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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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격변하는 세계질서와 2015년 5월의 러시아 미국이 이란과 핵 협상에 나선 이유 추락하는 미국경제의 위상

월간

본 2015.05

http://mag-mkyd21.tistory.com


월간

특집기획

발행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발행일 2015년 5월 1일 (15호) 블로그 http://mag-mkyd21.tistory.com 문의 mag.mkyd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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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특집] 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시사칼럼

■1. 격변하는 세계질서와 2015년 5월의 러시아 ■2. 미국이 이란과 핵 협상에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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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생각하는 시간

동아시아 역사칼럼

■맥아더 포고령과 미군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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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본질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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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수난을 표현한 바흐 그리고 세월호

이달의 문화예술 공연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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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미국경제의 위상

■‘불안한 외출’ 서울인권영화제 상영 58 ■가극단미래 낭독극전 <뮤지컬 신령 59 초> & <연극 훈장>

이달의 역사

우리가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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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불꽃처럼 살자!” 강정호 부산 장년모임 ‘불꽃’(가) 준비주체

풀어쓰는 경제이슈

후원회원을 찾아서

■러시아는 왜 ‘1945년 5월’을 전승기념일이라고 할까?

■최저임금 오르면 일자리 줄어든다? 30 세상의 모든 무기

■전쟁훈련과 국군 보병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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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언론·재벌유착을 단죄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 김정민 후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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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었지만, 우리 마음 속 시계는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서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왜 박근혜 정권은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참사와 관 련된 숱한 의혹들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잠을 자야 합니다. 오히려 정권 은 공권력을 동원해 유가족들을, 시민들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일대에 세워진 차벽은 ‘소통’이 란 모르는 현 정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 마음속 시계가 멈춰있는데 반해 국제질서는 요동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쿠바와 국교정상화를 한데 이 어 이란과도 핵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중국 주도의 AIIB에는 영국을 비롯해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미 국과 상의도 없이 가입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본] 5월호 기획특집에서는 격변하는 세계질서에 대해 다뤄봤습니다. 어떤 세계질서의 흐름 속에서 5월 9 일 러시아는 전승기념일에 북한을 포함한 세계 정상들을 초청하게 되었는지,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상에 나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기존의 미국 중심 국제금융 질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봤 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쇠퇴와 1극 체제의 붕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미국만을 바라봐서는 복잡한 국제질서에 적응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 국내에서의 미군 만행과 패권적 모습을 이야기하면 “그 래도 미국에 붙어있어야 안보든 경제든 얻을 수 있는 게 많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드배치 등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면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와 갈등의 골이 깊어져 안보가 불안해 지게 생겼습 니다. AIIB가입 문제에서도 보여 지듯이,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미국주도의 경제질서에만 머 물러 있으려 한다면 경제적 손실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미국에 기대는 의존심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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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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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세계질서와 2015년 5월의 러시아 4월 말까지 키리졸브·독수리 한미연합전쟁연습이 진행되었다. 한미 군사당국은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군사훈련이라 주장하고 북한은 북침훈련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3월 9일에 는 미군 3천 명이 동원되는 애틀랜틱 리졸브 나토 합동군사훈련이 3개월 일정으로 시작됐다. 미국 은 러시아 침공에 대비하는 훈련이라며 발트해 연안 3개국에 750대의 전차를 투입했다. 이 전차 들은 훈련 후에도 유럽에 배치된다. 러시아는 유럽연합이 도발을 선동한다며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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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흥미로운 점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애틀랜틱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유럽연합이 러시

리졸브 시작 직전에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것

아에 대한 제재와 압박이 거센 가운데 러시아

이다. 사망설, 쿠데타설, 와병설 등 다양한 의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

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11일 만에 재등장한 푸

고 있다. 구 소련 시절 강대국 위상을 되찾으려

틴 대통령은 곧바로 러시아 북해함대에게 전면

는 러시아와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미국 사이

경계태세 돌입과 불시 전투태세 점검 훈련 실

의 불꽃 튀는 대결은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한

시를 지시했다. 애틀랜틱 리졸브에 맞대응하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규모 훈련이 시작되면서 유럽에는 갑자기 긴 장이 고조되었다. 이 와중에 미국의 핵추진 항

제재와 압박에 맞서 군사력 시위를 하는 러시

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 호가 러시아 핵잠

아를 보면 자연스레 북한이 떠오른다. 사실 대

수함에 쫓겨 영국 해안으로 긴급 대피해 해변

놓고 미국을 향해 무력시위를 하는 나라를 꼽

가에 있던 영국인들이 깜짝 놀랐다는 보도까

으라면 단연 북한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할 때

지 나왔다.

나 미사일 발사훈련을 할 때나 항상 미국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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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과 유럽연합의 경제재제로 러시아가 어려움에

이 이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처하자 중국은 곧바로 3년 간 1500억 위안 규

점이다. 미국에게 쓸 만한 대북 대응카드가 없

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주었다. 통화 스와

음은 미국의 전문가들도 인정할 정도다.

프란 러시아가 루블화를 중국에 주면 중국이 위안화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이다.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을 압박 한다면 중국은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을 압박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 9일 전승기념식에

고 있다. 미국의 적극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

북한의 김정은 제1위원장을 포함한 각계 정상

국의 동맹국인 영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들을 초청했다. 특히 러시아 전승기념식에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반대하는 국가들이 대

입했다. AIIB는 중국이 달러를 기축통화 자리에

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오바마 대

서 밀어내기 위해 새로 설립한 은행이다.

통령이 이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통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6


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9월 3일에는 중국이 항일승전기념행사를 하는

괴를 이야기하고 있다.

데 역시 김정은 제1위원장을 초청했다. 올해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70주년이 되는 해라 전

이제는 우리도 미국에 기대는 의존심을 버리

쟁에 승리했던 나라들이 관련 행사를 하는 것

고 새로운 길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일

이다.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던 연합국

각에서는 급부상하는 중국에 의존하자는 주장

국가들이 전후 냉전으로 갈라져 반세기를 미

을 하고 있다. 뼛속까지 사대주의가 침투한 결

국-소련을 중심으로 2극 체제를 유지했다. 그

과다. 남북이 힘을 모으면 다극화된 국제 사회

러다 90년대 들어 동구권 붕괴와 함께 미국 중

에서 우리도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음

심의 1극 체제가 된지도 벌써 4반세기가 흘렀

을 왜 모르는 걸까?■

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쇠퇴와 1극 체제의 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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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에 나선 이유 4월 2일 이란 핵협상과 관련한 잠정합의안이 도출되었습니다. 이란의 핵개발을 일정 수준으 로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미국내 공화당 세 력을 비롯한 친이스라엘 세력이 핵협상 타결을 반대하고 있어, 6월 30일 최종 협정 서명이 가능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36년째 지속되어온 미국 과 이란의 적대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중동질서의 큰 변화 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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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그런데 이란은 미국에게 있어 ‘악의 축’ 국가

당장 IS격퇴를 위해 미국은 이란의 협력이 필

중 하나였습니다. 애시 당초 미국의 목표는 이

요합니다. IS는 이라크 및 시리아 영토의 4분

라크 후세인 정권뿐만 아니라 이란 정권도 무

의 1 이상을 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크게 확장

너뜨려 중동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공고히 하

했습니다. 지난 해 여름 1만5천에 불과했던 IS

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미

병력은 현재 1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IS는 수

국은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지만 이라크를 완

니파 이슬람의 종주국이자, 중동에서 미국의

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이슬람국가(IS)의

제1우방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등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란과는

넘보고 있습니다. IS는 사우디왕가가 부패하고

정권 전복이 아니라 핵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종속돼 있다며, 2014년 11월 사우디 왕가 타도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란의 힘이 절실한 미국 이라크 전의 수렁에서 겨우 발을 뺀 미국은 지 왜 미국은 ‘악의 축’ 국가와 핵 협상에 나선 것

상군 투입을 극히 꺼리고, 두려워하고 있습니

일까요? 오바마 정부의 정책변화 때문에? 물

다. 문제는 IS를 막을 지상군 병력을 보유한 국

론 오바마 대통령이 이전 부시 정부와는 다른

가가 이란뿐이라는데 있습니다. 이라크 정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왜

군의 군사력은 형편없는 실정입니다. 작년 8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와 다른 정책을 취할

월 이후 미군은 IS에 2,500 차례의 공습을 했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고 하는데, IS 영토는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 습니다. 시리아 코바니와 이라크 티크리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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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환한 게 고작인데, 이마저도 미군의 공습과 쿠르드족 민병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10~12만명)가 함께 힘을 합쳤기 때 문에 가능했습니다. 티크리트 탈환 작전에 투 입된 병력 3만명 중 3분의2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였다고 합니다(프레시안, 2015.03.12). 이라크 주재 기업들을 위해 정 보 자문을 해 주는 랜던 슈로더는 “IS에 대항 해 쿠르드군, 이라크군, 시아파 민병대를 하나로 결집하는 유일한 힘은 이란”이라며

▲자료 : 연합뉴스

“미국이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이 현실” 이라고 지적했습니다(연합뉴스, 2015.03.06).

이 제기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입장에서 는 중동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처리하고 넘어

시리아 내전이나 예멘 내전 문제를 해결하기

가야할 나라인 것이죠. 헌데 시리아의 알 아사

위해서도 미국은 이란의 힘이 필요합니다. 시

드 정권은 시아파 정권으로 시아파의 종주국

리아에서는 내전이 5년째 접어들었고, AP통

인 이란이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신에 따르면 사망자는 22만명을 넘었고 국민 2300만명 가운데 1100만명 이상이 난민 신

예멘의 경우 현재 시아파로 분류되는 후티 반

세가 됐다고 합니다. 시리아는 핵시설을 건설

군이 사실상 주요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

입니다. 예멘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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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사우디 입장에서

니파 종주국으로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는 매우 민감한 지역입니다. 예멘에 대해서도

팽창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이란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이 란과의 핵협상, IS격퇴를 위한 미국과 이란과

이란의 도움 없이 미국 단독으로 중동의 온

의 협력 등은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

갖 문제들을 해결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 되

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었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 핵협상에 적극

민병대가 주축이 되어 IS를 격퇴한다면 이라

나선 것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

크에서의 이란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며, 이

는 이란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

란이 경제제재에서 벗어나게 되면 중동에서의

문입니다.

영향력이 더 커질 것입니다. 현재 시리아, 레바 논, 팔레스타인 등에서는 친이란 세력이 권력

이탈하는 전통의 우방국들

을 잡았거나 주요 정치세력으로 활동하고 있 고, 예멘에서는 친이란 성향의 후티 반군이 주

IS세력의 성장 등 미국은 이슬람 무장세력에

요지역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 는 미국이 무장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해 이란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이 이란과 평화적 관계를

의 힘을 빌리면 빌릴수록 전통의 우방국들이

모색하는 것이 사우디 입장에서는 못마땅할 수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밖에 없죠. 이러한 불만은 사우디 주도로 10개 국의 수니파 국가들이 예멘 폭격에 나선 것에서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사우디는 수

표출되고 있습니다. 3월 26일 사우디는 걸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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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기구(GCC) 등 10개 수니파 국가와 함께 예멘

서 주목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프레시

의 수도 사나의 시아파 후티 반군 근거지 등에

안, 2015.03.30). 나아가 사우디는 자체 핵무기

공습을 시작했습니다. 3월 28일에는 이집트 등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아랍연맹 22개국 정상회담을 열어 4만명 규모 의 아랍연합군을 창설하기로 했습니다. 더 이

이란과는 원수관계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 역

상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시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란 핵협상 타

불만을 강력히 표출한 것이죠. <뉴욕타임스>는

결 직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협정

이런 결정에 대해 “아랍국가들이 미국의 영

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맹

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

비난했습니다.

▼자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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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미국 중동 패권의 붕괴

사우디로부터 값싼 석유를 거의 무한정 공급 받아 왔습니다. 특히 1973년 1차 석유위기 이

결국 미국은 사우디, 이란 등 대립관계에 있

후 사우디는 모든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

는 세력들을 제압하거나 아우를 수 없는 상황

한다는 밀약을 미국과 맺음으로써 달러 패권

입니다.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제압하고 핵 패

체제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란과의 협력이 필요

또한 석유 수출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한데, 그럴수록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있는 사우디는 막대한 미국 무기를 구매해 주

동맹세력들은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투쟁할 것입니다.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은 거 의 붕괴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무장세력, 사우

이스라엘의 자본이 미국에 상당히 많이 진출

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세력, 이란을 중심으

해 있고,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적

로 한 시아파 세력 어느 세력 하나 제대로 통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 국가라는 것은

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중동에서의 패권 상실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이들 나라와 동맹관계가 흔들린다는 것은 미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입

국 패권을 유지하는 큰 축이 흔들린다는 것을

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미국 입장에서 상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현재 이란과 협력하지

당히 중요한 동맹국들입니다.

않고서는 복잡하게 얽힌 중동 문제를 풀어가 기도 힘듭니다. 미국은 중동의 수렁에서 빠져

사우디는 중동 지역 최초의 미 동맹국이었습

나오고 있지 못합니다. ▒

니다. 미국은 사우디에 안보를 제공하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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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미국경제의 위상 미국 경제의 국제적 위상이 날로 추락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로 촉발된 경제 패권의 균열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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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유혹하는 중국, 이탈하는 동맹국들

AIIB는 중국이 주도로 설립하는 국제 금융기관 으로, 아시아 각국에 공항, 도로, 발전소, 상수

미국의 경제 패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

도 등 각종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시시때때로 나타나곤

하고 있다. IMF, 세계은행 등 현재 존재하는 국

했다. G20, 즉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서 미국

제금융기관들은 대부분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정상들로부터 하

는 점을 볼 때, 중국이 주도하는 AIIB는 설립 그

루 빨리 경제위기를 해소하라는 핀잔을 들어야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다.

했고, 정부 재정난으로 백악관이 일시 폐쇄되기 도 했다. 심지어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국경지

중국은 세계2위의 경제규모를 앞세워 국제금

대의 고속도로 교량이 보수를 하지 못해 붕괴되

융기구를 설립하면서 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는 사건도 있었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미국

50조원이 넘는 자본금을 출자하며 세계 여러

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사건

나라를 유혹했다. 사실 아시아 지역이 가진 경

들이 연이어 벌어진 것이다.

제적 매력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전 세 계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유달

헌데 미국 경제의 위상이 추락하는 양상은 최근

리 아시아 지역만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게

들어 한층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우

다가 자원도 풍부하고 인구도 많아서 향후 발

방국들이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순응

전 전망도 매우 밝다. 이런 아시아 지역에 막대

하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AIIB,

한 자금을 보유한 중국이 나서서 광범위한 산

즉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업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국제금융기관을 설립

Investment Bank)의 설립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

한다니, 전 세계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련의 사건들이었다.

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행 15


특집기획

보가 달가울 리 없다.

한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관계자는 “G7이 AIIB 관련 사안을 논의하는 도중 영국이 아무런

문제는 중국의 공개적인 구애에 미국의 최우방

협의도 없이 참여를 결정했다”며 “영국이

국인 영국이 화답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3월 13

중국의 요구를 계속 수용하는 것을 경계한

일,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다”고 비난했다.

“영국과 아시아가 함께 투자하고 성장하 기 위한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고립된 미국

영국의 AIIB 참가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영국이 명분 대신에 실리를 택한 것이다. 미국은 G7 회

영국이 AIIB 참여를 선언하자, 그 동안 미국이

원국이자, 굳게 믿었던 최우방 영국이 참여를

막고 있던 둑이 터져버렸다. 프랑스, 독일, 이탈

선언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

리아 등 유럽 주요 나라들이 모두 가입을 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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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선언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주요한 미국 맹방

중국을 견제해야 했는데도 아예 AIIB 출범 자체

인 호주마저 AIIB 참여를 선언하고 말았다. 한국

를 방해하려다 주도권만 잃게 됐다는 것이다.

도 미국의 눈치를 보다 AIIB 가입행 막차를 탔 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맹국이 AIIB에 가

사실 미국이 국제금융기구를 대하는 태도는 매

입해버린 것이다.

우 정치적이고 예민하다. 자신의 지배질서를 유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오히려 국제 경제무대

지하기 위해 국제금융기구가 매우 중요하게 사

에서 고립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이다. 미국은

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이콥 루 재무

자신이 주도해 온 IMF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

장관은 AIIB에 대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려고 무진장 애를 써왔다. 2008년 경제위기로

대출이 투자 대상국의 환경 파괴나 정권의 정당

IMF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개혁 요구가 빗발쳤

성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이뤄질 수 있다”고

지만, 미국은 그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비판해왔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미국

데 중국이 AIIB를 들고 나오자 상황이 일거에 역

은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를 이용해 자

전되어버린 것이다.

신에게 적대적인 나라, 이를테면 과거 소련이나 중국, 북한,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나 이란 등 반

이와 관련해 테드 트루먼 전 미 재무부 차관은

미 성향의 나라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기도 하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국제무대에서 미국

고, 미국이 추구하는 국제금융질서와 규칙을 강

의 역할이 줄고 있다”며 “만약 AIIB에 영향

제하는 도구로 사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바깥이 아니라 안으

데 중국이 주도하는 AIIB가 미국과 일본을 제외

로 들어갔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한 주요 나라를 포함하여 57개의 광범위한 나

이 당면한 한계를 인정하고 AIIB에 직접 가입해

라와 더불어 출범하게 됨으로써, 그 동안 미국 17


특집기획

▲출처 : http://www.ramonkenan.com/2014/rcep-versus-tpp/

이 누려왔던 각종 특권들이 유지되기 힘든 여건

경제동반자협정(EPA)이다.

에 처하게 된 것이다. AIIB 설립과 더불어 RCEP까지 가시화되자 미

무역질서 주도권마저 흔들리나

국은 매우 다급한 처지에 몰렸다. 오바마 대통 령은 2월 21일(현지 시간) 주례 라디오 연설에

게다가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 포

서 “중국이 21세기 무역질서를 새로 쓰려

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무역질서는

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노동자와 기업

2015년 연내 타결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 중에

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중국이 아니라 미

있다. RCEP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국이 21세기 무역질서를 새로 써나가야 한

총 10개 국과 일본, 중국, 한국, 인도, 호주, 뉴질

다”고 말한 바 있다. 매우 솔직한 고백이다. 미

랜드까지 총 16개 국이 구상하는 아시아 광역

국이 경제에서 패권적인 지위를 잃게 되면, 그

18


5월, 격변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다

동안 누려 왔던 거대한 경제적 이익을 점차 포

비가 장기적으로 줄어들 것인데, 이런 상

기해야 한다. 미국의 독점자본이 손해를 보는

황에서 해외로부터 농산물 수입을 크게 늘

것은 물론이다.

려선 안되며 이런 일본내 추세를 감안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즉, 일본이 미국의 농산물

이 때문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

시장 개방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음을 의

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하며 중국에 무역 패권

미한다.

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태세다. TPP는 미국, 일 본 등 12개 아시아태평양 지역 나라들을 대상

만약 RCEP이 TPP보다 먼저 타결될 경우, 미국

으로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

이 입을 상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제금

정(FTA)으로 현재 미국이 중국에 대항하는 중요

융질서에서 AIIB의 설립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

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은 미국이 무역질서에 대한 주도권도 중국에게 내주게 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TPP가 미국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체결 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이처럼, 미국 경제가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일본과의 협상

경제 패권의 위상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향

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농산물

후 미국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되는 2015년이

시장 개방을 원하는 반면, 일본은 미국의 자동

다. ▒

차 시장 개방을 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야 시 요시마사 일본 농림수산상은 “일본 인구가 점차 고령화되고 줄어들고 있다”며 “쌀 소

19


이달의 역사

http://mag-mkyd21.tistory.com/167

러시아는 왜 ‘1945년 5월’을

전승기념일이라고 할까?

오는 5월 9일 러시아에서는 큰 행사가 열립니

불” 앞에 헌화하고 참전 노병들에게 꽃을 선물

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행

하면서 목숨을 잃은 용사들을 기리는 시간을

사입니다.

가집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집니다.

1945년 5월 9일은 독일이 항복한 날입니다. 독 일은 연합국에 5월 8일에 항복을 했지만 모스

왜 러시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이 항복을

크바 시간으로는 5월 9일이었기 때문에 서유

선언한 8월이 아니라 독일의 항복일인 5월 9일

럽과 미국에서는 5월 8일을 승리의 날로 기념

을 전승기념일로 만들어 기념하고 있을까요?

하고, 소련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5월 9일을 승리의 날로 기념합니다. 이 날이 되면 러시아 사람들은 “꺼지지 않는 20

독소전쟁의 배경


이달의 역사

◀스탈린과 히틀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전쟁 전부

때문에 독일은 소련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이었

터 게르만족의 생존을 위해 동쪽의 넓은 영토

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소련과 서방 연합국의

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히틀러는 동유럽

양면공격을 우려했고 임시적인 조치로 소련과

에 살고 있는 슬라브인들을 열등인종으로 보

불가침조약을 추진했습니다.

고 이들을 추방 또는 노예화 하여 광대한 식민 지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련은 히틀러가 자신들에게 가진 생각을 알

또한 히틀러는 사회주의에 대해 극도의 적개심

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려고

을 가지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의 실패가 사

했습니다. 소련은 1930년대 중반부터 영국, 프

회주의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

랑스 등과 군사협정을 맺으려고 하였으나 성 21


이달의 역사

사되지 못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사회

서부전선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1940년 7

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소련

월, 독일은 전격전을 통해 프랑스를 한 달여 만

은 서방 연합국과 군사협정을 맺기 어려운 조

에 항복시킨 후 영국을 공습했습니다. 그러나

건에서 차선책으로 독일과 소련 사이에 완충지

독일의 영국 본토 점령을 위한 항공전은 실패

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 수단이 불가침조

로 돌아갔고, 히틀러는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약이었습니다.

서는 더 강력한 해군이나 공군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400만의 상비군을 보유하

이렇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예상을

고, 유사시 천만 이상 동원할 수 있는 소련을 앞

뒤엎고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에 두고 육군을 줄여 공군이나 해군을 만들기

러나 독일은 소련을 없앨 기회를 노리고 있었

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고, 독일을 믿을 수 없었던 소련은 시간을 벌 어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려고 했습니다. 독일

히틀러는 영국을 점령하기 위해서라도 소련을

의 침공에 대비하여 스탈린 라인을 만들기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히틀러는

했습니다.

영국 혼자의 힘으로는 서부전선이 돌파당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먼저 소련을 굴복시키겠다고

이런 배경을 가진 소련과 독일의 충돌은 어찌

마음을 먹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육군이 강했

보면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던 프랑스와 폴란드를 상대로 한 달여 만에 항 복을 받아낸 것처럼, 기갑부대를 이용하면 소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련 역시 단 시간 안에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침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초기, 독일은

생각했습니다.

22


이달의 역사

의 폭격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국 서부전선에서 미국이 영국을 도와주고 있다고

기업들은 폭격을 피해가며 독일에게 군수물자

는 했지만 독일도 미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

를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습니다. 포드, 제네럴모터스(GM), IBM, ITT(국 제전신전화회사), 스탠다드오일 등은 독일군의

제2차 세계대전을 좌우한 전쟁

든든한 우방이었습니다. 독일 오펠에 있는 GM 공장은 나치로부터 모범적인 전쟁기업이라는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은 바르바로사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미국 회사의

작전명으로 소련을 침공합니다. 전체 독일군

나치 부역행위를 눈감았습니다.(지크 파월 <

460만 명 중 370만 명, 무려 80%의 병력이 소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어찌 보면 독일과 미

련과의 전쟁인 동부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국이 밀월관계에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에 서 미국의 참전 이라는 변수는 독일로서는 당

전쟁초기 독일군은 막강한 화력과 기동력을 이

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을 겁니다.

용한 전격전으로 공세를 주도했습니다. 독일군 은 발트3국, 서부 우크라이나, 벨로루스 등을

실제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참전하여 독일을 공

빠르게 점령했고 여기에서 밀린 소련군은 9월

습할 때도 미국은 자국의 기업이 있는 곳은 피

까지 200만 명이나 전사했습니다.

하거나 아니면 미리 정보를 주어 기업 설비를 피신하게 한 뒤 폭격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쾰

독일군은 여세를 몰아 모스크바를 함락하기 위

른은 지속적인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해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독일군은 좌

됐지만 쾰른 외곽에 있는 포드 자회사만은 거 23


이달의 역사

절을 맛보게 됩니다. 독일군의 전술적인 실수 로 소련군이 모스크바에서 정비할 수 있는 시

그러나 코카서스 지방을 차지하기 위한 독일군

간이 주어졌고 비가 내리면서 소련의 열악한

의 대공세도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특히 스

도로 사정으로 인해 길이 모두 진흙탕으로 변

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초반 우세를 점

해 독일군의 진격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습니다.

했지만, 주민들의 극렬한 저항과 스탈린그라드

그리고 겨울이 시작되면서 방한 장비가 마땅치

를 지키기 위해 달려든 소련군의 엄청난 물량

않았던 독일군이 극심한 추위로 어려움을 겪었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물러나고 말았습

습니다. 여기에 소련이 시베리아에 있던 병력

니다.

을 독일군과의 전선에 보내고 전력을 추스르면 서 소련군의 저항도 강해졌습니다. 결국 독일

초기 전쟁에서 패퇴했던 소련이 막대한 물량을

군은 모스크바까지 진격을 했으나 후퇴할 수밖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 전쟁물자를 안정

에 없었습니다.

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우랄산맥 근처로 이동시켰기 때문입니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빠른 시간 내에 소

다. 이동이 완료되자 물자를 본격적으로 생산

련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고 1942년이 되자

했는데, 독소전에서 파괴된 소련의 전차가 2만

독일은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석유자원을 확

대인데 새로 생산한 소련 전차가 2만5천대일

보하기 위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바쿠 유

정도로 자원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전이 있는 코카서스 지역과 요충지인 스탈린 그라드(지금의 볼고그라드)를 점령하려고 했습 니다. 24

1943년이 되자 이제 전장의 상황이 달라지기


이달의 역사

▲독소전쟁 당시 소련의 군수공장

시작했습니다. 소련군은 우랄산맥 등 후방에서

대, 항공기 약 4,500대라는 가공할 전력이 정

엄청난 전쟁물자를 생산했지만 독일군은 소련

면충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독일군

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독일의 점령

에 비해 병력은 4배, 전차는 7배의 손실을 입

지 정책도 실패하여 곳곳에서 저항이 벌어져

었으나 끝내 독일군을 막아내고 오히려 반격을

독일군은 점점 불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해 독일군을 서쪽으로 밀어냅니다.

1943년의 가장 중요한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쿠

전세를 뒤집기 위한 독일군의 마지막 진격이라

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은 소련을 향해 진격합

고도 할 수 있는 이 전투는 동부전선의 운명을

니다. 1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단일 전선에

바꾸어 놓은 전투였습니다. 독일군은 여기에서

서 양 군 합계 병력 약 200만, 전차 약 6,000

입은 손실을 만회하지 못하고 소련군에게 계속

25


이달의 역사

▼쿠르스크 전투의 대전차들

밀리게 됩니다.

사실 1942년 독소 전쟁이 한창일 때 전장상

쿠르스크 전투 승리 이후 물량을 회복한 소련

황이 불리했던 소련은 미국과 영국 등에게 서

군은 1943년 말부터 독일을 밀어붙였습니다.

부전선에서 제2전선을 만들어 독일을 향해 양

그리고 1944년에는 중부전선에 병력을 집중

면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여 벨라루스 및 폴란드 국경까지 진격해 나

영국과 미국은 제2전선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섰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독일이 소련을 공격할 때 독일 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독소전쟁이 시작된

환상에서 깨어나라

1941년 6월 22일 직후인 1941년 7월 독일의 석유 관련 제품 수입 물량 중 미국산의 비중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부전선이 다급해졌습니

44퍼센트였으나 불과 두 달 후인 9월에는 94

다.

퍼센트로 뛰어올랐습니다. 만약 미국이 독일에 게 석유를 공급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모스크바

26


이달의 역사

까지 진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국은 독일

규모의 상륙작전이 감행됩니다. 바로 노르망디

의 붕괴보다 사회주의 소련의 붕괴를 더 바랐

상륙작전입니다.

던 셈입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하면 흔히 노르망디 상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부전선을 맡은 연합군은

륙작전을 떠올립니다. 1944년 6월 100만 명이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합군이

넘는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실시한 대

이탈리아에 상륙해 독일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규모 상륙작전을 멋지게 성공시켰고, 이 전투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가기 위해서는 알프스 산

를 계기로 독일군이 궁지에 몰리면서 결국 패

맥을 넘어야 하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

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

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국

는 제2차 세계대전의 모습입니다.

은 1942년 프랑스 디예프에 상륙작전을 시도 했다가 독일군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 노르

이 작전도 적극적인 상륙작전이 아니라 탐색전

망디 상륙작전은 사실은 실패한 작전이었습니

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다.

그러나 1944년, 독일의 패망이 눈앞에 다가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입안될 때 중요한 목표

자 미국과 영국 등은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

는 서부전선에서 명확하게 제2전선을 형성하

었습니다. 이제 서부전선을 새롭게 만들지 못

여 동부전선에 있는 독일군을 서부전선으로 끌

하면 독일을 “단독으로 꺾은” 소련과 마주해

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 노르망

야 할 상황에 몰렸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최대

디 상륙작전은 프랑스 내륙으로 연합국의 병력 27


이달의 역사

을 진공시키고 보급물자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

게 못해 상륙했던 연합군은 보급난까지 겪어

할 수 있는 항구를 확보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야 했습니다.

삼았습니다. 만약 독일군에게 무조건 히틀러의 명령을 따라 그러나 연합국이 이 목표를 달성한 것은 무려

야만 하는 제약이 없고 약간의 자율성이 주어

2달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주요

지는 상황이었다면 프랑스에 상륙한 연합군은

항구 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보급을 원활하

궤멸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서부전선의

▼전쟁초기 독일군에게 파괴된 소련의 T-26 전차와 전사자

28


이달의 역사

연합군은 히틀러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살아났

었기 때문에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독일 패망의 결정적인 요

무려 2,9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

인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주력부대는 1941

인과 민간인이 희생된 소련의 분투가 없었다

년 독소전쟁이 시작된 이후 계속 동부전선에

면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소련군이 막대한 희생을 딛

도 있습니다. 만약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고 독일의 주력부대를 꺾은 것이 독일 패망의

패배했다면 연합국이 파시스트 세력을 물리치

주요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모릅니다. 만 약 그랬다면 식민지 조선의 운명도 어떻게 되

어찌되었건 1944년 중반부터 독일은 이제 동

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만큼 2차 세계대전에

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되

서 독소전쟁은 중요했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

었습니다.

끈 소련의 역할은 컸습니다.

소련은 1945년 1월 폴란드를 점령하고 독일

러시아가 독일이 항복한 날인 5월 9일을 승전

로 들어갑니다. 서부전선의 연합군도 독일 영

기념일로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이유는 다른데

토 내로 들어갔습니다. 독일은 최후의 항전을

있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판가

각오하며 베를린 공방전으로 버텨보았지만 결

름했던 독소전쟁을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승

국 1945년 5월 9일에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리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파쇼화

하면서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쟁을

를 막고, 제2차 세계대전의 결정적인 승리를

일으켰던 국가 중에 일본이 남았지만 이탈리아

일구었는데 어찌 기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

와 독일이 패망하고 일본 하나만 남은 상황이

니까? ▒

29


풀어쓰는 경제이슈

http://mag-mkyd21.tistory.com/168

최저임금 오르면 일자리 줄어든다? ‘걸스데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인 혜리는 최근 ‘맑스돌(마르크스+아이돌)’ 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한 광고에 출연해 최저임금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이마저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 다고 마르크스까지 거론하는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 그만큼 아르바이트생의 열악한 현실 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0


풀어쓰는 경제이슈

더 이상 최저임금은 몇 몇 노동자들만의 문제

합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요?

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일을 해도 가난해지는 ‘워킹푸어’라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힘든 최저임금

말이 등장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문제는 모든 국민들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등록금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 수준은 최소한의 인간

을 벌어야 하는 대학생들, 노후생활을 위해 청

다운 생활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소노동, 경비노동자을 하는 어르신들에게 최

2015년 현재 최저임금은 시급 5,580원(주 40

저임금은 절실한 문제입니다.

시간 기준 월 환산 1,166,220원)인데, 2013년 미혼단신노동자가 실제로 지출한 내역을 산출

매년 5월이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

한 생계비(실태생계비)인 1,506,179원에도 못

영계의 논쟁으로 시끄럽습니다. 노동계는 최

미칩니다. 최저임금은 1인 가구 가계지출도 충

저임금이 노동자의 안정적인 생계유지를 위해

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 가계지출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비 최저임금 비중은 2006년∼2014년까지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사항으로

평균 60.4%, 2014년 현재 65.4%에 불과합니

내 걸었습니다. 반면 경영계는 최저임금이 인

다(표 참조). 최저임금에 의존하는 대다수 노

상되면 열악한 중소기업들이 힘들어지고, 고

동자들이 본인뿐만 아니라 전체 가족의 생계

용을 줄여 실업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이야기

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최저 임 금

연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가계지출

1,257,884

1,371,930

1,485,423

1,428,359

1,443,669

1,535,543

1,569,151

1,664,787

최저임금

727,320

787,930

836,000

858,990

902,880

957,220

1,015,740

1,088,890

비중

57.8%

57.4%

56.3%

60.1%

62.5%

62.3%

64.7%

65.4%

<표> 1인가구 가계지출과 최저임금 비교 자료 :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 재인용 : 2015 민주노총 최저임금요구안 31


풀어쓰는 경제이슈

으로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활을 기대하기란

국제적으로도 한국 최저임금 수준은 열악한

불가능합니다.

편입니다. OECD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2013 년 기준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전일제 노동 자 임금의 평균값 대비 35%에 불과한 것으로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도 열악한데, 2014

나타났습니다. 비교 가능한 29개 OECD회원

년 기준, 법정 최저임금(월 환산액 1,088,890

국 중 20위입니다.

원)은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정액급여 대비 41.1%에 불과합니다.

나아가 각 국가마다 화폐의 가치와 물가수준

▲임금 평균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2013년 기준) / 자료 : 2015 민주노총 최저임금요구안 32


풀어쓰는 경제이슈

▼ 출처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 다를 것이므로 이를 감안한 한국의 시간당 실질최저임금은 5.3달러로, 비교 가능한 25개 OECD회원국 중 14위를 기록 했습니다. 한국 보다 실질임금이 낮은 국가는 그리스, 터키, 칠레, 멕시코 등입니다(2015 민주노총 최저임 금요구안). 미국, 일본이 그 나라의 노동자 평 균 임금에 비해 최저임금이 얼마인지의 비율 은 우리나라보다 낮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노 동자들의 구매력 수준은 더 높게 나타납니다. 얼마 전에는 2014년도 국내 대기업 임원 보수 자료가 공개 되었습니다. 지난해 가장 높은 연

정도 차이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봉을 받은 사람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으

만큼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로, 현대차로부터 57억2000만원, 현대모비스 로부터 42억9000만원, 현대제철로부터 115

최저임금인상은 일자리를 줄인다?

억6000만원 등 모두 215억7000만원을 받았 습니다. 1년 새 70억원 이상이 늘었습니다. 정

여러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

회장의 작년 연봉은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보면 최저임금 수준은 상당히 열악한 것 같습

의 1540년치 연봉에 해당합니다. 얼마나 정몽

니다. 그런데 경영계에서는 줄곧 최저임금 인

구 회장이 중요한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지는

상을 반대해 왔습니다. 그것도 최저임금 인상

모르겠지만, 제대로 쉴 공간도 없이 뼈 빠지게

이 오히려 노동자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로 말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인 33


풀어쓰는 경제이슈

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 그림에서처럼 노동공급 곡선이 꼭 우 상향하는(즉 임금이 오르면 사람들이 일자리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동공급(노동자들

를 더 구하려하고 임금이 떨어지면 일자리를

이 취직하려 하는 것)곡선과 노동수요(기업들

잘 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임

이 노동자를 원하는 것)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금이 줄어들수록 노동공급이 늘어나는 경우도

균형임금(시장임금)이 결정되어야 하는데, 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프레시안 2015.03.12,

저임금이 균형임금 이상의 수준에서 설정되면

‘최저임금, 어떻게 정해야 할까?’).

노동수요에 비해 노동공급이 많아져서 실업이 발생한다는 것이 경영계의 논리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똑같은 일을 하는데, 월300 만원을 벌다가 월200만원을 벌게 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경제학 교과서처럼 2차원 평면

해 봅시다. 아이도 키우고 대출금도 갚아야하

상의 세계가 아닙니다. 위의 그래프는 현실과

는 이 가정은 매월 270만원을 써야 한다면 어

맞지 않는 여러 가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떻게 해야 할까요? 씀씀이를 줄이는 방법도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몇 몇 기업들이 독점적

있겠지만 그것도 어렵다면, 아내도 일을 해야

인 지위를 누립니다. 이들은 임금수준을 결정

겠지요. 그러면 전체 노동시장에서는 일자리

하는데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죠. 하지만 위의

를 구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게 됩니다. 등록금

그림은 기업들이 무수히 많아서 어떤 기업도

을 벌어야 하는 대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임금수준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가정합니다.

해진 등록금 액수를 채워야 하는데, 임금이 줄

그래서 시장이 알아서 적정 임금을 정한다는

어든다면 이전에 알바를 1개 하던 것을 이제

것이지요.

는 2개해야 합니다. 이 역시 전체 노동시장에 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을 늘리는 결과를

34


풀어쓰는 경제이슈

낳겠죠. 임금이 떨어질수록 일자리를 구해야

들에게 임금 인상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이러한 경

오바마 대통령이나 아베 총리가 진보적이라

우 일자리는 일정한데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

서, 노동자 인권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람(이전에는 일자리가 필요 없다가)을 증가시

경기침체의 돌파구를 임금인상에서 찾아보겠

켜서 실업률을 더욱 높입니다. 이 경우에는 임

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단순히 최저

금을 올려야 실업이 줄어듭니다. 경영계의 논

임금을 올리는 것이 기업들에게 부담만 주는

리와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를 늘려서 경

경제학 이론 중에는 ‘효율임금 가설’이란 것

제성장과 고용증대를 가져온다는 연구들도 많

도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 수준이

이 있습니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높아지면 노동자들의 육체적 건강이 개선되

이런 주장을 하고 있죠. 최저임금이 오르면 사

고, 사기가 높아져 똑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

람들이 소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겨서 물건

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을 많이 구입하게 되고, 그 결과 기업들도 생 산을 늘려서 경제전체적으로 성장을 촉진한다 는 것입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일자리도 늘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 자영업자의 줄도 산을 부른다?

어나겠지요. 또한 경영계에서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열악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는다고 이야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을

기 합니다.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기업

35


풀어쓰는 경제이슈

2015년 3월 현재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숨

규모는 397만6천명이며, 고용원이 있는 자

통을 틔어줄 여력이 충분합니다. 2013년 가계

영업자는 161만7천명입니다. 전체 자영업자

소득이 2008년에 비해 26.5% 증가하는 동안

559만3천명의 71.1%가 고용원이 없는 자영

기업소득은 80.4%가 증가했습니다. 10대 재

업자입니다. 따라서 최저임금이 모든 자영업

벌 사내유보금은 2009년 288조원에서 2013

자에게 비용 부담의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

년 522조원으로 4년만에 81.2나 늘었습니다.

고 약 30% 정도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20대 재벌의 경우에는 322조원에서 589조원 으로 82.6%나 증가했습니다.

물론 이들 30%중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최저 임금이 오르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이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어

유는 자영업자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려운 이유가 최저임금이 몇 백원(혹은 몇 천

자영업자들이 많은 이유는 제대로 된 일자리

원) 오르는 것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가 부족해 너도 나도 치킨집, 빵집 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적정한

소위 갑의 횡포만 사라져도 최저임금을 올릴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진다

수 있는 여력은 크게 늘어납니다. 프랜차이즈

면, 굳이 자영업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늘

본사가 강제로 인테리어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어날 것입니다. 특히 은퇴 후에도 제대로 된

등의 횡포나 모기업의 하청단가 후려치기 등

일자리가 있다면, 퇴직금을 모두 털어서 치킨

만 사라져도 여유가 생기는 자영업자나 중소

집 차리려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

기업들은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게 되면 자연히 자영업의 여건도 좋아지게 됩 니다. 최저임금이 올라 소비여력이 커지면 사

36


풀어쓰는 경제이슈

자료 : 연합뉴스 화면 캡쳐

람들이 외식 등도 많이 하게 되어 자영업자들

해도 제대로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어려운 사

의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최저임금은 인상되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어야 합니다. ▒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경영계의 논리가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 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합니다. 여 러 경제학의 실증 연구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명확한 답 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이론 보다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이 현실을 더 잘 설 명할 때가 많습니다. 현재 우리 주위에는 일을

37


세상의 모든 무기

http://mag-mkyd21.tistory.com/169

전쟁훈련과 국군 보병의 운명

38


세상의 모든 무기

미국이 수행하는 여러 전투를 보면, 지상군 보

전차부대의 공격을 엄호하고 저지하는 데 있

다는 첨단무기를 동원해 상대의 저항을 분쇄

어서는 보병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보병은 특

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무인항공기 드

히 시가전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

론을 이용한 공격이나 토마호크 미사일을 이

니다. 도심지의 건물 하나하나를 점령해야 하

용한 공격에서 미군 점령군의 모습은 보이지

는 시가전은 각종 은폐물이 많고 우회통로가

않습니다.

많아 보병이 아니고서는 완전한 도심점령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전투가 아니라 전쟁은, 무인항공기와 미사일만 가지고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전

그런 측면에서 지하땅굴을 파고 진행하는 완

쟁에서는 보병이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큽니

강한 진지방어전도 오직 보병이 수행할 수 있

다.

습니다. 보병은 땅굴을 뚫을 수고 있고 땅굴에 은거해 방어전투를 벌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보병은 기계가 아니라 곧 사람입니다. 독자적

공격으로 전환해 돌격할 수도 있습니다.

인 정황판단이 가능하고 훈련성과에 따라 전 술응용도 가능합니다. 보병은 현대 군대의 여

미군은 주로 해군과 공군이 중심이 되는 타격

러 병종 가운데 사실상 공격과 방어가 모두 가

수단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군은 보병이 중

능합니다. 그러니 전투의 주력부대는 언제나

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유사시,

보병입니다. K-9 등의 자주포로는 이미 근접

50만명에 달하는 한국 육군은 보병부대로 미

한 적 병력을 소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

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게 됩니다. 한반도

병부대는 전차부대처럼 돌격명령도 수행할 수

유사시, 한국 보병은 휴전선에서 북한군을 맞

있고 진지방어전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 최대한 북한군 주력을 섬멸한 다음, 미 본 39


세상의 모든 무기

토에서 증원되는 미군병력과 합류해 북한을

이 매우 느려 성급하게 공격대열에 나설 경우,

점령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있습

적 포격에 집중타격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니다.

없습니다.

그러나 보병은, 갈수록 강력해지는 화력에 비

그래서 보병의 운용에서는, 전략전술이 매우

해 방어능력이 형편없어 은폐물에 은거하지

중요합니다. 보병이 진출하려면 적 화력의 주

않는 이상 곧바로 살상당할 위험성이 큽니다.

목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하며 기갑전력이나

또한 장갑차에 합류하지 않고서는 기동속력

항공전력의 엄호 아래 돌격하는 것이 훨씬 유

40


세상의 모든 무기

리합니다.

도 육상의 전투는 6.25전쟁 때에도 그랬듯이 한국군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군은 지

그런 측면에서 현대전투에서 여전히 중요한

원을 하겠죠. 그럼 한국군이 더 위험해집니다.

보병의 운영에서는 특히 지휘관의 역량이 매

6.25 전쟁에서도 같은 유엔군이지만 미군보다

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쟁

한국군의 사망자가 훨씬 더 많았거든요.

에서 보병부대는 어떤 지휘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전 부대가 몰살당할 수도 있고, 사지에서

자 그럼 이제 최근의 전쟁훈련으로 돌아와 봅

살아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시다. 미 공군과 해군은 한국군을 구출하기 위 해 자신들이 희생되는 위험한 작전을 훈련할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4월말에 종료되었습

까요? 한국군은 위험에 빠진 미군을 구출하기

니다. 한국군은 미군이 수행한 키리졸브 시뮬

위해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총사

레이션에 따라 독수리 훈련을 수행했습니다.

령관이 미군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

그 구성비율에 육군이 절대다수인 한국군은

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키-리

미군이 어떠한 작전방침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졸브 독수리 훈련도 변함없이 진행되었습니

대포밥이 될 수도 있고, 사지터에서 살아 돌아

다. 한-미가 역할을 나눈 이런 훈련이 매년 계

오는 구국의 영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속되다보니 한국군은 미군사령관이 위험시 언 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예비대로 취급하여도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는 미군사령관은 전쟁훈

이를 막을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간

련을 할 때에도 한국군과 미군을 모두 지휘해

에는 우리 군을 두고 “총알받이”라는 비아냥이

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군은 보병 중심이고,

일고 있습니다.▒

미군은 해-공군 중심입니다. 물론 한반도 유 사시 미 본토에서 증원부대가 온다고 하더라 41


동아시아 역사칼럼

5.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영토를 점령한다

:: 맥아더 포고령과 미군정기 http://mag-mkyd21.tistory.com/170

‘8월의 폭풍작전’과 미국의 38선 분할점

반도의 항구를 점령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

령안

를 표명했습니다. 38선 분할점령은 결코 우연 이 아니라 미국의 전후 전략에 의해 획정된 것

2차 대전 종전 무렵, 미국이 한반도 진주 계획

이었습니다.

을 수립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1945년 8월 10일, 전후 배상 문제 협의를 위

그런데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상황은 미국의

해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던 미국 특사 에드윈

의도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은 소

폴리는 트루먼에게 보내는 전문을 통해 “미국

련이 참전하더라도 만주에서 막강한 일본 관

이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와 만주의 공업

동군을 상대하느라 한반도를 접수하지 못하리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트

라 생각했지만, 소련군은 생각보다 너무 빠르

루먼 역시 “만약 일본이 항복한 후에도 소

게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격파하며 남하했던

련군이 점령하지 않는다면 미군은 즉각 한

것입니다. 사실 이는 만주지역에서 오랜 기간

42


동아시아 역사칼럼

‘8월의 폭풍작전’이라고 명명된 소련의 남진 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자 미국은 한반도 점령 정책을 수정하게 됩니다. 1945년 7월 미국 육 군부 작전국의 점령안은, 미국이 경기도·강 원도·충청북도·경상남북도를, 소련이 함경 남북도를, 영국이 평안남북도·황해도를, 중 화민국이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를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후에 수정되어 북위 40도선, 즉 신의주에서 함흥에 이르기까지를 미국이 점령하는 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 나 소련의 남진속도로 보아 이 계획은 현실성 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한반도는 북위 38도선 을 기준으로 분할점령 됩니다.

미군 대령에 의해 순식간에 그어진 38선 ▲미국 육군부 작전국의 한반도 4분할 계획

관동군과 싸웠던 조선인과 중국인 무장독립세 력의 지원이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습니다.

소련은 일본이 이렇게까지 서둘러 항복을 하 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다급해진 소련 은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 전에 홋카이 도까지 점령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 43


동아시아 역사칼럼

▼맥아더 사령부의 ‘일반명령 1호’ 원문

습니다. 38선은 미국의 국무부, 육군부, 해군 부의 협의체인 3부 조정위원회에서 결정되었 습니다. 미 국무부는 군부에 소련군의 남진에 대응하여 서울과 인천을 포함하는 군사분계선 을 획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미국 육군 부 작전국의 본스틸 대령과 미 육군장관 보좌 관이던 딘 러스크 중령은 작전국에 걸려있던 내셔널지오그래픽사의 벽걸이 지도에 38도선 을 그어본 후 38선 분할점령안을 미국 합동참 모본부와 3부 조정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한 반도의 허리를 잘라놓은 딘 러스크는 후에 일 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국무부 장관의 자 리에 앉게 됩니다.

못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이 순순히 안 을 받아들이자, 의아해 하면서도 속으로 쾌재

8·15 직전에 트루먼이 제안한 38선 분할점

를 불렀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분할점령안은

령안은 소련에 의해 별 이의 없이 받아들여졌

곧 태평양 사령부 사령관 맥아더 명의의 ‘일

습니다. 사실 이 선이 그어질 때 즈음 소련은

반명령 1호’로 공식 발표됩니다.

이미 38선 남쪽인 개성까지 진주해있는 상황 이었고, 미국은 아직 한반도에 발을 들이지도 44

‘일반명령 1호’는 만주와 북위 38도 이북의 한


동아시아 역사칼럼

국, 그리고 남부 사할린의 모든 일본군 선임

에 안정된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친미 정

지휘관은 소련 극동군 사령관에게 항복할 것,

부를 세워 동아시아의 패권을 확립하는 것이

대본영과 그 선임 지휘관들 그리고 일본 본토

었습니다. 때문에 신탁통치를 통한 자본주의

와 부속 도서, 북위 38도 이남의 한국과 필리

질서의 이식은 필수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런

핀의 모든 일본군은 미국 태평양육군 사령관

데 여기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독립운동

에게 항복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38선이 확정

을 했던 한국의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

된 것입니다.

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한반도 38선 이북 지역 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활발한 건국준비 작업

우리에게 38선은 한국현대사 상 모든 비극의

을 벌이고 있었으며, 38선 이남에서도 사회주

씨앗이었지만, 미국에게 있어 38선은 ‘국익의

의자 출신의 여운형과 같은 인물은 미군이 한

후퇴’에 불과했습니다. 38선 이북지역의 사회

반도에 진주하기도 전에 ‘건국준비위원회’를

주의화는 미국에게 아쉬운 일이긴 했지만, 중

만들어 행정과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국과 소련 대륙에의 교두보를 완전히 잃어버 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졌습

이런 상황에서 1945년 9월 9일 미군이 한반

니다.

도에 점령군으로서 진주하게 됩니다. 미국은 38선 남측의 ‘점령’을 통해 이와 같은 계획을

미국의 대한전략과 맥아더 포고령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9월 7일 발표된 맥아더 의 포고령은 그와 같은 미국의 의도가 잘 드러

미국의 38선 이남지역에 대한 목표는 이 지역

나는, 위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45


동아시아 역사칼럼

- 태평양방면 미군 육군부대 총사령부 포고 제1호 조선인민에게 고함 조선인민에게 고함.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으로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 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항복은 우 제국(諸國) 군대간에 오랫동안 속행되어온 무력투쟁을 끝냈다. 일본천황의 명령에 의하여 그를 대표하여 일본국 정부와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 내용에 의하여 나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인민은 점령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자기 들의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는것을 새로이 확신하여야 한다.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에 의하여 나는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 은 점령조건을 발표한다.

46


동아시아 역사칼럼

제1조 -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 간 나의 권한하에서 시행한다. 제2조 - 정부의 전 공공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 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 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새로운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의 정당한 기능과 의무를 실행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 제3조 - 모든 사람은 급속히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권한하에 발한 명령에 복종 하여야 한다. 점령부대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혹은 공공안녕을 문란케 하는 모 든 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제4조 - 제군의 재산소유권리는 존중하겠다. 제군은 내가 명령할 때까지 제군 의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라. 제5조 - 군사적 관리를 하는 동안에는 모든 목적을 위하여서 영어가 공식언어 이다. 영어 원문과 조선어 혹은 일본어 원문 간에 해석 혹은 정의에 관하여 어떤 애매한 점이 있거나 부동한 점이 있을 때에는 영어 원문이 적용된다. 제6조 - 새로운 포고, 포고규정 공고, 지령 및 법령은 나 혹은 나의 권한하에서 발출될 것으로 제군에 대하여 요구하는 바를 지정할 것이다. 1945년 9월 9일 태평양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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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칼럼

미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잘 알고 있

국의 정치지형을 매우 ‘혁명적인 상황’이라

었기 때문에 점령 이후 한반도에 대해 많은 연

고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민족

구를 진행했습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일

해방 운동에 대해 “일제하의 착취와 억압 하

본으로부터 넘겨받은 정보를 기반으로 한국의

에서 한국인의 혁명의식은 고양되어 있었

지리, 공업, 농업, 인구, 교육수준, 정치적 성향

고 이들의 저항운동은 그 당시 타 점령지에

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해 나갔습니다.

서의 그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잘 조직화되

한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미국이 해방직후 한

어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총독부 앞의 국기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올라가고 있다. 48


동아시아 역사칼럼

미국은 이러한 평가에 기반해, 기존의 신탁통

친일 관료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걸어 다닐 수

치와 같은 정책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군정의 편의를 위해,

하지 못하리라 판단하고, 한국의 혁명적 상황

한반도 민중이 수십 년간 염원해온 친일파 청

을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군정을 실시하는 방

산이라는 대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향으로 정책을 수정합니다. 한반도 전체에 대 한 신탁통치 대신, 남한에서만이라도 우선 친

미 점령군은 군사점령자로서 38선 남쪽에서

미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일차적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규정

인 목표였습니다. 미군정은 일제가 조선을 통

했습니다. 점령군은 ① 통치권의 담당자로서

치하던 방식과 제도를 유지하며 군정을 실시

남한의 유일한 정부로 자처했고 ② 미 본국의

했으며, 폭력을 동원한 점령정책을 펼쳐 나갔

대리자로서 군사점령자의 권한을 행사했으며,

습니다.

③ 남한의 자치정부의 일반기능을 담당하고 ④ 귀속 재산의 소유자 및 관리자로 자처했습

강력한 군정의 실시와 친일파의 재등용

니다. 이런 미군정의 태도는 한국 민중이 자주 적으로 만들어온 자치 기구인 건준 및 인민위

미군정은 포고령 2조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일

원회, 나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도 부정

본인 관리와 친일파 한국인 관리들을 그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임시키고 식민지 통치기구도 온존시켰으며, 4조를 통해서는 재산권을 보장함으로써 친일 파 및 일본인의 재산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미

이승만과 친일 경찰에 의해 제거된 독립 운동가들

군정이 과거 일본 총독부의 지위와 체계를 그 대로 인수하는 바람에, 해방을 맞아 도망쳤던

이 과정에서 한국의 식민지 민족해방세력은

49


동아시아 역사칼럼

미군정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친미파

주의 국가처럼 소극적인 치안 유지나 시민들

로 변신한 친일파에게 제거되기 시작했습니

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이 아니라 진

다. 해방 직후 한국에는 크게 네 가지 흐름의

보세력과 좌익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으

정치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로 나섰습니다. 이들은 전국적 조직을 기반으

공산주의 세력,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로 하여 식량공출, 집회, 언론, 출판, 파업 등 모

민족주의자와 온건한 사회주의 세력, 김구를

든 영역에 걸쳐 지배권을 행사했습니다. 군정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 이승만의 민

경찰이 미군정 정책의 실행을 보장해주는 집

족개량주의자 및 친일파 세력이 그것이었습니

행기구로서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다. 미군정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이승만과 친 일세력 이외의 정치세력은 그들이 조선독립에 기여한 막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어

제 2의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

갔습니다. 한편, 미군정 시기에는 민중들의 투쟁이 거의 미군정은 사회주의 세력 및 여운형의 인민공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자주적인 통일 독

화국 세력, 그리고 임시정부 계열의 정치세력

립국가를 지향하는 각계의 민중들은, 제 2의

을 배제하고 해방 후 진보적인 진영에서 조직

식민통치를 자행하며 주권을 강탈하고 경제

된 자치적인 치안조직을 불법화시켰으며 기존

를 파탄내는 미군정에 반대해 수많은 투쟁을

총독부 경찰제체를 재편하여 더욱 강화했습니

벌였습니다. 하지만 미군정에게 중요했던 것

다. 미군정청은 경찰조직의 규모를 크게 늘렸

은 자신들의 심복이 되어 친미 정부를 수립할

는데, 비대해진 경찰 간부의 대다수는 친일파

친일-친미 세력과 매판자본가 세력의 육성이

로 채워졌습니다. 미군정기 경찰은 다른 민주

었지, 민중들의 생활수준 향상이 아니었습니

50


동아시아 역사칼럼

▲식량난과 하곡공출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는 곧 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으로 번져나간다.

다. 미군정은 일본인의 재산을 임의로 접수해

한국 민중들은 이런 미국의 대한 정책과 경제

친일-친미파에게 헐값으로 넘기는 등 자신들

파탄에 항거해 일어섰습니다. 대표적인 사건

을 지지해줄 세력을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이 1946년의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이

동원했습니다. 때문에 미군정기 민중들의 생

었습니다. 1946년 9월 초순 전국노동자평의

활은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1946년의 물가

회(전평)은 16개 산별 노동조합 대표자 회의

는 1944년에 비해 92배나 뛰어 올랐으며, 매

에서 “남조선 총파업 투쟁위원회”를 조직

점매석으로 쌀값도 폭등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하고 9월 15일 미군정에 ▲배급제 개선, ▲

부지기수였습니다. 미군정은 식량부족 현상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토

강제적인 하곡(보리쌀)공출로 막아보려 했지

지개혁, ▲미군정 철폐와 인민위원회로의 정

만 이는 오히려 농민들의 반발만 심화시킬 뿐

권 이양, ▲미소공위 재개 및 조선 독립 등 경

이었습니다.

제 및 정치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실현되 51


동아시아 역사칼럼

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 했습니다. 미군정이 요구를 거부하자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9월 24일 0시를 기해 철도노동자들을 필두로 체신, 전기, 금속, 광 산, 해운, 교통, 운수, 화학, 식료, 섬유, 토건, 출 판, 일반봉급자 등 전국적으로 26만 여명이 파 업에 돌입했습니다. 미군정은 노동자들의 요 구를 들어주는 대신 탱크를 앞세운 무장경찰 과 반공테러단을 동원해 노동자 간부를 살상 하고, 노동자들을 대거 체포했습니다. ▒

▲47년 경 철도노동자들의 파업 장면. 9월 총파업의 선두에 선 것은 철도노동자들이었다.

52


예술 그 본질적 가치

▲바흐의 마태 수난곡 https://youtu.be/NVg60oI7UNA1727

모진 수난을 표현한 바흐, 그리고 세월호 http://mag-mkyd21.tistory.com/171 53


예술 그 본질적 가치

수많은 십자가와 함께 세월호 가족의 수난을

바흐는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서 교

함께 하려는 신부님, 목사님들이 있다. 그들은

회합창단장을 맡으며 많은 곡을 작곡한다. 여

행동으로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다른 방식인

기서 바흐는 마태 수난곡과 같은 수난곡(예수

음악으로 신앙을 표현한 사람이 있다. 그는 ‘어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극적으로 나타낸

떻게 하면 음악으로 예수의 삶에 대해 전

종교 음악)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태복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야기를 음악으로 쓴 예수의 수난곡은 사람 들의 신앙심을 자극하기 위한 노래로 바흐 종

신을 찬미한 바흐의 종교음악

교 음악의 결정판이었다.

주님, 우리의 주인이시여!

바흐가 수난곡만 지은 것은 아니다. 그는 아름

당신의 수난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다운 선율로 신을 찬양했다. 바흐의 곡 ‘예수,

찬미 받음을 보여 주시옵소서!

인류의소망기쁨되시니(Jesus,bleibetmeine Freude)’는 온 세상에 번지는 예수의 온화

신을 찬미한 대표적인 음악가는 음악의 아

한 미소를 표현하고 있다. 바흐의 음악을 들으

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면 성당의 자비로운 예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1750)다. 바흐의 선율을 들으면 찬송가가 떠 오르고 왠지 모르게 경건해진다. 세월호 참사

파이프 오르간의 경건한 음색이 흘러나온다.

를 추모하는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경건함처

반복되는 대표 선율의 잔잔한 변화와 함께, 성

럼 말이다.

가대의 합창이 진행된다. 성당에 한 줄기 빛

54


예술 그 본질적 가치

▲“Jesus bleibet meine Freude” / https://youtu.be/d9EN27Zh_vg

이 비추듯 따뜻하고 보드라운 음색은 계속된

했다. 아름다운 절대 선에 대한 노래가 바로

다. 성모 마리아의 따뜻한 품에서 아이들이 뛰

바흐가 추구했던 음악이다.

어놀 듯이 바흐의 음악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 싸 안아 준다.

종교 음악은 모든 음악의 뿌리이자 시원이다. 최초의 클래식 음악이 그레고리안 성가이듯,

절대 선에 대한 찬미

서양의 클래식은 가톨릭교회 음악의 발전이 다. 가톨릭교회 음악은 바로크 시대 장대한 발

바흐 음악이 이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이유는

전을 보였으며 그 출발에 바흐가 있었다.

그가 신을 절대 선으로 여기며 찬미했기 때문 이다. 바로크 시대 독일 음악은 교회 음악이

바흐의 음반은 종종 가톨릭의 상징인 교황에

대부분을 차지했고, 바흐 역시 크리스찬으로

게 선물로 증정된다. 독일 메르켈 총리나 성악

음악에 입문했다. 바흐는 신을 음악으로 찬미

가 조수미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바흐의 음

55


예술 그 본질적 가치

악을 선물했다. 그만큼 바흐는 충실히 신을 노

장40절“지극히작은자에게한것이곧내게한

래했다.

것 이니라”라는 구절처럼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세월호

<천개의 바람이 되어, 작시 미상, 작곡 아라이 >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차량이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광화문 시복미사를 앞두고 카퍼레이드를 했

나는 그곳에 없어요.

다. 한 바퀴, 두 바퀴, 온 국민은 숨죽이며 지 켜봤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목이 메어 파파를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외쳤다. 그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차량이 광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화문 광장 끝자락에 천천히 멈췄다. 나는 천개의 바람.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걸음 씩 계단에서 내려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가 딸을 잃고 34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세월호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유가족 유민아빠의 두 손을 잡아주었다. 유민 아빠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교황의 손을 잡

신이 있을까.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럴까. 이

았다.

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사람들은 인생의 무게 가 느껴질 때, 종교에 고개를 숙인다. 자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민아빠를 만나며, 실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세월호 가족들도 마찬가

으로 예수의 자비를 보여주었다. 마태복음 25

지였을 것이다.

56


예술 그 본질적 가치

나무 십자가를 매고 수백km를 걸었던 승현 아

세월호 가족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 노래들이

빠 이호진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바흐의 성가처럼 들린다. 인간의 가장 깊은 슬

받으며, 신의 은총과 안식을 찾았다. 모태신앙

픔, 먼저 보낸 자식들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

이었던 예은 아빠 유경근씨는 “당연히 신앙

진실을 향한 갈망, 아마 이런 마음들이 음악으

에 회의가 오지요. 나는 정말 신앙을 가지

로 승화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릴지도 모른

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시련

다. ▒

이 왔을까. 그러나 거꾸로 회의를 갖게 된 저에게 힘을 주신 분들 역시 신앙인들이셨 습니다.”라고 심정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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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문화예술 통해 시대를 읽는다 이달의 공연과 작품

‘불안한 외출’ 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일시 : 5.15(금) 15:40 / 5.16(토) 19:15 장소 : 서울 마로니에공원+지하 다목적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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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래다 이달의 문화예술 공연과 작품

가극단미래 낭독극전 <뮤지컬 신령초> & <연극 훈장> 5월 7일(목) 7시30분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 다목적홀 5월 9일(토) 5시 요꼬스튜디오 5월 10일(일) 4시 도봉마을예술창작소 창고

59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회·원·을·만·나·다

“불꽃처럼 살자!”

강정호 부산 장년모임 ‘불꽃’(가) 준비주체

http://mag-mkyd21.tistory.com/173

부산에서 장년모임을 만들려고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 30대 청년들이 주축이었 던 민권연대에서 어느새 지역별 장년모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단체 활 동 등의 일선에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 해, 민족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들. 나이가 들수록 더 열정적이 되 는 민권연대 회원들. 이런 모습들이 현재 민권연대의 힘의 원천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부산 장년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강정호 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60


우리가 미래다

본 : 부산에서 장년모임을 만드시고, 대표가

본 : 아...아직 정식 대표님은 아니시군요. 장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먼저 소개 부탁드

년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특별한 이

립니다.

유가 있나요?

강정호 부산 장년모임 준비주체(이하 강) : 현

강 :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한때 학생운동을

재 부산민권연대 장년모임 ‘불꽃’은 본 조직

치열하게해온 분들 중에 이제는 한 가정의 가

으로 가기위한 준비위원회 단계입니다. 아직,

장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며 애국적 양

정식 대표라는 직함은 어색하구요. 모임 주체

심과 지향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

정도가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41살

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이 마땅히 어느 단체에

이고, 동아대학교를 나왔습니다. 두 딸아이의

도 소속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살아가고 있

아빠구요. 현재 치과에서 행정실장으로 일하

는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이 우리 민권연대 회

고 있습니다.

원으로 소속감과 책임감을 드높여 무엇이라도

61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애국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

강 : 현재는 본조직 건설을 목표로 회원모집

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과 관리, 교양사업과 실천활동을 제안하고 있 습니다. 7월 지리산 올레 행사에 10명의 회

본 : 현재 회원은 어느 정도 되나요?

원 참석으로 본조직 결성을 선포하고자 합니 다. 그리고 현재 민권연대 100거점 중 1개 거

강 : 현재 함께 동참을 표명했고 정기모임 또

점을 부산 장년모임에서 책임지는 걸로 하고,

는 실천 활동에 결합한 회원이 저를 포함 9명

모임 주체부터 1주에 1회 이상 1인 시위를 진

입니다.

행해오고 있구요. 매월 세 번째 목요일 저녁을 정기월례회로 상정해서 3, 4월 2차례 진행했

본 : 모임 이름을 ‘불꽃’으로 정한 특별한 이

습니다. 또한, 민권연대에서 나오는 글들을 탐

유가 있나요?

독하고, 정세강연 등의 자리에 참석해서 지속 적인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

강 : 2015년 민권연대 해오름제 때 ‘2015년

월 1-2회 이상 장년모임 회원들이 실천활동

불꽃처럼 살자!!’ 라는 슬로건이 확 와 닿아서

에 결합하기로 계획하고 있구요.

저희 장년모임 회원들에게 명칭을 ‘불꽃’으로 제안 드렸습니다.

본 : 7월 지리산 올레가 기대가 되는군요. 학 생운동 할 때와 장년모임을 할 때 생각이나 느

본 : 회원 분들도 다 좋아하셨나 보네요. 세우

낌들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뭐가 제일 다른

고 있으신 계획이 있다면요?

가요? 그리고 장년모임을 꾸려 가시면서 당장 힘드시거나, 난관이 예상되는 부분은 없나요?

62


우리가 미래다

강 : 제일 다른 것은 각자가 처한 객관적 상황

본 : 전국 회원들에게 ‘불꽃’ 자랑을 좀 해주

(직장, 가정사, 주거지 등)들이 다 제각각이라

시죠. 당장은 아니라도 “이것만은 우리 ‘불꽃’

서로 약속시간, 장소 등을 정하기가 제일 어려

이 자신있다” 라는게 있으시면 이야기 해주시

운 것 같네요.

구요.

그리고 각자 처한 조건에서 아직은 장년모임 에 대한 자기 요구들이 천차만별이라 공통성

강 : 저희 ‘불꽃’ 회원들이 현재 최고학번이 87

을 만들어가는 것과 회원들 간 서로 모르는 회

학번부터 막내가 98학번까지 있는데요. 농수

원들도 있어서 일단 친해지는 게 제일 선차적

산물 시장에서 새벽 4시부터 오후 3-4시까지

인 문제인 것 같구요. 저도 직장생활을 하며

근무하면서도 민권연대 장년모임에는 꼭 참

회원들 모집과 관리를 해야하다보니 시간이

가하시겠다는 결의를 보여주신 회원, 한번 모

제일 부족한 것이 난관이네요.

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최소 1시간에서 2시 간 가량의 이동시간이 걸리는 김해, 양산 등에 63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서도 참석해주시는 회원, 대학 졸업 이후 해외

마디 해주시죠.

에서 10여년간 살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이후 선배가 내미는 손길을 거리낌 없이 함께 잡아

강 : 이제 갓 태어난 부산민권연대 장년모임

준 회원, 학생운동이나 학생회 경험이 없지만

입니다. 앞으로 전국의 회원들에게 모범과 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

랑거리 많이 보내드릴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

리를 느끼고 있었다며 민권연대라는 조직을

가져주세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지만 함께 동참해보 겠다고 선뜻 마음내어준 회원.....이 회원들이

본 : 회원 한 분 한 분이 ‘불꽃’이 되어 민권연

저희 ‘불꽃’의 자랑입니다.

대 회원들의 가슴을 들끓게 할 것 같네요. 앞 으로 왕성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인터뷰에

본 : 장년모임을 꾸리면서 정말 ‘불꽃’이란 이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름처럼 열의와 열정이 넘치는 회원 분들이 많 이 모이셨네요. 민권연대는 어떤 곳이라고 생 각하시나요? 강 : 조국과 민족의 요구와 부름 앞에 가장 앞 장에서 가장 올바르게 투쟁하는 애국단체라 생각합니다. 본 : 끝으로 전국의 민권연대 회원들에게 한

64

강 : 네. 수고하셨습니다. ▒


우리가 미래다

후·원·회·원·을·찾·아·서

불법으로 탄생한 정권, 이를 비호하는 언론, 이런 언론의 자금줄 재벌. 정·언·경 유착, 공생세력 단죄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인터뷰/글. 후원회 사무국장 박종식 http://mag-mkyd21.tistory.com/174

작년 8월 민권연대 후원회를 발족한 이후 9개월 만에 61 명의 후원회원이 생겼습니다. 한 달 평균 6명 이상이 후 원회원에 가입해주셨습니다. 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 는 제 욕심에는 한참 모자란 인원이지만 지금까지는 나 름 성과적이라고 평가해봅니다. 지난달부터 하고 있는 후원회원 인터뷰도 후원회원 확 대 사업 중의 하나로 기획되어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지인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면서 후원회원 가입을 독려하는 것도 후원회원 모집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원회원 모집에 회원들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선 다면 올해 안에 100명을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 라 생각됩니다. 애정과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65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후원회원을 찾아서] 두 번째 인터뷰 대상은

입니다. 후원회원 가입 전부터 세월호 촛불 문

새오름 박종식 회원의 지인 김정민 후원회원

화제에 참석도 하면서 몇몇 회원들과는 통성

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동료인데요. 언제부

명도 했구요, 4월 18일「세월호 참사 1년 전

터 친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함께 외근

국집중 범국민대회 및 청와대 인간띠잇기」

나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대

에도 참석해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함께

화가 잘 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아마도 그때부

외쳤습니다.

터 종종 소주 한잔을 했었고 소통과 공감하는

열정적이고 잘생기기까지 한 이 열혈청년에

횟수가 늘어나면서 친해진 것 같습니다.

대해서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그럼 같이 소주

4월 11일 가입한 아주 따끈따끈한 후원회원

한잔 해보시겠어요?

66


우리가 미래다

본 :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좀 부탁드리겠

회 활동까지 했었습니다. 아. 그리고 술 좋아

습니다.

하고 사람 좋아하는 보통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죠.

김정민 후원회원(이하 김) : 음...나이는 서른

제 꿈이 곤충학자, 생물학자였던 적이 있었는

넷입니다. 빠른 82년생이라서 친구들은 서른

데요, 즉 환경에 관심이 많았었죠. MBC 다큐

다섯이죠.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아버지, 어머

「갯벌은 살아있다」를 몇 번이나 봤는지

니, 누나 이렇게 네 식구입니다. 아버지는 구

몰라요. 그런데 2007년에 태안기름유출 사고

남매, 어머니는 육남매의 자녀로 태어나서 사

가 일어났죠.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화도 많이

촌, 외사촌이 굉장히 많습니다. 본적은 해남인

났습니다. 그런데 그즈음 있었던 대통령 선거

데 지금은 고모가 살고 계십니다.

때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때 정치에 처음으로 관심

본 : ‘나는꼼수다’를 청취하면서 정치에 관심

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을 갖게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치와 사회

그렇게 관심이 생기다보니 이명박이 서울 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장 당시 복원한 청계천에 수돗물을 끌어다 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어떻게 살

용한다는 것을 알았고, BBK 문제를 접하면서

아왔는지도 궁금합니다.

분노감이 생겼죠. 부끄럽지만 그때 처음으로 투표라는 걸 해봤습니다.

김 : ‘나꼼수’는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 형님이 잘못 기억하고 있네요.

본 : 그렇다면 기름유출사고의 원인제공사인

저는 정치, 사회문제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

삼성물산도 싫었겠고, 당시 정부였던 노무현

이 없었던 사람이었죠. 게임 좋아하고, 레포

정부도 마땅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츠 즐겨하고...특히 스키보드 마니아라서 동호

존경하는 정치인 중 한명이 故노무현 대통령 아닌가요? 67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김 : 당시에는 환경이 파괴된다는 자체가 속

그래서 싫어하는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었죠.

상하고 가슴 아팠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

전·의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금 시위진

했던 것 같아요.

압하는 의경들도 군생활 중이잖아요? 군생활

그리고 삼성이라는 회사가 이렇게 천박한 자

이라면 진짜 미치도록 짜증만나는, 2년이라는

본인지 모르고 있을 때는 영혼 없는(?) 애국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쉬어야

심으로 삼성 제품들을 많이 사용했었죠. 하지

할 주말마다 시위진압에 아마도 머리꼭지가

만 지금은 삼성제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직

정상은 아닐 거라고 생각되네요. 전경 출신으

업이 전자 개발인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

로 의경들의 대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

외하고는 삼성에서 생산되는 자재는 채택 하

만 그 분노를 시위대에 표출하면 안 되는데...

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이죠.

태안사고 났던 당시에 지들이 사천 억을 내놓 겠다 해놓고 결과는 꼴랑 몇 십억에 퉁친걸로

본 : 아~~ 그래서 지난번 세월호 촛불 끝나

기억해요. 아~ 욕 나오네요.

고 유가족을 만나러 청운동까지 삼삼오오 이 동했을 때 그 곳 지리를 잘 알고 있었던 거군

음...故노무현 전 대통령은 존경하는 정치인이

요. ‘팟캐스트’ 방송을 많이 듣는 걸로 알고

죠. 근데 처음부터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노무

있는데 자주 듣는 팟캐스트 방송은 무엇인가

현 정부 당시에 군생활을 했는데요. 청와대 인

요?

근에서 전경으로 복무했습니다. 근데 노무현 대통령이 헬기를 자주 이용했거든요. 그때마

김 : 제가 정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

도 비상 아닌 비상이 걸렸었죠. 사단장 방문한

작한 이래 처음으로 들었던 방송이 ‘망치부

다는 소식만 들려도 전 부대가 비상에 걸려 부

인’이 진행하는 아프리카 TV방송입니다. 방

대 곳곳을 쓸고 닦고 하듯이 저희는 청와대 인

송을 듣던 중 팟캐스트 방송이 있다는 걸 알

근이어서 그런지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됐었죠.

게 되었고, ‘망치부인’이 소개해 준 방송을 찾

68


우리가 미래다

아서 들어보고 또 그 방송에서 소개해주는 다

다. 아~ 이번 18일 전국집중 집회 때 민권연

른 방송을 찾아서 들어보고...이렇게 하다 보

대를 찾지 못해서 혼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니 현재 듣고 있는 방송만 십여 개 안팎인 것

유가족들과 함께 있던 대학생들 몇 명이 편의

같습니다.

점에서 먹을 것을 사길래 제가 계산해줬는데

출근하면서「김용민의 조간브리핑」을 듣고

요. 그때도 순간 제 마음이 시키더라고요.

요, 회사업무 중에 시간이 나면 짬짬이 듣는

그리고 처음으로 접하는 대규모 집회라 두려

방송이「망치부인의 시사수다방」과「새가

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무거웠던

날아든다」,「이강윤의 오늘」을 주로 듣습

머리가 집회에 참석하니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니다. 그 외에는「김어준의 파파이스」,「서

느낌이 들더라고요.

영석 타임즈」,「민동기, 김용민의 미디어토 크」등등 인기 있는 팟케스트는 거의 다 듣는

본 : 작년에 세월호 집회에 저와 함께 참석했

것 같습니다.

었는데요. 그때가 첫 번째 대중집회 참석이었

제가 하나에 꽂히면 미치는 스타일이라 그런

나요?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지 다른 사람보다는 청취하는 방송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 : 아니요.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나서 혼자 서 두 번 인가 광화문 광장 세월호 농성장에

본 : 그럼 【국민TV】 조합원이겠네요?

갔었습니다. 형님이랑 청운동 사무소까지 갔 었던 게 세 번째 참석했던 집회였던 것 같아

김 : 맞습니다. 【국민TV】 조합원으로 후원

요. 그때 민권연대 분들을 처음 만났던 거고,

을 하고 있고요. 환경운동연합에도 몇 차례 일

길후형도 그때 처음 만났었습니다.

시적으로 후원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돈은 많지 않지만 마음이 시키는 데로 하고 있습니

본 :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문 제에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데요, 통일 문제 69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나요?

폰 진동모터의 원료이거든요. 희토류가 쓰이 는 곳이 엄청 많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김 : 당연하죠.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기 위해

봐도 통일은 당연히 되어야하죠.

서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 습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정권을 유지하는

본 : 와우! 희토류가 핸드폰 진동모터에 사용

방편으로 북을 이용하고 북에 대해서 악선전

된다는 건 저도 처음 알았네요.

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요즘 정부

민권연대 연중행사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해

에 반대만 하면 ‘종북’이라고 들씌우잖아요. 애

오름제, 5.18 광주 순례, 민권연대 가족의 날,

들 밥먹이자는 것도 종북! 이게 말이나 되는

지리산 배움의 올레, 후원주점 등을 매년 진행

소리인가요?

합니다. 이 중에서 참석할 수 있는 것을 하나

남북의 가스관과 철도를 연결하는 자체가 블

만 선택해 본다면요?

루오션이잖아요. 그리고 북녘에 희토류가 엄

김 : 특별히 개인 일정과 겹치지만 않는다면

청나게 매장되어 있잖아요. 그 희토류가 핸드

전부 다 참석하고 싶습니다. 이번 5.18 광주

70


우리가 미래다

순례부터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망월

정부의 충견 역할을 하는 경찰을 비판하고 있

동 묘역은 처음 가보는 건데... 민권연대 회원

는 분이죠.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었

님들이 열사들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해주세

습니다.

요.

취미로 사진을 찍은 지가 3~4년 정도 되었습 니다. 최고 전문가 수준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

본 : 민권연대에서 이달의 추천도서를 소개하

도 전문성을 갖추기도 했고요. 인터넷을 보면

고 서평을 쓰는 행사를 하고 있는데요. 읽어본

‘미디어 몽구’, ‘길바닥’처럼 1인 미디어를

책 중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 분들처럼 많은 시 간을 들여서 1인 미디어를 운영하지는 못하겠

김 : 제가 난독증이 생길려고 하는 경향이 있

지만 집회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싶

어서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돈이 피

은 마음이 있습니다.

보다 진한 세태를 지적한 이외수의「장외인 간」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고요, 기상

본 : 우리 후원회원 중에 1인 미디어「장C

천외한 소재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지만 파트

TV」를 운영하는 장우식님이 있습니다. 또「

리크 쥐스킨트의「향수」도 재미있게 봤습니

주권방송」,「다큐창작소」도 소개해드릴 수

다.

있으니까요. 조만간 구체적으로 실행해보죠 ~~ 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

본 :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하게라도 말씀해

으면 해 주시죠.

주세요. 김 : 트위터 상에서 ‘둥글이’라는 분의 풍자

김: 친구들에게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

가 유행이죠. 경찰서에 가서 개사료를 뿌리며

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상처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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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고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정말 소름끼치

이번 인터뷰도 너무나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

는 무관심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많은 사람

이었습니다. 회사 동료이기도 하고 그 동안 많

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공감하고 함께할 수

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라 어느 정도는 다 알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인터뷰 질문지를 만

아~~ 그리고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 판결 방

들고 하나하나 물어보니 모르고 있는 게 훨씬

송을 생방송으로 봤습니다. 헌재 주문 전에 이

많았네요.

정희 대표의 최후 발언을 들었습니다. 그때 통 합진보당의 당론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는데

순수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마음이 따뜻한

요, 이 대표님의 최후 발언을 들으면서 눈물을

사람, 인터뷰 도중에도 눈물을 글썽일 만큼 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통합진보당에 대해서

물이 많은 사람. 제가 느낀 김정민 후원회원의

진작 알고 함께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

모습입니다. 앞으로 새바람 회원들과 많은 교

는 아쉬움이 너무 컸습니다. 무늬만 진보인 입

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보들과 너무나도 비교가 되더라고요. 앞으로 주말 집회 때나 민권연대 행사 때 종종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언제나

만나 뵙겠습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자리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 같습니다. 이날도 화

기대해보겠습니다.

곡시장 대박 족발집을 찾았는데, 인터뷰 핑계 로 잘 먹고 다니죠? (하하) 이런 소소한 즐거 움이 있기 때문에 후원회원 인터뷰 날이 기다 려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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