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락사스
2013.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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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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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번째
아브락사스
열아홉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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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프가 그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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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가을
에토프가 그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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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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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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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조수희 D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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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운 가볍게 삼키세요 낯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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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혜 Happy hour (feat. 정체불명)
02:18:14
신당동 파르한 나의 생활
02:52:48
이주연 공의식
04:01:55
채희준 마음대로 그린 그림
04:59:31
김예슬 3-35-202
06:08:38
김종소리 컨트롤
06:43:12
FLYOOL 명태, 아브락사스, 그리고 개수작질
07:29:17
스테레오 유닛 First Date
08:26:53
mari kim 그리고 그 다음 다음 다음 다음의
09:01:26
pdz 말 없는 발
09:47:31
YYY YYY가 그린 하루
10:22:05
이여은 고맙고 고마운 이야기
11:08:10
추다다 나의 안경 진열대
11:54:14
위은옥 개
12:28:48
연울 The Black Apple
14:00:58
류민정 마음집 사과마음 꽃병마음
14:58:34 15:10:05 15:21:36
물고기 둘
15:44:38
임지온 시간. 장난. 그리고 면봉들...
16:42:14
여자는 생각한다
17:28:19
이승하 일상의 뒷면
18:25:55
황선진 어두운 밤과 악, 그리고 우리(들)
19:35:02
kook H의 식탁
20:09:36
noori bang 나는 에토프의 하루를 망쳐버린 뒤
22:39:22
발(행인의) 말
가을 호는 늘 다른 분들의 작품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에토프 님이 그려주신 그림을 주제로 해보았습니다. 사실, ‘에토프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지난 7호에서 ‘그린 그림’을 써먹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에토프가 그린 하루’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4, 7, 10, 1월 발행이라고 정해뒀던 것이, 5, 8, 11, 2월 발행이 되더군요. 이런 식이면 언젠가 계절 하나를 건너뛰게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시기적절하게도 10월 26일이라는 아주 현명한 날짜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게으름 그만 피우고,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일까요? 어디선가 주워들은 바, 가을에는 날이 좋아 사람들이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바람에, 책이 가장 팔리지 않는 계절이라더군요. 그래서 출판계에서 억지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고 들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만, 사실인지는 모르겠고요.
사실하니까 생각난 건데, 전 글을 쓸 때, ‘사실’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사실, 그 단어를 쓰고 싶어서 쓰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 쓰게 되더라고요. 사실, 퇴고할 때, 그렇게 신경 쓰이진 않지만 어쩐지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늘 사실을 줄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럼 전 사실은, 거짓말쟁이인 걸까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맨날 같아요. 재밌게 봐주세요.
2013. 10. 17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바라보며 산으로 가는 발말을 써야겠다 마음먹고서. 아(브락사스) 발(행인) 김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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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희 cargocollective.com/soohizz soohee0306@gmail.com twitter @soohizzlee 23 휴학생
점이 모여 선이 되듯 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저녁9시. 틀어놓은 티비에선 어제도 들었고 엊그제도 들었던 뉴스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늘 나의 하루는 별다를 것 없이 살아졌지만 오늘은 어제 못 들었던 음악을 들었고, 오늘은 어제 보지 못한 다큐 한편을 보았으며 오늘은 어제 하지 못했던 또 다른 고민을 했다. 그러므로 살아지는 하루 속에서도 나는 멈추지 않고 점을 쌓아가고 있다. (점긋기가 끝난 후 이메일 혹은 트윗으로 사진 한 장씩만 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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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삼키세요
남태평양의 밤을 상상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당시 쓰던 손바닥 반만 한 휴대전화에는 한국 시각과 세계 시각을 바탕화면에 나란히 설정할 수 있는 듀얼시계 위젯이 있었다. 보통은 유럽이나 북미 쪽 시각에 관심이 있기 마련인데 (정말 보통은 별다른 이유 없이 세계 시각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나는 왠지 남태평양이라는 글자에 손이 멈췄다. 남태평양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끌린 것이 분명했다. 그 사이에는 무수한 섬이 있을 텐데 오로지 망망대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남태평양의 현재 시각을 바라보곤 했다. 어쩐지 내가 있는 곳에 해가 뜨면 그곳에 달이, 그곳에 해가 뜨면 내가 있는 곳에 달이 뜬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얼마 가지 않아 회사 일이 지겨울 때면 이따금 남태평양의 밤을 상상했다. 어떤 처녀의 탐스럽고 풍성한 머리카락 같은 하늘에는 맨눈으로도 뚜렷이 보이는 성단이 고운 자수처럼 새겨져 있고,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쥘 수 있을 거 같은 은빛 달이 소탈한 머리 장식처럼 오롯이 박혀있다. 검은 바다 위에는 작은 돛단배가 있고 그 안에 내가 부드러운 모포를 휘감고 누워 있다. 파도는 평온하고 배는 난데없이 튼튼하다. 실제로 그렇게 홀로 밤바다에 버려진다면 아무 일이 없어도
(아무 일이 없기에) 며칠 못 가 자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상상 속 남태평양의 밤은 세상의 모든 온정을 대변하는 듯 그 커다란 몸 속에 티끌 같은 나를 기꺼이 숨겨준다. 환상적인 도피처였다. 남태평양의 실체를 알 수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왜 그런 걸 만들어냈을까. 그 시절부터 나에게 시간이란 어떤 학교의 무료급식처럼 느껴졌다. 웃고 있어도 뭔가 구질구질한 기분이 드는 것, 한정 없이 초라해지는 것이 최대의 고민이었다. 그건 정말 무료급식이었으니까! 그래서 휴대전화 액정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으로 지리멸렬한 청춘을 한 조각, 한 조각 씹어먹기로 했다. 어쩌다 잘못 삼켜 기침이 나면 그건 그거대로 또 좋았다. 바닷물로 이루어진 환상을 전부 먹어치운 날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이 되었고, 나는 물배 찬 어른이 되었다. 뭐 엄청나게 슬프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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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루
희망이고 불안이고 죄 좆같으니 그렇게라도 해야겠다.
보다 부드러운 멜로디로 알람 소리를 바꿔야겠다. 하루 동안 자신을 속이기 위한 마약이 단순히 잘 놀라는 체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이런 과정에서 희망이 생성되는 거였어. 그러다 돌연, 아아, 그렇구나.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울 때까지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강제로 설레는 기분이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린다. 알람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다시 아침, 어김이라는 게 없다. 어쨌든 아직 산다는 일에 기대치가 조금이나마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대신 산다. 희망을 소진한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100%에서 101%로 충전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상기하면 이야기는 쉬워진다. 그럼 많이 잘 수록 희망은 거대해지는가. 한편으로는 밤에 잠을 자는 것이 희망을 충전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의심도 든다. 일상은 거의 매일 그런 리듬으로 출렁이고, 이것은 분명 감정의 기복일뿐이라고 자신을 타이르기 바쁘다. 저녁 즈음 되면 그 희망은 바짝 쪼그라들어 서서히, 또, 역시나 이유 없이 다음 날에 대한 불안감이 그 자리를 크게 차지한다. 아침, 일정 시간이 되면 아무런 근거 없이 내 하루와 기분이 좋 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희망이 싹튼다.
문모운 twitter @m_m0_0m_m
1. <가볍게 삼키세요>에 대하여 거의 아무 계획 없이 진행시킨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켠에는 낭비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딱 그만큼, 한켠만 차지하고 있는 욕망에 그쳤을 뿐이죠. 이런 걸 놓고 보면 자기 합리화(다른 말로 정신승리)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의문도 듭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건 낭비의 일부이고, 이렇게 당신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그 사실이 대체로 기쁩니다. 2. <낯선 하루>에 대하여 이번 주제, 에토프가 그린 하루에 나오는 사람은 편해보여 좋아요. 어떤 컷으로 시작을 해도 좋아 보입니다. 그림 속 하루는 '거꾸로' 해도 에토프의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은 정말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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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혜 kimkahye@hanmail.net blog.naver.com/gahes
아래 그려진 것은 찻잔과 소서 세트입니다.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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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들은 저의 생활 전반을 떠오르게 하네요. 아홉개의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과 그에 걸맞는 노래들을 준비했습니다.
1. 타카피 - 엄마 진정한 자립은 아직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느낀 것은 엄마의 택배를 받고 나서였다. 나는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어 엄마에게 과일을 갈아 마실 수 있도록 믹서기를 보내달라고 했고 엄마는 믹서기로 갈아 마실 사과와 배도 보내주셨다. 자취생인 내가 과일을 사먹을 일이 잘 없기 때문에 당연히 고마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정말 말로만 자취라는 것을 하고 있는걸 깨달았다. 아마 한동안은 이런 생활이 계속 될 것이다.
2. 불독맨션 - 혼자 사는 남자 나도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비싼 그릇에 엄청난 요리를 담아 먹을 줄 알았다. 서울에 살기시작한 3월에는 (룸메이트의 집에서 보내준) 불고기와 된장찌개를 친구들에게 대접하며 정말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그것은 얼마가지 못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요리재료를 살 돈이 있어도 집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하는 건 귀찮았기 때문이다. 수험생 때는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기에 자취하면서 음식을 해먹는 것이 왜 귀찮다는 건지 이해가 안갔지만 이제는 블로그에 올라오는 쉬운 자취생 요리도 사치다. 그래도 나는 다른 자취생 친구들 보다는 조금이나마 덜 귀찮아하는 편인데 이 친구들은 과일깎기가 귀찮아서 또는 칼질을 못해서 과일을 껍질채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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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사과 1학년인 나는 아직 전공이 없는 대계열제 학생인데 워낙 사람이 많아 학교에서 임의로 반을 나눠줬다. 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라 1학기때까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했는데 다행히 한 친구와 친해졌다. 어느 날, 우리 집에서 1분 거리에 사는 이 친구가 줄게 있다며 전화를 했다. 집앞 슈퍼로 나가보니 친구가 왠 꽃을 들고있었다. 아직까지도 정말인지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꽃이 피어있길래 자기가 직접 삽으로 퍼서 화분에 심었다고 한다. 여자에게 받는 꽃이라 기분이 이상했지만 고마웠다. 대학교에 와서도 이렇게 가까운 동네친구를 사귀게 되다니 신기하다.
4. 푸펑충 - 어둠의 자식들 나는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 원룸에 산다. 우리의 원룸은 다른 원룸에 비해 훨씬 창이 커서 빛이 잘 들지만 이상하게 무생물만 잘 자라고 생물은 시들어간다. 화장실을 더럽게 쓰거나 물기를 말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곰팡이가 생기고 친구가 준 흰 꽃은 받은지 2주도 안되서 말라 비틀어졌다. 내가 기본 상식이 없는 건가 아니면 친구가 뿌리가 없는 꽃을 준 것일까. 아직 제대로 된 자취생이 되려면 멀었다.
03:27:22
5. 포브라더스 - 완벽한 하루 나는 절대 옷을 까다롭게 따져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돈이 없을 때, 생수를 사지않고 수돗물을 마실만큼 아끼고 아끼다가 돌발적으로 들어간 옷가게에서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 옷을 살 만큼 충동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양말에는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인다. 내가 신는 양말은 복사뼈가 보일만큼 짧거나 발목에 착 감기는 길이어야 한다. 발목에 착 감겨야 한다는 것은 마감처리가 잘 되서 신었을 때 마치 다리와 하나가 된 것 같은 양말을 말한다. 그래서 절대 레이스나 퍼프(puff)로 마감된 양말은 신지 않는다. 그리고 퍼프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주름을 만들어야만 발목에 멈추는 길이의 양말이다. 이 양말을 신으면 절대 다리와 하나가 된 느낌을 받지 못한다. 양말이 안 보일 정도로 긴 바지를 입는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긴 바지 아래에 이런 양말을 신으면 내 맨다리가 보이지 않아도 이상하게 내 종아리가 두꺼워 진 듯한 불편한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발목에 착 감기는 양말을 먼저 신고, 양말에 주름이 지지 않게 청바지를 입고 롤업한 다음 로퍼를 신으면 정말로 완벽한 하루를 시작하는 듯하다.
6. 루시드폴 - 문수의 비밀 아주 가끔 대구 집에 있는 강아지가 떠오른다. 걔는 처음에 닥스훈트 인줄 알고 데려왔는데 어쩐지 생김새가 좀 다르더니 닥스훈트 순종이 아니었다. 2005년 생이지만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여전히 집 전체가 화장실인줄 알고 가족들을 깨문다. 그래서 한 번 집에서 쫓겨날 뻔 했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모두 버릇들이는 것을 포기하고 의리로 같이 살고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절대 그립지 않지만 이상하게 가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걔 사진을 올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상한 허세가 생겨서 큰일이다.
03:38:53
7. 얄개들 - 화창한 날에 나같은 자취생은 답이 없다. 생수가 떨어진 이후로 생수를 사지않고 수돗물을 마시니깐. 룸메이트와 나는 장을 본지 벌써 몇 달 됐다. 둘다 목이 마를 때마다 생수를 꼭 사자고 말하지만 우리는 절대 사지 않는다. 수돗물은 확실히 생수와 맛이 다르지만 너무 일상이 되어서 딱히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다.
8. 스타트라인 - zombie 가끔 스무살 때 까지의 내가 생각난다. 나는 고등학생 때,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진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몽상을 많이 했다. 한 때, 꿈이 패션 디자이너였는데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 것을 좋아해서 이근삼씨의 원고지라는 소설을 읽고 디자이너가 되면 그것에 영감을 받은 체크무늬 셔츠를 만들것이라 생각했다. (그 소설에 원고지 무늬의 옷을 입은 교수가 나온다.) 일상에 안주해서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지금보다 약간은 무모했고 몽상가였지만 그래도 꿈에 부풀어 있던 그때가 훨씬 바람직하다. 어떤 친구가 난 뭘 해도 될 것 이라고 말했다는데 지금의 난 왜 이럴까.
03:50:24
9. 조정치 - 사랑은 한잔의 소주 인생은 한잔의 커피. 나는 이 말이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줄 알았고 고등학생 때 끄적거렸던 그림에 '인생은 한잔의 커피'라는 설명을 곁들였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고등학교 3학년 영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그 말을 들어봤냐고 하셨고 나만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놀라셨다. 난 그럴 때마다 선구자가 된 느낌이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 때 느끼는 희열은 정말 엄청나다.
신당동 파르한 twitter @chungchoon98
네이버 블로그 <신당동 파르한의 천로역정>
04:01:55
04:13:44
에토프가 연락해왔다. 하루를 그렸으니 글을 쓰란다.
떠오르는 건 뭐든 좋다고 했다. 처음엔 하루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줄 알았다. 우리에게 하루란 ‘day’보다 그 애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단어였으니까.
에토프의 본명은 이태평이다. 태평이 에토프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도 하루 때문이었다. 이탭 이탭하고 부르다가 홍대 부근에서 취한 외국인이 에톱? 하고 되물었던 시시한 밤 때문이었다. 그래서 태평은 톱이 됐다. 이성계의 후손이라며 자랑스레 내비쳤던 전주 ‘이’씨는 아리송한 ‘에’가 됐다. 그 에토프,가 하루,를 그렸다.
1.
에토프가 사과를 산다. 하루는 파란 사과가 싫다고
했다. 이가 아파서 싫다고 했다. 아, 그건 포도였던가. 하루는 복숭아도 싫어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무도 하루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안다. 이가 아픈 사과와 포도를. 두통을 유발하는 복숭아를.
에토프는 사과를 잘랐다. 하루는 절대로 칼을 손에
쥐지 않는다. 하루가 사과를 자르면 우리가 그 사과를 먹기까지 두 시간, 세 시간, 어쩌면 반나절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하루는 칼과 친하지 못했다. 어느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트라우마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하루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생각을 마치자 사과는 세 조각이 남아있었다. 에토프가
모두 먹은 걸까, 하루가 먹은 걸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먹었을까, 혹시 에토프는 하나의 사과를 세 토막으로 자른 걸까? 알 수 없다. 어쨌든 의식 속의 세 조각 사과는 우리 셋이 나누어먹었다. 이가 아파서 싫다던 파란 사과를 하루는 먹었다. 분명, 에토프가 잘랐기 때문이다.
아, 혹시 빨간 사과였나?
04:24:58
2.
[웬 꽃이야?]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좋지 않게 말하면
심심한 에토프네 식탁에 튤립 몇 송이가 꽂혀있었다. 에토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웬, 꽃이야?]
[에토프! 하나! 미즈! 와스레챠 다메! ] 화장실
부근에서 하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질문과 겹쳐 들리지 않은 것인지 에토프는 또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는 물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하루는 가끔 저렇게 일본어로 이야기를 했다. 한국어가 미숙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번엔 아마 다급하게 외치느라 그랬을 것이다. 에토프는 가만히 튤립을 쳐다보고 자그맣게 혀를 찼다. 에토프가 꽃을 싫어했던가? 기억에 없다.
[웬, 꽃,] 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토프가
대답했다. [하루가 받아왔어. 웬 프랑스인 녀석이 줬대.] 에토프의 말투는 덤덤했다. 내가 알기로 하루는 누군가에게 꽃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애였다. 어느 날엔가 우리에게 ‘꽃을 주고받는 것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여태껏 만나온 사람과는 단 한 번도 꽃을 주고받은 적이 없으며 연인 사이엔 무척 뻔한 그 로맨스를 누리지 못한 게 퍽이나 억울했다고 했다. 그런 하루에게 꽃을? 프랑스인? 튤립?
[홍대랑 명동에서 하루를 몇 번이나 보았다며 옆에
있던 꽃집에서 급히 사서 건네더래. 처음 봤을 때부터 이름을 묻고 싶었다고.] [명동? 하루가 명동에 있었을 리 없잖아. 그건 하루가 아니야.] [내가 아니면 어때. 꽃을 받았다는 게 중요하잖아.]
하루가 손에서 물기를 털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역시
하루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프랑스인 눈에 동양인 얼굴은 거기서 거기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가 노래를 흥얼거 렸다. [‘차가운 거 좋아하세요, 뜨거운 거 좋아하세요?’ 물어봤지 / 그녀의 대답을 잊을 수 없네 / 섹시한 눈빛으로 음 '씨빠빨룽 꼬리앙!']
04:36:29
3.
에토프는 튤립 사건 이후로 부쩍 조용해졌다. 원래
조용한 녀석이긴 했지만 좀 음산해졌달까, 음침해졌달까. 심심한 녀석이 배로 재미없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날도 많았다. 어떨 땐 우리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 같기도 했다. 우리에겐 한 마디 말도 않으면서 마당에 가끔 출현하는 어느 강아지에게는 매일 기복 없이 친절했다. 에밀리인지 이민지인지 이름을 지어서는 [에밀, 에밀]하고 조용히 불러댔다. 그러면 녀석은 에토프에게 꼬리를 흔들어댔는데, 어쩌다 나와 길가에서 조우를 하면 그 꼬리를 감추고 도망가기 바빴다. 에토프에게만 친절한 녀석인 것이다. 에토프도 에밀리(인지 이민지인지)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되었다. 하루는 그런 에토프에게 튤립 관리를 맡겼다. 예의 프랑스인과 연락을 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에토프에게 묻기도 뭐해서 그냥, 그렇게 우리는 조용하고 심심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4.
에토프는 한식, 일식, 양식, 모두를 두루두루 잘했다.
에토프는 요리도 잘했고 청소도 깔끔하게 할 줄 알았으며 (그래서 에토프네 집은 늘 심심할 정도로 깨끗했다), 빨래도 꼼꼼하게 완수했다. 그런 에토프는 나에게, 하루에게 든든한 친구였다. 우리는 ‘손에 물 묻힐’ 일 없이 지내왔고 그것은 우리의 독립심을 앗아가는 일이기도 했지만 놓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매일 깨끗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서고, 심심할 정도로 깨끗한 집에 돌아와 영양에 불균형이라곤 보이지 않는 식단으로 세 끼를 해결하는 일. 에토프가 없이는 나의 일상이 유지되지 못했고, 아마 하루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 뿐 아니라 에밀리(인지 이민지인지)와 튤립도 마찬가지였다. 에토프가 돌보고서부터 에밀리(인지 이민지인지)는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튤립은 부엌 한 가운데에서 조화처럼 저를 뽐내기 바빴다. 그런 식탁에서 우리는 양식을, 한식을, 어느 날엔 일식을 먹었지만 정작 에토프는 대부분의 끼니를 빵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요리를 좋아하고 조리도 퍽 잘하는 에토프지만 본인의 끼니는 언제나 베이글에 크림치즈였다. 길거리에 즐비한 ‘현대인’ 코스프레를 하려는 것도 아니요, 딱히 귀찮은 것도 아니면서 에토프는 늘 빵을 먹었다. 에토프는 베이글을 먹음으로써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베이글을 꾸준히 먹어가며 우리에게 한식, 일식, 양식을 고루 대접해주었다.
5. 04:48:00
하루가 사라졌다. 튤립도, 에밀리(인지 이민지인지)도,
모두가 그대로 있는데 하루가 사라졌다. 나는 하루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에토프네 집에서 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애의 체취나 머리카락(샤워만 한 번 하면 아주 잘 떨어져나왔으니 말이다), 목소리 같은 것을 들을 수 없었다. 100m 바깥에 있어도 느낄 수 있던 그애가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에토프에게 하루 이야기를 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고, 에토프는 어째서인지 조금 밝아보였다. 하루는, 어디에 갔을까?
에토프가 나를 부른다. 에토프는 다시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했다. 조금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나를 앉힌다. “하루, 내가, 너,를 그려줄게.” 하루. 나는 누구지?
마지막 그림은, 에토프가 그린, 나,다. 에토프는 이제
글을 쓰라고 한다. 내게 펜을 쥐여 주었지만 노트는 여전히 백지다. 하루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주연 bebezzu@naver.com bebezzu.blog.me twitter @Z_Meteor
이번 계절엔 “빨간 모자를 써도 구조 받을 수 없네” 하는 노래를 들어요. 지지난 계절엔 ‘이 모든 것들을 어찌나 전하나요’ 했고 지난 계절엔 ‘우리들은 모두 추락할 거야’라 했지요. 오늘은 빨간 모자를 쓰고 외출을 했어요. 나흘 간 십오 분을 채 자지 못한 상태였지요. 누구씨는 날더러 요양 나온 환자 같다 했고 매서운 동생에게 잠을 자라고 등짝을 맞기도 했어요. 내가 부러 자지 않는 게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건네주는 걱정의 말이 좋아 나는 몇 번이고 반복했어요. 잠을 못 잤어! 잠을 못 잤어! 불면증 같은 건 없어요. 오히려 기면증이 아니냔 오해를 사죠.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사람에게 이런 마음을 느낀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나는 요즘에 감사합니다. 지지난 계절처럼 아빠 엄마는 또 다시 중국에 간대요. 나는 이제 레고를 모두 세워두었습니다. 점프 연습 같은 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빨간 모자로 구조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바쁨만 지나면 나도 뱀처럼 겨울잠에 들 거예요. 평소보다 이를 더 세게 갈며 자려고요. 안녕히 주무세요!
04:59:31
마 음 대 로 다 시 그 린 하 루
며칠전 이 집의 장롱에 현금뭉치가 있는걸 발견했고
덕분에 먹고 싶은 음식도 이렇게 몰래 직접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몰래 숨어 살았던 집중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집인 것 같다.
근데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어째 주인보다 날 더 좋아하는 것 같단말야..
오늘은 불금이니까 늦게 들어오겠지..? 그래, 내친김에 몇 년 전부터 꿈꾸던 것을 오늘 해야겠다.
남들은 꿈을 이루려고 스펙이니 뭐니 불나게 경쟁하면서 바쁘게 사는데 난 고작 평범한 집에서 마음편하게 도넛에 커피 한잔 하는게 있다는게 꿈이라니....
벌써 주인이 올 시간이 됐네.. 슬슬 치우고 숨어야겠다.
음..생각보다 일찍왔네.. 오늘도 역시 오자마자 식탁에 앉아서 담배부터 피는구나 ... .. . 잠깐 .. 근데 내가 도넛을 먹었었나..? 치운 기억은 없는데..
채희준 heejoon1989@naver.com
06:08:38
06:20:10
오늘은 오빠랑 먹을 사과를 샀다. 파란 사과 빨간 사과 한 손에 무겁게 들으니 행복하다. 파란 사과를 먹고 싶다. 오빠 입에 들어가기 편하게 잘라야지. 사각사각. 오빠가 등 뒤에 꽃을 숨기고 나에게 다가온다. 모르는 척해야지. 드든! 우와 오빠 이게 뭐야? 오빠가 걸어가 뒤에 시끄럽게 울고 있는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주며 조용히 하라고 한다. 오빠랑 섹스하고 장을 봐왔다. 그 다음 날 아침 모닝커피, 모닝섹스, 모닝도넛. 코 풀면서 콜라 마시는 우리 오빠 너무 멋있다.
06:31:41
김예슬 asumos@naver.com
06:43:12
어디선가 라면 냄새가 풍기는 여름밤, 나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06:54:43
아. 존나 취했는데 맥주 한 캔은 더 마실래.
보면 열 받아서 외면하고 싶어진다. 이게 그들의 노림수.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게 또한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엿 먹일 방법이기도 하다는 게 아이러니 말도 안 돼. 아이러니 말도 안 돼.
외면은 안 한다. 하지만 내 선택은 직접적인 펀치를
날리는 것보단 졸라 비겁하게 그 새끼들 집에 가는 길을 몰래 쫓아가서 뒷통수 때리는 거다. 졸라 열 받게. 그리고 다음날 자퇴할거다.
같은 수로 이기면 재미없으니까 다른 수를
궁리할거다. 힘은 힘으로 이기는 게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이겨야한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아이러니함으로 승부하겠다. 덤벼라 채치수. 난 불꽃남자 정대만 할래.
근데 채치수랑 정대만 같은 편이잖아...
중요한 것은 재밌는가, 재미없는가.
어쩌면 재미없기 때문에 외면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어쨌든 내게 중요한 것이 재밌는 것이 아닐까? 남이야 어쨌든.
나 자신의 관점. 중요한 것은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내가 즐거운 것이 무엇인가인 것 같다. 말장난 같지만. 꼬이고 꼬인 무언가. 결국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 그렇기에 메타포가 필요하다. 마치 데미안의 카인의 표식과 같은 그 무엇.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
“네가 아직 덜 겪어봐서 그래.”
ㅗ. 근데 사실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한데, 듣기 싫은 건
듣기 싫은 것이다.
무거운 짐. 상대가 힘들지 않도록 혼자 드는 게 나을까, 상대가 내게 도움을 주면서 뿌듯할 수 있게 함께 드는 게 나을까? 함께 가는 길이라면 함께가 낫지 않을까? 상대가 힘들 때, 조금 더 마음 편히 내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혼자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울 때에 만이다. (누가 들어달래?)
몰랐는데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니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그래봤자 아직 스물일곱 밖에 안 먹었다.
근데 마음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마흔 먹은 중년 같다. 조급해 하지 말고 좀 더 여유 있게 멀리, 넓게 보자. 나는 아직 어려. 그것도 한참 어려. 애기야
애기. (자기최면)
점잔 빼지 말고 트윗도 막 싸지르고 하자. 알 게
뭐냐는 마음을 갖자. 열심히 안 산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은 이렇게 하고, 생각도 이렇게 하지만 정작 몸은 이러지 못할
07:06:14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중얼중얼 아이폰 자판을 두들겨 팬다.
점심 먹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드러누워 코 골고 자던
나는, 수업 땡땡이 치고 맥주 사다 벌컥벌컥 들이키던 나는, 영어 따위 평생 쓸 일 없다며 토익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나는, 서울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글이나 쓰겠다던 나는.
그랬던 나는 사라져버렸다.
지금의 삶도 나름 재밌어. 그럼 됐지 뭐.
우와! 막걸리랑 소주랑 섞었더니 머리가 아파!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낫다. 위험 하기는 해도,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그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행동을 통해 잘못을 저지르고 뉘우칠 기 회를 얻기에. 생각만 해선 잘못을 저지르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기 합리화인가.
더 많은
잘못을, 실수를 저지르고, 뉘우치고
반성하여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뉘우치고 반성한다고 해서 또 같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반복은 개그의 기본이자, 이 세상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것이 영리한 행동에 비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바꾸려는 내 노력이 쌓일수록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돌아온 강지혜는 날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오빠 울지 좀 마, 였다. 울긴 뭘 울어? 라면서 황당해했더니 눈이 퉁퉁 부었다며, 그리고 오빤 쉽게 울지 않냐고 했다. 그러고 보면 요 며칠 새 울지 않은 날이 없다. 오늘은 집으로 오는 공항철도에서 울었고, 어제 그젠 영화를 보다, 그그젠 소설을 읽다.
링 위에서 허공에다 주먹을 날리며 상대가 올라오길 기다린다. 하지만 상대가 올라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링 아래로 도로 내려 가는 수밖엔 없다.
결혼식에 갔다가 일 가는 중. 술은 예상 보다 적게 마시고 좀 취해서 더 마시고 싶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신부 친구인 예쁜 여자와의 로맨스 같은 건 개나 줘버려. 일 가기 전에 맥주나 한 캔 더 마셔야겠다.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먹고 자고 싶은 가을밤, 나는 술 취한 트윗들과 페북 글을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하였다.
07:17:46
김종소리 twitter @jongsoriz jongsoriz.tistory.com
하루에 대해 생각하다, 요즘은 왜 이렇게 심적으로 여유가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 지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뒤적이니 술 취한 것들이 많아 그것들을 컨트롤 비트에 담아보았습니다.
07:29:17
07:40:48
싱클레어 51호를 사고 싶었다. 표지의 여인은 뽀얀 살색의 쇄골과 우아하게 드러난 목선으로 나를 유혹했고 책 속에 온통 파란 글자들은 나를 사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이 책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이곳저곳을 뒤지던 책방 주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더니
"그것만 없네요."
"아, 그런가요."
"네, 이상하게 51호만 다 팔렸어요."
"그렇구나.. 사람들 보는 눈은 다 똑같은가 봐요. 샘플은 안 팔죠?"
"네, 아쉽게도. 그럼 대신 이건 어때요? 최근에 나온 건데 괜찮아요 이것도."
"아브락사스? 이건 처음 들어보는데."
그렇게 몇 달을 눈여겨보다 방문한 명태에서 나는
아브락사스 18호 한 권을 샀다.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간 집착'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구에도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을 벼르고 있다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간 것이다. 대구의 9월은 아직 여름이었고 나는 흐르는 땀이 아무렇지 않은 척 책방을 찾아가서는 뻔뻔하게도 네 시간 동안이나 그 곳에 머물렀다. 처음만나는 사이였지만 주인은 주인같지 않았고 손님은 손님같지 않아서 우리는 어색하면서도 즐거웠다. 한참을 우리는 공간이라는 주제로 말을 섞었고, 돌아와서 나는 남자#7을 완성했다.
명태에서 구입한 아브락사스는 책을 한 번에 여러 권
동시에 읽는 내 괴팍한 취미 덕분에 늘 뒷전이었다. 하루는 출근버스에서 읽다가 제대로 잠이 들었던 적이 있어서 그 날 이후로는 사무실 책상 위 어딘가 외롭게 놓여 있었고, 그러면서 내가 항상 손이 먼저 갔던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와 반납일이 정해져 있는 것들이었다. 억지로라도 읽으려고 빌렸으니 꼭 다 읽고 반납하겠다는 쓸데없는 사명감 덕분에. 그렇게 아브락사스는 가끔씩 화장실을 갈 때나 점심을 먹고 노곤할 때 읽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
군대에서 수요일은 전투체육을 하는 날이다. 13시부터
퇴근할 때까지 운동만 한다. 말그대로 전투적으로 체육활동을 한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이 시간이 참
좋았는데 절반은 운동을 하고 다시 씻고 들어와서 얌전히 책을 읽어도 뭐라 참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하필이면 재수없게도 당직근무에 당첨되어 어쩔 수 없이 13시 에 복장을 갖추고 짐을 챙겨든 채 지휘통제실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남들 다 운동하면서 노는데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게
07:52:19
억울했다. 아, 근무를 왜 바꿔줬을까 내가. 후회해봐도 이미 때는 늦었다. 책이나 읽어야지.
여기서 잠깐, 혹시 궁금해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위
해 미리 몇 가지 설명하고 넘어간다. 나는 직업군인이고 글쓰기는 취미다. 군인이 글써서 이런데 보내도 되냐고? 된다. 분명 발행인의 주머니 사정상 고료는 못준다고 했으니까, 영리적인 목적으로 활동하는 건 아닌 셈이다. 그리고 나는 연말에 책을 낼 생각인데 그건 그래도 되나? 그건 안되지만 나는 한다. 분명 돈 받고 팔 거니까 안되기는 하는데, 당신만 눈감아 주면 아무도 모른다. 독립출판하는 군인보다 국방부에서는 신경쓸 일이 훨씬 많이 있다. 그러니까 책 안 사줄 거면 눈감아 줘라. 부탁드린다. 사준다면 선택에 맡기겠다. :)
다시, 롱의 한 쪽 다리가 잘려나가서 오빠 탄이 높게
뛰어오를 것을 마음먹는 부분까지 읽었다고 선영이가 선물해준 책갈피가 친철하게 가르켰다. 그리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책상에 앉아 한 시간 동안 단숨에 마지막까지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크레딧을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했다. 김종소리? 분명 장례식 찾아가던 그 청년이야기가 이 사람 글이었던 것 같은데? 뭐지? 편집자? 응? 했던 것,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저작권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는 어디서 듣도보도 못했던 저작권 이야기, 그리고 판매처.
북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는 서울 올라가면 가끔
들르는 곳이라 잘 알고 있는데 목록에서 더폴락을 보니 괜히 반가웠다. 내가 다녀온 명태(더폴락이 명태라는 뜻이다. 심오한 뜻이니 자세한건 블로그로)가 당당히 적혀있는 것을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았는데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
지금 쓰고 있는 '공간 집착'은 사실 한 여자를 향한
사심이 가득 담긴, 그럴 목적으로 시작한 글이다. 글의 특성상 내가 직접 경험을 해야 글이 진행되는 형식이었으므로 남자#7까지 쓰고는 보름이 넘도록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어제 선영이한테 문자가 왔다.
'오빠.. 저희가 한 발 늦었어요...'
이 한 마디로 모든게 다 설명됐다. 그렇지만 난 이
이야기를 듣고도 태연하게 계속 글을 쓰겠다고 했다. 내가 애간장 타도록 좋아한 것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이미 써놓은 글에 미련이 남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글을 계속 쓰는 것을 멈추기가 싫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어제 상황을 #Behind 라는 타이틀과 함께 적어내려갔고 내친김에 그녀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을 때 노트에 써놨던 글을 옮겨 적어 Epilogue를 만들었다. 그리고 밤새 글의 플롯을 재구성하고 억울해 하느라 사무실에서 쇼파에서 불편하게 잠들었다. 그러다가 오늘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
아브락사스를 파는 공간이라면 어떨까?
판매처 목록에 있는 책방을 다 뒤졌다. 아, 물론
북소사랑 유어마인드는 빼고. 그리고 그 중에 제주도 왓집과 부산 프롬 더 북스를 두 시간, 스캔했다. 이상하게 내가 처음
08:03:50
명태를 발견했을 때 느낀 그런 감정,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한 그럼 두근거림이 심장 구석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바로 어제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분명 지금 의기소침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도 내 심장이 반응을 한다. 왜? 나도 모르는 무슨 개수작질이 또 벌어지려고 하고 있는거야? 하면서도 이미 내 마음속으로는 벌써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런 잔대가리 굴리는 건 아무래도 타고난 듯하다.
아래는 내가 지금 구상하는 개수작질 초안.
1. 11월에 일본으로 배타고 넘어가기 전 날 프롬 더
북스를 들름. 명태에서 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독립출판을 앞두고 있는 입장으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받음. 그리고 혹시 그린그림에서 인쇄할 수 있으면 더 좋으니 말을 꺼내봄. 싱클레어 51호가 혹시 남아있으면 구입.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 물어봄. 그리고 혹시 아브락사스에 내 글이 실리면 이 글을 보여줌. 그리고 책이 완성되면 몇 권 가져다 놔도 되냐고 물어봄. 명태에서는 10권 가지고 오라고 그랬다고 하면서.
2. 제주도 왓집은 책을 인쇄 했더라도 시간되면
방문해서 공간에서 진행중인 많은 활동에 대해서 조언을 얻음. 공연, 영화, 워크샵, 행사 등등 배울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있어도 다 못배울 것 같으니 이건 미리 협조를 하고 가야겠음. 멀리서부터 왓집의 팬이 되어버렸으니 책임지라고. 그리고 역시 아브락사스 19권을 보여줌. 그러면 더 잘해주겠지. 그리고 역시 책이 완성되면 들여놓아도 되겠냐고 공손히..
3. 다시 '공간 낯-선'을 방문해서 아무일 없던 것처럼
구상하고 있던 글을 계속 진행시킴. 공간 활용에 대한 여러 조언들과 준비한 기획안을 제시함. 그 밖에 카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최대한 많이 겪고 연말이 되기 전까지 글을 완성시킴.
4. 책을 출판하고 공간 낯-선에 몇 권 팔아달라고
요청함. 그럼 게임 끝. 물론 슬픈 결말.
이렇게 쉽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나는 이런
생각들 중에 절반도 잘 진행되지 않을 것을 안다. 다만 이런 수작을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하고 있다. 나는 명태에서 아브락사스 한 권을 사왔을 뿐인데 이렇게 글을 적고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것처럼 분명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또 벌어질테니까. 그래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나중에 글이 완성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뒤의 이야기를 모아 다른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번 주말 나는 한 달 만에 '공간 낯-선'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 달 동안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멘트도 준비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이 대사는 남자#8의 첫 소절이 될 것이므로 그래야 한다. 혹시나 거절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저랑 비즈니스 하나 안하실래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나중에라도 내
책을 보게된다면 이건 책에도 없는 내 진짜 마음이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다. 내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공간
08:15:22
낯-선에서는 아브락사스를 안팔거든.
그리고 혹시라도 나중에 이 글을 읽게된다면 그 때
그게 진짜 이 책의 결말인 거다.
이런 개수작질.
FLYOOL _aprodite_@hanmail.net
군인인데 군인같지 않고 작가인데 작가같지 않고 남자인데 남자같지 않고 서른인데 서른같지 않은 이 남자의 개수작질.
08:26:53
08:38:24
08:49:55
스테레오 유닛 stereo-unit.com
저희는 <에토프가 그린 하루>에서, '그녀와의 첫 데이트를 위해 그가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지만 결국 그녀는 오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가여운 그를 위해 스테레오 유닛이 그의 첫 데이트를 성공시켜주려고 합니다.
<First Date>는 첫 데이트에서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그녀만 보이는 그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09:01:26
속삭일 수 있는 거리에서 말하지 못하고 여기. 먼데에
떨어져 와서야.
정물같은 하루를 보낸다. 다음 아침의 햇살에 반응해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감추고 실눈을 뜨고 네가 있을정도의 거리에 시선을 두고 다시 눈을 감고 오지 않을 소리들을 기다리고, 나와 같지만 분명 다른 온도를 기다리고, 이제와서. 고개를 좌우로 조금만 움직이면 모든 공간이 보이는 방을 서글픈 공간이라고 지칭해보고, '원래
혼자서도 잘 해왔으니까.' 다시금 과거로, 아픈 감정들의 무덤으로.
괜찮다는 생각을 안괜찮다는 생각으로
덮어두고 오래 곰곰 되짚을 용기조차 내지 못하 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마음 으로, 흐르는 TV화면에 시선을 두었다가 장면이 하나 지날때마다 하루씩 지난다면 좋겠다는 생 각. 방안을 괜스레 한 바퀴 걸어보고 슬렁슬렁 발을 질질 끌며 아무데나 주저앉았다가, 컴퓨터 게임을 켜고 허공에 마우스를몇 번 클릭하다가 핸드폰을 쥐었다가, 뒤집어 놓았다가 다시 들어 빈 화면을 보고 다시 내려놓고. 침대에 멍하니 누 워 밖에서 나는 소리들을 듣고, 손을 펼쳐보고 손가락 마디 사이를 유심히. 다른 것들도 좀 유 심히 살필걸 그랬지 하는 마음으로. 갑작스럽게 간절해진 마음에 놀라서, 놀람이 슬픔으로 순식 간에 변해서 먹먹해지는 모든것들.
지나고보니 너는 내 삶의 모든 행운이었다.
아직도 네가 내 삶의 모든 행운이길 바란다.
그리고 기나긴 밤.
그리고 그 다음 아침의 햇살.
몇일째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여전한 햇살. 그 다음의 기나긴 밤이 오기전에, 네가 좋아하던 사과를 사러간다. 마트 점원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니 올해는 과일농사가 잘 되서 과일들이 싸고 맛이 좋다더라. 과일을 나눠먹으며 네가 하던 얘기들이 장면으로 펼쳐진다. 돌아오는 걸음뒤에 그림자. 쓸쓸. 쓸쓸. 쓸쓸. 쓸쓸. 발자욱을 찍고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와 테이블에 사과를 씻어 올려둔다. 문자를 보내볼까. 고민하다가 다시 기나긴 밤.
아직도 너를 기다리는 장면이다. 그 다음의 다음
아침의 햇살이 다시 시작되고 네가 좋아하던 꽃을 사볼까 싶어 다시 길을 나섰다. 꽃가게에 가서 예전에 집에 네가 가져왔던 식물을 보고 이름을 물었다. '페어리스타' 요정의 별 같은 건가. 너와 잘 어울린다. 꽃집에 오니 정작 네가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몰라 있는 꽃들중에서 가장 예쁜 꽃을 골랐다. 보기 좋은 상태의 꽃은 금방 시들어 버린다며 툴툴댔던것이 생각나 아직 다 피어나지 않은것들로 두다발을 샀다. 찬장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화병이 냉장고에 들어가 있어서 '이게 왜 여기있지' 하고 한참 생각해보니 찬장에 자리가 없다며 화병 몇개를 냉장고로 옮기던 모습이 또 떠올랐다. 그때 장을 하나 주문할
걸 그랬다. 꽃을 꽃아두고 다시 기나긴 밤이 오기 전에 자주 가던 집 앞 공원을 한바퀴 걸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데도 새벽까지 문을 열어 자주 갔었던 공원 안 작은 찻집을 지나고 낙엽이 잔뜩 떨어진 기념으로, 가장 더운 날을 기념해서, 눈이 많이 쌓인날에, 지인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날에, 사진을 찍었던 작은 연못가를 지나고 수풀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를 놀라게 했던 공원 경비초소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놀다가 혹시 네가 여기에 왔었느냐고 물어보고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오늘의 그림자는 그리운 과거로 돌아갔다. 나 혼자 쓸쓸 방으로 돌아와 다시 기나긴 밤.
그 다음 다음 다음의 아침. 오늘 아침의
시선은 왼쪽 벽에서 시작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어쩐지 허기가 져서 냉장고 안에 있는 도넛을 하나 꺼내 렌지에 돌려 꺼내두고 시선이 멎은 벽. 내 이름은 노엘. 내 이름 옆에 써 있던 다른 이름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 네가 벽에 붙여둔 낙서에 쓰인 말. '너는 노엘'. 다른 낙서들을 곰곰 읽어보다가 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모아둔 봉투를 찾아 다시 읽었다. 내가 어떤 옷을 좋아해서 그 옷을 매번 입고 나왔는데 눈치채지 못해서 우스웠다는 얘기. 우연, 운명, 과거와 현재, 너와 나에서 우리에 이 르기까지의 여정, 여정후의 날들, 우리의 기나긴 밤, 각자의 고독, 부담감, 권태, 편안함, 무딘 감 정, 과거에 대한 그리움, 각자의 바람, 작은 응원, 꿈, 소박한 많은 날들, 몇차례의 계절,
기록, 기억, 오해, 오해뒤의 이해, 반복되는 가까운 미래에서 너는 나날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 편지들을 봉투에 다시 담아두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네게 문자를 보낸다.
아침의 햇살.
마음이 떨려서 핸드폰은 테이블 위에 두고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러 나간다. 어제 사라진 그림자도 다시 돌아오고 동네에 자주갔던 빵집과 가게들을 들리며, "진작 좀
이렇게 하지 그랬어." 하는 네 목소리를 상상해보고 시간이 천천히, 천천히 지났으면 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초조한 발걸음. 몸통에 맺혀있던 서글픈 마음들 툭. 툭. 떨어지고 빠르게 한 걸 음, 두걸음, 세걸음,네걸음,다섯,여섯,일곱.
숨을 고르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샤워를 다시 하고, 편해보이지만 멋진 옷을 꺼내입고 핸드폰을 확인하기 전에, 테이블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는 오늘.
어쩌면 오늘 다시 네게 속삭일 수 있는 거리에서, 너는
오늘의 햇살.
내게.
기나긴 밤 속에서도 너는. 여기 먼데에 떨어져 있는
09:36:00
mari kim uradrugtome@gmail.com twitter @nowwehere
가깝고 익숙해 당연하다 싶은 것들에 더욱.
09:47:31
1
아버지는 실족사로 죽었다.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나는 실족사만큼 엉성한 죽음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뭔가 어정쩡한 자세였을 것이다. 어라, 으아, 이게 뭐지 하면서. 죽은 아버지의 표정이 그랬다. 이건 아닌데, 그런 표정. 굉장히
09:59:02
난감한 얼굴이었다. 즉사가 아닌 이상, 죽음 앞에 선 사람들 대부분이 삶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삶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오직 상황만을 생각하다가 상황을 수습해볼 새도 없이, 이미 죽은 목숨. 황망하다.
사고를 당하기 몇 시간 전, 아버지는 친구들과 지리산
정상에 올랐고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있었다 한다. 그날은 평소답지 않게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했으며, 향후의 행로에 대해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면서 몇 번이나 파이팅을 외쳤다.
나는 아버지의 동선을 상상해보았다. 다음날 새벽
가장 먼저 일어난 아버지가 희붐하게 밝아오는 산자락의 안개를 걷어내며 긴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다. 코끝이 서서히 습해지는 것을 느끼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볼까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어… 어…?
실족사란 그런 것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
나는 덤벙거리고 산만한 어린이에서 경계심 많고
과묵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덤으로 신경쇠약을 달고 살았다.
‘언제 어느 때 헛디딜지 모르기 때문에 늘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말을 하루에 10회 이상 주입 당한 아이는 대개 이런 식으로 성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매사에 주의를 기울여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아무 것도 없는 맨바 닥에 발을 헛디디기도 한다.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3
내가 Y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Y가 선천적
척추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Y는 시선 아래를 굽어보는 능력이 있었으므로 내가 느끼는 강박에 대해 사려 깊게 대처했다. 우리는 땅에서 벌어지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함께 목격했다. 풀을 짓이긴 뒤에 나는 냄새라든가, 조그만 들꽃의 그라데이션, 서로의 신발 앞코가 점점 닳아지는 모습, 햇빛을 받은 비눗방울이 하강하며 터질 때의 모양 같은 것들…. 나는 Y가 가진 등의 곡선을 사랑했고, 눈을 감고 Y의 척추를 따라 더듬을 때면 입가에 가만히 미소가 피어났다.
4
나는 Y의 등을 사랑했지만 Z의 등을 보고 절망했다.
10:10:34
5
Y는 아버지에 대해 쓰고 싶어 했다. 그 엉성한 죽음이
불러온 기적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느 아침, 화장대 앞에 앉아 아버지의 유품을
살펴보던 Y의 등이 망연히 굽어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어딘가 불안함을 느꼈다.
다가가 Y를 어루만졌으나 거울에 비친 Y의 등이
처음으로,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pdz
마늘과 마음을 잘 다집니다. 사랑과 저주는 한 끗 차이
10:22:05
10:33:36
YYY nomuramansae@naver.com
OKO3
사스콰치의 덫! 올가미!에 빠져있는 저는 문득 그의 하루를 빗대어 이(Y)의 하루를 한올한올 "따" 그려봅니다.
11:08:10
나에겐 중학교과 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친구들이
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딱 그런 친구들이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나를 포함한 우리는 바빠졌다.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얼굴 한번 보려고 비좁은 시간의 틈을 벌렸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나는 친구들을 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집에 갈 정도로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11:19:41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 날 핸드폰에 떠올랐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진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던 아침에 나는 쉽게 잊을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짧지도 않고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친구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러하 다. 본인이 꿈을 꿨는데 장소는 내 집이었다고 한다. 하얗고 큼직한 거실에 큰 창문이 하나 있는 그런 집이었단다. 그곳엔 우리들이 앉아있었고 오랫동안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단순한 꿈이었지만 현실인 듯 선명했다고 자신이 꿨던 꿈에 대해 빠르고 경쾌하게 이야기했다. 눈앞에서 이야기했다면 양 손을 흔들면서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우리는 핸드폰을 이용해 호들갑을 떨어댔다.)내 머릿속에 그려진 꿈에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모여 있고, 나는 행복을 주체하지 못한 채 양 손을 입가에 가져다 크게 벌어진 입을 가리고 있었다. 꿈을 마치 내 머리로 옮겨놓은 것 같이 또렷했다. 우리는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는 당연히
이 친구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난 당연하게 여겼다.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고 솔직히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대학교에서 와서도
내가 나답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다 너희들 덕분이야.
11:31:12
고맙고 고마운 친구들아.
11:42:43
이여은 haesam22@naver.com haesam2.tumblr.com twitter @haesam22
동화를 공부하는 대학생입니다. 그림도 그리고 자수를 놓고 있어요. 가끔 프리마켓에 참여하고 현재는 가가린에 물건을 위탁하고 있어요.
11:54:14
12:05:46
12:17:17
추다다 chudada@me.com
정물화 그릴 때나 보일법한 저런 바구니를 쓰는 사람이 있어? 저런 서양배 같이 생긴 과일을 사먹는 사람이 내 주변에 몇이나 될까? 꽃을 사다가 꽂는 여유도 있고 좋겠네.. 이거 진짜야, 뻥이야?
이렇게 툴툴대고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서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다.
12:28:48
여자가 오기로 한 건 점심 즈음이었다. 여자와의
통화는 간단했다. 이쪽에서 묻기도 전에 여자는 자신의 나이부터 밝혀왔다. 차가 있으니 교통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뒤따랐다.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낸 건 나였다. 여자를 고용하게 된다면 고용주는 내가 될 터였다. 그러나 통화의 주도권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말할 때 목소리와 발음은 정확했고, 원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구인 광고를 낸 뒤 문의 전화를 받았을 때, 건너편의
목소리는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목소리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에게 예의를 차리느라 분주했다. 분주함 때문에 말과 생각이 꼬이는 것 같았다. 분주함은 적어도 돈 때문일 것이었다.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할수록 마음이 급해질 터였고, 마음이 급해지면 급해질수록 간절함 때문에 주눅이 드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달랐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한 뒤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어색함에 부러 주눅이 든 예의를 끼워 넣지 않았다. 여자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임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짧은 통화에서나마 여자를 읽었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 같은 예언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감 뒤에 확신이 따라붙었다. 형체가 없는 예감이라는 감정을 확신으로 붙들어 묶어 버림으로써 분주해진 것은 오히려 나였다. 누군가는 반드시 들어와야 할 자리였고, 이르면 이를수록 좋았다. 사람을 구하는 데만 무작정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여자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보기도 전에 결말을 알아 흥미를 잃어버린 영화처럼 사람을 구하는 일은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구하는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앞뒤를
따지지 않는 다소 도전적인 여자의 그 간단함에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출근 날짜를 일러주었다.
새로운 사람은 늘 금요일에 출근하게 되어 있었다.
근무자가 자주 바뀌기는 했으나 첫 출근하는 날만큼은 언제나 금요일로써 거스른 적이 없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업무교육이나 인수인계가 필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식 출근에 앞서 금요일이라는 하루의 여지를 구직자에게나 나에게나 두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여자가 전화를 건 날이 금요일인 줄도 모르고 통화 말미에 나는 ‘금요일에 출근하라’고 했다. 습관적이었다. 사람을 구할 때마다 수도 없이 반복한 말이었으므로 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개업 기념 파격 세일을 알리는 전단지에 가까웠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말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동일하게 반복, 재생산되어 구직자들에게 뿌려졌다.
‘금요일은 오늘이에요. 돌아오는 월요일. 점심 즈음에
가죠.’
여자는 논술을 첨삭하는 것처럼 내 말을 교정했다.
여자의 전임자가 일을 그만 둔 지 얼마간 지났을 때였으므로 나는 날짜 감각을 상실했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이 내일 같았고 내일이 어제 같았다. 여자의 통보를 끝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여자의 첨삭에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귀에 갖다 댄 핸드폰을 천천히 책상에 내려놓았다. 핸드폰 옆으로 커피가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자와의 통화를 곱씹어 보았다. 여자의 교정에 당황해서인지 순간, 월요일 점심 즈음에 온다는 여자의 마지막
말만 기억에 남았다. 실수였다. 언제나처럼 근무자의 첫 출근일은 금요일이어야 했다.
그러기라도 하면 실수가 저절로 만회될 모양으로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여자와 통화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58초였다. 핸드폰에 찍힌 58초를 쳐다보며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할 수나 있는 시간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통화를 주도했던 여자는 애당초 월요일에 출근하리라는 의지가 있었을 것이었다. 전화기 건너편의 상대에게 끌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 같았다. 결국 58초는 여자가 나를 버텨준 시간에 불과해 보였다.
‘여보세요.’
그날 처음 뱉은 말이었다. 정확히는 4일 만에 뱉은
말이기도 했다. 여자와 통화하기 전 여자의 전임자와 나눈 인사가 내 입에서 떠나보낸 마지막 말이었으므로 사람과 대화를 한 건 꼭 4일 만이었다. 말은 그렇다치더라도 여자의 전임자가 떠나고 여자에게서 전화가 오기 전 4일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밥은 먹었는지 먹었다면 무엇을 먹었는지 몇 시간의 산책과 몇 잔의 커피로 하루를 채웠는지 일의 진척은 있었는지 일이 끝난 뒤 무엇을 했고 몇 시에 잠자리에 들어 몇 시간을 잤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무했다. 하루라면 몰라도 4일이 통째로 사라진 건 너무 하다 싶었다. 기억은 이제 막 불을 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 같았다. 4일 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듬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아마 나는 사람을 구하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고 그조차 마지못해 했을 것이었고 마지못한 만큼 최대한 늦게 했을 것이었고 그것마저 하지 않았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시간이란 쓰면 쓸수록 생기는 것이었기에 무언가를 하는 데에 쓰지 않으면 영영 벌기도 힘든 것이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을 쓰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4일은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종국에는 존재하지조차 않는 시간인 셈이었다. 시간을 없앤 건 다름 아니라 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여자의 전임자가 일을 그만두게 된 시점부터였으므로, 나의 잘못인지 누구의 잘못인지 몰랐다. 출근을 약속한 여자와 퇴직을 통보하고 떠난 전임자 사이에 24시 편의점의 싸구려 샌드위치 속 재료처럼 내가 껴 있었다.
화요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정시에 출근한
여자의 전임자는 의자에 앉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멀뚱히 서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전임자와 내 책상은 마주 보고 있었으므로, 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자리에 막 앉았을 때였으므로, 전임자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땐 전임자가 나를 내려다보는 꼴이 되었다. 여자의 전임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답 같은 건 이미 필요 없어 보였다. 누군가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에는 일을 그만두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했기에 내 대답 대신 내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게 맞아 보였으나, 전임자의 근무 기간은 무언가를 묻고 답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전임자는 퇴직이 받아들여지기를, 퇴직과는 상관없이 정당하게 월급이 정산되기를, 정산이 되지 않는다면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퇴직에의 희망은 간절해 보였다.
일을 그만두는 이유가 있다면 전임자의 전임자와
같았을 거였으므로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람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테니 오히려 괜찮다고 했던 것 같다.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으므로 아니, 사람보다 적임자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으므로 괜한 말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면서 나는 후회를 했다. 후회를 하면서도 전임자에게 했던 말처럼 사람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후회는 차라리 미리 맞고 보는 매처럼 작용하길 바랐다. 후회를 먼저 해 버림으로써 사람을 구하면서 받을 스트레스를, 얼마간의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사람이 빨리 구해지기를 바라며 후회하는 자신을 후회로 자위했다.
전임자는 아무것도 든 게 없는 서류 가방을 비장하게
들고 출퇴근을 했다. 가방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는 건 그가 출근한 첫 날 알게 되었다. 그때 전임자는 다소 들떠 있었다. 이직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새 직장으로의 출근에 벅차 있었을지도 몰랐다. 정리할 것도 없는 새 책상을 분주하게 정리하며 책상 끄트머리에 세워둔 서류 가방을 자기도 모르게 건드렸다. 가방은 입이 열린 채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아무것도 없었다. 서류 가방이라는 게 무언가를 담아 다니기에 썩 유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나는 허둥대는 전임자를 보며 너스레를 떨어 보였다. 전임자가 일을 하는 동안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으므로 가방은 늘 고문을 받듯 전임자의 책상에 벌을 서고 있는 꼴로 세워져 있었다. 서류 가방은
전임자가 내게 퇴직을 통보했을 때라야 비로소 제 몫을 해냈다.
사람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전임자는 서류 가방에서 종이 가방을 꺼냈다. 그 모습은 어떤 의식을 치루듯 다소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해서 헛웃음이 났다.
종이 가방은 형을 졸라 놀러 나온 남자아이처럼
머쓱하게 서류 가방에서 나와 전임자의 책상에 펼쳐졌다. 전임자는 몇 안 되는 짐을 종이 가방에 차곡차곡 담았다. 차곡차곡이라고 해 봤자, 몇 개의 필기도구를 머그 컵에 넣고 머그 컵을 다시 종이 가방에 넣는 수준이었다. 필기도구와 머그 컵이 담긴 종이가방은 다시 아무것도 먹지 않아 공복 상태 같은 서류가방에 허무하게 담겼다. 종이 가방을 넣기에 서류 가방이 너무 무거운 것인지 서류 가방에 들어가기에 종이 가방이 너무 가벼운 것인지 몰랐다. 서류 가방을 든 전임자의 얼굴만큼은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난 뒤의 부른 배처럼 풍요로워 보였다. 전임자가 일을 하기로 했을 때, 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을 때에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전임자는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하다는 듯이 떠났다.
여자의 전임자는 복장은 자유라고 했는데도 굳이
정장을 갖춰 입고 검은색 양말만을 고집하던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보며 나는 거듭 복장은 자유라고 일러주었다. 남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었다. 남자는 정장 차림이 자신에게 익숙했고, 익숙해서 편하다고 했다. 남자가 그렇게 말할 때, 이직 전의 회사가 만든 규칙에 익숙한 것이지 옷에 익숙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남자의 말을 되받아쳤다.
남자에게 실제로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한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말을 삼킨 셈이었다. 남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이직을 했고 정장만이 남자에게 사회생활에서의 훈장 노릇을 해 줄 것이 분명했을 것 이었으므로 나는 남자의 젖은 기분을 애써 말리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정장의 색이었다. 남자의 정장은 언제나
검은색이었다. 검은색도 어떤 옷감인지 어떤 디자인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는데 남자의 정장은 광택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검은색일 뿐 다른 어떤 장식이 없었기 때문인지 늘 상복 정장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남자를 보면서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던 건 그 옷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자를 보는 일이 점점 더 불쾌해졌다. 남자의 옷은 보는 내가 불편해 보였으므로,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라면 입고 있는 그 자신도 불편한 것이라고 남자를 다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편집 권한은 내게 없었다. 구인 광고를 내보냈을 때 근무 조건에 ‘복장자유’를 명시한 때문이었다. 그 자유는 절대적인 무한의 자유는 아니었다. 구직자 개인의 그릇에 맞는 자유는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그 자유는 고용주인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라는 걸, 자유를 말하는 자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넘을 수 없다는 걸 나는 남자의 새까만 정장을 보고 알았다. 남자가 떠나고 미리 작성해 둔 구인광고 파일을 다시 열었을 때 ‘복장자유’ 란은 지워졌다.
짐을 챙기는 모습조차 마른 나물처럼 건조하기 짝이
없던 남자는 서류 가방을 다시 들었고, 들면서 그 가벼운 무게에 자기가 다 놀랐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그 가벼운 개운함에
다시 한 번 놀랐다는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남자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 뒤 짐을 꾸려 떠나기까지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남자가 근무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으므로 서류 가방은 꼭 그 시간만큼의 무게를 담고 있을 터였다.
남자는 열 번째 근무자였다. 바둑판 위에 공평하게
배치된 바둑돌처럼 열 명 중 다섯 명은 남자였고 다섯 명은 여자였다. 남자의 전임자는 여자였고 여자의 전임자는 남자였다. 얼굴도 모르는 다섯 명의 여자와 다섯 명의 남자가 책상 하나를 놓고 긴 마라톤을 나눠 달린 것 같았다. 다들 잘 달려 보겠노라고,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겠노라고 출발선상에 선 마라토너의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지, 몸만큼 생각이 따라주지 않는 건지 각자 다른 핑계를 댔고 결국 모두 일을 그만두었다.
퇴사 통보는 다양하게 날라 들어왔다. 어떤 이는 출근
첫 날 오전 근무만 하고 점심도 먹기 전에 그만두겠다고 했고, 어떤 이는 점심을 먹고 오후 산책을 핑계 삼아 말도 없이 도망쳐 버리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미룰 만큼 미루다 한 시간 만에 써 버린 레포트처럼 A4용지에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는 것으로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대신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문자로 어떤 이는 전화로 퇴사 사실을 알려왔고 어떤 이는 자신의 부모를 통해 알려왔다. 이유도 다양했다. 어떤 이는 일이 자기와 맞지 않다고 했고, 어떤 이는 너무 과하다 싶게 자신의 무능력을 탓했고, 어떤 이는 전 직장에서의 자신의 업무 성취를 들먹였다. 처음의 열의는 차라리 없었다고 해도 무방해 보였다. 모두들 쓰다 버린 일기를 찢어 던져 버리는 기분으로 찝찝하게, 그래서 더 후련하다는 듯한 얼굴로 일을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두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고, 이유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퇴직자들은 입을 모아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열 명 모두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같았다. 그들은 일을 못해 일을 그만두었다. 일을 못한다는 건 업무 수행 능력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이란 애당초 없었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을 만들어야 했는데 무슨 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만 하도록 길러졌는데 할 일이 없으니 일을 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더 정확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견디지 못해 그만둔 것이었다. 일은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그들에게 일이 있다면 나와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각자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어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일은 그러니까 그들의 진짜 일은 없는 셈이었다.
구직자들은 처음엔 하나 같이 ‘근무 환경이 너무 좋다’
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사기가 아니냐고 따지듯 물어오는 구직자도 있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여러 번의 문의 전화를 넣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구직자들은 근무 조건을 거듭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나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내 집으로 출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같은 일정 양식의 서류 검토와 면접이 없었다. 오로지 전화로 방문을 예약하기만 되었는데 예약 후 실제로 방문을 하는 구직자들은 많지 않았다.
집은 시와 시 사이에 아슬아슬 하게 걸쳐 있었고, 시에
서 시로 들어가기 위해 혹은 빠져나오기 위해 한참 속도를 내야 할 도로 옆에 누군가 급하게 싸놓은 똥처럼 황당하게 보이기에 충분했다. 주위에 다른 집들은 고사하고 편의 시설이라고 할 만 한 게 하나도 없었다. 사기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응당 해야 할 일 없이 자리만 지키는 것이 업무 내용이
라면 내용이었기에 사기를 의심하는 데에는 업무 내용도 한 몫을 했다. 책상만 지키기만 하면 되었으므로 책상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이 구직자의 마음이었다. 물론 어떤 일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포함되었다.
구인 광고는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출근 시간대
지하철에 주로 배포되는 무료 일간지에 냈다. 광고료가 싸지는 않았으나 그곳에 광고를 내는 것만큼 반응이 빠른 건 없었다. 일간지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배포되었다. 사실 반응이 가장 빨라야 할 것은 인터넷 광고여야 했다. 인터넷 광고를 내보지 않은 건 아니었 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빠를 것 같고 또 실제로 가장 빠른 인터넷 광고의 반응이 가장 느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민함 때문이었다. 일간지의 독자들은 대부분 어디론가 출근 하는 직장인이었고, 그들은 각각 출근시간이라는 시간에, 지하철이라는 장소에 갇혀 있었다. 시간과 장소가 폐쇄적인만 큼 그들은 예민해 있었다. 옆 사람과의 작은 접촉에, 냄새에, 소리에, 시선에 가장 크게 반응했다. 일간지 광고는 그런 그들의 예민함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광고를 접한 이들이 문의전화를 하는 시간도 아침 7시에서 8시 30분까지가 가장 많았다.
<사람 구함>
성별 경험 학력 상관 없음
복장자유
25세 이상
주 5일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
주말 공휴일 휴무
문의 전화 00-000-0000
위치 ##시(교통이 어렵습니다. 자가용 출퇴근 환영)
구인 광고는 다른 유혹의 문구 없이 간단하게
구성되었다. 남자가 영혼 없는 서류 가방을 들고 내게 등을 보이며 문을 나설 때 나는 바탕화면에 저장된 메모장을 열어 ‘복장자유’ 항목을 지운 뒤 다시 저장했다. 그리고 남자가 퇴사한 화요일로부터 여자에게 문의 전화가 걸려온 금요일까지의 기억은 완전히 없었다.
사람이 없으면 없는대로 일을 해야 했지만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었다. 일보다 사람을 구해 자리에 앉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맞은편 책상의 빈자리를 발치한 곳을 혀로 더듬어 보듯 바라보았다.
점심 즈음. 여자가 말한 시간이었다. 통화를 주도한
여자와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점심 즈음이라면 점심을 먹고 오겠다는 것인지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에 오겠다는 것인지 몰랐다. 점심시간의 규칙은 12시부터
2시까지로 ‘시간’이 규칙이었다. 그랬으므로 여자가 점심을 먹고 오든 먹고 오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식사비는 급여에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뭘 먹든, 먹지 않든 본인 마음이었다. 그래서 여자가 혹시 오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정확하게 시간 을 일러주었다면 조바심은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여자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여자가 말한 시간은 구름처럼 경계를 알 수 없었고, 그 모호함 은 결국 여자를 기다리는 데 하루를 꼬박 반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루를 반납해야 한다는 건 일주일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했다. 여자에 의해 ‘첫 출근은 금요일’이어야 한다는 규칙은 깨어졌지만, 그래도 역시 ‘첫 출근은 금요일’ 이어야 했으므로 새 사람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금요일까지 다시 기다려야만 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였다. 나는 인터폰으로 문 밖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인터폰에 잡히지 않을 만큼 여자가 작을 수도 있었다. 사람은 없는데 소리가 나는 것을 의아해 하며 나는 문을 열었다. 열린 문 틈으로 무언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개였다. 검은 개였다. 개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개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다리를 굽혔다. 그때 검은 개 뒤로 수십 마리의 개가 집으로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셀 수 없는 수의 개를 보며 여자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작게 읊조렸다.
13:49:26
위은옥 twitter @Osimproduction
14:00:58
시월의 아니, 꼭 나는 백 마녀는
나는 사 사과라고 아니, 글 아, 뭐라
마녀가 하지만 마녀는 나는 정
나는 정 그런데 토해내고 헛구역질
나는 너 어쩌면
시월의 마녀. 시월의 마녀가 나타났다. 아니, 꼭 시월에만 나타나진 않겠지. 나는 백설공주가 아닌데 왜, 마녀는 왜. 마녀는 평범했다. 내게 독 사과를 내밀었다. 나는 사과를 좋아해. 사과는 빨갛지. 사과라고 꼭 빨갛기만 해야 해? 아니, 글쎄. 아, 뭐라는 거야? 마녀가 주는 사과는 절대로 먹으면 안된다. 하지만 마녀는 마녀인척 안 해. 마녀는 마녀로 나타나지 않아. 으으으. 나는 정말로 머리가 펑 하고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정말로 독사과를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삼켜버렸다. 토해내고자 손가락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헛구역질만 날 뿐 아무것도 토해낼 수 없었다. 나는 너를 토하고 싶어. 어쩌면 나를 토하고 싶은 것 일수도.
연울 pickmemarsboy@gmail.com twitter @pickmemarsboy instagram @pickmemarsboy
14:58:34
마음집
언젠가 심장 깊숙이 비가 내릴 때면 마음집을 열어 들여다보곤 하지 어딜 먼저 열어둬야 할지 모르는 망설이는 손짓으로
동그란 고백이 뒤엉켜 뒹굴다가 쳐다보면 날선 그리움이 얼굴이 돌아간 채 구석에 쳐박혀있어 힘없는 사랑이 방문 곁을 서성이면 난 벗겨진 곰팡이처럼 창밖으로 흘러나가
읽기 쉬운 단어들이 각자 힘든 포즈로 땀을 흘리면 15:10:05
마음집은 기우뚱, 흐느끼는 날이지
그저 한 생 두근거리기만 하는
사과마음
사과는 사과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지도 말랑거리지도 않는다 다만 잘 썩는다 어리숙하게도 비겁하게도
도레미파솔라시도 도돌이표처럼 사과는 사과를 받기 위해서만 있다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기쁨이 가쁘게 숨 쉬며 내 옆에 앉아본다 -기쁨아 안녕 영원히 못 볼 줄 알았어
사과는 기쁨을 보고 썩는다 숨쉬기 곤란한 듯 자기를 자기가 파고든다
사과야 사과해 사과를 사과해
기쁨이 달려들 때 탁 칼을 내려친다
칼칼한 침을 뱉으며 두동강 다릴 벌린 사과 기쁨을 흘린다
15:21:36
나는 네가 썩기만을 기다렸다고
꽃병마음
괜한 오해처럼 꽂혀있어 향기도 꺾였어 간단하게 보여야했어 쉽게 보이기 싫지만 서툴게 보여야했어 이유는 없어 변명도 없어 싫다면 날 엎어 취한 듯 엎어 흥건해지면 날 업고 먼 바닥에 버려둬 꺾어 오해를 처음부터 없었어 멀리서 꺾였어
15:33:07
류민정 ynabis@nate.com 26
지금은 아이들과 얘기하는 사람이다. ‘~가 되었다’에서 끝나는 사람이 안 된다면 좋겠다. 경쾌함을 배우기란 어린 아이가 되는 일 뿐이다. 더 가벼워지고 싶다.
15:44:38
하루는 사과의 느낌이었다. 아삭 하고 베어무는
하루는 사과의 발그레한 색과 기분. 그 노오란 속살은 생각나는 가슴. 질긴 사과 꼭지를 잡고 사과를 빙빙 돌리면 그녀의 장난기어린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뱅그르르 돌리는 착각이 들었다. 내가 바닥에 앉아 암갈색 소파 아래에 등을 기대어 있으면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와 소파 위에 엎드리고는 내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머리카락을 헝크리면 나는 고양이처럼 작게 그르렁거렸고 그 노곤함을 이기기가 어려웠다. 눈이 감길락 말락 가볍게 끈적거리는 그녀의 손 끝은 가끔씩 내 귀와 목을 건드렸고 그때마다 잠깐 정신을 차리면서도 작은 떨림을 느낀건 아직 푸른 사과의 모습. 고개를 돌리면 그녀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팬티 한 장 걸치고 엎드려 있는 그녀의 가슴은 소파 위로 눌려있었고, 그 위에 살짝 들려있는 어깨를 시작으로 천천히 등을 따라 눈으로 곡선을 그리면 파스텔 톤의 팬티가 가린 엉덩이가 둥글게 올라와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슴을 살짝 찔렀고 그럴 때면 그녀는 흐응 거리며 가느다란 15:56:10
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가슴을 찌르려 하면 그녀는 재빠르게 나의 검지를 움켜쥐고는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같이 슬쩍 미소를 짓고는 몸을 빠르게 일으켜 그녀의 몸 위에 엎드리면 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녀는 내 검지를 잡고있던 손을 풀었다. 므거으어. 괴로워하는 그녀의 허리와 가슴 밑으로 손을 쑥 넣어 끌어안고 나는 재빠르게 몸을 휙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소파 등받이를 마주보곤 내 품 안에서 빠져 나오려 버둥거렸다. 난 그녀의 머리카락 안에 얼굴을 파묻고 그녀가 버둥거릴 때마다 더욱 옥죄었다. 계속된 몸부림에 힘이 빠지면 그녀는 조용히 숨을 길게 내쉬며 가만히 자는 척을 하곤 했다. 내 팔이 살짝 느슨해 지면 그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려 했고
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더욱 꽉 끌어 안았다. 약오르는 장난은 두세 차례 반복되었다. 가끔씩 나는 그녀의 가슴이나 팬티 위를 간질였다. 잠든 척을 하는 그녀는 아주 살짝 움찔거렸고 그러면 나는 그녀를 다시 세게 안았다. 배고프지 않아? 갑자기 묻는 그녀의 뒤로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더 깊게 파묻으며 도리질을 했고 내 얼굴 사이사이로 흩어지는 머리카락 속에서 그녀의 체취가 짙게 풍겼다. 뭔가 먹고 싶어. 내가 사올게. 마실것도 사올래. 마음에 없는 소리를 마구 내뱉는 그녀의 뒤에서 나는 연거푸 도리질을 하며 한 손은 그녀의 팬티 안 쪽을, 한 손은 가슴 위를 쓰다듬었다. 내내 실없는 말을 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자극되는 소리를 뱉는 그녀의 몸은 점점 힘이 풀려나갔고 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어루만졌다. 힘이 쫙 풀려가던 그녀가 갑자기 발로 세게 쇼파를 밀쳤고 나는 쇼파의 가장자리로 밀려 위험하게 걸쳐지게 되었다. 난 급히 그녀를 안던 팔을 풀고 소파의 등받이 천을 움켜쥐었고 그녀는 내 품을 빠져나와 다시금 얄미운 미소를 짓고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 진짜로 배고파졌어. 그녀는 바닥에 널려있던 옷을 주워 입으며 먹고싶은게 있냐며 물었다. 그녀를 외면한 나는 엎드려 소파에 얼굴을 묻고 대답하지 않았다. 초콜렛이랑 감자칩 사올까? 아니면 다른거 사올까? 맨날 먹던거 먹을거야? 다른거 뭘 사와야하나. 그녀는 마저 옷을 입으면서 엎드려 있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풀썩 하고 내 위에 올라탄 그녀는 몸을 흔들거리며 흥얼거렸다. 난 그녀의 아래 가만히 엎드려있다 재빨리 몸을 돌려 앉아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사과 먹고 싶어.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평소랑 다른데. 과자가 아니라니. 난 다시 그녀를 꼭 안았다. 오늘은 사과야. 사과의 날이야. 그녀는 내 귓가에 입맞춤을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가슴을 장난스럽게 찔렀다.
나의 어떤 하루는 꽃이었다. 나는 인어공주를 보았다.
신데렐라도 보았다. 백설공주가 꽃밭에 앉아있는걸 보았다. 긴 머리에 하나 하나 꽃을 단 라푼젤도 보았다. 공주님은 꽃으로 아름다워. 그는 내가 성년이 되던 날 내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처음으로 꽃구경을 간 날은 봄의 여의도였다. 인파 속에 치이면서도 나는 끝없이 이어진 벚꽃길 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은 어둑해졌지만 벚나무 아래 분홍, 보라, 흰 빛의 조명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을 눈부시게 만들어 주었다. 쉼 없이 짓이겨진 벚꽃들을 밟으며 그는 쥐포 냄새를 맡았다. 쥐포 냄새 그리고 기억에 더이상의 꽃은 없어. 나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적이 있고 꽃모양 큐빅이 달린 귀걸이를 해본 적이 있다. 난 그에게 꽃무늬 배기 팬츠가 할머니 바지같다고 말한 적이 있고 꽃무늬가 예쁘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난 꽃이 그려진 머그잔을 가지고 있고 꽃장식의 브로치를 해본 적도 있다. 그리고 꽃 향기가 나는 허브티를
16:07:41
좋아하고. 나의 무언가는 꽃이었고. 지하철의 한 남자가 다발의 꽃을 들고 소년같던 모습은 오늘도 보았지.
다른 하루는 걷고 걸었다. 오랜 걸음은 길엇다. 그녀와
나는 자주 걸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본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했다. 어린 강아지 이야기를 했다. 키우고 싶은 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호랑이 이야기도 했다. 성인이 된 호랑이는 턱으로 거북이를 단숨에 으깰 수 있대. 나는 오레오 튀김 이야기를 했다. 3년동안 나의 차 안에 있는 바나나 우유 이야기를 했다. 햄버거 이야기도 했다. 이야기 밖에서는 두
남녀가 습관된 빠른 걸음걸이로 계속 걸었다. 그녀와 나는 명동에서 종로로 걸었다. 광화문에서 종로로 걷기도 했다. 사람이 많은 길에서도 빠른 걸음을 유지했다. 종로에서는 늘 청계천을 통해 동대문으로 걸었다. 그녀는 청계천에서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곤 했다. 가끔씩 오리들을 보았다. 날벌레들이 많은 날은 청계천 위를 걸었다. 그녀와 나는 두세시간을 걸으며 또다른 이야기들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나누었다. 그녀는 나를 만나지 않던 날에도 홀로 자주 걷곤 했다. 그녀는 안국역에서 갤러리를 구경하며 인사동으로 걷기도 하고, 메론빵을 사러 논현과 신사의 빵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으며,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홀로 인천공항을 몇시간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나는 그녀가 보내주는 사진을 보고 문자를 읽었다. 인사동에서는 한 외국인 아저씨가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고, 논현동에서 그녀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고, 인천공항에서는 역마살을 붙이고 돌아왔다. 팔월의 마지막 날이었던가, 구월의 첫 날이었던가. 그 날의 날씨는 굉장히 좋았고 그녀는 하루종일 날씨에 연거푸 감탄을 했었다. 정오가 한참 지난 후로 애매한 두세시쯤 이었을 것이다. 6호선을 타고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해 역 바깥에 내리쬐던 햇빛을 보자 내 등 뒤로는 땀이 줄줄 새기 시작하는 듯했지만 그녀는 그저 신이 나 있었다. 출구 바로 근처의 경기장 바깥에서는 개러지 세일과 아트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열려있던 차 트렁크에서 보인 오래된 타자기와 턴테이블 TV, 코카콜라 박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백곰 인형과 여러 오래된 물건들은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고, 개러지 세일을 떠날때 그녀는 춤추는 곰인형에 미련을 두었다. 걷고 걸어 계단을 타고 경기장 위쪽으로 올라가, 그녀는 나보다 앞서기도 하고 나를 찌르고 도망가는 등
유치한 장난을 치며 신바람을 감추지 못했다. 걷고 걸어 주차장 옆의 정류장에서 맹꽁이차를 타고 하늘 공원으로 오를 때 불었던 서늘한 바람은 정말로 쾌적했다.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발목을 간질이며 지나가면 그녀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걷고 걸어 높은 하늘 공원에는 초록빛의 큰 갈대밭이 계속 이어져 있었고,갈대밭을 본 그녀는 한층 더 들뜬 기분을 내보였다. 여기저기 푸르른 곳을 거닐고 걸어, 그녀는 이따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는 살짝 눈을 감으며 나에게 다가왔고, 그녀를 따라 눈을 감으면 그녀는 내게 달달하고도 짧은 입맞춤을 주었다. 눈을 뜨면 저기 저만치 달아나 갈대밭 길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 혹은 옆에서 내 손을 더 꽉 잡아 주었다.
또 하루는 브런치로 시작을 했다. 지글지글 소리로
구운 베이컨과 남은 베이컨 기름으로 만든 반숙 후라이, 그러고도 남은 기름에 바로 꿀을 발라 구운 식빵, 왼편에서는
16:19:12
믹서로 윙윙 간 오렌지 주스와 개수대 위 물기가 조금 남아있는 초록 샐러드. 모두 하나 없이 웰치스 한 캔과 포카칩으로 족하는 그와의 브런치. 눈을 뜨면 대게 열시가 넘어있었고 홀로 한시간을 뒹굴어도 그는 여전히 옆에서 잠을어 있다. 웰치스 캔 뚜껑을 따고 치-익 하는 소리가 나면 동시에 번쩍하고 그의 눈이 떠지는걸 볼 수가 있었고, 포카칩을 뜯어 한 입 아그작 깨물면 번개같이 일어나 나를 눕히고 포카칩을 채갔다. 그러면 난 일어나 그를 눕히고 키스를 했다. 그래야 나는 포카칩을 뺏을 수 있었고 그가 다시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때로는 전날 밤에 사온 아이스크림과 과자와 초콜렛. 달고 단 오전의 군것질. 때로는 베이컨 체다 치즈 씬 피자나 포테이토 도우 피자 세
조각, 다섯 조각. 녹진한 치즈향이 퍼진 오전. 때로는 그가 만든 김치볶음밥. 그저 마냥 맛있는 오전. 정오가 지나 블라인드가 쳐져 게으르고 작은 방 한 칸은, 그와의 늦은 오전 식사를 더욱 만족스럽게 만들지. 하루는 함께하고 있었다. 기억하는 하루는 그런 하루였으며 그 하루는 서로를 그린 하루.
16:30:43
물고기 twitter @93236
16:42:14
17:16:48
임지온 blog.naver.com/jjioni2002
17:28:19
1
여자는 무릎위에 토스트가 담긴 접시를 보면서 생각한다.
“꼭 나 같다, 퍽퍽해져버린 씹기 힘들어져 버린.”
꾸역꾸역 먹어보지만 결국 여자는 반도 더 남은
17:51:22
토스트를 버린다,
2
여자는 그저 버스에 앉아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때때로 신호에 걸리거나 길이 막혀도 버스는 배차간격을 맞추기 위해 분발했기 때문에 여자는 그런 일들에 무덤덤해졌다. 또 가끔씩 누군가 옆자리에 앉곤 했는데 여자는 그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기도 그 누군가 가지고 탄 무언가의 악취에 멀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가 그 누군가에게 어떠한 감정을 가지던 어떠한 영향을 받던 그들은 자신이 정해놓은 정류장에서 내려버렸기에 여자는 그것들에게도 그 누군가에게도 무덤덤해졌다.
여자는 내릴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종점까지의
정거장수를 헤아릴 방법도 없었다. 여자는 그저 버스에 앉아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가 한 가지 원하는 것은 옆자리의 그 누군가도, 그 어떤 정류장도 아니었다.
여자는 오로지 종점이 가깝기만을 원했다.
3
여자의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여자의 손가락
사이 담배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놈 만 한 놈이 없다, 나 때문에 이렇게 뜨겁게 타오를 놈은
18:02:53
없어. 이게 없었으면 난 분명히 약 쟁이 라도 되어있을 거다.”
4
빈속에 담배를 너무 많이 태웠다, 이런 때는 반드시 어
지럽게 마련이다.
‘뒷자리에는 창가 쪽 자리가 있겠지.’ 는 개뿔이다 여
자는 싫어하는 맨 뒷자리에 앉게 됐다. 맨 뒷자리는 내릴 때 힘 들다 가방이 옆 사람 다리에 걸리고 자리가 높아서 내려갈 때 휘청거리게 된다.
“그래서 맨 뒷자리를 싫어한다, 사람이건 버스건 깊숙이 들어 오면 내리기 힘들다.”
5
여자는 병이 예뻐 버리지 않고 깨끗이 씻어놓은
750원짜리 음료병에 오후에 꺽은 장미꽃을 꽂는다.
“점점 색이 빠지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녹아내린 것 같은 형태이면서 바짝 말라있는 모습이 이질적이고 물기 없이 바짝 말라 가녀리게 보이지만 단단해져 버리는 가지도 마찬가지다. 하긴 물기가 없으니 단단해져 버릴 수밖에 없나. 그래도 그
18:14:24
모습은 아름답다, 물기 없는 사람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18:25:55
이승하 eesummer24@gmail.com twitter @__e_t_e__
23 찍어서 기록하고 기억합니다
19:35:02
악은 악이다. 악은 악으로서 존재한다. 선은 악을
만들었다. 선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돋보일 수 없기에 악을 만들었다. 만약 악이 존재하지 않고 강한 선과 보통의 선, 미약한 선만이 존재했다면 우리에게는 고통따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근원의 어떤 종교의 지도자나 신, 메시아도 악 없지 않았다. 그들은 악을 구원하거나 퇴치, 혹은 구제하거나 악의 존재를 알려줌으로서 선과 악의 경계 위에 있는 존재로 승격될 수 있었다. 명백한 사실.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묻겠다. 과연, 악을 행하는 사람은 악한 것인가.
존재와 행위 혹은 실체라 불리우는 것들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예컨데 유영철은 어린 시절, 불후한 가정환경을 자신의 과오(라 그는 인지한 것 같았다.)를 낳았다고 했으며 이 밖의 사이코패스 증상 외의 죄인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곤 했다. 종국에는 종교나 기댈 곳을 찾기도 했고, 나는 이런 모습에서 인간의 최후적 나약함을 발견하기도 했다. 포이에르 바하에 의한 이론(쉽게 말하면, 종교는 인간 의식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신의 존재와는 별개인 것으로 본다, 나는.)에 강한 관심이 있는 나는 인간의 인지와 행동 사이에도 많은 오류들이 존재한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수천겹의 세포에 둘러쌓여 벗겨짐을 반복하며 한없이 투명해지는 양파의 표피와 유사하다고 봤다. 에고, 슈퍼에고, 이드는 그렇게 쉽게 나눌 수
19:46:34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다른 가닥으로 생각을 뿜어보면, 나는 수많은 순간들에
소극적이었다. 내 표현에 적극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한겹 아래 감정이 뿜어내는 반작용의 과도한 모션을 생각하진 못했으리라. 연애도, 교우관계도, 엄마나 동생에 대한 표현도
(물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에 대한 표현은 그 외의 것이다. 나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을 정도로 그건 강력한 감정이긴 하다. 1Q84의 주인공이 유년기에, 기억조차 나지 않을 시기에 형성된 '엄마와 다른 남자의 섹스에 대한 환상'처럼 강렬하게 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일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언제나 소극적. 그러나 마음의 크기가 돈독한 것을 아는 사람들에겐 이것은 나와의 강력한 끈이 되기도 했다.
극도의 소극적 행태를 보이면서 나는 이 원인에 대해
궁금해졌다. 나를 탐구하는 작업은 내가 받았던 충격들에 대한 회귀로 이어지곤 했다. 괴짜같고 천재같았던 초등학교 시절, 억지와 자의의 뒤범벅으로 공부에 몰입했던 중학교 시절, 따돌림과 몰입에 매몰되곤 했던 고교시절을 지나 자의식이 곧추섰던 대학시절 전반기와 가면 안의 군대 생활까지. 생을 걸만한 고난이 없어보였지만, 있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가엾은 내 옛모습들.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내 모습도 가엾어졌다. 지나온 나는 이미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닌 것. 일관된 나의 고집이었던 것이다.
상처받는 것은 싫었다. 죽기보다 싫었다. 차라리
매정하고 말았다. 단호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쉽게 그러지도 못했던 순간이 많았고 또 다시 갈등이 오곤 했다. 그래서 요즘은 상처받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말 한마디가 가슴에서 등골까지 쑤욱하고 들어와도 최대한 담담한 척 하려 노력 중이다. 마데카솔 분말같은 치유들을 원한다. 1970년 처음 생산된 마데카솔은 동남 아시아에서 자라는 식물 센테야 아시아티카를 원료로 삼고 있다. 동물의 살갖을 다스리는 것이 우리 나라에는 재배조차 되지도 않는 식물이라니. 아이러니할
것 같지만 세상은 비슷한 사람이 아닌 자들도 합을 이룰 수 있기도 하다는 것, 전혀 다른 곳에서 찾는 현답이라 간절히 믿어본다.
악은 악이다. 다수결에 의해 만들어진 악은 '기어코'
악이다. 그렇다면 소수결은 어떠할까. 일본 만화 원작의 라이어 게임에서 나온 소수결은 의외의 경향성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세상에 두가지, 성선과 성악만 있다면 나는 긍정의 힘을 믿는 편이다. 삶의 삶에, 오직 악의 악은 없다고 믿는 편이다. 단호한 마음으로 '오늘의 나'와 '오늘의 우리(들)'를 믿어본다. 악한
19:58:05
자는 없다.
황성진 writorium.com writer@writorium.com 공간 라이토리움(http://writorium.com) 작가, 먹고 마시고 숨쉬며 소심하다. 후회는 항상 없지만, 또한 항상 아쉽다.
언제나 졸립다. 이대로 킵 카암 앤 고오잉 오운!
20:09:36
1
식탁은 처음부터 식탁으로 만들어진다. 1인용이든,
2인용이든, 4인용이든 식탁은 식탁이다. 내 인생은 식탁으로 만들어진 식탁을 식탁으로 쓰는 것으로 이어져 왔다. 식탁을 식탁이 아닌 것으로, 식탁이 아닌 것을 식탁으로 써야 한다고 밀어붙인 사람은 H였다. (왜 소설에 굳이 H라는 이니셜이 많이 등장하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를 H라고 칭하겠다)
H를 처음 만난 것은 시끌벅적한 파티였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누군가의 아는 사람이었다. 그를 데려온 사람이 K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는 삼삼오오 어울려 떠들어대는 이들 속에 적당히 놓여 있었다. 나는 남들이 뭐라 떠들어대도 상관없다는 듯한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 초연함은 충분히 계산된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가 남들이 피워 올리는 웃음에 적당히 몸을 맞추면서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순간 을 엿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역시나 내 예감이 맞았다. 그날 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그의 말발은 기대 이상으로 끝내 줬다. 말발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끝내 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 느낌을 받은 건 나만이
20:21:07
아니었다.
“굳이 얽매일 필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이게 H의 입버릇이었다. 그의 말에 반박하려 들면
들수록 무언가에 연연하는 소인배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H는
즐기는 듯했다. 격분한 상대가 말장난 집어치우라거나, 그렇게 무책임하게 살지 말라며 언성을 높여도 H는 초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사실 식탁으로 만들어진 것을 침대로 쓰든, 의자를
건조대로 쓰든, 그것은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그의 말은 그리 색다르지 않았다. 그 정도 말이라면 동의도,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빙긋이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식탁으로 만들어진 것을 식탁으로 쓰는 것보다 식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식탁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 새로운 가치의 창조이며 진정한 미의 발현에 다가가는 길이라는 그의 말에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었다. 식탁으로 만들어진 식탁에게도 그 본연의 쓰임과 아름다움이 있을 텐데, 굳이 식탁을 침대로, 의자를 건조대로, 자전거를 덤벨로 쓰는 것은 괜한 억지처럼 느껴졌다.
“굳이 그렇게까지…….”
이게 H를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대놓고 대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지 않고 이런 내 생각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신호였다. 이 이야기는 길게 나눠봤자 뚜렷한 답이 없을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신호이기도 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정도로 갈무리를 하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것이 예의바른 사람들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는 것마냥. H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남들 눈에는 제 생각을 멋대로 떠들어대는 안하무인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예의를 갖췄다. 그는 절대 대책없이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의 그는 신호를 무시했다. H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실 내 말은 처음부터 말줄임표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끝이 명확하지 않다) 치고 나왔다.
“아니, 아니에요. 내 말을 잘 들어봐요. 내 말은
단순히 식탁을 침대로, 의자를 테이블로 써야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던 간에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의 진짜 쓰임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지금 나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 말을 들이대는
모습이라거나, 꼭 “아니”라는 부정어를 들이밀어 상대를 흥분 시키는 습관도 나는 그리 싫지 않았다. 적당히 무례할 만큼 패기 넘치는 그의 모습이 흥미로웠던 게 사실이다. 그가 내가 정해둔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나는 계속 그를 곁에 둘 생각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한 달에 두어 번 내 집에 들러 밥과 차를 먹고 마신 다음,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술로 가득 찬 벽장에서 원하는 술병을 꺼내들고 호릅호릅 마시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큰 소리로 떠벌리다가, 어느 순간 가죽 소파에 쓰러져 잠드는 그가 나는 싫지 않았다. 내가 그어둔 금을 넘지만 않는다면 그를 내버려 둘 참이었다. 나는 불쑥 금을
20:32:38
밟고 올라선 그에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는 내가 새로 들인 식탁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군. 다음번 식탁을 바꿀 땐 자네와 같이 가야겠어.”
그쯤에서 그가 내 손을 잡았다면, 그날 밤에 그는
이제껏 맛 본 적 없는 훌륭한 술을 호릅호릅 들이킨 다음 익숙하고 편안하게 잠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식탁이든, 소파든, 혹은 내 침대든 간에. 하지만 그는 안락한 잠자리를 포기했다. 혹은 그 이상도.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다른 날과 달리 그는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 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다 못해 실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모습은 그가 단순히 ‘식탁’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금을 넣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건 예상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는 잠시 방안을 서성이며 호흡을 가다듬더니 조금은 은밀하게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중요한 건, 식탁이 아닌 것을 식탁으로 썼다고 해도
그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제의 식탁이 오늘도 식탁일 수 없다는 것, 이런 능동적 교란을 통해 우리는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없는 탁월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단 말입니다.”
구불구불한 문장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내뱉는 동안
그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번졌다. 자기가 내뱉는 말들에 취한 표정이었다. 동시에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해졌다. 내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가팔라진다는 걸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고 쥐었다 펴고 쥐었다 편 다음, 그에게 말했다.
“어제 K가 다녀갔네.”
K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H의 표정이 급변했다. 나는
공기를 머금듯 웃음을 삼킨 채 그에게 등을 보인 채 걸음을 옮겼다. 네 걸음 만에 벽장에 닿았다. H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벽장을 열고 술 몇 명을 옆으로 옮긴 다음, 평소에는 잘 열지 않는 벽장 속 작은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황금빛 술병을 꺼내 두 잔의 술을 따르는 동안에도 H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그에게 술잔을 내밀자 애써 웃음을 머금고 이렇게 물었다.
“잘 지내던가요?”
진홍색 술을 천천히 한 모금 삼킨 뒤 내가 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H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잔을 비웠다. 나는 조용히
그의 잔을 채웠다. 그가 세 번째 잔을 들이켰을 때, 나는 H의 어깨를 짚으며 조금은 은밀하게 말했다.
“K가 울더군.”
그건 사실이었다. 어제 나를 찾은 K는 분명 내 앞에서
20:44:10
울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울면서 H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K가 뭔가를 기대했다고는 볼 수 없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가장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드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K도, H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이제까지 쭉 그래왔다. 그런데 내가 먼저 K의 이름을 꺼냈으니 H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예상했던 대로 H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규칙하게 뛰던 심장 박동이 평소의 템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흔들의자로 만들어져 흔들의자로 쓰고 있는 내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럴 건가?”
“언제까지라니요?”
“K와 자네 말일세.”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나는 언제까지 K를 애태울 거냐고 묻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남들의 관계에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직접적이고 저급한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H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발뺌을 하자 어쩐 일인지 괘씸하단 생각이 들어 쐐기를 박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다. 한편 시침 떼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쩌면 H가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K가 그에게 흠뻑 빠져 있다는 사실을. 그를 온전히 갖고 싶어 몸이 달아 있다는 사실을.
하긴 얼마 전까지 K도 자신이 그렇게 H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K 역시 H처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남들보다 조금 더 친밀한 사이로 지내는 것에 대체로 만족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K는 그것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조금씩 어긋나 적당히 멀어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거나, H와 자신이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H는 K를 놓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H를 놓고 싶은 마음도, 놓을 자신도 없는 K는 좀 더 확실한 것을 원했다. 이를테면 ‘연인’이라는 언어나, ‘섹스’ 같은 행위, 이런 명확한 것이 K에게는 필요했다. 어제 나를 찾아온 K는 자신이 H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며 엎질러진 물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나는 새로 따른 잔을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규정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지.”
망치에 맞은 쇠못처럼 H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되받아칠 말을 고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단단히 못 박기를 결심한 목공처럼, 나는 한 번 더
20:55:41
거세게 망치를 내리쳤다.
“모든 것에는 그에 걸맞는 이름이 필요하단 말이야.”
분명히 말하지만, 처음부터 H에게 그런 말을 할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가 식탁 이야기만 꺼내지 않았다면, 아니, 적당히 식탁 이야기에서 멈췄더라면, 언제나처럼 그의 주절거림을 레코드 삼아 적당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선을
넘은 건 H였다. H는 잘못 맞은 못처럼 몸을 구부리며 거칠게 튕겨져 올랐다. 그는 입술을 뒤틀며 말했다.
“모든 것에 걸맞는 이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당신과 나는요?”
나는 망치를 내려놓았다. 구부러진 못에게 필요한
것은 망치가 아니라 삽이기 때문이었다. 우선 그걸로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다음, 자기 손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묻히면 된다. 혼자 묻히든 혹은 다른 누군가와 묻히든, 그건 H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손을 탁탁 턴 다음 빙그레 웃었다.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보게.”
H는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내려놓고 인사도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그가 내 집에 드나든 이후 처음으로 H는 한밤에 집을 나섰다. 나는 그를 배웅하지 않았다.
2
집을 나선 H는 혼자 길을 걸었다. 널찍한 골목을
흐느적대며 걸었지만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한 것은 아니었다.
당혹감과 수치심, 막막함 같은 것들이 흩어졌다. H는 익숙한 번화가로 발길을 정했다. 그 시간이면 어느 술집에서 누군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심정을 십분의 일이라도 털어내지 않으면 잠들기는커녕 숨을 제대로 쉬기도 어려운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을 가장 잘 알아줄 사람은 단연 K였다.
K에게 전화를 걸어, K를 만나 지금의 심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또한 K였다. 도대체 K는 어디까지 이야기한 걸까. 자신과의 모든 일을 얘기했을 것 같진 않았다. 아무리 절박하다고 해도 K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모를 일이었다. 며칠 전 만난 K는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K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거북한 말을
21:07:12
꺼냈기 때문이다. 그날 K가 말했다.
“우린 무슨 사이야?”
당황했지만 H는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사이긴.”
“무슨 사이냐고 묻잖아.”
K는 작정을 한 듯 물러서지 않았다. H는 K의 발끝을
바라보며 어물어물 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사이지. 꽤 많이.
그렇지 않아?”
적당히 웃어넘길 심산으로 H가 건들건들 말을 던졌다.
하지만 K는 H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게 어떤 사인데?”
그쯤에서 그만했어야 했다. 아무리 K가 평소답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H는 거칠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와 되짚어보니, 그때 이미 K는 J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J의 사주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파티에 데려간 것도, J를 소개 시켜 준 것도 K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H도 J와 K가 어떤 사이인지 아주 궁금해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H는 이내 그런 호기심을 거뒀다. 자신답지 않은 생각이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J는 수년 동안 알고 지낸 K와 다를 바 없이 H에게도
호의를 베풀었다. H는 J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열댓 살 이상 차이난다고 해도 J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그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일부러 경박하게 군다거나, 자신의 또래나 그 이상의 사람들에게 권위를 내세운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J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재미난 것은 공식적인 파티가 아닌 이상, J는 모든 사람과 독대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누구도 둘 이상 동시에 J를 만난 적이 없었다. 누가 J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 수 없단 말이다.
H는 누가 J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말든 상관없다고
여겼다, 방금 전까지는. 자신이 알기로 J는 다른 누군가가 뱉은 말을 옮길 만큼 경박한 사람이 아니라 믿었다. 헌데 자신이 지켜온 질서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K라는 블록이 와락 쓰러지더니 J마저도 자신을 내리쳤다. 어쩌면 J가 K를 걷어찬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눈앞의 돌부리를 걷어차며 H는 “역시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군.” 하고 말했던 것 같다. 다음 순간 그는 둔탁한 무언가에 얻어맞아 길바닥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H는 어딘가에 꽁꽁 묶여 있었다.
손을 꼼질꼼질 움직여보니 거친 표면이 느껴졌다. 늙은 나무 기둥 같기도 하고, 녹이 슨 철기둥 같기도 했다. 엉덩이 밑에 무언가 받쳐져 있긴 했지만 그것이 의자인지 드럼통인지 알 길이 없었다. 눈과 입은 거친 천 같은 것으로 꽁꽁 묶여 있어, 눈을 뜰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열린 콧구멍으로 풀내음 같은 것이 맡아졌다. 처음에는 풀냄새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콧구멍을 벌름대다 보니 향내음 같기도 했다. 누가 자신을 여기로 데려온 걸까. 자신에게 모진 소리를 들은 K? 자신을 밤거리로 내몬 J? 혹은 자신이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누구?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 H는 꽤 마음에 들었다. 평소처럼 몸을 흔들며 큰 소리로 웃고 싶었지만 누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가 응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만히 속으로 클클클 웃고 말았다.
21:18:43
누군가 거친 손길로 입에 묶인 것을 풀어주자 H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것이 맞았단 사실에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것 참 제법 흥미진진한데,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용감하다는
사실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어떤가?”
헬륨 가스를 마신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변조된 음성이
들렸다. H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기분이 좋은가 보군.”
변조된 음성은 기분이 상한 듯했다. 다음 순간, H의
고개가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거칠게 꺾어졌다. H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이건 반칙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금세 시무룩해지다니.”
시무룩한 흉내를 내는 것 같았지만 음성에는 어쩐지
웃음기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자네를 부른 건 듣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야.”
익숙한 말투였다. H는 이럴 거면 굳이 눈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하는 유치한 짓거리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이죽대고 싶었지만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입술을 함부로 비틀거나 한쪽 볼을 꿈틀대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짓도 하지 않았다. 따귀 두 대는 H를 조용하게 하는 데 충분한 압력이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H의 손과 발을 풀었다. H는 공중에 들려 어디론가 옮겨졌다. 등이 바닥에 닿게 눕혀지고 팔다리가 큰
대자로 벌려졌다. 팔과 다리가 다시 묶였다. 머리 위에서 등이 커졌는지 환하게 밝아졌다. H는 가려진 눈을 더욱 가리고 싶어 팔을 들었지만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H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변조된 음성이 말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열심히 답하는 게 좋을
걸세.”
쇼가 시작되었다. 익숙한 시그널 음악이 들리고
방청객들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미리 녹음된 소리인 것 같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진실을 파헤쳐
드립니다. 여러분의 <진실 게임>!
다시 한 번 활기찬 함성소리가 들렸다. 밝고 경쾌한
음성의 진행자가 H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K를 알죠?
H는 분명 K를 알고 있지만 안다고 말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K가 자신의 어깨 정도 오는 키에 길쭉한 얼굴을 가지고 있고 어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며 최근에 어디로 여행을 다녀왔는지 알고 있지만 과연 자신이 K를 알고 있는 21:30:14
건지 헷갈렸다. 생각하는 동안 고개가 왼쪽으로 꺾어졌다.
“아, 압니다.”
-당신은 K와 친합니까?
K와 자주 만나고,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취하도록 술도 마시는 사이니까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친한 사이’였다. 둘은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입에 문 담배를 뺏어서 피기도 하고, 얼굴에 붙은 속눈썹을 떼 주기도 했다. 지난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오늘 무슨 일 때문에 열불이 났는지, 가장 갖고 싶은 물건이 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대는 사이였다.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 전까지 분명 H는 K와 ‘친한 사이’였지만 지금 이 순간 무어라 답해야 할지 헷갈렸다. 다시 고개가 왼쪽으로 꺾어졌다. 오른쪽이 아니라 또 왼쪽이라니, 라고 생각하면서도 H는 재빨리 답했다. 너무 서두르느라 말이 씹힐 정도였다.
“친하, 친규, 친합니다.”
방청객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H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가리고 싶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진행자가 능숙하게 쇼를 이어갔다.
- 그런데 왜 그랬나요?
“왜……라니요?”
- 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말끝을 흐리며 H는 눈을 꼭 감았다. 이번에도
왼쪽으로 고개가 꺾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H를 불안하게 했다. 물벼락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예감이 H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 왜 그랬냐고 물었습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불쑥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K가 보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떠오르는 말을 하는 수밖에.
“그건…… K가 먼저…….”
K가 질서를 무너뜨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어떤 질서인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서로에게 어떤 사이냐는 유치한 질문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렇게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합의된 줄로만 알았던 건 H만의 착각이었다. 그 순간,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꿈인지 현실인지 명확하지 않은, 흔들린 사진처럼 형체가 뭉그러진 장면. 집에 가겠다며 휘청대는 K를 붙잡은 H가 K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서 입술을 감싼 기억. H의 두 손이 K의 얼굴을 감싸고 K의 양팔이 H의 등허리를 쓰다듬고 두 사람의 혀가 정신없이 휘감기던 기억. 자연스럽게 지워진 건지, 의도적으로
21:41:46
은폐한 건지 어쨌든 간에 H의 뇌리에서 까맣게 잊혀졌던 기억. 신음이 새어날 것 같아서 H는 재빨리 침을 삼겼다.
“잘못했습니다.”
-무엇을요?”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일일텐데요.
진행자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뭐라고
속삭이는 듯했는데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속삭임이 이어지는 동안 H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불현듯 자신이 누워 있는 여기가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수술대일까, 테이블일까, 아니면 식탁일까. 그래, 문제는 식탁이었다. 식탁 이야기만 하지 않았더라도, H는 입술을 깨물었다.
문제는 식탁이 아니라 너 자신이라는 듯, 진행자의
목소리가 H의 생각을 끊었다.
-당신은 K와 자고 싶습니까?
“네?”
-K와 자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건…….”
-원하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뭘 망설이는 겁니까. 당신은 K와 자고 싶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K와 자고 싶지 않나요? 자고 싶지 않은 겁니까?
진행자는 아주 신이 난 듯했다. 그는 마치 H의 멱살을
잡고 흔들듯 혀를 놀려댔다. H는 거대한 공기에 짓눌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고 식은땀이 흘렀다.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정신은 또렷해졌다. J의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봤을 때 태연스레 식탁을 쓰다듬던 J의 손길과 미소가 떠올랐다. H는 마지막 카드를 던지듯 말했다.
“원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H는 자신이 뱉은 문장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건 며칠
전 K에게 던진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K는 미친 놈,이라고 말하며 바닥에 침을 뱉었고 그런 K를 향해 H는 술을 끼얹졌다.
21:53:17
그래선 안 됐다. H는 감은 눈을 다시 한 번 꼭 감았다.
3
직접 찾아뵙지 않고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결례인 줄 알지만 선생님께 저희, 저와 H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겠다 싶어 메일함을 열었습니다. 이 메일을 열어보신다면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K, 자네는 늘 생각이 너무 많아.”라고 하시겠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 밤 제가 왜 그런 이야기들을
떠들어댔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도 선생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렸지만 그건 다 어느 정도 계획된 것들이 었지요.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찾아뵈면 선생님께선 그에 맞게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미리 모든 것을 계획하는 줄은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겉으로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알고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왜 그런지 설명하긴 힘들지만 선생님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틋함 같은 것이 담겨져 있었거든요. 저 친구 참 애쓴다, 하는 눈빛 말입니다. 제가 애를 쓰지 않는다고 부정할 마음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바라보시는 게 못 견디게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께 H에 대한 저의 속내를 그렇게까지 드러낸 것은 제게도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분명 선생님과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지요.
얼마 전 새로 산 식탁이 꽤 마음에 든다며 제게 손수 밥상을 차려주셨잖아요. 그러면서 “역시 밥은 잘 차려진 식탁에서 먹어야 제 맛”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을 뿐인데, 제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식탁이 얼마나 좋은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유명한 장인이 만들었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었지요. 밥은 식탁에서 먹어야 한다는 말, 그 말이 이상하게 제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었습니다. 밥이야 부엌에 서서 먹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먹든, 책상에서 먹든, 상관없다는 게 평소 제 생각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밥을 식탁에서 드신다고 한들, 제가
그것을 저지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요. 그러니까 아마도 저를 건드린 무언가는 ‘제 맛’이라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밥을 식탁에서 먹어야 제 맛이라면, 그 나머지 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에 소용돌이가 일었습니다. 갑자기 나 사는 꼴이 엉망진창으로 느껴졌달까요. 선생님은 제가 H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분이었으니까요. 마치 그것이 저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요.
제가 H와의 헤프닝을 늘어놓자 선생님은 “K, 자네가
H에게 원하는 게 뭔가?”라고 물으셨지요. 그 질문에 저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H가 제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뿐, 제가 H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22:04:48
애써 외면해왔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것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선생님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말이 결례일 거라 생각하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아마도 “지금 자네 편하자고 나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겐가? 라며 헛웃음을 지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을 뵙고 나서 한동안은 H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H가 먼저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기도 했지요. 한동안 H도 저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동안이라고 해도 겨우 일주일 남짓이었지요. 하루가 멀다하고 연락하고 만나던 사이다 보니, 그 며칠의 시간이 거대한 물결처럼 우리를 갈라놓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H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고 하더군요. 그 소식을 접하자 제 마음은 이미 H의 곁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먼저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마음 같은 건 타다만 장작처럼 애매해져 버렸지요.
결국 저는 H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갔을 때, 그는 어두운 방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습니다. 제가 커튼을 열려고 하자 H가 말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둬. 그것이 마치 자기를 내버려 두란 말처럼 느껴져서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창문 옆에 서 있었습니다. H는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잠이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H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를 짚었습니다. H는 내 손을 내치지도, 붙잡지도 않았습니다. 이마에서 뺨으로, 뺨에서 귀로, 저는 H의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의 음성이 떠올랐습니다. K, 자네가 H에게 원하는 게 뭔가? 저는 H의 이불 속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H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저를 바라보더군요. 그렇게
저는 H와 몸을 섞었습니다.
제가 H와 섹스를 했다고, 어떤 체위로 몇 번을 잤다
고 말씀드리려고 선생님께 메일을 드리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 고 계실 겁니다. 다만 저는 이 모든 일이 그날, 선생님의 식탁에 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이후로 저는 H의 집에서, 제 집에서, 모텔에서 H와 몇 번 더 관계를 가졌지만 불길이 타오르 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말이 사라졌고 애틋함이 사라 졌고 특별함이 사라졌습니다. 말의 자리에 몸이 놓이고, 애틋함 의 자리에 욕망이 놓이자 더는 H가 사무치게 보고 싶거나 그립 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H는 소개로 만난 사람과 동거를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왜 ‘식탁’이 떠올 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밥은 잘 차려진 밥상에서 먹어야 ‘제 맛’ 이라던 말도 함께 떠오르더군요. 도대체 그 식탁이라는 게 뭘까 라고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납니다. 무언가를 향해 껄껄껄껄 있 는 힘을 다해 웃어주고 싶달까요. 눈물이 나고 허리가 꺾이고 허파가 꼬이기 직전까지 아주 미친듯이 웃어주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네요.
지금은 H와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언젠가는 다
시 H를 만나게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저는 H를 잃은 것도, 선생님을 원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 었습니다. 이게 선생님께 직접 드리는 저의 마지막 이야기가 될 22:16:19
것 같네요. 혹여 다른 누군가에게라도 제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그냥 모른 척 해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밥상이 있는 법이니까요.
22:27:50
kook kookookook70@gmail.com twitter @kookookook70
읽고 쓰고 만듭니다.
22:39:22
noori bang blog.naver.com/bnring bnring@naver.com
23:25:26
아브락사스 20호 예고
아브락사스 20호 ‘인터뷰 원 몰 타임’
10호의 주제는, ‘인터뷰’였습니다. 발행인 김종소리는 당시, 홍대 부근에 위치한 두 곳의 술집(낙타, 세상의 끝)에서 쉬는 날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이 두 곳의 술집으로 찾아와주셨고,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녹취를 풀면서 김종소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인터뷰 안 해.’ 근데 지금 직업이 인터뷰어입니다... 녹취를 풀기보다 최대한 받아 적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때 아쉬웠던 점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경험도 많이 쌓았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인터뷰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빠서요. 그래서 서면 인터뷰를 요청드릴까 합니다. 아쉬운 점을 개선할 생각도 없고, 경험을 써먹을 생각도 없습니다. 사실은 10호의 주제가 인터뷰니까 20호도 인터뷰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짓말 못하겠네요.
아무튼, 부디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로 마감은 2014년 1월 10일입니다.
* 아브락사스 10호 ‘인터뷰’는 abraxaszine.com에서 PDF 파일을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방법 먼저 작품을 만들어주세요. 어떤 주제나 소재도 좋습니다. 책에 실릴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단, 그림의 경우 흑백(300dpi)으로 작업해서 보내주세요. 사이즈는 A5, 펼침면 사용시 A4입니다. 그리고 요청내용과 함께 아래 질문에 답해주세요.
질문 01 /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02 /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03 / 이 작품을 아브락사스에 보내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04 / 무슨 일을 하시나요? 05 / 무엇을 하실 때 즐거우신가요? 06 /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07 / 작품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08 / 이 외에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ex: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09 / 추천 맛집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요청내용 01 / 작가명 02 / 작품명 03 / 프로필 04 / 연락처(이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홈페이지 등)
크레딧
기획, 편집, 발행 김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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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10
문의 abraxaszine.com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저작권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무단으로 따라하시거나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일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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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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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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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프가 그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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