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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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민권연대

08

본;

월간


월간

본;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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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발행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발행일

2014년 9월 9일 (6호)

블로그

http://mag-mkyd21.tistory.com

문의

mag.mkyd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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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국내경제

단일기, 통일기, 한반도기

유병언에 묻힐 뻔한 의료민영화, 그 진실은? 세계경제

달러패권에 반기를 드는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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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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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닝포인트

블라디보스톡, 그리움이 남는 그곳

스승을 만나다

민권연대 원로회의 정건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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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이슈

규제 없애려 세월호 핑계 대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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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거울, 역사

이달의 역사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동아시아 역사칼럼 ⑥

진주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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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한국 미술사의 숨겨진 보석

월북화가 이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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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무기

국방기자가 깜짝 놀란 북한의 미사일 기술


시선집중

단일기, 통일기, 한반도기 http://mag-mkyd21.tistory.com/64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 참가를 위한 남북실무

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을 열었다. 이

협상에서 단일기 논란이 불거졌다. 북측 단장

자리에서 남과 북은 아리랑을 단가로 합의하

의 담화에 따르면 한국 협상단이 ‘통일기를

고 단기 문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위

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규격이 큰 것

임했다. 하지만 결국 단일팀 구성은 실패했고

은 안 된다’, ‘통일기를 들어야 할 의미를 설

단가와 단기는 사용되지 못했다.

명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 국자는 “인공기에 대해서는 이야기 했는데, 한 반도기를 포괄적으로 이야기 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며 북한의 주장을 즉각 부정하지는 않았다. 통일기, 한반도기라는 이름으로 혼용되고 있 는 단일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63년 스위스 로잔에서 남과 북은 도쿄올림

26년이 지난 1989년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에서 비로소 흰 색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 지도가 새겨진 기를 정 식 단기로 채택하였다. 하지만 북경아시안게 임 단일팀 구성 역시 무산되면서 어렵게 합의 한 단일기도 사용하지 못하였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 남북은 단일기를 처음 공식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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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으로 사용한다. 같은 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왔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단일기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도

독도 명시 문제가 여론화되자 한국 관계자들

단기를 사용했다.

은 북한과 넣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해명하기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 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토리노동계 올림픽,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등에서 남북동시입장에 사용되었다. 이제 단일기는 체육계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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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했다. 하지만 2002년 북한이 가져온 단일 기와 응원용 단일기에는 독도가 그려져 있었 고 2003년 일본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남 북동시입장 때는 준비한 깃발이 없어 북한이 가져 온 단일기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깃발 에 독도가 그려져 있어 거짓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왜 한국이 독도를 빼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단일기는 한반도기, 통일기라고도 부른다. 그

한편 단일기가 대중적으로 사용되자 일각에서

런데 북한에서는 ‘한반도’라는 표현 자체를

는 단일기에 독도를 새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

쓰지 않고 ‘조선반도’라고 표현하므로 한반


시선집중

도기라는 명칭이 너무 한국 중심이라는 의견

겠다고 경고하면서 맥주회사에서 컴퓨터 그래

도 있다.

픽으로 박지성 선수의 가슴에서 단일기를 지 워버린 것이다.

단일기의 이름을 여러 가지로 부르는 이유는 탄생할 무렵부터 특정한 명칭을 달지 않은 남 북 선수단의 ‘단기’(團旗)였기 때문이다.

또 2012년 KDB금융그룹 광고에 대형 단일기 가 펄럭이는 장면이 등장하자 몇몇 단체들이 KDB금융그룹 단일기 광고 규탄 기자회견을

한편 일각에서 단일기가 북한의 대남공작의

가지기도 했다. 이들 단체들은 단일기를 드는

일환이라고 주장하면서 ‘단일기 말소사건’이

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반국가적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행위라고 주장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에 맞춰 나온 한 맥

헌법에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 전

주 광고에 박지성 선수를 비롯한 국가대표팀

체라고 나와 있음에도 한반도 전체를 그린 단

선수 모델 전원의 가슴에 파란색 단일기가 그

일기를 드는 것이 반국가적 행위라면 이야말

려져 있었는데 일부 단체들이 불매운동을 하

로 위헌적 주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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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스·승·을·만·나·다

이 시대 청렴 선비를 만나다

정건상 선생님

http://mag-mkyd21.tistory.com/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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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정건상 선생님께서는 1943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나셨다. 공무원를 지내면서 진정한 선 비로서의 삶을 살아오셨고 불의 부정부패에 가만히 있지 않는 실천가시다. 선생님을 만나는 길은 이슬비가 내리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약속시간에 도착하니 이미 인터뷰 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계셨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다정하게 맞이 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얼룩지게 한 부정부패’

력을 휘두르고 선거 때는 부정선거를 하고 독 재를 했었지. 권력을 놓치기 싫었는지 라이벌

본기자(이하 본) : 선생님께서는 사회운동에

이 되는 사람을 죽이기도 했어. 조봉암씨 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지?

정건상 선생님(이하 정) : 내가 어릴 때부터

본 : 네, 알고 있습니다.

신문을 자주 읽었거든 예전 신문은 대부분이 한문으로 적혀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한문을 배워서 신문을 읽을 수 있었지. 신문을 읽으면 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선정을 베풀지는

정 : 이승만 초기선거에서 조봉암이가 대구에 서 이승만보다 더 많이 나오면서 다음선거에 조봉암이가 유리하니깐 사법 살인을 한 거야. 첫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재심에서 고등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지.

못하고 일당독재를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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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승만정권이 정부를 세우면서 순수한

를 마치고 바로 했으니깐. 공무원이 정치개입

우리민족의 훌륭한 사람들을 곳곳에 세워야

을 하고 하면 안 되는데, 박정희도 많은 사람

되는데. 친일파 일본 앞잡이들을 세운거야. 그

을 죽이고 전두환 때도 그러하니 나라꼴이 말

러면서 국민들이 반대를 많이 했어. 독재를 하

이 아닌 거야,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이

고 사람들을 죽이고 하니깐 국민적 저항을 받

래선 안 되겠다 생각하면서 사회운동을 시작

게 되었지. 불안한 이승만정권이 선거에서 부

하게 되었어.

정을 저지르게 되었어. 3.15 부정선거, 결국엔 4.19가 일어나게 되었어. 그때 내가 고등학교

민족을 위한 집안 내력

1학년 때 였어. 선거를 하면서 고무신을 나눠 주고 막걸리를 먹이고 나중에는 투표용지까지

본 : 선생님 아버님께서 독립 운동가이셨다고

바꿔치기하고 말이야. 결국 4.19혁명으로 이

들었는데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말씀 부탁

승만 정권이 물러나게 되었지.

드리겠습니다.

정리하면 이승만정권이 너무나 많은 부정부패 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운동에 눈을 뜨게 된 거야. 그리고 내가 공무원 출신인데. 본 : 공무원을 하셨어요? 정 : 어린나이에 공무원을 시작했지. 군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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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정 : 아버지 성함이 정각수라고 하는데 전남

정 : 허허허, 증조부도 역시 독립운동 자금을

보성에서 유지였어. 상해임시정부 외교부장이

보태주셨지. 지역 유지가 된 것은 14대조 할

찾아오면 독립운동 자금을 보태주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선조 왕 때 문관을 지내셨고 임진

보성전문학교를 세우는데 재산을 기부하기도

왜란 때 큰 공을 세우시면서 엄청난 하사금을

했지.

받았지. 그리고 보성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

사모님 : 집안 자체가 너무 선비집안이라 청

그때 노론이니 서론이니 하면서 원균이네 패

빈낙도 정신이 그대로 있어. 있는 거를 다 퍼

거리가 이순신을 옥살이를 하게 했을 때 14대

주고 자기 것은 챙기지를 않아. 마을 주민들

조 할아버지께서 선조 왕에게 눈물로 호소하

이 굶주리면 곡간을 열어서 다 내주기도 했으

면서 이순신장군을 전장으로 보낼 수 있었고

니깐.

이순신 장군과 전장에서 큰 공을 올리게 되었

정건상 선생님 (앞 줄 오른쪽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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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지. 본 : 집안 대대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활동 을 해오셨군요.

이 총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는 책임이 없 다.’ 라고 하는데 안보실장이 책임을 안지면 누가 책임을 지는가 말이야. 사실 청와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뭘 알겠어.

심각한 세상이야기

안보 관련 부서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알 지. 청와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별

본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넘었

볼일 없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잘 해야 된

는데요. 세월호에 관련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

정 :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거는 200명이 타 는 배에 250명을 태우고 화물도 한계 초과되 도록 화물을 실으면서 과적으로 배가 침몰한 거야. 배에는 한도가 있는데 한도를 초과 할

게 된 거라고 생각되는군. 본 : 한반도 주변도 심상치가 않은데요.

수 있게 만들도록 인정을 해줬기 때문에 이런

정 : 사실 세계가 심각하지. 우크라이나도 미

일이 발생한 거지. 정부에서 인정을 해줬기 때

국과 러시아간의 전쟁이지. 사실 중동지역도

문에 그렇게 된 거거든. ‘그렇게 하면 안 된

그렇고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서양수구세력과

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다 돈 때문

러시아, 중국 등의 진영과 전쟁이지. 시리아도

에 그렇게 한 거지.

양쪽 진영 싸움인데 반군을 미국이 지원하고

그리고 사고가 났으면 수습을 잘 해야 하는데 수습을 제대로 못 했지. 안보실장이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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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그러니깐 혼돈이 생기고 사고가 더 커지

있고 정부군을 러시아가 지원하고 있지. 동북아에서도 이런 복잡한 기류하고 많이 연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결되어 있다고 심창치가 않아. 조용한 것 같지

반드시 막겠다는 각오로 막아야 해요. 미국이

만 터지려면 갑자기 터질 수 있다고. 미국이

뒤에서 뒷받침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이든 나

스커드 미사일을 주한미군 부대에 배치하면

이든 사람이든 힘을 합쳐서 일본이 들어오는

서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중국

걸 어떻게든 막아야 해요.

을 타겟으로 하고 있어. 세계 경제가 너무 어려우니깐 경제해결을 위 해 전쟁이 필요하고 작은 국가부터 시작을 하 는 거야. 본 : 일본이 자위대 재무장을 선언하고 있는 데요.

본 : 부산에 미 항공모함이 들어왔었는데요. 정 : 그건 공갈협박용이야. 북한을 협박하기 위한... 북한에서도 미사일을 쏜 것도 그걸 막 기 위해 쏜 거지. 이것도 국민들이 떠들어야 되거든. 국민들이 깨어있어야돼.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라!

정 : 일본이 한반도에 유사시 진출을 하겠다 고도 말하고 있는데 이거는 자위권 발동이 아

본 : 민권연대 회원들에게 당부의 한 말씀 부

니라 그냥 한반도에 들어오겠다고 하는거야.

탁드립니다.

한미일이 합동으로 그렇게 하겠다는거지.

정 : 온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본이나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도 그렇고 한일군사정보

미국에 굴하지 않고 투쟁해야 되고 민권연대

협정을 맺는 것도 그렇고 국민들의 반발이 심

는 앞장서야 된다.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야 한

하잖아. 더 크게 떠들어야 돼. 국민이 일어서

다.

야 된다고 일본이 다시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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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이슈

규제 없애려 세월호 핑계 대는 박근혜

http://mag-mkyd21.tistory.com/72

세월호 참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일까? 이른바 경제라는 것에 관심이나 있 는 정부 관계자 및 업계 종사자들은 이런 물음을 세상에 내놓으며, 피해가 극심하네 어쩌네 하면서 ‘영혼 없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300명이 넘는 사람 목숨, 그것도 앞 날이 창창한 고등학생들의 목숨이 사라졌는데도 ‘돈’ 타령이니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놓고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은 “한국 경제가 타격 을 입었다”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이른바 외국계 증권사들은 “세월호 참사 한국경제에 영향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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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이슈

정답은 “둘 다 틀렸다” 애초에 타격 입을 경제라는 것은 없었다. 수출 1조달러가 돌파해도 내 지갑은 텅 빈 것이 우 리네 삶이며, 시급 6000원도 안 되는 최저임 금도 제 때 못 받고 혹여 사장이 안줘도 빨리 달라고 자신 있게 독촉 한 번 못하는 것이 서 민들의 삶 아니었던가. 어찌보면 외국계 증권 사들의 견해가 좀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로 국내 관광업 계 및 이와 연계된 음식 숙박업 등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실제로 세월호

세월호 참사와 경기 침체를 연결시키는 정부 의 의도는 무엇일까. 사실 세월호 참사가 경제 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영혼 없는 언론 보도 의 출발점도 바로 박근혜 정부였다. 지난 5월 9일, 하룻밤을 아스팔트 위에서 지센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 구하고 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소위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회의에서는 국가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는 방안 등 재탕 삼 탕으로 등장하는 “대책”이라는 것들이 확정되 고, 보도자료가 되어 언론에 배포되었다.

참사가 일어나자 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을 전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교체된 일부 장

면 금지하자는, 즉흥적인 주장을 내놓았던 것

관급 인사들의 틈바구니 사이로 “규제 완화

도 정부여당이었다.

끝판 대왕”,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소환되

정부여당의 주장은 마치 식중독이 걸려 설사 를 하는 어린 아이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일 대신 항문을 막아버리자(!!!)고 하는 것

었다.

최경환의 소환, 그리고 규제 완화

과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 정부는 마치 세월

최경환은 “규제 완화”의 대명사다. 최경환은

호 참사로 인해 ‘잘나가던’ 한국 경제 전체가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세금

실체를 알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고

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 공

침몰하는 것 마냥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약을 주도하면서 노무현정부 당시 부동산 투 기를 잡기 위한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부동산 11


컬러이슈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그

관 내정 당일인 6월 13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는 지난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격으로 부

“지금은 부동산이 불티나게 팔리고 프리미엄

동산 대출 규제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

이 붙던 ‘한여름’이 아니고 ‘한겨울’이다. 한

채상환비율(DTI) 완화를 주장한 바 있으며, 4

여름이 다시 오면 옷을 바꿔 입으면 되는데 언

월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부동산

제 올지 모른다고 옷을 계속 입고 있어서야 되

규제를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뜻을 지속

겠나”고 언급한 바 있다.

적으로 밝혀온 인사다. 최경환이 장관 내정 당일 제일 처음으로 언급 한 사안도 바로 부동산 규제 완화다. 그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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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과 민영화 역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는 MB정부 시절인 2009년 12월 지식경제부 장관 당시 “영리 의료법인, 영리 교육법인을


컬러이슈

육성해 서비스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

186명의 쌍용차 부당해고 노동자들은 5년이

다. 비슷한 시기인 2009년 12월 코리아미래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복직되지 못하고 있으며,

재단 조찬 강연회에서 그는 “(의사는) 어차피

밀양 송전탑 공사, 제주 강정 해군기지는 원주

다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며 “영리 의

민들의 반대 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

료·교육 법인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되고 있다. 양파, 마늘, 포도, 복숭아 등 연이

도 했다.

은 농산물 가격 폭락 사태는 정부의 방관 속 에 사실상 방치되어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인 올해 2월, “대대 적 규제완화와 공기업 개혁으로 우리 경제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최경환을 소환한 박근혜의 의도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부동산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의료민영화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어만 간다. 결국 세월호 참사로 경제가 어려워졌다며 대 책을 마련해야 한다던 박근혜의 본심은 정작 민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박근혜가 원한 것은 “규제 완화”다. 이른바 “ 규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자

민생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경기부양책 “세월호 참사로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주장해 온 박근혜의 본심이 애초부터 서민 경제와 상 관없었다는 것은 그들의 정책이 서민들의 민 생과 직결된 노동자 해고현장, 취업난, 농산물 가격 폭락 등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모습 에서도 잘 드러난다.

본주의가 탑재한 근원적인 탐욕이 사람 목숨 을 앗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 의 법제도적인 장치다. “규제”는 사회의 공공 성을 확보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한 영역과 밀 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세월호 참사 이후 오히 려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 온 사안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를 오히려 자본의 고삐 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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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한국 미술사의 숨겨진 보석

월북화가 이쾌대 http://mag-mkyd21.tistory.com/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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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사랑이 만들어 낸 결실 부인 유갑봉 여사는 수완이 좋았다. 포목상과 택시회사를 차려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혹독 한 유신시절 북한으로 넘어간 남편 소식이 들 릴 때면 어김없이 형사가 쳐들어왔다. 유갑봉 여사는 수차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 문을 받았다.

“한번 끌려갔다 오면 어머니는 6개월을 못 일 어날 정도로 심하게 당했어요. 저도 한번 끌려 갔다 온 적이 있는데, 얼마나 끔찍한지 뒤돌아 보기가 싫어요.” 막내아들 이한구씨의 말처럼 유갑봉 여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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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이쾌대는 월북화가다. 해금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이름도 알 수 없었던, 아니 알아서 는 안 되는 화가였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4가의 한옥에 살던 중 아버지가 1950년 9월 집을 나가시고, 1957년까지 그 집에 살았어요. 그 집 부엌 천장에 꽤 넓은 다락이 있었는데, 어머 니는 못 올라가게 했어요. 그 다락방에 작품이 있었던 거죠.” “17세 때 다락에 올라가니, 유화 대작은 모두 둘둘 말려 있었어요. 소품들은 신문 지를 앞뒤로 깔아 뉘어져 있었죠. 안방 벽장문을 열어야 다락으로 통하는 문이 있 었기에 외부인들은 상상도 못한 공간이었어요.” 이쾌대의 막내아들 이한구씨 매일신문 인터뷰 中 기적이다. 40년이 지난 전쟁까지 거친 작품이 고스란히 복원되다니. 사랑이 만들어 낸 결실이라고나 할까. 화가 이쾌대의 작품은 그렇게 부인 유갑봉 여사의 손에서 마 침내 빛을 보았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1980년 세상을 떠났다.

화를 주로 그린 이쾌대에게 아내는 특별한 존

1988년 월북화가 해금을 끝까지 못보고 떠

재였다.

난 것이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내의 모습, 단아하게 앉 이쾌대의 작품 속에는 부인이 매우 자주 등장

아있는 모습 등 수없이 많은 작품이 있다. 심

한다. 이쾌대는 1932년 한동네에 살던 유갑

지어 그는 부부가 같이 등장하는 그림에 아내

봉과 달콤한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만큼 사

를 앞쪽에 그렸다. 자신은 검은 실루엣으로 처

랑했고, 창작활동에 큰 영감을 주었겠지. 인물

리하고 고운 빨강 저고리를 차려입은 아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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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내세웠다.

현대적 미감에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은 창조 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독도미군폭격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쾌대의 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한 이쾌대는 20세

표작 <군상Ⅳ>다. 독도어민 폭격사건은 미 군

기 한국 미술사에 대표적인 유화가다. 사실성

정 당시인 1948년 6월8일 미공군의 폭격으로

과 민족성에 기반을 둔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

오전 독도에서 미역을 따던 어민 150여명이

민족의 전통적인 조형미를 계승하고 있으며,

숨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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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는 것이다. 당시 울릉도에서 날아온 12대의 미군 폭격기 는 2개조로 나눠 600m 상공에서 선회하며 융

반면 오른쪽에는 아비규환의 참담함과 혼돈,

단 폭격했다. 조업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

절망이 표현되어있다. 인간의 희노애락이 고

으로 변했다. 5∼8명씩 30여척의 동력선에 타

스란히 담긴 역동적인 산 인간이 그대로 표현

고 있던 150여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한

되어 있다. 해방된 나라, 하지만 다시 미군정

다. 폭격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장학상씨(당시

에 놓인 현실, 그들에 의한 학살은 얼마나 큰

36세·1996년 사망) 등 4명이 사건 직후 천

사회혼란과 분노를 안겨주었을지 이 작품을

신만고 끝에 울릉도로 돌아와 사건은 세상에

통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알려졌다.

민족성과 뛰어난 미적 감각 <군상Ⅳ>는 폭탄이 터진듯한 연기가 자욱한 배경 속에, 아직도 폭격의 섬광이 남아 무시무

이쾌대의 쾌작,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시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세세히 보자. 파아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피 어오른다. 원경 산수화를 보는 듯 한 구름 속

좌우의 군상이 서로 대립을 이룬다. 왼쪽 중

에 묻혀있는 산세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앞

앙에는 쓰러진 여성을 안고 억척스럽게 걸어

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과 좁은 논밭으

가는 남자와 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그려져 있

로 짐을 이고 아낙네들이 종종 걸음을 하고 있

다. 억척스럽게 한 방향을 보면서 미래를 개척

다. 민속풍을 살리면서 유화 색채를 가미한 배

해나가는 의지의 인간상이 같이 표현되어 있

경은 정겨운 냄새가 확 풍겨온다.

18


예술, 그 본질적 가치

부리부리한 눈에 숯 검댕이 같은 눈썹, 꾹 다문 입술은 그가 꿈꾸는 이상에 대한 강 한 신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눈빛으로 오른손에 든 붓 과 왼손에 든 팔레트는 화가 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당당한 푸른 두루마기를 휘 날리며 강토를 딛고 서있는 이 작품은 이쾌대의 모든 것 을 표현한 역작이다. <봄처녀>에서도 원경에 아 름다운 우리 강토가 펼쳐진 다. 산을 휘돌아 치는 강물 과 펼쳐진 산세가 펼쳐진다. 수줍은 듯이 아래를 응시하 는 눈망울과 곱게 다문 입술 19


예술, 그 본질적 가치

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조 선 여인의 미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댕기머리에 살짝 손을 댄 선 분홍빛 저고리, 바람에 날려 굴곡진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흰 치마는 예술이다. 그야말로 ‘조선의 모자리자’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쾌대와 이여성 이쾌대는 12살 위의 형, 사회 주의자 이여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여성은 3·1운동 직 후 중국에서 귀국해 대구학생 비밀결사 혜성단을 조직해 강 력한 항일운동을 했다. 이여성 은 일제가 패망의 길로 접어들 던 1944년 여운형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국동맹에 참여한다. 20


예술, 그 본질적 가치

그는 여운형의 오른팔 격이었다.

庾信)참마>, <대동여지도 작자 고산자>, <악조 (樂祖) 박연선생> 12점의 대형 역사화를 완성

이여성은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

시켰다. (레디앙 “서촌의 형제들이 꾸었던 꿈

석회의에 근로인민당 대표로 참석한다. 그리고 그는 북한 에서 사회주의자의 길을 간 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 원, 김일성종합대학 역사강 좌장(1957) 등의 중책을 맡는 다. 또한 미술사 연구도 계속 하여 1955년 <조선미술사개 요>, 1956년 <조선건축미술 의 연구>를 발간하며 북한 미 술사학계에 토대를 놓았다.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이여성 의 정밀한 역사적 고증 아래 대형 역사화 <격구(擊毬)>뿐 이다. 이여성은 1938년 초에 <청해진대사 장보고>, <유신( 21


예술, 그 본질적 가치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길” 참조)

대미술가편람 저자 리재현은 이쾌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월북을 한 이쾌대 “김정일 동지께서는 이번에도 이 책의 증보 형제는 용감했다. 이쾌대 역시 형 이여성의 영

판 발행 문제를 료해하시고.. 지난 시기 창작

향을 받아 식민지 미술의 사슬을 거부했다. 그

공로가 있는 문석오, 리쾌대 등 미술가들도 놓

는 사회주의적 색체가 강한 조선미술동맹에

치지 말고 소개할 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가담해 서양화부 위원장으로서 활발하게 작

주시었다.”

품 활동을 펼쳤다.

숨은 보석 이쾌대 이쾌대는 정전 시기 북행을 택했다. 전쟁이 발 발하고 인공치하에서 활동한 그는 인천상륙

1991년 이후 ‘월북화가 이쾌대’ 전시가 전국

작전 후 북행을 하다 국군에게 체포된다. 그는

에서 여러 차례 열렸다. 그에 대한 평가도 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포로간의 극심한

시 진행되고 있다. 2013년 이쾌대 탄생 100

대립 속에 ‘생존을 위해 북으로 피신하겠다’

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며 화가 이주영에게 가지고 있던 작품을 넘겨

에서 전시도 열렸다. 상실된 한국 미술사의 숨

주었다고 한다.

은 보석 이쾌대, 그의 작품은 남과 북 모두에 서 가치 있게 빛나고 있다.

북한에서 이쾌대는 1965년까지 활동을 한 것 으로 보인다. 1999년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력 22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유병언에 묻힐 뻔한 의료민영화, 그 진실은? http://mag-mkyd21.tistory.com/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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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유병언 추정 시신 발견> 7월 22일, “순천 송치재에서 발견된 변사자의 지문을 채취해 검색한 결과 유병언 지문으로 확인 됐다”는 경찰의 발표는 세간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유병언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사실도 놀라 웠지만, 시신의 상태가 80% 이상 부패, ‘반백골화’된 것이다. 검찰이 유병언을 검거한다며 그의 별장인 송치재를 급습한 것이 5월 25일이었고, 시신이 최초발견된 것이 6월 12일이었으니 불과 보름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당연히 시신에 대한 진위논란이 불거졌다. 법의학 국내최고 권위자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실 주임교수는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시신의 심각한 부패정도에 대해 “이상해요. 이상하지만 참고, 꾹 참고 이렇게 빨리 부패하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요”라고 국민TV와 인터 뷰, 시청자들을 ‘빵’ 터뜨렸다. 사실 이른바 ‘구원파’ 교주인 유병언과 세월호 참사는 그가 세월호를 운영해 온 청해진 해운 의 실소유주라는 사실 외에 특별한 관련이 없다. 유병언이 체포된들, 그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 을 규명하는데 무엇을 기여할 수 있나. 그는 오히려 참사의 책임자인 박근혜 정권에 의한 희생 양일 뿐이다. 24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장면 #2 <의료민영화 입법>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같은 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유병언’과 함께 ‘의료민영화’가 올라왔다. 이날은 이른바 ‘의료민영화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 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만료된 날이다. 이 법은 향후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8월 부터 시행된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선박사고가 발생하면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 기 위해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을 개발하라’는 지침을 내렸던 정부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자 연스레 떠오른다. 트위터 등 SNS 상에는 ‘유병언’ 사건 때문에 ‘의료민영화법’에 대한 관심이 묻히는 것을 우려하 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SNS에 ‘유병언에 묻히면 안됩니다’라며 “보건복지부 홈페 이지에 의료민영화 입법을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공고 반대서명 부 탁드립니다” 라는 글을 올리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22∼26일까지 닷새간 파업하였고, 총파업 투쟁을 시작한 22일 하루에만 의료 민영화 반대 서명 운동에 60만 명의 국민이 동참하기도 했다. 25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박근혜, 의료 민영화 ‘재앙의 문’ 여는가 청와대에서는 두 가지 행정조치를 내린다고 한다. 첫째 병원의 영리 자회사 설립 가이드라 인, 둘째 병원 부대사업 대폭 확대 방안이다. 이 두 가지가 한국 의료제도를 통째로 바꾸는 의료 민영화 조치다. 첫째, 영리 자회사 설립 문제다. 지금까지 한 국의 법인병원은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하 게 할 수는 없게 한다는 뜻에서 ‘비영리’로 규 제되어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비영리병원 이 영리 자회사를 만들어 외부 투자자의 투자 를 받고 이윤 배분을 한다. ‘엄마’ 병원은 비 영리, ‘아들’ 병원회사는 영리 주식회사가 되 는 것이다.

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엄마’병원을 보고 투 자를 할 수밖에 없다. 병원 전체가 영리목적으 로 운영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엄마’병원과 ‘아들’

모병원과 자회사가 분리가 될까? 한국 기업들

병원회사는 현실적으로 엄격히 분리되어 운영

의 회계부정은 어떻게 저질러지며, 지금도 숱

되기 어렵다. ‘엄마’병원의 돈과 영리를 추구

하게 일어난다는 병원의 건강보험 부당 청구

하는 ‘아들’회사의 돈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

는 왜 현장 실사가 0.1%도 이루어지지 않는

능하기 때문이다. 자본에는 국경도 없는데 회

걸까.”

계장부 하나 못 건너뛸까? 게다가 ‘아들’회사

둘째로, 박근혜 정부는 병원 부대사업에 대한

26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목욕장, 수영장 등이 부대사업이 되고 여기에 부동산 임대업까지 병원 부대사업이 된다. 지금도 한국의 병원들은 이미 영리병원에 가 까운 운영 행태를 보인다. OECD 국가 중 한 국이 의료비 증가율이 1위이고 로봇수술 기계 등 고가장비가 가장 많은 나라이며 갑상선 수 술이 다른 나라의 10배가 넘는 등 과잉진료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다. 지금도 이런 데, 아예 병원을 영리병원으로 만드는 규제 완 화를 하면 병원은 어떻게 될까? 병원이 외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에게 이윤 배분을 하기 위해 이윤 추구를 더 해야 한다. 규제를 대폭 완화해 병원을 기업으로 만들어 주려 한다. 지금 병원은 사전을 찾아보면 “병 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곳”으로 되어있다. 그런 데 박근혜 정부의 병원 개조론은 병원을 ‘종 합쇼핑몰과 호텔, 부동산 임대업을 갖춘 곳으 로 가끔 환자도 치료하는 곳’으로 바꾸려 한 다. 장례식장, 주차장, 식당이었던 지금의 부대 사업이 조금 늘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쇼 핑몰 수준으로 바뀐다. ‘의료 등 생활용품 판 매업과 식품 판매업’, 관광호텔에다 헬스클럽,

사람 죽일 의료민영화 병원을 영리화하면 사람들이 더 죽는다. 병원 에서 돈을 더 벌려면 꼭 필요한 인력을 덜 쓰 거나 불필요한 진료를 하는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미국에서 전체병원의 13%인 영리병 원을 모두 비영리병원으로 바꾸면 1년에 1만 2000명의 사망자가 덜 발생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종합한 결과다.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더 죽어야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멈출 것인가. 27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달러패권에 반기를 드는 국가들 http://mag-mkyd21.tistory.com/69

“우리가 원유를 유로화가 아닌 달러로 거래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유로화뿐만 아니라 점점 사용비중이 커지고 있는 신흥국 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베네수엘라, 이란 등 소위 ‘반미국가’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재무장관과 기 업인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6월 30일 미국 법무부는 프랑스 최대 은행 BNP파리바에 89억 달러(약 9조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어기고 이란, 수단, 쿠바 같은 나라 와 금융거래를 했다는 것이 이유다. BNP파리바는 1년 순익(2013년 66억 달러)이 훌쩍 넘는 돈 을 미국 정부에 벌금으로 물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프랑스가 달러 중심의 세계경제 체제에 불 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라 달러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은 이전부터 있어 왔고, 2008년 미국 에서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를 계기로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달러중심 세계경제 속에서 미 국은 어떤 이득을 얻어왔고, 다른 국가들은 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일까?

28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달러패권으로 미국이 얻는 이득

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국제적으로 돈을 빌리

지금의 경제 질서는 달러중심 체제라고 할 수

는 거래도 달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돈을 갚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달러가 기축통화로 사용

기 위해서는 원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딘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축통화란 국제 거래의

가에서 달러를 구해 와야 한다)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통화를 말한다.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때 원화로는 결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채

제를 할 수 없고, 달러가 있어야 거래가 성립

권 발행=돈을 빌리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안

된다.

전한 자산으로 평가 받는다. 그로인해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 채권을 사려고 한다. 현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역할을 하면서 미국은

재 국제 금융질서는 막대한 규모의 투기자본

많은 이득을 얻어왔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들로 인해 상당히 불안정한데, 대부분의 나라 들이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자산을 보유

첫째,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상 미국은 절대 부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로 세계 대부분

도(국가파산) 날 일이 없다. 미국이 A라는 나

의 나라들이 미국 채권을 구매(미국에게 돈을

라에게 100달러를 빌렸다고 해 보자. A나라

빌려 줌)한 결과 막대한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

는 1년 후에 미국에게 돈을 갚으라고 한다. 미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미국이 막대한 적자를

국은 당장 호주머니에 100달러가 없다. 하지

보면서도 경제를 운영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만 걱정할 건 없다. 중앙은행의 운전기를 돌려 100달러를 새로 찍어서 A나라에게 주면 된다.

둘째, 미국은 위기의 비용을 주변국들에게 손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을 포함해 국제 거래

쉽게 전가할 수 있다. 앞의 예로 돌아가 보자.

가 달러로 이루어지는 이상 달러를 유일하게

미국에 돈을 빌려준 A나라는 1년 후 100달러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은 돈을 못 갚을 일이 없

를 돌려받았다(※ 편의상 이자는 생각하지 말 29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자). 그런데 그 100달러는 미국이 새로 찍어낸

주식, 곡물 가격을 올려놓는다. 거품을 일으키

돈이다. 시중에 새로운 100달러가 더 들어온

는 것이다. 심지어 곡물가격 급등은 빈곤국들

것이다. 시중에 100달러가 추가로 풀렸다는

의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생사를 좌지우지 하

것은 그 만큼 달러가치가 더 떨어진다는 것을

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말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양이 많을수록 그 가

풀린 돈들은 미국의 요구와 정책에 따라 미국

격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A나라

으로 급격히 회수되어 각국의 금융시장에 큰

가 1년 후 미국으로부터 받은 100달러는 1년

충격을 주기도 한다. 미국의 국내정책이 세계

전 100달러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 상태다. 예

여러 나라들의 경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를 들어 이전에는 100달러로 휴대전화를 살

이다.

수 있었다면 지금은 못 산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은 세계 금융기업들을 손쉽게 통제 최근 미국은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천문학

할 수 있다. 글 초두의 BNP파리바 은행의 제

적인 돈을 찍어 풀었다(양적완화 조치). 그렇

재 문제를 생각해 보자. 미국은 반미성향을 가

게 되면 미국에게 돈을 빌려준(미국 채권을 보

진 이란, 수단, 쿠바 등과 거래를 금지했다. 이

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달러가치가 떨어져 손

것은 미국이 요구하는 정책이지 각 국가들은

해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 채권을 가장

이해관계들이 다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국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등의 나라들이 미국

가들에게도 이를 따르라고 요구하고, 이를 어

에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면 미국 법원의 판결로 벌금을 부과할 수 있

향후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의 가치가 떨어지

다.

게 되니 이득을 보게 된다. 미국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에도 달러화의 힘 나아가 미국이 자국의 경제여건 때문에 막대

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 거래가 달러로 이뤄지

하게 찍어낸 돈은 세계 각지로 흘러가 부동산,

기 때문에 모든 금융기관들은 달러가 필요하

30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다. 만일 미국 정부가 다를 나라의 기업, 은행

실제 1달러보다 적게 든다. 현재는 1달러와 1

들과 자국 금융기관들이 거래를 할 수 없도록

달러 지폐를 만들고 유통하는데 드는 비용의

한다면 외국 기업들은 대외거래를 할 수 없게

차이를 세뇨리지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전 세

된다. 미국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에서 세뇨리지 효과를 얻고 있으며 그 규모 는 100~15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의 금융시장 규모가 크고, 달러 거 래의 필요성 때문에 세계 많은 국가들의 금융

쌓여가는 불만들과 무너지는 달러패권

기관들은 지점들을 미국에 두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국내법을 이용해 외국 은행들을 손쉽

이와 같은 달러 질서 하에서 많은 국가들이

게 제재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BNO파

불만을 느끼고 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경

리바 벌금 문제를 두고 달러 체제를 거론하고

제위기 이후 미국경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커졌고, 미국의 양적완화(달러 살포) 정책으로 인해 달러화 가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

넷째, 미국은 화폐주조 차익(세뇨리지 Sei-

어 각 국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된 상황이다.

gniorage)을 얻을 수 있다. 세뇨리지란 봉건제 하에서 세뇨르(영주)들이 분순물이 섞인 화폐

그 결과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통화를 찾기 위

를 만들어 이득을 챙겼던 사례에서 유래한다.

한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

금화 5달러가 있다고 한다면 5달러의 가치를

들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미 달러화가 차지하

가진 양의 금으로 주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는 비중은 1970년대 80%대에 육박하다 2001

4달러 가치의 금으로 주화를 만들고 표면에는

년 71.5%로 떨어졌고, 2013년에는 60.9%로

5달러라고 찍어서 유통한다는 것이다.

10여 년 만에 무려 10%포인트 이상 줄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달러비중이 앞으로 50%

액면가 1달러 지폐를 발행할 때 드는 비용은

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위기로 31


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주춤하고 있지만 1999년 출범 때 만해도 유 로화 비중은 17.9%였으나 2013년 24.7%까

특히 주목할 것은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 자원

지 확대됐다.

의 거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가 기축통 화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달러가 금과

더욱 주목 받는 것은 중국의 위안화다. 중국은

일정 비율로 교환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본, 러시아, 브라질, 호주 등과 무역결제에서

후 과도한 베트남 정쟁비용 지출 등 달러를 많

달러 대신 자국통화로 결제하기로 합의를 봤

이 찍어낸(달러 가치하락) 미국은 금과의 교환

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을 비롯해 세계의 많

비율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1971년 달러의

은 국가들이 위안화 결제허브(중국 위안화와

금 태환을 정지한다. 달러 패권이 흔들릴 수

관련된 거래 및 투자가 이뤄지는 중심지역)가

있었지만, 이에 대응해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7월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해 원유 결제

3일 한중정상회담에서는 위안화 금융허브를

통화로 달러를 못 박았다. 그 결과 전 세계 석

한국에 설치하기로 하기도 했다.

유 거래는 달러를 이용하게 되었고, 미국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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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힘으로 달러패권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석유의 달러 거래에서 미국의 버팀목이던 사 만약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자원 결제를 달러

우디아라비아 에서도 다른 조짐이 나타나고

로 하지 않는다면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있다. 미국이 사우디(수니파의 맹주)와 적대관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미국은 석유의 달

계에 있던 이란(시아파의 맹주)과 핵협상에 나

러거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미국에

서면서 사우디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우디

게 ‘악의 축’ 등으로 찍힌 나라들의 대부분

는 미국에 항의하는 의미로 2013년 10월 유

은 달러로 석유를 거래하는 것을 거부한 나라

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 자리를 “

들이다. 2000년 11월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안보리가 국제 분쟁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원유 결제를 달러화에서 유로로 바꾸겠다고

면서 거부했다. 사우디 왕자이자 22년간 주미

선언했고, 이란은 2002년 석유를 유로화로 거

대사를 지낸 현 정보기관 수장 반다르 빈 술탄

래하겠다고 발표했다. 원유매장량 2위의 베네

은 “미국은 일부러 시리아 내전에 늑장 대처

수엘라도 마찬가지였다.

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제어하지 못했 고, 갈수록 이란과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을 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석유거래에 있어서의

이고 있다”며 “사우디와 미국 관계에 ‘중

달러배제 움직임은 커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

대한 변화(major shift)’가 있을 것”이라고

아가 양국 간 가스·원유 거래에서 미국 달러

경고하기도 했다(헤럴드경제, 2013.11.18.).

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의 자원 수입국인 중국은 자국과의 무역 결

미국이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상실한다면 이전

제 시 달러를 배제한 거래를 확대해가고 있다.

과 같은 혜택 속에서 세계경제 질서를 움직여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갈등을 보이고 있

나갈 수 없다. 미국 중심의 세계 경질서가 저

는 자원 부국 러시아는 에너지수출의 대가를

물어 가고 있다.

루블화를 받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33


인생의 터닝포인트

블라디보스톡, 그리움이 남는 그곳 http://mag-mkyd21.tistory.com/73

7월 23~24일 러시아 아이들 장구 가르치면서 호흡과 폼새 교정을 해주었다. 앞으로 무엇을 가르칠지 고 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풍물에 대한 이야 기를 해주었다. 이들은 김덕수 사물놀이를 알 고 배운 듯 했다. 같이 어울어짐이 아닌 공연. 김덕수가 해외에 우리 전통문화를 알린 업적 을 무시하지는 못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풍물 의 마을굿 적인 의미가 많이 아니 거의 없어 진 듯 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얻어가야 할 것들도 보이 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민요를 녹음 하러 찾 아왔다. 평소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최선 을 다해 불러주었다. 민요가사가 생각나는 대 로 한번 써봐야겠다.

7월 25~28일 러시아 A팀 부단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 다. 러시아는 친구가 되면 소유 개념이 없다. 러시아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계 속 같은 반이므로 친구를 정말 소중히 생각한

사물놀이를 가르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다. 우리보다 덜 분화된 공동체적 나라다. 러

여기서 내가 러시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우

시아는 법은 엄하지만 문화와 맞지 않아 부패

리 문화를 보여주는 것, 새삼 내가 풍물을 시

가 아주 심한 곳이다. 그리고 러시아 나쁜 것

작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다.

3가지는 도로·자동차·남자, 러시아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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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닝포인트

3가지는 자연·문화·여자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답사를 고려인계 이곳 한국어 선생의 도움으로 가게 되었다. 언덕을 따라 쭉 올라가니 도시의 전경이 한 눈에 보 이는 경치 좋은 곳이 나타났다. 이곳은 택시의

로 갈아입고 열심히 준비한 고깔을 쓰로 준비 를 마쳤다. 2시가 조금 지나서 공연을 시작했 다. 중간에 어제 연습한 설장구를 조금 넣어서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카메라 앞이라고 떨어 서 실수했지만 어떻게 해서 끝났다.

개념이 없다. 그냥 손 흔들면 가격을 협상하고

인사굿을 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턱까지 차오

탄다. 시장에서 학교까지 50루불 이었다.

르는 숨, 완벽하진 못했지만 나름 만족했다.

러시아 서커스를 보러갔다. 서커스의 느낌은 왠지 슬픈. 이것이 러시아 정서인가. 단지 음악 이 슬픈 것이었나. 그 와중에서 웃고 있는 그

고깔을 벗을 때 시원함은 참 좋다. 쑥스럽지만 홀가분한 기분.. 그리고 같이 있어서 기쁨으로 남는 하루다.

들을 보면서 러시아. 아니 이곳의 민족색을 조

여유로운 이 기분 정말 좋다. 설장구를 끝내고

금 알게 되었다.

창가에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내가

7월 30일 오늘 음식문화축제, 설장구 공연이 있는 날인 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다들 음식준비에 바 끄고 나는 공연 준비에 정신이 없다. 오늘 공 연이 기대된다. 오후 1시 20분이 되자 각 방 송사에서 카메라들이 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행복함을 느낀다. 나중 에 보니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신문에 단신으로 나왔다. 우스운 일이지만 사서 가져가야겠다. 내일은 한국에서 온 VJ특공대에서 촬영을 한 단다. 덕분에 음식을 다시 해야 한다. 보여주 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난 반대했지만 모두들 하자는 분위기여서 그냥 있었다. 생각

몇 방송사와 인터뷰하고 사진 찍고 또 러시아

을 바꾸면 더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한복을 입혀주었다. 나도 치복으

여러 가지 준비해서 잘하면 더 좋을 것이다.

35


인생의 터닝포인트

7월 31일 찌뿌둥한 날씨에서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한 다. 어제 맥주와 보드카로 기분 좋게 취하고 자영이 누나가 취해서 오랜만에 배꼽 잡고 웃 었다. 간단히 회의가 끝나고 이른바 보드카팀 이 뭉쳤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우리 방 냉장고 의 맥주를 빼왔다.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어떤 곳일 까? 할머니, 어머니, 누나, 매형, 조카와 같이 산다는 말에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버스에서 내려 꼴랴가 약간의 바나나, 사과, 케익을 사 서 같이 들어갔다. 우리나라 주공아파트 같은 5층 아파트였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여니 그리 크지는 않지만 너 무 예쁜 집이 보였다. 꼴랴 누나와 매형의 방,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각각 5병씩 맥주를 먹

거실 겸 꼴랴의 방, 할머니 어머니의 방이 있

어서 간장 맥주 밖에 안남아 결국 보드카를 가

었다.

지고 내려왔다. 울고 노래 부르고 난리가 아니 었다. 우리는 만취한 동료의 이빨도 닦아주고 주물러 준 덕택에 새벽 5시에 잤다. 이렇게 웃 어본 적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웃을 수 있는 추억 생겼다.

꼴랴의 방에는 벽에 카펫이 걸려 있고 거기에 는 메달과 표창장이 걸려있었다. 가서 또 한 번 놀란 사실은 꼴랴가 98,99,00 블라디보스 토크 킥복싱 챔피언이었다. 운동을 잘하는 줄 은 알았지만 그 정도 일 줄이야. 그리고 고등

8월 1일

학교 수석 졸업 표창장이 걸려 있었다. 뜨아.

꼴랴의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선물할 부채를

할머니의 안내로 방으로 갔다. 거기에는 오래

챙기고, 카메라까지 잘 챙겨서 함께 버스 정류

된 재봉틀과 의자, 그리고 베란다에는 레몬 나

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트롤리(아주 오래되고

무와 여러 가지 민트들이 있었다. 문지르면 더

느린 도시전철)를 타고 가기로 했지만 그냥 버

향이 나는 민트를 직접 키우고 계셨다. 손을

스를 타고 갔다.

씻고 다시 방으로 가자 여러 가지 음식들이 차 려져 있었다.

36


인생의 터닝포인트

토마토, 오이, 피망, 마요네즈 오일 샐러드, 훈 제 연어와 다른 고기들, 약간 비린 고등어 같 은 생선, 고사리 무침, 감자와 고기요리, 만두 비슷한 러시아 전통요리, 여러 가지 야채 약간 의 빵과 와인이 있었다. 정말 눈이 놀랄 정도 의 푸짐한 식사였다.

일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 아쉽다. 러시아. 처음에는 두렵고 사람들도 이상한 눈 빛으로 보는 것 같았지만 다시 오고 싶을 정 도로 사람들이 좋다. 오늘 정말 일생 중에 기 억에 남는 그런 하루가 될 것 같다. 민트 냄새 가 아직도 난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 말은 통

러시아와 한국을 위해 건배하면서 식사가 시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서로를 알 수 있는 시

작되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느끼하지 않

간이었다.

고 담백해 배가 너무 부르게 먹었다. 할머니께 서 목요일 날 러시아에 손님으로 초대되면 모

8월 2~3일

두 한 가족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모든 일정이 끝났다. 남은 것은 오늘

가족이 되고 식사는 계속되었다.

의 파티와 앞으로의 여행 그리고 고깔을 태우

사진을 찍고 선물을 줬다. 아냐라는 5살짜리 조카가 처음에는 수줍어서 숨어 있다가 그 때

는 것 뿐. 근처 호수와 해변가로 가는 마지막 여행이다.

부터 친해졌다. 꼬마가 큰 버섯, 인형, 머리띠,

노란 꽃들,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 탁 트인

동화책을 주었다. 꼴랴의 어머니는 민트 씨와

평야에 나무 몇 그루, 나지막한 산들, 가슴이

잎을 주셨다.

뻥 뚫리게 만든다. 너무 아름다운 이곳의 자

그렇게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셨다. 러 시아 전통차와 케익, 과일을 먹었다. 정말 배 부르고 행복한 시간들, 정말 잊지 못할 순간들 이다. 이 사람들과 가족이 되고 이 시간들이 6

연, 햇살이 지나는 곳과 구름이 가리운 곳의 명암으로 구름이 지나는 곳마다 짙은 푸르름 이 된다. 낡고 작은 집들, 쌓아 놓은 장작개비, 집 앞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사람이 얼마 37


인생의 터닝포인트

나 작은 존재인가를 느낀다. 도로 바로 옆에

였다. 여러 아이들과 어른들이 수영을 하고 망

시냇물이 흐르고 몇몇의 러시아 사람들이 모

설이다가 꼴랴가 먼저 들어가서 같이 들어갔

여 그들의 휴가를 즐기고 있다.

다. 물은 미지근했고 꽤 깊었다.

산이 아주 멀리 보이는 이 광활한 대지의 주인

오랜만에 수영을 하니 피곤했지만 수영 후의

이 이 사람들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예전 발해

샤슬릭(돼지고기 꼬치구이)의 맛은 정말 일품

의 땅인 이곳이 우리의 땅 이였으면 지금도 그

이었다. 사슬릭, 만두, 맥주를 먹고 여자애들

렇게 발버둥 치면서 살까? 버스가 매우 흔들

이 사우나를 가는 동안 다시 맥주를 먹으면서

려서 몇 자 적을 수 없었다. 4시간 가까이 버

기다렸다.

스를 타고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목적지에 도 착했다.

러시아 사우나에 갔다. 한국의 그것과 별반 다 를 것은 없었지만 러시아라는 느낌 하나만으

우리 숙소에 도착하니 가까이 있는 호수의 경

로 그냥 즐겼다. 낚시하고 싶다. 내일은 어떤

치가 정말 멋졌다. 방 배치를 하고 꼴랴와 같

즐거운 일이 있을지 기대된다.

은 방을 쓰기로 됐다. 잠시 쉬는 동안 꼴랴와 국제관계,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꼴

8월 4일

랴는 내 이야기를 신기한 듯이 받아들였다. 영

아침 일찍 눈을 떴다. 10시에 나호톳까의 해

어가 딸려 충분한 설명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수욕장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을 느

나의 의중을 다 전달할 수 있었다.

긋하게 보냈다. 들뜬 마음에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호수로 향했다. 길거리의 개들, 닭 몇 몇의 아이들 러시아 시골 풍경을 보는 듯 했 다. 얼마 걸으니 호수에 도착했다. 얼마 크지 않다고 들었지만 막상 보니 우리에겐 큰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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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역시 넓은 초원, 햇볕 이 없어서 좋았지만 해수욕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한 시간 즘 달린 뒤 해수욕장에 도 착해 보니 기대 이하였다. 허나 재밌게 놀자고 마음먹으니 또 그것이 어찌 아니 재미있으랴.


인생의 터닝포인트

기회비용, 내가 이곳을 와서 얻은 것이 더 많

이다. 버스를 타거나 옆을 지나가면 풍기는 악

은가 잃은 것이 많은가? 그건 한국에 돌아가

취, 그것도 이곳의 냄새, 도시의 풍경, 풍경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긴 휴식의 시

머리에 담았다. 정말 쏜살 같이 지나간 2주 이

간이 끝나간다. 검토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정

곳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지 다시 생각해봐

리해야겠다. 오늘밤도 많은 이야기 가슴을 열

야겠다.

어 했으면 좋겠다. 그 단한 사람을 위해서 말 이다. 진지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밤이 다. 보드카팀과 아리랑 곡선을 하다가 날을 꼬 박 셌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 가고 있다.

8월 6일 식사 후 바닷가로 가는 길에 꼴랴의 기분이 계 속 안 좋아 보여 이야기를 했다. 내일이면 헤 어진다는 것, 일의 스트레스 때문에 기분이 별 로 인가보다. 바다 부두 길을 걸으면서 어느 할아버지가 낚아 올린 고기를 손에 들고 사진 찍었다. 비록 손에 비린내는 남았지만 그 바 닷바람의 시원함 구름 낀 우중충한 하늘, 잿 빛 바다, 그리고 사람들.. 이것이 이곳의 이미 지이다. 어디를 봐도 손에 술을 들고 있는 이곳의 사

몸은 피곤하지만 오늘도 밤을 새야겠다. 더 많 은 이야기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저녁이 되고 고깔을 태우면서 우리의 2주를 마무리하 러 나갔다. 바람이 세게 불어 힘들었지만 불이 달아오르고 재가 바람에 날려 마지막 불씨가 사그라지는 순간 이번 굿은 끝난 것이다. 다음 의 더 좋은 굿을 만들기 위해서 고깔을 또 만 들어야겠다.

8월 7일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기숙사 앞에서 기다리 고 있다. 러시아 친구들이 배웅하기 위해 나왔 다. 포옹을 하고 우는 사람들.. 눈물이 고여 떨 어지려고 했지만 계속 참았다. 목이 메인다. 꼴랴와 나는 축구경기를 끝낸 것처럼 서로 옷 을 바꾸어 입었다.

람들, 정말 놀기 좋아하고 잘 안 씻는 사람들

39


미래의 거울, 역사

1945년 8월 15일을 승리로 예상한 사람들 http://mag-mkyd21.tistory.com/66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 미당 서정주

“장차 조선이 해방될 때를 대비하여 국민이 먹어야 할 식량조사와 그 대책을 세우라.” 여운형 선생이 1942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정구에게 한말

40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

을 일으키고 패배를 거듭하며 전황이 불리해

통치에서 해방된 날이다. 그러나 일본이 쉽게

져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했다.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서정주의 말처 럼 식민지배에 만족하고 일제에 부역하고 있

변절한 인물들은 일제의 전쟁에 사람들을 동

던 친일파들은 해방이 다가옴을 알지 못하고

원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글, 노래 등을 발표했

있었다.

고, 사업가들은 자신의 재산을 내놓거나 모금 에 나서는 등 일제의 정책에 적극 부역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을 극복하

심지어는 자신의 동료를 검거하기 위해 나서

기 위해 일본은 군국주의화의 길에 들어섰다.

는 인간들도 있었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공황을 이겨내려 하였고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1937년 중일전쟁을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

일으켰다. 동시에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전시

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직접 일제와 총부리를

동원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온갖 조직사건을

맞대고 싸웠던 만주의 항일무장세력과 화북지

일으키면서 식민지 조선에 대한 탄압을 강화

역에서 중국공산당과 함께 일제와 전투를 벌

했다. 일제는 자신들이 연전연승을 하고 있다

였던 조선의용군, 광복군을 결성하여 일제와

고 선전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강대해져가는

의 전쟁을 벌이려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은

일제를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과 기회주의에

일제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

빠져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친일의 길에 들

다. 이들은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고 자주독립

어섰고 이때에 즈음하여 많은 독립운동가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일제에 반대하는 정치

전향을 했다. 이런 경향은 일제가 태평양전쟁

군사적인 활동을 벌여나갔다. 41


기 위해 해외 무장독립세력과도 연계를 주력 국내에서도 일제의 패망에 대비해 조선 독립

했는데, 대표적으로 중국 연안의 조선의용군

을 준비한 세력이 있었다. 바로 여운형 선생이

과 연계를 맺고 연락을 수시로 하면서 구체적

중심이 된 건국동맹이다. 여운형 선생은 1943

으로 군사작전 논의를 마련하기도 했다. 건국

년 8월 <조선민족해방연맹>을 결성하여 1년여

동맹은 임시정부와 만주 항일무장세력과의 연

간의 준비 끝에 1944년 8월 10일 비밀리에 <

계도 추진하였으나 연락을 하진 못했다고 한

건국동맹>을 결성하였다. 건국동맹은 일체의

다. 또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무기를 조달

활동을 비밀리에 진행했으며 산하에 노동자,

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여 결정적 순간에 국

농민, 청년뿐만 아닌 학병, 징용거부자 등 각계

내에서 게릴라 활동까지 할 계획까지 세웠다.

각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조직을 만들어

다만 무기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군사적

운영했다. 또한 공장, 학교, 회사에 조직을 만

활동을 실행하는 못했다.

들고자 했다. 실제로 징용거부자 중에서는 건 국동맹과의 연계를 가지고 산속에 들어가 있

중일전쟁 이후 여러 조직 사건과 탄압 끝에 전

다가 일제가 패망하는 결정적 순간이 되면 이

향하거나 활동을 중단해버린 타 독립운동단체

를 돕기 위해 봉기해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와는 달리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건국동맹은

경우도 있었다.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고 해방을 준비하는 주 체세력을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육성하는 조직

건국동맹 조직구성에는 내무, 외무, 재무의 3

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건국동맹은 국내

부서와 도별 책임위원을 두었으며, 최고책임

에서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거의 유

자인 여운형만이 전체 활동상황을 알 수 있도

일한 조직이었다는 큰 의미가 있다.

록 했다. 건국동맹은 항일군사행동을 준비하 42


미래의 거울, 역사

여운형 선생은 해외 언론과 해외독립운동 세

이후 <인민위원회>로 바뀌어갔다. 일제의 패

력으로부터 얻은 소식을 통해 일제의 패망을

망을 예상하고 건국 사업을 준비했던 것이 큰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

역할을 한 것이다. 만약 미군정에 의한 탄압이

를 물리치겠다는 강인한 신념과 의지도 있었

없었다면 건국사업은 인민위원회를 거쳐 큰

다. 역사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일제는 망하고

문제없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완

우리 민족은 해방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

수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진 사람들에게 보였던 일제 패망에 이은 민족 해방은 일제에 힘에 굴복해 좌절감과 패배주

최근 한반도 주변 국제적 상황이 100년 전과

의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비슷하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각축

8월 14일 패망을 눈앞에 둔 조선총독부의 엔

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미국 유일패

도총감은 해방을 준비하던 여운형 선생과 접

권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의

촉하여 일본인의 안전을 요청했고 여운형 선

미한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위

생은 ▲모든 정치범 즉시 석방 ▲경성 시민이

치를 차지했었던 지난 70년과는 다른 세상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식량 확보 ▲조선자체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의 주체적 치안 ▲ 치안 유지와 건설 공사 총 독부의 방해 금지 ▲학생, 청년 활동 총독부의

여운형 선생은 시대의 변화를 굳게 믿고 민감

방해금지 5개 항을 제시하고 이를 수락했다.

하게 반응하여 건국동맹을 세우고 성과를 거

그리고 8월 15일 <건국동맹>을 모체로 <건국

두었다. <승리의 8.15>를 믿고 준비했던 여운

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건국준비위원회>는

형 선생과 같은 자세가 격변기를 살고 있는 우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지부가 만들어졌으며

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43


미래의 거울, 역사

동아시아 칼럼 진주만을 기억하라 http://mag-mkyd21.tistory.com/67

“대일본제국 총리대신의 피스톨 다루 는 솜씨가 매우 졸렬하기 그지없었다.”

일본 제국의 제 40대 총리대신이었던 도조 히 데키(東条英機 1884.12.30.~1948.12.23.)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 제국의 총리

는 태평양 전쟁을 대표하는 전범이자, 일본을

대신이었던 도조 히데키는 권총으로 자기의

패망으로 이끈 무능한 정치인의 대명사로 인

심장을 쏘았지만 구사일생으로 치명상을 피

식되곤 한다. 후세 사람들이 2차 대전 당시의

하고, 미군들의 피를 수혈받아 목숨을 건지게

일본군을 안경 끼고 콧수염 기른 대머리로 기

된다. 이 사건을 두고 리영희 교수는 “대일본

억하게 된 것도 바로 도조 히데키 때문일 것

제국 총리대신의 피스톨 다루는 솜씨가 매우

이다.

졸렬하기 그지없었다.”고 조롱했다. 도조 히 데키는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곧 A급 전

도조 히데키의 아버지인 도조 히데노리는 일

범으로 체포되어 극동국제군사재판에 회부

본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장교 출신이

되어 사형을 당하고 만다.

었고, 도조 히데키 역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44


미래의 거울, 역사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관동군 헌병사령관, 육

도조가 일본 군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게 된 이

군차관 등 요직을 맡으며 빠르게 승진했다. 이

후, 일본은 급격하게 군국주의화되어 갔다.

때 보여준 빠른 일처리로 인해 그는 ‘면도날’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하자 도조는

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무능한

군부를 움직여 중일전쟁을 확대시켰고, 1940

제국 군인에게도 자기 분야에서 만큼은 성실

년에는 외무대신 등과 협력해 일본이 나치 독

함과 치열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살아가

일, 이탈리아와 삼국 동맹 조약을 맺는 데 일

면서 피해야 할 최악의 상관이 ‘무능한데 부

조했다.

지런한’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자살에 실패한 도조 히데키. 그러나 그는 3년 후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사형이 집행되어 태평양에 뿌려진다.

써있는 말은 중국 간체로 ‘일본 갑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중국 인민에게 사죄하라’

45


미래의 거울, 역사

1940년 육군대신에 이어 내무대신을 겸직한

는 2천 5백만 명이 넘어가고, 전사자는 연합

도조는 중국 전선의 확대를 주장하는 한편, 미

군이 4백만 이상, 일본군은 2백만 명 이상이

국과도 대립각을 세웠다. 이어 도조는, 당시

나왔다고 한다.

대미 협상을 통해 전쟁 확대를 막으려던 고노 에 내각을 붕괴시키고 급기야 40대 일본 내

일본의 전쟁 범죄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

각 총리대신에 오른다. 뿐만 아니라 절대 권력

도이지만, 군인으로서 도조의 무능·무책임을

을 차지하기 위해 관례를 깨고 내무대신, 육군

가장 잘 보여주는 사실은 “살아서 포로가 되

대신, 문부대신, 상공대신, 군부대신, 참모총

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그의 전진훈(戦陣

장 등의 요직을 겸했다. 지금으로 치면 국무

訓)에서 볼 수 있듯 무모한 전략으로 많은 일

총리가 국방부, 교육부, 문체부, 기재부, 안행

본군을 죽음으로 내몬 일이었다.

부 등의 장관과 육군참모총장까지 겸하고 있 었던 셈이다.

아직도 세계 전쟁사상 유례가 없는 ‘반자이 돌격’과 ‘카미카제’는 도조 히데키의 악

도조 히데키는 중국 전선의 확대를 지시했

령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연합군에 몰려 전세

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전선에까지 눈을 돌

가 기울자 일본군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무모

렸다. 태평양 전쟁은 도조 히데키가 지시한

한 자살 공격에로 내몰았다. 일본 군부는 희망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되었

을 잃은 병사들의 울분을 적에게 돌려 폭발하

다. 진주만 기습 이후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동

게 만들었다. 병사들은 ‘반자이’를 외치며

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석권하고 인도와

대검을 들고 기관총에 달려들었고, 폭탄이 만

호주까지 위협했다. 도조와 그의 제국 일본이

재한 비행기를 타고 항공모함에 날아들었다.

벌인 이 전쟁에서 일본에 의한 민간인 사망자 46


미래의 거울, 역사

이 희망이 없는 군대에는 그래서 엽기적인 사

포로로 만든 특이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도조

건들도 부지기수였다. 일본군은 ‘대전차 삼

히데키와 일본 군부는 이런 무모한 공격에 나

지창’이란 것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죽창의

이 어린 병사들의 애국심과 종교적인 신념을

끝에 지뢰를 묶어서 적 탱크로 돌격하는 전술

이용했던 것이었다.

에 쓰였다. 이와 비슷하게 잠수부가 소형 어뢰 를 죽창 끝에 매들아 함선 아래를 공격하게 했

일본군의 전선에서 벌어진 참혹한 학살극 역

다고도 한다.

시 병사들 사이에 만연해있던 내부의 폭력이 외부로 분출된 사례였다. 일본 군인들은 포로

이런 작전은 처음 한두 번은 먹혔을지 몰라도,

들을 학대했고, 수천 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

이내 연합군 측의 대응으로 거의 실효를 보지

다. 도조 히데키의 파시즘에 감염된 일본군은

못했다. 하지만 일본 군부는 성공하면 성공한

인간성을 모두 잃어가고 있었다.

대로, 실패하면 다음에는 꼭 성공시키리라 ‘ 정신승리’를 해가며 젊은 병사들을 희생시켰

이 외에도 도조 히데키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

다. 사실 태평양 전쟁이 마지막으로 치닫을수

는 그가 얼마나 무능한 인물이었는지를 보여

록 일본군의 보급은 형편없어졌기 때문에 이

주고 있다. 도조가 총리대신이던 시절, 도쿄를

런 무모한 작전밖에 별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

시찰하면서 사람들이 쌀을 낭비하는지 확인한

이기도 하다.

답시고 하수구를 살펴보면서 ‘쌀이 몇 알 떨 어졌네, 낭비하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한

이런 극단적인 방법은 종교적인 맹신이나 광

편, 자신의 전쟁 전략을 비판한 신문기자를 직

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본은 신도

접 명령해서 이등병으로 징집해 당시 격전지

와 천황을 통해 인간을 극도의 맹신과 광기의

로 보내 죽이려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배추값 47


미래의 거울, 역사

도쿄의 ‘순국 7사묘’

이 폭등했으니 양배추 김치를 먹으라던 이명

들을 모아 수습해두었던 것이다. 일본의 극우

박, 세월호가 침몰했으니 해경을 해체한다는

세력은 2012년부터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추

박근혜와 비슷하지 않은가. 무능한 자들이 정

도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권을 잡고 독재를 휘두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 는가,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유럽으로 치면 네오나치들이 히틀러와 괴벨스 의 무덤을 성대하게 만들고 축원하는 미사를

그러나 이 엽기적인 군대와 무능한 독재자의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 7인 전범 묘지

이야기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오늘날에

의 비석은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

도 벌어지고 있다.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태평

부스케가 친필로 썼다고 한다. 그 외손자는 대

양 전쟁의 A급 전범 7명의 무덤이 도쿄 한복

지진과 경기침체로 희망을 잃어가는 일본 사

판에서 성대하게 제사지내지고 있다는 것이

회의 어두운 에너지를 군국주의의 부활로 이

다. 1948년 12월 사형당한 이들 전범은 미군

끌어 가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회복으로 전쟁

에 의해 화장당해 유골은 태평양 한복판에 뿌

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현대의 일본을

려졌다. 하지만 이들의 변호사였던 산몬지쇼

보면서 도쿄 전범 묘지의 도조 히데키는 흐뭇

헤이라는 자가 미군이 수거하고 남은 찌꺼기

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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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무기

북한의 전술유도탄 발사훈련 http://mag-mkyd21.tistory.com/70

북한의 미사일 소식이 주목을 끈다. 이 가운데

문제는 10차례 발사가 우리 군의 미사일 실제

<서울경제>는 7월 10일, [권홍우 기자의 군사

사격훈련 횟수를 훨씬 웃도는데다 모두 성공

무기 이야기]에서 북한의 미사일 운용능력이

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미사일이라도 발사 성

예상외로 뛰어나다고 보도했다.

공률이 100%라는 점은 평소 보관·유지와 부 대관리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대

권홍우 기자는 익명을 원한 육군의 한 관계자

목에서 심지어 권홍우 기자는 “지휘관과 개별

의 말을 빌어, “북한의 미사일 운용능력이 예

병사들이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도사급’이

상보다 대단한 것 같다”며 “또 하나의 비대칭

라는 얘기와도 맥이 닿는다.”고 말했다.

전력이 구조화하는 셈”이라고 말했다고 보도 했다.

특히 권 기자는 “더욱이 (7월) 9일의 미사일 발사는 더욱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

북한의 운용능력이 고도화했다는 보는 이유는

는데, “2발의 스커드 추정 물체의 발사장소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

황해북도 평산이며 500㎞를 비행한 끝에 도

서든 쏠 수 있으며 사정거리 및 탄두 폭약도

달한 탄착점은 동해상. 우리로 치면 군산 부근

조절이 가능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에서 발사해 속초방면 먼바다로 떨어진 셈이

다. 북한이 올 들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

다.”라고 했다.

가운데 미사일은 10발. 5차례에 걸쳐 스커드 계열 8발과 노동미사일 2발을 쏜 것으로 군은

쉽게 말해 국토를 가로질러 미사일 발사훈련

추정하고 있다.

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권 기자는 한국 군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했다. 만에 49


세상의 모든 무기

이다. “완전성공, 철통방어능력 과시”이라고 보도해도 국민들은 모두 믿을 것이다. 권 기자는 “무기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운용하는 데 수년씩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은 이런 단계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 다. 만약 사정거리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수준 에 도달했다면 우리로서는 대응수단이 마땅하 지 않은 북측의 비대칭 무기체제가 또 하나 생 겼다는 얘기가 된다.”라고 했다. 북한군이 미 사일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6-7월의 북한 미사일 발사훈련

작동시킨다는 이야기는 흡사 국가보안법상 찬 양고무에 해당될 법한 충격적인 말이지만, 현

하나 미사일이 불량이어서 발사도중에 떨어지

실 기자의 보도내용이다.

기라도 한다면! 민가에 떨어져서 사고가 난다 면, 그 책임소재는 일파만파 확대될 것이기 때

나아가 권 기자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은

문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있는데 육지로 쏠

단순한 구닥다리가 아니라 우리를 더욱 압박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군은 미사일

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실험을 할 때 바다로 하는 듯 하는데, 항행경

발사한 미사일이 모두 다 탄착지점에 명중하

보를 발령하고 바다로 쏘면 혹시 모를 불발탄

였는데, 이를 구닥다리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

이 나타나더라도 피해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이다. 심지어 그는 냉전시절, 정확도가 떨어지

불발탄이 있었는지조차 아무도 알 수 없을 것

는 대륙간탄도탄으로 목표를 타격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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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무기

핵탄두의 폭발력을 키웠던 소련과 달리 북한

북한의 미사일 기술에 한국기자가 예상 외로

이 단거리 미사일의 공산오차(정확도)까지 개

뛰어나다는 보도를 통해 결국 한반도 전쟁은

선했다면 새로운 위협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민족공멸의 길일 수 밖에 없으며, 방법은 한반 도 평화, 평화통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북한이 최근에는 미사일이 목표 상공 의 적진지나 주요 시설물 위에서 폭발해 수많

미국의 에이태킴스 지대지 미사일

은 자탄을 쏟아내는 기능까지 갖춘 것으로 알 려졌다고 하였다. 이는 국군이 보유한 미국의 에이태킴스(ATACMS) 지대지 미사일과 같은 데, 축구장보다 훨씬 큰 면적을 완전 초토화한 다고 할려진 에이태킴스 미사일은 내부에 약 500개의 자탄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미사일 내에 열감지 센서를 부착한 13개의 BAT 자탄이 들어 있어 이들이 적군의 전차나 장갑차를 타격한다고 한다. 이처럼 자탄의 기능을 갖추게 되면 일정면적 을 초토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시 피해가 매 우 클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이 자랑하는 미사 일을 북한도 개발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같은 보도내용이다.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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