 천당이든 떠났어

는 모범생? 아니면 왕따였거나 날라리였어?”

도, 이 현세를 꾸역꾸역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건강해지기 위해 등산

“나 그냥 공부는 적당히 하고, 운동 좋아하고 그런 학생이었지?”

을 다녔고, 채식위주로 식단을 짰고, 17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그럼 담배는 언제부터 피운 거야?” “아버지가 담뱃가게를 해서 어릴 때부터.”

수연이를 보낸 후 한 달 만에 만난 “새로운 여자” 와 그 이듬해 가

“아버지 알게? 모르게?”

을에 수연과 결혼하기로 했던 그 가을에 남산에서 야외결혼식을 올렸

“당연히 모르게 피웠지. 아버지는 내가 군대 가서 담배 배운 줄 아

고, 펄이 들어간 핑크와 화이트 색의 헬륨가스가 담긴 풍선은 가을 하늘

셔. 아직도 똥 기저귀 끌고 다니는 애기인줄 아신다니까.”

로 가볍게 날아갔다. 새로운 여자의 뱃속에는 이미 3개월 된 태아가 있

“당신 몸에서 나는 냄새가 옷에 배어들어서 좋아. 당신 미소도 좋

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천륜을 어길 수 없어 결혼 승낙을 받았다. 상대

고, 당신 집안 식구들도 다 좋아. 나 예뻐해 주시니까 너무 고맙고

방 집안 운이 좋았던지 재벌 기업의 이사급이었고 나는 행복하고도 익

감사해. 나 정말 시집 잘 간 거 같아. 내 친구들 우리 집이랑 비슷

살스러운 미소로 결혼사진을 찍었다. 피로연은 귀찮게 느껴졌지만 다

비슷하게 가려고 판검사 다 만나보고, 변리사, 계리사 온갖 좋은

음에 있을 신혼여행이 기대됐다. 처음 가보는 유럽이었고, 그리스였다.

사짜 들어가는 직업가진 남자들은 다 만나고 결혼하고 꿰찼는데 행복하다는 애들 아무도 없어.”

첫날밤 아닌 첫날밤에는 우린 갖가지 체위로 섹스를 했고, 새로운 여자는 후배 위를 할 때 “얼굴 좀 보고해.” 라고 가냘픈 신음소리를 냈

새로운 여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어보지 않은 고등학교 때 미

다. 우리는 여행보다 섹스에 빠져있었고, 책에서만 보던 신전은 역시나

팅 얘기며, 수능 보기 전날 안 먹던 미역국은 먹어서 체해 시험을 망쳐

웅장하고 흙먼지를 풍겼지만 우리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어

서 재수 했던 이야기, 재수할 때 좋아했던 삼수하던 오빠에게 고백했

쩌면 사람들이나 시장, 활기차기도 했던 복작거리는 도심이 더 매력적

던 이야기에서, 혼수로 산 가전 제품이야기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

이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에서는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지중

녀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에게 먼저 질문을 하는 듯싶지만, 나를 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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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싶은 듯 하나 결국은 자기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였다. 나는 그러한 욕

았고, 새로운 여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장인과, 장모가 차려

구를 묵묵히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나에게 수연 이후로 사랑은 믿지 않

준 다과에 녹차를 마시면서 새로운 여자의 이모와 처 이모부와 대화를

는, 믿는 자체가 없어져 버려 그 빈 검고 어두운 공간에 아무런 감정을

나눴다. 어른들이 많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결혼에 대한 실감

두지 않으니까 편했다. 정말 놓는 게 이런 거구나 싶게, 마음이 평온해

으로 얼떨떨한 기분이 남아있을 때였다. 녹차가 기관지를 마르게 했다.

지기 시작했다. 타인들에게 견주자면 삶에 굳은살이 많이 박이기 시작

기름진 약과와 견과류를 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가족들은 별

할 나이였다. 늦게 가는 장가라서 어머니는 좋아했지만 호들갑스럽지

말이 없었다. 사위가 왔다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아직까

는 않으셨다. 수연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알아보지

지 탐색하는 기분까지 엇돌았다. 회사는 장인의 기업에서 계열사로 있

않아서 모르지만, 나는 그것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일로도 버

는 학습지 출판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금주까지만 쉬고 다음 주 월요

거웠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버겁기까지 했다.

일부터 출근하면 된다고 했고, 주소지를 적어주셨다. 광화문에 그 회사

아마 진정 사랑했다면 힘들더라도 그 모든 것을 감내할 만큼의 위로가

는 있었다. 그 학습지 출판사는 방문교육을 하는 곳은 아니었고, 중, 고

되었겠지, 그런 것 때문에 다들 사랑의 힘을 찬탄하는 것일는지 모르지

등학생에게 알맞은 입시 교육을 할 수 있게 하는 꽤나 이름이 있는 출

하면서 그리스의 이름 모를 해변을 걸었다. 바다거품이 희고 액체가 푸

판사였다. 영업팀도 기획팀도 아니었고, 직책이 과장이라는 것 밖에는

석거리게 느껴지는 소리로 사그라졌다. 새로운 여자는 나의 배를 감싸

몰랐다. 따로 과장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실장이 많은 도움을 줄 것

안고 나를 바라보면서 걸었다. 행복한 모양이었다.

이라고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과장은 평사원이랑 같은 사무실 에서 책상을 따로 둔 정도이었지만 과장실이라는 명칭이 생소했다. 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항공사에 나눠준

장이면 또 모를까.

모포를 덮고 서로의 어깨를 포갠 채 잠이 들었다. 시차적응이 어렵진 않았다. 영종도 국제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석계역을 향했다.

연봉이 사천이 훨씬 안 되던 전에 회사에서 연봉이 육천이 넘는

새로운 여자는 친정부터 가고 싶다고 했고, 덕분에 나는 새로운 여자

든든한 빽이 있는 회사에 출근하게 된다는 것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

의 이모부와, 이모까지 만나 뵙게 되었다. 결혼 전에 가족식사에서 한

은 티원 오피스텔 때문이었다. 일민미술관에서 동아일보 건물 사이에

번, 결혼식장에서 한 번이었으니까 세 번째이었지만 앉은 자리가 여전

있는 그 오피스텔은 마치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겹겹의 고층 건물

히 불편했다. 디스크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어른들과 함께

사이에서 움실거렸다. 나는 월요일의 아침을 그렇게 맞이했다. 가을이

있을 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허리가 곧게 펴지고, 편안한 자세였는

지나 겨울이 온 기분이었다. 그 해 들어 처음으로 맞는 입김이었고, 옷

데 어른들은 늘 편하게 하라고 했고, 나는 또 역시나 이게 편하다는 말

깃을 여미고 고개가 움츠러드는 추위였다. 예전과 같이 지하철을 타

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허리 병이 있는 전력은 말하지 않

고 다녔지만 걸음은 가벼웠고 마음은 무거웠다. 얼굴을 어떤 식으로 들

48

49


고 싶은 듯 하나 결국은 자기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였다. 나는 그러한 욕

았고, 새로운 여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장인과, 장모가 차려

구를 묵묵히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나에게 수연 이후로 사랑은 믿지 않

준 다과에 녹차를 마시면서 새로운 여자의 이모와 처 이모부와 대화를

는, 믿는 자체가 없어져 버려 그 빈 검고 어두운 공간에 아무런 감정을

나눴다. 어른들이 많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결혼에 대한 실감

두지 않으니까 편했다. 정말 놓는 게 이런 거구나 싶게, 마음이 평온해

으로 얼떨떨한 기분이 남아있을 때였다. 녹차가 기관지를 마르게 했다.

지기 시작했다. 타인들에게 견주자면 삶에 굳은살이 많이 박이기 시작

기름진 약과와 견과류를 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가족들은 별

할 나이였다. 늦게 가는 장가라서 어머니는 좋아했지만 호들갑스럽지

말이 없었다. 사위가 왔다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아직까

는 않으셨다. 수연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알아보지

지 탐색하는 기분까지 엇돌았다. 회사는 장인의 기업에서 계열사로 있

않아서 모르지만, 나는 그것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일로도 버

는 학습지 출판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금주까지만 쉬고 다음 주 월요

거웠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버겁기까지 했다.

일부터 출근하면 된다고 했고, 주소지를 적어주셨다. 광화문에 그 회사

아마 진정 사랑했다면 힘들더라도 그 모든 것을 감내할 만큼의 위로가

는 있었다. 그 학습지 출판사는 방문교육을 하는 곳은 아니었고, 중, 고

되었겠지, 그런 것 때문에 다들 사랑의 힘을 찬탄하는 것일는지 모르지

등학생에게 알맞은 입시 교육을 할 수 있게 하는 꽤나 이름이 있는 출

하면서 그리스의 이름 모를 해변을 걸었다. 바다거품이 희고 액체가 푸

판사였다. 영업팀도 기획팀도 아니었고, 직책이 과장이라는 것 밖에는

석거리게 느껴지는 소리로 사그라졌다. 새로운 여자는 나의 배를 감싸

몰랐다. 따로 과장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실장이 많은 도움을 줄 것

안고 나를 바라보면서 걸었다. 행복한 모양이었다.

이라고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과장은 평사원이랑 같은 사무실 에서 책상을 따로 둔 정도이었지만 과장실이라는 명칭이 생소했다. 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항공사에 나눠준

장이면 또 모를까.

모포를 덮고 서로의 어깨를 포갠 채 잠이 들었다. 시차적응이 어렵진 않았다. 영종도 국제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석계역을 향했다.

연봉이 사천이 훨씬 안 되던 전에 회사에서 연봉이 육천이 넘는

새로운 여자는 친정부터 가고 싶다고 했고, 덕분에 나는 새로운 여자

든든한 빽이 있는 회사에 출근하게 된다는 것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

의 이모부와, 이모까지 만나 뵙게 되었다. 결혼 전에 가족식사에서 한

은 티원 오피스텔 때문이었다. 일민미술관에서 동아일보 건물 사이에

번, 결혼식장에서 한 번이었으니까 세 번째이었지만 앉은 자리가 여전

있는 그 오피스텔은 마치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겹겹의 고층 건물

히 불편했다. 디스크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어른들과 함께

사이에서 움실거렸다. 나는 월요일의 아침을 그렇게 맞이했다. 가을이

있을 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허리가 곧게 펴지고, 편안한 자세였는

지나 겨울이 온 기분이었다. 그 해 들어 처음으로 맞는 입김이었고, 옷

데 어른들은 늘 편하게 하라고 했고, 나는 또 역시나 이게 편하다는 말

깃을 여미고 고개가 움츠러드는 추위였다. 예전과 같이 지하철을 타

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허리 병이 있는 전력은 말하지 않

고 다녔지만 걸음은 가벼웠고 마음은 무거웠다. 얼굴을 어떤 식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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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회사 문을 열어야할까. ‘실장에게 휘둘리면 안 되는데…….’, ‘출판

깊은 감색의 수렁에 빠져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옷 바지에

사 일은 처음인데…….’ 하는 걱정거리가 머릿속을 꽉 채웠다. 수연이

고무줄을 잡고 음경을 손아귀로 세게 잡았다. 나는 격하게 수연의 얼굴

살던 오피스텔은 지금 아마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수연은 오

을 떠올리면서 자위를 했었다. 티슈도 없이 사정을 마치고 끈적끈적하

피스텔 안에서 약을 복용한 채 떠났다. 손목을 긋지도, 목을 매지도 않

고 미끌미끌한 손과 사타구니 부분의 정액을 닦아낼 시간도 없이 휴대

았다. 약을 무려 스물한 알이나 먹었다고 했다. 어떤 약인지는 물어보

폰에서 문자 메세지가 도착했다는 여성의 목소리 들렸다. 내 심장을 덜

지 않았고,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 수연의 어머니는 제주에 있는 수연

커덩 내려놓게 만드는 목소리였지만 난 그 휴대폰 없이는 하루도 살수

의 외삼촌댁으로 떠났다고 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는 데에는 채 반년도

없는 사회인이었다. 손을 씻지 않고 정액이 묻지 않은 손가락과 손톱으

걸리지 않았다. 사십구재를 기다리는 동안 수연의 어머니에게서 한 번

로 전화기의 폴더를 열었다. 새로운 여자였다. 나이트에서 만난 여자가

전화가 왔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전화기의 액정 화면을 바라봤다. 정적

굵직한 출판사 이사급의 여자라니, 내가 뭐가 좋다고 매일 연락을 해

의 시간, 영혼이 느껴지던 몇 초의 시간……. “전화 받겠습니다. 하영택

대다니, 엄마가 재미삼아 봐온 사주팔자가 맞는 거 갰거니 했다. 예전

입니다.” 부러 사무적인 대화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목소리가

에 아침 밥상을 차려주시며 다른 건 몰라도 여자 복 하나는 타고 났다

건강하군.”으로 시작된 장엄한 목소리에 나는 진작 기가 눌려있었다.

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눈가의 주름이 떠올랐다. 선홍빛 잇몸과 돌출

몸이 배배 꼬이고 약지에서 경미한 경련이 일어났다. “다른 말은 필요

되어진 이의 생김새들도. 만나자는 약속을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없고, 수연이랑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네, 결론만 말하고 끊

혼자 있기가 무섭고, 외로웠다.

겠네. 사십구재 때는 찾아오지 말게. 다 잊고 잘살라는 말은 못하겠네.” 라고 뚝 전화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하니 우리 아파트의 벽지

어머니는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말을 걸지 못하셨다. 다른

를 바라봤다. 연보라색과 회색이 섞인 유럽 어느 미술사조의 양식을

어머니들이 자식이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더 다감하게 다가가거

따다 만든 패턴의 벽지가 어두운 거실에서 을씨년스러워 보이기도 하

나 간섭하는 것과 달리 겁에 질린 듯, 전염성이 있는 병자를 대하듯 철

고 괴기스럽기도 했다. 앤틱한 가구를 좋아하는 어머니 때문에 불을 꺼

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셨다. 그것을 은연중에 어머니는 미안해 하셨

두면 늘 음산한 집안에서 나는 가끔 무서웠다. 진짜 가죽으로 만들었다

다. 결혼식 전날 나는 투정을 부리는 막내아들처럼 부모님과의 대화를

는 소파에 누워서 멍하니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봤다. 때이른 일요일 오

나누면서 어머니가 내가 중대하고 안 좋은 일에 빠질 때마다 신경써주

전이었다. 가족들은 교회에 가고 없었다. 나는 그날 교회에는 가지 않

지 못했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자식을 둘을

았다. 전화기를 소파에 아래 틈새에 두고 나는 15분가량 멍하니 수연

둔 오십대의 아줌마가 아니라, 모성이 넘치는 어미가 아니라, 소녀감성

의 얼굴을 떠올려보려다가 얼굴이 기억나지 않고 목소리만 끼익 귀를

이라고 말씀하셨다. 겁이 나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다고 자신이 왜

비집고 오는 것 같아 소파의 등받이 부분의 틈을 바라봤다. 감색보다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중얼중얼 하셨다.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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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회사 문을 열어야할까. ‘실장에게 휘둘리면 안 되는데…….’, ‘출판

깊은 감색의 수렁에 빠져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옷 바지에

사 일은 처음인데…….’ 하는 걱정거리가 머릿속을 꽉 채웠다. 수연이

고무줄을 잡고 음경을 손아귀로 세게 잡았다. 나는 격하게 수연의 얼굴

살던 오피스텔은 지금 아마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수연은 오

을 떠올리면서 자위를 했었다. 티슈도 없이 사정을 마치고 끈적끈적하

피스텔 안에서 약을 복용한 채 떠났다. 손목을 긋지도, 목을 매지도 않

고 미끌미끌한 손과 사타구니 부분의 정액을 닦아낼 시간도 없이 휴대

았다. 약을 무려 스물한 알이나 먹었다고 했다. 어떤 약인지는 물어보

폰에서 문자 메세지가 도착했다는 여성의 목소리 들렸다. 내 심장을 덜

지 않았고,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 수연의 어머니는 제주에 있는 수연

커덩 내려놓게 만드는 목소리였지만 난 그 휴대폰 없이는 하루도 살수

의 외삼촌댁으로 떠났다고 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는 데에는 채 반년도

없는 사회인이었다. 손을 씻지 않고 정액이 묻지 않은 손가락과 손톱으

걸리지 않았다. 사십구재를 기다리는 동안 수연의 어머니에게서 한 번

로 전화기의 폴더를 열었다. 새로운 여자였다. 나이트에서 만난 여자가

전화가 왔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전화기의 액정 화면을 바라봤다. 정적

굵직한 출판사 이사급의 여자라니, 내가 뭐가 좋다고 매일 연락을 해

의 시간, 영혼이 느껴지던 몇 초의 시간……. “전화 받겠습니다. 하영택

대다니, 엄마가 재미삼아 봐온 사주팔자가 맞는 거 갰거니 했다. 예전

입니다.” 부러 사무적인 대화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목소리가

에 아침 밥상을 차려주시며 다른 건 몰라도 여자 복 하나는 타고 났다

건강하군.”으로 시작된 장엄한 목소리에 나는 진작 기가 눌려있었다.

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눈가의 주름이 떠올랐다. 선홍빛 잇몸과 돌출

몸이 배배 꼬이고 약지에서 경미한 경련이 일어났다. “다른 말은 필요

되어진 이의 생김새들도. 만나자는 약속을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없고, 수연이랑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네, 결론만 말하고 끊

혼자 있기가 무섭고, 외로웠다.

겠네. 사십구재 때는 찾아오지 말게. 다 잊고 잘살라는 말은 못하겠네.” 라고 뚝 전화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하니 우리 아파트의 벽지

어머니는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말을 걸지 못하셨다. 다른

를 바라봤다. 연보라색과 회색이 섞인 유럽 어느 미술사조의 양식을

어머니들이 자식이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더 다감하게 다가가거

따다 만든 패턴의 벽지가 어두운 거실에서 을씨년스러워 보이기도 하

나 간섭하는 것과 달리 겁에 질린 듯, 전염성이 있는 병자를 대하듯 철

고 괴기스럽기도 했다. 앤틱한 가구를 좋아하는 어머니 때문에 불을 꺼

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셨다. 그것을 은연중에 어머니는 미안해 하셨

두면 늘 음산한 집안에서 나는 가끔 무서웠다. 진짜 가죽으로 만들었다

다. 결혼식 전날 나는 투정을 부리는 막내아들처럼 부모님과의 대화를

는 소파에 누워서 멍하니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봤다. 때이른 일요일 오

나누면서 어머니가 내가 중대하고 안 좋은 일에 빠질 때마다 신경써주

전이었다. 가족들은 교회에 가고 없었다. 나는 그날 교회에는 가지 않

지 못했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자식을 둘을

았다. 전화기를 소파에 아래 틈새에 두고 나는 15분가량 멍하니 수연

둔 오십대의 아줌마가 아니라, 모성이 넘치는 어미가 아니라, 소녀감성

의 얼굴을 떠올려보려다가 얼굴이 기억나지 않고 목소리만 끼익 귀를

이라고 말씀하셨다. 겁이 나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다고 자신이 왜

비집고 오는 것 같아 소파의 등받이 부분의 틈을 바라봤다. 감색보다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중얼중얼 하셨다.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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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는 관심 없다는 듯이 곶감을 드시고 계셨다. 여

운 여자의 적극적인 대쉬가 싫지만은 않았다. 혼자 있으면 미쳐버릴 것

전히 아홉시 뉴스데스크에서는 안 좋은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감미로운 충전이랄까, 활력소 같은 것이 필요했다. 이기적 이었지만 새로운 여자를 받아들이는 게 낮다는 이성적인 사고가, 감성

화창한 명동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다.

을 컨트롤 했다. 어쩌면 살기 위함이었을는지도 몰랐다. 기억에 의존하

창가 쪽 자리에 립이 나왔고, 버터와 함께 앙증맞게 칼집이 들어간 감

는 한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여자의 영향이 컸다. 아무

자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있었다. 소스는 두 종류가 나와 있었고, 양

말 없이 내 곁에 있어주던 그녀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福이었다. 가족

송이버섯 스프도 알맞은 온도로 데워져있었다. 내가 좀 늦었었고, 샤워

의 가치관과 달리 종교를 믿지 않던 내가 무언가를 믿고 싶다는 생각

를 하고 나서 뿌린 향수 때문에 음식 냄새가 좀 죽었다. 곧 음식 냄새가

을 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고, 그 해 겨울을 온기 있게 보낼 수 있던

향수를 이겨낼 만큼 자글자글하게 풍겨져왔지만 먼저 시킨 음식이 맘

것도 새로운 여자 덕분이었다. 새로운 여자는 운전을 잘 했고, 맛있는

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곁에 있어주는 새로운 여자를 멀리 할 수는

음식을 파는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양평에는 따로 펜션도 있었고, 우리

없었다. 누가 봐도 복스럽게 생긴 새로운 여자는 가슴도 큰데다 엉덩

는 그곳에 자주 가서 사랑을 나눴다. 섹스 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당

이 또한 풍만했다. 돈도 많고, 밝고, 나보다 잘나지도 똑똑하지도 않는

신 같은 사람은 없어” 나직이 말했다. 장작이 타들어나는 벽난로 앞에

여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매사가 긍정적인 여자. 나는 자연히 소

서 우리는 이불을 덮고 은박지에서 호박고구마를 나눠먹었다. 나는 나

연과 비교가 아닌 대조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워 적

같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냐고 다시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금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만져 볼 수없는 강남의 삼십삼 평짜리 신혼

잠자리 직후였으니 섹스테크닉이겠거니 했다. 나는 수연으로 인한 모

집을 갖기엔 우리 둘의 사정은 무리였고, 마음이 맞고 서로를 편하게

든 어수선해지고 공허한 마음을 술과 섹스로 달랬다. 그러는 사이 새

만 할 수 있다면 열정적인 사랑 따윈 필요 없었다. 사소한 오해로 열정

로운 여자는 간편한 임신테스트기로 내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길

적인 사랑의 심장은 반쪽이 터무니없이 잘려나갔고, 나는 사고를 제대

들려줬고, 내심 긴장했지만 거부반응 또한 없었기에 얼떨떨한 얼굴로

로 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을 받았었다. 말이 없어진 것은 천부적인 것

고맙다고 다정스럽게 배를 만졌다. 거침없이 날아오는 축구공으로 귀

이 아니라 트마우마로 인한 기억상실에 다름없었다. 새로운 여자는 가

싸대기를 맞은 기분이었다. 어서 가서 거울속의 내 모습을 확인해 보고

슴골이 깊게 파인 얇은 니트를 입고 있었다. 저 의상을 니트라고 해야

싶었다.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면서 내가 한 아이에 아빠가 된다는 것을

하는지. 솜털, 어린 병아리의 털 같은 것들이 붙어있다고 해야 하나, 아

여러 번 입으로 마음속으로 상기했다. 내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 아

무튼 그냥 빨면 줄어서 녹아들듯 부드러운 소재의 옷을 입었다. 고급스

빠가 된다.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이. 수연의 뱃속에도 내 아이가

런 골드가 잘 어울리는 새로운 여자의 가슴 사이에는 끊어질 듯 한 얇

있었다.

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데이트 한지 얼마 안 되어 어색했지만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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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생긴 시점은 광복절 전후였다. 가임기가 그때였고, 질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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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는 관심 없다는 듯이 곶감을 드시고 계셨다. 여

운 여자의 적극적인 대쉬가 싫지만은 않았다. 혼자 있으면 미쳐버릴 것

전히 아홉시 뉴스데스크에서는 안 좋은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감미로운 충전이랄까, 활력소 같은 것이 필요했다. 이기적 이었지만 새로운 여자를 받아들이는 게 낮다는 이성적인 사고가, 감성

화창한 명동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다.

을 컨트롤 했다. 어쩌면 살기 위함이었을는지도 몰랐다. 기억에 의존하

창가 쪽 자리에 립이 나왔고, 버터와 함께 앙증맞게 칼집이 들어간 감

는 한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여자의 영향이 컸다. 아무

자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있었다. 소스는 두 종류가 나와 있었고, 양

말 없이 내 곁에 있어주던 그녀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福이었다. 가족

송이버섯 스프도 알맞은 온도로 데워져있었다. 내가 좀 늦었었고, 샤워

의 가치관과 달리 종교를 믿지 않던 내가 무언가를 믿고 싶다는 생각

를 하고 나서 뿌린 향수 때문에 음식 냄새가 좀 죽었다. 곧 음식 냄새가

을 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고, 그 해 겨울을 온기 있게 보낼 수 있던

향수를 이겨낼 만큼 자글자글하게 풍겨져왔지만 먼저 시킨 음식이 맘

것도 새로운 여자 덕분이었다. 새로운 여자는 운전을 잘 했고, 맛있는

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곁에 있어주는 새로운 여자를 멀리 할 수는

음식을 파는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양평에는 따로 펜션도 있었고, 우리

없었다. 누가 봐도 복스럽게 생긴 새로운 여자는 가슴도 큰데다 엉덩

는 그곳에 자주 가서 사랑을 나눴다. 섹스 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당

이 또한 풍만했다. 돈도 많고, 밝고, 나보다 잘나지도 똑똑하지도 않는

신 같은 사람은 없어” 나직이 말했다. 장작이 타들어나는 벽난로 앞에

여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매사가 긍정적인 여자. 나는 자연히 소

서 우리는 이불을 덮고 은박지에서 호박고구마를 나눠먹었다. 나는 나

연과 비교가 아닌 대조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워 적

같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냐고 다시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금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만져 볼 수없는 강남의 삼십삼 평짜리 신혼

잠자리 직후였으니 섹스테크닉이겠거니 했다. 나는 수연으로 인한 모

집을 갖기엔 우리 둘의 사정은 무리였고, 마음이 맞고 서로를 편하게

든 어수선해지고 공허한 마음을 술과 섹스로 달랬다. 그러는 사이 새

만 할 수 있다면 열정적인 사랑 따윈 필요 없었다. 사소한 오해로 열정

로운 여자는 간편한 임신테스트기로 내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길

적인 사랑의 심장은 반쪽이 터무니없이 잘려나갔고, 나는 사고를 제대

들려줬고, 내심 긴장했지만 거부반응 또한 없었기에 얼떨떨한 얼굴로

로 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을 받았었다. 말이 없어진 것은 천부적인 것

고맙다고 다정스럽게 배를 만졌다. 거침없이 날아오는 축구공으로 귀

이 아니라 트마우마로 인한 기억상실에 다름없었다. 새로운 여자는 가

싸대기를 맞은 기분이었다. 어서 가서 거울속의 내 모습을 확인해 보고

슴골이 깊게 파인 얇은 니트를 입고 있었다. 저 의상을 니트라고 해야

싶었다.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면서 내가 한 아이에 아빠가 된다는 것을

하는지. 솜털, 어린 병아리의 털 같은 것들이 붙어있다고 해야 하나, 아

여러 번 입으로 마음속으로 상기했다. 내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 아

무튼 그냥 빨면 줄어서 녹아들듯 부드러운 소재의 옷을 입었다. 고급스

빠가 된다.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이. 수연의 뱃속에도 내 아이가

런 골드가 잘 어울리는 새로운 여자의 가슴 사이에는 끊어질 듯 한 얇

있었다.

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데이트 한지 얼마 안 되어 어색했지만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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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생긴 시점은 광복절 전후였다. 가임기가 그때였고, 질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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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했다. 내 불찰이었고, 수술비 삼십만 원이 없어서 우리는 서울

배를 물려고 했으나 라이터가 찾아지질 않았다. 좆같은 기분이라고 생

근처이자 보험 없이도 낙태수술이 되는 B시를 찾았다. 빨간색글씨로

각했지만 욕을 발설하지는 않았다. 이름도 없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소

간판이 된 곳이었고, 조명은 정육점 조명처럼 부연 분홍색이 감돌았다.

주를 샀다. 그 땐 소주 가격이 천 삼백 원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깡 소

사층이었지만 우리가 그곳을 올라가기는 쉽지가 않았다. 수연은 여러

주를 들이켰다. 알코올이 목에 따뜻하게 넘어갔다. 뒷맛은 썼던 걸로

번 서럽게 울었다. 격렬히 흐느끼며 무섭다고도 말했다. 내 몸이 아니

기억한다. 산부인과의 꼭대기엔 어린 사철나무가 화분에 담겨있는지

라 내 아이의 몸과 마음이 무섭다고, 아이가 지워지는 게, 찢겨나가는

여러 개가 성곽처럼 띄엄띄엄 채워져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

게 무섭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아이는 내가 제대 직후여서 오 개월

았다. 하늘은 검지 않았고, 별 또한 없었다. 진보라색과 진회색의 구름

이 넘어있었다. 배가 봉긋했고, 태아가 발을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배

이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다. 도로는 비에 축축이 젖어있었다. 취기가 빨

를 사선으로 긋듯이 움직이는 태동이 느껴진다고도 했었다. 수술이 불

리 올랐다. 수연은 마취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가위질이 아닌 흡입기로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정상적인 산부인과에 갈 수 없었다. 의료

아이는 두 차례로 몸이 잘려나갈 것이다. 의사는 다음날 수연은 한 번

보험이나, 수술기록이 남지 않는 곳은 단속이 심할 때라 많지 않았다.

더 불렀다.

물어물어 온 곳이었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형편은 아니었다. 수 연이네면 모를까. 우리 집은 그럴 형편은 정말 아니었다. 형편보다 그

수연을 부축하면서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가겠지?” 라고 말하고

때의 나의 인격이 그것밖엔 안 됐다.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을 만큼 야

나서, “거긴 입원실도 없냐?”며 타박한 것이 나였다. 수연은 나를 상대

비해져있었다. 새벽 1시에 택시마저 잡히기 힘든 B시의 번화가의 거리

할 기운도 없다는 듯이 죽은 듯이 날 쳐다보았다. “업을까?” 라고 말했

였다. 아무도 우릴 쳐다보지 않았다. 길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은 무관심

지만, 업으면 엄청 더 아플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자 나는 아

그 자체였고, 나는 수연의 손목을 강하게 끌어 잡았다. “지금 아니면 무

무 말 없이 택시를 잡았다. 영등포로 가주세요. 택시비는 만원이 족히

조건 낳아야해. 너 나 사랑해? 나 너한테 양육비 같은 거 못 준다. 이제

넘게 나왔다. 우리는 모텔에서 애를 만들어 놓고도, 다시 갈 곳이 없어

제대해서 학교는 어떻게 다녀, 학교를 다녀야 취업을 하고, 그때야 정

서 모텔로 향했다. 수연은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일말의

기적인 돈을 벌 거 아냐.” 수연은 입술을 앞니로 앙다문 채 나를 노려

양심은 있는 듯, 죄인처럼 침대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무서워서 잠에

봤다. “콘돔 안 쓴 게 누군데 그래? 너 정말 쓰레기야. 내 발로 걸어 들

서 깬 건 오히려 나였다. 밀려드는 죄의식을 그때까지는 잘 몰랐다. 그

어가. 잡지 마”. 수연은 물이 빠진 청바지에 흰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것은 서막에 불과했고, 잔인한 사랑의 증거는 산산이 말라가는 중이다.

늘어진 흰 면 티에는 영어의 꼬부랑글씨가 휘갈겨져있었다. 집에서 오

세상의 바람에, 세상의 악을 가진 인간들에게 의해서…….

랫동안 입었던 옷이었다. 수연의 긴 머리의 뒤를 바라보며 나는 수연을

잠이 깼을 때 수연의 손을 보았다. 오목한 손톱을 가진 가녀린 손,

다부지게 쳐다봤었다. 나 또한 편안한 감정은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담

주름은 분홍색으로 접혀진 자국으로만 보이는 새의 발 같았던 수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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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을 했다. 내 불찰이었고, 수술비 삼십만 원이 없어서 우리는 서울

배를 물려고 했으나 라이터가 찾아지질 않았다. 좆같은 기분이라고 생

근처이자 보험 없이도 낙태수술이 되는 B시를 찾았다. 빨간색글씨로

각했지만 욕을 발설하지는 않았다. 이름도 없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소

간판이 된 곳이었고, 조명은 정육점 조명처럼 부연 분홍색이 감돌았다.

주를 샀다. 그 땐 소주 가격이 천 삼백 원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깡 소

사층이었지만 우리가 그곳을 올라가기는 쉽지가 않았다. 수연은 여러

주를 들이켰다. 알코올이 목에 따뜻하게 넘어갔다. 뒷맛은 썼던 걸로

번 서럽게 울었다. 격렬히 흐느끼며 무섭다고도 말했다. 내 몸이 아니

기억한다. 산부인과의 꼭대기엔 어린 사철나무가 화분에 담겨있는지

라 내 아이의 몸과 마음이 무섭다고, 아이가 지워지는 게, 찢겨나가는

여러 개가 성곽처럼 띄엄띄엄 채워져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

게 무섭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아이는 내가 제대 직후여서 오 개월

았다. 하늘은 검지 않았고, 별 또한 없었다. 진보라색과 진회색의 구름

이 넘어있었다. 배가 봉긋했고, 태아가 발을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배

이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다. 도로는 비에 축축이 젖어있었다. 취기가 빨

를 사선으로 긋듯이 움직이는 태동이 느껴진다고도 했었다. 수술이 불

리 올랐다. 수연은 마취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가위질이 아닌 흡입기로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정상적인 산부인과에 갈 수 없었다. 의료

아이는 두 차례로 몸이 잘려나갈 것이다. 의사는 다음날 수연은 한 번

보험이나, 수술기록이 남지 않는 곳은 단속이 심할 때라 많지 않았다.

더 불렀다.

물어물어 온 곳이었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형편은 아니었다. 수 연이네면 모를까. 우리 집은 그럴 형편은 정말 아니었다. 형편보다 그

수연을 부축하면서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가겠지?” 라고 말하고

때의 나의 인격이 그것밖엔 안 됐다.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을 만큼 야

나서, “거긴 입원실도 없냐?”며 타박한 것이 나였다. 수연은 나를 상대

비해져있었다. 새벽 1시에 택시마저 잡히기 힘든 B시의 번화가의 거리

할 기운도 없다는 듯이 죽은 듯이 날 쳐다보았다. “업을까?” 라고 말했

였다. 아무도 우릴 쳐다보지 않았다. 길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은 무관심

지만, 업으면 엄청 더 아플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자 나는 아

그 자체였고, 나는 수연의 손목을 강하게 끌어 잡았다. “지금 아니면 무

무 말 없이 택시를 잡았다. 영등포로 가주세요. 택시비는 만원이 족히

조건 낳아야해. 너 나 사랑해? 나 너한테 양육비 같은 거 못 준다. 이제

넘게 나왔다. 우리는 모텔에서 애를 만들어 놓고도, 다시 갈 곳이 없어

제대해서 학교는 어떻게 다녀, 학교를 다녀야 취업을 하고, 그때야 정

서 모텔로 향했다. 수연은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일말의

기적인 돈을 벌 거 아냐.” 수연은 입술을 앞니로 앙다문 채 나를 노려

양심은 있는 듯, 죄인처럼 침대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무서워서 잠에

봤다. “콘돔 안 쓴 게 누군데 그래? 너 정말 쓰레기야. 내 발로 걸어 들

서 깬 건 오히려 나였다. 밀려드는 죄의식을 그때까지는 잘 몰랐다. 그

어가. 잡지 마”. 수연은 물이 빠진 청바지에 흰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것은 서막에 불과했고, 잔인한 사랑의 증거는 산산이 말라가는 중이다.

늘어진 흰 면 티에는 영어의 꼬부랑글씨가 휘갈겨져있었다. 집에서 오

세상의 바람에, 세상의 악을 가진 인간들에게 의해서…….

랫동안 입었던 옷이었다. 수연의 긴 머리의 뒤를 바라보며 나는 수연을

잠이 깼을 때 수연의 손을 보았다. 오목한 손톱을 가진 가녀린 손,

다부지게 쳐다봤었다. 나 또한 편안한 감정은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담

주름은 분홍색으로 접혀진 자국으로만 보이는 새의 발 같았던 수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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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수연의 얼굴은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연의 손은 명징하게

습이 떠오른다. “젠장. 텔레마케터? 그게 뭔데?” “음, 전화로 고객 문의

각인되어있다. 무엇인가를 놓아버린 손의 허망함, 그것들이 수연의 손

사항들 상담해주는 거야. 아무래도 앉아서 일하는 게 그래도 좋은 거

에 전이되어서 수연의 손의 형태를 만들었다. 수연의 머리카락이 몇 가

같아서.” “학교는 잘 다녀?” “아직 개강 안 했어.” “아……. 아직 방학이

닥이 수연의 말라버린 입술에 베어들어 있었다. 나는 그 머리카락을 귀

겠구나.” 수연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정적. 그리고 다시 차분히 옷자

뒤로 넘겨주지 않았다. 나는 수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새벽의 거

락을 잡아 쥐듯 말을 이었다. “너는 어떻게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안 하

리를 걸어서 한강을 향해 걸었다. 사실은 발이 움직이는 대로 걸어간

니…….”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하고서 전화가 뚝 끊겼다. 뚜뚜

것인데, 한강 쪽이 나왔다. 한강대교를 건널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랬으

뚜뚜뚜뚜뚜뚜…….

니까 그곳이 그제야 노량진 즈음이라는 것을 알았고, 새벽 다섯 시가 넘었어도 서울의 빛은 넘쳐났다.

엄마는 그 사이 일일연속극으로 채널을 돌렸다. 시어머니가 며느 리 머리채를 잡고 한바탕 흔들고 있었다. 그 연속극의 시댁은 역시나

나는 나를 위해, 그날일이 내 생에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짐하였

부자였고, 이층으로 가는 계단이 텔레비전 브라운관 화면 정면에 있었

다. 나 자신을 처음으로 제대로 속여보자고 다짐했었다. 이 순간은 없

다. 가운데에 놓인 고급스러워 보이는 일인용 소파에는 또 역시나 시아

는 것이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짱짱하게 살아갈

버지가 앉았고, 그 자리에 자주 앉는 중견 탤런트는 이제 머리숱이 없

것이라고 가슴을 치며 다짐했었다. 돈이 있어야 애를 키우지 라는, 생

어지기 시작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이런 걸 또 봐?” 라고 말했고,

각, 생각이 아닌 핑계를 떠올리고 싶었으나, 아이가 일그러져 조각조각

엄마는 아무 “하는 게 이것 밖에 없잖아.” 라고 시큰둥하게 말하셨다.

난 모습과, 여물지 못한 잔뼈들의 상이 뇌리를 강렬하게 스쳤다. 귀에

멸치조림의 청양고추와 멸치를 서너 마리 집어서 입에 넣으셨다. 엄마

서 윙윙대는 소리가 천둥번개 소리이길 바랬다.

의 입술엔 루즈가 그대로 칠해져있었고, 입술라인은 입술보다 두껍고 짙게 그려져 있었다. 손에 반지도 그대로.

수연에게서 몇 달 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다. 나는 수연에게 그 동 안 연락하지 않았다. 이듬해 경칩이 지나서야 수연은 취업을 했다고,

“누구 전환데?” 라고 물은 건 엄마였지만,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꽤나 덤덤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공중전화에서 수연의 목소리는

않았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겨울이불보다

작게 들렸다. 나는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었다.

가벼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나는 흐느낌 없이 잠이 들었다. 피곤하지

놀랄만한 경기는 없었기에 나는 그것에 집중하지는 않았었다. 봄이 다

도 않았는데 깊은 수렁의 잠에 빠졌다.

가오는 대도 거실 바닥엔 양탄자가 깔려있었다. 엄마가 좋아하셨던 양 탄자였다. 이래봬도 오백만원이 넘는 거라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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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수연이 첫 월급을 타던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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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수연의 얼굴은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연의 손은 명징하게

습이 떠오른다. “젠장. 텔레마케터? 그게 뭔데?” “음, 전화로 고객 문의

각인되어있다. 무엇인가를 놓아버린 손의 허망함, 그것들이 수연의 손

사항들 상담해주는 거야. 아무래도 앉아서 일하는 게 그래도 좋은 거

에 전이되어서 수연의 손의 형태를 만들었다. 수연의 머리카락이 몇 가

같아서.” “학교는 잘 다녀?” “아직 개강 안 했어.” “아……. 아직 방학이

닥이 수연의 말라버린 입술에 베어들어 있었다. 나는 그 머리카락을 귀

겠구나.” 수연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정적. 그리고 다시 차분히 옷자

뒤로 넘겨주지 않았다. 나는 수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새벽의 거

락을 잡아 쥐듯 말을 이었다. “너는 어떻게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안 하

리를 걸어서 한강을 향해 걸었다. 사실은 발이 움직이는 대로 걸어간

니…….”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하고서 전화가 뚝 끊겼다. 뚜뚜

것인데, 한강 쪽이 나왔다. 한강대교를 건널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랬으

뚜뚜뚜뚜뚜뚜…….

니까 그곳이 그제야 노량진 즈음이라는 것을 알았고, 새벽 다섯 시가 넘었어도 서울의 빛은 넘쳐났다.

엄마는 그 사이 일일연속극으로 채널을 돌렸다. 시어머니가 며느 리 머리채를 잡고 한바탕 흔들고 있었다. 그 연속극의 시댁은 역시나

나는 나를 위해, 그날일이 내 생에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짐하였

부자였고, 이층으로 가는 계단이 텔레비전 브라운관 화면 정면에 있었

다. 나 자신을 처음으로 제대로 속여보자고 다짐했었다. 이 순간은 없

다. 가운데에 놓인 고급스러워 보이는 일인용 소파에는 또 역시나 시아

는 것이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짱짱하게 살아갈

버지가 앉았고, 그 자리에 자주 앉는 중견 탤런트는 이제 머리숱이 없

것이라고 가슴을 치며 다짐했었다. 돈이 있어야 애를 키우지 라는, 생

어지기 시작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이런 걸 또 봐?” 라고 말했고,

각, 생각이 아닌 핑계를 떠올리고 싶었으나, 아이가 일그러져 조각조각

엄마는 아무 “하는 게 이것 밖에 없잖아.” 라고 시큰둥하게 말하셨다.

난 모습과, 여물지 못한 잔뼈들의 상이 뇌리를 강렬하게 스쳤다. 귀에

멸치조림의 청양고추와 멸치를 서너 마리 집어서 입에 넣으셨다. 엄마

서 윙윙대는 소리가 천둥번개 소리이길 바랬다.

의 입술엔 루즈가 그대로 칠해져있었고, 입술라인은 입술보다 두껍고 짙게 그려져 있었다. 손에 반지도 그대로.

수연에게서 몇 달 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다. 나는 수연에게 그 동 안 연락하지 않았다. 이듬해 경칩이 지나서야 수연은 취업을 했다고,

“누구 전환데?” 라고 물은 건 엄마였지만,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꽤나 덤덤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공중전화에서 수연의 목소리는

않았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겨울이불보다

작게 들렸다. 나는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었다.

가벼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나는 흐느낌 없이 잠이 들었다. 피곤하지

놀랄만한 경기는 없었기에 나는 그것에 집중하지는 않았었다. 봄이 다

도 않았는데 깊은 수렁의 잠에 빠졌다.

가오는 대도 거실 바닥엔 양탄자가 깔려있었다. 엄마가 좋아하셨던 양 탄자였다. 이래봬도 오백만원이 넘는 거라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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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수연이 첫 월급을 타던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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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이었다. 아이엠에프 때에도 통신사의 타격은 다른 산업에 비해 크

를 가계부에 넣는 모습까지, 우리 엄마의 그날의 모습은 잊히지가 앉는

지 않았었다. 제일 먼저 망한 건 의류사업이었고, 백화점엔 개미새끼

다. 엄마는 그새 많이 다부지고 억척스러운 모습에서 온화한 모습까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재기로 라면 몇 박스를 사두고, 생

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가락의 두께가 두꺼워졌다는 사실

수까지 사두는 시절이었다. 볼이 찢어지게 추운 꽃샘추위였고, 탑골공

을 알았다. 결혼반지를 뺄 수 없는 것처럼 손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

원엔 사람들이 많아졌고, 예전보다 청계산과, 관악산에 그리고 도봉산

었고, 주름도 잡혀있었다. 손등에서 검버섯을 감지한 것은 나뿐만이 아

과 북한산에 구두와 넥타이를 한 아버지들이 늘어났다. 수연의 어머니

이였을 것이다. 두드러지게 올라온 검버섯의 위엄은 대단했다. 엄마의

는 주부에서, 보험설계사가 되었고, 나는 일 년은 더 휴학을 해야겠다

손, 수챗구멍에 빠진 오물과 머리카락을 집는 어머니의 손, 김치를 담

는 방침이 내려졌다. 나는 어렵게 제 2금융권이 아닌 곳에서 학자금 대

그고 고추장의 맛을 보는 어머니의 손, 어느 날 어머니는 말씀하신 적

출을 받아냈고, 버스비와 도시락을 든 채 수도권으로 옮겨진 실용음악

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도 깨끗한 손이 어미의 손이라고, 그

과를 다녔다.

런 숭고 한 손에서 들고 나고 한 자식이 접니다. ‘엄마는 사실 손자까지 본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참아내야 했다. 난

드럼연습은 진전이 없었고, 교수는 여전히 찢어진 드럼을 바꿔주 지 않았다. 수연은 첫 월급으로 내 시계와, 우리 부모님의 내의 까지 사

착한 아들이고 싶었고, 뻔뻔한 애인이고 싶었고, 돈 잘 버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왔고, 아무 사정도 모른 엄마는 수연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절이 어 려워도 함께 사는 거라며, 수연의 야무지고 살근살근한 성격을 마음에

그녀의 집안은 불교였지만 나는 감리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들어 하셨다. 나는 수연이 신기하면서도 그녀의 속이 무서웠다. 저러고

대학에서 지원이 적은 반면에 교회의 후원은 대단했다. 숙식은 물론,

도 사람이 사는 구나, 저러고도 사람이 웃을 수 있구나, 저렇게 된 게 나

악기의 상태마저 좋았다. 대한민국 인디밴드에서 생활을 해본 대다수

의 백퍼센트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난자와 정자의 융합은

의 사람들이 교회 덕을 톡톡히 봤다. 연주만 잘하고, 교회음악을 대중

인간을 초월한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생각했다면, 모두들 나를 또라이

화 시킬 수 있다면, 작업실과, 숙식까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나는 진

라고 볼 것을 알았지만 진정으로 그러한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

실 되게 하나님을 믿는 척 했다. 봉헌도 열심히 했고, 웬만한 가스펠은

었다. 강간에 의한 정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알량한 근거를 버팀목

입에 줄줄이 꾀고 있었다. 수연은 내가 다니는 감리교회에도 왔고, 어

삼을 수밖에 없었다.

머니가 다니기 시작한 절에도 다녔다. 수연은 까라면 까는 예스우먼이 었다. 수연은 대단한 여자였고, 수연은 나에게 한 없이 죄스러운 짐이

수연이 어느 정도 사는지, 종교는 우리 집으로 맞출 거냐는 둥, 그

었다. 나는 그 짐을 피해갈 궁리를 마련하는 중이었다. 그 시절은 세기

래도 궁합은 봐야한다며, 태어난 연월일시를 빼곡히 적어 접어둔 쪽지

말의 혼돈의 사회 분위기 이전에 내 존재 자체가 카오스가 된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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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이었다. 아이엠에프 때에도 통신사의 타격은 다른 산업에 비해 크

를 가계부에 넣는 모습까지, 우리 엄마의 그날의 모습은 잊히지가 앉는

지 않았었다. 제일 먼저 망한 건 의류사업이었고, 백화점엔 개미새끼

다. 엄마는 그새 많이 다부지고 억척스러운 모습에서 온화한 모습까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재기로 라면 몇 박스를 사두고, 생

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가락의 두께가 두꺼워졌다는 사실

수까지 사두는 시절이었다. 볼이 찢어지게 추운 꽃샘추위였고, 탑골공

을 알았다. 결혼반지를 뺄 수 없는 것처럼 손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

원엔 사람들이 많아졌고, 예전보다 청계산과, 관악산에 그리고 도봉산

었고, 주름도 잡혀있었다. 손등에서 검버섯을 감지한 것은 나뿐만이 아

과 북한산에 구두와 넥타이를 한 아버지들이 늘어났다. 수연의 어머니

이였을 것이다. 두드러지게 올라온 검버섯의 위엄은 대단했다. 엄마의

는 주부에서, 보험설계사가 되었고, 나는 일 년은 더 휴학을 해야겠다

손, 수챗구멍에 빠진 오물과 머리카락을 집는 어머니의 손, 김치를 담

는 방침이 내려졌다. 나는 어렵게 제 2금융권이 아닌 곳에서 학자금 대

그고 고추장의 맛을 보는 어머니의 손, 어느 날 어머니는 말씀하신 적

출을 받아냈고, 버스비와 도시락을 든 채 수도권으로 옮겨진 실용음악

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도 깨끗한 손이 어미의 손이라고, 그

과를 다녔다.

런 숭고 한 손에서 들고 나고 한 자식이 접니다. ‘엄마는 사실 손자까지 본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참아내야 했다. 난

드럼연습은 진전이 없었고, 교수는 여전히 찢어진 드럼을 바꿔주 지 않았다. 수연은 첫 월급으로 내 시계와, 우리 부모님의 내의 까지 사

착한 아들이고 싶었고, 뻔뻔한 애인이고 싶었고, 돈 잘 버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왔고, 아무 사정도 모른 엄마는 수연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절이 어 려워도 함께 사는 거라며, 수연의 야무지고 살근살근한 성격을 마음에

그녀의 집안은 불교였지만 나는 감리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들어 하셨다. 나는 수연이 신기하면서도 그녀의 속이 무서웠다. 저러고

대학에서 지원이 적은 반면에 교회의 후원은 대단했다. 숙식은 물론,

도 사람이 사는 구나, 저러고도 사람이 웃을 수 있구나, 저렇게 된 게 나

악기의 상태마저 좋았다. 대한민국 인디밴드에서 생활을 해본 대다수

의 백퍼센트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난자와 정자의 융합은

의 사람들이 교회 덕을 톡톡히 봤다. 연주만 잘하고, 교회음악을 대중

인간을 초월한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생각했다면, 모두들 나를 또라이

화 시킬 수 있다면, 작업실과, 숙식까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나는 진

라고 볼 것을 알았지만 진정으로 그러한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

실 되게 하나님을 믿는 척 했다. 봉헌도 열심히 했고, 웬만한 가스펠은

었다. 강간에 의한 정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알량한 근거를 버팀목

입에 줄줄이 꾀고 있었다. 수연은 내가 다니는 감리교회에도 왔고, 어

삼을 수밖에 없었다.

머니가 다니기 시작한 절에도 다녔다. 수연은 까라면 까는 예스우먼이 었다. 수연은 대단한 여자였고, 수연은 나에게 한 없이 죄스러운 짐이

수연이 어느 정도 사는지, 종교는 우리 집으로 맞출 거냐는 둥, 그

었다. 나는 그 짐을 피해갈 궁리를 마련하는 중이었다. 그 시절은 세기

래도 궁합은 봐야한다며, 태어난 연월일시를 빼곡히 적어 접어둔 쪽지

말의 혼돈의 사회 분위기 이전에 내 존재 자체가 카오스가 된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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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어서 새 천년이 오길 바란 건 어쩌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광화문에서 프리랜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주로 그곳에서 지 냈다. 피임은 이제는 확실히 하는 편이었지만 돌발 상황도 자주 있었

술도 적당히, 취업에 대한 고민도 없이, 학점도 적당히, 친구관계

다. 콘돔이 찢어진다는 가, 아니면 콘돔 자체가 조금만 싼 것을 사면 불

는 원만하게. 그게 그때 그 시절에 나의 가치관이자 목표였다. 같이 밴

량품일 때가 많았다. 수연은 매일 매일 피임약을 복용했다. 여성의 신

드 하던 친구 중에 돈 많은 집 자식중 하나는 음악 엔지니어가 되었다.

체에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할 수 도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우리는 피

공부하나는 오지게 안 하던 그녀석이 꽤나 유명한 작곡가의 역삼동 사

임을 위해 애썼다. 임신 중절 수술이 보험도 없이 한 돌팔이 의사였기

무실에서 같이 일은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남자였지만 속으로 배를

때문에 나팔관이 손상되면 임신을 영원히 하게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아파했다. 수연은 텔레마케터를 내가 대학생활을 마치는 해에 졸업을

우리는 이제는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랜

하였고, 전공과 상관없이 항공승무원이 되었다. 키 제한과 나이 제한

연애기간이 지루했지만 수연은 결혼을 독촉하지는 않았다. 늘 내 곁에

이 있던 때였지만 수연은 승무원학원은 밟아보지도 않은 채 합격을 했

있고 싶어 하면서도 자녀욕심을 내비친 적이 없었는데, 항공사를 관

다. 한 달에 삼 주는 해외근무였고, 한 주는 무조건 나와의 데이트가 되

두고 방배동에 서래마을에 수연의 부모님의 집을 이사하고 나서 그 즈

었다. 그때가 2001년이 끝나갈 무렵부터였으니까, 수연은 스튜어디스

음 넌지시 섹스를 마치고 나서 말을 했었다. “우리 아이 가질 수 있을

생활을 만 2년을 조금 넘긴 채 회사를 나왔다. 서열이 너무나도 확고하

까…….”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우리를 반씩 빼닮은

고 텃새가 세서 버티기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수연은 항공일과 텔레마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었다. 나는 나체로 일어나서 커튼을 걷었다.

케터 일은 봉급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나지만은 적성에는 텔레마케터

밖에는 비가 왔었는지 빗방울이 창에 옹골지게 매달려있었다. 밖에서

일이 더 맞았다고 말했다. 사람을 몇 마디지만 직접 상대하는 것은 너

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은 창문의 코팅 덕택에 나는 빛을 쬐며 몸을

무나도 힘이 든다고 말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낭랑한 목소리를 내

나른하게 말리고 있었다. 나는 수연의 말에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

는 편이 오히려 더 쉽다고 말했었다. 나의 부모님이 양평에다가 전원주

다. 실용음악학원에서 보컬트레이너 자리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매

택 자리를 알아보시고는 시골 가서 생활하겠노라고 말하고 나서는 나

주 화, 목은 친구가 일하는 작곡가가 차린 그 학원에서 개인 부스에서

는 졸업을 했는데도 서울에서만 살았다. 아버지는 보증금 천에 월 35

보컬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가르쳤고, 과천에서도 그 보다 작

만원을 내는 10평짜리 오피스텔을 잡아주셨다. 말이 좋아서 오피스텔

은 페이에 똑같은 일을 가르쳤었다. 그렇게 벌어서 백만 원이 채 안됐

이지 일반 빌라의 원룸과 같았다. 미닫이문으로 가려지는 작은 공간이

다. 월세내고 식비, 수도세, 통신비, 전기세, 관리비 내고 나면 돈이 간

방이라면 방이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인공 숲이 가까워서 그랬는지

당간당하게 똑 떨어졌다. 모자라면 부모님께 손 벌렸다. 그런 것에 대

모기가 많았지만 벌집처럼 구조적인 오피스텔을 모기가 없었다. 나는

해 자존심 상해한다거나 끙끙 혼자 어떻게 해보려는 내가 아니었다.

그 곳에서만 6년을 살았다. 수연은 그곳에서 나와 자주 만났었다.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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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어서 새 천년이 오길 바란 건 어쩌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광화문에서 프리랜서 일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주로 그곳에서 지 냈다. 피임은 이제는 확실히 하는 편이었지만 돌발 상황도 자주 있었

술도 적당히, 취업에 대한 고민도 없이, 학점도 적당히, 친구관계

다. 콘돔이 찢어진다는 가, 아니면 콘돔 자체가 조금만 싼 것을 사면 불

는 원만하게. 그게 그때 그 시절에 나의 가치관이자 목표였다. 같이 밴

량품일 때가 많았다. 수연은 매일 매일 피임약을 복용했다. 여성의 신

드 하던 친구 중에 돈 많은 집 자식중 하나는 음악 엔지니어가 되었다.

체에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할 수 도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우리는 피

공부하나는 오지게 안 하던 그녀석이 꽤나 유명한 작곡가의 역삼동 사

임을 위해 애썼다. 임신 중절 수술이 보험도 없이 한 돌팔이 의사였기

무실에서 같이 일은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남자였지만 속으로 배를

때문에 나팔관이 손상되면 임신을 영원히 하게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아파했다. 수연은 텔레마케터를 내가 대학생활을 마치는 해에 졸업을

우리는 이제는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랜

하였고, 전공과 상관없이 항공승무원이 되었다. 키 제한과 나이 제한

연애기간이 지루했지만 수연은 결혼을 독촉하지는 않았다. 늘 내 곁에

이 있던 때였지만 수연은 승무원학원은 밟아보지도 않은 채 합격을 했

있고 싶어 하면서도 자녀욕심을 내비친 적이 없었는데, 항공사를 관

다. 한 달에 삼 주는 해외근무였고, 한 주는 무조건 나와의 데이트가 되

두고 방배동에 서래마을에 수연의 부모님의 집을 이사하고 나서 그 즈

었다. 그때가 2001년이 끝나갈 무렵부터였으니까, 수연은 스튜어디스

음 넌지시 섹스를 마치고 나서 말을 했었다. “우리 아이 가질 수 있을

생활을 만 2년을 조금 넘긴 채 회사를 나왔다. 서열이 너무나도 확고하

까…….”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우리를 반씩 빼닮은

고 텃새가 세서 버티기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수연은 항공일과 텔레마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었다. 나는 나체로 일어나서 커튼을 걷었다.

케터 일은 봉급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나지만은 적성에는 텔레마케터

밖에는 비가 왔었는지 빗방울이 창에 옹골지게 매달려있었다. 밖에서

일이 더 맞았다고 말했다. 사람을 몇 마디지만 직접 상대하는 것은 너

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은 창문의 코팅 덕택에 나는 빛을 쬐며 몸을

무나도 힘이 든다고 말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낭랑한 목소리를 내

나른하게 말리고 있었다. 나는 수연의 말에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

는 편이 오히려 더 쉽다고 말했었다. 나의 부모님이 양평에다가 전원주

다. 실용음악학원에서 보컬트레이너 자리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매

택 자리를 알아보시고는 시골 가서 생활하겠노라고 말하고 나서는 나

주 화, 목은 친구가 일하는 작곡가가 차린 그 학원에서 개인 부스에서

는 졸업을 했는데도 서울에서만 살았다. 아버지는 보증금 천에 월 35

보컬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가르쳤고, 과천에서도 그 보다 작

만원을 내는 10평짜리 오피스텔을 잡아주셨다. 말이 좋아서 오피스텔

은 페이에 똑같은 일을 가르쳤었다. 그렇게 벌어서 백만 원이 채 안됐

이지 일반 빌라의 원룸과 같았다. 미닫이문으로 가려지는 작은 공간이

다. 월세내고 식비, 수도세, 통신비, 전기세, 관리비 내고 나면 돈이 간

방이라면 방이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인공 숲이 가까워서 그랬는지

당간당하게 똑 떨어졌다. 모자라면 부모님께 손 벌렸다. 그런 것에 대

모기가 많았지만 벌집처럼 구조적인 오피스텔을 모기가 없었다. 나는

해 자존심 상해한다거나 끙끙 혼자 어떻게 해보려는 내가 아니었다.

그 곳에서만 6년을 살았다. 수연은 그곳에서 나와 자주 만났었다.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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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혼, 나에게 결혼이 가능키나 할까. 수연의 집에서 처가

리자 나를 거의 꼭 안아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술기운을 이기지 못

살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

하고 거칠게 수연에게 키스하면서도 수연은 가만히 있었다. 아무 말도

였다. 수연이를 언젠가는 떠나야한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어렴풋이 했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혀가 한 번도 나의 부름에 응

지만, 그 와중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이트에서 만난 일회용의 여

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촉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와중에

자들과 낯설고, 어색하기에 더 떨리고 흥분되는 하룻밤의 섹스는 한

해가 뜨고, 스산한 가을바람이 썰렁하게 불어왔다. 우리는 서로를 꼭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있었지만 그런 여색에 대한 양심 말고, 자기의

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흐느껴 울었다.

분신을 분쇄해버린 자의, 인간에 밑바닥에 남겨진 최소한의 예의 때문 에, 그때부터 사랑의 온도가 식어가고, 관심이 줄어들고, 따뜻한 말 한

사십구재가 끝이 나고 나의 오피스텔 앞으로 소포가 왔다. 평일에

마디가 줄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술에 많이 취해서 말을 했었다. 수연

와서 경비실에서 가져오려던 참이었다. 소포지의 주소란 에는 주소가

이 이사한 방배동 집 앞에서, 돌담으로 웅장한 집 앞에서 달이 초롱초

쓰여 있지 않았지만 나는 수연의 어머니가 보낸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

롱하게 뜬 첫새벽이었다. 나는 비루하게 낡아버린 성정을 가지고 반들

다. 수연이 쓰던 향수와, 수연의 어릴 적 사진이 담긴 동그란 사진첩, 그

반들한 가죽잠바를 입고 있었다는 것과, 수연이가 아이보리색의 얇디

리고 수연이 자주 입던 카디건, 두텁던 일기장이 내용물의 전부였다.

얇은 카디건을 입고 나왔다는 사실마저 기억한다. 수연은 날 부축하

그것에서는 아직까지 수연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 했다. 나는

려 했었고, 집에 들어가자고 했었다. 수연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본적

수연의 일기장을 들추어보았다. 떨리는 손가락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은 많았지만,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들어가

있었다.

지 않고 그 돌담에 쭈그려 앉아 청바지를 매만지면서 술주정을 했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내가 좋니, 왜 내 곁에 있는 거야. 난 네 사람이 아니 야, 난 사람도 아니고, 듬직한 남자도 아니야. 난 너랑 결혼 같은 거…….

수연의 마지막 일기는 뒷부분에 페이지를 두텁게 남겨둔 채 머물 러있었다. 날짜도 쓰여 있지 않은 글귀들.

못할 거야. 차라리 난 나 혼자 살다 죽을 거야. 너랑 결혼해서 살면 내 가 저지른 잘못이 모조리……. 그래……. 아니어도 괴로움 때문에 그

힘들다고 해놓고 돌아섰다. 멀리 그대가 어깨들 들썩거리며 뒤꿈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려 살게 될 거야. 나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 않

치를 가볍게 든 채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고개를 휘 돌려 앞으

을 거야. 난 그래서 여러 번 다른 여자와도 만나본 거였고, 네가 싫어졌

로 걸어갔다. 고개를 나직이 사선으로 숙이기도 한 채, 슬픈 음악을 떠

으니까. 이제 난 비루하고, 넌 지루해져 버렸으니까. 난 아직도 네가 내

올리며, 현악기의 이중주를 떠올리며, 슬픈 음색을 가진 고인이 된 가

곁에 있다는 게, 너무 무서워…….” 수연은 날 일으켜 세우려다가 넘어

수의 떨리는 성대를 떠올리며 한 없이, 그리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

지길 반복하고, 내가 술주정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휘청휘청 거

다. 내가 한 참 걷다가 구두에 밀착된 발바닥의 살이 프라이팬에 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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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혼, 나에게 결혼이 가능키나 할까. 수연의 집에서 처가

리자 나를 거의 꼭 안아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술기운을 이기지 못

살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

하고 거칠게 수연에게 키스하면서도 수연은 가만히 있었다. 아무 말도

였다. 수연이를 언젠가는 떠나야한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어렴풋이 했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혀가 한 번도 나의 부름에 응

지만, 그 와중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이트에서 만난 일회용의 여

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촉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와중에

자들과 낯설고, 어색하기에 더 떨리고 흥분되는 하룻밤의 섹스는 한

해가 뜨고, 스산한 가을바람이 썰렁하게 불어왔다. 우리는 서로를 꼭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있었지만 그런 여색에 대한 양심 말고, 자기의

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흐느껴 울었다.

분신을 분쇄해버린 자의, 인간에 밑바닥에 남겨진 최소한의 예의 때문 에, 그때부터 사랑의 온도가 식어가고, 관심이 줄어들고, 따뜻한 말 한

사십구재가 끝이 나고 나의 오피스텔 앞으로 소포가 왔다. 평일에

마디가 줄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술에 많이 취해서 말을 했었다. 수연

와서 경비실에서 가져오려던 참이었다. 소포지의 주소란 에는 주소가

이 이사한 방배동 집 앞에서, 돌담으로 웅장한 집 앞에서 달이 초롱초

쓰여 있지 않았지만 나는 수연의 어머니가 보낸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

롱하게 뜬 첫새벽이었다. 나는 비루하게 낡아버린 성정을 가지고 반들

다. 수연이 쓰던 향수와, 수연의 어릴 적 사진이 담긴 동그란 사진첩, 그

반들한 가죽잠바를 입고 있었다는 것과, 수연이가 아이보리색의 얇디

리고 수연이 자주 입던 카디건, 두텁던 일기장이 내용물의 전부였다.

얇은 카디건을 입고 나왔다는 사실마저 기억한다. 수연은 날 부축하

그것에서는 아직까지 수연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 했다. 나는

려 했었고, 집에 들어가자고 했었다. 수연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본적

수연의 일기장을 들추어보았다. 떨리는 손가락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은 많았지만,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들어가

있었다.

지 않고 그 돌담에 쭈그려 앉아 청바지를 매만지면서 술주정을 했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내가 좋니, 왜 내 곁에 있는 거야. 난 네 사람이 아니 야, 난 사람도 아니고, 듬직한 남자도 아니야. 난 너랑 결혼 같은 거…….

수연의 마지막 일기는 뒷부분에 페이지를 두텁게 남겨둔 채 머물 러있었다. 날짜도 쓰여 있지 않은 글귀들.

못할 거야. 차라리 난 나 혼자 살다 죽을 거야. 너랑 결혼해서 살면 내 가 저지른 잘못이 모조리……. 그래……. 아니어도 괴로움 때문에 그

힘들다고 해놓고 돌아섰다. 멀리 그대가 어깨들 들썩거리며 뒤꿈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려 살게 될 거야. 나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 않

치를 가볍게 든 채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고개를 휘 돌려 앞으

을 거야. 난 그래서 여러 번 다른 여자와도 만나본 거였고, 네가 싫어졌

로 걸어갔다. 고개를 나직이 사선으로 숙이기도 한 채, 슬픈 음악을 떠

으니까. 이제 난 비루하고, 넌 지루해져 버렸으니까. 난 아직도 네가 내

올리며, 현악기의 이중주를 떠올리며, 슬픈 음색을 가진 고인이 된 가

곁에 있다는 게, 너무 무서워…….” 수연은 날 일으켜 세우려다가 넘어

수의 떨리는 성대를 떠올리며 한 없이, 그리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

지길 반복하고, 내가 술주정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휘청휘청 거

다. 내가 한 참 걷다가 구두에 밀착된 발바닥의 살이 프라이팬에 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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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버터처럼 뜨거워서 구두를 구겨 신었을 때 던킨도너츠가 보였다.

가 언제부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상의는 심하게 젖어있었다. 흰

나는 색색의 도넛을 플라스틱 쟁반에 가냘프게 담아냈다. 카운터에 있

블라우스는 속옷이 비칠 만큼 젖어있었고, 나는 머리카락을 짜고 들어

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알바생은 중키의 소녀였다. 그녀는

가야만 했다. 오직 바지와 구두만이 수성에 강했다. 나는 지하철에 들

실내에서도 해를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로고가 더 뚜렷이 보였

어가 에어컨 바람이 나와서 감기에 들까봐 겁이 났고, 그 다음은 만원

다. “드시고 가실 거세요?”는 물음과 “포인트 카드가 있으세요?”는 물

의 지하철 승객이 내 몸과 닿아 내 몸의 차디찬 수분이 닿아 불쾌한 기

음에 나는 먹고 갈 것이고, 적립 카드는 없다고 말했다. 다행이 그 소녀

분을 가질까 미안했다. 사람들은 일기 예보를 저녁 늦게 매일 챙겨보

는 귀찮게 카드는 만드실 것이냐고 묻질 않았다. 나는 음료도 없이 자

는 지 장우산이며 삼단 우산을 챙겨 다녔다. 그렇게 젖은 채로 걸어 다

리에 앉아 비가 오는 시내의 사람들을 쳐다봤다. 한 꼬마 소년은 더 보

닌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의미 없이 걸었다. 부유했다. 시간 낭비라

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인지 자신이 원하는 쇼윈도의 장난감을 쳐다보고

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사유의 시간. 헤어짐이었으니까 뮤직비디오의

있었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런 아이를 강아지를 앉듯 가볍게 앉아서 역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걸까. 언젠가 비를 맞으면

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손톱에서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손

서 까지 떠나간 남자를 고래고래 소리쳐 부르는 탤런트의 연기가 생각

톱과 손가락 끝 살 사이에는 도너츠의 노오란 색 빵가루가 쏙쏙 베어

난다. 눈물 연기를 해도 인공 살수기에 씻겨 내려가는 데에도 그 연기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달착지근하고 포근한 설탕 덩어리들을 굳이

자는 참으로 열심히 연기를 했었다. 나 또한 열심히 살았다. 적금을 부

빼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빨아먹는 사람

었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고, 회사의 보고서를 참신한 아이디어와 함

들의 부류가 아니기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먹

께 상사에게 올렸다. 일적으로는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연애였다. 백

은 도넛이 총 4개였다. 바나나 모양의 도넛이 한 개, 체리와 사과 쨈이

수를 사랑하는 동안, 금전적인 문제가 없었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일

들어간 둥근 도넛이 두 개, 나머지는 초코로 뒤덮인 도너츠에 형형색

것이다. 나는 계단을 성큼 성큼 내려가 다시 일상의 혼돈으로 빠져들

색의 정체불명인 가루 테코레이션이 된 빵 한 개였다. 속이 더부룩했지

었다.

만 목이 막히지는 않았다. 일상의 혼돈이 있은 후에, 수연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달 나는 약국에서 반창고 한 개를 샀다. 딱 천 원이었지만 난 그것의

려가고 있었다. 나와 다투고 나서 채 5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죽음을

개수를 세어보지는 않았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오천 원

택했다. 택했다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고 가슴이 쓰라려온다. 수연은

하는 삼단 우산을 하나 사고, 잠시 그 입구의 낮은 돌담에 기대어서 반

죽음으로 빠져들었다. 그렇다. 빠져들었다고 하자. 그녀는 죽음을 선택

창고를 붙였다. 발뒤꿈치가 까져있었지만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방

한 것이 아니라 죽음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것은 그녀에게는 순

수로 된 나일론 겨자색 바지를 입어서 인지 빗물이 닿지는 않았다. 비

리였다고. 그렇게 해 두기로 하자고, 나는 그녀의 죽음을 온 마음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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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버터처럼 뜨거워서 구두를 구겨 신었을 때 던킨도너츠가 보였다.

가 언제부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상의는 심하게 젖어있었다. 흰

나는 색색의 도넛을 플라스틱 쟁반에 가냘프게 담아냈다. 카운터에 있

블라우스는 속옷이 비칠 만큼 젖어있었고, 나는 머리카락을 짜고 들어

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알바생은 중키의 소녀였다. 그녀는

가야만 했다. 오직 바지와 구두만이 수성에 강했다. 나는 지하철에 들

실내에서도 해를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로고가 더 뚜렷이 보였

어가 에어컨 바람이 나와서 감기에 들까봐 겁이 났고, 그 다음은 만원

다. “드시고 가실 거세요?”는 물음과 “포인트 카드가 있으세요?”는 물

의 지하철 승객이 내 몸과 닿아 내 몸의 차디찬 수분이 닿아 불쾌한 기

음에 나는 먹고 갈 것이고, 적립 카드는 없다고 말했다. 다행이 그 소녀

분을 가질까 미안했다. 사람들은 일기 예보를 저녁 늦게 매일 챙겨보

는 귀찮게 카드는 만드실 것이냐고 묻질 않았다. 나는 음료도 없이 자

는 지 장우산이며 삼단 우산을 챙겨 다녔다. 그렇게 젖은 채로 걸어 다

리에 앉아 비가 오는 시내의 사람들을 쳐다봤다. 한 꼬마 소년은 더 보

닌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의미 없이 걸었다. 부유했다. 시간 낭비라

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인지 자신이 원하는 쇼윈도의 장난감을 쳐다보고

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사유의 시간. 헤어짐이었으니까 뮤직비디오의

있었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런 아이를 강아지를 앉듯 가볍게 앉아서 역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걸까. 언젠가 비를 맞으면

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손톱에서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손

서 까지 떠나간 남자를 고래고래 소리쳐 부르는 탤런트의 연기가 생각

톱과 손가락 끝 살 사이에는 도너츠의 노오란 색 빵가루가 쏙쏙 베어

난다. 눈물 연기를 해도 인공 살수기에 씻겨 내려가는 데에도 그 연기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달착지근하고 포근한 설탕 덩어리들을 굳이

자는 참으로 열심히 연기를 했었다. 나 또한 열심히 살았다. 적금을 부

빼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빨아먹는 사람

었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고, 회사의 보고서를 참신한 아이디어와 함

들의 부류가 아니기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먹

께 상사에게 올렸다. 일적으로는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연애였다. 백

은 도넛이 총 4개였다. 바나나 모양의 도넛이 한 개, 체리와 사과 쨈이

수를 사랑하는 동안, 금전적인 문제가 없었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일

들어간 둥근 도넛이 두 개, 나머지는 초코로 뒤덮인 도너츠에 형형색

것이다. 나는 계단을 성큼 성큼 내려가 다시 일상의 혼돈으로 빠져들

색의 정체불명인 가루 테코레이션이 된 빵 한 개였다. 속이 더부룩했지

었다.

만 목이 막히지는 않았다. 일상의 혼돈이 있은 후에, 수연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달 나는 약국에서 반창고 한 개를 샀다. 딱 천 원이었지만 난 그것의

려가고 있었다. 나와 다투고 나서 채 5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죽음을

개수를 세어보지는 않았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오천 원

택했다. 택했다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고 가슴이 쓰라려온다. 수연은

하는 삼단 우산을 하나 사고, 잠시 그 입구의 낮은 돌담에 기대어서 반

죽음으로 빠져들었다. 그렇다. 빠져들었다고 하자. 그녀는 죽음을 선택

창고를 붙였다. 발뒤꿈치가 까져있었지만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방

한 것이 아니라 죽음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것은 그녀에게는 순

수로 된 나일론 겨자색 바지를 입어서 인지 빗물이 닿지는 않았다. 비

리였다고. 그렇게 해 두기로 하자고, 나는 그녀의 죽음을 온 마음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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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이해해 보려고 했다. 카디건에서는 그녀가 백화점에서 산 향수 냄새

한 결혼과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직책 따윈 없었을 것이다. 일상의 단

와 그녀의 살결 냄새가 슬며시 풍겨왔다. 나는 눈알이 흔들리는 고통

면하나 하나가 삶을 이어가는 운명을 창조하는 그 인생이라는 연장선

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렸다. 샘솟는 눈물이 따뜻하게 내 얼굴에 스며들

앞에서 나는 하나의 톱니바퀴를 맞추어가지 못한 채 헛도는 나사 풀린

었다. 울부짖으며 때려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내가 쥐고 있는 이

기계가 된 심정이었다. 한 쪽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져들지도 모

카디건의 까슬까슬한 올만을 부여잡고 늘어뜨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

르는, 그래서 너무나도 위태로운, 하지만 안정된 표피로 행복을 말하는

리고 나니 다음 날 오전이 지난 시각이었다. 오피스텔의 자그마한 식

인간을 닮은 기계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난 그냥 저냥 이 세상의 삶과,

탁 앞에서 온 몸이 뒤틀린 채 근육이 경직되어 잠이 들었다. 나는 비틀

애인의 죽음과 그도 모자라 온갖 불행들을 거치고도 태연스럽게 살아

비틀 일어나서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여 보았다. 쉽사리 풀리지 않을 담

가는 질기디. 질긴, 두꺼운 껍질을 가진 남루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

이 걸린 듯싶었다. 마음이 공허해도 어쩔 수 없이, 샤워를 하고, 다른 날

인가 하는. 전쟁을 올연히 겪은 세대의 굳은살을 이제는 내가 가지게

과 마찬가지로 샴푸로 머리를 감고, 면도를 했다. 이를 닦는 내내, 내 생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끝끝내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결백 콤플렉

에 이러한 일이 과연 꼭 일어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창조주에 대한 의

스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서 나는 이를 닦는 치약 거품이 내 아랫배

구심을 들게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진실되게 내 한 치 앞에서 나

와 발등에 떨어져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오랫동안 이를 닦고 있었다.

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복잡한 상념에 빠져들고 싶 지 않아, 수연을 곧 따라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생각의 고리가 고리를 만들고, 나는 새로운 생각들의 향 연 속에서 일상을 연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작곡일 을 곁에 둔 채로, 아이들의 발성을 좋게, 발음을 또박또박 하도록, 음에 대 한 기본적인 감각을 익히도록, 학생들의 성대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주 는 일, 그 모든 것이 각자하는 일이라도 나는 내 일에서의 곁가지의 일 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다짐했다. 작 곡가의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승태라는 친구가 나이트에 가자고만 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여자를 만나, 학습지 출판사에서 일하 는 일은 어쩌면 없었을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새로운 여자의 향기와, 머리에 샴푸 냄새에 이끌려,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그 녀에게 허우적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순조롭고도 스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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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이해해 보려고 했다. 카디건에서는 그녀가 백화점에서 산 향수 냄새

한 결혼과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직책 따윈 없었을 것이다. 일상의 단

와 그녀의 살결 냄새가 슬며시 풍겨왔다. 나는 눈알이 흔들리는 고통

면하나 하나가 삶을 이어가는 운명을 창조하는 그 인생이라는 연장선

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렸다. 샘솟는 눈물이 따뜻하게 내 얼굴에 스며들

앞에서 나는 하나의 톱니바퀴를 맞추어가지 못한 채 헛도는 나사 풀린

었다. 울부짖으며 때려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내가 쥐고 있는 이

기계가 된 심정이었다. 한 쪽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져들지도 모

카디건의 까슬까슬한 올만을 부여잡고 늘어뜨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

르는, 그래서 너무나도 위태로운, 하지만 안정된 표피로 행복을 말하는

리고 나니 다음 날 오전이 지난 시각이었다. 오피스텔의 자그마한 식

인간을 닮은 기계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난 그냥 저냥 이 세상의 삶과,

탁 앞에서 온 몸이 뒤틀린 채 근육이 경직되어 잠이 들었다. 나는 비틀

애인의 죽음과 그도 모자라 온갖 불행들을 거치고도 태연스럽게 살아

비틀 일어나서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여 보았다. 쉽사리 풀리지 않을 담

가는 질기디. 질긴, 두꺼운 껍질을 가진 남루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

이 걸린 듯싶었다. 마음이 공허해도 어쩔 수 없이, 샤워를 하고, 다른 날

인가 하는. 전쟁을 올연히 겪은 세대의 굳은살을 이제는 내가 가지게

과 마찬가지로 샴푸로 머리를 감고, 면도를 했다. 이를 닦는 내내, 내 생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끝끝내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결백 콤플렉

에 이러한 일이 과연 꼭 일어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창조주에 대한 의

스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서 나는 이를 닦는 치약 거품이 내 아랫배

구심을 들게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진실되게 내 한 치 앞에서 나

와 발등에 떨어져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오랫동안 이를 닦고 있었다.

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복잡한 상념에 빠져들고 싶 지 않아, 수연을 곧 따라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생각의 고리가 고리를 만들고, 나는 새로운 생각들의 향 연 속에서 일상을 연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작곡일 을 곁에 둔 채로, 아이들의 발성을 좋게, 발음을 또박또박 하도록, 음에 대 한 기본적인 감각을 익히도록, 학생들의 성대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주 는 일, 그 모든 것이 각자하는 일이라도 나는 내 일에서의 곁가지의 일 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다짐했다. 작 곡가의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승태라는 친구가 나이트에 가자고만 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여자를 만나, 학습지 출판사에서 일하 는 일은 어쩌면 없었을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새로운 여자의 향기와, 머리에 샴푸 냄새에 이끌려,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그 녀에게 허우적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순조롭고도 스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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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홀로 서있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샤르봉

매개체로 서로 닿으려고 한다. 닳으려고 한 부분부터 썩어 들어간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닿고 싶으면서도 두려워하고, 소통하고 싶으면서도 어물거리는, 상처 입을까봐 사랑조차 시도 해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한, 다시

사랑하고 싶지만 영원히 이제는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들을 위해 쓴 소설.

상 처 허이준 許李俊 서울 25세 회화과 69


사람은 서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홀로 서있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샤르봉

매개체로 서로 닿으려고 한다. 닳으려고 한 부분부터 썩어 들어간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닿고 싶으면서도 두려워하고, 소통하고 싶으면서도 어물거리는, 상처 입을까봐 사랑조차 시도 해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한, 다시

사랑하고 싶지만 영원히 이제는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들을 위해 쓴 소설.

상 처 허이준 許李俊 서울 25세 회화과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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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받은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내려가는데

이향경

재공사를 하는지 몇 명의 인부가 역내 마감재를 모두 떼어내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낯선 철골구조 사이를 바삐 걷자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가 싶었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 몇 명의 노숙자들과 몇 명의 무명 연주자들이 내 곁을 지나쳤다. 해가 지고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난 다시 그 철골구조와 마주했다. 낡을 대로 낡았고, 부식되다 못해 문드러져 가는 붉게 검은 검정 철골 구조. 가만히 서서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뭉클했다. 인간의 상처를 물질로 조각해 낼 수 있다면 바로 저런 모양이겠구나 싶어서이다. 평범한 마감재를 벗겨내 보면 누구에게나 저런 구조가 들어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한참을 그 앞에 서 있게 됐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박원희의 작품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지하철에서 봤던 그 철골들과 생각이 이어졌다. 아마도 박원희란 사람은 상처를 물질로 조각해내는데 이미

꿈삶

성공했구나. 그러다 생각이 발전하고 내 나름의 해석이 가미되길, 사방으로 무분별하게 돌출되어 있는 가느다란 철골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는 누군가들이고 그들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자타의로 서로를 긁고 할퀸다, 허나 결국 뿌리는 같은 곳에서부터 시작됐기에 아무리 멀어지고 스쳐지나가도 결국 모두가 그 자리인 것. 박원희의 조각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은 이랬다. 담배를 핀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이름 없는 주인공들을 상상해냈다. 각자의 사연을 상상해냈다. 박원희의 조각의 돌출부분들처럼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박원희의 조각의 몸통처럼 결국 그 뿌리는 모두 같다. 그래서 주인공들에겐 이름이 필요 없었다. 박원희가 철 특유의 차가움으로 상처 그대로의 그 '날카로움' 을 표현해 냈다면 난 글 특유의 따스함으로 날카로움 그 '이후' 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박원희가 철로서 실현시킨 상처의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과정, 그것이 다시 아물어가는 과정. 내 나름대로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썼다.

샤르봉 sharbong.net 105


주제를 받은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내려가는데

이향경

재공사를 하는지 몇 명의 인부가 역내 마감재를 모두 떼어내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낯선 철골구조 사이를 바삐 걷자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가 싶었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 몇 명의 노숙자들과 몇 명의 무명 연주자들이 내 곁을 지나쳤다. 해가 지고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난 다시 그 철골구조와 마주했다. 낡을 대로 낡았고, 부식되다 못해 문드러져 가는 붉게 검은 검정 철골 구조. 가만히 서서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뭉클했다. 인간의 상처를 물질로 조각해 낼 수 있다면 바로 저런 모양이겠구나 싶어서이다. 평범한 마감재를 벗겨내 보면 누구에게나 저런 구조가 들어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한참을 그 앞에 서 있게 됐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박원희의 작품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지하철에서 봤던 그 철골들과 생각이 이어졌다. 아마도 박원희란 사람은 상처를 물질로 조각해내는데 이미

꿈삶

성공했구나. 그러다 생각이 발전하고 내 나름의 해석이 가미되길, 사방으로 무분별하게 돌출되어 있는 가느다란 철골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는 누군가들이고 그들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자타의로 서로를 긁고 할퀸다, 허나 결국 뿌리는 같은 곳에서부터 시작됐기에 아무리 멀어지고 스쳐지나가도 결국 모두가 그 자리인 것. 박원희의 조각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은 이랬다. 담배를 핀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이름 없는 주인공들을 상상해냈다. 각자의 사연을 상상해냈다. 박원희의 조각의 돌출부분들처럼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박원희의 조각의 몸통처럼 결국 그 뿌리는 모두 같다. 그래서 주인공들에겐 이름이 필요 없었다. 박원희가 철 특유의 차가움으로 상처 그대로의 그 '날카로움' 을 표현해 냈다면 난 글 특유의 따스함으로 날카로움 그 '이후' 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박원희가 철로서 실현시킨 상처의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과정, 그것이 다시 아물어가는 과정. 내 나름대로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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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상처처럼, 한 번 벌어지기 시작한 양 갈래의 길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달려간다. 내가 가고 싶은 길과 주변에서 권유하는 길, 꿈과 삶 사이의 괴리

김효선

덕분에 나의 고민은 더욱 깊이 패이고 있다.

이향경 www.hyanglee.com

닳아빠진 대신에 닳아빠 진 119


찢어진 상처처럼, 한 번 벌어지기 시작한 양 갈래의 길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달려간다. 내가 가고 싶은 길과 주변에서 권유하는 길, 꿈과 삶 사이의 괴리

김효선

덕분에 나의 고민은 더욱 깊이 패이고 있다.

이향경 www.hyang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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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풍상에 내맡겨진 채 닳아가고 삭아가는 대상들. 무의미한 것으로 버려지고 지워지는 무관심의 언저리. 그 근처의 하찮은

최신행 이사라

검은 속살. 바람이 남긴 정체불명의 화석. 쇠락의 흔적, 시간의 얼룩. 기억의 상처. 애틋한 그로테스크.

김효석 ganzabo@naver.com

데칼꼴라 주 연작 중 하나 143


세월의 풍상에 내맡겨진 채 닳아가고 삭아가는 대상들. 무의미한 것으로 버려지고 지워지는 무관심의 언저리. 그 근처의 하찮은

최신행 이사라

검은 속살. 바람이 남긴 정체불명의 화석. 쇠락의 흔적, 시간의 얼룩. 기억의 상처. 애틋한 그로테스크.

김효석 ganzabo@naver.com

데칼꼴라 주 연작 중 하나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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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희 님이 만든 조각 위로 넘어지면 크게 다치겠지? 상처를 낼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 상처 자체를 보고 싶었다. 다 섞여있더라.

이사라

훔 쳐보 기 최신행 서울 태생 choishinhaeng@gmail.com @haeng 147


박원희 님이 만든 조각 위로 넘어지면 크게 다치겠지? 상처를 낼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 상처 자체를 보고 싶었다. 다 섞여있더라.

이사라

훔 쳐보 기 최신행 서울 태생 choishinhaeng@gmail.com @haeng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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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밤 의 여로 이사라 23세 tkfktkfkdltk@gmail.com tkfktkfkdltk.blog.me @tkfktkfkdltk 151


이원희

밤 의 여로 이사라 23세 tkfktkfkdltk@gmail.com tkfktkfkdltk.blog.me @tkfktkfkdltk 151


2010년 1월 27일

끼어 하얗지도 않은 모호한 듯 하늘색에 선명한 흰 구름들이 미친 듯 흘러간다.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된다고 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마주 앉아 있으면 정리되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 말에 오히려 위로

“산사람은 살아야지요.”

받았다. 대체 무엇이 그를 등 돌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라는 말에 택시 아저씨는 10초 뒤 이렇게 대답한다.

얘기를 들어주었고 대답이 꼭 필요할 때 대답했다. 동의를 구할 땐

“조물주가 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

망설임 없이 동의해주었다. 가끔 지루한 가족 얘기도 열과 성을 다했고 같이 성당에서 미사 드릴 때면 불쌍한 영혼위해 진심으로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동네 치과선생님이 다시 병원 문을

기도했다. 나는 정성을 다 했는데 어떤 것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말

열었다는 이야기를 치과 앞 지날 때 생각나서 다시 꺼냈던 것이다.

모르겠다. 다 싫다고 했던 그가 나만 좋다고 해주면 고마웠다. 그

작년 여름에 만났던 사람은 내 글이 참 매력적이라고 해주었다.

마음 열 번이고 잘 알아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거울 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해주었다.

전화할 곳 있어 좋았다. 옛 애인에게 연락이라도 오면 쪼르르 달려와

유일한 한 사람. 어떻게 살고 무얼 먹으며 살고 있는지.

나한테는 털어놔줘서 좋았다. 나는 정말로 아직도 어떤 것이 잘 못되었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다. 그를 잃은 것이 참으로 아쉽다.

바글바글. 구석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항상 사람 많은 일식집 그 식당은 역시나 만석이었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인다. 새벽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2월 5일

사람들이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표정이 가슴을 시리게 만들고 도대체 알 수 없는 말만 꺼내고 있는 내 모습도 참으로 처량하다.

‘위태위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나까지 그들처럼 ‘위태위태’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 내 모든 것을 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벼랑 끝에 ‘위태위태’하게 서서 손잡아 끌어주길

2월 24일

바란다면. ‘그래 우리 어디 가서 죽을까?’

버스 안에서 평소처럼 흰 봉투에 들어있는 사진을 꺼내 보았는데

라는 말을 언제부터 쉽게 내뱉었는지. 새파랗지도 않고 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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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내 모습이 너무 형편없어 울컥했고 그 옆에 내 어깨를 감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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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7일

끼어 하얗지도 않은 모호한 듯 하늘색에 선명한 흰 구름들이 미친 듯 흘러간다.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된다고 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마주 앉아 있으면 정리되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 말에 오히려 위로

“산사람은 살아야지요.”

받았다. 대체 무엇이 그를 등 돌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라는 말에 택시 아저씨는 10초 뒤 이렇게 대답한다.

얘기를 들어주었고 대답이 꼭 필요할 때 대답했다. 동의를 구할 땐

“조물주가 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

망설임 없이 동의해주었다. 가끔 지루한 가족 얘기도 열과 성을 다했고 같이 성당에서 미사 드릴 때면 불쌍한 영혼위해 진심으로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동네 치과선생님이 다시 병원 문을

기도했다. 나는 정성을 다 했는데 어떤 것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말

열었다는 이야기를 치과 앞 지날 때 생각나서 다시 꺼냈던 것이다.

모르겠다. 다 싫다고 했던 그가 나만 좋다고 해주면 고마웠다. 그

작년 여름에 만났던 사람은 내 글이 참 매력적이라고 해주었다.

마음 열 번이고 잘 알아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거울 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해주었다.

전화할 곳 있어 좋았다. 옛 애인에게 연락이라도 오면 쪼르르 달려와

유일한 한 사람. 어떻게 살고 무얼 먹으며 살고 있는지.

나한테는 털어놔줘서 좋았다. 나는 정말로 아직도 어떤 것이 잘 못되었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다. 그를 잃은 것이 참으로 아쉽다.

바글바글. 구석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항상 사람 많은 일식집 그 식당은 역시나 만석이었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인다. 새벽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2월 5일

사람들이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표정이 가슴을 시리게 만들고 도대체 알 수 없는 말만 꺼내고 있는 내 모습도 참으로 처량하다.

‘위태위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나까지 그들처럼 ‘위태위태’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 내 모든 것을 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벼랑 끝에 ‘위태위태’하게 서서 손잡아 끌어주길

2월 24일

바란다면. ‘그래 우리 어디 가서 죽을까?’

버스 안에서 평소처럼 흰 봉투에 들어있는 사진을 꺼내 보았는데

라는 말을 언제부터 쉽게 내뱉었는지. 새파랗지도 않고 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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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내 모습이 너무 형편없어 울컥했고 그 옆에 내 어깨를 감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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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있는 그의 표정이 씁쓸해서 또 한 번 울컥했다. 정말 아무 것도 하고

7월 17일

싶지 않은 밤이다. 어두운 방에서 모기를 잡으려다 내 뺨을 강하게 쳤다. 아프다. 모기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어 빛을 비추니 마우스 패드에 떨어져있다. 내 뺨을 때릴 때 같이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잡긴 3월 4일

잡았다.

평생 우리가 한 번이라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8월 26일 3월 13일

돌이켜 보면 시작을 알리는 우렁찬 총성이 결국엔 장렬한 끝의 예고편인 것을.

거실 소파에 한 다리 괴어놓고 밤 새 울었다.

8월 30일 6월 26일 밖에 있으면 동남아의 한 복판에 있는 기분이고 밖을 피해 나는 사실 어젯밤 너와 섹스하는 꿈을 꾸었다. 나의 집

들어오면 빙산 덩어리에 묻혀 있는 기분이다. 이 둘의 타협점은

마당에서였는데 어찌나 격렬하게 했는지 잠에서 깨어 이 글을 쓰고

가을이던가. 문득, 우뚝 솟은 타워를 현대인의 고독함에 빗대어

있는 지금도 느껴진다. (순간의 감정이) 너와 사이가 틀어질 때면 이런

철학적으로 접근하겠다던 8월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무엇에도

꿈을 꾼다. 마음이 불편해서일까. 불편한 마음이 극한의 고통으로

집중할 수 없었던.

이어질 때면 너와 나는 격한 사랑을 나눈다. 그 섹스의 , 꿈의 끝은 항상 네가 떠나면서 시작되는데 이제 그것도 신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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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있는 그의 표정이 씁쓸해서 또 한 번 울컥했다. 정말 아무 것도 하고

7월 17일

싶지 않은 밤이다. 어두운 방에서 모기를 잡으려다 내 뺨을 강하게 쳤다. 아프다. 모기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어 빛을 비추니 마우스 패드에 떨어져있다. 내 뺨을 때릴 때 같이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잡긴 3월 4일

잡았다.

평생 우리가 한 번이라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8월 26일 3월 13일

돌이켜 보면 시작을 알리는 우렁찬 총성이 결국엔 장렬한 끝의 예고편인 것을.

거실 소파에 한 다리 괴어놓고 밤 새 울었다.

8월 30일 6월 26일 밖에 있으면 동남아의 한 복판에 있는 기분이고 밖을 피해 나는 사실 어젯밤 너와 섹스하는 꿈을 꾸었다. 나의 집

들어오면 빙산 덩어리에 묻혀 있는 기분이다. 이 둘의 타협점은

마당에서였는데 어찌나 격렬하게 했는지 잠에서 깨어 이 글을 쓰고

가을이던가. 문득, 우뚝 솟은 타워를 현대인의 고독함에 빗대어

있는 지금도 느껴진다. (순간의 감정이) 너와 사이가 틀어질 때면 이런

철학적으로 접근하겠다던 8월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무엇에도

꿈을 꾼다. 마음이 불편해서일까. 불편한 마음이 극한의 고통으로

집중할 수 없었던.

이어질 때면 너와 나는 격한 사랑을 나눈다. 그 섹스의 , 꿈의 끝은 항상 네가 떠나면서 시작되는데 이제 그것도 신물이 난다.

154

155


11월 1일

12월 9일

더 이상 우려먹고 싶지 않은 낡은 녹차티백처럼 5년 동안 내 글의

실은 어제가 존 레논의 기일이었다.

가장 큰 역할을 했던 B가 질릴 법도 한데 나는 침침한 새벽이 되면 혹은 낙엽이 지는 가을이 되면 언제나처럼 꼭 해야 되는 숙제처럼 B에 대해 쓰곤 한다. 12월 16일 이를 닦으려고 칫솔 위에 치약을 듬뿍 짰는데 치약 색이 너무 11월 21일

이상해 손에 들고 있는 걸 확인해보니 방금 전 얼굴에 문질러댔던 비누였다.

홍천이다. "아침이면 떠날거야" 라는 애잔한 가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도로에는 우리 차 밖에 없다. 2011년 10월 7일 현재 11월 25일

초가을의 농익은 해가 대지에 내려 만물이 따뜻할 때, 그 빛을 온 몸으로 느끼며 인적 드문 공원에서 애인을 안고 있노라면, 둘을

모든 걸 끝내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다시 한 없이 작아진 마음과

제외한 것, 모두 멈춘 기분이다. 맞닿은 몸의 작은 틈 사이로 빛이

마주 앉았다. 익숙한 찬 공기와 마주 앉는다. 언제까지 매해 겨울을

파고들며 우리는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나는 현재 모든 생채기를 뒤로

이렇게 보내야 하는가.

한 채 몇 번의 사랑을 나누고 몇 번의 절정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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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12월 9일

더 이상 우려먹고 싶지 않은 낡은 녹차티백처럼 5년 동안 내 글의

실은 어제가 존 레논의 기일이었다.

가장 큰 역할을 했던 B가 질릴 법도 한데 나는 침침한 새벽이 되면 혹은 낙엽이 지는 가을이 되면 언제나처럼 꼭 해야 되는 숙제처럼 B에 대해 쓰곤 한다. 12월 16일 이를 닦으려고 칫솔 위에 치약을 듬뿍 짰는데 치약 색이 너무 11월 21일

이상해 손에 들고 있는 걸 확인해보니 방금 전 얼굴에 문질러댔던 비누였다.

홍천이다. "아침이면 떠날거야" 라는 애잔한 가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도로에는 우리 차 밖에 없다. 2011년 10월 7일 현재 11월 25일

초가을의 농익은 해가 대지에 내려 만물이 따뜻할 때, 그 빛을 온 몸으로 느끼며 인적 드문 공원에서 애인을 안고 있노라면, 둘을

모든 걸 끝내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다시 한 없이 작아진 마음과

제외한 것, 모두 멈춘 기분이다. 맞닿은 몸의 작은 틈 사이로 빛이

마주 앉았다. 익숙한 찬 공기와 마주 앉는다. 언제까지 매해 겨울을

파고들며 우리는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나는 현재 모든 생채기를 뒤로

이렇게 보내야 하는가.

한 채 몇 번의 사랑을 나누고 몇 번의 절정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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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인

회 귀 이원희 fabrique.egloos.com 159


김태인

회 귀 이원희 fabrique.egloos.com 159


160

161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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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정

forget 163


박미정

forget 163


데도 눈은 거의 12시를 넘기기 전에 떠졌다. 계절은 초가을이었고, 조 금 싸느라한 바람에 여름 못지않은 뜨거운 열기(이건 바람외의 모든, 지상 공간을 채우는 것이었다)가 공존하는 이상한 날씨에도 할 일이 정해진 월급쟁이들은, 사실 그 중엔 사업가나 별 볼일 없이 아침부터 나다니는 사람이 섞여있겠지만 그들의 줄을 지켜가며 착하게도 거리 를 채우고 있었다. 아침 뉴스를 틀어놓고 그 앞에 앉아 블라인드를 열 어 해를 집안에 들인 다음 그 빛을 쬐며 발톱을 자르는 일, 그것을 여느 신자의 종교의식보다도 더 경건하게 해내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때였 나의 취미라는 것은 단순하지만 대단히 건축적인 무엇이었다.

다. 발톱을 다 자르고 나면 꼭 손톱도 확인을 하고는 했는데, 손톱은 뭔 가 발톱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나머지 손톱까지 한 번에 정리를 한 적

나에게는 총 3가지의 취미가 있었는데, 하나는 염탐, 다른 하나는

은 없는 것 같다. 푸석하고 누런 발톱들을 모아서 두루마리 휴지 한 칸

살생, 나머지 하나는 평가였다. 이유가 없는 것이 취미라지만 나에게

에 얹고는 곱게 싸서 휴지통에 버릴 때는 휙하고 버린다. 하지만 그 덩

는, 건축적인 성격의 나에게는 취미까지도 조형하고픈 심연의 무언가

어리가 풀어져 휴지통 주변에 떨어지는 것은 또 싫어서 적정량의 주

무의식이 조정 또 조장하고야 마는 무엇이 있었다. 이 취미가 생겨버린

의를 들여 휴지통에 투하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 행동

구심점이랄까(계기라는 말보다 더 구조적이다) 계속해서 원동력을 제

을 할 때는 꼭 마음속으로 내기를 하곤 했는데, 예를 들면 그에게 새벽

공하는 트라우마적 사건이랄까 하는 것은, 후에 생각해 낸 것이지만 이

에 전화가 온다거나 시장에 가면 단호박이 다른 날보다 현저히 적어도

제부터 말하게 될 ‘이’ 일이었다.

500원 이상 싸게 나와 있다거나 얼마 전 우연히 주운 남자 손수건(그건 분.명.히. 남성의 것이었다)의 주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거나 하

직장을 무작정 그만두고 히키코모리처럼(그렇지만 적당히 타협

는 것들 이었다. 대부분 성공이었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내기 따위는

한) 잠깐씩 집 앞의 편의점에만 다녀올 뿐 하루의 대부분(아니 전부_)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고 마음에 대고 퉤퉤퉤를 해댔다. 흥?!이라고 속

를 집에서 지낼 때였다. 벌써 3년 전이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니 그

으로 말하면서도 가슴은 이상하게 뭔지 모를 상실감과 패배감에 두근

보다 좀 덜? 내가 바로 ‘이’ 사건을 통해 만들게 된 취미에 그토록 심취

거렸었다. 발톱은 생각만큼 빨리 자라주진 않았고, 기다리기가 조금 힘

해 있었다는 사실은 사실…조금 놀랍다.

들었지만 때론 자르지도 않으면서 몸을 구부리고 오른 손에는 손톱깎 이를 들고 발과 바닥을 같이 보고 있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있을 때도

새벽보다도 늦은 아니 이른? 오전 6시 정도에나 잠이 들고는 했는

164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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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도 눈은 거의 12시를 넘기기 전에 떠졌다. 계절은 초가을이었고, 조 금 싸느라한 바람에 여름 못지않은 뜨거운 열기(이건 바람외의 모든, 지상 공간을 채우는 것이었다)가 공존하는 이상한 날씨에도 할 일이 정해진 월급쟁이들은, 사실 그 중엔 사업가나 별 볼일 없이 아침부터 나다니는 사람이 섞여있겠지만 그들의 줄을 지켜가며 착하게도 거리 를 채우고 있었다. 아침 뉴스를 틀어놓고 그 앞에 앉아 블라인드를 열 어 해를 집안에 들인 다음 그 빛을 쬐며 발톱을 자르는 일, 그것을 여느 신자의 종교의식보다도 더 경건하게 해내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때였 나의 취미라는 것은 단순하지만 대단히 건축적인 무엇이었다.

다. 발톱을 다 자르고 나면 꼭 손톱도 확인을 하고는 했는데, 손톱은 뭔 가 발톱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나머지 손톱까지 한 번에 정리를 한 적

나에게는 총 3가지의 취미가 있었는데, 하나는 염탐, 다른 하나는

은 없는 것 같다. 푸석하고 누런 발톱들을 모아서 두루마리 휴지 한 칸

살생, 나머지 하나는 평가였다. 이유가 없는 것이 취미라지만 나에게

에 얹고는 곱게 싸서 휴지통에 버릴 때는 휙하고 버린다. 하지만 그 덩

는, 건축적인 성격의 나에게는 취미까지도 조형하고픈 심연의 무언가

어리가 풀어져 휴지통 주변에 떨어지는 것은 또 싫어서 적정량의 주

무의식이 조정 또 조장하고야 마는 무엇이 있었다. 이 취미가 생겨버린

의를 들여 휴지통에 투하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 행동

구심점이랄까(계기라는 말보다 더 구조적이다) 계속해서 원동력을 제

을 할 때는 꼭 마음속으로 내기를 하곤 했는데, 예를 들면 그에게 새벽

공하는 트라우마적 사건이랄까 하는 것은, 후에 생각해 낸 것이지만 이

에 전화가 온다거나 시장에 가면 단호박이 다른 날보다 현저히 적어도

제부터 말하게 될 ‘이’ 일이었다.

500원 이상 싸게 나와 있다거나 얼마 전 우연히 주운 남자 손수건(그건 분.명.히. 남성의 것이었다)의 주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거나 하

직장을 무작정 그만두고 히키코모리처럼(그렇지만 적당히 타협

는 것들 이었다. 대부분 성공이었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내기 따위는

한) 잠깐씩 집 앞의 편의점에만 다녀올 뿐 하루의 대부분(아니 전부_)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고 마음에 대고 퉤퉤퉤를 해댔다. 흥?!이라고 속

를 집에서 지낼 때였다. 벌써 3년 전이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니 그

으로 말하면서도 가슴은 이상하게 뭔지 모를 상실감과 패배감에 두근

보다 좀 덜? 내가 바로 ‘이’ 사건을 통해 만들게 된 취미에 그토록 심취

거렸었다. 발톱은 생각만큼 빨리 자라주진 않았고, 기다리기가 조금 힘

해 있었다는 사실은 사실…조금 놀랍다.

들었지만 때론 자르지도 않으면서 몸을 구부리고 오른 손에는 손톱깎 이를 들고 발과 바닥을 같이 보고 있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있을 때도

새벽보다도 늦은 아니 이른? 오전 6시 정도에나 잠이 들고는 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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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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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하는 뉴스 프로그램들이 그렇듯 가정문제를 해결하는 내

거실에 위치해 있었고 눈과 귀는 TV내용에 담궈져 있었지만 뇌는 계

용,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데 엄청난 사회 문제처럼 부풀려진 무언가의

속해서 판다쪽에 머물러 있었다. 뭐지? 왜 판다쪽이 제일 충격적인데

르포(사실 재현드라마에 가깝다고 생각)등이 진짜 알아야하는 뉴스들

메인으로 다루지 않는 거지? 판다를 육식으로 사육한다는 것이 당췌

과 뒤섞여 방송되고는 했다. 그다지 열렬한 페미니스트적 입장이 아니

말이나 되나? 판다가 고기를 소화할 수 있어? 채식과 육식의 병행…아

면서도 여성을 약자로 상정해 가정 내 남성의 잘못된 행동 및 감정에

님 진짜로 육식만? 이유는…대나무잎 구하기가 어려워서? 물음이 뇌

의한 가정파괴를 다루는 것들은 매우 실망스러우면서도 분노하는 눈

속에서 내 속에서 계속해서 환기되고 있었다. 고양이 이야기가 결코 덜

빛으로 지켜봤고, 그 밖의 것들은 적당한 감탄사를 뱉기도 하면서(사실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못이 꽤 깊이 박혀 있었는데, 고양이는 살아

폭소를 자주했다) 즐기며 봤었다. 완연한 타인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나

서 심지어 사람(구조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을 다닐 수 있을 정도였

쁘지 않았다.

고, 구조 후에는 꽤 순조로이 못을 제거하고 회복마저도 빨라보였다.

그날은 발톱을 다 깎고 담배 한 대를 물고 베란다에 가 있었다. 밖

TV를 통해 돌보아줄 새 주인을 찾는다니 곧 좋은 사람을 만나 죽기 전

은 꽤 조용했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소음이라 봐야 TV 볼륨

까지 덜 다사다난하게 살다 생을 마감할 것이 분명했다. 보상의 날들이

보다 크지 않았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고 그것을 통해 뇌에는 검정치

다가올 것이며 펼쳐질 것이다.

마 조휴일의 1집 I like watching U go가 흘러들었다. 뉴스 속 아나운서 의 목소리가 조금 격양되는가 싶더니 다음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상하게도 판다쪽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위해 공개 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러 사람 을 거쳐 결국 판다쪽 제보인의 번호를 얻어냈고, 그 사람과 꽤 쉬이 연

이유를 알 수 없는 동물학대.

락이 닿아 꽤 가까운 날짜에 만남이 잡혔다.

어느 미친놈이 강아지 다리의 살점을 다 발라버렸다.

차 한 잔 마시며 얘기할 내용인가 싶었지만, 만남의 용이성을 위

어느 미친 새끼가 고양이 머리에 못을 박았다.

해 장소는 한 프랜차이즈 커피점으로 정하였다. 나는 시간을 맞추어 나

어느 미친 홍합집 주인이 개에게 손님들이 먹고 버린 홍합 껍데기

가기에는 너무 이르게 나갈 채비를 마쳤다. 그렇지만 카페에 앉아 여유

만을 밥으로 주어 개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말라 있었다.

롭게 기다릴 상태는 못 되어서 최소시간을 남겨두고 나가기로 했다. 남

그리고,

은 시간동안 인터넷검색을 좀 해볼 참이었다. 인터넷에는 생각보다 많

중국에서 몰래 판다를 들여와 육식으로 키우고 있다는 남자가

은 판다관련 내용이 나와 있었다. 실제 판다보다는 이미지로의 판다 내

있다.

용이 더 많았지만 개념만은 통일된 판다가 분명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적은 량의 정보, 그 이상의 내용을 다루는 웹페이지는 없었

주된 내용은 고양이쪽이었다. 몸은 어느 순간 베란다를 빠져나와

166

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내용을 알고 제보까지 하게 되었을지 더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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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하는 뉴스 프로그램들이 그렇듯 가정문제를 해결하는 내

거실에 위치해 있었고 눈과 귀는 TV내용에 담궈져 있었지만 뇌는 계

용,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데 엄청난 사회 문제처럼 부풀려진 무언가의

속해서 판다쪽에 머물러 있었다. 뭐지? 왜 판다쪽이 제일 충격적인데

르포(사실 재현드라마에 가깝다고 생각)등이 진짜 알아야하는 뉴스들

메인으로 다루지 않는 거지? 판다를 육식으로 사육한다는 것이 당췌

과 뒤섞여 방송되고는 했다. 그다지 열렬한 페미니스트적 입장이 아니

말이나 되나? 판다가 고기를 소화할 수 있어? 채식과 육식의 병행…아

면서도 여성을 약자로 상정해 가정 내 남성의 잘못된 행동 및 감정에

님 진짜로 육식만? 이유는…대나무잎 구하기가 어려워서? 물음이 뇌

의한 가정파괴를 다루는 것들은 매우 실망스러우면서도 분노하는 눈

속에서 내 속에서 계속해서 환기되고 있었다. 고양이 이야기가 결코 덜

빛으로 지켜봤고, 그 밖의 것들은 적당한 감탄사를 뱉기도 하면서(사실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못이 꽤 깊이 박혀 있었는데, 고양이는 살아

폭소를 자주했다) 즐기며 봤었다. 완연한 타인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나

서 심지어 사람(구조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을 다닐 수 있을 정도였

쁘지 않았다.

고, 구조 후에는 꽤 순조로이 못을 제거하고 회복마저도 빨라보였다.

그날은 발톱을 다 깎고 담배 한 대를 물고 베란다에 가 있었다. 밖

TV를 통해 돌보아줄 새 주인을 찾는다니 곧 좋은 사람을 만나 죽기 전

은 꽤 조용했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소음이라 봐야 TV 볼륨

까지 덜 다사다난하게 살다 생을 마감할 것이 분명했다. 보상의 날들이

보다 크지 않았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고 그것을 통해 뇌에는 검정치

다가올 것이며 펼쳐질 것이다.

마 조휴일의 1집 I like watching U go가 흘러들었다. 뉴스 속 아나운서 의 목소리가 조금 격양되는가 싶더니 다음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상하게도 판다쪽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위해 공개 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러 사람 을 거쳐 결국 판다쪽 제보인의 번호를 얻어냈고, 그 사람과 꽤 쉬이 연

이유를 알 수 없는 동물학대.

락이 닿아 꽤 가까운 날짜에 만남이 잡혔다.

어느 미친놈이 강아지 다리의 살점을 다 발라버렸다.

차 한 잔 마시며 얘기할 내용인가 싶었지만, 만남의 용이성을 위

어느 미친 새끼가 고양이 머리에 못을 박았다.

해 장소는 한 프랜차이즈 커피점으로 정하였다. 나는 시간을 맞추어 나

어느 미친 홍합집 주인이 개에게 손님들이 먹고 버린 홍합 껍데기

가기에는 너무 이르게 나갈 채비를 마쳤다. 그렇지만 카페에 앉아 여유

만을 밥으로 주어 개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말라 있었다.

롭게 기다릴 상태는 못 되어서 최소시간을 남겨두고 나가기로 했다. 남

그리고,

은 시간동안 인터넷검색을 좀 해볼 참이었다. 인터넷에는 생각보다 많

중국에서 몰래 판다를 들여와 육식으로 키우고 있다는 남자가

은 판다관련 내용이 나와 있었다. 실제 판다보다는 이미지로의 판다 내

있다.

용이 더 많았지만 개념만은 통일된 판다가 분명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적은 량의 정보, 그 이상의 내용을 다루는 웹페이지는 없었

주된 내용은 고양이쪽이었다. 몸은 어느 순간 베란다를 빠져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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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내용을 알고 제보까지 하게 되었을지 더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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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졌다. 약속시간을 5분 남겨두고 도착할 수 있었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또는 그저 혼자 왔을 뿐인, 혼자서 앉아있는 사

“모든건 장 때문이었습니다. 전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람들이 꽤 되었지만 난 카페 안으로 들자마자 그중 누가 그인지 금방

않았다구요.”

알아보았다. 그는 무척 긴장해 있었고, 내가 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이건 내가 좀 압축한 것이고(압축?)그는 이 문장 중간 중간에 흐억,

눈치였다. 물 컵이 그의 앞에 그가 앉은 시선의 11시 방향에 놓여 있었

꺽, 습 등의 우리가 흔히 울면서 말할 때의 추임새를 친히 섞어가며 말

고 나는 그 앞에 인사도 없이 털석 앉고는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

했다. 그 때 내가 왜 더 공고한 말하기, 확실하고도 주체와 객체가 분명

후(나답지 않게)빈 컵을 내 시선의 4시 방향에 두었다.

한 분석적 물음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쪽이 더 미스터리

“가해자와는 어떤 관계이시죠?”

지만 그 때 나는 짧고 단호하게 부탁의 말을 건네 버렸다.

나는 입가에 묻은 물을 닦으며 그렇게 물었다. 문장이 입을 통해

“주소를 주시죠.”

다 말해지기도 전에 이미 어떻게 내가 가해자라는 단어를 선택한 건지

가방에서 바로 수첩과 펜을 꺼내 그에게 탁자의 컵을 스치며 밀어

놀라고 있었다. 물음을 마쳤을 때 더 긴장했던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주니 그는 계속 탁자 밑에 늘어뜨려 놓았던 신체가 팔과 손이 분명하다

가해자라는 표현도 그렇지만 다짜고짜 관계(라는 단어와 의미를)를 끌

는 듯 꽤 빠르게 위로 올려 메모를 작성했다.

어들인 것에 대해 어떤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흡사 취조와

“연락처, 그러니까 그쪽의, 도 좀 그 밑에 같이 남겨주시죠?”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는 무언가 진실로 잘못했거나, 너무 큰

“미안하지만 핸드폰이 없습니다. 집에서 인터넷 전화를 쓰고 있는

진실을 알고 있어 그 자체가 죄가 되는 냥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진실의

데 그 번호라도…드릴까요?”

텔러 - 증인 같은 존재가 확실해져 버렸다. 나의 한마디 때문에…

드릴까요라고 말할 때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혀…형되는 사람입니다.”

눈빛이 뭐랄지…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

그도 이렇게 말하더니 컵을 당겨 짚어든 다음 의자에서 일어나 성

다. 나를 집중력 있게 바라보는 그 거리낌 없는 자신에 까지 찬 눈빛에

큼성큼 셀프 bar로 가서 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이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인가 싶은 마음이 들면서 호감이라는 감정을 느

한 모금 마시더니 아까와 비슷한 위치에 컵을 놓고 말을 이었다.

껴 버리고 말았다. 등으로 전기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머리 속에 ‘꽤 잘

“사실 그쪽 같은 사람을 찾고…그래요 원하기도 했고…그렇기 때

생겼잖아?’하는 생각이 기분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꽤

문에 방송사에 제보를 한 겁니다.”

세련된 옷차림에 얼굴도 객관적으로 잘생긴 편이었다. 난 뭔가 새삼 부

“저 같은 사람이라면 혹시…(설마라는 표현을 썼었는지도 모른다

끄러워하며 꽤 여성스런 동작으로 수첩과 펜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기억나지 않는다)처벌을 원하십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아니 괜찮으시면 같이 일어나시겠습

흑….흑…흐…흐흑…흐억…하더니 남자는 이내 처음 보는 여자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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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졌다. 약속시간을 5분 남겨두고 도착할 수 있었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또는 그저 혼자 왔을 뿐인, 혼자서 앉아있는 사

“모든건 장 때문이었습니다. 전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람들이 꽤 되었지만 난 카페 안으로 들자마자 그중 누가 그인지 금방

않았다구요.”

알아보았다. 그는 무척 긴장해 있었고, 내가 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이건 내가 좀 압축한 것이고(압축?)그는 이 문장 중간 중간에 흐억,

눈치였다. 물 컵이 그의 앞에 그가 앉은 시선의 11시 방향에 놓여 있었

꺽, 습 등의 우리가 흔히 울면서 말할 때의 추임새를 친히 섞어가며 말

고 나는 그 앞에 인사도 없이 털석 앉고는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

했다. 그 때 내가 왜 더 공고한 말하기, 확실하고도 주체와 객체가 분명

후(나답지 않게)빈 컵을 내 시선의 4시 방향에 두었다.

한 분석적 물음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쪽이 더 미스터리

“가해자와는 어떤 관계이시죠?”

지만 그 때 나는 짧고 단호하게 부탁의 말을 건네 버렸다.

나는 입가에 묻은 물을 닦으며 그렇게 물었다. 문장이 입을 통해

“주소를 주시죠.”

다 말해지기도 전에 이미 어떻게 내가 가해자라는 단어를 선택한 건지

가방에서 바로 수첩과 펜을 꺼내 그에게 탁자의 컵을 스치며 밀어

놀라고 있었다. 물음을 마쳤을 때 더 긴장했던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주니 그는 계속 탁자 밑에 늘어뜨려 놓았던 신체가 팔과 손이 분명하다

가해자라는 표현도 그렇지만 다짜고짜 관계(라는 단어와 의미를)를 끌

는 듯 꽤 빠르게 위로 올려 메모를 작성했다.

어들인 것에 대해 어떤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흡사 취조와

“연락처, 그러니까 그쪽의, 도 좀 그 밑에 같이 남겨주시죠?”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는 무언가 진실로 잘못했거나, 너무 큰

“미안하지만 핸드폰이 없습니다. 집에서 인터넷 전화를 쓰고 있는

진실을 알고 있어 그 자체가 죄가 되는 냥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진실의

데 그 번호라도…드릴까요?”

텔러 - 증인 같은 존재가 확실해져 버렸다. 나의 한마디 때문에…

드릴까요라고 말할 때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혀…형되는 사람입니다.”

눈빛이 뭐랄지…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

그도 이렇게 말하더니 컵을 당겨 짚어든 다음 의자에서 일어나 성

다. 나를 집중력 있게 바라보는 그 거리낌 없는 자신에 까지 찬 눈빛에

큼성큼 셀프 bar로 가서 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이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인가 싶은 마음이 들면서 호감이라는 감정을 느

한 모금 마시더니 아까와 비슷한 위치에 컵을 놓고 말을 이었다.

껴 버리고 말았다. 등으로 전기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머리 속에 ‘꽤 잘

“사실 그쪽 같은 사람을 찾고…그래요 원하기도 했고…그렇기 때

생겼잖아?’하는 생각이 기분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꽤

문에 방송사에 제보를 한 겁니다.”

세련된 옷차림에 얼굴도 객관적으로 잘생긴 편이었다. 난 뭔가 새삼 부

“저 같은 사람이라면 혹시…(설마라는 표현을 썼었는지도 모른다

끄러워하며 꽤 여성스런 동작으로 수첩과 펜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기억나지 않는다)처벌을 원하십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아니 괜찮으시면 같이 일어나시겠습

흑….흑…흐…흐흑…흐억…하더니 남자는 이내 처음 보는 여자

니까?”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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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이건 그가 한 말이 아니다. 내가 한 말이다. 그는 방금

꽤 빨리 훈약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안의 길 찾는 잠재능력이 오늘

전의 그 호기를 잃고 또 작고 소심해져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는 것에 맞

에야 발현되어 이렇듯 신통방통한 것에 꽤 놀랐다. 더 놀랄 일은 훈약국

추어 같이 밖으로 나와주었다. 사건 의뢰가 마쳐졌고, 나, 형사는 사건

앞에 서있는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 오토바이를 타고 아주 저속으로

의 해결의지를 의뢰 상황을 급히 정리하는 것으로 보이고자 했던 것이

달리는 우편배달부를 말이 씨가 되어 실.재.로. 만났다는 점이다. 우편

다. 그가 일부러 그렇게 해 주었는지 또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는지 우

배달부의 설명은 뭔가 더 정확했고 주소지까지 찾아가는 데 많은 시간

리는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걸어갔고 별다른 인사 없이 그렇게 헤어

이 걸리지 않았다.

졌다.

수첩에 적힌 글씨가 대문 기둥에 똑같이 적혀 있는 집 앞에서 나는

괜한 의지가 불타오르자 심한 허기가 느껴졌고 난 근처의 돈가스

한참을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듯 위험이

집에 들어가 우동이 딸린 정식메뉴를 매우 빠른 시간에 해치웠다. 봉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태연히 지낼 만큼 둔하면서도 이렇듯 보

동 345-9 이곳에 가면 나는 육식하는 판다를 만날 수 있다. 그 때는 적

이지 않지만 예고된 경고된 위험에는 어찌 그리 예민하다는 말인가! “계세요…어디…누구 안계세요…”

어도 그렇게만 기대를 했다. 인터넷으로 위치를 검색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예

안계세요?하고 끝을 올려야 맞는데 장소 안의 어떤 기운에 눌려 목

전에 내려 본 적이 없는 지하철역이었다. 지하철 역사를 채운 초록색 타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억양도 낮아졌다. 오래된 양옥집의 좁은 정원에

일이 이상해 보였다. 타일아트랍시고 되어있는 무늬가 동물인 것은 확

는 돌을 깐 사람 다니는 길이 현관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밖의 공간은

실했지만 정확히 어떤 동물인지는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눈 주위와 손

흙과 잡초 아마도 오래전에는 계획해서 조경되었을 나무들로 채워져

과 발의 검은 타일. ‘설마 이걸 판다라고 해놓은 건 아니겠지?’ 대충 아

있었다. 오래된 양옥답게 조금 붕~ 뜨게 위치해 있는 집의 현관 옆 베란

무 출구로나 나갔다. 아마도 동네 주민일 것 같은 사람들에게 수첩을 펼

다 밑은 알 수 없는 검정이 채우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판다가 그

쳐 보이며 이곳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하냐고 묻기를 여러 번, 사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빠른 걸음으로 그 앞에 가서 섰다. 몸을 천

람들은 숫자에 약했다. 중년의 남성분이 묻고 서 있는 내가 딱했는지 먼

천히 구부려 발톱 깎는 자세 비슷하게 만들고는 어둠을 응시했다. 아무

저 다가와 주소를 꼼꼼히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시더니,

소리 나지 않았고, 냄새도 정원 냄새라고 느껴지는 것이 주였지만 그 안

“아 이거 훈약국 옆쯤 되겠는데…? 훈약국이 봉월동 340단위로 시

에 분명 무언가가 숨을 쉭쉭 쉬고 있었다. 그렇다는 게 느껴졌다. 대부

작하니까…아가씨, 훈약국 가는 길을 알려줄 테니까 그 근처에 가

분 그렇지만 딱 이 타이밍에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서 운 좋으면 우편배달부라도 만나 다시 물어 보시구려. 그러니까

“거 누구고?”하는 할머니의 버럭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나

여기서 위로…”

는 나자빠져져 엉덩이를 정원에 깔고 엄마야하고 비명을 질렀다.

불분명한 쭉, 비스듬히, 한 등의 표현이 섞인 설명을 한 번에 듣고

내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설명하여 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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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이건 그가 한 말이 아니다. 내가 한 말이다. 그는 방금

꽤 빨리 훈약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안의 길 찾는 잠재능력이 오늘

전의 그 호기를 잃고 또 작고 소심해져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는 것에 맞

에야 발현되어 이렇듯 신통방통한 것에 꽤 놀랐다. 더 놀랄 일은 훈약국

추어 같이 밖으로 나와주었다. 사건 의뢰가 마쳐졌고, 나, 형사는 사건

앞에 서있는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 오토바이를 타고 아주 저속으로

의 해결의지를 의뢰 상황을 급히 정리하는 것으로 보이고자 했던 것이

달리는 우편배달부를 말이 씨가 되어 실.재.로. 만났다는 점이다. 우편

다. 그가 일부러 그렇게 해 주었는지 또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는지 우

배달부의 설명은 뭔가 더 정확했고 주소지까지 찾아가는 데 많은 시간

리는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걸어갔고 별다른 인사 없이 그렇게 헤어

이 걸리지 않았다.

졌다.

수첩에 적힌 글씨가 대문 기둥에 똑같이 적혀 있는 집 앞에서 나는

괜한 의지가 불타오르자 심한 허기가 느껴졌고 난 근처의 돈가스

한참을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듯 위험이

집에 들어가 우동이 딸린 정식메뉴를 매우 빠른 시간에 해치웠다. 봉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태연히 지낼 만큼 둔하면서도 이렇듯 보

동 345-9 이곳에 가면 나는 육식하는 판다를 만날 수 있다. 그 때는 적

이지 않지만 예고된 경고된 위험에는 어찌 그리 예민하다는 말인가! “계세요…어디…누구 안계세요…”

어도 그렇게만 기대를 했다. 인터넷으로 위치를 검색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예

안계세요?하고 끝을 올려야 맞는데 장소 안의 어떤 기운에 눌려 목

전에 내려 본 적이 없는 지하철역이었다. 지하철 역사를 채운 초록색 타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억양도 낮아졌다. 오래된 양옥집의 좁은 정원에

일이 이상해 보였다. 타일아트랍시고 되어있는 무늬가 동물인 것은 확

는 돌을 깐 사람 다니는 길이 현관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밖의 공간은

실했지만 정확히 어떤 동물인지는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눈 주위와 손

흙과 잡초 아마도 오래전에는 계획해서 조경되었을 나무들로 채워져

과 발의 검은 타일. ‘설마 이걸 판다라고 해놓은 건 아니겠지?’ 대충 아

있었다. 오래된 양옥답게 조금 붕~ 뜨게 위치해 있는 집의 현관 옆 베란

무 출구로나 나갔다. 아마도 동네 주민일 것 같은 사람들에게 수첩을 펼

다 밑은 알 수 없는 검정이 채우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판다가 그

쳐 보이며 이곳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하냐고 묻기를 여러 번, 사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빠른 걸음으로 그 앞에 가서 섰다. 몸을 천

람들은 숫자에 약했다. 중년의 남성분이 묻고 서 있는 내가 딱했는지 먼

천히 구부려 발톱 깎는 자세 비슷하게 만들고는 어둠을 응시했다. 아무

저 다가와 주소를 꼼꼼히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시더니,

소리 나지 않았고, 냄새도 정원 냄새라고 느껴지는 것이 주였지만 그 안

“아 이거 훈약국 옆쯤 되겠는데…? 훈약국이 봉월동 340단위로 시

에 분명 무언가가 숨을 쉭쉭 쉬고 있었다. 그렇다는 게 느껴졌다. 대부

작하니까…아가씨, 훈약국 가는 길을 알려줄 테니까 그 근처에 가

분 그렇지만 딱 이 타이밍에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서 운 좋으면 우편배달부라도 만나 다시 물어 보시구려. 그러니까

“거 누구고?”하는 할머니의 버럭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나

여기서 위로…”

는 나자빠져져 엉덩이를 정원에 깔고 엄마야하고 비명을 질렀다.

불분명한 쭉, 비스듬히, 한 등의 표현이 섞인 설명을 한 번에 듣고

내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설명하여 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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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할머니를 설득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로 설명이 어렵다. 그저 나는 그 취미를 더 이상 지속하지 않는 시점(그

않는다. 하지만 난 꽤 잘했고, 그 검정을 더 조사해 보아도 되었다.

가 내가 않겠다는 혈서를 받아냈다)에 그를 남자친구로 맞을 수 있었

할머니는 그 집의 주인이 아니었다. 집의 주인은 할아버지와 그의

고, 그를 지켜내기 위해 그 취미를 악취미를 버렸다. 내가 본 것이 정말

손자인 청년이었으며,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 집으로 가셨고 가

로 판다였는지, 장이라는 사람은 누구고, 할머니는 정말로 그 일련의 일

끔씩만 오시며 주로 살던 청년이 자신이 집을 비울 수도 있다며 가

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는지, 그 정원에 얼마나 많은 뼈들이 묻

끔 집을 살펴 달라 부탁했기에 자신은 온 것이라는 설명이 묻지도

혀있는지, 자주 관리하지 않는 집의 내부가 왜 그리 깨끗했는지 말하지

않았는데 주저리 주저리 나왔다. 할머니는 말상대가 필요해서 나

않겠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이건 동물학대가 아닌 살인사건 이었다.

를 경계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지닌 그 말하기의 욕망이

남아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누군가는 죽었고, 그 뼈는 아직도 그 주소의

란…

정원 밑에 숨겨져 있다. 한 가지 경고하자면 당신도 나와 똑같이 호기

나는 그 청년이 그 남자의 동생이구나 싶어 가끔 찾아오던 더 나이

심에 그 곳을 방문한다 한들 분명히 누가 살인을 당했는지 알기 어려울

많은 청년은 없었냐고 물었고 할머니는,“아~ 청석이?”라시며, 그의 이

것이다. 또한, 딱 누구라고 결정짓더라도 이 사건은 절대로 법의 잣대로

름을 말하셨다. 걔는 최근에도 와서 판다 먹이를 주고 갔다면서…아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귀한 판다가 불법으로 누군가의 애완

머니께서 판다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신

“판다요? 애완용인가봐요…먹이는 뭘 준대요?”

은 인터넷 검색에 판다를 쳤을 때와 같은 혼란 즉, 판다란 무엇인가 하

“걔야 별거 다 먹지. 쥐도 잡아먹고. 식구들 먹다 남은 잔반도 먹고.

는 판다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에 깊이 빠져 혼미하다가는 1개 이상의

아끼던 앵무샌가도 잡아먹었다지 아마…?”

악취미를 얻게 되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가 세상 가장 큰 마스

“할머니 제가 실은 부탁을 받고 왔거든요. 어디보자…쥐는 좀 무리

터 키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모든 것을 치료 받고 다시 이 평범한 세계

고…부엌에 가서 먹을 것 좀 있나 봐야겠어요. 먹이만 주면 된다고

로 돌아와 나와 같이 흐릿한 기억을 재조합해보려는 쓸모없는 노력을

했거든요.”

하다가 그 사람이 사랑이,

나의 어색한 대응에도 할머니는 의심 없이 곧 자리를 비켜주셨다.

“자기 모해?”하고 뒤에서 부르면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 를 돌려,

그 아래 깊은 검정에 살고 있던 생명체에 대해서 난 길게 설명하지

“응?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실존주의적 아이러니의 대답

않겠다. 중요한 건 난 그 장소에서 내 취미의 세 가지 구성요소 염탐, 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것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적이 있기

생, 평가를 고루 할 수 있었고(이젠 더 이상 나의 취미가 아니다) 호감

는 했는가!)을 하며 급히 저장도 하지 않은 채 그 것들을 결국 망각의 강

을 샀던 그 남자는 현재 나의 남자친구다. 환타지 같았던 그 기간은 말

으로 띄워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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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할머니를 설득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로 설명이 어렵다. 그저 나는 그 취미를 더 이상 지속하지 않는 시점(그

않는다. 하지만 난 꽤 잘했고, 그 검정을 더 조사해 보아도 되었다.

가 내가 않겠다는 혈서를 받아냈다)에 그를 남자친구로 맞을 수 있었

할머니는 그 집의 주인이 아니었다. 집의 주인은 할아버지와 그의

고, 그를 지켜내기 위해 그 취미를 악취미를 버렸다. 내가 본 것이 정말

손자인 청년이었으며,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 집으로 가셨고 가

로 판다였는지, 장이라는 사람은 누구고, 할머니는 정말로 그 일련의 일

끔씩만 오시며 주로 살던 청년이 자신이 집을 비울 수도 있다며 가

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는지, 그 정원에 얼마나 많은 뼈들이 묻

끔 집을 살펴 달라 부탁했기에 자신은 온 것이라는 설명이 묻지도

혀있는지, 자주 관리하지 않는 집의 내부가 왜 그리 깨끗했는지 말하지

않았는데 주저리 주저리 나왔다. 할머니는 말상대가 필요해서 나

않겠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이건 동물학대가 아닌 살인사건 이었다.

를 경계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지닌 그 말하기의 욕망이

남아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누군가는 죽었고, 그 뼈는 아직도 그 주소의

란…

정원 밑에 숨겨져 있다. 한 가지 경고하자면 당신도 나와 똑같이 호기

나는 그 청년이 그 남자의 동생이구나 싶어 가끔 찾아오던 더 나이

심에 그 곳을 방문한다 한들 분명히 누가 살인을 당했는지 알기 어려울

많은 청년은 없었냐고 물었고 할머니는,“아~ 청석이?”라시며, 그의 이

것이다. 또한, 딱 누구라고 결정짓더라도 이 사건은 절대로 법의 잣대로

름을 말하셨다. 걔는 최근에도 와서 판다 먹이를 주고 갔다면서…아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귀한 판다가 불법으로 누군가의 애완

머니께서 판다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신

“판다요? 애완용인가봐요…먹이는 뭘 준대요?”

은 인터넷 검색에 판다를 쳤을 때와 같은 혼란 즉, 판다란 무엇인가 하

“걔야 별거 다 먹지. 쥐도 잡아먹고. 식구들 먹다 남은 잔반도 먹고.

는 판다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에 깊이 빠져 혼미하다가는 1개 이상의

아끼던 앵무샌가도 잡아먹었다지 아마…?”

악취미를 얻게 되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가 세상 가장 큰 마스

“할머니 제가 실은 부탁을 받고 왔거든요. 어디보자…쥐는 좀 무리

터 키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모든 것을 치료 받고 다시 이 평범한 세계

고…부엌에 가서 먹을 것 좀 있나 봐야겠어요. 먹이만 주면 된다고

로 돌아와 나와 같이 흐릿한 기억을 재조합해보려는 쓸모없는 노력을

했거든요.”

하다가 그 사람이 사랑이,

나의 어색한 대응에도 할머니는 의심 없이 곧 자리를 비켜주셨다.

“자기 모해?”하고 뒤에서 부르면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 를 돌려,

그 아래 깊은 검정에 살고 있던 생명체에 대해서 난 길게 설명하지

“응?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실존주의적 아이러니의 대답

않겠다. 중요한 건 난 그 장소에서 내 취미의 세 가지 구성요소 염탐, 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것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적이 있기

생, 평가를 고루 할 수 있었고(이젠 더 이상 나의 취미가 아니다) 호감

는 했는가!)을 하며 급히 저장도 하지 않은 채 그 것들을 결국 망각의 강

을 샀던 그 남자는 현재 나의 남자친구다. 환타지 같았던 그 기간은 말

으로 띄워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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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얻기 위해 잊어야한다. for get 이것은 잊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를 얻기 위해 이전의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 이 것은 공평하게 거래되지 않아서 하나를 위해 하나 이상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 당신을 포함한 대분의 사람 들이 그렇게 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며 그렇게 하기를 원 할 테니.

해변 으로 가 요 연재 2

문장 모아 소설

트위터 @moonmoso를 통해 문장과 그림을 모아 소설로 만듭니다. 174

175


사람은 얻기 위해 잊어야한다. for get 이것은 잊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를 얻기 위해 이전의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 이 것은 공평하게 거래되지 않아서 하나를 위해 하나 이상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 당신을 포함한 대분의 사람 들이 그렇게 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며 그렇게 하기를 원 할 테니.

해변 으로 가 요 연재 2

문장 모아 소설

트위터 @moonmoso를 통해 문장과 그림을 모아 소설로 만듭니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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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답사장소를 경포대로 적극 추천한 이유는 별이씨의 몸매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바람이 적극 투영된 것이었다. 내가 별 따위에 관심이 있어서 ‘별 헤는 밤’이란 개똥같은 동호회에 가입한 건 아니다. 별이씨의 고상한 취미이기 때문이다. 별이씨는 별을 보고 난 별이씨를 본다. 별이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별이씨도 나에겐 아득하다. “거기라면 낮에도 별을 볼 수 있지! 적당히!” 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처럼 내뱉은 이가 동호회장 박칠성이다. 엉덩이에 있는 일곱 개의 점이 자기 이름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던 괴짜였다. 다른 회원들도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별이씨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으휴, 짐승들! 우리 몸매 보려구!” 내 말에 시비를 자주 거는 왕진실이란 여자다.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동호회 유지비가 저 여자의 주머니에서 거의 나오니 싫어도 내색하기가 좀 그렇다. 다른 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왕진실의 행동은 별이씨와 자신이 흡사 라이벌이라도 되는 양 구는 태도였다. 마음이 바뀌었는지 왕진실이 말했다. “우리 별장이 거기 있으니 숙박비는 필요 없네요.” 그때 난 보았다. 박칠성이 엉덩이에 박힌 점이라도 빼줄듯 한 기쁜 얼굴로 왕진실을 보다가 별이씨의 몸을 훑어보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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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답사장소를 경포대로 적극 추천한 이유는 별이씨의 몸매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바람이 적극 투영된 것이었다. 내가 별 따위에 관심이 있어서 ‘별 헤는 밤’이란 개똥같은 동호회에 가입한 건 아니다. 별이씨의 고상한 취미이기 때문이다. 별이씨는 별을 보고 난 별이씨를 본다. 별이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별이씨도 나에겐 아득하다. “거기라면 낮에도 별을 볼 수 있지! 적당히!” 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처럼 내뱉은 이가 동호회장 박칠성이다. 엉덩이에 있는 일곱 개의 점이 자기 이름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던 괴짜였다. 다른 회원들도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별이씨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으휴, 짐승들! 우리 몸매 보려구!” 내 말에 시비를 자주 거는 왕진실이란 여자다.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동호회 유지비가 저 여자의 주머니에서 거의 나오니 싫어도 내색하기가 좀 그렇다. 다른 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왕진실의 행동은 별이씨와 자신이 흡사 라이벌이라도 되는 양 구는 태도였다. 마음이 바뀌었는지 왕진실이 말했다. “우리 별장이 거기 있으니 숙박비는 필요 없네요.” 그때 난 보았다. 박칠성이 엉덩이에 박힌 점이라도 빼줄듯 한 기쁜 얼굴로 왕진실을 보다가 별이씨의 몸을 훑어보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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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별이 얼마나 많이 뜨길래 굳이 별을 보러 그 멀리까지 가는 건지 궁금했었거든요.

네? 그런 것까지 다 말해야 돼요? 저 바쁜 사람이에요. 내일부터 당장 출근해야 되는데, 이렇게 붙잡아두시면 제가 쉬질 못하잖아요. 그럼 내일 또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안 그래도 요새 피부가 거칠어져서 3

신경 쓰인단 말예요. ……네, 네. 알겠어요. 말할게요. 칠성씨가 빵에 들어가는 걸 볼 순 없죠. 그래도 저희 동호회의 장인 분이에요. 그런 분이 그런 일을

별이씨를 보는 박칠성의 눈빛은 답사당일에도 계속 되었다.모두

할리 없잖아요. 제가 그 분을 반년정도 봐와서 잘 알아요. ……근데

바다로 뛰어드는데도 그 자식은 회원관리를 해야 한다며 떡하니

뭐 물어보셨죠? ……아! 네. 전 어릴 때부터 별을 참 좋아했어요. 어릴

별이씨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회원인데 눈길 한 번 없는 걸로 봐선

때 저희 집이 58층이었거든요. 베란다에 나가면 넓은 하늘을 마음껏

개소리였다. 개자식의 개소리. 그런 박칠성의 눈길이 느껴지지 않는지

볼 수 있었어요. 특히 밤에 베란다에 앉아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별이씨는 담담해 보였다. 그 때 알았어야 했다. 그 표정이 도움을

집이 강남 한복판에 있어서 별이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말예요.

구하는 것이었음을. 별 일이야 있겠냐는 막연함과 나까지 별이씨에게

근데 커가면서 점차 별을 볼 여유 같은 건 없어지더라고요. 대학

다가가면 그건 누가 봐도 관심표출이었다. 더구나 나에겐 박칠성이

때도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들이 별이 어쩌니 저쩌니 얘기할 때도

가진 회원관리 같은 적당한 명분이 없었다.

촌스럽다고만 생각했어요. 시꺼먼 애들 있잖아요.

몸은 파도에 맡겼지만 마음은 둥둥 뜨고 있었다. 손가락으론

회사에 다닌 지 일 년쯤 됐을 때였을까요? 문득 제 삶이 너무

다른 회원들을 가리키며 웃었지만, 노래가사처럼 웃는 게 웃는 게

퍽퍽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베란다에서 별을 보던 게

아니었다. 시선을 간간히 별이씨가 있는 파라솔 쪽으로 두며 계속

떠올랐어요. 그래서 별 헤는 밤에 가입을 하게 됐죠. 혼자보단 다른

자리를 뜨지 않는 박칠성의 뻔뻔함을 비웃었다. 그를 향한 비웃음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었거든요.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하는 것과 동일할 런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의

그렇게 몇 번 정모에 나가서 함께 놀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시선을 의식하며 별이씨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내가 박칠성을

정의만, 왜 이름도 그 모양인지 참… 아무튼 정의만씨. 그 분이

비웃을 처지는 아니니 말이다. 괜시리 우울해져서 텀벙거리며 나오고

별을 보러 해수욕장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보나마나 그 속내야

있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목을 잡아챘다. 순식간에 난 코로 그 짠 물을

뻔했죠. 처음부터 제가 좋은 집안인 걸 눈여겨보더니, 저를 꼬셔볼

들이켰다. 이런 장난을 칠 만큼의 친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생각이었겠죠. 다 알면서도 그냥 좋다고 했어요. 촌구석엔 도대체

싸움이 벌어지는구나 생각하며 날 물먹인 용자를 붉어진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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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별이 얼마나 많이 뜨길래 굳이 별을 보러 그 멀리까지 가는 건지 궁금했었거든요.

네? 그런 것까지 다 말해야 돼요? 저 바쁜 사람이에요. 내일부터 당장 출근해야 되는데, 이렇게 붙잡아두시면 제가 쉬질 못하잖아요. 그럼 내일 또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안 그래도 요새 피부가 거칠어져서 3

신경 쓰인단 말예요. ……네, 네. 알겠어요. 말할게요. 칠성씨가 빵에 들어가는 걸 볼 순 없죠. 그래도 저희 동호회의 장인 분이에요. 그런 분이 그런 일을

별이씨를 보는 박칠성의 눈빛은 답사당일에도 계속 되었다.모두

할리 없잖아요. 제가 그 분을 반년정도 봐와서 잘 알아요. ……근데

바다로 뛰어드는데도 그 자식은 회원관리를 해야 한다며 떡하니

뭐 물어보셨죠? ……아! 네. 전 어릴 때부터 별을 참 좋아했어요. 어릴

별이씨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회원인데 눈길 한 번 없는 걸로 봐선

때 저희 집이 58층이었거든요. 베란다에 나가면 넓은 하늘을 마음껏

개소리였다. 개자식의 개소리. 그런 박칠성의 눈길이 느껴지지 않는지

볼 수 있었어요. 특히 밤에 베란다에 앉아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별이씨는 담담해 보였다. 그 때 알았어야 했다. 그 표정이 도움을

집이 강남 한복판에 있어서 별이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말예요.

구하는 것이었음을. 별 일이야 있겠냐는 막연함과 나까지 별이씨에게

근데 커가면서 점차 별을 볼 여유 같은 건 없어지더라고요. 대학

다가가면 그건 누가 봐도 관심표출이었다. 더구나 나에겐 박칠성이

때도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들이 별이 어쩌니 저쩌니 얘기할 때도

가진 회원관리 같은 적당한 명분이 없었다.

촌스럽다고만 생각했어요. 시꺼먼 애들 있잖아요.

몸은 파도에 맡겼지만 마음은 둥둥 뜨고 있었다. 손가락으론

회사에 다닌 지 일 년쯤 됐을 때였을까요? 문득 제 삶이 너무

다른 회원들을 가리키며 웃었지만, 노래가사처럼 웃는 게 웃는 게

퍽퍽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베란다에서 별을 보던 게

아니었다. 시선을 간간히 별이씨가 있는 파라솔 쪽으로 두며 계속

떠올랐어요. 그래서 별 헤는 밤에 가입을 하게 됐죠. 혼자보단 다른

자리를 뜨지 않는 박칠성의 뻔뻔함을 비웃었다. 그를 향한 비웃음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었거든요.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하는 것과 동일할 런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의

그렇게 몇 번 정모에 나가서 함께 놀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시선을 의식하며 별이씨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내가 박칠성을

정의만, 왜 이름도 그 모양인지 참… 아무튼 정의만씨. 그 분이

비웃을 처지는 아니니 말이다. 괜시리 우울해져서 텀벙거리며 나오고

별을 보러 해수욕장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보나마나 그 속내야

있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목을 잡아챘다. 순식간에 난 코로 그 짠 물을

뻔했죠. 처음부터 제가 좋은 집안인 걸 눈여겨보더니, 저를 꼬셔볼

들이켰다. 이런 장난을 칠 만큼의 친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생각이었겠죠. 다 알면서도 그냥 좋다고 했어요. 촌구석엔 도대체

싸움이 벌어지는구나 생각하며 날 물먹인 용자를 붉어진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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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보았다. 용자는 바로…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달인가? 옅은 하늘빛에서 연보라색으로 변하는

별이씨였다!

하늘에선 해와 달을 다 볼 수 있다. 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고 너무

오 나의 여신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낮에 꿈을 꿀리가

반짝였다. 인공위성인가 생각하던 차에 사라져 버렸다.

없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별이씨는 내 시야 사정권 끝에 겨우

“꺄악!”

있었는데……. 눈을 부비고 다시 봤을 때 별이씨는 없었다. 그 자리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미친 듯이 달렸다. 발이 푹푹 모래에

왕진실이 있었다. 젠장 제대로 물 먹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해도

빠져서 달려도 달리는 것 같지 않았다. 달리는 내 얼굴이 잔뜩

착각해서는 안 되는 인물.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정색을

일그러졌는지 박칠성은 ‘내가 뭘 어쨌다고’표정으로 미국인처럼

하고 물었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그 따위 뻔뻔함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짓입니까?”

그러나 나는 박칠성을 치지는 못했다. 주먹 쥔 손을 펴고 핸드폰을

내 반응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 여자는

집어 들었다. 그 행동만큼은 누구보다도 빨랐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싱글벙글이었다. 저렇게 눈치도 없으니 아직까지 싱글인 게 이해가

세 자리 숫자를 누를 시간은 충분했다. 112를 찍으며 나의 단축번호

된다. 물론 그것 말고도 왕진실이 싱글인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1번과 2번을 떠올렸다. 모두 별이씨였다. 물론 한두 번 통화에

글자 수 낭비일 뿐이다.

불과했고, 내용은 사랑고백이 아니라 동호회공지전달이었다. 단번에

당신도 싱글이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는 말들이 있을 것 같아서 분명히 해두겠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연결음은 꽤 길게 이어졌다. “딸깍.”

하나만으로도 커플이 될 잠재력과 미래성이 보장된다. 경계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다. 대부분의 싱글들은 다리 앞에서 서성이다가 건너지 못하거나 서너 걸음 내딛다가 돌아선다. 나는 어떠냐고? 난 4

팔부능선을 넘어섰다. 얼마 안 남은 거리가 가뿐하게 들어온다. 그런데 왜 빨리 건너지 않느냐고? 나머지 걸음은 건너에서 기다리는 이의 몫이다. 별이씨의 마중이 없인 언제까지라도 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해수욕장 하니까, 강릉시 변두리에 있는 저희 별장이 떠올랐어요.

없다. 그러니 왕진실 같은 여자와 장단을 맞출 필요는 없다.

여름엔 하와이나 태국, 오키나와에서 신나게 휴가를 즐겼다면, 겨울엔

별이씨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경솔하게 굴 순 없다. 더

조용하고 아늑한 그 별장에서 푹 쉬다오곤 했거든요. 그곳 발코니에서

이상의 추궁도 없이 마음을 추스르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 마음처럼

책을 읽으며 듣던 파도소리를 생각하며, 그곳에 간다면 해수욕도

드넓은 하늘에 왕진실 같은 먹구름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그 틈새로

즐기고 밤에 별도 잘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건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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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보았다. 용자는 바로…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달인가? 옅은 하늘빛에서 연보라색으로 변하는

별이씨였다!

하늘에선 해와 달을 다 볼 수 있다. 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고 너무

오 나의 여신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낮에 꿈을 꿀리가

반짝였다. 인공위성인가 생각하던 차에 사라져 버렸다.

없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별이씨는 내 시야 사정권 끝에 겨우

“꺄악!”

있었는데……. 눈을 부비고 다시 봤을 때 별이씨는 없었다. 그 자리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미친 듯이 달렸다. 발이 푹푹 모래에

왕진실이 있었다. 젠장 제대로 물 먹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해도

빠져서 달려도 달리는 것 같지 않았다. 달리는 내 얼굴이 잔뜩

착각해서는 안 되는 인물.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정색을

일그러졌는지 박칠성은 ‘내가 뭘 어쨌다고’표정으로 미국인처럼

하고 물었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그 따위 뻔뻔함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짓입니까?”

그러나 나는 박칠성을 치지는 못했다. 주먹 쥔 손을 펴고 핸드폰을

내 반응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 여자는

집어 들었다. 그 행동만큼은 누구보다도 빨랐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싱글벙글이었다. 저렇게 눈치도 없으니 아직까지 싱글인 게 이해가

세 자리 숫자를 누를 시간은 충분했다. 112를 찍으며 나의 단축번호

된다. 물론 그것 말고도 왕진실이 싱글인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1번과 2번을 떠올렸다. 모두 별이씨였다. 물론 한두 번 통화에

글자 수 낭비일 뿐이다.

불과했고, 내용은 사랑고백이 아니라 동호회공지전달이었다. 단번에

당신도 싱글이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는 말들이 있을 것 같아서 분명히 해두겠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연결음은 꽤 길게 이어졌다. “딸깍.”

하나만으로도 커플이 될 잠재력과 미래성이 보장된다. 경계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다. 대부분의 싱글들은 다리 앞에서 서성이다가 건너지 못하거나 서너 걸음 내딛다가 돌아선다. 나는 어떠냐고? 난 4

팔부능선을 넘어섰다. 얼마 안 남은 거리가 가뿐하게 들어온다. 그런데 왜 빨리 건너지 않느냐고? 나머지 걸음은 건너에서 기다리는 이의 몫이다. 별이씨의 마중이 없인 언제까지라도 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해수욕장 하니까, 강릉시 변두리에 있는 저희 별장이 떠올랐어요.

없다. 그러니 왕진실 같은 여자와 장단을 맞출 필요는 없다.

여름엔 하와이나 태국, 오키나와에서 신나게 휴가를 즐겼다면, 겨울엔

별이씨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경솔하게 굴 순 없다. 더

조용하고 아늑한 그 별장에서 푹 쉬다오곤 했거든요. 그곳 발코니에서

이상의 추궁도 없이 마음을 추스르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 마음처럼

책을 읽으며 듣던 파도소리를 생각하며, 그곳에 간다면 해수욕도

드넓은 하늘에 왕진실 같은 먹구름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그 틈새로

즐기고 밤에 별도 잘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건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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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됐죠. 물론 회원분들은 모두들 좋다고 하셨어요. 별이씨는 박수까지 쳐가며 좋아했어요. 별을 보기엔 역시 지대가 높은 강원도가 좋겠다면서요. 멍청한 것도 적당히 멍청해야지……. 그 여잔 강원도면 어디든 높다고 생각하나 봐요. 흥. 심지어 그 여자, 답사 당일엔 망원경은커녕, 짐은 핸드백이 전부면서 화장은 분장 수준으로 꼼꼼히 하고 왔더라고요. 선글라스는 그 전날 새로 산 것 같았어요. 답사를 가자는 건지, 남자를 꼬시겠다는 건지 모르겠더라니까요. 전부터 별이씨가 칠성씨한테 노골적으로 꼬리를 치더라고요. 아마 답사 기간 내에 어떻게 좀 해볼 생각이었겠죠. 절 꼬실 속셈이었던 정의만씨처럼요. 정의만씨랑 별이씨의 흑심이야 어쨌든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어요. 답사일을 정말 잘 고른 거죠. 칠성씨가 기상청도 확인하고 해서 흐트러짐 없이 준비한 덕분인 것 같았어요. 망원경을 등에 짊어진 모습이 참 멋져보였어요. 그 망원경은 셀레스테레온인가 셀레스테롱인가 하는 미국 회사에서 만든 건대요. 그 회사는 백 년 정도 된 전통 있는 망원경 제조 회사라고 칠성씨가 알려줬어요. 자기는 그 회사의 망원경만 쓴다면서요. 다른 망원경은 별 볼일 없다고도 알려줬죠. ……네? 네, 네. 알겠어요. 언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해달라더니 이런 얘긴 왜 필요 없다는 거예요? ……네, 네. 알겠어요. 알았다고요! 저기, 근데요. 물 좀 마시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아님 좀 쉬었다가 이야기하면 안 돼요? 계속 저 혼자 얘기하고 있잖아요. 여자가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힘들어보이지도 않으세요? 뭐라고요? 참나. 저 화장실 갈래요! 흥!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네. 강릉에 도착한 저흰 우선 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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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됐죠. 물론 회원분들은 모두들 좋다고 하셨어요. 별이씨는 박수까지 쳐가며 좋아했어요. 별을 보기엔 역시 지대가 높은 강원도가 좋겠다면서요. 멍청한 것도 적당히 멍청해야지……. 그 여잔 강원도면 어디든 높다고 생각하나 봐요. 흥. 심지어 그 여자, 답사 당일엔 망원경은커녕, 짐은 핸드백이 전부면서 화장은 분장 수준으로 꼼꼼히 하고 왔더라고요. 선글라스는 그 전날 새로 산 것 같았어요. 답사를 가자는 건지, 남자를 꼬시겠다는 건지 모르겠더라니까요. 전부터 별이씨가 칠성씨한테 노골적으로 꼬리를 치더라고요. 아마 답사 기간 내에 어떻게 좀 해볼 생각이었겠죠. 절 꼬실 속셈이었던 정의만씨처럼요. 정의만씨랑 별이씨의 흑심이야 어쨌든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어요. 답사일을 정말 잘 고른 거죠. 칠성씨가 기상청도 확인하고 해서 흐트러짐 없이 준비한 덕분인 것 같았어요. 망원경을 등에 짊어진 모습이 참 멋져보였어요. 그 망원경은 셀레스테레온인가 셀레스테롱인가 하는 미국 회사에서 만든 건대요. 그 회사는 백 년 정도 된 전통 있는 망원경 제조 회사라고 칠성씨가 알려줬어요. 자기는 그 회사의 망원경만 쓴다면서요. 다른 망원경은 별 볼일 없다고도 알려줬죠. ……네? 네, 네. 알겠어요. 언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해달라더니 이런 얘긴 왜 필요 없다는 거예요? ……네, 네. 알겠어요. 알았다고요! 저기, 근데요. 물 좀 마시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아님 좀 쉬었다가 이야기하면 안 돼요? 계속 저 혼자 얘기하고 있잖아요. 여자가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힘들어보이지도 않으세요? 뭐라고요? 참나. 저 화장실 갈래요! 흥!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네. 강릉에 도착한 저흰 우선 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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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 짐을 풀었어요. 짐을 풀기가 무섭게 정의만씨가 소리쳤죠. "일단 해수욕장 부터 가죠! 벌써 시간이 3시네요!" 그 소리에 다들 신이 나서 해수욕장에 갈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전 별로 신나지 않았어요. 스페셜K로 2주일 동안 몸매 관리를 한다고 하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거든요. 비키니를 새로 산 것까진 좋은데 그 위에 다른 옷을 입어야할 것 같았어요. 뱃살이 예상보다 덜 빠졌거든요. 조금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그렇게 수건과 비키니, 위에 입을 원피스를 챙기는데, 정의만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비키니만은 못 입나봐요? 자신 없나보죠?" 자신이고 나발이고. 그거 성추행 아닌가요? 진짜 사람이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사람자체가 천박하다니까요! 지금 떠올려도 신경질이 나네요. 자신 있으면 뭐 하러 원피스를 챙기겠어요? 안 그래요? 비키니를 입는 여자의 마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더라고요. 아우. 진짜! 어? 아저씨! 지금 제 몸 훑으신 거예요? 참나. 아저씨 경찰 아녜요? 경찰이 지금 성추행하는 거예요? 진짜 웃긴다, 이 아저씨! 성추행 사건 진술 들으면서! 성추행을 해요? 아저씨 인터넷에 올릴 거예요! ……네.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시면 제가 안 받아드릴 수가 없죠. 네, 네.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훑어보는 시선을 느끼는 게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르실 거예요. 남자들은 여자들이 그걸 즐기는 줄 아는데, 천만에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보통은 그런 시선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도 사람 나름이죠. 아저씨처럼 수염이 덮수룩한 사람한테 당하고 싶진 않다고요. 그래요! 칠성씨는 단 한 번도 그런 눈길로 잘 쳐다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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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 짐을 풀었어요. 짐을 풀기가 무섭게 정의만씨가 소리쳤죠. "일단 해수욕장 부터 가죠! 벌써 시간이 3시네요!" 그 소리에 다들 신이 나서 해수욕장에 갈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전 별로 신나지 않았어요. 스페셜K로 2주일 동안 몸매 관리를 한다고 하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거든요. 비키니를 새로 산 것까진 좋은데 그 위에 다른 옷을 입어야할 것 같았어요. 뱃살이 예상보다 덜 빠졌거든요. 조금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그렇게 수건과 비키니, 위에 입을 원피스를 챙기는데, 정의만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비키니만은 못 입나봐요? 자신 없나보죠?" 자신이고 나발이고. 그거 성추행 아닌가요? 진짜 사람이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사람자체가 천박하다니까요! 지금 떠올려도 신경질이 나네요. 자신 있으면 뭐 하러 원피스를 챙기겠어요? 안 그래요? 비키니를 입는 여자의 마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더라고요. 아우. 진짜! 어? 아저씨! 지금 제 몸 훑으신 거예요? 참나. 아저씨 경찰 아녜요? 경찰이 지금 성추행하는 거예요? 진짜 웃긴다, 이 아저씨! 성추행 사건 진술 들으면서! 성추행을 해요? 아저씨 인터넷에 올릴 거예요! ……네.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시면 제가 안 받아드릴 수가 없죠. 네, 네.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훑어보는 시선을 느끼는 게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르실 거예요. 남자들은 여자들이 그걸 즐기는 줄 아는데, 천만에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보통은 그런 시선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도 사람 나름이죠. 아저씨처럼 수염이 덮수룩한 사람한테 당하고 싶진 않다고요. 그래요! 칠성씨는 단 한 번도 그런 눈길로 잘 쳐다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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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성추행을 했겠어요? 오히려 눈만 마주쳐도 눈길을 돌리는 그런 사람이었다고요! 아무튼 그래서요……. 경포대로 다 같이 나갔어요. 막상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니 저도 모르게 뛰어들게 되더라고요. 햇볕에 뜨겁게 달아오른 살갗이 차가운 바닷물에 닿자 몸이 파르르 떨리며 상쾌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기분 참 오랜만이었어요. 뜨겁고 진득한 일상을 탈피해 상쾌하고 시원한 피서를 왔구나. 이런 기분일까요? 그제야 조금 신이 나더라고요. 그래. 별을 보겠다는 목적도 목적이지만 즐겁게 놀다가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노는 건 역시 미운 사람을 괴롭히는 거 아니겠어요? 마침 눈앞에 정의만씨가 보이더라고요. 적당한 먹잇감이었죠.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않으며 그 뒤로 조심히 다가가서 목을 확, 잡아채서 넘어뜨렸어요. 하하하하! 정말 통쾌했어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정말 볼만했죠. 전 발로 정의만씨 배를 짓밟았어요. 밟고 밟고 또 밟아댔죠. 너같은 놈이 나를 넘봐? 뭐라고? 몸매에 자신 없는 거 아니냐고? 내가 스페셜K만 2주동안 먹느라 얼마나 구역질 났는지 네까짓 놈이 알기나 해? 거따 대고 뭐라고? 개새끼! 양아치 같은 새끼… 아… 이런… 제가 너무 흥분을 했네요. 호호호. 네. 뭐. 아무튼요… 근데 정의만씨는 기침을 하면서 일어나더니 정색을 하더라고요. 참나. 장난이잖아요. 남자가 뭐 그래요? 쪼잔하게 장난 가지고 정색을 하고… 뭐라 그랬더라… 아무튼 정색하며 화를 내더라고요. 그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정의만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모래사장 끝 쪽으로 달려갔어요. 그 끝에 칠성씨와 별이씨가 함께 있는 게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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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성추행을 했겠어요? 오히려 눈만 마주쳐도 눈길을 돌리는 그런 사람이었다고요! 아무튼 그래서요……. 경포대로 다 같이 나갔어요. 막상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니 저도 모르게 뛰어들게 되더라고요. 햇볕에 뜨겁게 달아오른 살갗이 차가운 바닷물에 닿자 몸이 파르르 떨리며 상쾌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기분 참 오랜만이었어요. 뜨겁고 진득한 일상을 탈피해 상쾌하고 시원한 피서를 왔구나. 이런 기분일까요? 그제야 조금 신이 나더라고요. 그래. 별을 보겠다는 목적도 목적이지만 즐겁게 놀다가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노는 건 역시 미운 사람을 괴롭히는 거 아니겠어요? 마침 눈앞에 정의만씨가 보이더라고요. 적당한 먹잇감이었죠.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않으며 그 뒤로 조심히 다가가서 목을 확, 잡아채서 넘어뜨렸어요. 하하하하! 정말 통쾌했어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정말 볼만했죠. 전 발로 정의만씨 배를 짓밟았어요. 밟고 밟고 또 밟아댔죠. 너같은 놈이 나를 넘봐? 뭐라고? 몸매에 자신 없는 거 아니냐고? 내가 스페셜K만 2주동안 먹느라 얼마나 구역질 났는지 네까짓 놈이 알기나 해? 거따 대고 뭐라고? 개새끼! 양아치 같은 새끼… 아… 이런… 제가 너무 흥분을 했네요. 호호호. 네. 뭐. 아무튼요… 근데 정의만씨는 기침을 하면서 일어나더니 정색을 하더라고요. 참나. 장난이잖아요. 남자가 뭐 그래요? 쪼잔하게 장난 가지고 정색을 하고… 뭐라 그랬더라… 아무튼 정색하며 화를 내더라고요. 그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정의만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모래사장 끝 쪽으로 달려갔어요. 그 끝에 칠성씨와 별이씨가 함께 있는 게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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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자가 비명을 질렀는데 옆에 남자 한 명이 있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턱턱 잡히는 시대다. “내가 했다는 증거 있어?” 박칠성은 목소리만 크면 이기는 줄 아는 전형적인 가해자였다. “잠깐, 뭘 했다는 겁니까?” 형사는 형사였다. 수염이 덥수룩해서 산적 같긴 했지만 날카로운 질문은 코난 저리가라였다. 아무도 어떤 행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형사의 듬직한 표정은 흡사 우리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밝혀내겠어! 하는 듯한 결연함까지 보였다. 하긴 바닷가에서 성추행은 왕왕 일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이 형사는 탁 치면 헉 하고 알아낼 정도의 베테랑일지도 모르겠다. 별이씨의 진술에 따른 사건의 정황은 간단했다. 피부가 약한 탓에 파라솔 아래에서 쉬고 있던 별이씨. 이 대목에서 약하긴 개뿔! 이라며 밥맛퇴치 왕진실이 구시렁거렸다. 이 여잔 본 것도 없으면서 목격자를 자청하며 따라왔다. 별이씨는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파도소리같은 철썩인지 찰싹인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에 개미가 돌아다니듯 간지럽기도 했다. 반사적으로 가려운 부위를 딱 쳤는데 박칠성의 빰에 별이씨의 손자국이 그려졌다. “맞은 건 난데 왜 그 쪽이 비명을 질러?” 박칠성은 이제 동호회원관리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 호칭과 존대를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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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자가 비명을 질렀는데 옆에 남자 한 명이 있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턱턱 잡히는 시대다. “내가 했다는 증거 있어?” 박칠성은 목소리만 크면 이기는 줄 아는 전형적인 가해자였다. “잠깐, 뭘 했다는 겁니까?” 형사는 형사였다. 수염이 덥수룩해서 산적 같긴 했지만 날카로운 질문은 코난 저리가라였다. 아무도 어떤 행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형사의 듬직한 표정은 흡사 우리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밝혀내겠어! 하는 듯한 결연함까지 보였다. 하긴 바닷가에서 성추행은 왕왕 일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이 형사는 탁 치면 헉 하고 알아낼 정도의 베테랑일지도 모르겠다. 별이씨의 진술에 따른 사건의 정황은 간단했다. 피부가 약한 탓에 파라솔 아래에서 쉬고 있던 별이씨. 이 대목에서 약하긴 개뿔! 이라며 밥맛퇴치 왕진실이 구시렁거렸다. 이 여잔 본 것도 없으면서 목격자를 자청하며 따라왔다. 별이씨는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파도소리같은 철썩인지 찰싹인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에 개미가 돌아다니듯 간지럽기도 했다. 반사적으로 가려운 부위를 딱 쳤는데 박칠성의 빰에 별이씨의 손자국이 그려졌다. “맞은 건 난데 왜 그 쪽이 비명을 질러?” 박칠성은 이제 동호회원관리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 호칭과 존대를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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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가 있는데도 발뺌입니까?” 적절한 타이밍에 형사가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곤 나를 가리켰다. 사실 목격자를 자청하고 신고까지 했지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칠성이놈이 별이씨를 쓰다듬었는지, 손장난을 쳤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럼에도 내가 성추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별이씨의 비명소리. 비명만큼 명확한 증거도 없다. 허나 지금 상황에선 그게 전부다. 별이씨도 이상하고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고 할 뿐 구체적으로 말하진 못했다. 박칠성이 저렇게 증거증거거리며 징글징글하게 웃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더 화가 나는 건 왕진실의 태도였다. 자신이 처음부터 쭉 지켜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과 더불어 날린 멘트가 가관이었다. “누구를 위하여 소리를 지르나?” 어니스트 왕진실 납셨네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또 자신을 훑어봤다며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무고한 시민에게 증거도 없이 이러면 곤란하다며 박칠성은 형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형사는 별이씨에게 구체적 정황을 또 물었다. 이런 무능한 형사에게서 코난과 김전일을 오버랩했다니……. 형사와 탐정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박칠성을 잡는 것에만 급급했지, 그 주위에 있던 것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곳엔 분명히 증거가 있다. 증거는 망원경이요!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망원경을 해변에 가져올리도 없고 밤도 아닌 대낮에 별을 볼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코앞에 있는 사람을 망원경으로요?” 왕진실이 피식거렸다. “내 헤븐스타를 모욕하지마! 헤븐스타는 쎌레스트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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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가 있는데도 발뺌입니까?” 적절한 타이밍에 형사가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곤 나를 가리켰다. 사실 목격자를 자청하고 신고까지 했지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칠성이놈이 별이씨를 쓰다듬었는지, 손장난을 쳤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럼에도 내가 성추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별이씨의 비명소리. 비명만큼 명확한 증거도 없다. 허나 지금 상황에선 그게 전부다. 별이씨도 이상하고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고 할 뿐 구체적으로 말하진 못했다. 박칠성이 저렇게 증거증거거리며 징글징글하게 웃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더 화가 나는 건 왕진실의 태도였다. 자신이 처음부터 쭉 지켜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과 더불어 날린 멘트가 가관이었다. “누구를 위하여 소리를 지르나?” 어니스트 왕진실 납셨네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또 자신을 훑어봤다며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무고한 시민에게 증거도 없이 이러면 곤란하다며 박칠성은 형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형사는 별이씨에게 구체적 정황을 또 물었다. 이런 무능한 형사에게서 코난과 김전일을 오버랩했다니……. 형사와 탐정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박칠성을 잡는 것에만 급급했지, 그 주위에 있던 것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곳엔 분명히 증거가 있다. 증거는 망원경이요!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망원경을 해변에 가져올리도 없고 밤도 아닌 대낮에 별을 볼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코앞에 있는 사람을 망원경으로요?” 왕진실이 피식거렸다. “내 헤븐스타를 모욕하지마! 헤븐스타는 쎌레스트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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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작이라구, 알어?”

고리가 무엇인지…….

박칠성은 단단히 화가 났는지 나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확실히

겨드랑이에서 난 땀이 옆구리를 따라 떨어졌다. 가만, 왜 저

다른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라면 바로 옆 별이씨를 굳이 망원경으로 볼

자식은 셔츠를 입고 있지? 보통 바다에서라면 하와이안 셔츠를 입을

수고로움은 필요 없다.

텐데? 박칠성은 흰 셔츠의 단추하나를 풀렀다. 심지어 가슴께에

“그럼 이유가 뭡니까? 가져온 이유.”

붙은 포켓에는 만년필도 꽂혀 있었다. 온몸에 개미가 지나는 듯한

형사는 나의 발견에 힘을 얻은 듯 했다.

느낌이라면 소름이 돋았다는 뜻이다. 소름까진 아니더라도 몸이

“당신이 끼고 있는 반지 같은 거야 나에겐. 별을 보고 싶은 내

반응했다는 것인데 억측이 아니다. 왜 그 방자전인가 하는 데서 뒤에서

마음은 항시 대기 중이니까…”

쳐다만 보는데도 시뻘개지구 그러지 않나. 찰싹인지 철썩인지 하는

박칠성은 사뭇 진지하고 느끼하게 대답했다.

소리는 파도소리 같다고 했지만 사실 그런 소리는 티비나 영화에서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면 무죄아닌가요? 무고죄로 고소라도 할

들은 효과음일 뿐이지 사람이 넘쳐나는 바다에서 들을 수 없다.

판이네요.”

그렇다면 이 모든 조건이 맞기 위해서는? 박칠성의 만년필이 초소형

왕진실의 빈정거림이 심하게 거슬렸다. 별이씨도 야속했다. 그냥

카메라라는 조건만 있으면 된다. 찰싹인지 철썩이 아닌 찰칵이다. 뭐

만졌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개미가 훑은 느낌이라니……. 막막해지는

소리는 기종에 따라, 초소형 카메라의 맞는 기능에 따라 안날수도

느낌이었다. 박칠성은 한시름 놓은 듯이 보였다. 그 쌍판때기를 보고

있지만.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얼굴이 상기 되었다. 따귀를 맞아 시뻘개졌던

“이봐요. 당신 만년필 좀 봅시다.”

박칠성이 떠올랐다.

난 승부수를 던졌다.

“그럼 아무 잘못도 없이 따귀를 맞아요?” 그냥 쓱 던진 말이었다. “그건…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아, 아니…… 나한테 6

종로에서 뺨맞은 거야.” 무슨 말인지 헷갈리게 잘도 섞은 뚱딴지였다. 적잖게 흔들리는 표정은 내가 범인인데 왜 이제야 지적하냐고 말하는 듯 했다. 천천히

그 다음은 어제 들으신 대로예요. 제가 직접 본 건 없어요. 근데 굳이

생각을 되새겨야 했다. 별이씨의 증언을 다시 떠올렸다. 찰싹인지

이렇게 또 불러서 물어보시는 이유가 뭐예요? 이제 저 가도 되죠? 다

철썩인지 하는 파도소리와 온 몸에 개미가 지나가는 느낌, 그리고

끝난 사건을 굳이……

이어지는 따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저것들을 연결시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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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어제 정의만씨가 말한 만년필 카메란지 뭔지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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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작이라구, 알어?”

고리가 무엇인지…….

박칠성은 단단히 화가 났는지 나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확실히

겨드랑이에서 난 땀이 옆구리를 따라 떨어졌다. 가만, 왜 저

다른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라면 바로 옆 별이씨를 굳이 망원경으로 볼

자식은 셔츠를 입고 있지? 보통 바다에서라면 하와이안 셔츠를 입을

수고로움은 필요 없다.

텐데? 박칠성은 흰 셔츠의 단추하나를 풀렀다. 심지어 가슴께에

“그럼 이유가 뭡니까? 가져온 이유.”

붙은 포켓에는 만년필도 꽂혀 있었다. 온몸에 개미가 지나는 듯한

형사는 나의 발견에 힘을 얻은 듯 했다.

느낌이라면 소름이 돋았다는 뜻이다. 소름까진 아니더라도 몸이

“당신이 끼고 있는 반지 같은 거야 나에겐. 별을 보고 싶은 내

반응했다는 것인데 억측이 아니다. 왜 그 방자전인가 하는 데서 뒤에서

마음은 항시 대기 중이니까…”

쳐다만 보는데도 시뻘개지구 그러지 않나. 찰싹인지 철썩인지 하는

박칠성은 사뭇 진지하고 느끼하게 대답했다.

소리는 파도소리 같다고 했지만 사실 그런 소리는 티비나 영화에서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면 무죄아닌가요? 무고죄로 고소라도 할

들은 효과음일 뿐이지 사람이 넘쳐나는 바다에서 들을 수 없다.

판이네요.”

그렇다면 이 모든 조건이 맞기 위해서는? 박칠성의 만년필이 초소형

왕진실의 빈정거림이 심하게 거슬렸다. 별이씨도 야속했다. 그냥

카메라라는 조건만 있으면 된다. 찰싹인지 철썩이 아닌 찰칵이다. 뭐

만졌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개미가 훑은 느낌이라니……. 막막해지는

소리는 기종에 따라, 초소형 카메라의 맞는 기능에 따라 안날수도

느낌이었다. 박칠성은 한시름 놓은 듯이 보였다. 그 쌍판때기를 보고

있지만.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얼굴이 상기 되었다. 따귀를 맞아 시뻘개졌던

“이봐요. 당신 만년필 좀 봅시다.”

박칠성이 떠올랐다.

난 승부수를 던졌다.

“그럼 아무 잘못도 없이 따귀를 맞아요?” 그냥 쓱 던진 말이었다. “그건…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아, 아니…… 나한테 6

종로에서 뺨맞은 거야.” 무슨 말인지 헷갈리게 잘도 섞은 뚱딴지였다. 적잖게 흔들리는 표정은 내가 범인인데 왜 이제야 지적하냐고 말하는 듯 했다. 천천히

그 다음은 어제 들으신 대로예요. 제가 직접 본 건 없어요. 근데 굳이

생각을 되새겨야 했다. 별이씨의 증언을 다시 떠올렸다. 찰싹인지

이렇게 또 불러서 물어보시는 이유가 뭐예요? 이제 저 가도 되죠? 다

철썩인지 하는 파도소리와 온 몸에 개미가 지나가는 느낌, 그리고

끝난 사건을 굳이……

이어지는 따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저것들을 연결시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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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어제 정의만씨가 말한 만년필 카메란지 뭔지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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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시는 건 아니죠? 그런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죠. 그런

아닌가보다 하고 넘길 수는 없었다. 최후의 발악일 수도 있으니.

허무맹랑한 얘기를 믿으시다니……. 형사님도 참……. 진짜 형사

“이 더운 날 하얀 샤쓰를 입고 더군다나 바닷가에 나와서 뭘 쓸게

맞으세요? 형사가 성추행을 하질 않나……

있다고 만년필까지 가져 옵니까? 그거 카메라지? 변태 새꺄!”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아니, 뭔가 좀 이상하잖아요. 어제 다

논리적으로 차분히 말했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흥분을

끝난 얘기 아니었나요? 게다가 당사자인 별이씨랑 칠성씨도 아니고 왜

해버렸다. 수상하지 않냐며 주위를 살폈다. 별이씨는 놀란 토끼눈이

저를 불러서 그러세요? 하긴 별이씨랑 칠성씨는 서울로 돌아가 버리긴

되었고, 왕진실은 명탐정 코난 납셨네 하며 빈정거렸다. 형사는 그저

했지만요. 생각해 보니까 진짜 이상하네요! 목격자인 정의만씨는 아직

호오 그럴지도 모른다는, 이라며 오타쿠인 척을 했고, 박칠성은 침을

여기 있다고요! 근데 왜 저를 부르신 거예요? 아저씨 혹시 저한테 마음

꿀꺽 삼켰다. 내가 똑똑히 봤다. 그 자식의 목젖은 썰물처럼 빠졌다가

있는 거 아니죠? 어쩐지…… 이 아저씨 눈빛부터가 이상했어.

밀물처럼 들어갔다. 박칠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뭐라고요? 그런 게 진짜 가능해요? 근데 어제 그 만년필,

“이건 아버지의 유품이요. 항상 지니고 다니는 내 분신과도

꼼꼼히 살펴보신 거 아니었나요? 아니 그보다…… 그렇다면 절 부르실

같다고.”

게 아니라 칠성씨를 부르셨어야죠. 절 심문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요?

이 자식은 분신이 열두 개도 더 되는 것 같다. 망원경도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거라뇨? 뭐라고요? 제가 칠성씨를

분신이라더니. 그렇지만 혹시 저 자식의 말이 맞다면 난 유품을 변태성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요? 이 아저씨 정말 웃겨! 내가 왜 아저씨한테

도구로 오인한 멍청하고 기본도 없는 망나니가 될 판이었다. 확고히

그런 걸 말해야 하는 건데요? 아무리 아저씨가 경찰이라도, 내가 그런

밀고 나가야 했다. 내게 필요한 건 ‘못 먹어도 똥창’정신과 ‘곧 죽어도

것까지 다 말해야 돼요? 아, 몰라요! 저 갈 거예요! 내가 진짜 어이가

고’를 외치는 배짱이었다.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겠네요.”

없어서…….

형사였다. “여름철에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합니다. 현장에서 저희가 현행범으로 잡거나 사진이나 이런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7

심증만으로 박칠성씨가 성추행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이건 야구장에서 심판의 퇴근본능으로 줏대 없는 판정을 내리는

“내 만년필이 어쨌다고 보여 달라는 거요?”

것과 같았다.

박칠성은 담담히 물었고, 아까처럼 당황하길 바랐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담담하다고 해서 초소형카메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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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이 있지 않습니까.” 형사는 조소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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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시는 건 아니죠? 그런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죠. 그런

아닌가보다 하고 넘길 수는 없었다. 최후의 발악일 수도 있으니.

허무맹랑한 얘기를 믿으시다니……. 형사님도 참……. 진짜 형사

“이 더운 날 하얀 샤쓰를 입고 더군다나 바닷가에 나와서 뭘 쓸게

맞으세요? 형사가 성추행을 하질 않나……

있다고 만년필까지 가져 옵니까? 그거 카메라지? 변태 새꺄!”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아니, 뭔가 좀 이상하잖아요. 어제 다

논리적으로 차분히 말했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흥분을

끝난 얘기 아니었나요? 게다가 당사자인 별이씨랑 칠성씨도 아니고 왜

해버렸다. 수상하지 않냐며 주위를 살폈다. 별이씨는 놀란 토끼눈이

저를 불러서 그러세요? 하긴 별이씨랑 칠성씨는 서울로 돌아가 버리긴

되었고, 왕진실은 명탐정 코난 납셨네 하며 빈정거렸다. 형사는 그저

했지만요. 생각해 보니까 진짜 이상하네요! 목격자인 정의만씨는 아직

호오 그럴지도 모른다는, 이라며 오타쿠인 척을 했고, 박칠성은 침을

여기 있다고요! 근데 왜 저를 부르신 거예요? 아저씨 혹시 저한테 마음

꿀꺽 삼켰다. 내가 똑똑히 봤다. 그 자식의 목젖은 썰물처럼 빠졌다가

있는 거 아니죠? 어쩐지…… 이 아저씨 눈빛부터가 이상했어.

밀물처럼 들어갔다. 박칠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뭐라고요? 그런 게 진짜 가능해요? 근데 어제 그 만년필,

“이건 아버지의 유품이요. 항상 지니고 다니는 내 분신과도

꼼꼼히 살펴보신 거 아니었나요? 아니 그보다…… 그렇다면 절 부르실

같다고.”

게 아니라 칠성씨를 부르셨어야죠. 절 심문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요?

이 자식은 분신이 열두 개도 더 되는 것 같다. 망원경도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거라뇨? 뭐라고요? 제가 칠성씨를

분신이라더니. 그렇지만 혹시 저 자식의 말이 맞다면 난 유품을 변태성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요? 이 아저씨 정말 웃겨! 내가 왜 아저씨한테

도구로 오인한 멍청하고 기본도 없는 망나니가 될 판이었다. 확고히

그런 걸 말해야 하는 건데요? 아무리 아저씨가 경찰이라도, 내가 그런

밀고 나가야 했다. 내게 필요한 건 ‘못 먹어도 똥창’정신과 ‘곧 죽어도

것까지 다 말해야 돼요? 아, 몰라요! 저 갈 거예요! 내가 진짜 어이가

고’를 외치는 배짱이었다.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겠네요.”

없어서…….

형사였다. “여름철에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합니다. 현장에서 저희가 현행범으로 잡거나 사진이나 이런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7

심증만으로 박칠성씨가 성추행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이건 야구장에서 심판의 퇴근본능으로 줏대 없는 판정을 내리는

“내 만년필이 어쨌다고 보여 달라는 거요?”

것과 같았다.

박칠성은 담담히 물었고, 아까처럼 당황하길 바랐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담담하다고 해서 초소형카메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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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이 있지 않습니까.” 형사는 조소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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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던 망원경도 아니었는데, 이번도 아니면 책임 질

“초소형카메라가 맞더군요.”

거요?”

형사는 그 만년필을 꺼내며 박칠성이 급히 나가다가 떨어뜨린 것

죄 밝히다가 죄인이 될 판국이다.

같다고 했다.

“제가 착각했나 봐요.”

“확인해 본 결과 카메라가 맞고 사진도 몇 장 있더군요.

별이씨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 반반하다고 일을 이렇게

정의만씨를 부른 이유는 이겁니다.”

만드냐며 날뛰는 왕진실을 박칠성은 말리며 말했다.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흐릿한 사진에 내가 찍혀 있었다. 어찌된

“당신들은 우리 별 헤는 밤에서 제명이야.”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형사는 다음 사진을 보라고 했다. 왕진실을 찍은

제명이고 뭐고 억울해서 제 명에 못 죽겠다.

사진들이었다. “이 별씨가 아니라 왕진실씨가 찍힌 걸 보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끝이 났다.

사진에 찍힌 모습은 여행사진이라고 할 만큼 평범한 것이었다. 별장으로 돌아가 짐을 챙겨서 나왔다. 회원들도 박칠성이 이런

“박칠성씨가 왕진실씨를 좋아하나 봐요. 그렇게 숨기면서까지

기분으론 별을 볼 수 없다고 하는 탓에 덩달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말도 안 한 걸 보면.”

왕진실은 심신이 지쳤다며 별장에 더 머무른다고 했다. 나의 의문은

“아, 정의만씰 다시 오시라고 한 건 아무래도 얘기해드려야 덜

하나도 풀리지 않았는데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차라리 빨리 다

억울해 하실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바지춤에 진동이 느껴졌다.

박칠성이 별이씨가 아닌 왕진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정의만씨? 아직 안 올라가셨으면 잠시 와주셨으면 하는데.”

의외이기도 하지만 걸리는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런 사진이야 보통

아 그리고 왕진실씨도 라는 말을 덧붙인 통화는 통보에 가까웠다.

일반 카메라로 찍는 게 보통이다. 다른 사람들도 사진도 찍어주면

왕진실은 자신이 왜 가야 되냐며 구시렁거렸다. 그럼 그냥 있으라고

왕진실을 좋아하는 것도 숨길 수 있다. 유품이니 어쩌니 했던 만년필도

하자 이내 말을 바꿔 궁금하기두 하구 뭐 어쩌고 저쩌고 정신없게

떨어뜨리고 갈 리 없다. “왕진실씨도 그렇게 박칠성씨 편을 들었으니 이거 잘 되겠네요.”

굴었다. 생각보다 빨리 와서 그랬는지 형사는 짐짓 놀라는 시늉을 하더니 왕진실에게 잠깐 자리를 피해달라고 했다.

그 두 명이 잘 되던지 안 되던지 신경도 안 쓴다. 다만 해결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찜찜한 구석이 많다.

“똥개훈련이라니요, 왕진실씨는 정의만씨 다음에 할 게 있다는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죠.”

거죠.”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투덜거리며 왕진실이 나가자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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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만 물어보면 성추행, 성추행하는데 아주 돌겠더라구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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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던 망원경도 아니었는데, 이번도 아니면 책임 질

“초소형카메라가 맞더군요.”

거요?”

형사는 그 만년필을 꺼내며 박칠성이 급히 나가다가 떨어뜨린 것

죄 밝히다가 죄인이 될 판국이다.

같다고 했다.

“제가 착각했나 봐요.”

“확인해 본 결과 카메라가 맞고 사진도 몇 장 있더군요.

별이씨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 반반하다고 일을 이렇게

정의만씨를 부른 이유는 이겁니다.”

만드냐며 날뛰는 왕진실을 박칠성은 말리며 말했다.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흐릿한 사진에 내가 찍혀 있었다. 어찌된

“당신들은 우리 별 헤는 밤에서 제명이야.”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형사는 다음 사진을 보라고 했다. 왕진실을 찍은

제명이고 뭐고 억울해서 제 명에 못 죽겠다.

사진들이었다. “이 별씨가 아니라 왕진실씨가 찍힌 걸 보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끝이 났다.

사진에 찍힌 모습은 여행사진이라고 할 만큼 평범한 것이었다. 별장으로 돌아가 짐을 챙겨서 나왔다. 회원들도 박칠성이 이런

“박칠성씨가 왕진실씨를 좋아하나 봐요. 그렇게 숨기면서까지

기분으론 별을 볼 수 없다고 하는 탓에 덩달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말도 안 한 걸 보면.”

왕진실은 심신이 지쳤다며 별장에 더 머무른다고 했다. 나의 의문은

“아, 정의만씰 다시 오시라고 한 건 아무래도 얘기해드려야 덜

하나도 풀리지 않았는데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차라리 빨리 다

억울해 하실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바지춤에 진동이 느껴졌다.

박칠성이 별이씨가 아닌 왕진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정의만씨? 아직 안 올라가셨으면 잠시 와주셨으면 하는데.”

의외이기도 하지만 걸리는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런 사진이야 보통

아 그리고 왕진실씨도 라는 말을 덧붙인 통화는 통보에 가까웠다.

일반 카메라로 찍는 게 보통이다. 다른 사람들도 사진도 찍어주면

왕진실은 자신이 왜 가야 되냐며 구시렁거렸다. 그럼 그냥 있으라고

왕진실을 좋아하는 것도 숨길 수 있다. 유품이니 어쩌니 했던 만년필도

하자 이내 말을 바꿔 궁금하기두 하구 뭐 어쩌고 저쩌고 정신없게

떨어뜨리고 갈 리 없다. “왕진실씨도 그렇게 박칠성씨 편을 들었으니 이거 잘 되겠네요.”

굴었다. 생각보다 빨리 와서 그랬는지 형사는 짐짓 놀라는 시늉을 하더니 왕진실에게 잠깐 자리를 피해달라고 했다.

그 두 명이 잘 되던지 안 되던지 신경도 안 쓴다. 다만 해결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찜찜한 구석이 많다.

“똥개훈련이라니요, 왕진실씨는 정의만씨 다음에 할 게 있다는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죠.”

거죠.”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투덜거리며 왕진실이 나가자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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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만 물어보면 성추행, 성추행하는데 아주 돌겠더라구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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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잖아요. 안 그래요?”

소리를 듣는 거야. 칠성씨는 은근히 내 허리를 감싸기도 하고, 가만히

그렇죠, 라고 대꾸한 뒤에 나는 밖으로 나갔다. 왕진실이

손을 잡기도 했다고. 내 동의도 없이. 그렇지만 그건 성추행이

복도의자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안색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아니었어. 그건 관심의 표시였지. 그래. 맞아. 분명히 칠성씨는 내게

않았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관심이 있어. 지난번에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을 때는 좀 놀라긴 했지만……. 그것도 다 어떻게든 내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걸 거야…… 아, 빨리 만나서 칠성씨가 어떤지 보고 싶다. 이 일로 상처 받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칠성씨도 이런 내 마음을 알고

8

있겠지? 그래. 이제 곧 내게 고백할 게 분명해. 그럼 행복할 거야…… 아, 설렌다. 보고 싶다. 칠성씨……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짜증나게 이게 뭐야. 별 거 물어보지도 않을 거면서 왜 부른 거야? 어디 보자…… 그래도 차는 바로 있네. 다행이다.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내일부터 또 끔찍한 일상이구나……. 즐겁게 놀다 갈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에이 짜증나. 정의만 그 새끼가 제일 짜증났어. 그 새끼 지가 무슨 형사야 뭐야. 왜 그리 나서는 거야? 게다가 별이 그년은 또 뭐야? 얼굴 좀 반반하다고 여우짓은! 그나저나 칠성씨는 잘 갔을까? 꽤 기분 상한 표정이었는데……. 연락 해볼까? 아니야. 괜히 지금 연락해서 좋을 거 없어. 내일 퇴근한 다음에 연락하자. 만나자고 해볼까? 근데 나랑 만나줄까? 그래. 만나줄 거야. 가만 보면 칠성씨가 나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그렇게 만지겠어? 근데 칠성씨가 정말 별이 그년도 만진 걸까? 설마…… 아닐 거야. 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느낌? 그 정도가 어디 만진 축에나 들어? 고작 그런 걸로 소리를 지르고 뺨을 때려? 참나…… 오바도 그런 오바를…… 그러니까 여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치한 신고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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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잖아요. 안 그래요?”

소리를 듣는 거야. 칠성씨는 은근히 내 허리를 감싸기도 하고, 가만히

그렇죠, 라고 대꾸한 뒤에 나는 밖으로 나갔다. 왕진실이

손을 잡기도 했다고. 내 동의도 없이. 그렇지만 그건 성추행이

복도의자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안색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아니었어. 그건 관심의 표시였지. 그래. 맞아. 분명히 칠성씨는 내게

않았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관심이 있어. 지난번에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을 때는 좀 놀라긴 했지만……. 그것도 다 어떻게든 내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걸 거야…… 아, 빨리 만나서 칠성씨가 어떤지 보고 싶다. 이 일로 상처 받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칠성씨도 이런 내 마음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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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지? 그래. 이제 곧 내게 고백할 게 분명해. 그럼 행복할 거야…… 아, 설렌다. 보고 싶다. 칠성씨……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짜증나게 이게 뭐야. 별 거 물어보지도 않을 거면서 왜 부른 거야? 어디 보자…… 그래도 차는 바로 있네. 다행이다.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내일부터 또 끔찍한 일상이구나……. 즐겁게 놀다 갈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에이 짜증나. 정의만 그 새끼가 제일 짜증났어. 그 새끼 지가 무슨 형사야 뭐야. 왜 그리 나서는 거야? 게다가 별이 그년은 또 뭐야? 얼굴 좀 반반하다고 여우짓은! 그나저나 칠성씨는 잘 갔을까? 꽤 기분 상한 표정이었는데……. 연락 해볼까? 아니야. 괜히 지금 연락해서 좋을 거 없어. 내일 퇴근한 다음에 연락하자. 만나자고 해볼까? 근데 나랑 만나줄까? 그래. 만나줄 거야. 가만 보면 칠성씨가 나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그렇게 만지겠어? 근데 칠성씨가 정말 별이 그년도 만진 걸까? 설마…… 아닐 거야. 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느낌? 그 정도가 어디 만진 축에나 들어? 고작 그런 걸로 소리를 지르고 뺨을 때려? 참나…… 오바도 그런 오바를…… 그러니까 여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치한 신고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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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두 명이 글을 쓰고, 두 명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음호 주제 예고

홀수 챕터 문장 김세영 삽화 우진 짝수 챕터 문장 김종소리 삽화 정지호

김세영 호랑이띠 seoul8665@naver.com 우진 23.11 jwinx.blog.me 김종소리 주정뱅이 담배쟁이 가난뱅이 구라쟁이 소년 @jongsoriz jongsoriz@naver.com

아브락사스 vol.12

정지호 그림 그리는 평범주의자 jjihojjiho@naver.com 201


이번 호는 두 명이 글을 쓰고, 두 명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음호 주제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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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호랑이띠 seoul8665@naver.com 우진 23.11 jwinx.blog.me 김종소리 주정뱅이 담배쟁이 가난뱅이 구라쟁이 소년 @jongsoriz jongsor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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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린

낙타

종로구 창성동 122-12

마포구 서교동 333-18 2층

02 736 9005

02 6405 3189

더 북 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

마포구 상수동 331-8

마포구 서교동 326-29 5층

thebooksociety.org

your-mind.com

이음아트

101호 사케집

종로구 혜화동 197-1

서울 마포구 서교동 328-15

02 745 9758

02 3143 1015

샵 메이커즈

프롬 더 북스

부산 금정구 장전1동 233-31

부산 연제구 거제1동 213-12 1층

blog.naver.com/

greengreem.co.kr

shopmakers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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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편집/발행

김종소리

디자인

장지혜

발행

2011. 12. 16

문의

abraxasazine.com

jihe.jang@gmail.com

@abraxaszine jongsoriz@naver.com

이곳에 실린 작품의 저작권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무단으로 따라하시거나 가져다 쓰시면 안 됩니다. copyright©2011 abraxa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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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봉의 파리통신 두 번째

아브락사스

연재 1 뭔가 좀 그렇습니까

vol. 11

당신의 문장

이선영

허이준

악몽

네 음절로 남은 사랑

이향경

김효석

상처

꿈삶

닳아빠진 대신에 닳아빠진

최신행

이사라

이원희

데칼꼴라주

훔쳐보기

밤의 여로

김태인

박미정

연재 2

회귀

forget

문장 모아 소설

박원희가 만든 조각

샤르봉

연작 중 하나

fall

해변으로 가요

박원 희가

2011

조 각

아브락사스 열한 번째

만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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