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PHANT-SHOE 2011/11 no.2 vol.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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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t rock magazine / www.elephant-shoe.net / 2011 NOVEMber TABLOID 02

평화와 자유의 아이콘, 히피. 그들의 이념으로 탄생된 페스티벌, 글라스톤베리. 하지만 그 곳에도 계급은 있었다!


Small Talk about Music

EPISODE : 수능 石군 카메라나 캠코더만이 추억을 기록해주는 장치는 아니죠. 음악 또한 때때 로 그런 역할을 수행해, 특정 음악을 들을 때면 그 음악을 한참 듣던 때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의 느낌이 평면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면, 음악을 통해 회상하는 추억은 보다 입체적이고, 마치 내가 그 음악을 듣던 그 때, 그 장소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죠. 이 <스몰 토크> 코너는 한 주제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와 얽힌 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 다. 필진들의 추억을 함께 들어 보세요. 또한 스몰토크는 독자 여러분의 참 여 또한 받고 있습니다. 다음 달의 주제는 “반칙”이고, 이에 대한 에피소드 와 음악 소개는 엘리펀트 슈 홈페이지(www.elephant-shoe.net)나 페이 스북 페이지에 남겨 주시면, 좋은 내용을 뽑아 본지에 게재하도록 하겠습 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The Beatles – Twist and Shout Album : Please Please Me (1963)

나에게 수능은 단 한 번의 경험이 아니다. 반수를 하기 위해 다시 시험공부를 하던 때는 2002년, 전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친 구들은 모두 길거리응원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때에, 난 매일아침 500원에 스포츠 신문을 사고, 전 날의 응원으로 더러워진 길을 지나 학 원으로 갔었다. 이런 나를 놀리던 친구들의 문자에 독기가 올랐던 나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을 모아 클럽에서 뛰고, 춤추고, 소리 지르며 놀 았었다. 그래서 이 노래 “Twist and Shout”을 들을 때면 신나게 놀던 때가 생각난다. 요번 수능을 본 코끼리신발 가족이라면 이 노래의 제목이 나 가사의 트위스트 대신 셔플을 넣어주면 되겠다! 아무리 수능공부를 하느라 흐름을 놓쳤다 해도 클럽에서 트위스트를 추는 것은 참아주시길.

NOKID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남쪽으로 간다. Album : 우정모텔 (2011) 고3말.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공부에는 흥미도 없었다. 그리고 난 그날까지 문제집과 참고서는 펴보지 않고 있었 다. 수능을 치던 날은 참 추웠다. 없는 실력에 나름대로 수능을 치르고 밤에 대충 성적을 확인했는데, 무려 40점이 올랐다! 공부에는 관심 없던 내가 갑자기 40점이 오르니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 해, 수능은 유난히 쉬웠다. 모두가 4-50점이 올라서 만점을 받아도 서울대를 떨 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뉴스는 연일 피해학생들의 절규를 보도했다. 난 딱히 피해학생의 범주에는 들지 못했지만 지망학교는 모두 떨어지고 발로 쳐도 들어갈 수 있었던 대학교를 갔다. 바보 같았다.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해놓고, 갑작스런 높은 점수에 마음이 흔들렸던 내가 바보 같 았다. 시간이 지나 수능도 끝나고 대학도 졸업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은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배운 게 있다면 수능 치던 날은 언제나 춥다는 것이다. 따뜻한 남쪽으로 가고 싶어진다.

JEE

드렁큰 타이거

– Good Life

Album : The Legend Of... (2001)

고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친한 친구와 쪽지를 주고받으며 방과 후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할 정도로 먹는 것을 좋아했던 나. 모의고사를 끝 냈을 때에도, 수능을 망친 뒤에도 순대와 떡볶이로 배를 채우며, 걱정을 훌훌 털어버렸던 그때. 시간이 흘러 시험을 망쳤던 그 당시보다 더 큰 고 민이 깜짝 깜짝 등장하는 지금이지만, 더 이상 순대와 떡볶이로는 힘든 것 같다. 분식집 입구만 들어서도 걱정을 잊을 수 있었던 신기한 학창시절 이 그리워진다. 노래는 그 시절 푹 빠져있었던 드렁큰 타이거 3집 수록곡 Good Life!!!

JUNE

The Wombats - Techno Fan Album : This Modern Glitch (2011)

인생을 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수능세대라는 것이다. 일 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학력고사 세대란 꼬리표가 붙었을 텐 데. 물론 이 글을 읽는 순간 나이가 바로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10살 차이가 넘는 친구들과 수능이 어쩌고저쩌고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건 공통적 인 주제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그런 세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해준다. 록 제너레이션. 너무나 쉽지 않은가! 맘대로 수능 을 치기는 어렵지만,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고 싶다면 그 세대가 소화하는 로큰롤을 이해하면 된다.

ELEPHANT-SHOE tabloid issue 01 / 2011-11-7 Editor-in-chief 石군 / ewanjj@naver.com Editor June / dafunk@hanmail.net JEE / seg1129@naver.com Julian Kim / comfortingsounds.vol1@hotmail.com 맹선호 / pluto116@naver.com Illustrator NOKID / starfucker6@naver.com

Jisun

Eurythmics -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Album :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1983)

2000년의 수능 날은 유독 따뜻했다. 이상하게도 매년 수능 날은 초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이곤 했는데 그날은 달랐다. 포근한 날씨 덕에 점심 을 먹고 시험을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어차피 모르는 문제라 대충 찍고 숙면을 취했다. 공부한 게 없으니 긴장도 안 되고 착잡하기만 했다.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보니, 평소 모의고사 점수보다 30점이나 높았다. 나는 내가 서울대 가는 줄 알았다. 신나게 술 먹고 다음날 학교를 가니 어쩐지 다들 들뜬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그해 수능이 참 쉬웠던 것. 모두 잠시 좋은 꿈을 꿨던 그해 수능 날.

Designer Jisun / aniklee@naver.com Published by Elephant-Shoe / www.elephant-shoe.net Printed by 삼우정판 / 02)2277-2390 All Rights Reserved 2011 Elephant-Shoe

맹선호

Underworld – Two Months Off Album : A Hundred Days Off (2002)

슬프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수능에 대해 떠오르는 게 없다. 난 도대체 몇 살이나 먹은 거지? 아니, 술 때문인가? 아무튼 십년 남짓 흐르 니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날이 마치 그 작은 세상이 끝인양 굴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아무튼 수능이 끝나도 세상은 끝나지 않고 (2012년에 끝난다네요?) 대학 간다고 살 빠지고 애인 생기는 건 아니니까(응?) 우선은 아무 생각 말고 나가서 신나게 놀 것. 어차피 대학가고 취 직해도 인생은 여전히 피곤한 일투성이니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과 젊음을 마음껏 낭비할 것.

Julian Kim

The Strokes – You Only Live Once Album : First Impressions of Earth (2006)

한국에 수능이 있듯이 영국에는 A-Level이라는 시험이 있다. 누구나 시험 앞에서는 긴장이 되기 마련, 나 또한 그랬다. 시험보기 하루 전, 선생님 의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하러 댁으로 가게 되었고, 맛있는 저녁 식사와 함께 선생님께서 “긴장을 풀 땐 와인이 좋지”라며 술을 권하셨다. 한 잔은 두 잔이 되고 두 잔은 세 잔이 되어, 저녁 식사와 함께 와인 두 병을 마셨다. 그 후 이름 모를 버섯이 시멘트벽을 뚫고 자라나는 내 집으로 돌 아왔다. 다음날 숙취에 잠에서 깨고 창밖으로 보이던 하얀 하늘. 우유 한잔으로 해장을 하고는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들었던 생각 “죽기 야 하겠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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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NOVEMBER 2011

04 - 07 . . . . . . . . . . . . . . . . . . . . . . . . . . . . COVER STORY GLASTONBURY Hospitality vs General Ticket 3 Editors Reveiw

EDITOR’S ROOM 힙스터之道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8

Music of Resistance : Fela Kuti . . . . . . . . . . . . . . . . . . . . . 09

배낭 두 개 : Episode 6 : 꽃을 단 히피 . . . . . . . . . . . . . . . . . . . 10

COVER PHOTOGRAPHY / JUNE

Hello! NOKID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1 이상하고, 희한하게도, 마감일만 되면 온갖 사건이 터져 마감을 방해합니다.

LIVE SKETCH . . . . . . . . . . . . . . . . . 14 - 16 Grand Mint Festival 2011 : Striking Gig @ GMF Beyond Live, 권우유와 위대한항해

DICE INTERVIEW . . . . . . . . . . . . . . . 18 - 19 POE

FEATURE . . . . . . . . . . . . . . . . . . . 20 - 22 9 Days of SERVIVAL Report

BACK STAGE . . . . . . . . . . . . . . . . . . . 23 Digitalism

인쇄소에 자료를 넘겨야 되는 이 타블로이드의 마감 때에는 유독 더 많은 사건이 터졌습니다. 모든 문제는 주로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터지는데, 이 마감 방해라는 녀석은 유독 디자이너 지선 누나 주변에서만 일어나는데, 그 방법의 다양성이 놀랍습니다. 지난 호의 마감 때에는 밤을 샌 후, 출력을 위해 작업실을 나가며 고생한 컴퓨터에 휴식을 주고자 전원을 껐는데, 그 이후로 전원이 켜지지 않았죠. 또 이번 호의 마감 중에는 작업실의 전원 배선이 누전되어 정전이 됐는데, 심지어 작업실의 무든 콘센트를 뽑아도 계속해서 차단기가 내려왔습니다. 결국 컴퓨터를 들은 채 택시를 타고 여기저기를 오간 끝에 완성된 것이 지금 들고 있는 11월 호 엘리펀트 슈 타블로이드입니다. 방해를 받아도 즐겁게 만들은 잡지, 읽으실 때에 옆 사람이 밀거나 시끄럽게 떠들어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2011년 11월 엘리펀트 슈 편집장 石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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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PITALITY vs GENERAL TICKETS 평화와 자유의 아이콘, 히피. 그들의 이념으로 탄생된 페스티벌, 글라스톤베리. 하지만 그 곳에도 계급은 있었다! WORDS, PHOTOS : JUNE, 石군

Hospitality Ticket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마지막 취소 표 판매일이 되서야 가까스로 티켓을 구한 石군. 티켓 구매 소식을 전하고자 전화를 하고선, 티켓을 구했는지를 물 었다. 그러기에 필자는 호스피탈리티 티켓을 구해놨다고 답했다. “호스피탈리티 티켓? 그게 뭐예요?” “쉽게 말하면 VIP 티켓이야. 음악 비즈니스 관계자들에게만 판매하는 티켓.” “초대권이 아니라 판매용이라고요?” “심지어 일반 티켓에 비해 세배 가까이 비싸.” “헉... 세배요?”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대신 값어치는 충분해.” 처음 글라스토에 가려고 맘을 먹었을 때 과연 티켓을 구할 수 있을 까하는 걱 정이 앞섰다. 이 페스티벌은 20만장에 가까운 티켓이 페스티벌이 열리기 약 8 개월 전, 단 서너 시간 만에 매진되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런던에 살고 있는 엘 리펀트슈 기자 줄리안 김군과 인터넷 창을 각자 5개씩 띄워놓고 그것도 모자 라 국제전화까지 동원해 마음 졸이며 겨우겨우 티켓을 구입했던 그 때의 기억.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스릴 넘쳤던 추억이지만, 지인을 통해 호스피탈리티 티 켓을 구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매진으로 인해 몇 시간씩 모니터에서 진땀을 빼거나, 안 되는 영어로 비싼 국제전화를 걸 필요가 없어져 마음이 한결 편한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 호스피탈리티 티켓이 제대로 값어치를 한 올해, 2011 년 글라스토! 그 이유를 지금부터 일반 티켓을 구매했던 石군의 이야기와 번 갈아 비교하며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입장

호스피탈리티 존과 캠핑 존

JUNE

JUNE

올해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 입구에서부터 펼쳐졌다. 입장하기 위해 팔찌를 받으려는 관객들의 줄이 엄청 길게 늘어져 있었던 것. 길이로 보아 몇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거기다 비까지 추적추적.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나는 호스피탈리티 티켓 소지자 아니었던가! 호스피탈 리티 티켓을 교환하는 장소로 가서 팔찌를 받고나니 빡빡한 간격으로 입장을 기다리는 일반 티켓 줄을 뚫고 호스피탈리티 입구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큰 배낭 외에도 두 손에는 무거운 짐이 들려져있어 도저히 물리적으로 전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역방향으로 진행하려는 나를 바라보는 기다림에 지 친 외국 친구들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 순간 반대편에서 경호원 두 명이 나를 발견하고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인파를 헤치고 달려오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이런 특별한 대우를 록 페스티벌에서 받다니, 말 그대로 ‘호스피 탈리티’였다.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일반 티켓 줄을 가로질러 입장하는 데 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4분 40초. 참고로 일반 티켓으로 온 친구가 입장에 걸 린 시간은 2시간 45분이었다.

프레스 티켓과 호스피탈리티 티켓 소지자들을 위해 마련된 호스피탈리티 존 은 입구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이곳은 빽빽한 텐트들과 비에 잠겨 버린 텐트들 같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보통의 글라스토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차이라기보다는 반대에 가깝다고나 할까. 텐트와 텐트 사이에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지대도 높아 심각한 강수량에도 사 이트가 잠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잔디도 스텝들이 미리 적당한 높이로 정 리를 해놓아 텐트 바닥이 푹신할 정도. 그동안은 이런 혜택의 고마움을 특별 히 느끼지 못했지만, 사람은 예전에 비해 너무 많고, 날씨도 너무 안 좋았던 올 해만큼은 호스피탈리티 티켓으로 온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 느꼈다. 거기다 널 찍한 잔디밭에서 1회용 그릴에 삼겹살과 소시지, 토마토와 버섯을 구워먹었 을 때 편집장 石군은 좁은 텐트 안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비싼 호스피탈리티 티켓에 더욱 만족하게 되었다.

石군 그 2시간 45분 걸려 입장한 친구가 바로 石군이다. 지난 호에서 이야기했던 것 처럼, 대기 줄은 초속 2cm로 움직여 1분에 1미터 정도를 전진한다. 그러니 단 순 계산을 해봐도 줄이 200m 정도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대기 선은 정확한 줄이라는 것이 없어서 좌우로는 줄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쪽 줄 이 빨리 줄어드는 것 같아서 줄을 옮기면, 이내 방금 전까지 내가 서있던 줄이 빠르게 줄어 내 뒤에 있던 사람이 나를 지나쳐 앞서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 게 된다. 이는 마치 이리저리 열심히 차선을 바꾸나, 한 차선으로 운전하나 비 슷한 거리를 움직이는 명절날의 고속도로와 같아 줄을 옮기는 사람만 피곤할 뿐이다. 결국 한 쪽 줄에 얌전히 서 있다 보니, 엄청난 무게의 짐을 짊어진 어깨 가 슬슬 뻐근해졌다. 그제야 JUNE형이 왜 아주머니들이 장보러 갈 때 쓰는 바 퀴달린 캐리어를 가지고 떠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전날 내린 비로 질 척해진 진흙 속에 장화가 절반 이상 빠진 모습을 보니, 캐리어를 가지고 왔더 라면 더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초속 2cm로 움직이려고 발을 떼려고 하니, 몸무게에 짐무게까지 더해져 깊숙이 박힌 장화는 빠질 생각을 하 지 않았다. 덕분에 이후부터는 장화가 깊이 들어가지 않게 제자리에서 종종걸 음까지 걸으며 2시간 45분을 기다렸다. 만약 이렇게 서 있는 내 옆을 JUNE형 이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휙 스쳐지나간다면, 종종걸음으로 잘 다져둔 진흙을 손으로 주어 등짝을 향해 던져줬을지도 모른다. 글라스톤베리의 대기 줄은 동 방예의지국의 예의바른 청년도 영국의 훌리건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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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군 하루 먼저 출발했던 JUNE형, 하지만 출발 전 글라스톤베리에서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같이 장을 봤었다. 그 때, “글라스톤베리에서는 바베큐 해먹는 게 제일 맛있어. 형이 베이컨이랑 소세지 사가지고 갈테니 같이 먹자.”라고 말했 었다. 입장을 위해 긴 줄을 힘겹게 기다리면서도 바베큐 생각을 하며 견뎠다. 드디어 입장을 했고, 글라스톤베리 초행이라 당최 길을 몰랐던 나는 지인 중 글라스톤베리 최다 경험자인 Julian Kim의 조언만을 생각했다. ‘형, 무조건 입 구에서 제일 반대쪽 깊숙한 곳으로 가세요. 그 쪽으로 가야 크레이지한 친구 들이 많아서 재밌어요!’ 그래! 내 이 한 몸 부서져도 끝까지 가겠다는 결심을 했 다! 까짓것 조금 고생한 다음에 JUNE형을 만나 바베큐로 피로를 풀면 되지 뭐! 결국 이리저리 헤매며 걷던 石군이 체력적인 한계점을 만났을 때쯤, 주변에 는 정말 송곳 하나 꽂을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텐트로 가득 차 있었다. 목표 지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까치발을 들고 쳐다보니 그 쪽도 공간에 여 유는 없었다. 결국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근처에서 텐트 칠 공간을 찾는데 쓰 기로 했다. 숙면을 위해 안쪽에 텐트를 치고 싶었지만, 결국 石군의 텐트는 대 로 바로 옆에 쳐야만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어 열심히 텐트를 설치하고 있던 내 어깨를 흑인 누님이 툭 치셨다. 그리곤 한 손에 든 맥주 캔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며, “이 늦은 시간에 텐트 칠 공간을 찾은 이에게 축복을~” 이 라 말하며 윙크를 해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아, 역시 난 운 좋은 놈이 야. 이제 JUNE형 만나서 바베큐만 먹으면 난 글라스톤베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꺼야.’라는 생각을 했다. 텐트가 완성됐고 비싼 로밍요금을 지불하며 JUNE형에게 전화했다. “형! 저 텐트 다 쳤어요! 바베큐 먹어요!” “으잉? 그거 어제 다 먹었는데?” 그래. 난 고작해야 일반 티켓을 가진 흔해빠진 운 없는 관객일 뿐이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무슨. 결국 바베큐를 대신한 것은 군 제대 이후 처음으로 끓여 본 짜장라면 뽀글이(라면 봉지 안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혀 먹는 라면)였다. 그 런데 더욱 슬펐던 것은 글라스톤베리 5일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바로 이 라 면이었다는 사실이다.


샤워

호스피탈리티 바와 지름길

JUNE

JUNE

콜드플레이(Coldplay)를 보기 직전, 엘보우(Elbow)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난다며, 계속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등에 코를 갖다 대며 질문을 했다.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혜택 외에도 중요한 것이 호스피탈리티 바(bar)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 글라스토가 열리는 농장의 규모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지하게 넓다. 느긋하게 걸어간 다면 사이트 끝에서 끝까지 1시간 반은 족히 걸리니까. 메인 스테이지인 ‘피라 미드’에서 세컨드 스테이지 ‘아더’까지도 관객들과 뭉쳐서 걸어가게 된다면 보 통 30분이 기본이다. 그러므로 타임라인 상으로 바로 붙어있는 다른 스테이 지의 공연을 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얘기. 하지만 호스피탈리티 티켓은 가능하다. 피라미드 스테이지와 아더 스테이지 뒷공간 중간에 호스피탈리티 바와 기자들을 위한 프레스 존이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오는 양쪽 길이 양 스 테이지를 이어주는 지름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헤드 라인 공연 시각쯤이어도 이동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너 샤워했니? 여기서 정말 샤워를 했단 말이야?” 처음 일반 티켓으로 왔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물품이 물티슈였다. 샤워를 하 는 것이 불가능하니 온 몸을 구석구석 물티슈로 닦으면, 습하지 않은 영국의 여름 날씨 덕분에 의외로 개운하다고 들었다. 직접 경험을 해보니 실제로도 그 랬다. 하지만, 진짜 샤워와 비교할 수 있을까? 거기다 찬물이 아니라 뜨거운 물 이라면? 매일 아침 피곤했던 몸을 풀어주는 따뜻한 샤워는 올해가 아니더라 도 매년 느끼던 호스피탈리티 티켓만의 행복이었다. 등 뒤에서 킁킁거리던 영 국 여자에게 간단히 샤워했다는 얘기를 하고 대화를 끝냈었지만, 사실은 속으 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안해서 말을 길게 못했는데, 사실은 호스피탈리티 티켓이라 매일 아침 뜨 거운 물로 샤워를 했고, 저녁엔 귀찮아서 안했어.’

바에서는 맥주를 비롯한 다양한 술과 먹을거리를 파는데 영국 사람들이 여름 에 특히 자주 즐기는 핌즈와 까망베르 치즈, 피자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더 좋았던 건 커피를 달고 사는 기자들을 위해 프레스 존에 마련된 뜨거운 물! 우 리는 이 물로 커피를 마시지 않고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끓여먹었다. 외국 에서 굳이 김치와 고추장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라스토 에서 먹었던 컵라면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石군 글라스톤베리에 가기 전까지 다녀본 국내외의 여러 페스티벌 중에서 가장 이 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이다. 그 곳에서 샤워 는 대략 5분 정도를 기다리면 할 수 있었고, 온수까지 나왔었다. 이런 편의성 에 놀랐지만 텐트의 얇은 천을 하나 사이에 둔 채, 바로 옆 칸에서 나는 여자들 의 수다소리에 한 번 더 놀랐었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다면 노천 온천도 이용 할 수 있었다. 하나를 가지고 남녀가 시간을 달리해 사용했는데, 아침저녁의 황금시간을 모두 남성에게 배치해둔 일본 남성 권위주의의 패기에 더더욱 놀 랐었다. 어쨌든 세계 빅3 음악 페스티벌을 꼽자면 흔히 글라스톤베리, 레딩리 즈(현재는 미국의 코첼라 페스티벌이 위협 중), 후지 록을 말한다. 만약 이 중 에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을 뽑는 다. 때문에 내심 후지록보다 훨씬 더 좋은 편의시설을 꿈꾸며 글라스톤베리에 갔다. 밤늦게까지 노는 페스티벌이니, 샤워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을 것으로 생각 되는 아침을 공략하기로 했다. 첫 날의 이른 아침,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한 손 에는 샤워타월과 클렌저들이 든 가방을 들은 채 샤워실로 향했다. 그런데 언 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낯익은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전 날, 입장을 위해 세 시간을 기다렸을 때만큼의 줄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팔찌 하나 채워주는 것 을 기다리는데 세 시간이 걸렸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리는 샤워를 위해 똑같은 길 이의 줄을 서서 기다릴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결국 바로 텐트로 돌아와 서 물티슈를 꺼냈다. 물티슈에 클렌저를 섞어 쓰며, 그래도 난 깨끗한 편이라 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호스피탈리티 바의 보너스는 음악관계자들이 있는 곳이다 보니 뮤지 션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뮤지션들도 호텔이 아닌 캠핑을 해야 되는 글라 스토이므로 유명 뮤지션들은 아예 대형 캠핑카(이런 캠핑카는 여기에서 밖에 보질 못했다)를 호스피탈리티 존 옆에 세워놓고 숙박을 해결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 올해는 파크스테이지 근처 호스피 탈리티 바에서 톰 요크가 라디오헤드의 스페셜 공연 전에 계속 술을 마시고 있 었고, 코린 베일리 래, 아틱 멍키스 알렉스의 애인이자 모델인 알렉사 청도 이 곳에서 쉽게 만났다. 물론 ‘만났다’가 아니라 ‘보았다’이지만 말이다.

石군 지름길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약간이라도 여유 있는 공간을, 내 의지 대로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20만 명이 모인 글라스톤베리는 마치 크리스 마스이브의 저녁시간 명동거리처럼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흐름대로 걸어간 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들이 차들이 다니 는 강철판 위로만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폭 위로 20만 명이 걸어 다니니, 지체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체념한 채 걸어가다 보 니 찻길 옆의 질퍽하지만 탁 트인 진흙탕이 지름길처럼 보였다. 그 유혹에 넘 어가 발을 내딛으려고 할 때, 진흙에 양쪽 장화가 모두 꽂혀 꼼짝 못하는 사람 과 진흙에 박히지 않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 진흙탕에 시원하게 슬라이딩을 하 는 사람을 보았다. 내딛던 발을 그대로 들어 다시 찻길로 묵묵히 걸었다. ‘그래, 이게 지름길이야.’

Glasto 2013 일반 사이트와 호스피탈리티 존을 구분 짓는 커다란 녹색 벽을 보면서 여러 가 지 생각이 들 수 있다. 관계자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혜택을 받으며 평화와 사 랑을 모토로 하는 페스티벌을 즐긴다는 것이 모순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느 나라처럼 매진된 공연에 공짜로 들어와 일반 관객들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 려는 문화보다는 낫지 않을까? 혜택을 주는 대신 세배의 가격을 받을 만큼 시 스템이 갖춰진 영국의 음악 비즈니스 산업이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즐기는 입장에서 일반티켓이면 어떻고 호스피탈리티 티켓이면 어떠리. 글라스토라는 장소를 장화를 신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뛰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오래 줄 서있고, 다리가 아팠으며, 샤워를 한 번도 안했던 첫 해가 가장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으니, 음악과 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2013년에는 배낭을 메고 꼭 글라스토로 향하길 바란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라도 무조건 살아 돌아오게 되어있으니까.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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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ditor’s review

PHOTOS : 石군, Glastonbury Festival Official Site

JEE’s Glasto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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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Door Cinema Club

The Kills

Coldplay

새로 떠오르고 있는 밴드 중 꼭 보고 싶었던 두 팀 Foals와 Two Door Cinema Club을 이번 여행 중 다 볼 수 있었다. Foals는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리는 와이어리스 페스티벌에서, 그리고 Two Door Cinema Club은 바로 글라스 토에서! 첫날인 금요일 1시 반, 비교적 이른 시간의 공연이었기에 어렵지 않 게 앞줄을 차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늦장을 부리다 공연 5분 전 에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도착했는데 이게웬걸. 예상과는 달리 저 멀리 뒤 쪽까지도 관객이 잔쯕 모여 있었다. 이들 앞에서 무대에 오른 이들은 첫 곡 Cigarettes in the Theatre부터 마지막 곡 I Can Talk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소포모어 징크스는 없다!’라는 것을 증명하듯 1년 전보다 훨씬 세련된 편곡과 발전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물론 직접 볼 때의 감동이 더 크기 때문에 그 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더 큰 밴드로 성장하고 있는 걸 눈으로 확인 한 무대였다. Kids와 Something Good Can Work을 비롯한 13곡 전부가 필 자에게는 메가 히트 곡이여서 지금도 BBC에서 방송되었던 글라스토 영상을 다시 볼 기회가 있으면, 6월의 그때로 돌아가 스크린 속의 관객들과 하나가 되 어 박수를 치게 된다.

킬스를 처음 알게 된 건 2008년 글라스토. 존 필 스테이지에서 MGMT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중 팅팅스와 킬스를 차례로 보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이제는 이들의 공연을 즐기기 위해 1시간 일찍 도착해 앞 팀을 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 덕분에 제시 제이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기대했던 킬스의 무대 는 오래 기다린 만큼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앨리슨 모스하트의 보컬은 잭 화이트보다 제이미 힌스의 기타 사운드와 같이 할 때 더 돋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년 글라스토 때보다 더 음악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작년엔 데드웨 더가 피라미드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했었다.) 항상 느끼지만, 모스하트의 음색 은 뭔가 퇴폐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 것이 좋다. 그녀는 기타 연주를 하던 중에 기타 잭에 연결된 흰색 코드를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 몸에 감았 다. 그리고는 캥거루처럼 뛰어다녔음에도 그 카리스마는 없어지지 않았다.많 은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팀은 아니지만, 언제나 묵묵히 차트와는 상관없이 완성도가 높은 앨범을 발표하는 이들. 라이브 역시 독특한 제이미의 기타 리프 처럼 스타일리쉬 해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꿈. 콜드플레이를 만나는 건 바로 꿈과 같은 일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음악을 들으며 언젠가는 이들의 콘서트를 볼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콜드플레이가 2011년도 헤드라이너로 확정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 식에 런던으로 향하는 날짜만 계산했던 하루하루. 수많은 시간이 흘러 드디어 콜드플레이가 연주하는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파올로 누티니 공연 때부터 메인 스테이지에 도착, 엘보우 때는 앞에서 5번째 줄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작된 공연. 얼마 안되어 Yellow가 연주되며 온 세상이 노랗게 바뀌더니 연이어 In My Place, The Scientist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봐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꿈속에 있다고 착각을 해서인지 눈앞에 있는 크리스 마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실황 DVD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할까? 어느새 앵콜 곡 Fix You가 연주 되었는데, 루이스 암 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전주로 이용한 Fix You는 이때까지 들 었던 수많은 편곡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은 신곡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 이 곡만큼은 뒤쪽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메인 스테이지의 피라미드가 비트에 맞춰 색깔이 바뀌는 장관은 한국으로 돌아오 고 나서 BBC 영상을 보고나서야 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 글라스토에 갔다 온 이후로 통장잔고는 바닥나고 사고 싶은 옷은 자주 못 사게 되었지만, 콜드플 레이를 눈앞에서 봤다는 것만으로 2011의 선택은 절대 후회스럽지 않다.

E L E P HA N T - S HO E


JUNE’s Glasto review

The Wombats

Jessie J

Radiohead

평론가들의 평가가 좋지 않고, 유행에 힘입어 잠시 인기를 끌다가 사라지는 수 많은 밴드들 중에서도 왠지 취향에 딱 맞았던 팀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최근에는 The Drums가 그랬다. 대중들에게는 엄청난 인기가 있지만 평론가 들에게는 유행을 타는 음악이라는 평만 받고 있음에도 필자의 취향에 딱 맞 았다. 그러나 이들은 필자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미가 없다며 스스로 해체해 버렸다. 조금 더 멀리 가보자면 The Wombats가 있다. The Wombats가 처음 나왔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필자의 의견과는 다르게 쉽 게 사라질 거라 여겼었다. 하지만, 밴드는 계속 순항 중. 데뷔 때부터 지켜봐오 던 뮤지션의 라이브를 그것도 글라스토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건 큰 행운이란 생 각이 든다. 첫 곡으로 연주된 Our Perfect Disease와 Techno Fan, 그리고 마 지막 곡으로 연주된 Let’s Dance to Joy Division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데뷔 싱글을 일본에서 제일 먼저 발매한 전력을 말해주는 Tokyo란 곡 또한 좋았지 만, 역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Kill The Director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엔돌핀이 마구 솟아났었다.

페스티벌에서 밴드가 아닌 뮤지션을 봤을 때 별로 감흥이 없는 편이라 헤드라 이너가 비욘세란 소식에 크게 낙담을 했었다. 케미컬 브라더스가 콜드플레이 와 겹치지 않고 비욘세와 시간이 같았었다면, U2, 콜드플레이, 케미컬 브라더 스로 이어지는 최고의 타임라인이 되었을 텐데... 어쨌든 제시 제이 역시 같은 이유로 기대를 아예 하지 않았었다. 거기 있었던 건 다음 팀인 킬스를 보기 위 해서였을 뿐. 하지만, 제시 제이, 이 엄청난 여자! 첫 곡부터 노래 하나만으로 관객 모두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공연을 했지만,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발광’을 하는 다른 밴드들 보다 훨씬 강한 에너지가 흘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관중 맨 앞에 있었던 아주 어린 소녀 팬을 무대로 올려 히트 곡 Price Tag을 같이 부르는 장면이었는데, 이 꼬마 친구가 너무 능숙하게 춤까지 춰가며 노래를 소화해 엄청난 박수를 받았 다. 순간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건 필자가 너무 순수하 지 못한 걸까? 여하튼 관심 없었던 제시 제이였으나,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고, 공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작년 세컨드 스테이지인 아더에서 핫 칩이 그들의 최고 히트 곡인 Over and Over를 연주하는데 관중이 너무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알고 봤더니 그 시각 파크스테이지에서는 스페셜 게스트 톰 요크의 오징어 댄스가 펼쳐졌다 고 한다. 오 마이 갓! 그리고 2011년, 올해는 꼭 정보를 먼저 알아내 스페셜 게 스트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랬지만, 이 공연 저 공연 정신없이 보다보니 어느새 저녁시간. U2가 나오기 전 모리세이 아저씨의 음악을 들으며 피라미드 스테이지 근처에서 출출해진 배를 채우고 있는데, 그제야 핸드폰을 꺼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왠지 불길한 예감. 전원을 키고 확인해보니 3시 간 전에 온 문자는 이러했다. “오늘 스페셜 게스트 라디오헤드 입니다!!!” 프 레스로 같이 간 동생이 알려준 정보. 다시 한 번 오 마이 갓! 그때부터 울먹이 며 파크스테이지로 달려갔으나, 톰요크 오징어는 이미 바다로 돌아간 뒤였다. 다행히 공연을 본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Lotus Flower를 부르는 것으로 시 작을 했는데, 시작한지 얼마 안 돼 기계적인 실수가 나와 톰요크 기분이 영 ‘아 니올시다’였고, 공연은 그 뒤로 별로였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가 별로라고해 도 꼭 보고 싶었던 아니, 봐야만했던 라디오헤드의 공연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이것은 리뷰가 아닌 필자의 넋두리. 어쨌든 올해를 계기로 라디오헤드가 헤드라이너로 연주하는 그날 글라스토로 반드시 날아오겠다는 새로운 목표 가 생겼다.

石군‘s Glasto review

BB KING

YUCK

Queens of The Stone Age

아저씨스러운 음악취향을 가진 石군. 한 누나는 “네가 아직 젊으니까, 이런 음 악을 들어도 귀여운거야.”라고 말을 했지만 그게 이미 몇 년 전 일. 이제 슬슬 젊다는 말을 스스로하기엔 살짝 민망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나를 좀 더 아저씨스럽게 만들어주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음악이 바로 블루스다. 그런 내게 블루스계의 전무후무한 전설인 비비킹이 라인업에 포함된 글라스 톤베리는 영국까지 움직일 이유가 되었다. 때문에 글라스톤베리에서의 첫날 만사를 제쳐둔 채, 비비킹을 보기 위해 피라미드 스테이지로 향했다. 그냥 비 비킹의 연주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추

엘리펀트 슈 2010년 11월 호의 레커멘드 어 밴드 코너를 통해서 소개된 영국의 신인 밴드 YUCK! 당시 데모 음원만 있었던 이들이 어느덧 정규 앨범까지 발표 했다. 때문에 이번에 글라스톤베리에 가서 꼭 보기로 맘먹었던 팀 중에 하나 가 YUCK이었고, 또 하나는 글라스베가스(Glasvegas)였다. 공교롭게도 두 팀

글라스톤베리에서의 3일 동안의 모든 공연이 다 끝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두 헤드라이너 비욘세와 퀸스 오브 스톤에이지였다. 3일 동안의 공연에서 좋 은 공연은 많았지만, 록 필이 충만한 공연은 거의 없었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 꼈던 나는 망설임 없이 퀸스 오브 스톤에이지를 선택했다. 그들의 첫 곡 “Feel

다 같은 날 존 필 스테이지에서 YUCK은 거의 첫 팀으로, 글라스베가스는 마지 막 팀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글라스베가스는 무려 콜드플레이와 시간이 겹쳐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YUCK만이라도 꼭 보기로 했다.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공연이어서, 이후 런던 하 이드 파크에서 있었던 와이얼리스 페스티벌에도 YUCK을 또 한 번 보러 갔었 다. 여담이지만 한국에 돌아와 BBC에서 중계한 글라스베가스의 라이브를 보 았는데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글라스톤베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국분이 콜 드플레이를 포기하고 글라스베가스를 보러간다고 하셨는데, 부디 BBC의 녹 화, 녹음이 실패했던 것으로 라이브는 환상적이었길 빌어본다.

Good Hit of the Summer”의 드럼과 베이스 소리가 내 심장 속에서 한 번씩 더 울릴 때,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프론트맨인 조쉬 옴므(Josh Homme)가 오른 손에 피크와 담배를 같이 들고 연주하던 모 습은 오래간만에 만난 마초적인 로커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여러분들이 우 리가 무엇을 했으면 좋을지, 무엇을 연주하면 좋을지 얘기해주세요. 그게 우리 가 이곳에 온 이유니까요. 우리가 여러분들을 위해 하나를 해준다면, 여러분은 저희에게 둘을 해줘요.” 라는 말을 한 순간, 난 그의 팬이 되어 버렸고, 이 후의 곡들을 정말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그리곤 글라스톤베리에서 처음 본 슬램존 에 뛰어들어 정신 줄을 잠시 놓고 미친 듯이 즐겼던, 가장 신났던 공연이었다.

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비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썼다. 이내 비비킹이 무대에 나와, 밴드 멤버 소개를 한 후 “Everyday I have the Blues”를 연주하 기 위해 6개의 기타 줄 중 하나를 튕겼다. 그 소리가 앰프를 지나 스피커를 통 해 터져 나와서 내 귀를 향해 오던 중 우비 후드와 마주쳤다. 답답함이 느껴졌 던 나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음에도 재빨리 후드를 벗은 채, 비를 맞으며 음 악을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라는 짧은 공연을 마치며, “여러분을 다시 볼 기 회가 있다면 좋겠어요. 언젠가 그래도 될까요?”라는 말이 마치 아마도 다시는 볼 수 없을 나를 향한 작별인사처럼 들렸고 이어진 “Guess Who”의 애절한 멜로디에 왈칵 눈물이 났다. 비비킹 할아버지 건강하시고, 꼭 한 번 더 만나요!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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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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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PHOTOS : 맹선호

힙스터가 무슨 뜻인가요? 병신입니다. 최근 만난 친구 하나가 인터넷에서 보았다며 낄낄댔다. 언제부터인가 힙스터 들은 찬사인지 조롱인지 헷갈리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그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인디공연들만 찾아다니는 친구를 따라 이스트 런던(힙 스터들의 지역으로 유명하다) 구석구석을 다니다가 마주친 멋쟁이들 때문이 었던 것 같다. 그들의 스타일에 감탄하고, 또 조금씩 흉내내기도 하면서 어느 순간 그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꽤 폼나보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칭 ‘힙스터 워너비’라고 주장하던 나와 친구들도 언제부터인가 힙 스터들을 향해 애정어린 조롱을 던지게 되었는데, 그들의 멋진 스타일에 대한 동경에서부터 시작된 질투 어린 표현이었는지 그들의 과도한 멋부림과 허세 에 대한 비웃음 섞인 농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What Are Hipsters? 힙스터는 무엇인가? 힙스터에 대한 정의는 분분하다. ‘What was a hipster?(국내에는 ‘힙스터에 주의하라’는 제목으로 나와있다.)’를 출간한 뉴욕의 <n+1> 저널은 어떻게 정 의하더라도 결코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으며, 자신들의 책은 단지 현재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할 뿐이라고 고백했다. 우선 영어사전을 검색해보자.

무엇보다 힙스터는 남다른 패션감각을 드러내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패션에 서도 의식 있는-최소한 의식 있어 보이는- 소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다. 막상 힙스터 패션은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 그들을 대표하는 스키니진, 두꺼운 뿔테안경(종종 안경알이 없다), 할머니가 입었음직한 빈티지 드레스, 낡은 컨버스 스니커즈 같은 것들이 이제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덕분일 것이다. 물론 신경쓰지 않은 듯한 부시시한-알고보면 엄청난 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냈을 것이 분명한- 헤어스타일 또한 그들이 유행시킨 것.

hipster [hípstər]

이스트 런던의 브릭레인에 위치한 인디레코드숍 러프 트레이드. 힙스터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최신 정보통, 박식한 사람 2. 유행을 좇는 사람 3. 재즈 연주가; 재즈광 4. 비트족 (* 네이버 영어사전)

음, 아무래도 이런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힙스터라는 오묘한 존재를 설명하기 에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힙스터란 단어의 어원은 1940년대, 일명 재즈시대 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방하는 중산층 백인 젊은이들을 일컬었다고 한다. 그들은 기성사회에서 자신들을 분 리, 차별화시키며 미국 흑인의 하위문화를 일종의 자기과시적 유행으로 받아 들였다. 그리나 1990년대부터 새롭게 등장한 현대 힙스터의 개념은 초기와는 조금 다 르다. 기성문화에 저항하는, 그러니까 주류에 합류되기를 거부하는 2,30대 젊 은이들의 하위문화라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일맥상통하지만 조금 더 많은 설 명이 필요하다. 자칭 ‘힙스터 편애자’인 본인조차 아직도 누군가 ‘그래서 힙스 터가 뭔데?’라고 물으면 머뭇거리기 일쑤지만,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특징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정리함으로써 힙스터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힙스터는 페스티벌에서 춤추지 않는다. 그들은 팔짱을 낀채 공연을 보거나, 밴드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듯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낸다. 하 지만 정말 좋아하는 밴드라면 무대 앞에서 매우 집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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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E P HA N T - S HO E

우선, 힙스터는 독립적인 생각과 표현을 중요시 여긴다. 예술, 인디 영화, 그리 고 인디 음악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그들은 주로 인문학을 전공하고, 미디어 나 패션 등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많은 편. 정치적으로는 진보성향을 띄는 그 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사는 경향이 있는데, 뉴욕의 브루클린, 런던의 이스트, 서울의 홍대나 신사동 가로수길이 잘 알려진 힙스터 구역이다.

이렇게 결과적으로 까다로운 취향의 힙스터는 얼리어덥터로 자리매김하게 되 었다. 알고보면 꽤 많은 최신 유행들이 사실은 몇년 전부터 힙스터들 사이에서 는 이미 유행이었던 것. 이런 현상은 패션뿐만이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로, 적 극적으로 취향에 맞는 새로운 밴드를 열심히 찾아대는 그들 덕분에 성공하게 된 밴드들이 꽤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힙스터는 그들만의 유행이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되면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옮겨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힙스터의 것들이 유행하게 되면서(인기는 욕과 함께 온다) 종 종 그들의 이미지는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신 유 행을 좇는 사람들로 비춰지는 것도 사실이고, 또 주류와 스스로를 구별 지으며 자기애와 집단적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만은 없기에 힙스터 자신 들조차도 힙스터를 부정하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일. 하지만 여러 비난과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힙스터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할 필 요가 있다. 주류와는 다른 취향을 추구하기 위한 그 노력은 인정받아야 한다 는 말이다. 신경쓰지 않은 듯 하지만 왠지 멋진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또 쿨 한 음악 취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지 상 상해보라. 힙스터는 노력하는 멋쟁이다. 단지 병신이라고 웃어넘기기엔 그들은 너무나 도 흥미로운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존재이다. 앞으로 힙스터지 도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멋과 취향, 그리고 풍류를 하나하나 알아가 볼 예정이다. 다음 이슈에서는 힙스터들의 대축제라고 해도 손색없을 세상에 서 가장 쿨한 음악 페스티벌 ATP를 다룰 것이다. 지난 여름 애니멀 콜렉티브 Animal Collective가 큐레이팅했던 ATP 페스티벌의 생생한 리뷰도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하시라. 그럼 피쓰! (이런 인삿말은 별로 쿨하지 않은가? 긁적)


MUSIC OF RESISTANCE:

FELA KUTI WORDS : Julian Kim , PHOTOS : Fela Kuti Site

자유로운 노래가 아닌 자유를 위한 노래를 불렀던 나이지리아의 펠라 쿠티 인종과 국가를 불문하고 한 시대를 대변하고, 시대의 정신을 음악에 반영시키 는 음악가들은 항상 존재했다. 물론 이들의 음악에 담긴 메세지가 그들이 각 기 속해 있던 사회적 배경 혹은 제도권 안의 불편한 진실과 부조리함에 향해있 었다는 점에서 다소 국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 시대를 꿰 뚫어보며 불편한 진실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했던 노력과 정신은 현시대를 살 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역사적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 ‘저항의 음악’ 코너에서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흔히 알려진 존 레논이나 밥 딜 런과 같은 음악가들이 아닌 제2, 제3세계의 몇몇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을 서 너 편으로 나누어 단편적으로나마 다뤄보려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 기가 될 수 있겠으나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음악이나 셀러브리티들의 행보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좀 더 신선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자! 그럼 이 번 호에서는 ‘아프로비트의 창시자’이자 ‘흑인 대통령’이라 불렸던 펠라 쿠티 (Fela Kuti)의 음악과 삶을 한번 들여다보도록 하자! 흔히들 나이지리아 하면 축구 강국, 유혈 쿠데타, 가난한 세계 10위 산유국을 떠올린다. 필자에게 나이지리아는 음악 장비를 팔려고 인터넷 광고를 올렸더 니 500유로짜리 위조 여행자수표 네 장을 보낸 사기꾼이 사는 나라 (홀로그램 의 디테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펠라 쿠티의 나라이기도 하다. 펠라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건 런던의 후미진 거리에 있던 노점 상에서였다. 재즈(Jazz) 음악 만큼이나 자유롭고 훵크(Funk)만큼이나 신나는 동시에 아프리칸 소울이 느껴졌던 그의 음악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뮤 지션의 존함(왠지 이름이라 물어보기엔 그의 음악을 너무 가벼이 보는 느낌이 들었기에 존함이라 여쭤봤다)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필자는 그 노점상을 운영 하는 나이지리안 아저씨에게 물어봤고, 그는 아프리카음악에 흥미를 보이는 동방예의지국의 젊은이가 흥미로웠던지 독특한 억양과 숨 쉴 틈도 없는 언변 으로 펠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사실 런던에서는 아프리카계의 사람들과 그 들의 문화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런던의 펙험 (Peckham) 그리고 필자 의 이웃 동네 브릭스턴 (Brixton)에 아프리칸-캐리비안 커뮤니티가 크게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각설하고 학창시절 역사 수 업 시간의 엄숙한 분위기를 조장해본다. 펠라는 1938년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 북쪽의 아베오쿠타에서 목사이자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와 페미니스트이자 反 식민주의를 주장했던 정치운동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 장한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영국 런던으로 의학을 공부하러 떠났다.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뒤로하고 펠라는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클래식 음 악코스를 이수. 하지만 유럽의 고전음악을 공부하는 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가슴 뜨거운 이 젊은이는 쿨라 로비토스 (Kula Lobitos)라는 밴드를 조직한 뒤 런던의 재즈씬에서 재즈와 하이라이프 (가나에서 유래해 나이지리아 등에 퍼 진 아프리카음악)를 퓨전한 음악을 연주하며 활동을 해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펠라는 정치, 사회 이슈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이 모든 것이 아프로 비트의 태동이었다.

FELA KUTI

15 October 1938 – 2 August 1997 Concert #1 1960년대 말에 있었던 두 번의 중요한 만남을 통해 펠라의 음악과 사고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첫 번째 만남은 크림과 블라인드 페이스라는 전설의 록 밴드의 드러머인 진저 베이커와의 만남이었는데, 둘은 인간적, 음악적으 로 교류했고 1970년에는 진저베이커가 직접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공연에 참 여하기도 했다. 이들의 음악적 교류는 1970년 <’69 London Scene> 앨범의 “Egbe Mio” 트랙과 1971년 <Fela Ransom Kuti & Afrika ’70 with Ginger Baker: Live!>앨범, 그리고 진저베이커의 1972년 <Stratavarious>앨범에서 들을 수 있다. 또 다른 만남은 1969년 팰라가 그의 밴드를 이끌고 로스앤젤레스를 찾았을 때 만났던 산드라 이시도어를 비롯한 다른 흑인 민권운동가들과의 정치적, 정 신적 교류였다. 당시 그의 밴드 쿨라 로비토스는 6년 동안 나이지리아에서 하 이라이프와 재즈를 결합한 퓨전 음악을 계속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의 흑인 급진단체 블랙팬더당의 멤버였던 산드라는 그에게 말콤 X, 엘드 리지 클리버를 비롯한 흑인 개혁가들의 진보적인 철학을 소개하며 펠라에게 의식을 반영한 가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워크퍼밋 (근로허가 증)이 없다는 이유로 로스엔젤레스 이민국에서 출국을 요구받았다. LA를 떠 나기 전 녹음한 <the ’69 Los Angeles Sessions>는 새로운 스타일을 반영한 앨범으로서 그전의 하이라이프와 재즈를 퓨전한 음악스타일을 뛰어넘어 훵크 와 소울의 영역까지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15분 러닝타임은 4분대로 줄어들 었고 여전히 하이라이프 성향이 강했지만 “My Lady Frustration”과 같은 트 랙에서는 제임스 브라운의 영향도 감지할 수 있다). 1970년 아프리카의 현실과 민중운동에 눈을 뜨고 돌아온 펠라는 밴드의 이름 을 Afrika 70으로 바꾸고 이때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확립시켜나 갔다. 이 때부터 그의 음악적 철학이 ‘자유로운 음악이 아닌 자유를 위한 음악’ 으로 바뀌었다. 소울과 훵크에 요루바족 음악과 범 아프리카주의에 영감을 받아 관악기 세션, 콩가 등의 퍼커션, 여성 코러스 등으로 폴리리듬을 융화시키 고 거기에 자신만의 메세지를 담아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느낌의 새로운 감 각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또한, 자신의 메세지를 아프리카 전역에 알리기 위 해 요루바어 대신 피진영어로 노래하기 시작했고 (펠라는 주로 영어로 노래 불 렀지만 억양이 독특하고 요루바어가 섞여 있어 미국의 흑인음악보다는 훨씬 에스니컬한 느낌을 준다), 뚜렷한 멜로디를 노래하기보다는 주술을 외우듯 한 스타일로 노래하였다. 특히나 메인 보컬과 여성 코러스가 주고받는 Call and Response는 한국 전통 판소리의 ‘창자와 고수’의 관계와 비슷한데, 이는 아프 리카 전통음악과 미국 초기 흑인음악에서 발견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Concert #2

1960년대 후반부터 펠라는 자신의 음악을 나이지리아 군사정권의 억압에 맞 서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아프리카의 대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대중 스타로 남아 있길 거부하고 끊임없이 실업자들과 다른 소외계층과 같은 민중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인 명성 이면의 그 의 인생은 정치적인 박해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반정부성향의 펠라의 인기가 치솟자 군부는 그를 위험인물로 지정했고, 1973년부터 나이지리아 정 부의 감시를 받던 펠라는 1974년 대마초 소지 혐의로 50명의 경찰에 의해 체 포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7년에는 1,000명의 군인들이 펠라의 집을 습격하여 불을 지르고, 여성 멤버들을 성폭행, 펠라의 모친을 창문 밖으로 던 져버리기까지 하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그의 모친은 이듬해 사망했고, 펠라는 크나큰 충격과 슬픔을 안고 가나로 망명길에 올랐다. 하지 만 1979년 다시 모국으로 돌아와 국민운동 (Movement of the People)이라 는 비공식 진보정당을 결성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섰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았 다. 나아가 1980년에는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다행스럽게도 음악 활동에는 자유가 보장되었다. 이때 밴드의 이름을 Egypt 80으로 바꿨고, 당시 발표된 앨범 <Black President>와 <Original Sufferhead>의 음악들은 펠라의 최고 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음악도, 미국 음악도 아닌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하지만 짧은 민정 이후 1983년에는 군부 쿠데타로 다시 군부의 집권이 시작되 었다. 1984년 펠라는 라고스 공항에서 외화 도피 사건으로 체포되어 투옥생활 을 하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노력으로 18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에도 펠 라는 꾸준한 음악 활동을 해나갔으나, 에이즈로 인한 병마와도 싸워야 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절대 멈추지 말고 싸워라’라는 감옥에서의 선언과 ‘음악은 미래의 무기’라는 평소의 신조를 실천해 나갔으나 쇠약해진 펠라는 1997년 유 명을 달리했다. 펠라가 떠난 지금은 그의 아들 페미 쿠티와 세웅 쿠티가 아버 지의 음악과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으며,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펠 라!>뮤지컬은 전세계 사람들이 그의 삶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Music is the Weapon of the Future” 자유로운 노래가 아닌 자유를 위한 노래를 불렀던 나이지리아의 펠라 쿠티그는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뮤지션이자 아프로비트라는 음악으로 밥 말 리의 레게 이후 제 3세계 흑인음악의 국제화에 성공한 월드뮤직의 한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리고 삶과 정치, 예술과 음악이 선동적인 동시에 이처럼 완벽하게 융합되었던 뮤지션도 흔치 않을 것이다. 펠라의 삶과 정치투쟁을 따 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에 맞서 싸우는데 일생을 걸었었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프로파간다였고, 나이지리아의 민주화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아프리카 해방을 위한 무기였다. 동시에 민중들에게는 그의 음악은 희망이자, 대변의 목소리였으며, 영혼의 울 림이었다. 때문에 오늘날 그가 창시한 아프로비트는 그저 단순히 리듬감이 넘 치는 춤추기 좋은 음악이 아니라 사회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저항의 음악이 며 노예역사란 파편 위에 또 다른 한이 녹아있는 아프리카의 소울이다. 마지 막으로 그가 남긴 음악과 메세지가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 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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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ROOM

배낭 두 개 Episode 6 : 꽃을 단 히피 WORDS, PHOTOS : JUNE, JEE

JUNE

JEE

10년 동안의 음악활동을 바탕으로 음악과 영상 작업을 하고 있는 미디어 작가. 30년 뒤 멋진 ‘로큰롤 할아버지’를 꿈꾸며 매년 여름이면 록의 고향 영국으로 날아가 보고, 듣고, 경험을 쌓는 중. 초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

JUNE

JEE

“저 여자애가 한 머리띠 예쁜데? 꽃으로 만든 거 말이야.” “응, 이번 년도 아이템은 ‘꽃 머리띠’인가봐. 근데 매 년마다 유행이 다른 거 알 고 있었어?” “그래? 예를 들면?” “2008년도에는 신축성이 있는 끈이나 얇은 가죽 소재로 만든 히피 스타일의 헤어밴드가 유행이었지.” “MGMT가 하고 다녔던 거? 그럼 2009년도에는?” “그 다음 해에는 죄다 헤어밴드에 깃털을 꼽고 다니더라고. 큰 꽃 한 송이나.”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아. 자세히도 봤네.” “작년에는 빈티지 스카프를 이용해서 헤어밴드로 연출하더라고. 자기 방식대 로 꼬아서 묶거나 접어서. 그리고 올해는 한 번 봐봐. 작은 꽃을 여러 송이 엮어 서 만든 머리띠를 전부 하고 다니잖아.”

“와, 진짜 여기 있는 특이한 사람들만 찍어도 패션잡지 몇 권은 거뜬히 나오겠 어.” “맞아요, 언니. 제 레깅스도 화려할 줄 알았는데, 너무 평범하네요.”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더라도 60년대 말 히피 모습으로 현실을 살아가기에 는 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록 페스티벌이라면 머리에 꽃을 달고 그 때 그 시절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기분을 충분히 누려볼 수 있다. 특히 올해 글라스토라는 장소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무슨 말이냐면 4년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관찰한 바(정확히 말하면 JEE양의 관찰 결과)로는 그 해 사람들이 특 별히 많이 하는 액세서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올해의 아이템이 바로 꽃으로 만든 머리띠란 얘기. 石군이 촬영한 7월호 온라인 매거진 커버 사진의 쌍둥이 친구들 중 한 명이 머 리에 꽃 장식을 하고 포즈를 취한 것만 봐도 개성 있는 옷차림과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뽐내는 페스티벌 기간 역시 유행은 존재하고 히 트치는 아이템이 있다는 말씀. 신기하게도 제 작년의 깃털 헤어밴드가 올해 전 혀 보이질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자유로운 록 페스티벌에서조차 유행에 구애받는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하고 다니면 ‘미친X’ 소리 듣기 딱 좋은 복장으로 활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생각지도 못한 번뜩이는 패션 감각을 선보이는 이 들 또한 엄청나게 많으니까. 페스티벌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일탈의 기분을 맛보길 원한다. 평소에 입지 못하던 옷을 용기 내어 챙겨오고, 과감한 헤어스 타일을 하거나, 아니면 그러한 가발을 쓴다. 해마다 유행하는 독특한 액세서 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쉽게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간단한 아이템인 것이 다. “이거다. 이거. 글라스토용 레깅스!!” “또 사게? 작년에 입었던 것도 있고, 재작년에 가져갔던 것도 있잖아.” “매년 다르게 입어줘야 된단 말이야.” “......” 매년 갈 때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해야 된다며, 글라스토에서만 입고 잘 안 입게 되는 옷을 사버리는 JEE양을 처음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쳇 바퀴처럼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분을 단 1주일이나마 제대로 즐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에 반해 나는 하늘색 티 셔츠를 3년째 교복처럼 입고 글라스토에 매년 등교하고 있다. 쩝. 10

10년 동안 요리와 함께 삶을 보내던 중 록 페스티벌에 꽂혀 회사를 박차고 영국으로 날아감. 30년 뒤에도 스니커즈와 닥터 마틴이 잘 어울리는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함. 항상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걱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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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이거. 글라스토용 레깅스!!” “또 사게? 작년에 입었던 것도 있고, 재작년에 가져갔던 것도 있잖아.” “매년 다르게 입어줘야 된단 말이야.”

맞다. 내가 고른 반짝이 레깅스는 이곳에서 무난한 축에 속했다. 슈퍼마리오, 푸우 혹은 티거나 미키마우스로 변신할 수 있는 복장을 한국에서 챙겨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페스티벌에서 튀는 재미있는 옷을 준비하기위해 며칠은 고 민했을 것 같은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아니, 슈퍼마리오 무리와 푸우, 티거 같 은 캐릭터들 사이에 있다 보면 정말로 여기가 게임이나 만화 속 세상이 아닐 까하는 착각이 들게 된다. 슈퍼마리오 같은 거한 복장은 할 수 없었지만, 돌아다니다보니 유독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가 있었다. 작은 꽃들이 장식된 머리띠. JUNE군이 물어봐서 한 번 더 자세히 년도 별로 정리해보게 되었지만, 평소에도 영국 여자들이 머리에 하는 아이템을 관심 있게 보기는 했었다. 꽃 머리띠! 올해는 이 스타일인가보 다. 가격도 적당했다. 다른 가게보다 1파운드 정도 저렴한 곳에서 흰색 꽃 머리 띠를 구입, 페스티벌 기간 동안 일탈의 기분을 내 방식대로 소심하게 누렸다. 화려한 레깅스야 한국으로 돌아와 입을 수 있지만, 아마도 꽃 머리띠는 못할 듯싶었다. 그러기에 좀 더 기분이 특별했다고 할까?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일주일간의 뮤직 시티, 글라스톤버리. 잠시나마 복잡한 하루하루를 멀리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지구 반대편인 이곳으로 날 라 올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현실 도피나 회피가 아닌 잠시 동안의 휴 식. 이곳 페스티벌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NOKID 의 이달의 짬짜면]은 먹거리 탐방 코너는 아니구요. 짬짜면이라는게 짬뽕도 좋고 짜장면도 좋은데 주머니 사정으로 하나만 골라야하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거겠지요? 하지만 짬짜면은 짬짜면입니다. 고급 짬뽕 , 고급 짜장면은 있지만 고급 짬짜면은 없습니다. 어중간한건 고급이 될수 없기때문입니다. 저는 그림쟁이라 글 솜씨에는 자신이 없어서 한 가지에 집중해 진득하게 글을 풀어나갈 생각을 하면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 코너는 이달에 제가 좋았던 일,생각나는 일들은 이것저것 잡탕해서 여러가지를 맘대로 막 풀어나가려다보니 이 어중간한 글들이 짬짜면같이 느껴져서 [이달의 짬짜면] 이란 제목을 붙이기로했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위의 만화 [ HELLO NOKID ]는 반년전쯤 Elephant-Shoe 웹진에 실었던 것을 다시 본지 지면으로 옮긴 것입니다. 현재 10편까지 웹상 에 올라가 있고 제 블로그에서도 보실수 있습니다. blog.naver.com/starfucker6 현재 30살 을 쳐먹고 처음으로 소소한 카피밴드를 시작하게 되어서 , 그 이야기를 만화로 풀까합니다. 다 그림쟁이들로 구성된 밴드이고 위에 일러스트에는 3명으로 되어있는데 현재는 4명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면서 캐릭터를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달의 음악 - 이달에는 4장의 CD 를 구입했습니다. 그중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의 2집[우정모텔] 과 전에 텔레파시와 네스티요나에 몸을 담고 있던 이호진씨의 프로젝트 밴드 ‘온달’을 가장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구남은 정말 끝장이네요. 소포모어 따윈 없습니다.이번 2집 정말 강추입니다. 이달의 만화 - 작품 ‘마녀’ 와 ‘영혼’ 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본작가 이가라시다이스케의 신장 SARU 이달에 하고 싶은말 - 이번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시장님 축하드려요. 이제 겨울이 오고있습니다. 모기가 없어 좋긴 합니다만. 난방비가 많이 나오기 시작해서 좀 안타깝습니다. 제주도로 이사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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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LIVE ● THE MOONSHINERS / CHACHA ● OCT 7 2011 @ v-HALL ● photo : daw youn jun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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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Sketch

GMF 2011 WORDS : 石군, PHOTOS : 石군, 민트페이퍼

1년에 한 알이면 됩니다. 야외 음악 축제 결핍증을 샐 틈 없이 잡아주는 음악 종합 비타민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추운 겨울이 되면 야외 음악 페스티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음악 팬이 한 손 에 아이팟을 꼭 쥔 자세로 석고상이 된 채 발견됐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 다. 이 무시무시한 질병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곰이 겨울잠을 자기 전에 지방을 축적해놓듯, 양질의 야외 페스티벌을 찾아 겨울 내내 곱씹을 추억거리 를 쟁여놓으면 된다. 요즘에는 여름, 가을 음악 페스티벌들이 부쩍 늘어났기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페스티벌에 가기가 쉬워진 것은 아닌듯 하다. 계획은 열심히 세우고, 결국에는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며 포기하는 사람이 아직도 주변에 많이 있으니 말이다. 계획을 취소할 때마다 “에이, 다음 달에 열리는 페스티벌 보러 가면 되지!”라고 말하는 그들! 그런데 취소한 그 페스 티벌이 그해의 마지막이었다면? 안타깝게도 그는 <아이팟 들고 있는 돌하르 방, 서울 도봉구에서 발견!>이라는 인터넷 기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을 보낼 에너지를 비축하지 못한 이들에게 희소식이 있 다.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다른 공연 두세 곳에서 얻을 추억을 얻을 수 있는 페 스티벌, 바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다. 이틀 모두 매진돼 많은 이들이 이 페 스티벌을 찾아, 봄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어 갔다. 하지만 티켓을 못 구했거 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이를 찾지 못한 독자 분들을 살리고자 엘리펀트 슈 가 그랜드 민트의 재미거리를 필사적으로 구해왔다. 예방접종하듯 빨리 이 종 합비타민을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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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러가 아닌 즐기러 자우림

발전을 넘어 안정 단계로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페이지 “Striking Gig at GMF”에서 자세히 다루 니, 우선은 페스티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작년 그랜 드 민트 페스티벌 리뷰 기사 끝자락에서 “매 회마다 착실히 발전하는 페스티 벌”이라 정리했었다. 그런데 올 해의 GMF는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는 것 같 았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올해도 많은 부분에 신경 썼음을 알 수 있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몇 년째 계속해서 사용해오던 민트 브리즈 스테이 지의 외부 디자인이 기존의 넝쿨 모양에서 바람개비 모양으로 바꾼 것으로, 덕 분에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외형적인 부분에서의 변화에서 멈추지 않고, 무대 스펙도 굉장히 많이 업그레이드하였다. 무엇보다도 조명은 기존 단순 직선형 프레임이 아닌, 우물 정자 모양의 곡선 프레임에 설치되어 보다 입체감 있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무대 위치 또한 입구 오른쪽에서 정면으로 옮기면 서 관객들의 동선도 한결 편해졌다. 개인적인 생각에 4회까지의 GMF는 계속 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해가는 발전이었다면, 올 해는 기존의 것들을 수정 해가는 발전으로 느껴졌다. 이제 페스티벌로서의 완성도를 높여가며, 안정화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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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 페스티벌이 안정감을 갖고 운영되기까 지에는 5년 정도가 걸리며, 성공한 페스티벌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10년이 걸린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축제인 후지 록 페스티 벌도 1,2회가 모두 기상에 의해 실패하였고, 심지어 사상자까지 발생해 결국 장소를 변경했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을 끈기있게 수정 해가며 맞이한 5회에는 드디어 10만 관객이 후지 록 페스티벌을 찾으며 안정 되었고, 이 후 매회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일본의 음악 시장과 한국의 음 악 시장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음악 페스티벌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에서 성공적인 케이스를 만들어 가고 있는 대표적인 페 스티벌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라고 생각된다.

해외 음악 페스티벌에 처음 가서 타임테이블을 보며 하루 동안 볼 공연 계 획을 세울 때 굉장히 무리한 스케쥴을 잡았었다. 한 팀이라도 더 많은 공연 을 봐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계획에 따라 바삐 움직일 때, 무대가 잘 보이지도 않는 곳의 나무그늘 밑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는 관 객을 보면 ‘여기엔 왜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라이너였던 레드 핫 칠 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공연 전, 다른 무대에서 쿨라 쉐이커(Kula Shaker)의 재결성 첫 공연이 있었다. 두 공연 모두를 포기하지 못했던 나는 결 국 조금 앞서 시작하는 공연인 쿨라 쉐이커의 무대로 갔다. 계속해서 시계를 보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 시작 시간을 체크했고, 결국 단 두 곡만을 들은 채 그 공연장을 떠나야 했다. 근데 그 두 곡이 뭐였는지, 무엇을 봤었는지 그 당시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을 보러 되돌아가던 길에서 아까 전 그 관객을 다시 만났다. 바닥에 누운 채 옆의 친구 와 수다를 떨며 웃고 있는 관객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심해 보였던 그 관객 이 왠지 나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 한국에 돌아와 회상해보니, 공연에 대한 추 억보다 텐트를 산비탈에 힘들게 같이 설치하고, 텐트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떠들었던 기억이 더 자세히 기억이 난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외국에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 의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였다. 공연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기보다 는, 공연을 같이 보러온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큰 비중을 둔 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 현장을 둘러보며 불 과 몇 년 전과 비교를 해보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삼삼오오 모 여서 공연을 보며 함께 뛰기도 하고, 또 다 같이 수다를 떨기도 하며, 장난을 치 며 왁자지껄 떠드는 그룹들을 이제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변화에는 피크닉형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연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 일조했다. 올 해에도 역시 돗자리에 친구들과 모여 앉아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누워있는 남자친구의 등을 책상 삼아 노트북을 올려놓고 웹서핑을 하는 여자친구처럼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겁게 즐기고 있었다. 공연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닌 공연을 즐기러 가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올 해 石군이 가장 재밌게 즐긴 여 섯 가지를 다음 페이지에 준비했다.


김도향 – CM송 메들리

데이브레이크 – 팝콘

칵스 – 진짜, 정말 스페셜했던 게스트 한혜진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니 “어느 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로 시작하는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가 생각났 다. 그 곡을 듣고자 찾은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에서 뜻밖의 큰 즐거움을 얻었 다. 바로 대략 3천여 개의 CM송을 제작했다는 그의 CM송 메들리였다. 맛동 산 먹고 신나는 파티로 시작된 이 메들리는, 비비 꼬였네~(스크류바), 우리집 강아지 뽀삐 등등으로 무한히 이어지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LG로 마무리 지었다. 이를 듣고 있자니 100원짜리 두 개를 한 손에서 짤랑 거리며 빠삐코 를 사러 가며 “빠빠라빠빠빠 삐삐 빠삐코~”를 계속해서 흥얼거리던 어렸을 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며 이미 시작된 떼창에 일조했 다. 떼창을 부르던 다른 이들 역시 아마 나와 같은 마음으로 따라 부르기 시작 했으리라. “아~ 추운데도 빠삐코가 땡기네.”

2년 전에는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의 첫 팀으로 섰던 데이브레이크가 작년에 는 오후 팀으로 뛰어오르며 제법 많은 관객을 모았었다. 그러더니 올 해에는 체조경기장 무대인 클럽 미드나잇 선셋을 정말 말 그대로 꽉꽉 채운 채, 폭발 적인 호응을 얻었다. 공연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던 중 무대 전체가 암전되었 다. 이 후 조명이 켜지자 멤버들 모두가 악기를 내려놓은 채 서 있었다. 이내 뒤 의 스크린에 “POP, POP”이라는 글씨가 표시되며 음악이 나오자 멤버들이 춤 을 추기 시작했고, 모든 음악 소리가 없어지며 심장 뛰는 소리만이 스피커에서 나왔다. 이를 보던 나는 설마설마 했는데 그 설마를 정말로 해버리고 말았다. 심장소리에 맞춰 보컬 이원석이 2PM의 “HeartBeat”안무처럼 가슴 근처에서 오른손을 줬다 폈다 했다. 이에 호응한 관객들의 환호성이 한계치까지 터져 나 올 때 쯤, “팝콘”연주가 시작됐다. 물론 춤이야 2PM만큼 잘 추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관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보였다. 아무튼 다음에 데이브레이 크를 인터뷰하게 되면, 인사 대신 오른손을 가슴 근처에 대고 줬다 폈다 하며 다가가야겠다. Can you feel my Heartbeat?

GMF의 첫 날, 저녁을 사기 위해 서 있던 줄 바로 옆에서는 사인회가 열리고 있 었다. 당시 사인회의 주인공은 장윤주였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그녀를 가까 이에서 볼 수 있었다. 케밥을 사온 여자친구는 그녀를 보곤 “이 케밥을 쓰레기 통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장윤주는 엄청난 몸매를 갖고 있었다. 다음날 칵스의 공연을 보던 중, 요즘 최고의 히트곡인 “12:00”의 전주가 암전 속에서 시작되다가 이내 연주도 멈췄다. 다시 시작된 노래에서는 보컬 이현송 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속 암전된 상태였기에 나 는 ‘관객을 무대에 올렸나?’ 생각했고, 연주가 계속되며 조명이 들어오자 어제 봤던 장윤주만큼이나 멋진 여성분이 무대 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누구인지 궁금해 타임테이블을 살펴보니 한혜진이라 적혀 있었다. 평소 패션 에 무심한 나였기에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무대 위에서의 과감한 퍼포먼스들 로 각인된 그녀의 이름은 앞으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장윤주와 한혜진은 같은 모델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그 회사도 이번 GMF에서 한 부스 를 운영했다. 그 곳에는 많은 신인 남성 모델들이 있었고, 프리허그도 진행됐 다. 근데 왜 여성 모델들은 없었던 건지 그것이 궁금하다. (내가 갔을 때만 도 망갔었던 건가?)

Striking gig at GMF

수십 팀의 아티스트가 몰리는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타임테이블을 보다 보면 뮤지션과 뮤지션 사이에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이 때 포기했던 공연에서 엄청난 퍼포먼스가 있었다면? 그런 불행을 겪은 이들 을 위해 石군이 직접 본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6가지를 뽑아봤다.

Tahiti 80 – Crack up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재림?

Grand Mint Band

둘째 날의 클럽 미드나잇 선셋의 마지막 팀이었던 델리 스파이스의 바로 전

올 여름, 모든 음악차트를 석권했던 것이 바로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 제에서 발표됐던 곡들이었다. 이에 참여했던 뮤지션들 중 10cm, 이적, 스윗 소 로우는 GMF 무대에 섰다. 때문에 이들의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석에서는 각

완전한 만원 공연이었던 검정 치마 공연을 보려고 줄을 서 있다가, 조금도 앞 으로 가지 못하기에 포기하고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로 이동했다. 한참 사운드

팀이 프랑스 출신의 인디 팝 밴드 타히티 80이었다. 예전에는 굉장히 좋아했 던 팀이었는데 어느 순간 신보가 나와도 찾아서 들어보지 않는 잊혀진 팀이 되 었다. 그런 그들의 GMF 참여 소식은 옛 추억 속에 잠들어 있던 그들의 명곡인 “Heartbeat”나 “1000 times”를 다시 들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추억에 잠겨 처음 본 그들의 공연, 그들을 놓고 지낸지 오래되다 보니 낯선 곡들이 주를 이 룬 공연에 쉽게 빠져 들지는 못했다. 그렇게 어느 새 마지막 곡이 되었고 역시 나 낯선 곡인 “Crack up”이라는 곡이 연주됐다. 또다시 생소한 곡이었기에 무 덤덤하게 듣던 나는 점점 집중하게 되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특별한 영상이 나왔던 것도 아니었고, 게스트가 나왔던 것도 아니었으며, 특별한 무대장치가 쓰였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 은,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음악 자체의 반짝임 때문이었다. 요 근래 공연장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더더욱 집중해서 음 악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GMF에서 최고의 공연 이었다고 생각한 이 곡을 QR코드로 들을 수 있도록 준비 했다. 비록 GMF에서의 공연 영상은 아니지만 꼭 한 번 들어보시길!

뮤지션의 파트너였던 무한도전 멤버의 이름이 연호됐다. 첫 날 공연한 10cm 는 공연 중반 쯤 하하와 함께 부른 “죽을래 사귈래”를 불렀다. 무한도전의 하 나마나 공연에서 하하는 “난 10cm 없으면 공연 못한단 말예요!”라고 말하 며 10cm에게 의지했었는데, 10cm의 공연에서 하하 파트를 보컬 권정열이 부 르니 의외로 하하의 부재가 아쉬웠다. 둘째 날의 스윗 소로우는 정준하와 함 께한 “정주나요”를 의외로 굉장히 초반부에 불렀다. 그 노래 잘하는 스윗 소로 우조차도 정준하의 엄청난 콧소리를 흉내내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앞선 두 공 연 모두 하하나 정준하가 나오지 않았기에 마지막 공연인 이적 공연에 대한 기 대는 점점 높아졌다. 바로 국민MC 유재석의 등장 여부 때문이었는데 앵콜 곡 으로 연주된 “압구정 날라리”에서도 그는 나오지 않았기에 관객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에 이적은 “제 단독공연에는 그 분께서 오시기로 했 어요.”라며 공연홍보와 관객 달래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었다.

체킹 중이었는데,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베이스 사운드가 굉장히 익숙했다. 공 연을 볼 때마다 정말 연주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데이브레이크의 베이스 소 리였다. 자세히 보니 데이브레이크의 베이시스트 김선일이었다. 데이브레이 크의 공연은 다음 날로 알고 있었는데 잘못 봤나 싶어 다시 한 번 타임테이블 을 펴보니, 장윤주와 알렉스 옆에 GMB with Artists라고 적혀 있었다. GMB 란 Grand Mint Band로 올해 GMF에서 기획된 팀이다. 참여 팀은 데이브레이 크, 세렝게티, 칵스 등으로 굉장히 화려하다. 친숙한 밴드들이 본인의 음악이 아닌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연주하며 함께 하는 그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적이나 김도향 공연 때 기타를 연주했던 칵스의 이수륜 은 언제나처럼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연주하는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비록 표정은 같았어도 음악 스타일이 칵스와는 전혀 다른 이적과 김도향 공연에 잘 녹아들으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살짝 표시하는 그 의 기타 실력에 다시 한 번 놀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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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Sketch Beyond Live 데이브레이크, 피터팬 컴플렉스, 칵스, 더 문샤이너스, 몽구스 2011. 10. 7 @ V-Hall words : 石군, photos : daw youn junge 엘리펀트 슈 파티가 꽤나 긴 시간동안 열리지 못했었다. 이에 이번 “엘리펀트 슈 타블로이드”의 발간일이었던 10월 7일에 맞춰 공연을 준비했다. 이번 엘 리펀트 슈 파티는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엘리 펀트 슈의 마지막 파티에도 참여했었던 데이브레이크를 비롯해, 피터팬 컴플 렉스, 칵스, 더 문샤이너스, 몽구스까지 이번 공연에 출연했다. 공연날인 10월 7일. 공연 준비를 위해 12시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여자 두 분이 공연장 로 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공연 시작 6시간 전이었기에 당연히 공연장 스텝일 것 이라 생각하고 인사를 드리며 담당자 분이 오셨는가를 물었다. 그런데 잘 모 르겠다는 대답을 하며 어색해하던 그녀들은 사실 관객이었다. 선착순 입장이 었던 이 날 공연에서 앞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6시간 전에 공연장을 찾은 것이 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들이 과연 어느 팀의 팬인가?’였는데, 절대 답을 하 지 않았다. 그러다 칵스 공연 중 무대 위에서 객석을 향해 촬영을 하던 중, 그녀 들이 칵스 수건을 펼치고 열광하는 모습으로 내 질문에 말없이 답해주었다. 몽구스가 등장하며 공연이 시작되었고, 리허설 때에는 들을 수 없었던 관객들 의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에 몽구스도 리허설보다, 또 다른 공연보다 도 더 멋진 연주와 노래를 보여주었고, 관객들은 슬슬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음에 나온 더 문샤이너스는 우직한 로큰롤 사운드로 한 번 더 관객을 뒤집어 놨고, 심지어 앵콜을 마칠 때에는 기타 줄을 끊으며 관객들의 정신 줄도 같이 끊어놓은 채 퇴장했다. 이어서 칵스가 나오자 관객들은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정신없이 공연을 즐겼다. 덕분에 칵스의 공연이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보컬 이현송은 “정말 오래간만에 진짜 재밌게 즐기면서 공연했어요.”라고 말 할 정도였다. 앞의 세 팀이 연속으로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해 계속해서 뛰어 노 느라 지친 이들을 위해, 템포를 살짝 낮춰 피터팬 컴플렉스가 등장했다. 긴 연 륜을 가진 팀답게 히트곡 <너는 나에게>를 연주할 때에는 떼창이 터져 나왔 다. 4시간이라는 긴 공연 시간을 지나, 마지막으로 데이브레이크가 무대에 섰 다. 긴 공연시간동안 서서 관람을 하느라 지쳤을 법도 한데도 엄청난 호응을 해주는 관객들을 보며, 데이브레이크의 인기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5시간동안 관객으로 가득 찼던 공연장. 사람은 모두 떠나고 열기만이 남아있 는 공연장의 쓰레기를 주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는 공연을 본 관객도, 공 연을 한 밴드도, 공연을 준비한 엘리펀트 슈 식구들도, 모두 즐거웠기 때문. 모 두가 즐거웠던 공연, 비욘드 라이브. 곧 2회도 이어집니다!

권우유와 위대한항해 ‘먹고 자고’ 발매 기념 라이브 콘서트 권우유와 위대한항해, 조정치, 카스테라 2011. 9. 17 @ 클럽 빵 words , photos : 石군 넘버원코리안의 보컬, 권우유의 솔로 프로젝트 “권우유와 위대한항해”가 올 해 9월 6일 EP앨범 <먹고 자고>를 발표했다. 지난 권우유의 1집 <위대한 항 해>는 자신이 직접 만든 음악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 EP앨범 <먹 고 자고>는 권우유가 위대한 항해를 하며 돌아다니면서 만난 이들과의 이야 기를 담았다. 한 예로 “열아홉, 그 해 여름”이란 곡은 권우유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옷 가게에서 만난 한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만들어졌다. 그 소녀가 바로 이 곡의 노래를 한 “한주리”다. 이렇게 권우유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작 업하여 만들어진 앨범의 발매 기념 공연이 9월, 클럽 빵에서 있었다. 이 날의 공연을 위해 권우유와 함께 항해 중인 위대한항해 멤버들인 이 상헌(Guitar), 김종음(Bass), 류형준(Drums), 폭도(Trombone), 양현석 (Percussion)이 모였다. 그 외에도 작년에 <미성년 연애사>를 발표한 조정치 와 박민규 작가에 대한 오마주밴드 카스테라도 게스트로 참여해, 앨범 발매 를 축하했다. 그 후, 드디어 이 날 공연의 주인공 권우유와 위대한항해가 무대 에 올랐다. 이상헌의 하모니카 연주로 조용히 시작된 공연은 권우유 1집과 이 번 EP의 곡을 잘 섞어 배치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열아홉, 그 해 여름>을 부르기 위해 객원 보컬 한주리가 무대에 올라왔다. 흰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올라오니, 칙칙했던 무대 위 남자들에게서도 화사함이 느껴졌다. 이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그녀가 단 한 곡만을 불렀다는 사 실이었다. 다시 칙칙해진 무대에 집중하게 만들고자 여섯 남자들은 보다 더 뜨거운 연주를 보여줬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떠났음에도 공연장은 습식 사우나처럼 여전히 후끈했다. 이 뜨거웠던 발매공연을 시작으로 이들의 항해 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들의 멋진 배에 탑승해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 자. 겨울에는 온풍도 나오는, 히터 달린 배라고 한다.

Comming up 11/11 지구자립의 날 기념콘서트 11/19 홍대 클럽 빵 공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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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 카메라 울렁증과 대회 긴장증을 가지고 TV 오디션 프로그램 “TOP BAND”에 출연, 멀미하며 결승전까지 간 그들의 이야기. 엘리펀트 슈의 올 해 4월 호 인터뷰의 주인공은 바로 POE였다. 그때까지만 해 도 石군에게조차 생소한 이름이었으니, 대중에게는 굉장히 생경한 팀이었다. 그로부터 약 7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은 한국의 밴드들 중에서 많은 대중에게 알려진 몇 안 되는 팀 중에 하나가 되었다. 바로 TV 프로그램 “탑밴드”를 통해 서 말이다. 엘리펀트 슈에서 소개되었던 팀이 보다 많은 전문가들에게, 또 대 중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마치 엘리펀트 슈의 밴드 선구안을 인정받 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토너먼트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石군 개인 적으로는 바랐고, 끝내 결승 무대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었다.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곳까지 간 POE가 자랑스러웠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홍 대 한 까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그들을 만났다. 더 이상 경연의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지 한동안 지었던 긴장된 표정이 아닌, 이전의 밝은 표정으 로 돌아왔다. 평소에 워낙 유쾌한 POE였기에 이번에 새로 준비한 부루마블처 럼 진행되는 “다이스 인터뷰”코너의 첫 팀으로 적합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를 처음 보고는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라고 연신 물어보는 센도(Drum) 를 보니 잘못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다이 스 인터뷰 첫 호의 주사위는 POE로 던져진 것을.

대 해 이 무 야 대 기 ,이 해 Ph 전 주 과 ot 세 o 요 달 Bo . 랐 ot 던 h 점 은 6. ? 카 메 라 울 렁 증 7. 은 배 극 탈 복 이 되 나 었 서 는 지 쉬 8. ? 어 탑 야 밴 합 드 니 경 다 연 뒤 중 로 9. P 두 탑 OE 밴 칸 최 드 이 고 내 동 , 최 에 하 악 서 세 의 독 요 최 자 무 . 대 질 대 라 문 ? 이 코 벌 너 이 라 10 느 .키 꼈 뮤 던 탈 팀 퇴 은 에 ? 대 황 한 금 이 열 야 쇠 기 카 를 드 해 11 주 .E 세 P앨 요 . 범 에 대 한 관 심 ,재 발 매 또 는 정 규 앨 범 계 획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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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치 님 에

5. 결 승 전

득 과 후

4. 남 궁 연

출 연 3. 탑 밴 드

2. 탑 밴 드

출 연

전 과

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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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장

출 발 ! 1. 포 에 게

탑 밴 드 란 ?

WORDS, PHOTOS : 石군

차 이 점 은 ?

Dice INTERVIEW

123 물렁곈 : 그냥 주사위 굴리면 되는 거예요? 근데 왜 주사위가 1,2,3밖에 없어요? 石군 : 그건 최대한 많은 질문에 걸리길 바라는 엘리펀트 슈 가족들의 바람 때문이죠. 센도 : 누가 주사위를 던질까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던질까요? 물렁곈 : 그냥 오빠부터 굴려~

물렁곈 : 원래는 POE의 자작곡 “Help”를 하려고 했는데, 지상파에서 연주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었나 봐요. 변경 통보를 전 날 받았고, 결국 이전에 했던 곡인 양희은 선배님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로 바꿨어요. 결국 그 날 밤을 새서 연습할 수밖에 없었죠. 공연 바로 전 날에 연주곡을 바꾸게 된 것도 처음이었죠.(웃음) 아무튼 저도 결승전이 가장 마음 편히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게 가장 달랐던 것 같아요.

3 3. 탑밴드 출연 후 득과 실이 있다면? 센도 : 누구나 예상한 대답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또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POE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득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이번 출연이 정말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딱히 잃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별로 없어요. 물렁곈 : 아! 생각났다! 전 몸무게를 잃었어요! (웃음) 제 몸무게가 원래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넘을 수 없는 최저선이 있었는데 그걸 넘어서 까지 몸무게가 줄었어요. 경연 전이랑 비교하면 7kg이 빠졌어요. 물론 한두 끼 먹고, 안 먹고에 따라서 2kg이 왔다 갔다 하지만요. 킬 : 밥을 2kg을 먹는단 말이야? 물렁곈 : 난 그것보다 왜 화장실을 갔다 오면 2kg이 주는 건지가 더 궁금한데? (웃음)

2 5. 결승전 무대, 이전과 달랐던 점은? 물렁곈 : 키뮤가 탈퇴해서 센도 오빠랑 저랑 둘이서 무대에 섰죠. 센도 : 그 전 준결승도 너랑 나, 둘이서 했잖아. 물렁곈 : 아! 그렇네! 센도 : 전 준결승에서 게이트 플라워즈와의 경연 때는 정말 많이 긴장됐었어요. 그런데 결승전 때는 내려 놨다고 해야 할지, 뭔가 초탈했던 것 같아요. 그냥 정말 편하게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도 신기해요. 石군 : 결승전을 TV로 보다보니, 남궁연 코치가 바로 전날 급히 곡을 바꾸게 됐다고 하던데요?

1 Photo Booth 센도 : 아! 사진 찍어야 되는 거예요? 물렁곈 : 오빠가 굴려서 나온 표정으로 다 같이 찍자~ (주사위 2, 화난 표정 당첨) 킬 : 지금 사진 찍는 거예요? 石군 : 아뇨, 이따가 끝나고 한꺼번에 찍을게요. 킬 : 아, 다행이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냄) 물렁곈 : 와, 사진 찍는다니까 비비크림 꺼내는 것 봐! 이 남자, 이거 철저한 남자네~ 킬 : 전에 생얼로 사진 찍었었는데, 나중에 기사 나온 거 보니까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들고 왔어요. (웃음) 물렁곈 : 그럼 집에서 바르고 오지! 킬 : 직전에 발라야 효과가 있는 거야.

1 6. 카메라 울렁증은 극복 되었는지? 물렁곈 : 이건 센도 오빠를 위한 질문이다! 전에 엘리펀트 슈와의 인터뷰에서 石군이 카메라 들 때마다 얼었었잖아. (웃음) 그게 기사에도 나갔었고. 센도 : 음... 아니 아직 극복까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 아졌죠. 예전엔 정말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경직됐었어요. 근데 요즘은 반 대로 카메라를 보면 무언가 포즈를 취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된다는 강박관 념이 생겼어요. 아무튼 요즘은 그래도 카메라랑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요. 킬 : 저는 예전에는 친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 어색해진 것 같아요. 石군 : 그래서 비비크림으로 극뽁? 킬 : 에이! 비비크림이 뭐예요? 전 그런 거 몰라요~

2 8. 탑밴드 경연 중 최고, 최악의 무대는? 물렁곈 : 저는 1차 조별 예선이 최고였다고 생각해요. 그 때 연주했던 “Paper Cup”은 우리들의 연주도, 노래도, 사운드도, 관객들의 반응까지 모두 다 좋았 던 것 같아요. 만약 이 날 공연을 녹음했던 것이 있다면 정말 갖고 싶을 정도에 요. 반대로 최악이었던 것은 100초 본선무대에서 Chim Chim Cheree를 연주했을 때인데요.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저희들의 실수였겠지만, 큐 사인이 엉켜서 스텝들이 각기 다른 사인을 보내니까 저희는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센도 : 그렇게 다 얼음상태일 때, 한 스텝분이 제 옆으로 와서 제 하드레코더를 틀고 가더라구요. 그러자 음악이 나왔고, 저희는 다급히 연주를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저희들로서는 준비한 것에 미치지 못하는 연주를 했던 것 같아요.

2 독자 질문 코너

– Paper Cup 음원이 여러 버젼이 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물렁곈 : 전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가장 안정적인 EP 앨범 버젼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센도 : 전 조별예선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 때 분위기도 좋았고, 또 앞서 이야기 했던 대로 우리들이 연주도 굉장히 좋았었기 때문에, 정말 좋은 느낌으로 기억 되고 있어요. 킬 : 저는 얼마 전부터 POE에 합류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최근에 공연하면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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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착 !

최 종 목 표 는 ? 다 13 른 .가 멤 장 버 협 들 연 의 해 장 보 14 ,단 고 .자 점 싶 을 기 은 소 이 뮤 개 야 지 기 시 션 간 은 해 15 ? 주 .음 세 악 요 을 . 시 작 하 16 게 .탑 된 밴 계 드 기 출 연 후 무 인 대 도 형 에 기 획 오 사 신 로 것 부 17 을 터 .음 환 의 악 영 러 합 외 브 니 의 콜 다 개 은 인 18 없 적 었 .미 인 는 드 취 지 빠 미 ? 라 는 는 ? 소 19 문 .엄 이 마 도 가 는 좋 물 나 렁 요 곈 황 ?아 의 금 열 올 빠 쇠 해 가 추 좋 천 나 작 요 20 은 ?( ? .키 엄 우 빠 고 엄 있 금 는 !) 애 21 완 .외 동 계 물 인 이 과 있 의 는 음 독 지 악 ?좋 자 생 질 아 활 문 하 은 코 는 ? 너 동 물 22 은 .자 ? 신 의 이 상 형 을 솔 직 하 게 이 야 기 해 주 세 요 . 생 각 하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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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P OE 로

B 연주하고 있는 버젼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준결승에서 연주했던 Paper Cup 버젼에 후반부에서 제가 베이스를 볼륨 주법으로 연주하면서 딜레이를 많이 걸어 놓은 사운드를 추가했어요. 어쨌든 저의 사운드가 들어가 있어서 가장 마음에 들어요.

1 10. 키뮤 탈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물렁곈 : 멤버들 간에 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친구든 연인이든 그 관계가 끝나게 되는 것은 어떤 한 가지 계기 때문이 아니잖아요? 그냥 키뮤 본인이 ‘이제는 떠나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식으로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도 의견을 존중해서 인정해주기로 했던 거죠. 石군 : 그 이후에 만난 적은 있나요? 센도 : 아뇨. 저희가 그 동안 탑밴드 경연으로 정신이 없었기에 만날 수가 없었 어요. 서로가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만나 봐야죠. 그냥 쉽지 않은 선택임에도 결 단을 내렸던 거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결정은 인정해주려구요.

1 황금열쇠

– 가장 키가 큰 사람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모두에게 이야기해 극복해봅시다.

물렁곈 : 아하하, 센도 오빠 빨리 콤플렉스를 말해봐. 센도 : 아, 이런 게 걸리다니. 근데 전 딱히 콤플렉스 같은 건 없어요. 음. 굳이 뽑자면 좋지 않은 시력일까요? 시력이 별로 좋지 않은데 흐릿하게 보 이는 게 좋은 건가? 아니, 그보다는 잘 보이는 게 싫어요. 그래서 전 안경이나 렌즈를 끼지 않거든요. 물렁곈 : 진짜 변태 같지 않아요? 이상해~ 센도 : 아무튼 그래서 어리버리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거든요. 石군 : 그럼 군악대였을 때 사격은요? 군악대는 사격 안 하던가요? 센도 : 하죠. 했는데 늘 과녁을 빗나갔죠. 안경을 쓰지를 않았으니. 그리고 사실 사격도 훈련소 때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올 해 마지막 6년차 예비군 훈련을 마쳤기 때문에 더 이상 사격훈련을 할 일도 없구요. 내년부터는 5,6년차도 2박 3일짜리 동원 훈련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전에 예비군을 마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石군 : 억! 망했다! 저 내년이 6년차인데, 동원 훈련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킬 : 콤플렉스가 지금 생기셨네요! (웃음)

2 12. POE로 꿈꾸는 최종목표는? 물렁곈 : 우주정복. 石군 :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런 대답을 하다니. 물렁곈의 개인 목표가 아니라, POE로서요. 물렁곈 : 다들 동의한 내용이에요. POE의 목표가 우주정복입니다! 킬 : 네.. 네네.. 맞습니다! 우주정복! 石군 : ........ 주사위 굴리시죠.

이어서 지금 예명을 킬이라고 했어요. 사실 저는 원래 기타리스트예요. 그래서 기타도 치고, 사람도 치고, 사고도 치고 뭐든 다 쳤었는데, 딱 하나 안 쳐본 게 베이스예요. 사실 베이스를 POE에서 처음 쳐보는 거예요. 石군 : 엑? 정말요? 그런데 어떻게 POE에 합류하게 된 거예요? 물렁곈 : 키뮤가 탈퇴한 뒤에 굉장히 큰 규모의 공연이 있었는데, 저희가 50분 을 공연해야 했어요. 그래서 베이스를 정말 잘 연주하는 사람보다도, POE만 을 위해서 올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평소 알고 지내던 킬이 떠올랐고 부탁하게 됐죠. 킬 : 그런데 베이스를 생전 처음 쳐보니, 멜로디 라인을 어떻게 가져가고 이런 것보다도 악기 자체에 대한 적응을 하는 것이 더 급했어요. 기타보다 굵은 줄, 넓은 플랫 간격 등등에 적응을 하려고 노력했고,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에요.

石군 : 닥터 하우스가 아니라? 물렁곈 : 아아~ 하우스♡ 킬 : 닥터 후는? 물렁곈 : 아아 후♡. 닥터 후! 어쩌지~ 센도 : 슈퍼내추럴에 캐스티엘은? 물렁곈 : 아아 캐스티엘♡! 뽑을 수가 없어요오!

2 황금열쇠 – 야자타임! 앞으로의 인터뷰는 반말로 진행하세요. 센도 : 아, 이게 일찍 나왔어야 했는데, 어쨌든 이제부터 반말로!

2 21. 외계인과의 음악생활은? 3 무인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짝수가 나오면 탈출할 수 있습니다. 탈출 실패 시 지나쳐 온 질문 중 진행 자가 선택한 것에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3회 휴식 후에는 자동탈출) 물렁곈 : 와, 주사위가 1,2,3이어서 홀수 둘, 짝수 한 개인데 짝수여야 탈출할 수 있데! 이 게임 엄청 사악하다! 石군 : 으흐흐. 이래야 질문을 많이 하죠! 자 제가 궁금한 것은 4번 질문! 남궁 연 코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물렁곈 : 코치 선택을 하기 전에 우리는 모여서 가위바위보를 했어요. 이긴 사 람이 원하는 사람으로 선택하기로 했죠. 결국 센도 오빠가 이겼고, 선택에서 남궁연 코치님을 뽑았어요. 센도 : 전 정말 제가 이길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누굴 선택해야되나 엄청 고민 하고 있는 중에 저에게 마이크가 왔고, 다른 멤버 생각은 접은 채로 그냥 제가 원했던 남궁연 코치님이라고 이야기 했죠. 물렁곈 : 그런데 사실 저도 내심 원했던 코치님이어서 잘 선택했다고 좋아했었죠.

3 탈출 실패 石군 : 이번엔 독자 질문 카드에서 한 장 뽑아볼게요. 독자 질문카드 탑밴드 출연은 누가 주도했나요? 경연에서 초탈한 느낌이 들어서 출연 동기 가 궁금해요.

킬 : 음악적인 부분은 아닌데, 물렁곈이 진짜 외계인이 아닌가 고민에 빠지게 만든 계기가 물렁곈은 경보가 뛰는 것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경보는 진짜 빨라서 걸어서 이동하면 늘 물렁곈이 앞서 가는데, 달리기는 진짜 느려서 깜짝깜짝 놀라. 이게 외계인의 신체 구조상의 문제일지도? 물렁곈 : 나도 정말 그게 신기해. 아무튼 나에게 지구에서의 음악생활을 한마 디로 요약하자면 정말 너무너무 힘들다! 음악생활이라는 것이 음악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과 부딪혀야 된다는 게 제일 힘들어. 근데 지금은 반말 하는 게 힘들어. (웃음)

3 도착! 石군 : 자 드디어 완주! 마지막으로 엘리펀트 슈 독자분들에게 한 마디! 물렁곈 : 이젠 예의를 갖춰서 존댓말로 말씀드려야지. 저희 POE 올해 말에 공연이 몇 개 잡혀 있는데, 그 공연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새 앨범 준비에 들어가려고 해요. 그러니 올 해 남은 공연, 공연장에 많이들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년 발표될 앨범도 많은 관심 가져 주시구요. 센도 : 저희 황금열쇠 카드에서 다시 엘리펀트 슈에서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 를 얻었으니 그 때 또 만나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石군 : 자, 이제 다들 아까 포토부스에 걸렸으니 화난 표정 사진 찍으러 갈까요? 물렁곈 : 와, 편집장님 철저하셔. 까먹으셨을 줄 알았는데!

센도 : 탑밴드 출연을 하자고 처음 말했던 것은 저였어요. 그런데 물렁곈이 워 낙에 이런 경연이라는 분위기를 싫어해서, 안 나가겠다고 정말 말 그대로 울 며 불며 난리를 쳤었죠. 근데 저는 이런 곳에 나가보면 분명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계속 고집을 피웠죠. 물렁곈 : 전 그냥 음악만 신경 쓰고 싶었어요. 그 외적인 것까지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엄 청난 의지를 보이니 어쩔수가 없었어요. 나갈 수밖에. 대신에 제 나름대로는 탑밴드에 나가서도 음악에만 신경을 쓰자고 마음먹었고, 그게 시청자들에게 는 경연에는 초탈한 것처럼 보여 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 14. 자기소개 시간. 말 많은 물렁이는 한 단어로, 말 없는 센도는 길게~ 새로운 멤버인 킬은 자유롭게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2 탈출 성공

18. 미드빠라는 소문이 도는 물렁곈의 올해 추천작은?

물렁곈 : 일단 올 해, 셜록 2가 나옵니다. 石군 : 그거 영국 드라마 아닌가요? 물렁곈 : 아아, 그렇네요. 그럼 수트(Suits)요! 어어~ 덱스터도 있구요! 아무튼 미드는 많이 볼수록 좋습니다. 여러분! 추천작이 따로 필요가 없어요. 킬 : 편식하시면 안돼요! 石군 : 그럼 모든 미드, 영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하나를 뽑자면? 물렁곈 : 전 셜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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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렁곈 : 물렁물렁외계인입니다! 센도 : 음. 센도는 강원도 강릉 출신이고, 그래서 사투리를 쓰죠. 이제 예비군을 졸업하고 민방위가 된 제법 어른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군대에서 갖게 된 트라우마(내 의지대로 연주할 수 없다는 압박감에 손이 둔해졌던 것)는 많이 극복했구요.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이십대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센도입니다. 石군 : 지금 자기소개 길게 하신 건가요? 센도 : 음. 이 정도면 긴 거 아니에요? 진짜 말 많이 한 거 같은데. 킬 : 제 본명은 길기욱인데, 아버지께서 만드신 제 여권에 들어간 영문 성이 K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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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 of SERVIVAL Report

WORDS, PHOTOS : Hugh Keice

콧등을 스치고 가는 바람에 낙엽내음이 듬뿍 나는 걸로 보아 어느덧 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한국은 여전히 모기와의 사투를 치른다 한다. 고 지긋지긋한 녀석들이 활개친다는 걸로 짐작건대 바다건너 내 고향은 아직 여름의 끝자락인 듯하다. 하지만 이곳 런던은 일주일간의 인디안썸머가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 추위가 다가와 필자의 못난 무릎을 시리게 하고 있다. 헌데, 어느덧 길거리의 마네킹들도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있는 이 와중에 자꾸만 나는 눈치 없이 여름이 생각난다. 이는 비단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만난 아름 다운 자태의 비키니 누님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머플러를 둘둘 말며 치열하게 보냈던 에든버러에서의 기억 때문이리라.

What is Edinburgh Festival? 독자 여러분들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들어본 적이 있나? 어딘지 낯이 익은 이름 아닌가? 주변에 물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반응들이었다. “그거 유 명한 거 아니야?” 그렇다, 필자도 ‘그거 유명한 거 같던데’라는 생각 하나로 올 여름 공연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런던의 한국출신 인디 뮤지션 휴 키이쓰(Hugh Keice)가 아티스트들의 관객 쟁탈 전쟁터,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쓴 눈물겨운 원정기

Day 1 Edinburgh, here we go!

Day 2 “When Summer Holds The Rain” Begins!

8월 21일. 부푼 기대를 안고 미리 예매해둔 기차표를 챙기며 멤버들과 런던의 서울역이라 할 수 있는 King’s Cross에 집합을 했다. 이곳은 해리포터에서 호 그와트를 향하는 기차가 대기하는 플랫폼 9 3/4이 있는 바로 그 기차역이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향하는 에든버러 또한 해리포터가 탄생한 곳이었기에 의 미심장한 기분이 들었다. 황금알을 낳고 와야겠다는 생각이랄까? 그런 결연 한 다짐을 한 채, 기차 안에 앉아 창문을 보고 있자니 영국에 온지 이제 3년차 에 접어들지만 처음으로 런던 밖에 나가는 필자였기에 한 켠에는 여행의 설렘 도 있었다. 소풍으로 첫 기차여행을 떠나는 중학생마냥 들떠 있는 26살이라 니! 왠지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니, 마주 앉은 커플이 에든버러 프 린지 프로그램 책자를 펼치며 무슨 쇼를 볼지 고민하기에 슬쩍 필자의 공연을 추천했다. 이윽고 기차가 출발했고, 멤버들과 군것질하며 음악얘기를 하던 차 에 기차는 도시를 벗어났고, 창밖으로 펼쳐지던 아름다운 경치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부푼 기대를 안고 맞이한 공연 첫날. 두 명의 우리 스텝들이 사전에 공연장으 로 배송된 포스터 및 플라이어를 챙겨 길거리 홍보에 나섰다. 숙소에 남은 필 자와 멤버들은 마지막 손발을 맞춰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4시간 반 남짓 지나 허리도 아프고 피곤해질 때쯤, 해변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에든버러가 빼꼼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인파에 압도되어 새삼 ‘이곳이 페스티벌 기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사 전에 예약해둔 숙소와 연락이 닿지 않아 패닉에 빠졌었다. 일단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추정되는 곳까지 갔다. 그 곳에서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고, 바로 집 주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집주인 또한 연락이 안된 우리가 걱정이 됐는지 밖 에서 우리를 계속 기다려주고 있었다. 각박한 런던에 비해 너무도 훈훈했던 에든버러의 따뜻한 첫인상이었다. 한편, 따스한 인심과는 달리 에든버러의 날씨는 무척 추웠다. 한국의 8월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야말로 ‘칼바람’이 부니 햇볕아래 펼쳐지는 산뜻한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점검을 끝내고 우리가 향한 곳은 The Jazz Bar. 에든버러의 이름 난 공연장이 자 에든버러 재즈 페스티벌의 중추적인 역할은 하는 곳이다. 바로 이곳이 바 로 우리가 오를 무대였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공연 시작직전부터 불안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앞의 공연이 끝나자 가득 찼던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 유 명세가 없는 우리의 계획은 전 팀의 공연을 보러온 관객을 붙들어 두는 것에 사 활을 걸고 있었지만, 매 공연이 끝나면 공연장 스탭들이 모든 관객들을 내보 낸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때마침 스텝들도 공연장으로 합류했으나 표정 들이 역시나 밝진 않았다. 모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공연시작을 미룰 수 없어, 첫 곡 Where June Begins의 연주를 시작했다. 공기가 차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을까? 휑한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기대가 컸던 만 큼 마음이 몹시 시렸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첫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니, ThreeWeeks Magazine에서 나온 리뷰어 Kate가 말을 건냈다. “공연 너무 잘 봤어! 사람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야.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 보다 좋은걸? 아니, 정확히는 왜 너희들이 아직 라디오에 안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 정말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용기를 얻었는지 모른다. 망연자실해 있던 우리에게 한줄기 희망을 던져준 Kate. 예쁜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 귀도 수준 급인가보다!

Day 1 TIP ▶ 옷을 두툼하게 챙기자! – 앞서 언급했듯이 8월의 에든버러는 쌀 쌀함을 넘어 춥기까지 하다. 비도 자주 오니 짖궂은 날씨에 미리 대 비를 하는 것이 좋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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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에서 리허설 하는 모습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일단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 악하는데서 시작을 했다. 막연히 알고 있던 이 페스티벌은 실은 ‘인터내셔널’, ‘프린지’, ‘필름’, ‘재즈’ 페스티벌과 같은 다양한 축제가 맞물려 이뤄지는 스 코트랜드의 영향력 있는 국제종합예술축제였다. 그 중에서 필자가 참가한 것 은 바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Edinburgh Fringe Festival). 약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페스티벌의 매력은 주최 측의 입맛대로 꾸며지는 공연이 아닌 아티스트의 적극적이고 개별적인 참여로 인해 이뤄지는 축제라는 것이 다. 무슨 말이냐면, 공연장 섭외부터 숙박, 홍보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 측에 서 개별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매년 초 프린지 박스오피스 측에서 페스티 벌 참가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하면 아티스트 측에선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애 든버러 내 공연장을 컨택하여 공연일시를 협의하여 섭외를 마치고, 지원 서류 를 작성하여 프린지 측에 넘기게 된다. 이 과정을 얼마나 신속하게 처리하는 가에 따라 좋은 장소 및 시간대를 잡을 수 있기에 등록 전에 프린지 측에서 배 포하는 안내서들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시기를 정함에 있어서도 생각보다 많 은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데, 8월 초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3주간의 여정 속 에서도 각 주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첫째 주는 미디어의 리뷰 를 받기에 용이한 주간이고, 둘째 주는 관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 그리 고 셋째 주는 페스티벌의 끝물 격이라 상대적으로 덜 선호되는 주간이다. 필자 의 경우는 공연장 섭외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셋째 주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운이 따른 건지, 올해는 공교롭게도 그 전 주까 지 폭우가 쏟아지다 셋째 주부터 날씨가 맑아져, 셋째 주에 참여한 것이 오히 려 호재로 작용했다.

● 호그와트 행 플랫폼 9 3/4이 있는 King’s Cross Station ● 에든버러의 명물 The Jazz Bar


Day 4~6 Paradise? It’s a SURVIVAL! 두 번째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본격적인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의 시 행착오를 분석하며 우리의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문 제는 영어! 우리 스텝들은 공교롭게도 영어 울렁증이 제법 심한 이들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쭈뼛쭈뼛 대기 일쑤였다. 그나마 이 중에선 영국 생활 짬밥이 제일 긴 필자가 버스킹 보단 말로 구워삶는 게 나을 듯 했다. 이에 더해 시선을 잡기 위한 아이템도 추가하기로 했는데, 그래서 탄 생한 것이 바로 휴 키이쓰 책자! 길거리에 있던 박스를 주워 재활용한 이 책자 에 필자와 멤버들 소개와 음악에 관한 간략한 정보를 동화 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본이 부족하면 결국은 아이디어 싸움. 제작비는 2파운드도 안 들었다.

Day 3 Bloody Royal Mile! 첫 공연의 참패에 정신이 혼미해진 우리였지만 이대로 끝낼 순 없는 노릇이었 다. 대책회의에서 우선적으론 우리가 준비해온 곡 구성으로는 미흡하단 생각 이 들어 필자의 묵혀둔 옛 노래들을 꺼내들기로 했다. 한글가사에 대한 거부 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일단 이색적일 수 있다는 것에 무 게가 실렸다. 그 다음은 길거리 홍보. 공연하는 우릴 비롯해서 스텝들도 도무 지 뭐가 뭔지 경황이 없어 우왕좌왕하다 결국 쓴맛을 봤기에 변화가 시급했다. 하지만 머리는 백지 상태. 결국은 Royal Mile이 이 시기동안 가장 성황이란 정 보를 입수하고 무작정 그곳을 향하기로 했다. 필자는 체력 안배를 위해 쉬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대로는 도태될 것만 같았기에 기타를 들고 Royal Mile에서 버스킹을 하기로 하였다. 공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Royal Mile에 도착하니 장관이 펼쳐졌다.● 공연 홍보하는 이들과 관광객이 5대 5의 비율로 뒤섞여 마치 러쉬아워 때의 교대역을 보는 듯 했다.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것이 마치 개미떼처 럼 보이는 이 인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했 다. 공연을 위해 좋은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길거리 공연을 하는 다른 아티스 트들을 방해하면 안 되었기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 공연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조차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차있었다.● 간신히 자리를 잡았지만 인파로 가득 찬 거리에서 마이크도 앰프도 없이 생목 소리로 노랠 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에선 차력쇼가 펼쳐지고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붙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 다. 하지만 꿋꿋이 두시간반 동안 버스킹을 했고, 스텝들은 열심히 공연 플라 이어를 나눠주었다.● 이때 요긴하게 쓰였던 것은 바로 앨범 컨셉을 형상화한 거꾸로 달린 우산!●

● Royal Mile의 입구 ● 고군분투 했지만 초라했던 첫 버스킹 ● 공연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 빗물 데코레이션의 거꾸로된 우산. 봉을 추가로 끼워 흔들며 다녔다

필자의 EP앨범 “When Summer Holds The Rain”의 테마를 형상화시킨 이 아이템 덕에 사람들이 신기했던지 눈길을 많이 줬다. 어느덧 공연시간이 되니 필자의 다크써클은 발가락에 닿을 정도로 내려와 있었으나, 본 게임에 죽 쑬 순 없는 일이었다. 사운드체크 후 공연이 시작되었고 전날보단 확실히 관객이 조금은 늘어 보였다. 우리 역시 한번 서봤던 무대라 조금 더 편안한 맘으로 공 연에 임할 수 있었기에 여유로움이 더 묻어나왔다. 셋리스트는 두곡을 더 늘 려 커버곡인 “Knocking on Heaven’s Door”와 필자의 옛 자작곡 중 하나인 “She Is All I See”를 어쿠스틱 편곡으로 연주했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 다. 멤버들은 오히려 한국어로 노래하는 내 모습이 이색적이었던지 무척 맘에 들어 하는 모양새였다. 더욱이 이 날은 한국문화원의 조력 덕에 한국에서 오 신 기자분들도 함께해주셨기에 가사를 알아듣는 이들이 있어 맘이 한결 놓이 기도. 뜻밖의 만남 또한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옆 극장에서 성황리에 공연 을 진행하시던 옹알스팀의 매니저님. 개그콘서트에서 독립한 후 작년 에든버 러 프린지에서부터 명성을 쌓은 이들은 올해 역시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과시 하고 있었다. 한국 참가팀들과 교류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이 날의 만남은 무 척이나 반가운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플라이어 개선 작업에도 착수했다.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디자인은 있었음에도 음악과 공연자에 관한 설명이 부족했던 점, 그리고 너무 도 유명한 공연장임에도 약도와 지리 설명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이다. 결국 필자의 공연사진 및 미디어 평점과 간략한 소개를 추가토록 했 다. 그 방법이란 프린지 오피스에서 프린트해 온 추가 컨텐츠를 하나하나 가 내수공업으로 기존의 플라이어에 스테이플러로 찍는 것! 스텝들과 똑딱 똑딱 거리며 몇 시간을 보냈다. 단순 반복 작업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 쯤 스텝의 축 처진 한 마디, “군대 다시 온 기분이다.” 이 밖에도, 미디어의 시선을 끌기 위해 결국 소수의 대상을 추려 집요하게 메 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시에 다른 시간대에 공연하는 뮤지션들을 초 대하기로 했는데, 이는 네트워킹 및 관객동원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함이었 다. 단체메일로 보냈다가는 스팸취급 받기 십상이기에 한 명 한 명 개별적으 로 메일을 보냈고, 그들의 프로필 및 음악을 사전에 조사하여 그에 대한 코멘 트 역시 잊지 않았다. 길거리 홍보 역시 끊임없이 진행을 했는데, 이 땐 Royal Mile만이 아닌 다른 곳 도 고루 돌며 “Fancy a gig at The Jazz Bar?”를 외쳐댔다. 지금도 우리 중 한 명이 저 구호를 외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 확실히 개선된 아이템들과 접근방법 덕에 이전보다 많은 이들이 플라이어를 가져가고 많은 궁금증들을 자아냈다. 이들이 과연 주말 공연을 함께 해줄지는 미지수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결국 발 벗고 뛰는 것이었다.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어 숙소에 돌아와 장 봐온 재료로 음식을 해먹기 일쑤였 지만, 적어도 하루는 기분은 내야겠다며 밤에 뛰쳐나간 에든버러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기본적으로 여기저기 술잔치가 벌어져있었는데 야외에 차려놓은 바에선 스코트랜드 위스키를 샷으로 파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에든버러를 향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바로 앵거스 비프 버거(Angus Beef Burger)! 빅맥을 유아용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햄버거야 말 로 에든버러의 상징. 필자와 스텝들의 얼굴보다 큰 이 음식은 분명 싼 티가 팍 팍 나지만 그 맛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음식을 순간 삭제한다는 것이 무엇 인지 느껴보고 싶다면 반드시 사먹기를 추천한다. 비싸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 말고 길거리에서 파는 버거로 말이다.

Day 4~6 TIP ▶ 예약을 하자! – 축제기간에는 너무 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까닭에 왠만한 식당들은 피크타임 때 예약여부를 확인한다. 좋은 곳들은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받아주질 않으니 사전에 가고 싶은 곳이 있 다면 반드시 예약을 하길 바란다. 물론,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자 유롭게 사먹을 수 있으며, 장기로 머무는데 예산이 고민이라면 마트 도 여럿 있고, 중국 슈퍼마켓엔 김치나 라면도 취급하니 참고하길 바 란다. 필자의 경우는 김밥도 해먹었다! ▶ 이곳은 꼭 가봐라! – Augustine’s 주변엔 많은 먹거리를 판다. 앞 서 언급한 앵거스 비프 버거 및 다양한 주류가 판매되고 있고, 근처 에 위치한 Purple Cow는 보라색 소가 뒤집어져 있는데 이곳 역시 먹 거리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덧붙여, 해리포터가 집필된 까페도 에든버러 시내에 위치해 있으니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필자 가 앉은 곳이 롤링스가 즐겨 앉았던 곳. 에든버러 성이 한눈에 들어 온다) 덧으로, 스코트랜드 내셔널 뮤지움은 초딩의 맘 가짐이 있다면 틀림없이 재밌을 것이다!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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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든버러 캐슬의 위용. 해리포터가 나올 법하다>

EDINBURGH LIVE

Day 7 Turning Point!

Day 8 Grand Finale!

바쁘게 오프 데이를 보낸 후 드디어 고대하던 토요일이 찾아왔다. 이 날의 결 과여하에 따라 이번 에든버러행의 성패가 달려있었다. 역시나 공연이 시작되 기 전 길거리 홍보를 나섰고, 쉼 없이 목을 쓴 탓에 몸 컨디션 또한 좋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다시 무대에 오를 시간. 헌데, 생경한 광경이 펼쳐져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줄지어 공연장 앞에 기다 리고 있는 것이다. 낯이 익은 얼굴도 보였다. 플라이어를 받아가던 이들이었 다. 며칠간 홍보를 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 다. 공연시작 직전엔 무료로 티켓을 나눠주려 했는데, 이 때 역시 사람들은 한 사코 돈을 내고 보겠다며 오히려 필자를 만류했다. 스스로의 가치를 깎을 필요 없다던 그 말이 어찌나 따스했던지.

전날 공연으로 한껏 사기가 오른 우리 스텝은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역시나 하 던 대로 빠른 식사 후 길거리 홍보, 그리고 공연의 루트를 따랐다. 궂은 날씨 탓 에 전날보단 관객의 수가 적었지만, 초청했던 아티스트들도 몇몇 와주었고 유 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의지로 깔끔하게 마지막 공연을 치렀다. 이제 에든버러 에 남은 스케쥴은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 뿐!●●

많은 관객이 찾은 이 날 공연은 말할 것도 없이 즐거웠다. 필자 역시 아드레날 린이 잔뜩 돌아 평일 공연보다 훨씬 상기된 모습이었다고 한다. 분명 그랬으 리라. 스텝들 역시 도태 직전의 우리가 재기한 것에 뭉클함을 느꼈으니까. 유 난히 기억나는 관객은 정신지체 딸을 대동한 아버님이었다. 근래 들어 이토록 자기 딸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한 것은 처음이라며 감사하단 인사를 전해 받았 을 때, 정말 오랜만에 음악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 능할 때라도, 음악은 마음을 울린다. 교감을 한다. 이 카타르시스를 맛본 이는 그래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이놈의 딴따라질을.

열차 시각 전, 나름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간 곳은 에든버러 캐슬! Royal Mile 을 끝까지 올라가면 성문이 보이고, 이후부터는 티켓 값을 내야 관람할 수 있 다. 그 유명한 밀리터리 타투가 열리는 곳도 이곳인데, 최소 한 달 전에 예매 를 해두지 않으면 표를 구하기 어렵다 한다. 내려오면 근처에 펍이 많이 보이 는데, 스코트랜드의 순대 해기스(Haggis)를 맛볼 수 있다. 각종 파이들에 들어 있는 해기스, Breakfast 메뉴에 포함된 해기스 등등. 입맛의 차이겠지만 감동 적인 맛은 아니어서, 앵거스 비프 버거가 생각났다. 음. 캐쉬미어도 곳곳에 팔 고 있지만 바가지 쓰기 싫다면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 차라리 그 돈으로 공연 을 하나 더 보길 추천하다.●

● Why Is It So Hard live

● You Make It Easy live

Day 9 Sweet Home!

Day 9 TIP ▶ 집 밥이 제일 맛있다! ▶ 성을 올라가면 다리가 무척 아프다! ▶ 구경하다 열차시간 늦으면 멤버들한테 엄청 혼난다! ▶ 하지만 티켓이 있으면 그 다음 열차에 다행히 태워준다!

When Summer Holds The Rain 1. where June Begins 2. Till The Sun Goes Up 3. My Last Piece 4. You Make It Easy 5. Someday Morning 다양한 일렉트로닉 악기를 사용하여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것 이 현재 주류 팝 음악이다. 하지만 Hugh Keice의 첫 앨범 `When Summer Holds the Rain`은 이런 흐름과는 정반대로 기존의 순수 한 악기들 속에 일렉트로닉 악기를 향신료처럼 적절히 가미한 음 악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구성으로 일렉트로닉 악기로 만든 음악 의 화려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은 가질 수 없는 깊이와 울림, 그리고 따스함을 안고 있다는 것을 첫 곡 만 들어봐 도 알 수 있다. 화학조미료만 가득 들은 음악에 물린 이들의 입맛 을 살려준다. 石군의 앨범 리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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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E P HA N T - S HO E

런던에 돌아와 우여곡절이 많았던 에든버러행. 화려한 축제의 이면엔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나름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미흡했 던 부분들이 많았고, 제한된 예산으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이상적인 것은 한두 회 공연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장기간의 호흡을 갖고 본격적인 페스 티벌이 시작하기 전인 0 week 부터 주최 측 행사에 참여하여 미디어, 프레스 쪽 인사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공연이 시작되는 1 week에 각종 매체에서 리뷰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2 ~ 3 week에 관객몰이를 할 수 있으니까. 여타 잡지에서 일정 금액을 받고 광고를 실어주기도 하지만 이 보단 주최 측에서 발행되는 프린지 프로그램 책자에 과감히 투자하여 눈에 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기간 동안 에든버러에 온 모두가 이 책 자를 보고 공연을 선정하니까. 마지막으로 이 글이 아티스트의 시각에서 써진 탓에 많은 이들은 공감을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관객의 입장이 아닌 공연하는 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페 스티벌 후기도 색다를 것 같아 결국은 서바이벌기란 이름으로 기사를 썼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관한 ‘일반적인’ 글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을 테니까. 화려함의 이면엔 고군분투하는 치열한 현장도 있으니, 쉽게 말해 휴 키이쓰(Hugh keice)에 관심 좀 가져주세요.


back stage

Digitalism

WORDS, PHOTOS : 石군

10월 9일 일요일 오후 2시 뻐근한 몸을 이끌고 오늘 관광 동안 차 안에서 먹을 과자나 음료수를 사러 마 트에 갔다. 과자가 실린 차에 이들을 태우고 호텔을 떠날 때, 다른 차에서 투어 매니저가 밥부터 먹으러 가자고 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를 우리 차에 탄 멤버 들에게 전하자 옌스가 “피엣(투어 매니저)은 언제나 밥이 먼저야. 점심부터, 저녁부터가 입에 붙었어.(웃음)”라며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차가 인사동을 향해 움직이는 동안, 이들은 과자봉지를 뜯으며 맛을 보고 있었다. 그 중 채식 주의자였던 한 명에게 감자과자와 양파과자를 주며 “베지테리언인 너를 위 해 준비한 과자야.”라고 해주었더니 무척 감동한 눈치였다. 아무튼 과자는 대 호평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은 캔커피였다. 심지어 관광 중에 까페에 가려고 하니 옌스는 “차에 맛있는 커피가 있는데 까페에는 왜 가?”라고 할 정도였다. 과자파티가 한참이었던 동안 차는 인사동에 도착 했고, 우리는 한정식 집에 자리 잡았다. 주문을 하면서도 과연 한식을 좋아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계속됐지만, 반찬이 나올 때마다 거리낌 없이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흡족한 표정으로 식사를 마치곤, 디 저트로 나온 수정과를 마시면서 무엇이 가장 맛있었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의외로 1위는 숭늉이 차지했다. 2위는 된장찌개, 3위는 모듬전이었다.

글로벌개더링 코리아 2011 공연을 위해 방한한 “디지털리즘(Digitalism)” 그들의 일일 매니저가 된 石군! 10월 8일 토요일 오전 11시 디지털리즘은 이번 글로벌 개더링을 위해 내한하는 팀들 중 가장 많은 수의 크 루를 대동한 팀으로, 아티스트를 포함하여 총 9명이 입국했다. 그러다보니 우 리 팀 또한 차량 두 대로 움직였고, 내 팀에서 나와 손발을 맞춘 파트너는 평소 지인들 사이에서 ‘크레이지 드라이버’라 불리는 ‘유PD’였다. 현재 마포FM에 서 국내 유일의 일렉트로닉 음악 방송 “마포 일렉트릭 시티”를 진행하고 있는 그였기에, 디지털리즘이라는 대어로 낚아 힘든 운전기사 역할을 맡겼다. 동승 자를 신경쇠약에 걸리게 하는 그의 운전으로 한적한 도로를 신나게 달려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3시 40분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내내 일본 관광객들만이 계속해서 나와 지쳐갈 때 쯤,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나오자 ‘혹시나’하는 마음에 계속 눈을 마주쳤고, 우리 의 피켓을 확인하곤 손을 흔드는 그들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잠시 후 7시면 공 연이었기에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를 한 후 바로 차량으로 이동해 공연장을 향해 출발했다. 공연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도 했지만, 한강 주변의 교통이 마 비된다는 “서울 불꽃축제”가 이 날 열리기에 부랴부랴 달려갔다. 틈틈이 뒤를 돌아봤는데, 차가 출발한 이후 잠시동안 수다를 떨던 이들은 그새 잠에 들었 다. 이들이 바로 전 날 일본에서 두 시간이 넘는 긴 공연을 하고 왔다는 사실은 이후에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됐었다. 오후 5시 백스테이지에 들어온 후 디지털리즘의 스텝들은 바로 무대로 향했고, 공연 준 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즈마일(Ismail Tufekci)은 백스테이지 소파에 누워 계 속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다른 멤버 옌스(Jens MÖlle)는 노트북으로 공 연 준비를 하다가, 주위를 돌아다니며 스트레칭을 했다. 드디어 공연 시작 5분 전, 모두가 모여 파이팅을 외친 후 무대를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공연 을 무대 위에서 봤기에 제대로 된 사운드를 들을 수 없었음에도 훌륭한 연주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올 해 여름 영국을 방문하여 들렸던 “와이얼리 스 페스티벌”에서 이들의 공연을 본 후, 본격적으로 이들의 팬이 되었기에 어 찌 보면 객관성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춤을 추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꾹 참고 있던, 그러나 가끔 이성의 끈을 놓고 꿈틀거리고 있는 유PD를 보니 이들이 멋진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후 8시 75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모두 마친 후, 백 스테이지로 돌아온 이들은 핫도 그와 같은 것들로 간단히 배를 채우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 록, 술을 마실수록 식탐이 점점 더 커지는지, 마치 아귀처럼 먹고 있었다. 그 중 에서도 가장 맹렬한 속도로 먹고 있던 투어매니저(9명의 크루 중 가장 사이즈가 컸다.)가 石군에게 어깨동무를 한 후 “호텔에 간 후에 짐을 놓고 저녁을 먹으러 갔으면 좋겠어. 코리안 바베큐가 먹고 싶은데 호텔 근처에 있을까?” ‘아니? 이 렇게 먹고 저녁을 또 먹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겉으로는 쿨하게 “OK”라고 했다. 그렇게 먹고 떠들던 사이 카고 트럭이 왔고 그들이 악기와 장비를 싣는 동 안 우리는 호텔 근처 고기 집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검색을 하기 바빴다.

“손님, 어디로 모셔드릴까요?” 오후 10시 이들을 태우고 호텔을 향해 가던 차는 또 다시 꽉 막힌 도로에서 엉금엉금 기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즈마일은 이 시간에 왜 이렇게 길이 막히는지 물었고, 오늘이 불꽃축제 때문에 유난히 심한 편이지만, 여의도 쪽은 회사가 밀집해 있 기 때문에 항상 길이 막히는 편이라고 답해줬다. 늦게까지 야근하는 것이 한국 의 직장인에게는 보편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난 회사에 가기 위한 고 속도로는 필요 없어.”라는 멘트를 한 후, “엇? 이걸로 노래를 만들어도 되겠는 데?”라며 멜로디를 붙여 계속해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를 듣던 투어 매니 저는 이즈마일에게 넌 샐러리맨도 아닌데 무슨 그런 노래를 부르냐고 핀잔을 줬다. 이에 발끈한 이즈마일은 자신은 전 세계 모든 샐러리맨 중에서도 굉장히 바쁜 편에 속한다며 반발했다. 이로 시작된 논쟁은 다음 투어의 시작을 2월부 터 하자는 매니저와 3월까지는 무조건 쉬겠다는 이즈마일간의 대립으로 이어 졌다. 휴가에 대한 투쟁의 모습은 임금협상을 하는 여느 노조위원과 다르지 않 아 보여 웃음이 나왔다. 다만 이즈마일은 큰 덩치에, 일회용 젓가락을 앞머리 에 핀처럼 달고, 소처럼 순한 눈을 꿈뻑이며 말하는 것이 마치 장난감 사달라 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할 때쯤 우리를 실은 차는 호텔에 도착했다. 오후 11시 체크인을 마치고, 짐만 두고 바로 로비로 다시 모이겠다고 했을 때, 그 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말은 저렇게 해도 30분 이상 걸릴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 5분도 안 되서 멤버 전원이 모인 것을 보고, ‘얘들이 진짜 배가 고 팠구나.’ 싶어, 지체하지 않고 길 건너 고기 집으로 갔다.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아 앞치마를 두른 채 메뉴판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싼 돼지고기만을 주문하려고 했으나 터키 출신의 이즈마일은 종교적으로 돼지고기가 금지되어 있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고기 가 나오기 전 세팅된 밑반찬 중 마카로니 샐러드에서 한 번 놀라고, 고기를 가 위로 자르는 모습에서 두 번 놀라고, 상추쌈에 또 한 번 놀라고, 냉면을 고기에 싸 먹으며 또 놀라던 저녁식사는 계속되는 환호성과 함께 했다. 모두들 만족스 러운 저녁을 마치고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며 수다를 떨었다. 이 때 옌스는 그 토록 외치던 소주회사 이름이 프린팅 된 앞치마를 고기 집 사장님에게서 선물 받아 목에 걸친 채, 흡족한 미소로 가게 계단을 내려왔다. 이미 자정을 넘은 시 간, 다음 날의 스케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하며 헤어지 려는 순간 투어 매니저가 우리를 불렀다. 그리곤 호텔 키 하나를 건네주며 “스 텝 한 명이 급하게 영국으로 돌아가서, 방 하나가 비니까 너희가 써. 나 좋은 사 람이지?” 라는 그에게 石군은 한국인의 미덕 <일단 한 번은 거절하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자라며 손에 키를 쥐어주고 얼른 돌아가는 투어 매니저의 뒷모 습을 보고 있자니, 한국인의 두 번째 미덕 <무작정 주머니에 넣어주고 도망가 기>를 몸소 실천하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겹쳐졌다. 아무튼 한 번은 사양했으 니, 동방예의지국의 체면은 차렸다는 생각이 들어 유PD와 호텔방에 들어왔 다. 더블 침대는 예상했기에 당황하지 않았지만, 여벌옷이 없어 남자 둘이 팬 티만 입고 눕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줄은 몰랐다. 이상한 생각도 잠시,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기에 이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푹 잔 것 같으면서도, 몸이 뻐근했던 것은 아마도 한 침대 한 이불 속에서 낯선 이의 거친 다리털의 까칠 함을 느낄 때마다 깜짝 놀라 깼기 때문이었으리라.

오후 4시 인사동을 간단히 둘러본 후, 소화도 시킬 겸 경복궁까지 걸어갔다. 경복궁에 도 착해서부터는 石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그들에게 대답을 하다, 너무나도 빠르게 동이 나버린 내 역사적 지식에 부끄러워졌다. 어쨌든 아는 한 열심히 가이드를 해줬고, 옌스가 경복궁 강녕전 처마 위의 잡상(雜像)을 굉장히 귀여 워하며 무엇이냐고 물었다. 드디어 하나 石군이 잘 아는 것을 물은 그들에게 장황한 설명을 했고, 그들은 “아, 서양의 성에 있는 가고일 조각처럼 액운을 막아주는 거구나~”라며 石군의 긴 설명을 짧고 간결하게 정리해주었다. 한참 민망해하고 있을 때, 조금 한적한 곳을 한 곳 더 들렸다가 호텔로 가자는 말 에, 근처의 창의문을 향했다. 북악 스카이웨이 바로 근처인 이곳은 과거 군 용 도로만 사용되었고, 아직도 근처에는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이 야기는 자연스럽게 군대 이야기로 넘어갔고, 놀랍게도 한국의 징병제를 알고 있던 그들은 우리가 군대를 다녀왔는지를 물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병 장 제대 예비군이 셋이나 모여 있었으니 군대 이야기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6시였고, 이제 호텔로 가 짐을 챙기면서 잠 시 쉬기로 했다. 오후 9시 유PD와 石군도 호텔 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하고,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 웠다. 잠시 뒤 부터 꼬릿꼬릿하면서도 톡 쏘는 시큼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 자극적인 향기는 발 냄새임이 틀림없었다. 누구의 발 냄새인지 명확하지 않았기에 石군은 아무 말 없이 자기로 마음을 먹었고, 후에 물어보니 유PD도 똑같은 이유로 묻지 않았다고 했다. 누구의 발 냄새인지 알 수 없는 그 향기와 함께 잠시 눈을 붙인 후인 저녁 9시. 다들 체크아웃을 한 후,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미처 못 먹어본 과자 봉지를 뜯으며. 오후 10시 스텝들과 디지털리즘은 목적지가 달라, 다른 항공편을 이용했다. 스텝들의 출 발시간이 두 시간 빨랐지만, 디지털리즘 멤버들은 같이 공항으로 가겠다고 했 기에 그들은 출발 네 시간 전인 오후 10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다들 좌석배치 와 발권을 위해 각 항공사 데스크로 이동했다. 스텝들은 아무 문제없이 끝났 지만, 너무 일찍 도착한 옌스와 이즈마일에게는 문제가 생겼다. 발권은 세 시 간 전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항공사 직원의 이야기. 하릴없이 스 텝들은 먼저 게이트를 통과했고, 남겨진 디지털리즘과 우리는 수다를 떨다가 발권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 다시 데스크로 갔다. 3분이 남았음에도 칼 같이 지키며 안 해주는 직원을 향해 옌스는 “Please, Come on”을 연속해서 날렸다.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던 항공사 직원들은 정확히 10시 40분부터 발 권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짐이 이동하는 컨테이너 벨트가 움직이 지 않아 다시 또 대기를 해야 했다. 당황한 항공사 직원들은 부랴부랴 여기저 기에 전화를 하며 난리를 치고 있었고, 이즈마일은 짐 무게를 재는 저울 위에 한 발을 올려서 무게를 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수분 후에 컨테이너 벨트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디지털리즘은 드디어 수속을 마쳤다. 게이트 앞에서 그들 은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고, 몇 번의 포옹과 악수를 거듭한 후에야 게이트 안 으로 들어갔다. 오후 12시 두 시간 전만해도 사람으로 가득 차 시끌시끌했던 차는, 유PD와 石군 단 두 명 만 남은 채 조용히 밤길을 달렸다. 공연에 관련된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아티 스트의 성격에 따라 업무 난이도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번 디지털리즘은 정말 착하고, 매너가 좋았기에 서로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때문에 서울로 돌아오던 길 내내, 유PD와 디지털리즘 칭찬으로 일 관된 이야기를 했고, 이내 비행기에 타 있을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 까 궁금해졌다. 나중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내한을 기 다리게 됐다. E LE P H A N T-S H 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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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탈리카(루 리드 + 메탈리카)의 공동작업 앨범 “Lulu”의 홍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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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해 런던 지하철역에 포스터를 붙이려고 했다가 거절당하는 수모 를 겪은 뒤에도 계속해서 사건이 터지네요. 루 리드가 메탈리카 팬 으로부터 살해 협박 편지를 수 차례 받았다고 합니다. 메탈리카 팬 들이 화난 이유는 이번 앨범 “Lulu”가 형편없는 이유가 루 리드 탓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네요. 부디 협박에서 끝나길! 킹스 오브 리온의 새 다큐멘터리 “Talihina Sky”가 이번 주에 DVD와 BluRay로 발표된다네요. 트레일러가 공개되 었으니 이를 먼저 살펴보세요 :)

블러의 데이먼 알반, RHCP의 플리 그리고 펠라쿠티 & Afrika 70의 토니 알랜으로 구성된 ‘Rocketjuice And The Moon’이 10월 29일 런던 바비칸에서 데뷔공연을 가졌습니다. 앨범은 2012년에 나올 예정이라고 하네요.

노엘 갤러거의 High Flying Birds의 런던 솔로 데뷔 공연이 Hammersmith Apollo에서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운드도 파워풀했고, 원더월, 돈룩백인앵거, 리틀바이리틀 같은 오아시스 시절의 곡들도 불렀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쇼킹했던 음악계 뉴스는 아마 돌장미들의 재결성이 아닌가 싶 습니다. 내년 6월 맨체스터 Heaton Park에서 있을 스톤로지스의 3일 공연은 벌써부터 많은 팬들을 설레게 합니다. 조지 해리슨의 이야기를 담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Living in the Material World’의 월드 시사회가 런던 BFI에서 있었습니다. 감독을 비롯하여 해리슨의 미망인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 올리비아 해리슨 그리고 폴 매카트 니, 오노 요코, 링고스타, 노엘 겔러거가 시사회장을 찾았습니다.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차드와 영 화배우 조니뎁이 캐리비안의 해적 이 후 다시 한번 뉴욕에서 뭉쳤습니다. 조니 뎁의 새 영화 ‘The Rum Diary’의 아프터파티에서 Charlie Segar의 ‘Key To The Highway’를 함께 커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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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issue / 7 - DECEMBER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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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E P HA N T - S HO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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