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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vol.14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아브락사스

여름

2012

~ ~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

~

1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

이천십이 년 여름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의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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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

~

1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

이천십이 년 여름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의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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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차례 발말

2

연재 Contemplation ~ Sharbong

5

발말 름여 년 이십천이

덥습니다. 해변에 가고 싶습니다. 근데 돈이 없습니다. - 집구석에서 선풍기 바람 맞으며 아발 김종소리

2

~ 말발

sea ~ 이사라

25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29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41

문제는 해안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47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55

해변의 환락열차 ~ Maccol

63

Eternal sunshine ~ 정민희

67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73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95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119

크레딧

126

판매처

127

차례 ~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여름입니다.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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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3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차례 발말

2

연재 Contemplation ~ Sharbong

5

발말 름여 년 이십천이

덥습니다. 해변에 가고 싶습니다. 근데 돈이 없습니다. - 집구석에서 선풍기 바람 맞으며 아발 김종소리

2

~ 말발

sea ~ 이사라

25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29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41

문제는 해안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47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55

해변의 환락열차 ~ Maccol

63

Eternal sunshine ~ 정민희

67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73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95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119

크레딧

126

판매처

127

차례 ~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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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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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이 년 여름 Contemplation ~ Shar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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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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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gnobrahS ~ noitalpmetnoC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6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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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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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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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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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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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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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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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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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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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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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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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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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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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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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Contemplation ~ Shar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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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gnobrahS ~ noitalpmetnoC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18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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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Contemplation ~ Shar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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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5 contemplation [kɔ̃tɑ̃plɑsjɔ̃] [여성명사] 1. 주시,응시,관조 2. 명상,심사숙고 = méditation 3. (영혼의) 신과의 합일 1분내지 3분사이로 같은 곳을 연속해서 촬영한 '파리 어느 곳' 입니다.

름여 년 이십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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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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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회마다 장소는 바뀝니다.

샤르봉 www.facebook.com/sharb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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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mplation ~ Shar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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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5 contemplation [kɔ̃tɑ̃plɑsjɔ̃] [여성명사] 1. 주시,응시,관조 2. 명상,심사숙고 = méditation 3. (영혼의) 신과의 합일 1분내지 3분사이로 같은 곳을 연속해서 촬영한 '파리 어느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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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회마다 장소는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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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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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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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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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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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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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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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

sea ~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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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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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이사라

sea ~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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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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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라사이 ~ a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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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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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라사이 ~ a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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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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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사람은 즐거움을 찾고 싶을 때 유독 바다에 가고싶어 하는 것 같습 니다. 영화에서도 거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 자신의 꿈은 바닷가 근처에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거나 젊고 예쁜 여자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싶 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바다는 꿈과 희망이 전부 몰려있는 파라다이스, 탈출구라는 하나의 상징이 된 것 같습니다. 해변에 대한 기억은 3년전에 갔던 오이도 바닷가가 마지막 인듯 합 니다. 때문에 뚜렷하지는 않네요. 여름바다가 아니어서 계절 특유의 에

름여 년 이십천이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이피망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쾌해지고 정화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너지를 느끼진 못했지만 그래도 해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상

이사라 tkfktkfkdltk@gmail.com http://tkfktkfkdltk.blog.me/ https://www.facebook.com/metdm

28

라사이 ~ aes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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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사람은 즐거움을 찾고 싶을 때 유독 바다에 가고싶어 하는 것 같습 니다. 영화에서도 거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 자신의 꿈은 바닷가 근처에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거나 젊고 예쁜 여자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싶 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바다는 꿈과 희망이 전부 몰려있는 파라다이스, 탈출구라는 하나의 상징이 된 것 같습니다. 해변에 대한 기억은 3년전에 갔던 오이도 바닷가가 마지막 인듯 합 니다. 때문에 뚜렷하지는 않네요. 여름바다가 아니어서 계절 특유의 에

름여 년 이십천이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이피망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쾌해지고 정화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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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지를 느끼진 못했지만 그래도 해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상

이사라 tkfktkfkdltk@gmail.com http://tkfktkfkdltk.blog.me/ https://www.facebook.com/metdm

28

라사이 ~ aes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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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고 축축한 것. 어제 발가락에서 피가 났다. 친구가 옆에서 웅얼 거려서 무슨 소리인가 하고 신경 쓰다가 바닥에 박힌 못에 발 이 걸렸다. 왜 바닥에 못 같은 것을 박아두는지 이해할 수가 없 다. 인도에 못을 박아 놓으려면 주의 표시를 한 안내판을 세워 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경고했어. 그러니까 네가 다쳐도 우리 책임이 아니 야.’라고 사방팔방 주의문을 붙여둔 맥도날드만큼은 아니더라 도 안내판 하나 정도는 세워둬도 괜찮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 나는 예민하다. 부산에서 우리는 사춘기처럼 예민했다. 못이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에는 다른 때보다 외국인이 많았다. 다른 때도 외국인이 많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많았다. 내 손톱에 금칠을 해준 네일 미용사가 국제행사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이렇게 외국인

가 두 개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제 잠들기 전에는 분명

들이 많은 가봐. 친구와 나는 같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

세 개가 생각났는데.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고 싶은데 국어사전

다. 나는 청탁 받은 에세이 하나와 청탁 받지 않은 에세이 하나

은 창고에 있다. 창고에 가려면 침대에서 일어난 다음 내 방에

를 부산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서 나가서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계단을 내려

해결할 생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믿었

가는 것까지는 할 수도 있겠는데 창고 열쇠를 찾으려니 엄두

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원고 두 개 쯤이야. 해변에서 몇 시

가 안 난다. 사실은 창고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안다. 침대에서

간 머물다보면 금방 쓸 거리가 생기겠지. 그러나 해변에는 아

40cm정도 떨어진 캐비넷 위에 있다. 하지만 열쇠를 가지러 갈

무것도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있고 드넓은 바다와 보트가 있

수가 없다.

고 고급호텔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

피로와 피곤. ‘피하다’의 의미를 가지지 않은 ‘피’로 시작되 는 단어도 두 개 밖에 안 떠오른다. 다른 피는 떠오른다. 빨갛

30

해변 근처에 있었다.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피난과 피서. ‘피하다’의 의미를 가진 ‘피’자로 시작되는 단어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서른 개 정도 박혀있는 인도(대체 못의 용도가 무엇일까.)는

가지였다. 쓸 거리가 없어. 나는 친구에게 토로했다. ‘여수 앞바다’를 ‘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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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고 축축한 것. 어제 발가락에서 피가 났다. 친구가 옆에서 웅얼 거려서 무슨 소리인가 하고 신경 쓰다가 바닥에 박힌 못에 발 이 걸렸다. 왜 바닥에 못 같은 것을 박아두는지 이해할 수가 없 다. 인도에 못을 박아 놓으려면 주의 표시를 한 안내판을 세워 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경고했어. 그러니까 네가 다쳐도 우리 책임이 아니 야.’라고 사방팔방 주의문을 붙여둔 맥도날드만큼은 아니더라 도 안내판 하나 정도는 세워둬도 괜찮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 나는 예민하다. 부산에서 우리는 사춘기처럼 예민했다. 못이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에는 다른 때보다 외국인이 많았다. 다른 때도 외국인이 많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많았다. 내 손톱에 금칠을 해준 네일 미용사가 국제행사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이렇게 외국인

가 두 개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제 잠들기 전에는 분명

들이 많은 가봐. 친구와 나는 같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

세 개가 생각났는데.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고 싶은데 국어사전

다. 나는 청탁 받은 에세이 하나와 청탁 받지 않은 에세이 하나

은 창고에 있다. 창고에 가려면 침대에서 일어난 다음 내 방에

를 부산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서 나가서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계단을 내려

해결할 생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믿었

가는 것까지는 할 수도 있겠는데 창고 열쇠를 찾으려니 엄두

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원고 두 개 쯤이야. 해변에서 몇 시

가 안 난다. 사실은 창고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안다. 침대에서

간 머물다보면 금방 쓸 거리가 생기겠지. 그러나 해변에는 아

40cm정도 떨어진 캐비넷 위에 있다. 하지만 열쇠를 가지러 갈

무것도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있고 드넓은 바다와 보트가 있

수가 없다.

고 고급호텔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

피로와 피곤. ‘피하다’의 의미를 가지지 않은 ‘피’로 시작되 는 단어도 두 개 밖에 안 떠오른다. 다른 피는 떠오른다. 빨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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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근처에 있었다.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피난과 피서. ‘피하다’의 의미를 가진 ‘피’자로 시작되는 단어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서른 개 정도 박혀있는 인도(대체 못의 용도가 무엇일까.)는

가지였다. 쓸 거리가 없어. 나는 친구에게 토로했다. ‘여수 앞바다’를 ‘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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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부산 앞바다’로 개사하면 어떨까. 친구와 나는 머리를 쥐어짠

좋을 것이다. 나는 요즘 기분이 좋아질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끝에 대안을 마련했다. 쓰레기였다. 이 분 정도, 사실은 이 글

있다. 더불어 기분이 나빠질 일이라면 뭐든지 거부하고 있는데

을 쓰기 전까지 심각하게 고려해봤지만 쓰레기는 쓰레기다. 쓰

이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기분이 나빠지는 일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벌어지기 때문이

레기를 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면 쓰레기를 발표해버리고

다. 기분 나쁜 일은 갑작스럽게, 거의 튀어 오르듯이 일어나기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때문에 더 기분이 나빠진다. 못에 발이 걸려 발가락에서 피가 난 일도 그랬다. 그 일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친구가 한 말도 6월 초 쯤에 이음 책방에 갔다가 아브락사스를 샀다. 아브락사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그 말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스를 읽는데 한 소설이 유독 재밌어서 소설 끝에 달린 메일 주

그저 잘 안 들렸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해변 근처에서 삼 일이나 머물렀는데 아무것도 못 건

그러나 곧 술을 먹고 하는 일은 결국 후회가 된다는 것을 다 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메일을 보낸 사람이 아브락사스의 발

한 일이라면 부산의 저온현상으로 입수가 금지된 것 정도가 있 었는데 올해만 네 번째로 부산을 여행하는 나에게는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행인이었다니. 그리고 글을 좀 써본 양반이었다니. 나는 그런

왜 이렇게 지랄이야?

줄도 모르고 전혀 부담 없이 메일을 보냈는데. 그 사람에게 답

내가 소리를 지르자 친구가 왜 이렇게 지랄이냐는 말로 나를

신을 받고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제가 쓴 다른 글도 읽어주

눌렀다. 네일샵에서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를 말리던 중이었다.

세요.’ 거기서 알았어야 했는데.

직원이 계산을 해달라고 해서 친구가 나대신 내 지갑에서 카드

무례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아브락사스에 글을 보낼 마

를 꺼내고 있었다. 친구는 카드를 못 찾아서 내 지갑에 있는 내

음을 먹었던 차에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약간 혼란스러워졌

용물을 몽땅 테이블 위에 털었다. 그때 나는 짜증이 치밀었고

다. 그 사람에게 내 원고를 실어달라고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친구 말대로 지랄을 했다.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브락사스의 다음호 표지로

32

름여 년 이십천이

취해서 실례 되는 말을 했을까봐 보내기 전에 몇 번 확인했다.

져서 기분이 나빠져 있었을 수도 있다. 해변에서 있었던 특별

친구는 여행 내내 내가 지랄을 한다고, 징징댄다고, 너무 많

예정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표지를 가진데다가 내

이 먹는다고, 담배를 너무 많이 핀다고, 돈을 너무 많이 쓴다

글이 실려 있는 잡지가 공짜로 우리 집에 배달된다면 기분이

고, 사진 찍을 때 표정이 똑같다고, 못생겼다고, 이기적이라고,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병을 비운 직후였다. 단순하게 소감을 적은 짧은 메일이었고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소로 메일을 보냈다. 갑자기 놀러온 친구와 창고에서 와인 한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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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부산 앞바다’로 개사하면 어떨까. 친구와 나는 머리를 쥐어짠

좋을 것이다. 나는 요즘 기분이 좋아질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끝에 대안을 마련했다. 쓰레기였다. 이 분 정도, 사실은 이 글

있다. 더불어 기분이 나빠질 일이라면 뭐든지 거부하고 있는데

을 쓰기 전까지 심각하게 고려해봤지만 쓰레기는 쓰레기다. 쓰

이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기분이 나빠지는 일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벌어지기 때문이

레기를 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면 쓰레기를 발표해버리고

다. 기분 나쁜 일은 갑작스럽게, 거의 튀어 오르듯이 일어나기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때문에 더 기분이 나빠진다. 못에 발이 걸려 발가락에서 피가 난 일도 그랬다. 그 일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친구가 한 말도 6월 초 쯤에 이음 책방에 갔다가 아브락사스를 샀다. 아브락사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그 말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스를 읽는데 한 소설이 유독 재밌어서 소설 끝에 달린 메일 주

그저 잘 안 들렸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해변 근처에서 삼 일이나 머물렀는데 아무것도 못 건

그러나 곧 술을 먹고 하는 일은 결국 후회가 된다는 것을 다 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메일을 보낸 사람이 아브락사스의 발

한 일이라면 부산의 저온현상으로 입수가 금지된 것 정도가 있 었는데 올해만 네 번째로 부산을 여행하는 나에게는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행인이었다니. 그리고 글을 좀 써본 양반이었다니. 나는 그런

왜 이렇게 지랄이야?

줄도 모르고 전혀 부담 없이 메일을 보냈는데. 그 사람에게 답

내가 소리를 지르자 친구가 왜 이렇게 지랄이냐는 말로 나를

신을 받고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제가 쓴 다른 글도 읽어주

눌렀다. 네일샵에서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를 말리던 중이었다.

세요.’ 거기서 알았어야 했는데.

직원이 계산을 해달라고 해서 친구가 나대신 내 지갑에서 카드

무례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아브락사스에 글을 보낼 마

를 꺼내고 있었다. 친구는 카드를 못 찾아서 내 지갑에 있는 내

음을 먹었던 차에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약간 혼란스러워졌

용물을 몽땅 테이블 위에 털었다. 그때 나는 짜증이 치밀었고

다. 그 사람에게 내 원고를 실어달라고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친구 말대로 지랄을 했다.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브락사스의 다음호 표지로

32

름여 년 이십천이

취해서 실례 되는 말을 했을까봐 보내기 전에 몇 번 확인했다.

져서 기분이 나빠져 있었을 수도 있다. 해변에서 있었던 특별

친구는 여행 내내 내가 지랄을 한다고, 징징댄다고, 너무 많

예정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표지를 가진데다가 내

이 먹는다고, 담배를 너무 많이 핀다고, 돈을 너무 많이 쓴다

글이 실려 있는 잡지가 공짜로 우리 집에 배달된다면 기분이

고, 사진 찍을 때 표정이 똑같다고, 못생겼다고, 이기적이라고,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병을 비운 직후였다. 단순하게 소감을 적은 짧은 메일이었고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소로 메일을 보냈다. 갑자기 놀러온 친구와 창고에서 와인 한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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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또 내가 나에 대해서 틀린 말들을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

굴에 들이밀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쓴다. 지

다고 친구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친구의 말이 대

금은 이 글을 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부분 옳기도 했다.

다른 감정은 없다. 오직 권태와 불안뿐이다.

나는 생선을 여섯 마리나 먹었고, 같이 쓰는 방에서 줄담배를

내 발가락에서 피가 난 날 우리는 부산을 떠났다. 부산을 떠나

피웠고, 부산이 홍콩으로 보일 정도로 쇼핑을 했고 못생기고

기 전날 밤에 해변으로 밤 산책을 나갔다. 해변을 걸을 때 친구

이기적이기도 하다. 친구는 나를 예쁘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이

는 취해 있었고 나는 평론가가 보낸 메일 때문에 심난해져 있

감언이설을 하는 거라고, 내가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었다. 해변으로 나오기 전에 메일을 확인했다. 한 달 전 쯤 출판사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평론가에게 내

착각이라고 말한다. 나도 내 친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장편소설 원고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평론가는 내 맞은편에

바로 보려고 노력한다.

름여 년 이십천이

언제나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붙잡고 사물을 똑

앉아 있었고 내 가방에는 몇 달 동안 넣고다녔던 원고가 있었 다. 메일은 그 원고에 대한 답이었다. 내 원고를 받은 다음날 다 읽었다는 것, 꼼꼼하고 세심하게 읽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문제제기들, 내가 마음을 다치지 않도

이 글을 보면 친구가 화를 낼까? 친구는 여행에서 같이 찍은

록 배려하는 말들. 나는 담배를 물고 화장실에 있는 친구에게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끼리

가서 그 평론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메

만 보자. 그렇게 말했는데 ‘우리끼리의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

일의 결론은 출간하기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그

한다면 친구가 절교를 선언할 지도 모르겠다. 화를 낼 걸 알면

얘기는 하지 않았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심이 있고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은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친구는 거품이 없고 항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허영

서 발표를 했다는 게 화를 더 돋울 것 같다. 이 글이 에세이를 가장한 소설, 그러니까 대부분이 허구인, 아니면 글을 채우고 있는 일들은 사실이라도 본질은 허구인,

다. 파도가 치면 종아리가 잠길 정도로만 들어가서 해변가를

그런 것이라고 해도 친구는 몹시 화를 낼 것이다. 친구는 자주

걸었다. 친구는 내 옆에서 걸었다. 친구는 평소보다 술을 많이

‘농담에도 뼈가 있다.’고 말한다. 친구는 농담에 섞인 진담을

마셨다. 흠뻑 취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고조된 것 같았다.

낚아채듯이 허구에 섞인 진실의 목(아니면 꼬리)을 잡고 내 얼

34

우리는 바닷가로 갔다. 내가 먼저 신발을 벗고 바다로 들어갔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다음에는 내가 잘 돼서 여기 다시 왔으면 좋겠다.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35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또 내가 나에 대해서 틀린 말들을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

굴에 들이밀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두려워하면서도 쓴다. 지

다고 친구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친구의 말이 대

금은 이 글을 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부분 옳기도 했다.

다른 감정은 없다. 오직 권태와 불안뿐이다.

나는 생선을 여섯 마리나 먹었고, 같이 쓰는 방에서 줄담배를

내 발가락에서 피가 난 날 우리는 부산을 떠났다. 부산을 떠나

피웠고, 부산이 홍콩으로 보일 정도로 쇼핑을 했고 못생기고

기 전날 밤에 해변으로 밤 산책을 나갔다. 해변을 걸을 때 친구

이기적이기도 하다. 친구는 나를 예쁘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이

는 취해 있었고 나는 평론가가 보낸 메일 때문에 심난해져 있

감언이설을 하는 거라고, 내가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었다. 해변으로 나오기 전에 메일을 확인했다. 한 달 전 쯤 출판사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평론가에게 내

착각이라고 말한다. 나도 내 친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장편소설 원고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평론가는 내 맞은편에

바로 보려고 노력한다.

름여 년 이십천이

언제나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붙잡고 사물을 똑

앉아 있었고 내 가방에는 몇 달 동안 넣고다녔던 원고가 있었 다. 메일은 그 원고에 대한 답이었다. 내 원고를 받은 다음날 다 읽었다는 것, 꼼꼼하고 세심하게 읽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문제제기들, 내가 마음을 다치지 않도

이 글을 보면 친구가 화를 낼까? 친구는 여행에서 같이 찍은

록 배려하는 말들. 나는 담배를 물고 화장실에 있는 친구에게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끼리

가서 그 평론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메

만 보자. 그렇게 말했는데 ‘우리끼리의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

일의 결론은 출간하기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그

한다면 친구가 절교를 선언할 지도 모르겠다. 화를 낼 걸 알면

얘기는 하지 않았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심이 있고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은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친구는 거품이 없고 항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허영

서 발표를 했다는 게 화를 더 돋울 것 같다. 이 글이 에세이를 가장한 소설, 그러니까 대부분이 허구인, 아니면 글을 채우고 있는 일들은 사실이라도 본질은 허구인,

다. 파도가 치면 종아리가 잠길 정도로만 들어가서 해변가를

그런 것이라고 해도 친구는 몹시 화를 낼 것이다. 친구는 자주

걸었다. 친구는 내 옆에서 걸었다. 친구는 평소보다 술을 많이

‘농담에도 뼈가 있다.’고 말한다. 친구는 농담에 섞인 진담을

마셨다. 흠뻑 취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고조된 것 같았다.

낚아채듯이 허구에 섞인 진실의 목(아니면 꼬리)을 잡고 내 얼

34

우리는 바닷가로 갔다. 내가 먼저 신발을 벗고 바다로 들어갔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다음에는 내가 잘 돼서 여기 다시 왔으면 좋겠다.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35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친구는 자기 시나리오가 팔리면

한다. 그리고 친구의 날선 말들이나 어떤 예민함이 그 애가 느

꼭 나와 함께 다시 부산에 오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돈

끼는 불안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을 많이 썼으니 다음에는 자기가 쓰겠다고, 다음에는 호텔에

주제 넘는 말이다. 자기 분수껏 해야지. 친구가 가끔 말한다.

묵자고 말했다. 너는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너에게 쓰는

현명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 분수를 잘 모르겠다. 내가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면 친구는 한심해한다. 그래서

돈은 아깝지 않으니까. 친구는 바닷가를 걷는 내내 그런 말들

나는 친구와 잠시 떨어져 있는 사이에 돌체앤가바나 가디건을

을 했다.

샀다는 것을 숨겼다. 친구는 기차역에 먼저 가 있고 나는 미술

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걷다가 해변 가운데에서 멈춰 섰

관에 들렀다.

다.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리니 바다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것 같

손에 금칠을 했네요.

았다.

해운대에서 미술관까지 태워다 준 택시기사가 말했다. 나는

어당겼다. 그만 봐. 검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름여 년 이십천이

너도 봐. 나는 친구를 불렀다. 친구가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끌

반짝거리는 손톱이 부끄러웠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와서 전 철을 타려고 센텀시티 쪽으로 갔다. 그 길에 어쩌다보니 가디 건을 사게 됐다. 부드러운 갈색에 울로 짜인 가디건이었다. 나 에게 잘 어울렸다. 금색 손톱과도. 나는 원래 들고 있던 쇼핑백

검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의 옷가지 사이에 가디건을 감추고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돌아보니 나는 그때 바다를 보면서 소원을 빌었던

우리는 부산을 떠났다. 기차에서 친구와 나는 한동안은 절대

것 같다.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기를.

부산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내가 말했다. 넓고 검었다. 들어가 보면 아마 깊을 것이었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검다.

우리가 만나고 12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특히 최근 이 삼 년 사이에 우리는 점점 외로워졌고 그만큼 예민하고 날카로워졌

해변에서 나는 부산에서 만났던 남자와 부산에 게스트하우스

다. 우리는 예전보다 조금 더 날을 세워 말하고 예전보다 훨씬

를 차렸지만 연애를 하느라 손님을 한 번도 받지 않은 내 친구

민감하게 서로의 말을 받아들인다.

를 자주 떠올렸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가지고 무엇을 쓰고 싶

졸업이 다가온다. 글이 안 팔린다. 돈이 없다. 친구와 나는 그 런 얘기는 가끔 한다. 너무 불안해. 나는 그런 말을 일상적으로

36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지는 않았다. 다른 이야기들을 캐내기 위해서 해변가를 걸었지 만 소득이 없었다.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여름옷을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37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친구는 자기 시나리오가 팔리면

한다. 그리고 친구의 날선 말들이나 어떤 예민함이 그 애가 느

꼭 나와 함께 다시 부산에 오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돈

끼는 불안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을 많이 썼으니 다음에는 자기가 쓰겠다고, 다음에는 호텔에

주제 넘는 말이다. 자기 분수껏 해야지. 친구가 가끔 말한다.

묵자고 말했다. 너는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너에게 쓰는

현명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 분수를 잘 모르겠다. 내가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면 친구는 한심해한다. 그래서

돈은 아깝지 않으니까. 친구는 바닷가를 걷는 내내 그런 말들

나는 친구와 잠시 떨어져 있는 사이에 돌체앤가바나 가디건을

을 했다.

샀다는 것을 숨겼다. 친구는 기차역에 먼저 가 있고 나는 미술

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걷다가 해변 가운데에서 멈춰 섰

관에 들렀다.

다.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리니 바다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것 같

손에 금칠을 했네요.

았다.

해운대에서 미술관까지 태워다 준 택시기사가 말했다. 나는

어당겼다. 그만 봐. 검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름여 년 이십천이

너도 봐. 나는 친구를 불렀다. 친구가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끌

반짝거리는 손톱이 부끄러웠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와서 전 철을 타려고 센텀시티 쪽으로 갔다. 그 길에 어쩌다보니 가디 건을 사게 됐다. 부드러운 갈색에 울로 짜인 가디건이었다. 나 에게 잘 어울렸다. 금색 손톱과도. 나는 원래 들고 있던 쇼핑백

검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의 옷가지 사이에 가디건을 감추고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돌아보니 나는 그때 바다를 보면서 소원을 빌었던

우리는 부산을 떠났다. 기차에서 친구와 나는 한동안은 절대

것 같다.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기를.

부산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내가 말했다. 넓고 검었다. 들어가 보면 아마 깊을 것이었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검다.

우리가 만나고 12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특히 최근 이 삼 년 사이에 우리는 점점 외로워졌고 그만큼 예민하고 날카로워졌

해변에서 나는 부산에서 만났던 남자와 부산에 게스트하우스

다. 우리는 예전보다 조금 더 날을 세워 말하고 예전보다 훨씬

를 차렸지만 연애를 하느라 손님을 한 번도 받지 않은 내 친구

민감하게 서로의 말을 받아들인다.

를 자주 떠올렸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가지고 무엇을 쓰고 싶

졸업이 다가온다. 글이 안 팔린다. 돈이 없다. 친구와 나는 그 런 얘기는 가끔 한다. 너무 불안해. 나는 그런 말을 일상적으로

36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지는 않았다. 다른 이야기들을 캐내기 위해서 해변가를 걸었지 만 소득이 없었다.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여름옷을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3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를. 너도, 나도. 우리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입고 다니기에는 너무 추웠던 날씨에 대해서 쓸 수도 있겠지만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다.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착시로 인해 어린아이들처럼 보였다. 꼬마애들이 모래사장에서 하키를 하고 있네. 저렇게 어린 애 들이 자기들끼리 바다에 들어가면 위험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보면 아이들은 성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환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 가 낯선 집에서 밤을 보내고 해변의 샌드위치 가게에 앉아 있 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일인가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보면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일을 하다가 테이블을 보면 테이블이 채워져

름여 년 이십천이

나누고 있었다. 여자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고개를 돌리고 무슨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있었다. 그 여자들은 샐러드를 시켜놓고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샌드위치 가게의 창가 자리에는 잘 차려 입은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잘 차려 입고 별로 먹지 않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아 름다운 여자들. 전에 그 테이블에 앉았던 여자들과 그 여자들 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 여자들마저 테이블을 떠나자 테이블 은 원래부터 비어 있던 것처럼 보였다. 여자들은 유령이었다. 해변조차 환각이었다. 저건 가짜 해변 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자꾸 무슨 말을 했냐고 나에게 묻는 친구에게 나는 말하고 싶었다. 저건 가짜 해변이야. 플라 스틱 비치. 그러나 ‘너 요즘 환청 들어?’라고 말했을 뿐이다. 환각이 보이거나 환청이 들려? 내가 보여? 저건 가짜 해변이 야. 검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기

38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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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를. 너도, 나도. 우리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자.

입고 다니기에는 너무 추웠던 날씨에 대해서 쓸 수도 있겠지만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다.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착시로 인해 어린아이들처럼 보였다. 꼬마애들이 모래사장에서 하키를 하고 있네. 저렇게 어린 애 들이 자기들끼리 바다에 들어가면 위험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보면 아이들은 성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환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 가 낯선 집에서 밤을 보내고 해변의 샌드위치 가게에 앉아 있 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일인가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보면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일을 하다가 테이블을 보면 테이블이 채워져

름여 년 이십천이

나누고 있었다. 여자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고개를 돌리고 무슨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있었다. 그 여자들은 샐러드를 시켜놓고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샌드위치 가게의 창가 자리에는 잘 차려 입은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잘 차려 입고 별로 먹지 않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아 름다운 여자들. 전에 그 테이블에 앉았던 여자들과 그 여자들 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 여자들마저 테이블을 떠나자 테이블 은 원래부터 비어 있던 것처럼 보였다. 여자들은 유령이었다. 해변조차 환각이었다. 저건 가짜 해변 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자꾸 무슨 말을 했냐고 나에게 묻는 친구에게 나는 말하고 싶었다. 저건 가짜 해변이야. 플라 스틱 비치. 그러나 ‘너 요즘 환청 들어?’라고 말했을 뿐이다. 환각이 보이거나 환청이 들려? 내가 보여? 저건 가짜 해변이 야. 검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검은 바다에 빠지지 말기

38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검은바다에 빠지지 말자 ~ 이피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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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김태인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이피망근 epimangg00@gmail.com

40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41


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김태인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이피망근 epimangg00@gmail.com

40

근망피이 ~ 자말 지지빠 에다바은검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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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아, 뜨겁다..’ 선글라스의 안경다리 밑으로 땀이 흐른다. 선 글라스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와 민낯 가리기의 용도가 있을 뿐, 더움을 막아주지는 못 함을 올 여름에도 느낀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 걷고, 몇 번 이런 행동을 한 후 옥계해수 욕장에 도착한다. 자신의 시원함을 철썩 같이 믿으라고 파도치 며 옥계양이 날 유혹한다. 나의 티셔츠에 어느 부분이 안 젖었 는지 모를 만큼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먼저 한다. 계단에 앉아 미지근한 바람에 나의 담배 연기도 섞여 보낸다.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내 몸을 뜨겁게 달군다.

름여 년 이십천이

방수팩에는 몇 개비의 담배와 만원, 소형스피커가 달린 MP3 를 담는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나의 파랭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러 간다. 튜브집 아저씨에게 삼천 원과 파랭이의 바람을 교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6월 13일. 나는 동해로 여행을 떠난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물품보관소에 배낭과 신발을 맡긴다.

환한다. 얼음물은 천오백 원. ‘이런, 동전 생기네..’ 모든 준비가 끝난다. 옥계양과 파랭이의 만남이 이루어진

어딘가에서 햇빛을 맞고 있는 학생들은 시험의 압박에 시달

다. 그녀는 나의 더위는 쉽게 가져가 주었으나, 파랭이를 자신

리고, 어떤 사람들은 더위에 여름휴가 생각이 간절해 질 그 시

의 갚은 곳까지 안내하진 않으려 한다. 땀과 내가 하나가 되었

기.

을 때야 비로소 온전한 만남, 둥실둥실이 이루어진다. 이제 나 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린다. 흥겨운 음악, 얼음

나는 몸을 웅크려 좌석에 내 몸을 끼운 채 엇비슷하게 반복되

물 세 모금, 담배 한 가치. 파티가 끝난 후, 고독을 즐길 시간.

는 풍경을 바라본다. 지루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두 시간 반

옥계양과 파랭이가 오붓함을 즐길 수 있도록, 난 잠시 공상에

의 버스여행을 마치고 지상에 내려 한껏 기지개를 펴 수축되어

빠진다.

있던 나의 몸을 풀어준다.

42

인태김 ~ 들것 는없련관 과변해

파랭이와 옥계양은 소곤거리기도 하고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43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아, 뜨겁다..’ 선글라스의 안경다리 밑으로 땀이 흐른다. 선 글라스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와 민낯 가리기의 용도가 있을 뿐, 더움을 막아주지는 못 함을 올 여름에도 느낀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 걷고, 몇 번 이런 행동을 한 후 옥계해수 욕장에 도착한다. 자신의 시원함을 철썩 같이 믿으라고 파도치 며 옥계양이 날 유혹한다. 나의 티셔츠에 어느 부분이 안 젖었 는지 모를 만큼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먼저 한다. 계단에 앉아 미지근한 바람에 나의 담배 연기도 섞여 보낸다.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내 몸을 뜨겁게 달군다.

름여 년 이십천이

방수팩에는 몇 개비의 담배와 만원, 소형스피커가 달린 MP3 를 담는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나의 파랭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러 간다. 튜브집 아저씨에게 삼천 원과 파랭이의 바람을 교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6월 13일. 나는 동해로 여행을 떠난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물품보관소에 배낭과 신발을 맡긴다.

환한다. 얼음물은 천오백 원. ‘이런, 동전 생기네..’ 모든 준비가 끝난다. 옥계양과 파랭이의 만남이 이루어진

어딘가에서 햇빛을 맞고 있는 학생들은 시험의 압박에 시달

다. 그녀는 나의 더위는 쉽게 가져가 주었으나, 파랭이를 자신

리고, 어떤 사람들은 더위에 여름휴가 생각이 간절해 질 그 시

의 갚은 곳까지 안내하진 않으려 한다. 땀과 내가 하나가 되었

기.

을 때야 비로소 온전한 만남, 둥실둥실이 이루어진다. 이제 나 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린다. 흥겨운 음악, 얼음

나는 몸을 웅크려 좌석에 내 몸을 끼운 채 엇비슷하게 반복되

물 세 모금, 담배 한 가치. 파티가 끝난 후, 고독을 즐길 시간.

는 풍경을 바라본다. 지루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두 시간 반

옥계양과 파랭이가 오붓함을 즐길 수 있도록, 난 잠시 공상에

의 버스여행을 마치고 지상에 내려 한껏 기지개를 펴 수축되어

빠진다.

있던 나의 몸을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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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태김 ~ 들것 는없련관 과변해

파랭이와 옥계양은 소곤거리기도 하고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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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대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힘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감추려는 듯이 힘차게 떠난다. ‘미안..미안... 그렇지만 당신과 나는 영원히 힘께 할 수 없으

내가 그들을 도우면 그들의 만남시간이 줄어드는지도 모르면 서.

니..’

‘쩝쩝, 목말라..’ 눈도 뜨지 않고 물을 마신다. ‘어라.. 얼음 이..’ 얼음의 남은 생명은 반뿐이다. 주의를 두리번거린다. 더

“딸깍”

이상 옥계양이 아닌 것 같은 바다와 파랭이, 나, 방수팩 안의

그는 소용돌이치며 사라진다.

물건들만 나의 동공에 박힌다. ‘...또다...’ 가끔 이 시기의 바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는 나를 당혹케 한다. 이 때 ‘고래사냥’ 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나도 모르게 엷은 미

두근 두근 두근

거대한 물줄기와 함께 그가 나타난다.

름여 년 이십천이

두근 두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난다. 그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소를 띤다. 앞으로 물병의 얼음이 다시 반으로 줄어들 때쯤 만

나의 영감. 나의 할아방. 그는 자신의 등에 나를 태운다. 그가 반가움에 눈물을 보인 다. 나는 미안함에 단지 그를 바라본다. 그의 눈이 그동안 그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 해주고, 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들을 받는다. 한참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이 마르다. 물통의 주 둥이로 남은 얼음을 받아먹는다. 그는 안다. 얼음이 사라지면 나를 옥계양에게 데려다주어야 함을. 나는 차마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눈을 감는다. 그는 가만히 나를 해변가에 데려다주고 헤어짐의 아쉬움을

44

인태김 ~ 들것 는없련관 과변해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45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대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힘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감추려는 듯이 힘차게 떠난다. ‘미안..미안... 그렇지만 당신과 나는 영원히 힘께 할 수 없으

내가 그들을 도우면 그들의 만남시간이 줄어드는지도 모르면 서.

니..’

‘쩝쩝, 목말라..’ 눈도 뜨지 않고 물을 마신다. ‘어라.. 얼음 이..’ 얼음의 남은 생명은 반뿐이다. 주의를 두리번거린다. 더

“딸깍”

이상 옥계양이 아닌 것 같은 바다와 파랭이, 나, 방수팩 안의

그는 소용돌이치며 사라진다.

물건들만 나의 동공에 박힌다. ‘...또다...’ 가끔 이 시기의 바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는 나를 당혹케 한다. 이 때 ‘고래사냥’ 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나도 모르게 엷은 미

두근 두근 두근

거대한 물줄기와 함께 그가 나타난다.

름여 년 이십천이

두근 두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난다. 그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소를 띤다. 앞으로 물병의 얼음이 다시 반으로 줄어들 때쯤 만

나의 영감. 나의 할아방. 그는 자신의 등에 나를 태운다. 그가 반가움에 눈물을 보인 다. 나는 미안함에 단지 그를 바라본다. 그의 눈이 그동안 그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 해주고, 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들을 받는다. 한참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이 마르다. 물통의 주 둥이로 남은 얼음을 받아먹는다. 그는 안다. 얼음이 사라지면 나를 옥계양에게 데려다주어야 함을. 나는 차마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눈을 감는다. 그는 가만히 나를 해변가에 데려다주고 헤어짐의 아쉬움을

44

인태김 ~ 들것 는없련관 과변해

해변과 관련없는 것들 ~ 김태인

45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작가노트> 뜨거운 여름 날, 이 글을 읽고 웃느라 잠시 더위를 잊기 바라는 마음 으로 써보았어요. <작품해설> 상징성에 있어서 복선을 제대로 깔지 못 한 것 같아 이해를 돕고자 적어봅니다. (하지만 해석은 항상 독자의 몫이죠!) 엉덩이-파랭이 옥계양-변기

름여 년 이십천이 인태김 ~ 들것 는없련관 과변해

문제는 해안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홍구김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46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고래-응가

4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작가노트> 뜨거운 여름 날, 이 글을 읽고 웃느라 잠시 더위를 잊기 바라는 마음 으로 써보았어요. <작품해설> 상징성에 있어서 복선을 제대로 깔지 못 한 것 같아 이해를 돕고자 적어봅니다. (하지만 해석은 항상 독자의 몫이죠!) 엉덩이-파랭이 옥계양-변기

름여 년 이십천이 인태김 ~ 들것 는없련관 과변해

문제는 해안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홍구김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46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고래-응가

4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에피가 허벅지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지만 제사는 대답이 없었다. “제사, 더워. 에어컨 좀 틀어줘.” “계속 틀어 놓고 있었어.” 제사가 핸들을 틀며 말했다. “내 생각에 너는 말이 많아서 더운 것 같아.” “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입 다물고 있을게.” 에피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고, 제사는 그런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도로가 굽이칠 때마다 창밖으로 절벽과 면한

으면서 차창 밖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도로는 한산했지

름여 년 이십천이

한동안 말이 없던 에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또 시작이군 그래. 또.” 제사가 대답했다. 그녀는 왼손을 핸들 위로 옮겼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너는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야. 왠지

만, 감색 차체 위로 흡수되는 태양빛이 짜증과 함께 어느 정도

알아? 잊을만 하면 내가 얘기할 거거든. 너는 매번 고통에 시

의 불안감을 안겨 줬기 때문이었다. 속도계가 시속 60km를 가

달릴 거야.”

리켰다. 운전자의 심각한 표정치고는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었

에피가 고개를 돌려 제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 그에 반해 두 다리를 꼰 채로 조수석에 걸터앉은 에피 그린

“그게 그 정도의 일인지 난 잘 모르겠어.”

의 표정은 좀 더 자연스러웠다. 다만 그녀는 잠시도 시선을 가

“난 그이가 그러는 걸 처음 봤어.”

만히 두지 않았고, 제사는 그녀의 수산스러운 눈동자에 최대한

“그럴 테지. 넌 걔를 잘 모르니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른다고? 내가 그이를 모른다고?”

“어제 청소하다가 말이야. 개수구에 낀 동전을 주웠어. 행운 이지, 행운.”

48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제사 프라이데이는 눈썹을 찡그리고 왼손 엄지 손톱을 물어 뜯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알면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거야. 그 머저리 같은 새끼 를 네가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진작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

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49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에피가 허벅지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지만 제사는 대답이 없었다. “제사, 더워. 에어컨 좀 틀어줘.” “계속 틀어 놓고 있었어.” 제사가 핸들을 틀며 말했다. “내 생각에 너는 말이 많아서 더운 것 같아.” “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입 다물고 있을게.” 에피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고, 제사는 그런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도로가 굽이칠 때마다 창밖으로 절벽과 면한

으면서 차창 밖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도로는 한산했지

름여 년 이십천이

한동안 말이 없던 에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또 시작이군 그래. 또.” 제사가 대답했다. 그녀는 왼손을 핸들 위로 옮겼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너는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야. 왠지

만, 감색 차체 위로 흡수되는 태양빛이 짜증과 함께 어느 정도

알아? 잊을만 하면 내가 얘기할 거거든. 너는 매번 고통에 시

의 불안감을 안겨 줬기 때문이었다. 속도계가 시속 60km를 가

달릴 거야.”

리켰다. 운전자의 심각한 표정치고는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었

에피가 고개를 돌려 제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 그에 반해 두 다리를 꼰 채로 조수석에 걸터앉은 에피 그린

“그게 그 정도의 일인지 난 잘 모르겠어.”

의 표정은 좀 더 자연스러웠다. 다만 그녀는 잠시도 시선을 가

“난 그이가 그러는 걸 처음 봤어.”

만히 두지 않았고, 제사는 그녀의 수산스러운 눈동자에 최대한

“그럴 테지. 넌 걔를 잘 모르니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른다고? 내가 그이를 모른다고?”

“어제 청소하다가 말이야. 개수구에 낀 동전을 주웠어. 행운 이지,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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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제사 프라이데이는 눈썹을 찡그리고 왼손 엄지 손톱을 물어 뜯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알면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거야. 그 머저리 같은 새끼 를 네가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진작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

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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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 그래.”

았겠지.”

“우린 거기까지 갈 생각이 없었어. 그냥 자전거를 타고 산책

“넌 내가 알던 제사 맞니?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어.”

이나 하려고 했지. 근데 호수를 낀 길에서 그가 그만 물 속에

“씨발,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그렇지 않아? 나도 이제 지

빠져 버린 거야. 곤두박질친 것도 아냐. 그게 원래 길인 것 마

친다고!”

냥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갔어. 상상이 돼?”

제사가 주먹으로 세게 핸들 가운데를 내리치며 외쳤다. 경적

에피는 운전석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리고 열을 올려 말했다.

이 신경질적으로 큰 소음을 만들어냈지만, 도로에는 다른 차가

목소리는 왠지 기름지고 눅눅했다.

없었으므로, 어떤 반응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차 뒤편으로 멀

“홀딱 젖고 말았지. 아주 홀딱……” 에피가 지친 듯 다시 등

어졌다. 제사는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금빛 머

받이에 털썩 몸을 뉘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프랭크가 애

리칼 사이로 손톱의 빨간 매니큐어가 선명했다.

초에 오두막 따위를 짓지 않았더라면. 아니야, 그랬더라도 달

“좋아” 제사는 잠시 말을 멈추며 진정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는 덧붙였다. “거의 다 왔으니까 도착해서 차분히 얘기하기로

나를 바꿔 가정하는 건 정말이지 어리석은 일이지. 안 그래?” 제사는 어떤 것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다문 채 앞 만 보고 차를 몰았다. 에피의 눈에 다시 바다가 비쳤다. 그녀

하자.” 에피는 고개를 저으며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잠시 뒤

는 시야의 끝에서 모래사장을 발견했다. 멀어서 잘 분간할 수

몸을 일으켜 에어컨 방향을 창 쪽으로 돌리고는 발치에서 감

없었지만 흑갈색 벼랑이 끊긴 것을 보고 그곳이 모래사장이라

자칩 봉투를 집어 올려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곳곳에 기름 얼

고 확신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쪽을 응시하고 있다가 입을 열

룩이 진 봉투는 중앙이 비닐로 대어져 속이 비쳤고 크기가 아

었다.

주 컸다. 엔진음에 에피가 감자칩을 씹는 소리가 섞였고, 그것

“제사, 너는……”

은 제사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했다.

순간 차가 급정거했다. 그들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수그러졌

“그와 함께 오두막에 간 적이 있어. 프랭크가 울타리 근처에 엄마 몰래 만든 것 말야. 너도 알지?”

다. “빌어먹을.” 제사가 말했다.

에피가 물었다.

50

름여 년 이십천이

에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라질 건 없었을 거야. 분명히 그랬겠지. 그렇고 말고. 상황 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게 만든 거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봐. 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도대체 뭐가 널 이렇

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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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 그래.”

았겠지.”

“우린 거기까지 갈 생각이 없었어. 그냥 자전거를 타고 산책

“넌 내가 알던 제사 맞니?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어.”

이나 하려고 했지. 근데 호수를 낀 길에서 그가 그만 물 속에

“씨발,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그렇지 않아? 나도 이제 지

빠져 버린 거야. 곤두박질친 것도 아냐. 그게 원래 길인 것 마

친다고!”

냥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갔어. 상상이 돼?”

제사가 주먹으로 세게 핸들 가운데를 내리치며 외쳤다. 경적

에피는 운전석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리고 열을 올려 말했다.

이 신경질적으로 큰 소음을 만들어냈지만, 도로에는 다른 차가

목소리는 왠지 기름지고 눅눅했다.

없었으므로, 어떤 반응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차 뒤편으로 멀

“홀딱 젖고 말았지. 아주 홀딱……” 에피가 지친 듯 다시 등

어졌다. 제사는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금빛 머

받이에 털썩 몸을 뉘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프랭크가 애

리칼 사이로 손톱의 빨간 매니큐어가 선명했다.

초에 오두막 따위를 짓지 않았더라면. 아니야, 그랬더라도 달

“좋아” 제사는 잠시 말을 멈추며 진정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는 덧붙였다. “거의 다 왔으니까 도착해서 차분히 얘기하기로

나를 바꿔 가정하는 건 정말이지 어리석은 일이지. 안 그래?” 제사는 어떤 것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다문 채 앞 만 보고 차를 몰았다. 에피의 눈에 다시 바다가 비쳤다. 그녀

하자.” 에피는 고개를 저으며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잠시 뒤

는 시야의 끝에서 모래사장을 발견했다. 멀어서 잘 분간할 수

몸을 일으켜 에어컨 방향을 창 쪽으로 돌리고는 발치에서 감

없었지만 흑갈색 벼랑이 끊긴 것을 보고 그곳이 모래사장이라

자칩 봉투를 집어 올려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곳곳에 기름 얼

고 확신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쪽을 응시하고 있다가 입을 열

룩이 진 봉투는 중앙이 비닐로 대어져 속이 비쳤고 크기가 아

었다.

주 컸다. 엔진음에 에피가 감자칩을 씹는 소리가 섞였고, 그것

“제사, 너는……”

은 제사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했다.

순간 차가 급정거했다. 그들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수그러졌

“그와 함께 오두막에 간 적이 있어. 프랭크가 울타리 근처에 엄마 몰래 만든 것 말야. 너도 알지?”

다. “빌어먹을.” 제사가 말했다.

에피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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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여 년 이십천이

에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라질 건 없었을 거야. 분명히 그랬겠지. 그렇고 말고. 상황 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게 만든 거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봐. 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도대체 뭐가 널 이렇

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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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방금 뭐였지? 봤어?”

제사가 물었다.

“몰라, 나는. 이것 봐, 감자칩이 다 튀어나왔어.”

“그냥 저렇게 놔둘 순 없잖아.”

“뭔가를 밟은 것 같아. 제기랄.”

에피는 고개를 돌려 몸을 일으켰다. 끝부분이 붉게 물든 손수

제사는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건이 그녀의 뒷주머니에서 비죽 삐져나와 있었다. 그때 제사가

“어딜 보고 운전하는 거야? 도대체……”

차를 나서려는 그녀의 바지춤을 급하게 잡아 끌었다. “에피.”

에피는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백미러로 뒤를 살 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안

제사가 호소했다.

전벨트를 풀고는 감자칩 봉투를 한 쪽으로 치웠다.

“그냥 가자.” 어중간한 자세로 차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던 에피는 제사가

“내가 내려서 볼게.”

손을 풀자 다시 조수석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

다. 후회 같은 것을 할 여유는 없었다. 곧 그곳에 도착할 터였 고, 그 다음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 였다. 그녀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차문이 다시 열리더니 에피가 들어와 조수석에 엉덩이를 반

름여 년 이십천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미간은 천천히 구겨졌

고 있다가 문을 닫고는 의자 깊숙히 몸을 구겨넣었다. 제사는 핸드 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출발시켰다. 엔진음이 점점 커져 차 안을 메웠다. “조금만 가면 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다. 차문이 쿵 하고 닫혔다. 제사는 눈을 지긋이 감고는 어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제사는 고개를 들어 차문을 열고 도로로 나서는 그녀를 보았

제사가 말했다. “그래” 에피가 대답했다. “봤어, 아까.” 도로가 크게 구부러져 그녀는 몸이 밖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

쯤 걸치며 말했다. “저게 갑자기 왜 튀어나온 거지.”

다. 차창 앞으로 터널 입구가 나타났고, 곧 그곳으로 진입했다.

그녀는 차 안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는 듯했다.

사방이 캄캄해졌고, 맨다리 위로 주홍색 불빛의 조각들이 빠르

“뭐야?”

게 지나갔다. 그녀는 발끝에 흩어져 있는 감자칩 조각들을 보

“토끼. 몸이 다 터졌어.”

았지만 치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에피는 감자칩 봉투를 집어 올리며 말했다. “이게 좋겠어.” “뭘 어쩌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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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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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방금 뭐였지? 봤어?”

제사가 물었다.

“몰라, 나는. 이것 봐, 감자칩이 다 튀어나왔어.”

“그냥 저렇게 놔둘 순 없잖아.”

“뭔가를 밟은 것 같아. 제기랄.”

에피는 고개를 돌려 몸을 일으켰다. 끝부분이 붉게 물든 손수

제사는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건이 그녀의 뒷주머니에서 비죽 삐져나와 있었다. 그때 제사가

“어딜 보고 운전하는 거야? 도대체……”

차를 나서려는 그녀의 바지춤을 급하게 잡아 끌었다. “에피.”

에피는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백미러로 뒤를 살 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안

제사가 호소했다.

전벨트를 풀고는 감자칩 봉투를 한 쪽으로 치웠다.

“그냥 가자.” 어중간한 자세로 차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던 에피는 제사가

“내가 내려서 볼게.”

손을 풀자 다시 조수석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

다. 후회 같은 것을 할 여유는 없었다. 곧 그곳에 도착할 터였 고, 그 다음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 였다. 그녀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차문이 다시 열리더니 에피가 들어와 조수석에 엉덩이를 반

름여 년 이십천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미간은 천천히 구겨졌

고 있다가 문을 닫고는 의자 깊숙히 몸을 구겨넣었다. 제사는 핸드 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출발시켰다. 엔진음이 점점 커져 차 안을 메웠다. “조금만 가면 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다. 차문이 쿵 하고 닫혔다. 제사는 눈을 지긋이 감고는 어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제사는 고개를 들어 차문을 열고 도로로 나서는 그녀를 보았

제사가 말했다. “그래” 에피가 대답했다. “봤어, 아까.” 도로가 크게 구부러져 그녀는 몸이 밖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

쯤 걸치며 말했다. “저게 갑자기 왜 튀어나온 거지.”

다. 차창 앞으로 터널 입구가 나타났고, 곧 그곳으로 진입했다.

그녀는 차 안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는 듯했다.

사방이 캄캄해졌고, 맨다리 위로 주홍색 불빛의 조각들이 빠르

“뭐야?”

게 지나갔다. 그녀는 발끝에 흩어져 있는 감자칩 조각들을 보

“토끼. 몸이 다 터졌어.”

았지만 치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에피는 감자칩 봉투를 집어 올리며 말했다. “이게 좋겠어.” “뭘 어쩌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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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문제는 해안 도로 (어디에도 없었다) ~ 홍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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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에서의 하룻밤 찬비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홍구김 twitter @hongg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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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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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에서의 하룻밤 찬비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홍구김 twitter @hongg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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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홍 ~ )없었다 어디에도( 도로 해안 문제는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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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네. 혼자 오셨어요. 계속 혼자이실 예정이고요.” “아이 참, 너무 딱딱하시네. 저 그런 놈 아닙니다.”

안 그래도 딱딱한 얼굴이 더 굳어진다. 그런 놈인지 아닌지 관 심 없다. 어떤 놈인지 궁금하지도 않다. 쏘아붙이려는 찰나 남 자가 생글거리며 다시 말을 건다.

“분명 어디서 뵌 것 같은데…. 혹시 저 기억 안 나세요?”

름여 년 이십천이

이어가는 남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한 번에 떼어 낼 수 있을까. 어쭙잖은 대답은 놈이 물고 늘어질 꼬리가 될 것이다. 빤하디 빤한 대화를 단박에 끊어 낼 강력한 한 문장이 필요하다. 한 문장, 생각해보면 바로 그 한 문장 때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혼자 오셨어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순진하단 말은 취소다. 웃음 띤 얼굴로 능수능란하게 수작을

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됐는지도 모른다. 단 한 문장조차 고칠 수 여태 살면서 혼자인 여자에게 관대한 남자치고 멀쩡한 사내를

없다는 나에게 대표도 그렇게 말했다.

본 일이 없다. 혼자 오셨어요, 라니. 너무 구식이어서 차라리 순진하게 들린다. 대체 혼자인 여자의 그 무엇이 남자들을 용

“아, 김 작가 너무 딱딱하다.”

감하게 만드는 것일까. 용감한 남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여자의 대꾸 없음을 수줍음이나 앙탈, 뭐 그런 식의 호감의 신

졸업 후 세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어이없게도 처음 쓴 시나리

호로 착각했는지 슬그머니 옆으로 와 앉는다. 나는 일부러 몸

오가 공모에 당선됐고 그 해에 영화사에서 감독을 소개받았다.

을 뒤로 확 젖힌 채 남자의 눈과 눈 사이를 똑똑히 바라보며 말

감독과는 말이 꽤 통했고 취향도 비슷했다. 감독님, 작가님 하

한다.

는 존칭이 낯간지러워 이름을 부르게 됐고, 전화하고 밥 먹고 극장에 가고 하다 보니 손도 잡고 잠도 잤다. 이를테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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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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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네. 혼자 오셨어요. 계속 혼자이실 예정이고요.” “아이 참, 너무 딱딱하시네. 저 그런 놈 아닙니다.”

안 그래도 딱딱한 얼굴이 더 굳어진다. 그런 놈인지 아닌지 관 심 없다. 어떤 놈인지 궁금하지도 않다. 쏘아붙이려는 찰나 남 자가 생글거리며 다시 말을 건다.

“분명 어디서 뵌 것 같은데…. 혹시 저 기억 안 나세요?”

름여 년 이십천이

이어가는 남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한 번에 떼어 낼 수 있을까. 어쭙잖은 대답은 놈이 물고 늘어질 꼬리가 될 것이다. 빤하디 빤한 대화를 단박에 끊어 낼 강력한 한 문장이 필요하다. 한 문장, 생각해보면 바로 그 한 문장 때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혼자 오셨어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순진하단 말은 취소다. 웃음 띤 얼굴로 능수능란하게 수작을

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됐는지도 모른다. 단 한 문장조차 고칠 수 여태 살면서 혼자인 여자에게 관대한 남자치고 멀쩡한 사내를

없다는 나에게 대표도 그렇게 말했다.

본 일이 없다. 혼자 오셨어요, 라니. 너무 구식이어서 차라리 순진하게 들린다. 대체 혼자인 여자의 그 무엇이 남자들을 용

“아, 김 작가 너무 딱딱하다.”

감하게 만드는 것일까. 용감한 남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여자의 대꾸 없음을 수줍음이나 앙탈, 뭐 그런 식의 호감의 신

졸업 후 세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어이없게도 처음 쓴 시나리

호로 착각했는지 슬그머니 옆으로 와 앉는다. 나는 일부러 몸

오가 공모에 당선됐고 그 해에 영화사에서 감독을 소개받았다.

을 뒤로 확 젖힌 채 남자의 눈과 눈 사이를 똑똑히 바라보며 말

감독과는 말이 꽤 통했고 취향도 비슷했다. 감독님, 작가님 하

한다.

는 존칭이 낯간지러워 이름을 부르게 됐고, 전화하고 밥 먹고 극장에 가고 하다 보니 손도 잡고 잠도 잤다. 이를테면 우리는

56

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5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도 모른다.

연인이자 팀이었다. 연애의 목적이 영화의 완성임을 굳이 부정 하지 않았다.

자 분이랑. 맞죠?”

아는 데가 있는데….”

그와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어제 부로 세 번째까지 전부 엎

될 대로 되라 했으나 될 대로도 되지 않았고, 뭐라도 될 줄 알

어졌다. 처음엔 돈을, 두 번째엔 스스로를, 어제는 서로를 탓했

았으나 뭣도 되지 않았다. 결론이 그랬기에 그 말은 더없이 부

다. 여름에 바다를 눈앞에 두고 회를 먹을 때만 해도 비난의 화

정적인, 포기를 예언한 문장으로 남았다. 우리는, 우리의 연애

살은 암만 끌어 모아도 부족한 돈에 꽂혔다. 돈에 대한 맹목적

는, 우리의 영화는 그렇게 항복했다. 너 때문이야. 네가 다 망

인 불신과 그러한 불신에서 비롯한 맹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쳐버렸어. 아니, 너 때문이야. 네가 또 망친 거야. 항복은 고달

우리는 자신의 무능력을 문제 삼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차마 너 때문이다,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름여 년 이십천이

위험하죠. 근데 혹시 숙소는 잡으셨어요? 아직 이시면 제가 잘

팠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서로에 대해 아는 만큼 빈정거려야 했 다. 순간 그에게도 나에게도 끝이 보였고 우리는 목적지에 가 까워질수록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래! 여름에 저희 횟집 한 번 오셨잖아요. 영화 찍는다는 남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이제 곧 집니다. 바닷가는 밤이 순식간이에요. 여자 혼자선

“…… 여기, 해가 몇 시쯤 져요?” “이봐요, 내가 그 때 횟집에서 얼마나 욕을 했는지 알아요? 값

58

될 대로 되라지.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은 더럽게 비싸면서 횟감은 한 삼일 묵은 것처럼 눅눅하고 말

늘 큰 소리로 웃었다. 허풍 한 점 없이 텅 빈 웃음은 순식간에

예요. 반찬이랍시고 나온 것들은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릴 정

귓가에서 부서졌다. 왠지 그대로 부서지도록 두는 게 미안해서

도였다니까요. 양배추 샐러드, 그거 언제 만들었는지 물이 잔

나도 따라 말하곤 했다. 뭐라도 되겠지. 그것이 긍정인지 부정

뜩 생긴 바람에 배추 위로 마요네즈가 둥둥 떠다니고, 아주 보

인지, 패기인지 포기인지도 따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어

기만 해도 역했다고요. 아,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내가 그래

쩌면 우리는 자신을 탓하는 척 했을 뿐 속으로는 오래 전부터

서 당신 안 따라가는 거예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자기가

상대를 의심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간판 걸고 하는 횟집이 그런데, 하물며 중간에서 소개하는 숙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비난을 끈질기게 미뤄왔는지

소는 오죽하겠어요? 요금은 바가지로 씌우고 시설은 형편없겠

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59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도 모른다.

연인이자 팀이었다. 연애의 목적이 영화의 완성임을 굳이 부정 하지 않았다.

자 분이랑. 맞죠?”

아는 데가 있는데….”

그와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어제 부로 세 번째까지 전부 엎

될 대로 되라 했으나 될 대로도 되지 않았고, 뭐라도 될 줄 알

어졌다. 처음엔 돈을, 두 번째엔 스스로를, 어제는 서로를 탓했

았으나 뭣도 되지 않았다. 결론이 그랬기에 그 말은 더없이 부

다. 여름에 바다를 눈앞에 두고 회를 먹을 때만 해도 비난의 화

정적인, 포기를 예언한 문장으로 남았다. 우리는, 우리의 연애

살은 암만 끌어 모아도 부족한 돈에 꽂혔다. 돈에 대한 맹목적

는, 우리의 영화는 그렇게 항복했다. 너 때문이야. 네가 다 망

인 불신과 그러한 불신에서 비롯한 맹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쳐버렸어. 아니, 너 때문이야. 네가 또 망친 거야. 항복은 고달

우리는 자신의 무능력을 문제 삼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차마 너 때문이다,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름여 년 이십천이

위험하죠. 근데 혹시 숙소는 잡으셨어요? 아직 이시면 제가 잘

팠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서로에 대해 아는 만큼 빈정거려야 했 다. 순간 그에게도 나에게도 끝이 보였고 우리는 목적지에 가 까워질수록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래! 여름에 저희 횟집 한 번 오셨잖아요. 영화 찍는다는 남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이제 곧 집니다. 바닷가는 밤이 순식간이에요. 여자 혼자선

“…… 여기, 해가 몇 시쯤 져요?” “이봐요, 내가 그 때 횟집에서 얼마나 욕을 했는지 알아요? 값

58

될 대로 되라지.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은 더럽게 비싸면서 횟감은 한 삼일 묵은 것처럼 눅눅하고 말

늘 큰 소리로 웃었다. 허풍 한 점 없이 텅 빈 웃음은 순식간에

예요. 반찬이랍시고 나온 것들은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릴 정

귓가에서 부서졌다. 왠지 그대로 부서지도록 두는 게 미안해서

도였다니까요. 양배추 샐러드, 그거 언제 만들었는지 물이 잔

나도 따라 말하곤 했다. 뭐라도 되겠지. 그것이 긍정인지 부정

뜩 생긴 바람에 배추 위로 마요네즈가 둥둥 떠다니고, 아주 보

인지, 패기인지 포기인지도 따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어

기만 해도 역했다고요. 아,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내가 그래

쩌면 우리는 자신을 탓하는 척 했을 뿐 속으로는 오래 전부터

서 당신 안 따라가는 거예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자기가

상대를 의심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간판 걸고 하는 횟집이 그런데, 하물며 중간에서 소개하는 숙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비난을 끈질기게 미뤄왔는지

소는 오죽하겠어요? 요금은 바가지로 씌우고 시설은 형편없겠

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59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죠. 도대체 어울리지가 않는 벽지에, 냄새나는 이불에, 아마 복

다. 거봐, 밤은, 금방, 이라니, 까, 아. 잦아드는 파도 소리가 추

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수상한 얼굴로 웃으면서 지나갈 걸

궁한다.

요. 이제 보니 순 사기꾼 아냐. 왜요? 왜 그렇게 봐요? 더 할 말 있어요? 아님 나랑 자고 싶어? 당신 잘 해?”

넉살 좋게 엉덩이를 붙여 앉았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바지를 털었다. 눈앞에서 모래 먼지가 날렸다. 닿을 듯 가까이 있던 바 다가 부옇게 흐려진 시야 사이로 점점 멀어져 갔다. 남자의 말 대로 해변의 밤은 금방 시작될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연인이

하는 것들을 우리는 보란 듯이 내팽개쳤다.

름여 년 이십천이

것들을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기를 강요했고, 누군가가 진정 원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리에게 그 다음은 생각한 바 없었다. 우리가 진정 소중히 하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헤어진다고 썼고, 그는 바다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찍었다. 우

“미친년.”

비타협을 위안으로 삼았으나 조급은 도무지 달래지지가 않았 다. 숙소도 정하지 못한 채 해변에서 일몰을 보는 심정이었다. 바닷물이 점차 짙어지자 한나절을 그저 멍청히 보냈다는 생각 에 화가 났다. 억지스러울 만치 길게 원망했다. 옛 일을 들추 어냈고 약점을 따져 물었다. 우리를 우리로 지속해주던 방식, 강요당하고 무시하는 비타협의 방식대로 우리는 끝에 다다랐 다. 그 끝까지 강력한 한 문장은 내 몫이 아니었다. 미친년, 하 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뒷모습이야말로 강력한 한 문장이었

60

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61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죠. 도대체 어울리지가 않는 벽지에, 냄새나는 이불에, 아마 복

다. 거봐, 밤은, 금방, 이라니, 까, 아. 잦아드는 파도 소리가 추

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수상한 얼굴로 웃으면서 지나갈 걸

궁한다.

요. 이제 보니 순 사기꾼 아냐. 왜요? 왜 그렇게 봐요? 더 할 말 있어요? 아님 나랑 자고 싶어? 당신 잘 해?”

넉살 좋게 엉덩이를 붙여 앉았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바지를 털었다. 눈앞에서 모래 먼지가 날렸다. 닿을 듯 가까이 있던 바 다가 부옇게 흐려진 시야 사이로 점점 멀어져 갔다. 남자의 말 대로 해변의 밤은 금방 시작될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연인이

하는 것들을 우리는 보란 듯이 내팽개쳤다.

름여 년 이십천이

것들을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기를 강요했고, 누군가가 진정 원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리에게 그 다음은 생각한 바 없었다. 우리가 진정 소중히 하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헤어진다고 썼고, 그는 바다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찍었다. 우

“미친년.”

비타협을 위안으로 삼았으나 조급은 도무지 달래지지가 않았 다. 숙소도 정하지 못한 채 해변에서 일몰을 보는 심정이었다. 바닷물이 점차 짙어지자 한나절을 그저 멍청히 보냈다는 생각 에 화가 났다. 억지스러울 만치 길게 원망했다. 옛 일을 들추 어냈고 약점을 따져 물었다. 우리를 우리로 지속해주던 방식, 강요당하고 무시하는 비타협의 방식대로 우리는 끝에 다다랐 다. 그 끝까지 강력한 한 문장은 내 몫이 아니었다. 미친년, 하 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뒷모습이야말로 강력한 한 문장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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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에서의 하룻밤 ~ 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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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의 환락열차 Maccol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해변에서 본 것은 하룻밤, 예고없이 시작된 하룻밤.

찬비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건 자기소개 시간, 언젠가 유치찬란한 연애소설을 쓰는 것이 꿈! chanbi1024@gmail.com

62

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의 환락열차 ~ Mccol

63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의 환락열차 Maccol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해변에서 본 것은 하룻밤, 예고없이 시작된 하룻밤.

찬비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건 자기소개 시간, 언젠가 유치찬란한 연애소설을 쓰는 것이 꿈! chanbi10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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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찬 ~ 밤룻하 의서에변해

해변의 환락열차 ~ Mc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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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loccM ~ 차열락환 의변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64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환락열차 ~ Mccol

65


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loccM ~ 차열락환 의변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64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환락열차 ~ Mccol

65


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Eternal sunshine 정민희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Mccol supermccol@gmail.com twitter @supermc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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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cM ~ 차열락환 의변해

Eternal sunshine ~ 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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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Eternal sunshine 정민희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Mccol supermccol@gmail.com twitter @supermc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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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cM ~ 차열락환 의변해

Eternal sunshine ~ 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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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희민정 ~ enihsnus lanretE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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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Eternal sunshine ~ 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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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희민정 ~ enihsnus lanretE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68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Eternal sunshine ~ 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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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희민정 ~ enihsnus lanretE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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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Eternal sunshine ~ 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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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희민정 ~ enihsnus lanretE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70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Eternal sunshine ~ 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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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작품 프로필> 1. '몬탁에서 만나' 340*150 / 목탄드로잉 / 2012년 봄 2. 'Remember me' 120*180 / 연필드로잉 / 2011년 가을과 겨울사이

<작가노트> '바다에 꼭 함께가자 약속했지만 결국. 가지못했다.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펜 끝. 까만 심지 하나로

름여 년 이십천이

그 날. 우리도 다시 만났다.'

하우아유-하우와이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나의 손에 힘을 빼고빼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영화 속 그들이 다시 만난 몬탁 해변가에서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흐릿하게 남아아있는 건,

비로소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었다. 무덤덤한 듯. 짙게 스며있는 슬픔. 나의 바다는 그들이 다시 만난 몬탁이었다.

정민희 blog.naver.com/wjdalsgml87 twitter @minimate87

72

희민정 ~ enihsnus lanretE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73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작품 프로필> 1. '몬탁에서 만나' 340*150 / 목탄드로잉 / 2012년 봄 2. 'Remember me' 120*180 / 연필드로잉 / 2011년 가을과 겨울사이

<작가노트> '바다에 꼭 함께가자 약속했지만 결국. 가지못했다.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펜 끝. 까만 심지 하나로

름여 년 이십천이

그 날. 우리도 다시 만났다.'

하우아유-하우와이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나의 손에 힘을 빼고빼야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영화 속 그들이 다시 만난 몬탁 해변가에서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흐릿하게 남아아있는 건,

비로소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었다. 무덤덤한 듯. 짙게 스며있는 슬픔. 나의 바다는 그들이 다시 만난 몬탁이었다.

정민희 blog.naver.com/wjdalsgml87 twitter @minimate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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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민정 ~ enihsnus lanretE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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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아, 바다……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바다가 떠올랐다.

바다는 알 수 없는 세상이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바다를 알 수 없는 건 당연한 거지. 언제든 찾아갈 수 있지만 결코 살 수 는 없으니까. 다큐멘터리나 영화로는 수도 없이 보지만, 실제 로 겪어볼 순 없으니까. 물 속에서 숨 쉬는 인간은 없잖아? 그렇기에 바다는 두려운 곳이야. 알 수 없는 것은 두려운 법 이니까.

74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75


해변의 ㅇㅇㅇ

름여 년 이십천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아, 바다……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바다가 떠올랐다.

바다는 알 수 없는 세상이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바다를 알 수 없는 건 당연한 거지. 언제든 찾아갈 수 있지만 결코 살 수 는 없으니까. 다큐멘터리나 영화로는 수도 없이 보지만, 실제 로 겪어볼 순 없으니까. 물 속에서 숨 쉬는 인간은 없잖아? 그렇기에 바다는 두려운 곳이야. 알 수 없는 것은 두려운 법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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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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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두려움은 인간이 회피하고 싶어하는 감정이지. 그런데 아이러

존재하는 바닷가야……

니하게도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낀 대상으로 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가가게 만들어.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머그컵 안에 머물고 있던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그러니까 바다는 우리에게 두려운 공간인 동시에, 매력적인 공

“네? 아…… 죄송해요. 잠깐 바다 생각이 나서요.”

간인 셈이야.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배

“바다요?”

에 타고 바다로 나아간 거고. 그러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죽

“네…… 바닷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아니, 아무 것도

음을 맞이하기도 했지.

그런데 정말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바다가 아니야. 알 수 없는 것, 알지 못하는 것, 그것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익숙 한 것과 알지 못하는 것, 그 두 개가 만나는 경계. 바로 그 경 계가 가장 위험한 것이지. 그 경계는 단순히 이것과 저것을 구 분 짓는 선이 아니야. 두 존재, 두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 의 면, 공간이야. 익숙한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 낯선 것들을 새롭게 채워야하는 공간. 그 공간에서의 시간은 괴로울 수밖에 없어. 그렇기에 위험한 것이고.

름여 년 이십천이

지 않는 게 좋아.

“네?” 그녀가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여름이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는 카페 밖을 내다보았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는 바깥은, 보기만 해도 땀이 날 것처럼 더워 보였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래. 바다는 두려운 곳이야. 알지 못하는 것은 섣불리 건드리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아니에요. 혹시……, 바다 좋아하시나요?”

“바다요? 바다 좋아하죠.” “그러시군요. 실은 제가 지금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 중 이거든요.” 그가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요?” “네.” 그는 탁자 위로 드러난 그녀의 상반신을 훑어보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경계. 육지와 바다라는 두 세상을 사이에 그리곤 해변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76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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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두려움은 인간이 회피하고 싶어하는 감정이지. 그런데 아이러

존재하는 바닷가야……

니하게도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낀 대상으로 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가가게 만들어.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머그컵 안에 머물고 있던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그러니까 바다는 우리에게 두려운 공간인 동시에, 매력적인 공

“네? 아…… 죄송해요. 잠깐 바다 생각이 나서요.”

간인 셈이야.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배

“바다요?”

에 타고 바다로 나아간 거고. 그러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죽

“네…… 바닷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아니, 아무 것도

음을 맞이하기도 했지.

그런데 정말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바다가 아니야. 알 수 없는 것, 알지 못하는 것, 그것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익숙 한 것과 알지 못하는 것, 그 두 개가 만나는 경계. 바로 그 경 계가 가장 위험한 것이지. 그 경계는 단순히 이것과 저것을 구 분 짓는 선이 아니야. 두 존재, 두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 의 면, 공간이야. 익숙한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 낯선 것들을 새롭게 채워야하는 공간. 그 공간에서의 시간은 괴로울 수밖에 없어. 그렇기에 위험한 것이고.

름여 년 이십천이

지 않는 게 좋아.

“네?” 그녀가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여름이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는 카페 밖을 내다보았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는 바깥은, 보기만 해도 땀이 날 것처럼 더워 보였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래. 바다는 두려운 곳이야. 알지 못하는 것은 섣불리 건드리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아니에요. 혹시……, 바다 좋아하시나요?”

“바다요? 바다 좋아하죠.” “그러시군요. 실은 제가 지금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 중 이거든요.” 그가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요?” “네.” 그는 탁자 위로 드러난 그녀의 상반신을 훑어보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경계. 육지와 바다라는 두 세상을 사이에 그리곤 해변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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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7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이제 막 해가 지기 시작한 해변인 거야. 우리 둘은 파라솔 밑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거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누 워있는 거야. 도시의 시간과는 달리 천천히 흘러가는 해변의 시간을 느끼면서… 그러다 문득, 비키니를 입은 이 여자가 탄식과 함께 이런 말 을 하는 거지. “아…… 이런 데서 너랑 단둘이 살고 싶다……” 그럼 난 이렇게 묻겠지.

름여 년 이십천이

이 여잔 뭐라고 할까? 진심이냐고 묻겠지. 그럼 난 진심이라 고 대답할 테고. 그럼 나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숙박을 며칠 더 연장시키고, 회사에 그만두겠다는 연락을 할 거야. 그리고 동생에게 연락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래? 그럼 여기서 살래?”

해, 서울의 살림살이들의 처분을 부탁하고, 대신 돈을 좀 쥐어 주겠지. 그리고 그동안 모아둔 돈들. 주택청약, 적금들… 아무 튼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해변 근처 마을에 작은 집 을 하나 빌릴 거야.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콘도에서 잡부 일 자리를 얻는 거야.

그렇게 우리의 해변에서의 삶이 시작되는 거야. 아마 우리의 삶은 바다를 향해 유유히 흘러가는 거대한 강처럼, 고요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향해 가게 될 거야. 별다른 일 없이 천천히,

78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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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이제 막 해가 지기 시작한 해변인 거야. 우리 둘은 파라솔 밑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거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누 워있는 거야. 도시의 시간과는 달리 천천히 흘러가는 해변의 시간을 느끼면서… 그러다 문득, 비키니를 입은 이 여자가 탄식과 함께 이런 말 을 하는 거지. “아…… 이런 데서 너랑 단둘이 살고 싶다……” 그럼 난 이렇게 묻겠지.

름여 년 이십천이

이 여잔 뭐라고 할까? 진심이냐고 묻겠지. 그럼 난 진심이라 고 대답할 테고. 그럼 나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숙박을 며칠 더 연장시키고, 회사에 그만두겠다는 연락을 할 거야. 그리고 동생에게 연락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래? 그럼 여기서 살래?”

해, 서울의 살림살이들의 처분을 부탁하고, 대신 돈을 좀 쥐어 주겠지. 그리고 그동안 모아둔 돈들. 주택청약, 적금들… 아무 튼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해변 근처 마을에 작은 집 을 하나 빌릴 거야.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콘도에서 잡부 일 자리를 얻는 거야.

그렇게 우리의 해변에서의 삶이 시작되는 거야. 아마 우리의 삶은 바다를 향해 유유히 흘러가는 거대한 강처럼, 고요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향해 가게 될 거야. 별다른 일 없이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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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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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 거지. 우리의 모든 것을 가만히

그럼 나는 웃겠지. 그런 때도 있었다면서……

둔 채…… “저기요. 지루하세요?” 우리의 하루는 대개 이런 식일 거야.

그녀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아침에 일어나 아직 잠들어있는 여자에게 키스를 하겠지. 그

“네?”

리고 주방으로 가 사과 하나로 아침을 대신하고 콘도로 가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슴께를 가리고 있는 손이 그의 눈에

거야.

들어왔다. 그는 화들짝 놀랐다.

콘도에서 내가 하는 일은 커플들이 남기고 간 사랑의 자취를

“비키니…… 아니, 아! 죄송해요. 바닷가 상상을 하고 있었어

니까. 남의 섹스를 상상하는 건, 음흉하긴 해도 재밌는 일이니 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 여자와 함께 저녁을 먹고, 하 루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지. 그리고 해변으 로 산책을 나가는 거야. 신발은 벗어서 손에 들고, 밀려오는 파

름여 년 이십천이

들의 사랑을, 그리고 찾아올 커플들의 사랑을 상상하게 될 테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저 그게…… 가슴을 보려고 한 건 아니에요. 오해세 요.” “초면에 좀 심하신 거 아니세요? 정말로 바다에 들어갈까, 말 까 고민하고 계신 건 아니시죠?” “기분이 상하셨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럴

도에 발을 담근 채로… 걷다 보면 어느새 해변 끄트머리에 도

생각이었던 건 아니에요. 오늘따라 자꾸 잡생각이 나서요. 정

착하겠지. 그럼 캔 맥주를 따서 나눠 마시고. 그러다 문득 오늘

말 죄송합니다.”

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우리 처음 만난 날. 그날, 네가 대뜸 바다 좋아하냐고 물었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않은 일은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즐겁기도 할 거야. 떠난 커플

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지우는 일이겠지. 일은 고될 거야. 남의 돈 받는 일치고 고되지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미간 사이에 힘을 주었다.

잖아? 그리고 뭐라 그랬더라?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 중 이라고 했었나? 그땐 이 사람 뭔가 싶었어.”

슬쩍슬쩍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데, 그의 머릿속에 살며시 먼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80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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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 거지. 우리의 모든 것을 가만히

그럼 나는 웃겠지. 그런 때도 있었다면서……

둔 채…… “저기요. 지루하세요?” 우리의 하루는 대개 이런 식일 거야.

그녀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아침에 일어나 아직 잠들어있는 여자에게 키스를 하겠지. 그

“네?”

리고 주방으로 가 사과 하나로 아침을 대신하고 콘도로 가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슴께를 가리고 있는 손이 그의 눈에

거야.

들어왔다. 그는 화들짝 놀랐다.

콘도에서 내가 하는 일은 커플들이 남기고 간 사랑의 자취를

“비키니…… 아니, 아! 죄송해요. 바닷가 상상을 하고 있었어

니까. 남의 섹스를 상상하는 건, 음흉하긴 해도 재밌는 일이니 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 여자와 함께 저녁을 먹고, 하 루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지. 그리고 해변으 로 산책을 나가는 거야. 신발은 벗어서 손에 들고, 밀려오는 파

름여 년 이십천이

들의 사랑을, 그리고 찾아올 커플들의 사랑을 상상하게 될 테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저 그게…… 가슴을 보려고 한 건 아니에요. 오해세 요.” “초면에 좀 심하신 거 아니세요? 정말로 바다에 들어갈까, 말 까 고민하고 계신 건 아니시죠?” “기분이 상하셨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럴

도에 발을 담근 채로… 걷다 보면 어느새 해변 끄트머리에 도

생각이었던 건 아니에요. 오늘따라 자꾸 잡생각이 나서요. 정

착하겠지. 그럼 캔 맥주를 따서 나눠 마시고. 그러다 문득 오늘

말 죄송합니다.”

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우리 처음 만난 날. 그날, 네가 대뜸 바다 좋아하냐고 물었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않은 일은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즐겁기도 할 거야. 떠난 커플

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지우는 일이겠지. 일은 고될 거야. 남의 돈 받는 일치고 고되지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미간 사이에 힘을 주었다.

잖아? 그리고 뭐라 그랬더라?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 중 이라고 했었나? 그땐 이 사람 뭔가 싶었어.”

슬쩍슬쩍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데, 그의 머릿속에 살며시 먼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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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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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전 어른이 되는 게 싫었어요.” 남자들이 왜 그렇게 가슴, 가슴, 노래를 부르는지, 그땐 몰랐

그가 갑작스레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어. 지금도 큰 가슴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땐 진짜 가슴엔

“네?”

아무 관심이 없었어. 하긴 그땐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일반

“아, 죄송해요.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가 튀어나왔네요.”

적인 관념들이라면 뭐든 싫었으니까…… 아마 그래서, 큰 가슴

“아니에요. 재밌네요. 어른이 되기 싫으셨다고요?”

도, 긴 생머리도, 마른 몸매도,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네.”

지도 몰라.

그녀의 구겨진 미간이 살며시 펴졌다.

데 보통은 다들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 않나요? 왜 어른이 되는

모르지. 예전엔 치마도 싫었는데, 이젠 좋으니까.

게 싫으셨어요?”

다보며 불평을 하게 될지도 몰라. “넌 가슴이 왜 이렇게 작아?” 그럼 이 여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 도, 귀여울 거야……

그녀가 가슴께를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맞아요. 보통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제 눈엔 어른들이 너무 답답해 보였거든요. 힘들어하면서 맨날 일하러 가는 게 싫더라고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침대에 누운 이 여자의 가슴을 내려

름여 년 이십천이

하지만 어쩌면 나도 보편적인 취향을 가지게 될 날이 올지도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저도 그래요. 저도 어렸을 때 어른이 되는 게 싫었어요. 근

말로는 맨날 내가 언젠간 일을 때려친다고 하면서 절대 안 때 려치고…… 제 꿈은 그래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거였

아, 자꾸 딴 생각하지 말아야지…

어요. 어른들이 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늘 그렇게 말했죠. 하 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고요. 그럼 어른들은 항상 이렇

“전 어른이 되는 게 싫었어요.”

82

게 말했어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사니? 하고 싶은

그가 갑작스레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일을 하기위해선,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하는 거야. 네가 아

“네?”

직 어려서 그런 거야. 너도 언젠가는 다 알게 될 거야…… 전

“아, 죄송해요.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가 튀어나왔네요.”

그 말이 너무 싫었어요. 비겁해보였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하

“아니에요. 재밌네요. 어른이 되기 싫으셨다고요?”

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았

“네.”

어요.”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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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전 어른이 되는 게 싫었어요.” 남자들이 왜 그렇게 가슴, 가슴, 노래를 부르는지, 그땐 몰랐

그가 갑작스레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어. 지금도 큰 가슴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땐 진짜 가슴엔

“네?”

아무 관심이 없었어. 하긴 그땐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일반

“아, 죄송해요.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가 튀어나왔네요.”

적인 관념들이라면 뭐든 싫었으니까…… 아마 그래서, 큰 가슴

“아니에요. 재밌네요. 어른이 되기 싫으셨다고요?”

도, 긴 생머리도, 마른 몸매도,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네.”

지도 몰라.

그녀의 구겨진 미간이 살며시 펴졌다.

데 보통은 다들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 않나요? 왜 어른이 되는

모르지. 예전엔 치마도 싫었는데, 이젠 좋으니까.

게 싫으셨어요?”

다보며 불평을 하게 될지도 몰라. “넌 가슴이 왜 이렇게 작아?” 그럼 이 여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 도, 귀여울 거야……

그녀가 가슴께를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맞아요. 보통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제 눈엔 어른들이 너무 답답해 보였거든요. 힘들어하면서 맨날 일하러 가는 게 싫더라고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침대에 누운 이 여자의 가슴을 내려

름여 년 이십천이

하지만 어쩌면 나도 보편적인 취향을 가지게 될 날이 올지도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저도 그래요. 저도 어렸을 때 어른이 되는 게 싫었어요. 근

말로는 맨날 내가 언젠간 일을 때려친다고 하면서 절대 안 때 려치고…… 제 꿈은 그래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거였

아, 자꾸 딴 생각하지 말아야지…

어요. 어른들이 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늘 그렇게 말했죠. 하 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고요. 그럼 어른들은 항상 이렇

“전 어른이 되는 게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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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말했어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사니? 하고 싶은

그가 갑작스레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일을 하기위해선,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하는 거야. 네가 아

“네?”

직 어려서 그런 거야. 너도 언젠가는 다 알게 될 거야…… 전

“아, 죄송해요.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가 튀어나왔네요.”

그 말이 너무 싫었어요. 비겁해보였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하

“아니에요. 재밌네요. 어른이 되기 싫으셨다고요?”

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았

“네.”

어요.”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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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이렇게까지 참아가면서 하고 있는 걸

“저랑 비슷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어른들이 참 싫었거든요.

까? 그냥 그만두고, 적당히 아껴가며 살면, 지금껏 모아둔 돈

그래서 저도 어른이 되기 싫었고요.” “아, 그러세요?”

으로 몇 년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늘 생각뿐이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죠. 용기가 없는 거죠.” 그녀는 머그컵 안의 얼음을 입에 털어 넣고 아그작아그작, 씹

“네.”

어 먹었다.

그녀가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멍하니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네?”

이를 테면, 제가 하와이에 가고 싶다면, 비행기 티켓 살 돈, 가

“하와이 가고 싶지 않으세요?”

서 놀 돈을 벌어야만 해요. 그래야만 하와이에 갈 수 있는 거예

“네?”

요. 제가 만약 아이라면 하와이에 가고 싶단 생각만 하겠죠. 하 지만 전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어른은 하와이에 가고 싶다. 그 러니 돈을 벌어야겠다. 돈을 벌면 하와이에 갈 수 있다.”

“하와이에 가고 싶지 않으시냐고요.” “가고 싶어요.” “그럼 지금 바로 하와이 안 가실래요?”

“그렇죠.”

그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어른인 거죠. 그런데 만약 욕심이

“네?”

없다면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요? 그럼 하기 싫은 일을 하

그녀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지 않고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제 꿈은 하고 싶은 일

“지금 어떻게 하와이에…… 농담이시죠?”

만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며 사는

“아니요. 일단 들어보세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머그컵에 담긴 물을 한 입 마셨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84

름여 년 이십천이

“그럼 저랑 하와이 가실래요?”

“지금 일단 회사에 전화해서 그만둔다고 하는 거예요. 그 다

“그러고 보니, 저도 가끔 그런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하다

음에 저랑 같이 인천공항으로 가는 거죠. 그 다음엔 제 적금을

보면요, 힘들 때가 많잖아요?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고요. 그

깨고요. 그 돈으로 하와이행 티켓을 두 장 사는 거예요. 그리고

럴 때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

하와이에 가는 거죠.”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러니한 곳이란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런데요…… 결국엔 저도 어른이 되더라고요. 세상이 아이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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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이렇게까지 참아가면서 하고 있는 걸

“저랑 비슷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어른들이 참 싫었거든요.

까? 그냥 그만두고, 적당히 아껴가며 살면, 지금껏 모아둔 돈

그래서 저도 어른이 되기 싫었고요.” “아, 그러세요?”

으로 몇 년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늘 생각뿐이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죠. 용기가 없는 거죠.” 그녀는 머그컵 안의 얼음을 입에 털어 넣고 아그작아그작, 씹

“네.”

어 먹었다.

그녀가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멍하니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네?”

이를 테면, 제가 하와이에 가고 싶다면, 비행기 티켓 살 돈, 가

“하와이 가고 싶지 않으세요?”

서 놀 돈을 벌어야만 해요. 그래야만 하와이에 갈 수 있는 거예

“네?”

요. 제가 만약 아이라면 하와이에 가고 싶단 생각만 하겠죠. 하 지만 전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어른은 하와이에 가고 싶다. 그 러니 돈을 벌어야겠다. 돈을 벌면 하와이에 갈 수 있다.”

“하와이에 가고 싶지 않으시냐고요.” “가고 싶어요.” “그럼 지금 바로 하와이 안 가실래요?”

“그렇죠.”

그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어른인 거죠. 그런데 만약 욕심이

“네?”

없다면요?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요? 그럼 하기 싫은 일을 하

그녀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지 않고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제 꿈은 하고 싶은 일

“지금 어떻게 하와이에…… 농담이시죠?”

만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며 사는

“아니요. 일단 들어보세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머그컵에 담긴 물을 한 입 마셨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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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여 년 이십천이

“그럼 저랑 하와이 가실래요?”

“지금 일단 회사에 전화해서 그만둔다고 하는 거예요. 그 다

“그러고 보니, 저도 가끔 그런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하다

음에 저랑 같이 인천공항으로 가는 거죠. 그 다음엔 제 적금을

보면요, 힘들 때가 많잖아요?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고요. 그

깨고요. 그 돈으로 하와이행 티켓을 두 장 사는 거예요. 그리고

럴 때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

하와이에 가는 거죠.”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러니한 곳이란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런데요…… 결국엔 저도 어른이 되더라고요. 세상이 아이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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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녀가 가슴께를 가렸다.

이런 생각을 하겠지.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까, 하

“저도 이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란 건 알고 있어요. 가슴이나

다가 말고, 변기 위에 앉겠지.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쳐다보는, 저 같은 놈이랑 단둘이 하와이라니… 말도 안 되는

‘괜찮은 사람 소개해준다더니 이게 뭐야? 뭐 저런 사람이 다

이야기죠. 하지만,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려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어딘가 엉뚱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했

있어요. 이래봬도 제가 모아둔 돈이 꽤 되거든요. 마음만 먹는

을 때, 엉뚱하다는 걸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때 제대로 잘

다면 충분히 갈 수 있어요. 충분히!”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래도 문자할 때까진 괜찮은 사람 같

“자신이 없으시면 비키니는 입지 않으셔도 돼요.”

딘가 가볍지 않은 사람 같은 느낌도 들고…… 근데 정말 이상

“네?”

한 사람인 것 같아. 맛이 갔어. 밥 먹을 때는 말도 없이 밥만 먹

“아니!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길래, 낯을 가리나보다, 했는데, 여기 와서도 거의 한 마디도

그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녀가 핸드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름여 년 이십천이

았는데. 이모티콘도 안 쓰고, 맞춤법도 딱딱 맞춰서 보내고. 어

없이 딴 생각만 계속하잖아. 그러다 이상한 얘기나 하고… 바 다? 어른? 하와이? 저거 미친 놈 아니야?’ 그리곤 다시 가슴을 내려다보는 거지. 그리고 한숨을 쉬는 거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지금 당장요? 지금 당장은 좀……”

야.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나겠지.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긴 할 그는 화장실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상상을 시작했

테니까.

다.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저 여자, 이제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서 브라우스 단추를 풀고,

“죄송한데요. 아무래도 하와이는 좀……”

브라를 확인할 거야. 분명해. 그럼 뽕이 들어간 브라가 가슴을

그녀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감싸고 있겠지. ‘내 가슴이 그렇게 작나? 저 새낀 뭔데 자꾸 가슴, 가슴, 노래 를 부르는 거야?’

지었다. “왜요?” “그게…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 두고 하와이에 간다는 것 자 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용기가 없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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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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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녀가 가슴께를 가렸다.

이런 생각을 하겠지.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까, 하

“저도 이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란 건 알고 있어요. 가슴이나

다가 말고, 변기 위에 앉겠지.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쳐다보는, 저 같은 놈이랑 단둘이 하와이라니… 말도 안 되는

‘괜찮은 사람 소개해준다더니 이게 뭐야? 뭐 저런 사람이 다

이야기죠. 하지만,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려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어딘가 엉뚱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했

있어요. 이래봬도 제가 모아둔 돈이 꽤 되거든요. 마음만 먹는

을 때, 엉뚱하다는 걸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때 제대로 잘

다면 충분히 갈 수 있어요. 충분히!”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래도 문자할 때까진 괜찮은 사람 같

“자신이 없으시면 비키니는 입지 않으셔도 돼요.”

딘가 가볍지 않은 사람 같은 느낌도 들고…… 근데 정말 이상

“네?”

한 사람인 것 같아. 맛이 갔어. 밥 먹을 때는 말도 없이 밥만 먹

“아니!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길래, 낯을 가리나보다, 했는데, 여기 와서도 거의 한 마디도

그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녀가 핸드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름여 년 이십천이

았는데. 이모티콘도 안 쓰고, 맞춤법도 딱딱 맞춰서 보내고. 어

없이 딴 생각만 계속하잖아. 그러다 이상한 얘기나 하고… 바 다? 어른? 하와이? 저거 미친 놈 아니야?’ 그리곤 다시 가슴을 내려다보는 거지. 그리고 한숨을 쉬는 거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지금 당장요? 지금 당장은 좀……”

야.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나겠지.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긴 할 그는 화장실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상상을 시작했

테니까.

다.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저 여자, 이제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서 브라우스 단추를 풀고,

“죄송한데요. 아무래도 하와이는 좀……”

브라를 확인할 거야. 분명해. 그럼 뽕이 들어간 브라가 가슴을

그녀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감싸고 있겠지. ‘내 가슴이 그렇게 작나? 저 새낀 뭔데 자꾸 가슴, 가슴, 노래 를 부르는 거야?’

지었다. “왜요?” “그게…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 두고 하와이에 간다는 것 자 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용기가 없기도 하고요.”

86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8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럼 그만 두진 마시고, 연차를 쓰시는 건 어때요?” “연차요?” “네. 딱 일주일만.” “그것도 좀……” “결국 이제까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겠단 거죠? 하기 싫은 일을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잊으며 사는 그런 삶…… 그러니 까, 어른들의 삶을 계속 살아가시겠단 거죠? 갈 돈도 충분하 고, 하려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그저 말로만, 생각으로만,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거죠?”

름여 년 이십천이

“네! 그래요! 당신이 말하는대로 그렇게 살아가겠죠! 그게 나 쁜가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다들 힘들게 모아서 가 끔 여행이나 간다고요! 당신이 뭔데 이렇게 다그치는 거죠? 당 신이 대체 뭔데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잠자코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태롭단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뭔데 이 여자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대체 뭔데? 나는 고작 오늘 이 여자를 처음 본 남자일 뿐이야. 그런 내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여자를 이렇게 몰아붙이고 있는 거지?

88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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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럼 그만 두진 마시고, 연차를 쓰시는 건 어때요?” “연차요?” “네. 딱 일주일만.” “그것도 좀……” “결국 이제까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겠단 거죠? 하기 싫은 일을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잊으며 사는 그런 삶…… 그러니 까, 어른들의 삶을 계속 살아가시겠단 거죠? 갈 돈도 충분하 고, 하려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그저 말로만, 생각으로만,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거죠?”

름여 년 이십천이

“네! 그래요! 당신이 말하는대로 그렇게 살아가겠죠! 그게 나 쁜가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다들 힘들게 모아서 가 끔 여행이나 간다고요! 당신이 뭔데 이렇게 다그치는 거죠? 당 신이 대체 뭔데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잠자코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태롭단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뭔데 이 여자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대체 뭔데? 나는 고작 오늘 이 여자를 처음 본 남자일 뿐이야. 그런 내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여자를 이렇게 몰아붙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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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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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네. 정말, 죄송해요……” 바닷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바닷가에 서있는 거야. 아까부터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거야.

아니요. 죄송하지만, 정말 하나도 죄송하지 않아요. 전 그저 당

아니야. 나는 아까부터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신과 함께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과 함께 하와이에 가고 싶

잘 안 되는 거야. 바다가 날 거부하는 거야.

었을 뿐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차라리 해일이 일어난다면 좋을 텐데. 바다가 나를 삼켜버리 고 싶단 마음을 먹고, 나를 덮친다면…… 이 세상이 모두 바다

리겠지. 그렇게 되면 욕심도 사라질 테고. 그렇다면 이 여자가

“당신은 하나도 안 미안하죠? 다, 티 나요. 당신은 지금도 하

나와 하와이에 가겠다는 결심을 할지도 몰라. 그럼 우린 바다 를 헤엄쳐 하와이로 가는 거야.

름여 년 이십천이

그녀가 그를 째려보았다.

와이에 가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겠죠. 그런데 혼자 갈 용기는 없는 거겠죠. 그걸 왜 저한테 푸시는 거예요? 가고 싶으시면 혼자 가시면 되잖아요. 그걸 왜 저한테…… 왜 저보고 당신이

그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아닌가요? 당신도

“죄송해요. 울지 마세요.”

저처럼 용기가 없는 거잖아요. 저나 당신이나 똑같잖아요. 왜

그녀가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걸 가지고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네?”

“울긴 누가 울어요? 당신 진짜 이상한 사람 같아요. 솔직히

그의 입이 벌어졌다.

오늘 처음 만났잖아요. 몇 번은 만나고 그런 얘길 꺼냈으면 모

“아니요… 그게……”

르겠는데요. 오늘 처음 뵀는데 그렇게까지 얘기하셔야 했나

“아니라고요? 정말 아니라고 하실 수 있으세요? 그럼 왜 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고, 엉키고, 섞여서, 사람들 사이에 소유라는 관념이 사라져버

와이에서 살지 않고, 여기 계신 거죠?”

요?”

90

“거짓말 하지 마세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가 되어버린다면 좋을 텐데… 그럼 세상의 모든 것이 뒤집히

“죄송해요. 저도 제가 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그가 고개를 숙였다.

“자기도 그러면서 왜 나한테 그래요?”

“정말 죄송하긴 하신가요?”

잠시 동안 그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91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네. 정말, 죄송해요……” 바닷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바닷가에 서있는 거야. 아까부터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거야.

아니요. 죄송하지만, 정말 하나도 죄송하지 않아요. 전 그저 당

아니야. 나는 아까부터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신과 함께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과 함께 하와이에 가고 싶

잘 안 되는 거야. 바다가 날 거부하는 거야.

었을 뿐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차라리 해일이 일어난다면 좋을 텐데. 바다가 나를 삼켜버리 고 싶단 마음을 먹고, 나를 덮친다면…… 이 세상이 모두 바다

리겠지. 그렇게 되면 욕심도 사라질 테고. 그렇다면 이 여자가

“당신은 하나도 안 미안하죠? 다, 티 나요. 당신은 지금도 하

나와 하와이에 가겠다는 결심을 할지도 몰라. 그럼 우린 바다 를 헤엄쳐 하와이로 가는 거야.

름여 년 이십천이

그녀가 그를 째려보았다.

와이에 가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겠죠. 그런데 혼자 갈 용기는 없는 거겠죠. 그걸 왜 저한테 푸시는 거예요? 가고 싶으시면 혼자 가시면 되잖아요. 그걸 왜 저한테…… 왜 저보고 당신이

그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아닌가요? 당신도

“죄송해요. 울지 마세요.”

저처럼 용기가 없는 거잖아요. 저나 당신이나 똑같잖아요. 왜

그녀가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걸 가지고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네?”

“울긴 누가 울어요? 당신 진짜 이상한 사람 같아요. 솔직히

그의 입이 벌어졌다.

오늘 처음 만났잖아요. 몇 번은 만나고 그런 얘길 꺼냈으면 모

“아니요… 그게……”

르겠는데요. 오늘 처음 뵀는데 그렇게까지 얘기하셔야 했나

“아니라고요? 정말 아니라고 하실 수 있으세요? 그럼 왜 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고, 엉키고, 섞여서, 사람들 사이에 소유라는 관념이 사라져버

와이에서 살지 않고, 여기 계신 거죠?”

요?”

90

“거짓말 하지 마세요.”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가 되어버린다면 좋을 텐데… 그럼 세상의 모든 것이 뒤집히

“죄송해요. 저도 제가 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그가 고개를 숙였다.

“자기도 그러면서 왜 나한테 그래요?”

“정말 죄송하긴 하신가요?”

잠시 동안 그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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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왠지 당신이라면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냥 그랬을

그녀가 카페 밖으로 나가고,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뿐이에요. 그저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라고요. 근데

밖은 어두웠다. 그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하고 시계를

제가 왜 이렇게 흥분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전

보았다. 시계 바늘은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다

그저 당신이 비키니를 입은 걸 보고 싶었어요. 당신과 해변에

시 창밖을 보았다.

서 사는 상상을 했고요. 당신이 바다 같다는 상상을 했고요. 그 왜 이리 어두워? 비가 오려나……

냥,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언제 봤다고요? 오늘 처음 봤잖아요?” 그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처음 봤다고 이러면 안 되나요?”

“그럼 부산이라도……” “갑자기 부산엘 어떻게 가요!”

름여 년 이십천이

“아니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럼 하와이에 같이 가실래요?”

거대한 물기둥이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안 될 거야 없죠.”

그녀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하지만 저 먼저 갈게요.” 그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어딜요? 부산이요?”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내가 왜 그랬을까? 저럴 만도 하지. 나라도 저러겠어.

92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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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왠지 당신이라면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냥 그랬을

그녀가 카페 밖으로 나가고,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뿐이에요. 그저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라고요. 근데

밖은 어두웠다. 그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하고 시계를

제가 왜 이렇게 흥분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전

보았다. 시계 바늘은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다

그저 당신이 비키니를 입은 걸 보고 싶었어요. 당신과 해변에

시 창밖을 보았다.

서 사는 상상을 했고요. 당신이 바다 같다는 상상을 했고요. 그 왜 이리 어두워? 비가 오려나……

냥,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언제 봤다고요? 오늘 처음 봤잖아요?” 그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처음 봤다고 이러면 안 되나요?”

“그럼 부산이라도……” “갑자기 부산엘 어떻게 가요!”

름여 년 이십천이

“아니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럼 하와이에 같이 가실래요?”

거대한 물기둥이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안 될 거야 없죠.”

그녀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하지만 저 먼저 갈게요.” 그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어딜요? 부산이요?”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내가 왜 그랬을까? 저럴 만도 하지. 나라도 저러겠어.

92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하우아유-하우와이 ~ 김종소리 글, 정지호 그림

93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해변. 낯선 세상과 익숙한 세상의 경계. 낯선 여자와 익숙한 자신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남자. 남자는 결국 여자라는 낯선 세상에 발을 담근 걸까? 담그지 못한 걸 까?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이 남자가 얘기하는 것(낯선 세상과 익숙 한 세상의 경계)보다는 그걸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생각이 아닐까?

름여 년 이십천이

이파네마 여자들 문모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래서 뒤집어 엎어버렸다.

김종소리 jongsoriz.tistory.com + 정지호 blog.naver.com/jjihojjiho

94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95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해변. 낯선 세상과 익숙한 세상의 경계. 낯선 여자와 익숙한 자신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남자. 남자는 결국 여자라는 낯선 세상에 발을 담근 걸까? 담그지 못한 걸 까?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이 남자가 얘기하는 것(낯선 세상과 익숙 한 세상의 경계)보다는 그걸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생각이 아닐까?

름여 년 이십천이

이파네마 여자들 문모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래서 뒤집어 엎어버렸다.

김종소리 jongsoriz.tistory.com + 정지호 blog.naver.com/jjihojjiho

94

림그 호지정 ,글 리소종김 ~ 이와우하-유아우하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95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오랜만이었다. 고민이 많아지니 점점 속이 탔다. 급기야 잘 마 시지도 않던 술을 마시고 다녔다. 심하게 퍼마신 날은 술병이 나기도 했다. 몸도 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니는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너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냐."라는 소리까지 들었 다. 그리고 그런 날은 또 열 받아서 술을 마셨다. 지금 생각하 면 술 마실 시간에 글이나 쓸 걸 후회가 된다. 내가 술집 사장 님에게 '글이 잘 안 써져서 술을 마신다.'라는 말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혹시 슬럼프?'라던가 '나 글쓰기 글러 먹은 인간?'

름여 년 이십천이

국수 먹는 것처럼 후루룩 써지는 나날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나날도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데 왜 안 마시던 술까지 마시고 다니면서 근심을 하였느냐, 그

아쉬운 감정이 남으면 꼭 다시 쓰리라 다짐하고, 실제로 그렇

건 내가 지망생의 신분이든 프로의 신분이든 지정된 마감일은

게 하는 습관이 있다. 2009년에 썼던 <이파네마 여자>도 그렇

절대 넘기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가진 재주라고 내세울

게 다시 쓰고 싶은 글 중의 하나였다.

만한 게 이것뿐인지라 스스로 이것을 무시해버리면 나 자신이

'좋아. 이제 쓰는 거야. 시작!' 한 지가 3개월. 그동안 내가 한

96

롱, 얍 하고 나오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잔치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았다.

것은 1,000자가 채 안 되는 조각 글들을 정말 조각조각 생산해

3개월 중 3분의 2는 주말에 '왜 안 써지지. 아이참, 빨리 쓰

낸 것이었다. 이미 완성된 원작도 있겠다, 어떻게든 기워서 쓰

고 싶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밀린

면 되겠지 하고 생각나는 것부터 깨작깨작 썼더니 어디서 어떻

드라마를 챙겨보고, 친구를 만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게 이어야 할지 모르겠고, 중구난방도 이런 중구난방이 또 없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형제와 싸우고,

었다. 아니, 이미 써놓은 걸 다시 쓰려는데 왜 이렇게 안 되는

오랜만에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려 친척 집에 다녀오고, 하루

거야. 고민에 빠졌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한 것은 참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고, 손톱과 발톱을 깎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예전에 쓴 글의 설정이나 내용이 스스로 마음에 들거나, 괜히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이라는 자극적인 걱정을 한 건 아니다. 소설이란 게 결코 뾰로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9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오랜만이었다. 고민이 많아지니 점점 속이 탔다. 급기야 잘 마 시지도 않던 술을 마시고 다녔다. 심하게 퍼마신 날은 술병이 나기도 했다. 몸도 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니는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너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냐."라는 소리까지 들었 다. 그리고 그런 날은 또 열 받아서 술을 마셨다. 지금 생각하 면 술 마실 시간에 글이나 쓸 걸 후회가 된다. 내가 술집 사장 님에게 '글이 잘 안 써져서 술을 마신다.'라는 말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혹시 슬럼프?'라던가 '나 글쓰기 글러 먹은 인간?'

름여 년 이십천이

국수 먹는 것처럼 후루룩 써지는 나날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나날도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데 왜 안 마시던 술까지 마시고 다니면서 근심을 하였느냐, 그

아쉬운 감정이 남으면 꼭 다시 쓰리라 다짐하고, 실제로 그렇

건 내가 지망생의 신분이든 프로의 신분이든 지정된 마감일은

게 하는 습관이 있다. 2009년에 썼던 <이파네마 여자>도 그렇

절대 넘기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가진 재주라고 내세울

게 다시 쓰고 싶은 글 중의 하나였다.

만한 게 이것뿐인지라 스스로 이것을 무시해버리면 나 자신이

'좋아. 이제 쓰는 거야. 시작!' 한 지가 3개월. 그동안 내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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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얍 하고 나오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잔치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았다.

것은 1,000자가 채 안 되는 조각 글들을 정말 조각조각 생산해

3개월 중 3분의 2는 주말에 '왜 안 써지지. 아이참, 빨리 쓰

낸 것이었다. 이미 완성된 원작도 있겠다, 어떻게든 기워서 쓰

고 싶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밀린

면 되겠지 하고 생각나는 것부터 깨작깨작 썼더니 어디서 어떻

드라마를 챙겨보고, 친구를 만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게 이어야 할지 모르겠고, 중구난방도 이런 중구난방이 또 없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형제와 싸우고,

었다. 아니, 이미 써놓은 걸 다시 쓰려는데 왜 이렇게 안 되는

오랜만에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려 친척 집에 다녀오고, 하루

거야. 고민에 빠졌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한 것은 참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고, 손톱과 발톱을 깎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예전에 쓴 글의 설정이나 내용이 스스로 마음에 들거나, 괜히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이라는 자극적인 걱정을 한 건 아니다. 소설이란 게 결코 뾰로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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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고, 안 보던 개콘의 본방을 챙겨봤다. 그러면 언제 맞이해도 낯

"덕을 쌓기에는 사지만 한 것이 없다!"

설기만 한 월요일에 대한 두려움을 머릿속에 장전해두고 일찍

나는 빨갛게 부어오른 손등을 감싸 쥐고 빽 소리를 질렀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평일 내내 자책하고 곧 다짐했다. 나는 글

"아니,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쓰는 것에 왜 이렇게 게으른 걸까. 평일 저녁은 역시 힘드니까,

그게 끝이었다.

다음 주말이 돌아오면 꼭 써야지. 그렇게 공과금 납부일 돌아

요!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깼다. 깨고서도 황당하고 억울해서

오듯 주말이 오면 잽싸게 영화를 보고, 밀린 드라마를 챙겨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왜 꿈에서까지 맞아야 하는 건지 알

고, 친구를 만나고……, 개콘을 봤다.

수 없었다. 손등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아프진 않았지만 역시 신경질이 났다. 이불을 뻥뻥 차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겁이 났고, 그 생각을 잊으려고 또 술을 마셨다. 이때까지도 글

태로 어스름 불을 밝히고 있는 노트북의 얼굴 위로 아직도 이

자 새기는 시간은 일주일 평균 15분 내외. 이렇게나 신경이 쓰

름이 빈 문서인 워드 파일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이런 이

였던 적이 있었던가. 마감이라는 고삐는 굉장한 것이구나! 감 탄도 한 두 번이지. 초조함은 눈덩이 불어나듯 커져 있었다. 술 이 마시고 싶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이십몇 년 동안 지고지

름여 년 이십천이

러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봤다. 전원을 끄지 않은 상

야기가 적혀 있었다.

<눈을 감으면 까맣기만 한 미래가 보인다. 그렇다면 사랑에 빠

순하게 간직한 뽀얗고 탐스러운(울) 간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

진 이 남자에겐 뭐가 보일까. 남자는 낡은 선풍기가 토해내는

게 손상될 것 같았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대신 잠을 자기 시작

미지근한 바람 아래 누워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동그

했다. 도피처를 찾는 것은 이렇게나 신속하다. 그리고 제 몸 하

랗고 하얀 여인의 얼굴 하나가 산 너머 달처럼 둥실 떠올랐다.

나는 엄청나게 챙긴다.

남자는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봤으면서 브라질에 있는 아름다

여전히 뼈가 녹아내릴 정도의 농도를 가진 게으름을 부리고,

운 해변의 이름을 그녀에게 몰래 붙여 주었다. 그리고는 이따

지저분하게 여기 저기 저장돼 있는 조각 글들을 어떻게든 이

금 이파네마, 이파네마,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두어 번 중얼거

어붙일 궁리만 하던 어느 토요일,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꿈

렸다. 그런 곳이 있다더라 하는 건 어떤 책에서 본 기억이 나는

을 하나 꿨다. 생전 처음 보는 노인이 나타나서는 한국민속촌

데, 아, 가만 브라질은 어디 붙어 있는 거더라. 남자는 잠시 생

의 특급 기념품인 곰방대로 내 손등을 딱 소리가 나게 갈기는

각을 주춤했다. 그 사이 여자가 입은 소매 없는 원피스의 문양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이런 말을 했다.

이 정신없이 펼쳐진다. 빨간 바탕에 샛노란 실들이 이름 모를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98

글러 먹은 인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덜컥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이쯤 되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지, 정말 나는 글쓰기

99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고, 안 보던 개콘의 본방을 챙겨봤다. 그러면 언제 맞이해도 낯

"덕을 쌓기에는 사지만 한 것이 없다!"

설기만 한 월요일에 대한 두려움을 머릿속에 장전해두고 일찍

나는 빨갛게 부어오른 손등을 감싸 쥐고 빽 소리를 질렀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평일 내내 자책하고 곧 다짐했다. 나는 글

"아니,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쓰는 것에 왜 이렇게 게으른 걸까. 평일 저녁은 역시 힘드니까,

그게 끝이었다.

다음 주말이 돌아오면 꼭 써야지. 그렇게 공과금 납부일 돌아

요!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깼다. 깨고서도 황당하고 억울해서

오듯 주말이 오면 잽싸게 영화를 보고, 밀린 드라마를 챙겨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왜 꿈에서까지 맞아야 하는 건지 알

고, 친구를 만나고……, 개콘을 봤다.

수 없었다. 손등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아프진 않았지만 역시 신경질이 났다. 이불을 뻥뻥 차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겁이 났고, 그 생각을 잊으려고 또 술을 마셨다. 이때까지도 글

태로 어스름 불을 밝히고 있는 노트북의 얼굴 위로 아직도 이

자 새기는 시간은 일주일 평균 15분 내외. 이렇게나 신경이 쓰

름이 빈 문서인 워드 파일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이런 이

였던 적이 있었던가. 마감이라는 고삐는 굉장한 것이구나! 감 탄도 한 두 번이지. 초조함은 눈덩이 불어나듯 커져 있었다. 술 이 마시고 싶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이십몇 년 동안 지고지

름여 년 이십천이

러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봤다. 전원을 끄지 않은 상

야기가 적혀 있었다.

<눈을 감으면 까맣기만 한 미래가 보인다. 그렇다면 사랑에 빠

순하게 간직한 뽀얗고 탐스러운(울) 간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

진 이 남자에겐 뭐가 보일까. 남자는 낡은 선풍기가 토해내는

게 손상될 것 같았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대신 잠을 자기 시작

미지근한 바람 아래 누워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동그

했다. 도피처를 찾는 것은 이렇게나 신속하다. 그리고 제 몸 하

랗고 하얀 여인의 얼굴 하나가 산 너머 달처럼 둥실 떠올랐다.

나는 엄청나게 챙긴다.

남자는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봤으면서 브라질에 있는 아름다

여전히 뼈가 녹아내릴 정도의 농도를 가진 게으름을 부리고,

운 해변의 이름을 그녀에게 몰래 붙여 주었다. 그리고는 이따

지저분하게 여기 저기 저장돼 있는 조각 글들을 어떻게든 이

금 이파네마, 이파네마,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두어 번 중얼거

어붙일 궁리만 하던 어느 토요일,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꿈

렸다. 그런 곳이 있다더라 하는 건 어떤 책에서 본 기억이 나는

을 하나 꿨다. 생전 처음 보는 노인이 나타나서는 한국민속촌

데, 아, 가만 브라질은 어디 붙어 있는 거더라. 남자는 잠시 생

의 특급 기념품인 곰방대로 내 손등을 딱 소리가 나게 갈기는

각을 주춤했다. 그 사이 여자가 입은 소매 없는 원피스의 문양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이런 말을 했다.

이 정신없이 펼쳐진다. 빨간 바탕에 샛노란 실들이 이름 모를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98

글러 먹은 인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덜컥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이쯤 되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지, 정말 나는 글쓰기

99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지지 않았다. 선크림을 열심히 찍어 바르기라도 하는 건지, 그

떻게 이어 써야 좋을까. 아니, 그전에 대체 뭘 쓰고 싶었던 걸

녀의 살결은 마치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색이었다. 여자의

까. 손가락으로 노트북 화면을 톡톡 쳤다. 화면에 조금씩 물결

긴 원피스 밑단 아래로 드러난 발목과 맨발도 마찬가지다. 그

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만히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

럼에도 남자는 여자가 신은 연둣빛 샌들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는데 아까 꿈속에 나온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내 입을 빌려 그

모래알이 파스스 떨어져 나오길 내심 기대했다. 그러면서 다시

말을 다시 뱉어보았다. 덕을 쌓기에는 사지만 한 것이 없다. 이

그녀의 목 위로 시선을 돌렸다. 구불구불 파도치는 단발머리는

건 무슨 말일까. 쓰고 또 쓰고, 내내 써도 될까 말까 한 판에 잠

고개를 주억거릴 때마다 살랑살랑 춤을 추는 듯 보였다. 그녀

이나 퍼질러 자고 있으면서 이상한 꿈이나 꾸고. 정말 한심해

의 가지런한 두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그녀가 타고 있

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꿈이 어떤 실마리가

는 리듬을 보아도 남자는 그녀가 무슨 음악을 듣는지 쉽게 짐

돼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파네마 여자 역시 선풍기 앞에 있는 남자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감은 두 눈 아래는 긴 속눈썹의 그림자가 깔려있다. 남

커피숍에서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경원이 어이없다는 듯 이 웃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건 네 손을 움직이라는 이야기지. 그리고 대체로 그런 꿈은 아무것도 바꿔주지 못해.

자는 자신이 화가였다면 그 모습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그렸

개꿈이야 개꿈." 자기 일 아니라고 되게 대충 말하네. 나는 참

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장담했다.

을성 있게 경원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나는 노인의 말이 내

아니, 그런 건 됐고 일단 눈을 떠봐요. 나를 좀 봐요. 남자가

손만 움직이라는 게 아니라 사지육신을 모두 움직이라는 소리 라고 생각해. 내가 하도 게으르니까. 아마 그분은 내가 얼굴 한

애처로이 입을 열었다. 이파네마 여자는 눈을 감은 상태로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그

100

름여 년 이십천이

노트북 화면을 꿈속의 노인에게 맞은쪽 손등으로 툭 쳤다. 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낸 매끈한 어깨의 색을 보건대, 브라질의 뜨거움 같은 건 느껴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커다란 꽃을 화사하게 수놓은 옷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드러

번 뵌 적 없는 우리 할아버지겠지. 가만 생각해보면 외할아버

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옅은 갈색 눈동자가 다가온다. 남자

지인 것도 같고… 아니, 외할아버지가 나를 때릴 리가 없어. 할

는 기뻤지만, 사실 먼저 눈을 뜬 것은 남자였다. 주변을 둘러보

아버지는 얼굴도 본 적 없는데 왜 날….” 경원은 계속 킥킥 웃

았다. 자신의 방이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남자

으면서 나를 쳐다보다가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또 당

는 결의를 다진 표정을 하고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

장 쓸모없는 말을 집어던졌다. “예전에 쓴 건 꽤 재밌었던 거

갔다.>

같은데 새로 쓰려는 것도 그런 식으로 쓰면 안 되는 거야?” 써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1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지지 않았다. 선크림을 열심히 찍어 바르기라도 하는 건지, 그

떻게 이어 써야 좋을까. 아니, 그전에 대체 뭘 쓰고 싶었던 걸

녀의 살결은 마치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색이었다. 여자의

까. 손가락으로 노트북 화면을 톡톡 쳤다. 화면에 조금씩 물결

긴 원피스 밑단 아래로 드러난 발목과 맨발도 마찬가지다. 그

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만히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

럼에도 남자는 여자가 신은 연둣빛 샌들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는데 아까 꿈속에 나온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내 입을 빌려 그

모래알이 파스스 떨어져 나오길 내심 기대했다. 그러면서 다시

말을 다시 뱉어보았다. 덕을 쌓기에는 사지만 한 것이 없다. 이

그녀의 목 위로 시선을 돌렸다. 구불구불 파도치는 단발머리는

건 무슨 말일까. 쓰고 또 쓰고, 내내 써도 될까 말까 한 판에 잠

고개를 주억거릴 때마다 살랑살랑 춤을 추는 듯 보였다. 그녀

이나 퍼질러 자고 있으면서 이상한 꿈이나 꾸고. 정말 한심해

의 가지런한 두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그녀가 타고 있

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꿈이 어떤 실마리가

는 리듬을 보아도 남자는 그녀가 무슨 음악을 듣는지 쉽게 짐

돼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파네마 여자 역시 선풍기 앞에 있는 남자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감은 두 눈 아래는 긴 속눈썹의 그림자가 깔려있다. 남

커피숍에서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경원이 어이없다는 듯 이 웃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건 네 손을 움직이라는 이야기지. 그리고 대체로 그런 꿈은 아무것도 바꿔주지 못해.

자는 자신이 화가였다면 그 모습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그렸

개꿈이야 개꿈." 자기 일 아니라고 되게 대충 말하네. 나는 참

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장담했다.

을성 있게 경원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나는 노인의 말이 내

아니, 그런 건 됐고 일단 눈을 떠봐요. 나를 좀 봐요. 남자가

손만 움직이라는 게 아니라 사지육신을 모두 움직이라는 소리 라고 생각해. 내가 하도 게으르니까. 아마 그분은 내가 얼굴 한

애처로이 입을 열었다. 이파네마 여자는 눈을 감은 상태로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그

100

름여 년 이십천이

노트북 화면을 꿈속의 노인에게 맞은쪽 손등으로 툭 쳤다. 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낸 매끈한 어깨의 색을 보건대, 브라질의 뜨거움 같은 건 느껴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커다란 꽃을 화사하게 수놓은 옷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드러

번 뵌 적 없는 우리 할아버지겠지. 가만 생각해보면 외할아버

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옅은 갈색 눈동자가 다가온다. 남자

지인 것도 같고… 아니, 외할아버지가 나를 때릴 리가 없어. 할

는 기뻤지만, 사실 먼저 눈을 뜬 것은 남자였다. 주변을 둘러보

아버지는 얼굴도 본 적 없는데 왜 날….” 경원은 계속 킥킥 웃

았다. 자신의 방이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남자

으면서 나를 쳐다보다가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또 당

는 결의를 다진 표정을 하고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

장 쓸모없는 말을 집어던졌다. “예전에 쓴 건 꽤 재밌었던 거

갔다.>

같은데 새로 쓰려는 것도 그런 식으로 쓰면 안 되는 거야?” 써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1


해변의 ㅇㅇㅇ

서, 되겠다 싶으면 진작 쓰고, 너 같은 거랑 이렇게 영양가없이

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얄미운 손가락은 남자가 내릴 정류장

놀고 앉아있지도 않았겠지! 경원이 계속 나를 약 올리는 거 같

이 되면 절로 하차 벨을 눌렀다. 설령 남자 본인이 누르지 않

아서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경원은 점점 일그러지는 내 표

는다 해도 하차벨을 누군가 누르면 이파네마 여자를 남겨두고

정을 보고서도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치를 따라 내렸다. 어떤 날은 진지하게 손가락을 부러뜨릴 까도 생각해보았다. 아니면 다리를.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

"이파네마 여자를 몰래 좋아하는 남자의 이야기"

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가

"아니, 큰 줄기로 뭘 잡았는지 이야기해봐."

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안타까운 날들은 이제 안녕, 안녕히.

"음…."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오늘은 말할 거니까. 손가락을 부러뜨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리지 않아도,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아도 그녀를 남겨두고 내리

"아놔. 있어. 있다구.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넌…."

지 않을 거니까.

"사랑이 능사는 아니다." "뭐어?" "사랑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말을 건다 치면 뭐라고 운을 떼야 할까? 예뻐요. 뭐냐, 대뜸. 계속 지켜봤어요. 변태라고 오해받으면? 아아, 뭐라고 하든 말을 걸었다, 나의 존재감을 알렸다 치자.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후후. 얘기해봐."

름여 년 이십천이

"쓰고 싶은 게 뭐랬지?"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그 뒤에는 또 어떻게 되는 거지? 사귈 수 있을까. 사귀면 좋겠

102

<남자는 언제나 이파네마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버스를 기다

다. 아니 사귀지 않더라도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 거짓말, 거짓

렸다. 푹푹 찌는 오후 4시의 버스 정류장. 주변에 있는 그림자

말이다. 둘이 사이좋게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같은 음악

들은 그들이 원하던 원치 않건 죄다 키다리처럼 죽죽 늘어져

을 들으면서 세상 구경을 했으면 좋겠다. 흐르는 음악은 당연

있었다. 남자는 오늘 이파네마 여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

히 러브송이지. 너의 어깨가 좋다며 손끝으로 간질이고 싶다.

다. 그렇게나 많이 마주친 건 이젠 분명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

그곳에다 장난으로 손가락 글씨를 쓰고 싶다. 좋아해 라고 썼

을 터. 남자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는데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고 뭐라고 썼냐고 묻는다. 바보라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아 우물쭈물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

고 썼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그 갈색 눈동자가 반쯤 사라지

렸다. 그것이 버스라는 특정 장소 탓인가 하여 이파네마 여자

며 나를 흘겨 보겠지. 배시시 웃어주고 귓가에 좋아해 라고 말

가 내리는 곳에서 함께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번

할 것이다.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3


해변의 ㅇㅇㅇ

서, 되겠다 싶으면 진작 쓰고, 너 같은 거랑 이렇게 영양가없이

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얄미운 손가락은 남자가 내릴 정류장

놀고 앉아있지도 않았겠지! 경원이 계속 나를 약 올리는 거 같

이 되면 절로 하차 벨을 눌렀다. 설령 남자 본인이 누르지 않

아서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경원은 점점 일그러지는 내 표

는다 해도 하차벨을 누군가 누르면 이파네마 여자를 남겨두고

정을 보고서도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치를 따라 내렸다. 어떤 날은 진지하게 손가락을 부러뜨릴 까도 생각해보았다. 아니면 다리를.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

"이파네마 여자를 몰래 좋아하는 남자의 이야기"

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가

"아니, 큰 줄기로 뭘 잡았는지 이야기해봐."

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안타까운 날들은 이제 안녕, 안녕히.

"음…."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오늘은 말할 거니까. 손가락을 부러뜨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리지 않아도,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아도 그녀를 남겨두고 내리

"아놔. 있어. 있다구.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넌…."

지 않을 거니까.

"사랑이 능사는 아니다." "뭐어?" "사랑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말을 건다 치면 뭐라고 운을 떼야 할까? 예뻐요. 뭐냐, 대뜸. 계속 지켜봤어요. 변태라고 오해받으면? 아아, 뭐라고 하든 말을 걸었다, 나의 존재감을 알렸다 치자.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후후. 얘기해봐."

름여 년 이십천이

"쓰고 싶은 게 뭐랬지?"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ㅇㅇㅇ 의변해

그 뒤에는 또 어떻게 되는 거지? 사귈 수 있을까. 사귀면 좋겠

102

<남자는 언제나 이파네마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버스를 기다

다. 아니 사귀지 않더라도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 거짓말, 거짓

렸다. 푹푹 찌는 오후 4시의 버스 정류장. 주변에 있는 그림자

말이다. 둘이 사이좋게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같은 음악

들은 그들이 원하던 원치 않건 죄다 키다리처럼 죽죽 늘어져

을 들으면서 세상 구경을 했으면 좋겠다. 흐르는 음악은 당연

있었다. 남자는 오늘 이파네마 여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

히 러브송이지. 너의 어깨가 좋다며 손끝으로 간질이고 싶다.

다. 그렇게나 많이 마주친 건 이젠 분명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

그곳에다 장난으로 손가락 글씨를 쓰고 싶다. 좋아해 라고 썼

을 터. 남자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는데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고 뭐라고 썼냐고 묻는다. 바보라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아 우물쭈물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

고 썼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그 갈색 눈동자가 반쯤 사라지

렸다. 그것이 버스라는 특정 장소 탓인가 하여 이파네마 여자

며 나를 흘겨 보겠지. 배시시 웃어주고 귓가에 좋아해 라고 말

가 내리는 곳에서 함께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번

할 것이다.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3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어떤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이파네마 여자 자체가 어째 덜 매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준 이름의 해변을 우리는 함께 거닌다.

력적인 거 같아.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가본 영종도 해변으로 대체한단들 그 누가 알겠어. 아무튼, 우

"그걸 되레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난 머리가 터질 거 같아.

리는 영종도 아니, 이파네마 해변을 거닌다. 그녀가 바다 쪽을

마감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구. 이파네마 여자는 원래 그런

쳐다보며 말한다. 깨끗한 바다를 에메랄드 빛 바다라고 하는

여자야. 현실에 없는 여자. 매력이고 뭐고, 에이씨 정말." "텄네, 텄어. 우하하하하."

니 근사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 근사하게 말해줘야지.

"너무 좋아한다, 너."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너의 눈동자 색깔이 세상에서 가

"흐흥, 날 보자구 한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장 달콤한 초콜릿 빛인 건 알겠어. 그녀가 간지럽다는 듯 웃는

드디어 본론에 접근하겠구나. 경원의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

다. 이파네마 여자가 영종도, 아니 이파네마 해변에서 어여쁘

여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경원의 두 손을 살포시 잡았다.

경원이 푸하하하 컥컥컥컥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원 래 이렇게 낯이 간지러워서 벅벅 긁고 싶은 느낌의 글이었느냐

이게 계속 장난질이야!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고 심각한 표정 으로 경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부탁했다. "네가 하루만 이파네마 여자가 돼줘."

고 물었다. 나는 경원에게 내 노트북을 도로 뺏어와 창을 덮었

"뭔 소리야."

다. 괜히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 소린고 하니, 이런 소리였다.

"안 되는 거 그만 붙잡고, 차라리 얼른 연애나 해. 이 정도 감

"일종의 취재인데, 상황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그 이미지를

각일 줄은 몰랐어. 꿈속에 나온 노인이 덕을 쌓으라고 했던 게

가지고 글을 쓰면 적어도 전체적인 초고를 쓸 때까지는 막힘없

아마 그건 아닐까? 어서 연애를 시작하고 그 미묘한 감각을 찾

이 쓸 수 있을 거 같아."

으라는. 그리고 예전 글만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하면서도 경원은 내가 잡은 손을 빼지는 않았다.

"그 정도야?"

"네가 이파네마 여자처럼 분장하고 그 여자 자체가 돼서 내

"느낌이 그런 걸…."

104

"나랑 연애하자구?"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게 웃는다. 남자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름여 년 이십천이

데, 진짜 에메랄드 빛이 이럴까요? 별것 아닌데도 그녀가 말하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사실 본 적이 없어서 상상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지만, 몇 해 전

"나 어떡하지."

가 쓸 소설에 나오는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거야.

"조각 글만 봐서 사랑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제에 부합하는가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는 거지. 장소가 많지도 않아. 버스 안,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5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어떤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이파네마 여자 자체가 어째 덜 매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준 이름의 해변을 우리는 함께 거닌다.

력적인 거 같아.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가본 영종도 해변으로 대체한단들 그 누가 알겠어. 아무튼, 우

"그걸 되레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난 머리가 터질 거 같아.

리는 영종도 아니, 이파네마 해변을 거닌다. 그녀가 바다 쪽을

마감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구. 이파네마 여자는 원래 그런

쳐다보며 말한다. 깨끗한 바다를 에메랄드 빛 바다라고 하는

여자야. 현실에 없는 여자. 매력이고 뭐고, 에이씨 정말." "텄네, 텄어. 우하하하하."

니 근사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 근사하게 말해줘야지.

"너무 좋아한다, 너."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너의 눈동자 색깔이 세상에서 가

"흐흥, 날 보자구 한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장 달콤한 초콜릿 빛인 건 알겠어. 그녀가 간지럽다는 듯 웃는

드디어 본론에 접근하겠구나. 경원의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

다. 이파네마 여자가 영종도, 아니 이파네마 해변에서 어여쁘

여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경원의 두 손을 살포시 잡았다.

경원이 푸하하하 컥컥컥컥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원 래 이렇게 낯이 간지러워서 벅벅 긁고 싶은 느낌의 글이었느냐

이게 계속 장난질이야!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고 심각한 표정 으로 경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부탁했다. "네가 하루만 이파네마 여자가 돼줘."

고 물었다. 나는 경원에게 내 노트북을 도로 뺏어와 창을 덮었

"뭔 소리야."

다. 괜히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 소린고 하니, 이런 소리였다.

"안 되는 거 그만 붙잡고, 차라리 얼른 연애나 해. 이 정도 감

"일종의 취재인데, 상황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그 이미지를

각일 줄은 몰랐어. 꿈속에 나온 노인이 덕을 쌓으라고 했던 게

가지고 글을 쓰면 적어도 전체적인 초고를 쓸 때까지는 막힘없

아마 그건 아닐까? 어서 연애를 시작하고 그 미묘한 감각을 찾

이 쓸 수 있을 거 같아."

으라는. 그리고 예전 글만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하면서도 경원은 내가 잡은 손을 빼지는 않았다.

"그 정도야?"

"네가 이파네마 여자처럼 분장하고 그 여자 자체가 돼서 내

"느낌이 그런 걸…."

104

"나랑 연애하자구?"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게 웃는다. 남자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름여 년 이십천이

데, 진짜 에메랄드 빛이 이럴까요? 별것 아닌데도 그녀가 말하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사실 본 적이 없어서 상상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지만, 몇 해 전

"나 어떡하지."

가 쓸 소설에 나오는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거야.

"조각 글만 봐서 사랑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제에 부합하는가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는 거지. 장소가 많지도 않아. 버스 안,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5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좋아. 꼭 쓸게. 촬영은 이번 주 일요일, 오전부터 봐도 괜찮

해변, 지하철. 이렇게 세 곳 밖에 안돼."

겠지?"

"지하철도 나와? 왜?" "해보면 알아!"

"그래. 나는 몸만 준비하면 되나?"

"그렇게 하면 쓸 수 있을 거 같다구?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소

"응. 내가 전부 준비할 테니까 걱정마. 응해준다니 정말 고맙 다. ."

설 쓰면 무조건 그렇게 다 할래? 경험주의 작가냐 네가? 게다

경원은 또 킥킥 웃었다. 왠지 여전히 놀림 받는 것처럼 느껴

가 일부러 만들어낸 경험을 어떻게…."

졌지만, 마감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를 위한 것이라면 그

"이번에만 그렇게 할 거라고. 도대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해!

런 것 백 번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덕을 쌓기에는 사지만 한 것이 없대잖아."

경원과 헤어지고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인터넷 쇼핑을 했다.

"네 무의식이 한 말을 들먹이는 거야? 거기에 네 맘대로 내

우선 즐겨 찾던 쇼핑몰 사이트의 여름 휴가 기획전을 클릭하고

게 잡았다. 당연히 울 생각은 없었지만, 곧 울고불고 매달릴 태 세를 취했다. 사실 경원에게 거절당하면 그대로 포기할 작정이

원피스를 찾았다. 생각해뒀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보이진 않았지만, 느낌만 살리는 것이기에 너무 디테일을 고려 할 필요는 없었다. 얼추 비슷한 느낌의 옷을 찾아 주문하고 그

었다. 뭐가 됐든 내 자존심은 이미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었다.

다음에는 샌들을 찾았다. 그런데 원피스와는 다르게 생각했던

이왕 이렇게 된 거 소설이라도 완성시키자는 생각이었다.

이미지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예쁜 샌들이 좀처럼 눈에 들어

"흠, 알았어. 뭔지는 몰라도 사랑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주제

오질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공장에서 만들어다 경원에게

가 마음에 든다. 내가 생각할 때 그건 세상의 이치처럼 당연한

신기고 싶었지만, 시간도 없었고, 그럴만한 돈도 없었다. 연두

것 같은데. 네가 어떻게 써낼지 궁금하네. 단, 조건이 있어."

라는 색상이 흔하지 않은가 싶어서 그냥 다른 색으로 타협을

"뭔데?"

보려는데, 이제는 디자인이 문제였다. 딱히 마음에 차는 것이

"이파네마 여자의 본명을 넣어서 쓸 것. 그 본명은 반드시 내

없었다. 내가 신을 거였으면 이렇게 따지지도 않았을 텐데. 경 원에게 괜히 책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샌들을 찾아

이름일 것!"

106

름여 년 이십천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경원의 손을 더욱 세

내가 생각했던 이파네마 여자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소매 없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래서 안 해줄 거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사지까지 포함해서? 내 의중은 상관없다는 건가?"

"어어, 정말 그거면 돼?"

몇 십 분을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돌아다니니 지쳤다. 차라리 그

"응."

시간에 이파네마 여자가 신은 샌들이 왜 하필 연두색인가 고민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좋아. 꼭 쓸게. 촬영은 이번 주 일요일, 오전부터 봐도 괜찮

해변, 지하철. 이렇게 세 곳 밖에 안돼."

겠지?"

"지하철도 나와? 왜?" "해보면 알아!"

"그래. 나는 몸만 준비하면 되나?"

"그렇게 하면 쓸 수 있을 거 같다구?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소

"응. 내가 전부 준비할 테니까 걱정마. 응해준다니 정말 고맙 다. ."

설 쓰면 무조건 그렇게 다 할래? 경험주의 작가냐 네가? 게다

경원은 또 킥킥 웃었다. 왠지 여전히 놀림 받는 것처럼 느껴

가 일부러 만들어낸 경험을 어떻게…."

졌지만, 마감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를 위한 것이라면 그

"이번에만 그렇게 할 거라고. 도대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해!

런 것 백 번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덕을 쌓기에는 사지만 한 것이 없대잖아."

경원과 헤어지고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인터넷 쇼핑을 했다.

"네 무의식이 한 말을 들먹이는 거야? 거기에 네 맘대로 내

우선 즐겨 찾던 쇼핑몰 사이트의 여름 휴가 기획전을 클릭하고

게 잡았다. 당연히 울 생각은 없었지만, 곧 울고불고 매달릴 태 세를 취했다. 사실 경원에게 거절당하면 그대로 포기할 작정이

원피스를 찾았다. 생각해뒀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보이진 않았지만, 느낌만 살리는 것이기에 너무 디테일을 고려 할 필요는 없었다. 얼추 비슷한 느낌의 옷을 찾아 주문하고 그

었다. 뭐가 됐든 내 자존심은 이미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었다.

다음에는 샌들을 찾았다. 그런데 원피스와는 다르게 생각했던

이왕 이렇게 된 거 소설이라도 완성시키자는 생각이었다.

이미지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예쁜 샌들이 좀처럼 눈에 들어

"흠, 알았어. 뭔지는 몰라도 사랑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주제

오질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공장에서 만들어다 경원에게

가 마음에 든다. 내가 생각할 때 그건 세상의 이치처럼 당연한

신기고 싶었지만, 시간도 없었고, 그럴만한 돈도 없었다. 연두

것 같은데. 네가 어떻게 써낼지 궁금하네. 단, 조건이 있어."

라는 색상이 흔하지 않은가 싶어서 그냥 다른 색으로 타협을

"뭔데?"

보려는데, 이제는 디자인이 문제였다. 딱히 마음에 차는 것이

"이파네마 여자의 본명을 넣어서 쓸 것. 그 본명은 반드시 내

없었다. 내가 신을 거였으면 이렇게 따지지도 않았을 텐데. 경 원에게 괜히 책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샌들을 찾아

이름일 것!"

106

름여 년 이십천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경원의 손을 더욱 세

내가 생각했던 이파네마 여자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소매 없는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래서 안 해줄 거야?"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사지까지 포함해서? 내 의중은 상관없다는 건가?"

"어어, 정말 그거면 돼?"

몇 십 분을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돌아다니니 지쳤다. 차라리 그

"응."

시간에 이파네마 여자가 신은 샌들이 왜 하필 연두색인가 고민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

정으로 잘 쓰지 않던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작동시켜 보았다.

해서 그런 거야. 나는 누가 묻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는데 혼잣

옛날 모델이라 투박하고 묵직했지만, 다행히 배터리는 충분했

말을 하면서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고 작동도 잘 되었다. 카메라 상태를 파악한 뒤에는 인터넷을

가슴을 안고. 하지만 버스 안에는 그가 찾는 여자는 없었다. 언

파네마는 못가도 그 아름다움에 지지 않을 우도의 해변을 떠올

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신비한 여인. 이파네마 여자가 없

렸으나, 역시 시간과 돈이 문제였다. 괜찮아, 어차피 화자가 현

었다.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이파네마 여자가 항상 앉아있던

실속에 떠올리는 곳도 영종도 이상이 못 되는걸. 어째 그렇게

버스 뒤편 일인용 좌석에는 웬 남자가 한 명 앉아있었다. 그는

써두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참 언급하기가 이렇

동그란 금속 테 안경을 쓰고 목이 많이 늘어진 낡은 티셔츠를

게나 부끄러울 수 있을까 싶지만, 쓰지도 않은 소설의 클라이

입고 있었다. 기타 케이스로 추정되는 물건을 옆에 끼고 앉아

막스를 장식할 지하철 장면을 위해 2호선의 노선도를 확인했

침까지 흘리며 졸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이파네마 여자가 아 니었다. 남자는 그 졸고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서라도 깨우 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힘도, 명분도 없었다. 잠시 후 남자는

름여 년 이십천이

간도 체크해두고, 해변으로 갈 차편도 꼼꼼히 알아두었다. 이

다. 원래 썼던 <이파네마 여자>에서도 그냥 평범한 지하철이 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 달 전 2호선을 탈 일이 생겨 열차 에 올라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곳에서 도심 속의 해

흔들리는 버스 탓에 휘청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졸고 있는

변을 발견했다. 열차 바닥, 그러니까 사람들이 앉는 긴 의자 밑

남자 앞에 있는 좌석에 꼴사납게 주저앉고 말았다. 버스 안은

에 잔잔한 파도가 해변에 몰려와 부서지는 형상과 모래사장이

에어컨이 너무 심하게 돌아서 마치 빙하기가 온 것처럼 춥게

펼쳐진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 해변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궁금

느껴졌다. 남자는 팔짱을 끼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리고 이

해서 그림을 따라 옆으로, 옆으로 움직였다. 다 가고 보니 열차

파네마 여자가 어서 다른 정거장에서 이 버스에 올라타길 기다

한 칸에 전부 붙어 있는 건 물론 다음 칸에도 죽 이어져 있다는

렸다. 다음 정거장에서도, 다음다음 정거장에서도, 세 정거장,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스포츠용품을 파는 회사의 랩광고였

네 정거장, 다섯, 여섯…. 버스가 종점에 이르기까지 이파네마

다. 모래사장 위로 누군가 그 회사의 아쿠아 슈즈를 벗어놓고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래 위에 발자국을 조금씩 남긴다는 아이디어였다. 아아, 새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남자는 버스에 올라탔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듯 벅찬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뒤적여 장소를 물색했다. 혹시 몰라서 타려는 버스의 배차 시

로 쓸 <이파네마 여자>에 써먹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이 이제 결국,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샌들을 골랐다. 약간 착잡한 심

108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아니, 꼭 봐야 한다.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9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

정으로 잘 쓰지 않던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작동시켜 보았다.

해서 그런 거야. 나는 누가 묻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는데 혼잣

옛날 모델이라 투박하고 묵직했지만, 다행히 배터리는 충분했

말을 하면서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고 작동도 잘 되었다. 카메라 상태를 파악한 뒤에는 인터넷을

가슴을 안고. 하지만 버스 안에는 그가 찾는 여자는 없었다. 언

파네마는 못가도 그 아름다움에 지지 않을 우도의 해변을 떠올

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신비한 여인. 이파네마 여자가 없

렸으나, 역시 시간과 돈이 문제였다. 괜찮아, 어차피 화자가 현

었다.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이파네마 여자가 항상 앉아있던

실속에 떠올리는 곳도 영종도 이상이 못 되는걸. 어째 그렇게

버스 뒤편 일인용 좌석에는 웬 남자가 한 명 앉아있었다. 그는

써두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참 언급하기가 이렇

동그란 금속 테 안경을 쓰고 목이 많이 늘어진 낡은 티셔츠를

게나 부끄러울 수 있을까 싶지만, 쓰지도 않은 소설의 클라이

입고 있었다. 기타 케이스로 추정되는 물건을 옆에 끼고 앉아

막스를 장식할 지하철 장면을 위해 2호선의 노선도를 확인했

침까지 흘리며 졸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이파네마 여자가 아 니었다. 남자는 그 졸고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서라도 깨우 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힘도, 명분도 없었다. 잠시 후 남자는

름여 년 이십천이

간도 체크해두고, 해변으로 갈 차편도 꼼꼼히 알아두었다. 이

다. 원래 썼던 <이파네마 여자>에서도 그냥 평범한 지하철이 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 달 전 2호선을 탈 일이 생겨 열차 에 올라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곳에서 도심 속의 해

흔들리는 버스 탓에 휘청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졸고 있는

변을 발견했다. 열차 바닥, 그러니까 사람들이 앉는 긴 의자 밑

남자 앞에 있는 좌석에 꼴사납게 주저앉고 말았다. 버스 안은

에 잔잔한 파도가 해변에 몰려와 부서지는 형상과 모래사장이

에어컨이 너무 심하게 돌아서 마치 빙하기가 온 것처럼 춥게

펼쳐진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 해변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궁금

느껴졌다. 남자는 팔짱을 끼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리고 이

해서 그림을 따라 옆으로, 옆으로 움직였다. 다 가고 보니 열차

파네마 여자가 어서 다른 정거장에서 이 버스에 올라타길 기다

한 칸에 전부 붙어 있는 건 물론 다음 칸에도 죽 이어져 있다는

렸다. 다음 정거장에서도, 다음다음 정거장에서도, 세 정거장,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스포츠용품을 파는 회사의 랩광고였

네 정거장, 다섯, 여섯…. 버스가 종점에 이르기까지 이파네마

다. 모래사장 위로 누군가 그 회사의 아쿠아 슈즈를 벗어놓고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래 위에 발자국을 조금씩 남긴다는 아이디어였다. 아아, 새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남자는 버스에 올라탔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듯 벅찬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뒤적여 장소를 물색했다. 혹시 몰라서 타려는 버스의 배차 시

로 쓸 <이파네마 여자>에 써먹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이 이제 결국,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샌들을 골랐다. 약간 착잡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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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아니, 꼭 봐야 한다.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09


돌아온 일요일, 첫 번째 배경인 버스를 타기 위해 경원과 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깨가 아팠다. 경원에게 연 락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오늘 촬영하고 바로 써야 한다. 화요

와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을 대비해서 사이사이 챙겨 먹을 간식

일이 마감이란 말이다. 제발 받아. 받아. 경원의 휴대전화는 여

조금, 필기도구, 노트북을 챙겼다. 주문한 지 이틀이 지나 도착

전히 꺼져있었다. 나는 살짝 진이 빠져 휴대전화를 무릎 위에

한 원피스와 샌들을 담은 종이 봉투를 한 손에 들고 아침 일찍

내려두고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었다. 문득 남자가 이파네

집을 나섰다. 앞서 한 주 동안 드문드문 비가 내렸는데 촬영하

마 여자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쓰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

기로 한 일요일은 다행히 맑았고, 그만큼 더웠다. 이른 오전인

게만 계속 썼다면. 새로 쓸 <이파네마 여자>의 조각 글 중에는

데도 가방이 무거워서 그런지 등이 더 더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 부분이 숭덩 빠져있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첫 줄'도 쓰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약속 시각

못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이 여름에 사지육신 굴려서 어

보다 20분이나 일찍 나와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지루하게 느

떻게든 써보겠다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어느새 남탓만 하고

껴졌다. 그런데 약속 시각이 다 되어도 경원은 나타나지 않았

있는 내 모습에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런데도 경원을 원망하

다. 경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카메라를 꺼내 주변을 촬영했다. 정류장의 노

름여 년 이십천이

는 내가 사는 동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배낭에 카메라

는 것을 좀체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나는 창에 기댄 머리를 요리 조리 굴렸다. 그러다 그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선 표지판을 찍고,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버스를 찍고, 정류

<세상에 도래한 폭염은 남자에게는 그저 폭력에 지나지 않았

장에 바짝 다가온 버스의 앞머리를 찍기도 했다. 나를 향해 일

다. 종점에서 내린 남자는 다시 버스에 올라탈 마음이 없었다.

제히 쏟아지는 불편한 눈초리를 최대한 참아내며 버스를 타고

휴게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잠시 쉬고 있던 기사 아저씨에게

내리는 사람들의 풍경을 찍었다. 지저분하고 낡은 운동화를 신

여기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 어디인지 물었다. 아저씨는 어

은 발등을 찍었다. 표지판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도 힘겹게 담

디에 가려고 그러는 거냐고 물었고, 남자는 자신이 사는 집이

아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도 경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저

있는 동네 이름을 말했다. 그럼 그냥 버스 타고 가는 게 낫지

히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연락이 안 되

않겠느냐고 아저씨가 말하자, 남자는 힘없이 고개만 가로저었

는 것이 하 수상해서 일단 경원이 사는 동네에 가기로 했다. 다

다.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 라는 표정으로 아저씨는 차고

행히 경원의 동네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에 올라

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을 알려주었다. 남

타고 자리에 앉으니, 일단 더위가 가셔서 살 것 같았다. 무거운

자는 힘없이 뜨겁게 데워진 보도블록을 걷고 또 걸어 30분 만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해변의 ㅇㅇㅇ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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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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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일요일, 첫 번째 배경인 버스를 타기 위해 경원과 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깨가 아팠다. 경원에게 연 락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오늘 촬영하고 바로 써야 한다. 화요

와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을 대비해서 사이사이 챙겨 먹을 간식

일이 마감이란 말이다. 제발 받아. 받아. 경원의 휴대전화는 여

조금, 필기도구, 노트북을 챙겼다. 주문한 지 이틀이 지나 도착

전히 꺼져있었다. 나는 살짝 진이 빠져 휴대전화를 무릎 위에

한 원피스와 샌들을 담은 종이 봉투를 한 손에 들고 아침 일찍

내려두고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었다. 문득 남자가 이파네

집을 나섰다. 앞서 한 주 동안 드문드문 비가 내렸는데 촬영하

마 여자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쓰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

기로 한 일요일은 다행히 맑았고, 그만큼 더웠다. 이른 오전인

게만 계속 썼다면. 새로 쓸 <이파네마 여자>의 조각 글 중에는

데도 가방이 무거워서 그런지 등이 더 더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 부분이 숭덩 빠져있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첫 줄'도 쓰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약속 시각

못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이 여름에 사지육신 굴려서 어

보다 20분이나 일찍 나와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지루하게 느

떻게든 써보겠다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어느새 남탓만 하고

껴졌다. 그런데 약속 시각이 다 되어도 경원은 나타나지 않았

있는 내 모습에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런데도 경원을 원망하

다. 경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카메라를 꺼내 주변을 촬영했다. 정류장의 노

름여 년 이십천이

는 내가 사는 동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배낭에 카메라

는 것을 좀체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나는 창에 기댄 머리를 요리 조리 굴렸다. 그러다 그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선 표지판을 찍고,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버스를 찍고, 정류

<세상에 도래한 폭염은 남자에게는 그저 폭력에 지나지 않았

장에 바짝 다가온 버스의 앞머리를 찍기도 했다. 나를 향해 일

다. 종점에서 내린 남자는 다시 버스에 올라탈 마음이 없었다.

제히 쏟아지는 불편한 눈초리를 최대한 참아내며 버스를 타고

휴게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잠시 쉬고 있던 기사 아저씨에게

내리는 사람들의 풍경을 찍었다. 지저분하고 낡은 운동화를 신

여기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 어디인지 물었다. 아저씨는 어

은 발등을 찍었다. 표지판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도 힘겹게 담

디에 가려고 그러는 거냐고 물었고, 남자는 자신이 사는 집이

아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도 경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저

있는 동네 이름을 말했다. 그럼 그냥 버스 타고 가는 게 낫지

히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연락이 안 되

않겠느냐고 아저씨가 말하자, 남자는 힘없이 고개만 가로저었

는 것이 하 수상해서 일단 경원이 사는 동네에 가기로 했다. 다

다.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 라는 표정으로 아저씨는 차고

행히 경원의 동네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에 올라

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을 알려주었다. 남

타고 자리에 앉으니, 일단 더위가 가셔서 살 것 같았다. 무거운

자는 힘없이 뜨겁게 데워진 보도블록을 걷고 또 걸어 30분 만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해변의 ㅇㅇㅇ

이천십이 년 여름

110

ㅇㅇㅇ 의변해

111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에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말이 30분이지, 남자는 땡볕 아래서

었다. 경원은 처음부터 약속 장소에 나올 마음이 없었던 건지

3시간은 걸은 사람처럼 땀을 흘렸다. 15분이라며 씨팔. 평소

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에게 이럴 수는 없었다. 힘없이

에는 잘 쓰지도 않은 욕이 절로 나왔다. 카드를 찍고 역 안 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곳이었다. 노선을 보니 종점이라고만

치에 널부러져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남자는 아까와 같은 욕

쓰여 있고, 동네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주변 노선을 살펴보

을 서너 번 더 뇌까렸다. 왜 없는 거야. 매일 있었으면서 왜 하

고서야 대략 어디쯤 와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한 번도 와

필 오늘은 없는 거냐구. 이제야 겨우 말할 용기가 생겼는데. 남

본 적 없는 모르는 동네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것만으로 충

자는 침울했다. 운명 같은 말을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해서 참

분히 우울할 수 있었다. 화도 내기 지치고, 다시 돌아갈 걸 떠올리니 답답했다. 차고

어오길 기다렸다. 타르르륵, 열차가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 그

위를 둘러보았다. 벤치 옆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

리고 남자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스크린도어 너머로 보이

지 운수 회사의 설립 기념 문구가 새겨진 큰 거울이 걸려 있었

는 이파네마 여자의 형상을 보고 타다다다, 다리를 구르기 시 작했다.>

"거기 뒤에 손님, 다 왔어요. 내리세요. 종점입니다."

름여 년 이십천이

지에서 계속 멍하니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하릴없이 다시 주

다. 뭐 씹은 얼굴로 땀을 송글송글 흘리는 내 모습이 그 속에 있었다. 가방은 무식하게 무거워 보이고, 종이 봉투 속에서 빼 꼼 튀어나온 옷깃은 예쁜 빨강 원피스가 아니라 꼭 무당들이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고 남자는 어영부영 자리를 털고 일어나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

입는 치마처럼 보였다. 이런 걸로 뭘 하겠다고. 정말. 심한 갈

기사 아저씨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경원네 동네는 종점

증이 났다.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아니, 이제 정말 술은 안돼.

이 아닌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부재중 메시지나, 전화는 없

집에 돌아가서 얼른 자자. 마감일까지 자자. 그냥 전부 잊어버

고 시간만 바뀌어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짐을 챙겨 버스에서

리자. 이파네마 여자고 뭐고 관두자.

내렸다. 뜨거운 햇살이 살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차고지

112

에 있는 벤치에 앉아 경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남자는 보았다. 이파네마 여자가 해변 위에 서 있는 것을. 그

신호가 갔다. 하지만 경원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화딱지

것은 반질반질한 광고용 랩 스티커 그림에 불과했지만, 그녀

가 나서 경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의 발이 닿은 곳 주변은 결코 메마르지 않았으며, 물결과 거품

[야, 전화 안 받을래? 이게 뭐냐!!! 걱정이나 시키지 말던가]

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의 귀에는 심지어 파도

5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경원에게 속은 기분이 자꾸 들

소리까지 들렸다. 저 멀리서 갈매기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13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에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말이 30분이지, 남자는 땡볕 아래서

었다. 경원은 처음부터 약속 장소에 나올 마음이 없었던 건지

3시간은 걸은 사람처럼 땀을 흘렸다. 15분이라며 씨팔. 평소

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에게 이럴 수는 없었다. 힘없이

에는 잘 쓰지도 않은 욕이 절로 나왔다. 카드를 찍고 역 안 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곳이었다. 노선을 보니 종점이라고만

치에 널부러져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남자는 아까와 같은 욕

쓰여 있고, 동네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주변 노선을 살펴보

을 서너 번 더 뇌까렸다. 왜 없는 거야. 매일 있었으면서 왜 하

고서야 대략 어디쯤 와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한 번도 와

필 오늘은 없는 거냐구. 이제야 겨우 말할 용기가 생겼는데. 남

본 적 없는 모르는 동네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것만으로 충

자는 침울했다. 운명 같은 말을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해서 참

분히 우울할 수 있었다. 화도 내기 지치고, 다시 돌아갈 걸 떠올리니 답답했다. 차고

어오길 기다렸다. 타르르륵, 열차가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 그

위를 둘러보았다. 벤치 옆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

리고 남자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스크린도어 너머로 보이

지 운수 회사의 설립 기념 문구가 새겨진 큰 거울이 걸려 있었

는 이파네마 여자의 형상을 보고 타다다다, 다리를 구르기 시 작했다.>

"거기 뒤에 손님, 다 왔어요. 내리세요. 종점입니다."

름여 년 이십천이

지에서 계속 멍하니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하릴없이 다시 주

다. 뭐 씹은 얼굴로 땀을 송글송글 흘리는 내 모습이 그 속에 있었다. 가방은 무식하게 무거워 보이고, 종이 봉투 속에서 빼 꼼 튀어나온 옷깃은 예쁜 빨강 원피스가 아니라 꼭 무당들이나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고 남자는 어영부영 자리를 털고 일어나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

입는 치마처럼 보였다. 이런 걸로 뭘 하겠다고. 정말. 심한 갈

기사 아저씨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경원네 동네는 종점

증이 났다.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아니, 이제 정말 술은 안돼.

이 아닌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부재중 메시지나, 전화는 없

집에 돌아가서 얼른 자자. 마감일까지 자자. 그냥 전부 잊어버

고 시간만 바뀌어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짐을 챙겨 버스에서

리자. 이파네마 여자고 뭐고 관두자.

내렸다. 뜨거운 햇살이 살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차고지

112

에 있는 벤치에 앉아 경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남자는 보았다. 이파네마 여자가 해변 위에 서 있는 것을. 그

신호가 갔다. 하지만 경원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화딱지

것은 반질반질한 광고용 랩 스티커 그림에 불과했지만, 그녀

가 나서 경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의 발이 닿은 곳 주변은 결코 메마르지 않았으며, 물결과 거품

[야, 전화 안 받을래? 이게 뭐냐!!! 걱정이나 시키지 말던가]

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의 귀에는 심지어 파도

5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경원에게 속은 기분이 자꾸 들

소리까지 들렸다. 저 멀리서 갈매기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13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았다. 열차 안은 에어컨 가동으로 시원했으나 남자는 브라질의

을 눈치채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까지도 남자는 비장한 표정

뜨거운 태양만을 떠올렸다. 열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흘렸던 땀

을 잃지 않았다. 남자는 그들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식을 줄을 몰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자의 눈에 열차 안

아니에요?

에 있는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머릿속

이파네마 여자의 손을 잡고 있던 다른 남자가 앞으로 조금 걸

에는 신기하게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내 오감을 덮쳐

어나왔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

오는 것들이 환상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저 여자만큼

는 자신에게 오는 시선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은 환상이 아니다. 남자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이파네마

몸을 이파네마 여자 쪽으로 조금 더 돌려세워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여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다 우뚝 멈춰 섰다.

이파네마 여자는 놀라서 입을 허- 벌리고는 다른 남자의 어

언제나 혼자였던 이파네마 여자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언

깨 쪽으로 몸을 움츠렸다.

다. 남자의 이마와 등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파도 소리는 열차 가 달릴 때 나는 소음이었고, 갈매기 울음소리는 열차 안 사람

름여 년 이십천이

주변에 있던 물결과 거품도 멈춰서 원래의 정지된 그림이 되었

아니구나. 남자는 해변 그림 스티커 위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 돌아서서 내리는 쪽을 향해 걸어나갔다. 열차는 서행 중이었 다. 지하철은 고맙게도 하차 벨을 누를 필요가 없었다. 곧 있으

들의 재잘거림인 것처럼 그 광경은 환상이 아니었다. 이파네마

면 문이 열린다. 그냥 내리면 된다. 열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

여자의 하얗고 동그란 얼굴은 옅은 연지라도 찍은 것처럼 홍조

고 밖에 있는 스크린도어도 열렸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다. 그것은 커다랗고 까무잡잡한 다른 남자의 손이었다. 그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제나 비어있던 작고 하얀 손에는 다른 사람의 손이 담겨있었

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114

애인, 있었구나.

동네에 다시 돌아왔는데도 아직 2시밖에 되지 않았다. 예상했

남자는 허탈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여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던 것처럼 경원에게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내가 전화를

어떻게 너는 다른 사람과 함께 그렇게 웃고 있는 건가. 버스가

걸어도 연락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사랑이 능사가 아니다'

아닌 다른 곳에서까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빼도 박도 못

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가 '우정이 능사가 아니다'

할 운명이 아니었던가. 아아.

라는 교훈을 얻었다. 내일은 경원과 절교해야지. 꼭 해야지. 진

남자는 이파네마 여자 쪽으로 다시 조금씩 다가갔다. 이파네

짜 해야지.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대자로 가만히 누워서 그

마 여자와 그녀의 연인이 자신들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오는 것

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경원이 제 이름을 써줄 것을 조건으로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15


ㅇㅇㅇ 의변해

해변의 ㅇㅇㅇ

았다. 열차 안은 에어컨 가동으로 시원했으나 남자는 브라질의

을 눈치채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까지도 남자는 비장한 표정

뜨거운 태양만을 떠올렸다. 열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흘렸던 땀

을 잃지 않았다. 남자는 그들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식을 줄을 몰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자의 눈에 열차 안

아니에요?

에 있는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머릿속

이파네마 여자의 손을 잡고 있던 다른 남자가 앞으로 조금 걸

에는 신기하게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내 오감을 덮쳐

어나왔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

오는 것들이 환상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저 여자만큼

는 자신에게 오는 시선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은 환상이 아니다. 남자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이파네마

몸을 이파네마 여자 쪽으로 조금 더 돌려세워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여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다 우뚝 멈춰 섰다.

이파네마 여자는 놀라서 입을 허- 벌리고는 다른 남자의 어

언제나 혼자였던 이파네마 여자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언

깨 쪽으로 몸을 움츠렸다.

다. 남자의 이마와 등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파도 소리는 열차 가 달릴 때 나는 소음이었고, 갈매기 울음소리는 열차 안 사람

름여 년 이십천이

주변에 있던 물결과 거품도 멈춰서 원래의 정지된 그림이 되었

아니구나. 남자는 해변 그림 스티커 위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 돌아서서 내리는 쪽을 향해 걸어나갔다. 열차는 서행 중이었 다. 지하철은 고맙게도 하차 벨을 누를 필요가 없었다. 곧 있으

들의 재잘거림인 것처럼 그 광경은 환상이 아니었다. 이파네마

면 문이 열린다. 그냥 내리면 된다. 열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

여자의 하얗고 동그란 얼굴은 옅은 연지라도 찍은 것처럼 홍조

고 밖에 있는 스크린도어도 열렸다.>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다. 그것은 커다랗고 까무잡잡한 다른 남자의 손이었다. 그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제나 비어있던 작고 하얀 손에는 다른 사람의 손이 담겨있었

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114

애인, 있었구나.

동네에 다시 돌아왔는데도 아직 2시밖에 되지 않았다. 예상했

남자는 허탈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여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던 것처럼 경원에게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내가 전화를

어떻게 너는 다른 사람과 함께 그렇게 웃고 있는 건가. 버스가

걸어도 연락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사랑이 능사가 아니다'

아닌 다른 곳에서까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빼도 박도 못

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가 '우정이 능사가 아니다'

할 운명이 아니었던가. 아아.

라는 교훈을 얻었다. 내일은 경원과 절교해야지. 꼭 해야지. 진

남자는 이파네마 여자 쪽으로 다시 조금씩 다가갔다. 이파네

짜 해야지.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대자로 가만히 누워서 그

마 여자와 그녀의 연인이 자신들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오는 것

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경원이 제 이름을 써줄 것을 조건으로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15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건 것이 생각나자 울화가 치밀었다. 이파네마 여자는 그렇다

첫 줄을 쓰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는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

치고, 다음에 쓸 소설은 네 녀석 이름을 쓰는 주인공이 처절하

다보았다. 커서가 보기 좋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게 죽어가는 이야기가 될 거야. 그건 어디서 본 적도 들은 적도 -fin-

없는 그런 종류의 처절함이야. 이 망할 것. 혼자서 화를 내는 것도 이제 지쳤다. 방구석에 방치한 짐이나 정리하자는 생각에 엎드린 채로 엉금엉금 기어가 내 앞으로 가 방을 질질 끌어내렸다. 가방 속에는 경원이 좋아하는 알감자 가 들어있었는데 그 사이 쉬어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방문 밖 으로 알감자가 든 봉지를 힘껏 집어던졌다. 다시 가방 속으로

하나에 눈이 멈췄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 이었는데 버스 창문 안쪽에도 몇몇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

름여 년 이십천이

사진들이 떴다. 톡톡, 사진을 하나씩 넘기며 보다가 어떤 사진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웠다. 작은 액정 밑에 있는 버튼들을 몇 번 만지니 오전에 찍은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손을 집어넣자 카메라가 만져졌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돌아누

였다. 그 부분을 확대해보았다. 거기에는 어떤 여자가 손잡이 를 잡고 서 있었다. 얼굴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 의 머리가 구불거리는 단발머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귓가 옆으로 튀어나와 내려뜨린 긴 줄은 아마 이어폰 줄인 것 같았다. 그녀가 입은 옷이 소매 없는 원피스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액정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자의 이번 여름은 특별했다. 평소 자주 타던 버스에 오르면 언제나 이파네마 여자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6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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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건 것이 생각나자 울화가 치밀었다. 이파네마 여자는 그렇다

첫 줄을 쓰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는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

치고, 다음에 쓸 소설은 네 녀석 이름을 쓰는 주인공이 처절하

다보았다. 커서가 보기 좋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게 죽어가는 이야기가 될 거야. 그건 어디서 본 적도 들은 적도 -fin-

없는 그런 종류의 처절함이야. 이 망할 것. 혼자서 화를 내는 것도 이제 지쳤다. 방구석에 방치한 짐이나 정리하자는 생각에 엎드린 채로 엉금엉금 기어가 내 앞으로 가 방을 질질 끌어내렸다. 가방 속에는 경원이 좋아하는 알감자 가 들어있었는데 그 사이 쉬어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방문 밖 으로 알감자가 든 봉지를 힘껏 집어던졌다. 다시 가방 속으로

하나에 눈이 멈췄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 이었는데 버스 창문 안쪽에도 몇몇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

름여 년 이십천이

사진들이 떴다. 톡톡, 사진을 하나씩 넘기며 보다가 어떤 사진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웠다. 작은 액정 밑에 있는 버튼들을 몇 번 만지니 오전에 찍은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손을 집어넣자 카메라가 만져졌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돌아누

였다. 그 부분을 확대해보았다. 거기에는 어떤 여자가 손잡이 를 잡고 서 있었다. 얼굴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 의 머리가 구불거리는 단발머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귓가 옆으로 튀어나와 내려뜨린 긴 줄은 아마 이어폰 줄인 것 같았다. 그녀가 입은 옷이 소매 없는 원피스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액정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자의 이번 여름은 특별했다. 평소 자주 타던 버스에 오르면 언제나 이파네마 여자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6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이파네마 여자들 ~ 문모운

117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몇 가지 깨달음과 자문 다짐과 성장하기를 모두 지켜낼 것. 게으름병은 정말 죽어야지만 낫는 건가. 무슨 글을 어디에 어떻게 싣든 마감일에 임박해서 쓰지 말 것. 소설은 역시 소설이다. 픽션, 알죠? 그러니까 노 모어 사소설.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에서 이별여행 이송양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리고 작업노트는 짧게 쓸수록 멋있다.

문모운 http://eveningcloud.blog.me

118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119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몇 가지 깨달음과 자문 다짐과 성장하기를 모두 지켜낼 것. 게으름병은 정말 죽어야지만 낫는 건가. 무슨 글을 어디에 어떻게 싣든 마감일에 임박해서 쓰지 말 것. 소설은 역시 소설이다. 픽션, 알죠? 그러니까 노 모어 사소설.

름여 년 이십천이

해변에서 이별여행 이송양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그리고 작업노트는 짧게 쓸수록 멋있다.

문모운 http://eveningcloud.blog.me

118

운모문 ~ 들자여 마네파이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119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 놈에 시간은 언제 나는지 요즘 같아선 그녀의 얼굴을 평생 못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말로는 설명하지 못 할 감정이다. 나는 그녀를 보고 싶지만 그녀를 보면 기쁘지 않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핸드폰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나날도 이미 지났다. 그렇다고 그녀를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보고 싶은데 막상 그 어 여쁜 얼굴을 마주하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는 투덜대고 그녀는 짜증내고 그녀는 울고 만다. 오늘 하루 적게는 수십 명의 사람과 스쳤고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 과 스쳤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도 왜 이리 외로운 지. 밤만 되면 술 생각이나 손을 바들바들 떤다. 사실 어쩌면 그녀 생

술을 마시면 어김없이 이별을 생각한다. 이루질 못할 꿈이다. 나는 헤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인 기준은 절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유명 개그맨을 닮았

장점 투성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그녀도 단

기 때문이다. 물론 개그맨이 다 못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거

점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다. 그녀는 사랑스

나 고현정만큼은 아니지 않은가.

럽다. 화를 낼 때도 사랑스러워서 나는 화를 내지 못 하고 항상 우물

어쨌거나 그녀와 나는 아무 곳도 가보질 못한 채 100일 보내고 200

120

름여 년 이십천이

을 타질 못 했다. 그녀는 ‘해변의 여인’의 고현정보다 아름답다. 객관

지 않는다.

쭈물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양 주먹이 허공을 휘젓는 날엔 어찌할 바

일을 흘려 보낼 예정이다. 그렇다고 여느 소설에 등장하는 쾌락추구

를 모르고 까무러친다. 그 어떤 개그맨의 공연도 이보다 더 재미있

형 커플과 닮아있지도 않다. 우리는 그저, 그저, 서로를 좋아할 뿐이

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슬프진 않을 것이다. 그녀의 분노

다. 아. 그런 걸까.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걸까.

가 재미있으면서 슬픈 것처럼 그녀의 웃음도 행복하면서 불행하다.

나는 해변의 OOO를 생각하며 그녀에게 문자를 했다.

화가 날 땐 나는 왜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 하는가, 그녀가 웃을 땐

“바다갈래?”

내가 저 웃음을 빼앗진 않을까. 남들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해변조차 가지

“시간 날 때.”

못할수록 나는 그 쓸데없는 걱정이 내 걱정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음

양송이 ~ 행여별이 서에변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녀와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우리는 그 흔한 시외버스 한 번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각이 술 생각으로 대체됐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애써 생각하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121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그 놈에 시간은 언제 나는지 요즘 같아선 그녀의 얼굴을 평생 못 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말로는 설명하지 못 할 감정이다. 나는 그녀를 보고 싶지만 그녀를 보면 기쁘지 않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핸드폰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나날도 이미 지났다. 그렇다고 그녀를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보고 싶은데 막상 그 어 여쁜 얼굴을 마주하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는 투덜대고 그녀는 짜증내고 그녀는 울고 만다. 오늘 하루 적게는 수십 명의 사람과 스쳤고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 과 스쳤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도 왜 이리 외로운 지. 밤만 되면 술 생각이나 손을 바들바들 떤다. 사실 어쩌면 그녀 생

술을 마시면 어김없이 이별을 생각한다. 이루질 못할 꿈이다. 나는 헤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인 기준은 절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유명 개그맨을 닮았

장점 투성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그녀도 단

기 때문이다. 물론 개그맨이 다 못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거

점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다. 그녀는 사랑스

나 고현정만큼은 아니지 않은가.

럽다. 화를 낼 때도 사랑스러워서 나는 화를 내지 못 하고 항상 우물

어쨌거나 그녀와 나는 아무 곳도 가보질 못한 채 100일 보내고 200

120

름여 년 이십천이

을 타질 못 했다. 그녀는 ‘해변의 여인’의 고현정보다 아름답다. 객관

지 않는다.

쭈물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양 주먹이 허공을 휘젓는 날엔 어찌할 바

일을 흘려 보낼 예정이다. 그렇다고 여느 소설에 등장하는 쾌락추구

를 모르고 까무러친다. 그 어떤 개그맨의 공연도 이보다 더 재미있

형 커플과 닮아있지도 않다. 우리는 그저, 그저, 서로를 좋아할 뿐이

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슬프진 않을 것이다. 그녀의 분노

다. 아. 그런 걸까.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걸까.

가 재미있으면서 슬픈 것처럼 그녀의 웃음도 행복하면서 불행하다.

나는 해변의 OOO를 생각하며 그녀에게 문자를 했다.

화가 날 땐 나는 왜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 하는가, 그녀가 웃을 땐

“바다갈래?”

내가 저 웃음을 빼앗진 않을까. 남들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해변조차 가지

“시간 날 때.”

못할수록 나는 그 쓸데없는 걱정이 내 걱정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음

양송이 ~ 행여별이 서에변해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그녀와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우리는 그 흔한 시외버스 한 번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각이 술 생각으로 대체됐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애써 생각하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121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차차. 나는 지금 취해있다. 취해있으니 이제

아직 헤어지기 싫어, 할까. 글쎄, 나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바라고 싶

헛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자야할텐데 그런 걱정에 잠은 오지 않고 바

지 않다. 걱정이 하나 있다면 후자일 경우이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쁜 그녀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밤 열한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걸까. 나는 그녀의 말대로 아직 헤어져선 안 되

시인데. 그녀는 일을 하고 나는 이렇게 술에 취해있다. 아, 아무래도

는 걸까? 나는 지금이 이별의 때라고 생각하는데도?

역시 이별의 때가 왔다. <여행계획> 웬일인지 다음 날에도 이별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책상에 앉아 비슷한 일을 마치고 다시 그녀 생각을 한다. 그

8월 3일 성남터미널 11시 57분 출발, 오후 3시 57분 도착, 모래언

러니까 앞서 말한 걱정 말이다. 그녀의 동그란 눈과 뭉뚝한 코와 앵

덕펜션 픽업, 회 + 청하

보기 좋은 그녀의 긴 다리와 비치는 옷을 입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이, 바비큐(정육점있다고함)

않고 아무 곳에서나 욕구가 치미는 그녀의 실루엣과 세상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그녀의 네일받은 손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절망, 이별과 실연을 생각한다.

름여 년 이십천이

8월 4일 느지막이 기상(11시쯤?), 라면+카레+햇반에 밥먹기, 물놀

8월 5일 느지막이 기상(11시쯤?) 펜션에서 터미널로 데려다줌. 2시 43분 차, 서울 6시쯤 도착.

이별여행은 신두리 해수욕장으로 정했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홍

예산 – 버스 왕복 43600원, 펜션 하루에 7만원(이틀해서 12000원으

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에 나왔던 곳이다. 펜션을 잡고 1박2일,

로 깎았음), 식비 8만~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잘 말리지 않는 그녀의 머리칼과 스키니 바지를 입으면 스키니하여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두 같은 입술과 웃을 때마다 생기는 콧등의 주름이 아니라, 웬만하면

혹은 2박3일의 스케줄을 짜 그녀에게 보여주면 아마도 그녀는 못 이 총 20만원

기는 척 그러겠노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여행의 반전은 마지막 날 밤에 있다. 나는 기필코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항상 이별로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나는 그녀 곁에 내가 있 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녀의 미소는 내가 봐선 안될 것이 다. 그렇다고 내가 맹인이 될 순 없으니 헤어져야 마땅하다.

가 언제 잘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단지 나는 맹인이 아닐 뿐이다.

“헤어지자.” 하면 그녀는 뭐라고 할까. 낮은 목소리로 왜, 할까. 아니면 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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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잘할 것이다. 내

양송이 ~ 행여별이 서에변해

아, 차라리 맹인이라면!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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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차차. 나는 지금 취해있다. 취해있으니 이제

아직 헤어지기 싫어, 할까. 글쎄, 나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바라고 싶

헛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자야할텐데 그런 걱정에 잠은 오지 않고 바

지 않다. 걱정이 하나 있다면 후자일 경우이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쁜 그녀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밤 열한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걸까. 나는 그녀의 말대로 아직 헤어져선 안 되

시인데. 그녀는 일을 하고 나는 이렇게 술에 취해있다. 아, 아무래도

는 걸까? 나는 지금이 이별의 때라고 생각하는데도?

역시 이별의 때가 왔다. <여행계획> 웬일인지 다음 날에도 이별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책상에 앉아 비슷한 일을 마치고 다시 그녀 생각을 한다. 그

8월 3일 성남터미널 11시 57분 출발, 오후 3시 57분 도착, 모래언

러니까 앞서 말한 걱정 말이다. 그녀의 동그란 눈과 뭉뚝한 코와 앵

덕펜션 픽업, 회 + 청하

보기 좋은 그녀의 긴 다리와 비치는 옷을 입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이, 바비큐(정육점있다고함)

않고 아무 곳에서나 욕구가 치미는 그녀의 실루엣과 세상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그녀의 네일받은 손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절망, 이별과 실연을 생각한다.

름여 년 이십천이

8월 4일 느지막이 기상(11시쯤?), 라면+카레+햇반에 밥먹기, 물놀

8월 5일 느지막이 기상(11시쯤?) 펜션에서 터미널로 데려다줌. 2시 43분 차, 서울 6시쯤 도착.

이별여행은 신두리 해수욕장으로 정했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홍

예산 – 버스 왕복 43600원, 펜션 하루에 7만원(이틀해서 12000원으

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에 나왔던 곳이다. 펜션을 잡고 1박2일,

로 깎았음), 식비 8만~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잘 말리지 않는 그녀의 머리칼과 스키니 바지를 입으면 스키니하여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두 같은 입술과 웃을 때마다 생기는 콧등의 주름이 아니라, 웬만하면

혹은 2박3일의 스케줄을 짜 그녀에게 보여주면 아마도 그녀는 못 이 총 20만원

기는 척 그러겠노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여행의 반전은 마지막 날 밤에 있다. 나는 기필코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항상 이별로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나는 그녀 곁에 내가 있 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녀의 미소는 내가 봐선 안될 것이 다. 그렇다고 내가 맹인이 될 순 없으니 헤어져야 마땅하다.

가 언제 잘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단지 나는 맹인이 아닐 뿐이다.

“헤어지자.” 하면 그녀는 뭐라고 할까. 낮은 목소리로 왜, 할까. 아니면 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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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잘할 것이다. 내

양송이 ~ 행여별이 서에변해

아, 차라리 맹인이라면!

해변에서 이별여행 ~ 이송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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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의변해

름여 년 이십천이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연인과 함께 하던 도시보다 해변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면,

이송양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바로 연애, 혹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한량기질이 있지만 부자 부모가 아닌 성실한 부모를 만난 덕에 홍대 에 위치하는 어느 작은 사무실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이상 근무하는, 스물여덟, 매력은 있지만 섹시하진 않은 여자. astraea09@naver.com

124

양송이 ~ 행여별이 서에변해


ㅇㅇㅇ 의변해

름여 년 이십천이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연인과 함께 하던 도시보다 해변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면,

이송양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바로 연애, 혹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한량기질이 있지만 부자 부모가 아닌 성실한 부모를 만난 덕에 홍대 에 위치하는 어느 작은 사무실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이상 근무하는, 스물여덟, 매력은 있지만 섹시하진 않은 여자. astraea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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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송이 ~ 행여별이 서에변해


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크레딧

문의 ~ abraxaszine.com, jongsoriz@naver.com

름여 년 이십천이

발행일 ~ 2012.7.31

가가린 ~ twitter.com/gagarinusedbook 더 북 소사이어티 ~ thebooksociety.org 샵 메이커즈 ~ blog.naver.com/shopmakers 유어마인드 ~ your-mind.com

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기획/디자인/발행 ~ 김종소리

이천십이 년 여름

스사락브아 째번 네열

판매처

책방 이음 ~ cafe.naver.com/eumartbook/ 이곳에 실린 작품의 저작권은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무단으로 가져다 쓰시면 안 됩니다. copyrightⓒ 2012 abraxas all right reserved

126

~ 딧레크

프롬 더 북스 ~ fromthebooks.com 홀리데이 프로젝트 ~ holidayproject.co.kr 101호 술집 ~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0-22 1층

판매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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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ㅇㅇㅇ 의변해

크레딧

문의 ~ abraxaszine.com, jongsor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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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디자인/발행 ~ 김종소리

이천십이 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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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더 북스 ~ fromthebooks.com 홀리데이 프로젝트 ~ holidayproject.co.kr 101호 술집 ~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0-22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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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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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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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ㅇ 의ㅇ 변ㅇ 해 의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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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아브락사스

이천십이 년 여름

해변의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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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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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여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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