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orea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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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7~28, 2012. no.272. sunday.joongang.co.kr

ISSUE

상처 보듬는 만화가

아베 야로


CONTENTS THIS WEEKS PEOPLE

06

만화 심야식당 중에서

20일 타계한 ‘비지스’ 보컬 로빈 깁

ISSUE

정동길 시간여행

08

만화 ‘심야식당’ 작가 아베 야로

REVIEW & PREVIEW

editor’s letter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로터리’ 가 나옵니다. 덕수궁길, 서소문로11길, 그

14

현대무용 ‘천년의 평화’

리고 정동길이 엇갈리는 곳이죠. 이곳은

BOOK

대한제국의 역사가 요동치고, 근대 교육의

16

씨앗이 뿌려졌으며, 제국주의 열강의 힘

숨은 책 찾기 <6> 열린책들『나 아닌 다른 삶』

겨루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근대

TR AVEL

문화유산 1번지’입니다.

18

특히 덕수궁의 별채인 중명전(重明殿)은

프로방스 와인 마을 샤토네프 뒤 파프

ART

고종이 을사늑약을 맺고 헤이그에 특사

22

를 파견한 곳입니다. 지난 1월 이곳으로 정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7> 츠베탕 토도로프의 『일상예찬』

GALLERY

동 일대의 ‘유력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중 명전을 관리하고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

24

의 김종규 이사장을 비롯해 미국 대사관

루이스 부르주아의 초기 조각들

PORTR AIT ESSAY

마크 토콜라 부대사, 대한성공회 서울주

25

교좌성당 이경호 주임신부, 배재학당 황방

강우현의 ‘도깨비 방망이’ 인생

FOOD

남 이사장 등 70여 명은 이 일대를 명품 역

26

사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데 의기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3> 봄나물 도다리 회덮밥

HOUSE

투합했죠. 그 첫 결과가 25일부터 27일까 지 열리는 ‘대한제국으로의 시간여행’ 행

28

사입니다. 고종황제가 외국 공사를 접견하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3> 월든 오두막과 세한도의 집

프로방스 샤토네프 뒤 파프 마을

COLUMN

두로, ‘변사와 함께하는 근대 무성영화 상

31

영’(이화백주년기념관), 유관순 열사의 이

컬처 # : 무한도전 결방 언제까지

SOUL-SEARCHING

야기가 담긴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 오

32

르간 공개(정동 제일교회) 등 다채로운 행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3>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솔제니친

CARTOON

사가 이어졌죠. 27일에는 안창모 교수와 함께하는 정동 심층 탐방(오후 3시)이 남

33

아 있네요. 문화유산국민신탁(02-732-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VS

CONTE

7524)이 주말마다 운영하는 ‘다 같이 돌

34

자 정동 한 바퀴’(토·일 오후 1시30분부터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PHOTO ESSAY

는 형식으로 중명전에서 열린 개막식을 필

두 시간)도 있고요. 일요일 오후 자녀들과

35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세상을 뜻깊게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사는 방법 아닐까요.

프란스 반 미리스의 ‘주막집 풍경’, 마우리초이스 미술관, 헤이그

데이비드 소로의『월든』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S MAGAZINE 표지 ‘심야식당’의 작가 아베 야로가 중앙SUNDAY 독자를 위해 그려온 자화상. 深夜食堂 © ABE Yaro / Shogakukan Inc.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강희경(뉴욕) 박철희(베이징)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이용임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구독신청 1588-3600, 080-023-5001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04 SUNDAY MAGAZINE



THIS WEEK PEOPLE

Don’t forget to remember me 하늘로 무대 옮긴 디스코 제왕 암으로 숨진 비지스 보컬 로빈 깁

1970년대 후반 전 세계에 불어닥친 디스코 음악은 원래 도시 흑인클럽에서 시작됐다. 이 참을

1979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수 없는 흥겨움을 세계 젊은이들에게 삽시간에 감염시킨 것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타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비지스’.

난 존 트래볼타의 춤, 그리고 ‘비지스’의 음악이었다. 당시 깁(Gibb) 삼형제의 곡 주조술과 보컬 의 하모니는 경이로웠다. 언론은 그들을 “우리 시대의 비틀스”라 일컬었다. 과거 비틀스가 그랬 듯 이때 비지스는 발표한 여섯 곡을 내리 전미 차트 정상에 올려놓는 가공할 히트 퍼레이드를 전개했다. 세 멤버의 화음과 리듬감은 어떤 평론가가 표현한 대로 “같은 DNA가 아니면 도저히 구사하 지 못할” 성질의 것이었다. 특히 빌보드 차트 1위곡들인 ‘Stayin’ alive’와 ‘How deep is your love’‘Too much heaven’에서 비지스는 마치 칼을 능란하게 휘두르는 검객과도 같은 변화무 쌍한 보컬 하모니를 맘껏 펼치며 디스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디스코는 단조로운 반복 비트 의 통조림화된 음악”이라거나 “흑인 디스코를 백인들이 강탈했다”는 세간의 비판도 그들의 빼 어난 음악 앞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핵심에 로빈 깁의 청명한 비브라토와 형 배리 깁의 가성이 있었다. 디스코 시대에는 배리 깁이 팀 내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그래도 비지스 보컬의 상징은 엄연히 로빈 깁이었다. 로빈 깁은 디스코 이전 1960년대 ‘비지스 팝 발라드 전성시대’를 견인했다. 음악 팬들은 아름답고 애절한 선율을 청명하게, 그러나 떨림이 강한 보이스 컬러로 소화해 내는 로빈 깁의 가창력에 너도나도 귀를 맡겼다. 국내 라디오를 점령한 이 무렵 ‘Don’t forget to remember’나 ‘I started a joke’ ‘Massachusetts’와 같은 잊을 수 없는 비지스의 골든 레퍼토리에서 메인 보컬을 담당한 것은 주로 로빈 깁이었다. 로빈은 보컬 주도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형 배리 깁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때 비지스 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홀로서기를 감행한 것도 자신이 아닌 형이 부른 노래를 타이틀곡으 로 내건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로빈 깁은 솔로 활동을 통해서도 ‘Saved by the bell’ ‘Juliet’ 등의 주옥 같은 히트곡을 남겼다. 삼형제 중 그만이 전성기에 별도의 솔로활동을 했다 는 것부터가 그가 비지스의 간판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는 2005년 비지스의 일원이 아닌 솔로 로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20일 런던에서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로빈 깁은 1960년대 발라드 시대와 70년대 디스코 시대를 거푸 정복한 인물이다. ‘발라드 귀재’ 그리고 ‘디스코 왕’. 이 점에서 그는 3일 앞서 세상 을 떠난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서머보다 이름 앞에 영예로운 수식을 하나 더 갖는 셈이다. 1948 년생 도나 서머, 한 살 적은 49년생의 로빈 깁은 둘 다 12월에 태어났고 오랜 암 투병 끝에 삶을 마 쳤다. 지금 기성세대의 청춘 시절을 잠식한 디스코 음악의 남녀, 그리고 흑백 대표는 이렇게 거 의 동시에 퇴장했다. 음악학자 폴 감바치니는 비지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백인 소울 보이스 중 하나”라고 했다. 로빈 깁이 ‘위대한 보컬’이라는 건 40~60대 어른들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06 SUNDAY MAGAZINE

왼쪽부터 모리스·로빈·배리 깁. 사진 AP=연합뉴스



ISSUE

深夜食堂 © ABE Yaro / Shogakukan Inc.

08 SUNDAY MAGAZINE


ISSUE

눈물이 나오기 직전 멈추게 하는 엷은 맛의 만화를 그린다 치유의 힘 ‘심야식당’ 작가 아베 야로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맥주·소주 등이 전부지만 원하는 것을 말하면 다 만들어 주는 ‘마스터’가 있는 밥집. 하루 일과를 끝내 고도 뭔가 할 일이 남아 있는 기분이 드는 외로운 인생들이 이곳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야쿠자, 게이바 마담, 스트리퍼, 호스트, 성인비디오 배우, 거리의 악사…. 도시생활에서 살짝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손님들이 주문하는 것은 문어 모양 비엔나소시지, 달걀말 이, 어제 먹던 카레 등 하나같이 집에서 먹는 단순한 음식들이다. 누구나 먹어본 기억이 있는 소박한 음식과 고단한 삶의 모습이 오버랩될 때 그들의 외로움은 나눠지고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훈훈해진다. 2006년 일본의 성인만화 잡지 ‘빅 코믹 오리지널’에 연재를 시작한 ‘심야식당’은 화려 아베 야로가 인터뷰 도중 중앙SUNDAY 독자를 위해 사인을 하고 있다.

하지 않은 요리와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담백하게 엮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흔해빠진 성공지향적 스토리가 아닌, 별일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소소함으 로 일상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그래서 만화 ‘심야식당’은 치유다. 무한경쟁의 정점에 선 한국인들에게도 이 만화는 제대로 꽂혔다. 몇 해 전부터 이미지를 본뜬 TV광고를 비롯해 라디오 프로·가요·책 제목 등에 ‘심야식당’이란 단어가 광범위하 게 사용됐다. 단행본은 누적판매 30만 부(일본 110만 부)를 돌파했다. 공짜 웹툰 천국인 한국에서 단행본 만화가 이만큼 팔렸다는 것은 매니어층 지지도를 입증한다. 최신간인 9권은 4월 27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간됐을 정도다. 동시 발간을 기념해 12일 교보 문고에서 열린 작가 사인회 참석 행렬은 광화문 지하철역 아래까지 이어졌다. 2009년과 2011년 제작된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 최초로 한국에서 정식 DVD 발매’라 는 기록도 세웠다. 본국을 제치고 우리가 먼저 창작뮤지컬로도 제작 중이다. 한번 읽고 마는 단순한 만화에 그치지 않고, 이런저런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원소스 멀티유스 콘텐트. 아는 얘기지만 자꾸 다시 보고 싶어지고, 보면서 잔잔한 ‘행복’까지 느끼게 하 는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가 아베 야로(安倍夜郎·49)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 조건도 ‘사진 촬영 금지’. 소심한 이미지를 예상했지만 만나 보니 반전 이 있었다. 시종일관 소탈하고 유쾌했고 얼굴만 가리면 된다 며 기꺼이 촬영에 응했다. 스스로를 애써 포장하지 않고 힘주 지 않은 대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심야식당’ 사람들이 겹 쳐 보였다. 남보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대신 늘 먹던 음식에서 행복을 찾는 보통사람. 빈틈이 많아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처럼 치밀하지 않은 만큼 더 궁금해지는 사람이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대원CI·소학관 제공 SUNDAY MAGAZINE 09


ISSUE

深夜食堂 © ABE Yaro / Shogakukan Inc.

10 SUNDAY MAGAZINE


ISSUE

-지극히 일본적인 음식과 이야기인데 한국인이 왜 이렇게 공감할까.

“내가 묻고 싶을 정도다. 뮤지컬도 만든다던데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49세인 내가 그린 만화를 다른 나라 20대 여성도 읽어준다는 것이 놀랍다. 일본 연재 중인 잡지 타깃이 40대 후반~50대의 남성 이다. 그들을 대상으로 쓰고 있는데 해외에서 이렇게 팔린다는 것 이 정말 신기하다. 왜일까.” -단순한 음식과 평범한 사람의 삶을 오버랩시켜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기 때문 아닐까.

“내가 읽고 싶은 만화를 그리지만, 역시 독자의 공감을 얻어야 -팬들은 선생에게 ‘마스터’처럼 친근한 이미지를 기대한다. 굳이 얼굴을 숨기는

하는 건 맞다. 독자에게 어떻게 도달하는가가 문제인데, 데뷔 전에

이유는.

광고 일을 했었다. 광고란 전달이 중요한 역할이니까. 그렇다고 대

“마스터처럼 눈가에 흉터가 있을 거라는 오해도 받는데  독자

단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닌데, 독자들이 ‘내 안에도

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대신 작품 속에는 잠깐씩 나온다. 그

이런 부분이 있다’고 공감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먹는

리 좋은 역할로 나오는 건 아니니까 팬서비스라곤 할 수 없고. 지금

음식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먹을 만한 평범한 음식이니까.”

은 드물지만 내가 어린 시절 보던 만화에는 작자가 등장하는 경우

-작품에 등장한 요리 중 특별한 의미나 추억이 있는 요리가 있다면.

가 꽤 있었다. 말하자면 낡은 취향인데, 역으로 낡은 취향을 지금 보 여주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다.” -먹고 싶다면 뭐든 만들어주는 마스터의 존재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대 단한 캐릭터다. 어떻게 나오게 됐나.

“1권에 나온 것들은 비교적 내가 보통 먹는 음식이 많았다. 식은 카레, 빨간 비엔나소시지 같은 건 우리 세대 도시락에 들어 있던 거 였다.” -버터라이스가 나왔을 때 어린 시절이 떠올라 뭉클했다.

“요리 만화를 써보자는 편집자의 제안을 받고 차별화를 고민하

“아, 여기서도 먹나? 자주 가는 가게에서 만난 사람의 어린 시절

던 중 우연히 어떤 앨범의 내레이션 부분에서 밤 12시에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린 거다. 그는 유제품이 발달한 홋카이도에 살았

술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심야’란 설정을 떠올렸고,

는데, 나이가 꽤 많은 사람이라 당시엔 버터가 비쌌다. 아버지만 먹

단편으로 그리는 것이 기본이니 매회 하나의 요리를 등장시켜야

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에 더 먹고 싶었다더라. 간단하고 금방 만들

했다. 메뉴가 정해져 있으면 범위가 좁아져버리니 메뉴가 없다고 설

수 있으니 먹고 싶어지는 것 같다.”

정한 것뿐이다.” -모델이 있었나.

-단순한 요리가 바닥날 때도 된 것 같은데, 매회 소재를 어떻게 결정하나.

“버터라이스처럼 요리 아닌 요리를 보여주려고 한다. 너무 복잡

“마스터가 입는 ‘사무에(절에서 작업복으로 입는 옷)’를 입는 술

한 요리를 여기 내놓으면 이상할 테고…. 낮에는 당연한 듯 어디에

집 주인이 있었다. 외모는 그런 느낌이지만 그 사람이 뭐든 만들어

나 있지만 밤에는 볼 수 없는 음식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준 것은 아니었고. 의욕이 없고 손님이 많이 오면 어쩔 줄 몰라 하는

빵과 계란 프라이 같은 건 아침에 당연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새벽

타입이었다. 마스터가 친절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저

3시 넘어서 먹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나.”

유유자적, 누군가 얘기를 하면 들어줄 뿐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

-작품을 보면 요리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않으니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웃음). 역으로 그런 사람이 지금

“아니, 그런 생각 안 해봤다(웃음).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되는데

까지 만화 속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만화 캐릭터는 비교적 적극

혼자서는 전개가 안 되니까 그런 거지. 오히려 요리로 인해 인생관

적이지 않나. 의지가 엄청 강하다든지… 내 만화엔 그런 사람이 나

이 바뀌거나, 요리가 사건을 해결하거나 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지

오지 않는다. 목적도 없고 아무래도 좋은 만화인 거다. 지금까지 없

않다는 생각은 있다. 요리를 만듦으로써 지금까지 비뚤어져 있던

던 만화인데, 보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결코 위안을

사람이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는 내용이 많다. 요리로 문제 해결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고, 읽고 난 후 느낌이 좋은 것을 그리고 싶다

하는…. 그런 건 거짓말이란 거다. 백보 양보해 한 번쯤 그런 일이 있

는 생각은 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푸근함을 느끼게 되는지도

을 수도 있지만 매번 그런 패턴인 건 거짓 아닐까? 그런 거짓은 그리

모르겠다.”

고 싶지 않다.” SUNDAY MAGAZINE 11


ISSUE

심야식당에 등장한 음식들

12 SUNDAY MAGAZINE


ISSUE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한 장면. 사진 소학관 제공

“오늘 오다기리 조가 나올 거라 생각한 것 아닌가(웃음). 이래서 내가 얼굴을 안 보이는 거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등장해 딴청을 피우는 그런 역할은 일본 옛날 드라 마에 있었던 역할로 일종의 유희감각이다. 열심히 한 가지만을 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드라마가 더 두터워 진다. 감독이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일 뿐 내가 그런 메시지까지 생각 한 건 아니다. 뭐든 그리 깊이 생각하고 창작하지 않고 거의 표면만 보고 그린다.” -캐릭터와 요리, 스토리를 연결할 때 고민을 많이 해야하지 않나. -한 회 분량이 너무 짧다. 많은 걸 생략하는 스타일이 아쉬운 느낌도 있다.

“캐릭터를 만들어 가면서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면 그리 고민하

“애초 구상 단계에서 10쪽짜리로 만들면 어떨까 계획했고, 그대

지 않아도 표정이 나온다. 스토리 중심으로 만들어 가면 어렵겠지

로 가고 있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좀 모자란

만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 본다. 예컨대 오다기

듯한 느낌이 드니까 다음 번에도 읽고 싶어지지 않나. 한 권 읽고 배

리 조에게 이런 요리를 내면 그는 어떤 연기를 보일까, 그는 어떤 인

부르게 하는 것보다 다음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 길게 가는

생을 짐지고 있을까,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하도록 캐릭터를 만들

방법 아닐까 싶다.”

어가는 중에 이야기가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감동이나 아무 쓸모 없이 그저 즐거운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밝혔는데, 잔잔 한 감동을 주는 대표적인 치유 만화로 꼽히니 역설적이다.

“내 만화는 맛이 엷다고 생각한다. 더 감동시키려면 다른 방법이

-일본에는 장기연재되는 만화가 많다(※최장수 만화 ‘고르고13’은 소학관 빅 코믹스피리츠에 1968년부터 45년간 연재 중). ‘심야식당’도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수십 년씩 연재가 어떻게 가능할까.

있을 것이다. 감동의 요소가 있겠지만 그리는 방식을 통해 그렇게

“독자가 잡지와 같이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한 만화를 40세에

안 만든다. 감동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감성이 풍부해서가

갑자기 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30세부터 10년을 보다 보니 40

아닐까. 오버해서 긴 이야기를 만들거나 하면 더 감동적인 걸 쓸 수

세가 된다. 소년지의 경우는 연재가 그리 길지 않고 성인지라 그럴

도 있겠지만, 역시 맛있는 것을 많이 먹으면 좀 멋이 없는것 같다. 눈

거다. 어린이들은 계속 다른 걸 찾지만 성인은 계속 같은 것을 먹고

물이 나기 직전 멈추게 하는, 그런 느낌이 좋다. 마지막 등 떠밀기를

싶어 한다.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가면 그것을 항상 먹

하지 않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한국 드라마를 보면 감동을 강

을 수 있다는, 그런 것을 원하는 것 같다.”

요하는 듯한 게 있지 않나.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대학 시절 만화연구회 소속이었지만 광고회사를 다니다 41세에 데뷔했다. 꿈을 버리지 않았던 건가.

-한국 요리 중 만화에 등장시키고 싶은 요리는.

“일본 가정에서 쉽게 만들 만한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김치가 살짝 나온 적은 있지만, 아직 한국인들도 납득할 만한 레벨에 있지

“어릴 때부터 줄곧 그려왔다. 대학 때는 정말 만화가가 되고 싶었

않다.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 엉성한 지식으로 그리면 오히려 실례

지만 안 돼서 취직했다. 한가할 때 조금씩 그렸지만 상을 받을 만한

가 되고 실망할 것 같다. 그러지 않을 만한 레벨이 될 때 쓰고 싶다.”

만화를 그리는 데 오래 걸렸다. 꿈을 관철하겠다든지 그런 대단한 생각은 없고, 결국 만화가 좋았던 것 같다. 꼭 만화가가 돼야지 하는

아베 야로 와세다대 출신으로 19년간 광고회사를 다니다 2003년 소학관 신인

강한 의지는 없었다. 그렇게 의지가 강했다면 훨씬 전에 되지 않았

코믹대상에서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늦깎이로 데뷔했다.

을까. 회사와 만화 양쪽 다 버리지 못해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만화에는 선생이 뜬금없이 등장하지만 드라마에는 수수께끼 남자 오다기 리 조(※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웨이’에 출연했던 유명 배우)가 나와 “인생 깔보

2006년부터 만화잡지 ‘빅 코믹 오리지널’에 ‘심야식당’ 연재를 시작했다. 밥집 주 인인 마스터와 단골들이 비엔나소시지, 달걀말이 등 소박한 음식을 통해 감정을 교 류하는 이야기로 2008년 일본에서 ‘놓쳐선 안 될 만화 6선’, 2010년 소학관만화 상, 일본만화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9년과 2011년에는 고바야시 가오루, 오다

지 마”라는 대사를 던지곤 한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살아볼 만하다’

기리 조 등 유명 배우들 주연으로 드라마화됐다. 드라마는 최근 독일에서 개최된

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자신을 캐릭터화한 것인가.

‘World Media Festival 2012’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SUNDAY MAGAZINE 13


REVIEW & PREVIEW

세상 종말에 떠도는 인간 군상들의 몸짓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 폐막작 ‘천년의 평화’ 5월 30~31일 오후 8시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발레 역사상 초유의 기립박수가 터진 것은

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R석은 순식간에 동

1994년 4월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에서

났고, 최고의 문전성시를 이룬 무용 공연으

였다. 현대무용 안무가 앙즐랭 프렐조카주

로 기록됐다. 프렐조카주의 첫 내한공연 ‘봄

(Angelin Preljocaj)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

의 제전’은 살짝 엉큼한 생각을 했던 이들에

을 위해 안무한 ‘공원(Le Parc)’은 온몸에 소

게는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확실

름이 끼칠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바로크풍의

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덕분에 니진스키 원작

웅장한 무대와 의상, 극도로 세련되고 현대적

이래 80여 편에 이르는 재해석 유명작에 대

인 발레 움직임을 통해 그는 발레의 진화를

한 관심이 새삼 일기도 했다. 모리스 베자르,

증명했다. 이듬해 프렐조카주는 이 작품으로

피나 바우슈와 함께 나는 프렐조카주의 이

브누아 드 라당스 안무상을 수상했다.

작품을 3대 ‘봄의 제전’으로 꼽는다.

일반인 관객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 국내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면 ‘프렐리오

무용계. 발레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현대무

차이’. 1957년 알바니아에서 망명한 부모님

용 공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특히 냉랭

은 파리 도착 3일 만에 앙즐랭을 낳았다. 처

한 것이 현실이다.

음엔 클래식 발레를 시작했으나 카린 바에너

그런데 2003년 시댄스(서울세계무용축

(Karine Waehner), 머스 커닝햄에게 현대

제) 사무국은 폭주하는 문의전화로 몸살을

무용을 배우면서 안무에 눈을 떴다. 도미니

앓았다. 여자 무용수가 9분가량 전라로 춤

크 바구에(Dominique Bagouet) 등 다양

을 추는 것에 대한 확인전화이긴 했으나, 당

한 안무가의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면

아버지와 황혼녘 세 딸의 추억 찾기 연극 ‘아카시아꽃이 피었습니다’, 5월 8일~오픈런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 문의 02-3675-3676

우리 시대 외로운 아버지들을 위한 명품 연극. 우

14 SUNDAY MAGAZINE

끝이 없다. 따스한 고향집을 그대로 재현한 아름

수 창작 희곡 레퍼토리 시리즈 제1탄으로 무대에

다운 무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바쁜 삶을 내

오르는 이 연극은 표현은 서툴지만 누구보다 가

려놓고 정이 넘치는 시골집에 와 있는 기분을 느

족을 아끼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가족 모두를

끼게 한다. 부모 세대에게는 옛 추억들을 되새길

다독인다. 25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벌을 치

수 있고, 젊은층에는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여

며 무료한 일생을 달래던 아버지가 다리를 다치

유를 가지고 웃음지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아버

자 예순이 넘은 세 딸이 고향으로 모여든다. 변하

지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공연이다.

지 않은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변해버린 고향의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전경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잠긴 그들의 이야기는

사진 나온컬쳐


REVIEW & PREVIEW

서 프랑스 누벨 당스(Nouvelle Danse)의 기

종교, 사회, 영웅 등 다방면의 소재를 다루

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며 이를 놀라운 육체의 능력을 통해 진정한

21명이 펼치는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군무,

1984년 처녀작 ‘암거래(March Noir)’ 예술로 완성한다는 극찬을 쏟아내기에 앞

감성을 자극하는 남녀 2인무, 이와 어우러지

로 바뇰레 콩쿠르 문화부상을 수상하며 바

서, 그의 가장 큰 장점을 들라면 발레와 현대

는 인도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수보드 굽타

로 프렐조카주 무용단을 창단한다. 이후 30

무용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대작을

(Subodh Gupta)의 강렬한 무대는 인상주

년 동안 쏟아진 40여 편의 작품을 통해 우리

소화하는 연출력이라 하겠다. 뉴욕시티 발레

의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는 그의 천재성에 매번 감탄한다. 처음 세상

단, 파리 오페라 발레단, 볼쇼이 발레단 등 세

식상한 소재 때문에 고전발레를 싫어한다

에 드러났을 때 보여주었던 천재성을 계속 유

계 유수 발레단에서 안무가로 그를 초대하

면, 모호한 개념의 추상적인 표현이 지루해서

지하는 예술가가 드물지만, 그는 무용계의 몇

는 이유다. 고전발레의 정통성을 잃지 않고

현대무용을 기피했다면, 이 공연을 권한다.

류를 탐구했다.

안 되는 천재 안무가 중 하나다. 대표작으로 ‘결혼’ ‘퍼레이드’ ‘로미오 와 줄리엣’ 등 고전 재해석작이 있다. 기발

현대적인 감각으로 신작을 제작하는 첫 단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에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안무가가 바로 그다.

글 장인주 무용평론가

그의 스케줄은 이미 5년 뒤까지 다 차 있다.

사진 모다페, 프렐조카주 무용단

한 발상과 전위적인 설정이 돋보이는 창작

이 천재 안무가의 최신작을 드디어 국내

품으로는 ‘하이픈(Un Trait d’union)’ ‘우

에서 만날 수 있다. 볼쇼이 발레단의 요청

브누아 드 라당스

리시대 영웅들에게(A nos h ros)’ ‘아무 으로 2010년 발표한 ‘그리고, 천년의 평화 ‘춤의 영예’라는 뜻으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린다. 1991년 발레 개혁자 도 메두사와 짝짓지 않는다(Personne n’ (Suivront mille ans de calme)’가 국제현 장 조르주 노베르(Jean-Georges Noverre)를 기리기 위해 국제무용협회 러시 epouse les Meduses)’ ‘예수의 탄생예고

대무용제(모다페) 폐막작으로 무대에 오르

아 본부에서 제정했다. 한국인으로 강수진, 김주원이 최고 여자무용수상을 수

(Annunciation)’ 등이 있다.

는 것이다. 세상의 종말에서 이상을 잃고 표

상한 바 있다.

잉마르 베리만 후예들과 만나는 시간 스웨덴 영화제, 5월 30일~6월 5일, 서울 대현동 아트하우스 모모, 문의 02-363-5333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의

법’(2010) 등이다. 30일 열리는 개막식엔 실비아

한국 국빈방문을 기념해 스웨덴 영화제가 열린다.

왕비가 참석한다. 같은 날 개막작 ‘여학생으로 살

국내에 미공개된 2편을 포함해 최근 영화제에서

아남는 법’을 상영한 후엔 작가·배우가 함께하는

주목받았던 7편이 무료 상영된다. 상영작은 2차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된다. 31일 8시30분엔 ‘사

대전 후 입양된 소년이 뿌리를 찾아 떠나는 이야

운드 오브 노이즈’의 감독 요하네스 샤르네 닐손

기 ‘시몬과 떡갈나무’(2011), 아스퍼거 증후군을

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린다. 스웨덴 영화 거장 잉

앓고 있는 사이먼이 형의 새 여자친구를 찾기 위

마르 베리만의 후예들을 만나는 흔치 않은 기회다.

해 고군분투하는 ‘심플 사이먼’(2010), 15살 소녀

글 홍주희기자 honghong@joongang.co.kr

의 자아 찾기 과정을 담은 ‘여학생으로 살아남는

사진 백두대간

상영작 ‘사운드 오브 노이즈’(2010)의 한 장면

SUNDAY MAGAZINE 15


BOOK

실화를 다루든 작가 자신의 내면을 지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던 데 반해, ‘나 아 닌 다른 삶’은 제목이 말하듯 나의 바깥, 타인 의 삶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 속 에 작가가 등장하지만 작가의 에고는 전혀 느 껴지지 않는다. 작가는 그저 사실이 독자에 게 갈 수 있게 해주는 텅 빈 통로로만 느껴진 다. 무엇이 이 잘나가는 작가로 하여금 에고 를 송두리째 내려놓게 만들었을까?

흥미를 자극하는 플롯도 그럴듯한 허구도 없는데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 걸까

작품 자체가 그 이유를 밝힌다. 2004년 크 리스마스 무렵, 작가 카레르는 거대한 지진해 일이 덮치던 스리랑카의 한 해변 휴양지에 있 었다. 심드렁해진 아내와의 관계를 어떻게 청 산하는가 하는, 쓰나미에 비하면 티끌 같은

숨은 책 찾기 <6> 열린책들의『나 아닌 다른 삶』

문제에 골몰해 있던 그는 대재앙이 몰고 온 비극의 세부를 현장에서 목격한 뒤 서서히 변화를 겪는다. 카레르는 거기에서 쥘리에트 라는 어린 딸을 잃은 부모를 만난다. 그리고 얼마 후 처제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데, 그 녀의 이름 역시 쥘리에트다. ‘나 아닌 다른 삶’ 은 두 쥘리에트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 을 만나고 대화하고 기록하며 그들의 삶에 다 가가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작해 일상에 잠복해 있던 공포, 죽음으로도

금 책이 잘나가서 하는 말은 아니다. 물론 프

해결되지 않는 진실의 문제로 확장해 간다. 한 두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어린 자식

랑스에서야 최고의 작가로 독자의 사랑과 비 ‘적’은 존경받는 의사로 알려졌던 인물이 자신

을 잃은 부모, 아내를 잃은 젊은 남편과 엄마

평계의 격찬을 동시에 받고, 각종 문학상을

의 아내와 두 아이, 친부모까지 살해한 실제

를 잃은 아이들을 보았다. 그때 누군가 내게

휩쓸고,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로까

사건을 그린다. 그는 평생 의사를 사칭해 왔

말했다. ‘작가인 당신이 우리 얘기를 써야 하

지 활동 범위를 넓혀 주목받는, 이른바 셀레

지만 실제로는 의과대학도 못 간 사람이었다. 지 않겠어요?’ 그 명령과도 같은 요청을 나는

브리티다. 몇 달 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

작품은 사건 자체만큼이나 화제를 불렀고,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 이렇게 글로 쓰게

울 국제 도서전을 기해 한국을 방문할 의사

작가가 그 엽기적인 주인공에 대해 동질감을

되었다. 이 책은 삶과 죽음, 질병, 극도의 가난,

가 없냐고 타진했더니 앞으로 1년 동안은 스

느낀다고 술회해서 또 화제가 되었다.

정의,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케줄을 잡을 수 없단다.

16 SUNDAY MAGAZINE

“몇 달 간격으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

에마뉘엘 카레르(55)는 잘나가는 작가다. 지

그런데 ‘나 아닌 다른 삶’에 와서는 뭔가

여기에 쓰인 것은 전부 사실이다.”

존 업다이크는 그의 작품 ‘콧수염’을 두고

확연히 달라졌다. 멋지기보다는 실박하고,

실박하고 은은하며 따뜻한 작가로 변신한

“멋지고, 번득이고, 냉혹한 작품”이라고 했는

번득이기보다는 은은하고, 냉혹하기보다는

카레르는 이후 사실만을 진실되이 담는 작

데, 내가 느끼기에는 카레르의 작품 전체가, 따뜻하다. 원고를 돌려 읽은 회사의 모든 사

품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열린책들은 카

아니 카레르라는 인물 자체가 멋지고, 번득

람이 큰 감동을 받았다. 예전의 도발적인 매

레르의 작품을 3권 출간한 뒤에 5년 이상 소

이고, 냉혹한 작가 같았다. 적어도 ‘나 아닌 다

력 때문이 아니었다. 흥미를 자극하는 플롯

개를 중단하고 있던 참인데, 이 작품을 계기

른 삶’이란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과 허구의 개입 없이 차분히 사실만을 그리

로 몇 건의 추가 계약을 단행했다. 새로운 문

카레르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기발한 소

고 있음에도, 지하철에서 원고를 읽다가 내려

학을 발견했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아직『나

재와 정교한 테크닉, 섬세한 문장 때문에 정

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야 했고, 절규 한 번 없

아닌 다른 삶』(전미연 옮김)이 출시되기 전,

말이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콧수염’은 어

는 고요한 문장들을 따라가다가 따뜻한 슬

독자가 이렇게까지 야속하

느 날 아내를 놀라게 하기 위해 10년 이상 기

픔이 차올라 결국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게 대접할 줄 몰랐을 때였다.

른 콧수염을 밀었는데 정작 아내가 반응을

그렇게 만드는 힘은 다른 데서 나온 것이

보이지 않아 초조해하는 남편의 이야기로 시

아니었다. 이전의 작품들이 허구를 다루든,

글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 사진 열린책들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영화

전시

클래식

‘재키의 카프리(Jackie’s Capri)’ 사진전 기간: 5월 26일~6월 5일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 손열음

배우: 박보영, 주원

장소: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 갤러리

일시: 5월 27일 오후 8시

장소: 서울 신사동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앞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2-542-1743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의: 02-3015-3246

동생 정미(강별)가 저주에 걸린 동영상이

시대의 아이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문의: 02-599-5743

올해 5회째를 맞은 에르메스 스트리트 콘

라며 구해온 미확인 동영상. 세희(박보영)

미공개 사진전이 열린다. 그리스 선박왕

런던 음악무대에서 뜨거운 조명을 받고

서트. 5월 31일엔 아르헨티나의 정통악기

는 동영상을 보면 죽는다는 정미의 말을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한 뒤 1969

있는 조너선 코헨이 이끄는 아카데미 오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재즈 색소포니

흘려 듣지만, 동영상을 본 뒤 광기에 사로

년 여름부터 5년간 이탈리아 카프리섬을

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SMF)가 2년

스트 신현필 등이 참가하는 ‘콰르텟’ 공연

미확인동영상 감독: 김태경

공연

에르메스 스트리트 콘서트 일시: 5월 31일, 6월 1일 오후 7시 30분

잡혀 가는 동생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

찾은 재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64

만에 내한공연을 한다. 이번 공연에선 피

이 열린다. 6월 1일엔 재즈 드러머 박근혁

세희는 동생을 구할 단서를 찾기 위해 저

점이 전시된다. 무료. 이탈리아 브랜드 토

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모차르트의 피

이 이끄는 ‘박근쌀롱’과 기타리스트 신윤

주에 걸린 동영상을 클릭하는데….

즈(TOD’S)가 후원한다.

아노 협주곡 21번 등을 들려준다.

철 등의 ‘브르스타임’이 연주를 들려준다.

차형사

한국 근현대 미술의 큰 별들

감독: 신태라

기간: 5월 19일~7월 1일

배우: 강지환, 성유리

장소: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

기간: 5월 31일~6월 3일(평일 오후 8시,

장소: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등급: 12세 관람가

문의: 032-420-2741~8

토요일 오후 3시·7시, 일요일 5시)

문의: 02-3279-2236

불룩한 뱃살에 떡진 머리, 심한 몸 냄새 등

한국미술사 100년간 한국 근·현대 미술

장소: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국립극단의 두 번째 청소년극. 미국 전역

피아졸라 서거 20주년 기념 ‘레오 정 탱고 연주회’

으로 악명 높은 패션 파괴범 차형사. 생긴

사를 써온 화가들의 내면과 외피를 동시

건 그래도 자나깨나 범인 검거에 매달리는

에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한국 회화의 근

연극 ‘레슬링 시즌’ 기간: 5월 31일~6월 10일

문의: 010-8676-8848

에 청소년극 열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우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음악인 중 하나로

리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집념의 인물이다. 패션계에 은밀하게 퍼진

대화와 현대 한국화, 근·현대 미술의 정착

손꼽히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서거 20

문제들을 레슬링 경기로 풀었다. 2개월간

마약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2주 만에 20㎏

과 확장, 현대미술로의 전이 등 총 3개의

주년 기념 연주회다. 판도네온 연주자 레

의 레슬링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배우들

을 감량해 패션모델로 변신해 런웨이에 잠

주제로 구성했다. 이중섭·박수근 등 우리

오 정과 피아니스트 이네스가 피아졸라

의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유쾌한 긴장감을

입하라는 특급 미션이 그에게 떨어진다.

대표작가 35인의 작품 70여 점이 나온다.

의 탱고 음악을 선사한다.

불어넣는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자료=교보문고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01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01 맨인블랙3 02 무지개원리

임수정·이선균·류승룡 02 연극 옥탑방 고양이

03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고도원·해냄출판사 03 어벤져스

06 정의란 무엇인가 07 십자군 이야기3

09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팔레머·토네이도 09 은교 10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류시화·문학의 숲 10 백설공주

자료=풍월당

음반사

박성훈·장지우·윤정빈 02 테오도라키스: 조르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03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하지원·배두나 05 뮤지컬 모차르트!

마이클 샌델·김영사 06 극장판 썬더일레븐 GO

08 그리스인 조르바 나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 08 다크섀도우

클래식 음반

출연 순위 음반명

-

03 비발디 ‘라 체트라’

C&L Channel Classics

김강우·백윤식·윤여정 04 뮤지컬 캐치미 이프유캔 엄기준·규현·김정훈 04 느뵈, 하시드 초기 레코딩

박범신·문학동네 05 코리아 시오노 나나미·문학동네 07 건축학개론

자료=인터파크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 01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김도현·김재범·성두섭 01 브루흐: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집 ARS

차동엽·국일미디어 02 내 아내의 모든 것

0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와이즈베리 04 돈의 맛 05 은교

공연 예매

주연 순위 공연명

-

06 뮤지컬 광화문 연가

엄태웅·한가인·이제훈 07 뮤지컬 시카고 조니 뎁·에바 그린·미셸 파이퍼 08 2012 동아무용페스티벌 박해일·김고은·김무열 09 뮤지컬 친정엄마 릴리 콜린스·줄리아 로버츠 10 연극 M.Butterfly

Testament

박은태·장현승·최성희 05 쇼팽 야상곡 루빈스타인(피아노) 윤도현·조성모·리사 06 어린아이들의 낮잠

Telarc

인순이·최정원·윤공주 07 밀로쉬: 지중해 -

RCA DG

08 파가니니 24 카프리스 체헤트마이어

나문희·김수미·이혜경 09 드뷔시 전주곡: 루비모프(피아노) 김영민·김다현·정동화 10 헨델 하프모음곡: 갈라씨

ECM ECM Glossa

SUNDAY MAGAZINE 17


TRAVEL

1

중세풍 골목길 거닐다 우연히 들른 카브에서 <와인 저장고>

와인 골라 마시는 맛 프랑스 프로방스의 와인마을 ‘샤토네프 뒤 파프’

1 샤토네프 뒤 파프 마을 정상의 교황의 성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2 샤토네프 뒤 파프 마을 입구의 라 바스티드 블루(La Bastide Bleue) 호텔 3 프로방스의 포도밭 풍경

3 18 SUNDAY MAGAZINE


TRAVEL

2

프랑스 남쪽의 프로방스는 많은 사람에게 어

나오고 그 사이를 가로질러 작은 도로가 나

의 와인을 공식적으로 세례에 사용하며 ‘교

떤 ‘이미지’다. 그것은 느리게 가는 시간 속을

있다. 필자는 20년 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황의 와인’으로 명했다. 교황으로부터 인정

걷는 느긋한 삶일 수도 있고, 강렬한 햇볕 아

때 오랑주에서 자전거로 이 마을까지 산책

받은 와인은 자연스럽게 명성을 얻었다. 나중

래 생명력으로 이글거리는 대지일 수도 있다. 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

에 ‘샤토네프 뒤 파프’ 와인으로 널리 알려지

아니 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식탁 위에 푸짐

한데, 가을날 자전거를 타며 보았던 굵은 자

게 됐다. 그래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병

하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과 근사한 와인이라

갈 포도밭들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가

에는 교황의 모자와 교황청과 천국으로 들어

면 어떨까.

는 도중 곳곳에 와인 양조장들이 있어 자유

갈 수 있는 두 개의 열쇠가 새겨져 있다.

롭게 방문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이런 모습에 교황 모자와 천국문 열쇠 두 개 새긴 와인

는 변함이 없다. 포도밭의 나무들은 좀 더 나

한때 무기고 ‘교황의 성’ 반쪽만 남은 사연

프랑스 남부 론 지역의 샤토네프 뒤 파프(Cha

이를 먹었지만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굵은 자

교황 요한 22세는 여름 별장 장소로 아비뇽

teaunef du Pape)는 대표적인 와인 마을이

갈들은 여전했다.

에서 가까운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에 성

다.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이 마을을 유명하게 한 포도나무들은 역

을 짓게 했다. 성의 흔적은 지금도 이 마을의

있듯, 교황의 역사와 와인의 역사가 함께 공

사적으로는 골족에 의해 알려졌다. 여기에 로

심벌처럼 언덕 정상에 서 있다. 그런데 거의

존하는 곳이다.

마인들은 거대한 포도밭을 조성했다. 기록에

허물어진 형태로 한쪽 벽면만 남아 있다.

파리 리옹 역에서 마르세유 방향의 고속열

의하면 13세기에 1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여기엔 사연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차를 타면 부르고뉴와 보졸레 지역을 지나

있었다. 당시 300㏊ 이상의 포도밭이 만들어

독일군이 이 성에 폭탄을 저장했고, 전세가

론 강가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보졸레 아

졌다고 한다.

어려워지자 이곳을 지키던 두 독일 장교에게

래 지역에 있는 론 지역은 북부와 남부로 나

초창기 대부분의 와인은 부르고뉴 지역으

폭탄을 폭파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 장교

뉘는데 그중 남부 론을 대표하는 와인 마을

로 팔려나갔다.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와인

는 명령에 따라 성 한쪽을 완전히 파괴시켰

이 바로 샤토네프 뒤 파프다.

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로마 교황청으로 들

지만 다른 장교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생

이 마을에는 기차가 따로 다니지 않는다. 어가지 못하고 아비뇽에 머물러 있던 교황들

각해 폭파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오랑주(Orange)에서

에 의해서다. 1308년 클레멘스 5세는 그가 죽

쪽 벽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당시의 웅장했

하차해 택시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오랑

기 몇 해 전 론의 포도나무를 이곳에 심었다. 던 모습을 상상하게 도와주고 있다. 전쟁 속

주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방대한 포도밭이

그 뒤를 이은 교황 요한(John) 22세는 이곳

에서도 한 인간의 문화사랑이 최악의 비극을 SUNDAY MAGAZINE 19


TRAVEL

4

7

8

막은 아름다운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4 교황의 성에서 피크닉하는 사람들 5 포도밭에서 바라본 교황의 성 6 샤또네프 뒤 파프 마을 풍경 7 도멘 반느헤의 오너 장 클로드 비달 8 마을 풍경 9 와이너리를 안내하는 이정표들

20 SUNDAY MAGAZINE

텔에 묵기로 했는데 투숙객이 필자 혼자였다.

이제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 이 언덕을

마을 산책에 나섰다. 마을이 워낙 작기 때

찾아와 허물어진 성의 모습과 주변의 파노라

문에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제자리로 올 수 있

마를 가족들 또는 연인들과 즐기고 있다. 전

다. 이 지역에서 가장 무섭다는(?) 강력한 미

쟁은 옛날이었고, 지금은 방문객들의 좋은

스트랄 바람이 온 마을을 뒤흔들고 있었다.

전망대로 남았다.

오래된 골목 언덕길로 접어들자 바람은 더욱

오랑주 역에 오후 3시 30분쯤 도착했다. 파

거세졌고 성의 허물어진 벽이 있는 정상에

리에서 오전 11시 30분쯤 출발해 중간에 기

오르자 몸이 날아가는 듯했다. 주변 포도밭

차를 한 번 갈아탔다. 택시로 마을에 도착하

을 보니 풀들은 거의 90도 가까이 휘고 있

니 오후 4시 정도. 마침 일요일이라 마을에

었다.

사람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마을 입구 호

다행히 포도나무들은 둥글고 굵은 자갈들


TRAVEL

2

이 보호하고 있어 막 자라고 있는 새순들만

5

있는 재미다.

6

마을 입구에 있는 도멘 마티유(Domaine

몇 개 가족 와이너리를 방문해 보기로 했

Mathieu)다. 프로방스 사투리를 강하게 사

다. 우선 세 명의 형제가 와인 만드는 일에서

용하는 40대 중반의 오너가 나왔다. 가업을

판매하는 일까지 서로 분담하고 있는 도멘

물려받아 동생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데 자

카메라로 포도밭 모습을 찍기 위해 웅크렸지

레 3 셀리에(Domaine les 3 Cellier)다. 셀리

신이 만든 와인을 모두 따라주고 마지막에 올

만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하늘

에 나탈리가 포도밭을 보여준 뒤 와인 양조장

드 빈티지로 1985년과 1987년을 내왔다. 두

은 정말 파랗고 맑았는데 이 바람들은 어느 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일곱가지 정도를

빈티지를 시음하면서 특히 85년산에 매료됐

시음할 수 있었다. 특히 2009년 샤토네프 뒤

다. 오렌지 빛깔을 띠고 산미가 감칠맛 있게

힘겹게 강한 바람에 저항하고 있었다. 풀을 90도로 눕히는 공포의 미스트랄 바람

곳에서 오는 것인지 야속할 정도였다. 언덕을 내려오자 심했던 바람도 오래된 벽들에 막혀

파프가 인상적이었다. 잘 익은 포도의 특징

살아 있으며 타닌이 우아한 달콤함으로 변하

비로소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을 보여주었는데 모두 8개 품종을 섞어 만들

고 있는 맛은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으

고 있었다. 이 와인은 15년 이상 숙성이 가능하

로 와인이 숙성되는 것일까?

오래된 마을의 골목길을 산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느 끼며 한발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정감이 느

단다. 두 번째 와이너리는 포도밭에 대한 철학

시음을 마친 필자는 남은 85년산 와인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적 사고를 갖고 있는 도멘 반레

늘 저녁식사에 이 와인을

이곳에서는 산책하다 열려 있는 카브(와

(Domaine Banneret). 오너

가져갈 생각이었다. 이곳

인 저장고)를 방문하면 누구나 시음할 수 있

는 은퇴한 건축 디자이너로 딸

의 전통 요리와 함께하

껴지곤 한다.

다. 이 마을의 상당수 와인이 몇 해 전부터 미

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포도밭

면 정말 프로방스에 와

국의 세계적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에게 90점

이 매우 자연스러웠고 오래된 포

있다는 것을 실감할 것

이상의 좋은 점수를 받으면서 가격이 너무 올

도나무가 있었다. 셀러에서 여러

같았다. 저 멀리 프로방스

랐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잘 고르면 좋

빈티지를 시음했는데 90년산

의 맑은 파란색으로 칠을

은 와인을 싼 가격에 마실 수 있었다. 와인 시

은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호텔의 나무문이 보이

판 가격은 20유로부터 200유로까지 다양했

그만큼 이 와인들은 숙성력이

기 시작했다.

다. 술 익는 마을에서 우연히 들른 카브에서

있었다.

마시는 근사한 와인, 프로방스에서 느낄 수

프로방스 글·사진 김혁 와인평

다음에 방문한 와이너리는

론가 hkim@podoplaza.com

9

SUNDAY MAGAZINE 21


ART

세상 모든 존재에 고루 스민 아름다움 당신은 보이는가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7> 츠베탕 토도로프의 『일상예찬』

가수가 노래한다. 절절한 사랑 노 래다. 카메라가 관람석을 비춘다. 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남자도 울고, 알 없는 안경을 쓴 젊 은 여자도 운다. 사연이 많다. 주말 의 TV를 보면 대한민국은 영락없 는 사연 공화국이다. 사랑이 주요 1 가브리엘 메추의 ‘편지 읽는 여인’,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더블린

2 가브리엘 메추의 ‘편지 쓰는 청년’,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더블린

매스미디어를 장악한 보편적인 사 랑의 시대다. 사랑은 일찍이 시문학을 지배했지만, 그림 에 등장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물론 사랑은 있었으나 신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사랑만이 그림 속에는 등장할 권리 가 있었다. 아니, 사랑에 빠진 남녀뿐 아니라 1

술 취한 주정뱅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 우는 아낙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그 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

속화 순으로 회화 장르에 차등을 두는 것은

암시하는 강아지는 발 밑에서 끙끙대고, 하

기도 후반이 지나고 나서였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녀는 말없이 커튼을 들춰 그림을 보여준다.

이런 그림을 본 미켈란젤로는 가차없는

깊은 관념이었다. 예술은 고귀한 자의 고귀한

격랑에 휩싸인 배가 그려진 풍경화는 편지

독설을 날렸다. “혹자의 눈에는 괜찮아 보이

것이었다. 이 세계는 웃음조차 허락하지 않

가 야기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을 암시한다. 여

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예술성도 없고 논리

는 엄숙함의 세계였다.

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지를 읽는다. 자세를

그런데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이런 고정관

보니, 아마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내용인

한 선택도 없고 분별력도 없으며 데생도 없다. 념이 본격적으로 깨졌다. 당시 네덜란드는 왕

듯하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가브리엘 메추

도 없으며, 대칭도 없고 비례도 없으며, 엄격 한마디로 말해 골격도 없고 힘줄도 없다.” 독

정이나 교회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

가 그린 그림 ‘편지를 읽는 여인’이다. 이 그림

설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미켈란젤로는 직접

는, 일찍이 안정적인 시민사회가 건설된 나라

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헛된 사랑에 대

시를 쓰기도 했으니, 독설도 예술적일 수밖에. 였다. “벽에 재미난 그림 한두 점을 걸어놓지

한 경고인가? 그러나 그러기에는 여인의 자

않은 나막신 가게가 없을 정도로” 네덜란드

태가 너무 곱고 화가의 솜씨가 너무 좋아서

것”이라고 츠베탕 토도로프는 『일상예찬』 에서 그림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이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 잠시

(뿌리와 이파리, 2003)에서 말한다. 미켈란젤로

었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은 그들의

도덕적 훈계를 잊게 된다. 여기에는 도덕적 훈

에게 일상은 예술적으로는 예찬할 가치가 없

일상을예찬의가치를가진것으로바라보았다.

계 이상의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애

는 것이었다. 현실을 그리되 끊임없이 이상적

평범한 사람들의 그림에 그나마 가치를 부

인 것(골격과 힘줄)을 추구하던 이탈리아 르

여하는 방식은 거기에 ‘도덕적 교훈’이 있기

풍속화들은 스텐과 테르보르흐, 호흐, 베

네상스 대가의 눈에는 시시한 일상을 그린 그

때문이라고 후에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르메르, 렘브란트 그리고 할스 같은 17세기 네

림은 고귀하지 못한 것이었다.

토도로프는 이 생각에도 의문을 갖는다.

덜란드 화가 모두의 공통점이다. 일상에 대

“회화는 본질적으로 그려진 것을 예찬하는

역사화/신화화-초상화-풍경화-정물화-풍 22 SUNDAY MAGAZINE

그림 속 여인은 편지를 받아들ㄱ다. 사랑을

정” “현실에 대한 따뜻한 호의”다.

한 긍정은 지렛대가 되어 서양문화사에 빛나


ART

는 한 대목을 만들어냈다. 네덜란드 풍속화 는 전 유럽을 감염시킨 “찬양과 비방, 선과 악, 정신과 육체라는 이원론적인 바이러스”에 저 항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문화를 지배하던 이원론이라는 두터운 도식 의 틀을 깨어버린 것이다. 토도로프는 문학과 회화의 차이를 지적하 면서 논의를 이끌어 나간다. 문학 텍스트에 도덕적 교훈이 들어가면 텍스트 전체에 그 메시지가 스며들어 형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그림의 경우에는 도덕적인 교훈 때문 에 이미지가 반드시 변형되는 것은 아니다. 화가들은 예쁜 여자의 비단 옷자락을, 잘 정 돈된 정갈한 실내를, 싱겁게 웃는 사람의 미 소를, 빗자루를 꼼꼼히 그렸다. 그러면서 도 달한 것은 “아름다움이란 세상 모든 존재 속 에 고루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 인 이미지들 앞에서 신학이나 철학은 한걸음 물러선다. 네덜란드 풍속화는 미덕도 악덕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의 충일한 기쁨으로 초월한다.” 좀 길지만 이러한 태도에 관해 토도로프 가 어떻게 설명하는지 직접 들어보자. “인간 세계에서는 불화, 불만족, 미완성이 군림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런대로 세상은 좋 은 것이다. 테르보르흐는 세상에 열광한 사 람도, 절망한 사람도 아니다. 인간 조건을 바 라보는 그의 시선은 미망에서 깨어난 공감, 헛된 공상을 버린 호기심 같은 것이다.” 대가의 문장이고 촌철살인의 통찰이다. 2

나는 이 구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주 여 러 번 읽고 여러 번 인용했다. 한 작가에 대한 설명을 넘어 책 전체에 흐르는 시대의 태도이 고, 토도로프의 태도다.

이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실제로 팝아트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

에도 많은 작가가 함께 활동하면서 다채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갔었다.

토도로프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역사학자

보다 상품에 대한 부러움을 더 많이 가지고

그림보다 인생의 현안이 급한 사람에게도

이자 철학자이며 유명한 문학이론가다. 그러

있었고, 기꺼이 상품을 닮고자 한 차가운 예

나는 이 책을 권한다. 그림은 돈을 버는 법도,

나 이런 통찰은 지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

술이다. 반대로 현대인들의 일상은 더 위태

취업을 하는 법도, 승진하는 법도 알려주지

다. 요는 츠베탕 토도로프라는 사람 자체다. 롭고 각박해졌다. 그래서 “진실에 대한 애정”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그가 삶을 그렇게 이해하고 들여다볼 줄 아 “현실에 대한 따뜻한 호의”는 더욱더 필요하

비법을 하나 가르쳐준다. 17세기 풍속화가들

다. 17세기 풍속화가 더욱 소중해지는 이유다.

은 우리에게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을 보여준

는 원숙한 인간이기에 가능한 말들이다. 그

그러나 그런 축복받은 시대는 지나갔다. 그

다. 이것이 비록 절판된 책이지만, 나로 하여

때는 삶에 대한 긍정성을 모두 공유하고, 화

금 글을 쓰게 만든 이유다. “아름다움을 만

토도로프의 지적대로 일상을 그리는 미

가들은 의심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술은 19세기, 심지어 20세기를 넘어 지금까

던 시대였다. 축복받은 시대의 또 다른 징표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 -이것이 츠베탕 토도

는 이론에 선행하는 구체적인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지 이어진다. 팝아트의 등장으로 현대미술에

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작가들도 역사적으

로프가 네덜란드 풍속화 속에서 찾아낸 보

서는 영화, 만화, 상품 라벨까지 ‘일상’이 넘쳐

로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

석 같은 진실이다. 우리는 현실을 지나치게 타

난다. 그러나 과거 거장들의 특징인 “진실에

다. “예술적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지

계하고 개선해야 할 무엇으로 보고 있는 것

대한 애정” “현실에 대한 따뜻한 호의”도 더

혜의 문제”였기에, 렘브란트나 베르메르 외

은 아닐까? SUNDAY MAGAZINE 23


GALLERY

삼성미술관 리움에 설치된 거대한 거미 모양의 조각 ‘마망’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미술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대학에서 대수학과 기하학을 전공 한 그녀는 수학 대신 판화, 드로잉, 설치, 손바느질 작업 같은 예술을 택했다. 1938년 미국인 미술사학자와

장승인 듯 바늘인 듯 돌탑인 듯

결혼해 뉴욕으로 건너온 부르주아는 40년대 말부터 기하학적 이미지의 추상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타계 2주기를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 조각을 집중 소개하는 귀한 자리다. “미술관에서 빌려온 것도 적지 않다”는 것이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의 귀띔이다. 조각은 좌대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관행을 깨고, 그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눈높이가 비슷해진 그 의 등신대 작품은 광장에 서 있는 누군가 같기도 하고, 마을 어귀에 서서 액운을 쫓는 장승 같기도 하다. 외로운 뉴욕 시절, 맨해튼 아파트 옥상에서 자신이 만든 조각에 말을 걸던 부르주아의 메마른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Christopher Burke, © Louise Bourgeois Trust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루이스 부르주아의 ‘PERSONAGES’, 5월 23일~6월 2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3관, 02-735-8449.

‘Untitled’(1954), Painted Bronze and Stainless Steel,

‘Untitled’(1947-49), Bronze, painted white and blue,

‘Untitled’(1954), Painted Bronze and stainless steel,

144.8 x 30.5 x 30.5 cm

and stainless steel, 167.6 x 30.5 x 30.5 cm

141 x 55.2 x 30.5 cm

24 SUNDAY MAGAZINE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강우현의 ‘도깨비 방망이’인생 <남이섬 대표>

“고등학교 성적이 162명 중 157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날더러 천재라고 하니 웃기잖아. 깊이 아는 건 없다. 다만 얇고 넓게 알며, 그것들을 섞거나 위치를 옮겨 새로운 것을 만들 뿐이다. ‘나미나라 공화국’도 그렇게 만들었다. 도깨비 방망이를 걸어놓고 사는 건 내 인생과 비슷해서지.”

SUNDAY MAGAZINE 25


FOOD

3~4㎝ 길이로 자르고 2㎜ 두께로 채썰고  마늘 매운맛도 빼야지 주영욱의 도전! 선데이 쿠킹 <3> 봄나물 도다리 회덮밥

회덮밥은 요리가 간단하다. 하지만 제대로 맛을 내려고 하면 사실 쉽지 않은 음식이다.

라 별미로 유명한 도다리까지 함께라면 봄철

여러 가지 재료들이 섞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음식으로는 환상의 궁합 아닐까. 새콤달콤

재료들의 조화가 중요하고, 전체의 맛을 결정

초고추장 양념의 회덮밥으로 먹을 생각을 하

하는 작은 디테일들이 중요하다. 요리 경험이

니 벌써 군침이 돌았다.

많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어

회덮밥은 일식집에서 파는 음식이지만 정

려운 일이다. 이 기회에 박 실장님께 부탁을

작 일본에는 없는 한국식 음식이다. 일본 오

드려서 회덮밥 만드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보

사카 지방에서 주로 먹던 ‘지라시 스시’가 우

기로 했다.

리나라에서 입맛에 따라 변형돼 개발된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는

이라고 한다. 밥 위에 회와 여러 가지 재료를

것이다. 다음에는 재료들을 순서대로 밥에

“봄도 이제 끝나가는데 봄철 마무리 음식으로

얹어서 내는 것은 비슷하지만 우리 회덮밥은

얹어 내면 그만이다. ‘봄나물 도다리 회덮밥’

뭐 적당한 것 없을까요? 흔하지 않고, 나른한

초고추장을 쓰고 밥과 재료를 함께 비벼 먹

을 만들기 위해 우선 필요한 재료는 당연히

입맛도 살려주고, 몸에도 좋고, 집에서도 어

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비

봄나물이다. 데치지 않고 생으로 먹을 수 있

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걸로요.”

빔밥을 좋아하고 고추장을 즐겨 먹는 우리

는 봄나물들이 적당하다. 박 실장은 참나물

초보 가정 요리사의 의욕만 넘치는 단순· 식성 때문에 이렇게 변형된 것 같다고 박범순

과 곰취, 그리고 돌나물과 민들레를 추천해

무식·복잡한 질문에 37년 경력의 일식요리

실장께서 설명해 주셨다. 일식집 아오야마(靑

주셨다. 이 밖에 함께 들어가는 야채 재료들

대가께서는 ‘봄나물 도다리 회덮밥’이라는

山)를 운영하는 박 실장님은 37년의 요리 경

은 오이·당근·고추·마늘 등이다. 도다리는 작

처방을 순식간에 내려주셨다.

력자로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하시는 분이다. 아

은 도다리를 뼈째 썰어 내는 세코시가 좋다

오야마는 제철 생선과 식재료를 이용하는 정

는 귀띔이다. 감칠맛도 더 있고 뼈가 씹히는

은 봄나물은 몸에도 좋고 입맛도 살려주는

통 가이세키(會席) 요리로 미식가들 사이에

맛이 좋다고 했다.

좋은 제철 음식 재료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서 유명한 곳이다. 무식하면 용감하기도 하지

봄나물과 야채를 모두 준비했다면 이제 회

것이 아니라 초록 노지에서 나오는 향기 가

만 10년 넘게 다니는 단골이어서 부탁을 쉽

덮밥 용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 전에 모두 물

득한 봄나물은 늦은 봄에 본격적으로 나오

게 드릴 수 있었다.

속에 30분 정도 담가놓는 것이 좋다는 전문

긴 겨울을 지나 땅의 생명력을 한껏 머금

26 SUNDAY MAGAZINE

기 때문에 아직 한창이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옛말처럼 봄에는 살이 차지게 올


FOOD 재료 -참나물 : 봄나물 중에서 최고로 치는 ‘참’나물. 대표적인 알칼리 성 식품. 향이 좋고 섬유질이 많 아 아삭거리는 식감이 좋다 -곰취 : 향긋한 향이 가장 좋은 봄나물. 쌉싸름한 맛과 은은하 게 풍기는 상큼한 향이 입안에 퍼지는 맛이 일품이다. -돌나물 : 비타민이 풍부한 대표 적인 봄나물. 새콤한 신맛이 있 어 식욕을 촉진한다. -민들레 : 여러 가지로 몸에 좋 은 봄나물. 생으로 먹을 때는 어 린 잎을 주로 먹는다. 쌉싸름한 맛이 나른한 입맛을 돋운다. -도다리 세코시 : 봄철을 대표하 는 보양 생선. 겨울철 산란기가 끝나고 살이 차오르면서 맛이 좋아진다. 3월에서 5월까지가 가장 맛있다. -오이, 당근, 고추(맵지 않은 것), 마늘, 계란 지단, 초고추장, 참기

가의 조언이다. 그럼 물기를 머금어서 더 싱싱

봄나물과 야채를 구별해 옮겨 담았다. 곰취·

해지고 아삭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참나물· 민들레· 돌나물 그리고 오이· 당근·

름, 김가루, 날치알 준비

그 다음에는 먹기 좋도록 썬다. 3~4㎝ 정

고추· 마늘을 빙 둘러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1. 당근·오이·고추·마늘을 잘

도의 길이가 먹기에 좋은 크기라고 시원하게

그리고 가운데에 도다리 세코시 회를 적당히

게 썬다. 길이는 3~4㎝, 두께는

알려주셨다. 그것보다 짧으면 씹히지 않고 그

올려놓았다. 그 위에 미리 준비한 계란 지단

2㎜ 정도가 가장 씹기에 좋다

냥 목으로 넘어갈 수 있고, 더 길면 씹는 데 불

을 올리고 김가루를 뿌리고 마지막으로 날치

편하기 때문이란다. 두께는 얇은 봄나물의

알을 얹어 마무리했다.

(마늘은 작아서 예외). 고추는 씨를 제거해야 잡미가 없다. 2. 봄나물들을 먹기 좋게 썬다. 곰취와 민들레는 1㎝ 정도의 너비,

경우 잎을 1㎝ 내외로, 딱딱한 재료인 오이·당

배고파 기다리는 아이들 앞에 완성된 회

근·고추·마늘 등은 2㎜ 정도로 얇게 썰어 준

덮밥을 초고추장과 함께 내밀었다. 이번에

비하는 것이 좋단다. 마늘은 잘게 썬 다음에

배운 대로 회덮밥 비빌 때는 숟가락을 사용

** 도다리 세코시는 큰 마트에 가면 잘라놓은 것을 살 수 있다. 혹시 없

는 찬물에 10분쯤 담가 매운맛을 뺀다. 모두

하지 말고 젓가락을 사용해야 더 맛이 좋다

으면 회 코너에 부탁하면 그렇게 잘라준다. 초고추장은 시중에서 파

요리사의 오랜 내공에서 우러나온 섬세한 팁

고 알려줬다. 숟가락을 사용하게 되면 밥알

는 것을 사서 쓰면 된다. 사과를 강판에 갈아서 넣으면 좋다.

이다.

이 짓이겨져서 점성이 생기는데 그러면 맛이

요리 Tip

떨어진다는 것이다.

1. 회덮밥을 만들기 전 야채류는 물속에 30분 정도 담가놓는 것

휴일 아침 일찍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와

참나물은 작은 잎 그대로, 돌나물은 1㎝ 길이로 자른다.

회덮밥 준비를 시작했다. 막상 시작해 보니

대가의 요리법으로 만든 ‘봄나물 도다리

오이·당근·고추 등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자

회덮밥’의 맛은 한마디로 아주 훌륭하고 꽉

2. 야채를 썰 때 먹기 좋은 크기는 길이 3~4㎝, 두께 2㎜ 정도가

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길이를 3~4㎝

찬 맛이었다. 봄나물의 향긋하고 쌉쌀한 맛

가장 좋다. 짧으면 씹히지 않고 그냥 목으로 넘어갈 수 있고, 더 길

로 맞추는 것은 그럭저럭 할 수 있지만, 두께

이 도다리의 감칠맛과 초고추장에 잘 어울렸

면 씹는 데 불편하다. 두께는 그 정도가 가장 씹히는 데 적당하다.

를 2㎜ 정도로 일정하게 자르는 것이 아주 어

다. 나물과 야채가 아삭거리면서 씹히는 느낌

3. 마늘은 잘게 썬 다음에 찬물에 10분쯤 담가서 매운맛을 빼는

려웠다. 혹시 손을 벨까 봐 최대로 집중해 자

도 좋고, 부드러운 회보다는 세코시의 씹히

르다 보니 땀까지 뻘뻘 난다. 타타탁 쉽게 잘

는 느낌이 더 긴장감이 있어 좋았다. 회덮밥

라내는 요리사들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직접

을 좋아하는 큰애가 상큼하면서도 깊고 오묘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한 맛이 난다고 최고의 칭찬을 해줬다. 나른

정신없이 재료 준비를 마칠 때쯤 되니 아

한 봄날 휴일의 점심으로는 최고였다. 봄나물

이들이 주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시계를

과 봄 도다리 덕분에 온몸이 활기찬 봄의 기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준비된 재료

운으로 가득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봄을

들을 가지고 배운 순서대로 회덮밥을 만들기

보내줘도 될 것 같았다.

시작했다. 먼저 적당한 그릇에 밥을 퍼서 고르게 깔 고 참기름을 조금 뿌려줬다. 그 위에 준비한

주영욱씨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그중 사진, 여행, 음식 을 진지하게 좋아한다. 마케팅리서치 회사 마크로밀코리아

이 좋다. 물기를 머금어서 더 싱싱해지고 아삭한 맛이 난다.

것이 좋다. 그냥 먹으면 맛이 너무 강해진다. 4. 회덮밥을 비빌 때는 젓가락을 사용해야 더 맛이 좋다. 숟가락 을 사용하게 되면 밥알이 짓이겨져서 점성이 생기는데 그러면 맛이 떨어진다. 아오야마(靑山) 1997년 문을 연 정통 일식 가이세키(會席) 요리 전문점. 롯데 호텔 출신의 37년 경력 박범순 실장이 운영한다. 제철 식재료 와 생선을 이용해 계속 새롭게 바꾸어 내는 가이세키 요리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1년에 여덟 번 요리가 바뀌고 이 에 맞춰 사용하는 그릇도 바뀐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2-10, 02-3442-4451

대표이사.

SUNDAY MAGAZINE 27


HOUSE

1

분에 넘치는 집 머리에 이고 힘겨워하고 있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마주하거나 지평선

소유자 데니스는 묻는다. “진실로 무엇인가

이 드러나는 너른 들판에 나서게 되면 문득

소유한다는 것이 가능하냐”고.

들려오는 듯한 선율이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우리에게 집은 무엇일까. 현실이고 생존의

아프리카’에서 영원한 자유인 데니스(로버

조건으로서의 소유와, 근원이고 꿈과 가치로

트 레드퍼드)를 표현하는 음악으로 쓰였던

서의 삶 사이에 내가 쓰려는 집 이야기가 있다.

모차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2악장 아다지오다.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3> 월든 오두막과 세한도의 집

이 영화에서 사바나 대초원을 누비는 모험 가 데니스에게 커피농장 여주인 카렌(메릴

판자 지붕과 벽에 쓴 헌 지붕 널

4달러

접근을 한 인물이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

스트리프)은 묻는다. “집엔 언제 오실 거예요?”

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

카렌은 파혼의 상처를 입고 도망치듯 고

생의 본질적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

욋가지

1달러25센트

향을 떠나 상속받은 땅이 있는 케냐로 왔다. 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유리가 있는 중고 창문틀 2개

2달러43센트

빈털터리 귀족 블릭센 남작 브로(클라우스

헌 벽돌 1000장 석회 2통

4달러 2달러40센트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마침

마리아 브랜다우어)와의 계산된 결혼을 위

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

해서다. 니공 언덕 산기슭에 지어진 유럽식

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31센트

철제 벽난로 가로장

15센트

집에서 신혼집을 꾸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

3달러90센트

화는 농장과 연인, 모든 것을 잃은 카렌이 그

하버드대 출신의 이 도도한 엘리트 의식의

경첩과 나사못

14센트

집을 떠나 덴마크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소유자는 당시 보스턴의 1년치 집세 정도인

빗장

10센트

분필

1센트

맺는다.

28달러 12센트(표 참조)만 가지고 도끼 하나

운송비 합계

28 SUNDAY MAGAZINE

8달러3.5센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월든 호 숫가에 오두막집을 지으며 집에 대한 본질적

1달러40센트

강인한 생활인인 카렌에게 집은 삶의 견고

들고 홀로 숲에 들어가 소나무를 켜서 3개월

28달러12.5센트

한 축이다. 그런 카렌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만에 집을 완성해 입주하게 된다. 그러고는


HOUSE

2

4

3 1 현재 월든 호숫가에 재현돼 있는 소로 오두막과 소로의 청동상 ⓒRhythmic Quietude 2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1844) 23×69.2㎝ 3 소로가 살았던 월든 숲 속의 오두막 4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6)의 한 장면

19세기 중반, 차세대 강국 미국의 중심부에

이 없으며, 오직 중국에 흔한 원형 출입구 하

집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결국 노동자

서 일과 명예, 돈과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

나만 있을 뿐이다.

가 10~15년 걸려 모아 지은 집은 그 집 때문

어나고자 했던 한 혁명가의 월든 호숫가 오두

혹자는 김정희가 교유하던 청나라 학자 옹

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더 가난하게 됐

막 체험기는 150여 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방강의 시나 그림을 통해 얻은 소동파의 겨울

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

넘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너희들은

소나무 그림인 ‘언송도’와 연관지어 이 중국

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됐는지 모른다.”

잘 살고 있니?”라고.

식 집 형태에 대한 유래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당시 800달러가량 지불해야만 하는 일반적

생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더욱 간소한 삶

최근 국내에서 국가가 지정하는 ‘최소 주

어쨌거나 추사의 세한도는 ‘시린 한겨울을 그

을 주장했던 초월주의 철학자는 그 당시 건

거기준’이 7년 만에 12㎡(3.6평)에서 14㎡

린 그림’으로서 최고의 걸작이 돼 사랑할 수

축가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린다. “‘건축가들

(4.2평)로 상향 조정되면서 월든의 오두막집

밖에 없는 그림으로 남았다.

은 건축적 장식에는 진리의 핵심과 필연성, 그

크기가 새삼 회자된 적이 있다. 소로가 제시

에 따른 아름다움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마

한 기준에 비로소 우리가 올라선 것일까?

동시대에 조선에서 그림으로 지은 집과 미 국에서 온몸으로 지은 집! 둘 다 역사적으로

치 신의 계시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소로가 미국 매사추세츠 월든 호숫가에

는 최고의 값어치를 지닌 집으로 남아 있다.

허구이고, 좋은 집이란 ‘거주자의 필요와 성

서 집을 짓기 1년 전 제주도에서 귀양 중이던

그것도 그 당시 현실적으로 유배된 엘리트들

격에 의해 겉모습과는 무관하게 어떤 무의식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자신을 잘 챙겨

의 유산으로서 말이다.

적인 진실성과 기품에 따라 내부에서 외부로

주는 후배 이상적에게 감복해 집을 한 채 지

가장 작은 집,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

자라나 표현되는 것’이다.”

었다. ‘세한도’에 그려진 집이다. 우리나라 집

는 집, 그래서 거대한 우주(집 宇, 집 宙)와 맞

그의 치열했던 삶의 태도는 실용주의

그림 중에 가장 사랑받는 이 집은 조선시대

닿아 있는 집은 과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 리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pragmatism)나 개척정신(frontier)으로

일반적인 3칸짜리 초옥의 구조도 갖추지 않

이어지면서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비견되는

은, 마치 축사 같은 느낌의 최소한의 형식으

대모험 시대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산업혁

로 그려져 있다. 집을 그린다면 당연히 있어

명 이후 서양 문명이 절정기를 향해 치닫던

야 하는 기둥과 지붕 구조 및 개구부의 표현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SUNDAY MAGAZINE 29


TREND

눈치 보지 말고 부담 갖지 말고 맘 편히 즐겨라 크리니크, 제품 셀프 테스트 매장 한국에 첫선

친절도 때로는 부담이다. 손님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떼지 않는 매 장 직원의 관심도 그중 하나다. 여유롭게 혼자 둘러보고 싶은데 과도 한 친절에 쫓기면 뭔가 사야 할 것 같은 부담까지 밀려든다. 크리니크가 최근 이런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컨설턴트와의 일대일 상담을 원하는 고객을 위한 풀서비스 와는 별도로 일종의 ‘셀프 서비스 쇼핑’ 코너를 마련한 것이다. 크리니크의 새로운 서비스는 최근 리뉴얼한 롯데백화점 잠실점 매 장에 마련됐다. 취지에 맞춰 매장 이름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서비 스(Service as you like it)’, 코너 이름은 ‘트라이 앤드 바이 바(Try & Buy Bar)’와 ‘컬러 브라우즈 테이블(Color Browse Table)’이다. ‘트라이 앤드 바이 바’는 원하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젤라토 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인기 제품을 구비해 상 담 없이 제품 테스트만 원하는 고객들이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샘플링 코너다. ‘컬러 브라우즈 테이블’ 역시 색조 제품을 고 객이 혼자서 둘러볼 수 있게 한 둥근 테이블. 매장 디자인을 총괄하는 앤서니 바타글리아 글로벌 스토어 디자 인&VMD 총괄부사장이 “고객의 의견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 서 비스 장치들이다. 그는 “쇼핑할 때 매장에 압도당하거나 직원에게 문 의하면 구매해야 한다고 부담을 느끼는 고객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 게 쇼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비스의 장점으로 “외부 압력을 받지 않고 제품을 쉽게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을 수도 있지 만 매장에 준비된 아이패드를 통해 셀프 피부상담을 하거나 제품 추 천을 받을 수 있다”며 “트렌드만 둘러보고 싶은 고객이나 필요한 제품 만 바로 구매하기 원하는 고객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테스트 베드(Test-Bed)’로 삼는 다른 글로벌 화장품 브랜 드와 마찬가지로 크리니크도 이 서비스들을 한국에 최초로 선보였 다. 바타글리아 부사장은 “한국 소비자들은 얼리어답터이고 한국 시 장은 내수 고객과 해외여행객이 혼합된 매력적인 시장이라 첫 무대로 한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들은 뉴욕의 블루밍데일 백화 점, 런던의 셀프리지 백화점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크리니크 30 SUNDAY MAGAZINE


COLUMN

파업 아이콘 된 주말 오락쇼 웃음을 돌려다오! 컬처# : ‘무한도전’ 결방 언제까지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을 때 더욱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론사 노조 파업으로 MBC 무한 도전은 넉달째 결방 중이다. 2005년부터 7년 째 방송된 무한도전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결방된 적은 없다. 그 사이 ‘쩌리짱’ 정준하 는 그토록 바라던 결혼을 하게 됐고 정형돈 은 아기를 갖게 됐다. 없던 인연이 생기고 새 로운 생명이 생겨날 정도로 길다면 아주 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결방했지만 여전히 매체들은 매일같이 무한도전의 기사 를 내놓고, 팬들은 변치 않는 지극한 애정과 그리움을 드러낸다. 그러니 이 오랜 결방의 기 간은 무한도전의 지난 7년간의 의미를 자연 스럽게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다.

고 싶었으나 결방 때문에 무산됐다는 보도는

레슬링 특집 때 한 팬은 “무한도전 6년이

꿋꿋하게 파업을 지지하며 버텨온 무도 팬들

면 시청자도 무도인”이라는 말 또한 그 연대

최근의 무한도전 관련 소식은 한국방송광

의 평정심에 물결을 일렁이게 만든다. 가장

감을 과시했다.

고공사가 발표한 프로그램 몰입도 지수(PEI)

최근 등장한 무한도전의 인기 연관 검색어는

무도를 흉내낸 프로그램은 많지만 어떤 프

순위다. 재방송으로 이뤄지는 최근 ‘무한도 ‘무한도전 결방 언제까지’다.

로그램도 무도만큼의 독특한 연대감을 만들

전 스페셜’이 3위를 기록한 것이다. 무한도전

무한도전 결방 몇 주째라는 말이 언론사

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이처럼 그동안 우리

은 지난해에는 줄곧 이 순위에서 1위를 차지

파업을 대신하면서, 무한도전은 원하든 원

가 함께 나눠왔던 시간과 행동들을 생각한

했다. 파업을 통해 무한도전의 영향력이 떨어

치 않았든 파업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돼버렸

다면 무한도전이 가지는 파업의 상징성은 충

졌다는 증거로 인용될 수도 있겠지만, 다르

다.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같이하기는 했지

분히 이해될 만하다.

게 보면 재방송만으로 버티고 있는 넉달 동

만 아무래도 주말의 오락쇼 하나가 정치적인

하지만 아무리 든든한 지지자라도 불안함

안에도 그 영향력이 아직 3위 안에 유지된다

사건인 방송사의 파업을 상징한다는 것은 좀

을 떨쳐버리기란 힘들다. 처음에는 무한도전

는 것이 놀라울 정도라고 해석되는 것이 더

안 어울리지 않을까?

이 없는 주말이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점점

맞다고 하겠다. 사실 재방송을 보면서도 그

하지만 함께한 7년이라는 시간을 되새겨

이것이 일상이 되면서 ‘무한도전 없는 일주일’

토록 몰입하게 하는 프로그램은 아주 드물다. 보면 무한도전은 그동안 단지 하나의 오락이

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수도 있다. 아니, 팬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무한 뉴스’ 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큐였

들은 혹시라도 이러다가 슬그머니 무한도전

편에서 유재석은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고, 고 감동의 드라마를 안겨주었으며 변신하고

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조금씩 걱정도 된다.

자막은 “여러분 우리를 잊지 않으셨죠?”라며

싶은 우리의 욕망을 대신해 레슬링을 하고 댄

유례가 없는 언론사의 장기 파업에도 정치권

애틋함을 자극했다. 그러자 무한도전교의 신

스를 하고 수퍼모델도 되어주었다. 우리가 살

의 책임 있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심각한

도들은 인터넷을 통해 당장 눈물이라도 쏟아

고 있는 이 세상에서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할

문제의식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더욱 그렇

질 듯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그 열성 팬들은

이야기들과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눈

다. 무한도전을 두 계절 가까이 볼 수 없게 만

아마도 정상 방송이었다면 정준하의 결혼 소

길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늘 웃음을

드는 이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식과 정형돈의 아기 소식이 무한뉴스로 얼마

잃지 않았다. 멤버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무한도전을 보면서 주말의 저녁을 웃고 울 수

나 재미있게 만들어졌을까를 상상하며 지금

알아가는 시간을 거쳐 독특한 유대감을 쌓아

있는 그 소박한 행복을 돌려받기를 무도의

의 이 결방 현실을 더욱 아파했을 것이다. 여

왔고, 그 유대감의 외연을 시청자들과의 소통

팬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기에 수퍼스타 박지성이 무한도전에 출연하

으로 확장시켜 가면서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글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 SUNDAY MAGAZINE 31


SOULSEARCHING

무엇 때문에 당신은 자유를 원하는 거죠?

What good is freedom to you? 살아가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여느 때처럼 아침 다섯 시가 되자 기상을 알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을 꼽자면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다시 작

리는 신호소리가 들려온다.”『이반 데니소비

저녁 식사로 멀건 양배춧국을 먹는 장면이다. 품을 보자. 수용소에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치의 하루』(One Day in the Life of Ivan

슈호프는 경건한 자세로 모자를 벗어 무릎

살아가는데, 다들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보

Denisovich)는 이렇게 시작된다. 바깥 기온

위에 얹는다. 그리고 국그릇에 담긴 건더기를

려고 잔머리를 굴리고 잔꾀를 부리고 속임수

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간 1월의 어느 날 강제

숟가락으로 한번 휘저어 확인하고는 국물을

를 쓴다. 하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알

노동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상 풍경이 작품

쭉 들이킨다.

료쉬카는 누가 무슨 부탁을 해도 싫다는 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Aleksandr Solzhenitsyn· 1918~2008)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배 속으로 들어

색을 하는 법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슈호프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수용소에 갇힌

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

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자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오늘도 추

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유를 원하는 거죠? 감옥에 있다는 것을 즐거

위와 굶주림,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하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

워해야 해요! 그래도 이곳에선 자신의 영혼

며 소련의 정치적 억압을

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

줄거리다.

루를 보낸다. 그러나 그에게서 절망이나 비굴

만은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그래, 한

함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누구보다 긍정

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

적이고 진지하며 유머감각까지 있다. 나이 사

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테지!”

십에 수용소 경력 8년차의 죄수답지 않게 귀

그리고 예의 저녁식사 장면에서 잠깐 나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62년에 발표한

유-81호뿐인 이 노인에게서 나는 희망을 발

이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

견한다. 다른 죄수들은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

다. 포병장교로 복무하다 반역죄로 체포돼 11

를 굽히고 있는데, 노인은 허리를 꼿꼿하게

도로 열심이다. 작업 끝 신호가 울리자 다들

년간이나 감옥과 수용소, 유형지를 돌아다녀

세우고 있다. 다른 죄수들은 국그릇에 얼굴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나가지만 슈호프는

야 했던 그의 경험이 이 작품을 쓰게 한 것이

을 처박고 먹는데, 노인은 수저를 높이 들고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모르타르가 남았고, 다. 그래서 발표 당시 스탈린 치하의 강제수

먹는다. 다른 죄수들은 빵을 더러운 식탁에

그의 지랄 같은 성미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용소와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죄 없는 인간들

아무렇게나 내려놓지만, 노인은 깨끗한 천을

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농담까지 던

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밑에 깔고 그 위에 내려놓는다. 얼굴에 생기라

진다. “이렇게 하루가 짧아서야 무슨 일을 하

받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읽었다.

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당당한 빛이 있다.

겠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하루가 다 갔으니 말이야!”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는 매우 흡족한 마음 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

을 발표해 1970년 노벨문 학상을 수상했다.

는 키가 큰 노인, 이름도 없이 그저 죄수번호

벽돌 쌓는 작업을 하면서는 땀까지 흘릴 정

여운 인상마저 풍긴다.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리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 작품

결국 살아가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

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는 법인지, 요즘 다

이다. 아무리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

시 읽어보면 수용소의 하루가 딱 우리네 일

게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상 같다. 더 편안한 침대에서 잠자고, 더 기름 고 가정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

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진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작업 환경에서 일하

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러면 이 노인처럼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줄칼

는 것만 다를 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숨가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

쁘게 쫓기듯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다. 물질적

창으로 비쳐 드는 오월의 햇볕이 솜털처럼

어왔다. 저녁에는 대신 줄을 서주고 많은 벌

으로는 풍요해졌으나 우리는 더 오랜 시간 더

따사롭다. 나뭇잎은 눈부시게 푸르고 바람

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찌뿌드

욱 필사적으로 일하고, 더 절박한 심정으로

조차 향기가 느껴진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

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

더욱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왕비였던 앤 불린이 누명을 쓰고 단두대로

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

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

마음의 감옥 속에 갇혀버린 부유한 노예 신

향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 오월이군

다고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세가 된 건 아닌지.

요!”였다.

32 SUNDAY MAGAZINE

행동할 수 있다.

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 다.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CARTOON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아름다운 캔틸레버 의자

B33 금속 파이프를 재료로 쓰면 다리를 확 줄여도 무게를 지탱할 수 있고 미관상으로도 뛰어난, 이른바 캔틸레버 구조의 의자를 만들 수 있어.

가장 아름다운 공중 부양 의자

MR20 쇠파이프와 캔틸레버 디자인의 미학도 진화해야 하는 법. 나는 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진화한 최고의 공중 부양 의자야.

캔틸레버 구조는 건축에서 한 쪽 기둥만으로

현대 건축의 선구자를 꼽을 때 항상 거론되는

하중을 버티게 하는 공법을 일컫는 용어인데,

건축 디자이너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슈탐과 브로이어의 의자 설계에

마르트 슈탐이라는 디자이너가 그 원리를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최초로 의자 디자인에 적용했고,

그는 캔틸레버 의자의 다리 부분 곡선을

바로 그 무렵 디자인 운동을 선도하던

크게 하는 것만으로도 한층 더

교육기관 바우하우스에 있던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마르셀 브로이어에 의해 B33이 탄생했다.

결국 미학적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가진 의자 MR10과 거기에 팔걸이를 추가한 MR20을 만들어 냈다.

내가 쇠파이프로 의자를 만들어야겠다는 기발하고도 깜찍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알아? 자전거 핸들을 돌리다가 떠올렸지. B33이 슈탐의 설계에 비해 더 각광을 받고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라면, 브로이어가 그 전부터 금속 재료의 가능성을 연구하면서 디자인했던 ‘바실리 의자’의 성공 사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쉬는 시간이 우아해지려면 앉는 의자가 일단 우아해야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말이야.

뛰어난 디자인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멋을 내야 한다는 디자인 철학을 가졌던 반 데어 로에는 단순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제품을 많이 설계했다. 오늘날에도 큰 건물 1층 라운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걸작, 바르셀로나 의자 같은.

나는 저 유명한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도 흡족해 했다는 최초의 쇠파이프 의자야. 캔틸레버 의자를 처음 설계했지만 미학적으로, 그리고 인지도에 있어서 브로이어에게 뒤진 마르트 슈탐을 소개합니다.

스페인 국왕을 접견했던 1929년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 독일관을 위해 디자인한 의자였어.

위대한 건축 디자이너들은 훌륭한 의자들을 많이 남겼어요. 그들은 자신의 건축 설계를 완성하는 소품으로 의자를 선택한 것이죠.

김재훈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했다. 인문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정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SUNDAY MAGAZINE 33


CONTE

누구세요?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르바이트를 했다. 덕분에 한동안 녀석과

는 또 궁금하다. “누구세요?” “아빠 다니는

나는 출근을 함께한 적이 많았다. 그렇게 함

회사 건물 경비하는 분. 야근 마치고 퇴근하

께 출근하다 보면 아무리 대화가 없는 부자

시는 건가 봐. 저분은 반장님인데 대학 교무

지간이라도 꽤 이야기를 나눌 것 같지만 전

처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고 경비 일을

혀 그렇지 않다. 둘째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하시는 거지. 참, 저분 아티스트시다. 우리 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사람과

요 작사도 많이 하셨대.” 둘째는 입을 다물지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 사

못한다.

이에는 이어폰이 있다. 이어폰을 사이에 두고 나는 어둡다. 표정도 어둡고 옷 색깔도 어둡

아들 쪽으로는 음악이 흐르고 아버지 쪽으

만난다. 마이클은 와인바 ‘사이드웨이’에서

고 말과 행동도 어둡다. 숫자에도 어둡고 공

로는 침묵이 흐른다.

알게 된 외국인이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

부에도 어둡고 돈 버는 일에도 어둡다. 요즘

강남대로의 중앙차로에 있는 신논현역 버

다가 알게 된 사이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출

은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다. 한마디로 어두

스정류소에서 내려 사무실이 있는 강남역 11

근하는 중이었다. 마이클은 자전거를 멈추고

운 저녁 같은 사람이다.

번 출구까지 걸을 때도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잠시 나와 인사를 나눈다. 나도 인사한다. 짧

이처럼 총체적으로 어두운 사람에게도 밝

나는 마주 오는 청년과 아는 체하며 인사

은 영어지만 인사성 하나는 밝으니까. 국제적

은 것이 하나 있으니, 인사성이다. 대학 진학

를 나눈다. 내 조금 뒤에서 비둘기처럼 고개

인 아빠의 아침 인사 퍼레이드에 아들은 놀

을 위해 학부모 면담을 하던 고3 때 담임선생

를 쭉쭉 빼며 리듬에 맞춰 걸어오던 둘째가

란 것 같다. “누구세요?” 글쎄, 마이클을 어떻

님이 내 부모에게 인사말로라도 뭔가 하나는

이어폰을 빼고 내게 묻는다. “누구세요?” 자

게 소개해야 좋을까? 와인바에서 알게 된 사

내 칭찬을 해야겠는데 도무지 칭찬할 거리

주 가는 커피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알

이라고 하면 실망하겠지? 그렇다고 업무상

를 찾지 못해 한참을 쩔쩔매다가 외친 ‘유레

려준다. 둘째는 신기한 모양이다.

아는 사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마땅

카’가 바로 인사성이었다. “어머님, 그래도 상

몇 발짝 못 가서 또 나는 마주 오는 젊은 여

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내가 “이름은 마이클인

득이가 인사성 하나는 참 밝죠. 다만….” 다만

자와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여자는 몇 마디

데…”라며 우물쭈물하는데 둘째가 하는 말

입시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인사성

안부를 묻고 지나간다. 둘째는 이번에도 신기

이 이랬다.

이었지만 그때도 밝았고 지금도 제법 밝은 편

한 모양이다. “누구세요?” 나는 살짝 자랑처

이다.

럼 말한다. “여기 앞에 있는 병원의 간호사인

둘째는 화성에 있는 수원예비군교장에서

들숨날숨

거의 회사 건물 앞에 다 와 나는 마이클을

“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아빠 말이에요. 누구세요, 아빠는?”

데 아빠가 가끔 가니까.”

일병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다. 입대하기 전

이번에는 멋진 노신사 한 분을 만난다. 인

몇 개월 동안 둘째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사성 밝은 나는 당연히 인사를 나눈다. 둘째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집착 없이 최선을 다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솟아나온다”

34 SUNDAY MAGAZINE

▶“아르스 노바는 대한민국에서 현대음악을

▶“제게 무대는 늘 신성한 곳이에요. 제가 이

▶“사람들은 묻습니다. ‘집착도 없이 어떻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끊임없이 듣는

은미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그곳에서 찾

직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습니까?’라고요.

것 말고 현대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방법

아야 하기 때문이죠. 완벽한 이은미가 되기

정말 그럴까요? 집착을 틀어쥐고 최선을 다

은 없다. 음악은 (듣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러니 막상 숨이

하는 사람과 집착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

람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막히죠.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고 다음달 전

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누가 더 창의적일

무엇보다 어떤 음악이냐를 떠나서 음악을 대

국 투어에 나섭니다. 데뷔 24년차지만 아직

까요, 누가 더 지혜로울까요, 누가 더 큰 성과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 문화와 오락은

도 음악이 무엇인지 답을 찾는 중이에요. 전

를 낼 수 있을까요. 답은 집착 없이 최선을 다

구분돼야 하는데 요즘에는 조금만 재미가

종교는 없지만 모든 종교를 통틀어 기도해요.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고요? 스스로 그어놓

없어도, 조금만 어려워도 견디지 못한다. 젊

제가 눈 감는 순간이라도 좋으니 제게 음악

은 한계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엄청

은 사람일수록 그게 더 심하다. 생각을 자극

이 무엇이었는지 좀 알려달라고요.”

난 에너지가 솟아나오는 겁니다. 그게 ‘가난

하는 것, 그게 현대음악이고 그게 문화다.”

-MBC ‘나는 가수다2’에 출연 중인 가수 이은미 인

한 마음의 힘’입니다.”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 인터뷰 중에서

터뷰 중에서

-백성호 기자의『이제, 마음이 보이네』중에서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대나무 그늘 아래 ‘멀리’ 혹은 ‘오랫동안’ 어디로 간다는 것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즐거움입니다. 동네 근처 들판이나 강가를 기웃거리던 친구들과 어울려 우리 동네로부터 무려 ‘120㎞’나 떨어진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의 나들이로 마음이 들뜨니 가는 동안, 오는 동안 차 안은 시끌시끌했습니다. 이럴 땐 애나 어른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주변을 거닐었습니다. 초여름 더위였으나 늙은 느티나무 그늘은 서늘했고, 대밭 사잇길은 시원했습니다. 대밭을 지나 경기전 뒤편 중문을 돌아드니, 돌담 나무 그늘 아래서 독서삼매에 빠진 ‘젊은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젊은 할머니’의 고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데, 젊은 부부가 나타나더니 그 옆에 한 자리 차지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저는 ‘생큐’라고 합니다. 할머니와 젊은 부부, 창 깊은 모자와 선글라스, 독서하기와 스마트폰으로 셀카 찍기, 돌담과 대밭 그늘 아래 스쳐 지나가는 한순간을 끄잡아 내렸습니다. 몰래.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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