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oreaDaily

August 26~27, 2012. no.285. sunday.joongang.co.kr

ISSUE

아름다운 도전

http://sunday.joongang.co.kr

제285호 8월 26일~27일 값 1000원

패션 한류의 꿈

CONTENTS editor’s letter

06

THIS WEEK PEOPLE 야외오페라 ‘라보엠’의 히로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ISSUE

판타지 08

성인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뉴욕패션위크 ‘컨셉트코리아’ 패션 한류의 꿈

국내 출판계도 뒤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적 으로 3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니, 현상은

COLLECTOR

현상입니다.

14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39>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의 삶과 죽음』

TR AVEL

이 소설은 포르노입니다. 정사 장면을 매 우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죠. 하지만 인

16

터넷에 들어가면 이 정도 야한 소설은 차

스페인 와인기행 카바 vs 셰리’ 뉴욕패션위크 ‘컨셉트코리아’

PORTR AIT ESSAY

20

고 넘칩니다. 분명 완성도 높은 에로티시즘 을 구현한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잘 팔리

‘길바닥 체질’ 소설가 김주영

는 걸까요.

COLUMN

포르노라는 진한 양념을 걷어내고 봤을

21

때,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제대

컬처#: 드라마 ‘응답하라 1997’

PEOPLE

로 그려낸 덕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

22

습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서울미술관’ 여는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

우선 주인공은 평범(하다고 본인은 생각) 한 대학 졸업생입니다. 섹시하고 똑똑한

REVIEW & PREVIEW

24

친구 대신 인터뷰하러 갔다가 젊고 잘생기

뮤지컬 ‘미남이시네요’ ‘전국노래자랑’

BOOK

고 갑부인 몸짱 사장님에게 ‘간택’됩니다. 그게 나라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26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스페인와인기행 카바 vs 셰리’

SOUL-SEARCHING

이 있네요. 자연스럽게 모성본능을 자극

28

합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18> 멸시

사주는 선물도 남다릅니다. 꽃이나 향수,

GALLERY

29

명품 신상이 아닙니다. 최신형 애플 노트

‘한국 기하추상의 대부-한묵전’

CONTE

그런데 그 사장님, 알고 보니 어릴 적 아픔

북, 모토로라 휴대전화, 근사한 스포츠카 는 ‘난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대리만족을

30

느끼게 하죠.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게다가 변변한 연애 경험도 없는 이 ‘처녀’ PHOTO ESSAY

31

는 한순간에 요부로 돌변합니다. ‘계약서’

조용철 기자의 마음 풍경

를 들이미는 남자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하나 둘 관철시키는, ‘밀당’의 고수이기도 하죠. ‘서울미술관’여는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급기야 남자는 이렇게 감탄합니다. “오, 내 사랑.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여성들

S MAGAZINE

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 아닐까요. 판타지 세상에서만 들을 수 있는.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표지 00000000000000000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1부 1000원 /월 5000원 정기구독문의고객센터 1588-3600, 080-023-5001

04 SUNDAY MAGAZINE

/ Fax 02-751-5806

THIS WEEK PEOPLE

야외 오페라 ‘라 보엠’의 히로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라보엠 공연은 참 편안해서 수영하는 기분”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47사진)를 처음 본 것은 1995년 8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스키점프장 특설무 대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 유럽 순회공연 무대에서였다.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데뷔한 것이 1992년 이었으니 세계 무대에 얼굴을 내민 지 3년밖에 안 된 서른 살의 신예였지만, 도밍고의 파트너로서 결코 주눅들 지 않는 대담함과 발군의 미모, 아름다운 목소리는 말 그대로 ‘여신 강림’이었다. 이 세계적인 오페라 디바가 네 번째로 내한한다. 이번 무대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연출 나딘 뒤포)이 다. 28일과 9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연세대 노천극장 야외무대에서 펼쳐진다. ‘라 보엠’은 그녀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199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음악원을 졸업하고 루마니아 국립오페 라 극장에서 ‘라 보엠’의 미미 역할로 데뷔했다.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데뷔 무대도, 4년 뒤 뉴욕 메트로폴리 탄 데뷔 무대도 모두 ‘라 보엠’의 미미였다. 또 있다. 런던 데뷔 무대에서 남편(이혼했다가 재결합한 프랑스 테 너 로베르토 알라냐·49)을 만났고, 뉴욕 데뷔 무대 공연 기간 중 결혼식을 올렸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 장이 주례를 섰다. “라 보엠은 너무 편안해서 공연할 때 수영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올해 자신의 라 보엠 출연 20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고 있다. 남편과도 얼마 전 로열오 페라하우스 무대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 한국 공연도 원래 ‘라 트라비아타’를 제안받았지만 “라 보엠이면 출 연하겠다”고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9월에도 이탈리아 라 스칼라로 이어진다.

183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라 보엠’에서 미미는 대표적인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하지만 게오르규의 생각은 좀 다르다. “많은 사람이 ‘라 보엠’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미는 흔히 생각하듯 순수한 인물이 아닙니다. 원작 소설인 『보헤미안의 삶』을 자세히 읽어 보면 알 수 있어요. 미미는 무제타처럼 자유분방한 성격의 여자 입니다. 무제타는 애인 마르첼로를 떠나 늙은 부자 후견인과 사귀죠. 이웃의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다를 뿐 미미 역시 남자 앞에서 대범한 캐릭터입니다.”

22일 열린 기자간담회는 저조한 티켓 판매로 공연 횟수가 4회에서 2회로 줄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주홍 색 드레스와 빨간색 하이힐 차림의 게오르규는 “즐깁시다(We must have fun)”라며 파트너인 루돌포 역의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35)와 시종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주도했다. 게오르규는 “지휘자 정명훈 감독과는 처 음으로 함께하는 서울에서의 ‘라 보엠’은 나의 새로운 데뷔 무대”라며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아름다운 음악 에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실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06 SUNDAY MAGAZINE

ISSUE

뉴욕 패션위크 ‘컨셉트 코리아 봄·여름 2013’의 디자이너 5인

세계 패션 중심에 한국적 감성을 입히다

‘Oldest young’. 뉴욕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가 자신을 “가장 나이 들고도 젊은” 디자이너라고 표현한 말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의미의 두 단어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패션 세계 뉴욕이다. 가장 새로운 실험이 가장 상업적인 모습으로 탄생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세계의 기준이 되는 곳. 매년 봄·가을 맨해튼에서는 뉴욕 패션위크가 열린다.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주목하는 무대다. 한국 디자이너들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이 새로운 기준이 되기 위해 이 무대에 도전을 거듭해 왔다. ‘컨셉트 코리아’는 그 중심에 서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대구광역시,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함께 진행하는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다. 역량 있는 디자이너들이 한국적 감성을 뉴욕에 선보일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그룹전이다. 뉴욕 패션위크 기간 중인 다음 달 7일 ‘컨셉트 코리아 봄·여름 2013’이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오른다. ‘컨셉트 코리아’ 여섯 번째 시즌에 참가하게 된 디자이너는 이상봉(LIE SANG BONG), 손정완(SON JUNG WAN), 최복호(CHOIBOKO), 김홍범(CRES. EDIM), 계한희(KYE) 등 5명. 특히 단독으로 세계 무대에서 패션쇼를 여는 베테랑 이상봉과 손정완에게 ‘컨셉트 코리아’는 한국 대표 디자이너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고, 젊은 후배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이상봉과 손정완에게 패션 한류의 미래를 물었다.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전명진 포토그래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08 SUNDAY MAGAZINE

ISSUE

SUNDAY MAGAZINE 09

ISSUE 런던에서 패션쇼를 마치고 막 돌아왔다는 디자이너 이상봉은 태극 문양이 그 디자이너 이상봉

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광복절을 맞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와 함께한 프로젝트를 위해 디자인한 티셔츠였다. 태극 문양뿐 아니

손뜨개·종이접기 같은 어릴 때 추억들 옷에 담아볼 생각

라 런던에서 선보였다는 단청과 조각보, 더 거슬러가면 한글과 산수화까지 한 국적인 모티브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온 그는 가장 한국적인 디자이너로 꼽 힌다.

-거의 개근하고 있다. 참여할 때마다 변화를 느끼나.

“이번이 네 번째 시즌인데, 갈수록 좋아진다. 개개인의 디자이너는 몰라도 ‘컨 셉트 코리아’는 많이들 알고 있다. 한두 번 하고 만 게 아니라 시즌이 계속되면 서 얻은 성과다.”

-일찍이 단독으로 해외에 진출했는데(2002년 이미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진출했 다) 컨셉트 코리아 같은 그룹전은 어떤 의미가 있나.

“뉴욕은 유럽과는 또 다르다. 창의성을 대표하는 게 파리라면 뉴욕은 실용성 을 대표한다. 또 요즘은 알렉산더 왕, 제이슨 우, 데렉 램 같은 미국 디자이너들 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뉴욕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뉴욕 에 사무실을 열고 나서 마침 컨셉트 코리아가 시작하기도 했다.”

-어떤 의상을 보여줄 계획인가.

“지금까지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줬는데, 이번엔 어렸을 때의 추억이다. 그런 향수를 구현하기 위해 수공예적인 기법을 선보이려고 한다. 손뜨개나 종이 접 기 같은.”

-한국적이라는 틀에 혹시 매이는 건 아닐까.

“우리의 조각보를 보여주면 어떤 외국인은 몬드리안을 떠올린다. 화려한 컬러 의 단청을 페루에서 보여주니까 자기네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인들은 단 청에서 화려한 비잔틴을 볼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는 ‘한국의 것’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판단은 그들이 하는 거다. 그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보면서 결국 ‘한 국 것은 아름답구나. 그런데 우리와도 통해’ 이렇게 생각했을 때 진정한 소통이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창조의 개념이다.”

-이번에 특별히 젊은 후배들과 함께하게 됐다.

“내게도 좋은 기회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할 수 있으니까. 국내에 좋 은 디자이너가 많아지면서 이제 서로 인정하고 같이 가는 게 필요하다.” 이상봉은 컨셉트 코리아와 관련해 받는 오해가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심사를 받지 않고 참석하리라고 지레짐작한다는 것. “굳이 심사를 받아 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공정하게 해야죠. 저 도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가 나쁘면 못 가야 하는 거잖아요.”

-가장 오래 참여한 디자이너로서 컨셉트 코리아의 발전 방향을 생각해 봤을 것 같다.

“기성 디자이너와 신인 디자이너에게 각각 맞는 지원 을 하면 어떨까 싶다. 신인들에게는 좀 더 많은 기회를 줘 야 한다.”

10 SUNDAY MAGAZINE

ISSUE

디자이너 손정완

페미닌·섹시·럭셔리 셋이 균형 이뤄야 최고로 매력적인 의상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드레스가 등장하는 칸 영화 제의 레드카펫. 올해 ‘뜻밖의’ 드레스가 화제가 됐 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가십걸(Gossip Girl)’에 출 연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켈리 러더 퍼드가 손정완의 의상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손정완 의 뉴욕 컬렉션을 보고 “매우 여성적(feminine)이면서 섹시 하다”고 인터뷰했던 러더퍼드는 바로 그 무대에서 선보였던 2012년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칸에 입고 나타났다. “고인 물 보다 흐르는 강물이 되고 싶다”며 2011년 뉴욕에 진출한 손 정완의 도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고, 뉴욕에서도 성과를 거둔 손정완에게 이번은 세 번째 ‘컨셉트 코리아’다.

-손정완이라는 단독 브랜드로 충분하지 않나. 굳이 컨셉트 코리아 가 아니더라도.

“시너지 효과가 있다. 홍보나 마케팅 활동이 원활해지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된다. 꾸준히 쇼를 하면서 나를 알리는 것과 함께 상업적으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디자이너의 해외 진출은 뜻밖이었다.

“2006년 파리의 ‘Who’s Next’ 초청 컬렉션에 참석했을 때 도전정신만으로 섣불리 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몸을 사린다 싶을 만큼 오래 검토한 끝에 지난 해 뉴욕에 진출한 이유다. 사실 해외에선 완전 신인인데,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라는 점이 바이어와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됐다.”

-여성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디자이너로 꼽힌다.

“작업할 때마다 세 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둔다. 페미닌(feminine), 섹시 (sexy), 럭셔리(luxury)가 잘 어우러지면 성공적이라고 본다. 아무리 예뻐도 성 적인 매력이 없으면 지루하고, 성적 매력만으로는 천박하다. 고급스러운 건 당 연히 필요한 것이고. 세 가지의 균형이 잘 맞을 때 가장 매력적인 의상이 된다.”

-뉴욕에선 어떤 옷을 선보일 예정인가.

“스페인 작가 후안 미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미대(숙명여대 산업공예과)를

빛과 바람 속에 있는 여인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모던한 스타일을 추구해 왔지만, ‘컨셉트 코리아’는 아무래도 한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 을까.

“기모노와는 달리 한복은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참 어렵다. 노골적이면 촌스러울 수 있고, 아니면 한국적 느낌이 전혀 안 날 수도 있다. 힘든 작업이지만 분명 해야 한 다고 생각하고 있다.”

-뉴욕 무대는 디자이너 손정완에겐 어떤 의미인가.

나와서 그런지 아트 쪽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게 된다. 스페인이 관광 홍보를 하

“운동선수가 올림픽에 나간다고 하면 긴장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지 않나. 그런

면서 ‘Everything Under the Su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후안 미로의 작품

느낌이다. 뉴욕에 진출하고서는 경주에 뛰어든 선수처럼 자세가 달라진다. 시합을

에서 영감을 받은 로고를 사용한다. 옐로, 레드 같은 컬러를 보면서 지중해의 햇

하러 나가는 선수가 됐다.”

SUNDAY MAGAZINE 11

ISSUE

12 SUNDAY MAGAZINE

ISSUE

디자이너 최복호·김홍범·계한희

청·적·황·백·흑 오방색으로 ‘색깔 있는’ 작품 세계 올해 ‘컨셉트 코리아’의 특징은 쟁쟁한 패션 전문가들로 자문위원단을 꾸렸다 는 점이다. 뉴욕 패션위크의 창시자인 펀 맬리스, 세계적 패션 교육기관인 파 슨스의 패션 학장 사이먼 콜린스, 패션잡지 보그의 스타일리스트 앤 카 루소 등 14명의 패션 전문가가 그들이다. 이들이 선정한 디자이너 5명의 면면은 다양하다. 이상봉·손정완 같 은 베테랑 디자이너는 물론, 대구 출신으로 2004년부터 파리 프레타

최복호

포르테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는 중견 디자이너 최복호,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 김홍범·계한희가 참여한다. 이들은 올해 ‘컨셉트 코리아’의 주제인 오방색-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으로 각자의 패션 을 풀어낼 예정이다. 디자이너 최복호는 1980년부터 각종 해외 전시와 컬렉션을 통해 해외 무대를 두드려 왔다. “순수미술의 회화적 요소에서 모티브를 얻 는다”는 그의 의상은 다채로운 색감이 강점. 80년부터 해외 전시와 컬 렉션 경험이 있는 그는 “뉴욕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맞춰 세련되고 현대 적인 감성이 드러나는 의상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홍범과 계한희의 참여에서는 ‘컨셉트 코리아’의 방향성 을 알 수 있다. 신진 디자이너를 통해 한국 패션의 신선함과 자유로움을 선보이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세종대를 졸업한 김홍범은 2년 전부터 트레이드 쇼를 통해 해외 진출을 모색해 왔다. 올해 뉴욕에 자 신의 브랜드(CRES. E DIM.)를 시작하면서 마침 컨 셉트 코리아 참여 디자이너로도 선정됐다. 컨템포러리 디 자인을 하고 있다는 그는 쇼에서 국악을 등장시키기도 했 다. 지난 4월 열린 ‘2012 가을·겨울 서울 패션위크’에선 그 의 무대 옆에서 6명의 국악 연주자가 음악을 연주했다. 그

김홍범

는 “한국적인 것을 표방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면서 “국악으로 연주하는 현대음악을 통해 더 새롭고 세련된 제3세계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계한희는 이번 쇼에 참가하는 최연소 디자이 너다. 영국의 세인트 센트럴마틴을 졸업하고 지 난해 영국 런던 가을·겨울 패션위크에선 ‘주목 받는 남성복 디자이너 4인’ 중 한 명으로 뽑히 는 등 해외에서 이름을 알렸다. 특히 뉴욕에 있는 세계적인 편집매장 ‘오프닝 세리머니 (Opening Ceremony)’의 입점 제안을 받 아 주목받기도 했다. 이미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에게 이 번 ‘컨셉트 코리아’는 여러모로 도전이다. 활동 무대가 뉴욕으로까 지 확장됐고, 한국 디자이너로 본격 활동하는 계기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국내외 활동 비중이 반반씩 됐는데, 앞으로는 국내 활동을 늘려가려고 해요. 그래서 최근 한국 국적도 취득했고, 한국 디자이너로서 토대를 탄탄하게 다 져나가려고 합니다.”

계한희

SUNDAY MAGAZINE 13

ART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9>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의 삶과 죽음』

가난한 나라 시청자는 왜 구경꾼밖에 될 수 없을까

이번 런던 올림픽에 여느 때보다 열광적이 됐 던 것은 0.00초 단위까지 측정하는 과학기술 의 정밀함과 수없이 돌아가는 비디오 판독기 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시각적 풍요로움 때 문이었다. 100m 남자 결승에서 1위인 우사인 볼트와 2위의 차이는 0.12초였다. 이 0.12초 를 우리는 어떻게 체험했는가? 만지지도 듣지 도 못하고, 물론 냄새로 맡을 수도 없었다. 시 간의 차이는 오직 슬로 모션을 통해서 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각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순간이었다. 양학선의 체조경기 장면은 여러 카메라가 동시에 찍은 화면을 합성해 영 화 ‘매트릭스’ 같은 영상으로 방영됐다. 마린 보이 박태환의 경기에서는 선수의 의지에 저 항하는 물의 표면장력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소통 방법으로 이미지

착각을 버리자는 것이다. 미술사라는 허상은

장면들이 쏟아졌다. 스포츠가 쇼비즈니스에

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석기시대의 동굴벽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예술’이라는 관

가까운 볼거리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화처럼 이미지는 인류의 탄생부터 존재했으

념에 의해 탄생한 것으로, 이미지 역사의 한

며, 어떤 문자 문명보다 먼저 등장했고, 또 인

형태일 뿐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예술’이라

나폴리 바닷가에서 격렬한 파도를 열심히 그렸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런 장면들을

류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르

는 이름과 더불어 특권을 누리던 미술사를

보았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수증기

네상스와 19세기 말의 인상주의 시대는 시각

부정함으로써 그는 서구 위주의 편협한 사고

와 하나가 된 물을 그린 터너, 빛이 철렁대는

이미지가 시대의 감수성을 가장 잘 드러낸 시

에서도 벗어난다. 문화적 주도권을 가진 서구

물을 그린 모네, 인공 수영장의 물을 장식적

기며, 심지어 글로 쓰인 사상사보다 더 앞서서

소수 국가의 체험을 보편적인 원리인 양 주장

으로 표현했던 데이비드 호크니 등 많은 작가

시대정신을 형상화했다.

하고 공격적으로 수출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가 저마다 물을 그려 왔다. 하지만 그들은 우

소위 ‘위지위그(WYSIWYG·What You

미술사나 미술이론이라는 말이다. 동양권과

리가 본 것을 보지 못했다. 매개론의 주창자

See Is What You Get·보는 대로 얻는다)’ 사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의 시각문화는 다른

레지스 드브레는 이런 신기술이 선보이는 새

회인 현대는 시각 이미지가 절대적인 영향력

궤도를 밟아 발전한 것이며, 서구에 견주어

로운 시각적 체험은 새로운 이미지의 등장에

을 행사한다. 그래서 그는 사고방식, 과학적

미발전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는 것

중요한 자극이 된다고 설명한다. 하늘에서 뚝

패러다임,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를

이다. 그래서 그의 미덕은 보편적인 예술사라

떨어진 예술가는 없다면서.

알고 싶으면 도서관보다 차라리 현대미술관

는 환상을 깨고 각각 공동체의 고유한 예술사

으로 가라고 주장한다.

가 들어설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드브레는 저서 『이미지의 삶과 죽음』(글 항아리)에서 시각 이미지의 역사를 기술의 발

매개론이라고 일컫는 다층적인 설명방식

전, 철학·역사·비평·심리학·사회학·기호학 등 으로 방대한 이미지의 역사를 다시 기술하면

14 SUNDAY MAGAZINE

는 데 있다. 드브레는 서구 열강의 이론적 제 국주의를 거두어들일 시동을 건 셈이다.

의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해 설명한다. “태초

서 그는 우리의 ‘상식’을 아예 바꾸자고 제안

그렇다면 동서양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에 이미지가 있었다”라고 선언할 만큼 저자

한다. 자율적인 미술사가 존재한다는 오래된

있는 현대의 시각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

ART 레오니드 크레모니니의 ‘내 사랑하는 어머님께’(1973)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델프트 전경’(1661)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문인 베르고트는 베르메르의 그림 ‘델프트 전경’ 앞에서 죽는다. “내가 이런 것을 써야 했는데….”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의 말 없는 영원성에 압도당했다. 저자 드브레는 이 대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감각적 상태’를 전하는 데 사용하면서 문인보다 화가가 유리하다는 예증으로 인용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거울 앞에서 글 쓰는 남자’ (1976) “우리는 죽음의 파괴에 ‘이미지라는 재생’으로 맞선다.” 레지스 드브레는 죽음에 대한 공포, 불멸에 대한 갈망이 불멸의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되지 못하는 한 실존의 불안을 다룬 프랜시스 베이컨, 레오니드 크레모니니 같은 작가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호소력을 갖는다.

각할까? 현대사회는 1960년대 이후 TV의 보 급과 더불어 본격적인 영상시대에 돌입하게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여러 가지 우려를 쏟아 놓는다. 이미지는 어느 시대보다 넘쳐나지만 대부분 피상적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미 국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프랑스 학자답게 강력한 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 문화를 정면 으로 공격한다. 인류 탄생 이래 이미지는 늘 공동체의 염원 속에서 태어나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제작 과정과 수용 과정에서 간 접화되고 공허한 세계화를 지향하는 이미지 에 자기 공동체를 위한 자리는 없다. “가난한 나라도 훌륭한 시인과 소설가, 훌륭한 신문 은 가질 수 있지만 좋은 텔레비전은 가질 수 없다”고 드브레는 말한다. 거대 자본이 만들 어내는 이미지의 생산 앞에 가난한 나라의 시 청자는 무기력한 구경꾼들이 되고 만다는 것 이다. 미국적 시각의 유포를 세계화라고 착각 하는 상황에서는 지역의 특수한 역사와 자기 삶의 구체성을 상실한 ‘살균처리된’ 이미지 들만이 양산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제작 국 자본의 이해가 표현된 이미지를 보편이라 는 이름으로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어리석 은 추종자들만이 존재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피상적이고 공허한 이미지의 양산은 영상 시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변화를 타락으 로 읽어버리는 지나친 조심성을 드브레도 가 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기 공동체 발전에 유의 미한 이미지라는 윤리를 내세우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이 인문학자의 꼼꼼한 잔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 는 과학의 질주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인 간 공동체의 윤리는 절대선이기 때문이다.

SUNDAY MAGAZINE15

TRAVEL

스페인 와인 기행: 카바 vs 셰리

펑펑 터지는 와인의 최고봉, 카바 해풍에 익힌 깊고 달콤한 맛, 셰리

유명 카바 보데가 Pere Venturel 옛날에 사용했던 포도압착기 지하에서 샴페인과 같은 방식으로 숙성되고 있는 카바 최고의 카바를 생산하는 Recaredo의 오너

16 SUNDAY MAGAZINE

스페인에서 포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약

서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생산하고 있

서 모든 포도밭이 황폐화됐다. 그 때문에 새

3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포도나무의 첫 재

다. 어떻게 이 지역이 카바의 중심지가 됐을

로운 품종의 포도 나무를 심으면서 만들기

배지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남서쪽 바닷가로

까. 답을 얻기 위해 최초로 카바 생산이 이

시작한 것이 카바다. 해충이 전화위복이 되

여겨지는데, 온화한 이곳 날씨는 강하면서 당

루어진 역사적인 산 사두르니 다누아(Sant

었기에 이곳 사람들은 해충을 마을의 구세주

도 높은 와인을 만들어냈다. 이토록 오랜 역

Sadurní d’Anoia) 마을을 찾았다. 마을은

로 여기고 있다. 매년 9월 초에는 이 해충을

사를 지니고 있는 스페인 와인은 종류도 무

바르셀로나에서 40여km 떨어져 있고 현 카

기념하는 필록세라 축제가 열린다. 마을에는

척 다양하지만, 양대 산맥을 꼽으라면 스파

탈루냐와 구 카탈루냐 경계에 위치해 있다.

역사적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

클링 와인인 카바(CAVA)와 깊고 달콤한 맛 으로 유명한 셰리(Sherry)다.

이곳에서는 18세기부터 포도 재배를 해

서도 라발 거리에 있는 팔각 고딕 탑에는 필

왔다. 한때 마을 한중간을 흐르던 아누아

록세라 해충 모습이 조각돼 있고, 이 탑 주변

(Anoia) 강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 했다는

의 광장이 축제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스페인의 대표적 스파클링 와인, 카바

얘기도 있는데 지금은 강의 흔적은 찾아볼

현재 마을에는 80개가 넘는 카바 생산 보

피카소의 ‘청색시대’가 있는 박물관이 있

수 없고 마을 입구에는 둥근 아치 모양의 돌

데가(Bodegar·와이너리)가 있다. 겉으론 드

고 가우디가 설계한 교회가 1882년부터 지

에 마을 설립연도인 1768년을 새겨놓았다.

러나지 않지만 이 마을의 지하에는 100년 이 상 된 카바 저장고가 많이 있으며 이곳에서

금까지 지어지고 있는 바르셀로나. 8월 말 이

이 마을에서 처음부터 카바를 생산한 것

곳의 한 레스토랑에 도착한 필자는 다른 나

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까지는 일반 화이트

라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접할 수 있었

와 레드 와인을 생산했다. 카바 생산의 계기

보통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 가장 오래되

다.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을 대표하는 카

가 된 것은 묘하게도 프랑스 포도밭을 황폐

고 좋은 품질의 카바가 저장돼 있다. 그 속으

바(CAVA)를 오픈 하는 소리였다. 샴페인의

화시킨 해충, 필록세라에 있었다. 이 포도나

로 들어가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카바의

경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 소리 없이 점잖

무 뿌리 진딧물 해충은 포도나무의 뿌리에

향기가 더해져 지상에선 느낄 수 없는 독특

게 오픈한다. 하지만 레스토랑 이곳저곳에서

침투해 나무들을 죽이고 급속히 주변으로

한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어두운 미로처럼

“카바~”라는 외침과 함께 ”펑” “펑” 하고 터지

번지며 1867년 이후 프랑스 대부분의 포도밭

이어진 동굴 옆으로 숙성되는 카바들이 즐비

는 소리는 이방인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풍경

을 황폐화시켰다. 그때 이곳의 포도 나무가

하다. 가끔 카바 터지는 소리가 온 지하를 심

이었다.

프랑스로 수출됐고 마을 경제는 급성장했다.

심치 않게 울리기도 한다. 불빛 아래에서 카

그러나 20년 뒤 이곳에도 해충이 옮겨오면

바 속의 침전물을 전통 방식으로 제거하는

카바는 지방색 짙은 카탈루냐 지방에

카바 특유의 향과 맛으로 숙성되고 있었다.

SUNDAY MAGAZINE 17

TRAVEL

장인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지하 세계의 풍경을 뒤로하고 밝은 지상

않았기에 물 대신, 때로는 약으로도 사용된

있는 와인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요한 음료였다.

으로 올라오면 잔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4시간을 기차

마을에 있는 셰리 보데가는 대단히 인상

카바의 거품을 눈으로 확인하며 음미할 수

로 달려 셰리의 본고장인 작은 마을 산타 마

적이었다. 높은 천장의 저장고에는 수백 개나

있다. 코끝을 맴도는 상쾌함과 과일향기 냄

리아에 도착했다. 영화 ‘카리브 해의 해적’에

되는 검은색 오크통들이 몇 단으로 겹겹이

새가 풍성하다. 좋은 카바를 한 모금 마시는

자주 등장하는 항구 마을 카디스가 이 근처

쌓여 있었다. 창문은 모두 빛이 차단돼 있었

순간 모든 와인의 최고봉이라는 찬사가 저절

다. 본래 셰리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마을 이

는데, 가끔 구석으로 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

로 나오게 된다.

름으로 아랍인들이 스페인을 정복하면서 그

었다. 어두운 공간을 가르는 듯한 한줄기 햇

이름도 함께 들어 왔다. 스페인 최초로 와인

빛은 주변의 검은색 오크통들과 대비되며 신

이 이 지역에서 소개되었던 것이다.

비스러움을 자아냈다.

씨간장처럼 오래된 균으로 숙성, 셰리

18 SUNDAY MAGAZINE

리만큼 역사와 전통, 그리고 독특함을 갖고

셰리(Sherry, 스페인에서는 Jerez 헤레스)

셰리는 먼 옛날 탐험가 콜럼버스가 아메리

창문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열고 닫았다.

와인을 만나러 가는 길 내내 가슴이 두근거

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항해를 준비할 때

이 지역의 특별한 해풍이 셰리의 숙성과 깊은

렸다. 세상에는 수많은 와인이 존재하지만 셰

필수 품목이었다. 오랜 항해에서도 잘 변하지

연관이 있고 이 바람들 덕분에 셰리의 품질

TRAVEL

전형적인 쉐리숙성고. 높은 천장, 검은 오크통이 특징이다. 수백년역사의 Conzales Byess보데가의 포도밭 다양한 쉐리와인시음 쉐리의 특징인 오크통 상부의 효모막이 형성되어 산화를 방지한다. 거대한 쉐리보데가에서는 이런 전기차를 타고 다닌다.

이 형성된다고 한다.

있는 셰리가 남아 있고 이것이 수백 년 동안

만 셰리 저장고만큼 인간을 압도하는 웅장함

셰리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수확

이어진다. 마치 우리나라의 씨간장처럼 각 통

과 독특함을 보여준 곳은 보지 못했다. 수많

한 청포도를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어 오크

속에는 오랫동안 숙성된 균들이 남아 있게

은 검은 오크통들은 그들이 처음 셰리를 받

통 속에 보관한다. 통 속에서는 효모가 와인

되고, 덕분에 각 보데가에서는 자신들만의

아들인 그 시간의 맛과 향을 세월 속에 녹여

상층부를 덮어 산화를 차단하면서 효모막

독특한 셰리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화석들처럼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숙성이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3년

오래 된 셰리는 색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때문에 셰리는 인류가 꼭 보존해야 할 문화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가

밝은 초록빛을 띤 노랑에서부터 어두운 갈색

적 가치를 갖고 있는 와인이란 생각도 들었다.

장 기본적인 셰리는 여러 단계의 숙성을 거치

까지 다양하다. 한잔의 셰리는 그 역사를 담

누군가 셰리 지역을 방문한다면 필자는 꼭

고 증류주가 첨가되면서 다양한 종류로 구

고 있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연도를 알 수 없

검은 오크통으로 쌓여 있는 저장고를 조용히

분된다. 층층이 쌓인 통에서 셰리를 추출해 병에 넣을 때에는 가장 밑단에 있는 통에서부터 뽑아낸다. 그래서 통속에는 항상 숙성되고

는 것들도 있다. 이렇게 세월의 연속성을 갖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 세계 알코올 시장에 존재하는 와인은 찾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먼지가 희미한 빛을 타

아보기 힘들다.

고 흩어지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기에.

20여 년간 수많은 와이너리를 다녀보았지

페네데스·헤레스(스페인) 글·사진 김혁 와인평론가 SUNDAY MAGAZINE 19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길바닥 체질’ 김주영 “가정을 등한시한다고 꽤나 욕먹으면서도 객지를 떠돌아다녔어. 당연히 고생스럽지. 잠자리, 음식, 노자, 죄다 힘들어. 그런데 이런 궁핍이 내 몸엔 딱 맞는 거야.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란 유년 시절의 가난과 따돌림. 거기서 비롯된 내 삶의 형태가 길바닥에 체질화된 게지. 길바닥 인생을 주제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체질인 게야.”

20 SUNDAY MAGAZINE

COLUMN

컬처# : 드라마 ‘응답하라 1997’

깨알 같은 디테일의 힘 “그땐 그랬지” 폭풍 공감

영화 ‘건축학 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기 댓글 향연이 펼쳐진다. 또 경상도 사투리

(사진)’. 1990년대를 추억한다는 작품이

를 이렇게 주연뿐 아니라 전 출연진들이 일정

자꾸 나오는 걸 바라보는 40대 중반의 마음

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해내는 드라마는 아

은 씁쓸하다. 아니 얼마나 됐다고 벌써 추억

마도 처음인 듯하다.

한단 말이야 싶어서 셈해 보면 그때 10~20대

그런 리얼리티 덕분에 때론 순정만화 수준

를 넘긴 세대들이 벌써 30대 중반이다. 딱 10

의 개연성 없는 이야기 속에서도 주인공과 캐

년 전쯤 ‘7080’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어린

릭터들은 막연히 90년대 어느 지방에 살던

시절의 추억을 처음으로 상품화했던 게 386

남녀가 아니라 부산 광안동이라는 구체적인

언저리 세대다.

10~20대 뜨거운 열정으로 문화를 향유했

장소에서 진짜 내 시대를 살았던 생생한 캐 릭터로 다가올 수 있었다.

던 그 ‘순수의 시대’로 잠깐이나마 돌아갈 수

H.O.T나 젝키(젝스키스)팬이 아닌 세대들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구매력이 있는

도 마찬가지.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살았고

주인공 윤제(서인국)와 시원(정은지)의 이루

30~40대 초반을 위해 90년대는 한동안 추

한때 무언가에, 누군가에 미쳐 있었다. PC통

어질 듯 말 듯한 사랑 외에도 여기서는 부모

억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나이 든다는 건 자꾸

신 접속음에 설레고, 들으면 가슴 저미는 노

와 자식 간의, 스타를 향한 팬의 맹목적인, 그

젊어지는 세대들의 추억을 함께 보아야 하는

래가 있고, 누굴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나 고

리고 동성 친구를 향한 풋풋한 사랑 등 여러

것인가 보다.

민하고, 야구를 보고 축구 한 일전을 보며 모

색깔의 사랑이 있고, 그 강도가 다 진하게 다

아무튼 당시 이미 애 엄마가 돼서 ‘빠순이’ 두가 부둥켜 안고 소리를 지르는 건 10대나

가온다.

를 할 물리적인 조건이 안 됐던 때 이야기라

60대나 그때나 지금이나 지속되는 것이다.

시원을 좋아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다른

몰입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보았는데

아주 좁은 시간의 특정한 문화를 불러냈음

여학생의 고백을 들은 뒤 “만나지 말까”라고

‘응답하라 1997’는 예상외로 강력했다. 특히

에도 다른 세대들이 이 드라마에 공감할 수

시원에게 세 번 정도 반복해 묻는 것으로 에

있는 이유다.

둘러 애정을 표현하는 윤제의 감정, 혹은 윤

이 시대를 재현해 내는 에피소드나 고증의 디 테일들은 작정한 듯 엄청난 수준의 리얼리티

다양한 세대가 이 드라마에 응답하는 이

제를 좋아하지만 같은 남자라 말 못하던 준

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

유는 무엇일까. ‘응답하라 1997’은 마치 뛰어

희(호야)의 감정은 달달하지만 느끼하지 않

게 만든다.

난 ‘미드’를 철저히 성분별로 분석해 낸 뒤 멜

고 애틋하다. 드라마의 배경으로 종종 흐르

H.O.T 팬들이 콘서트 객석 앞자리를 차지

로 드라마에, 단편식 시트콤에, 미스터리 터

는 K2의 노래 가사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웠

하기 위해 은행 앞에서 밤새우며 입금증 앞

치까지 가미한 느낌이다. 또 유명인 카메오에

던 우리 지난날의 사랑”을 누구나 할 것 없이

번호를 기다리는 장면 묘사 같은 데선 두 손

코믹 에피소드, 내레이션, 거기에 한국적 리

한 번쯤 떠올리게 한다. 이 드라마가 좋은 건

을 들었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졌던 당시 대

얼리티 같은 온갖 성공 요인을 총동원해 버무

특정한 ‘과거의 추억 전시장’이 아니라 보편

중문화의 힘과 조직적 팬클럽 문화가 처음

린 ‘기획 컨셉트 상품’ 같다.

적인 첫사랑과 영원한 사랑에 대한 설득력 있는 드라마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이

시작됐던 시절의 풍경을 겪지 않았어도 생생

그럼에도 별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건 그

하게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에 드라마가 끝나

중심에 ‘사랑’이 놓여 있고, 그 감정이 자연스

유다.

면 그 세대들의 ‘그땐 그랬지’식 추억 쏟아내

럽고 절절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

글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 filmpool@gmail.com SUNDAY MAGAZINE 21

PEOPLE 서울미술관을 설립한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사진 왼쪽)이 부인인 서유진 석파문화원 원장, 이주헌 서울미술관 관장과 함께 미술관 위에 있는 석파정 한옥 앞에 모였다.

장면1. 1983년 서울 명동. 액자집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던 스물일곱 제약회사 영업사 원의 눈에 이상한 황소 그림이 들어왔다. 뼈 다귀만 남은 것 같은,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 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못 그린’ 그림이었다.

9000원밖에 없던 그는 만원을 부르는 주인 에게 밥값과 차비를 뺀 7000원만 주고 작품 을 넘겨받았다. 문을 나서는 그에게 주인이 말했다. “그거 그림 아니고 사진이에요.” 그림 인지 사진인지,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 는 왠지 뿌듯했다. 장면2. 2010년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경

매에서 이중섭의 유화 ‘황소’(1953)가 35억 6000만원에 낙찰됐다. 박수근의 ‘빨래터’가 가진 기록(45억2000만원)을 깰 것인지 초미 의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었다. 국내 경매가 2 위를 기록한 이 작품은 누군가의 집으로 조 용히 옮겨졌다. 장면3. 2006년 서울 부암동.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였던 ‘석파정(石坡亭)’이 포함된 대지가 경매에서 다시 유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사고 싶다”는 생각에 입찰에 나섰지 만 결과는 실패. 그보다 조금 더 써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장면4. 2007년 다시 서울 부암동. ‘석파정’

주인이 그를 찾아왔다. “이 땅을 살 생각이 없 으십니까?” 대로변에 있어 사옥을 지으면 안 성맞춤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지을 수 없었다. 석파정은 서울시 유형문화재(제 26호)였다. 지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미술관뿐 이었다. 30여 년간 모아온 작품이 100여 점 정도 있었다. “그래, 미술관을 짓자. 그리고 이 그림들을 이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도록 하자.” 하지만 돌고개(石坡)란 이름은 괜히 붙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서울미술관’ 여는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

게 아니었다. 건물을 지으려면 단단한 돌덩어 리를 부숴야 했다. 무소음·무진동 다이너마

“작가 인생·인품 보고 년간 사 모은 작품들 이제 함께 보고 싶네요”

이트는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만 사용할 수 있 었다. 그나마 청와대, 안기부, 종로구청 등 각 계의 감시 속에 걸핏하면 중단됐다.

29일 서울 부암동에 개관하는 서울미술 관에는 유니온약품 안병광(56) 회장의 드라 마틱한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학 졸 업 후 친구들과 의류 오퍼상을 차렸지만 집

22 SUNDAY MAGAZINE

PEOPLE 독일 클래식기타 잡지 표지모델 된 기타리스트 이건화

“기교보다 작곡가의 메시지에 집중”

도 사채업자에게 넘기고 월세로 옮겨야 했다.

5년간의 제약회사 영업사원 경험을 바탕으 로 차린 회사도 자리 잡기란 쉽지 않았다. 하 지만 그는 긍정의 힘을 믿었다. “약을 팔러 다니다 보니 병원에 웃고 들어오 는 환자는 없더라고요. 그들을 보면서 생각

젊은 한국인 기타리스트가 최근 독일 클래식기타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기타

했어요. 이들에게 휴식과 감성을 주고 싶다

레 악투엘(Gitarre aktuell)’이라는 제목의 이 잡지는 함부르크 기타 재단이 33년

고요. 미술관을 만들게 된 것도 그런 생각을

간 계간으로 발행해 오고 있는 클래식기타 전문지. 2012년 여름호 표지의 주인공 이

계속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건화(29 사진)씨는 현재 독일 뒤셀도르프의 로베르트 슈만 음악대학에서 알렉산더

어떤 그림을 주로 사느냐고 묻자 그는 “우

라미레스의 제자로 클래식기타 최고 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밟고 있다.

선 작가의 인생과 인품을 보고, 다음으로 재

그는 이 잡지에서 ‘이건화-영혼의 기타리스트’라는 제목으로 다섯 쪽에 걸쳐 소

산 가치를 본다”고 했다. 이중섭 그림이 20여

개됐다. “어떤 기타리스트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개성적인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는

점으로 가장 많고 박수근, 천경자, 김기창, 오

것이 음악평론가 카를 잔트포스가 그를 인터뷰한 이유다. 뒤셀도르프 석사(디플롬)

치균 등 한국 근·현대 작가들 중심으로 소장

과정을 최고 점수로 졸업한 그는 오버하우센 국제기타콩쿠르 2위(2010), 노드혼 국

하고 있다.

제기타콩쿠르 3위(2011), 게벨스버그 국제기타콩쿠르 3위(2012) 등 다양한 수상 경

미술관을 짓겠다고 하자 주위에서는 반대 가 심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미술관도 흑자 를 내는 곳은 없다는 이유였다.

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독일에서 전화를 했더니 빈에서 받는다. 8월 말 시작되는 빈 포룸(Forum) 국제 콩쿠르에 출전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이건화의 이력은 독특하다. 아버지의 해외 지사 근무로 노르웨이에서 태어났고,

“전 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하기 나름 아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노르웨이로 떠나 여덟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오슬로

닌가. 흑자가 나는 미술관도 한번 만들어 볼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공부했다. 어릴 땐 혼자서 피아노를 쳤는데, 어느 날 서울에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노르웨이로 놀러 온 사촌형 덕분에 기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고2 때 한국에 돌아

래서 서울미술관을 서울을 대표하는 미술관

온 그는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기타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갈증에 주위의

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클래식기타리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관장은 갤러리 대표와 미술 평론가 등으로 일해 온 이주헌(51)씨. 그는 개관전으로 ‘둥섭,

“클래식기타는 같은 악기를 연주해도 연주자의 개성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 지죠. 그 점이 기타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르네상스로 가세!-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

어린 시절 체험한 노르웨이의 숲과 피오르 해안, 평온하고 자족적이며 유쾌한 노

의 화가들’을 기획했다. ‘둥섭’은 ‘중섭’의 서

르웨이 사람들의 영향이 컸다는 이건화의 음악세계는 그래서 자연스러움과 느림을

북 방언. 52년 12월 부산 르네상스 다방에서

추구하는 명상적 세계다.

동인전을 열었던 이중섭ㆍ한묵ㆍ박고석ㆍ이봉

“요즘 기타리스트들은 필요 이상으로 속도에 집착하죠. 무조건 남들보다 빠른 속

상ㆍ손응성과 후배 작가 정규 등 근대 거장 6

도로 연주해야 하고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요. 물

명을 기리는 전시다. 진품 ‘황소’를 비롯한 이

론 테크닉의 완성도는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기계적인 기교에 치중하는 메인스트

중섭 자화상 및 드로잉 34점을 비롯한 근대

림을 거스르면서, 청중에게 음악을 통해 작곡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

회화 73점을 볼 수 있다.

를 전하고 싶습니다.”

전시장 1층을 지나 3층까지 올라간 관람객

아름다운 스페인 음색을 지닌 기타 파코 마린(Paco Marin)으

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안복을 누리게 된

로 “마치 노래하듯 연주한다”는 평을 받는 그는 바흐의 철학과 정신

다. 북악산과 인왕산 자락의 수려한 풍광과

세계를 사랑하고 소르(Sor)의 기타음악을 가장 즐겨 연주한다고.

그 속에 자리한 석파정의 고즈넉한 한옥 4개

“줄리언 브림의 말처럼 훌륭한 음악은 정신적 차원의 계시며, 음

동을 한눈에 즐기는 호사다. 입장료는 성인

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신성한’ 어떤 것이죠. 곡이 지닌

9000원. 문의 02-395-0100.

메시지를 작곡가와 공유하며 청중에게 이해의 문을 열어주는 것.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그것이 연주자로서 저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최정동 기자

글 이용숙 클래식 평론가 SUNDAY MAGAZINE 23

REVIEW & PREVIEW

전국노래자랑

미남이시네요

‘미남이시네요’ 9월 9일까지 세종M씨어터 ‘전국노래자랑’ 9월 23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뮤지컬의 본질은 노래다. 귀에 감기고 가슴에

는 이 무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 ‘가슴이 욕

와닿는 노래가 있다면 스토리는 좀 엉성해도

해’ ‘어떡하죠’ ‘여전히’ 등 익숙한 드라마

아이돌 콘서트인 듯 노래대회 객석인 듯 신명나는 한바탕 쇼

용서가 된다. 아직 검증받지 않은 창작 뮤지컬

히트곡들은 여성팬들을 간단히 집단최면의

일수록 노래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판타지 속으로 인도한다. 평범한 여성이 아이

쉬운 방법도 있다. 검증받은 노래를 쓰면

돌 스타의 무대에 섞이고, 멤버들의 사랑을

된다. 요즘 눈길을 끄는 창작뮤지컬 두 편도

독차지한다는 소녀들의 영원한 로망이 즐거

그렇다. 각각 ‘K팝 뮤지컬’과 ‘주크박스 뮤지

운 쇼의 한복판에서 실감나게 펼쳐진다.

컬’을 표방한 ‘미남이시네요’와 ‘전국노래자

드라마는 과감히 버려졌다. 러브라인은 애

랑’은 아예 멍석을 깔아놓고 우리가 잘 아는

절한 노랫말이 납득이 안 될 만큼 헐거웠고,

노래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관객은 아이돌 콘

출생의 비밀과 주변인물의 관계도 엉성히 봉

서트 현장에 간 듯, 전국노래자랑 행사에 우

합됐다. 16부작 드라마를 2시간에 압축시켜

연찮게 동참하게 된 듯한 기분으로 무대와

야 하는 ‘드라컬(드라마 뮤지컬)’의 태생적

성큼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계다. 응원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즐기기 이럴 땐 드라마와 쇼의 역학관계가 부각된다.

위해 노래 가사 정도는 외워 가는 것이 기본 이듯, 이 즐거운 쇼를 위해 드라마의 디테일

‘각이 살아 있는’ 군무로 차별화

정도는 꿰차고 가야 진짜 관객이다.

‘미남이시네요’는 드라마를 쇼로 변신시켰다. 장근석을 단숨에 한류스타로 만든 바로 그

80~90년대 히트곡 릴레이

드라마다. ‘로맨틱 코미디 보증수표’ 홍 자매

90년대 추억의 히트곡 김원준의 ‘쇼’로 흥겹

작가의 작품인 만큼 뮤지컬 매니어인 젊은 여

게 막을 여는 ‘전국노래자랑’은 거꾸로 쇼를

성층 타깃에 더할 나위 없는 킬러 콘텐트다. 드라마로 변신시켰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작의 아이돌 밴드를 K팝 댄스그룹으로 설

라는 러브스토리의 고전이다. 비현실의 저편

정을 바꾼 것은 쇼 뮤지컬의 매력포인트인 군

에 있는 러브스토리를 전국 방방곡곡에서

무에 힘주기 위한 것. 방송안무팀 멤버들이

부담 없이 펼쳐지는 대국민 쇼와 엮어낸 아이

직접 출연해 ‘각이 살아 있는’ 차별화된 군무

디어는 기발했다. 덕분에 관객의 연령대도 다

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양했다. 2030 매니어층 못지않게 4050 세대

국내에서만 3만 장 이상 팔린 드라마 OST 24 SUNDAY MAGAZINE

가 눈에 띈다는 사실부터 평가할 만하다.

REVIEW & PREVIEW

인천공항 스카이페스티벌, 8월 29~31일 오후 7시 인천공항청사 인근 특설무대, 문의 032-741-3800

공항서 펼치는 특별한 음악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광역시가 늦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음악축제 ‘2012 인천공 항 스카이 페스티벌’을 선보인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수도권 최대의 야외 음악축제다.

KBS-2TV ‘뮤직뱅크’ 특별방송을 필두로 마에스트로 금난새가 지휘하는 인천시립교 향악단과 90인조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공연이 펼쳐진다. 첫날인 29일은 ‘뮤직뱅크’가 축제의 서막을 연다. 슈퍼쥬니어(사진), 카라, 비스트, 아이 유 등 K팝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 최정상의 아이돌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30일은 90 인조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리톤 서정학,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옥주현, 발레리나 김주원, 바이올린 신현수 등 아티스트가 출연한다. 31일은 ‘금난새의 해설이 있 는 음악회’로 차이콥스키, 브람스, 모차르트 등 익숙한 클래식 명곡에 지휘자의 흥미로 운 해설이 곁들여진다.

너도나도 주인공이 되려는 오디션 열풍에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휩싸인 요즘 세태를 비웃듯 소박한 한판 쇼 의 딩동댕 소리에 가족의 명예와 재산, 사랑 을 모두 건 드라마가 당당히 전개된다. 그런 데 이 드라마엔 주인공이 따로 없다. 윤복희

‘구찌-아티잔 코너’, 8월 31일~9월 9일 서울 청담동 구찌 프래그십 스토어 등, 문의 02-3782-6465

명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의 ‘여러분’, 산울림의 ‘나 어떡해’ 등 80년대 히트곡부터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터보의 ‘트위스트 킹’ 등 90년대를 거쳐 싸이의 ‘챔 피언’, 엠블랙의 ‘전쟁이야’까지 전 세대를 아 우르는 노래들이 포진된 것도 그래서다. 사랑 이 어디 20대 청춘만의 것인가. 현재진행형의 사랑이 있다면 추억 속의 사랑도 사랑이니 말이다. 이를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몬테규와 캐플릿, 김 회장과 이 회장의 25년 전 러브스 토리로 호기심을 자극하며 적절히 비틀었다.

지난해 11월 명품 브랜드 구찌는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숙련된 장인들이 명품을 어떻

주변인물들에게도 저마다 사연이 부여돼 드

게 만드는지 직접 볼 수 있도록 한 것. 이름하여 아티잔 코너(Artisan Corner)다. 이탈리

라마를 두텁게 했다. 엄청난 비밀이나 반전이

아 가죽공장 현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생생함은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있을 것처럼 기대만 부풀리고 차분한 화해로

올해는 엠보싱 작업을 할 수 있는 테이블, 재봉틀, 레더 스탠드, 각종 공구뿐 아니라 제품

수습되는 엔딩이 다소 허탈했지만 뭐, 나쁘지

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무드 보드와 스케치도 선보인다. 장인들은 뉴재키,

않다. 인생도 어차피 한편의 쇼일 뿐이니. 90

뉴뱀부, 소호, 디아나 등 구찌의 가장 대표적인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작업 과정을 직접

년대 메가 히트곡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선보인다. 또 ‘재키 스페셜 디스플레이’ 코너에서는 미국의 전 영부인이자 세계적인 패션

그대’에 맞춘 커튼콜은 모든 관객을 일으켜세

아이콘 재클린 오나시스가 가장 사랑하고 애용했던 ‘재키백’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웠고, 드라마는 다시 쇼로 돌아갔다. 우리 기

1960년대 처음 선보인 오리지널 재키백부터 2009년 동시대 여성들에게 적합한 스타일

억 속에도 흥겨운 한바탕 쇼만이 남겨질 터다.

로 완성된 뉴재키백에 이르기까지 고루 갖췄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구찌

사진 신시컴퍼니, 이다엔터테인먼트 SUNDAY MAGAZINE 25

BOOK

아라키 노부요시의『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외설 사진으로 악명 높은 老작가의 속마음

우리는 자극적인 것에 끌린다. 좀 더 정확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지니는 태도, 사진을

중하는 동시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게 말하자면 익숙하지 않은 것이나 흔히 볼

고르고 정리하는 법, 사진에 담기는 시간성

나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사진의 중요

수 없는 것과 마주하면 오랫동안 눈길을 멈추

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사건의

한 미덕으로 삼는다. 카메라 앞에 있는 피사

고 쳐다보게 된다. 그 결과로 그 장면을 더 잘

진술과 핵심을 찌르는 통찰의 어우러짐이 흥

체에 따라 즉흥적으로 프레임이나 톤을 바

기억하게 되는 것인데, 중요한 건 어딘가에

미롭다. 특히 그의 사진론의 정수라고 할 만

꾸되 그들을 통해 내가 새롭게 경험하게 된

눈을 고정하고 있으면 다른 한편으론 보지

한 ‘사진사정주의(寫眞私情主義)’를 특유의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못해서 놓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

잘난 척과 농담을 섞어가며 풀어내는 대목

사진은 관계이므로 나와 상대가 함께 만들

이다. 아라키 노부요시(1940~ )에 대해 ‘변태’ 들은 재미를 넘어선 공감의 즐거움으로 이어

어가는 과정에서 사진가가 할 일은 그때 자

니 ‘괴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은 간

신의 ‘기분을 데생하는 것’이라는 건데, 그의

간이 그가 보여주는 깜짝 놀랄 만큼 자극적

자신의 사진은 “위로하는 사진”이므로 낯

사진이 의식과 무의식, 감성과 이성의 사이를

인 사진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외설적이라 할

선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느낄 허용과 적대

줄타기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이해하게

만한 행동을 일말의 꾸밈이나 망설임 없이 노

감을 배려한다면 복장부터 신경써야 한다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출하는 사진들로 그를 기억하는 것은 어찌 보

며, “낚시하러 가는 차림의 조끼, 특히 주머니

기꺼이 나를 변화시키는 희생 간의 균형감각

면 자연스럽다.

가 여러 개 여기저기 달린 조끼를 입는 차림. 이 아라키 노부요시라는 작가를 만든 것이

하지만 그러느라 작가로서의 아라키가 지

리라.

하게 말하는 대목에선 격하게 호응하지 않을

“어쨌거나 나는 꼭 기본을 제대로 해두지

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적었던 것

수 없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선 비장함이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

같다. 칠십 평생을 사진 찍는 사람으로 살았

아니라 앞으로 내게 다가올 모든 것을 받아

러니 혁명가는 못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나

고, 젊은 시절 십 년 가까이 광고회사에서 일

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야 뭐 국가가 멸망해도 당신만 구하고 싶다고

하면서 쌓은 탄탄한 기본기와 지금까지 400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역시 진정한 전문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소위 ‘슈팅 재

성은 종국에는 인간애로 통합되는 것일까. 온

킷’을 전투복처럼 챙겨 입으면 나도 상대방도

갖 난잡한 사진들로 악명 높은 노 작가의 이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은

비장해져서 딱딱하게 굳어진 마른 빵 같은

야기가 낯 뜨겁기보단 맘 따뜻하게 느껴지는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가 지닌 생각의 스

사진밖엔 나오지 않게 된다. “겉모습만 찍는

건 나만의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펙트럼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글들로 구성됐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자신

에겐 이런 사랑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다. 사진을 찍기 전 마음과 몸의 준비에서부

의 초라함을 나타낼 뿐 좋지 않습니다.”

그의 세계는 예사롭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26 SUNDAY MAGAZINE

그런 차림으론 사진을 못 찍습니다”라고 단호

닌 생각이나 평범한 소재들을 다룬 사진들

권이 넘는 작품집을 출간한 에너지만으로도

저자: 아라키 노부요시 역자: 백창흠 출판사: 포토넷 가격: 1만6000원

진다.

터 카메라와 렌즈의 선택, 길에서 마주치는

이 책에서 만나는 아라키는 ‘대상에 집

글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사진 포토넷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책

영화

공연

클래식

한 손엔 공자 한 손엔 황제 저자: 이유진 출판사: 글항아리 가격: 1만1000원

공모자들

사람, 사람들

색소폰 앙상블 ‘알리아쥬 퀸텟’ 내한공연

차이나 스탠더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

감독: 김홍선

기간: 8월 29~30일

일시: 8월 29일 오후 8시

들고자 하는 중국의 욕망은 중국의 뿌리

배우: 임창정, 최다니엘, 오달수, 조윤희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깊은 중화사상과 잇닿아 있다. 저자는 최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문의: 02-2263-4680

문의: 02-720-3933

근 대륙에서 열풍처럼 불고 있는 공자 성

보험사 직원 상호(최다니엘)는 중국 웨이

숙명여대 정옥조 교수가 이끄는 나는새공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색소폰 앙상

인 만들기 등 유가 이데올로기의 확장과

하이행 여객선에서 아내 채희(정지윤)를

연예술진흥회의 창립 공연. 1994년 정 교

블 ‘알리아쥬 퀸텟’의 첫 내한공연. 네

한족의 시조 ‘황제(黃帝)’를 중화 내셔널

잃는다. 탑승객 명단에조차 아내의 이름

수의 안무로 초연된 작품 ‘빈 배’가 1부, 새

가지 구성의 색소폰(소프라노ㆍ알토ㆍ테

리즘의 핵심 자원으로 보고 공자와 황제

이 없다. 함께 승선한 장기밀매 총책 영규

로운 출발을 알리는 창립 작품 ‘사람, 사

너ㆍ바리톤), 피아노로 이뤄졌다. 멘델스

를 둘러싼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중국

(임창정)가 조직원들과 함께 채희를 납치

람들’이 2부에 선보인다. 음악 김영동, 무

존의 ‘한여름 밤의 꿈’, 림스키코르사코

의 문화적 프로파간다가 어떤 차원에서

한 것. 아내를 찾기 위한 상호의 추적이 시

대미술 차상엽, 조명디자인 정진덕 등과

프의 ‘세헤라자데’, 포르코스의 ‘늙은 헝

전개되고 있는지를 짚어본다.

작되는 가운데 엄청난 반전이 펼쳐진다.

함께 다양한 해석과 실험을 보여준다.

가리안 댄스’ 등을 연주한다.

미운 오리새끼

EL FLAMENCO

박종화 피아노 독주회 일시: 8월 27일 오후 8시

토로스&토르소 저자: 크레이그 맥도널드 역자: 황규영 출판사: 북폴리오 가격: 1만3500원

기자이자 편집자, 소설가로 현재 미국에

감독: 곽경택

기간: 8월 25~27일

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추리소설 작가

배우: 김준구, 오달수

장소: 서울 서빙고동 프로젝트박스 시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크레이그 맥도널드의 국내 첫 출간작. 범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70-7601-1154

문의: 031-955-6982

죄소설가 헥터 라시터 시리즈의 하나로,

집안환경 때문에 낙만은 6개월 방위가 된

아르떼 플라멩코 무용단 이혜정 단장이

2010년 시작된 기획 시리즈 ‘피아니스트

형사나 탐정이 아닌 범죄소설가가 연쇄살

다. 이발·사진촬영·바둑·청소·영창 근무

기타리스트 김성현, 플라멩코 가수 야마

박종화의 장르 탐구’ 독주회는 연주에 재

인을 쫓는 흥미로운 구성이다. 마그리트

등 부대 안 잡일을 떠안은 낙만은 “그래도

카와 마사히로, 타악연주자 설호종과 함

미있는 해설을 곁들인 것이 특징. 이번 공

와 달리, 만 레이 등 초현실주의 미술을 모

국방부 시계는 돈다”며 꿋꿋하게 버틴다.

께 플라멩코 예술혼을 나눈다. 스페인 전

연 주제는 ‘표제음악’, 즉 ‘제목이 존재하

티브로 한 살인이라는 이색적인 설정에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낙만은 온갖 부류

통 플라멩코가 무엇인지 정의해 줄 이번

는 음악’이다. 바흐의 유일한 표제 피아노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탄탄한 스토리

의 수감자들을 만나며 세상을 알아가고

공연은 소박하지만 격정적인 플라멩코 본

음악인 ‘사랑하는 형의 석별을 위한 카프

가 돋보인다.

엄청난 사건이 그의 군생활을 위협한다.

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리치오’ 등을 들려준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자료=교보문고

순위 책명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김영사

도둑들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김윤석·김혜수·이정재·전지현

EBS 모여라딩동댕 번개맨의 비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차태현·오지호·민효린

뮤지컬 시카고

의자놀이

공지영·휴머니스트

이웃사람

김윤진·마동석·김새론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이병률·달

토탈리콜

콜린 파렐·케이트 베킨세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뮤지컬 라카지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출연 순위 음반명 -

인순이·최정원·아이비 -

정성화·남경주·김다현

쇼팽: 야상곡-이반 모라베츠 모차르트 : 바이올린 협주곡 4번 외

silkroad

차이콥스키 : 교향곡 6번 ‘비창’ 외

DG

브루크너 : 교향곡 9번-카를로 마리아 줄

DG

뮤지컬 로보카 폴리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레드라이트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황정민·서범석·홍광호

비발디 : 라 체트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새미의 어드벤쳐2

뮤지컬 잭더리퍼

안재욱·엄기준·신성우

로맨틱 클라리넷 소품집 그리그, 브람스

김난도·쌤앤파커스

로버트드니로·시고니위버 아이유·이기광(목소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 E.L. 제임스·시공사

스텝업4:레볼루션 라이언구즈만·캐서린맥코믹

연극 옥탑방고양이

박성훈·장지우·윤정빈

빅 픽처

다크 나이트 라이즈

뮤지컬 헤드윅

오만석·박건형·이영미

더글러스 케네디·밝은세상

크로스 시즌2 진중권, 정재승·웅진지식하우스

크리스천 베일

아이스에이지4:대륙이동설 김준호등(목소리)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김도현·김재범·성두섭

Supraphon

슈만:피아노오중주외 HarmoniaMundiFrance

알투비:리턴투베이스 정지훈·유준상·신세경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1 E.L. 제임스·시공사

-

음반사

Channel Classics Camerata Myrios Classics

카르멘 판타지 : 세르게이 나카리 밀로쉬 : 라티노

Teldec DG

SUNDAY MAGAZINE 27

SOULSEARCHING

강신주의 감정 수업 <18> 멸시

Despectus

사랑이 미움으로 바뀔 때

“사랑하지 않음에도 이별할 수 없는 경우 사랑에 수반되던 과대평가의 감정은 멸시의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멸시는 상대방을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사람, 한마디로 벌레처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드는 감정이다.. ”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이란 감정만큼 드

든 사랑하지 않음에도 이별할 수 없는 경우

라마틱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두

도 있다. 이별하려고 해도 이별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자기들 두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모

우리의 사랑은 낮이 밤으로, 봄이 겨울로 변

든 것들은 배경으로 물러나는 특이한 경험

하는 것처럼 완전히 상반되는 감정으로 돌변

을 겪는다. 프로이트가 말했던 것처럼 사랑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미움이란 감정이다.

성을 높이며) 총장 딸과 결혼해 한가락 할 줄 에드워드 올비 (Edward Franklin Albee, 1928~ )

알았는데, 무명씨에다 책벌레…잡생각만 많 고, 아무것도 되는 것 없고, 배짱은 없어서 누 구에게도 자랑거리가 못 되고…됐어, 조지! 이 정도의 막말이라면 둘만 있을 때에도

은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과대평가의 감정을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사랑에 수반되

상대에게 치명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수반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랑에 빠진 사람

던 ‘과대평가’의 감정은 이제 ‘멸시’의 감정

마사는 남편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신임

의 눈에는 상대방이 일종의 유일신으로 보인

으로 변하게 된다. 과대평가가 상대방을 이

다는 것이다.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감정이

교수로 부임한 닉과 허니 부부를 한밤중에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허 실을 부조리극풍으로 비

집으로 초대한 상태다. 이렇게 초면의 손님들

그러니 지금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해 왔던

라면, 멸시는 상대방을 평범한 사람보다 못

부모님·친구, 심지어 조국마저도 사랑에 빠진

한 사람, 한마디로 벌레처럼 무가치한 사람으

프를 두려워하랴?』(1962)

간이’라며 악담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두

두 사람의 눈에는 들어올 리 없다. 그렇다. 사

로 만드는 감정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멸시

의 성공으로 20세기 미국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멸시하고 또

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던 것이다.

최고 극작가가 되었다.

멸시한다.

랑은 두 사람을 이 지상, 아니 이 우주에서 유

꼰 작품『누가 버지니아 울

앞에서 마사는 남편에게 ‘배알’도 없는 ‘얼

일한 주인공으로 만드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멸시(Despectus)란 미움 때문에 어떤 사

우리는 사랑이 언제 우리를 떠나는지 확인

람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코 조지가 총장이 될 인물이라고 계산했기

할 수 있는 시금석 하나를 얻게 된다. 상대방

(-에티카』중에서)

때문이 아니다. 조지 역시 총장이 되려고 마

마사가 조지에게 홀딱 반했던 이유는 결

이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여기서는 “미움 때문에”라는 구절에 방점

사를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그냥

다른 사람과 비교 가능한 사람이 되는 순간

이 찍혀야 한다. 밉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두 사

이다.

에게 그가 받아 마땅한 정당한 대우를 해 주

람에게서 사랑이 떠나갔을 때 그들이 헤어

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멸시다. 미국

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어쩌다 대학 설립자

한때는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이제 익숙한 풍경처럼 평범해지며 배경으로 물러나는 경

의 위대한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누가 버

의 사위가 된 역사학과 교수, 그리고 이혼은

험이라고나 할까? 이럴 때 불행히도 우리는

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생각할 겨를도 없이 총장 딸이라는 역할에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of Virginia Woolf?)』라는 희곡에서 탐색

충실해야 하는 아내. 사랑이 떠난 뒤 남은 현

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별을 준비

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멸시라는 감정이다.

실은 그들의 이별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니 상

해야만 한다. 언젠가 그 사람에게 말해야만

이 작품을 끌고 나가는 것은 대학 설립자의

대방이 미울 수밖에, 그러니 상대방을 멸시

하니까.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제 삶의 주인공

딸이기도 한 아내 마사와 같은 대학 역사학

할 수밖에.

이 아니에요.”

과 교수인 남편 조지가 서로의 상처를 후벼

그 사람과 함께했던 사랑의 기쁨을 추억으

파듯 상대방을 멸시하는 대사들이다.

로나마 간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별의 아픔

조지: (몸을 돌리며) 그만해 둬, 마사….

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마사: 역사학과의 막장….

억지로 지내다 보면 사랑의 추억마저도 갈기

조지: 그만, 마사, 그만….

갈기 찢어질 테니까.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

마사: (조지의 목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언

28 SUNDAY MAGAZINE

어쩌면 그들이 진정으로 멸시하고 있는 것 은 그런 현실에 굴복하고 있는 자신들의 비겁 함과 나약함이 아닐까? 대중철학자.『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적 시읽기의 괴 로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 서를 썼다.

GALLERY

세 화가의 예술혼 1914년생인 한묵 화백은 국내 추상미술 1세대 작가다. 이중섭·김환기·유영국 등과 함께 현대미술 태동기에 서구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그는 역동적 우주 공간을 다채 롭게 표현하면서 기하 추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2003년 이후 10 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자 61년 이래 파리를 무대로 활약해 온 화백의 도불 51주년을 기 념하는 자리로, 그의 화업을 회고하는 시대별 작품 40여 점이 소개된다. 또 평생의 작업 100여 점을 수록한 생애 첫 화집도 마로니에 북스에서 출간된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이 세상 모든 가시적인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해 존립돼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부딪칠 때가 많다. 들에 핀 한 송이 꽃만 하더라도 대기의 압력이 아니고는 피 어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외형적인 모든 존재는 ‘생명력’이 발산하는 ‘내부미의 환 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한 송이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는 하나 그것을 그렇게 있게 한 ‘생명력에 대한 느낌’을 가져볼 것을 잊어버리는 수가 많다. 우리 주변의 가시의 세계가 지니는 매혹적인 형상은 오히려 ‘생명력에 대한 접근’을 더 디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에 대한 이 같은 물음에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에 대한 도전이라고 본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갤러리현대

동방의 별들, 1987, Oil on Canvas, 150x200㎝ 달마의 콧수염, 1988, Oil on Canvas, 200x150㎝

‘한국 기하 추상의 대부-한묵(韓默)’전 8월 22일~9월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문의 02-519-0800

SUNDAY MAGAZINE 29

CONTE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자기 생각 버지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한 가게 안을 둘러보며 유명한 집은 뭐가 달 “니는 니 생각만 하나?”

라도 다르겠지 하면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

TV를 보던 남편이 옆에 있던 아내에게 대

던 아가씨들은 그때 보았다. 양손에 하나씩

화를 시도한다. “당신도 다음 생에 태어나면

설렁탕 그릇을 들고 이쪽으로 오는 아저씨를.

나랑 또 결혼해서 살고 싶어?” 아내는 펄쩍

또 보았다. 그릇에 가득한 설렁탕 국물에 아

뛴다. “당신도 참, 무슨 그런 악담을 해요?” 아

저씨의 양 엄지가 들어가 있는 것을. 아가씨

내의 반응에 남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들은 경악한다. “아저씨 손가락이 국물에….” “내 말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과 처지와 형편에

다. “괜찮아요. 별로 안 뜨거워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한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

서 생각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라

내나 남편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라진 코너

는 뜻의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는 것은 그만

지만 ‘개그콘서트’ 중에 ‘대화가 필요해’라

큼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방증인지 모른다.

얼마 전 모처럼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앉

는 코너가 있었다. 대화가 부족하거나, 대화

거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상상력

은 할아버지와 손주가 나누는 대화를 들은

를 해도 늘 오해하고 마는 가족의 식사시간

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적이 있다.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

할아버지나 손주도 마찬가지다.

설렁탕 가게 이야기는 다 아는 것일 테지만

아버지는 어렸을 때 몇 살이었어요?” 밑도 끝

은 아무런 대화 없이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 ‘자기 생각’ 이야기를 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도 없는 질문인데, 멋쟁이 할아버지는 손주

을 다룬 개그였다. 대화가 부족한 우리 가족

이야기라서 도저히 안 할 수 없다. 세상에 떠

와 눈높이를 맞추고 그 어려운 ‘역지사지’를

한번은 이런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반찬

도는 이야기의 물도 일단 내 글의 논에 끌어

해내신다. 할아버지는 잠시 손주의 나이를 생

을 집어 아버지 한술 뜬 밥 위에 올린다. 고맙

온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사람은

각했을까, 이렇게 말씀한다. “할아버지 어렸

다는 눈짓도 없이, 흐뭇한 표정도 없이 아버

누구나 자기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가씨나

을 때는 여섯 살이었지. 지금 우리 훈이처럼

지는 무심하게 그 밥을 먹는다. 그 모습이 민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곤 했다.

들숨날숨

아저씨는 씩 웃으며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한

말이야.” 옆에서 듣는 나까지 감탄과 함께 흐

망했는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아들이 한마

설렁탕 가게에 아가씨들이 점심 식사 하러

뭇한 웃음을 떠올리게 만든 센스 있는 대답

디 한다. “아부지하고 어무이는 참말로 금실

갔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으슬으슬 추운

이었는데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훈이는 어

이 좋아보입니더.” 어머니는 한편 쑥스러워하

날씨였고, 게다가 그 집은 서울에서도 유명

렸을 때 다섯 살이었는데….”

며 한편 은근히 뻐기듯 말한다. “야도 참. 내

한 식당이라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

는 다음 생에 태어나도, 또 그 다음 생에 태어

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보람이 있어 드디

나도 너거 아부지하고 결혼해서 살끼다.” 아

어 아가씨들이 자리에 앉았다. 바쁘고 분주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타인 앞에서 기죽을 이유도, 우쭐할 이유도 없다” ▶“세상에 별다른 사람은 없다. 타인 앞에서

▶“질병 중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우리가 받은 것에 비해 조금 더 이 세상에

기죽을 이유도, 우쭐할 이유도 없다. 당신의

없는 것도 병을 내려놓고 바라보면 의외로 쉽

보태주고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우

힘이란 실제로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병은 내 삶의 부조화

리가 이 세상을 바꾸거나 이 세상을 위험에

들이 당신이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만

가 드러난 것이다. 다시 균형을 잡고 힘을 키

서 구하는 등 영웅적인 업적을 남기지는 못

큼이다. 설사 리더가 훌륭하지 않아도 훌륭

우면서 건강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좋아져 있

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실체

다. 병을 몰아내고 싸우겠다는 생각보다는 건

게 했던 말 한마디, 우리가 은연중에 했던 생

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제한돼 있다면 긍정적

강하게 사는 것에, 스스로를 환자로 생각하기

각들, 이웃과 나누었던 따뜻한 정은 그냥 사

이고 우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리더

보다 어떻게 힘을 기르고 어떻게 즐겁게 살지

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 스며들

십을 확보하는 자산이 된다.”

에 관심을 갖자.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르자.”

어 세상을 바꾼다.”

-김경준의 책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중에서 30 SUNDAY MAGAZINE

김은숙·장진기의 책 『치유본능』 중에서

-이시스의 책 『이야기테라피』 중에서

PHOTO ESSAY

조용철 기자의 마음 풍경

도시 나들이 “철수야, 도시 구경하니 재미있지?” “그럼요. 사람도 많고 차도 참 많네요.”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산대요?” “에이 오빠는, 아픈 사람들 사는 곳 있잖아~.” “아! 그랬지. 사람들이 아파서 아파트에 산다고.” “아빠, 그런데 도시 사람들은 어디가 그렇게 아파요?” “글쎄다. 마음이 아프다는 사람이 많더라만.” “비가 또 내리는구나. 웬 비가 이렇게 내리는지···.” “영희야, 어서 오빠하고 연잎 우산 쓰거라.”

-경기도 안양에서

조용철 기자의 포토에세이 ‘마음 풍경’은 세상의 모든 생명과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경이로운 삶의 의지에서 내일의 꿈을 찾고 싶습니다.

SUNDAY MAGAZINE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