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제 10권 7호
The Light and Salt News
2020년 4월 23일 발행
목차
2020년 4월 23일
목차 교계소식 이단·사이비 바로알기 강단설교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목회칼럼 예배학 강좌 미주에즈라성경통독 진리의 샘터 목양칼럼 성지순례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좁은 길을 걸으며 신앙칼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에콰도르 이야기 특별기고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나의 노래,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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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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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의료진 위한 마스크 공동작업 코로라-19로 인하여 턱없이 부족한 덴버지역 병원들의 의료진 마스크 공급을 위해서 덴버지역의 한인교회들이 발 벗고 나섰다. 이번 마스크 공동작업에는 벧엘교회, 덴버제일감리교회, 큰사랑교회, 미주에즈라성경통독원의 자원봉사자들이 기쁨으로 동참하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약 200개 정도의 소독과 재사용이 가능한 병원용 의료진 마스크를 정성껏 만들었다. 이 마스크들은 세인트 조셉 병원 등으로 곧 전달된다. 관심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720) 971-9503, (720) 272-6873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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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도 충성하는 교회 (마 23:21-23)
예배 안내 주일 예배 오전 11:00
수요성경공부 (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 (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 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 (엡 2:4)
10700 E. Bethany Dr. Suite 100, Aurora, CO 80014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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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명칭만 알아도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 이단·사이비·문제 단체 결의 연대별 목록(2018년 기준)
이단 명칭만 알아도 이단에 빠지지 않 는다는 말이 있다. 제대로 된 이단의 명 칭을 몰라서, 자신이 빠진 곳이 이단인 지 알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 다. 성도들은 몰라서 당하고, 목회자도 몰라서 대처를 못한다. 필자가 만난 목 회자 중에는, 물론 15년도 더 지난 일 이지만, 신천지 측의 추수꾼 포교가 이 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만희(신 천지의 교주) 그 여자, 참 극성이네”라 고 말한 분도 계시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지만, 이만희는 여자가 아니 라 남자다. 아내가 안상홍 증인회(현 하 나님의교회)에 빠진 피해자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아갔다. 고민을 상담했더니 목사님이 대답했다. “안상 홍이 누구요?” 교회의 리더들이 이단의 이름조차 모 르는 상황에서 이단대처는 할 수가 없 다. 이단문제 전문지 현대종교가 예장통 합, 합동, 백석, 고신, 합신, 대신, 기성, 기감, 기침, 기하성, 기장 등 11개 교단 에 속한 교회의 고등학생 629명을 대상 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고등학생은 빠르 면 1년, 늦어도 3년 안에 대학생이 된다. 대학생은 이단들의 주요 포교 타깃이 된다는 점에서 고등학생들의 이단에 대 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단은 단체의 이름만 알아도 기본 적인 대처를 할 수 있다. 이름을 기억하 면 이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지만 고등학생들의 경우, 이단단체의 이 름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 됐다. 한국 이단의 양대 산맥으로 불
리는 신천지, 하나님의교회가 이단이라 는 것을 아는 학생들은 각각 47.9%(301 명), 33.5%(211명)에 불과했다. 한국교회 에 큰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두 이단단 체를 두세 명 중에 한 명만 알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많이 알고 있는 단체로 는 통일교가 38.5%(242명), 여호와의 증 인이 35.3%(222명), 몰몬교가 21.1%(133 명), JMS와 구원파가 각각 18.0%(113 명), 17.8%(112명)로 나타났다. 그 외에 다락방 15.7%(99명), 천부교 12.7%(80 명), 만민중앙교회 10.8%(68명), 예수중 심교회 8.7%(55명), 성락교회 8.3%(52 명), 평강제일교회 7.6%(48명)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불리는 이단단체의 이름이 아닌 공식명칭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결 과는 더욱 심각했다. JMS는 18.0%(113 명)가 안다고 했지만 공식명칭인 기독교 복음선교회는 5.2%(33명)만이 알고 있 다고 답했다. 같은 단체임에도 불구하 고 공식명칭은 잘 알지 못했다. 몰몬 교라는 단체명은 21.1%(133명)가 알고 있다고 답했지만, 몰몬교가 현재 사용 하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를 안다 고 답한 학생은 12.2%(77명)에 불과했 다. 통일교도 마찬가지다. 38.5%(242명) 가 통일교를 알고 있다고 답했으나, 현 재 공식명칭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16.7%(105명)만이 알고 있었다. 또 구 원파가 이단이라고 17.8%(112명)가 알 고 있었다. 그러나 구원파에서 사용하 는 교단 공식명칭인 대한예수교침례회와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아는 학생은 각각
7.3%(46명), 6.4%(40명), 선교회 공식명 칭인 기쁜소식선교회, 생명의말씀선교회 는 각각 9.2%(58명), 7.2%(45명)만이 아 는 데 그쳤다.”(김정수, 현대종교 2014년 3월호, 9~10pp). 구원파가 이단이라는 걸 아는 성도들 은 많다. 그러나 ‘구원파’란 명칭은 정 통교회가 붙여준 이름이다. 현장에서 스 스로 ‘구원파’라며 활동하는 이단은 단 한곳도 없다. 그래서 구원파의 정식 교단 명칭과 대표자까지 알면 좋다. 구 원파측 교단 명칭은 ‘기독교복음침례 회’(소위 권신찬·유병언 측), ‘대한예 수교침례회’(박옥수·이요한 측이 공통 적으로 사용)를 사용한다. 반면 정통 침 례교단은 ‘기독교한국침례회’, ‘성서침 례회’가 있다. 성폭행범 정명석 교주를 따르는 소위 JMS의 경우 ‘기독교복음 선교회’를 공식 기관 명칭으로 사용한 다. 교단 명칭은 ‘예수교대한감리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정통 교단 중에 도 예수교대한감리회가 있긴 하다). 건전 한 감리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대표적 이다. 이단들도 명칭만으로는 건전한 기 독교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 에 이단들이 사용하는 교단 명과 건강 한 정통교단의 명칭을 정확히 알고 있 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는 어떤 이단·사이비·문제단체 들이 있을까? 이단·사이비·문제단체들 에 대한 규정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합동, 고신, 합신, 기독교대한성결 교회(기성),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기독
기사: 정윤석 기자
교한국침례회(기침) 등 한국교회 주요 교 단의 공식 결정을 기준으로 했다. 1915 년부터 2018년까지 이단 등으로 규정한 단체의 숫자는 86개에 달한다(이단·사 이비·문제단체 총 목록 참고). 이단 또 는 참여금지 단체 등으로 규정됐지만 해 제된 경우, 교리적 문제가 아니라 ‘이 단옹호’라는 행위에 대한 규정인 경우 등은 목록에서 제외했다. 목록의 내용 은 현대종교와 교회와신앙에서 발표한 목록을 참고했다. 두 언론사의 경우 규 정 단체명을 가나다순으로 정렬했다. 반 면 필자는 특정 단체의 최초 규정 연도 와 규정 교단을 배열 기준으로 삼았다. 찾는 데는 가나다순으로 배열한 두 언 론사가 필자의 배열보다 찾기 쉽고 편하 다. 그러나 연도순으로 보는 또 다른 의 미가 있다. 1915년부터 이단 및 문제단 체를 규정해 온 그 시대의 신앙의 선배 들이 어떤 단체 때문에 무슨 고민을 해 왔는지 시대상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점에 서다. 이를 통해 이단사역을 하고자 하 는 다음 세대가 또 다른 차원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이단/ 이단성으로 규정한 인물 및 단 체는 총 55개다. 강병국, 구원파(유병언, 박옥수, 이요 한), 김계화(할렐루야기도원), 김기동(서 울 성락교회), 김양환(덕정사랑교회), 김 용두(주님의교회), 나운몽(용문산기도원), 노광공(동방교, 기독교대한개혁장로회), 류광수(다락방전도운동), 몰몬교(예수그 리스도후기성도교회), 문선명(통일교, 세 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제선(예루살렘교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회), 박명호(한농복구회), 박무수(부산제 일교회), 박윤식(평강제일교회), 박태선 전도관, 백남주, 변승우(사랑하는교회), 서달석(강서중앙교회, 서울중앙침례교회), 스베덴보리, 신옥주(은혜로교회), 심재웅 (예수왕권세계선교회), 안상홍 증인회(하 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안식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엄명숙(명인교 회), 여호와의 증인(왕국회관), 예장합동 혁신총회(산하 남서울신학교), 예태해(엠 마오선교교회), 오덕임(대방주교회), 윗트 니스리(지방교회, 한국복음서원), 이뢰자 (이유성, 여호와새일파), 이만희(신천지예 수교증거장막성전), 이명범(레마복음선교 회), 이선아(밤빌리아추수꾼), 이송오(말 씀보존학회), 이영수(에덴성회), 이인강(현
이엘리야, 아멘충성교회), 이장림(다미선 교회), 이재록(만민중앙교회), 이초석(예수 중심교회), 이태화, 이현래(대구교회), 이 호빈, 임보라(섬돌향린교회), 전능하신하 나님교회(동방번개), 정명석(기독교복음 선교회), 조명호(대구광음교회), 조종성( 복음중앙교회), 조현주(성경100독사관학 교), 조희성(영생교), 주종철(서울 주안교 회), 차해경, 퀴어신학, 크리스찬사이언스, 한준명 등 55개 인물 및 단체 2) 사이비 또는 사이비성으로 규정한 단 체(이단성 단체와 중복되기도 함)는 11 개다. 공용복(밝은빛 종말론), 구원파, 노광 공(동방교), 류광수(다락방), 몰몬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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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통일교), 박무수(부산제일교회), 빈 야드운동, 심재웅(예수왕권세계선교회), 전능하신하나님교회(동방번개), 파룬궁 등 11개 인물 및 단체 3) 문제단체(참여금지, 추종금지, 예의주 시 등으로 규정한 단체)는 27개다. 다 만 이단으로 중복되거나 해제된 경우 제외했다. 고대원(덕천교회), 극단적 신비주의, 김 민호(열방교회), 김성로(춘천 한마음교 회), 김성수(서머나교회), 김용의(순회선 교단), 김풍일(세광중앙교회), 마음수련원 (우희호), 박용기, 박철수(새생활영성훈련 원), 베리칩과 666, 소에스더(우리제일교 회), 신사도운동(피터 와그너), 오성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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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아이합(마이크 비클), 유복종( 녹산교회), 윤석전(연세중앙교회), 이광복 (초청금지), 이승헌(뇌호흡), 이유빈(예수 전도협회, 예수전도단 아님), 장길섭(하비 람), 장재형(크리스천투데이 설립자), 정 동수(사랑침례교회), 정원(헤븐교회), 최 바울(인터콥), 타키모토 준(가계저주론), 홍혜선 등 27개 인물 및 단체
출처 기독교포털뉴스 www.kportalnews.co.kr
현대종교와 교회와신앙 목록을 참고한 이단, 사이비, 문제단체 목록 참고해 만든 연대별 도표
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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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사이비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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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교포털뉴스 www.kportalnews.co.kr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5-16) 제공: 박정순 사모(실로암장로교회)
강단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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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이 되어 버린 언약궤 <사무엘상 4:1-4>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3학년이 되면 졸업여행을 갑니다. 신학생이 졸업 여행 을 간다면 어디를 가겠습니까? ‘성지순 례’입니다. 물론 저는 가지 못했습니다. 이 여행을 가려면 주일을 한 번 빼야하 기 때문에 교회의 허락이 없으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좀 아쉽 긴 합니다. 졸업 여행을 가면 교수님들이랑 함께 가기 때문에 각 장소마다 성경적인 내용 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을 겁니다. 졸업 여행을 갔다 온 후에 수업 시간에 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무덤 이 정확하게 어떤 무덤인지 안다면 어떻 게 될까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 그 곳은 ‘성지 중에 성지’로 만들지 않았겠습 니까? 그 누구의 무덤도 아닌 예수님께 서 누우셨던 무덤이니 말입니다. 그러 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무덤이 어디인 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예수님은 무 덤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셨기 때 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무덤이 알려 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참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다 면 그 무덤이 또 다른 우상이 되었을지 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십자 가나, 못, 입으셨던 홍포. 이런 것도 마 찬가지였을 겁니다. 만약에 이런 것이 중요하다면 하나 님께서는 이런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라 고 명령하셨을 겁니다. 어쩌면 그런 것 이 또 다른 우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 습니다. 성경에서 예를 들면 민수기 21장에 이 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 망하므로 인해서 불뱀에 물려 죽는 사 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때 하나
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서 그 놋 뱀을 보는 사람은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놋뱀’이 어디로 갔을까요?
나님의 제물로 사용했습니다. 거기다가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성적 인 죄를 범했습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께 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성막에서 일어났
열왕기하 18장4절에 나옵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 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 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 왕의 개혁 때에 이 놋뱀을 부숩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놋뱀을 우상화 했기 때문 입니다.
습니다. 그 이유가 2장17절에 나옵니다. 2장17절 말씀을 보면,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 더라”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입니다. 거기다가 아버지 엘리의 죄는 그런 아 들들을 방관한 것입니다. 3장13절 말씀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또 다른 우상이 있 습니다. 먼저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
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 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 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
(’)שטתו의 원형은 ‘나타쉬(’)שטנ입니다. 뜻은 ‘포기하다’, ‘허락하다’, ‘확산 되다’, ‘버리다’의 의미입니다. 그 중에 서 이 단어가 본문에서는 ‘허락하다’ 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직역 을 하면, ‘그 전쟁이 허락되었다’입니 다. 성경에서 ‘허락되었다’라는 의미라 면, 이 허락을 한 주체가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 께서 지키시고,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 는 이스라엘은 그 어떤 전쟁에서 보호 받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전쟁 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어쩌면 블레셋 군 대에 이스라엘이 내놓음을 당했다는 의 미입니다.
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 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직무유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 리의 신앙에서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
지금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 우기 위해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는 ‘ 엘리’라는 제사장입니다.
을 때 그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 중에
사무엘상 1장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 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 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에 있었더라”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상태가 이렇다고
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가르 쳐야 하는데 가르치지 않는 것,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다면 백성들의 영적 수준은 어떨까요? 한번 생각해 보시죠? 그렇게 바른 모습 은 아니었을 겁니다. 바른 모습이 아니 라는 것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4장2절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이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 고 있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가 져온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좋은 것을 자기들의 소유로 가져갔습니다. 결 국은 자신들이 선택하고 남는 것을 하
윤우식 목사
예닮장로교회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내놓음을 당한 상태.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사는 진정한 이유 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기 때문입니 다. 그 품을 벗어나면 뭔가 자유가 있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의 삶이 진정한 자 유이며, 형통한 길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죄성이 제약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드디어 격돌합니 다. 물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대패 합니다. 그리고 군인 4000명이 전사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전쟁에 대한 이야 기도 많이 나오고 사람이 죽는 일도 많 이 나오니까 숫자에 무뎌집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4000명이 죽었다는 것은 크게 패한 겁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 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 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 천 명 가량이라” 이 본문에서 ‘그 둘이 ~하다가’라 는 단어가 히브리 원어로 ‘왓팃토쉬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서 죽은 사망자의 숫자가 1만 명이 넘 었습니다. 전세계입니다. 그런데 한 나라 에서 죽은 군인의 숫자가 4000명이라는 것은 아주 큽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 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이스 라엘만’ 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
강단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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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이스라엘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
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
엇 때문에 승리합니까? 언약궤 때문입
오늘 날 마음이 없는 예배, 마음이 없
에서 떠날 때에 그들을 징계하실 때에
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
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는 봉사. 이런 것들이 또 다른 언약궤가
4000명을 죽이시기도 하십니다.
원하게 하자 하니”
있는 다윗으로 인해서입니다.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마 음. 진정한 믿음을 돌아 봐야 합니다. 특
다윗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이 패배의 원인이 ‘여호와의 언약궤
을 잘 다스린 왕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
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
년에 교만하여서 이스라엘에 인구조사
서 이들이 세운 대책이 바로 ‘여호와
그런 대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
음에 위로도 되고, 만족이 됩니다. 하나
를 실시합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 앞
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
약궤를 가져와서는 전쟁터에 들고 나갑
님 없는 예배를 드리고도 그 시간만 가
에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서 7만 명의
오자’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있
니다. 그래서 이겼습니까?
졌다면 잘 되었다고 만족하면서 삽니
사람이 죽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윗 왕
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
한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하는 것이었
4장10절,11절 말씀을 보면,
님을 찾기보다, 내가 소홀히 했던 의식
전체의 죄 때문입니다.
습니다.
“10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을 찾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전쟁의 원인을 ‘ 언약궤’에 돌리고 있습니다.
히 이 시대는 더욱 그렇게 되어 버렸습 니다. 하나님 없이도, 형식만 있으면 마
다. 그러다가 위기의 순간이 되면, 하나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내가 기도회에 잘 나가지 않아서’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 앞에 잘못한
이들의 생각 속에 과거 여리고성 전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내가 말씀을 잘 읽지 않아서’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 백
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언약궤를 앞장
삼만 명이었으며 11하나님의 궤는 빼앗겼
성이 아닌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세우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
돌아오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백성으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언약궤를 앞
임을 당하였더라”
보호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
장 세우면 어떤 전쟁에서 이기게 되는
야 합니다.
겁니까?
왜 말씀에 소홀히 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마음이 없
언약궤를 앞세웠는데도 전쟁에서는 패
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합니다. 이 전쟁에서는 더 많은 3만 명이
올인 해야 합니다. 그것이 회복의 진정 한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블
라는 사망자가 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엘을 블레셋과의 전쟁을 통해서 4000명
레셋의 전쟁의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습니다.
을 죽게 하십니다. 전쟁에 지게 된 이
블레셋의 진영에서 골리앗이라는 거대
완패 아닙니까?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유와 4000명의 전사의 이유는 무엇입니
한 장수가 나와서 싸움을 겁니다. 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
까?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이런 상
때 이스라엘의 군대의 상태는 어떠했습
기 때문입니다. 언약궤가 함께 하지 않
황에서 이스라엘이 내린 결론은 좀 다
니까?
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이 시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삶
않았기 때문입니다.
릅니다.
그런데 왜, 기도회에 잘 나가지 않고,
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예배를 안 드려서가 아니라, 그 예배 가운데 내 마음이 바로 서 있지 않았기
사무엘상 17장24절을 보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
어느 순간엔가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
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제사, 성막, 언약궤 등이 신이 되어 버
그 원인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시들한
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
블레셋 군대, 그 중에서도 골리앗이라
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한 번 하나
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
는 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없이도 이런 것만을 신성시 여기는 이상
님 앞에 영적 회복을 위해서 매달리는
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무
한 믿음이 되어 버린 겁니다.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시95:2-3) 제공: 정순이 권사(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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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20년 4월 23일
10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22>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 주일입니다. 그분 은 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나 2020년 이번 봄의 계절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온 세상이 질병과 죽음의 공포 속 에 빠져있습니다. 지난 12월 30일에 중국 우환에서 발병되면서 한국과 유럽으로 퍼 지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과 온 세상을 강 타하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 50개 전체 주가 비상사태를 선 포하였습니다. 4월 11일의 통계를 보면 전 세계에 150만 이상의 확진자들과 9만 명 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날 하루 사이에 미 국 안에서 2013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 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활 주일로 경제 재 개와 활동을 언급하였지만 상황은 더 악 화되어 갑니다. 폐쇄된 학교, 직장, 교회 집 회 또는 공공건물이 언제 다시 열릴지 아 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업도 원격 근 무체계를 하면서 국외 여행을 금지하고 국 경을 막고 있습니다. 필수적인 식품 구입 과 병원 방문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몸에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면 자가격리를 법으 로 정하였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6피트 의 간격과 마스크를 쓰기를 요청하고 있습 니다. 모임도 10명 이하로 금하고 있고 동 양인을 향한 인종 차별이나 테러도 일어나 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중 에 죽음을 당하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코로나 사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밖도 나서지 못 하고 주일 예 배도 가정 예배로 또는 온 라인으로 드리 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이와 비슷한 상 황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일어나고 있었 습니다. 20:19절입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 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 을 닫았더니…" (요 20:19) 오늘 우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갇혀 있고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유대인 지도자들의 위협으로 두 려워 집에서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다시 사신 예수님이 그 들을 찾아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 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냥 별 뜻 없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이지만
이 경우에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는 평 범한 인사로 묻는 인사가 아닌 부활의 평 안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축복 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인기, 명성, 지식, 돈도 없으셨던 비천한 목수, 갈릴리와 유대땅을 벗어나지 도 않으신 나사렛 시골 출신, 노래나 영화 는 물론 책, 사진 또는 그림도 남기지 않으 셨던 무명, 그의 형제나 이웃 그리고 제자 들에게 조차도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의 죽 음은 온 세상을 뒤집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 문입니다.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 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지금 코 로나 바이러스라는 질병을 넘어 죽음의 공 포 속에 사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저자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 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가정 으로 반증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 이 없다면...” 즉 "If not” 입니다.
1.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 은 (거짓)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 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라 고 말합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이 사실임을 전합니다.(20 절)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니 집의 정 원이나 공원에 잔디가 자라기 시작하였습 니다. 그런데 지난 주중에 보니 노란 민들 레가 하나 둘 피어났습니다. 처음 민들레 하나가 피는 것을 보고 곧 많은 민들레가 따라 피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과 일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는데 처음 맺히는 과실을 보고 그 나무가 사과나무인지 또는 체리나무인지 알게 됩니다. 첫 열매를 따라 서 두 번째 열매, 세 번째 열매... 열번째 그 리고 백 번째 과일이 뒤를 따라 맺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의미 가 이와 같습니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 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므 로 그를 믿는 우리들도 그 첫 열매를 따라 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직
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 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요11:25-26) 죽 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이 누구입니 까? 요한복음의 특징으로 그분은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스스로 소개 하신 그 이름, "I AM” 이심을 선포하시 고 있었습니다. " ...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이니라(I AM who I AM)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 로 있는 자(I AM)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 다 하라." (출3:14)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 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 활의 하나님이야. 나는 생명의 하나님이란 다.” 내가 나를 믿는 나사로를 살리겠어 라고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이 아닌 예수님 자 신입니다. "나 즉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 도 살겠고, 영어로 "will live” 입니다. 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will never die” 입니다. 성 자 하나님께서 will 이라고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대로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 가지입니다. I Am 의 하나님 자신이신 예 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살겠고 라고 그 리고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말씀하셨기에 우리들이 죽어도 "We will live” 그리고 주님이 우리들이 살아 있을 때에 오신다면 "We will never die.” 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나사로의 자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해하 느냐?” "인간의 머리로 깨닫느냐?” "과학 적으로 맞는 말이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내가 믿느냐?” 입니다. 2020년 부 활절 주일을 맞이하여 첫 번째 부활의 열 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저와 여러분이 장차 부활의 열매로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까?
2.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복음)도 없습 니다. 14절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 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최요한 목사
섬김의 교회 담임
라고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 활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언제나 사탄의 도전과 공격을 받습니다. 독일의 니체는 " 하나님이 죽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소위 죽음의 신학입니다. 하나님이 죽었으니 "교 회의 문을 닫아라.” 그런 메시지를 들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별명은 ‘망 치의 철학자'이었습니다. 새 시대를 맞이하 여 전통이나 문화를 무너뜨리고 교회와 신 학도 때려 부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볼테르는 "성경과 기독교는 백 년 안에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계몽주의자로 ‘Enlightenment' 운 동을 하였습니다. 과학과 문화 예술이 발 전하면서 기독교는 끝났다고 말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잠꼬대라는 거예요. 난센 스라는 거죠. 구시대의 잠에서 깨어나 새 아침, 새 빛을 맞으라고 외쳤습니다. 기독 교는 사기고 성경전체는 거짓말이라고 하 였습니다. 그러나 니체가 말한 그 하나님이 돌아 가셨습니까? ‘No' 니체가 죽었지 하 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볼테르가 말한 성경 과 기독교가 사라졌습니까? 그 대답도 역 시 No 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오늘 날 복음은 온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성 경은 영원한 베스트셀러 1위입니다. 교회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더 많은 나라, 민족, 부족들이 그리고 더 많은 언어와 방언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 유일한 이유는 예수 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분과 제가 오늘 이 아침 다시 사신 예수님 께 찬양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부활 주일로 이곳에 있습니다.
3.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 이 (헛된) 것입니다. 19절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 이리라." 왜요? 하다못해 오늘 예수님을 믿 는다고 주일날 다른 곳으로 가서 놀지도 못하잖아요?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또 헌 금도 내고 얼마나 억울합니까? 사랑의 삶 을 사느라고, 참고 져주고 그것도 모자라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서 우리의 시간, 정성, 돈을 써 가면서 한 두 번 손해를 봅니까? 그래서 바울은 부활 이 없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이전 에 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에 부 활이 없다면 예수님이 가장 불쌍하고 비참 하고 억울하신 분입니다. 부활이 없는데 자신을 믿으면 용서와 구 원 그리고 부활 할 것이라는 공수표를 날 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쟁이 이거나 정신이 나간 사람입니 다. 그러나 그분은 거짓말쟁이 이거나 정신 병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나 그를 믿 는 우리는 결코 불쌍하거나 어리석지 않습 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이유 없이 참고 희 생하는 피해자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 사실이고 그 복음이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복 음을 위해 사는 삶이 가장 위대한 삶입니 다. 씨 에스 루이스는 "영원하지 않는 모 든 것은 영원히 쓸 데가 없다”고 말하였 습니다. 올해 초 1월에 덴버의 동남쪽의 센테니 얼에 사시는 어머니께서 이사를 하셨습니 다. 어머니의 이사 준비가 살림살이를 줄 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책들, 가족들의 옷, 가구 등을 버리고 집 청소였습니다. 한때 는 필요해서 돈을 드려 사고 모아 두었는 데 이사를 앞에 두고 대부분이 쓸데가 없 는 쓰레기로 버려야 하겠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세상의 돈, 지식, 명예 권세도 필요하고 좋지만 잠시 일뿐,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목숨을 거는 인 생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것들이 영원하 지 않기에 결국은 쓸데가 없다는 거죠. 정 리하여 버려야 할 쓰레기와 같습니다. 우리 의 인생은 결국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일시적인 땅에 생명을 위해 사는 삶과 영 원한 생명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그 기준
의 판단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달리신 십 자가와 다시 사신 부활이 선포하는 복음 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이 당신에게 누구십니까?
4.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소 망)이 없습니다. 똑딱, 똑딱, 똑딱... 무슨 소리입니까? 시 계의 초바늘이 지나가는 소리입니다. 매초 가 흐를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지금 어느 곳에서 매 일초마 다 2명이 죽고 있습니다. 2명, 4명, 6명... 제가 설교를 시작한지 25분 정도 지났는 데, 그 동안 무려 3000명이 이 세상을 떠 났습니다. 백인, 흑인, 또는 우리 같은 노란 피부를 가진 사람이든, 그리고 노인, 어린 이, 건강하든 병자이든 결코 환영하지 않 는 불청객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찾아옵니 다. 이것이 만고의 진리로 성경이 말씀합니 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 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이와 같은 죽음이 유대 땅 나인 이라는 동네에 살았던 한 청년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과부의 외아들로 죽어 관 속에 있는 장례식을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 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도시에로 들어 가다가 아들을 잃고 우는 한 어머니와 그 녀의 친척, 이웃들을 만납니다. 저는 이것 을 생명과 죽음의 만남이라고 부르고 싶습 니다. 그 그림을 성도님들의 머릿속에 그 려보십시오. 생명과 죽음을 따르는 두 무리가 서로 만 납니다. 성안에서 나오는 무리는 죽음의 행 진입니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예수님을 따 르는 무리는 생명의 행진입니다. 생명의 행 진과 죽음의 행진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그 들 중에 아들을 잃고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며 말씀하십니다. "울
2020년 4월 23일
지 말라”라고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그 관 에 손을 만지면서 말씀하십니다. "... 청년 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눅 7:14) 예수님께서 그녀를 말로만 위로하시는 것 이 아니라, 죽은 자에게 하신 말씀이 살아 있는 명령이 되어 그가 순종하면서 일어납 니다. 그분이 생명이시라, 그분의 말씀이 생 명이 되어 죽은 청년을 살리셨습니다. 여 전히 예수님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을 당하는 이 세상의 소망, 슬픔자의 소망, 가 난한 자의 소망, 스트레스를 받는 자의 소 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잔 파이퍼 목사님은 “기독교인 의 삶에서 희망 없이 기다리는 순간은 없 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벧전 1:3-4은 말씀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 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 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부활 하신 예수님이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 는 인생에게 어떤 소망을 주십니까? 산 소 망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 니다. 고전15:22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001년 9.11 테러가 났을 때 뉴욕의 World Trade Center가 무너질 때였습니 다. 그 건물에 비행기가 부딪혀 언제 무너 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 건물에서 도망을 하는데 놀랍게도 수백 명 이 그 빌딩을 향해 달려가고 들어가고 있 었습니다. 그들은 소방관들이었습니다. 그 들은 사명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에 서 ‘명'(命)' 자는 목숨 명자입니다. 자신 의 목숨을 건 자들이 사명자들입니다. 사 명이 있는 자는 목숨을 겁니다. 목숨이 두 렵지 않습니다. 생존의 목적이 자신의 생 명의 보호나 삶의 안전이 아니기 때문입니 다. 생존이 목적이 아닌 사명 자체가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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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와 같 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의 근거는 재 산, 학위, 지위 또는 우리 자신의 건강이나 목숨이 아닌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 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고난 이나 가난, 질병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 지 않습니다. 복음을 사명으로 사는 자만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생존의 목 적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 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분을 참으로 우리의 구원자와 주로 믿는 우리는 죽음의 권세에게 승리하 였고 영생이 보장되어 있으며 복음의 사명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난을 당 하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 엇입니까? 먼저 우리 자신은 물론이요 다 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콜로라도 주나 연 방 정부가 정한 규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 지키 기, 사재기 절제, 출타나 여행 금지나 자가 격리가 선이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입니까? 필요한 마스크를 나누 고 구제 헌금으로 질병 중에 있는 이웃을 위로하고 그 지역이나 나라를 섬기는 일입 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기도하면서 이 땅을 고쳐달라고 눈물로 기도할 때입니 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삶이 거룩한 산제 사가 되게 해달라고 매달리면서 말씀과 기 도로 매일의 삶이 하나님을 모시는 지성소 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잃어버린 공 예 배의 회복과 성도의 교제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전화나 카 톡이나 카드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부활의 생명을 나누는 복음의 사명자로 사 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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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21)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사무엘상 5:6-12>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여호 와의 법궤를 빼앗기므로 ‘이가봇’, 즉 하나님의 영광에 큰 손상을 입혔습니다. 자기 백성들로 인해 손상된 자신의 영광 을 회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블레셋 진 영에서 홀로 전쟁을 벌이십니다. 먼저 블 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다곤’신을 자 신 앞에 굴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 곤 신상의 머리와 두 손목을 절단하시 므로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력한 신인가 를 똑똑히 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 앞 에서 무참하게 짓이겨진 자신들의 신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려 나간 신 상의 머리와 두 손목이 놓여 있던 자 리를 신성시하는 무지함을 보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들과 전쟁을 벌이십니 다. 맹목적으로 다곤 신을 섬기는 블레 셋의 우상 숭배자들과 전쟁을 벌이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신들을 치시는 하나 님의 손에 대응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 이 들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모습을 살펴보 면서 이들의 모습 속에 오늘 나의 모습 은 없는지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하나 님 손의 엄중함(히브리어, ‘까바드’ ‘ 영광’과 같은 단어)에 블레셋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첫째, 블레셋은 지역 이기주의로 대응 했습니다. 아스돗 다곤 신전의 다곤 신상을 깨 뜨리신 하나님은 그 신을 섬기는 아스돗 사람들을 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 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 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사무 엘상5:6)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 의 재앙이 임했습니다. 깜짝 놀란 블레 셋 방백들이 모여 대책을 강구합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
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 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 겨 갔더니”(사무엘상5:8) 내놓은 처방이 무엇입니까? 옆 동네 로 법궤를 옮기는 것입니다. 그 옆 동네 가 어딥니까?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의 고향 ‘가드’입니다. 법궤가 가드로 옮 겨진 후에 그 곳에도 독한 종기의 재앙 이 임했습니다.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 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 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 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사무엘 상5:9) 아스돗에서 가드로, 가드에서 다 음은 어디입니까?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 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 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 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 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사무엘상5:10) 이제는 에그론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 니다. 이 하나님의 법궤라는 폭탄을 어 떻게 해야 합니까? 이들의 마지막 처방 은 이렇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 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 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 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 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사무엘상5:11) 그 마지막 처방이 무엇입니까? “이스 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 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입니다. 이 우 스꽝스러운 장면들을 보면서 지역 이기 주의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일컫는 용어 하나가 생각났습니 다. ‘님비(NIMBY) 현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NIMBY’는 “Not in my back yard”의 영어 이니셜을 딴 약자 입니다. 소위 사회적 혐오 시설이라고
일컬어지는 ‘핵발전소’ ‘쓰레기 소각 장’ ‘장애인 시설’ ‘정신병원’ ‘ 비행장’ 등이 자신들의 지역에 들어오 는 것을 반대하는 사회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님비 현상’은 블레셋 지역이나, 세상 속에만 있는 것 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 공동체인 교 회 안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 님 앞에서 회개하고 스스로 잘못을 인 정하거나 내가 십자가를 지면 될 어려운 일들을 스스로 모면해 보려는 일들이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희생하려 들지 않습니다. 열심히 ‘남 탓이오!’는 외치면서 ‘내 탓이오!’를 외치는 교인들을 보기 어렵 습니다. 블레셋은 ‘폭탄 돌리기 게임’ 처럼 언제 내 앞에서 터질지 모르는 법 궤라는 폭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에 급급했습니다.
둘째, 블레셋은 하나님을 만왕의 왕으 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신’ 개념은 처절 하게 ‘지역 신’ 개념입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사무엘상5:7)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 이스라엘 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다곤’을 ‘우리의 신’이라고 부릅니 다. 자신들의 신인 ‘다곤’을 ‘우리의 신’이라고 국한 시킨 것처럼, 여호와 하 나님도 ‘이스라엘 신’으로 한정시킨 것 입니다. 그들은 앞에서 이미 자신들의 신인 다곤을 굴복시킨 하나님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 나님을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에 속한 신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곤 신전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았던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여야 할 당연한 반응은 무엇입니까? 자신들 의 신인 다곤을 능가하는 신임을 인정했 어야 하지 않습니까? 언약궤가 옮겨지는
이동훈 목사 삼성장로교회 담임 곳마다 하나님의 재앙이 자신들의 눈앞 에서 벌여지는 보습을 보면서 “아, 여호 와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다스리시는 하 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블레셋도 다 스리시는 분이로구나.”라는 깨달음이 있 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 습니까? 블레셋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하 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그렇습니까? 아 닙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 유의 주이십니다. 어느 한 개인에게, 한 나라에 국한 되실 수 없는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 님으로 대접하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셋째, 블레셋은 자신들의 방법과 지혜 로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 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블레셋 방백들이 거듭 거듭 회의를 하는 장면이 등장합 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 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 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 겨 갔더니”(사무엘상5: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 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 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 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 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사무엘상5:11) 이들이 모여서 고작 내놓은 회의 결 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다 른 지역으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그들 이 머리를 써서 내놓은 처방은 전혀 효 과가 없었습니다. 더 큰 재앙이 따를 뿐 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써먹는 인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2020년 4월 23일
12절을 보기기 바랍니다.
13
간 지혜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을 상대
함’을 거듭(6,7,9,11절) 말씀하고 있습
해서 당해 낼 수 있는 인간의 지혜, 철
니다.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학, 모략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정말
나타냅니다. 앞서 하나님은 블레셋 사
지혜 있는 사람은 인간적인 모든 방
람들의 신인 ‘다곤’의 두 손목을 잘
법, 수단을 동원해서 하나님과 맞서는
라내셨습니다. 그 신의 무능력함을 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조
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죽지는 않았지만 독종으로 인해 고
다. “아, 사람이 죄를 깨닫고 회개한
건 항복하는 사람입니다. 간혹 성도들
은 자신의 손으로 블레셋 사람들에
통 하는 이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다는 사실이 이처럼 어렵구나. 기적중
가운데,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 맺을수
게 재앙을 내리십니다. 자신의 능력
사무쳤습니다. 이정도의 하나님의 손
의 기적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
록 오늘 본문의 블레셋 사람들처럼 인
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
의 엄중함을 경험했다면 당연히 보여
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일이로구나. 그
간적인 방법으로 끝까지 버티는 사람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라는 말
야할 반응이 이들에게서는 나오지 않
러므로 내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들이 있습니다. 그 끝은 망하는 길 밖
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능력이 아스
았습니다. 고작 나온 방응이 무엇입
말미암아 죄를 깨닫고 예수 믿어 구원
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으로
돗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나타났다.”
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 땅
받은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를 맞아도 순순히 맞는 사람, 맞을
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손
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수록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엄중함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 곧 블
들이 보여야할 합당한 반응은 무엇이
사람을 하나님은 치유하시고 회복시
레셋 사람들이 보여야만 하는 반응은
어야 했을까요? 하나님만이 참 하나
손아래서 겸손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켜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은 사망의 환난을 당
님이라는 고백이 나와야 하지 않습니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지 않은 사
까? 자신들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맹목
람들은 그냥 넘어갔습니까?
적이고 허망하고 잘못된 것인가에 대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 시리라”(베드로전서5:6)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손의 엄중
한 근본적이 회개가 있어야 하지 않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 에 사무쳤더라”(사무엘상5:12)
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 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하신
이것이 맡김이다
슬픔 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춤출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눈물 가운데서도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교만한 맡기기 맡김은
죽음 가운데서도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두움 가운데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1. 2. 3. 4. 5. 6.
대적들 가운데서도 그들을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원수들 가운데서도 그들을 용서하는 사람들입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http://cafe.daum.net/cgsbong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 맡김은 경건의 선행 조건이 된다. 자는 절대로 맡기는 일을 못한다.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야 한다. 다음의 영역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우리의 우리의 우리의 우리의 우리의
행위를 생각을 감정을 관계를 시간을 직업을
맡겨야 맡겨야 맡겨야 맡겨야 맡겨야 맡겨야
한다. 한다. 한다. 한다. 한다. 한다.
맡김은 이렇게 모든 영역에서 우리가 자신의 삶을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의 자리에서 물러나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오전 5:30 청소년,청년소그룹(주) 오후 1:30
7055 S. Lincoln St. Centennial, CO 80122 / (303) 503-3909 www.denversamsungchurch.com
목회 칼럼
14
2020년 4월 23일
징조 2020년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 하여 거의 온 세상이 대소 의심, 불안, 공 포, 미움, 분노, 파괴 혹은 폭력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전염병으로 인하여서 2020 년 4월 19일까지 2.3백만 이상이 감염이 되었고 161,000명이 죽고 말았다. 그런데 도 불구하고 전쟁과 지진과 기근은 물론 토네이도까지 부활절과 상관이 없이 세상 을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과 예멘은 전투 중이고 리비아에서는 마스크를 쓰고서 내전이 한 창이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에서도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1분기에는 지진이 3,500번 이상 이나 발생이 되었고, 그중에 429번은 강 도 5이상이어서 집들을 대소 파괴하기도 하였다. 토네이도는 미국에서만 2020년 1 분기에 약 200번 발생하였다. 그리고 세 상에는 8억 명 이상이 배고파하는 상태 에서 잠을 자고 있는 실정이다. 죄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 서 쫓겨났다. 죄가 범람하여서 대홍수가 발생하였으며, 소돔도 죄악이 범람하여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어 멸망을 당하였다. 또한 우상을 섬기는 지역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민족 과 나라일수록, 재난과 재앙이 빈번하다. 예수님께서는 마 24장에서 마지막 때 의 징조들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요한 계시록을 요약한 것임을 발견할 수가 있
다: 계 8장에서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져서 땅 1/3 타게 된다.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서 바 다의 1/3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의 1/3이 죽는다. 큰 행성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지 상의 대기권과 산소 속으로 들어오니 불 에 타듯이 뜨거워지고 불빛을 내는 것이 다.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강 들의 1/3이 쓰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물 을 마셔서 죽게 된다. 그리고 해 달 별들 의 1/3이 어두워진다. 계 9장에서는, 무저갱이가 열려지고 큰 풀무의 연기가 솟아나고 해와 공기가 어 두워진다. 황충이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 은 사람들을 해하는데 전갈 같은 고통 이 5개월 동안 계속되고, 사람의 1/3이 더 죽게 된다. 계 16장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7대접 (bowls)을 통하여 교훈을 받으면서 영생 구원을 얻을 자가 되도록 늘 애를 써야 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임한다. 마침내 바다 가운데 모 든 생물이 죽게 되고 강과 물 근원이 피 가 되서 그 물을 마시면 결국에는 죽게 된다. 해의 불이 사람들을 태우고, 죽는 듯이 아픈 것과 종기가 사람들의 몸 피 부에서 발생이 된다. 더러운 영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에게서 나오고, 큰 전쟁이 발 생한다. 그 전쟁에 2억 명의 군인들이 사 방에서 모여서 싸우는데 그 중의 1/3이 죽게 된다. 번개 음성 뇌성 큰 지진이 발
예배 안내
생하고 섬들이 사라지고 한 달란트의 큰 우박이 지상을 파괴한다. 계 17장에서는, 여자의 죄악이 극성을 부리고 마침내는 멸망케 된다고 예언한 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시고 택하신 자들, 충성된 자들은 주하나님을 통하여 이긴다고 말씀한다. 계 18장에서는, 바벨론이 패망케 된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보응하심이 2배로 죄 악을 행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에게 임하 게 된다(계 18:6). 계 19장에서는, 세마포 입은 자들 즉 옳 은 행실의 사람들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요 순교자들이요 복된 자들이다. 반면에 짐승과 거짓 선지 자들도 마귀짓과 귀신짓과 세상 멸망케 하는 짓을 한 여자 즉 적그리스도 군대 와 그들에게 순복 혼합한 자들은 마침내 지옥에 던져진다. 계 20장에서는,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고, 반면에 마귀와 귀신들은 마침내 지옥에 던져진다. 마귀와 귀신들은 사람들을 알 게 모르게 죄나 악을 행하게 하고는 제 일 나중에야 지옥에 던져지는 존재이다. 계 21장에서는, 새하늘 새땅에 이기는 자가 유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씀한다. 이기는 자는 누구인가? 고난을 당하거나 죽음이나 순교를 당해 도 끝까지 진리대로 의롭게 선하게 신앙 을 지키며 하나님의 명령이나 일이나 뜻 에 충성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복 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
최요셉 목사
실로암장로교회 담임
의 계명을 지키는 자요, 화평케 하는 자 요, 원수를 사랑하는 자요, 성령을 좇아 가는 자들 즉 영의 사람과 성령의 열매가 있는 자들이다. 비겁한 자들과 주 예수님 을 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 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 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짓는 자들은 지 옥영벌을 받게 됨을 주의를 하여야 한다. 계 22장에서는, 선하고 의롭게 일한대 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생명나무 와 거룩한 성에 참예하고 그렇게 수고한 만큼 상급을 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예수님과 진리와 성령이 충만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서 신앙의 경주자로서 규정 대로 경주를 하고, 주의 군사로서 목숨을 걸고서 주를 위하여 선하고 충성하여야 하고, 새사람과 천국시민답게 거룩함과 의를 이루어야 하고, 세마포를 입을 성도 로서 순교를 당하여도 올바르게 처신하 여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언 행과 삶과 죽음을 본받아야 한다. 또한 환난 후에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릴 때에 예 수님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신다. 그리고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 사들을 보내어 그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 서 모으심을 소망하여야 한다.
예배학 강좌
2020년 4월 23일
15
(제 59회)
광고나 새신자 환영도 예배 순서에 해당되나요?” 질문 “예배 시간에 표창장이나 감사장 같은 것을 주어도 되나요?” “광고 시간에 광고를 했는데 목사 님이 설교하기 위해 등단해서 다른 내용의 광고를 또 하십니다. 한 번 에 다 하면 안 되나요?” “예배 시간에 새신자 환영을 꼭 그 렇게 거창하게 해야 하나요?” “광고나 새신자 환영, 표창장 수여 등의 순서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거나 경건한 예배를 드 리는데 방해된다는 느낌을 받습니 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데, 이때에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초
‘사랑합니다’ 등의 말과 함께 인사하기
대교회의 예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
도 합니다.
다. 예컨대 2세기 중반에 기록된 순교자
이것들이 과연 예배 순서 중의 하나인
유스티누스의 글들을 보면 ‘평화의 인
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따져
사’가 예배 순서 중의 하나로 나타나 있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이들이 예배의 이
습니다. 그러나 광고나 새신자 환영 등은 에 오르간 또는 성가대의 후주를 하지 말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4-6세기의 예 고, 모든 성도가 참석한 상태에서 새신자
념에 맞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신학적인 검토이고, 또 하나는 이 순서들이 정말 로 예배의 순서 중 하나로 존재해왔는가
또 다른 가능한 방법은, 축도가 끝난 뒤
배 순서를 보아도 서방교회나 시리아, 이 들을 환영하거나 광고를 할 수 있습니다. 집트, 예루살렘의 교회가 모두 평화의 인 이때에는 지난 한 주 동안에 출산을 한
먼저 신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
사를 행했지만 광고나 새신자 환영은 하 가정이 있으면, 심방을 갈 때 비디오카메 라를 가지고 가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촬 지 않았습니다.
다. 예배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하나님
영했다가 광고 시간에 소식과 함께 신생
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행
그러면 성도의 교제는 예배 중 언제 하 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온 성도 는 것이 좋을까요? 초대교회 이래로 성 가 더욱더 생생하게 그 사실을 인식할 수
하는 것을 살피는 역사적인 고찰입니다.
위’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예배가 고도의 경건성과
대부분의 교회에는 예배 중에 광고 순 서가 있습니다. 새신자 환영 순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순서들은 ‘성도 의 교제’ 시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 통입니다. 과연 이 순서들은 예배의 요소 중 하나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이들은 예 배 중 어디에 위치하는 것이 좋으며, 어떻 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이들 각각의 본질과 성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광고는 글자 그대 로 ‘널리 알리는 교회의 소식’입니다. 그 내용은 주로 교회의 행사 계획, 당회 나 남녀전도회 등 각 기관의 행사와 회의 에 관한 사항, 그리고 교인들의 애경사 등 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둘째로, 새신자 환영은 당일 새로 나온 사람을 소개하고 환영하는 순서입니다. 대개 교회는 새신 자들을 일어서게 한 뒤 환영의 박수를 치 거나, 꽃다발을 갖다 주거나, “너는 시냇 가에 심은 나무라” 등의 노래를 불러줍 니다. 마지막으로 ‘성도의 교제’는 교인 들 상호 간에 인사하는 시간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모두 긴 장의자 속 에 ‘갇혀’ 앉아 있으므로 그저 옆 사람 과 고개를 숙이며 간단하게 인사를 하는
최형락 목사 덴버한인교회
지극한 정성 가운데에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예배가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 행해지는 사건임을 전제로 하는 것입 니다. 예배의 의미를 제시해주는 또 하나 의 정의는 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회중 의 봉사와 회중을 위한 하나님의 봉사’ 라는 말 속에 있습니다. 이는 예배가 하 나님과 인간의 대화(dialogue)이며, 따라 서 인간이 하나님께 말하는 행위와 하나 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행위로 구성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광고는 이러한 예배의 정의에 부합될까요? 광고는 그 성격상 교회가 성 도들에게 알리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광고는 인간이 인간에게 말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인간의 봉사’에 해 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순서가 될 수 없습니다. 새신자 환영 역시 같은 논리로 예배의 순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러나 성도의 교제는 성격이 약간 다릅니 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 음으로써 이루어진 성도와 하나님 사이 의 화해가 동일하게 성도들 사이의 화해 로 귀결되는 것을 확인하고 표현하는 사 건이므로 예배에 포함될 수 있는 근거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제공: 전제히 권사(덴버할렐루야교회)
도의 교제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있고, 더 효과적으로 축하를 할 수 있을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것입니다. 장례를 당한 가정이 있으면 장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례예배를, 개업한 교인이 있으면 새로 개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주님의 말씀(마 5:23-24)에 따라 봉헌 순서 직전에 행해 졌습니다. 물론 봉헌은 설교가 끝난 뒤 성 만찬을 시작하기 전에 행해집니다. 그렇다면 광고나 새신자 환영은 예배에 서 하지 말아야 할까요? 실용적인 관점 에서 볼 때 이것들을 하지 않을 수는 없 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에서 이것들은 꼭 필요한 순서입니다. 그렇다면 예배 밖 에서 행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능한 시간은 예배를 정식으 로 시작하기 전에 미리 하는 것입니다. 지 금 저희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법이 기도 한데, 예배 전에 교인들에게 교회의 소식들을 알리고, 애경사에 위로와 축하 인사 등을 나누며, 처음 방문한 사람들 도 따뜻하게 환영한 후 그들과 함께 예배 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배 전에 ‘인간을 위한 인간의 봉사’에 해당하는 순서들을 다 하고 나서 예배 시간에는 온 전히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에만 집중하도 록 하는 것입니다.
업한 가게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입 니다. 새신자 환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 다. 지난주에 새로 등록한 사람의 얼굴 을 이번 주 광고 시간에 화면으로 보여주 면 본인들도 고마워하고 성도들도 그들을 더 잘 알아보고 교회 생활을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광고와 새신자 환영 을 마친 뒤 모두 함께 ‘흩어짐 송’ 등 을 부르는 동안 집례자가 먼저 퇴장해 있 다가 노래가 끝나고 나가는 회중에게 인 사를 한다면 예배는 예배답게 드리고 광 고와 새신자 환영도 더욱 성대하게 축제 처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예배의 문제는 모든 것을 ‘ 묵도와 축도 사이에’ 하려고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 외적인 것들 이 함께 뒤섞여서 예배인지, 전도집회인 지, 문화집회인지 그 성격이 모호해집니 다. 이렇게 되면 예배가 예배다워지지 않 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 배가 될 수 없고, 다른 성격의 집회들도 예배 비슷하게 되어 뚜렷한 목적을 달성 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제공: 주마서•금우연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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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우영종
임동섭 목사 Pastor Dong S. Lim
트리니티교회
담임목사 장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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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에스라성경통독원
2020년 4월 23일
18
(제85회)
요한계시록 강좌 (17) 새 하늘과 새땅
고난주간을 보내며 본의 아니게 주님 의 깊은 고난에 동참하게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어두운 분위기 탓인지 도대 체 알 수 없는 이유로 꼬박 밤을 지새우 며 몇 날을 고통에 시달렸다. 간절히 기 도하던 나흘째 밤, 침대에 눕기를 두려워 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모서리에 앉혀놓 고 머리 마사지를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당기고 두피를 문지르는데 머릿속의 잡 다한 걱정과 생각들이 쭉-빠져나가며 신 비한 황홀경에 빠지고 마치 내가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이더니 덜컥 침대에 쓰러졌 다. 잠에 골아 떨어져 아침에 눈을 뜨니 아직도 몸에 그 황홀한 여운이 남아있어 한참 그 여운을 누리다가 일어났다. 꿀잠 에 감사기도를 드리며 문득 떠오른 생각. ‘아 우리가 죽을 때 이런 황홀경 속에 천사가 우리 영혼을 이끌어주시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 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는 죽음에 대 한 두려움도 주님이 이렇게 처리해 주실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날 비몽사몽간에 본 게 아내인지 천사인지 잘 모르겠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 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계21:1) 불 못(지 옥)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억지로 보 내는 그런 곳이 아니다.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곳이다. 나의 선택이다. 모세는 가나안땅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민족에 게 이렇게 권면한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 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 라’(신30:15-20)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우리 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분)를 보내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 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으니’(요1:12) 그래서 예수 믿으면 생명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 94:19) 제공: 김경실 권사(한인기독교회)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믿는 자는 영 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예수 믿고 죽으면 죽을 때도 황홀하고 죽어도 부활하여 황홀한 세계로 간다. 그 곳이 바로 새 하늘 새 땅이다. 요한 계시록의 결론은 성경의 결론이며 또한 인류 역사의 결론이다. 이 결론을 함부로 다루기가 두려워 되도록 원문을 충실하게 실으려고 한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 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 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 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새 하늘 새 땅에는 바다가 없고 생명수 의 강만 흐른다. 그 강 좌우에 있는 생명 나무는 매달 다른 과실을 맺는데, 이 나 무가 바로 에덴동산에 있던 나무다. ‘여 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 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 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9) 그런데 뱀(사탄)의 유혹에 빠진 하와 가 생명나무 과실만 먹은 게 아니라 선악 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까지 먹는 바 람에 온 인류가 죽음의 병에 걸린 것이 다. 꼭 그것까지 먹어야 했나? 먹어야 할 것을 먹는 것보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안 먹는 게 건강의 지름길이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 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
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 다’(계22:3-5) 해(Sun)의 주기가 없으니 그곳에는 시간도 없고 노화도 없다. 고로 늙지도 않으니 영원히 청춘으로 사는 곳 이다. 청춘을 돌려받는 곳이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 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 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 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 도다’(계22:6) 요한계시록의 서두는 이렇 게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1:1) “반드시 속히 되어 질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계시다. ‘보 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 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계22:7) 계시록의 서두도 이렇게 말씀한 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 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이 시대의 예언은 무엇인가? 점치는 게 아니 다. 반드시 속히 될 계시록을 부단히 읽 고 듣고 지켜야 한다. 구약의 예언은 예 수님 탄생이고, 신약의 예언은 예수님 재 림이다. 그것이 성경적 예언의 정의이다. 헛된 무당적 예언에 미혹되지 말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 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 아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자기 두루 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 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 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계22:12-14) Repent! 회개하라! 진실하 게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제공: 김영옥 집사(덴버한인장로교회)
제공:김정애 권사(실로암장로교회)
맹준호 목사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미주에스라성경통독원 원장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 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22:15) 예수 믿는 성도들이 이런 죄를 짓겠는가? 다만 선의의 거짓말 이라도 하지 말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 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 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22:17) 초청할 때 오라. 나중에 왜 안 불렀냐 하지 말 고...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 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 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 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 리라’(계22:18-19) 계시록에 함부로 자기 를 더하거나 빼면서 교주노릇을 하고 있 는 이단들은 큰일 났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 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는 세상에 실망해보고 자신에게 실망해본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번 호로 '미주에스라성경통독 원' 맹준호 목사의 연재를 마친 다. 수년간 귀한 강좌로 동역해 주신 맹준호 목사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제공: 박수원 권사(실로암장로교회)
진리의 샘터
2020년 4월 23일
19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라 김창훈 목사 덴버할렐루야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들어보지
‘설마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로 명시
못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곧
판하시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
하신 이상 그다음에 나올 내용은 하
복음이다. 반면에 같은 말씀을 여러
하시면 세상이 하나님을 향해 뭐라고
나님이 그들을 지키시고 복 주시겠다
번 들었음에도 또 들어야 하는 경우
하겠는가?'
는 말씀이 이어져야 자연스럽게 보이
하나님의 성전이 그 기능을 상실한
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레미야 19:3 마
다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
지막 부분은 그러한 예상을 완전히 뒤
안에 가득한 우상들을 깨끗이 치우거
집어 놓게 된다.
나 아예 허물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
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미 충분한 말 씀과 경고가 주어진 상태에서 동일한
이러한 생각은 예레미야 당시 유다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하
백성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이 시대
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는 그릇된 믿음의 단면이다.
예레미야는 어느 특정한 때 몇 번
일 뿐이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 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 리니.”
에 가득한 우상들, 다시 말해 하나님 이 명령하시거나 뜻한 바가 아닌 것들 을 깨닫게 하실 때 우리는 어떤 반응
에 걸쳐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
예레미야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
렘의 모든 주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으라”는 표현이 8번 기록되어 있다.
전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무려 23
예레미야 19장에서도 “여호와의 말
하나님이 택한 나라에 재앙을 내리
년 동안 꾸준히 여호와의 말씀을 전
씀을 들으라”는 선지자의 촉구를 확
시겠다는 말씀이 우리로서는 선뜻 이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이 말씀이
했다. 23년간 매일 말씀을 전한 예레
인할 수 있다.
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하나님의 백성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씀이라면 이 말
이 잘못되면 하나님이 손해라고 여기
씀은 저주가 아니라 복음이다. 하지만
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택한 나라에
이미 여러 번 들었던 말씀이라면 서둘
재앙을 내리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
러 하나님 앞에서 입장을 정해야 한
까? 예레미야 19:4-5에서 그 이유를
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
확인할 수 있다.
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야도 대단하지만 그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유다 모든 백성들도 대 단(?)하다. 유대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23년 동 안 예레미야를 통해 경고의 말씀을 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 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 하시되 …”(렘 19:1,3).
었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 예레미야 19:3 마지막 부분 직전까
노가 임하지 않았다.
지 내용만 봐서는 현재 선지자가 전하 어쩌면 그들은 처음 경고의 말씀을
는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 정확히 알
들었을 때는 잠깐 놀랐을 수 있으나
수가 없다. 일단 하나님이 당신을 가
시간이 23년이나 지나는 동안 예레미
리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
야를 통한 경고만 있을 뿐 실제 그 일
나님”이라고 표현하신 것만 볼 때 이
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 일은 결코 일
스라엘에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유
어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추가 된다.
18901 E. Hampden Ave. Aurora, CO 80013 (720) 509-9112 www.truelight.church S Ceylon St
S Biscay St
S Tower Rd
E Hampden Ave
을 보여야 할까?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 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 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 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 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 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재앙 이 아닌 복이라는 진리에 감격하여 주 어진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 기를 바란다.
참빛교회 온라인 예배 코로나-19로 인하여 Stay at Home Order 가 진행되는 동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한어, 영어 예배 주일 오전 10시 (그 외 특별 집회들 홈페이지 참고) YouTube Channel: True Light Community Church (https://bit.ly/2yoitkO) 혹은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들어오세요 (https://ko.truelight.church) 문의: 720-509-9112 pastorjohn@truelight.church
목양 칼럼
2020년 4월 23일
20
두려움을 이렇게 극복합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 면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두려움과 불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 분석하여 보니까 사실은 모두 쓸데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었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일 많은 불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으로써 40%나 됩니다. 장차 내가 어떻 게 될까? 또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 다음에는 과거에 대한 두려움으로써 30%나 됩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리고 질병에 대한 공포가 12%나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내
코비드19으로 우리 생활을 더욱 불안하 게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 에 가지마라. 페이스마스크를 착용하라. 6피트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 식당에 가 지마라. 손을 자주 씻어라. 기침하거나 열이 나면 자가격리(Quarantine) 생활 하라 등등”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가 져야할 생활방식하고 정반대입니다. 성 경적으로 보면 구약성경에 나병환자가 가정이나 커뮤니티에 발생하면 사회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성 경을 보면 영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자가격리 하 는 것과 흡사하기도 합니다.
가 요즘 유행하는 COVID-19에 걸리지 는 않을까? 혹은 암에 걸리지나 않을까? 고혈압에 걸리지나 않을까? 교통사고 당
이런 상태가 되면 우리사람은 두려움 과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성서학자는 신구약 성 경에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두려워 말 라.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는 말 을 366번이나 했다고 말합니다. 런던의 킹스대학병원(King's College London) 암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 중에 적극적이며 희망 적인 믿음으로 일상생활을 산 사람이 병 을 두려워하고 절망하며 두려움 속에 사 는 사람보다 평균 10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애틀의 하보뷰 메디컬 센터(Harborview Medical Center)의 보고서와도 일치합니다. 중화상을 입은 입원환자들을 조사해보니‘나는 빨리 회 복될 것이다’고 생각하고 믿고 말한 사 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정말 빨리 회복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입니 다. 네 번째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 이 어떻게 될까? 그(녀)를 잃어버리면 어 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10%나 됩니 다. 그리고 사실상 현실적이고 꼭 필요 한 두려움과 불안은 겨우 8%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92%가 모두 쓸데 없는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이었습니다. 사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혼란이 우리의 생 활 전역에 말없이 스며들어와 있습니다.
세계적인 성공철학의 거장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현대인에게 7가지 불안이나 공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 째, 가난에 대한 공포입니다. 둘째, 실패 에 대한 불안입니다. 셋째, 질병에 대한 공포입니다. 넷째, 사랑을 잃을 것에 대 한 공포입니다. 다섯째, 노후에 대한 불 안입니다. 여섯째, 자유 상실에 대한 불 안입니다. 일곱째,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 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고민하는 우리 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지 않으면 우 리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은 “내가 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 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 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라고 고백 했고, 격전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두려 워 떨고 도망치는 상황에 골리앗을 향 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윗이 블레 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 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 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
오성관 목사
벧엘교회 담임
가노라”(삼상 17:45)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 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 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 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 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두려움 과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 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 려움이 아니고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 입니다.
성지 순례
21
2020년 4월 23일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26회
말세의 표상인 라오디게아 교회 (2) 송병일 목사
사도 빌립 순교 교회
부유했던 도시 라오디게아는 금융의 중심지였다. 동 방과 서방을 이어주던 실크로드 주요 지점에 세원진 관문도시였기 때문이다. 모든 물자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 무역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 이다. 자연히 돈이 몰리게 되면서 금융 산업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가 된 것이 다. 그러므로 은행업자들과 고리대금업 자들이 많이 활동했다.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철학가인 키케로는 그의 책 에서 라오디게아의 유대인들이 예루살 렘에 보내는 20파운드의 금을 몰래 빼 돌렸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 록에 의하면 라오디게아는 당시 지상에 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는데 AD 13년 과 61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을 때도 로마 중앙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 지 않은 유일한 도시였다고 한다. 지방 정부의 재정만으로도 도시 복구가 충분 할 정도로 부유한 도시였다는 것을 말 해주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모직과 면직 산업에서도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리쿠스 계곡의 넓고 기름진 땅에서 목양과 목 화재배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고대 지 리학자 스트라보는 라오디게아의 목양 에서 얻은 털의 부드러움과 그 연함이
세상 어느 제품보다도 훌륭했다고 기록 하고 있다. 이 지방에서 나는 면제품은 로마 전역에 보급될 정도였다. 특히 로 마 원로원에서 입는 흰 옷을 이 라오디 게아에서 단체로 주문 제작하기도 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도시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시지 않았다. 주님의 눈에 그들은 결코 부자가 아니었다. 가장 가난한 사 람들이었다. 주님은 이렇게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 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 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물질은 우리 인격을 높여주는 것이 아 니다. 돈이 우리 영혼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보시는 진정한 부요함은 바로 믿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은 믿음 이 부자인 사람이다. 믿음 없이는 구원 을 받을 수 없다. 믿음 없이는 하늘나 라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 물질로 부유 함을 자랑하기보다는 믿음이 얼마나 큰 가로 부유함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물질적 부유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교 회도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서는 안 된
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말씀은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추구해 야 하는 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시금 석인 것이다.
빌립 순교 교회 히에라볼리는 고대로부터 전세계인이 찾는 온천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신앙의 유적지로도 이름이 있다. 주님의 제자였 던 사도 빌립이 순교한 곳이기 때문이 다. 히에라볼리에는 1세기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로마 정부가 비교적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기 때문에 그들의 회당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유롭게 예배 도 드릴 수 있었다. 그때 사도 빌립이 이 도시에 와서 처 음 전도를 시작하였다. 그는 친구 나다 나엘을 전도해서 주님께로 인도했던 전 도에 열심을 가졌던 사람으로 성경은 기 록하고 있다. 그의 가족에 대한 구체적 인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아들과 함께 히 에라볼리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전파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 기던 유대인들에 의해서 빌립은 아들과 함께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된다.
한인기독교회 담임
에는 사도 빌립 순교 기념 교회가 세워 지게 되었다. 히에라볼리가 한 눈에 내 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교회가 세워져서 그곳에 올라가면 이 도시를 향한 빌립 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라오디게아는 물질적 풍요가 가치가 되어버린 말세 교회의 표상으로 우리에 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하지만 빌립 순교교회 자리에 서면 그런 와중 에도 우리가 바로 나가야 할 길이 무엇 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로마 전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이 도시
라오디게아 시가지
이번 호로 '성지순례' 송병일 목 사의 연재를 마친다. 수년간 귀 한 칼럼과 성지순례 인솔로 동역 해 주신 송병일 목사께 깊은 감사 를 드린다.
한인기독교회 Korean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송병일
주일예배 (본당) 1부 7:55 AM 2부 11:15 AM 영어 9:30 PM
주일예배 (교육관)
금요찬양예배
RCC Bible Study 7:00 PM (교육관)
새벽기도회: 장년: 7:30 PM (본당) 유년부 11:15 AM 화-토 5:30 AM (본당) 청소년부 11:15 AM 어와나: 7:00 PM (교육관) 청년대학부 2:00 PM 청소년부: 7:00 PM (교육관) 목장 (토/주일): OPEN (각 목장)
정성욱 교수의 신학 에세이
2020년 4월 23일
22
(13회)
예수님 부활의 5가지 확실성과 코로나19 상황을 이기는 지혜 2020년에도 어김없이 부활절이 다가왔 다. 부활절은 성탄절과 더불어 기독교 최대 의 명절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기쁨과 감사와 행복으로 가 득 차게 하는 영광스러운 절기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번 부활절을 코 로나19 바이러스 사태와 함께 맞고 있다는 점이다. 예배당에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며, 성찬식을 거행하고, 선물들을 나누던 옛일 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주님께서 는 우리가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라도 영 과 진리로 예배할 때 당연히 기뻐 받으신 다. 그러나 우리 차원에서 부활절에도 함 께 모여 예배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것 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그리고 아프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예수님 부활의 확 실성을 몇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고, 이어 서 부활의 사실로부터 우리가 코로나19 사 태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밝혀 보고자 한다. 먼저 예수님 부 활의 확실성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접근 할 수 있다. 첫째는 빈 무덤(empty tomb)이다.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같은 모든 세계적인 종교들은 그 종교의 창시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만들어, 그 무덤에 묻힌 창시자들에게 참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예 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다. 그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은 주님이 무덤에 갇히셨다가 그 무덤의 권세, 즉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 나오셨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부활의 가장 강력한 증거들 중 하나이다. 둘째는 예수님이 고난과 죽임을 당하셨을 때,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 들의 혁명적인 변화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수 많은 표적들을 보았고, 예수님의 능력과 지 혜를 직접 경험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힘없 이 사형장으로 끌려가시는 주님을 보면서 겁에 질렸다. 공포에 질린 그들은 예수님 을 내팽개쳐 버리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런 비겁한 겁쟁이들이 과연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자기들의 목
숨을 내대면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다녔을 까? 불가능한 일이다. 12명의 사도들(가룟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를 포함한) 중 사도 요한을 제외한 11명이 순교했다. 그 외에도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를 다녔던 팀에 속 했던 바나바, 실라, 누가, 디모데, 디도 등등 모두 모두 순교했다.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어떤 이들은 참수 형을 당했으며, 어떤 이들은 화형 당했고, 어떤 이들은 사자들의 밥이 됐다. 그들이 그렇게 장렬하게 순교할 수 있었 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들이 죽더라도 다시 살 것 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설명이 아니면 결코 우리는 사도들의 혁명적 변화를 합리 적으로 설명해 낼 수 없다. 셋째,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삼켜버릴 정도로 강력하게 전파된 사실이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 을 결코 여성으로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째, 사도 바울이 고전 15장에서 말하고 있 는 것처럼, 자기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었다.
그러하기에 당시에 부활의 사실을 숨기려 했다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막 아야 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눈으로 부 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인(eyewitness)들 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정성욱 교수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해가는 것을 보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 신의 도성(civitas dei)’의 영원성을 노래 한 것처럼, 우리는 코로나 사태로 세계 각 국이 무력함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하나 님 나라의 영원성을 노래해야 한다. “나라 가 임하옵시며(thy Kingdom come!)”가 우리의 기도와 찬송이 되어야 한다. 셋째, 모든 만물의 통치자는 바로 살아계신 삼
위의 다섯 가지 이유로 예수님 부활의 확실성은 너무나 분명하게 입증된다. 그렇 다면 우리는 이 부활의 사실을 통해 이 시 대를 이기는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첫째, 인간의 유한성과 연약성이다.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렇게 떵떵 거리고 자신만만했던 인간들이 숨을 죽이 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 에 벌벌 떨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근 원적인 한계와 연약성을 보여준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간은 유한한 피조물이며, 영원한 죽음의 선고를 받은 죄인으로 사망 의 노예일 뿐이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바 르게 깨달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겸 손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 안에만 사망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이 있음을 깨닫 고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하게 된다.
기독교는 발흥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강 력한 핍박을 받았다. 특별히 로마 제국의 핍박과 박해는 기독교를 말살시키기에 충 분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결코 포 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우주의 왕과 세상의 구세주로 믿는 바로 그 분,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셔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경험과 고백이 너무나 의심할 수 없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 서 예배하고 떡을 뗄 때마다, 그리고 흩어 져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증거 둘째, 이 세상은 ‘장망성’이라는 사실이다. ‘장 할 때마다 그들은 살아서 함께 동행 하시 차 망할 성’이라는 진리다. 는 주님을 뚜렷하게 체험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 세상 나라는 장차 넷째,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에 목격했던 사람들 바벨론이라는 이름으로, 적그리스도의 통 치 하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의 제국을 을 여성이라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당시 여성들의 증언은 ‘쓰레기’와 같이 형성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보면 강해 보이 취급됐다. 여성들이 증언은 그 사실의 신 지만, 바벨론제국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뢰성을 높이기보다는 더 떨어뜨린다고 여 일곱 대접 재앙을 통하여 멸망하게 된다. 겨졌다. 따라서 부활의 첫 증인이 여성들이 강하고 힘 있는 나라라고 자부했던 중국, 라고 했을 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 서구 유럽의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독일과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활을 인정하려 하지 영국, 세계 최강국인 미국 등 코로나19 사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여성들 태는 그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다시 말하 이 부활의 첫 증인이라는 사실을 숨김없이 면 우리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부 그대로 밝히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부활 활 생명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 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 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
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 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해야 한 다.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해야 한 다. 유한하고 죄 많은 나의 이름이나 우리 가 속한 단체나 심지어 교회의 이름이 아 니라 오직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 김 받기를 기도하고, 나의 뜻이나 우리의 뜻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 이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참된 지 혜를 얻은 자는 반드시 이 코로나 사태를 넉넉히 이기고 끝내 거룩한 승리자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코로나19 사태는 주님 재 림의 선명한 징조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떨거나 두려워해 서는 안 된다. 도리어 주님 오시기 직전에 있을 마지막 대환난을 믿음으로 잘 견뎌내 고, 영광중에 오실 신랑을 기쁨과 환희로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낮에 속한 자로서 단정하 게 행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을 증거하는 선한 일들을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한다. 특별히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지금이 참 된 부활의 신앙, 그리고 ‘마라나타’의 신 앙, 밝고 행복한 재림의 신앙으로 재무장하 는 귀한 기회이다. 바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위기를 기회 로 선용하는 거룩한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 부활의 확실성만이 예수 재림의 확실성에 대한 보증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좁은 길을 걸으며
2020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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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인줄 아는 마음 요즘 성경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는 기 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관련한 책들도 판매가 20~30% 늘었고 인터넷에 서는 코로나라는 단어와 더불어 믿음, 교 회, 신, 기도, 성경과 같은 단어들에 대한 검색이 부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종 교 단체에는 종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 었던 사람들도 종교에 대한 문의를 많이 하고 있다 합니다. 심지어 비 크리스천까지 포함하여 미국 인의 55%가 지금의 이 코로나 확산 사 태를 조속히 멈추어 달라고 기도한다는 통계를 퓨리서치 설문조사에서 내놓았다 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참으로 사람들을 많이도 바꾸고 있구나 하는 생 각이 듭니다. 모든 현상이 이 예기치 못한 팬더믹 상 황에서 인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 황을 만남에 극한의 어려움을 종교적으 로 풀어보려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라 볼 수 있겠습니다. 전염병 재난을 속 히 벗어나고픈 마음과 함께 커져버린 미 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수많은 이들 이 생사를 넘나드는 것을 보면서 사후에 대한 관심도 기울이려는 인간 심리의 자 연스런 발동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들과 신자들도 장기간 공중 예배를 볼 수 없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 면서 우리가 일상으로 감당한 예배가 얼 마나 가치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습 니다. 각자가 가정에서 예배를 봄으로써 예배에 대한 이해와 의미도 새로워진 것
을 느낍니다. stay at home정책으로 인 해 가정에 오래 머물다 보니 가정이 중요 한 것도 더욱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서로 에게 대한 관심과 사랑에도 변화를 주었 다고 하겠습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들의 모든 부분에 적잖은 변화 를 가져다주었으며 사람들의 생각에 자 리할 새로운 가치들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 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어 떤 것을 새롭게 생각하고 붙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람들이 어려움 에 빠질 때 그 가운데는 반드시 인류 역 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메시지가 있었음을 우리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발견합니다. 전염병의 태동에는 꼭 그 사회의 지도자나 권위자들의 영적 실수와 허물이 있었고 그것을 수수방관 하는 사람들의 영적 무감각이 전반적으 로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또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반역하고 자 하는 생각이 표면화되어질 때 전염병 은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고 통을 주었습니다. 애굽에 내린 갖가지 재 앙은 대부분 전염병이었고 이스라엘의 지 도자가 교만해져 거스르는 행동을 행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전염병 을 그 악행을 징벌하는 수단으로 삼으셨 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접하면서 오늘날 의학이나 과학이 인간사를 주관 하는 메커니즘 하에서 얼마든지 원하는 데로 생물학적 성장과 변이를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힘이 작동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통해 많은 사람 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종교적인 해결책 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 니다. 결국 과학 의학 죽으라 믿어봤더니 아무 소용없음을 새삼 깨달은 셈입니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이가 따로 있음을 비로소 깨닫고 그 분을 의뢰하는 마음을 품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염병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하에 내 려진 재앙이라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 다. 어느 때든지 재앙 가운데서도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전염병의 재앙을 허락하 시는 데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도 완악하고 교만 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하 나님답게 존중할 줄 모르는 것이 특별히 오늘 막강해진 자신들의 힘을 믿는 사 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고 의 시그널로서 전염성이 강력한 바이러스 를 창궐하게 하는 것 아닌가 숙고해 보 게 됩니다. 의학자들은 바이러스 재난은 한번 지나 간다 해서 마음 놓을 수 없도록 계속해 서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 예고하고 있습
오세오 목사
순복음한인교회 담임
니다. 이번 한번 위기를 넘긴다고 끝이 아 니라는 뜻입니다. 이번을 계기삼아 방역 의 스킬을 높이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 로 전염병을 무찌를지를 연구하고 백신과 치료약을 생산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물리 적인 처방에 앞서 우리 신앙인들이 감당 할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 나님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높이고 예배 하는 마음을 새롭게 품는 것이라 생각합 니다. 만사에 우연이 없다 했는데 이러한 엄청난 팬더믹에 주권자의 뜻이 왜 없겠 습니까? 우리는 이번 재난을 통해 하나 님을 새롭게 만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분 앞에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지며 이 세 대에게 얼마나 하나님이 더욱 절실한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 예레미야 24장에는 먼지처럼 흩어 진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요구 하신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이라 표현하였습니다. 불법의 사회가 되어 부 조리가 성행하고 나눔과 베풂을 상실한 양육강식의 논리 가운데 하나님께 반역 적인 생각으로 물들었던 사람들의 생각 에서 사라져 버린 여호와인 줄 아는 그 마음부터 회복할 것을 요구하셨던 것입 니다.
예배 / 모임 주일 예배 1부 오전 8:00 2부 오전 11:00
주일학교 오전 11:00
수요 예배 오후 7:30
학생회성경공부 (토) 오후 4:00 청년부예배(주)오후 2:30
신앙 칼럼
2020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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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봄 이상화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지금
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넘
결코 파괴를 의미하신 것은 아니다. 창
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치는 인터넷 생중계 주일예배를 위시하
조주 여호와는 자신의 창조물인 사람
가?” 시를 통해 한민족의 비참한 심정
여, 무엇이든 언제든지 접속만 하면 세계
과 짐승을 모두를 보호하시는 분이다.(
바삐 돌아가던 세상이 코로라-19로 인
을 표현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온 세상
와 소통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그리
시 36:6) 청지기로 부름 받은 우리 인간
해 일시에 멈춰버렸다. 아니 틀렸다. 멈
이 코로라-19로 인해 긴 겨울잠에서 깨
고 필요에 따라 제한적이지만 외출도 허
은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창조의 질서
춘 것은 인간세상의 모습이었지, 하나님
어나 한창 눈부시게 찬란한 봄을 얼떨
용되고 있다. 다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
를 따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자
께서 창조하신 자연은 긴 겨울잠에서 깨
결에 송두리 채 빼앗겨버렸다. 덴버도 3
관없이 집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무료
연과 생물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책
어나고 있다. 이 전염병과는 상관없이
월 중순부터 시작된 Stay at Home
함과 불확실한 미래의 조급함 등이 현실
임과 의무 대신 어리석게도 학대하는 만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으로 메마른 초목
Order로 언제까지 집에 머물러 있어
을 답답하게 하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
용을 부렸다.
은 창조의 질서를 따라 푸르게 탈바꿈하
야 할런지 아직 불확실한 상태이다. 현
갈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재 몇몇 주들은 5월 중순까지 자택대피
발행인 최성애 권사
며 꽃망울을 터트리고 자기 본연의 사명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코로라 바이러
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령을 연장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최소한
반면에 한 달 남짓 자유롭게 모여 예
스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의 확산은 기
한 뼘밖에 남지 않은 봄의 끝자락에라
배를 드리지 못하는 현실을 통해 종교의
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산천초목을 통해 우리는 무언중에 하
도 안전한 상태에서 자택대피령이 해제
자유가 없는 곳에서 신앙을 지키며 평생
즉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한 야생동물 서
나님께서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는다.
되길 희망해 본다.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 수많은 믿음의 가
식지 파괴, 생태계 교란, 또한 산림 파괴
코로라-19는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
족들의 고통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공감
와 같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과도한 개
다. 말세의 시대적 징조 가운데 하나이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온 지체들이
하며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입으로 균형이 무너지면서 동물들도 심
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
다 함께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있으니 또한 감사하다. 지금도 지구 반
각한 병으로 죽어가고, 바이러스에 감염
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의 부르심이다.
드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시
대편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 가지
된 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간이었는지, 예배당 한쪽 구석 자기 자
사실만으로 수많은 이들이 핍박을 받으
방식으로 인간의 삶이 위협을 받고 있다
속히 돌아와 회개해야 할 때이다. 이 길
리에 앉아 주일을 함께 지킨다는 것이
며 목숨을 잃고 있다. 예수님 때문에 이
고 경고한다. 혹자는 코로라-19의 출현
만이 구원의 길이요, 살 길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은혜이었는지...
처럼 순교의 피를 흘리는 것을 마다하지
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결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을 때는 그것이
않는 감격스러운 현실에 겸허해 질 수밖
과로 인간이 자초한 재앙, 인재라고 부언
영광중에 큰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타
은혜이었음을 미처 몰랐다. 건강을 잃고
에 없으며, 우리가 현재의 상황이 힘들
한다. 극단적으로 ‘바이러스의 습격은
고 다시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난 후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듯이 불과
다고 하는 것은 사치일 뿐임을 느낀다.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에 대한 복
는 분명코 심판자의 모습으로 오신다. 믿
수’라고 언급한다. 이들은 인류가 결코
는 자에는 이보다 더 기쁘고 영광스러운
인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날이 없을 것이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
라”고 수차례 말씀하실 만큼 창조하신
자연생태계의 보존 없이는 전염병의 위
친 자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절망의
아름다운 자연과 생물을 무분별하게 크
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날이 될 것이다. 구원의 문이 아직 열려
몇 주 전의 이야기지만 함께 예배드리고 한상에 둘러앉아 떡을 떼던 순간이 왈 칵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있는 지금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이 생명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도 종교의 자유
게 훼손하였음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
가 없는 곳과 비교하면 사실은 복이다.
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라,
어찌 되었든 간에 공해와 미세먼지로
어쨌든 우리는 아직도 많은 혜택을 누리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는데, 이는
파란 하늘을 더 이상 보기 힘들 정도로
의 길로 돌아오길 간절히 우리 구주 예 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초청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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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3일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교회
억지로 진 십자가 구레네 시몬은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
되자마자 주일예배를 강요했습니다. 주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개 교회에 주
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골고다까지 함
일학교 예배를 드리는데도 어른들이 드
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칭
께 갔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시골로 부
리는 주일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예배
찬과 책망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 주시
터 왔다고 합니다. 유월절이 다음 날이
당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바깥 친구들과
는 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니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
함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마지막 일곱 번째 보내는 라오디게야
가졌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믿음이 식어
로 오지 않았을까요? 옷도 깔끔하게 입
저를 부릅니다. 주일예배에 앉아 있는데
에 주신 말씀은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
지고 세속화된 경우입니다. 우리에게도
고, 절기를 지키려는 기대감으로 왔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왜 앉아있어야
습니다. 책망만 있다고 해서 이 교회를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갑지도 뜨겁지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날에 사형 집행이
하는지, 예수님이 12살에 예루살렘에 올
주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신다는 것이
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있었습니다. 마침내 구레네 시몬이 이곳
라간 일과 나와 무슨 상관인지, 억지로
아닙니다. 라오디게야 교회가 회복되기
수 있습니다.
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억지로 예수
앉아 있는 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주보에
를 원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
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도록 합니다. 내
설교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면서
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
라오디게야 교회가 미지근한 신앙의
가 왜 이 사람의 십자가를 져야 할까?
예배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원인은 무엇일까요? 라오디게야는 토
피 묻은 십자가, 무거운 십자가를 내가
어느 순간에 주보에 설교대지를 기록하
내라 회개하라”(계3:19) 주님께서 라
지가 비옥하고 도로가 발달하여 상업
왜....? 얼마나 얼굴하고 속상할까요? 내
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디게야 교회를 보며 책망하신 이유는
이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농업과 산업
무엇일까요? 그들이 가진 미지근한 신
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양털로 옷감
가 대신 져야 할 이유도 모른 채 화가
안성훈 목사
덴버소망교회
나고 분노가 차오를 것 같습니다. 그런
지난 주일 날 저의 딸(7학년)과 아들
앙 때문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
을 짜는 섬유산업도 크게 발달하고 유
데 억지로 진 십자가에 은혜가 있습니
(1학년)이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딸
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
흥과 휴양의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안
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진 십자가 때
이 주보를 보여주면서 설교시간에 그림
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
약과 귀에 바르는 연고는 당시의 명약
문에 온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을 그렸다며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설교
를 원하노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유한 환경과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는 저의 얼굴을 그렸는가 했는데 말
은 미지근한 신앙의 태도로 주님은 책
교만한 마음이 미지근한 신앙으로 이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루포와
씀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림
망하셨습니다.
끌었습니다. 겉으로는 부요하고 아무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주
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안에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
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 주님이 사
제가 아시는 분은 비즈니스 접대 문
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
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모습이었습
에 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렇게
머니니라”(롬16:13) 여기서 루포가 누구
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사업을
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세속 에 물들고 죄악에 빠져 영적으로 비참 하고 괴로운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그림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세상에 살아남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혹시
람 시몬이....”(막15:21) 할 때 구레네 시
니다. “주언이는 나보다 낫다!!!” 억지
기 위해 이런 생활을 어쩔 수 없이 반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
몬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루포의 어머니
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주님이 우리에게
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술취한 모습으
가요? 모든 것이 잘되고 있고, 내가 원
이며 시몬의 아내를 바울은 나의 어머
은혜를 주십니다. 억지로라도 말씀을 읽
로 예배에 나아옵니다. 예수님을 섬기
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고 있다면 교
니라고 합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예
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세상과 타협
만한 것은 아닙니까? 내 생각과 계획과
수를 믿고 복음을 전하는 은혜의 통로
주십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한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돌아오기가 힘
뜻이 앞서 하나님의 뜻이 개입할 것도
가 되었습니다.
끼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
듭니다.
없는 상태가 아닙니까? 하나님에 대한
입니까?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
목마름과 갈급함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
로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밖으 저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로 나가지 못하는 이웃들을 위해 음식
우리에게 있어서도 미지근한 신앙이
목회하실 때에 주일예배를 억지로 드리
을 배달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
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부터 예
번 해보십시오! 거기에 주님의 은혜가 임
했지만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도중에
루살렘에 올라갔다며 초등학교 5학년이
할 것입니다!
멈춘 경우 그리고 한때 뜨거운 신앙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제공: 윤애원 원로사모(한인기독교회)
니까?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여 다시 열 심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 5:37)
제공: 서선녀 사모
에콰도르 이야기
26
2020년 4월 23일
(6회)
에콰도르와의 인연! 한국전 참전국 국기들
‘현대 포니(Hyundai Pony)'
에콰도르는 대한민국과 인연이 깊은 나 라입니다. 한국전에 쌀 500톤과 의약품을 보낸 나라입니다. 에콰도르에 지진이 났는 데도 불구하고 지원했다는 것은 대단한 결 정이었습니다. 에콰도르는 1976년 7월 세 계에서 처음으로 ‘현대자동차 포니’ 6대 를 수입해준 나라입니다. ‘현대 포니(영어: Hyundai Pony)'는 1975년부터 1990년까지 '현대자동차'가 만 든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입 니다.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자립을 선 언한 차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차명 인 ‘포니’는 ‘조랑말’을 뜻하는 영어 단 어인 ‘pony’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현대 차는 수소문한 끝에 1997년 에콰 도르 남부 산악도시인 ‘쿠엥카’에서 150 만㎞(약94만마일)를 주행하면서 21년째 택 시로 운행되고 있던 ‘포니’를 어렵게 구 해 ‘현대차박물관’에 전시했다고 합니다. 에콰도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쉐 보레(Chevrolet)라고 합니다. 2018년 기준 33%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많 이 팔리는 차는 현대기아 차라고 합니다. 2018년 기준으로 27%를 점유하고 있습니 다. 그런데 쉐보레(Chevrolet) 차 중에서 에콰도르에서 팔리는 차는 대부분 소형차 입니다. 그런데 소형차는 주로 GM대우에 서 만들기 때문에 결국 한국 차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6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2018년 판매량은 2017 년 대비 31% 증가했다고 합니다.
에콰도르와는 1962년 10월 5일 국교 를 수립했습니다. 1974년 3월에 주 에콰 도르 한국대사관이 설치되었습니다. 1982 년 6월에 주한 에콰도르대사관이 개설되 었습니다. 에콰도르에 수출하는 품목은 차량 부 속품과 기계류가 주 종목입니다. 수입하는 품목은 주로 농수산물입니다. 서울올림픽 에 32명의 에콰도르 선수들이 참가했습니 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며 재외국민은 약 1,000명입니다. 나라와 나라의 인연이 있는 것처럼 나라 와 개인의 인연도 있습니다. 저는 2014년 9월 중순 새벽 기도시간에 환상을 보았습 니다. 남미지도가 보이고 에콰도르가 솟아 오르는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콰 도르에 선교사로 가라고 환상을 보여주셨 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에콰도르에서 신학 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왜 당신은 내가 돕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당신이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그러면 내 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 까?” “그냥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냥이라니. 정말 그냥 그렇게 생각했단 말입니까?” “아 참 그 양반. 정말 알고 싶소? 내가 당신을 보았을 때 누군가 당신 을 보낸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러면 내가 당신을 돕게 하려고 수레가 뒤 집혔단 말이요?” “그렇지 않다면 왜 수 레가 뒤집혔겠소. 친구!” ‘인연’이란 인할 ‘인(因)’자에 연분 ‘ 연(緣)’자로 된 단어입니다. 사전은 인연 을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혹은 사 물과 관계되는 연줄이라고 풀이합니다. ‘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 연’은 그를 돕는 간접적인 힘이라고 풀이 합니다. 꽃을 예로 든다면 씨앗은 ‘인’이 고 땅, 물, 햇빛, 바람은 ‘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연을 시적으로 표현한다면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으뜸이라고 생각 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 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 보 다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 또 그렇게 울었 나 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한 여행자가 길을 가다가 수레가 뒤집혀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여행자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행자가 “해봤자 안될 거요. 난 못하겠소!” 그러자 농부가 “당신은 아주 잘 할 수 있지만 하고 싶 지 않은 거요! 그게 바로 당신의 본 마음 이요!” 이 말을 듣고 돕기 시작했습니다. 인연을 운명(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널빤지를 바퀴 아래에 집어넣고 지렛대를 이용하여 힘껏 수레를 들어 올렸습니다. 많은 것 같습니다. 즉 노력과 의지로 인연
26 임동섭 목사
에콰도르 선교사
dslim3927@hotmail.com (720) 371-1722 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였 다(엡1: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예정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할 필요도 없고, 설교할 필요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 게 됩니다. 신학을 공부할 때 한 교수님께서 ‘운명 론’과 ‘예정론’의 차이를 예를 들어 설 명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배에서 한 사람이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그 사람 은 물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운명론자가 바라보면서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살 게 될 운명이라면 어떻게든지 살아날 것이 고, 죽게 될 운명이라면 죽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예정론 자는 “내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게 된 것은 밧줄을 던지도록 예정된 것이요!”라고 말 했습니다. 성경에는 ‘예정’했다는 말씀도 있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대 표적인 성경구절 하나를 든다면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특별 기고
아랍인과의 만남 그리고 성경의 해석(1) 지난 20여 년간 아랍인과의 사역에 서 한국인들은 전도에 많은 열매가 있 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 사역자들 은 무슬림 배경의 아랍인들에게 어떻게 성경을 가르칠 것인가에 그다지 많은 관 심을 두지 못했다. 그것은 아랍어로 된 성경을 아랍인에게 오랫동안 가르쳐 본 경험과 아랍어(문학적 아랍어, literary Arabic)를 잘 알고 아랍 신학대에서 신 학과 성경을 배운 사람들이 많지 않았 기 때문이다.
27
2020년 4월 23일
지만 꾸란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꾸란 의 프레임으로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된다. 마크 듀리(Mark Durie)는 성경적 형식 을 취한 어휘들이 꾸란에 나오는데, 이 런 어휘들이 꾸란에 사용되더라도 신학 적 맥락과 그와 관련된 내용이 생략되거 나 교체된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성 경의 해석 원리와 꾸란의 해석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어나 영어로 읽는 성경이 어 느 구절에서는 의미와 해석에서 차이가 날 때 아랍어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그 런 경우,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에 의존 하곤 했다. 아랍지역에 오래 사역한 어 느 목회자는 아랍어가 아니더라도 영어 로 사역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했는 데 그의 말은 틀린 것은 아닐지 몰라도 영어를 모르는 아랍인들이 아랍어를 아 는 아랍인들보다 더 많다는 것은 엄연 한 사실이다.
세계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마다 텍스 트에 대한 해석 방식이 다르다. 순니 무 슬림은 텍스트의 글자가 갖는 명백한 의 미(자히르, Zahir; apparent)를 찾고 시 아 무슬림은 글자 뒤에 숨은 의미(바띤, Batin; hidden)를 찾고 수피 무슬림들 은 글자 밖의 의미 즉 암시된 의미(이샤 라, isharah; sign, allusion)를 찾아갔 다. 수피 무슬림은 이론적 수피 해석과 암시적 해석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꾸란 의 명백한(밖으로 드러난) 의미를 피하고 철학적 의미를 찾는 것이고 후자는 암시 를 통하여 꾸란 구절에 드러난 것과 다 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랍 기독교인에게 성경을 가 르칠 때와 아랍 무슬림 배경이었다가 회 심한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몇 가 지 점에서 서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사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된 책이
무슬림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해당 무 슬림이 꾸란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먼저 확인해보면 그가 성 경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가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령 순니 무슬림 중에
서 극도의 문자적인 해석(letterism)을 하는 살라피 무슬림(salafi muslim)은 텍스트의 극도의 문자적 의미를 선호하 므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영적 의미 를 찾으라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다. 그렇다면 아랍 무슬림 배경의 사람 이 성경에 나오는 어휘를 어떻게 이해하 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고후 5:21에서 “하나님의 의(아랍어 성경에서는 birr allah, 비르 알라라고 함)”는 죄와 대조되었고 빌3:9에서 “하 나님의 의(birr, 비르)”는 믿음으로 하나 님께로 난 의다. 갈 2:16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아랍어로, yatabarraru, 야타바라루)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 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라고 했다. 로마서 5장에서 하나 님의 의로 인한 유익은 하나님과의 화 평, 화해, 모든 환경에서 기뻐함, 하나님 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요구 된다. 그런데 아랍어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를 비르(birr)라고 하는데 아랍 무 슬림들은 비르(birr)를 유익과 선함과 행 복과 많은 재물, 효도, 알라의 보답과 자 비, 순종, 진실, 은택, 그리고 순종과 진 실을 망라한 의미로 이해한다.
공 다니엘
중동 지역 사역자
챠드에서 아랍어를 통역한 형제가 성 경의 “비르”라는 말을 “유익과 재물” 이라는 말로 통역하였다. 다시 아랍 국 가로 돌아와서 아랍무슬림들이 birr(비 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알아보니 위 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결국 로마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의라 는 말을 무슬림 배경의 회심자가 금방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슬림의 “ 의”는 율법에 의한 것이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에서 온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슬림이 사용하는 랍어로 성경을 가르칠 때 위와 같은 이를 미리 알고 있으면 성경 말씀을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할 수 있을 이다.
아 차 좀 것
(*제 글을 연재할 예정인데 제 글을 읽는 독자분 중에서 제 글을 영어로 무 료 번역해 주실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 요. 영어 사용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사역지에서 기고자의 신분안전을 위하 여 사진과 연락처는 게재하지 않습니다. 연락처를 원하시는 분들은 빛과소금뉴 스로 연락 주십시오.)
재미있는 창조과학 이야기
2020년 4월 23일
28
24회
창조 둘째 날에는 왜‘좋았더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 창조 사역을 마
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병갑 (고신대 명예교수)
물을 모으는 사역”을 하신 것이다.
치시고 ‘좋았더라’라고 하셨고 셋째, 넷째, 다섯째 날도 그렇게 하셨으며 특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무
히 여섯째 날에는 동물들과 인간을 창
서운 분이 된다. 왜냐면 아직 사람은 만
조하신 후에는 ‘심히 좋았더라’라고
들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사람과 동
하셨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물을 죽이기 위해서 죽일 도구인 궁창
둘째 날에는 ‘좋았더라’라는 기록이
위의 물을 미리 만들어 두신 분으로 여
없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둘째 날에는
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
왜 ‘좋았더라’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들을 죽이기 위해 궁창 위의 물을 나눠
하나님께서는 둘째 날에 물을 나누 셨고 셋째 날에는 물을 모이게 하셨다. 그리고 물을 모이게 하신 후에 ‘좋았 더라’라고 하셨다. 따라서 둘째 날에는 물에 관한 사역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 기 때문에 ‘좋았더라’라고 하지 않으 신 것으로 생각된다.
물을 만들어두셨기 때문에 ‘좋았더라’
물에 대한 사역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더라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근거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셋 째 날에는 두 번씩이나 ‘좋았더라’라 고 하신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 번 은 물을 모이게 하시고 ‘좋았더라’라 고 하셨고, 또 한 번은 식물을 창조하 신 후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이다. 둘 째 날에는 한 번도 ‘좋았더라’라고 하 지 않으셨는데 셋째 날에는 두 번씩이 나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을 보면 미 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물에 관한 사역을
라고 하지 않으신 것으로 해석하면 하 나님의 본 모습인 사랑의 하나님이 훼 손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응징하시는 하나님, 벌하시는 하나님으 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놓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죄를 너
둘째 날에 좋았더라라고 하지 않으신 이유에 대한 첫 번째 해석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이유를 짐 작할 수 있는데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은 첫째 날 창조되었 고 둘째 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의 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궁창 위의 물은 훗날 노아 홍수 때 모든 사람과 짐승을 멸하는데 사용된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둘째 날 좋았더라 라고 하 지 않으신 첫 번째 해석은 노아 홍수를
무 많이 지어서 어쩔 수 없이 궁창 위 의 물을 사용하신 것이다.
둘째 날에 좋았더라 라고 하지 않으신 이유에 대한 두 번째 해석 하나님께서 둘째 날 좋았더라 라고 하 지 않으신 두 번째 해석은 창조 사역의 연속성 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창세기 1장 6~8절까지는 둘째 날의 창조 사역 이 기록되어 있는데 둘째 날에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신 사 역을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즉 둘째 날 에는 ‘물을 나누시는 사역’을 하셨다.
통해서 사람과 동물을 멸할 물 심판에 그리고 창세기 1장 9~10절에는 셋째
기 때문에 차마 “좋았더라”라고 하시
날의 창조 사역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나
지 못한 것이라는 견해다. 하나님께서
타나 있는데,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
는 아직 사람을 창조하시기 이전인 둘
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 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 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셋째 날에는 “
람을 창조하면 이 사람들이 죄를 범하 므로 죄악이 세상에 관영할 것이고 사 람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서 물을 나누
해 둘째 날에는 ‘좋았더라’라고 하지 않으셨고 셋째 날에는 두 번씩이나 ‘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을 보면 더 분명 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 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둘째 날의 물을 나누신 사역과 셋째 날의 물을 모 으신 사역을 하루 만에 마무리하지 못 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성경은 일점일획 도 틀리지 않은 진리의 말씀임을 다시
사용하실 물을 나누신 날이 둘째 날이
째 날에 물을 나누시면서 “앞으로 사
마친 후에 ‘좋았더라’라고 하시기 위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8)
이러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창조 둘째 날에는 물에 관한 사역이 완전히 끝나 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더라’라고 하 지 않으신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 리적인 해석으로 생각된다.
한 번 깨닫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creationisfact@gmail.com)
왜냐하면, 첫 번째 해석인 홍수를 일 으켜 사람들을 멸할 도구로 궁창위의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1 4:18)
제공: 이국형 장로(한인기독교회)
제공: 신민식 신경원 성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제공: 이명자 권사(뉴라이프선교교회)
나의 노래, 나의 기도
2020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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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는 신앙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나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 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네 하나님 여호 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길을 걷 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 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 를 시험하사 마침내, 마침내 네게 복을 주 려 하심이었느니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 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 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 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하나님, 지금은 추운 겨울이 다 지나 간 듯한 봄기운이 맴돌고 있는 계절입니다. 자연은 여기저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 하면서 살아 있는 생명의 모습들을 서서 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땅에서는 작은 튤 립의 잎사귀들이 옹기종기 뭉쳐 나와 있 고, 잔디밭에는 벌써 녹색을 띈 새싹들이 자라났고, 나뭇가지들 군데군데에는 싹을 피우기 위한 몽우리들이 그 모습을 드러 냈습니다. 하나님, 우리들은 이 생동력 있는 봄날 주일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렇 게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이곳은 하 나님이 우리를 반기시는 곳이기에, 이곳은 생수가 흘러넘치는 곳이기에, 우리의 심령 이 소생함을 얻고자 이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 우리도 우리의 심령에 새싹을 피 우기를 준비하고자 이렇게 주님 전에 나 왔습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 리는 주님의 백성이오니 우리를 평강으로, 말씀으로, 또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물 질로 더 축복해 주시옵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지금은 경제가 많이 어려운 시 기입니다. 3년이 넘는 경제의 기근으로 말 미암아 우리가 지금은 다 광야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경제의 기근은 교회까 지 찾아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즐겨 드리던 그 아름다운 손길까지도 방해를 하고 있어서, 모든 교회들마다 많은 물질 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세 에 믿음이 그 모습을 드러내듯, 이것도 우 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인 줄 알고 기도합니다. 우리로 전쟁도 없 고, 극심한 핍박도 없는 시대에 살게 하시 는 하나님께서 이 작은 경제의 위기를 우 리에게 주심은, 그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 엘 백성을 시험하시듯, 우리의 신앙을 점 검하시며, 도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시 간 인줄로 압니다. 하나님, 이 시간 기도하기는 하나님께 즐 겨드리던 십일조, 감사헌금, 주정헌금, 특 별헌금, 선교헌금 등을 거두는 사람이 우 리 안에는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께서 우리로 이 풍요로운 미국 땅에 살면 서 일용할 양식을, 만나와 같이 매일 배부 르게 먹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게 하신 것이 아니 요, 오직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 닌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말 씀에 순종함이 없고, 또한 우리의 위기 속 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우리의 신앙은 사생아와 같고, 오직 떡만 을 목적으로 사는 인생과 똑같을 것입니 다. 하나님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백성답 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줄 아는 백성 되게 하시어, 살아계 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신앙과, 마침내 부 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을 다 받는 우리 모두 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 리스도의 몸되신 이 제자교회를 우리가 사랑합니다. 또한 제자교회가 예배드리는 이 성소도 우리가 사랑합니다. 이곳은 하 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이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기에 우리가 이 전을 사모합니다. 지지난주 금요예배때 목사님을 통해서 우리가 에스겔서 47장의 말씀을 들었습니 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 신 비전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생수가 흘 러나온다 들었습니다. 그것이 흘러내려서 시내를 이루고 또한 강을 이루며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들었습니다. 이 생수는 살 리는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그것이 흐르 는 곳 주변마다 하나하나 살아난다 들었 습니다. 심지어는 바닷물까지도 살리어 그 곳에 물고기들이 살게 하신다 들었습니 다. 이 제자교회 성전은 우리를 살리는 곳 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살아나는 곳입니
문서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제공: 박영돈 부동산
노윤호 장로(덴버제자교회) 다.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곳입니다. 우 리가 비록 당장은 그 변화를 못 느낀다 할 지라도, 언젠가 우리 안에 말씀의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룰 것은, 이 안에서 우리가 예배의 재단을 쌓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성전을 지켜야합니 다. 우리의 가족을 살리고, 우리의 친족 을 살리고, 우리의 이웃을 살리는 생수가 이 전에서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 전을 섬깁니다. 하나님, 우리로 물질을 웅 크리는 자가 아닌, 펴는 자 되게 하여 하 나님의 축복을 받는 백성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서 추운 겨울날 앙상한 가지 같더라도, 우 리 안에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생명이 있 기 때문에 그 모습은 곧 드러날 것입니다. 그 생명이 봄을 맞을 때에는 새싹을 내고, 봉우리를 내듯이, 우리의 신앙도 피어날 것입니다. 불어오는 봄바람이 잠자던 자연 의 생명을 깨우듯, 우리의 영혼을 깨우시 는 하나님의 은혜의 바람이 우리로 하여 금 그 신앙을 드러내게 할 것입니다. 하나 님, 성령의 봄이 왔는데도 그냥 잠자는 우 리의 신앙 되지 말게 하옵시고 우리로 하 여금 나의 믿음이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 다 고함치는 우리들의 신앙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처절하 게 돌아가심으로 흘리신 보혈로써 우리 를 일깨우시며, 우리를 소성케 하시는 우 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문서선교 후원을 감사드립니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대상 16:10~12) 제공: 빛과소금뉴스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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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오후 12:30 수요연합기도회 수요일오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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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에덴교회 손재흥 목사 주일1부: 오전 7:30 주일2부: 오후 1:00 수요성경공부: 오전 10:30 금요기도회: 오후 7:30 어린이주일학교: 주일오후 1:00 어린이/청소년 성경공부: 주일 오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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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교회 김창훈 목사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어린이부: 오전 11:00 수요기도회: 오후 7:30 성경통독: (금)오후 7:30 새벽기도회: 오전 6:00
주일예배(한/영): 오전 11:00 Youth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토) : 오전 6:00 성경교리대학(주일) : 오후 1:30 주중제자훈련 (화) : 오전 10:00
허성영 목사 주일 1부: 오전 7:30 주일 2부: 오전 11:40 새벽기도회: 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수요성경공부: 저녁 7:30 5400 S. Yosemite St. Greenwood Village, CO 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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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현 목사 주일예배 : 오전 11:00 금요성령집회 :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 오전 6:00 성경대학(주일) :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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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윤우식 목사
이성한 목사 주일 1부(영어) 10:00 am 주일 2부(한어) 11:45 am 주일학교 11:30 am 수요성경공부 7:00 pm 토요기도회 7: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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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선교교회 수요성경공부(TTE 시리즈): 오후 7:30 목요 모임(성경통독): 오후 7:30 새벽기도회(화-금): 오전 5:30 (토) 오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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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21755 E. Smoky Hill Rd. Centennial, CO 80015
센서스 작성 요령 간단합니다. • www.2020census.gov 를 방문하세요. • 귀하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등록하는데 한 가구원당 1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중요합니다. • 콜로라도주는 이번에 산출되어진 각 사람에 대해 2030년까지 매년 연방정부로부터 $2,300을 지원받습니다. • 예를 들면, 올해 인구조사를 통해 산출되어진 6인 가족의경우 콜로라도는 향후 10년동안 정부로부터 $138,000을 지원받게 됩니다. • 콜로라도의 사회 기반 시설을 위한 정부 지원금: 의료와 복지사업 , 교육, 교통 등등
기억하세요. • 귀하의 가정이 다민족으로 구성이 되어있다면, 각각의 가구원의 인종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되어져야 합니다. 귀하가 제공하는 인구통계는 우리 지역사회를 위한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정책결정을 하는데 큰 영향을 주게됩니다.
안전합니다. • 귀하의 가구에 살고있는 모든 가구원은 혈연관계, 시민권자, 이민자, 또는 난민신분에 상관없이 아기도 포함하여 모두 기록되어져야 합니다. • 만약 한 가구에 법규나 임대계약서에 규정된 사람보다 더 많이 살고있다면, 센서스 form에 기록되어진 인원수에 대한 정보는 임대주에게 제공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미국 연방법전 제 13편 (Title 13)은 귀하를 보호합니다! 인구조사국은 응답자의 개인정보를 어떤 정부나 법집행기관과 공유할수 없으며, 이것을 어길 경우 법적으로 벌금이나 구속 같은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한국어 인구조사 대표 전화: 844-392-2020, 위의 번호가 바쁘고 안 되면 이 지역 분들이 도와 드립니다.
박선미 유미순 이선영 주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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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nfographic was created by the APIA-CCC, a community Census support group that is not a Bureau of Census or federal government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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