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ISSUE
여수 엑스포
May 20~21, 2012. no.271. sunday.joongang.co.kr
CONTENTS THIS WEEKS PEOPLE
editor’s letter
06
칸에 두 번째 가는 배우 윤여정
엄청난 억척가
ISSUE
08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중소기업청장
여수 엑스포를 가다 <하>
INTERVIEW
이던 시절, 한 조찬 모임에서 그의 ‘예언’을
18
들었습니다.
와인 대중화의 산실 ‘까사델비노’ 은광표 대표
REVIEW & PREVIEW
“제가 어디 가면 두 가지가 크게 히트할 거 라 말하고 다닙니다. 하나는 막걸리요 다
22
른 하나가 판소리입니다. 매월 마지막 토
연극 ‘헤다 가블러’
요일 국립극장에 가면 완창 판소리를 들을
BOOK
24
수 있습니다. 공연 시간이 4~5시간은 기본
숨은 책 찾기 <5> 『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
GUIDE
여수 엑스포
이라 처음에는 지레 질겁을 하죠. 그런데 이게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가만히 듣다 보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25
이 주의 문화행사
지난주 토요일 ‘이자람의 억척가’ 공연을
GALLERY
보면서 저는 홍 장관의 예언이 떠올랐습니
26
다. 개막 두 달 전 매진, 자리를 늘려도 또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10주기전
매진, 좌석은 정말 단 하나의 빈 자리도 없
FOOD
이 완전 만석…. 근래에 그것도 판소리가
28
이렇게 인기를 끈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여수 토박이가 추천하는 여수 맛집
공연을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습니다. PORTR AIT ESSAY
30
체구가 별로 크지도 않은 ‘예솔이’ 이자람
김완선이 행복한 이유
은 그 넓은 무대를 혼자서 쥐락펴락했습
COLUMN
31
‘까사델비노’ 은광표 대표
니다. 눈썹 찡긋할 때마다, 어깨 으쓱 들 때 마다 다른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판소
스타일 # : 저커버그의 후드티
SOUL-SEARCHING
리로 듣는 21세기 언어들은 낯선 듯 신선
32
했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여인의 파란
강신주의 감정 수업 <12> 소심함
만장한 삶은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해졌습 CARTOON
33
니다. 2시간20분이 그렇게 훌쩍 지나갔습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VS
니다.
CONTE
무릇 전쟁에선 선봉장이 중요합니다. 21세
34
기 문화전쟁에서 우리 드라마엔 배용준, K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PHOTO ESSAY
팝엔 보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자람이
35
판소리로 나서려 합니다. 남은 우리는 ‘귀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명창’이 되어 응원하면 어떨까요. 예언이 다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유영국 회고전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S MAGAZINE 표지 여수 엑스포의 명물인 국제관 엑스포 디지털 갤러리. 길이 280m, 너비 30.7m의 대형 LED스크린이다. 사진 박종근 기자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홍주희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편집 우현아 교열 한규희 디자인 전유진 최귀연 통신원 이지윤(런던)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강희경(뉴욕) 박철희(베이징) 광고 김진영 구명서 엄태규 마케팅 박유선 이용임 박유림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구독신청 1588-3600, 080-023-5001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04 SUNDAY MAGAZINE
THIS WEEK PEOPLE
젊은 거장들의 분신 어떤 역할도 해내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 영화 두 편 들고 칸에 두 번째 가는 윤여정
배우는 감독의 도구라고 했다. 특히 본인처럼 늙은 배우 라면 주어진 역할을 마다할 여유는 더욱 없다고 했다. 일평생 연기를 업으로 삼은 윤여정(65)은 배우란 존재 를 애써 포장하지 않았다. ‘벗으라면 벗고, 입으라면 입 고, 애드리브 따위는 하지 않는’ 감독의 세계 안에서 기 꺼이 그의 분신이 되어주는 것이 연기 철학이라면 철학이라고 했다. 그게 비결이었을까. 윤여정이 생애 두 번째로 세계 영화인의 축제인 프랑스 칸 영화제 에 간다. 그가 출연한 ‘돈의 맛’(임상수 감독)과 ‘다른 나라에서’(홍상수 감독) 두 편이 제 6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2년 전 ‘하녀’(임상수 감독)와 ‘하하하’ (홍상수 감독)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데 이어 이번에도 두 ‘상수’ 감독의 작품으로 칸 의 여인이 됐다. ‘돈의 맛’에서 그는 젊은 남성의 육체를 탐하는 악한 재벌을 연기했고, ‘다른 나라에서’ 는 전북 부안에 여행 온 프랑스 여자를 상대하는 촌부역을 맡았다. 두 작품 다 촬영은 쉽 지 않았다. 한쪽에선 난생처음 아들보다 어린 배우와 정사신을 찍었고, 다른 쪽에선 드라 마 촬영 직후 하루도 쉬지 못한 채 부안으로 내려가 이자벨 위페르와 영어로 연기를 해야 했다. 지난 2일 ‘돈의 맛’ 개봉을 맞아 만났던 그는 “죽기 전에 다하고 가라는 계시였나 보 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배우로서 꿈이 없다. 어린 시절 ‘청춘의 심볼’부터 안 해본 역할이 없다. 무슨 꿈이 남아있겠나. 어떤 역이든 들어오면 하는 거지”라고도 했다. 예순을 훌쩍 넘겼지만 벗으라면 벗는 이 쿨한 여인에게 감독들이 러브콜을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다. 하지만 그뿐일까. 다소 사나운 인상과 허스키한 목소리의 이 배 우는 그 연배의 다른 여배우들과 대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그는 희생과 순종의 아이 콘보다는 속수무책 바람난 엄마가 어울리고, 대자연을 보듬는 넓은 아량의 소유자보다 는 심통 부리는 푼수 할머니가 더 잘 맞는다. 특히나 젊은 시절, 그는 김기영 감독의 작품 에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스르는 역할로 입지를 굳힌 배우였다. 최근 드라마에서 줄곧 어머니 역할을 맡았지만, 누구도 그의 이름 앞에 ‘국민엄마’란 애칭을 붙이지 않았다. TV 속 어머니상을 재탕하기 싫은 젊은 영화 거장들이 그를 탐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윤여정은 16일 ‘다른 나라에서’의 시사회에서 “일하는 순간보다는 밥 먹고 쉬는 시간 이 더 즐겁다. 후배들은 일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해서 반성하고 있다”고 말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줄곧 꿈이 없어 시키는 건 다 한다고 했지만, 어쩌면 한국 영 화는 그런 그로 인해 꿈을 꾸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거장들이 이 대체불가능한 윤 여정이란 ‘도구’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06 SUNDAY MAGAZINE
글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ISSUE
꽃 피는 디지털 병풍 LED TV 샹들리에 하늘행 에스컬레이터 1t짜리 해저탐사 로봇 여수 엑스포를 가다 <하>
만국(萬國)박람회-. ‘엑스포(EXPO)’는 한동안 이렇게 불렸다. 일본이 번역 한 말로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용어만큼 엑스포의 유래를 잘 설명한 단어도 찾기 힘들다. 세계 각국이 과학기술·문화ㆍ경제 수준을 뽐 내는 종합 홍보의 장으로 엑스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각 기업관은 기업의 가치관과 미래의 비전을 만천하에 알리는 각축장이다. 이번 여수 엑스포에는 104개국이 참가해 자국의 독특한 볼거리를 갖춰놓았 다. 7개 국내 기업관 역시 하나하나가 ‘멋진 신세계’였다. 이번 행사에서 눈 길을 끈 주요 개별 국가관과 기업관을 소개한다. 여수 글 최선욱·이승호 기자 isotope@joongang.co.kr, 사진 박종근·김도훈 기자
1
기업관
4개 벽면 초대형 화면엔 1000명이 노래하는 영상
SK텔레콤관의 주제는 ‘행복_구름(we_cloud)’이다.
SK텔레콤관
다. 각자가 인연으로 연결됐다는 불교의 ‘인드라’ 그
참여와 소통과 공감을 통해 사람과 기술과 세상이 모두 행복해지는 세계를 추구한다. 건물 외관을 감싼 흰색 그물은 그 네트워킹의 세계를 은유하는 듯했 물로도 읽혔다. SK텔레콤관의 특징은 미디어 아트를 적극 활용 했다는 점이다.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과 류 병학 큐레이터가 1년 전부터 꼼꼼하게 챙겼다. 한계 륜씨의 타임캡슐은 시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1 SK텔레콤관 전면 2 4면 영상관의 실내
08 SUNDAY MAGAZINE
하는 작품이다. 소라 모형 조형물에 달린 휴대전화
ISSUE
2
로 누군가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데, 그 메
로 살아가는 디지털 세계의 현대인을 담고 싶었다”
첨단 스마트폰 기술을 활용한 건강 진단과 누구
시지는 1년 뒤에야 들을 수 있다. 명화와 애니메이션
는 게 최종희 작가의 설명이다. ‘사람과 기술이 함께
나 1인 기업가가 될 수 있는 스마트 커머스 등을 전시
의 결합으로 유명한 이이남 작가도 신작 디지털 8폭
하는 세상’이라는 SK텔레콤관의 운영 취지를 기억
한 1층을 지나 3층에 오르면 엑스포를 통해 기업이
병풍을 선보였다. 얼핏 보면 옛 그림이지만 가만히 보
하면 현대미술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깜짝
보여주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초
면 그림 속에서 꽃이 피고 나비가 날며 눈이 오고 바
작품이 준비된 2층 화장실도 놓치면 아쉬울 듯.
대형 영상이 4개 벽면을 따라 한꺼번에 펼쳐지는 영
여수 바다가 통유리 너머 펼쳐진 방에는 바닥엔
상관에서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 다양한 음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동원된 주민들이 망치와
인조잔디를, 천장엔 해먹(그물침대)을 달아놓았다.
색으로 변주된다. 영화감독 이준익씨와 디지털 아티
정으로 돌산을 깨뜨려 만든 여수 마래터널을 재현
관람에 지친 몸을 편히 걸치고 잠시 쉬어가기 좋다.
스트 윤지현·류한길·정두섭·김태윤씨가 만든 이 영
한 동굴을 지나가면 거울의 방이 등장한다. 거울에
더 많은 곳을 구경하겠다는 욕심은 잠시 내려두고
상에는 가수 박정현의 열창과 함께 전국 1000명의
비친 내 모습은 때로 뚱뚱하게, 때로 홀쭉하게 심하
함께 온 사람들과 바다를 보며 그동안 못했던 이야
시민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관이 파노라마로 펼쳐
게 일그러져 있다. “제 모습을 잃고 왜곡된 모습으
기를 나눌 기회다.
진다.
람이 분다.
SUNDAY MAGAZINE 09
ISSUE
3
해 지면 뜨는 32m 워터 스크린 Life is Green 선명한 메시지 LG관
1, 4 LG관 실내 2 건물 전면에 물줄기로 만든 워터 스크린. ‘Life is Green’이란 LG관의 슬로건이 보인다. 3 47인치 LED TV 54대가 각각 움직이는 미디어 샹들리에를 관람객들이 쳐다보고 있다.
10 SUNDAY MAGAZINE
ISSUE
2
3
1
4
바깥에서 본 LG관 건물 주변엔 온통 비가 내렸다. 옥
대의 47인치 LED TV를 조합해 만들었다. 샹들리에
LED 모니터 11대가 LG의 태양광 에너지 기술이 만
상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다. 해가 지면 이 물줄기가
는 2050년의 미래에서 온 영상 메시지를 예고편 형
드는 미래를 연출한 3D 퍼포먼스도 눈길을 끌었다.
만드는 가로 32.6m, 세로 4.2m의 초대형 워터 스크
식으로 관람객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했다. LG관 내
옥상에 마련된 ‘수(水)정원’은 남해바다를 보며
린에는 ‘Life is Green’이라는 문장이 나타난다. 차
부는 LG의 미래 제품으로 꾸며졌다. 눈으로 본 색
연못에 발을 담글 수 있도록 했다. 어린이들이 물장
세대 친환경 생활을 LG만의 미래 기술로 선도해 가
을 그대로 화장하는 데 쓸 수 있는 메이크업 펜, 조
난치기에도 좋은 곳이다. 옥상 한쪽에 마련된 태양
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LG관 최두희 홍보담당은
난자를 찾아주는 위성도우미 등 2050년에 쓰일 미
광 발전기는 LG관에 필요한 전력의 일부를 보탠다.
“첨단 정보기술(IT)을 통해 만나는 친환경 미래 녹색
래 제품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2층에서는
LG관은 바다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설계했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2012~2050년 사이 LG의 가상 역사를 만날 수 있는
다. 중간 중간에도 바다로의 통로를 열어 두었지만 무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에 세계 최초의 미
시간의 터널이 펼쳐진다. 표면을 깎은 에칭 유리 등의
엇보다 옥상을 개방한 것이 특징이다. 바다 냄새를
디어 샹들리에가 걸려 있다. 수직으로 움직이는 54
부조 표현이 주로 사용돼 입체감을 준다. 55인치 3D
맡으며 자연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SUNDAY MAGAZINE 11
ISSUE
1
2
3
나선형으로 돌며 들어가는 전시장 앵무조개 속을 탐험하듯 관람 포스코관
1 포스코관 전면 2 하늘로 향해 올라가는 듯한 에스컬레이터 3, 4 포스코관 실내
12 SUNDAY MAGAZINE
ISSUE
4
포스코 파빌리온의 모양은 이채롭다. 구멍이 숭숭 뚫
우면서도 충돌 성능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성 플랑크톤 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인과 황화수소 등 바다 내 오염물질을 정화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
린 채 약간 기울어진 듯한 거대한 백색 치즈덩어리
홍익대 조소과 정현 교수와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같은 건물인데, 아래가 살짝 들려 있다. 이곳에 마련
함께 만든 ‘스틸아트 빅뱅’은 철 부산물을 재활용해
된 에스컬레이터가 관람객을 이끄는 통로다. 하늘로
만든 ‘작품’이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나와 우주로 솟
대공간에서는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음원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마침내 여수
구치는 쇳덩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또 제철 부산
으로 활용한 멀티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관객들이 직
앞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전시관 주제인 ‘바다가
물인 슬래그를 가공해 만든 인공 어초 ‘트리톤’을 활
접 참여해 영상을 구성할 수 있다.
인류에 주는 선물’이 바로 이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
용한 해양보존 활동도 눈길을 끌었다. 철강 슬래그는
파빌리온의 관람 동선은 조개 속을 걷는 것처럼 나
주는 듯하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포스코가 최첨단
철 생산 원료가 고온에서 쇳물과 분리된 뒤 얻어지는
선형으로 회전하며 들어가도록 했다. 앵무조개 속을
가공 기술을 적용해 개발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차체
부산물로, 시멘트·비료 등에 사용되는 친환경 자원
탐험하는 느낌을 살린 것이다. 이곳에서 울림통을 통
가 걸려 있다. 기존 자동차 차체 무게보다 26% 가벼
이다. “트리톤은 철과 칼슘이 풍부해 해조류와 식물
해 울려퍼지는 연주와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다.
다”는 게 포스코 측의 설명이다.
SUNDAY MAGAZINE 13
ISSUE
1
로봇 ‘메로’와 함께 2PM·브아걸 노래를 대우조선해양로봇관
2 1 대우조선해양로봇관 실내 2 대우조선해양로봇관 전면
2040년 수심 6000m의 어두운 해저에서 로봇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사람처럼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일
대우조선해양 로봇연구소 이상범 차장은 “로봇 전
자원을 탐사하고 있다. 탐사단의 대장은 키 6.5m, 몸
명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웃는 표정, 화난 표정부터
문가뿐 아니라 극작가·디자이너·영화감독 등 다양
무게 1t의 ‘네비’. 큰 체구와 달리 빠른 움직임으로
지루한 표정, 멍한 표정, 심지어 혀를 내미는 모습까지
한 직군의 사람이 함께 꾸민 로봇 전시회가 열리는
현장을 지휘한다. 오징어를 닮은 ‘스파키’는 여러 개
다채롭다.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며 “국내 로봇 기
의 팔로 용접하는 기술을 선보이고, 게 모양의 ‘코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제작한 ‘메로’와
술의 우수성을 감상하고, 미래 해양자원 개발에 이
은 해저광물을 집게발로 집어올릴 수 있다. 뱀 모양
함께 K팝을 부르는 순서도 마련돼 있다. 2PM, 브라
용될 로봇을 상상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
의 ‘토네’는 머리에 달린 장비로 자원을 캔다. 또 불
운아이드걸스 등의 히트곡 주요 안무도 곧잘 따라 한
했다. 엑스포조직위원회는 기업관을 ‘국내 대기업의
가사리와 비슷한 ‘샤이니’는 조류를 에너지로 바꾸
다. 이 밖에 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사람의 모
열전’으로 이름 붙여 홍보하고 있다. 이준형 엑스포
는 능력을 갖고 있다. 로봇관은 미래에 대한 상상이
습을 닮은 로봇) ‘찰리’도 관람객들과 인사를 나눈
조직위 기업전시과장은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기업
관람객 눈앞에서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키
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1순위로 꼽히는 곳이니 오랜
들이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치열한 선의의 경
1m65cm, 체중 60kg의 로봇 ‘에버4’가 가장 먼저
대기시간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쟁을 관전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12 SUNDAY MAGAZINE
ISSUE
1
메인 쇼룸엔 360도 원통형 스크린 GS칼텍스관
초록빛 가느다란 기둥 숲 사이로 입구 안내가 있다. 대나무 숲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초록 기둥의 이름 은 ‘블레이드’. 18m 높이의 기둥이 전시관 주변에 380개 설치돼 있다. 내부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넣었다. 동양적 에너지의 원천인 논을 모티브 로 한 것이다. 멀리서 이 전시관을 보면 논 위에 자라 2 1 18m 높이의 발광 다이오드 기둥으로 둘러싸인 GS칼텍스관 2 멀리서 보면 논 위에 자란 벼의 느낌을 준다.
는 벼처럼 보일 법하다. 관람객들이 센서가 부착된 블레이드를 만지면 LED 조명이 작동해 전체 블레이 드의 색깔이 바뀐다. 곧이어 에너지 필드 전체가 화 려하게 변신한다. “에너지 흐름을 형상화했다”는 설 명이다. 독일의 세계적인 건축디자인그룹 ‘아틀리에 브루크너’가 설계를 맡았다. 겉에서는 초록 기둥만 보이지만 하늘에서 보는 에 너지 필드 건물은 별 모양이다. 메인 쇼룸에는 360도 원통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자연에서 시작한 에 너지가 다양한 생명체나 여러 가지 에너지로 바뀌었 다가 다시 자연 에너지로 돌아간다는 순환 과정을 표 현했다”는 것이 영상을 제작한 브루크너 교수의 설명 이다. SUNDAY MAGAZINE 13
ISSUE 국제관 스위스
스위스는 내륙 국가다. 얼핏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란 이번 엑스포 주제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 다. 하지만 스위스 빙하는 유럽 물의 원천이다. 라인 강ㆍ론강 등 유럽의 주요 강들이 스위스 빙하에서 시 작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스위스관은 ‘샘, 당신의 손에…’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물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다. 어둑한 지하 통로에 들 어서면 천장 틈으로 가는 빛 기둥이 내려온다. 손을 대면 손바닥을 스크린 삼아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 펼쳐진다. 빙하를 형상화한 울퉁불퉁한 경사 면을 지나면 고조선 건국 시기와 비슷한 4345년 전 생겨났다는 빙하 코어 전시실이 나타난다. 실제 스위 스 만년설에서 채취해 직접 가져왔다고 한다. 또 물 을 담은 원형 수조 위에 다양한 빛깔의 이미지가 떠 오르는 ‘샘-생명의 원천’, 스위스 정수기술로 여수의 물을 직접 정화한 뒤 직접 마실 수 있는 ‘스위스 한 모 금’ 역시 흥미롭다. 독일
독일관은 터치스크린을 통한 체험 시설로 다채롭게
스위스
꾸몄다. 쓰나미 확산 과정, 쓰나미 조기 경보 시스템 등을 관람객이 직접 누르며 살펴볼 수 있다. ‘해양 생 활권’ 전시실에선 해양 쓰레기와 어류의 무분별한 포획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을 실제 쓰레기 모형과 함 께 살펴본다. ‘보물창고’ 전시실에서는 망간단괴 등 세계의 풍부한 해양 자원을 소개했다. 무엇보다 돔 형태의 스튜디오에서 상영되는 심해 여행 영상이 눈길을 끈다. 천장과 벽면, 바닥이 모두 하나인 360도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은 순식간에 4000m 수심의 바닷속을 여행하는 착각이 들게 만 든다. 중간에 나오는 커다란 고래는 실제 옆에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전시실 옆 식당에선 독일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 맥주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오만
‘풍요로운 해양 육성’을 표방하는 오만관엔 오만의
독일
해양 역사를 담은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하지만 백 미는 4D 영상관이다. 오만의 바다와 들판으로 구성 된 5분여간의 영상은 특수효과 기능이 장착된 의자 에서 본다. 상영 내내 의자가 앞뒤 좌우로 덜컹거린 다. 바람과 물이 섞여 얼굴에 뿌려지기도 한다. 수풀 같은 줄은 발밑을 간지럽힌다. 실제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호주
넘실거리는 파도를 묘사한 거대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이 조형물에선 호주의 명소와 바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된다. 매일 오후 2시30분엔 세계자 연유산으로 유명한 호주 산호초 지대 ‘그레이트 배 리어 리프’의 실시간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객 들은 생중계되는 영상으로 바다거북 등 다양한 호주 16 SUNDAY MAGAZINE
오만
ISSUE
의 수중생물과 바닷속을 직접 볼 수 있다. 현장의 다 이버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일본
주제가 명확하다. 전시장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당 시의 쓰나미 피해를 극복하고 바다로 다시 나아가겠 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일본 의 빼어난 숲과 바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온다. 호주
두 번째 영상관에선 책 모양의 스크린에서 쓰나미를 겪은 주인공 소년 ‘가이(海)’가 바다와 화해하는 모 습이 펼쳐진다. 마지막 공간에선 숲ㆍ강ㆍ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홀로그램 입체영상을 통해 자연과 살아가 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
대형 동영상 스크린을 통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 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 장관이 주인공이다. “여수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등 이들의 입에서 여수가 불릴 때마다 한국 관객은 웅성거리며 반응했다. 두 사람의 영상 메시지와 함께 일본
미국관에선 해양오염과 기후변화 등에 대한 개선 의 지를 담은 영상물을 볼 수 있다. 스페인
콜럼버스의 나라답게 ‘탐험’이 주제다. 들어서면 세 계지도가 눈길을 끈다. 스페인과 한국의 지리적 위 치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 경로 등을 지 도를 통해 볼 수 있다. 2010년 스페인 해군과 국립연 구회의가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며 심해 생태계를 연구한 ‘2010 말라스피나 프로젝트’도 소개된다. 탐 험 과정에서 발견된 다양한 해양 생물과 함께 탐험 당시 연구팀이 탔던 해양조사선 헤스페리데스의 모 습을 볼 수 있다. 연구팀은 당시 전 세계 640여 곳의 심해에서 바닷물을 채취했는데 전시관 내 유리관 모 양의 조형물은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물론 관 속에 담긴 것은 채취 당시의 바닷물이 아니다. 미국
이밖에 태국관에서는 대형 휴머노이드 인어로봇 이 태국ㆍ한국 간의 교류 역사 등을 담은 영상물을 소개한다. 무에타이 등 다채로운 전통공연도 매일 펼 쳐진다. 벽과 천장에 설치된 다양한 구조물과 영상으 로 바닷물의 담수화 과정을 표현해 놓은 프랑스관도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6월 6일 국제관에서는 한·아 세안 센터 주최로 말레이시아 민속악기 연주 등 아세 안 10개국 대표 공연단의 전통예술 무대도 열린다. 이와 함께 24개 국제기구가 공동으로 꾸민 유엔 관은 건강한 바다와 연안이 저탄소, 자원절약형 녹 색경제의 열쇠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구삼열 유엔관 공동대표는 “인터랙티브 게임과 퀴즈 등을 통해 바 다 생태계에 대한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스페인
고 말했다. SUNDAY MAGAZINE 17
INTERVIEW
밑빠진 독 같았던 IT쟁이 20년 오래 되면 뭔가 쌓이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Who Are You :
와인 대중화의 산실 ‘까사델비노’ 은광표 대표
18 SUNDAY MAGAZINE
INTERVIEW
시작은 1990년대 말이었다. 한적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주택가에 카페와 레스토 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 끼 밥값보다 비싼 찻값에 혀를 내둘렀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그 값을 지불했다. 청담동에서의 소비는 새로운 문화와 첨단 트렌드를 경 험하는 ‘수업료’였다. 하지만 청담동은 항상 바뀐다. 늘 새로워야 하는 것이 트렌드의 속성이니 말이
은: 그럼 죽습니다. 와인은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계획대로) 건물에
와인 바를 열긴 여는데, 제가 하겠습니다.
다. 비싼 임대료도 한몫했다. ‘시안’ ‘하루에’ ‘카페 드 플로라’ 등 청담동의 전성
이렇게 해서 2002년 10월, ‘까사델비노’가 문을 열었다. “6개월 동안 수익이 안
기를 이끌었던 ‘원조’들은 진작 사라졌다. 문을 열고 닫는 가게는 여전히 부지기
나면 접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청담동 절정기, 와인시장 급성장기와
수다.
맞물리면서 금세 명소가 됐다.
‘까사델비노’는 이곳에서 10년을 버틴 와인 바다. 한자리에서 청담동의 황금기 를 목격하고, 한국의 와인 붐을 지켜본 청담동의 터줏대감이다. 은광표(54) 대표
그 버티기 힘들다는 청담동에서 10년
를 만났다.
-청담동에서 10년이면 오래 버텼습니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가장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곳이었죠. ‘청담 피플’이라는 말까지 있었으니까. 외환위기 끝나고 2000년까지가 암흑기라 는데, 청담동은 그때 가장 호황이었어요. 모든 유명 인사가 청담동에 있었고, 퓨전 음식이나 브런치 같은 문화도 처음 소개됐고요. 그걸 먹겠다고 주차난 생기고 민 와인 애호가인 일신방직의 김영호 회장은 청담동 사옥을 리노베이션하면서 원 들어오고 그랬죠. 요식업계 주인장들이 새로운 문화를 개척한 거예요.” 이런 구상을 했다. 1층에는 와인을 수입하는 자회사인 신동와인의 숍, 지하는 와
그의 말대로 소비가 곧 문화였던 청담동은 강남 중에서도 특수한 상징성을 갖
인 바를 만드는 것이다. 신동와인의 와인 시음회를 열심히 다니던 와인 애호가면
게 됐다. 오죽하면 우아하고 단아한 옷차림을 대표하는 말(청담동 며느리룩)이 됐
서 김 회장의 고교 후배였던 은광표 대표는 마침 이 계획을 전해 듣고 김 회장을 을까. 하지만 요즘 청담동은 예전 같진 않다. ‘가진 자의 산실’이면서도 허위에 찬 찾아갔다. 은: 회장님, 와인 바 하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신동와인 마시러 오는 게 아닙
니다. 경쟁사 와인 가져다 놓을 수 있습니까.
공간(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지금은 한풀 꺾였어요.
“맨해튼에서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싼 임대료 찾아서 모인 데가 소호잖아요. 지
김: 있지.
금은 거기도 엄청 비싸졌죠. 돌고 도는 거예요. 홍대 앞도 합정역 일대까지 확장됐
은: 그럼 직원들에게 경쟁사 와인을 추천하라고 하실 수 있으십니까.
잖아요. (청담동이) 많이 죽었지만, 당장은 아니라도 새로운 경쟁력을 찾지 않을
김: 음…그건 쉽지 않겠는데.
까 싶어요.” SUNDAY MAGAZINE 19
INTERVIEW
-같이 있던 사람들은 사라지거나 옮겨갔는데 오래 남은 비결은.
“경쟁자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거죠. 애초에 와인 바가 내 경쟁 상대가 아니라 고도 생각했고.” -무슨 말인가요.
“(직장을 그만두고) 와인 쪽을 생각하면서 고민했어요. 와인숍이나 레스토랑은 이미 전문가가 있어 경쟁력이 없겠더라고요. 근데 와인 바는 잘할 것 같았죠. 나는 와인을 알코올이 들어간 액체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깡소주처럼 ‘깡와인’ 마시 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당연히 메인 음식과 함께여야 하는데, 보통 와인 바는 크 래커나 치즈 정도만 주잖아요. 그래서 와인 바를 하면 꼭 음식을 제대로 해야겠다 고 생각했고, 경쟁 상대를 다른 와인 바가 아니라 레스토랑으로 잡은 거죠.” IBM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은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다. 92년엔 ‘사이테크’ 라는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2001년까지 회사를 잘 운영 했지만 “당연히 되는 줄 알았던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에서 탈락”하면서 20년 가 까운 IT 경력을 접었다. -왜 하필 와인이었나요.
“프로젝트에서 탈락하기도 했지만, IT업계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 어요. IT는 신기술이 나오면 옛 기술은 버려져요. 물론 펀더멘털이라는 게 있죠. 하지만 그 위에 있는 표현은 계속 바뀌어요. 언어가 바뀌는 거죠. 쭉 써 왔던 말을 갑자기 안 써요. 새로운 말을 또 배우래요. 배웠는데 젊은애들이 더 잘해요. 20년 된 장맛보다 갓 만든 장맛이 더 좋은 거예요. 밑 빠진 독에 계속 새로운 걸 넣어줘 야 하는 거죠. 그게 싫었어요. 오래되면 쌓이는 걸 해야겠구나…. 그래서 와인인 거죠.” -그런데 청담동이 20년 묵은 장맛 같진 않잖아요.
“그러니까 청담동에도 오래 묵은 게 하나는 있어야죠. 이제 10년 묵은 게 생긴 거고요.” 취미가 일로 와인바 연 지 10년 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곳은 그의 사무실도, 까사델비노도 아니었다. 현대카드 의 멤버십 라운지 ‘하우스 오브 퍼플’이었다. 2008년 현대카드가 퍼플카드 회원 전용 공간으로 만든 이곳의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도 그다. 현대카드 측은 “와인과 고메 관련해서 은 대표만 한 전문가는 없다고 생각해서 맡겼다”고 얘기했다. 은 대 표는 “까사델비노의 단골인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딴 데 한눈 안 팔고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맡긴 것 같다”고 말한다. 20 SUNDAY MAGAZINE
INTERVIEW
1년에 한 번, 10월의 생일파티 ‘까사델비노’에서는 매년 10월 파티가 열린다. 처음 문 열었던 날을 자축하는 생일파티다. 처음엔 단골손님과 손님들을 대접하는 의미로 무료로 진행했다. 하지만 남의 생일파티를 자신들의 모임으로 활용하는 얌체 와인동호회가 생기면서 3만원씩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밴드 음악 들으면서 노는 거예요.” 은 대표의 말처럼 파티는 공연·음식·와인이 어우러져 신나게 한판 노는 장이다. 예약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시간 맞춰 입장하면 되는데, 끝나는 시간은 확실하다. “더 하면 (파티가 아니라) 술판이 되니까 12시 되면 나가라고 한다”는 설명이다. 밴드 음악은 그의 친구이며 단골손님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정원영, 기타리스트 한상원,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등이 번갈아 가며 맡는다. 150여 명으로 꽉 찬 바는 금세 달아오른다. 간혹 예상치 못한 특별 손님, 번개 공연으로 열기가 더 뜨거워지기도 한다. 지난해 9주년 파티가 그런 경우였다.
한우물의 시작은 취미였다. IT 업계에서 일하느라 “의도적으로 취미 삼은” 게 와인이었다. “제가 일했던 분야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에 핵심 기술이 모여 있어 요. 그쪽의 젊은 엔지니어들과 일을 많이 했는데, 만나면 와인 얘기만 하는 거예요.
원래 예정된 무대의 주인공은 한상원 밴드. 공연이 한창인 가운데 김창완씨가 손님으로 나타났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는지, ‘쫄쫄이’ 차림이었다. 누군가 “잼(jam·즉흥연주) 하자!”며 김창완을 무대로 불러올렸다. 여기에 손님으로 따로 왔던 드러머 남궁연까지 가세했다(사진).
돈 벌면 일은 취미로 하면서 나파밸리 와이너리 사는 게 꿈이래요. 하나도 모르는
“쫄쫄이에 슬리퍼 신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불렀어요.
얘기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94년에 책을 사서 거기
김창완이 기타 치고 노래하고, 한상원 기타 치고,
나온 와인부터 마시기 시작했죠.”
남궁연 드럼 치는 공연을 이렇게 가까이서 어떻게 보겠어요. 아주 난리가 난 거죠. 순전히 번개로.
-취미가 일이 돼서 10년인데, 그 10년이 한국인이 와인을 마신 10년과 대략 맞아떨어지네요.
(김창완씨는) 미발표 신곡을 2곡이나 했어요.”
“초기엔 유행이었고, 성숙되면 그냥 존재하는 거예요. 양주·소주·맥주·기타주
이렇게 한번 파티가 열리면 보통 일인당 한 병 이상씩 와인을
중에 기타주였다가 이젠 하나의 항목이 됐잖아요. 마시는 법, 보관법, 산지별 차이, 워낙 많이 소개돼서 많이들 알고요. 그런데 산업 규모로는 아직 모자라요. 우리 나라 정도면 와인 시장이 1조원은 돼야 하는데 지금은 껌 시장보다 작죠.” -어느 정도 대중화됐는데도 와인은 공부의 대상인 것 같아요. 좀 알면 폼도 재고요.
마신단다. 이 비용은 은 대표가 부담하고 입장료로 받은 돈은 기부한다. 올해는 열 살 생일파티인 만큼 “좀 더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10월 셋째 주 토요일이면 그 열광의 파티와 함께 청담동도 10년 묵은 바 하나를 갖게 된다.
“대중화됐어도 와인은 매니어가 있는 산업이잖아요. 이런 데선 지식 있는 사람 이 폼을 잡을 수 있죠. 폼 재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다만 뻐기면 안 되고 겸손해야 해요. 단 한 명이라도 와인을 모르거나 싫어하는 사람 있으면 얘기하지 말아야죠.” -개인적으로는 어떤 와인을 좋아하나요.
“남자한테 어떤 여자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예쁜 여자 좋다고 그러잖아요. 좋은 와인은 다 좋아해요.” -싼 것도 마시나요.
“그럼요. 그냥 드링킹해요. 좋은 와인은 집중해서 마시고요. 사람들이 집에 가 면 와인 몇 병 있느냐고 묻는데, 한 병도 없어요.” -모아두지는 않나요.
“아이들이 태어난 해에 만든 거라든지, 의미가 있어서 나중에 쓰려는 거 아니면 쟁여놓지 않아요. 보통 좋은 와인을 보관하잖아요. 그럼 가격이 자꾸자꾸 올라서 더 마실 수 없게 돼요. 시가를 생각하거든요. 저는 다 마셔버려요.”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전명진 포토그래퍼
전설의 와인 로마네 콩티. 왼쪽부터 로마네 생 비방, 본-로마네, 리쉬부르, 라 타슈.
SUNDAY MAGAZINE 21
REVIEW & PREVIEW
쉰줄 이혜영의 힘! 현실과 이상 사이 비틀린 욕망 온몸으로 되살리다
헤다 가블러. 이 여자의 히스테리에 공감하
명을 스스로 지배하기를 꿈꾼 자유로운 영혼
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9세기 권위 있는 장
의 독립적 여성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록
군의 아름다운 딸로 태어나 주위의 칭송을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파멸로 메운 비극의 주
한몸에 받던 오만한 여인이 무려 6개월간의
인공이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틀 뒤 자살해 버린 심리란 어떤 것이었을까?
소극적인 공부벌레 남편과 지루한 신혼여 행을 보내고 돌아온 헤다는 이상과 현실 사
배우 이혜영의 무대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 이에서 부서질 듯 흔들린다. 이상적인 생활을
연극 ‘헤다 가블러’, 5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00자평 허순자(연극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이혜영은 헤다의 독특 한 개성을 훼손하지 않고 단 한 순간의 리듬도 놓치지 않는 명징한 연기로 기대에 부응했다. 일반 관객들에게 어려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
은 ‘헤다 가블러’는 19세기 사실주의 연극의
꿈꾸며 빚이라는 현실을 지고 마련한 대저택
초석을 다진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
에서 남편의 성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아버
의 1890년 작으로, 국내 프로무대에 처음 오
지의 성 ‘가블러’의 이상에 젖어 산다. 모든
른 작품이다. 1891년 뮌헨 호프테아터의 초연
일에 남편과 엮이기를 거부하는 그녀는 ‘죽
리뷰에 가장 빈번히 등장한 단어가 ‘이해 불
을 정도로 지루해 하는 재주 하나만 가지고
가능’이라는데, 120년 뒤의 우리가 이해할 수
태어났다’며 현실 자체를 권태로 못박는다.
있을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장 이전
과거에 방탕했지만 새 사람이 된 옛 애인
에 ‘히스테리’의 개념을 생생히 제시한 인간
뢰브보르그가 남편과 교수직을 다툴 만큼
상이라는 데 이 고전의 존재이유가 있다.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옛 친구를 뮤
헨리크 입센은 인간 심리에 질문을 던지
즈로 삼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은 이상과 현
는 사실주의 작품들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실 간의 위태로운 균형을 허물어 버린다. 권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
태와 품위로 포장돼 있던 오만은 파헤쳐지
작가지만, 우리에겐 대표작 ‘인형의 집’ 정도
고, 가질 수 없다면 부서버리겠다는 욕망에
로 알려져 있다. 헤다 가블러란 여인이 더 낯
휩싸인다. ‘내 생애 단 한 번 누군가의 운명
깨진 것은 아쉬움이지만, 늘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적합한 배우를 발탁해
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인형의 집’이
을 바꿔놓고 싶다’며 뢰브보르그의 ‘아름다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명동예술극장의 성공적인 무대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얻기 위해 남편과 자식들
운 비극’을 이상적으로 연출하려 하지만, 추
든 인상적인 카리스마였다. 남성들의 연기가 헤다와 조우를 이루지 못해 균형이 ★★★★
김소연(연극평론가) 거대한 가블러 장군의 동상, 위압적인 높이에 문이 보이지
을 버리고 집을 떠나는 ‘개인으로서의 여성’ 잡한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자 미련 없이 삶 을 그려 20세기 초 여성해방운동에 촉진제
이라는 현실을 버리고 존엄한 자아의 이상을
간 순간 심리적 공간을 그리고자 하는 공들인 연출에도 불구하고 이혜영의 ‘헤
가 됐고, 주인공 노라는 여권 신장의 대명사
지켜낸다. ‘머리에 포도넝쿨을 두른’ 여신의
다’만이 살아 있다. 의도한 선택인가, 막다른 결과인가. 입센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 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헤다 또한 남편
모습으로 최후를 맞는 장엄한 의식은 그녀가
다시 기다려야겠다.
에게 종속되는 규범적 여성성을 거부하고 운
꿈꾸던 아름다운 비극을 스스로 연출한 것.
않는 두터운 회색의 벽. 이미 파멸을 새겨넣은 무대에서 조명, 음향, 움직임 등 순
22 SUNDAY MAGAZINE
★★★☆
REVIEW & PREVIEW
음악과 미술의 파격 콜래보레이션 스칼라 극장 주역 가수 초청 오페라 ‘토스카’ 5월 25~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월 2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문의 02-2238-1002
무대 곳곳에는 헤다의 심리를 암시하는 요
2012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일환으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공연이 열린다.
소들이 정교하게 배치됐다. 무대와 객석의 시
그랜드오페라단은 스칼라 극장 주역 가수를 초청해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의 진수를 선
선을 지배하는 근엄한 가블러 장군의 동상
보일 예정이다. 호세 쿠라 등과 ‘토스카’를 공연한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파타네, ‘제2의
은 무게라곤 느껴지지 않는 경박한 남편의
파바로티’로 불리는 테너 마우리지오 살타린, 베르디·푸치니 전문 바리톤 마르코 킨가
아내로 살아가는 현실을 부정하고 독립된 존
리, 한국인 테너 최초로 스칼라 극장 주역 가수로 데뷔한 테너 이정원 등이 출연한다.
재로서 살기 원하는 헤다의 이상이 얼마나
특히 이번 공연에서 눈에 띄는 건 음악과 미술의 콜래보레이션이다. 1막에서 화가인 남
견고한지 형상화한 것. 무대를 비추기도 하고,
자 주인공 ‘카바라도시’가 마리아 막달레나의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대 세
뒷방을 보여주기도 하는 거울은 새로운 욕망
트로 그림을 제작하는 대신 서양화가 박보순 화백의 작품을 등장시킬 예정이다. 박 화백
을 꿈꾸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헤다의
은 가로 180㎝, 세로 240㎝의 대형 캔버스에 ‘마리아 막달레나’의 그림 작업을 진행 중
이중적 자아를 입체적으로 비춘다. 원작에
이며 완성작은 향후 경매로 판매될 예정이다.
는 단순히 늙은 하녀지만 곱사등이에 벙어리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그랜드오페라단
로 설정된 하녀 베르타는 음산한 음악과 함 께 갈등의 고비마다 섬뜩하게 등장하는 연출 로 헤다의 뒤틀리고 억눌린 자아를 대변한다.
스페인 플라멩코의 살아 있는 전설
최후의 순간에 여러 개의 거울로 헤다를 비
카르멘 모타의 ‘알마’
추고, 수백 개의 와인 잔이 부딪쳐 흔들리는
기간 5월 23~26일, 장소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문의 02-517-0394
장면을 연출한 것은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의 인간의 심리, 그 깨지기 직전의 연약 하고 변덕스러운 상태에 대한 은유다. ‘햄릿1999’ 이후 13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 아온 이혜영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객석을 사 로잡았다. 50세의 나이를 의식할 수 없는 것 은 신경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오만한 개 념으로서의 헤다 가블러 캐릭터를 만들어낸 덕분이다. 작품은 이혜영의 출연만으로도 대 중성을 확보했지만 사실주의 고전을 원작에
스페인 플라멩코의 살아 있는 전설 카르멘 모타가 최신작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충실하게 재현한 무대는 난해하다는 평을 피
카르멘 모타의 플라멩코는 전통 플라멩코에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쇼와 브로드웨이 뮤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계급구조가 와해되던
지컬의 화려함을 접목시켜 그녀만의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 전혀 다른 분위기의 1막
과도기적 시대에 다양한 인물의 등장을 예
과 2막으로 구성돼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1막에서는 스페인 정통 플라멩코에
감하며 창조해 낸 새로운 유형의 여성상이
탱고·재즈·현대무용 등이 어우러진 공연이 펼쳐진다. 전통 플라멩코 춤을 기본으로 여러
내밀히 드러낸 히스테리는 오늘도 여전히 유
장르를 접목시켜 문외한도 쉽게 무대를 즐길 수 있다. 2막에서는 삶과 죽음, 행복과 슬픔,
효하다. ‘19세기 귀족 이야기’로 낯설어 할 것
고독과 환희 등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들을 표현한 무대가 보다 자유로운 축제의 형태로
이 아니라 그저 한 불행한 여인이 자살에 이
펼쳐진다. 카르멘 모타 스스로 “삶의 희로애락을 원초적인 에너지를 사용하는 플라멩코
르는 요동치는 심리를 정교하게 펼쳐보인 그
로 표현했고, 플라멩코는 나이와 국적을 초월한 모두의 공감대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림으로 본다면 공감이 좀 쉬울 듯하다.
있을 것”이라며 완성도와 깊이를 강조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더블유 엔터테인먼트
사진 명동예술극장 SUNDAY MAGAZINE 23
BOOK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예술가들과 나눈 따스한 교감을 무엇보 다 중요하게 여겼고, 예술가와 교류하며 작품 을 직접 보는 것을 필수적인 일이라 여겼다. 이 책에는 근대 건축의 대가 미스 반 데어 로에, 삼촌과 같은 이름을 가졌던 반 고흐의 조카 빈센트 빌럼 반 고흐, 20세기 조각에 지 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 조각가 브란쿠시, 미 국 현대사회의 풍경을 보여준 에드워드 호퍼 등 16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색면 추상으로 유명한 마크 로스 코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로스코와 절친했던 캐서린 쿠는 그에 관 한 글을,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어
모던 아트 현장 한가운데서 기록한 16인의 숨은 이야기
숨은 책 찾기 <5> 아트북스의『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
느 날 아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특별했 던,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약한 인간이었던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밝고 스스 로 빛을 내뿜는 듯한 아름다운 색채의 그림 을 그리던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가 면서는 빛을 꽁꽁 숨겨둔 듯 어두운 색채의 그림들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특히 마음을 아 프게 한다. 이 책은 지은이 사후 11년 뒤 출판됐다. 캐 서린 쿠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시작한 저술
24 SUNDAY MAGAZINE
특별한 인연이 느껴지는 책들이 있다.『전설
미술비평가로 활약했다. 한마디로 한평생을
을 안타깝게도 끝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캐서린 쿠
현대미술과 함께 살았던 여성이다.
유지를 이어받은 미술사학자 에이비스 버먼
지음, 에이비스 버먼 엮음, 김영준 옮김)도 내
사망하기 몇 년 전에 쓴 이 회고록의 서문
이 책을 완성했다. 버먼은 이렇게나 오랜 시간
겐 그런 책이다. 아트북스에 입사하기 전의
에서 그녀는 이 책을 쓴 이유가 자신이 말하
이 지난 후에 책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일이다. 어느 외국 잡지에『My Love Affair
지 않고 죽는다면 영원히 묻혀버릴 진실을
가, 그녀 또한 캐서린 쿠를 한 인간으로서 사
with Modern Art』라는 책의 리뷰가 실린
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녀가 전하는 이
랑했던 터라 어느 정도 이성적인 거리감을 유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여
야기는 진실일 뿐만 아니라 감동이기도 하다. 지해야 하는 편집자로서의 업무를 그녀의 사
성 큐레이터가 쓴 모던아트 예술가들에 대한
단순히 비평가나 큐레이터로서가 아닌, 그녀
회고록이라고 했다. 흥미로워 보여 에이전시
가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로서 예술가들을
에 문의했지만 다른 곳에서 계약했다는 얘기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망 직후에 도저히 할 수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이 책은 큐레이터나 비평가가 되기를 꿈꾸 는 학생들과 미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미
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트북
그녀에게 예술가들은 위대한 예술의 창조
술인들에게는 특별히 깊은 통찰을 안겨줄 터
스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바로 이 책의 판권
자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사람’에 관한 이
이지만 그렇다고 전문가들만을 위한 책은 아
을 계약했던 곳이었다. 이런 작은 우연이 얼
야기여서인지, 아무래도 조금 어렵게 느껴지
니다. 그저 전시회에 가기를 즐기거나 미술을
마나 반가웠던지.
는 모던아트도 머리 이전에 마음으로 다가온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술과 예술가들에
이 책의 저자 캐서린 쿠(1904~1994)는 미
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비
대한 날카로운 감식안을 갖췄으면서도 늘 따
국 사람들이 아직 모던아트를 생소하게 여겼
평을 위해서 예술가와의 개인적 접촉이나 만
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캐서린 쿠의 이 책
던 무렵 시카고에 최초의 모던아트 갤러리를
남은 피해야 한다고 보았던 미술비평가 존 캐
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을 것
열었고, 나중에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너데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캐서린 쿠는
이다.
모던아트 담당 큐레이터로 오랫동안 일했다. “강한 감정과 감동, 그리고 자아의 완전한 몰
글 손희경 아트북스 편집장
그곳을 그만둔 후에도『새터데이 리뷰』지의
사진 아트북스
입이 예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조건”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영화
공연
행사
클래식
돈의 맛
창작뮤지컬 ‘결혼’
2012 중남미문화축제
코리안심포니 기획연주회-어린이 콘서트
감독: 임상수
기간: 5월 19~27일
기간: 5월 26일~6월 3일
일시: 5월 22일 오후 3·7시
배우: 윤여정, 백윤식, 김강우, 김효진
장소: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장소: 청계천 한빛광장 등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문의: 02-775-7775
문의: 070-8230-1201
문의: 02-523-6258
‘바람난 가족’ ‘그때 그사람들’ ‘하녀’ 등
1974년 이후 셀 수 없이 무대에 올랐던 우
외교통상부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쌍
어린이를 위한 즐거운 음악 놀이터가 만
우리 사회의 숨겨진 욕망과 위선을 조명
리 희곡문학의 마스터피스, 이강백의 ‘결
방향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한
들어진다. 평소 나이 제한 때문에 콘서트
해 왔던 임상수 감독의 작품. 칸 국제영화
혼’을 2005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 작
문화축제. 현지 공연팀의 무대로 꾸려진
홀에 들어가기 힘들었던 영유아 및 어린
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돈의 맛에 취했
가 특유의 풍자적 알레고리에 정대경 작
다.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청계천 한빛
이들이 오케스트라와 더욱 가까워질 수
다가 결국 돈에 모욕받는 재벌가 비서 영
곡의 섬세한 공연음악이 잘 결합됐다. 연
광장에서 ‘Pre&Free Lounge’가, 5월 31
있는 기회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작(김강우)의 시선을 통해 재벌가의 더러
극과 음악의 이상적인 만남을 통해 한국
일부터 6월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
등 어린이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운 욕망을 들여다본다.
창작뮤지컬의 진수를 보여준다.
장용에서 ‘Latin Concert’가 펼쳐진다.
들려준다.
미래는 고양이처럼
국립무용단 50년 우리 춤 모음
2012 아름지기 아카데미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감독: 미란다 줄라이
기간: 5월 25~26일
일시: 5월 24일 오전 10시
일시: 5월 23일 오후 7시30분
배우: 미란다줄라이,해미쉬링클레이터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장소: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장소: 세종체임버홀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문의: 1544-1555
문의: 02-741-8374
문의: 1588-1210
4년째 동거 중인 제이슨과 소피. 그들은
국립무용단의 2012년 첫 공연. 반세기 역
‘전통과 과학’을 대주제로 진행하고 있는
올해로 7년째를 맞는 ‘아르스노바’ 시리
수명이 6개월 남은 병든 고양이를 입양하
사를 기점으로 화려한 전통 소품작들을
‘2012 아름지기 아카데미’의 두 번째 강연.
즈.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노벨상이라고
기로 한다. 그러나 길게는 5년 정도 더 살
무대화한 대표 레퍼토리 ‘코리아 환타지’,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박지선 교수가 문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자이며 서울
수도 있다는 수의사의 말에 그들은 고양
국가브랜드 작품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화재 보존과 복원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
시립교향악단의 상임작곡가로 활동 중인
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
있는 ‘춤, 춘향’ 등 다양한 작품을 되짚어
는 전통과 과학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문
진은숙이 직접 기획하는 현대음악 공연이
히고, 고양이의 치료를 기다리는 한 달 동
보는 자리. 구성지고 맛깔스러운 우리 민
화재 보존 작업을 재질, 안료, 표구 상태
다. 춤을 주제로 민속적 소재를 활용한 곡
안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기로 한다.
속 전통 춤사위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등에 대한 과학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등 다양한 현대음악을 만날 수 있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자료=교보문고
영화 예매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01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쌤앤파커스 01 내아내의 모든 것 02 무지개원리 03 은교
차동엽·국일미디어 02 돈의 맛 박범신·문학동네 03 어벤져스
0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와이즈베리 04 코리아 05 3차 산업혁명
제레미 리프킨·민음사 05 다크 섀도우
자료=맥스무비
공연 예매
이선균·임수정·류승룡 01 뮤지컬 모차르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03 연극 옥탑방 고양이
박은태·장현승·최성희 01 비발디 ‘라 체트라’
자료=풍월당
음반사 Channel Classics
박성훈·장지우·윤정빈 03 슈베르트 바이올린 작품집
하지원·배두나 04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널 내한공연 조니 뎁·에바 그린·미셸 파이퍼 05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박해일·김고은·김무열 06 뮤지컬 친정엄마
07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류시화·문학의숲 07 건축학개론
엄태웅·한가인·이제훈 07 뮤지컬 광화문연가
-
Testament
04 슈베르트 가곡 ‘환영과 이별’ Harmonia Mundi
류정한·윤형렬·카이 05 바흐 에센셜
Harmonia Mundi
나문희·김수미·이혜경 06 헨델 피아노 작품집-코롤리오프
Profile
윤도현·조성모·리사 07 느뵈, 하시드 초기 레코딩
Testament
마이클 샌델·김영사 08 콜드 라잇 오브 데이 헨리 카빌·브루스 윌리스 08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정상윤·장현덕·전성우 08 쇼스타코비치 재즈 앨범
DG
09 성서 그리고 역사 장 피에르 이즈부츠·황소자리 09 백설공주
릴리 콜린스·줄리아 로버츠 09 연극 라이어 1탄
10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곤도 마리에·더난출판사 10 로렉스 (목소리 출연) 대니 드비토·에드 헬름스 10 뮤지컬 닥터 지바고
UNDAY MAGAZINE 25
클래식 음반
출연 순위 음반명
윤여정·김효진·김강우 02 뮤지컬 캐치미 이프유캔 엄기준·규현·김정훈 02 나의 사랑 나의 탱고-바렌보임 Warner Korea
06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 06 은교 08 정의란 무엇인가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김원식·공명·김연철 09 카스텔로&폰타나 바이올린 소나타 홀로웨이 ECM 조승우·홍광호·김지우 10 메디테이션
MIRARE
FOOD 10년 전『전라도 압구정동-여수』 란 수필집을 냈던 정희선(청암대 문화관광과) 교수는 여수에서 대를 이어 사는 토박이다. 올해부터 여수문화원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여수에서는 아무 데나 적당히 들어가도 맛에 관한 한 실패할 염려가 없다고 자신하는 정 교수에게 그래도 손꼽을 만한 맛집을 물었다. 편집자
경도회관의 갯장어요리
기운 불끈 갯장어 밥이 술술 방풍꽃게장 새콤매콤 서대회 무침 여수 토박이 정희선 여수시문화원장이 말하는 여수 맛집
배를 타고 바닷바람을 살짝 맞는 기분은 맛 나들이라는 운치를 덤으로 얻어 색다 르다. 갯장어는 여름 한철 5월에서 10월 사이에 주로 먹는다. 경도회관에서는 도 톰하게 살이 오른 갯장어의 뼈를 아주 잘 손질해 먹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해준다. 장어뼈를 푹 곤 물에 버섯ㆍ피망ㆍ양파ㆍ다시마ㆍ무ㆍ대추와 인삼뿌리를 넣고 끊여 육수를 만든 후, 그 육수에 장어를 살짝 데쳐 먹는 뽀얀 속살의 갯장어 샤브샤브는 성인병 예방, 원기 회복, 피부노화 방지 등의 효능과 함께 여름의 보양 식으로 으뜸이다. 061-666-0044. 서대회 : 삼학집 / 여정식당
여수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찾는 음식 중 최고는 단연 서대회다. 서대회는 일단 깨 끗이 씻은 뒤 냉동실에 급랭시킨다. 이어 냉장실에서 해동시켜 세로로 약 1㎝ 두 께로 썬다. 이렇게 썰어야 양념들이 잘 스며든다. 여기에 고추장과 조청, 무, 부추, 마늘, 생강 등을 버무리면 된다. 여기서 맛을 내는 데는 막걸리 식초를 사용한다. 서대회로 유명한 집은 중앙동 돌산나루터 인근 삼학집(061-662-0261)과 여서 한정식 : 세림
동 문화의 거리에 자리한 여정식당(061-664-3638) 등이 있다.
과연 임금님이 이런 수라상을 받아보았을까? 전복ㆍ해삼ㆍ멍게ㆍ개불ㆍ성게ㆍ새
도다리 쑥국 : 환희
우ㆍ가리비ㆍ병어… 하나하나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상 위에 올려진 수십 가지의
도다리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어린이나 노약자의 기력 보충이나 다
산해진미 요리에 입이 쩍 벌어지는데, 그것은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의 입맛 돋움
이어트에 특히 좋다. 오죽하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겠는가. 신선한
요리다. 다시 도미랑 농어회가 들어온다. 서울보다 생선회의 두께가 두껍고 탄력
회가 좋으나, 거문도의 여린 새 쑥에 싱싱한 도다리의 하얀 살결이 한데 어우러져
이 좋아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회 종류가 끝나면 익
끓여낸 도다리 쑥국도 맛과 향이 뛰어나 계절 음식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1
힌 음식이 나오고 더불어 생선구이와 튀김이 나온다. 밥은 매운탕으로 마무리. 후
인분 9000원. 061-691-2724.
식은 주인이 특별히 연구해 만든 매실차와 식혜 같은 한국적인 음료다.
아귀탕 : 복춘식당
1인분에 3만원, 5만원 등으로 나뉘는데 5만원짜리에는 금평선어, 전복구이, 대
항구도시엔 술 마시는 사람이 많다. 고단한 뱃일을 술로 달래는 것이다. 복춘식당
하구이 등이 첨가된다. 061-686-3006.
의 아귀탕은 술꾼들의 거친 위장을 달래주는 벗이다. 다른 지역의 아귀탕과는 맛
갯장어요리 : 경도회관
도, 모양도 전혀 다르다. 일단 빨간 고추장ㆍ고춧가루 국물이 아니다. 복춘식당의
갯장어회(하모사시미)와 갯장어 샤브샤브(하모유비키). 대경도 대합실에서 수시
아귀탕은 집에서 담근 된장 국물에 생물 아귀를 넣어 끓인다. 그래서 국물이 콩
로 왕복하는 배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경도회관. 바다 맛을 보기 위해
국처럼 고소하다. 물론 된장 때문만은 아니다. 아귀의 내장인 애가 담뿍 들어 있
26 SUNDAY MAGAZINE
FOOD
남쪽 지방 국물지도의 한 축, 장어탕 얼큰한 맛의 7공주식당 된장·우거지로 맛낸 자매 식당
한국 사람들은 추우면 몸을 데우기 위해 국물을 찾고, 한여름 더위에도 몸을 보신한다는 이유로 삼계탕이나 보신탕과 같은 국물 음식으로 더위 를 이기곤 한다. 한국인에게 국물은 중요하고 친숙하다. 이를 맛집과 연계해 전국의 대표 맛을 집계하다 보면 결국 ‘대한민국 국물지도’로 귀결되곤 한다. 여수를 비롯한 남쪽 지방 ‘국물지도’의 한 축이 ‘장어탕’ 이다. 민물장어인 뱀장어보다도 훨씬 통통하고 미끄덩거리는 바닷장어로 끓인 국물을 연상하면 결코 호감 가는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장어 전문 세림의 한정식
점의 탕을 일단 맛보기만 하면 징그럽기만 하던 장어의 외형은 잠시 잊게 된다. 여수 ‘7공주식당’의 장어탕을 개인적으로는 장어 육개장이라고 부르 고 싶다. ‘하얀 국물’과 ‘빨간 국물’로 색깔 논쟁이 거셌던 라면시장에 누군가 ‘7공주식 장어탕 국물’을 수프로 만들었다면 단숨에 시장을 압 도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맵고 얼큰한 국물 속엔 부드러운 장어 외에도 양배추, 숙주 등 채소가 듬뿍 들어 있다. 느끼할 것 같은 장어의 선입견을 싹 날려버리는 맛이다. 한 그릇 다 비우면 다음 한 끼 정도는 건너뛰어도 될 만큼 든든한 느낌인 것이다. 바다 생선의 보고(寶庫)나 다름없는 교동시장이이 지척에 있기 에 식사 전후 재래시장 눈요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반해 시골 된장과 우거지로 장어탕을 끓여내는 ‘자매식당’이 있 다. 장어 등뼈를 24시간 푹 곤 국물에 된장과 우거지, 그리고 산 장어를
서대회
큼직하게 토막내 끓인 ‘통장어탕’의 장어 살은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스 르르 무너져내린다. 눈을 가리고 ‘에그푸딩’ ‘푸아그라 소테’, 그리고 ‘통장어탕 장어살’을 먹은 뒤 최고의 부드러움을 꼽으라고 한다면, 우
어서다. 애의 기름에서 배어나오는 맛이 깊고 풍부해 국물을 우려주기 때문이다.
위 선별이 무척 어려울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그런데 국물에 새콤함이 살짝 느껴진다. 막걸리로 직접 내린 식초를 넣은 덕분
통장어탕은 여수 인근 섬 지역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토속적이면서 구
이다. 살점이 듬뿍 달린 아귀를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는 순간 다시 소주잔에
수한 장맛이 특징이다. 이는 뚝배기로 나오는데, 끓으면 일단 장어 한 토
손이 간다. 찌든 알코올 기운을 아귀탕으로 잘 걷어내니 알코올이 더욱 잘 흡수되
막을 개인그릇에 덜어 국자로 으깬 뒤 밥과 함께 먹는다. 이때 빠지지 않
는 아이러니. 아귀탕 한 그릇에 9000원.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8시에 닫는다.
는 명물 반찬이 ‘멍게젓갈’과 ‘여수갓김치’다. 이 두 곳 모두 소금과 고추장양념의 장어구이도 함께하고 있다.
연중무휴. 061-662-5260.
글·사진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방풍꽃게장 : 소선우
방풍 뿌리는 중풍을 예방하는 한약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여 수 남면 지역에서 나물용으로 재배되는 식방풍은 음식을 만 드는 중요한 식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방풍잎과 뿌리로 육수를 만들고 암꽃게를 넣어 만드는 방풍 꽃게장은 소선우의 특별한 별미 음식으로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꽃게장과 함께 청국장, 그리고 밑반찬 10여 가지가 나오 면 한 상 가득하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다가 너도나도 ▶ 7공주식당
외친다. “밥 한 그릇 더.” 방풍꽃게장 3~4인분에 5만원. 061-642-9254.
소선우의 방풍꽃게장
전화 061-663-1580 주소 전남 여수시 교동 595-2 메뉴 장어탕 1만원, 장어구이 1만6000원
갓김치 : 죽포식당
여수 맛을 본 사람은 입을 버린다. 이미 맛의 수준이 높아져 그만한 맛을 다시 찾 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걱정 없다. 요즘은 포장문화가 발달해 여수의 맛 을 그대로 들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만만한 게 돌산 갓김치다. 돌산 갓 은 다른 곳에서 나는 것과 달리 가시가 없고 매운맛이 적어 들고 가서 선물할 수 있는 맛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돌산 죽포식당은 원래 횟집이었다. 그런데 회를 먹으러 온 손님들이 갓김치 맛 에 반해 상에 올린 갓김치를 팔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갓김치 파는 음식점으로 변 했다. 젓갈 등 양념을 내 집 손님맞이용으로 제대로 넣은 게 맛의 비결이란다. 포 장 갓김치 3㎏에 1만8000원. 061-644-3017.
▶ 자매식당 전화 061-641-3992 주소 전남 여수시 국동 1082-7 메뉴 통장어탕 1만2000원
SUNDAY MAGAZINE 27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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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SUNDAY MAGAZIN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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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처럼 살았던 유영국을 기리며
“추상은 설명이 필요 없다. 보는 사람이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유영국(1916~2002) 화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이름에서 과묵함과 철저함을 떠올린다. 식사 시간 외에는 마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하루 8시간씩 꼬박 그림을 그렸다.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 자리도 작업시간이 줄어들 게 되자 단호히 내던졌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 운동의 대부’는 현실에 결코 안주하지 않고 추상작업만 고집하며 평생을 ‘작가’로 살았다. 강렬한 빨강을 선호하고 산을 좋아했던 그는60여 년간 8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갤러 리현대와 유영국 미술문화재단이 10주기를 맞아 마련한 이번 대규모 회고전에는 시대별로 엄선한 대표작 60여 점 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념해 마로니에 북스는 유영국 화업 전 시대를 아우르는 100여 점의 대표작을 정리한 국영문 화집을 발간했다. 이인범 상명대 교수는 25일 오후 2시 갤러리에서 ‘유영국의 삶과 추상 예술: 자유정신과 자연을 향한 랩소디’라는 제목으로 특강한다. 입장료 성인 5000원. 1 ‘산’(1967), Oil on Canvas, 130x130cm 2 ‘작품’(1988), Oil on Canvas, 130x194cm 3 ‘작품(영혼)’(1965), Oil on Canvas, 130x162cm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갤러리현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10주기 전’, 5월 18일~6월 17일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문의 02-519-0800
SUNDAY MAGAZINE 29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김완선이 행복한 이유 “열다섯 살 때부터 훈련됐다. 세상의 조명을 받았다. 돈도 벌고 인기도 얻었다. 그런데 불행했다. 주변에 의해 만들어진 김완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전의 것을 다 잃었다. 그런데 행복하다. 오늘의 나는 내가 찾고 만들어가는 나이기 때문이다.”
30 SUNDAY MAGAZINE
COLUMN
저커버그 후드티 잡스 터틀넥과 뭔 차이가 있길래 스타일 # : 페이스북 투자설명회 옷차림 논란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나 오십보 백보다. 지난해 남성패션지 GQ가 선정한 ‘실리콘 밸리 워스트 드레서’ 1위로 저커버그가, 2위 로 잡스가 뽑힌 걸 보면 한 끗 정도 차이다. 하지만 “잡스의 패션은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는 혹평은 패션지니까 하는 말이다. 까 만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의 잡스 패션은 오히 려 제품을 돋보이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평가받았다. 저커버그의 경우는 다르다. 패션 테러리스
오바마 앞에서 이랬던 저커버그가 만약 쫙
카데미 최고 화제가 됐다. 364일 유니폼을 입
트인 게 새삼스럽지도 않은데, 최근 그의 옷
빼 입고 투자설명회에 섰으면 어땠을까. 안
다가 딱 하루 갖춰 입은 것이 강렬한 인상으로
차림에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후디게이트
그래도 CEO 치고 어려서 걱정이라는 ‘나이
남았다.
(Hoodiegate)란 거창한 이름도 붙었다. 논란’이 있는 마당에, 주근깨 곱슬머리 청년
그해 6월엔 칸 국제광고제에 저커버그가
18일 페이스북 상장을 앞두고 뉴욕에서 열
이 슈트 차림이었다고 대단히 믿음직스러워
참석했다. ‘올해의 미디어 인물’로 뽑혀 상을
린 투자설명회가 화근이었다. 저커버그가 늘
보였을까. 오히려 대통령 앞에서도 안 그러더
받았다. 사진 속 그는 역시 청바지에 운동화,
입던 대로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
니 긴장했나? 월가에 잘 보이려고 노력했네?
티셔츠 차림이다. 광고제는 영화제처럼 보타
하자 월가의 투자자들이 발끈한 것이다. 그
이런 지레짐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를 매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의 이름을 따다 ‘미성숙의 표시(mark of immature)’라고 비판했다.
저커버그는 일부러 후드티를 입고 투자설
건 좀 아니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명회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열린 웹 2.0 서밋도 마찬가지였다. CEO와의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반박했다. 페이스북 ‘천재 소년’ 스타일이 유효하다는 전략적 판 을 처음 만들었던 대학생 때처럼 초심을 지키 겠다는 의미라고 방어론을 펼쳤다. 페이스북
단 말이다. 더구나 시장엔 저커버그에게 영감을 받
대화 시간에 그는 심지어 슬리퍼를 신 고 나타났다. 다리를 꼬고 앉아 허공에 뜬 슬리퍼 속 그의 맨발을 보자니 한숨
몸값이 높아서 거만한 월가가 빈정 상했다는
았다는 ‘경영자용 핀스트라이프 후드티(ex- 만 나온다.
해석도 나왔다. 월가가 페이스북을 원하는
ecutive pinstripe hoodie)’까지 나왔다. 신
이를테면 잡스가 아주 인상적인
만큼 저커버그가 투자자를 필요로 하는 것
사의 상징, 핀스트라이프 슈트를 대신할 줄
플레이를 한 번은 남긴 반면 저커
같지 않아 맘 상했다는 거다.
무늬 모직 후드티다. 뉴욕 투자자를 만나야
버그는 실책만 거듭해 온 것이다. 오
양쪽 다 일리가 있다. 시가총액 1000억 달
하는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를 위한 옷은 벌써
죽하면 에스콰이어가 그를 ‘스타일
러(약 120조원)짜리 회사의 CEO라면 좀 더
400벌 넘게 팔렸다. 월가가 정색한 ‘후디게
수치의 전당(Hall of Shame)’에 올
믿음직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것도, 아이디어
이트’를 대중은 재미난 해프닝 정도로 받아
리면서 “제발 말 좀 들으라”고 사정
짤 시간도 모자란 데 옷에 신경 쓸 시간이 어
들이는 거다.
을 했을까.
디 있느냐는 것도 타당하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타운홀 미팅 을 위해 페이스북을 방문했을 때 저커버그는
그러니 왜 저커버그의 티셔츠만 문제인지,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말해주고
이유는 ‘후디게이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
싶다. 아무리 머리가 비상하고 돈
아야 할 것 같다.
이 많아도 그러는 건 아니라고. 그
타이를 매고 재킷을 입었다. 청바지에 운동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스티브 잡스가
화는 여전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마크가
참석했다. 말 그대로 참석일 뿐 그가 무대에
는 안 괜찮은 거라고.
타이를 매게 만든 사람이 바로 나야”라며 뿌
오르지는 않았다. 이날 그는 턱시도를 입었다.
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듯해했다고 한다.
레드카펫 드레스코드를 지킨 그의 모습은 아
사진 AP=연합뉴스
래서 잡스의 터틀넥은 괜찮은데 후드티
SUNDAY MAGAZINE 31
SOULSEARCHING
Timor
불안한 사랑이냐, 불행한 안정이냐 강신주의 감정 수업 <12> 소심함, 혹은 작은 惡을 선택하는 비극
“사랑의 모험에 과감히 뛰어들지 않으면 순간적으로는 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안일함은 삶을 무기력하고 무겁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결국 아주 천천히 우리 삶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파괴될 것이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 실내복 차림으로 경
나 젊지만 자신은 점점 더 늙어 갈 것이고, 언
쾌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시몽을
젠가 시몽은 자신에게서 어떤 매력도 발견하
떠올리고는 그를 원래의 그 자신에게로 돌
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면 로제는 지금처럼
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를 영원히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자신을 외롭게
다면 폴의 눈물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 프랑수아즈 사강 (Fran oise Sagan, 1935~2004)
보내버림으로써 잠시 슬픔에 잠기게 했다가, 해도 자기 곁에 가구처럼 있을 것이다.
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결정이 소심함으로 부터 연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녀는 사랑 앞에서 위축되는 자신의 모습이 몸서리쳐지게 싫었을 것이다. 홀로 버
예상컨대 앞으로 다가올 훨씬 멋진 수많은
그렇다. 폴이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바
려질 수도 있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
아가씨들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그에게 인생
로 미래다. 영원히 홀로 남겨질 수 있다는 두
때문에 현재 만끽할 수도 있는 사랑을 포기
이라는 걸 가르치는 데에는 시간이 자신보다
려움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하는 자신이 너무나 불쌍했던 것 아닐까? 그
더 유능하겠지만, 그러려면 훨씬 오래 걸리리
삶을 떠나 시몽을 선택하면 잠시 행복하겠지
열아홉 살에 발표한 첫 번
러니 폴도 이렇게 느꼈던 것이다. “그 눈물을
라. 그녀의 손 안에 놓인 그의 손은 움직이지
만 머지않아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로제를 선
째 소설『슬픔이여 안녕』
너무도 친절한 이 청년을 위해 흘려야 할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에서 맥박이 파닥이는
택하면 지금은 불행할 수 있지만 버려질 위험
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조금쯤 슬픈 그녀 자신의 삶을 위해
되면서 단번에 ‘천재 소녀’
것을 느끼자 그녀는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
은 별로 없다. 그녀는 사랑의 위험을 감당하
였는데, 그 눈물을 너무도 친절한 이 청년을
기에 너무나 소심했던 것이다. 불안한 사랑보
몽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기로 결심한 것처럼
위해 흘려야 할지, 아니면 조금쯤 슬픈 그녀
다는 불행한 안정에 손을 들어준 것이 어쩌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사랑을 감당할 만한 용
가 됐다.
자신의 삶을 위해 흘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스피노자도 이렇게 말 그녀는 그의 손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 키스 했다.” 폴의 눈, 서른아홉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 는 약간 주름 잡힌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연
흘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말이다. 마치 시
기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사강이 폴의 슬픈 이야기를 통해
“소심함(timor)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큰
우리에게 하려고 했던 말은 사랑이란 용기 있
악을 더 작은 악으로 피하려는 욕망이다.”
는 자만이 감당할 수 있다는 진실 아니었을
『 ( 에티카』)
까? 50대 나이에 마약 복용 혐의로 법정에 섰
신 흐른다. 그녀는 한때 자신의 마음을 뒤흔
스피노자에게 선과 악은 우리와 무관하게
을 때 사강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남
들었던 젊은 청년 시몽과의 사랑을 접으려고
절대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
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결심했기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게 기쁨과 활력을 주는 것이 선이고, 슬픔과 라고 물으며 자신의 삶을 장밋빛으로 물들여
권리가 있다.”
우울함을 안겨다 주는 것이 악이니까 말이다.
자기 파괴의 위험을 감당하며 사랑의 모험
주었던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이 어찌 슬프지
하지만 폴의 비극은 그녀가 간만에 찾아
에 과감히 뛰어들지 않으면 순간적으로는 편
않겠는가? 아마 이 부분이 프랑수아즈 사강
온 사랑이 주는 현재의 기쁨을 긍정하지 못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편리한 안일함은
의 소설『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가장
하고 시몽과의 사랑이 가져다줄 수도 있는
우리의 삶을 무기력하고 무겁게 만들어 버릴
애틋한 장면일 것이다. 두 명의 남자 사이에
불안한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는 데 있다. 그
것이다. 결국 아주 천천히 우리의 삶은 자신
서 갈등하던 폴은 지금 자신의 삶에 빛을 안
러니 시몽과의 사랑이 로제와의 쓸쓸한 삶보
의 의지와 무관하게 파괴돼 갈 것이다. 그래
겨 주었던 시몽을 떠나 6년 동안 사귀었던 바
다 더 큰 악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어쩌면 폴
서 사강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타자
람둥이 로제에게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것이
은 사랑의 충만함보다 홀로 버려져 있다는 외
로의 맹목적인 비약에 어떻게 위험이 없을 수
다. 물론 그녀는 알고 있다. 자신이 시몽에게
로움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여성일지도 모
있겠느냐고.
빠져 있는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로제지만
른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
대중철학자.『철학이 필요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의 삶과 단절해 마치
시몽을 버리고 그에게 돌아가는 순간 그는 다
다. 시몽과의 이별을 결정하면서 폴의 눈에서
한 시간』 『철학적 시읽기
천 길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을 건
시 자신을 외로움에 방치하리라는 사실을.
흘렀던 눈물의 의미다.
그렇지만 폴은 두려운 것이다. 시몽은 너무 32 SUNDAY MAGAZINE
만일 자신의 결정이 행복을 선택한 것이었
의 괴로움』 『상처받지 않 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 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너뛰려는 용기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랑 의 꿀맛을 맛볼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CARTOON
김재훈의 문화 캐리커처
시대를 초월한 의자
토네트 No. 14 나는 그냥 보통 의자야. 비싸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통 의자지.
현대적인 나무 의자
스툴 60 나 역시 단순하면서도 적당히 우아한 보통 의자지만 거기에 현대적인 세련미까지 갖추었어. 20세기 초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기능, 생산성, 판매 실적 등 모든 면에서
디자인 운동의 황금기에 대부분의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의자는
디자이너는 의자를 위한 소재로
평범한 의자의 대명사 토네트 No. 14였다.
금속에 주목하고 있었지만
나무를 휘어서 만든 등받이와 다리,
핀란드 출신의 알바 알토는 달랐다.
그리고 등나무 시트로 구성된 이 조립식 의자는
그는 북유럽 목재 가구의 전통과 멋을
옛날 다방에서도 볼 수 있었고,
현대에 맞게 되살리면서
지금도 카페나 식당에서
실용성과 미적 완성도라는 두 마리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내가 만든 의자가 토네트의 아이콘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나무를 휘는 기술과 디자인을 진일보시킨 건 인정받았으면 해.
1859년부터 1930년까지 오리지널만 무려 5000만 개 이상이 팔렸어. 그 이후로도 계속 팔렸어. 오만 짝퉁들과 함께.
나무를 휘어서 가구를 만드는 곡목 기술로
스툴 60의 시트에 고정시키는 4개의 다리를
특허를 받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업가
절제된 각도로 휘게 설계한 것은
미하엘 토네트는 몇 개의 부품만을
무거운 하중에 더 잘 버틸 수 있는
조립해 만드는 의자들을 생산하였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모든 부품을
기능 향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 이후 현대인들의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었기에
달라진 미적 취향을
특허권이 소멸된 이후에도
선구적으로 반영한
경쟁 업체들을 따돌리며
디자인이었다.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토네트사에서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곡목 의자를 생산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작은 역시 No. 14야.
딱 필요한 만큼의 장식만 가진 No. 14가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인기 있는 걸 보면 의자나 사람이나 역시 무난해야 질리지 않나 봐요.
알토는 나무와 유리 등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는 소재들을 사용해 뛰어난 세기의 디자인을 많이 남겼어.
시대가 바뀌면 무난하다는 느낌도 달라지겠죠? 그러니까 알바 알토의 스툴 60은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거겠죠?
김재훈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했다. 인문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정보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SUNDAY MAGAZINE 33
CONTE
욕망해도 괜찮아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춤추고 노래하겠다며 투표를 독려했다.
까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그분들
이 많았다. 작가 이외수는 젊은 시절부터 자
에겐 그런 일탈과 변신의 욕망이 있었던 것
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장발을 버리고 스포
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꼭 그런 거대한 조
츠 머리를 하겠다고 했다. 정치인 정동영은 꽁
건을 내걸지 않고 그냥 한번쯤 일탈과 변신을
지머리에 빨간 염색을, 정세균은 노란 염색을
시도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나는 옷 매무새를 바
옷을 벗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개그맨 김
여중생은 치마 길이를 조절하는 중이다. 내 눈에는 그게 그것 같은데 그 섬세한 차이
로잡느라 거울을 본다. 아침 출근시간에는
제동은 상의를 탈의하고, 이광재 전 강원도
때문에 계속 접었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그
늘 허둥지둥한다. 집에서 대충 맨 넥타이의
지사는 태백산 정상에서 팬티만 입고 인증
렇게 몇 번 시행착오를 거듭하자 마침내 어중
모양을 고쳐보다가 역시 거울을 보던 여중생
샷을 날리겠다고 공언했다. 우연이겠지만 두
간하던 길이의 교복 치마가 예쁜 미니스커트
과 잠깐 눈이 마주친다. 여중생은 치마 허리
사람은 투표율 조건을 65%로 낮췄다.
로 바뀐다. 이제야 마음에 드는지 여중생은
춤을 탁탁 솜씨 좋게 두 번이나 접어 말아올
스타킹을 착용하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린다. 능숙한 손놀림이다. 그 모습을 보니까
국 교수는 투표율 70%라는 조건 대신 ‘진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환한 봄 아침 속으로
지난 4월 총선 때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유명
개혁 진영이 의회 다수당이 되면’이란 조건
통, 통 달려나간다.
인사들이 걸었던 공약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을 걸고 망사스타킹을 신겠다고 했다. 창의적
대개 ‘만일 투표율이 70%를 넘으면’이란 조
이고 진보적인 정치인 노회찬은 망사스타킹
들이 내걸었던 공약대로 머리 모양을 하고
건을 달고 한 공약이었는데 몇 가지 패턴이
을 얼굴에 뒤집어 쓰겠다고 했다.
춤추고 노래하고 코스프레를 하고 망사스타
그러니까 나는 상상해 본다. 그 유명인사
앞의 공약들이 대부분 자신의 변화에 관
킹을 착용하고 딥키스를 하는 광경을. 나는
우선 가수의 코스프레를 하거나 춤을 추
한 것이라면 관계의 변화를 모색하는 공약도
투표율이 70%를 넘는 사회보다 자신이 욕망
고 노래하겠다는 공약이 가장 많았다. 작가
있었다.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은 주진우 기
하는 것을 시도해 보는 사회가 훨씬 더 즐거
공지영은 아이유 코스프레를, 시사평론가 진
자와 딥키스를 하겠다고 했다.
운 사회일 거라고 믿는다.
있었다.
들숨날숨
런 변신을 공약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으로 머리 모양을 바꾸겠다는 공약
중권과 정치인 노회찬은 엘비스 프레슬리 코
나는 그분들의 충정을 믿는다. 그렇게 해
스프레를 약속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후드
서라도 자신에게 우호적이거나 자신을 따르
티를 입고 티아라의 ‘롤리폴리’ 춤을, 강금
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향하게끔 하려는
실 전 장관은 이효리의 ‘텐미닛’ 춤을 추겠다
간절한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다만
고 했다. 안철수 교수는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내가 궁금한 것은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은 그
나는 넥타이를 다잡아 매고 구두 끈을 바 짝 당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중이 된다고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34 SUNDAY MAGAZINE
▶“중생은 돈을 가져도 더 가지려고 한다. 가
▶“원전 사태에 침묵할 수 없었다. 침묵한다
▶“진정성은 현대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려고 하는 것, 그게 중생의 업이다. 삭발염
면 앞으로 ‘러브레터’ 같은 작품을 만든다
덕목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마케팅은 거짓된
의(削髮染衣)를 해서 출가를 하고 시줏밥을
해도 관객들이 나를 진정성 있는 창작자로
이미지와 반쪽 진실로 점철돼 있습니다. 어떤
먹고 살아도 이전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받아들여 주겠는가. (중략) 3·11 이전 일본은
특정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지 않으면 완전
가 많다. 절에 머물지만 중생의 습기(習氣)에
미래가 없는, 고인 물과 같은 상황이었다. 문
한 인생이 아닌 양 선전하고, 우리는 각종 매
놀아나는 이들이다. 옆을 돌아보지 않고 위
화의 흐름도 멈춰 있었다. 대지진은 그런 썩
체를 통해 그런 선전들에 융단폭격을 당하고
대한 부처가 된다는 신념을 가진 자만이 세
어가는 평온을 깨뜨리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
있습니다. 이처럼 끊임없는 거짓말의 홍수 속
상 일에서 멀어질 수 있다. 중이 된다고 해서
다. 생물은 가혹한 상황에서 진화하는 법이
에 살다 보니 우리 역시 습관적으로 자신을
하루아침에 도인이 되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
다. 더 큰 지진 등 가혹한 상황은 계속될 것이
위장하곤 합니다. 진실한 사랑에는 이런 위
는 것이 아니다.”
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심각한 고민 대신 웃
선의 가면을 벗기고, 우리를 둘러싼 망상의
-대한불교 조계종 제13대 종정 진제(眞際) 스님 인터
음만 넘쳐나는 것 같아 불만이다.”
껍질을 깨부술 힘이 있습니다.”
뷰 중에서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 인터뷰 중에서
-카렌 와이어트,『일주일이 남았다면』중에서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초록빛 아침 햇살 길입니다. 큰물이 한번 들고 나면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던 둑길이나 나무 다리가 뒤집어지고 부러집니다. 사람 발길이 뜸해지면서 잊힙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풀, 나무들이 길을 덮어버립니다. 원래 그러했다는 것처럼. 오늘은 일부러 찾았습니다. 그리 오래 걷지 않아도 큰 숲에 들어간 듯 푸근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걸음마다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을 털어내고, 예기치 않은 작은 물웅덩이에도 더러 빠져가며, 가끔 스치는 싱그러운 섬진강 바람에도 젖어가며 걸었습니다. 어둑한 대나무 숲은 으스스한 마음으로 지나쳤고, 강물 위를 저공 비행하는 백로 떼를 보고는 탄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문명의 발 자동차에서 내려 나의 두 발로 걸은 지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 마주쳤던 순간들입니다. 소중한 것들이 참으로 가까이 있었습니다. 놀며 쉬며 걷다가 이제 막 숲의 틈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햇빛도, 바람도 모두 따뜻한 날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SUNDAY MAGAZINE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