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oreaDaily

ISSUE

세계 수퍼카의 경연

파리 모터쇼

제291호 10월 7일~8일 값 1000원 http://sunday.joongang.co.kr

October 7~8, 2012. no.291. sunday.joongang.co.kr

CONTENTS editor’s letter

06

THIS WEEK PEOPLE

새 한글 입력 방식으로 iF 디자인상 수상 디자이너 김경욱

재미 바이러스

ISSUE

신간을 정리하다가 『장사의 神』이란 책

08

세계 수퍼카의 경연 2012 파리 모터쇼

에 눈길이 갔습니다. ‘이자카야의 전설’이 라는 별명을 가진 우노 다카시란 일본인

ART

이 쓴 음식 장사 지침서입니다. 5평짜리 가

14

게에서 시작해 20개가 넘는 선술집을 낸

이진숙의 아트북 깊이 읽기<40> 영화 ‘피에타’의 수상 비밀

INTERVIEW

그는 종업원 중 200명이 넘는 사람을 이자 카야 사장으로 만든 걸물입니다.

16

그가 사장감이라 생각하는 종업원의 덕목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최초 동양인 발레리노 김기민

2012 파리 모터쇼

PORTR AIT ESSAY

게 해야 손님이 즐거워 할지 생각하고 그

20

것을 즐기는 능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막돼먹은 영애씨의 콤플렉스

맛있는 집도 좋아하지만 재미있는 집을 더

COLUMN

21

좋아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가 생각하

스타일#:오락가락 서울패션위크

HOUSE

는 음식 장사는 ‘건전한 다단계’입니다. 재 미를 느낀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끌고 오는.

22

문득 싸이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10> 한옥 살리기

‘강남스타일’을 어떻게 찍었는지 보여주는

REVIEW & PREVIEW

메이킹 필름에서 그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24

지시하고 그렇게 찍은 영상을 보면서 먼저

연극 ‘거기’

폭소를 터뜨립니다. 이렇게 웃기는 장면은

BOOK

26

영화 ‘피에타’ 깊이 읽기

안휴의『바다와 섬의 만찬』

는 ‘강남스타일’이 어떻게 지구촌을 강타

28

했는지 궁금해 하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21> 『달과 6펜스』와 서머싯 몸

GALLERY

자기 자신부터 웃겨 죽는 싸이의 ‘재미 바 이러스’에 감염된 외국인들이 다시 친구들

29

에게 이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라

정보영 개인전 ‘빛-시간의 경계’

고 생각합니다.

30

인생 뭐 있겠습니까. 한판 흐드러지게 즐기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PHOTO ESSAY

세상에 없다는 표정으로 말이죠. 외국어라곤 “섹시 레이디” 한마디밖에 없

SOUL-SEARCHING

CONTE

은 성실하고 꼼꼼한 품성이 아니라 ‘어떻

다 가면 되는 것이겠죠. 싸이의 노랫말이 귓전을 싸고 도는 청명한 가을입니다. “진

31

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

조용철 기자의 마음 풍경

언입니다.” 발레리노 김기민

창덕궁 연경당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S MAGAZINE

표지 2012 파리 모터쇼 현장에 등장한 BMW의 컨셉트카 I8.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이도은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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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SUNDAY MAGAZINE

/ Fax 02-751-5806

THIS WEEK PEOPLE

새 한글 입력방식으로 세계적 디자인상 받은 김경욱씨

컴퓨터 자판 대신 조이스틱으로 한글 조형미 살리다

디자인 스튜디오 ‘crosswalk lab’ 의 김경욱(39) 대표. 그는 566돌을 맞는 한글날을 앞두고 주목받는 인물이다. 올 2월 한글을 이용해 세계적인 디자인상 중 하나인 독일 의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그것도 애플 iPad 2, BMW M6, 삼 성 스마트 TV 등과 함께 최고상에 해당하는 ‘골드 부문’이다. 예쁜 서 체를 개발한 성과는 아니었다. 대 신 새로운 한글 입력 방식을 선보 여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구텐베르크의 후손들로서 활자·인쇄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한글의 독특한 조형을 잘 살린 인터페이스 가 매우 인상적”이라며 호평했다. 수상작은 한글이 획으로 이뤄진 글자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굳이 커다란 컴퓨터 자판이 없어도 조이 스틱 하나만 있다면 한글 입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실현시킨다. 가령 스틱을 ㄱ ㅣ ㅡ ㄴ 순으로 움직여 ‘간’을 만들 수 있다. 단 ‘곤’이라는 글자도 이렇게 형성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에 같은 획수와 순서로 만들어지는 글 자들을 미리 저장해 놓은 뒤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 “물론 많은 글자를 빠른 속도로 쳐야 할 땐 키보드 방식, 혹은 천지인 방식이 더 효율적이죠. 하지만 서너 글자 의 검색어 정도만 입력할 때나, 자판 장착이 힘든 카메라·TV리모컨·시계 같은 작은 공간에선 ‘획으로 쓰는 글 씨’가 훨씬 낫습니다.” 그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1999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2010년까지 NHN 미국 지사의 디자인 그룹장, 일본 지사의 디자인 센터장으로 해외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해외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듯’ 아 이디어 역시 5년 전 미국에서 처음 생각해 냈다. 평소 공병우·최정호·안상수·이찬진·민병걸 등 한글을 가지고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었던 분들의 작품들을 보거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말의 특성에 관심을 가졌 던 것이 계기였다. 인터페이스 디자인 전문가로서 컴퓨터와 한글을 보다 친숙하게 이어주는 역할에 주목했다. “한글 사용자를 최대한 배려한 체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가령 키보드 안쪽에 있는 ㄹ, ㅎ 자음은 한글에선 가 장 자주 쓰이는 글자는 아니죠. 알파벳 키보드에 구겨 맞춘 한글을 보다 보니 뭔가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계속 갖게 됐죠.” 수상 이후에도 그는 ‘획으로 쓰는 글씨’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 중이다. 상용화가 급선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러브콜이 많지는 않다. 많은 이가 키보드 입력 방식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자가 많은 탓에 키보드 입력을 영어 발음으로 해야 하는 중국·일본 쪽에서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글에 빠진 그는 우리말에 ‘약점’도 있다고 귀띔했다. 복잡한 획수지만 그림으로 바로 인지되는 한자와 달 리 한글은 모양을 보고 뇌에서 소리로 전환해 읽어야 읽힌다는 것. 그래서 뇌 작동 부분이 다르고 인식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얘기였다. “한글이 우수하다고만 하면 발전이 있겠어요. 이런 단점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보완 해 나가느냐가 다음 숙제입니다.”

06 SUNDAY MAGAZINE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

ISSUE

2012 파리 모터쇼를 가다

강철 심장, 근육질 몸매 참을 수 없는 질주 본능

08 SUNDAY MAGAZINE

ISSUE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기 슈퍼카 ‘The new SLS AMG Coupé Electric Drive’

로망이 현실이 되는 곳. 모터쇼 행사장은 그런 곳이다. 제각기 맵시를 뽐내는 각양각색의 신차를 요모조모 살피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다가 결국 운전석에 몸을 파묻고야 만다. 그중에서도 군살 없는 날렵한 근육질 몸매에 착 가라앉 은 자태, 부릅뜬 눈과 강력한 심장을 지닌 수퍼카를 대하는 감회는 남다르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없기에 더욱 과시하는 듯한 위용은 보는 이의 질주 본능 을 자극하고 엄청난 가격은 시샘을 돋운다. 상상을 먼저 구현한 컨셉트카는 새로운 세상을 미리 보는 짜릿함을 준다.

9월 27일 프레스 데이를 시작으로 10월 14일까지 파리 남서쪽 포트 베르사 유 박람회장에서 열리는 2012 파리 모터쇼에서도 근사한 수퍼카와 컨셉트카들이 곳곳에서 눈길을 붙들었다. 세계적인 불황 탓에 고효율을 앞세운 소형차들이 대세를 이룬 와중이어서 그들의 존재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파리 글·사진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AP 연합뉴스, 각 자동차 제작사 SUNDAY MAGAZINE 09

ISSUE

페라리의 슈퍼카

파리 모터쇼는 1898년 세계 두 번째로 시작된 자동차

아무에게나 허락지 않는다, 수퍼카

박람회다(최초는 189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제

수퍼카는 최고의 디자인과 품질을 갖추고 희소가치

네바 모터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디트로이트 모터

가 있는 고가의 차를 뜻한다. 시속 300㎞ 이상 달릴

쇼와 함께 세계 4대 모터쇼로 꼽힌다. 2년마다 열린다. 수 있는 스포츠카의 성능을 갖췄지만 일반 도로에서 ‘지금이 미래다’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행사에는 21 개국 270개 자동차 브랜드가 50여 대의 컨셉트카와

주행한다. 이번 파리 모터쇼에서 메르세데스 벤츠는 ‘세계

250여 대의 신차를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현대, 기아, 에서 가장 빠른 전기 수퍼카’를 내놓았다. ‘The new 한국GM, 쌍용자동차가 전

SLS AMG Coupé Electric Drive’다. 시판 중인 2

시장을 꾸몄다. 입장

인승 수퍼카 SLS에 F1 기술을 접목해 전기차로 개조

권은 성인 13유로

했다. 전시장 벽에서 아래로 쏜살같이 질주할 듯 비

(약 1만9000원).

스듬히 진열한 이 차의 차체는 묘한 분위기의 푸르스

총 8개로 이뤄

름한 형광빛이었다. 전기 모터 4개를 탑재해 552㎾의

람보르기니 슈퍼카

진 전시장은 드넓었다. 가장

출력에 최대 1000Nm(102kg.m)의 토크를 발휘한

신형 가야르도 LP 570-4(왼쪽)

넓은 1관에는 푸조·시트로

다. 정지에서 100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앵·르노 등 프랑스 브랜드와 벤

뜻하는 제로백은 3.9초. 정통 스포츠카를 표방한 ‘더

츠·BMW 등 독일 브랜드, 닛산과 인피니티 등

뉴 SLS AMG GT’도 눈길을 끌었다. 6.3L V8 엔진

인피니티의 스포츠 쿠페 컨셉트카 EMERGE-E

일본 브랜드, 포드 등 미국 브랜드가 각각 포진했다. 3

의 최고 출력은 591마력(6800rpm)에 달하며 최대

관은 현대·쌍용·혼다·미쓰비시가, 4관

토크는 650Nm(4750rpm)까지 발휘한다. 제로백은

은 폴크스바겐·아우디·람보르기 니·벤틀리·포르셰·렉서스·도

10 SUNDAY MAGAZINE

3.7초. 각각 말과 소가 그려진 로고로 널리 알려진 수퍼

요타 등이 부스를 꾸렸다. 5

카의 양대 산맥,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대결은 늘

관에는 재규어·랜드로버·맥

초미의 관심사다. 우선 페라리는 차세대 신차를 여럿

라렌·기아·쉐보레 등이 자리

선보였다. 최고 출력 740마력에 달하는 12기통 엔진

를 차지했다.

을 탑재 한 F12 베를리네타를 비롯해 FF, 458 이탈리

ISSUE

푸조의 하이브리드 슈퍼 컨셉트카 ONYX

아, 458 스파이더, 캘리포니아 30 등이다. F12 베를리

상상은 현실이 된다, 컨셉트카

네타는 페라리 모델 중 가장 빠른 차. 제로백에 걸리

미래의 탈것을 미리 구현한 컨셉트카는 각 사의 전략

는 시간은 3.1초, 최고 속도는 시속 340㎞에 이른다. 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예언서다. BMW는 월드 자연 흡기 직분사 방식의 6262cc V12 엔진을 달아

프리미어로 하이브리드 모델 ‘액티브 투어러’ 컨셉

740마력의 최대 출력을 낸다. 옵션을 뺀 차 값은 5억

트카를 공개했다. 최고 190마력에 제로백은 8초, L당

원대다.

20km를 주행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km

람보르기니의 경우 신형 가야르도 시리즈를 선보

당 60g에 불과한 차세대 친환경 모델이다. 하지만

였다. 수퍼카 대중화에 앞장선다는 복안이다. 신형

BMW 부스에서 더욱 눈길을 끈 것은 i8. 영화 ‘미

LP 570-4의 경우 차량 전면부와 후면부에 삼각형과

션 임파시블4’에서 톰 크루즈가 타고 나와 일

사다리꼴의 조화라는 기하학적 특징을 더욱 부각시

찌감치 명성을 얻었다. 4월 베이징 모터쇼

켰다. V10 5.2L 엔진으로 4륜 구동이다. 연내 판매 예

에서 선보였지만 여전히 인기가 높았다. 이

정이며 가격은 2억7000만원 선. 람보르기니의 부

자동차는 탄소섬유 등 경량 소재를 이용해

마세라티의 슈퍼카

스는 주위에 유리 담장을 쳐 근접을 막아 아쉬움이

연비가 무려 37㎞/L나 된다. i8용 전기모터

그란 카브리오

컸다.

와 3기통 트윈터보엔진을 함께 사용하는 플

재규어는 2인승 컨버터블(지붕을 접으면 오픈카

러그인 하이브리드차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가

가 되는 차) 스포츠카 ‘F타입’ 시리즈를 처음 공개했

결합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전기 플러그를 이

다. 1960년대의 전설로 불리던 E타입 이후 50년 만이

용해 충전을 하고 주행 중 전기를 다 쓰면 하이브

다.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해 강도는 높아지고 무게는

리드 모드로 전환해 주행을 계속 한다. 제로

줄었다. 최상위 모델인 ‘F타입 V8 S’의 경우 5.0L 8기

백은 4.6초. 2014년 양산될 예정이다.

통 수퍼차저(연료와 공기를 실린더 내 전기모터로 압

영국의 수퍼카 브랜드 맥라 렌

축해 집어넣어 폭발력을 높이는 장치) 엔진을 탑재했

(McLaren)은 P1 컨셉트카를 선보였

다. 최대출력 495마력, 최대토크 63.7kg.m에 최고 시

다. MP4-20C 모델을 기반으로 한 이 모

속 300㎞다. 제로백 4.3초. 내년 하반기께 국내에도 출

델은 V8 3.8 터보 엔진을 달았으며 963

시될 예정이다.

마력까지 낼 수 있고 최고 속력은 시속 384

재규어의 슈퍼카 F타입

SUNDAY MAGAZINE 11

ISSUE

맥라렌의 컨셉트카 P1

㎞다. 제로백은 2.8초. 적갈색 차체와 울퉁불퉁한 몸

벤틀리는 2013년 모터스포츠계로의 복귀를 선언

매, 벌집을 연상시킨 후면부 그릴이 인상적이었다. 차

하며 새로운 레이싱카를 선보였다. 콘티넨털 GT3 컨

체는 매우 얇은 탄소 섬유 패널로 이뤄졌다. “새로운

셉트카다. 양산차를 활용해 레이싱카를 개발한다는

수퍼카의 전설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

벤틀리의 철학이 반영된 이 차의 모델은 양산차 중

고 있는 P1은 내년 맥라렌 창사 50주

가장 빠른 신형 콘티넨털 GT Speed. 최고 속도는

년을 맞아 상용화될 예정이다. 가

시속 330㎞다. 4륜 구동인 양산차와 달리 후륜 구동

격은 80만 파운드 선(약 14억원) 으로 알려졌다. 푸조의 히든 카드는 하이브 벤틀리의 컨셉트카 컨티넨탈 GT3

리드 수퍼 스포츠카 오닉스

이다.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는 하이브리드 중형 쿠페 컨셉트카 ‘LF-CC’를, 인피니티는 스포츠 쿠페 EMERGE-E 컨셉트카를 각각 선보였다.

(ONYX). 르망레이서 908을 토대로 한 쿠페형 컨셉트카다. 차체 를 반사와 무반사라는 두 가지 특징 있는 탄소 섬 유 패널로 구성해 독특한 맛을 살렸다. 차량 무게도 1100㎏에 불과하다. 3.7L V8 하이브리드 터보 엔 진을 탑재했다. 트랜스미션 6단 시퀀셜을 적용 한 최고 출력은 600마력. 포르셰는 4도어 세단인 파나메라를 기반 으로 만든 컨셉트카 파나메라 스포츠 투르스 모를 내놓았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로 전 기 배터리만으로 30㎞를 주행할 수 있다. 최고 출력은 416마력. 제로백은 6초 미만이다. 연비도 L당 28.5㎞(유럽 기준)에 달한다. 이산화탄소 배 출량은 1㎞ 주행에 82g에 불과했다.

12 SUNDAY MAGAZINE

포르쉐의 콘셉트카 파나메라 스포츠 투르스모

ISSUE

파리 조르주 상트 거리에 새로 문을 연 BMW 브랜드 스토어 내부.

파리 BMW 브랜드 매장서 ‘명품의 조건’ 대담

“장인의 혼과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모터쇼에 참석한 전 세계 언 론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가’

과정에 우리는 많은 투자를 한다. 칼슨= 중요한 열쇠는 정보나 창의력에만 있지 않다.

라는 주제 아래 대담이 펼쳐진 것. 파리 브랜드 매장

끊임없는 연구와 재평가 역시 중요하다. 최근 명품 부

을 설계한 미국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에릭 칼슨과

티크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성장 과정을 살펴봤는

BMW의 자동차 외관총괄을 맡고 있는 카림 아비브

데 흥미롭다. 사람들은 부티크에 와서 물건만 사고 나

가 발레리 에녹스 BMW 브랜드 매장 대표의 사회로

가는 게 아니다. 경험을 원하고, 교육받기를 원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운 것에 노출되길 원한다.

아비브는 ‘럭셔리’의 공통점은 남다른 품질이며

아비브= 동의한다. 모든 건 하나의 과정이다. 자동차

맞춤 슈트처럼 고객 하나 하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종이 한 장에서 시작

아내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명품은 고객에게 어

하지만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많은 기술적 과정을 거

떤 경험을 선사합니다. 명품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치며 협력한 결과 한 대의 자동차가 탄생한다. 스튜디

심혈을 기울이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오에서 완성된 자동차를 바라보는 순간이 가장 즐겁

만으로도 상당한 보상이 됩니다. 고객은 명품 뒤에 있

다. 자동차와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자동차는 그

는 영혼 혹은 장인정신과 그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죠.” 디자이너의 일부다. 칼슨은 “바로 그 명품의 에센스를 매장 설계에 담 파리 중심가 조르주 상트(George V) 거리 38번지. 세

아내려 했다”며 “BMW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볼

청중= 명품이 좋긴 한데 결국 가격이 문제 아닌가.

명품의 민주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계적인 럭셔리 플래그십 스토어가 모두 모여 있는 이

텍스(뮌헨에 있는 회오리바람처럼 생긴 뒤틀린 건물)

아비브= 모든 것은 과정이다. 처음엔 가격이 너무 높

곳에 명차 브랜드 BMW가 얼마 전 첫 번째 브랜드 스

에서 영감을 받아 자동차에 시선이 집중하도록 매장

았지만 그 효용을 인정받아 사람들이 투자를 해서 이

토어를 개장했다. 800㎡(약 243평)에 달하는 쾌적한

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젠 널리 쓰이는 상품이 많다.

공간이다. 거대한 통유리로 만든 쇼 윈도에는 두 대의

아비브= BMW를 BMW이게 하는 특성 중 하나는

칼슨= 명품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 다르다고 본다.

신형 BMW가 마주보고 있다. 천장과 벽면에 경사지

혁신이다. 혁신은 고급스러움과 희귀성을 낳는다. 또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 근사한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

게 붙여놓은 네온 보드의 형광색이 바뀔 때마다 명차

다른 특성은 비율의 미학이다. 엔지니어들은 차체의

는다면 그 경험은 나만의 럭셔리가 된다. 그리고 그 경

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구성에 매우 공을 들인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도록

험을 아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명품의

만드는 것은 사실 굉장히 품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이

민주화는 벌써 일어나고 있다. 파리 글 정형모 기자

파리 모터쇼 개막 전날인 9월 26일 저녁, 이곳에서

SUNDAY MAGAZINE 13

ART

이진숙의 아트북 깊이 읽기 <40> 영화 ‘피에타’의 수상 비밀

문제는 냉장고야!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이자 타락과 죄악의

포함돼 있습니다.

장소 그 자체다. 이곳 문제는 냉장고다. 김

은 더 이상 대한민국

기덕의 영화 ‘피에타’

서울의 단순한 청계

를 보면 중반쯤 흰색

천 뒷골목이 아니라

대형 냉장고가 바닥

‘죄와 구원’이라는 오

에 누워 있는 장면이

래된 화두를 풀어나

나온다. 이것을 해독

가는 보편적인 장소 가 된다.

해야 영화가 제대로 영화 ‘피에타’

보인다. 이 대목에서

현대판 석관에 아

엽기적인 설정에 치를

들의 시신을 둔 여자,

떠는 사람과 찬사의

조민수의 의상과 헤

박수를 치는 사람으로 나뉜다.

유의 재해석이 돋보인다.

어스타일은 모두 성모 스타일이다. 그녀는 눅눅한 초 록색 머플러를 느슨하게 걸쳤고, 빨간 치마를 입고 있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에

다시 말하건대 문제는 냉장고다. 누워 있는 흰색 대

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여전

형 냉장고는 바로 21세기형 시체보관함이다. 누워 있

다. 빨간 싸구려 나일론 치마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도

히 잔혹하고, 불편하다는 말이 많다. 맞는 말이다. 그

는 성인 남자 크기의 하얀 직육면체. 그것은 바로 서

입지 않는 옷이다. 붉은색과 푸른색(경우에 따라서는

런데 바로 그 이유가 상을 받은 이유라면? 우리에게

양미술사에서 죽은 예수를 매장하는 그림에 자주 등 영화에서처럼 초록색)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하늘

는 단점인 그 모든 것이 외국 사람들에게는 장점이

장하는 석관(sarcophagus)이다. 1559년 티치아노

라면?

로 승천한 성모의 전통 복장 색이다. 붉은색은 피를

의 ‘그리스도의 매장’에도 이런 석관이 묘사돼 있다. 가진 인간을 의미하며 푸른색은 신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조민수는 죽은 아들의 시체를 이

영화 중간에 조민수의 옷은 흰색으로 바뀐다. 성경

우리에겐 안 보이고, 그들에겐 분명한 코드들

곳에 보관한다. 석관을 21세기 차원으로, 종교적 신

에서 예수는 자신이 신(神)이라는 것을 빛으로 변해

영화 곳곳에 우리에게는 잘 안 보이고 그들에게는 분

화를 냉장고라는 일상적인 삶의 차원으로 전치시킨

증명한다. 라파엘이 그린 ‘그리스도의 변용’(1520)에

명히 보이는 어떤 코드들이 배치돼 있다. 미켈란젤로

것은 김기덕의 놀라운 감각이다.

서처럼 서양미술사에서 흰색은 빛의 색이다. 30년 만

의 ‘피에타’에서 따온 포스터뿐 아니라 김기덕은 서

영화의 공간도 예사롭지 않다. 청계천의 작은 철공

에 어머니를 인지한 이강도(이정진 분)의 눈에 그녀

양미술의 전통적인 도상을 아주 명민하게 이해하고

소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비좁고 숨막히는 공간. 녹

는 사랑의 신이었다.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성모

영화 곳곳에 교묘하게 배치해 놓았다.

슬어 가는 금속 공구들의 어둡고 차가운 색조. 언제

의 두건 대신 앞머리로 얼굴을 신비스럽게 가린 헤어

젊은 시절 영화를 하기 전 프랑스에서 거리 화가로

부터 쌓이기 시작했을지 모르는 갖가지 물건이 뿜어

스타일도 성모스타일의 변형이다. 그러나 구원의 여

살던 그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공개한 그림 중

내는 퀴퀴한 냄새들. 배트맨 시리즈에서 유명 감독들

성 성모는 영화에서는 복수의 여성이 되었다. 찬양

에는 성경의 요한 계시록을 그린 그림이 있다. 죄와 구

이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고담시(성경의 타락한 도

받는 여성의 덕성인 모성은 잔혹한 복수의 도구로 변

원이라는 서양 문화의 오래된 질문에 대한 김기덕 특

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온 이름)의 어두운 뒷골목

질된다.

14 SUNDAY MAGAZINE

ART

좋은 영화, 그러나 준비

민수의 죽음으로 복수는

안 된 관객은 불편한

완성된다. 사랑하는 사

김기덕이 바라보는 세상

람을 상실함으로써 삶은

은 끔찍하다. 그의 표현

지옥으로 바뀌고 구원은

대로 ‘천민자본주의 사

요원해진다.

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조민수가 자신의 친아들

여자도, 남자도 몸을 팔

을 위해 뜬 스웨터를 입

아야 한다. 여자들은 성

고 이강도는 죽음을 택

을 팔고 남자들은 이 영

한다. 그 스웨터에도 색

화에서처럼 살기 위해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지를 절단당한다. 이런

앞서 말했듯 흰색은 신의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

색이고 분홍색은 인간의

에서 구원은 가능할까?

살색이다. 그 옷을 입고

김기덕은 특유의 날것의

강도는 시신을 묻은 곳

감각으로 죄와 구원이라

에 심은 나무에 물을 준

는 오래된 문제, 유럽 문

시모네 마르티니 ‘그리스도의 매장’(1340)

다. 서양 중세미술에 등

화의 전통에 깊숙이 칼끝

장하는 ‘생명의 나무’라

을들이민다.

는 테마의 현대적 번역이 다. 이는 죄와 구원, 인간

주인공을 향해 쏟아지

과 신이라는 테마를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는 “불에 타 죽을 것이다”라는 저주를 들으면서 혹자

택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

는 노동자들의 분신투쟁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서양

강도에 대해 육체적으로 복수하지 않았다. 고통의 진

이강도의 마지막 선택은 악의 화신 자체였던 자신

사람들은 묵시록의 예언을 떠올릴 것이다. 구약에 묘

정한 근원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사

의 자발적 소멸이다. 차가운 새벽 그는 붉은 피를 길

사된 신은 곧잘 분노하고 인간을 벌한다. 그러나 신약

랑은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이다. 연민과 공감의 능

게 길게 흘리면서 길에서 죽어간다. 김기덕 특유의 잔

의 예수는 신의 새로운 이름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력이 없던 잔혹한 이강도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고통

혹함의 미학이 인상 깊게 각인되는 대목이다. 미술을

사랑이었다. 죄에 빠진 세상에서 사랑은 자기희생과

의 진원지를 심어놓음으로써 그녀의 복수는 시작된

포함한 서구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이 잔혹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실천된다. 기독교를 문화

다. 그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

한 아름다움에 전율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게 황금사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극의 진행 과정은 낯설지

름다운 것, 잃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자상이 그의 손에 쥐어진 이유고, 이런 맥락을 모르고

않은 것이다.

무엇인가가 생겼다. 생모가 아니라 자신에게 복수하

영화를 보면 그저 불편함과 잔혹함만 남는 이유다. 재

참혹한 죄악의 세상. 복수는 있었으나 부활(구원)

기 위해 찾아온 여자라는 것을 결국 알게 돼 그 사실

능 있는 감독의 좋은 영화, 준비 안 된 관객의 불편한 영

은 없었다. 복수를 시도한 조민수는 스스로 죽음을

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그 사랑은 그에게 컸다. 조

화. 이것이 영화 ‘피에타’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이다.

SUNDAY MAGAZINE15

INTERVIEW

16 SUNDAY MAGAZINE

INTERVIEW

내달 내한공연 하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김기민

지그프리드 왕자처럼 <‘백조의 호수’ 주인공>

성년 되는 나이라 더 잘 할 것 같아요

청년은 거침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고전발레의 본거지인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에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한 김기민(20). 입단 2개월 만에 견습생 신분으 로 주역에 발탁돼 지난 1월과 2월 각각 선보인 ‘해적’과 ‘돈키호테’ 두 작품에서 모두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이후 러시아 페름 아라베스크 국제발레콩쿠르와 유 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연이어 우승해 병역을 면제받고 마린스키의 정단원 자 격을 얻었다. 오는 11월 12~13일 내한하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 에서는 지그프리드 왕자 역으로 고국 무대를 밟는다. 러시아로 혈혈단신 떠난 지 1 년 만에 세계 최고 발레단의 당당한 주역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첫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 두 달 만에 주역 발탁 무대 위의 김기민은 어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해 6월 마 린스키의 예술감독인 세계적인 안무가 유리 파디예프 앞에서 오디션을 볼 때도, 꿈에 그리던 마린스키 무대에 주역으로 서면서도 긴장하지 않았다. 원래 성격은 오히려소심한편.거듭된훈련을통해길러진자신감이무대위에서발휘될뿐이다. “어릴 때부터 작은 무대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무대는 마린스키 극 장이다. 링컨센터 극장이다’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죠. 그랬더니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떨림이 있었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 보니 어떤 무대나 비슷한 긴장감으로 소화할 수 있게 됐어요.” 마린스키는 발레의 역사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해 프랑스에서 꽃피운 낭만발레 가 혁명과 함께 시들면서 18세기 발레의 중심은 러시아로 옮겨왔다. 차이콥스키 의 3대 걸작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이 모두 마린스 키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에 의해 완성됐다. 순수의 극치 백조와 관능의 극치 흑조를 한 명의 발레리나가 소화하도록 함으로써 ‘백조의 호수’를 클래식 발레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도 1895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한 프티파의 안무 였다. 기민에겐 오직 마린스키가 목표였다. 어린 시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이래 당시의 감동을 그대로 풀어낼 수 있는 무용수가 되기 위해 전진해 왔다.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남성 발레잡지를 우연히 접한 어머니가 학예회에서 태권무를 멋지게 추던 아들을 발레학원에 데려갔다. 형 기 완(23·국립발레단)과 함께 취미로 해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형제에겐 취미를 넘어섰다. 발레 타이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정도로 발레에 푹 빠져 지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몹시 반대했지만 형제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엄마 말을 정말 안 듣는 아이였는데, 가장 무서워한 게 ‘너 발레학원 안 보낸다’ 는 소리였어요. 그러면 모든 걸 다 했죠. 안 하던 공부도 하고 밀린 일기도 다 쓰고… 아버지도 이해를 못하셨죠. 놀지 말라는 게 아니고 학원을 가지 말라는데 애들이 울고불고 난리니까….” 형은 선의의 경쟁자 그 이상이다. 어릴 때부터 서로의 장단점을 터놓고 비교 분 석하면서 시너지효과를 만들어 왔다. 스승조차 지적할 수 없는 부분까지 형제가 나눌 수 있었기에 서로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보다 형이 더 잘한다고 생각해요. 아니, 각기 장단점이 있죠. 제가 갖지 못한 걸 형이 가졌고, 형이 못 가진 걸 제가 가졌기 때문에 경쟁자 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가족이니까 사심 없이 지적해 주면서 서로 발전할 수 있 었던 것 같아요.”

SUNDAY MAGAZINE 17

INTERVIEW

‘해적 ’ 공연중에서 ©마린스키 발레단

‘돈키호테’ 공연중에서 ©최시내

‘돈키호테’ 공연중에서 ©최시내

‘해적 ’ 공연중에서 ©마린스키 발레단

18 SUNDAY MAGAZINE

INTERVIEW

마린스키에는 200여 명의 무용수가 활약하고 있지만 순혈주의를 중시해 외국 인 단원은 3명뿐이다. 이곳에서 그는 매 순간 새롭게 세계 최고 발레단의 무게를 실감한다고 했다. “한국 발레가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한 것은 대단한 일이죠. 하지 만 250년의 역사를 가진 러시아 발레와의 차이를 현장에서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요. 요즘은 바르시니코프, 누레예프, 니진스키, 마카로바 등 수많은 스타가 거쳐간 역사 따라잡기에 푹 빠져 있죠. 러시아에 와서 가장 크게 배우고 있는 것은 그들의 순수한 예술혼이에요. 바가노바(마린스키 부설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한 무용수 들을 보면 정말 그 시스템의 위력을 느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예전 안무가들의 철학부터 시작해 발레는 물론 교양과목도 다양하게 배우니 예술적 완성도가 다 르죠. 그동안 수많은 스타를 길러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렇게 다방면으로 뛰어난 교육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의 발레 교육에도 꼭 필요한 부분인 것 같 고요.” 이국땅에서의 홀로서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게다가 계속되는 승승장구 에 영화 ‘블랙스완’에서처럼 시샘도 받지 않았을까. “없진 않았겠지만 러시아에서는 순수하게 실력을 인정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 요.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첫 공연이 운 좋게 성공한 덕분에 저까지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편하게 장난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고요. 러시아어가 너무 생소해 힘들 었지만 조금씩 극복 중입니다.” 콩쿠르만 나가면 우승이니 경쟁자가 없느냐는 물음에 예술에 순위를 매길 수 없다고 답한다. 콩쿠르 우승이 누군가를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열심히 연습해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도 해보고 세계 발레를 구경도 하면서 그 런 자리에서 인정받고, 그런 인정을 통해 마린스키에 올 수 있는 계기도 됐으니까 마린스키 발레단

그런 종합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지, 발레는 누가 누구보다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요. 스포츠는 착지 때 어떻게 하면 감점이고 하는 계량적 요소들이 있지만 예술은

마린스키 극장 소속의 발레단.

그게 아니니까요. 점프하다가 실수한 사람이 관객들에게 더 감동을 줄 때도 있어

1738년 러시아 최초의 무용학교인

요. 그건 테크닉만이 아니라 표현력이나 느낌이거든요. 그게 바로 예술이라 생각

황실 연극학교(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가 문을 열었고, 여기서 훈련시킨

해요.”

어린 댄서들로 구성한 러시아 최초의 발레단 ‘황실 러시아 발레단’이 전신이다.

1860년 마린스키 극장이 개장하면서 발레 공연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됐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부는 볼셰비키 혁명가 세르게이 키로프를 기리기 위해 마린스키 발레단을 ‘키로프 발레단’으로 개칭했고, 공산통치가 종식되면서 마린스키 이름을 되찾았다.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과 영국 로열 발레단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발레단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 객석에 전하고 싶어 11월 내한공연에서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올레샤 노비코바와 파트너를 이룬다. ‘백조의 대명사’ 율리아나 로파트키나와 파트너 다닐 코르순체프도 함께 내한한 다.김기민은이같은최고의스타들사이에서빈틈을보이지않기위해애쓰고있다. “아직 몇 번 같이 연습해 본 정도이지 얘기도 별로 못 나눠 봤어요. 가까이에서 보니 ‘저렇게 하니까 최고가 되는구나’란 걸 더 절감하게 되죠. 올레샤도 이번에 처음 파트너가 됐으니 아직 어색해요. 새침하게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데, 또 모르죠. 저한테관심이있어그러는지도.하하,저만의착각입니다.유부녀거든요.”

17세 때 최연소 주역으로 국립발레단에 발탁돼 프로 무대에 데뷔했던 작품도 ‘백조의 호수’였다. 당시엔 볼쇼이 버전이었고, 마린스키 버전의 무대는 처음인 만 큼 각오도 새롭다. “마침 제가 지그프리드 왕자처럼 성년이 되는 나이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원조의 맛, 마치 백조의 호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객석에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러시아에서 스태프의 실력보 다 더 감동받은 게 관객들인데요. 박수와 함성소리가 정말 대단하거든요. 무용수 를 정말 좋아하고 인정해 주는 느낌이었죠. 물론 잘하는 만큼 대우를 받는 것이지 만, 대중발레란 이런 거구나 느꼈습니다. 우리 관객들에게도 그런 발레의 매력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발레리노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조용철 기자, 크레디아 SUNDAY MAGAZINE 19

INTERVIEW

마린스키에는 200여 명의 무용수가 활약하고 있지만 순혈주의를 중시해 외국 인 단원은 3명뿐이다. 이곳에서 그는 매 순간 새롭게 세계 최고 발레단의 무게를 실감한다고 했다. “한국 발레가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한 것은 대단한 일이죠. 하지 만 250년의 역사를 가진 러시아 발레와의 차이를 현장에서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요. 요즘은 바르시니코프, 누레예프, 니진스키, 마카로바 등 수많은 스타가 거쳐간 역사 따라잡기에 푹 빠져 있죠. 러시아에 와서 가장 크게 배우고 있는 것은 그들의 순수한 예술혼이에요. 바가노바(마린스키 부설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한 무용수 들을 보면 정말 그 시스템의 위력을 느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예전 안무가들의 철학부터 시작해 발레는 물론 교양과목도 다양하게 배우니 예술적 완성도가 다 르죠. 그동안 수많은 스타를 길러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렇게 다방면으로 뛰어난 교육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의 발레 교육에도 꼭 필요한 부분인 것 같 고요.” 이국땅에서의 홀로서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게다가 계속되는 승승장구 에 영화 ‘블랙스완’에서처럼 시샘도 받지 않았을까. “없진 않았겠지만 러시아에서는 순수하게 실력을 인정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 요.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첫 공연이 운 좋게 성공한 덕분에 저까지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편하게 장난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고요. 러시아어가 너무 생소해 힘들 었지만 조금씩 극복 중입니다.” 콩쿠르만 나가면 우승이니 경쟁자가 없느냐는 물음에 예술에 순위를 매길 수 없다고 답한다. 콩쿠르 우승이 누군가를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열심히 연습해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도 해보고 세계 발레를 구경도 하면서 그 런 자리에서 인정받고, 그런 인정을 통해 마린스키에 올 수 있는 계기도 됐으니까 마린스키 발레단

그런 종합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지, 발레는 누가 누구보다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요. 스포츠는 착지 때 어떻게 하면 감점이고 하는 계량적 요소들이 있지만 예술은

마린스키 극장 소속의 발레단.

그게 아니니까요. 점프하다가 실수한 사람이 관객들에게 더 감동을 줄 때도 있어

1738년 러시아 최초의 무용학교인

요. 그건 테크닉만이 아니라 표현력이나 느낌이거든요. 그게 바로 예술이라 생각

황실 연극학교(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가 문을 열었고, 여기서 훈련시킨

해요.”

어린 댄서들로 구성한 러시아 최초의 발레단 ‘황실 러시아 발레단’이 전신이다.

1860년 마린스키 극장이 개장하면서 발레 공연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됐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부는 볼셰비키 혁명가 세르게이 키로프를 기리기 위해 마린스키 발레단을 ‘키로프 발레단’으로 개칭했고, 공산통치가 종식되면서 마린스키 이름을 되찾았다.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과 영국 로열 발레단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발레단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 객석에 전하고 싶어 11월 내한공연에서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올레샤 노비코바와 파트너를 이룬다. ‘백조의 대명사’ 율리아나 로파트키나와 파트너 다닐 코르순체프도 함께 내한한 다.김기민은이같은최고의스타들사이에서빈틈을보이지않기위해애쓰고있다. “아직 몇 번 같이 연습해 본 정도이지 얘기도 별로 못 나눠 봤어요. 가까이에서 보니 ‘저렇게 하니까 최고가 되는구나’란 걸 더 절감하게 되죠. 올레샤도 이번에 처음 파트너가 됐으니 아직 어색해요. 새침하게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데, 또 모르죠. 저한테관심이있어그러는지도.하하,저만의착각입니다.유부녀거든요.”

17세 때 최연소 주역으로 국립발레단에 발탁돼 프로 무대에 데뷔했던 작품도 ‘백조의 호수’였다. 당시엔 볼쇼이 버전이었고, 마린스키 버전의 무대는 처음인 만 큼 각오도 새롭다. “마침 제가 지그프리드 왕자처럼 성년이 되는 나이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원조의 맛, 마치 백조의 호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객석에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러시아에서 스태프의 실력보 다 더 감동받은 게 관객들인데요. 박수와 함성소리가 정말 대단하거든요. 무용수 를 정말 좋아하고 인정해 주는 느낌이었죠. 물론 잘하는 만큼 대우를 받는 것이지 만, 대중발레란 이런 거구나 느꼈습니다. 우리 관객들에게도 그런 발레의 매력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발레리노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조용철 기자, 크레디아 SUNDAY MAGAZINE 19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막돼먹은 영애씨의 콤플렉스 “브러더 콤플렉스가 있었죠. 의사인 오빠와 항상 비교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나일 뿐입니다. 보톡스조차 맞지 않은 내 모습 그대로 연기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국민언니, 국민누나라고 부릅니다. 나는 나, 김현숙으로 살 뿐입니다”

20 SUNDAY MAGAZINE

COLUMN

스타일#: 오락가락 ‘서울패션위크’

비즈니스냐 시민축제냐 헷갈리누나

뉴욕, 런던 지나 밀라노 찍고 파리까지. 세계

컬렉션’과 5년차 미만 신인 디자이너들이 참

4대 패션 도시에서 열리는 2013년 봄·여름

여해 온 ‘제너레이션 넥스트’ 사이에 있는

패션위크가 이번 주로 막을 내렸다. 패션위크

중간 단계다. 런던 패션위크의 ‘패션 포워드

는 뉴스가 넘치는 행사다. 연예인들이 한껏

(Fashion Forward)’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멋을 낸 모습, 컬렉션의 컨셉트에 맞춰 꾸며

글로벌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비즈니스 중

진 무대,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리듬감 있게

심 바잉 쇼’라는 긴 설명이 이어졌다.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까지 모든 것이 볼

하지 만 냉정하게 생각

결과? 괜찮았다. 실적은 목표를 달성했다. 해 보자. 패션위크 예산과 인력, 예나 지

거리, 얘깃거리가 된다. 자연 전 세계 기자와 ‘패션쇼가 아닌 수주 쇼’라는 일부의 비아냥

금이나 빠듯하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이

을 들을 정도였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바이어

답일 터다. 차라리 디자이너가 좀 더 멋진 장

들은 60개 가까운 쇼 중에서 아예 ‘테이크오

소에서 색다른 무대를 꾸밀 수 있도록, 그래

시를 모두 주목하는 이유는 도시마다 ‘색깔’ 프’ 부문만 집중 공략하기도 했다. “독창적이

서 옷이 더 주목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바이어들이 몰려다닌다. 하지만 미디어와 업계가 이들 4대 패션 도

패션위크의 본래 목적에 더 맞지 않을까.

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뉴욕은 당장에라도 거

지만 실용성을 적절히 갖췄다”거나 “상업적

리에 입고 나갈 수 있는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이면서도 실험적인 양면이 적절히 섞여 있다”

브랜드를, 영국은 다소 실험적인 신진들을 팍

는 그들의 호평은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섞을

의 폐지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컬렉션

팍 밀어주는 게 역력하다. 또 밀라노는 ‘명품’ 줄 아는 ‘중고 신참’들의 장점을 제대로 꿰뚫

디자이너 선정 심사 기준을 종전보다 낮췄기

이라는 말로 치환되는 장인정신의 이미지를, 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이승희·김선호·최지형 파리는 가장 정교하면서도 예술적인 디자이 너의 감성을 과시한다. 지난해 4월 서울 패션위크 개최 당시 주최

등 디자이너가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서울 패션위크의 ‘색

무엇보다 더 아쉬운 건 ‘테이크오프’ 부문

때문에 ‘테이크오프’ 프로그램은 더 운영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 ‘테 이크오프’를 신설한 건 서울 패션위크만의

깔’은 1년 반 만에 또 달라지는 분위기다. 이 ‘특화상품’을 만들자는 것이었지 심사 기준을

측인 서울시로부터 향후 서울 패션위크의 컨

달 22일부터 열리는 추계 서울 패션위크를 앞

뚫지 못한 이들의 구제 차원은 아니었지 않

셉트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두고 서울시는 ‘시민 누구나 즐기는 패션축

나. 그러니 “세 부문으로 나눠 진행하기엔 장

것은 반가웠다. 일단 해외 수주와 홍보를 목

제’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일반인에게 패

소 확보가 어려웠다”는 추가 설명을 듣기 전

적으로 하는 컬렉션 본연의 취지를 살리겠다

션쇼 입장권을 파는 ‘이례적 컬렉션’인 것도

까진 의문만 쌓이기 십상이다.

는 목표가 확실했다. 디자이너들의 ‘작품 발

모자라 21일엔 서울시청 광장에서 전야제를

끝으로 사족 하나. 이번부터는 행사장도

표회’ 수준을 넘어 ‘비즈니스의 장’을 만드

열기로 했다. 디자이너들의 합동패션쇼 외에

용산 전쟁기념관과 서교동 자이갤러리로 옮

는 데 주력하겠다는 얘기였다.

공연도 펼친다. 한편 ‘나도 디자이너’라는 제

긴다. 그간 해왔던 대치동 SETEC과 방이동

또 런던처럼 참신한 ‘크리에이터’를 키우

목으로 시민들의 의상 제작을 지원하는 이벤

올림픽공원이 ‘너무 멀어서’라는 이유다. 하

는 컬렉션으로 방향을 잡겠다고도 했다. 그

트도 진행 중이다. ‘서울 스타일’을 주제로 한

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뜨는 이 마당에, 그

러면서 ‘패션 테이크오프(take-off·이륙)’ UCC 공모 당선자에겐 패션쇼 초대권도 준

래서 일부러 관광객들도 강남 거리 구경에

부문의 신설을 내세웠다. ‘패션 테이크오프’ 다. 이 모든 것이 시민들 입장에선 반가울 일

나선다는 이 와중에 말이다.

는 10년차 이상 디자이너들의 무대인 ‘서울

이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SUNDAY MAGAZINE 21

HOUSE

1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10> 한옥 살리기

조화로운 공간 구성 실용적인 온돌·마루 창덕궁 연경당이 답

한옥은 우리가 살던 집이다. 그런데 잊히면서

연경당에 담긴 한옥 건축 핵심 콘텐트

낡게 되고 헐려서 사라져 버렸다. 대표적인

1405년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한 창

도시 한옥마을인 서울 가회동의 낮시간은 관

덕궁은 조선시대에서 가장 오랜 기간 정궁으

광객들이 차지했고, 밤에는 불 꺼진 골목이

로 사용됐다. 베이징의 자금성이나 경복궁처

된다. 새로운 부동산 신화를 이루어낸 북촌

럼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자연 지형과

마을은 높아진 가격만큼 차곡차곡 박제화

토착적 풍수지리에 따라 조화를 이루고 있

되고 있다. 인사동길, 삼청동 갤러리길을 타

어 가장 한국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왕

고 확산하는 상업화는 일상적 주거 기능을

가 생활에 편리함이 우선됐고 지형마다 친근

위협한다. 지원금에 의존하는 지방도 사정은

감을 주는 구성으로 건축적 성취도 뛰어나다.

마찬가지다. 민속촌 같은 박제화된 관광자원이나 출퇴 근하는 사업용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속 가

창경궁과 같이 동궐로 불렸으며 남쪽의 국가 사당인 종묘와 북쪽의 왕실 정원인 후원이 붙 어 있어 최대의 궁궐 규모를 이루고 있다.

능한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주택으로서,

이 후원에는 순조 28년(1828) 효명세자가

이웃이 있고 도시적 생활이 가능한 주거단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

로서 현대화가 이루어져야 한옥은 비로소 길

기 위해 창건한 연경당이 있다. 왕실에서 일

을 찾을 것이다.

반 사대부들의 일상생활을 경험해 보고자 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옥의 독창성을 올 바로 해석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근대화 이전

었기 때문에 가장 규범적인 건축 형식을 따 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까지 흔들림 없이 계승된 한옥 건축의 핵심 콘

한옥의 공간 구성은 같은 목구조에 기와

텐트는 무엇일까. 창덕궁 연경당이 그 답이다.

지붕 형식인 중국이나 일본과 큰 차이를 보인 다. 기본적인 모듈인 한 칸은 수평적이면서 보편적이다. 모든 채마다 홑집의 형태라서 중 국이나 일본 건축에서 보이는 공간적 위계나 종속적 영역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당을 두고 펼쳐지는 집의 모습은 조금씩 다른 변

22 SUNDAY MAGAZINE

HOUSE

사랑채 마당. 마당은 비어 보이나 매우 중요한 기능적 공간이다. 계절 시간 행사에 따라 다양하게 가변적으로 잘 쓰여야 하기 때문에 ‘채우기 위해 비워져 있음’의 동태적이고 생산적인 공간인 것이다. 랑채의 팔작지붕.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든 작은 문.

화를 이루면서 조화롭다. 연경당의 120여

안채와 사랑채가 한눈에 보인다. 마루와 방이 번갈아가며 자리하고 있다. 사진

하는 마당이 공간, 즉 허(虛)가 된다. 마치 동

간의 쓰임새까지 다양한 의미가 담겼다. 예

칸 역시 균질하게 펼쳐져 안정적인 느낌을

전의 앞·뒷면처럼 실내와 실외 공간의 대응,

를 들면 안채와 사랑채의 지붕은 연경당에

준다.

즉 홑집으로서 온돌방과 마당의 1:1 결합이

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양 끝단 누마루

방 안에 앉아 있어 보면 몸의 기가 살아나

한옥 공간 구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마당

(바닥이 가장 높은 마루방)의 팔작지붕에서

는 느낌이 든다. 자기를 둘러싼 위(天)·아래

은 비어 보이나 매우 중요한 기능적 공간이

시작해 서로의 높이를 맞물리면서 뒤편 안

(地)의 공간과 앞·뒤의 마당, 경계 없이 이어

다. 계절·시간·행사에 따라 다양하게 쓰여야

채와 연결된 사랑방의 지붕까지 팔작으로

지는 마루 등 천지자연의 비어 있는 공간들

하기 때문에 ‘채우기 위해 비워져 있는’ 동

마무리했다. 하늘의 기운으로 후손을 점지

과 바로 맞닿아 있다. 암자나 선방의 형국이

태적이고 생산적인 곳이다.

하고 싶은 의도를 다양한 조형미로 승화한

어서 한 개인이 온전히 사유하는 전인적(全 人的) 공간 구성이 된다.

방과 마당을 이어주는 마루 역시 빼어난

솜씨에서 선조들의 격조가 느껴진다.

공간체계다. 사계절에 걸쳐 마당과 더불어

이러한 홑집에서 방의 독자성은 자연과의

가장 가득 차는 공간이다. 실내와 실외를 맺

한옥, 미래 주거양식으로 재해석해야

동화에는 유리하지만 자연으로부터의 보호

어주는 사이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적극

유럽의 르네상스는 중세 암흑시대 천년을

(shelter)라는 점에선 취약하다. 이를 온전

적 공간 구성으로서 독립적 지위를 갖는다.

뛰어넘어 그리스·로마 시대로부터 오래된

히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온돌은 필수적이다.

마치 중용의 도에 나오는 시중(時中·때에 맞

미래를 끌어내 새로운 인류 문명을 탄생시

부뚜막(土) 속에 나무(木)를 넣고 불(火)

춰 양극단을 포섭해 운행하는)의 공간으로

켰다. 그리스신전과 로마의 건축술에 기초

을 지펴서 무쇠 솥(金)에 물(水)을 붓고 밥

서 한옥 공간 구성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사

한 건축 형식의 재해석은 당대의 경제력과

(五穀)을 짓는다. 이렇게 부엌에서 오행으로

회적 활동과 생산 활동의 장소이기도 하다.

인문학, 과학의 발전과 결합돼 서구의 건축

만들어진 화기는 구들을 돌고 돌아 방안을

한옥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지붕이다.

양식으로 계승됐다. 더 역사가 오랜 한옥을

데우고 벽을 타고 오르며 목재인 기둥과 창

지붕은 예부터 하늘을 상징하기에 과다할

현대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지

호를 팽창시켜 외기를 차단하고 지붕까지 촉

정도의 재료와 장식 및 공력을 사용했다. 연

속 가능한 미래의 주거양식으로 구현할 것

열채로 사용해 난방효과를 극대화한다. 취

경당 120칸 기와지붕도 일견 동일한 모습이

인가. 오로지 우리의 노력과 창조적 역량에

사용 에너지와 난방용 에너지를 동시에 해

반복된 것 같지만 하나하나의 변화에는 세

달려 있다.

결하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고 탁월한 시스

심한 의도가 들어 있다. 개별적 한 칸의 평등

템이다.

하고 독자적인 공간체계와는 달리 그 위를

이러한 온돌방이 실(實)이라면 이에 대응

안채에서 보는 사

도면 창덕궁 브로슈어

덮는 지붕의 구성은 신분이나 성별 또는 공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SUNDAY MAGAZINE 23

REVIEW & PREVIEW

연극 ‘거기’, 11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바로 거기서 만난 동네 노총각 넷과 묘령의 서울 여인

단 차이무의 작품이다. 2006년 공연 이래 6

인 존재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터놓게 한 것

년 만에 관객을 맞고 있다.

은 난데없는 귀신 이야기. 아무 공통 화제도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 작가 코너 맥퍼슨

없는 가운데 누구나 흥미를 느낄 만한 소재

을 단숨에 스타 작가로 부상시킨 원작 ‘The

이기 때문일까, 남자들은 저마다 겪거나 들

Weir(방죽)’는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희

었던 으스스한 괴담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곡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휩쓴 최고의 희

때아닌 귀신타령은 무대 위에서 전혀 예

곡이다. 아일랜드의 한 시골마을이 배경인

상치 못한 힘을 발휘한다. 조명이 조금씩 바

이야기를 이상우 연출이 강원도 사투리의 힘

뀌는 것 외에 아무런 시청각적 공포 분위기

을 빌려 한국식으로 따뜻하게 재해석했다.

조성 없이 온전히 언어로만 전달되는 귀신

번안극임에도 조금의 어색함도 느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마치 할머니의 옛이야기처럼 객

완벽한 각색으로 2002년 초연 당시 ‘올해의

석의 엄청난 몰입을 이끈다. 쉽게 마음을 열

베스트연극3’ ‘우수공연 베스트7’에 선정됐

지 못하던 서울 여인은 관객의 대변자다. 연

었다.

극 무대를 앞에 둔 관객은 통상 무심한 구경

나이 오십에 속 쓰린 연애의 기억을 곱씹 으며 사는 정비소 주인 장우, ‘얼마 못 사실

그러나 오래 전 추억으로 시간여행을 떠

것 같은’ 노모를 홀로 모시고 있는 설비전문

난 주인공들의 실감나는 귀신 이야기는 관

진수, 몸은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의 토지로

객을 더 이상 방관자일 수 없게 만든다. 객석

부동산 개발 중인 호텔 사장 춘발, 해변에서

은 숨죽인 채 무대에 빠져들고, 어느새 내가

을.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없는 작은 선술집. 한철 장사로 생활하는 술집 주인 병도. 어디

듣거나 겪었던 일들도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

시즌이 지나 호젓한 강원도 해변가의 한 마 어스름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하나 둘 모

서나 쉽게 부딪칠 법한 평범한 네 남자의 술

된다. 혼자 와인을 찾던 여인이 결국 노총각

여드는 동네 노총각들. 평범한 그들의 일상처

자리에 끼어든 묘령의 서울 여인은 어딘지 비

들과 독주를 나누게 되는 것처럼.

럼 특별한 일이라곤 일어나지 않기에 더욱 더

밀스럽다.

우리 인생의 순간들과 닮은 무대.

24 SUNDAY MAGAZINE

꾼이기 쉽다.

여인의 실화는 잔잔한 무대에 파문을 던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를 주고받으며 여인

진다. 그녀의 귀신 체험은 다른 이들의 그것

연극 ‘거기’가 돌아왔다. 맥주 한잔씩 걸

의 관심을 끌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노총

처럼 말초적인 공포감을 자극하지 않지만

치면서 별 뜻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배우들

각들. 맥주를 들이켜는 남자들 사이에서 홀

가슴을 파고든다. 관객의 대변자인 그녀의

과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기분에 빠져드는

로 와인을 홀짝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여

체험은 사실이냐 몽상이냐를 떠나 누구나

100분간. 작품성과 재미를 두루 보증하는 극

자는 저들과 섞일 의사가 전혀 없는 이질적

납득할 만한 아픔을 근거로 하기에 공감은

REVIEW & PREVIEW

‘2012 경회루 연향(宴享)’, 10월 12~14일, 19~21일 경회루, 문의 02-3011-2154

달빛 물든 경회루, 왕의 잔치 즐겨볼까

올해는 경회루가 만들어진 지 600년(태종 12년, 1412년)이 되는 해. 이를 기념해 경회루 건립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를 경회루 야외 무대에서 전통 국악으로 풀어냈다. 지난해 처 음 시작한 ‘경회루 연향(宴享)’은 올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 때도 뜨거운 반 응을 이끌어냈다. 그 성공에 힘입어 올가을에는 공연 횟수를 두 배로 늘렸다. 조선 건국과 경복궁 창건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정도전과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 재건에 나섰던 흥선대원군 등이 무대 위에 올라 역사의 흐름 속에 살아 있는 혼을 노래한 다. 서막 공연인 오고무를 시작으로 1부 ‘경회루 건립과 사신연’에서는 궁중 성악인 ‘정 가(正歌)’, 궁중 무용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등이 진행된다. 이어 2부 ‘경복궁 재건과 낙성연’에서는 처용무·판소리·강강술래 등을 선보인다. 경회지에 떠 있는 작은 섬(만세 산)에서 생황과 단소가 빚어내는 ‘수룡음(水龍吟)’은 공연의 백미다. 관람권 3만원.

배가된다. 아픔을 털어놓은 뒤에야 비로소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문화재청

자연스러운 미소를 찾는 그녀에게 동화된 관 객 또한 ‘거기’의 무대를 오가는 무언가가 문 득 그리워진다. 맥주 한잔과 구수한 사투리 는 그리움을 자아내는 장치가 된다.

‘끽다락: 차와 하나 되는 즐거움’, 10월 11~31일 서울 안국동 아름지기 한옥, 문의 02-733-8374

보고 마시고 만드는 우리 차의 모든 것

생뚱맞은 귀신타령 또한 트릭일 뿐. ‘거기’ 에 마음을 털어놓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그 건 온전히 ‘대화의 힘’이다. 우리가 24시간 끼 고 사는 스마트폰 화면 한 번 들여다보지 않 고, 휴대전화 벨소리 한번 끼어들지 않는 아 주 ‘인간적인’ 대화가 오가는 곳이 바로 ‘거 기’다. 왜 하필 ‘거기’일까? 막연히 ‘거기’라 고만 해도 친구라면 다 아는 추억의 장소처럼, 예전엔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무엇. 그것은 공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거기서 주고받던 서로의 마음일 수도 있다.

전통 장인과 현대적 작가의 협업을 통해 전통 문화의 현대적 계승을 구현하는 ‘아름지

‘거기’를 오가는 대화에는 별것도 없다. 그

기 기획전’. 매년 열리는 행사의 올 테마는 ‘차(茶)’다. 2006년 ‘우리 그릇과 상차림’전,

저 눈빛을 교차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주거

2009년 ‘행복한 새참, 도시락’전을 잇는 세 번째 식생활 주제다. 김경은·김종환·송승용

니 받거니 맞장구치는 인간 대 인간의 사소한

등 5명의 디자이너와 강웅기·고보형·고희숙 등 30명의 도예가가 참여했다.

교류 자체가 마음을 털어놓게 하고 벽을 허물

이번 전시는 선조들이 즐겼던 차를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우리 차와 다

게 하는 치유의 약물이 될 뿐. 누군가와 그런

과 등을 제안한다. 또한 눈으로 보기만 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

온전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제였던가, 연

는 연계 행사를 다양하게 마련한다. 가족이 함께 다과를 만들어 보는 쿠킹클래스, 이상재

극은 돌아보게 만든다. 2012년 ‘힐링’이 절실

한의학 교수에게 듣는 ‘우리 차 이야기’ 강좌, 직접 차를 마시고 다과를 음미해 보는 티타

한 요즘 사람들에게 ‘거기’가 다시 찾아온 이

임 프로그램 등을 즐길 수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차 판매행사도

유다.

열린다. ‘아름지기’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2001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아름지기

사진 이다엔터테인먼트 SUNDAY MAGAZINE 25

BOOK

『안휴의 미식 기행-바다와 섬의 만찬』

우리가 알던 해물들 새 얼굴로 다가오네

안휴라는 이름을

더 높았다. 그래서 배낭여행을 갔다가 와인

다. 갓 캐낸 정체 모를 그것은 신비롭고 또 묘

알게 된 것은 엘

강의를 듣고, 원조 테킬라를 마시기 위해 멕

한 아로마를 풍겼다. 3cm 정도 됨직한 크기

불리 때문이었다. 시코 현지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탈리아의

에, 연한 연두색의 뿌리를 가진 이 식물은 내

몇 년치 예약이 이

한 시골에서는 100년 묵은 식초를 맛보고 혼

미 잡 혀 있다고

자 짜릿해하기도 했다.

“샛노랗고 보드라운 속살, 은은하고 독특한

하는 세계 최고의

그런 그의 눈길이 이번에 머무른 곳은 우

향, 술술 넘어가는 맛에 입안에 가득 침이 고

식당. 페란 아드리

리 땅의 끝과 섬이다. 부산, 통영, 울릉도, 진

인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가 멍게철

아라는 최고의 요

도, 완도, 흑산도 등 대한민국 지도의 가장자

이다. 이 제철 멍게를 손질해 양념하고, 숙성

리사가 직접 운영하는 곳. 요리 관련 기사를

리에서 그는 잊고 지내던 먹거리의 향수를 되

시킨 후 그대로 냉동해서 1년 동안 사용한다.

쓰게 되면서 이 이름들을 알게 된 지도 얼마

찾았다.『안휴의 미식 기행-바다와 섬의 만

뜨거운 밥에 김가루 듬뿍, 참기름과 깨소금

안 된 무식한 기자에게 엘 불리 탐방기가 실

찬』(중앙m&b)은 그렇게 시작된 책이다.

을 넣어 비벼 먹는 그 맛에 반해 나는 통영으

려 있던 그의 신간『세계의 별들을 맛보다』

그가 소개하는 메뉴는 화려하다. 울릉도

로 향한다.”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술

(2009)를 읽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

바닷속에서 바로 건져올린 자연산 전복·뿔

었다.

소라·홍합·석화를 층층이 쌓아올린 해계탕, 이다. 홍주의 명인 허화자 할머니와 나눈 대 멸치튀김·멸치회·멸치밥·멸치전·멸치시래깃

화, 평범한 섬마을 민박집에서 느꼈던 노부

랑을 섭렵할 수 있었을까. 알고 보니 그는 일

국으로 이어지는 멸치 풀코스 요리, 여수의

부의 걸쭉한 막걸리 등 전통주와 관련된 구

찌감치 넓은 세상에 눈을 뜬 ‘원조 유목민’이

여름을 장식한 야들야들한 참장어 샤브샤브, 수한 이야기들은 공연히 입맛을 다시게 한다.

었다. 아니, 그 전에 어머니가 부엌을 비우면

겨울이면 미역을 먹고 자라 바다의 풍미가

그는 이 책을 내면서 “오랫동안 해외에서

요리를 시작하던 일곱 살짜리 꼬마 요리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완도의 전복 등 우리가

거주했기에 그동안 비운 시간의 공백을 채우

그는 어떻게 전 세계 미슐랭 3스타 레스토

있었다. 그는 1980년대에 미국으로 가서 10대를 보 저자: 안휴 출판사: 중앙m&b 가격: 1만5000원

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야생 와사비였다.”

알고 있는 해물들이 새로운 얼굴로 우리 앞

는 심정으로 전국의 음식과 거기에 얽힌 음

에 다가온다.

식문화로 정신적 허기를 채웠다”고 말한다. 아마 편안하게 쉰다는 이름 복 덕분 아닌가

내고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술·음식과

“어르신이 계곡 비탈길에서 대뜸 멈추더니

관련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돌아다니던 그

한 손으로 나무를 잡고 손을 뻗쳐 무언가를

하는 생각이 든다.

는 영화 제작보다 맛있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뽑아내 향을 맡아보라며 내 앞으로 던져준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정약용

정치와 소설

우리가 아는 중국은 없다

저자: 함규진 출판사: 한길사 가격: 1만8000원

저자: 폴 돌란 역자: 라종일 출판사: 룩스문디

저자: 한우덕 출판사: 청림출판 가격: 1만6000원

신간 안내

26 SUNDAY MAGAZINE

한길사의 ‘인물 고전 깊이

가격: 1만3000원

중국은 이제껏 우리에겐 축

읽기’ 11번째 시리즈. 주

이 책은 20세기 소설들에

복이었다. 1992년 수교 이

인공은 다산 정약용이다.

대한 새로운 고찰이다. 소

후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

책은 다산의 사상을 13개

설이 정치의 좋은 교과서

기는 국내 기업이 급증했고

의 키워드로 제시한다. 가

라는 전제하에서다.『 악

그 덕분에 산업고도화를 무

령 심(心)·이(理)·상(常)·도

령』 『암흑의 핵심』 『파우

리 없이 이뤄냈다. 하지만 경

(道) 등이 사회를 진찰하

스트 박사』 등의 분석을

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고 해법을 제시하려던 유학자의 면모라면, 구직

통해정치 이론에서 다뤄지는 추상적 문제가 소설

이제 위협적 존재로 달라지고 있다. 중국 특파원으로

(九職)·민망(民望) 등은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

속에선 얼마나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닿게 다뤄지

오랫동안 활동한 저자가 현재의 중국을 분석하고 대

소에 쓰도록 노력한 개혁가임을 알려준다.

는지를 알려준다.

응책을 제시해 준다.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영화

전시

클래식

공연

위험한 관계

황성규 개인전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정기연주회

뮤지컬 칵테일

감독: 허진호

기간: 10월 21일까지

일시: 10월 12일 오후 8시

기간: 10월 28일까지

배우: 장동건, 장쯔이, 장바이쯔

장소: 서울 청담동 백운갤러리

장소: 금호아트홀

장소: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문의: 02-3018-2355

문의: 02-515-5123

문의: 02-2659-7001

허진호 감독이 만든 중국 영화. 장동건의

소통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다양

존 케이지(1912~92·사진)의 탄생 100주

제주 바닷가의 신비로운 칵테일 바를 배

바람둥이 변신이 관람 포인트다. 1930년

한 형상으로 표현해 온 작가 황성규(32)

년을 기념해 그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 음

경으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새

대 중국 상하이가 무대다. 상하이 사교계

가 국내 첫 개인전을 연다. 팔과 다리를 허

악회. 케이지는 타악기 음악과 프리페어

창작뮤지컬. 칵테일 바 ‘소랑호젠’은 바가

의 여왕 ‘모지에위’(장바이쯔)는 상하이

우적거리는 구름, 나무의 얼굴을 한 남자,

드 피아노 등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

위치한 절벽에서 자살이 급증하자 철거 대

최고의 플레이보이 ‘셰이판’(장동건)에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구름 등 소

으켰다. 그의 작품 중 초기작인 ‘풍경에서’

상에 몰린다. 바텐더들은 가게를 살리기

게 자신과의 하룻밤을 걸고 어린 ‘베이베

통이 어려운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 40

와 ‘장난감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후기

위해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

이’를 탐해줄 것을 제안한다.

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인 ‘둘’ ‘다섯’ 등을 연주한다.

주고 위로의 칵테일 쇼를 펼친다.

소프라노 바버라 보니 Farewell 리사이틀

힐링 음악극 빵 기간: 10월 9일~11월 18일

하나안

‘몸의 사유’전

감독: 박 루슬란

기간: 12월 16일까지

일시: 10월 9일 오후 8시

배우: 스타니슬라브 장, 바호디르 무사에프

장소: 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장소: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문의: 02-425-1077

문의: 02-580-1300

문의: 02-2230-6600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고려

런던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몸을 매개로

모차르트ㆍ슈트라우스의 곡을 독보적으

제19회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 최우수연

인 4세 스타스는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하

한 다양한 방식의 시각적 사유를 선보이

로 구사하는 소프라노 바버라 보니의 고

출상 수상, 2000년 뉴욕에서 ‘21세기를

던 젊은 시절 친구를 폭력배에게 잃는 쓰

는 전시. 모든 매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커

별무대. ‘My Favorite Things’란 테마로,

빛낼 연극 연출가’에 선정된 임형택 연출

라린 경험을 한다. 그는 자신의 꿈이던 경

뮤니케이션 도구인 ‘몸’을 소재로 한 국내

특별히 그녀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곡들

이 내놓은 새로운 힐링 음악극. 뮤지션을

찰이 됐지만 부패한 조직에 환멸을 느끼다

작가 12인의 작품 50여 점을 통해 ‘몸’에

로 꾸몄다. 슈만ㆍ슈베르트ㆍ멘델스존ㆍ브

꿈꿨지만 빵을 굽고 있는 남자 기신이 빵

마약에 중독돼 모든 걸 잃는다. 필사의 노

대한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표현방식을

람스 등 유명 작곡가들의 가곡을 한자리

집을 찾아온 소년 꾸메와 함께 잃어버린

력으로 마약을 끊고 새 삶을 꾸리는데….

만날 수 있다.

에서 만날 수 있다.

꿈을 찾아 감각적인 시간여행을 떠난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자료=교보문고

순위 책명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김난도·오우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빅 픽처

이병률·달

더글러스 케네디·밝은세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 안철수의 생각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유홍준·창비 안철수·김영사

광해

이병헌·류승룡·한효주

테이큰2

리암 니슨·매기 그레이스

점쟁이들

김수로·강예원·이제훈

메리다와 마법의 숲 간첩 19곰 테드

켈리 맥도널드 김명민·염정아·유해진 마크 월버그·밀라 쿠니스

사람은무엇으로성장하는가 존맥스웰·비즈니스북스

테드:황금도시 파이티티를 찾아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늑대아이

1일1식

도둑들

나구모 요시노리·위즈덤하우스

치즈 인더 트랩 1-2 초회한정세트 순끼·재미주의

우리도 사랑일까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하하

(목소리) 미야자키 아오이 김윤석·김혜수·전지현 미셸 윌리엄스·세스 로건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출연 순위 음반명

음반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기념 내한공연 -

웨스트민스터 박스(59CD)-V.A Westminster

뮤지컬 시카고

인순이·최정원·아이비

로맨틱 클라리넷-칼 라이스터

뮤지컬 영웅

김수용·임현수·김도형

드보르자크 : 피아노 오중주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황정민·서범석·홍광호

프랑스 첼로 소품집

연극 옥탑방 고양이

박성훈·장지우·윤정빈

천상의 하프 : 갈라시, 보시오

연극 라이어1탄

정성일·구도균·김누리

헨델 : 건반작품집-코롤리오프

Camerata Decca Capriccio Glossa Profil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류정한·윤형렬·임혜영

SACD : 베토벤 : 교향곡집

연극 뉴보잉보잉1탄

설주미·황유진·변세영

디아벨리, 카룰리, 줄리아니 작품집

뮤지컬 헤드윅

오만석·박건형·이영미

J.S.Bach

뮤지컬 위키드오리지널 내한공연

-

베르사유 궁정음악

Glossa Ars

Channel Classics Christoporus

SUNDAY MAGAZINE 27

SOULSEARCHING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21>『달과 6펜스』와 서머싯 몸

정녕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있나요

Life isn’t long enough for love and art 연애도 하고 예술도 할 만큼 인생이 길진 않소.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몇 번씩 시도해 봤을

훌륭한 화가가 되려면 재능이 필요하고, 암시한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원시적

것이다. 훌훌 다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버리는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삶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면, 6펜스는 돈과

것 말이다. 그냥 혼자서 예전부터 꼭 하고 싶

그걸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느냐는

었던 일을 마음껏 해보는 것이다. 생각만 해

물음에 마침내 그의 열정이 폭발한다.

물질의 세계, 세속적 가치에 대한 욕망이다. 좀 어렵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을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보자. 화자의 의대 동창생 아브라함과 카마이

그런데 이미 나이가 마흔 줄에 접어들었고,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

클의 이야기다. 의대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두 아이는 다 크려면 아직 멀었고, 아내는 직

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준 아브라함은 명예와 부가 보장된 대학병원

업 따위는 가져본 적 없는 평범한 전업주부라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에서의 직책을 맡기 전 선의(船醫)가 되어 잠

면, 선뜻 발이 떨어질까? 게다가 잘나가는 안

빠져 죽어요.”

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그가 탄 화물선이

정된 직장까지 내팽개쳐야 하고 기약 없이 가 난한 생활을 해야 한다면?

그러니 파리에 온 뒤로 연애 같은 걸 해본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순간 돌연 환희와 벅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할밖에. 찬 자유의 느낌이 그의 가슴을 뒤흔든다.

그래서 이런 일상의 굴레와 속박을 핑계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시간이 어디 있소? 연

그는 한순간 만에 나머지 인생을 그곳에서

거리 삼아 주저앉는 것이겠지만, 실은 매몰

애도 하고 예술도 할 만큼 인생이 길진 않소.”

보내기로 결심한다. 현지 보건소에서 일하고

차게 남들 시선 무시할 정도의 용기가 없기

그렇게 그는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면서

있는 그에게 후회해본 적은 없었느냐고 묻자

때문이다.『달과 6펜스(The Moon and

도 그림만 그린다. 물론 그림은 하나도 팔리지

이렇게 답한다. “아니, 단 한 번도 없었네. 먹고

Sixpence)』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

않고 인정도 받지 못한다. 딱 한 사람 그의 천

살 만큼은 버니까. 난 만족일세. 죽을 때까지

렇지 않았다. 런던의 부유한 증권 중개인이던

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지 않

그는 어느 날 아내에게 편지 한 통 남긴 채 한

준 더크 스트로브에게는 고마움조차 느끼지

겠어.”

마디 설명이나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떠난다.

않는다. 심지어 그를 사랑해 남편도 버리고

카마이클은 아브라함이 도중에 그만두

“에이미 보시오.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먹

누드 모델까지 되어준 더크의 아내는 자살로

는 바람에 운 좋게 대학병원 자리를 차지했

었소. 내일 아침 파리로 떠날 작정이오. 다시

내몬다. 물론 그는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고, 멋진 저택과 늘씬하고 예쁜 아내, 높은 연

돌아가지는 않소. 결코 번복하진 않겠소.”

않는다. 그러고는 마흔일곱 살에 타히티 섬으

봉에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아브라함, 그 가

로 가 원주민과 결혼해 나병에 걸려 죽을 때

여운 친구. 들리는 말로는 지지리도 못나고 늙

까지 자신이 원하던 대로 그림을 그린다.

은 그리스 여자하고 살면서 병치레하는 애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솔직히 대리만족 을 느꼈다. 그를 사로잡았을 짜릿한 전율과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

경이로움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틀림

『달과 6펜스』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폴

을 대여섯이나 거느리고 있다더군. 사람이 그

없이 고통스럽겠지만 보람 있는 순례길이 될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잘 알려져

렇게 인생을 망쳐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타고 온 전함을 불태워

있다. 고갱 역시 증권 중개인 출신이고, 뒤늦

아닌가.”

버린 것이다. 퇴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잘라

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타히티에서 말년을

내 버림으로써 필사적인 각오로 싸우기 위해.

보내다 죽음을 맞았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 국 정보국 요원으로도 활 동했다.『인간의 굴레』를 비롯해 삶의 복잡 미묘한 측면을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들을 남겼다.

몸은 화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묻는다. “과 연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아내의 부탁으로 그를 찾아간 화자가 묻는

그러나 서머싯 몸이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

다.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습니까?” “나는

었던 것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6펜스로 상징

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이가 사십 아닙니

되는 속물의 세계를 거부하고 달을 향해 떠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봉 일만 파

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

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

난 한 자유인의 삶이다. 달과 6펜스는 둘 다

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했던 거요.”

둥글고 은빛으로 빛나지만 상반된 두 세계를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28 SUNDAY MAGAZINE

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 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GALLERY

빛과 어둠 닫힌 실내 공간. 하지만 마냥 깜깜하지는 않다. 한 줄기 따뜻한 햇빛 덕분이다. 또 있다. 어두운 곳을 다소곳이 밝히는 가녀린 촛불. 작가 정보영(39)의 햇살은 강하지 않고 촛 불은 약하지 않다. 밝은 곳에서, 또 어두운 곳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그는 1997년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5년간 꾸준히 빛과 공간의 회화적 재현을 추 구해 왔다. 청주에 있는 한 미술관은 그의 작품 속 배경이다. 원근법과 수직, 수평선이 만나는 기하학적 구도를 연출해 사진을 찍은 뒤 깊이 있는 색감으로 캔버스에 옮긴다. 그의 작품은 홍콩 크리스티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이화익갤러리

정보영 개인전-빛, 시간의 경계 10월 10~23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 문의 02-730-7817 Opening, or closing(2012) Oil on canvas 130.3 x 162.0㎝ Lie one upon another(2012) Oil on canvas 227.3 x 181.8㎝

SUNDAY MAGAZINE 29

CONTE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에세이 신공 <神功>

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낱말들이 있을 거야. 이는 짧은 글이기 때문에 특히 첫 문장이 중요 해. 첫 문장은 용머리처럼 강렬하고 박력 있

적이기 쉬워. 새롭지 않으면 과감하게 쳐내는

고 매력적이라야 해. 용의 머리를 보면 거기에

게 좋아. 멀리 있는 것들에 눈을 돌려보렴. 전

낙타의 머리, 사슴 뿔, 토끼 눈, 소의 귀, 돼지

혀 다른 분야, 다른 형식에. 조금만 방심하면

코가 다 들어 있지. 그만큼 첫 문장에 공을 들

신변잡기에 머무르기 쉬운 게 에세이야.

이는 거야. 그렇다고 첫 문장을 쓰는 데 시간

맹인모상.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쓰는 게 좋

을 낭비하지 않도록. 일단 초고를 다 쓴 다음

아. 글을 쓸 때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가 너의

첫 문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쪽이 좋아.

눈이야. 눈을 크게 뜨고 새롭게 본다는 건 말

글의 마지막은 뱀 꼬리 같아야 해. 에세이는

“아빠,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한 아빠의 방법론

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다. 잠시 눈을 감는 것

하늘이 아니라 땅의 이야기니까. 땅으로 내려

몇 가지만 생각해 보고 말해 줄래요?” 매번

이 필요해. 예전에 TV에서 독일의 교육을 소

와 뱀의 몸으로 바닥을 밀고 가야 해. 혹시 뱀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내게 그런 방법론이

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 선생이

이 사라지는 것 본 적이 있니? 뱀 꼬리의 날렵

있을 리 만무하지만 모처럼 아들녀석이 진지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가는데, 하고 유연한 곡선. 그렇게 마무리지어야 여운

하게 부탁한 일이라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일렬로 줄을 서 앞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답을 궁리해 본다.

눈을 감은 채 걸어가게 하는 거야. 눈을 감자

절차탁마. 일단 초고는 단숨에 쓰는 게 좋

쉴 새 없이 떠들던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조

아. 그 다음에 자르고 갈고 쪼고 닦을 거니까.

아들,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해 여섯 개의 사

이 남는 거야. 짧은 글에 긴 여운이.

용해져. 왜냐하면 전혀 새로운 숲이 아이들

첫 문장도 이때 결정하면 돼. 어쩌면 작가는

아전인수. 내 논에 물을 끌어들인다는 말

에게 와락 달려들기 때문이지. 그렇게 자주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쓴 글을 고치는 사

이지. 소재는 도처에 있고, 소재에는 귀천이

다닌 숲이지만 예사로 넘겼던 새소리, 벌레소

람일지 몰라.

없어. 자신이 잘 아는 것이면 더 좋겠지만 잘

리와 나무 냄새, 흙 냄새와 뺨에 와닿는 햇살

자성어로 설명해 볼게.

들숨날숨

그것들을 경계해야 해. 가까운 것들은 상투

아들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모르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의 따뜻함 같은 숲의 아름다운 소란을 만끽

에세이를 쓰는데 방법론 같은 건 아무짝에도

어떤 소재든 내 경험의 논으로 끌어들여야

하려고 아이들은 자신의 온몸을 한껏 여는

소용이 없다는 거야. 아빠를 보렴. 그러니 여

한다는 사실이야. 삼라만상을 이야기하는

중이기 때문이지. 그 아이들이 눈을 뜬 다음

섯 번째 사자성어는 네가 생각해 보길. 건투

것 같지만 결국 에세이는 내 논에 관한 이야

바라보는 숲은 얼마나 새롭고 경이롭겠니?

를 빈다.

기거든.

에세이는 그렇게 쓰는 거야.

원교근공. 멀리는 사귀고 가까이는 공격하

용두사미. 시작은 용 머리처럼, 마무리는 뱀

라. 소재가 정해지면 그것과 관련해 자동적

꼬리처럼. 모든 글쓰기가 다 그렇겠지만 에세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99.9%의 사람들이 철저하게 길들여진 채 살고 있다” ▶“외로움이 세상 맛이고 사람살이 아니겠느

▶“우리가 찾고 있는 자유는 본래의 우리 자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은 대개 두 가

냐며 청승을 역성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

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고, 우리 자신을

지 대립적 인식이 있는 듯하다. 이 세상을 마

나 누군가와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는 방법

표현하는 자유다. 하지만 자기 삶을 가만히

감하고 저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을 까먹었기에 삶이 을씨년스러워진 건 아닐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누린다는 인식과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존재

까요? 남이 울먹일 때 손수건을 내밀지 않았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비위나

의 끝이라는 인식이다. 새로 태어난다는 인식

기에, 남 또한 내가 외로울 때 손 잡아주지 않

맞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대

은 잠시 헤어짐의 슬픔일 뿐 저세상에서 더

는 것이 아닐까요? ‘나’가 ‘남’에게 데면데면

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안

한 만큼 ‘남’들도 ‘나’에게 건성으로 대할 수

다. 이런 생활방식이 바로 자신의 자유를 가

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장례는 어느

밖에 없습니다. 나는 남들에게 남이니까요.”

로막는 걸림돌이다.”

정도 ‘축제의 장’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인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중 30 SUNDAY MAGAZINE

돈 미겔 루이스 『네 가지 약속』 중

-김준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중

PHOTO ESSAY

조용철 기자의 마음 풍경

또 다른 세상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출근길에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를 보았습니다. 서울 도심에 어찌 황조롱이가 살고 있을까? 빌딩 숲을 나는 황조롱이를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황조롱이는 사라지고 나는 빌딩 숲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빌딩에 펼쳐진 또 다른 하늘과 구름이 너무 멋져서요. 또 다른 세상, 우연히 발견하는 꿈과 희망도 있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그 꿈과 희망을 찾아 살찌울 때입니다.

-서울 서소문에서

조용철 기자의 포토에세이 ‘마음 풍경’은 세상의 모든 생명과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경이로운 삶의 의지에서 내일의 꿈을 찾습니다.

SUNDAY MAGAZINE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