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pendent rock magazine vol.67 / www.elephant-shoe.net / 2013 march TABLOID 16
small talk with music
EPISODE : 춘정 (春情)
editor’s note 장은석 작년 12월호부터 편집장을 맡았던 용식이가 사정상 당분간 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개월 만에 다시 편집장 일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넘게 해왔던 일인데, 고작 3개월 쉬었다고 처음 하는 일 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1년 넘게 함께 일했던 용식이가 고작 이번 한 달 함께 있지 않았을 뿐인데,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엘리펀트슈 식구들의 도움으로 빈자리 없이 무사히 3월 호를 완성했습니다. 쾅프로그램에서 이승환으로 왔고, 이승환에서 누구로 이어질까요? 기대해 주세요. 2월 27일 장은석
Album : Hail to the Thief (2003) 여자는 날이 따뜻해지는 봄, 남자는 날이 추워지는 가을,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연애를 하고 싶은 남자라면 봄을 노려야 하고, 여자는 가을을 노려야 한다. 내가 흔들리는 타이밍이 아니라 상대방이 흔들릴 때를 노려야 하니. 하지만 상대방의 빈틈을 노리고 연애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출발한 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허니문은 끝난다는 것을. 그리고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JEE Album : Beacon (2012)
엘리펀트슈 사무실이 있는 연남동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주차하기 좋은 동네입니다. 쌓인 눈이 녹는 보슬비 내리는 오후,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엘슈로 걸어가는 길가에는 달콤한 쿠키냄새와 커피냄새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조그만 카페, 아무렇지도 않게 소박한 주택가가 마치 순정만화의 인트로 같이 잔잔하게 펼쳐져 가쁜 호흡을 살짝 내려놓게 합니다. 혹시 엘리펀트슈를 발음해 보신 적 있으세요? 아이러브유와 입 모양이 똑같다는 것. 아셨어요?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용기를 내어 아이러브유라고 말했다가 면박 당할까 수줍어서 사실은 엘리펀트슈라고 말했다고 변명하는 노랫말처럼, 혹은 영화 엘리펀트슈의 엔딩에서 무뚝뚝하게 식사를 마치고 먼저 나가버린 그가 유리창 밖에서 아이러브유하고 커다랗게 입 모양을 지어 보이는 것처럼. 저도 가만히 소리 내어 발음해 봅니다. 엘리펀트슈. 수줍어서 용기가 안 난다면 엘리펀트슈라고 말하세요! 3월의 캔디부케같이 기분 좋은 엘리펀트슈가 마법처럼 사랑을 이뤄드릴 거에요. 2월 27일 Jiyang Kim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올해의 페스티벌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씩 공개되는 라인업을 보니 벌써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친다. 한동안 의욕 없는 시간을 보내왔는데 이렇게 맘이 금방 움직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록 페스티벌로 힐링이 가능한 것인가? 후훗.
JUNE Album : Some Nights (2012) 봄이 되어 그런지 원래 그런 마음이 잠재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갑은 가벼운데 자꾸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긴다. 소니 똑딱이 카메라 RX100을 비롯해 노트북, 발매도 안 된 아이패드 미니2, 그리고 만물박사 김박사에서 얘기한 깁슨 플라잉V가 그것이다. 특히, 깁슨 플라잉V는 기사를 쓰면서 더 강한 소유 욕구가 끓어올랐다. 봄도 밉고, 얇은 지갑도 밉다.
이지선 Album : Eyes Open (2006) 나는 맨날 사무실에서 형이라고 불린다.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석군도, 용식이도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형!” 하고 불러놓고 자기들이 퍼뜩 놀랜다. 이번 호 커버 촬영 날, 형이었던 나는 급 ‘소녀’가 되었다. 촬영을 어색해하시는 승환님의 시선 처리를 위해 의자에 올라가 눈을 맞춰야 했던 것.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대신 열다섯 청춘의 춘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 5분 동안 눈은 한 0.24초 정도 맞췄나아~
Julian Kim Album : Foxbase Alpha (2002) 입춘이 지났건만, 봄바람 대신 눈발이 날리고 있다. 3~4월이면 집 앞 매화꽃이 활짝 필 텐데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울 것 같다. Saint Etienne의 Spring을 가사와 함께 듣고 있자니 꼭 나를 위한 곡인 것 같아 바보 같은 착각에 빠져버렸다. ELEPHANT-SHOE tabloid issue No.16 / 2013-MAR-1
Publisher 장은석 / ewanjj@naver.com Yun SukMu / djmou@hanmail.com Editor-in-Chief 장은석 / ewanjj@naver.com Jiyang Kim / pinkymallow@naver.com Founder & First Director June / dafunk@hanmail.net Director JEE / seg1129@naver.com Julian Kim / comfortingsounds.vol1@hotmail.com 맹선호 / pluto116@naver.com 용식 / bleutk@gmail.com 지은 / cacaocat@naver.com Art Director NOKID / starfucker6@naver.com 이지선 / aniklee@naver.com 윤희진 / hujjin@naver.com Registration Number / 마포,라00343 Published by Elephant-Shoe / www.elephant-shoe.net Printed by 솔텍 / 서울 중구 필동2가 120-1 *엘리펀트슈 타블로이드의 본문은 아모레 퍼시픽에서 제공하는 아리따 글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All Rights Reserved 2013 Elephant-S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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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E P HA N T - S HO E
맹선호 Album : Shrines (2012) 영하 17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상쾌한 추위를 즐기던 나인데, 봄으로 넘어가는 이 길목 영상의 날씨가 왜 이리 으슬으슬 추운지 당황스러울 정도다. 한겨울에 입던 그대로 껴입어도 어깨가 움츠러든다. 설마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이러는 건가 충격에 휩싸이고 있을 때쯤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봄바람이 겨울 한파보다 무섭단다. 원래 그렇단다. 하긴 봄바람만큼 또 요동치듯 그 위력을 발하는 게 또 어디 있나. 그러니까 다들 몸조심, 마음 조심!
NOKID
전자양 - 봄을 낚다 Album : 숲 (2007)
3월이면 봄이 온 걸까. 어디서부터가 봄인가. 이제 입춘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는 기후에 살고 있다. 그러니 봄에 대해서 조금 더 멋대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벌써 봄을 맞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 올해 겨울은 유난히 길다. 아직 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은 Album : These Streets(2008) 춘정이 별건가. 신고 있던 신발이 낡았다는 것을 문득 발견하는, 그래서 새 신발을 갖고 싶어지는 그 ‘순간’이다. 그저 모두 올봄에는 낡은 신발들에 얽매이지 말고 새 신발에 탑승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곡해보았다. 어쩌면 막상 새 신발을 가져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를 테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 따스해진 바람에 마음을 다 맡기면 적어도 지루할 틈은 없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당신의 마음을 춘정을 쌓기에 최적화된 상태로 만드는 첫 번째 단계일 터. 거기에 파울로 누티니의 근사한 비주얼까지 더해지면 당신은 이미 설렐 준비가 모두 끝났다.
CO N T E N T S
2013 MARCH no.16
04 그가 바라는 이승환
당신이 알고 있던 단편소설이 사실 장편소설의 1권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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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동안의 뒷면
엘슈가 선정한 '록커 이승환'의 음악들
공연의 신 이승환이 기획하는 가상의 페스티벌
뮤지션에 대한 존경을 담은 페스티벌 RESPECT 라인업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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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에 대한 궁금증을 아우들이 묻는다
피터팬 컴플렉스의 전지한이 후배 뮤지션을 대표해 이승환과 나눈 솔직한 대담
12 DREAMFACTORY
62 x 77(cm) Acrylic on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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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과 꿈
이승환의 꿈 이야기, 그리고 이승환으로부터 꿈을 갖게 된 이들의 이야기
취미의 경계 14
‘덕’업일치 돌입 5개월, 그 득과 실
불안한데 불안하지는 않다
덕업일치자 부양론
내 남편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가?
무대울렁증 프로게이머
직업과 취미의 적절한 균형에 관한 실제 사례
취미와 직업의 경계는 대체 어디쯤으로 두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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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OM
카메라를 든 여자애의 방으로 '음악'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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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신발 # 첫번째 신발
NOKID가 그리는 엘리펀트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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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CHHIKER The
남자의 영원한 로망, 모터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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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박사
지미 헨드릭스 같은 뮤지션이 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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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슈가 좋아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엘슈 에디터들이 좋아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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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VIDEO STILL HERE
말은 가라앉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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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EASE PARTY
청춘의 춘정을 충전하고 나면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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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E MYSELF
청년들 | 음란소년 | 연남동 덤앤더머 |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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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SOUND NOVEL
“나 원래 훔치는 거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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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NOKID
프로만화가의 초보 음악 생활, 그 마지막 이야기
vol.2 음악을 듣는 곳
Spirit of 59: British Rockers
태어날 때부터 모던함을 추구한 기타 깁슨 플라잉V
엘리펀트슈 릴리즈파티의 모든 것
고양이도둑
<69화~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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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던 단편소설이 사실 장편소설의 1권이었다면 WORDS : 장은석, PHOTOS : Yun SukMu
성공한 사람 중에 성공기로 단편소설 한 권 정도 쓰지 못할 사람은 없다. 이승환도 그렇다.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학교 자퇴, 집안의 반대, 기획사의 거절이라는 청춘 성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 한 스토리를 실제로 겪었고, ‘이 돈으로 앨범을 만들고, 망하면 음악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첫 앨범 제작비를 아버지에게서 지원받았다. 이를 가지고 1989년 “우리 기획”이라는 회사를 차렸고, 1991년 “우리 엔터프라이즈”로 개명한 후, 1997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드림팩토리”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오로지 이승환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 회사는 사실상 인디 레이블이고, 이 인디 레이블에 소속된 이승환 또한 인디 뮤지션이다. 다만 첫 앨범부터 엄청난 성공을 이뤘고, 항상 메이저 무대의 정상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인디 뮤지션이란 걸 간과했을 뿐이다. 그래도 이승환이 인디 뮤지션이 아니라 여겨진다면 잘 생각해보자. 90년대가 아무리 음악 시장이 호황이었어도 앨범 아트워크에 이승환만큼 돈을 들이고 신경 쓴 이가 있었는지. 5집 [Cycle]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졌고, 라이브 앨범 [무적전설]은 알루미늄 케이스에 슬라이드 식으로 CD를 꺼냈으며, 공연 DVD [끝장]에는 뉴스페이퍼부터 (라디오헤드 [The King of Limbs]의 뉴스페이퍼 스페셜 에디션보다 8년이나 먼저였다!) 종이 조립 인형에 브로마이드까지 들은 종합선물 세트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른 뮤지션의 것들보다 특별히 더 비싼 값을 받진 않았다. 마진을 줄였던 것인데, 이는 일반적인 기획사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 하나하나마다 이 정도로 공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이승환이 인디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디 뮤지션과 인디 레이블은 때로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이득을 포기하기도 한다. 재정적인 뒷받침과 일정 수준 이상의 인기가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인디 뮤지션이 바라는 최종 단계일 것이다. 이승환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그 위치에 도착했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이승환의 단편소설은 정상에 도착한 시점에서 완결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엘리펀트슈는 이승환의 소설은 여느 성공한 이들의 단편소설이 아닌 장편소설이고, 그 소설의 1권이 끝나고 2권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시작점은 앨범에 처음으로 록 음악을 실었던 1995년일 수도 있고, 인디 뮤지션에게 오프닝을 부탁하던 1999년일 수도 있고, 처음으로 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2000년일 수도 있고, <이승환과 아우들>로 인디 뮤지션과 함께 공연하는 2013년 지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작점이 아니라, 이승환을 통해 메이저와 인디에 연결점이 생겼다는 것이다. 2권의 핵심은 바로 이 연결점이다.
<이승환과 아우들> 공연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그 공연은 어땠어요?
돌발 콘서트 <이승환과 아우들>이나 <왕년>은 특별한 연출 없이 완벽히
옐로우 몬스터즈의 에너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죠. 사실 제게나 아우인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는 공연이에요. 작년 연말에 했던 <환니발> 같은 정식
친구들이지, 이제 그들도 나이가 제법 들었잖아요? (웃음) 나이가 들면 그런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이 끝없이 들어가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많지만,
음악을 쉬지 않고 하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요. 그런데도 무대에서 광란의 모습을
돌발 콘서트는 그렇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편하게 준비하고 있죠.
공연마다 보여주니까, 이 친구들은 하늘이 내려줬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공연의 신 이승환이 만드는 공연이다 보니 주위에서 기대하는 바가
무대에서의 에너지는 승환 씨도 최고잖아요.
클 텐데요.
물론 그렇지만 옐로우 몬스터즈는 무대 아래에서와 위에서가 완전히 다른
우리는 노하우도 있고 스태프도 있어서 질적으로 좀 더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친구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면이 있기는 한데, 그들이 더 대단한 것 같아요. 보컬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모든 스태프에게 이번에 함께 공연하는 뮤지션의
용원이의 눈이 평상시에는 아래로 처져 있는데 공연 때에는 위로 올라가요. 눈을
음악을 다 듣게 했고, 조명 등 모든 파트를 음악에 완벽히 맞춘 공연을
보면 그 기가 느껴지는데, 제가 따라 할 수 없는 에너지였어요.
준비하고 있어요. 공연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승환과 아우들은 시리즈여도 재밌겠네요. 아우들은 어떻게 모았나요?
이승환과 아우들은 센 느낌이니까 조금 순화시켜서 “이승환과 동생들”이라는
일단은 제가 잘 아는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아우들이라는 느낌이 조폭이나 쓸
이름으로 말랑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법한 단어잖아요? 그래서 센 음악 하는 친구들 위주로 모았죠. 그래도 중간에 한 번 정도는 숨 돌릴 시간은 줘야겠다 싶어서 나름 부드러운 음악을 하는
오, 그럼 “이승환과 누이들”은 어때요.
안녕바다를 섭외했고요.
누이들은 별로 없더라고요. (웃음) 개인적으로 홍대 특유의 예쁜 스타일의 음악은 부담스러워서요.
아우들과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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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른 것 같아요. 안 지 얼마 안 된 친구도 있고, 꽤 오래된 친구도 있고요.
그래도 마음에 드는 누이가 한 명도 없어요? 정말로?
얼마 전에 옐로우 몬스터즈가 진행하는 <몬스터즈 락 쇼>에 저도 출연하면서
아, 맞다! 2012년 헬로루키 MC를 보면서 박소유 씨의 음악이 마음에 들었어요.
옐로우 몬스터즈와는 더 많이 친해지게 됐죠.
그 외에 다른 누이가 확 떠오르지는 않네요.
큰 공연에 매니악한 요소를 넣다보니 관객 수도 줄고, 저를 변절자라고 부르는 이들도 생겼어요. 이를 놓고 팬들 사이에 분쟁까지 생겼는데, 제가 중재할 수도 없는 일이라 보고만 있어야 했어요.
그가 바라던 무대 홍대의 작은 공연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인 <돌발 콘서트>는 2005년부터 시작했죠. 저도 그때쯤으로 기억해요. 사운드홀릭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던 것 같아요. 홍대 클럽에서의 공연을 기획한 이유는 어떤 것이었나요? 큰 공연에서 히트곡이 아닌 제가 하고 싶었던 ‘너의 나라’, ‘나의 영웅’ 같은 센 곡들을 그로테스크한 연출까지 더해서 불렀어요. 큰 공연에 매니악한 요소를 넣다 보니 관객 수도 줄고, 저를 변절자라고 부르는 이들도 생겼어요. 이를 놓고 팬들 사이에 분쟁까지 생겼는데, 제가 중재할 수도 없는 일이라 보고만 있어야 했어요. 그 상황이 너무 갑갑했기 때문에 이럴 바엔 대중적인 공연과 매니악한 공연으로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매니악한 공연이 돌발 콘서트가 된 거군요. 그렇죠. 록 음악을 듣고 싶다면 돌발 콘서트로, 히트곡을 듣고 싶으면 연말 콘서트로! 이런 느낌이었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채운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갈증으로 생긴 공연이 돌발 콘서트인 거죠. 홍대에서 공연하기 전에도 인디 밴드에게 오프닝을 맡겼었죠. 90년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밴드가 함께 했어요. 2003년에 뷰렛이 오프닝 무대에 섰던 것이 생각나요. 네. 저도 기억해요. <Play> 때겠네요. 제가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들어서 직접 섭외했었어요.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오프닝 팀을 섭외하고 있죠. 뷰렛이 오프닝 무대에 선 후 팬이 확실히 늘었는데, 이런 효과를 기대했던 건가요? 어떤 효과를 바랐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훌륭한 뮤지션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죠. 인디 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요? 90년대 중반부터죠. 크라잉넛, 노브레인 덕분에 한국의 펑크 씬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노브레인이 윤상의 프로그램에 나가서 “난 윤상 싫어”라고 말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웃음) 지금도 그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그 얘기를 듣고서 겁을 먹었죠. ‘윤상처럼 훌륭한 뮤지션도 싫다고 할 정도면 이승환은 당연히 더 싫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근데 막상 만나보니까 다 똑같은 놈들이더라고요.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착한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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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씬의 젊은 친구들 음악이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제 음악은 정통 록 음악도 아니고, 또 엄청나게 크리에이티브한 록 음악도 아니라고 스스로도 생각해요. 그래서 인디씬에서 공연을 할 때면 자극도 받고,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요.
팬의 음악과 그의 음악 이승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록 음악으로 시작되었다. 이 열정의 흔적은 10장의 정규앨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 앨범 [B.C 603]은 ‘텅 빈 마음’,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눈물로 시를 써도’ 등의 발라드뿐인 앨범으로 알려졌지만, 이승환이 작사, 작곡한 ‘그냥 그런 이야기’에서는 록에 대한 그의 관심이 느껴진다. 그 후에도 조금씩 록 요소를 넣었지만, 아예 전면에 내세운 것은 4집 [Human] ‘너의 나라’에서부터였다. 9분이 넘는 이 곡에서 이승환은 하드 록 밴드 보컬이 할 법한 스타일로 노래했는데, 타이틀곡 ‘천일동안’에 매료되어 앨범을 샀던 팬들은 이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이승환의 시도는 계속됐다. 다섯 번째 앨범 [Cycle]에서는 유희열과의 만남으로 탄생한 ‘붉은 낙타’를 통해 이승환의 록 음악도 대중적일 수 있음을 보여줬고, 6집 [The War In Life]에서는 ‘Rumor’, ‘나의 영웅’을, 7집 [Egg]에서는 ‘위험한 낙원’, ‘동지(同志)’를 통해 록을 이승환의 또 다른 음악 스타일로 인정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앨범을 사는 대다수 팬에게 앨범에 들어있는 록 음악은 의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앨범을 사지 않은 록 음악 팬에게는 이승환의 발라드 타이틀곡만 전달될 뿐, 록 음악은 전해지지 않았다. 결국, 그의 록 음악에 적응하지 못한 팬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의 록 음악에 반해 새로이 팬이 된 이는 적다. 그러다 보니 그의 팬은 아직도 그의 음악 안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Cycle]의 ‘붉은 낙타’는 록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대중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곡이라 생각해요. 처음으로 록 음악을 서브 타이틀로 밀었죠. 근데 억지로 밀었던 거였어요. 사실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그때는 제가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걸 들어!”라고 밀어붙인 거죠. 6집 [The War In Life]의 ‘Rumor’나 ‘나의 영웅’도 록 코드로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생각했는데, 7집 [egg]의 ‘위험한 낙원’은 이승환 록의 색깔을 완성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다양한 것을 하고 싶은데 ‘위험한 낙원’ 하나로 제 록 음악의 색깔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요. 미국에 녹음하러 갔을 때 그 쪽 스튜디오에서 “넌 어떻게 이런 다양한 음악을 하니?”라고 물으며, 우리도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지만 이미지에 갇혀서 한 가지 음악밖에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음악을 하고 있다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록커 이승환에게 ‘붉은 낙타’와 ‘위험한 낙원’의 차이는 뭘까요? 폼이 더 나냐, 적게 나냐의 문제죠. (웃음) 어떤 게 더 폼이 나는 곡인데요? (웃음) 당연히 ‘위험한 낙원’이죠. ‘붉은 낙타’가 당시 인기를 끌던 모던 록이라면 ‘위험한 낙원’은 아트 록을 표방한 거니까요. 전 이것도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6집 [The War In Life]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으로, 7집 [egg]에서는 “SUNNYSIDE UP”과 “OVEREASY”로 나누고, 발라드를 앞에 록 음악을 뒤에 넣었던 기획이요. 그건 4집 [Human]에서부터였어요. “Water side”와 “Fire side”로 구성했었죠. 당시에는 세련된 기획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런 이분법 때문에 팬조차도 이승환을 발라드 가수와 로커로 나눠서 생각하게 됐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맞아요. 그게 패착이었죠. 그때는 다운타운 차트라고, 카페 같은 곳에서 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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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홍보수단이었는데, 제 음악은 너무 들쭉날쭉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CD를 틀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 팬들도 드림팩토리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의견을 냈는데, 드림팩토리가 피드백이 좋은 회사여서 팬들이 하는
난 쉬고픈데 머무르고픈데
말을 전부 듣다 보니 그런 것들에 제가 우왕좌왕했던 것 같아요.
날 향한 기대와 뒤섞인 원망들을
많고도 다양한 의견 속에서 흔들렸던 거군요. 그랬던 거죠. 근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첫 앨범도 내가
삶 한구석에 저만치 미루고
제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대로 했던 내가 왜 이러고
잠시만 누워 하늘을 보고 오게
있지? 그래서 다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마음먹었죠.
날 보채지마 떠밀려 하지마
그래서 요즘 인디 뮤지션과 교류가 많은 건가요?
그대의 희망을 내 어깨에 싣지마
인디 씬의 젊은 친구들 음악이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제
나 가고픈 건 날 식혀줄 바람
음악은 정통 록 음악도 아니고, 또 엄청나게 크리에이티브한 록
부는 그 곳에 내가 날 쉬 누이게
음악도 아니라고 스스로도 생각해요. 그래서 인디 씬에서 공연을 할 때면 자극도 받고,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요.
- 안식 中
페스티벌 무대에 오를 때도요? 마음가짐은 항상 그렇죠. 페스티벌에는 어린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제 음악 대부분이 신곡이나 다름없으니까 좀 더 힘들어요. 그래도 페스티벌에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를 “어린 왕자”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도 많은 것 같아요. 저에 대해 색안경을 낀 사람들이 “페스티벌 무대에 이승환이 왜 나와?”라며 야유를 많이 보냈죠.
인디 레이블 드림팩토리 사실 이승환이야말로 우리나라 최초의 인디 뮤지션이잖아요.
그래놓고 끝에서는 “왕년에 한 가락 하셨던 드팩민들을
요즘엔 이적, 윤상, 윤종신 등 대중 가수도 페스티벌에 많이
인디 뮤지션이라는 것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거대
드림팩토리에서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라고 쓰여있던데,
서잖아요.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레이블에 들어가지 않은 채 자신의
도대체 진짜 마음은 뭐에요?
제가 처음으로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 나갔을 때, 제 팬들이
음악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거잖아요. 저도
뜨내기들 말고 순수성과 진정성을 갖고 있는 사람만 오라는
먼저 실수를 했죠. 제 뒤에 공연이 남아있는데 제 공연만 보고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인디
거였어요. 드림팩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제 음악을
가버린 거죠. 그다음에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서는 피아
뮤지션이다보니 메이저보다 인디에 더 끌리는 것은 혈육에게
좋아하는 소수정예만 제 곁에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뒤에 제 공연이었는데, 피아 공연만 보고 거의 절반 이상이
피가 끌리는 것 같은 거죠. 본류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빠져나갔었어요. 보복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요. (웃음)
순수성과 진정성을 갖고 있는 팬들이 바라는 새 앨범은 언제쯤 드림팩토리로도 다시 돌아왔죠. 이승환이 한국 최초의 인디
볼 수 있을까요? (웃음)
그냥 막차 시간 때문에 그랬던 거 아닐까요? (웃음)
뮤지션이라면 드림팩토리는 한국 최초의 인디 레이블이겠네요.
제가 그분들께 공연장에서 여러 번 말했어요. 앨범을 내려면 돈을
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웃음) 그런데 비슷한 일들이 많았어요.
그렇죠. 처음에는 저만을 위한 회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여러
많이 벌어야 한다. 그걸로 제가 취미활동 삼아 앨범을 내는 거죠.
올해 2월에 옐로우 몬스터즈가 진행하는 <몬스터즈 락 쇼>에
뮤지션과 배우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되었죠. 그 회사의
그리고는 신곡을 들려주며 얘기를 하죠. 취미 생활로 만든 곡인데
제가 출연하게 됐을 때에도, 트위터에 이승환이 여기 왜 나오냐고
대표이다 보니 사이가 좋지도 않은 방송국과 싫지만 계속해서
들어보시라고. (웃음)
말들이 많았거든요.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어요. 앨범을 취미로 낸다고요? (웃음) 그 외에도 힘든 일이 있었나요?
정말로요. 저는 정말 음악을 취미로 하고 있어요. 이게 업이면
제가 ‘안식’이라는 노래에 떠밀지 말라는 느낌의 가사를
경제활동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앨범을 내는 일은 이제
썼었어요. 섣부른 기대를 하고는, 그 기대와 다르면 너무 쉽게
제게는 경제활동이 되지 않거든요. 10집을 역사의 뒤안길로
욕하는 게 싫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씁쓸한 발걸음을 옮겼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정도로 망할 줄은
싶은 가학적인 심리가 있잖아요? 팬들이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몰랐거든요. 근데 정말 엄청난 손해를 봤어요.
그래서 드림팩토리를 놓으면 내가 얼마나 행복해질까 싶었어요. 그럼 취미로 만든 음악은 어떤 곡들인가요? 그래서 드림팩토리를 떠났군요.
지금 쓰고 있는 음악들은 다 록 음악이에요. 발라드는 거의
드림팩토리라는 이름에 제 모든 게 매몰되어 있었어요. 제가 해야
없어요. 그래서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센 음악은
하는 음악도 팬끼리 물고 뜯고 싸우고 있으니까 팬들의 기대도
아니에요. 말랑한 음악인 것 같아요.
좀 없애줘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 결정을 통해 떠나든 말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팬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새 앨범을 기다리는 드림팩토리의 진정한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존재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도 나를 위해서 살자고 한
말이 있나요?
거였죠.
그냥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내가 좋아했던 가수였다는 것에, 또는 유일하게 믿었다고 생각한
행복해졌어요?
기획사라는 것에 있어서만큼은요. 드림팩토리는 정말 깨끗하게
최근 2~3년 굉장히 행복했어요. 불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
운영했던 회사였고, 불의에 대해서는 당당히 얘기했던 회사죠.
행복한 것은 없었는데, 불행하지 않으니까 행복했어요.
그건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 다시 드림팩토리로 돌아왔나요.
힘든 길이네요.
드림팩토리가 한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제
어렸을 때는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어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도 기대를 하지 않는구나 싶었고요.
생각이 더 자유로워졌어요. 그러면서 쉬워지더라고요. 근데 너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서 농담으로 애들에게 그랬어요. “이러다 나
이번 왕년 포스터에 “드림팩토리는 망해버려야 해”라고
조영남 아저씨처럼 되려나 봐”라고. (웃음)■
말하던데. 그게 제 마음이죠. 정말로요. 드림팩토리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웃음) 드림팩토리가 중압감을 너무 주니까.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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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 장은석
이승환의 음악을 ‘천일동안’, ‘세 가지 소원’으로만 알고 있는 이에게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음악이자, 록 음악을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만 만들어야만 한다고 알고 있는 이에게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음악들.
[The War In Life] 1999 개인적으로 이승환의 록 음악 중 최고로 꼽는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이승환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인트로부터 듣는 이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곡을 최고로 여기는 것은 이승환의 가장 자연스러운 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환의 보컬이 ‘천일동안’ 스타일만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 노래를 통해 그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다. 이 앨범에는 훌륭한 록 음악이 많이 있다. ‘고(告)함’, ‘Let It All Out’, ‘나의 영웅’도 반드시 확인해야 할 트랙.
위험한 낙원 [egg] 2001
이 곡이야말로 이승환만이 할 수 있는 록이다. 시작은 이승환의 보이스톤과 절묘히 맞춘 기타와 신시사이저로 시작한다. 그러다 현악기가 등장하고, 코러스가 곡 전체의 분위기를 서서히 고조시킨 후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파트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끝까지 수많은 악기가 교대하며 곡 전체의 분위기에 강약을 확실히 표현한다. 풍성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것은 그의 보컬 스타일 덕분이기도 하지만, 악기의 교대도 한몫한다. 이 곡을 통해 그의 치밀함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물어본다. [Karma] 2004
이승환의 발라드와 록의 경계 사이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곡은 이승환의 발라드 팬에게도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곡이다. A-B-A-B-B’라는 굉장히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B-B’사이의 브릿지에서는 그의 세련된 악기 구성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어렸을 적 그렸던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이 얼마나 닮아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는 이승환다운 가사 또한 이 노래에 힘을 실어준다.
[Dreamizer] 2010 기본적으로 펑키 사운드에 브라스 사운드를 얹고, 베이스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워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승환의 록이 밝고 경쾌한 코드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스타일일 것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다. 가장 최신앨범인 [Dreamizer]는 앨범 전체에서 록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 누가 봐도 발라드곡인 타이틀 ‘반의 반’에서조차 후렴구 부분에서는 록 사운드가 나온다. 그래서 발라드에서 록을, 록에서 발라드를 균형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 속에서도 이승환다운 색깔이 표현되는 이유이자 다음 앨범이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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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E P HA N T - S HO E
WORDS : 맹선호
이승환이 꿈꾸는 페스티벌 직접 페스티벌을 만든다면 어떤 뮤지션을 섭외하고 싶은지 이승환에게 물었다. 그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뮤지션부터
Jeff Beck David Bowie AC/DC fun. Michelle Shaprow Yellow Monsters Supertramp Kenny Loggins Village People Nell Daybreak Peterpan Complex monni 이규호 윤도현 밴드 Fromm Ailee 악퉁 장미여관 TransFixion The Koxx 김종서 Ynot? 요조 Romantic Punch 안녕바다 정지찬
최근 즐겨 듣는 밴드까지, 그의 취향으로 가득 찬 꿈의 페스티벌 포스터를 엘리펀트슈가 가상으로 만들어보았다. 엘슈가 추천하는 예습곡은 덤! “예전에 우리 스태프끼리 <Respect>란 타이틀을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음악인에 대한 예우가 없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연예인 중엔 1등이 배우, 2등이 개그맨이에요. 돈을 잘 버니까. (웃음) 그리고 3등이 가수예요.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이 되어버리는 세상이 되어버려서요. 그래서 상징적으로 존경할만한 뮤지션들을 내세운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2010년에 제프 벡 내한공연을 유치했었어요. 당시 국내에 기타 좀 친다는 기타리스트들은 다 모였는데, 막 우는 거예요, 얘들이. 제가 그걸 보고 더 감동했어요.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오시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Cause We've Ended as Lovers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예요. 마침 이번에 앨범도 내셨으니 오셨으면 좋겠네요."
Changes
"이 팀이 오면 무너지겠네요. 한 번도 안 왔으니까. 전 세계에서 라이브 수입으로 5위 안에 드는 노장 밴드. 와, 장사 좀 되겠네요! (웃음)"
Thunderstruck
"요즘 즐겨 듣는데, 음악이 정말 크리에이티브해요."
Back Down to Earth
"최근에 다시 듣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Breakfast in America
"이 형님도 정말 좋아해요. 이 밴드에서 기타 치는 분이 있는데, 수소문해서 그 기타리스트가 있는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한 적이 있을 정도예요. 케니 로긴스 형님께 안부 전해달라고 했어요. (웃음)"
Footloose
"이 팀이 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페스티벌에 꼭 필요한 양념 같은 존재랄까."
YMCA
"외국밴드와 ‘맞짱’ 떠도 으쓱해지는 밴드"
Stay "우리나라 홍대여신 중 최고인 것 같아요, 미모로. (웃음)"
S O M E D A Y S O M E W H E R E
마중가는 길
"일본 섬머소닉 페스티벌처럼 대중가수가 나와도 좋을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제가 본 여가수 중에 제일 잘하는 듯해요. 지금까진 박정현이 짱이었거든요. 그런데 위태위태해요, 박정현이. (웃음)"
Heaven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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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한 제가 보니까 질문들이 다 뭐 그렇네요. (웃음) 오, 이건 좀 독특하다. 피아의 요한이가 이렇게 묻네요.
‘청춘’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형이 생각하는 ‘청춘’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요한 (피아)
이승환 좀 이상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청춘이나 젊음이 영원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길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청춘은 자기 생각 여하에 따라서 유통기한을 충분히 늘릴 수 Jeonjihan's Jumpsuit by Eloquence pattern control project
있는 것! 전지한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환 청춘은 마음먹기에 따른 것? 늘 푸를 수 있다는 것? 나는 늘 청춘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나의 청춘은 내 수명의.. 거의 8분의 7? 전지한 8분의 7!! 보통 10분의 몇, 뭐 이렇게 얘기하지 않나요? 이승환 왜냐하면 나는 한 80까지 살 것 같으니까 8분의 7이야. 전지한 그렇군요! (웃음) 이승환 10살부터 청춘인 거지. 발기가 시작됐을 때부터가 청춘이야. (웃음) 전지한 이건 적어놔야겠다. (웃음)
평소 목을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이원석 (데이브레이크)
피부관리 비법은? 이용원 (옐로우 몬스터즈)
20년이 넘도록 음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뮤지션 이승환 그에 대한 후배 뮤지션들의 궁금증을 피터팬 컴플렉스의 전지한이 대신해서 묻는다 WORDS : 맹선호, PHOTOS : Yun SukMu 영화 <26년>으로 인디 뮤지션들과 많이 친해지게 된 이승환은 원래 말을 잘 못 놓는 성격이다. 하지만 쫑파티에서 술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후배 뮤지션들에게 말을 쉽게 놓아버리게 되고, 다음날 먼저 문자를 보내면서 친분을 쌓고, 결국 공연까지 같이 하게 된다. "승환 형님이 특히 제 캐릭터가 마음에 드셨대요"라며 당당히 둘의 친분을 소개한 전지한이 아우들이 보내온 질문을 가지고 이승환과 솔직한 대담을 나눴다.
전지한 이건 늘 듣는 얘기일 텐데요. 피부관리, 목소리 관리, 이런 건 그냥 넘어가죠. (웃음) 이승환 어우, 뭐야, 별로다, 별로야. (웃음) 전지한 형은 공연 전에는 술자리도 안 갖잖아요. 이승환 나는 마음이 늙으면 몸이 늙는다고 생각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많이 가졌었어. 나를 ‘중년 오타쿠’라고 생각해. 내가 피규어 모으고, 차림새도 이상하고. 2년 전에도 머리 회색으로 하고 다니고 그랬는데, 그런 거 때문에 막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많았어. 일단, 나를 오타쿠라고 놀리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는, 성공한 오타쿠는 놀릴 수 없어. 그건 불법이야. (웃음) 맨날 나한테 젊음의 비결을 물어보면서 동시에 내가 철이 덜 들었다는 식의 시선은 굉장히 이율배반인 것 같아. 그것부터 고쳐야 해. 그러면 최소한 노화를 늦출 순 있는 거지. 전지한 그러니까 목소리 관리, 피부관리, 뭐 이런 건 다 마음이 결정하는군요. 이승환 당연하지. 나 먹을 땐 술 장난 아니게 먹잖아. 전지한 철학적인데요. 결국, 젊은 마음을 갖는 게... 이승환 마음이 늙지 않는 게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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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E P HA N T - S HO E
이승환 진짜 큰 연말 공연은 무조건 몰입 못해. 왜냐하면, 모든 연출과 모든 상황, 그러니까 ‘아,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이거 틀렸네, 이거 꼭 기억해놨다가 끝나면 스태프 소집해야지!’ 이런 생각들. 내가 기억해야지 그
최재혁 (옐로우 몬스터즈)
사람들이 내일 안 틀리잖아. 그런데 난 언제나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팬들에게 좀 아닌 대답을 하는 거 같아. 음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한 4순위 정도 된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거든. “그럼 오빠는
이승환 재혁이가! (웃음) 전지한 이건 저도 궁금한 건데요. 형도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나요? 이승환 있어. 많지. 누가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고 생각했을 때. 더군다나 그놈이 드럼 치는 놈이었는데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하더라고. 그때 슬럼프에 빠졌었어. 그리고 처음 앨범을 냈을 때가 89년인데 김현철이랑 같은 해에 냈었어. 현철이가 나보다 어렸는데, 나보다 훨씬 음악을 잘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음반은 처음 들었던 거지. 그런데 음반이 정말 좋은 거야. 거의 삼일 밤을 불면으로 지새웠어. 내가 막 살리에르같이 느껴지는 거지. 막 내가 쟤보다 훨씬 못하는데 음반 내서 뭐하지? 진짜로 어쩔 수가 없더라고. 그런데 흥행이 잘되면 그게 위로가 돼. 대중들의 지명도와 인지도, 막
1순위가 뭐예요?” “여자!” 막 이렇게 대답하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아, 그게 사실이고. 음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사는 건 좀. 그런 애들 별로 안 좋아해. 너도 안 그렇지? 전지한 아니요. 저는 제 노래에 막 눈물 흘리고, 엉엉 오열도 하고 그래요. (웃음) 전지한 마지막으로 저도 질문 하나 할게요. 제가 생각하기에 형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모범이 되는 것 같아요. 싸이 공연처럼 연출이 강조된 공연도 먼저 시작했었고, 90년대에 혼자서 직접 앨범을 만들어낸 것도 인디 레이블의 원조다, 뭐 이런 이야기도 뒤늦게 나오잖아요. 저도 인디씬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했었지만 결국은 자생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요즘 더 확고해지고 있어요.
이런 게. (웃음) 그리고 음반이 97년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5집, 6집 앨범 당시에는
거지.
요즘 들어 저처럼 직접 레이블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옐로우 몬스터즈처럼 공연부터 외국진출까지 직접 열심히 뛰어다니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런 뮤지션들을 위해서 많은 부분에서 선두에 섰던 사람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지한 그럼 그 충격은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전지한 (피터팬 컴플렉스)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았었어. 음반판매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 전지한 그땐 시대의 흐름도 그랬잖아요. 이승환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97년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음악만 하니까 대중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이승환 극복은 못 한 것 같아. 그냥 계속 괴로웠던 것 같아. (웃음) 더군다나 97년부터 99년까지는 여자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더 사무치게 괴로웠던 것 같아. 극복이 어떻게 되니? 그냥 시간이 약이지.
이승환 어떤 이야기를 해준다기보단 그런 생각이 들어. 예전에는 인디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좀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어. 밴드를 하기 위해서 본업은 따로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본 만화가 있다면 어떤 것?
지금은 밴드를 해도 생활이 되고, 또 어느 정도 규모의 공연장을 매진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예도 있잖아. 그리고 아이돌 음악의 쇠락이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거든. 사람들이 지쳐
(웹툰 및 애니메이션 포함해서요.)
하는구나, 뭐 이런 느낌. 그럼 그다음 대중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나는 밴드의 시대가 올
이주현 (갤럭시 익스프레스)
거라 생각해. 그래서 나도 드림팩토리를 준비하며 한 팀을 계약한 상태고. 나는 밴드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 몇몇 밴드들을 제외하고는 힘들게 음악 하고
이승환 웹툰? 아, <미생> 좀 보다 말았다. 전지한 애니메이션은 없나요? 이승환 뭐, 보긴 봤던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거의 이틀에 한 번은 영화를 보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해. 영화를 봐도 제목도 기억 못 하고, 내용도 기억 못 하고. 취미가 AV라서 집에 한참 프로젝터니 앰프니 관심이 많아서 잘해놨어. 진짜 내가 뭐 봤지? 기억이 진짜 안 난다. 아, 그래서 내가 요즘 행복한 것도 있어. 전지한 아, 망각이 삶을 도와주는 그런? 이승환 정말 좋은 게 뭐냐면 내가 노래 가사를 쓸 때 헤어진 여자들에 대해서 거의 다 순애보를 써. 분명히 나한테 나쁜 짓도 했을 텐데 기억이 잘 안 나. 전지한 좋은 것만 기억에 남아 있군요.
있으니까. <이승환과 아우들> 공연도 그렇게 하게 됐어. <몬스터즈 락 쇼> 쫑파티 때 용원이가 그러더라. “형의 공연노하우를 배우고 싶어요.”라고. 전지한 저도 배우고 싶어요. 이승환 <이승환과 아우들> 공연이 공동기획인데, 용원이가 내가 어떻게 공연을 만들고 꾸며나가는지 볼 수 있잖아. 그런 식으로 길라잡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고, 이 공연을 계기로 용원이가 더 큰 꿈을 갖고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거지. 같이 음악을 하는 선배로서 가져야 하는 책임감이랄까. 그 책임감에서 <26년> 관련된 일도 하게 된 거고. 난 음악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목소리도 내고 올바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어. 되게 무시하잖아, 딴따라라고! (웃음) 이렇게 음악 하는 사람들이 더 발전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런저런 일들을 해나가고 싶어.
이승환 내가 애써 기억을 해낸다거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불씨를 제공해서 내가 기억하는 건 있는데 그 외엔 없어. 전지한 그러고보니 형이 우리나라 공연에 최초로 프롬프터를 도입했잖아요. 이승환 내가 처음 했지. 한글 프로그램을 보니까 그렇게 색을 바꿔서 할 수가 있더라고. 전지한 십 년 넘게 부른 노래를 못 외우고 보고 한다니 전 놀랐어요. (웃음) 이승환 야, 도입한 게 놀라운 거지. (웃음) 나는 문익점이야, 문익점. (웃음) 전지한 하긴 형은 인디 레이블의 시작이시고. 왜냐하면, 아무도 앨범을 안 내준다고 해서. (웃음)
본인의 음악이 실제로 자신을 위로해주는지 궁금합니다. 대중적 성공, 팬들의 사랑, 이런 것 때문이 아닌, 그냥 어느 날 본인의 노래를 듣고 “그래, 힘내자!”라는 위로를 받은 적이 있나요? 안승준 (보드카 레인)
전지한 저는 형님이 이렇게 다른 잡지도 아니고 엘리펀트슈에 나와 저희의 궁금증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신 것도 정말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요. 이승환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고, 인디의 위상이 그만큼 오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무시 못할 접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도 엘리펀트슈에 나오는 게 나에 대해 어설프단 시선을 좀 거둬달라 이런 마음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러니까 저 사람 오버고, ‘천일동안’ 불렀고, 뭐 그렇게만 생각하잖아. 어떤 어린애가 나에 대해 쓴 걸 봤는데, ‘이승환 노래 되게 이상하게 해’라면서 ‘천일동안’ 뒷부분에 절규하는 부분을 편집해서 올렸다? 근데 그것만 올리니까 내가 들어도 진짜 이상하더라고. (웃음) 걔가 막 이렇게 써놨어. “우엑우엑우억우억” 막 이렇게 부른다고. (웃음) 특히 인디 음악을 듣는 사람 중에 배타적인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아. 난 예전에 페스티벌 할 때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어. 버드락 페스티벌이었는데, 엘르가든과 스타세일러가 일본, 영국, 그리고 내가 한국 대표로 참여했었어. 그런데 객석 앞에 있던 관객들이 내가 나오니까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거야. 시위의 일종인 거지. 자국의 아티스트에게 힘을 주지 못할망정. 그때 내가 여섯 곡인가 일곱
전지한 이번엔 오늘 새벽에 보드카 레인 승준씨가 보내준 질문이에요. 이승환 역시 배운 친구라 질문이 다르네. (웃음) 그런데 난 그런 적은 없어, 전혀. 전지한 와, 전혀요?
곡인가를 부르는데 한 번도 무대를 안 쳐다봤어. 한 50명 정도가 똑같이 행동하더라고. 그때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 그런 걸 좀 상쇄시키고 싶단 생각을 했었어. 누누이 얘기해왔지만 60살이 넘어서도 스키니 입고 록 페스티벌에 서는 게 내 꿈이니까.
이승환 어느 정도 타이틀을 발라드를 쓸 때는 흥행을 생각 안 할 수 없으니 약간 나의 순애보를 과장해서 좀 더 유일무이한 남자처럼 쓰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니 몰입이 안 되는 거지. (웃음) 사실 이게 완벽하게 나는 아니잖아.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막 이런 식으로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고 다른 일상적인 얘기를 썼다 하더라도 내 음악에 내가 위로받는 건 내 기준에선 좀 나르시시즘 같기도 해. 전지한 나르시시스트는 아니다? 이승환 그런데 그런 건 있어. 내가 쓴 걸 듣고 ‘아, 이건 좀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번 대담에서 빛을 보지 못한 질문들은 다음 기회에 ... * 형이 개인적으로 제일 아끼는 앨범과 곡은 어떤 것이에요? 전 개인적으로 My Story 정말 좋아합니다.
김선일 (데이브레이크)
간혹가다 공연 때 몰입이 되면 울컥할 때도 있고. 전지한 가사에? 이승환 가산데, 실제 경험을 쓴 거니까 그 경험이 떠오를 때가 있어. 사실 난 공연할 때 노래하면서
* 곡 쓰실 때 제일 멜로디가 잘 떠오르는 장소, 혹은 상황은요?
딴생각 많이 해.
한진영 (옐로우 몬스터즈)
전지한 어떤 생각이요?
All faces by Emily with iMadeFace
E LE P H A N T-S H O E
11
62 x 77 (cm), Acrylic on board, 2013 Illustration by NOKID
12
E L E P HA N T - S HO E
이경빈
CASE 1
드림팩토리 스쿨 기획연출 4기, 지금은 M 본부에서 네팔에 방송국을 지어주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
공연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피어오르던 나의 20대, 드림팩토리 스쿨을 만났다. 지금이야 공연 관련 아카데미와 대학교 학과들이 다양하지만, 10년 전 그때 그 시절 ‘공연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승환옹이 만든 드림팩토리 스쿨은 12:1의 경쟁률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합격자 발표를 듣고, “아! 드디어 내가 이승환과 호형호제하며, 대한민국의 공연계를 짊어지겠구나 ” 라는 부푼 기대에 잠도 못 이뤘을 정도다. (물론, 나는 여전히 승환옹과 호형호제하지도 못하고, 공연계를 짊어지지도 못하고 있다. 흑) 스쿨을 다니는 일 년 동안 기나긴 회의와 무대 세팅, 끝나지 않는 리허설에도 불구하고 팔짝팔짝 뛰는 승환옹의 놀라운 체력 앞에 여러 번 좌절했었다. 그러나 그런 승환옹의 모습은 언제나 나의 열정을 ‘화르르르’ 불태웠다. 그리고 어느덧 공연업계에서 일한 지 십여 년이 되었다. 이제 공연의 A부터 Z는 눈감고도 안다고 자만하던 나는 지난해 오랜만에 승환옹의 공연장을 찾았다.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낡고 물들었는데, 그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여전히 새롭구나.’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은 잠시 회사의 부서이동으로 공연계에는 새끼발가락만 담그고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날을 준비하며 승환옹의 공연장을 틈틈이 찾고 있다. 그의 끊임없는 변화는 나를 가장 강하게 자극한다. ‘역시 공연은 이승환이야~’
안희원
case 2
밸리 록 페스티벌 기획자 공연 업계에는 여자가 많다. 그리고 그 여자들 중에는 이승환, 서태지, 그리고 H.O.T의 팬이 압도적으로 많다(유난히 내 주변에만 많을 수도 있다). 그 ‘오빠’들 때문에 공연 일에 뛰어든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내 ‘오빠’는 이승환이다. 국민학교 때 생애 처음 가본 이승환 콘서트 The Show 이후 이승환은 한동안 나에게 콘서트의 기준이었다. 라이브콘서트라면 모름지기 세 시간은 기본, 네 시간은 옵션에다가 야광봉 따위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물쇼, 불쇼, 온갖 다채로운 쇼가 없는 콘서트는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콘서트 티켓을 사기 위하여 시내 대형 서점에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아침 일찍부터 공연장 앞에서 추위에 떨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성수동 드림팩토리 건물 앞에서 서성이던 기억도. 나는 하나의 대책 없는 빠순이었으며, 지금도 ‘ 오빠 ’ 와 관련된 일이라면 일단 쉴드부터 치고 보는 늙은 빠순이다. 공연기획자로서 일을 하게 된 계기의 99%가 운이었다면, 나머지 1%는 어려서부터 ‘오빠’의 공연을 보며 쌓아온 나의 취향과 의지이다. ‘오빠’와 함께한 기억이 있었기에 공연기획자로서의 내가 ‘오빠’들을 보러 온 팬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콘서트의 기준이 되어줄 ‘오빠’들의 공연에 힘을 쏟아보려 노력하게 되었을 터이다. 일을 하며 흔들릴 때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오빠’가 있었다. 20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가 자랑스럽다. 이 짧은 글은 20년 만에 처음 바치는 팬레터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BC603이 무슨 뜻인지, NNN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이승환의 꿈 이야기, 이승환을 통해 꿈을 갖게 된 이들의 이야기
장은석
case 3
엘리펀트슈 대표, 에디터들의 뒤치다꺼리 담당
음악을 시작하기 전의 꿈은 키 큰 사람이 되는 거였어요. 진지하게. 그런데 들국화 공연을 보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들국화 같이 감동을 주는 음악을요. 저도 “찌릿” 감동을 받았으니까요. 제가 굉장히 건조해서 감동을 잘 받지 않는데, 감동을 받았으니까 저 정도면 해볼 만하겠다 싶었죠. 그렇게 음악을 시작하던 20대 초반에는 돈 욕심 안 내는 순수한 음악인을 꿈꿨지만, 3,4집을 내고 있을 때의 저는 굉장히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절대 순수하거나 영원한 것은 없는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드림팩토리가 점점 커지고 있을 때에는 돈독 오른 아귀 같았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아등바등하며 살았죠. 그러다 많은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은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꿈을 가졌는데, 그중에는 이룬 꿈도 있고, 이루지 못한 꿈도 있죠. 그중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도 하고, 또 이제는 좀 알리고 싶은 것은 있어요. 작년에 “공연 원조 논란”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원조가 어딨어요. 그냥 자기 공연하는 거지. 그렇게 치면 제 공연은 참 나답게, 나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계속 진화해 왔거든요. 작년에 한 공연 <환니발>을 두고 관계자들과 팬들이 굉장히 칭찬해 주니까 뿌듯하죠. 그래서 제가 이루어낸 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외국계 기업의 인턴으로 일했고, 졸업 전 학기에 그 회사에서 정식 채용을 위한 계약을 제시했다. 경영학과 학생에게는 나름 꿈의 직장인 회사와의 계약서였다. 회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사인하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2년 동안 목표했던 것을 막상 눈앞에 두고 망설이게 한 것은 단 하나 공연 일을 해 보고 싶어서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페스티벌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건 2006년, 2008년 후지 록 페스티벌에 다녀온 후 마음속에 자리 잡은 꿈이었다. 그리고 후지 록에 가고 싶을 정도로 록 음악에 빠져들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월화수목금토일 내내 홍대 클럽, 또는 밴드 연습실에서 인디 뮤지션과 함께 보내면서부터였다. 홍대 클럽에 처음 오게 되었던 것은 재수 때 갔던 이승환 콘서트에 오프닝 밴드로 나왔던 뷰렛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고, 집-학원-집-학원만 해야 할 재수생이 감히 집-공연장-집-학원이라는 일탈을 한 것은 고1 때 생에 처음으로 간 이승환의 <무적> 콘서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공연을 처음 봤을 때 나도 공연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 하나, 이승환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진로 선택에 섰던 내 나이 스물일곱, 정확히 10년 전 열일곱의 철부지 같았던 꿈이 갑작스레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철부지의 꿈으로 뛰어들었다. 공연 일을 하다 드림팩토리 스쿨 출신을 만나면 항상 물었다. “이승환 만나 봤어요?” 그리고 어이없게도 공연 일을 그만둔 지금 잡지를 만들다 이승환을 만났다. 이제 뭐하지?
있다면 그건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의미 있기도 하고요.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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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갖게 되면 취미와 특기가 분리된다. 성인이 되어서의 특기란 보통 돈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화된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그 특기를 수행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것이 취미이니 분리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취미와 특기가 분리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
취미의 경계
그런가 하면 형편상 취미를 전혀 가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과연 이 취미의 경계는 어디쯤으로 두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德’業一 致 突入 五 個月, 그 得과 失. ‘덕’업일치 돌입 5개월, 그 득과 실 Ⅰ.
WORDS : 지은
槪觀 개관
처음부터 잡지 기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순수 문학에 대해 나름의 열정이 있었고, 뽕 맞은 것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으니, ‘작가는 직업이 아니다’라는 것. 직업이란 무릇, 일을 하면 반드시 그만큼의 보상이 있는 일을 뜻하는 것인데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을 약속받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상황 판단이 빠른 편이었다.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떼를 쓸 생각도, 여기저기 빌붙을 생각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 나의 필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직종의 일을 찾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꽤 좋은 출판사의 북에디터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책을 만드는 일도 배우고, 돈도 받고. 그럭저럭 적성에 맞는 경제생활을 함으로써 금전 보유 여부에 위축되지 않고 내 글을 쓴다는 야심찬 계획.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세상에는 정말, 할 수 ‘없는’ 일도 존재했다. 분명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겠지만, 하루에 여덟 시간 남짓 남의
Ⅱ.
分析 분석
득(得)과 실(失)로 나의 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글을 고치는 일은 내게 지옥 같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정확히 전해야 한다는데 그 과정에서 내 목소리가 너무 커 눈총을 받을까 봐 시종일관 눈치를 살피며 점점 위축되는 기분. 그래도 죽을 수는
失
없기에, 북에디터를 고심 끝에 그만두고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아무리 돈을 위해 하는 일이라도 조금은 ‘쓰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쳤다. 그 길로 나는 잡지사에 취직했고 조금씩 활력을 되찾았다. 활력을 되찾다 못해, 재미있었다. 이럴 수가. 재미있어도 너무 재미있었다. 재미가 느껴지다 보니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 바람 끝에 닿은 것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음악, 바로 ‘음악 잡지’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그때 마침, 무슨 계시라도 되는 듯, <엘리펀트슈>를 발견했다. 시작이 강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바람이 미숙하다거나 협소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누르려고 해도 ‘엘리펀트슈’라는 글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큼직한 판형과 누르스름한 종이의
得
-
효를 잃었다
– 재미를 얻었다
-
낯을 잃었다
-
좋은 동료1)를 잔뜩 얻었다
-
염치를 잃었다
-
새로운 벗2)을 잔뜩 얻었다
-
벗을 잃었다
-
까닭없는 회한에 젖는 버릇을 얻었다
-
경제력을 잃었다
-
일에 대한 의욕을 얻었다
-
독립의 꿈을 잃었다
-
노후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얻었다
감촉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2012년 가을, 처음으로 모험을 감행했다. 내가 먼저 ‘당신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엘리펀트슈>에 전달할 계획을 세웠고, 실행했다. 그 결과는 꽤 좋았다.
1) 서로 마음은 너무나 잘 맞으나 나와 똑같은 마음의 짐을 이고 있어 대화를 나눌수록 우울해지는
일단은 지면에 들어가는 작은 원고들을 기고하는 것으로 천천히, 그 인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2) 나와 비슷하지만 전혀 쓸모 없는
관계도 계속되니 ‘결정’이라는 것을 해야 할 순간이 분명히 찾아왔다. 마음이야 재미있는 일을 하는 데로 이미 훌쩍 넘어가 있었지만, 내게 있어 '재미있는 일'은 내가 이전까지 누렸던 경제적 혜택이나 안락함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망설였다. 나는 한 번도 나를 무언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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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던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랬다. 그렇지만, 그러므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곧
Ⅲ.
결정할 수 있었다. 이제껏 해보지 않았으니 단 한 번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일에
바보가 아니라면 깨달았을 것이라 믿는다. ‘꿈’, ‘적성’ 같은 아무짝에도 쓸모
나를 던져보자고. 12월 초입, 나는 그렇게 <엘리펀트슈>의 에디터가 되었다.
없는 낭만에 젖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의 다른 말이 바로 ‘웰컴투더헬’이라는
소설에 대한 꿈은 물론 변함없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 또한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을. 그러나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건 있다. 이상하게도 원하는 것을
일임이 틀림없다. 어떻게 꿈이 단 하나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꿈이 여러 개라고 해서 그 꿈들을
누르는 대신 풍요롭고 안정적인 생활을 얻었던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좇기 위한 힘을 그 꿈의 개수만큼 분할해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신기할 정도로 덜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전에 '나'라는 사람을 똑바로
더 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뜻이니까. 나는 아직 내가 갖고 있는 꿈 중
마주할 때 느꼈던 그 공포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롭다. 그래서 난 자신 있게
하나를 이룬 정도의 상태일 것이다. 그래도 그 고뇌의 시간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이런 글을 적어보았다. 가장 최근, 職業(직업)을 버리고
‘宅業(덕업)’을 ‘德業(덕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읽고 용기를 얻어 누군가 덕업일치를 선언한다면 나는 물론 발뺌이라는 것을 할
宅業(덕업)을 선택한 나의 좌표는 이렇다.
생각이다. 명심해라, 나는 절대 당신을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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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論 총론
덕업일치자 부양론
WORDS : JEE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 좀 더 확실히 말해 평생 하고 싶은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음악 매거진을 만들고, 음악 레이블을 하고 있으며, 각종
취미생활과 직업의 종류가 겹친 '덕업일치'를 이룬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그를
인디 음악에 관해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을 보고 남들은 "우와 멋있네요!"라고
완벽히 돌보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남자 친구였을 때와는 다르게 기본적인
보통 말한다. 사실 그때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붙잡고 "속 터져요, 속
희생이 따르니 '부양'이라고 해두자.
터져."라고 사정을 털어놓고 싶지만, 그래 봤자 오히려 내가 안 되어 보일까 봐 괜한 자존심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런데 최근 남편이 음악 관련 분야의 회사에
사실 나 역시 완전한 '덕업일치'의 삶을 잠깐 살아본 적이 있다. 처음엔 몰랐지만
취직해 직업이 하나 더 늘었다. 그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넓히자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회의감이란 새로운 문제를
덕업일치를 지향하면서도 경제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안겨주었고, 페스티벌 여행과 같이 포기할 수 없는 취미생활은 일 때문에 맘 편하게
다른 경우지만 나 또한 비슷하다. 늘 직업에 얽매여 취미생활에 많은 제약이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입장에서 진정한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가장 가까운
따르는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늘 스트레스였는데, 욕심과 마음을 비우기
사람인 남편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시작하니 좀 더 편하게 현실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써 깨닫게 되었다.
일단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로 수입을 창출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더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고, 능률과 에너지는 높고 충만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깨달은 건 결혼
최근 쭉 펴진 남편의 어깨를 보니 '덕업일치'만큼 행복에 본질적으로 닿아있는
후 얼마 되지 않아서다. 남편은 경제적인 개념이 너무 약한 사람이었다. 그가 현실을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도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개인마다
배제한 채 좋아하는 일을 무작정 좇기만 하는 건 가족에게 너무 잔인한 선택일 테다.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이번 주제와 딱 맞는
상대방도 덕업일치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상태라면 다행이지만, 생계를 위해 하기
삶을 살고 있는 한 남자를 ‘부양’하는 이의 마음에 담아두었던 솔직한 일기쯤으로
싫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처지라면 질투심뿐만 아니라 한계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생각해주면 좋겠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생기는 책임감을 떠나 동반자로서도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건 P.S. 남편, 올여름 록 페스티벌 혼자 가기만 해봐!!!
충분히 힘들다는 걸 말하고 싶다.
Case study: 직업과 취미의 적절한 균형에 관한 실제 사례
나는 지금 내 직업에 만족한다. * 대상 : 엘리펀트슈 에디터들
WORDS : 맹선호
Case 1. Y씨(32세)는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꿈이었고, 결국 만화가가 되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갖고 있는 그는 자신의 직업 모든 점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게임 할 수 있을 때 게임 할 수 있을뿐더러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밴드 활동도 짬짬이 할 수 있다. 단점을 굳이 찾자면 불규칙한 수입이지만, 많이 벌 때는 또 많이 버니까 괜찮다. 만화가란 직업엔 정년퇴직이 없다는 점도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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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슈 대표의 답변 모두 나가주세요. 혼자있고 싶어요.
부러운 부분이다. Y씨가 말하길 자신에게 ‘커리어는 쌓일 뿐’이란다. Case 2. 서른의 나이에 지금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페스티벌 기획자 H씨(34세)는 그전까지 같은 일을 3년 넘게 지속한 적이 없었다. 첫 페스티벌에서는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일하느라 보지 못하는 서러움에 눈물 흘렸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밴드가 공연하는 페스티벌을 자신이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눈물 흘린다. 벌써 4년째 페스티벌 기획을 하고 있는 그는 이제 일하면서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가 출연을 기대하는 멋진 페스티벌을 만드는 데 집중할 뿐이다. H씨는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가?
가지게 되었기에 더러운 자신의 성질을 조절하며 이렇게 꾸준히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WORDS : 장은석
생각한다.
남고를 다니던 학생이 있었다. 그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대유행이었고, 그는 그 게임에 꽤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 학교
Case 3. J씨(29세)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전공인 경영학과 관련된 마케팅이나
내에서는 상대할 자가 없었고, 주변 학교와의 내기에서도 진 적이 거의 없었다. 온라인에서 열린 공식, 비공식 대회에서도
홍보 쪽 일도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까 고심하다 회사에 다니며
곧잘 우승하곤 했다. 수능이 끝나고 더 열심히 스타크래프트에 매진하던 중 게임 속 메시지로 프로 게임단에 테스트를
디제이는 취미로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디제이 분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생을
받으러 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제의를 한 게임단은 당시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이 소속된 최고의 팀 <IS
걸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과 경쟁했을 때 이길 수 있을까란 현실적인 생각도
프로게임단>이었다. 그는 단순한 농담으로 여겼으나, 놀랍게도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해
빼놓지 않았다. 지금은 디제이 일도 자리를 잡아 매달 3, 4건씩 스케쥴이 잡히고 있고,
사이버 전사가 되었다. 그가 잘하고 또 좋아하는 게임이 업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집에서 온종일 게임을 하던 때와
작업실에서 주말마다 개인 레슨도 하고 있다. J씨는 대기업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똑같이 합숙소에서 온종일 게임을 했을 뿐인데 돈을 받았다.
담당하기 때문에 내부 직원들을 많이 만나는데 디제이를 한다는 사실이 젊은 직원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꽤 길었던 훈련을 마치고 TV 출연을 위한 예선 경기를 하러 PC방으로 갔다. 농구선수들이 입는 기나긴 롱 패딩 코트를
Case 4.직업이 의사인 K씨(35세)는 환자가 아닌 이상은 병원보다 공연장에서 마주치는
입고 갔었는데, 등에 <IS>마크를 달고 있으니 이목이 그에게만 집중됐다. 그가 몸을 풀 때부터 그의 뒤에는 수많은
것이 더 쉬운 사람이다. 십 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노력했고,
사람이 구경하고 있었는데, 타이거 우즈 주변에 몰린 갤러리들, 딱 고 정도의 인파가 모였다. 경기가 시작됐고, 그들은
이제는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돈이 없어 내한공연을 남의 떡처럼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평을 하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귀가 밝았던 그는 게임이 아닌 구경꾼들의 대화에 더 몰입한 결과
쳐다봐야 했던 대학 시절에 비해 지금은 공연이 있으면 어떤 제약도 없이 갈 수 있다.
예선전에서 떨어졌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이유로 예선에서 떨어지자, 임요환의 스파링 상대로 좌천당했고, 그리 긴
지금 K씨의 꿈은 그냥 지금 정도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발로 게임단을 나왔다. 업이었던 게임이 다시 취미가 되었고, 그는 그렇게 군대에 갔다.
것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때그때 생기는 욕망을 누르지
그리고 군대에서 접대 스타의 달인이 되었다. 그곳이 그의 무대였다.
않고 살 수 있는 만족스러운 삶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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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WORDS : 지은 / PHOTOS : 권은선
vol.2 음악을 듣는 곳 음악을 어디에서 듣나요, 이 질문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질문도 드물다. 이상하게도 ‘어떤 음악을 좋아해요?’라는 질문과 혼동하게 되며, 어떤 사이트를 이용해 음악을 감상하는지 정보 공유를 부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묻고 싶은 건 당신이 어떤 ‘곳’에서 가장 편안하게 음악을 듣는 지이다. 그런 장소에 대한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던 찰나,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의 기억들을 음악이 끄집어내 준다고 말하는 이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게다가 그 신비로운 순간이 모두 자신의 방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니 묻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카메라 든 여자애 오민주 (여/25세/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스타일이 남다른’ 방송국의 조연출로 성실히 일하고 있음) 핀란드에서 오민주는 ‘뛰이또 욜라 온 까메라’라고 불렸다. 직역하면 ‘카메라를 든 여자애’. '안 친한 애들만 저를 그렇게 불렀어요.'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어디를 가든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녀는 분명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 터였다. 사람들 사이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늘 궁금해했던 그녀는 현재 핀란드가 아닌 서울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전히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고 눈은 사물의 움직임을 좇았지만, 요즘의 그녀는 최신식의 복장과 시즌마다 쏟아져 나오는 화장품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자신과 한 번도 어울린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을 찍으며 그녀는 때로 외로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많이 성장했던 시절의 음악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어쩌면 그 힘으로 그녀는 자신만의 시선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꾸준히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내음, 촉감이 되살아난다고 말하던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의 몇 구절을 흥얼대며 불러줬다.
보통 몇 시쯤 퇴근하나요. 오늘처럼 한가할 때는 7시 정도요. 평소에는요. 퇴근이라는 게 없죠. 바쁠 때는 보통 편집실에서 밤을 새우고, 낮 2시쯤에 씻으러 잠깐 집에 들러요. 그러다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가다보면 신촌 거리를 지나게 되는데요, 거기 캠퍼스들이 많잖아요. 꾸미고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렇게 화사할수가 없더라고요. 요즘엔 그게 부러워요. 얼마 전까지 민주 씨도 그랬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때는 그게 좋은 거라는 걸 몰랐어요. 그때가 그립네요. 요즘은. 졸업한 지 얼마나 되었는데요.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다 보니 코스모스 졸업을 했어요. 이제 한 일 년쯤 되었네요. 그야말로 사회 초년생이군요. 그렇죠. 게다가 전 방송일을 해서 더 바쁘다 보니 ‘초년생’이라는 말이 더 확 와 닿네요. 저는 어쨌든 조연출로 일하고 있고 제 주 업무는 ‘고생’이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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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작업 하는 분의 방이어서 그런가요. 카메라가 먼저 눈에 띄네요. 2009년에 산 카메라에요. 신방과여서 영상을 만드는 일을 많이 했었고, 그 작업들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갈수록 촬영이라는 게 재미있어져서 제대로 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를 사야겠다 싶었죠. 그 길로 면세점에서 이 카메라를 사서 핀란드로 떠났죠. 일 년 동안 핀란드에서 지냈던 흔적이 여기에 다 담겨있어요. 그래서 그때 제 별명이 ‘뛰이또 욜라 온 까메라Tyttö jolla on kameraa’였어요. 직역하면 ‘카메라를 든 여자애’ 정도가 되겠네요. 어디를 가던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거든요. 그 학교에 전교생이 200명 남짓이었는데 ‘카메라 든 여자애’ 하면 다 알 정도였으니까요. 핀란드에서는 주로 어떻게 지냈어요? '비즈니스 인터네셔널'이라는 전공으로 공부하며 지냈어요. 사실 비즈니스 스쿨인지도 모르고 갔어요. 그냥 핀란드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핀란드에 교환학생을 지원한건데 가보니 비즈니스 스쿨인거에요. 그래서 일 년간 잘 놀았죠. (웃음) 왜 굳이 핀란드여야 했나요. 영화 <렛미인 Let me in> 때문에요. 북유럽이 배경인데 주인공 남자애가 속눈썹이 엄청 예쁘더라고요. 얼굴도 하얗고. 그 모든 게 아름다워서요. 근데 막상 갔더니 너무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음악을 거의 못 들었어요. 예전에는 버스 탈 때, 학교 갈 때, 그러니까 길에서 있는 동안은 항상 음악을 들었죠. 그러다가 요즘에서야 다시 음악을 듣고 있어요. 새벽에 자기 전에 좋은 음악을 찾아보기도 하고 혼자 끼적이거나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들어요. 밖에 있었던 음악이 이젠 제 방으로 들어온 거죠.”
The Room compilation vol.1 “음악과 함께 영상의 감동까지 만끽할 수 있는 곡들로 꼽아봤어요. 뮤직비디오나 공연 실황에서 음악 이상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곡들이죠.” ●
Pippilotti rist – I’m a victim of this 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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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mical brothers - sw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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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goodbye crue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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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 - curiosity k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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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la tango - you can have it all
춥더라고요. (웃음) 도착한 첫날 잘못 왔다 싶었죠. 날씨가 영하 35도 이러니까요.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보드카로요. 거긴 보드카를 냉동실에 넣었다가 먹어요. 잔에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보드카가 별미죠. 한국이랑 똑같이 앱솔루트도 마셨고, 핀란디아라는현지 술도 좋아했어요. 핀란드를 떠날 때 아쉽진 않았나요. 친구들이 폴라로이드 사진에 편지를 써서 줬었죠. 제가 거기선 즉석카메라의 아이콘이었거든요. 한국에서 즉석카메라를 가져갔었는데 그것 때문에 제가 핀란드에서 '신' 노릇을 했죠. 그 친구들이 즉석카메라를 잘 모르더라고요. 사진을 찍으면 바로 사진이 나오는 그 광경을 보고 박수치며 신기해하는 애들을 보며 제가 되려 어리둥절했을 정도로요. 그래서 클럽 갈 때 이 즉석 카메라도 들고 갔죠. 주목받으려고요. (웃음) 어쨌건 그 편지들은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어요. 기타가 두 대나 있네요. 연주할 시간이 있긴 해요? 이 기타들이랑 공연을 세 번 정도 했어요. 당시 학교를 대표하는 밴드는 ‘ 소나기 ’ 라는 대형 밴드였는데 전 그냥 친구들끼리 작게 하던 ‘똘끼’라는 밴드에 있었죠. 포지션은 '세컨드 기타'였지만 그냥 코드만 치는 수준이었죠. 저 빼고는 다 잘했어요. 전 그냥 친해서 있었던 거고요. 나머지 멤버들은 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려고 했던 애들이었으니까요. SSS라는 밴드를 하는 친구도 있고. 밤섬해적단에 기타로 들어간 애도 있죠. 친구들처럼 음악을 하고 싶진 않았나요. 나름 깨알같이 코드를 따서 혼자 연습하려고 메모해놓기도 했었어요. 아, 핀란드에 있을 때 자비에르라고, 저를 짝사랑하던 (웃음) 프랑스 남자애가 있었는데요. 걔가 통기타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기타 치는 걸 좋아하는 걸 알고는 프랑스로 돌아갈 때 자기 기타를 저한테 선물하고 갔어요. 여기 있는 기타는 아니고, 거기 두고 왔어요. 그 기타까지 있었으면 기타가 세 대였겠네요. 그 기타로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놀 때 요긴하게 썼죠. 한국 노래 불러주고요. 그쪽 사람들은 한국의 어떤 노래들에 관심을 보였나요. 제 친구들은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를 좋아했어요. 심지어 다들 가사도 외워서 술 마시면 다같이 따라부르기도 했어요.
그럼 요즘엔 뭐 들어요. 허스키 레스큐Husky Rescue. 핀란드에 있을 때를 떠올리면서 들어요. 특히 ‘Blueberry Tree 1, 2, 3’을 연달아 들을 때가 그렇죠. 그들이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자신들의 음악을 ‘ 긴 겨울이 지나고 처음 비치는 햇살 같은 음악. 초록색 풀 위로 쌓인 눈송이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요. 아, 핀란드는 초록색 풀이 있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하거든요. 싱그럽겠네요. 그렇죠. 핀란드는 사실 제3자가 볼 땐, 특히 한국에서 볼 때는 그저 예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겨울이 무척 긴 나라였어요. 굉장히 절망적이에요. 밤이 너무 길고 해도 안 들어요. 해가 낮 두 시에 저물죠. 낮 두 시요. 항상 어두컴컴하고 우울해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되요.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많고요. 그렇게 긴 겨울을 다 지내고 처음 봄을 맞이했을 때, 그 기분을 제가 기억해요. 이들이 직접 말한 것처럼,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그 봄이 생각나더라고요. 우리나라 노래는 어떤 걸 들어요? 최근에는 송창식 씨의 곡들을 많이 들어요. 얼마 전 홍대 곱창전골에 놀러 갔을 때 거기서 흘러나오는 7080 분위기의 곡들이 문득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래서 근처 레코드점에 들어가서 송창식 앨범을 사왔죠.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송창식 씨의 곡은 ‘나의 낡은 기타 이야기’인데 그건 2집에 수록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2집을 사려고 했는데 거기 아저씨가 1집을 사야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1집을 샀어요. (웃음) 요즘은 뭐에 관심이 있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더 로드 The Road>랑 같이 읽고 있어요. 제가 ‘ 재난 ’ 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서요. 이를테면 영화 <해프닝 Happening> 있잖아요. 거기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죠. 티저에도 나오는 장면인데, 왜, 건물에서 사람들이 팍팍 떨어지는 모습이요. 그게 예뻐서요. 얼마 전 둠스데이가 조용히 지나간 게 아쉬웠겠어요. 아니 뭐,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니에요. (웃음) 앞으로 만들 다큐멘터리에 넣고 싶은 음악이 무엇일지 궁금해요. 아마 어떤 주제냐에 따라 다르겠죠. 보통 음악 작업은 모든 게 다 끝난 다음에 진짜 편안하게 하는 작업이거든요. 그래서 전 회사 동료 중에 음악 작업하는 분들이 제일 부럽기도 해요. 몸을 쓰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해주고 그 결과물을 편안히 앉아서 보면서 영상에 삽입할 음악을 고르잖아요.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웃음) 그 행복한 작업을 본인이 한다고 생각해봐요. 그런 걸 해보고 싶긴 했었어요. 역으로 노래를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영상을 만드는 작업이요. 어떤 노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짓는 여러 가지 표정들을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고 싶네요. 짜증스럽거나 즐겁거나, 혹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런 여러 가지 표정들을 담은 영상요. 근사한 음악만 찾아낸다면 꽤 멋지지 않을까요.
“프로젝트 회의가 끝나고 노을을 보겠다며 지붕 위로 깔깔대며 올라갔어요. 학교 학생들이 살고 있던 MOAS apartment에서 보는 노을은 유난히 예뻤거든요.”
삼각대는 굉장히 무거운 장비 중 하나죠. 특히 처음 촬영을 했을 때에는 학교에서 빌린 엄청나게 큰 삼각대를 백팩에 메고 다녔죠. 그걸 보다 못한 아버지가 이 삼각대를 주셨어요. 처음에는 ‘이런 걸로 어떻게 촬영해’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리도 안 튼튼하고 너무 작잖아요. 근데 제 카메라에는 되려 이 사이즈가 맞더라고요. 이게 되게 유용한 게 다리를 이렇게 모으면 세워서도 찍을 수 있고, 흔들면서 찍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찍다 보니 몰래 찍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특히 지하철 같은 데에선 사람들이 카메라에 찍히는 걸 되게 싫어해요. 그래서 안 찍는 척하면서 찍어야 했죠. 그럴 때 장비가 작으면 좋잖아요. 이 삼각대를 접어 최대한 작게 만든 뒤 촬영을 했죠.
“파티 다음 날 제 방으로 놀러 온 롯데-원래는 샬롯데 우흐수라마트인데 전 편하게 롯데라고 불렀죠-에요. 오자마자 한국 만화책 열 권을 앉은 자리에서 독파했어요. 처음에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구분 안 되는 그림체라며 투덜대다가 점점 조용해지더니 혼자 킥킥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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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슈 대표 모두가 오타쿠라고 하는데 자신은 평범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엘리펀트슈 디자이너 권력 피라미드 꼭짓점에 위치, 어느 누구에게도 수평의 위치조차 허락하지 않음
엘리펀트슈 파운더이자 에디터 뮤지션, 미디어 아티스트, 레이블 대표, 음반 유통사 부장, 한 집안의 가장, 외계인, 만물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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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n’Roll Pilgrimage 영국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로큰롤 성지순례
WORDS, PHOTOS : Julian Kim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로망이 몇 가지 있다. 모든 남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절반 이상의 남자들이 애타게 원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 모터사이클 ’ 은 단연 가장 강렬한 로망 중 하나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Dialos De Motocicleta, 2004)>를 봤던 사람이라면 낡아빠진 베스파를 몰고 남미대륙을 따라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발자취를 좇고 싶어할 것이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는 체 게바라의 말처럼 언젠가는 자신을 세상에 던져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며 또 다른 나와 조우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한 이유는 21세기 로큰롤과 바이커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클래식 로커들과 그들의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일단 로큰롤 음악 한 곡 듣고 시작해보자.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유스 서브컬쳐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1950년대의 영국은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었다. 젊은이들에게 요구됐던 강제징용은 사라졌고, 배급 제도도 끝이 났다. 대도시에서는 간선도로 건설 등의 새로운 인프라 구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영국 경제의 호황과 함께 주머니 사정이 조금은 나아진 젊은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미국에서 넘어온 새로운 음악과 영화였다. ‘로커스(Rockers)’-혹은 레더 보이스(The leather boys), 톤-업 보이스(Tone-up boys), 그리져(Greaser)-는 모터사이클과 로큰롤
경우가 많았으며, 두 그룹 간의 차이는 '어떤 걸 타느냐'와 '음악 취향 '
60년대 빌 신부가 해크니 윅을 떠나 런던 패딩턴의 교회로 옮겨오게
음악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시작된 서브 컬쳐였다. 젊은 로커들은 ‘진
정도였다) 길 위의 이 두 반항아 집단은 둘 다 그다지 좋은 평판을 얻지
되었을 때는 수많은 로커들이 바이크를 타고 그를 따라 패딩턴으로
빈센트(Gene Vincent)’,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빌 헤일리(Bill Haley)’, ‘척 베리(Chuck Berry)’, ‘에디 코크란(Eddie Cochran)’,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 같은 50년대 로큰롤 -엄밀히 따지면
못했다. 1960년대 초반 당시 영국 신문에는 연일 로커스와 모즈의
함께 오는 우정, 혹은 존경심을 보여줬는데, 패딩턴 교회는 해크니
충돌에 관한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나왔는데, 1964년 부활절 주말,
윅보다 규모가 훨씬 컸음에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로커, 바이커들로
브라이튼(Brighton), 블랙풀(Blackpool), 마게이트(Margate)에서
항상 붐볐다. 빌 신부 혼자서 클럽을 운영하기에는 다소 무리였기에
‘로커빌리(Rock-a-billy)’- 음악에 심취하였으며, <위험한 질주(The Wild One, 1953)>의 말론 브란도,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벌어진 모즈와 로커스 간의 싸움은 영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었다.
그라함 휴렛(Graham Hullett), 마이크 ‘카우보이’ 쿡(Mike Cook)
이 사건과 함께 영국 언론들은 모즈와 로커스 젊은이들을 향해 ‘모럴
신부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클럽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 빌 신부는 젊은
1955)>의 제임스 딘(James Dean) 같은 스크린의 반항아들에 열광하며
패닉(moral panic)’이라 칭했다.
친구들의 고민을 종종 들어주기도 했었다. 꿈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그들만의 문화와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물론 록커 이전에 그들의
영국 미디어를 통해 부정적으로 비쳤던 로커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그들 스스로 인생의 목표와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선배격인 ‘테디 보이스 & 걸스(Teddy boys& girls)’가 있었겠지만, 그건
이끌어 주었으며, 중세 기사 이야기를 들려주어 도덕, 관용, 예절,
다음에 기회에 소개하겠다) 그들의 스타일을 이야기하자면 포마드를
그들이 ‘질 나쁜 친구들’만은 아니었나 보다.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했던 이 반항아들은 어느 날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발라 넘긴 퐁파두르 헤어 스타일, 라이더 재킷, 리바이스와 랭글러
그는 바로 빌 셔골드(Bill Shergold) 신부다. 런던 해크니 윅(Hackney
예배를 봐주기도 하는가 하면,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바이크에 축복의
Wick)의 한 교회에 부임한 그는 평소 바이크를 즐겨타며 출퇴근했던
기도를 해주기도 하셨단다). 당시 수많은 클럽 멤버들은 좋은 일도
신부님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로커스라는 젊은이들은 거칠고
많이 했는데, 주로 동네 아이들을 모터사이클 옆 조수석에 태우고
이 반항기 넘치는 영국의 로커들은 BSA, 트라이엄프(Triumph),
과격하지만, 그냥 모터사이클, 로큰롤 음악, 친구와 어울리기를
귀가시키거나 병원에서 급히 혈액을 운반하는 일이 생기면 자원봉사는
노턴(Norton), 로얄 엔필드(Royal Enfield) 같은 영국제 모터사이클을
좋아하고 그들 본모습 그대로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원하는 순수하고
물론 각 마을의 자선사업에도 적극 동참했다. 어떻게 보면 교회가
무척 좋아했다. 1950년대에는 영국의 바이크가 전 세계에서
착한 영국 젊은이들이었다. 그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했던 로커들을
로커들을 키운셈 이다. (우리나라 뮤지션들도 교회에서 다 키운다는
위상이 가장 높았기에 이 바이크를 탄다는 건 경제적으로 어느
위해 1959년, ‘59’라는 모터사이클 클럽 만들어 그들이 함께 모여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그냥 헛소리 한번 해 봤다) 이렇게 빌
정도 부유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겉모습은 가죽 재킷에 반항기 어린
어울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처음 그가 59 클럽을 로커들에게
셔골드 신부는 길 위 반항아들의 정신적 멘토이자 아버지였고,
표정을 한 문제아였지만, 그들은 그저 젊은 혈기를 검정 가죽 재킷과
알리기 위해 에이스 카페를 찾아갔을 때 그는 그들에게 가죽 재킷이나
친구이자 동료 바이커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으며, 그의 정신은 세대에 걸쳐 계승되고 있다.
청바지, 파일럿 고글, 스카프, 모터사이클 부츠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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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감 같은 기사도 정신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다(로커들을 위해
모터사이클로 표현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들은 에이스 카페(Ace
바지를 빼앗기거나 그의 애마가 강물에 던져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Café), 첼시 브릿지 티 스톨(Chelsea Bridge tea stall), 에이스 오브
각오를 단단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스페이즈(Ace of Spades) 같은 카페에서 주로 어울렸으며, 쥬크박스에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신부에게 호감을 느꼈다. 권위적이지 않으며
코인을 넣고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하고는, 그 곡이 끝나기 전에 정해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신부가 굉장히 ‘록킹’하게 느꼈던
장소를 바이크를 타고 다녀오는 내기를 즐겼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것이다. 그들은 서로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게 되었다. 빌 셔골드 신부와
‘카페 레이서(Café racer)’다. 그들은 바이크의 경량화를 위해 필요없는 부품을 다 떼어내고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도록 개조해 타고 다녔다.
59 클럽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서, 59 클럽은 이내 영국 로커들의
1960년대가 되자 모즈(Mods)와 로커 간의 경계는 더욱 명확해졌다.
하면 59 클럽 오프닝 때에는 당대의 스타였던 클리프 리차드(Cliff
성지가 되었으며 후에 59 클럽의 멤버는 2만 명이 넘게 된다. 그런가
모즈는 그들 자신이 로커들보다 더욱 스타일리쉬하고 세련됐다고
Richard),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를 비롯하여 영국
생각한 반면, 로커들은 모즈가 계집애들같이 스타일리쉬한 척하는
왕실의 마가렛 공주(Princess Magaret)가 직접 참석하여 젊은이들의
애들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모즈족와 로커족이 서로 친구 사이인
문화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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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n Kim’s London Shuffle 1. The Sabrejets - Rockin’ at the Ace Cafe 2. The Shadows - 36-24-36 3. Rolling Stones - Doom and Gloom 4. Brian Setzer Orchestra - Rumble in Brighton 5. Black Rebel Motorcycle Club - Whatever 6. Queens of the Stone Age - Go with the Flow
3-5 Whitfield Street, London, W1T 2SA www.lewisleathers.com 루이스 레더는 1892년 런던 그레이트 포틀랜드(Great Portland) 거리에 처음 문을 열었고, 120년이 넘도록 가죽제품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커 재킷 브랜드다. 주로 항공, 모터사이클 재킷,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부츠와 액세서리를 만들어 오고 있는 곳으로 꼼꼼한 사이즈 측정, 정밀한 패턴 작업, 재단과 튼튼한 봉제 등의 모든 과정이 숙련된 장인의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처음 신사 양품점으로 시작했던 루이스 레더가 본격적으로 가죽제품 제조에 착수한 것은 1926년 급성장하기 시작한 항공 산업의 수요가 발생한 때부터였다. 보온성이 뛰어나며 호흡할 수 있는 기능 때문에 극도의 추위 속을 버텨야 했던 로얄 에어 포스(Royal Air Force, RAF) 파일럿들이 루이스 레더의 주된 고객이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영국의 모터사이클 산업이 발전하면서 레이싱 슈트를 주문 제작하였다. 1960년대 영국 로커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루이스 레더는 로큰롤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이다. 라이더 가죽 재킷 하면 영국에서는 루이스 레더, 미국에서는 쇼트(Schott)라고 할 정도로 로커, 혹은 로큰롤 스타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루이스 레더를 찾았던 이들을 한번 나열해보자면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부터 존 레논(John Lenno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믹 재거(Sir Mick Jagger), 루 리드(Lou Reed), 라몬스(Ramones), 클래쉬(The Clash),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레이저라이트(Razorlight), 하이브스(The Hives), 리차드 훌리(Richard Hawley), 슬래쉬(Slash), 이기 팝(Iggy Pop), 론 우드(Ron Wood)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가 루이스 레더 가죽 재킷을 입고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 올라 비틀즈의 ‘Come Together’를 커버하기도 했다. 아래 사진 속 주인공은 루이스 레더의 주인이자 로커인 데렉 해리스(Derek Harris)다. 필자가 루이스 레더를 좋아한다고 하니 정말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던 그는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바로 데님 재킷을 집어던지고 ‘도미네이터(dominator)’ 모델로 갈아입은 후 포즈를 취했다. 또한, 필자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밴드 더 짐 존스 리뷰(The Jim Jones Revue)와도 친구사이란다. 가죽 재킷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사이즈, 가죽의 색과 소재, 자켓 안의 퀼팅 모두 커스텀 제작할 수 있고, 기본 베이스로 할 수 있는 가죽 재킷 디자인도 28개 정도 된다.
38 Shorts Gardens, London, WC2 H9AB www.crazypigdesigns.com 프랑스 남부 마을에서 록 기타리스트를 꿈꾸다 펜더 기타 한 대와 프랑스 지도만 달랑 들고 런던으로 상경했다는 주인. 런던으로 넘어와 기타리스트 오디션을 봤지만, 매번 떨어지고 쥬얼리 숍에서 일하다 본업과 부업이 뒤바뀌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일하던 숍을 그만둔 후 로커들을 위한 액세서리 숍 크레이지 피그를 직접 시작했다. 이곳을 찾았던 유명인들로는 조니 뎁, 헬레나 본험 카터(Helena Bonham Carter), 비틀즈(Beatles), 롤링 스톤즈가 있다. 설명이 더 필요한가.
10 Ganton Street, London, W1F 7QR www.thegreatfroglondon.com 1972년부터 지금까지 쭉 로커와 바이커를 위한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를 만들어 오고 있는 곳. 패밀리 비지니스로 시작한 이곳은 런던 매장을 중심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매장을 두고 있으며 메탈리카(Metallica),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조니 뎁(Johnny Depp),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오아시스(Oasis), 더 후(The Who),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피트 도허티(Pete Doherty), 레이디 가가(Lady Gaga) 같은 스타들이 고객이다. 로커들을 위한 가게답게 해골 장식을 비롯한 특이한 디자인의 액세서리가 많다.
Julian Kim이 소개하는 런던의 숨겨진 맛집
151 Sydney Street, London, SW3 6NT 런던 첼시 파머스 마켓(London Chelsea Farmer’s Market) 근처에 자리한 조그마한 꽃가게 뒤편에는 건물들 사이에 숨겨진 뜰이 하나 있다. 13년 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이곳은 길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 탓에 동네주민이 아니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숨겨진 맛집이다. 런던에서도 부자 동네로 알려진 첼시의 이 너무나도 소박하고 이국적인 곳에서 날씨 좋은 날 야외 테라스나 포장마차를 연상시키는 카운터 앞에 앉아 락사(Laksa)나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면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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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슨 플라잉V 1교시 : 일렉기타에 관한 기초지식 WORDS : JUNE
세상에는 물건이 참 많다. 그리고 그에 얽힌 얘기도 많다. 만물 Ph.D. 과정을 수료한 김박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기타는 PRS라는 브랜드의 스탠다드24 시리즈 중에서 97년도에 생산된 텐탑 모델 중 골드탑이다. 악기를 다루지 않는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기에 간단히 설명하면 PRS는 기타를 만드는 회사 이름으로 다른 유명한 회사로는 깁슨, 펜더, 그레치, 아이바네즈 등이 있다. 스탠다드24는 시리즈 이름으로 깁슨이나 팬더로 말하자면 레스폴, SG, 스트라토캐스터, 텔레캐스트 등에 해당하는 모델명이다. 텐탑이란 것은 기타의 표면처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대한 표현인데 회사마다 방식이 다르지만 PRS는 열 가지 등급을 나눠 제일 좋은 등급을 텐탑이라고 표기하고, 재료나 컬러에 따라 메이플 탑, 골드탑 등으로 부르고 있다. 거기에 추가로 생산연도는 꽤 중요한 데이터로 PRS의 경우 2006년도부터 공장에서 기타가 대량생산되었기 때문에 1997년도부터 2004년에 소량 수제로 생산된 제품에 프리미엄 가격이 형성되어있다. 자, 이해가 안 되었다면 두어 번 더 읽어보고 2교시로 넘어가자. 오늘 공부할 기타는 회사명은 깁슨, 모델명은 플라잉V인 일렉기타 되겠다.
2교시 : 깁슨 SG에서 깁슨 플라잉V로 "내가 원래 깁슨 SG를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거든. 근데 오늘 낙원상가에서 골드탑 SG를 본 거야. 진짜 죽이더라." "그래? 네가 기타 얘기하니까 뭐 하나 보여줄게." 사우나를 마치고 필이 꽂힌 기타에 관해 얘기를 하던 중 차 뒷자리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주는 데이브레이크의 이원석. "나는 팬더 재규어 하나 질렀어." "오, 완전 예쁜데! 어디서 샀는데?" 그렇게 해서 둘은 사우나를 마치고 커피숍에 들어가 기타 판매 사이트를 뒤적거리게 되었고, 깁슨 SG 골드탑을 찾던 중 갑자기 나도 모르게 다른 기타에 더 심하게 꽂히게 되었다. "야! 깁슨 SG보다 깁슨 플라잉V가 더 멋있네!!!"
3교시 : 깁슨 플라잉V 개론 친구 덕분에 사고 싶은 기타가 플라잉V로 바뀐 나는 독특한 모양의 이 기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가지고 있는 PRS를 사기 전 대학교 때 치던 기타가 깁슨 레스폴이었는데 레스폴을 구입할 때 기타 매장에서 둘 중 하나라며 고민했던 모델이 플라잉V였다. 그 당시에는 앰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앉아서 치기 불편한 특유의 모양 탓에 선택에서 제외됐었다. 거기다 난생처음 갖는 수입 기타인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디자인을 어린 나이에 택하기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었다. 마치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처럼 생긴 이 기타는 1958년 깁슨의 테드 메카티에 의해 세상에 선보이기 전인 1957년에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졌고, 재료로 사용된 코리나 목재에서 유래하여 '깁슨 플라잉V 코리나'라고 불렸다. 1957년 6월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디자인이 실제 제품화가 되어 나온 건 1958년이었고, 이것이 깁슨 플라잉V의 시작이었다. 50년대 말과 60년대 초 발매 당시에는 주력 모델인 레스폴에 비하면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앞서 간 디자인 때문이었다.
4교시 : 깁슨 플라잉V 심화 학습 별 반응 없던 이 기타는 60년대 중반 지미 헨드릭스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당시 그를 비롯한 개성 넘치는 연주자들이 자신과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깁슨 플라잉 V를 들고 공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이미지가 강해 지미 헨드릭스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로 대표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펜더보다 깁슨 플라잉V를 훨씬 더 많이 애용하였다. 파격적인 뮤지션이었던 지미 헨드릭스와 깁슨 플라잉V는 최고의 궁합이었고 판매에도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67년도에는 처음으로 리이슈(reissue) 모델이 출시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깁슨의 주력모델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참고로 1958년 오리지널 모델의 가격은 1억 하고도 5천만 원이 넘고, 1957년 프로토타입은 가격을 환산할 수 없는 수준이다. 1971년에는 첫 번째 리이슈 제품과 전혀 성능 차이 없이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기념한다며 금장 메달 마크를 박아 총 350대만 판매를 한 '깁슨 플라잉V Medallion'이란 모델이 나왔는데, 지금까지도 깁슨을 대표하는 초 레어 아이템으로 콜렉터들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때부터 깁슨은 소량을 생산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의 수제 제작 시스템인 커스텀 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5교시 : 깁슨 플라잉V 활용법 깁슨 플라잉V를 주로 사용했던 뮤지션을 열거하면 지미 헨드릭스, 알버트 킹, 레니 크래비츠, 스콜피온의 마이클 쉥커와 루돌프 쉥커 형제 등이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헤비메틀이나 트래쉬 메틀이 어울릴 것 같은 선입견이 있는 모델이지만 실제로는 앞에서 열거했던 뮤지션들만 보더라도 심하게 헤비한 사운드는 내지 못하는 기타이다. 깁슨 레스폴 모델에서 조금 날카로운 느낌이 드는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진정한 메탈 사운드를 내려면 잭슨(Jackson)이나 딘(Dean)이란 회사의 V형 기타를 사야 한다. 바꿔서 얘기하면 깁슨 플라잉V는 너무 앞서 가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지만, 태어날 때부터 모던함을 추구한 기타였던 것이다.
사진제공 : 깁슨
시대를 뛰어넘는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기타를 어깨에 메고 연주를 시작하자. 바로 지미 헨드릭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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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슈가 좋아합니다 엘슈 에디터들의 천차만별 '좋아요' 컬렉션
이지선 님이 조인성을 다시 봤습니다. 지은 님이 가인을 공유했습니다.
추위가 지겨워질 무렵, 서늘한 얼굴로 조인성이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로 산을 오르고, 후덕해진 미소로 부담스럽게 스테이크 조각을 들이밀던 그가 아니었다. 푸르스름하게 시린 화면 속에서 조인성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까는 순간에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다. 마음에 봄이 온다는 게 이런 거구나! 설렌다. 남자 주인공에게 이만큼 흠뻑 빠지면 여주인공이 질투 날 법도 한데 하필 물오른 미모의 송혜교다. 그녀의 보드라운 뺨은 조인성의 속눈썹만큼 마음을 흔든다. 그냥 뮤직비디오여도 온종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낯설지 않은 드라마다. 원작인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은 몇 번이나 돌려봤고 동명의 영화도 봤다. 그래서 나는 <그 겨울>의 연출진에게 아주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용은 뻔하다. 유행가에서 자주 쓰이는 ‘머니 코드 (K-pop Star에서 박진영이 자주 말하는 그것)’와 다를 바 없다. 거기에 매우 입맛 당기는 수려한 영상미와 노희경 각본으로 요리한다니. 이건 대놓고 팔리는 맛집이다. 많은 사람이 두 주연의 미모와 연기력을 칭찬하는 한편 극의 완성도와 집중력이 끝까지 갈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걱정할 것 없다. 그저 앞으로 몇 주간 조인성과 송혜교의 투 샷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 목 밤은 황홀할 테니까. 그거면 한 시간짜리 드라마의 본전은 뽑은 셈이다.
한때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사랑은 오직 가인의 ‘피어나’ 뮤직 비디오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거야. 전설처럼 전해지는 좋은 민담 같은 거지.”라고. 물론 이 주장을 귀담아들어 준 이는 없었다. 그렇지만 요즘 하나둘씩 “네 말이 맞았어”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 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여전히 없다. 그렇다 해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아이라인만 진하게 그리고 다니는 반도의 흔한 여자사람인 줄 알았더니, ‘피어나’에서의 가인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여성으로 ‘피어났’다. 그저 그녀는 시기를 잘 못 탔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수확의 계절 가을에 ‘피어나’라는 제목의 곡을 갖고 나온 것부터 함정이다. 진부한 공식이라지만 하나 둘씩 무채색의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는 게 거부할 수 없는 가을의 멋인지라 가인의 원색 앙고라 니트도 그 빛을 잃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녀의 다리를 흠모해 갖가지 패턴의 스타킹을 조용히 사 모았던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분명 자신의 또다른 가능성과 함께 자신이 닿을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걸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더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인디펜던트 뮤직을 다루는 매거진 <엘리펀트슈>에 끼적여본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그냥 뭐, 봄이니까. 국내외 인디펜던트 뮤직을 다루어야 할 처지이면서도 요즈음 나의 출퇴근 길 플레이리스트는 가인의 ‘피어나’가 꼭 들어가 있다. 이쯤에서 저 근사한 일러스트를 그려준 아트디렉터 이지선 님의 말을 빌려보자. ”가인의 피어나 뮤직비디오는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워. 봄에 보니 더더욱.” 내 말이 그 말이다. 이런 음악, 저런 음악을 떠나서 그냥, 설레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마저 드는 춘삼월에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설렘이라도 만끽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공유해보고 싶었다, 이거다.
우왕 6 수요일 오후 9시 55분
이쁘다 9 3시간 전 폭풍 마감 중
맹선호 나는 다시 태어나면 송혜교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현빈이랑 결혼해야지! 좋아요 2
장은석 가인이 사랑스럽다하되 설리 아래 아이돌이로다. 좋아요 1
장은석 조인성 코트 내가 입으면 벨보이 되겠지
네 12
지은 엘슈의 남자분들이 저기에 영감받아 멜빵차고 나타나시면 총 쏠 겁니다. 빵야 6
맹선호 님이 비싼 깨달음을 공유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제인 버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에르메스의 버킨 백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관계, 그녀가 찍은 영화, 그녀가 부른 노래보다도 천만 원을 호가하며 한번 사려면 길게는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그 가방이 뭐길래. 제인 버킨을 작년 3월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세기의 아이콘이라는데 까다로우면 어떡하나 긴장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편안하고 상냥했다. 마치 이웃집에 사는 현명하고 친절한 노부인 같은 그녀에게 약간 익숙해지자 당연하게도 그 유명한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껏 보아왔던 그 버킨 백과는 굉장히 달랐다. 에르메스 행사장에서 얌전히 모양이 잡힌 채로 소중하게 사람들 손에 들려있던 그 가방과 분명 같은 것일 텐데 진정한 주인인 그녀의 가방은 셀 수 없이 많은 약 상자와 그녀가 그때그때 끼적이곤 하는 노트로 가득 차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그녀가 지지하는 버마의 민주화 운동의 상징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얼굴부터 뭔가 사연을 하나씩 갖고 있을만한 것들이 주렁주렁 달린 이 가방을 들고 에르메스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경악하던 담당자들의 작은 탄식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가방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찍던 북촌 골목 거친 길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했다. 그녀가 촬영을 위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끌리던 천만 원짜리 가방을 구경하는 건 흥미로웠다.
오~ 7 공연장 대기실에서 장은석 누나, 전 젊어서 더 소중하니 앞으로 자리 양보해 주세요. 커피도 좀 타오시고요. 즐 1
더 흥미로운 이야기는 환갑이 훨씬 지난 그녀가 어떤 젊은이보다도 가볍게 통통거리며 뛰어다녔던 공연이 끝나고 벌어졌다. 이동하기 위해 타려던 자가용 뒷좌석 가운데 자리(보통 체구가 작거나 어린 사람이 타며 사고 시 가장 위험한 자리)를 고집하며 젊디젊은 나와 스타일리스트에게 편한 양 옆자리에 자꾸 앉으라는 거다. 너희는 젊어서 더 소중하기에 더 안전해야 한다며. 어쩌면 평생 에르메스 가방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와의 시간 동안 나는 에르메스 가방 백 개 가진 사람보다 더 갚진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가 1년 만에 다시 공연하러 한국에 온다. 멋진 삶의 태도를 다시 한번 보고 배우기 위해 당연히 공연장에 갈 것이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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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좀 칠해라. 하여간 넌-
어때? 내가 창피해?
( 얘네 싸웠나봐... )
아직도 화났어?
어디 내 여자랑 시시덕거려!
저런 놈들을 다 요렇게 담아서
하하하;; 원래 이런 애는 아니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다버려!!!
날 믿어줘. 제발.
니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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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사라지는 반지
뻥이지롱-
( 내가 비 맞은 것처
지 득템
처럼 연출한 거 모르겠지? )
그렇게 끔찍한데, 왜 안 떠나는데?
너 진짜 짜증난다.
지금 나한테 짜증난댔어?
말은 가라앉을 뿐 뿅!
사라지지 않는다
WORDS : 장은석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글은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쓰면서도 수정을 할 수 있어 실수할 확률이 적은 반면, 말은 순간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져 의도치 않은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말은 줄이는 편이 좋고, 말을 해야 할 때에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본 후에 하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말이 글보다 무서운 것은 말하는 이의 감정이 목소리를 통해 직접 느껴지기 때문이다. 연인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연인은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서 말한 이는 느끼지 못했지만,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었던 말도 있고, 반대로 상처를 주었던 말도 있다. 이는 웬만해서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지만, 가라앉아 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어떤 한마디의 말이 기폭제가 되어 바닥을 강하게 내려치는 순간, 가라앉아 있던 과거의 수많은 말들이 떠오른다. 그 말을 한 상대방의 감정과 그 말을 들었던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실은 채로. 그 상황에서는 누구도 도망칠 수 없을뿐더러 도망쳐서도 안 된다.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 이상 그 관계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떠오른 수많은 말 중에는 행복감을 줬던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갖고 상대방에게 상처가 된 말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그 말로 인해 생긴 상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에서 제대로 된 답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처가 된 말들이 다시금 가라앉기 시작하면, 행복감을 준 말들이 수중을 떠돌다가 그제야 떠오른다. 이를 건져내느냐, 그대로 다시 가라앉게 하느냐의 확률은 상대방의 상처와 대면하고 고민한 시간과 비례한다. 혹시라도 상처가 너무 흉측해 고개를 돌리고 싶을 때면 생각해보자. 내가 내뱉었던 말은 얼마나 더 흉측했는가를.
Property of Sony Music © 2013 Starring: Michael Angelakos, Sophia Bush, and a very fake cat Commissioner: Saul Levitz Passion Pit Management: Rich Cohen Director Rep: Jamie Kohn Rabineau (larkcreative.tv) Production Company: Prettybird (prettybirdus.com) Executive Producer: Candice Ouaknine Head of Production: Tracy Hauser Producer: Braxton Pope Prod Supervisor: Kevin McMhan Assistant Production Supervisor: Drew Adams Director/Editor: Alex and Ben Brewer Post Production 3D Text Animation: Zak Stoltz
( 알면서 속아주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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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07 @ 바다비 전기뱀장어 24아워즈 후후 로큰롤 라디오 WORDS : 지은
요즈음의 씬을 점령하고 있는 밴드들은 어떤 세대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이 숫자로 순번을 매기는 것이니 그 식을 적용해본다면, 4월호 <엘리펀트슈> 릴리즈 파티에서 만날 밴드들은 아마 ‘6세대’ 쯤으로 정의해야 하려나. ‘대체 인디 1세대는 어디서부터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 현재 실정이지만, 시초가 어쨌건 간에 새로운 물결은 순리대로 도래한다. 전기뱀장어, 24아워즈(24hours), 후후(WHOwho), 로큰롤 라디오(Rock’N Roll Radio)도 그 새로운 물결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겠다. 개러지부터 모던록까지. 각자가 추구하는 음악은 제각각이지만, 이 시기의 밴드들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댄서블’한 무언가가 있다. 이전의 세대는 흉내 낼 수 없고 이후의 세대에게는 영감을 줄, 일종의 ‘제스처’라고 해야 할까. 이 모호한 정의가 불만이라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고, 몸으로들 체험해보시길 바란다. 글로만 봐서 뭘 알겠는가. 4월 7일 저녁, 그들이 지나가는 ‘물결’일지 새로운 ‘세대’일지는 바다비에 모일 여러분이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틀린 그림 찾기 : 이 중 여성 뮤지션이 아닌 사람은? WORDS : 장은석, PHOTO : 맹선호
2013년 첫 번째 릴리즈 파티의 부제는 <우먼센스>였다. 당연히 여성 뮤지션만으로 이뤄진 공연을 떠올렸겠지만, 항상 반전을 준비하는 엘리펀트슈는 남성 뮤지션 빅 포니(Big Phony)에게 오프닝 무대를 맡겼다. 언제나 예의 바른 엘슈는 여성을 에스코트할 남성 뮤지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도 따뜻한 그의 공연이 끝난 후부터가 “우먼센스“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도발적인 매력을 보여준 퓨어 킴, 성숙한 여인의 농염함이 느껴지는 사비나 앤 드론즈, 순수하고 귀여운 동생 같은 웨일이 함께 했다. 도발적인 여자, 성숙한 여자, 귀여운 여자, 이 세 가지 카테고리 중 자신의 이상형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번 기획에서 소외된 여성 여러분! <맨즈센스> 제가 꼭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뽑…
정답 : 빅포니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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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 지은
공통점이라고는 남자 사람이라는 것 외에 없을 것 같은 네 팀이 엘리펀트슈 3월호 릴리즈 파티에 모였다. 그것도 ‘청춘의 춘정을 충전한다’라는, 골치아픈 발음의 주제로 말이다. 각기 다른 색깔로 엘리펀트 슈의 릴리즈 파티를 물들여 줄 그들에게 ‘춘정’에 대해 물었다.
전성기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유일한 팀. 신비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부로 입을 열지는 않을 모양. 조문기, 조 까를로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만 알아 둘 것.
음란소년
연남동 덤앤더머
청년들
얼마 전 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첫 정규앨범을 발매한 그는 확실히
연남동 덤앤더머는 작년 12월에 발매한 싱글 <청풍명월>에서는
청년들 스티커를 구매하시면 선물로 청년들 첫 데모 앨범을
변태는 아니다. 호기심이 조금 많을 뿐. 다만 본인이 호기심을
국악, 지난 1월 발매한 싱글 <꽃사슴>에서는 트롯을 접목해 눈길을
가질 만한 곳에만 호기심을 두는 그는 그야말로 나쁜 남자. 열렬히
끌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이러한 평가에 대해 ‘이것을 접목이라고
드립니다’라는 기이한 판매전략을 펼치고 있는 청년들은 현재 클럽 FF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신예 밴드다. 공연 영상으로 처음 접한
구애하던 여자에게 ‘근데 이름이 뭐였더라’라고 말하는 남자이니
말한다면 양심상 사기에 가깝죠.’라고 단호히 말했다. 팀 명처럼,
그들의 모습에서 까도남의 향기를 언뜻 맡았던 것 같은데, 그들은
방심해선 안 된다. 어쨌건, 그의 ‘싴’하고도 끈적한 대화를 주목할 것.
방송에 비춰졌던 모습처럼, 그리고 그들의 히트곡 ‘ 너랑 하고 싶다’처럼, 그들이 그저 ‘웃기는’ 밴드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되려 교회 오빠마냥 훈훈하고 동네 꼬마들처럼 천진 난폭했다.
그의 음악이 바로 이 대화와 같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그들은 단단한 내공과 굵직한 심지를 지닌 팀이니까. 물론 <엘리펀트 슈> 3월호 릴리즈 파티에 서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귀찮게 뭘 자꾸 오라가라…. 죄송합니다. SNS에 끊임없이 올리는 음란한 포스팅은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왜요? 영감을 주시게요? 이리 좀. ‘음란소년’으로 하는 활동과 현실의 음란소년은 어떻게 다른가요. ‘음란소년’을 걷어낸 평소의 생활이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그럼 이리 좀. 좋아하는 AV배우가 궁금합니다. AV가 뭔가요 음란소년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어떤 건가요. 현재 발매된 음반은 향후 음란소년의 음악 행보에서 어떤 지점쯤에 있나요? 어느 커뮤니티에선가 앨범 발표 후에 '자기 전에 들으면 여자라도 몽정할 기세'라는 리플을 봤어요. 앞으로도 계속 지금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란소년이 <엘리펀트슈>의 표지를 장식하게 된다면, 어떤 콘셉트로 촬영하고 싶으신가요. 젖병을 물고 턱받침을 한 채로 사진을 찍고 싶네요. 음란소년은 누구보다 순수하니까요 2013년의 목표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것도 좋고, 아티스트로서도 좋고요. 불감증 퇴치 운동. 음란소년에게 ‘춘정’이란? 단무지 찍어 먹는…아 그건 춘장이구나. <엘리펀트슈>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근데 이름이 뭐였더라.
그렇다고 그들이 웃기지 않다는 말은 또 아니다. 직접 자기소개를 해 보신다면요. 황의준 (보컬/기타, 이하 갈고리): 안녕하세요. 연남동 덤앤더머에서 보컬, 기타를 맡고있는 황의준, 갈고리입니다 니미킴(기타, 이하 니미킴): 연남동 덤앤더머, 내귀에도청장치, 레이니썬 서로 다른 세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니미킴입니다. 연남동 덤앤더머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독자들을 위해 한 곡을 추천해주신다면요? '너랑 하고 싶다' 연남동 덤앤더머 내에서의 외모 순위가 궁금합니다. 니미킴: 어차피 둘 다 못생겼습니다. 순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끼는 여동생을 멤버 중 한 명에게 시집 보내야 한다면, 누구한테 보낼 건가요? 니미킴: 자기가 시집가고 싶은 사람에게 보낼게요. 갈고리: 혼자 살게 해야죠. 좋아하는 AV 배우가 궁금합니다. 갈고리: 솔직히 포르노를 20대부터 즐겨보진 않았습니다. 일본, 중년의 이름 없는 여배우가 좋습니다 니미킴: Nikki Jayne, Rocco Siffredi. <엘리펀트슈> 3월호 릴리즈 파티의 타이틀이 <청춘의 춘정을 충전하라>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남동 덤앤더머에게 ‘춘정’이란? 갈고리: 짐승같은 춘정이겠죠. (암수 서로 정다울 따름) 니미킴: 춘정의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써먹지도 못할 텐데 왜 충전해야 할까요. 연남동 덤앤더머의 음악을 들을 땐 이것에 집중해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니미킴: 절대 집중해서 듣지 말아 주십시오.
‘청년들’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스스로 자기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조지웅(기타/보컬, 이하 ‘조지’) : 돈 보단 꿈, 꿈 보단 사랑, 사랑 보단 달러, 조지웅입니다. 김해마(드러머, 이하 ‘해마’) : 엘비스, 존 레논, 양조위, 원빈 그리고 김해마. 오민혁(베이스, 이하 ‘민혁’) : 오! 민혁. 이승규(기타/보컬, 이하 ‘승규’) : 안경멋쟁이 이승규입니다. 청년들은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지 :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밴드요. 해마: 밤새도록 시끌벅적하게 놀고 마시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거대한 주제를 무겁게 노래하기보단, 소소한 일상의 섹스 얘기 따위를 자유분방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승규: 당신을 춤추게 할 음악. 민혁: 내가 듣기 좋은 음악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승규 : 얄개들 성님들 공연이 정말 좋아서 한 번 같이 공연해보고 싶어요. 조지: 존 메이어와 같이 공연하면서 웰치스 한 주데이 하고 싶습니다. 민혁: 지옥으로 가서 시드 비셔스와 함께 '아나키 인 더 유케이'를 부르고 싶습니다. 해마: 천국으로 가서 존 레논과 함께 사랑과 평화를 외치고 싶습니다. 청년들의 음악을 들을 땐 이것에 집중해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조지 : 이승규 콧소리. 승규 : 조지웅 기합 소리. 해마 : 이승규의 시옷 발음. 민혁 : 조지 형의 제 3세계 발음.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춘정’이란? 조지 : 춘정이 뭔지 몰라서 검색했는데 남녀 간의 정욕 맞나요? 저 좋아해요. 승규 : 내 여자친구. 민혁 : 우리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춘정 아닐까요. 해마 :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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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앨범 커버에 덧붙이는 단편 소설 WORDS : 봄꿀, ILLUSTRATION : 윤희진
고양이도둑
Faith & The Muse - In Dreams of Mine Album : A Cat-Shaped Hole in My Heart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있었죠.”
되었다. 어느 날 주말, 에머슨 씨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거기에 바로,
들었죠." 새벽에 그는 누군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깼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시내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내가 별생각도 없이
데비가 있었답니다. 배와 다리 부분이 하얗고, 나머지 부분은 검은 털을 가진
어둠 속에서 뭔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데비였다. 데비는 그와 에머슨
테이블 위의 티 타이머가 예쁘다는 말을 하자, 그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손을
고양이였죠. 처음엔 그 집에 고양이가 사는 줄도 몰랐어요. 한참 맥주를 마시고,
씨가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카우치 앞에 우아하게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뻗어 티 타이머를 집어 들더니 내 가방에 쑥 넣어주었다. 모래시계 모양으로,
담배를 나눠 피고, 떠들다 보니 그 데비란 녀석이 카우치 밑에 앉아서 고개를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발 쪽에 걸쳐져 있는 에머슨 씨의 팔을 조심스럽게 치운
모래 대신 파란 잉크가 채워져 있는 것이었다.
쭉 빼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고양이를 그토록 가까운 데서 직접 본 게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에도 데비는 그냥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이건 도둑질이잖아요.”
처음이었어요. 그 녀석을 쓰다듬어 주려고 했는데, 내가 손을 들자마자 휑하니,
에머슨 씨 집에서 나와서 현관문을 닫으려는 순간, 그는 데비가 여전히 자신을
내가 주위를 살피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카우치 밑으로 들어가 버리더군요. 그제야, 에머슨 씨 집에 있는 그 많은 액자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데비는 천천히 걸어서
“나 원래 훔치는 거 잘해요. 지난 몇 년 동안 여행 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많은 걸
사진이 모두 데비를 찍은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데비는 에머슨
자신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앞발만 쭉 펴고 앉아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훔쳤죠.”
씨에게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셈이죠.”
마치, 떠나고 싶어요, 떠나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줘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는 훔쳐 온 물건을 거실의 커다란 장식장에 담아둔다고 했다. 파리의
그 후로도 에머슨 씨와 그는 가끔씩 만나 재미있는 농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데비를 두고 가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르겠어요. 왜 그런 생각을
카페에서는 은으로 만든 포크를, 런던의 식당에서는 커피 받침대를, 뉴델리의
담배를 피웠다. 그럴 때마다 데비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카우치
했는지." 어둠 속에서 데비의 눈이 반짝, 거리는 게 보였다. 그는 데비를 안았다.
민박집에서는 난을 담아주는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를, 런던의 박물관에서는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그 생활이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뭐 굉장히
그리고 그는 그 길로 그 아파트를, 뉴욕을 떠났다.
안내소 직원이 쓰던 볼펜을, 오사카의 호텔에서는 재떨이를(이때는 직원에게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미국인 여자친구를 따라 혈혈단신으로
딱 걸려서 돌려줘야만 했다), 그리고 뉴욕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훔쳤다.
미국에 왔지만, 결국 결혼한 지 삼 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를 떠났다. 게다가
"그건 정말 나쁜 짓이네요." 내가 말했다.
가만있자, 고양이? 고양이를 훔쳤다고?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는 바람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둬야만 했다.
"필라델피아로 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난 데비를 데리고 다시 뉴욕으로
“그게 내 첫 번째 도둑질이었어요.”
“그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을 도둑맞은 셈이죠. 안 그래요?”
돌아갔어요. 에머슨 씨에게 그 상황을 설명할 자신은 없었고, 그냥 살짝 데비만
그는 이혼 후 자신이 머물렀던 뉴욕의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물어봤더니, 글쎄, 에머슨 씨가 자살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집에 넣어줄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 집이 텅텅 비어있는 거예요. 관리인에게 “ 허름하지만 깨끗한 아파트였어요. 맞은편 집에는 에머슨 씨라는 육십 대
생각했다. 즐거움과 지루함, 충만함과 외로움이 마치 격자무늬처럼 그의 삶을
"자살이라고요?"
초반의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죠. 혼자? 아니, 혼자라고 말하면 안 되죠.
질서 있게 채우고 있었고, 그는 그게 묘하게 균형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떠난 지 삼일쯤 후에 목을 매단 걸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데비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으니까. 늙고 뚱뚱한 남자와 고양이 한
그가 그런 묘한 균형감에 취해 있는 동안 그의 통장 잔고는 완전히 균형감을
"데비는, 그럼 지금 어디에 있죠?"
마리가 함께 살았단 말이에요.” 에머슨 씨는 뚱뚱해서 걸을 때마다 몸이 좌우로
잃어가고 있었다. 통장 잔고가 균형감을 잃어가자 그의 격자무늬 삶도 점점
"우리 집에요. 데비 보고 싶어요?"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렸다. 하지만 몸집에 맞지 않게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균형을 잃어갔다. 그러다 보니 에머슨 씨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가끔 복도에 서서 에머슨 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마침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계속 일하고 싶다면 필라델피아에 있는 지사로
"아뇨."
에머슨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해서 잔뜩 긴장해야 했다. 에머슨 씨는 한
보내주겠다는 거였죠. 사실 더 이상 뉴욕에 있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결국, 그곳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이 웃었다. 하지만
번도 결혼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걸 두고 "이혼남과 미혼남의 만남"이라고
떠나게 되었죠. 에머슨 씨와는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뉴욕을 떠나기 전날
나는 마음속으로, 그가 살인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티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 농담 때문이었는지 어쨌는지, 그들은 격의 없는 사이가
밤에 우리는 에머슨 씨 집에서 술을 진탕 마셨어요. 그러다가 그 집에서 잠이
타이머의 파란색 잉크가 올라가는 모습을 자세하게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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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ALBUMS
<이상한 나라의 폴> 같은 음악 WORDS : Julian Kim
Temples 2012.12.12 Heavenly Recordings
천국의 레이블 헤븐리 레코딩스에서 정말 멋진 친구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바로
* 이 차트는 향뮤직의 2월 음반 판매량을 기준으로 합니다.
템플스라는 네오-싸이키델릭 록 밴드. 아직 정규앨범 한 장 나오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인이지만, 싸이키델릭 록을 좋아한다면 이들의 데뷔 싱글과 B-Side만 듣고도 마음을 빼앗기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만화경처럼 형형색색의 무늬를 지니고 있는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템플스의 음악은 초현실적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기타 톤은 마치 The
쏜애플 (Thornapple)
Byrds의 Roger McGuinn을 연상시키고, 비틀즈의 싸이키델릭했던 시절 분위기도 묻어 나온다. 복고풍 사운드를 지향하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니다. 그나저나 음악이 재미있는데 이런 리뷰가 무슨 상관이야! 여기 택시, 스트로베리 필즈!
2
깨끗하게, 맑게, Clean & Clear
3
1/10 (EP)
4
Perpetual Immaturity (REDUX)
5
Realize (MINI ALBUM)
6
1집 - 우리가 계절이라면
7
1집 - The Golden Age
8
4집 - Dreamtalk
9
The 2nd EP
10
겨울노래 (EP)
11
2집 - 유작(遺作)
12
Open Run (EP)
13
1집 - 다시 겨울
14
Holding Onto Gravity (SINGLE)
15
3집 - Galaxy Express
16
유예
17
따듯한 눈썹은 되고 싶지 않아요
18
Nein Songs (EXPANDED EDITION)
19
Ten Years After : Pastel Music 10th Anniversary (파스텔뮤직 10주년 기념 앨범) [BOX SET]
조월 (Jowall)
브로콜리 너마저
오빠는 이러려고 음반 낸 거야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
WORDS : 지은
음란소년 2012.12.17 Mirrorball Music
램넌츠 오브 더 폴른 (Remnants Of The Fallen)
이이언 (Eaeon)
봄도 왔겠다, 애끓는 마음을 둘 곳이 마땅히 없을 땐 고민 말고 음란소년에게 문의하도록. 그는 선생이 되고 당신은 학생이 되어 봄의 정기를 정하게 쓰는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전개할 수 있다. 남다른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들은 특별히 따로 선발하여 장학생으로 임명하고 큰 상도 하사할 의향이 있다고 하니 참고할 것. 전 국민의 불감증 퇴치를 꿈꾸는 음란소년의 신보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는 춘삼월의 정취를 여덟 개의 트랙에 나누어 담아 듣는 이의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으로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이 음반 때문에 마음속 밭갈이를 2회가량 진행했다. 모쪼록 일렁이는 마음을 악착같이 감당할 자신이 있는 분들만 들으시길.
한발 늦더라도, 한국에 팔지 않더라도 이 앨범은 들어야 해 WORDS : 맹선호
Django Django
좋아서 하는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 (Sultan Of The Disco)
3호선 버터플라이
10센치 (10cm)
하비누아주 (Ravie Nuage)
조정치
2012.1.30 Because Music
1년은 족히 된 앨범을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쟁고쟁고의 앨범이 한국에는 발매는커녕 거의 알려지지조차 않았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집온 미녀 크리스티나가 된 기분으로 ‘지앵고지앵고’라 발음하면 큰 무리가 없는 이름을 가진 이 런던 밴드의 ‘Default’는 ‘다다 디디디 오오’ 반복되는 흥겨운
페퍼톤스 (Peppertones)
박경환
후렴구만큼 뮤직 비디오 역시 유쾌하고 재치가 가득하다. 에든버러 예술대학에서 만난 멤버들이 앨범 커버부터 음악 작업까지 직접 해내 이십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는 이 첫 번째 앨범으로 쟁고쟁고는 최근 <NME Awards Tour 2013>의 헤드라이너로 선정되었다. 콜드플레이와 프란츠 퍼디난드 같은 밴드들이 거쳐 갔던 바로 그 투어다.
이상해, 자꾸 힙스터가 된 기분이 들어 WORDS : 지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2013.02.20 Mirrorball Music
넬 (Nell)
갤럭시 익스프레스 (Galaxy Express)
9와 숫자들
나는 모호
프렌지 (Frenzy)
6년 만에 정규 1집을 발표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반을 구매했다. 포장을 뜯자마자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밀린 원고들이 떠올랐다.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작업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내 자신이 ‘힙’하게 느껴졌다. 난 맥북 프로로 원고를 쓰고 있어, 난 내려 먹는 커피를 마신다고, 아앗 이곳은 맨해튼!? 한창
Various Artists
내 스웩(Swag)에 도취해 있을 즈음 그 이유를 깨달았다. 믿을 순 없었지만,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때문이었다. 세상에,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이 이렇게 도회적이었나. 피로 물든 터번과 농약 같은 가사를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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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 봄날 우림프로젝트
들어 본 그들의 음악은 대단히 세련된 것이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보다 발전된 디테일을 감상하고 싶다면 필청하시길.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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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NOKID] 이번에 Elephant-Shoe에서 연재하던 <HELLO! NOKID>가 끝났습니다. 블로그에는 후속편을 간헐적으로 하겠지만, 지면상으로 이번 편이 마지막 편입니다. 만화가가 되겠답시고 서울에 올라가 이것저것 하다가, 게을러터져 이도 저도 잘 못한 채로 지내다가 간신히 얻어걸린 첫 웹툰 연재작 <8군플레이 그라운드 쑈>도 2012년 야후 코리아 서비스가 종료되며 인터넷상에서 볼 수가 없게 되었죠. 새 연재를 준비하고 있지만, 전 정말 게을러서 아직도 준비 중입니다. 그나마 연재답게 한 게(정말 적은 분량이지만) 이 <HELLO! NOKID> 뿐입니다. 일 년가량 그나마 꾸준히 그렸고, 이제 마지막 편을 그려서 왠지 조금 감개무량입니다. 지면으로 본 독자에게 피드백을 받아본 적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봐 주신 분이 있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또 새로운 연재,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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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뗄 수가 없지요. 올해에는 곧 앨범을 내며 컴백하는 저스틴
자세한 문의는 info@elephant-shoe.net 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팀버레이크가 제이 지와 세피아 톤의 화면으로 보여준 멋진 공연과 스팅부터 브루노 마스, 그리고 특히나 더 아름다워 보였던 리한나까지 함께한 밥 말리 트리뷰트
뮤지션 여러분 본인의 음악을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공연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나저나 시상하러 나온
프로필과 사진,음원 링크 (youtube /sound cloud등 웹상의 스트리밍)를 espromote@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프린스는 깜짝 놀랄 정도로 반갑더군요.
올해로 33회를 맞이한 영국의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 브릿 어워드에서 벤 하워드(Ben Howard)가 베스트 남자 솔로 아티스트와 신인상 부분을 수상했습니다. 베스트 여자 솔로 아티스트와 배포처 요청/수정 문의 info@elephant-sho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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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café Gregory 02-322-9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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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밴드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 그리고 벤 하워드는 누구?”라며 독설을 내뱉은 노엘은 “내년에는 데이먼과 함께 브릿 어워드 무대에 서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디자인된 트로피는 브릿 어워드가 방송되는 내내 눈길을 끌더군요.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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