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orea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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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0~11, 2012. no.274. sunday.joongang.co.kr

ISSUE

한국 패션 전도사로 변신

패트리샤 필드




CONTENTS THIS WEEKS PEOPLE

editor’s letter

06

‘나가수2’ 깜짝 1위, 인디밴드 국카스텐

ISSUE

옛 지도의 매력

08

한국 패션 전도사 된 패트리샤 필드

독도법은 고교 시절 교련시간에 처음 배웠

REVIEW & PREVIEW

습니다. 교련 선생님이 무섭고 까다로운 분

14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이셨는데, 등고선이 꼬불꼬불 그려진 지도

BOOK

위로 도북 방위각, 자북 방위각 같은 얘기

16

를 자주 하셨습니다. 따분해 하는 분위기

숨은 책 찾기 <8> 푸른숲의 『메두사의 시선』

가 역력했지만 선생님은 “이놈들아, 지도

GUIDE

를 잘 봐라.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새들이

17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니. 처음에 잘

이 주의 문화행사

INTERVIEW

18

한국 패션 전도사 된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드

거다”라며 수업을 계속하셨습니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 회장상 받은 황지해

COLLECTOR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지도 박물관인 혜정

22

박물관 김혜정(66) 관장님을 처음 뵈었을

나의 애장품 <3> 박기태 교수의 마오쩌둥

FOOD

때 옛 지도에서 역사를 읽는다고 말씀하

24

시던 표정이 어찌 그리 교련 선생님과 닮

도전! 선데이 쿠킹 <4> 묵은지 비빔국수

HOUSE

았던지 혼자 웃었습니다. 김 관장님은 재일

26

동포 3세이신데, 어릴 적부터 지도를 보는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4> 미래주택

GALLERY

게 그렇게 좋으셨다네요. 어느 날 동해를 28

‘Mer de Coree’로 표기한 프랑스 고지도

사진작가 최민식의 ‘소년시대’

가 눈에 띄었는데, 이 지도 한 장이 한·일

PORTR AIT ESSAY

30

산사나이 박정헌의 손발

영해 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 영국 첼시 플라워쇼 회장상 받은 황지해의 ‘DMZ 가든’

COLUMN

는 생각에 그때부터 동·서양의 고지도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40년이

31

흘렀습니다.

컬처 # : 추적자’의 분노와 공포

SOUL-SEARCHING

“정 부장, 세상을 지배한 사람들은 먼저 지

32

도부터 챙겼어요. 지도가 있다는 것은 그

박정태의 불멸의 문장과 작가 <14> 『이기적 유전자』와 리처드 도킨스

CARTOON

세계를 갖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요즘 지도자들은 집무실에 지도를 걸고 있는지

33

몰라. 우리 박물관에 와서 옛 지도들을 꼭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VS

CONTE

보도록 해요.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저는

34

아직 박물관을 방문하지 못했는데, 관장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PHOTO ESSAY

님은 이번 주 책을 내셨습니다. 『고지도

35

의 매력과 유혹』입니다. 이제 실물을 보러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갈 일만 남았습니다. 박기태 교수의 마오쩌둥 컬렉션

S MAGAZINE 표지 개인적인 친분으로 김연주 부티크를 방문한 패트리샤 필드. 사진작가 남성우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강희경(뉴욕) 박철희(베이징)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이용임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구독신청 1588-3600, 080-023-5001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04 SUNDAY MAGAZINE

배워두면 어디 가서 조난당해 죽지는 않을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THIS WEEK PEOPLE

왼쪽부터 이정길, 전규호, 하현우, 김기범

‘한잔의 추억’으로 한 방 목숨 걸고 무대 서는 10년차 헝그리 인디 밴드 ‘나가수2’ 깜짝 1위, 국카스텐

생소한 이름의 4인조 록밴드는 대중에게 친숙하진 않았다. 적어도 3일 MBC ‘나 는 가수다2’에 출연하기 전까진 말이다.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으로 1위를 차지하곤 단숨에 떠오른 이들은 록밴드 ‘국카 스텐(Guckkasten)’이다. 하현우(31ㆍ보컬과 기타), 전규호(33ㆍ기타), 이정길(30ㆍ드 럼), 김기범(27ㆍ베이스)으로 구성된 밴드의 독특한 이름은 독일어에서 왔다. 독일 어로 ‘guck’은 ‘본다’, ‘kasten’은 네모난 상자를 뜻하니 네모 상자 속을 들여다 보는 ‘만화경’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말했다. “저희는 잃을 게 없는 팀이다. 젊기 때문에 쓴 맛·단맛 모두 맛봐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호기로운 말대로 젊은 패기는 무대를 완벽히 장악했다. 호기심으로 무대를 지켜보던 관객들은 금세 공연에 매료됐다. 하현우의 시원하고 폭발적인 고음은 신선했고, 강렬한 밴드 반주는 이를 탄탄하 게 받쳤다. 사실 국카스텐은 인디계에선 이미 스타다. 2003년 하현우ㆍ전규호ㆍ이정길 세 사람이 ‘더 컴’을 꾸렸고, 그해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에서 숨은 고수로 선정됐다. 2007년 팀명을 국카스텐으로 개명하고 이 듬해 베이시스트 김기범이 합류했다. 그해 발매한 정규 1집으로 국카스텐은 EBS ‘헬로루키 오브 더 이어’ 연말 결선에서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탔다. 2010년 제 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선 ‘올해의 신인상’ ‘록 부문 최우수 노래상’을 수상하기 도 했다. 지금까지 정규 앨범 한 장, EP 앨범 한 장을 냈다. 3000석 정도의 공연장 은 거뜬히 매진시키는 인디계 흥행 카드다. 홍익대 앞 유명 인디 음반사 중 하나인 루비살롱 레코드에 소속돼 있다가 지난해 9월 임재범 등이 소속된 예당 엔터테인 먼트로 옮겼다. 인디 밴드가 으레 그렇듯 이들에게도 음악으로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라면 한 봉지를 셋이 나눠먹은 뒤 국물이 아까워 냉동실에 얼려뒀다 이튿날 먹고, 반찬이 없어 밥에 소금을 뿌려 먹었던 시절”이다. 견고하게 다져온 의지 때문일까. 관객을 압도하는 국카스텐의 무대 장악력은 “목숨 걸고 무대에 임한다”는 이들의 말이 진정임을 보여준다. 첫 방송에서 국카스텐은 “우리에겐 한 방이 아닌 몇 방이 있다”고 했다. 이들의 ‘몇 방’이 오늘(10일) 저녁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해봄 직하다. 글 송지혜 기자 enjoy@joongang.co.kr, 사진 예당 엔터테인먼트

06 SUNDAY MAGAZINE



ISSUE

뭐는 뭐와 어울린다? 뻔한 패션 공식 버리고 스토리를 담아라 한국과 손잡은 ‘섹스 앤 더 시티’ 의상감독 패트리샤 필드

08 SUNDAY MAGAZINE


ISSUE

뉴욕에서 패트리샤 필드가 주최한 수영복 패션쇼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도 그는 자신이 “그저 영상 속 인물에게 ‘색’을 입혀주는 의상 콜라주 예술

드라마 패션계의 미다스, 스타들의 스타일리스트, 믹스 앤 매치의 달인….

가일 뿐”이라며 겸손해 한다.

혹시 이 이름이 아직 생소한 분이라면 네 명의 뉴요커 처자가 등장하는 미

그가 지식경제부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토종 브랜드의 국제경쟁력 강

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떠올려 보시라.

화를 위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 사업’의 미국 측 파트너로서다. 그는

1999년부터 6년간 폭발적 인기 속에 전 세계 여성들에게 패션의 신천지를

오는 10월 뉴욕에 차려질 한국 패션 팝업 스토어 개설을 앞두고 지식경제

열어젖힌 이 드라마의 의상감독이 바로 그녀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누구

부가 한국패션협회를 통해 선정한 3개 브랜드(모린꼼뜨마랑·버커루·플

보다 관심이 많은 주인공에게 하얀 튀튀부터 시작해 중고 빈티지에서 하

라스틱 아일랜드)의 본사 및 매장을 4일과 5일 이틀간 꼼꼼하게 둘러봤다. 이엔드 오트 쿠튀르까지 자유자재로 입히며 보는 이들에게 ‘샤방샤방한’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2’에서 사만다가 “나이에 맞는 옷 따윈 없다”라고 패션 판타지를 듬뿍 선사했다. 일갈한 것처럼, 그는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빨간 머리에 연두색 안경을 그뿐인가. ‘어글리 베티’(2006),‘더티 섹시 머니’(2007),‘캐시미어 마피아’

쓰고 찢어진 스키니 바지에 알록달록 운동화 차림으로 강남·북을 바삐 오

(2008) 같은 패션 관련 드라마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갔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빛에서 그가 올해 일흔하나라는 사실

‘섹스 앤 더 시티’(2008),‘쇼퍼홀릭’(2009),‘섹스 앤 더 시티 2’(2010) 등에 서도 역시 의상감독으로서 탁월한 패션 안목을 온 천하에 알렸다. 그럼에

을 찾아내긴 어려웠다. 빡빡한 일정의 틈바구니에서 6일 그를 만났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사진작가 남성우·김경성, 패트리샤 필드, 중앙포토 SUNDAY MAGAZINE 09


ISSUE

-시차적응할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어제는 동대문 패션 타운에 야간 쇼핑을 다녀왔다. 뉴욕에서는 비즈니스가 끝나는 시간이 면 가게도 문을 닫는다. 그래서 평일에는 쇼핑을 즐길 수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나이트 쇼 핑이 가능하다. 신기한 체험이었다.” -2년 전 한국 브랜드 MCM과 협업을 했다. 이번엔 한국 패션을 미국 패션계에 알리는 역할이다.

“패션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옷차림만 봐도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취미, 생각, 심지어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까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것은 내게도 감사한 일이고 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한국 패션산업에 대한 인상은.

“제한적인 경험밖에 없지만 한국 패션산업은 매우 액티브하고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 엇보다 에너지가 있다. 패션 피플들은 영리하고 스마트한 아이디어와 비주얼을 갖고 있다. 옷 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런 에너지는 내게 힘을 준다.” -세 군데 한국 업체 매장을 둘러보았다. 느낌이 어땠나.

“제품 하나하나는 매우 멋지다. 그런데 이것을 스타일링할 때 좀 보수적인 것 같다. 핑크는 왜 레드 옆에 있어야 하는가. 블루와 같이 있으면 안 되나. 뭐는 뭐와 어울린다는 루틴한 공 식을 버려야 한다. 패션에 스토리를 담고 내러티브로 풀어내야 한다. 이것이 나의 패션 스 뉴욕 패트리샤 필드 부티크

타일이다.”

패트리샤 필드의 수영복 패션쇼

-10월 뉴욕에서 문을 열 한국 패션 팝업 스토어는 어떻게 만들 생각인가.

세라 제시카 파커와 패트리샤 필드

“세 회사의 컨셉트가 서로 다르다. 한 틀 아래서 세 제품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 중이다. 같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리프

10 SUNDAY MAGAZINE

이 온 동료 말리와 경험을 공유해 구상하고 있다.”


ISSUE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다.”

-가게는 잘됐나.

“반응이 빨리 왔다. 특히 내가 처음 선보인 스판덱스 바지가 크 게 히트를 쳤다. 바지의 기능 중 하나는 다리의 실루엣을 살려주 는 것이다. 모양새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노마 카말리라는 미국 디 자이너가 딱 달라붙는 스키니 팬츠를 내놨는데 나는 그리 맘에 들 지 않았다. 그래서 스판덱스라는 재료를 이용해 ‘X100’이라는 바지를 디자인했다. 이게 지금 ‘레깅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영화 ‘그리스’ 등에서 올리비아 뉴턴 존이 입고 나와 크게 화제가 됐다. 모든 매스컴이 우리 가게로 왔다.” -왜 화제가 됐을까.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 아르메니안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를 둔 세탁소 집 딸이 전 세계 스타일 아이콘 이 됐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 아닌가.

“부드럽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섹시하지 않은가. -섹시함이 왜 중요한가.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은 못 해봤다.”

“나는 섹시함은 파워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여자는 파워

-어떻게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됐나.

를 갖지 못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런데 여성의 몸이 바로 파워

“딱히 패션을 하겠다고 덤벼들었던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

다.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파워를 갖게 된다. 섹시

는 세탁소를 하셨고, 삼촌은 식당을 운영했다. 난 독립적으로 내 일을 하고 싶

함이라는 말이 이전에는 ‘거리의 여인’이나 ‘성을 판다’는

었다. 물론 어려서부터 패션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패션을 전문적으로 공

것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부한 것도 아니다. 감각이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얻어지는 에센스라고 생각 한다.” -첫 매장을 낸 것이 스물네 살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백화점 등에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1966년 내 이름을 단 매장을 뉴욕대 주변에 냈고, 5년 뒤 확장해 이사했 다. 70년대 말 디스코 열풍이 불면서 클럽에 어울리는 의상과 장신구 등 을 갖다 놨는데 이런 것들이 잘나갔다. 인플레이션이 대두하면서 모든 매

않는다. 다들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나.” -80년대 중반 친구 소개로 다이앤 레인이 나온 영화 ‘Lady Beware’에서 의상을 처음 담당하게 됐다.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패션을 매장에서 다른 장르로 옮기는 경험은 정말 소중했고 흥미진진했다.” -1995년 영화 ‘마이애미 랩소디’에서 세라 제시카 파커를 처

스컴이 돈 얘기만 했다. 사람들은 비싼 옷을 장만하기 시작했지만 장롱에 모

음 만났다. 이 영화의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은 나중에 ‘악마는

셔둘 뿐이었다. 옷은 우리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인데. 물론 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

프라다를 입는다’의 감독이 됐는데.

만, 나는 삶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새롭고 익사이팅한 의상이 필요했다. 더

“데이비드는 이전에 몇 번 일을 같이한 적이 있다. 그

젊고, 더 싸고, 더 행복하게 해주는 옷이.”

가 세라 제시카 파커를 소개해 줬다.” SUNDAY MAGAZINE 11


ISSUE

뉴욕 패트리샤 필드 부티크 ‘플라스틱 아일랜드’ 사무실을 방문한 패트리사 필드 개인적 친분으로 김연주 부티크를 방문한 패트리샤 필드

-의상 스타일링을 위해 배우들 집까지 찾아간다고 들었다. 스타일링은 인간 탐구에서 나오는 것인가.

“스타일링은 매우 개인적인 서비스다. 모든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다. 바비 인형이 아니다. 누 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찾아준다. 어떤 것이 그 사람에게 어울릴 것인지 집어내기 위해서는 몸매는 기본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작품에 대한 의견이 무엇인지, 뭘 좋아하는지, 옷장 속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다못해 남자 친구와는 잘 지내고 있는지까지 다 알아야 한다. 그렇게 배우의 내면에 들어가서 그에게 어울 리는 스타일을 찾아내야 배우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다. 의상이 불편하면 연기도 불편해진 다. 작품 속 캐릭터도 마찬가지로 연구한다. 배우와 작품 속 캐릭터는 처음엔 평행선인데, 그 평행선이 교차하도록 공통점을 끌어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기존의 관행을 깨려는 시도를 많이 했고 그것이 새로운 유행이 됐다. 그러려면 안목이 중요한데, 어떻게 키워 왔나.

“나는 내 정신적인 컨디션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항상 가꾸어 왔다.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하고, 그러면서도 나만의 논리를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싫다. 아이디어는 결론이 나야 한다. 패 션도 리얼 라이프가 돼야 하는 것이다.” -실패한 적은 없는가.

“글쎄, 결과로만 볼 때 난 실패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실패는 상황을 내가 생각

“진정한 스타일은 내면에서 온다. 액세서리가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하는 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내 생각을 컨트롤하게 되면 나로서는 실 패겠지.” -한국 여성들도 패션에 매우 관심이 많다. 조언을 해준다면.

“스타일링의 기본은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가리는 것이다. 일본 여성도 그렇고 한국 여성도

“돈이 있든 없든 당신은 옷장에서 뭔가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연두색이 어울리는지, 보라색이 어울리는지 알아야만 한다. 색을 고르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다리가 상대적으로 짧다. 그런데 최근 유행을 보면 (바지 벨트 자 리가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로컷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라인이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다 리가 더 짧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가도록 해야 한다. 모자를 쓴다거나 탱크 톱 등을 착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신은 항상 연구하고 공부한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뭘 얻은 게 있나.

“정보는 원이다. 모든 방향에 다 있고 모두 연결돼 있다. 내겐 여행이 곧 일이다. 단순한 방문

냉정하고 침착하게 생각해 본다면 빚을 내지 않고도

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서 배운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한국에서도 멋

쿨하게 보일 수 있다.”

진 사람을 많이 만났다. 사람을 통해 나는 계속 배운다.”

12 SUNDAY MAGAZINE


ISSUE

“미 패션계 핵심  업체 해외 진출에 큰 도움 될 것” 지식경제부 미래생활섬유과 김남규 과장

패트리샤 필드가 한국 패션 전도사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지식경제부의 ‘글 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 프로젝트 덕분이다. 국내 유망 패션 브랜드를 발굴 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5년까지 계속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2009년 시작 당시에는 12개 업체를 선정했고, 매년 재선 정 작업을 거쳐 2015년에는 3개 업체만 남게 된다. 이번 뉴욕 팝업 스토어 진출에는 올해 선 정된 9개 업체 중 3개 업체가 뽑혔다. 지식경제부 미래생활섬유과 김남규 과장(사진)은 “해외 에 진출하려는 업체들의 현지 네트워킹 구축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한국 섬유 제품이 좋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OEM 방식이라 자기 브랜드를 알리기 가 쉽지 않았다. 자기 브랜드를 가진 국내 업체가 해외 진출을 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됐다.” -패트리샤 필드를 파트너로 삼은 이유는.

“해외 진출 초기에는 정보에 대한 수요가 많고, 일단 진출한 뒤에는 세무 및 노무관리에 대 한 요구가 많았다. 앞으로는 네크워킹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패션계를 주도하는 핵심 인물을 통한 네트워킹이 중요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고 말하는 것처럼 옷을 입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적인 인지도를 가진 그가 적임이라고 생각해 어렵게 섭외했다.” -해외 현지 전문가를 활용한 사례가 있나.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외 인맥이라는 게 사실 다 돈이고 정보라 이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 프로젝트의 예산은.

“지난해 10억원에서 올해는 13억5000만원으로 늘었다. 최근 한류의 급속한 확산을 적극 활용해 볼 생각이다.”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

“뉴욕 프로젝트는 크게 네 단계로 진행된다. 필드는 이번 현지 실사에 이어 업체별 브랜딩 전략을 짤 예정이다. 3단계로 10월께 맨해튼 내 유명 백화점에 팝업 스토어를 설치하고 현지 바이어와 언론을 초청할 계획이다. 유명 갤러리나 호텔과 콜래보레이션도 기획 중이다. 마지 막으로 패트리샤가 주최하는 파티를 통해 구전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SUNDAY MAGAZINE 13


REVIEW & PREVIEW

의문의 화재 지워진 기억 그리고  퍼즐 맞추기

고전 비틀기가 대유행이다. 오즈의 초록마녀

밀수첩을 입수해 몰래 사건을 뒤쫓던 형사의

가 사악한 마녀란 건 오해일 뿐이라는 뮤지

죽음 때문. ‘스스로가 살인자인지 아닌지 궁

컬 ‘위키드’처럼 메리 포핀스가 환상적인 유

금해’ 12년 만에 다시 모인 4남매가 끔찍한

모였다는 것도 오해였을까. 음산한 서곡이 흐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이 무대 위에

르며 커튼에 비친 거대한 그림자가 꼭두각시

펼쳐진다. 뒤집혀 놓인 사각 테이블 형태의

인형을 조종하는 서막은 메리의 모성도 거대

회전무대와 의자 몇 개, 겹쳐진 여러 개의 프

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레임이 무대장치의 전부다. 장면 전환이 거의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7월 29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자평 윤호진(공연연출가, 에이콤 대표) 극작·연출·작곡의 1인3역을 소화한 서윤미의 잠재적 재능을 발견한 무대였다. 연출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닌데 1시간40분 동안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과 재주가 상당했다. 가능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배우 김수로가 프로

없는 고정된 무대에서 기억이 전복된 형제들

듀싱한 ‘김수로 프로젝트’ 세 번째 작품이라

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오르골 위 태엽인형처

니 요절복통 코미디인가 싶지만, 뮤지컬 ‘블

럼 움직이고, 때론 스스로 태엽을 감으며 기

랙 메리 포핀스’는 웃음기 전혀 없는 무거운

억의 껍질을 벗겨간다.

심리극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메리 포핀

그런데 왜 ‘메리 포핀스’인가? 동화 속 ‘메

스’와는 아무 상관없고, 폭발하는 노래와 춤

리 포핀스’는 마법으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으로 직설적인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여타

해주는 완벽한 보모였다. 이것은 혹시 숭고

뮤지컬과도 접점이 없다. 뮤지컬로서는 낯선

한 모성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려는 잔혹한

‘심리추리 스릴러’란 수식어를 내걸고 인간의

동화일까. 오히려 이 무대의 메리는 최면으로

내적인 문제를 절제된 안무와 음악, 언어적인

아이들의 불행한 기억을 지우기에 아이들에

연기로 내밀히 조명한 새로운 시도다. 주제 면

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동화 속 메리를 궁극

에서나, 표현 면에서나 매우 연극적인 무대라

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뮤지컬이라기보다 음악극으로 보이기도 하

문제는 메리가 아니라 메리와 유년에 대

고, 강렬한 조명과 현대무용을 닮은 안무에

한 기억의 실체다. 많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

한 편의 무용극을 보는 듯도 하다.

을 좌우하는 유년의 기억이란 그것을 지배하

1926년 독일. 나치당 소속의 저명한 심리

는 모성의 성질에 의해 편집되는 것일 테니까.

학자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에 일어난 화재로

엄마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갖고 있다는 작가

박사는 시신조차 남지 않고, 각각 입양된 4남

겸 연출가 서윤미가 고백하듯, 이것은 기억의

기 위한 고민이 드러나 있다. 열어 두었으면서도 주제를 집요하게 끌고 간다. 특히

매는 보모 메리에게 구출되지만 기억을 완벽

본질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묻는다. 기억

서윤미 연출 특유의 세련된 형식미와 넘버 활용이 인상 깊었다. 근래 감상한 창작

히 잃은 상태다. 단순 화재로 처리돼 잊혀진

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뮤지컬 작품 중 두드러지게 고급스러웠다.

사건을 12년 뒤 새삼 들추는 것은 박사의 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 다만 추리극 형식이 노래로 전달되니 관객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굳이 뮤지 컬이 아니라 다른 형식이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

신정화(공연제작자, 엔터테인먼트 즐거움의숲 대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내

14 SUNDAY MAGAZINE

★★★★☆


REVIEW & PREVIEW

한층 원숙해진 ‘동백 아가씨’ 강수진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까멜리아 레이디’ 6월 15~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문의 1577-5266

주인공들은 불행한 과거라도 기억하기를

배역의 감정을 섬세한 테크닉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 발레리나 강수진에게 ‘까멜리

택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기꺼이 불행과의

아 레이디’는 뜻깊은 작품이다. 바로 이 작품으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

동행을 선택하는 의미는 메리 또는 엄마, 아

누아 드 라 당스’를 동양인 최초로 수상했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자전적 소

니 유년의 기억 자체를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설을 바탕으로 하는 이 작품은 동백꽃(까멜리아)을 너무나 사랑해 숭배자들로부터 수없

받아들이자는 어른스러운 권유로 보인다. 설

이 많은 동백꽃을 받은 코르티잔(부유층의 공개 애인)과 순수한 귀족 청년의 애절한 사

령 불행했을지라도 행복을 꿈꿨다면 괜찮은

랑 이야기다. 200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2회 모두 전석 매진의 기록을 세운 슈투트가르

기억이라는 위로이자, 행복도 불행도 기억이

트 발레단의 ‘까멜리아 레이디’가 10년 만에 내한한다. 2008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아닌 의지로 통제하는 것이 맞다는 제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 무대를 선보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돈나 강수진은 올

뮤지컬계 떠오르는 블루칩 정상윤은 교과

해 ‘까멜리아 레이디’의 전막 무대를 마지막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3회 공연 모두 파트너

서적인 가창력으로 이 무거운 심리극을 뮤지

마레인 라데마케르와 호흡을 맞춘다.

컬이게 했다. 화려한 감동도, 피가 튀는 스펙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크레디아

터클도 없지만 강렬한 조명과 음악, 연기의 에너지만으로 긴장과 몰입은 더없이 팽팽했 다. ‘심리추리 스릴러’라는 낯선 실험이 성공 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아쉽다면 ‘추리’라는 수식어에 4일 제6회

팝부터 탱고까지  관능미 넘치는 보컬 ‘우테 렘퍼-베를린에서의 마지막 탱고’ 6월 10일 오후 7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문의 02-2005-0114

더 뮤지컬어워즈 5관왕에 오른 창작 뮤지컬 ‘셜록 홈즈’급 재미를 은연중 기대하게 된다는 것. 물론 메리가 홈즈가 될 순 없었다. 장면마 다 복선이 교차하며 흥미가 고조되는 플롯, 낭만적인 사랑이야기에 방점을 찍으며 강력 한 반전과 웃음의 요소까지 배려됐던 ‘셜록 홈즈’에 비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충격적 인 비밀을 파헤치는 전개가 나름 입체적이긴 하나 오랫동안 봉인돼 왔던 과거가 새삼 되살 아나는데 설득력을 부여할 만한 장치는 찾을

매혹적인 목소리와 관능미 넘치는 무대매너, 팝에서부터 카바레 뮤직과 탱고까지 아우

수 없었고, 사랑도 반전도 돋보이지 않았다.

르는 보컬의 여왕 우테 렘퍼가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세계대전 이후 암울했던 시대를 어

여기에 극적 재미가 보완될 여지가 있기에

루만진 카바레 뮤직의 미학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그녀는 1980년대 브레히트·쿠르트 바

오히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재미보다 여운이

일의 곡들을 새롭게 녹음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뮤지컬에서도 활약했다. 빈에

짙은 무대임에도 객석을 빈틈없이 메운 관객

서 ‘캣츠’의 그리자벨라 역으로 데뷔한 후 88년 웨스트엔드에서 ‘시카고’의 벨마 역으로

들은 기억의 본질을 묻는 묵직한 주제가 뮤

올리비에 어워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천후 아티스트로 사랑받아 온 렘

지컬이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성을 부여받았

퍼의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베를린으로부터 파리를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까

음을 입증한다. 창작 뮤지컬의 다양한 예술

지에 이르는 음악 여정이다. 사실주의 음악극의 수작인 ‘서푼짜리 오페라’를 함께 만든

적 가능성을 내포한 풋풋한 무대가 보다 정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카바레 뮤직, 샹송 뮤지션 자크 브렐과 에디트 피아프, 독창적

교한 디테일로 만개하길 기대한다.

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대를 연 피아졸라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명곡이 펼쳐진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LG아트센터

사진 아시아브릿지컨텐츠 SUNDAY MAGAZINE 15


BOOK

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이 인간과 함께 진화 하며 맞게 될 변화에 대한 깊고 정교한 사유 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종교적 믿음은 물 론이고 과학적 탐구, 심지어 사회 질서에서도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 을 감안할 때 모든 것이 변화하는 21세기에 인간에게 고정불변의 진리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의혹

과학에 휩쓸려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

의 시작이고, 우리가 창조해야 할 현실이다. 김용석 선생님의 글은 항상 너무 이르게 우

숨은 책 찾기 <8> 푸른숲의『메두사의 시선』

리를 찾아온다.『미녀와 야수 그리고 인간』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등을 찬찬히 읽어보면 지금 한창인 문화담론의 논의가 이 미 10년 전 선생님의 글에서 진행되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현실 이 된 것을 해석하고 반성하는 ‘사후(事後)의 사유’가 아니라 미래를 통찰하고 준비하는 ‘사전(事前)의 사유’가 철학의 역할이라고 믿 는 저자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란 무 엇인가’라는 물음에 머물지 않고 ‘철학은 무 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구체적인 실 천으로 답하고자 하는 노력. 하지만 아쉽게 도 너무 이르게 찾아왔기에 많은 이가 선생 주제는 ‘변화하는 인간’에 대한 사유다. 저자

님의 글을 읽고 이야기하며 그것을 철학 하기

는 20세기까지의 철학이 ‘변하지 않는 인간

전에 우리 시선에서 멀어진다. 질주하는 과학

초여름 주말 오후, 어느 자리에서 철학자

본성’을 전제로 그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

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놓치고 가는 소중한

김용석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 이제

는 노력이었다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삶의 조

가치. 선생님의 저작들이 겨냥하는 지점은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소피스트의 시대를 살 고 있는 거지.”

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생물학적으로든

항상 대중과의 소통, 일상으로 철학 하기인데,

믿고 따르는 국가나 법, 교육에 대한 생각과

문화적으로든 인간이 지금과 다른 존재로 진

특히『메두사의 시선』은 ‘철학다운 삶’보다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가 옳은지 모르겠다

화해 갈 가능성이 명백해진 21세기에는 변화

는 ‘과학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른 어

는 분노 섞인 푸념에 대해 철학자는 지금 이

해 가는 인간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

떤 글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시대를 이렇게 정의한 것이다.

대 철학의 기본 전제, 인간을 진화의 종점이

선생님은 철학자의 숙명은 ‘방황’이며 방

의혹의 시대. 그렇다면 많은 이가 그 어느

자 철학의 유일한 대상으로 보던 관점을 폐기

황은 ‘무브먼트(movement)’이고 이것은

때보다 간절하게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하고 새롭게 ‘인간은 무엇이 되고 있는가’라

곧 ‘여행하고, 탐구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과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에 대한 사유를 전혀

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바야흐로 ‘인간

권력이 무능하기에? 시대가 타락했기에? 세

다른 차원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 ‘정말 그래?’라고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변화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 밖을 방황하는 것이다. 그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변신의 서사인 신화를

리고 그곳에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가까운 누

앞에 봉착했거나, 상상할 수 없는 변화의 시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21세기 새로운 인간,

군가에서부터 아주 먼 누군

기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둘러싼 세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가가 있을 것이다.

계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자신이?

다. 뇌과학, 진화생물학, 로봇 공학, 우주 개발

글 이재현 푸른숲 편집장

등 최첨단 과학의 성과들에 대한 해박한 이

사진 푸른숲

더 철학적인 인간이 되었나? 어쩌면 우리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

『메두사의 시선』.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16 SUNDAY MAGAZINE

안’을 넘어 ‘인간 밖’을 방황할 때다. ‘이게 맞

이 책은 신화 과학 철학이라는 다소 무거

계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아니면 우리가 좀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영화

전시

행사

클래식

락아웃: 익스트림 미션

문범강 개인전 ‘황후애정행각기’

애니송 그랑프니 2012

금호아트홀의 ‘아름다운 목요일’

감독: 제임스 매더, 스테판 레게르

기간: 6월 8일~7월 15일

기간: 6월 1일~7월 13일

일시: 6월 14일 오후 8시

배우: 가이 피어스, 매기 그레이스, 조셉 길건

장소: 서울 한남동 갤러리 스케이프

장소: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장소: 금호아트홀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2-747-4675

문의: 02-765-3011

문의: 02-6303-1977

지구로부터 격리된 우주 감옥에서 펼쳐

재미작가 문범강의 이번 전시는 2009년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일본음악정

6월 금호아트홀이 매주 선보이는 ‘아름

지는 액션 영화. 전 세계의 흉악한 범죄자

전시 ‘암호놀이’에서 선보였던 ‘춘자 시

보센터(JMIC)가 글로벌 애니메이션 채널

다운 목요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500여 명을 격리 수용한 우주감옥, 한번

리즈’와 드로잉 연작, 2010년 워싱턴 아메

애니맥스(ANIMAX)와 함께 ‘애니송 그랑

피아니스트 3인의 무대가 이어진다. 14일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그곳에

리칸 유니버시티 뮤지엄의 캇젠 아트센터

프리 2012’를 개최한다. 본선 입상자들에

에는 미국 피바디 음대에서 교수로 재직

대통령의 딸 에밀리가 인질로 붙잡힌다.

에서 선보였던 ‘황후애정행각기’ 시리즈

게는 일본 ‘애니맥스 뮤직스 2012’의 참

중인 피아니스트 문용희(64 사진)씨가

전직 특수요원 스노가 자신의 자유를 조

의 연장선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상반

관 및 일본 연수 등의 기회가 주어진다. 예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8번’ 등을

건으로 대통령의 딸 구출작전에 돌입한다.

된 성향을 이야기한다

선은 7월 27일, 본선은 8월 11일 열린다.

연주한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김준 개인전 Blue jean blues

창의융합스쿨 ‘아트세븐7’

이 무지치 내한공연

감독: 김조광수

기간: 6월 7~ 24일

기간: 6월 3일~8월 31일(매주 월요일 휴관)

일시: 6월 15일 오후 8시

배우: 김동윤, 류현경, 송용진, 정애연

장소: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

장소: 한가람미술관 갤러리 7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2-738-0738

문의: 02-562-4420

문의: 02-580-1300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이 민수

김준은 유럽, 미국,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과 이화여자

실내악의 전설 ‘이 무지치’가 60주년 기

(김동윤)와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레즈비

서 예술적 평가와 시장의 성과를 고루 보

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디자인문화랩이 연

념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는다.

언 효진(류현경). 같은 병원의 동료 의사인

이고 있는 작가다. 21세기 한국 현대미술

구개발한 일곱 가지 수업 모델을 공개한

완벽한 하모니와 강약 조절로 관객들을

이들은 각자의 소망을 위해 잠시 위장결

가가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다. ‘창의융합 스쿨 아트세븐’은 창의적

사로잡는 ‘이 무지치’는 기타리스트 김세

혼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예고 없는 부모

고민해 온 작가는 첨단 3D 기법을 노동집

인 융합교육 콘텐트를 통해 과학적 사고

황과 협연한다. 이 무치치는 60년을 기념

님의 방문 때문에 위장결혼은 물론 사랑

약적 방법으로 구현해 연약한 인간 존재

와 예술적 감성을 지닌 인재를 양성하고

한 엔니오 모리코네 특별편곡 ‘모리코네

까지도 위태로워진다.

에 대한 물음을 화면 속에 표현하고 있다.

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스위트’ 등을 선보인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자료=교보문고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프로메테우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와이즈베리

후궁: 제왕의 첩

누미 라파스·마이클 패스밴더

스님의 주례사

마다가스카3:이번엔 서커스다!

조여정·김동욱·김민준 -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출연 순위 음반명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

음반사

브루흐: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집 ARS

뮤지컬 시카고

인순이·최정원·윤공주

비발디 ‘라 체트라’

Channel Classics

연극 옥탑방 고양이

박성훈·장지우·윤정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집’ 임현정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고도원·해냄출판사

맨인블랙3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

뮤지컬 모차르트!

박은태·임태경·장현승

쇼팽: 왈츠

정의란 무엇인가

내 아내의 모든 것

임수정·이선균·류승룡

뮤지컬 캐치미 이프유캔 엄기준·규현·김정훈

지네트 느뵈, 요셉 하시드 초기 레코딩 Testament

차형사

강지환·성유리·이수혁

연극 라이어1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Channel Classics

철학의 책 무지개원리

법륜·휴 마이클 샌델·김영사 월 버킹엄 외·지식갤러리 차동엽·국일미디어

스노우화이트 앤 더 헌츠맨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식의 책

내셔널지오그래픽·지식갤러리

미확인동영상:절대클릭금지 박보영·주원·강별 08 뮤지컬 친정엄마

과학의 책

내셔널지오그래픽·지식갤러리

어벤져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블루발렌타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라이언 고슬링·미셸 윌리엄스

김원식·공명·김연철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정상윤·장현덕·송상은

EMI

Harmonia Mundi France

다니엘 바렌보임

Warner

나문희·김수미·이혜경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6, 17, 21

뮤지컬 엘리자벳 (대구) 옥주현·김선영·류정한

멘델스존: 무언가 : 다니엘 바렌보임

DG

뮤지컬 풍월주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의 길

EMI

성두섭·김재범·구원영

DG

SUNDAY MAGAZINE 17


INTERVIEW

18 SUNDAY MAGAZINE


INTERVIEW

전쟁통 허기 달랜 머루·다래 병사들 지혈할 때 썼던 쑥 ‘DMZ 가든’으로 심금 울리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 회장상, 환경 디자이너 황지해

지난달 세계 최대의 원예박람회 첼시 플라워 쇼에서 낭보가 전해졌 다. 황지해(36·환경미술가 그룹 뮴 대표) 작가가 ‘침묵의 시간: 비무장 지대 금지된 정원(Quiet Time: DMZ Forbidden Garden)’으로 쇼 가든(200㎡ 규모 대형 정원) 부문 금상을 수상한 것이다. 지난해 아 티즌 가든(20㎡ 규모 소형 정원) 부문에서 ‘해우소: 마음을 비우다한국의 전통 화장실’로 금상을 받은 데 이은 2년 연속 수상이다. 한국 언론에 보도된 주요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그 뒤 전 해진 뉴스가 또 있다. 그의 작품이 부문 구분 없이 전체 참가자 중 선 정하는 회장상(RHS President’s Award)까지 받았다는 소식이다. “내가 평생 보아온 가든 중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라는 왕립 원예협회(RHS) 엘리자베스 뱅크스 회장의 극찬과 함께였다. 개인이 정원을 가꾸기도 쉽지 않은, 변방에서 온 작가는 어떻게 사 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너무나 한국적인 그의 작품은 어떻게 세계 최대 원예박람회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았을까. 네덜란드 에서 열리고 있는 플로리아드 정원박람회에 참가하고 있는 황지해 작 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이성용, Linda Grove, Adelina Iliev

SUNDAY MAGAZINE 19


INTERVIEW

황지해 작가는 목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3년 환경미술가 그룹 ‘뮴’을 창립하고 환경디자이너로 나섰다. 작은 벽화부터 조형물· 조경·공원 등 다양한 환경미술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그에게 정원은 “환경미술 작업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작업 속에서 느낀 갈증을 풀 과 나무, 자연의 질서를 통해 해소한다”는 걸 보면, 그 일부분이 전체 를 지탱하는 힘이고 에너지가 되어주는 듯하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정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라고도 했었다. “마음이 힘들 때 자연을 보면서 평정심을 찾곤 하던 어머니는 내가 힘들 때 ‘바람을 느껴 보라’고 하셨다. 자연을 보며 삶의 고단함을 견 뎌낸 어머니처럼 나도 자연의 품 속에서 세상을 배운다.” 마침 첼시 플라워 쇼에 이어 플로리아드 정원박람회에 그가 출품 한 작품이 ‘뻘-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이다. “바다와 땅이 만나 왕성한 생명활동을 낳는 뻘을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간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꼬리조팝나무, 오이풀, 인동, 창포, 흰민들레 등 우리 산천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이 한 땀 한 땀 수놓듯 심어졌다. -한국적인 주제를 이어오고 있다.

“정원은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한국 정원을 통해 한국 사람만이 가 진 정서와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가지런한 정원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의 정원은 낯설게, 또 거칠게도 보인다. 풀은 식재(植栽)했다기보다 절로 자라난 것 같고, 키를 맞춰 다듬지도 않았다. 이를 두고 가디언은 “잡초가 보물로 변신 했다”고 표현했다. -‘전통적인 정원 조성 방식인 식재 계획 없이 현장에서 직감적으로 자연 속의 식 생을 그대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던데.

“DMZ는 60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다. 그 덕에 세상에 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 됐다. DMZ가 가진 원시적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은 얕은 감각으로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DMZ 라는 정원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선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정원을 영국이나 네덜란드에 조성하려면, 풀과 나무 등을 모두 공수해야 하지 않나. 20 SUNDAY MAGAZINE


INTERVIEW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 영국왕립원예학회(The Royal Horticultural Society)가 주관하는 세계 최대의 정원박람회. 1827년 시작됐다. 정원 예술가들의 꿈의 무대로 통한다. 새로 개발한 꽃, 여러 스타일의 정원, 가드닝 제품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DMZ 가든의 경우 전체 식재 중 60%가 한국 식물이다. 정원 안의 식생은 전쟁 당시 군인과 피란민들의 식량과 약재로 활용된 것들을 선택했다. 군인들이 지혈할 때 썼던 쑥, 배 아플 때 짜서 마신 질경이, 식량이 돼준 머루와 다래, 냉이 등이다.” -채집이나 통관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DMZ에는 멸종위기종과 특산식물, 희귀식물이 많다. 당연히 반출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통관도 쉽지 않아 새집을 런던에 들여오는 데 세 번의 과정을 거쳤다. 또 하늘수박과 박주가리 같은 계절에 맞지 않는 마른 식재(dry plant) 연출을 위한 식물을 구하기 위해 60일을 숲에서 보내기도 했다. 이산가족들의 편지 모음, 군번줄 등 정원의 의 미를 살리기 위한 소품 역시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한국에선 개인이 정원을 가꾸기 쉽지 않다.

“빠른 산업화 때문에 아파트가 대세가 됐지만 그 뿌리가 깊지는 않 다. 정원은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다. 아파트에서 정원을 가꿀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정원에 대한 향수와 갈망은 여전하 다. 우리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니까 토대는 탄탄하다고 본다.” -우리 정원만의 강점은 뭘까.

“우리는 원래 드러내거나 과시하지 않았고, 억지스럽거나 지나친 것 도 멀리했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것은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특징인 데, 정원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정원이 빗물 떨어지는 자리까지 계 산하는 인위적인 것이라면 한국의 정원은 나무도, 큰 바위도 치우침 없이 자연에 순응한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다.” 영국의 원예전문잡지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작품은 뛰어난 디자인으로 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콘텐트다. 작품이 전달하는 화해와 치 유라는 주제는 쇼의 다른 작품들을 가볍고 예쁘기만 한 것으로 만들 어버렸다.” 서양의 관객들에게 익숙지 않은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도 인간 보 편의 정서를 매만져 준 작품의 진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의미다. 그 덕에 DMZ가든은 내셔널트러스트, 자연사박물관, 에드워드 왕자 개인정원 등과 영구 보존을 위한 협의가 이뤄졌다. 현재는 일시 적으로 런던 올림픽 성화 봉송 구간에 있는 런던 트레저(London Pleasure) 공원의 가든으로 옮겨져 재조성 중이다. 9월 이후엔 엘리 자베스 여왕 올림픽 공원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현재 플로라이드 정 원박람회를 위해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는 황 작가는 9월 일본에서 열 리는 가드닝 월드컵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SUNDAY MAGAZINE 21


COLLECTOR

22 SUNDAY MAGAZINE


COLLECTOR

마오쩌둥이 세상을

카리스마에 끌려 년간 점 리틀 ‘마오 박물관’ 나의 애장품 <3> 박기태 교수의 마오쩌둥

떠난 지 36년. 여전히 마오쩌둥은 중국 곳 곳에 살아 있다. 천안 문 정면 대형 초상으 로, 인민폐 속 그림으 로, 관광지의 기념 상 품으로 마오의 얼굴은 여기저기서 보인다. 중국을 재앙에 빠 뜨린 문화대혁명이란 결정적 과오가 있지만, 새 사회주의 중 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은 여전히 중국의 상징이다. 환경 디자이너인 박기태(61) 서울예술대 교수는 마오쩌둥 을 ‘수집’한다. 배지·초상화·포스터·흉상 등 마오와 관련된 2000여 점을 모았다. 그는 미국 생활을 했던 1970~80년대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을 어렴풋하게나마 처음 접했다. 그러 다 수교 전인 89년 홍콩을 통해 중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반공 교육만 받았잖아요.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 民共和國)’이란 글자 때문에 차(茶)도 공항에서 걸릴 때였고 요. 그런데 막상 중국을 가보니 어마어마한 나라인 거예 요. 그때 거대한 중국의 10억 인구를 이끈 지도자였던 마 오쩌둥이란 사람의 카리스마에 빠져든 거죠.” 중국에 있던 지인들이 그의 수집을 도왔다. 새 지도 자를 맞아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한 중국에서 마오 의 유물은 찬밥이었기 때문에 그의 컬렉션은 쌓여 나갔다. 마오가 신(神)적인 존재로 숭배됐을 때 집 집마다 걸려 있던 초상화와 비공식 공로훈장으로 여겨진 배지가 그것들이다. 문혁 기간 중 만들어진 배지만 최소 30억 개에 이른다고 하니, “버려진 것을 이만큼씩 가져다 모았 다”는 박 교수의 말이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재물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마오쩌둥이 기 복신앙처럼 받들어지는 오늘날, 이런 유물들은 “구할 수도 없고 비싸서 살 수도 없는 것”이 됐다. 대신 사회주 의 혁명의 아버지는 관광지의 인기 상품이 됐는데, 그에 게도 이런 물건들이 종종 선물로 도착한다. 그의 수집이 알려지자 중국에 다녀온 지인마다 ‘마오’를 선물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도 그중 하나였다. 찌그 러지고 낡은 모양새가 꽤 나이 먹은 물건은 아닐까. “이것도 관광지에서 파는 거예요. 제일 많은 건 마오 가 그려진 머그잔이에요. 그런데 정작 마오의 시대엔 머그잔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재미난 일이죠.” 학창시절 우표로부터 출발한 그의 수집벽은 빈티 지 시계와 마오쩌둥 등으로 이어졌다. “자동차를 수집하는 게 꿈이었다”는 박 교수는 늘 사람들에게 한 가지씩은 수집해 보라고 권한다. “수집은 집중하고 몰두한다는 의미예요. 삶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 이예요. 그래서 꼭 한 가지는 수집을 하라고 하죠. 그리고 투 자도 되잖아요. 투자하려고 수집하는 건 아니지만요. 허허.”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최정동 기자 ※흥미로운 물건을 모으고 계신 분들은 sunday@joongang.co.kr로 연락 주세요. SUNDAY MAGAZINE 23


FOOD

묵은지 줄기 송송 양념 적당~히 쓱쓱 무순 얹어내면 끝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4> 묵은지 비빔국수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고

다.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어느 곳에서보

간판에 써 놓은 식당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으니 저절

집사람의 지도편달[아무래도 편달(鞭撻·

문구가 재미있어서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

로 ‘만족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영향을

채찍질]의 느낌이 더 강한 잔소리와 핀잔 포

다. “기왕에 맛있다고 주장할 거면 첫 번째로

미친다.

함)로 묵은지를 이용한 비빔국수 만드는 과

맛있다고 하지 왜 두 번째라고 했느냐”고 물

24 SUNDAY MAGAZINE

만들어 준다.

생각해 보니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해 보면

정을 시작했다. 우선 재료를 준비했다. 국수,

었더니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은 사람들 자신

서 밖에서만 요리를 배워올 생각을 했었지 집

국수를 비빌 양념, 묵은지, 오이, 계란 지단, 무

의 집이란다. 누구나 자기 집에서 먹는 음식

에서 먹는 음식을 배워볼 생각을 못했었다. 순 등이다.

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밖에서 먹는 음식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장 맛있는

국수로는 우리 집에서는 주로 수연(手延)

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밖에서 먹는 음식

음식이 될 텐데 역시 항상 가까이 있는 것에

소면을 이용한다. 손으로(手) 늘여서(延) 만드

중에선 자기들이 가장 맛있게 잘한다는 뜻

대해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못 느끼나 보다.

는 소면이다. 수연 소면은 쫄깃한 맛이 특징

이었다. 사실 음식 맛은 동의할 수 없는 수준

요즘 같은 계절에 우리 집에서 별미로 자주

이다. 잘 불지도 않는다. 일반 소면은 밀가루

이었지만 그래도 참 센스 있게 만든 광고 문

만들어 먹는 것 중에 비빔국수가 있다. 원래

반죽을 구멍이 뚫린 성형 틀에 넣고 뽑아내

구여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잘 만들어 주셨었는

지만 수연 소면은 밀가루 반죽을 잘 숙성시

집에서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

데 이제는 집사람이 그 뒤를 이어서 아주 맛

킨 다음에 잡아당겨 만들기 때문이란다. 짜

는 얘기는 옳은 얘기다. 아무리 유명하고 맛

있는 비빔국수를 만든다. 만드는 것도 그렇게

장면의 수타면과 비슷한 컨셉트다.

있다는 고급 식당을 목숨 걸고 찾아다니는

어렵지 않고 집에 있는 재료들로 쉽게 만들

국수를 비비는 양념은 고추장을 기본 베

사람이라 하더라도 “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수 있다. 이걸 한번 배워서 내가 직접 만들어

이스로 하고 여기에 간장, 설탕, 깨소금, 참기

최고야”라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

보기로 했다.

름을 섞어서 만든다. 집사람의 레시피에 의하

이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미각의 기준이

우리 집의 비빔국수는 묵은지를 사용하는

면 고추장에 이 다른 양념들을 ‘적당히’ 섞

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자라오고 생활

것이 특징이다. 전해 겨울에 김장을 담글 때

는단다. 집에서 만드는 음식의 맛은 모두 ‘손

해 오면서 주로 먹어왔던 음식, 즉 집에서 먹

별도로 묵은지용으로 김치를 담가 놓은 것이

맛’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손맛은 ‘적당히’

어왔던 음식을 기준으로 형성돼 왔기 때문에

다. 초여름이 시작되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입

가 특징인 맛이다. 예부터 새 며느리가 들어와

그렇다.

맛이 없어지기 시작하면 이 묵은지를 꺼내

서 이 ‘적당히’라는 감각을 익숙하게 사용하

음식을 먹으면서 만족하는 데에는 맛 이외

여러 음식에 사용한다. 잘 숙성된 묵은지의

기 시작하면 그 집안의 음식 수업은 끝이 났다.

에도 정서적인 안정감과 친밀감도 포함돼 있

깊은 맛은 비빔국수를 아주 풍부한 맛으로

아무튼 어려운 경지임에 틀림이 없는데,


FOOD

재료

수연 소면, 묵은지, 고추장, 간장, 설탕, 깨소 금, 참기름, 오이, 계란, 무순 준비

수연(手延) 소면: 밀가루를 반죽해서 숙 성시킨 다음에 늘려서 만드는 소면이다. 옛 날에는 손으로 늘렸으나 요즘은 기계로 늘 린다고 한다. 그냥 성형 틀에 넣고 뽑아내는 일반 소면과 달리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 다. 대형마트에 가면 살 수 있다. 일반 소면 보다는 값이 세 배 정도 비싸다. 수연 소면 이 없으면 일반 소면을 사용해도 된다. 비빔국수 양념: 고추장을 베이스로 하고 여기에 간장, 설탕, 깨소금, 참기름을 ‘적당

나는 입을 고생시키는 걸로 때우기로 했다. 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감으로 맞추는 수

히’ 섞어서 만든다. 섞어가며 맛을 보면서

일단 고추장에 간장과 다른 양념들을 조금

밖에 없다. 삶으면서 젓가락으로 국수를 몇

적당한 맛의 배합을 찾는다. 생각보다 어렵

씩 섞어가며 계속 맛을 보면서 이 맛이다 싶

가닥씩 꺼내서 먹어보는 것으로 타이밍을 맞

지 않다.

을 때까지 섞어 보았다. 손맛 좋은 어머니의

췄다. 국수를 삶고 나서는 건져내서 찬물에

유전자 때문인지, 집사람의 편달 때문인지 다

헹궈 식힌 다음에 체에 받쳐서 물기를 뺐다.

묵은지는 잎새 부분을 제거하고 줄기 부 분만을 잘게 잘라 사용한다. 맛이 더 깔끔 해지고 사각사각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행히 생각보다는 오래 걸리지 않아 뱃속에

물기가 빠진 국수를 양념과 묵은지, 오이

불이 나기 전에 내가 원하는 양념 맛을 찾을

를 함께 넣고 손으로 골고루 비볐다. 잘 비벼

다. 지단은 흰자를 빼고 노른자로만 부치면

수 있었다.

진 국수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계란 지단과

색깔이 더 선명해서 먹음직스럽다.

다음으로는 묵은지를 꺼내서 준비를 했다. 무순을 얹으니 비빔국수가 모두 완성됐다. 비빔국수에 사용하는 묵은지는 잎새 부분이

이렇게 만든 비빔국수의 맛은 한마디로 정

아니라 줄기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핀잔꾼

리하면 새콤, 달콤, 매콤 삼총사다. 묵은 김치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줄기 부분을 사용해야

줄기 부분이 아삭거리며 씹히는 느낌이 우선

사각사각 씹히면서 깊은 맛이 더 느껴진단다. 좋고, 숙성된 깊은 김치 맛이 소면의 부드러

계란 지단을 부쳐서 적당히 잘라 준비한

오이는 지단과 비슷한 크기로 잘라 놓는 다. 씨 부분을 사용 하지 않으면 씹히는 맛 이 더 좋다. 무순은 어느 마트에서나 쉽게 살 수 있다. 쌉쌀한 맛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국수 삶기: 물을 펄펄 끓인 다음에 국수를

그동안 비빔국수를 자주 먹어 오면서도 주목

운 밀가루 맛과 잘 어우러진다. 매운맛으로

하지 못했던 세심한 부분이다. 핀잔쟁이가 슬

텁텁해지는 입맛은 오이가 상큼하게 보완해

슬 고수로 바뀌어 보이기 시작했다. 찍소리

준다. 무순의 쌉쌀한 맛이 매운맛을 더 꽉 차

관건이다. 삶으면서 젓가락으로 몇 가닥씩

안 하고 묵은지 줄기 부분만을 잘라내서 먹

게 만들어줬다. 좀 맵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건져 먹어보면서 타이밍을 결정하면 된다.

집어넣고 삶는다. 2~3분 정도면 되는데, 너 무 풀어지지 않고 쫄깃한 상태로 삶는 것이

기 좋게 잘게 준비를 했다. 오이를 얇게 채 썰

둘러앉아 땀을 흘리면서 한 그릇을 뚝딱 비

삶은 다음에는 체를 이용해 바로 건져내서

고 계란 지단을 부쳐 잘라 놓으니 모든 준비

우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같이 활력이 생긴

찬물이 담긴 그릇에 넣고

가 끝났다.

느낌이다.

손으로 잡아서 헹군

이제 재료 준비는 모두 끝났고 비빔국수를 만드는 과정이다. 먼저 국수를 삶았다. 물을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의 음식을 하나 배웠다. 역시 맛있다.

뜨겁게 끓인 다음 국수를 집어넣고 2~3분가 량 ‘적당히’ 삶았다. 너무 풀어지지 않고 쫄 깃하게 삶아야 하는데 국수의 양에 따라 삶

주영욱씨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중 사진, 여행, 음식

다. 어느 정도 식 으면 바로 건져 서 체에 받쳐놓 고 물기를 뺀다.

을 진지하게 좋아한다. 마케팅리서치 회사 마크로밀코리아 대표이사.

SUNDAY MAGAZINE 25


HOUSE

영화 속 똑똑한 집 꿈꾸고 있나요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4> 미래 주택

미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이들의 공동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1990년 작 영화 ‘토탈 리콜’의 첫 장면은

21세기를 맞으며 각국은 뉴 밀레니엄 시

는 IT기술의 결과물인 사이버 공간의 확장

2084년의 미래 주택이다. 숲 속의 집처럼 보

대를 선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

이다. 물리적 공간 외에 가상현실이 더해지는

이지만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은 하나의 디스

비했다. 미래의 집 연구 또한 경쟁적으로 이

상황에 따른 변화 연구가 필수적이 됐다. 유

플레이 화면이다. 날씨 변화도 보여주고, TV 어졌다. 미국 MIT에서는 1995년『Being

비쿼터스 공간의 탄생이다. 둘째는 기후재난

가 대형 동영상 전화기가 되기도 한다. 가상

Digital』을 쓴 니컬러스 네그로폰테가 미디

과 탄소저감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됨

현실의 세계를 앞장서 제시한 영화로 많은

어랩(media lab)을 출범시켰다. 이곳에서

에 따라 지속가능성의 탐구다. 녹색성장으로

하버드 의대와 미국노인협회(AARP) 및 여

함축되는 친환경 에너지 자급형 주거형태 연

2054년의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 톰 크루

러 산업체의 참여 아래 2004년 7월 39평 크

구개발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겠다.

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

기 아파트 형식의 실험공간인 플레이스 랩

이런 흐름 속에서 일본의 ‘파피 홈(PAPI

는 집 안에 있는 여러 개 투명 평판 디스플레

(Place lab)을 건설했다. 7개의 미래 환경 영

Dream Home)’이 탄생했다. PAPI는 Pal(사

이가 손동작과 안구 인식 등으로 작동되는

역을 설정하고, 초고령 사회 진입에 대비하는

이가 좋다)과 Pizzazz(활기 있다)의 합성어

장면이 돋보였다. 복제인간을 그린 영화 ‘아

연구 및 개발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다. 도쿄대 사카무라 겐 교수팀은 유비쿼터

SF영화들의 전범이 됐다.

26 SUNDAY MAGAZINE

집에 대한 추구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일랜드’(2005) 속 미래 주거공간에서는 침실

조지아테크에서 2002년 세운 어웨어 홈

스 컴퓨팅이 가능한 주거공간의 실현을 목

에서 수면상태를, 변기에서는 소변을 분석해

(Aware Home)이나 스웨덴 왕립기술과

표로 1989년 트론(TRON·The Real-time

일일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그날의 식단도

학대학이 주축이 된 커뮤니케이션 홈(com.

Operating Nucleus)하우스를 건립했다. 여

건강 상태에 맞춰 조절된다. 이처럼 영화나

Home), 벨기에의 리빙 투머로(Living

러 차례 실험과 개축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

만화, 소설 등 공상과학 세계에서 미래의 집

tomorrow) 등도 21세기 미래의 집을 선점

던 중, 2005년 아이치 엑스포를 준비하던 도

은 상상 속의 작업이다. 현실적으로는 미래의

하기 위해 맹진 중이다.

요타사의 지원으로 PAPI를 선보이게 됐다.


HOUSE

일본에는 우리나라 영·호남처럼 관동(간

⑤ 사람의 건강 상태와 심리 상태가 연계돼

현재로서는 보여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 왔다.

토·도쿄 중심지역)과 관서(간사이·오사카 중

작동하는 홈시어터

심지역) 지방이 있다. 이 두 지방의 대립 또한

⑥ 인텔리전트 수납공간과 일체화된 부엌·식

역사가 있다. 두 지역을 구분하는 중부지역에

탁 시스템

움을 만들 수 없다. PAPI 홈의 요소 기술들

동해(도카이·나고야 중심지역) 지방이 있고,

⑦ 생체 정보센서를 활용한 기상조절기능 등

이나 도요타의 개성 없는 조립식 생산체계로

그곳에 나고야시와 도요타시를 포함한 아이

수면의 질을 보장하는 쾌적 수면 침실

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집의 가치를 창출

단순히 진보한 기술의 조합만으로는 새로

하지 못한다.

치현이 있다.

드림하 우스 ‘ PA P I 2005년 아이치현 만국박 람회를 위해 도요타홈이 만 든 스마트하우스다. 일본식 정원을 즐길 수 있는 손님 접대용 다다미방. 거실. 기상시간 1시간 전 부터 천천히 커튼이 열리며 아침을 깨운다. 주차장. 정전 시에는 하

아이치 엑스포는 이런 배경 아래 21세기

이런 요소 기술들을 계속 이 집에서 실험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미래의 집은

를 여는 일본의 ‘희망 프로젝트’였다. 국가적

하고 연구개발하고자 했다. PAPI 홈은 외피

새로운 기술력과 자재의 총화 속에서 개인의

원을 공급받을 수 있다.

으로는 일본의 재기, 지역적으로는 관동·관

해결과 옥외 공간까지 연계해 각종 미래주택

삶이 가치지향적으로 융합해 건축될 때 창

전자제품과 실내 습도, 온도

서의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국토개발, 산업

연구 중 가장 집과 가까운 형상을 갖춘 솔루

조되는 것이다. 근대 조형의 중심이 된 바우

등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적으로는 렉서스를 앞세운 도요타의 미래 등

션이었다.

하우스의 시대정신이나 애플사의 모토처럼

어쩌면 완벽한 시나리오의 행사였다. 행사의

더 나아가 도요타홈의 시미즈 뎃타(淸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가치가 구현되고 창조적

주역은 당연히 도요타였고, 도쿄대 사카무라

哲太) 회장은 주택산업의 미래에 대한 포부

디자인으로 만들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교수의 트론하우스 또한 준비된 작품이었다.

도 발표했다. 즉 지금까지의 현장생산 방식을

것이다.

미래주택 PAPI 홈은 아이치 엑스포장의

자동차처럼 공장생산 방식으로 전환시켜 품

이브리드 자동차로부터 전 침실.‘PAPI’는 집안의

여수에서는 지금 엑스포가 한창이다. 그런

도요타 자동차박물관 옆 조용한 언덕 위에

질 100% 보장, 크레임 없는 시공 및 비용 대

데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또 산업적으로

있었다. 사카무라 교수팀이 PAPI를 통해 다

비 효과를 2배로 하는 주택생산 방식의 전면

우리는 무슨 전략을 구상하고 있나. 서양 문

음과 같은 내용을 추구했다.

적 전환을 주창한 것이다. 미래주택 생산의

명의 축제 장소로서의 엑스포를 150년 만에

세계 제패를 위한 속내도 드러낸 행사였다. 동아시아에서 구현하면서 일본, 중국, 한국 ① 식물의 광합성을 모방해 개발한 외벽 에

이렇게 아이치 엑스포는 70년 오사카, 85년

너지 시스템

쓰쿠바 이후 일본 내 세 번째 엑스포로서 21

② 유비쿼터스 커뮤니케이터에 의한 네트워

세기 재기를 꿈꾼 잔치였다.

은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얼마 전 다녀온 여수 밤바다에서 한류 스 타의 노래는 들려오는데, 한국이 선택한 미

그러나 이 행사 이후에도 일본의 ‘잃어버

래의 집 ‘엑스포 타운’은 오동도를 내려다보

최명철씨는 우리가 살고

③ 자동차와 집이 같은 시스템 하에서 에너

린 10년’은 계속됐다. 대규모 리콜 사태로 도

는 고층 아파트였다. 그것도 LH공사에서 턴

있는 집이라는 공간의 다

지나 정보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

요타의 눈물도 이어졌다. 나고야의 중부지

키 발주한 ‘작품’(?)이라니. 파리의 발레리 줄

크 인식 및 최적 제어 방식

레조가 『아파트 공화국』을 쓸 때는 그래도

④ 가족 구성원의 스타일이나 동작 인식들을

방 중흥론도 미뤄졌다. 최근 도요타 홈에 문

통한 자동 보안 시스템

의한 결과 “PAPI 홈은 2008년 문을 닫았고, 한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텐데….

음 단계를 생각하는 건축 가다. 이 같은 생각을 갖고 국가건축 정책위원으로 활 동했다. 단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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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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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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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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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애환이 있습니다. 촬영 대상을 발견하는 동시에 기쁨과 슬픔이 담긴 그 표정을 읽어야 해요. 그런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가능하죠. 제가 가난하 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발견하면 전부 찍어야 합니다. 놓치면 안 돼요. 심지어 싸움하는 장면도 찍어야죠. 저는 사람의 표정을 읽어야 하는 사진작가예요. 눈이 나쁘면 풍경밖에 못 찍죠. 제게 사진 하라고 하느님께서 눈을 밝게 해주시고 건강도 주셨습니다. 제가 올 해 우리 나이로 85세인데 젊은 사람도 잘 못 읽는 작은 글씨를 보니까요. 다큐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해야 합니다. 셔터를 눌러야 사진이 나오 죠. 대담하고 용감해야 해요. 사진은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 찍는다고 누가 욕하면 일본어로 ‘저… 무슨 일입니까’ 하면서 도망가요. 사진 찍고 나면 도망가 야 해요. 이걸 극복해야 스냅을 찍을 수 있는데 못하니까 풍경으로 가는 겁니다.”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에 렌즈를 들이대 온 최민식(84) 작가가 미공개 작품 150 점을 선보인다. 전쟁과 가난의 시절에 유년을 보낸 이 땅의 수많은 ‘소년’들에 대 한 인사다. 1957년부터 현재까지 자갈치시장 등 부산 일대를 중심으로 찍은 사 진들이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롯데갤러리

1 ‘부산’, 1966 2 ‘부산’, 연대 미상 3 ‘부산’, 1970

‘최민식 사진전-소년시대’ 6월 13일~7월 8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롯데갤러리 본점, 문의 02-726-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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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산사나이 박정헌의 손발 “저는 손가락 여덟 개와 발가락 두 개가 없습니다. 2005년 촐라체 등반 성공 후 하산하다 조난을 당했습니다. 기적같이 용케 살아왔지만 동상으로 잘라내야만 했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해 기다시피 거벽을 오르는 나에겐 생명을 잃은 일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슴에 품었던 산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히말라야에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168일간 히말라야 동서 2400㎞를 횡단했습니다. 남다른 손가락과 발가락이지만 패러글라이딩으로 횡단했습니다. 하늘에서 히말라야를 다시 품었습니다.”

30 SUNDAY MAGAZINE


COLUMN

미쳐 돌아가는 세상 끔찍한 드라마가 남 얘기 같지 않네 컬처

: ‘추적자’의 분노와 공포

“세상이 미쳐 날뛰는데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합 니까.” SBS 드라마 ‘추적자’에서 교통사고로 죽 은 딸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주인공 손현주 가 내뱉는다. 이 말은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 와 공포를 핵심으로 삼은 드라마의 주제와 에너지를 한꺼번에 드러낸다. 박봉에 시달리 면서도 모범경찰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 히 살아온 평범한 시민 손현주에게 어느 날 닥친 벼락같은 딸의 죽음은 최고 권좌의 정

그건 단지 권력층, 재벌이나 연예인 같은 기

김상중, 무력하지만 충실한 형사 강신일 모두

치인, 재벌, 법조계 그리고 톱스타 연예인 등

득권층에 대해 가지는 반감 때문만은 아니다. 안정감 있게 수많은 사건과 사건이 얽힌 이

사회 기득권층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있는

나날이 쏟아지는 아이들의 죽음과 무차별적

드라마에 편안히 몰입시킨다. 재벌과 톱스타

더러운 그물망 안으로 그를 끌고 들어간다.

인 살인사건의 소식들에 두려워하면서도 사

의 불륜, 교통사고, 법정의 복수 같은 전형적

시청자들은 그 안에서 죽음을 둘러싼 진실

회의 안전망이 나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

인 에피소드만을 끌어 모았으면서도 각 계층

을 밝혀내 그가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지만 어

는 일상의 두려움이 이 드라마를 자꾸 현실

들의 삶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현실에

느덧 자꾸만 그물 속에 더 갇혀 스스로를 더

속의 나를 비춰보게 만든다. 영화 ‘부러진 화

밀착한 대사와 사건들은 다소 올드한 스타일

옥죄는 듯한 주인공의 답답함에 공감한다. 뒤

살’이나 ‘도가니’에 이어 안방에서까지 이런

이긴 해도 우직하고 정성스럽게 이야기의 힘

엉켜버린 잘못된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

드라마가 등장하는 것은 콘텐트를 만드는 사

을 이끌어낸다.

스로 그물을 끊는 수밖에 없다. 결국 손에 총

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이런 일상의 공

주인공의 열정과 복수심이 어떻게 현실 속

을 들고 재판정에서 용의자인 아이돌 스타의

포를 이야기하고 공감해야 할 필요가 커져간

에서 차분히 마무리될 수 있을까가 앞으로

심장을 쏴버린 손현주. “법은 멀고 주먹은 가

다는 의미일 것이다.

궁금해지는 포인트다. 넘쳐나는 파토스로 손

까운” 힘없는 이의 사적인 복수에 시청자는

분노와 공포만이 이 드라마의 장점은 아니

쉽게 모든 기득권층을 악마 같은 음모론 속

잠깐이나마 시원함을 느낀다. 그러나 순간의

다. 시시껄렁한 애정관계, 불필요한 배경설명

의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

카타르시스를 가져온 그의 복수가 가져올 파

없이 이 드라마는 곧장 이야기 속으로 돌진

해 보인다.

국을 누구나 알기에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해 들어간다. 작가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앞으로도 대중의 분노와 공포를 담은 드

‘추적자’는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 그런 쓸데없

라마와 영화들이 계속 등장하겠지만, 복수

가 느끼는 이 사회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얼

는 것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속도감

심과 증오의 뜨거운 온도만으로는 현실의 문

마나 촘촘히 우리의 신경을 지배하는지를 여

있게 팍팍 달려가는 이야기 사이사이를 내공

제도 해결될 수 없듯이, 좀 더 객관적이고 차

실히 보여준다. “끔찍한 현실을 그린 드라마

이 충분히 쌓인 배우들의 표정 하나, 목소리

분하게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

라 외면하고 싶었지만 우연히 보는 순간 눈을

톤 하나가 단단히 메우고 있다.

고 그 속의 주인공들의 실존적인 문제를 담

뗄 수가 없었다”는 중장년층의 댓글이 이어

희극과 비극 어떤 걸 해도 제 몫을 해내는

아낼 수 있게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낼 필요

지는 걸 보더라도 그걸 알 수 있다. 자녀의 억

손현주이지만 그가 제일 잘하는 것은 멍한

가 있어 보인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울한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아픔을 해결하는

표정으로 인생의 달고 쓴맛을 얼굴에 담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력하고 냉정하게 인

데도 돈과 권력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목소

내는 역할이다. 딸을 잃은 분노와 허탈함, 그

정해야 할 현실이 있기에 한 명의 영웅이 그

리도 제대로 낼 수 없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

리고 복수심이 뒤엉킨 그의 표정연기는 단연

려내는 정의의 판타지만 기대할 수는 없기

는 자꾸만 현실 속의 내가 느끼는 공포를 상

발군이며, 나약한 어머니 역의 김도연, 노회

때문이다.

기시킨다.

한 박근형, 선함을 가장한 악마적인 본성의

글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 SUNDAY MAGAZINE 31


SOULSEARCHING

우리는 생존 기계다. 유전자라는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넣은 로봇 운반자인 것이다.

We are survival machines-robot vehicles blindly programmed to preserve the selfish molecules known as genes. 소피는 왜 어린 딸을 선택했을까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4>『이기적 유전자』와 리처드 도킨스

“세상을 살면서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가

리고 그것들의 유지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기 복제자로만 채워진다. 어떤 자기 복제자가

치관·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

이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 세계

해보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내게는

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

가 어떤 세계인가에 달려 있다. 여기서 제일

그런 엄청난 책이 한 권 있다.”

제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

중요한 것은 다른 자기 복제자와 그것이 가져

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다.”

오는 결과다. 결국 여러 생물 개체 속에 자리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이화여대 최재 천 교수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여기서 ‘우리’란 인간만을 가리키는 게 아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1941~ )

잡은 유전자들끼리 서로서로 인과의 화살을

Gene)』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정도 극찬을

니라 모든 동식물과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포

받은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볼 만하다. 당신도

함한다. 유전자는 박테리아에서 코끼리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문득 메릴 스트리프가 주

케냐에서 태어나 옥스퍼

정말 오랜만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책장을 넘

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분

연한 영화 ‘소피의 선택’이 떠올랐다. 이 영

드 대학교에서 수학했으

기는 경험을 해볼 것이다.

자며, 불멸의 존재다. 즉 유전자는 몸이 노쇠

화의 극적인 장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

끌려간 소피가 독일군 장교의 강요로 두 아

지성의 한 명으로 손꼽힐

옥스퍼드 대학교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 스는 1976년 발표한 이 책에서 우리에게 삶

하거나 죽기 전에 그들의 몸을 차례로 포기

쏘아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인 것이다.

해 버림으로써 세대를 거치면서 몸에서 몸으 이 중 하나를 가스실로 보내야 하는 순간이

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로 옮겨가는 것이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이라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유전자

정도로 영향력 있는 과학 자이자 저술가다.

다. 소피는 “그러지 말아요(Don’t make me choose)”라고 몇 번이나 사정하다 끝내 딸을

는 관점에서 생명의 진화를 설명했다면, 도킨

가 우리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것인데, 유전

스는 유전자의 눈으로 이 세상과 삶의 의미

자 스스로 직접 로봇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를 돌아보게 만든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닭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듯 한다는 것이

수없이 물었다. 소피는 왜 어린 딸을 선택했

이 알을 낳는 게 아니라 닭은 이 세상에 잠시

다.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에 대

을까? 영화에서 소피의 딸은 여섯 살, 아들은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알 속의 유전

처하기 위한 규칙들을 사전에 만들어 최선의

여덟 살 정도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자야말로 닭의 진짜 주인이다. 유전자의 관점

대책을 강구해 두는 방식이다. 가령 북극곰

확률은 아무래도 여덟 살짜리 남자 아이가

에서 보자면 알이 닭을 낳는 것이다.

유전자는 곧 생겨날 생존 기계의 미래가 춥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보다 클 것이다. 새들

도킨스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40억 년

다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두꺼운 모피를 만

도 먹이가 부족할 때는 가장 강한 새끼에게

선택한다. 아들을 살린 것이다.

전 스스로 복제하는 힘을 갖게 된 분자가 원

든다. 또 얼음과 눈 속에서 유리하도록 모피

먹이를 주고 약한 새끼는 굶어 죽도록 놔둔

시 대양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 자기 복제

를 백색으로 위장한다. 도킨스는 마지막 장

다. 소피의 뇌도 이기적 유전자가 만든 것이

자는 더 잘 살아남기 위해 운반자까지 만들

에서 왜 우리는 이렇게 크고 복잡하게 만들

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개체를 살리도록 프

었다. 자기가 사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

어졌느냐고 묻는다. 생물 물질이 왜, 무엇 때

로그램을 짜 넣은 것이다. 너무 냉정한가.

한 것이다. 생존 기계는 더 커지고 정교해졌

문에 모여서 생물체를 구성하느냐는 물음이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영화의 결말

다. 개량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흐른 지금 자

다. 답은 유전자들의 이익 때문일 것이다. 우

에서 소피가 그러듯이 우리의 뇌는 이기적 유

기 복제자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 속에

리 자신의 유전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이유

전자를 향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더

안전하게 거대한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는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라서가 아니라

구나 개체가 아닌 인류를 위해 생애를 바친

복잡한 간접 경로를 통해 외계와 연락하고

미래로의 같은 출구, 즉 알이나 정자를 공유

테레사 수녀 같은 분도 있고, 인간이 아닌 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

원격 조정기로 외계를 조작하고 있다.

하고 있어서다.

른 종의 보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얼마

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

“이것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또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시간이 지남

한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

에 따라 이 세계는 가장 강하고 재주 있는 자

32 SUNDAY MAGAZINE

나 많은가. 인간의 위대함은 이런 데서 나오 는 것이 아닐까.

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 다.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CARTOON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근대 인류의 유적

에펠탑 에펠탑을 세운 귀스타브 에펠의 인생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 “철을 가지고 금을 만든 자.”

실체 없는 이상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디자인과 현대 예술계에는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이라는, 에펠탑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유명한 철제 탑이 있다. 어디 있냐고?

1886년 프랑스 정부는 파리에서

400m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 세 개의 거대한

열리게 될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공간을 지탱하고 각각의 공간은

300m 높이의 철탑을 세우기로 하고

정해진 주기에 따라 독립적으로 회전한다.

150만 프랑의 정부 지원 사업을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문화예술 운동이었던

공모했는데 당선된 것은

러시아 구축주의를 이끌었던

650만 프랑이 넘게 드는

블라디미르 타틀린이 그렇게 설계했던

귀스타브 에펠의 설계였다.

기상천외한 건물은 설계도와 6m짜리 모형 제작으로 끝났다.

미완의 구상이었지만 족적은 크게 남겼지. 현대의 추상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역사에서 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니까.

나는 정부를 상대로 모험을 했어. 공사를 맡는 대신 향후 20년간 에펠탑에 관련된 모든 수익금을 내 회사가 갖겠다고. 공사에 800만 프랑을 썼지만 본전은 금방 찾았어.

맨 위의 원기둥 공간은 하루에 1회전하고 사회주의 선전을 위해 사용.

흥! 내 눈에는 그저 쇠로 된 흉물로밖에 안 보인다.

에펠탑의 공사가 시작될 무렵에는

2층 피라미드형 공간은 한 달에 1회전하고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간부들이 사용할 공간.

모파상 같은 저명한 문학가를 비롯한 많은 이가 에펠의 설계를 비난했다.

1층 입방체 공간은 1년에 1회전하고 인터내셔널 회의를

그러나 완공된 탑의 위용을 본 사람들은 거의 다

위한 공간.

찬사를 보냈고, 프랑스 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동시대에 그토록 뛰어난 모뉴멘트를 얻은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철에 관해서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이자 예술가였던 에펠은 자유의 여신상을 지탱하는 뼈대를 비롯해 많은 철제 구조물들을 설계하고 만들었어. 에펠은 집요한 근성과 함께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함도 가진 건축가였다. 덕분에 그 거대한 에펠 탑 공사 중에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주의 이념을 표상하는 건축이라면서 왠지 계급을 구분하는 도형 같지 않아? 더구나 러시아에는 저걸 만들 철도 없었어. 위대한 실험으로 그친 모형은 현실과 경험에 앞서 높은 이상에 고무되었던 당시 사회주의 예술가들의 의식 상태와 닮은 듯해요.

김재훈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했다. 인문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정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SUNDAY MAGAZINE 33


CONTE

버스 안에서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나는 두 아들에게 당부한다. 사랑하는 사람

여자 4호는 앉지 않는다. 빈자리가 있는데 끝

과는 절대 지하철을 타지 말 것. 무심코 차창

내 서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것은 강렬

에 비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를 생

한 의사표시다. 결국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

각이 아니라면.

야 하는 것일까? 나는 절망한다.

신분당선이 생긴 후 출퇴근은 꽤 낭만적이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선택받는 날이 있

다. 이용하는 승객이 줄어든 만큼 버스에는

으면 선택하는 날도 있다. 하루는 버스에 오

빈 자리도 많이 생겼다. 그렇다. 옆자리에 누

르자 2인용 좌석에 한 사람씩 앉아 있다. 오늘

군가 와 앉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2인용 좌

은 내가 선택하는 승객 남자 1호다. 나는 내가

석에 혼자 앉아 있다. 다음 정류소에서 어떤

앉고 싶은 자리에 가 앉으면 된다. 만일 2인용

사람이 옆자리에 와 앉을지 기대하면서. 나

좌석이 통째로 비어 있다면 일단 그곳에 가

는 여자가 옆에 앉길 희망한다. 특별한 경우

앉아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

신분당선이 생긴 후 출퇴근이 꽤 쾌적해졌다. 가 아니라면 대개 남자보다 여자의 체구가 작

만 그것이 애정촌 버스의 규칙이다. 다행히 그

집은 분당이고 사무실은 강남인데 정자역에

으니까. 또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좋은 냄새가

런 자리는 없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승객

서 강남역까지 19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

나니까. 그러나 선택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

들을 둘러본다. 내 마음은 여자 3호 옆에 가

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신분당선

니라 옆자리에 앉을 사람에게 있다.

앉고 싶다.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사람은

전철을 이용하는구나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가령 버스 안을 하나의 애정촌이라고 해보

두 종류가 있다. 야심을 좇는 자와 허영심에

않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전철

자. 나는 앞에서 네 번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사로잡힌 자. 허영심 가득한 나는 결국 남자

을 이용하는 사람과 버스를 타는 사람. 물론

선택을 기다리는 남자 4호쯤 되겠다. 승객 여

2호 옆에 가 앉고 만다. 다음엔 꼭 마음이 이

나는 버스 쪽이다. 그러니까 신분당선이 생기

자 1호는 내 앞자리에 앉는다. 승객 여자 2호

끄는 대로 여자 옆에 가 앉으리라 다짐하면서.

고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 출근 때

는 내 뒷자리로 간다. 승객 3호는 남자다. 체

요즘도 나는 다짐만 하고 여전히 남자 옆

버스 이용객 수가 줄었다. 전에는 버스에서

구가 크다. 나는 뒤돌아본다. 아직 자리가 한

에 가 앉는다. 쓸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딱 한

서가는 것이 당연했다면 지금은 앉아 가는

군데 더 남아 있다. 나는 몸을 부풀리고 다리

번 용기를 내 여자 옆에 가 앉아본 적이 있었

것이 당연할 정도다.

를 쩍 벌려 기도한다. 기도의 응답인지 남자

다. 맞다. 내가 앉자마자 여자가 벌떡 일어나

는 다른 자리로 간다. 승객 여자 4호는 미인이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왜 나는 전철보다 버스를 선호할까? 우리 나라의 전철은 대개 지하로 다니는데 창 밖

다. 남은 좌석은 오직 내 옆자리밖에 없다. 하

에 볼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창에 비친, 실제

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나는 다리를

보다 훨씬 지치고 우울한 자신의 얼굴 말고는. 모으고 옆에 사람 앉힐 채비를 한다. 그러나

들숨날숨

34 SUNDAY MAGAZINE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아웃도어는 즐거운 불편” ▶“남들은 내가 노인답지 않다고 합니다. 맞

▶“우리는 가능한 한 ‘즐거운 일’을 ‘편한 일’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큰 불행인지 말해

는 말입니다. 나는 20대와 30대에 하던 일을

과 분리해 사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즐

주는 영화다.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거움을 편리함으로 바꿔버리지 않는 사고방

부가 감정이입했을 거다. 함께 살수록 왜 대

추구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식’의 한 가지 예가 바로 ‘캠프’ 같은 아웃도

화가 무서워지는 걸까. 그 소통의 문제를 건

그랬다면 나는 이미 성숙할 대로 성숙해져서

어 활동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전기도, 수도

드렸는데 관객들이 크게 흔들리는 걸 보면

늙어버렸을 겁니다. 늙은이가 됐다는 것은 더

도, 가스레인지도 없는 곳으로 떠나 캠핑하

소통의 부재가 정말 심각한 문제인가 보다.

감동도 없고, 더 해볼 것도 없다는 의미인데

는 것. 왜 이런 불편을 사서 하는 것일까? 물

정인이 원한 건 매력적인 남자가 아니라 얘기

나에게는 아직도 읽지 않은 책이 정말 많습

론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즉 아웃도어란

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다. 사람들

니다. 책이 나의 인생이라면 무한히 많은 인생

‘즐거운 불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불

이 트위터·페이스북에 매달리는 것도 누군가

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편함과 즐거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딱

통할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닌가.”

-이태형『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이어령 인

붙어 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민규동 감독 인터뷰 중

터뷰’ 중에서

-쓰지 신이치『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중에서

에서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들녘 하모니 요즘 들판에서 나는 소리가 아주 다양합니다. 물 댄 논에서 땅을 뒤집는 트랙터는 ‘철퍽철퍽’ 힘겨운 소리를, 트랙터 뒤를 쫓으며 먹이 찾는 노랑머리백로는 ‘끼룩끼룩’ 행복한 소리를, 그리고 건너편 논에서는 ‘철 철 철’ 논물 대는 급한 소리가 화음을 이룹니다. 괭이질 바쁜 농부는 그 모든 소리에 아랑곳없이 ‘한 땀 한 땀’ 논둑을 다져갑니다. 언제나 그렇듯 멀찍이서 이를 바라보면 각각의 역동적인 움직임들이 조화로운 자연의 틀 안에 있는 듯 보입니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마냥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볼 땐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생각의 맹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논에 발을 담그지 않았으니 논물의 차가움을 모르지 않느냐’고 노랑머리백로가 말하고, ‘손에 괭이를 쥐지 않았으니 허리의 아픔을 모르지 않느냐’고 밀짚모자 쓴 농부가 말합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세상은 또 달라’라는 소리가 맴돕니다. 들판의 소리가 엄중합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SUNDAY MAGAZINE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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