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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말 연재1 Sharbong-Contemplation
9
Society_The law of the jungle - Hozac Chun
29
MIMPI - 글 문모운, 그림 BNR
33
프랑스에 가자 - 김종소리
57
내가 사랑한 도시 교토(京都) - 장은혜
95
남편의 홍천탕 - 이원희
105
인도의 문양 - 이슬
111
잃어버린 십팔 년 - 김세영
125
제 텔레파시를 받아주세요! - 정지호
133
룩셈부르크 다리 - 김수경
139
어학연수 - 김상은
145
연재2 문장 모아 소설
159
다음호 주제 예고 - vol.14
발말 연재1 Sharbong-Contemplation
9
Society_The law of the jungle - Hozac Chun
29
MIMPI - 글 문모운, 그림 BNR
33
프랑스에 가자 - 김종소리
57
내가 사랑한 도시 교토(京都) - 장은혜
95
남편의 홍천탕 - 이원희
105
인도의 문양 - 이슬
111
잃어버린 십팔 년 - 김세영
125
제 텔레파시를 받아주세요! - 정지호
133
룩셈부르크 다리 - 김수경
139
어학연수 - 김상은
145
연재2 문장 모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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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호 주제 예고 - vol.14
11호 때는 하도 글이 안 나와서 아예 작품을 못 냈었는데, 그 지경까진 안 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마감의 압박을 견디기가 힘들군요.
사설은 이쯤 하고. 주제를 정하고난 뒤에 생각한 것인데요. 요즘의 세계는 말이 200여개의 나라들로 구성된 것이지, 실제론 하나의 나라 같습니다. 교통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세상이 좁아진 탓도 있겠지만, 좁게 는 인간, 넓게는 생명이 하나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서양에선‘전일주의’, 동양에선‘도덕경’이 바로 그것을 대표하는 사상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딴 개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언제나 발말은 굽신굽신, 재밌게 봐주십쇼, 라는 것이 주된 내용 입니다.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세계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를 다녀왔습니다. 좋기도 하고, 별로이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제를‘세계, 어느 나라’로 정한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했습니다. 제가 해외에 다녀왔으니, 외국 얘기를 할 게 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 그닥 쓸 게 없었습니다. 뻔한 여행기를 쓰고 싶진 않았고, 그렇다고,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어 도저히 소설로 안 쓰고는 못 넘어가겠다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주제를 잘못 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작품을 하나 간신히 만들어냈습니다.
노트북을 들고 양화진 놀이터에 앉아서. 아발 김종소리.
11호 때는 하도 글이 안 나와서 아예 작품을 못 냈었는데, 그 지경까진 안 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마감의 압박을 견디기가 힘들군요.
사설은 이쯤 하고. 주제를 정하고난 뒤에 생각한 것인데요. 요즘의 세계는 말이 200여개의 나라들로 구성된 것이지, 실제론 하나의 나라 같습니다. 교통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세상이 좁아진 탓도 있겠지만, 좁게 는 인간, 넓게는 생명이 하나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서양에선‘전일주의’, 동양에선‘도덕경’이 바로 그것을 대표하는 사상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딴 개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언제나 발말은 굽신굽신, 재밌게 봐주십쇼, 라는 것이 주된 내용 입니다.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세계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를 다녀왔습니다. 좋기도 하고, 별로이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제를‘세계, 어느 나라’로 정한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했습니다. 제가 해외에 다녀왔으니, 외국 얘기를 할 게 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 그닥 쓸 게 없었습니다. 뻔한 여행기를 쓰고 싶진 않았고, 그렇다고,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어 도저히 소설로 안 쓰고는 못 넘어가겠다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주제를 잘못 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작품을 하나 간신히 만들어냈습니다.
노트북을 들고 양화진 놀이터에 앉아서. 아발 김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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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bong-Contemplation #4 contemplation [여성명사] 1. 주시,응시,관조 2. 명상,심사숙고 =
3. (영혼의) 신과의 합일
1분내지 3분사이로 같은 곳을 연속해서 촬영한‘파리 어느 곳’입니다. 매 회마다 장소는 바뀝니다.
샤르봉 www.facebook.com/sharb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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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bong-Contemplation #4 contemplation [여성명사] 1. 주시,응시,관조 2. 명상,심사숙고 =
3. (영혼의) 신과의 합일
1분내지 3분사이로 같은 곳을 연속해서 촬영한‘파리 어느 곳’입니다. 매 회마다 장소는 바뀝니다.
샤르봉 www.facebook.com/sharb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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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_The law of the jungle (사회_약육강식) Pen, Pencil, Acrylic on paper 대한민국 서울 여기 바로 이 곳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공평하다? 인간은 모두 다 존엄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으나, 사회에서 각자 주어진 위치에 따라 불공평한 조건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직업 또는 위치가 곧 자신의 서열 및 계급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계급화 되어진 사회 속 문제들을 인간의 원초적모습인 상태에서 해학적으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Hozac chun hosak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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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ozacchun.blog.me/
Society_The law of the jungle (사회_약육강식) Pen, Pencil, Acrylic on paper 대한민국 서울 여기 바로 이 곳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공평하다? 인간은 모두 다 존엄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으나, 사회에서 각자 주어진 위치에 따라 불공평한 조건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직업 또는 위치가 곧 자신의 서열 및 계급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계급화 되어진 사회 속 문제들을 인간의 원초적모습인 상태에서 해학적으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Hozac chun hosak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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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ozacchu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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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나린 산속 깊은 골짜기에는 <세카>라는 부족이 마을을 꾸려 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부족을 <꿈의 부족>이라고 불렀다. 영혼이 있는 것들은 모름지기 잠이 들고 꿈을 꾸기 마련인데 세카 부족 사람들은 그 꿈이란 걸 현실 세계와는 다르지만 분명 어떻게 든 이어져 있는 것이라고 오랜 세월 믿어왔다. 그래서 꿈을 꾸는 행 위 자체를 굉장히 신성시하고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테면 이 런 식이다. 누군가 본의 아니게 어떤 사람을 괴롭히는 꿈을 꾸었다. 그럼 다음 날 현실로 돌아와서 그 꿈의 주인은 꿈속에서 자신이 괴 롭힌 사람을 진짜로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작은 선물도 챙겨주는 것 이다. 선물이라고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식량이나 사냥하는 데 사 용하는 도구, 장신구 같은 것들이었다. 무슨 꿈을 꿀지 어떻게 알 당신이 이렇게 잠 못 드는 밤에 나를 찾는다는 건 참 기쁜 일이
고 그러느냐고? 좋은 질문이다. 이 부족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다. 하지만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생활이라는 게 있을 텐데
꿈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게 된다. 평생에 걸친 자연스러운 훈련
매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리 고귀한 마음씨를 가진 나라고 해도
을 통해 그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부족 아
곤란하다. 그러니 오늘은 제발 하나만 듣고 잠들어주길 바란다. 우
이들에게 꿈을 다루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만약 당신
리는 내일도 일하러 나가야 하지 않는가. 돈 안 벌면 굶어 죽는다.
이 세카 부족의 사람이었으면 혼기를 꽉 채운 당신에게 마을의 가
나는 불 타죽거나, 얼어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훨씬 무섭다. 내
장 나이 많은 할머니가 이런 걸 알려줬을지도 모른다.“꿈속에서 성
말 알아듣겠나? 그렇게 멀뚱히 쳐다만 보지 말고 대답을 해라. 좀.
관계를 맺을 때 오르가슴을 느끼는 비결이 무엇이냐 하면….”여기
좋다. 지난 시간에는 북유럽 신화에 대해 주야장천 이야기했으
까지 하겠다. 비결을 알고 싶으면 다음에 세카 부족에서 다시 태어
니 오늘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어떤 부족의 이야기를 하겠다. 거기
나는 것을 권장한다.
손에 들고 있는 지도를 보고 말레이 반도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
어쨌든 이렇게 꿈의 개념이 유별난 부족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꿈
저기 미안한데, 지금 당신이 짚은 곳은 러시아다. 좀 더 아래를 봐
의 내용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일종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흥미롭
달라. 그래, 거기. 혹시 키나발루라는 산이 보이는가? 내가 이야기
고 모험적인 꿈을 꿀수록 사람들은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용맹스러
하려는 부족은 그 키나발루 산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호쿠나린 산
우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족 사람들은 꿈을 최대한 다
에 산다. 그렇다면 호쿠나린은 어디 있는가. 애석하게도 그 지도에
양하게, 즐겁게 꾸기 위해 현실을 즐기며 신경질도 잘 부리지 않았
는 없다. 그 지도를 만든 자식은 동남아시아 2등 산을 굳이 기억해
고, 혹시라도 화나는 것이 있으면 꿈속에서 언제든 풀 수 있다고 확
내는 위인이 아니다.
신했다. 일주일에 한 번 부족 사람들 전체가 모여 꿈 이야기를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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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나린 산속 깊은 골짜기에는 <세카>라는 부족이 마을을 꾸려 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부족을 <꿈의 부족>이라고 불렀다. 영혼이 있는 것들은 모름지기 잠이 들고 꿈을 꾸기 마련인데 세카 부족 사람들은 그 꿈이란 걸 현실 세계와는 다르지만 분명 어떻게 든 이어져 있는 것이라고 오랜 세월 믿어왔다. 그래서 꿈을 꾸는 행 위 자체를 굉장히 신성시하고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테면 이 런 식이다. 누군가 본의 아니게 어떤 사람을 괴롭히는 꿈을 꾸었다. 그럼 다음 날 현실로 돌아와서 그 꿈의 주인은 꿈속에서 자신이 괴 롭힌 사람을 진짜로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작은 선물도 챙겨주는 것 이다. 선물이라고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식량이나 사냥하는 데 사 용하는 도구, 장신구 같은 것들이었다. 무슨 꿈을 꿀지 어떻게 알 당신이 이렇게 잠 못 드는 밤에 나를 찾는다는 건 참 기쁜 일이
고 그러느냐고? 좋은 질문이다. 이 부족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다. 하지만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생활이라는 게 있을 텐데
꿈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게 된다. 평생에 걸친 자연스러운 훈련
매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리 고귀한 마음씨를 가진 나라고 해도
을 통해 그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부족 아
곤란하다. 그러니 오늘은 제발 하나만 듣고 잠들어주길 바란다. 우
이들에게 꿈을 다루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만약 당신
리는 내일도 일하러 나가야 하지 않는가. 돈 안 벌면 굶어 죽는다.
이 세카 부족의 사람이었으면 혼기를 꽉 채운 당신에게 마을의 가
나는 불 타죽거나, 얼어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훨씬 무섭다. 내
장 나이 많은 할머니가 이런 걸 알려줬을지도 모른다.“꿈속에서 성
말 알아듣겠나? 그렇게 멀뚱히 쳐다만 보지 말고 대답을 해라. 좀.
관계를 맺을 때 오르가슴을 느끼는 비결이 무엇이냐 하면….”여기
좋다. 지난 시간에는 북유럽 신화에 대해 주야장천 이야기했으
까지 하겠다. 비결을 알고 싶으면 다음에 세카 부족에서 다시 태어
니 오늘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어떤 부족의 이야기를 하겠다. 거기
나는 것을 권장한다.
손에 들고 있는 지도를 보고 말레이 반도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
어쨌든 이렇게 꿈의 개념이 유별난 부족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꿈
저기 미안한데, 지금 당신이 짚은 곳은 러시아다. 좀 더 아래를 봐
의 내용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일종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흥미롭
달라. 그래, 거기. 혹시 키나발루라는 산이 보이는가? 내가 이야기
고 모험적인 꿈을 꿀수록 사람들은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용맹스러
하려는 부족은 그 키나발루 산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호쿠나린 산
우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족 사람들은 꿈을 최대한 다
에 산다. 그렇다면 호쿠나린은 어디 있는가. 애석하게도 그 지도에
양하게, 즐겁게 꾸기 위해 현실을 즐기며 신경질도 잘 부리지 않았
는 없다. 그 지도를 만든 자식은 동남아시아 2등 산을 굳이 기억해
고, 혹시라도 화나는 것이 있으면 꿈속에서 언제든 풀 수 있다고 확
내는 위인이 아니다.
신했다. 일주일에 한 번 부족 사람들 전체가 모여 꿈 이야기를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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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서로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렇듯 꿈
환상적인 꿈, 때로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꿈, 또 때로는 강
을 편리하게 사용할 줄 알며 그에 힘입어 지극히 평화로운 현실을
렬하고 짜릿한 모험을 떠나는 꿈까지. 언제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영위하는 부족이었다.
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그의 꿈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그
그런 세카 부족이 꾸린 작은 마을에 하루날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
꿈속에 있는 것처럼 황홀했다. 게다가 센시는 현실에서도 자신이 이
었다. 그런데 하루날은 말을 못하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말을
야기하는 꿈의 모습처럼 자신감 넘치고 뛰어난 외모에다 목소리까
다 떼고 재잘재잘 떠들어댈 때도 하루날은 언어라는 걸 구사할 수
지 특출나게 멋졌기에 마을 사람들의 인기와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없었다. 다만 언어 외에 소리는 낼 수 있었다. 이것은 세상 만물에
그러나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하루날에게 말하는 능력을 주지 않으셨기 때
사실 센시는 꿈이란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소년이었다. 세상 만
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남겨두셨다. 거기에 말
물에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하루날에게 병과 약을 동시에 준 것처럼
뺏어가서 미안하다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고, 태평하기까지 한 성정
센시에게도 똑같이 같잖은 지혜를 부린 것이 그 이유다. 신은 센시
을 주셨는데 이것은 원망을 최소화하되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내려고
에게 꿈 없는 숙면과 누구라도 홀릴 수 있는 말솜씨를 동시에 주었
고안해낸 그 신만의 지혜였다.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말이 없어도
다. 센시의 꿈 없는 숙면은 일종의 스위치 같은 모양이었다. 아주
성격 좋은 하루날을 꽤 귀여워했고 어떤 이야기든 기꺼이 들려주었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잠이 들면 점등, 잠에서 깨면 소등, 그 사이에
다. 글자를 몰라서 어디 쓸 수도 없었으니 설령 부끄럽고 창피한 이
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꿈을 꾸다가 깼다 정도의 단순한 느낌조
야기라도 신 나게 떠들었다.
차도 알지 못했다. 이런 스위치의 존재를 모르는 센시는 커갈수록
하루날은 부족 사람들끼리 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유난히 좋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결점
아했다. 그 시간에 실은 자기의 꿈도 나누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모두 수수하고 지루할지언정 자연스
못하니 꿈 이야기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날이 많았다. 그럼 사람들
럽게 꿈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만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몹시 초
이 이렇게 말했다.
조하고 불안했다. 당신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숙면이란 살아
“오, 하루날 간밤에 즐거운 춤을 추는 꿈을 꾸었구나! 귀여운 녀
가는 데 꼭 필요한 귀한 요소임이 틀림없지만, 세카 부족에게 꿈 없
석.”
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숙면이란 존재 의미를 위협하는 가혹한 형벌
하루날의 몸짓은 확실히 귀여웠다. 하지만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귀여움이었다. 하루날은 자신의 꿈을 표현하는 것 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즐거우 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런 하루날에게는 센시라는 형이 한 명 있었다. 센시는 하루날과
같은 것이었다. ‘부족의 일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센시의 가슴 속에는 단호한 믿음이 싹텄다. 그래서 그는 거짓말 을 하기 시작했다. 별의별 꿈을 다 꾸는 양, 신께서 생색낸답시고 주신 말솜씨가 온전히 제 것인 양,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사람
정반대로 부족에서 제일가는 꿈 이야기꾼이었다. 때로는 아름답고
들을 홀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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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서로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렇듯 꿈
환상적인 꿈, 때로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꿈, 또 때로는 강
을 편리하게 사용할 줄 알며 그에 힘입어 지극히 평화로운 현실을
렬하고 짜릿한 모험을 떠나는 꿈까지. 언제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영위하는 부족이었다.
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그의 꿈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그
그런 세카 부족이 꾸린 작은 마을에 하루날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
꿈속에 있는 것처럼 황홀했다. 게다가 센시는 현실에서도 자신이 이
었다. 그런데 하루날은 말을 못하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말을
야기하는 꿈의 모습처럼 자신감 넘치고 뛰어난 외모에다 목소리까
다 떼고 재잘재잘 떠들어댈 때도 하루날은 언어라는 걸 구사할 수
지 특출나게 멋졌기에 마을 사람들의 인기와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없었다. 다만 언어 외에 소리는 낼 수 있었다. 이것은 세상 만물에
그러나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하루날에게 말하는 능력을 주지 않으셨기 때
사실 센시는 꿈이란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소년이었다. 세상 만
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들을 수 있는 능력은 남겨두셨다. 거기에 말
물에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하루날에게 병과 약을 동시에 준 것처럼
뺏어가서 미안하다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고, 태평하기까지 한 성정
센시에게도 똑같이 같잖은 지혜를 부린 것이 그 이유다. 신은 센시
을 주셨는데 이것은 원망을 최소화하되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내려고
에게 꿈 없는 숙면과 누구라도 홀릴 수 있는 말솜씨를 동시에 주었
고안해낸 그 신만의 지혜였다.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말이 없어도
다. 센시의 꿈 없는 숙면은 일종의 스위치 같은 모양이었다. 아주
성격 좋은 하루날을 꽤 귀여워했고 어떤 이야기든 기꺼이 들려주었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잠이 들면 점등, 잠에서 깨면 소등, 그 사이에
다. 글자를 몰라서 어디 쓸 수도 없었으니 설령 부끄럽고 창피한 이
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꿈을 꾸다가 깼다 정도의 단순한 느낌조
야기라도 신 나게 떠들었다.
차도 알지 못했다. 이런 스위치의 존재를 모르는 센시는 커갈수록
하루날은 부족 사람들끼리 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유난히 좋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결점
아했다. 그 시간에 실은 자기의 꿈도 나누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모두 수수하고 지루할지언정 자연스
못하니 꿈 이야기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날이 많았다. 그럼 사람들
럽게 꿈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만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몹시 초
이 이렇게 말했다.
조하고 불안했다. 당신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숙면이란 살아
“오, 하루날 간밤에 즐거운 춤을 추는 꿈을 꾸었구나! 귀여운 녀
가는 데 꼭 필요한 귀한 요소임이 틀림없지만, 세카 부족에게 꿈 없
석.”
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숙면이란 존재 의미를 위협하는 가혹한 형벌
하루날의 몸짓은 확실히 귀여웠다. 하지만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귀여움이었다. 하루날은 자신의 꿈을 표현하는 것 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즐거우 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런 하루날에게는 센시라는 형이 한 명 있었다. 센시는 하루날과
같은 것이었다. ‘부족의 일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센시의 가슴 속에는 단호한 믿음이 싹텄다. 그래서 그는 거짓말 을 하기 시작했다. 별의별 꿈을 다 꾸는 양, 신께서 생색낸답시고 주신 말솜씨가 온전히 제 것인 양,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사람
정반대로 부족에서 제일가는 꿈 이야기꾼이었다. 때로는 아름답고
들을 홀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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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센시는 거짓말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좋은 이야기꾼으로
을 나는’꿈이었던 것이다. 그 꿈은 누구도 기억할 수 없는 부족 역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센시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것
사 초기부터 상상도 할 수 없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귀한 대
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을 꾸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접을 받아왔다. 그들에게 하늘을 난다는 것은 꿈속에서 오르가즘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꿈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족에서 태어난 것
백 번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그 꿈
이 죄라면 죄일지도 모른다. 센시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을 위
을 꾸었다는 사람이 있으면 환희를 듬뿍 곁든 축하가 쏟아졌다. 특
해 매일 거짓을 고하면서도 진짜 꿈을 꾸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히나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는 건, 세상 만물
않았다. 사실 저를 그 꼴로 몰아간 건 그 잘난 신들 중의 하나건만
에 깃든 신들의 은총, 즉 세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아이에게 비상의
센시는 그것도 모른 체 재미없어도 좋으니 제발 한 번만이라도 꿈을
꿈 이야기가 나오면 부족 사람들 모두가 온갖 선물을 안겨주고, 어
꿀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엄청나게
떻게 하면 꿈속에서 미지의 나라까지 날아가서 신기한 것들을 구경
머리를 굴려 하루에 있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최대한 기억해내고, 시
하고 올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간순으로 정리하고 떠올리는 연습을 했다. 일종의 이미지트레이닝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꿈속에서는 언제나 할 수 있는 거라고
같은 거였다. 또 가장 최근에 들은 다른 사람의 꿈 이야기를 전부 기
모두가 믿었으므로. 당신이 아무리‘꿈속에서 하늘을 나는 게 그렇
억해놓고 머릿속으로 그 영상들을 떠올리고, 되새기고, 정리하기도
게 대단한가?’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해도 그것은 세카 부족에게‘
했다. 다른 사람의 꿈이지만 비슷하게라도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리는 왜 하필 지구에서 태어났을까?’고민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년을 노력해서 얻은 건 꿈이 아니라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꿈 중의 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구태여
방대하고 화려한 거짓말들뿐이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
이의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음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그 수준이 갈수록 대담해졌으
그렇게 멋지고 대단한, 누구나 한 번쯤을 꾸어봤을 꿈이건만 히
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구체적이고 섬세
아렌은 그러질 못했다. 여기서도 세상 만물에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한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그걸 알 리 없는 부족의 또래 아이들은
지혜를 부렸나 싶겠지만, 이번만큼은 신들과 전혀 상관없다. 오히
모두 센시를 부러워했다.
려 신들이 될 대로 되라며 히아렌을 내버려둔 쪽에 더 가깝다. 그래
이런 센시에게는 하루날 말고도 히아렌이라는 여동생이 한 명 있
서 애가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히아렌은 센시처럼 영악하지도
었다. 히아렌은 센시와 다르게 보통 아이들처럼 보통의 꿈을 보통으
않아서 꾸지도 않은 꿈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온순하고 정직했으며
로 꾸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꾸지 못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세카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소녀였으므로 가슴 졸여가며 거짓말을 할 수
부족의 화석과도 같은 열망, 바로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무슨 이야
없었던 것이다. 꿈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센시는 아무것도 가지질 못
기인고 하니, 기본적으로 모든 꿈에 제각각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
했고, 히아렌은 하나만 가지질 못했다. 하지만 히아렌은 센시가 그
각하는 세카 부족에게도 깜짝 이벤트처럼 특별한 꿈이 있었는데 그
런 상태인 걸 몰랐고, 그 가지지 못한 하나가 살아있는 한 누구라도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가 꾸고 싶어하는 꿈, 바로‘하늘
받을 수 있는 축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 같으면 아마 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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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센시는 거짓말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좋은 이야기꾼으로
을 나는’꿈이었던 것이다. 그 꿈은 누구도 기억할 수 없는 부족 역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센시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것
사 초기부터 상상도 할 수 없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귀한 대
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을 꾸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접을 받아왔다. 그들에게 하늘을 난다는 것은 꿈속에서 오르가즘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꿈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족에서 태어난 것
백 번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그 꿈
이 죄라면 죄일지도 모른다. 센시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을 위
을 꾸었다는 사람이 있으면 환희를 듬뿍 곁든 축하가 쏟아졌다. 특
해 매일 거짓을 고하면서도 진짜 꿈을 꾸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히나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는 건, 세상 만물
않았다. 사실 저를 그 꼴로 몰아간 건 그 잘난 신들 중의 하나건만
에 깃든 신들의 은총, 즉 세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아이에게 비상의
센시는 그것도 모른 체 재미없어도 좋으니 제발 한 번만이라도 꿈을
꿈 이야기가 나오면 부족 사람들 모두가 온갖 선물을 안겨주고, 어
꿀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엄청나게
떻게 하면 꿈속에서 미지의 나라까지 날아가서 신기한 것들을 구경
머리를 굴려 하루에 있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최대한 기억해내고, 시
하고 올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간순으로 정리하고 떠올리는 연습을 했다. 일종의 이미지트레이닝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꿈속에서는 언제나 할 수 있는 거라고
같은 거였다. 또 가장 최근에 들은 다른 사람의 꿈 이야기를 전부 기
모두가 믿었으므로. 당신이 아무리‘꿈속에서 하늘을 나는 게 그렇
억해놓고 머릿속으로 그 영상들을 떠올리고, 되새기고, 정리하기도
게 대단한가?’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해도 그것은 세카 부족에게‘
했다. 다른 사람의 꿈이지만 비슷하게라도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리는 왜 하필 지구에서 태어났을까?’고민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년을 노력해서 얻은 건 꿈이 아니라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꿈 중의 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구태여
방대하고 화려한 거짓말들뿐이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
이의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음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그 수준이 갈수록 대담해졌으
그렇게 멋지고 대단한, 누구나 한 번쯤을 꾸어봤을 꿈이건만 히
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구체적이고 섬세
아렌은 그러질 못했다. 여기서도 세상 만물에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한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그걸 알 리 없는 부족의 또래 아이들은
지혜를 부렸나 싶겠지만, 이번만큼은 신들과 전혀 상관없다. 오히
모두 센시를 부러워했다.
려 신들이 될 대로 되라며 히아렌을 내버려둔 쪽에 더 가깝다. 그래
이런 센시에게는 하루날 말고도 히아렌이라는 여동생이 한 명 있
서 애가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히아렌은 센시처럼 영악하지도
었다. 히아렌은 센시와 다르게 보통 아이들처럼 보통의 꿈을 보통으
않아서 꾸지도 않은 꿈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온순하고 정직했으며
로 꾸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꾸지 못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세카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소녀였으므로 가슴 졸여가며 거짓말을 할 수
부족의 화석과도 같은 열망, 바로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무슨 이야
없었던 것이다. 꿈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센시는 아무것도 가지질 못
기인고 하니, 기본적으로 모든 꿈에 제각각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
했고, 히아렌은 하나만 가지질 못했다. 하지만 히아렌은 센시가 그
각하는 세카 부족에게도 깜짝 이벤트처럼 특별한 꿈이 있었는데 그
런 상태인 걸 몰랐고, 그 가지지 못한 하나가 살아있는 한 누구라도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가 꾸고 싶어하는 꿈, 바로‘하늘
받을 수 있는 축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 같으면 아마 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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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골백번 환장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십 대 중순을 넘기도록 비상
면서 자신을 속으로 나무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히아렌의 복
의 꿈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부족 사람들도 히아렌을 이상하게 여겼
잡한 심정은 아랑곳없이 어느덧 몬순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우
다. 이 아이의 영혼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삼 남매의 부모
리가 사는 나라에 장마가 있는 것처럼 말레이시아에도 계절풍의 영
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식 하나가 말을 못하는 것도 속
향으로 11월부터 2월까지 많은 비가 내린다. 그 기간을 몬순이라고
터지는데 하나뿐인 딸이 남의 집 애들은 다 꾸고도 남아도는 꿈 소
하는데, 히아렌은 이 몬순 기간을 좋아했다. 내리는 비에 나쁜 기운
식이 없으니. 그렇게 따지면 세 아이 중 장남이 제일 심각하다. 하
들을 씻어내면 영혼까지 정화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 거
지만 그걸 알 턱이 있나. 언제나 센시만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만큼
라고 믿었던 것이다. 몇 년간을. 그리 안타까운 표정 지을 것 없다.
아끼는, 좀 모자란 부모 밑에서 히아렌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
하릴없는 희망을 안고 사는 인간의 모습이란 게 대개 그렇지 않던
는 걸까 매일 고민했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
가. 몬순 때는 바깥 활동이 제한되니 크게 할 일이 없으면 잠을 자게
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은근히 따돌리기도 했다. 자신들
되고 그만큼 꿈꾸는 시간도 잦아진다. 그래서 히아렌과 달리 센시
과 조금 다른 걸 처음에는 낯설어하더니, 이제는 그게 틀린 거라고
는 몬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시기에는 부족 사람들의 기대
규정한 탓이다. 말레이 반도 산속에 사는 부족이라 한들 인간 본성
치가 더 높아지고 그에 맞춰 더 많은 꿈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했으
을 뭐 어디 숲속에 고이 모셔두기라도 했겠는가. 원치 않는 상황들
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명백히 자처해서 하는 일이긴 했지만,
이 계속 벌어지면서 히아렌은 마음의 문틈을 조금씩 좁혀갔다. 설상
그때마다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정신이 지치니 자연스럽게 몸
가상으로 평소 잘만 꾸던 보통의 꿈마저 괴이한 악몽으로 변질됐다.
은 피곤해지고, 그러다보니 항상 하던 이미지트레이닝도 하질 못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징그러운 괴물들이 쫓아오고, 그들을 피해 달
다. 푹 자고 일어나면 개운한 몸으로 이내 몰아치는 죄책감과 부담
아나는 히아렌의 발밑에는 항상 거친 자갈길이 펼쳐져 있었으며, 부
감들을 머리털 쥐어뜯어 가며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바로 그 시기
드럽고 말랑말랑한 맨발은 자갈길에 상처입어 핏빛으로 물들었다.
였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 그러다 보니 지어낸 꿈 이야기를 기억하
어른들에게 아무리 꿈을 다루는 방법을 귀담아듣고 그대로 따라 해
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헷갈렸다. 서서히 자신이 파놓은 깊은 무
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으니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그에 비하면 센
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는 매일 화려하고 멋들어진 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람들의 찬
사람들을 속인 게 몇 년인데 이제 와서 그게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사를 받고 있었다. 3일 연속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걸 들키면. 몬순의 계절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센시는 자신이 파놓
들었을 때, 자기 오빠지만 정말 한 대만 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은 무덤에 얼마 가지 않아 홀랑 던져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
들었다. 하루쯤은 참을 수 있는 거잖아 라며 센시를 원망했다. 이따
만 괜한 걱정이었다. 그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죄책감에 몸
금 센시만 편애하는 부모를 보면서 강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는데,
서리치는 걸 누구도 몰랐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세카 부족에게
그마저 얼마 가질 않았다. 언제나‘그래도 식구인데, 나한테 좋은 이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모든 사람이 기
야기도 많이 해주고 다독여주는 사람인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
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이나 다름없다고 믿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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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골백번 환장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십 대 중순을 넘기도록 비상
면서 자신을 속으로 나무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히아렌의 복
의 꿈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부족 사람들도 히아렌을 이상하게 여겼
잡한 심정은 아랑곳없이 어느덧 몬순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우
다. 이 아이의 영혼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삼 남매의 부모
리가 사는 나라에 장마가 있는 것처럼 말레이시아에도 계절풍의 영
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식 하나가 말을 못하는 것도 속
향으로 11월부터 2월까지 많은 비가 내린다. 그 기간을 몬순이라고
터지는데 하나뿐인 딸이 남의 집 애들은 다 꾸고도 남아도는 꿈 소
하는데, 히아렌은 이 몬순 기간을 좋아했다. 내리는 비에 나쁜 기운
식이 없으니. 그렇게 따지면 세 아이 중 장남이 제일 심각하다. 하
들을 씻어내면 영혼까지 정화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 거
지만 그걸 알 턱이 있나. 언제나 센시만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만큼
라고 믿었던 것이다. 몇 년간을. 그리 안타까운 표정 지을 것 없다.
아끼는, 좀 모자란 부모 밑에서 히아렌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
하릴없는 희망을 안고 사는 인간의 모습이란 게 대개 그렇지 않던
는 걸까 매일 고민했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
가. 몬순 때는 바깥 활동이 제한되니 크게 할 일이 없으면 잠을 자게
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은근히 따돌리기도 했다. 자신들
되고 그만큼 꿈꾸는 시간도 잦아진다. 그래서 히아렌과 달리 센시
과 조금 다른 걸 처음에는 낯설어하더니, 이제는 그게 틀린 거라고
는 몬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시기에는 부족 사람들의 기대
규정한 탓이다. 말레이 반도 산속에 사는 부족이라 한들 인간 본성
치가 더 높아지고 그에 맞춰 더 많은 꿈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했으
을 뭐 어디 숲속에 고이 모셔두기라도 했겠는가. 원치 않는 상황들
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명백히 자처해서 하는 일이긴 했지만,
이 계속 벌어지면서 히아렌은 마음의 문틈을 조금씩 좁혀갔다. 설상
그때마다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정신이 지치니 자연스럽게 몸
가상으로 평소 잘만 꾸던 보통의 꿈마저 괴이한 악몽으로 변질됐다.
은 피곤해지고, 그러다보니 항상 하던 이미지트레이닝도 하질 못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징그러운 괴물들이 쫓아오고, 그들을 피해 달
다. 푹 자고 일어나면 개운한 몸으로 이내 몰아치는 죄책감과 부담
아나는 히아렌의 발밑에는 항상 거친 자갈길이 펼쳐져 있었으며, 부
감들을 머리털 쥐어뜯어 가며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바로 그 시기
드럽고 말랑말랑한 맨발은 자갈길에 상처입어 핏빛으로 물들었다.
였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 그러다 보니 지어낸 꿈 이야기를 기억하
어른들에게 아무리 꿈을 다루는 방법을 귀담아듣고 그대로 따라 해
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헷갈렸다. 서서히 자신이 파놓은 깊은 무
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으니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그에 비하면 센
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는 매일 화려하고 멋들어진 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람들의 찬
사람들을 속인 게 몇 년인데 이제 와서 그게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사를 받고 있었다. 3일 연속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걸 들키면. 몬순의 계절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센시는 자신이 파놓
들었을 때, 자기 오빠지만 정말 한 대만 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은 무덤에 얼마 가지 않아 홀랑 던져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
들었다. 하루쯤은 참을 수 있는 거잖아 라며 센시를 원망했다. 이따
만 괜한 걱정이었다. 그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죄책감에 몸
금 센시만 편애하는 부모를 보면서 강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는데,
서리치는 걸 누구도 몰랐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세카 부족에게
그마저 얼마 가질 않았다. 언제나‘그래도 식구인데, 나한테 좋은 이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모든 사람이 기
야기도 많이 해주고 다독여주는 사람인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
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이나 다름없다고 믿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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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시는 부쩍 들어 악몽을 나누는 히아렌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
며 걸음을 재촉했다. 호쿠나린 산에서 가장 큰 바위가 있는 장소에
다. 악몽이라도 꿀 수 있다면. 나라면 괴물들이 나타나도 얼마든지
도착한 두 사람은 그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주위에 아무도
싸워 물리칠 수 있는데. 아니, 하루날처럼 차라리 말이라도 못하면!
없는 것을 확인한 센시가 하루날의 양손을 부여잡고 입을 열었다.
센시는 속으로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다 부렸다. 지칠 대로 지친
“넌 내 동생이니까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해도 용서해줄 수 있
것이다. 당장에라도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지? ”
하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에 있는
하루날은 센시의 행동이 영 못마땅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털이란 털들이 모두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센시는 자신
형인데 당연히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의 얼굴이, 오늘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
“하루날, 내 동생. 난 지금까지 이 더러운 입으로 수많은 죄를 지
못했다고 우울해하는 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이 없어도 자신에
었어.”
게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해맑게 웃는 남동생의 얼굴도
센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의 눈에서는 그날
떠올랐는데, 웬일인지 그 웃는 얼굴은 다른 얼굴보다 꽤 오랜 시간
아침까지 쏟아지던 비처럼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루날은 놀
떠올라 있었다. 하루날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란 얼굴로 떨리는 센시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센시는 결심했다. 이러다가는 머리가 터져 죽겠다. 하루날에게 말
“나는…한 번도…단…한 번도….”
하자. 하루날은 들을 수만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에게 들킬 염려도
몇 년간 혼자서 남몰래 않던 비밀을 말하려니 센시의 가슴 깊숙한
없고,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누군가 자신의 비밀을 그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올라 왔다. 무섭고 눈앞이 깜깜하기도
저 알고만 있다면 그건 분명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비록 많은 거짓
했지만, 곧 있으면 조금이나마 자유와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을 했지만, 꿈꿀 수 없는 대신 조금의 자유 정도는 허락 받을 수
에 다시 각오를 단단히 했다. 울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형의 모
있는 것 아닌가? 그래, 하루날에게 모든 걸 털어놓자. 그렇다. 당신
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던 하루날 역시 점점 명치가 아릿아릿 저렸다.
말대로 센시는 정말 영악하고 몹쓸 녀석이다. 그리고 그에 비례하
어렸을 때 내가 울면 형이 어떻게 해주었더라? 하루날은 재빨리 머
는 건실한 행동파이기도 했다.
리를 굴렸다. 그리고 센시의 손을 놓고 그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센
그날 정오에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 비가 잠시 그쳤던 참
시는 하루날의 품에 안겨 아예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었다. 센시는 집에서 낮잠을 자는 하루날을 조용히 깨웠다. 하루
“나를 용서해줘.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꿈을 꾸어본 적이 없
날은 풀린 눈으로 센시를 쳐다봤다. 왜 깨우느냐고 미간에 잔뜩 주
어. 나는 꿈 이야기꾼이 아니라 그저 병신 머저리나 다름없는 최악
름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센시는 소리 없이 미소만 짓고는 하루날
의 거짓말쟁이야! 이야기할 게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 없다고! 애초
의 손을 잡아끌어 집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사냥할 때나 가는 산
에 꿈을 꾼다는 말을 쓸 수 없는 인간이야!”
위쪽을 향해 걸었다. 중간에 몇 번인가 하루날이 걸음을 멈추고 무
센시는 꺽꺽 소리를 내며 고백했다.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들어차
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어 보여도 센시는 하루날을 조곤조곤 달래가
는 것을 육체에 존재하는 온 신경으로 느끼면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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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시는 부쩍 들어 악몽을 나누는 히아렌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
며 걸음을 재촉했다. 호쿠나린 산에서 가장 큰 바위가 있는 장소에
다. 악몽이라도 꿀 수 있다면. 나라면 괴물들이 나타나도 얼마든지
도착한 두 사람은 그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주위에 아무도
싸워 물리칠 수 있는데. 아니, 하루날처럼 차라리 말이라도 못하면!
없는 것을 확인한 센시가 하루날의 양손을 부여잡고 입을 열었다.
센시는 속으로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다 부렸다. 지칠 대로 지친
“넌 내 동생이니까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해도 용서해줄 수 있
것이다. 당장에라도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지? ”
하지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에 있는
하루날은 센시의 행동이 영 못마땅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털이란 털들이 모두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센시는 자신
형인데 당연히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의 얼굴이, 오늘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
“하루날, 내 동생. 난 지금까지 이 더러운 입으로 수많은 죄를 지
못했다고 우울해하는 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이 없어도 자신에
었어.”
게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해맑게 웃는 남동생의 얼굴도
센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의 눈에서는 그날
떠올랐는데, 웬일인지 그 웃는 얼굴은 다른 얼굴보다 꽤 오랜 시간
아침까지 쏟아지던 비처럼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루날은 놀
떠올라 있었다. 하루날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란 얼굴로 떨리는 센시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센시는 결심했다. 이러다가는 머리가 터져 죽겠다. 하루날에게 말
“나는…한 번도…단…한 번도….”
하자. 하루날은 들을 수만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에게 들킬 염려도
몇 년간 혼자서 남몰래 않던 비밀을 말하려니 센시의 가슴 깊숙한
없고,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누군가 자신의 비밀을 그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올라 왔다. 무섭고 눈앞이 깜깜하기도
저 알고만 있다면 그건 분명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비록 많은 거짓
했지만, 곧 있으면 조금이나마 자유와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을 했지만, 꿈꿀 수 없는 대신 조금의 자유 정도는 허락 받을 수
에 다시 각오를 단단히 했다. 울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형의 모
있는 것 아닌가? 그래, 하루날에게 모든 걸 털어놓자. 그렇다. 당신
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던 하루날 역시 점점 명치가 아릿아릿 저렸다.
말대로 센시는 정말 영악하고 몹쓸 녀석이다. 그리고 그에 비례하
어렸을 때 내가 울면 형이 어떻게 해주었더라? 하루날은 재빨리 머
는 건실한 행동파이기도 했다.
리를 굴렸다. 그리고 센시의 손을 놓고 그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센
그날 정오에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 비가 잠시 그쳤던 참
시는 하루날의 품에 안겨 아예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었다. 센시는 집에서 낮잠을 자는 하루날을 조용히 깨웠다. 하루
“나를 용서해줘.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꿈을 꾸어본 적이 없
날은 풀린 눈으로 센시를 쳐다봤다. 왜 깨우느냐고 미간에 잔뜩 주
어. 나는 꿈 이야기꾼이 아니라 그저 병신 머저리나 다름없는 최악
름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센시는 소리 없이 미소만 짓고는 하루날
의 거짓말쟁이야! 이야기할 게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 없다고! 애초
의 손을 잡아끌어 집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사냥할 때나 가는 산
에 꿈을 꾼다는 말을 쓸 수 없는 인간이야!”
위쪽을 향해 걸었다. 중간에 몇 번인가 하루날이 걸음을 멈추고 무
센시는 꺽꺽 소리를 내며 고백했다.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들어차
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어 보여도 센시는 하루날을 조곤조곤 달래가
는 것을 육체에 존재하는 온 신경으로 느끼면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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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시원하고 좋은 느낌이었다. 반면 하루날은 큰 충격을 받아 꼼
람보다 조금 느린 것뿐이야. 괜찮아. 내 사랑스러운 동생. 너는 괜
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는 말을 할 줄 아는 보통 사람이라
찮아.’난 네가 그 말을 해줬을 때 잠시나마 너를 미워했던 나 자신
고해도 쉽사리 입을 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센시가 울면서 하루날
을책망하면서 괴로워했어! 그리고 그런 말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에게 고백하는 사이 다시 조금씩 비가 내렸다. 하루날은 정신을 차
상상도 못 할 거야!그런데 뭐라고? 한 번도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리고 일단 비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센시를 부
고? 그래놓고 나한테 잘도 그런 소리를! 거기다 하루날까지 거짓말
축해서 마을로 내려가려는 그때, 그들과 조금 떨어진 바위 뒤쪽에
쟁이로 만들 셈이었던 거야? ”
서 인기척이 들렸다. 센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울음을 그쳤
“하루날은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해! 나라고 뭐 좋아서
고 하루날도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런 줄 알아? ”
바위 뒤에서 걸어 나온 것은 히아렌이었다.
“아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말을 못하는데 너는 그걸 이용해
그녀는 센시와 히아렌이 바위 앞으로 다가오기 얼마 전까지 그 위
서 자신의 죄를 덜어보려고?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숨기려고 했
에서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까 하고 혼자 조용히
던 거야? 그렇게 거짓말해놓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고민하던 중이었다. 종종 그렇게 바위 위에 앉아 답답한 마음을 다
까 잠이 잘 와? 밥이 잘 넘어가? 말은 진짜 잘하더라. 정말 굉장하
스리려 애쓰곤 했는데, 가족들은 그 애가 그러고 다니는 걸 몰랐다.
다, 굉장해! ”
히아렌도 자신의 근심하는 모습을 가급적이면 보여주고 싶지 않았
“흥! 억울하면 너도 지어내서 이야기하지 그랬어! 생각이나 해봤
는데 갑자기 바위로 다가오는 형제들의 모습이 보여 부리나케 숨었
어? 이런 노력이라도 보였느냐고!”
다. 그리고 히아렌은 놀라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
“거짓말이 무슨 노력이라는 거야!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해!”
에 훨씬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조용히 바위 뒤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하루날은 어
서 걸어 나와 우두커니 섰다. 귀신이라 해도 믿었을 정도로 분노와
찌할 바를 모르고 오락가락했다. 형제들이 그렇게 험악하게 싸우
원망이 가득 담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센시와 하루날 두 사람 모두
는 모습은 처음 본 터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서 두 사람을 말
히아렌의 그런 얼굴은 처음 보았다. 히아렌은 그 어느 때보다 낮고
려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리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일이 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날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 위선자! 내가 마을 사람들한테 다 얘기할 거야! 우리가 알던 최
“히아렌, 내 말 들어봐. 아까 내가 말한 건….”
고의 꿈 이야기꾼이 사실은 최고의 사기꾼이었다고!”
“네가 나한테 한 말 기억해? ”
히아렌이 악을 쓰자 센시는 말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이
“…무슨 말? ”
렇게 된 이상 히아렌에게도 모든 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
“하긴 그것도 지어낸 말이니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지.‘언
다. 히아렌이 이대로 마을로 돌아가는 걸 막아야 했다. 히아렌을 진
젠가 너도 나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 거야. 네가 다른 사
정시킨 뒤 설득하려 그렇게 박차고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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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시원하고 좋은 느낌이었다. 반면 하루날은 큰 충격을 받아 꼼
람보다 조금 느린 것뿐이야. 괜찮아. 내 사랑스러운 동생. 너는 괜
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는 말을 할 줄 아는 보통 사람이라
찮아.’난 네가 그 말을 해줬을 때 잠시나마 너를 미워했던 나 자신
고해도 쉽사리 입을 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센시가 울면서 하루날
을책망하면서 괴로워했어! 그리고 그런 말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에게 고백하는 사이 다시 조금씩 비가 내렸다. 하루날은 정신을 차
상상도 못 할 거야!그런데 뭐라고? 한 번도 꿈을 꾸어본 적이 없다
리고 일단 비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센시를 부
고? 그래놓고 나한테 잘도 그런 소리를! 거기다 하루날까지 거짓말
축해서 마을로 내려가려는 그때, 그들과 조금 떨어진 바위 뒤쪽에
쟁이로 만들 셈이었던 거야? ”
서 인기척이 들렸다. 센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울음을 그쳤
“하루날은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해! 나라고 뭐 좋아서
고 하루날도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런 줄 알아? ”
바위 뒤에서 걸어 나온 것은 히아렌이었다.
“아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말을 못하는데 너는 그걸 이용해
그녀는 센시와 히아렌이 바위 앞으로 다가오기 얼마 전까지 그 위
서 자신의 죄를 덜어보려고?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숨기려고 했
에서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까 하고 혼자 조용히
던 거야? 그렇게 거짓말해놓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고민하던 중이었다. 종종 그렇게 바위 위에 앉아 답답한 마음을 다
까 잠이 잘 와? 밥이 잘 넘어가? 말은 진짜 잘하더라. 정말 굉장하
스리려 애쓰곤 했는데, 가족들은 그 애가 그러고 다니는 걸 몰랐다.
다, 굉장해! ”
히아렌도 자신의 근심하는 모습을 가급적이면 보여주고 싶지 않았
“흥! 억울하면 너도 지어내서 이야기하지 그랬어! 생각이나 해봤
는데 갑자기 바위로 다가오는 형제들의 모습이 보여 부리나케 숨었
어? 이런 노력이라도 보였느냐고!”
다. 그리고 히아렌은 놀라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
“거짓말이 무슨 노력이라는 거야!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해!”
에 훨씬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조용히 바위 뒤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하루날은 어
서 걸어 나와 우두커니 섰다. 귀신이라 해도 믿었을 정도로 분노와
찌할 바를 모르고 오락가락했다. 형제들이 그렇게 험악하게 싸우
원망이 가득 담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센시와 하루날 두 사람 모두
는 모습은 처음 본 터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서 두 사람을 말
히아렌의 그런 얼굴은 처음 보았다. 히아렌은 그 어느 때보다 낮고
려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리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일이 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날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 위선자! 내가 마을 사람들한테 다 얘기할 거야! 우리가 알던 최
“히아렌, 내 말 들어봐. 아까 내가 말한 건….”
고의 꿈 이야기꾼이 사실은 최고의 사기꾼이었다고!”
“네가 나한테 한 말 기억해? ”
히아렌이 악을 쓰자 센시는 말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이
“…무슨 말? ”
렇게 된 이상 히아렌에게도 모든 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
“하긴 그것도 지어낸 말이니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지.‘언
다. 히아렌이 이대로 마을로 돌아가는 걸 막아야 했다. 히아렌을 진
젠가 너도 나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 거야. 네가 다른 사
정시킨 뒤 설득하려 그렇게 박차고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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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고, 히아렌은 자신을 어떻게 하려는 건 줄 알고 달아나기 시작
이 지치는 어느 날, 숙면이란 것이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했다. 갑자기 내달리는 두 사람을 보고 놀란 하루날이 그 뒤를 쫓았
어렴풋이 깨닫고 조금은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날이 오
다. 히아렌은 너무 정신없는 나머지 산 아래 마을 쪽이 아닌 산의 위
기전에 이미 자신이 왜 꿈을 꿀 수 없는지 이유를 알고 사람들에게
쪽으로, 더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 뒤를 센시와 하루날이 따라
차근차근 설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말 못하는 남
갔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세 사람은 한껏 젖어서 몹시 미끄러운
동생을 이용하려 들지도 않았을 테고, 어여쁜 여동생이 동남아시아
산길을 넘어질 듯 말듯 듯 위태롭게 내달렸다. 히아렌은 잡히지 않
2등 산 언저리에서 추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스위
으려고 기를 쓰며 달리다가, 결국 더 갈 길이 없는 낭떠러지 근처까
치고 지랄이고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체 일이 벌어졌다.
지 오게 되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시야는 좁은데다 경황이 없었
센시가 더 달려나가려는 걸 하루날이 온몸을 내던져 말렸다.
던 탓에 미처 앞을 볼 틈이 없었다.
“이거 놔! 히아렌이! 히아렌이 떨어졌다고! 아으으! 놔! 놓으라고!
“히아렌! 그만 뛰어! 앞에 절벽이야! 히아렌!”
히아렌! 히아렌!”
센시가 소리쳤다. 히아렌은 그 와중에도 저 거짓말쟁이 오빠가 자
하루날은 울고불고 센시에게 매달렸다. 두 사람은 빗속에서 엉겨
신을 멈춰 세우려고 또 지어낸 말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루날도
붙어 소리 지르며 울었다. 빗소리와 울음소리가 한데 섞여 어두운
뒤에서 어어어어어, 어어어어 소리를 냈다. 제발 그만 뛰라는 뜻이
산속을 더 음울하게 만들었다. 하루날은 그런 상황에서도 무슨 정신
었다. 센시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히아렌에게는 센
이 있었는지 센시를 낭떠러지 쪽에서 최대한 멀리 끌어냈다. 그리고
시의 말도, 하루날의 뜻도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센시의 거짓말은
엉엉 울면서 낭떠러지 쪽으로 기어가 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
이럴 때도 설득력이 넘치는구나 싶었고, 하루날의 음성은 그저 울
는 아까보다 잦아졌지만, 낭떠러지 아래는 부옇게 물안개만 가득할
부짖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센시의 찢어지는 고함, 하루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날은 큰 소리로 히아렌을 불렀다.
의 뜻을 알 수 없는 괴상한 울음소리, 세차게 퍼붓는 굵은 빗소리가
“이아아! 이아아!”
그들이 머무는 공간을 휘저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하루날은 그 순간 자신이 말을 못한
그리고 히아렌이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리는 소리, 누
다는 사실이 그 자리에서 그냥 콱 뒈져버리고 싶을 만큼 슬펐다. 그
가 들었을까. 세 사람 모두가 들었다. 히아렌은 그대로 낭떠러지 밖
걸 뒤에서 멀찍이 지켜보던 센시의 넋은 반쯤 나가있었다. 그건 꿈
으로 튕겨 나갔다. 센시와 하루날 두 사람의 몇 미터 앞에서 그녀의
없는 숙면의 스위치가 예고 없이 산산조각 나서 그런 거기도 했다.
모습은 휙 하고 꺼져버렸다. 히아렌의 비명이 두 사람의 귓바퀴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센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불현듯 울
지 도달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때 센시 속에 있던 꿈 없는 숙면
음을 그치고 제 발치서 여전히 울고 있는 하루날을 끌고 마을로 내
의 스위치가 박살 나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센시는 그런 게
려왔다. 그리고 하루날에게 당부했다.
있는지도 몰랐지만, 만약 스위치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온 힘을 다해
“하루날, 잘 들어. 큰 바위에서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는 거야. 넌
그것을 저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좀 더 흘러 몸이 늙고 한없
아무것도 못 들은 거야. 본 적도 없어. 마을 사람들에게는 내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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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고, 히아렌은 자신을 어떻게 하려는 건 줄 알고 달아나기 시작
이 지치는 어느 날, 숙면이란 것이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했다. 갑자기 내달리는 두 사람을 보고 놀란 하루날이 그 뒤를 쫓았
어렴풋이 깨닫고 조금은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날이 오
다. 히아렌은 너무 정신없는 나머지 산 아래 마을 쪽이 아닌 산의 위
기전에 이미 자신이 왜 꿈을 꿀 수 없는지 이유를 알고 사람들에게
쪽으로, 더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 뒤를 센시와 하루날이 따라
차근차근 설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말 못하는 남
갔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세 사람은 한껏 젖어서 몹시 미끄러운
동생을 이용하려 들지도 않았을 테고, 어여쁜 여동생이 동남아시아
산길을 넘어질 듯 말듯 듯 위태롭게 내달렸다. 히아렌은 잡히지 않
2등 산 언저리에서 추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스위
으려고 기를 쓰며 달리다가, 결국 더 갈 길이 없는 낭떠러지 근처까
치고 지랄이고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체 일이 벌어졌다.
지 오게 되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시야는 좁은데다 경황이 없었
센시가 더 달려나가려는 걸 하루날이 온몸을 내던져 말렸다.
던 탓에 미처 앞을 볼 틈이 없었다.
“이거 놔! 히아렌이! 히아렌이 떨어졌다고! 아으으! 놔! 놓으라고!
“히아렌! 그만 뛰어! 앞에 절벽이야! 히아렌!”
히아렌! 히아렌!”
센시가 소리쳤다. 히아렌은 그 와중에도 저 거짓말쟁이 오빠가 자
하루날은 울고불고 센시에게 매달렸다. 두 사람은 빗속에서 엉겨
신을 멈춰 세우려고 또 지어낸 말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루날도
붙어 소리 지르며 울었다. 빗소리와 울음소리가 한데 섞여 어두운
뒤에서 어어어어어, 어어어어 소리를 냈다. 제발 그만 뛰라는 뜻이
산속을 더 음울하게 만들었다. 하루날은 그런 상황에서도 무슨 정신
었다. 센시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히아렌에게는 센
이 있었는지 센시를 낭떠러지 쪽에서 최대한 멀리 끌어냈다. 그리고
시의 말도, 하루날의 뜻도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센시의 거짓말은
엉엉 울면서 낭떠러지 쪽으로 기어가 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
이럴 때도 설득력이 넘치는구나 싶었고, 하루날의 음성은 그저 울
는 아까보다 잦아졌지만, 낭떠러지 아래는 부옇게 물안개만 가득할
부짖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센시의 찢어지는 고함, 하루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날은 큰 소리로 히아렌을 불렀다.
의 뜻을 알 수 없는 괴상한 울음소리, 세차게 퍼붓는 굵은 빗소리가
“이아아! 이아아!”
그들이 머무는 공간을 휘저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하루날은 그 순간 자신이 말을 못한
그리고 히아렌이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리는 소리, 누
다는 사실이 그 자리에서 그냥 콱 뒈져버리고 싶을 만큼 슬펐다. 그
가 들었을까. 세 사람 모두가 들었다. 히아렌은 그대로 낭떠러지 밖
걸 뒤에서 멀찍이 지켜보던 센시의 넋은 반쯤 나가있었다. 그건 꿈
으로 튕겨 나갔다. 센시와 하루날 두 사람의 몇 미터 앞에서 그녀의
없는 숙면의 스위치가 예고 없이 산산조각 나서 그런 거기도 했다.
모습은 휙 하고 꺼져버렸다. 히아렌의 비명이 두 사람의 귓바퀴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센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불현듯 울
지 도달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때 센시 속에 있던 꿈 없는 숙면
음을 그치고 제 발치서 여전히 울고 있는 하루날을 끌고 마을로 내
의 스위치가 박살 나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센시는 그런 게
려왔다. 그리고 하루날에게 당부했다.
있는지도 몰랐지만, 만약 스위치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온 힘을 다해
“하루날, 잘 들어. 큰 바위에서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는 거야. 넌
그것을 저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좀 더 흘러 몸이 늙고 한없
아무것도 못 들은 거야. 본 적도 없어. 마을 사람들에게는 내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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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할 테니까. 알겠으면 고개 끄덕여. 얼른.”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무엇에도 비할 길 없는 거대한 고통이 하루
하루날은 시뻘건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겁이 났다. 사
날의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은 속절없이 그런 하루날을 두고
람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말도 못 하는데. 소리를 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속도로 흘렀고 어느새 장례의 마지막 밤까지 지
한들, 어딘가 불편하다고밖에 생각하지 않겠지. 지금은 형에게 의지
났다. 그때까지도 하루날은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누워서 가끔
하는 수밖에 없다. 센시는 하루날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혼
눈만 떴다 감았다 할 뿐이었다. 새벽 동이 터올 무렵 잠시 눈을 떴을
자 산 위로 올라가서 시간을 죽였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
때도 여전히 그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던
게 이야기할 것인가를 생각해냈다. 얼마 후 다시 마을 쪽으로 내려
옆자리에 누군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온 센시는 사람들에게 히아렌이 실족했다는 걸 알렸다. 히아렌이 원
한동안 히아렌의 장례 때문에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센시가 누워있
래 그 낭떠러지 쪽에 자주 간다는 이야기와 아마도 하늘을 나는 꿈
었다. 센시는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날은 무거운
연습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하늘을 보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센시의 얼굴을 보니
니 비가 또 많이 쏟아질 것 같아서 히아렌을 찾으러 갔다가 떨어지
참을 수 없이 화가 솟구쳤던 것이다. 한 대만 때리자. 딱 한 대만 대
는 걸 목격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센시는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차게 맞아다오. 히아렌을 대신해서 내가 때려주마. 마음 같아선 물
눈물을 줄줄 흘렸다. 실제로 가슴이 아파 눈물을 참을 수 없기도 했
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터였다. 하루날의 고요한 난리를 눈치 챈 센
다. 그리고 그 어떤 지어낸 꿈 이야기를 할 때보다도 심장이 터져나
시가 하루날의 손을 잡았다. 하루날은 센시의 손을 뿌리쳤고, 그건
갈 듯 두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사람들은 센시의 말을 곧이
누가 봐도 매가리 없이 그저 툭 치워내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곧대로 믿었고 어머니는 센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쓰러졌다. 아
“하루날, 내 이야기를 들어줘.”
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그 길로 사람들과 함께 히아렌의 시신을
무슨 말을 들어도 하루날은 센시를 때리리라 마음을 다잡은 상
찾으러 갔다. 히아렌은 다음 날 새벽에 발견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태였다. 어금니를 깨물고 몸에 있는 힘, 없는 힘을 끌어 모았다. 하
하지 않겠다. 당신 얼굴은 지금 겁을 있는 대로 집어먹은 듯 보이니.
지만 도저히 힘을 낼 수 없었다. 센시는 이제 혼잣말을 하듯 중얼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하루날은 열병이 나서 내내 누워 있기만 했 다. 자신의 몸이 마치 작은 철상자에 구깃구깃 들어가 있는 느낌이 었다. 도통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히아렌이 떨어지는 날 있었던 모
거렸다.
“간밤에 꿈을 꾸었어.” 이 미친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하루날은 귀를 막고 으
든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그럴
으으 소리를 냈다.
수 없었다. 몸짓으로 잘 표현해낸다고 해도, 아니, 아예 완벽하게
“생전 처음 꾼 꿈이었어.”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되는 날에는 센시까지 잃을 수도 있
귀를 막은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센시의 목소리가 다
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움만 가득했다. 아직도 산 위에서 들었던 히
들렸다.
아렌의 비명이 들리는듯 했다. 귀를 틀어막으면 막을수록 오히려 더
“그때 그 낭떠러지에 히아렌이 서 있었어. 비는 오지 않았어.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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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할 테니까. 알겠으면 고개 끄덕여. 얼른.”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무엇에도 비할 길 없는 거대한 고통이 하루
하루날은 시뻘건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겁이 났다. 사
날의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은 속절없이 그런 하루날을 두고
람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말도 못 하는데. 소리를 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속도로 흘렀고 어느새 장례의 마지막 밤까지 지
한들, 어딘가 불편하다고밖에 생각하지 않겠지. 지금은 형에게 의지
났다. 그때까지도 하루날은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누워서 가끔
하는 수밖에 없다. 센시는 하루날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혼
눈만 떴다 감았다 할 뿐이었다. 새벽 동이 터올 무렵 잠시 눈을 떴을
자 산 위로 올라가서 시간을 죽였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
때도 여전히 그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던
게 이야기할 것인가를 생각해냈다. 얼마 후 다시 마을 쪽으로 내려
옆자리에 누군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온 센시는 사람들에게 히아렌이 실족했다는 걸 알렸다. 히아렌이 원
한동안 히아렌의 장례 때문에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센시가 누워있
래 그 낭떠러지 쪽에 자주 간다는 이야기와 아마도 하늘을 나는 꿈
었다. 센시는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날은 무거운
연습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하늘을 보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센시의 얼굴을 보니
니 비가 또 많이 쏟아질 것 같아서 히아렌을 찾으러 갔다가 떨어지
참을 수 없이 화가 솟구쳤던 것이다. 한 대만 때리자. 딱 한 대만 대
는 걸 목격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센시는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차게 맞아다오. 히아렌을 대신해서 내가 때려주마. 마음 같아선 물
눈물을 줄줄 흘렸다. 실제로 가슴이 아파 눈물을 참을 수 없기도 했
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터였다. 하루날의 고요한 난리를 눈치 챈 센
다. 그리고 그 어떤 지어낸 꿈 이야기를 할 때보다도 심장이 터져나
시가 하루날의 손을 잡았다. 하루날은 센시의 손을 뿌리쳤고, 그건
갈 듯 두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사람들은 센시의 말을 곧이
누가 봐도 매가리 없이 그저 툭 치워내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곧대로 믿었고 어머니는 센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쓰러졌다. 아
“하루날, 내 이야기를 들어줘.”
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그 길로 사람들과 함께 히아렌의 시신을
무슨 말을 들어도 하루날은 센시를 때리리라 마음을 다잡은 상
찾으러 갔다. 히아렌은 다음 날 새벽에 발견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태였다. 어금니를 깨물고 몸에 있는 힘, 없는 힘을 끌어 모았다. 하
하지 않겠다. 당신 얼굴은 지금 겁을 있는 대로 집어먹은 듯 보이니.
지만 도저히 힘을 낼 수 없었다. 센시는 이제 혼잣말을 하듯 중얼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하루날은 열병이 나서 내내 누워 있기만 했 다. 자신의 몸이 마치 작은 철상자에 구깃구깃 들어가 있는 느낌이 었다. 도통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히아렌이 떨어지는 날 있었던 모
거렸다.
“간밤에 꿈을 꾸었어.” 이 미친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하루날은 귀를 막고 으
든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그럴
으으 소리를 냈다.
수 없었다. 몸짓으로 잘 표현해낸다고 해도, 아니, 아예 완벽하게
“생전 처음 꾼 꿈이었어.”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되는 날에는 센시까지 잃을 수도 있
귀를 막은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센시의 목소리가 다
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움만 가득했다. 아직도 산 위에서 들었던 히
들렸다.
아렌의 비명이 들리는듯 했다. 귀를 틀어막으면 막을수록 오히려 더
“그때 그 낭떠러지에 히아렌이 서 있었어. 비는 오지 않았어.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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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우리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지. 히 아렌은 웃고 있었어.”
“으으으으-” 하루날이 그만하라는 손짓을 보내도 센시는 계속 꿈 이야기를 했 다.
“으아아아아!” 하루날은 바닥을 내려치며 울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 구멍을 막을 힘도 없었는데 말이다. 센시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저 하루날 의 처연한 몸짓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정말 괜찮아.”
그때 센시가 했던 꿈 이야기는 온전히 센시가 꾼 꿈에서 비롯된
이것이 하루날이 센시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새벽 센
것이었다. 그는 정말 꿈을 꾸었다. 히아렌의 추락을 목격한 뒤 빌어
시는 누가 들을까 봐 소리죽여 엎드려 우는 하루날을 남겨두고 조용
먹을 신들 중 하나가 심어놓은 스위치의 존재가 사라졌고, 그 자리
히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은 센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삼 남
에 그토록 원하고 갈구할 때는 머리카락 한 올도 허락지 않았던 꿈
매의 부모가 모두 죽는 날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오늘에
의 세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처음 꾼 꿈이라 너
이르기까지도 말이다. 자, 말레이시아 이야기 끝.
무 좋았던 걸까. 센시는 온몸으로 꿈을 느끼는 자각몽을 꾸었다. 앞
아니, 당신은 왜 화를 내는가? 참 내 그런 미친 사기꾼 겁쟁이 새
에 가만히 서서 웃는 얼굴로 센시를 바라보던 히아렌이 감격에 찬
끼가 어디 갔는지 알게 뭐란 말인가. 아아, 하루날은 호쿠나린에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또렷이 들렸다. 센시, 나 하늘을 나는 꿈을 꾸
잘 살다가 육십 살 조금 넘어서 죽는다. 이제 그만 자면 안 되겠는
었어. 높이 높이 날았어. 저 건넛마을까지 구경하고 왔어. 심장이
가. 나는 지금 졸려서 죽을 것 같은데. 아아, 정말 우주 최고로 성가
조금 간지럽긴 했지만, 정말 기분 좋았어. 센시는 히아렌이 견딜 수
신 인간이군. 마지막 질문 받겠다. 아하, 하루날의 꿈 말인가.
없이 자랑스러웠다.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동생. 드디어 하 늘을 나는 꿈을 꾸었구나. 축하해. 정말 축하해. 그리고 미안해. 나
그는 하늘을 나는 꿈만 꾸었다.
를 용서해줘. 센시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 져 나왔다. 그는 그대로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땅에 널브러진 자갈
나도 당신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 집 애들은 정말 정도란 게 없
들이 무릎을 파고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날카롭고 거대한
었다. 그래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고,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
무엇인가가 가슴을 쥐어짜고 흔들다가 끝내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깃거리가 되지 않았는가. 이게 다 세상 만물에 깃든 신들의 지혜 때
느낌이 들었다. 가지마, 히아렌. 가지 마라. 동생아. 내가 잘못했어.
문이다. 실로 정도가 없는 건 바로 그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제발 가지마. 센시는 울음을 터트리며 히아렌을 향해 손
사실 세상 만물에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하루날에게 주신 것은 모
을 뻗었다. 하지만 히아렌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 나, 그동안 날 수
나지 않고 태평한 성정이 아니라 일생 하늘을 나는 꿈만 꾸는 것이
없어서 속상했는데 네 꿈에서 소원을 이루네. 정말 기뻐. 하루날에
었다. 그리고 주지 않은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라 그럴싸한 표현 능
게도 이야기해줘. 너의 진짜 꿈을. 히아렌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가
력도 포함돼 있었다. 사람들이 귀여워하던 그 몸짓들이 실은 하늘을
볍게 날아올라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날 때 취했던 동작들이었지만, 그걸 전달하기에 하루날의 표현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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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우리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지. 히 아렌은 웃고 있었어.”
“으으으으-” 하루날이 그만하라는 손짓을 보내도 센시는 계속 꿈 이야기를 했 다.
“으아아아아!” 하루날은 바닥을 내려치며 울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 구멍을 막을 힘도 없었는데 말이다. 센시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저 하루날 의 처연한 몸짓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정말 괜찮아.”
그때 센시가 했던 꿈 이야기는 온전히 센시가 꾼 꿈에서 비롯된
이것이 하루날이 센시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새벽 센
것이었다. 그는 정말 꿈을 꾸었다. 히아렌의 추락을 목격한 뒤 빌어
시는 누가 들을까 봐 소리죽여 엎드려 우는 하루날을 남겨두고 조용
먹을 신들 중 하나가 심어놓은 스위치의 존재가 사라졌고, 그 자리
히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은 센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삼 남
에 그토록 원하고 갈구할 때는 머리카락 한 올도 허락지 않았던 꿈
매의 부모가 모두 죽는 날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오늘에
의 세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처음 꾼 꿈이라 너
이르기까지도 말이다. 자, 말레이시아 이야기 끝.
무 좋았던 걸까. 센시는 온몸으로 꿈을 느끼는 자각몽을 꾸었다. 앞
아니, 당신은 왜 화를 내는가? 참 내 그런 미친 사기꾼 겁쟁이 새
에 가만히 서서 웃는 얼굴로 센시를 바라보던 히아렌이 감격에 찬
끼가 어디 갔는지 알게 뭐란 말인가. 아아, 하루날은 호쿠나린에서
목소리로 말하는 게 또렷이 들렸다. 센시, 나 하늘을 나는 꿈을 꾸
잘 살다가 육십 살 조금 넘어서 죽는다. 이제 그만 자면 안 되겠는
었어. 높이 높이 날았어. 저 건넛마을까지 구경하고 왔어. 심장이
가. 나는 지금 졸려서 죽을 것 같은데. 아아, 정말 우주 최고로 성가
조금 간지럽긴 했지만, 정말 기분 좋았어. 센시는 히아렌이 견딜 수
신 인간이군. 마지막 질문 받겠다. 아하, 하루날의 꿈 말인가.
없이 자랑스러웠다.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동생. 드디어 하 늘을 나는 꿈을 꾸었구나. 축하해. 정말 축하해. 그리고 미안해. 나
그는 하늘을 나는 꿈만 꾸었다.
를 용서해줘. 센시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 져 나왔다. 그는 그대로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땅에 널브러진 자갈
나도 당신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 집 애들은 정말 정도란 게 없
들이 무릎을 파고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날카롭고 거대한
었다. 그래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고,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
무엇인가가 가슴을 쥐어짜고 흔들다가 끝내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깃거리가 되지 않았는가. 이게 다 세상 만물에 깃든 신들의 지혜 때
느낌이 들었다. 가지마, 히아렌. 가지 마라. 동생아. 내가 잘못했어.
문이다. 실로 정도가 없는 건 바로 그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제발 가지마. 센시는 울음을 터트리며 히아렌을 향해 손
사실 세상 만물에 깃든 신들 중 하나가 하루날에게 주신 것은 모
을 뻗었다. 하지만 히아렌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 나, 그동안 날 수
나지 않고 태평한 성정이 아니라 일생 하늘을 나는 꿈만 꾸는 것이
없어서 속상했는데 네 꿈에서 소원을 이루네. 정말 기뻐. 하루날에
었다. 그리고 주지 않은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라 그럴싸한 표현 능
게도 이야기해줘. 너의 진짜 꿈을. 히아렌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가
력도 포함돼 있었다. 사람들이 귀여워하던 그 몸짓들이 실은 하늘을
볍게 날아올라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날 때 취했던 동작들이었지만, 그걸 전달하기에 하루날의 표현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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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다 썩어 문드러진 람부탄만도 못 했다. 아마 꿈 이야기를 포기하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해달라고?
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면 개성 있는 춤사위를 구사한다고 세간에 널 리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자야지 꿈을 꾸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이 정신 나간 사람아.
하루날은 자신의 꿈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항상 곁 에 있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날은 딱히 축하나 선물 같은 거에도 욕심이 없었다. 앞서 말했 듯이 작은 가시 하나없이 동그란 마음을 지닌 평화로운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꿈은 꿀 수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 의 꿈 이야기 듣고 충분히 대리만족할 수 있는 아이였다. 어떻게 보 면 건방져 보일지도 몰라도, 그랬다는 걸 아무도 모르고 굳이 알려 고 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쩔 거란 말인가. 하지만 이 욕심 없는 소년에게도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염원하는 것이 한 가지 있긴 했다. 하루날은 자신의 꿈을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 각했다. 모두가 최고로 여기는 꿈 중의 꿈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말이다. 하늘을 나는 꿈에 왜들 그렇게 난리인지 가끔 이해할 수 없 을 때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동생을 보며 말없이 아 파하기도 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라도 좋으니 히아렌에게 자신의 꿈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큰 바위 앞에서는 센시에게 꿈을 줄 수 있 으면 좋겠다고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하게 원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 은 평생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국 사랑하는 여동생을 영영 잃고, 형까지 떠나보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세 사람 중에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한 건 하루날밖에 없는 셈이다. 아니, 당신이 지금 한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을 통 틀어 제일 가여운 건 하루날이 아니라 바로 나다. 불면증에 시달리 는 당신을 위해서 이 새벽에 무슨 짓거리란 말인가. 창 밖을 내다보 라. 곧 해가 뜰 것이다. 이제 정말 자야 한다. 뭐? 이번에는 지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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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다 썩어 문드러진 람부탄만도 못 했다. 아마 꿈 이야기를 포기하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해달라고?
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면 개성 있는 춤사위를 구사한다고 세간에 널 리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자야지 꿈을 꾸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이 정신 나간 사람아.
하루날은 자신의 꿈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항상 곁 에 있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날은 딱히 축하나 선물 같은 거에도 욕심이 없었다. 앞서 말했 듯이 작은 가시 하나없이 동그란 마음을 지닌 평화로운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꿈은 꿀 수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 의 꿈 이야기 듣고 충분히 대리만족할 수 있는 아이였다. 어떻게 보 면 건방져 보일지도 몰라도, 그랬다는 걸 아무도 모르고 굳이 알려 고 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쩔 거란 말인가. 하지만 이 욕심 없는 소년에게도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염원하는 것이 한 가지 있긴 했다. 하루날은 자신의 꿈을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 각했다. 모두가 최고로 여기는 꿈 중의 꿈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말이다. 하늘을 나는 꿈에 왜들 그렇게 난리인지 가끔 이해할 수 없 을 때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동생을 보며 말없이 아 파하기도 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라도 좋으니 히아렌에게 자신의 꿈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큰 바위 앞에서는 센시에게 꿈을 줄 수 있 으면 좋겠다고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하게 원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 은 평생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국 사랑하는 여동생을 영영 잃고, 형까지 떠나보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세 사람 중에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한 건 하루날밖에 없는 셈이다. 아니, 당신이 지금 한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을 통 틀어 제일 가여운 건 하루날이 아니라 바로 나다. 불면증에 시달리 는 당신을 위해서 이 새벽에 무슨 짓거리란 말인가. 창 밖을 내다보 라. 곧 해가 뜰 것이다. 이제 정말 자야 한다. 뭐? 이번에는 지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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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세카 부족은 말레이 반도에 실제로 존재하는 <세노이> 부족이 그 모델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제야 써먹게 되었습니다. 세노이와 다약 부족에 관해 정리해둔 2,000원짜리 유료 자료와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들을 조금씩 참고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말레이시아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지금 기분이라면 평생 갈 일 없을 거 같아요. 말레이시아에게 괜히 미안해서. 1. 제목인 <MIMPI>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쓰이는 말이고 한국말로 풀이하면 '꿈' 이라는 뜻입니다. 되게 단순하죠? 실은 모 작가가 <꿈의 부족> 이라는 소설집을 오래전에 출간해버려서 제 마음과 다르게 제목을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괜히 그 작가 욕을 좀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밈삐도 하라빤도>라고 썼습니다. 결국 쓰이지 않았지만 하라빤 (HARAPAN)의 뜻은 '희망'이라고 합니다. 2. 호쿠나린, 센시, 하루날, 히아렌이라는 이름들은 모두 의약품명에서 따온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더군다나 소수 부족에서는 저런 이름들을 쓰지 않겠죠. 그리고 약 성분들과 등장인물들의 성격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저 약들이 어떤 치료에 쓰이는지 맞추시는 분에게는 사비를 털어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선착순 1명. 메일 주세요. 3. 이번에 퇴고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 이건 '퇴고' 가 아니라 무슨 '토고' 같다는 것. 막판에 토할 때와 비슷한 기분으로 작업했으니까요. 그리고 '글'과 나의 관계가 마치 주말 부부 같다고 느꼈어요. 주말에만 겁나 예뻐해줬거든요. 누가 누구를 예뻐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최근 <국소적 림프절 비대증> 진단을 받는 바람에 초토화된 지갑과 통장 잔액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필자의 오른쪽 목에 있는 림프절은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고, 지금까지 아픈 건 저 두 가지뿐이군요. 죽기야 하겠니. 기운내. 4월, 진심 어린 거짓말 하나쯤 해도 좋을 날에.
문모운 moun8823@gmail.com BNR
57
bnring@naver.com
0. 세카 부족은 말레이 반도에 실제로 존재하는 <세노이> 부족이 그 모델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제야 써먹게 되었습니다. 세노이와 다약 부족에 관해 정리해둔 2,000원짜리 유료 자료와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들을 조금씩 참고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말레이시아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 아마 지금 기분이라면 평생 갈 일 없을 거 같아요. 말레이시아에게 괜히 미안해서. 1. 제목인 <MIMPI>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쓰이는 말이고 한국말로 풀이하면 '꿈' 이라는 뜻입니다. 되게 단순하죠? 실은 모 작가가 <꿈의 부족> 이라는 소설집을 오래전에 출간해버려서 제 마음과 다르게 제목을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괜히 그 작가 욕을 좀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밈삐도 하라빤도>라고 썼습니다. 결국 쓰이지 않았지만 하라빤 (HARAPAN)의 뜻은 '희망'이라고 합니다. 2. 호쿠나린, 센시, 하루날, 히아렌이라는 이름들은 모두 의약품명에서 따온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더군다나 소수 부족에서는 저런 이름들을 쓰지 않겠죠. 그리고 약 성분들과 등장인물들의 성격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저 약들이 어떤 치료에 쓰이는지 맞추시는 분에게는 사비를 털어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선착순 1명. 메일 주세요. 3. 이번에 퇴고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 이건 '퇴고' 가 아니라 무슨 '토고' 같다는 것. 막판에 토할 때와 비슷한 기분으로 작업했으니까요. 그리고 '글'과 나의 관계가 마치 주말 부부 같다고 느꼈어요. 주말에만 겁나 예뻐해줬거든요. 누가 누구를 예뻐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최근 <국소적 림프절 비대증> 진단을 받는 바람에 초토화된 지갑과 통장 잔액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필자의 오른쪽 목에 있는 림프절은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고, 지금까지 아픈 건 저 두 가지뿐이군요. 죽기야 하겠니. 기운내. 4월, 진심 어린 거짓말 하나쯤 해도 좋을 날에.
문모운 moun8823@gmail.com B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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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ring@naver.com
그녀는 내 절친한 친구의 절친한 선배였다.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글을 쓰고 싶어요.” 나는 멋쩍게 대답했다. “글이요? 멋지네요!”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멋진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멋있는 것, 멋진 일, 멋진 사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 랐다. 이어서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사람의 모습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곧은 자세로 워킹을 하 는 사람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곤…… 방구석에 처박혀 글을 쓰 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 모습은 앞서 떠올린 멋진 사람들과 는 거리가 멀었다. 멋있긴커녕, 궁상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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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절친한 친구의 절친한 선배였다.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글을 쓰고 싶어요.” 나는 멋쩍게 대답했다. “글이요? 멋지네요!”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멋진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멋있는 것, 멋진 일, 멋진 사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 랐다. 이어서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사람의 모습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곧은 자세로 워킹을 하 는 사람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곤…… 방구석에 처박혀 글을 쓰 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 모습은 앞서 떠올린 멋진 사람들과 는 거리가 멀었다. 멋있긴커녕, 궁상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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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가요? 잘 모르겠네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게 저로썬 이해가 잘 안 돼요. 전 늘, 하고
“지금도 글을 쓰고 계신가요?”
싶은 일 투성이거든요.”
“네. 계속 쓰고는 있어요. 등단도 못했고, 그냥 작가지망생일 뿐
“그게 좋은 거예요.”
이긴 하지만요.”
“그런가요? 그럼 하고 싶은 일 말고, 좋아하는 일은 있으세요?”
“그걸로 멋진 거 아닐까요? 인정받고 못 받고는 별로 중요한 것
“음…… 좋아하는 거요?”
같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걸 한다는 거자체가 멋있어
“네.”
요.”
“전 프랑스가 좋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앞에 놓인 술잔을 만지며 대답했다.
쑥스러워진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옆자리에 엎드려있던 내 절
프랑스? 프랑스라니?
친한 친구를 보았다. 친구가 잠든 지 한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손 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누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음…… 글쎄요……. 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으시다고요? 그림 작업 하시는 거 아닌가요?”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라, 좋아하는 을 물어봤는데?
“그거야,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싶어 서 그림을 그린 게 참 오래 전 일 같아요.” “그럼 학교는 왜 다니시는 거예요?” “그야…… 학교는 계속 다니고 싶으니까요. 그림엔 더 이상 욕심 이 나지 않지만,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는 즐겁거든요.”
“프랑스요?” “네. 전 프랑스를 정말 좋아해요.” “프랑스에 가보셨어요?” “아니요.” “그럼 프랑스에 가보시는 게 어때요?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중학교 시절, 매점에서 핑클 빵을 사던 내가 떠올랐다.
하려고 학교를 다니시는 게 아니라면, 그곳에 가서 학교를 다니 면 좋지 않을까요?” “제가요? 프랑스에요? 아……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정
빵보다 스티커. 그림보다 학교. 60
말로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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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가요? 잘 모르겠네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게 저로썬 이해가 잘 안 돼요. 전 늘, 하고
“지금도 글을 쓰고 계신가요?”
싶은 일 투성이거든요.”
“네. 계속 쓰고는 있어요. 등단도 못했고, 그냥 작가지망생일 뿐
“그게 좋은 거예요.”
이긴 하지만요.”
“그런가요? 그럼 하고 싶은 일 말고, 좋아하는 일은 있으세요?”
“그걸로 멋진 거 아닐까요? 인정받고 못 받고는 별로 중요한 것
“음…… 좋아하는 거요?”
같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걸 한다는 거자체가 멋있어
“네.”
요.”
“전 프랑스가 좋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앞에 놓인 술잔을 만지며 대답했다.
쑥스러워진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옆자리에 엎드려있던 내 절
프랑스? 프랑스라니?
친한 친구를 보았다. 친구가 잠든 지 한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손 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누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음…… 글쎄요……. 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으시다고요? 그림 작업 하시는 거 아닌가요?”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라, 좋아하는 을 물어봤는데?
“그거야,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싶어 서 그림을 그린 게 참 오래 전 일 같아요.” “그럼 학교는 왜 다니시는 거예요?” “그야…… 학교는 계속 다니고 싶으니까요. 그림엔 더 이상 욕심 이 나지 않지만,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는 즐겁거든요.”
“프랑스요?” “네. 전 프랑스를 정말 좋아해요.” “프랑스에 가보셨어요?” “아니요.” “그럼 프랑스에 가보시는 게 어때요?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중학교 시절, 매점에서 핑클 빵을 사던 내가 떠올랐다.
하려고 학교를 다니시는 게 아니라면, 그곳에 가서 학교를 다니 면 좋지 않을까요?” “제가요? 프랑스에요? 아……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정
빵보다 스티커. 그림보다 학교. 60
말로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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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프 랑스는 학비가 거의 안 든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있었다. 정말 그녀는 그때의 내 이야기 때문에 프랑스 로 유학을 떠났다.
진지한 척 이야기했지만, 실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프랑
친구 말에 의하면 그녀는 나와의 술자리 이후, 고민 끝에 그림 공
스에 가든, 아님 한국에 남아 학교를 마치든, 내 알 바가 아니었
부를 하러 프랑스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그림에 흥미를 잃었다던
다. 그녀는 그저, 내 옆에 엎드려 잠들어있던 친구의 절친한 선
그녀가 그림 공부를 하러 프랑스에 간다고 했다니, 그건 거짓말이
배였을 뿐이었으니까.
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내게 했던 이야기대로라면, 아 마도, 그녀는, 그저 프랑스에 가고 싶어서, 그런데 핑계가 필요했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을 테니까, 굳이 그림을 그 핑계로 사용했을 것이었다. 또 뭔가 잘 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포켓몬스터 빵을 사는 친구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친구가 전화를 걸어 다짜고
의 모습이 떠올랐다.
짜 물었다. 야. 너, 그때 본 내 선배 기억나?” “선배?”
빵보다 스티커. 그림보다 프랑스.
“왜. 그때 그, 같이 술 마셨던 선배 있잖아. 나 엎드려서 자고, 너 선배랑 얘기 많이 했다며. 좋은 사람 같다고 네가 그랬었잖 아."
그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건 아니지 않느냐고. 그
“아! 그래. 기억나. 그 누나 왜?”
날 내가 했던 이야기는 그저, 그냥, 뭐랄까, 그저 그 시간을 보내기
“선배 프랑스 간대. 너한테 고맙다고 전해달라던데?”
위해, 쉽게 뱉어낸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그런 이야기에 넘어가서, 진짜로 프랑스에 가버리면 어쩌자는 거냐고.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
응? 프랑스에 간다고? 잠깐만. 설마, 내 얘기 때문에 가는 거야? 진짜? 에이, 그럴리가 있겠어? 62
어서 가는 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그게 대 체 뭐냐고.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나를 두고 떠날 거냐고. 아니, 이 건 아니고. 아무튼 간에 프랑스행을 그렇게 쉽게, 그것도 덜컥, 마 치 핑클 빵을 사듯이, 혹은 포켓몬스터 빵을 사듯이, 그딴 식으로 결정해도 되는 것이냐고.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분명하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설명할 자 신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계속 내 속에선 그녀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고, 그런 잘못
63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프 랑스는 학비가 거의 안 든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있었다. 정말 그녀는 그때의 내 이야기 때문에 프랑스 로 유학을 떠났다.
진지한 척 이야기했지만, 실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프랑
친구 말에 의하면 그녀는 나와의 술자리 이후, 고민 끝에 그림 공
스에 가든, 아님 한국에 남아 학교를 마치든, 내 알 바가 아니었
부를 하러 프랑스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그림에 흥미를 잃었다던
다. 그녀는 그저, 내 옆에 엎드려 잠들어있던 친구의 절친한 선
그녀가 그림 공부를 하러 프랑스에 간다고 했다니, 그건 거짓말이
배였을 뿐이었으니까.
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내게 했던 이야기대로라면, 아 마도, 그녀는, 그저 프랑스에 가고 싶어서, 그런데 핑계가 필요했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을 테니까, 굳이 그림을 그 핑계로 사용했을 것이었다. 또 뭔가 잘 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포켓몬스터 빵을 사는 친구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친구가 전화를 걸어 다짜고
의 모습이 떠올랐다.
짜 물었다. 야. 너, 그때 본 내 선배 기억나?” “선배?”
빵보다 스티커. 그림보다 프랑스.
“왜. 그때 그, 같이 술 마셨던 선배 있잖아. 나 엎드려서 자고, 너 선배랑 얘기 많이 했다며. 좋은 사람 같다고 네가 그랬었잖 아."
그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건 아니지 않느냐고. 그
“아! 그래. 기억나. 그 누나 왜?”
날 내가 했던 이야기는 그저, 그냥, 뭐랄까, 그저 그 시간을 보내기
“선배 프랑스 간대. 너한테 고맙다고 전해달라던데?”
위해, 쉽게 뱉어낸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그런 이야기에 넘어가서, 진짜로 프랑스에 가버리면 어쩌자는 거냐고.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
응? 프랑스에 간다고? 잠깐만. 설마, 내 얘기 때문에 가는 거야? 진짜? 에이, 그럴리가 있겠어? 62
어서 가는 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그게 대 체 뭐냐고.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나를 두고 떠날 거냐고. 아니, 이 건 아니고. 아무튼 간에 프랑스행을 그렇게 쉽게, 그것도 덜컥, 마 치 핑클 빵을 사듯이, 혹은 포켓몬스터 빵을 사듯이, 그딴 식으로 결정해도 되는 것이냐고.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분명하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설명할 자 신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계속 내 속에선 그녀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고, 그런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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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된 선택을 하게끔 만든 것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몽글몽 글 피어올랐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속죄를 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말해야한다. 하지만 이미 선택하 고 떠나려는 사람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 가? 그렇다면 나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나는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정확히 이백마흔아홉 번의 고민 끝에 그녀를 위한 소설을 써서 보 내기로 했다. 글 쓰는 걸 멋지다고 칭찬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그렇게 한 달 여의 작업 끝에
라는 소설을 완성했
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남자가 있다. 그는 가난하다. 그의 여자친구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한다. 일은 힘들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돈을 번다. 유학을 가있는 여자친구는 그 곳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급기야 아이까지 생기고 만다. 그 는 그 사실도 모른 채, 그녀를 만나러 프랑스에 간다. 하지만 여자친 구는 그를 만나주지 않는다. 그는 쓸쓸히 홀로 귀국한다. 그 후, 여자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낳는다. 그는 그 사실을 듣고 여자친 구를 찾아간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처음엔 그녀를 위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에서, 프랑스로 유학 을 간 여자를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설이란 것이 늘 그렇듯, 쓰다 보니 이거야 원. 완전 엉망진창 막장 드라마 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녀를 위해 쓴 것이었기에 친구로부터 그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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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된 선택을 하게끔 만든 것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몽글몽 글 피어올랐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속죄를 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말해야한다. 하지만 이미 선택하 고 떠나려는 사람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 가? 그렇다면 나는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나는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정확히 이백마흔아홉 번의 고민 끝에 그녀를 위한 소설을 써서 보 내기로 했다. 글 쓰는 걸 멋지다고 칭찬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그렇게 한 달 여의 작업 끝에
라는 소설을 완성했
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남자가 있다. 그는 가난하다. 그의 여자친구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한다. 일은 힘들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돈을 번다. 유학을 가있는 여자친구는 그 곳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급기야 아이까지 생기고 만다. 그 는 그 사실도 모른 채, 그녀를 만나러 프랑스에 간다. 하지만 여자친 구는 그를 만나주지 않는다. 그는 쓸쓸히 홀로 귀국한다. 그 후, 여자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낳는다. 그는 그 사실을 듣고 여자친 구를 찾아간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처음엔 그녀를 위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에서, 프랑스로 유학 을 간 여자를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설이란 것이 늘 그렇듯, 쓰다 보니 이거야 원. 완전 엉망진창 막장 드라마 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녀를 위해 쓴 것이었기에 친구로부터 그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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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의 메일주소를 알아낸 뒤, 소설을 보냈다.
보낸 지 이틀이 지나고, 사흘, 일주일, 한 달이 다 되도록 그녀에 게선 답장이 오질 않았다.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괜히 짜증이 났다.
전혀 친분도 없는 그녀를 위해서 열심히 소설을 써서 보냈건만, 그 녀의 답은 고작 이런 태도인 것인가? 잘 읽었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간단한 답장이라도 보낼 시간도 없는 걸까? 프랑스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거기까지 가서, 그림엔 욕심이 없어졌다는 사람이, 굳 이 그림 공부를 하겠다고 가서, 대체 뭘 하길래, 짧은 소설 한 편 읽 어줄 시간도 없는 것인가? 안달 난 마음은 좀체 가라앉질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일 을 확인했다.
소설을 보낸 지 딱 한 달이 되던 날. 그녀에게서 메일이 왔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을 추스르며 메일을 클릭했다. 메일엔 세 개의 첨부 파일이 있었다.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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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의 메일주소를 알아낸 뒤, 소설을 보냈다.
보낸 지 이틀이 지나고, 사흘, 일주일, 한 달이 다 되도록 그녀에 게선 답장이 오질 않았다.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괜히 짜증이 났다.
전혀 친분도 없는 그녀를 위해서 열심히 소설을 써서 보냈건만, 그 녀의 답은 고작 이런 태도인 것인가? 잘 읽었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간단한 답장이라도 보낼 시간도 없는 걸까? 프랑스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거기까지 가서, 그림엔 욕심이 없어졌다는 사람이, 굳 이 그림 공부를 하겠다고 가서, 대체 뭘 하길래, 짧은 소설 한 편 읽 어줄 시간도 없는 것인가? 안달 난 마음은 좀체 가라앉질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일 을 확인했다.
소설을 보낸 지 딱 한 달이 되던 날. 그녀에게서 메일이 왔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을 추스르며 메일을 클릭했다. 메일엔 세 개의 첨부 파일이 있었다.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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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은 내 소설의 주인공들을 그린 것이었다. 내 소설을 보고 보여준 그 어떤 반응보다도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계속 소설을 써 나가야겠다는, 이 사람이 내 소설을 보고 좋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꾸준히 소설을 썼고, 꾸준 히 그녀에게 내 소설들을 보냈다. 내가 소설을 보내면 그녀는 그곳 에서 그녀가 보는 것들을 사진 속에 담아 보내주었다.
밤에 본 에펠탑의 모습이나 그녀의 화장실 유리에 써있는 문구,
그녀의 집 테라스에서 보이는 광경. 또는
그림들은 내 소설의 주인공들을 그린 것이었다. 내 소설을 보고 보여준 그 어떤 반응보다도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계속 소설을 써 나가야겠다는, 이 사람이 내 소설을 보고 좋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꾸준히 소설을 썼고, 꾸준 히 그녀에게 내 소설들을 보냈다. 내가 소설을 보내면 그녀는 그곳 에서 그녀가 보는 것들을 사진 속에 담아 보내주었다.
밤에 본 에펠탑의 모습이나 그녀의 화장실 유리에 써있는 문구,
그녀의 집 테라스에서 보이는 광경. 또는
뿐이었던 만남이, 그리고 그때 내가 그녀에게 별 생각 없이 했던 말 이 떠올랐다.
그럼 프랑스에 가보시는 건 어때요?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학교를 다니시는 게 아니라면, 그곳에 가서 학교를 다니면 좋지 않을까요?” 그때,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이를 테면,
“프랑스가 좋다면 불어 공부를 해보시는 건 어때요?”
라든가, 아니면,
“프랑스 문학을 공부해보시는 건 어때요?”
길거리의 포스터들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마치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생활을 보고하듯이 내게 그곳의 생활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것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따금 그녀와 내가 사귄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상상이었다. 우린 딱 한 번 봤을 뿐이었고, 그렇다고 서 로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럴 때면 그, 딱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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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든가, 말이다. 그랬다면 그녀는 프랑스에 가지 않았을 테고, 우 리가 잘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그때 내가 한 말은 프랑스에 가보면 어떻겠느냐,하는 것이 었고, 그 덕분에 그녀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언젠가는 꼭 프랑스에 가서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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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이었던 만남이, 그리고 그때 내가 그녀에게 별 생각 없이 했던 말 이 떠올랐다.
그럼 프랑스에 가보시는 건 어때요?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학교를 다니시는 게 아니라면, 그곳에 가서 학교를 다니면 좋지 않을까요?” 그때,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이를 테면,
“프랑스가 좋다면 불어 공부를 해보시는 건 어때요?”
라든가, 아니면,
“프랑스 문학을 공부해보시는 건 어때요?”
길거리의 포스터들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마치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생활을 보고하듯이 내게 그곳의 생활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것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따금 그녀와 내가 사귄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상상이었다. 우린 딱 한 번 봤을 뿐이었고, 그렇다고 서 로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럴 때면 그, 딱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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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든가, 말이다. 그랬다면 그녀는 프랑스에 가지 않았을 테고, 우 리가 잘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그때 내가 한 말은 프랑스에 가보면 어떻겠느냐,하는 것이 었고, 그 덕분에 그녀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언젠가는 꼭 프랑스에 가서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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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프랑스는 내게 갈 수 없는 나라였다. 비행기 삯만 해도 왕복 백
같았다. 물론 돈이 필요했기에 취업을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십이 넘는데, 그걸 어디서 무슨 수로 구하겠는가. 학비 대랴, 생
하지만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하고 싶
활비 쓰랴, 그걸 버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생활에 치이다보니
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
소설 쓰기도 점차 멀어졌고, 그녀와 메일을 주고받는 횟수도 점차
다. 그런데 난 글은 팽개치고 취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스티커
줄어들었다.
를 모으려고 국찌니 빵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이건 아
그리곤 아예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고, 그녀와도 연락을 하지 않 게 되었다.
니지 않아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 지 차근차근 살펴봐야했다.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
생활에 치이는 무미건조한 날들이 반복됐다. 학교에 갔다가 아르 바이트를 가고,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집에 가서 자고, 다시 학교에
것만 같았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학비를 내려고 모아둔 돈을 가지 고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갔다가 아르바이트를 가고, 다시 자고. 주말이면 낮에 토익 학원 에 가고, 저녁이면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집에 가서 자고, 다시 학
그런데 어디로?
교……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고, 포기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느 순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한 가지로 압 축되어 있었다.
취업. 그걸 깨닫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 었던 내가, 취업을 바라고 있다니,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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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가자. Let's go France. Allons en France. 나는 내 절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프랑스 가려고.” “응? 프랑스? 갑자기 웬 프랑스냐?”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생각이나 정리할 겸.” “그럼 우리나라도 좋은 데 많은데, 그냥 우리나라 아무 데나 다녀 오지. 돈도 없는 새끼가 무슨 프랑스냐? 게다가 너 프랑스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러고 보니 그도 그랬다. 난 프랑스가 싫었다. 사실 싫은 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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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프랑스는 내게 갈 수 없는 나라였다. 비행기 삯만 해도 왕복 백
같았다. 물론 돈이 필요했기에 취업을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십이 넘는데, 그걸 어디서 무슨 수로 구하겠는가. 학비 대랴, 생
하지만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하고 싶
활비 쓰랴, 그걸 버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생활에 치이다보니
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
소설 쓰기도 점차 멀어졌고, 그녀와 메일을 주고받는 횟수도 점차
다. 그런데 난 글은 팽개치고 취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스티커
줄어들었다.
를 모으려고 국찌니 빵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이건 아
그리곤 아예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고, 그녀와도 연락을 하지 않 게 되었다.
니지 않아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 지 차근차근 살펴봐야했다.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
생활에 치이는 무미건조한 날들이 반복됐다. 학교에 갔다가 아르 바이트를 가고,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집에 가서 자고, 다시 학교에
것만 같았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학비를 내려고 모아둔 돈을 가지 고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갔다가 아르바이트를 가고, 다시 자고. 주말이면 낮에 토익 학원 에 가고, 저녁이면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집에 가서 자고, 다시 학
그런데 어디로?
교……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고, 포기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느 순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한 가지로 압 축되어 있었다.
취업. 그걸 깨닫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 었던 내가, 취업을 바라고 있다니,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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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가자. Let's go France. Allons en France. 나는 내 절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프랑스 가려고.” “응? 프랑스? 갑자기 웬 프랑스냐?”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생각이나 정리할 겸.” “그럼 우리나라도 좋은 데 많은데, 그냥 우리나라 아무 데나 다녀 오지. 돈도 없는 새끼가 무슨 프랑스냐? 게다가 너 프랑스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러고 보니 그도 그랬다. 난 프랑스가 싫었다. 사실 싫은 건 아니
75
었는데, 그녀 때문에 싫어졌다. 프랑스가 그녀를 빼앗아갔다고 생
“야. 네가 불쌍해서 전화 걸었어.”
각했었다. 이런 속내를 얘기하진 않았지만, 친구에게 늘 프랑스가 싫다는 이야기를 해왔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싫다고. 실은 아 무 이유 없이 싫은 게 아니면서도. “근데 가고 싶어졌어.” “그래. 그럼 다녀와라. 근데 전화는 왜 했냐?”
이런 미친 새끼. 안 그래도 지금 짜 증나 죽겠는데, 왜 자꾸 전화를 걸어 서 더 짜증나게 하는 건데? ”
“프랑스 갈 거라고 말하려고.” “미친놈. 그거 말하려고 전화했냐? 끊어. 공부해야 돼.” 공부는 개뿔. “공부는 왜 해?”
“야. 나 네 선배 만나러 가는 거야.” “선배?” 친구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응?”
“여보세요?”
“아니. 공부는 왜 하냐고.”
“어, 응. 선배? 너 설마…… 그래서 프랑스 가는 거야? 무슨 영화
“야, 이 미친놈아. 개소리 말고 끊어. 나 취업 못하면 네가 책임
찍냐? 냉정과 열정사이야?”
질 거냐?” 아니. 내가 그걸 왜 책임 지냐? “응. 내가 책임질게.”
친구가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그건 이탈리아잖아. 난 프랑스로 가는 거니까 그건 아니지. 굳이 말하자면, 핑클과 포켓몬사이랄까?”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아무튼 얘기나 좀 할까? 공부고 뭐고, 술
미친 새끼. 끊어!”
이나 한잔 할까?”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취업은 개뿔.”
내 절친한 친구와의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사실 난 내 절친한 친구에게, 너의 절친한 선배를 보러 갈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하
그렇게 우린 핑클과 포켓몬의 도움으로(보이지는 않았지만 국찌니
지 못했다. 내심 알아주길 바랐지만 녀석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의 도움도 빠트릴 수 없다) 취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술을 한잔
저 취업, 취업, 취업 생각에 빠져 시야가 완전히 좁아진 상태였다.
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는 다시 취업 전선으로 돌아갔지만, 난 다시
친구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돌아가는 대신 여권을 만들고 프랑스행 티켓을 구매했다.
아! 왜, 또!”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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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데, 그녀 때문에 싫어졌다. 프랑스가 그녀를 빼앗아갔다고 생
“야. 네가 불쌍해서 전화 걸었어.”
각했었다. 이런 속내를 얘기하진 않았지만, 친구에게 늘 프랑스가 싫다는 이야기를 해왔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싫다고. 실은 아 무 이유 없이 싫은 게 아니면서도. “근데 가고 싶어졌어.” “그래. 그럼 다녀와라. 근데 전화는 왜 했냐?”
이런 미친 새끼. 안 그래도 지금 짜 증나 죽겠는데, 왜 자꾸 전화를 걸어 서 더 짜증나게 하는 건데? ”
“프랑스 갈 거라고 말하려고.” “미친놈. 그거 말하려고 전화했냐? 끊어. 공부해야 돼.” 공부는 개뿔. “공부는 왜 해?”
“야. 나 네 선배 만나러 가는 거야.” “선배?” 친구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응?”
“여보세요?”
“아니. 공부는 왜 하냐고.”
“어, 응. 선배? 너 설마…… 그래서 프랑스 가는 거야? 무슨 영화
“야, 이 미친놈아. 개소리 말고 끊어. 나 취업 못하면 네가 책임
찍냐? 냉정과 열정사이야?”
질 거냐?” 아니. 내가 그걸 왜 책임 지냐? “응. 내가 책임질게.”
친구가 큰소리로 웃어젖혔다. “그건 이탈리아잖아. 난 프랑스로 가는 거니까 그건 아니지. 굳이 말하자면, 핑클과 포켓몬사이랄까?”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아무튼 얘기나 좀 할까? 공부고 뭐고, 술
미친 새끼. 끊어!”
이나 한잔 할까?”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취업은 개뿔.”
내 절친한 친구와의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사실 난 내 절친한 친구에게, 너의 절친한 선배를 보러 갈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하
그렇게 우린 핑클과 포켓몬의 도움으로(보이지는 않았지만 국찌니
지 못했다. 내심 알아주길 바랐지만 녀석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의 도움도 빠트릴 수 없다) 취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술을 한잔
저 취업, 취업, 취업 생각에 빠져 시야가 완전히 좁아진 상태였다.
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는 다시 취업 전선으로 돌아갔지만, 난 다시
친구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돌아가는 대신 여권을 만들고 프랑스행 티켓을 구매했다.
아! 왜, 또!”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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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를 휴학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앞으로 남은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 민해보려고 합니다. 이건 전적으로, 누나 덕분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여행은 유럽으로 갈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요즘은 뭘 하고 계신가요? 여전히 그림 공부를 하고 계신가요? 궁금한 것들이 많습니다. 꼭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럼 이만.
그리고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녀에게서 바로 답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기억하시는지요?
안녕하세요.
그간 전 소설을 쓰지 않게 되어 메일을 보낼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소설을 쓰지 않고 무얼 했느냐고요?
우리가 메일을 주고받은 지도 벌써 이 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냥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여행 온다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에 오게 된다면 연락주세요.
그러던 중 예전에 누나가 제게 글을 쓴다니, 멋지다,라고 칭찬해준 것
제 번호는 000-00000-00000 이에요.
이 떠올랐습니다.
같이 술 한 잔 해요.
그러자 지금의 제 모습이 하나도 멋져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추신.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다시는 그 당시 멋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첨부한 사진은 얼마 전 퐁피두 센터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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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를 휴학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앞으로 남은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 민해보려고 합니다. 이건 전적으로, 누나 덕분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여행은 유럽으로 갈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요즘은 뭘 하고 계신가요? 여전히 그림 공부를 하고 계신가요? 궁금한 것들이 많습니다. 꼭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럼 이만.
그리고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녀에게서 바로 답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기억하시는지요?
안녕하세요.
그간 전 소설을 쓰지 않게 되어 메일을 보낼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소설을 쓰지 않고 무얼 했느냐고요?
우리가 메일을 주고받은 지도 벌써 이 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냥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여행 온다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에 오게 된다면 연락주세요.
그러던 중 예전에 누나가 제게 글을 쓴다니, 멋지다,라고 칭찬해준 것
제 번호는 000-00000-00000 이에요.
이 떠올랐습니다.
같이 술 한 잔 해요.
그러자 지금의 제 모습이 하나도 멋져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추신.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다시는 그 당시 멋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첨부한 사진은 얼마 전 퐁피두 센터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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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그럴 법도 했다. 나는 우선 시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원인 모를 시큼한 냄새가 코를 비집 고 들어왔다. 나는 킁킁거리며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 스 안엔 서양인들이 가득했다. 냄새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 창가 쪽 좌석에 앉아, 냄새 때문에 찝찝해진 기분을 달 래려,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 쯤 지난 뒤, 버스는 파리 북부 역 앞에 도착했다. 예약한 호스텔로 가기 위해 미리 찾아보았던 메트로를 찾았다. 메트로는 북 부 역 바로 앞에 있었다.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 행 책에서 읽었던, 밤의 파리는 위험하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 서 잽싸게 메트로로 들어갔다. 메트로에 들어가자 또 시큼한 냄새가(그건 단순한 시큼한 냄새라 기보다는 찌린내에 가까운 그런 냄새였다) 훅,하고 내 콧속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이번엔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없었다. 냄새는 역 그 자체에서 나는 것이었다. 계단에는 찌든 때가 시꺼멓게 끼어있었고, 드문드문 거지들이 앉아서 잠들어있었다. 벽과 광고판에는 껌인지, 초콜렛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들러붙어있었으 며, 보도 끄트머리엔 꾸정물이 고여 있었다.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 이윽고, 출국일이 되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자리
졌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냄새를 참고 개찰구를 지
를 잡고 앉아 자꾸만 웃음이 나려는 걸 힘주어 참았다. 여행을 떠났
나 플랫폼 앞에 자리를 잡고 메트로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니 차
다는 것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것이, 구
츰 냄새에 적응이 돼 별로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
름 위로 떠오른 비행기보다도 더 높게 내 기분을 붕붕 띄워 올렸다.
곳 사람들은 냄새에 완전 적응이 되어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는 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다시 한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십 분 정도 메트로를 타고 가서 내린 뒤, 조금 헤매다 호스텔을 찾아 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메트로를 타고, 조금 걸었을 뿐인데도
길고 긴 비행 끝에,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한 나는, 내리자마자
80
기진맥진해 다리가 후들거렸다. 난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 씻지도
81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그럴 법도 했다. 나는 우선 시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원인 모를 시큼한 냄새가 코를 비집 고 들어왔다. 나는 킁킁거리며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 스 안엔 서양인들이 가득했다. 냄새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 창가 쪽 좌석에 앉아, 냄새 때문에 찝찝해진 기분을 달 래려,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 쯤 지난 뒤, 버스는 파리 북부 역 앞에 도착했다. 예약한 호스텔로 가기 위해 미리 찾아보았던 메트로를 찾았다. 메트로는 북 부 역 바로 앞에 있었다.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 행 책에서 읽었던, 밤의 파리는 위험하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 서 잽싸게 메트로로 들어갔다. 메트로에 들어가자 또 시큼한 냄새가(그건 단순한 시큼한 냄새라 기보다는 찌린내에 가까운 그런 냄새였다) 훅,하고 내 콧속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이번엔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없었다. 냄새는 역 그 자체에서 나는 것이었다. 계단에는 찌든 때가 시꺼멓게 끼어있었고, 드문드문 거지들이 앉아서 잠들어있었다. 벽과 광고판에는 껌인지, 초콜렛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들러붙어있었으 며, 보도 끄트머리엔 꾸정물이 고여 있었다.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 이윽고, 출국일이 되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자리
졌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냄새를 참고 개찰구를 지
를 잡고 앉아 자꾸만 웃음이 나려는 걸 힘주어 참았다. 여행을 떠났
나 플랫폼 앞에 자리를 잡고 메트로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니 차
다는 것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것이, 구
츰 냄새에 적응이 돼 별로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
름 위로 떠오른 비행기보다도 더 높게 내 기분을 붕붕 띄워 올렸다.
곳 사람들은 냄새에 완전 적응이 되어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는 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다시 한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십 분 정도 메트로를 타고 가서 내린 뒤, 조금 헤매다 호스텔을 찾아 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메트로를 타고, 조금 걸었을 뿐인데도
길고 긴 비행 끝에,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한 나는, 내리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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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해 다리가 후들거렸다. 난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 씻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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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은 채, 잠들어버렸다.
오페라 역에서 만난 그녀는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그때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파리에서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리고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가 전화
제일 크다는 백화점과, 몽마르뜨 언덕과, 그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 당을 돌아다녔다.
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문세희씨 핸드폰인가요?”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네. 그런데요? 아? 지훈씨인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 안녕하세요. 저 어제 파리에 왔거든요.”
이동할 때마다 냄새 나는 메트로를 타야하는 건 좀 고역이었지만, 이동한 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은 입이 벌어질 만한 것들이었다.
“아, 그래요?” “그래서, 뵐까 해서요. 언제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언제든 괜찮아요. 오늘도 괜찮고요.” 신이 난 듯 그녀는 발랄하게 말했다. 언제든 괜찮아요!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우린 길가의 작은 카페로 들어가 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맥주를 기다리며,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늘 뵐 수 있을까요? 사실 별다른 계획을 세우고 온 게 아 니라 할 일이 없거든요.” “그럼 같이 파리 구경이나 할까요? 제가 관광시켜드릴게요.” “정말요? 그럼 저야 좋죠.” “그럼 오페라에서 만나요. 메트로 타고 오페라에서 내리면 일 번 출군가? 아무튼 오페라가 정면에 딱 보이는 출구 있거든요. 거기 서 봐요.” 전화를 끊고 나는 허공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 여자와의 만남이 이토록 나를 기 쁘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았다면 진즉 에 올 것을! 대체 난 지난 몇 년을 뭘 하며 지낸 것인가! 82
불어발음이 섞인 그녀의 한국말. 그 어정쩡한 한국말을 담아내던 하이톤 의 목소리. 며칠을 굶었다고 해도 믿 을 만큼 말랐던 그녀의 몸. 그것을 감 싸고 있던 초록색 면 원피스. 핏기 없 이 새하얗고, 앙상했던 그녀의 팔과 다리. 탁한 노란 전구 빛이 밝히고 있 던 카페 안. 창 밖에서 들려오던 지나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83
않은 채, 잠들어버렸다.
오페라 역에서 만난 그녀는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그때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파리에서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리고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가 전화
제일 크다는 백화점과, 몽마르뜨 언덕과, 그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 당을 돌아다녔다.
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문세희씨 핸드폰인가요?”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네. 그런데요? 아? 지훈씨인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 안녕하세요. 저 어제 파리에 왔거든요.”
이동할 때마다 냄새 나는 메트로를 타야하는 건 좀 고역이었지만, 이동한 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은 입이 벌어질 만한 것들이었다.
“아, 그래요?” “그래서, 뵐까 해서요. 언제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언제든 괜찮아요. 오늘도 괜찮고요.” 신이 난 듯 그녀는 발랄하게 말했다. 언제든 괜찮아요!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우린 길가의 작은 카페로 들어가 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맥주를 기다리며,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늘 뵐 수 있을까요? 사실 별다른 계획을 세우고 온 게 아 니라 할 일이 없거든요.” “그럼 같이 파리 구경이나 할까요? 제가 관광시켜드릴게요.” “정말요? 그럼 저야 좋죠.” “그럼 오페라에서 만나요. 메트로 타고 오페라에서 내리면 일 번 출군가? 아무튼 오페라가 정면에 딱 보이는 출구 있거든요. 거기 서 봐요.” 전화를 끊고 나는 허공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 여자와의 만남이 이토록 나를 기 쁘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았다면 진즉 에 올 것을! 대체 난 지난 몇 년을 뭘 하며 지낸 것인가! 82
불어발음이 섞인 그녀의 한국말. 그 어정쩡한 한국말을 담아내던 하이톤 의 목소리. 며칠을 굶었다고 해도 믿 을 만큼 말랐던 그녀의 몸. 그것을 감 싸고 있던 초록색 면 원피스. 핏기 없 이 새하얗고, 앙상했던 그녀의 팔과 다리. 탁한 노란 전구 빛이 밝히고 있 던 카페 안. 창 밖에서 들려오던 지나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83
이윽고, 주문한 맥주가 나오고, 나는 지난 이 년 간 어떻게 살아
“남편이요?”
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네. 남편이요. 저 결혼했어요.”
“전 요즘 정말 재미가 없어요. 그저 학교, 집, 알바, 학교, 학원,
“정말요?”
집, 알바. 돈은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더라고요. 학교는 원래 재미가
“네. 정말요. 이곳에서 살려면 그 수밖엔 없어요.”
없었고, 생활에 치이다 보니 글을 쓸 시간도 마땅치 않고요. 의욕도
“설마……”
사라져서 결국엔 지금은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있어요.”
“설마, 뭐요?”
“딱 봐도 그렇게 보여요.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요. 멋있어
“설마, 이곳에서 살려고 결혼하신 건 아니시죠?”
보이지도 않고요.”
나는 내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맥주를 들이켰다. 탄산이 목을 긁 고 내려갔다.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웃었다.
“그래서 결혼한 거 맞아요.”
그 순간, 완벽한 순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하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멋있어 보일 리가 없 죠. 누나는 요즘 어떠세요?” “전 요즘 행복해요. 그냥 이곳에 산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늘 꿈
이런 씨발.
꿔오던 것이었으니까요.” “그냥 여기 산다는 것만으로 행복하시다고요?” “네.” “무슨 일 하시는데요?” “아무 일도 안 해요.”
그건 정말 아니잖아. 그건 씨발, 정말로 아니잖아. 뭔가 씨발 좆나게 잘못된 거 아냐?
“아무 일도 안 하신다고요?” “네. 따지고 보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건 아니고요. 집 안 청소를 하 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남편과 같이 밥을 먹기도 해요.”
“누나. 그건 정말 잘못된 거 아니에요?” “왜요?” “아니, 그러니까 결혼이란 걸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왜 안 돼요? 한국에는 돈 보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있지
남편? 84
않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그녀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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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주문한 맥주가 나오고, 나는 지난 이 년 간 어떻게 살아
“남편이요?”
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네. 남편이요. 저 결혼했어요.”
“전 요즘 정말 재미가 없어요. 그저 학교, 집, 알바, 학교, 학원,
“정말요?”
집, 알바. 돈은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더라고요. 학교는 원래 재미가
“네. 정말요. 이곳에서 살려면 그 수밖엔 없어요.”
없었고, 생활에 치이다 보니 글을 쓸 시간도 마땅치 않고요. 의욕도
“설마……”
사라져서 결국엔 지금은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있어요.”
“설마, 뭐요?”
“딱 봐도 그렇게 보여요.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요. 멋있어
“설마, 이곳에서 살려고 결혼하신 건 아니시죠?”
보이지도 않고요.”
나는 내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맥주를 들이켰다. 탄산이 목을 긁 고 내려갔다.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웃었다.
“그래서 결혼한 거 맞아요.”
그 순간, 완벽한 순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하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멋있어 보일 리가 없 죠. 누나는 요즘 어떠세요?” “전 요즘 행복해요. 그냥 이곳에 산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늘 꿈
이런 씨발.
꿔오던 것이었으니까요.” “그냥 여기 산다는 것만으로 행복하시다고요?” “네.” “무슨 일 하시는데요?” “아무 일도 안 해요.”
그건 정말 아니잖아. 그건 씨발, 정말로 아니잖아. 뭔가 씨발 좆나게 잘못된 거 아냐?
“아무 일도 안 하신다고요?” “네. 따지고 보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건 아니고요. 집 안 청소를 하 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남편과 같이 밥을 먹기도 해요.”
“누나. 그건 정말 잘못된 거 아니에요?” “왜요?” “아니, 그러니까 결혼이란 걸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왜 안 돼요? 한국에는 돈 보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있지
남편? 84
않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그녀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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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속에서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 호스텔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눈
“네.” 우린 나란히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둘 다 아무 말이 없었
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다. 그저 담배를 입에 물고 숨을 들이켠 뒤,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고
“잠깐, 저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숨을 내뱉었다. 하얀 연기가 파리 밤거리에 피어올랐다.
카페 앞 테라스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차분히 생각 을 했다.
다시 카페 안에 들어가 앉아,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맥주 한 잔 더 할래요?”
그래. 사실 저 여자와는 단 한 번 보았을 뿐이고, 저 여자가 어떤
그녀가 물었다. 나는 빈 잔을 들여다보았다.
선택을 하든, 그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저 여자가 나를 좋 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 역시도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 어떤 건 지 잘 알지 못한다. 저 여자를 보기 위해서 이곳으로 여행을 온 것 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저. 그저…… 그저……
대체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왜 이 여자랑 술을 더 마셔야하 는거지?
그저…… 그저 앞으로의 내 삶을 설계하려 온 것이다. 다시금 글을 써보려
생각과는 달리 내 입에선 이런 대답이 툭,튀어나왔다.
고 일상에서 탈출했을 뿐인 것이다. 그저 그 뿐이다. 저 여자가 누
“네.”
구랑 결혼을 했든, 그 결혼을 왜 했든 그딴 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럼 이차는 우리집에 가서 할래요?” “네?”
담배를 다 피우고난 뒤, 다시 카페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
“어차피 집에 남편도 없어요.”
았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네요? 전 끊었는데.”
어차피 집에 남편도 없다니?
그녀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좋은 걸 왜 끊으셨어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그러게요. 그럼 저 한 대 주실래요?”
“네?” “우리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고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우시려고요? 그럼 같이 한 대 피울까요?” “또 피우게요?”
86
우린 냄새나는 메트로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그리고
87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속에서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 호스텔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눈
“네.” 우린 나란히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둘 다 아무 말이 없었
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다. 그저 담배를 입에 물고 숨을 들이켠 뒤,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고
“잠깐, 저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숨을 내뱉었다. 하얀 연기가 파리 밤거리에 피어올랐다.
카페 앞 테라스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차분히 생각 을 했다.
다시 카페 안에 들어가 앉아,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맥주 한 잔 더 할래요?”
그래. 사실 저 여자와는 단 한 번 보았을 뿐이고, 저 여자가 어떤
그녀가 물었다. 나는 빈 잔을 들여다보았다.
선택을 하든, 그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저 여자가 나를 좋 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 역시도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 어떤 건 지 잘 알지 못한다. 저 여자를 보기 위해서 이곳으로 여행을 온 것 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저. 그저…… 그저……
대체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왜 이 여자랑 술을 더 마셔야하 는거지?
그저…… 그저 앞으로의 내 삶을 설계하려 온 것이다. 다시금 글을 써보려
생각과는 달리 내 입에선 이런 대답이 툭,튀어나왔다.
고 일상에서 탈출했을 뿐인 것이다. 그저 그 뿐이다. 저 여자가 누
“네.”
구랑 결혼을 했든, 그 결혼을 왜 했든 그딴 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럼 이차는 우리집에 가서 할래요?” “네?”
담배를 다 피우고난 뒤, 다시 카페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
“어차피 집에 남편도 없어요.”
았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네요? 전 끊었는데.”
어차피 집에 남편도 없다니?
그녀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좋은 걸 왜 끊으셨어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그러게요. 그럼 저 한 대 주실래요?”
“네?” “우리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고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우시려고요? 그럼 같이 한 대 피울까요?” “또 피우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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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냄새나는 메트로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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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슈퍼에 들려 맥주 열 병과 와인 한 병과 치즈 몇 조각을 사들 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까우면 다 마셔요. 다 마시기 전엔 못가요.”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집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달랐다. 내 상상 속의 그녀의 집 은, 그녀의 남편의 집, 부자인 서양인이 사는 집이었다. 그런데 실 제로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좁은 방 두 개로 이루어진 작은 아파 트였다. 우린 사온 것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그녀는
설마, 이 상황은 그런 상황인건가?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닌데.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정말 아닌데.
병따개를 들고 와 맥주 병뚜껑을 따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마시는 건 좋은 하나.
데, 맥주를 다 마시고 와인을 마시는 것도 좋은데, 그런데 그 다음
둘.
에 벌어질 일은 그렇게 유쾌할 것 같지 않았다. 그건 뭔가 잘못된
셋.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은 맥주병을 잡
넷.
았고, 입은 벌어졌고, 그 안으로 맥주가 부어졌다. 그녀도 나를 따 라 맥주를 마셨다.
“잠깐만요. 왜 다 따세요?” 내가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계 속해서 병뚜껑을 땄다.
한 병. 두 병. 세 병.
다섯.
네 병.
여섯.
다섯 병.
일곱.
여섯 병.
여덟.
일곱 병.
아홉.
여덟 병.
열.
아홉 병. 열 병.
“누나. 이렇게 다 따버리시면 어떡해요. 다 못 마시면 아깝잖아 요.”
88
취기가 올랐다. 아니, 취기가 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만취에 가
89
근처 슈퍼에 들려 맥주 열 병과 와인 한 병과 치즈 몇 조각을 사들 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까우면 다 마셔요. 다 마시기 전엔 못가요.”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집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달랐다. 내 상상 속의 그녀의 집 은, 그녀의 남편의 집, 부자인 서양인이 사는 집이었다. 그런데 실 제로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좁은 방 두 개로 이루어진 작은 아파 트였다. 우린 사온 것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그녀는
설마, 이 상황은 그런 상황인건가?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닌데.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정말 아닌데.
병따개를 들고 와 맥주 병뚜껑을 따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마시는 건 좋은 하나.
데, 맥주를 다 마시고 와인을 마시는 것도 좋은데, 그런데 그 다음
둘.
에 벌어질 일은 그렇게 유쾌할 것 같지 않았다. 그건 뭔가 잘못된
셋.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은 맥주병을 잡
넷.
았고, 입은 벌어졌고, 그 안으로 맥주가 부어졌다. 그녀도 나를 따 라 맥주를 마셨다.
“잠깐만요. 왜 다 따세요?” 내가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계 속해서 병뚜껑을 땄다.
한 병. 두 병. 세 병.
다섯.
네 병.
여섯.
다섯 병.
일곱.
여섯 병.
여덟.
일곱 병.
아홉.
여덟 병.
열.
아홉 병. 열 병.
“누나. 이렇게 다 따버리시면 어떡해요. 다 못 마시면 아깝잖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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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기가 올랐다. 아니, 취기가 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만취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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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웠다. 그녀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새 와인 병을 들 더니 마개를 땄다.
“뽕!” 우리는 그녀가 가져온 잔에 와인을 따라 마셨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아래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그녀 가 누워있었고, 내 몸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 렸다. 나는 움직이던 몸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 녀가 나를 껴안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밀쳐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핑클 빵인지, 포켓몬스터 빵인지, 국찌니 빵인지, 어떤 빵인지 분간이 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빵, 빵, 그놈의 빵으 로 보였다.
빵보다 스티커. 사랑보다 섹스. 다음날, 눈을 떠보니 그녀의 침대 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 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그녀의 집을 나와 호스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프랑스를 떠나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들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취업 준비를 그만두고,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절친한 친구의 절친한 선배였다.’
90
까웠다. 그녀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새 와인 병을 들 더니 마개를 땄다.
“뽕!” 우리는 그녀가 가져온 잔에 와인을 따라 마셨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아래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그녀 가 누워있었고, 내 몸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 렸다. 나는 움직이던 몸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 녀가 나를 껴안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밀쳐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핑클 빵인지, 포켓몬스터 빵인지, 국찌니 빵인지, 어떤 빵인지 분간이 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빵, 빵, 그놈의 빵으 로 보였다.
빵보다 스티커. 사랑보다 섹스. 다음날, 눈을 떠보니 그녀의 침대 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 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그녀의 집을 나와 호스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프랑스를 떠나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들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취업 준비를 그만두고,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절친한 친구의 절친한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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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나는 프랑스엔 가보지도 않고,‘프랑스에 가자’라는 소설을 썼다. 구성은 중구난방이었고, 이야기를 끌고나갈 힘도, 소재도 부족해서 이야기가 이리저리 뒤섞인, 요즘말로 하자면,‘막장 소설’이었다. 이번 아브락사스 주제를 정한 뒤, 처음 떠올린 것이 바로 그 소설이었다. 처음엔 그 소설을 고쳐서 실을 생각이었다.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소설에 덧붙여 넣을 만한 소재들도 많이 생긴 터였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소설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목만 그대로 가져오고, 새로운 소설을 쓰기로 했다. 이번 소설은 내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소설 속 이미지 활용을 시도해보았다. 이러한 형태가 내용을 전달하는 데 좋은지 나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세상 일이 모두 그렇듯, 아마도 이런 형태 역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소설‘프랑스에 가자’는 2008년에 내가 쓴‘프랑스에 가자’이다. 그리고 그 소설을 읽고 소설 속‘그녀’가 보내준 그림은, 실은 지호누나가 내 소설을 읽고 보내준 그림이다. 내 가장 오래된 독자 중 하나인 누나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마워요, 누나.
김종소리 21세기 주정뱅이 담배쟁이 가난뱅이 구라쟁이 소년 jongsoriz@naver.com twt @jongsoriz jongsoriz.tumblr.com
93
2008년 여름, 나는 프랑스엔 가보지도 않고,‘프랑스에 가자’라는 소설을 썼다. 구성은 중구난방이었고, 이야기를 끌고나갈 힘도, 소재도 부족해서 이야기가 이리저리 뒤섞인, 요즘말로 하자면,‘막장 소설’이었다. 이번 아브락사스 주제를 정한 뒤, 처음 떠올린 것이 바로 그 소설이었다. 처음엔 그 소설을 고쳐서 실을 생각이었다.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소설에 덧붙여 넣을 만한 소재들도 많이 생긴 터였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소설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목만 그대로 가져오고, 새로운 소설을 쓰기로 했다. 이번 소설은 내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소설 속 이미지 활용을 시도해보았다. 이러한 형태가 내용을 전달하는 데 좋은지 나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세상 일이 모두 그렇듯, 아마도 이런 형태 역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소설‘프랑스에 가자’는 2008년에 내가 쓴‘프랑스에 가자’이다. 그리고 그 소설을 읽고 소설 속‘그녀’가 보내준 그림은, 실은 지호누나가 내 소설을 읽고 보내준 그림이다. 내 가장 오래된 독자 중 하나인 누나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마워요, 누나.
김종소리 21세기 주정뱅이 담배쟁이 가난뱅이 구라쟁이 소년 jongsoriz@naver.com twt @jongsoriz jongsoriz.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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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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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세계 문화 유산으 로 지정된 곳도 많고 교토 특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한 제한도 많은 편이라서 시골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일반적인 현대 도 시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교토 만의 특징이라 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4년 간 생활했던 집은 견직물 생산으로는 일본 최 고라고 여겨지는 니시진[西陣]이라는 마을의 바로 옆에 위치했는데 눈에 띄는 간판이 없어 그저 주택인 줄만 알았던 건물들이 사실은 견직물을 판매하는 가게이거나 전시하는 곳, 혹은 수작업이 이루어 지고 있는 공장이라는 것을 매년 열리는 니시진 축제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굳게 닫혀 있는 문 뒤의 모습은 조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아름다웠던 교토[京都]. 그래서인지 매년
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터라 축제 때 받은 충격은 꽤나 컸지만 열린
봄이 찾아오면 문득 그곳이 그리워지곤 한다. 학교 가는 길에 보았
문 안으로 보이는 은은한 조명들과 그 아래의 놓여진 아름다운 견
던 히라노신사[平野神社]의 벚꽃들과 긴가쿠사(은각사)[銀閣寺]로
직물, 기모노들은 마치 비밀의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
향하던 길에 만났던 벚꽃 만개한 철학의 길[哲学の道], 그리고 저
곤 했었다.
녁 어스름에 가모가와강[鴨川] 근처에 앉아 마시던 시원한 맥주 등
집에서 학교로 향하는 길에는‘학업의 신’을 모시고 있는 곳으
의 기억들은‘교토의 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의 추억들이
로 유명한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과 벚꽃으로 유명한 히라노신
기도 하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약 4 년간 교토에서 지내
사가 있었는데, 기타노텐만궁 근처에는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하나
면서 느끼고 감상한 추억들을 공유하기 위함이지 일본에 대한 생각
마치(일본식 전통 유흥가)[花町]인 가미시치켄(혹은 가미히치켄)[上
이나 의견을 말하기 위함은 아니다. 일본에 대한 어떤 의견을 말하
七軒]도 지나야만 했다. 기타노만궁의 경우 일본의 수학여행 철이
기엔 난 일본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잠시였지만 때론 원망하기도
되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일본 학생과 학부모들로 넘쳐날 만큼 유명
또 사랑하기도 했던 그곳, 교토에 대한 이야기를 이 기회에 써 내려
한 곳이었는데 새해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새해를 기원하는
가 보고자 한다.
기도를 올리거나 점을 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매월 25일이 면 장이 서서 다양한 노점 음식을 맛보거나 신기한 물품들을 구경
일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교토
하고 살 수도 있었는데 매일 지나는 등굣길이 수많은 인파들로 인해 자전거 이동이 통제된 만큼 큰 장이었었다. 히라노신사는 벚꽃명소
교토는 도시[都市]이지만 일본의 옛 수도라는 역사에 걸맞게 곳곳
96
로 알려져 매년 봄이면 노점상들과 벚꽃놀이를 위한 탁자들이 설치
97
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세계 문화 유산으 로 지정된 곳도 많고 교토 특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한 제한도 많은 편이라서 시골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일반적인 현대 도 시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교토 만의 특징이라 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4년 간 생활했던 집은 견직물 생산으로는 일본 최 고라고 여겨지는 니시진[西陣]이라는 마을의 바로 옆에 위치했는데 눈에 띄는 간판이 없어 그저 주택인 줄만 알았던 건물들이 사실은 견직물을 판매하는 가게이거나 전시하는 곳, 혹은 수작업이 이루어 지고 있는 공장이라는 것을 매년 열리는 니시진 축제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굳게 닫혀 있는 문 뒤의 모습은 조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아름다웠던 교토[京都]. 그래서인지 매년
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터라 축제 때 받은 충격은 꽤나 컸지만 열린
봄이 찾아오면 문득 그곳이 그리워지곤 한다. 학교 가는 길에 보았
문 안으로 보이는 은은한 조명들과 그 아래의 놓여진 아름다운 견
던 히라노신사[平野神社]의 벚꽃들과 긴가쿠사(은각사)[銀閣寺]로
직물, 기모노들은 마치 비밀의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
향하던 길에 만났던 벚꽃 만개한 철학의 길[哲学の道], 그리고 저
곤 했었다.
녁 어스름에 가모가와강[鴨川] 근처에 앉아 마시던 시원한 맥주 등
집에서 학교로 향하는 길에는‘학업의 신’을 모시고 있는 곳으
의 기억들은‘교토의 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의 추억들이
로 유명한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과 벚꽃으로 유명한 히라노신
기도 하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약 4 년간 교토에서 지내
사가 있었는데, 기타노텐만궁 근처에는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하나
면서 느끼고 감상한 추억들을 공유하기 위함이지 일본에 대한 생각
마치(일본식 전통 유흥가)[花町]인 가미시치켄(혹은 가미히치켄)[上
이나 의견을 말하기 위함은 아니다. 일본에 대한 어떤 의견을 말하
七軒]도 지나야만 했다. 기타노만궁의 경우 일본의 수학여행 철이
기엔 난 일본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잠시였지만 때론 원망하기도
되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일본 학생과 학부모들로 넘쳐날 만큼 유명
또 사랑하기도 했던 그곳, 교토에 대한 이야기를 이 기회에 써 내려
한 곳이었는데 새해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새해를 기원하는
가 보고자 한다.
기도를 올리거나 점을 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매월 25일이 면 장이 서서 다양한 노점 음식을 맛보거나 신기한 물품들을 구경
일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교토
하고 살 수도 있었는데 매일 지나는 등굣길이 수많은 인파들로 인해 자전거 이동이 통제된 만큼 큰 장이었었다. 히라노신사는 벚꽃명소
교토는 도시[都市]이지만 일본의 옛 수도라는 역사에 걸맞게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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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알려져 매년 봄이면 노점상들과 벚꽃놀이를 위한 탁자들이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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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뿐만 아니라 벚꽃과 관련된 상품들이 판매되기도 했는데 운이 좋
산과 교토였지만 당장 갈 수는 없다는 이유 만으로도 종종 향수에
으면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가미시치켄의 마이코상들을 만나
젖곤 했던 나는 그럴 때마다 교토의 곳곳에 남아 있는 한국, 그리
볼 수도 있었다.
고 조선의 흔적을 찾아 다니며 마음을 달래곤 했었다. 한국과 일본
학교 근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긴카쿠사(금각사)[金閣寺]
이 예부터 다양한 연유와 방식으로 교류 이어왔다는 것은 역사 공
와 료안사[竜安寺]가 있었는데 덕분에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탈 때면
부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점이었지만 실제로 교토에서 한국
일본인, 외국인할 거 없이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둘러싸인 채 가야
의 흔적을 찾게 되자 반갑기도 하고 또한 때로는 속상하게 느껴졌
만 했다. 버스 등교가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지어지지 얼마 안되어
던 것도 사실이었다.
깨끗한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사회에 대한 공
우선 반가운 흔적을 떠올려보자면 학교 등하굣길에 매번 마주했
부를 하다가도 교문만 벗어나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
던 히라노신사에 대한 기억을 들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 했듯이 히
축물들과 세계 문화 유산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고
라노신사는 벚꽃 명소로써 많은 일본내국인들에게 애용되는 곳이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도 했지만 사실은 우리의 조상인 백제의 왕들과 왕족에게 제사를
이 밖에 현대적이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교토역과 양
드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교토에
초 모양을 본 떠서 만든 교토타워 근처에는 히가시혼간사[東本願
서 돌아오게 된 이후의 일이었는데 미리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
寺]와 니시혼간사[西本願寺]가 있었으며, 교토시 내에서 가장 번화
다면 그 옆을 지났던 매 등하굣길에서 좀 덜 외롭지는 않았을까라는
가라고 할 수 있는 시조카와라마치역[四条川原町]은 교토에서 가장
아쉬움이 들기도 했었다.
큰 하나마치인 기온[祇園]과 교토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신사라고 할
백제와 관련된 곳은 또 한 곳을 더 들 수가 있는데 그 곳은 바로 헤
수 있는 야사카신사[八坂神社]가 인근 하고 있어 일상 생활 속에서
이안신궁[平安神宮]이다. 교토에서 도쿄로 수도가 옮겨지고 난 이
도 손쉽게 교토의 과거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외에도 조금
후인 1800년대 말 쯤에 지어진 헤이안신궁은 주황색의 기둥과 초록
만 벗어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했던 기오미즈데라(청수
색의 지붕을 한 것이 특징으로 여겨지는데, 이 곳에서 모시고 있는
사)[清水寺]이나 아라시야마[嵐山] 등과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
일본의 50대 천황이 바로 백제와 관련된 주인공이었다. 50대 천황
아 그야말로 교토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생각했었다.
인 간무천황[桓武天皇]의 경우 아버지는 일본인의 천황이었지만 어 머니는 백제 계의 사람이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아버지는 백제
한국을 품은 도시 교토
계의 사람이었으며 어머니는 신라의 귀족 출신으로 간무천황에게는 명백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내가 살
시작하면서 헤이안신궁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늘어나게 되었는데
아오고 자라온 한국, 그리고 부산에 대한 향수(鄕愁)였던 거 같다.
엔이 비해 원의 가치가 많이 올라갔었던 당시 한국인 관광객이 너무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반 남짓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부
늘어나 헤이안신궁 주위에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다는 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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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뿐만 아니라 벚꽃과 관련된 상품들이 판매되기도 했는데 운이 좋
산과 교토였지만 당장 갈 수는 없다는 이유 만으로도 종종 향수에
으면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가미시치켄의 마이코상들을 만나
젖곤 했던 나는 그럴 때마다 교토의 곳곳에 남아 있는 한국, 그리
볼 수도 있었다.
고 조선의 흔적을 찾아 다니며 마음을 달래곤 했었다. 한국과 일본
학교 근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긴카쿠사(금각사)[金閣寺]
이 예부터 다양한 연유와 방식으로 교류 이어왔다는 것은 역사 공
와 료안사[竜安寺]가 있었는데 덕분에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탈 때면
부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점이었지만 실제로 교토에서 한국
일본인, 외국인할 거 없이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둘러싸인 채 가야
의 흔적을 찾게 되자 반갑기도 하고 또한 때로는 속상하게 느껴졌
만 했다. 버스 등교가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지어지지 얼마 안되어
던 것도 사실이었다.
깨끗한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사회에 대한 공
우선 반가운 흔적을 떠올려보자면 학교 등하굣길에 매번 마주했
부를 하다가도 교문만 벗어나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
던 히라노신사에 대한 기억을 들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 했듯이 히
축물들과 세계 문화 유산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고
라노신사는 벚꽃 명소로써 많은 일본내국인들에게 애용되는 곳이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도 했지만 사실은 우리의 조상인 백제의 왕들과 왕족에게 제사를
이 밖에 현대적이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교토역과 양
드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교토에
초 모양을 본 떠서 만든 교토타워 근처에는 히가시혼간사[東本願
서 돌아오게 된 이후의 일이었는데 미리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
寺]와 니시혼간사[西本願寺]가 있었으며, 교토시 내에서 가장 번화
다면 그 옆을 지났던 매 등하굣길에서 좀 덜 외롭지는 않았을까라는
가라고 할 수 있는 시조카와라마치역[四条川原町]은 교토에서 가장
아쉬움이 들기도 했었다.
큰 하나마치인 기온[祇園]과 교토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신사라고 할
백제와 관련된 곳은 또 한 곳을 더 들 수가 있는데 그 곳은 바로 헤
수 있는 야사카신사[八坂神社]가 인근 하고 있어 일상 생활 속에서
이안신궁[平安神宮]이다. 교토에서 도쿄로 수도가 옮겨지고 난 이
도 손쉽게 교토의 과거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외에도 조금
후인 1800년대 말 쯤에 지어진 헤이안신궁은 주황색의 기둥과 초록
만 벗어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했던 기오미즈데라(청수
색의 지붕을 한 것이 특징으로 여겨지는데, 이 곳에서 모시고 있는
사)[清水寺]이나 아라시야마[嵐山] 등과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
일본의 50대 천황이 바로 백제와 관련된 주인공이었다. 50대 천황
아 그야말로 교토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생각했었다.
인 간무천황[桓武天皇]의 경우 아버지는 일본인의 천황이었지만 어 머니는 백제 계의 사람이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아버지는 백제
한국을 품은 도시 교토
계의 사람이었으며 어머니는 신라의 귀족 출신으로 간무천황에게는 명백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내가 살
시작하면서 헤이안신궁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늘어나게 되었는데
아오고 자라온 한국, 그리고 부산에 대한 향수(鄕愁)였던 거 같다.
엔이 비해 원의 가치가 많이 올라갔었던 당시 한국인 관광객이 너무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반 남짓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부
늘어나 헤이안신궁 주위에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다는 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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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소리를 친구와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시(豊臣秀吉)를 위해 지어진 도요쿠니신사[豊国神社]의 근처에 위
사실 교토하면 교토의 도시샤(동지사)대학[同志社大学]에 다녔던
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비통함은, 지난 4년 간
윤동주시인과 정지용시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도시샤대학
익숙하고 친근해져 버린 교토가 아닌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니 어쩌
에는 그들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어 교토를 찾는 관광객들이 일
면 꽤 먼 미래까지도 지속되게 될 어두운 한일관계와 전쟁으로 인한
부러 들리기도 하는데 나는 그 학교에 진학시험을 치러간 친구를 따
우리나라의 상흔을 떠올리게 했었다.
라 갔다가 그 시비를 보게 되었다. 친구가 시험을 치는 동안 멍하니 서서 서시와 향수가 적인 시비를 한참 바라보는데 처음으로 이 학교
내가 사랑한 도시 교토
가 아닌 다른 학교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었다. 그 후회 속에 는 유명 시인이 졸업한 학교라는 부러움과 시비를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자부심, 동지감 등도 포함이 되어 있었던 거 같다.
처음 도착했을 당시의 교토는 참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분지라는 지형적인 특색 때문인지 추위와 더위의 차가 심
부산에 살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를 보러
했고 날씨의 변덕이 심해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는 곳이긴 했지
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했던 나는 교토에 사
만 4계절의 특징이 뚜렷하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것
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이 바다를 그리워하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없었고 사람들이 쓰는 말투 또한 사투리가 심한 것이 내가 살던
찾던 곳이 바로 가모가와강[鴨川]이었다. 정지용시인의 압천(鴨川)
부산과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었다. 반대로 처음에는 한국의 거리
으로 알려진 이 강은 교토의 가족들이 휴일을 보내는 곳이기도 했
와 많이 닮아있는 일본의 거리를 그저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으며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또한 젊은이들의 청춘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달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토 곳곳에서 느껴지는 그곳 특유의
곳이기도 했다. 봄철이면 따뜻해진 가모가와강 근처로 나들이를 나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내가 다른 유학생 친구들과 바비큐파
교토에서 지냈던 4년 간의 시간 동안 나는 그곳의 일상 속에 숨겨
티를 하던 곳은 재일조선인들을 다룬 영화‘박치기’에서 청년들이
져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알게 모르게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고 서
싸움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곳에서 싸움이 일어난 적이
서히 그곳의 날씨와 문화, 생활에도 익숙해져 갔었다. 장에 가는 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옛 조선인 학생들도 가모가와강 근처에서 어
에는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니시진의 견직물을 구경할 수가 있었고,
떤 추억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르게 덜 외
학교로 가는 봄날에는 히라노신사에서 흩날리는 벚꽃나무들의 꽃잎
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들을 맞으며 달리거나 벚꽃향이 나는 방향제를 사와 집을 장식할 수
내가 교토에서 발견한 한국의 흔적의 마지막은 귀무덤(耳塚)으로,
도 있었다. 학교 수업의 공강 때는 친구들과 모여 료안사를 산책하
지금까지 발견한 것들 중 가장 마음 아프고 슬픈 흔적이었다.‘귀
기도 했으며 수업이 마친 뒤에는 또다시 히라노신사에 가서 빵을 먹
무덤’은 사실 귀무덤이 아닌 코무덤으로 임진왜란 당시 증거로 베
거나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다. 매달 기타노텐만궁에서 장이 설 때면
어온 조선 사람들의 코를 모아 묻어둔 곳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
친구들과 군것질을 하거나 귀여운 캐릭터 물품이나 신기한 골동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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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소리를 친구와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시(豊臣秀吉)를 위해 지어진 도요쿠니신사[豊国神社]의 근처에 위
사실 교토하면 교토의 도시샤(동지사)대학[同志社大学]에 다녔던
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비통함은, 지난 4년 간
윤동주시인과 정지용시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도시샤대학
익숙하고 친근해져 버린 교토가 아닌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니 어쩌
에는 그들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어 교토를 찾는 관광객들이 일
면 꽤 먼 미래까지도 지속되게 될 어두운 한일관계와 전쟁으로 인한
부러 들리기도 하는데 나는 그 학교에 진학시험을 치러간 친구를 따
우리나라의 상흔을 떠올리게 했었다.
라 갔다가 그 시비를 보게 되었다. 친구가 시험을 치는 동안 멍하니 서서 서시와 향수가 적인 시비를 한참 바라보는데 처음으로 이 학교
내가 사랑한 도시 교토
가 아닌 다른 학교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었다. 그 후회 속에 는 유명 시인이 졸업한 학교라는 부러움과 시비를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자부심, 동지감 등도 포함이 되어 있었던 거 같다.
처음 도착했을 당시의 교토는 참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분지라는 지형적인 특색 때문인지 추위와 더위의 차가 심
부산에 살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를 보러
했고 날씨의 변덕이 심해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는 곳이긴 했지
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했던 나는 교토에 사
만 4계절의 특징이 뚜렷하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것
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이 바다를 그리워하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없었고 사람들이 쓰는 말투 또한 사투리가 심한 것이 내가 살던
찾던 곳이 바로 가모가와강[鴨川]이었다. 정지용시인의 압천(鴨川)
부산과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었다. 반대로 처음에는 한국의 거리
으로 알려진 이 강은 교토의 가족들이 휴일을 보내는 곳이기도 했
와 많이 닮아있는 일본의 거리를 그저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으며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또한 젊은이들의 청춘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달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토 곳곳에서 느껴지는 그곳 특유의
곳이기도 했다. 봄철이면 따뜻해진 가모가와강 근처로 나들이를 나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내가 다른 유학생 친구들과 바비큐파
교토에서 지냈던 4년 간의 시간 동안 나는 그곳의 일상 속에 숨겨
티를 하던 곳은 재일조선인들을 다룬 영화‘박치기’에서 청년들이
져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알게 모르게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고 서
싸움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곳에서 싸움이 일어난 적이
서히 그곳의 날씨와 문화, 생활에도 익숙해져 갔었다. 장에 가는 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옛 조선인 학생들도 가모가와강 근처에서 어
에는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니시진의 견직물을 구경할 수가 있었고,
떤 추억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르게 덜 외
학교로 가는 봄날에는 히라노신사에서 흩날리는 벚꽃나무들의 꽃잎
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들을 맞으며 달리거나 벚꽃향이 나는 방향제를 사와 집을 장식할 수
내가 교토에서 발견한 한국의 흔적의 마지막은 귀무덤(耳塚)으로,
도 있었다. 학교 수업의 공강 때는 친구들과 모여 료안사를 산책하
지금까지 발견한 것들 중 가장 마음 아프고 슬픈 흔적이었다.‘귀
기도 했으며 수업이 마친 뒤에는 또다시 히라노신사에 가서 빵을 먹
무덤’은 사실 귀무덤이 아닌 코무덤으로 임진왜란 당시 증거로 베
거나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다. 매달 기타노텐만궁에서 장이 설 때면
어온 조선 사람들의 코를 모아 묻어둔 곳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
친구들과 군것질을 하거나 귀여운 캐릭터 물품이나 신기한 골동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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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구경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며 새해를 맞이해 친구들
어 하기도 했었다. 그곳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던 나의 생각은 그
과 점을 치기도 하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모여든 인파들 틈에서 추
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했고 지금은 그저 추억만 남겨두
위에 떨며 사진을 찍던 일들도 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
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교토는 내게 첫눈에 반하는
아있다.
상대는 아니었지만, 알면 알수록 빠지게 되는 상대였다. 다시 돌아
매일같이 접하는 일상 이외에도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봄이
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 아름다운 광경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
면 철학의 길에서 만개한 벚꽃길 아래를 거닐던 일과 기온거리를 어
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열정이나 활기를 찾는 이들에게는
슬렁거리며 마이코상을 쫓던 일, 무더운 여름에는 기온마쓰리(기온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여행지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살면서 한
제)[祇園祭]를 더불어 가모가와강에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구경
번쯤 기억에 남을 만한 아련함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교토
하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으며 가을에는 기오미즈데라와 아라시야
를 추천하고 싶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교토에선 누구나 아름
마의 단풍을 구경다니고 겨울에는 일본의 성인의 날을 맞이한 친한
다운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생을 축하해주기 위해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꽃을
이 글을 읽은 누군가도 내가 교토와 사랑에 빠졌듯 그곳과 사랑에
사갔던 일들 또한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빠지게 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그곳의 모든 역사와 흔적들 속에 녹아 내린 지난 일상을 두고 한국 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한동안은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교토에 관 한 소식을 볼 때마다 마치 내 일처럼 반가워하고 기뻐했던 것이 기 억난다. 지금은 교토보다 부산에 다시 익숙해져 버린 탓에 그 때만 큼 교토가 그립거나 생각나진 않는다. 다만 커플이 타게 되면 이후 에 꼭 헤어지게 된다는 아라시야마의 나룻배의 소문을 증명이나 하 듯 지금은 이미 남이 되어버린 첫사랑의 그처럼 아주 행복하거나 아 주 불행했던 몇 가지의 추억만 남겨둔 채 하나, 둘 기억에서 지워져 가고만 있을 뿐이다.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었고 그래서 서툴렀던 교토에서의 경험들은 첫사랑을 할 때의 경험과 많이 닮아 있다. 많이 좋았고 많이 행복했으며 많이 웃었지만 그 만큼 많이 슬 퍼하고 힘들어했으며 외로워했던 것을 기억한다. 부산으로 돌아오 고 난 후 한동안은 교토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그에 대 한 꿈을 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과거로 묻어둔 채 현재에 충실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엔 교토로 다시 돌아가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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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구경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며 새해를 맞이해 친구들
어 하기도 했었다. 그곳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던 나의 생각은 그
과 점을 치기도 하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모여든 인파들 틈에서 추
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했고 지금은 그저 추억만 남겨두
위에 떨며 사진을 찍던 일들도 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
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교토는 내게 첫눈에 반하는
아있다.
상대는 아니었지만, 알면 알수록 빠지게 되는 상대였다. 다시 돌아
매일같이 접하는 일상 이외에도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봄이
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 아름다운 광경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
면 철학의 길에서 만개한 벚꽃길 아래를 거닐던 일과 기온거리를 어
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열정이나 활기를 찾는 이들에게는
슬렁거리며 마이코상을 쫓던 일, 무더운 여름에는 기온마쓰리(기온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여행지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살면서 한
제)[祇園祭]를 더불어 가모가와강에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구경
번쯤 기억에 남을 만한 아련함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교토
하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으며 가을에는 기오미즈데라와 아라시야
를 추천하고 싶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교토에선 누구나 아름
마의 단풍을 구경다니고 겨울에는 일본의 성인의 날을 맞이한 친한
다운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생을 축하해주기 위해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꽃을
이 글을 읽은 누군가도 내가 교토와 사랑에 빠졌듯 그곳과 사랑에
사갔던 일들 또한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빠지게 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그곳의 모든 역사와 흔적들 속에 녹아 내린 지난 일상을 두고 한국 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한동안은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교토에 관 한 소식을 볼 때마다 마치 내 일처럼 반가워하고 기뻐했던 것이 기 억난다. 지금은 교토보다 부산에 다시 익숙해져 버린 탓에 그 때만 큼 교토가 그립거나 생각나진 않는다. 다만 커플이 타게 되면 이후 에 꼭 헤어지게 된다는 아라시야마의 나룻배의 소문을 증명이나 하 듯 지금은 이미 남이 되어버린 첫사랑의 그처럼 아주 행복하거나 아 주 불행했던 몇 가지의 추억만 남겨둔 채 하나, 둘 기억에서 지워져 가고만 있을 뿐이다.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었고 그래서 서툴렀던 교토에서의 경험들은 첫사랑을 할 때의 경험과 많이 닮아 있다. 많이 좋았고 많이 행복했으며 많이 웃었지만 그 만큼 많이 슬 퍼하고 힘들어했으며 외로워했던 것을 기억한다. 부산으로 돌아오 고 난 후 한동안은 교토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그에 대 한 꿈을 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과거로 묻어둔 채 현재에 충실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엔 교토로 다시 돌아가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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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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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angpa@gmail.com
장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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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angpa@gmail.com
-식사 하세요. 됐소. -상 차렸어요. 식사부터 해요.
분리된 시간과 공간이 비참하다. 애인이었던 사람이 남편이 되고 남편이었던 사람이 다른 숨을 쉬 고 있다.
우리는 연정에서 만났다. 짱한 분홍 간판이 피천득의 연정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나는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면 보라색 보자기를 들고 곳곳을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까지 왔다.
다녔다. 많은 수의 사람이 나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원했던, 그
-
들 셋 중 하나였던 남편은 매번 나를 부르지 않았고 연정으로 찾아
어마한 크기의 노천극장에 앉았다.
왔다. 우리는 연정에서 커피를 마셨다. 키가 낮은 흰 잔에 반만큼
제주에나 있을 법한 바람을 보았다.
물을 붓고 딱 그 만큼만 마셨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내가 입고 있
시간은 21시를 넘겼고 두어 개의 빗방울이 떨어질 때였다.
는 옷을 보았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
병원의 침대 냄새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면 고개를 내리고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한 잔을 다 마시면 조용히 찻잔을 밀어냈다. 밀어내는 손이 어찌나 거칠거칠해 보이는
-머리카락에서 침대 냄새가 나요.
지 철가루라도 발라놓은 듯 했다. 거칠고 두꺼운 손으로 밀어내고
오래 누워있어 그런 것이오.
낮은 목소리로 '한 잔 더 주시오' 말했던 남편은 여덟 번째 연정에 온
-그런가 봐요. 어머니 뵈러 자주 안와도.. 괜찮아요.
날 내게 갈비탕을 사주겠다고 했다. 갈비탕 먹어본 적 있느냐는 남 편의 질문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던 그 밤. 갈비탕을 처음 먹던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날 밤에 나는 부끄러운 얼굴로 남편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병상에 누우셨을 때 두 발 벗고 찾아다니던 사람인데 돌 아가신 후로 기다렸다는 듯 나를 부모 없는 고아 취급이다. 말을 걸
어머니는 치매였고 유독 남편을 싫어하셨다.
어놓기 무섭게 얼굴색부터 퍼렇게 질려있다.
나의 존재는 잊으셔도 하루 쉼 없이 찾아오는 남편은 잊지 않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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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하세요. 됐소. -상 차렸어요. 식사부터 해요.
분리된 시간과 공간이 비참하다. 애인이었던 사람이 남편이 되고 남편이었던 사람이 다른 숨을 쉬 고 있다.
우리는 연정에서 만났다. 짱한 분홍 간판이 피천득의 연정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나는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면 보라색 보자기를 들고 곳곳을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까지 왔다.
다녔다. 많은 수의 사람이 나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원했던, 그
-
들 셋 중 하나였던 남편은 매번 나를 부르지 않았고 연정으로 찾아
어마한 크기의 노천극장에 앉았다.
왔다. 우리는 연정에서 커피를 마셨다. 키가 낮은 흰 잔에 반만큼
제주에나 있을 법한 바람을 보았다.
물을 붓고 딱 그 만큼만 마셨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내가 입고 있
시간은 21시를 넘겼고 두어 개의 빗방울이 떨어질 때였다.
는 옷을 보았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
병원의 침대 냄새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면 고개를 내리고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한 잔을 다 마시면 조용히 찻잔을 밀어냈다. 밀어내는 손이 어찌나 거칠거칠해 보이는
-머리카락에서 침대 냄새가 나요.
지 철가루라도 발라놓은 듯 했다. 거칠고 두꺼운 손으로 밀어내고
오래 누워있어 그런 것이오.
낮은 목소리로 '한 잔 더 주시오' 말했던 남편은 여덟 번째 연정에 온
-그런가 봐요. 어머니 뵈러 자주 안와도.. 괜찮아요.
날 내게 갈비탕을 사주겠다고 했다. 갈비탕 먹어본 적 있느냐는 남 편의 질문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던 그 밤. 갈비탕을 처음 먹던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날 밤에 나는 부끄러운 얼굴로 남편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병상에 누우셨을 때 두 발 벗고 찾아다니던 사람인데 돌 아가신 후로 기다렸다는 듯 나를 부모 없는 고아 취급이다. 말을 걸
어머니는 치매였고 유독 남편을 싫어하셨다.
어놓기 무섭게 얼굴색부터 퍼렇게 질려있다.
나의 존재는 잊으셔도 하루 쉼 없이 찾아오는 남편은 잊지 않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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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뻑뻑 태운다 했다.
눈 감으시던 그 날 아침까지도 남편을 저리 치우라 손 짓 하셨다.
나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남편 덕에 자주 이용할 수 있었다. 종종
때마다 남편은 어머니 시야에 보이지 않는 외진 곳에서 우리를
남편 담배 태울 때 마주치면 "연정이 왔냐" 하며 반겨주었다. 겨울
지켜보았다.
에는 추우니 어서 들어가라 했고 여름에는 더우니 어서 들어가라 했 다. 그랬던 남편이 돌아섰다.
내 이름은 연정. 추운 겨울에 태어나 겨울처럼 추운 삶을 살았다.
남편의 고향은 삼척항인데 홍천에서 자랐단다.
열셋이 되던 해부터 오래된 다방에서 여럿에게 커피를 팔았다.
열아홉에 서울로 상경해 처음 배운 일이 목욕탕 청소였고 그 덕
어머니도 다방에서 일 하셨고 나는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
에 공짜로 씻을 수 있어 좋았고 손님 없는 시간 구석에서 쪽잠 잘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방이름을 따 내 이름으로 지어주셨다.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홍천까지 왔다.
연정.
어머니 돌아가시고 석 달하고 사흘 후, 편지 한 통 없이 떠났다.
여기는 홍천이다.
-우리 남편 보셨어요?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까지 왔다.
남편을 왜 여기 와서 찾누. 홍천으로 내려간 지 이틀이나 되었어.
언젠가 작은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던 남편은 서울에서 목욕탕 청
-홍천이요?
소부로 일을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작아진 비누를 새 것으로 바꿔놓았다. 곳곳
열아홉 때부터 그랬네. 자기는 홍천 사람이라고. 돈 많이 벌면 홍천 가서 목욕탕 차릴 거라고.
에 있는 하수구 청소를 하고 탕 안의 물 떼를 닦아내는 일을 했다. 손님이 많은 시간에는 보관함의 열쇠를 주고받는 일을 했고 시간마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까지 왔다.
다 바닥의 물기와 떨어진 머리카락을 닦아냈다. 남편이 가장 신경
홍천이다.
써서 닦았던 것은 거울이었다. 목욕탕의 거울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내 눈에만 없는 남편은 홍천으로 갔다고 한다.
는 남편만의 철칙이 있었던 것이다. 깨끗하게 몸을 닦고 나온 뒤 보
남편의 홍천탕 찾으러 연정이 왔다.
는 거울에 얼룩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남편 말로는 하루 에 거울을 세 번씩 닦는다 하였는데 이른 아침에 한 번, 점심 밥 먹 은 뒤 한 번, 저녁 밥 먹은 뒤 한 번 때마다 새 걸레로 박박 닦아 윤이 반지르르하게 나면 뿌듯한 마음 가득 안고 1층 공터에 나가 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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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뻑뻑 태운다 했다.
눈 감으시던 그 날 아침까지도 남편을 저리 치우라 손 짓 하셨다.
나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남편 덕에 자주 이용할 수 있었다. 종종
때마다 남편은 어머니 시야에 보이지 않는 외진 곳에서 우리를
남편 담배 태울 때 마주치면 "연정이 왔냐" 하며 반겨주었다. 겨울
지켜보았다.
에는 추우니 어서 들어가라 했고 여름에는 더우니 어서 들어가라 했 다. 그랬던 남편이 돌아섰다.
내 이름은 연정. 추운 겨울에 태어나 겨울처럼 추운 삶을 살았다.
남편의 고향은 삼척항인데 홍천에서 자랐단다.
열셋이 되던 해부터 오래된 다방에서 여럿에게 커피를 팔았다.
열아홉에 서울로 상경해 처음 배운 일이 목욕탕 청소였고 그 덕
어머니도 다방에서 일 하셨고 나는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
에 공짜로 씻을 수 있어 좋았고 손님 없는 시간 구석에서 쪽잠 잘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방이름을 따 내 이름으로 지어주셨다.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홍천까지 왔다.
연정.
어머니 돌아가시고 석 달하고 사흘 후, 편지 한 통 없이 떠났다.
여기는 홍천이다.
-우리 남편 보셨어요?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까지 왔다.
남편을 왜 여기 와서 찾누. 홍천으로 내려간 지 이틀이나 되었어.
언젠가 작은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던 남편은 서울에서 목욕탕 청
-홍천이요?
소부로 일을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작아진 비누를 새 것으로 바꿔놓았다. 곳곳
열아홉 때부터 그랬네. 자기는 홍천 사람이라고. 돈 많이 벌면 홍천 가서 목욕탕 차릴 거라고.
에 있는 하수구 청소를 하고 탕 안의 물 떼를 닦아내는 일을 했다. 손님이 많은 시간에는 보관함의 열쇠를 주고받는 일을 했고 시간마
변심한 남편을 찾으러 이 곳 까지 왔다.
다 바닥의 물기와 떨어진 머리카락을 닦아냈다. 남편이 가장 신경
홍천이다.
써서 닦았던 것은 거울이었다. 목욕탕의 거울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내 눈에만 없는 남편은 홍천으로 갔다고 한다.
는 남편만의 철칙이 있었던 것이다. 깨끗하게 몸을 닦고 나온 뒤 보
남편의 홍천탕 찾으러 연정이 왔다.
는 거울에 얼룩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남편 말로는 하루 에 거울을 세 번씩 닦는다 하였는데 이른 아침에 한 번, 점심 밥 먹 은 뒤 한 번, 저녁 밥 먹은 뒤 한 번 때마다 새 걸레로 박박 닦아 윤이 반지르르하게 나면 뿌듯한 마음 가득 안고 1층 공터에 나가 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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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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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fabrique@gmail.com
이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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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fabriqu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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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good_l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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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2245 0703
이슬 good_l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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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주장하던 사람도 나왔지만 어쩐 일인지 그 전과는 달리 전 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종종 명동이나 대학로에서 플래쉬 몹 1)으로‘凸’같은 모양을 만들기도 했으나, 밀고자들이 늘어나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집이라고 안심을 할 순 없다. 욕파라치들의 대부분이 8촌이 내의 친인척들이라는 통계도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법안이 생기게 된 것은 십팔 년 전, 우리나라에 서 열린 G28 정상회의 때문이었다. 혹시나 모를 테러방지와 시위, 집회 금지도 모자라서 음식물쓰레기 처리 연기, 자가용 사용 금지까 지금 나는 삼십팔 세.
지 일시적으로 강제 집행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각국 정상들이 모였
서른여덟 살, 그러니까 비속어 사용 금지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십
을 때,“육씨럴 놈들아, 좆같은 새끼들아!”를 외친 한 미치광이 노
팔 년에 접어들었다.
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각국 외신들은 육씨럴의 해석을 요구했
욕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
으며 육시(戮屍)를 차마 설명하지 못하는 입장을 헤아려주기는 커녕
했었지만 비속어의 강도에 따라 최하 500만원의 과태료와 최대 무
점잖은 자리를 망친 노인을 막지 못한 우리나라의 준비 부족을 탓
기징역이라는 강력한 승부수를 던진 정부의 승리였다. 회사에서 짤
하기도 하고 질 낮은 국민의식이라며 국민성을 폄하하기까지 했다.
린 회사원들도 더 이상“좆같네, 씨발”이라는 울분을 토해내지 않
코리아는 KFC(Korea Fucking Country)로 통했으며 외교마찰을
았고,“작작 쳐먹어, 이 자식아”라며 구수한 욕까지 리필 해주던
빚기도 했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동방예의지국 만들기 프로젝트
수많은 욕쟁이 할머니들은 영업정지를 피하기 위해‘손님은 왕이
로 비속어 사용 금지법을 선포하여 대내외적으로 알렸고, 해외에서
다’를 영업철학으로 내세웠다.
는 해외 토픽감으로 다시 한 번 비웃음을 샀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이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다가
그 때 난 대학 1학년, 낭랑 십팔 세 같은 애송이였다.
손바닥에 참을 인 대신 씨발을 세 번 새기며, 소형 녹음기를 항상 휴
비밀 동아리‘시파’에 가입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시파는 겉으
대하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형 녹음기로 욕파라치가 되어
로는 시(詩)를 쓰는 동아리로 위장을 하였고, 동아리 이름도‘시워
신고포상금을 노렸고, 초기에는 일부러 시비를 걸어 욕을 유도하는
요’로 귀여운 편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좆같은 사회를 좆같다고 말
전문 욕파라치까지 기승을 부렸었다. 선처를 바라며 술을 먹고 욕을
할 그 날이 오기만을 바라는 모임이었다. 욕이야 베개 속에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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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아주 짧은 시간에 특정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을 뜻함.
했다고 주장하던 사람도 나왔지만 어쩐 일인지 그 전과는 달리 전 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종종 명동이나 대학로에서 플래쉬 몹 1)으로‘凸’같은 모양을 만들기도 했으나, 밀고자들이 늘어나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집이라고 안심을 할 순 없다. 욕파라치들의 대부분이 8촌이 내의 친인척들이라는 통계도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법안이 생기게 된 것은 십팔 년 전, 우리나라에 서 열린 G28 정상회의 때문이었다. 혹시나 모를 테러방지와 시위, 집회 금지도 모자라서 음식물쓰레기 처리 연기, 자가용 사용 금지까 지금 나는 삼십팔 세.
지 일시적으로 강제 집행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각국 정상들이 모였
서른여덟 살, 그러니까 비속어 사용 금지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십
을 때,“육씨럴 놈들아, 좆같은 새끼들아!”를 외친 한 미치광이 노
팔 년에 접어들었다.
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각국 외신들은 육씨럴의 해석을 요구했
욕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
으며 육시(戮屍)를 차마 설명하지 못하는 입장을 헤아려주기는 커녕
했었지만 비속어의 강도에 따라 최하 500만원의 과태료와 최대 무
점잖은 자리를 망친 노인을 막지 못한 우리나라의 준비 부족을 탓
기징역이라는 강력한 승부수를 던진 정부의 승리였다. 회사에서 짤
하기도 하고 질 낮은 국민의식이라며 국민성을 폄하하기까지 했다.
린 회사원들도 더 이상“좆같네, 씨발”이라는 울분을 토해내지 않
코리아는 KFC(Korea Fucking Country)로 통했으며 외교마찰을
았고,“작작 쳐먹어, 이 자식아”라며 구수한 욕까지 리필 해주던
빚기도 했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동방예의지국 만들기 프로젝트
수많은 욕쟁이 할머니들은 영업정지를 피하기 위해‘손님은 왕이
로 비속어 사용 금지법을 선포하여 대내외적으로 알렸고, 해외에서
다’를 영업철학으로 내세웠다.
는 해외 토픽감으로 다시 한 번 비웃음을 샀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이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다가
그 때 난 대학 1학년, 낭랑 십팔 세 같은 애송이였다.
손바닥에 참을 인 대신 씨발을 세 번 새기며, 소형 녹음기를 항상 휴
비밀 동아리‘시파’에 가입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시파는 겉으
대하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형 녹음기로 욕파라치가 되어
로는 시(詩)를 쓰는 동아리로 위장을 하였고, 동아리 이름도‘시워
신고포상금을 노렸고, 초기에는 일부러 시비를 걸어 욕을 유도하는
요’로 귀여운 편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좆같은 사회를 좆같다고 말
전문 욕파라치까지 기승을 부렸었다. 선처를 바라며 술을 먹고 욕을
할 그 날이 오기만을 바라는 모임이었다. 욕이야 베개 속에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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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아주 짧은 시간에 특정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을 뜻함.
파묻고 하던 내가 시파에 가입한 것은 순전히 한 여자 때문이었다.
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팽배했
비밀 동아리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런 것을 알았다면 그녀를 그
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 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냥 포기했을 것이다. 그녀는 시파의 수장이었고 시파 내에서는 이
이 부분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별을 통보하는 남자친구에게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욕을 하여,
욕을 해서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다른 것들을 감수할 수
참다못한 남자친구가 소장하던 녹음기로 녹음을 하여 고소를 했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2년 동안 형을 마치고 돌아온 전설로 통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가 항상 교묘하게 중지만을 사용하여 머리를 긁고 코를 파는 것
동아리방엔 그녀 혼자 있었고 그녀는 중지로 코를 파고 있었다.
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박력 있는 삶을 동경했고 박력
내가 들어오자마자 모션을 취했던 것 같았고, 그런 행위를 일탈과
있는 삶에서 비속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예쁘게 생겨 인기가
반항으로 생각하는 그녀가 새삼스럽게 귀여웠다.
많았던 그녀는 공개적으로 애인을 모집했다. “저... 누나... 할 말이 있는데요...” 그녀는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강력한 표현을 원했고 항상 그 때마
콧 속을 정비하던 그녀는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옅은 미
다 녹음기를 코 앞에 들이댔다.‘내 마음도 몰라주는 바보’정도의
소를 분명히 봤었다.
선에서 더 나아가질 못하는 남자들을 그녀는 뻥뻥찼고 항상 소리를
“너 이 새끼, 너도 나 좋아하냐? 고백해 봐.”
질렀다.“이 씨발아, 더 강렬하게 표현하란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나오는 그녀의 거침없는 태도는 밤을 새면서 준비 했던 욕들을 되새기게 했다. 심호흡을 했다. 동아리 방엔 그녀와
시워요의 동아리회장은 눈부시게 예쁘다네
나, 둘 뿐이었고 욕을 들어줄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기 때문에 기
코를 팔 때 중지 내밀어도 정말 예쁘다네
회는 지금이었다.
동아리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욕쟁이
“이런 니미럴 씨부럴 탱탱불알 같은 년아.”
한 학번 선배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그녀의 톡톡 튀는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찬사였다고 지금
99학번 늙은이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도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아리에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실쭉 웃는 그녀의 입꼬리가 더 해보라고 부추기는 것을 놓치지 않
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았다. 욕 세례를 받은 것처럼, 방언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 튀어
스무 살의 패기였을 지도 모르고 나 정도면 되겠지 하는 자신감이
128
나왔다. 되 담을 수 없는 말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떡이나 한 번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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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고 하던 내가 시파에 가입한 것은 순전히 한 여자 때문이었다.
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팽배했
비밀 동아리인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런 것을 알았다면 그녀를 그
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 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냥 포기했을 것이다. 그녀는 시파의 수장이었고 시파 내에서는 이
이 부분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별을 통보하는 남자친구에게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욕을 하여,
욕을 해서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다른 것들을 감수할 수
참다못한 남자친구가 소장하던 녹음기로 녹음을 하여 고소를 했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2년 동안 형을 마치고 돌아온 전설로 통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가 항상 교묘하게 중지만을 사용하여 머리를 긁고 코를 파는 것
동아리방엔 그녀 혼자 있었고 그녀는 중지로 코를 파고 있었다.
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박력 있는 삶을 동경했고 박력
내가 들어오자마자 모션을 취했던 것 같았고, 그런 행위를 일탈과
있는 삶에서 비속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예쁘게 생겨 인기가
반항으로 생각하는 그녀가 새삼스럽게 귀여웠다.
많았던 그녀는 공개적으로 애인을 모집했다. “저... 누나... 할 말이 있는데요...” 그녀는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강력한 표현을 원했고 항상 그 때마
콧 속을 정비하던 그녀는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옅은 미
다 녹음기를 코 앞에 들이댔다.‘내 마음도 몰라주는 바보’정도의
소를 분명히 봤었다.
선에서 더 나아가질 못하는 남자들을 그녀는 뻥뻥찼고 항상 소리를
“너 이 새끼, 너도 나 좋아하냐? 고백해 봐.”
질렀다.“이 씨발아, 더 강렬하게 표현하란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나오는 그녀의 거침없는 태도는 밤을 새면서 준비 했던 욕들을 되새기게 했다. 심호흡을 했다. 동아리 방엔 그녀와
시워요의 동아리회장은 눈부시게 예쁘다네
나, 둘 뿐이었고 욕을 들어줄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기 때문에 기
코를 팔 때 중지 내밀어도 정말 예쁘다네
회는 지금이었다.
동아리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욕쟁이
“이런 니미럴 씨부럴 탱탱불알 같은 년아.”
한 학번 선배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그녀의 톡톡 튀는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찬사였다고 지금
99학번 늙은이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도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아리에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실쭉 웃는 그녀의 입꼬리가 더 해보라고 부추기는 것을 놓치지 않
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았다. 욕 세례를 받은 것처럼, 방언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 튀어
스무 살의 패기였을 지도 모르고 나 정도면 되겠지 하는 자신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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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되 담을 수 없는 말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떡이나 한 번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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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끝으로 내 말은 끝났고 내 청춘도 끝났다.
“미친 새끼, 난 더 이상 남자를 믿지 않아.”
무수히 많은 말들이 그녀의 녹음기에 담겼던 것이다. 그렇게 허 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성부에서는 탱탱불알이라는 말에 뜻을 밝혀달라고도 했었다. 하 지만 난 이미 패닉 상태였고 탱탱불알이 뭐긴 뭐야 씹탱불알 같은 년이 라고 내뱉어 변호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했던 욕 들은 등급 외로 지정이 되어 최고형인 20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십팔 년 동안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었지만 특별사면이라던 가, 광복절 특사라던가 하는 것들은 나와는 무관했다. 이렇게 억울 하게 십팔 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나는 가족도 잃고 친구들도 잃 었다.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이제는 탱탱불알도 아닌 두 쪽 이었다. 2년 뒤 그녀를 찾아갈 것이다. 니미럴 씨부럴 탱탱불알같은 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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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끝으로 내 말은 끝났고 내 청춘도 끝났다.
“미친 새끼, 난 더 이상 남자를 믿지 않아.”
무수히 많은 말들이 그녀의 녹음기에 담겼던 것이다. 그렇게 허 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성부에서는 탱탱불알이라는 말에 뜻을 밝혀달라고도 했었다. 하 지만 난 이미 패닉 상태였고 탱탱불알이 뭐긴 뭐야 씹탱불알 같은 년이 라고 내뱉어 변호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했던 욕 들은 등급 외로 지정이 되어 최고형인 20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십팔 년 동안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었지만 특별사면이라던 가, 광복절 특사라던가 하는 것들은 나와는 무관했다. 이렇게 억울 하게 십팔 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나는 가족도 잃고 친구들도 잃 었다.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이제는 탱탱불알도 아닌 두 쪽 이었다. 2년 뒤 그녀를 찾아갈 것이다. 니미럴 씨부럴 탱탱불알같은 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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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다음만화세상도 아니면서 만화영화같은 거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니미럴 씨부럴 탱탱불알 같은 세상.
김세영 호랑이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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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sy65@naver.com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다음만화세상도 아니면서 만화영화같은 거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니미럴 씨부럴 탱탱불알 같은 세상.
김세영 호랑이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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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sy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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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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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naver.com/jjihojjiho
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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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와 프랑스 배낭 여행길에, 여행 책자에 나온 작은 도시 룩셈부르크에 대해서 읽게 되었다. 작은 나라여서 그런지 정보 가 한페이지 정도에만 나와있었는데 숲에 파뭍힌 아치모양의 다 리 사진을 보고는, 예정에 없었지만 무작정 가기로 결정하였다. 룩셈부르크로 떠나는 기차안에는 말끔한 수트를 입은 비지니스 맨과 중고등 학생들이 가득했다. 금발의 소녀, 소녀들이 신나게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밤이 되어서 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리 더니 금세 사방으로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역주변의 숙소는 시 설이 별로 좋지도 않음에도 터무니 없이 비쌌는데, 그당시 장 기 배낭 여행중에 경비를 몇유로를 더 아끼겠다고 저렴한 숙소 를 찾아갔다. 복도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소리가 메아리처럼 웅웅 거리며 들 리는, 유령이 나올법한 곳이었다. 잠이 안와서 가져갔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전기를 읽으니 한층 더 공기가 스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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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와 프랑스 배낭 여행길에, 여행 책자에 나온 작은 도시 룩셈부르크에 대해서 읽게 되었다. 작은 나라여서 그런지 정보 가 한페이지 정도에만 나와있었는데 숲에 파뭍힌 아치모양의 다 리 사진을 보고는, 예정에 없었지만 무작정 가기로 결정하였다. 룩셈부르크로 떠나는 기차안에는 말끔한 수트를 입은 비지니스 맨과 중고등 학생들이 가득했다. 금발의 소녀, 소녀들이 신나게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밤이 되어서 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리 더니 금세 사방으로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역주변의 숙소는 시 설이 별로 좋지도 않음에도 터무니 없이 비쌌는데, 그당시 장 기 배낭 여행중에 경비를 몇유로를 더 아끼겠다고 저렴한 숙소 를 찾아갔다. 복도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소리가 메아리처럼 웅웅 거리며 들 리는, 유령이 나올법한 곳이었다. 잠이 안와서 가져갔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전기를 읽으니 한층 더 공기가 스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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뚠눈으로 밤을 지세고, 다음날 아침새벽 일찍 물어 물어 걸어 서 여행 책자속 사진에서 보고 반한 언덕위의 다리에 도착했다. 아치형의 다리밑으로 숲속에 파묻힌듯한 은은한 파스텔톤의 지 붕들과 고성이 마치 동화속의 마을을 연상케 했다. 예쁜 광경에 감동하여 넋을 잃고 있다가 이슬을 맞고 다리위에 뜬 무지개를 보았다. 힘들었어도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기차역으로 가는길에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기차 시 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조급해 지고, 우선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가 까이 보이는 빌딩안으로 몸을 피신했다. 빌딩안에서 발하는 은 은한 빨간 불빛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보니 밖에서는 잘 안보 여서 몰랐지만 그곳은 매우 크고 오래된 성당이었다. 사람들이 두고간 꽃다발과 크게 불어 있는 마더 테레사의 사진 포스터가 눈에 뛰었다. 왠지 지친 여행길에‘누군가가 나를 이곳으로 이 끈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에 불을 붓히고 가만 히 앉아서 웅장한 성당안의 천정과 벽에 그려있는 그림들을 가 만히 바라보았다. 기념으로 초를 하나 샀다. 기차시간을 놓쳐 서 다음 기차를 타고 목적지인 Strasbourg, France 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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뚠눈으로 밤을 지세고, 다음날 아침새벽 일찍 물어 물어 걸어 서 여행 책자속 사진에서 보고 반한 언덕위의 다리에 도착했다. 아치형의 다리밑으로 숲속에 파묻힌듯한 은은한 파스텔톤의 지 붕들과 고성이 마치 동화속의 마을을 연상케 했다. 예쁜 광경에 감동하여 넋을 잃고 있다가 이슬을 맞고 다리위에 뜬 무지개를 보았다. 힘들었어도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기차역으로 가는길에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기차 시 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조급해 지고, 우선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가 까이 보이는 빌딩안으로 몸을 피신했다. 빌딩안에서 발하는 은 은한 빨간 불빛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보니 밖에서는 잘 안보 여서 몰랐지만 그곳은 매우 크고 오래된 성당이었다. 사람들이 두고간 꽃다발과 크게 불어 있는 마더 테레사의 사진 포스터가 눈에 뛰었다. 왠지 지친 여행길에‘누군가가 나를 이곳으로 이 끈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에 불을 붓히고 가만 히 앉아서 웅장한 성당안의 천정과 벽에 그려있는 그림들을 가 만히 바라보았다. 기념으로 초를 하나 샀다. 기차시간을 놓쳐 서 다음 기차를 타고 목적지인 Strasbourg, France 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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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mble-skamble
김수경 SOO KIM Visual Artist, Amateur Writer, NY 거주 www.sookim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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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ukimart.com
skimble-skamble
김수경 SOO KIM Visual Artist, Amateur Writer, NY 거주 www.sookim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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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sukim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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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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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ang-eun.com
김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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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ang-eun.com
트위터를 통해 문장을 쓰고, 그것들을 모아 소설로 만듭니다.
@ moonmoso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고, 징 치고 이야기를 제공해준 인간들
김종소리
김기태, 김종소리, 김한주, 이채홍
쓰고, 또 쓰고, 찍고, 또 찍은 기간
2012.3.4 - 4.18
트위터를 통해 문장을 쓰고, 그것들을 모아 소설로 만듭니다.
@ moonmoso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고, 징 치고 이야기를 제공해준 인간들
김종소리
김기태, 김종소리, 김한주, 이채홍
쓰고, 또 쓰고, 찍고, 또 찍은 기간
2012.3.4 - 4.18
골목어귀 방앗간에서는 들깨 볶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이 곳이 황무지였던 1964년, 고우균(76세) 할아버지가 연 유서 깊은 방앗간이다. 혼자 내려와서 군에 들어갔던 할아버지는 군에서 나오자마자 정 부에 떠밀려서 이곳 망원까지 왔다고 했다. 너무 많이 고생해서 책 을 하나 써도 될 것 같다며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셨다. “손님과 상인이 신뢰가 없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 장사하는 사람 은 모두 거짓말을 해. 나는 손님에게 더 이익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해. 거짓말을 해서 나쁜 물건을 팔면 사기지. 그런 거짓말과 급이 다 른 거지. 그래서 우리가 손님이 많아. ” 할아버지는 어제 밤새 서울시장에게 보낼 청원서를 썼다. 방앗간 1
을 48년째 운영중인 할아버지는 기가 차다고 말했다. 망원역에도 이미 기업형 슈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고 근처 상암에
얼마 전,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인터넷 뉴스 링크를 하나 보내주 어 읽게 되었다.
홈플러스가 있는데, 670미터 떨어진 합정에 또 홈플러스가 들어오 기 때문이다. “합정동에 대형마트가 설치되면 망원 재래시장은 불을 보듯 초토 화됩니다. 왜냐하면 돈 많은 대형마트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망원
“4개 전철역에 3개의 홈플러스, 기네스북에 올려야…”
동 재래 시장 상인들은 아주 빈약합니다.” 문구점에서 산 평범한 편지지에 가끔씩 맞춤법이 틀린 구석이 있
2012-02-24 20:19 | 노컷뉴스 권성현 인턴기자
어도, 또박 또박 써 내려간 글씨는 할아버지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할아버지는 처음 홈플러스가 들어섰을 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
24일 오전 10시, 서울 망원시장은 비록 손님은 적었지만 활기찬
았다고 말했다.
분위기였다. 상인들은 자신의 가게 앞을 쓸고, 물건을 진열했다. 닭
“(대형마트가) 무슨 영향이 있을지 그땐 몰랐어. 한 두달정도 신기
강정, 닭꼬치를 파는 치킨 가게의 젊은 점원은 치킨을 튀기느라 여
하니까 사람들이 그리 가더라고.”
념이 없었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는 풍경이었지만 특이한 것은 시장 사람들 모
할아버지는 아들 대신에 아침에 잠깐 가게를 봐주고 계셨다. 2001 년 KT에 다니는 아들이 KT의 민영화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두 '홈플러스 NO'라고 적힌 녹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때,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방앗간을 물려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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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어귀 방앗간에서는 들깨 볶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이 곳이 황무지였던 1964년, 고우균(76세) 할아버지가 연 유서 깊은 방앗간이다. 혼자 내려와서 군에 들어갔던 할아버지는 군에서 나오자마자 정 부에 떠밀려서 이곳 망원까지 왔다고 했다. 너무 많이 고생해서 책 을 하나 써도 될 것 같다며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셨다. “손님과 상인이 신뢰가 없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 장사하는 사람 은 모두 거짓말을 해. 나는 손님에게 더 이익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해. 거짓말을 해서 나쁜 물건을 팔면 사기지. 그런 거짓말과 급이 다 른 거지. 그래서 우리가 손님이 많아. ” 할아버지는 어제 밤새 서울시장에게 보낼 청원서를 썼다. 방앗간 1
을 48년째 운영중인 할아버지는 기가 차다고 말했다. 망원역에도 이미 기업형 슈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있고 근처 상암에
얼마 전,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인터넷 뉴스 링크를 하나 보내주 어 읽게 되었다.
홈플러스가 있는데, 670미터 떨어진 합정에 또 홈플러스가 들어오 기 때문이다. “합정동에 대형마트가 설치되면 망원 재래시장은 불을 보듯 초토 화됩니다. 왜냐하면 돈 많은 대형마트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망원
“4개 전철역에 3개의 홈플러스, 기네스북에 올려야…”
동 재래 시장 상인들은 아주 빈약합니다.” 문구점에서 산 평범한 편지지에 가끔씩 맞춤법이 틀린 구석이 있
2012-02-24 20:19 | 노컷뉴스 권성현 인턴기자
어도, 또박 또박 써 내려간 글씨는 할아버지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할아버지는 처음 홈플러스가 들어섰을 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
24일 오전 10시, 서울 망원시장은 비록 손님은 적었지만 활기찬
았다고 말했다.
분위기였다. 상인들은 자신의 가게 앞을 쓸고, 물건을 진열했다. 닭
“(대형마트가) 무슨 영향이 있을지 그땐 몰랐어. 한 두달정도 신기
강정, 닭꼬치를 파는 치킨 가게의 젊은 점원은 치킨을 튀기느라 여
하니까 사람들이 그리 가더라고.”
념이 없었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는 풍경이었지만 특이한 것은 시장 사람들 모
할아버지는 아들 대신에 아침에 잠깐 가게를 봐주고 계셨다. 2001 년 KT에 다니는 아들이 KT의 민영화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두 '홈플러스 NO'라고 적힌 녹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때,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방앗간을 물려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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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나 할아버지의 아들 종순(49)씨가 가게안으로 들어왔다.
었다. 입점 될 홈플러스에서 반경 1km 위치에 있는 30년 된 소형
종순씨는 망원시장 상가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이번 조끼
마트조차 홈플러스가 입점하면 폐업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
착용 아이디어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차용했다고 말했다.“리본
었다.
을 하자”,“머리띠를 하자” 등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상가회는
2시가 지나자 시장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말끔한 시장 거리로
결국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조끼'를 선택했다. 그는 가게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 지하철역으로 황급히 발을 옮기는 젊
2벌 이상씩 나누어 가졌다고 말했다.
은이, 시장 안 분식점에서 튀김 먹고 있는 중학생 등 사람들이 늘
몇몇 회원들이 부끄러워할때 그는“이게 우리를 살리는 거다” 라며 그들에게 조끼 착용을 권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래시장의 위 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 옷을 입는 거라며 자신은 부끄러워도 이 옷을 입고 홍대까지 나간다고 말했다.
어갔다. 녹색 조끼를 입은 상인들의 손이 더 분주해졌다. 망원시장에서 700미터 떨어진 합정역 바로 앞에는 공사중인 대형 건물이 있었다. 건물의 크기는 곧 입점될 홈플러스의 넓이를 짐작
그는 이 조끼를 본 손님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라고 했다. 응원
케했다. 개설 등록 당시 제출한 기록에 따르면 지하 1층부터 지상 4
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무슨일이냐”묻는 손님도 있고,“그렇
층까지 홈플러스가 입점할 계획이었는데 현재 이 계획은 지하 2층
게 큰 회사랑 싸워서 이기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손님
1만4천제곱미터 규모로 축소된 상태다.
도 있다고 했다. 고종순씨는 마포구청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대형마트가 입점할 예정인 35층 규모의 주상복합 빌딩은 거의 다 지어진 듯이 보였다.
“(지하철 6호선)4개 전철역에 3개의 홈플러스. 내가 기네스북에
대형마트가 또 들어온다는 시장상인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올릴꺼야. 2010년 12월에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신청이 들어왔는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11일부터 녹색 조끼를 입고 시장에 나오고
데, 이게 등록제라 그냥 통과가 된거에요. 근데 우리한테는 아무 말
있으며 13일부터 '홈플러스 입점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약 2만명의
도 없었단 말이지. 2011년 10월에야, 그것도 우리가 질문해서 알았
서명을 받았다. 상인회는 다른 상인회와 연합해 3월 10일날 대규모
어요. 구청에서는 그 해 12월에 현장 실태 조사서도 만들었으면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해가 지나고 어제까지 우리에게 주지도 않았단 말이지.” 2011년 개정된 유통법에 의하면 전통상업보존구역에서 1km 이 상 떨어지지 않으면 대형마트가 허가될 수 없는데, 홈플러스 합정
읽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왜 무거웠는고 하니. 그 시장은 내
점의 경우 그전에 등록됐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논란
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여기
이 되고 있다.
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장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서울시가 한누리창업연구소에 의뢰한 조사서는 홈플러스가 입점
생각하니, 내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 것을 상상할 때와 비슷한 기분
했을 때 자영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
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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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나 할아버지의 아들 종순(49)씨가 가게안으로 들어왔다.
었다. 입점 될 홈플러스에서 반경 1km 위치에 있는 30년 된 소형
종순씨는 망원시장 상가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이번 조끼
마트조차 홈플러스가 입점하면 폐업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
착용 아이디어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차용했다고 말했다.“리본
었다.
을 하자”,“머리띠를 하자” 등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상가회는
2시가 지나자 시장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말끔한 시장 거리로
결국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조끼'를 선택했다. 그는 가게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 지하철역으로 황급히 발을 옮기는 젊
2벌 이상씩 나누어 가졌다고 말했다.
은이, 시장 안 분식점에서 튀김 먹고 있는 중학생 등 사람들이 늘
몇몇 회원들이 부끄러워할때 그는“이게 우리를 살리는 거다” 라며 그들에게 조끼 착용을 권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래시장의 위 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 옷을 입는 거라며 자신은 부끄러워도 이 옷을 입고 홍대까지 나간다고 말했다.
어갔다. 녹색 조끼를 입은 상인들의 손이 더 분주해졌다. 망원시장에서 700미터 떨어진 합정역 바로 앞에는 공사중인 대형 건물이 있었다. 건물의 크기는 곧 입점될 홈플러스의 넓이를 짐작
그는 이 조끼를 본 손님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라고 했다. 응원
케했다. 개설 등록 당시 제출한 기록에 따르면 지하 1층부터 지상 4
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무슨일이냐”묻는 손님도 있고,“그렇
층까지 홈플러스가 입점할 계획이었는데 현재 이 계획은 지하 2층
게 큰 회사랑 싸워서 이기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손님
1만4천제곱미터 규모로 축소된 상태다.
도 있다고 했다. 고종순씨는 마포구청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대형마트가 입점할 예정인 35층 규모의 주상복합 빌딩은 거의 다 지어진 듯이 보였다.
“(지하철 6호선)4개 전철역에 3개의 홈플러스. 내가 기네스북에
대형마트가 또 들어온다는 시장상인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올릴꺼야. 2010년 12월에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 신청이 들어왔는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11일부터 녹색 조끼를 입고 시장에 나오고
데, 이게 등록제라 그냥 통과가 된거에요. 근데 우리한테는 아무 말
있으며 13일부터 '홈플러스 입점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약 2만명의
도 없었단 말이지. 2011년 10월에야, 그것도 우리가 질문해서 알았
서명을 받았다. 상인회는 다른 상인회와 연합해 3월 10일날 대규모
어요. 구청에서는 그 해 12월에 현장 실태 조사서도 만들었으면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해가 지나고 어제까지 우리에게 주지도 않았단 말이지.” 2011년 개정된 유통법에 의하면 전통상업보존구역에서 1km 이 상 떨어지지 않으면 대형마트가 허가될 수 없는데, 홈플러스 합정
읽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왜 무거웠는고 하니. 그 시장은 내
점의 경우 그전에 등록됐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논란
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여기
이 되고 있다.
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장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서울시가 한누리창업연구소에 의뢰한 조사서는 홈플러스가 입점
생각하니, 내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 것을 상상할 때와 비슷한 기분
했을 때 자영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
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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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합정역 주변은 재개발로 인해 칸막이로 가로막힌 공간이 꽤 넓은 것 같았고, 그럼 그 공간 안에 있던 모든 건물들은 이미 사라져
“어서 오세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그 소리에 조
버렸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펐다. 언젠가는 내 기
금 위축돼, 조심스레 말했다.
억 속에 있는 합정동의 모습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몰
“저기, 그, 저, 그러니까, 저기, 아, 알바, 아니, 아르바이트 때문
랐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공간이 꽤 넓었다. 지금 이 순
에 왔는데요...”
간, 합정역 부근의 세 블럭이 한꺼번에 재개발되고 있다. 건물 한
“응? 그래? 이리와 봐.”
두 개가 재개발되는 것이었다면, 내가 이 글을 써야겠단 마음을 먹 진 않았을 것이다.
반쯤 대머리가 된 아저씨, 아니 형?, 아니 아저씨에 가까운 형, 아니 삼촌뻘쯤 되는 사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사내 가 그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소유자. 좋은 등
서두가 길다. 재미없고 지루하다. 어쨌든 이제부터 내가 쓰려고
빨의 소유자. 아저씨와 형의 경계에 서있는 사내. 그가 바로 합정역
하는 글은, 재개발되고 있는 저 넓은 공간에 있던 길과, 집과, 가게
8번 출구에 있던 식당, '어두육미'의 사장님이었다. 식당 이름에서
와, 목욕탕과, 여관과, 교회와, 그 밖의 수많은 장소들에서 있었던
부터 사내다운 느낌이 물씬 풍기지 않는가! 뭐 어쨌든. 아님, 말고.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로써 이미 사라져버린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당 '어두육미'의 명함이다.
글은 내 손가락을 통해 씌어질 테지만, 이 글은 합정역 근처의 세 블럭이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 합정동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 야기이다. 2
2003년 11월. 고3이었던 H는 수능을 끝내고 할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합정역 근처의 식당에 붙은 아르바이 트 모집 현수막을 발견했다. 그는 그곳을 기억해두고, 일부러 매일 매일 그곳을 지나가며 현수막이 그대로 붙어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수능 당일. 대충 수능을 보고 나온 그는, 부리나케 그곳
사내다움이든 명함이든 뭐 그렇다 치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아직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했는지, 현
자. 아무튼 그렇게 H와 사장님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장님이
수막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는 식당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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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합정역 주변은 재개발로 인해 칸막이로 가로막힌 공간이 꽤 넓은 것 같았고, 그럼 그 공간 안에 있던 모든 건물들은 이미 사라져
“어서 오세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그 소리에 조
버렸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펐다. 언젠가는 내 기
금 위축돼, 조심스레 말했다.
억 속에 있는 합정동의 모습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몰
“저기, 그, 저, 그러니까, 저기, 아, 알바, 아니, 아르바이트 때문
랐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공간이 꽤 넓었다. 지금 이 순
에 왔는데요...”
간, 합정역 부근의 세 블럭이 한꺼번에 재개발되고 있다. 건물 한
“응? 그래? 이리와 봐.”
두 개가 재개발되는 것이었다면, 내가 이 글을 써야겠단 마음을 먹 진 않았을 것이다.
반쯤 대머리가 된 아저씨, 아니 형?, 아니 아저씨에 가까운 형, 아니 삼촌뻘쯤 되는 사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사내 가 그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소유자. 좋은 등
서두가 길다. 재미없고 지루하다. 어쨌든 이제부터 내가 쓰려고
빨의 소유자. 아저씨와 형의 경계에 서있는 사내. 그가 바로 합정역
하는 글은, 재개발되고 있는 저 넓은 공간에 있던 길과, 집과, 가게
8번 출구에 있던 식당, '어두육미'의 사장님이었다. 식당 이름에서
와, 목욕탕과, 여관과, 교회와, 그 밖의 수많은 장소들에서 있었던
부터 사내다운 느낌이 물씬 풍기지 않는가! 뭐 어쨌든. 아님, 말고.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로써 이미 사라져버린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당 '어두육미'의 명함이다.
글은 내 손가락을 통해 씌어질 테지만, 이 글은 합정역 근처의 세 블럭이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 합정동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 야기이다. 2
2003년 11월. 고3이었던 H는 수능을 끝내고 할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합정역 근처의 식당에 붙은 아르바이 트 모집 현수막을 발견했다. 그는 그곳을 기억해두고, 일부러 매일 매일 그곳을 지나가며 현수막이 그대로 붙어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수능 당일. 대충 수능을 보고 나온 그는, 부리나케 그곳
사내다움이든 명함이든 뭐 그렇다 치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아직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했는지, 현
자. 아무튼 그렇게 H와 사장님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장님이
수막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는 식당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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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몇 살이냐? 고등학생 같은데...” H가 답했다. “열아홉이요. 오늘 수능 봤어요.” 사장님이 물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데?”
이었나 실바였나,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중 하나를 두 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H는 사장님이 사장님이라기보다 친한 형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장님도 H를 친한 동생으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 정도로 둘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H가 답했다. “지금 당장부터요.” 사장님이 말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부터 해.” 그렇게 H는 '어두육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H는 대충 본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간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일 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따금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식당 '어두육미'에 들려 사장님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름방학을 맞이한 H는 매일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 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따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지 않아도 됐
식당 '어두육미'는 말 그대로 생선으로 시작해서 고기로 끝나는
다. 식당 '어두육미'의 문은 그를 향해 언제든지 열려있었던 것이다.
곳이었다. 점심에는 생선구이 백반을 주 메뉴로 삼고, 저녁에는 삼 겹살에 소주를 주 메뉴로 삼았다. 그 덕에 H는 점심엔 사장님이 굽
여름방학에도 H와 사장님은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둘의 관계
는 생선을 나르고, 저녁엔 손님들의 테이블 앞에서 고기를 구웠다.
는 그대로 잘 유지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상
사장님은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H는 그 덕에 사장님과 함께
황에서 찾아오는 법이다.
소주를 잔뜩 마셨다. 어떤 날엔 가게에서 고기를 구우며 마셨고, 어
문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찾아왔다. 새로운 아르바이
떤 날엔 사장님 차를 타고, 연남동 기사식당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트생은 합정역 근처의 회사를 다니는 여자였다. 그녀는 회사 일을
H는 그 나날들이 즐거웠다. 물론 일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었
마치고난 뒤, 저녁 바쁜 시간대에 출근해 잠깐 일을 도와주다 마감
다. 친구들은 수능이 끝났다고 신나게 노는데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전에 퇴근했다. 사장님과 H는 그녀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그
하고 있는 것이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래서 둘이 치고 박고 싸웠다. 아마 그랬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
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선 프라이버시 상, 자세
을 것이다. 사장님이 H를 묵사발로 만들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히 쓰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아저씨뻘, 아니, 삼촌뻘인 사장님과의
H는 사장님한테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테니까. 진짜 문제는 H
술자리에서 듣게 되는 세상 이야기가 재밌었다. 그건 친구들은 겪
가 그녀의 시급이 자신의 시급보다 무려 천 원이나 많다는 것을 알
지 못할 생활이었다.
게 된 것이었다. H는 사장님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법한
손님이 없어 한가한 저녁엔 텔레비전을 통해 K-1을, 혹은 스타크
게 그녀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H보다 하는 일도 적었고, 일을
래프트 경기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크로캅이었나 박성준
시작한 것도 H보다 반년은 늦었다. 그런데도 시급은 H보다 무려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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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몇 살이냐? 고등학생 같은데...” H가 답했다. “열아홉이요. 오늘 수능 봤어요.” 사장님이 물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데?”
이었나 실바였나,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중 하나를 두 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H는 사장님이 사장님이라기보다 친한 형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장님도 H를 친한 동생으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 정도로 둘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H가 답했다. “지금 당장부터요.” 사장님이 말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부터 해.” 그렇게 H는 '어두육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H는 대충 본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간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일 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따금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식당 '어두육미'에 들려 사장님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름방학을 맞이한 H는 매일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 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따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지 않아도 됐
식당 '어두육미'는 말 그대로 생선으로 시작해서 고기로 끝나는
다. 식당 '어두육미'의 문은 그를 향해 언제든지 열려있었던 것이다.
곳이었다. 점심에는 생선구이 백반을 주 메뉴로 삼고, 저녁에는 삼 겹살에 소주를 주 메뉴로 삼았다. 그 덕에 H는 점심엔 사장님이 굽
여름방학에도 H와 사장님은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둘의 관계
는 생선을 나르고, 저녁엔 손님들의 테이블 앞에서 고기를 구웠다.
는 그대로 잘 유지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상
사장님은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H는 그 덕에 사장님과 함께
황에서 찾아오는 법이다.
소주를 잔뜩 마셨다. 어떤 날엔 가게에서 고기를 구우며 마셨고, 어
문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찾아왔다. 새로운 아르바이
떤 날엔 사장님 차를 타고, 연남동 기사식당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트생은 합정역 근처의 회사를 다니는 여자였다. 그녀는 회사 일을
H는 그 나날들이 즐거웠다. 물론 일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었
마치고난 뒤, 저녁 바쁜 시간대에 출근해 잠깐 일을 도와주다 마감
다. 친구들은 수능이 끝났다고 신나게 노는데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전에 퇴근했다. 사장님과 H는 그녀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그
하고 있는 것이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래서 둘이 치고 박고 싸웠다. 아마 그랬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
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선 프라이버시 상, 자세
을 것이다. 사장님이 H를 묵사발로 만들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히 쓰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아저씨뻘, 아니, 삼촌뻘인 사장님과의
H는 사장님한테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테니까. 진짜 문제는 H
술자리에서 듣게 되는 세상 이야기가 재밌었다. 그건 친구들은 겪
가 그녀의 시급이 자신의 시급보다 무려 천 원이나 많다는 것을 알
지 못할 생활이었다.
게 된 것이었다. H는 사장님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법한
손님이 없어 한가한 저녁엔 텔레비전을 통해 K-1을, 혹은 스타크
게 그녀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H보다 하는 일도 적었고, 일을
래프트 경기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크로캅이었나 박성준
시작한 것도 H보다 반년은 늦었다. 그런데도 시급은 H보다 무려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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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나 많게 책정됐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며칠 동안 H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들 이 떠올랐다. 사장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 내가 싸게 써먹 을 인간으로 보이는 걸까? 친하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임금을 그대
한 번 열린 H의 입은 생각들을 술술 풀어냈다. “내가 생각이 좀 짧았구나. 그래. 그럼 수정이 시급도 너랑 똑같 이 주는 걸로 할게.”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H는 이것저것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리
로 받아야 하는 걸까? 며칠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H는 결국 사
곤 이렇게 대답했다.
장님에게 터놓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네.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밤 열한시. 사장님이 식당 '어두육미'의 문을 잠갔다. H는 약간 긴
그렇게 수정씨의 시급은 H의 텃세로 인해 천 원이 삭감되었다.
장된 마음으로 입을 뗐다.
H는 그것이 매우 합당한 일이고, 그녀와 자신의 시급이 같아졌다는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아... 불쌍한 수
“뭔데?”
정(가명)씨... 아무튼 그걸로 사장님과 H 사이의 문제는 쉽사리 풀
“저기 그게...”
렸고, 둘은 그해 십이 월 H가 군대를 갈 때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
“답답하게 왜 이래? 말해봐. 뭔데?”
했다. 해피엔딩이었다. 수정씨만 빼면...
“그러니까... 그... 누나 말인데요.” “수정(가명)이? 왜?”
현재 식당 '어두육미'의 모습.
“누나 시급이요... 그니까... 누나 시, 시, 시급이 제 시급보다 왜 천 원이나 많은지 궁금해서요...” H는 말을 하면서 뭔가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선악 과를 따먹는, 혹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그런 기분이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H는 사장님의 눈을 쳐다보기가 두려워서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마침내 사장님이 말했다. “그게 불만인 거구나?” “아뇨... 불만인 건 아닌데요...” “그럼 뭐야?” “그냥 이해가 안 돼서요. 사실 누나는 저보다 하는 일도 없고, 일 도 저보다 한참 늦게 시작했잖아요. 근데 왜 천 원이나 많은 건지 잘 모르겠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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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나 많게 책정됐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며칠 동안 H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들 이 떠올랐다. 사장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 내가 싸게 써먹 을 인간으로 보이는 걸까? 친하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임금을 그대
한 번 열린 H의 입은 생각들을 술술 풀어냈다. “내가 생각이 좀 짧았구나. 그래. 그럼 수정이 시급도 너랑 똑같 이 주는 걸로 할게.”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H는 이것저것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리
로 받아야 하는 걸까? 며칠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H는 결국 사
곤 이렇게 대답했다.
장님에게 터놓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네.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밤 열한시. 사장님이 식당 '어두육미'의 문을 잠갔다. H는 약간 긴
그렇게 수정씨의 시급은 H의 텃세로 인해 천 원이 삭감되었다.
장된 마음으로 입을 뗐다.
H는 그것이 매우 합당한 일이고, 그녀와 자신의 시급이 같아졌다는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아... 불쌍한 수
“뭔데?”
정(가명)씨... 아무튼 그걸로 사장님과 H 사이의 문제는 쉽사리 풀
“저기 그게...”
렸고, 둘은 그해 십이 월 H가 군대를 갈 때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
“답답하게 왜 이래? 말해봐. 뭔데?”
했다. 해피엔딩이었다. 수정씨만 빼면...
“그러니까... 그... 누나 말인데요.” “수정(가명)이? 왜?”
현재 식당 '어두육미'의 모습.
“누나 시급이요... 그니까... 누나 시, 시, 시급이 제 시급보다 왜 천 원이나 많은지 궁금해서요...” H는 말을 하면서 뭔가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선악 과를 따먹는, 혹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그런 기분이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H는 사장님의 눈을 쳐다보기가 두려워서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마침내 사장님이 말했다. “그게 불만인 거구나?” “아뇨... 불만인 건 아닌데요...” “그럼 뭐야?” “그냥 이해가 안 돼서요. 사실 누나는 저보다 하는 일도 없고, 일 도 저보다 한참 늦게 시작했잖아요. 근데 왜 천 원이나 많은 건지 잘 모르겠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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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웃었다. 그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J는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내가 봐
J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직장을 따라 합정동으로 이사를 왔
도 J의 웃는 모습은 정말 예쁘다. 그런데 알고 보면 J의 웃는 모습
다. 숫기도 없고,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인 J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에는 옥의 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오른쪽 앞니다. 사실
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뛰어노느라 시끌
별 것 아니긴 하지만, 한 번 알고 난 뒤론 J가 웃을 때면 그의 앞니
벅적한 쉬는 시간에도 J는 재미도 없는 교과서만 들여다보고 앉아
를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순박한 게 매력인 J. 웃는 모습이 예쁜 J.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성(가명)이가 다가와 J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오른쪽 앞니는, 무슨 깡패도 아니고, 금이, 그것도 두
“넌 왜 만날 혼자 그러고 있어?”
개나 쩍쩍 가있다.
J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거렸다. 그러자 인성이가 말했다. “너 혹시 교회 다녀?” J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이번 주말에 나랑 같이 교회 갈래? 가면 선물도 주고 좋아. 어때? 갈래?” J는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요일 아침에 만나자. 너 파출소 알아? 학교 건너편 큰 길 에 있는 거.” “응.” "그럼 거기로 아홉시까지 오면 돼.” J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인성이도 J를 따라 웃어보였다.
일요일 오전 아홉 시. J는 인성이와 파출소 앞에서 만났다. 교회는 파출소 뒤로 보이는 꽤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둘은 이 패싸움이라도 했던 걸까? 아니다. J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렇
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랐다. J는 오랜
다면 왜?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어쩌다 앞니에 금
만에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참 좋았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 베
이, 그것도 두 개나 쩍쩍 가있는 거야? J는 내 물음에 입을 '이'하고
실베실 웃음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기도 했다. 인성
벌리더니 손가락으로 오른쪽 앞니를 톡톡 건드렸다. 금이 간 지는
이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 수
벌써 십오 년 이상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하
가 없었다. J는 교회에 들어가면 목사님 말씀도 잘 듣고, 찬송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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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웃었다. 그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J는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내가 봐
J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직장을 따라 합정동으로 이사를 왔
도 J의 웃는 모습은 정말 예쁘다. 그런데 알고 보면 J의 웃는 모습
다. 숫기도 없고,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인 J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에는 옥의 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오른쪽 앞니다. 사실
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뛰어노느라 시끌
별 것 아니긴 하지만, 한 번 알고 난 뒤론 J가 웃을 때면 그의 앞니
벅적한 쉬는 시간에도 J는 재미도 없는 교과서만 들여다보고 앉아
를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순박한 게 매력인 J. 웃는 모습이 예쁜 J.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성(가명)이가 다가와 J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오른쪽 앞니는, 무슨 깡패도 아니고, 금이, 그것도 두
“넌 왜 만날 혼자 그러고 있어?”
개나 쩍쩍 가있다.
J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거렸다. 그러자 인성이가 말했다. “너 혹시 교회 다녀?” J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이번 주말에 나랑 같이 교회 갈래? 가면 선물도 주고 좋아. 어때? 갈래?” J는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요일 아침에 만나자. 너 파출소 알아? 학교 건너편 큰 길 에 있는 거.” “응.” "그럼 거기로 아홉시까지 오면 돼.” J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인성이도 J를 따라 웃어보였다.
일요일 오전 아홉 시. J는 인성이와 파출소 앞에서 만났다. 교회는 파출소 뒤로 보이는 꽤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둘은 이 패싸움이라도 했던 걸까? 아니다. J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렇
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랐다. J는 오랜
다면 왜?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어쩌다 앞니에 금
만에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참 좋았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 베
이, 그것도 두 개나 쩍쩍 가있는 거야? J는 내 물음에 입을 '이'하고
실베실 웃음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기도 했다. 인성
벌리더니 손가락으로 오른쪽 앞니를 톡톡 건드렸다. 금이 간 지는
이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 수
벌써 십오 년 이상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하
가 없었다. J는 교회에 들어가면 목사님 말씀도 잘 듣고, 찬송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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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다면 인성이가 자신을 좋아해
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넘어진 건 넘어진 거고, 인성이가 곁에 있었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신은 찬송가를 아는 게 없었
다. 싫은 티를 내면 인성이는 그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었다. 그는 인
다. 게다가 J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더 긴
성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장이 됐다. 온몸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걷는 것도 부자연스러워졌
“응. 괜찮아. 얼른 들어가자.”
다. 그러자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인성이의 이야기도 잘 들리
“악! 정말 괜찮아? 너 피나!”
지 않았다.
인성이의 외침에 J를 일으켜 세운 아저씨가 J를 돌려 얼굴을 보
마침내 둘은 교회 앞에 다다랐다. J는 눈앞에 우뚝 서있는 교회
았다. 입에서 철철 피를 흘리면서 웃고 있는 남자 아이가 그의 눈동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위압적이었다. 그렇게 잠시 얼빠진 사람마
자에 비쳤다. 아저씨는 교회 안으로 뛰어가 휴지를 가져와 J의 입가
냥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자 인성이가 J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를 닦고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야. 들어가자.”
“너 얼른 집에 가야겠다. 병원 가야겠어.”
“응.”
J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이 아저씨가 뭐라고 하는 것인가. 가
J는 속으론 뭔지 모를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미소를 지어보였
라니? 인성이랑 친해지지 말라는 건가? J는 왈칵 눈물이 났다. 그
다. 그리고 무거운 발을 옮겼다.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J는
러자 입가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J는 서럽게 울었다. 인성이가 놀
교회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수
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점점 사람들이 자신
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이사 온 뒤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그
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J는 입을 틀어막은 휴지를 움
와 함께 교회에 들어가자며 손을 잡아끌고 있었다. J는 먹기 싫은
켜쥐고 교회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밥 먹는 기분으로 무거운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한 걸 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식은땀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 울, 네 방울.
집에 도착하고 보니 피가 멎어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아 도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병원을
드디어 교회 문까지 도달했다. J는 문턱을 보곤 무거운 발을 조금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 J는 이를 닦다가 앞니에
더 높이 들어올렸다. 하지만, 무거운 발은 그의 생각만큼 올라가지
금이 간 것을 발견했다. 분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인성이와 친해지
않았고, 문턱에 덜커덕 걸려버렸다. J는 철푸덕 넘어졌고, 긴장해
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친해지기는커녕, 더 멀어진 것 같았다. 게다
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있던 탓에 면상이 그대로 바닥에 빠악, 하
가 앞니에 금까지 생겼다.
고 박혀버렸다. 곁에 있던 인성이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다. “아악! 괜찮아?” J는 가만히 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생
그 모든 것이 교회 때문인 것 같았다. 그 교회 입구에 턱이 조금만 낮았더라도. 교회가 그렇게 높은 곳에 있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었다. 하나님이 미웠다. 예수님이 미웠다.
각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상체를 번쩍 들어올렸다. J는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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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다면 인성이가 자신을 좋아해
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넘어진 건 넘어진 거고, 인성이가 곁에 있었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자신은 찬송가를 아는 게 없었
다. 싫은 티를 내면 인성이는 그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었다. 그는 인
다. 게다가 J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더 긴
성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장이 됐다. 온몸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걷는 것도 부자연스러워졌
“응. 괜찮아. 얼른 들어가자.”
다. 그러자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인성이의 이야기도 잘 들리
“악! 정말 괜찮아? 너 피나!”
지 않았다.
인성이의 외침에 J를 일으켜 세운 아저씨가 J를 돌려 얼굴을 보
마침내 둘은 교회 앞에 다다랐다. J는 눈앞에 우뚝 서있는 교회
았다. 입에서 철철 피를 흘리면서 웃고 있는 남자 아이가 그의 눈동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위압적이었다. 그렇게 잠시 얼빠진 사람마
자에 비쳤다. 아저씨는 교회 안으로 뛰어가 휴지를 가져와 J의 입가
냥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자 인성이가 J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를 닦고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야. 들어가자.”
“너 얼른 집에 가야겠다. 병원 가야겠어.”
“응.”
J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이 아저씨가 뭐라고 하는 것인가. 가
J는 속으론 뭔지 모를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미소를 지어보였
라니? 인성이랑 친해지지 말라는 건가? J는 왈칵 눈물이 났다. 그
다. 그리고 무거운 발을 옮겼다.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J는
러자 입가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J는 서럽게 울었다. 인성이가 놀
교회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수
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점점 사람들이 자신
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이사 온 뒤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그
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J는 입을 틀어막은 휴지를 움
와 함께 교회에 들어가자며 손을 잡아끌고 있었다. J는 먹기 싫은
켜쥐고 교회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밥 먹는 기분으로 무거운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한 걸 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식은땀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 울, 네 방울.
집에 도착하고 보니 피가 멎어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아 도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병원을
드디어 교회 문까지 도달했다. J는 문턱을 보곤 무거운 발을 조금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 J는 이를 닦다가 앞니에
더 높이 들어올렸다. 하지만, 무거운 발은 그의 생각만큼 올라가지
금이 간 것을 발견했다. 분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인성이와 친해지
않았고, 문턱에 덜커덕 걸려버렸다. J는 철푸덕 넘어졌고, 긴장해
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친해지기는커녕, 더 멀어진 것 같았다. 게다
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있던 탓에 면상이 그대로 바닥에 빠악, 하
가 앞니에 금까지 생겼다.
고 박혀버렸다. 곁에 있던 인성이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다. “아악! 괜찮아?” J는 가만히 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생
그 모든 것이 교회 때문인 것 같았다. 그 교회 입구에 턱이 조금만 낮았더라도. 교회가 그렇게 높은 곳에 있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었다. 하나님이 미웠다. 예수님이 미웠다.
각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상체를 번쩍 들어올렸다. J는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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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J는 절대 교회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4
나는 J의 웃음이 여전히 예뻐 보였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슬퍼 보였다.
K는 어렸을 때 똥 싸는 게 무서웠다. 화장실 입구에 기름보일러 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J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더군다나 이따금 벌레들이 출몰하기도 했다. 바퀴벌레, 곱등이, 지
기 위해서 예쁜 웃음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그의 웃음과 앞니, 그
렁이, 기타 등등... 화장실에 가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오
아래 숨겨진 외로움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줌이야 금방 싸고 나오면 됐기에 괜찮았지만, 똥은 아니었다. 똥은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했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
J와 인성이가 만났던 파출소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 뒤
었다. 그래서 K는 똥을 참기 시작했다. 똥이 마려워도 최선을 다해
에 교회와 언덕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로 지금은 주상복합이 올
서 참았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지 않는 한, 화장실에
라가고 있다.
가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K는 일주일에 한 번, 많아 봐야 두 번 정도 똥을 쌌다. 제 스스로 변비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잠을 자다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깨어났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화장실에 혼자 갈 용 기가 나질 않았다. 이불에서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힘을 다 해 나오려는 똥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똥은 들어가긴커녕, 당장이 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잠들어있는 형을 보았다. 미안하지만 형을 깨우기로 했다. “형. 형.” 형이 눈을 부비며, 잔뜩 잠이 묻은 목소리로 왜 그러느냐고 물었 다. “미안한데 형. 나 똥마려워서 그러는데. 나 똥 싸는 동안만 밖에 있어주면 안 돼? 무서워서...” 형은 인상을 썼다. “뭐가 무서워. 그냥 가서 싸.” “정말 무서워서 그래. 한 번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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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J는 절대 교회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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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J의 웃음이 여전히 예뻐 보였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슬퍼 보였다.
K는 어렸을 때 똥 싸는 게 무서웠다. 화장실 입구에 기름보일러 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J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더군다나 이따금 벌레들이 출몰하기도 했다. 바퀴벌레, 곱등이, 지
기 위해서 예쁜 웃음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그의 웃음과 앞니, 그
렁이, 기타 등등... 화장실에 가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오
아래 숨겨진 외로움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줌이야 금방 싸고 나오면 됐기에 괜찮았지만, 똥은 아니었다. 똥은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했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
J와 인성이가 만났던 파출소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 뒤
었다. 그래서 K는 똥을 참기 시작했다. 똥이 마려워도 최선을 다해
에 교회와 언덕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로 지금은 주상복합이 올
서 참았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지 않는 한, 화장실에
라가고 있다.
가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K는 일주일에 한 번, 많아 봐야 두 번 정도 똥을 쌌다. 제 스스로 변비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잠을 자다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깨어났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화장실에 혼자 갈 용 기가 나질 않았다. 이불에서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힘을 다 해 나오려는 똥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똥은 들어가긴커녕, 당장이 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잠들어있는 형을 보았다. 미안하지만 형을 깨우기로 했다. “형. 형.” 형이 눈을 부비며, 잔뜩 잠이 묻은 목소리로 왜 그러느냐고 물었 다. “미안한데 형. 나 똥마려워서 그러는데. 나 똥 싸는 동안만 밖에 있어주면 안 돼? 무서워서...” 형은 인상을 썼다. “뭐가 무서워. 그냥 가서 싸.” “정말 무서워서 그래. 한 번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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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형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그렇게 계속 흔들자 형이
습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영웅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 걸어가는데, 몸통 깊숙한 곳에서 불길한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
“아! 알았어! 대신 빨리 싸!”
했다. 멀미할 때의 느낌과 비슷한 울렁거림이었다. K는 별다른 의
K는 형의 손을 붙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K는 변기에 앉아 있는
심 없이 걸었다. 걷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속은 K
힘을 다해 똥을 아래로 밀었다.
의 예상과는 달리 점점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저 울렁거림
“우욱. 으으. 우욱. 으으으.”
에 불과했던 것이 차츰 고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K는 두려움을
그렇게 한 시간을 앉아있었다. 똥은 얼굴만 내밀고 제 몸통은 보
느꼈다. 하지만 K는 겉으론 태연한 척 걸었다. 주변에 그를 영웅으
여주지도 않았다. 그 사이 형은 밖에서 잠들어버렸다. K는 똥의 머
로 받드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K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
리 부분을 휴지로 잡아 변기 속에 넣고는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
내렸다. 고통의 크기는 이미 K가 참아낼 수 있는 한도를 훨씬 뛰어
리곤 잠들어있는 형을 얼른 깨우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금
넘고 있었다. K는 그의 정신력을 십분 발휘하여 끝까지, 정말 끝까
세 형은 쌔근쌔근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K는 배가 아파 잠이 오
지 참았다.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K가 기억하는 건
지 않았다.
여기까지다. 눈을 떠보니 K는 병원에 누워있었다. K가 누워있던 병 원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 병원 건물은 아래 사진 속의 그림이
이튿날 아침. 다행히도 배는 아프지 않았다. K는 자고 일어나니
있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배도 아프지 않고, 똥도 마렵지 않은 게 신기했다. 어쨌든 잘됐다고 생각하며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우유를 마시고, 점심을 먹어도 배 는 아프지 않았다. 똥도 마렵지 않았다. K는 자신의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그날 오후 친구들과 비비 탄 총 싸움을 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K는 집으로 뛰어가 비비탄 총을 들고 친구들 과 만났다. K와 친구들은 두 팀으로 나눠 학교 앞 골목길에서 총 싸 움을 시작했다. K의 활약은 눈부셨다. 주차된 차들 사이로 이리저 리 뛰어다니며 용맹하게 적들을 향해 총을 쐈다. K가 쏜 비비탄은 적들의 몸통에 정확히 적중했다. 같은 팀 친구들은 환호했고, 적들 은 그를 노려봤다. 겁나서 화장실도 못 가는 애가 어디서 그런 용기 가 났던 걸까? 친구들은 K를 찬양했다. K는 치솟은 콧대를 하늘로 드리우고, 만화를 보며 저녁을 먹으러 집을 향해 걸었다. 그의 뒷모
178
179
K는 형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그렇게 계속 흔들자 형이
습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영웅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 걸어가는데, 몸통 깊숙한 곳에서 불길한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
“아! 알았어! 대신 빨리 싸!”
했다. 멀미할 때의 느낌과 비슷한 울렁거림이었다. K는 별다른 의
K는 형의 손을 붙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K는 변기에 앉아 있는
심 없이 걸었다. 걷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속은 K
힘을 다해 똥을 아래로 밀었다.
의 예상과는 달리 점점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저 울렁거림
“우욱. 으으. 우욱. 으으으.”
에 불과했던 것이 차츰 고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K는 두려움을
그렇게 한 시간을 앉아있었다. 똥은 얼굴만 내밀고 제 몸통은 보
느꼈다. 하지만 K는 겉으론 태연한 척 걸었다. 주변에 그를 영웅으
여주지도 않았다. 그 사이 형은 밖에서 잠들어버렸다. K는 똥의 머
로 받드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K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
리 부분을 휴지로 잡아 변기 속에 넣고는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
내렸다. 고통의 크기는 이미 K가 참아낼 수 있는 한도를 훨씬 뛰어
리곤 잠들어있는 형을 얼른 깨우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금
넘고 있었다. K는 그의 정신력을 십분 발휘하여 끝까지, 정말 끝까
세 형은 쌔근쌔근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K는 배가 아파 잠이 오
지 참았다.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K가 기억하는 건
지 않았다.
여기까지다. 눈을 떠보니 K는 병원에 누워있었다. K가 누워있던 병 원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 병원 건물은 아래 사진 속의 그림이
이튿날 아침. 다행히도 배는 아프지 않았다. K는 자고 일어나니
있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배도 아프지 않고, 똥도 마렵지 않은 게 신기했다. 어쨌든 잘됐다고 생각하며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우유를 마시고, 점심을 먹어도 배 는 아프지 않았다. 똥도 마렵지 않았다. K는 자신의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그날 오후 친구들과 비비 탄 총 싸움을 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K는 집으로 뛰어가 비비탄 총을 들고 친구들 과 만났다. K와 친구들은 두 팀으로 나눠 학교 앞 골목길에서 총 싸 움을 시작했다. K의 활약은 눈부셨다. 주차된 차들 사이로 이리저 리 뛰어다니며 용맹하게 적들을 향해 총을 쐈다. K가 쏜 비비탄은 적들의 몸통에 정확히 적중했다. 같은 팀 친구들은 환호했고, 적들 은 그를 노려봤다. 겁나서 화장실도 못 가는 애가 어디서 그런 용기 가 났던 걸까? 친구들은 K를 찬양했다. K는 치솟은 콧대를 하늘로 드리우고, 만화를 보며 저녁을 먹으러 집을 향해 걸었다. 그의 뒷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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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따지자면 그가 누워있던 자리는 허공인 셈이다. 그 자 리는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다.
“지금 댁의 아드님은 똥을 하도 안 싸서, 대장에 똥이 가득 차있 는 상태입니다. 아드님이 쓰러진 이유는 그 똥들이 부패했기 때문 이고요.”
K가 집으로 가던 길과 병원 사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면 K는 기절했기 때문이다.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꽉
“뭐라고요? 그럼 지금 얘가 똥을 안 싸서 쓰러진 거라고요?” K의 엄마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얘는 왜 똥을 안 싼 거지?
깨물고, 이마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집을 향해 걸어가다, K는 갑자기 풀썩, 쓰러졌다. 광우병에 걸려 풀썩, 풀썩 쓰러지는 소의
그때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 지난 현재. K는 여전히 일주일에 똥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K가 어떤 식으로 쓰러진 것인지 쉽게 상상할
을 두세 번 쌀까, 말까, 하다고 한다. (그러다 또 쓰러질라. 참지 말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갑자기 K가 쓰러지자, 친구들은 깜
고 그냥 싸라.)
짝 놀라 그를 둘러싸고 K를 불렀다. 하지만 K는 아무 대답이 없었
5
다. 친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한 친 구가 K의 엄마를 불러야겠다며 K의 집으로 뛰어갔다. 다른 친구들 은 K를 둘러싸고, 그들의 영웅을 보호했다. 잠시 후, K의 집으로 뛰
H는 몰랐다. 친구 J의 여자친구가 그런 사람인지. 하긴 알 턱이 없었다. H가 그녀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으니까...
어갔던 친구가 K의 엄마를 데리고 도착했다. K의 엄마는 쓰러져서 눈깔이 뒤집힌 채, 기절해있는 K를 보고 기절할 뻔 했지만, 곧 정신
그날 오후. H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은 지루하기
을 똑바로 차렸다. K의 엄마는 K를 엎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짝이 없었고, 그래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바로 그곳. 이내과로...
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
헐레벌떡, 이내과에 도착한 K의 엄마는 응급실이 어디냐고 소리
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H는 굳이 강의실 밖으로
를 질렀다. 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K의 엄마를 이내과의 원장, 이모
나와 전화를 받았다.
씨에게 인도했다. K의 엄마는 간호사의 손짓에 따라 K를 원장실 안
“여보세요.”
에 있는 침대 위에 눕혔다. 이씨 성을 가진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의
“왓썹! 나왔어!”
사가 K의 상태를 확인했다. K의 눈꺼풀을 까뒤집어 동공을 확인하
목소리의 주인공은 군대에 간 J였다.
고, 혓바닥을 보고, 청진기로 맥박을 확인하고, 기타 이러저러한 조
“나왔다고? 휴가? 어딘데?”
사를 한 뒤, 의사가 말했다.
“지금 막 집에 도착했어!”
“애가 언제 마지막으로 똥을 쌌습니까?” “네?" 의사의 황당한 질문에 K의 엄마는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180
오랜만에 J의 목소리를 들으니 H의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그럼 술 한 잔 어때?” “응. 일단 전화 끊을게. 나 수업 중이었어. 근데 이 번호는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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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따지자면 그가 누워있던 자리는 허공인 셈이다. 그 자 리는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다.
“지금 댁의 아드님은 똥을 하도 안 싸서, 대장에 똥이 가득 차있 는 상태입니다. 아드님이 쓰러진 이유는 그 똥들이 부패했기 때문 이고요.”
K가 집으로 가던 길과 병원 사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면 K는 기절했기 때문이다.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꽉
“뭐라고요? 그럼 지금 얘가 똥을 안 싸서 쓰러진 거라고요?” K의 엄마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얘는 왜 똥을 안 싼 거지?
깨물고, 이마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집을 향해 걸어가다, K는 갑자기 풀썩, 쓰러졌다. 광우병에 걸려 풀썩, 풀썩 쓰러지는 소의
그때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 지난 현재. K는 여전히 일주일에 똥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K가 어떤 식으로 쓰러진 것인지 쉽게 상상할
을 두세 번 쌀까, 말까, 하다고 한다. (그러다 또 쓰러질라. 참지 말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갑자기 K가 쓰러지자, 친구들은 깜
고 그냥 싸라.)
짝 놀라 그를 둘러싸고 K를 불렀다. 하지만 K는 아무 대답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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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친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한 친 구가 K의 엄마를 불러야겠다며 K의 집으로 뛰어갔다. 다른 친구들 은 K를 둘러싸고, 그들의 영웅을 보호했다. 잠시 후, K의 집으로 뛰
H는 몰랐다. 친구 J의 여자친구가 그런 사람인지. 하긴 알 턱이 없었다. H가 그녀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으니까...
어갔던 친구가 K의 엄마를 데리고 도착했다. K의 엄마는 쓰러져서 눈깔이 뒤집힌 채, 기절해있는 K를 보고 기절할 뻔 했지만, 곧 정신
그날 오후. H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은 지루하기
을 똑바로 차렸다. K의 엄마는 K를 엎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짝이 없었고, 그래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바로 그곳. 이내과로...
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
헐레벌떡, 이내과에 도착한 K의 엄마는 응급실이 어디냐고 소리
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H는 굳이 강의실 밖으로
를 질렀다. 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K의 엄마를 이내과의 원장, 이모
나와 전화를 받았다.
씨에게 인도했다. K의 엄마는 간호사의 손짓에 따라 K를 원장실 안
“여보세요.”
에 있는 침대 위에 눕혔다. 이씨 성을 가진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의
“왓썹! 나왔어!”
사가 K의 상태를 확인했다. K의 눈꺼풀을 까뒤집어 동공을 확인하
목소리의 주인공은 군대에 간 J였다.
고, 혓바닥을 보고, 청진기로 맥박을 확인하고, 기타 이러저러한 조
“나왔다고? 휴가? 어딘데?”
사를 한 뒤, 의사가 말했다.
“지금 막 집에 도착했어!”
“애가 언제 마지막으로 똥을 쌌습니까?” “네?" 의사의 황당한 질문에 K의 엄마는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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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J의 목소리를 들으니 H의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그럼 술 한 잔 어때?” “응. 일단 전화 끊을게. 나 수업 중이었어. 근데 이 번호는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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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꺼.” “알겠어. 그럼 수업 끝나고 이걸로 연락할게.” “응.” H는 전화를 끊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 앉았다. 더 이상 잠은 오
H가 J에게 무심히 물었다. “어떻긴 뭐가 어떻냐. 직접 가봐야 알아, 그건.” J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왜? 힘들어?”
지 않았다. H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냥 뭐. 하라는대로만 하면 되긴 하는데. 그게 싫어.”
“그럼 일단 합정역 도착하면 연락할게.”
“뭐 어떤 거 하는데?” “총 쏘고 뭐 이런 거 할 것 같지? 전혀 아니야. 요즘은 맨날 풀만
그렇게 둘은 합정역에서 만났다. H는 J의 새까맣게 탄 얼굴이 낯 설었다. J는 H의 하얀 얼굴이 낯설었다. 군대는 오래된 동네 친구 인 둘 사이에 낯설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둘은
뽑고 있어. 낮엔 하루 종일 풀 뽑고, 저녁엔 청소하고.” “불쌍하다.” H는 웃었지만 속으론 두려웠다. 곧 있으면 자신도 J와 같은 처
이내 전과 같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곧이어, 늦을 것 같으니
지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들어가 있으라는 J 여자친구의 연락을 받고, 둘은 먼저 이 술
“부럽다. 넌 맨날 이렇게 술 마시고 놀 수 있잖아.”
집에 들어가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다.
J는 정말로 H가 부러웠다. “됐어. 나도 갈 텐데 뭘. 난 네가 부럽다. 먼저 가서.” “하긴. 너 들어와서 처음부터 할 생각하면 내가 다 답답하다.” 이제 막 군대 간 지 백 일이 지난 J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로 맥주 이천을 다 마셔갈 즈음, J의 여자 친구가 쪼끼쪼끼에 모습을 드러냈다. H는 생각보다 그녀가 늙어 보여서, 좋게 말하면 성숙해 보여서 당황했다. 그녀가 다섯 살 연 상이란 건 예전에 J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대면하고 보니 그녀는 어른이었고, H 자신과 J는 그저 꼬맹이로 느껴졌다. 이런 여자와 사귀다니, H는 J가 부러웠다. H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른스러운 몸짓으로 그녀에게 악수를 청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에이치라고 합니다.” “그래. 군대는 어떠냐?”
“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182
183
“엄마 꺼.” “알겠어. 그럼 수업 끝나고 이걸로 연락할게.” “응.” H는 전화를 끊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 앉았다. 더 이상 잠은 오
H가 J에게 무심히 물었다. “어떻긴 뭐가 어떻냐. 직접 가봐야 알아, 그건.” J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왜? 힘들어?”
지 않았다. H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냥 뭐. 하라는대로만 하면 되긴 하는데. 그게 싫어.”
“그럼 일단 합정역 도착하면 연락할게.”
“뭐 어떤 거 하는데?” “총 쏘고 뭐 이런 거 할 것 같지? 전혀 아니야. 요즘은 맨날 풀만
그렇게 둘은 합정역에서 만났다. H는 J의 새까맣게 탄 얼굴이 낯 설었다. J는 H의 하얀 얼굴이 낯설었다. 군대는 오래된 동네 친구 인 둘 사이에 낯설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둘은
뽑고 있어. 낮엔 하루 종일 풀 뽑고, 저녁엔 청소하고.” “불쌍하다.” H는 웃었지만 속으론 두려웠다. 곧 있으면 자신도 J와 같은 처
이내 전과 같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곧이어, 늦을 것 같으니
지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들어가 있으라는 J 여자친구의 연락을 받고, 둘은 먼저 이 술
“부럽다. 넌 맨날 이렇게 술 마시고 놀 수 있잖아.”
집에 들어가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다.
J는 정말로 H가 부러웠다. “됐어. 나도 갈 텐데 뭘. 난 네가 부럽다. 먼저 가서.” “하긴. 너 들어와서 처음부터 할 생각하면 내가 다 답답하다.” 이제 막 군대 간 지 백 일이 지난 J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로 맥주 이천을 다 마셔갈 즈음, J의 여자 친구가 쪼끼쪼끼에 모습을 드러냈다. H는 생각보다 그녀가 늙어 보여서, 좋게 말하면 성숙해 보여서 당황했다. 그녀가 다섯 살 연 상이란 건 예전에 J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대면하고 보니 그녀는 어른이었고, H 자신과 J는 그저 꼬맹이로 느껴졌다. 이런 여자와 사귀다니, H는 J가 부러웠다. H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른스러운 몸짓으로 그녀에게 악수를 청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에이치라고 합니다.” “그래. 군대는 어떠냐?”
“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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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정중하게 H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모습은 쪼끼쪼끼 술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정장만 안 입었다 뿐이지, 둘은 모습은 마치 영업사원과 거래처 직원 같아 보였다. “악수는 왜 해?”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J가 웃으며 물었다. “그냥. 왠지 이렇게 되네.” H가 부끄럽다는 듯 대답했다. 자리에 앉으며 그녀가 수줍게 미소 를 지었다. H는 그녀가 꽤 괜찮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하게 서로의 소개를 마치고, 셋은 본격적으로 술자리를 시 작했다.
H가 다그치며 말했다. “여자애?” J가 H에게 눈치를 보냈다. “그래. 정말 기억 안 나?” H의 물음에 J는 대답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H는 J가 왜 저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J가 화장실에 가자, J의 여자친구가 조심스레 H에게 말을 걸었 다. “에이치씨. 저기. 지금 얘기하는 게 언제 얘기예요?” “네? 아, 제이 군대 가기 전 날 얘긴데요.”
대화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H와 J의 옛날이야기가 주를 이뤘 다. J의 여자친구는 둘의 이야기를 닭다리를 뜯어가며 들었다. 중 학교 때는 어땠고, 고등학교 때는 그 일이 참 잊을 수가 없다느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들으나 안 들으나, 그렇고 그 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 이야기는 J가 군대 가기 전날 밤으로 향했다. “난 진짜 너 입대 못하는 줄 알았어.” H가 말했다.
H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군대 가기 전날이요? 그날 제이랑 단 둘이 술 드신 거 아니었나요?” “네?” H는 등골이 송연해오는 걸 느꼈다. 이 여자 어른이 꼬맹이인 자 신을 혼낼 것만 같았다. 이실직고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아... 아니요... 그게... 저... 그러니까...” “둘이서만 드신 게 아니었군요?”
“다행히 잘 했지.”
“아니요. 두... 두... 둘이서만 마신 거 맞아요. 아니 맞는 건 싫
“아니. 너 그때 그 여자애랑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던 거야?”
은데. 아니 그러니까 때리진 마세요.”
H가 웃으며 말했다. J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걸 H는 눈치 채지 못했다. “여자애라니?” J가 짐짓 모른 체 대답했다. “기억 안 나? 하긴 네가 취하긴 취했었지. 에이. 그래도 기억 안 나진 않잖아. 걘 술자리 처음부터 있었는데.”
184
“왜 그러세요.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그날 둘 말고 또 누가 있었 어요?” H는 떨리는 손으로 맥주잔을 집었다. 그리고 맥주를 한 모금, 꿀꺽, 삼켰다. 머릿속엔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씨발. 좆됐다.' 그때 갑자기 J의 여자친구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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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정중하게 H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모습은 쪼끼쪼끼 술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정장만 안 입었다 뿐이지, 둘은 모습은 마치 영업사원과 거래처 직원 같아 보였다. “악수는 왜 해?”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J가 웃으며 물었다. “그냥. 왠지 이렇게 되네.” H가 부끄럽다는 듯 대답했다. 자리에 앉으며 그녀가 수줍게 미소 를 지었다. H는 그녀가 꽤 괜찮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하게 서로의 소개를 마치고, 셋은 본격적으로 술자리를 시 작했다.
H가 다그치며 말했다. “여자애?” J가 H에게 눈치를 보냈다. “그래. 정말 기억 안 나?” H의 물음에 J는 대답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H는 J가 왜 저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J가 화장실에 가자, J의 여자친구가 조심스레 H에게 말을 걸었 다. “에이치씨. 저기. 지금 얘기하는 게 언제 얘기예요?” “네? 아, 제이 군대 가기 전 날 얘긴데요.”
대화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H와 J의 옛날이야기가 주를 이뤘 다. J의 여자친구는 둘의 이야기를 닭다리를 뜯어가며 들었다. 중 학교 때는 어땠고, 고등학교 때는 그 일이 참 잊을 수가 없다느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들으나 안 들으나, 그렇고 그 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 이야기는 J가 군대 가기 전날 밤으로 향했다. “난 진짜 너 입대 못하는 줄 알았어.” H가 말했다.
H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군대 가기 전날이요? 그날 제이랑 단 둘이 술 드신 거 아니었나요?” “네?” H는 등골이 송연해오는 걸 느꼈다. 이 여자 어른이 꼬맹이인 자 신을 혼낼 것만 같았다. 이실직고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아... 아니요... 그게... 저... 그러니까...” “둘이서만 드신 게 아니었군요?”
“다행히 잘 했지.”
“아니요. 두... 두... 둘이서만 마신 거 맞아요. 아니 맞는 건 싫
“아니. 너 그때 그 여자애랑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던 거야?”
은데. 아니 그러니까 때리진 마세요.”
H가 웃으며 말했다. J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걸 H는 눈치 채지 못했다. “여자애라니?” J가 짐짓 모른 체 대답했다. “기억 안 나? 하긴 네가 취하긴 취했었지. 에이. 그래도 기억 안 나진 않잖아. 걘 술자리 처음부터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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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세요.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그날 둘 말고 또 누가 있었 어요?” H는 떨리는 손으로 맥주잔을 집었다. 그리고 맥주를 한 모금, 꿀꺽, 삼켰다. 머릿속엔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씨발. 좆됐다.' 그때 갑자기 J의 여자친구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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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큰소리들이 들렸다. H
J가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는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자신을 원망했다. 입이 방정이라더니, 이
“그래. 내가 미안했다. 내가 눈치가 없었지.”
런 상황에 꼭 맞는 말이었다.
“아냐. 괜찮아. 그러고 바로 화해했어. 그날 그 앞에 모텔 있지? 거기 가서 폭풍... 했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J가 화장실에서 나와 H에게 다가왔다.
H가 크게 웃어젖혔다.
J의 한쪽 볼이 퉁퉁 부어있었다. 보아하니 싸대기를 백 대는 맞은
“뭐야? 그럼 내가 잘 한 거네?”
모양이었다.
“잘하긴 뭘 잘해!”
“미안한데, 너 먼저 가라.”
J도 크게 웃어젖혔다.
J가 H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어... 어... 그래...” H는 우물우물 대답하고, 쪼끼쪼끼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걸어가
J와 J의 여자친구가 폭풍... 했던 모텔은 지금 이런 모습을 하 고 있다.
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찌할 수 없 는 노릇이었다.
그 후 J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딱히 H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마음이 상할 법도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느 술자리에 서 만난 둘은 웃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미 J는 그녀 와 헤어진 지 오래된 후였고, 그래서 둘은 별다른 앙금 없이 대화 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H가 물었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개새끼야. 너 때문에 싸대기 존나 맞 고 존나 혼났지. 그리고 둘이 존나 울었어. 다신 안 그러겠다고 나 도 존나 울었네.” “울긴 왜 우냐?” “네가 내 상황이었어야 돼. 그럼 눈물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 어. 진짜 얼마나 아팠는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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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큰소리들이 들렸다. H
J가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는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자신을 원망했다. 입이 방정이라더니, 이
“그래. 내가 미안했다. 내가 눈치가 없었지.”
런 상황에 꼭 맞는 말이었다.
“아냐. 괜찮아. 그러고 바로 화해했어. 그날 그 앞에 모텔 있지? 거기 가서 폭풍... 했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J가 화장실에서 나와 H에게 다가왔다.
H가 크게 웃어젖혔다.
J의 한쪽 볼이 퉁퉁 부어있었다. 보아하니 싸대기를 백 대는 맞은
“뭐야? 그럼 내가 잘 한 거네?”
모양이었다.
“잘하긴 뭘 잘해!”
“미안한데, 너 먼저 가라.”
J도 크게 웃어젖혔다.
J가 H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어... 어... 그래...” H는 우물우물 대답하고, 쪼끼쪼끼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걸어가
J와 J의 여자친구가 폭풍... 했던 모텔은 지금 이런 모습을 하 고 있다.
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찌할 수 없 는 노릇이었다.
그 후 J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딱히 H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마음이 상할 법도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느 술자리에 서 만난 둘은 웃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미 J는 그녀 와 헤어진 지 오래된 후였고, 그래서 둘은 별다른 앙금 없이 대화 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H가 물었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개새끼야. 너 때문에 싸대기 존나 맞 고 존나 혼났지. 그리고 둘이 존나 울었어. 다신 안 그러겠다고 나 도 존나 울었네.” “울긴 왜 우냐?” “네가 내 상황이었어야 돼. 그럼 눈물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 어. 진짜 얼마나 아팠는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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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고담 합정 1
싹 다 밀어버렸습니다
고담 합정 2
살짝
고담 합정 1
싹 다 밀어버렸습니다
고담 합정 2
살짝
왼쪽
자세히
오른쪽
우쭉 솟았습니다
왼쪽
자세히
오른쪽
우쭉 솟았습니다
무너뜨리기 전의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까?
세우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하지 않았을까요?
무너뜨리기 전의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까?
세우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하지 않았을까요?
해변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프카라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소설가 정영문은 모래사장에 '발레리'란 이름을 쓰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영화감독 홍상수는 고현정을 보았습니다. 가수 나훈아는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말없이 거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해변에 무엇이 보이십니까?
어떤 형식이든, 방식이든, 합작이든, 개인작업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음악이든,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책의 형태 내에서 구현될 수 있는 작품이면 가능합니다. (책에 인터넷 주소만을 게재하여 인터넷 상에서 구현될 수 있는 작품도 가능합니다.) 단, 이미지 작업의 경우엔, 흑백, 기본 사이즈는 A5, 펼침면 사용시 A4, 해상도는 300dpi 이상으로 해서 보내주세요. 페이지에 가득 차는 이미지의 경우엔, 잘릴 가능성이 있으니 사방 3mm씩 더 크게 작업해서 보내주세요. 보내주실 때에 당신이 해변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와, 당신의 작품과 프로필(마음대 로 작성해주세요)와 연락처(이메일, 홈페이지 등), 작가노트(텍스트로 된, 없어도 무 방합니다)도 함께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작품은 모두 아브락사스 14호에 실어드립니다. 아쉽게도 발행인의 주머니 사정상 고료는 드리지 못하지만, 참여하시는 모든 작가분들에게 아브락사스 14호를 한 권씩 드리겠습니다.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jongsoriz@naver.com으로 2012년 7월 10일 까지 보내주세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해변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프카라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소설가 정영문은 모래사장에 '발레리'란 이름을 쓰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영화감독 홍상수는 고현정을 보았습니다. 가수 나훈아는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말없이 거니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해변에 무엇이 보이십니까?
어떤 형식이든, 방식이든, 합작이든, 개인작업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음악이든,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책의 형태 내에서 구현될 수 있는 작품이면 가능합니다. (책에 인터넷 주소만을 게재하여 인터넷 상에서 구현될 수 있는 작품도 가능합니다.) 단, 이미지 작업의 경우엔, 흑백, 기본 사이즈는 A5, 펼침면 사용시 A4, 해상도는 300dpi 이상으로 해서 보내주세요. 페이지에 가득 차는 이미지의 경우엔, 잘릴 가능성이 있으니 사방 3mm씩 더 크게 작업해서 보내주세요. 보내주실 때에 당신이 해변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와, 당신의 작품과 프로필(마음대 로 작성해주세요)와 연락처(이메일, 홈페이지 등), 작가노트(텍스트로 된, 없어도 무 방합니다)도 함께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작품은 모두 아브락사스 14호에 실어드립니다. 아쉽게도 발행인의 주머니 사정상 고료는 드리지 못하지만, 참여하시는 모든 작가분들에게 아브락사스 14호를 한 권씩 드리겠습니다.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jongsoriz@naver.com으로 2012년 7월 10일 까지 보내주세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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